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날과 지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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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송경령의 성씨는 “송”씨가 아닌 “한”씨 댓글:  조회:6091  추천:0  2010-06-22
송씨3자매는 중국현대사상의 풍운인물이다. 맏이 송애령(宋靄 )은 공상희(孔祥熙)의 부인이고 둘째 송경령은 손중산의 부인이며 셋째 송미령은 장개석의 부인이다. 그녀들의 세 남자형제는 각각 송자문(宋子文), 송자안(宋子安), 송자량(宋子良)으로 모두 한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다. 송씨자매와 형제의 부친은 송가수이며 원래 성씨는 한씨이고 이름은 교준이며 광동성 문창(지금의 해남성)사람이다. 송씨가문은 유별난 집안이였으며 당시 농민들과는 달리 아주 부유했다. 송경령의 증조부 한금이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장남은 홍익이고 차남은 붕익이라 불렀다. 홍익은 결혼하여 아들 셋을 키웠는데 장남은 정준이고 차남은 교준(즉 송가수)이며 셋째는 치준이다. 지금 살아있는 치준의 아들이며 송경령의 사촌동생인 한유풍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상의 분묘는 집과 400메터 떨어진 서북쪽 수림에 있었습니다. 묘비에 〈한비왕씨지묘〉라고 새겨진 글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송경령과 나의 조모입니다. 왼쪽 아래에 〈남정준, 교준, 치준, 손건풍, 유풍〉이라는 작은 글자가 새겨져있었습니다. 조부의 묘도 산기슭에 있었는데 비문도 완전히 같았습니다. 묘비의 교준과 송가수는 실제 한사람입니다.” 한유풍은 조모의 묘비에 “민국6년 가을”이란 글이 새겨져있는데 그것은 자신과 둘째아버지인 한교준이 함께 세운것이라고 말했다. 한교준의 경력에 대한 한유풍의 서술이 찰리?츙스?경력과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그럼 왜서 한교준이 성씨를 “송”씨로 고치게 되였는가 하는 물음에 한유풍은 이렇게 해석했다.“둘째아버지는 인도네시아에서 학도로 있었는데 설쇠러 문창에 올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기분이 아니였습니다. 그때 마침 작은 어머니의 숙모의 동생이 누나를 보러 미국에서 귀국했습니다. 둘째아버지도 그를 외삼촌이라고 불렀지요. 외삼촌은 미국에서 상점을 경영하고있었는데 장사가 잘되였습니다. 하지만 외삼촌은 후손이 없어 속을 태웠습니다. 숙모는 동생에게 둘째아버지를 양아들로 받아들이고 미국에 데려가면 좋을것 같다고 제의했습니다. 외삼촌은 총명하고 령리한 둘째아버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여 둘째아버지는 그와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되였습니다. 외삼촌의 성씨가 송씨이다보니 둘째아버지는 자연히 그의 성씨를 따르게 되였고 이름도 송가수라고 부르게 되였습니다.” 만일 피줄을 따라야 한다면 송가수는 “한씨가문”의 후손이지 “송씨가문”의 후손이 아니다. 이렇게 추리하게 되면 중국현대사상의 풍류인물이였던 송씨3자매의 성씨는 송씨가 아니라 한씨여야 했으며 송경령의 성씨도 한씨여야 했다.        《국민당수뇌자들의 녀인들》
137    “연경맥주” 리사장 검거자 비방죄로 판결 댓글:  조회:4548  추천:0  2010-06-18
  여러차례 규률검사부문 혹은 인터넷에서 “연경맥주” 리사장 리복성이 1000만원에 달하는 거금을 탐오하였다고 고발한 무한맥주상자공장의 사장 진근이 비방죄로 기소당했는데 4월 25일에 법원판결에서 비방죄가 성립돼 유기도형 1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이 비공개심리방식을 취하였으므로 무한에서 북경까지 따라온 진근의 친구들은 심리과정을 방청할수 없었다. 진근의 친구 양씨에 따르면 진근이 체포된 사실도 진근의 안해를 통하여 알게 되였으며 진근과 여러차례 련락하려고 애썼지만 핸드폰은 줄곧 받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양씨에 따르면 진근은 가능하게 증거가 불충분해서 이같은 손해를 보았을것이라고 했다. 사건 다시 보기: 작년 8월 30일, “연경맥주” 리사장 리복성은 처음으로 북경 순의법원에 형사자소를 제기, 그후 북경시중급인민법원은 리복성이 순의구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주임인 점을 고려하여 평곡법원에서 심리할것을 지정했다. 리복성의 고발에 따르면 “연경맥주”가 진근의 공장에서 생산한 맥주상자를 쓰지 않기로 하였기에 진근은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자신을 비방하기 시작, 2009년 6월 8일부터 신화넷 등 여러 인터넷에 자신을 비방하는 내용으로 “전국인대 대표이며 북경시 순의구인대상무위원회 부주임인 연경맥주주식유한회사의 리사장 겸 총경리 리복성은 그 수하를 시켜 호북에서 저질가짜제품을 제조하게 하였고 1000만원을 탐오했다”는 글을 산포하였다. 그외에도 진근은 또 북경시규률검사위원회 및 순의구규률검사위원회 감찰국에 자신을 고발하였다고 했다. 리복성은 해당부문의 조사를 거쳐 진근이 고발한 내용이 날조임이 드러났다고 하면서 진근의 행위는 그의 명예와 인격을 손상시켰으므로 법원에 비방죄로 기소하였다는것이다.   (신랑넷)  
136    안해를 겁주려고 랍치자작극 벌렸다가 댓글:  조회:3620  추천:0  2010-06-12
  기세등등한 안해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한 남성이 복수를 하기 위해 “랍치자작극”을 벌렸다가 들통나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화상신보》가 일전에 보도했다.   료녕성 영구에 거주하는 손모는 직장에서 일하던중 남편 진씨의 핸드폰으로 발송된 문자메시지(短信)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당신 남편이 우리 수중에 있다. 당신이 돈을 준비한 뒤 나중에 장소와 시간을 알려줄테니 돈과 교환하자”는 내용이 담겼던것이다.   경찰에 절대 알리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손모는 고민끝에 이를 영구시공안국에 신고했다. 경찰들은 즉각 수사팀을 구성하고 사건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들은 다른 유괴사건과는 달리 이 사건의 범인은 랍치한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손모에게 전화조차 걸지 않은채 “태평”했고 손모의 가정형편도 넉넉치 않았던터라 유괴대상으로는 “함량미달”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수사가 혼선을 빚던 가운데 경찰들은 실종됐던 진모가 대련에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곧 그가 머물던 한 호텔을 수색했다. 혼자 느긋하게 텔레비죤을 시청하던 진씨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경찰을 보고 깜짝 놀란 나머지 이번 랍치사건이 스스로 벌인 자작극이라고 실토했다.   경찰들이 조사한 결과 진씨는 수년전 직장을 잃고나서 안해가 벌어오는 돈에 의지해 “전업주부”로 일하면서 온갖 구박과 수모를 받았지만 안해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대항조차 못하면서 불만이 쌓였던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찰에 검거된 뒤 “안해에게 이렇게 쥐여사는건 남자로서 할짓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맞붙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며 “안해한테 적당히 겁을 주고 보름정도 푹 쉬다 돌아갈 생각이였는데 일이 이렇게 커질줄 몰랐다”고 후회했다.   공안기관에서는 공공질서소란죄로 진모에게 행정구류 10일 처분을 내리고 사건을 매듭지었다.                         《화상신보》    
135    서시 중국 최초의 미녀간첩 댓글:  조회:4247  추천:0  2010-06-10
              (의상제공/ S라인 한국의류전매점)                                                          한은희 / 촬영
134    일처이부가 연출한 황당한 참극 댓글:  조회:4094  추천:0  2010-06-04
                                                                                                   
133    주유규 중국력사상 유일하게 군기소생인 황제 댓글:  조회:4173  추천:0  2010-06-03
           미치도록 노력해보았나?               그럼 후회따위는 하지말아라...    
132    희한하게 리혼한 부부 댓글:  조회:4395  추천:0  2010-06-01
올해 2월 14일은 음력설이자 련인절이기도 했다. 하여 밖에 정부를 둔 남편이든 안해든 모두 이날에 집사람과 함께 보내면 좋은지 아니면 정부와 같이 보내면 좋은지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다. 결국 절강성 평양현에 살고있는 한쌍의 부부가 이날 “끔찍한 일”을 저질러 리혼까지 하게 되였다. 올해 42살인 오군과 39살인 왕빈은 절강성 온주시 평양현의 사람이다. 두 사람은 10여년전에 남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부자집에서 태여난 오군은 총명하고 사나이다왔으며 왕빈도 이쁘고 사리가 밝아천생배필이라고 동네방네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오군은 10여년간 함께 살아온 안해가 싫증났는지 이쁘고 젊은 녀자들을 눈독들이다가 20살밖에 안되는 려려를 사귀였다. 한 친구가 오군을 보고 말했다. “여보게 친구, 그사이에 젊은 녀자를 사귀였다면서? 난 리해가 안가네. 10여년간 함께 살아오면서 뒤바라지를 잘해준 안해에게 미안하지 않나?” 그러자 오군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조금도 미안하지 않네. 이전에 몰랐는데 돈을 벌고보니 나도 인제야 알게 되였어.” 친구는 리해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무슨 뜻이지?” “성공한 사람에게는 모두 정부가 있다는 말일세. 이것이 시대의 발전이라고 하던데 친구는 못들었나? 나도 성공했으니 당연히 젊고 이쁜 녀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 친구도 성공했어. 친구도 부자행렬에 들어섰으니 당연히 성공한셈이지. 하지만 진심으로 뒤바라지를 해주는 안해를 두고 다른 녀자를 사귄다면 안된다고 난 생각해. 나의 말을 명심해두게. 난 절대 찬성하지 않아.” 하지만 오군은 친구의 권고도 마다하고 안해 몰래 계속 젊은 녀자와 래왕했다. 2010년 음력설을 앞두고 오군과 려려는 또 만났다. 려려는 오군의 품에 안기면서 애교를 부렸다. “오빠, 날 사랑해요?” “그럼, 당연하지. 요 귀염둥아.” “이번 음력설이 련인절과 맞띠워서 난 집에 가지 않을래요. 오빠와 같이 있고싶어요. 설이란 핑게를 대고 날 모르는척하지는 않겠죠?” “나도 너와 같이 있고싶어. 내가 꼭 방법을 대보마.” 섣달 그믐날에 오군은 아침일찍 일어나 시장에 나가 고기와 남새를 한아름 사왔다. 안해는 놀라와하면서 남편보고 물었다. “집에 없는것이 없는데 왜 또 돈을 팔아요? 별일이네.” “나 오늘 신선한것을 사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그믐날을 보내고싶소.” “당신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해요? 우리 엄마한테 점수를 따려고 그래요?” 안해는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날 저녁 오군은 장인과 장모 그리고 처남, 처제를 집에 청했다. 오군은 직접 주방에 들어가 여러가지 료리를 볶아 상에 올렸다. 장인과 장모는 오군을 무던한 사위라고 칭찬했다.  안해도 기뻐하는 눈치였다. 오군은 이때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여보, 이번 설에 외지에 있는 동창생들이 설쇠러 많이 왔소. 오래동안 만나보지 못한 동창생들이요. 우리 래일 만나기로 약속했소. 설날인데 나가자니 그렇고…” 그러자 장모님은 딸을 보고 말했다. “사위를 나가게 하려무나. 우린 괜찮다. 그믐날도 설이야. 어쩌다 동창생들의 모임인데 빠져서야 되겠니. 사위 나가보게.” “그러세요. 오늘 모두 즐겁게 보냈는데 뭘요.” 오군은 모든것이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자 못내 기뻐했다. 이튿날 오군은 “동창생모임”에 참석하러 떠났다. 오군은 련인절을 랑만적이고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 려려를 데리고 평양현을 떠나 아는 사람이 없는 서안현으로 갔다. 그날 오후 둘은 서안현에서 제일 좋은 호텔을 찾았다. 이날따라 사람이 어찌도 많은지 둘은 방이 없어 대청 쏘파에 앉아 방이 나기를 기다렸다. 오군이 쏘파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는데 아주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자기 안해가 낯모를 한 남자와 다정하게 속삭이면서 건배하고있었다. 오군은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것만 같아 옆에 려려가 있는것도 무시하고 훌쩍 일어나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푸르딩딩해서 안해보고 따졌다. “어찌된 일이야? 당신 이자와 무슨 관계야?” “왜요? 당신만이 동창생모임이 있는줄 아세요? 나도 오늘 동창생모임이 있어요.” “뭐야? 단둘이 만나는것도 동창생모임이야?” “그럼 당신이 말하는 동창생모임은 어떤것이죠? 저렇게 어린 동창생도 있었어요? 내가 보기엔 20살도 되지 않는데…” 평소에 그렇게 얌전하고 남편의 말이라면 군말없이 따르던 이전의 안해가 아니였다. 사실 왕빈은 오래전부터 남편에게 정부가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오군은 술만 마시면 안해를 때리고 학대했다. “돈 잘 벌어들이는 남편이 좋은줄도 모르니 썩 꺼지란 말이다.” 왕빈은 처음에 남편이 밖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그런줄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안해가 너그럽게 대해줄수록 오군의 가정폭행은 점점 심해졌다. 