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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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연변아리랑 (외 1수) 댓글:  조회:1100  추천:1  2013-12-26
산이 많아 아리랑 곬이 깊어 아리랑 물이 많아 아리랑 곬이 넓어 아리랑 잘 익은 김치에 깊이 스민 아리랑 된장국 한숟가락에도 펄펄 끓는 아리랑 저기 산언덕 할아버지 무덤가에 풀꽃이 피고 목동의 애꿎은 피리소리 령 넘어갈제 노고지리 구름우에 높이 솟아 애꿎이 울면 봄물이 오른 처녀의 댕기에 눈물자국 아리랑 나그네의 어깨에 걸친 무거운 등짐에 눌려 학교 가는 아이의 무거운 책보에 눌려 아낙네의 손에 들린 무거운 장바구니에 눌려 연길역 떠나가는 기차의 아리랑곡조 애처롭다 너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지만 유독 우리에게만 없는 아리랑 비좁은 보따리속에 바리바리 싸들고 가더니 퇴화되여 번식기능을 잃은 연변아리랑.   눈의 무게 술 마시고 눈이 오는 새벽거리를 지나 비틀거리며 귀가하는 길 눈의 무게에 눌려 아빠트 벤치에 털썩 주저앉는다 하염없이 내리는 저 눈송이처럼 지나간 사연들이 꾸역꾸역 밀려온다 내곁에서 떠나간 사람들과 내곁에서 맴도는 사람들의 흘려보낸 말씀들이 마디마디 가슴에 응어리로 맺힌다 눈에 묻힌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듯이 내곁을 떠난 누군가는 나에게 아픔이겠지만 그 누군가에겐 행복이겠지요 비를 맞으면 옷이 젖지만 눈을 맞으면 가슴이 젖는줄 눈 내리는 새벽에야 알았습니다 저 깃털같이 가벼운 눈도 제 무게를 못 이겨 비틀거리며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데 나도 머리에 몸에 가슴에 맺힌 눈을 툭툭 털고 눈의 말씀들을 주저없이 밟으며 비틀거리며 아빠트 계단을 오른다.
50    호화야회 금지령과 공연계의 리성 회귀 댓글:  조회:1882  추천:1  2013-12-20
  2013년 8월, 중앙선전부, 재정부, 문화부 등 5개 부문에서 련합으로 “호화스럽고 겉치레를 조장하는 야회를 금지할데 관한 통지”를 반포하였다. 호화야회금지령이 반포된지 5개월이 지나 전문가들은 “금지령은 공연시장에 한차례의 대수술을 함으로써 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영향을 주는 종양을 제거하고 공연시장의 거품을 걷어냄으로써 공연업이 리성으로 회귀하고 건전하고도 지속적인 발전궤도에서 운행되도록 담보하고있다”고 높이 평가하고있다. 호화야회금지령이 반포된후 일부 문예표현단체, 극장, 공연기획사의 공연차수와 공연수입이 대폭 하강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진통을 겪고있다. 호화야회는 관중의 선택이 아니라 일부 지도자들의 선택이였다. 호화야회의 렌즈는 스타와 관원 사이로 오가는것이 관례였다. 지난날 대부분 호화야회는 준비과정이 짧고 정품이 적어 공연하고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스타들의 배를 불려주는 반면 신예들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많은 재능이 있는 창작가, 연출, 배우, 무대미술가들이 저도 모르게 호화야회의 리익사슬에 얽매이는 등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공리라는 블랙홀에 빠진 창작자들은 공을 들여 예술작품을 창작하는것을 기피하였기에 패스푸트 문예종목이 예술표준과 예술함량을 대폭 삭감시키는 악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국가문화부의 발표에 따르면 호화야회금지령이 발표된 이래 모든 공연시장이 위축된것은 아니며 일부 공연단체의 매표수입은 오히려 상승하고있다고 한다. 우리 연변의 경우에도 연변가무단에서는 대형창작가무 “노래하노라 장백산”을 전국 22개 성에서 100여차 공연함으로써 시장경영발전기능의 저력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준엄한 시련에서도 일부 공연단체들이 승전고를 올릴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이 적극적으로 시장과 관중에게 낯을 돌리고 실속있게 내공을 쌓고 봉사수준을 높임과 동시에 시장수요를 만족시킬수 있는 브랜드종목을 개발함으로써 지명도를 확대하고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켜 시장에서 기선을 잡았기때문이다. 현재 일부 공연단체들의 공연활동이 상승과 하강 두개 극으로 분화된것은 호화야회금지령이 공연시장의 정곡을 건드렸기때문이다. 우리의 공연단체들이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예술본체를 특출하게 하고 사상내포를 풍부히 하며 문화저력을 증강하는데 공력을 들이는것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연변일보
49    “시만들기프로그램”과 현대시 곤혹 댓글:  조회:2272  추천:2  2013-12-13
문학적인 천부가 전혀 없이 한글자 한구절을 신중히 다듬을 필요도 없이 사람마다 “시인”이 될수 있다. 만약 당신이 자판기에 몇개의 관건적인 단어를 입력하면 1분 안에 자동적으로 한수의 시가 생성된다. 이것은 천방야담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류행하고있는 “시만들기프로그램”(“写诗软件”)이 제공하는 “편리”에 의해서이다. 바이두(百度)에 “시만들기프로그램”(“写诗软件”)을 검색하면 몇십개에 달하는 “시만들기프로그램”이 화면에 뜬다. 사용자가 “시만들기프로그램”에 내키는대로 생각한 명사나 형용사 및 단락수(段数), 행수(行数) 등 지시어를 입력하면 프로그램은 자동적으로 1분내에 한수의 “현대파풍격”의 시를 생성한다.  필자가 이 프로그램에 한어로 몇개 낱말들을 입력하니 “10월”이라는 그럴듯한 현대시가 탄생되였다. “중신(众神)이 사망한 사막을 바라보니/ 멀고도 먼 곳의 바람은 먼 곳보다 더 멀어라/ 나의 북소리엔 흐느낌과 눈물은 전혀 없구나/ 먼 곳은 다만 사막에서 한쪼각으로 응결되고/ 거울 같은 보름달은 높이 떠서 천년세월 비추네/ 나의 북소리엔 흐느낌과 눈물 전혀 없구나/ 홀몸으로 말을 채찍질하며 사막을 지나가네.” 현대시의 일부 류파는 현대시란 바로 현실세계의 상식을 초과하는 정신적, 언어적 운동으로 초월세계, 련속세계를 추구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 이질적인 강압조합(폭력조합), 파편문체를 사용하여 낯설게 하는것이 그 처방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필자가 “시만들기프로그램”의 힘을 빌어 만들어낸 시 “10월”도 성공작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사냥군”이라는 익명을 가진 “시만들기프로그램”의 개발자는 최초에는 호기심에 의해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파풍격의 시가 전통시에 비해 모방하기 쉽다는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는 “현대시의 창작사유가 기계적사유에 더 가까우며 현대파풍격의 시의 내재론리가 더욱 도약하는것이 특징이다. 현대파풍격의 시는 바로 어문(语文) 상식중의 명사, 형용사, 부사의 결합을 엉망으로 만들고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제멋대로 헝클어놓는것이다”라는 사람을 놀래우는 메가톤급의 언론을 던졌다. 한 유명한 “시만들기사이트”의 홈페이지에는 “무슨 말인지 모를 현대시를 많이 읽고서야 우리는 보고도 모르는것이 현대시의 본질이고 제멋대로 결합시키는것이 현대시의 보배임을 알게 되였다. 대사(大师)가 없는 년대에 시인들은 썩 물러가라, 지금은 우리도 시를 쓸수 있다”라는 선언문을 버젓이 내걸었다. “시만들기프로그램”의 출현은 시단에 진동을 가져왔다. 문학계에서는 “허튼 소리로 매우 황당하다. 이는 문학창작의 패스트푸드화이며 경박한 문화의 표현이다”라고 질타했다. 중국의 저명한 시인이며 북경사범대학 문학원 담오창교수는 “현재 시문학은 전면적으로 쇠퇴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각종 문학쟝르중 문자와 의경에 대한 요구에서 제일 높은것이 시이다. 시는 인류의 정감을 표달하는 제일 훌륭한 담체이다. 시인은 높은 문학수양을 가져야 할뿐만아니라 내심의 체험과 감수 및 진실한 감정으로 창작해야 한다. 이것은 기계가 할수 없는것이다. ‘시만들기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작품은 예술에 상처를 줄것이며 시를 훼멸시킬것이다”는 문장을 발표하였다. “시만들기프로그램”의 성행은 시인들에게 시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엄숙한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있다.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따위를 함축적이고 운률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 바로 시이다. 우리의 시인들은 시는 만드는것이 아니라 쓰는것임을 명기해야 할것이다. 연변일보
