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강을 건너기 위한 긴 노래
/ 시인 고정희 재평가
고정희의 장시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
1. 무가, 민중의 바람을 담은 노래
주검은 어디에나 있다. 신문지상의 부고란과 명절날 제사상의 지방에서 우리는 주검을 연상하며, 장례일과 현충일에도 수많은 주검을 떠올린다. 삶이 없었더라면 죽음 또한 없었을 터. 그러기에 죽음은 모든 생명체가 맞이해야 할 마지막 현실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흐르는 강은 넓고도 깊다. 시간의 강은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생자와 망자를 완벽한 타자로 만든다. 강의 양안에 선 생자와 망자가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는 없다. 이승과 저승은 건너갈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지극한 정성으로 신들의 힘을 빌어 한 척의 배를 만든다. 그 배의 이름은 굿이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가버린 망자를 불러 그의 혼을 달래주기 위해 살아 있는 식구들이 정성을 모아 마련한 배인 굿판. 삶과 죽음 사이에 흐르는 강 위에서 무당은 춤추고 노래함으로써 배를 저승의 기슭으로 나아가게 한다. 무당에 관한 옛 기록을 찾아보면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 유리왕 편에 나와 있어 그 연원은 기원전과 후의 경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 위에 뜬 그 배에서 우리는 지난 2천 년 동안 무당의 권능에 의지해 신을 불렀고(청신), 신을 지상으로 내려오게 했고(강신), 신을 맞이했고(영신), 신과 놀았으며(오신), 신을 다시 저승으로 보냈던(송신) 것이다. 신과 인간의 만남 및 생자와 망자의 만남은 내림굿이나 다리굿, 혹은 씻김굿 같은 소규모의 굿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 마을 사람들 전부가 정성을 모아 마을의 안녕과 생업의 번영을 비는 두레굿이나 대동굿에도 있었다.
굿판에서 신과 인간이 더불어 흥겹게 놀기 위해서는 무당이 노래를 해야 한다. 신을 불러오고 인간이 신과 함께 놀게 하는데 무가가 빠질 수 없다. 무가의 기본적인 요건은 음악적 가락과 문학적 사설이다. 음악적 가락은 청중의 신명을 돋우어 마음을 엑스터시의 경지로 몰아넣고, 문학적 사설은 청중을 머나먼 저승의 기슭으로 안내해 망자와 만나게 해줌으로써 잠시나마 생사를 초월케 한다. 생사를 초월한다는 것, 죽음의 강을 건넌다는 것은 내일-저곳에서의 삶을 중시해서가 아니라 오늘-이곳에서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굿을 통해 일상적인 삶에서 해소되지 못한 원초적 욕구의 맺힘과 사회적 갈등에서 오는 온갖 억눌림을 풀어왔다. 또한 굿을 통해 비명에 가 떠도는 혼을 죽음의 세계로 완전히 보낸 뒤 삶을 더욱 충실히 가꾸어왔다. 굿은 어찌 보면 망자와의 인연을 끊으려는 행위이며, 이승에서의 삶에 더욱 집착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무가 속에는 청승도 애소도 곡성도 들어 있지만 그 밑바닥에 고여 있는 것은 현실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민중의 다부진 힘, 신분 제약을 뚫고 나아가는 민중의 끈질긴 집념이다. 무당은 부정한 일을 담당하는 신들을 달래고(부정거리), 잘먹고 잘살고 싶어하고(성주풀이), 재생과 여성해방을 염원하고(바리공주),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고자 길 닦음을 하며(씻김굿), 잡귀마저 초청해 풀어 먹이는(거리굿) 긴 절차를 노래로 풀어가는데, 여기에는 민중의 바람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밤을 새며 부르는 무가에서 놀이의 기능을 배제하면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광녀의 고함에 지나지 않는다. 무가가 신명의 드러냄이나 정서적 유희가 아니라면 공허한 하소연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가에서 의사 표현의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면 오락으로 떨어져 예술적 향기를 풍기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열두거리 과정에서 듣게 되는 드라마틱한 노래에 담긴 현실 극복의 정신을 시로써 재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1991년, 43세를 일기로 작고한 고정희는 생전에 {초혼제}(창작과비평사, 1983)와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창작과비평사, 1989)란 두 권의 장시집을 낸 바 있다. 이에 앞서 낸 {실락원 기행}(인문당, 1981)에는 문제적 장시 가 실려 있다. 와 두 장시집은 굿과 시의 결합 가능성을 탐색한 소중한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논의도 가치 평가도 거의 되어오지 않았다. 시인의 작업은 70년대 탈춤부흥운동에 이어 80년대에 마당극이 마당굿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민중 문화의 원형질을 탐구하고 서사적 구조에 의거해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겠다는 의도로 행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신적 뿌리는 2천 년 동안 갖은 외래종교의 위세와 일제의 탄압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굿판에 닿아 있다.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계에서는 무당을 사탄에 버금갈 정도로 혐오스런 존재로, 무속을 광기에 찬 악의 세계로 취급하기도 한다.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교계에서도 무속을 종종 미신으로 취급하는데 기독교인이었던 고정희가 굿을 자신의 시세계로 왜 끌어들였을까 하는 의문은 마땅히 제기되었어야 함에도 제기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기독교와 무속은 죽음관이 판이하므로 기독교인이 자신의 시 속에 무속의 죽음관을 어떻게 수용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충분히 해명되었어야 했다. 아울러 기독교인 고정희가 굿과 시의 결합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올바르게 평가해야 할 필요도 있기에 이 한 편의 글은 씌어진다.
2. 흥겨운 놀이판의 재현
생전에 10권의 시집을 낸 바 있는 고정희의 제3시집 {초혼제}와 제7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장시집이라는 형식상의 특색과 굿의 현대적 의미를 탐색했다는 내용상의 특징 이외에,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다른 시집에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완연한데 유독 두 시집에서는 무속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무속세계에 대한 관심은 에 이미 예비 되어 있던 것이기도 했다. 시인이 생애 내내 기독교인이었음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이력과 그녀의 다른 시집들, 또 많은 산문(한 가지만 예를 든다. 고정희는 라는 평문에서 "모든 참된 문학작품은 그 속에 무엇인가 기독교적인 것을 담고 있고 또 참된 기독교는 무엇인가 시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대로 역사상 인류가 가진 모든 고전 속에는 성서가 증언하는 진리가 부분적으로 육화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성서와 문학은 둘 다 그 중심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구원'에 관심한다는 데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우규 편저, {기독교와 문학}, 종로서적, 1992, 446쪽)에서도 확인되고 있는데 왜 제3시집에 이르러 죽음관이 판이하게 다른 무속에다 자신의 시세계를 접목시켜야 했던 것일까. 처녀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배제서관)의 시편부터 살펴보면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잠든 메시아의 봉창이 닫히고
대지는 흰 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작은 길 하나까지 묻어버릴 때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 사람아.