왕빈도 남편에게 본때를 보여주리라 작심했다. 왕빈이 하는 사업은 늘 보스(老板)들과 접촉하는것이였다. 그는 이미 중년에 들어섰지만 이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따르는 보스들이 많았다. 이전에는 자기에게 가정이 있고 남편이 있다는 구실을 대고 모두 거절했지만 남편에게 정부가 있다는것을 안후부터는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나중에 왕빈도 개인회사를 운영하는 한 기업가를 사귀였던것이다. 그녀도 이번 련인절을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지 몰라 고민하고있었다. 그날 남편이 “동창생모임”에 참석한다고 하니 거짓말이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은근히 기뻐했다. 남편이 집을 나가자 그녀도 곱게 치장하고 정부의 자가용차에 앉아 먼곳으로 간다는것이 남편과 이렇게 맞띠울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두 사람의 다툼은 점점 심해졌다. 오군은 말로는 안되니 안해의 귀뺨을 갈겼다. 옆에서 지켜보던 중년남자와 젊은 녀자는 일이 상서롭지 못하게 돌아가자 사라지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되여 슬그머니 도망쳤다. 호텔의 복무원들과 보안일군들이 나서서 말려서야 둘은 호텔문을 나왔다. 둘이 호텔문밖을 나서는데 뒤에서 별의별 비웃는 소리가 다 들리였다. “저 사람들이 부부란 말이야? 참 재미있네.” “부부가 서로 바람을 피운다면서? 오늘 들켰대. 설날에 재미있겠다. 호호호…” “바람을 피우는 녀자와 어떻게 살아. 나같으면 콱 죽여버릴거야.” “남자가 제구실 못하니 녀자가 바람피웠는지도 모르지.” 이런 말을 들으니 오군은 더욱 화가 났다. 그는 홱 돌아서서 안해에게 발길을 날리면서 패주기 시작했다. 안해는 “으악”하면서 땅에서 나뒹굴었다. 싸움을 제지시키던 사람들이 120에 알려 왕빈을 병원에 호송했다. 검사결과 왕빈은 갈비뼈 두대가 끊어지고 여러곳을 상했다. 2월 22일에 오군은 고의상해죄로 체포되였다.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있는 왕빈은 변호사에게 위탁하여 남편을 고소했다. 그녀는 또 가정폭행을 일삼는 남편과 더는 못살겠다면서 법원에 리혼를 제기했다. 법원에서는 이 사건을 심리하고 리혼을 비준했다.                                       《절강법제보》    
131    고순장 ―제일 위험했던 변절자 댓글:  조회:4556  추천:0  2010-05-26
130    지옥에서 천당으로 댓글:  조회:4302  추천:0  2010-05-13
1964년에 하남성 상수현의 한 시골에서 출생한 추소군은 1992년에 같은 마을에 사는 6살 년하의 처녀 장혜민과 결혼하여 이듬해에 딸 추선을 낳았다. 1996년에 품팔이를 나간 추소군은 성도에서 장거리운수를 하는 일거리를 찾았다. 2년후 성도에 자리를 잡은 그는 안해와 아이를 성도에 데려왔다.   그후 추소군은 장거리운수를 나가고 장혜운은 딸 추선을 유치원에 데려다준후 난전을 벌려놓고 자그마한 장사를 했다. 그때까지 그들 부부는 다투는 일이 없이 화목하게 살았다. 그런데 황백룡이란 남자가 그들 부부사이에 끼여들면서부터 그들의 가정은 위기에 처하게 되였다. 추소군은 외지에 나갔다가 녕하회족자치구 오해시에서 온 황백룡과 친하게 되였다. 순박한 추소군은 간사한 황백룡의 속마음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재주가 좋은 그의 달콤한 말에 유혹되여 그와 친구로 사귀게 되였다. 황백룡은 자신보다 2살년상인 추소군을 “추형”이라고 부르면서 퍼그나 살갑게 굴었다. 2000년 음력설,  황백룡은 다리를 상하여 고향으로 설쇠러 돌아가지 못했다. 추소군은 그를 불쌍하게 여겨 집에 데려다 물만두를 대접했다. 그런데 황백룡은 추소군의 안해 장혜민한테 흑심을 품고 추소군이 화장실로 간 기회를 타서 말재주를 부려 장혜민의 호감을 샀다. 장혜민은 달콤한 말로 살갑게 구는 황백룡을 만난후로 무뚝뚝한 남편에게 실망을 느끼게 되였다. 그후 운이 트여서 170만원 복권에 당첨된 황백룡은 추소근의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황백룡은 추소군이 외지로 장거리운수를 나가고 없는것을 알면서도 추선의 먹을거리를 사가지고와서는 장혜민을 유혹할 기회만 노렸다. 그러다가 어느날, 추선이가 잠든 틈을 타서 장혜민의 손을 잡고 사랑을 고백했다. 장혜민은 “친구의 안해한테 흑심을 품어서야 되냐? 이후부터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딱 잘라서 거절했다. 2001년 3월의 어느날, 장거리운수를 마치고 배가 촐촐하여 집으로 돌아온 추소군은 안해가 밥도 짓지 않고 누워있는것을 보고 화가 났다. 평소같으면 자기절로 밥을 지어먹을수도 있었지만 경제문제로 차주인과 다투고온 뒤라 기분이 매우 상했기때문에 큰소리로 화를 냈다. 남편이 영문을 묻지 않고 다짜고짜로 화를 내는것을 본 장혜민은 참을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갔다. 추선이가 “아빠는 왜 아픈 엄마를 욕해?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와서 방금 누워있는중인데”라고 말해서야 정신을 차린 추소군은 밖에 나가 안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장혜민은 집에서 나가다가 길에서 그녀의 집으로 찾아오는 황백룡을 만났다. 그때 장혜민은 몸이 아파서 쓰러질듯 비칠거렸는데 그 광경을 목격한 황백룡이 그녀를 부축했다. 남편에게 설음을 받고 황백룡에게 부축을 받은 그녀는 황백룡이 따뜻한 말로 위안하자 그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황백룡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밤 황백룡에게 몸을 바친 장혜민은 이튿날 추소군에게 리혼을 제기했다.   추소군은 일이 이렇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배반한 안해보다 친구의 안해를 빼앗아간 황백룡이 더 미웠다. 아니, 그자를 죽여버리고싶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서 아이만은 잘 키우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법원에서 리혼판결을 할 때 추소군이 외출이 잦아 아이를 보살피는데 불리하다는 리유로 아이의 부양권을 엄마인 장혜민한테 넘어갔다. 그는 분한대로 주말마다 아이를 만나보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황백룡은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다섯번째로 아이를 만나러갔을 때 황백룡은 장혜민과 추선을 데리고 어디론가 이사를 가고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추소군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였다. 딸을 만나보려는 아버지의 소원까지 박탈 하려고 한 황백룡을 칼탕쳐서 죽여버리고싶었다. 그는 사처로 찾아다니며 수소문했지만 그들의 종적은 묘연했다. 2003년 4월초,  추소군이 장거리운수를 나갔다가 돌아오자 집의 전화벨이 울렸다. 딸 추선한테서 온 전화였다!  그는 너무도 기뻐서 “추선아”라고 부르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아빠,  새 아빠가 아빠한테 전화를 못하게 하고 편지도 못쓰게 해서 몰래 공중전화로 여러번 전화했었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집에 없었어요. 아빠,  보고싶어요!” 추소근은 딸과 눈물의 대화를 나누면서 며칠전에 산 자신의 핸드폰번호를 알려주었다. 딸은 새 아빠가 무서워서 자신이 있는 주소를 알려줄수 없다고 했다. 추소근은 친구의 안해를 빼앗고도 모자라서 자신과 딸과의 인연마저 끊으려고 발광하는 황백룡을 단칼에 죽여버리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웠다. 그런데 그후 딸한테서 한달동안 전화가 오지 않았다. 한달후 딸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아이가 울면서 “아빠한테 전화하다가 새 아빠한테 발각되여 매 맞았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추소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황백룡을 당장에서 죽여버리고싶었다. 하지만 추선은 새 아빠가 무서워서 자신이 있는 주소를 알려줄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났다. 그동안 딸과의 전화련계는 끊기지 않았다. 딸은 황백룡의 눈을 피해 몰래 전화하군 했던것이다. 그러던 2009년 5월 23일, 추선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딸은 또 울고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그는 “또 그자한테 맞았니”라고 물었다. 한참후에야 딸이 울면서 말했다.   “새 아빠가…그자가…엄마가 없을 때 내 옷을 벗기고 내 몸을…흑흑…” “뭣이?! 그 개자식이…” 추소근은 말이 더 나가지 않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그는 너무도 분하고 억울하여 잠시 멍해졌다. 한참후 정신이 든 그는 딸한테 주소를 물었다. 그제야 딸은 주소를 알려주었다. 운남성 보산시 한장진의 모 아빠트에서 살고있다는것이였다. 추소근은 더는 참을수 없었다. 이제 어린 딸까지 망쳐버린 황백룡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아낼수가 없었다. “죽여버릴테다! 죽여버릴테다!” 그날밤,   칼을 잘 갈아서 품속에 넣은 추소근은 이른아침부터 운수차를 몰고 출발을 다그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한장진에 이르렀을 때는 어느덧 밤이 깊었다. 골목길을 달리고있는데 갑자기 앞에 웬 사람이 쓰러져있는것이 언뜻 눈에 스쳤다. 차를 급정거하고 다가가보니 쓰러진 사람은 녀인이였다. 그는 그 녀인을 안고 운전석에 올랐다. 그때 녀인이 정신을 차렸다. 그가 병원에 실어가려고 하자 녀인은 괜찮으니 집까지 데려다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녀인은 밤일을 하다가 오는 길이였는데 길에서 도적을 만났다. 도적은 그녀의 핸드빽을 빼앗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빼앗기지 않으려고 핸드빽끈을 꽉 잡아채자 도적은 짧은 몽둥이로 그녀의 머리를 내리쳐 쓰러 뜨리고 핸드빽을 빼앗아갔던것이다. 추소근은 그 녀인을 집까지 업고가서 침대에 눕혀놓은후 일어서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 갑자기 그의 품속에서 칼이 빠져나와 방바닥에 떨어졌다. 칼을 본 그 녀인이 놀라서 부들부들 떨자 그는 급해서 “난 나쁜 사람이 아니요”라고 말했다. 30대후반이 되여보이는 그녀는 그제야 “당신은 나쁜 사람같지 않은데 웬일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어쩐지 그 녀인이 오래전부터 알고지낸 사람처럼 친근해보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가슴속에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고야 말았다. 일의 자초지종을 들은 그녀는 “그자는 죽여도 시원치 않을놈이지만 그같은놈을 죽이고 당신도 같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나요?”라고 하면서 복수를 포기하라고 권고했다. “안해를 빼앗아간 원쑤는 용서할수 있어도 딸을 망쳐놓은 원쑤는 절대 용서할수 없소!” 그가 복수를 고집하자 그녀는 자신도 새 아버지한테 강간당한적이 있지만 법으로 그 색마를 징벌했다고 하면서 법으로 복수하라고 재삼 권고했다. 그녀가 말리는 바람에 추소군은 이튿날까지 그녀의 집에서 함께 지냈다. 그녀와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감촉을 느낀 그는 복수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밤에 자리에 눕자 딸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는 참을수가 없었다. 칼을 들고 몰래 빠져나간 그는 황백룡의 집을 찾아가서 끝내 그자의 가슴에 칼을 박고야 말았다… 갑자기 문두드리는 소리에 추소근은 놀라 깨여났다. 저쪽 방에서 자던 그녀도 놀라 깨여났는지 나가서 문을 열었다. 그도 다가가 문밖을 내다보았다.   3명의 경찰이 문밖에 서있었다. 추소근은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였다. 내가 사람을 죽였단 말인가?그때 경찰들이 맞은켠 집의 문을 열고 그 집에 있던 한 청년의 손에 수쇠를 채웠다. 그제야 추소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지옥에 떨어졌다가 천당에 올라간 기분이였다. 아, 내가 방금 황백룡을 죽이는 꿈을 꾼것이로구나.    내가 정말 그자를 죽였더라면 나도 저 청년처럼 수쇠를 차고 지옥으로 들어갈번 했구나. 그후 추소근은 법에 황백룡을 고소했다. 그리고 2010년 양력설에 딸을 데려왔다. 그들 부녀에게 새 엄마가 된 한 녀인이 방금 삶은 물만두를 들고왔다.                                                                     《품팔이》    
129    군인의 어머니 댓글:  조회:4853  추천:0  2010-05-12
