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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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중국동포들도 한겨레의 사랑을 바란다 댓글:  조회:7458  추천:8  2013-03-18
중국동포들도 한겨레의 사랑을 바란다 -- 《재한 중국인범죄 그  불편한 시선》을 읽고                            청해   길림신문의 [특별기획2] 《재한 중국인범죄 그 불편한 시선》을 읽고 필자는 한국에서 3년 남짓이 체류하는 기간 중국동포들이 3D업종에서 고달프게 일하면서 한 겨레의 사랑을 갈망하던 모습들이 삼삼히 떠오른다. 중국동포들도 잘 살아보려는 일념으로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갔다. 한국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아 공항, 출입국 관리소, 취업교육장, 로동부 고용지원쎈터 등 국가기관, 사업소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곳들이다. 이런 곳을 다니면서 보면 한국의 국가공무원, 사업일군들은 동포들에 대하여 아주 뜨겁게 대하였고 동포다운 사랑을 주었으며 봉사업체의 종업원들도 아주 열정스럽게 대하였다. 이럴 때마다 동포들은 고국 땅에서 한 겨레의 따사로운 사랑을 느꼈다. 하지만 일부 하류계층의 고용주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채소농장에 가 보면 동포들의 기숙사가 곧바로 채소하우스 안이였다. 주인집 애완견은 주인과 한방에서 같이 먹고 자지만 중국동포들은 짐승자리 보다 못한(벼짚우에 비릴박막을 편) 하우스 안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 하니 너무나도 인격이 손상 받는 일이였다. 그리고 건설현장에서 중국동포들이 갖은 고생을 하면서 몇 달 혹은 몇 년 뼈빠지게 일하고도 고용주가 달아나는 바람에 로임 한푼도 받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다. 전형적인 실례로는 흑룡강성 녕안현 와룡조선족향의 리영준(58세)이 한 오리구이 집에 갇히여 아무런 자유도 없이 물매를 맞으면서 8년간 로임봉투 한번 손에 쥐여 보지 못하고 현대판 노예생활을 하다가 KBS방송사에서 제보를 받고 현지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도움으로 풀려나온 사실이다. 한국의 많은 3D업종에서 인력을 많이 수요하는것만큼 중국동포들은 3D업종에서 일하는 것을 개의치 안아 한다. 하지만 인격만은 무시당하지 말아야 하고 한겨레의 사랑을 바랄뿐이다. [특별기획2]에서는 중국인의 범죄, 그 불편한 시선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필자는 본문을 읽으면서 중국인들의 법죄행위가 있게 되는 원인을 많이 생각하여 보았으며 한국에 있을 때에도 중국동포신문사와 함께 중국동포들의 범죄행위가 나타나는 원인에 대하여 분석해 본적이 있다. 그 원인들을 보면 1. 한 가정이 오래동안 갈라져 있으면서 감정불화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로 술을 마이고 무단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 2. 동료들 지간에 음주 후 사소한 일을 가지고 다투다가 리지를 잃고 악성사고를 저지르는 경우 3. 한때 연변패요, 흑룡강패요 하는 패거리 싸움 4. 일부 하류계층의 고용주의 멸시로부터 직접 고용주에 대한 반항으로 오는 경우 5.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구체적인 대상이 없이 묻지마 하는 범죄행위 6. 개인의 불법리익을 위한 강간, 강탈, 절도행위 등등이 있었다. 여기에서 일부 고용주 대한 불만이 오게 된 주요한 원인이라면 중국조선족들은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왔지만 소수민족이라고 소외를 당하였거나 소외감을 느껴 본적이 없는데 고국이라고 찾아온 한국에서 오히려 일부 고용주들에게서 업신 여김을 받은데서 반감을 싸게 되였다. 여기에서 특별히 지적할것은 전반 한국사회는 중국동포들에 대한 사랑을 주고 있지만 일부 하류계층의 고용주들과 개별적인 하류계층의 사람들의 중국동포들에 대한 멸시로 하여 일부 인식이 낮은 중국동포들은 전반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여기고있다. 한국에서의 중국동포들의 살인사건들 가운데서 오원춘의 토막살인사건 같은것은 전형적인 ‘묻지마 살인사건’이지만 일부 살인사건 같은것은 중국동포들을 너무 학대하거나 업신여긴데서 비롯된것이다. 1996년 페스카마 15호 선장살인사건은 전형적인 학대사건으로 인기 된것이고 금년 리모의 영등포직업소개소 소장살인사건은 로임체불로 인한 살인사건이다. 이 두 살인사건에서 보면 만약 선장이 가혹한 학대가 없었다면 돈을 벌려간 사람들이 그런 끔찍한 사건을 저지를지 않았을것이고 직업소개소 소장이 그 소개소의 녀성직원처럼 동정어린 말이 아닐지라도 욕설의 말이 아니였더라면 그러한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것이고 소장은 아까운 목숨까지 잃지 안았을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런 악성사건에 대하여 변명하는것 같지만 중국동포들에 대한 무자비한 인격무시가 아니였더라면 이러한 악성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라는것을 지적한는 바이다. 어떤 원인으로 일어났던 살인사건이거나 기타 범죄행위는 어디까지나 용서못할것이고 법률의 엄격한 제재를 받아야 할것이다. [특별기획2]에서 지적되다싶이 한국인 범죄자 비률은 인구 대비 4.0%이지만 같은 기간 한국 내 거주 중국인 범죄자는 인구 대비 범죄자 비율은 3.6%로 집계되여 한국인 범죄비률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의 범죄는 어디까지나 극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절대다수의 중국동포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흐려놓는다고 극 소수의 범죄분자들에 의하여 많은 중국동포들이 같이 한국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여러 가지 력사적 원인으로 하여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지고 이국 땅에서 생활을 하지만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우리 동포들은 모두 한 겨레의 피줄로 이어진 동포라고 생각한다. 한국정부의 배려 하에 우리 중국동포들도 다 같이 잘 살아 보자는 마음으로 한국에 와서 일하는데 한국의 법률과 제도를 준수하고 열심히 일하여 한국사회에 중국조선족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준다면 한국사회는 우리를 더욱 포옹해 줄것이고 한국인과 중국동포들이 서로 신뢰하고 함께 융합된다면 화합, 공존의 사회로 가꾸어 지리라고 믿는다. 2012년 12월 16일
119    공금절약의 새로운 기풍에 박수를 댓글:  조회:7222  추천:8  2013-03-14
개혁개방이래 물질문화수준의 부단한 제고와 더불어 일부 바르지 못한 기풍도 슬며시 고개를 쳐들었다. 주요한 표현중의 하나가 공금을 람용하거나 공금으로 먹고마시며 떠벌려 랑비하는 현상이다. 해마다 년말년시면 각 단위에서는 《송구영신》이요, 《년말총화》요 하면서 집체적으로 식당에 가서 한바탕 크게 차려놓고 떠벌려 랑비하는것을 례사로 여겼다. 습근평총서기가 《근검적약을 리행하고 떠벌려랑비하는것을 반대할》데 대한 중요한 지시를 내린후 전국 여러 언론매체의 기자들이 식당을 돌아다니며 공금랑비현상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왕년에는 많은 식당들에서 돈벌이가 잘 되였는데 금년에는 너무나 잠잠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리 주문하였던 단위들에서도 연회를 취소하였다니 그럴 법도 한 일이다. 연변의 정황을 봐도 해마다 3.8절은 각 단위에서는 먹고 마시고 노는 큰 행사로 취급되였는데 금년에는 정부로부터 3.8절에 공금으로 먹고 마시지 못한다는 령을 내렸기에 집체적으로 식당에 가는 행사가 거의 없었다. 요즘 북경에서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 기간에도 비행장, 기차역과 대표단이 거처하는 곳에서 영접과 환송의식을 하지 못하며 대표위원이 든 방에 생화를 놓지 못하며 회의화식표준도 엄격히 집행하고 고급료리, 술과 음료를 놓지 못한다고 규정하였다. 당중앙의 사업작풍을 개진할데 대한 《8항 규정》과 《6항 금지령》이 내린후 각급 지도간부들이 사업작풍을 개진하기에 노력하고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민대중이 바라는바이다. 각급 당정간부들이 모두 당의 우량한 사업작풍을 발휘한다면 당이 군중의 신임을 얻게 되며 당과 군중과의 관계가 밀접해지게 되여 간부와 군중이 융합된 조화로은 사회로 구축될것은 두말할것 없다. 요즘에 나타난 이런 신선한 기풍이 하루살이현상으로 되지 말기를 바라며 우리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는 규정과 습관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118    동성애자가 결혼할수 있는가? 댓글:  조회:9660  추천:46  2013-02-06
동성애자가 결혼할수 있는가? 청해   최근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두 로인이 “두 령감의 애정”이라는 웨이버 아이디로 인터넷에 그들의 사랑과 근일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공포하고 1월 30일에는 북경평곡(北京平谷)에서 그들의 몇몇 가까운 친구들과 2명의 네티즌의 축복을 받으면서 “혼례식”까지 치러 중국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퇴직교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물을 나르는 사람이다. 경상적으로 교원의 집에 물을 나르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애정이 생겨 “결혼식”까지 치렀다고 한다 . 그렇다면 동성애자가 결혼할수 있는가에 대하여 필자의 견해를 말해 보려고 한다. 첫째로 여러 사전의 해석으로부터 보면 그 해석의 심도차이가 있을뿐 공통한 점은“결혼”이란 남녀가 부부관계를 맺는것이다. 다시말하면 결혼 당사자의 일방은 남자이고 다른 일방은 녀자여야 된다는것이다. 둘째로는 우리나라 혼인법으로 보면 혼인법 제 5조에는 “결혼은 반드시 남녀쌍방이 완전 자원이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결혼이란 사전의 해석과 혼인법으로 보면 반드시 결혼당사자의 일방은 남자이고 다른 일방은 녀자여야 한다. 즉 이성관계여야 한다. 그런데 동성애자들은 이성관계인 것이 아니라 남남 혹은 녀녀 동성관계이다. 때문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으로도 맞지 않거니와 륜리에도 어긋나는 변태적 행위라고 말할수 있다. 혼인법 제 8조에는 “결혼하려는 남녀쌍방은 반드시 친히 결혼등기기관에 가서 결혼등기를 하여야 한다. 결혼증을 취득하면 곧 부부관계가 확립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혼인기관에서 발급한 결혼증을 취득하지 못하였기에 부부관계가 성립되지 못하므로 결혼이라든가 혼인관계라고 말할수 없다. 그러므로 “동성결혼”이란 있을수도 없고 결혼식을 치룰수도 없는것이다. 만약 동성지간에 “결혼”하고 “결혼식”을 치렀다 하더라도 이것은 법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행위이다. 때문에 그날 어느 일방의 아들이 와서 음식상까지 번져놓는 일까지 발생하였다고 한다. 지금 국제상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적지 않게 있다. 한 사람이 어떤 형식으로 누구를 사랑하든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이다. 그렇지만 륜리에 어긋나거나 법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동성애자들에 대하여 “정신병자”라거나 짐승보다 못하다든가 하면서 비방하거나 천시하지 말고 그들이 정확한 인생관, 가치관, 혼인관을 갖도록 잘 인도하여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조소와 멸시가운데서 살지 말고 많은 사람과 감정상에서 융합되도록 하여야 한다.
