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조선족 시인/ 한영남
1967년 2월 21일 중국 길림성 안도현 출생.
중학생시절부터 시작품 발표.
1986년 시“소원”을『연변문학(당시「천지」)』에 발표.
1988년~1992년 중학교 교원.
1992년~1999년 자유기고인.
1999년~2000년『문학과예술』잡지 업여편집.
2000년~2002년『류학과 생활』신문 편집.
2002년~2004년 연변인민출판사『별나라』잡지사 편집.
2004년~2007년 흑룡강신문사 문화, 작품, 요리, 전통, 스포츠 담당 편집 기자.
2007년~2008년 자유기고인.
2008년부터 현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조문편집실 편집.
작품으로 “우리 서로 얘기 좀 합시다”, “꼭 날려고 하는 자에게는 굳이 날개가 필요없다”, “우리는 그를 뱀의 련인이라 부른다”, “굳이 네가 불러주지 않아도 수선화는 꽃으로 아름답다”, “무깍지동네”, “철남으로 가면 죄송합니다 전화를 만날 수 있다”, “혹시 사랑을 해본적이 있습니까”, “환절기에 건강을 주문받습니다”, “세수거부반응”, “섬둘레 가는 길”, “보리밭은 바람 아니더라도 설레이는 것을” 등 시, 수필, 평론, 소설 300여 만자 발표.
시집『하느님 눈을 너무 깊이 감으셨습니다(2006년)』 출간.
“백두산기슭의 인삼학교” 로 전국중학생우수지도상(1989년) 수상.
시 “콩서리” 로 연변일보 제일제당상(1997년) 수상.
동시 “사춘기” 로 중국조선족동시탐구상(2000년) 수상.
시 “가을이면 푸른 하늘을 걸어서 오시는 당신” 으로 중국조선족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2002년) 수상.
시 “내게 꽃멀미나 시켜라” 로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2004년) 수상.
시 “갈대는 저렇게 싱거워가지고” 로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신인상(2003년) 수상.
수필 “혹시 사랑을 해본적이 있습니까” 로 제2회중국조선족수필상(2006년) 수상.
수필 “혹시 사랑을 해본적이 있습니까” 로 제3회도라지장락주문학상(2006년) 수상.
중국 연변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성작가협회 조선족창작위원회 회원. 중국연해조선족문인회 회원.
둥베이 설한풍에 홍매화 서너점 피어
-김학천 시인의 조한문시에 머물러
한영남
지난 세기 90년대 초였을 것이다. 어느 날 시인 김형네 집에 갔더니 김형이 연변일보를 뒤적이다가 “어? 김학천이란 사람 작가협회 주석이 됐네.”한다. 그래서 “김학천이 누구요?”하고 되물은즉 돌아온 대답이 이러했다. “날고 뛰는 소식통이라는 니가 모르는 걸 내가 어찌 아니?”
그리고 그 뒤 연길에서 무슨 세미나던가 출간기념식이던가에 참가했다가 그야말로 주석대에 앉아 있는 김학천 작가협회 주석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내 문인리스트에는 아직 김학천이란 사람이 올라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라도 유분수지.
후에 나는 작가협회에 갔다가 김학천선생이 내게 선사해주는 시집도 받아보았고 술상에서 담소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더러 생겼었다. 알고보니 나보다는 까마득히 앞선 선배시인이었다. 그것도 중문과 조문으로 막힘없이 시를 써낼 수 있는!
그리고 나는 연길에서 각종 문단활동에 참가하면서 늘 김학천시인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그렇게 만나게 될 경우 김시인은 늘 내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어, 영남이구만. 전번 시 좋습데!”라는 칭찬도 가끔 섞어서…
후에 나는 할빈으로 자리를 옮겼고 풍편에 김시인이 중문 시집을 출간했다는 소식도 들었고 작가협회 주석자리를 내놓고 중국조선족소년보 사장으로 임직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나는 김학천시인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상관할 수도 없다. 그러나 문학만은, 시만은 버리지 말아주십사 속으로 빌고 빌었다.
그러던 지난 4월 후배문인 김춘택한테서 김학천시인의 시에 촌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나로서는 거의 황당 자체였고 그래서 시간을 빙자하여 점잖게 사양하고 말았다. 헌데 이 친구가 꽤 검질긴데다 누구누구는 무슨무슨 일이 있어서 안되고 누구누구는 어찌어찌하여 안된다는 둥 이런 저런 이유과 구실과 핑계를 대서 기어이 나한테 골을 떠넘기고 말았다. 그래서 접수한 평인데 피일차일 미루었던 것은 솔직히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중문에는 자신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와서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글을 시작하기로 했다. 본 촌평에서 시에 대한 이해는 한글에 많이 의지했고 시적인 포착은 중문에 많이 기대었음을 미리 고백해둔다.