48    "문화상"과 "군성상"의 의미 댓글:  조회:2225  추천:2  2013-12-05
  일전에 연변가무단과 연변주군중예술관에서 쌍으로 희소식을 전해왔다. 연변가무단의 원작가무 “노래하노라 장백산”이 제10차 중국예술절 제14차 문화상평의에서 우수프로그램상을 수상하고 연변군중예술관의 “성세장고”가 제10차 중국예술절 제16차 군성상평의에서 군성상(群星奖)을 수상함으로써 연변의 문화예술실력을 만천하에 자랑했다는 소식이였다. 국가문화부에서 주최하는 중국예술절은 우리 나라에서 품위나 규모, 영향력이 제일 큰 국가급예술행사로 불리운다. 문화상평의와 군성상평의는 모두 중국예술절행사기간 펼쳐지는 두가지 평의인데 문화상은 전문무대예술분야의 정부최고상이고 군성상은 문화부가 군중문예창작을 번영시키고 사회문화사업의 번영과 발전을 추동하기 위해 설치한 사회문화예술분야의 정부최고상이다. 전문무대예술분야와 사회문화예술분야의 정부최고상을 우리 주에서 모두 획득했다는것은 우리 주가 문화예술의 보급과 제고에서 쌍풍수를 거두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찍 70년전에 있은 “연안문예좌담회강화”에서 모택동주석은 보급과 제고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강화”에서 모댁동주석은 “보급사업과 제고사업은 갈라놓을수 없는것이다. 우리의 제고는 보급을 토대로 한 제고이며 우리의 보급은 제고를 지도로 하는 보급이다. 완전한 ‘양춘백설’과 완전한 ‘하리파인’은 모두 문제를 야기하기에 변증법적인 분석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의 보급과 제고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승급한다. 례를 들면 건국초기 보급의 직능을 담당한 문화관에서는 당의 중심사업을 둘러싸고 시사교육, 식자교육 등 낮은 차원의 문화보급에 중점을 두었다. 11기 3중전회이후 문화관의 주요기능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문화관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마련하고 대중적인 과외문예단체를 건설하고 군중문예골간을 양성하며 무형문화재를 수집, 정리, 연구하는 등 그 기능과 역할이 대폭 승격되였다. 현재 우리 주의 군중문화사업은 그 어느때보다 활발한 양상을 띠고있다. 각 현시마다 군중문예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광장문화가 흥행하고있으며 각 문화관마다 여러개의 무형문화재종목을 보유하고있어 시민들에게 문화적향수를 듬뿍 안겨주고있다. 이번에 연변군중예술관의 “군성상” 수상은 우리 주 군중문화사업일군들의 소질이 높고 과외문예골간대오의 저변이 두터우며 군중문화사업이 높은 차원에서 운행되고있음을 다시한번 립증해주었다. 예술표현단체는 문화예술제고기능을 수행하는 기구로서 문화전승기능, 예술생산기능과 시장경영발전기능을 갖고있다. 이번에 연변가무단의 문화상 수상작품 “노래하노라 장백산”은 바로 중국조선족의 무형문화재원소를 집대성하여 창작된 작품으로 문화전승기능과 예술생산기능을 톡톡히 수행하였다. 그외 이 작품은 높은 예술성으로 전국 22개 성에서 100여차 공연됨으로써 연변가무단의 시장경영발전기능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높은 소질의 시민이 없고 문화명인이나 높은 수준을 갖춘 문예단체가 없다면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문화강주로 건설한다는것은 공담에 불과하다. 어떠한 시기나 보급과 제고의 과정이 있다. 보급가운데서 제고를 가져오게 되며 제고의 기초에서 다시 보급하는 동태적인 과정이 반복되면서 우리의 문화예술은 발전하게 된다. 때문에 문화관과 전문예술표현단체가 상부상조할 때 문화예술이라는 쌍두마차는 무탈하게 운행될것이다. 건국이래 우리 주 문화예술사업의 보급과 제고에 막대한 공헌을 한 문화관과 예술단체들에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는바이다. 연변일보
47    중국조선족TV드라마 이젠 우리의 힘으로 댓글:  조회:2756  추천:13  2013-11-05
1977년 12월에 연변TV방송국이 개국하고 1983년 양력설에 중국조선족의 첫 TV드라마 《어머니 시름놓으세요》(김훈 씨나리오, 김일 연출)가 방송되면서 중국조선족 TV드라마(TV극)의 기원이 열리게 되였다. 1983년부터 지난 세기 90년대말까지 연변TV방송국에서는 선후로 《세배《(1985년), 《낳은 정 키운 정》(1985년), 《민들레꽃》(상, 하, 1986년), 《우리 선생님》(1987년), 《사랑의 품》(1995년, 8집), 《가족사진》(1999년, 16집) 등 도합 25부의 TV드라마를 제작하였다. 그중 《낳은 정 키운 정》은 중앙TV방송국을 비롯한 전국 150개 텔레비죤방송국에서 방송되였으며 《민들레꽃》은 동북3성 TV드라마 《금호상》평의에서 극본 3등상을 수상하고 《우리 선생님》은 제2차 소수민족소재TV드라마평의에서 《준마상》 2등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기 중국조선족 TV드라마는 씨나리오, 감독, 배우 등 제작진 멤버 전체가 일색 조선족들이였다. 이들은 만강의 열정과 충만한 사명감으로 중국조선족의 피어린 혁명투쟁사와 현실생활을 반영한 TV드라마를 다수 제작함으로써 중국조선족들의 인심을 고무시키고 중국조선족을 전국에 홍보하는데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조선족 TV드라마제작은 두갈래 길을 걸어왔다. 하나는 정부의 강력한 지지로 중앙TV방송국에서 《풍설속의 진달래《와 《장백산아래 나의 집》 등 2부의 대하 TV드라마를 제작한것이다. 이 2부의 TV드라마는 투입이 많고 스케일이 크며 중앙TV방송국에서 황금시간대에 방송함으로써 그 파급효과가 전례없이 컸다. 하지만 모든 제작과정을 타민족이 주도하다보니 중국조선족의 생활을 반영함에 있어서 미흡한 점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음 하나는 중국조선족들이 주도한 TV드라마창작이 미약하게나마 그 명맥을 유지해온것이다. 이 시기 13년간 연변TV방송국에서는 《반지》(2006년, 김광호감독), 《부모》(2011년, 주금파감독, 제5회 소수민족소재TV드라마평의 《금붕상》 수상), 《자전거》(2012년, 주금파감독, 길림성라지오TV방송국 《두루미상》 1등상 수상) 등 모두 3부의 TV드라마밖에 제작하지 못했다. 이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조선족 TV드라마제작이 매우 위축되여있음을 설명해준다. 근 150여년에 달하는 이민사를 갖고있는 중국조선족은 드라마 같은 파란만장한 발전력사를 겪어왔다. 이는 중국조선족이 자기의 훌륭한 TV드라마를 창작할수 있는 큰 밑천으로 된다. 근 30년의 발전을 거쳐 중국조선족은 작가, 감독, 배우 등 TV드라마를 단독으로 제작할수 있는 기반을 튼실하게 갖췄다. 하지만 씨나리오를 전문으로 쓰는 작가, 연극배우와 구분되는 탤런트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구슬도 꿰여야 보배라는 말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관련 부문에서는 자금을 투입하여 널려있는 TV드라마 제작인재를 모음과 동시에 젊은 씨나리오작가, 탤런트, 감독, 촬영사, 특수분장사 등 TV드라마 제작 후비인재들을 양성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46    백년부락 댓글:  조회:2167  추천:3  2013-10-31