  방송에서 “엄마가 보고싶을 때”라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군인들의 면회시간이 되였다. 전 련의 병사들이 줄을 섰는데 면회를 온 군인의 어머니는 한분뿐이였다. 련장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어머니, 어디에서 오셨어요?”“예, 저는 아들보러 산동에서 왔어요.”특유의 산동발음이 섞인 사투리가 구수했다.“어머니, 오시는데 힘드셨죠. 그래 얼마나 걸리셨어요?”“예, 꼬박 하루 걸렸네요.”“어머니, 아들 보고싶으시죠?”“예, 그럼요.”연병장의 병사들은 어머니에게 일제히 경례를 하였다. 련장은 연병장의 병사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이분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그러자 수많은 병사들이 앞으로 달려나와서 하나하나 줄을 맞추어 서는 바람에 한쪽으로 물러나있던 련장은 어머니곁에 바싹 다가선 한 병사의 곁으로 와서 물었다.“이분이 어머니 맞습니까?”“예! 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그 병사는 군인다운 씩씩한 모습으로 우렁차게 웨쳤다.“어찌 자식이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모르겠습니까? 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련장은 그 병사를 보고 다시 물었다.“고향이 어디예요?”“예, 저의 고향은 서안입니다.”“아니, 이 동지 좀 봐. 어머니는 산동에서 오셨는데…”련장은 그 병사의 어깨를 탁 쳐서 밀어버렸다. 그 병사는 쭈뼛쭈뼛하며 한쪽으로 밀려가고 병사들의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련장은 다음 병사한테 다가가서 어머니가 옳으냐고 물었다. 그 병사가 씩씩하게 대답했다."예! 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어제밤 꿈에 어머니를 보았는데 오늘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련장은 웃으면서 그 병사를 밀어버리고 다음 병사를 보고 어머니가 옳으냐고 물었다. 그 병사도 씩씩하게 대답했다.“저는 어머니의 향기에 이끌려 왔습니다. 어찌 자식이 어머니의 냄새도 모르겠습니까! 저의 어머님이 확실합니다.”련장은 웃으면서 그 병사를 밀어버리고 그 다음 병사를 보고 어머니가 옳으냐고 물었다.“동지도 이 분이 어머니가 확실합니까?”그런데 그 전사는 힘없이 대답했다.“아닙니다. 이 분은 저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부대에 오기 일주일전에 돌아가셨습니다.”그 병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목소리도 우울했다. 그러자 전체의 분위기도 숙연해졌다. 그 병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저는 하늘나라에 계신 저의 어머니에게 고백할 말이 있습니다.”“아, 그래요? 어머니께서 지금 보고계실것입니다. 어서 말해보십시오.”“예,  련장님,  저도 어머니께서 보고계실것이라고 확신합니다.”병사의 목소리는 약간 울먹이는듯했지만 씩씩함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저의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고 저는 지금 고아로 있습니다.”병사의 뺨으로 눈물이 흐르고있었지만 손으로 훔치지도 않고 눈을 감으려고 애쓰지도 않는 모습이 더욱 안쓰러웠다. 련장도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고 다른 병사들도 눈물을 흘렸다.“그럼 어머니께 한마디 하세요.”병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시선을 하늘로 향한채 씩씩하게 경례를 붙였다.“어머니, 이 아들은 부대에서 수장동지와 전우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잘 지내고있습니다. 그동안 어머니가 없었지만 지금 저에게는 또 어머니가 있게 되였습니다. 어머니, 전 지금 이 앞에 계신 어머니를 저의 어머니로 모시렵니다!”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병사를 바라보면서 병사의 손을 꼭 잡았다.“고맙다. 내 아들!”그러자 전 련의 병사들이 동시에 이구동성으로 웨쳤다.“우리도 어머니를 저희들의 어머니로 모시겠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모든 전사들의 어머니입니다!”잠시 말이 끊어졌다. 눈물에 목이 메여서일것이다. 전사들을 면회온 어머니는 몇달전에 임무를 수행하다가 희생된 이 련의 한 전사의 어머니였던것이다.                                                            《중국군인넷》  
128    살인악마의 웃음과 한숨 댓글:  조회:4441  추천:0  2010-05-11
2010년 2월 21일, 13명을 살해한 살인악마 성서룡은 마침내 사형판결을 받았다. 성서룡은 1973년 1월에 광동성 련주시에서 출생했는데 초중문화정도이고 한족이며 무직업자였다. 그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의 사이에 선후로 광동, 광서, 호남, 절강, 강서, 중경 등 성, 자치구, 직할시를 넘나들면서 공범과 함께거나 단독으로 고의살인, 강간사건 10건을 저지르고 13명을 살해했다. 그중 그가 저지른 6건의 강탈, 고의살인사건중에서 도합 8명이 사망되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는 인민페 28만 8610원에 달하는 재물을 강탈했고 도주기간에 나포에 항거하여 4명(경찰 3명, 보안일군 1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경상을 입혔다. 그는 단독으로 강간사건 1건을 저지르고 1명을 살해했다. 1998년 5월에 공안부에서는 고의살인혐의로 성서룡을 수색체포하도록 전국각지에 통보했다. 2005년 1월에 주전이라고 이름을 고친 성서룡은 강탈하다가 강서성 공주시 룡남현공안국의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그후 강서성 룡남현인민법원에서는 강탈죄로 주전을 유기도형 7년에 언도했다. 강서녀자감옥에서 징역살이를 하는 기간 성서룡은 숱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7년형밖에 받지 않은 자신의 운수에 기뻐하며 암암리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2009년 5월에 진짜신분이 드러나 불산시공안국에 넘겨져 조사를 받게 되였다.   2010년 2월 21일 오전에 불산시중급인민법원에서는 1심에서 13명을 살해한 살인악마 성서룡을 고의살인죄, 강탈죄, 강간죄 등을 병과하여 사형에 처하고 정치권리를 종신박탈하며 개인재산을 전부 몰수한다고 판결했다. 성서룡은 재판과정에 줄곧 미소를 짓고있었는데 판결결과에 대해 접수한다고 표시했다. 그러나 일부 구체적인 사건과정에 대해서는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리기적이라는것은 승인했지만 잔인하는것은 승인하지 않았다.   판결전의 어느날 오후에 기자는 특별허가를 받고 불산시간수소에서 성서룡을 1시간 30분동안 만나서 그가 살인악마로 변하게 된 과정을 취재했다.   ◆ 기자: 당신이 가장 후회하는 사건은 어느 사건이요? ◆ 성서룡: 당연히 광서쫭족치구 계림에서 저지른 그 사건이지요. 란계영이 리모를 죽이는 바람에 나는 돌아설 여지가 없었습니다. ◆ 기자: 처음 살인했을 때 두려웠댔소? ◆ 성서룡: 당시 매우 당황해서 흉기를 현장에 둔채 담을 뛰여넘어 도망쳤습니다. ◆ 기자: 그후 호남성 주주시에서 한집식구 세사람을 죽일 때 마음에 변화가 있었소? ◆ 성서룡: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미 사람을 죽였으니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것이 첫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일 때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 기자: 사람을 죽인후 악몽을 꾸었소? ◆ 성서룡: 악몽을 꾼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악몽은 (심리소질이) 약한 사람들이 꾸는거지요. 이미 사람을 죽였고 목숨같은건 버린 몸인데 더이상 뭐가 두렵고 떨릴게 있겠습니까? ◆ 기자: 당신이 지금 쓰는 표준말에는 광동사투리가 조금도 섞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말씨를 고쳤소? ◆ 성서룡: 이 몇년래 나는 될수록 광동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만약 한사람이라도 내가 광동말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면 발각될것이 아니겠습니까?    (웃음소리) ◆ 기자: 듣자니 당신은 불산에 거주한적이 있다면서? ◆ 성서룡: 2005년에 나와 란계영이 불산에 거주하면서 늘 그곳의 소고기음식을 먹었지요. ◆ 기자: 당신은 숱한 사건을 저질렀는데 일반인과 생활방식이 어떻게 달랐소? ◆ 성서룡: 생활방식이야 비슷했지요. 내가 두려워한건 경찰이였습니다. 경찰들이 길에서 신분증을 조사할가봐 두려웠고 그들이 집에 찾아와서 조사할가봐 두려웠습니다. 때문에 나는 연해지구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조사가 엄했기때문이지요. ◆ 기자: 당신은 어떻게 경찰을 피했소? ◆ 성서룡: 경찰도 사람이고 신선이 아니니깐 꼬리를 잡기 힘들지요. 나는 사건을 저지른후에는 현장에 가상을 만들어놓군 했습니다. ◆ 기자: 듣자니 당신은 매번 사건을 저지른후에는 법망에서 빠져나기 위해 꼭꼭 주동적으로 경찰들의 움직임에 대해 알아봤다면서? ◆ 성서룡: 기왕 사건을 저지르려고 했다면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고 경찰들의 조사방향에 대해 꼭 알아봐야지요. 사람마다 총명은 타고난것이 아니지요. 공부를 자꾸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는것처럼 강탈과 살인도 자꾸 하면 이골이 터서 더 교묘한 방법으로 하게 되는것이지요. 그리고 어떻게 도망치면 편리하고 경찰들이 어떻게 추적하는가 하는것도 똑똑하게 알게 되지요. ◆ 기자: 당신은 강서성에서 붙잡혔을 때 어떻게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했소? ◆ 성서룡: 그 당시 나는 이름을 고치고 사건을 저질렀는데 붙잡혀 판결을 받게 되자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7년도형이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상소하지 않았습니다. 잘못했다가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게 되고 사형을 당할수 있었으니깐요. ◆ 기자: 당신은 강서감옥에서 징역살이를 할 때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몸을 낮추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소? ◆ 성서룡: 아닙니다. 정반대였지요. 일반적으로 체포령을 받은 범죄자들은 모두 조심하면서 개조표현이 좋았기때문에 오히려 경찰들의 의심을 받았지요. 그런 착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는 일부러 쩍하면 말썽을 일으켰지요. ◆ 기자: 그후 당신은 어떻게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게 될것이란걸 눈치챘소? ◆ 성서룡: 나는 신분이 드러나기 15일전에 곧 위험이 닥쳐올것이라는것을 느꼈습니다. 당시 40살쯤 되는 죄수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몰랐는데 지문감정을 통해 발각되였지요. ◆ 기자: 당신은 지금 이렇게 변하게 된데 대해 무슨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오? ◆ 성서룡: 나는 간수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4가지 원인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첫째는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나를 말썽꾸러기라고 퇴학을 시켰기때문에 나의 인생이 잘못되였다고 느껴집니다. 둘째는 군대에 나가지 못하게 되였기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군대에 가는것이 나의 리상이였습니다. 그런데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기회를 안면이 있는 사람한테 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 당시 나는 너무 분하여 울기만 했습니다. 셋째는 나의 고향에 있는 파출소의 경찰이 자기의 친구를 위해 나를 붙잡아갔기때문입니다. 그때로부터 나는 경찰을 미워하게 되였습니다. 나는 “너희들 경찰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데 난 군인이 되지 못할바에 도 적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넷째는 이전에 감옥살이를 할 때 감옥에서 어떤 추악한 일을 목격했기때문입니다. ◆ 기자: 당신은 13명을 살인하여 사람들에게 “살인악마”라고 불리우는데 자신이 악마라고 생각하오? ◆ 성서룡: 그것은 그들이 오해하고있기때문입니다. 나는 자신을 살인악마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 기자: 당신은 자신이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 성서룡: 누구나 이렇게 할수 있습니다. 만약 정말 그러한 경우에 처해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할것입니다. 나는 잔인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것이지요. ◆ 기자: 당신은 4가지 원인외에 자신에게는 원인이 없다고 느끼오? ◆ 성서룡: 만약 능력이 없고 령민한 사고방식이 없다면 그런 일을 할수가 없지요. ◆ 기자: 당신은 이제 곧 판결을 받게 되는데 당신은 자신이 어떤 도형을 받게 될것이라고 생각하오? ◆ 성서룡: 법정에서도 나는 열번 죽여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무슨 도형을 받게 되리라는것은 이 세상사람들은 모두 알것인데 내가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기자: 만약 당신에게 기회가 있다면 또 살인하겠소? ◆ 성서룡: 이전에 강서감옥에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 기자: 왜? ◆ 성서룡: 지금은 많은 경찰들이 좋다는것을 알게 되였기때문입니다. 나쁜 경찰들도 잘못을 저지르면 감옥살이를 하겠지요. 중경의 문강처럼 말입니다. ◆ 기자: 만약 래세가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싶소? ◆ 성서룡: (긴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많은 범죄의 길을 걸어오면서 생각했는데 다음 세상에 가서는 죄를 짓지 않고 편안한 백성으로 살고싶습니다.                                                                             《신화넷》  
127    늑대의 사랑고백 댓글:  조회:4119  추천:0  2010-05-06