117    민생문제 해결, 정부 기업 고용주 함께 나서야 댓글:  조회:7929  추천:22  2013-01-25
민생문제는 백성들의 가장 관심사로 되는 문제로서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고도로 중시를 돌리고있는 문제이다. 지난해 12월 11일, 16명의 로무일군들이 화룡시의 조모를 피고로 화룡시인민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밀린 로임을 정산하여줄것을 요구하였다. 조모는 2011년 3월 15일, 돈화시에서 16명의 로무일군을 고용해 로시아에서 경영하는 자기의 농장에서 도마도를 재배하게 했다. 허나 도마도수확작업이 끝나서 1년이 넘도록 로무일군들의 부분적 월급을 지불하지 않아 로무일군들은 할수 없이 조모를 법원에 기소하였던것이다. 화룡시인민법원에서는 조모에 대한 일련의 조치를 대여 그의 행방을 찾아 그에게 해당 법률과 정책을 해석하고 사상공작을 하여 끝내 그로 하여금 로무일군들의 밀린 로임을 전부 지불하도록 하였다. 지금 고용주들의 로임체불사건이 많다. 지난해 돈화시에서 로임체불신고사건을 접수 처리한것만 해도 67건, 그 금액은 860여만원에 달한다. 로무일군들의 로동은 그야말로 생계를 위한 로동이다. 그들이 좋은 날 궂은 날 가리지 않고 일년내내 꾸준히 일하여온것은 오직 내 한 가족을 위해서였을것이다. 그들의 처자들 역시 그 돈을 바라고 집에서 눈이 까맣게 기다리고있었을것이다 고용주들의 경제적 수입도 로무일군들의 신근한 로동으로 얻어지는것이다. 그러므로 고용주들이 자기들의 리익은 챙길 궁리만 하지 말고 일군들의 로동성과를 존중하여 그들이 피땀으로 벌어온 대가를 제때에 주는것을 최저한 갖추어야 할 인성이라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겨울철에 들어서서  백성들의 관심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열공급문제이다. 많은 열공급회사에서는 열공급을 보장하고있지만 일부 회사는 아직도 열공급을 보장하지 못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높다. 설비가 낡은것도 있겠지만 문제는 석탄을 절약하기 위해 열량을 인위적으로 표준이하로 조절하고있다는 점이다. 일부 주민들은 집단적으로 정부를 찾아가거나 열공급회사를 법에 기소하려고 한다고 하니 가히 문제의 엄중성을 알수 있다. 이런 문제는 정부와 열공급회사에서 하루빨리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오늘날 중앙에서 크게 결심을 내리고 민생문제를 해결하고있으며 각급 정부에서도 이 방면에 대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기층에서도 기업인과 고용주들이 정부의 이런 노력에 발맞추어 민생문제를 잘 해결해나간다면 나라가 번영하고 백성이 안정한 생활을 하는 조화로운 사회로 구축될수 있다고 본다. 길림신문
116    《중국산은 가짜 》라는 인식 고쳐야 댓글:  조회:13864  추천:20  2012-12-14
[칼럼] 《중국산은 가짜 》라는 인식 고쳐야 편집/기자: [ ] 원고래원: [ 길릴신문 ] 발표시간: [ 2012-12-14 14:56:35 ] 클릭: [ ]   주청룡 《길림신문》에서 발표한《[특별기획] 한국속의 중국, 그 불편한 진실》을 읽으면서 《길림신문》특별취재팀에 감사를 드리고싶은 마음이 든다. 아마 중한관계를 론한 글가운데서 제일 통쾌한 글이라고 보아진다. 필자는 이 글에 대하여 아주 동감을 느끼면서 이 글은 아주 실질적으로 현실을 반영한 글이라고 생각되면서 나도 한마디 나의 견해를 말해보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필자도 한국에 가서 몇년 체류하고있는기간에 한국시장을 많이 돌아보았는데 확실히 중국상품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었다. 경제 법칙으로 보면 소비자들의 수요에 따라 시장을 개발하기 마련이다. 수요량이 없는 물건을 가득 들여올 장사군은 없을것이다. 한국시장에 중국산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것은 한국사회에서 그만큼 중국산품에 대한 수요량이 많고 중국산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산을 가득 들여놓고 중국산을 저질 혹은 가짜라고 비하하는것이다. 취재팀은 십여년간 장춘에서 음식업을 해온 한국인 김모(67세)는 《중국산 품질이 못하다구요? 그건 무역업자들 탓입니다. 한국산보다 좋은 물건도 얼마든지 있지만 무역업자가 더 많은 리익을 위하여 싸구려제품을 들여간것에 불과합니다. 한두가지를 보고서 중국산 전체를 평가하는것은 잘못입니다 . 다만 같은 제품이래도 한국제품보다 저렴할뿐입니다. 그 리유는 생산원가의 차이때문이죠》라고 말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대련에서 한국수출식품가공업을 하고 있는 량씨(47세)는 《한마디로 중국에 좋은 농산물이 얼마든지 있지만 1급은 일본상인들이 가져가고 2급과 3급을 한국상인들이 가져간다.》고 말한다고 하였다. 사실 한국에서도 서민층의 생활은 그리 부유하지 못하다. 무역상들이 한국서민층의 소비수준에 맞게 수입해 들여간것이기에 한국의 시장에 들어간 산품은 대부분이 원가가 낮은 저급산품이다. 질 좋고 갑이 비싼 중국산품을 한국에 들여가면 저소득층의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바쁠것이다. 또 값싼 중국산이라고 하여 다 저질인것이 아니다. 주요하게는 중국에서 인건비가 싸고 재료비가 싸기때문에 산품의 질이 좋아도 한국의 산품에 비해 싸다고 본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산을 신토불이라고 하면서 선호하는것은 마땅하지만 중국산을 대량으로 수입해 들이면서 《중국산=싸구려=저질》이라고 비하하는것은 마땅치 못하다 만약 중국산품이 한국의 시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수요량을 만족시킬수 있겠는가? 물론 중국산 식품가운데 멜라민 함량이 표준을 초과한 식품은 당연히 가짜식품이다. 이는 불법분자들이 자기들의 리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가짜식품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중국산 전체를 대체하면 안된다. 그리고 한국시장에 중국의 갑진 량질 산품들도 류통되고있다. 그런데 일부 장사군들은 이런 중국산을 한국산으로 둔갑시켜 팔고있다. 필자는 시장을 돌다가 한 고객이 《국산이요, 국산이요.》하는 장사군의 웨침소리를 들으면서《중국산을 놓고 국산이라고 한다》라고 비꼬는 말을 들었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그것의 사실여부는 확인할수 없었지만 그전에도 어떤 장사군들은 중국산을 한국산으로 둔갑하여 판다는 말을 많이 들은적이 있다. 특별취재팀은 현재 중한 통관시스템에서 세계적 선진수준의 검사검역시설과 엄격한 질 검사로 한국에 수입되는 중국산 농수산물의 질과 안전성이 뚜렷이 높아가고있다고 하면서 한국 농수산식품류통공사 품질안전 T/F팀 김문규팀장은 《통관시스템도 엄격하게 되여 있어 가짜라거나 저질제품들이 들어올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또 국제입찰과 공증을 거쳐 들여오기때문에 품질과 안전성은 의심할바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놓고 볼 때 확률적으로 중국식품은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보아야 할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장사군들은 또 자기의 산품을 더 팔기 위해 중국산을 비하하여 저질 혹은 가짜라고 떠들고있는데 여기까지는 리해를 할수 있겠지만 제일 유감스러운것은 한국의 보도매체에서도 이런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거기에 부채질하면서 《중국산=싸구려=저질》이란식으로 편파보도를 하고있기에 중국산은 저질의 대명사로 되고있으며 이로 인하여 한국 사람들의 인식에는 《한국산=량질》, 《중국산=저질》로 각인되여있다. 이런 보도는 사실 중국산식품에 침을 뱉아놓고 자국사람들더러 먹으라는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저소득층에서 중국산식품을 먹고있는데 이런 보도를 듣는 서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필자는 한국에 있으면서 이런 보도를 듣거나 볼 때에는 중국공민으로서, 또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라는 감정에서, 한국의 저소득층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매우 가슴 무거웠다. 중국사람들의 《반한》감정이 생기게 되는 원인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말과 같이 서로 신뢰하고 서로 합작을 잘 한다면 량국의 리익에도 유리하고 백성들의 생활에 더 안정적인 보장을 줄수 있으며 《반한》감정, 《반중》감정도 서로 해소될수 있다고 본다. 취재팀은 한국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기획조정과 이병권 수의사무관은 《나는 중국산을 아주 잘 먹고있다》며 《나와 같은 공무원들은 실질을 알기때문에 언론에서 나쁘다고 보도해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중한수교후 지금 중국은 한국의 제1위 교역대상국으로, 한국은 중국의 제3위의 교역대상국으로 되여 있으며 한국의 서민층의 수요로 대량의 중국산품이 한국시장에 들어가는 실정에서 한국매체에서는 이것을 비하하기보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부채질을 하지 않는것이 량국의 리익에도 유리하고 서민층들의 마음을 더 안정시킬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다.
115    우리 민족 전통의례를 품위있게 댓글:  조회:16235  추천:6  2012-12-13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59)   우리 민족 전통의례를 품위있게 청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우리 민족의 전통의례를 품위있게.”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 사회생활수준이 제고됨에 따라 결혼식, 환갑연, 돌잔치 등 례식이 그전의 초라한 살림집에서 진행되던데로부터 황홀한 례식장에서 진행되고있습니다. 황홀한 례식장에서 진행하는것만큼 사회자도 따라서 그만큼 높은 차원으로 진행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례식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얼마전에 저는 동사자의 회갑잔치에 참석하였는데 사회자가 와락와락 나그네 말죽먹이듯 대충 해치우고 례식장을 떠나는 바람에 주인측은 물론 모든 하객들의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동사자의 말에 의하면 례식장을 찾으려고 여러곳을 돌아 다녔지만 명절대목이라 례식장이 모두 예약되여 있었습니다. 어쩌다 환갑날인10월 2일에 예약이 없는 례식장을 찾았는데 그나마 사회자와 가수, 악사를 모두 자기들이 지정한다는것이였습다. 알아본데 의하면 명성이 없는 사회자들은 례식장 경영자에게 수수료를 주고 보스는 또 수수료를 주는 사회자만이 추천하는 희극까지 논다고 합니다. 사실 그 집안에는 단위에서 각종 행사에 사회를 맡아 하던 사람이 있어 그 집 회갑잔치도 그가 맡아 하기로 하였고 또 전국성적인 노래콩쿠르에서 대상, 금상을 받은적이 있는 가수도 있었지만 그 례식장을 쓰기위해 례식 장의 보스가 추천한 사회자와 가수를 쓰기로 하였습니다. 예약한 날이 오래되니 혹시나 날짜를 잊지 않나 하여 회갑날 이틀을 앞두고 사회자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책임지고 간다는것이였습니다. 그런데 회갑날, 예약된 시간이 썩 오래된 후에야 사회자가 왔으며 예약은 박모모와 하였는데 박모모는 다른 몇집의 사회를 맡고 이때까지 사회를 맡아 보았다는 말을 들어 못본 김모모가 나타나서 이집의 사회를 맡아 한다는것이였습니다. 사회를 시작하여서부터 매우 서투른 인상을 주었는데 그나마 절하는 순서를 주인측의 의사 에 따라 하는것이 아니라 친자식, 친척, 사돈, 친우, 제자 이렇게 다섯번에 나누어 절하는 순서로 끝내려 하며 빨리빨리 나오라고 재촉하였습니다. 단독 명목으로 절을 하려던 사람들이 막 나서서 따로 절을 하려고 하니 그럼 집체행사가 끝난 다음 개별적으로 하라며 례식도 끝을 맺지 않고 부랴부랴 돈을 챙겨넣고 례식장을 떠나는것이였습니다. 아마 또 다른 사회를 맡은것 같았습니다. 너무나도 한심한 일이였습니다. 례식장은 동사자에 대한 축수의 희열로부터 삽시에 사회자에 대한 분개로 번지여졌습니다. 례식을 수습하기 위하여 그 집안에서 원래 사회를 맡으려던 사람이 나서서 새로운 분위기로 사회를 마지막까지 원만하게 진행하여 나갔습니다. 제가 오늘뿐만 아니라 이미전에도 이런 엉터리없는 례식사회를 여러 번 보아왔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서 례식사회자들에 대한 불만을 많이 들어왔는지라 례식사회자로서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의 전통례식문화를 계승하고 발양할수 있겠는가를 알아보려고 우리 민족의 전통례절문화의 전승인이인 연변민족전통례절문화원의 홍미숙원장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홍미숙원장은 지금 많은 례식사회자들은 자신의 자질을 높이고 조선족의 전통례식문화에 따라 사회를 진행하기에 힘을 쓰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례하면 혼례식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혼례의 절차로 전안례 [奠雁禮](전통혼례에서 신랑이 혼례청에 입장하여 기럭아비로부터 기러기를 받아 작은 상우에 놓고 부채로 세번 밀고 기러기를 신부어머니에게 드린다.), 교배례 [交拜禮](전통 혼례식에서, 초례상(醮禮床) 앞에서 신랑과 신부가 절을 주고받는 절차.), 합근례 [合巹禮](전통 혼례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두쪽으로 된 조롱박에 술을 따라서 주고받는것으로 교배(交拜) 후에 행한다.) 순서로 진행하는가 하면 축하마당에서는 조선민요, 퉁소연주, 장고춤, 신랑신부를 복판에 넣고 강강수월래처럼 원을 그리며 추는 원무는 우리 민족의 전통례절문화, 례식문화가 다분히 표현되여 하객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홍미숙원장은 또 일부 사회자들은 우리 민족의 전통례식에 대하여 장악한 지식이 부족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례식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는데 대하여 안타까움을 표하였습니다.  지금 일부 사회자들은 사회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하여 그저 웃기려는데서 저속적인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지구촌이 도래되면서 섭외혼인도 있고 외국에서 친척들이 와서 결혼, 환갑잔치에 참석하고 있는데 이렇게 저속적인 말로 사회를 한다면 우리 조선족의 이미지에 손상을 준다고 봅니다. 그런데다가 하루에 여러 집의 사회를 맡아 보다니 첫집의 사회는 10시전부터 하다니 대부분의 하객(贺客)들이 도착 하였을 때에는 이미 례식이 끝난 때여서 희사를 축하하려 갔다는것이 례식을 보지도 못하고 음식만 먹고 오는 때가 있는가 하면 마지막집은 하객들이 다 모인 다음에도 사회자를 기다리는것이 두시간 넘어 오후 잔치를 보게되여 주인측과 하객들의 불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부 사회자들은 전혀 되지도 않을 승낙을 하면서 청탁이 들어오는대로 다 맡아놓으니 돈은 돈대로 챙겨넣어도 행사 뒤끝은 서운하기만 합니다. 례식이 어떻게 되든 그들의 머리속에는 돈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는 사회자들이 자책감이 없는지? 한번 검토하여 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조선족전통례식에서 전통혼례, 환갑연, 회혼례 등은 이미 국가급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였습니다. 때문에 이 세가지가 법적보호를 받는것만큼 우리는 이것을 전승하고 보호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례식사회자라면 반드시 우리 민족의 전통 례절, 례식문화를 익숙히 장악하고 례식에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가 다분히 표현되도록 하여야 하며 사회자의 자질을 높여 언어표현에서도 저속적인 말들을 엄금하고 례식을 정중하게 이끌어 가야한다고 봅니다. 그러자면 앞으로 례식사회자들에 대한 배양훈련을 거쳐 자격증제도를 실시하여 문화시장관리부문의 감독도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가져보게 됩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11월 19일