도문시 월청진에 위치한 백년부락을 찾아가던 그날, 나의 마음은 설레이기만 했다. 백년부락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백년 세월을 간직한 고향마을 일초일목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이 길을 따라 두만강을 거슬러 곧추 올라가면 고향마을일텐데… 몸집이 웅장한 돌에 새겨진 백년부락 입구에 들어서니 고향에 찾아온듯 맥박이 빨라진다. 입구에 위치한 한옥 앞마당에서는 함초롬한 청보리가 세풍에 수줍은듯 설레인다. 퍽 낯 익은 모습이다. 청보리처럼 풋풋한 나의 첫사랑 숙이는 고향마을 한복판 백년 넘는 고택에 살고있었다. 숙이네 집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발뒤꿈치를 들어 돌담너머 백년고택을 기웃거렸다. 오얏나무아래에서 책을 읽고있는 노을처럼 고운 숙이를 볼 때면 얼마나 가슴이 콩닥거렸던가. 초중 1학년때 숙이네는 내몽골로 이사했다. 하필이면 수천리나 떨어진 그 먼 곳에 이사했을가. 그후로 나는 숙이를 한번도 보지 못했고 소식마저도 모르고 살아왔다. 언제나 여한을 안고 사는것이 인생인가부다. 청보리밭 가장자리에서는 잠자리가 장다리끝에서 요리조리 옮겨앉으며 오후의 따스한 해볕을 즐기고있었다. 어릴 때에는 늘 고향집 앞마당 굽바자에 붙어서서 코등에 땀을 벌벌 흘리며 《소곰재 꽁꽁 앉은 자리에 앉아라. 먼데 가면 죽는다.》는 동요를 부르며 잠자리를 나꿔채기에 여념이 없었다. 인간은 왜 《먼데 가면 죽는다.》는 동요를 부르면서도 너도나도 고향을 떠나 먼데로 가지 못해 아득바득 애쓰기만 하는가. 백년부락은 백년 넘는 고택 한채와 풍격과 용도가 서로 다른 조선족전통한옥 20여채로 조성되였다. 고혹적인 매력의 룡마루기와집과 노란 벼짚으로 이영을 얹은 소박한 초가집이 서로 어울린 백년부락은 세월의 흐름속에서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우리네 전통부락을 재현한것이다. 옹기종기 둘러앉은 초가집들은 낮은 돌담으로 둘러져있다. 돌담우에 줄느런히 무져져있는 고색창연한 기와장들은 년대에 따라 크기, 무늬, 색상이 서로 다르다. 이런 기와장들은 어찌나 단단한지 지붕에서 내려뜨려도 잘 깨지지 않는다고 한다. 질그릇들도 어떻게 구웠는지 오래된것일수록 가볍고 단단하고 자연스럽고 예뻐 조상들의 지혜에 혀를 차게 한다. 초가집 돌담너머 디딜방아가 눈길을 끈다. 몰강스러운 할머니는 우리 집을 떠나 큰집으로 갈 때까지 어머니를 심하게 족대겼다고 한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고 만삭일 때 정월 엄동에 할머니가 어머니더러 동네에 가서 매돌을 빌려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무거운 몸에 매돌을 머리에 이고 강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올제 어머니는 눈물이 앞을 가려 죽고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일었다고 한다. 내가 어릴적 할머니는 늘 사소한 일로 어머니에게 가탈을 부렸는데 구정물을 통채로 어머니의 머리에 퍼붓기가 일쑤였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우악스러운 할머니와 가래지 않고 묵묵히 곡식자루를 머리에 이고 무거운 걸음으로 방아간을 찾았다. 어머니는 방아를 찧으며 시름과 설음도 함께 찧으셨을것이다. 골목길을 따라 몇걸음 걸으니 자그마한 공터에 큰 석마가 놓여있다. 오랜 세월의 여울에 이끼 낀 석마, 우리네 겪은 력사만큼 묵중함이 느껴진다. 우리 마을에도 이와 비슷한 큰 석마가 있었다. 마을 북쪽 빈 자리에 버려져있었는데 몇년전에 마을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외지사람에게 그 석마를 팔아버려 떡심이 풀리기도 했다. 백년부락의 으뜸은 당연히 100여년의 풍우를 끄떡없이 이겨낸 전통한옥이다. 이 전통한옥은 조선이민 박여근이라는 상인이 3년간의 시간을 들여 1893년에 준공한것이라고 한다. 가옥의 주인은 이 집에서 50년 살다가 해방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백년고택은 면적이 크고 조선족건축특색이 선명한데 토목과 기와구조로 대못 하나 박지 않고 자귀와 도끼 등 도구를 사용해 건축했다. 고택은 마루와 온돌이 결합되고 퇴마루가 있다. 내부구조는 정지, 웃방, 고방, 한웃방, 한웃고방, 사랑채로 구성되였다. 집을 짓는데 필요한 목재는 장백산의 량질원목을 떼목으로 운반해다 사용하고 기와는 조선에서 배를 리용해 운반해다 사용한것으로 알려졌다. 백년고택 뜨락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것이 샘이 깊은 드레박우물이다. 우물가에는 수양버들이 머리를 풀고 바람에 하느작거린다. 고향마을 우물가에도 마을의 년륜만큼 수령이 오랜 버드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매년 10월 초하루날이면 버드나무아래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당산제를 지냈다. 부모님들은 당산나무의 령험을 받기 위해 가족중에 누가 아프거나 멀리 떠난 자식들이 무사하기를 기원해 당산나무에 정성껏 치성을 드렸다. 여름밤이면 마을사람들은 버드나무아래에 모여들어 밤이 깊어가는줄도 모르고 몸이 날짝지근해질 때까지 세상만사를 노닥이면서 잠시나마 각다분한 인생사를 잊군 했다. 긴긴 겨울밤이면 군것질이 구쁜 아이들은 우물에 얼어붙은 얼음을 까다가 얼음과자처럼 맛있게 먹으면서 주린 배를 달랬다. 그야말로 우물은 마을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풍성하게 살찌워준 젖줄이였다. 백년고택 앞으로는 작은 개울이 흘러간다. 바로 이 개울가에서 아낙네들은 빨래를 하면서 시집살이의 설음과 고달픔을 헹구고 남정네들은 흙 묻은 호미를 씻고 낫을 갈면서 풍년을 기원했으리라. 마당 북쪽에는 마을의 견증자인 물레방아가 삐꺼덕삐꺼덕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데 적막한 마을에 생기를 더해준다. 백년고택 문턱에 서서 집안을 들여다보니 구들에 오랜만에 보는 까래가 깔려있다. 부뚜막은 먼지 한점 없이 깔끔하다. 반지르르 윤기가 도는 가마가 걸린 부뚜막우 빨래줄에서는 세마리의 새끼 제비가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있다. 내 고향집 내부모습과 꼭 닮은 꼴이다. 가마목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가 《바가지가 엎어지더니 네가 기별도 없이 집에 돌아오려고 그랬구나.》라고 말씀하시며 맨발바람으로 봉당에 내려서서 나를 반기실것만 같다. 우리 마을에도 세월의 모진 풍우를 이겨낸 백년고택이 세채나 있었다. 1990년대초, 마을사람들은 셈평이 펴이면서 마을의 력사를 고이 간직한 고택을 흉물로 여기고 가차없이 톡탁 쳐버리고 새 벽돌집을 지었다. 이젠 고향마을은 집도 골목길도 어디라 없이 설면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숙연한 마음으로 백년부락 구석구석을 갈마보고나니 그립던 고향에 다녀온듯 마음은 홀가분해지고 타향살이에 찌들었던 삶이 치유된다. 첫사랑처럼 영원히 잊을수 없는것이 고향이고 가시처럼 내 살점에 박혀있는것이 고향이다. 점점 사라지고있는 백년부락이 우리의 전통마을을 재현시켜 고향이 그리울 때면 언제든지 달려갈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김인덕
45    교하 “단풍계곡”이 주는 계시 댓글:  조회:1999  추천:2  2013-10-23
  국경절련휴기간 필자는 교하에 위치한 “단풍계곡(红叶谷)”을 찾아갔다.  “단풍계곡”이 유명한 풍경구인것은 익히 알고는있었지만 풍경구에 도착한 순간 넓은 주차장에 정차한 수많은 차량과 실북처럼 나들고있는 차량, 북적이는 인파에 필자는 적이 놀랐다. 무려 50킬로메터나 이어지는“단풍계곡”은 어디로 가나 자가용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고 인파들로 물샐 틈이 없었다. 차량번호판을 보면 장춘, 길림 지역이 많았고 북경지역, 연변지역의 차량들도 적지 않았다. “단풍계곡”은 4개 풍경구로 나뉘였는데 입장료는 각기 120원과 60원이였다. 어림잡아도 하루 다녀가는 유람객이 몇만명을 웃돌고 단풍이 지속되는 시간을 15일로 치면 단풍철기간 교하시에서는 웬만한 한개 현, 시 재정수입의 절반에 해당하는 관광수입을 올린다고 할수 있다. “단풍계곡”은 장백산산맥의 한갈래 산골짜기로 라법산(拉法山)국가삼림공원의 경령(庆岭)풍경구에 위치해있는데 연길과는 서쪽으로 약 300킬로메터 상거해있다. 필자는 긴 려정을 달려오면서 “단풍계곡”은 계곡과 산 전체가 온통 빨갛고 노란 단풍들로 가관일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풍경구를 전부 유람하고나서야 연변의 여느 깊은 산골짜기의 가을풍경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붉은 단풍나무가 많지 않았고 노란 단풍은 전혀 볼수 없어 색채의 조화가 단조롭고 대비가 두드러지지 않아 서운한감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왜 수많은 유람객들은 이렇듯 “단풍계곡”에 열광하는것일가. 현대도시인들은 평소 빠른 생활절주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다. 하여 사람들은 주말이나 련휴기간이면 도심을 벗어나 자연에 발길을 돌리기를 즐겨한다. 한때 유명했던 웰빙시대는 현재 힐링시대로 대체될만큼 현대인은 힐링에 집착하고있는것이다.  힐링(Hilling)은 “산에 오르다”를 뜻하는 영어이다. 