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시 창작기법 연구
-회화적 요소를 중심으로
이선
Ⅰ. 서론
1. 하이퍼시의 정의
‘하이퍼시란 무엇인가?’거부하면서도 하이퍼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하이퍼시는 기존의 시와 어떤 변별력을 갖는지 아날로그 시인들은 증명해보라고 한다. 본 논문은 하이퍼시 창작기법을 연구하여 새로운 실험시의 모습을 밝혀 보려고 한다.
‘하이퍼텍스트 문학’(Hypertext literature)은 하이퍼와 텍스트를 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드 넬슨(Ted Nelson)이 만든 말이다. ‘하이퍼시’(Yyper Poety)는 조지 P. 랜도(George P. Landow)의『하이퍼텍스트』라는 책에 쓰였다. 랜도가 처음 사용한 말일 것이다. 이 마을 한국시단에 처음 도입해서 쓴 사람은 문덕수 시인과 하이퍼시 동인들(심상운, 김규화, 오남구)이라고 생각한다.
“하이퍼텍스트는 종이 위에서 손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방법으로 상호 연결된 글이나 그림 자료들의 조직체”라고 한다. 하이퍼시는 하이퍼텍스트의 일종이다. 이 조직체들은 컴퓨터의 link(연결) 과정을 통해서 서로 결속된다. 링크는 컴퓨터에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하나의 큰 네트워크로 연결시킨다. 링크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의‘연결 편집기’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하이퍼 시인은 머릿속에‘연결 편집기’기능을 가지고 결합과 삭제, 교환, 편집을 자유자재로 하여야 한다. 종이 위나 컴퓨터의 링크는 기존의 텍스트의 선형성, 고정성, 유한성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것처럼, ‘하이퍼시’도 가상현실을 재현하여 시를 제작한다.
모든 문예사조는 작품이 선행하고, 작품 뒤에 이론이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하이퍼시는 시론이 먼저 주장되고 시가 후속하고 있다. 심상운과 김규화, 작고시인 오남구는‘하이퍼시 동인’(심상운, 김규화, 오남구)을 결성하여 한국시단에 하이퍼시를 소개하고, 하이퍼시 확산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렇게 하는 동안, 이론이 작품 창작에 앞서고, 작품이 후속하게 된 것이다.
2. 하이퍼시 창작기법
시는 이미지를 기본으로 하는 표현예술이다. 이미지는 사물성과 회화성을 추구하며 관념을 배척한다. 영국의 비평가 시드니(Sir Philip Sidney, 1554-1586)는‘시를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가르치고 즐겁게 할 목적을 가진 “말하는 그림”(speaking picture)이다.’라고 하였다. 시에서의 회화성은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으로 감각화하여 객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본 논문은 하이퍼시 창작기법을 밝혀 하이퍼시와 일반시의 차별화된 분류 기점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 논문에서는 널리 알려진 미술의 회화 기법을 차용하여 하이퍼시 창작기법을 7가지로 정의하였다.
첫째, 정물화 기법- ‘탈관념’
둘째, 겹쳐 그리기 기법- ‘다시점’‘다초점’
셋째, 움직이는 그림 기법- ‘상상력의 이동’
넷째, 옴니버스 기법- ‘낯설게하기’
다섯째, 기호시 기법- ‘무의미’
여섯째, 모자이크 기법- ‘이미지 결합’
일곱째, 추상화(구성) 기법- ‘시스템(디자인) 바꾸기’
본 논문에서 소개하는 7가지 하이퍼시 창작기법은 예시된 시 작품을 통하여 다음 장에서 그 타당성을 증명하려 한다. 하이퍼시는 통합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한 가지 기법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하이퍼시의 대표성을 수집하여 시의 제목과 내용, 구성요소와 디자인을 분석하여 변별력있는 하이퍼시 성립조건을 제시하려 한다.
∏. 정물화 기법-‘탈관념’
하이퍼시의 ‘정물화 기법’은 ‘탈관념’의‘보여주기’시다. 사물은 화가의 주관과 관념을 배제하고 ‘존재’할 뿐이다.‘탈관념’시는 설명적이지 않으며 해석적이지 않다. 작가는 냉정한 관찰자 시점이다. 최근의 극 예술영화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독자에게 지시나 명령을 하지 않는다. 작가의‘의도성’이 배제된 만큼 독자의 참여공간이 커진다.