114    시신기증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댓글:  조회:9170  추천:26  2012-11-30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57) 청해   시신기증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시신기증은 영광스러운 일이다.”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해마다 의학과 의료사업에 대량의 시신이 수요된다고 하는데 연변대학 의학원에서만 하여도 매년 많은 시신이 수요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신기증수량이 얼마 되지 않아 학생들의 해부실험 요구에 역부족이라고 합니다. 시신기증이란 본인의 유언이나 유가족의 뜻에 따라 아무런 조건과 어떤 보상도 없이 의학과학사업을 위하여 사망 후 시신을 내놓는 행위를 말합니다. 전통적 관념으로 하면 시신을 학생들의 해부실험에 내 놓는다거나 장기를 내 놓는다것은 접수할수 없는 일이지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와 사망 후에도 자신의 시신을 조국의 의학사업에 바치려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박철원 선생이 연변조선족자치주당사연구실에서 리직한 한무길(79세)로인과 연변종양병원에서 퇴직한 안해 김희숙(75세)로인이 사망후 연변대학 의학원에 시신을 기증하기로 하였다는 기사를 언론에 공개한 후 지금 박철원선생한데 시신기증수속을 하겠다는 전화가 적지 않게 걸려오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5월 5일 박철원 선생의 안내하에 연변대학 의학원 김범학 박사, 그리고 맹인 김봉숙 할머니와 함께 유체기증수속을 하려는 원 룡정시 태양향 문화소 소장 서광억선생의 집으로 갔습니다. 서광억선생은 다년간 향문화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전향의 문화보급사업에 힘을 이바지 한 분인데 사상이 매우 해방된 분이라“죽은 다음 직접 불에 태우기보다 조국의 의학사업을 위하여 시신을 기부하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면서 안해 리옥금과 함께 웃으면서 시신기증수속을 하였습니다.   유체기증수속을 마친 사람들   그날 시신기증수속을 서광억선생 부부외에도 연길시 건공가두의 유부자녀사와 연길시 장수양로원의 네분의 로인들을 하였는데 장수양로원으로 갈때에는 두분이 예약이 들어와서 두분의 수속을 하려고 갔었는데 옆에서 수속을 하는것을 보던 올해 91세의 김보옥 할머니는 죽은 다음 의학원에 해부실험용으로 유체기부를 하는 일도 있는가? 자기는 이런 것을 몰랐는데 이런 좋은 일을 왜 안하겠는가하며 자기의것도 수속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곁에 있던 할머니도 따라서 자기의 것도 수속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생각밖으로 두분을 더 수속하였습니다. 이때 저는 지금의 로인들이 사상이 많이 해방되였고 각오가 높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의학부문에서의 인체해부, 의료부문에서 인체기관이식은 대량적으로 시신래원이 수요된다고 합니다. 해방된 사상으로 말하면 사람이 죽은 다음에 령혼이 존재하던 안 하던 시신이 자기 본인에 대하여 아무런 의의도 없는것이며 시신기증이야말로 나라의 의학, 의료사업에 대하여 공헌을 한다는 의의가 있는것입니다. 귀주성에서 심수에 온 토가족인 원덕진녀사는 (40세)은 올 1월, 남편과 11살의 아들애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한달 후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아들애는 뇌사상태에서 호흡기와 약물로 넉달째 생명을 유지하고있었습니다. 치료에 기적을 기대할수 없었던 그녀는 죽어가는 아들애를 보며 아들애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여 그녀는 아들애의 기관 전부를 사회에 기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새 생명을 찾도록 하였습니다. 기관 이식전문가들은 자세한 검사를 거쳐 아이는 이미 뇌가 사망상태에 있기에, 기관 이식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리고 5월 13일, 적십자회의 배치로 광주시 중산 제1병원에서 아이의 여러 기관을 성인 5명에게 의식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그 아이로 하여 어른 5명이 새 생명을 찾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원덕진녀사는 사상이 크게 해방되고 각오가 대단히 높다고 할수 있습니다. 한 아이의 시신기증으로 하여 다섯명의 새 생명을 찾았다는것은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고 부상당한 사람을 돕는 인도주의를 선양하는데서 크나큰 의의를 가진다고 봅니다. 지금 사회가 발전하고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의 사상이 해방되고 의식이 전변을 가져와 각오가 매우 높아가고 있습니다. 연변대학 의학원 김범학 교수에 따르면 지금 연변대학 의학원에 시신기증수속을 마친 사람가운데는 20대의 청년으로부터 90대의 로인에 이르기까지 다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여나서 종당에는 죽게 마련입니다. 지금 보편적인 장례는 화장입니다. 시신을 화장하면 결국에는 남는 것은 골회뿐입니다. 시신을 기증하엿다면 해부절차가 하나 더 들어갈뿐이지 시신처리에서 륜리에 어긋나거나 비 도덕적 행위가 없으며 고인이나 유가족에 있어서 그 어떤 명예손상도 없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기증하였다 하여도 의학연구가 끝이 나면 화장을 하여 유가족의 요구에 따라 골회를 돌려 줄수도 있고 의학원에 장기 보존을 하여 유가족이 추모활동도 할수 있도록 조건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 해마다 사망하는 사람은 900만명 좌우되며 그중 뇌출혈, 교통사고, 의외중독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사망자 총수의 40% 좌우로서 그들의 기관들은 이식사용에 적합하다고 합니다. 리론상으로 보면 우리 나라에서 기관을 기증해 이식에 사용할수 있는 인수는 5만명에 달하지만 전국적으로 1년에 기관을 기증하는 사람은 도합 100명도 안 된다고 합니다. 시신기증은 기증인의 고상한 품성이고 고귀한 인격의 체현이며 자신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더 나아가서는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태도이고 가치관의 표현이며 이는 사람이 죽은 후 나라의 의학사업과 의료사업에 큰 공헌을 하는것이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10월 29일
113    우리민족의 전통장례문화를 이어가자 댓글:  조회:9110  추천:10  2012-11-09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56) 청해   우리민족의 전통장례문화를 이어가자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우리민족의 전통장례문화를 이어가자”라는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사람이 이승에서 태여나 종당에는 저승으로 가는것은 필연적이며 인생의 법칙입니다. 어느 민족이나 사람이 죽게 되면 장사를 지내는것으로써 저승으로 가는 고인을 바래고 있으며 어느 민족이나 모두 자기 민족의 장례풍속에 따라 장사를 지내는것으로써 자기 민족 전통문화를 전수하고 있습니다. 하여 국무원의 장의관리조례 제 6조에는 “소수민족의 상장습속을 존중하여야 하며 자원적으로 상장습속을 개혁하는것을 다른 사람들이 간섭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족장례풍속》은 2009년 6월에 길림성정부의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여 법률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무형문화유산인 “조선족장례풍속”의 전승인이인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의 현룡수 회장을 찾아 조선족의 장례풍속이 길림성 무형문화유산에 들어간 형편에서 이것을 어떻게 전승하고 보호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아 보았습니다. 현회장은 조선족 장례문화의 핵심은 “효도”이며 주체는 “례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많은 세월을 내려 오면서 우리민족 장례문화를 창조하였는데 그 내용이 아주 많고 복잡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현시대에 와서 이러한 장례문화들이 많이 소실되였지만 고복(皐復: 혼을 부르는것), 렴습(殮襲: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싸는 일), 명정[銘旌: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성명(姓名) 따위를 적은 조기(弔旗)], 안신제(安神祭), 소상(小祥: 돌제), 대상(大祥: 3년제), 청명제(淸明祭), 추석제(秋夕祭) 등 몇가지 기본적인 풍속들은 아직 보존되여 있다고 하였습니다. 현회장은 또 조선족장례풍속이 길림성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된것만큼 법적보호를 받고 실시되여야 하는데 연변 각 지방의 장의관에 모두 우리민족 장례문화에 맞춘 시설과 복무항목이 없어 조선족들이 자기 풍속에 맞추어 장례를 치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안타까운 점도 이야기 하면서 연변은 조선족자치주인것만큼 의례히 조선족 장례문화에 맞는 시설과 복무항목이 있어야 하므로 지금 해당부문과 교섭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족의 장례풍속을 보면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로운데 이런 것을 모두 다 그대로 회복하기는 불가능 하며 또 절주가 빠른 현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전통장례의 기본정신을 계속하여 전승하여야 하지만 이미 간소하여진 우리민족의 현재 장례방법을 견지하면서 거기에 전통민족특색을 첨부하는것이 바람직 하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족의 장례풍속에는 조상의 무덤을 옮겨서 다시 장사를 지내는 면례(緬禮)도 포함되여 있습니다. 면례는 원래 조상들의 묘를 써서 십여년이 지난 후 길일을 택하여 낡은 묘를 파 헤치여 해골을 점검해 보아 깨끗하고 노란색이면 그 자리가 풍수가 좋다고 인정되여 해골을 잘 정리한 후 다시 그 자리에 묻는다던가 혹은 다른 좋은 자리로 옮길수도 있고 만일 해골이 깨끗하지 못하고 검은 색이면 그 자리가 풍수가 나쁘다고 인정되여 다른 곳을 선택하여 묻는것을 말하는데 일종의 효행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지금은 면례가 개장(改葬) 혹은 이장(移葬)과 동의어로 되고 있습니다. “가난하면 이사하고 부유하면 묘를 옮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 조상의 묘소를 마음에 드는 명당이나 릉원에 옮겨 모시는것도 일종의 미덕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나라와 사회의 기본건설의 수요로 묘지를 옮기게 되면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면례가 많습니다. 현회장의 현지조사에 의하면 나라의 기본건설 수요에 의하여 연변 모 지방의 낡은 공동묘지의 묘들을 몽땅 옮기게 되였는데 많은 유가족에서는 조상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껏 우리민족 장례문화 례의를 지키면서 허용범위에서 새로운 장지(葬地) 에 옮겨 묻거나 화장터에 가서 화장한 다음 납골당(骨灰堂)이나 릉원에 모시지 않으면 하천이나 적당한 곳을 선택하여 살포(撒布)하고 있지만 일부 유가족들은 아예 파묘부터 우리의 장례문화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낮은 비용으로 맏기고는 해골을 화장하는 것을 지겨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해골을 맡은 사람들은 여러구의 해골을 한데 무져놓고 디젤유를 뿌리고 쓰레기 처리하듯이 대강 태워서 여기저기 뿌려 던지여 보기가 민망다고 하였습니다. 하여 현룡수 회장은 “조상의 해골을 쓰레기처럼 처리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문명과 인륜도덕의 차원에서 참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반드시 정규적인 화장터에 위탁하여 문화적으로, 위생적으로, 존엄이 있게 화장하여 처리하는 것을 제창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면례를 어떤 방식으로 하던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가족의 의사에 따라 하는것이기에 이렇다 저렇다 할 수는 없지만 면례는 조선족 장례풍속의 한 부분으로서 돌아간 조상에 대한 일종 효성의 도덕적인 행위라는것만은 잊지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조선족 젊은이들은 자기의 전통장례규범을 몰라 일단 상사가 나면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장례를 치러 남들을 웃기는 일도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현회장은 현시대에 와서 조선족 장례복무 사회기제를 건립하는것이 아주 필요하다고 하였으며 정부차원에서 하기 곤난하면 민간차원에서라도 조선족 장례복무 전업대를 조직하여 일단 조선족 가문에 상사가 나면 전화 한통으로 전반 장례사무가 원만하게 해결을 보도를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역시 조선족 장례문화를 장기적으로 이어 나갈수 있는 보증으로 되므로 지금 여러방면으로 준비중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10월 22일