ㅡ 부분
표제시 외에도 "바벨탑에 가위눌린 푸른 신경 하나"(), "하나님 부를 때/누가 말했는가"(), "에덴은 여전히 불꽃에 싸이고"(), "순례자의 크고 환한 웃음소리"(), "종말 때문에 울부짖는 내 머리칼 뒤"(), "조금만 더 가면 천국으로 들어가요"() 등 시집은 기독교인이 쓴 것임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시를 한두 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이 기독교의 죽음관과 일치하고 있다.
살지만 실상은 죽어 있는 나 곁에
죽었지만 실상은 살아 있는 자,
형벌의 수액은 이미
우리 뿌리 곁에 있다
ㅡ 부분
신약성경에서 죽음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이해되므로 죽음은 죄의 값이다. 인간은 죽어 은혜로운 생명의 주 하나님 앞에 인도되기 때문에 생명이 무화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보존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 된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의 죽음관이다(김경재, , {죽음이란 무엇인가}, 한국종교학회 편, 도서출판 창, 1990, 220쪽). 고정희는 죽음을 늘 예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살지만 실상은 죽어 있는 자"로 보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아우슈비츠의 유태인을 "죽었지만 실상은 살아 있는 자"라며 부활시키고 있다. 고정희에게 있어 죽음과 삶 사이에 흐르는 강의 의미는 같은 시의 "하나님 버린 목숨"과 "하나님 밖에 산다 버린 것들 속에/ 이미 버림받음이 있다"에 잘 나타나 있다. 살아 있더라도 하나님을 버린 목숨은 이미 죽은목숨이며, 하나님 밖에 사는 목숨은 이미 버림받은 목숨이다.
이렇듯 기독교인의 죽음관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던 시인의 죽음관은 제2시집 {실락원 기행}에 이르러 변모한다. 고정희는 스스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극히 인간 중심적인 종교인 무속의 죽음관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목만 일별하더라도 이 시집에는 과 함께 '잔양조' '중중몰이' '자진휘몰이' '휘몰이' '단몰이'를 부제로 한 연작과 가 공존한다. 판소리와 민요를 비롯한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 작업은 마침내 '저승의 잡귀'와 '司祭의 축복'을 한 시 속에 등장시킨다. 하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전통 율격의 시적 수용에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상태이다.
화계사 북소리
저승 문 두드리는 밤 일곱 시
(저승의 잡귀들도 사슬을 푼다는 밤 일곱 시)
잠시 마음에 채인 족쇄를 풀며
그대여 아무도 모르게 내가 운다
아무도 모르게 그대 우는 소리 듣는다
…(중략)…
한때 우리들의 피를 부풀린
司祭의 축복과 종소리 다 어디로 가고
…(중략)…
떠도는 원귀들도 잠재우고 싶구나
ㅡ 부분
기독교 세계에서 잡귀니 원귀 따위가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고정희는 낙원을 읽어버렸다는 전제하에 잡귀며 원귀를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무속은 불행한 죽음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는 데 집중하는 민간신앙인데, 바로 이 점을 중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속에서는 죽음을 현실로 일단 받아들이지만 죽음 자체는 불행한 것으로 여기고, 산 자의 노력에 의해 죽은 자는 신격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시인은 이 땅의 모든 억울한 주검들이 예수처럼 부활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떠도는 원귀들도 잠재우고 싶"어 한마당 굿판을 벌일 마음을 먹는다. 이 시집의 제10부는 장시 이고, 이 장시는 제3시집의 제4부로 다시 가감 없이 게재된다. 시인 나름대로 의욕을 가지고 한 작업이고, 제3시집은 장시들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전재해도 별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는 불림소리, 조왕굿, 푸닥거리, 三神祭, 還人祭의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을 예상하고 쓴 시인지라 각 마당의 서두에 무당이며 귀신, 탈꾼의 행위 내용, 그렇지 않으면 무대 상황을 설명해놓고 있다. 이중 첫 마당 불림소리는 무당이 굿을 시작할 때 흔히 하는 부정거리를 염두에 두고 쓴 시로 별 내용이 없다. 그러나 두 마당 조왕굿부터는 주목을 요한다. 조왕은 부엌을 관장하는 가신으로 가내의 모든 일을 정탐한다고 믿어져온 신이다. 시인은 귀하게 태어난 남성들이 이 사회를 억압과 지배가 상존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기를, 무당, 즉 여성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소망한다.
