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날과 지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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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우여곡절끝에 다시 맺어진 사랑 댓글:  조회:4499  추천:1  2011-07-26
1983년에 감숙성 여호시 여성진에서 태여난 우해흠은2002년에 대학을 졸업하고2008년에 친구와 함께 소주에 들어가 광고회사를 차렸다. 그해7월에 우해흠은 인터넷채팅을 하다가 동진이라는 연구생처녀를 알게 되였다. 하남성 보정시에서 태여난 동진은 흑룡강성 모 대학교의 연구생과정을 마치고 천진시의 한 무역회사에서 번역사업을 하고있었다. 동진과 채팅을 하면서 우해흠은 그녀의 딱친구가 공교롭게도 자신이 대학시절에 짝사랑했던 팽옥패라는것을 알았다. 그때 팽옥패에게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기때문에 우해흠은 짝사랑을 가슴속에 묻어두었었다. 채팅하면서 동진과 퍼그나 익숙해진 우해흠은 자신의 짝사랑이야기도 서슴없이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2008년9월5일에 우해흠은 천진시로 출장을 갔다가 동진한테 전화를 걸어 팽옥패와 함께 만날것을 요구했다. 그날 오후에 동진은 팽옥패를 데리고와서 함께 우해흠을 만났다. 이는 동진과 우해흠의 첫 만남이였다. 동진은 비록 우해흠이 자신의 딱친구를 좋아하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지만 정작 훤칠한 키에 영준하게 생긴 우해흠을 보자 그한테 첫눈에 반해버렸다. 2008년12월의 어느날에 팽옥패가 실련당했다는 전화를 걸어오자 우해흠은 천진시로 달려와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우해흠은 천진시에 도착하자마자 동진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한참후에 동진이도 실련당한 딱친구를 위안해주러 달려왔다. 그날 저녁에 동진은 용기를 내여 우해흠한테 사랑을 고백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우해흠은 동진한테 호기심은 있었지만 몇년동안이나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짝사랑을 쉽게 포기할수 없었던것이였다. 우해흠한테 거절을 당한 동진은 한달동안이나 그와 련락하지 않았다. 2009년2월말에 우해흠은 동진의QQ공간을 둘러보다가 백혈병에 걸려 몇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그녀의 일기를 보게 되였다. 깜짝 놀란 우해흠은 동진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제야 동진은 울면서 자신이 만성백혈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이튿날에 우해흠은 동진이가 알려준대로 천진시에 있는 그녀의 세집으로 달려갔다. 동진의 신체상황은 그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좋아보였다. 동진은 병이 안정된데다가 비싼 치료비를 이어대기 힘들어 집에서 치료를 받는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해흠은 그녀한테 “동진이, 난 팽옥패를 보러 가야겠소”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동진은 울면서 “해흠씨, 전 당신한테 첫눈에 반했어요. 전 당신이 팽옥패를 짝사랑하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어요. 하지만 전 몇달후이면 저세상사람이 돼요. 전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만큼은 꼭 행복하고싶어요. 이 행복은 당신만이 저한테 줄수 있어요. 이 시간동안 당신이 가여운 저와 함께 있어주면 안되나요?”라고 말했다. 우해흠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그녀의 간절한 애원에 못이겨 머리를 끄덕였다. 며칠후에 우해흠은 빠른 시일내에 다시 천진으로 돌아오겠다고 동진과 약속을 한후 소주로 돌아갔다. 2009년3월12일 저녁7시경에 우해흠은 소주기차역에 도착했다는 갑작스러운 동진의 전화를 받았다. 우해흠이 기차역으로 달려가보니 동진은 추워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그 모습에 우해흠은 가슴이 쓰려났다. 그때 우해흠은 이토록 총명하고 선량한 처녀의 마지막 소원을 끝까지 들어주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받았다. 그날 저녁에 동진은 우해흠의 집에 주숙했다. 며칠후에 아름다운 신부가 되고싶다는 동진의 소원을 들어주고저 우해흠은 그녀와 결혼사진까지 찍었다. 동진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우해흠은 어느새 그녀한테 정이 들었다.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우해흠은6월에 진정한 그녀의 남자친구가 되였다.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동진이가 따뜻함과 사랑을 느끼게 하기 위해 우해흠은 최선을 다했다. 그의 따뜻한 관심속에서 동진이도 유쾌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2009년9월의 어느날, 우해흠은 동진의 서적을 정리하다가 책속에 끼워놓은 북경시해방군307병원의 병례를 발견했다. 유심히 살펴보니 병례는 동진이가2006년11월에 백혈병진단을 받았고2007년에 골수이식수술을 받았다는 내용이였다. 골수이식수술을 받은 환자가2년동안의 회복기를 걸치면 건강이 기본상 회복된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상식쯤은 우해흠도 잘 알고있었다. 이때에야 우해흠은 건강을 회복한 동진이가 불치병에 걸렸다고 자신을 속였다는것을 알았다. 우해흠은 병례를 동진의 눈앞에 갖다놓으면서 영문을 따져물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있던 동진은 흐느껴울면서 “미안해요. 제가 당신을 속였어요. 제가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놓치고싶지 않아서 이런 짓을 했어요. 전 당신의 동정을 사서라도 당신을 곁에 두고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우해흠은 화가 나서 “당신이 어쩜 날 기만할수 있단 말이요? 그런 수단으로 날 곁에 붙잡아둘수 있다고 생각하오? 난 더이상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소”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동진은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짐을 쌌다. 우해흠은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2009년9월28일에 동진은 다시 천진으로 돌아왔다. 얼마후에 동진은 속이 메스꺼워 병원을 찾았는데 뜻밖에도 임신이였다. 동진은 그만 아연실색해지고말았다. 골수이식수술을 받으면서 대량의 화학약물을 복용한 자신이 임신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는것을 그녀도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임신될줄이야? 하늘이 내려준 선물에 감동된 동진은 황급히 우해흠한테 메시지로 임신사실을 알렸다. 10여분후에 우해흠한테서 “당신은 또 무슨 연극을 꾸미고있는거야”라는 메시지가 왔다. 동진은 북받쳐오르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홀로 아기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을 내렸다. 그날부터 동진은 태아를 위해 회복치료에 도움되는 모든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회복치료제를 복용하지 않은탓에 동진은 수시로 위험에 빠질수 있었다. 얼마후에 동진은 부모님이 계시는 보정시로 돌아갔다. 2010년5월5일, 해산일을 코앞에 둔 동진은 갑자기 고열이 나기 시작했고 설사까지 했다. 그녀의 부모들은 부랴부랴 딸을 병원으로 호송했다. 병원검사에서 동진은 배척반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은 상황이 위급하니 즉시 락태하고 산모를 보호하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하지만 동진은 절대 락태할수 없다며 견결한 태도를 보였다. 이튿날 아침에 동진의 어머니는 우해흠한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날 저녁11시경에 동진은 코피를 흘리며 류산할 징조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어머니, 제가 만약 죽게 되면 즉시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세요. 이 아기는 제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의 결정체예요. 제가 죽는한이 있더라도 아기는 꼭 살려내야 해요”라고 부탁했다. 딸의 말에 어머니는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2010년5월9일 이른아침에 동진은 혼미상태에 빠졌다. 이때 한 젊은 남자가 동진의 담당의사를 찾아와 “전 우해흠이라고 합니다. 제가 배속아기의 아빠예요. 제가 담보할테니 빨리 아기를 류산시키고 산모를 구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결국 의사는 혼미상태에 빠졌있는 동진한테 락태수술을 해주었다. 10시경에 혼수상태에서 깨여난 동진은 배속아기가 없어진것을 발견하고 대성통곡을 했다. 이때 우해흠이 병실에 나타났다. 동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우해흠은 그녀의 침대곁에 다가가 “동진이, 너무 상심해하지 마오. 당신이 몸을 추스리는것이 중요하오. 아기는 후에 다시 가지면 되잖소”라고 말했다. 사실 우해흠은 동진과 헤여진후에 고통속에서 몸부림쳤다. 자신을 기만했던 동진을 용서할수 없었지만 그녀와의 행복한 나날을 떠올려보면 자꾸 눈물이 났다. 매일 밤마다 꿈속에서 동진을 만났는데 깨여나면 그녀가 보고싶어 미칠 지경이였다. 우해흠이 다시 그녀를 찾아갈 준비를 하고있을 때 바로 동진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던것이다. 병원에서 우해흠은 동진의 손을 잡고 “난 다시 당신곁으로 돌아오고싶소”라고 말했다. 동진은 눈물을 흘리면서 “예전에 전 건강을 회복했기때문에 당신을 곁에 붙잡아두려 했어요. 하지만 지금 전 다시 병이 발작했으니 당신한테 짐이 되고싶지 않아요. 당신처럼 우수한 사람은 꼭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야 돼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우해흠은 무릎을 꿇고 “난 한평생 함께 하자는 우리의 약속을 꼭 지키고싶소. 이 모든것은 다 내 잘못이요. 난 더이상 당신을 떠나서는 살수 없소”라고 말했다. 동진은 와락 우해흠의 품에 안겨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랑의 묘약이 큰 효험을 발휘했는지 동진은 며칠후에 열이 내리기 시작했고 설사도 점차 멎었다.  량가집 부모들의 동의를 거친 우해흠과 동진은2010년9월5일에 친척과 친구들의 축복속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우해흠은 중화골격창고에 동진의 자료를 보냈는데9월25일에 중화골격창고에서 그녀한테 맞는 골수기증자가 나타났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져왔다. 우해흠은 여직껏 모아온 저금과 부모님한테서 빌린 돈으로 동진의 수술비를 마련했다. 2010년11월중순에 동진은 북경시해방군307병원에서 재차 골수이식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은 성공적으로 되였다.                                                       《지음》
157    사랑을 양보하다가 비참하게 죽은 쌍둥이자매 댓글:  조회:5463  추천:0  2011-07-25
