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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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현대시를 쓰는 방법.4 댓글:  조회:1460  추천:42  2008-10-06
  제4장 이미지의 류형   이미지 류형에 대한 설이 여러가지이다. 5관을 통한 감각에 기대여 나누는 류형이 있는가하면 수사법류형에 기대여 나누는 류형도 있고 이미지 생성과정에 기대여나누는 류형도 있다.   필자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류형으로 이미지를 나누어보고싶다.   첫째로는 형태이미지, 둘째는 사물이지미, 셋째는 관념이미지, 넷째는 복합이미지등 네가지로 나누어 고찰해 보고자한다. 형태이미지라는것은 시 자체가 어떤 형태로 씌여졌는가 하는것이고 사물이미지라는것은 사물을 이미지화한것이고 관념이미지란것은 관념을 이미지화한것이고 복합이미지라는것은 사물이미지와 관념을 함께 리용하여 시를 쓴것이라겠다.  아래에 한 류형씩 살펴보도록 하자. 제1절 형태이미지    시를 읽기전에 우리는 먼저 시의 형태와 만나게 된다. 바로 <<오성의 최초의 가장 단순한 언제나 있는 어떤 표출은 현실세계의 직관이다>> 라고 한 훗살의 말과 같은 것이다. 홍문표는 <<문학작품은 그자체로서의 독립적인 내용과 형식을 지니>>고 있다면서 <<고유한 존재 양식과 구조를 통해서>> <<문학을 인식할수있다>>고 하였다.    형태이미지란 시가 어떤 형태로 <<표출>>되였는가를 <<직관>>하는것이라고 하겠다.     왜 시의 형태를 살펴보아야 하는가? 시도 태여나면 하나의 사물이며 하나의 객관존재이다. 추상적인 사물인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물이며 직관적인 사물이다. 시자체가 모양을 갖고 있다. 이 모양은 행과 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행과 련의 구분이 여러 가지이듯이 시의 모양도 여러가지 형태이다.  시의 어떤 형태는 어떤 사물의 모양을 본딴것도 있고 지어는 기하학적 도형을 본딴것도 있다. 시의 이런 형태는 사람들에게 어떤 상태나 분위기를 느끼게도 하고 어떤 감각을 주기도 한다.                  나의 내부에도                  몇마리 새가 산다                  비유의 새가 아니라                  기왓골을                  쫑                  쫑                  쫑                  옮아 앉는                  실재의 새가 살고 있다   박남수의 시 <<새>>(40)이다. 시인은 비유의 새가 아니라지만 실제는 비유의 새다. 상징적으로 씌여진 이 시에서 의태어 <<쫑 쫑 쫑>>세 글자를 각기 한행으로 함으로써 새가 정말 <<기왓골>>을 <<쫑 쫑 쫑>> 옮겨 앉는 모습을 보는것만 같다. 시작의 넉줄과 결속의 두줄사이에 <<쫑 쫑 쫑>>을 행으로 배치하여 새가 지붕의 기와장사이를 넘나드는 모습을 우리앞에 펼쳐주기도 한다. 또 맑고 가볍고 경쾌한 그것은 이 시의 형태와도 관계가 없지 않다.   아폴리네르(프랑스)는 <<연무>>라는 시 2련을 이렇게 쓰고있다.   그리고 또 나               는                 태                  운다                  권련초                  를, 덧없                  이 탄다   형태이미지라겠다. 연기가 타오르는 모양을 글자로 나름대로 그려놓은것이다. 밑에다 세글자씩 석줄 그다음 두글자, 그다음 한글자씩 두줄인데 글자위치가 다르다. <<그리고 또 나>>는 한줄로 위를 막고있다. 연기가 피여올라가는 모습이래도 좋고 우에서 뿜어내려오는 모양이래도 좋다. 아무튼 연기의 운동과 비슷하게 <<연기>>라는 시를 쓰고있는것이다. 한 사물을 쓰면서 그 사물의 형태를 그림처럼 밝혀보려는 시인의 마음 표현이라 하겠다. 산 그이는 산이였다사 시절푸른정기를 뿜어내는산이였다검 은구름은산을덮고번개로 정수리를치고우박은허리를갈 기고소나기는정갱이에서울부짖었 다소나기가지나가자맑은하늘아래산의 웅좌는생채기한오리없이드틴자리도없이 원점에올방자를틀고온건히오연히앉아있었다! 산  그이는   산이였다지   각이파도쳐도닻   을내린배처럼영원히    침몰될수없는그런산세월     의한자리를증언해우뚝엎딘그     런산이였다산은갔다하루아침에터      자리엔애기잔디밭눈시린이슬의꿈터파      아란아침공기가안개처럼부서진답부서지며      쨍ㅡ소리나는씨앗을마음밭에한알씩떨구어준다   필자의 졸작 <<원점에 오연히>>라는 첫련이다. 김학철옹의 서거를 맞고 쓴 이 시는 모두 2개련인데 각 련은 11행으로 산모양을 그렸다. 가장 철저한 맑스주의 신봉자이며 사상가이며 문학가이며 로홍군의 최후의 분대장이며 우리 민족의 위대한 대표인 그이를 추모하는 시를 쓴다는것부터가 아름찬 일이였다. 그래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산의 형상과 <<짝>>을 맞추었고 언어로 산을 그리였다. 11줄로 두개의 련을 만든것도 그이의 한생은 누구와도 비길수 없는 홀로의 위대한 일생을 살으셨다는 감격을 표현하려는데 기인되였다. 11줄의 두개의 련은 산우의 산이다. 산우의 산은 높은 산이다. 김학철은 산우의 산 즉 일상적인 세태를 떠난 높은 산이다. 이런 추앙의 뜻을 기리느라고 산우의 산이라는 형태이미지를 직조하였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평시조를 3행으로 썼는데 지금 시인들은 3행으로 쓰는것이 매우 드물다. 정형적인 3행시조형식을 파괴하여 2행 2행 3행으로 련을 구성하기고 하고 초장 1행, 중장 2행, 종장 3행으로 련을 구성하기도 하고 열두행으로 주르르 늘여쓰기도 한다. 시인이 시조의 모양을 자주 고치는것은, 형태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 시의 신선함을 기하기 위한 의식적인 작업이라겠다. 제2절 사물이미지   시를 분류할 때 사물을 표현한 시와 관념을 표현한 시로 나누는 경향이 일반화되여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물이미지란 사물을 쓴 시이다. 그런데 그 이미지에는 개념이 개입되지 않는경우라고 해야 할것같다. 순수하게 사물만을 노래한 시이다.   어떤 사물을 노래한다고 하여 그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쓰는 사물이미지가 아니다. <<짝>>을 맞추어 변형시켜야 한다. 변형을 통하지 않으면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되지 않는다. 앞에서 이미지는 창조적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필자가 말하는 이미지에는 언제나 <<창조적>>이란 규정어가 붙은것을 말한다.   <<현대시구조>>에서 후고 프리드리히(독일)는 스페인 시인 살리나스의 이런 말을 절록한다. <<순수시의 전제조건은 시가 가능한 한 사물과 테마로부터 벗어나는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언어의 창조적운동이 자유로운 공간을 가지기때문이다.>>   순수시란 사물이미지로 구성된 사물시쪽이고 관념이미지로 구성된 관념시는 이데올레기쪽이라고 알면 될것 같다.   살리나스의 말은 사물이미지가 창조되려면 가능한 그 사물이나 테마에서 벗어난 상상을 해보아야 한다는것이다. 가령 나무라는 시를 쓸 때 나무는 땅에 뿌리 박고줄기가 있고 가지를 뻗치고 숱한 푸른 잎들을 키운다고 하면 설명이지 시적이미지는, 사물이미지는 못된다는것이겠다. 왜냐하면 이런 문장은 언어로 그린 그림의 일종이라고 부를수있겠는지는 모르지만 창조적상상으로 그려진것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쓴것에 지나지 않기때문이다.   사물의 새로운 이미지를 발굴하는 방법을 가리킬 때 문덕수는 19세기 영국의 코울리지 말을 례로 든다. 그 말인즉 <<서로 반대되거나 또 불일치한 성질들을 균형하거나 타협시키는 힘>>을 써야 한다고. 그 힘이란 바로 상상이라겠다.           은빛 그리고 구리빛 마차들 강철의 그리고 은빛의 배머리 거품을 때리고 가시덤불들의 그루터기를 일으켜세운다 황야의 강들 그리고 거대한 썰물의 궤적이 선회하면서 동쪽을 향하여 숲의 기둥을 향하여 부두의 방파제를 향하여 줄지어간다 그 모서리에 빛의 소용돌이가 부딪친다                               -랭보<<바다>>전문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기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가 껴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문덕수 <<꽃과 언어>>전 푸른 잔디를 뚫고 서있는 체조장시계탑우에 파란 기폭이 바람에 부서진다 무거운 지팽이로 흰구름 헤치고 교회당 기울어진 언덕을 걸어가노라면 밝은 해빛은 화분인양 나려퍼붓고 거리는 함박꽃같이 숨을 죽였다                        -김광균 <<가로수(1)>>   상기한 세편의 시는 모두 순 사물만 쓴 사물이미지이다. 세수가 다 사물과 사물을 <<짝>>을 맞추어주면서 <<균형과 타협>>을 이룩하고 있다. 어떤 개념과 주장도 드러내지 않고 사물만 노래하고 있다.   랭보는 바다에 가보지 못하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바다>>만으로도 알고 남음이 있겠다. 그는 <<바다>>에서 <<은빛 그리고 구리빛 마차들>> <<가시덤불들의 그루터기들>> <<숲의 기둥>> <<빛의 소용돌이>>등 언어를 창출하여 바다와 바다의 파도를 표현하고 있다. 기이하고 생생한 언어구사를 새로운 창조라고 아니할수 없다.   문덕수는 <<꽃과 언어>>라는 짧은 시에서 언어를 <<나비>>, <<기발>>, <<밀물>>, <<불꽃>>, <<꿀벌>> 등으로 연해연방 변형시키면서 시를 끌고나간다. 일상적인 눈길이라면 아무런 련관성이 없는 이러한 사물들로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재구성해 낼수 없을 것이다. 어느 이미지도 낡투가 나거나 고로한 냄새가 전혀 없다.   김광균의 <<가로수(1)>>도 읽을수록 멋이 돋는다. 가로수를 <<파란 기폭>>으로 이동시켰고 또 다시 <<흰 구름을 헤치는>> <<무거운 지팽이>>로 이동시키면서 이미지의 신선함을 추호도 죽이지 않고있다. <<화분>>같은 <<해빛>>, <<함박꽃>>같은 <<거리정적>>도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사유의 독특성으로 이채를 뿌린다고 하겠다.   세수의 시는 모두 특정된 사물의 한계를 뛰여넘어 새로운 사물과의 <<짝>>을 이룸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내는 공동성을 갖고있으며 그 어떠한 개념도 개입되지 않고 순수하게 사물이미지만으로 직조되여있다. 그리하여 원래의 사물인 <<바다>>, <<꽃>>, <<언어>>, <<가로수>>들은 원래의 의미보다 다른 새로운 의미로 확충되여 나가고있다. 원 사물들뿐만이 아니라 시인이나 독자도 새로운 에네르기를 주입받고있다고 하겠다.    연변의 녀류시인 심예란씨가 사물이미지를 어떻게 쓰고있는가를 보자 가을.2 심예란 가을은  어룽어룽한 범가죽 산이 들쓰고 으르렁 들이 들쓰고 으르렁 찬 바람이 락엽화살로 범가죽을 벗긴다 예란시인은 가을을 쓰느라고 하지만 실제 등장시킨 사물은 가을이 아니고 범가죽이다. 가을에 단풍든 산야를 보고 범가죽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떠올리고있다. 여섯줄의 시에는 개념이라고는 보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시에다 시인의 어떤 의도를 부여하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사물의 운동만이 보인다. 이렇게 사물만을 떠올리며 이미지를 짜나가는 시가 사물이미지이다. 우리는 이 시를 보고 가을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맛보게 된다. 제3절 관념이미지   사물이미지는 사물을 노래한 시이고 관념이미지는 의지를 노래한 시이다.   관념이미지는 추상적인 관념에 기대여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관념을 시로써 표현한다. 사랑, 고독, 리상, 그리움 하면 우리는 이런 언어들의 색깔도 볼수 없고 소리도 들을수 없고 모양도 볼수 없다. 또 살아가노라면, 더욱이는 시를 쓰노라면 이따금 새로운 사물적이미지가 아니고 추상적인 깨침이 올 때도 있다. 령감이라 하여도 좋을것이다. 이런 추상적인 깨침을 그대로 써놓으면 시가 안 된다. 그것을 이미지로 재구성해 놓아야 시가 되는것이다.   사랑, 고독, 리상, 그리움같은것들은 시의 영원한 주제로서 많은 시인들이 가작을 써낸 텍스트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이러한 주제는 시인의 붓끝에서 다루어질것이며 새로운 가작들이 태여날것이다. 고리는 어떻게 쓰느냐이다. 길은 오직 한길- 상상의 날개를 훨훨 저어서 새로운 이미지를 짜놓아야 할것으로 알고있다. 이 짠다는 말은 물수건의 물을 짠다는 의미가 아니라 천과 같은것을 짠다는 의미이겠다.   스페인 시인 로르까는 관념이미지로 세계의 명시를 썼다. 절규의 타원은 산에서 산으로 간다네 올리브밭에서 푸른 밤중에 일어서는 어두운 무지개 됐네 아아! 비오라이 현인듯 절규는 긴 바람줄을 울게 하였네 아아! (굴속의 사람들이 등불을 드러내보이네) 아아!                               -<<절규>>전문   후고。프리드리히가 <<익명성령역의 거장>>이라고 명명한 로르까의 <<절규>>는 현대시사에서 한자리를 온건하게 차지하고 있는 가편이라겠다. 천재적인 시인 로르까는 <<절규>>를 천재적으로 변형시키고있다. 그는 <<절규>>를 <<타원>>으로 변형시켰다가 또 다시 <<무지개>>로 변형시키고 재다시 바이올린밭(비올라이밭)으로 변형시킨다. 세차례의 변형으로 시를 짜내려가면서 사람대신 동굴속의 불빛만 보이면서 현대시의 거대한 령역인 익명화의 대가적본질을 드러낸다. 추상적인 사물을 물화하여 구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것은 현대시의 주요한 수법의 하나라고 하겠다.   우리는 어떤때 령감이 뇌리를 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그 령감이 사물적이미지로 와닿는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느낌으로 와닿을 때가 많다. 버리기는 아깝고 쓰자니 깡깡 마른 언어의 느낌일뿐이다. 무조건 구체적인 형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함은 당연한 도리이다. 김현승의 <<절대의 신앙>>이 하나의 보기로 될것같다. 당신의 불꽃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여듭니다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줍니다                   -<<절대의 신앙>>전문   시는 여섯줄 두개련으로 마무리되여있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바람을 표현한 관념이미지라 하겠다.   이 시에 대하여 문덕수는 <<오늘의 시작법>>에서 해석을 달고 있다.   <<이미지에 대한 사상적추구가 더욱 치렬한 모습을 보여주는같다. 단지 <불꽃>과 <눈송이> 련결이지만 <불꽃>은 신의 뜨거운 사랑을 <눈송이>는 믿음이 식은 약한 신앙을 상징하고있다. <불꽃>과 <눈송이>라는 대립이미지가 종교적상징을 내게 되기까지는 그것이 비록 직관적으로 이루어졌다하더라도 이 시인의 신앙적체험이 밑받침되여 있는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류의해야 할 점은 절대신앙이라는 이 추상적명제를 한마디 추상적언어사용도 없이, 론리적인 풀이도 없이, 개념적인 해석도 없이 <<불꽃>>과 <<눈송이>>라는 두 사물의 물질운동으로 표현했다는데 있다. 실은 론리적인 개념이지만 론리적역설로 표현한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예술화한 것이다. 장미여, 너의 빛깔은 슬픔이다 모발은 떨린다 청명한 정오에 미풍에 일렁인다 별의 고리가 바람에 떨린다 나의 마음도 보이지 않는 별과 함께 떨린다   이 시는 일본의 니시자키준자부로가 쓴 <<슬픈 노래>>의 앞부분이다. 제목은 <<슬픈 노래>>지만 준자부로는 <<슬픔>>을 <<장미>>와 <<별의 고리>>의 움직임으로 대용하고있다. 관념을 물질화한것이며 관념을 관념으로 해석한것이 아니라 장미와 별이라는 사물로 해석하고있다. 관념적인것을 사물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관념이미지라겠다. 화학반응에서 볼수있는 이런 치환적인 방법은 추상을 구상화함으로써 형상이 화면처럼 눈앞에 떠오르게 한다. 마음이 문이 열린다 그러면 난 마음이 눈 뜨고 마음의 귀 열고 마음의 길을 간다 ...... 오늘밤 난 또 장님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볼수있겠지 아름다운 이야기 들을수 있겠지 그리고 별들의 목메이는 향기 맡을수 있겠지   리성비씨가 관념적인 제목 <<명상>>이다. 시인은 명상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상적인 사물의 운동 즉 이미지로 표현하고있다. 추상어 <<마음>>과 <<문>>, <<눈>>, <<귀>>, <<길>> 등등의 구상어들이 조합되면서 명상이라는 개념을  이미지로 펼쳐보이고있다.    관념이미지는 추상의 구상화에 의하여 산생된다. 이 이미지는 일상적인 론리나 개념으로 해석되는것이 아니고 습관적인 눈길로 보아내는것이 아니다. 오직 예술의 방법, 시적인 방법으로써만이 해석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관념이미지로 씌여진 시는 이데올로기 시쪽으로 나아가게 되고 사물이미지로 씌여진 시는 무의미시쪽으로 나가가 된다고 말하는 시인이나 비평가들이 많다. 전자는 밝아놓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후자는 언어장난을 금하기에 류의해야 한다. 제4절 복합이미지   사물이미지와 관념이미지에 대하여 어설프게나마 살펴보았다. 이제 이미지의 마지막 류형 복합이미지에 대하여 보기로 하자.   현대시에는 사물이미지만으로 구성된 시가 있고 관념이미지로 구성된 시가 있는가 하면 이미지와 관념이 혹은 관념과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여있는 시도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나름대로 복합이미지라고 지칭해본다. 복합이미지는 개념화된 시구와 이미지화된 시구가 호상 결합되여 이루어진 경우라 하겠다. 이런 이미지는 친절감이 들면서도 상징이나 은유의 빛깔로 하여 음미할 가치도 곁들어있다고 볼수있다.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 한수를 보자 주여, 때입니다 여름에는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에 결실을 명하십시오 열매위에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주시고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송이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계속 고독하게 살것입니다 잠을 자지 않고 책을 읽지 않고 긴 편지를 쓰고 그리하여 락엽이 뒹구는 가로수길을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헤매일것입니다.    이 시에서 1련은 첫 두행은 관념, 3,4행은 이미지로 구성되였고 2련은 첫행은 관념, 두번째행은 이미지, 세 번째행은 관념, 네 번째행은 이미지로 구성되였고, 3련에서는 관념과 이미지가 교차적으로 혼용되고있다.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쉽게 사랑하고 쉽게 리별하고 그리움을 망각해 가고있는 무리들이 늘고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섬마을 아이가 크레용으로 매일매일 그려가는 빨간 일력이 유난히 유난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매일 꽃을 보고도 얼굴 붉힐줄 모르고 새벽의 맑은 공기를 활보하며 목마름이란 단어를 점점 잊어가기 때문이다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것은 그리움이 그리움으로 피게 하고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되게 하고 아픔이 아픔으로 되게 하고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되게 하고싶기 때문이다。   시인 리임원씨가 쓴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전문이다. 전형적인 복합이미지시라겠다. 제목부터가 관념으로 시작된다. 첫련과 마지막은 관념으로 서로 조응시켰고 가운데의 2,3련의 첫줄은 관념으로 시작하면서 시인의 고견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2, 3련의 내용이 아름다운 이미지로 구성되여 전형적인 복합이미지시를 이룩하고있다고 하겠다.     북방문단의 로시인이라고 불리우는 리삼월시인이 사물이미지와 관념을 어떻게 결합시켰는가를 살펴보자. 나비.1 락엽이 한벌 깔려서 해빛 밝아진 땅에 노랑나비 한 마리 떨어지다 림종의 저린 경련에 몸을 떨지 않았던들 나비와 락엽을 분별할수 없는 노란색 나비 한 마리 안타까운 굼벵이의 허울을 벗고 몸을 곱게 치장하느라 들인 그간의 공력에 비기면 너무나 짧은 노랑나비의 한생 당금 저승길에 오르면서도 삶의 미련을 잊을수 없어 노랑나비는 마감 한번 보호색속에 몸을 숨긴다 꽃이 간 길을 밟고 가는 노랑나비 림종은 이렇듯 아름답고 슬프다.   이 시에서 3련의 처음으로부터의 석줄과 4련의 첫두줄과 제일 마지막줄은 이미지인것이 안니라 관념이다. 그리하여 이 시는 복합이미지시에 속하는 경우라 하겠다. 시인은 나비의 아름다운 일생을 노래하면서 나비의 언어를 파보고있다.    관념과 사물이미지가 어떤 경우에 어떻게 결합되여 복합이미지를 이루는가에 대답은 시를 쓰는 때의 시인의 나름에 관계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인의 몫이다. 시인이 어떻게 쓰고싶으면 어떻게 쓰면 된다. 사상성과 감각성이 결합된 이러한 시는 서로 보충하면서 정확한 효용을 리드하고있는것이라겠다. 복합이미지 시를 쓸 때 이미지도 새롭게 써야 하거니와 관념도 새로운것을 쓰기에 류의하여야 한다. 남들이 다 알고있는 관념을 쓰면 시가 고루하게 되면서 시의 낡투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   이로써 이미지의 네가지 류형을 살펴보았다. 어떤 류형의 시를 쓰든 중요한것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것이다. 비슷하거나 남을 따라가는 아류풍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 쓰는 시인의 내면을 파헤치면서  창출해낸 이미지, 이러한 이미지만이 시인을 시인이라 부르게 할 것이다.