우리들이야 어차피 깨달음 더디고
뭇매 맞아도 아픈 줄 모르오니
으짜든지 우리 귀남자 자손
청맹과니 되지 않게 비나이다
귀머거리 되지 않게 비나이다
벙어리 되지 않게 비나이다
놀고먹지 아니하게 비나이다
등쳐먹고 살지 않게 비나이다
간 내먹고 살지 않게 비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들은 깨달음 더디고 뭇매 맞아도 아픈 줄 모르는 '여성'이다. 그런데 귀남자 자손, 즉 뭇 남성은 청맹과니,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기 십상인데도 그들 중 다수는 여성을 "등쳐먹고", "간 내먹고" 산다. 무당은 유교적인 가부장제 아래서 성차별을 당해온 이 땅의 여성을 대표하고 있고, 그래서 그녀의 사설은 성의 평등에 집중되어 있다. 무당은 제정이 분리된 이후 끊임없이 신분의 하락을 감내해온 계급상의 최하층민이었기에 무당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해방되어야 할 존재이다. 시인이 굿 절차나 무가의 사설보다 무당에 관심을 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마당 푸닥거리에서는 온갖 귀신과 도깨비며 탈들을 다 불러내는데, 이들을 통해 시인은 "원 없이 먹어보자"는 민중의 꿈을 드러낸다. 또한 더불어 잘살자는 치국평천 혹은 태평천국에의 꿈은 기독교적 세계관과는 많이 다르다. 죽음의 강을 건너 생자와 망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정희는 굿이라는 배에 이렇게 처음으로 동승한다. "탈탈 탈탈탈 탈탈 탈탈탈/ 봐탈 보탈 강탈 약탈/ 봉산탈 양주탈 무당탈 도깨비탈/ 입맞추고 넋맞추어 수신제가하여 보자" 같은 대목의 어수선함은 네 마당 三神祭에 가서도 무가라는 형식에 의존하고 있을 뿐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지만,
신 내린다 신 내린다
三神님 내리신다
땅 위에 멍석 깔고 하늘에 넋을 풀어
우리 神 오신 길에 還人祭를 올려라
백옥 같은 얼굴에 八字 눈썹 세우시고
백두산 코 해 같은 눈
천신님 내리신다 어흠
과 같이 음악적 가락에 대한 배려는 확실하다. 이런 대목에는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신명이 실려 있다. 특히 2음보, 3음보가 중첩되는 우리 가락이 살아나 있어 읽는 동안 흥이 난다. "창 받아라! 훠이 훠이/ 창 받아라 창 받아라 창 받아라/ 꽥 꽥"이나 "썩 썩 물러가라 둥둥", "허허 공중 잿더미로 날게 하리라/ 둥둥둥……" 같은 무당의 부르짖음에도 일정한 가락이 있어 흥겨운 놀이판을 재현한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절히 이용한 가락으로 무당과 청중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며, 시인과 독자와의 거리도 좁혀진다. '다섯 마당 還人祭'에서는 흰 옷 입은 당골네가 등장해 온갖 차별과 설음을 견뎌온 한 여성의 이력을 들려준다. 장시 의 대미는 다음과 같은 모성에 대한 예찬으로 장식된다.
저승 극락세계라도 이승만 못해
몇 굽이 돌아오는 추위에 기대어
빈 자리 적막에 기대어
사시나무 떨 듯 기다리는 어미
갸륵해라 갸륵해라 갸륵해라
다만 사람 하나 간절한 방
떠난 그대 수의 殮衣를
마름질하는 손
어미가 기다리는 것은 떠난 그대이다. 어미는 남성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사별한 여인이기에 "떠난 그대 殮衣를/마름질"하고 있다. 긴 시의 마지막 연에 가서야 제목이 왜 '還人祭'로 붙여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나온 셈이다. 여인이 무당을 앞세워 굿을 벌인 이유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세계로 가버린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생전 여인의 등을 쳐 먹고 간을 내 먹은 존재이지만 지금은 저승에 가고 없다. 저승이란 데가 제아무리 극락세계일지라도 이승만은 못한데, 임이 지금은 이승을 떠나고 없기에 무당을 불러 굿을 한 것이다. "저승 극락세계라도 이승만 못해"라는 구절은 고정희의 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열쇠이다. 죽음이 영생에의 문을 여는 순간이며 심판과 구원이 완성되는 엄숙한 순간임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죽음관을 믿고 있었을 시인은, 한 갸륵한 어미를 그려내기 위해 무속의 죽음관을 적어도 자신의 시에서는 이런 식으로 수용한다. 이 땅의 민중이 두려워한 것은 억울하게 죽어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강을 떠도는 존재였기에 무당을 앞세워 죽은 자를 보다 완전히 죽이는 데 주력해왔고, 그 과정이 곧 굿이었다. 사후세계가 설사 극락일지라도 우리가 중시해야 할 곳은 저승이 아니라 이승이라는 생각, 그것은 바로 민중의 생각이었다. 어미가 떠나간 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염의를 마름질하고 굿을 하는 것일 뿐, 그녀는 다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맺힌 한도 풀고, 이왕이면 건강하고 잘살아야 한다. 고정희가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꾀한 는 이처럼 기독교인의 세계관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며, 특히 죽음관에 있어서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기독교도 무속도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고 단정짓고 있지만 무속의 죽음관은 기독교의 죽음관과는 달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과 자유에 이르는 것"(로마서 8:21)이라는 인식이 없다. 부활과 영생사상이 없는 대신 한사코 거부하고픈 사후세계로 나날이 다가가는 우리네 삶을 긍정하는 데서 무속적 죽음의 인식은 출발한다. 그 인식은 삶이 배태한 환멸과 정말에의 터득으로 성숙하고, 마침내는 삶과 죽음을 굿이라는 한마당 놀이로써 한아름에 끌어안는다. 즉, 무속의 죽음관은 삶을 투시하여 생로병사의 비밀을 풀어보려는 것이며, 죽음을 삶 가운데의 엄연한 현실로 범주화하려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영존하는 하나님이 피조물을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는 구원의 순간이라는 기독교의 죽음관과는 완전히 달랐음에도 고정희는 무속의 죽음관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부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확신을 갖고서 굿의 세계를 확대해보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 장시집 {초혼제}가 탄생한다.
3. {초혼제} 난장판의 신명과 풀이
{초혼제}는 총 5부로 이루어진 장시집이다. 이중 1∼3부는 전체적으로 기독교인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 제1부 은 기독교계의 영결례 과정, 제2부 는 신학생이 고난주간에 올리는 기도, 제3부 는 추도식과 추도사의 외양을 빌어와 하나의 온전한 문학작품으로서는 그 형식에서부터 미흡한 바가 있다.