  2009년 5월 28일 밤 10시경에 안휘성 숙주시 모 현의 한 주민아빠트에서 웬 녀인의 처참한 부르짖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빨리 오세요!  큰일났어요!” 이웃들이 놀란 소리를 듣고 그 집으로 들어가보니 주인집 남자가 인사불성이 되여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속옷이 피로 빨갛게 물들어져있었다. 그리고 피범벅이 된 고환이 남자의 왼켠에 놓여져있었고 그 옆에서 주인집 녀자가 공포에 질려 울고있었다. “모두 뭘하고있습니까? 빨리 고환을 주어들고 집주인을 병원에 실어갑시다!” 누군가 이렇게 소리쳐서야 정신을 차린 이웃들이 서두르기 시작했다. 주인집 녀인이 황망히 고환을 물컵에 담고 다른 사람들이 집주인을 업고 현병원으로 달려갔다. 제보를 받고 달려온 관할구역의 경찰들이 현장에 와서 조사해보니 창문은 꽁꽁 잠겨져있고 출입문도 파손된 흔적이 없었다.피해자는 황영강이라고 부르는데 올해 42살이고 어느 탄광의 주인이였다. 황영강의 안해는 리려견이라고 하는데 몇년전까지 산부인과의사로 사업한적이 있었다. 황영강은 1990년 7월에 안휘성 숙주시 어느 광산기업에 배치되였는데 2년후에 자신보다 2살 년하인 리려견을 알게 되였다. 당시 리려견은 숙주의학원을 갓 졸업하고 모 진병원의 산부인과에서 의사사업을 하고있었다. 1994년에 결혼한 두 사람은 이듬해에 아들까지 보고 행복하게 살았다.  황영강은 2000년 9월에 사직하고 자체로 광산회사를 세워 돈을 벌기 시작했다. 리려견도 2005년 3월에 사직하고 개인진료소를 차려놓았다. 황영강은 아들을 보았으니 이제 딸까지 있으면 리상적이라고 말했다. 리려견은 남편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사직했는데 과연 이듬해에 딸을 낳게 되였다.   경찰들은 황영강의 친구와 회사 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 황영강이 채천천이라고 하는 녀비서와 관계가 밀접하다는것을 발견했다. 금년에 18살인 채천천은 2008년 7월에 중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황영강의 광산회사에 초빙되여 녀비서로 사업했다.  경찰들이 조사해보니 채천천이 회사를 떠난지 오래 되였다. 경찰들은 재빨리 채천천을 찾아냈다. 그런데 채천천은 사건이 생긴 날에 황영강을 만난적이 없다고 했다. 채천천의 친구들도 그날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채천천과 함께 오락장소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놀았다고 부재증명을 서주었다. 그럼 누가 황영강이 깊은 잠이 든 기회를 타서 그의 고환을 잘라냈단 말인가?  상업적수들이 원한을 품고 그런 짓을 한것일가? 사건분석을 거쳐 경찰들은 이 사건은 황영강을 잘 아는 사람이 저지른 짓이라고 판단했다. 잘려나간 고환은 찢어진 흔적이 없었고 동맥과 정맥혈관이 수술칼로 자른듯 가쯘하게 잘려있었다. 그리고 고환이 잘려나간후 황영강의 음낭은 봉합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런 정황에 근거하여 범인이 의사라고 판단한 경찰들은 진일보로 되는 조사를 거쳐 황영강의 안해 리려견에게 혐의가 있다고 인정했다. 리려견은 자신의 범행을 부정했지만 경찰들은 황영강의 집에서 피묻은 수술칼과 붕대를 발견했다. 수술칼과 붕대에 묻은 피를 채취해 기술감정을 한 결과 황영강의 DNA와 일치했다. 그리고 수술칼과 붕대에는 리려견의 지문이 남아있었다. 유력한 증거앞에서 리려견은 자신의 죄를 승인하는수밖에 없었다. 2009년 음력설이 갓 지난 어느날 밤이였다. 그날 리려견은 만취되여 밤늦게 귀가한 남편을 침대에 눕혀놓고 일어섰다. 바로 그때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리려견이 전화를 받자 웬 녀인의 간드러진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난 당신이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오늘 저녁 당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내가 당신곁에 없으니 당신절로 잘 쉬세요!” “넌 누구야?!” 리려견이 화가 나서 물어보자 전화는 인차 끊겼다. 리려견은 갑자기 몽둥이에 머리를 얻어맞은듯 비칠거렸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남편을 바라보노라니 너무도 속상해서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장장 15년동이나 함께 살아온 남편이 나를 배반하다니? 리려견이 이튿날 아침에 따지고들자 남편은 장사거래로 만난 녀자가 롱담을 한것이라고 하면서 밖에 녀자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리려견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2009년 3월 2일 저녁 7시, 저녁을 먹던 황영강은 전화를 받더니 물건구입하러 온 손님이 찾는다면서 부리나케 집에서 나갔다. 리려견은 슬그머니 따라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남편의 차를 미행했다. 10여분후에 앞에서 달리던 남편의 차가 멈춰서고 시체옷을 입은 예쁜 녀자가 남편의 차에 올라탔다. 그 녀자를 본 리려견은 깜짝 놀랐다. 그 녀자는 바로 18살에 나는 남편의 녀비서 채천천이였던것이다. 채천천을 태운후 남편의 차는 계속 달리더니 한 호텔앞에서 멈춰섰다. 리려견이 살펴보니 남편은 채천천의 팔을 끼고 호텔방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화가 나서 따라들어간 리려견은 호텔방에서 함께 있는 남편과 채천천을 붙잡았다. 리려견은 채천천에게 보상금으로 10만원을 줄테니 남편의 회사를 떠나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채천천과 다시는 래왕하지 않겠다는 담보서를 쓰게 했다. 그런데 한달후 리려견의 친구가 찾아와서 “네 남편이 채천천에게 아빠트를 사주고 그녀를 첩으로 삼고있어”라고 알려주었다. 2009년 5월 15일,  황영강은 상업담판을 하러 숙주시로 간다면서 자가용차를 몰고 떠났다. 그녀는 또 살그머니 남편의 차를 미행했다. 결과 남편이 채천천과 계속 래왕하고있다는것을 발견했다. 리려견은 절망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다투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남편의 바람을 막을수 있겠는가를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에 그녀는 남편을 “태감”으로 만들어 더는 바람을 쓰지 못하게 하는것으로 혼인을 지키려고 마음먹었다.   2009년 5월 27일, 황영강은 설사로 화장실출입이 잦았다. 황영강은 큰 병이 아니면 병원으로 가지 않고 의사인 안해의 치료를 받았다. 리려견은 진료소에서 의료기구들을 가져와서 남편에게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녀는 설사약을 수면제로 바꾸었다. 그리고 남편이 잠들자 마취약을 주사했다. 남편이 지각을 잃자 리려견은 남편의 팬티를 벗기고 손에 수술칼을 집어들었다.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외도의 화근인 남편의 물건을 정확하고도 생명의 위험이 없이 안전하게 잘라냈다. 그녀는 잘려나간 남편의 고환을 바라보면서 온몸을 떨었다. 이제 남편은 더는 바람을 쓰지 못할것이다. 리려견은 현장을 수습한후 두 아이를 데리고 산보하다가 10시쯤 집에 돌아와서 다른 사람이 뛰여들어 남편의 고환을 잘라낸것처럼 일부러 큰소리를 질렀던것이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이웃들이 황영강을 현병원으로 실어갔고 현병원에서 기술부족으로 해결할수 없다고 하자 다시 숙주시병원으로 옮겨졌다.   숙주시병원에서는 황영강에게 고환원상회복수술을 해주었다. 의사들은 고환을 약물에 깨끗이 씻은후 혈관신경이 끊기지 않은것을 발견하고 고환의 동맥과 정맥을 황영강의 음남속의 혈관과 이어주었다. 1시간 남짓한 수술을 거쳐 잘려나갔던 고환을 원상회복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리려견은 죄책감에서 약간이나마 해탈될수 있었다. 그녀는 한시도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펴주었다. 2009년 6월 1일, 경찰들이 갑자기 리려견앞에 나타났을 때에야 황영강은 자신의 고환을 누가 잘랐는가를 알게 되였다.  황영강은 경찰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건 모두 내탓입니다. 난 안해를 탓하지 않습니다. 안해는 아주 선량한 녀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후 황영강은 치료를 받는 한편 여러번 해당부문을 찾아다니면서 “내가 밖에 다른 녀자를 두었기때문에 안해가 그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가정과 사랑을 지키려고 한것입니다.  내가 먼저 안해에게 미안한 짓을 한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안해를 경하게 처벌해줄것을 요구했다. 황영강은 치료를 받은후 고환의 혈액순환이 잘되고 고환의 웅성호르몬분비는 정상적인 남자의 절반에 달했다. 이는 고환원상회복수술이 매우 성공적이라는것을 말해준다. 2009년 6월 12일,  집에서 휴양중인 황영강은 안해를 면회하러 간수소로 찾아갔다. 자신을 찾아온 남편을 본 리려견은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을 그렇게 하면 안되는데…”라고 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황영강은 안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미안해하지 마오. 내가 먼저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잖았소?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소. 당신이 원한다면 앞으로 우리 새롭게 살아봅시다”라고 말했다.                                         《중국법제보》  
126    수술칼에 얼룩진 혈흔 댓글:  조회:3670  추천:0  2010-05-05
  2009년 5월 28일 밤 10시경에 안휘성 숙주시 모 현의 한 주민아빠트에서 웬 녀인의 처참한 부르짖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빨리 오세요!  큰일났어요!” 이웃들이 놀란 소리를 듣고 그 집으로 들어가보니 주인집 남자가 인사불성이 되여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속옷이 피로 빨갛게 물들어져있었다. 그리고 피범벅이 된 고환이 남자의 왼켠에 놓여져있었고 그 옆에서 주인집 녀자가 공포에 질려 울고있었다. “모두 뭘하고있습니까? 빨리 고환을 주어들고 집주인을 병원에 실어갑시다!” 누군가 이렇게 소리쳐서야 정신을 차린 이웃들이 서두르기 시작했다. 주인집 녀인이 황망히 고환을 물컵에 담고 다른 사람들이 집주인을 업고 현병원으로 달려갔다. 제보를 받고 달려온 관할구역의 경찰들이 현장에 와서 조사해보니 창문은 꽁꽁 잠겨져있고 출입문도 파손된 흔적이 없었다.피해자는 황영강이라고 부르는데 올해 42살이고 어느 탄광의 주인이였다. 황영강의 안해는 리려견이라고 하는데 몇년전까지 산부인과의사로 사업한적이 있었다. 황영강은 1990년 7월에 안휘성 숙주시 어느 광산기업에 배치되였는데 2년후에 자신보다 2살 년하인 리려견을 알게 되였다. 당시 리려견은 숙주의학원을 갓 졸업하고 모 진병원의 산부인과에서 의사사업을 하고있었다. 1994년에 결혼한 두 사람은 이듬해에 아들까지 보고 행복하게 살았다.  황영강은 2000년 9월에 사직하고 자체로 광산회사를 세워 돈을 벌기 시작했다. 리려견도 2005년 3월에 사직하고 개인진료소를 차려놓았다. 황영강은 아들을 보았으니 이제 딸까지 있으면 리상적이라고 말했다. 리려견은 남편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사직했는데 과연 이듬해에 딸을 낳게 되였다.   경찰들은 황영강의 친구와 회사 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 황영강이 채천천이라고 하는 녀비서와 관계가 밀접하다는것을 발견했다. 금년에 18살인 채천천은 2008년 7월에 중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황영강의 광산회사에 초빙되여 녀비서로 사업했다.  경찰들이 조사해보니 채천천이 회사를 떠난지 오래 되였다. 경찰들은 재빨리 채천천을 찾아냈다. 그런데 채천천은 사건이 생긴 날에 황영강을 만난적이 없다고 했다. 채천천의 친구들도 그날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채천천과 함께 오락장소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놀았다고 부재증명을 서주었다. 그럼 누가 황영강이 깊은 잠이 든 기회를 타서 그의 고환을 잘라냈단 말인가?  상업적수들이 원한을 품고 그런 짓을 한것일가? 사건분석을 거쳐 경찰들은 이 사건은 황영강을 잘 아는 사람이 저지른 짓이라고 판단했다. 잘려나간 고환은 찢어진 흔적이 없었고 동맥과 정맥혈관이 수술칼로 자른듯 가쯘하게 잘려있었다. 그리고 고환이 잘려나간후 황영강의 음낭은 봉합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런 정황에 근거하여 범인이 의사라고 판단한 경찰들은 진일보로 되는 조사를 거쳐 황영강의 안해 리려견에게 혐의가 있다고 인정했다. 리려견은 자신의 범행을 부정했지만 경찰들은 황영강의 집에서 피묻은 수술칼과 붕대를 발견했다. 수술칼과 붕대에 묻은 피를 채취해 기술감정을 한 결과 황영강의 DNA와 일치했다. 그리고 수술칼과 붕대에는 리려견의 지문이 남아있었다. 유력한 증거앞에서 리려견은 자신의 죄를 승인하는수밖에 없었다. 2009년 음력설이 갓 지난 어느날 밤이였다. 그날 리려견은 만취되여 밤늦게 귀가한 남편을 침대에 눕혀놓고 일어섰다. 바로 그때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리려견이 전화를 받자 웬 녀인의 간드러진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난 당신이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오늘 저녁 당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내가 당신곁에 없으니 당신절로 잘 쉬세요!” “넌 누구야?!” 리려견이 화가 나서 물어보자 전화는 인차 끊겼다. 리려견은 갑자기 몽둥이에 머리를 얻어맞은듯 비칠거렸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남편을 바라보노라니 너무도 속상해서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장장 15년동이나 함께 살아온 남편이 나를 배반하다니? 