21    연길-카스 2만리 기행.1 댓글:  조회:1482  추천:40  2008-10-03
연길 - 카스  2만리 기행 최룡관     2004년이 기울어져 가는 11월 11부터 12월 8일 새벽 5시까지 연길로부터 신강의 카스까지 2만여리에 발자국을 찍으며 조국땅을 돌아보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환갑나이를 지난 나로 말하면 그것은 꿈같은 일이였고 복덕방에 떨어진 화사한 일이였다.   연길-카스 동서 횡단 2만리.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나의 일생에 획기적인 사변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공부하던 시절에 지도를 볼 때면 우리조국 땅이 넓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이번에 처음 밟아보면서 그 신비함과 기의함을 피부로 느끼였다.    그때의 감격들을 도저히 홀로만 가질수 없어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1.네번째 은인과 함께      2004년 11월 11일, 나는 새벽에 일어났다.   조국땅 동서횡단을 떠나기 위하여 려행짐도  마저 꾸리고 개원호텔에 투숙한 한국 동양일보사 조철호 사장님(실제는 지금 회장이였음)과 함께 이른 아침  여섯시에 연길로부터 통화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개원호텔에 갔을 때 조사장님은 진작 일어나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였다. 우리는 차가 떠나기를 조금 앞두고 역전에 도착하였다.   포석문학회 회장이며 연변일보사 문화부에 있는 시인 리임원씨와 연길시 텔레비기자인 시인 김영춘씨가 우리를 전송하기 위하여 벌써 역에 나와 있었다.    우리들의  사이에는 따스한 말이 오가고 웃음이 오갔다. 영춘씨는 차에서 입질하라고 빵과 샘물을 넣은 꾸러미를 넘겨주었고, 돈도 주면서 길에서 한끼 자시란다. 리임원씨도 먼길을 떠나시는데 잘 다녀오시라며 모택동 사진이 박힌 빨간 종이장 몇장을 건네주었다.    드디여 차가 떠났다. 두 사람의 고마운 전송을 받으며 우리는 떠났다. 버스는 호화차였다. 화룡시와 안도현을 가로질러 매화구로 가는 버스였다.     연길-룡정고속로에 들어서자 버스는 바람처럼 달리기 시작하였다     참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란 알다도 모를 일이다. 내가 한국의 동양일보사 사장 조철호님과 중국동서횡단을 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였으랴. 지난 10월 하순 어느날이였다. 덴마크에 가있는 연이가 철남집을 사줘서 새집에 들려고 한창 장식에 여념이 없었는데 조사장님한테서 느닷없는 전화가 왔다. 실크로드 답사를 같이 가자는 청이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예예 하고 응대는 하면서도 실크로드란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영어에 깜깜부지인 내가 어찌 실크로드가 무엇인지 알수 있었으랴. 말이 한참 오가서야 비단의 길을 함께 가보잔다는것을 깨게 되였다. 희외망출이였다. 나는 너무도 좋아서 쾌히 받아들이였다. 세상에, 대방에서 경비를 대고 중국땅려행을 하자는데 누군들 마다하랴. 선택된 자체가 행운이였다. 조철호사장님은 중국에 수십차 다녀가신분이고 연변에도 너무너무 많이 다녀가신분이다. 해마다 조사장님의 후원으로 연변의 포석회가 중학생들을 대상해서 우리 글짓기 활동을 한지도 어언 삼년세월이 되였다. 그가 아는 연변사람이 어찌 한둘이랴.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려행을 떠나면서 이미 퇴직한 최룡관이를 골랐으니 룡관이라는 사람도 복이 좀 있는 인간인것 같았다.     조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가 살아온 뒤길을 스스로 점검해 보게 되었다. 여름이면 맨발바람으로 10리나 멀리 떨어진 소학교를 다니였고, 새벽 다섯시에 떠나서 20리나 되는 초중을 다니던 나였고, 부실하게도 문화대혁명까지 학생시절에 치르다나니 남들이 3년다닌 고중을 6년이나 다닌 나였다. 돌아보니 나에게는 은인들이 몇분 있다. 인생의 관건적인 시각마다 나타나서 이끌어준 은인. 그들이 있음으로 하여 오늘은 조철호사장님의 혜택도 나에게 차려진것이 아니랴.    문화대혁명후 처음으로 대학시험을 칠 때였다. 우리 대대에서 대학시험을 볼 응시자들의 등기표를 가지고 공사소재지인 남평으로 가는데 초중 4학년을 다니던 친구가 나보고 형님도 금년에 시험을 치겠구만 한다. 나는 나이가 많아 안되잖소. 아니 로싼제(老三届)는 다 칠수있다고 화룡에서는 란리가 났소. 형님도 치오. 그가 뚜지는 바람에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밤낮 책을 보다가 시험장으로 갔다. 누군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나의 첫 은인이라고 가슴에 새겨두고있다. 대학시험을 칠 때 은인이 또 나타났다. 한고향에서 자랐고 고중시절 한세집에서 함께 공부하였고 한 학교에서 함께 교편을 잡고있는 허원욱형님이였다. 나보다 2년 선배인 그가 정치시험을 치던날 교문앞에서 날 기다리고있었다. 문과를 과목마다 90점으로 예산했던 나였다. 시험을 치고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60점밖에 될것같지 않았다. 그래서 시험을 더는 치지 않기로 작심하였다. 정치를  개판을 치면 불합격은 그림보듯 뻔한 일이였다. 전날 시험을 칠 때 수학은 5분을 치고 나온 나였다. 인수분해 문제 하나만 풀고 나왔던것이다. 그래서 정치를 정말 60점 맞는 날에는 또라지가 뻔하지 않겠는가. 그날 저녁을 함께 하면서 허형은 네가 정치를 잘못치면 모두가 잘못치기에 근심말라면서 그냥 쳐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저녁에는 영화구경을 하였다. 영화를 보면서도 허형은 그냥 시험을 치라고 권장하였다. 그래서 친 대학시험으로 연변사범전과하교입학통지서가 내려온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재수가 없다고 통지서도 바로 보지 않았다. 고중과 중등전업은 동등한 학력인데 내가 왜 사범을 가는가 참 재수 없는놈이야. 그런데 허형이 통지서를 보더니만 중등사범인것이 아니라 대학전과라면서 가야한다는것이였다. 허형이 하도 설복하는 바람에 제일 마지막으로 등교한 입학생이 나였다. 그래서 대학전과나마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후에 연변일보사 문예부로 오게 되였다. 연변일보로 오는데는 또 은인이 나지였다. 그때 연변일보에서 문학을 하는 편집 한명을 전 연변적으로 모집하였는데 김경석주임과 최형동부주임이 나를 골랐던것이다. 조동해온 썩후에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많았는데 왜 나를 골랐느냐고 물으니까 사범전과학교를 졸업했으니 대학물을 먹은놈은 나밖에 없더라는가. 그때가 1980년도였는데 남평같은 산골교원이 연변일보사로 조동한다는것은 하늘의 별따기 시절이였다. 시골사람들의 말로하면 농민의 아들 떼군의 아들이 큰 출세를 하였다. 그때 연길이란 고장도 연변일보라는 단위도 나로 말하면 너무도 어마어마한 고장이였다. 초중시절 여름 방학에 연길에 와서 원자탄에 대한 상식도 배우고 해군학습도 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연길사람들은 무엇이 잘 나서 이런 시가지에서 사느냐고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연길 사람들을 아무리 뜯어보아야 입이 하나고 눈이 두 개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였다. 고중시절에 기자나 작가가 된다는 희망을 세우고 서점에 새책이 왔다면 식표라도 팔아서 책을 사보았다. 연변일보사로 조동한것은 나의 생애로 말해도 대단한 전환이 아닐수 없었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기회를 만나야 하고 남들의 부추김을 받아야 하는것이다. 독불장군이라는것은 옛날부터 실패자의 대명사였다. 조사장님은 네번째로 나의 앞길에 문을 열어준 사람으로 되였다. 나의 일생에 마지막으로 받는 큰 혜택일런지도 모른다.    우리들을  실은 버스는 어느새 화룡시와룡골안으로 달리고 있다. 와룡골에는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이다. 소학교 5학년을 마치던 여름방학이였다. 화룡현에서 소학생화령영을 조직하였는데 내가 다니는 로과소학교에 지표 한명이 떨어지였다. 그때 학교에서는 2반의 반장이였던 나를 뽑아보내였다. 화룡이라는 곳이 어느 쪽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시골아이가 현화령영에 참가한다는것은 경사로운 아닐수 없었다.우리는 와룡골천리봉에 올라가서 항일유격대들이 영용하게 싸운 전적지를 참관하였다. 그 어린 나이에 그곳을 보고서 오늘의 행복이 선렬들의 피와 생명으로 바꾸어온 귀중한것이라는것을 처음으로 가슴에 새기던 고장이였다.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와룡의 천리봉을 나는 잊은적이 없다. 항일이요 혁명이요 하면 언제나 나의 뇌리에 먼저 떠오르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웅위로운 와룡골연의  천리봉이다.    차는 로야령으로 오르기 위하여 골안길을 누비며 덜석거린다. 골안의 시내물이 초겨울의 을시년스러운 풀숲을 헤치며 요리조리 흘러내려가고있다. 이따금 림산마을이 나타난다. 갑자기 어머니가 생각난다. 나를 낳아키워준 어머니는 이름이 최금순이고 애명은 아간녀이다. 68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치신분이다. 글자는 가짜다리도 모르는 문맹이다. 6형제를 낳아기르느라고 락을 보지 못하고 인생의 종지부를 찍은 분이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어쩐 일인지 강장골스껌더기에 가서 보리밭 기음을 매시던 어머니,  소나무그늘밑에서 동생을 보던 내가 생각나군 한다. 비록 연길에 와서 살아보기는 하였지만 평생 락이란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맛보지 못한 어머니다.   로야령에는 눈이 많이 내리였다. 온 산이 은빛세계에 잠겼다. 해빛을 머금은 은빛세계는 눈부신 빛을 황홀하게 발산하고있었다. 소나무들은 저마다 하얀 양산을 들고서있다. 우중충한 수림을 바라보며 수림속을 달리노라니 아버지가 나의 눈앞으로 걸어오신다. 나의 아버지는 아홉살에 어머니를 떼우고 열두살에 아버지를 떼우고 인간의 밑바닥에서 고생을 다 하신분이다. 이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말 그대로 뼈와 살을 다 바치신분이다. 지금의 로과향죽림촌의 한 집에 가서 양아들로 자라셨다.  열네살부터 목재판으로 돌아다니며 한생을 보내다가 대식품 시절에 자식들이 굶어죽는다고 퇴직하여 농사를 지으시면서 일생을 보내시였다. 이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농사를 지으면서도 겨울이면 겨울마다 목재판으로 다니신 아버지다.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이름자밖에 모르고 이응자 동그라미는 삼각형을 치면서 살아오신 아버지. 고중에 붙으니까 우리 집에 고등인물이 나왔다고 그렇게 즐거워 하신 아버지. 문화대혁명후기에 대대에 초중이 나오니까 나를 선생으로 초빙할 때였다. 두세번이나 찾아왔으나 나는 선생질을 안 한다고 밀막았다. 그때였다. 네가 공부한것은 공산당덕이라며 왜 당에서 시키는 일을 하지 않겠느냐고 하는바람에 나는 손을 들고 교편을 잡았댔다. 아버지는 아들이 훈장이 되였다고 무등 기뻐하시였다. 그러시던 아버지께서 쉰아홉이 되시던 봄날 간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으셨다. 석달을 앓으시고 돌아가신 아버지. 내가 대학전문학교에 가는것도 . 동생 룡운이가 연변의학원에 가는것도, 내가 당당한 남평중학교 교원이 되는것도 , 내가 연변일보사로 조동하는것도 보시지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신 아버지. 자식들이 잘 되는것을 보고 돌아가셨더라면 눈이라도 편히 감으셨을것이 아니였으랴. 우리 아버지는 애주가셨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주사를 맞아야 끝을 보시였다. 그렇게 술을 즐거워 하시면서도 이 아들의 고중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목재판으로 가실 때면 가는 날 오는 날 술을 마시고는 입에 술한방울 대지않으셨다. 목재판에서 술을 마시면  아들이 또 경제휴학을 한다는 근심이 가슴에 매달려있었다는것을 나는 알고있었다. 평생 하루도 발편 잠을 자보지 못한 아버지! 10년만 더 앉으셨어도 이 아들이 하늘땅이 맞붙는 슬픔과 아픔을 맞보지 않았을것이고 아버지도 자식을 키운 보람이 어떤것이라는것을 알고 돌아가셨으련만...이래서 나의 뼈속에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아프게 새겨져 있다.   버스는 무수한 산을 넘고 무수한 골짜기를 누비며 구불구불한 길을 내처 달리였다. 대지는 바다! 버스는 하나의 작디작은 나무잎. 산봉우리를 오른다는것은 나뭇잎이 선인장같은 파도의 가슴을 타고 오르는것이요, 산봉우리를 내린다는것은 하나의 외로운 나무잎이 파도의 밑바닥에 떨어지는 일이요, 골짜기를 누빈다는것은 나뭇잎이 파도사이를 요리조리 비집는 일이다.   하늘에는 구름 몇송이가 떠있다. 흰 구름들은 그렇듯 아득하고 무연한 하늘에서 천천히 그리고 자유롭게 가고싶은데로 날아다니고있었다. 백운거사 리규보가 자신을 구름에 비하면서 하던 말씀이 귀전을 스친다. <<백운을 나는 본뜨려는것이다. 본떠서 그것을 배운다면 비록 공부하여 배운것만큼은 못되더라도 역시 거의 가깝게 될것이다. ...비가 되여 가물에 말리는것을 살리니 어질다 할것이요, 와도 집착함이 없고 가도 미련이 없으니 탁 트였다할것이요, 빛이 푸른것 ,누른것, 붉은것, 검은것은 구름의 본 빛이 아니고 오직 희고 문채 없음이 구름의 본 빛인것이다. 덕이 벌써 그러하니 빛도 그러한것이다. 만약 그것을 본따서 배운다면...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모르게 되면 옛 사람이 얻은 열매에 가까울것이 아니겠는가>> 이번 길에 나도 백운거사가 말한 구름이나 되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차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달린다.  2.한 침대에서 둘이    해와 함께 집안(集安)에 도착하리라던 우리 생각은 빗나갔다. 집안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을 때는 거리에 가로등이 반짝이는 때였다. 나도 조사장님도 한번도 여기에 와보지 못한 생뜨기들이다. 먼저 숙박부터 해야 했다. 동서남북이 어떻게 돼 먹었는지도 모르는 고장이라 어느 곳에다 숙박을 잡아야 할지 몰랐다. 려관간판은 앞에도 뒤에도 수두룩하였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버스역초대소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잠간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제가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내가 가이드를 시작한 첫마디였다.    조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등기부에 가서 제일 좋은 방이 어느것이냐 물었다.    봉사원의 눈에 반짝 기쁨이 넘치였다. 려행객이 없는 계절에 비싼 값을 내겠다니 얼싸 좋다고 2층으로 안내하였다. 위생실이 달리였고 쌍침대가 놓여있었다. 다른 방이 또 없느냐고 물으니 좋은 방은 이것뿐이란다.     나는 이번 길을 떠나면서 될수록이면 조사장님의 돈을 덜 축내는것을 원칙으로 내세웠었다. 쓸데없는 사치는 걷어장지고 밑바닥 생활을 체험하면서 다녀야 글이 나온다는것이 나의 신조였다.    <<조사장님, 둘이 한방에 듭시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조사장님의 두눈이 데꾼해났다.    <<하나밖에 들만한 방이 없습니다.>>    <<그럼 딴 곳을 찾지>>    <<주위를 보십시오. 모두 개인려관인데 어디 가서 좋은 곳을 찾습니까? 황차 여긴 호텔이 없는 고장이랍니다.>>   <<참 머리에 털이 나서 처음 이런 고장에 왔네.>>   <<머리에 털나서 처음 겪는 일이 많고도 많을겁니다>>    <<그럴가>>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통쾌하게 웃었다.    그로 말하면 기막힌 일이 아닐수 없었다. 사실 조철호사장님은 한국 충북에서는 지체 높은분이시다. 그곳의 고위층에 속하는 사람인데 첫날숙박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그렇다고 자기만 좋은 방에 들고 나를 다른 방에 들라고는 할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하루밤쯤 한 침대에서 동성련애를 하면 될거아닙니까.>>   나의 말에 먼 하늘을 잠간 쳐다보던 그는   <<별수 없구만.>>   이렇게 하여 우리는 려행을 떠난 첫날 저녁에 사이비한 콩트 한편을 엮게 되였다.  3.나의 준비는 억망     하루밤을 한 침상에서 자고 나니 나는 조사장님을 얼결에 조형이라고 불렀다. 쏟친 물은 담을수 없다고 나간 말은 거두어들일수 없었다. 나이로 말하면 조사장님은 나보다 한 살 아래이고 직으로 말하면 하늘과 땅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이는 한국 지방신문(여기로 말하면 성급신문)에서 수십년을 사장일을 본 사람이요 나는 그보다도 작은 지구급 신문사의 일개 편집기자였다. 그는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이고 나는 중층의 하바닥에서 굴러먹다시피한 놈이다. 연변작가협회부주석이라 하지만 그것은 헌겉막대같은 명의상 칭호여서 주석단 회의에 가서 손이나 드는 허수아비다. 그런데 별수가 있는가. 하루밤을 같이 자도 만리장성을 쌓았단데 우리도 하루밤을 함침상에서 자지 않았는가. 사실 카스까지 가자면 멀고도 먼 려행길인데 그냥 조사장님이라고 부르는것도 우리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조형은 어떻게 나를 리해하겠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게 부르는것으로 우리 사이에 놓인 간이벽을 활 허물어버리라 작심하였다.    내가 제일 처음 리상각선생님을 따라 한국에 계시는 시조시인 한춘섭선생님댁으로 갔을 때였다. 그이는 나보다 이상분이였다. 나를 어떻게 불렀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던 그는 불쑥 나를 최형이라고 부르는것이였다. 나는 손아래 사람이니까 형이라 부르지 말라고 하였다. 실은 그때 한춘섭선생님께서 나를 존중하여 최형이라고 불렀다는것을 후에사 알았던것이다. 타남지간에 형이라 부르는것은 서로 의리를 지키는 옛날 사람들의 례의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도 들어 그날 아침후부터 나는 그냥 조형이라고 부르는것을 꺼리지 않았다. 조형이 한국에 돌아가신다음 이메일을 보내면서 내가 자기를 조형이라고 부르는것이 좋다면서 자기도 나를 최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우리사이에는 서로 형으로 부르는 칭호가 완전히 통용되였다. 참 편한 부름이다. 서로 조형 최형 하니까 무람없는것을.    집안시를 돌아보는것은 우리가 이번 려행답사의 첫스타트였다. 그런데 나는 출발할 때부터 준비가 억망이다. 아침에 일어나 사진기에 필림을 넣고 시험삼아 한장을 찍자하니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는 너무도 이상하여 다시 샤타를 눌렀다. 여전히 죽은 아이 배때처럼 소리가 없다. 하느님 맙시사. 사진기가 빵쿠가 났다. 어제 차에서 집에다 전화를 치니 전화가 되지 않았다. 그 전화기는 내가 평시에 쓰던것이 아니였다. 떠나기 전날 중학생신문사 마사장이 먼길을 떠나는데 전화기가 없어 되느냐고 자기에게 전화기 한대가 있으니 가지고 떠나라는것이였다. 내 전화기라야 쑈링퉁이니까. 그것을 지니고 갈수는 없었다. 큰 일도 없는 사람이  핸드폰이나 들고 다녀서 별볼일이 없었던 나는 남들이 핸드폰을 갖추라고 하여도 그냥 못듣는체 하였다. 장사도 안 하고 출근도 안 하는 나는 핸드폰은 갖출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핸드폰력사는 있는 사람이였다. 하루는 나의 처남이 핸드폰 한대가 생겼다면서 번호를 넣어쓰라고 하였다. 공짜라 그러마하고  수속을 하였다. 그런데 며칠을 가지고 놀지 않았는데 고 반질반질하고 매끌매끌한것이 나를 업수히 여기고  내 몸에서 뺑소니를 쳤다. 나에게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물건이라 별로 배아픈 일도 없었다. 그후에 화룡에 있는 나의 동서간 되는 사람이 <<형님은 작가라는게 쑈링퉁도 없어 되겠소. >> 하면서 쑈링퉁 한대를 가져다 나에게 주었다. 또 복이 없는 사람은 달랐다. 며칠 쓰니까 꼭도리가 떨어져 나갔다. 그런대로 말은 잘 통하면서. 친지들은 몇푼 안되는 꼭도리이니 수리하여 쓰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말이 제대로 통하는데 수리는 무슨 수리냐고 그냥 그대로 지니고 다니였다. 후에 큰 딸이 새쑈링퉁을 가지고 다니다가 상해로 가게 되니 또 한대가 차례지였다. 그것이 내가 쓰고있는 전화기였다.    떠나기 전날은 하는 일없이 바삐 보냈다. 그래서 문학반에서 시를 강의할 때  학생이고 변호사이며 이동통신에서 근무하였던 김무를 찾아갔다. 래일 먼길을 떠나니까 단선수금을 하는 전화로 만들어달라고. 저녁에 와서 찾아가겠다고 하면서 받지 않겠다는 돈 200원을 주었다. 그런 전화가 이튿날부터 통하지 않았으니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몰랐다. 어디 전화기뿐인가? 또있다. 떠나기전날 집근체에 있는 약방에 가서 돈을 주면서 당뇨병약을 우리 집에 송달해 달라고 하였다. 약방영업원은 그러마고 하였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 물어보니 약은 무슨 약이냐고 하였다.    <<허허, 최선생이 손에 다치면 뭐나 다 고장나는구만>> 하고 조형이 나를 놀려주었다. 그러면서 사진기 석대를 가져 왔으니 한대 쓰라고 내여놓는것이였다. 세계 각지로 갖고 다니며 숱한 사진을 찍은 독일제 렌즈를 박은 귀한 사진기였다. 조형은 떠날 때부터 준비가 주도하고 면밀하였다. 디지털사진기를 포함한 사진기 석대에다 필림 80여통을 갖고왔던것이다. 필림이 무겁고 짐이 넘어나니까 절반은 나의 짐속에 넣었다. 그리고 길에서 신세를 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녀성용 스타킨도 수십짝을 지니였다. 짐을 끌고 다닐수있는 작은 차는 내것까지 가지고 왔고 아래 내의도 입기 편리한것으로 가져다 나를 주었다. 아침을 먹고 식당주인과 함께 사진기 수리부를 찾아가니 수리할수 없는것이란다. 그래서 식당주인에게 줘버리고 말았다. 전화기수리부로 찾아가 나의 전화기를 보였더니 너무 오래된것이여서 쓸수 없다는것이였다. 그래서 300원을 주고 중고 한대를 다시 마련하였다.  참 안 되였네. 첫날부터 쓸데 없는 경비지출이 생겨서. 조형 미안해! 하고 나는 속으로 되뇌였다. 겉으로는 허허 웃으면서. 4.우리는 깨여있지 못하였다.      첫견학은 고구려(高句丽) 장군분(将军坟)이였다. 부드럽고도 억센 기상을 하고 뻗어나간 산줄기를 병풍처럼 뒤에 두른 장군분은 희기도 하고 누르기도한  축조물 피라미트였다. 그것은 무덤이라고만 보아서 될 일이 아니였다. 망망한 바다의 한기슭에 정박하고있는 함선이였다. 아니 지금도 달리고 있었다. 옛고구려를 거느리고 오늘의 집안시를 거느리고 그렇듯 줄기차고 기세당당하게 달리고있었다. 고구려 제 20대 왕릉의 웅위로운 위용이 첫 눈에 안겨온 기상을 다르게 무엇이라고 표현할 말이 없었다.    지척에 가서 왕릉의 주위를 돌아보며 나는 입을 딱 벌리였다. 한쪽 길이가 31.58메터인 정방형으로 된 왕릉인데 거석들로 쌓은 릉묘였다. 거석들은 죄다 장방형인데 작은것이라야 연길에서 뛰여다니는 택시만큼한것이였다. 쳐다보니 모두 스물두층계였다. 해설원이 말한다. 높이가 12.40메터이고 밑부분의 면적은 960평방메터다. 왕릉을 축조한 거석이 모두 1100개인데 그 체적이 자그만치 6000립방메터다. 제일 큰 거석의 길이는 5.7메터이고 너비는 1.12메터이고 두께가 1.1메터이고 제일 작은 거석의 무게가 열다섯톤이란다. 쌓아놓은 돌탑이 무너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형반석을 한면에 세개씩 받쳐놓았다. 왕릉이 모두 네 개면이니까 받침돌이 12개여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연고인지 뒷면 받침돌 하나가 보이지 않아 지금은 11개가 왕릉을 받쳐주고있었다. 그것들은 천오백년전에 고구려 20대왕두리를 옹위하던 검을 찬 장군들이였으리라.  왕의 옥체를 모시였던 자리는 도굴을 맞아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22층으로 일매지게 쌓여있는 거석들을 밟으며 왕릉위로 올가갔다. 60평방메터되는 널직한 평면이 나를 맞아주었다. 원을 지어 둘러서서 배구라도 칠수 있는 왕릉꼭대기바닥은 유리판처럼 반듯하였다.    앞을 내다보니 압록강 푸른 물이 출렁이고  강기슭의 량안에는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강남에는 조선자강도의 만포가 바라보인다. 강북의 서쪽에는 북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이 한갈래가 압록강으로 들어가고있다. 그 강을 옛날에는 계아강이라 불렀고 근대에 와서는 통강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집안이 자리잡고 있는 평원을 통강평원. 20여만이 살고있다는 집안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발은 진의 북변을 휘돌아 벌판을 감싸안고 있다. 초겨울이라 대부분이 참나무 수림으로 된 산발은 부옇게 바라보인다. 집안시의 건물도 보이지만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무덤들이 더 눈길을 끈다. 이 고장에는 고구려 옛무덤이  7800여개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집안진은 무덤진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이 무덤들은 한결같이 고구려 이왕지사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언어들이다. 눈아래 멀지 않는 곳에 관개토왕비와 큰 무덤하나가 바라보이고  저 멀리 북으로  환도산성입구가 아련하다.    왕릉을 떠나면서 돌아보니 여기선 천여년전 시간이 그대로 서있다. 세월이 천여년을 흘러왔건만 그때의 그 시간이 여기서 굳어져 왕릉으로 솟아있다. 저 거석들을 날라오던 민부들의 허영차 허영차 하고 목이 터지게 부르짖던 소리가 귀가에 따갑게 울려오고, 주먹땀을 좔좔 흘리며 힘을 쓰던  민부들의 얼굴이 어렴풋이 안겨온다.    저 거석들은 진내에서 40여리 떨어진 오녀봉(五女峰)에서 날라온것이라고 한다. 가파르고 아름다운 오녀봉을 당년에는 신선이 있던곳이라고 해서 거선봉(居仙峰)이라 불렀다한다. 지금의 오녀봉바위들은 검은색갈이지만 고구려시기에는 황금빛이여서 황금석이라고 하였단다. 천궁의  궁전을 지을 때면 이 황금석을 날라다 지었기에 인간들이 도적질해 갈가봐 천제(天帝)는 토지신(土地神)을 파견하여 오녀봉을 지키게 했단다. 그바람에 누구도 오녀봉에 얼씬할수 없었단다. 토지신이 깊은 바위동굴에다 자기의 심장을 두고다니여서 토지신이 산에 없어도 그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거선봉이였단다. 그런데 고구려국왕은 자기의 릉을 짓기 위하여 석공을 거선봉으로 보냈는데 들어가는 사람마다 살아서 돌아오는이가 없었단다. 임금이 사기에게 명을 내려 사흘내에 방법을 대라고 하였단다. 다 죽게 된 사기(思奇)는 가속을 피난시키려고 하였는데 그의 안해 령지(灵芝)가 방법을 내놓았단다. 그녀는 원래 거선봉마루의 령지초의 화신이였는데    <<부군께서 시름 놓으세요. 토지신이 나한테 반했던자라 제가 그자를 꼬여낸다음 부군께서 그 깊은 동굴에 들어가 활을 당겨 심장을 쏘면 토지신이 죽을것이옵니다>> 한다.    사기가 그 말을 따라 했더니 토지신은 죽고 거선봉은 다섯개의 봉우리로 깨여졌다 한다. 그래서 거선봉이 오늘의 5녀봉으로 되었단다. 임금은 너무도 기뻐 사기한테 2천의 석공을 딸리여 황금석을 캐여오게 하였단다.   물론 이것은 전설이다. 하지만  고구려의 황제는 물론 고관대작들도 자기의 무덤을 돌로 쌓았다. 환도산성앞 개펄에는 지금도 그런 무덤들이 총총하다. 거석으로  사면을 쌓고 그우에다 숱한 돌을  날라다 둥그렇게 무져 놓았다. 무져놓은 돌들은 하나같이 반들반들하다. 천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돌묘지는 길손들의 눈길을 끌고 발을 잡아당기고 있다. 돌들은 죄다 강물에 닦기워서 뺀질뺀질한 돌들이다. 묘지우에 올라가 서서 그 돌들을 밟아보노라면 강물소리가 들리고 바닷물소리가 들리는것만 같다.     당년에 고구려귀족들은 어이하여 돌로 무덤을 만들었던가!    소설가 류연산씨가 쓴 <<혈연의 강들>>을 보면 고구려사람들이 왜 돌무덤을 만들었는가를 알수있다. 소설가 류연산씨는 전설로써 이렇게 밝히고있다.    어느날 졸본부여국의 신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하다가 청석류돌무지에 앉아 한쉼 쉬였다. 갑자기 돌무지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터지였다. 돌무지에서 천만갈래의 금빛이 일었다. 신하들은 눈이 부시여 앞을 볼수 없었다. 이윽고 빛이 사라지고 돌로된 련꽃대가 나타나더니만 신왕을 앉힌채로 하늘로 올라갔다. 신왕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시고 손을 저으시며 신하들과 작별하였다. 신하들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신왕을 오래오래 배웅하였다.    신왕이 천국으로 올라간 이듬해부터 해마다 이날이 오면 새로운 국왕은 신하들을 이끌고 와서 신왕의 제를 지냈다. 그때마다 신왕은 련꽃대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조언을 주군하였다. 그래서 졸본부여국사람들은 창석류의 돌무지를 사람이 죽으면 승천하는 신성한것으로 여기고 돌우에다 시신을 모시였다.    고구려를 세운 초대왕을 우리는 동명왕(东明王)이라 부르기도 한다. 집정 19년이 되는 어느날 동명왕은 꿈을 꾸었다. 력대의  졸본부국 왕들이 동명왕한테 돌을 선물하였다. 동명왕이 그 돌들을 가지고  전방형으로 일곱층까지 쌓아놓자 돌무지에서 금빛이 눈부시게 빛발쳤다. 왕은 신무(神巫)를 불러다 해몽을 하였더니 고구려를 위하여 불멸의 공로를 세우신 왕님께서 사명을 다 하셨으니 천제가 부른단다. 높은 석대를 만드시고 그우에 서서 천사가 모시기를 기다려야 한단다. 동명왕은 신무가 시키는대로 하고 하늘로 올라갔단다. 그후부터 고구려의 국왕마다 등극하자마자 풍수지리를 보아 자리를 마련하고 거석을 옮겨다 왕릉을 건설하였다 한다.    집안시에 있는 이름있는 무덤은 장군분만 있는것이 아니다. 호태왕릉, 태왕릉, 염모묘, 각저묘, 무용묘, 삼실묘...... 등 유명한 묘들이 여기저기예 널려있다. 이런 묘지들은 고구려시기에 신비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엮기도 하였다한다. 봉상황 5년에 연나라 모용간(慕容谏)이 2만의 병기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친다. 선봉장군인 모용간은 선조의 무덤을 목숨처럼 보호하는 고구려 사람들의 성격을 알고서 투항하지 않으면 먼저 서천왕릉을 파헤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조상의 묘지를 목숨처럼 여겼지만 그의 헛소리를 호락호락 들을 고구려 사람들이 아니였다.    누구도 투항하지 않자 모용간은 군사를 묘지파기에 밀어부친다. 얼마 안되여 2천의 군사가 몰살되는 참상이 벌어진다. 이 광경을 목격한 군사들은 벌벌 떨기만 한다. 모용간이 다시 2000여명의 군사를 묘지파기에 밀어넣는다. 군사들은 누구도 손을 대고싶지 않았으나 어느 령이라고 거역할수 있었으랴. 또다시 거이다 죽고 한 500명쯤 남았는데 묘지안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퉁소소리, 가야금소리, 장고소리의 굉장한 합주다. 그래도 모용간은 군사를 전장에로 몰아부쳤는데 참패는 그뒤에 있었다한다.    옛날에도 살아있었고 지금도 살아있는것만 같은 무덤. 장군릉을 다시 보아도 위풍이 천하를 떨치는 왕릉이다.    내려오는 길에 조형은 <<왜 왕릉을 장군분이라 해.>> 하고 입이 뿌죽해났다. 고구려 20대 왕릉을 장군분이라고 격하하는데 대하여 불만이 굴뚝같은 조형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이 왕릉이 장군분으로 된데는 산동에서 오륙백년전에 살길을 찾아  여기로 왔던 류씨형제의 착각이였다고 한다. 력사에 대하여 까막골인 그들은 변경에 릉이 있으니까 장군의 무덤일거라고 했단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왕릉을 장군분이라고 부른단다.    고구려의 위엄과 문화를 오늘도 고스란히 빛나게 전하는 왕릉을 보고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가볍지가 않았다. 조룡남시인이 여기 왔다가 <<장군총>>이라고 쓴 시가 떠오른다. 얼마나 가슴 벅찬 세월이였더뇨 얼마나 처절한 싸움이였더뇨 그대 피어린 혈전에서 돌아와 잠간 붙인 눈이 천년이 지났구려 출정이 그리워 백마는 울고 영광을 기다려 장검이 우느니  장군이여 인제 잠을 깨실 때 되지 않았는고     장군총이 잠을 깨지 않았는가? 아니 깨여있었다. 왕릉이 저기에 저렇게 웅위롭게 떳떳이 웅좌하고 있지 않는가! 천년의 바람이 천년의 눈이 천년의 비가 내렸지만 그날의 그 고구려 왕릉의 모습은 추호도 변하지 않았다. 왕릉은 위대하게 서서 천년을 지켜보았고 오늘을 지켜보고있으며 래일도 지켜보고있을것이다. 