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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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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령혼의 메아리 손경란     숙아, 너는 구름을                       박장길 산으로 들로 아침 먹으러 가자고 양우리문을 열면 숙아, 네 구름떼 흘러나온다지   어서 가자 빨리 가자 쨩쨩  채찍소리 울리면 하늘의 구름이 내린듯 숙아, 네 구름떼 산과 들을 덮는다지   해가 솟으면 산을 감았던 안개는 걷히지만 해가 솟으면 숙아, 네 구름떼는 피여난다지   굴리는 눈덩이 같이 커만 가는 양떼를 앞세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들에 가는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   이 시는 박장길시인의 처녀작으로서 1979년에 창작되여 1980년 8월호 《연변문예》 (지금의 《연변문학》)에 발표되였고 그 이듬해인 1981년에 한어로 번역되여 《민족문학》에 발표되였다. 그러니까 이 시는 공교롭게도 필자가 태여나던 해에 창작된 시이다. 문학작품은 부동한 시대 부동한 독자들에 의해 새롭게 또 다양하게 읽히울 수 있다. 이 또한 문학작품의 생명력이기도 하다. 박장길시인의 이란 처녀작은 발표된 시간이 오래된 만큼 아마 많이 읽히웠으리라 믿는다. 39년이란 유구한 세월이 흘러 이 시를 처음 읽어보는 독자로서 필자는 시의 행간에 살아숨쉬는 그 진미와 향기를 느껴보고저 한다.  이 시는 양치기 처녀 ‘숙이’와 그녀의 양떼를 시적 대상으로 표현한 시이다. 시 은 발화체 형식의 제목으로 시작된다. ‘이름짓기’ 문화는 시대적인 특징을 보이는 바 70, 80년대까지만 해도 ‘숙’자는 우리 민족 녀자들의 이름자에 흔히 애용되던 글자이다. 영숙이, 옥숙이, 경숙이… 등 녀자들의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략칭하여 ‘숙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이렇게 미루어볼 때 ‘숙이’라는 인물은 분명 우리 민족 녀성이다. 이어서 ‘너는 구름을’으로 이어지는 제목은 두개의 시적 대상물인 ‘숙이’와 ‘구름’이 어떤 련관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호기심은 곧바로 시의 제1련에서 풀린다. 첫련 “산으로 들로 / 아침 먹으러 가자고 / 양우리문을 열면 / 숙아, 네 구름떼 흘러나온다지”에서 시인은 풀빛으로 물든 산과 들에 방목되고 있는 하얀 양떼들과 하늘의 하얀 구름떼의 류사성을 발견하고 시적 합일을 이루어낸다. 산과 들에 펼쳐진 짙푸른 풀빛, 파아란 하늘빛, 하얀 구름빛과 양떼빛 그 속에 서있는 한 처녀… 그야말로 한폭의 목가적인 풍경화이다. ‘숙이’와 ‘양떼’, ‘하늘’, ‘구름’, ‘산’과 ‘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조화를 이룬 평화로운 세상이다. 이 련에서 사용된 시어들은 사물을 지칭하는 ‘산’과 ‘들’, ‘양우리’, ‘구름떼’ 등 명사적 낱말들로 되여있고 수식어인 ‘푸르다’, ‘하얗다’ 등 색채 형용사가 빠져있기에 오히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제2련 “어서 가자 빨리 가자 / 쨩쨩 채찍소리 울리면 / 하늘의 구름이 내린듯 / 숙아, 네 구름떼 산과 들을 덮는다지”에서 ‘쨩쨩’ 울리는 채찍소리로 청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산과 들을 순식간에 덮어버린 양떼들을 하늘의 흰 구름이 내려앉은 이미지에 비유함으로써 생동한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제3련 “해가 솟으면 / 산을 감았던 안개는 걷히지만 / 해가 솟으면 / 숙아, 네 구름떼는 피여난다지”의 시구를 보면 해가 솟아나는 시점에 양치기 처녀 ‘숙이’의 방목은 시작된다. 부지런한 양치기 처녀의 삶은 자연의 리듬과 일치해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삶과 존재의 모델을 시인은 양치기 처녀에게서 발견했던 것이다.   제4련 “굴리는 눈덩이 같이 / 커만 가는 양떼를 앞세우고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들에 가는 /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에서 ‘숙이’의 양떼는 굴리는 눈덩이같이 커져간다. 산과 들에 흘러가면서 하루하루 살찌는 양떼들의 모습이 눈덩이가 굴러가면서 커지는 이미지에 비유되는 이 시구에서는 양치기 처녀의 고생이 결실을 맺어 보람된 로고로 이어지고 있다. 1, 2, 3련의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에 풍요로운 이미지가 가미되여 느껴진다. 또한 양치기 처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방목을 멈추지 않는다. 산과 들은 그녀의 삶의 터전이며 그 속에서 ‘숙이’의 충만된 끊이지 않는 하루 일상은 계속된다.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양치기 처녀 ‘숙이’의 정신력과 삶의 자세에 대한 감동과 찬미이다. 자연 속에서 점점 더 강인해지는 그녀의 찬란한 아름다움은 말없이 불타는 생명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전반 시의 시어 구성을 보면 형용사는 절제하고 동사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형용사가 사물의 성질, 감각, 색갈, 시간, 수량 등 정지 상태를 표현하는 데 반해서 동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력동적인 어휘이다. 동사가 움직이는 선이라면 형용사는 고정되여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각 련에 사용된 ‘열다’, ‘흘러나오다’, ‘가자’, ‘울리다’, ‘덮는다’, ‘피여난다’, ‘앞세우고’ 등 시어들은 양치기 처녀 ‘숙이’의 방목과정을 동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으며 시의 력동성을 더해주어 시가 살아 꿈틀거리며 뛰여가게 하고 날아가게 한다.  또한 각 련의 마지막 시구는 모두 “숙아, 네 구름떼…”란 반복구로 시적 리듬을 살려내며 음악성을 짙게 한다. 양떼는 구름떼가 되여 흘러나오고 산과 들을 덮고 피여난다. 이렇게 양치기 처녀 ‘숙이’는 “구름을 몰고 있”다. 마지막 시구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란 시적 표현과 함께 구름을 탄 ‘선녀’의 모습이 확연히 안겨온다. 순간 “와!” 하는 감탄이 흘러나오며 독자의 시선은 다시 양치기 처녀와 양떼에 주목된다. 그러면서 “왜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였을가 하는 의문의 여운이 안겨온다.  양치기는 일명 목자라고도 부른다. 양치기는 소아시아에서 5000여년 전을 시작으로 가장 오래된 직업들 가운데 하나이다. 젖과 양고기, 특히 양털을 위해 양을 길렀다. 이후 수백년에 걸쳐 양과 양치는 일은 유라시아를 통해 퍼져나갔으며 양치기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고 양치기는 이야기문학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헤라클레스, 오이디푸스, 다윗 등 인물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양치기이다. 이 외에도 더 잘 알려진 양치기가 있다. 심심풀이를 하고저 “늑대가 왔다!”라고 거짓말이나 해대는 양치기 소년을 우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양치기 하면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시는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 ‘숙이’와 그녀의 양떼를 시적 대상으로 표현한 시이다.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의 등장에 호기심이 더해진다. 우리 민족은 농경민족인 만큼 양치기 처녀의 모습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때문에 박장길시인의 에 등장하는 양치기 처녀는 더욱더 독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정열로 불타는 19살 남자 시인의 감성으로 담아낸 20세기 우리 민족 양치기 처녀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잔잔한 감동으로 독자들의 가슴에 녹아들고 있다. 시인은 그의 시집 《너라는 역에 도착하다》(2016년 3월, 연변인민출판사) 후기에서 《시와 시창작》에 대한 시인의 견해를 피력하는 대목에서 “전통을 타파하지 않으면 거기에 얽매이게 된다. 하지만 전통이 없으면 목동이 없는 양떼와 같고 혁신이 없으면 시체와 같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는바 목동과 양떼가 어우러진 풍경은 이미 시인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녀작이란 첫 시적 체험인 만큼 그의 처녀작 은 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시인의 령혼의 메아리이다.  출처:2018 제5호
69    조은경: 한낮의 맥노리(단편소설) 댓글:  조회:375  추천:0  2019-07-15
한낮의 맥노리 조은경   “오는 일요일에 시간 좀 내라.” 오랜만이였다. 아버지가 시간을 내라고 전화한 것이.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주동적인 부름은 늘 불길함을 몰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자 윤주는 아버지와의 소통이 조금씩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윤주가 다니는 중학교에 찾아왔던 날도, 하숙하고 있는 친척집에 먹을 것을 한아름 사가지고 불쑥 나타났던 날도. 예고 없는 아버지의 방문은 윤주에게 반가움에 이어 의아함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아버지는 리혼과 출국을 그런 방식으로 통보했다. 윤주에게 혼자라도 괜찮니 하고 묻는 것 따위의 의논은 하지 않았다.  윤주는 갑작스러우면서도 낯설지 않은 느낌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시간이 있다고 말하기도, 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하여 잠간 멍하니 있었다. “…” “성주가 결혼한다는구나. 다같이 밥이라도 한끼 먹어야 되지 않겠니…” 처음에 시간을 내라고 했을 때의 명령조와는 달리 아버지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버지의 그런 말투는 당신의 주장이나 의견에 자신 없어하는 것처럼 들렸다.  “네 어머니가 련락했더라. 결혼식에 올 수 있겠냐고.” 성주에게서 ‘나 결혼할지도 몰라.’라는 문자는 며칠 전에 받았다. 그런데 성주도 아닌 엄마가 직접 아버지에게 련락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자식의 결혼을 부모가 아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윤주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르는, 은근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긴! 글루건 심에 열을 가하여 떨어졌던 물건을 도로 붙여버리는 것처럼 끊길듯 이어지는 게 부모자식의 인연 아닌가. 그리고 자식을 둔 부부는 언제든 필요에 의해 련락을 지속해야 될 의무가 있었다.  엄마는 성주가 아버지처럼 리기적이고 폭력적이며 분노에 젖어있는 사람이 될가 두렵다고 했다. 사람이 어찌 평생 그런 태도로 살아가겠냐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엄마의 인식은 완고하여 부자간의 만남이라면 치를 떨 정도였다. 그런 엄마가 성주의 결혼 소식을 전하려고 아버지에게 먼저 련락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성주가 장손이라는 게 마음에 걸려서 아버지에게 련락한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성주의 결혼자금을 조금이라도 보태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올 수 있겠냐는 말은 또 뭔가. 오라면 오고 오지 말라면 안 가는 거지. 또 오지 말라고 해도 아버지인데 가고 싶으면 가는 게 아닌가. 윤주가 아는 한 아버지는 자식 일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아버지 가슴 속의 정체 모를 울분과 분노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옅어졌고 언젠가부터 딸의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 챈 지 꽤 됐다.  윤주는 별일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저절로 눈살이 찌르려졌다. 아버지에게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그래서요?”  “새아버지가 있은 지 오래 됐고 성주는 대부분 엄마가 키웠으니 나까지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모양새가 안 좋을 것 같아서 결혼 전에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했다. 부모 된 도리는 해야지. 그 자리에 너는 있어야 되지 않겠니? 몇년 만의 가족모임인데.” 부모 된 도리는 어떤 건데요, 하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친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성주에 대해선 스쳐가는 궁금증도 내비치지 않던 아버지였다. 가끔 윤주가 일부러라도 ‘성주 한국에 왔어요.’, ‘요즘은 공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공단 그만두고 무슨 학원 다니고 있어요.’ 하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는데 윤주는 그 순간 서운함이나 미안함 같은 것이 얼핏 서렸다고 생각했다. 기죽은듯한 아버지의 모습을 인지한 윤주는 성주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말해줄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윤주는 가족모임이라는 단어를 마치 오래 전부터 말해온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입 밖에 내는 아버지가 생경했다. 윤주네 부부와 식사하는 것조차 어색해하던 아버지가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였나 싶었다.  풍성한 료리들을 앞에 놓고 서로 눈을 맞추는 부부, 수시로 목소리를 높이는 토끼 같은 아이들, 그런 손주와 자식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어른들 등 삼세대가 함께 모인 풍경이 떠올랐다. 윤주는 왜 가족이라면 늘 오순도순 모여앉아 밥 먹는 장면부터 떠올리는지 모른다. 가족끼리의 만남이란 모름지기 그런 풍경이여야 될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하는 가족모임에 대해서 윤주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따가운 직사광선 때문에 눈 뜨기 힘든 것처럼 현기증이 일었다.  “야야! 말을 했는데 왜 대답이 없니?”  아버지가 질책하듯 소리쳤다. 윤주는 아버지의 다그침 속에서 식사자리에 꼭 참가하여 중간다리 역할을 해달라는 간절함을 보아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아버지는 어지간히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정확하게 십팔년 만에 네 식구가 모이는 자리이다. 아니, 구성원이 다섯일지 여섯일지 모른다. 갈가 말가. 엄마가 자신을 통해서도 아니고 아버지에게 먼저 련락했다는 소외감 때문에 윤주는 가족모임에 갈지 말지 망설여졌다.  영원히 여덟살 꼬마여야만 할 것 같은 성주가 다른 사람과 가족을 이룬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게 했다. 윤주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련락할 수 있는 애인 같은 동생이였다. 불현듯 성주가 또다시 윤주의 손안에서 스르르 녹아버려 혼자 남을 것 같은 쓸쓸함이 갈마들었다.  “꼭 와야 된다. 전날에 내가 시간이랑 장소 문자로 보낼게. 들었니?” 언제부터 이런 열성을 보였나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목소리는 격앙돼있었다. 윤주는 떨떠름한 채 예, 예, 하는 말만 남기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날 지연이랑 만나기로 약속돼있었다.  아버지는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아 정한 한정식집이라며 정중해보이는 게 가족모임 장소로는 정말 근사하지 않느냐고 윤주에게 자꾸 물었다. 나름 정성을 기울이고 격식을 차리기 위해 신경 썼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보였다.  윤주는 이게 뭐라고, 하는 생각에 성가셨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아버지가 누구에게든 말을 걸고 싶어도 마땅한 대상이 윤주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안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아버지,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이건 제가 준비한 선물인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민아가 준비한 것은 닥스 로고가 박혀있는 와인색에 빗살무늬를 곁들인 넥타이였다.  아버지는 고맙다며 멋적게 웃었는데 윤주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표정이였다. 아버지의 웃음이 수줍고 밝아서 윤주는 그만 짜증이 났다.  저런 넥타이를 매려면 정장도 한벌 있어야 되지 않나. 민아가 처음 만나는 아버지에게 넥타이만 준비한 게 마치 엄마 탓이라도 된 양 윤주는 엄마를 흘끔 쏘아보았다. 엄마는 아직도 윤주 앞에만 서면 움츠러들곤 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데도 엄마는 매번 주눅이 든 모습으로 윤주를 불편하게 했다. 그 때마다 윤주는 원망과 련민이 뒤섞인 마음을 자제하지 못하고 기어이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라면 자식한테 헌신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윤주는 엄마가 자신을 먼저 배려하는 다소 리기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주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네요. 아버지도 과묵하실 것 같아요.” 아버지는 알코올만 섭취하지 않으면 이 말을 꽤 자주 듣는 편이다.  “그 놈의 술만 없었으면 네 엄마하고 잘살았을 텐데 어찌 술만 들어가면 그렇게 란폭해지는지… 네 아버지는 사는 게 뭐가 저리도 억울한지 모르겠다.” 고모할머니가 문턱을 넘어서는 아버지의 등뒤를 아리게 쳐다보다가 윤주를 향해 혀를 차던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 이제 집에 와도 엄마와 성주가 없다고 말해줬던 그 날의 아득했던 기억과 함께.  윤주는 세살 때부터 애비 없이 자라서 그래요, 라는 말이 입안에 가득찼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좋아하는 건 아니였다. 그러나 윤주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아버지를 비난하는 주체가 되거나 그런 류의 말들에 동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족이라고 여겼다.  “어머니, 이 나물 맛 좀 보세요. 쌉싸름한 게 자연의 맛이 느껴져요. 이 집 정말 좋은 것 같지 않아요?”  민아는 처음부터 말머리에 아버지, 어머니를 붙였다. 그 호칭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어서 윤주는 들을 때마다 뜨악했다. 아버지는 어색함과 반가움이 뒤섞인 웃음을 희미하게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는 그래, 그렇구나 하며 가볍게 맞장구를 쳤다.  윤주는 민아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인간관계란 참으로 오묘하다고 생각하면서 윤주는 맞은편에 앉은 성주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성주는 민아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말없이 저가락만 들었다 놨다 했다. 자신 때문에 이 자리가 마련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대화에 낄 생각이 없어보였다.  성주는 아버지와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눈 후로는 눈도 마주치는 것 같지 않았다.  윤주는 웬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났으면 했다. 그러나 한정식은 윤주의 마음과 달리 찔끔찔끔 계속해서 나왔다. 하필이면 한정식집에 와서 제일 비싼 코스요리를 주문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언니,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요즘은 다들 그렇게 불러요.” 느닷없이 민아가 훅 치고 들어왔다. 스스럼없는 호칭에 윤주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얘 좀 봐라, 하는 뜻으로 성주를 쳐다봤다.  내내 말이 없던 성주가 윤주를 보더니 가만히 웃었다. 그 순간, 윤주는 가슴 속에 맺혔던 응어리가 갑자기 풀어진 것처럼 울컥했다.  윤주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축하에 앞서 “누나, 나는 누구랑 같이 산다는 게 싫어.” 하고 말해서 황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어린 것이 외삼촌 집에 얹혀사는 동안 하루이틀 사이에 생긴 감정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윤주는 가슴이 아팠다. 사람은 늘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데 그 인간관계가 낯설고 기피하고 싶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아서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방금 전 성주의 웃음은 윤주에게 안전감과 의아함이 뒤섞인 요상한 감정이 생기게 만들었다. 윤주는 낯설고도 야릇한 느낌에 눈을 몇번 깜박이다 말했다. “그럼요. 성주와 동갑이라고 하니 나보다 한창 어린데,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요.”  윤주는 어느새 자신을 무장하고 있던 까탈스러움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불현듯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지금 이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해야 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결혼식은 한국에서 해요? 오월의 신부, 너무 근사한데. 민아씨네 가족은 어디서 살아요? 알다 싶이 우리 가족은…” “누나!” 성주가 날카롭게 윤주의 말을 가로챘다.  윤주는 성주를 향해 눈을 부릅뜬 채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다시 민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버지가 좀더 당당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꼭 고백하고 넘어가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가족은 아니예요…”  “그만해! 누나가 말을 안해도 다 알아. 가족사도 모르고 만나는 사람이 있냐?” 성주가 짜증 내며 쏘아붙였다. 순간 남편을 떠올린 윤주는 허를 찔린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찌릿했다.  남편은 오늘의 가족모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에게는 건방진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둘러댔다. 그럴 사람도 아니지만 혹여 남편이 “뭐? 그게 어떻게 가족모임이야?” 하고 묻기라도 한다면 윤주는 모멸감을 느낄 것 같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직도 할아버지의 형제 넷이 살아계시는 대가족 속에서 성장한 남편은 결혼 전에 윤주네 가족에 대해 물어보더니 “그럼 친척이 별로 없네.” 하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각자 책임지고 양육한 자식들은 그렇다 치고 리혼한 지 이십년이 다돼가는 옛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하는 게 가능하냐며 의아해할지도 몰랐다. 가족 모두가 성주를 특별하게 여기는 게 확실하니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까지 창피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윤주는 남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었다. 언제 튀여나올지 모르는 윤주를 비난하는 말 속에 가족이 포함된다면 그보다 더 비참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더우기 엄마는 윤주가 결혼하기 전에 둘을 불러 밥을 사주면서 남편이 경제력도 없고 시댁에서 특별히 해주는 것도 없다며 트집을 잡아 윤주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딸에 대한 걱정인지 사위를 향한 비난인지 알 수 없었다. 윤주는 그 순간 엄마에게 결혼 소식을 전한 것을 후회했다. 이번에도 남편에게 “학위를 따긴 딸 거냐? 아이는 언제 낳아서 키울 거냐? 돈은 남자가 팍팍 벌어야 되는데!” 따위의 말로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예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윤주는 잔잔한 호수와 같은 결혼 생활에 한가닥의 물결조차 이는 것이 싫었다.  엄마는 사위 될 사람이 술에 련련하지 않는 것이라든지 성격이 유순한 건 마음에 드는데 연구소에서 받는 그 토끼꼬리 만한 연구비로 당장 밥을 먹고 살 수는 있는 거냐며 정색했다. 윤주는 돈은 내가 벌면 되지, 누가 벌면 어때 하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특권을 존중해주고 싶었고 남편에게 내 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아버지와 같은 류형의 사람인지 아닌지만 확인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듯이 엄마는 윤주의 결혼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썩 내켜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윤주는 엄마의 미지근한 태도를 두고 직접 양육하지도 않은 자식 인생에 깊게 개입하는 것은 례의가 없거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멋대로 믿어버렸다.  “민아는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셔. 없는 게 아니라 만나고 살지 않아. 할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착하고 똑똑해. 정도 많고.” “엄연히 살아있는데 민아씨네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말이 왜 네 입에서 나와? 부모님 만나는 봤니? 그럼 결혼식은 어디서 하는 건데? 할머니는 어디 계셔?” 윤주는 궁금한 것 투성이라 성주의 말을 급하게 받아쳤다. 어쩐지 이 식사모임이 성주의 결혼식을 대신하는 자리일 것 같은 불길함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시누이의 존재감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급함도 일었다.  어릴 적, 외삼촌에게 반말조로 말했다고 거의 한시간 동안 혼난 기억이 있는 윤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얄미웠다. 성주의 무례함을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닐 텐데 짐짓 모르쇠를 놓는 아버지가 딱해보였다.  민아는 언제 ‘아버지’, ‘어머니’를 불렀냐 싶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성주가 노기를 품은 채 윤주의 말을 잘랐다.  “그런 거 없어, 결혼식 하고 싶지도 않고.” 엄마는 뭔가 말할듯 입을 실룩거리다 성주의 결연함에 눈을 내리깔았다.  성주는 당장 누구 하나라도 팰듯 눈에 독을 품었고 민아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실내에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 때였다. 아버지가 딸꾹! 딸꾹! 하고 딸꾹질을 시작한 것이.  민아의 가족사가 못마땅한지 아니면 짧고 건조하게 내던지는 성주의 화법에 놀랐는지 아버지는 한번 시작한 딸꾹질을 쉽게 멈추지 못했다. 뜻하지 않은 불청객에 아버지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는 애들 앞에서 이게 무슨 경우냐는듯 도끼눈을 떴다.  윤주는 이런 걸 예상하지도 않고 아버지에게 련락했냐는 원망을 담아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윤주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민아에게 반찬을 집어주는 행위에 열중했다. 그 풍경이 다정한 모녀 같아서 윤주는 민아가 성주와 결혼한다고 해도 호감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빈 속에 마신 소주가 내장을 훑고 내려가는듯한 불안감이 마음속을 후렸다.  정적을 깨뜨리는, 간간한 딸꾹질 속에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먹는 데에만 몰두했다.  갑자기 성주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그런 성주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체념과 간섭이 엇갈린듯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윤주는 그만 울고 싶었다. 한참 뒤에 들어온 성주에게서 담배냄새를 맡은 윤주는 당장 담배 한대 빌리고 싶어졌다. 아버지의 딸꾹질 소리와 그릇에 저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이따금씩 들리는 식사시간은 질식할 정도로 느리게 흘러갔다. 이러려고 모이자고 한 게 아닌데 하는 자책이 력력한 아버지의 표정을 보면서 윤주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아버지에게 성주의 결혼식에 올 수 있냐고 련락했던 엄마는 정작 말을 몇마디 하지도 않았다. 양꼬치 장사를 할 땐 멋있기만 하던 엄마는 왜 자식 앞에서는 이렇게도 눈치를 보고 자기 몫의 말도 못하는가.  “언니, 우리 친하게 지내요.”  헤여지면서 민아가 윤주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애가 당돌한 거야 친화력이 좋은 거야 하는 생각도 잠시, 윤주는 민아에게서 다치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건 마치 언니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감정이 낯설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던 묵혀두었던 서글픔이 다시금 살아났다.  윤주는 아무런 거부감도 표현하지 못한 채 민아의 휴대폰에 번호를 찍어주고 말았다.    별다를 게 없었다. 고중 동창 지연과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한두달에 한번 정도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보글보글 끓는 전골에서 사이좋게 갈비를 건져먹었고 날치알에 배추김치와 김가루를 곁들인 볶음밥까지 해먹었다. 불룩한 배를 슬슬 만지며 스타벅스에서 티라미슈를 가운데에 놓고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잔을 마주쳤다. 겨우 한모금 될가 말가 하게 담겨있는 커피잔을 홀짝이는 윤주를 보더니 지연이 “독한 년”이라며 웃었다.  “그냥, 아메리카노는 좀 싱거워.” 속으로 ‘그래, 나 독한 년이다. 독하고 멋진 년이 되고 싶다.’ 이렇게 되뇌며 윤주는 지연의 표현이 바람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신을 인지할 때마다 윤주는 이건 쉬이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에 초라해졌다. 말하자면 납작 엎드린 자존감 같은 것.  이 때다 싶어 며칠 동안 입가에 맴돌았던 말을 꺼냈다.  “지연아, 왜 은화랑 려행 간 걸 비밀로 한 거야?” 머그컵을 입가로 가져가던 지연이 동작을 멈춘 채 윤주를 쳐다보았다. 윤주를 빤히 쳐다보던 지연은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그 순간 윤주는 자신이 뭔가 크게 잘못한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나 내가 없는 말을 지어냈나 하는 생각에 이내 당혹감을 느꼈다.  둘이 몰래 려행 간 것은 부부동반 모임에서 은화네 부부가 소리 낮춰 이야기하는 걸 의도치 않게 엿듣고 알았다. 그 순간 윤주는 두 사람이 급격하게 가까워져서 배신감을 느낀 게 아니라 그걸 비밀이랍시고 귀속말로 하게 만든 지연이 때문에 수치심을 느꼈다. 게다가 대학을 함께 다닌 은화와는 지연이처럼 각별하게 지내는 편도 아니였다. 짐짓 못 들은 척 먹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윤주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 저가락질 하기도 힘들었다.  “윤주야, 사실 그동안 은화랑 쇼핑하고 커피 마시고 려행까지 가면서 많이 친해졌어. 널 통해서 알게 됐지만 너는 만날 먹고 사느라 바쁜 것 같아서 은화 만날 때 너에게 말을 못했지. 내 딴엔 널 배려하느라고 말을 안했는데 넌 그걸 리해 못하는 거야? 내가 일부러 너는 모르게 하자고 했어.” 지연이 윤주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쯤은 오랜 시간 이어온 우정을 통해 체득했다.  ‘내가 왜 너의 그 말도 안되는 배려를 리해해야 되는데? 그게 굳이 비밀로 할 일이야? 내가 화를 내는 게 정말 뭔지 몰라서 이래?’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지연의 억울함과 원망이 섞인듯한 표정을 보는 순간 윤주는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결혼생활은 윤주에게 때로 적라라하게 까발리거나 지나치게 모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적당히 눈 감아주고 슬쩍 넘어가야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윤주는 매번 그게 어려웠다.  뻐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오랜 기간의 련애를 끝낸 것 같은 후련함이 가슴을 후볐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굳은 표정을 본 윤주는 저도 모르게 민아를 떠올렸다.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지방 쪽으로 가면 서울의 삼분의 일 만큼만 줘도 비슷한 평수의 아빠트를 살 수 있대.” 지연의 말을 듣는 순간 떠올랐던 생각이 내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지연인, 내가 자신과 같은 수준이 되는 걸 싫어하는구나. 이상한 권유와 배려로 타인을 위로하려 드는구나.’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저도 몰래 한숨이 나왔다. 윤주는 삐딱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아빠트를 마련한 지연에게 축하를 건넸고 주변에 자랑도 했다. 그러나 만날 때마다 할부금 타령을 하는 건 지겨움을 넘어 혐오감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냥 듣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꼭 한마디를 던지고야 말았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누군 편하게 사니?” 사실 그건 지연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라도 하고 싶었던 말이였다.  언제부턴가 윤주는 지연과 만날 때마다 모든 비용을 자신이 지불해야 될 것 같은 부담감에 시달렸다. 금액을 떠나 그런 마음으로 지갑을 열면 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둘이 간단하게 먹는데 세트정식으로 주문할 것까진 없잖아. 단품으로 시켜도 충분할 것 같아. 내가 살게.” 음식을 주문할 때면 마치 윤주를 배려하듯 말하는 지연이 뻔뻔스러워보였다. 윤주는 자신이 밥을 사겠으니 근사한 걸로 먹자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포기할 때가 많았다. 누가 밥값을 내든 메뉴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건 무의미한 감정랑비라고 생각했다.  윤주가 집이 있는 지연에게 부러움을 드러내면 “집이 있으면 뭐 해. 같이 살 남자도 없는데. 너는 그래도 남편이 있잖아.”라든가 “살아봐. 한순간 뿐이지 혼자만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은 아무런 감흥이 없어.” 하고 말했다. 그 말은 윤주에게 묘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기분이 잡치게 만들었다.  “남편이 있으면 뭐 해… 내 방도 없는데.” 그 때마다 윤주는 적의와 좌절감이 뒤섞인 감정을 짓누르며 시니컬하게 대꾸하려 노력했다.  이젠 자신의 렬등감을 드러내는 말을 들어줄 친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뜻밖에 외로움이 잔잔하게 차올랐다.    엘레베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이에 아버지에게서 부재중전화가 와있었다.  윤주는 오늘 같은 날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중얼거리며 커피머신에 진한 그린색상의 캡슐 하나를 집어넣었다.  윤주는 필요한 용건 외에는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버지와 통화할 때마다 뭔가를 해결해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서 싫었다. 무엇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아서 늘 긴장을 풀 수 없었던 아버지가 윤주 앞에서 점점 나약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증오의 대상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대놓고 허탈할 때가 많았다.  준비하지도 않았던, 가시 돋친 말이 튀여나갈 때마다 윤주는 머리 속에 리기적, 무책임, 불효 등 단어들을 라렬해보곤 했다.  “왜 전화를 안 받니?”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아버지가 또 전화를 걸어왔다. 윤주는 아버지가 꺼낼 말들을 알 것 같다는 생각에 피로감이 밀려왔다.  “낮에 봤는데 왜 또 전화까지 걸어요? 안 받으면 못 받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뭘 그렇게 따지고…” 아버지가 가족일로 의논할 상대가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딴청을 부렸다.  “네 생각엔 어떠니?” “뭐가?” “성주랑 그 아이.” “알아서 잘살겠지, 뭘 걱정해요? 언제 그런 걱정을 하고 살았다고. 나 결혼할 땐 아무 말도 없었으면서.” “먹고야 살겠지. 그것보다 결혼식을 안하겠다는 성주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네 엄마는 결혼식을 했으면 하던데 성주가 말을 안 듣는단다. 결혼식 비용은 나도 보태줄 수 있는데. 식을 해야 책임감도 생기고 어른도 되지.” 엄마가 아버지에게 련락한 리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여태 지인들의 결혼식에 뿌렸거나 뿌려야 될 부조돈이 있을 것이고 한국에 와서 늦깎이 대학생이 된 아들자랑도 은근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엄마는 성주를 직접 양육하지 않은 데서 오는 죄책감을 결혼식을 잘해주는 것으로 해소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돈 때문이 아니잖아요.’ 하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고루한 화제거리의 꼭지를 트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성주는 싫은가 보지… 아니면 필요 없거나! 사실 식이 뭐 꼭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됐다! 넌 뭐가 그렇게 시들하니?” 아버지는 자신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윤주가 못마땅한듯 벌컥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윤주는 아버지의 소통방식은 화끈한 것 같으면서도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성주에게 따지고 싶은 말을 윤주에게 하고 있다는 느낌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윤주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다시금 떠올리며 진한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넘겼다. 아버지는 내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걸가. 다혈질적인 성격과 폭력적인 언행을 싫어하는 엄마 때문에 아버지는 리혼 후 성주를 거의 만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가끔 부모 구실을 못했다는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윤주는 ‘꼭 술이 한잔이라도 들어가야 저런 말을 하지.’ 하는 야속한 마음에 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었다.  윤주는 아버지가 성주 때문에 자신에게 화를 낸다는 게 당황스러웠고 서운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른들끼리 리혼을 결정했고 성주는 엄마와, 자신은 아버지와 살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윤주는 그저 모든 게 싫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술만 마시면 자식들을 쥐 잡듯이 교육하는 방식으로 화풀이를 하려 들고 기물 파손에 폭력까지 행사하는 아버지는 가족 내에서도 소외의 대상이였다. 그런데 엄마가 평소에 그렇게도 의지하던 윤주를 아버지에게 맡겨버리다니. 아버지가 술에 취했거나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웃방에서 소리 죽여 우는 성주를 안고 있으면 그나마 불안감이 누그러들던 느낌이 생생했다. 윤주가 아버지와 살게 됐다는 건 이제 그런 것들을 혼자 감당해야 된다는 걸 의미했다.  이미 외삼촌 집으로 짐을 옮긴 엄마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말도 잘 듣고 성주도 잘 돌볼 테니 제발 아버지와 살지만 않게 해달라고. 엄마는 눈물 한방울 떨어뜨리지 않았고 함께 산 세월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막 학교생활을 시작한 성주만 눈치를 보며 윤주에게 자꾸 말을 걸고 싶어했다.  엄마는 “아버지는 술만 마시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니 네가 좀 참아라.”고 윤주를 달랬다. 좋은 사람인데 더이상 부부관계를 지속하지 않는 리유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윤주는 오기에서인지 복수심에서인지 그런 엄마에게 두번 다시 매달리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윤주는 친척집에 하숙했고 한주에 한번씩 집에 갔다. 그러나 부모의 리혼 후 윤주는 아버지만 있는 집에 발을 들여놓기가 싫었다. 엄마 없는 공간은 온기가 없었고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성주가 눈에 밟혀서 울컥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술을 마실가봐 가슴을 바싹 졸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가면서부터 윤주는 더이상 아버지 때문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윤주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홀가분함과 외로움이 뒤섞인 생활에 길들여진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인내와 포기를 필요로 했다.  “윤주야, 생각 같아선 너랑 성주 둘 다 껴안고 살고 싶었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렇게 쉽니? 나도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 눈치가 보이고… 그럴 땐 손주들 맡아줄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린 세상 천지에 부모 형제라곤 딸랑 네 엄마랑 나 둘 뿐이잖니. 리혼한 지 얼마 안돼서 네가 엄마랑 살게 해달라며 왔다 간 날에 누나가 그렇게 매정하게 널 돌려보내놓고 정말 많이 울었다. 엄마가 그래서 너한테는 늘 꼼짝 못하는 거 알지?” 윤주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 외삼촌은 엄마가 한국에서 송금해준 돈을 전달하면서 말했다. 변명이고 자기 합리화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느 정도의 진실도 포함돼있었기에 윤주는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렸다. 아직 자식도 없었던 외숙모가 조카 둘을 한꺼번에 품을 수 없다는 것 쯤은 윤주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리해했다. 그러나 윤주가 느꼈던 배신감과 불안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튀여나오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윤주는 진작 알았다. 오기로 버텨냈던 세월 동안 윤주 마음속의 비장이 점점 두꺼워졌음을.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엄마의 선택과 아버지의 삶을 리해할 수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서른을 넘기고 결혼을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것에 태연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날카롭게 튀여나오는 자기방어 때문에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때마다 윤주는 수치심과 억울함이 교차한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를 썼다.  엄마에 대한 애증이 반비례를 이루지 않아 괴로웠다. 미워하는 마음이 크면 그리움이라도 적었으면 좋겠지만 산다는 건 만만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두려울 때 윤주는 저도 모르게 엄마를 불렀다. 처음 남자친구와 헤여졌을 때 윤주는 엄마에게 남자친구에 대한 뒤담화를 시시콜콜 하고 싶었다. 처음 휴대폰을 갖췄을 때 엄마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걸고 싶었다. 대학입학 통지서를 받았을 때 윤주는 이제 혼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윤주는 정작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아는 단둘이 맛있는 밥을 먹고 쇼핑도 하고 카페에서 노닥거리고 싶다고도 했다. 련인이나 친한 친구끼리 하는 짓을 하필이면 어려워해야 할 상대인, 시누이가 될지도 모르는 자신과 하고 싶다는 게 윤주는 못마땅했다. 어찌됐든 민아를 한번은 만나야 될 것 같은 책임감 때문에 약속을 잡았다.  베이지색상의 트렌치코트에 굽이 없는 옥스퍼드화를 신은 민아가 윤주를 보자 손짓하며 다가왔다. 크로스백을 벗은 민아는 손에 들었던 쇼핑봉투를 윤주에게 내밀었다. 생각보다 큰 부피에 갈마든 기대감도 잠시, 윤주는 이걸 내가 왜 받아야 되냐는 눈빛으로 민아를 쳐다보았다.  “언니. 부담 갖지 마세요. 저 좀 잘 봐달라는 뜻으로 딱 한번만 뢰물을 드리는 거예요.” 민아의 말에 윤주는 흠칫했다. 어떤 기대를 했든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고마워요. 일단은 잘 받아둘게요.” 민아가 고른 선물은 네이비색상의 가방이였다. 디자인이 심플했다. 윤주는 민아가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아 흐뭇하면서도 언제 성주에게 흘렸던가 하는 알쏭함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언젠가 “너는 왜 남자들이 다 하는 그 흔한 문신 하나도 없냐.”, “누난 왜 핸드백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냐.”고 웃으면서 서로를 ‘비난’했던 기억만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무심하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의외로 속이 깊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말 놓으셔도 돼요, 언니.” 윤주는 말을 놓아달라는 건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미이고 그건 뭔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이 생겼다. 민아가 과도한 친밀감을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  “그런데 결혼식은 어떻게 된 거예요?” 윤주는 고르곤졸라 피자 한조각을 민아에게 내밀면서 망설였던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아버지가 끝내 성주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또 윤주에게 물어올 것이였다.  “어머니는 결혼식을 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성주는 그러고 싶지 않은가 봐요. 식을 한다고 잘사는 것도 아니고 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라면서. 그리고 성주가 나이는 있지만 대학 졸업하려면 아직 삼년이나 남았잖아요.” “부모님 세대는 결혼식도 치르지 않고 사는 걸 남사스럽게 생각하니까. 그럼 민아씨 생각은 어떤데요?” 윤주는 어느새 자신도 결혼식을 치르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민아에게 부모세대처럼 가르치려 들거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이 성취하기를 강요하는 사람으로 보여질가봐 창피했다.  “나는 뭐, 성주랑 생각이 같아요. 잘살고 못사는 게 결혼식과 관련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뭔데요?” “아니예요. 어쨌든 난 성주랑 살 거고… 가족은 만드는 것보다 어떻게 유지해나가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윤주는 민아가 삼켜버린 내용이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집은 엄마가 마련해준 오피스텔이 있으니 성주만 들어오면 돼요. 전 엄마가 같은 동생도 있고 아버지가 같은 동생도 있어요. 한국에 올 때 엄마가 절 데리고 살지 못하겠다며 오피스텔을 사줬어요. 전 위챗으로 옷을 팔고 있는데 장사 잘돼요. 연길에 있을 때부터 해온 일이라 단골 고객이 많아서 먹고 사는 데 걱정이 없어요. 이제 아이템도 더 늘여갈 예정이예요.” 민아가 미리 준비라도 한듯 자신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아…” 윤주는 의무적이면서도 사무적으로 말하는 이 아이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오늘 언니랑 저 만나는 거 성주는 몰라요. 나중엔 알게 되겠지만 미리 말을 못했어요.” 윤주는 민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예감이 사실로 변한 것 같아 오늘의 만남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강하게 밀려왔고 어서 빨리 이 자리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웬 일인지 엄마가 끝끝내 윤주에게 등을 돌렸던 그 날의 참담한 심정이 되여가면서 성주가 보고 싶었다.  식당을 나서면서 민아가 묻지도 않고 윤주의 팔짱을 꼈는데 기분이 묘했다.  둘은 올해 여름에는 린넨 재질에 심플한 디자인, 밝은 색상 계렬의 옷이 류행될 거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백화점 구석구석을 돌았다. 두시간을 내리 돌고 기진맥진했을 무렵, 민아가 카페로 윤주를 이끌었다. 윤주는 갑자기 급하게 처리해야 될 일이 생겼다고 말해버렸다. 거짓말인 줄을 민아가 눈치챘을 것이라는 짐작에 얼굴이 뜨거워났다. 그렇지만 이 쯤에서 헤여지는 게 민아나 성주, 자신에게 좋을 것 같았다.  윤주에게 다음에 또 만나요, 하고 손을 흔들 때까지도 민아는 성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윤주는 민아가 보기보다 강하고 속이 깊은 아이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성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결혼, 하고 싶은 거야? 하기 싫은 거야? 성주는 윤주만 집에 있을 때 잠간 들리겠다고 했다. 윤주는 성주가 자기 결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에 대해 누나한테라도 설명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생긴 것이라 생각했다. 늘 그렇듯 성주는 말이 없었다. 술이 한잔이라도 들어가야 막혔던 말문이 트이는 걸 보면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확신이 단단해졌다. 그 때마다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안심한 적이 많았다.  술이라면 질색하는 윤주를 잘 알기에 성주는 맥주 두캔만 사들고 올라왔다.  “민아가 뭐래?” 민아의 자백이 생각보다 빠르다고 생각했다. 민아의 그런 면이 과묵한 성주와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무 것도.” “걘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안해.” “그럴 것 같더라.” “누난 왜 이렇게 화가 나있는데?” “몰라. 속에서부터 뭔가 자꾸 끓어올라.” 매사에 랭소적인 성주가 민아를 제법 잘 리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윤주는 어쩌면 민아가 자신보다 성주에 대해 더 잘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별안간 적의가 생겼다. 그제야 윤주는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감정의 실체가 질투임을 알았다. 그런데 질투의 대상이 민아인지 아니면 지연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화가 났다.  “난 사실 누나는 결혼 같은 거 안할 줄 알았어.”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중학교 때부터 련애를 하고 다닌 걸 몰라?” “몰라… 후훗! 그냥, 누나가 결혼하는 건 날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했지. 우리 사이엔 어렸을 때부터 그런 무언의 약속 같은 게 있어왔다고 생각했나 봐.” “어쩜! 너 혼자만?” “집이라는 게 나는 너무 지겨워. 누나는 하숙하고 자취하고 기숙사에 살고 그렇게 혼자 살았지만 난 고중 가기 전까지 9년이나 삼촌 집에서 학교 다녔잖아. 그것도 고중에 입학해서는 같은 도시에서 뭔 자취냐며 펄쩍 뛰는 것도 내가 바락바락 우겨서 겨우 독립했다. 아마 삼촌은 내가 없으면 돈줄이 끊길가 두려웠을 거야.” “알지. 삼촌이 보기엔 멀쩡해도 끈기가 없잖아, 눈치도 무디고!” “말끝마다 자기 집처럼 편하게 있으라고 했지만 삼촌과 숙모가 싸우면 나 때문인 것 같고. 사촌동생이 밖에 나가서 다쳐도 나 때문인 것 같고. 삼촌이 자꾸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난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어.” “우린 집이 없었지…”  “응. 지금은 엄마도 아버지도 한국에는 자기 집이 없지만 연길엔 다 있잖아. 우리가 언제 돌아가도 눈치 안 보고 먹고 잘 수 있는 집. 그런데 그 집이 다 비여있어. 집이 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냐. 그 집에서 살 사람도 없는데. 그런데 말이야, 엄마나 아버지는 왜 늘 집이 없이 사는지 모르겠어. 집이 없는 곳에서만 사는지 모르겠어.” “…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야.” “엄마가 날 맡기고 미안해서 삼촌네 생활비까지 다 보내주는 건 알았어. 그런데 집안엔 늘 랭랭한 기운이 돌아서 늦게까지 돌아다니다 들어갈 때가 많았지. 어릴 때 그렇게 방황하며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난 지금 쯤 대학 나와서 다른 삶을 살고 있을가?” 윤주는 말없이 성주를 향해 맥주캔을 내밀었다.  “엄마는 날 키운다는 명분일 뿐 삼촌 집에 던져놓고 돈만 보냈어. 난 차라리 먼 친척집에서 하숙하는 누나가 부러웠다? 혼자라면 오히려 자률성이 강한 아이로 성장했을지도 모르잖아?” 윤주는 혼자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기나 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혼자라는 단어가 가지는 결의 다양함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성주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형성하는 것 따위의 문제로 민아와 의견충돌이 생겼다면 어떻게 조언해줘야 될가. ‘가족은 말이야, 싸우다가도 마주보며 웃고 반목과 화해를 거듭하는 구성원이야. 게다가 특별한 의식 같은 게 없어도 화해가 가능해.’ 어른스럽게 그럴듯한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윤주는 도리질했다.  윤주 역시 가족끼리의 반목과 화해라는 의미를 잘 몰랐다. 남편은 윤주의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립장이였기에 결혼한 지 2년이 넘도록 그렇다 할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주는 남편의 눈에 씌운 콩깍지가 언제 벗겨질지 자신 없었다. 사실은 아직까지 자기 주장을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아서 사소한 문제라도 수면 우로 떠오르지 않았는지 모른다.  성주를 볼 때마다 ‘이 아이에게 혈육이라는 명분으로 관심과 책임을 강요하지 말아야지. 나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없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긴장을 풀지 않았다.  성주가 그다지 밝은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단 한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한지? 괜찮은지?  윤주 역시 이런 질문에 답해본 적이 없었다.  “민아는 착하고 영악한 애야. 어디 내놔도 똑 부러지게 살 걸?”  윤주는 그런 민아랑 가족이 되는 게 왜 두려운지 묻고 싶었다. 민아에 대해 왜 그렇게 모순적으로 평가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왜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랑 민아가 주도적으로 결정한 거야. 그래서 그 날 결혼식 같은 건 안한다고 못을 박았잖아.” “그 때서야?” 그런 변명 따윈 집어치우라고 욕을 하고 싶었다. 네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했으면 여기까지 올 일이 없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다 귀찮아.” 귀찮다는 말이 지금 성주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말일지도 몰랐다. 윤주에게는 그 단어가 두렵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럼 뭐 어때서. 살다가 헤여지면 그만이지. 다들 그렇게 살잖아? 아버지도 엄마도, 민아네 부모도, 심지어 삼촌네도 결국은 리혼했잖아.” “미쳤어? 그런 마음을 품고 어떻게 형이랑 살아?”  성주가 눈을 흘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가 두렵다는 건지 목적어를 밝히지 않았지만 성주가 두려워하는 것의 실체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람을 가볍게 여기라는 게 아니라 네가 선택한 연缘에 확신과 책임을 가지라는 거지…” “작년 여름인가. 민아 할머니의 일년 기일이 지난 지 얼마 안돼서, 어느 날은 나에게 임신했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더라. 그 날 저녁 누나에게 먼저 말할가 엄마한테 말할가, 온밤을 뜬눈으로 새면서 어떻게 해결해야 되나 고민했어.” “그런 고민은 아버지랑 공유해야 되는데.” “글쎄… 2주 정도 지나서 우연하게 민아가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걸 목격했지. 그 순간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윤주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성주를 옭아매고 싶었던 걸가. 그런데 그 대상이 성주가 아닌 다른 남자라도 가능하지 않았을가 하는 추측에 윤주는 조금 아연해졌다. 여태 민아에게 가졌던 믿음이 날아가버리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민아는 거짓말이 발각된 줄도 모르고 계속 나에게 아이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거야.” “거짓말? 그래서?” “헤여지자고 하고는 잠적해버렸지, 물개처럼.” “비겁하다. 그런데 우리 남매는 의외의 지점에서 공집합이 생기는 것 같다. 난처하면 화제를 돌려버린다든가 말없이 등을 돌려버린다든가.” “응. 그냥 민아가 자꾸 따지고 밀어붙이는 게 싫어서 그랬는데 말하고 나서는 나도 깜짝 놀랐다? 누나도 극단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향이 있잖아. 언젠가 분명 누나가 잘못했는데도 매형에게 적반하장 격으로 선수를 치는 걸 보고 이게 누나가 사는 방식이구나, 우리 누나는 어이없게 버텨왔구나, 하고 생각했지.” “알면서도 그래. 상처 받을 바엔 차라리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버리고 버림받고. 그 다음엔?” “몰라. 엄마나 아버지는 뭐 자식이 둘이나 있으면서 그 다음을 생각하고 리혼했대?” “형이 가끔 나 밥 사주는 거 얘기하는지 모르겠네? 형은 부모님도 사이가 좋고 성격이 모나지도 않고 그래서 여태 누나랑 문제없이 사는지 모르겠어. 누나가 자신을 누르고 살 위인은 못 되잖아? 나는 가족이 뭔지도 모르겠고 가족을 만들 자신도 없어. 그냥 살 공간이 있으면 집이야? 사람 같은 사람이 살아야 집이고 가족이지. 살면서 엄마와 애틋했던 적은 없지만 아버지랑 헤여진 건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많아.”  이상하게 윤주는 피붙이로부터 리해받는 느낌이 들어 목이 메여왔다. 위축되고 억울한 마음을 종종 공격적으로 표현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성주야, 결혼 같은 거 안해도 되고 민아랑 그냥 살아도 되고 헤여져도 돼. 누구한테든 미안할 거 하나도 없어. 엄마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건지 모르겠다.”  성주가 맥주캔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린 게 무슨! 그냥 자기만 생각하면서 사는 거지. 그걸 알면 이 따위로 살겠니?”  윤주는 성주의 머리를 쥐여박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둘은 환풍기를 켜고 나란히 담배를 태웠다.  성주가 스무살 되던 해의 어느 날, 윤주는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던진 한마디 때문에 한동안 충격에서 헤여나오지 못했다.  “누나. 나 유부남이 됐다.” 윤주는 아이가 생겼을가, 크게 꼬투리를 잡혔나, 녀자가 집착이 심한 건가 온갖 상상을 다하며 안절부절했다. 윤주는 스무살의 유부남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녀자 친구네 집에서 부동산을 분양받기 위해 부부관계를 증명하는 호적이 필요한데 자기가 남편으로 이름을 올려주는 대신 사례금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녀자 친구 집에서 호적을 깨끗하게 처리해주기로 약속했고. “누나, 신기하게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 결혼 같은 거 누구랑 해도 상관이 없나 봐.” 윤주는 그 때 느꼈던 놀라움과 씁쓸함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호적은 깨끗해지겠지만 이토록 자신의 인생에 무책임한 아이라니.  “돈은 어디다 썼는데? 엄마가 돈 넉넉하게 주잖아?” “돈이야 늘 모자라지. 술 먹고 나이트 가고 련애도 하고… 벌써 다 없어졌어.” 몇만원 되는 돈을 그리 허망하게 써버렸다는 게 한심하고 그렇게라도 자신을 함부로 굴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주가 가여웠다.  윤주는 그 때 처음으로 담배를 입에 대봤다.  아버지는, 이제야 술과 담을 쌓은 아버지는 자식들이 이렇게 시시하게 살고 있는 걸 알기나 할가. 윤주는 저도 몰래 맥주캔을 옥여쥐였다. 모든 문제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기라도 한듯이 손마디에 힘을 실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됐으면서도 윤주는 그 감정의 끈을 쉽게 놓지 못했다.    원래는 두달 전부터 지연이랑 오기로 약속되여있던 경주행이였다. 무료로 문화탐방을 시켜준다는 공지를 보고 지연에게 련락했고 지연이도 그 즈음엔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윤주는 최근 지연이 은화와 가까워진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지연과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윤주는 집안 행사가 있어서 못 갈 것 같다고 했고 지연이도 공교롭게 그 즈음에 스케줄이 생겼다고 했다.  윤주의 제안에 민아는 문화탐방인데 언니랑 1박2일로 붙어다니는데 왜 안 가겠냐며 반색을 했다. 민아와 함께 뻐스에 오를 때 윤주는 맨 뒤자리에 앉은 낯익은 얼굴들을 보았다. 윤주는 지연과 은화가 모자를 눌러쓴 자신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도무지 가라앉혀지지 않는 분노에 가슴이 콩콩 뛰였고 숨 쉬기도 가빴다.  담당자에게 원래 함께 신청한 친구 대신 다른 사람과 동행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잠간 침묵이 흘렀던 리유를 알 것 같았다. 윤주는 나중에 따로 탐방을 가느니 ‘무료’와 ‘단체’라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액의 비용을 치르고 한둘이 총총거리며 다니기보단 여럿이 복작거리면서 어울리는 게 더 효률적이지 않을가 싶었다.  윤주의 신경은 온통 뒤자리에 쏠려있었다. 들떠서 이것저것 묻는 민아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연아, 나 문화탐방 가는 뻐스 안이야. 윤주는 이따가 뻐스에서 내려서 어색하게 마주치기보다는 미리 동행을 알리는 게 나을 것 같아 문자를 보냈다.  “윤주야!”  지연과 은화가 손나팔을 한 채 동시에 윤주를 불렀다. 고개를 돌린 윤주는 그들을 향해 손짓하며 엷게 웃었다.  민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윤주에게 아는 사람이 더 있었냐고 물었다. 하필이면 출발시간에 맞춰 도착한 것이 짜증 났다. 윤주는 민아만 아니라면 당장 길가에 차를 세워 내리고 싶었다.  중간에 들린 휴계소에서 윤주는 지연과 은화와 태연하게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뾰족하게 말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모든 게 예전과 똑같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건 윤주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자연스럽게 둘씩 짝을 지어 다녔고 윤주는 언뜻언뜻 지연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그만한 대가는 당연히 치러야 되는 게 아니냐는듯 윤주는 일부러 지연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언니, 난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문화유적 같은 거 잘 몰라요.” 하며 어딜 가나 슬쩍 눈길만 주던 민아는 뜻밖에도 종소리에 관심을 드러냈다.  “언니, 종소리 한번 들어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울컥하지?” 경주박물관에서 민아는 신종의 디지털 종소리에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종소리가 울리고 나서도 오래동안 그 여운이 가셔지지 않는 게 마치 할머니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고 했다. 민아는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좀 쉬여가자는 시늉을 하며 윤주를 끌어당겼다.  “맥노리현상 때문에 이런 소리가 난대요. 원래부터 이런 소리를 내는 게 아닌데도. 딱 요 정도로만… 부딪쳐 살면서 이런 소리를 오래도록 맑게 내면 얼마나 좋겠어요, 언니.” 민아는 휴대폰으로 성덕대왕 신종에 대해 검색하다 말고 갑자기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 맞는 장사잖소…” 하고 중얼거렸다. 윤주는 웬 애늙은이 같은 노래냐는 생각에 피씩 웃었다.  “우리 할머니도 이렇게 맑고 여운이 가시지 않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가요. 노래를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가사가 나오는 한국노래를 자주 들었어요.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김혜자 배우가 혼자 들었다는 노래. 난 드라마를 보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하도 흥얼거리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부를 줄 알게 됐어요. 날 두고 그렇게 급하게 갈 필요까진 없었는데. 쓸데없이 난 좋아하지도 않는 민들레를 꼭 아침시장에 가서 사야 된다고 새벽같이 나서더니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할머니의 보살핌이 딱 거기까지였던가 보네. 자책하는 순간 너는 잉여인간이 될지도 몰라. 삶의 마디마다 구구절절 후회가 갈마들고 결국은 거기에 빠져서 헤여나오지 못하게 되겠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며칠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텅 빈 집에서 나 혼자 자고 깨고 자고 깨고… 엄마는 내 기분이나 절망 따위엔 관심도 없이 빨리 한국으로 나오라는 말만 반복하고 아버지는 혹여 내가 재혼한 가정에 들어붙기라도 하면 어쩔가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아마도 부모 잃은 슬픔보다 갑자기 책임져야 할지도 모를 자식이 더 부담스러웠겠죠? 어떻게든 살아야 되니까. 성인이 된 내가 살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다 자기 생을 살 뿐인데 꼭 누가 누굴 책임져야 되는 것처럼 끔찍해하는 게 싫어요. 그냥 부딪치면서 맑게 빛나게 살면 되는 건데 그게 이렇게 어려워요.” “그래서 다들 피하고 도망가고 떠나고 그러나 봐. 그렇게 하면 지금과는 다른 생이 펼쳐지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에.” 윤주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민아에게 말을 놓은 자신을 발견했다.  “성주를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동갑이라고 해서 동창인 줄 알았는데?” 윤주는 우리 남매는 사실 서로의 인간관계에 대해 터치하며 왈가왈부하는 편이 아니라는 변명은 하지 않았다. 친남매인데 생각보다 살갑지 않네요 따위 의도가 불분명한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뭐 틀린 말도 아니죠. 제가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한동안 애를 좀 먹였어요. 비행소녀라 고중 때 친구랑 도둑담배 피다 걸린 적이 있어요. 수업시간에 따로 벌을 서는데 다른 반 남자애들이 대여섯 잡혀왔어요. 다들 뭔 녀자들까지 잡혀왔지 하는 눈길로 훔쳐보는데 성주는 감시하던 선생님이 자리만 뜨면 휘파람을 불며 “담배 피다 걸렸는데 뭘.” 하며 옆의 남학생이랑 속닥거렸어요. 설마 하며 우리를 쳐다보는 남자애들의 시선이 너무 싫어 나중에는 망신을 주고 싶은 마음에 작정하고 쫓아다녔죠.” “나쁜 놈이네! 그런 애랑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이를테면! 동질감 같은 것?” “흠…” 성주는 삼촌 집에서 나와 살면서 모든 것에 시큰둥해있었다. 거칠고 반항적이고 예리해서 윤주조차 함부로 말을 걸지 못했다. 성주는 “누난 뭐 말썽 없이 컸어?”, “그렇게 참견을 안해도 잘하고 있다고!”, “누구 좋으라고 착하게 살아?”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바쁘게 이런 대답들로 윤주의 입을 막아버렸다.  “모르죠? 성주 자퇴하겠다는 걸 설득해서 이번 학기에는 휴학했어요.” 민아가 윤주를 쳐다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휴학했다는 말을 웃으면서 하는 게 괘씸했다.  “무슨 소리야?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고졸이라 걱정하던 차에 외국에서라도 대학 들어갔다고 모두들 얼마나 좋아했는데…”  “이 나이에 졸업하면 몇살이냐고. 자기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입에 달고 사는걸요. 질풍노도의 시기가 왔나 봐요. 그런데 그런 불안, 좋다고 생각해요. 그 끝에는 잔잔함이 있으니까.” “나한테는 아무 말도 없더니. 길이 어디 따로 있다고!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사는 거지.” 윤주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는 말을 자신한테 최선을 다해 살아야 된다는 것으로 둔갑시켜 말하는 스스로에 놀랐다.  “뭔가에 몰입하고 뭔가를 책임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민아는 웃음기를 살짝 띠운 채 담담하게 말했다.  어디선가 불협화음의 소리가 퍼져왔지만 윤주는 잠자코 들었다.  “언니가 좋아요. 예뻐서라고 하면 립서비스라고 할 거죠? 새침해서 피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을 땐 안아주고 싶고 부드러워서 모든 걸 나눠줄 것 같을 땐 한없이 기대고 싶고. 할머니랑 오래 살면서 저도 모르게 익숙해진 것들이 있나 봐요.” 민아가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났다.  “에이. 칭찬이야 욕이야? 무슨 그런 낯 간지러운 말을 해?” 윤주는 쑥스러운듯 민아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나중에 손톱 네일을 예쁘게 해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갚겠다고 했다.  옆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디지털 종소리에 귀 기울이는 민아를 보는 윤주의 마음속에는 종소리의 여운 만큼이나 안도감이 퍼져왔다.  갑자기 눈을 뜬 민아가 윤주를 향해 한마디 던졌다.  “저기 언니 친구들, 언니를 좋아해요. 그게 느껴져요, 저는.” 민아의 말에 윤주는 가만히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미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때리는 어느 오후, 윤주는 인견이불을 뒤집어쓴 채 텔레비죤 채널을 돌리다가 노릇노릇 구워진 막창을 보여주는 데에서 멈췄다.  같이 먹으러 갔었는데 하고 중얼거리다가 지연이 궁금해졌다.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지연인 사람을 좋아하니까.  문화탐방을 다녀온 뒤로 지연이를 만나지 않았다. 지연이 먼저 련락 못할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부러 모질게 후덥지근한 한여름을 보냈다. 윤주는 지연에게 웃으면서 말을 건네려면 자기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턴넬을 통과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턴넬 속 어둠을 떨쳐내지 않고서는 어떤 말도 자연스럽게 토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 날 이후, 무가내한 표정을 짓던 지연이 가끔 마음에 걸렸지만 애써 다른 것에 몰두했다. 그렇다고 지연을 련락처에서 삭제하거나 위챗에서 차단하는 따위의 짓은 생각지도 않았다. 지연이와 함께 지낸 시간들이 있었고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아도 생겨나는 믿음이 있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가라앉는 무언가가 있어서 예전과 달라진 감정으로 서로를 마주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몰래 가졌던 가족모임에 대해 설명하느라 부모님이 사위에 대해 전혀 불경스럽다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고 변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런 자의적인 결정은 리혼 사유가 될 수도 있다고 조곤조곤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윤주는 결혼한 이래 처음으로 긴장했다.  정말 아무런 의식도 치르지 않은 성주의 결혼을 두고 집요하게 트집 잡는 아버지를 향해 크게 화를 냈다. 이번에는 아버지도 제법 오래동안 윤주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 윤주 탓이 아닌데도 아버지는 자꾸만 윤주에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매일 네일샵을 열심히 운영했고 짬짬이 선배가 론문 집필에 필요하다며 부탁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에 열중했다.  일부러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서도 일상은 소란스럽게 굴러갔다.  민아가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안고 윤주 앞에 나타났다. 같이 살기로 마음먹었던 차에 윤주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강아지를 좋아하던 지연이 생각났다.  “거의 죽어가는 강아지를 안고 택시에 앉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흐르는 거야. 조금만 더 버텨줘,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조금만 더… 하고. 강아지를 길에서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몇년 동안 나를 지켜준 강아지가 제대로 죽지 못하면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 지연이 위로가 될 거라며 분양받으라고 그렇게 권고해도 윤주는 매번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윤주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털이 날리는 게 짜증 났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강아지의 눈길도 싫었다. 심지어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타인의 취향에 대해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싫다고 말하는 것과 진짜로 싫어하는 게 다른 것처럼.  오늘은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고 싶은 날이였다.  출처:2018 제5호
68    신선 같은 세월(시, 외1수) 댓글:  조회:487  추천:0  2019-07-15
신선 같은 세월(외1수) 방태길     할머니는 멀리 간 손주놈 그리워 휴대폰 만지작 화상채팅 기다린다 하늘은 파랗게 뱅글뱅글 웃고    구름은 내려와 할머니를 간지른다    손주야, 도시는 찬바람도 많이 분다는데 와글와글 승냥이 같은 차도 많이 뛴다는데 길 나서면 동서남북 열심히 살펴야 한다  폰에는 고향의 개 닭 울음소리 없고 동네 앞 왜글왜글 달리는 시내물도 없고 하늘에 기대고 서있는 버드나무도 없고… 그래도 손주놈이 반짝반짝 웃어주니 좋다   그래서 할머니는 화상채팅 기다린다   인제는 어른 된 손주놈이 헤벌쭉  휴대폰 저쪽에서 반갑게 부를 때 휴대폰의 파란 곳을 꼭 누르면  천리 밖의 빙글빙글 웃는 층집도 보고 천당에서 온다는 손님도 본다    할머니는 폰 안의 신선 같은 세상 본다 래일은 저승 간 할배하구 화상채팅 해야지 이승에서 한 십년 더 멋지게 살겠다고… 할머니는 자기도 신선 되는 세월이라 한다      바람이 오면 바람이 오면 그리움도 온다 바람이 오면 멀리 돌섬을 넘어 푸르던 바다도 날아온다 그립던 꽃도 날아온다   눈물 나게 그립던 바람이여 청춘이 예쁜 꽃 바래며 눈물 지을 때 열매 위해 지는 꽃 사랑하라고 물같이 섬세한 마음으로 알려주었지 그래서 바람이 오면 추워도 행복했고 슬퍼도 행복했고 성숙을 위해 리별하고 고독해야 하는 십자로에서 웃으면서 울었지   그래서 바람이 오면  찬 돌멩이도 안 버리고 안아주고 외로운 나무도 안 버리고 살펴주며 엄마한테서 배운 사랑 하고 싶다 속삭인다   그래서 내 마음은   바람을 보내고는 또 그리는 거다 출처:2018 제5호
67    송련희: 라목(수필) 댓글:  조회:387  추천:0  2019-07-15
라목 송련희     뻐스는 내가 사는 작은 현성을 벗어나자 그리 넓지 않은 향촌길로 접어들었다. 차창 밖의 미끄러지듯 스쳐가며 물러가는 한그루 또 한그루의 가을나무들을 바라보며 난 나도 몰래 깊은 상념에 잠겼다. 아- 소학교를 졸업한 후 30년 만에 소학교 담임선생님을 뵈러 떠나는 이 심정을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가. 내가 졸업한 동광소학교는 흑룡강성 계림조선족향 로씨야 변경에 위치한, 전교 학생이라야 마흔두세명 밖에 안되는 작은 시골 소학교였다. 이처럼 작고 편벽한 시골 학교에서 우리들의 생활이 얼마나 단조로왔을가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린 박철규 담임선생님께서 항상 함께 해주셨기에 잊지 못할 동년의 추억들이 참으로 많았다. 남녀, 학년의 계선이 없이 함께 고무줄 뛰기, 제기차기를 놀던 일, 파란 운동장에 발자국 찍으며 박선생님이랑 함께 뽈을 차고 술래잡기를 놀던 일, 박선생님의 경쾌한 손풍금 소리에 맞추어 〈아동단단가〉를 배우던 일… 매양 아침이면 우리 9명 꼬맹이들은 박선생님의 손을 잡기 위하여 서로 승벽을 내며 학교로 일찍 갔었다. 운동장에서 뛰여놀다가도 우린 먼곳에서 선생님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만 하면 죽기내기로 선생님께 뛰여갔다. 먼저 달려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학교로 오는 것이 어쩌면 그처럼 즐거웠던지. 그 때 선생님의 손을 잡지 못한 애들은 선생님의 옷자락을 쥐고 뾰로통해 따라오면서 투덜거렸다. “야- 선생님의 손이 세개였으면 좋겠다야…” “애두, 그러면 선생님 《서유기》에 나오는 요귀가 되라고.” 매양 그 때면 박선생님은 제자들이 종알거리는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며 “허허-” 웃으시군 하셨다. 선생님은 또 손마디가 불뚝불뚝 튀여나온 손으로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익살을 부려가며 날마다 우리들의 연필을 정성 들여 깎아주었다. 선생님께서 연필을 깎을 때면 우린 선생님의 주위에 오구구 모여앉아 살진 고사리 같이 포동포동한 손으로 연필을 높이 쳐들고 서로 자기의 연필이 더 뾰족하다고 자랑하였다. 그 때 코흘리개들의 눈엔 농촌 일에 장알이 큼직큼직하게 박힌 선생님의 투박한 손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였다. 3학년 때의 어느 겨울날 방과 후였다. 우리들이 박선생님이랑 함께 눈싸움을 마치고 짝짜그르르 웃으며 집으로 가는데 불쑥  몇몇 웃학년 애들이 길목을 막는 것이였다. “야, 너들은 손이 없어? 왜 절로 청소를 하지 않고 계속 선생님만 청소 시켜? 너들 박선생님 얼마나 바쁘신 줄 알기나 알어!” 그들의 노기등등한 모습에 기가 눌려 우리는 두눈이 올롱해졌다. “선생님은 우리가 아직 어리다구 비자루를 들지 못하게 하는데 뭐. 그리구 우리가 학교에 등교했을 땐 선생님께서 이미 청소를 다해놨어…” 그 날 우리는 찍소리도 못하고 웃학년 선배들에게 호되게 닦이웠다. 그리고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박선생님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겨울철 날 밝기 전에 출근하여 난로불을 후끈후끈 지펴놓고 교실 청소를 깨끗이 해놓는가를 알게 되였다. 동광소학교는 교사가 엄중하게 부족한 상황이라 학과 분공이란 것이 없었으며 한 교원이 담임 직을 맡으면 거의 그 학년의 모든 과목을 도맡았다. 게다가 향촌 교사들은 한편 농사까지 지어야 했기에 더욱 팽이처럼 돌아쳤다. 하지만 박선생님께서는 이런 육체적인 고달픔보다도 더욱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아픔이 있었다. 바로 뇌성마비脑瘫로 다리를 심하게 절고 생활을 자립하지 못하는 4살 난 아들 상민이였다. 선생님은 퇴근 전후의 시간을 타 짬짬이 농사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또 공급판매합작사供销合作社에 출근하는 사모님과 륜번으로 상민이를 돌봐야 했던 것이였다. 박선생님이 우리들의 담임을 맡았을 땐 둘째아이 딸 건아를 금방 보았을 때였다.  일상 생활 속에서의 선생님은 우울한 눈빛의 과묵한 분이셨다. 흥성흥성한 놀음자리, 회식자리를 피하셨고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셨으며 조용히 책읽기를 즐기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학생들 속에만 오면 완전 눈부셨다. 밝게 웃었고 목소리가 우렁찼으며 온몸이 활기로 넘쳤다. 우리가 제일 애타게 기다린 날은 매주 금요일이였다. 금요일 소선대활동 시간만 되면 선생님은 전교 학생들을 5학년 교실에 모여놓고 《홍길동전》, 《림해설원》, 《몽떼 크리스토 백작》 등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기 때문이였다. 우리들이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이야기는 곡파曲波의 《림해설원》이였다. 창밖엔 흰눈이 펄펄 날리고 교실엔 눈 덮인 망망한 림해林海를 누비며 적들을 소멸하는 소분대의 이야기가 한창 절정으로 치닫고… 선생님께서는 손짓 발짓 해가며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리들은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숨을 모으고 조마조마해 앉아있기도 하였고 두눈이 휘둥그래서 “어머나!”하며 새된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으며 서로의 잔등을 콩콩 두드리며 박장대소하기도 하였다. 박선생님은 《림해설원》 중의 호접미蝴蝶迷의 모양에 대하여 어찌나 생동하게 묘사하였는지 “얼굴이 옥수수대처럼 길다랗고 얼굴에 잔뜩 난 주근깨를 덮어감추기 위하여 분을 떡반죽처럼 발랐는데 눈을 끔쩍끔쩍할 때마다 분이 찔끔찔끔 떨어졌다”는 호접미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보는듯 생생하다. 내가 문학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부터였다. 박선생님과 함께 한 나날들 중 우리들의 성장에 참으로 큰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영화 《소년범죄자少年犯》를 관람한 것이였다.  소학교 5학년 때 《소년범죄자》란 영화가 20여리 상거한 향소재지 계림영화관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상영되였다. 보고 온 사람마다 교육가치가 대단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나 그 땐 계림으로 뻐스가 통하지 않을 때여서 우리 시골 애들은 그저 귀동냥이나 하여 영화 줄거리를 둬마디씩 주어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 때 박선생님은 참 큰 결정을 내렸는데 바로 마을의 핸드트랙터手扶拖拉机가 있는 학부형을 동원하여 우리 9명을 싣고 계림에 가서 그 영화를 관람시키는 것이였다. 아, 북경유람을 갔으면 그처럼 신났을가! 우린 너무 흥분되여 밤잠마저 이루지 못하였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동지달, 핸드트랙터의 뒤바구니에 앉아 20여리 길을 달려가 영화관람을 한다면 지금 애들은 무슨 고역인가고 아우성을 칠 테지만 우리들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었다. 곧 영화를 보게 된다는 흥분 그리고 우리들이 선생님과 함께 그 어떤 장거를 이루어내는듯한 격동은 우리들로 하여금 매서운 북방의 추위를 거뜬히 이겨내게 했던 것이였다. 우린 추위로 덜덜 떨면서도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선생님- 저 길가의 나무들 봐요. 막 뒤로 휙휙 달아나는 것 같아요!” “야! 나무에 하얀 눈꽃이 피니 진짜 예쁘네!”  “선생님, 선생님- 근데 저 나무들이 이렇게 추운 겨울에 나무잎들이 하나도 없어 춥지 않을가요?” 우린 확 다가오다가 어느새 훌쩍 멀어지는 겨울 벌판의 라목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까륵까륵 웃음을 토했다. 《소년범죄자》는 내가 여직 본 영화 중 그 어린 나이에도 ‘난 꼭 착하게 살아야지!’ 하며 눈물을 펑펑 쏟으며 본 가장 감명 깊은 영화였다.  세월은 흘러흘러 우리들이 선생님의 품을 떠난 지도 어언 30년이 되였다. 수십년의 흐름 속에서 선생님의 한기 또 한기의 제자들은 모두 큰 도시로, 외국으로 지구가 작다고 이 세상을 주름잡았고 한번 떠나간 제자들은 황페해진 고향으로 거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허나 선생님만은 여전히 교육의 터전을 경건히 지켰다. 변한 것이라면 선생님의 허리가 휘여지고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해진 것이였으며 조선족학생들이 적어지며 시골학교들이 페교되여 인젠 전교 학생이라야 역시 50명도 안되는, 예전 몇백명 학생들로 흥성했던 계림향중심소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였다.  선생님의 제자들 중 난 유일하게 고향에 남은 제자였다.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평생 직업으로 교사직을 선택하였고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계동현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전 현 조선족 교사 연수회에서 여전한 중산복 차림의 선생님을 가끔 만난 적도 있었지만 내가 “아! 선생님-” 하며 반색하며 달려가 선생님의 팔에 매달릴 때면 선생님은 어른이 되여 나타난 제자를 보고 몹시 쑥스러워했다.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조선어문 교사로 성장한 것을 무척 기뻐했다.  “음- 련희가 계동조중에서 조선어문을 잘 가르치고 있단 얘길 들었어. 학생 때부터 조선어문을 남달리 좋아했잖아. 훌륭해! 그래, 참 훌륭해!”  하지만 그것 역시 아주 잠간, 선생님은 인츰 우울한 눈빛의 조용한 선생님으로 변했고 선생님의 그 짙은 고독 속엔 일종 범접하기 어려운 엄엄함이 흘렀다. 그 때 선생님과 한학교에서 근무하는 선배가 하던 얘기는 지금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이, 박선생님께서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 첨 봐요. 평소 학교에선 다른 교원들과 얘기도 별로 하지 않고 동료들의 크고 작은 대사에도 일절 다니지 않죠. 십여년을 함께 근무하였지만 박선생님 댁에 가본 사람은 손 꼽을 수 있답니다. 모두들 뒤에서 박선생님을‘갑속에 든 사람’이라고 부르죠…”   난 선배님으로부터 박선생님과 사모님은 이미 헤여진 상태고 선생님 혼자서 뇌성마비에 걸려 행동이 불편한 상민이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공급판매합작사는 부도가 나 사모님은 직장을 잃게 되였고 사모님은 선생님이 박봉의 교사 직업을 버리고 애들을 친척집에 맡긴 후 함께 한국으로 나가 돈을 벌기를 바랐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직업과 상민이 그 어느 하나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였다. 선생님과 헤여진 후 난 선생님이 애달파 내내 가슴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박선생님을 만나기가 두려워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나와 선생님 사이에 두터운 장벽이 형성되였을가 두려웠고 현재 꽁꽁 닫힌 선생님의 심문을 열 수 있을가고 심히 고민되였다.  2017년 9월 18일, 내가 박선생님을 추억하며 쓴 수필 〈저 멀리 아름다운 별이 있다〉가 한국 KBS한민족방송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서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여 전파를 타게 되였다. 내 글이 처음 한국 KBS한민족방송에서 방송되여 설레이고 가슴이 부풀기도 했지만 그 때 심사위원장이신 이상문선생님의 한 한마디가 참으로 채찍처럼 내 가슴을 아프게 때려오며 날 내내 부끄럽게 하였다.  “네, 그렇다면 세월이 흐른 뒤에 인생의 존경하는 큰 별이신 선생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어떠했을가요? 무척 궁금하시죠? 문장의 결말에서 선생님과 제자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씌여졌더라면 더욱 좋았을것 같습니다. 왜냐면 어렵게 큰 은혜를 입었으면 잊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가능하면 작은 것으로도 갚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거든요…” 방송을 들을 땐 깊은 밤 홀로였지만 난 가슴이 저려오며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아- 난 왜 글로만 떠벌이며 불과 10여리 밖에 떨어져있지 않는 은사님과 따뜻한 밥 한끼 함께 나누지 못하였고 작은 선물 하나 드리지 못했으며 참으로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 직접 전하지 못했을가? 삶은 파란만장하고 세월의 강은 분명히 앞으로 흘렀지만 치졸한 난 선생님과 우리들의 이야기에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동화童话식 결말을 맺곤 선생님의 오늘은 아예 직시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였다. 한세대 또 한세대의 동년을 밝혀주신 선생님- 선생님은 분명 저 멀리에서만 아름다운 별이 아닌, 우리 삶의 영원한 멘토였던 것이다! 솔직히 사람들과의 만남을 싫어하는 선생님께 제자로서 30년 만에 불쑥 만나뵙고 싶다는 전화를 올리는 데는 참으로 용기가 필요했다. 조마조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선생님은 전화 너머 내 목소리를 듣고는 마냥 목소리도 밝아졌고 만남을 부담스러워했지만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을 동의했다. 난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 피천득선생님의 수필집 《인연》과 근년 한국 KBS방송국에서 조직한 ‘북방동포체험수기공모’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을 작품집으로 묶은 책자 세권을 준비하였다. 추억의 늪에 잠기다가 갑자기 뻐스가 “칙-” 하고 멈춰서더니 주위가 소란스러워졌고 어느새 선생님이 살고 있는 계림촌에 도착한 것이였다. 그제야 난 깊은 추억 속에서 헤여나오게 되였다. 하지만 차창 밖을 내다보는 순간 난 그만 “아!” 하고 환성을 지르고 말았다. 선생님이 마중을 나왔다. 선생님은 재빛 티셔츠에 미황색의 코트를 입었고 눈빛은 웅숭깊으면서도 평화로왔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선생님을 보는 순간 난 마치 또다시 동년의 세계로 돌아간듯 싶었다. “와! 우리 선생님 여전히 멋지십니다!” 난 저도 몰래 또 한번 환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시며 “에이- 퇴직을 앞둔 령감이 멋지긴. 오랜만에 학생을 만난다고 머리랑 염색해 그렇지. 아니면 온통 흰머리요.” 하며 수줍게 웃었다. 나와 선생님은 자그마한 간이음식점에서 식사를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4학년 적 교사절 축하공연 때 우리 반 애들이 〈금실북과 은실북金梭和银梭〉이란 류행가에 맞춰 처음으로 디스코를 선보여 전교 사생들의 찬탄을 받은 일, 진달래가 온 산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던 봄날 남산으로 원족을 가기 위하여 선생님들이 나루배로 황니하黄泥河 량안을 수없이 오가며 학생들을 실어나르던 모습, 계림향조선족소학생 운동대회에서 우리 학교가 기타 6년제 학교들과는 아예 비기지도 못하고, 교사의 부족으로 역시 5학년제로 꾸린 유일한 경쟁자인 동명소학교를 이기고는 전교 사생들이 북을 치고 징을 울리며 환락의 도가니 속에 빠지던 장면도 떠올렸다. 허나 감회에 젖어 옛이야기를 하던 선생님은 동광소학교는 한족들의 소외양간牛棚으로 변했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 다음 난 또 선생님과의 얘기 중에서 제자인 나마저 2014년에 이미 중학교 고급교사로 평선되였는데 래년이면 퇴직을 맞게 되는 선생님이 여직 소학교 특급교사(소학교 특급교사는 중학교 고급교사에 해당함)로 평선되지 못하였다는 것도 알게 되였다. 선생님은 예전 동광소학교에서 대과교원으로 있다가 썩 늦어서야 정식교원으로 되였고 게다가 동광소학교가 페교되며 교원들이 여러 학교로 배치되였는데 대부분 변두리 교원 취급을 받으며 중시를 받지 못하였다는 것이였다. 특히 직함평의는 학력, 임무량, 공개수업, 론문발표 등을 종합적으로 보는데 한창 학교 골간으로 활약하는 젊은 교원들과는 아예 비길 수 없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애석해하는 나와는 달리 선생님은 “허허-” 웃으시며 소탈하게 말했다. “그래두 지금 정책이 좋아 해마다 로임이 올라 얼마나 좋소. 우리 딸애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내 로임으로 나와 상민이가 생활하는데 매달 다 쓰지 못하고 남소.” 내가 상민이의 안부를 묻자 선생님의 얼굴은 금시 환해졌다. “양, 그 앤 지금 못하는 게 없소. 노래랑 한번 척 들으면 흥얼거릴 수 있고 컴퓨터랑 휴대폰이랑도 얼마나 통달했는지 이웃들 전자제품이 고장 나면 모두 우리 상민이를 찾소. 요 몇년 전엔 또 전기자전거电动自行车를 운전하는 것을 배워 마을 젊은이들 하구 전기자전거 몰고 연길까지 갔다왔소.” 선생님은 퇴근 후의 시간엔 손풍금을 치고 터전과 과일나무를 가꾸는데 올해엔 사과가 참 잘 달렸다는 것이였다.  “난 지금 소학교 2학년을 가르치오. 애들 모두 둘이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애들에게 사과를 한호주머니씩 뜯어다 주는데 허허허- 두 꼬맹이 놀가지처럼 홀짝홀짝 뛰며 와늘 맛있다고 야단이요.”   신나 두 꼬맹이의 이야기를 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엔 어느새 풋풋한 웃음이 싱싱하게 피여났다. 하지만 불현듯 잠간 침묵하더니 “사실 오늘 련희에게도 사과를 가져다 주고 싶었소. 그러다 다시 생각한 것이 몇십년 만에 제자를 만나는데 촌스럽게 터전의 사과를 들고 다니는 것 같아서…” 하며 쑥스러움에 넘쳐 얘기하시는 것이였다. 아! 순간 난 눈시울이 확 뜨거워났다. 불혹의 문턱에 올라서도록 여직 철 못 든 우리들,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선생님의 마음속엔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는 아이였기 때문이였다. 난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축축히 젖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선생님, 분명히 사랑하여 교사사업을 선택하였지만 오늘까지 걸어오며 참 많이 방황했었습니다. 세상은 크고 눈부신데 젊은 난 편벽한 현성에서 청춘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우울했고 또 내 자신이 있는 자리와 자신이 하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고 뜨거운 땀방울을 쏟고 있을 때 조선족 학교들이 하나하나 페교되여 혹 저희 세대 교사들이 우리 조선족 학교 력사상의 마지막 조선어문 교사로 남지 않을가 하는 애끓는 아픔을 면대하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외롭고 힘들 때마다 전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같은, 학생들의 삶을 밝혀주는 따뜻하고 사명감 있는 교사로 성장하겠다는 초심을 더욱 굳건히 하였습니다.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천만번이라도.’ 선생님께서 훤한 미소를 지으시고 늘 하시던 그 말씀 영원히 가슴 속에 새길 것입니다. ”  “련희가 훌륭하게 커줘서 정말정말 고마워!” 선생님의 두눈도 어느새 흥건히 젖어있었다. 난 나를 향해 오래오래 손을 저으시던 선생님과 작별하고 뻐스에 몸을 실었다. 뻐스는 무연하게 펼쳐진 논밭들 사이를 질주했고 나무잎이 한잎 두잎 지기 시작하는 백양나무들은 누런 논판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북방의 나무답게 어깨 겯고 름름히 서있었다. 겨울날의 가장 감동스러운 풍경이 될 나무들을 바라보며 난 그 추웠던 겨울 선생님과 나눈 대화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였다. “선생님, 선생님- 근데 저 나무들이 이렇게 추운 겨울에 나무잎들이 하나도 없어서 춥지 않을가요?” “허허- 물론 추울 테지. 하지만 이 라목들에겐 겨울 내내 소중히 품었다 봄이면 혼신의 사랑으로 키워야 할 어린 싹들이 있기에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거란다…”  출처:2018 제5호
66    전향미: 뜻밖의 쪽지(단편소설) 댓글:  조회:405  추천:0  2019-07-15