‘사물성의 시어들은 사물간의 대립이나 긴장관계를 통하여 새로운 정서나 감수성을 유발하고 언어를 병치시키는 역설적인 비유다.’(시어론, 홍문표, 창조문학사, 2004, 2, pp. 153) 아래 시는 문덕수의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전문이다.
빨간 저녁놀이 반쯤 담긴
유리컵 세 개.
횅하니 열린 문으로는
바람처럼 들이닥칠 듯이 차들이
힐끗힐끗 지나간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속에 재떨이는 오롯이 앉아 있었다.
열린 문으로는
서 있는 한 사나이,
길 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
서 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
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그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금 밖으로 밀려나
금박金箔의 청자 담배와 육각형성냥갑이 앉아 있고
그 틈새에 조그만 라이터가
발딱발딱 숨을 쉬고 있었다.
― 문덕수,「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전문
위의 시에서 하이퍼시의 ‘정물화 기법’을 살펴보자.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은 냉정한 관찰자 시점이다. 이 시에는‘사물’만 등장한다. 사람인‘사내’도 철저한 사물로써 유리컵이나 성냥갑, 라이터와 동격으로 배경구실만 한다.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은 냉정하게 최소한의 요소만 조건적으로 ‘보여주기’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극적인 사건이 ‘침묵하는 사물’들의 배후에 음모처럼 숨어 있다. 최소한의 상황제시를 하면서 시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작가가 의도한 최소한의 개입이 냉정한 지적 분위기를 준다. 한껏, 독자의 호기심을 부추겨놓고는 짐짓 모르는 척‘시침떼기’다.
이 시는 불안정한‘삼각형’구도를 갖고 있다. 사물에 ‘의식’을 넣어 사물의 감정을 대립시키고 있다. 이 시는 퍼포먼스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나이의 등’이 ‘노려보고’ 있는 ‘세 유리컵’은 세 사람의 불편한 관계와 거부의 구도다. 이혼서류를 찍기 직전의 풍경일까? 마약 밀거래가 이루어지는 흥정과 배반의 현장일까?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위의 시는 문덕수가 하이퍼시에서 강조하는‘탈관념’을 그 방법론으로 하고 있다. 심상운이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으로 제시한 ‘제작성’과 ‘사건’조건도함의하고 있다. 또한 작가의 의도성을 최소화하여 제한하였으므로 하이퍼시의 최대 장점인‘독자 중심성’(『하이퍼텍스트』, 조지 P. 란도, 김익현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9, 2. pp. 295)을 강력하게 확보하고 있다.
Ⅲ. 겹쳐 그리기 기법-‘다시점’‘다초점’
‘겹쳐 그리기 기법’은 피카소의 그림 과 같은 시 창작 기법이다. 사람의, 앞, 뒤, 옆을 한 평면 위에 그린다. 피카소는‘다시점’,‘다초점’그림을 그렸다. 점선으로 눈 표시를 하여 여러 방의 성행위를 훔쳐보는‘엿보기’그림도 있다. 시에서 여러 관점이 동시에 진행되거나 여러 개의 화자가 등장하거나 묘사와 진술, 대사가 혼합되기도 한다.
‘겹쳐 그리기 기법’의 시는 건축물의 투시도나 단면도처럼 양방향성과 쌍방향성을 추구한다.‘다시점’과 ‘다초점’하이퍼시는 보이는 사실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사실을 한 화면에 한꺼번에 펼쳐 보여준다. '겹쳐 그리기 기법‘은 ‘외면 겹쳐 그리기’와 ‘내면의 겹쳐 그리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음은 오남구의 시「부드러움의 단상」전문이다.
비, 비,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산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로운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으면서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이 솟아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 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 오남구,「부드러움의 단상」전문
오남구의 ‘비’는 아날로그 시대의 ‘슬픔’과 ‘이별’의 대명사인 관념의 비가 아니다. ‘비’를 여러 방향, 여러 각도에서 절개하고 분류하여 한 화면에 펼쳐 보이고 있다.‘신호등이 켜진’ 거리에서 아주 짧은 찰라의 순간 직관한 ‘비’를 여러 방향에서 관찰하였다. 내면의 눈과 피부로 접촉한 비다.‘겹쳐 그리기 기법’으로 그린 하이퍼 그림이다. 위의 시는 심상운이 ‘다선구조론’에서 주장한 ‘다시점’과 ‘다초점’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을 갖고 있다.