키리에, 키리에, 키리에
이땅에 당신의 자비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자유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해방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용서가 임하옵시며
(오, 주님 아니올시다)
이땅에 당신의 징벌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심판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분노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저주가 임하옵시며
(오, 그러나 그러나 주님 어찌 하리까)
ㅡ 부분
우리는 서로 무너졌나이다
비겁하게 비겁하게 무너졌나이다
신낭만주의를 앞세우며 무너졌나이다
신구호주의를 앞세우며 무너졌나이다
…(중략)…
신상상주의 신서정주의 신비평주의 신구조주의를 앞세우며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졌나이다
ㅡ 부분
이처럼 계속 되풀이되는 기도문 형식은 읽기에도 지루할 뿐 아니라 주제의 약화와 시적 감동의 약화를 동시에 가져온다. 80년대 초반기까지 노출된 우리 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문제점들에 대한 폭넓은 진단과 엄정한 비판이 행해지고 있지만, 반복과 나열에서 오는 긴장감 부재는 시인의 확고한 비판의식에도 불구하고 형식과 내용 양면 모두에서 실패를 노정하고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이 판이하게 다른 기독교와 민간신앙을 혼용한 것도 실패의 이유가 된다. 의 제3장 추도시에 "다음은 고인의 혼을 기리는 유족 대표께서/애통하고 절통한 마음 함께 나누고자/추도시를 봉헌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밤 부활이라 꿈꾸자" 등의 구절이 보여 기독교 색채를 띠고 있는 데 반해 제4장 추도사에는 "구천 황천 북망산에 고이 계신 우리임", "지하 명부전 어머님께서도/제주 봉헌 흡흡히 흠향하시고/얼기설기 내리소서" 등의 구절이 있어 무속의 죽음관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와 아울러 지나치게 폭넓은 사회 진단에서 오는 공허함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예시한 의 제5장 초혼제만 보더라도 의미도 분명하지 않은 신낭만주의에서 시작된 '신∼주의'는 신구조주의까지 12회나 나오며, '∼통일 기원축수'는 5회 '∼제 폐지 기원축수'는 6회 '∼통일'은 4회, '∼폐지'는 10여 회나 나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다루어지는 내용도 출애급의 광야에서부터 지하 명부전 우리 임네에 이르기까지, 각설이로 떠도는 전봉준에서부터 외제 선호사상 폐지에 이르기까지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고 있어 다채롭기는 하나 통일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제4부 와 제5부 은 무속과의 만남을 꾀함으로써 일단 형식과 내용의 통일을 이룩한다. 민중의 아픔을 위무하고자 쓴 시가 민중의 생활상을 전혀 담지하지 못한데서 온 실패를 극복하고자 고정희는 민중이 수세기를 향유해온 굿에 마당극을 결합시킨 마당굿의 형식에다 자신의 시를 의지(依支)하고자 한 것이다.
'마당굿을 위한 長詩'라고 제목 위에 쓴 은 총 49쪽에 달하는, 70∼80년대 소극장과 대학가에서 행해진 마당굿과 동렬에 놓이는 작품이다. 등 연희본은 마당굿을 위한 대본인데 은 시가 강조되고, 특히 마당극의 재담과 판소리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것이 연희본과 다른 요소이다. 총 세 마당으로 이루어진 시는 각 마당마다 4, 4, 3과장의 춤을 춘 후에 시작하라고 명시하고 있어 공연을 염두에 두고 썼음이 틀림없다.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은 도깨비들이 나와 잔치를 벌이며 재담을 하는 장면, 무당과 박수가 나와 굿판을 벌이는 장면, 상여꾼들이 상여소리를 부르는 장면, 남정네가 나와 판소리를 하는 장면 등을 통칭하여 난장판을 벌인다는 뜻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여느 마당극은 일정한 줄거리가 있으나 이 작품은 난장판처럼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등장인물들이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이야기하고 노래한다. 고정희는 왜 이 작품에서 극의 형식을 마다하고 굿을 도입한 것일까.
임진택은 (1982)에서 극에서 굿으로 옮아간 당위성을 설명한 바 있다. 목소리만 높고 다양성과 철학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한 70년대의 마당극을 극복하면서, "일상적인 생활과 놀이를 공유화하여 사람을 집합화하는 총체적인 예술운동이며 문화운동이며 사회운동으로서의 마당굿을 하게 되었다"(채희완/임직택, ({한국문학의 현단계Ⅰ}, 김윤수 외 편, 창작과비평사, 1982, 204쪽)는 그의 설명은 고정희의 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안내문이 된다. 각 거리마다 색다르게 놀고 색다르게 소리지를 수 있으며, 의례와 유희의 경계가 모호한 굿의 특징은 이 작품에 어지러운 난장의 성격을 부여한다. 판은 흥청망청 정신없이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의사 표현이 없지는 않다. 시인은 둘째 마당 중간 부분에 이르러 무당의 입을 빌어 농민과 도시근로자의 가혹한 생활상을 증언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인충'을 고발한다.
무 당: 물러가라 물러가라 농촌귀신 물러가라
일년 사시절 피땀으로 절은 농사
반절은 인충이 먹고 반절은 수마가 먹고
비료세 소득세 저기세 라디오 티뷔세 물고 나면
가을 수확은 검불뿐이니 사―람―이 죽었구나
…(중략)…
무 당: 물러가라 물러가라 도시귀신 물러가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식은 밥 한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십리 공장 길 걸어 지하 3층으로 내려가
한여름 같은 기계실에 혼 빼주고 넋 빼주고
마음도 다 빼주니
한 달 수입이 3만 5천 원이라
무당은 망자의 혼을 불러와 생자의 한을 풀어주고 미래의 복을 빌어 주는 제사장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농촌귀신 도시귀신 물러가라고 소리치며 사회악을 쫓는 혁명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외침 속에는 청중, 즉 독자의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해학의 정신이 들어 있다. 농민의 가을 수확은 검불뿐이고 도시근로자 한 달 수입은 결국 빈주먹밖에 남는 것이 없다는 불평을 듣고 있노라면 이 굿청이 성스러운 의례를 행하는 곳이 아니라 억눌린 욕구를 터뜨리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풀이'의 장소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 많이 위축되고 변질되어 있는 굿의 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굿이 생활과 동떨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생활하면서, 생활 가운데에 믿었던 민간신앙이었다고 고정희는 무당의 입을 빌어 설명했던 것이다. 무당은 이런 사설도 한다.
무 당: 내 뜻이 네 뜻이고 네 뜻 또한 내 뜻이니
살풀이 고풀이 원풀이 한풀이도 끝났으니
내일이면 이 고을에 사람이 올 것이오
사람 오는 굿판에 시나 한 수 지어 읊고
동구밖에 지등 달아 사람잔치 벌입시다
박 수: (고개를 끄덕이며 시를 읊는다.)