한글시로의 접근
는 짙은 동북특색의 세밑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얀 눈에 두툼히 뒤덮힌 은색의 세계, 그속에서 집집마다 내걸리는 붉은 초롱, 하늘을 진감하는 폭죽소리…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동북의 설풍경이다. 마치 하얀 화선지에 번지는 수묵화처럼 짙은 묵향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시인은 시에서 동년, 회상, 동경, 미래 등 낱말들를 앞세워 고 설파하고 있다. 설이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살 씩 더 먹는 연례행사이고 이 연례행사를 거치면 어른들은 더 늙을 것이고 아이들은 더 희망에 부풀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가장 소박한 낱말들에 편승하여 시적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핍진하게 묘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써도 시는 충분히 한폭의 풍속도를 보여주었다는 데서 일단 성공적인 시로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한술 더 뜬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의 핵이요 이 시를 업그레이드시킨 장본인이다. 이 구절에서 혹자는 인생 무상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게으른 지난날을 반성하고 새로운 출발을 기약할 수도 있을 것이며 혹자는 시공의 철학으로 깊은 사색에 천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이 시에서 보여준 메시지는 이처럼 다양한 바 마치 프리즘으로 한 수의 시를 보는 것처럼 보는 이의 자세와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상과 이미지가 연출되고 있다.
는 거대한 장기판을 사이에 둔 옛 선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초하와 한계를 사이에 두고 시인은 역사의 갈피를 뒤적여 본다. 거기에서 시인은 이상은을 만나고 유우석을 만나며 형양의 이야기와 당송의 경전들에 심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역사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찰나 시인은 머나먼 창상을 뒤로 하고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는 새로운 풍경을 마음속 깊이 새겨넣는다. 시는 역사와 현실을 넘나들며 중원땅에 역사를 적어왔던 선인들에 대한 추억을 통해 오늘날의 행복과 내일의 아름다운 꿈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중원땅을 그대로 신주의 대지로 환원시켜보면 시인의 시상이 얼마나 거대하고 거창하고 거침없는가를 알 수 있다. 시인은 한 수의 시로 중화문명의 5천 년을 담아내면서 그 앵글속에 미래까지 투영시키고 있다.
이란 시를 만난다. 시인이면서 서예가인 김학천선생은 서예에도 독보적인 탐구를 거듭해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란 시에서 우리는 시인의 서예에 대한 사랑의 마음과, 난정에 모셔져 있는 왕희지선생의 서예작품에 대한 경모의 심정과, 난초와 청죽과 곡경으로 일컬어지는 중화문명의 전설적인 문화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시는 묵직한 시상으로 창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세월을 더듬으며 서예의 정화를 읊조리고 있다. 어쩌면 시 못지 않게 서예를 사랑하는 시인의 감정의 발로이리라. 하기에 시에서는 서정이 툭툭 뿌려져 활달한 필치로 씌어진 서예작품마냥 독자들에게 예술적 향수를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중문시로의 접근
우선 한마디로 요약해 둘 것은 김학천시인의 시는 중문으로 읽어야 참맛이라는 점이다. 중문시의 특점은 익히 알고 있다시피 많은 여백(공간)을 주어 독자들이 매우 천천히 호흡하면서 시상속에 완전히 용해된 채 시를 읊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에서는 매 연의 첫 행을 세 글자 내지 다섯 글자로 하면서 절제된 시어로 독자들에게 사색의 공간을 충분히 열어주고 있다. 또 한글보다 중문으로 더 어울리는 , , , 등 낱말들은 시맛과 운맛을 더해주면서 시적 승화에 이바지되고 있다.
에서는 , , 라는 시구로 장기판의 확대를 통한 역사고증, 형양의 고전을 통한 오늘과의 접목, 사진기 앵글을 통한 역사와 현실의 공명을 꾀하고 있다. 중문이기에 비로소 가능한 시어의 절제미는 시행 사이에서 쪽잠이라도 잘 수 있으리만치 여유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 등은 비슷한 소리빛깔의 반복으로 시에 더욱 청명한 울림을 실어주면서 시의 맛빛깔을 산뜻하게 해주고 있다. 또 상기 두수의 시에서도 언급했거니와 시 에서도 두 글자짜리 시어 세개를 3행으로 만들어 거두절미한 극한 절제미를 보여주고 있다.
모두어 보면 김학천시인은 상기 3수의 시에서 언어의 절제미, 시상의 거창함, 내용의 통속화, 세태의 전형화를 실현하면서 시적 승화에 성공하고 있다. 부연하고 싶은 것은 한글로의 다듬기에 좀 더 애정을 가진다면 보다 나은 한글시로 완성되지 않았을가 하는 노파심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기 3수의 시는 요즘 우리 조선족 시단에서는 보기 드문 컬러국화-둥베이 설한풍 속에서 피어난 붉은 매화 서너점을 보여주었다는데서 후배시인으로서 존경이 가는 대목이다. 시인의 또 다른 작품을 또 만날 수 있기를 빈다.
글이 곧 그의 얼굴인 시인
―한영남의 특집 인상
장춘식
글을 통하여 한영남이라는 이름을 안건 꽤 오래 되였지만 정작 만나본것은 최근의 어느 문학상시상식장에서였다. 시상식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면서도 그는 줄곧 문학을 이야기하고있었다. 조금은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요즘 문학인의 모임치고는 보기 드문 풍경이였다. 그만큼 그는 문학에 푹 빠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짙게 받았던것이다. 이번에 쓴 글들을 읽어보니 그런 인상이 어느 정도 현실로 느껴지기도 한다.
옛사람들도 시언지(詩言志: 시는 뜻을 표현한다)라고 했으니 글속에 글쓴이의 사상이나 성격, 기호, 의식 등 개인적인 모습이 나타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영남처럼 글이 곧 그 얼굴인 시인은 그리 흔치 않은것 같다.