쌍둥이자매인 장아아와 장정정은 1983년에 안휘성 녕국시 갑로진의 한 아름다운 산골마을에서 출생했다. 언니 장아아는 2006년 여름에 남경리공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녕국시의 한 건축재료회사에 취직했다. 그해 9월에 장아아는 회사부근의 요가(瑜伽)중심에 갔다가 한 청년이 녀자들틈에 끼워 땀을 흘리면서 요가동작을 하고있는것을 보고 웃음이 나오는것을 겨우 참았다. 장아아는 요가훈련이 끝나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다가 문어구에서 또 그 청년을 만났다. 그녀는 호기심이 들어 “남자들도 요가를 하나요?”라고 물었다. 그 청년은 미녀가 묻는것을 보고 웃으면서 “나의 수하가 요가를 하면 사업압력을 풀수도 있고 기분도 전환할수 있다고 해서 해보는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후 요가중심에서 함께 요가운동을 하면서 장아아는 그 청년의 이름이 황위이며 그해 29살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2000년에 안휘성의 한 대학을 졸업한 황위는 건축재료회사를 꾸려 몇년간 분투한 결과 2006년에는 회사의 자산이 1000만원을 초과하게 되였다. 황위가 젊고 재간이 있는것을 본 장아아는 주동적으로 호감을 표시했다. 황위도 예쁘게 생긴데다가 사업에서도 부지런한 장아아를 마음에 들어했다. 2007년 2월에 안휘상업전문학교를 졸업한지 6개월이 되는 장아아의 쌍둥이녀동생 장정정이 녕국시로 돌아와서 취직했다. 장아아는 그날밤에 녀동생과 함께 자면서 자신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흘후 장아아는 황위와 식사할 때 장정정을 데리고갔다. 그런데 황위는 생김새는 똑같지만 장아아보다 눈길이 더욱 부드럽고 성격이 더 좋아보이는 장정정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그후부터 그는 장아아를 피해다니면서 장정정을 만났다. 장정정도 그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언니의 남자친구인지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2007년 8월에 황위는 장정정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장정정은 자신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핑게를 대고 거절했다. 하지만 몇달후 장정정에게 남자친구가 없다는것을 알게 된 황위는 다시 장정정을 찾아다니면서 사랑의 공세를 들이댔다. 2008년 9월의 어느날, 장아아는 황위한테 전화를 걸어 함께 식사하자고 약속했는데 황위는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장아아는 하는수없이 녀동생과 함께 식사하려고 녀동생의 단위로 찾아갔다. 그런데 황위가 녀동생단위의 문앞에 서있었던것이다. 장아아가 의심하는것을 눈치챈 황위는 그녀를 데리고 커피점으로 들어가 모든것을 털어놓았다. “난 이전에 아아를 좋아했댔소.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였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아가 아니라 정정이요!” 장아아는 멍해졌다. (황위가 내 녀동생을 사랑하다니?!) 집으로 돌아온 장아아는 대성통곡했다. 그녀는 장정정이 퇴근하여 돌아오자 “황위가 날 사랑하지 않고 널 사랑한다는데 그게 정말이냐”라고 물었다. 장정정은 “황위가 날 좋아한다고 말한적은 있어”라고 대답했다. 장아아는 눈물을 흘리더니 “정정아, 네가 황위를 좋아한다면 이 언니가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우린 영원히 친자매간이야. 그런데 넌 왜 여태껏 말하지 않았니”라고 물었다. 장정정은 장아아가 몹시 속상해하는것을 보고 말했다. “언니, 포기하지 마. 난 중간에 끼여들지 않을거야. 황위는 내가 좋아하는 류형이 아니야.” 그후 장정정은 장아아가 황위를 찾아가지는 못하고 전화만 기다리고있는것을 지켜보면서 몹시 괴로왔다. 그러면서도 “황위가 언니를 사랑하지 않고 두 사람이 만나 사실을 털어놓았으니 내가 황위를 좋아해도 되지 않을가”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2008년 11월의 어느날 저녁에 장정정은 장아아가 침실에서 자고있는데 곁에 놓여있는 핸드폰이 빛을 뿌리고있는것을 보았다. 찬찬히 여겨보니 핸드폰의 화면에는 황위의 전화번호가 나타나있었는데 장아아는 그때까지 발송단추를 누르지 않고있었다. 그것을 본 장정정은 언니가 자매의 정때문에 황위에 대한 깊은 사랑을 억제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 순간 “내가 황위를 좋아해도 되지 않을가”하는 생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말았다. 그녀는 2주일동안 황위가 자신한테는 계속 메시지(短信)도 보내고 전화도 하면서 언니한테는 메시지 한번도 보내주지 않고 고통스러워하는 언니를 보는척도 하지 않는것을 지켜보면서 화가 나서 견딜수 없었다. 장정정은 이튿날에 황위를 만나서 그의 귀쌈을 후려치면서 왜서 언니를 괴롭히느냐고 따지고들었다. 그러다가 황위가 손으로 뺨을 막고 눈물을 흘리는것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장정정은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건 승인해요. 하지만 장아아는 나의 친언니예요. 우리는 쌍둥이자매이기에 몸과 마음도 하나여서 누구 한사람이 아프면 상대방도 함께 아파요! 내가 어떻게 내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언니의 남자친구를 빼앗을수 있겠어요? 당신이 언니와 화해하세요. 네?”하고 말하고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황위는 장아아와 헤여지고 장정정과 결합해야겠다는 마음을 더욱 단단히 먹게 되였다. 집으로 돌아간 장정정은 장아아를 보고 “언니가 황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걸 알아. 포기하지 마. 그와 다시 잘 될수 있을거야”라고 말했다. 그동안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던 장아아는 평온을 되찾았다. 그녀는 황위를 찾아가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09년 2월 23일 저녁에 장정정이 연장근무를 하자 장아아는 황위를 집으로 불러놓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우리 먼저 결혼하자요. 내가 당신을 사랑할 기회를 주세요. 내가 꼭 당신의 좋은 안해로 되여드릴게요. 만약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난 녀동생을 데리고 여기서 떠나가겠어요!” 원래부터 장아아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황위는 이 말을 듣고 머리가 막 어지러웠다. 그렇다고 결혼하지 않자고 하니 사랑하는 장정정을 다시는 볼수 없게 되겠으니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난 아아와 결혼할수 없소. 나의 결혼상대는 정정이요!” “제동생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니요. 정정은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 말했소!” “좋아요. 정정이 당신한테 호감이 있다고 하자요. 하지만 당신은 그 애와 결혼하려니 꿈도 꾸지 마세요. 그 애는 래일 내가 소개해준 남자와 만날거니깐요!” 황위는 장아아가 장정정에게 남자를 소개해주자 화가 나서 견딜수 없었다. 장아아가 있는한 장정정을 얻을수 없다는 생각이 든 그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그녀를 쏘파에 밀어던졌다. 그리고 두손으로 힘껏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조였다. 장아아가 움직이지 않자 죽었다고 생각한 황위는 그녀를 안아다가 옷장에 밀어넣고 나중에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옷장이 움직이는 소리에 놀라서 돌아다보니 장아아가 거품을 문채 발로 옷장을 차고있었다. 깜짝 놀란 그는 전기선을 가지고와서 그녀의 목을 힘껏 조여 숨지게 했다. 시신을 다시 옷장에 넣고나서 아직 밤이 깊지 않았기때문에 시신을 처리하기 이르다고 생각한 황위는 객실에 앉아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자정이 되여 집에 돌아온 장정정은 언니가 보이지 않고 황위가 혼자서 텔레비죤을 보고있는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언니는 어디 갔어요”라고 물었다. 황위는 당황해하면서 림시로 일이 있어서 연장근무하러 갔다고 둘러댔다. 그 말을 들은 장정정은 “언니와 화해했어요?”라고 물었다. 황위가 머리를 끄덕이자 장정정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목욕을 한후 자신의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잠을 잤다. 황위는 장정정이 깨여날가봐 날이 밝기전에 시신을 옮길 엄두를 못냈다. 그는 아침에 장정정이 출근한후 시신을 처리하려고 장아아의 침실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아침에 깨여난 장정정은 옷을 갈아입으려고 장아아의 침실로 들어와 옷장을 뒤지려고 했다. 장아아가 장정정의 시신을 발견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한 황위는 급히 막아서며 “정정의 옷은 어제 언니가 빨아서 욕실에 걸어놓았소”라고 거짓말을 했다. 장정정이 욕실로 가는것을 보고 황위는 바싹 뒤따라갔다. 욕실의 목욕통에는 잠을 자기전에 장정정이 목욕을 하고나서 남긴 물이 가득차있었다. 장정정이 다시 돌아가 옷장을 뒤질가봐 겁이 난 황위는 미친듯이 달려들어 그녀를 목욕통의 물속에 처넣고 머리를 꽉 눌렀다… 장정정을 죽이고난 황위는 살았을 때 그녀의 몸을 점유할 기회가 없었는데 죽어서라도 한번 그녀의 몸을 점유해보고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그는 장정정의 시신을 건져서 욕실바닥에 놓은후 옷을 벗고 시간했다. 변태적인 욕정을 해결한후 황위는 쌍둥이자매의 핸드폰으로 각각 그녀들의 단위에 전화를 걸어 휴가를 맡아놓고 도망쳐버렸다… 이튿날에 딸이 거주하는 집으로 찾아온 쌍둥이자매의 아버지는 집문이 잠궈진것을 보고 딸들의 단위로 찾아갔다. 두 딸이 모두 단위에 없고 핸드폰도 통하지 않는것을 본 그는 이상하여 공안국에 제보전화를 걸었다. 얼마후 현장에 도착하여 쌍둥이자매가 거주하는 집문을 마스고 안으로 들어간 경찰들은 쌍둥이자매의 시신을 발견했다. 꽃같은 딸들이 비참하게 죽은것을 본 쌍둥이의 아버지는 너무도 비통하여 방바닥에 쓰러졌다. 경찰들은 사건현장분석과 장정정의 질속에 들어있는 정액에 의해 황위한테 중대한 혐의가 있다고 인정했다. 며칠후 경찰들은 멀리 도망치려는 황위를 렬차우에서 붙잡았다. 2010년 9월에 선성시중급인민법원에서는 황위를 고의살인죄와 시신모독죄로 사형에 처하고 정치권리를 종신박탈한다고 판결했다.               《법제일보》  
156    녀배우와 얽힌 영화감독습격사건 댓글:  조회:4171  추천:0  2010-12-02
중국의 이름난 청년영화감독 언파가 2010년 6월 8일 오전 11시 4분에 북경시 조양구에서 칼을 든 4명의 습격자에게 40여곳을 찔렸고 10곳이 골절되였다. 《남방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북경군구총병원에서 구급을 받아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오른팔이 불구로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1969년 1월 5일에 출생한 언파는 2001년에 인기배우 매정과 결혼했다가 2007년 3월 16일에 리혼했다. 그는 현재 다른 한 인기배우 리소염과 련애중이다. 매정(1975년 4월 30일 출생)은 《아스피린》, 《도화운》, 《핸드폰》, 《새 결혼시대》  등 수십부의 영화와 텔레비죤련속극에 출연하여 이름을 날렸고 리소염(1976년 4월 10일 출생)은 《무인운전》, 《애?부애》,집》, 《남하》 등 수십부의 영화와 텔레비죤련속극에 출연하여 인기를 끌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영화감독 고군서는 “녀영화배우 안도(殷桃)와의 밀애가 화근이였다. 언파가 리소염과 뜨겁게 련애하면서 비밀리에 안도와 만났기때문에 화가 난 안도의 남편이 사람을 시켜 한짓”이라고 했고 다른 한 영화감독 륙천은 “흉수는 오래동안 미행하다가 람도청사부근에서 손을 썼는데 이렇게 계획적으로 행동한것을 보아 깡패세력의 행위가 틀림없다. 내지 영화계에도 모순충돌과 더불어 깡패세력이 끼여들고있다”고 말했다. 2010년 6월 9일 오후에 언파가 감독을 맡은 영화 《쟈즈의 혼약》 첫 상영식이 있게 되였는데 언파는 전날에 습격을 당하는바람에 자신이 찍은 영화의 첫 상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또 다른 한 설은 리소염의 전 남자친구인 향항사람 A선생이 사람을 시켜 언파를 습격했다는것이다. 리소염도 이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내가 남자친구를 잘못 사귀였기때문입니다”고 말했다. A선생은 매우 극단적인데 헤여지자는 리소염의 제의를 줄곧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만나자고 하였기에 이 몇년동안 리소염은 핍박에 못이겨 외지에 나가 영화촬영을 하였다. 병원에서 언파를 간호하고있는 리소염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파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그의 건강상태는 주치의사의 최후진단을 기다려야 확인할수 있습니다. 나와 그의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치료에 배합하고있습니다. 나는 언파의 녀자친구로서 보도매체에서 다시는 근거없는 추측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런 엄중한 악성사건에 대해 우리는 응당 법률의 무기로 공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하며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나는 4년동안 줄곧 위협과 공갈을 겪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무일 없는것처럼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일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립정신이 강해서 내 힘으로 번 돈만 쓰면서 살았습니다. 나는 그저 아주 정상적인 련애를 한번 했을뿐인데 이런 위협과 공갈을 받으니 너무 억울합니다. 나는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것도 잘못이란 말입니까?   이로 하여 무고한 사람이 이처럼 엄중한 상처를 입어야 한단 말입니까? 난 정말로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나에게 최대의 용기를 준 사람이 바로 상처가 채 낫지 않은 언파씨입니다. 그는 매우 굳셉니다. 그에게 감사를 드리며 나를 지지해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경찰들이 빠른 시일내에 흉수를 잡아낼것이라고 믿습니다.” 언파를 습격한 지점은 북경시 조양구 람도청사부근의 지하차고였다. 사건현장 세차로동자의 말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그날 언파가 자가용차를 몰고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4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중 3명이 수박을 쪼개는 칼을 들고 언파를 쫓았다. 언파는 50메터쯤 달아나다가 승강기 가까이까지 갔을 때 갑자기 넘어졌다. 3명의 남자는 번개같이 달려와서 칼로 언파를 찔렀다. 10여초동안에 일어난 일이였는데 3명의 흉수는 사건을 저지른후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그날 오후 기자들이 사건현장에 달려가보니 현장은 깨끗이 청소되여있었지만 땅바닥의 피흔적은 그대로 있었다. 제보를 받은 북경시공안국에서 현재 이 사건에 대해 전면적으로 수사하고있다.                  《신경보》    
155    살인을 불러온 사랑유희 댓글:  조회:4814  추천:1  2010-11-24