뜻밖의 쪽지 전향미     길림화공병원에서 서의 연수를 할 무렵이였다. 연수 과정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향진병원에서 보낸 연수생을 어느 과에서도 선뜻 받으려 하지 않았다. 맥을 짚는 중의 출신이고 림상경험이 짧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듯했다.   돕다니? 배우러 왔지.  소개신을 들고 찾아들어간 병원 의무실에서 나는 주눅이 들어 앉아있었다. 의무과 선생은 전화기를 붙들고 서서 “아, 네, 아, 네.”를 련발하며 안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표정 뒤에서 얼른거리는 동정심 같은 것에 짜증이 밀려올 즈음, 심전도실에 파견하기로 결정이 났다.   “심전도 보는 법을 먼저 배우시오. 그러고 나서 다음 과로 배치해주지요.”  직원 기숙사로 나를 안내하며 의무과 선생은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네. 그러지요.”  나지막하게 대답하며 선생을 따라 기숙사로 향하는데 음달에 무더기로 남아있는 겨울눈이 3월의 봄 속에서 하얗게 웃고 있다. 병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문진부와 입원부 건물이 8층으로 되여 앞뒤로 서있고 건물 왼쪽으로 나있는 돌계단을 따라 산비탈에 오르면 내가 류숙해야 할 기숙사가 있었다. 1년 동안 나는 이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진정한 의사로 거듭나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였다.    의무실에서 배정하는 대로 심전도실에서 2주 배우고 심혈관내과에 갔을 때 그녀가 하얀 가운을 입고 앉아있었다. 이름이 랭정이며 나를 책임질 지도의사라고 했다. 차가울 랭冷에 조용할 정静, 이름 그대로 차겁고 조용한 분위기가 느껴왔다. 자그마한 키에 통통한 몸매, 외꺼풀의 작은 눈에서 뿜어나오는 랭철한 눈빛이 인상적이였다. 환자의 고통을 정확히 집어낼듯한, 카리스마 있는 눈매라고 생각하니 존경스런 마음이 들었다.  “중의를 배운 미녀의사가 우리 과에 연수하러 왔어요. 랭의사와 나이가 비슷하니 통하는 데가 있을 겁니다. 랭의사가 맡아 지도하는 거로 하지요.” 미녀의사라는 말에 의사 사무실의 눈길이 쏴~하고 내 몸에 떨어졌다.  “랭의사는 서른 전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의료사업에 몸을 바치겠답니다. 아직 남자친구도 없어요. 랭의사한테서 많이 배우시오.” 주임이 소개하는 말에 그녀는 손가락을 코에 갖다 붙이며 살짝 웃었다. 그 웃음 뒤로 강렬한 눈빛이 터져나와 내 시야를 찔렀다. 그녀는 엑스레이 사진 찍듯 내 몸을 궤뚫고 그 검사 소견을 읽는듯했다.          나는 나보다 한살 어린 그녀를 랭선생이라 깍듯이 불렀고 그럴 때마다 조용한 미소가 응답이 되여 돌아왔다. 랭선생은 지도선생 답게 기회만 있으면 서의지식을 전수했고 나는 필을 휘갈기며 공책에 기록하군 했다. 혼자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뒤죽박죽 써갈긴 공책을 갸웃이 넘겨보며 흑흑 웃는 랭선생이 귀엽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이지? 사흘이 지나지 않아 내리막길을 사정없이 떠밀려 내려가는 기분이 되여버렸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녀 때문에 의학실습에 집중해야 할 신경이 조금씩 불쾌한 잡념으로 빠지는 것이 안타까왔다. 입을 오무리고 웃다가도 눈길이 마주치면 늦가을 된서리 내려앉은 영채밭처럼 서늘한 빛이 감도는 것이였다.  랭선생의 말에 토를 달았던 그 날부터 변화가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그 날은 병실에서 고혈압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링겔주사를 맞고 있던 환자가 눈을 반짝거리며 궁금한 게 있다고 했다. 중국 간호사들은 링겔주사를 눈 감고도 팍팍 찌르는데 외국 간호사들은 어설프다고 하더라. 실전 경험이 많고 적어서라고 들었다. 중국에서는 왜서 링겔주사 치료법이 성행하는가?… 환자가 묻는 말은 이러루한 문제였는데 랭선생이 말을 아끼면서 중국 실정에 맞는 치료법을 쓰는 것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하는 것이였다. 만족하지 못하는 환자의 눈길을 지나치지 못하고 내가 말을 늘구어서 보충설명을 해줬다. 친절한 미녀의사라는 칭찬을 받고 의사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랭선생은 화가 나있었다. “의사는 말이 많으면 안돼요. 랭정함을 잃어서는 안돼요. 환자를 생각한답시고 친절 이상을 베풀면 안된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자아보호의식이 십분 이십분 강해야 한다구요.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다가 말꼬리 잡히고 죽음으로 내몰리기도 하죠. 환자와 의사간 불신의 골이 아주 깊단 말입니다. 의사의 한쪽 발은 병원에, 다른 한쪽 발은 법원에 있다는 말이 그저 나온 게 아니지요. 언니도 제 말을 새겨들으면 본인에게 유리할 겁니다.” 그런데 내 입에서 바로 튀여나온 짤막한 응대가 랭선생의 비위를 긁어놓을 줄이야. “불신의 골이 깊기 때문에 환자들을 경계하기에 앞서 우리 의사들도 자신을 검토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싸늘한 눈빛이 내 얼굴을 무섭게 쓸어갔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대화를 차단한 것이다. 심장이 철렁해지는 순간이였다. 그 날부터 시작된 썰렁한 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불편한 감정을 누르면서 배움의 길을 헤쳐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낮에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랭선생 꽁무니를 바지런히 따라다녔고 야간근무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남아서 함께 당직을 섰다.   부모가 지어주었을 이름에 미안하지 않을 만큼 랭정은 랭정한 녀자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야간근무에 나오는 나를 달갑지 않게 바라봤고 병실에서 환자의 호출이 있어 따라붙으면 차거운 얼굴이 되여 매정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따라올 필요 없어요. 그냥 누워 자세요.” 야간근무에 누워서 자라니? 말도 안되는 말이다. 하얀 옷을 입은 천사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음부터 저녁 당직 때 나오지 말아요. 기숙사에서 편히 쉬면 좋잖아요.” 편히 쉬라고? 흥! 나는 응대 한마디 않고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무응대는 무시다. 무시당하는 느낌 당신도 맛보시지.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에게 쉬라고 하는 그 저의가 무엇인가?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있다면 배우려고 한 죄 밖에 더 있는가?  그렇게 찬바람 쌩 일다가도 금새 진지한 얼굴이 되여 심방세동 심방조동과 같은 부정맥에 대해 요점을 딱딱 집어내여 말해주기도 하는 것이였다.   “우리 심혈관내과처럼 바쁜 과도 아마 없을 겁니다. 여기서 잘 단련되면 절반의사는 되는 셈이지요.” 병동이 조으는 느른한 오후 시간에 차물을 홀짝홀짝 들이켜며 말을 못해 환장이 난 사람처럼 수없이 많은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심혈관내과는 병세가 복잡하고 다변해요. 관심병이나 심부전 같은 병은 잠재적인 위험이 커서 수시로 경각성을 높여야 하지요. 응급상황이 나타나면 여러 원인을 고려할 수 있는 폭 넓은 지식과 경험으로 신속하게 판단하고 처리해야 되지요. 환자에게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지표가 이상일 경우에도 면밀히 관찰해서 바로 처리해야 돌발상황을 모면할 수 있어요. 언니도 알고 있을 테지만 1년차 의사를 큰 의사라 하고 2년차 의사를 작은 의사라 하고 3년차 의사는 병을 볼 줄 모르는 의사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지금 병을 볼 줄 모르는 의사예요.” 랭선생은 마시던 차잔을 소리나게 탕 내려놓고 덧이를 드러내며 무기력하게 웃었다.  “시한폭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무서워요. 의사 직을 택한 것이 잘된 일이였나 싶기도 하고 겁이 날 때도 있어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류마티스 심장병 환자였지요. 28살 녀성, 혈전이 형성된 상태였구요. 주임의사가 회진을 하는데 약을 지어서 퇴원하겠다고 하더군요. 혈전이 떨어질 위험이 있어 안된다고 주임의사가 구구절절 설명을 해줘도 환자는 춤을 추듯이 손발을 너울거려 보이며 봐요, 별일 없지 않아요. 힉힉 웃으면서 기어이 퇴원하겠다고 하더군요. 다른 병실을 돌고 있는데 그 환자 가족이 소리를 질러서 뛰여가보니 글쎄 환자 입이 비뚤어져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순식간에 반신불수가 되였지 뭡니까. 젊은 나이에 너무 안됐지요. 심혈관 질병은 변화가 너무 빨라 정신을 도사리지 않으면 안되지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 쪽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우리 의사들의 몫이니까요.” 랭선생은 말을 하면 할수록 비 맞은 병아리처럼 폴싹해져서 한숨까지 내쉬는 것이였다. 그는 눈을 내리 깔고 책상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생과 사가 오가는 병원생활이 힘들어요. 피비린내 나는 침침한 곳이지요. 우리 엄마가 의사를 숭배했어요. 엄마는 소아마비증을 앓는 남동생을 둘쳐업고 학교를 다니면서 동생이 너무 애처로웠대요. 장차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되여 동생 같은 불쌍한 애들을 치료해주려고 결심했는데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끝까지 못했다고 해요. 엄마는 저에게서 당신의 꿈을 보상받으려 했던 거예요. 의학원에 지망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제가 좋아하는 금융 쪽으로 일하고 있을 테지요.”      랭선생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치렬한 노력을 해서 능수능란한 의사로 되겠다는 투지가 불타오르는 것이였다. 자신의 열정에 감동된 나머지 내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노래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말이지요. 명의가 되는 것이 꿈이였어요. 의술과 인술을 갖춘 훌륭한 의사가 되여 환자들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이 꿈이였어요. 그래서 대학지망을 쓸 때 부모님께 얘기도 드리지 않고 무조건 중의학원에 제1지원을 했지요.” 후줄근해있던 랭선생의 눈길에 짜증이 벌겋게 피여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황급히 화제의 방향을 돌렸다.  “류마티스 심장병 환자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젊은 녀자가 입원 도중에 혈전이 떨어져 입이 돌아갔다는 사실은 너무 비참해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명의 편작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에게는 의사인 형이 둘이 있는데 모두 의술이 뛰여났다고 해요. 위나라 임금이 편작에게 삼형제 중에서 누구의 의술이 제일 높은가고 물었을 때 큰형의 의술이 최고라고 대답했답니다. 큰형은 환자에게 고통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큰 병을 알고 미리 치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지요. 우리 의사들도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젊은 녀성환자의 비극을 막을 수 있을 테지요.”  랭의사는 공감하는 태도였지만 이미 대화를 단절했다는듯 또 한번 입을 봉해버렸다.  그러한 대화가 있은 후로 내가 열정에 기름을 쏟아붓고 배우려고 달려들면 입에 자물쇠를 닫아걸고 눈빛이 매서워지는 것이였다.  어른도 사춘기가 있나? 그녀 때문에 나는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 되여있었다. 배움의 압력이 태산이 되여 가슴을 짓누르는 와중에 시간을 짜내여 랭선생과 나 사이를 진단해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중의를 배우고 향진병원에 배치받은 녀자,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면 농촌의 빈약한 의료시설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는 의사이다. 혀를 가로물고 밤낮없이 배워야 하는 리유다. 랭선생 당신은 누구인가? 운이 좋은지 뭐가 좋은지 도시의 큰 병원에 배치받은 녀자, 빠른 시간 내에 의술을 익힐 수 있는 잘 짜여진 시스템 내에서 어깨에 힘을 주는 녀자… 그 뿐이지 않은가? 아니 또 있지. 중의를 개무시하는 분위기에 은근히 동조하는 녀자…  점심식사가 끝난 어느 날, 트림을 껄-하고 나서 주치의사인 심의사가 말했다. “난 중의를 믿지 않아. 확실하지 못해. 202호 환자가 얼마나 중약 타령을 하는지 말이야. 관심병에는 중약이 좋다고 나를 막 가르치려 드네. 누가 의사고 누가 환자인지 모르겠어.” 그 때 흥흥 코맹맹이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랭선생이였다. 무심코 내 얼굴을 스치는 눈길에 악의 없는 웃음이 배여있었지만 내 표정이 굳어지는 찰나의 모습을 그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공연히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제 나는 그녀를 싫어할 구실을 찾았다. 싫어하고 싶다. 싫어할 테다. 도도하던 그녀가 허접하게 보이며 함부로 대해도 될 것 같은 오기 어린 심리가 발동되는 순간이였다.    중의가 확실하지 못한 건 아니지요. 중의학에 대한 지대한 자부심과 애정으로 몸과 맘을 불태우며 중의세계에 빠져들었던 학창시절이 있었답니다. 황제왈, 기백왈, 음양론, 오행론을 풀기 시작하면 그 장면 어련하겠습니까.  솔직히 나는 중의를 모르는 사람들과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남들이 모르는 내 우울했던 지난날의 상황을 념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니깐. 우여곡절 끝에 향진병원에 배치를 받았고 취직해서도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중의문진에 파견되여 로중의의 맞은켠에 앉았다. 새파란 중의의사에게 맥을 짚어보라고 손목을 들이댈 환자가 어디 있겠는가? 로중의의 비위 허약이니 간기 울결이니 병 보는 소리를 귀 따갑게 들어가며 시간 보내기가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생 시험에 도전할 것을 선포하였고 새롭게 펼쳐질 앞날을 기대하면서 병원을 떠났었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연구생 시험을 포기하고 사회에서 뒹굴다가 다시 병원으로 회귀한 그 날부터 서의의술을 익힌 중의사로 변신해야만 시골의사의 위치를 굳힐 수 있다는 비장한 결심을 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연수기회는 의사의 길을 성공적으로 걷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목에 있는 것이라고 인생의 사활을 걸 만큼 중대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였다.  이러한 과거를 시시콜콜 펼쳐보일 필요는 없는 일, 진료차트에 눈을 박고 있는 나는 얼굴에 명랑한 웃음을 만들어 가지고 만사 제쳐놓고 배워야 하는 목적만을 생각할 뿐이다.                     연수하러 온 첫날에 만났던 의무과 선생은 그 후 세번이나 나를 의무실로 불렀다. 농촌에서 똥비누라고 부르는 누르끼레한 빨래비누를 쥐여주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들었다. 후날에 틀림없이 향진병원의 원장감이 될 사람이다.”고 입에 침을 바르고 칭찬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시오. 잘 배울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겠습니다.” 보글보글 거품이 일면서 빨래가 잘 씻기는 똥비누가 고맙고 병원의 따뜻한 관심에 마음이 후더워나지만 칭찬을 받는다고 기뻐서 날뛸 내가 아니였다. 랭선생과 벌이고 있는 미묘한 신경전을 생각하면 나오던 웃음도 서리 맞은 배추처럼 시들해지고 굳어버린다. 랭정. 참 변증이 어려운 녀자이다. 중의학 4진四诊으로 감당이 될 거 같지 않다. 의학의 성인으로 불리우는 장중경의 상한잡병론을 들이댄다면 모를가마는.   창문으로 해살이 부서져내리는 어느 날, 진료차트를 보고 있던 나는 귀신에게 홀린듯 잠간 랭선생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앉아있는 그녀는 얼음을 뚫고 나온 복수초 같았다. 얼음 같은 랭랭한 공기가 그의 주변을 감돌았다.  랭정은 대체 어떤 의사일가?   흘끔 쳐다보는 내 시선을 잡으며 랭선생이 서류철을 들고 일어섰다. “우리 219호 병실에 가봅시다.” 219호는 복도 끝머리에 있는 고급병실이다. 길림북화대학 교장이 관심병으로 입원해있다. 58세이다. 하얀 가운을 입은 두 녀자는 소리 없이 복도를 걸어갔다. 쥐 죽은듯이 고요한 복도에서 나는 갑자기 입을 놀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랭선생, 우리 의사들은 걸을 때 이렇게 발자욱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되여있잖아요. 특히는 심혈관 병동. 그래서 우스운 일이 있었지요.” “흐흥?” 그녀가 힐 웃는 모습이 곁눈으로 느껴졌다. 우습지 않아도 웃어주겠다는 여유가 보인다. “대학 3학년 후학기 때, 병동에서 중간실습을 하고 있었지요. 의사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는 겁니다. 우리 실습생들은 눈치를 주고받으며 재빨리 따라붙었지요. 선생은 앞에서 걷고 서너명 되는 학생들은 뒤에서 발볌발볌 따라가고… 하얀 옷을 입은 한무리 사람들이 음을 소거한 귀신연극을 벌이는듯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소리 없이 걷고 걸어 선생이 어디로 들어갔게요? 화장실로 쑥- 사라져버리겠지요.”  큭- 랭선생의 반응이 총알보다 더 빨리 날아왔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힘을 얻어 219호 병실과의 남은 거리를 가늠하며 이야기 하나를 더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 순간 번개 치듯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예비의사들의 실습풍경이 의대생 시절을 거쳤던 랭선생에게도 익숙해마지 않는 정경일 테고 의대를 졸업해서는 실력 있는 의사로 인정받기 위해 치렬하게 배우고 익혀야 하는 직업특성을 랭선생 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뼈속깊이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였다. 그렇다면 배움에 열중하는 사람에게 무질서로 발병하는 랭선생의 차거움은? 내가 너무 설쳐댔나? 한술에 배부르려는 조급한 모습이 눈에 거슬렸고 그래서 때로는 나를 쫓아버리고 싶도록 꼴도 보기 싫었던 걸가? 랭선생의 ‘간헐적 랭담증’에 대해 추측을 하면서 서둘러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동 순회시간이였어요. 의사와 실습생들이 적의 보루를 점령하듯 환자를 꽉 에워싸고 있었지요. 주임선생이 근엄한 얼굴을 하고 환자의 심장에서 나는 휘파람소리를 실습생들에게 들어보라고 했어요. 내 차례가 되여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대고 열심히 들었어요. 긴장으로 몹시 떨렸지만 문풍지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제대로 들렸지요. 그런데 누워있는 그 환자가 눈을 껍쩍껍쩍하며 자꾸 암호를 보냅디다. 청진기가 제 귀에 꽂혀있지 않았던 거죠. 목에 건 채로…”  “풉.” 랭정다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의과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번한 에피소드 두개를 공유하고 나서 219호 문을 밀고 들어설 때 나와 랭정은 모두 흐물흐물 웃는 얼굴이 되여있었다. “아이구, 서의와 중의 모두 오셨군요.”  앞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빗어넘긴 교장선생이 반겨주었다. 대학교 요직에 몸 담고 있은 세월의 품위가 병실을 옹근히 채우고 있었다.    “교장님, 어때요? 바깥에 온통 봄이 널렸는데 이렇게 화사한 봄날에 몸이 좀 가뜬하신가요?”  랭선생이 말을 건네고는 청진기를 교장선생의 가슴에 조심스레 갖다 댄다. 말에 향기가 있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놓고 말하는 것인가 보다. 랭선생이 평시에 하지 않던 말투와 한껏 웃는 얼굴을 보이고 있어 나는 새삼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청진기를 대고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사색 어린 하얀 얼굴 우로 속눈섭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발자국 하나 없는 눈 벌판 우에 태양이 걷고 있는 그림자가 얼른거리는 정경이 떠오른다.      “봄이 밖에 가득하다구요? 빨리 나아서 봄을 만나러 나가야겠는데.” 교장선생이 그윽한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교장님, 봄아씨 고게 쌀쌀맞아요. 환절기 감기는 무조건 사절하세요. 그러다가 페감염이라도 되면 치료기간이 더 길어지고 고생하게 되지요.” 청진기를 둘둘 말아 호주머니에 넣으며 랭선생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교장님 많이 좋아지셨어요. 더 괜찮아질 겁니다.”   “네, 네, 주의하지요. 의사선생 말씀은 어명이니까요. 당신들 같은 의사가 있으니 나는 걱정 없어요.”  여기까진 참 분위기 좋았었다…  교장선생이 이런 칭찬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 의사선생은 하얀 옷을 입은 천사라는 말이 딱 어울려요. 보기만 해도 병이 절반은 나아지는 것 같답니다. 아름다움을 보면 마음이 즐거워지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겸손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 뒤끝에 고마운 표정을 곁들인다. 미녀의사라는 칭호에 짝지지 않을, 좋은 의사라는 칭호까지 따내야 한다는 압박을 심하게 느끼면서. “생긴 건 괜찮은데 병을 엉터리로 보는 그 녀자의사 있잖습니까.” 이런 평가는 절대 나라는 사람의 몸에서 연출되여서는 안될 것이다.        랭선생의 표정은 이미 굳어있었다. 병실을 떠나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연기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처럼 방금 전의 웃음을 싹 거두어들이고 랭정한 얼굴이 되여버리는 것이였다. 봄이 오다가 홱 머리를 돌려 겨울로 가버리듯이.   연수생으로 병원에 도착한 첫날, 산비탈에 있는 기숙사로 가면서 음달에서 보았던 눈이 새하얀 광채를 잃어버리고 물기 서린 푸석한 모습으로 봄 속에 잦아들고 있음을 아침 출근길에 분명히 보았다. 봄은 완연하게 온 것이다.   눈이 녹아 땅 속에 잦아드는 소리와 봄바람 휘휘 돌아다니는 소리가 기숙사가 있는 산비탈에서 아스라하니 들려온다.   그로부터 련일 화창한 봄날이 쭉 이어졌다. 이렇게 좋은 날씨가 지속되는 꼬라지를 보면 악기후로 돌변할 징조라고 남자처럼 거쿨진 체격을 가진 왕의사가 창밖을 내다보며 궁시렁댄다. 왕의사는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되던 1977년 첫해에 길림의학원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의사’라는 직업인생에 대해 류달리 깊은 애정과 감회를 품고 있었다. 입학통지서를 받은 날, 강변에 달려가서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얼음덩이를 바라보며 목 터지게 울던 일, 대학 5년 동안 갈증이 나서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정식교재도 없는 의학공부의 날을 헤쳐온 일, 해부실에서 다른 동학들에게 빼앗길세라 두개골을 꼭 끌어안고 뼈와 뼈 사이 경계와 련결을 찾아내던 일… “우리 77급 말이야.”는 그의 입버릇으로 굳어있고 77은 그의 별명으로도 통한다. “그 때 우리는 미친듯이 공부했어. 누구도 말릴 수 없었지. 몸을 불사르며 배웠다니까. 지금의 당신들은 죽었다 깨도 리해 못할 거야. 그 처절한 배움의 욕망을 말이야.” 끝도 없이 감개무량하는 왕의사를 보면서 그가 나의 지도담당이 되였더라면 하는 애석함이 파도처럼 밀려오군 했다. 배움의 갈증을 심하게 느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목마름을 헤아릴 수 있을 테지. 선생을 잘 만나야 해. 무시할 수 없는 관건이지. 이런 생각에 빠져들 때면 또다시 화가 울컥 치솟는 것이였다. 남경의 어느 대학교에서는 “지각하는 자 빵점, 숙제를 바치지 않는 자 빵점,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자 빵점.”이라고 규정한 선생님을 한개 반 학생들이 련명으로 탄핵했다는데 책임감이 강한 엄한 선생님 밑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전혀 모르는 놈들이다. 나는 제한된 연수시간 내에 깨칠 것을 깨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혀 ‘책임감 없는 선생’으로 랭선생을 몰아부쳐 탄핵할 생각을 했는데 말이다.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 초보인 나에게 실력파 선생을 배치하지 않을 때는 그럴 만한 생각이 있었겠지. 심혈관내과에 들어온 첫날 주임이 말하지 않았던가. 랭의사와 나는 나이가 비슷하니 잘 통하리라고.  “로자의 말씀 중에 반자도지동反者道之动이란 것이 있어.”라고 중얼대며 77왕의사는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섰다. 어떤 것이든 극에 달하면 반전이 된다는 건데 이게 곧 도道의 움직임이라는 뜻이지. 좋은 날씨가 쭉 이어지다가 최고로 좋은 날을 맞이했다고 생각할 무렵에 날씨가 확 얼굴을 바꿔버리는 거야.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란 것도 그러하겠지만. “아. 맞아요. 맞아. 날씨가 확 변해버릴 것 같네요.” 랭선생도 점심 무렵의 창밖을 내다보며 깊이 공감한다.   로자의 말씀은 처음 듣는 소리라 잘 모르겠고 중의 음양학설에는 한寒이 극에 달하면 열热이 생기고 열이 극에 달하면 한이 생긴다는 음양전환의 리론이 있는데 지금 당신들이 하는 얘기와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전통의학이 얼마나 넓고 깊은가를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중의에서 말하는 오운륙기五运六气 학설만 봐도 그렇다. 작게는 인체의 질병을 연구하고 크게는 우주의 생사까지 탐구하고 예측한다. 이로써 볼 때 중의는 어디 의학의 범주라고만 간단히 말할 수 있으랴! “서의는 강대하고 중의는 위대하다.” 어느 교수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구절을 매우 흔상한다. 왕의사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듯 저녁 무렵이 되자 화창하던 날씨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더니 세찬 비바람이 병원을 집어삼킬듯 세차게 몰아쳤다. 굵은 비줄기가 후닥후닥 창문을 쳐갈겼다.    그렇게 시작한 봄비는 며칠이 지나도록 끊지 않았고 랭선생이 저녁당직을 하는 저녁에도 계속되였다. 질건질건 내리는 비는 온 세상을 축축하게 젖었다. 랭선생의 야간근무에 내가 껌딱지처럼 따라붙었다. 랭선생은 기숙사에서 자고 있으라는 말을 더는 하지 않았으며 내가 몰래 훔쳐보고 지켜보듯이 그도 나를 슬쩍슬쩍 훔쳐보는 곁눈길이 느껴졌다. 나를 연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시골병원에서 온 연수생이 눈에 쌍불을 켜고 의학 수련에 열중하는 모습이 연구의 대상이 되였을지도 모른다.  간혹 그는 힐 웃으며 진지하게 말할 때도 있었다. “210호 협심증에 중약을 쓴다면 어떤 방제를 처방해야 되지요? 어떻게 변증을 하지요? 음양허실이 어떻게 되지요? 예후가 어떻다고 보나요?” 그럴 때면 철색인 내 얼굴색은 끄떡 변함이 없지만 몸 안은 쇠덩어리를 달군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다. 아직은 중의와 서의 모두 어설프기만 하고 이도 저도 숙련치 못한 아마추어 의사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랭선생이 음울한 얼굴로 차디차게 나를 대하는 그런 순간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미숙한 자신에게서 털끝 만한 경험이라도 캐내려는 나의 열정에 거부감이 들었을 테고 미주알고주알 물음에 대답이 궁색할 때는 스스로 화가 나고 속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병을 보는 도중에 중의방제가 생각나지 않을 때면 화장실 간다는 구실로 현장을 빠져나와 어느 구석에 숨어 호주머니 책을 꺼내보고 다시 진료에 림하라는 중의대 선생님의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생각나지만 랭선생은 몰아붙이듯하는 나의 물음에 어디 가서 답안을 얻어오랴. 아직은 주치의사나 주임의사의 지도를 받고 있는 일반의사의 한계를 느긋하게 배려해줄 수 없었던 나의 불찰이라면 불찰이지만 나 또한 느긋하게 배울 여유가 아니였던 것이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랭선생과 나는 윤활이 부족한 삐걱거림 속에서도 전쟁터와 다름없는 병동 생활에 미혼의 청춘을 온전히 투입시키고 있었다.    야간근무가 시작되여서부터 랭선생과 나는 머리가 팽팽 돌 정도로 바삐 돌아쳤다. 련일 이어진 침침한 날씨로 심혈관 질환이 증가된 탓인가 응급실을 통해 환자 4명이 륙속 입원해 들어왔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랴 입원일지를 쓰랴 처방을 내리랴 보호자 면담을 하랴 정신없이 움직였다.  시침이 밤 11시를 넘어서고 있을 즈음 나는 병동을 떠나 산비탈에 있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위중환자가 없는 날에는 자정이 지나서 별로 할 일도 없으니 기숙사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여 이튿날 낮출근을 계속하는 것이 더 효률적이였다.  밤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 듬성듬성 서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푸실푸실 흩날리는 봄비를 보며 나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이튿날, 직원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이른 시간에 병동으로 향했다. 병동 입구에 이르자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듯했다. 평시와 다른 괴괴한 침묵의 냄새가 심혈관 병동에 푹 드리워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간호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직이 알려줬다. “219호 사망했어요. 새벽 4시예요. 주임도 왔어요.” “네?”  나는 깜짝 놀라 저도 몰래 소리를 질렀다. 교장선생이 왜? 호전세를 보이던 환자인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주임까지 출동된 일이면 심상치 않은 일인데? 내 소리에 놀랐는지 간호사는 흠칫 떨며 총망히 자리를 떴다. 의사 사무실에 들어서니 주임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있었다. 랭선생은 진액이 빠져버린 사람처럼 책상모서리에 기대여 쓰러질듯 서있었다. 밝기 조절이 안되는 전등이 천정에 달라붙어서 이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참담한 표정으로 락담하고 있는 랭선생의 모습을 나는 왜서 그렇게도 집요하게 관찰했는지? 그녀의 비참한 얼굴에서 떨어지는 눈물도 놓치지 않고 똑똑히 지켜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의사들이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하고 환자 가족들이 떼를 지어 들이닥치고 사무실에 환자 가족들의 울음이 터지고 사망병례토론이 있고… 이러면서 하루가 지났다. 그러기를 또 며칠 지났다. 랭선생은 련일 초점 잃은 눈으로 여기저기 불려다녔다. 열흘 후 랭선생의 모습은 더는 병동에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몸져누워 당분간 집밖을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의료사업에 몸을 바치련다는 랭선생에 대해 주임의사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심혈관 병동은 여전히 전쟁터마냥 바빴고 이미 발생한 일들에 생각이 머물러있기에는 빡빡한 시간이 허용치 않았다. 랭정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멀어져갔다.  심혈관내과에서 연수가 끝나갈 무렵, 77급 대학생인 왕의사의 수하로 되여 정신없이 돌아치는 어느 날 나는 소포를 받았다. 두꺼운 수첩이였다. 파란색 바탕에 하얀 눈꽃이 그려져있는 겉표지가 산뜻했다. 뚜껑을 펼치자 하얀 쪽지가 미끄러져 나왔다.  “언니의 꿈을 응원해요. 좋은 의사가 될 거예요. 꿈에 미쳐있는 언니가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났어요. 언니의 아름다움도 저를 무척 속상하게 한 거 알지요? ㅎㅎ 저는 지금 새롭게 태여나고 있어요. 저도 꿈이 있어요. 응원받고 싶어요. 랭정 드림.” 또박또박 곱게 씌여진 글씨가 눈꽃이 피여있는 수첩에 내려앉았고 창밖의 하늘을 내다보고 있는 랭정의 얼굴도 함께 와 놓였다.   “랭정, 랭의사… 아니 이젠 의사가 아니지.” 갑자기 울컥하고 마음이 시려왔다. 그녀가 앞에 있다면 뜨겁게 눈길을 주면서 환자 이야기도 아니고 의학 이야기도 아닌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서로의 꿈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을 것만 같은 이 충동은 무엇일가?… 뜻밖의 쪽지에 나는 한참이나 할 일을 잊고 있었다.     출처:2018 제5호
65    심명주: 탈춤(시, 외7수) 댓글:  조회:346  추천:0  2019-07-15
탈춤(외7수)  심명주   한삼 자락 길게 뽑아  구름을 서리하고   바람 빌어 육신으로 혼을 떨며 다가오는    희디흰 심장에 푸른 한을 덧얹어 운우 너머 흩뿌리는 망각의 무리들, 홀씨의 넉두리들   새 순을 내뱉어  아픈듯 넋을 흔들어 파가한 하루,    얼굴을 벗는다 눈 감고 줄을 내리운다 마음에 구멍 뚫는 저 광대가     담쟁이풀 한철만 겨냥하는 담바라기가 시든듯 피는 푸름이가 사느라 아우성 치는  덩굴의 저 무리가    바람이 오면 바람 타고 비 쏟치면 비를 품고 별이 보이면  별을 본따   어디까지 태워주려 모래 같이 흐트러지고 숲처럼 모여,   아,  혼자조차 버거운 이 계절에 하필 내 앞에 다가왔는가   릉소화도 아닌 것이  이토록 뭉클하게   추석달 복사꽃 하나가 떠온다 시원하고 맑으니 도화맛 같은   낮부터 흘러 숙야에 다다르니 어둠길이 춤추고 꽃가루 날리여   내 앞 창문이 너로 해 루추하고 구월 처마가 깊으게 호젓하노니   빌어빌어 또 빌고 다시 비노니 하늘이 밀린다 계절이 떠간다   가을을 쏟으려고 하얗게 청천에서 꽃 하나가 익어간다     봄을 추모하다 봄은 장송곡이다  세상에 푸른 서리를 드리워 생명에게 제주祭酒를 건네며 오가는 길손을 제멋대로 갈무리한다   사랑하는 것들은 것들끼리 비웃고 비웃는 것들은 것들끼리 짝을 지어 시작이 죄받이로 자처하는  긴 쇠길 우에다가 늙은 하루를 팽개치는,   봄아, 총 같은 사람아 천연스러이 한눈을 치켜뜨고 오늘은 또 무슨 음모를 장탄하고 있는가   바람이 설음을 실어주는 길에 시간을 효시하며 너는 오늘도 어김없이 세상과의 하직을 꾀한다     감나무 여름 막바지부터 꼬박 초겨울 한낮까지 정원에서 만났던  한그루 인연, 침묵을 력사처럼 남긴   혼자 찾아갔다가 혼자 바라보다가 끝내는 가지 끝 하늘에 앉아 내려오지 않던  열매 하나만 간혹 한여름 꿈이면  가을을 쥐고 우수수  나무는  자기가 낳은 감들을 가득 품은 채 부메랑처럼 달려온다    꽃 피울 때부터 열매는 노란 리별을 꿈꾸었을 거다 아마 감은 떫은 침묵 같은 등껍질을 벗어    나를 만나  속살을 흐트리려 했을 것이다     파장 몇십년을 하루같이 바람을 손님으로  공원다리 연집강은  장터로 지내온다   새벽 세시면  강을 탄 기운들과 풀숲과 벌레들이 잠자코 기다려주는 시간 먹을거리와 숨소리와  여럿 내음을 겉절이처럼 섞어 세상을 주무르는 등허리들 물소리들 풀소리들 살아나는 소리들 사그러지는 소리들   해가 나오고 다른 세상 소리 피기 시작하면 이곳은 겸손하게 입 닦고 손 씻고, 다리 털고 끝냄을 알린다  언제 그랬는듯이.   그리고 또 누구의 시작은 여기 파장에서 잉태난다     씀바귀 나물에 밥 말다 울컥하는 날 아버지는 밥상이다   수저 한쌍 밥 한알  그리움 한톨   자식 넷을  세상에 차려놓고 잠간 나물이라도 캐시러  하늘 나가셨나   내 아들을 눈에 비벼 밥에 말아 아버지를 먹는  그런 날 나는 바람 속에 서성이는  한잎의 씀바귀이다      해가 온다 점괘 하나 찾아 비가 오면 하얀 색으로 해가 오면 거품으로   “커피를 마실가 자살을 할가” 책제가 유난스러운 날   얼핏 블랙 알맹이와 떠있는 빛과 검은 공기들과  불쑥 옛 마을 입구 솟대까지   차이를 가늠해보다가 액즙을 추출한 뒤 혈관으로 추방시켜  다시 쓴맛과 체온과 비릿함들의 반란을 노린다   특기할 만한 날도 아닌 오늘 음식에다 생사를 버무리하는 날   내게는 해가 온다 가까이  큰 해가 머리 우로 쏟아진다 출처:2018 제5호
64    미주: 아방가르드한 시의 향연(시평) 댓글:  조회:336  추천:0  2019-07-15
아방가르드한 시의 향연 미주   한낱 뜨내기인 나에게 시평의 기회가 찾아왔다. 심명주시인님의 시라고 한다.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올해에 들어서 제목부터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닌 작가님의 수필은 여러편 읽으면서 시도 어서 보여주십사 하고 학수고대해왔다. 이하 설레이는 마음을 눅잦히고 따끈따끈한 신상 시들을 맛보면서 어줍잖은 품평을 시도해보도록 하겠다.  . 춤추는 자가 우를 향해 팔을 치켜드는 찰나에 령민한 시인께서는 기회를 놓칠세라 시상이라는 셔터를 재빨리 누른듯하다. “한삼 자락 길게 뽑아 / 구름을 서리하고 / 바람 빌어 육신으로 / 혼을 떨며 다가오는”이라는 춤 속에 자연이 녹아든 명장면이 미세한 떨림을 전하면서 서서히 인화될 때 저도 모르게 감탄을 쏟게 된다. 큐레이터인 시인의 주문에 따라 한삼 자락을 주목해보도록 하자. 하늘과 맞닿은 탈을 쓴 자의 한삼 자락은 절묘하게도 구름과도 같은 흰색이다. 이 아름다운 증좌로 인해 무자舞者는 빼도 박도 못하고 구름을 서리했다는 “덤터기를 쓴”다.  계속되는 춤구경에 혼마저 쏙 빼앗겨 한시라도 눈을 떼지 못한 채 템포가 늦은 춤사위를 쳐다보고 있느라면 육안으로는 보아낼 수 없는 것들까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즉 물物에서 정신에 이르게 된다. “희디흰 심장에 / 푸른 한을 덧얹어”라는 묘사에서는 눈부신 흰색 주변을 감싸는 푸른빛과 흡사한 백의민족이 지닌 한의 정서를 그린다. “운우 너머 흩뿌리는 / 망각의 무리들, 홀씨의 넉두리들”. 어찌할고? 한을 죄다 털어버리고저 곱게 흩뿌리지만 사라져버리지 않는다. 다만 망각된다. 그것도 잠시, 이는 또다시 홀씨로서 생명력을 형성하게 되고 ‘새 순을 내뱉’는다.  이윽고 춤은 끝나고 춤추던 자는 탈이 아닌 ‘얼굴을 벗는다’. 시종일관 같은 표정일 수 밖에 없는 탈이 갖는 특성상 철저한 포커페이스를 자처하며 오로지 ‘넋을 흔드’는 춤을 추는데 집중한 그에게 있어 탈은 곧 얼굴이다. ‘진짜 얼굴’보여주기(얼굴 알리기)를 포기하고 보는 이의 ‘마음에 구멍을 뚫’는 춤군인 그는 ‘광대’로 불리운다. ‘광대’는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자에 대한 단순한 호명이 아니다. 심혈을 기울여 민족의 얼을 표현해내고 예로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데 대한 최고의 찬사이다.  . 세상에 영원이란 없는 법이다. 흔히들 ‘예쁜 꽃도 한철이다’, ‘피여보지도 못하고 진다’ 등의 표현으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아쉬운 유감들을 전한다. 이 기준에만 근거하여 같은 덩굴과인 릉소화(여름에는 꽃 피고 가을에는 열매 맺는)와 비교해볼 때, 모름지기 한철만 푸른 담쟁이의 ‘삶’은 한없이 초라해보일 수도 있다.  “바람이 오면 바람 타고 / 비 쏟치면 비를 품고”. 얼핏 보면 담쟁이는 맞닥뜨린 상황들에 수긍을 하면서 무난하게 살아가는듯하다. 하지만 비바람에 담쟁이 잎 전부가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이를 상기해본다면 비와 바람은 단순히 자연현상이 아니라 살기 위해 힘겹게 이겨내야 하는 역경이다. 힘이 들 때 바라보게 되는 하늘의 ‘별을 본따’ 곁잎이 다섯으로 갈라지는 담쟁이 잎사귀 형태는 곧 희망이다. 희망은 판도라 상자 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처럼 흐트러’져있다.  희망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리’가 되고 나아가 ‘숲’을 이룬다. 부지런히 담만 타는 담쟁이를 통해 시인은 “형태는 흐트러졌으나 정신은 흐트러지지 않形散神不散”은 한편의 훌륭한 수필을 읽어낸듯하다. 담쟁이가 전하는 ‘뭉클’함은 ‘혼자조차 버거운 계절’에 왜 ‘하필이면’ 시인을 찾아왔을가? “사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자를 위해 죽을 수 있士为知己者死음에 그 답이 있다. 릉소화 뿐만 아니라 담쟁이도 아는 시인은 나름 대로 치열한 삶의 가치를 보아내고 긍정해주는 혜안을 가진 자이다. . 이 시에 대한 전반적인 감수는 요즘 류행하는 신조어인 ‘과즙미’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싱그러운 매력이 터져나올듯 흘러넘침을 뜻한다. 가을을 맞아 땅 우에서 무르익은 백과를 제쳐두고 하필이면 하늘에 떠있는 둥근달에서 과즙미가 느껴지는 걸가? 이는 추석달에 대한 시인의 전반적인 낯설게 하기 시도 때문이다.  시에서는 밤하늘에 달이 뜬 모습을 “복사꽃 하나가 떠오른다”고 했다. 일정한 주기에 따라 변하는 달의 모습은 결코 둥근 원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꽃모양이라 하다니. 복사꽃이 둥그런 모양인지 하는 의심이 싹 가시기도 전에 “시원하고 맑은 도화맛 같다”고 하는 행이 이어진다. 한입 베여물고 싶은 미각적인 충동이 저도 모르게 일게 된다. 2련에서는 쏟아내리는 달빛을 두고 “꽃가루 날린”다고 했다. 눈부신 달빛을 두고 꽃가루 흩날리는 것이라고 한데 대해 수긍을 하게 된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시인의 표현에 ‘완전히 낚’여 영낙없이 달을 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겹겹이 쌓인 선입견의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기억의 저편에 자리하고 있는 달을 길어올려보자. 달은 원체 둥그런 것이 아니지 않는가. 옳거니, 시인이 알려준 대로 달은 복사꽃으로 피여났고 꽃가루가 내려앉아 간절한 소원에 수정을 이루게 된다면 이는 다시 탐스러운 백도로 영글어져가는 것이다.  에서 시인은 봄이면 만물이 소생한다는 기본 통념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죽음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그리하여 흥쾌한 멜로디가 아닌 장승곡을 봄노래로 선곡했다. ‘세상에 푸른 서리를 드리’운다고 하였는데 의문이 든다. 서리가 어떻게 되여 푸른색일가? 색상으로 짐작하건대 이 ‘서리’는 봄을 맞아 돋아난 새싹들을 말한다. 1련에서 ‘오가는 길손’은 봄이 되여 나타나는 새로운 기상들이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지나간 겨울을 위해 준비된 제주를 건네받아 마신다. 3련에서는 ‘긴 쇠길’이 등장한다.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쇠길은 무엇일가? 해석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듯하다. 필자는 ‘늙은 하루’가 팽개쳐지는 이 길을 기온이 상승하면서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며 형성된 진탕길로 풀이하고저 한다. 시간이 흐르며 봄이 깊어지고 봄이 아닌 흔적들은 하나씩 사라져간다. 이를 두고 4련에서는 봄을 ‘총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봄이라고 하는 스나이퍼의 위세는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봄도 언젠가는 자신이 물러나야 함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리하여 불어오는 바람에서 설음을 느낄 수 있고 날마다 세상과의 하직을 꿈꾼다. 이 시는 그동안 봄바람에 취해 영생만을 떠올렸던 자들에게 한치를 차이둔 거리에 사死가 존재함을 일깨워주는듯하다. 궤변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가 원체 난해하게 씌여져 필자의 해석이 맞을 거라는 속단을 내리기가 주저된다.  . 심명주작가의 작품에 감나무가 등장하는 것은 로신문학원에서의 연수생활을 쓴 수필 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인 것 같다. 수필 속 “감이 익기 시작하여서부터 완숙되여 절로 떨어질 때까지, 그리고 끝까지 높이 매달려 까치밥으로 남던 마지막 한알의 감이 바람과 해빛에 쪼그라들어 기어이 푸석하게 변해서는 자연으로 돌아가던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는 작가의 고백이 인상적이였다. 수필 속 그 감나무를 시에서 또 만나게 된다. 시적화자는 정원에 있는 한그루의 나무와 인연을 맺는다. 돈독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열매가 남을 때까지 기나긴 시간 동안 찾아주고 바라보는 등의 로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말할 수 없는 나무의 침묵 속에서 시적화자는 세심한 관찰을 통해 나무의 가을에 감들이 가득 달리는 꿈 및 노란 리별의 꿈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아마 감은 / 떫은 침묵 같은 등껍질을 벗어 / 나를 만나 / 속살을 흐트리려 했을 것이다”면서 시는 끝난다. 감이 자의에 의해 외피를 벗고 자신을 드러내보일 것이라는 추측은 무한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였음을 자부하는 것이다. 시에서는 감나무와 인연 맺기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 옳바른 교우자세를 제시하고저 했다.  . 데면데면한 필자는 1련에 등장하는 ‘공원다리 연집강’, ‘장터’만을 포착하고는 좌표를 수상시장으로 잡고 달리려다 말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아래동네에서 비인간 군상들이 모여 이렇게 재밌는 시장놀이를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무려 ‘몇십년’이나 되는 나름의 력사가 있다. 상상만으로라도 쌩할 바람이 손님이라고 하니 호객행위하기 참 힘들겠다. 그럼에도 벌레들의 기척마저 느끼기 힘든 새벽 3시라는 이른 시간부터 등허리를 주무르면서가 아니라 등허리들이 오히려 세상을 주물러가며 ‘각종 내음이 섞여’ 시장에 들고 갈(?) ‘겉절이’는 만들어진다. “물소리들 / 풀소리들 / 살아나는 소리들”로 북적이는 자연의 아침시장이 개장한다. “칵테일파티 효과”란 바로 이런 것이다. 자연의 일거수일투족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인지라 귀를 귀울여 “시장 아래 시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인은 이 장터의 매력을 때가 되며는 “해가 나오고 / 다른 세상소리 피기 시작하면” ‘겸손하게’ 물러날 줄 아는 데서 찾는다. 공생관계에 있어 굳이 ‘본의’는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진 에티켓으로 인해 ‘또 누구의 시작’이 잉태될 수 있다. 결속의 의미로서 파장이 새로운 시작에 파장을 미치게 됨을 떠올려볼 때 끝남에 대한 아쉬움 또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는 사부곡이다. 아버지가 그리워난 것은 “나물에 밥을 말다 말고”이다. 촉물생정触物生情이라고 했다. 나물 때문에 아버지 생각이 나는 것으로 류추하건대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네 자식을 먹이려고 나물을 자주 캤었다. 그리하여 시적화자는 돌아가서 계시지 않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잠간 나물이라도 캐시러 하늘 나가셨나’는 생각을 한다. 1련에서는 ‘아버지는 밥상’이라고 했다. ‘밥상’을 아버지의 형체라고 생각하여 그 우에 ‘수저 한쌍’, ‘밥 한알’과 함께 절절한 ‘그리움 한톨’까지 얹어놓는다. 아버지 생각에 울컥한 날이 있다면 ‘아버지를 먹는 날’도 있다. 우선 공포감을 조성하는 이 식인의식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형체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륜리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내 아들을 눈에 비벼 밥에 말아’ 아버지를 먹게 된다. 눈에 비벼도 아프지 않은 내 자식인 ‘아들’은 할아버지인 나의 아버지를 닮은 것으로 사료된다. 아들을 보고 아버지를 떠올리며 밥을 먹었다. 이로써 ‘아버지 먹기’는 가능하다. 화자는 먹기 방식을 벗어나 아버지와의 만남을 꾀하고저 한다. 그것은 ‘내’가 ‘바람 속에 서성이는 한잎의 씀바귀’가 되는 것이다. 나물이 되여 아버지한테 캐여지고 싶다. 아버지는 밥상이니 나물인 ‘나’는 아버지 우에 차려진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전반 시의 곳곳에 리해에 어려움을 주는 난해한 표현들을 배치하여 곱씹어읽기를 유도한다. ‘나’의 영원한 식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리해하겠으나 ‘내’가 수많은 나물을 제쳐두고 굳이 씀바귀이고 싶은 리유는 끝끝내 찾지 못했다. 시인만 알고 있는 사연이 있는 걸가? 그 궁금증은 쉬이 해소되지 않는다. . ‘커피를 마실가 자살을 할가’는 고민을 하는 시적화자에게 “그것도 고민이라고 해, 당연히…” 하고 면박을 주려다가 멈칫하게 된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은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을 ‘블랙 알맹이’, ‘떠있는 빛’, ‘검은 공기’, ‘옛 마을 입구 솟대’ 등의 차이를 그는 굳이 가늠해보았다고 한다. 동원된 시적 이미지로부터 보아낼 수 있듯이 그의 기분은 너무 다크하다. “액즙을 추출한 뒤 혈관으로 추방시키”는 것은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는 것을 련상시키지만 그 결과물은 커피가 아니라 이름하여 ‘쓴맛과 체온과 비릿함들의 반란’이다. 그렇다면 시적화자는 왜 기분이 울적할가? ‘큰 해가 머리 우로 쏟아진다’고 했지만 해는 결코 원인 제공자가 아닌듯하다. 기분이 울적하다 보니 해가 내 머리 우에 드리우는 것 또한 싫은 것이다. 시는 난해함을 꾀하며 다음과 같은 리치를 전하고저 한다. 모든 일이 인과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기분에 충실하는 것은 진실된 자아를 만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해를 굳이 의식하지 말라. 때가 되면 스스로 지고 뜬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의 여름도 이제는 막바지에 들어섰고 슬슬 가을이 다가옴을 기대해볼 법도 하다. 심명주시인님의 8편의 시작품은 이러한 타이밍에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여름 내내 머리에 이고 있었던 뜨거웠던 해에 대한 짜증 나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잠시나마 땀을 들일 수 있던 식물들로부터 전해지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주는 시원한 기억도 있다. 이 또한 다 지나갈 것이라는 리치를 전하면서 가을의 표상들을 슬그머니 내놓는다. 시인님의 기발한 센스가 넘치는 8편의 시에 ‘좋아요’를 꾹꾹 눌러주고 싶다. 그리고 이들 중 몇편의 시에는 커다란 물음표 이모티콘도 잊지 않고 남겨야 될 것 같다.  출처:2018 제5호
63    <장백산>2018.4 루계220 댓글:  조회:680  추천:0  2019-07-14
장백산 총220호  2018 제4호   권두칼럼 장춘식    아름다운 글과 현대적 감각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남영도    ‘치타치타’(외2편) 남영도    부끄러운 고백(작가노트) 김호웅    수필의 현대성과 수필가의 자질(작품평) 최순희    꿈꾸는 지란지교(작가평)   기획련재 김혁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 련재10) 김혁     늦봄,계단을 오르다(만필 련재끝)   박초란소설코너 박초란    블루베리농장   소설광장 김경화    사랑한 죄(중편소설)   계렬수필 주향숙    더는 준비로 머뭇거리지 말며(수필) 주향숙    아름다운 시로 위로하고 싶다(수필) 주향숙    해비에 젖으며(수필)   시인시전 최룡관    축구장 별곡(시 외5수) 조영욱    란숙의 거리두기(시평)   창작마당 김견      혼인보험(단편소설) 김동수    유전(단편소설) 정호원    설 아닌 설날(수필) 김영춘    새로운 고향(수필 외1편) 박장길    달이 보고 있었다(시 외2수) 조광명    실면(시 외1수)   8090문학코너 김연      엄마(단편소설) 곽고분    기적의 접견(단편소설) 핑크오렌지 아버지는 나를 철학가라고 하셨다(수필)   문학과 비평 김영옥    시행으로 그린 삶의 자화상(평론)   기념문 김호웅   격정과 랑만의 화신-림휘교수님(수필)   중국소수민족문학 양수강    소녀 금매(단편소설/천년목 옮김)   장편소설련재 김혁      무성시대(장편소설 련재4) 구호준    여백(장편소설 련재2)
62    김연:엄마(단편소설) 댓글:  조회:422  추천:0  2019-07-14
엄마 김연   무려 10년간 얼굴 못 봤던 엄마가 집을 방문한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혼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은호는  남편 지훈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겉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련락해온 것은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한참 수다를 떨고 있던 때였다. 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떴을 때 그저 스펨전화인 거 같아서 받기가 싫었다. 휴대폰이 지치지도 않고 5번이나  울리고 동료들이 의아한 시선을 보내서야 그녀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가에 가져갔다. “엄마다.” 전화기 너머로 낯설면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호가 12살 되던 해 아버지와 리혼을 한 엄마는 집을 나갔다. 그 때 은호는 공교롭게 생애 첫 생리가 시작되였고 어린 소녀에게 그건 대참사였다. “생리대를 갖고 다니는 걸 잊지 말고, 생리 그거 별거 아니야.” 짐을 싸면서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그녀에게 말했다. 처음 생리대를 사용할 때 은호는 속옷이 아닌 자기 몸에 붙여버렸다. 아픈 건 둘째 치고 너무 불편했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 같아서 수업시간에 은호는 옆자리 친구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생리할 때 화장실은 어떻게 가는 거야?” 친구가 얼굴을 붉히며 설명을 해주어서야 그녀는 생리대의 정확한 사용방법을 알게 되였다. 엄마는 늘 집으로 전화를 해왔지만 마침 사춘기였던 은호는 엄마한테 버림받은 기분에서 헤여나오지 못한 채  분노했고 전화기는 항상 아버지한테 돌아갔다. 반년 후, 엄마는 당신이 처녀시절부터 동경했다던 S도시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은호 부모님들은 각자 재혼하였다. 련락은 점점 줄었고 직접 만나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그런 엄마가 주말에 은호가 사는 T도시로 오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한다. 엄마가 오기로 한 토요일, 오전 내내 은호는 주방에 틀어박혀 청소를 하였다. 그릇과 수저들을 꼼꼼히 씻고 후라이팬 두개를 반짝반짝하게 닦았다. 가스레인지도 왠지 더러워보여서 광이 나게 빡빡 닦아냈다. 그러고 나니 주방 환풍기에 씌인 먼지가 거슬렸고 그 다음엔 찬장도 맘에 안 들었다. 점심에 라면을 끓여먹고 나서야 은호는 거실이 전혀 정리가 안되여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늘 정작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으며 그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뭔가 기대를 가지는 것을 애써 경계하기 위함이였음을. 이 때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바늘은 정확히 오후 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관문을 여니 엄마가 문밖에 서있었다. 엄마는 마치 어제도 다녀갔던 사람처럼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엄마라는 부름 대신 은호는 짧고도 낮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계산해보니 엄마는 올해 57살이였고 얼굴은 10년 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잘 정돈된 짧은 매직머리에 회색의 트렌치코트와 검정색 베이직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디자인이 심플한 커피색 토치가방을 들고 있었다. 얼굴엔 연한 화장을 하고 있었고 주름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나 새 슬리퍼 줘.” 엄마는 허리를 꼿꼿이 한 채 집안으로 들어왔다. 머리 속에 수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은호는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거실을 제대로 치우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90평방메터의 아빠트가 괜히 허접하고 지저분해보였다. 은호는 엄마에게 뭘 마시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커피를 달라고 했지만  집에는 커피가 없었다. 랭장고에 커피음료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꺼내서 엄마한테 흔들어보였다. “그냥 물 줘.” 은호는 왠지 꿈을 꾸는 기분이였고 이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서로가 서먹한 모녀는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 각자 손에 물컵을 들고 있었다. 은호네 집 식탁은 집 실내구조 중 가장 북쪽에 놓여져있어서 대낮에도 어두운 편이였다. 그래서 집에 사람이 있으면 식탁 우 천장의 상드리에에는 늘 불이 들어와있었다.  밝고 환한 조명을 통해 엄마 얼굴을 찬찬히 보게 된 은호는 그제서야 엄마와의 사이에 놓인 10년의 세월을 실감했다. 엄마는 확실히 예전보다 늙었고 머리는 흰 머리카락을 감추려고 염색한 티가 났다. 탱탱하던 얼굴 피부도 느슨하고 처져있었으며 잔주름들이 눈에 띄였다.  상대도 분명 자신의 변화를 눈치챘을 것이다. 이제 서른두살이 된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했다. 은호는 엄마가 그녀를 떠났던 그 때의 모습을 애써 떠올렸다.  20년전, 그 때 자신은 12살이였고 엄마는 37살이였다. 그 때 엄마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이 아버지와 자신을 떠났었다. “너 결국 그 남자랑 결혼했구나.” 엄마의 말투에는 실망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단정이 묻어있었다. 은호가 지훈이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가 전화로 엄마한테 결혼소식을 전했고 은호는 아버지의 재촉에 마지못해 청첩장을 엄마에게 보냈다. 물론 엄마는 그녀의 길고 정신 없었던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축하전화조차도 없었다. 은호와 지훈의 웨딩사진은 현재 거실 한가운데에 걸려져있었고 사진 속 신혼부부의 진한 웨딩화장과 촌스러운 가짜 유럽 배경에 엄마가 얼마나 한심해할지 그녀는 짐작이 갔다. 22살이 되던 해, 엄마는 은호가 다니는 대학에 나타났다. 그 때 그녀는 막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불안한 상태였다. 별 야망이 없는 남자친구는 졸업하면 현지인 T시에 남아 공무원시험을 봐서 편하게 나머지 인생을 보내려고 하였고 은호는 외국 아니면 수도인 B시로 가서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었다. 엄마와 은호는 학교 대문 근처의 작은 음식점에서 10년 만에 만났다. 엄마의 얼굴에는 긴 세월 무관심하게 방치해두었던 딸에 대한 그 어떤 미안함도 자책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가 집을 떠난  1년 후, 은호는 부주의로 팔에 화상을 입었고 선명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날 은호는 반팔을 입어 상처자국이 확연히 눈에 띄였음에도 엄마는 그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대신 은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물었다. 남자친구가 있냐고도 물어서 은호는 기숙사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지훈이를 음식점으로 불러냈다. 셋이서 식사를 마친 엄마는 은호한테 혼자서 공항까지 배웅해달라고 하였다. 탑승게이트로 들어가면서 엄마가 은호에게 말했다. “그 남자랑은 헤여져. 걔는 전도가 없어. 넌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졸업 후 은호는 B시로 가서 직장을 찾고 취직을 하였다. 지훈이와는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리별을 하고 말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 빨리 자리잡으려고 급히 찾은 첫 직장은 엄청 바빴고 그만큼 재미없었다. 아침 일찍 붐비는 지하철을 견디며 출근을 했고 늘 잔업때문에 막차를 놓칠가 뛰여다녔다.  반년 후의 어느 주말 반지하 세집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은호는 해질녘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바로 기차역으로 간 은호는 T시로 가는 티켓을 끊고 지훈한테 문자를 보냈다. 기차는 한밤중이 되여서 T시에 도착하였고 지훈이가 마중나와있었다. 둘은 서로 시선만 주고받은 채 나란히 말없이 걸었다. 늦은 밤, 적막한 거리는 뿌연 가로등이 길을 밝혀주었고 말로 내뱉지 않은 모든 감정이 그 순간 확인되였다. 이건 사랑이라고… 엄마는 죽어도 모르는 사랑이라고 은호는 그 때 속으로 곱씹었었다. T시로 돌아온 은호는 3년 후 지훈이와 결혼을 하였다. “나  리혼해. 세번째야. 이젠 다신 결혼을 안할 거다.” 