112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5) 댓글:  조회:8458  추천:52  2012-09-24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55) 청해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5)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전번시간의 계속으로 금후의 전망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4. 금후의 전망 중한수교 후 중국조선족사회의 변화를 보면 한국과의 래왕으로 하여 선진적 문화를 많이 받아드렸고 한국로무로 하여 조선족들의 생활이 많이 펴이게 되여 여유로은 생활을 하고 있으며 자지방의 경제발전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습니다. 반면에 인구이동으로 하여 토지류전, 조선족공동체의 해체의 위기 등 문제점들도 존재하고 있는데 중한관계가 날로 조선족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하여 이러한 문제점들도 점차적으로 해결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마다의 욕망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경제가 발달한 곳, 돈을 많이 벌수 있는곳을 떠나가려 하고있으며 이것은 법률과 정책의 허용범위 내에서 각자의 자유선택입니다. 조선족들이 경제가 발달한 대도시, 연해도시 해외로 나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제가 5년전에 한국의 방문취업제 문이 금방 열렸을 때 《농촌조선족 인국의 이전을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문장에서 “떠날수 있는 사람은 모두 떠나서 세상과 접촉하고 돈도 벌고 선진적 문화도 배우고 돌아와 새로운 창업을 하여 고향건설을 할것을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해외로무만이 치부의 길이 아니라고 봅니다. 농촌은 땅이 넓고 할일이 많습니다. 자신이 머리만 쓰면 얼마든지 치부의 항목을 찾을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가족과 헤여져 해외에 나가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고되게 일을 하느라고 말고 먼저 나간 사람들은 인제 돌아와서 고향건설을 하여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이래 특히 근 10년간의 변화가 아주 뚜렷하며 이미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농촌도 이전에는 농업세를 내면서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중국에서 2600년 내려오던 농업세제도를 페지하였을 뿐만이니라 우량종자보조, 농기구구입보조, 디젤유보조 등등 여러가지 나라의 《삼농보조금》 혜택을 받으며 농사를 짓고있으며 그전에는 소로 받을 갈고 호미로 기음을 맸지만 지금은 기계로 밭을 갈고 살초제로 기음을 대체하니 어렵지 않게 농사를 짓고 있으며 받을 임대하고 도시에 들어갔던 사람도 다시 농촌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서 《촌촌통》계획을 실현하여 콩크리트 포장도로가 마을과 마을을 이어놓고 국도와 이어져 도시에 집을 잡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시에 들어가 창업할 능력이 없는 농민들은 출국하여 번 돈으로 고향건설에 투자하여 과학적인 규모화농업도 하고 다각경영을 한다면 우리의 삶의 터전도 가꾸고 지킬수 있으며 이 터전을 우리의 후세에 넘겨 줄수 있다고 봅니다. 2009년에 국가전략으로 격상된 “장길도선도구”개발계획과 금년에 국무원에서 비준한 중국두만강구역(훈춘)국제합작시범구건설은 동북진흥의 핵심프로젝트입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이 지정학적 우세를 리용하여 연변을 동북아물류기지를 건설하여 연변은 세계에로 세계는 연변으로 하는 전략을 실시하여 국내외의 선진기업을 인입하여 경제를 더 활성화 하면 농촌의 잉여로동력이 도시에 들어올수 있고 외지에 나간 조선족들이 되돌아 올수 있으며 연룡도 일체화를 하여 경제가 발달한 길림성의 동부중점도시로 변혁시키고 연성환경건설을 잘하여 봉황이 오동나무숲으로 날아들게 한다면 외지에서 사업을 하고있는 조선족 기술일군들이 연변으로 돌아와 연변진흥에 기여할수 있고 연변에서 간 대학생들과 석사, 박사학위를 딴 류학생들이 우리 연변에 돌아와 고향건설에 이바지 할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되면 중국조선족은 조선족이란 이 정체성을 확보하면서 더욱 건전한 조선족동체를 구축할수 있다고 봅니다. 이상 5번에 나누어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에대하여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이상의 글은 근근히 저 개인의 인식과 견해를 말씀드린것인데 청취자들의 많은 의견과 건의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9월 24일
111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4) 댓글:  조회:8422  추천:16  2012-09-17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54) 청해 54.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4) .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전번시간의 계속으로 농촌총각들이 자가들기 어려운 문제와 리혼률이 높아가고 결손가정자녀가 많아지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 합니다. 3) 농촌총각들이 장가들기 어렵게 되였습니다 지금 농촌에 30대, 40대, 지어 50대의 로총각들이 수두룩한데 농촌총각들이 장가들기 어려운 원인을 분석하여 보면 아래의 네가지로 볼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하여 도시에 제 3산업이 대폭 증가하면서 녀성인력이 많이 수요되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농촌처녀들이 초중이나 고중을 졸업하고 도시에 들어가 일자리를 구하면서 농촌에 처녀총각비례가 불균형을 이루었습니다. 두번째로는 한국으로 시집간 녀성이 많아지면서 더욱 처녀총각비례가 파괴되였습니다. 농촌조선족처녀들의 대량적인 류실로 하여 총각과 처녀의 비례가 대부분 마을에서 20:1, 지어는 그 이상에 달하는 마을도 있습니다 셋째로는 농촌총각들이 자립자강의식이 약한데 있습니다. 한족총각들과 조선족총각들을 비교하여 보면 한족총각들은 자지방에 뿌리박고 튼튼한 내 살림을 꾸리려는 의식이 강하여 자기에게 차려진 토지를 알뜰히 가꾸어 높은 수학을 따내면서도 다각경영을 하여 치부의 길로 나가고 있는 반면에 조선족총각들은 뿌리박는 의식이 약하여 한해 벌어 한해 사는 들뜬 사유로 살아가니 굳건한 살림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안온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마련인데 처녀들도 굳건한 살림에 튼튼한 기초를 갖고 있는 총각한데로 시집가려 하지 빈 털털이인 총각에게로 시집가려 하지 않습니다. 넷째로는 처녀들의 의식에 또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A 농촌처녀들이 사치한 도시생활을 동경하면서 도시에 들어갔지만 이들 대부분은 일정한 문화수준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비록 도시생활이라 하지만 낮은 로임으로 고달프게 최하층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B 큰 도시에서 같은 조선족 총각을 만나기 힘든 상황이라 일부 조선족 처녀들이 한족과 결혼을 하고있습니다. 이러한 통혼은 민족적 풍속습관 차이로 생활상에서 부부간의 모순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어 그닥 재미있는 혼인생활이라고 할수 없으며 좀 심하면 리혼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C 한국으로 시집간 녀성들 가운데서 극 소수는 남편을 잘 만나 행복한 살림을 영위하고 있지만 그것은 극 소수에 지나지 않고 방문취업제문이 열리기 전에 한국에 가기 어려웠던 세월에 시집간 녀성들가운데서 대다수는 아무런 감정기초 없이 내가 시집가서 부모, 형제자매를 초청하여 한국에 오게 하면 모두 잘 살수 있다는 소박한 감정으로 브로커를 통하여 7,8살 지어는 10살 이상의 차이로 섭외혼인을 맺었습니다. 감정기초가 없이 이러한 소박한 감정으로 시집을 갔기에 대상자들을 놓고 보면 대부분은 한국에서 밑바닥생활을 하는 장가가기 어려운 남성들이였기에 시집간 녀성 역시 밑바닥생활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녀성들은 술주정뱅이거나 변태적 심리를 가진 남성을 만나 가정폭력, 성폭행을 당하여 집을 뛰쳐나왔거나 뛰쳐나오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목숨까지 일은 사례들이 적지 않습니다. 금년 7월 2일에도 서울에 시집간 중국동포출신 리모녀성(57세)이 남편의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은 사례도 있습니다. 경찰의 조사에 의하면 리모녀성은 평소 식당에서 일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남편 홍씨(67세)의 생계를 책임졌다고 하였으며 홍씨는 평소 알콜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자주 마셨고, 상습적으로 아내를 폭행해 왔으며 이날도 홍씨는 술에 취해 안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문까지 잠그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건의 혼인문제를 신중히 대하여 한국에 시집을 가면 잘 살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을 버리고 내막을 잘 아는 자지방의 조선족총각을 만나 힘을 합쳐 잘 살아보자는 인식을 갖고 결혼을 한다면 중국조선족의 인구감소에도 일정한 미봉을 할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농촌총각들은 자기의 능력을 잘 판단하고 도시에 들어가 자기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기 바쁠 때에는 농촌에 뿌리박는 의식을 갖고 농촌의 광활한 무대에서 농사를 짓는 외에 다각경영을 잘 하여 치부의 길로 나가는것이라고 봅니다. 농촌처녀들 역시 맹목적으로 도시에 들어가서 낮은 로임으로 고달프게 최하층생활을 하기보다 농촌에서 사랑하는 총각을 만나 맞들어 벌면 능히 부유한 생활을 할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4. 리혼률이 높아가고 결손가정자녀가 많아지고 있다 방문취업제 이전에 한국에 간 중국조선족은 대부분 불법체류로 있었기에 수시로 중국과 한국을 나들수 없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남녀사랑의 갈증으로 하여 일생이 얼마라고 고독하게 내 혼자서 외로이 보내겠는가 하며 이성을 친하여 한집에서 부부처럼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나중에는 본국에 있는 배우자한테 소식이 가서 ‘네가 거기에서 그렇게 하는데 내라고 여기에서 홀로 고독하게 지내겠는가?’ 하며 그도 이성친구를 사귀어 부정당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련쇄반응으로 하여 그들의 가정은 종당에는 파멸로 되여 버렸으며 이로 하여 결손가정자녀수가 늘어 났습니다. 최근 연변조선족자주 교육국의 통계에 의하면 결손가정학생수는 5만 여 명으로 전체 학생수의 30%를 넘어섰으며 그 중 조선족 결손가정학생이 3만 여 명으로서 61.3%를 차지하였습니다. 조선족학생 중 결손가정학생은 50%를 웃돌고 어떤 학교는 70, 80% 이상이며 지어 어떤 학급은 90% 이상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러한 자녀들은 부모사랑의 결핍으로 하여 사회상의 어중이떠중이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범죄행위를 저질러 파출소에 련행되는 일도 있습니다. 하여 항간에서는 해외로무로 하여 돈은 벌었다지만 자식농사는 흉년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건의 해외 로무의 가장 큰 우점은 짧은 시간내에 돈을 많이 벌수 있는것입니다. 지금 한국에 나가 일하는 사람가운데 갓 결혼하여 한창 재미있게 혼인생활을 하여야 할 나이에 사랑하는 처(남편)자와 갈라져 일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해외에 나가 많은 돈을 버는것도 좋지만 가정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3D업종에서 고달프게 일하는것보다 새로운 창업을 하는 의식을 갖고 머리를 써서 자기 고장에서 부부간에 함께 창업을 하여 행복한 가정살림을 하는 것이 낫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바라건대 한국정부에서도 중국동포들에게 다른 해외동포들과 같이 재외동포비자(F-4)비자 발급을 확대하여 자유로이 래왕을 한다면 불법체류가 없어질수 있고 조선족사회에 더욱 안정성을 줄수 있다고 봅니다. 부부가 갈라져 타향에 가서 일하더라도 오직 지금의 안해(남편)을 일생의 동반자로 하고 내 한 가정을 위하여 모든 것을 열심히 일하여 돈을 많이 벌어 본 고장에 돌아가서 행복한 가정살림을 하겠다는 사상을 수립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리혼률도 낮추고 결손가정도 줄일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고 다음시간에 계속말씀드리려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9월 17일