2010년 3월 17일 새벽 5시경, 강소성 정강시의 한 아빠트단지에서 느닷없이 청소부의 아츠러운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결혼한지 겨우 몇개월밖에 안된 새신랑 마휘가 이른새벽 한구의 시체로 발견되였던것이다. 사건발생당일 범죄혐의자가 나포되였다. 놀랍게도 마휘를 살해한 사람은 다람아닌 그의 신부 리효란과 리효란의 옛련인 구양시우였다. 한창 신혼의 꿈에 젖어있어야 할 마휘와 리효란, 그리고 또 하나의 신비의 인물 구양시우, 구경 이들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있는걸가? 인터넷공간에서 싹튼 사랑의 씨앗 2005년 4월, 양주의 한 직업교육학원에 재학중이던 리효란은 인터넷채팅을 통해 대련시 승리광장에서 옷장사를 하고있는 구양시우(30살)를 알게 되였고 두 사람은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에서 련인으로 발전했다. 2005년 7월,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달랠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첫 만남을 가졌다. 함께 꿀같은 하루를 즐기면서 리효란은 구양시우의 남자다운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저녁무렵,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듯 부근의 호텔로 향했다. 격정을 억누를길 없었던 두 사람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불같은 키스를 나누었다. 두 사람이 뜨거운 애무를 나누며 서로를 탐닉하고있던 순간, 구양시우는 문득 자신의 행위를 멈추었다. 결혼전까지는 맹세코 사랑하는 녀자의 순결함을 지켜줄거라며 애써 자신을 억제하는 구양시우에게 감동된 나머지 리효란은 눈물까지 흘렸다. 이룰수 없는 사랑 무너진 사랑탑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빈번한 만남을 가지며 사랑을 키워갔다. 2006년 여름, 정강시 부동산회사에 취직한 리효란은 구양시우에게 결혼을 제기했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구양시우는 결국 자신의 고초를 실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족대대로 유전되는 질병때문에 이미 여럿이 사망했기에 자신은 결코 결혼을 할수 없는 몸이라는것이다. 리효란은 그제서야 구양시우가 한번도 자신과 육체적사랑을 나누지 않았던 리유를 알게 되였다. 그동안 자신의 성욕을 극력 억제하다보니 이제는 성기능마저 문제가 생겼다고 실토하는 구양시우를 보며 리효란은 철저히 무너지고말았다. 이뤄질수 없는 사랑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 안은채 통곡했다. 2008년 12월, 친척의 소개로 리효란은 자신과 출생년월일이 똑 같은 마휘를 알게되였다. 동남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마휘는 리효란과 자신은 운명적만남이라 여기고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퍼부었다. 이듬해 10월 마휘가 대학교를 졸업하자 두 사람은 결혼했다. 메시지를 통해 리효란의 결혼소식을 알게 된 구양시우는 “목놓아 통곡하는것밖에 해줄게 없다. 너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너의 결혼생활을 방해하고싶지도 않다. 다만 우리 사이의 련락만은 끊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의미한 결혼 끊을수 없는 사랑 결혼후 이들부부는 시댁에서 마련해준 60여만원짜리 아빠트에 입주했다. 하지만 마휘에 대해 아무런 사랑도 느낄수 없었던 리효란은 사소한 일을 꼬투리 삼아 늘 남편과 마찰을 빚었으며 지어 남편이 잠자리를 같이 하려해도 마지못해 목석처럼 응부하군 했다. 그런 안해때문에 마휘는 늘 들끓던 욕정이 한순간에 사그라짐을 느꼈다. 그녀는 시도때도 없이 구양시우에게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호소했고 그럴 때마다 구양시우는 달콤한 말로 리효란을 달래주었다. 남편이 출장가는 날이면 리효란은 기다렸다는듯이 구양시우를 정강에 불러들여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어느 한번 마휘는 술김에 자신의 속마음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마휘의 어머니는 며느리와의 허심탄회한 담화를 시도했지만 번마다 거절당했다.  결국 자신이 잘 알고 지내던 산부인과의사를 데리고 직접 아들집으로 찾아갔다. 울며겨자먹기로 의사가 던지는 낯 간지러운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면서 리효란은 자신의 존엄이 비참하게 무너지는것 같아 견딜수가 없었다. 그날저녁 리효란은 또다시 구양시우에게 자신의 조우를 토로했다. 구양시우는 사랑하는 녀자가 이같은 모욕을 당하자 펄쩍 뛰였다.   마휘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3월 13일, 구양시우는 또다시 정강으로 와 며칠간 호텔에 묵었다. 리효란은 틈만 나면 호텔로 달려가 구양시우의 품에 안겨 고통을 호소했고 그럴 때마다 구양시우는 리효란을 품에 꼭 껴안고 달래주었다. 3월 16일 점심, 또다시 울며 호소하는 리효란을 보며 구양시우는 결국 주먹을 부르쥐고말았다.   “마휘를 죽여버릴거야” 구양시우는  마휘가 죽으면 리효란이 많은 유산을 상속받게 될것이니 다시는 헤여지지 말고 멀리 도망가서 행복한 삶을 살자고 했다. 그날밤 12시 50분경, 리효란의 핸드폰에 구양시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미 집앞에 와있으니 거짓말을 둘러대고 남편을 밖으로 내보내오.” 리효란은 잠든 남편을 잡아일으키고는 배가 아파 견딜수 없으니 밖에 나가 약을 사오라고 했다. 남편은 “이 시간에 어디 가서 약을 구해온단 말이요?  인츰 나아질수도 있으니 조금만 참아보오”라고 했다. 마휘의 심드렁한 태도에 리효란은 펄쩍 뛰며 화를 냈다. 마휘는 별수없이 잠기어린 눈을 비비며 주섬주섬 옷을 주어입고 밖으로 나갔다. 리효란은 얼른 구양시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마휘가 집을 나갔어요.” 출동명령이라도 받은듯 구양시우는 아빠트출입문을 나서는 마휘를 향해 죄악의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을 타 차고앞에 다달은 구양시우는 망치로 마휘의 뒤통수를 향해 30여차나 사정없이 후려쳤다. 마휘의 죽음을 확인한 뒤 구양시우와 리효란은 빌려온 승용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리효란은 곧장 사촌언니네 집에 가 숨어버렸고 구양시우는 대련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이들의 미몽은 하루도 안돼 결국 예리한 경찰들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고말았다. 구양시우 “전 녀자입니다.” 느닷없이 기차우에서 경찰에게 잡힌 구양시우는 자신의 죄행을 극구 부인했다. 경찰들이 증거채취를 위해 그의 몸을 수색하려고 하자 그는 갑자기 나지막하게 소리를 질렀다. “전 녀자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한 남자로 둔갑한 구양시우(본명 호연), 한 녀자와 장장 5년간 사랑에 빠졌던 그는 놀랍게도 녀자였다. 딸만 넷을 낳았던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없다는 서러움때문에 어려서부터 호연이를 아예 아들처럼 키웠고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이 녀자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남성적으로 변해갔다. 사춘기시절 젖가슴이 발육하기 시작하자 그는 천으로 꽁꽁 동여맸다. 하여 그의 가슴은 녀자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아예 발육이 멎은 상태였다. 그의 가족을 제외한 주변인들은 누구도 그가 녀자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였다. 인터넷을 통해 리효란을 알게 된 뒤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동성과의 사랑에 깊이 빠져들게 되였으며 줄곧 자신의 신분을 토로하지 못한채  가족의 심장병사와 성기능장애를 들먹이며 그녀와의 육체적관계를 거부했던것이다. 경찰들로부터 구양시우의 진실한 신분을 알게 된 리효란은 믿을수 없다는듯이 도리머리를 저었다. 자신과 5년간 사랑을 속삭여온 사랑하는 사람이 녀자였다니? 경찰들이 호연이의 신분증명서류들을 보여주어서야 그녀는 악몽에서 깨여난듯 오열하고말았다. 2010년 3월 23일, 호연과 리효란은 고의살인죄로 정식 체포되였다. 간수소에 갇힌 리효란은 자신의 무지함때문에 무고한 생명이 살해되였다는 죄책감으로 때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지음》
154    정계의 “기생(寄生)철학” 비밀 댓글:  조회:4540  추천:0  2010-11-22
153    “잠자는 공주”를 깨워준 “백마왕자” 댓글:  조회:3659  추천:0  2010-11-17
왕문양(32세)은 성도시 한 소프트웨어( 件)연구제작회사의 기술일군이였다. 부모들이 자꾸 아들에게 결혼을 독촉하는 바람에 녀자친구가 없었던 왕문양은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였다. 더우기 곧 다가올 음력설에 꼭 녀자친구를 집에 데려오라는 부모들의 명령에 왕문양은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그러던중 그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애인을 세줌”이라는 전문란을 보게 되였다.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진효정(29살)이라는 처녀와 련계를 취한후 직접 만나보았다. 원래 그녀는 성도시 한 전자회사의 출납원이였고 훤칠한 키에 이쁘장하게 생긴 처녀였다. 진효정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던 왕문양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날 도와주오. 효정이가 내 애인으로 가장하고 부모한테 인사만 드리면 되오. 부모님이 하도 결혼을 독촉하는 바람에… 사례금은 2000원을 주겠소”뜻밖에 진효정은 자신도 왕문양과 같은 처지라고 말하는것이였다. “사실 저도 문양씨와 동병상련이얘요. 제 부모님도 자꾸 결혼을 재촉해요. 문양씨도 가짜애인으로 되여 저의 부모님한테 인사드리면 돼요. 전 사례금은 받지 않겠어요.”음력설을 5일 앞둔 어느날, 왕문양은 “세맡은 애인”과 함께 할빈시의 고향집에 도착했다. 왕문양의 부모들은 며느리감을 보자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저녁식사후 진효정은 왕문양과 함께 할빈시의 큰 공원으로 놀러 갔다.   그림같은 풍경아래에서 두 사람은 마치 개구장이 애들처럼 즐겁게 뛰놀았다.그날 저녁에 진효정은 침실에서 잠을 잤고 왕문양은 객실의 쏘파에서 잠을 청했다. 침실의 불이 꺼지는 순간 왕문양은 귀여운 진효정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의 심장은 당금이라도 밖으로 튀여져나올것만 같았다. 이튿날 아침, 왕문양이 그녀의 침실문을 열어보니 진효정은 아직도 꿈나라에 빠져있었다. 그녀가 늦잠꾸러기인줄로 착각한 왕문양은 진효정을 깨우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4시가 되도록 깊은 잠에 빠져있는 그녀를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든 왕문양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깨를 흔들었다.   하지만 진효정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였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 왕문양은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건강상태를 자세히 진찰해보던 의사는 모든게 정상적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의사도 그녀가 긴시간동안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는 원인을 알지 못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날 저녁, 왕문양은 병원에서 진효정을 보살폈다. 달콤하게 자고있는 진효정의 얼굴을 바라보던 왕문양은 문득 그녀의 부모가 생각났다. 그들은 며칠동안 감감무소식이 된 딸을 얼마나 애타게 찾고있을가?  허나 진효정은 그가“세맡은 애인”인지라 그녀에 대해 아는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급해난 왕문양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냅다뛰는것이였다. 깜짝 놀란 왕문양은 그녀를 뒤쫓아가면서 “효정이, 어디 가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진효정은 “화장실로 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나온 진효정은 곧추 병실로 달려가더니 또 깊은 잠에  빠지는것이였다. 그제야 그녀가 혹시 몽유병에 걸린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 왕문양은 급히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진효정의 맥박, 심장박동 등을 검사해보더니 모든게 정상이라는것이였다. (혹시 그녀가 몽유병에 걸린것처럼 꾸미고 돈을 사기치려는것일가? 만약 그렇다면 이 모든것은 그녀가 꾸민 자작극이란 말인가?)이렇게 생각한 왕문양은 등골이 오싹해났다. 이틀, 사흘, 나흘… 진효정은 여전히 “잠자는 공주”로 있었다. 왕문양네 식구들은 그녀가 영원히 깨여나지 못할가봐 송곳방석에 앉은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왕문양은 “세맡은 애인”이 이토록 시끄러울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왕문양의 부모들은 빨리 진효정의 부모한테 련락을 취하라고 아들을 독촉했다. 하는수없이 왕문양은 그녀가“세맡은 애인”이라고 이실직고했다. 