리려견이 이튿날 아침에 따지고들자 남편은 장사거래로 만난 녀자가 롱담을 한것이라고 하면서 밖에 녀자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리려견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2009년 3월 2일 저녁 7시, 저녁을 먹던 황영강은 전화를 받더니 물건구입하러 온 손님이 찾는다면서 부리나케 집에서 나갔다. 리려견은 슬그머니 따라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남편의 차를 미행했다. 10여분후에 앞에서 달리던 남편의 차가 멈춰서고 시체옷을 입은 예쁜 녀자가 남편의 차에 올라탔다. 그 녀자를 본 리려견은 깜짝 놀랐다. 그 녀자는 바로 18살에 나는 남편의 녀비서 채천천이였던것이다. 채천천을 태운후 남편의 차는 계속 달리더니 한 호텔앞에서 멈춰섰다. 리려견이 살펴보니 남편은 채천천의 팔을 끼고 호텔방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화가 나서 따라들어간 리려견은 호텔방에서 함께 있는 남편과 채천천을 붙잡았다. 리려견은 채천천에게 보상금으로 10만원을 줄테니 남편의 회사를 떠나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채천천과 다시는 래왕하지 않겠다는 담보서를 쓰게 했다. 그런데 한달후 리려견의 친구가 찾아와서 “네 남편이 채천천에게 아빠트를 사주고 그녀를 첩으로 삼고있어”라고 알려주었다. 2009년 5월 15일,  황영강은 상업담판을 하러 숙주시로 간다면서 자가용차를 몰고 떠났다. 그녀는 또 살그머니 남편의 차를 미행했다. 결과 남편이 채천천과 계속 래왕하고있다는것을 발견했다. 리려견은 절망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다투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남편의 바람을 막을수 있겠는가를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에 그녀는 남편을 “태감”으로 만들어 더는 바람을 쓰지 못하게 하는것으로 혼인을 지키려고 마음먹었다.   2009년 5월 27일, 황영강은 설사로 화장실출입이 잦았다. 황영강은 큰 병이 아니면 병원으로 가지 않고 의사인 안해의 치료를 받았다. 리려견은 진료소에서 의료기구들을 가져와서 남편에게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녀는 설사약을 수면제로 바꾸었다. 그리고 남편이 잠들자 마취약을 주사했다. 남편이 지각을 잃자 리려견은 남편의 팬티를 벗기고 손에 수술칼을 집어들었다.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외도의 화근인 남편의 물건을 정확하고도 생명의 위험이 없이 안전하게 잘라냈다. 그녀는 잘려나간 남편의 고환을 바라보면서 온몸을 떨었다. 이제 남편은 더는 바람을 쓰지 못할것이다. 리려견은 현장을 수습한후 두 아이를 데리고 산보하다가 10시쯤 집에 돌아와서 다른 사람이 뛰여들어 남편의 고환을 잘라낸것처럼 일부러 큰소리를 질렀던것이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이웃들이 황영강을 현병원으로 실어갔고 현병원에서 기술부족으로 해결할수 없다고 하자 다시 숙주시병원으로 옮겨졌다.   숙주시병원에서는 황영강에게 고환원상회복수술을 해주었다. 의사들은 고환을 약물에 깨끗이 씻은후 혈관신경이 끊기지 않은것을 발견하고 고환의 동맥과 정맥을 황영강의 음남속의 혈관과 이어주었다. 1시간 남짓한 수술을 거쳐 잘려나갔던 고환을 원상회복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리려견은 죄책감에서 약간이나마 해탈될수 있었다. 그녀는 한시도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펴주었다. 2009년 6월 1일, 경찰들이 갑자기 리려견앞에 나타났을 때에야 황영강은 자신의 고환을 누가 잘랐는가를 알게 되였다.  황영강은 경찰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건 모두 내탓입니다. 난 안해를 탓하지 않습니다. 안해는 아주 선량한 녀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후 황영강은 치료를 받는 한편 여러번 해당부문을 찾아다니면서 “내가 밖에 다른 녀자를 두었기때문에 안해가 그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가정과 사랑을 지키려고 한것입니다.  내가 먼저 안해에게 미안한 짓을 한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안해를 경하게 처벌해줄것을 요구했다. 황영강은 치료를 받은후 고환의 혈액순환이 잘되고 고환의 웅성호르몬분비는 정상적인 남자의 절반에 달했다. 이는 고환원상회복수술이 매우 성공적이라는것을 말해준다. 2009년 6월 12일,  집에서 휴양중인 황영강은 안해를 면회하러 간수소로 찾아갔다. 자신을 찾아온 남편을 본 리려견은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을 그렇게 하면 안되는데…”라고 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황영강은 안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미안해하지 마오. 내가 먼저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잖았소?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소. 당신이 원한다면 앞으로 우리 새롭게 살아봅시다”라고 말했다.                                         《중국법제보》  
125    꿈많은 가수와 교수의 사랑 댓글:  조회:3737  추천:0  2010-05-05
124    탐관과 강남미녀 댓글:  조회:3966  추천:0  2010-05-04
왕선룡은 1953년 3월 20일에 절강성 동려현의 한 보통시민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는 절강상업학원을 졸업한후 벼슬운이 트이여 절강성상업청 단위원회 서기,  정치처 부주임, 계획통계처 처장을 담임했다.  그는 37살 되던 해에 호주시상업국 부국장을 담임했는데 그 시기 강남미녀 정유명을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되였다. 왕선룡보다 4살 년하인 정유명은 항주미녀로서 미모가 뛰여나고 몸매가 잘 빠져서 왕선룡의 넋을 단번에 빼앗아갔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후 사랑을 위해서 항주에서 출세할 기회를 버리고 남자친구를 따라 호주시로 내려왔다. 그후 그녀는 어느 상업무역회사에 들어갔으며 남자친구와 결혼하여 딸까지 낳았다.  왕선룡은 기업에 내려가 시찰할 때 정유명을 만났는데 첫눈에 예쁜 유부녀에게 반해버렸다. 정유명은 처음에는 사랑하는 남편과 소중한 가정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왕선룡의 맹렬한 애정공세와 그의 간부다운 당당한 위풍에 그녀의 방어선은 아쉽게 무너져버렸다. 그녀는 왕선룡의 품에 안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한평생 당신의 정부로 되겠어요. 당신은 안해외에 다른 녀자를 사랑해선 안돼요.  그리고 당신은 앞으로 어디로 가든 날 곁에 데리고가야 해요!” 왕선룡은 주저없이 선뜻 “나는 앞으로 아무리 높은 간부로 승진해도 당신 하나만을 정부로 두고 한평생 사랑할테요”라고 맹세했다. 그리고 서로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두 사람의 관계를 절대 비밀에 붙이기로 약속했다.   왕선룡은 1년후 절강성상업청 부청장으로 승진했다. 왕선룡은 항주에 돌아온후 관계를 통해 정유명을 절강성상업투자발전유한회사에 전근시켰다. 정유명은 사흘이 멀다하게 왕선룡의 품에 안긴덕에 몇년후 회사의 부총경리로 되였다. 2002년 7월 14일에 영특집단유한회사의 리사장으로 된 왕선룡은 정유명을 회사의 리사로 받아들였다.객관적으로 말하면 정유명의 출세는 왕선룡이 뒤에서 밀어준외에 정유명 자신이 애써 노력했기때문이다. 그들은 공공장소에서는 사업에 관한 말외엔 다른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때문에 주위사람들은 그들의 관계를 감감 모르고있었다. 2003년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에서 자금을 내여 성립한 절강석화건설집단회사의 리사장 겸 당위위원회 서기로 임명된 왕선룡은 정유명을 석화건설집단 산하의 분회사인 절강화룡투자발전유한회사 상무부총경리로 임명하였다.  그해 9월에 절강성 대주시 상인 김여명과 장서조는 대주시 로교구 라양가두판사처 남산촌과 450무의 부동산개조항목계약을 체결했다. 김여명과 장서조는 자금이 부족했기때문에 왕선룡과 합작하자고 제기했다. 왕선룡은 자신이 직접 나서는것이 꺼림직하여 정유명을 내세웠다. 왕선룡의 지지하에 정유명의 화룡회사와 김여명, 장서조는 절강아태부동산개발유한회사를 세우고 정유 명을 총경리로 임명한후 함께 남산촌의 부동산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2005년 4월부터 11월까지 김여명과 장서조는 도합 2409만여원의 토지양도비를 받았는데 계약대로 화룡회사에서는 1683만원을 가지게 되였다. 왕선룡은 세사람에게 이 자금을 화룡회사의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정유명은 사사로이 토지양도금을 가로챈것은 탐오범죄행위라고 생각되여 몹시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온 정부를 위해 탐오의 길로 나아갔다.그들은 리사회의에서 다른 리사들을 속여서 1759만원을 투자하게 했다. 김여명 등은 2400만원의 반환금을 얻은후 정유명에게 220만원을 바쳤다. 정유명은 이 돈을 왕선룡과 나누어 가졌다. 정유명은 탐오한 돈으로 여러가지 금은장식품과 자가용차를 사서 시집가는 딸에게 선물했다. 얼마후 왕선룡은 또 밀령을 내려 계속 김여명, 장서조와 함께 173무의 부동산개발항목을 손에 쥐여 토지반환금의 우대정책을 향수받았다. 이번에 왕선룡과 정유명은 약 3000만원에 달하는 거액의 돈을 나누어가졌다. 왕선룡은 거액의 수자에 놀라서 몸을 떨고있는 정유명을 꼭 껴안아주면서 “우리 쥐도 새도 모르게 했으니 아무일도 없을거요.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내가 떠멜것이니 당신은 안심하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담대해진 정유명은 또 왕선룡의 지시에 따라 투자항목에 대한 가짜분석보고를 올려 리사회의에서 5750만원을 투자하게 하여 두 사람이 사사로이 4627.97만원을 나누어가졌다. 왕선룡, 정유명, 김여명, 장서조는 서로 결탁하여 거액의 돈을 사사로이 나누어가지는 재미에 세월 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왕선룡과 정유명이 득의양양해할 때 무형의 법망이 그들의 몸을 조이기 시작했다. 2008년 3월, 절강성규률검사위원회에서는 왕선룡이 장악하고있는 여러 회사의 장부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챈 왕선룡은 정유명에게 증거를 없애버리라고 명령했다.  정유명이 문서들을 태워버렸는데도 왕선룡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정유명을 보고 “나는 정청급간부이기때문에 성규률검사위원회에서 직접 나에게 손을 쓰지 않고 가능하게 당신을 돌파구로 삼을것이요. 그러니 입을 꼭 다물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야 하오. 기억하오. 공산당원의 강철같은 의지로 꼭 우리의 비밀을 지켜야 하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또 왕선룡은 정유명을 달래기 위해 “만약 우리 두 사람이 모두 들통난다면 우리 함께 죽는것이 어떻소”라고 말했다. 정유명도 거액의 돈을 탐오했으니 사형을 면치 못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차라리 죽는다면 증거가 없어 가족들이 그 돈을 향수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일이 들통나게 되면 함께 자살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2008년 6월, 절강성규률검사위원회에서는 왕선룡과 정유명에게 “쌍규(규정된 시간과 규정된 지점에서 해당문제에 대해 설명을 할것을 요구하는 규정)” 처분을 내렸다. 미리 준비가 있은 정유명은 죽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사건조사일군들이 바짝 조이면서 공세를 들이대자 정유명은 함께 자살하기로 한 왕선룡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고급가슴띠로 목을 매고 침대란간에 가슴띠의 한쪽을 걸어놓고 자살하려고 시도했다. 사건조사일군들이 제때에 발견하고 그녀를 병원에 호송하여 구해냈다. 구원된 그녀는 신용을 지키는 왕선룡이 이미 자살했을것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땅바닥에 꿇어앉아 먼저 저승에 간 왕선룡에게 죽지 못하게 된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그녀의 극단적인 행위를 본 사건조사일군들은 왕선룡이 죽지 않았으며 또 자살하려는 기미가 없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왕선룡도 지금 사건을 털어놓는중이라고 말하면서 사실대로 문제를 털어놓으라고 공세를 들이댔다. 심리방선이 무너진 정유명은 마침내 입을 열고말았다.  정유명이 입을 열자 왕선룡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죄행을 모두 털어놓았다. 2008년 10월 9일, 왕선룡은 사법기관에 의해 체포되였다. 왕선룡, 김여명, 장서조는 구주시간수소에 압송되였고 정유명은 상산현간수소에 압송되였다. 2009년 8월 20일, 구주시중급인민법원에서는 6000여만원을 탐오하고 98만원을 수뢰하여 국가기업에 1억 4000만원의 경제손실을 조성한 “절강제일경제사건”에 대해 1심판결을 내리고 원 절강성석화건축재료집단 리사장 왕선룡을 무기도형에, 원 절강아태부동산회사 총경리 정유명을 유기도형 11년에,  원 절강아태부동산회사 리사장 김여명을 유기도형 13년에, 원 절강아태부동 산회사 리사 장서조를 유기도형 11년에 각각 처한다고 선포했다. 판결이 내려진후 왕선룡의 안해 장혜군은 당장에서 판결에 불복하여 상소하겠다고 소리질렀다. 장혜군은 이 사건은 억울한 사건이니 남편을 위해 끝까지 상소하겠다고 고함쳤다.   그러나 뜻밖인것은 정유명이 법정에서 왕선룡과의 관계를 다 털어놓은것이다. 그녀의 가족들은 깜짝 놀랐고 그녀의 남편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에 흐름에 따라 그들은 정유명을 용서해주었다. 그녀가 10여년동안 왕선룡의 정부질을 했지만 관건적인 시각에 자신의 명예를 희생하면서 탐관의 죄행을 폭로하여 속죄하고 국가를 위해 공을 세웠기때문이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1심판결이 내려진후 그녀를 대신해서 탐오한 돈 275만원을 갚아주었다.                           《지음》    