110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3) 댓글:  조회:8469  추천:6  2012-09-10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53) 청해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3)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전번시간의 계속으로 인구이동이 조선족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 합니다. (4) 인구이동이 조선족사회에 미친 영향 대량적인 인구이동으로 하여 조선족 집거지의 인구가 감소되면서 조선족사회의 해체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 주요 현상들을 보면 1) 조선족집거지 인구의 감소와 분산으로 하여 조선족공동체 해체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2010년 제6차 인구보편조사에는 중국내 조선족 인구는 총 183만 929명으로, 1990년 제4차 인구조사 당시 192만 597명보다 8만 9,668명(4.7%)이 줄었습니다. 1996년도부터 조선족인구가 마이너스 장성세를 보이고 있는데 그 주요한 원인은 산아제한으로 하여 아이를 적게 낞은것도 있겠지만 다른 한 방면으로는 한국에 시집가거나 국내 타민족과 결혼한 원이도 있다고 봅니다. 한국 법무부의 2011년 9월30일까지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 결혼이민한 중국조선족이 2만9,894명이고 그중 녀성이 2만2,284명입니다. 이 3만 명이 섭외혼인을 하지 않았다면 중국조선족 인구가 그만큼 감소 되지 않았을것이고 그들이 아이 하나만 나아도 조선족 인구가 3만이 불어날것입니다. 거기에다 국내에서 대도시에 들어가서 타민족과 결혼한 녀성들이 조선족총각들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면 조선족 인구가 그만큼 더 불어날것입니다. 연변의 경우 1995년 조선족 인구가 86만명이였지만 2009년에는 80만명으로 7%가량 줄었습니다. 지금 한국에 귀화 혹은 국적회복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비자로 한국에 체류한 중국의 조선족이 50만이 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구감소와 분산으로 하여 그전의 아담하던 조선족마을이 한산하게 되였으며 농촌의 많은 조선족학교들이 페교되고 조선족공동체해체의 위기를 겪고있습니다.   2)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이 점차 타민족에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농촌의 조선족 마을들이 옛날의 아담한 모습과는 달리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살던 마을과 그 주변 마을들은 순 조선족 마을로서 다른 민족이 한 가구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기업의 중국진출로 하여 조선족들이 대도시, 연해도시에로 진출하게 되였으며 특히 한국정부의 방문취업제의 문이 열리면서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출국하면서 토지경영권을 다른 민족에게 임대 혹은 양도하면서 다른 민족들이 들어 오기 시작하였는데 제가 살던 마을에는 인제 한족호수가 절반을 넘어 차지하고 있으며 어떤 이웃마을들에는 조선족이 한두호 지어는 한호도 없이 전부 기타 민족이 차지하고있습니다. 하여 우리의 토지, 우리의 터전이 완전히 타민족에게 넘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 고장뿐만 아니라 조선족 집거지의 농촌마을이 다 이와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토지를 임대한 것이기에 기한이 되면 도로 찾을수 있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길고 세대가 바뀌게 되면 자연히 그 임대가 경영권으로 넘어갈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후세 사람들이 대학교나 기타 여러가지 도경을 통하여 과학적인 영농법을 배워가지고 본 고장에 와서 규모화 농업을 하려고 하여도 발을 붙일 자리마저 없게 될것이며 우리의 삶의 터전을 영영 잃게 될것입니다. 지금 외국에 갔다 온 적지 않은 조선족 농민들은 토지는 타민족에게 임대하고 소비가 큰 도시에 들어와서 아무런 창업도,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몇 년간 뼈를 갈아 벌어온 돈을 물쓰듯 다 써버리고 다시 출국행을 선택하여 또 다시 리산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도 로동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수 있지만 로동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로후의 생활보장마저 없는 신세로 되고있습니다. 건의 우리의 토지, 우리의 터전이 타민족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자면 외지에 나간 촌민들의 토지를 촌민위원회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하거나 전문농장 혹은 전문합작사에 들여놓아 외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아무때건 본 고장에 돌아와서 농사를 짓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토지가 타민족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을 굳게 지킬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 하여 우리 조선족들이 모두 한평생 지구의 껍질을 허비면서 피와 땀으로 이 땅을 적시라는것이 아닙니다. 조선족이 농경사회로부터 도시화로 넘어가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은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합니다. 자기의 지식, 자기의 능력에 따라 떠나 갈수 있는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을 과학적으로 규모화, 기계화, 현대화한 농업으로 가꾸고 지키면서 도시에 진출한 사람들보다 못지않게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고 다음 시간에 계속말씀드리려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9월 10일    
109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2) 댓글:  조회:17278  추천:6  2012-08-29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52) 청해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2)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전번시간의 계속으로 중한수교후의 중국조선족사회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 합니다. 3. 중한수교후의 중국조선족사회 중국조선족은 중국어도 잘하고 한국어도 잘하는 이중 언어우세와 중화민족이면서도 한국인과 같은 겨레라는 어느쪽에서도 떨어지거나 멀리할수 없는 민족적 감정으로 하여 중국과 한국간의 각종 교류에서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으며 중한수교 후 중국조선족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 연해도시, 대도시에로의 인구이동   1992년 중한수교가 이루어지면서 한국기업이 중국의 연해도시, 대도시에 진입하면서 중국인 로동력이 많이 수요되였습니다. 이리하여 조선족들도 한국기업에 취직하였는데 같은 민족적 감정과 언어소통으로 하여 한국인들이 조선족을 더 선호하게 되였으며 조선족을 통역이거나 관리인원으로 많이 채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인구가 많고 취업하기 곤난한 현실에서 조선족들에게서는 일정한 취업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기회였으며 이러한 현실은 조선족들이 집거지를 떠나 연해도시, 대도시로 이동하게 되는 주요한 원인으로 되였습니다. 과거에는 조선족인구가 연변을 위주로 하여 동북3성에 많이 분포되여 있었지만 최근 국가통계국의 통계에 의하면 지역별로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속한 길림성이 104만 167명으로 가장 많았고, 흑룡강성 32만 7,806명, 료녕성 23만 9,537명으로 이들 동북 3성의 조선족이 전체 조선족의 87.8%를 차지했습다. 다른 지역은 산동성(6만 1,556명), 상해시(2만 2,257명), 내몽골자치구(1만 8,464명), 천진시(1만 8,247명), 광동성(1만 7,615명), 하북성(1만 1,296명)으로 나타났습니다. (2) ‘코리안드림’으로 인한 한국진출 중한수교로 하여 친척방문기회가 더 많아졌고 그에 따라 취업활동도 할수 있었습니다. 중국과 한국을 비교하여 보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비싸기에 그에 따라 인건비가 높습니다. 이런 높은 인건비는 중국조선족들이 짧은 시간내에 많은 돈을 벌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며 그렇게 번 돈을 중국에 돌아와 쓰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아 생활소비가 적게 들기에 한국에서 번 돈을 값있게 쓸 수 있으므로 여유로운 생활을 할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국에 가기만 하면 많은 돈을 벌어 잘살 수 있다는 “코리안드림”을 갖고 그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고 한국에 가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위장결혼” “신분위조”, “밀입국” 등 다양한 수단으로 한국에 입국하였습니다. (3) 외화수입은 자지방의 경제발전에도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런 ‘코리안드림’으로 한국에서 몇 년간 3D업종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일을 하여 뭉치돈을 쥐고 중국에 돌아와 도시에 아파트를 사놓고 새로운 창업을 하면서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 돈으로 고향마을에서 여러가지 농기계들을 사놓고 규모화한 농업을 하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서 일할 때에 농장에서 배운 사육기술로 고향에 돌아와서 생태축산전문농장을 꾸리여 년간 몇십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해외에 진출하여 적지 않은 외화를 벌어들여 자지방의 경제발전에도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연변의 정황을 보면 11차5개년 계획기간에 조선족들이 외화(대부분은 한국으로부터)를 벌어들인것이 41.3억 딸라로서 주 재정수입의 총액과 비슷하며 외화수입이 가장 많을 때인 2006년도에는 10.6억 딸라로서 그 해 주 재정수입의 2배를 초과 하였으며 국민생산총액(GNP)은 전성에서 첫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11차 5개년 계획”기간의 연변조선족자치주 GDP, 재정수입, 해외로무수입과의 관계표 년도 GDP(억원) 재정수입(억원) 해외 로무수입(억딸라) 2006 243.4 32.3000 10.6 2007 307.2 54.3000 10.0 2008 379.6 64.000 7.5 2009 450.0 72.500 5.2 2010 540.0 88.000 8.0   오늘은 이만 끝이고 다음시간에 계속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8월27일
108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1) 댓글:  조회:18069  추천:5  2012-08-28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51.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 목록 1. 자랑스러운 중국조선족 2. 중한수교전의 중국조선족사회   3. 중한수교후의 중국조선족사회 (1) 연해도시, 대도시에로의 인구이동  (2) ‘코리안드림’으로 인한 한국진출 (3) 외화수입은 자지방의 경제발전에도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4) 인구이동이 조선족사회에 미친 영향 1) 조선족집거지 인구의 감소와 분산으로 하여 조선족공동체 해체의 위기를 겪고 있다 2)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이 점차 타민족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3) 농촌총각들이 장가들기 어렵게 되였다 4) 리혼률이 높아가고 결손가정자녀가 많아지고 있다 4. 금후의 전망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란 내용으로 몇번에 나누어 말씀 말씀드리려 합니다.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1)   19세기 중엽부터 광복 전까지 우리의 조상들은 조선반도로부터 만주땅에 건너와 괭이로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고 만주의 벼농사는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시작되였으며 그 기술은 전 만주에 보급되였습니다. 그리고 항일전쟁, 해방전쟁에서 우리 조선족은 공산당을 따라 참군, 참전하여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치고 국민당 반동정권을 뒤엎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하는데 크나큰 기여를 하였으며 중국 땅에 뿌리를 깊이 박고 당당한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중국조선족 우리 조선족은 예로부터 《소를 팔아서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인즉 소가 하는 일을 사람이 하면서라도 소를 팔아 자식을 공부시켜 출세시킨다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후대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희망한 꿈이였으며 우리들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이렇게 하였기에 우리 조선족들은 괭이 메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와 땅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닦았고 오늘은 그 후대들이 국가 공무원이나 문화, 교육, 과학, 위생 등 지식분야에서 크나 큰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면15세 이상의 인구문맹률을 볼 때 전국 평균수준은 22.21%인데 조선족은 7%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제5차 전국인구보편조사자료에 의하면 대학수준 소유자가 전국 평균수준은 매 만 명당 122명인데 조선족은 381명에 달하고 석사, 박사는 전국 평균수준이 매 만명당 8명인데 조선족은 17명입니다. 교육에서 이렇게 전국의 평균수준을 훨씬 초월할뿐만 아니라 방송, 출판, 문예, 체육 등 방면에서도 전국 55개 소수민족 가운데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여 1993년 10월 20일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아침 뉴스에서도 조선족은 우생우육(优生优育)에서 돌출한 성과를 취득하였으며 문화교육이 세계선진수준에 접근하였다고 방송하였습니다. 중한수교전의 중국조선족사회 그전에 농촌에서 농업생산력이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토지를 집체경영을 하여 큰 가마밥으로 살아가면서 먹을 고생, 입을 고생을 하던데로부터 개혁개방 후 마을마다 호도거리를 하여 자신들에게 차려진 토지를 알뜰히 가꾸면서 온당한 경제적 수입으로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게 되였으며 조선족 농촌마을마다 다분한 조선족색채로 화목하고도 온당한 살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농촌의 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는 먹고 입는 문제는 해결한다지만 자식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는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시조선족들을 보면 대부분 소도시에서 생활하였으며 개혁개방후 많은 중소기업들의 체제개혁이나 파산 등으로 하여 정리실업인원이 점차 늘어났으며 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개체경영자로 되여 중등생활수준에 이르렀으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삯군으로 일하면서 먹고 입는 문제를 겨우 해결하였습니다. 중한수교 전 중국의 조선족은 도시나 농촌을 물론하고 그리 부유하지는 못하였지만 조선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안온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간의 랭전시대에 중국과 한국도 실제상에서 랭전상태에 처하여 량국간의 래왕이 없었습니다. 지난 세기 80년대 말에 와서 랭전시대가 완화되면서 중국의 조선족들이 친척방문의 기회가 이루어져 몇십년 갈라졌던 혈육을 찾게 되면서 한국을 래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에는 단순한 친척방문이라 취업은 없었고 친척방문길에 한국에서 수요하는 약들을 가지고 가서 파는것으로써 왕복 려비를 해결하는 정도였습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고 다음시간에 계속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8월 20일