아버지랑 리혼 후 S시로 간 엄마는 중한합작회사에 출납으로 취직했고 얼마 안 지나서 한국에서 파견 나온 한국인 로총각과 결혼했다고 한다. 1년 후 그 한국인 남편을 따라서 한국에 갔던 엄마는 7년 후에 또다시 리혼녀가 되여서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세번째 남편은 S시에서 만난 중국인 홀아비라는 얘기는 아버지한테서 얼핏 들은 바가 있었다.  “은호 너 말고 따로 자식을 안 낳았으니 니가 내 유일한 딸이야. 나도 점점 늙어가니 나중에 너한테 신세 질 것 같기도 하네.” 엄마는 남 얘기하듯 표정이 흐트러짐이 없었다. 은호는 엄마한테 시선을 똑바로 고정시킨 채 자신에게 물었다. “이 녀자, 내 눈앞에 있는 이 녀자가 나랑 무슨 상관이지?” 엄마는 의자를 앞으로 끌어서 좀더 은호 쪽으로 다가오면서 비밀을 얘기해주는듯한 은밀한 어투로 말을 계속했다. “이번에 리혼하면 재산분할을 하게 되는데 액수가 상당해. 지금 소송 중이라 변호사도 있어. 은호 니가 내 유일한 자식이니 앞으로 내 재산은 전부 니 거가 되는 거야.  너 내 말 안 듣고 결혼하더니 상태를 보니 그다지 넉넉치는 않은 것 같구나.” “나 잘살고 있는데요.” 은호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엄마는 앞으로 쏠렸던 웃몸을 다시 의자 등받이 쪽으로 옮겨갔다. “나 이번에 마무리되면 고향에 돌아갈거야 . 돌아가서 가게를 하나 할려구. 좋은 곳으로 구해서 이미 계약했고 지금 인테리어 중이야.“ 엄마가 자신의 얘기를 이렇게 자세하게 들려준 적은 처음이였다.  10년 만에 찾아와서 왜 이런 얘기를 소상하게  하는지 은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가게 세맡고 인테리어 하는데 돈을 좀 쓰다 보니 내가 살 아빠트를 사려니깐 돈이 좀 부족하네. 재산분할을 하게 되면 아빠트 하나 사는 건 문제도 아닌데 리혼소송은 시간이 좀 걸려서 그 쪽 돈은 지금 쓸 수 없거든. 그래서 너한테 20만원을 꾸려고 해. 걱정하지 마, 소송이 끝나면 내가 리자까지 쳐서 돌려줄 테니깐. 그리고 어차피 그 집은 나중에 니 거야.” 엄마의 전화를 받고 지금까지 비록 수많은 시물레이션을 해봤지만 은호는 엄마의 오늘 방문이 돈을 꾸기 위해서일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잠간 말문이 막힌 그녀는 한참을 엄마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와 동시에 은호의 머리 속은 어이없게도 은행계좌에 25만원 정도의 돈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요.” 은호는 천천히 한글자 한글자 내뱉았다. 엄마의 입매가 살짝 우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웃몸은 완전히 의자등받이에 기대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가? 너 이제 서른도 넘었잖아.” 어릴 적 엄마는 은호가 학교에서 갖고 온 시험지를 보면서 얼굴은 늘 웃고 있었다. “왜 백점을 못 맞은 거지? 넌 백점 맞을 수 있는 아이잖아.” 그 생각에 은호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고 식은땀이 쫙 났다. 하지만 이제 은호는 어린 애가 아니였다.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싶었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하냐고 소리쳐 묻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심장만 쿵쿵 뛸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 엄마가 문밖에 서있던 그 순간 자신이 이미 22살, 아니 12살로 돌아가 엄마 품에 뛰여들어가 엉엉 울고 싶었었다는 걸 은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녀는 엄마한테 안기지도, 울지도 않았다. 은호는 최대한 딱딱하게 말했다. “나도 돈이 필요해요. 나 임신했어요.” 임신 소식은 자신을 제외하고 엄마한테 처음 하는 거고 아직 지훈이한테도 알리지 않았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자신이 아이를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두렵고 자신이 없었으며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여있지 않았다. “난 또 네가 아이를 못 낳는 줄 알았지. 결혼한 지 꽤 됐잖아.” “일이 바빠서요. 그리고 난 내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거든요.” “무슨 자격?”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이요.” “이 참에 날 비난할 생각을 하지 마. 내가 니 우상도 아니잖아.” 엄마의 말투도, 표정도 차겁기 그지없었다. 은호는 아래입술을 깨물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중 웃층에서 뭔가 둔탁한 물체가 넘어지는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금새 탁탁 하는 분주한 발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니?” 엄마가 짜증을 냈다. “늘 그래요. 웃층이 남자아이를 키우는 집인데 애가 맨날 신발 신고 뛰여다니나 보더라구요.” “가서 따져봤니?” “어린 애랑 뭘 따져요?” “가정교육 제대로 못 받은 애들이 제일 싫어.” 엄마는 고개를 들어 웃층을 향해 눈을 흘기기까지 했다. “너 나중에 애 낳으면 다른 데로 이사해. 이 집 너무 작다. 주변 환경도 안 좋고.” “그래서 돈을 꿔줄 수 없는 거예요.” “내가 공짜로 꿔달라고 했니? 투자한다고 생각해.” 은호는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한참 후 엄마는 다시 은호 쪽으로 몸을 가까이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좀전보다 낮은 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사실… 네가 낳고 싶지 않으면 안 낳아도 돼. 요즘은 수술도 쉽고 안전하다잖아.” “엄마는 외할머니가 되고 싶지 않나요?” 이 식상하고 멍청한 질문을 은호는 그 후 며칠 동안 내내 후회하였다. “별로.” 은호의 손을 놓아버린 엄마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손목시계를 본다. “나 있다가 누구 만나기로 했어. 지금 가야 해.”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더이상 앉아있기 싫다는듯이. 문가로 간 엄마는 신발을 신고 가방을 든 채 스스로 문을 열었다. 문밖으로 나가려다 다시 몸을 돌려 은호를 향해 말했다. “내 은행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줄게. 다음주까지 돈을 보내줘 알았지?” 시끄럽던 웃층은 한참 후에 조용해졌다. 식탁 우에 식어버린 물컵이 아니였으면 엄마가 다녀간 흔적은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물 한잔 마시지 않은 채 바람처럼 왔다가 가버렸다. 20년 전 엄마가 떠난 후 적어도 세명의 녀자가 은호의 엄마가 되고 싶어했다. 그녀들은 은호에게 다가와 환심을 사려고 했고 집에 올 때마다 은호에게 선물을 줬다. 다정한 말투로 그녀를 대했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서 아버지의 호감을 사려고 했다. 그녀들은 서로 성격이 달랐지만 공무원이였거나 학교 선생님이였다.  엄마처럼 대학을 나왔고 현명했으며 엄마보다 더 상냥했다. 그 중에 한 녀자는 엄마보다 더 이뻤다. 후에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재혼대상은 공장에 출근하는 평범한 녀자였다.  그 날 저녁, 잔업을 마친 지훈이는 은호가 저녁상을 차려놓은 후에야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설겆이까지 마친 지훈이가 거실 쏘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을 때 은호는 임신테스트기를 그의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지훈이는 처음에 놀라더니 바로 희색이 만면하여 드라마 속 수많은 남자들이 그러했듯 은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더 잘할게.” 어쩜 대사마저 똑같았다. 사실 은호는 지훈이가 좀 다른 반응을 보여주길 바랐었다. 조금은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지금 상황에 대해서 고민해보기를 바랐지만 이 남자는 각박한 현실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아예 없었다. “아이를 낳으면 자기 어머니가 분명히 애 봐주러 온다고 할 거고, 그럼 지금 집은 방도 없고 작잖아.” “괜찮아.” “이 근처 학교들도 별로고 나중에 애가 학교 가는 문제는 어떻게 해?” “그 때 가면 방법이 생길 거야.” “난 이 동네 사람들이 싫어.” “난 괜찮은데…” “어떡해?” “다 방법이 있을 거야.” 지훈이는 지나치게 락관적이였다. 더 이상 이 화제는 계속할 수 없었고 은호는 낮에 엄마가 돈 꾸러 왔던 걸 얘기했다. “그 리혼소송은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거야?” 지훈의 첫 반응은 이러했다. “당연하지! ” 왠지 모르게 거슬려서 은호는 볼멘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네가 꿔주고 싶으면 꿔줘 … 그래도 엄마잖아.” 지훈이는 딱 한번 만난 엄마한테 유치한 호감이 있었으며 웃기게도 그녀도 자신을 맘에 들어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은호는 더욱 화가 났다. “만약 엄마가 돈 안 갚으면 어떡해? 우리한테도 돈이 얼마 없잖아.” “내가 더 노력할게.” 지훈이가 태평스럽게 말했다. 다음날, 은호는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고 바로 지훈에게 얘기했다. “엄마가 다시 돈 꿔달라 그러면 우리 돈 없어서 남한테 꿔야 한다고 하자. 그러니깐 엄마가 차용증을 써줘야 한다고 하는 거야. 어때? 이 방법이 괜찮지 않아?” 3일 후 엄마가 문자를 보냈다. 문자는 간단했다. 우리 딸, 엄마다. 이건 내 은행계좌야~ ‘우리 딸…’이라는 세글자를 노려보던 은호의 머리 속은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되였다.  불신과 계산으로 가득한 준비됐던 말들이 차마 쉽게 내뱉어지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점차 리성은 감정을 이겨냈고 그녀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차용증 얘기를 했다.  엄마는 별다른 감정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 그리고 이틀 후 그녀는 엄마가 택배로 보내온 차용증을 받았다. 차용증 아래부분에는 엄마의 싸인과 더불어 붉은 손도장까지 찍혀있었다. 택배 속에는 차용증 뿐만 아니라 엽산과 종합비타민이 함께 들어있었다.  임신은 예상보다 더 힘든 일이였다. 입덧이 시작된 은호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고 갈수록 구토가 심해졌다. 몸이 힘든 것보다 더 괴로운 건 아직도 확신이 안되는 마음이였다. 그녀는 이 결정이 옳은 건지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했고 고민했다. 필경 임신은 그녀의 인생 계획을 파괴하는 중대한 사안이였다. 두달 전, 중요한 프로젝트를 완성시킨 그녀에게 회사는 래년 해외근무를 약속했었고 얼마 전 공교롭게도 B시의 헤드헌터로부터 업계 유망한 회사로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동안 성실하게 묵묵히 달려온 그녀에게 32살이 되던 해에 마침내 눈에 띄는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던 차에 임신은 이 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 치명적인 것이였다.  하지만 임신은 또 은호로 하여금 엄마를 자주 떠올리게 했다. 어쨌던 엄마도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열달 동안 수고스레 잉태하여 그녀를 낳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은호의 손을 잡고 ‘낳고 싶지 않으면 낳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해주었다. 어쩌면 오로지 엄마만이 딸에게 할 자격이 있었던 조언이였고 그건 또 같은 녀자로서 녀자의 삶에 대한 리해를 동반한 련민이라고 은호는 생각했다. 그 장면은 반복적으로 은호의 머리 속에 떠올려졌다. 엄마는 자기 딸이 자신과 같이 랭정하고 무정한 녀자가 되여 그저 자신의 인생을 즐기길 바랐던 걸가? 임신 4개월이 지나자 지훈이는 자가용차를 사야겠다고 했다. 임산부정기검진을 위해서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했고 차가 없으니 확실히 불편했다. 엄마가 돈을 꿔간 지 두달이 지났고 그 두달 동안 엄마는 감감무소식이였다. 지훈이는 은호에게 엄마한테 련락해서 언제 쯤 돈을 돌려줄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넌지시 말했다. 그래야 자신이 몇달을 할부해서 차를 살지 결정할 수 있잖냐고 하면서. “그래서… 자긴 아직도 엄마를 믿을 수 없다는 거네.” “적어도 소송이 어떻게 되는지는 물어볼 수 있잖아.” “그 때 자기 어머니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우린 차를 사고도 남았어.” 결국 은호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어떤 때 보면 엄마가 없는 게 훨씬 나아.” 얼굴색이 확 바뀐 지훈이가 몸을 돌려 침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 날 밤 지훈이는 거실의 쏘파에서 잠을 잤다. 밤새 은호는 실면했다. 지훈이와 련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은호는 그에게 엄마에 관해 얘기해줬다. 화목한 부모 슬하에서 곱게 자란 지훈이는 그 후 은호를 무슨 깨지기 쉬운 도자기 쯤으로 여겼다.  은호네 가족사가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지훈이는 그녀를 각별한 사랑이 필요한 녀자로 대했다. 결혼 후 은호는 지훈이가 시시때때로 보여주는 ‘내 안해는 엄마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야’라는 태도 때문에 조금은 어이없고 화도 났다. 어느 날 그녀가 부주의로 울 니트를 세탁기에 돌리는 바람에  니트가 확 줄어버렸다. 지훈이는 은호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랍시고 말했다.  “괜찮아. 아무도 너한테 이걸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어.”  그녀가 무지해서가 아니고 그냥 부주의로 인한 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훈이는 은호가 엄마가 없어서 모르는 거라고 제멋대로 판단했다. 재작년에 시어머니가 지병으로 몇달간 입원하여 지훈이도 은호도 지쳐 나가떨어질 번한 적 있었다. ‘엄마가 없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잖아.’  은호는 입밖으로 나오려는 이 말을 계속 꾹꾹 속으로 삼켰었다.   다음날, 은호는 아빠트 엘레베터에서 웃집 사람들을 만났다. 한 할머니가 예닐곱살짜리 남자아이의 손목을 잡고 있었으며 두 사람 모두 표정이 구겨져있었다. 남자아이는 처음에 7층 스위치를 누르더니 련이어 그 웃층 스위치들을 전부 눌러버렸다.  은호가 6층을 누르자 로인은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쳐다보더니 입을 삐죽했다. “임신이 뭐 별 거라구… 사람들 다 그렇게 사는 거구만. 집안에서 소리가 날 수도 있지. 자네도 아이가 있으면 알게 될 거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로인이 자신을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아서 은호는 되물었다. “자네 엄마가 그 날 올라와서 란리 친 거 모르나? 우리 집 초인종이 아주 부서져라 누르더니 문앞에서 욕도 하고 갔구만.” 6층에 도착하여 은호는 엘레베터에서 내렸다. 아직 문이 닫기지 않은 틈을 리용해 그녀는 남자아이를 향해 말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애들이 제일 싫어.” 바로 그 날, 은호는 엄마의 문자를 받았다. -너의 은행계좌를 확인해줘. 이번 주일내에 돈을 돌려줄게. 시간 있으면 너 보러 가마. 문자 맨 마지막에 ‘엄마’라는 두글자가 적혀져있었다. 지훈이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지만 은호는 그에게 사과했다. “어머님 이제 괜찮아졌잖아, 모든 게 좋아질거야. 엄마가 돈을 돌려주면 우리 차 사러 가자.” 둘은 언제 싸웠냐 싶게 머리를 맞대고 무슨 차를 살 것인가 열렬히 토론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크고 널직한 모델로 사기로 약속했다. 지훈의 장농 면허가 곧 쓸모가 있어질 것 같았다. 은호는 이제 옆으로 누워서 자기 시작했다. 아직 초반이여서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그녀는 배속의 새 생명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크게 티가 나지 않았지만 이제 배가 나와서 청바지를 입을 수 없었고 그녀는 허리가 넉넉한 배바지를 입고 임산부처럼 걸어다녔다. 임신 후 호르몬의 변화로 피부가 나빠졌고 이몸에서는 피가 났다.  약간의 자신감도 붙었다. 어쩜 자신을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될 자격도 자신도 없어서 수없이 망설였던 것을, 심지어 류산에 관해서 검색을 해본 것에 대해서도. 그녀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고 용기를 내기로 했다. 신기하게 그 용기의 근원은 엄마였다. 엄마처럼 리기적인 사람도 그녀에게 엄마로서의 존재의 가치와 모성을 보여주고 있고 힘들지라도 이 세상을 보고 경험하게 해주지 않았던가.  주말, 지훈의 배석하에 은호는 병원에 가서 임산부 검진을 받았다. 길고 번거로운 각종 검사를 하고 또 그 결과를 기다렸다. 혈압을 재던 중 휴대폰에 문자가 들어왔고 은호는 흘낏 한번 보고 가방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의사는 이제 태심을 들을 수 있다고 하면서 그녀를 침대에 똑바로 누우라고 하였다. 은호의 배 우로 차겁고 끈적한 젤를 바른 후 초음파 기계를 이리저리 조절했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녀가 조바심이 날 무렵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선명한 소리가 점점 빨라졌고 뭔가 재촉하는듯한 그 소리는 심장 뛰는 소리라기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는 움직임 같았다. “태아의 심장박동소리는 원래 빨라요.” 의사가 말했다. “자기야!” 은호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지훈이를 불렀고 밖에 있던 지훈이가 뛰여들어왔다. 검사가 끝난 후, 지훈이와 함께 병원 앞에 공원으로 갔다. 맑고 따뜻한 봄날이였다.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잔디 우를 걷고 있었다. 젊은 부부도 있고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도 있고 휠체어를 탄 로인도 보였다. 그들을 둘러보면서 은호는 그 사람들에겐 또 어떤 많은 사연들이 있었고 그들은 또 어떤 의미 있으면서도 피곤한 삶을 살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천천히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좀전에 들어온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엄마가 보낸 것이였다. “20만원을 보냈어. 리자는 네가 먼저 갚아줘.“ 별다른 해석은 없었다. 어쩌면 엄마는 처음부터 그 돈이 은호 자신의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게 되였다. 은호의 의식 깊숙이 박혀있던 불안과 두려움이 이제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지훈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이 감정을 확인했다. 저주가 풀린 것 같은 기분이였다. 지난 20년간 엄마에 대한, 엄마의 사랑에 대한 갈구가 이제  마침내 사라져버렸다. 사랑을 받지 않아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였다. 이제 그녀는 누구의 딸이 아니라 한 생명을 책임질 엄마가 된 것이였다.  출처:2018 제4호
61    김동수: 유전(단편소설) 댓글:  조회:483  추천:0  2019-07-14
유전 김동수   ㄱ 동철아, 동철아… 두세번 불러도 아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무지 통 대답이 없이 이불을 둘둘 말아 가랭이에 끼고는 참바로 사지를 꽁꽁 묶어 끌고 가도 모르게 달게 자고 있었다.  요염한 목단꽃 두송이를 한뜸한뜸 화사하게 수놓은 핑크빛 베개는 저혼자 외로이 너부러져있고 머리맡에는 빨간 담배곽과 하얀 종이장들이 삐죽이 얼굴을 내민 검은색 문건가방이 자고 있는 주인이 깨기를 기다리는듯 입을 벌리고 댕그러니 놓여있었다. 동철이가 늘 보물처럼 겨드랑이에 끼고 달아다니던 문건가방이였다.  무슨 악어가죽이라나. 쳇, 악어피면 어떻고 잉어피면 어떻고 그 속에서 밥이 나나 돈이 생기나? 애비의 부탁은 강건너 불 보듯하면서… 박령감은 죽은 검은 개미가 총총 들어박혀있는 것 같은 묵은 흑미밥을 밥솥에 쏟아넣고 재가열 버튼을 눌러놓고는 부엌에 내려가 아궁이에 콩각대를 밀어넣고 두꺼비 껍질 같이 터실터실하고 커쿨진 손가락으로 앙증맞은 라이타 다이얄을 홱 돌렸다.  불똥이 퐁 솟으며 하얀 봇에 불이 확 달렸다. 뭐니뭐니해도 불쏘시개는 기름기 많아 물에 젖어도 불이 잘 붙는 봇이 최고였다.  푸접 좋은 이웃집 한족아낙네의 뒤잔등처럼 넙죽한 평가마우에 흑석을 쪼아 다부지게 만든 곱돌을 올려놓고 몇해 잘 묵은 된장 한술을 푹 떠넣고 엊저녁에 먹다 남은 콩나물채를 쭈룩 쏟아넣었다. 동철이가 끙! 발로 이불을 걷어차며 돌아누웠다. 뽀얀 먼지발이 가마목 우에서 시루떡가루처럼 날렸다. 다리가 몹시 쏜 모양이였다. 후! 무슨 놈의 세월인지. 옛날에는 자식을 키워 대학문에까지만 집어넣으면 출세의 길이 순한 아낙의 곧은 가리마 같이 거침이 없이 순순히 열려 만사대길이였는데 요즘은 어지간한 대학문을 나와서는 사업터에 두발은 고사하고 발가락 하나 걸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능력과 돈은 제쳐놓고도 빽이 있어야 하고 배경이 있어야 하고 문이 있어야 하고 줄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줄과 문은 대체로 어떻게 생겨먹었고 또 어떤 이들이 드나드는 문인지 마치도 연기를 피운 오소리굴 속 같아 박령감 같은 평백성은 열번 죽었다 깨여나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미궁 같은 존재였다. 아들 동철이도 그렇다. 연변대학이면 청화대나 북경대에는 못 미쳐도 지방에서는 몇손가락 안에 꼽는 유명대학이였다.  이 세상에 부모마음 다 그러하듯이 박령감도 겉으로는 통 아무런 내색을 내지 않았지만 속궁리로는 아들이 큰 나라님은 못되여도 어느 괜찮은 단위에서 꼬리에 장자 붙은 자리나 한자리 했으면 하고 중이 념불하듯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그런데 믿던 나무기둥이 바람에 쓰러진다고 아들 동철이가 고작 대학생촌관으로 발탁되여 마래동의 촌장을 맡는다고 하였을 때 가슴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결사반대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었다.  동철이는 부임하는 그 날부터 ‘새농촌건설’이니 뭐니 하며 가랭이에 불이 날 지경으로 향으로 현정부로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더니 게딱찌 같이 올망졸망한 초가집들을 일거에 허물어버리고 고래등 같은 벽돌집 30채를 덩실하게 지어놓았다. 장화의 신세 없이는 촌보난행이던 진흙탕길은 반듯한 세멘트길로 바뀌였고 신비하기 그지없는 태양능가로등이 기린처럼 줄줄이 세워졌으며 두만강가에 흔해빠진 둥글둥글한 물돌들로 고풍스럽고 아담한 담장길도 만들어졌다.  담장 밑에는 키 낮은 과일나무들과 아름다운 화초들이 심어졌다. 마래동은 일약 전 현의 새농촌 건설 모범촌으로 지정되여 매일이다 싶이 견학이나 참관을 빌미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줄레줄레 끊기지 않았다. 그 통에 아들 동철이는 손님접대로 술자리가 마를 새 없었다. 보글보글 콩나물국이 끓어오르며 구수한 토장국냄새가 집안에 다분히 퍼졌다.  어느새 아침해살이 창문을 꿰뚫고 방안에 환등빛 같이 속속 쏟아져내렸다. 올여름에는 무슨 스내민지 잰내빈지 머리에 털이 돋아서는 있어본 적 없는 엄청 큰 폭우가 쏟아져 온 동네가 물에 잠기는 통에 제 몸도 운신이 바쁜 늙은이들을 뒤산으로 엎다 싶이 대피시키고 생나무를 찍어 비바람을 피하고 뜨거운 물이라도 끓여마실 수 있게 챙기느라 동철이는 꼬박 이틀을 지새워 두눈이 토끼눈처럼 뻘겋게 충혈이 되여 뛰여다녔다.  다행히 재산은 조금 피해를 봤으나 인명사고 하나 없어 향정부에서도 그렇고 동네에서도 나이 어린 동철이에 대한 칭찬이 입이 다슬도록 자자하였다.        그러나 홍수 지기 전부터 부탁하고 닥달을 멈추지 않던 청을 마치도 이붓애비 제사날 취급하는 아들에게 고까운 생각이 가셔지지 않고 벼르고 벼르다가 어제저녁 밤 늦게 귀가한 아들에게 최후통첩 식으로 그루를 박아 말했다. “동철아 어쩌겠니? 이제 안 고쳐주면 래일 당장 현장을 찾아갈 거다.” “야- 아버지, 아들을 망신시킬 일이 있슴까? 향민정에서 이미 고쳐준다고 했잽니까?” “민정조리, 고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건방진 눔을 그러지. 고쳐준다 고쳐준다 하며 벌써 1년이 거의 된다. 80이 래일모레인 이 늙은 게 향정부 문턱이 다슬게 몇십번을 뛰여다녔는지 아니. 원래 너를 믿은 내가 곰보다 더 우둔하지. 현장어른을 찾아야 해결되지 안되겠다.” “어디 가기만 해보쇼. 아버지하고 리별임다, 리별.” 아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속으로 중대한 결심을 굳힌 터라 높이 계시는 현장을 만나면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가 하고 이 궁리 저 궁리로 장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우다 싶이 했다. 박령감은 가마목에 쭈크리고 앉아 아침밥을 둬술 뜨네 마네하고 옷궤 깊숙한 곳에 누구도 모르게 소중히 갈무리해두었던 신문지에 꽁공 싸고 비닐주머니를 돌돌 감은 작은 함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현성으로 향하는 뻐스에 올라탔다.   ㄴ 아침안개에 씻긴 시골의  산과 들은 마치도 해수욕을 마치고 금방 뭍에 오른 말쑥하고 터질 것 같은 녀인의 몸매처럼 청신하고 싱그럽고 쾌청하였다.  뻐스가 삼각산 기슭을 에돌아 열아홉굽이 령길에 들어섰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였다. 마차나 소수레가 겨우 굴러다니던 가파르고 험한 이 령길에 비행기 활주로 같이 넓고 반들반들한 아스팔트길이 생기리라고는 누가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가. 말 그대로 천지개벽이고 상전벽해였다. 차가 통하지 않던 그 시절 소 되넘기기 장사를 하면서 몇십번 이 산길을 넘어다니며 더운 고생 추운 고생 배고픈 고생 다해봤고 몇번은 죽을 번한 고비도 넘겼었다. 한번은 친구를 만나 음식점에서 진한 국밥에다 얼큰히 한잔씩 하고 얼룩황소를 앞세우고 령을 내리는데 갑자기 소가 코김을 푸푸거리며 가재뒤걸음을 치는 것이였다. 차디차고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휙 스치고 몸이 오싹해나며 말할 수 없는 공포로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였다. 틀림없이 큰 짐승이 나타난 것이였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은 똑바로 차리라고 했다. 급급히 쌈지에서 담배를 말아물고 성냥을 그으려니까 손이 와들와들 떨려났다. 가까스로 진정하고 담배불을 붙여물고 길가의 검불에 불을 달자 주위가 밝아졌다. 한참 지나니 얼룩이가 투레질을 멈추고 긴 혀로 옷섶을 핥으며 길을 재촉했다. 사람이고 소고 뒤잔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 이 근방에서 제일 이름이 높고 신비한 산은 삼각산이다. 말 그대로 생김새가 삼각형 모양인 산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나 변함없이 그 모양 그대로 삼각으로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때묻지 않은 숫처녀의 야드르르한 몸매 같이 수려한 삼각산은 티없이 맑디맑은 골물과 소소리 높고 험한 기암괴석 그리고 수백년 우거진 무성한 나무숲이 꽉 들어찼고 그 속에서 진귀하고 이름 높은 야생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산 그 자체가 보물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요 사이에는 얼룩배기 동북호랑이가 송아지를 잡아먹는 모습이 림업부문에서 가설한 고성능 카메라에 포착되여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전하는 데 의하면 옛날 이곳 깊은 산속에 한 로스님이 작은 암자를 짓고 하얀 구름과 푸르른 산과 청정한 공기와 청아한 물소리를 벗 삼아 청빈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 스님은 몹시 가난하여 겨우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남에게 페가 되는 일을 티끌 만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님은 늘 삼각형 모양으로 만든 선상 우에 앉아서 좌선했는데 그 우에 앉기만 하면 인간세상의 모든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와 흥망성쇠들이 제 손금 들여다보듯이 알린다고 하였다. 한번은 욕심 많은 이웃나라 왕이 스님이 좌선한다는 그 삼각형 모양의 선상이 부럽고 탐이 나서 부하들을 이끌고 스님을 찾아와서 숱한 금은보화를 두두룩이 하사할 테니 선상을 내놓으라고 호령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로승은 불법을 위해 선상에 앉아있기 때문에 그까짓 하찮은 금은보화가 나한텐 필요치 않습니다.”고 단연히 거절하였다. 화가 치민 왕이 큰 칼로 스님을 내리치자 갑자기 땅이 천길이나 갈라지며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타래쳐오르고 하늘에서 불광이 번뜩이더니 스님은 큰 산으로 변하였다.  그 때로부터 사람들은 이 산을 삼각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삼각산이 푸르른 치마폭을 내리고 수많은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메돼지무리처럼 들어앉은 큰 골짜기 어귀에 두만강을 끼고 남향으로 오붓하게 터를 잡은 동네가 바로 박령감이 살고 있는 마래동이다. 어느 해인가 단발머리에 군대모를 눌러쓰고 팔에 붉은색 완장을 두르고 까죽띠로 허리를 질끈 조인 꼬마맹장들이 하루아침에 몇백년의 년륜을 자랑하는 큰 수양버드나무 밑에 자리잡고 있던 사당을 재더미로 만들어버렸다.  해마다 마래동 사람들의 명줄이나 다름없는 송이버섯의 풍년을 기원하며 송이제를 지내던 사당이였다.  한번은 재빛 장삼을 거치고 중머리를 빡빡 깎은 웬 늙은이가 마을에 나타나서 자기는 가근방에서 일등으로 알아주는 점술쟁이인데 풍수지리도 기막히게 잘 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없는 살림에도 배 터지도록 만대접을 받은 그는 마래동이 수입이 낮고 생활이 가난하고 구차한 것은 전적으로 마을 뒤산에 아슬하게 솟아있는 도끼봉 탓이라고 주절거리였다. 도끼봉이 퍼런 도끼날을 번뜩이며 마을을 찍을듯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떻게 마을이 번창하고 잘살 수 있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였다. 지푸라기든 뭐든 잡고 싶은 어렵고 궁벽하고 무지한 시기라 이튿날부터 마을 남정네들은 죄다 동원되여 하루아침에 도끼봉을 허물어버렸다. 그래도 수입이 오르기는커녕 되려 곤두박질쳐서 나중에는 마이나스를 기록하면서 일을 하면 할수록 밑지고 마는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마래동 사람들에게도 짓눌렸던 허리와 오금을 쭉 펴고 때벗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했다. 쥐구멍에 볕이 든 것이다. 산골에서 사는 사람들은 산을 파먹고 산다고 송이버섯은 마래동 사람들에게는 황금덩어리였다. 아니, 세상에 금덩어리가 어디 그리 흔할가? 브로콜리를 채소 중의 왕이라고 하면 송이버섯은 버섯 중의 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문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송이버섯은 그 값과 인기가 구름을 꿰뚫고 하늘에 치닫고 있었다.  정말인지는 몰라도 원자탄의 폭격을 받은 이듬해 산림 속에서 모든 식물들이 재생하지 못하였지만 유독 송이버섯만이 자라났다는 아이러니한 말까지 일본땅에서 류행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바야흐로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송이버섯 인공재배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자연산 송이버섯의 인지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송이버섯 말이 나왔으니 하는 소리지만 조상 때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속을 훑듯 샅샅이 누비다 싶이 살아온 박령감은 송이 뽑기에서만은 최고의 달인이라고 늘 자부하고 있었다. 그만큼 일초일목이 사뭇 눈에 익고 기억 속에 또렷했다. 아들 동철이는 부임한 이듬해 연변대학 교수들과 조선족민속학자들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더니 마래동 입구에다 ‘송이고향’이라고 둥글소 머리 만한 큰 글자를 음각한 어마어마한 석비와 함께 거인의 거시기 같이 거대한 송이모양의 조형물을 제작하여 보란듯이 세워놓았다. 그리고는 마래동에서 대대로 내려오면서 관행으로 벌려오던 송이제를 다시 회복하였다. 송이제의 회복은 마래동 력사에서 일대 ‘혁명’이였고 대사중의 대사였다. 송이버섯 뽑기 체험, 송이버섯 문화관광을 활성화하여 마래동에 잠재해있는 오랜 전통과 민속을 발굴하고 지명도와 이미지를 최대한 높임과 동시에 마을 사람들의 수입을 몇배로 늘인다는 오돌찬 야심에서 벌이는 축제였다. 첫 송이제를 지내던 날은 그야말로 굉장하였다.  로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령감이 하얀 두루마기에 누른색 배감투를 눌러쓰고 흰 수염발을 날리며 송이제를 선두 지휘하였다.  돼지머리를 삶아 가운데 놓고 떡, 과일, 포, 전, 생선 등속들이 홍동백서红东白西, 어동육서鱼东肉西의 순으로 질서정연하게 진설된 푸짐한 제사상이 정성껏 마련되였다.  그 좌우에 아침결에 산에 가서 금방 채집해온 향기롭고 싱싱하고 탐스러운, 넉살 좋고 수다스럽고 입이 걸죽한 동네 아낙네들이 송이 뽑으러 산에 갔다가 거시기하게 잘생긴 먹음직스러운 동송이를 만나면 치마를 활 올리고 얼씨덩 앉았다 일어난다는 송이버섯들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꿀컥 돌았다. 징징, 쟁강쟁강, 투덕투덕, 둥둥 그 주위를 동네 사물놀이패들이 용케 타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돌았다. 숱한 형형색색의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섰고 소형 대포신 같은 렌즈가 달린 고급카메라를 둘러멘 기자들과, 민속춤 표현을 준비하고 온 오뉴월 물오이처럼 잘 빠진 녀배우들과 사처에서 모여온 호기심 많은 관중들로 마을은 그야말로 울긋불긋 시끌벅적 장사진을 이루었다.  공중에서는 대게 다리 같이 사면으로 뻗은 다리에 앙증맞은 프로펠라를 부착한 드론이 대가리 파란 쉬파리처럼 윙윙 소리내 울며 아래우로 솟구쳤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첫시작부터 박령감과 촌장인 동철이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동철아, 아무리 궁리해도 송이제를 지내기 전에 먼저 렬사비를 참배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 “그건 아무런 상관 없는 일임다.” “왜 상관 없냐? 그게 말이 되냐?” “렬사비야 청명이나 추석에 올라가면 되지. 하필 오늘…” “헛소리 집어쳐라. 피와 목숨을 바친 저들을 잊어서는 절대 안된다. 렬사비를 참배하지 않으면 우리 로인회에서는 집단적으로 송이제에서 탈퇴하겠다.” “야, 아버지!” “왜?” 결국 동철이가 두손 들고 말았다. 어느 땐가부터 농촌에서 청년조직이 아침해빛을 받은 안개처럼 가뭇없이 사라지고 대신 로인회가 그 자리를 메우면서부터 로인회의 지위와 작용이 급상승하며 역할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로인회가 집단탈퇴하는 날에는 어벌 크게 준비한 전반 송이제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도 문제겠지만 아버지의 말에도 너무 일리가 없는 건 아니였다.  하여 그 날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마을 뒤산 언덕에 있는 렬사비 앞에서 3분간 묵념을 드리고 나서야 송이제를 시작하였다. 송이제는 송이술, 송이차, 송이화장품 등 송이제품 판촉행사와 함께 성황리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였다.   ㄷ 현장을 찾아간다고 아들 앞에서 큰소리 떵떵 치던 박령감은 뻐스가 향정부소재지 마을에 도착하자 슬며시 뻐스에서 내렸다. 현장어른을 찾아갈 담도 담이겠지만 잘못하다간 공연히 그것도 벼슬이라고 촌장으로 일하는 나이 어린 아들의 장래에 혹시 좋지 않거나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꼼꼼하면서도 단순한 속궁리와 부질없는 로파심을 더한 계산에서 도중하차하였다.  대신 속으로는 오금에 불이 나게 몇번을 찾아다니며 홀아비가 과부한테 청혼하듯 청들고 부탁해도 마이동풍으로 여기는 아들 또래의 향민정 조리 녀석을 어지간히 혼구멍을 내줄 잡도리를 단단히 하였다.  노크고 뭐고 자주 다녀 익숙해진 민정 조리 사무실 문을 발로 툭 차고 들어서니 검은 구두를 신은 커다란 두발을 책상 우에 걸쳐놓고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정신없이 휴대폰을 주물고 있던 민정 조리 녀석이 놀라 화닥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랐슴다. 동철이 아버지.” “왜? 놀라긴 무슨 죄를 범했냐?” “죄는 무슨, 어째 또 왔슴까?” “어째라니, 몰라서 묻냐?” “인차 고쳐준다는데 고까짓 작은 일을 가지고.” 민정 조리 녀석은 바쁘고 시끄럽다는듯이 눈이 꼿꼿해서 다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제 놀음에 다시 빠졌다. “뭐, 작은 일? 어쩜 요즘 젊은 애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 모양이냐? 야 이눔아, 니한테는 써개같이 작은 일일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세상 큰일이다. ”  화가 치밀어 소리 치는 박령감의 목소리가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키가 작달만하고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다부진 중년사나이가 들어와서 웬 일이냐고 물었다. 민정 조리 녀석이 금방까지도 돌장승처럼 굳어졌던 얼굴표정과 꼿꼿하던 눈길을 자라 목 움츠리듯 어디다 감춰버리고 금시 해시시 날웃음을 개여올리며 김서기라고 굽신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로인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저의 사무실에 가서 얘기합시다.” 말씨가 무척 부드러웠다. 그 사람이 이끄는 대로  2층으로 올라가 어딘가는 조금은 초라한 코구멍 만한 사무실에 들어섰다. 제 스스로는 오지랍이 넓고 온갖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세상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노라고 언제 어디 가나 당당하고 배포가 두둑한 박령감이였지만 정작 작고 매운 고추 같은 서기어른 앞에 마주앉자 어딘가는 조금은 긴장해났다.  그것을 알기라도 한듯 그 사람은 손수 커피를 풀어 두손에 쥐여주었다.  로친 생전에 아침마다 늘 챙겨주던 감자누룽지 숭늉처럼 구수하고 향긋하며 어딘가는 야릇하기도 한 커피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간지럽혔다.  “마래동이면 올해 홍수피해를 많이 본 촌이지요. 참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렇게 노하셨습니까?” “김서기, 내 성깔이 나지 않게 생겼나 한번 들어봅소.” 박령감은 그 때야 호주머니에서 소중히 지니고 온 작은 함을 서기 앞에 조심히 펴놓고는 내 이래 뵈도 30년 당령이라고 서두를 떼였다.  곤두세웠던 긴장이 점차 풀리면서 아버지와 삼촌의 얼굴이 눈앞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박령감이 여섯살 먹던 해 한살 터울인 아버지와 삼촌은 한날한시에 참군하여 해방전쟁에 뛰여들었고 뒤이어는 영문도 모르게 군복을 갈아입고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였다.  전쟁은 가렬처절하였다.  아버지와 삼촌이 소속된 반은 낮다란 언덕 우에 있는 큰 바위 앞에 전호를 파고 놈들의 진공을 두차례나 물리쳤다. 오후 5시까지만 진지를 고수하면 반은 임무를 완수하고 퇴각할 수 있었다. 그 때까지도 아버지가 손등에 쌀알 같은 작은 파편이 몇알 박힌 외에 삼촌과 둘다 크게 다친 데 없이 무사하였다.  “형, 집앞에 있는 백살구가 먹고파요. 올해도 주렁주렁 많이 열렸을 텐데. 살아돌아갈 수가 있을가요?” “어떻게든 꼭 살아돌아가야 해. 자두도 참 맛있었지.”   두 형제는 갈라터진 입술과 숯검댕이칠을 한 것처럼 시꺼멓게 탄 얼굴을 마주보며 두손을 꼭 잡았다. 갑자기 매캐한 화약냄새와 개를 그슬릴 때 풍기던 역한 냄새가 고지에 차고 넘칠 뿐 마치도 전쟁이 결속 된 것처럼 잠잠하고 조용해졌다. 전쟁의 시련을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싸움터에서 까닭없이 갑자기 찾아드는 고요함과 정적은 이제  곧 더 큰 전투가 벌어짐을 의미하는 것이였다.  반장이 모든 쌀주머니를 죄다 털어서 밥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생사를 코앞에 둔 전사들에게 맨밥이라도 배부르게 먹이고 싶은 심정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가 해질 무렵에 적들의 진공이 개시되면서 대포알들이 쉴새없이 날아와 굉음을 울리며 터졌다. 그 때 마침 5시, 퇴각명령이 떨어져 전사들은 바위 뒤로 통하는 길에 들어서서 산아래로 내달리였다. 갑자기 쉭쉭 하는 아츠러운 소리가 귀전을 때리더니 꽝! 하고 포탄이 퇴각하는 전사들 앞에서 지축을 울리며 요란하게  터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아버지가 눈을 떠보니 얼굴이 검붉게 탄 몇몇 전사들이 둘러서서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피가 랑자한 왼팔이 제 팔 같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뼈를 깎는 동통을 참으며 동생의 얼굴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동생을 포함한 몇몇 전사들이 당장에서 시체도 찾아볼 수 없게 즉사했다는 것이였다. 너무나도 억이 막혀 아버지는 울음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름 뿐인 허술하고 초라한 후방병원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아버지는 북으로 북으로 몇날 몇밤을 하염없이 걷고 걸어 마침내 고향이 지척인 두만강가에 이르렀다. 그 때 20호 남짓한 마래동에서 10여명의 끌끌한 청년들이 총을 메고 전쟁에 참가하였는데 대부분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버지가 하나 밖에 없는 살붙이 동생을 잃고 여위다 못해 피골이 상접한 상거지 같은 몰골로 손목이 없는 왼팔을 가슴 앞에 처매고 홀로 마래동에 나타났을 때 동네는 물론 온 집안은 눈물바다가 되였다. 땅을 치며 울다 못해 할머니는 까무러치기까지 하였다. 얼마 후 삼촌은 혁명렬사로 추존되였다.    ㄹ 박령감은 현성에서 출발하여 향정부 소재지 마을을 거쳐 마래동으로 돌아오는 뻐스에서 내려 뉘엿뉘엿 지는 해와 함께 집에 들어섰다.  동철이가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저녁쌀을 일고 있었다. 에미를 일찍 떼운 늦둥이 아들의 처지가 참으로 안스럽기도 하고 불쌍도 하여 가끔 코마루가 찡해날 때도 있었다.  제 각시가 옆에 있어서 옷도 빨아주고 때시걱이라도 제때에 끓여주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련만 개도 먹지 않는 그 돈이 무엇인지 새각시는 결혼 이튿날에 한국으로 제비처럼 날아가버렸다.  하긴 돈이 없이는 못 사는 세월이니 별수가 없었다. 그래도 잊지 않고 두 홀아비의 용돈은 꼭꼭 챙겨보내서 그 감사함과 고마움을 잔치날 아침 떡사발을 받아안은 벙어리처럼 마음속 깊숙이 안고 살고 있었다. “아버지 어디 갔다옴까?” “왜 궁금하냐? 룡정에 가 현장을 만나고 오는 길이다. 왜?” “예? 정말임까? 거짓말. 이나저나 전번에 하다 만 할아버지의 얘기를 마저 들었으면 좋겠는데…” 동철이가 밥상에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허허, 웬 일이냐. 래일 아침엔 해가 서쪽에서 뜰가부다. 그게 그러니까 아버지가 제대 후였다…” 전쟁마당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1등영예군인으로 되여 현정부에서 어느 기관에 사업터를 배치해주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낫 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까막눈인 내가 무슨 일을 하겠냐며 굳이 사양하고 대대의 지부서기를 맡았다. 그 때 마래동은 전부 한전이였다. 아버지는 시골사람들에게도 벌방사람들처럼 백옥같이 새하얀 이밥을 배불리 먹이려고 두만강의 물을 끌어들여 논을 풀려고 굳게 작심하고 불철주야로 로심초사하였다.  그런데 제일 큰 문제는 양수기였다. 몇번을 수리국으로 사람을 띄웠으나 이탈 저탈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였다. 성이 난 아버지가 수리국에 찾아가 손목이 없는 왼팔을 내 휘두루며 어지간히 목소리를 높여서야 양수기가 해결되였고 소원 대로 수전을 풀고 벼를 심을 수 있었다.  벼산량을 높이려면 비료가 있어야 했다. 그 때는 지금처럼 화학비료가 흔하지 않았기에 부득불 토비를 모아 밭에 낼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사원들을 동원하여 적비운동을 벌렸다. 진흙을 파다 무지고 온갖 잡풀들을 베여다 작두로 썩둑썩둑 썰어서 한벌 덮고는 그 우에 겨울철에 모아두었던 인분을 큰 가마에 설설 끓여 똥바가지로 똥물을 퍼서 골고루 퍼부었다. 그 우에 또 진흙을 두툼하게 한벌 덮었다.  한가한 겨울철이면 온 마을 남녀로소를 죄다 동원하여 거름 모으기에 나섰다. 돼지똥이든 소똥이든 사람똥이든 가리지 않고 모았다. 지어 아버지는 오줌장군을 등에 짊어지고 차디찬 이른새벽에 집집이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오줌까지 받아왔다.  이렇게 산더미처럼 적비를 썩혀서는 이듬해 봄에 논과 밭에 내다 골고루 폈다.  전 현 적비운동 현장회의가 마래동에서 열렸다.  그 때 현문화관의 한 작곡가가 〈적비가〉라는 노래를 지었는데 대대의 업여문예선전대가 그 노래에 맞추어 자체로 〈적비춤〉을 창작하여 현장회의 전에 선보였다. 삽과 지게 그리고 쇠갈고랑이를 무대도구로 사용한 〈적비춤〉은 뭇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적비로세 얼씨구 절씨구 적비로세 거름더미 쌀더미라 어서 빨리 거름 내세 일망무제 저 논판에 풍년가을 손짓하네 적비로세 얼씨구 절씨구 적비로세   아버지가 현장회의에서 경험총화발언을 하였다.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공동한 노력으로 벼 단위당 산량이 푹푹 몰라보게 올랐다. 아버지의 감동적인 사실을 알고 어느 기자가 〈똥서기-쌀서기〉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써서 지방신문에 보도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별명이 똥서기로 되였다.  한번은 최현장이 현지 시찰을 내려왔다가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똥서기라는 말이 듣기에 거북하고 입에 거슬린다고 하면서 이제부터 우리 모두 쌀서기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여 아버지는 그 때로부터 쌀서기로 별명이 바뀌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난데없이 꿈결에도 그토록 못 견디게 욕심나고 신고팠던 파란 고무신을 우리 형제들에게 하나씩 신겨주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큰 화단을 일으킬 줄이야.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가 우리가 신은 고무신을 보더니 어디서 난 돈이냐고 어머니께 바투 따지고 들자 어머니가 실토정 안할 수 없었다. “뭐라, 이 싸가지 없는 녀편네, 머리는 한발씩이나 길어싸도 소견머리라곤 통 없는 것이… 그 돈이 어떤 돈이라고… 당장 신을 물리지 못할가!” 화가 난다면 불이고 물이고 가리지 않는 아버지는 담배통을 번쩍 들어 어머니 코앞에 꽝! 메치고는 문을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한참 후 짙고 역한 술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선 아버지는 자식들을 조롱조롱 앉혀놓고는 이 돈은 삼촌의 목숨으로 바꾸어온 돈이다. 이 다음 아버지가 꼭 새 고무신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는 고무신을 물린 돈을 움켜쥐고 어머니를 이끌고 삼촌댁을 찾아가 이실직고하였다. “제수씨, 이 돈은 제수씨 앞으로 내려온 무휼금 200원일세. 다음부터는 제수씨 이름으로 다달이 내려올 거네. 어떡하겠나?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법도 없고… 아직 젊고 홀몸이니 새 사람을 만나게나. 진심이네.” “아주버님, 고맙습니다. 이 돈을 제가 받은 셈 치고… 이제 마을에서 렬사비를 세운다는데 거기에  보태세요. 흑…” 그 후 얼마 안되여 삼촌댁은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죽어도 살아도 시집귀신이 되여야 한다던 당시 세습적인 낡은 관습과 룰을 깨뜨리고 말없이 박씨 가문을 떠났다.  한푼 두푼 돈이 모아지자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뒤산 기슭의 양지바른 언덕받이에 낮다란 렬사비를 세우고 마래동에서 희생된 10명 렬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정교한 나무패쪽에 정성들여 음각하여 걸어놓고는 비바람과 먼지를 막기 위하여 작은 유리창문까지 안장하여놓았다.  하얀 렬사비 주위에는 푸르청청한 애솔들이 심어졌고 점차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무성하게 가지도 뻗었다.  아버지는 매일이다 싶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비자루를 들고 렬사비 주위를 깨끗이 쓸고는 한참씩 멍하니 앉아서 날마다 새롭게 변모되여가고 있는 마을과 황금파도 출렁이는 풍요로운 논벌과 여울치며 흐르는 두만강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과 추억에 잠기군 하였다. 어느 날 렬사비 앞에 그대로 쪼크리고 앉아있는 어버지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몸은 차겁게 굳어있었다. “후, 네 할아버지는 오늘 같이 좋은 세상을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게다.”   ㅁ 다음날, 지난해 전 현적으로 거금을 투자하여 낡은 렬사비를 허물고 통일적으로 새로 웅장하게 건설한 뒤산 언덕에서 대리석을 까고 부시고 하는 소리가 아츠렇게 들려오며 마을의 고요와 정적을 깨드렸다. 박령감은 휘청휘청 힘겹게 몸을 가누며 렬사비 쪽을 향해 어정어정 달려갔다.  글자가 잘못 새겨진 대리석판이 떨어져나가고 대신 새로운 검은색 대리석이 다시 붙여졌다. 오후부터는 렬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시 음각하고 틀림이 없음을 꼼꼼히 재확인하고서야 현성에서 온 일군들은 돌아갔다. 박충국朴忠国 ! 박령감은 두눈을 똑바로 뜨고 삼촌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전번처럼 중中자가 아니라 밑에 마음심心자가 들어간 충忠자로 정확히 새겨진 것을 똑똑히 확인하고서야 작은 함을 렬사비 앞에 열어놓고는 지니고 간 술을 차넘치게 부었다. 언덕 아래로 동철이가 헐레헐레 뛰여오는 모습이 보였다. 퍽이나 오랜만에 보는 불타는듯한 저녁노을이 동철이의 얼굴과 삼촌의 영웅메달을 진붉게 물들였다. 출처:2018 제4호
60    김견: 혼인보험(단편소설) 댓글:  조회:574  추천:1  2019-07-14