123    55년간 중국을 철권통치한 한무제 댓글:  조회:12972  추천:1  2010-05-02
  한무제(漢武帝)는 이름이 유철(劉徹)이고 시호는 세종(世宗)이다. 한무제는 문제와 경제가 이루어놓은 안정된 나라에서 7살에 황태자로 책봉되어 16살에 즉위한 후 71살까지 황제로서의 화려한 삶을 살았다.   한무제의 인재등용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한무제는 즉위 후 신분, 지역을 가리지 않았고 널리 인재를 선발하여 그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국정을 처리했다. 한무제는 즉위 2년 후부터 널리 인재를 선발하기 시작했다. 한무제는 견식이 있고 감히 황제에게 간언할 용기를 가진 유지인사들을 황궁에 불러들여 직접 면담을 진행했는데 이런 면담을 그 당시 "대책(對策)"이라고 했다. 이런 대책을 통해 많은 인재들이 등용되었는데 등용된 인재들은 한무제의 위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한무제와 동중서의 "천인대책(千人對策)" 문답은 이미 널리 알려진 정치문헌으로 되였다. 한무제 즉위 시 배출된 인재들 중에는 경제학자이며 정치가인 동중서(童中舒), 교육가이며 정치가인 공손홍(公孫弘) 사학가인 사마천(司馬遷), 문학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군사가인 위청(衛靑), 곽거병, 외교가인 장건(張騫), 음악가인 이연년(李延年) 등이 있다.         한무제의 통일사상과 정치 한무제 건원(建元) 5년인 기원전 136년 한무제는 동중서의 제의에 따라 유교를 정치 지도 이념을 삼았는데 이 유교는 중국 역사에서 2천 년간의 정치 이념으로 되었다. 동중서는 유교를 봉건 최고정치 원칙으로 삼고 이를 문화사상을 통일하는 유일한 척도로 삼았다. 하여 유학은 일반 학설로 부터 경(經)으로 되었다. 즉 시(詩), 서(書), 역(易), 례(禮), 춘추(春秋) 등 5경은 그 후로 역대 통치자들이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시험의 주요한 내용으로 되었다. 한무제 시기 유가학설은 큰 발전을 가져왔다.   원삭(元朔) 2년, 한무제는 주부언(主父堰)의 제의에 따라 "추은령(推恩令)"을 추진했다. 중국의 제후국들은 전통적으로 오직 장자만이 부친의 작위와 영토를 물려받게 되어 있었다. 한무제가 추진해온 "추은령"은 다른 아들도 부친의 제후국을 나누어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정책으로 하여 제후국의 토지는 갈수록 작아지고 이에 따라 중앙집권제는 자연스럽게 더욱 강화되었다. 한무제는 해마다 8월에 각 제후 왕들을 불러들여 황금을 바치게 했다. 한무제는 각 제후 왕들이 바친 황금의 량과 색깔 등이 합당하지 않으면 그것을 빌미로 작위를 박탈해 지방의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한나라의 경제 수입원 중 가장 큰 것은 야철(冶鐵), 제염, 주전(鑄錢)이다. 유방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한나라를 창건할 때 지방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 세 가지를 민간인 경영하도록 허락했다. 기원전 119년 한무제는 민간인의 야철, 제염, 주전을 금지시키고 국가 전매를 시행하여 조정은 막대한 수입을 얻게 되였다. 하여 역대 어느 왕조보다 풍부한 재정으로 사회가 안정되자 한무제는 서남 변방 개척 사업을 시작했다.   흉노와의 대결 유목 민족인 흉노가 막한 세력을 턱 대고 실크로드를 장악하면서 서한에 큰 위협을 조성하게 되자 한무제는 꺾일 줄 모르는 굳센 의지와 호기로 흉노와 나라의 운을 건 쟁탈전을 벌였다. 흉노를 중앙아시아 밖으로 밀어내 다시는 한나라 땅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한나라의 남은 과제였다.     흉노는 북방의 유목 민족으로 한나라 초기에 그냥 낙후한 노예제 단계에 처해 있었다. 흉노는 기병의 우세를 이용해 한나라를 여러 차례 침입했습니다. 이에 반격해 한무제는 15차례나 흉노와의 전쟁을 진행했다. 기원전 119년, 한무제는 장군 위청과 곽거병에게 명하여 흉노를 징벌하게 했다. 위청과 곽거병은 각기 5만 명 기병과 4만 명 후속 부대를 이끌고 흉노징벌에 나섰다. 또한 한무제는 당시 미지의 세계로 알려진 서역으로 장건을 파견해 군사동맹 체결을 통해 흉노를 협공할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이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무제는 장건의 보고를 통해 서역의 수많은 나라를 알게 되었다.   한무제는 해마다 대규모 사절단을 보냈는데 이로써 마침내 실크로드가 중국의 역사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에 서역을 연결시킨 실크로드는 동서 문화 교류의 통로로 되었다. 중국의 실크와 종이제조기술, 예술은 실크로드를 통하여 세계 각지로 전해졌으며 외국의 향료와 수공예품 등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들어왔다. 한나라의 도읍인 장안(지금의 서안)은 한때 아시아대륙의 정치와 경제중심으로 되었다.     한무제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교만하고 독단적이며 허영심이 강하고 여색을 즐겼으며 사치한 생활을 하였다. 그는 큰 공적을 대해 탐냈고 요언을 믿고 태자와 싸워 수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한무제는 만년에 자기의 공로와 오유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특별히 를 반포하여 자기의 오유를 검토하였다. 이것은 역대 황제가운데서 매우 드문 것이다. 한무제는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이 세운 봉건중앙집권제를 공고, 발전시켰으며 중화민족의 유구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추진함에 있어서 큰 기여를 했다. 중국 역사에서 노예제 사회의 전성기가 서주(西周)시대였다면 한무제 시기는 중국 봉건사회가 첫 전성기를 맞은 시기였다. 이 시기 정치적으로 전례 없이 통일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전례 없이 번영했으며 국력이 전례 없이 강성해졌고 문화가 전례 없이 발전되었다. 하여 한무제는 중국 봉건사회 첫 전성기의 대표적인 황제로 되였다. 영국의 저명한 학자인 비르스의 "세계사강"의 설법에 의하면 그 당시 한나라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나라는 로마제국밖에 없었다.
122    찬란한 별의 약속 댓글:  조회:3417  추천:0  2010-04-30
    내가 10년째로 일하고있는 차술집은 바다가에 지어진 7층건물의 꼭대기에 자리잡고있는데 차술집의 천장은 전체가 유리로 되여있다. 이 차술집에 “찬란한 별”이란 이름이 붙은것은 이때문이다. 손님들은 우리 차술집의 푹신푹신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비스듬히 누워 차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길 좋아한다. 낮에 수영복차림의 미녀들이 반듯이 누워 일광욕을 하는가 하면 밤에 련인들이 의자를 붙이고 나란히 누워 간단히 칵테일을 홀짝거리며 별자리를 찾기도 한다. 게다가 혹 비가 오는 날이면 천장유리에 부딪치는 비방울들을 보기 좋아하는 련인들도 있다.   나는 우리 차술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지켜보길 좋아한다. 실제로 나는 이 차술집에서 만났다가 결혼을 한 많은 련인들을 보았으며 그들의 꿈 또한 잘 알고있다. 나는 비록 꿈을 잃어버린채 살아도 다른 사람의 꿈을 지켜보는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수 있다. 어느덧 “찬란한 별”은 내 꿈이 되여버린것이다.   나는 이 차술집에서 일한지 10년째지만 아직 주인을 만나보지 못했다. 주인은 항상 팩스로 내게 간단한 쪽지를 보내군 했다.  나는 그가 어디에 살고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인터넷으로 가게수입을 주인의 구좌에 예입하고 다시 각종 령수증과 서류를 팩스로 보내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이 차술집을 운영하며 내가 주인인것처럼 착각하기도 했다. 나는 돈을 모아 언젠가는 주인에게서 이 차술집을 살것이라는 소망을 품고있다.   가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겨울을 예고하는 비가 내리는 밤이였다.  그날 한 남자가 들어왔는데 나는 한참후에야 그가 10년전에 이 차술집에서 본적 있는 남자라는것을 기억해냈다. 10년전에 밥벌이를 목적으로 여기 해변으로 온 나는 마침 그때 “찬란한 별”을 그만두는 사람이 있어 이 차술집을 도맡았는데 그날부터 예쁜 처녀와 멋진 총각이 매일 함께 와서 차를 마시는것을 보았다. 그들은 나란히 누워서 비방울이 유리로 떨어지는것을 함께 바라보거나 레몬처럼 달이 환한 밤하늘과 보석처럼 별이 깔려있는 밤하늘을 바라보기 좋아했다. 나는 우연히 그들의 대화내용을 들은적이 있었다.   “저 있잖아요. 이렇게 멋진 곳에 눈이 내리면 얼마나 좋을가요? 눈이 소복히 유리창에 쌓인다면…” “여긴 눈이 오지 않소.” “언젠가는 눈이 꼭 오겠죠. 우리가 변치 않는다면 언젠가 첫눈이 오는 날 여길 다시 찾을거구요.”   그들중의 총각이 바로 지금 찾아온 그 남자였다. 그날 이후로 그들은 다시 “찬란한 별”로 찾아오지 않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남자가 홀로 다시 찾아온것이다. “그 녀자분은 어디 있지요? 헤여졌나요?” “글쎄요. 어딘가에서 이 하늘을 보고있겠지요…” 그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그녀는 비오는 날을 가장 좋아했지요. 비방울이 유리창에 끝없이 부서지는 모습을 사랑했어요. 또 그런 비방울들이 온통 눈송이로 변한다면 하는 꿈을 꾸면서…지금은 다 끝나버린 일이예요.” 그는 담배를 찾아 물었다. “올 겨울에도 눈은 내리지 않겠죠? 여긴 너무 따뜻하니깐…” “헤여지다니요? 리해할수 없군요.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끔찍해보였는데…” “다 내 잘못이지요. 그녀는 내가 떠나는게 항상 두려웠어요. 내가 여길 떠나고 난 뒤 그녀는 언제 깨여져버릴지 모르는 행복을 견딜수 없어 먼저 떠나려 했어요. 난 그녀를 잡지 못했죠. 그저 멍하니 뒤모습만 보고있었을뿐이죠. 바보같이 그녀가 꼭 돌아올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한 사흘후면 웃으며 돌아올것이라고 믿으며 그냥 보내주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았죠.” “그 아가씨는 돌아올겁니다. 꼭 돌아올겁니다!” 나는 그를 위안하느라고 제법 힘있게 말했지만 그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소용없어요. 난 별빛이 눈부신 밤하늘을 볼 자신이 없어요. 밤하늘을 아무리 찾아도 내 별이 없다는걸 알아내고 실망하는것이 두려워요.내 별은 저 하늘엔 없어요. 아니 내겐 그런 하늘조차 없는거죠.”   그는 일어섰다. 축 처진 어깨로 차술집에서 나가는 그의 모습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후로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깊어가고 성탄절을 며칠 앞둔 어느날, 나는 더 추워지기전에 유리를 닦으려고 “휴일”이라는 패말을 내붙이고 아침부터 유리를 닦기 시작했다. 맑은 겨울하늘을 더 잘 보려면 꽤 많은 시간을 들여서 깨끗이 닦아야 했다. 천장의 바깥유리를 닦을 때였다.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할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차술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비방울을 보려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나는 그만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이 오는것이 아닌가! 드디여 수십년만에 이 고장에 눈이 오는것이다. 드디여 “찬란한 별”의 유리지붕에도 눈이 쌓이는것이다! 나는 허겁지겁 1층밖으로 달려가 “휴일”이란 패말을 걷어들였다. 그리고 불을 켜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눈이 오다니?! 정말 가슴 벅찬 일이였다. 눈 내리는 하늘을 보게 되다니!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첫손님이였다.   “아무도 없나요?” 녀자손님이였는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였다. “문을 연지 5분도 안됩니다. 기다리시지요.” “그래요. 오늘은 밤을 새서라도 기다려야죠.” 그녀는 긴 머리에 묻은 눈을 털 생각도 하지 않고 창가에 앉아 눈이 내리는 바다를 보고있었다. “뭘 드시겠습니까?” “커피 한잔.”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아니, 이럴수가?!  바로 그녀였다! 10년전의 “녀주인공”! 얼마전에 찾아왔던 “남주인공”이 기다리던 그녀였다!  나는 그때 그 “남주인공”의 련락처를 알아놓지 않은것을 후회하고있었다.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멍하니 출입문만 바라보고있었다. 나 역시 그녀의 마음처럼 안타까왔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리는가싶더니 곧 어두워지고 밤이 찾아왔다.  “찬란한 별”의 유리지붕에도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유독 그녀만은 천장을 올려다보지 않고 눈내리는 바다만 지켜보고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남주인공”이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약간의 흥분을 감추지 못한채 말했다.   “여기에 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듣고 비행기로 세시간을 날아왔소! 10년만에 처음이라죠. 한번만 이 모습을 보려고 왔소. 마지막으로 한번만…” “마지막이라고요? 천만에!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나는 빙긋 웃으며 그녀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가 그녀를 발견한것과 동시에 그녀도 그를 보고 일어났다. 