잠을 깨지 못한 이는 장군총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왕릉이 잠을 잔것이 아니라 잠을 잔것은 우리들이였다. 우리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잠을 깨야 한다. 나도 오늘에 와서야 겨우 어설프게 눈을 뜨며 잠을 깨기 시작하였다.   5.력사의 현장이 살아 숨쉬는 곳     400여년동안 세상에 호통을 쳤던 환도산성(丸都山城), 력사의 현장이 살아숨쉬는 환도산성, 얼마나 보고싶었던가 얼마나 알고싶었던가. 늦게나마 나는 네앞에 와 숙연히 서있다. 위나엄산성-환도산성이여.    입구의 돌토성이 우리를 막아섰다.  길이40-90센치메터, 너비 20-50센치메터, 두께 10-30센티메터 되는 돌들로 쌓여진 산성은 총길이가 6951메터라는 기재도 있고 6395메터라는 기재도 있고 14리라는 기재도 있다.  마치도 커다란 벽돌장을  한장두장 쌓은듯이 일매지다. 가운데가 열리여있어 고구려의 황궁을 찾아들어가기에는 별불편이 없었고 그 옛날의 보초병도 없어 성큼성큼 들어선다. 한참 올라가니 왼쪽편에 산등성이 하나가 나타났다. 가이드는 우리를 그리로 안내하였다. 장방형으로 돌들이 쌓여있는 료망대가 나타났다. 고구려황성옛터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초소이기도 하고 봉화대이기도 한것이였다. 지금은 북쪽켠이 거이다 무너지여있었다. 가이드는 앞으로 이 요망대의 원형을 회복할것이라 한다.    나는 료망대(辽望臺)로 올라갔다. 앞이 시원하게 트이여 조선의 산과 벌이 환히 내다보이고 통강벌이 눈아래 밟혀왔다. 과시 초소로 쓰기에는 안성맞춤한 곳이였다. 사위를 바라보니 환도산성은 두부를 앗을 때 쓰는 매오시처럼 생긴 곳이였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가 두부모를 맞추느라고 물이 빠지게한 주둥이고 사위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매오시의 운두같았다. 저 산발들의 마루를 따라 외적들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 성이 지금도 그대로 있어 올라가 보면 알린다지 않겠는가. 황성입구로 들어올 때 북경의 만리장성에는 비길수 없는 조촐함을 가진 성이 산으로 뻗은것을 보았는지라 가이드 아가씨 해설이 사실이라는것이 믿어지였다.    중국사람들이 수집정리한 고구려 전설을 보면 고구려발상지는 집안인것이 아니라 지금의 료녕성 환인현이라고 한다. 고구려의 도읍을 지금의 길림성 최남단인 앞록강기슭에다 옮겨온 왕은 제2대왕 류리명왕이라고 한다. 기원 3년에 집안으로 도읍을 옮겨온  고구려는 425년간 집안을 서울로 정하였다가 장수왕 15년(427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겨갔고 628년에 고구려는 자기의 수명을 마쳤다.    고구려를 건립한 사람은 주몽(朱蒙)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주몽은 하늘에서 내려온 해모수(海慕漱)의 아들이며 물을 관리하는 천신 하백(河伯)의 외손자이다. 주몽이 탄생하여 왕이 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중에서 백운거사 리규보서사시의 이야기 한가지만 들어보기로하자. 중국 한나라 신작 3년(기원전 59년) 에 해모수는 다섯마리 룡이 끄는 룡수레에 앉아 따욱이를 탄 100여명 신하들의 옹위를 받으며 하늘에서 날아내린다. 왕이 되여 신하들을 딸리고 사냥을 하던 어느날 웅심연이라는 호수에서 미역을 감는 이쁜 처녀 셋을 발견한다. 그 처녀들이 바로 하백의 따님들이다. 큰 딸은 류화이고 작은 딸은 위화이고 둘쨋딸은 훤호이다. 해모수는 첫눈에 반하여 그들중 어느 한 공주를 안해로 만들기로 마음을 먹는다. 해모수가 그들한테로 다가가자 그들은 모두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해모수가 신하에게 어찌하면 좋겠는가고 묻는다. 신하는 궁전을 지어놓고 잠간만 기다리라고 한다. 그래서 해모수는 채찍으로 땅에다 동그라미를 하나 그린다. 웅위로운 궁궐 한 채가 눈깜박할 사이에 호수가에 일어선다.    신하의 말대로 선녀같은 공주들은 물속에서 나와 궁전으로 들어간다. 눈부신 비단자리, 금술잔에는 넘치는  술이라 공주들은 깔깔대며 술을 마신다. 그녀들이 한참 술을 마실 때 해모수는 그녀들 앞에 나타난다. 깜짝 놀란 그녀들은 그를 피하여 뿔뿔이 도망쳤으나 맏딸 류화(柳花)가 해모수에게 잡힌다.    이 소식을 들은 하백(河伯)은 대노하여 신하를 시켜 해모수를 룡궁으로 대령시킨다. 너는 어떤놈이기에 남의 귀중한 딸을 잡아다 안해로 삼으려는가 하고 하백은 대노한다.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럼 한번 재주를 비겨보자고 한다. 그리하여 해모수와 하백은 재주겨룸을 하게 된다. 해모수가 이기면 사위로 되고 지면 쫓기는 겨룸이다.    하백은 바다잉어로 변한다. 이때 해모수는 수달로 변하여 잉어를 쫓아간다. 하백은 다시 꿩으로 변하여 하늘을 난다. 해모수는 제깍 매로 변하여 꿩을 쫓는다. 하백은 순간에 사슴으로 변하여 쏜살같이 내닫는다. 해모수는 승냥이로 변하여 사슴을 쫓아간다. 하백은 졌다. 그는 풍성한 잔치를 베풀고 딸과 사위의 백년가약을 축하해준다. 해모수는 너무도 기뻐서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한다. 하백은 가죽주머니에다 류화와 해모수를 넣고 수레에 앉아 하늘로 날아올라간다. 수레가 강속에서 나오자 해모수는 류화의 금비녀로 가죽주머니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빠져나온다. 하백은 큰 딸이 가문을 더럽혔다고 입술을 당겨 석자나 늘구어 놓고 우발수로 쫓아낸다. 부여국의 우발수(优渤水)에서 고기잡이 하던 어부가 물속에  있는 이상한 류화를 발견하고 금와왕(金蛙王)에게 보한다. 금와왕은 사람들을 시켜 쇠줄그물로 류화를 끌어올린다。입이 추하게 생긴 류화는 말을 못한다. 금와왕은 령을 내려 류화의 입을 세 번이나 잘라내서야 류화는 말을 한다. 해모수의 왕비이며 하백의 맏딸이라는것을 안 금와왕은 그를 별궁에 모신다. 류화는 커다란 알을 낳는다. 금와왕이 괴이하게 여겨 알을 마구간에 던지게 한다. 그런데 말들이 밟지 않는다. 금와왕은 또 알을 수림에 던지게 한다. 짐승들이 알을 높이 모신다. 그래서 금와왕은 알을 류화에게 돌려준다. 류화가 알을 정히 품었는데 아이가 태여나 그이름을 주몽이라 짓는다. 주몽은 태여나 한달만에 말을 하고 어릴 때부터 활을 쏘아 물레우의 파리를 잡고, 멀리있는 물동이에 구멍을 빼고  다시 살에 흙을 발라 쏘면 물동이 구멍을 메꾼다. 금와왕의 태자가 시샘하여 주몽을 나쁜놈이라며 앞으로 큰 일을 저지를 거라고 아버지한테 고한다.    금와왕은 주몽을 말먹이는 일을 시킨다. 어머니는 앞으로 큰 일을 하자면 좋은 말이 있어야 한다고 아들을 일깨운다. 주몽은 말우리에 와서 채찍으로 말들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한 적토마가 울타리를 뛰여넘는다. 주몽은 적토마의 혀바닥에다 바늘을 질러놓는다. 여느 말들은 살이져가지만 적토마는 여물을 먹지 못하여 뼈가 앙상하게 여윈다. 하루는 금와왕이 말우리를 시찰하다가 적토마가 너무도 여위였는지라 주몽에게 가지라고 한다. 주몽은 말의 혀바닥의 바늘을 빼고 살이 피둥피둥하게 기른다.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그는 딱친구들인 오이(乌伊), 마리(摩攡), 협부(陜父)들을 데리고 도망친다. 강물이 앞을 가로 막는다. 배가 없다. 뒤에서는 금와왕의 일곱아들이 군사를 휘동하여 쫓아온다. 주몽은 하늘에 대고 소리친다. 나는 하늘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이다. 란리를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슬프다. 외로운 이 마음을 하늘과 땅이 저버리려는가. 그리고는 활을 들어 강물은 친다. 순간 자라들과 물고기들이 모여와 물우에 떠서 다리가 된다. 주몽과 그의 친구들은 강을 건너간다. 뒤따르던 금와왕 아들의 병마들은 그다리를 건느려다 자라들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강물에 빠진다. 주몽은 지금의  혼강가에 있는 비류국(怫流国)으로 가서 산다. 비류왕이 자기를 잘 섬기지 않는다고  나무린다. 주몽은 무예를 비기여 승한자가 왕이 되자고 한다. 그리하여 주몽과 비류왕의 무예겨룸이 벌어진다. 처음으로 활쏘기다. 비류왕이  열발자국밖에 있는 사슴의 배꼽을 향하여 화살을 날렸는데 빗나간다. 주몽은 백보밖의 가락지를 쏘아서 부서지게 한다. 비류왕은 이웃나라의 북과 나팔을 빌어다 제것이라고 자랑한다. 그런데 그가 들고온 북과 나팔이 죄다 낡은것으로 되어버린다. 비류왕이 자기 도읍의 궁전을 자랑한다. 궁전기둥이 인차 좀에 먹히워 볼모양이 없게 된다. 하루는 사냥을 나갔던 주몽이 사슴을 사로잡아 거꾸로 달아매고 네가 비류땅에 큰 비가 내리게 하여 홍수가 들게 하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사슴은 하늘을 향하여 큰 소리로 슬프게 운다. 과연 하늘에서 강물이 쏟아지듯이 소나기가 내려 비류땅에 대단한 홍수가 진다. 비류왕 송양(松让)도 홍수에 빠진다. 이때 주몽이 채찍으로 물을 친다. 물은 두갈래로 갈라지더니만 인차 땅에 스며든다. 이리하여 주몽은 비류땅에 나라를 세우고 고구려라고 그 이름을 지었다한다...    요망대에서  뒤로 조금 가니 초병들이 주둔했던 집터자리가 나타났다. 지금은 나무들 사이에서 집기둥을 받쳤던 돌들만 쓸쓸하다. 건너편을 바라보니 황궁의 성터자리다. 옛날엔 으리으리한 궁전이 저기에 있어서 문무백관들이 의포도 정히 차리고 왕을 배알하러 드나들었겠으나 지금은 그 위용을 볼수 없고 초겨울의  소조한 바람이 스치여 지나고 있을뿐이다. 아득히 높아진 푸른 하늘에서는 설핀 그름이 가는듯 마는듯 조을고 황궁을 둘러싼 산줄기에서는 참나무숲이 누렇게 말라있다. 세월의 조화를 그누가 알랴. 시간은 상전을 벽해로 만들기도 하고 벽해를 상전으로 만들기도 하거니. 나는 처연한 눈길로 사위를 바라본다. 박화시인이 생전에 읊었던 시 <<환도산성 단상>>이 떠오른다.    산이 내린다 발아래 옛날이 다가선다 이끼푸른 성벽에는 땀의 흔적 피의 자국 힘의 술결 쇠같이 단단한 울타리라고 쇠울이 또 여기였건만 아득한 전설이 산에 실리고 뜨거운 메아리 가슴에 넘쳐 깨여진 기와장은 력사의 파편 오늘도 무거이 버려진 꿈쪼각 너무도 긴긴 세월 망각에 묻혔던 그 사연이 죄스런 심장을 허비여도 옛님은 할 일 다했거늘 잊음이 바로 죽임이라고 피줄 뛰는 여기 정든 땅에서 무거운 기와장에 구름이 뒤채고 옛님의 성벽에 노을이 부시다.     시인들은 여기 왔다가 앞을 다투어 시를 지었는데 내 심장은 돌심장인가 시가 또오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날 시인이라고 하지만 돌아가서도 한편의 시도 쓸것같지 못한 망연함이다. 웬 일일가? 나도 모른다. 어쩐지 시적감흥이 나지 않고 심장만 세차게 망치질 하고있다.    류리왕때부터 민부의 피와 뼈로 195년동안이나 쌓은 환도산성에 와서 시 한수도 떠올리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누구와 말할길이 없다. 물깊이 80메터나 되는 음마만(饮马湾)이라는 늪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물이 한방울도 고여있지 않고 늪자리마저 확연히 짚을 곳이 없다. 음마만이 어러하니 우물이 두 개나 있었다는거야 더 찾을 길이 있으랴. 내 상상도 음마만처럼 말라버렸는지 모른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려와서 환도산성을 다시 돌아본다. 대무신왕 11년 여름에 펼쳐였던 전란의 란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대무신왕이 백만대군을 거느리고 먼저 국내성을 함락시킨다. 사람도, 개도, 돼지도, 낟알도 아무것도 줍지 못하고 헛물을 켠다. 성이 난  대무신왕은 실패를 달가와 하지 않고 련이어 환도산성을 포위한다. 고구려에서는 산성문을 닫아걸고 싸울념을 하지 않는다. 오래 포위하고 있으면 저들의 식량이 떨어져 항복할것이라고 믿었는데  오히려 대무신왕의 군량이 다 떨어지는데도 고구려는 반응이 없다. 쌍방은 다 식량이 절단이 난다. 이때 한시종이 음마만에서 잉어 한 마리를 잡아온다. 이 물고기를 본 을두지(乙豆智)가 묘한 계책이 떠올라서 왕에게 이리이리 하자고 간한다. 왕이 고개를 끄덕인다. 을두지는 련꽃잎에 잉어를 싸서 성외에 있는 병졸들한테 상으로 보내준다. 성안에 쌀도 없고 물도 없으리라고 여겼던 대무신왕은 깜짝놀라 하는수 없이 군사를 철거한다.    인간이라는 고급동물이 이 세상에 태여난 날부터 오늘의 이 시각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날 싸우지 않고 편안하게 산 날이 있었던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00여년의  고구려력사를 기록하고 있던 저 환도산성에 맞아 부러진 화살은 얼마였고 부서진 장검은 얼마였고 성안에서 성밖에서 죽은 목숨은 또 얼마였으랴. 전쟁이란 정의든 비정의든 승리하자면 죽음을 내야 한다. 전쟁은 통치집단의 리익을 위하여 사상자를 낸다. 전쟁에서 제일 불쌍하게 무리로 죽는 사람은 고관대작들이 아니라  백성들이고 제일 큰 리익을 얻는자는 백성들이 아니라 고관대작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말로는 언제나 뻔뻔스럽게 백성들의 리익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고 선동한다. 싸울 때는 정의라고 기발을 흔들지만 력사가 써억 지나간다음 후세사람들이 돌이켜보면 웃으웠던 전쟁이 너무도 많다. 인류는 앞으로도 얼마나 싸울지 모른다. 아마 인류가 멸종되는 날까지 싸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물들 무리중 아마 동종끼리 무리 죽음을 내는것은 인간의 전쟁밖에 없으리라. 전쟁을 모르는 인류가 이 세상에 태여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것인가. 하느님이 인류를 낼 때 왜 전쟁을 하게 만들었을가. 전쟁만 하지 않게 만들었더라면 누구나 다 하느님을 우러러 모셨으련만... 6.호태왕비는 말한다.    집안시는 광서 28년부터 1965년까지는 집안현이라고 불리였다. 그후에 시로 되었고 저명한 서법가 범증이라는 사람이 소강남이라는 글을 돌에 새기여 집안시의 토구령에다 세운다음에는 소강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 2년부터 427년까지 고구려 시대에는 집안시를 국내성이라 불렀다 한다.    이 국내성에 고구려 력사를 증언하고 고구려문화를 찬란히 빛발치게 하는 호태왕비가 있다. 기원 414년에 고구려 20대 장수왕이 부왕의 공적을 기리여 세운 이 비를 <<국강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国冈广开土境平安好太王碑)라 부른다. 국강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란 기다란 이름을 가진 왕은 고구려 19대왕이였고 장수왕의 아버지였다. 그 기다란 이름을 부르기 쉽게 부르느라고 우리는 이 비를 간단히 호태왕비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광개토왕비라고 부르기도한다.    나와 조형은 지금 이 호태왕비 앞에 서있다. 유네스코에 의해 2003년에 집안시의 고구려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였다. 호태왕비는 유리벽과 지붕이 달린 보호각에 싸여있다. 몇해만 더 빨리왔더라도 만져볼 수 있는 호태왕비를 나는 눈으로만 쓰다듬는다. 네모꼴기둥형으로 세워진 이 비는 높이가 6.39메텅고 너비가 1.34-2메터이다. 비의 사면을 돌아가며 한문으로 비문이 새겨져있다. 글줄마다 41자쯤 되는 글이 44줄쯤되는데 도합 1775자가 새겨져있다. 글자마다의 크기는 9-10센치메터인데 예서체가 대부분이고 부분적으로 호서체, 계체이다. 이런 서체들은 고구려의 관방에서 썼던것으로 알려지고있다.    6메트도 넘는 이 검은 빛이 반짝이는 돌이 어디서 왔는가? 이 비돌은 원래는 집안의 돌인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던 신선이 백두산에 내려와  5000여년을 수련한 신령한 돌이였다. 옛날에 천지에 암수 두룡이 살면서 한재와 수재를 일으켜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다. 하느님이 이 일을 알고 백두산천지가에 있는 강룡석 두돌에게 명하여 룡들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암수 두돌은 암수 두룡이 말썽을 일으키지 못하게 백여년을 지키였으나 룡은 아무런 말성도 일으키지 않았다. 하루는 수돌이 너무도 심심하여 암돌에게 고구려국내성이 번창하다고 하는데 구경을 가보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암돌은 기막히게 아름다운 색시로 변신하고 수돌은 색시에 못지 않는 의젓한 남편으로 변하여 번화한 고구려 국내성을 구경하였다. 하루동안 구경한 그들은 하루를 더 보고 이튿날 백두산으로 돌아가기로 약정하였다. 그날 국왕이 이들을 발견하고 색시가 욕심나서 신하들에게 어디에 드는가를 살피게 하였다. 국왕의 신하들은 밤중에 가만히 그들이 잠자는 방에 뛰여들어 먼저 남자를 바줄로 꽁꽁 동이고 여자를 메여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고구려 장군 10여명이 접어들어도 그녀를 잡을수 없었다. 바줄에 묶이였던 남자가 깨여나서 싸우는것을 보자 응하고 힘을 쓰더니만 일시에 바줄이 동강났다. 하여 왕은 색시를 가질념을 버리고 돼지피를 한 함지가져다가 틈을 보아 젊은이 몸에 뿌리게 하였다. 온 몸에 돼지피를 들쓴 젊은이는 쾅 꼬꾸라졌는데 검은 빛이 반짝이는 돌이 되였다. 색시는 그들과 생사결판을 내고싶었으나 또 돼지피 벼락을 맞을가봐 휙 소리와 함께 사라지였다. 지금의 호태왕비가 바로 그 돌이란다.   호태왕은 고구려 력사상 28대 왕들중에서 위대하기로 손에 꼽을만한 황제였다고 한다.   38세를 일기로 살아왔던 그는 등극한 391년에 서북의 연나라와 싸우고 일본과 통한 백제를 쳐서 신라를 구한다. 그리고 침략하여 들어온 일본을 격파하고 그 세력을 사방으로 뻗친다. 404년에는 일본과 내통한 백제가 신라를 침공하자 신라의 청을 받고 군사를 남하시켜 일본군과 정면충돌한다. 일본군을 대패시킨다. 호태왕은 지금의 동북땅과 한강이북을 통합시켜 고구려의 전성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어제밤에 집안시에 도착하다보니 집안시의 번화거리를 보지 못하였다. 조형과 함께 점심을 치르고 잠간 집안시의 번화거리를 거니였다. 태왕상점, 태왕식당. 태왕카라오케이라는 간판들이 이따금씩 보이는가 하면 태왕병원이라는것도 보인다. 1000여년전에 고구려를 쥐락펴락하던 왕의 이름이 시장경제시대에서도 오르내리며 자못 인기를 끌고있다. 어쩐지 이런 간판을 보면 입으로  한번 외워보게 되며 친절함을 감수하게 된다. 고구려는는 망했어도 력사는 망할수 없고 지울수 없는것은 이래서리.    호태왕비의 주위에는 새파란 풀을 심어놓았는데 서리에 맞고 찬바람에 뜯기운 풀들은 뿌옇게 죽었지만 이 풀들만은 새파란 그대로였다. 클로바란 이풀은 불란서의 나폴레옹의 목숨을 구한 풀이라고 조형이 말씀한다. 제1차 세계대전때. 클로바는 워낙 세잎사귀 풀인데 나폴레옹이 네잎사귀 클로바를 만나 하도 신기하여 허리를 굽히고 볼 때 탄알이 등허리 우를 날아지났다고. 그래서 클로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행운의 풀이 되었단다. 호태왕비는 이 행운의 풀들속에서 웅위롭게 서있다.    호태왕비가 오늘에 이르는 천여년세월에 무수한 희비극을 엮는다. 고구려가 망해서 천여년이 흘러간 후다. 청나라는 백두산을 만족의 발상지라고 하면서 강희 (康熙)16년(1677)에 백두산지역을 사람들이 나들지 못하게 봉해버린다. 그때 백두산의 서쪽은 집안까지였다. 그래서 호태왕비도 사람들이 얼씬거릴수 없는 구역에 귀속된다. 그때로부터 201년동안 집안은 인적이 없는 불모지로 된다. 고구려 묘지들과 비석은 비바람 눈바람에 씻기고 울창한 숲에 쌓여서 시퍼런 청태에 휩싸인다. 1877년에 통화현과 회인현(오늘의 환인현)이 설치된다. 그때 회인현의 문서는 관월산(关月山)이라는 사람이였는데 그는 석공출신이였다. 옛묘지와 고적을 찾아다니기를 즐기던 그가 통구에 이르러 동강의 숲속에서 우연히 청태에 덮인 석주를 발견한다. 손으로 청태를 벗기며 쓰다듬어보니 글씨가 새겨져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호태왕비다. 201년만에 사람들 안목에서 사라졌던 호태왕비가 부활된것이다. 곽월산은 현의 허가를 받고 호태왕비근처에 초막을 짓고 사는 초천부(初天富)에게 비석의 청태를 벗기게 한다. 초천부는 날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서서 청태를 벗기였다. 잘 벗겨지지 않으니까 소똥을 바른다. 소똥이 마르니까 불을 지른다. 그래도 글자들이 확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기름을 치고 또 불을 지른다. 과연 청태는 다 타버리였으나 가석하게도 비석에 금이 가고 어떤 글자는 알아볼수 없게 된다. 현재 비석의 1면에는 16자가 보이지 않고 2면에는 25자가 보이지 않고 3면에는 81자가 보이지 않는다. 도합 122자가 보이지 않는것을 그때에 입은 액이라는 말이 있다.    별처럼 반짝이는 글씨들이 나타나자 고고학자와 금석학자들이 물밀 듯이 몰려든다. 초천부는 명을 받고 창호지로 탁본을 떴는데 글자가 똑똑하지 못한것은 원모양대로 다시 쫗아서 탁본을 찍어낸다.  현아문과 고고학자들한테 바친 외의 나머지 탁본을 초천부는 팔아서 돈을 번다. 성경(심양)과 안동(단동) 사람들은 탁본을 사다가 외국사람들에게 고가로 팔아 돈벌이를 한다. 광서 2년(1902)에 초천부는 관아에 탁본을 바친 나머지를 팔수있다는 허가를 받는다. 그는 탁본에다 사진까지 붙혀서 자기의 전매품으로 만든다.    30여년을 호대왕비에 붙어살던 초천부가 죽자 그의 아들 초균덕(初均德)이 탁본을 이어받는다. 민국년간에 초균덕은 탁본을 대량 생산하여 한장에 소양 12원, 대양 10원을 받는다. 당년에 사람들은 그를 초대비라고 부른다. 초대비는 나이 70이 되니까 땅과 집을 팔아가지고 청석진으로 이사하여 만년을 보낸다.    광서 33년(1907)에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 57련대장 고자와 도꾸헤이가  호태왕비를 팔라고 한다. 진사출신이고 연박한 학식을 가진 현장 오광국(吴光国)은 호태왕비의 진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는 사람이였다. 문서에는 그들의 대화기록이 이렇게 씌여있다.    <<이 비는 대단히 무거워 도저히 일본까지 운반할수 없을겁니다>>    <<그거야 쉽지요. 우리의 병선이 이보다 훨씬더 무겁지 않습니까? 병선으로 옮기려합니다.>>    <<이 비석은 지방에 있지만 국보입니다. 나는 지방의 보잘것 없는 관리라 어찌 나라의 국보를 마음대로 처리할수 있겠습니까. 각하께서는 교양이 깊으신분인데 나의 고충도 리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실 저는 문화유물에 흥취가 있답니다.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를테니 지현께서 양도하시지요.>>   <<각하께서 그렇게 흥취를 갖고 계신다니 나한테 있는 탁본 몇장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오지현은 그에게 탁본을 주었다. 일본군 고자와 도꾸헤이는 할말이 없었다.   만주사건후 일본이 동북을 강점하였는데 웬 영문인지 호태왕비를 가져가지 않았다. 만주국이 영원히 자기네 나라가 되였다고 환상하였는지도 모른다.    1925년 집안현의 류천성(刘天成)이 모금을 해서 높이 석장 너비 한장반되는 정자를 세워 호태왕비가 비를 피하게 하였다. 목조건물이라 반세기가 지나자 풍우에 정자가 거덜이 났다.1982년에 집안현 문화유물관리소에서 정자를 다시 지었다. 그때 중국사회과학원부원장이며 고고연구소 소장인 하내가 <<호태왕비>>라는 넉자를 써줘서 편액을 달았다.    호태왕비의 비문에는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선대왕들의 이름이 새겨져있고 관개토왕의 위업과 고구려당년의 제도가 밝혀져있다. 호태왕비는 이런 력사의 현장을  거느리고 영원히 웅위롭게 서있을것이다.    나는 호태옹비옆에 있는 호태왕묘로 올라갔다. 집안시가 눈아래 밟히였다. 크고 작은 돌들이 쌓여있다. 돌이나 하나 주어다가 기념으로 하자고 눈에 불을 켜고 기념될만한 돌을 찾았다. 마침 달걀만큼한 돌이 눈에 들어왔다. 묘지모양으로 생긴돌인데 밑이 반질반질하고 허리쯤부처 약간 갈아놓은것처럼 다슨 돌이다. 물우에 뜬 섬같은 것이다. 보면 볼수록 호태왕묘와 흡사하다. 호태왕묘도 대지라는 이 바다에 솟아있는 영원히 가라앉지 않을 하나의 돌이나 섬이나 산이 아니랴.
20    민조동시 댓글:  조회:923  추천:46  2008-10-02
  물고기 (민조동시) 돌돌돌 맑은물 파랗게 도는데 버들치 모래무치 글씨 쓴다 꼬리 한들 위꺾음을 꼬리 한들 아래꺾음 ㄱㄴㄷㄹ 어어 용타야 자음을 쓴다야 몸 빙빙 동그라미 먼저 쓰며 아야어여오 히히 잘도 쓴다 모음도 쓴다야 맑은 물 굴러가며  재미나게  읽어 본단다 ㄱ-ㄴ-ㄷ- 아-야-어-         -9.20 구름 .1 책가위  하아얀 책 재밋는 동화 바람만  본단다 구름 .2 해님이 입다버린 하얀 적삼 하늘 하얗게 녈리여 있구나 구름 .3 새하얀 밥상에 하아얀 밥 해님 지나다 냠냠  먹어본다 구름.4 하얀 집 하늘 집 우리 할매 살고있단다  언제 언제  언제 우리 곁에 오나 구름. 5 개구쟁 검은 구름 장난꾸러기 오줌을 싼다 쭈  쭈 르  르 르  르 구름.6 까만 보 펴놓고 파란 하늘 한쪽두쪽 주어담는다 깜박 새 다 담네 구름.7 돼지떼 살벌하게 푸른 하늘 털털 먹는다 하늘이 성나 불칼질 한다 우릉 꽈릉 꽝꽝 구름.8 흰 고뿌 샘물이 넘쳐 넘쳐 푸르른 바다 가없는 하늘이   - 9.23. 이층학교 삐리리 쪼르르 하모니카 잘도 분다야 제비들  부러워 너도 나도 따라 삐리리 쪼르르  봄 풀들이  모범이라 꽃 달아준다 하양 빨간 노랑 나무들  모범이라 파랑파랑 옷 가지마다 한 벌          -9.23. 까치울음 깍깍깍  새아침 깨우는 태양의 종소리 지붕위 박 할머니 박 배가 뚱 불어 무엇 낳을 같아 자주 쳐다 본다       -9.25
19    현대시를 쓰는 방법.3 댓글:  조회:1128  추천:45  2008-10-01
  제3장 이미지와 상상   문학을 한다는 사람치고 상상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실상 다 아는것 같으면서도 모르는것이 상상이다. 안다는것은 누구나 상상의 초학자쯤은 되는것이고 모른다는것은 누구나 다 상상의 전문가는 아니라는것이다. 필자도 초학자 그물에서 벗어날것 같지는 못하다. 그저 상상이 없으면 시를 쓸수 없고 상상력이 약하면 좋은 시를 쓸수 없다는것쯤은  알고있을뿐이다.   어느 책에선가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가 상상에 대하여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과거에 느꼈던 <<원물의 모상을 재생하는 능력에 주어진 명칭이 상상>>이 라고 하였다. 원물의 모상을 재생하는 능력이라는것은 과거에 어떠한  사물에서 받았던 인상과 기억을 그대로 떠올리는것이 아닌가싶다.   시는 시인의 상상을 언어로 그려낸 그림이다. 즉 이미지이다. 상상이 어떻게 이미지를 생성하는가?   <<문예비평의 원리>>라는 글에서 I.A.리처즈는 상상에 대하여 여섯가지방면으로 이렇게 밝히고있다.    <<1.생생한 심상 (보통은 시각심상)을 낳는다.     2.상상력은 뜻하지 않는것이 단지 비유적인 용법만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3.상상력을 타인의 정신상태, 특히 그 정신의 상태를 공감각적으로 재생하는것을 뜻하는 경우가 있다.    4.보통 결합되여 있지 않은것을 결합하는것, 즉 발명력이라는 뜻이다.    5. 보통 따로따로라고 생각되는것을 적절하게 결합시키는 과학적인 상상력에 례시되는 의미...    6.상상력을 적용하는 통합적 마술적 힘은 ...상반되는 성질이나 불조화한 성질의 밸런스(균형) 혹은 화해로 되여나타난다>>    리처즈의 론술은 상상을 원물의 모상을 떠올리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한보 더 나아가서 비유적인 용법, 공감각, 발명력, 적절한 결합, 밸런스로 전개하면서 <<통합적 마술적 힘>>을 기대하고있는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시적상상력이란 어떠한것이라는것을  깊게 넓게 인식하게 된다.   사람에게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있는것처럼 상상에도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있을것 같다.   <<원물의 모상을 재생>>시키는것을 할아버지라고 할수 있겠다. 이 할아버지는 아들인 아버지를 만들수있고 아버지는 또 아들인 손자를 만들어낼수있다. 이 과정을 리처즈는 여섯개 단계로 풀이 하면서 얕은데로부터 깊은데로 한발자국씩 들어가고있는것이다.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번 천착해 보기 바란다. 우리가 단일상상이요, 복합상상이요 창조적상상이요 하는것의 도리를 리처즈는 자세하게 가르친다고 하겠다.   숱한 <<원물의 모상>>들이 집합되고 어울리고 변이되면서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낸다. 바로 리처즈가 말한 <<2,3,4,5,6>>에 속하면서 새롭게 생성된 새로운 상상이 바로 현대시의 이미지라 하겠다.     <<원물의 모상>>을 떠올리는것은 이미지가 아닌가? 이미지는 이미지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모방적이미지다. 모방적이미지들이 모이고 어울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였을 때 그 이미지를 비로소 필자가 말하는 이미지라 하겠다. 현대시의 이미지는 단순한 상상(원물재생)이나 복합상상(여러가지 원물재생)이 아니라 생산적상상(새로운 이미지)이 낳은 비실재적인 새로운 허상을 말하는것이라겠다. 그래서 오늘의 시는 반영이 아니라 표현이라고 한다.   책을 보면 코울리지는 실제를 떠난 공상을 비난하였다 하고 흄은 공상의 기능을 중시하였다고 한다. 이미지를 생성하는 상상은 전자가 아니고 후자이다. 이미지는 상상의 한계를 제한하지 않는다. 모든 기성론리와 기성법칙을 초월하는 상상만이 이미지에서 가치를 발생한다. 일반적이고 습관적이고 규례에 얽매인 상상, 그것들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상에 의하여 산생된 이미지는 현대시에서 설자리를 내여주지 않는다.   왜서인가? 상상은 누구나 다 할수있지만 누구나 다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가 다 이미지를 떠올리수있지만 누구나 다 시를 쓸수 있는것도 아니다. 련상작용에 의하여 새롭게 태여난 허상, 그런 허상이 체현된 이미지, 그것이 비로소 시로 될수있는 이미지가 아니겠는가 단정하고싶다. 이미지는 오관에 반영된 원물의 모상인 것이 아니라 제6감각 즉 마음의 감각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그림이다.    I.A.리처즈는 <<상상력을 적용하는 통합적 마술적 힘은......상반되는 성질이나 불조화한 성질의 밸런스 혹은 화해로 되여나타난다.>>고 하였다. 시적이미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이것이라고 말하고싶다. 김춘수는 <<시의 리해와 작법>>이라는 저서에서 <<리상적인 짝을 맞춰주는것이 상상>>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들은 서양의 리처즈와 한국의 김춘수가 똑같은 말을 하고있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보아낼수있다. 이미지란 쉬운 말로 하면 <<리상적인 짝>>을 맞추어준것이라겠다. 짝을 맞출 때 상상은 매파로서 이질적인 사물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연분을 맺어주고 한집 (하나의 이미지)에서 살게 한다. 이질적인 사물 례하면 물과 불 혹은 소리와 나무같은것들이 서로 화해되면서 새로운 표현으로 결박되였을 때 이러한 이미지가 현대시의 이미지이고 이러한 이미지를 잘 만들어내는 시인을 이미지리스트라 부르리라.       군중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축축한 검은 나무가지 위의 꽃잎들   이 시는 파운드의 시 <<지하철 정거장에서>>의 전문이다. 이미지리스트의 선언에 만족한 답을 주는 본보기시라고 할수있겠다. 비록 두줄이지만 이 시편에는 파운드의 7년간이라는 사색이 슴배인 시이고 워낙 30줄이 던데로부터 두줄로 함축하였다고 한다. 흄이 말한것처럼 <<명랑하고 메마르고 세련된것>>이라고 하겠다. <<군중>>, <<유령>>, <<얼굴>>, <<검은 나무가지>>, <<꽃잎>> 어느 하나도 <<모호하고 불확정적인것>>이 없고 <<긴축되고 집중>>되였다고 할수있다. <<유령처럼>>나타난 <<군중>>의 <<얼굴들>>을 <<축축한 검은 나무가지의 꽃잎들>>이라고 하였는데 <<얼굴들>>과 <<꽃잎들>>이 가장 주요한 언어인것같다. 시인의 결박을 통하여 <<얼굴들>>이 <<꽃잎들>>로 둔갑한다. 이 <<꽃잎>>은 허구로 생성된 <<꽃잎>>이지 실재하는 <<꽃잎>>이 아니다. 즉 변형시켜 만들어놓은것이지 현실적존재가 아니다. 상상속의 존재 즉 허상이다. 이런 허상만이 예술에 값하는것이며 현대시에 값하는 이미지일것이다. <<짝>>이 맞추어진 이 두 사물은 완연하게 성질이 다른 사물이라는것을 우리는 얼핏 보아도 알게 된다. 파운드는 <<짝>>을 훌륭하게 맞추고있다. 이런 이미지야말로 영원히 기억에 남는 절실한 감동을 주는 시가 아닐가.   <<시의 목표는 미지의것에 도달함이며 달리 표현하면 볼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수 없는것을 듣는 것이다>> <<알바트로스>>라는 책에 적힌 이 랭보의 말이 성립된다고 하면 남들이 다 알고 다 보고 다 들을수있는것을 시로 쓴다는것은 종이랑비 정력랑비 시간랑비로밖에 취급할수 없을것이다. 오직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여 내여야만 시의 목적, 예술의 목적에 접근할수있으리라.   시를 쓴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것이라고 대답하면 시험과은 만점을 매겨주리라 믿는다.