혼인보험 김견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일이였다. 인구가 불과 3백만 정도 밖에 안되는 지역에 다이아몬드급이 무려 수십만 커플, 일차적 장려금만 수백억이 지급되다니…  착잡한 마음에 지그시 눈을 감고 있노라니 아이템 하나로 황금빛 인생을 질주해왔던 지난 30년 세월이 꿈결처럼 떠올랐다.  정확히 31년 전, 2018년 보험회사에 면접 보러 갔을 때의 정경이 생생히 떠올랐다.  “막강이라… 거 이름 한번 마음에 드는군. 그래, 꼭 우리 대망보험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는데 무슨 특별한 사유라도 있는 건가?” “그게 저… 실은 제가 보험 관련 아이템 하나 구상해봤는데 귀사에서 채납만 하신다면 대박 날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 정말 대박 날 아이템이라면 채납 못할 리유가 없지. 그래, 뭐 어떤 아이템인데? 정말 쓸 만한 거라면 내 자네 입사는 보장할 거니까 어디 함 들어나 봄세.” “에,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회장님만 믿고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은 오래 전부터 ‘혼인보험’이라는 아이템을 내오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는데 말입니다.” “혼인보험이라… 음, 그거 참 흥미롭군. 그래, 구체적인 방안 같은 건 있고?” “네, 여기 있습니다.” 막강이 미리 작성해 들고 간 기획서를 두손으로 공손히 내밀자 막강을 흘끔 쳐다보던 회장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잠자코 기획서를 들여다보았다. 기획서는 대개 이러한 내용이였다.   ‘혼인보험’ 혹은 ‘사랑보험’아이템 기획안   취지  리혼률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알맞는 아이템으로 신혼커플들의 참여률을 자극함으로써 회사 수익 제고는 물론 나아가 전반 사회의 리혼률을 낮추는 것을 취지로 한다.   구체 방안 1.보험 가입 대상: 년령제한 없이 결혼을 앞둔 남녀 모두 가입 가능. 2.가입 비용: 가입금액은 만원으로(할부 가능) 계약기한 만료 전 환불은 일절 불가. 3.계약 기한 및 조건: 결혼 당일(계약 당일)부터 10년 사이에 리혼하면 자동퇴출로 간주하여 가입금을 일절 환불하지 않음. 4.가입자 등급 분류: 가입자 등급은 10년 은혼, 20년 금혼, 30년 이상은 다이아몬드급 등 세가지로 분류하며 가입자 임의로 기중 한가지를 선택하도록 함.    혜택: 계약기한 만료 후 분류에 따라 향수할 수 있는 혜택은 은혼일 경우 가입금 전액을 환불함과 동시에 장려금 2만원까지 총 3만원을 일차적으로 지급하며 은제 커플반지 한쌍을 선물한다. 금혼일 경우 가입금 전액을 환불함과 동시에 장려금 4만원까지 총 5만원을 일차적으로 지급하며 순금 커플반지 한쌍을 선물한다.  다이아몬드일 경우 가입금 전액을 환불함과 동시에 장려금 10만원까지 총 11만원을 일차적으로 지급하며 다이아몬드 커플반지 한쌍을 선물한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커플에 한해서는 30년 이후 로동력을 상실할 때를 대비해서 매년 년금年金 5만원을 추가 지불한다.    계약기한 만료 후 커플 중 한 사람이 불의사망했을 경우 은혼커플 유가족에게는 위로금 만원을, 금혼커플 유가족에게는 2만원을 지불하며 다이아몬드커플 유가족에게는 평생 동안 매년 5만원의 년금을 지불한다.  *주:인간보편심리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암환자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가입자의 99%가 다이아몬드급을 선택할 것임.   “음, 아주 그럴싸한 방안이군. 좋아. 계약기한 만료 시 지불해야 할 장려금이 좀 과하다 싶은 게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말이야…” “네, 제가 아직 보험업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는 터, 그저 대체적인 구상만 적어올린 거라 미흡한 점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회장님, 요즘 국내사회의 리혼률이 60%에 육박한다는 점 그리고 향후 20~30년 후엔 70~80%도 넘길 거라는 점을 감안하신다면 그 정도 장려금은 그리 과한 것도 아니지 싶은데 말입니다.” “허허, 하긴… 리혼시대니 자유시대니 하는 게 실없는 소리야 아니지. 음, 좋아. 약속 대로 일단은 기획부에 자리 하나 만들어놓을 것이니 래일부터 출근하도록 하게. 그리고 이 기획안은 리사회에서 함 검토해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 … 그렇게 ‘혼인보험’ 프로젝트는 불과 일주일 만에 막강이 작성한 기획안 그대로 리사회를 통과해 정식 출범되였고 ‘혼인보험’아이템이 출시했다는 소식을 접한 여러 매체들에서 앞다투어 취재, 보도하고 신문기사가 쏟아져나가는 바람에 굳이 돈 먹여 홍보할 필요도 없이 대대적인 홍보작업이 대행되였다. 보험업 유사 이래 처음으로 출범한 아이템이였던 만큼 ‘혼인보험’은 전반 보험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고 그 인기는 예상을 훨씬 초월해 해당 아이템이 출시한 해인 2018년 하반기에만 전국적으로 무려 수백만 커플이 가입했고 이듬해 설련휴가 끝나기 바쁘게 주문이 폭주하더니 급기야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신혼을 앞둔 커플이 백이면 백 모두 혼수용품으로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혼인보험 가입은 필수품목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물론 극소수, 0.01% 꼴로 가입하지 않는 커플들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극소수 빈곤지역이나 계약결혼 등 특수사유로 인한 개별적인 경우였을 뿐 ‘혼인보험’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였다.  그렇게 대망보험회사는 혼인보험이라는 아이템 하나로 2018년 하반기에만 2천억의 수익을 창출하며 일취월장하더니 이듬해 수익은 무려 3조에 달했고 불과 5년 만에 국내에서 년간 매출액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 급부상하여 우수기업상, 공로상과 같은 국가급 상을 싹쓸이하다 싶이 했다.  그동안 막강 또한 과원에서 팀장으로, 부문경리로 승진을 거듭한 건 이루 말할 것 없고 회장 사위가 되는 행운까지 차례지게 되였다. 물론 투박한 얼굴 륜곽이며 곰처럼 우람진 체구까지 회장을 판박이로 빼다 닮은 와이프를 마주할 때마다 서운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지만 어찌됐건 일개 시골출신인 막강이 내노라 하는 거부 반렬에 올라 떵떵거리며 살게 된 건 어디까지나 그 곰 같은 녀자랑 결혼한 덕이라 해야 할 것이였으므로 너무 락담할 일만은 아니였다. 해서 막강은 그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또 덕분에 그만큼 호강하고 살았으면 됐지…’ 하고 체념하고 산 지도 한참 되였다… “저기… 미안하지만 이 사람이 창밖을 내다보고 싶다 해서 그러는데… 어떻게 잠간만이라도 자리 좀 바꿔앉으면 안될가유?” 어눌한 말소리에 눈을 뜨고 보니 7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점잖은 인상의 늙은이가 어줍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 뭐 그러지요…” 막강이 군말 없이 몸을 일으키자 량주간이 연신 고맙다고 치사를 해왔고 그렇게 안로인이 창가 좌석에, 바깥로인이 중간에, 막강이 통로쪽 좌석에 자리하고 앉았다.  “어디 려행 다녀오시나 보죠?” “아, 네. 피서 삼아 호주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네. 말투를 들어보니 소수민족이신 것 같은데 혹시…” “네, 그래요. 백산족입니다. 선생은 남방사람 같으신데… 우리 백산엔 무슨 일로?” “아, 소문으로만 듣던 곳이라 려행 삼아 함 둘러보려구요.” “아, 네…” 막강이 이번 걸음을 하게 된 것은 사실 한가하게 려행이나 하기 위함이 아니라 상황 파악 차 나온 것이였다. 말하자면 회사를 자금위기에 빠뜨린 장본인인 백산이라는 소수민족 집거지역이 대체 어떤 곳인지, 어떤 종족들이 모여살기에 다이아몬드급 커플이 수십만씩이나 되는지 료해하기 위함이였다.  20여년 동안 년평균 수천억의 수익을 유지해오며 별탈 없이 잘만 돌아가던 ‘혼인보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건 최근의 일이였다.  시초의 예상 대로 혼인보험 아이템을 정식 가동해서 20여년 되는 동안, 90%에 가까운 보험 가입자들이 중도퇴출, 말하자면 10년, 20년을 채 못 버티고 리혼해준 덕에 회사는 숫제 누워서 떡 먹기로 가입금만 꼬박꼬박 받아챙기면 되였다. 그 쯤에서 전임회장-장인어른은 하와이에 가서 처남과 함께 도박장을 세운다며 이주해 갔고 이제 보험회사 운영은 막강이 전적으로 책임진 셈이였다.  그렇게 순풍에 돛 단듯 순탄하기만 하던 황금대로였는데… 아이템 출범 30년 만인 지난해, 중뿔나게 백산이라는 소수민족 집거지역에 단번에 장려금 수백억이 뭉청 빠져나가면서 회사 전체가 자금위기로 휘청거리게 된 것, 급기야 그 자초지종을 파악하고저 회장 신분에 걸맞지 않게 막강이 몸소 움직이게 된 것이였다.  “안녕하세요, 기내식입니다.” 스튜어디스의 친절한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여난 막강은 앞좌석에 붙어있는 간이식탁을 내려놓고 식사는 마다하고 쥬스만 청했다. 그런데 옆에 앉은 량주가 간이식탁을 펴고 기내식을 받아챙기는 동안 몸을 한껏 의자 등받이에 밀착시킨 채, 무망간 눈앞으로 오가는 그들 량주의 손을 지켜보던 중 두 사람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커플반지가 왠지 눈에 익어보였다. 유심히 살펴본즉 회사에서 지난해 다이아몬드급 커플들을 위해 특별히 주문 제조한 반지가 틀림없었다.  막강이 쥬스를 마시며 량주가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은근슬쩍 늙은이에게 말을 건넸다.  “두분 혹시 혼인보험에 가입하셨습니까?” “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 이 반지를 알아보셨군요? 하면 선생도?” “아, 그게 아니라… 전에 친구가 그런 반지를 낀 걸 본 기억이 있어서…” “네, 그러셨군요. 근데 글쎄 뭐 얼마나 비싼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거기선 뭐 별로 희한할 것도 못된답니다. 이제 가보면 아시겠지만 이런 반지를 끼고 다니는 사람들이 쌔고버렸답니다.” “그래요? 그거 결혼 30년 차 이상인 다이아몬드급 커플들에 한해서만 선물하는 반지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럼 그 고장엔 다이아몬드급 커플이 쌔고버렸다는 얘긴데 요즘 같은 세월에 그것 참 보기 드문 현상인 걸요.” “헤헤, 모르시는 말씀, 우리 거기선 다이아몬드 커플인가 하는 게 보기 드문 게 아니라 리혼한 사람이 괴물 취급 당할 정도로 보기 드물답니다.” “그래요? 그럼 그럴 만한 특별한 비법 같은 거라도 있나 보죠?” “허, 글쎄 뭐 비법이라 할 것까진 없겠지만 그럴 만한 여건, 풍토문화라고나 할가요? 아무튼 그런 게 있다고 해야겠죠. 허허…” “풍토문화요? 하면 리혼하면 안된다는 풍습이나 규제라도 있다는 얘깁니까?” “그게 아니라… 전반 지역사회의 생활방식, 또는 의식형태가 그렇게 형성돼있다는 얘기지요.” “무슨 뜻인지 좀더 상세하게 얘기해줄 수 없으신지요?” “허 참, 아주 집요하시군요. 혹시 기자량반?” 늙은이가 새삼 막강을 우아래로 훑어보며 묻는 말이였다. “네, 뭐 그 비슷한 직종이긴 합니다만…” “네… 정히 그러시다면 뭐 말씀 드리지 못할 것도 없죠. 에… 하면 먼저 한가지 여쭤봅시다. 사람들이 걸핏하면 리혼하는 가장 큰 리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아무래도 그건… 전반 사회적인 풍기, 또는 서방사회의 영향 탓이 아닐가 싶습니다만…” “음, 그것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겠지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론 그보다 더 큰 원인은 결혼만 했다 하면 두 사람이 맨날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하는 줄로 아는 그런 어리석은 의식형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생각해보십시오. 제아무리 죽도록 좋아하는 사람이고 한시도 떨어져선 못 살 것 같은 사람이라 한들 매일같이 얼굴 맞대고 있다 보면 눈만 뜨면 그 나물에 그 밥인데 언제까지고 처음처럼 그렇게 곱게 보이고 사랑스러울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렇게 달이 가고 해가 바뀌다 보면 자연 서로에게 권태감을 느끼고 티격태격하게 될 것이요, 그러다 어느 순간 폭발하면 파탄에 이르고 뭐 그런 게 리혼이 아니겠습니까.” “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하면 당신들 백산족은…?” “네, 그래요. 우리 백산족 남자들은 결혼해서 한동안 살다가 아이만 생겼다 하면 바로 떠난답니다.” “떠난다면 어디로 무엇 하러…” “무엇 하긴요. 가족을 먹여살리자면 돈을 벌어야 할 거잖아요. 해외로, 타지역으로 돈벌이 가는 거죠.” “근데 왜 꼭 해외, 타지역으로 가서 돈을 벌어야 하죠? 돈이야 본지방에서 벌어도 되잖습니까?”  “자고로 우리 고장엔 큰 공장이나 대기업 같은 게 없다 보니 일자리 찾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또 인건비가 너무 싸서 일해봤자 얼마 못 받는답니다. 해서 젊은 로동력들은 거진 다 빠져나가고 없지요. 남아있는 남정들이란 저처럼 별 볼일 없는 늙은이들이나 정부 관원과 같은 특수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뿐이고.” “네… 그럼 그렇게 서로 떨어져 살다 보면 리혼 같은 건 할 리유가 없다, 그런 얘긴가요?” “그렇죠. 적어서 수년, 길면 십수년씩 떨어져 살다가 어쩌다 만나면 좋아해도 다 좋아하지 못하겠는데 리혼이 다 뭡니까.” “네, 일리가 있군요. 그러니까 사랑을, 말하자면 혼인관계를 오래동안 지속할 수 있는 비법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거다, 그거군요? 참 그럴 법한 얘기인데… 이러한 풍토, 문화가 형성된 건 대개 언제 쯤이였죠?” “에, 그게 글쎄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하기엔 좀 그렇고… 아무튼 제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들이 그렇게 사시는 걸 쭉 보고 자랐으니 백년까진 몰라도 얼추 70~80년 쯤은 되겠죠.” “네… 그런데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혈기왕성한 나이에 한두해도 아니고 오래동안 그렇게 서로 떨어져 살다 보면 솔직히 가끔 탈선할 수도 있고 그럴 터인데 그런 건 전혀 문제 안될가요?” “물론, 한창 나이에 홀몸으로 밖에서 떠돌다 보면 외도할 때도 있고 그러기 마련이죠. 근데 정작 오래동안 바깥에서 떠돌다 보면 그리고 외도라는 것도 몇번 해보고 나면 그래도 지 마누라, 지 새끼, 지 가정이 귀한 줄 알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당신네 한어에서는 부부간에 덮어놓고 서로를 늙은 아줌마老婆, 늙은 남정네老公라고 칭하지만 우린 서로를 여보如宝라고 부른답니다. 솔직히 볼장 다 본 늘그막에야 서로 등이나 긁어줄 마누라, 령감 만큼 소중한 게 또 뭐가 있겠습니까.” 늙은이가 그렇게 말하며 옆자리를 힐끔 돌아보자 안로인이 이쪽을 향해 곱게 눈을 흘기더니 막강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뭐라 중얼거리고는 다시 창밖에 눈길을 두었다.  “저기 그럼, 두분처럼 이렇게 려행도 다니고 하면서 여생을 즐기는 분들이 그 곳엔 꽤 많겠군요?” “허허, 많다 뿐이겠어요. 지난번 인구조사 보고를 보니 전체 지역인구 3백여만 중 나가있는 인구가 40여만명, 아녀자와 아이들이 60여만명 그리고 80대 이상 늙은이들이 좀 있고… 그 외는 전부 우리 또래 60~70대들이니까 얼추 2백만 정도 되지 않을가 싶습니다만 허허, 말하자면 우리 늙은이들의 천국인 셈이죠. ” !!!… … 눈앞이 노래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백만 커플에게 1차적으로 지불해야 할 금액을 얼추 주먹구구를 해봐도 천오백억! 년수익 전부를 그대로 갖다 부어도 모자랄 판이였던 것이다!  부도 신청을 하든가, 하루빨리 몸을 빼든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난 막강은 선반우로 손을 뻗었다.  비행중이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짐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 … 출처:2018 제4호
59    조영욱: 란숙의 거리두기(시평) 댓글:  조회:351  추천:0  2019-07-14
란숙의 거리두기 조영욱   조선족 문단의 중견시인 최룡관의 신작시 여섯수는 절제가 잘되여있다. 어떤 숭고한 생각을 내포하고 있지도 않고 쉽게 의도를 드러내보이지도 않는다. 필자는 감상자의 립장에서 이 여섯수 시의 미적 거리에 주목하였다.  은 ‘축구장의 오감도’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족 문단의 작가들은 거개가 다 연변축구팬이다. 시인도 례외가 아니기에 이런 시가 나오지 않나 싶다. 아마 화자는 관중석에서 축구장을 내려다보는 시각이다. 키퍼의 움직임을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에 비유하였다. 2행 “무르익은 검은 포도 박스에 넘쳐”라고 한 것은 카트에 담겨있는 축구공을 련상케 한다. 또한 3행 “꽃물결 우-우- 운다”라고 한 것은 상대편을 야유할 때나 심판의 판정을 야유하는듯하다. 축구공을 ‘검은 포도’에 빗댄 것은 아마 정당치 못한 판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6행과 맞물린다. “흰 거미 한마리 중심에서 눈을 뒤룩거린다”라고 한 것은 심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4행은 아마 정말로 차유리에 돌을 던진 것 같다. 차유리가 돌을 맞으면 그 모양이 거미줄 같지 않은가? 그래서 5행에는 거미줄이 등장하고 6행에는 거미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어서 7행에서는 ‘사람들 목에서 찬탄을 뽑아 하늘에 널어’놓았다고 했다. 이는 아마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관중들이 ‘찬탄’하는 것이거나 우리 편이 경기에서 져서 하는 ‘찬탄’ 같다. 그래서 마지막 행에서는 비가 온다. 슬프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이다.  이 시는 축구장과는 상관이 없는 사물들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는 몽타주기법(montage techinique)을 구사하고 있다.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린다면 몽타주란 이질적 이미지들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존재할 수 없는 사물들을 결합시키거나 사물을 원래의 장소에서 추방시키는 기법이다. 개구리나 포도, 거미 등은 축구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시는 론리가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따져본 결과 그래도 하나의 구조를 추상적이나마 이루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시인은 새 세기에 들어서 이른바 다다이즘시 혹은 이체시异体诗를 쓰기도 하고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쓰기도 한다. 이러고 보면 그 유명한 리상李箱의 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이 시에서도 보인다.  은 제목에 시적 상관물을 명시해놓고 있지만 아주 난해한 시다. 제목부터 내용과는 반대된다.  첫 행부터 ‘단풍이 바람을 뿜는다’고 했다. 낯설게 하기는 맞는데 류사성과 린접성을 가진 사물들을 배치하여 혼란을 주게 하는 게 아니다. ‘꽃비가 내리여 강이 된다’고 하다가 갑자기 ‘뽈’이 등장한다. 단풍 얘기를 하다가 ‘빨간 노란 바람’이라고 한 점까지는 알겠는데 ‘사막’이 나오고 ‘뽈’이 나오다가 ‘둥지에 꿀을 채운다’고 했다. 그래서 화자는 모든 것을 해체하고 불확실한 것을 추종하는 해체주의자다.  라는 시는 ‘진창’을 중심으로 시가 전개된다. 진창이라는 것은 땅이 질어서 질퍽질퍽하게 된 곳을 말한다. ‘새는 하늘진창’에, ‘가오리는 바다진창에’, ‘소나무는 바위진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고 했다. 이 시의 이른바 진구真句는 ‘사람은 관계진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이다. 이러한 구절은 일반적으로 시의 마지막에 배치되는데 반해 이 시에서는 세번째 행이다. 과연 우연일가?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그 가운데에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 세번째 행이 바로 이 시의 가운데 행이다.  ‘사람은 관계진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라는 것은 요즘 사회의 현상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픔’이다. 화자는 시종 시 안에서 ‘아픔’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있다. 그래서 ‘폭풍은 고요의 진창에서 뛰쳐나와 장벽을 짓부시며 달리는 말떼’라고 했다. 는 어렵다.  ‘나락’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이다. 물론 오늘날 현대조선어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화자의 인상 중에서 나락 혹은 지옥은 ‘검푸른’색이다. 화자는 아마 하늘 혹은 하늘과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마주하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거기에 ‘나락’이 등장한다. ‘나락’이 출현한 것은 화자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얄밉게도 날은 아주 화창하다. 손을 벗어난 ‘연’이 보인다는 것은 하늘이 맑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래서 ‘빨간 장미 한송이’가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가 비유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고 의도하는 바는 확실치 않다. 단지 ‘나락’, ‘하늘’, ‘가슴’, ‘장미’, ‘연’ 등등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라렬되여있다. 이 이미지들은 어떤 통일성에 따라 배치된 것이라기보다 서로 경쟁하듯이 공간을 차지한다. 그래서 통일성이 없고 원리도 없으며 중심도 없다. 다시 말하면 어떤 중심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른바 환유시처럼 시적 자아의 간섭이나 통제를 배제하여 미적 거리를 무화시킨 것은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어떤 중심을 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화자는 로련한 거리두기를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인들은 동년을 시화诗话하기를 즐긴다. 이 그러한듯 보인다. 제목이 그냥 ‘살구꽃’이 아니라 ‘살구꽃 시절’이라고 한 점이 이를 증명하는듯하다. 또한 확실치는 않지만 이 시는 그 유명한 의 가사 ‘복숭아꽃 살구꽃’의 그림자도 보인다. 그러나 이 시는 과 같은 동시가 아니다. 이 시의 시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행 ‘쌓였네’(과거), 2행 ‘섰네’(현재), 3행 ‘덮었네’(과거), 4행 ‘날리네’(현재), 5행 ‘있네’(현재), 6행 ‘도배하였네’(과거).  앞서도 언급하였다만 이 시는 동년의 기억과 성년의 감정을 결합하였다. 시는 전체적으로는 기억 즉 과거다. 그 과거 속에 과거가 있고 현재진행형이 있다. 화자는 현재에 서서 이를 성년의 감정으로 맞이하고 있다.  이 시의 시제는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현재→과거→현재→현재→과거 이를 더 묶으면 다음과 같다. 과거.현재→과거.현재→현재.과거.  과거와 현재가 한번씩 엇갈아서 순서 대로 된 것이 아니고 5행과 6행에서 순서가 바뀐 것이다. 이른바 AAB 혹은 ‘같음 같음 다름’인 것이다. 시조의 기본구조가 대개 이러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시조의 영향도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용은 살구꽃이 핀 산을 다른 산 우나 중턱에서 바라본 오감도다. 그 하얀 살구꽃이 ‘하얀 눈, 양산(하얀 양산으로 추측됨), 락하산, 하얀 연, 학, 하얀 종이’로 보였다고 화자는 기억하고 있다.  그 동년의 기억을 직접 표출하지 않고 성년의 감정과 결합시켰다. 그럼으로써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하여 성공적으로 오감도식 기법을 구사한듯하다. 다시 말하면 감정의 양식화에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가지 의문이 있다. 학은 10월에 나타나 2월에 사라지는데 왜 4월에 나타난다고 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것도 ‘학이 울다’가 아니라 ‘지저귀다’라고 했다. 지저귀는 것은 참새나 종달새인데 왜 학이 지저귄다고 했을가? 살구꽃이 4월에 피는 것은 맞으나 학은 4월에 보기 힘들다. 4월 살구꽃이 필 때 다른 것을 경험했는데 학에 빗대여 말하고 있는 것일가? 시인의 의도가 궁금하다. 도 시적 상관물이 명확하다. 바로 별이다. 화자는 별 관찰하기를 즐기는듯하다. 별을 오래 관찰하다 보면 류성우流星雨를 보게 된다. 이를 ‘함박눈이 내린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혹은 맑은 날(‘연푸른 밤하늘’) 별이 많을 때를 표현하고 있는듯하기도 하다. 별은 항구적으로 대개 원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만년, 억년’이라 표현하고 있다.  별을 관찰하는데 별은 ‘강물, 소무리, 국자, 사자, 개발자국, 지렁이’ 등등 여러가지 모양으로 다가온다. 중국인들은 고대에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리념하에 천문으로부터 대일통大一统을 상상했다. 이러한 경향이 마지막 행으로 표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화자는 분명 별 관찰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그 즐기는 감정을 직접 표출하지 않고 ‘색스폰 연주’라고 객관화하여 표현하였다.  시인은 시학 리론서를 쓸 만큼 학문적으로도 해박하다. 이 여섯수의 시에서도 보다 싶이 로련한 시인답게 거리두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여느 미숙한 시인과는 다르게 이 여섯수의 시에는 ‘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객관화시켜 감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시종 적절한 거리를 두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단어를 절제하려고 한 흔적이 력력하다. 이는 이미지들을 폭력적으로 결합하는 몽타주기법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이 여섯수의 시들은 또한 모두 시적 상관물이 명확하다. 제목에 벌써 시적 상관물을 드러내고 있다. 명확한 시적 상관물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은 거리두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시들은 통일된 구조가 있는듯하면서도 탈구조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여러가지 목소리들이 란립하는 것이다. 거리두기를 의식적으로 했든 하지 않았든 중요한 것은 시인이 여러 기법을 동원하여 어떤 시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1960년대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개혁개방 전까지는 당시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거리두기를 지나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자기반성을 하면서 여러 시험을 하며 시를 쓰고 시집을 냈다. 이 시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여섯수의 시에서 알 수 있다. 다다이즘, 시조, 천문, 몽타주기법 등등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시를 쓰면서 그 우에 어떤 다른 시도를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족 시문학의 모방성과 변방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인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출처:2018 제4호
58    <장백산>2018.3 루계219 댓글:  조회:674  추천:0  2019-07-12
장백산 총219호 2018년3호 권두칼럼 김호웅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구호준     여백(장편소설 련재1) 구호준     아름다운 려행(작가노트) 박초란     길우에서(작가평)   기획련재 김혁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 련재9) 김혁       늦봄,계단을 오르다(만필 련재1)   박초란소설코너 박초란     향기와 벽   계렬수필 조원       모멘트(수필) 천상규     자잘하다 평범하다 맛있다 멋있다(수필평)   시인시전 우도      개구리(시 외5수) 조영욱    과잉된 기억(시평)   창작마당 박명옥    엄마의 살구나무(단편소설) 연서      올가미(단편소설) 곽미란    목련꽃 피는 계절이면(수필) 리미      수세미앓이(수필) 신기덕    출제인생(수필) 리근      황혼찬가 더불어 인류(수필) 임은숙    최고의 음악(수필) 김학송    무제(시 외4수) 리성비    조각달(시 외4수) 전유재    허물 나비(시 외1수)   8090문학코너 현청화    장사장(단편소설) 미주      피빛 고민(칼럼) 김옥결    꿈에서 본 샹그릴라1(시 외3수) 리해연     을 통해 본 중국조선족의 어제,오늘 그리고 래일(평론)   문학과 비평 최병우     윤림호론:약자에 대한 동정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평론)   중국소수민족문학 손춘평     후사(단편소설/김제국 옮김)   장편소설련재 김허       무성시대(장편소설 련재3)
57    리근: 황혼찬가 더불어 인류(수필) 댓글:  조회:502  추천:0  2019-07-12
황혼찬가 더불어 인류 리근   황혼이란 대자연으로 말하면 해가 저물어 어득어득할 때를 일컫는데 인간으로 말하면 한창 때를 지나 쇠퇴하여 ‘종말’에 가까운 시기를 말한다.  인류는 지구란 이 독특한 행성이 태양을 한바퀴 공전하는 일년을 춘, 하, 추, 동으로 나누었고 광명과 암흑을 자연스레 엇바꾸며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한바퀴 자전하는 하루를 조, 우, 석, 야로 분류했으며 인류가 고고성을 울려서부터 심장박동이 멎을 때까지를 소, 청, 장, 로로 갈랐다. 그리고 소년시절은 불타는 아침해살로, 청년시절은 7~8시의 눈부신 태양으로, 장년시절은 혈기왕성한 한낮의 해님으로, 로년시절은 진붉은 석양으로 비유했다. 하기에 망팔을 넘어서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나는 어언간 황혼기에 들어서 조용히 대자연의 황혼을 진맥해본다.  황혼은 서천에서 오래동안 머물지 않지만 그 한때나마 자신을 황금빛으로 당차고 화려하게 단장한다. 이를테면 때로는 너울너울 춤추는 선녀마냥, 때로는 갈기를 휘날리며 무연한 초원을 내닫는 준마마냥, 때로는 끝없는 사막을 터벅터벅 주름잡는 락타마냥, 때로는 사품치는 만경창파를 줄기차게 헤가르는 고래상어마냥… 그런가 하면 황혼은 자체의 찬란한 빛갈로 부단히 대지를 곱게 분장시키며 자신의 도고한 위풍과 기개를 남김없이 과시한다. 그러면서 찬란한 금빛가루를 삼라만상에 골고루 분여해 신주를 곱게 물들인다. 동시에 여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웅위로운 서산 우에서 진붉은 병풍을 둘러세우며 창공에 두둥실 떠도는 구름들을 꽃보라로 아롱지게 만든다. 그러는 와중에 대자연은 부단히 숨 쉬고 조을고 뛰놀며 미소 짓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웅심 깊은 황혼은 부단히 추억을 더듬으며 현황을 진흥시키고 티 없는 백지마냥 깨끗한 바탕으로 미래를 기약한다. 동시에 래일을 고무하고 만사에 삼가해야 할 일들을 사전에 인류에게 속속들이 아뢴다. 다시 말해 어느 때 강풍이 불겠는가, 소나기가 억수로 내리겠는가, 기온이 급변하겠는가, 짙은 안개가 자옥히 서리겠는가, 우박이 무더기로 쏟아지겠는가… 등등이다. 그 뜻인즉 서천에 황혼이 깃들면 이튿날은 쾌청하고 황혼이 종적을 감추고 그 자리에 먹장구름이 뒤덮이면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광풍이 휘몰아치거나 소나기나 우박이 억수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하기에 인류는 이런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각종 대책을 강구한다.  황혼은 평생 말 한마디 없지만 흉벽을 치는 실제행동으로 자신을 부단히 불태우며 우주를 곱게 장식한다. 그런가 하면 하현달이 서천에 걸리면 마치 친혈육을 만난듯이 무척 반가워하고 하현달이 서서히 서산마루를 넘어설 때면 무등 섭섭해하며 아미를 다소곳이 숙인다.  그러다가 일단 지구촌에 삼복철이 도래하면 어른들은 만사를 불문하고 한자리에 모여 오구작작 떠들며 진종일 개추렴을 한다. 이때면 황혼은 그들을 굽어보며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이같이 다감다정한 황혼이 때가 되면 아무런 조건도 보상도 미련도 없이 조용히 서산 뒤로 사라진다. 후세의 갱신과 추진을 위한 이같은 자각적인 자리비움은 얼마나 도고하고 보귀하고 자랑차고 거룩한가!? 이로 하여 대자연은 또 용왕매진하는데 지구촌의 이쪽 절반은 고스란히 자장가를 부르고 저쪽 절반은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약동의 스타트를 뗀다. 그런가 하면 명월의 옥토끼는 자유자재로 뛰놀고 계수나무는 지구촌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뜻깊은 웃음을 짓는다. 동시에 창공의 애기별들은 어미별과 숨박곡질을 하고 반짝이는 뭇별들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서서히 에도는데 때로는 밝디밝은 류성이 밤하늘을 쪼개며 쏜살같이 지구촌을 향해 내리꽂히는 장관을 이룬다.   이 뿐만이 아니라 황혼의 아룀으로 부엉이와 박쥐들은 나래를 활짝 펴고 동분서주하며 먹거리를 찾느라고 여념이 없고 박꽃은 곤충들을 한품에 안고 정겹게 키스한다.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벌레들의 대 합창이 귀맛 좋게 들려온다.  그런가 하면 황혼이 깃들 때면 기러기, 두루미, 물오리, 원앙새, 까치, 까마귀, 제비 등 모든 조류들이 제각기 자기의 보금자리로 찾아든다. 그리고 산천초목도 고스란히 설레이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황혼의 덕분이다.  대자연은 이러는 와중에 황혼을 맞고 바래는바 마치 운동건장이 부단히 계주봉을 받아쥐고 줄기차게 내닫듯한다.  만약 황혼이 없다면 지구촌은 이같이 찬란한 아침도 불타는 정오도 칠흑 같은 야밤도 결코 있을 수 없다.  광휘롭고 휘황찬란한 황혼의 생애, 그 절개와 기백 속에서 인류와 모든 동식물들은 부단히 생의 층계를 톺으며 새로운 삶의 탑을 줄기차게 쌓는다. 다시 말해 이같이 거룩한 황혼은 만물이 생존하는 이 독특한 행성ㅡ지구촌을 보다 활기차고 아름답게 만든다.  인류는 수천만년 대대손손 살아오며 줄곧 이 친근하고 자애롭고 거룩한 황혼을 절친한 벗으로 삼아왔는데 그 손에는 나도 있다. 하기에 나는 자애자정한 황혼을 본받아 여생을 보람차게 살련다. 심장박동이 멎을 때까지!  출처:2018 제3호
56    손춘평孙春平: 후사(단편소설) 댓글:  조회:629  추천:0  2019-07-12
후사 손춘평   로혁명가 진풍년이 세상떴다. 향년 98세이다. 생전에 로인은 내가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사후의 일이 걱정된다며 자신이 죽은 뒤에라도 아무런 말썽이 없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장례는 시로간부국의 사회하에 치루어졌다. 로인의 유언 대로 장례는 아무런 말썽도 없이 조용히 치러졌다. 유가족들은 인생의 막을 내리는 이번 연출무대에서 저마다 보조출연자에 불과했다. 그들은 사회자의 지휘하에 기와와 그릇들을 부수어버리기도 하고 령구 앞에 서서 기발을 치켜들기도 하고 큰절을 세번 올리기도 하고 유골을 골회함에 안치하기도 하면서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출중하게 완성했다.   장례가 끝나자 여러 유가족들은 차에 앉아 곧바로 진풍년 로인이 생전에 살았던 별장으로 향했다. 이 별장을 진풍년로인이 생전에 살았던 별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로인이 사망한 후부터 이 별장이 더는 진씨 가족들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도 집체 소유물이고 가구들도 집체 소유물에 속한다. 진정으로 진씨네 후손들에게 속하는 것이란 집안에 있는 몇몇 생활필수품들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구체적으로 이런 일을 담당한 사람은 성은 수, 이름은 초였는데 그는 시로간부국 종합과 과장이였다. 그의 다른 한 신분은 로간부 제1당지부 련락원이다. 수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집문을 열어보이며 지금부터 진씨네 네 자녀들이 각기 대표 한사람씩 파견하여 집안에 들어가서 물건들이 진로인이 생전에 쓰던 그대로 있는지를 확인하고 만약 파손되거나 잃어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여있다면 다음 절차로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네 자녀 대표는 집안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되여 금방 밖으로 나오더니 모두 말없이 수초를 향해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수초는 다시 한번 쉰 목소리로 선포했다.  “진로인님께서 생전에 시로간부국에 사후의 집안 재물에 대한 관리와 분배를 부탁하셨으므로 지금부터 제가 시로동국을 대표하여 구체적인 분배방안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귀담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들으신 뒤 이의가 있으시면 별도로 협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진로인님께서 생전에 사셨던 이 집은 공공재산인바 장례 뒤 여전히 국영신광농장에 귀속되며 이번 분배 대상 범위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진로인 가족들은 그 어떤 리유로든 이 집에서 살 수 없습니다. 둘째, 집안에 있는 가구들, 이를테면 책상, 의자, 침대, 쏘파 등은 모두 신광농장과 시로간부관리국에서 진로인을 위해 특별히 맞추어드린 것이기에 이것들도 분배대상 범위에 속하지 않습니다. 셋째, 진로인께서 생전에 저축해놓은 약간한 저금은 잠시 시로간부관리국에서 통일적으로 보관하게 되는데 진로인의 보상금 및 장례비가 발급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돈에서 이미 지출된 비용들을 떼낸 다음 나머지를 네 자녀분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합니다. 그리고 지금 분배하는 물건들, 이를테면 집안의 일상용품들은 법적인 규정에 따라 첫 상속자에게 먼저 분배합니다. 저 개인의 생각인데, 먼저 네 자녀분들이 제비뽑기를 하여 순서를 결정한 뒤 1호가 먼저 들어가서 물건을 하나 골라내서 밖에 내놓은 다음 그 뒤를 이어 2호, 3호, 4호 순으로 고르되 매 집들에서 물건을 고르는 시간은 5분을 초과하면 안됩니다. 제2회 순서는 2341 순으로 하고 제3회 순서는 3412 순, 이런 식으로 계속 돌고 돌다가 네집에서 더 고르고 싶지 않아할 때 진로인의 다른 친척들이 집안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보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맏이의 아들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다들 한집안 식구인데 제비는 무슨 놈의 제비예요. 웃기지 않아요. 그냥 순서 대로 합시다!” 맏이는 진로인이 세상 뜰 때까지 줄곧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지어 장례식장과 산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건강이 좋지 않아 장손을 전권대표로 파견해왔다고 한다. 어쩌면 정말 건강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장손의 말이 끝나자와 함께 넷째가 말을 이었다. “뭐가 순서인가? 설사 순서대로 한다 해도 웃어른들부터 해야 하지. 아무리 어째도 어른을 존중하는 례의는 지켜야 할 게 아닌가!” 오늘 모인 사람들 중에서 유독 넷째만이 어른이였다. 수초는 혹 말다툼이라도 벌어질가봐 급히 다시 한번 정색해서 해석했다. “오늘 오신 네 집 대표는 모두 제1 상속자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와 의무가 똑같기에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그러니 이에 대해 더 론의하지 맙시다.” 모인 사람들 속에서 우하하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 웃음소리는 눈앞에서 막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는 어딘가 잘 어울리지 않았다. 진로인이 살던 집은 다섯칸 방으로 된 벽돌집이였고 사면에 예쁜 수목이 우거져있는 데다가 집앞에 자그마한 전원까지 시원하게 펼쳐져있었다. 초봄이여서 아무 것도 심지 않은 논밭두렁 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서 길게 목을 빼들고 집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진로인의 자손 외에 부고를 듣고 조문하러 온 진로인의 질남질녀들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혹시 마지막 순서에라도 진로인의 유물이 차례져서 기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가 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듣는 말에 의하면 장수한 사람의 유물은 령험하다고 한다. 한참 후,  둘째의 딸이 다시 침묵을 깼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다그쳐요. 저 또 다른 볼일도 있거든요.” 진로인의 둘째는 딸이였다. 둘째는 이번에 장례식장에 오지 못했다. 부고를 보낸 뒤 수초는 이번만은 이 진씨네 누님을 꼭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그녀 대신 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말해줘서야 그는 진씨네 누님이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죽으면서까지도 아버지에게 소식 하나 전하지 않았다. 늙은 아버지가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상심할가봐 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으나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곰곰히 계산해보면 수초가 진로인을 위해 일한 지도 어언 2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헤아린다. 그동안 수초는 1주일에 적어도 두번은 진로인네 집에 드나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거의 한번도 이 진씨네 누님을 본 적이 없었다. 곰곰히 따져보면 만약 진씨네 누님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70세는 될 것이였다.  수초는 품속에서 사전에 프린트한 서류 한장을 꺼내들며 말했다.  “그럼 좋아요. 다그칩시다. 시작하기 전에 네집에서 각각 대표를 파견하여 이 서류에 싸인하시기 바랍니다. 서류 내용은 방금 제가 말한 몇가지입니다. 싸인하시기 전에 내용을 다시 한번 꼼꼼히 심열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저녁, 이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수초는 한밤중까지 자지 못했다. 도중에 깊이 잠든 안해까지 흔들어깨워 참고로 봐달라고 사정했다. 그의 안해는 법원 민사청에서 판사로 일한 적이 있어서 이런 일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해는 꿈결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시끄럽게 굴지 말라며 화를 냈다. 수초는 아첨하듯 안해를 달래고 구슬렸다.  “이건 시끄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심각한 문제란 말이야. 이 집안이 얼마나 복잡한 집안인지 알아? 복잡한 정도가 당신이 지금까지 맡은 그 어떤 안건도 비하지 못한단 말이야. 자칫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내가 시끄러워져!” 싸인하는 것마저 제비뽑기를 해 순서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첫사람으로 볼펜을 잡은 맏이 아들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 “수형,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굴어요?!” 수초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짧으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꼭 해야 될 일이니 더 해석하지 않겠어!” 맏이의 아들은 수초와 나이가 거의 비슷해서 형님 동생 할 만도 했다. 진씨네 손자손녀들은 그를 아저씨라고도 부르고 할아버지라고도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 건 그를 진로인의 동료로 여기기 때문이였다. 그들에게는 동료란 곧 동년배였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지. 수초는 그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1호 제비를 뽑은 셋째의 딸이 금방 집안에서 나왔다. 그녀는 품에 작고 깜찍한 전자사진첩을 안고 있었다. 이 전자사진첩은 바로 이 외손녀가 진로인에게 선물한 것이였다. 그녀는 수집할 수 있는 모든 가족의 사진들을 모아서 이 메모리에 담아 외할아버지에게 드리면서 가족사진을 보고 싶을 때 이 키보드 하나만 누르면 사진들을 슬라이드처럼 볼 수 있고 음악을 선택하면 노래도 들을 수 있다고 설명해드렸다. 진로인은 마지막으로 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늘 이것을 품에 안고 가족사진을 보았었다. ‘1호선수’가 제일 먼저 안고 나온 것이 고작 이따위 것이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뜻밖이였다.  2호 제비를 뽑은 사람은 맏이의 아들이였다. 이른바 종가집 장손이였다. 장손은 조금 뒤 집에서 나오더니 자기는 거실에 놓여있는 스탠드형 에어컨을 가지겠다고 했다. 그는 오늘은 가져가지 않고 래일 트럭에 실어 가져가도 되는가고 수초에게 물었다. 그 말에 수초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미안, 미안, 나 금방 깜빡하고 말하지 않았군. 그 에어컨은 로간부국의 것이기에 분배 범위에 속하지 않아. 대신 너 두 방안에 있는 걸개식 에어컨을 가져. 그건 진로인이 자기 돈으로 보탠 거니까.” 장손은 큭- 코를 소리나게 들이켜며 얼굴을 찡긋해보이고는 다시 집안으로 사라졌다.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수초는 의자를 가져다가 문에 기대앉았다.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은 첫째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순서를 어기고 란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이미 선택되여 밖에 내놓은 물건들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방금 그는 선택한 물건은 잠시 문 앞에 내놓았다가 물건을 선택하는 절차가 끝나고 나서 모두 통일적으로 점검해본 다음 다른 이의가 없으면 각자가 알아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셋째는 자기도 좀 쉬여야 했기 때문이다. 간밤에 거의 잠을 못 잔 데다가 날도 밝기 전에 일찍 일어나서 진씨네 장례식 일들을 처리하느라 사처로 뛰여다녔다. 발인하고 장례식장에 가보고 유체와 고별하고 골회함을 선택하고 그것을 묘지에 안장하는 등등의 일들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런 일 때문에 조급해하고 열 받아서 그는 목소리마저 쉬였다. 진씨네 자손들은 적지 않았지만 진로인이 생전에 자신의 후사를 전부 시로간부국에만 위탁해놓았기에 그들이 태만을 부려도 누가 나서서 감히 말하지도 못했다. 사람은 정말 세월을 우습게 알 일이 아니였다. 나이 반백을 넘으니 몸이 욕심을 따라주지 않았다.  집앞에 쌓아놓은 네개의 작은 산이 점점 높아져갔다. 어떤 사람은 밖으로 이불까지 안고 나오고 있었다. 돈이 될 만한 물건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수초는 그것들을 보기마저 싫어서 허리를 굽히고 자기가 쓰고 타자한 라는 글만 훑어보았다. 상급에서 추도회를 열지 않는다는 규정을 내려서 그로서는 다만 사망자의 생평에 대한 간단한 소개나마 작성하고 타자해서 유체와의 고별식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수초의 눈앞에는 로인의 목소리와 웃던 모습이 또 한번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80세 가까이 되여갈 때 밭에 나가 일하던 모습이 더욱 생생히 떠올랐다. 수십년간 수많은 생사고비를 넘나들면서 살아온 로인은 공화국의 공신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럼에도 로인이 가슴 깊숙한 곳에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외로움을 묻고 살았는지 이루 한마디로 다 말할 수 없었다. 만년에 이르러 생활은 별 걱정이 없었지만 자손들은 그에 대한 불만과 원망 때문에 평소 집에 거의 드나들지 않았다. 자식들이 불효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였다. 세간의 혈육의 정이란 어느 하나가 평소 서로 아끼고 보태고 나누면서 조금씩 쌓아지지 않는 것이 있는가! 그러나 진로인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러한 침전과 루적이 조금 결여되였다.   진로인은 태항산에서 태여나 항일전쟁이 발발하자 팔로군에 참가했고 후에 무공대 대장까지 되여 부대를 이끌고 적후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43년, 왜놈들이 ‘3광정책’까지 실시해대며 화북지구를 포위하고 소탕할 때 진풍년은 적들에게 쫓겨 어느 한 동굴에 들어갔다. 동굴 속에는 마침 그와 거의 같은 시간에 뛰여들어 몸을 숨긴 부구회妇救会 처녀도 있었다. 동굴 밖에서 뜨거운 산불이 활활 타오르고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처녀가 동굴 밖을 내다보며 진풍년에게 “대장님은 죽는 것이 겁난가요?” 하고 물었다. 진풍년은 코웃음 치며 “흥! 죽는 것을 겁나했다면 나 팔로군에 참가하지도 않았을 거요! 유감이라면 20살이 넘도록 아무 것도 못하고 헛되이 산 것 뿐이오…”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처녀는 “유감 중에 련애 한번 못해본 것도 있죠? 대장님께서 만약 못난 저를 꺼리지만 않는다면 굴 밖에 나가게 되면 제가 대장님의 안해가 되겠어요.” 하고 당돌하게 말했다. 일주일 후 왜놈들이 물러갔다. 부대로 돌아가기 전 진풍년은 처녀와 산과 바다 같은 사랑을 맹세했다. 그런데 그번의 리별이 둘을 음과 양으로 영영 갈라놓을 줄이야. 몇년 후 항일전쟁이 승리하자 진풍년은 다시 산골로 되돌아왔다. 그제야 그는 처녀가 왜놈들이 또 한차례 벌인 포위전에서 총알에 맞아 죽었다는 것과 그녀가 남긴 세살 난 남자애를 마을 사람이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풍년은 그 아이를 찾았다. 아이를 보는 순간 그는 첫눈에 그가 자기의 혈육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마음에 몸에 지니고 있던 모든 값진 것들을 다 꺼내서 아들을 키워준 마을 아주머니에게 주면서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천하의 주인이 되는 그 때 다시 돌아와서 은공에 보답하겠다며 아이를 계속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진풍년의 두번째 혼인은 1949년에 이루어졌다. ‘제4야전군’ 이 동북의 전역을 해방하고 군마를 이끌고 평진平津을 향해 진격할 때 진풍년이 소속된 퇀团은 명령을 받고 남아서 북구北口를 지키게 되였다. 그 때는 격정이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사람마다 영웅을 찬미하고 숭배하던 년대여서 어떤 사람은 한개 퇀의 통수인 진풍년에게 끊임없이 애인을 소개해왔다. 진풍년이 왜놈, 장개석과 싸운 영웅이였을 뿐만 아니라 30살도 안된 멋진 총각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때 진풍년은 한 녀대생을 좋아했다. 그 녀대생의 거절을 피면하기 위해 그는 태항산에 아들애 하나가 있는 사실을 숨겼다. 그는 녀대생과 결혼하여 안해가 아이를 낳은 다음 진실을 고백하려 했다. 그에게 아이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녀자의 태도가 완전히 다를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수년간 병사를 이끌고 싸운 그가 어찌 적들의 고지를 점령하여 속전속결하는 전술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결혼하여 밀월 같은 달콤한 결혼생활을 한 지 겨우 1년 남짓한 때, 부대가 명령을 받고 압록강가에 집결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진풍년은 임신중인 안해와 헤여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압록강 강변의 집결은 근근히 전주곡에 불과했다. 그 뒤를 이어 벌어진 전투는 왜놈과 벌인 전투나 장개석부대와 벌인 전투에 비해 훨씬 잔혹한 고전이였다. 1951년, 진풍년은 전 퇀을 이끌고 조선에서 련합군부대를 저격했다. 상급의 명령은 듣기만 해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 명령이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24시간 동안 견결히 진지를 사수하라였다. 그번의 전투는 말 그대로 악전이고 고투였다. 미국 양키들의 비행기, 대포는 쉼없이 폭격과 포격을 거듭했고 련합군은 벌둥지를 터쳐놓은듯이 번갈아가며 돌격해올라왔다. 진풍년의 발아래의 진지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화에 양파처럼 한겹한겹 벗겨져갔다. 장장 하루 낮 하루 밤을 싸우고 나서 진풍년이 전사들을 이끌고 철퇴할 때는 신변에 남은 병사란 2백명도 안되였고 탄약은 더욱 적었다. 얼음을 밟고 강을 건널 때는 미군 비행기가 쫓아와 미친듯이 공중에서 소사하고 폭격해댔고 지면 우는 온통 앞을 가로막고 뒤를 차단하는 적군들 뿐이였다. 머리 우로는 또 적기가 투하한 조명탄이 높이 걸려 밤을 대낮 같이 환히 밝히기도 했다. 그번의 전투에서 몸에 중상을 입은 진풍년은 자신은 이미 혁명을 끝까지 했다고 생각하고 최후의 명령을 내리지 않고 병사들에게 우리의 임무는 이미 완성됐으니 즉시 세사람이 한조를 묶고 분산해서 포위를 뚫으라고 했다. 그는 될수록 상망을 적게 내고 꼭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고 병사들에게 부탁했다. 그는 또 적들 앞에서 무기를 놓되 당을 배반하고 나라를 배반하면 절대 안된다고 부탁했다.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고 했으나 바로 그 때 폭탄 하나가 옆에 떨어져 그 뒤의 일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틀밤과 이틀낮 후였다. 눈을 떠보니 어느 산 속의 동굴 안에 누워있었고 옆에서 조선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손짓발짓을 다해가면서 알려줘서야 진풍년은 그들이 죽은 시체더미 속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진풍년의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구해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두 로인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면서 진풍년은 그 두메산골에서 옹근 반년을 숨어살았다. 지원군들이 또 한차례 전역을 벌여 다시 쳐들어올 때까지… 다리 하나를 절게 되자 진풍년은 더 부대에 남아있을 수 없어 재빨리 국내에 호송되여왔다. 그런데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를 맞아준 것이란 꽃묶음도 박수소리도 아닌 감옥 같이 침침하고 은밀한 심문실이였다. 그는 그 곳에 갇혀 심사를 받기 시작했다. 심사원들은 그에게 부대가 진지에서 철퇴할 때 그가 어떤 명령을 내렸는가고 질문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알기로는 그가 그 때 중상을 입은 몸이여서 정신이 똑똑하지 못했다는 점에 특별히 력점을 두며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암시해주었는데도 진풍년은 자기가 부상을 입은 곳은 다리와 몸이였고 비록 폭탄에 두피도 벗겨지고 귀도 절반 떨어져나갔지만 정신만은 줄곧 말짱했다고 우겼다.  “내가 그 때 내린 명령은 분산적으로 포위를 뚫고 나가되 더는 죽기내기로 싸우지 말라, 무기는 놓아도 된다. 그러나 당을 배반하고 나라는 배반하지 말라!였습니다.”   이때 심사원이 그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당신이 말한 ‘죽기내기’란 무슨 뜻이오?” 진풍년이 가식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우리들이 거의 30시간 진지를 고수하느라 싸우는 과정에 희생된 전사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미 임무를 완성한 데다가 탄알과 쌀까지 떨어져서 더 싸우면 그대로 목숨을 적들에게 바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무리할 필요까지야 있습니까? 저의 전사들은 모두 훌륭한 청년들입니다. 저로서는 차마 눈 뜨고 그들이 부질없이 목숨을 바치는 걸 볼 수 없었습니다.”  진풍년의 말이 끝나자 심사원이 또 질문을 들이댔다.  “당신의 그 명령이 반역철학이나 생의 철학과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오?”  “저는 철학을 모릅니다. 다만 포로와 반역자가 같지 않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어떤 나라의 전쟁포로는 석방되여 귀국해도 여전히 영웅으로 받들린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 퇀의 어떤 전사가 포로되였지만 당과 나라만 배반하지 않는다면 저는 그도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전쟁포로가 귀국해서 영웅이 되였다는 말은 어디에서 들었소?” 심사원이 또 캐물었다. “저의 안해한테서 들었습니다. 안해와 그녀의 동창생은 2차 세계대전을 반영한 책과 영화를 보았답니다.”  심사원이 다시 물었다.  “당신이 살아돌아올 수 있었던 건 적군에게 포로됐기 때문이였소? 포로된 뒤 당과 나라를 배반한 일을 사실 대로 말하시오!”  그 말에 진풍년이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지팡이로 마루바닥을 탕탕 치면서 화난듯 소리 질렀다.  “전 적들에게 포로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백성들이 시체더미에서 저를 발견하고 구해주었습니다. 정 믿음이 안 가면 직접 조사해보세요. 전 그 때 제가 꼭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제가 당을 배신하려 했다면 항일전쟁 때 했지 하필 공산당이 천하 주인이 된 때에 와서 왜 배신하겠습니까! 그리구 배신하지 않는 포로로 되기도 어디 그렇게 쉬운가요? 배신하지 않는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기만 못하지요. 철 같은 의지가 없이는 당을 배신하지 않는 포로로 되기도 어렵단 말입니다.”  진풍년은 옹근 4년간 이런 식으로 심사를 받았다. 그가 이런저런 명목하에 얼마나 많은 담화와 취조, 심문을 당했는지는 그 자신도 잘 모른다. 그가 빨간 손도장을 찍은 심문서류만 쌓아놓아도 사람의 키 절반 높이는 족히 될 것이다. 그동안 전장에서 귀국한 사师의 수장이나 군军의 수장도 그를 유도하고 설득한다는 명목으로 찾아와 면회했다. 수장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감개무량한 어조로 그번 저격전에서 진풍년 퇀의 공로가 가장 컸다면서 진풍년 퇀이 적은 희생을 내면서 대부대의 반격전을 위해 보귀한 시간을 벌었다고 치하했다. 그 때 진풍년은 쓰겁게 웃으며 속으로 그번 전투에서 우리 한개 퇀의 전사들이 거의 전멸했는데 그 희생을 적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수장은 또 진풍년에게 우리 당은 력대로 한 간부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의 한가지만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걸어온 력사와 일해온 정황들을 보면서 전면적으로 평가하니 머리에 너무 무거운 보따리를 짊어지지 말고 태연한 자세로 당의 심사에 림하라고 타일렀다. 수장들은 또 그와 작별할 때 몸에 상처를 입으면 정신상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병을 속이거나 병원을 기피하지 말고 제때에 치료하라고 간곡히 타일렀다. 진풍년은 수장의 성의를 모르는 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수장에게 상급 수장님께 꼭 자기의 건의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건의란 전장에서 아군의 실력이 절대적인 렬세에 처했을 때 저항을 멈추어도 전쟁의 전반 국면에 그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 정황하에서 전사들이 무기를 놓는 것을 허락하여 불필요한 희생을 피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장은 그렇게 많이 암시했는데도 그가 여전히 이런 식으로 말하니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진풍년에게 “자네의 상처가 정말 중하구만!” 했다.    바로 이렇게 고집이 세고 자기 주견만 내세운 탓에 진풍년은 류당사간留党查看 1년이라는 처분을 받았고 군적军籍에서도 제명당했다. 4년 후 그가 북구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에게 차례진 새로운 직무는 겨우 국영농장의 부농장장이였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것마저도 옛 수장이 차마 마음이 내려가지 않아서 특별히 아는 사람을 공작해서 쟁취해온 것이라고 한다. 북구로 돌아오자 진풍년은 안해부터 찾았다. 임신한 몸이였던 안해가 그를 보자 엉~엉~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안해는 울면서 당신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살아있으면서 왜 몇년간 편지 한장 없었느냐며 그를 원망했다. 진풍년은 한참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있다가 “우리 애는?” 하며 아이 안부를 물었다.      아이에 대한 말이 나오자 전처는 또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아이의 행방에 대해 알려주었다. 전처는 애가 계집애였다면서 재혼하기 전에 상대방이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꺼려서 그 때 마침 자기 동창생의 고향에 있는 한 젊은 부부가 결혼한 뒤 줄곧 아이가 없어서 딸을 그 집에 줬노라고 했다. 전처는 자기는 이제 진풍년과 같이 살 수 없게 됐다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진풍년은 전처에게 아이를 누구에게 줬는가 따지며 당장 아이를 도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 말에 전처는 더 슬프게 울면서 제발 찾아가지 말라고 애걸했다. 그녀는 당년에 아이를 줄 때 애 아빠가 죽었다고 보증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앞으로 애에게 영향주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젊은 부부에게 맹세까지 했다고 했다. 그녀는 장차 애가 크면 자기가 꼭 방법을 대서 당신을 찾아가도록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진풍년은 또 결혼했다. 녀자는 과거 그의 수하에서 련장을 했던 젊은이의 미망인이였는데 슬하에 딸 하나 있었다. 그 몇년간 진풍년은 조금만 틈이 생기면 희생된 전사들의 가족들을 찾아다녔다. 그 때 그는 련장의 미망인이 딸 하나를 거느리고 힘들게 살고 있는 데다가 련장의 유복 딸이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며 “저의 아빠 맞지요? 아빠 왜 이제야 돌아왔어요? 아빤 미국 양키들과 싸운 영웅이지요?” 하며 가엾게 응석을 부리기에 련장의 미망인을 보고 아이를 데리고 자기와 같이 농장으로 가서 출근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했고 농장에서 출근하면 달마다 월급이 있어서 깊은 산골에 파묻혀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농장으로 돌아온 뒤 진풍년은 련장의 미망인 모녀를 자기 집에서 살게 하고 자기는 사무실에 침대 하나만 달랑 놓고 거기에서 혼자 하루 세끼를 대충 해먹으면서 살았다. 그로부터 몇달 뒤의 어느 날 미망인이 진풍년을 찾아와서 얼굴을 수줍게 붉히며 아이가 하루 종일 울면서 아빠를 찾는 데다가 농장사람들이 쩍하면 자기를 보고 ‘아주머니’라고 롱담을 하니 당신이 만약 우리 모녀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셋이 같이 사는 게 어떻겠는가고 물어왔다. 진풍년은 그녀와 결혼한 지 1년 만에 아들을 보았다. 진풍년의 생활은 그로부터 끝내 안정과 평온을 찾았다.  3년 곤난 시기 나라 곳곳에 큰 자연재해가 들어 밥을 빌어먹기 위해 떠돌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물을 이루었다. 바로 그 때 태항산에 있던 아들이 찾아왔고 전처가 남에게 주었던 딸도 양아버지와 양어머니를 모시고 진풍년을 찾아왔다. 국영농장에는 당시 새로 직원을 모집할 때 농장직원의 친속을 우선하라는 규정이 있었다. 마침 그 때 슬하에 한쌍의 아들딸이 남아있어서 진풍년은 그들을 어렵지 않게 국영농장의 직원으로 넣을 수 있었다. 진풍년은 그 때문에 두 미망인 앞에서 좀 떳떳해진 것 같았다.  지난 세기 80년대에 이르러 진풍년은 당의 새로운 간부정책에 의해 끝내 과거에 조사받고 심문당했던 억울한 혐의에서 풀려났다. 애석하게도 그 때 그는 이미 퇴직로인이 되였다. 당조직에서는 진풍년이 과거 생사고비를 넘나들며 싸운 혁명경력과 여러차례 전장에서 세운 공로을 감안하여 그에 대한 대우를 시지급市地级 퇴직으로 진급시키기로 결정했다. 수초는 바로 그 때 시로간부국에 전근하여 진풍년과 익숙해지게 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수초는 먼저 중학교에서 글을 가르쳤는데 마침 그 때 일부 년세 계시는 로간부들을 도와서 자료를 정리하고 회억록 같은 것을 대필해서 써야 하는 일들이 있어서 시에서는 그를 로간부국에 전근시켜 간사로 일하게 했다. 그는 진로인을 도와 리력서를 써드리는 과정에 진로인의 서류를 적지 않게 보았다. 진로인의 서류에서 그는 진로인이 사람을 찾아 진술한 대필자료도 보았고 진로인과 기률검사 감찰원들 간에 오고간 담화기록도 보았다. 후에는 진로인과 직접 대화하면서 그가 들려준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다. 수초는 진로인이 하나면 하나라고 하는 공명정대한 사람이라는 것과 사람됨이 간사하지 않고 거짓을 모르며 자신의 허물을 덮어감추려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수십년 전에 심사를 받을 때 한 말을 그는 몇년 뒤에도 토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했다. 공명정대함은 로인에게 많은 불행을 가져다주었으나 공정함과 정의로움은 또 그의 공명정대함으로 해서 다시 되돌아오기도 했다. 거의 30여년간 부농장장으로 살아오면서도 그는 줄곧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했다. 그는 몇푼 안되는 월급으로 네식구를 먹여살려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어려운 생활을 하는 두 자녀도 돌봐야 했다. 일찍 농민이였던 아들과 딸은 올 때 식구들을 다 거느리고 오기는 했지만 그들 자신도 다만 농장에서 일하는 보통 로동자에 불과해서 돈이 늘 딸렸다. 진풍년은 그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달마다 자기가 받는 월급에서 얼마간 덜어내서 주군 했다. 안해가 그러는 자신을 리해해주는 것이 늘 고마웠다.  그러나 달마다 하는 그의 구제도 아버지에 대한 아들딸의 몰리해나 원망을 밑뿌리까지 깨끗이 해소시키기에는 부족했다. 다른 집 로혁명가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호의호식시켜주는데 우리 진씨네 아버지는 왜 한달에 겨우 10원, 8원으로 친자식의 입을 막으려 하는가? 두 자녀는 늘 이런 식으로 진풍년과 트집을 잡았다. 그러다가 진풍년이 시지급퇴직간부 대우를 받게 된다는 소식이 봄바람이 되여 두 자녀와 아버지 사이에 생겼던 얼음층을 녹여버렸다. 그 몇년간 매번 설을 쇨 때마다 그들은 아들딸을 거느리고 와서 손자손녀를 할아버지 무릎에 앉힌다 어쩐다 하면서 떠들어댔다. 그러나 봄날의 따뜻함은 언제나 짧기 마련이다. 간혹 꽃샘추위라도 오면 이미 녹은 얼음층을 더욱 튼튼하게 얼어붙게 할 뿐만 아니라 땅을 헤치고 머리를 내민 새싹마저 모두 얼어죽게 하여 한 계절의 희망마저 훼멸시키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 맏아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홍두깨 내미듯 자기가 얼마 전에 성으로 가서 모청장을 만났는데 그 청장이 자기가 옛날 아버지의 부하였다면서 집에 돌아가면 옛 수장께 대신 꼭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이였다. 아들의 말에 진풍년은 일개 농장의 로동자인 아들이 무슨 일 때문에 성에 갔고 왜 청장까지 만나고 왔는지 이상하기만 했다. 그가 막 물어보려고 할 때 아들이 솔직하게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아들의 말인즉 요즘 아주 중요한 공사 하나를 맡으려고 하는데 그 공사를 바로 아버지의 옛날 부하였던 청장이 관할한다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그 청장에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 한장을 써서 그를 도와 공사를 따오기만 하면 우리 부자가 평생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은 리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였다. 진풍년이 깜짝 놀라 아들에게 네가 회사를 차렸는가고 물으니 아들은 자기가 무슨 능력으로 회사를 차리겠는가며 사실은 자기 친구가 회사를 차렸는데 그가 어느 공사 입찰에 참가하려고 하는데 자기 능력으로 그 공사를 따올 자신이 없으니 수소문으로 아버지와 그 청장의 밀접한 관계를 알고 자기를 찾아와 회사의 부사장 직함까지 주면서 사정하더라는 것이였다. 아들의 말을 듣고 화가 상투밑까지 치민 진풍년은 간신히 지팡이에 의지해 일어나서 칼날 같이 섬뜩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너 이후 또다시 이따위 짓을 하면 그 땐 가만두지 않을 테다! 금후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묻거든 차라리 내가 화장터에 간 지 오래다고 말해주어라! 난 이미 죽었단 말이다! 알아들었느냐?!” 비록 크고작은 차이는 있었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은 그 후에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둘째와 그 사위도 그를 찾아왔고 셋째 사위도 그를 찾아왔다. 넷째는 그 때 부모와 한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고 있었으므로 더욱 진풍년을 시끄럽게 굴었다. 그 때 막내아들은 직장에서 경선을 통해 과장자리에 초빙되려 했는데 쉽게 진풍년을 설득할 수 없음을 알고 지금 간부하는 사람들 중 인맥관계를 통하지 않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시니까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아버지를 존경하지 몇년만 더 지나면 아버지를 보는 척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 말에 진풍년은 또 화가 치밀어 “내가 지금까지 거느린 병사가 만명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8천명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그중 어느 한 전사도 자기가 쥔 총칼이 아닌 인맥관계에 의지해서 적진으로 돌격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네가 진짜 표범이라면 앞으로 밀고나가고 다만 편안하고 안일한 생활만을 원한다면 거부기처럼 대가리를 감추고 조용히 살아라. 나는 늙었어도 지금까지 평생 하지 못하는 일이 바로 허리를 굽신거리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는 일이다. 왜냐 하면 난 그 사람을 잃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야!” 하고 아들을 타박주었다.  세상 어디에서나 인맥이나 사람관계를 리용하여 사적인 리득을 챙기는 문란한 풍기가 만연되고 있는 때에 진로인의 이러한 대공무사함은 가뜩이나 조화롭지 못한 부자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안해가 살아있을 때에도 친인척을 대하는 그의 무자비한 태도를 두고 한두번 말한 것이 아니였다. 살아있을 때 그녀는 “우리 집은 이 둥지 저 보금자리에서 자란 애들만 모여살고 있어서 오래지 않아 ‘혼인법’의 산 교재로 될 거예요. 아이들이 가뜩이나 당신과 친하지 못한데 이제 누구도 집으로 오지 않게 됐으니 차라리 잘됐지 뭐예요. 이제는 심지어 막내마저 밖에 나가 혼자 살게 됐어요. 내 보기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이렇게 돼먹은 것 같아요. 이런 풍기는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니 우리 고집만 부리지 말고 애들을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웁시다. 힘이 모자라서 돕지 못하면 애들두 우릴 원망하지 않아요.” 했다. 그 때 진풍년은 머리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없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애들을 돕고 싶고 애들이 돌아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는 걸 당신이 어찌 알겠소?! 이 네 아이가 모두 당신이 혼자 낳은 아이들이라면 난 누구의 미움을 사도 무섭지 않겠소. 그러나 바로 그 애들이 같지 않은 엄마의 배속에서 나왔기에 난 애들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할가봐 늘 걱정이란 말이요. 그 때문에 집도 혼란스럽기만 하니 그렇게 하기보다는 그 애들이 자기 능력으로 분투하게 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겠소? 후에 그 애들이 우리를 원망하고 싶으면 원망하고 미워하고 싶으면 미워하라지 까짓 걸!” 진로인이 80여세 다되여갈 때 시정부에서는 리직한 로간부들의 주거조건과 환경을 해결하기 위해 별장동네 하나를 축조했다. 매 별장의 면적은 평균 2백여평방이였다. 집을 분배할 때 시정부에서는 재산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집은 매 가족들에서 구매하는 것이지 무상으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기에 먼저 얼마간의 집값을 지불한 후 3년 뒤에 이 집도 시내의 다른 상업성 아빠트처럼 70년 재산권을 갖게 되며 아울러 팔거나 양도할 수 있는 권리도 갖게 된다고 선포했다. 조금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면 시정부에서 말하는 이른바 집값이란 상징적으로 내는 것에 불과하며 돈보다 중요한 것은 집을 살 수 있는 자격이고 자격이 없으면 아무리 욕심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집 수매계약을 맺기 전에 시로간부국에서는 차를 파견하여 로인들을 별장동네로 모셔왔다. 별장동네는 시내에서 가까운 교외에 있었는데 뒤에는 산 앞에는 강이 있었고 교통도 편리했다. 매 별장에는 두세대가 들기로 돼있어서 속칭 련립주택이라고는 하나 두집이 각기 자기의 단독 문을 갖고 있었고 문을 떼고 집안에 들어서면 집안이 2층식으로 돼있는 데다 해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했다. 더우기 로인들 대부분이 전원생활에 익숙한 점을 고려하여 매 집앞에 백여평방메터에 달하는 원포를 조성해 화초도 심을 수 있게 하고 채소도 심을 수 있게 했다. 그야말로 신선들이 모여사는 선경 같은 좋은 동네였다. 장차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시비를 피면하기 위해 시로간부국에서는 사전에 자격과 급별에 따라 순서를 배렬하는 수매 규칙을 제정했다. 그 날 진로인은 안해와 같이 집 보러 갔다. 안해는 그 때 이미 엄중한 페기종병을 앓고 있어서 가다가 쉬고 쉬고는 또 가군 했다. 가는 길에 진로인의 안해는 줄곧 수초의 부축을 받았다. 집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진로인의 안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듣자니 우리가 1호여서 제일 먼저 집을 고를 수 있다는데 당신은 어느 집이 마음에 들었어요?” 하고 진로인에게 물었다. 진로인은 조금 머뭇거린 뒤에야 겨우 급하지 않으니 집에 돌아가서 의논하자고 했다.  사흘 뒤 국장과 수초가 함께 진로인의 초대를 받고 진로인의 댁을 방문하게 되였다. 로인은 이미 우려놓은 룡정차를 기어이 두 사람의 잔에 손수 따르겠다고 했다. 이런 정경은 과거에도 있기는 했으나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국장과 수초는 몰래 눈을 맞추며 서로 진로인의 신상에 꼭 무슨 큰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가, 상긋한 엽차 향기가 집안에 가득 차자 진로인이 무겁게 입을 뗐다.  “조직에서 우리 늙은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좋은 집을 지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네. 그런데 우리 집 정황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자네들이 다 알고 있지 않는가. 말로는 집을 우리 로간부들에게 준다고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살면 몇년 더 살겠는가? 언젠가는 이 강토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전우들과 만나러 나도 가야 하지. 우리 집 네 애들 말일세, 모두 이 둥지 저 둥지에서 태여나서 애비가 같지 않으면 어미가 다르고 어미가 같으면 또 애비가 달라서 누구나 우리 두 늙은이와 친하지 못하네. 사실 애들을 원망할 것도 없지. 천하를 위해 싸우기란 원래 쉽지 않은 일이네. 피 뿌리며 목숨 바쳐 싸우기도 쉽지 않구 혈육의 정을 버려야 하는 것도 쉽지 않네. 잃어버린 이 모든 것들은 아마 내 인생에는 되찾아오지 못할 것이네. 내가 오늘 말하고저 하는 건 우리 두 늙은이가 죽은 뒤에 이 집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일세. 다른 사람한테 맡겨서 애들이 서로 양보하면서 고루 살게 하거나 나중에 집을 판 돈을 똑같은 몫으로 나누어가지게 하고도 싶으나 우리 집 애들로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네. 전혀 래왕하지 않던 애들이 어쩌다 만나도 형님, 누나, 언니, 동생 하는 걸  듣기마저 힘드네. 그러다가 누가 먼저 집에라도 덜컥 들어보게. 애들이 네 죽네 나 죽네 싸우느라 정신이 없을 거네. 일이 그렇게 되면 우리 부부도 땅 밑에서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어지고 조직에서도 난처하게 될걸세.”  진로인이 차잔을 들고 엽차를 마시는 틈을 타서 수초가 한마디 했다.  “로인님께서 이것저것 너무 많이 고려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두분께서 공정한 유서만 남기시면 백년 뒤 시비가 있더라도 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진로인이 머리를 저으며 얼굴에 쓴웃음을 띠고 말했다.  “아무리 청렴한 관리라도 가사와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네. 이 며칠 사이 우리 부부는 텔레비죤에서 많은 법적 소송과 관계되는 프로를 보았다네. 이런 소송프로에서 보면 유서가 아니라 법적인 판결마저 집행하지 않으려 하는데 자네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친혈육을 적으로 만드는 것을 두 눈을 펀히 뜨고 지켜봐야 하는 경우도 있지.” 국장은 어딘가 실마리가 잡히기라도 한듯 진로인에게 “혹시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진로인이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우리 부부가 요즘 반복적으로 상의해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아직 숨이 붙어있을 때 먼저 집을 애들에게 나누어주자는 거네. 돈과 집에 있는 물건들은 우리가 죽은 다음 조직에서 책임지고 평균 나누어주면 큰 말썽이 없을 줄로 아네. 내 말의 뜻인즉 국에서 상급에 청시해서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별장에 대해 값을 정한 다음 우리 부부에게 집값을 먼저 지불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이네. 집은 쪼개서 자식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하지만 돈은 나누어줄 수 있지 않는가? 안 그렇수?”  그 말을 듣고 수초가 놀라며 물었다.  “그렇게 하시면 로인님은 어디에 가서 지내시겠습니까?”  수초의 걱정에 진로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문제 없지. 나 농장의 이 집에서 살 수도 있지 않는가! 나의 이 요구를 전 농장에서 꼭 받아줄 거네. 물론 우리로서는 별장이 영원히 농장에 속한다는 것과 우리가 죽은 뒤 즉시 농장에 돌려준다는 보증서와 증거를 글귀로 남길 거네. 우리가 별장에 들어있는 이 몇년간은 달마다 집세를 지불할 거네. 이렇게 하면 개인이나 집체나 다 손해가 없지 않겠는가.”  국장이 잠간 갑자르다가 먼저 대답했다.  “진로인님께서 후사를 이렇듯 세밀하게 안배해놓으시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진로인님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이 몇년간 로간부국에서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의 하나가 바로 사망한 로간부의 유산을 계승하는 문제입니다. 대부분 집들에서는 시비 없게 잘 처리하여 친목관계를 평소처럼 잘 유지해가지만 열집에서 간혹 한집에서라도 말썽이 생기면 헝클어진 삼실 같은 문제들이 꼬이고 꼬여서 삼년 오년, 심지어 십년 팔년이 지나가도 골머리를 앓게 만들지요. 제가 직접 성에 가거나 혹은 국에서 나서서 시의 어느 한 은행과 련계하여 담보대출을 맡는 방식을 참고하여 빠른 시일 내에 이 일을 현실화시키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번의 집 물량이 적어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어떤 로간부도 미처 집을 가지지 못했답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시에서 성에 자금청구와 땅청구를 동시에 제출하여 별장을 더 짓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진로인님의 생각이 실현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금방 하신 진로인님의 말씀이 필경은 두분의 념원일 뿐입니다. 저의 뜻인즉 네 자제분에 대한 공작도 사전에 잘해놓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국장의 말에 진로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두말이면 잔소리지. 그럼 우리 두길로 나누어 공작해보지. 나는 지금껏 자네들을 설득시키지 못할가봐 걱정했다네.” 진로인이 소집한 그번의 가정회의에는 네 자녀가 유산계승문제를 토론한다는 말을 듣고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출석했다. 진로인은 수초를 특별히 초청해서 회의기록을 담당하게 했다. 그리고 사전에 수초에게 부탁하여 협의서를 작성하여 타자까지 하게 했다. 회의가 끝난 뒤 매 자녀의 싸인을 받아 자료로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진로인이 내놓은 의견에 맏이와 둘째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얼굴에 담담한 기색만을 지어보일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나 수초가 보니 그 두 사람이 태연한 척하면서도 몰래 눈짓으로 뭔가를 주고받고 있었다. 허공에서 부딪치는 그들의 눈빛에는 반가움과 기쁨이 가득 묻어났다. 셋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줄곧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얼굴에 같지 않은 의견이 드러나게 씌여있는 사람은 오직 넷째 뿐이였다. 넷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 로혁명가들을 위해 지은 별장을 저는 진작 가보았습니다. 보니 정말 좋더군요. 외부환경을 보나 내부구조를 보나 흠 잡을 데 없더군요. 두분이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만년에 그런 별장에 들어 복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집에 들자면 몇만원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두분이 돈 쓰기 아까우시면 제가 대신 쓰지요. 내부 인테리어라든가 가구구입까지 제가 전부 도맡을게요. 두분은 그냥 들어가서 사시기만 하면 돼요. 이러면 되겠지요?”  맏이가 그 말을 듣고 즉시 반응했다.  “그래도 내가 맏인데 돈을 내도 나부터 내야 하지.”  그 말에 둘째가 찬바람이 쌩쌩 이는 어조로 한마디 던졌다.  “다 같은 자녀인데 가깝고 멀고 먼저고 후고를 가르지 말아요.”  그 때까지 셋째만 침묵하고 있다가 머리를 들고 몇몇 사람을 휙 쓸어본 뒤 다시 머리를 떨구었다. 네 자녀가 갖게 될 심사와 태도에 대해 진로인은 가정회의 전에 이미 수초와 함께 대개 점쳐보았다. 맏이와 둘째는 다만 부모들이 넷째에게 편향할가봐 마음을 조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 유독 넷째만이 두분의 피가 고루 섞인 친혈육이기 때문이였다. 만약 앞당겨 유산을 계승하고 평균 나눈다면 그들은 두손 들어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셋째의 경우는 비교적 특수했다. 혈연으로 따진다면 그녀와 진로인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계승권을 가진다면 그녀로서는 당연히 감지덕지할 일이다. 네 형제들 중에서 사달을 낼 사람은 사실 넷째였다. 그는 부모와 갖고 있는 혈연의 우세를 믿고 재산문제에서 혼자 독점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다. 회의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자 그 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안해가 급히 입을 열었다.  “여보~! 당신도 좀 한마디 해보세유.”  그제야 진로인이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우리 집에 부른 것은 조직에서 나에게 준 이 돈을 평균으로 너희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좋겠는가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동의한다면 이 협의서에 서명하거라. 일단 동의하여 서명하면 영원히 뒤집지 못한다. 그 별장을 사느냐 않느냐는 내가 진작 시에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시에서 나의 청구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집값을 계산해서 나에게 돈을 보내올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는 상의할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난 몸은 늙었지만 머리는 아직도 말짱하다. 내 이 몇마디 말이 아직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느냐?”  진로인의 얼굴빛이 엄숙하게 굳어지고 말에도 찬기운이 묻어있었다. 자녀들은 원래 속으로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데다가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날을 세워 말하니 저마다 입을 꾹 닫아버렸다. 다만 넷째만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릴 뿐이였다. 지금 부동산시장이 하늘을 찌를듯 매일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집은 요구하지 않고 돈만을 중히 여기니 얼마나 바보스러워요? 그러자 안해가 낮은 목소리로 화내듯 말했다.  “이 일을 가지고 나와 네 아버지도 의논할 만큼 의논했다. 우리가 만약 돈만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내려오는 돈도 너희들에게 나누어주려고 하지 않았을 거다. 그것을 은행에 저축해두고 리자만 받아먹으면 좀 좋아서!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다 너희들을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집값이 올라간다면 돈을 나누어가진 뒤 그 돈으로 너희들도 집을 사면 될 것 아니냐? 큰 집을 사지 못하면 작은 집이라도 사면 되지. 듣자니 작은 집 값이 더 빨리 오른다더라. 너희들이 돈을 벌면 부모된 우리도 따라서 기쁜 거지 바보스럽기는 뭐가 바보스럽다는 거냐?”  진로인이 끙끙거리다가 퉁명스럽게 안해의 말을 잘랐다.  “그 자식과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해? 큰 집을 너 한놈에게만 주면 우리 집 식구들이 바보스럽지 않은 거지? 그런 거냐? 이 자식 꿈도 꾸지 마!” 진씨네 네 자녀들이 유물을 선택하는 순서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셋째의 딸과 넷째는 이제는 더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맏이와 둘째의 아들딸만이 아직도 엇바꾸어 집문을 들락거릴 뿐이였다. 넷째가 부러 짜증스럽고 높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배고파 죽겠어요. 이제 그만들 해. 이 집에 또 뭐가 있다고 그래?”  수초가 담배를 꺼내 넷째에게 한대 내밀며 위로하듯 말했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좀더 참아요! 제 보기엔 위로금이 내려온 뒤 아저씨 형제들을 찾아 한번 더 모인 다음 다시 모일 기회는 아마 많지 않을걸요.”  넷째는 빨아들였던 연기를 토하며 “그건 그래. 오늘 같은 날에도 어떤 사람은 안 왔으니까!”  수초가 뒤이어 넷째에게 말했다.  “이 몇년간 관찰해보니 진로인이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아저씨였어요.”  넷째가 눈섭을 치켜세우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런데 난 왜 그걸 보아내지 못했을가?”  “만약 아저씨가 눈치 채게 했다면 아저씨 아버지 아니지요. 아저씨는 진로인이 생전에 누구와 말할 때 가장 눈을 많이 부릅떴는지 알아요? 바로 아저씨였지요.”  그 말을 듣고 넷째가 한참 멍청하게 있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눈을 부릅뜬 것도 관심으로 생각해야 돼?”  수초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생각하고 또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있을 거예요.” 얼마 지나지 않아 맏이와 둘째 집 사람들도 집안으로 더 들어가지 않고 휴대폰으로 물건을 실어갈 트럭을 부르고 있었다. 수초는 그제야 그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질녀와 질남들을 집안으로 들어가서 마음대로 물건을 골라가게 했다.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사람도 몇이 남지 않았다. 담배 한대를 피우는 사이에 누군가 진로인이 자체로 피나무가지를 손질해서 만든 지팡이를 들고 나왔고 누군가는 또 작탄 껍데기로 만든 녹이 알락달락하게 쓴 구리필통을 들고 나왔다. 또 누군가는 호두알 두개를 주었다. 그 호두를 수초는 잘 알고 있었다. 몇년 전 진로인은 그걸 손에 쥐고 자꾸 비벼댔다. 진로인은 그것을 농장의 늙은 호두나무 밑에서 주었다고 했다. 후에 중양절을 쇨 때 로간부국에서 매 로간부들에게 건강용 베아링볼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베아링볼은 움직일 때마다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진로인은 그제야 호두를 버렸다. 림종할 때 진로인은 그 베아링볼을 수초의 손에 놓아주며 “수초! 지난 몇년간 줄곧 날 돌봐줘서 정말 고마워. 이걸 기념으로 주니 받아주게나!” 했다. 모였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자 집은 휑뎅그렁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여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였다. 수초는 전화를 걸어 그 때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농장사람들을 불러왔다. 당년에 진로인이 여기에서 장기적으로 세내고 살아갈 계획을 농장 여러 사람들에게 말해주자 농장에서는 재빨리 집 수리와 인테리어에 착수해 원래 세칸이던 집을 다섯칸으로 뜯어고쳤다. 농장 령도들은 진로인이 여기에서 만년을 보내시는 건 우리 농장의 영광이니 장차 농장이 불경기에 처하더라도 로혁명가를 잘 모시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수초는 남아있는 진씨네 네 자녀 대표들에게 다시 한번 들어가서 잘 살펴보고 더 문제가 없으면 집 소유권 이전서에 서명하라고 말했다. 그들 몇은 수초 뒤를 따라 집안을 한칸한칸 순차적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어제날 진로인 부부의 숨소리와 살아가는 냄새로 꽉 찼던 집안에 남은 것이란 공허와 쓸쓸함 지저분함 뿐이였다. 바닥 여기저기에 가득 버려진 물건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물건들에 불과했다. 몇사람이 집 소유권 이전서에 막 싸인하고 있을 때 수초는 문득 벽에 비스듬히 걸려있는 낡은 거울틀을 보았다. 액틀은 면판이 작아서 안에는 몇장 안되는 옛날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진 속에는 가족사진이 있었고 진로인이 생전에 농장 동료들과 함께 찍은 집체사진도 있었다. 다른 한장은 언제인가 수초가 진로인을 부축하여 산을 내려오면서 찍은 사진이였다. 사진은 모두 퇴색하여 그다지 선명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칼라 사진이 가장 심하게 퇴색했다. 수초는 액틀을 벗겨낸 다음 바닥에 널려있는 낡은 옷으로 거울 우에 묻은 먼지를 닦으며 말했다. 이걸 누구도 가져가지 않으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수초의 말에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그들이 수초에게 보여준 것이란 일부러 지어내는 초연함과 도망치듯 감추는 눈빛 뿐이였다. 혹시 셋째가 오늘 직접 이 집에 왔다면 옛날 사진이 들어있는 이 거울틀이 수초의 손에 들어올 수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셋째도 이미 60세를 넘긴 부인이여서 머리에 흰서리도 내려앉고 걸음걸이도 그다지 민첩하지 않았다. 진로인이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그녀만이 이틀 사흘 간격으로 병원에 찾아와서 진로인을 보살폈고 매번 진로인을 보러 올 때면 언제나 손에 닭고기탕이나 물고기탕이 들어있는 단지를 들고 있었다. 어떤 때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기가 올 수 없으면 아들이나 딸을 대신 보내기도 했다. 그녀 외의 다른 세 자녀와 그들의 식구들은 특수한 일로 병원에 오라고 전화하지 않는 한 거의 만나볼 수 없었다. 그들이 얼굴을 내밀지 않는 구실은 놀랄 정도로 일치했다. 말하자면 로인은 당의 사람이기에 로인의 일은 당을 믿고 당에 의뢰한다는 것이다. 진로인의 골회를 부인과 함께 합장한 후 셋째는 제일 마지막에야 묘지를 떠나면서 묘지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쫏듯 큰절을 올렸다. 그녀는 다시 한번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부터 이 딸이 두분을 만나뵈러 자주 여기에 찾아오겠습니다. 두분께서 하늘나라에서도 이 딸을 잘 보호해주시고 그곳에서 이 딸이 쓸 땅도 마련해주세요. 다음세상에 가서도 이 딸은 여전히 두분의 딸이 되겠습니다.”  셋째 말은 다시 한번 수초를 감동시켰고 슬프게 했다.  “피란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피는 정말 물보다 짙은 것인가? 만약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친혈육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초는 눈가장에 맺힌 눈물을 닦고 앞으로 걸어가 셋째를 부축하며 말했다.  “누님, 우리 이만 돌아갑시다. 이 몇년간 보여준 누님의 뜻을 로인님은 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셋째가 말했다.  “난 여러분들이 모두 집에 일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 난 따라가지 않겠어요. 내가 여기에서 좀더 있으면서 아버지 어머님을 동무해드리면 안될가요?”  수초가 셋째를 보며 말했다.  “누님이 가시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네형제중 그 누구도 빠지면 안됩니다.”   셋째가 또 수초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정 그렇다면 저의 딸을 불러서 데리고 가요. 그 애가 나를 대표해 참가하면 돼요.”  밤장막이 서서히 내리고 있다. 옛날의 진씨네 집 식구들은 모두 가고 방에는 수초 한 사람만 외롭게 남았다. 수초는 갑자기 피곤을 느꼈다. 두다리가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 데다가 마음까지 시큼해나서 어딘가에 숨어서 울고 싶었다. 진로인이 세상 떠서 지금까지 옹근 사흘 낮 사흘 밤 그는 쉼없이 빈객을 맞고 바래고 크고작은 가정회의를 소집하고 장례와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면서 마치 자기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을 대하는 것처럼 줄곧 랭정하려 애썼다. 그러나 지금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 풀리자 이제야 진풍년로인이 정말 떠나갔다는 생각이 실감 있게 찾아들었다. 그래, 진로인은 멀리 간 거야. 우리가 모르는 다른 한 세계로. 이제부터 진로인은 다시는 만날 수 없어. 수초는 진로인을 존경했다. 그러나 바로 존경하기 때문에 로인의 사망에 대해 이렇듯 절절한 애통과 비애, 공허함과 처연함을 느끼는 것이다. 네 자녀 중에서 다만 진로인과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딸만이 가까이 다가와서 살갑게 대했으니 진로인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수초는 어디에 가서 어찌해볼 방법이 없는 로인의 난감함과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진로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아물 수 없는 흉터가 남아있었다. 평소 사람들은 알면서도 그것을 건드리지 않으려 했고 더 상하게 하지 않으려 했다. 안해가 생존해있을 때에도 례외는 아니였다. 수초는 거울틀을 품에 안고 문밖의 계단 우에 쪼크리고 앉았다. 웬 영문인지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끊임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날 저녁 수초가 거울틀을 뜯어서 잘 닦은 다음 그 속에 들어있는 낡은 사진들을 자신의 사진첩에 옮겨놓으려고 거울틀의 모서리에 박혀있는 작은 못을 뽑아내고 사진틀 뒤에 있는 엷은 합판을 젖히는 찰나, 하나의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 발견이란 화선지 우에 그려놓은 그림 한장이였다. 휘우듬하고 단단하게 우뚝 선 늙은 소나무 가지 우에 앉은 대머리 독수리 한마리가 동그렇게 뜬 매서운 눈으로 멀리 바라보며 막 날아가려고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었다. 보는 사람의 눈을 그대로 사로잡는 독수리의 두 눈은 칼끝 같이 예리하고 악마 같이 흉악했다. 그림은 모두 먹으로만 그려졌는데 어떤 곳은 진하게 먹을 뿌리고 어떤 곳은 담백하게 슬쩍 칠해서 세밀한 화법과 간단한 스케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했다. 그러나 화법보다는 그림이 보는 사람에게 주는 이미지가 기절할 만큼 충격적이였다. 그림의 왼쪽 아래 귀서리에 있는 락관에는 로유을묘년동老榆乙卯年冬日이라고 찍혀있었다. 그림에서 다만 도장만이 주홍색이였는데 바로 그 주홍색 때문에 화면이 보다 선명하고 산뜻하게 보여서 보는 사람에게 남다른 감개와 감동을 주었다. 그림 앞에 선 수초는 어리둥절한 채 못 박힌듯 오래도록 움직일 줄을 몰랐다. 을묘년, 당시는 바로 1975년이였고 바로 ‘문혁’이 끝나기 1년 전이다. 수년 전 수초는 진로인과 한담하다가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문혁’ 때 성소재지에서 한 화가가 살았는데 나이는 진로인과 비슷했고 그림 때문에 반혁명 루명을 쓰고 이곳 농장에 로동개조하러 왔다고 했다. 그 화가는 술을 잘 마셨는데 술을 마신 뒤에는 쩍하면 고함도 치고 노래도 불러대서 우사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싫어했다. 어느 해 겨울 화가가 병으로 몸져눕자 진로인은 그를 집으로 데려와 몸조리를 하게 했다.  “기인은 모두 이상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붓을 잡기 싫다더군. 조금이라도 입에 술을 대야 필끝에서 신바람이 인다고 늘 말했지.” 그 때 수초가 진로인에게 물었다.  “화가를 집에까지 청해서 보살폈는데 그 때 그림 몇장이라도 그려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 말에 진로인이 하하 통쾌하게 웃고는 한참 후에야 말했다.  “무슨 체면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설사 그려준다 하더라도 나야 보고 모르지 않는가!”  수초가 진로인에게 물었다.  “그가 그렇게 엄중한 죄명을 썼다는데 무슨 그림을 그릴 줄 안대요?”  진로인이 대답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화가는 독수리를 그리는 것이 특기라고 하더군. 그런데 독수리를 그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머리 독수리만은 그리지 말았어야 했어. 그가 그린 대머리 독수리 그림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장개석의 혼을 부른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림표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했다네. 장개석과 림표는 다 대머리 아닌가! 어휴~ ‘문혁’ 때는 이러한 황당한 일들이 많았지.”  수초가 또 물었다.  “그 화가가 떠나간 뒤 그 분과 더 련락하지 않았어요?”  진로인이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련락이라는 게 다 뭔가! ‘문혁’이 끝나자 그 화가는 성소재지로 돌아갔지. 그런데 듣는 말에 의하면 성에 도착하자마자 기쁜 김에 친구들을 찾아 술을 마시며 경축했는데 그 날 밤 너무 과음한 탓에 그 자리에서 취해 쓰러진 뒤 다시 깨여나지 못하고 승천했다지 뭔가! 어휴~ 이제 와서 보니 그가 성으로 돌아가지 말고 여기 농장에 계속 있었더라면 어쩌면 몇년 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보아하니 그 화가가 바로 유씨였다. 유씨는 진로인의 댁에 자리를 옮겼다가 병이 낫자 진로인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 진심을 털어놓았다. 혹시 술을 마신 뒤 주흥을 이기지 못해서였을가? 유씨는 진로인 집에 선지를 펴놓고 당장에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력사의 화책에 길이 남을 대머리 독수리 그림을 그려서 선물했다. 혹시 진로인이 이 대머리 독수리 그림이 진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알고 또 유씨에게 죄명을 들씌울가봐 조심스럽게 거울틀 뒤에 감추어놓았는지도 모른다. 같은 도리로 유씨도 이 그림이 진로인에게 혹시 쓸 데 없는 시끄러움을 끼칠가봐 그림에 아정雅正이라든가 혜존惠存과 같은 글귀를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에 이르러 유씨와 진로인 모두가 학을 타고 신선이 돼서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수수께끼로만 남았다.   그 날 저녁 수초는 컴퓨터로 인터넷에 올라 바이두百度에서 유씨와 그의 그림의 가격을 검색해보다가 입이 딱 벌어져 한동안 숨도 바로 쉬지 못했다. 알고 보니 유씨는 화단에서 진작 잘 알려진 명숙名宿이였고 그의 유작은 그 어느 작품이나 천문학적인 값을 호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혹시 더 비싸지 않을가? 며칠간 련일 쉼없이 바쁘게 돌아친 수초는 실면했다. 명화가의 명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보통사람인 수초로서는 어떻게 해도 풀 수 없는 골드바흐의 추측이였다. 진로인의 넷째에게 줄가? 그러나 한장의 그림을 어떻게 평균 분배한단 말인가? 네형제자매가 만약 그림을 팔아서 돈을 나누어가지자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일을 말하지 않고 하자면 시끄럽지 않을가? 무서운 건 유씨네 자녀들이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림의 소유권 문제를 추궁하면 그 소송은 절대 짧은 시간 내에 공정한 판결이 내려질 일이 아니였다. 그럼 로간부국 령도들에게 바친다? 그러나 속담에 ‘철로 만든 아문, 흐르는 물 같은 벼슬’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지금의 국장들이 승진하거나 파면돼서 혹 다른 곳에라도 가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장래의 국장들 또한 어느 시점에서 신선이 되고 꽃잎새처럼 스러져버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럼 내가 소장하고 있을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수초는 가슴이 쿵쿵 높뛰여 자기도 모르게 벌떡 자리를 차고 침대에서 일어나앉았다. 그 바람에 옆에서 자고 있던 안해가 잠을 깨고 짜증냈다.  “귀신 같이 왜 이래요? 진로인이 꿈에 나타나 부탁한 걸 가지구 놀랄 것까지야 없잖아요!”  수초는 길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베개를 베고 도로 누웠다. 진로인의 유물들은 이미 네 자녀에게 평균으로 다 나누어주었고 분배 일정과 결과를 타자한 서류에 서명까지 깨끗이 했다. 그건 철 같은 증거이다. 지금 손에 있는 그림은 그들 네 자녀가 모두 가지지 않은 버린 물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후에 간혹 이 ‘독취도秃鹫图’가 세상에 공개돼서 사람들이 수초가 진로인의 유물을 나누기 전에 화가의 그림을 사적으로 감추어두었다고 모함하면 어떻게 변명해야 하는가?! 어느덧 창문 밖이 희붐히 밝아왔다. 이른아침부터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차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창틈을 비집고 간간이 들려왔다. 진로인이 선대仙台로 갔다고는 하지만 아직 첫 7일 종이를 태우지 않았고 내하교奈何桥도 건너지 못하고 맹파탕孟婆汤도 드시지 못해서 집에서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수초는 어서 잠들기를 바랐다. 그래야 진로인이 꿈속에 나타나 어떻게 해야 안전할지 그에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국 옮김)   출처:2018 제3호