Ⅳ. 움직이는 그림 기법-‘상상력의 이동’
‘움직이는 그림 기법’은 조지 P. 랜도(George P. Landow)가 말하는‘움직이는 텍스트’와는 다른 개념이다.(『하이퍼텍스트』, 조지 P. 랜도, 커뮤니케이션북스, PP. 137-143) 하이퍼시는‘움직이는 디지털 그림’이다. ‘움직이는 그림 기법’의 하이퍼시는 화면이 선명하고 장면 전환이 빠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으로 공감각적 운동 이미지를 만든다.
블레이크는 “상상은 영혼의 감각이다”라고 하였다. 시에서의 새로운 상상력은 새로운 철학이다.‘하이퍼시는 합성과 분리, 삽입이 가능하다. 상상력의‘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져 새로운 움직이는 여러 개의 이미저리(imagery)를 만든다. 아래 시는 김규화의 대표시「한강을 읽다」전문이다.
이젤을 거꾸로
일요일의 한강이 그림을 그린다
부우우 몰려와 늘어선 물가의 아파트군
단숨에 세우고
짐짓 흔들어본다
하늘을 제 가슴 깊숙이 클릭하고
그 위에 구름 몇 송이 흘러내리는
이내 지워버린다
아파트를 흑수정으로 꾸며놓고
올랑촐랑 물살 속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구부정한 어머니
뒤 따르는 나를 덥석 안는다
돛단배 하나 지나가면서
한강은 우리를 지운다
피사로의 「수문」을 물새가 가로 지른다
― 김규화, 「한강을 읽다」전문
김규화의 시는‘어머니’라는 보통명사를 특별한 그림으로 다시 그렸다.‘한강’이 ‘거꾸로 이젤’을 들고 순행적인 시간의 시점을 거꾸로 돌려 ‘반시계 방향’으로 진입하며 시에 감각적인 미의식을 준다. 아날로그 시가 시인의 관점에서 시에 접근했다면 이 시는 사물, 즉 피사체의 관점에서 관찰한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공간이동을 하여‘아파트- 하늘- 구름- 어머니- 돛단배- 새’로 그림의 화면이 바뀐다.‘부우우, 출렁, 올랑촐랑’등의 의태어는 시에 운동감을 준다. 사물에 운동성을 주며 장면전환을 한다.‘움직이는 그림’을 그린다.
고정성과 획일성에서 벗어난 시어들은 정서환기를 시킨다. 사실적인 표현과 정서적인 표현이 아우러져 심상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수채화의 여백처럼 시적 여운을 길게 남긴다. 문덕수는 ‘심상의 중요한 기능은 정서환기를 하는 것’(『시론』, 문덕수, 시문학사, 2002, 9, PP. 238)이라고 하였다.
김규화의 「한강을 읽다」는 파스텔톤의 ‘움직이는 풍경화’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공간이동으로 여러 번 출렁거림을 주어 ‘풍경화’에 ‘움직임’을 준다. 장면전환과 운동성은 이 시를 입체시로 만들었다. ‘한강, 구름, 돛단배, 물새’라는 사물을 공간이동하여 감각적인 붓으로 사용한다. 김규화는 독창적인 새로운 하이퍼시 창작기법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Ⅴ. 옴니버스 기법-‘낯설게하기’
옴니버스기법은 여러개의 이야기를 배치하여 시의 새로운 구조를 선보이는 하이퍼시창작기법이다. ‘낯설게 하기’는 로만야콥슨 등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사물,언어, 사건을 충돌하여 낯선구조와 낯선의미의 새로운 감각과 미의식을 추구하였던 이론이다. 옴니버스 기법은 제목과 내용, 연과 연의 연결고리를 끊어 낯설게 하기를 최대화하였다. 낯설게 하기를 최대화하면 구조의 새로움, 의미의 새로움, 감각의 새로움이라는 하퍼시성립조건을 충족시킬수 있다. 아래는 심상운 맨살에 링크하기 전문이다.
한 청년이 공원 풀밭에서 통조림 캔을 툭하고 딴다. 그 속에 꽁치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유통기한이 찍힌 주검이 눈부신 5월의 햇살 속에서 검푸른 살을 드러낸다. 눈감고 있던 맨살이 꿈틀거린다.
물에 젖은 살에서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비누의 살을 만진다. 비누는 아무에게나 포동포동한 맨살의 향기를 풍기며 몸뚱일 비틀다가도 가끔 미끄러져나와 세면대 바닥에서 통통거린다.