삼림은 경관, 화초, 야생동식물 등 영상시각으로부터의 위안효과, 고요함, 새소리, 벌레소리, 바람소리, 계곡물소리 등 청각으로부터의 진정효과, 산채맛, 버섯맛, 열매맛 등 미각으로부터의 먹거리효과, 나무촉감, 락엽촉감, 삼림내 바람 등 촉감으로부터의 감촉효과, 초록향기, 꽃향기 등 후각으로부터의 상쾌효과 등 여러가지 탁월한 기능으로 인간의 오감을 만족시키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힐링해줌과 동시에 암, 천식, 결핵, 피부질환 등 질병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껏 도시내에서 위락시설이나 민속촌을 건설하는것으로 외지의 유람객을 유치하려 했고 자연을 개발할 때 골프장이나 스키장을 건설하여 한몫 잡으려 했다. 하지만 힐링시대에 위락시설이나 민속촌은 유람객들의 발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고 골프장이나 스키장은 소비층의 제한으로 리윤을 창출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이미 경험해왔다. 주지하다싶이 연변의 삼림피복률은 80%를 웃돌고 유람객들의 발길을 끌만한 단풍유람구도 한두개가 아니다. 연변에서 가장 대표적인 단풍유람구는 안도현 량강진의 설산비호풍경구, 돈화시에 위치한 한총령(寒葱岭)단풍풍경유람구, 화룡 선봉풍경유람구 등이 있다. 그외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비경―단풍풍경구가 적지 않을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관광자원을 홀대하면서 홍보 및 단풍풍경구 개발에 등한시해왔다. 우리는 이제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해주는 삼림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 단풍계곡을 건설함에 있어서 사계절 모두 유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도록 종합적으로 개발하는것에 모를 박아야 한다. 봄에는 여러가지 색갈의 꽃이 만발한 꽃동산으로, 여름에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체험장으로, 가을에는 노란 단풍, 빨간 단풍이 조화를 이룬 단풍계곡으로,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수 있는 운동장소로 건설하는것이 바람직한 대안일것이다. 장춘으로부터 훈춘까지의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장춘, 길림 등 지역과 연변은 1일 생활권에 들게 된다. 이때면 많은 유람객들이 연변에 찾아올것이다. 힐링시대에 삼림자원은 최대의 관광자원으로 부상할것임은 추호도 의심할나위가 없다. 이런 시점에서 담력이 있는 사업가나 원견성이 있는 행정가라면 단풍계곡에 대한 개발을 두고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검토해볼 때라고 생각한다. 연변일보 10월 23일자
44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댓글:  조회:2141  추천:0  2013-09-18
이제 래일이면 우리 민족의 4대 명절의 하나인 한가위(추석)이다. 한가위날의 어원은 가배일(嘉俳日)이다. 김매순(金邁淳)의 《렬양세시기(冽陽歲時記)》 “8월 중추(中秋)”편에는 “가위란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되였다. 이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이라도 례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加也勿 減夜勿 但願長似嘉俳日)’라고 한다”고 기록되여있다. 가을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인만큼 먹을것이 가장 풍성하다. 또한 오랜만에 일손을 놓고 성묘를 하고 가족, 친척, 마을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기도 하고 따뜻한 마음과 인정을 나누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서도 우리 민족의 한가위날의 세시풍속은 크게 달라진바가 없다. 필자의 어린 시절 한가위날이면 집집마다 햇쌀로 송편을 만들고 햇과일, 소고기 등 정성껏 음식을 마련한후 조상의 무덤을 깨끗이 벌초하고 제사를 지냈다. 또 이날이면 마을에서는 운동회를 열었는데 그네, 널뛰기, 씨름 등 민속경기를 치르면서 온 마을이 들썽들썽했다. 하지만 아무리 풍성한 가을이 와도 수확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들이 있다. 우리 민족의 문화는 예로부터 벼농사 중심의 농경문화로서 협동과 근면, 상부상조의 나눔문화가 발달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세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부녀자의 인덕을 말할 때 쓰이였다. 부녀자들은 밥을 지을 때 식구수에 세몫을 덤으로 더했는데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웃들과 언제든지 나누어 먹기 위해서였다. 또 “좀도리”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옛날 어머니들이 밥을 지을 때 쌀을 미리 조금씩 덜어내 부뚜막에 있는 단지에 모아두었다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 마을사람들은 모두 형제처럼 화목했다. 이웃과 떡을 나누고 김치를 나누었는데 바자굽을 넘어갔던 접시는 빈 접시로 돌아오지 않고 무언가 담겨져 돌아왔다. 우리는 요즘 매일 꽤나 풍성한 “한가위날”을 맞으면서 살고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풍성한 계절”이 와도 불우하고 소외된 삶을 살면서 그늘에 가려있는 이웃들이 적지 않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독거로인가정, 중환자가정, 장애자가정, 소년소녀가장가정… 필자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온정을 지닌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나면서 우리 민족의 나눔과 배려 문화가 지금도 색이 바래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꼈다. 한철범은 도문시 장안진의 한 조선족농민으로 1992년부터 연자골을 도급맡고 60만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민둥산과 황무지에 사과배나무를 심고 락엽송을 심었다. 1998년의 어느날, 한 로인이 부모를 여읜 한 아이를 데리고 한철범이 경영하는 산장으로 찾아와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때로부터 한철범의 “애심”은 마른 장작에 불이 달린듯 타올랐다. 한철범은 2004년에 연자산장을 “애심복리원”으로 개조하였는데 지금까지 그가 부양한 한족, 조선족 로인과 고아는 60명을 초과한다. 그중 8명이 중등전문학교에, 3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한철범은 “평생 나를 따르려는 아이들이 안정된 삶을 살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말한다. 연변중심혈액소에서 근무하는 박대철은 사람들로부터 “생명을 지켜주는 천사”로 불린다. 그는 1992년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무려 44차례에 걸쳐 8800cc에 달하는 피를 헌혈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피로 생명을 되찾았는지 모른다. 박대철은 “피는 생명의 근원이고 사랑은 생명의 서광입니다. 자신의 조그마한 기여로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 생명을 지켜주는것만큼 보람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고 말한다. 한철범씨나 박대철씨는 비록 가진 재부는 많지 않지만 마음의 부자인것만은 틀림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숨결이고 나눔과 배려는 일상이다. “그릇”은 물을 붓는데 사용된다. 큰 “그릇”중에 자신이 받는것에 비해 턱없이 적게 부어주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작은 “그릇”중에도 자신의것을 몽땅 부어주는 “그릇”도 있다. 한철범씨나 박대철씨는 후자와 같은 작은 “그릇”이지만 그들의 형상은 태산보다 크다.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우리 모두 숨을 고르고 불우한 이웃들에게 조그마한 온정을 베푼다면 그들은 다시 일어설수 있는 지팽이와 새로운 삶의 불씨를 얻게 될것이며 우리 사회는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살맛나는 사회로 거듭날것이다.