107    찰떡을 붙인다하여 소망을 이룰수 있을가? 댓글:  조회:12078  추천:50  2012-07-27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50) 청해   찰떡을 붙인다하여 소망을 이룰수 있을가?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찰떡을 붙인다하여 소망을 이룰수 있을가?”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자식이 대학에 붙고 좋은 대학으로 가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것입니다. 처음 누가 기발한 생각을 갖고 찰떡처럼 철썩 대학에 붙으라는 의미로 시험장 문어구에 찰떡을 붙여 놓았는지는 모르나 지난 세기 90년대부터 이런 바람이 불기 시작한것이 해마다 대학시험 때 보면 연변의 조선족 학부모들이 시험장 문어구에 찰떡을 갖다 부쳐놓는것이 일종 류행으로 되고 있으며 지금은 그 바람이 더 성행하는것 같고 그 바람이 한족 학부모들에게 까지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찰떡을 아무데나 질서 없이 마구 붙이는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학교측에서는 전문 찰떡을 붙이는 떡판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험장 대문어구에는 학부모들이 남의 자식보다 앞서 더 좋은 대학에 붙으라는 의미에서 전날 밤에 12시 전에 와서 기다리다가 시험을 치는 날 0시가 되자 제일 꼭대기에 남 먼저 붙이느라고 서로 경쟁을 벌리였다고 합니다. 어떤 학부모들은 제일 높은 대학에 붙기를 소원하면서 학교 대문에 올라가서 붙여놓기도 하였습니다. 붙여놓은 찰떡들을 보면 거기에는 기차표, 뻐스표, 그리고 소망의 글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학부모들이 자식이 대학에 붙고 좋은 대학으로 가기를 바라는 그 심정은 어디까지나 리해를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찰떡을 붙인다고 하여 대학에 붙는다는것은 어디까지나 비 과학적 표현이라고 봅니다. 찰떡이 아무리 점착력이 강하다고 하여 그 점착력이 학생들이 대학에 붙는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입니다. 찰떡의 점착력은 물리적인 힘이고 학생들이 대학에 붙는것은 그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 달성할수 없는 성적의 우렬(優劣)에 의한 선택인것입니다. 찰떡의 점착력에 의해 대학에 붙는다고 하는 그런 사유방식으로 한다면 자기가 지망을 하는 대학에 갔다가 붙여야 하지 시험장 대문어구에 붙여 놓으면 자기가 지망하는 대학에 붙는것이 아니라 시험을 치고 있는 그 학교에 붙을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지난해 저의 이웃에서 두 학생이 대학시험을 쳤습니다. 한 학생은 부모들이 기관, 사업단위에서 사업하였는데 유식한 가정이라 대학시험를 치는 날 아침 딸에게 정신적으로 안정될수 있는 격려의 말을 하여 시험장으로 보내였을 뿐 그 어떤 비 과학적인 행위가 없었지만 시험결과 중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다른 한 학생은 부모들이 한국에 가서 일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였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손자가 대학에 붙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시험을 치는 날 이른 새벽 남 먼저 시험장 대문어구에 다 찰떡을 붙여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시험결과는 어느 대학에도 붙지 못하고 락방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례에서 보면 찰떡을 붙였다 하여 그 소망이 이루어는것이 아니였습니다. 과학이 발전한 문명한 시대에 점착력이 강한 찰떡을 붙이면 대학에 붙을수 있고 그것도 남 먼저, 더 높은 곳에 붙여 놓으면 더 좋은 대학에 갈수 있다고 서로 경쟁하면서 학교 대문어구에 갔다 찰떡을 붙여놓는다는것은 너무나도 가소로운 일이고 비 과학적인 행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다 그 민족의 풍속이 있습니다. 풍속이란 어느 한 민족, 어느 한 지역에서 력사적으로 이루어지고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 오는 사람들의 관습적인 생활규범이나 방식을 말합니다. 이런 풍속가운데 대부분은 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시대에 사람들이 자기의 소망을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실제적인 행위가 장기적으로 내려오면서 풍속으로 되여 습니다. 례하면 우리 민족은 동지날에 팥죽을 쑤어먹는 풍속이 있는데 그 유래를 보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정 널리 전하여지고 있는것이 옛날 진나라의 공공(共工)이라는 사람에게 늘 말썽을 부리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동지날 그 아들이 죽었으며 공교롭게도 죽은 아들은 그만 역질(疫疾)귀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역질이란 천연두라는 무서운 전염병으로서 마을에 돌면서 마을사람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공공은 그저 보고만 있을수 없어 아들이라 해도 그 귀신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하여 생전에 아들이 붉은 색을 띤 팥을 무서워했다는 기억을 떠올리고는 팥죽을 쑤어 대문과 마당 구석구석에 뿌렸습니다. 그 후 역질은 점차 사라졌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팥죽을 뿌렸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그 후부터 역질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쑤었다고 합니다. 어떠한 류행이나 그것이 어느 한 민족, 어느 한 지역에서 지속적을로 내려오면 풍속으로 될수 있습니다. 대학입시에 찰떡을 붙이는 이러한 비 과학적 행위도 해마다 지속적으로 전하여 내려가면 그것이 우리 민족의 일종 풍속으로도 될수 있습니다. 자식이 대학에 붙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리해되나 과학이 발전한 문명한 시대에 비 과학적인 행위는 삼가하여 그것이 우리 민족의 전통풍속으로는 되지 말아야 한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7월 23일
106    가는 정 오는 정 댓글:  조회:8252  추천:6  2012-07-18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49. 가는 정 오는 정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가는 정 오는 정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 속담에는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다른 사람에게 정을 베풀어야 자기에게도 그만큼 정이 돌아온다는 뜻으로 인정이란 주고받는것이지 일방적일수 없다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여 자기가 각박한줄 모르고 대방을 야박하다고 원한다든가 자기의 가는 말이 곱지 않으면서도 대방에게서 오는 말이 곱지 않다고 생트집을 잡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한 이웃사이에 있은 일입니다. 이 이웃에는 두 집 다 같은 또래의 소학교에 다니는 남자애가 있습니다. 한번은 그 애들이 놀다가 싸움을 하게 되였는데 작은 애가 큰 애에게 맞아서 울며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애의 엄마가 달아나가서 그 남자애를 때리면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더니 네 아비가 술 마시고 늘 싸움질이더니 너도 아비를 닮아 그 모양새구나.”하며 그 애의 아버지까지 곁들어 욕을 퍼 부었습니다. 그 말이 그 애의 부모에게 들어가자 그 애의 엄마도 나와서 지려 하지 않고 “아이들의 싸움에 왜 부모들까지 곁들어 욕을 하는가?”며 있는 흉, 없는 흉까지 다 하면서 대판싸움을 벌리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보면 작은 애의 엄마는 아이들의 싸움에 저쪽 애를 때리면서 그 애의 아버지까지 곁들어 욕할것이 아니라 그 애에게 “싸움을 하면 나쁜 어린이므로 싸우지 말고 서로 좋게 지내야 한다.”며 그 애를 타일러 집에 돌려보냈다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과 같이 큰 애의 엄마가 그것을 알았을 때 작은 애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사과의 말을 할것이고 그러면 두집사이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을것이며 오히려 두 집사이에 화목하게 지낼수도 있을 것인데 가는 말이 곱지 않으니 오는 말도 곱지 않아 지금도 두집 사이는 고양이 개 보듯 하고있습니다. 제가 살던 고향마을 이야기이입니다. 이 촌의 박촌장은 지난 세기 90년대 중기부터 로무로 몇번 외국에 다녀왔습니다. 손에 쥔 돈이 있자 인제 고향마을을 건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촌민들을 이끌고 부유의 길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김씨 성을 가진 한 농민이 있는데 안해가 시름시름 앓다나니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지만 아들은 또 공부를 잘하여 남방의 어느 한 명문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학생이 나타났습니다. 그의 부모들은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여 기쁘기는 그지없지만 아들의 입학등록금으로 하여 벙어리 랭가슴 앓듯 말은 못하고 속만 태웠습니다. 이런 사정을 모를리 없는 박촌장은 주동적으로 그 집을 찾아와서 “어쩌다 개천에 룡이 났소. 김철이 대학에 붙은 것을 축하하오. 내 이 집 정황을 손금보든 알고 있으니 김철의 등록금을 근심마오. 내가 대 주지”라고 말하는것이였습니다.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가? 천만 뜻밖이였지요. 이리하여 김철이는 기쁨을 안고 대학에 갔습니다. 첫해는 박촌장의 덕분으로 대학에 갔다 하지만 그 후의 일은 계속 근심거리로 되고 있었습니다. 손에 쥔 돈이 있으면 브로커를 통하여 한국에 가서 몇 년 벌면 뒤일은 해결할수 있으려만 손에 쥔 돈이 없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박촌장은 김씨보다 한수를 먼저 쓰는 사람이였습니다. 벌써 김철의 등록금을 대여줄 때부터 생각이 있었던것입니다. 고기 한 마리만 주고 고기잡는 방법을 대여 주지 않으면 그 상이 장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박촌장은 자기가 돈을 대여 주면서 김씨를 외국로무에 보내려 하였던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김씨는 여러 해 외국에서 돈을 벌어 아들의 공부 뒤바라지도 하고 안해의 병도 치료하였으며 생활도 많이 펴이였습니다. 김철이도 인젠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출근하고 있으며 부모들에게 자기가 박촌장을 양아버지로 모시는 것이 어떤가는 의사를 제기하였더니 부모들도 네가 정말 좋은 생각을 하였구나 하며 선뜻이 동의 하였습니다. 박촌장에게서는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는데 김철이가 아들로 되여 주겠다니 지금은 대학생아들 얻은 기쁨으로 들떠 있으며 두 집에서는 서로 큰집 작은집으로 지내고 있으며 김철은 박촌장을 큰 아버지라며 동네분들을 청하여 박촌장의 환갑까지 치러주었습니다. 박촌장이 김철이에게 입학등록금을 대여 주고 김씨를 돈을 대여 주면서 한국에 보낼 때에는 이런것을 바래서가 아니였습니다. 그저 김철의 전도를 생각하여서였고 빈곤호를 부축하여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가는 떡이 크면 오는 떡도 크다고 박촌장이 이렇게 그들을 도와 나서자 빈곤에서도 해탈되고 아들이 출세까지 한 그들은 그보다 더 갑진 은혜를 갚으려 하고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활동을 토대로 하여 서로 련계를 가지고 집단적으로 살아가는 사회란 인간의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우리는 서로 정을 주고 배려를 하는 마음으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돕고 한다면 화목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가꿀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7월 16일