아연실색해진 두 량주는 땅바닥에 그만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닷새후, 진효정은 마침내 잠에서 깨여났다. 진효정은 왕문양의 부모한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한후 자신의 병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작년 음력설기간, 진효정은 된감기에 걸려 5일동안이나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여났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아무 리유없이 련속 4일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또 저절로 깨여났다. 후에는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날이 점점 길어만졌다. 하여 용하다는 의사들을 다 찾아가보았지만 의사들마다 이런 괴상한 병을 진단조차 내리지 못했다. 이런 괴상한 병때문에 진효정은 몇번이나 회사에서 사직당했고 결혼에 대해선 꿈도 꾸지 못했다.여기까지 말하고난 진효정은 긴 한숨을 내쉬는것이였다. 이튿날, 진효정은 성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 왕문양은 그녀의 호주머니에 현금 2000원을 찔러주었다. 진효정이 떠난후 왕문양은 집안이 텅텅 비여있는것만 같았고 밥맛도 잃어버렸다. 이때에야 왕문양은 자신이 진효정한테 호감이 생겼다는것을 느꼈다. 2주일후, 뜻밖에도 왕문양은 진효정이 부쳐온 우편물을 받았다. 우편물안에는 은행카드와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에는“문양씨, 전번에 페를 끼쳐서 미안해요. 이 카드안에 2600원이 들어있어요. 당신이 저한테 주었던 돈과 제가 입원했을 때 썼던 돈이예요”라고 씌여져있었다. 순간, 왕문양은 코마루가 찡해났고 괴상한 병에 시달리고있는 선량한 처녀를 평생 보살피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튿날, 왕문양은 휴가를 내고 진효정의 회사로 달려갔다. 은은한 가로등 불빛아래에서 왕문양은 그녀한테“효정씨, 난 당신을 좋아하오. 이제부터 내가 당신을 보살피겠소”라고 고백했다. 허나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있는 그녀는 그럴수 없다고 오금을 박아 말했다. 하지만 왕문양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날마다 진효정한테 찾아가 그녀를 즐겁게 해주었다. 진작부터 자상한 왕문양한테 호감을 가지고있었던 진효정은 끈질긴 그의 사랑에 감동되여 마음의 문을 열었다. 며칠후, 왕문양은 친구로부터 그녀의 병에 용하다는 상해시의 인제병원을 소개받았다. 의사는 효정이가 극히 희소한 신경성질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이 병은 발작성이 강하며 발작할 때 짧아서 4~7일정도, 길어서 30일정도 수면상태에 빠질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직까지 이런 병은 치료될 가능성이 극히 드물고 다만 장기간의 중의침구료법으로 모종 혈을 자극할 경우 약간의 효험을 볼수 있다는것이였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싶다고 진효정과 왕문양은 한가닥의 희망이라도 놓치고싶지 않았다. 이튿날 왕문양은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전문적으로 중의학원의 리교수한테서 중의침구료법을 배웠다. 또 왕문양은 날마다 맹인안마중심에 가서 안마기술도 익혔다. 한동안의 피타는 노력끝에 왕문양은 마침내 진효정한테 침구치료와 안마를 해줄수 있게 되였다. 매번 그녀를 안마해주고나면 그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진효정은 육체의 고통보다도 땀벌창이 되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감동되여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행복의 꽃물결이 넘실거렸다. 2009년 11월, 진효정은 또다시 병이 발작하여 2일동안이나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이 기간 왕문양은 줄곧 그녀한테 침을 놓고 안마를 해주면서 그녀가 깨여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사흘이 되던 날, 왕문양은 그녀의 어깨에 침을 깊게 찔렀다. 순간 진효정이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자신의 곁을 지키고있던 남자친구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그도그럴것이 그녀는 병이 발작한후 이번이 혼미상태에 빠져있었던 시간이 가장 짧았던것이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왕문양의 침구가 현저하게 효험을 보았던것이다. 그후에도 왕문양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녀자친구한테 침을 놓고 안마를 해주었다. 2010년,  진효정은 더는 병이 발작하지 않았다. 음력설기간, 왕문양은 녀자친구를 데리고 할빈시에 계시는 부모님한테 인사드리러 갔다. 건강해보이는 효정의 모습에 왕문양의 부모님도 그들의 결혼을 허락해주었다. 그날저녁에 왕문양은 금목걸이를 녀자친구의 목에 걸어주면서 “효정이, 난 이 목걸이처럼 당신을 한평생 내옆에 묶어두고싶소”라고 말했다. 진효정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넓은 품에 안겼다. 2010년 4월 28일, 왕문양은 진효정을 데리고 다시 상해시인제병원을 찾았다. 그녀를 자세히 진찰하던 의사는 왕문양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젊은이,  녀자친구의 병세는 기본상 호전되였소. 이제 발작할 가능성은 적소. 자네들이 기적을 창조해냈네.” 삽시에 왕문양과 진효정은 눈물범벅이 되여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들은 무한한 사랑의 힘으로 병마와 싸워 이겼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사랑의 힘으로 기적을 창조해낸것이였다.                                                                                                   《지음》    
152    복수의 칼을 든 미소녀 댓글:  조회:4608  추천:1  2010-11-16
151    10대소녀 매음소굴 탈출기 댓글:  조회:4010  추천:0  2010-11-16
예리한 압침이 비수마냥 손톱밑을 찔러대고 알몸으로 엄동설한의 찬물세례를 견뎌야 했으며 소금 반근에 절여진 가지를 눈물과 함께 삼켜야 했던…이 끔찍한 일들은 얼마전 4명의 10대 소녀들이 당했던 참혹한 조우이다. 하남성 락양과 평정산에서 온 이 소녀들은 지옥같은 매음소굴에 팔려가 탈의무를 추고 매음을 하면서 갖은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넷중 가장 나이 많은 소녀는 19살이고 가장 어린 소녀는 17살이다. 이들은 호북과 호남 등지의 KTV, 목욕중심과 호텔을 전전하면서 “순회공연”을 했는데 공연의 주요내용은 탈의무였고 더불어 매음까지 해야 했으며 약간의 반항기미만 보여도 참혹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4월 23일 강서성 구강시공안부문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소녀들은 그제서야 악몽같은 매음소굴을 벗어날수 있었다. 초남(가명)의 이야기: 남자친구에게 속히워 올해 17살난 초남을 매음이라는 끔찍한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장본인은 다름아닌 그의 남자친구였다. 2009년 초남은 락양으로 가 그곳 친구들과 함께 재미나는 시간을 보내던중 친구의 소개로 리모를 알게 되였다. 그번 만남을 계기로 리모와 초남은 급속도로 가까와졌다. 2009년 10월 16일, 리모와 함께 녀주시 온천에 놀러간 초남은 감기기운때문에 홀로 호텔방에 남았다. 밤 10시쯤, 리모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같이 병원으로 가자고 하면서 차를 보냈으니 타고 오라는 말만 남긴채 리모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초남은 아무 의심없이 자칭 리모의 사촌형이라 부르는 손모의 차에 올라탔다. 그뒤로 리모는 핸드폰을 꺼버린채 종적을 감추었다. 초남은 손모의 협박에 못이겨 호북으로 끌려갔고 호북에 도착하자마자 리모로부터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으면 좋은 끝장이 없을거라는 협박전화를 받았다. 초남은 일이 상서롭지 못함을 눈치채고 도망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렇게 초남은 악몽같은 매음소굴에 빠져들게 되였다. 양양(가명)의 이야기: 탈의무, 매음, 혹독한 매 양양은 매음굴에서 근 2년동안 사람취급을 받지도 못한채 뭇남성들에게 유린을 당했는바 4명의 소녀들중 가장 오랜 시일동안 매음소굴에 갇혀있었다. 2007년말, 이모와 함께 광동에서 막일을 하던 양양은 우연한 기회에 고향친구 황모를 만났다. 황모는 친구가 가무단에서 공연할 녀성들을 모집하고있는데 일해볼 의향이 없냐고 제안했다. 가무단에서 공연을 하고 한달에 2000원의 로임을 받을수 있다는 말에 두 사람은 곧장 황모를 따라 호북으로 갔다. 호북에 도착하자마다 그들은 신분증을 비롯한 소지품을 죄다 압수당한채 손모(초남을 호북으로 끌고갔던 손모)를 따라 호텔 2층에 올라가 “공연”을 관람했다. 놀랍게도 공연내용은 탈의무였다. 로골적인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양양과 이모는 일이 상서롭지 못함을 눈치채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렇게 그들은 손모 일당의 갖은 수모와 혹독한 매질에 견디지 못해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뭇사람들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다양한 자세를 취해야 했으며 손님의 요구에 따라 매음까지 해야했다. 탈의무를 추면서 손님을 단칸방으로 유혹해서 손님들이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만족시켜줘야 했는데 그렇게 번 50~60원의 수입중 정작 본인이 받을수 있는 금액은 고작 5원이였다. 나머지 돈은 죄다 손모가 압수해갔다. 기회를 봐 매음소굴을 탈출하기 위해 양양은 매번 매음해서 번 돈 5원을 꼬박꼬박 감추어두었지만 번마다 이들 일당에게 들키는 바람에 모아둔 돈을 죄다 압수당하군 했다. 어느 한번 양양은 한 손님을 상대로 매음을 한후 손님으로부터 300원의 화대와 몇십원의 팁까지 받았다. 양양은 손모일당에게 200원만 바친후 자신의 옷에 구멍을 내고 나머지 백여원을 깊숙이 감췄다. 하지만 이것마저 다른 매음녀에게 들키고말았다. 그 매음녀가 가차없이 손모에게 적발하는 바람에 양양은 또 한번 장시간동안의 몽둥이찜질을 당해야 했으며 한겨울 칼바람이 거침없이 뚫고드는 창가에서 밤새 알몸으로 벌을 서야 했다. 양양은 추위와 아픔과 두려움과 치욕에 온몸이 경련이라도 온듯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이라도 창문을 열고 뛰여내리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지만 꼭 다시 엄마를 만나고싶다는 간절한 욕망 하나만으로 그녀는 끝끝내 죽음의 문턱에서 자아를 되찾았다. 그뿐이 아니였다. 이들 일당은 반토막난 가지 한개에 소금 반근을 넣어 펄펄 끓인 뒤 이들에게 먹으라고 호통쳤다. 도저히 먹기 힘들어 남기기라도 하면 또한번 몽둥이로 두들겨 팼으며 울며겨자먹기로 다 먹은 뒤에는 물 한방울 마시지 못하게 했다. 어느 한번 양양은 머리방에 갔다가 자신을 감시하고있던 마모의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메시지(短信)를 보냈다. 자신은 무사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부모님에게 전해달라는 내용이였다. 그런데 메시지를 받은 친구가 밤에 마모의 핸도폰에 확인전화를 하는 바람에 양양은 또한번 죽도록 얻어맞았다. 이렇게 양양은 자신의 일생에서 더없이 소중한 2년이라는 시간을 악몽같은 매음소굴에 고스란히 바치고말았다.  소여(가명)의 이야기: 압침, 온몸 전신을 괴롭혀 2009년 음력설즈음, 호남에 공연갔던 이들 일당은 경찰들의 조사를 받게 되였다. 간신히 풀려난 뒤 이들은 소여가 제보했다고 의심한 나머지 그에 대해 끔찍한 체벌을 가하기 시작했다. 몸에 상처가 나면 공연에 지장이 있을것을 고려해 이들은 결국 얼굴을 제외한 몸 구석구석을 압침으로 사정없이 찔러댔다. 순식간에 소여의 몸 구석구석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이들은 계속해서 찔렀고 아예 압침으로 소여의 손톱과 발톱밑을 마구 찔러댔다. 사후, 소여의 발톱은 혹독한 아픔을 견디지 못한채 죄다 문들어 떨어지고말았다. 연자(가명)의 이야기: 연극단을 미행해 동료들 구출 2009년 년말, 이들 일당은 호북성 경찰들에 의해 대량 체포됐다. 겨우 빠져나온 일당은 일단 피신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4년간 탈의무를 추며 갖은 학대를 참아왔던 연자가 발에 부상을 입었다. 평소 로실하기로 소문났던 연자였던지라 이들 일당은 아무 의심없이 연자를 병원으로 보내주었다. 이 틈을 타 연자는 무사히 도주할수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된 연자였지만 결코 이대로 다른 자매들의 불행을 좌시할수 없었다. 그는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이들 일당을 암암리에 미행하기 시작했고 결국 강서성 구강시 도창현에서 이들의 종적을 발견했다. 연자와 남자친구는  지체없이 경찰에 이 사실을 제보했다. 4월 15일, 제보를 접수한 구강시 경찰들이 신속히 출동해 이들 일당을 일망타진했다. 4월 22일, 구강시 경찰측에서는 양양 등 4명의 피해소녀들을 구출한 뒤 300원의 로비와 함께 이들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로써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인생의 모진 시련을 겪은 4명의 10대 소녀들은 드디여 꿈에도 그리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수 있게 되였다.  본 사건은 진일보 심사중에 있다.                                                           《법률문췌보》  