43    준비는 되였는가 댓글:  조회:1867  추천:2  2013-09-04
얼마전에 열린 전 주 보통대학교 졸업생 취업사업회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연변에 돌아온 대학졸업생은 7700여명이라고 한다. 이는 3년 사이 연변적을 가진 외지대학졸업생 총수의 30%를 넘어선 수치로 인심을 고무시키는 희소속이 아닐수 없다. 그중 6700여명이 이미 취업을 했고 올해 연변대학의 4400여명 졸업생중 64%가 취업을 했다고 한다. 또 올해 연변에 돌아올 의향을 밝힌 외지대학졸업생은 3000명 좌우라고 한다. 수자는 따분한것이지만 세세히 따져보면 연변대학의 대부분 졸업생들이 연변에서 일자리를 찾는것을 선호하고 해마다 점점 더 많은 연변적 외지대학졸업생들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것은 정말 가슴이 뿌듯한 희사가 아닐수 없다. 몇년 사이 연변은 여러 민족 인민들의 한결같은 노력으로 거족적인 발전을 이룩하였고 또 “중국 두만강지역합작개발계획요강”과 길림성의 “선도구”전략의 깊이있는 실시 및 중국 훈춘국제합작시범구의 가동건설과 더불어 중국 두만강지역합작개발은 새로운 력사시기에 들어섰으며 연변의 발전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있다. 이에 따라 연변에서의 대학생들의 발전공간도 점점 넓어지고있다. 이는 연변적 외지대학생들이 고향행 유턴을 선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일것이다. 그리고 대도시에서의 경쟁이 점점 치렬해지면서 립지가 줄어들고 대도시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튼 10년후면 연변건설의 주역이 될 우리의 금쪽같은 “자식”들이 고향의 품을 찾아오니 “어버이” 된 연변인민들로서는 반갑지 않을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뜨겁게 포옹할 준비가 되여있는걸가? 우선 우리는 그들에게 공평하게 경쟁할수 있도록 균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특히 수의(随意)성이 강한 공무원, 사업단위의 면접시험에서 “안면보기”는 철저히 근절되여야 한다. 공평한 경쟁환경은 대학생들이 고향에 안주할수 있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며 고향인민들이 그들에게 안겨주는 가장 값지고 푸짐한 선물로 될것이다. 다음 정부차원에서 여러가지 방식의 대학졸업생초빙활동을 빈번하게 조직하여 취업정보와 구직경로를 한층 넓혀야 한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대학졸업생에 한해서는 기능강습반에 참가시키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졸업생은 우선적으로 정부에서 개발한 공익성일터에 배치해 전사회가 대학졸업생취업을 관심하는 량호한 국면을 형성해야 한다. 연변에 돌아온 대학생들도 어려운 취직환경에 대비해 눈높이를 낮추는 심리적준비를 갖추어야 할것이다. 중국 대학졸업생들의 취업추이를 살펴보면 5년전까지만 하여도 가장 선호하는 직장은 국유기업, 국가기관, 사업단위 순이였으며 연해개방도시에서 취업하는 학생수가 근 68%에 달했으나 2011년과 2012년에 이르러 중, 서부 지구에서 취업하는 대학졸업생수가 이미 동부를 초과하고 민영기업에서 취직하는 비례도 해마다 상승하고있다. 2013년 국가교육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보통대학교 졸업생 규모는 699만명으로서 2012년에 비해 19만명이 증가한것으로 된다. 이런 준엄한 취업현실에 비추어 우리의 대학생들도 큰 뜻을 품고 향진기업, 민영기업 등 평범한 일터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을 심리적준비가 되여있어야 한다. 요즘 농촌지역을 취재하다보면 시골지역에서도 고향에 돌아와 창업하는 대학생들을 심심찮게 만날수 있는데 그들의 용기는 정말 가상하지 않을수 없다. 다음 대학생창업도 좋은 취직선택이 아닐수 없다. 지금 대학생창업은 갈수록 사회의 인정을 받고있으며 정부차원의 창업지원도 갈수록 완벽해지고있다. 현재 국내의 여러 은행들에서는 자주적으로 창업하는 대학생들에게 5만원가량에 달하는 낮은 리자의 소액대부금을 발급하고있으며 대학졸업생들이 개체경영에 종사하면 1년간 개체공상비와 일체 세금을 면제해주는 우대정책을 실시하고있다. 대학생취업난을 완화시키고 해결하려면 경제발전에 의뢰해야 할뿐만아니라 체제개혁과 관념갱신도 병행되여야 한다. 대학생들의 취업난을 해결하는것은 체계적인 프로젝트로서 정부, 사회, 학교와 학생 자신 등 여러 면의 공동한 노력을 수요한다. 고향을 찾아온 대학생들은 정확한 취업관념을 수립함으로써 오직 개인의 리상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긴밀하게 련계시킬 때 사업에서 성공할수 있고 인생의 꿈을 실현할수 있을것이다.
42    인 생 댓글:  조회:1009  추천:0  2013-08-27
인 생 김인덕   가다가 힘들면 하늘 한번 보세요 인생은 어차피 떠가는 구름인것을 한탄한들 어떠리 울어본들 어떠리 멈춰서면 잦아드는 구름비인생 어깨 펴고 가슴 펴고 떠나가보자 구름처럼 고개너머 하늘끝까지   가다가 지치면 강물 한번 보세요 인생은 어차피 흐르는 강물인것을 부서지면 어떠리 깨여지면 어떠리 멈처서면 사라지는 물방울인생 어깨 펴고 가슴펴고 떠나가보자 강물처럼 굽이굽이 바다끝까지
41    그리운 동네골목길 댓글:  조회:2291  추천:3  2013-08-09
그리운 동네골목길   김인덕   우리 마을은 백여호가 넘는 꽤 큰 마을이였다. 게딱지만한 초가집들이 질서없이 옹기종기 들어앉다보니 달이 없는 밤에 오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보면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동네 골목길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어린 령혼을 품어주기에는 족했다. 세상과의 소통이 시작된 동네골목길은 나의 동년과 함께 아련하게 간직되여있다. 동네골목길 풍경의 백미는 울바자라고 할수 있다. 여름이면 열콩줄기가 푸른색으로 울바자를 장식했다. 남자애들은 열콩잎을 따다가 견장처럼 어깨에 달고 군대놀이를 즐겼고 녀자애들은 삼삼오오 바자굽그늘에 앉아 공기놀이를 즐겼으며 심심한 동네 나그네들은 길을 가다가 무심하게 열콩잎을 따다가 탕 내리쳐 소리를 내는것으로 울적한 심사를 달랬다. 울바자는 또 잠자리들의 천국이였다. 애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잠자리를 바라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소곰재(잠자리) 꽁꽁, 앉은 자리에 앉아라. 먼데 가면 죽는다.” 나는 큰 애들한테서 그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매우 의아해했다. 먼데 가면 살겠는데 왜 죽는다고 할가. 나는 일곱살에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마당앞 울바자를 떠나 마을남쪽 학교곁에 있는 유치원에 갔다. 개학 첫날, 박정희선생님(후날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유명 아나운서로 일함)이 모주석의 어깨가 교실벽보다 더 넓다고 하셨다. 여태까지 범인들의 어깨만 보아오던 나로서는 신기한 이야기가 아닐수 없었다. 열둬살때부터 남자애들은 쇠파이프로 만든 화약총 하나쯤을 갖는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날 밖에 눈이 내리는지라 나는 혼자서 집에서 딱지를 접고있는데 웅걸이와 경철이가 화약총 한자루씩 들고 참새를 잡으러 가자고 하였다. 우리 셋은 온 오후 동네골목길을 누비며 참새사냥을 했지만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무렵 저쪽 바자굽에 웅크리고있던 경철이가 갑자기 “어이구.”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나와 웅걸이가 웬일인가 경철이한테 다가가보니 경철이가 두손으로 배를 붙들고있었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총구를 배에다 대고 총을 손질하다가 오발했던것이다. 마을병원에 가보니 경철이의 배에 피딱지가 한방울 말라붙어있었는데 결국 현병원에 도착하기도전에 숨지고말았다. 어느덧 초중 2학년이 되였다. 나보다 두살 많지만 심한 뇨독증을 앓는 성국이는 우리 학급에 류급되였다. 어느날 점심, 나와 성국이는 학교앞 둔덕에 앉아있었다. 성국이는 자신은 예술학교에 진학하는것이 꿈이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무슨 꿈을 갖고있는가 물었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 세상에 대학이란게 있는줄도 모를 정도였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멀거니 마을앞에 펼쳐진 논을 바라보았다. 대지는 새봄의 기운으로 약동하고있었다. 모내기를 위해 방금 갈아엎은 논에는 물이 넘실거렸고 들에서는 귀맛 좋은 종달새소리가 들렸다. 이때 한반에 다니는 태만이가 논 중간에 있는 전선대로 기여오르고있었다. 전선대꼭대기에 있는 새둥지를 들춰 새알을 얻기 위해서였다. 옆에 있던 성국이가 “저놈 봐라. 아버지가 전공일을 하더니 저놈도 전공일을 할셈인가. 얼마나 위험한데…” 전선대 꼭대기까지 오른 태만이가 한손을 전기줄우로 뻗어 새둥지에 넣으려는 찰나 고압전압에 감전되여 눈 깜짝할 사이에 돌멩이처럼 논바닥으로 추락했다. 나와 성국이는 정신없이 태만이한테로 달려갔다. 성국이는 정면으로 코를 논바닥에 틀어박고 대자로 꽂혀있었는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고있었다. 결국 태만이는 목숨을 건졌지만 감전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성국이가 학교로 돌아오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넌 공부를 잘하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중점고중에 입학할거야.” 나는 열여섯살에 운이 좋게도 중점고중에 입학하게 되였다. 어머니는 뻐스에 오르려는 나에게 말씀했다. “휴, 호구까지 옮겨가게 됐으니 넌 이젠 우리 집 사람이 아니다.” 일자무식인 부모님들이 나더러 공부를 잘해 대학에 가라는 말씀을 한번도 하지 않으셔 못내 서운했었는데 이제 부모님들을 떠날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거기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되여있었다. 오불꼬불한 동네골목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고향을 떠났다. 물론 가로등이 환히 비추는 도회지의 골목길에선 넘어질 념려는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도회지에서 살면서 오늘도 오불꼬불한 인생의 골목길을 무수하게 만들어가고있지 않는가. 고향의 울퉁불퉁한 동네 골목길에서 넘어지면 기껏해야 발목이 삐끗하겠지만 도회지의 “골목길”에서 넘어지면 마음에 상처를 입어 치유하기 힘들다. “소곰재 꽁꽁, 앉은 자리에 앉아라. 먼데 가면 죽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 동요가 맞는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먼데를 향해 줄기차게 달려왔지만 남은것이 무엇인가. 돌이켜보면 살기 힘들다는 핑게로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들에게 생전에 챙겨드린것이 아무것도 없다. 부모님곁에서 살았더라면 랭수 한 대접이라도 올렸을텐데. 누구를 원망할것인가. 어디에 가서 안위를 얻을것인가. 이젠 고향에 가도 어제날의 고향이 아니다. 모두가 떠나가고 텅 비여있는 고향에 내가 먼저 한몫 했으니 오래도록 도회지에서 상처를 입으며 살아야 할가부다.