18    금단의 열매.2 (미성년 불가) 댓글:  조회:1020  추천:48  2008-09-28
골.1각일각 날아드는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처에서진땀을 흘린다컴퓨터 한대로 동서남북 정보 수집에구라파경제권에서 크린턴이 연설강택민주석이 메히꼬 사절회견오늘 장에서 배추 한근에 일원상점에서 눅거리 천 팜이웃 똥돌이가 싸우다가 코피 터짐둘째놈 신발이 구멍 빠짐배나무집 양반이 옥이와 사통함굴암돼지가 죽을 먹지 않음꽃시장에 가짜 꽃이 나짐연길에서 녀자살인사건 파안올망졸망 정보까지컴퓨터에 차곡차곡 가려놓고필요할 때 하나하나 풀어놓는다대천소식이나 관방소식보다뒷골목 소식이 더 재밋다             1996.5.3.골.2명령이다 명령아침에 출근할 때 연한 화장을 할것여유시간에 백화점에 가서 아이신을 살것털보와 치근덕거리지 말것저녁에 된장에 부추쌈을 준비할것밤에 진한 화장으로 남편을 맞을것보이지 않는 사령부보이지 않는 명령소리없이 전달된다명령에 따라귀가 벌쭉해지고 눈이 돌아가고 입이 움직인고손이 놀고 발이 가고 옷색이 변한다이 사령부 명령은 황제의 칙지보다 에누리 없이 집행된다범보다 더 무서운 짓을 치라해도사령부하나는 언제나 추려야 한다눈.1한줄은 양전기 한줄은 음전기닿기만 하면 찡찡온 몸 저리다두눈 감고 전기줄 닿기만 기다리는미련한것아땀 흘려! 땀!전기는 수분이 있어야 잘 통해눈.2잘칵잘칵 오늘도 사진을 찍네흑백사진 천연색사진천장만장사진이야 네 맘대로 찍겠지만기념사진 한장 고를 때분이야 내 사진 골라 응눈.3뱀한테 홀리워금과를 따먹고눈을 떴지 뭐야홀리워서 뜬 눈홀리기만 하네정말 그럴내기냐?호호호...멀쩡도 하네요내가 홀렸나요절로 매혹되고서눈 .4하나는 겉눈하나는 속눈겉눈으로 웃음 띄우고속눈으로 셈평을 따진다눈을 맞추려면속눈으로 맞춰야 하리눈.5밤새도록 별들이 연마한맑은 이슬별하나에 이슬 한방울별둘에 이슬 두방울가벼운 이슬은 고무풍선솔솔 바람에도풀잎에서 똑 떨어진다무거운 이슬은 천근 함마한번 떨어지면 성벽도 박살난다함마에 맞아박살날지언정고무풍선 끈 잡고허우적이지 말라눈.6두자루의 붓이 새치스러운 붓이 그림 그린다범을 범으로 그리기도 하고범을 토끼로 그리기도 한다쥐를 쥐로 그리기도 하고쥐를 사자로 그리기도 한다범을 토끼로 그렸다가진땀을 뽀질뽀질 돋히기도 하고쥐를 사자로 그렸다가웃음거리를 사기도 한다수줍음을 밟히고 그린 그림은한생 보짐으로 되고수줍음을 머금고 그린 그림은평생에 웃음이 된다재내비는 종래로 잘 그려지지 않는 모양이지재내비에겐 평생따스한 가마목이 차려지지 않는다눈.7자력선 한마당 펼쳐놓고쇠붙이를 끌어당긴다어떤 자석은 전문망치에 맞은 못난이만 끌어당기고어떤 자석은 전문녹이 쓴 페철만 끌어당긴다어떤 자석은 전문은빛이 뛰는 강철만 고른다나쁜 쇠붙이만 욕심내는 자석은강철을 끌어와도 인차 녹이 쓸게 한다몸매가 추한 자석은 하나도 없어어느것이 나쁜 자석인지강철들은 잘 몰라금도금하려다가 똥물에 빠진다눈.8수림이 병풍처럼 둘러선 곳에아늑한 호수가 있다맑다 못해 푸르러진 호수 물푸른 물이 들라 모두 겁낸다흰구름이 살금살금 건너가 본다해님이 살금살금 건너가 본다산들은 가만히 들여다 본다하맑아호기심난 달은밤마다 살금살금 건너가 본다싱숭생숭한 별들은 하나 둘 내려와장밤을 실컷 놀고서새벽이면 슬금슬금 뺑소니친다풀수 없는 야릇함 가득 고인 호수여뉘 속을 말리자고 오늘도 푸르렀는가
17    심상운 하이퍼텍스트시 시론 댓글:  조회:1657  추천:42  2008-09-27
var articleno = \"4940119\";   * 이 글은 월간 <시문학>2006년 12월호에 발표하여 21세기 한국시단에 파문을 일으킨 심상운의 최첨단 현대시론입니다.  디지털의 원리를 현대시에 도입하여 <디지털 시>라는 새로운 시론을 전개하고 개념을  정립하였습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     2006, 11,24  배재 학술지원 센타 <한국시문학 아카데미>- 금요포럼 발표 논문 <아방가르드 시 선언>               21세기 현대시의 길 열기-           「디지털 시」에 대한 이해             --디지털 시의 원리와 언어의 특성                                                                 심 상 운 1. 들어가는 글-디지털 시대의 문화감각     21세기 문화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은 디지털(digital)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디지털 감각, 디지털 시를 말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따라서 디지털이 펼치는 놀라운 세계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디지털 시대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참여가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의사소통 방식은 아날로그 형식에서 디지털 형식으로 바뀌었고, 여기서 생기는 모든 변화를 통틀어 디지털 혁명이라고 한다. 혁명이라는 과격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컴퓨터 체계와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시스템 변화 때문이다. 즉 CD, 정보통신기기, 휴대폰, 개인컴퓨터(P.C.), 인터넷(Internet), 통신위성, 광섬유, HDTV, 디지털 영상 등, 영상을 공학적으로 처리하는 영상공학, 영상신호처리(Image Signal Processing) 등의 영역은 현대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를 밑바닥에서부터 뒤바꾸는 근원적인 동력이 되어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부지불식중에 생활 패턴, 사고방식, 감각, 감성, 언어 등에 변화를 겪으며 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변화의 현상을 디지털 문화라고 하고, 디지털 문화를 향유하고 사는 사람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디지털 세대라고 한다.  인터넷 네트워크 속의 이 세대는 새로운 정보기술의 활용능력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세대의 특성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요인에 의해서 움직이고, 소외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집단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강한 독립성과 감성을 드러내며, 지적 개방성을 나타낸다. 자유로운 표현, 확실한 소신, 혁신적 태도, 탐구정신, 즉각적인 반응, 공동 관심사에 대한 민감성은 햄릿 같은 아날로그 시대의 세대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들은 익명성에 숨어서 자신의 본래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선입견에서 해방되어서 세대와 성(性)을 뛰어 넘기도 한다. 그리고 파도와 같이 무분별한 군종성(群從性)에 휩쓸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만이 통용하는 상징이 있으며 언어(문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용 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는 자기표현에도 익숙하다. 따라서 그들은 귀에 대응하는 라디오, 눈에 대응하는 신문 등 하나의 미디어에 하나의 감각능력으로만 대응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감각분할’ (그것을 한쪽으로의 미디어에 치중하는 모노미디어 Monomedia 라고도 한다.)의 불완전성에서 벗어나서 디지털의 ‘감각통합의 시대’ 에 사는 세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의 몸 안에서 오감을 자유로이 융합하듯 하나의 미디어 안에서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 데이터의 다양한 요소를 자유자재로 혼융하여 저장, 전달, 재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통제 범위를 넘는 전달성과 재생(재창조)성은 그 한계를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고대 중국의 한 황제가 궁정 수석 화가에게 “벽화 속의 물소리가 잠을 설치게 한다.”고 궁궐에 그려진 벽화를 지워버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인간은 원래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감각능력을 응집시켜 수용하는 감성통합의 존재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문화감각을 향유할 수 있는 현대인의 자질로 연장된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변화의 중심 원리와 특성(디지털과 컴퓨터의 특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시 창작의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은 현대시의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 이유는 시란 대상에 대한 정서의 표현이고, 새로운 해석이고, 이름붙이기이고, 혼란한 생각들을 질서화 하여 깨달음을 주는 것이라는 현대시의 이론에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이 과거와 같이 언뜻 그대로 동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에 대한 이런 인식은 전통적인 서정시나, 지성의 기능을 우월하게 내세우는 모더니즘 시의 일반적인 경향에 대한 반동(反動)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은 시인이 안내하는 대로 끌려가고 설득을 당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따라서 시를 의미의 예술에서 해방시켜서 의미보다는 감각과 이미지의 예술로 전환시키고 독자에 대한 일방적인 설득이 아닌 독자 참여의 공간을 확대시키는 시의 방법론은 시대적인 당위성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의 특성과 디지털 시대의 감성을 탐구․수용하고 그것을 현대시의 표현기법으로 활용하는 것은 현대시의 새로운 길 열기라고 말할 수 있다.   2. 디지털의 컴퓨터 공학적 특성  디지털은 손가락을 뜻하는 라틴어 ‘digitus’에서 숫자 ‘digit’, 2진법을 의미하는 ‘digital’이란 단어로 형성되었으며, 모든 계산을 ‘0과 1’, ‘켜짐과 꺼짐(on-off)’, ‘있음과 없음’의 구조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아날로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료를 1,2,3,4,5,6...과 같은 연속적인 실수가 아닌, 특정한 최소 단위를 갖는 이산적인 수치를 이용하여 처리한다. 이런 원리를 지닌 컴퓨터의 정보처리 방식이 만들어내는 디지털의 특성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디지털은 정수로 이루어진 최소 단위들(unit)이기 때문에 분리와 합성에 의한 변화가 자유롭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연속적으로 운용되는 아날로그에 비해 디지털은 숫자나 문자로 표시되는 *데이터(data)에 의해서 불연속적인 변화를 순간적으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에서 화소(畵素)는 화소(畵素)의 위치와 색상을 숫자화 한 데이터에 의해서 구현된다. 이 데이터는 소리의 높이 성량 음색 등도 숫자로 처리하고 보존하기 때문에 언제나 정확한 소리의 재생과 전달이 가능하다.  수리적(數理的) 데이터로 처리되는 이 최소 단위들(unit)은 컴퓨터에서 문서와 통계 자료 뿐만이 아니라 음성 및 영상 자료까지 재편집 재창조를 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을 편집(edit)이라고 하는데, 사용자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어떤 문서를 작성하거나 흩어져 있는 여러 자료들을 필요한 형식에 맞추어 재배열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 편집을 하기 위해 이용되는 워드프로세서 등의 편집 도구를 편집기 또는 에디터(editor)라고 한다. 따라서 디지털은 복제, 삭제, 편집이 간편하며, 복사물과 원본의 차이가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최소 단위들의 결합과 분리 즉 편집은 디지털의 기본적 특성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만들어내는 컴퓨터 그래픽의 기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컴퓨터그래픽은 어떤 그림의 부분을 떼어내고 다른 것들과 합성시켜서 원래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때 그림의 의미도 바뀌게 된다. 또 은행나무 뿌리와 버드나무의 줄기와 벚나무의 꽃을 합성(집합적 결합)하여 새로운 나무를 만들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 이런 변형은 실제 생명체의 유전자(DNA) 조작(생명공학)에 의해서 가능하지만, 디지털의 가상현실에서는 데이터의 조작(최소 단위들의 수리적 조합과 분리)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구현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그림을 형성하는 단위의 데이터 속에는 원래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탈-관념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인 근거가 존재한다. 이 가상현실의 세계는 가상적인 세계를 현실로 착각하게 한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동물들은 버추얼 그래픽(Virtual graphic)이 만든 그림이다.  이 “버추얼”의 영상은 색깔, 모양 등을 마음대로 변화시킨다. 어떤 사람이 누워 있을 때, 그의 옷을 바꿔 입히기도 하고, 옷의 색깔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그 사람의 얼굴 팔 다리 등을 바꿀 수도 있다. 또는 그 사람의 주변 환경을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다. 또 현실세계의 소리의 일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를 채집하여 그것을 여러 음계의 소리로 확대․변형시키기도 한다. 아직 후각의 디지털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그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아날로그 시대에는 사진이 사실 확인의 증거가 될 수 있었지만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될 뿐이다.   이런 디지털의 기능들은 모듈(module)화에 의해서 더 효과적으로 운영된다. 컴퓨터의 여러 부분에서 독자적 기능을 가진 교환 가능한 구성 요소로서 작용하는 모듈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독립적 단위가 되어서 기능의 효과를 높이고 더 분화된 독자적 역할을 수행한다. 모듈은 컴퓨터에서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중앙통제의 시스템에 의해서 일괄적으로 정보가 처리(입력, 편집, 출력 등)될 때, 한 부분의 기능이 장애를 일으키면 그 장애로 인해서 전체적인 장애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그런 비능률적 중앙통제의 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기능을 분산하고 독립시켜서 시스템 전체의 능률을 강화하고 장애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가 컴퓨터의 모듈이다. 이 모듈은 건축 재료의 효과적인 사용을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을 컴퓨터에서 프로그램 시스템의 구조에 응용한 것이다. 정밀한 조직의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부분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운용과 독립성을 갖는 모듈화의 특성은 새로운 프로그램(시스템)을 만들 때, 이미 만들어진 모듈을 가져다 쓰면 된다는 재사용성과 다른 부분과 연관이 없이 자기 일만 수행하기 때문에 기능을 고도화하고 확대하는데 있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모듈은 새로운 프로그램(모듈)을 생산하는 모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듈은 객체지향성에 의해서 독립된 영역을 구축한다.  디지털의 자료(데이터)는 아날로그에서 채집한 자료(화상, 소리 등)를 바탕으로 성립된다. 그것을 샘플링이라고(sampling 견본추출) 하는데, 아날로그의 소리가 디지털로 변화될 때 아날로그에 있던 노이즈(noise 잡음) 현상은 말끔히 제거된다. 그것은 디지털의 명료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은 감각자체의 변화가 아니고 기법의 변화에 한정되기 때문에 고도의 디지털 그림(동영상)이나 음악의 감각은 아날로그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의 단절적 현상(초기의 계단현상)은 아날로그의 연속적인 현상(경사진 언덕)으로 점차 복귀된다. 그것은 디지털시계가 외형상으로는 아날로그시계의 모양을 닮아 가는 것과 같다. 이 밖에 아날로그는 고갈되거나 변질되는데 비해 디지털은 무한히 재사용해도 고갈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는 것도 디지털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데이터(data- 컴퓨터가 통신, 해석 및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형성된 사실 및 개념의 표현을 어떠한 조건, 값 또는 상태로 나타내는 숫자나 문자) 3. 현대시에 나타난 디지털적인 요소   가, 이상(李箱) 시에 나타난 디지털적 요소  현대시에서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만큼 난해하면서도 많은 연구 과제를 던져주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시 중에서도 대표적인 난해시(難解詩)로 꼽히는 시가「오감도烏瞰圖」(詩第一號)다. 이 시가 난해한 이유는 현실적 관념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불확실한 의미의 공간”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의 방법과 의미가 생산되었으며 앞으로도 누구나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그 “불확실한 의미의 공간”은  디지털의 특성과 만날 때 선명하고 명료한 공간이 된다. 그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는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글자나 그림)을 구성하는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 같다는 것. 2) 이 시의 언어들은 어떤 의미에도 감염되지 않아서(탈-관념) 분리와 결합을 통한 변형이 자유롭다는 것. 3) 이 시의 언어들의 결합은 집합적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4) 이 시가 표현하는 것은 가상현실의 영상 즉 추상적인 버추얼 그래픽(Virtual graphic)이라는 것. 5) 이 시는 컴퓨터 그래픽의 자유로운 그림 바꾸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아孩라도좋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길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해가道路를疾走하지않아도좋소.  -----이상(李箱)「烏瞰圖」(詩第一號)전문    디지털의 기본적 특성을 나타내는 이 다섯 가지의 개념에「오감도烏瞰圖」(詩第一號)를 대입해보면 이 시가 안고 있는 새로운 시의 공간이 열린다. 먼저 이 시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도로(道路)를 질주하는 13인(十三人)의 아해(兒孩)들(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들)에 대한 해석이다. 그 아해(兒孩)들을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는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글자나 그림)을 구성하는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 같다는 첫 번째 특성에 대입하면 그들은 고정된 의미가 없는 이미지 또는 재료(object)라는 디지털적 해석이 나온다. 따라서 시 속의 아해(兒孩)들를 수식하는 제1,제2,제3....제13이라는 서수(序數)에도 어떤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 진다. 그것은 이 서수(序數)가, 작가가 임의로 지정한 추상적인 숫자라는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1의 아해를 제2의 아해로 바꾸어도 되고 제3의 아해를 제10의 아해로 바꾸어도 된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그것은  의미가 없는 서수(序數)로 표시된 이 시의 아해(兒孩)들은 시인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의미와 무의미의 이중적 이미지가 들어 있는 재료(object)라는 판단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를 “공포라는 단 한 가지 감정원소로 환원된 추상적 부호집단”이라는 문덕수의 해석도(「이상론(李箱論)」) 고정된 의미가 없는 이미지 또는 재료라는 디지털적 해석에 수용된다. 그의 해석은 이 아해(兒孩)들이 캐릭터(character)의 원소(元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들은 “추상적 부호집단” 즉  디지털의 데이터(숫자나 문자)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 컴퓨터 프로그램의 객체지향적 모듈의 특성과도 부합된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 시에는 연극적인 캐릭터의 액션과 작가의 일방적 개입만 있을 뿐 언어단위들의 논리적인 연결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이 시 속에는\"왜 13인의 아해(兒孩)가 등장해야 하는지, 13인의 아해(兒孩)들이 도로를 질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다고 했다가 끝에서 왜 길은 뚫린 골목길이라도 적당하다고 하는지, 그리고 왜 13인의 아해(兒孩)가 도로를 질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지, 왜 다른 사정이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하는지\"등 작가의 일방적인 개입 외에 사건의 배경이나 원인을 알 수 있는 어떤 논리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의 언어들이 표현하는 것은 문제만 제시하고 해답을 독자의 사유와 상상에 전부 맡기는 간화선(看話禪)의 화두(話頭) 같은 기능을 하는 순수한 가상현실의 동적인 그림이며 그것을 조정하는 시인의 심리적인 의도만 드러내는 추상화 된 그림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 탈-관념의 가상현실이라고 해석된다. 그 해석을 확대하면 이 시 속의 화자는 연극의 연출자와 같은 입장이 되어서 자신의 그림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행위자에 그치고, 시를 완성시키는 주체는 시인이 아니라 독자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 시는 텍스트(text)로서의 문학작품의 완성은 독자의 수용이라는 소통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판단하는 20세기 독일의 수용미학 (受容美學,Rezeptionsasthetik)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때, 디지털의 가상세계를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독자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함정이나 속임수같이 생각되었던 이 시의 끝부분 \'(길은뚫린골목길이라도適當하오.)/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지않아도좋소.\' 의 진술기법(陳述技法)도 쉽게 풀리게 된다. 앞의 내용을 번복(飜覆)하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이 끝 구절은 컴퓨터 그래픽의 그림 바꾸기 즉 디지털 적인 변형의 자유로움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1930년대의 이상(李箱)이 현대 컴퓨터의 개념을 인식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건축기사였던 이상(李箱)이 건물의 치수·비율·구조 등을 조정하기 위해 임의로 정하던 단위인 모듈(module)의 개념을 현대시의 구조 즉 “집합적 결합”(문덕수-「나의 시쓰기」『문덕수 시전집』에 수록) 속에 끌어들인 것이라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이 건축용어의 모듈(module) 개념은 현대 컴퓨터에 응용되어서 독자적 기능을 가진 교환 가능한 구성 요소라는 단위(unit)로 쓰인다.  따라서 무서운 아해(兒孩)와 무서워하는 아해(兒孩)도 시적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대상에 옷 입히기” 이상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시에 등장하는 아해(兒孩)들의 수효를 2~3명 더 늘이거나 줄여도 좋고 길은 막힌 골목길이나 뚫린 도로(道路)나 모두 가능하다는 가정(假定)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오감도(烏瞰圖)」<시제1호(詩第一號)>를 인류문명 위기의 암시란 관점으로 해석하여 “13인(十三人)의 아해(兒孩)를 최후의 만찬의 예수와 12제자”로 인식하고 이해한 임종국의 견해(『이상전집(李箱全集)』)나,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는 기간의 10개월을 제10의 아해(兒孩)까지로 보고 이 시를 “생명의 탄생과 관념이 성장․분화․심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해석한 오남구의 견해를 (『이상(李箱)의 디지털리즘』) 이 시는 의미의 큰 격차에도 불구하고 모두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까닭은 아무런 고정관념이 들어있지 않은 백지상태 같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즉 디지털의 영상(이미지)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고 이야기를 붙이는 것은 독자의 자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미 붙이기는 그들의 상상력과 분석력과 체험, 지적수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약 선입견(先入見)을 가지고 이 시의 순수 이미지를 지식이나 관념으로 덧칠을 해서 옳다거나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와 판단의 잣대로 가름한다면, 이 시의 끝부분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길은뚫린골목길이라도適當하오.)/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지않아도좋소.”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로(迷路)의 비밀로 남을 수도 있다.  디지털에서 핵심이 되는 구성요소는 정수로 표시되는 최소의 단위들 즉 수리적(數理的) 데이터이다. 이 데이터의 기호와 숫자들은 각자의 기능은 있지만 고정된 의미가 없다. 그것은 디지털 시에서 탈-관념된 언어 단위와 같다. 이 단위들은 불교의 삼법인(三法印)의 하나인 제법무아(諸法無我)와도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열린 공간과 열린 사고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시제1호(詩第一號)를 디지털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시의 공간이 얼마나 넓어지는가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오남구의 성과도 높게 평가된다. 그는 이 시에서 “아해들” 또는 “아해들의 움직임을” 디지털의 최소단위(unit)의 표현 즉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의 점(dot) 또는 화소(畵素)로 직관하고 \"관념의 제로 포인트(무의미, 탈-관념)\"라는 시의 새로운 관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오남구의「이상의 디지털리즘」 범우사) 이 시에서 이상(李箱)이 창조한 시적공간은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추상화된 현실의 그림이 들어 있는 공간일 뿐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현실의 정서나 감각은 찾아볼 수 없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대시키는 사유의 공간만 보인다.  요컨대, 이 시의 언어들은 관념이 전혀 묻지 않은 순수한 인지단계의 언어들이라는 것과 그 언어들을 조정하는 이상(李箱)의 사고(思考)가 탈-관념된 사고라는 것은 이 시의 해석과 감상에 무엇보다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러나 이 시에 대한 이런 접근은 이 시가 이상(李箱)이 디지털적인 탈-관념과 상상의 언어로 그려낸 단순한 액션(action)의 그림(가상현실)이며, 그의 개성적인 사고(思考)가 창조한 짧은 허상의 드라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어떤 의미도 없다는) 관점 즉 디지털적 관점에 의한 해석일 뿐이다. 또 다른 해석의 방법이 나올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다른 시를 읽어보자. 그사기컵은내骸骨과흡사하다. 내가그컵을손으로쥐었을때 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接木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 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어부딪는다.내팔은그사기 컵을사수(死守)하고있으니산산散散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 과흡사한내骸骨이다.가지났던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 전에내팔이或움직였던들洪水를막은백지白紙는찢어졌으리라. 그러나내팔은如前히그사기컵을死守한다.                         -----「오감도(烏瞰圖)」「詩第十一號」 전문   <시제11호(詩第十一號)>에도 가상현실(假想現實)의 이미지(동영상)가 들어있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었을때내팔에서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접목)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락에메어부딪는다/산산이깨어진것은그럼사기컵과흡사한내해골이다.“라는 영상언어가 그것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영상언어는 사기 컵을 사수(死守)하는 내 팔과 사기 컵을 깨뜨려버리려는 또 하나의 팔(돋아난 팔)의 대립과 갈등을 디지털적 변형의 그림(graphic)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이 시인의 내면적인 심리현상과 관련된다는 암시를 던진다. 그러나 이상(李箱)은 이 시에서도 「오감도(烏瞰圖)」<시제1호(詩第一號)>같이 액션(action) 이외에 아무런 단서도 남겨놓지 않고 자신의 관념을 숨기고 있어서 이 시에 등장하는 팔이나 사기 컵, 해골 등에서 어떤 관념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의 언어들은 가상현실의 영상 속에서 캐릭터의 구실을 하는 도구(재료)이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그래서 ”내 팔“ ”돋아난 팔“ ”사기 컵“ ”해골“ 그리고 사기 컵을 깨뜨리는 행위와, 사수하는 행위, 깨어진 것은 사기 컵이 아니라 자신의 해골이었을 것이라는 시 속 화지(나)의 진술은 시의 공간을 확장하고 탈-관념의 가상공간을 만드는 디지털 시의 원소(元素)가 된다. 그리고 이 시에 의미공간을 여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 공간 속에는 독자들의 다양한 상상이 수용된다. 