150    련인으로부터 남매로 돌아오기까지 댓글:  조회:4460  추천:0  2010-11-15
                                                                                                          촬영 / 방연화
149    마약중독으로 절도범이 된 천만장자 댓글:  조회:3662  추천:0  2010-11-11
2010년초부터 호북성 황산시 단성산의 한 대형슈퍼마켓(超市)문앞에서 오토바이와 전동차 절도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단성산파출소에서는 범죄혐의자를 잡기 위해 이곳에 여러번이나 그물을 쳐놓았으나 교활한 범인은 번마다 그물에서 빠져나갔다. 2010년 5월 27일 저녁 7시, 사복하고 숨어서 지키던 경찰들은 두 사람이 매우 의심스러운것을 발견했다. 그중 한 사람은 주위를 살펴보더니 길옆에 세워놓은 전동차의 자물쇠를 우격다짐으로 비틀어연후 전동차를 몰고 재빨리 현장을 떠나는것이였다. 경찰들이 살금살금 뒤를 따라가보니 그 사람은 황석인민광장에서 내린후 그 차를 어두운 곳에 세워놓고 다시 원래의 현장으로 돌아가 공범과 만나는것이였다. 그들이 다시 다른 차량을 훔치려고 할 때 경찰들은 달려가서 두 범죄혐의자를 붙잡았다. 범죄혐의자 진모와 왕모는 자신들이 차량을 절도한 사실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승인했다.그들은 마약중독자였는데 마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광적으로 차량을 절도했던것이다. 그중에서 진모는 원래 오락성을 경영하는 천만장자였다. 황산시 중심에 오락성을 세우고 리사장 겸 총경리로 된 그는 한때 황산시에서 잘 나가는 인물이였다. 그에게는 행복한 가정도 있었다. 예쁜 안해와 귀여운 딸 그리고 호화로운 별장을 가지고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던 그가 마약을 사용하면서부터 가산을 탕진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였다. “사람들은 남자가 돈이 있으면 변한다고 했습니다. 녀색을 즐기게 되고 도박에 물젖게 되며 심지어 마약에 손을 대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비록 돈을 벌었지만 안해이외의 다른 녀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도박이란건 어떻게 노는건지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모범총경리, 모범남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제가 2001년 3월에 친구의 생일연회에 갔다가 그만 마약을 접촉하게 되는 바람에 모든것을 망치게 되였습니다.” 진모가 친구의 생일연회에 갔을 때 술상에서 가모라는 남자를 알게 되였다. 부동산업을 한다는 가모는 “돈을 버는것은 향수하기 위한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이 얼마라고 고생만 하겠습니까? 돈은 관속에 가지고도 못가는데 살았을 때 실컷 향수를 누려야 하지요”라고 하면서 1000년 묵었다는 술을 내놓으며 “이건 미국대통령도 맛보지 못한 무가지보(无价之 )입니다. 한번 맛보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술을 마신후 진모는 기분이 묘해지면서 신선이 된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후 그는 자꾸만 그 술을 마시고싶은 생각이 들어 견딜수 없었다. 참다못해 그는 가모한테 전화를 걸어 그 술을 살수 없는가고 물었다. 가모는 통쾌하게 대답했다. 그후 진모는 그 술에 중독된것을 느끼고 마약을 탄 술이라는것을 알았지만 이미 자신을 통제할수 없었다. 2001년 12월부터 진모는 마약을 흡입했고 2002년부터는 마약을 주사하기 시작했다.  마약을 사용하면서 진모는 빚을 갚기 위해 오락성을 팔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별장과 주택,  자가용차도 팔아버렸다.  그렇게 되자 안해는 리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멀리 떠나버렸다.2004년부터 진모는 거지생활을 하게 되였다. 그는 밖에서 잠을 자다가 같은 마약중독자 왕모를 알게 되였다. 두 사람은 마약을 흡입하기 위해 차량을 훔쳐 팔기 시작했다.   진모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약때문에 일생을 망쳤을뿐만아니라 모든것을 잃었습니다. 지금은 페결핵, 을형간염 등 여러가지 병에 걸려 죽을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때 마약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약공급이 중단되면 고통이 극도로 민감해지며 자주 구역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떨리는것을 통제할수 없었습니다. 6개월동안 마약을 끊었던 적도 있지만 결국 다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처음보다 더 깊이 인이 박히게 되였습니다. 나는 세상사람들에게 마약에 절대 손을 대지 말라고 부탁하고싶습니다.  마약에 손을 대기만 하면 의지가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끊을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나처럼 자신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고 범죄의 길을 걷게 되여 사회에 해를 끼치게 됩니다.”                       《호북석간》    
148    광주 최악의 마약밀매조직 피고석에 댓글:  조회:5402  추천:0  2010-11-11
  광주시중급인민법원에서는 2010년 6월 9일에 법정을 열고 광주에서 가장 흉악한 깡패무리라고 소문난 오지견 등의 마약혐의사건을 공개심리했다. 수범 오지견 및 범죄혐의무리 19명은 피고석에 올랐다.   2007년부터 이 조직은 점차 오지견을 우두머리로 한 깡패조직으로 발전했다.조직성원들을 통제하기 위해 오지견은 매개 성원들의 신분증번호와 집주소를 적어놓았다. 오지견은 월급형식으로 매 조직성원들에게 매달 5000원씩 내주었다.   조직실력을 키우기 위해 오지견은 대량의 총기, 탄약 등 흉기를 사들였다. 오지견은 2007년부터 2008년까지의 사이에 피고인 왕중위를 통해서 피고인 사빈에게서 권총 4자루, 돌격총 2자루, 장총 4자루, 수류탄 2개, 수뢰 8개, 탄알 1상자를 사들여 공범 진충승, 굉화군, 사의파, 장홍박 등에게 내주었다.   2007년부터 오지견은 조직을 거느리고 선후로 광주시 백운구에서 여러번이나 마약을 제조하여 밀매했다. 오지견조직에서 제조하여 밀매한 마약은 30킬로그람을 초과하며 아직 처리하지 못한 마약은 49킬로그람에 달한다. 오지견은 조직성원들에게 자신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것을 요구하면서 조금이라도 딴마음을 품은 자가 있으면 가차없이 징벌하군 했다.   2007년 12월 14일, 피해자 왕문원과 공범 한뢰가 딴마음을 품고있다고 의심한 오지견은 즉시 두 사람을 시골에 구금한후 몽둥이로 때리고 불로 지져놓았다. 열흘후 왕문원은 기회를 타서 도망치고 한뢰는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다가 죽고말았다.   오지견은 의심이 많고 잔인한 자였다. 그는 의심이 드는 자가 있으면 반주검이 되게 때리지 않으면 죽여버렸다. 그리고 의심이 드는 자를 적발한 부하와 공을 세운 부하들에게는 상을 내리군 했다.   2008년 12월, 진위병이 외부의 마약밀수조직과 결탁하여 조직의 마약을 도적질했다고 의심한 오지견은 즉시 그를 감금하고 부하들더러 륜번으로 때리게 했다. 그리고 진위병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과량의 마약을 흡입하도록 하고는 진위병의 시신을 토막내여 강에 던져버렸다. 그날 저녁 오지견은 부하들에게 매인당 5000원씩 상금을 나누어주었다.   2009년 2월, 피해자 주국전이 딴 마음을 품고 조직을 배신했다고 의심한 오지견은 주국전과 그의 녀자친구를 감금했다.그후 사의파 등 부하들을 시켜 륜번으로 주국전을 때리게 했으며 콜라에 마약을 타서 주국전더러 마시게 했다. 그리고 비닐반창고로 주국전의 입과 코구멍을 봉하고 죽여버렸다. 다음 사의파 등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주국전의 시신을 토막내여 호문대교아래의 강물에 던져버리도록 했다. 그날 저녁 오지견은 입을 봉하기 위해 또 굉화군을 시켜 주국전의 녀자친구 오시민을 산채로 무거운 돌이 들어있는 마대에 넣어 강물에 던져버리게 했다. 그리고나서 부하들에게 매인당 3000원씩 상금을 나눠주었다.     죄수복을 입은 오지견은 피고석에 앉은 모든 사람들을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입가에 쓴웃음을 짓고있었다. 그는 영웅이라도 된듯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거들먹거리며 몸을 흔들어댔다. 공소인은 몇가지 문제를 물어본후 그의 거만한 태도를 더는 보고만 있을수 없어서 “바른대로 앉아! 다리를 내려놓고!”라고 꾸짖었다.   오지견은 모든 죄를 부인했다.  그는 검은 조직을 세우고 마약을 제조하고 밀매했다는것을 부인했고 고의살인 등 범죄사실도 승인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조직성원을 한 사람도 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소개했고 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그들 자신이 자원적으로 조직에 가입한것입니다. 나는 대부분 사람들에 대해 얼굴도 잘 알지 못하고 이름도 모릅니다. 내가 그들의 신분증번호를 적어둔것은 그들을 익숙히 알기 위해서이지 통제하기 위한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배신한 부하들을 비법구금하고 고의살해한 사실에 대해 오지견은 그 책임을 모두 부하들에게 떠넘겼다. 그러나 자기의 동생 오지위만은 감싸주었다. 오지견은 “오지위는 조직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보수도 받지 않았습니다. 오지위는 마약제조,  마약밀매를 한적 없으며 총기, 탄약에도 손을 댄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변명해도 지은 죄를 덮어 감추지 못할것이고 법률의 엄한 징벌을 면치 못할것이다.                              《광주일보》
147    그들 부부가 창조해낸 기적 댓글:  조회:4391  추천:0  2010-09-06
                                                                                                           리혜란 / 촬영
146    두 남자사이를 오간 녀인 댓글:  조회:4562  추천:0  2010-08-23
  2010년 2월 28일(음력 정월 대보름), 심수의 번화한 새박광장에서 한 남자가 어느 회사의 총경리인 하해청을 칼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하해청과 곧 결혼하게 될 장화려가 나서서 몸으로 날아오는 칼을 막았다. 박투중에 범인도 칼날에 손을 상해 입원했는데 며칠후 경찰들은 병원의 감시카메라에서 장화려가 이 범인과 함께 병원을 떠난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가?   금년에 27살인 하해청은 심수태생인데 대학을 졸업한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자체로 전자과학기술회사를 세웠다. 2007년 5월에 하해청의 회사에서는 제품포장설계사 장화려를 초빙했다. 광동성 소관에서 출생한 장화려는 모 대학 예술설계학부를 나왔는데 키가 크고 예쁘게 생겼다. 장화려한테 첫눈에 반한 하해청은 기회를 타서 사랑을 고백했다. 장화려는 하해청이 비록 외모는 잘 생기지 못했지만 젊은 나이에 회사를 세운것을 보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2010년 2월 24일에 결혼식을 올린 그들은 3월 3일에 결혼등록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정월 대보름날에 뜻밖에도 난데없이 나타난 낯선 남자의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던것이다.   범인은 도망치고 하해청과 장화려는 심수시제2인민병원에 실려가 구급을 받았다. 하해청은 가슴, 등, 어깨에 10여곳이나 찍혔지만 심장이 찔리지 않았기때문에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장화려도 등이 깊게 찔렸지만 내장이 상하지 않았기때문에 생명의 위험이 없었다.   사건제보를 받은 심수시공안국 복전분국 원령파출소의 경찰들은 즉시 현장에 달려와 사건수사에 달라붙었다…   2008년말의 어느날, 장화려는 “독약”이라는 닉네임으로 “마귀”라는 인터넷유회를 놀다가 닉네임이 “기사”라는 남자를 알게 되였다.  장화려는 “당신은 왜 ‘기사’라는 이름을 달았어요? 애인을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련적과 결투하기 위해서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난 생명마저 바칠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후 “당신은 왜서 ‘독약’이란 이름을 달았습니까?”라고 물었다. 장화려는 “어느 노래에 사랑은 독약이란 구절이 있잖아요? 제가 바로 사랑독약이예요. 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푹 빠져서 나오지 못하게 할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대화가 통하자 서로 QQ로 화상채팅을 하기 시작했다. 장화려는 “기사”가 미남인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기사”도 장화려의 미모에 반하여 인테넷으로 각양각색의 장미꽃을 선물했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함께 인테넷유회를 놀고 QQ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정이 깊어졌다.   