하늘에는 천황씨가 있고
땅에는 지황씨가 있네
동서남북 다리 위에
달도 밝은 밤
무당할멈 시 박수할아범 시
섞어서 환영하네
그 나머지 부귀공명은
내가 알 바 아니구나
굿을 끝낸 뒤에 하는 뒷풀이는 사람 잔치이다. 이놈 욕하고 저놈 칭찬한 도깨비 잔치도, 이놈 불러내고 저놈 보내버린 굿도 이제 다 끝났으니 시나 한 수 지어 읊고 동구 밖에 지등 달아 사람 불러모아 잔치나 벌이자고 한다. 굿이 궁극에는 귀신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잔치임을 암시한 대목이다.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은 이래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굿청에 진설한 온갖 음식도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요,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사람들이 온갖 시름 다 잊고 삶의 질곡에서 해방되자고 하는 짓이 아니냐고 무당이 말하자 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를 읊는다. 하늘에는 천황씨가 있고 땅에는 지황씨가 있다고. 그 나머지(시를 제외한 나머지) 부귀공명은 내 알 바 아니라고. 이 대목에 나오는 천황씨나 지황씨는 중국 전설상의 임금이 아니라 천지신명 정도의 뜻으로 쓰였다. 신이라면 복을 주기나 하지 산 사람을 해코지하지 말라는 뜻에서 쓴 구절이다. 죽음의 강을 건너기 위한 항진으로서의 굿의 의미는 이제 새로운 내일을 열기 위한 통과의례로서의 굿으로 확산된다. 무당과 박수는 함께 노래부른다. "인간 세상의 더러움/ 다 함께 깨끗해지고/ 온 세상 울퉁불퉁한 것/ 모두 변하여 고르게 되었네"라고. 즉 이것은 이승에서의 모든 고통은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모두들 변하여 고르게 되자고, 평등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 시인의 의도를 담은 노래이다. 여기에는 이판 저판 난장판을 만들고 있는 여러 족속들의 삶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자리라면 억울한 농민도 불쌍한 도시근로자도 없을 것이라는 항변도 담겨 있다. 셋째마당에서는 판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어수선해진다. 육자배기와 판소리와 굿의 사설이 동원되고, 다음과 같은 소리꾼의 민요 가락도 나온다.
소리꾼: (남정네 춤에 맞춰)
빙빙 돌아보세 방방 뛰어보세
우리 임 돌아오니 아니 노지 못하리라
동동주 여기 있소 어야디야
설기떡 여기 있소 어야디야
인삼주 여기 있소 어야디야
사랑떡 여기 있소 어야디야
소리판뿐만 아니라 굿판에서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과 노는 것이다. 망자의 극락천도를 위해서는 빙빙 돌고 방방 뛰어서라도 신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굿판에 내려온 신은 준엄한 판관의 탈을 벗어 던지고 인간 사이에서 유쾌하기 이를 데 없다. 신도 감정은 인간과 같아, 놀아주어야 흥겹게 생자의 삶을 축복해준다. 그래서 신의 구실을 하는 무당은 혼신의 힘을 다해 땀 흘리며 춤추고, 울며 노래하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때로는 황홀경에 사로잡혀, 때로는 망아의 경지에서. 소리꾼의 말을 받아 남정네는 "저승극락 버리고 돌아왔으니/ 에따 행화가 천냥이로다"라고 노래한다. 그렇다. 저승이 어찌 극락이란 말인가. 시인이 표현하고픈 극락은 이 시의 말미인 남정네의 노래에 담겨있다. "붉은 꽃은 만 송이/ 푸른 잎은 즈믄 줄기/ 첫 번째 봄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가?/ 노래와 춤 삼현 소리 일제히 그치니/ 동녘에 붉은 해/ 새로 뜨는 시간이로구나"라는 남정네의 아름다운 노래는 날마다 맞이하지만 늘 새로운 이승의 아침이 바로 극락이라는 뜻으로,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려는 시인에게 어느덧 예언자의 풍모를 실어준다. 고정희는 몇 권의 시집을 낸 뒤 다시 한번 굿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4.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ㅡ여성해방을 위한 힘찬 노래
시인은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후기에서 "잘못된 역사의 회개와 화해에 이르는 큰 씻김굿이 이 시집의 주제"라고 하였다. 발문을 쓴 박혜경은 이 시집이 굿판의 사설조 가락을 기본 리듬으로 삼고 있다고 했으며, 시집 뒷표지에서 김혜순은 터닦기 노래굿이라고 시집의 전체적인 성격을 규정지었다. 자타가 이 시집의 시적 외양은 굿이라고 규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시집이 씻김굿 사설의 형식과 시를 적절히 결합시킨 한 권의 굿 시집일까.
거두소서 거두소서
칼날을 거두소서
금남로에 흩어진 넋
칼날을 거두소서
충장로에 흩어진 넋
칼날을 거두소서
ㅡ 부분
에헤야 노적이야
어기영차 노적이야
경상도 이노적 이 집으로 들여오소
전라도 싸노적 이 집으로 들여오소
이 논 저 밭 솟은 노적 이 집으로 들여오소
담울담울 쌓인 노적
우뚝우뚝 치뜬 노적
에헤루 노적이야
어기영차 노적이야
ㅡ 부분
전자는 기도의 형식이며, 후자는 민요조이다. 시집 전체를 보아도 굿판의 사설조 가락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일곱 거리의 무가와 뒷풀이로 이루어진 한 판 씻김굿으로 읽자면 결국 시에 담긴 정신이 굿과 얼마나 근접해 있는가를 살펴볼 도리밖에 없다. 씻김굿의 목적은 망자의 극락 천도에 있다. 망자를 극락에 들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영혼을 깨끗이 씻기는 의례인 씻김굿은 망자를 죽음의 세계로 보냄으로써 생자가 더욱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발복을 기원하는 굿이다. 그런데 시세계를 죽음관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무속의 세계보다는 불교의 세계에 보다 가까웠음이 드러난다. 형식에 있어서도 굿과는 거의 무관했으며, 내용도 무속세계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시인이 구사하는 언어 중 무속세계의 것은 없는 대신 불교언어는 자주 등장한다.