오남구는『이상의 디지털리즘』에서 “사기 컵은 해골과 흡사하다. 시각적으로 흰색과 빛나는 모양이 있고, 내용적으로 물을 담고 관념(생각)을 담는 유사성이 있다.“라고 하면서 ”깨뜨려진 것은 사기 컵과 흡사한 관념의 해골(환상)일 뿐, 집착하고 있는 손에 \"실제 꼭 쥐고 있는 컵(고정관념)은 깨어지지 않고 해탈하지 못한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의 해석은 이 시가 감추고 있는 숨은 의미에 근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그런 해석은 독자로서의 일방적인 해석일 뿐, 다른 해석이 나올 여지는 언제나 남아있다. 이 시에서도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시의 내용(시인의 심리현상 등)이 아니라, 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탈-관념의 이미지다. 그것이 이 시에서 발견되는 디지털적인 요소다. 나, 문덕수 시에 나타난 디지털적 요소 빨간 저녁놀이 반쯤 담긴 유리컵 세 개. 횅하니 열린 문으로는 바람처럼 들어닥칠 듯이 차들이 힐끗힐끗 지나간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속에 재떨이는 오롯이 앉아 있었다. 열린 문으로는 서 있는 한 사나이, 길 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 서 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 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그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금 밖으로 밀려나 금박金箔의 청자 담배와 육각형성냥갑이 앉아 있고 그 틈새에 조그만 라이터가 발딱발딱 숨을 쉬고 있었다.          ------문덕수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 전문  문덕수의「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에서도 디지털의 특성을 찾아낼 수 있다. 그 단서는 “빨간 저녁놀이 반쯤 담긴/유리컵 세 개.”와 “열린 문으로는/서 있는 한 사나이, /길 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서 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에서 발견된다. 이 장면은 어떤 의미에 감염되지 않은 탈-관념의 영상언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시인의 의식이 만들어낸 가상현실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의 최소 단위들 “빨간 저녁 놀, 재떨이, 유리컵 세 개, 라이터 ,청자 담배. 육각형 성냥갑, 한 사나이 등”은  분리와 합성이 가능한 집합적 결합이라는 것. 그리고 독자적 기능을 가진 교환 가능한 구성 요소(모듈)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재떨이를 물주전자로, 라이터를 핸드폰으로, 유리컵을 사기 찻잔으로, 청자 담배를 신문지로 변경시키고, 사나이를 20대 젊은 아가씨로 바꾸어도 시의 성립에 영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이 시에 등장하는 소재에는 어떤 관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의 가상현실은 순수한 이미지로 이루어진 생동하는 사물성의 공간되고, 독자들의 상상과 의미 붙이기가 무한정 허용되는 세계로 확대된다. 그러나 이 시는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시제1호(詩第一號)보다 독자의 상상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다. 그 까닭은 이 시는 현실세계에서 직접적으로 샘플링(sampling 견본추출)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계의 자료들은 아날로그에서 샘플링 된 자료다. 샘플링의 방법은 1차적인 방법과 2차적인 방법으로 구분된다. 1차적인 방법은 직접 현실세계를 사진 찍듯이 하는 샘플링 방법이고 2차적인 방법은 추상적인 상상을 통해서 샘플링 하는 방법이다. 이 때 1차적 방법은 독자가 들어갈 시적공간은 제한되지만 현실과 현장이라는 생명의 감각에 더 접근되어 있어서 정서의 표현이 살아난다. 이에 비해서 2차적인 방법은 추상적인 상상의 공간을 무한대로 펼치면서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열어놓아서 독자가 들어 갈 수 있는 시적 공간은 무한히 넓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성의 세계는 현실적인 생명감각에서 멀어지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의 조작성이 쉽게 드러난다. 따라서 시의 정서도 조작된 정서가 된다. 문덕수의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은 1차적 방법에 해당하는 시이고,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시제1호(詩第一號)는 2차적 방법에 해당되는 시라고 판단된다. 4. 디지털 시의 성립과 조건 가. 디지털 시의 개념과 근거  디지털(digital)의 특성과 디지털 시대의 문화감각을 현대시에 흡수하여 언어표현의 방법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사유와 감각과 감성의 영역을 열어 보이는 것을 <디지털+시> 즉 디지털 시라고 개념정의를 하고, 디지털적인 시각, 사유, 지각, 감성, 정서, 언어 등을 망라하고 통합하여 하나의 문예사조로 승격시킨 것을 디지털리즘이라고 이름붙이기를 해 본다.(2003년 「디지털리즘」1집에서 오진현 시인이 디지털리즘 선언을 함)  그런데 디지털 시의 성립에서 짚고 넘어야 할 문제는 디지털의 특성과 시가 결합할 때, 디지털 시는 기성의 시와 어떤 차별성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의 성립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아날로그 시(디지털 시에 대응하는 시로 기성의 시를 의미함)나 디지털 시나 공통적인 것은 시의 현실은 현실자체가 아니고 샘프링(sampling 견본추출)된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원래, 현실 그 자체에서 벗어난 가상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샘플링이나 가상현실은 디지털 시만의 특성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디지털 시의 특성은 기성의 시와는 다른 표현방법에서 찾게 된다.  그래서 디지털 시는 탈-관념을 기본조건으로 하는 분리와 합성이 가능한 언어단위들(unit)에 근거(根據)를 두게 된다. “탈-관념은 글자 그대로 관념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관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대상의 의미”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대상에 대한 지각(知覺)을 감지와 인식(의미형성 이전의 의식의 분별작용)의 단계에서 멈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표현에서 대상에 대한 어떤 감정이나 판단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즉 감정, 판단, 배경의미의 유보를 뜻한다. 그것은 지각(知覺)을 사고(思考) 이전의 단계로 내려서 순수인지(純粹認知)의 세계로 낮추는 것이다. 이 때 대상은 그가 태어날 때의 상태로(원래의 상태)돌아 가게 되고 그것을 인식하는 인식주체들은 대상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탈-관념에서는 꽃은 식물학적인 꽃으로, 길은 도로의 의미로, 숲이나 나무도 자연 그대로의 숲이나 나무로 인식되고 표시된다. 여기에 관념의 표현 방식들 -상징, 암시, 풍자 등-은 발붙일 수가 없다. 이렇게 사물에 붙어있는 의미가 다 벗겨져서 의미(관념)의 제로 포인트로 돌아가면 어떤 의식현상이 생길까. 그런 상태에서 시인들은 무엇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다. 그것은 시인들이 원시상태의 인간으로 돌아가서 사물을 접촉하는 것과 같다.“ (심상운 「탈관념 시에 대한 이해」2006, 8 월간 <시문학>)  이런 무의미의 탈-관념 언어들이 디지털 시의 근거가 되는 이유는 디지털 시가󰡐���의미의 예술󰡑���(최재서「문학원론」)이라는 종래의 시론에서 벗어나 순수한 영상언어의 시가 되기도 하고, 시의 공간을 확장시키고, 한 편의 시가 하나 또는 몇 개의 언어단위로 표현되면서 통사적 원칙에서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연극이나 영화의 연출자 같은 위치에서 이미지의 변형과 다시점의 세계가 들어 있는 미완성의 시(설계도)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그들이 시를 완성시키는 주체가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의 원형은 1930년대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의 (시제1호)와 1950년대 조향의「바다의 층계層階」에서 발견된다. 나, 디지털 시의 표현 방법   이런 원칙을 기본으로 할 경우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시의 새로운 표현방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게 된다. 그 중 첫 번째의 방법은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시제 1호)에서 구현된 독특한 추상화 기법이다. 탈-관념된 언어 단위들을 사용하여 시인이 상상한 현실의 추상화를 그려서 보여주고 작가의 개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져 주는 시의 기법은 디지털적인 구조에 맞는 기법이다. 특히 시 속에 시인이 창조한 캐릭터를 등장시켜서 어떤 동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언어의 환상적인 면(언어유희)에서도 새로운 감각과 상상을 창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두 번째 방법은 염사와 접사의 방법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염사와 접사는 현실이 반영(反映)된 마음속의 직관상을 사진 찍 듯이 찍는 것이기 때문에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적 샘플링 기법이 된다. 염사는 직관을 통해서 내면에 잠재된 대상을 드러내는 방법이고, 접사는 외면세계에 대한 직관과 시각적인 접근을 통해서 원근법을 깨뜨려버리고 대상의 실상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이 염사와 접사는 병적인 망상(妄想)이나 터무니없는 환상(幻像)과는 구별된다. 염사와 접사는 선적(禪的)인 의식 즉 고도의 집중된 정신의 현상 속에서 발생한 투명한 의식의 그림이다.  세 번째의 표현 방법은 사물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서 사물성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사물과 사물의 충돌, 사물과 사물의 융합 등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이런 사물성의 이미지 세계는 사물성의 감각을 포착하여 직관의 영상으로 떠올리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시는 사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반영(反映)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시가 된다.  네 번째 표현방법은 대상의 순간적인 포착과 포착된 영상자료들의 변형으로 상상의 세계를 확대시키는 이미지의 세계다. 이것은 디지털 시의 독특한 표현방법이 된다. 이 때 시인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공감각 등을 융합하여 감각의 통합적인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이런 감각의 통합은 디지털 언어의 감각이 된다.  이 네 가지의 표현방법의 중심에는 샘플링 된 현실이 들어 있다. 샘플링 된 자료(이미지)는 하나의 독립된 단위를 형성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단위들의 결합이나 연결 방법이다. 아날로그 시는 대부분 관념 또는 사유의 연속적인 연결(인과관계)방법을 선호한다. 그것은 논리적인 연결로 의미(관념)와 정서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보다는 감각이나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더 중점을 두는 디지털 시는 단위와 단위의 연결을 “집합적 결합”으로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 탈-관념된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아날로그의 연속적인 것에서 디지털의 불연속 적인 것으로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공간과 공간의 마주보기, 시간과 시간의 마주보기와 뒤섞이기가 가능해진다. 그것은 이미지를 컴퓨터의 그래픽처럼 임으로 결합하기도 하고 합성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이미지의 분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언어 단위들 사이에는 간섭(干,interference) 과 잔상(殘像, afterimage) 현상이 발생하여 아날로그 시와 같은 효과를 구현한다. 이러한 결합은 단위의 조합을 바탕으로 운용되는 디지털의 성격과도 부합된다.  따라서 디지털 시는 컴퓨터의 모듈과 같이 시의 언어단위를 독립적인 단위로 인정한다. 그것은 위에 제시한 시인의 추상적인 현실 이미지, 염사․접사, 사물성의 이미지, 영상자료의 변형으로 포착하는 감각 등이 그 자체로 한 편의 시(하나의 시스템)를 형성하기도 하고 집합적 결합을 이룬 종합적인 구조의 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집합적 결합은 “대상의 결합이나 구성방법의 종류를 다양화할 수 있고, 구문과 비구문, 의식․무의식의 경계와는 관계없이 시의 구성 영역의 공간을 무한히 넓힐 수 있다.”(문덕수-「문덕수 시전집」“나의 시쓰기-물리주의와 집합적 결합”에서)   디지털 시에서의 언어단위(단어, 문장)의 집합적 결합과 컴퓨터프로그래밍의 모듈은 서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 유사점의 첫째는 그들이 모두 독립된 단위로 되어 있다는 것. 둘째는 독자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상호 보완적 생산기능(현대시에서는 이미지, 감각, 정서의 조화)을 한다는 것. 셋째는 교환 가능한 독립된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분리될 수도 있고 작가(프로그래머)의 의도대로 임의로 변경할 수도 있다는 것. 넷째는 모듈화 된 시의 구문들은 작가의 의도성에서 이탈하여 그 스스로 독립된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다가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 모듈화 된 언어단위의 독자적인 방향성(상상작용, 영향력)은 작가도 예측하기 어렵게 된다. 그것은 모듈의 특성인 객체지향성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의 모듈화라는 기능성(機能性)을 부가하게 된 현대시의 디지털적 구성(집합적 결합)은 시의 공간을 무한히 넓히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이 모듈의 객체지향성은 현대시의 구조를 새롭게 하고 현대시의 성격과 형태를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다음은 디지털 시의 정서다. 디지털은 정서나 감각의 변화가 아니고 기법의 변화이기 때문에 아날로그적인 정서와 감각에서서 멀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디지털 시는 아날로그와는 구분되는 독특한 정서를 드러낼 수 있다. 샘플링 된 현실은 사실이 아니고 마음 속 화면에 반영(反映)이 되어서 나타난 현실의 일부분이다. 그 반영 속에는 시인 자신의 의식(관념)의 그림자가 들어있다. 그래서 그것을 순수한 탈-관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실과 밀착된 마음의 영상은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디지털의 생동하는 감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현실이 생동하는 감각은 추상적인(현실이 제거된) 증류수(蒸溜水) 같은 정서가 아니라, 현실이 밑바닥에 가라앉은 지장(地漿-黃土水) 같은 정서가 된다.   다시 말하면 디지털 시의 정서는 샘풀링의 과정을 거쳐서 재생 될 때 이미지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관념의 위로 솟아올라온 지장(地漿-黃土水) 같은 맑은 정서다. 따라서 시의 밑바닥엔 관념의 그림자가 남는다. 그래야 인간적인 시가 탄생할 수 있고, 그 시에 담긴 정서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는 기능을 가진 맑은 정서가 될 수 있다. 자연을 소재로 했을 때 디지털 시는 관념이 가라앉은 후에 떠오르는 맑은 향기 즉 원래의 자연향기를 풍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정화된 상태의 자연 본연의 향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굳이 정서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샘플링의 과정을 거쳐서 재생되는 탈-관념의 디지털 시의 정서는 독자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정화시키는 힘을 드러낸다. 그러나 추상적인 상상을 통한 간접적인 샘플링의 방법으로 구성된 디지털 시에는 증류수(蒸溜水) 같은 정서가 생길 수도 있다.  다. 디지털 시의 조건  디지털 시의 새로운 표현방법의 모색에 전제되는 조건은 디지털 시는 시 본래의 특성(아날로그의 특성)을 훼손시키지 않아야 하며 보통의 시와 같이 읽히는 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가 실험시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서 감각만이 아니라 시가 사유와 정서의 표현이라는 일반적인 시의 조건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시가 일반적인 시와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은 고도의 디지털 그림(동영상)이나 음악의 감각이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디지털 시의 근원(기본원칙)과 전제조건을 만족시키고 디지털 시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디지털 시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을 열 가지로 구분하여서 다음과 같이 정한다.  1) 디지털 시는 분리와 결합이 가능한 탈-관념의 언어 단위(unit)를 기본으로 한다. 언어 단위의 결합은 집합적 결합을 근간으로 한다. 따라서 그 언어 단위는 독자적 기능을 가진교환 가능한 구성요소 즉 객체지향의 모듈(module)화가 이루어 질 수도 있다.(예시작품: 문덕수의「꽃잎세기」,오남구의「푸른가시짐승-빈자리x.3」,심상운의「빈자리-낮12    시25분」)  2) 디지털 시는 탈-관념의 언어 단위(unit)를 기본으로 하지만 탈-관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인지단계의 관념은 수용한다. (심상운「탈관념 시에 대한 이해」2006, 8 월간 <시    문학>참조)  3) 디지털 시는 현실을 직접 샘플링(1차적 방법)한 자료로 생성된 시와 추상적(2차적인 방법) 샘플링을 통해서 구성된 시로 구분한다. 그러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디지털 시에는 샘플링(sampling견본추출)된 현실세계가 극소화될 수도 있다.  4) 디지털 시는 사물성의 순수 이미지를 중요한 요소로 한다. 사물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서 사물성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사물의 순수 감각을 드러내고 사물의 충돌과 융합 등을 보여주는 방법은 디지털 감각과 영상언어의 산실이 된다. 이러한 영상언어는 문덕수의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5) 디지털 시는 샘플링(sampling 견본추출)하는 과정에서 탈-관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을 아날로그의 노이즈(noise 잡음) 제거라고 한다. 그러나 시인의 심리적 현상과 관념의  찌꺼기가 남는 것은 허용한다. (예시 작품: 심상운의「검은 기차 또는 흰 비닐봉지」)  6) 직관을 통한 염사와 원근법을 깨뜨리고 실상에 접근하는 접사는 디지털 시의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샘플링의 방법이다. 따라서 더 많은 방법들이 원용될 수 있다. (예시 작품 :오  남구의 「밤비」)  7) 디지털 시의 정서는 현실이 제거된 증류수(蒸溜水) 같은 정서와 현실(관념)이 밑바닥에  가라앉은 지장(地漿-黃土水) 같은 정서로 분류한다. 증류수 같은 정서의 대표적인 작품은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의 (시제1호), 지장(地漿-黃土水) 같은 정서의 시는 송시월의 「입춘무렵」을 예시작품으로 들 수 있다.  8) 디지털 시는 단일한 시점과 감각과 정서만 고집하지 않고 다시점, 다감각, 다정서의 통  합된 감각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아날로그의 연속적인 개념에서 디지털의 불연속적인 개념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과 공간의 마주보기, 시간과 시간의 마주보기와 뒤섞이기도 시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 이런 감각의 다층구조의 예시작품으로는 오남구의 「경운동 88번지로 간다-염사」를 들 수 있다.  9) 디지털 시는 작가(시인)가 만들어낸 완성품의 시에서 벗어나 독자가 참여하여  각자의  사고와 인식과 감정과 감각이 들어가서 만들어 내는 독자 참여의 열린 시를 지향한다. 그 바탕에는 텍스트로서의 문학작품의 완성은 독자의 수용이라는 소통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판단하는 20세기 독일의 수용미학(受容美學, Rezeptionsasthetik)이 들어있다. 이 때 시인은 시의 설계도를 제시하고 그것의 자유로운 변형을 보여줌으로써 독자 참여를 유도하는 연출자가 된다.<예시작품: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의 (시제 1호)>  10) 디지털 시의 이미지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지향한다. 그래서 꿈틀거리면서 움직이면서  계속 변화하면서 살아있는 가상현실의 감각을 독자에게 전해야 한다. 그 가상현실은 환상도 되고 꿈도 되지만 현실의 절실한 감성과 정서를 전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움직이는 이미지의 예시작품으로는 오남구의「달맞이-데몬스트레이션」을 들 수 있다.  이 열 가지의 조건은 한 작품 속에서 서로 조화로운 비중으로 구현될 수도 있지만 한두 가지의 조건만으로도 작품을 형성할 수 있다. 라. 예시 작품에 대한 디지털적 독해(讀解)  다음은 <가. 디지털 시의 개념과 근거>와 <다. 디지털 시의 조건>에서 예시작품으로 거론된 시에 대한 디지털적 독해다. 예시된 시들은 탈-관념의 세계를 보여주는 1950년대 한국의 초현실주의 시와 2000년대 이후 디지털 시의 방법론을 의식하고 쓴 작품이다. 그래서 앞에 제시한 열 가지의 조건(방법)에 대입하여 디지털 시의 가능성을 진단해보고 새로운 감상과 해석의 길을 열어보는 것은 실제의 창작을 위해서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낡은 아코오딩은 對話를 관 뒀습니다. ----여보세요! <뽄뽄다리아> <마주르카> <디젤․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란 기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조향「바다의 층계(層階)」전문    1950년대 한국의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이 시는 시가 “의미의 예술”(최재서「문학원론」)이라는 종래의 시론에서 벗어나서 탈-관념의 순수한 영상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불연속적인 각 연의 언어들은 집합적 결합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시의 각 연은 서로 독립적인 관계 즉 객체지향성(모듈)을 드러낸다. 그것은 시인이 연극이나 영화의 연출자 같은 입장에서 독자에게 “보여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5연 <모래밭에서/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는 통사적 구문에서 벗어난 시의 한 형태를 보여주면서, 단위(단어, 구문)들의 충돌과 간섭을 통한 감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전체적 면에서 구성이 산만하다. 그 원인은 이 시에 숨어 있는 시인의 의식(의도)이 시 전체를 통제(관통)하지 못한 때문인 것 같다. 마을을 덮은 코스모스 덤불 아무거나 한 송이 골라 꽃잎을 열심히 세어 본들 나비처럼 머무를 수야. 대추나무 밑동을 감고 한창 뿌득뿌득 기어오르고 있는 나팔꽃 푸른 것은 깔때기 모양 흰 것은 나팔주둥이 한 잎 두 잎 세 잎 네 잎 다섯 여섯 세어보지만 실은 한 송이일 뿐이다. 돌담을 돌자 앞장선 나비는 오간 데 없고 순하고 야들야들한 연보라 무궁화꽃 그 한 송이의 여섯 개 꽃잎을 확인한들 내 어쩌랴 어쩌랴. 해바라기는 서른네 개의 황금 꽃잎을 둥글게 박고 들국화는 서른아홉 개로 쪼개진 보랏빛을 빽빽이 둘렀거늘 내 어찌 머무를 수야. -------문덕수「꽃잎세기」전문     분리와 결합이 가능한 디지털 시의 탈-관념된 언어 단위(unit)들은 결합을 통해서 대상의 모습(현상)을 드러내지만 분리(해체)를 통해서 존재의 본질을 확인하게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나팔꽃은 여섯 잎, 무궁화꽃 여섯 잎, 해바라기 서른 네 개의 꽃잎, 들국화 서른아홉”이라고 대상을 구성하는 작은 부분들을 분리하고 숫자화 함으로써 색(色)과 공(空), 결합과 분리의 경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구상적인 자연현상을 추상적 디지털 언어로 환원하는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문덕수는 이러한 시적 형상의 방법론을 그의 시론 「나의 시쓰기-물리주의와 집합적 결합」에서  “사물이나 대상 하나하나를 1,2,3,4,5.......와 같은 추상적 기수(基數)로서 개개의 구체적 특성을 추상화할 수 있고, 추상된 그 대상을 결합하여 한편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을 나는 역시 인접학문의 용어를 빌어서 “집합적 결합”이라고 명명해둔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통찰은 디지털을 형성하는 수리적(數理的) 데이터의 의미 즉 디지털의 최소의 단위의 개념을 인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이 시는 디지털 시의 본질인 단위의 분리와 결합의 원리를 보여준 시라고 판단된다. 이 시에서 ”나팔꽃, 무궁화꽃, 해바라기, 들국화“는 디지털 시의 구조를 형성하는 부분 단위(module)가 된다. 간밤, 회색담장 \"회색\"을 헐고 푸른울타리 \"푸른\"을 세웠다. 반짝이는 인동의 사금파리\"반짝\"을 빼고 가시장미\"가시\"를 올 렸다. 갑자기 \"푸른가시 \"짐승이 나와서 달빛을 갈갈이 찢고 온 밤을 으르렁댔다. 다시 \"푸른\"을 밀고 가시장미 \"가시\"를 내리고 비워 둔 빈자리 x. 아침, 울타리에 구름 한 쪼각 앉아서 쫑긋 꼬 리를 들었다가 사라진다.  --------오남구「푸른가시 짐승 -빈 자리x.3 」전문  이 시의 중심점은 빈자리 x의 무한한 변신이다. 빈자리에 무엇이 채워지느냐에 따라서 감각과 상상의 세계가 바뀐다. 이렇게 바뀌는 것(분리와 결합)이 탈-관념된 디지털 단위들의 특성이다. 만약 어떤 고정된 의미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면 감각과 상상의 변신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변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탈-관념된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꾸벅꾸벅 졸던 중년 여인이 빠져나간 빈자리에 노란 꽃다발을 들고 앉은 꽃무늬 스카프의 아가씨 두 꽃의 향기가 흥건하던 자리에 머리에 무스를 바른 청년이 앉는다 그의 핸드폰이 뿜어내는 경쾌한 소리 순간, 나는 조금씩 발을 들썩이고 파랗게 살아나는 오래된 바다 흰 목덜미의 그녀는 노란 유채꽃 밭을 뛰어가고 있다 그가 훌쩍 일어서서 나간 뒤 하나의 공간으로 돌아간 진홍빛 우단의 빈자리 그 위로 눈부신 햇빛과 신록新綠의 그림자가 번갈아 앉았다가고 낮 12시 25분 전동차 안은 계속 섭씨 20도의 환하고 푸른 공기 속에 있다        ------ 심상운 「빈자리 -낮 12시 25분」전문        이 시도 오남구의「푸른가시 짐승 -빈자리x.3 」같이 빈자리 즉 최소 단위(unit)의 변화에 따라서 바뀌는 감각과 상상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전동차 안의 풍경과 감각, 시인의 상상이 생동하는 느낌을 풍기고 있다. 그것은 이 시 속에서 언어 단위들의 집합적 결합이 만들어내는 디지털적인 감각의 흐름이 시의 저변을 흐르는 시인의 의식과 조화를 이루어 이미지의 생명력을 형성하는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驛 승강장엔 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는 표지판이 쓰러져 있다. 그가 쏟은 핏덩이가 시멘트와 자갈에 묻어 있다. 역무원들은 서둘러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검은 기차를 타고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가 타고 간 기차의 빛깔을 파란 색으로 바꾸었다. 그때 어두운 바닥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먼지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가 안고 간 눈물의 무게는 몇 킬로그램이었을까?) (그는 드디어 눈물이 없는 세계를 발견한 것일까?) 2006년 7월 21일 오후 2시 23분 서울 중계동 은행 사거리 키 6m의 벚나무 가지 위로 하얀 비닐봉지 하나가 날아간다.     -----------심상운 「검은 기차 또는 하얀 비닐봉지」전문  이 시는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접사와 염사를 통해서 샘플링한 시다. 샘플링 하는 과정에서 사건은 단순화되었으며 탈-관념이 되었다. 그러나 “검은 색과 푸른 색, 하얀 색”의 색채가 의미하는 관념과 “눈물”이라는 관념의 찌꺼기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남아서 시의 정서가 되고 있다. 그 정서형성의 원리 속에는 디지털 시에서도 관념의 완전한 제거는 시를 성립시키는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과 인지단계의 관념은 오히려 디지털 시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이 시에서도 장면의 변화는 내면적인 의식의 흐름과 디지털의 감각과 상상을 표현하는 중심이 된다. 그리고 단위들의 집합적 결합이 간섭(干涉, interference)과 잔상(殘像, afterimage)을 통해서 이미지 형성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깊은 밤, 내 몸은 몇 칼로리의 짐승이 불을 켠다. 빗소리가 깊게 깊게 몸 속을 지나가면서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깜박 깜박이는 신경 어디쯤일까 새파란 의식이 불을 켜고선 키 큰 미루나무가 선 밤비 속 짐승, 환하게 떠올랐다 캄캄하고 바람 몇 칼로리의 그리움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흔든다. ----------------오남구 「밤비」전문  이 시의 중심은 직관을 통한 잠재의식(潛在意識)의 샘플링이다. 그 잠재의식 속에는 현실이 들어 있다. 그것을 염사와 접사로 나누면 잠재의식 쪽에 더 가까운 것을 염사라 하고 현실 의식 쪽에 가까운 것을 접사라고 한다. 염사와 접사는 대상을 사진 찍 듯이 순간적으로 받아들여서 이미지로 재생하는 샘플링의 방법이다. 이 기법은 디지털 시의 기본적인 표현 방법이다. 이 기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집중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시에도 비 오는 밤에 시인의 잠재의식 속에 떠오르는 영상들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의식의 에너지가 들어있다.   