나는 한영남에 대해 잘 모른다. 최근에 한번 만난 외에는 작품도 별로 읽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창작소감 《바람아 불어라 나는 간다》를 읽으면 그냥 일문지하(一文之下)에 인간 한영남, 그리고 시인 한영남을 다 알아버린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글속에 글쓴이의 성실성과 진지함이 배여있다는 말이 되겠다. 문학의 길에 들어서서 한 시인으로, 작가로 성장하는 동안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모든 스승과, 친구와 문우들, 그리고 문학사조들, 선배문인들이 두루 거론됨으로써 오늘의 시인 한영남이 있게 되기까지 그에게 밑거름이 되고 자양분이 된 모든 요인들을 솔직담백하게 고백하고있는것이다.
그러한 성실성과 진지함은 수필에서도 잘 드러난다. 《애연가의 정조》에서 한영남은 《애연가들은 나름대로 스스로 를 지키는게 대개 상식이다. 비싸든 싸든 나는 이 담배만 핀다는 고집을 내세우고 열심히 한가지 담배만을 선호》한다고 하고는 자기만의 흡연습관을 자백한다. 《남들이 중시를 돌리지 않던 이른바 새로운 담배들을 찾아다녔다.》는것. 어쩌면 수집가적인 취미인지도 모르지만 새로 나온, 혹은 남들이 보지 못한 《담배를 호주머니에 넣고 친구들이 모인 장소에 갔다가 척 내놓으면 모두들 첨 보는 신기한 눈매로 담배를 바라보았고 그런 그들의 눈길을 바라보는 나는 무슨 큰일이나 한것처럼 속이 후련해나기도 했다.》는것이다. 담배의 맛보다는 담배에 관련된 문화에 애착하고있다는 말로 리해해도 무방할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흡연습관은 혹 희신염구(喜新厭舊) 즉 낡은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한다는 비난을 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일까? 한영남은 《담배에 대한 배신은 상상할수도 없다./그리고 담배에 대한 정조는 절대로 지키지 않는 반면 내 삶의 정조는 꾸준히 지키면서 살아갈 작정이다./시에 대한 내 애정만큼이나 담배를 사랑하니깐.》 라고 수필을 끝맺는다. 담배에 대한 사랑과 시에 대한 애정을 등치시킨 반면에 흡연습관에서의 희신염구와 삶에 대한 정조지키기는 대조시킨다. 앞의 창작소감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한영남에게 있어 시 혹은 문학과 삶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할수가 있다.
그러한 문학=삶의 이미지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주인공이 문학에 인생을 맡긴 남성으로 설정되여있는것이다. 《여기까지 써놓고나서 그는 이게 소설이 될수 있겠냐고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래서 이웃에 앉은 동료인 선미양한테 틈을 타서 슬쩍 보여주며 의견을 들었다.》 소설에 나오는 이런 문장들도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런 소설의 분위기는 《그런데 언젠가 쓰기 시작했던 소설이 하나 미완성으로 남아있길래 그걸 정리하면 될듯 싶어서 다시 읽어보았다. 그래서 완성된게 이다.》라는 《창작소감》의 술회와 맞물려 작가가 지금 소설을 쓰고있음을 독자에게 반복 각인시켜준다. 이런 서사기법은 한영남이라는 작가 본인의 삶과 문학의 일치성을 강조하는 의미 외에 문학은 곧 삶의 표현이라는 객관적인 의미를 독자에게 일깨워주는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소설은 그렇게 독자에게 고백하고나서 다시 기자인 작가 한영남의 직업적인 삶과 연결시킨다. 자신이 작성한 톱기사가 부장이나 총편집선에서 부정되였을 때 뚫린 구멍을 메꾸는 자신만의 비결, 즉 《톱기사2세》 비법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그러던 작가는 주인공의 이름 정신팔을 여러번 들먹이며 《강원도》라는 나먹은 신참 기자와 술을 마시며 제법 심각한 이야기를 나눈다. 《강원도》의 두루뭉실 삶의 법칙과 섬을 탈출하려는 정신팔의 탈출욕구가 그것이다. 그러나 섬을 탈출하고싶어하는 정신팔의 탈출욕구는 섬을 탈출해봐야 또 섬일뿐이라는 《강원도》의 지적에는 힘없이 무너진다. 그래서 아마 소설 제목이 《섬둘레 가는 길》로 되여있는지도 모른다. 기껏 답답한 삶을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알고보니 자신이라는 섬과 다른 사람이라는 또다른 섬이 근접한 《섬둘레》에 위치한 상태라는것이다. 그리고 소설에는 《어처구니들의 이야기1》이라는 부제목이 달려있다. 우리 삶의 참모습이 그러하다는 말로 리해해도 무방할것이다. 어디 가서 돈벌이하며 굴러다니다가 나이 들어 멋부리며 편히 살고자 신문사 기자가 되여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신문사 상하 모두를 매수하는, 《시시한 인간》 《강원도》지만 그래도 원칙있고 지조있게 산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어딘가 통하는데가 있어 만취하도록 술을 마신다는것. 이것은 우리의 현재 삶이 그렇고 그렇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현재 그렇게 돌아가고있는 우리 사회의 인생관이 투영된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삶을 달갑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 《담배와 더불어 묻어나온 라이터는 분명 어떤 노래방 전화번호가 또렷하게 밝혀져있는 선미양만치나 예쁘장하고 말숙한 새 라이터였다.》라는 결구의 표현에서 우리는 이점을 확인할수 있다. 일회용라이터를 달포나 쓸 정도로 변해버린 정신팔이라는 주인공이 다시 헤픈 정신팔이로 되돌아갔기때문이다.