어느날, “기사”는 유희를 놀다가 “우리 ‘부부’로 되면 더욱 힘이 강해질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화려는 “가상부부”로 되는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즉시 대답했다. 인터넷유희에서의 결혼도 결혼등기를 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절차가 있어서 매우 재미있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서로 “여보”, “당신”하고 부르면서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기사”는 자신의 본명이 당옥령이며 료녕성 무순시에서 사는데 어느 운수회사의 주관경리라고 알려주었다. 장화려도 자신의 진실한 신분을 알려주었지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은 숨겨두었다.   2009년 4월의 어느날, 당옥령은 QQ로 대화를 하다가 며칠간 휴가를 맡고 그녀를 만나러 심수로 가겠다고 말했다. 장화려는 남자친구 몰래 다른 남자와 만나는것이 두렵기도했지만 신선하고 자극적이라고 느껴졌다. 당시 그녀는 하해청이 외모가 짝지지만 재주가 있다고 여겨져 그한테 시집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사업이 바빠서 련인절이거나 생일에 그녀를 기쁘게 해주지 못했다. 랑만적인 사랑을 갈망하던 장화려는 당옥령과 만나는데 동의했지만 약속지점은 심수가 아니라 광주로 정했다. 장화려는 하해청에게 광주에 있는 고모가 앓는다는 핑게를 대고 광주로 가서 당옥령과 만나 려관방에서 함께 사흘을 묵으면서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후 그들은 여러번이나 만나서 불륜을 즐겼는데 그때마다 당옥령은 뜻밖의 선물을 선사하군 했다. 당옥령은 월급이 2000원밖에 안되였기때문에 심양에서 광주까지의 기차표를 사려면 아름찼다. 그래서 매번 10여일전에 특수가격비행기표를 예약하여 한달에 한번씩 광주로 날아가 장화려와 만나군 했다. 당옥령은 한번 장화려와 만나면 돈지갑이 텅텅 비기때문에 “내가 광주나 심수에 와서 품팔이를 하면 우리가 만나는데 편리하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장화려는 당옥령과 빈번이 만나면 하해청의 의심을 사게 될가봐 “가장 큰 행복은 먼곳에 있는 한 사람이 당신을 그리는것이란 말이 있잖아요? 난 이런 감각을 특별히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2009년 12월의 어느날, 장화려가 광주에서 당옥령을 만나 불륜을 즐기고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하해청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후 장화려는 핸드폰소리를 진동으로 바꿔놓고 핸드폰을 핸드빽에 넣었다. 그런데 그녀가 다시 화장실에 갔을 때 당옥령이 그녀의 핸드폰을 받았다. 당옥령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것을 보고 의심이 들어 장화려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방금 전화를 걸어온 남자가 누구인가고 따져물었다. 장화려는 하는수없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장화려가 하해청이란 남자와 결혼하게 될 사이라는 말을 들은 당옥령은 화가 나서 따져물었다.   “난 당신과 인터넷으로 결혼한 사이인데 왜서 나를 배반한거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난 정말 당신과 함께 있는 아름다운 감각을 좋아해요!” 장화려가 급히 변명하자 당옥령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우리 정식으로 결혼하자구!” “당신의 월급이 고작 2000원밖에 안되는데 그 돈으로 어떻게 살겠어요?” 한시간이나 다투게 되자 장화려는 화가 나서 “난 원래 당신과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따지니 우리 차라리 헤여지는게 좋겠어요!”라고 말한후 그날밤으로 고속렬차를 타고 심수로 돌아갔다.   그후 당옥령은 장화려가 2010년 2월 29일에 하해청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옥령은 사랑하는 녀인에게 버림받은 기분이 들면서 화가 솟구쳤다. 그는 심수에 가서 자기의 녀자를 빼앗아간 하해청을 혼내주겠다고 별렀다.   2010년 2월 17일 오전에 심수에 도착한 당옥령은 장화려의 핸드폰메시지(手机短信)를 보고 알았던 하해청이란 이름과 이전에 기억해두었던 화강북, 컴퓨터회사 등 관건적인 정보에 의해 복수할 목표를 찾기 시작했다. 몇시간후 하해청의 회사를 찾았지만 하해청과 장화려는 모두 그곳에 없었다. 그 회사의 직원에게 하해청의 핸드폰번호를 물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이튿날 아침 다시 찾아가서 그 회사의 직원을 보고 “나는 하해청의 친구입니다.   새박광장에서 만나 장사에 대해 상의하려고 하니 그한테 전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났다.새박광장의 은밀한 곳에 숨어서 기다리던 당옥령은 장화려가 어떤 남자의 팔을 끼고 다정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자 질투심이 북받쳐올랐다. 그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비수를 품고 하해청의 뒤로 다가가서 손으로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당신이 하해청입니까?”라고 물었다. 하해청이 “네. 그런데요”하고 대답하자 당옥령은 그가 하해청이 틀림없다는것을 확인하고 비수로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들이찔렀다. 난데없이 나타난 당옥령이 하해청을 비수로 찌르는것을 본 장화려는 깜짝 놀라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리고 당옥령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당옥령의 손에 밀려 땅바닥에 넘어지고말았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서 몸으로 하해청을 막아나섰다. 그 바람에 그녀의 등은 당옥령의 비수에 깊이 찔렸다. 박투중에 당옥령도 칼날에 손근육이 손상을 입었다. 그는 동관으로 도망친후 80여곳을 봉합해서야 손을 살릴수 있었다.   2010년 3월 12일에 공안부문에서는 법에 의해 당옥령을 구류했고 2010년 4월 6일에 심수시 복전구인민검찰원에서는 법원에 기소를 제기했다. 당옥령을 기다리는것은 법률의 엄한 판결이다.이 사건의 다른 한 관건적인 인물인 장화려는 비록 비호죄의 혐의가 있지만 그녀도 부상을 당했고 몸으로 칼을 막아 하해청을 보호했기때문에 검찰기관에서는 그녀에 대해 기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치료중에 있는 하해청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후 슬픔에 잠겨 장화려를 보고 “당신은 도대체 나를 사랑하오? 아니면 그를 사랑하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화려는 “전 당신을 더 사랑해요. 당옥령에 대해 말하면 전 그저 저한테 미친듯이 반한 그 감각이 좋았을뿐이예요. 제가 평생 함께 살고싶은 사람은 당신이예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두 큰 상처를 입은 하해청은 장화려의 이런 황당한 해석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장화려는 눈물을 흘리면서 갓 신방으로 차려놓은 집을 떠나지 않을수 없었다.    《법제일보》    
145    사랑의 힘으로 엮어가는 신화 댓글:  조회:3800  추천:0  2010-08-18
 선량한 처녀의 따뜻한 손길 2008년 3월,  광주시 한 사진관의 촬영실에서 정우빙은 이쁘장하게 생긴 네 처녀에게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그 중에서 조원리라는 처녀는 그와 한 고향 사람이였다.  서로 이웃으로 살던 그들은 뜻밖에 타향에서 만나게 되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며칠후 그들은 굥교롭게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역에서 또 만났다.  기차안에서 그들은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꽃을 피웠다.  로주시에서 태여난 정우빙은 소주시에서 미술전업대학을 졸업한후 광주시의 한 사진관에서 촬영사로 사업하고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 그는 한학급의 녀학생과 련애를 했지만 녀자친구의 부모가 동의하지 않는 바람에 지금은 잠시 떨어져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우빙은 조원리가 고중을 졸업한후 광주시의 한 회사에서 컴퓨터로 수놓이를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기차에서의 상봉이 있은후 조원리는 미술을 전공했던 정우빙한테서 주말마다 미술설계를 지도받았다. 그녀는 점차 자상하고 듬직한 정우빙한테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와 편한 친구사이로 지냈다. 2008년 10월 21일,  정우빙의 아버지가 불행하게도 신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원리는 정우빙을 위안하는 한편 광주시의 유명한 병원을 알선해주었다.  2008년 11월초에 정우빙의 아버지가 광주시의 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되자 조원리는 짬짬이 시간을 타서 정우빙의 아버지를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2008년 12월 중순, 정우빙의 녀자친구 황효정이 병실을 찾아왔다. 그녀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우빙의 팔을 붙잡고 “당신 아버지의 병은 불치병이여서 치료해도 소용이 없어요. 지금부터 빚더미에 올라앉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라고 말하면서 눈살이 꼿꼿해졌다. 2008년 12월 21일, 정우빙의 아버지는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여 급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집 재산을 전부 긁어모아봤지만 수술비로 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애간장을 태우던 정우빙은 하는수없이 녀자친구 황효정한테 돈을 꾸어달라고 청을 들었다. 그 말에 황효정은 대뜸 얼굴색이 변하더니 절대 빌려줄수 없다고 오금을 박았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자 정우빙은 체면을 무릅쓰고 동료들한테서 돈을 꾸었다. 하지만 수술비로 쓰기엔 엄청나게 모자랐다. 막다른 골목에 다달은 정우빙은 행여나 하는 마음에 조원리한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뜻밖에도 조원리는 “우빙씨, 걱정말아요. 제가 4만원을 꾸어줄게요.”라고 통쾌하게 대답했다. 순간 정우빙은 코마루가 찡해나 “원리씨,   정말 고맙소. 이 은혜 평생 잊지 못할거요”라고 말했다.   피할수 없는 운명적 사랑   조원리의 도움으로 정우빙의 아버지는 수술을 받았고 병세가 점차 호전되자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후 정우빙은 녀자친구 황효정과 헤여졌다.2009년 음력설이 다가오기 며칠전에 조원리와 정우빙은 함께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기차안에서 정우빙은 떨리는 목소리로 “원리씨,  나의 녀자친구가 되여주오”라고 고백했다. 삽시에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빨개진 조원리는 “우린 어울리지 않아요”라고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기실 그녀는 정우빙을 짝사랑한지 오래되였다. 하지만 자신은 대학생인 우빙이와 짝이 기운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더우기 자신한테 우빙은 사랑보다 고마운 감정이 컸을거라고 짐작되여 매몰차게 거절해버렸던것이다.   그후 정우빙은 몇번이나 조원리한테 녀자친구가 되여달라는 메시지(短信)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조원리는 정우빙한테 “전 남자친구가 생겼어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웬 청년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정우빙은 몽둥이에 뒤통수를 얻어맞은것처럼 머리가 뗑해났지만 남자답게 “축하하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정우빙의 축하메시지를 본 조원리는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기실 그녀가 보낸 사진속의 남자는 그녀의 딱친구 효매의 남자친구였다.   2009년 9월 중순, 정우빙은 조원리가 보고싶어 그녀한테 안부의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째 목이 빠지게 기다렸지만 그녀한테서는 회답이 오지 않았다. 정우빙은 더는 참을수 없어 그녀한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 정우빙은 부랴부랴 조원리의 회사로 달려가 보았지만 조원리는 회사에 없었다. 조원리의 동료는 조원리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불행한 소식을 알려주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정우빙은 눈앞이 캄캄해났다. 한참후에야 제 정신이 든 정우빙은 동료한테 조원리가 입원한 병원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조원리의 남자친구도 함께 병원으로 갔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동료는 조원리에게 남자친구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그날 저녁, 정우빙은 곧추 고향으로 달려가 아버지한테 이 불행한 소식을 알렸다. 