그는 놀랍고도 기쁜 표정을 짓더니 다급히 나를 보고 말했다. “이럴수가!  주인,  전화기밑을 들춰보면 빨간 단추가 있을것입니다. 그녀를 위해 준비한거지요. 그건 정말 바보짓거리라고 수없이 자신을 비웃으며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준비한건데 그녀가 돌아왔어요! 정말 돌아와줬어요!”   나는 그가 기쁜김에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되여 “어서 가봐요! 당신을 기다린지 오래요”라고 하면서 그의 등을 밀었다. 그가 내 손을 잡고 소리쳤다. “내가 바로 ‘찬란한 별’의 주인이란 말이요! 진짜 주인! 어서 단추를 찾아 눌러요!” 나는 놀라움과 당황함속에서도 전화밑의 단추를 찾아 허겁지겁 눌렀다. 그러자 “찬란한 별”의 유리지붕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유리지붕이 열리며 하얀 눈이 차술집안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커피잔우에도, 탁자우에도 잠시 헤여져있었던 남녀주인공의 머리우에도…   그후 나는 두 사람이 한달후 결혼을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 멋진 한쌍이 될것이다. 아주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갈것이다. 영원히…그날은 내게도 잊혀지지 않을것이다. “찬란한 별”의 주인을 처음 보았고 또 유리지붕에 숨겨진 비밀도 알았으며 아주 아름다운 사랑도 보았다. 그리고 “찬란한 별”이 처음으로 눈속에 파묻힌 그 눈부신 밤을 보았다. 한달후 팩스가 왔다. 주인이 보낸것이다. “우린 신혼려행을 왔는데 여긴 그녀가 좋아하는 눈이 지천에 깔렸소. 그녀도 이제 눈에 질리기 시작했지만 그때의 ‘찬란한 별’의 눈은 결코 잊지 못할것이요. 그건 눈이 아니라 별이였으니! 당신이 ‘찬란한 별’을 사고싶어했죠? 난 당신에게 ‘찬란한 별’을 넘겨줄테요. 하지만 함부로 지붕을 열지 말기를 바라오. 당신의 꿈이 이뤄지기전까지는… 계약은 돌아가서 하기로 합시다.”   이듬해 성탄절 나는 “찬란한 별”의 매매계약서를 손에 쥐고서 전화기밑에 숨겨진 단추를 눌렀다. 자정이 지난 밤하늘에 별빛이 내려온다. 꿈이 내려온다.                                                                   《도시생활보》  
121    법정밖에서의 화해 댓글:  조회:3533  추천:0  2010-04-29
  1975년에 강소성 무석시 남장구의 한 교원가정에서 태여난 위보성은 대학을 졸업한후 어느 무역회사에 들어가 5년동안 일하다가 1998년에 사직하고 나와서 자체로 회사를 꾸렸다. 처음에는 회사의 경기가 좋아서 부모한테 집도 사주고 자가용차도 마련했다. 따르는 처녀들도 많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건 아란이란 처녀였다. 아란은 예쁘고 총명한데다가 약삭빨라서 그의 비위를 잘 맞추어주었다. 위보성은 2005년에 아란이와 결혼식을 올렸다.   2006년 가을에 아란은 임신했지만 조산으로 아이를 잃고말았다. 그런데다가 회사의 경기가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8년 1월에 회사가 부도나고 망하게 되자 아란은 리혼을 제기했다. 위보성은 회사가 망한데다가 안해까지 배반하자 절망을 느꼈다. 안해와 리혼한 이튿날에 위보성은 목을 매여 자살하려다가 어머니한테 발견되여 성사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어깨를 마구 흔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이 못난 자식아, 네가 죽으면 이 에미는 어떻게 살라고 그러느냐? 마음을 크게 먹어라. 녀편네는 다시 얻으면 될것이고 돈은 또 벌면 될것이 아니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앞으로 살길이 열리겠지. 다시는 이런 바보짓을 하지 말어라.” 그런데 화불단행이라고 2개월후 위보성의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사망되고 어머니까지 앓아눕게 되였다. 위보성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갔지만 치료비가 모자라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수밖에 없었다. 위보성은 어머니가 병마의 고통에 신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인 자신의 무력함에 탄식했다. 위보성은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낮 품팔이를 하면서 돈을 모 았다.   2008년 4월 23일, 거리에 나선 위보성은 죽고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발길이 가는대로 정처없이 걸어가던 그는 홍성술집거리앞에서 숱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것을 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원래는 교통사고가 났는데 한 중년사나이가 승용차에 치여죽었던것이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아까운 사람이 죽었군.”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가족들은 거액의 돈을 가지게 되잖았나. 승용차운전수가 손해배상으로 30만원을 내기로 했다잖아.” “에끼, 이 사람, 사람의 목숨을 어찌 돈으로 계산하나. 운전수들이 차를 몰 때 조심해야지.” 위보성은 피투성이된 시체를 보면서 죽은 사람은 얼마나 편안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뜩 나도 차에 치여죽는다면 거액의 돈이 어머니한테 쥐여쥘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병을 치료할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한몸 내여던져 어머니를 구할수 있다면 백번 죽어도 달가울것이다. 그래, 이렇게 죽는것이 좋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위보성은 며칠동안 어떻게 달리는 차에 뛰여들어 실수없이 죽을것인가 하는 궁리만 했다. 먼저 돈이 많은 운전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며칠동안 어느 한 회사의 녀총경리를 관찰하면서 목표로 삼았다. 그는 온해하라고 하는 그 녀총경리가 출퇴근하는 길을 몇번이나 살펴보면서 어디 쯤에서 행동할것인가를 연구했다. 그는 온해하의 회사와 가까운 곳에서 행동하는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자신이 죽으면 온해하가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거액의 돈을 내놓을것이라고 생각되였기때문이다. 2008년 6월 15일, 위보성은 신분증부터 찾아서 집전화번호와 함께 호주머니에 넣었다. 자신이 죽은후 교통경찰들이 인차 자신의 신분을 확인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른 새벽부터 나가서 온해하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온해하의 승용차앞에서 다른 승용차가 10메터 간격을 두고 달려오는 바람에 성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아침을 굶고 점심을 대충 요기를 한후 온해하의 회사에서 200메터 떨어진 곳에서 온해하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낯익은 혼다(本田)승용차가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길옆에서 만단의 준비를 하고있던 그는 혼다승용차가 거의 다가오는 순간 쏜살같이 도로 복판으로 뛰여들었다. 혼다승용차를 몰고 퇴근하던 온해하는 갑자기 앞에서 웬 남자가 뛰여드는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핸들을 꺾으면서 급정거했으나 차를 가로수에 살짝 부딪치고말았다. 얼마후 회사의 직원들이 발견하고 온해하를 병원에 실어갔다. 다행히 크게 상하지 않았기때문에 온해하는 15일동안의 병원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온해하는 1976년에 강소성 무석시의 보통 로동자가문에서 태여났는데 본지방의 대학을 졸업한후 자체로 회사를 꾸렸다. 그때 무석추라는 남자가 나타나 그녀에게 청혼했다. 무석추는 미남자인데다가 말재주까지 뛰여나 잠간사이에 온해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온해하는 무석추와 결혼하려고 날자까지 잡아놓았다. 그런데 잔치날을 일주일 앞둔 어느날, 온해하는 우연한 기회에 무석추가 자신의 친구와 주고받는 말을 엿듣게 되였다. 무석추의 친구가 무석추를 보고 “석추야, 넌 이전부터 예쁘게 생긴 녀자를 좋아했잖아. 그런데 그렇게 못생긴 녀자와 결혼까지 하려고 하다니? 그 녀자가 아무리 총경리라고 하지만 그건 아닌것 같다”라고 말하니 무석추는 “야, 내가 뭐 그 녀자를 진짜로 좋아해서 결혼하려고 하는줄 아니? 난 그 녀자한테서 돈을 후려낸후 차버릴테야”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무석추의 정체를 알게 된 온해하는 결혼을 취소해버리고 무석추와 관계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에는 깊은 상처가 남게 되였다. 그후 그녀는 어떤 남자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교통사고후 정신을 차린 온해하는 사고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도로복판에 뛰여든 남자한테 있다고 확신했다. 그 남자가 일부러 뛰여드는것을 그녀는 똑똑히 보았던것이다. 그 남자가 자살하려고 한것일가? 아니면 인위적인 교통사고를 조작하여 나한테서 돈을 빼내려는 수단이 아닐가?   교통사고후 위보성은 몹시 후회했다. 자신은 아무일도 없고 녀총경리만 부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가자 그는 녀총경리의 생사가 몹시 걱정되였다. 그는 온해하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지만 선뜻 앞에 나서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크게 다친 곳이 없이 무사하다는것을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하지만 자책감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그는 용기를 내여 온해하가 퇴원하는 날 병원문앞에서 기다리다가 그녀앞에 나타났다. “내가 이번 교통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날 감옥에 넣어주십시오!” 온해하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남자가 주동적으로 찾아오자 놀랐다. 그녀는 자기앞에 무릎을 꿇고있는 남자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면서 말했다. “이러지 말고 왜서 그런 일을 벌렸는지 상세히 말해주십시오.” 온해하는 위보성을 차집으로 데리고갔다. 위보성은 자신의 회사가 망한 일로부터 시작하여 안해가 배반한 일, 아버지가 돌아가고 어머니가 앓아눕게 된 일, 어머니의 치료비용을 마련하려고 자신의 몸을 던지려고 한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자세히 털어놓은후 말을 이었다. “난 당신을 상하게 하려고 그런게 아니였습니다. 그날 당신이 병원에 실려간걸 보고 당신앞에 나서려고 했지만 그럴수 없었습니다. 내가 나서면 당신의 치료비용을 대야 하는데 내겐 돈이 없었습니다. 죄값은 달게 받겠지만 나에겐 배상할 돈이 없습니다. 그러니 날 감옥에 넣어주십시오!” 온해하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후에야 온해하는 위보성을 보고 말했다. “먼저 당신의 집으로 가봅시다.” 위보성은 온해하가 왜서 그러는지 영문을 알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따르는수밖에 없었다. 위보성의 집에 도착한 온해하는 위보성의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있는것을 보고 아무말도 없이 병원으로 모시고가서 입원시켰다.    위보성은 너무도 감동되여 어찌할바를 몰랐다. “난 죄인인데 어찌…” “어머니를 위해서 생명까지 바치려 한 당신의 효도에 감동되여 그런거예요.” “이제 어머니의 근심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놓고 감옥에 들어가도 되겠군요. 하지만 어머니한테 제가 감옥에 들어갔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누가 당신을 고소하겠다고 했습니까?” “아니, 그럼…” “우린 이렇게 법정밖에서 화해한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겠습니까? 뭐든 내가 할만한 일이 있다면 시켜주십시오. 목숨을 바쳐서라도 다 해내겠습니다.” “뭐 은혜라고 할것도 없고 목숨까지 바칠것도 없지만 정 갚겠다면 우리 회사에 들어와 날 좀 도와줘요. 회사를 꾸려본 경험도 있잖아요?” 이렇게 되여 위보성은 온해하의 회사에 들어가 일하게 되였다. 그들은 함께 일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점차 더 많이 알게 되였고 날이 갈수록 정이 들게 되였다. 2009년 여름에 위보성의 어머니의 병세도 호전되였다. 그들은 2009년 9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 아닐수 없다.                                                      《가정문적보》  
120    생활은 련속극이 아니다 댓글:  조회:3616  추천:0  2010-04-28