사실 소설의 앞부분에 나오는 주인공의 헤픈 씀씀이에 대한 긴 묘사는 일종의 장치라 할수 있다. 《그는 돈이란 필요이상도 필요이하도 아닌 존재로 알고있었다.》는 표현은 주인공의 순수에의 지향성을 드러낸것이고 일회용라이터를 달포나 썼다는것은 그런 순수에의 지향이 흔들린다는 말이 될것이다. 소설의 이야기가 그 라이터이야기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인공은 그 낡은 일회용라이터를 잃어버리고 새 일회용라이터를 얻는다. 《강원도》의 두루뭉실 론리에 끌려가는것 같다가 다시 순수에의 지향을 되찾아가는것이다.
이른바 시장화사회에서 문학인이 겪는 갈등은 세속적인 삶과 순수에의 지향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런 문학인의 심적인 갈등을 직접 드러낸것이 이 소설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갈등을 객관화시키지 못한것이다. 한영남이 시인이기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것인지도 모른다. 주제의식을 사건속에 용해시지 못하고 기본적으로는 서술자의 심리적인 고백을 통해 표현한것이다. 거기에 다분히 시적인 구조와 은유의 결합이 가미됨으로써 전체적으로 소설이라기보다는 산문으로 쓴 서사시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 작가의 숙제가 될것이다.
그러나 앞의 이야기로 되돌아와서 보면 한영남은 원래 그런 시인인지도 모른다. 글이 곧 그의 얼굴인 시인, 혹은 글속에 그 자신이 통채로 드러나는 시인이 한영남인것이다. 얼마전에 만났던 한영남의 인격과 여기 올라온 글 세편에서 나는 그것을 확인할수가 있었다.
* 문학격월간지 에 게재. --저자
한영남의 시에 대한 단평
장춘식
「그날의 커피향은 오늘도 입가에 머물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더 아름답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왜 “비도 없이 축축한 날” 따뜻한 커피를 함께 마셨음에도 그대로 헤여지고 말았을까? 서로의 마음을 드러낼 용기 부족 때문에? 혹시나 당할 거절에 자존심이 상할까봐?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냥 현대인의 무심함 때문에? 하여간 헤여진 지금은 따뜻한 커피향기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되여있다.
「오늘은 왜 그 아픈 사람이 떠오르나」: 「커피향」의 이미지와 연관된 감수이다. 헤여진 사랑의 아름다움을 되뇌인다. 인생은 어쩌면 그러한 아쉬움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완성이 아닌, 부족함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항상 그 부족함을 채워넣기 위해서 말이다.
「어떤 저녁」: 중년남녀의 맛이 간 사랑에 대해 자조하고 있는 것 같다. 꽤 시일이 지난 부부의 사랑은 이제 격정과 애절함이 사라진 관습적인 사랑이 되여 버린다. 그러나 일부일처제를 거부하지 않는 한 그러한 관습에서 탈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격정이 사라진 부부의 사랑도 나름대로의 행복을 제공해준다. 귀속감과 안전감이다. 그래도 그것에만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 어찌하랴. 이쯤에서 앞 두 편의 시에 표현된 아쉬움의 미학이 연유된 것은 아닐까?
「당신은 늘 비와 함께 온다」: 그래서 화자는 일상의 따분함과 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추적거리는 비와 함께 떠오르는 사랑에 기탁한다. “아무나를 향한 나의 사랑”이다. “세상이 보다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화자의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세상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예 어떤 구체적인 그림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언제나 그렇게 보다 아름다운 세상, 보다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것이니까.
상재한 한영남 시인의 시작품 4편 중 압권은 첫편 「그날의 커피향은 오늘도 입가에 머물고」이다. 여러가지 상상의 여백을 제공하면서 화자의 정서속에 독자의 정서를 이입시키는 매력이 돋보인다. 산문시로서의 장르적인 특성도 독자의 정서를 끌어들이는데 한몫 하고 있다. 그런데 나머지 3편은 주제의식에 비해 시적인 정서화가 미흡한 것 같다. 기우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어의 지나친 통속화 또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시어가 너무 어려워도 문제이지만 너무 쉬워도 문제이다. 너무 쉬우면 의미의 단순화가 걱정이고 너무 어려우면 의미 파악의 어려움이 걱정이다. 이른바 통속성과 난해성의 문제가 되겠다.
우리 시는 80년대 이전까지 의미의 단순화가 문제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그 반동인 듯 80년대 이후에는 난해시가 점차 주류를 이루어 온 것 같다. 이런 문학사적인 흐름에서 볼 때는 통속성이 오히려 미덕이 될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도를 넘어서 요즘 유행하는 가요의 가사처럼 되어 버린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상대적으로 통속적인 시작품에서는 의미의 단순화를 극복해야 할 것이고 난해시의 경우에는 독자의 이해를 위한 배려 장치가 시인의 과제가 되지 않을까 한다.
한편 시 쓰기에서는 비유와 상징, 이미지 등의 여러 기법을 통하여 시인과 독자 사이의 정서적 공명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를 쓰는 시인 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한 창조적 의미의 창출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론적으로 도출해내기 어려운 삶의 이치를 시인의 감성을 통해 창출해내는 것, 거기에 시라는 문학장르의 또다른 생명력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영남 시인
신금철-문학살롱 진행을 맡은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북방시인 최화길과 그의부분적 작품을 살펴보았는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역시 북방시단을 주름잡고 있는 한영남시인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는데요
한영남 시인은 연변에서 오래동안 시창작생활을 알고있는데요 언제 할빈에 갔댔어요먼저 한영남시인의 프로필부터 살펴볼가요?