그의 아버지는 눈굽을 찍더니 “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사처에서 돈을 꾸었다.   2009년 9월 28일, 정우빙은 6만원의 현금을 가지고 조원리의 병실을 찾았다. 갑자기 나타난 정우빙을 보고 조원리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녀는 뒤늦게야 “우빙씨,  어떻게 여기까지…”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바싹 여윈 몸에 창백해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정우빙은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것처럼 아팠다. 그는 다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이토록 큰 일을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소. 그리고 왜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소”라고 책망조로 물었다. 잠시후,  조원리의 어머니가 병실에 들어섰다. 정우빙이 가지고온 현금을 꺼내놓자 조원리는 흐느껴울면서 돈을 도로 가져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우빙은 그녀의 손에 돈을 꼭 쥐여주면서 “원리씨, 오늘부터 내가 당신을 보살필거요. 거절하지 마오. 예전에 당신이 나의 아버지를 보살펴주지 않았소? 나한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오”라고 말했다. 페부로부터 우러나오는 정우빙의 말에 조원리와 그녀의 어머니는 너무도 감격되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후 정우빙은 사진관에 사직서를 내고 일심전력으로 조원리를 보살펴주었다.   사랑으로 엮어갈 신화   어느날 밤,  병실을 지키던 정우빙은 조원리의 이불을 여미여주다가 그녀의 손에 핸드폰이 쥐여져있는것을 발견했다. 그가 살며시 핸드폰을 꺼내 살펴보니 조원리가 딱친구 효매한테 보내려고 써놓은 메시지가 있었다. 거기에는 “효매야, 난 더는 우빙씨한테 짐이 되고싶잖아. 난 우빙씨를 떠나야 하는데 이토록 사랑하고있으니 어쩌면 좋아…”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순간 정우빙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끊어진 구슬마냥 볼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살며시 조원리의 손을 잡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 바람에 잠에서 깨여난 조원리는 살풋이 눈을 떴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정우빙은 “원리씨,  난 당신을 사랑하오. 우리 함께 병마를 물리치기오”라고 고백했다. 그 말에 조원리는 목놓아울면서 “하지만 난 당신한테 짐만 돼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정우빙은 “난 당신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숨쉬고있다는것만으로 행복하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조원리도 더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정우빙의 품에 안겼고 정우빙은 그녀를 뜨겁게 포옹했다.   그후 정우빙은 련인을 돌보느라고 눈코뜰새없이 바삐 돌아쳤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그의 지극정성에 조원리의 병세도 나날이 호전되였다. 어느날, 정우빙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조원리한테 청혼했다.   “나와 결혼해주오. 난 당신이 내 안해가 될 날을 오매불망 기다려왔소. 우리 함께 병마와 싸워 이기기요!”그 말에 원리는 비오듯 눈물을 흘리면서 련인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들은 량가부모의 동의를 거치고 2010년2월 14일에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첫날밤, 은은한 불빛아래에서 정우빙은 빨갛게 상기된 안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여보, 우린 이제부터 일심동체가 되여 병마를 물리치기오”라고 속삭였다. 순간 조원리는 남편의 넓은 품에 안기면서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2010년 4월, 조원리는 행운스럽게 골수이식수술을 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중화골수창고에서 그녀의 골수와 맞는 기증자를 찾았다는 기쁜소식이 왔던것이다. 그녀는 빠른 시일내에 골수이식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현재 량가어른들과 정우빙은 그녀의 수술비용마련에 동분서주하고있다. 아름다운 사랑으로 신화를 엮어갈 이들 부부는 꼭 사회 각 계층의 따뜻한 사랑과 도움으로 험난한 인생고비를 무사히 넘길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멀지않아 그들 부부는 희망이 넘치는 아름다운 미래의 설계도를 구상할것이다.           《지음》
144    신혼주택으로 인한 비참한 살인사건 댓글:  조회:3560  추천:1  2010-08-11
2009년 3월초, 28살에 나는 란주 모 기관공무원인 강부영은 낯선 전화를 받았는데 간드러진 녀자의 웃음소리와 함께 “강부영씨, 제가 누군지 기억하세요?”라는 물음소리가 들려왔다. 강부영은 갑자기 떠오르는 얼굴이 생각나서 “고령이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은방울 굴리는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어 “전 지금 란주에 와있어요. 지금 만나고싶어요”라는 고령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강부영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지난일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강부영과 고령은 모두 감숙성 유중현에서 출생했다. 강부영은 비록 고령보다 2살 년상이였지만 소학교와 중학교를 모두 고령과 함께 다녔다. 한 사람은 체육위원이고 한 사람은 학습위원이였던 그들은 점점 접촉이 잦아지면서 서로 상대방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고중 2학년때 고령은 전학하게 되였다. 그녀는 특별히 새 만년필을 사서 강부영한테 선물하면서 편지를 자주 써달라고 부탁했다. 강부영은 처음에는 편지도 쓰고 전화도 했다. 그러나 서로 떨어져있는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소식이 뜸해지더니 련계가 끊어지고말았다. 그런데 몇년이 지난 지금 고령이 주동적으로 찾아올줄은 생각도 못했다.   커피점에서 고령을 만난 강부영은 그녀한테 다시 반해버렸다. 그녀는 학교때보다 더욱 예쁘고 더욱 성숙된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던것이다. 고령도 애숭이던 강부영이 멋진 청년으로 되여 자기앞에 나타나자 몹시 기뻤다. 이번의 상봉으로 하여 두 사람의 가슴에는 다시 사랑의 불길이 지피기 시작했 다.   2009년 4월, 강부영은 연구생졸업을 앞두고있는 고령을 만나러 서안으로 갔다가 고령의 어머니 장애연을 만나게 되였다. 고령의 부모는 고생스럽게 키워서 공부시킨 딸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있었다. 때문에 딸의 혼사에 대해서도 매우 중시를 돌리고있었다. 고령과 강부영은 장애연에게 모든 정황을 알려주면서 자신들의 결혼을 허락해줄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장애연은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않았다.   강부영의 부모는 가난한 농민이였다. 그를 공부시키느라고 살림은 더욱 쪼들렸는데 2008년에 강부영의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되는 바람에 빚까지 지게 되였다. 강부영은 고령을 위해서 모든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되자 장애연은 이 준사위를 받아들였다.   2009년 4월말, 고령은 졸업후 서안에 남기 위해 사처로 뛰여다닌 보람으로 겨우 장경유전 모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취직하게 되였다. 장애연은 취직때문에 수척해진 딸이 가슴아파서 “강부영이 뭐가 좋다고 그러냐? 집이 가난한데다가 외지사람이니깐 네가 고생이지. 너희들은 한 사람은 란주에 있고 한 사람은 서안에 있으니 이후 두 곳에 갈라져 살겠느냐?”라고 말했다. 그 시기 강부영은 주말마다 고령을 만나러 서안으로 왔다. 달콤한 사랑에 잠겨있던 고령은 이후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었다. 다음 주말에 강부영이 찾아왔을 때 고령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후 우리 서안에 살겠어요? 아니면 란주에서 살겠어요?” 고령이 서안을 좋아하는것을 안 강부영은 자신은 사직하고 서안으로 오겠다고 대답했다. 고령은 기뻐서 이 사실을 어머니한테 알려주었다. 그러나 장애연은 신혼주택을 비롯한 실제문제를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했다. 장애연은 강부영이 “5.1절”기간에 찾아오자 일부러 그와 딸을 데리고 비림구역에 자리잡은 아빠트판매처로 찾아갔다. 고령은 호기심에 차서 신식으로 지은 호화로운 방과 가구들을 돌아보며 매우 기뻐했다. 강부영은 고령의 손을 잡고 함께 다녔지만 주택구매에 대한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장애연은 직방 말하는수밖에 없었다.   “자네들이 서안에서 살 타산을 가지고있는데 신혼주택은 언제 살 작정이요?” 강부영은 집을 마련하는것은 앞으로의 일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두 사람의 감정이 깊다면 결혼하여 살면서 자신들의 능력과 노력으로 앞으로 꼭 집을 살수 있다고 믿고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집값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강부영은 집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돈을 모으는 한편 아버지한테 손을 내밀려고 고향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빚쟁이한테 시달리면서 고기도 사드시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입을 열수가 없었다. 동네사람들이 아버지한테 생활비를 부쳐보내지 않는 그를 불효자라고 욕했지만 그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때 고령의 단위에서 35만원만 내면 위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은 침실 3칸짜리 주택을 가질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강부영은 선불금 8만원을 자신이 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처로 뛰여다니면서 3만원을 꾸었다. 그리고 은행대부금을 맡으려고 했지만 은행에서 거절했다. 원래 그는 대 학을 다닐 때 대부금을 신청했댔는데 지금까지 몇천원을 갚지 않았기때문에 신용기록에 오점으로 남아있었던것이다. 강부영이 대부금도 맡지 못하게 되자 고령은 화를 냈고 그들은 처음으로 크게 다투었다. 결국 강부영이 3만원을 내고 나머지는 고령이 대부금을 맡아서 주택을 구매했다. 그런데 고령은 가옥소유증에 자신의 이름만 써넣었다. 이에 강부영은 몹시 속상했다.   2009년 9월에 집을 손에 넣게 되자 강부영은 장식한후 곧 결혼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뻐서 사직까지 했다. 그가 사직한 소식을 알렸지만 고령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때 월급카드를 손에 든 그녀는 몹시 기분이 상했다. 대부금을 덜어내고 몇푼 남지 않았던것이다.   강부영은 고령을 찾아가서 결혼전에 집을 장식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고령은 그를 랭대하면서 장식비용은 어디서 구하겠는가고 물었다. 강부영이 꾸거나 대부금을 맡겠다고 하자 고령은 화가 났다. 사직하고 집도 없고 직업도 없이 서안에 와서 대책도 없이 돈부터 꾸겠다고 하는 강부영이 볼수록 싫어졌다.   2010년 1월, 고령은 강부영에게 전화를 걸어 헤여지자고 말했다. 강부영이 찾아와서 애걸했으나 그녀는 이미 마음을 굳게 먹고 돌아서지 않았다. 강부영은 할수 없이 주택구매에 지불했던 자신의 돈 3만원을 돌려달라고 했다.   며칠후 고령은 강부영한테 3만원을 송금해주면서 “이제 돈을 돌려줬으니 우리사이는 깨끗이 끝났어요. 당신은 정말로 가난에 미쳤군요”라는 비웃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을 본 강부영은 정말로 미칠듯이 화가 났다. 그는 고령을 죽여버리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졌다.   2010년 2월 18일, 칼을 가지고 서안에 온 강부영은 룡수촌부근의 려관에 짐을 풀었다. 그는 여러번이나 고령한테 만나자는 메시지(短信)를 보냈지만 고령은 한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이틀동안이나 부근을 돌아다니던 강부영은 2010년 2월 20일 아침 7시 50분에 출근하는 고령을 길에서 만났다. 고령이 보고도 못본척하자 강부영은 화가 치밀어올랐다. 자신이 부모도 포기하고 직장도 버리면서 일심으로 그녀를 사랑해왔건만 결국 버림받는 신세가 되였다고 생각되자 온몸의 피가 모두 머리끝에 뻗친 강부영은 칼을 꺼내 고령의 복부와 경부를 사정없이 찔렀다.   “이년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집을 사랑하느냐?” 강부영은 화가 나서 고함치면서 고령의 몸을 10여곳이나 찔렀다. 