105    컴퓨터를 학습의 도구로 삼읍시다 댓글:  조회:10469  추천:18  2012-06-19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48. 컴퓨터를 학습의 도구로 삼읍시다 주청룡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컴퓨터를 학습의 도구로 삼읍시다.”란 내용으로 말씀 드리려 합니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먼곳에 있는 친구와 서신거래를 한다든가 화상채팅을 한다든가 하는것은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활동공간이 마련되였다고 봅니다. 옛날어린이들의 놀음을 보면 줄뛰기, 제기차기, 숨바꼭질, 군사놀음 등 밖에서 여럿이 같이 노는 신체건강에 유리한 운동성적인 놀음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놀음은 모두 지나간 옛말로 되고 하학 후에 이어지는 과외보도반의 학습, 전자유희청, 컴퓨터게임 같은것들은 스스로 초롱속으로 들어간 새로 되여 활동공간이 좁아지고 운동량이 극히 적어져 어린이들의 신체건강을 해치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만능공구로서 어린이들이 그것을 잘 리용하면 학습의 아주 훌륭한 도구로 사용될수 있지만 잘못 리용하면 심신건강을 망쳐먹는 해로운 도구로 됩니다. 제가 연변텔레비 청소년프로의 여러가지 지식경연에서 1,2등을 한 몇몇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이런 경연에서 이렇게 우수한 성적을 따낼수 있었는가고 물었더니 모두 “학교에서 과당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집중하여 듣고 많이는 집에 와서 독서도하고 컴퓨터에서 정치, 력사, 자연, 지리 등 여러가지 지식을 학습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런것들을 학습하면 학습할수록 재미나고 더 학습하게 되며 이런 지식이 머리속에 축적되면 여러가지 지식경연에서 우수한 성적을 따낼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컴퓨터는 이렇게 아주 훌륭한 학습의 도구로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를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하루에 몇시간씩 련속 게임을 하면 게임중독에 걸릴수 있습니다. 어느 한 신문에서 “한 어린이가 아버지 어머니가 한국에 돈 벌려 가고 할머니와 같이 생활을 하는데 하학 후이면 곧장 PC방으로 갔다. 처음에는 그래도 저녁이 되면 집에 꼭꼭 들어갔는데 점점 게임에 빠져들어가자 나중에는 집도 학교에도 가지 않고 밤낮 PC방에서 간식으로 요기를 하거나 아예 끼니를 거르면서 련 며칠 PC방에서 게임에 빠져들어갔다. 할머니와 담임교원은 아이가 잃어졌다고 사처로 찾아다녔으며 이 애는 련 며칠 바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하다나니 컴퓨터앞에 쓰러졌는데 PC방 관리일군에 의해 발견되였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제한이 없이 게임을 한다면 게임중독에 걸리게 되고 이렇게 침식을 잃어가면서 놀다보면 나중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도 있습니다. 룡정시 공안국의 조사에 따르면 10대의 소녀가 컴퓨터로 채팅을 하면서 한 남성친구를 사귀였는데 좋은 직업을 해결 해 준다는 솔깃한 말에 부모들이 한국에서 부쳐온 돈을 여러 번에 나누어 인민페로 30만원을 그의 저축통장에 입금시켰습니다. 다행히 공안기관에서 이 사건을 제때에 조사하고 그 사기군을 나포하여 돈은 도로 찾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컴퓨터게임이거나 인터넷채팅에서 자제를 하지 못하면 악성후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어린이들은 아직 좋은 사람과 나쁜사람에 대한 식별능력이 약하므로 될수록 면목을 모르는 사람과 인터넷친구를 사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면목을 모르는 사람과 친구를 사귀다가는 이 소녀처럼 나쁜 사람의 꼬임수에 걸려들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어린이들이 컴퓨터게임이나 인터넷채팅을 하지 말라는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들인것만큼 놀음은 놀아야 하지요. 놀되 자제력을 키워 자기절로 억제할줄 알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연변인민방송국 《소년아동》프로 일요일 《연변의 어린이》에 나오는 어린이들을 보면 과외활동을 자기절로 스케줄은 짜고 그 스케줄에 따라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컴퓨터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채팅을 하는것을 자기절로 시간을 장악하고 한시간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모두 이런 학생들을 따라배워 컴퓨터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채팅을 한시간을 초과를 하지 말고 컴퓨터란 이 만능도구를 잘 리용하여 그것을 어린이들에게 유리한 학습의 도구로 사용합시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6월 18일  
104    인민교원이란 책임감이 두 생명을 구하였다 댓글:  조회:8561  추천:8  2012-06-11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47. 인민교원이란 책임감이 두 생명을 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인민교원이란 책임감이 두 생명을 구하였다.”란 내용으로 말씁드리려 합니다. 인민교원은 후대양성사업에 몸을 담근 원예사입니다. 인민교원들은 이 성스러운 사명감을 안고 초불정신으로 자신의 일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최근 가목사시 제19중의 장려리선생이 자아희생정신으로 학생을 구한 영웅적사적이 전국인민들을 감동시키고 있으며 연변에서도 요즘 최봉녀선생이 드높은 책임감으로 두 생명을 구한 사적이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5일 아리랑방송 《FM88좋은 세상》 생방송을 통하여 연길시 흥안소학교 3학년 2반의 담임 최봉녀교원(38살)이 가스중독에 쓰러진 학생과 로인을 사경에서 구한 이야기가 방송되였습니다. 사연은 이러하였습니다. 지난4월 19일 아침 연길시흥안소학교 3학년 2반의 담임 최봉녀교원(38살)은 첫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는데도 김향미학생 보이지 않았으며 첫 수업이 끝이 나서도 여전히 등교하지 않습니다. 아주 성실한 학생이라 이런 일이 종래로 없었고 또 전날까지도 별다른 사유있다는 말없이 하교하였는데 아무런 련락도 없이 등교하지 않자 최선생님은 별다른 생각이 들게되였습니다. 최선생님은 급히 김향미학생의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신호가 가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향미한테 쳐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자 일산화산소중독사고가 생기기 쉬운 요즘 불때는 집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는 그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지나 않았을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쳐지났습니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속탄 마음으로 첫 수업을 마치고 교도주임한테 정황을 알리고 집을 잘 알고 있는 두 학생과 함께 부리나케 대성촌에 자리잡은 향미학생네 집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2층짜리 주택 1층에 자리잡은 향미네 집은 문이 꽉 잠겨 있었습니다. 아무리 소리를 치고 두드리고 전화를 해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마침 웃층에서 내려오는 이웃집 리덕수 할아버지와 물어보니 어제 저녁에 그 집에서 불을 땔때에 불길이 잘 들지 않아 “석탄가스중독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조언까지 하였다는것이였습니다.  한 시각도 지체할수 없는 상황이라 즉시 110에 긴급구조전화를 하였습니다. 리덕수 할아버지가 모든 책임을 다 진다는 보증을 서고110구조대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에는 향미와 그의 할아버지가 가스중독에 쓰러져있었습니다. 생명이 경각을 다투는 순간이라 더 지체할새 없이120구급차를 불러 이들을 연변병원에 긴급호송했습니다. 향미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고모까지 다 한국에 나가있어 입원수속을 하려 해도 가까운 친척을 찾을수 없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최봉녀교원은 눈앞의 불부터 꺼야 한다는 생각에 고모의 수술비용으로 준비하였던 돈 1,400원을 내여 입원수속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온 하루 병원을 떠나지 않고 향미와 할아버지의 생명이 위험에서 벗어나기만을 빌고 빌었습니다. 이튿날부터는 수시로 병원을 오가며 그들의 곁을 보살폈고 학급 아이들을 동원하여 과일이랑 편지랑 가지고 병문안을 가기도 했습니다. 엿새동안의 입원치료를 거쳐 향미학생은 퇴원하고 그의 할아버지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자리를 옮기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연에서 최봉녀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드높은 책임감을 알수 있습니다. 그날 이웃집 리덕수 할아버지도 이미 간암진단을 받고 치료중이면서도 최봉녀선생님과 함께 자기집 일처럼 달아다니면서 모든 일 처리를 하고 뒤수습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생방송 진행을 맡은 담당자가 그 두분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제집 일이면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하였으며 최봉녀선생님은 “담임교원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하면서 당시 리덕수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110, 120구조대원과 병원의사들에 이르기까지 사경에 처한 학생과 로인을 구하느라 일심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이 세상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며 자기에 대한 칭찬보다 다른 사람들의 헌신정신을 더 높게 칭찬하는것이였습니다. 아리랑방송국 기자의 취재에 의하면 최봉녀교원은 평소에도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 대단하였다고 합니다. 수시로 부모들과 련계를 가지기도 하고 가정방문도 하면서 학생들에게 친자식다운 사랑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선생님은 교수연구활동에서도 국가급 1등상을 받고 시 사덕모범, 시 우수담임교원 등 많은 영예를 받아 안았다고 합니다. 만약 최봉녀교원이 학생들에 대한 드높은 책임감이 없었더라면 학생이 제때에 등교하지 않아도 그저 방임하고 말았을것입니다. 그렇지만 평소에도 교원의 자질과 학생들에 대한 드높은 책임감이 있었기에 그날에도 김향미학생이 제때에 등교하지 않자 여러가지 생각을 굴리던 끝에 이런 불길한 예감까지 하면서 더 지체할새 없이 그 학생의 집으로 달려갔다고 봅니다. 최봉녀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지극한 사랑, 사업에 대한 드높은 책임감이 바로 죽음의 경각에 이룬 두 생명을 구한것이입니다. 이것이 바로 함께하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이며 우리 공민이 반드시 준수하여야 할 사회공덕이라고 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5월 6월 11일
103    장려리의 영웅사적 전국인민을 감동시킨다 댓글:  조회:7903  추천:10  2012-06-08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46. 장려리의 영웅사적 전국인민을 감동시킨다 청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장려리의 영웅사적은 전국 인민을 감동시키고 있다”이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 우리 이 사회에서 생명의 위험에 처했을 때 자기를 잊고 남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지나가 버리는 사람들도 있어 사회적 여론으로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장려리(张丽莉) 교원이 자기를 잊고 당금 차에 깔릴 학생들을 구한 영웅적 사적이 전국 인민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5월 8일 저녁, 가목사시 제19중학교 학생들은 저녁자습을 마치고 교문밖으로 몰려나갔습니다. 이때 갑자기 학교 문앞에 있던 버스가 통제를 잃으면서 다른 두대의 차와 충돌한 후 교문어구의 학생들을 덮쳤습니다. 이 위기일발의 순간 3학년 3반 담임교원인 장려리선생(28세)은 차 앞에서 어쩔줄을 모르고 있는 한 학생을 밀어냈고 또 몸으로 옆에 있는 한 학생을 다른쪽으로 밀어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은 맹렬하게 돌진해오는 차에 깔리여 정신을 읽고 쓰러졌으며 요추, 골반, 미저골, 륵골 등 여러 곳이 골절되였습니다. 그는 병원에 호송되였지만 두 다리는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였고 21일에 두번째 수술을 받았으며 병세가 많이 호전되고 있으며 24일부터는 의식이 맑고 언어가 류창하며 자가호흡도 한다고 합니다. 장려리교사가 위급한 관두에 자아희생 정신으로 학생들을 구한 영웅적 행동은 평소로부터 학생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갖고 있던 감정의 순간적인 표현이라고 볼수 있으며 인민교사의 도덕품성과 위대한 인간성을 충분히 체현하였다고 봅니다. 그는 평시에도 업무에 심혈을 기울여 사생과 학부모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을 뿐만아니라 실제행동으로 무엇이 고상한 품덕이고 용감한 정신인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쳤으며 학생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실제 행동으로 표현하여 새로운 시기 인민교사의 빛나는 이미지를 수립하였습니다. 하여 5월 14일 교육부에서는 장려리선생에게 '전국우수교사'칭호를 수여였으며 5월14일 흑룡강성 부련회는 장려리교사에게 전성 '3.8'붉은기수 영예칭호를 수여하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녀영웅이고 인민교사의 대표적 인물이며 우리들이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입니다. 이와 반면에 지난해 10월 13일 광동성 불산시에서 2살짜리 녀자애가 거리에서 마주 오는 9인승 소형뻐스(面包 車)에 부딪쳐 앞바퀴에 하반신이 깔리였습니다. 운전기사는 차를 세우고 아이를 구할 대신 오히려 뒤바퀴로 뭉개여 놓고 줄행랑을 놓았으며 한참 후 뒤에 오던 트럭도 보지못하고 그애의 두 다리를 깔고 지나갔습니다. 그 애는 고통스레 허우적 거렸지만 선후로 18명이나 되는 행인들이 지나가면서 그 광경을 보고도 구조에 나선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넝마주이 아주머니가 발견하고 들어서 길가에 옮겨놓으며 구조를 바라서야 아이어머니가 알고 달려와서 병원에 이송되였으나 7일만에 결국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소형뻐스 기사는 아이가 앞바퀴에 깔린것을 알고도 뒤바퀴로 마저 뭉개여 놓고 뺑소니 쳤다는것은 사람의 생명을 파리목숨보다 못 여긴 인피를 쓴 야수라고 할수 있으며 그 광경을 보고도 구조에 나서지 않은 행인들은 최저의 인간도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30일 산서성(山西省) 삭주(朔州)시 회인(懷仁)현의 한 길 복판에서 정신상태가 좋지 못한 한 남성이 칼로 지나가던 녀성을 마구 찌르는 일이 발생하였지만 수많은 행인들 가운데서 제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10분 후 경찰에 의해 병원에 호송되였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으로 결국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만약 그 많은 행인들이 단합하여 그 정신질병환자의 행위를 제지시켰더라면 그 녀성을 얼마든지 구하였으려만 모두 외면하여 버렸기에 그 녀성은 결국 무고하게 보귀한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프라기라도 잡는다고 내가 물에 빠졌을 때 나는 누군가가 바줄을 던져 줄것을 바랄것이고 목격자는 반드시 바줄을 던져주어야 하고 내집에 불이 났을 때 나는 모두 같이 불을 꺼 줄것을 바랄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강건너 불보듯 할것이 아니라 반드시 모여들어 불을 꺼 주어야 하고 내가 길을 가다가 발목을 접질럴을 때 나는 그 누가 부추켜 줄것을 바랄것이고 목격자는 반드시 그를 부추켜 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더불어 사는 사회 공동체입니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외면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공동체라고 말할수 없으며 사회공동체를 떠나서는 나도 너도 살수없습니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의 구성인원은 서로 관심하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간다면 아름답고 조화로운 사회를 구축할수 있으며 조화로은 사회를 구성한다면 너도 나도 다 잘 살수 있습니다. 이 두 사건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구조의 손길을 뻗칠 대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듯이 지나가버린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를 장려리선생이 자기를 잊고 학생들을 구한 행동에 비교하여 볼수 있을가? 비교하여 본다면 어떤 느낌이 있을가? 하는생각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6월 4일