림금산-네 한영남시인은 1967년 2월 21일 길림성 안도현 명월진 출생.
그가 학창시절일때 많은 문인들이 그의 옆에 나타났습니다.
김룡운, 림금산, 김창희, 김현순 등이 모두 안도에서 생활, 한영남시인은 또 이분들과 많이 접촉. 그러면서 차츰 문학을 자신의 인생목표로 삼음.
고중2학년때인가 작문써클을 책임진 어문선생이 그의 작문을 보고 정서가 괜찮으니깐 시도 써보라고 했답니다.
그후부터 서점가에서 팔리고 있던 조선문으로 된 시집들을 모조리 사서 읽어보았다.임효원, 설인, 김성휘, 김철, 이상각, 김태갑 등 시인들의 시집과 종합시집까지 십여권을 읽어보면서 많이 모방을 해보았다. 조기천, 마야콥스키, 이싸콥스키 등 시인들의시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고 또 그들의 풍격도 모방해보았었다.
1989년이던가. 안도에서 김현순(현재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근무. 학창시절부터 알게된 친구)이 소개해서 김창희시인을 알게되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같이 머리 맡대고시고 문학이고 고아대면서 술도 엄청 마셨다. 무직업자라고 네가 무슨 돈 있나 하면서무작정 김창희시인만 술을 사군 했단다. 김창희는 그의 문학의 길에 미친 영향이 컸단다
그때 김용운선생(후엔 『문학과 예술』잡지에서 편집으로 근무)이 안도문화관에 오게 되고 그분한테 본격적으로 시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 된다. 또 김현순이 림금산이가 가져다준(당시 김현순은 림금산이 직접 어문을 가르치는 학생이고 그와 특별히 가까운 사이였으니깐 연길서 가져온 『한국명시』녹음테프를 주었는데 또 한영남이도 김현순과 많이 접촉할때이니깐 함께 들으면서 많이 깨쳤다.) 시를 이렇게도 쓰는구나 싶었다.
언어의 폭력적 조합이니 낯설게 하기니 하는 것들도 그 무렵 알게 되었다. 김창희는이미 철학책들을 많이 섭렵했기에 문학유파니 주의니 하는 것을 많이 알고 있었다. 사실 그때는 시인이 시만 쓰면 되지 그런게 왜 필요할까 하면서 왼고개를 틀기도 했단다.
1989년과 1992년 하늘같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내드리면서 직업도 날리고 1996년에는 부모들이 남겨준 빈집을 홀로 지키고만 있을수 없어 누님이 계시는연길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김혁소설가를 만난다. 그리고 김혁소설가가 애지중지 소장해두고있던 그많은 책(수천 권)들을 두루 독파하기 시작했다. 이미 소설가로 자리를 굳힌 김혁은 문단의 소설가요, 시인이요 하는 사람들을 거의 다 알고 있었는데기회 있을 때마다 그를 데리고 다니며 일일이 소개해주고 술상에 끼워주곤 했단다.
많은 걸 보았고 많은걸 배웠고 많은걸 사색하고 많은걸 깨쳤단다.
한국시인 이상한테 심취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단다.
이싱시인의 일대기를 담은 『금홍아 금홍아』라는 테프를 보면서 울기도 했단다.
『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보면서 참 잘 만들었다고 감탄도 했단다. 그 두 테프는 지금도 비디오테프로 그가 소장해두고 있단다.
신금철—중학시절부터 시를 발표했다면서요? 후엔 또 어떤데서 사업했습니까?
림금산—네
중학생시절부터 시작품 발표. 고3때 처녀작 시 (1986년) '연변문학'(당시 '천지')에 발표.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중학교 교원-안도현송강6중. 어문교원.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자유기고인. 시공부. 시습작.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류학과 생활'신문 편집.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연변인민출판사 '별나라'잡지사 편집.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흑룡강신문사 문화, 작품, 요리, 전통, 스포츠 담당 편집 기자.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조문편집실 편집.
2010년부터 현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잡지 주필.
신-그렇다면 한영남시인에게는 어떤 작품들이 있고 또 어떤 상들을 수상했습니까? 이 방면에 대해서 좀 소개해주시죠
림-네 주로 시와 수필을 많이 창작했는데요
'우리 서로 얘기 좀 합시다', '꼭 날려고 하는 자에게는 굳이 날개가 필요없다', '우리는 그를 뱀의 련인이라 부른다', '굳이 네가 불러주지 않아도 수선화는 꽃으로 아름답다', '무깍지동네', '철남으로 가면 죄송합니다 전화를 만날수 있다', '혹시 사랑을 해본적이 있습니까', '환절기에 건강을 주문받습니다', ‘세수거부반응’, ‘섬둘레 가는 길’, ‘보리밭은 바람 아니더라도 설레이는것을’ 등 시, 수필, 소설, 실화, 평론 500여만자 발표.
시집 '하느님 눈을 너무 깊이 감으셨습니다'(2006년) 등 출간.
수상작품들로는
시 '콩서리'로 연변일보 제일제당상(1997년) 수상.
동시 '사춘기'로 중국조선족동시탐구상(2000년) 수상.