햇살에 찔린 잔설 한 토 막, 눈물을 흘린다 몸 트는 나무 가지에 마른 풀잎에 반짝 띄우는 문자 메시지 “곧 진도 7도의 진통이 일 것임” 눈이 푸른 휘파람새 한 마리 느닷없이 한참을 기우뚱이는 내 머리 위로 휘이익-푸른 선율을 그으며 날아 간다 온 몸이 간지럽다   -------송시월 「입춘 무렵」전문  이 시에는 디지털적인 감각과 정서가 선명하게 들어난다. “곧 진도 7도의 진통이 일 것임”에 들어 있는 감각은 디지털적인 명료한 감각의 표현이다. 디지털에서 핵심이 되는 구성요소는 정수로 표시되는 최소의 단위들 즉 수리적(數理的) 데이터다. 이 데이터는 디지털 시에서 아날로그 시보다 현장의 감각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탈-관념된 언어단위가 된다. 이와 함께 휘파람새의 순간적인 움직임은 장면 변화의 동영상이 되고 있다. 그것은 디지털 시의 투명한 의식과 맑은 정서의 단면(斷面)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기법이다.  461120-10675xx吳鎭賢  2002년 12월 29일 57세로 살아 있음.  빨간 싱호등이 켜졌다가 파란 신호등이 켜졌다. 뇌세포의 신 경체계가 잘 유지된다. 오늘 경운동 88번지에 도착할 시간 10분 남았고, 잠깐 내 모습의 환영, 팔순 노구가 앞을 멈칫멈칫 가다가 쉰다.  말없이 손을 내밀어 잡는다. 이 때 번쩍 뇌세포에 녹화된 화면 이 켜진다. 2002년 12월 24일 밤, 행렬이 거리를 넘친다. 징그러 징그러 노랫소리 질퍽하고, 한 목사가 하늘에서 돈뭉치를 뿌린 다. 파란 만원짜리 지폐들 낙엽처럼 날리고 한 무리 병들고 나약 한 노구들이 돈을 향해 허우적허우적 아우성친다.  띵-, 붉은 등이 켜진다. 다시 󰡐���복제인간 아기 탄생!󰡑���화면이 겹 친다. 몸이 떨린다. 쾅!쾅!쾅! 맥박이 가슴친다 숨이 가빠지고 정 신이 없다 인내천 인내천 소리치고 숨을 고르면서 경운동 887번 지로 가는 탈출구를 찾는다. 쏴아-.싸늘한 바람, 번쩍,5번 출구의 표시등이 켜졌다. 침략으로 점멸하기 시작 하는 신호,→⑤번 출구, <⑤수운회관이 깜박⑤수협중앙회로 바 뀌었다가 깜박⑤수운회관으로 바뀌었다가 깜박⑤아랍문화원으 로>바뀐다.  시련의 점멸하는 이름 동학 수운, 화살표를 바라보며 내 신호 체계가 경운동 88번지로 간다.  -------오남구「경운동 88번지로 간다- 염사」 전문  이 시는 다시점, 다감각, 다정서의 통합된 감각의 세계를 디지털적인 순간순간의 변화로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 다층구조의 감각과 이미지는 팔순노구→ 목사가 하늘에서 뿌리는 파란 만원짜리 지페→미래의 내 모습의 환영인 노구들의 허우적거리는 아우성→복제아기의 탄생의 화면이 겹치는 장면에서 발생한다. 시인은 시공을 이동하며 잠재의식과 현실의식 속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겹쳐져서 나타나는 화면을 생생하게 사진 찍 듯 찍어내고(염사) 있다. 그것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몇 분 사이의 사건이다. 이런 디지털 시의 감각은 하나의 미디어 안에서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 데이터의 다양한 요소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저장, 전달, 재생하는 디지털적 감성통합과 맥을 같이 한다. 1. 공이 뛴다. 점점 높이 뛴다. 점점 더 높이 뛴다. 빌딩 콩크리트를 뚫고 공은 온전하고 깨끗이 뛴다. 파란 하늘이 젖어 내리고 젖어 내리고 별이 된다. 2.  공이 뛰어간다. 집밖으로 뛰어간다. 퐁퐁퐁퐁 가로수를 심고 간다. 대낮 어린이 놀이터에서 심심하다. 햇빛이 폭포수를 쏟아 내고 퐁퐁퐁퐁 계단을 올라갔다. 3. 공이 자유롭다. 횡단보도에서 매끄럽게 섰다가 파란 불을 보고 지나간다. 하나하나 가로수에 황혼의 공을 놓는다. 잘 익은 공이 가슴마다 박힌다. 길이 향기롭다.      -----오남구「달맞이-데몬스트레이션」전문  디지털 시의 특징은 운동 에너지의 발산이다. 이 동적 이미지는 꿈틀거리면서 움직이면서 계속 변화하면서 살아있는 가상현실의 감각을 독자에게 전한다. 이 가상현실은 흥미로운 환상도 되고 꿈도 된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투명한 의식 속에서 탄생한 공과 운동 에너지의 결합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상상이 만들어주는 시적공간이다. 만약 이러한 직관적인 감성을 언어가 아닌 빛이나 소리 등 다른 것으로 표현했다면 백남준 식의 비디오 아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경쾌한 리듬과 함께 공이 뛰어가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빌딩의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공은 퐁퐁퐁퐁 가로수를 심고 가기도 하고, 햇빛이 폭포수를 쏟아 내는 계단을  퐁퐁퐁퐁 올라가기도 하고, 횡단보도에서 매끄럽게 섰다가 파란 불을 보고 지나가기도 하고, 가로수에 황혼의 공을 놓기도 한다. 이런 자유롭고 재미있는 상상의 전개는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무한한 자유를 얻는다. 이 시의 언어들은 탈-관념의 언어들이라는 점에서 디지털의 정수로 된 수리적 데이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5. 나가는 글-디지털 시의 미래    이제까지 “21세기 현대시의 길 열기”라는 주제의 중심에 “디지털 시”를 세우는 작업을 하였다. 21세기의 의사소통 방식은 디지털 형식으로 바뀌었고, 디지털 문화를 향유하는 세대가 시대의 핵심동력(核心動力)이 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 현대시의 방향을 디지털 시대의 문화감각에 맞추어 탐구하는 것은 시대적 당위성을 갖는다.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는 디지털 시의 근원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1950년대의 조향의 초현실주의 시와 문덕수의 탈-관념의 사물성의 시도 디지털 시의 존재성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그 시들의 감각과 시에 대한 인식의 근본이 현대 컴퓨터의 디지털 특성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의 핵심부분 <가. 디지털 시의 개념과 근거>, <나, 디지털 시의 표현 방법>, <다. 디지털 시의 조건>은 순수한 독창적 것이 아니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산물이다. 다시 말하면 이 글은 디지털 시와 연관된 재료들을 발굴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조합하여 구성한 21세기 디지털 시의 설계도인 것이다.  <나. 디지털 시의 표현 방법>과 <다. 디지털 시의 조건>은 미래지향의 시창작방법론이다. 예시 작품들은 디지털 시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작품의 완성도 보다는 실험적인 방법론에 더 비중을 두었다. 예술에서 완성이란 신기루(蜃氣樓) 같은 꿈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는 디지털의 특성을 시로 환원하여 21세기적인 새로운 시의 표현방법을 모색하는 시 운동이다. 현재 이 시운동은 출발선상(出發線上)에 서 있다. 그래서 이 작은 디지털 시 운동이 한국을 넘어서 세계화가 될 날을 기대해 보는 것은 지나친 자만(自慢)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시론은 21세기적인 감각과 의식이 생동하는 젊은 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1. http://itdic.daum.net/dicit//view_entry_list_by_category.do 2. http://itdic.empas.com/category/view.tsp/k17-10 3. 『컴퓨터 및 정보통신 용어 사전』 4. 문덕수 저 『문덕수 시전집』시문학사(2006,3,20) 5. 『한국 전후 문제 시집』신구문화사(1961,10,5)    416쪽 「데뻬이즈망」의 미학」-조향(趙鄕) 6. 문덕수 저 『니힐리즘을 넘어서』시문학사(2003,5,30)    183쪽~195 쪽 <이상론> 7. 임종국 편 『이상전집』문성사 (1968,9,15)405쪽 8. 오남구 저『이상의 디지털리즘』범우사(2005,4,15) 9. 오남구 편『디지털리즘-1집』글나무(2003,3, 15)    * 2006년 12월호 월간 <시문학>에 발표됨
16    동시에서의 이미지 작용(창작인 필독문장) 댓글:  조회:1154  추천:50  2008-09-27
  동시에서의 이미지 작용 이미지는 성인시이에서만 중요한것이 아니다. 이미지는 동시를 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이는 동시의 창조성을 살리고 동시의 언어를 새롭게 발휘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될 필수적인 방법이다.   동시에 이미지시 예술수법을 도입하면 동시의 현대적인 표현을 한층 풍부하게 할수 있고 내용의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높일수 있다. 우에서 성인시에서의 이미지수법을 많이 이야기하였으므로 동시에 대하여서는 아주 간단히 언급하고저 한다.   이미지는 변형으로 이룩되고 변형은 시적상관물로 이룩되고 시적상관물은 짝을 찾는것이고, 짝은 색깔, 모양, 움직임, 소리, 성질, 의인화, 령감의 물화등으로 설정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같은 방법으로 동시의 경우를 좀 살펴보기로 하자. 제1절    색깔로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것은 동시를 새롭게 좋게 쓸수있는 한가지 방법이다. 천차만별이 색깔은 천차만별의 시적상관물을 낳을수 있고 천차만별의 동시를 낳을수 있다.    동시 한수를 보자. 꽃밭   위영남 대낮에 장미꽃도 등불을 켜들고 푸른 꽃밭을 태웁니다 오뉴월 태양이 지구를 태우듯이 채송화 백일홍이 노란 등 빨간 등 켜들고 꽃밭 가득 환히 꽃밭을 태웁니다 소식 듣고 찾아온 범나비 한쌍 불타는 꽃밭을 둘러봅니다 뜨거워 뜨거워 앉았다가 날아보고 새로 타는 새불길에 마음까지 빨려들어 나래 접고 달콤한 꿈과 함께 탑니다 동시 <<꽃밭>>에서 시인은 장미꽃, 채송화, 백일홍이 빨간 노란 등불을 켜들고 꽃밭을 태운다고 한다. 그래서 날아온 범나비 한쌍도 불타는 꽃밭을 둘러보면서 <<뜨거워 뜨거워/ 앉았다가 날아본다>>고 하였다. 꽃밭에 불이 난것은 꽃들이 등불이 되었기 때문이다. 꽃이 어떻게 등불이 되는가? 꽃은 색깔에 의하여 꽃으로부터 등불로 변형되였다. 이때 등불은 꽃의 시적상관물로 된것이다.   이 동시에서 <<새로 타는 새 불길>>이란 시구는 새로 피여나는 새 꽃이란 뜻으로  씌여진것이다. 이만큼 해석하면 이 동시가 풀렸다고 할수 있겠다.    동시 한수를 더 보자. 단풍잎       리창건 빨간 노랑 단풍잎은 금붕어 바람 불 때마다 꼬리를 흔들거리며 헤염치는 금붕어 그럼 가을산은 금붕어로 가득한 강    이 동시에서 단풍잎이 어떻게 금붕어로 둔갑되였는가? 그것은 빨간 단풍이나 노란 단풍이 빨간 금붕어나 노란 금붕어와 색깔이 같기때문이라 하겠다. 그래서 단풍느 금붕어로 변할수 있는것이다. 그럼 가을산은 어떻게 강이 된단말인가? 단풍는 가을산에 있는데 그것이 금붕어로 되었으니 금붕어가 사는 곳은 물이여야 한다. 노란 금붕어 빨간 금붕어들이 헤염치는 곳이니 산은 그만 강물이 된것이다. 제2절 모양으로 이루한 변형 사물은 색깔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도 하고 모양으로 자신이 존재를 나타내기도 한다. 사물의 모양이 천만가지이다. 모양으로 변형을 이룩하여 동시를 쓰는것도 한가지 방법이라 하겠다. 사물과 사물의 모양을 비교하면서 시적상관물을 찾아쓰면 깜찍한 동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별바구니    방원조 련못은  별을 담는 바구니 밤마다 별들을 하나 가득 별애기도 하나 가득 별이 되는 생각도 하나 가득 담아두는 련못 꿈을 담는 바구니 그리움을 담는 바구니    방원조시인은 련못을 <<별을 담는 바구니>>라고 변형시키면서 깔끔한 동시 한수를 썼다. 어찌하여 련못이 바구니가 되는가가 여기서 문제이다. 련못도 모양이 둥그렇고 바구니도 모양이 둥그렇다고 할수 있다. 그러니 련못이 바구니가 된것이다. 시인이 밤을 설정하여 련못을 바구니라고 변형시킨것은 밤에 별들이 련못에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별들이 자연적으로 바구니에 담기게 되는것이 아니랴.    문삼석시인이 쓴 <<손톱깍개>>를  한수 더 보자. 손톱깍개    문삼석 손톱깍개는  앞이 두 대뿐이죠 앞이 두 개로 또각또각 먹지요 또각또각 앞이로 손톱도 먹고 또각또각 앞이로 발톱도 먹지요    이 동시를 읽어보면 손톱깎개가 앞이 두개라는것이 생동하고도 새삼스럽게 안겨온다. 시인은 앞이 두 개라는것을 손톱깎개의 모양을 보고 추출해내였다는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보아낼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시적상괌물으 설정한 다음 어떻게 전개시키는가 한는 한가지 방법을 알수 있다. 손톱깍개가 손톱을 먹는다는것으로부터 원사물과 가깝거나 관계있는 사물들과 시적상관물을 련계시키면 동시가 태여난다는 점이다. 즉 손톱깍개의 용도에 의하여 그와 관계되는 사물인 손톱과 발톱을 련계시킨것이다. 손톱깎개는 손톱과 발톱을 깎기 위하여 세상에 태여난 사물인것이다. 시인은 깎는것을 먹는다고 의인화하고 있다. 제3절 움직임으로 이룩한 변형    동시에서 움직임으로 변형을 이룩할수도 있다. 사물의 움직임은 사물의 생명운동이다. 움직임이 천만가지여서 움직임으로 시적상관물을 찾아 동시를 쓰는것도 천만가지의 동시 양상을 얻을수 있는 방법이 하나라겠다. 참새    윤동주 가을 지난 마당은 하얀 조이 참새들이 글씨공부를 하지요 째액째액 입을로 받아읽으며 두발로는 글씨를 련습하지요 하루종일 글씨 공부하여도 <<짹>>자 한자밖에 더 못쓰는걸    윤동주의 이 동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적상관물을 찾아서 쓴것이라고 하겠다.    우선 동시가 의인화의 방법으로 씌여졌다고 할수  있다. 참새가 애들처럼 공부를 한다는것이 그것이다. 두 번째로 <<가을 마당은 하얀 종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눈이 온 가을 마당을 색깔로 변형시킨 표현이다. 이런 표현들보다 더 중요한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움직임으로 시적상관물을 찾은것이다.    참새들이 눈 내린 마당에서 짹짹거리며 모이를 찾느라고 발로 눈을 파헤치는것을 <<글씨공부>>를 한다고 한것이다. 시인은 하루종일 공부하여도 <<<짹>자 한자밖에 더 못쓴다>>고 참새와 롱지거리를 하고있다.    다음은 최장길시인이 쓴 동시를 보기로 하자. 줄장미에 핀 아침           최장길 발알발 발알발 줄줄이 줄을 타고 기여간다 꽃게가 꽃게가 엉금엉금 아침을 밝히려 하나씩 해를 업고 하늘로  뛰여오른다 풍덩! 풍덩! 출렁이는  하늘에 드리워진 해들    시인은 줄장미꽃이 가득 피여난 아침에 줄장미꽃을 보고 이 동시를 썼다고 할수 있다.    우선 줄을 타고 올라가면서 피여난 장미꽃을 꽃게라고 했다. 두 번째로 색깔이라면 색깔, 모양이라면 모양으로 꽃을 헤로, 또 해로 둔갑시키였다. 그러니까 게해 해를 업고 영금엉금 하늘로 오른다로 하였다. 그런데 게는 바다가 아니면 강에서 사니까 하늘은 또 물이 되어 출렁인다. 띠염띠염 피여있는 꽃들은 풍덩풍덩 물에 뛰여든다고 하였다. 이 동시에서 변형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되여있지만 주선은 움직임인것이다. 이렇게 작사는 피여있는 줄장미꽃들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좋은 동시 한수를 창출하였다고 할수 있다. 제4절 소리로 이룩한 변형 세상에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잎소리, 말소리... 하여튼 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소리에 천착하여 시적상관물을 설정하여 동시를 쓰는것도 하나의 훌륭한 방법이라고 할수 있다.    시를 보기로 하자 귀뚜라미    김구연 따르르 따르르 비켜나세요 별님 달님 캄캄한  밤중에 귀뚜라미가  자전거를 탑니다   정말 깜찍한 동시라겠다.  처음에는 귀뚜라미가 우는가 하였더니 마지막에는 귀뚜라미가 <<자전거를 탄다>>고 하지 않겠는가. 엉뚱한 이미지를 끄집어내지 않았는가. 소리로 이룩한 변형의 아름다운 결정이 라고 하겠다.    귀뚜라미가 또르르 우는 소리는 자전거으 방울소리와 비슷한 점이 없다고 할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귀뚜라미가 자전거를 탄다고 하였으리라. 시인이 밤을 배경으로 동시를 쓴것은 밤이면 귀뚜라미가 울기때문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밤에 자전거를 타니까 달과 별을 피하라고 한 시인의 상상은 환상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내물   유경환 내물이 손풍금치며 흘러간다 도레미 도레미 노래한다 노래도 내물처럼 흘러간다 쏠라시 쏠라시 노래한다 언젠가 노래를 멈춰야 할것을 내물은 멀잖아 알게 되리라    한마디로 잘 된 동시다.  내물이 어찌하여 <<손풍금치며 흘러간다>>고 하게 되였는가가 문제이다. 이것은 소리로 시적상관물을 찾은것이다.  물론 내물의 소리와 손풍금소리는 비슷하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내물은 흐르며 소리를 내고 손풍금은 치면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소리를 낸다는 의미에서 시인은 내물을 손풍금이라고 하였으리라. 소리로 변형을 이룩하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겠다. 한가지는 한소리를 다른 소리로 옮겨놓는 방법이고 다른 한가지는 한소리를 다른 한 사물로 옮겨놓는 방법이다. <<귀뚜라미>>는 후자에 속한다고 할수 있고, <<내물>>은 전자에 속한다고 할수 있겠다. 제5절 속성으로 이룩한 변형 속성을 특성이나 성질이라고 할수도 있다. 사물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고 이 속성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속성의 다양성은 이루헤아릴수 없이 많은 것으로 알고있다. 이러한 속성을 리용하여 사물을 변형시켜 시적상관물을 설정하여 동시를 창작하는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색깔이나 모양, 움직임은 눈으로 볼수 있지만 속성은 시각으로 볼수 없는추상이다. 또 귀로 들을수 있는 소리와도 달리 들을수도 없는것이 속성이라겠다. 속성은 마음의 감각이며 추리된 관념이지 오관을 통하여 반영되는 감각이 아니다.     동시 한수를 보자 우리 선생님      김운일 우리 선생님 털빛 고운 자상한 암탉 암탉이  어린 병아리들을 키웁니다 꼬꼬 꼭꼭꼭 말하면서 어린 병아리들과 숨박꼭질을 하면서 다정한 친구가 됩니다 ...................... 털빛 고운 자상한 암탉이 마당을 돌아다니면 병아리들이  쫄쫄 따라다닙니다 우의 시에서 4, 5, 6련을 삭제하였다. 4, 5, 6련은 암탉이 병아리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것이며 먹이를 주는것이며 비가 오면 병아리들을 품어주는것이며를 쓴것이다.    이 시에서 중요한것은 암탉이 어떻게 선생님으로 , 선생님이 어찌하여 암탉으로 되느냐이다. 이것은 사물의 성질로부터 착안하여 시적상관물을 설정한것이라겠다.    암탉이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모이찾기, 모이쫏기, 비가 오면 피하기 등등여러가지를 배워주는것이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노래를 배워주고 생활을 가르쳐주며 주며 키우는것을 비겨보면 별로 큰 차이가 없기때문이라고 단정할 수가 있겠다.    김진태시인이 쓴 동시 한수를 더 보자. 온실   김진태 봄은 큼직한 온실을 만들었다 집보다도 공원보다도 산보다도 더 큰 온실이다 유리로는 덥개를 할수 없다 하늘도 파아란 뼁끼칠한 하늘로 덮었다 때맞추어 물을 준다 새순이 상하지 않게 고이고이 보슬비를 내린다 싹이 튼다 촉이 솟는다 아가도 덩달아 큰다 이 동시에의 핵심은 온실이라는 언어이다. <<집보다도/ 공원보다도/ 산보다도 더 큰 온실>>, 이 온실은 대지와 하늘로 구성된 온실이다. 봄이  오면 대지에는 봄비가 내리고 봄비를 머금고 새싹들이 대지를 파아랗게 단장한다. 이것은 온실안에서 새싹들이 싹트고 자라나는것과 같은 성질을 띠였다고 할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봄의 대지를 온실로 변형시켰다고 할수 있다. 제 6 절 의인화(의물화)로 이룩한 변형 의인화수법은 문학을 하는 작자들이 제일 즐겨쓰는 수법의 하나라 하겠다. 의인화의 수법으로 변형을 한다는것은 아마 큰 발견은 아닌것 같다. 우리의 많은 작자들이 리론상에서 실천상에서 이것을 너무 분명히 알고있다고 생각되면서 간단히 설명을 하려고 한다. 동심을 쓰는 동시로 말하면 의인화는 좀 다른 의의가 있다.    어린이들은 세상사물 모두가 친할수 있는 대상이라고 여긴다. 애들은 무서운 범이나 사자도 친구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는 천성이 있을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친구라고 하는 한상도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원쑤가 없다고도 할수 있다. 그러므로 의인화의 수법은 어린이들에게  가장 친절한 수법의 하나라고 할수 있겠다. 달님이 내려와 풍덩 별님이 내려와 퐁당 그때마다  남실거리는 물결 물결은 사방으로 퍼지면서 련잎을 간질인다 견디다 견디다 활짝 터뜨린 련잎들의 웃음    이 동시는 김지도시인이 쓴 <<련꽃>>이다. 달도 별도 물도 련꽃도 모두 의인화의 수법으로 다루어서 정이 넘치고 친절하게 안겨온다.    다음에는 의물화로 쓴 동시 한수를 보자. 아가입은 앵두          서정숙 아가입은  앵두 엄마가  똑 한개 따먹어도 그대로 있고 아빠가  똑 한개 따먹어도 그대로 있고       아기입을 앵두라 하였으니 의물화의 수법으로 변형시킨 동시라 하겠다. 물론 여기는 색깔이 많은 작용을 하였다고 할수 있겠다. 여기서 따먹는다는 의미는 아빠 엄마가 아기와 뽀뽀를 하는것을 말한다. 보면 알수 있기에 설명을 가하지 않는다. 제 7절 사물발전의 법칙으로 이룩한 변형 법칙이란 말은 꼭 그렇게 변화되여 간다는 뜻이다. 한 사물발전의 필연성을 법칙이라고 할것이다.성질과 법칙은 좀 다른 함의가 있다. 성질에는 일반적으로 한 사물의 고유한 특성을 말하는 경우가 많고 법칙은 성질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겠지만 사물의 발전의 필연성을 지칭하는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면서 법칙으로 이룩한 변형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올챙이가 크면 개구리로 되는데 이것은 올챙이의 발전법칙이라고 할수 있다.이법칙을 일용하여 김선홍시인은 <<태양 줏는 올챙이>>라는 동시를 이렇게 쓰고있다. 태양 줏는 올챙이         김선홍 꼬리만 있는 올챙이 도랑물 올챙이 태양 주으러 꼬리를 흔들흔들 까불며 간다 가다가 가다가 뒤발 두개를 줏고 가다가 가다가 앞발 두개를 줏고 가다가 가다가 청개구리 한마리 주었다 가다가 가다가 태양은 못줏고 가다가 가다가 자기를 감쪽같이 잃어버렸다    참 재미있는 동시라 하겠다.    <<가다가 가다가>>를 여러번 반복하지만 한번 반복할 때마다 올챙이가 변하므로 싫은 감 대신 생동한 감이 넘친다. <<까불며 간다>>, <<청개구리 한마리 주었다>>, <<자기를 감쪽같이 잃어버렸다>>것들은 의인화와 유모아가 결합된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동시의 매력을 살리였다.     김삼진시인은 <<법칙>>이라는 동시를 이렇게 쓰고있다. 법칙   김삼진 토란잎에 마알간 이슬방울은  실에 꿰여 놀고싶은 옥구슬 금구슬 바람이 가만히 건드리면 간지러워 또로록 굴러내려요 아이들이 조금만 건드려도 대굴대굴 또로록 굴러내려요 긴 설명이 필요 없겠다. 이슬은 건드리면 떨어진다. 이것은 이스의 특성이라면 특성이고 법칙이라면 법칙이다. 이슬의 이런 필연적인 변화를 틀어쥐고 김삼진시인은 동시 한수를 창작하였다. 제8절 사물의 이름으로 이룩한 변형 동시에서는 사물의 이름으로 변형을 이룩하면서 동시를 쓰는 방법이 흔히 있다. 실은 이름자체에 시적상관물이 내포되여 있는것들이 많다. 제비풀은 제비로 쓰면 되고, 초롱꽃은 초롱으로 쓰면 되고, 버들강아지는 강아지로 쓰면 되고, 인삼은 사람으로 쓰면 되는것이다. 실례를 들어보면 설명할 필요가 없이 알게 될것이다. 방울꽃   림교순 조롱조롱  방울꽃이 피였습니다 산바람이 살짝 건드리면은 쪼롱쪼롱 소리가 쏟아지겠지 조롱조롱  방울꽃이 피였습니다 고 방울을 따다가 아기 주며는 조롱조롱 소리를 좋아하겠지 볼우물    조상국 아가가 방긋 웃는 얼굴에 볼우물이 옴폭 패였습니다 아가의 방긋 볼우물에속에 웃음이 가득 고였습니다 아가의 방긋 고인 웃음을 엄마가 아빠가 퍼냈습니다 첫시에서는 방울꽃을 방울로 생각하고 , 두번째 시에서는 볼우물을 볼에 패운 우물로 생각하고 동시를 썼다고 하겠다.
15    민조시.1 댓글:  조회:978  추천:46  2008-09-21
  민조시는 3.4.5.6 음보로 쓰는 정률시 수요에 따라 반복은 할수 있으나 음수률은 꼭 지켜야 한다.  어린 대숲 마디에 골독골독 소리채우고 푸른 숲 이뤘네 미래의 피리들을 사람들 먼저 바람 불어보네 진달래 이 사월 산들마다 초경을 앓아 붉은빛 자지야 시간이  발을 저겨 즈려밟느니 푸르른  종소리 폭포 흰북채 휘둘러서 치는 북소리 하늘땅 흔드네 소리  소리 소리
14    현대시를 쓰는 방법.2 댓글:  조회:1076  추천:42  2008-09-21
  이야기하자. 제1절 중국고전과 이미지   초나라시인 굴원은 중국의 최초의 시인이며 중국문학의 최초의 시성이며 대가이다. 그는 <<애타는 호소>>라는 장시의 13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 세월은 어지럽게 흘러가는데 또 어찌 머물수가 있을가? 난초와 어수리는 변해서 향기가 나지 않고 붓꽃과 혜초 또한 계절이 바뀌니 억새가 되었다 어찌하여 향기롭던 그 풀들이 지금은 쑥덤불처럼 되였는가? 그 이유는 달리있는것이 아니라 결백을 좋아했던 피해가 아닐가? .......................................    굴원이 여기서 떠올린 난초, 붓꽃, 혜초 ,쑥덤불 ,억새 등 풀들은 풀인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을 가리키고있는것이다. 인간들의  개성과 특점에 의하여 풀들로 둔갑시켜 놓은것들이다. 워낙 좋은 사람들이였는데 환경의 변화와 함께 나쁜 사람들로 되였다는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풀로 둔갑되였는가? 시적상관물을 리용하여 둔갑시켜 놓았다는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보아낼수있다.   당조의 대성이였던 리백의 <<촉도난>>을 보아도 이미지시색채가 짙다는것을 보아내기 어렵지 않다.    아-- 높고도 높아라! 촉도길 험난쿠나!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려워라. .............................................. 지키는자 원쑤일진대 아침엔 사나운 범 피하고 저녁엔 큰 구렁이 피하건만 이를 갈며 피 빨려드나니 살인을 삼대베듯 하였다네    리백의 촉도길은 결코 어떤 길을 말하는것이 아니고 당시의 가혹한 정치를 빗대고 비난한것이다. 범이요 구렁이요 하는것들도 범이나 구렁이를 말하는것이 아니라 탐관오리들을 가리키는것이다.    언어란 원래 어떤 사물의 상징물이다. 당신의 이름을 영호라고 부른다 하자. 이것은 당신의 부모나 할아버지가 지어준 당신에 대한 대호이다. 그러나 당신이 태여났을 때 당신의 이름을 배추라고 하였다면 사람들은 지금 당신을 영호라고 부르지 않고 배추라고 부를것이다. 영호나 배추는 당신을 상징하는 언어일뿐이다. 시에서의 언어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상징물인것이 아니라 왕왕 시인자신이 창조한 상징물이다. 시인이 창조한 상징물로서의 언어가 될 때 비로소 시적언어라는 명칭에 값하는것이리라. 그래서 자고로 시인을 언어의 련금사라고 하였으리라. 시인이란 바로 이제까지 남들이 만들어 내지 못한 언어를 만들어냈을 때 자격증을 딸수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영스님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에서 한유는 거문고소리를 여러가지로 변형시키면서 화려한 시를 와르르 쏟아내고있다. ............................................ 한번 긋자 가락소리 우렁차더니 장사가 적진에 돌진하는듯 흩날리는 버들꽃 떠도는 구름이라 드넓은 우주에서 자유로이 날아라 백천마리 뭇새들이 지저귀는가 갑자기 들려오는 봉황새소리 .................................   한유는 거문고소리를 귀로 듣는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있는것이다. 소리를 어떻게 본단말인가? 현대시공감각이라고 하는 언어의 수법으로 청각을 시각으로 전의한것이다. 거문고 소리를 듣는 한유의 눈앞으로는 소리가 흘러가는것이 아니라 적진으로 돌진하는 장사의 용왕매진이 보이기도 하고, 흩날리는 버들꽃이 보이기도 하고,  하늘의 흰구름이 보이기도 하고, 지저귀는 수천마리의 뭇새들이 보이기도하고 봉황새도 보이고있는것이다. 시인이 보고있는것은 당연히 존재가 아니라 상상속에 떠오른 화폭으로서 허상이다. 사실 시인의 시재와 운명은 이러한 허상적화폭을 떠올리는 저력이 어느 정도에 이르는가에 의하여 가늠된다. 제2절 우리 고전과 이미지     중국의 고전에 대하여 이만큼 말하고 아래에서는 우리 선조들의 시조를 보자. 시조는 우리 선조들만이 갖고있던 유일한 문체였다. 시조는 우리겨레의 얼굴이였고, 우리 문학의 고전의 얼굴이기도 하다. 이런 시조에도 이미지로 된것들이 많았다. <<조선고전문학선집3>>의 시조들을 보면 우리 선조문인들이 이미지를 어떻게 쓰고있었는가를 알게 된다.    청구영언에 실린 송강가사에는 이런 시조가 있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가지 꺾어내여 님계신데 드리고저    님께서 보오신후에 녹아진들 어이리     눈이 와서 나무가지마다에 쌓인 눈을 보고 <<꽃>>이라고 한다. 시에서는 눈이 꽃으로 탈바꿈 하였다. 눈과 꽃은 확연히 다른 사물이지만 시인은 똑같은 사물로 보고있는것이다. 그래서 꽃을 한가지 꺾어다가 님한테 드리겠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김춘수가 지적한 <<짝>>의 당위성과 리처즈의 <<밸런스>>의 당위성을 보아낼수있는것이다. 시적상관물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색깔에 의한 시적상관물이라고 할수있다. 수사법각도로 보면 은유인 것이다.    해동가요에는 이런 시조가 실려있다.   초생에 비친달이 낫같이 가으다가   보름이 돌아오면 거울같이 두렷하다   아마도 인지성쇠 저리한가 하노라    청구연언의 시조는 사랑을 노래한것이고 해동가요의 이 시조는 인생을 관조하면서 교훈을 주고있다겠다. 초생달이 낫가락이요 보름달은 거울이라고 한것은 달을 다른 사물로 만들어버린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시인은 울고 웃는 인생살이를 노래하고있는것이다.    청구가요에는 이런 이런 시조 한수가 실려있다.   리별이 불이 되니 간장이 타노매라   눈물이 비되니 끌듯도 하건마는   한숨이 바람되니 끌동말동    이 시조에서는 리별이 불로 다시 태여나고 눈물은 비로 다시 태여나고 한숨은 바람으로 다시 태여나고있다. 은유적인 과정을 거쳐 언어들은 모두 자신의 원 뜻을 잃고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불>>, <<비>>, <<바람>>도 그렇거니와 <<타노매라>>,  <<끌듯도 하건마는>>,  <<끌동말동>> 용언들도 새로운 의미망속으로 들어가고있다. 이미지시 즉 현대시에서 언어가 새로운 이미로 태여나지 않으면 산문화경향을 두절할수 없을뿐만 아니라 생경한 언어라는 딱지를 이마에 딱 붙이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언어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지 못하면 시적언어라고 말할수 없으며 그런 언어는 씌여있을뿐이지 죽은 언어의 운명을 면할수 없을것이다. 소위 시가 리해되지 않소 시는 아무나 쓰는것이 아니오 하는 말들이 나오는것은 시어들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다시 태여나기때문이다.     이미지시에서는 모든 언어가 시라는 집을 짓는 건축에서의 재료이다. 언어들은 원래의 상징성을 버리고 벽돌이나 세멘트나 철근이나 나무들로 되어버린다. 시인은 이러한 재료들을 가지고 이제까지 남이 지어보지 않은 새로운 집을 지을 때만이 현대시를 쓴다고 자신있게 말할수있을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고전에도 이미지시가 있었다는것을 간단히 알아보았다. 시에서 이미지는 동양이나 서양에서 다 추구하여 왔던것이다. 이미지시의 뿌리는 상징에 있다. 동서양의 시에 모두 상징이 있었다. 그러다가 20세기초 영국에서 이미지즘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미지가 시대의 각광을 받게 되었던것이다. 그것은 실제상에서 형상주의 운동이였다. 이 신시운동은 윤곽이 뚜렷하고 이미지가 밝고 간결하고 암시적이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후부터 시에서의 이미지화가 새로운 개화를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오늘 이미지시를 론하게 되는것은 서양의 이미지수법을 받아들여 우리 시를 한보 더 발전시키고 개화시키기 위하여 서이다. 현시점에서 우리의 시와 우리의 고전을 현대의 서양의 이미지시와 비교하면 사상성으로 보면 유치하고 예술적으로 보면 천박하고 언어적으로 보면 단조롭다는것을 승인하지 않을수 없다.  필자 나름대로 이 글을 쓰면서 함께 이미지숲을 걸어보고자 시도하고있다.