이때 길을 가던 사람들이 이 비참한 사건을 목격하고 공안국에 제보전화를 걸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강부영은 “나한테 다가오면 죽인다”고 칼로 사람을 위협하면서 부근의 건물로 들어가 승강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120구급차와 경찰들은 즉시 현장에 도착했다. 의사들은 급히 피투성이 된 고령을 구급했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되였다. 15층옥상에서 정서가 격동된 강부영은 2시간남짓한 동안 경찰들과 대치상태로 있었다. 그는 자기절로 복부를 두번이나 찔렀고 여러번이나 자살하려고 시도했다.   “당신들은 날 권고하지 마십시오. 난 이미 마음이 죽었으니 이 세상에 살아서 아무런 의의가 없습니다!”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강부영은 얼마후 정서가 좀 누그러들었다. 경찰들은 그 기회를 타서 달려가 그를 붙잡았다. 강부영이 부상을 입었기때문에 경찰들은 먼저 그를 병원에 싣고갔다. 녀자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후에도 깊은 원한에서 벗어나지 못한 강부영은 미친듯이 부르짖었다. “난 그년을 죽여버리겠어! 그년때문에 내가 이 지경으로 됐어!” 강부영은 마땅한 징벌을 받을것이지만 고령은 다시 살아올수 없게 되였다. 딸을 잃은 장애연부부는 땅을 치며 울다가 혼절하여 쓰러졌다. 높은 지식과 좋은 직업을 가진 이 젊은 남녀는 원래 행복한 련인이였지만 주택때문에 결국 비참한 결말을 보았으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법제석간》과 구직사이트의 련합조사에 따르면 근 1만명에 달하는 30살정도의 직장인중에서 월수입이 3000~5000원인 남녀가 31.2%에 달하고 월수입이 1500~3000원인 남녀가 28.6%에 달하며 집이 없고 자가용차가 없는 남녀가 47.9%에 달했다. 만약 강부영과 고령이 신혼주택에 그처럼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처음 열렬한 사랑에 빠져 아직 감정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 먼저 사업에 전념하고 두 사람의 장원한 타산을 계획하면서 점차 주택마련에 힘썼더라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것이다.                              《법제석간》
143    피보다 진한 자매의 정 댓글:  조회:4289  추천:0  2010-08-10
                                                                                                (허송일 / 촬영)
142    하루밤 사랑이 불러온 살인사건 댓글:  조회:4893  추천:0  2010-07-26
        
141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사랑 댓글:  조회:3688  추천:0  2010-07-22
140    미녀의 투신자살과 갑부의 죽음 댓글:  조회:3918  추천:0  2010-07-21
2009년 11월 23일 11시 30분, 복건성 진강시 안해진에 위치한 한 술집에서 30여세되는 젊은 녀자가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들이 제보전화를 받고 현장에 달려왔을 때는 그 녀자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호주머니에 있는 신분증을 보니 그 녀자는 진강시 안해진에 사는 진소정이였는데 39살이였다. 경찰들은 조사를 거쳐 타살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왜서 층집에서 뛰여내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명을 결속지으려고 했을가? 그날 저녁 6시에 진강시 모 구두회사 정수균리사장랍치사건의 4명 혐의범이 잡히면서 이 자살사건의 수수께끼도 풀리게 되였다. 혐의범들은 진소정의 지시를 받고 정수균을 랍치했다고 자백했다. 그렇다면 진소정이 왜서 정수균을 랍치했으며 또 투신자살까지 했을가?   1961년 10월 21일에 복건성 진강시 내강진의 한 시골에서 출생한 정수균은 중학교를 졸업한후 진강시의 한 구두공장에 들어가 품팔이를 하다가 구두도매점을 경영했다. 1995에 림효영과 결혼한후 그는 안해의 도움을 받아 구두회사를 세웠다.   2007년 2월말의 어느날, 정수균은 장사거래가 있는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거기서 가정보모로 일하고있는 진소정을 발견했다. 진소정은 10여년전에 그와 함께 한직장에서 품팔이를 하던 녀인이였다. 그때 20살이 채 되지 않았던 진소정은 예쁘장한 처녀였다. 그당시 그들은 말이 잘 통해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정수균은 진소정이 진강시 안해진에 있는 시골에서 태여났고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워서 초중도 졸업하지 못하고 품팔이를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런데 그는 그녀가 구두공장에 들어온지 반년도 안되였을 때 공장에서 나와 자체로 구두도매점을 꾸리는 바람에 지금까지 그녀와 련계가 없었다. 그런데 16년만에 여기서 만나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첫눈에 알아보았지만 그녀가 자존심이 상해할가봐 모르는척하고있었다. 그러나 이전에 함께 일하던 예쁜 처녀가 가정보모로 된걸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날 친구의 집에서 나온 정수균은 자가용차에 올랐지만 떠나지 못하고 친구의 층집아래에서 1시간남짓이 기다렸다. 진소정이 일을 마치고 나오자 그는 차문을 열고 그녀를 불렀다.   “소정이, 난 수균이요. 내가 데려다줄테니 어서 올라타오.”진소정은 정수균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사실 그녀도 정수균을 첫눈에 알아보았지만 자비심때문에 주동적으로 인사하지 못했다. 정수균은 그녀를 실어다주면서 왜서 가정보모로 되였는가고 조심스레 물었다. 진소정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이런 일을 하고있지요. 자가용차까지 몰고다니는 당신처럼 성공하지 못했으니깐요.”“10여년이나 련계가 없다가 소정이를 여기서 만나니 정말 기쁘오. 무슨 곤난이 있으면 말해보오. 내가 힘껏 도와줄테니.”   정수균이 자신의 앞에서 뽐내려는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하자 진소정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10년전 당신이 구두공장을 떠난후 얼마 안되여 집에서 저한테 남자를 소개해주었는데 만난지 3개월도 안되여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고 아이까지 낳았어요. 그런데 결혼후 남편은 내가 다른 남자들과 접촉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일하러도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러던 남편이 암으로 앓다가 사망되였는데 병치료때문에 숱한 빚을 졌어요. 전 하는수없이 다시 나와서 품팔이를 했는데 배운 지식이 없다보니 가정보모같은 일자리밖에 생기지 않았어요.”   진소정의 말을 듣고 정수균은 그녀를 몹시 동정하였다. 그는 그녀에게 좋은 일자리를 얻어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원래 그녀를 자신의 회사에 취직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공연히 안해의 의심을 사서 혼인생활에 영향을 줄가봐 그녀를 친구가 경영하는 구두도매부에 출근할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에 진소정은 몹시 감동되였다.   그후 정수균은 주말에 시간만 있으면 진소정이 출근하는 구두도매점에 가보았다. 그러다가 퇴근하는 그녀를 만나게 될 때면 그녀에게 저녁을 사주기도 했다. 정수균은 진소정을 동정하여 도와주었지만 진소정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정수균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였다. 남편이 죽은후 처음 자신을 따뜻하게 관심하는 능력있는 남자가 나타나자 그녀는 그에게 의지하고싶은 강렬한 감정이 생겼다.   2008년 6월초의 어느날, 진소정은 하복부가 아파서 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의사는 비교적 엄중하니 입원하라고 권고했다. 그녀는 남편이 암으로 사망된 정경이 떠오르자 몹시 두려워서 정수균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정수균은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와서 그녀를 부축하여 CT검사를 했다. 검사결과 자궁에 량성근종이 자랐을뿐 큰 병이 아니였다. 이번 일로 진소정은 정수균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으며 사랑의 감정이 더욱 강렬하게 솟아올랐다. 그녀는 먼저 정수균과 육체적관계를 맺으려고 생각했다.   2009년 5월상순의 어느날, 진소정은 그동안 생각했던 계획대로 정수균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당신이 저를 많이 도와주었는데 조금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표달하기 위해 저녁 한끼를 사드릴가 하는데 와주시면 감사하겠어요”라고 청했다. 정수균이 재삼 사양하자 진소정은 “당신은 절 깔보는거죠?”라고 했다. 정수균은 하는수없이 그녀의 식사요청을 받아들였다.   진소정은 정수균에게 자꾸만 술을 권하면서 자신도 많이 마셨다. 식사가 끝난후 진소정은 “전 취했어요.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부모한테 욕을 먹을것이고 아이한테도 이런 모습을 보이고싶잖아요. 그러니 당신이 먼저 절 호텔에 데려다줘요. 거기서 쉬다가 술이 깬후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라고 부탁했다. 정수균은 그녀를 호텔에 데리고가서 방을 잡아주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진소정이 갑자기 그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사실 전 오래전부터 당신을 좋아했어요. 당신이 절 많이 도와주었는데 이번에 제가 한번만 보답해드리겠어요.” 진소정은 정수균을 꽉 껴안고 키스까지 퍼부었다. 진소정은 비록 40살이 거의 되였지만 얼굴이 예쁜데다가 여전히 풍만하고 부드러운 피부에 매력적인 몸매를 유지하고있었다. 미모의 녀인이 주동적으로 유혹하는데다가 술기운까지 뻗치자 정수균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런 경우 일반적인 남자라면 모두 범할수 있는 실수를 범했다.   그후 정수균은 몹시 후회했다. 그의 사업에서의 성공은 부부가 함께 분투한 결과였다. 근 20년의 결혼생활을 해오면서 그들의 부부감정은 매우 깊었다. 그는 이 일로 하여 가정과 회사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부러 그녀를 차갑게 대해주었고 그녀한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와도 일이 바쁘다는 핑게를 대고 거절했다. 그는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말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리해해주기를 바랐다.   2009년 7월중순의 어느날, 진소정은 정수균한테 여러번이나 만나자고 전화를 걸었다. 정수균은 한번 만나서 자기의 생각을 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약속한 장소에서 그녀를 만났다. 진소정은 그를 보고 리혼한후 자기와 함께 살자고 했다. 그러나 정수균은 “그날 일은 내가 미안했소. 나는 안해와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니깐 이제 다시는 전화를 하지 마오”라고 말하는고는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진소정은 정수균의 회사에까지 찾아갔으며 그의 안해한테까지 그들의 관계를 알리겠다고 위협했다. 정수균은 진소정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 먼저 안해한테 사실을 털어놓았다. 정수균의 안해 림효영은 처음에는 화가 나서 견딜수 없었지만 결혼하여 근 20년동안 남편이 한번 실수를 범했으니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소정은 이런 위협까지 소용없게 되자 미칠것만 같았다. 그녀는 정수균을 랍치하여 자신의 남자로 되게 하려고 자신을 누나처럼 따르던 한효명한테 20만원을 주겠으니 사람을 모아 정수균을 랍치해달라고 부탁했다.   2009년 11월 22일 오후 4시에 한효명은 고향친구 장붕 등을 불러 정수균을 랍치했다. 그후 진소정이 한효명한테 전화를 걸어 알아보았더니 랍치당해 나무에 묶이운 정수균이 돈 10만원으로 보상해주겠다고 했다. 이에 절망한 진소정은 층집에서 뛰여내려 자살했다.   얼마 안되여 랍치범들은 법망에 걸려들었다. 한효명, 장붕 등을 붙잡은 후 경찰들은 즉시 그들을 끌고 정수균을 찾으러 랍치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정수균은 이미 사망되여있었고 옆에는 수십대의 일회용주사기가 놓여있었는데 여러대는 이미 사용한것이였다. 경찰들은 주사기와 정수균의 체내에 “독서강(毒鼠强)”성분이 있는것을 발견했다.  또 정수균의 목에 바줄이 매여져있는것으로 보아 질식하여 사망되였을 가능성도 있었다.   비록 원흉 진소정은 이미 투신자살했지만 이 사건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고있다. 정수균은 착한 마음을 가졌댔지만 한발자국을 잘못 내디뎠기때문에 비명에 죽었고 진소정은 생명의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잘못된 감정에 너무 집착했는데 이는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다.     《법제일보》    
139    류방의 인재등용(用人之道) 댓글:  조회:4383  추천:0  201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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