누가 푸른 바다를 유리병 속에 넣고 어항이라고 했을까? 열대어 두 마리 맨살 번득이며 유유히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오전 11시 20분 한 쌍의 남녀가 산호초 화려한 바다 속을 보며 어깨를 감싸고 있다.
( )
* ( ) 안은 당신의 상상이 들어가는 공간입니다. 링크해서 펼쳐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반짝이며 나타날 것입니다.
― 심상운,「맨살에 링크하기」전문
이 시는 제목과 내용, 구성이 신선하고 하이퍼적 감각을 갖고 있다. 특히 4연은 완전 독립된 ( )를 사용하여 독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조지 P. 랜도(George P. Landow)는 『하이퍼텍스트』(1992)라는 그의 저서에서 인터넷의 블로그를 인용하며 ‘저자와 편집자 역할을 하는 독자’에 대하여 언급하였다.(조지 p. 랜도, 하이퍼텍스트, 김익현 역, 2009, 542쪽) 작가와 독자가 50%씩 시를 쓴다. 필자도 작가의 제안대로 ( ) 안을 메워 협동작업을 시도해 본다.
(아가씨 입술과 이빨 사이에 끼어/ 신음하는 빨간 사과,/ 하얀 맨살이 아~ 아 몸부림친다)
1, 2, 3, 4연은 각각 다른 사물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독립되어 있지만 서로 링크된다. ‘통조림, 비누, 어항’은 또한 제목인 ‘맨살’과 링크된다.「맨살에 링크하기」는‘맨살’의 선정적 이미지와 ‘링크하기’란 컴퓨터 용어가 낯설게 맞물려 있다.‘옴니버스 기법’【여러가지를 한곳에 모인다는 뜻】은 새로운 하이퍼시 창작기법이다.
Ⅵ. 기호 시(詩) 기법-‘무의미’
소쉬르는 단어를 기표(記表:signifiant)와 기의(記意:signifié)가 결합하여 의미작용(signification)을 하는 기호라고 정의하였다. 기표는 사물의 본질이 아닌 형식이다. 가상의 무의미한 문자인 기호는 송신자의 메시지와는 상관없이 수신자의 수용 태도에 따라서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기표란 단일 의미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다의적이고 상징적 의미작용을 하기도 한다. 자연과 사물에 인간이 이름을 붙이기 전, 원래의 자연과 사물은 감정이 없다. 기호 시는 소쉬르의 기호학을 바탕으로 문자를 원래의 무의미한 원상태로 돌려주자는 것이다. 따라서 기호시론은 ‘무의미’와 동일한 개념으로 본다. 문덕수의 하이퍼시론은‘무의미’를 추구한다. 기호의 무의미성을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으로 본다. 아래 시는 필자의 졸시 「( )와 ( ) 사이에」전문이다.
너와 나, 사이, 강물
( ) 안에서
넘치지도 않고 유유히 흐른다
하늘과 땅의 큰 괄호{ } 사이로
빌딩이 자란다
가로수, 긴 괄호[ ] 사이로 자동차가 쌩쌩 달린다
( )를 치고 ( )를 치고 ( )를 치고
( )작은 괄호, ( )큰 괄호 끼리끼리 몰려다닌다
큰 괄호가 작은 괄호를 덥쳐 (((())))먹어버린다
철길을 홀로 걷던, 그 사내
누구의 잃어버린 ( )인가?
쇠파리 몇 마리, 사내 입술에 달라붙어
( ) 속, 말을 열려고 버둥댄다
입맞춤과 포옹은 ( )를 열고 닫는 것
꽃잎 닫혔던 ( )가 화르르, 열린다
가로수 귀를 막고
(( ))를 치고
위로만 나뭇가지를 뻗는
― 이선, 「( )와 ( ) 사이에」전문
위의 시는 제목에 ( )라는 기호를 사용하여 새로운 감각을 주고자 하였다. 기호를 기표인 ( )라고 생각해 보자. ( )는 미끄러져 여러 개의 기의로 해석된다. 따라서 ( )라는 기호를 사물과 사물과의 관계성인 ( )라는 미지수로 보았다. 말이 존재하지 않는 태초에는 포옹과 입맞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 )라고 몸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사물에 이름이 없으므로. 모든 사물과 사건과 상황을 ( )로 인식하였을 것으로 상상하여 본 것이다.
‘사내의 주검’에 달라붙어 ( ) 속 말을 열려고 버둥대는 ‘쇠파리’처럼. 우리는 해석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현대인이 관계장애와 소통장애를 갖는 것은 ( )라는 기표를 해석하려고 집착하기 때문은 아닐까?