40    환경보호와 투자유치 댓글:  조회:1721  추천:1  2013-08-07
상해, 절강과 이웃한 항주만(杭州湾)은 우리 나라 동해어업자원의 중요한 기지였지만 지금은 심각한 수질오염으로 여론의 구설수에 오르고있다. 국가환경보호부 “2012년 중국환경보호상황공보”에 따르면 항주만의 4등급 수질(수질이 극히 차한 등급)비례가 거의 100%에 달해 우리 나라 9개 중요한 해만(海湾)가운데서 꼴찌를 기록했다. 항주만연안의 어민들에 따르면 지난 세기 90년대까지만 해도 하루 한척의 어선마다 몇천근에 달하는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을 어획할수 있었지만 지금은 칼치 등 누구나 익숙한 재래어종들은 종적을 감춘지 오래고 작은 물고기들만 드문드문 건져올리는데 그것마저도 전부 사람들은 전혀 먹을수 없는, 물고기의 사료용이라 한다. 하여 이 지역 어민들은 대대손손 이어오던 생계수단을 부득불 포기할수밖에 없게 되였다. 항주만연안에 자리한 210여개의 기업중 전기도금, 날염 등 다수의 환경피해기업들이 해마다 방출하는 근 200만톤에 달하는 공업페수들이 해양오염의 주범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소형기업들은 주말이나 어두운 밤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오염물질을 바다에 방출하고 대형기업들은 깊은 바다에 배수관을 묻어 “정정당당하게” 방출한다. 2013년, 절강성정부의 “항주만산업발전기획”은 항주만을 록색생태지구로 건설하는것을 목표로 저탄소, 고효익, 고부가가치산업 육성을 항주만의 “미래산업발전방향”으로 제정하였다. 하지만 “경제발전 제1주의”론리에 밀려 화학공업기업들이 버젓하게 항주만에 대거 밀려들기 시작했고 “청사진”은 물건너가게 되였다. 그 원인은 지방정부의 일부 지도자들이 GDP 성장이야말로 승진과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굳게 믿고 가시적인 경제실적에 매달리면서 환경보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때문이다. 환경파괴가 인간에게 주는 고통은 막대하다. 중국질병통제관리쎈터가 수년간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수질환경 및 종양사망지도집”에 따르면 “지도집”에 명부를 올린 지역들의 암사망률은 30년 사이 14~30배로 폭증했으며 인구대비로 볼 때 전국 평균보다 2배나 높은 암사망률을 기록했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정부도 관련 법규를 개정하고 오염기업을 퇴출시키고있으며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채 공장건설을 밀어붙인 일부 관리들을 해임시키고있다. 주지하다싶이 연변의 삼림면적 점유률은 80.3%로 세계 5대 천연약창고로 불리고있으며 1980년 유네스코로부터 중국에서 처음으로 “생태권보호구역”으로 지정되였다. 지금까지 연변이 이렇듯 좋은 청정지역으로 남을수 있었던것은 우리의 지도자들과 지역주민들이 환경에 대한 자부심이 크고 또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관광, 로무송출, 의약산업 등 무공해산업을 기둥산업으로 제정하고 적극적으로 육성했기때문이다. 항주만의 교훈이 우리에게 시사하다싶이 “먼저 개발하고 후에 다스린다”는 “경제발전 제1주의”론리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물론 경제발전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신성장동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산업초기의 신성장동력은 자본이나 자원과 같은 물질적요소였지만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점차 지식과 문화와 같은 정신적인 요소로 바뀌고있다. 우리는 연변의 실정에 근거하여 풍력, 태양에네르기, 의약산업, 서비스, 로무송출 등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할것이다. 환경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것이기도 하지만 더구나 후세의것이기도 하다. 후세에게서 환경을 빌려쓸 권리는 우리에게는 없으며 환경을 파괴하는것은 후세에게 죄를 짓는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의 지도자들에게는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생에 힘을 쏟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것이다.
39    가을배추(외 2수) 댓글:  조회:1103  추천:0  2013-07-26
가을배추(외 2수)   김인덕   한줄기로 태여나서 사방으로 뻗어 속상했지요   하루빨리 결구하라고 묶어둘수는 없겠지요 속이 찰무렵 해빛 좋은 날 무심코 눌러놓은 배추잎들이 한결같이 퍼렇게 독을 쓰더니 옥결처럼 속을 다듬으며 단단한 통배추로 일어서더군요.   꽃   아무리 하찮은 꽃이라도 안으로 안으로 피는 꽃은 없다   못난 내 청춘 서럽고 또 서러워도 꽃은 결국 서러움을 이슬처럼 삼키며 세상을 향해 피여난다.   계단   고임돌 없는 루각이 없듯이 계단이 없는 루각도 없습니다   한평생 뼈가 부서지도록 가녀린 어깨를 내밀어 내 삶의 계단이 되여주신 어머니   높은 곳에 올라 멋진 풍광 두루 돌아보고서도 왜 눈물만 앞을 가리웁니까   이젠 그만 계단을 내리렵니다 조용히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 아픈 어깨를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38    왜 애니메이션산업인가 댓글:  조회:2067  추천:0  2013-07-26
중국애니메이션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고부가가치신흥산업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있다. “11.5”기간 우리 나라에서는 그림영화(动画)영화 78편, 텔레비죤그림영화 1266편을 창작함으로써 “10.5”기간보다 5배 성장하고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만화생산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또 2012년말 기준으로 애니메이션시장규모 685억원, 해외수출로 5억 7000만딸라의 외화를 창출함으로써 문화산업중의 주축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애니메이션이란 동작이나 모양을 조금씩 달리한 그림이나 인형을 련속시켜 마치 살아있는것처럼 보이게 촬영한 영화 또는 그 영화를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애니메이션은 그림(动画)과 만화(漫画)를 아우르는 합성어로 그 산업은 극장용 영화, 비디오, 텔레비죤, 핸드폰 및 게임, 서적, 어린이캐릭터완구, 어린이식품, 어린이문구를 비롯한 촘촘하고 방대한 산업사슬을 이루는것이 특징이다. 2012년 7월, 국가문화부에서 “‘12.5’시기 국가애니메이션발전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하면서 중국 전역에서 애니메이션활성화바람이 거세차게 불고있다. 게임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상해와 북경은 물론 광주, 항주, 상주, 소주 등 여러 지방도시들에서 자금지원, 산업단지조성, 인재양성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애니메이션 육성책을 펼치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각축전에 안깐힘을 쏟고있다. 그렇다면 연변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 세기 90년대부터 연변에는 애니메이션제작회사가 나타났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속에 많은 회사들이 사라지고 고급인력들도 전국 각지에 흩어져버린 상태이다. 그리고 생존해있는 몇몇 애니메이션제작회사들도 규모가 작아 산업이라고 평가하기엔 미흡하며 자발적인 발전단계에 처해있는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전망이 어둡기만 한것은 아니다. 첫째, 우리에게는 독특하고도 풍부한 조선족특색의 전통문화가 있다. 이는 우리가 애니메이션산업을 발전시킬수 있는 가장 강력한 토대로 된다. 다음 우리에게는 지역적우세와 언어적우세가 있다. 우선 지역적우세에서 연변은 애니메이션산업이 발전한 한국, 일본과 가까운 이웃에 있고 이러한 나라들과 문화교류가 활발하다. 언어우세는 국내는 물론 한국, 조선 등 주변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인재를 유치할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다. 요즘 도문경제개발구에 입주한 두개의 토종애니메이션회사가 성장가도를 달리고있다는 성공사례가 이 점을 잘 실증해준다. 이 두 기업은 각각 몇십명에 달하는 외국의 인재를 영입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있는데 업무량이 너무 많아 전체 주문량의 70%도 채우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그들은 지금 자체로 몇십명에 달하는 지방의 전문인재를 육성하고있는데 2년후면 자체의 애니메이션작품을 제작할 타산이라고 한다. 연길시의 발빠른 행보도 우리를 고무시키고있다. 연길시정부의 노력으로 항주국가애니메이션게임공공봉사플랫폼유한회사는 앞으로 6년의 시간을 들여 연길시에 네트워크오락, 게임, 레저를 일체화한 국제애니메이션게임가공제작봉사외주기지와 국제전자경기운동중심을 건설하게 되는데 완공되면 생산액 20억원을 창출하게 된다. 이젠 연변의 애니메이션산업발전을 위해 정부가 진두지휘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정부가 중장기발전전략을 세우고 국가의 정책과 자금을 쟁취하여 애니메이션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한다면 우리 연변도 애니메이션산업의 메카로 떠오를 날도 멀지 않을것이다.