13    현대시를 쓰는 방법.1 댓글:  조회:1195  추천:52  2008-09-14
 들어가는 말:현대시를 쓰는 방법은 워낙 이미지시 창작론이다  이방법으로 필자는 제자들한테 시를 가르쳤는지 배운지 오년사이에 연변작가협회지용문학상을 둘이 따내였고 연변일보CJ문학상도 한사람이 따내였다 나름대로 지도적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여 독자들에게  참고로 제공한다  <이미지시 창작론>은 연길시 서점에서 팔리고있다 제1장 이미지 정의   이미지란 무엇인가? 필자는 시에 대한 리론서적을 많이 읽지 못하였지만 이미지에 대한 견해는 동양과 서양이 일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루이스는 이미지를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묘사된 언어의 그림>>이라 하였고 영국의 시드니는 <<시는 말하는 그림>>이라 하였다. 한국의 문덕수는 <<오늘의 시작법>>에서 이미지에 대한 <<가장 쉽고 일반적인 대답은 <글로 그린 그림> 또는 <언어의 회화>라고 말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종합해보면 이미지는 그림인데 언어로 그린 그림을 이미지라 하겠다. 그림이라는것은 눈으로 보게끔 선으로 그렸거나 색갈로 그린것이다. 그런데 시는 선이나 색갈로가 아니라 언어수단으로 그리게 되여있다. 이 이미지라는 그림은 돌이나 나무나 산처럼 누구나 다 볼수있는 일반적인 객관적존재인것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속의 형상(즉 상상속의 형상)이라는데서 특색이 있는 그림이라 하겠다.   고금중외의 모든 시를 이미지시학으로 살펴보고 분석해 볼수있을 같다. 하지만 이미지라는 언어는 20세기에 와서 각광을 받았고 시인과 시비평가들의 추구와 탐구대상이 되었다. 그러니깐 이미지는 현대시가 산생하고 발전하면서 개입된 언어로 리해함이 적당할것 같다.   시라는 문학쟝르는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쟝르로서 부동한 시기에 부동한 주장과 표현방식이 있었다. 특정된 력사시기마다 시에 대한 추구가 달랐다. 처음에는 모방의 시관으로 시를 썼고, 그후에는 실용론의 시관으로 시를 썼고, 그후에는 표현론의 시관으로 시를 썼고, 또 그후에는 존재론의 시관으로 시를 썼다고 할수있다.   이에  대하여 한국의 홍문표는 <<현대시학>>에서 이렇게 밝히고있다.   <<모방적시관의 시는 자연을 반영하는 거울로 설명되였고, 효용론적시관의 시는 독자에게 어떤 실제적효과를 주는것이라고 설명한다면 표현론의 시관은 시인의 내면적인 세계를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는 립장이다>>     우리의 시대의 시는 표현론으로 시를 쓰는 시대이다. 어떻게 쓰면 표현론의 시관으로 시를 쓰게 되는가? 그 대답을 나름대로 이미지라고 확인하고싶다. 이미지로 쓰는 시가 현대시의 핵심적인 방법이라면 방법이겠다. 현대시의 류파는 많았지만 어느 류파도 이미지라는 이 올가미에서 벗어난것을 보지 못하였고, 어느 시인도 벗어났다고 하기는 어려울것으로 알고있다. 이미지는 현대시인의 특허권으로서 현대시인의 목에 쓴 멍에이자 또 시인에게 자유를 주는 천사이다.    구라파 이미지 선구자들은 이미지선언 여섯가지를 제기한적이 있다.   <<1. 일상어를 사용하되 정확한 말을 고르며 모호한 말이나 장식적인 말을 배척한다.   2. 새로운 기분의 표현으로서 새로운 리듬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3. 제재의 선택은 자유로워야 한다.   4. 명확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5. 모호하고 불확정한 것이 아니라 견강하고 명확한 시를 쓴다.   6. 긴축되고 집중된 것만이 시의 본질이다.>>   이 선언은 <<흄의 영향을 받은 알딩턴이 이미지선언을 쓰고 로우월이 수정을 가했다>>고 홍문표는 <<현대시학>>에다 밝히였다.   이미지선언은 언어문제, 표현문제, 리듬문제, 제재문제를 제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명확성과 시의 명확성 및 함축성문제들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미지시의 리론적 지도자라고 불리우는 파운드(미국)는 이미지의 중요성을  수많은 작품을 쓰는것보다 일생동안 단 하나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하였다 한다.   현대시를 이미지시, 이미지시를 현대시라고들 하는데 이런 말의 래원이 파운드에게서 왔을거라는 짐작이 간다. 단 하나의 이미지를 표현한다는 말의 무게는 결코 가벼운것이 아니다. 시를 쓴다는것은 이미지를 창출하는 작업이며 이미지를 창출하는 작업이 시인의 피타는 노력이여야 함을 심각하게 각인시키는 파운드다.   선이나 색갈로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언어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 그것도 누가 그렸던 그림이 아니라 새로운 그림이여야 한다는것은 누구나 다 할수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천부적인 천재성과 각고의 노력의 결과일것이다. 천부와 노력에서 노력이 첫째겠다. 천부는 노력으로 키울수있지만 노력이 없는 천재는 존재하지 않을테니깐.   이미지의 개념, 중요성, 필요성 및 력사에 대하여 거치르게나마 알아보았다. 아래에 이미지와 동양시의 전통과의 양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12    현대동시창작지도 실록.1 댓글:  조회:1047  추천:59  2008-09-13
  들어가는 말: 현대동시를 어떻게 쓰는가? 혹자는 시는 쓰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혹자는 시는 각자가 쓰는 방법이 다르다고 한다. 필자는 그래도 일정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의 지도를 받고 한제자가  일년을 배웠는데 금년(1-9월)에만 하여도 중국조선족소년보에 14편의 동시를 발표하였다. 이 방법으로  시를 쓰는 제자들이 아마 백여수의 시를 발표하였을것이다. 어떤 제자는 상도 타고. 그래서 동시를 쓰려는 초학자들에거 필자의 현대동시창작실록을 알린다. 동시란 쓰기 쉽고 재미나는 작업이니까.(   주해: 나머지실록은 색갈로 된 글씨가 있어서 복사는 되지만 잘 오르지  않아서 실례한다 대신 <동시에서의 이미지 작용이란 글을 따로 올린다>)                                동시창작지도실록                                      최룡관 시인: 지금부터 시를 배웁시다 참된인생:예 시인:이런 시가 있습니다 제목단풍// 빨간 단풍은 빨간 노래 / 노란 단풍은 노란 노래/ 빨간노래 노란 노래 부르며/ 가을은 가을은 갑니다// 빨간 단풍은 빨간 자국/노란 단풍은 노란 자국/빨간 노래 노란 노래 부르며/가을은 가을은 갑니다// 참된인생:예 시인: 이 시가 어떤 방법으로 씌여졌는가 볼가요 참된인생:예 시인: 가을이면 단풍이 드는데 그 색갈이 대개 빨갛거나 노랗다고 할수있죠 . 그래서 빨간 단풍은 빨간 노래라 하고 노란 단풍은 노란 노래라 한겁니다. 그래서 2련에서는 빨간 단풍은 빨간 자국 노란 단풍은 노란자국이라고 한거죠. 여기에서 색깔이 문제로 됩니다. 즉 색깔에 의하여 한 사물을 다른 사물로 만들었죠 . 단풍을 노래 , 단풍을 발자국이라 하였단 말입니다. 참된 인생: 정말 그런 같아요 시인: 기억하세요 한사물을 색깔에 의하여 다른 사물로 만드는데 이것을 우리는 둔갑시킨다고 말하기도 하고 변형시킨다고 말하기도 하고 시적상관물이라고도  합니다. 둔갑, 변형, 시적상관물은 다 같은 말입니다. 참된인생:잠간 베끼자요 시인: 그러세요 참된인생:다 베꼈습니다. 시인: 그럼 다른 시 한수를 더 봅시다 빨간 단푸은 빨간 모자 노란 단풍은 노란 모자 사내애들은 빨간 모자 쓰고 계집애들은 노란 모자 쓰고 산으로 산으로 오른다 와-와- 바람도 소리치며 애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 어때요 시가 재미있는가요 참된인생:녜 참 재미있어요 시인: 어떻게 썼는가 볼가요. 참된인생:예 시인; 첨에는 단풍의 색깔을 보고 빨간모자 노란 모자라고 둔갑시켰죠. 알리는가요 참된인생:예 시인: 그런데 둔갑시킨 다음에는 그아래를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죠 참된인생: 글쎄요 시인 :변형물의 용도에 의하여 아래를 써내려간답니다. 모자라고 했으니까 누군가 써야겠지요 , 모자는 사람이 쓰는거죠 . 그래서 동시니까 빨간 모자는 사내애들이 쓰고 노란 모자는 계집애들이 쓴다고 했죠. 알려요 참된인생: ㅎㅎ 예 시인: 단풍은 산에 있으니까 모자를 쓴 애들이 무얼하겠어요 등산해야죠 그렇죠 참된인생: 예 시인: 그래서 산으로 산으로 오른다고 했어요. 왜 등산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등산이란 한자어죠 시를 쓸때에는 될수록 우리 고유어를 써야 해요. 한자어는 막부득한 경우에만 쓰는거랍니다. 이건 아주 중요해요. 기억하세요. 참된인생: 예 시인:그런데 마지막 련, 바람이 소리치며 애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는것이 어떻게 오는가가 문제죠. 참된인생: 그래요 시인: 변형시킨다음 원사물이나 시적상관물과 가까운 사물과 련계시킨다는 겁니다. 가을산에 바람이 많으니까 바람과 련계시킨 거랍니다. 그럼 다른것과 련계시키면 안되는가 됩니다 토끼랑 노루랑과도 련계시킬수 있죠. 더멀리는 구름과도 해와도 련계시킬수 있죠. 동시는 바로 이렇게 쓴답니다 어때요 배울만 해요 참된인생:예 배울것같아요 시인:기억하세요 색깔에 의하여 시적대상을 변형시킨다 혹은 시적상관물을 찾는다 변형시킨다음 변형물의 용도에 의하여 다른 가까운 사물과 련계시킨다. 참된인생: 잠간 베끼게요 시인: 그래 참된인생 : 다 베꼈어요 시인 : 그럼 우리 구름의 시적상관물을 찾아볼가요 참된인생:예  시인: 구름의 색깔이 어떤건가요 참된인생: 흰색갈 시인 : 그럼 흰색갈이 있는 사물을 례를 드세요 참된인생: 음 잘 모르겠어요 시인 : 신비하게 생각지 말고 흰색갈의 사물이면 다 돼요 참된인생: 목화더미 시인 :맞아요 또 참된인생: 양떼 시인 :또 참된인생: 더 못찾겠어요 시인: 흰 색깔이면 다 되는데 참된인생: 배꽃 시인:그치 또 참된인생: 종이 시인: 또 참된인생: 흰 이불 시인:또 참된 이생: 적삼 시인:또 참된인생: 흰사발 , 흰 책상 음 시인: 많고도 많죠 찾은것들 중에서 무엇으로 시를 써봤으면 하는가요 하나 골라 보세요 참된인생: 적삼 시인: 그럼 그러세요 아까 단풍을 쓰던 것처럼 무엇은 무엇이라고 써보세요 참된인생: 흰구름은 적삼 시인 :색갈을 맞추어야죠 참된인생: 흰구름은 하얀적삼 시인: 참 잘 썼어요. 근데 적삼이니까 입어야겠죠 이 적삼을 무엇이 입을가요 참된인생: 모르겠어요 시인: 구름은 어디에 있죠 참된인생: 하늘에 시인 ;그럼 하늘에 있는 사물이 구름과 가까운 사물이겠죠. 그럼 그것이 무엇일가요 참된인생: 해, 달 , 별이죠 시인; 맞아요 그러니까 적삼을 무엇이 입어야 할가요 참된인생: 해나 달이 시인:그렇지 입히세요 참된인생: 낮이면 해님이 입고 시인 ; 잘 썼네요 밤이면요 참된인생:밤이면 달님이 입고 시인 ;그럼 첨부터 써보세요 참된인생: 흰구름은 하얀 적삼 참된인생: 낮이면 해님이 입고 참된인생: 밤이면 달님 별님이 입어요 시인: 참 잘 썼어요 그런데 해나 달이 구름 적삼을 입을수 잇어요 없죠 맞는가요 참된인생:녜 맞아요 시인 :하늘에 구름이 많으니까 그건 무엇이 많은것과 같을가요 참된인생: 적삼이 많은것과 시인 :그래요 어째서 해가 입지 못할가요 참된인생: 모르겠음 시인 :맞지 않아서 못 입죠 참된인생:ㅎㅎㅎㅎㅎㅎㅎ 시인 : 그런걸 쓰면 되죠 참된인생: 낮이면 해님이 입으려 하나 참된인생 :하나도 맞지 않아서 참된인생: 입으려다 버린 적삼 시인 :적삼이 하나인가요 참된인생: 많습니다 시인; 그렇죠 그렇다는것을 말해 보세요 참된인생: 하늘에 가득하네 시인:잘 썼는데 좀 부족하네 하늘에 가아득 널려있네 이렇게 쓰면 더 좋겠는데요. 시는 사람들 눈에 무엇이 보이게 하면 좋아요 하늘에 가득하네 보다 하늘에 가아득 널려있네 하면 더 잘 눈에 보여오지요 참된인생: 예 시인: 그럼 다시 첨부터 정리해보세요 참된인생: 구름은 하얀 적삼 참된인생: 해님이 입으려 하나 참된인생: 하나도 맞지 않아서 참된인생:입으려 해도 입지 못하는 적삼 참된인생:하늘에 가아득 널려있네 시인: 세 번째 줄을 네로 끝내면 좋아요 네 번째 줄이 다른 줄들보다 너무 길어요 여러줄이 비슷하게 길면 좋아요 그럼 어떻게 줄일가요 참된인생: 입으려 해도 못입는 적삼 시인 :참 잘 고치는데 그럼 다시 써보세요 색깔을 맞추면서 행과 행사이는 / 련과 련사이는//이런부호를 치면서 가로 쓰세요 그럼 수개의견을 제기하기 좋아요 참된인생: 흰구름은 하얀 적삼/ 해님이 입으려 하나 /하나도 맞지 않네//해님이 입지 못하는 적삼/ 하늘에 가아득 널려있네 시인: 됐어요 축하 참된인생:ㅎㅎㅎㅎ 선생님 가르침으로 시인: 어때요 알만하죠 참된인생:ㅎㅎ 좀 알리는 같아요 시인: 아까 구름을 책상이라고 했죠 참된인생:예 시인: 책상이면 무슨 용도가 있죠 참된인생:공부하죠 시인: 그책상과 가까운 사물이 뭐가 있죠 참된인생:해, 달 시인 :참 잘하네요 그럼 그 책상에서 누가 공부할가요 참된인생: 음... 해와 달이 공부하죠 시인 : 와 총명한데 참된인생:ㅎㅎㅎㅎㅎㅎㅎ 시인 :그럼 위와 똑같은 방법으로 한번 써보죠 참된인생: 하얀 구름은 하얀 책상 참된인생: 낮이면 해님이 공부하고 참된인생: 밤이면 달님이 공부하네 시인: 와 잘쓰네 그럼 별들은 어쩔가요 참된인생: 부러워하죠 시인; 그것도 쓰면 좋지 않니 아,하대가 나가네 참된인생: 그럼 더 좋아요 시인 : 그럼 이제부터 응응 한다 참된인생 :그러세요 ㅎㅎ 시인 : 별을 써봐 참된인생: 별들도 공부하고 싶어 시인 : 어쩌죠 참된인생: 두눈을 깜빡깜빡 시인: 그것보다 앞을 다투어 달려온다 하는것이 더 좋을같아 움직임이 보이니까 참된인생: 맞아요 시인 : 그럼 다시 첨부터 베껴 참된인생:흰구름은 하얀 책상/ 낮이면 해님이 공부하고/ 밤이면 달님이 공부하네/ 별들도 공부하고싶어/ 멀리에서 달려오네 시인: 와 잘 쓴다 축하 참된인생:ㅎㅎㅎㅎㅎ 참 선생님 수고했어요 시인: 쓸 자신이 있니 참된인생: 글쎄요
11    현실주의와 모더니즘 시어의 구별 댓글:  조회:926  추천:48  2008-09-13
현실주의시와 모더니즘시 시어의 구별 최룡관    시를 배우면서 시가 언어의 연금술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실주의시와 모더니즘시 사이에 언어상에서 어떤 구별이 있는가를 한번 나름대로 탐색해 보았다. 현실주의시와 모더니즘시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시다. 현실주의시의 주요 목적은 계몽과 교육이라고 말할수 있지만 모더니즘시 목표는 심미추구이다. 이 두가지 시사이에 언어상에서 엄격한 구별이 존재한다. 아래에 필자가 찾아본 구별에 대하여 이야기하려한다. 첫째: 현실주의시와 모더니즘시는 모두 상징을 쓴다. 하지만 현실주의시는 단순한 상징을 쓰기에 알아보기 쉽지만 모더니즘시는 상징성이 2중3중의 표현으로 나타나기에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점이 있다. 발레리가 <<해변의 묘지>>에서 《바다》를 쓰면서 <<희랍외투>>니<<히드라>>라고 하였을 때 그가 <<나르시는 말한다>>에서 쓴 <<샘물>>이라는 상징어를 알아야 한다. 그 <<샘물>>이 무엇을 상징하였는가를 알아야 발레리가 쓴 바다의 함의도 알수 있고 희랍외투와 히드라도 알수있는 것이다. 현실주의시 상징은 전통적윤리에 기대여 창조하는것이 많지만 이미지시 상징은 작가가 주관적상상으로 창조해내는것이 많으므로 몽롱성을 띄게 된다. 둘째: 현주의시와 모더니즘시는 다 은유를 쓴다. 현실주의 시가 쓰는 은유는 확실성을 띠지만 모더니즘시가 쓰는 은유는 불확실성을 띤다. 현실주의시 은유는 전통성을 강조하지만 모더니즘시 은유는 시인자신의 창조성을 강조한다. <<비행기는 하늘에서 나는 새다>>라고 할때면 다 같은 의미를 가진 <<난다>>가 있으므로 리해에 큰 의상이 없지만 << 비행기는 하늘을 켜는 톱이다>>라고 표현했을 때 우리는 돌연감을 느끼게 되며 그것의 표현을 인차 리해하지 못하고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셋째: 현실주의시나 모더니즘시는 다 언어에 색깔을 올리는데 현실주의는 전통적인 습관에 의거하여 색깔을 올리고 모더니즘시는 전통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늘에 뜨는 태양을 현실주의시는 <<붉은 태양 >>이나 <<은빛태양>>이라고 하지만 상징주의 시는 <<까만 태양>> << 파란태양>><<노란 태양>>이라고 한다. 특히 모더니즘시는 추상적인 언어에 색깔을 올리므로써 언어를 완전히 새롭게 창출한다. <<아름다운 사랑>>을 <<새파란 사랑>> 혹은 <<풀빛사랑>> 그외에도 <<연분홍 소리>>, <<까아만 그리움>>...등등, 추상적인언어를 가시적인 언어로 만듬으로써 이미지에 도착하려 한다. 네 번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내함이 단순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내함이 다양하다. 그러기 때문에 모더니즘시는 제목과 시의 내용이 왕청같이 다른것을 만날 때가 있다. 전봉건은 <<피아노>>를 쓰면서 <<신선한 물고기가 쏟아진다>>고 하였고, 아폴리네르는 <<개구리>>를 쓴다는것이 <<섬>>을 노래하였다. 이러한 례들은 많고도 많다. 모더니즘시가 다각적인 양상과 다층차적인 함의로 받아들여야 함은 언어의 내함이 시인에 의하여 요술처럼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섯째: 현실주의시의 언어는 사물과의 동질성을 추구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언어를 조작하여 쓴다. 현실주의시는 기쁨이 가슴에 벅차오를 때 <<넘치는 기쁨>>이라고 하겠지만  모더니즘시는 <<참혹한 기쁨>>이라고 하게 된다. 전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이기에 사물과의 동질성을 추구했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후자는 일상성을 떠나서 새롭게 떠올린 언어로서 가히 조작하였다고 할수 있겠다. 여섯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현실과 조화하려 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현실과 떨어지려한다. 현실주의시는 구름을 말할 때 <<구름은 하늘에서 날아다닌다>>로 쓰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구름은 하늘을 닦는 걸레이다>>라고 한다. 그것은 모더니즘시는 시를 쓸 때 일반적으로  새로운 <<짝>>을 맞추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비유어의 보조수단을 리용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그런 수단을 꺼린다. 현실주의시는 <<해바라기는 태양처럼 반짝인다>>인다고 할 때 모더니즘시는 <<해바라기는 태양>>이다. 왜냐하면 현실주의시는 비유를 설정할 때 -처럼, -마냥, 듯이...등 보조적인 언어를 쓰려하지만 모더니즘시언어는 그런 보조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현실주의시는 직접비유를 좋아하지만 모더니즘시는 간접비유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공리적인 뜻에 모를 박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주관주의적인 뜻에 모를 박는다. 봄비에 관하여 말할 때 현실주의시는 <<봄비는 사물의 탄생을 고한다>>다고 쓰지만 모더니즘시는 << 봄비는 관에 못질한다>>고 쓰게 된다. 그것은 현실주의시는 일상적인 언어를 쓰기에 류의하지만 모더니즘시는 새로운 언어조합과 새로운 사유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아홉째: 현실주의시는 언어로 사물을 묘사하려 하지만 모더니즘시는 언어로 새로운 감정을 표현하려고 한다. 새싹을 놓고 말할 때 현실주의시는 <<새싹은 파랗게 돋아난다>>고 하겠지만 모더니즘시는  <<새싹은 부리로 흙껍질을 깨고있다>>라고 쓰게 된다. <<파랗게 돋아난다>>와 <<부리로 흙껍질을 깬다>>의 차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전자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썼지만 후자는 새로운 사실로 , 새로운 느낌으로, 창의가 있게 쓴것이다. 열 번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개념을 그대로 나타내려 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개념을 형상화하려고 한다. 현실주의시는 <<그리움은 언제나 따스하다.>> 고 하지만 모더니즘시는 <<새빨간 그리움이 얼음장을 녹여준다.>>라고 하게 된다. <<그리움은 언제나 따스하다.>>는 문구는 추상적인 언어라렬이지만 <<새빨간 그리움이 얼음장을 녹여준다. >>는 언어의 표현이 물화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겠다. 시구는 물질운동으로 표현되여야 하는것이 모더니즘시의 하나의 사항이기도 하다. 열한번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어떤 뜻을 확실하게 하려고 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어떤 뜻을 불확실하게 하려고 한다. 새가 운다는것을 쓰고자할 때 현실주의시 언어는 <<새는 지저귄다>>고 하면 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 새는 가갸거겨를 읽는다 >>라고 하게 된다. 전자는 아무런 무리 없이 독자에게 수용되겠지만 후자는 시인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독자에게 주게 된다. 그것은 현실주의시는 확실성과 협화성을 추구하지만 모더니즘시는 불확실성과 불협화성을 추구하기때문이라고 할수있다. 열두번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언어의 원 흐름을 보존하려 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언어의 원 흐름을 파괴하면서 이질적인 언어의 결합을 추구한다. 현실주의시는  <<우리는 시간이 흐름속에서 간다>>하고 말하게 되지만 모더니즘시는 <<우리는 시간의 가지에 앉아간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은 언어의 원 흐름을 보존하였다고 할수있겠지만 <<시간의 가지>>는 새로운 언어조합을 떠올리게 된다. <<시간의 가지>>라는 이 언어조합은 성질이 서로 다른 언어를 강압적으로 묶어놓은것이라겠다. 언어의 련금사란 말은 언어를 다시 제련해 내여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다는 말인데 아마 이러한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우에서 열두가지방면으로 현실주의시와 모더니즘시의 언어의 구별을 나름대로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구별이 더 있으리라 믿는다. 모더니즘시는 언어의 집이라고 하며 언어는 현대시를 건설하는 재료라고 한다. 집을 지을 때 같은 재료를 써도 어떻게 짓는가에 의하여 집의 모양과 색깔 및 용처가 다른것처럼 언어의 집인 모더지즘시도 언어라는 재료를 어떻게 쓰는가에 의하여 시의 양상이 달라지고 시의 함의가 달라지게 마련이라고 생각된다.  2007.1.29-6.28.
10    동시 이슬.2 댓글:  조회:957  추천:71  2008-09-13
이슬.2이밥 한알풀잎끝에 대롱대롱눈 깜박할새풀잎이홀랑 먹었다
9    최룡관 프로필 댓글:  조회:1742  추천:71  2008-09-13
성명: 최룡관, 남. 1944년 1월 22일(음력) 흑룡강성 삼강시 출생, 연변사범 졸업, 연변대학통신학부 졸업. 《연변일보사》 문화부 부장.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력임. 중국작가협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길림성소수민족문학상 등 다수 동화시집 :《신비한 세계》, 성인시집:《 반쪽은 다른 얼굴이다》, 《금단의 열매》, 《새벽 내 가슴에서 깃을 친다》, 《백두산은 독한 술이랍니다》, 《누드의 언어》등, 시론: 《이미지시창작론》,비평집:《이미지시론》, 민담집: 《백두산전설》(공저),이야기집 :《중국여인유머》, 문집: 최룡관문집 (1.2.3.4권)  
8    하이퍼시.2 댓글:  조회:996  추천:43  2008-09-13
  국화의 련가 가을국화가 바람에 머리를 흔든다 꽃잎들이 살이 되어 물방아를 돌린다 물방아는 하얀 비단을 해빛에 말리운다 비단을 잘라  돛을 만들어 띠운다 시골을 벗어나 강물과 만난 돛 바다로 바다로 나아간다 바다에서 날던 하얀 갈매기 돛을 물고 아득히 사라진다 바람은 하얀 종지장을 번지며 저멀리서부터 해변으로 달려온다 바다는 종이로 꽃을 접어 머리에 이고 나를 향하여 달려온다 받아안는 순간에 꽃들이 지건만 바다는 머리에 꽃을 이고 련이어 달려온다                         -9.9 고뿌는 깨여지였나 탁상우에 하얀 물고뿌가... 한덩어리 얼음... 얼음덩이를 손으로 들었다. 뼈가 찡찡 저려서 그만 뚝 떨구었다. 얼음덩이가 박살나면서 불씨가 널리였다 어쩔사이도 없이 불씨들은 불길로 번지면서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였다 불이야 하고 소리치며 물을 청했을 때는 연기가 식당안을 삼키였다 쿨룩쿨룩 기침하며 밖으로 나갔다 불이 꺼지자 우리는 다시 들어갔다 고뿌는 하얗게 원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뿌가 깨여지였나 깨여지기도 하고 깨여지지 않기도 하였다               -9.11 토마토  토마토 나무가 자랐다 파란 별 노란 별 빨간 별들이 자지러지게 열리였다 파란 별을 하나 따서 던지나니 뚜더지로 되어 동굴을 파고 노란별을 하나 따서 던지나니 하현달에 날아가 구슬이 되고 빨간 별을 하나 따서 던지나니 백양나무 재여보는 뽐벌레가 되네 휘파람을 분다 별들은 나의  손바닥에 날아와 앉아 온 몸이 눈이 되여 말똥거린다           -9.11.   국화의 련가 가을국화가 바람에 머리를 흔든다 꽃잎들이 살이 되어 물방아를 돌린다 물방아는 하얀 비단을 해빛에 말리운다 비단을 잘라  돛을 만들어 띠운다 시골을 벗어나 강물과 만난 돛 바다로 바다로 나아간다 바다에서 날던 하얀 갈매기 돛을 물고 아득히 사라진다 바람은 하얀 종지장을 번지며 저멀리서부터 해변으로 달려온다 바다는 종이로 꽃을 접어 머리에 이고 나를 향하여 달려온다 받아안는 순간에 꽃들이 지건만 바다는 머리에 꽃을 이고 련이어 달려온다                         -9.9 고뿌는 깨여지였나 탁상우에 하얀 물고뿌가... 한덩어리 얼음... 얼음덩이를 손으로 들었다. 뼈가 찡찡 저려서 그만 뚝 떨구었다. 얼음덩이가 박살나면서 불씨가 널리였다 어쩔사이도 없이 불씨들은 불길로 번지면서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였다 불이야 하고 소리치며 물을 청했을 때는 연기가 식당안을 삼키였다 쿨룩쿨룩 기침하며 밖으로 나갔다 불이 꺼지자 우리는 다시 들어갔다 고뿌는 하얗게 원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뿌가 깨여지였나 깨여지기도 하고 깨여지지 않기도 하였다               -9.11 토마토  토마토 나무가 자랐다 파란 별 노란 별 빨간 별들이 자지러지게 열리였다 파란 별을 하나 따서 던지나니 뚜더지로 되어 동굴을 파고 노란별을 하나 따서 던지나니 하현달에 날아가 구슬이 되고 빨간 별을 하나 따서 던지나니 백양나무 재여보는 뽐벌레가 되네 휘파람을 분다 별들은 나의  손바닥에 날아와 앉아 온 몸이 눈이 되여 말똥거린다           -9.11.   국화의 련가 가을국화가 바람에 머리를 흔든다 꽃잎들이 살이 되어 물방아를 돌린다 물방아는 하얀 비단을 해빛에 말리운다 비단을 잘라  돛을 만들어 띠운다 시골을 벗어나 강물과 만난 돛 바다로 바다로 나아간다 바다에서 날던 하얀 갈매기 돛을 물고 아득히 사라진다 바람은 하얀 종지장을 번지며 저멀리서부터 해변으로 달려온다 바다는 종이로 꽃을 접어 머리에 이고 나를 향하여 달려온다 받아안는 순간에 꽃들이 지건만 바다는 머리에 꽃을 이고 련이어 달려온다                         -9.9 고뿌는 깨여지였나 탁상우에 하얀 물고뿌가... 한덩어리 얼음... 얼음덩이를 손으로 들었다. 뼈가 찡찡 저려서 그만 뚝 떨구었다. 얼음덩이가 박살나면서 불씨가 널리였다 어쩔사이도 없이 불씨들은 불길로 번지면서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였다 불이야 하고 소리치며 물을 청했을 때는 연기가 식당안을 삼키였다 쿨룩쿨룩 기침하며 밖으로 나갔다 불이 꺼지자 우리는 다시 들어갔다 고뿌는 하얗게 원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뿌가 깨여지였나 깨여지기도 하고 깨여지지 않기도 하였다               -9.11 토마토  토마토 나무가 자랐다 파란 별 노란 별 빨간 별들이 자지러지게 열리였다 파란 별을 하나 따서 던지나니 뚜더지로 되어 동굴을 파고 노란별을 하나 따서 던지나니 하현달에 날아가 구슬이 되고 빨간 별을 하나 따서 던지나니 백양나무 재여보는 뽐벌레가 되네 휘파람을 분다 별들은 나의  손바닥에 날아와 앉아 온 몸이 눈이 되여 말똥거린다           -9.11.