( )라는 기호시를 쓴 것은 하이퍼시의 ‘무의미’성과 다의성을 추구한 것이다. 본래의 사물을 무의미 기표인 ( )로 다시 환원하여 본 것이다. 문덕수의 하이퍼 시론인 언어의‘무의미’를 추구하여 하이퍼시의 창작기법을 새롭게 찾아보려 시도한 방법론이다. 과연 해석되지 않는 시가 있을까? 아이러니 하다.
Ⅶ. 모자이크 기법-‘이미지 결합’
‘모자이크 기법’[여러가지 빛갈의 나무,유리,조개껍질, 돌따위 등을 박거나 붙혀서 만든 도안한 장식물]은 색의 스펙트럼과 같은 초현실주의적 시 창작기법이다.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작가인 Breton과 Aragon의 시는‘의식과 무의식의 교차, 자동기술법, 비논리적, 비합리적, 우연적, 임의적, 본능적인 힘에 의존하여 단어와 구조가 자율성을 부여받는다.’(『현대시론』, 김영철 저, 건국대학교출판부, 2009, 8, PP. 340-342)
하이퍼시는 모자이크처럼 단절과 결합이 연속적으로 교차한다. 샤갈의 그림처럼‘이미지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닌다. 배열과 구성은 순차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다. 현대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불특정하게 결합한 하이퍼시의‘모자이크 기법’은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처럼 우연적인 미술기법과 같다. 무의미 단어들의 충돌과 투척은 그로테스크하고 추상적인 언어그림을 그린다. 아래 시는 양준호의「비상구」전문이다.
바람은 비늘 흔든다 귓속에
파란 새 날아간다
꽃은 피어라 말의 콧등에도
소금은 준비되었을까
뼈들 파도처럼 춤춘다
눈알만 남아 귀만 남은
고무공 뛰어간다
― 양준호,「비상구」전문
양준호의「비상구」는 의미해석을 하려고 하면 전혀 문맥이 통하지 않는다. 의미추구의 시가 아니다. 무의미한 ‘단어던지기’나 ‘언어충돌’과 ‘단어’의‘결합’과‘분리’가 만든‘모자이크’이미지다.
이 짧은 시가 주목받는 것은 ‘단어’를 허공중에 흩트려 놓은 것 같다. ‘바람- 비- 파란 새- 꽃- 소금- 뼈- 파도- 눈알만 남은 고무공- 귀만 남은 고무공’은 「비상구」라는 제목과 부조리하게 흩어졌다가도 묘하게 단어들이 결합하여 이미지를 생성한다. 꽉 막힌, 비상구도 없는 곳에서 새처럼 날아보려고 애쓰는 단절과 고독의 현대인. 침묵의 몸부림과 저항이 감지된다. 몸통만 남은 현대인이 ‘고무공’으로 투사된다.
양준호는 무의미 단어들을 결합하고 분리하여 흩뿌림으로써 새로운 ‘모자이크 이미지’의 하이퍼시의 방법론을 제공한다. 한국에 하이퍼 시론이 나오기 훨씬 전인 80년대부터 양준호는 이미 하이퍼시를 써 왔다.
Ⅷ. 추상화(구성) 기법-‘시스템(디자인) 바꾸기’
‘추상화 기법’은 여러 개의 선과 면을 사용하여 새로운 구성과 디자인을 하는 하이퍼시 창작 방법론이다.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추상적이고 현대적 구성의 시 창작법이다. 하이퍼시는 이름만 가리면 누구 시인지 모른다는 비난을 듣는다. 조지 랜도가 의심한 것처럼 하이퍼텍스트의 양방향성과 쌍방향성의 열린 지평은‘방향상실’(하이퍼텍스트, 조지 P. 랜도, 커뮤니케이션북스, 2009, 2, pp. 218-225)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하이퍼시가 무의미 단어의 조합이나 단어투척만 추구한다면 비개성적인 작품들이 양산될 수 있다. 하이퍼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시스템의 변화를 시에서 시도한다는 것은 형식과 내용, 디자인, 기법, 표현의 다양한 요소, 즉 시의 구조를 바꾼다는 뜻이다. 필자의 졸시「귓속말하기」전문을 소개한다.