  련애를 할 때 그녀는 매우 랑만적이였고 단순했다. 그녀는 애정을 주제로 한 텔레비죤련속극을 보기 좋아했다. 그녀는 련속극속에서 감동적인 장면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군 했다. 남자친구를 만나면 그녀는 련속극속의 어느 남자주인공은 녀주인공을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사랑한다면서 남자친구더러 그 남주인공처럼 자신을 한평생 변함없이 사랑할수 있느냐고 몇번이나 따져물었다. 그녀는 련속극속에 빠져 극속의 남녀주인공처럼 랑만적이고 환상적인 사랑을 해보고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자친구는 환상보다도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순박한 남자였다. 랑만을 즐기는 그녀는 잔재미가 없는 순박한 남자에게 점점 싫증을 느꼈다. 순박한 남자도 아무리 애써보았지만 변화무쌍한 녀자친구의 사유를 따라갈수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여지고말았다. 얼마후 순박한 남자는 다른 녀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였지만 랑만을 즐기는 녀자는 알맞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다년래 순박한 남자의 보살핌에 습관된 그녀는 어떤 일에 부딪치면 첫사람으로 생각나는것이 순박한 남자였다.   한번은 조심하지 않아 발목을 접질렀는데 그녀는 신혼려행을 떠난 순박한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또 한번은 순박한 남자가 한창 안해와 함께 텔레비죤을 보고있을 때 그녀는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몹시 답답하니 함께 차를 마시자고 불러냈다. 그뿐이 아니였다. 순박한 남자가 임신한 안해를 병원에 데리고가서 검사하고있는데 전화를 걸어 컴퓨터가 고장났으니 와서 봐달라고 요청했다. 순박한 남자는 그녀의 컴퓨터를 봐주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후엔 일이 있든 없든 나를 부르지 마오. 나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니 우리가 이렇게 자꾸 만나는것이 합당하지 않소.” 그녀는 리해할수 없는 눈길로 순박한 남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가 왜서 만나면 안되나요? 우리 사이에 아무일도 없는데 뭐가 무서워요. 련속극에 나오는 좋은 남자들을 보세요. 그들이 얼마나 첫사랑 녀자를 잘 관심해주는가 말이예요. 첫사랑 녀자가 아무리 상처를 주어도 련속극의 좋은 남자들은 변함없이 보살펴주어요. 당신도 나와 련애할 때 한평생 변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벌써 마음이 변했다니. 정말 무정해요!” 그후 그녀는 정말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다. 결혼후 달콤하고 행복한 사랑에 빠졌던 그녀는 점차 성숙해졌다. 어느 주말에 그녀는 남편과 함께 물건구매를 나갔다가 남편의 전 녀자친구를 만났다. 눈앞의 녀인은 사진의 모습보다 더 초췌해보였다. 그녀의 남편이 “오래만이군. 그동안 잘 보내고있소?”라고 인사하니 그녀는 “전…리혼했어요”라고 맥없이 대답했다. 집에 돌아온후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던 남편은 “알았소”라고 하더니 그녀를 보고 “내 좀 나갔다 오겠소”하고 말했다.그녀는 “그 녀자인가요?”라고 물었다. 남편은 “그 녀자가 리혼하여 심정이 좋지 않은가보오. 답답하니 나하고 차나 한잔 마시자는구려”라고 하면서 집에서 나갔다. 남편이 나간후 그녀는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그녀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지 않을가? 남편이 리혼을 제기하면 어떻게 할가? 그녀는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갑자기 이전에 자신이 순박한 남자와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그때 너무 어린애같았다는것을 느꼈다. 생활은 필경 련속극이 아닌것이다. 그녀는 벽시계를 바라보면서 시간이 1초1초 흘러가는것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50분이 지났을 때 남편이 돌아왔다. 이만한 시간이면 아무일도 없었을것이라는것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씽하니 달려가 남편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 “이후엔 그 녀자가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면 우리 함께 나가자요!”       《도시생활보》      
119    인터넷유희로 인한 청소년범죄 댓글:  조회:4203  추천:0  2010-04-27
  색정, 음란, 폭력적인 내용이 포함된 인터넷유희가 청소년들에게 주는 피해는 얼마나 큰가? 북경시미성년범죄관리교양소의 통계에 의하면 감금되여있는 소년범죄자중 강간, 폭력성범죄가 65.8%를 점하는데 그들중에 70%~80%는 모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인터넷유희를 접촉한 원인으로 범죄의 길을 걷게 된것이였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폭력, 색정, 음란, 도박 등 정보를 접한 소년범죄자들이 60%~70%가 된다. 북경시 모 중학교에 다니는 리근(가명)은 원래 인터넷유희를 놀기 좋아했는데 중학교를 그만둔후부터 더욱 인터넷유희에 빠지게 되였다. 인터넷유희는 그의 생활에서 유일한 쾌락이였다. 인터넷유희에서 부단히 업그레이드하여 남들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는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런데 이런 목표를 실현하려면 유희중에서 자신이 담당한 배역의 장비를 끊임없이 구매해야 했다. 이런 가상적인 장비를 구매하려면 현실중의 금전이 수요되였다. 그래서 리근은 무슨 방법을 써서든지 돈이 없으면 돈을 찾아내여 인터넷유희를 놀았다. 리근은 유희장비를 구매하기 위해 늘 부모한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부모한테 돈을 요구하는것도 한도가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주는 돈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그렇게 되자 그는 부모 몰래 저금통장을 훔쳐가지고 3000원을 꺼내 모두 인터넷유희장비를 사는데 써버렸다. 그후에도 또 2000원을 꺼냈다가 부모한테 발각되여 물매를 맞기까지 했다. 부모가 저금통장을 깊이 감추어놓자 그는 동학들에게서 돈을 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꾼다고 했지만 갚아주는 일이 없었다. 그후 동학들이 그의 본성을 알고 돈을 꿔주지 않자 그는 동학들의 돈을 빼앗기 시작했다. 동학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무서워 피해버렸다. 얼마후 그는 사회상의 강탈무리들과 결탁하여 돈을 빼앗다가 파출소신세까지 졌다. 하지만 그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그는 인터넷유희에서 남의것을 빼앗듯이 현실에서도 남의 돈과 물건을 마구 빼앗았다.   그가 노는 유희중의 도룡도는 특별히 좋았는데 전 봉사구역에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도룡도를 얻으려면 집 두채로 바꿔야 했다. 리근은 그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록 그는 천문학적수자인 그 도룡도를 사지 못했지만 그가 산 장비중에는 몇백원, 몇천원씩 하는 장비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장비들은 유희중에 수시로 끊임없이 나타나는 새 장비와 바꿔야 했다. 사실 리근이 노는 유희는 명의상에서는 무료이지만 이 무료유희를 노는 사람들은 한없는 금전과 정력을 투입해야 했다. 디지털오락업분석사 왕도는 “지금 대부분의 인터넷유희는 도구로 비용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채용하고있습니다. 이런 유희는 무료라고 선전하지만 사실상 돈을 쓰지 않으면 유희에서 한발자국도 내디디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유희를 노는 사람들은 유희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부득불 많은 돈을 팔아 도구를 사지 않을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리근도 “부단히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몇천원씩 쓰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돈을 쓰지 않으면 유희를 놀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리근은 유희를 놀기 위해 돈을 얻어야 했다. 그는 돈을 얻기 위해서는 남의 재물을 강탈하고 남의 생명을 빼앗는것을 꺼지리 않았다. 그는 17살되던 해에 8건의 재물을 강탈하고 살인한 사건에 참여했는데 그중 5명은 그가 직접 살인했던것이다. 강탈하고 살인하면서도 그는 그것을 유희놀이로 착각하고있었던것이다. 인터넷유희는 가상현실과 현실사이에서 길을 잃게 하는 정신마약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터넷가상현실에서 유희와 실제의 경계를 허문 첨단도구들이 륙속 나타나고있다. 인터넷유희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되여 현실세계를 초월한 가지가지 감수와 자극을 제공하고있다. 금전의 투입이 유희중 놀이군들의 생존에 직접 관계되기때문에 유희에 빠진 청소년들은 현실중의 금전을 미친듯이 추구하고있다. 유희중의 지위가 높은 인물이 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리근은 불귀의 길을 걷고야 말았다. 그는 동학들을 사기치던데로부터 강탈무리에 참여했고 결국엔 타인의 재물과 생명까지 빼앗고말았다. 리근은 담이 큰 아이였다. 유희중의 폭력은 그의 생리요구를 만족시켰으며 그의 폭력경향을 더욱 승화시켰다. 인터넷유희중의 상투적인 PK원칙은 곧 살인원칙인데 이 살인원칙은 리근에게 가상과 현실에 대한 판단을 헛갈리게 했다. 중국청소년인터넷협회 학향굉비서장은 인터넷유희가 청소년들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매우 관심했는데 그는 “인터넷유희중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남의 물건을 마구 빼앗게 하는 놀이는 도덕의 한계를 충격하였고 인터넷유희중의 인성의 약점을 노린 놀이는 청소년들 특히 미성년들에게 미치는 유혹과 영향이 대단합니다”라고 말했다. 화중사범대학의 특별초빙교수 도굉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터넷유희에서 그는 산채의 대왕이고 그녀는 공주입니다. 그는 황제이고 모든것을 손에 쥐고 마음대로 할수 있기때문에 심정이 매우 흐뭇합니다. 이 세상을 모두 얻고 신선이 된듯한 느낌인데 이는 마약을 사용하는것과 같습니다. 때문에 인터넷유희를 정신마약이라고 하는것입니다.” 리근은 이미 7년 유기도형을 받았다. 자유를 잃고 인터넷유희와 철처하게 격리되였을 때에야 꿈속에서 깨여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제가 인터넷유희에 빠졌을 때는 그 피해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특별히 자극적이라고 느껴져 놀았지요. 지금은 알게 되였지만 늦었습니다. 인터넷유희를 접촉하기전에 리로운것과 해로운것과의 관계를 똑똑하게 인식한후 유희를 놀아야 리지적일수 있습니다.” 북경시미성년범죄관리교양소에 갇혀있는 왕서(가명)는 3년전에 낯선 남녀가 서로 부부가 되여 만나자마자 뜨거운 정사를 벌리는 유희에 빠졌다가 현실세계를 유희놀이로 착각하고 12~13세 되는 녀학생 5명을 강간한 사건을 저질렀다. 또 소학교 6학년때부터 인터넷색정유희에 빠진 장모모는 경상적으로 부모의 돈을 훔쳐가지고 음란한 유희를 놀다가 결국은 범죄의 길을 걷게 되였다. 그는 매달 유희에 드는 돈을 얻기 위해서 밤중에 젊은 녀성을 련거퍼 3차례나 강탈했는데 강탈에 성공한후에는 또 그 녀성들의 옷을 벗기고 음란한 행위를 해댔다. 나중에 법정에서 판결을 받을 때 그는 인터넷유희에서 배운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한시기 “미녀와 마작을 놀다”는 유희에 빠졌는데 한번 이기면 미녀가 옷을 한벌씩 벗는 유희였다. 늘 가상현실에서 그런 유희를 놀다보니 그는 현실에서도 녀자의 옷을 벗겨도 된다고 착각했던것이다. 북경 모 고중의 1학년 X반에는 80%의 학생들이 인터넷유희를 본따서 “결혼”했는데 남학생들은 모두 “안해”가 있고 녀학생들은 모두 “남편”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검은색 양복을 입고 검은색 안경을 끼고 다니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복수하기로 했다. 결과 4명의 남학생과 1명의 녀학생이 결탁하여 한 녀학생을 륜간한 사건이 발생했다. 북경의 한 녀학생은 13살부터 인터넷색정유희에 빠졌는데 14살때에는 인터넷친구와 성관계를 가지게 되였다. 그후 하루밤정사를 권유하는 인터넷유희에 빠져 또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발생했는데 첫번째는 임신한줄도 몰랐고 두번째 인공류산을 할 때는 대량의 출혈로 생명까지 위험할번했다. 우리 나라에는 현재 1.75억에 달하는 청소년네티즌이 있는데 중국청소년인터넷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그중 10%가 부동한 정도로 인터넷유희에 중독되였다. 다른 방면으로 국내인터넷유희시장은 근년래 급속도로 확장되였다.   디지털오락업분석사 왕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8년에 인터넷유희시장의 규모는 약 185억원이였는데 2009년에는 260억원에 달하여 40%정도 증장했다. 이런 증장속도는 다른 산업에서 도달할수 없는것이다. 미성년들에 대해 말하면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계선이 똑똑하지 않은것이다. 성인들은 여기에서 현실을 망각하지만 아이들은 여기에서 현실을 배운다. 아이들이 인터넷유희의 색정, 폭력경향과 살인원칙에 깊이 빠지게 되면 현실세계중의 흰것과 검은것, 시와 비에 대해 똑똑하게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더욱 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받는것을 피면하기 위해 인터넷유희에 대해 마땅히 엄격한 등급제도와 제한제도를 내와야 하며 해당기업도 마땅히 사회적책임을 져야 한다. 한 기업은 유희를 산업으로 여길수 있지만 책임을 유희놀이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법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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