7    [동시]이슬(최룡관) 댓글:  조회:1057  추천:67  2008-09-08
해살 오리 잡고 그네 뛰다가아차! 그만 실수해똑 떨어진다.
6    [동시] 흰구름 (최룡관) 댓글:  조회:1070  추천:67  2008-09-08
흰구름은 임자 잃는 하얀 편지누구걸가바람이 등에 지고임자 찾아다닌다
5    [시] 하이퍼시(최룡관) 댓글:  조회:1225  추천:62  2008-09-08
디지털 시 기차가 흐물흐물 달리다가 산모롱이를 에돌아 기차가 흐물흐물 달리고있다 옆에서 흐르던 강물이 창문으로 쓸어들어와 출렁거린다 사람들이 물속에 잠기고 물우엔  깐들거리는 손가락들... 부시가 잔디밭에서 연설을 한다 인어공주가 달려와 부시의 빨간 혀를 빨다가 입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진다 나는 낄낄거리며 그것들의 공연을 본다 산모롱이를 돌아 기차가 흐물흐물 기여온다 나는 기차를 하늘로 몰아간다. 렬을 지은 바곤들이 피리를 분다 태양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기차를 마신다. 마지막 바곤이 풀떡거리는 순간 구름이 지나가며 기차도 태양도 지워버린다                      2008.8.24. 우유를 마시다가 내가 물이 켜운다고 하자 그녀는 상점안으로 뽀르르 들어가서 우유 한병을 사왔다. 나는 빨대로 우유를 쫄쫄 빨다가 우유병속에 퐁당 빠지였다. 칼끝같은  소리를 치며 우유속을 첨벙거리였다. 병밖의 그녀는 호호호 팽이처럼 뱅그르 돌았다. 비껴가는 웃음소리따라 우유병이 커지였다. 우유가 넓게 퍼지면서 병바닥을 하얗게 칠한다. 뒤에는 나의 별장이 땅을 차고 일어서고 앞으로 아스팔트길이 일자로 쭈욱 뻗어갔다. 층집들이 우쭐쭐 키돋음 하며 줄비하게 일어섰다. 슈퍼마케며  병원이며 학교며 체육장이며...호호호 정말 멋지구려 그녀가 우유병을 기울이여 우유를 쏟아버리였다. 나는 한방울의 우유가 되어 병속에서 똑 떨어지였다. 다시 나를 찾은 나는  하하하 앙천대소하였다.                                 2008.8.24. 일광산의 아리아 당신은  해를 낳는 어머니라죠 홀수날에는 아들해 짝수날에는 딸해를 낳는다지요 섣달이면 꽃뱀이 당신에게 해를 잉태시킨다지요 앞에는 꺽다리 두만강이 서있고 뒤에는 아득히 아득히 물결쳐가는 산바다랍니다 섬! 섬! 꽃잎같은 섬이 하얀나비 한 마리 해살로 배를 만들어 타고 날개로 노를 저으며 섬을 향하여 닿아가고 있습니다 해어머니 금년에도 섣달에 꽃뱀이 오겠지요               2008.8.26. 새둥지와 개구리 그리고 바다 새둥지가 가느다란 줄을 늘이여 60여억의 동공을 얽어놓았다. 길고 짜른 줄에 묶이운 동공들은 벌떼마냥 모여들어 윙윙거리였다. 누가 새둥지 지붕에 등불을 켜놓자 하늘에서 별무리가 쏟아졌다. 별무리는 수백개의 붉은 불덩어리가 되어 때글때굴 굴러다니였다. 자칫하면 큰 화재가 일수있는 아슬아슬한 순간 새파란 개구리들이 폴딱폴딱 뛰여나와 불덩이들을 하나둘 삼키였다. 우릉꽈릉 우뢰가 울며 소나기가 퍼부었다. 새둥지속에 장마가 져 물바다를 이루었다. 바람이 물머리를 추켜들었다가 놓을 때마다 무서운 파도가 몸부림쳤다. 누군가 새둥지 지붕우에서 나불거리던 등불을 꺼버렸다. 물이 빠지였다 . 개구리들은 물을 따라 바다로 밀려갔다. 바다는 개구리들을 부시고 뚜드리고 담금질해서 둥그런 구체 하나를 만들었다. 그날밤 꽃뱀들이 잔디밭에 있는 굴속으로 꼬리를 한들거리며 드나들었다 태평양에서 한밤 목욕한 구체가 까아만 태양이 되여 물안개를 거두며 서서히 솟아올랐다                    2008.8.24. 한방울 바람 리력서 바람이 솔솔 분다 모아산 나뭇잎들이 설렁거린다 손바닥만한 참나무잎이 날아가는 바람알을 홀짝 삼키였다 바람알이 버둑거릴 사이도 없이 빨간 옷을 입힌다 이제 넌 빨간 맹꽁이야   바람이 솔솔 분다 파란 내물이 어디론가 졸졸 흘러간다 빨간 맹꽁이는 바지를 거두고 내물을 따라 차박차박 걸어갔다 여기저기서 흘러온 내물이 모여 강물이 출렁거리였다 물살이 하얀 혀를 쏙 내밀어 빨간 맹꽁이를 빨아들이였다 허우적거리며 살겠다고 발버둥이 쳤다 빨간 맹꽁이는 바람이 솔솔 분다 빨간 맹공이가 겨우 강시슭에 닿자 눈앞에 어룽어룽한 호랑이가 퉁방을 눈을 부릅뜨고 서있었다 널 잡아먹어야겠어 안돼 겨우 살아났는데 빨간 맹꽁이가 팔딱 뛰였다 머리우의 파란 그물이 빨간맹꽁이를 포박하였다 바람이 솔솔분다 빨간 맹꽁이가 뚱뚱해진다 좌르르 내쏜다 빨간 노란 파란 진드기들을 진드기들은 나무의 속살에 생장즙을 발라놓고 쑹쑹쑹 하늘로 빠지였다    2008.8.27. 진달래 별곡 4월에 고향에 갔다가 진달래밭으로 갔어 불타는 꽃들이 꽃잎을 저으며 반가워 하더라 나는 진달래 한송이를 따서 호주머니에 넣었어 한참 지나니까 호주머니에서 새소리가 들려오지 않겠니 새파란 새가 가슴을 할딱거리고 있었지 뭐야 오늘은 복이 있다고 새가 나오지 못하게 하였어 이윽고 호주머니가 묵직해 났어 아니 호주머니 덥개를 제치고 오리주둥이가 불숙 나오지 않겠니 어부지리를 하였다고 호주머니에 있는 오리를 꾸욱 눌렀어 그런데 그놈이 쪼그맣게 줄어들더란 말이야 웬일인가 호주머니를 비썸 여니 아니 글쎄 다람쥐가 쑝 뛰여나갔지 뭐야 하하하 나의 입에서 웃음폭포 쏟아졌어                 2008.8.27 파란 자전거의 새노래 금방 수리부에서 나온 파란 자전거가 씨잉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어이 친구들 빨리 오게 그의 부름을 듣고 연길시 자전거들이 모두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두눈을 부릅뜨고 달리던 까만 하이야가 자전거들아 어디로 날아가니 몰라  나도 함께 날가 그래라 까만 하이야가 하늘로 날아오르자 연길시 모든 차들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연길시 제일 높은 집이 소리쳤습니다 얘들아 어디로 가니 몰라  나도 함께 날가 그래라  그리하여 집들도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참 굉장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전거와 차들이 색깔에 따라 편대를  지어 하늘은 댓바람에 알송달송 꽃밭이 되였습니다 집들은 층수에 따라 대렬을 지었습니다 일층끼리 이층끼리 ... 삼십층끼리 제일 앞에는 파란자전거무리 제일 뒤에는 고층빌딩들 무리 여러가지 색갈, 여러가지 모양의 구름떼가 날고있었습니다 연길시 북대의 제일 년장자인 김아바이가 물었습니다 여 어디로 가오 모릅니다 무엇하러 가오 모릅니다 김아바이는 하얀머리를 가로 저으며 자꾸만 중얼거렸습니다 모릅니다    모     |    릅     |    니     |    다 2008.8.28. 코스모스의 종소리 코스모스꽃을 한줌 따서 하늘에 뿌리였다 씨앗처럼 2008년 8월 29일 오후 하늘에 날아오른 꽃들 종소리를 울린다 하얀 꽃은 하얀 종소리 연분홍꽃은 연분홍 종소리 꽃들이 나란히 줄지어 난다 하얀꽃은 까만 살이 되어 분홍꽃은 파란 살이  되어 살들은 동서로 갈라져 멀리 날아가다 하얀 살은 돌이 되어 땅에 떨어지고 파란 살은 별이 되어 하늘에 박힌다 땅에 떨어진 돌도 하늘에 박힌 별도 찰나였다 찰나 2008.8.29. 비들의 키스 어디서 오는가 뭘하러 오는가 이방인들이여 검은 바다가 출렁이는 마귀성에서 선박들의 대렬이 태초의 아침을 열려고 몸부림친다 룡문불상의 자애로운 얼굴 아침 노을에 장미꽃을 달아맨다 바람은 상수리잎을 밟고 달아나고 태고연한 수림의 아늑은 차소리를 졸졸거리는 샘물소리로 걸러낸다 시인은 가상세계를 헤염치며 시의 의미를 지워버린다 망망한 사막의 한 귀퉁이의 샘물 하늘의 구름에 실려 반짝인다 지금은 기다란 이방인들이 하늘에서 날아내리며 키스를 퍼붓는 시간 2008.8.30. 허수아비 드라마 하늘이 밭이랑을 핥는 밭머리에 처연히 서있었다 허수아비가산들 바람에 앉아가던 링크가 허수아비 머릿속으로 쏙 들어갔다 허수아비는 채양없는 초모자와 너덜거리는 옷을 훌훌 벗어버리였다 팔이 날개로 되어 허수아비는 하늘을 날아올랐다 꿈에도 보고싶던 바다가에 이른 허수아비는 한그루의 야자나무가 되어 푸른 잎을 설렁거리며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위로 날아예는 갈매기가 눈동자의 목을 말리웠다 야자나무는 갈매기가 되어 파도위를 훨훨 즐기다가 바닷물에 내리 꼰지였다 마치 돌덩이가 공중에서 떨어지는것처럼 바닷물을 들쓴 갈매기는 한 마리 칼고기가 되어 기다란 송곳주둥이를 내두르며 뭇고기들을 마구 찔러죽이였다 안되겠네 하는 생각이 떠오른 링크는 또또 신호를 보내였다 칼고기는 날개를 펼치고 비행인이 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소리 높은 공중에 올라간 비행인은 오른손으로 해를 쥐고 왼손으로 달을 쥐여다가 해와 달을 악수시키였다 해와달이 악수하는 순간 팡 불꽃이 튕기면서 비행인에게 불이 달렸다 시뻘건 불길속에서 비행인은 재가 되어 날리였다 링크는 불길속에서 탈출해나와 공중에 사라지는 붉은 선을 그었다 나는 두손으로 좁쌀알만한 새까만 별찌를 받아 머리에 넣었다                     2008.8.31. 눈사람의 로맨스 어제 손자손녀들과 함께 뜨락에 나가서 눈덩이를 구을이여 눈사람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한잠 자고나니 나의 눈동자속으로 눈사람이 들어왔다 아니 이게 누구지 마누라가 첫날 새각시로 하얀 너울을 쓰고 방안에 앉아있는것이 아닌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사과처럼 밝아우리한 얼굴 그윽한 눈 상큼한 코  분명 나의 새각시였다 첫날 새각시 연분홍살냄새에 몸이 떨리였다 나는 여보하고 새각시를 와락 안았다 눈깜박할사이 새각시는 물이 되었다 물은 방안을 한바퀴 비잉 돌더니 문틈으로 솔솔 빠져나갔다 얼떠름하게 서있던 나는 물꼬리가 밖으로 빠지자 제정신이 들어 문을 왈칵 열었다 뜨락에서 백조한마리가 날개를 푸덕이며 겅중겅중 원을 그리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아가는 백조를 멍하니 바라보며 여보하고 소리쳤다 백조는 내 소리를 들었는지 하늘에서 피끗 목을 돌려 나를 보고는 검은 구름이 되어 산너머로 사라지였다. 2008.8.31. 바이올린 소리가... 바이올린 소리가 꽃잎을 날리였다 꽃들이 송이송이 모여 가을들판을 하얗게 밀고 나간다 바이올린소리가 홍모를 날리였다 새들이 하늘에 날아올라 새구름을 만든다 바이올린 소리가 벼알을  날리였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벼대들과 속삭이며 황금물결을 서서히 밀어올린다 바이올린 소리가 개구리 알을 날리였다 개굴개굴 울어싸는 개구리들 울음이 하늘을 핥아먹는다 바이올린 소리가 별찌를 날리였다 붉은 선들이 하늘에 그물을 느리는데 달의 아랫도리가 흥건해진다 바이올린 소리가 비방울을 날리였다 화살들의 폭포가 쏟아지여 수억의 잎장단을 요란하게 두드린다 바이올린 소리가 모래알을 날리였다 쳐녀의 허벅지처럼 아름다운 사막을 눈시린 해살들이 감빤다 바이올린 소리가 까놓은 새끼들인 꽃잎 홍모 벼알 개구리알 별찌 비방울 모래알 황람청자파남보 무지개 물결이 이랑이랑 몰려와 나의 무덤을 쌓는다 나는 한 마리 주검이 되어 무덤속에 고요히 누워있는다 2008.9.1. 회전문의 상상 회전문에 들어섰다 회전문은 나를 하늘에 부리워 놓았다 하늘의 나와 가로수밑의 나 나는 둘이되였다 나와 내가 눈맞춤을 한다 하늘의 내가 집게를 내려보내여 나를 짚어간다 짚는 순간 나는 주먹만한 빵이 되어 올라간다 하늘의 나는 빵을 질근질근 씹어서 목구명으로 넘긴다. 빵은 아프다고 새된소리를 치지만 하늘의 나는 듣지 못한다 위속으로 들어가니 궁전이 나지였다 궁전은 담장에 안에 있고 하늘은 노란색갈이였다. 궁전 뜰에 북이 달려있었다 나는 둥둥 북을 잡아두드리였다. 궁전이 오그라 들며 나한테로 넘어지고있었다 나는 치던 북을 멈추었다 궁전도 원형태로 돌아갔다 나는 담장을 넘어와 노란 하늘에 불을 질렀다 하늘이 뿌지직 타며 무너지였다 하늘의 내가 아아 우뢰소리같은 비명을 지르며 시꺼먼 바위로 떨어지였다 떨어지는 바위는 음악을 연주하고 나는 바위속에서 춤을 추었다 땅에 떨어지여 바위는 박살나고 하늘의 나는 사라지였다 나는 다시 가로수밑에 서있는 내가 되었다        2008.9.1 수리개의 교향악 수리개가 하늘을 난다 수리개는 날지 않는다 수리개는 날개를 저을 뿐이다 수리개가 날개를 젓는것은 삶의 공간을 바꾸는 일이다 양떼가 그의 뒤로 밀려간다 호수가 그의 뒤로 밀려간다 마을이 그의 뒤로 밀려간다 산이 그의 뒤로 밀려간다 수리개가 날개를 젖는 바람에 날개를 빨리 젖는다 산과 들이 수리개의 눈으로 날려들어왔다가 뒤문으로 빠진다 수리개가 몸으로 원을 긋는다 산과 들이 팽이처럼 뱅그르르 돌아간다 수리개는 자기자 앉을 자리를 맡아놓고 살이 되어 내려오다가 이끼 푸른 바위지척에 와  살짝 날개를 펼쳤다 접으며 앉는다 돌던 산이 들이 움직임을 멈춘다  2008.9.1. 모아산을 간다 모아산 간다 솔내음이 향기롭다 나는 머리를 푸욱 숙으리고 걷는다 숙으리고 싶어서 숙이는 것이 아니라 환상의 오라기가 내목을 비끌어  매고 산으로 잡아당긴다 나의 령혼속에 언어의 껍데기들이 날아든다 내가 껍데기들을 주으면 껍데기들은 붉은 벽돌장이 되기도 하고 청기와장이 되기도 하고 뿌연 사물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것들로 땀을 흘리며  집을 짓는다 친구들을 청해오면 친구들은 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두덜거린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지은 청기와 집을  사랑한다 모아산을 갈 때마다 나는 집을 지어 메고 내려온다         2008.9.1. 꿈새 꿈새 한 마리가 내 혼의 들에다 언어의 껍데기를 날라온다 빨간 파랑 노랑 껍데기들로  주섬주섬 집을 짓는다 황홀한 집으로 숱한 꿈새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새끼를 까놓는다             -9.1 샤와와의 넉두리 샤와를 한다 때를 먹으며 물은 살지고 때를 벗으며 나는 여윈다 따슨 분수를 뿜던 샤와기가 고무풍선이 되어 나를 욕실에서 끌어내여 집을 나선다 밖에 나온 풍선이 오색으로 변하면서 하늘에 날아오른다 나를 싣고 산을 지나다가 벼랑가에 이른 풍선이 나무뼈다구에 찔리여 풍 터진다 나는 벼랑의 오솔길에 떨어진다 하얀 강아지가 꼬리를 저으며 나를 따르라 한다 강아지를 따라 절벽사이에 놓인 외나무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버지 목소리 이눔아  왜 여기에 왔어 몰라요  빨리 돌아가 별 볼일도 없이 빈둥거리지 말고 내가 돌아서는 찰라 커다란 고니가  나를 업고 훨훨 날아올랐다 나는 눈을 꼬옥 감고 바람소리를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다시 욕실이였다 살았구나 하고 나는 후- 단김을 뿜었다            --9.2 매돌이 돈다 머리 하얀 할머니 배돌을 돌리신다 매돌 입에 은빛 해를 떠넣으며 매돌 입에 금빛 달을 떠넣으며 옷고름에 비바람 잠 재우며 매돌을 돌리신다 치맛자락에 눈보라 싸안으며 매돌을 돌리신다 돌아가는 매돌과 함께 할머니도 돌아간다 매돌은 어느것이고 할머니는 어느것인가 쏟아지는 하얀구름이 쌓여쌓이여 푸른 산이 되고 쏟아지는 노란 구름이 흘러가며 황금벌을 만든다 매돌이 돈다 매돌이 돈다          -9.3 붓이 달리며 먹물 게운다(20) 붓이 달리며 먹물 게운다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눈(雪)알들이 매화의 봉오리에 젖을 먹이고 새의 노래는  찬 바람을 녹여 물빛을 나뭇가지에 바른다 피여나는 빛이 사물여백을 여는 시각 붓이 달리며 먹물 게운다 나비가 꽃에서 부채를 한들거리면 꽃잎들이 간지러워 캐득거리고 꽃웃음 먹은 구름은 징검다리 해는 오늘도 징검다리 밟고 건정건정 서쪽나라로 려행간다 붓이 달리며 먹물 게운다 내물을 감싸 안으러 땅거미 기여오면 조약돌들 하늘로 날아가 별이 되고 눈이 새똥그란 별들 두주먹을 부르쥐고 쪽배를 향하여 뛰여온다 늦으면 타지 못한다나             -9.3 까만 조약돌 까만 조약돌 하나를 뿌려 던지였다 바람이였다 바람속에서 청새한마리 날아나왔다 청새는 부리에 물었던 파란잎을 물에다 떨구었다 쪽배가 안개속에 사라지면서 나를 지운다               -9.4. 안개의 공연 아침호수를 무대로 안개가 굼실거리며 하늘로 솟아오른다 구라파의 10대 미인들이 안개를 타고 내려와 깔깔대며 물 장난에 신바람났다 납골당에서 나오신 할머니가 하얀 머 리를 풀어헤치였는가 납덩어리같은 고요가 할머니 머리발 에다 세상을 잠재우고있다. 안개인가 구름인가 우유폭포인 가 나의 눈엔 흰색갈의 아련한 움직임뿐이다 안개는 나를 휘말아다 알수없는 곳으로 가져갔다 하늘거울에 비친 내가 구름방석에 앉아서 념불을 주절거리고 있었다. 안개의 공연 이 끝나자 호수는 렌즈가 되어 산이며 새며 풀이며 꽃이며 를 찍느라고 온 몸에 땀이 흥건히 내배였다.              -9.5. 식당메뉴의 공연 밭이다  옥수수 감자 고추 배추 조이... 강이다 돌쫑개 납쯔리 버들치 패래재 모래무치... 바다다 조기 명태 이면수 조개 새우... 산이다 드릅 당시싹 곰치 고사리 병풍... 오글보글 복작이는가 하면 업치 고덥치고 오구작작 떠드는가 하면 호호히 히 깔깔거린다 기름가마의 형벌받아도 눈 만은 그대로 뜨고있다 식당메뉴에는 이런 극들이 공연되고있다 식당메뉴에는 아무 공연도 없다             -9.6. 시간의 프리즘 시간이 흐르며 해가 뜬다 달이 뜬다 해 는 앞바퀴  달은 뒤바퀴 굴러굴러간다 시간의 가지에  새가 앉아 울다가 가면 나비가 날아와 부채질해보고 나비가 날 아간 자리에 국화꽃이 매달려 그네를 뛴 다 시간의 언덕에서 다람쥐가 밤알을 줍고 있다 시간의 언덕에서 빨간뱀 기여가고 있다 시간의 언덕에서 노루가 컹컹컹 울 고있다 바람은 시간호수에 풀어놓은 물감을 날라 다가 산에 들에 색갈을 올려본다 하얀색 을 올렸다가 파란색을 올리고 까만 색을 올렸다가 노란색을 올리고 여느 색도 마음 에 들지 않아 자꾸 색갈을 바꾼다 시간저울에서 산이 저울추 되여 하늘 이 몇근 가는가 떠본다        -9. 6. 해바라기 비명 산굽이를 돌아간 해바라기밭에 꽃이 피였다 태양의 물결이 산을 돌아 노랗게 흘러가며 비명지른다 바람이 비명 한알을 내 귀구멍에 넣고 어디론가 사라지였다 귀구멍이 간지러워 맴도는데 귀구멍에서 싹이 자라 밖으로 나오더니 머리에 여러개의 나무뿔이 달린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기겁하여 도망친다 나도 비명이다 나의 비명과 해바라기 비명이 갑자기 돌개바람을 몰고와 나를 팽이처럼 돌린다 나무뿔 잎들이 떨어지고 가지가 끊어지고  뿌리가 쑥 뽑힌다 산굽이  돌아 태양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가고있다                    -9. 6. 소나무와 꿈 소나무가 요사하다는 시를 무르익히다가 잠이 들었다 A시 시우 D를 만난다 그와 현대시에 관한 책을 빌리라고 청든다 시우는 자기가 제일 사랑한다는 파아란 사라 두 개와 책한권을 내여놓는다 사라에는 검은 글이 씌여있는데 알아볼수 없고 책은 제목들이 나오는데 거개가 읽은 글이여서 흥취가 식는다 네댓살되는 아이와 부부간이 사는 시우의 집에서 하루밤 묵기로하고 나와 시우는 눈을 밟으며 강으로 갔다 강은 다 얼지 않아서 이따금 흘러가는 푸른 물이 눈속에서 번들거리였다 봉두란발한 시우의 안해가 두눈이 새빨개서 시우를 죽이겠다고 급자기 나타났다 그는 가위 서너개를 손에 들고 있었고 끝이 뾰족한 기다란 쇠줄로 시우를 찌르겠단다 찰나 시우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눈얼음속에서 울부짖었다 얼음구멍을 들여다 봐도 시우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이 생소한 도회지라 시우의 집을 다시 찾느라고 헤매는데 시우가 빠졌다는 얼음구멍이 나지였다 이름을 부르며 빨리 나오라고 하였다 불이 켜졌다 땅밑에 굴이 나졌는데 (넓다란 굴이) 굴속에서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있었다 내 고향 류신의 허아무깨가 최선생이 왜 여기 왔습니까 한다 나는 시우 D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없다고 한다      때는 새벽 세시경 더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글을 쓴다                  -9.7    
4    시는 영원히 새로운 실험이다(최룡관) 댓글:  조회:969  추천:63  2008-06-12
시는 영원히 새로운 실험이다최룡관문학이란 무엇이고 시란  무엇이기에 내가 그냥 집착하고있을가? 나는 종종 나에게 이런 물음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내가 왜 그렇게 시를 사랑하고 시를 위하여서라면 모든것을 버릴수 있는 준비가 되여있는지 때론 자신을 의심하기도 한다. 왜 그러느냐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소학교부터 초중때까지 과목마다 5점짜리 학생이였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의학을 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 말을 듣지 않고 고중부터 문학도가 되여버리였다. 고중에 올라간 다음에는 1학년부터 류를 나누어 어느 한곳을 뚫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받들고 발을 들여놓은것이 문학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었다. 한가지는 기자나 작가의 직업이 자유직업이란것이였고, 다른 한가지는 남평의 허충남과 그의 동생 허봉남이 소년보에 소설을 발표하고 사생들의 우러름을 받는것이 부러워서였다. 고중때 소설을 보느라고 밥표까지 팔아가며 책을 사고 밤을 패워가며 책을 읽던 일이 지금도 눈에 펀하다. 그때 재구도 쳤다. 세계삼대명작이라는 《돈끼호떼》를 보아야겠는데 없었다. 할수없이 현도서관에 가서 보자고 하고는 책을 쥐고 도망쳤다. 그때 책을 보느라고 너무도 애쓴 보람으로 나는 병이 나서 일년 휴학까지 하였댔다. 문화대혁명후 연변일보에서 처음 문학판을 복간할 때 나는 처녀작 《모주석께 드리는 송가》라는 장시를 발표하였다. 신문에 서위동이라는 필명으로 시가 나간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막 뛰였고 몸에 열이 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이 발표된후부터 연길에 계시는 많은 편집선생님들이 나를 찾아와서 고무격려하면서 련속 시를 발표해주었다. 리서량, 김경석, 리상각, 김성휘, 류원무, 김창욱, 장지민, 림원춘, 박창묵 등 선배님들이 우리 덕화의 촌놈들을 시인으로 만드느라고 공력을 몰붓던 일이 력력하다. 그후에는 김호근, 황장석, 조룡남, 김동호, 문창남, 림국웅, 리삼월 등 편집선생님들이 나의 작품을 알뜰하게 보살펴주며 시창작의 길로 나아가게 하였다.  쉰둘을 먹던 해에 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써서 남평이라는 시골중학교에서 연변일보사로 조동되여왔는데 내 개성이 있는 시를 쓰지 못하였다. 나는 문학공부를 하여야 한다. 나로서의 새길을 개척해야 한다. 그래야 선배들에게, 부모형제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 될수 있다고. 그래서 리상각선생님을 찾아가서 조선문학이라는 한국잡지를 빌어다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는 《현대시를 이렇게 쓰자》는 편집부의 문장이 련재되고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다 복사하여 읽고읽고 또 읽으면서 현대시방법을 익히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 그후 한국에 여러번 다녀오면서 교보문고며 동시장이며를 돌아다니며 책만 지고 왔다. 첫길에는 98딸라 벌금까지 하며. 서울에 일곱번 다녀왔지만 나는 롯데백화점을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하였다. 10여년간의 학습과 분투를 거쳐서 나는 나의 과거의 시버릇을 떼버리고 현대시라는 곬으로 파고들어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시를 위하여 나는 연변일보 문화부 주임을 사임하였고 시를 위하여 나는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비서장을 사임하였고 시를 위하여 나는 55살에 내부퇴직을 하였고 시를 위하여 나는 나의 모든 정력을 몰부어보았다.  나는 내가 쓴 시들의 절반을 너무 사랑하고 내가 쓴 《이미지시창작론》을 너무 사랑한다. 그것들은 나의 피로 씌여진것이라고 감히 말하고싶다. 나는 시를 예술로 보고있고 추구하고있다. 시는 무조건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언어들의 행진이라고 나는 믿고있다. 시인의 붓끝에서 언어들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여난다고 믿고있다. 시는 어떤 사물의 묘사나 모방이 아니고 시인자신의 자아표현이라고 믿고있다. 시는 의미를 전달하여 누구를 교육하려는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그리여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것이라고 믿고있다. 정말 좋은 시는 민족의 한계, 국경의 한계, 당파의 한계를 받지 않는 인류적인것이라고 믿고있다. 문학의 시대와 정치시대는 다르므로 시는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믿고있다. 시는 인생을 파고드는 일이며 자연의 섭리를 파고드는 일이라고 믿는다. 시는 현실에서 오지만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현실의 중복도 복사도 아닌 비현실적인것이며 현실을 초월한 환상적인것이라고 믿는다. 시의 핵심은 변형인데 변형을 떠난 시는 3류시로는 될수 있지만 결코 차원이 높은 시로는 될수 없다고 믿는다. 시의 목적은 시일뿐이다. 시인이 시외의 다른 목적을 가질 때는 시가 타락하는 때라고 믿는다.  탐구, 탐구, 또 탐구! 탐구하다가 피안에 이르지 못하고 죽는것이 시인이다. 시는 영원히 새로운 실험이다. <<연변문학>> 2008년 2월호
3    언어(최룡관) 댓글:  조회:1298  추천:77  2008-03-17
언어 최룡관거울속에는잔별들이 총총한 하늘이 있다.하늘숲에서는사슴이 나무잎을 뜯어먹고토끼가 두귀를 빨죽하고 거울속에서는강물이 쉼없이 흐르고있다.아이들은 강가에서 모래집을 짓고고기들은 물속에서 은빛을 반짝이고 소설가는 거울속의것들을 주어서구수한 이야기를 만들고시인들은 그것들을 몰고 다니며하나하나 해방시킨다평론가는 눈살을 찌프리고헛망치질에 신이 난다 거울속은항시 비여있다.<<연변문학>> 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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