37    게릴라정원사 댓글:  조회:1777  추천:0  2013-07-24
얼마전, 저녁식사후에 베란다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니 두 중년사나이가 어두움을 타 잔디가 깔린 아빠트정원을 삽으로 파헤치고있었다. 작년에 1층에 사는 입주민들이 아빠트남향 외벽으로부터 5메터가량 정원을 파헤쳐 밭을 일구고 남새를 심더니 이젠 두 사나이가 한발 더 나가 5메터 바깥을 파헤쳐 밭을 일구고있는판이였다. 이러다간 2층, 3층… 7층의 입주민들까지 가세한다면 옹근 아빠트정원이 남새밭으로 “개간”될 날도 멀지 않을것 같다. 지금 미국, 일본이나 아프리카, 유럽 지역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수많은 게릴라정원사들이 활약하고있다. 게릴라정원사들은 록지를 찾아보기 힘든 현대의 도심속에서 “게릴라”방식으로 록지를 만드는 운동을 펼치고있다. 다시말하면 그들은 밤마다 삽, 꽃씨, 물통 등으로 중무장하고 게릴라전술을 사용하듯이 비공식적으로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은채로 방치된 공유지나 사유지에 화단을 만드는것이다. 이를 통해 원래는 지저분하고 흉물스럽던 장소가 정원으로 바뀌고 시민들은 평소 멀어져가고만 있는 자연을 만나게 된다. 게릴라정원사들은 시민들이 즐거워하고 더 나아가 도시의 분위기가 바뀌는것에 만족해한다. 기차를 타고 로씨야 극동지역을 유람하다보면 가없이 펼쳐진 기름진 평야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무연한 밭 한가운데 가담 한그루 또는 몇그루의 나무가 서있는것을 볼수 있다. 방관자가 보기에도 대형농기계를 사용하는 농부들에겐 그 나무들이 매우 거치장스러운 존재임이 틀림없다. 헌데 농부들은 왜 그 나무들을 수호신처럼 아끼면서 베여버리지 않을가. 나무 한그루때문에 에돌아가는 수고스러움도 마다하지 않고… 수림이 바다처럼 넓은 극동지역에서 나무 한두그루를 베여버린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것도 아니고 자연도 파괴되지 않을터인데… 게릴라정원사들에 비하면 우리 아빠트내 “개간자”들은 “게릴라정원 파괴사”라 지칭해도 모자람이 없다. “게릴라정원 파괴사”들을 모아산에서도 어렵잖게 만날수 있다. 모아산을 오르다보면 길 서쪽켠에 뙈기밭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져있는것을 볼수 있다. 거의 다 “게릴라정원 파괴사”들의 몰상식한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62년 주은래총리가 연변에 시찰을 왔다가 민둥산인 모아산을 보고나서 “모아산에 신을 신기고 모자를 씌우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에 따라 초대주장 주덕해는 공청단연변주위에 모아산에 식수할 지시를 내렸다. 따라서 연길시안의 청년들과 기관의 간부들이 총동원되여 모아산식수에 나섰는데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모아산은 사철 푸른 소나무로 새 단장을 할수 있게 되였다. 그런데 지금은 모아산에 나무를 심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나무가 병들면 가차없이 베여내는 진풍경만 보일뿐이다. 모아산수림 곳곳에는 몇헥타르씩 되는 대면적의 농경지, 과수원, 양계장이 적지 않다. 이런 농경지, 과수원, 양계장이 원래 있었는지 아니면 후에 나무를 찍어 개간된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30년 세월은 이렇게 농경지, 과수원, 양계장으로 방치된줄로 안다. 우리 나라에서 페경환림(退耕还林)정책을 시행한지도 어언 30년 세월을 훌쩍 넘어섰다. 하여 시골의 깊은 수림속 농경지들이 삼림으로 변한지도 벌써 강산이 세번이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 지났으나 모아산의 농경지, 과수원, 양계장만은 요지부동이다. 그래도 모아산에 있는 농경지나 과수원은 약과다. 지금도 모아산에는 해마다 덩치가 큰 건물들이 한채씩 들어서고있다. 올해에도 모아산으로 향하는 동쪽켠에 산장 비슷한 큰 건물이 들어섰다. 그리고 모아산으로 통하는 서쪽켠 큰 농경지 중간에는 공사중이니 곡식을 심지 말라는 경고패말이 버젓이 꽂혀있다. 아마도 대형건물을 지을 타산인것 같다. 물론 이런 건물들이 들어선 자리가 원래는 농경지였던것은 사실이나 왜 그 자리에 나무를 심지 않고 오히려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건물을 지을가. 모아산은 온전히 시민들의 몫이여야 한다. 정부의 몫도, 돈이 있는 개인의 몫도 아니다. 그리고 모아산은 온통 수림으로 뒤덮여야 명실공히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올수 있는것이다. 우리에게도 게릴라정원사정신을 소유한 지도자들과 게릴라정원사들이 하루빨리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또다시 50년 세월이 흘렀을 때 모아산 전체가 울창한 수림으로 바뀐다면 후대들에게 얼마나 푸짐한 선물이 되겠는가.
36    무한경쟁시대와 인성교육 댓글:  조회:3156  추천:1  2013-06-05
요즘 자살, 살인, 폭력, 유해음식 등 인성을 상실한 악성사건들이 빈발하면서 사회에 불안을 조성하고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입시와 성적 위주의 교육이 인성의 상실에 큰 몫을 하고있다는것에 입을 모으고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태여나자마자 성공을 위한 자녀교육프로젝트를 계획하는데 그 목표를 명문대학 진학에 두는 경우가 많다. 자식 한두명을 기르는 대부분의 가정들에서는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면서 귀한 내 자식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경쟁에서 밀려서는 안된다는데 집착한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입학하여서부터 1등을 위한 “수난시대”를 맞이하는데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면서 책가방이 무겁고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무겁다. 필자의 고중시절, 같은 학급의 한 동창생이 현소재지에서 수석으로 연변1중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그 동창생이 학급에서 1등을 따내지 못하게 되자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현소재지성의 한 학교에 전학시켰는데 목표는 전교 1등이였다. 그런데 그 동창생이 현소재지의 고중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한 작은 진의 고중에 전학시켰다. 결국 그 동창생은 대학입시 첫해에 미역국을 먹고말았다. 학교성적이 사회에서의 성공과 관련이 적다는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버드대 졸업생 95명을 대상으로 수석 졸업생과 나머지 학생들의 사회생활을 비교해본 결과 두 집단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즉 수석졸업자나 그렇지 않은 학생이나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은 비슷했다. 이는 학교성적이 사회적성공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것을 의미한다. 교원이나 학원강사가 주는 “알약”만 삼키는 법만 알았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간판만 믿고있다가 큰코 다치게 된다. 또한 가정에서 자기 중심으로 생활하던 아이들은 자생력이 없이 사회에 나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 심히 불만을 가지고 리성적인 교육을 받고서도 비리성적인 경쟁의 주역이 되기도 하고 악성사건의 주역이 되기도 한다. 악성사건의 공통점은 사건의 대상자가 인성검사에서 “락제점수”를 맞고 “관심대상”으로 분류되거나 혹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것이다. 인성과 정서능력이 낮은 아이들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사소한 일에도 격하게 반응하고 모든것을 싫은것과 좋은것으로 판단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줄 모른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리해할수 있다면 폭력은 필요없다. 인성과 감정이 순화된 사람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인성, 감성 교육을 리성교육과 똑같은 비중을 두고 중시해야 한다. 인성교육의 덕목은 신뢰, 존중, 책임, 공평, 봉사정신이다. 현대가정교양의 궁극적인 목표는 교양을 받는자로 하여금 은혜에 감사하고 행복을 아낄줄 알며 자신이 얼마나 귀중한 사람인지 인식하는 긍정적 가치관을 지니게 하는것이여야 한다. 인성교양에서 부모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아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자아인식, 자신감, 소속감 등을 키워주어 세상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하게 해야 한다. 또한 미술, 음악, 체육 활동 등 직접체험과 독서 등 간접체험을 통해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을 키워줌으로써 남들이 만들어놓은 성공의 틀속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해야 한다. 부모들은 우선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이 하고싶어하는 일을 하는 일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는 음악을,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는 미술을,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는 운동을 하도록 뒤받침해주어야 한다. 에디슨은 8살에 입학하였는데 공부시간에 엉뚱한 짓만 골라 하여 문제아이로 점찍혀 석달만에 퇴학당했다. 에디슨의 어머니는 에디슨이 좋아하는 과목부터 가르쳤고 에디슨이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도록 했다. 에디슨은 84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가지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내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발명가로 되였다. 부모들은 현대문명시대에 “인공화합물”을 첨가하여 자식을 인재로 속성시키려는 옅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 리성교육만이 능사가 아니며 1등은 상대적이며 한시적이며 인간은 자기의 삶을 살기 위해서 태여난 사회적동물임을 명기해야 할것이다.