개미가 벌에게 엉덩이를 한방 냅다 쏘였어요
이를 악 물고,
입술이 노랗게 물들도록, 호박꽃잎 물어뜯는데
( “꿀맛 좋니?”- 귓속말로 )
오랫동안 기우뚱한 안방 벽이
너덜너덜 갈라지고 금이 간, 건넌방 벽에게 묻는다
( “나한테 너무 오래 기대고 살지 않았니?”- 귓속말로)
숫모기만 보면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애~앵 앵앵, 암모기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끈질긴 구애
여자 뒤통수치기 여왕모기, 그녀
(질투도 힘이니? - 귓속말로)
초생달이 허공에 밀려
헛바퀴 돌아, 돌아
거꾸로 매달려, 그믐달로 서 있네요
( “하늘이 노랗게 보이니?” - 귓속말로)
나뭇잎은 하늘을 한 입 베어 물고
파랗게 멍든 입술로 벙긋거린다
( “후욱 불어 버릴까?”- 귓속말로)
보슬비, 속눈썹에 내려앉아 소곤댄다
( “슬픔도 키스처럼 부드럽지 않니?”- 귓속말로)
― 이선, 「귓속말하기/-때, 장소, 시간, 그리고??」전문
위의 시는 몬드리안의 추상화 구성기법을 시에 도입하여 디자인을 새롭게 구성하려하였다. ( ) 속에 반복적인 ‘귓속말로’라는 똑같은 후렴구를 넣어 보라색을 주조로 한 그림을 그렸다. 소통이 되는 의미의 시를 쓰되, 새로운 언어 디자인을 하여 ‘추상(구성)화 기법’으로 ‘시스템(디자인) 바꾸기’를 실험하였다. 「귓속말하기」에 ‘-때, 장소, 시간, 그리고??’라는 부제를 붙인 것은 각각의 사건의‘현장성’을 강조한 것이다.
프로이드는 해결되지 못한 상처를 꺼내서 승화하여 치유하는 과정을 문학창작 과정으로 보았다. 누구나 인생에서 어느 때,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 뒤통수를 맞은, 억울하지만 차마 반박하지 못한 당혹스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잔혹성과 비열한 속성을 추적하여 진정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Ⅸ. 결론
본 논문은 하이퍼시의 구성요소와 시창작 기법을 연규하여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을 미술의 회화에서 차용한 것은 미술의 회화기법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객관화되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하이퍼시 창작기법을 일곱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정물화 기법- ‘탈관념’
둘째, 겹쳐 그리기 기법- ‘다시점’‘다초점’
셋째, 움직이는 그림 기법- ‘상상력의 이동’
넷째, 옴니버스 기법- ‘낯설게하기’
다섯째, 기호시 기법- ‘무의미’
여섯째, 모자이크 기법- ‘이미지 결합’
일곱째, 추상화(구성) 기법- ‘시스템(디자인) 바꾸기’
하이퍼시 창작기법을 7가지로 정리하여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하이퍼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하이퍼시란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대답이 되기를 바란다. 본 기법들은 필자가 실제로 하이퍼시를 쓰면서 체험한 하이퍼시의 구조와 조건, 하이퍼시의 구성요소들이다.“이 시가 과연 하이퍼시가 될수 있을까?”자신에게 무수히 던진 질문들에 대한 결론이다. 그러나 하이퍼시는 공감각적 이미지와 시의 총체적인 기법들이 합성된 다양하고 다각적인 현대의 새로운 시 창작방법론이다. 한 가지 기법으로 간략하게 정의하여 분석하려면 무리가 따른다. 여러 가지 기법의 혼합적 결정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감각의 하이퍼시 창작기법을 연구하는 것은 의의있는 일이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소개한 일곱 가지 하이퍼시 창작기법이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하이퍼시를 객관적으로 모두 언급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하이퍼시는 내용, 기법, 형태, 디자인 등 여러 방향에서 다각적으로 연구하여야 한다. 하이퍼시는 조지 P. 랜도가 그의 저서 『하이퍼텍스트』에서 처음 사용한 문학이론을 문덕수가 한국시단에 처음 도입하였다. 심상운, 김규화, 오남구는 을 결성하여 실험적으로 하이퍼시를 발표하였다. 많은 토론과 대담, 연구를 통하여 하이퍼시 확산이 점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하이퍼시는 시인과 비평가들의 많은 공격적 질문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작품으로 하이퍼시를 증명하도록 치열하게 정진하여야 한다. 훌륭한 하이퍼시 작품이 많이 창작되어 새로운 문예사조로 인정받고
문학사에 남는 기록될 날이 곧 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