윤림호론: 약자에 대한 동정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 최병우   1. 서론 윤림호는 소년기에 문혁 초기 홍위병들에 의한 혼란을 경험하고 문혁중에 성장한 세대이다. 윤림호는 1954년 5월 23일 흑룡강성 동녕현 로흑산향 만보만에서 윤영호와 라경옥 부부의 7남 3녀 중 아홉째로 태여났다. 형들이 다 요절하는 통에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허약한 몸으로 태여난 윤림호는 자라면서 점차 건강해져 집안의 유일한 아들로 성장하였다. 아버지의 하방으로 쏘련과의 변경지대인 동녕현 삼자구향 포자연촌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윤림호는 5학년 때 문혁이 시작되자 소학교를 자퇴하고 사회로 나온다. 윤림호의 아버지는 친일부역죄로 문혁 내내 타도대상이였고 남편 때문에 고초를 겪던 윤림호의 어머니는 1972년 사망한다. 어머니가 죽은 이듬해 둘째누이가 사는 흑룡강성 해림현 해남향 남라고촌으로 이주해 촌당지부서기였던 자형의 도움으로 벽돌공장 로동자 생활을 하며 1978년 박순녀와 결혼하여 두 딸을 얻는다. 아버지의 력사문제로 고민하던 윤림호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저 1977년 겨울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로동과 창작을 병행하였다. 투고한 작품마다 주제가 산만하고 언어사용이 합당하지 않다는 리유로 퇴짜를 맞았는데 소학교 중퇴 학력인 윤림호로서는 리해하기 힘든 일이였다. 1979년 봄 《흑룡강신문》에 투고한 가 발표된 뒤 윤림호는 남라고촌에 살면서 창작을 지속하였고 1983년 조선족작가 양성의 필요성에 따라 연변대학교에 설립한 연변대학교 문학반에 입학하여 1985년까지 수학하였다. 졸업 후 윤림호는 1987년부터 1988년 사이 《송화강》편집부에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꽃동산》 소년아동 편집부에서, 1997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조문편집부에서 편집담당으로 근무한 3년 반 정도와 1996년 10월에 세계한민족문학인대회에 참가 차 한국에 갔다가 불법체류한 6개월을 제외하고는 농민작가로서 창작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 윤림호는 세권의 소설집과 두편의 장편소설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중단편소설과 동화와 수필 등을 남기고 2003년 3월 31일 간암으로 타계하였다. 윤림호는 작품의 량이나 작가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문이 열대여섯편에 불과할 정도로 비교적 평단의 관심 밖에 놓여있었다. 본고는 그의 소설 전체를 주제적 특징에 따라 정리하고 이러한 주제가 조선족이 처한 상황의 변화와 윤림호의 개인적 삶 등과 어떤 관련을 갖는가를 밝히고저 한다. 윤림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건으로 청소년기의 삶을 규정한 문혁과 개혁개방, 인간으로서 또 작가로서의 삶에 변화를 준 연변대학 문학반 생활 그리고 조선족의 삶을 뒤흔든 중한교류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윤림호가 1985년에 《투사의 슬픔》을, 1992년에 《고요한 라고하》를 출간하고 2000년대에 들어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와 《승냥이가 울던 계절》 등을 상재한 것은 윤림호의 삶의 전환점과 어느 정도 일치점을 갖는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본고에서는 각 시기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주제의 경향을 정리하고 각 시기에 그러한 주제에 집중하게 된 내외적 요인을 찾아보고저 한다.    2. 억압된 정치상황 속의 감추어진 영웅 윤림호는 1983년 연변대학교 문학반 신입생을 선발할 때 흑룡강성에서 추천한 3명에 속해 소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대학생이 되였다. 서른 나이의 가장인 윤림호는 인생수업이나 문학수업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과목만 열심히 수강하고 여타의 과목은 불성실하게 넘어갔다. 당시 문학반의 대부분 학생들이 이미 결혼을 하였고 등단한 사람들도 없지 않아서 공부보다는 정치토론이나 문학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윤림호는 1985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등단 이후 쓴 작품들을 모아 《투사의 슬픔》을 간행한다. 그가 대학 졸업을 맞아 첫 작품집을 기획한 것은 소학교 중퇴 학력으로 소설가가 되여 작품을 창작하고 연변대학교 문학반에서 소설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확보하고 난 뒤, 작가로서 하나의 전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하겠다. 《투사의 슬픔》에 수록된 작품들은 작가로서 출발점에 서서 정열적으로 창작에 림하던 시기의 문학정신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지향하는 주제를 파악하는 일은 윤림호 소설의 밑바탕을 읽어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소설집 《투사의 슬픔》에 수록된 17편의 소설은 등단 후 6~7년간 발표한 작품 중에서 선정되여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윤림호가 등단한 것은 문혁 직후인 1979년으로, 사회주의 리념 강화로 국가적 혼란을 경험한 중국 사회가 새시대로 나아가려 하지만 리념을 중시하는 보수파와 실리를 중시하는 진보파의 갈등으로 일정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 시기였다. 이 시기 중국 문단은 문혁의 상처를 기록한 상흔문학과 문혁시대를 반성하는 반사문학 등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투사의 슬픔》에 실린 작품 대부분은 새로운 시대를 지향하여 집체에서 개체로 나아가는 시기에 자신이 경험한 중국 현실을 소설화하고 있다. 특히 이들 작품은 중국현대사의 모순에 찬 시대에 주위의 비난을 감수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실천했던 인물, 즉 외곡된 현실 속에 감추어진 작은 영웅들을 기린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단편소설 은 위만주국 때 순사를 지낸 전력으로 정치투쟁의 대상이 되여 온갖 박해를 받다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절름발이 령감 렴창록의 숨은 과거를 제재로 한다. 위대한 항일투사 황영옥의 아들 김기욱이 교사가 되여 룡드레촌에 부임하자 친일분자로 마을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 절름발이 령감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 당혹스럽게 한다. 자주 어머니의 안부를 묻던 령감은 죽음을 맞이한 순간 김기욱을 불러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긴다. 정치투쟁의 대상이였던 렴창록의 말에 모멸감을 느낀 김기욱이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자 단숨에 달려와 심심한 조의를 표해 기욱을 당혹하게 한다. 어머니의 회고에 따르면 렴창록은 지주의 아들로 위만주국 시대에 순사를 지내 해방된 중국에서 정치투쟁을 받았지만 실상 그는 아버지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순사가 되였던 인물이다. 그는 짝사랑하던 황영옥이 항일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히자 그녀의 부탁으로 항일무장단체에 일군의 동태를 전해주고 사형장에 끌려갈 때 사형집행인을 죽이고 총을 쥐여주면서 일을 수습한 후 항일무장단체에 귀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황영옥을 추격하는 일본군을 따르다가 그녀가 쏜 총에 다리를 다쳐 순사를 그만두고 만다. 황영옥은 렴창록이 자신의 총에 맞아 죽은 줄만 알고는 그를 잊고 살았고 렴창록은 력사반혁명분자로 투쟁을 당하면서도 황영옥의 공적에 루가 될가 두려워 사실을 감추고 살았다. 은 한 투사의 회고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후 지주계급과 국민당 특무 그리고 친일분자를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 과거청산은 이루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한 희생을 당했겠는가를 묻고 있다. 아울러 렴창록과 같이 암울한 시기를 살면서 과오보다 공적이 적지 않았음에도, 박해를 당하면서도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렴창록 같은 인물이야말로 암울하고 억압적인 정치상황 아래서 진실한 삶을 산, 감추어진 영웅이라 주장한다. 이렇듯 《투사의 슬픔》에 실린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숭앙을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닐지라도 억압된 시대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한 감추어진 영웅을 현양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은 19년 동안 라고하에서 배사공 일을 하며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다가 라고하다리를 건설하는 공사가 시작되자 모아두었던 돈을 희사하고 다리가 완공되기 직전에 숨을 거둔 로인의 일생을 통해 남을 위해 헌신하는 작은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서는 말광대다리 자리에 새 다리를 건설하려 애쓰던 할아버지가 문혁 중에 비판받다 죽고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할아버지를 돕던 벙어리 삼쇠가 자발적으로 헌금을 하자 마을사람들도 참여해 다리를 완공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리익을 돌보지 않고 마을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이 진정한 영웅이라는 시각을 드러낸다. 또 에서는 조선전쟁 때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경계심을 풀어내고 한국군의 특무로 체포된 명림의 마음을 되돌려 정보를 얻지만 총상으로 죽은 리철주 반장이, 에서는 녀성스럽지는 않지만 세쌍둥이 중 막내로 집안일을 다 하고 농사도 혼자 지어 집안의 기둥이 되는 삼숙이가, 에서는 자기 집 머슴을 도와주다 함께 도망쳐 정치투쟁이 심하던 시기에 비판을 받았으나 남편을 위해 헌신하다 죽은 녀성이, 에서는 항일운동을 하던 인물을 구하기 위해 일본인 의사를 죽였으나 놈이 지른 불에 다섯명의 환자가 죽어 해방 후 살인죄로 투쟁당한 큰아버지가, 에서는 혁명영웅이라는 이름 때문에 마을 일에 앞장서다 건강이 망가진 안해를 조금이라도 쉬게 하려 애쓴 남편이 등장한다. 또 이 작품들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리랑》 1986. 5)도 위만주국 말기부터 문혁까지의 무법적인 시대에 사령산의 나무를 지켜내려 노력하다 죽어 사령뫼에 묻힌 네 사람과 그들의 딸로 태여나 산과 나무를 돌보며 사령산을 미래의 자원으로 키우다가 실화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고 죽어 사령뫼의 다섯번째 인물이 된 산골처녀를 그리고 있다. 이들의 삶은 국가정책에 따라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 강요되는 정치상황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 아니였지만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어 주변에서 그들을 칭송하지 않더라도 진정한 가치를 실천한 것이다. 윤림호는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듯하나 쉽지 않은 길을 간 사람들의 삶을 통해 억압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킨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감추어진 영웅임을 강조한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타인에 대한 사랑을 견지한 작은 영웅들에 대한 관심이 윤림호의 초기 소설이 지향한 세계였다. 몇년간의 노력을 통해 등단을 하고 늦은 나이에 가장의 책무를 버려두고 가족과 떨어져 대학생활을 하면서 윤림호는 문학에 대한 열정과 인간의 진정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창작에 림하였다. 그의 초기소설이 보여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는 삶에 대한 례찬은 그의 초기소설을 관통하는 한 주제였다. 그의 이러한 인간다움에 대한 경사는 억압된 정치상황에 따라 시대의 흐름에 부화뢰동하여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을 비판하는 소설로 변형되여 나타난다. 에서 문혁 중에 극렬좌파로 나선 한길녀는 남편 문일령감이 아들 약값에 보태려 시작한 담배밭을 고발하여 갈아엎고 인삼밭을 몰래 개간하자 소자본주의의 길로 나간다고 고발하려 한다. 또다시 조리돌림당할 일이 겁나고 너무나 변한 안해가 무서워진 령감은 안해의 목을 조른 뒤 스스로 목을 매여 죽는다. 다행히 죽음을 면한 안해는 남편의 유서를 보고 각성하여 공산당적을 버리고 참회 속에 살다 사망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령감의 인삼밭에서 몇년 묵은 인삼들이 발견되자 현정부에서는 큰 관심을 보인다. 문혁기간 중 그들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문일령감이 억압의 시기에도 묵묵히 인삼밭을 일구고 경제문제에 치중한 데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것이다. 이 작품은 문혁이라는 정치적 광풍 속에 변해버린 인간성을 비판하고 그 속에서도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인물을 재평가하여 개혁개방 이후의 경제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 로동영웅, 상장 등으로 호도하여 로동력을 착취하던 문혁이라는 정치황이 만든 사회적 혼란과 그에 부화뢰동하여 인간성을 내팽개친 인간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보이는 이 작품은 《투사의 슬픔》에 실린 소설 중에서 가장 강한 비판 정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투사의 슬픔》에 실린 소설들은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보다는 렬악한 현실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을 견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는바, 그 대표적인 례가 이다. 이 작품은 개혁개방으로 경제정책이 책임제로 전환된 후, 알뜰한 집안 살림으로 부자가 되지만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못 받는 조령감과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일을 도와 마을 인심을 얻어 좌상으로 숭앙받는 오로인과의 비교를 통하여 상부상조하는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몇년래 정책이 좋아지여 우리에겐 살길이 열리였네. 그러나 빨리 부유해지고 늦게 부유해지는 자가 있지만 빨리 부유해졌다구 사람들을 떠나선 안되네. (《투사의 슬픔》, 46쪽)   개혁개방으로 경제적인 부가 축적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면서 빈부의 차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부지런함으로 다른 사람보다 부유해진 조령감은 자신의 부가 노력의 결과라는 생각에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다가 따돌림을 받는다. 오로인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억울해하는 오랜 벗 조령감에게 공동체의식을 가질 것을 부탁한다.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자유로와진 시대에도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자세와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충고이다. 이는 정치적 억압이 사라지고 경제적 자유가 주어진 시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 윤림호의 대답일 것이다.   3. 시대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 문혁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본격화하면서 중국사회는 점차 경쟁이 치렬해지고 빈부의 차가 생겨나기 시작하여 돈에 대한 열망이 폭발한다. 개혁개방은 개인적인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였고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축적하여 개혁개방의 혜택을 누리게 되자 가난하나마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던 마을이 와해되여 타락한 방법으로라도 부를 획득하기 위하여 혈안이 된다. 특히 조선족사회에서는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으로 대한민국의 존재를 알게 되고 가족방문의 형태로 한국에 가서 큰돈을 벌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돈을 벌기 위해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출국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일들이 빈발한다. 윤림호는 《투사의 슬픔》을 출간하고 남라고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창작을 하는 생활을 이어간다. 정치적 억압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작은 영웅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윤림호는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를 바라보면서 개혁개방이 갖는 의의보다는 그에 부응하여 폭발하는 인간의 욕망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윤림호는 7년 동안 발표한 소설 중에서 단편소설 13편과 중편소설 2편을 선별하여 한중수교가 이루어지기 직전에 《고요한 라고하》를 출간한다. 이 작품집에 실린 작품에서 우선 눈에 뜨이는 주제는 사랑인바 그 례로 로년의 사랑을 담고 있는 을 들 수 있다. 할머니가 산속 움막의 륙손이로인과 정분이 나서 돼지풀을 뜯으러 다니는 것을 안 아들 내외가 소문이 두려워 산에 가지 못하게 돼지를 팔고 남은 것은 도축한다. 륙손이로인을 만나지 못하게 된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고 로인이 찾아와 아들 내외에게 산속에 데려가 병을 고치겠다고 하나 거절당한다. 결국 할머니는 병으로 죽고 륙손이로인은 라고하에 투신자살한다. 삶의 끝자락에 선 로인들이라도 사랑을 느낄 수 있지만 자식들은 주변의 소문이 두려워 그것을 막는 것이 보통이다. 윤림호는 이러한 일반적인 행태에 대해 로년의 진실한 사랑이 그들에게 하나의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누가 소문이라는 굴레로 로년의 사랑을 막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주변의 소수자, 약자들의 사랑에 대한 윤림호의 관심은 여러 작품에서 반복된다. 옆집 홀아비에 대한 관심을 주변과 시어머니의 눈 때문에 포기한 미망인 미금이가 리혼녀인 친구 미자가 홀아비와 결혼하자 미쳐가는 과부의 욕망을 그린 , 쌍둥이 아들을 가진 남선생과 사랑하여 자식을 얻는 추녀 녀선생의 사랑을 그린 , 남성스러운 외모와 성격으로 산속에서 양봉을 하며 홀로 지내던 손이랑이라는 처녀와 약재밭을 관리하러 온 정호와의 사랑과 리별을 그린 , 아버지의 력사로 살길이 없어 방목장 한족 장서방에게 팔려간 천치 빵떡이가 보여주는 남편과 동생에 대한 사랑을 그린 등의 작품이 그 례이다. 약자의 사랑, 인간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이성에 대한 욕망을 비난하기보다 그것을 리해하고 이성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그들의 권리이며 그들도 인간임을 강조한 이들 작품은 윤림호의 인간관을 잘 보여준다. 《고요한 라고하》에는 개혁개방과 한국과의 교류에 따라 일확천금하려는 욕망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다수 등장한다. 에는 가공공장 민창호와 양돈호 우대일 그리고 양계호 오봉식 등 선향촌에서 개체로 공장과 농장을 하려는 세 동서가 등장한다. 이들은 선향촌 출신으로 해외에서 부호가 된 우락부로인이 고향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행정단위 사람들을 따돌리고 로인을 마을로 모셔 극진히 대접한다. 그러나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아부하는 민창호, 안해 묘란의 애교로 환심을 사는 오봉식, 동성동본임을 내세워 접근하는 우대일 등이 각자의 욕심 때문에 갈등하지만 로인이 갑자기 죽어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된다. 개혁개방 이후 화교들이 고향에 투자를 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풍자한 이 작품은 돈을 벌려는 욕심에 들끓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의 말미에 우락부로인의 아들이 장례를 치르고 나서 세 동서에게 하는 마지막 말에 작품의 주제가 요약되여있다.   나는 부친이 오시기 전후의 일들을 다 료해하였습니다. 동포로서의 나의 이번 체득은 아주 깊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규납(귀납, 필자)한다면 합심이 투자보다 낫다는 그거지요. (《고요한 라고하》, 32쪽)   외국에서 들어오는 투자금을 잡기 위해 경쟁하기보다 합심하라는 이 말은 개혁개방으로 외국자본이 투자되고 화교들이 고향에 투자하는 상황에 대처할 방안을 소설적으로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투자를 기대하고 각자도생하기보다는 합심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은 개혁개방 직후 집체에서 개체로 나아가는 시기에 중국의 농촌사회가 겪은 현실과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잘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에서도 그려진다. 항미원조전쟁에서 포로가 되였던 과거 때문에 정치투쟁의 대상이 된 피덕구는 리혼을 당하고 자식과도 계선을 나눈 채 어렵게 살아간다. 그런데 한국에서 전사한 줄 알았던 전우 정회찬의 편지가 오자 왕래도 없이 지내던 두 아들은 갑자기 효도를 하고 새 남편이 감옥에 간 전부인도 찾아온다. 정치투쟁의 대상이 되여 힘든 아버지와 계선을 나누고 왕래를 단절했던 아들들이 한국에서 편지가 오자 돈을 벌 기회가 왔다는 욕심에 아버지를 서로 모시겠다고 싸우는 모습은 개혁개방과 한국과의 교류 이후 돈에 대한 욕망만 가득한 현실을 희화한 것이라 하겠다. 자신의 행동은 반성도 않고 돈만을 따라 달려드는 인간의 모습을 비판한 작품으로 백만호 부자와 불로담이라는 오지에 살고 있는 구구할미와의 관계를 그린 가 있다. 백만호의 아버지는 항일유격대의 자식인 자신을 불로담에 데려다 길러준 구구할미의 남편이 친일문제로 투쟁당했을 때 외면하고는, 자신이 정치적 리유로 타도되자 아들을 불로담에 보낸다. 백만호는 구구할미가 데려다 키운 깜장네를 겁탈하고 부부로 인정받았지만 아버지가 명예 회복이 되자 도시로 도망쳐 련락을 끊어버린다. 그러나 사업을 벌였다 망한 백만호는 큰돈을 벌었다는 구구할미를 찾아 불로담에 가서 대형 식당의 경리가 된 깜장네와 자신의 딸 산매를 만난다. 질병을 고쳐준다는 불로담이라는 신성 공간에서 백만호 부자의 모든 잘못이 용서되여 설화 같은 분위기를 보이는 이 작품은 자신에게 리익이 된다면 두번씩이나 배신하고 도망쳐 련락을 끊었던 곳까지 찾아가는 인간의 얄팍한 욕심을 보여준 점이 문제적이다. 이들 작품과는 달리 중편소설 에서는 렬사비에 적혀있던 사람이 퇴역장군이 되여 고향을 찾자 그의 위엄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장군의 젊은 시절 안해인 곱추할미와 서로 사랑하던 청춘남녀가 자살하게 하고 장군이 낚시할 장소를 만들다가 들판이 물에 잠기게 되자 장군의 손녀가 장군을 설득해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를 통해 귀향한 퇴역장군이 마을에 베풀 작은 리익을 기대해 일을 벌이는 소인배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은 개혁개방에 따른 돈에 대한 열망의 폭발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작은 리익 때문에 마을 사람들을 압박하고 퇴역장군의 눈에 들기 위해 온갖 불합리를 저지르는 인간을 풍자한다는 점에서는 우의 몇 작품과 동궤를 이룬다. 《고요한 라고하》에 실린 작품들은 남녀 사이의 진정한 사랑의 의미, 개혁개방 이후 돈에 대한 열망으로 변화한 인심 등을 소설화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와는 달리 라고하 배사공을 하며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널 때 헤여진 누이와 미국, 카나다, 일본, 한국으로 흩어진 자식들을 기다리다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로인을 그린 과 조선전쟁 때 만주로 이주해 라고하 배사공을 하며 평생 고향을 그리면서 산 부친이 한국에 두고 온 안해의 련락으로 고향방문 팀에 합류하나 출발 직전에 지병인 심장병이 발작해 사망하는 내용을 담은 등은 조선족의 리산과 이주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들은 만주로 이주하여 평생 떠나온 고향을 그리며 산 조선족들의 삶을 제재로 선택한 점에서 이주문학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서는 리산의 경험을 가진 조선족 1세대들과 만주에서 태여나 자란 2세대들의 고향의식이 같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라고하! 아버지께서 뿌리내린 곳, 어머니께서 묻힌 곳, 내가 나서 자란 고향, 여기에도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자랑과 피어린 투쟁사가 찬란하게 새겨져있는 것이다. (《라고하 배사공》, 97쪽)   에서 고향 방문을 하지 못하고 사망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그가 만주에서 새로 결혼하여 얻은 딸은 아버지가 평생을 잊지 못한 고향이 한국이듯이 자신의 고향은 바로 이곳 만주땅이라 생각한다. 조선족의 후예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땅이 선조들이 과경민족으로서 피어린 투쟁을 통해 힘들게 뿌리내린 이방이지만 자신들에게는 고향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는 한국과의 만남으로 조선족들이 경험한 정체성에 관해 윤림호의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중한수교 이후 한국체류를 통해 조선족들이 경험한 이중정체성을 선취한 것이라 하겠다. 윤림호는 대학을 졸업하고 1987년부터 1년 정도 할빈에 소재한 《송화강》잡지에서 편집으로 일한 이외에는 남라고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창작에 힘을 기울였다. 이 시기 대학생활에서 작가로서의 능력과 자존감을 확인한 윤림호는 개혁개방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조선족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작가로서 왕성한 창작열을 가지고 개혁개방으로 급변하는 중국사회와 조선족이 경험하는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개혁개방으로 나타난 금전만능주의와 인간의 도리를 잊어버리는 세태를 비판하는 작품과 자신들이 터 잡은 이 땅이 부모들의 피땀으로 일군 진정한 고향임을 보여주는 작품을 다수 발표하는바 이는 작가로서 현실을 바라보는 치렬한 의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에서와 같이 설화적 세계에 대한 탐닉을 보이거나 에서 보이는 주제의 분산은 작가로서의 긴장이 약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4. 환상을 통한 야생과 인간의 대비 윤림호는 1990년대 중반에 《꽃동산》잡지사와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근무하던 3년 반 정도를 목단강에서 살았고 6개월 남짓 한국에서 불법체류하는 등 4년 정도 도시 생활을 하였는데 이는 남라고촌에서 생활하던 그에게 있어 커다란 변화였다. 이 시기 10여년 동안 윤림호는 그로서는 번잡하게 살면서도 소설집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와 장편소설 《승냥이가 울던 계절》을 상재하고 장편소설 《명암의 세계》(《연변문학》 2000.1~2000.10)를 련재하였으며 (《천지》1998.6)을 비롯한 중편소설 10여편과 30여편의 단편소설 그리고 10여편의 동화와 적지 않은 수필과 수기 등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 발표된 윤림호의 작품은 한국체험의 등장 여부에 따라 크게 두 경향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에 수록된 9편의 소설 중에서 한국체험이 등장하는 작품은 한국에 가서 큰돈을 벌어오는 일을 소재로 사용하는 과 뿐이고 나머지 일곱 작품과 장편소설 《승냥이가 울던 계절》에는 한국체험이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장편소설 《명암의 세계》는 작가 자신의 한국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되였다. 《고요한 라고하》를 상재한 직후 중한수교가 이루어지고 조선족들의 한국행이 본격화되여 조선족사회의 이슈가 되였고 작가 자신이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한 바 있음에도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에 한국행 열풍이나 한국체험 등이 등장되지 않은 것은 매우 특이하다. 는 한국에서 큰돈을 벌어와 삶은 풍요해졌지만 인정을 상실한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하고 홀과부가 된 회령댁은 어미 잃은 한족아이를 양아들로 키우며 살림이 어려워 버려진 오두막에 살다가 다리가 셋 밖에 없는 강아지를 데려다 키운다.   그 때 보니 뒤다리 하나가 이런 병신이더군. 낳자 그런 병신이였던가봐. 주인집에서 싫다고 내다버린 게 분명했네. 그래서 난 불쌍히 여겨 감자씨광주리에 넣어 머리에 이고 왔네. 집에 들어서자 우리 영욱이가 보더니 내다버리라고 하더군. 내가 숨 가진 걸 그러면 못쓴다고 나무람하자 영욱인 개도 크면 사람처럼 은혜를 알 줄 아는가고 날 비난하더군. 나 그거야 키워봐야 안다고  대답했네. 내가 평생에 음덕 두가지를 쌓았다면 하나는 영욱이를 키운 거구 하나는 놔두면 죽었을 이 세다리 개를 가져다 키운 거라네.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 183쪽)   양아들 영욱이 한족으로 족적을 바꾸기 위해 오두막으로 찾아온 자리에서 며느리에게 세다리 개를 키우게 된 경과를 말하는 인용부분에서 작품의 주제가 직접 로출된다. 자식을 키우고 싶었던 회령댁은 한족아기 영욱을 얻어다 조막손까지 되여가면서 정성을 다해 키웠다. 하지만 헤여진 지 50년 만에 남동생에게서 련락이 오자 영욱은 돈을 벌 기회라며 조선족으로 족적을 바꾸어 한국에 다녀와 새 집을 짓고 한족녀자와 결혼하지만 로친을 모시지 않는다. 그러다 사기를 당하고 리혼해야 할 상황에 다시 만난 생부의 재산을 탐내여 한족으로 족적을 바꾸겠다고 한다. 조막손로친이 영욱의 처신에 마음을 비우고 집을 나서는 순간 낡은 오두막이 무너지고 로친이 죽자 그녀의 무덤은 세다리 개만 지키고 있다. 이 작품은 데려다 키운 양아들과 얻어다 키운 세다리 개를 대비하여 개보다 못한 인간을 비판하는데 한국방문이 소재로 선택되였다. 이 작품에서는 조선족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한국행이 혈육상봉 욕망과 큰돈을 벌기 위한 기회가 교차하는 일 정도로 처리되여 큰돈을 번 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잃어버리는 세태를 비판하기 소재로 사용된다. 에서도 억척스러운 로동으로 집안의 기둥으로 살아온 염씨는 아들 내외가 한국에서 큰돈을 벌어와서 새집으로 이사한 후부터 집안에서 존재감이 사라져 강아지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고 느끼자 강아지를 밟아버린다. 이 작품에서도 돈 때문에 인간의 도리를 내팽개치는 조선족사회를 비판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 한국행이 소재로 사용될 뿐이다. 이들 작품과는 달리 은 인간과 승냥이의 싸움을 통해 승냥이의 야생성과 종족간의 사랑을 보여준다. 산지기 령감이 백승냥이에게 죽은 뒤, ‘나’는 새끼 세마리를 승냥이에게 잃고 한마리(가미)만 키우는 황구와 산막에서 지낸다. 백승냥이를 사살하고 한마리 남은 백승냥이의 새끼(야미)를 산막에 데려와 황구의 젖을 먹여 키우자 야생성이 남아있는 야미는 가미를 죽이고 산막을 떠나 가끔 집 앞에 먹이를 물어다 놓는다. 쏘련과의 전쟁 준비로 승냥이골의 개를 박멸할 때 황구도 살해되고 승냥이 소탕 작전에 야미를 쫓아 굴까지 추적해보니 하반신을 못 쓰는 황구와 새끼 두마리가 살고 있어서 그 곳을 가려두고 돌아왔다가 후에 가보니 야미와 황구 가족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 작품은 백승냥이와 그 새끼 야미를 통해 승냥이의 지혜와 잔인성을 그리면서도 어미의 원쑤를 갚기 위해 가미를 죽이고 젖을 먹여 키워준 은혜를 갚으려 황구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또 황구의 목숨을 구해주는 야미에게서 인간 못지 않은 사랑을 보여준다. 이것은 야생성이란 날것 그대로의 삶이며 개체보존과 종족보존 본능만이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본능만이 부딪치는 세계가 아니라 본능 속에 보존된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륜리보다 더 진실한 것일 수 있다는 윤림호의 생명관을 반영한다. 그러나 짐승의 삶을 통해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려 한 이 작품은 설화적 분위기와 환상의 람용 등으로 사건의 전개에서 개연성이 부족해졌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에 수록된 작품 중 앞의 세 작품을 제외한 작품들은 환상과 비현실적인 전개로 구성이나 주제 상에서 긴장감을 상실하고 있다. 는 신혼려행길에 산 속에 숨어사는 고모를 만나러 가다 길을 잃어 들어가면 죽는다는 귀신포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고모네 집에서 깨여나는 환상적인 상황과 비현실적 사건 전개를 보여준다. 또 는 산속  기상관측소에서 기사로 일하며 과학환상소설을 쓰는 인물이 엉터리 과학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외계인을 통해 영원한 청춘을 준다고 녀성을 속이고 지방정부로부터 사업제안을 받는 등 현실성 없는 사건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진다. 또 의부증 안해 때문에 교사에서 해직되여 술집을 운영하는 남자와 시누이 자리의 모함으로 교사직을 그만두고 술집에 취직한 녀자가 사랑을 일구는 과 같은 학교 민영교원인 친구의 녀동생이 사라져 ㅎ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다가 경험한 암흑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은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듯하나 중편소설 정도의 분량에 너무 많은 음모와 우발적 사건들을 라렬해 작품의 주제가 분산되고 작품의 전개가 비현실적이라는 한계를 보인다. 장편소설 《승냥이가 울던 계절》은 문혁과 중쏘국경분쟁으로 긴박한 국경마을의 현실, 인간의 욕망이 드러나는 계급갈등, 인간과 승냥이 무리의 갈등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 등 네가지 제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이 전개된다. 전쟁에 대비하여 방공호를 만들고 전투훈련도 하는 마을 사람들의 고통과 계급획분으로 투쟁당한 사람들의 억울함 그리고 마을의 작은 권력을 개인적 리익을 위해 휘두르는 인간들의 욕망과 렬사집안의 명예를 위해 인간성을 억압하는 비정상적 행태 등 다양한 사건이 전임 민병련장 조명섭을 둘러싼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품 전반부에 전개되는 한 마을에 압축된 모순과 갈등이 맺히고 풀어지는 모습은 작품의 긴박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작품 중반에서 의 제재인 렬사비에 적힌 전쟁영웅이 고향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렬사비를 관리하던 로파의 자살, 전쟁위기 속에 련애나 하는 일은 총살감이라는 영웅의 한마디에 자살해버린 련인, 영웅의 낚시를 위해 마련한 보 때문에 농지가 물이 차는 사건 등 작품 전체와 동떨어진 사건들이 라렬되면서 작품의 전개가 혼란스러워진다. 특히 의 내용이 변형된 사냥개 랑구 가족과 백승냥이 종족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서사 중 하나로 자리잡고부터는 소설의 방향이 더욱 흔들린다. 랑구의 영특함과 용감함 그리고 승냥이 가족의 잔인함과 생명력이 대비되여 전경으로 등장하면서 도입부분에서 보여준 문혁과 중소분쟁시기의 계급갈등과 전쟁위기 등 중국현대사의 한 시기에 변방 마을에 살던 조선족들이 겪은 고난과 극복이라는 주제가 후경으로 물러선 것이다. 그 결과 동물들의 야생성에 관한 환상적 서사가 렬사의 아들 조명섭과 지주분자의 딸 렴윤자가 명섭 모친과 명섭을 짝사랑하는 오봉숙 등 주변사람들의 방해와 비난을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산지기막에서 단둘이 결혼하는 사랑 서사와 혼합되면서 소설적 리얼리티를 상실하게 된다. 《고요한 라고하》를 상재하고 《승냥이가 울던 계절》을 출간하기까지 10년은 개혁개방의 성과가 드러나고 중한수교로 한국 방문이 자유로워져 조선족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맞이한 시기였다. 한국에서 부를 획득한 조선족들이 자녀교육의 기회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도시로 이동하여 농촌의 조선족공동체가 와해되였고 한국에서 류입되는 자본의 증가로 조선족사회는 돈이 지배하는 타락한 사회로 급변하는 등의 문제를 로정하였다. 나아가 한국과의 교류과정에서 이중정체성을 경험하고 한국인과의 접촉을 통하여 한국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기도 하였다. 윤림호 소설에는 조선족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서사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등단 초기부터 개혁개방으로 가난하나마 서로 돕던 공동체사회가 와해되는 현실에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그의 공동체지향 의식은 중한수교 이후에도 유지되여 그의 작품은 시대의 급변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다움을 강조하고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도리를 망각하는 인간과 은혜를 갚는 짐승을 대비하여 인심의 변화를 비판한다. 이처럼 윤림호가 공동체적 가치관이 유지되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개혁개방과 중한수교 이후의 사회변화를 바라보는 나름의 현실인식 방법으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윤림호가 조선족집거지인 연변을 벗어난 산재지구에서 생활하여 조선족 공동체가 더욱 빨리 와해되는 현실을 목도한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금전중심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소설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보다 야생성과 대비하거나 환상의 세계로 나아가 소설적 긴장감을 상실한 것은 윤림호의 작가적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는 작가 윤림호가 시대의 변화를 옳바로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여 그 소설적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   5. 한국체험의 소설화, 그 한계와 의의 윤림호의 소설에 조선족들의 한국행과 관련한 소재가 사용된 것은 《고요한 라고하》를 상재한 시기부터이다. 그러나 이후 출간된 두 소설집에 실린 24편의 작품 중에서 한국방문이 소재로 사용된 것은 전 안해의 련락으로 가족방문의 기회를 잡으나 출국 전 사망하는 , 죽은 줄 알았던 전우의 편지에 자식들이 흥분하나 본인은 발광하는 , 어머니 덕에 한국에 가서 큰돈을 벌어와서는 인간의 도리를 잃어버리는 과 등 네편 뿐이며 한국방문 이후 발표한 중편소설 에서도 안해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로씨야로, 한국으로 돌아다녔다는 내용이 간단히 서술될 뿐이다. 한국방문을 마치고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 윤림호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울산의 현대콘테이너 공장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제재로 하여 한국사회에서 불법체류하는 조선족들의 삶을 다룬 《명암의 세계》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A시에 있는 태성산업이라는 하청 콘테이너공장을 공간적 배경으로 로동쟁의로 몸살을 앓는 한국사회, 한국인들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당하는 조선족의 고통, 렬악한 환경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조선족의 삶 등 세가지의 내용을 기둥으로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룬다. 중국에서 체육교사를 하다 한국에 입국해 불법체류하면서 콘테이너 생산회사 로동자로 일하는 충호라는 인물을 초점화자로 하는 이 작품에는 외환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직전 한국사회에 만연했던 로동쟁의가 배경으로 깔려있다. 로동자들은 로동조합의 소식지를 돌리고 벽보를 붙이고 쟁의를 벌이고 사장과 간부들은 조회시간마다 경제현황과 회사의 사정을 알리고 애사심을 강조하고 로동자들을 회유하기도 한다. 특히 조선족로동자들에게는 불법체류중이므로 로동쟁의에 참가하면 강제출국된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 조선족로동자들은 이런 현실을 혼란스럽다고 느끼고 또 이에 대해 한국인 로동자들이 바로 이런 것이 자유이고 정의라고 하는 말에 당황하기도 한다. 중국사회에 로동운동이라는 개념이 부재했던 1990년대 중반에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들로서는 임금을 받고 로동을 하면서 회사를 상대로 시위하고 파업하는 일을 리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초점화자인 충호가 로동쟁의에 대하여 어떠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관찰자적 자리에 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불법체류 기간중에 3개월 정도 울산의 현대콘테이너에서 근무한 것이 한국에서의 로동체험의 거의 전부인 윤림호가 그 시기 한국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였던 로동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였을 것이다. 더우기 《명암의 세계》에서와 같이 대기업의 하청업체인 태성산업 같은 업체가 원청업체와 로동자 사이에서 겪는 복잡한 상황은 한국사회에 대한 리해가 부족한 작가로서는 관찰자적 서술 이외의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명암의 세계》에서는 한국사회의 거시적 문제보다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직장의 한국인 간부와 로동자, 집주인, 가게 주인 등 주변적 인물들이 주로 다루어진다. 직장에서 관리직 간부들은 로동자들을 무시하며 거친 언사를 사용한다. 특히 불법체류자 신분인 조선족들에게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녀성로동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태성산업의 간부 류총무가 조선족 녀성 홍현실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이 그 좋은 례이다. 또 술집주인은 갖은 애교로 조선족들의 임금을 노리고 려관이나 술집 종업원들은 외로운 조선족 남성에게 성을 팔아 돈을 챙기고 식당주인은 충호의 전우 청삼이의 한의학 지식을 리용하여 불법 시술로 큰돈을 벌려 하고 세집주인은 세 들어 사는 조선족 녀성에게 눈독을 들이고 한국인 로동자들은 허풍이 센 청삼에게서 술과 안주를 얻어먹으며 의리를 부르짖다가 막상 청삼이가 위급한 상황이 되자 등을 돌린다. 이렇듯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의 돈을 갈취하거나 성적 욕망을 채우는 인물로 그려져있다. 이러한 인물설정은 한국이 경제적 번영으로 가난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륜리나 가치를 상실하였다는 비판을 위한 소설적 장치로 리해된다. 충호와 한조의 조원으로 일하면서 조선족이라고 업신여기고 괴롭히던 한씨는 충호와 주먹다짐을 하고는 절친한 관계로 발전하여 조선족의 처지를 리해하는 인물이 된다. 또 세집 주인의 딸 정임순은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조선족들을 도와주기에 힘써 기독교 협회의 이웃 돕기 활동의 도움을 받아 홍현실의 병을 고쳐주고 중국으로 귀국하도록 조치해주기도 한다. 이 두 인물은 조선족을 멸시하던 인물이 개심하는 경우와 원래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조선족을 포용하는 인물이라는 성격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이들 만큼이라도 조선족의 처지를 리해하고 공존하려는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듯 《명암의 세계》는 조선족을 괴롭히는 인물과 사랑을 베푸는 인물이 공존하고 경제적으로 번영했지만 륜리적으로는 타락한 사회 즉 명과 암이 함께 하는 한국사회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한국사회의 명과 암보다 더욱 중요한 제재는 한국에서 불법체류하고 있는 조선족들의 삶이다. 이 작품에서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견디기 어려운 아픔을 겪고 그것을 피해 출국하여 쓰디쓴 삶을 살고 있다. 충호는 첫사랑 전순미가 한국남자와 결혼해 출국하자 마음 없는 결혼을 했다가 모순투성이인 혼인생활을 청산하고 출국하였고 청삼은 첫사랑을 현간부 아들에게 뺏기고 결혼 당일 술김에 신랑의 천치 녀동생을 겁탈했다가 그녀와 강제결혼하고 큰돈을 벌어온다는 핑게로 출국하였다. 또 충호와 결혼을 약속했던 전순미는 돈을 탐낸 아버지의 강요로 한국남자와 결혼해 출국하였고 조홍자는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강제로 결혼한 현 간부 아들이 도박을 일삼고 폭력을 휘두르자 자식을 친정에 맡기고 출국하였으며 할빈민족문화관 가무단원이였던 홍현실은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중국이 지겨워서 공연 차 한국에 왔다가 불법체류를 하였다. 이들은 돈 때문에 사랑이 파괴되자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또 자신을 이렇게 만든 돈을 벌어 꿈을 이루겠다는 심경으로 큰 빚을 져가며 한국행을 감행하였다. 이 작품의 인물들이 한국을 중국에서 겪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회피할, 또 꿈을 이룰 만한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은 조선족들의 내면적 진실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아니 그보다 먼저 한국행을 위해 진 막대한 빚을 탕감하기 위해서 죽기살기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에 와서 차별과 멸시 속에 힘든 로동을 하여도 생각했던 것처럼 돈이 모이지는 않는다.   달세 10만원의 방값을 같이 지내는 현실이와 5만원씩 반분해 주인집에 내고 전기세, 물세, 위생비, 전화비 등 잡비용을 청리당하고 나면 매달 집에 40만원씩 송금하는 것도 아름찬 부담이 되여졌다. (중략) 휴무일까지 련속 작전해야 60만원이면 기록이였고 그것으로 잡세를 물고 회사의 식비를 떼고 집에 부치고 생활을 조직해야 했다. 한마디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강을 건너는 쥐무리처럼 일단 놓기만 하면 안되게 늘쌍 빠듯빠듯한 상태였다. (《명암의 세계》, 《연변문학》 2000.3, 105쪽)   조홍자의 생각으로 서술된 이 부분은 한국에서 로동자로 열심히 일하고 출퇴근 이외에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 두지 않아도 생각처럼 돈이 모이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 자식을 앞세워 돈을 강요하고 그 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하는 남편을 둔 조홍자나 가족의 생활비와 꾼 돈을 갚아야 하는 대부분의 조선족들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또 착실하기 그지없는 칠수처럼 몇년 동안 저금통장을 만들지 못해 임금을 류총무에게 맡겨두었다가 돈을 다 날릴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돈은 모이지 않고 중국의 빚이 늘어가기만 하게 되면 청삼이처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술과 녀자에 탐닉해 돈을 탕진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중국에서의 삶이 어려웠듯이 한국에서의 삶 역시 불안정하다. 《명암의 세계》에서 이러한 상황을 설정한 것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와도 그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작가의 현실인식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충호는 불안정한 한국생활 중에 한국인 한씨와 주먹다짐을 벌인 일로 한국인의 차별을 견디며 살아가는 조선족들에게 주목을 받는다. 뛰여난 무술 실력과 타인의 어려움을 돌보는 그의 모습은 조선족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공장 측에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취급해준다. 또 이 일로 조신한 처신으로 태성산업 남자들의 표적이 되던 조홍자도 충호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첫사랑 전순미가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궁금해하던 충호는 한씨의 부탁으로 폭력배 하나를 때려눕히고 형사들을 피해 도주하다가 피신해 들어간 집에서 지체 부자유에 성적 능력도 없는 의처증 환자와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전순미를 만난다. 그녀의 절망 끝을 보아버린 충호는 그녀와 영원히 헤여지자 결심했지만 전순미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충호의 남성다움에 매료되였던 조홍자의 도움으로 전순미와 함께 중국으로 돌아간다. 충호는 한국에서 수많은 일을 경험하고 자신을 A시로 부른 전우 청삼을 잃고 남편에게서 도망치기로 한 전순미가 남편에게 남겠다고 하고, 함께 중국으로 가기로 한 조홍자도 동행을 포기하자 홀로 중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조홍자의 설득으로 함께 귀국하려 공항으로 달려온 전순미를 만나 비행기에 오르고, 리륙하는 순간 무엇을 위하여 한국에 와서 이런 생활을 했는가 하는 상념에 잠긴다. 중국민항 려객기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해탈의 몸부림인듯 몸체를 세차게 떨고 있었다. 충호의 머리속에는 출국나들이붐으로 하여 황페해져가는 동네의 정경이 떠올랐다. 땅을 버리고 삶의 터전을 버리고 사랑을 버리고… 사실 조선족들의 비극은 한국땅에서가 아니라 두고 온 땅에서 더 크다는 것을 충호는 깨달았다. 무엇 때문인가? 누구 탓인가? (《명암의 세계》, 《연변문학》 2001.10, 118~119쪽.)   충호는 한국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조선족들의 한국행 열풍의 비극은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한국땅에서보다 남겨진 사람들과 황페화된 고향에서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자각에 이른다. 이는 한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하며 돈벌이에 나서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살았다는 비극적인 사실보다 한국행 열풍으로 파괴되는 조선족 공동체의 와해가 더 심각한 문제라 인식한 것이다.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또 그 돈으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면서 선조들이 낯선 땅에 이주해와서 피땀으로 일구어 만들어놓은 고향, 조선족 공동체 속에서 인정 가득하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 살았던 고향이 페허로 변하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라는 것이 윤림호가 《명암의 세계》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인 것이다. 윤림호가 보여준 인간다움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지향은 중한교류 이후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겪은 차별과 멸시라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이중정체성과 국민정체성과 같은 관념을 문제 삼은 기존의 작가들과는 다른 현실인식이다. 더우기 조선족이 경험하는 한국에서의 인간적 모멸보다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선족 사회의 황페화가 더 문제라는 지적은, 허련순이 에서 보여준 한중수교 이후 조선족들이 국민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였다는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조상들이 가꾸어왔고 조선족의 미풍이 이어져 인정이 존재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던 고향의 회복이라는 현실 차원의 꿈을 보여준다. 이렇듯 윤림호가 《명암의 세계》에서 선조들이 일구고 그들이 삶을 영위해온 고향이 황페해지는 현실을 아쉬워하며 그 회복을 기대한 것은 그가 과거를 지향하는 보수적 현실인식을 견지했음을 알게 해준다.   6. 결론 본고는 윤림호의 소설을 창작시기 별로 작품의 주제와 경향을 정리하고 각 시기에 그러한 주제에 집중하고 일정한 경향성을 띠게 된 내외적 요인을 검토하여 윤림호 소설의 전체적 모습을 해명하고저 하였다. 이를 위하여 윤림호 소설을 작품집 발간을 기준으로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고 시기 별로 장을 나누어 작품의 특성을 살피고 작가 자신의 한국 체험을 제재로 한 《명암의 세계》는 별도의 장에서 한국행 열풍에 대한 윤림호의 현실인식을 검토하였다. 《투사의 슬픔》에 수록된 작품은 암울한 시대 상황에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킨 감추어진 영웅을 선양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더라도 공동체 의식을 잃지 말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고요한 라고하》에 실린 작품은 로인과 약자들의 사랑에 따뜻한 시선을 보이고 돈의 노예가 되여 인간의 도리를 잃어가는 인간을 비판하고 조상들이 뿌리내린 이 땅이 자신들에게는 고향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에 수록된 작품과 《승냥이가 울던 계절》은 큰돈을 벌고는 인간의 도리를 잃는 인간을 비판하고 동물들의 야생성을 례찬하고 있으나 환상에 치중해 비현실적인 전개를 보여 소설적 긴장감을 상실한 작품이 많다. 《명암의 세계》에서는 한국 체험을 바탕으로 로동쟁의로 혼돈스러운 한국사회와 그 속에서 차별을 견디며 묵묵히 일해 꿈을 이루려 애쓰는 조선족을 통해 조선족들에게 한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윤림호의 거의 모든 소설은 급변하는 현실에도 인간관계가 살아있던 공동체를 지향하고, 개혁개방과 중한수교 등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버리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의 교류로 조선족의 뿌리인 한국과 가까워지고 한국을 통해 부를 획득하였지만 한국과의 접촉과정에서 그들이 나서 자란 중국 땅이 진정한 고향이라는 의식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윤림호는 반우파투쟁기에서 문혁을 거치는 정치적 억압과 개혁개방과 중한수교로 상징되는 경제적 자유를 맞이한 중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 시대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공동체적 가치와 고향의 회복을 지향하는 점에서 작가적 일관성을 보인다. 윤림호 소설의 주제적 일관성은 문혁 이후 급변하는 조선족의 현실을 옳바로 형상화하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가치관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또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 이후에 급격히 환상과 야생성에 매달림으로써 리얼리티를 상실하고 한 작품에서 필요 이상의 사건을 라렬함으로써 주제의 분산이 심해진다. 이는 조선족의 삶이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고향이 황페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소설화할 새로운 주제나 제재를 마련하지 못해 창작의 동력을 잃은 결과로 보인다. 윤림호가 이러한 한계에 부딪치게 된 것은 그가 시종 견지한 보수적 현실인식으로 인해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하여 조선족이 나아갈 길에 대한 소설적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출처:2018 제3호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통해 본 중국조선족의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    리해연   1. 문제 제기 본고는 김금희(1979- )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에 실린 , , 등 세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가 노마디즘 시각에서 말하고저 했던 중국조선족 디아스포라와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알아보는 글이다. 