35    중국식 길 건너기 댓글:  조회:2737  추천:2  2013-02-27
요즘 행인들과 차량들의 중국식 길 건너기가 세간의 화제로 구설수에 오르고있다. 필자는 한겨울 제일 추운 날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출퇴근을 도보로 하다보니 중국식 길 건너기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얼마전 연변일보사앞 네거리에서 맞띄운 일이다. 내가 위치한 맞은쪽에서 한 녀성이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소학생 2학년쯤 되였을 딸아이의 손목을 쥐고 길을 건너오자 함께 서있던 행인들이 우르르 실북 나들듯 오가는 차량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오는것이였다. 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처럼 위태하게 급히 길을 건너온 그 녀성이 아이한테 하는 당부가 참 가관이다. “넌 절대 빨간 신호등이 켜졌을 때 길을 건너서는 안돼. 알았어?” 요즘 적지 않은 행인들은 생명을 초개처럼 여기는것 같다. 신호등을 무시하는 그들은 유한한 생명을 무한한 차량의 흐름속에 선뜻 헌신하니 말이다. 무슨 갈 길이 그리 급한지? 템포가 빨라진 현대사회에서 락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다들 조급증에 걸렸나보다 하고 생각을 굴리다가도 정작 회의나 모임이 있을 때 지정한 시간을 반시간쯤 어기는 사람들이 태반인것을 감안하면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교통혼잡을 줄이려고 연길시에서는 2년전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여 하남국제무역청사앞에 지하인행도를 건설하였다. 헌데 정작 인행도를 리용하는 행인들은 거의 없다. 몇걸음을 더 에돌아가면 교통혼잡도 피하고 무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가련만 행인들은 굳이 떼를 지어 거침없이 굴러가는 차량속을 요리조리 헤집는가 하면 란간을 뛰여넘는 꽤 날랜 “허들운동선수”들도 적지 않다. 몇십초의 시간을 아끼느라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안전하게 길을 건넜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행인들이 적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안전하게 길을 건넜다면 다음에 교통사고를 겪을 확률이 더 커지게 된다는 도리를 모르는것 같다.  신호등을 무시하는 운전자에게 벌점 6점을 안기는 새로운 교통법규가 실행되면서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문명하게 차를 운전하나 신호등이 없는 네거리에서는 안면을 바꾸는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  매일 아침 연변조의병원 네거리를 지나다보면 교통지옥이 따로 없다. 동서남북에서 모여든 차량들이 서로 자기 갈 길을 고집하고 길을 양도하지 않다보니 네거리는 차량들이 실타래처럼 서로 얽혀 아비규환이다. 분명 앞의 차량이 한치도 움직일수 없는 상황인데도 제멋대로 클랙손을 울려대니 가소롭기 그지없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의 운전수들의 횡포는 가히 살인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인들을 배려하여 속도를 줄이는 차량이 거의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안하무인격으로 속력을 가하는 차량이 더 많다. 일본에서 8년간 체류하다가 귀국한 한 친구는 중국에서는 무서워서 핸들을 잡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제멋대로 끼여드는 차량에 손에 땀을 쥔적도 한두번이 아니고 달리는 차앞에 행인이 불쑥 나타나 가슴을 쓸어내린적이 한두번이 아니란다.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될수 있다. 일단 사고가 나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두 “피해자”가 되는것이 교통사고이다. 량호한 행위규범, 문명한 운전습관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규칙과 약속의 실행속에서 점차 굳어지는것이다. 중국식 길 건너기에서 획일적으로 행인이나 운전자들을 싸잡아 지탄해서는 안될줄로 안다. 어떤 네거리에서는 파란신호등이 켜졌는데 차량들이 우회전을 하다보니 행인들이 전혀 길을 건널수 없는가 하면 도로폭은 넓은데 행인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너무 짧아 달리기하듯 통과해야 하는것도 문제시된다. 행인이나 운전자들의 교통의식 제고는 물론 관계부문에서도 도로상황과 관련된 데이터들을 과학적으로 수집, 분석하여 불합리한 규정을 적시적으로 수정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도 쾌적하게 도로를 리용할수 있도록 조건을 지어주어야 할것이다. 
34    [시화]어부 댓글:  조회:1270  추천:0  2013-02-16
    시인/김기덕
33    금수강산 댓글:  조회:1491  추천:1  2013-01-25
    시인/김기덕
32    축제행사는 내실을 다져야 댓글:  조회:2229  추천:1  2013-01-16
관광기류에 편승해 우리 지역에서도 많은 축제가 생겨나고 운영되고있다. 대표적인 축제로는 “진달래절”, “사과배꽃절”, “송이버섯절”, “두만강문화관광절” 등이다. 이러한 축제들은 연변을 대외에 홍보하고 연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면서 관광객들을 우리 지역으로 유치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축제는 보여주기 위한 축제일뿐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규모는 성대하나 경제수익을 적극적으로 창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통문화를 계승하는데 큰 의미를 두고있으나 대중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있다. 원인은 축제의 주제설정이 명확하지 못하고 활력이 결핍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농산물 홍보를 주제로 하는 축제에서 홍보도 주요하겠지만 지역주민들의 경제수익 창출과 이어지는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례를 들면 봄에 치러지는 “사과배꽃절”은 봄의 산뜻한 절기와 화사한 사과배꽃향연이 어우러져 축제의 분위기를 띄우는데는 성공하고있지만 사과배농들의 사과배 판매에는 도움을 얼마 주지 못하고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과배를 따는 계절에 “사과배따기절”을 기획해보는것도 좋은 대안이 아닐수 없다. ㅋ"축제도 경영이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주최자의 립장에서 볼 때 투입만 있고 창출이 없다면 축제의 후속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특히 정부가 아닌 민간인이 축제의 주최자일 경우 축제의 경영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 지역의 어떤 축제는 발상은 참신했으나 경영에서 뒤를 꼬지 못해 안타까움을 주고있다. 해마다 1월 5일부터 2월 5일까지 개최되는 할빈빙등제는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얼음축제 가운데 하나이다. 개최기간중 전 세계의 유명한 얼음조각가들이 모여들어 세계의 유명 건축물이나 동물, 미술품, 녀신상 등 1500여점의 얼음조각을 만들어 전시한다. 축제는 건축과 조각,  회화,  음악,  춤 등이 한데 어우러져 성황을 이루는데 입장권 수입만 해도 가관이다. 해마다 개최되는 우리 지역의 “민들레생태문화예술절”은 할빈빙등제와는 규모로 비길수는 없으나 내실을 다짐으로써 해가 거듭될수록 생명력을 더해가고있다. 지역특색, 민족특색, 문화특색이 강조되고있으나 축제의 오락적인 요소와 광환(狂欢)적인 요소가 결핍하다. 축제가 사회생활에서 주는 의미는 제한된 시간 동안에 잠시나마 일상생활을 떠나 일상생활을 잊고 하나의 다른 삶을 체험하게 하는것이다. 브라질의 삼바축제는 광환의 축제로 세계적으로 최고의 축제이고 축제의 아이콘으로불리운다. 삼바축제기간 삼바무용수들은 거리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삼바를 추는데 축제기간 전 세계에서 약 6만명의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한다. 축제 스토리텔링이 미미하여 축제에 참가한 관광객들의 만족도와 충성도가 그리 높지 못하다. 스토리텔링은 학문적으로는 “이야기하다”의 뜻이다. 플러스알파 요소중의 하나인 “스토리텔링”은 마케팅적인 요소를 더하여 좀 더 인간에게 친근하고 따뜻하게 접근할수 있게 해준다. 테마는 력사적인 사건이나 인물들이 주로 되며 이야기나 전설이 되기도 한다. 례를 들면 진달래에 이야기나 전설의 “옷”을 입힘으로써 “진달래절”의 고유성, 매력성, 교육성, 흥미성을 더해주고 참가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관광객들의 만족도와 충성도를 높여줌으로써 관광객들이 우리 지역으로 다시금 발길을 돌리게 하는것이다. 총적으로 축제행사는 시대맥박을 장악하고 시대의 발전과 맥락을 함께 해야 하며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킴과 동시에 축제브랜드를 육성함으로써 대중들이 즐겨 참여하는 축제로 승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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