팔만사천 사바세계 생로병사(15쪽)
천상천하 남자독존 사생결단 살아낼 제(18쪽)
살아생전 백팔번뇌 즈려밟고 들어오신다(27쪽)
시왕길을 밝혀 가옵소사(36쪽)
일년 삼백육십오일 넘나드는 백팔번뇌 골짜기(42쪽)
사람이 여원무궁이고/ 극락이고(45쪽)
서방정토 극락까지 맑게 떴다(57쪽)
원왕생 원왕생 인도하사이다(65쪽)
제밥 먹고 약밥 먹고 염불 받아(88쪽)
극락세계 서방정토 훠이훠이 가옵소사(90쪽)
백팔 천지신명 마음속에 들어앉아(94쪽)
이처럼 시집 전체에 걸쳐 불가의 언어가 발견되고 있다. 가락도 무가와는 거리가 있으며, 죽음관마저 무속의 죽음관과 불교의 죽음관이 뒤섞여 있다. 이는 2천 년을 이어온 무속의 역사 속에 불교의 의례가 상당히 삼투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죽음은 생사의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을 위한 예비 단계이다. 내 생명을 연기(緣起)로 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연속과 순환이 윤회인즉, 불가에서 죽음의 세계는 가면 그만인 저승이 아니다. 문 밖이 북망이라는 말 그대로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죽음이지만, 나는 거듭 다시 살아날 수 있어 우주적 생명과 동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도 부처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무속 이상으로 인간 중심적인 종교이다. 인용한 몇 행만 보아도 유추가 가능한 이 시집의 대주제는 거칠게 정리해 다음과 같다.
인간인 이상 팔만사천 사바세계에서 생로병사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인데 천상천하 남자독존이로구나, 그리하여 일년 삼백육십오 일 여성들이 넘나들게 된 백팔번뇌의 골짜기를 어찌하랴, 부처는 부디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으로 원왕생 원왕생 우리를 인도하여주소서, 그곳이야말로 극락세계 서방정토가 아니겠는가.
페미니즘에 입각, 천상천하 남자만 독존하지 않은 세계가 도래하기를 시인은 이렇게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시인이 씻김굿의 형식을 빌어 시를 쓰면서 정작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불교는 스스로의 공력으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고, 특히 고래로 여인네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많이 믿어온 종교이다. 시인은 종교로서의 불교보다는 여성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극락세계 서방정토에의 꿈을 담고 있는 평등의 세계관에 매료되었다고 본다. 무속에 한동안 관심을 두었던 것도 무속이 여성해방의 염원을 담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남녀의 차별이 엄존하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굿은 주로 여성이 주관하여 행해온 것이다. 고정희는 굿이 여성의 억눌린 감정을 달래주는 기능을 했다는 바로 그 점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시인은 이 시집에서 애초에 마음먹은 대로 씻김굿의 형식을 차용하지 못했고, 씻김굿의 정신도 온전히 수용하지는 못했다. 단지 단군 이래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무수히 많은 이들의 혼을 달래주기 위하여 저승의 기슭으로 나아가는 배의 갑판에서 서툰 대로 굿을 벌이기로 했던 것이다.
불교의 사상과 의례를 대폭 받아들인 우리 전통 무속의 무덤 위에 핀 푸른 잔디는 바로 어머니들이다. 저 무덤 위에 다시 피어나야 할 민중은 누대로 자기 희생으로만 일관해온 이 땅의 어머니들이다. 어머니는 "이역만리 공출당한 고려 어머니"이며, "약지 잘라 혈서 쓰던 독립군 어머니"이며, "일제치하 정신대 우리 어머니"이며, "부역 나가 처형당한 우리 어머니"이며 "일사후퇴 때 죽은 어머니"이며,
자유당 부정에 죽은 우리 어머니
민주당 부패에 죽은 우리 어머니
삼일오 약탈선거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사일구혁명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오일륙 쿠데타 때 죽은 우리 어머니
한일협정 반대 데모 때 죽은 우리 어머니
부마사태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옥바라지 화병에 죽은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
넋이야 넋이로다
이 넋이 뉘신고 하니
광주민주항쟁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
애기 낳다 칼맞은 우리 어머니
이다. 이 땅의 어머니는 고려 때도 이역만리로 끌려갔었는데 국권이 일제에 빼앗기자 정신대로 또 끌려갔었고, 독재자가 부정을 일삼고 군인이 국가를 통치하는 과정에서도 최대의 희생양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1980년 5월의 광주에서는 죽기도 하고 남편이나 자식과 사별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억울한 주검이 없는 세상, 어머니의 통곡이 들려오지 않는 세상, 어머니가 아버지와 동격으로 대접받는 세상이 곧 '해방 강토'이며 서방정토 극락이다. 시인은 넷째 거리에서 망월동에 잠든 넋들을 위무하는 노래를 부르고, 일곱째 거리에 이르러 휴전선 철조망 너머 반도의 북쪽을 쳐다보며 통일의 노래를 힘차게 부른다. 여성해방에 이어 군사정권 타도와 분단의식의 극복에까지 그 진폭을 넓혀가는 시집은 '통일 산천'과 '해동 조선'의 아름다운 정경을 상상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모든 질곡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확신으로 시집 전편에 넘쳐나는 힘이 느껴진다. 그런데 시에 담긴 정신은 굿과 분명 일정한 거리가 있다. 앞서 지적한 형식의 불일치와 죽음관의 불통일 외에도 놀이의 정신이 빠져 있기 때문에 "큰 씻김굿이 이 시집의 주제"라는 시인의 말과 다른 이들의 언급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무당은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하여 청중에게 공수를 주고, 청중은 공수를 받고 망자와 화해한다. 화해의 자리는 결코 엄숙하지 않다. 무악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을 춤으로써만이 빙의(憑依) 상태에서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노래와 춤으로써 신에 접근하고 신이 되는 과정인 굿은 제의의 자리인 동시에 놀이의 마당이다. 제 명에 못 죽어 억울한 망자와 해준 것 없어 한스런 생자가 만나 대화하고, 영계의 신과 육계의 인간이 만나 화응한다. 씻김굿과 마당극의 놀이정신이 빠진 자리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돋아
하늘도 파랗고
들도 산도 파란 오월에
일천간장 각뜨는 수백 수천 무덤 앞에
아들 제상 차려놓고 어머니 웁네다
딸 제상 차려놓고 어머니 웁네다
…(중략)…
아제, 한잔합시다…… 음복하는 어머니
날 잡아잡숴, 주저앉아 웁네다
이 시집에는 이렇듯 눈물은 넘쳐나되 흥겨움은 없다. 황홀경과 망아는 모든 청중의 몸에 실려 희노애락이 담긴, 한바탕 어우러진 춤이 되고 한마당 휘어지는 노래가 되는데 는 이전의 와 에 비해 노래의 요소가 박약하다. 박혜경도 지적한 것인데, '∼습니다'나 '∼와' 등이 어미로 끝나는 문어체적 구문들이 많아 씻김굿의 분위기는 맛보기 어렵다. 앞서 인용한 바 있는,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가 나오는 시는 셋째거리―해원마당 의 두 번째 시이다. 5쪽이 채 안 되는 분량 속에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는 12회, '우리 어머니'는 21회, '∼하는 어머니'는 13회가 나온다. 이런 식의 반복법은 시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반복은 지루한 정도를 넘어 시적 감동마저 약화시킨다. 여성이 해방되어야 인간이 해방되고, 어머니의 한이 풀려야 해방 세상이 온다는 시인의 의도가 때로는 지나치게 많이 노출되어 있어 감동이 약화되기도 한다.