김금희는 한족 집거지인 길림성 구태시에서 출생한 조선족 작가로서 자신을 포함한 조선족들의 노마드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고저 하였으며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김금희는 《두만강》 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전쟁과 가난, 시장경제 같은 것들 말고 우리 민족이 떠나는 더 근원적인 리유는 없을가’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중편소설 의 창작배경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는 조선족들의 떠돌이 생활을 유목민의 삶, 유목민의 근성과 비교하면서 조선족 공동체의 유목적인 삶에 대해 탐구하였다.  노마드에서 파생된 노마디즘은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일체의 방식을 의미하며 철학적 개념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 심리 현상을 설명하는 말로도 쓰이면서 유목주의로 번역된다. 자크 아탈리는 현대사회를 노마드의 시대로 규정하고 노마디즘을 현대문화의 특징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으며 신 유목사회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현대인들을 ‘호모 노마드’라고 부르고 현대사회를 유목적인 시각에서 노마디즘 시대로 인식하고 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고국을 떠나 거주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노마드들은 노마디즘 시대의 새로운 디아스포라이다. 조선반도 밖에 사는 백의겨레는 호모 노마드로서 디아스포라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유목의 시대에 코리안 디아스포라문학은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시대의 중국조선족 또한 호모 노마드적인 디아스포라로서 그 문학 역시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금희는 노마디즘의 시각으로 조선족들의 삶을 바라보았고 이를 통해 현시대의 조선족 공동체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제기하였으며 현재를 반성하고 래일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금희는 목적성과 회귀의식이 없는 조선족들의 노마디즘적 삶의 방식은 작게는 가정의 파괴, 더 나아가 민족의 해체로 이어질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조선족으로서 마땅히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떠남의 전제에는 그 목적과 원 위치에로의 회귀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노마드와 엉겅퀴의 공통점, 방황과 회귀를 통한 미래, 정체성 찾기에 이은 뿌리 내리기 등 세개 부분으로 나누어 김금희의 조선족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문제에 대한 의식 및 그 작품세계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2. 노마드와  엉겅퀴의  공통점  노마디즘을 중심으로 한 노마드적인 삶의 욕망의 저변에는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는 지난한 고통과 희망이 점철된다. 소설 의 주인공 ‘유’는 노마디즘 시대의 대표적인 노마드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유’는 계획경제라는 거대한 사회주의의 경제체제 속에서 국영기업에 출근하며 안일한 삶을 살다 갑자기 불어닥친 사회주의의 시장경제체제와 그 사회변화 속에서 ‘철밥통’을 버리고 장사의 길에 올라 중국 국내는 안 다녀본 곳이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소설의 또 다른 인물 ‘마로얼’은 ‘유’가 사는 조선족 동네로 이사온 최초의 한족이였다. ‘마로얼’ 일가는 ‘유’의 가족에서 키우던 곰을 받아 웅담장사를 하면서 생활을 일구었고 그 후 사정이 안 좋게 되니 그 일을 접고 더욱 깊은 산골로 들어가 농사와 방목을 통해 재물을 축적하였다. 여러 형 구조로 된 이 소설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돌기만 하는 조선족들의 삶과 그와 반대로 한번 정착하여 뿌리내린 곳이면 어디서든 그 삶을 확장해나가는 한족들의 삶의 특성을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대조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동시에 작가는 주인공의 무정착의식, 무회귀의식적인 삶과 마지막 한족의 돈의 노예로 전락시킨 그의 삶을 비판하였다. 이는 작가가 전반 조선족사회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이며 현재의 조선족들의 삶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일제의 식민지침략하에 두만강을 건넜던 조선인 이주1세대들은 광복이 되면 돌아가리라는 귀향의 꿈을 가슴에 새긴 채 토착민-한족들의 소작농으로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이라는 낯선 땅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반도가 남, 북으로 갈라지며 그들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새 중국이 창건되면서 소수민족정책하에 당당한 중국의 공민-중국조선족으로 살게 되였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 좀더 미래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떠돌이생활을 시작했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중국은 사회, 경제 등 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조선족들의 삶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위해 국내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떠남에는 종착역이 없었다. 한국으로 향했던 이들은 고국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달래보기도 전에 소외와 환멸을 느꼈고 관내 대도시로 향했던 이들은 한족과 한국인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겪게 되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선족들은 둥지 없는 새가 이 나무 저 나무 떠돌듯 어디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끝없는 방랑을 반복하기만 한다.   떠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였을가? 어떤 설렘? 열정? 도전 같은 것이였던가?(P121) 유는 그 문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엇 때문에 다니는 줄 안다니, 대체 뭘 안다는 걸가. 유의 할아버지 세대가 떠났던 것이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였다는 것? 유의 아버지가 떠났던 것은 자유를 위해서라는 것? 아니면 유가 떠났던 것처럼 어떤 꿈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P141). 마지막으로 사내는 유의 성씨가 남을 유遗인지 류랑할 류流인지를 말장난처럼 물어보았다.(P102)   주인공 이름을 ‘유’라고 했던 것이 작가의 의도된 설정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중국조선족으로 살면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류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넓게 분포되여있지만 동시에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의 대상인 조선족, ‘유’라는 이름 한글자로 작가는 조선족들의 이동적인 삶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세세대대 대물림되는 조선족들의 떠돌이생활을 력사라는 거울에 비춰보았을 때 그 어느 세대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적이 없었다. 이제는 방랑의 종지부를 찍고 뿌리를 내려야 할 때가 되였다.   순간, 유는 어떤 큰 짐승의 것이 분명한 포효를 똑똑히 들었다. 크르릉어엉-! 낮고 웅글진, 가슴을 허비는듯한 울음소리, 그럴 리 없겠지만 유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곰이 내는 소리라고 확신했다. 철창 속에 갇혀서 고향산을 그리며 검은 눈만 슴벅이던 웅담용 사육곰이 아니라 머루, 다래, 돌배와 찔광이를 뜯어먹고 물고기, 두더지도 잡아먹는 진정한 산의 곰 말이다. 숲속 어느 은밀한 공지, 한가위 보름달을 올려다보면서 곰은 앞발을 들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었다. 유흥을 아는 한량이나 한을 푸는 녀인네처럼 고즈넉한 정적과 일체를 이루며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어간 채. 혹독한 겨울추위와 굶주림, 덫의 위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점점이 별들이 살포시 내려와 파란 반디불로 그 주위를 날아다녔다. 인간이 추구하는 다른 모든 것처럼, 그것 역시 잡으면 벌레가 되고 바라보면 아름다운 빛이 되는 것이였다. 유는 캐리어의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월병박스를 옆구리에 낀 채 그것을 따라 걸어갔다. 룡의 머리를 새겨넣은 마로얼의 높은 대문이 바로 유의 앞에 있었다.(P141)   이 부분은 소설의 결말이자 소설의 제목에 대한 해석이며 작가의식이 가장 응축되여 표현된 부분이다. 산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던 ‘곰’의 패기 넘치던 포효가 ‘유’에게 ‘가슴을 후비는’ 최후의 울부짖음으로 들려온다. ‘혹독한 겨울추위와 굶주림, 덫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한가위 보름달을 올려다보면서’ 한풀이를 하는 무당처럼, 유흥을 즐기는 한량처럼 ‘앞발을 들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는 ‘곰’-‘유’는 정착점 없이 방랑하는 조선족들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곰’은 ‘유’이고 더 나아가 조선족 공동체이다. 따뜻했던 둥지를 버리고 새로운 둥지를 찾아헤매다 최후를 맞는 새처럼, 뿌리가 송두리채 뽑혀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나무처럼 조상들이 일궈놓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났던 ‘유’는 지팡살이를 살던 조상들의 생활을 되풀이할 위기에 처하게 되였다. ‘유’의 최후는 더 나아가 전반 조선족 공동체가 위태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현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김금희는 이처럼 조선족들의 목적성 없는 노마드적 삶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비판하였으며 그런 삶의 비참한 최후를 과감하게 예측하면서 동시에 현실적 대안을 세워야 하는 때임을 호소하고 있다.    3. 방황과  회귀를  통한  미래 우의 소설에서의 주인공 ‘유’는 정착점이 없이 끝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캐릭터였다면 소설 의 ‘박철’은 자신의 정착점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고 떠남의 궁극적인 목적이 회귀에 있음을 인지하는 ‘유’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박철’은 ‘돈을 벌어 집을 사고 색시를 얻어서 시내에 나가 자그마한 가게라도 열어 먹고 살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는 꿈을 안고 한국으로 시집간 누나의 초청하에 로무일군으로 한국행에 오른다. 애초부터 박철의 ‘떠남’은 ‘돌아오기 위함’이였기에 한국에서 죽은듯이 살면서 그 곳 사회와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박철’은 축구경기에서는 한국팀을 응원하지만 정작 ‘중국산 꽃게에서 또 다시 발암물질이 검출’되였다는 한국뉴스를 볼 때면 분개의 감정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한국인과는 동족이고 동시에 중국인임을 인지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지다가 결과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중국조선족으로 살기를 택한다.  한국사회에 비쳐지는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거부감은 박철에게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 더 나아가 한국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이된다. 이런 박철의 감정은 탈북녀성 선아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선아’는 ‘박철’에게 있어서 한국인 눈 속의 조선족이 되여버린다. 목숨 걸고 탈북한 ‘선아’에게 ‘박철’은 처음에는 련민과 동질감을 느끼다가 만약 어느 순간 ‘진정한 한국인’이 되는 날이 온다면 그는 자기가 흠모하고 있던 조선족 불법체류자인 ‘수미’에게 가해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선아를 거부한다. 이렇게 ‘박철’은 동족이지만 하나로 어울릴 수 없는 한국인, 조선족, 탈북인 세 부류의 인간들의 련대적인 관계를 통해 민족적 정체성의 갈등을 겪게 되며 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 와보니 그의 사촌남동생은 한족 녀성과 결혼하고 농촌 총각으로 결혼하지 못한 친구는 탈북녀성과 잠시 살림을 합쳤다가 버림을 받는가 하면 사촌녀동생은 한국 남자의 내연녀로 살면서 경제적으로 보상을 받는 등 주변 모두가 기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는 조선족 음식점이라는 간판을 걸고 한족들이 장사를 한다. 조선족사회가 와해되고 붕괴되는 현실에서 ‘박철’은 힘이 얼마가 들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물질적, 정신적 투자를 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며 고향땅을 지키려는 미래에 대한 굳은 결의를 다진다.   자기보다 훨씬 앞서 나간 도시에서 아빠트를 사고 가게를 사느니, 대신 이 넓은 옥수수밭에서, 혹은 논밭에서, 마을에서, 아니면 이보다 더 궁한 시골구석으로 들어가서 무어라도 시도해보는 건 어떨가? 도시사람들 앞에서는 도무지 기를 쭈욱 펴고 다닐 수 없었던 박철이지만 이렇게 마을로 돌아올 때면, 아직도 소수레를 끌고 휘청거리며 가는 한족 농부들을 볼 때면, 장마철의 김치움에 물이 차오르듯 자신감이란 것이 리유도 없이 절로 솟기 때문이다.(P260)   소설의 제목 와 걸맞게 ‘박철’은 생계를 찾아 이곳저곳 다니다가 마지막 종점은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였다.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로정에서 박철은 동족 사이에서 느끼는 이중적 갈등에 대한 해답을 찾고 그 해답에 따라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나가려 하였다. 이러한 주인공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을 통해 작가는 소설 에서 찾고저 했던 조선족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고 그것은 지극히 희망적이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조선족은 이제 더 이상 목표 없이 떠도는 방랑자로 살아서는 안된다. 조상들이 힘들게 가꿔온 고향으로 회귀하여 잃었던 어제를 되찾아야만이 래일을 살 수 있다. 의 ‘유’처럼 또다시 지팡살이를 하기 전에, 뼈아팠던 조상들의 력사를 되풀이하기 전에 조선족은 반드시 현실을 정시하고 정확한 대책을 세워 미래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4. 정체성  찾기에  이은 뿌리  내리기 우 소설의 주인공 ‘박철’은 자신과 주변인들의 삶을 통해 자기 삶의 정착점을 찾고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였다면 의 주인공 ‘나’는 ‘박철’이의 소망을 현실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나’에게는 중국인-한족녀성 ‘닝’과 한국인 녀성 ‘연주’라는 벗이 있다. ‘닝’과 ‘나’, ‘나’와 ‘연주’는 자주 마라탕麻辣烫을 즐겨 먹는다. 중국인인 ‘닝’은 대충 맵게, 한국인인 연주는 소마다라少麻多辣 로, ‘나’는 그들 중 가장 맵고 가장 얼얼하게 먹는 편이다.   나는 닝이 보라는듯 나의 다마다라식 마라탕 그릇에서 한저가락 면발을 크게 감아 입안에 스윽 집어넣었다.… -독한 것, 넌 맵지도 않냐? 참 조선족스럽다…(P12). 코물을 훌쩍거리면서도 열심히 면발을 감아 입에 넣는 연주는 그 환상적인 맛의 지경 속에 푹 빠져서 몹시나 행복해했다. -참, 너도 한국스럽다. 나보다도 먼저 그릇을 비우는 연주를 보고 있자면 나는 그녀 앞에서 닝이 된 것 같은 느낌이였다…(P18)   마라탕 한그릇을 먹는 풍격에 따라 각자의 민족적 특성이 돋보이고 있다. 한족 친구는 강렬한 입맛을 가진 ‘나’를 보며 ‘조선족스럽다’고 하고 ‘나’는 나와 입맛이 비슷한 한국인 친구를 보며 ‘한국스럽다’고 한다. 매운 맛과 초산맛을 더욱 강하게 조리해서 전신으로 퍼지는 짜릿짜릿한 자극을 받으며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와 ‘연주’는 입맛이 같다는 점에서 ‘조선족스럽다’와 ‘한국스럽다’로 표현되면서 결과적으로는 ‘한민족스럽다’로 귀결되며 궁극적으로 조선족과 한국인은 같은 민족임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이로써 주인공은 민족적 정체성 문제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조선족의 고민과 그 속에서 정체성을 찾고저 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연주는 택배기사가 주소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나한테 휴대폰을 넘겨주며 투덜댔다. … 이봐, 나도 언니처럼 하잖아. 근데 왜 내 말은 못 알아듣는 거냐고? 닝도 가끔 내게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우리 집에서 샤브샤브를 해먹던 날, 한국방송을 보며 그 분위기를 깊이 즐기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어쨌든 두 나라 말을 다 하니 넌 참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P20)   한족친구에게 있어서 ‘나’는 한국인과 많이 닮아있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부러운 존재라면 한국인 친구에게 ‘나’는 자기와 같은 민족인 데도 자신보다 중국어를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고 특히 중국에서 한족들과 어울리며 화합이 될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한족과 한국인의 립장에서 볼 때 ‘나’는 그렇게 한국인스러운 중국인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한족도 한국인도 아닌 중국조선족이다. 그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했으나 ‘나’는 오히려 정체성을 갖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때로 차라리 그들처럼 한가지 말만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 만약 그랬더라면 나는 그 둘 중의 한사람이 되였을 것이고 준표의 학교문제 따위를 가지고 머리를 썩일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였다.(P20)   남들의 눈에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으나 본인은 정작 그러한 이중적 삶보다는 정체성을 갖고 살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고 때문에 ‘나’는 조선족으로서 자기 민족의 고유의 특성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한국인 친구인 ‘연주’네 딸내미의 ‘표준한국어’ 억양을 들을 때마다 소위 한국어 선생이라는 자신이 슬그머니 무색해지곤 했고 또래 한국애들보다는 한국말이 처지고 동갑내기 중국애들보다는 중국어 표현력이 부족한 아들 ‘준표’를 보면서 늘 걱정하고는 했다. 하여 장춘시내에서 집과 가까운 곳에 한족유치원이 있지만 ‘나’는 남편의 권고도 무시하고 아들 ‘준표’를 집과 멀리 떨어져있는 조선족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혈액만 조선족이고 정작 생활습관이며 언어며 모든 것이 한족인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나’와 남편의 공동명의하에 새로 장만한 집의 인테리어 콘셉트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오로지 조선족 집답게 장식하려고 애를 썼고 끝내는 옛스러운 조선족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자기만의 집을 완성하였다.    나는 연주와 본능적으로 많이, 아주 많이 닮아있었지만, 같은 배경 속에서 살지 않은, 곧 분화의 위기에 놓인 두마리의 도롱룡 같아서 도무지 같은 시각으로 함께 현실을 해석할 수 없었다. 반면 닝과 나는 애초부터 한 배경 속에서 살고 있는 오리와 닭이였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와 배경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개인적인 습관과 취향을 송두리채 공유할 수는 없었다. 매번 그들과 만나고 돌아올 때면 나는 어느 누구하고도 같지 않은 나 자신을 더 또렷이 느끼곤 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사람이 있을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 자체일 것이다. (P20)   이 부분은 작가의 내면의 목소리가 그대로 울려퍼지는 대목이다. 그렇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비록 같은 나라,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한족들과 화합하고 어울리며 살 수는 있지만 완전히 다른 생활습관과 생활방식 때문에 결국은 하나가 될 수 없다. 반면 생활습관이며 삶의 방식이며 많은 면에서 서로 닮아있는 한국인들과는 살아온 환경과 공간적, 문화적 차이로 넘을 수 없는 벽 때문에 역시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렇게 조선족은 한족도, 한국인도 아닌 중국조선족 그 자체로 두 나라의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는 이른바 이중성을 띤 삶을 살고 있다. 사과도 아니고 배도 아닌 사과배처럼 조선족은 그렇게 갈등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저 노력하였고 오로지 그 자체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은 탈경계와 초국가주의의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소수자의 상징으로, 바다의 외로운 섬처럼 다민족사회에 뿌리내린 민족적 정체성의 상징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5. 결말 이주력사와 함께 시작된 조선족 디아스포라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풀어내야 할 숙제였고 그 연구는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김금희작가는 늘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승화시킨 조선족 녀성작가로서 때로는 녀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때로는 거침없는 필치로 조선족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예리하게 짚어냈고 그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김금희는 작품 를 통해 목적성 없는 조선족들의 방랑생활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풀이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국내 타지-한족집거지를 돌아다니며 돈만 쫓아 방랑하는 주인공 ‘유’는 이름 그대로 종착점이 없이 부평초 같은 일상을 살다가 결국엔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 귀향길은 회귀의식에 의한 자발적인 귀향이 아닌 인생의 벼랑 끝에서 고향마을의 한족친구에게 마지막 구걸을 위한 귀향이였다. 김금희는 조선족들의 이러한 목적성 없는 방랑생활을 비판하면서 회귀의식이 없는 방랑생활은 결과적으로 파멸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는 관점을 작품을 통해 표출하였고 이러한 현상은 궁극적으로 민족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민족공동체에 존재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보다 희망적인 미래를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였으며 작품 를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하였다.  의 주인공 ‘박철’은 희망을 품고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났다가 그 곳에서 역시 소외와 멸시를 당하면서 삶에 대한 고민 끝에 고향마을의 건설에 자신을 이바지하려는 목적으로 귀향길에 오르는 인물이다. 비록 ‘박철’이 역시 돈을 위해 고향을 떠나지만 그 출발점에는 이미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오리라는 회귀의식과 목적의식이 깔려있었다. 작가는 ‘박철’이라는 인물을 통해 조선족들의 노마드적 삶의 전제에는 반드시 목적성과 회귀의식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고 그것만이 민족 공동체의 희망적인 미래를 위한 해결책임을 제시하고 있다. 의 ‘유’는 중국 국내 한족집거지를 돌아다닌 인물이고 의 ‘박철’은 고국에서 멸시와 소외를 받다가 귀향하는 인물로서 작가는 조선족들의 처지를 두 인물을 통해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작가는 작품 을 통해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는 조선족은 그 자체만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의 주인공 ‘나’는 한족집거지인 대도시 장춘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으로서 한족친구와 한국인친구 사이에서 정체성 문제로 갈등하고 고민하는 인물이다. 한족친구는 한국어를 잘하는 ‘나’를 부러워했고 한국인친구는 중국에서 한족들과 화합하고 어울리며 토착민처럼 살고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정작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그들을 부러워하는 디아스포라이다.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갈등 속에서 고민하던 주인공은 끝내는 조선족 그 자체로만으로의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지에서 자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본 민족답게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김금희는 예리한 시각으로 조선족공동체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문제를 거침없이 폭로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제시하였다. 발 빠르게 변화하는 이 사회에서 진정 성공한 노마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이 시각에도 쉼 없이 민족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는 김금희는 중국조선족문단에서 굵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현직 작가이며 조선족문학을 연구하는 연구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로서 앞으로 그의 행보와 작품들에 기대를 해본다.  참고문헌 1. 자료 김금희,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창비, 2015. ______, , 《두만강》, 연변소설가학회 제3호, 2011. 2. 론문  김호웅. 김관웅, , 《한중인문학연구》 제37집, 한중인문학회, 2012, p35-p55.  최병우, , 《한중인문학연구》 제37집, 한중인문학회, 2012, p107-p128. 오상순, , 《현대문학의 연구》 29권 0호, 한국문학연구학회, 2006, p37-p69. 장윤수, , 《재외한인연구》 제25호, 재외한인학회, 2011, p7-p40. 출처:2018 제3호
53    미주: 피빛 고민(칼럼) 댓글:  조회:413  추천:0  2019-07-12
피빛 고민 미주   글을 통해 생리대가 겁난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던 것 같다.  첫번째는 10대 때 어느 한 잡지에서 외국에서 쓰고 버려진 생리대를 회수해 재활용해 만드는 몰렴치한 저가 생리대 제품 생산단위가 존재한다는 글을 보고 나서이다. 자신이 그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듣보잡’ 브랜드 것이 아닌 제품 그리고 짝퉁제품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규성이 보장되는 대형마트에 가서 사려고 하는 로고를 아끼지 않았었다. 생리를 시작하면서부터의 매월의 그 날들은 엉덩이가 짓물러가며 자신에게 맞는 생리대가 뭔지를 골라가는 시련의 련속이였다. 생리대를 고르기란 브랜드, 규격, 형태, 두께, 재질, 량에 따른 날자 등에 모두 맞춘 복잡한 공식을 포장지면에 적힌 몇글자 안되는 불친절한 광고멘트 및 어려운 사용설명 문구에 대입시켜 독해해내야만 가능한 것이였다. 중국어로 된 그 생리대 선택문제에 대해 나만의 풀이방식을 습득했다고 의기양양해할 때 즈음, 나는 한국으로 류학을 오게 되였다.  비록 나의 모어와 같은 문자를 쓰지만 한국 생리대의 설명 또한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외국인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낯설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강박증 그리고 왠지 모를 쑥스러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선정하기가 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생리대 코너에서 너무 오래 기웃거리기가 무엇해서 서뿌른 판단으로 팬티라이너를 사는 실수도 범해봤고 마트 판촉 도우미의 사은품으로 견본품 생리대를 많이 챙겨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닌 생리대를 한가방 가득 사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지, 한국의 가난한 계층의 아이들은 신발깔개로 생리대를 대신한다고 할 만큼 한국의 생리대는 싼 가격이 아니라서 그 개수에 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서로 다른 기장의 생리대를 써야 하는데 기장에 따른 가격차이가 구매에 있어 부담으로 느껴졌다. 이런 나의 하소연에 한 친구가 소형 생리대 두장을 겹쳐서 오버나이트용으로 변신시키는 ‘묘기’를 해결책으로 제시해주었다. 어찌하든 간에 많은 개수의 생리대 확보가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원짜리와 천원짜리 지폐를 ‘0’이 몇개인지 세여보고서가 아니라 색상만 척 봐도 판단할 수 있을 만큼 한국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한국에서 생리대를 고르는 팁도 점차 익혀갔고 가성비에 대한 감도 점차 잡아가게 되였다.  지난달 어렵사리 구하게 된 관광통역아르바이트로 인해 약정된 날자 동안 팽이처럼 바삐 돌아쳐야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운이 나쁘게도’ 나는 그 며칠에 ‘마법에 걸’렸고 비축해두었던 생리대는 똑 떨어졌다. 긴긴 하루일정을 모두 끝마쳤을 때에는 땅거미가 질 무렵이였고 영업이 막 끝나 문 닫기 전의 매장에 간신히 방문하여 손에 쥐이는 대로 급하게 생리대를 구매하였다. 촌음을 다퉈가며 정신 없이 치른 구매전에서 내가 획득한 ‘전리품’은 릴** 생리대였다. 기타 브랜드에 비해 별로 익숙치 않아 평소에 구매하기를 망설였던 브랜드였다. 총망함 때문에 ‘깐깐’한 나 답지 않게 저지른 실수였을가? 현실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책’하는 나에게 구매 령수증이 그 리유를 설명해주었다. 바로 저렴한 가격 때문이였다. 근근득식해야 하는 고난한 이국라이프에서 우선시 고려되여야 하는 것은 주머니 사정이다 보니 ‘현명함’을 제쳐두고 ‘알뜰함’을 택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평소에 비해 생리가 너무 빨리 가버렸다. 한달에 두번 하게 되지 않을가 하는 우려와 함께 바쁜 이 고비에 잠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해탈감을 동시에 느꼈다. 생리대 풍파는 그렇게 일단락 되는가 싶었는데 야구선수 요기 베라가 했다고 하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을 접했다.  공포는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엄습해왔다. 바쁜 하루를 끝내고 나서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릴**이 검색어에 올라와있었다. 클릭하고 검색창에 들어갔다가 눈이 뒤집혀질 뉴스를 보게 되였다. 릴** 유해물질 검출과 함께 생리량 감소를 일으킨다는 부작용이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였다. 머피의 법칙은 왜 항상 나를 피해가지 않냐는 자신의 불운에 대한 한탄과 함께 과연 저번달 생리의 사라짐은 피곤함 때문인지 아니면 생리대 때문인지 하는 의문이 가셔지지 않았다. 또한 발암물질 추출이라는 생리대에 대한 불안감은 기타 생리대에서도 량적 차이일 뿐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심해졌다. 각종 포털사이트를 통해 생리대의 대체물로 생리컵에 대한 추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오던 것이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생리컵의 공식수입이 허가된다는 ‘복음’을 자주 접했었다. 그러나 질속으로의 삽입이라는 착용방식이 주는 공포는 쉬이 누그러들지 않는다. 생리대 파문이 터진 시점 또한 생리컵의 원활한 수입목적을 달성하고저 하는 데 있지 않을가 하는 의심이 든다. 조류독감 때문에 발생한 닭알부족 사태를 하늘길을 통한 미국 닭알 수입으로 이루어내고저 했던 나라가 아닌가?  그나마 최선책으로서 덜 위험한 생리대를 골라쓰려고 하니 뉴스에서 제시한 비교설명이 참 불친절하다. 각 회사 단위로 설명했는데 브랜드명만을 보면 보았지 언제 제조사까지 살폈다고. 아무리 봐도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문득 몇년 전 친한 친구와 둘이서 생리대에 관한 론문을 쓸가 하면서 낄낄대던 일이 떠오른다. 생리대 사태를 보면서 그동안 예민하게 굴었던 선택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촉각을 세우고 생리대를 골라야 했었다는 것이 참 웃고픈 현실이다. 한 동영상을 보니 연예인들까지 동원하여 생리컵을 착용한 후기를 전하면서 생리컵의 우수성을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과연 생리대는 정말 아닌 걸가? 생리컵으로 갈아타야 하나? 생리컵에 대한 거부감은 내 몸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이물질이라는 것 때문일가? 물론 컵의 입구에 존재하는 구멍 하나로 인해 그 컵이 변기의 뚫어뻥마냥 나의 속살을 흡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리대가 피부에 대한 짓무름에 비견되는 그 어떤 부작용이 존재하지 않는 ‘만능컵’일가? 생리주기가 절대 불변성을 띤 것이 아니니 가끔 생리가 늦게 오거나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리가 갑자기 오지 않는 것에 대해 단순히 오지 않는다고만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편치 않은 것은 어디 마음 뿐인가? ‘손님 맞이 도구’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방울방울 고민은 어디로 내리흘러야 할가?  출처:2018 제3호  
52    현청화: 장사장(단편소설) 댓글:  조회:355  추천:0  2019-07-12
장사장 현청화     구정이 가까워오자 남방 특유의 설 분위기가 광주 거리 곳곳을 채웠다. 추워서 몸이 움츠러드는 북방과는 달리 광주는 구정 전부터 초목이 푸르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지금은 이 도시에 정착한 지 퍼그나 되여서 이런 날씨와 설 분위기에 적응되였지만 십년 전의 나는 설 쇠러 광주에 오면 이곳 기후 때문에 항상 눈살이 찌푸러졌었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은 기후 뿐만이 아니였다. 그 때 엄마는 광주에서 민박을 운영하셨다. 당시 북경에 있던 나와 상해에 있던 언니가 도착하는 날은 보통 그믐날이였고 엄마는 항상 푸짐하게 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맞이했다. 여기까지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한 가족의 구정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식구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서 설을 쇠게 된 것을 축하하며 서로 회포도 풀고 건배를 들 때였다. 문득 아버지가 이마살을 찌푸렸다. “장사장은?…” “글쎄요… 방이 잠겨있더라구요… 어디 나갔겠죠.” 엄마의 대답에 우리 자매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무슨 장사장…” 내가 의문을 표시하자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런 손님 하나 있다. 설에 손님 들이지 말라니 엄마가 듣지를 않고…” 그믐날 밥상을 마주한 채 잠시 장사장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였다. “복장무역을 한다는데 말이 너무 많아. 밥상을 적어도 두시간 이상 끌고 꼬박꼬박 세끼 다 차리길 원하는… 엄마가 들였으니 별수 없다만 나 같으면 언녕 내쫓았다.” “그래도 설을 타국에서 쇠는 사람을 어떻게 가라 그래요.” 실은 다른 민박 손님인데 그 민박에서 식구들끼리 오붓하게 설을 쇠기 위해서 엄마한테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래도 설을 이렇게 보내는 건 싫소. 당신도 푹 쉬지 못하질 않소.”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문밖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려왔고 엄마가 급히 말했다. “쉿. 그래도 설인데 살갑게 대하자구요.” 문소리가 들리면서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작달막한 체구의 중년남성이 들어섰다. 엄마가 수저를 가져왔고 곧 타인이 끼인 어색한 그믐날 저녁식사가 시작되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 대로 이 분이 말이 너무 많으셨다. 속사포 랩처럼 쏟아지는 말들 속에는 한국의 정치, 경제, 력사, 인문은 물론 추후 한중관계와 그것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까지 말에 말을 잇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 그렇소?” 례의상 마지못해 응대하는 아버지의 말에 그는 바로 얼굴이 밝아졌다. “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틀림없으나 지금의 한국은…” 휴우. 그는 숨도 들이쉬지 않고 말을 이어내려갔는데 모두 복합문이였다. 즉 그 일은 여차여차하여 이리 되였는데 그렇게 된 리유는 이런 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또 다시 말해서 그런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지만 제일 좋기는 이렇게 되여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아버지가 벌떡 일어섰다. “장사장, 난 술이 이만하면 됐네. 자넨 더 마실 텐가?” 아버지가 말을 놓으실 때는 이미 짜증이 났다는 뜻이다. “글쎄요… 저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 바쁘게 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우리도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를 하고 몸을 일으켰고 장사장은 혼자 상을 마주하고 있기가 민망한지 머뭇거리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저거 봐, 저렇게 말이 많다니까!” 잠시 후 다시 거실로 나온 아버지가 역증을 내셨다. 장사장의 방이 거실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다행이였다. “당신 그러는 거 아니예요. 사람 대놓고 괄시하면 안되죠. 설에 얼마나 외롭겠어요…” “저 사람 외로움 달래주다간 내가 괴로워죽겠는 걸! 그러게 왜 그까짓 민박비를 탐내서…” “이게 지금 민박비 탐낸 걸로 보여요?” 급기야 두분이 티각태각하신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장사장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짜증이 솟구쳤다. 설에 식구끼리 모여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는데 낯도 잘 모르는 타인이 끼여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다가 ‘대화서유大话西游’의 당승 뺨 칠 정도다. 아버지가 화를 내시는 것도 리해가 갔다. 생각해보면 장사장은 설 기간 동안 끼니마다 밥상에 끼일 것이고 항상 자기가 대화의 주체가 되여서 얘기하려 할 것이다. 아예 밥을 따로 먹을가 생각도 했지만 엄마가 몇번 밥상을 차리느라 고생하는 것도 안스러웠다. 그 날 엄마와 아버지의 다툼은 손님이 먼저 밥을 먹고 나간 다음 우리가 먹기로 합의를 보고서야 막을 내렸다. 하지만 다음날인 설날부터는 그것이 더 고역이였다. 밥상의 채는 다 식어가는데 장사장의 말은 끝날 줄 몰랐다. 우리는 방안에서 그 식사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거의 두시간 동안 배를 곯아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거실로 나가지 않았던 걸가. 그 리유는 괜히 왔다갔다하다가 장사장 눈에 띄면 잘못 걸려들기 쉬웠던 것이다. 우리를 발견하면 장사장의 눈은 더없이 반짝거렸고 자기 옆 의자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앉으라고 극성스레 권했다. 새로운 대화상대를 만난 절호의 기회를 장사장이 놓칠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설날 아침 멋모르고 세수하러 나갔다가 장사장의 눈에 띄인 나는 극성스런 권유에 못이겨 자리에 앉고 말았다. “앉으세요… 앉으세요… 식사하셔야죠… 맥주는?…” “죄송하지만 저 술 못 마십니다. 엄마… 밥 주세요.” 머리를 숙이고 열심히 밥을 퍼먹고 있는데 문득 껍질까지 바른 삶은 계란이 내 밥 우에 놓여졌다. 대체 우리가 주인인가 장사장이 주인인가. 나는 장사장의 그런 과잉친절이 부담스러웠고 이어지는 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따님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신다고 하셨던지…” 아닌게 아니라 또 시작이였다. 주저리주저리… 그의 말은 그야말로 청산류수였고 만일 서면으로 옮긴다면 중간에 쉼표 하나 허용하지 않을 정도였다. 건성으로 몇마디 대꾸한 나는 그만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아, 식사 벌써 다하셨나요…”  장사장의 눈에는 아쉬움이 력력했다. 한편으로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아주 잠간이였다. 나는 한쪽으로 빈 그릇들을 주방에 내가면서 밥상에 마지못해 앉아있는 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아버지, 우린 곧 시내돌이 가려는데 아버진 머 하실래요? 같이 안 갈래요?” “어, 그래. 나도…” 이쯤에서 장사장도 눈치는 챈 모양이다. “준비해서 따님들과 놀러 나가세요… 저도 이만…” 장사장이 저쪽 방으로 건너간 다음 나는 아버지한테 눈을 끔뻑하면서 웃었다. “봐요… 뭐가 어려워요. 나처럼 하란 말이예요.” “그래그래… 오늘은 니 덕분이다.” 아버지가 기꺼워하셨다. 설날 아침은 이렇게 지냈는데 점심과 저녁은 어떻게 할지 고민이였다. 결국 점심은 우리가 외출했다는 리유로 방에서 혼자 드시라고 엄마가 챙겨주기로 하고 저녁은 우리가 시내 갔다 와서 늦게 먹는 걸로 장사장과의 합석을 용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초이튿날 나는 조카딸과 복도에서 놀다가 밖에서 들어오는 장사장과 면바로 마주쳤다. “저, 한가지 물어볼 거 있는데요. 잠시만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겠어요?” 딱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잠시 망설이다가 기껏해야 한가지만 물어보겠지 하고 조카딸을 안고 따라갔다. “일단 여기 앉으세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숨이 막히고 온몸의 피가 바싹 마르는 기분이였다. 이미 수차례 불편을 겪었으니 말이다. 궁시렁궁시렁… 여차여차… 그는 그야말로 지칠 줄 모르는 수다의 신神이였다. 나는 몇번이나 그의 말을 중단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주먹을 말아쥐였다 펴기를 몇십번 반복했다. “저기요…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는데 대체 뭔가요?” 이런 말 한마디로 상황을 종료하기엔 그는 너무나도 신명이 나있었고 활기에 차넘치는 모습이였던 것이다. 나도 매정한 성격은 못되는지라 그렇게 한시간 쯤 고역을 치르고 있는데 다행히도 조카딸이 나를 구해주었다. “이모, 나 먹을 거 사준다 해놓고 왜 안 가? 나 배고파.” “그래그래… 가자… 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 그렇게 겨우 풀려나와서 거실로 나오니 온집 식구가 내가 실종되였다고 한창 찾고 있는 중이였다. “저쪽 방에서 장사장 얘기 들었어요.” 내 말에 언니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무슨 얘기 하던?” “음… 자기가 판매하고 있는 옷 브랜드로부터 류행하는 패션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취급하는 아이템의 가격과 광주에 무역사무실 오픈하려 한다는 것까지…” “하는 얘기가 항상 똑같네. 근데 그 사람 있잖아. 아마도 저래서 원래 민박집에서 쫓겨나온 거 같애. 아니면 어느 민박이 손님을 딴 데 넘겨주겠냐.” 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그래도 그렇지 어쩌면 저렇게 말이 많을가!” 아버지도 심란한지 거실을 왔다갔다 하신다. “언제 간대요?” 나는 처음으로 손님을 쫓아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모레 아침.” “휴우.” 온 집 식구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였다. 서로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이틀만 참기로 한 암묵적인 합의였다. 초사흗날 밤 우리는 작은 방에서 자그마한 가족파티를 열었다. 끝내 오래간만에 집식구가 오붓하게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장사장은 다음날 새벽 비행기라고 저녁식사 후 방에 가서 누운 지 한참 되였다. 서로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한사람 자리가 비여있었다. “엄마는요?” “저쪽 방에서 장사장 얘기 듣고 있다.” 끝내 엄마가 피해가지 못하고 장사장의 마지막 대화상대가 되여버린 것이다. 우리는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고 엄마는 그로부터 저그만치 세시간 반이 걸려서야 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다. “판이 다 깨지게 이게 뭐요?” 아버지의 불만에 엄마는 얼굴색을 흐렸다. “얼마나 말하고 싶었으면… 아마 남 모를 고충이 있어서 다른 말로 지금 풀고 있는 거 같아요.” “설사 그렇다 해도 그건 그 사람 사정이죠.” 내가 랭정하게 말하자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처에 호텔이 있는데 민박을 찾아온 거 보면 사람냄새가 그리워서 그런게 아니겠냐. 그리고 래일 간대잖냐.” 우리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래일 가지 않는다면 장사장 방문을 두드려서라도 그동안의 불만을 얘기하고 싶은 충동을 또 한번 억누르면서 말이다. 어디 우리가 사람을 용납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잡다한 말을 듣고 있느라면 마치 송충이 온몸을 기여다니는듯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던 것이다. 향항영화 《대화서유大话西游》에서는 손오공과 관음보살이 수다쟁이 당승 때문에 자제력을 잃고 살인충동이 일고 당승이 교수대에 매달려서도 옆의 요괴에게 수다를 떠는 바람에 요괴들은 허겁지겁 자결까지 하지 않았던가. 설사 영화가 과장된 거라 해도 지금 영화 속의 그 당승이 그대로 화면 밖에 나온 것만 같아서 우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분이였다. 가족모임은 어정쩡하게 끝났고 나는 꿈에서까지 장사장이 장편연설을 하는 것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 장사장이 가버린 방에서 청소를 하던 언니는 메모지 한장을 발견했다. 장사장이 남긴 것이 분명해보이는 그 메모지에는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도 한국행 티켓이 없어 멘탈붕괴 직전에 이르렀던 자신에게 항상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우리한테 고맙다는 인사가 적혀있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흔한 새해 인사로 끝난 메모지를 마주한 채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장사장 역시 우리 집 식구의 설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설날 산책하러 나가서 거리 한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거지에게 십원짜리 한장 쥐여주면서 늙은이의 갈쿠리 같던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도, 설명절만 되면 예고도 없이 집을 방문하는 안면 있는 아줌마들의 모든 푸념을 들어주면서 집식구들의 불만을 감당해야 했던 엄마도 결국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들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토록 감내하기 어려웠던 장사장의 수다를 고즈넉이 들어주던 우리 가족들도 분명 마음 한구석에 이런 작은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그에게 상처되는 말이나 행동들을 간신히 자제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동락해야 할 구정에 슬픈 소식을 접한 장사장은 아마 쉴 새 없는 수다로 그것을 잊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보려고 끊임없이 대화상대를 갈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짜증과 불만을 느꼈던 우리는 구경 구정의 진정한 의미를 어떤 식으로 리해하고 있었을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행복해져야 할 구정을 우리는 굳이 우리 나름 대로의 형식에 맞춰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아닌가. 건강할 때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가질 것, 시간이 주어졌을 때 시간을 소중히 보낼 것, 나보다 남을 위해 베푸는 기회를 가질 것, 나보다 더 외롭고 아픈 사람을 생각해볼 것… 이런 구정의 진정한 의미를 리해하기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인정세태에 그래도 장사장은 깍듯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겼고 그것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다음날 이른아침 아버지는 술상에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장사장이 없으니 밥상이 썰렁하구나.” … …   올해 구정을 앞두고 나는 애들을 데리고 친정의 가족파티에 참석했다. 술상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내가 물었다. “엄마, 장사장 혹시 기억나세요?” “당연히 기억나지. 그 말이 많던 사람.” 엄마는 웃으면서 말하다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당신도 기억하죠? 그번에 그렇게 간 다음 많은 손님을 소개해줘서 우리 민박이 한때 엄청 잘되였잖아요.” “기억하고 말고. 그래서 다시 오면 내가 꼭 술 한번 사고 몇시간이고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했었는데 그 후엔 도통 안 오네.”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던 딸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엄마, 장사장은 누구야?” “응, 말씀을 많이 하는 아저씨.” 나는 딸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창밖의 완연한 봄기운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북방의 엄동설한보다 남방의 온화한 기후가 나는 좋아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엄청 따뜻했던 아저씨.” 출처:2018 제3호
51    전유재: 허물·나비(시, 외1수) 댓글:  조회:366  추천:0  2019-07-12
허물·나비(외1수) 전유재     비상을 위해 빠져나온다, 나비 침묵으로 지은 집, 번데기 별빛 스미고 이슬 젖은 사연, 실타래에 매우 감겼다   해빛 아래 어깨박죽 펴면 하늘 펼쳐진다 경계 밖 열린 날, 응집으로 서러웠던 밀도 와락 터진다 이제, 온갖 날개짓에 원없이 온몸 아픈 건 허락된 자유, 네 허물의 채무다   허물 밖을 날아라   추운 숲 푸드덕 새 날아간 희디흰 선은 바람이 놀란 흔적이다 줄기 이파리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 얼어서 금이 갔다 와르르 조각들 발치에 떨어지니   오솔길이다 멋모르고 망울진 봉오리에서 눈송이가 잠을 잔다   꽃이 흩날릴 날 다시 숲을 지날 것이다 출처: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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