시 '가을이면 푸른 하늘을 걸어서 오시는 당신'으로 중국조선족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2002년) 수상.
시 '갈대는 저렇게 싱거워가지고'로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신인상(2003년) 수상.
시 '내게 꽃멀미나 시켜라'로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2004년) 수상.
수필 '혹시 사랑을 해본적이 있습니까'로 제2회중국조선족수필상(2006년) 수상.
수필 '혹시 사랑을 해본적이 있습니까'로 제3회도라지장락주문학상(2006년) 수상.
시 ‘나는 물이다 내게 무슨 상처랴’로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본상(2009년) 수상.
시 ‘섬’으로 중국조선족연해문학상 본상(2009년) 수상.
론문 ‘
수필 ‘에밀레종은 얼마를 더 울어야 하나’로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본상(2011년) 수상.
신금철—공부는 어떤 공부들을 했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어떤 직무들을 맡고있습니까?
림금산—네
1986년 안도현제2고중 졸업후
1998년 연변작가협회 제3기문학강습반 수료(졸업장 흭득).
2005년 흑룡강성에서 조직한 전국통일 기자학습반 수료(기자증 획득).
2010년 중국중앙간부학교 출판인(총편급) 강습반 수료(졸업장 획득).
중국 연변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성조선족창작위원회 회원, 미국 '해외문학' 중국지역 회원, 흑룡강성조선족시조사랑회 비서장, 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 편집위원, 중국조선족 연해문인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등.
림-지금은 행복하게 살고있다. 장가들어 아들을 낳고 (아이 첫돌잔치에 나도 갔댔다.세수하기 싫어한다. 전문 자기가 세수하기 싫어하는 걸 제재로 쓴 수필도 있다. 창작방면에서 사유가 좀 독특하고 기발하고 유모적이다. 말할때도 늘 유모아를 섞어서 말하길 좋아한다. 한번은 연길에 있는 그의 누이집에 갔댔는데 사발로 술마이면서 시습작품 높이 쌍아놓고 읽는데 ..기가 막히였다. 거의 천여수 되는것 같았다.)
신금철-그럼 먼저 한영남시인의 시 “한복”을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복
한영남
선연한
빛 빛이 어우르고
부드런
선 선이 물결쳐라
잦은 휘모리인양
홋홋 경사지다가
진자주 태깔을 불러
가리마낸 옥결을 감싸라
조용히 입다문 웃단으로
더욱 가늘어진 하얀 목
스칠듯 노을치는 치마기슭으로
더욱 작아진 하얀 버선발
아아 내 누이의 고운 체취여
림금산-해설
우리민족 녀성들이 자주 입는 한복을 썼는데요
한복입은 누님같은 여인의 밝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아주 섬세하고 깔끔하게 묘사했습니다.
여기서 선의 물결, 웃단, 가늘어진 하얀 목, 스칠듯
노을치는 치마기슭, 작고 하얀 버선발, 누이의 고운 체취
등 시어와 시구들로 한복입은 우리 민족녀성의 단아한 모습을 속사하듯
생동하게 핍진하게 그려냈습니다. 가볍고 부드럽고 향기롭고
깔끔한 묘사기법이 아주 돋보이는 훌륭한 시라고 봅니다.
신금철- 다음은 시 “나는 물이다 내게 무슨 상처랴”를 함께 감상해보겟습니다
나는 물이다 내게 무슨 상처랴
한영남
나는 물이다
내게 무슨 상처랴
내내 흐르다가
돌을 만나면 으깨지고
나무 만나면 베여지고
산을 만나면 돌아가고…
그러나 내게 무슨 상처랴
짐승들은 철버덕거리며 나를 희롱하고
자그마한 풀가지마저 내게 칼질하고
사람들이야말로 아무렇게나 나를 찢고 베이고 갈라놓고… 해도
실로 나는 물이다
내게 상처를 바라지 마라
해아래 말리워도 좋다
오물을 퍼부어도 괜찮다
나는 물이다
아파서 속울음 울어도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
아아 그리고 차마 상처도 입지 못하는
신금철-상처를 많이 받은 자신을 물에 비유하여 쓴 시같은데요 어떻습니까?
림금산-해설: 네 그렇습니다.
사실 제목에서처럼 자기를 물이라고 한건 상처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너무 많아서였지요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텅빈 집을 지키고 앉은
그가 또 그때는 직업마저 없었던지라 7-8년 자유기고인으로
겨우 지탱해 가면서 많은 외적, 심적 고통을 감내했지요 허나
물은 아무리 찍고 깎고 오리고 해도 상처자국이 알리지 않지요
그렇다고 물에게 상처가 없어서가 아니죠
시에서 쓰다싶이 “돌을 만나면 으깨지고
나무 만나면 베여지고”
“짐승들은 철버덕거리며 나를 희롱하고
자그마한 풀가지마저 내게 칼질하고
사람들이야말로 아무렇게나 나를 찢고 베이고 갈라놓고…”
또 “해아래 말리워도 좋다
오물을 퍼부어도 괜찮다”
등 이런 많은 마음속의 상처를 입었지만 시인은 결코
그걸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지요 마치도 물처럼 말입니다.
물이 누가 자기한테 돌을 던져도 찍어놓아도 밟아놓아도
피하지 않는것처럼 말입니다.