굿이 신탁과 제의로서의 기능만 했더라면 2천 년을 내려와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굿판에는 노래와 춤이, 장구와 징이, 음식과 술이, 먼 데 살던 친척과 친척보다 가까운 벗이 있었다. 그래서 굿판은 망자를 초청하는 죽음의 판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추임새를 연발하게 하고 어깨춤을 부추기는 멋진 살판이었다. 신명을 자신의 몸에 싣거나, 신바람이 난 사람과 혼연일체가 되어 풀어야 할 것들 다 풀어버리고 내일을 연 흥겨운 놀이판, 그것이 굿판의 모습이었다. 신과 한 자리에서 즐김으로써 인간은 신과의 종속 관계에서 평등 관계로 이행할 수가 있었다. 고정희는 굿의 의미를 청신-강신-영신-송신의 의미로 파악했지 영신과 송신 사이에 오신(娛神)이 들어 있으며, 이것이 굿 정신의 핵심임을 놓치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의 야심만만한 장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많은 장점과 아울러 수다한 허점을 갖는 시집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무가에 대한 더욱 깊은 연구와 굿 정신에 대한 천착이 있었더라면 이 시집은 한 시인의 대표 시집을 넘어 한 시대의 대표 시집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5. 노래 부르며 죽음의 강을 건너다
이때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판소리와 민요 등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씌어진 에서 고정희는 무속의 시적 수용을 과감히 수행한다. 이 작품에서 무가의 문학적 사설에 대한 연구는 부족해 보인다. 다만 무당이란 존재가 성차별을 감내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지켜온 신분상의 최하층민이란 점에 주목하였다. 성의 평등과 계급차별의 타파를 주장하고자 한 시인으로서는 자신이 기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당을 시적 화자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성해방의 측면에서 무당이라는 존재는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에는 굿판의 흥겨움이 그대로 살아 있고, 특히 사후세계보다는 이승에서의 삶을 중시한 점이 드러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던 시인이 무속의 세계관을 긍정하기로 한 뜻깊은 작품이다.
{초혼제}의 1∼3부는 기독교적 색채를 강하게 보여주지만 5부 은 마당굿의 형식을 도입해 굿 정신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다. 이 시에서 신은 인간의 소원과 현실적 욕구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협력자로서 기능하며, 신과 인간은 굿판에서 함께 신명이 난다. 그래서 굿판은 신성한 의례의 장이 아니라 억눌린 욕구를 터뜨리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풀이의 장소이다.
{초혼제}는 다섯 편의 장시로 이루어진 장시집이지만 이후 6년 만에 펴낸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보다 치밀한 기획 아래 씌워진 한 권의 장시집이다. 여성해방이 확대되어 군사정권의 정치적 억압도 사라지고 남북한 통일도 이루어져 서방정토가 저승이 아닌 이승이 되는 꿈을 노래한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해방에 대한 확신으로 힘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노래의 요소의 약하고 시인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어 시적 감동은 이전의 작품에 비해 현저히 약화되고 만다. 이 작품 이후 시인의 굿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며, 시집 출간 2년 뒤에는 시인의 육신마저 지상에서 사라진다.
기독교인이었던 고정희가 죽음관이 판이하게 다른 무속을 자신의 시에 끌어들여 아름다운 합일을 이루려 했으니, 이는 실패가 일찌감치 예정되어 있는, 무모하고도 고된 작업이었다. 와 에서 보여주었던 일정한 성취가 자신의 야심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에 이르러 실패로 귀결되는 과정은 애당초 합일이 불가능한, 당연한 결과였다고 본다. 무가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거니와 굿 정신과 유희 정신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부족은 기독교 시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정희의 혼신을 다한 노력이 문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기실 한국의 무속은 불교의 의례만 수용했던 것이 아니라 천주교, 기독교와도 일정 부분 친화를 시도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왔다. 그리고 쇠약해진 몸으로나마 지금도 죽음과 삶 사이를 흐르는 강에 무수히 많은 배를 띄우고 있다.
죽음에 대한 각기 다른 해답을 준비하고 있는 무속, 불교, 기독교가 삶을 바라보는 차원에서는 일치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음을 증명한 이가 바로 고정희이다. 무속을 자신의 시세계로 끌어들인 많지 않은 시인 가운데 고정희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는데, 시인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그녀의 장시는 다시금 평가되어야 한다. 기독교 시인의 무속 수용이란 우리 시문학사상 초유의 일로, 결코 손쉬운 결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정희의 일련의 장시가 재평가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신 중심적인 기독교의 죽음관을 신앙하는 상태에서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무속의 죽음관을 견지하는 아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정희는 장시를 통해 삶과 죽음을 한마당 굿판에서 껴안고, 기독교와 무속의 죽음관(때로는 불교의 죽음관까지)을 함께 수용하는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하여 긴 노래를 그렇게 목놓아 부르며 죽음의 강을 건너가야 했던 것일까.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 된다네
남자가 모여서 지배를 낳고
지배가 모여서 전쟁을 낳고
전쟁이 모여서 억압세상 낳았지
여자가 뭉치면 무엇이 되나?