102    6.1국제아동절의 유래와 경축의미 댓글:  조회:10534  추천:16  2012-05-29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주청룡   6.1국제아동절의 유래와 경축의미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6.1국제아동절의 유래와 경축의미”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해마 6.1절이 돌아오면 소학교들에서는 기념행사를 벌이고 몇 년에 한번씩 현, 시적으로 크게 경축활동을 진행하고있습니다. 저는 이럴때마다 집체무련습에 땀동이를 쏟고있는 학생들을 보고 6.1절이 무슨 명절이며 이 명절이 어떻게 온것인가를 물어보면 그저 6.1절이 어린이들의 명절이라는것만 알뿐 그 유래에 대해서는 아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으며 그 유래에 대하여 모르는 선생님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까지도 모르니 유감스러운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이 모르니 학생들이야 더 말할나위 있겠는가? 6.1국제아동절의 유래를 보면 1942년 6월, 독일파쑈는 체스꼬슬로벤스꼬 수도 프라하부근의 리디츠촌을 포위하고 16살 이상 남성공민 140명을 살해하였으며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도젤로 마을을 밀어 평지로 만들었으며 어린 아기와 부녀들은 집중영으로 압송하였고 90명 아동은 뽈스까의 한 집중영에 가두었는데 이들 중 전쟁이 끝날 때까지 17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리디츠촌의 희생된 아동과 전쟁중에서 희생된 전세계 아동들을 추모하고 제국주의 전쟁범들이 아동을 학살, 박해하는것을 반대하며 전세계 아동의 생존권, 보건권과 교육을 발을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1949년 11월 쏘련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국제 민주부녀련합회 리사회가 열렸는데 회의에서는 정식으로 리디츠촌대학살이 시작된 6월의 첫날을 전세계 아동의 명절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1925년 8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54개 나라의 대표들이 모인 “아동행복국제대회”에서 《제네바아동보장선언》을 채택하였으며 이 회의 후 여러 나라들에서 자기 나라의 아동절을 제정하였습니다. 우리 나라는 1931년 중화아동자선협회에서 매년 4월 4일을 우리 나라 아동절로 하였었는데 새중국이 건립된 후 1949년 12월23일에 중앙인민정부 정무원에서는 매년 6월 1일 국제아동절을 중국아동의 명절로 결정하고 하루 휴식과 함께 경축활동을 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지금 6.1절 경축활동을 보면 대부분은 우수한 어린이, 우수보도원들을 표창하고 집체무, 운동대회 등 다양한 형식으로 즐겁게 하루를 보내지만 일부 지구에서는 어린이들에게 구체적인 혜택을 가져다 주는 활동으로 전개되고있습니다 . 석가장시 정정(正盯)현에서는 2010년 6.1절 전날 부련회에서 “사랑의 손길’을 뻗쳐 전현의 빈곤아동들에게 130건의 옷을 발급하여 6.1절에 입고 나서도록 하였으며 현 지도간부들은 특수빈곤학생가정을 찾아 조학금을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해 산동성 림술현 청운진 제장(临沭县青云镇齐庄)소학교에서는 6.1절을 맞으며 교탁과 학생들의 책걸상을 전부 새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는 원래 이 고장에 있다가 외지에 나간 민영기업가들이 서로 돈을 기부하여 고향의 교육발전을 지원하엿던것이입니다. 림술현 금류공예품유한회사 부총경리 주숭욱(朱崇旭)은 “오늘 우리는 발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고향의 형제자매들을 잊을수 없으며 고향의 어린이들을 잊을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학교 선생님들은 이렇게 지원을 준 기업가들에게 고향을 떠나서도 고향의 교육에 대하여 관심을 돌리고 있는데 대하여 감사를 표시하고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후대배양사업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산동성 평읍현 지방진 금지(平邑县地方镇金池)소학교에서는 지난해 6.1절에 애심봉사단으로부터 2000여 권의 도서를 기증받아 도서실에 진렬하여 놓았습니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바라던 도서가 오자 너무도 기뻐 시간만 있으면 도서실에 달려간답니다 이 현의 애심봉사단에서는 도서 외에도 1000여 원어치의 학용품을 가지고 와서 생활이 곤난한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애심봉사단의 공뢰(巩磊)는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에게 더욱 신심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욱 많은 학교에 도서실을 앉히여 모든 아이들을 다 기쁘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금년 6.1절을 맞으며 류가승이 모교에 학생들의 통학차를 기증한것이 미담으로 전하여 지고 있습니다. 룡정시 천우건축회사 대상경리 류가승은 어린시절에 룡정시 세린하소학교를 다니였으며 지금은 한 건축회사의 대상경리로 있지만 자기의 모교를 잊을수 없으며 고향의 어린이들을 잊을수 없으며 고향의 어린이들이 왕복 28리의 거리를 힘들게 통학하는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수 없다며 자기의 돈 5만원을 내여 통학차를 사 학교에 기증하여 어린이들이 인제는 비오나 눈이오나 아무런 근심없이 제시간에 등교할수 있어 어린이들의 통학난을 해결하여 학부모들은 그의 선심에 각격해 마지않았으며 학교 선생님들은 “류경리가 모교를 위하여 이렇게 선심을 페푸니 우리는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에서 더욱 큰 결심과 용기가 나온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사회각계에서 지원하고 선생님들이 고무를 받고 학생들을 기쁘게 하는 6.1절 경축활동은 더욱 의미를 띤다고 봅니다. 아동은 조국의 꽃봉오리이고 우리의 희망이며 미래입니다. 연변텔레비의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를 비롯하여 여러 단체에서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는 활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각 학교의 6.1절 경축활동에서도 사회 각계에서 학교의 설비갱신에 지원을 한다든가 부모없는 아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쳐 그들도 부모와 같이 생활하는 어린이들처럼 웃음꽃을 피우며 행복하게 생활하도록 심리적 안정을 주는 그런 내용이 많이 내포되였으면 어린이들을 더욱 기쁘게 하고 어린이들의 미래를 더욱 밝게 비추어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5월 28일
101    이웃절활동이 활발이 전개되였으면 댓글:  조회:7942  추천:6  2012-05-21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주청룡   44. 이웃절활동이 활발이 전개되였으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이웃절활동이 활발이 전개되였으면”하는 내용으로 말씀드립니다. 지금 도시화수준이 제고됨에 따라 아빠트거주문화가 형성되면서 그전의 이웃사이에 서로 만나면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네고 서로 돕고 하면서 색다른 음식이 있어도 서로 들고 다니며 화애롭게 지내던 이웃정은 다 사라지고 지금의 이웃사이는 콩크리트벽으로 막힉 서로 누가 누구인지 모르고 지내며 서로 상관하지 않는 삭막한 사회로 되고 있습니다. 이런 삭막한 인간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지금 전국적으로 이웃절활동을 벌리는 도시들이 적지 않습니다. 연변에서도 오기활선생의 창의로 《지부생활》잡지에서 반년간의 지상토론을 벌려 2006년 4월 연길시 북산가두에서 첫 《이웃절》을 개최한 이래 각지에서 잇따라 이웃절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변의 정황을 보면 아직도 도시에서 이웃절활동이 활발이 전개되는것은 아닙니다. 한 아빠트에서 있은 이야기입니다. 이사짐 차가 와서 짐꾼들이 한 집의 가정기물들을 차에 싣고 있었습니다. 그 아빠트의 몇몇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면서 그저 어느 집에서 이사를 가겠거니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녁에 집주인이 집에 들어와 보니 집안이 수라장이고 갑진 물건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문은 어떻게 열었는지는 모르나 어째든 도적이 들어와 한짓은 분명하였습니다. 하여 옆집과 물어보고 파출소에서 와 조사를 하고 하니 그 아빠트가 들끓기 시작하였습니다. 도적놈들은 아빠트거주문화가 바로 이웃사이에도 서로 면목을 모르고 지낸다는 이 허점을 리용해 집주인 이사를 하는것처럼 대낮에 자동차로 빈집을 털어갔던것입니다. 만약 아빠트거주문화에 이런 허점이 없다면 도적놈들이 감이 이런 연극을 놀지 못하였을 것이고 도적놈들이 이런 극을 놀더라도 이웃에 의해 제지되였을 것입니다. 다른 한 아빠트에서 있은 일입니다. 하루는 3층에 사는 왕할머니 집 천정에서 비오듯 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할머니는 틀림없이 웃집에서 물이 흘러내린다고 생각하고 4층으로 달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지라 옆집과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여 사회구역과 110구조대에 알려 그들이 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수도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던것입니다. 집주인이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와서 이 정경을 보고 지난밤에 물이 오지 않으니 수도꼭지를 틀어놓은것을 아침에 잊고 그대로 나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사실 집주인의 사업터는 집에서 200메터 되나마나한 거리에 있었습니다. 만약 이웃집 사이에 서로 면목을 익히고 서로 어디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만약의 경우를 고려하여 서로 련락 전화번호라도 남겨두었다면 인차 주인과 련락이 되였으려만 한 아빠트에서 서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이라 사회구역과 110구조대에까지 구조를 요구하였던것입니다. 강로인은 퇴직한 후 아빠트단지 정원을 가꾸고 청소를 하는것을 무보수로 도맡아 합니다. 그는 또 손재간도 있어 어느 집에 전기나 상하수도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 강아바이를 찾습니다. 그러다니 자연히 아빠트단지내의 주민들과 친근하여졌고 서로 믿게 되고 오가는 정도 두터워졌습니다. 이 아빠트단지 내에는 중풍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강로인은 늘 그 집에 가서 그 할아버지와 말동무도 하고 그의 시중도 들어주곤 합니다. 그러니 그 할아버지의 자식들은 강로인을 믿고 자기네가 출근한 다음 자기의 아버지를 동무하여 달라고 집 열쇠까지 넘겨주었습니다. 강로인의 이 자원적인 봉사활동으로 이 단지내의 주민들은 자기들의 련락전화번호를 적어드리고 어떤 주민들은 장시기 외출할 때에는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집 열쇠까지 맡긴답니다. 연길시 북산가두에서는 2006년부터 해마다 이웃절을 개최하여 운동회, 문예공연회, 야유회, 주방예술시합 등 다양한 활동을 벌리는것으로써 서로 면목을 익히고 우의를 돈독히 하고 정을 나누며 따라서 빈곤호 부축, 장애인 돕기, 독거로인 돕기, 결손자녀에 대한 사랑 등 활동을 벌리고 있습니다. 어느 신문에서 한 독거로인이 사망하였는데 어느때에 사망하였는지도 모르고 시체에서 악취를 풍길때에야 발견하였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지금 자식들이 다 외지에서 사업하고 독거로인들이 많은 실정에서 이러한것들은 서로 담을 쌓고 있는 아빠트거주문화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할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만약 연길시 북산가두에서처럼 이웃절활동을 전개하여 서로 면목을 익히고 서로 살피고 한다면, 만약 아빠트단지내에 우에서 말한 강로인과 같은 분이 있었다면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것입니다. 가정은 사회의 한 개 세포이고 이런 세포들이 모여 이웃이란 사회의 한 개 작은 집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만약 어느 한 집에 급한 환자가 나거나 불의에 재난이 들이 닥쳤을 때 아무리 가까운 친척들이 있다해도 그들이 멀리 있으면 어쩔수 없지만 이웃관계를 잘 처리한다면 이웃은 인차 도와 나설수 있는것입니다. 하여 예로부터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말로 이웃지간의 정을 말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절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서로 익숙히 하고 서로 정을 주고 서로 돕는 조화로운 사회를 구축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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