시인이 극구 자기를 물이라고 우기는것은 자기가 이 많고많은
상처를 속으로 삭히면서도 결코 비겁하게 아프다고 내색을 내지않는
“아프다고 속울음은 울어도 결코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
또 그것에만 그침이 아니라 그것을 맞받아 나아가려는 그런 강한 의지를 말하기위해서 극구 자기를 물이라고 우기는거지요
“세상이 나한테 아무렇게나 해바라 나는 물이길래 결코 고민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을것이라는 그런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거지요
신-다음은 역시 한영남시인의 주목되는 시, 민족성이 아주 강한 시 “나는 조선토종이다”를 함께 감상하고 림선생의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조선토종이외다
한영남
이제부터 나를 부를양이면
아리랑이라 불러주오
엄마의 배에서 떨어져나와
강보에 싸일적부터
숙명처럼 하아얀 색 물려받은 놈
조그만 발바닥 퇴마루에
타박타박 찍을적부터
엄마아빠 가갸거겨 익혀온 놈
이제부터 나를 부를양이면
도라지나 더덕이라 불러주오
아무래도 나는 배달의 한 놈이요
단군과 주몽의 피를 이어받은 놈이요
락동강을 젖처럼 빨며 커온 놈인것을
무궁화 만발한 삼천리에서
춘향과 심청을 자랑하며
론개의 지조에 머리도 숙일줄 아는 놈인것을
옹배기속 텁텁한 탁배기에
찝찔한 명태쪽지면
닐리리와 양산도를 섞을수 있는 놈인것을
이제부터 나를 부를양이면
가야금이나 퉁소라 불러주오
쪽지게 진 할배에게 엉덩짝도 맞아본 놈
할매의 물함지에 안겨 때도 씻어본 놈
두루마기 치마자락에서 성황당냄새도 맡아본 놈
황소같은 놈
민들레같은 놈
그리고 김치나 썩장같은 놈
이제부터 나를 부를양이면
풍산개나 진돗개라 불러주오
아니 차라리 나를
조선토종이라 불러주오
신금철-민족의식이 아주 강하면서도 어딘가 시원하고 참 신선한 느낌을 주는 그런 시같은데요 아마 우리 민족이면 모두 좋아할것같은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습니까?
림금산—해설:네 저도 이 시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점차 나이들면서 점점 민족적이고 향토적인데로 마음이 끌리는데요 제가 독자라할때 저의 구미에도 아주 잘 맞는 문화적 음식같아요.
이 시는 짙은 민족적인 맛을 풍기는 향토적인 시입니다.
그 언어도 대표적이고 가장 독특한 민족적인 사물과 언어(명사)들을 골라잡았는데 아주 가관.
언어와 명사—아리랑, 하얀 색, 퇴마루, 가갸거겨, 도라지, 더덕,단군, 주몽, 락동강,무궁화, 삼천리, 춘향, 심청, 론개, 옹배기, 탁배기,
명태쪽지, 닐리리와 양산도,가야금이나 퉁소,쪽지게,함지,
두루마기, 치마자락, 성황당,황소,민들레, 김치나 썩장, 황소,
풍산개나 진도개, 조선토종…등 무려 30여개의 우리 민족 명사를
라렬하였다. –한수의 시에서 이렇게 많은 민족적 명사를 배렬한것 사례가 거의 없는줄로 안다.-물론 한국의 백석시인같은 분들은 더 많이 라렬했지만 우리 시단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
련을 나누지 않았지만 사실 “이제부터 나를 부를양이면 …”
3번이나 써서 살술한 명사들을 3개부분으로 나누어서 차츰 고조로 이끌어 갔는데 결국 말하자는건 나는 음식이나 복장이나 배운 글이나 부르는 노래나 사랑하는 자연경물이나 또 쓰는 도구나 악기나 흥취나 모두가 우리 민족을 떠날수 없고 떠나서는 살수가 없을 정도로 간절한 그 마음을 토로한것이다
피는 못속이고 확실한 조선토종인 나는 자랑스럽고 위대하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우리 민족과 우리의 풍속, 우리민족의 혼백은 위대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호소햇다.
시적 기법에서 이 모든 민족적인 명사를 자기몸에 다닥다닥 붙여놓았고
자기를 이런 민족적인 명사로 화했다. 저레 자기를 아리랑이라 불러다든가
진돗개나 풍산개라 불러라든가 등 자기 온몸과 마음이 훙휘가 그대로 조선민족으로 화해버림을 썼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고 박력있게 물처럼 좔-좔- 흘러내렸다.
그래서 읽는 사람의 입에 잘 오르고 거침이 없다
민족성서가 아주 강하고 맥맥히 굽이친다.
이런 시들은 자추주 창립 60돌을 맞는 이때 더욱 애창되고 널리 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다.
신금철-다음은 한영남시인의 연변일보 제일제당상 수상작 “콩서리”를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콩서리
한영남
사람들이
콩을 볶아먹고있다
콩을 볶은 사람이 세줌을 가지고
불을 땐 사람이 두줌을 가지고
콩을 씻은 사람이 한줌을 가지고나니
콩을 가져온 사람의 몫이 없어졌다
아니다아니다아니다
다시하자다시하자다시하자
이번에는
콩을 가져온 사람이 세줌을 가지고
콩을 씻은 사람이 두줌을 가지고
불을 땐 사람이 한줌을 가지고나니
콩을 볶은 사람의 몫이 없어졌다
틀렸다틀렸다틀렸다
다시하자다시하자다시하자
그럼 제일 고생한 사람이 많이 가져라(고생은 나두 했다)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을 많이 주자(아래 사람을 사랑할줄도 알아야지) 제일 힘 센 사람이 많이 가지기다(짐승처럼 그게 뭐니) 지식이 많은 사람이 많이 가져야 한다(되게 잘난체 하고있네) 무기명투표 거수가결로 하자(수분이 많다 불투명하다) 잘생긴 사람이 더 가지기다 키차례로 하자(억울하지 암 억울하구말구)
할수없이 제일 원시적인 방법으로
콩을 가져온 사람이나 콩을 씻은 사람이나 불을 땐 사람이나 콩을 볶은 사람이나
똑같이
한줌 한줌 한줌 한줌 나누고보니 콩이 두줌 남았다
그것을 다시
반줌 반줌 반줌 반줌 나누어가지고 모두들 흡족해서 냠냠냠냠거리는데
콩볶이를 해먹자고 제의를 하고 콩을 가져까지 온 사람은 아무래도 뭔가 찜찜한게 솔직히 덜 좋았다
사람들이
콩을 맛있게 볶아서
더럽게 나눠먹고있다
신금철—연변일보에서 제일제당상을 수상한 시라고 하는데요 시가 어딘가 사회적으로 많이 관심하는 문제를 다루었는데 아주 신선한 느낌을 주는 감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요 어떻습니까?
림금산—해설:
이 시는 제일제당상을 수상하여 저그만치 인민페 만원을 받아안은 작품입니다. ㅎ
수선 제재면에서 우리 삶에 아주 민감한 노누문세를 다쳤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 이런 문제를 시같은데서 썩 적게나 혹은 거의 안다치던 제재이니 더구나 신선한 감을 안겨주는 내용이다.
수선 내용면에서 신선하다.
주제는 불합리한 분배문제이다. 사실 사업단위같은데서의 개혁은 지금도
철저하지 못한면이 아주 많다. 늘 놀고먹는 사람이나 매일 바삐 뛰는 사람이나 다 비슷한 로임을 탄다. 또 물덤벙 술덤벙 뚜기는 많이 뛰나
일축은 못내는 사람도 있다. 온 한달동안 뛰였지만 실제해결을 못본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들은 전화 한통으로 10만 100만 해결하는 능력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배할것인가? 뛰지도 않고 문제도 못해결하는 사람을 많이 주겠는가? 계속 뛰기는 뛰지만 문제를 해결못하는 사람을 많이 주겠는가? 아님 별로 뛰지않지만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많이 주겠는가?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분배문제를 아주 적라라하고 신랄하게 풍자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아주 불공평한 일분배와 돈분배가 비일비재로 페단을 낳고 있다.
적게 일한 사람이 더 탄다든가, 적게 일하나 많이 한 사람이나 비슷하게 탄다거나 어쨌던 불공평하다.
제1련에서는 문제의 제기
제2련에서는 첫번째 분배
제3련에서는 첫번째 분배제도를 부정했다
제4련에서는 두번째 분배
제 5련에서는 두번째 분배제도를 부정
제6련에서는 각종 분배방안과 제안, 의견과 그 반대의견을 쭉 라렬함
제7련에서는 세번째 분배제도-즉 원시적인 방법인 평균분배제도로 다시 돌아옴
제8련에서는 세번째 분배제도에 대한 즉 평균분배제도에 대한 의견-결국 역시 부정
제9련에서는 끝내 새로운 정확한 분배제도를 개혁해내지 못한데 대한
풍자 조소 비판.
시가 분식이 없고 간단 명료하면서도 예리하게 또 시적 기교에서는 따분하지 않고 신선하고 시원한 감상적 효과 발생.
아주 층차가 분명하고 짜였으면서도 착상이 기발하고 또 사유가 정연하게 전개되였다. 진짜 로년 장년 청년 소년까지도 다 읽을수 있고 알아볼수 있고 마지막 련에서는사색하게 하는 그런 시원하고 가쁜한 효과를 발생.
모두 읽고난 후엔 “시원히 잘 짚었다”고 말할수있는 그런 시이다.
제일제당상을 받았고 (인민페 만원…)
신금철-그렇다면 한영남시인의 시작품 예술적 특성을 몇마디로 귀납한다면 어떻게말할수 있을가요?
림금산- 한영남시의 예술특점
1. 지극히 민족적이고 토장냄새가 짙다
“나는 조선토종이다”라든가
“한복”같은 작품
2. 창작기법이 따분하지 않고 아주 신선하다. 알기가 쉬운편이고 물처럼 흐르고 읽고나면 마음이 시원하고 개운한 감을 느끼게 만든다. 아마도 시의 시장조사도 좀 연구한듯한 감도 나고 또 그렇다고 속되거나 얕지도 않다. 폭도 넓고 시대적 깊이같은것도안받침돼 있다.
3.시적언어가 잘 정제되여있다. 군더더기가 없고
미끈하고 세련되였다. 너무 바쁜 시어가 거의 없고
청산류수처럼 쭉- 빠져나온다. 낭송하기에도 좋을것 같다.
이런 몇가지가 한영남시작품이 다른 시인들 시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예술적 특점이아닌가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신금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극히 개성적인 시창작기법을 뽐내고 있는 중견시인 한영남과 그의 부분적 시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시청자여러분들은 한영남시인의 또다른 독특한 시맛을 느꼈으리라 믿고싶습니다.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림금산-네 수고많았습니다.
신금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에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출처] 한영남의 시에 대한 단평|작성자 반벽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