여자가 뭉치면 사랑을 낳는다네
모든 여자는 생명을 낳네
모든 생명은 자유를 낳네
모든 자유는 해방을 낳네
모든 해방은 평화를 낳네
모든 평화는 살림을 낳네
모든 살림은 평등을 낳네
모든 평등은 행복을 낳는다네
여자가 뭉치면 무엇이 되나?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 된다네
"여자가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하여―이야기 여성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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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불렀던...긴 것은 기차..기차는 빨라...빠른 것은 비행기.....라는 구전동요처럼
생명-자유-해방-평화-살림-평등-행복으로 물고 이어지는, 여자가 뭉쳐서 만드는 세상과
지배-전쟁-억압으로 물고 이어지는, 남자가 만드는 세상을 대비하면서
가부장제 사회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네요.
남자인 저로서도 충분히 공감가게 하는 진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임당, 허난설헌 같은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킨 아래 시도 참 재미나네요.
왜 고정희 시인을 여성주의 시인이라 하는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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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이 허난설헌에게
이야기 여성사 3
고정희
사임당상이라니 기상천외이외다
경번당 허 자매
그대 나보다 뒷세상에 태어났지만
기실 명문가에 적을 둔 정실규방 신세 한가지로 살아왔으니
그 허와 실 뼛속에 사무치리라 싶어
꾸밈 없는 속이야기 서둘러 봉하외다
오늘에사 나는
조선의 정실부인들이 모여 해마다
신사임당상이라는 것을 주고받으며
원삼 족두리 잔치를 벌이고
신사임당 사당까지 지어
여자 예절교육 본으로 삼고 있다 하는
비보를 접했기 때문이외다
아니 이는 분명 흉보 중에 흉보요
재앙 중에 재앙이라 아니할 수 없사외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의 조선은
십년 강산이 몇백 번씩 바뀌고
시대 또한 놀랍게 변하였다 들었사외다
여자들의 무예가 하늘을 찌르고
첨단과학 문명이 옷섶에 나부끼며
민주 진보 급진사상이라는 것이
머리 깨친 사람들의 대세라 들었사외다
그런 조성땅에 아직
손가락 하나 끄떡 않는 세 가지
바뀔 줄 모르고 변할 줄 모르는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니까
여자에게 현모양처 되라 하는 것이요
남자에게 현모양처 되겠다 빌붙는 것이요
여자가 남자 집에 시집가는 것이외다
시집가서 아들 낳기 원하는 것이외다
그 현모양처 표본이 바로 나 신사임당이라 하여
내 시대 율법으로
내 시대 관습에 특출한 여자 골라
여자들 이름으로 상 주고 박수 친다니
이 무슨 해괴한 시대 변고이니까
요즘 알아듣는 말로 치자면
절반 하늘
절반 땅
절반 경제
절반 나라살림 좌우하는 여자해방하면서
여자 팔자소관 하나 바로잡지 못한다면
기상천외 요절복통 하세월이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시대라지만
우리 해동 조선에 버티고 있으니
국토분단 장벽보다 먼저
민족분단 장벽보다 먼저
남녀분단 장벽 허물 일이 급선무이외다
삼종지도 장벽 무너지지 않는 집에
어찌 민주며 통일이 있으리까
또 내가 현모양처 모범이니
영원한 구원의 여인상이니 하여
칭송 아닌 칭송을 늘어놓는 것도
똑바른 사람이 할 짓이 아니외다
솔직히 말하건대 내
당대의 율곡을 길러 냈다고는 하나
당대의 여자 율곡을 길러 내는 일보다
자랑이 못 되며
사대부 집안에서 뼈가 굵은 탓으로 반상에 적응하는 자중을 조금 알고
시국관 거스르지 않는 지혜 조금 깨우쳤을 뿐
(이는 반가 정실부인들의
생존전략이외다)
규방에서 난초 치고 글 짓는 일이란
여자 한이 방울방울 아롱진 탓이로되
내 평생 절반을 친정집에서 살고
반평생 친정부모 모시는 데 바쳤으니
현모양처 계율로는 어림없는 일이외다
하물며 과학만능 우주시대 여자들이
어찌하여 현모양처 망령에 이끌린단 말이니까
오고 있는 시대를 좇아야 하외다
정실부인론을 곡함
그러나 허 자매
다시 거듭거듭 걱정하거니와
오늘날 해동의 어여쁜 여자들이
현모양처 허상에서 깨어나기란
일부일처 관습이 대세를 이루는 한
분단장벽보다 어려울 것이외다
요즘 시국관으로
사회변혁운동이란 말이 유행이라 들었사외다 이
사회변혁운동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부르주아 중산층 계급이라 들었사외다
버릴 수도 취할 수도 없는 계급
관습유지의 보호막인 계급
생각은 많으나 믿을 수 없는 계급
이미 체제에 순응하고 있는 계급
이것이 바로 중산층이라면
그것의 받침목은 중산층 부인들이 아닐 수 없사외다
말하자면 현대판 정실부인들이외다
이 말을 새겨듣기 바라외다
일례로 며칠 전 우주위성중계를 통해
여의도 텔레비전 방송에서 벌어지는
집중 여자토론회를 시청했사외다
그곳에 초청된 모든 정실부인들은
조선조 여자관을 빼다 박았더이다
시국의 변화에는 아랑곳없되
여자 일 남자 일 따로 있어서
여자는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기르는 일에
한치도 벗어나선 안된다는 것이외다
이 어찌 가슴 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일찍이 이익이 잘못했던 말,
여자는 학문을 해서는 안되고
재능을 날려서는 나라의 재앙이다, 엄포를 놨던 말이
우아한 유령으로 사라 있단 뜻이외다
대저 일부일처제란 무엇이니까
여자를 소유로 보자는 내막이외다
정실부인이란 무엇이니까
소실과 첩을 엄중히 처단하잔 여자율법이외다
소실과 첩이란 무엇이니까
기둥서방 문화의 희생물이외다
기둥서방 문화란 무엇이니까
무릇 남자의 성기 밑에
여자의 자궁을 예속시키자는
영원무궁한 음모이외다
그러므로 정실부인의 반열에 든 여자들은
여자가 여자 자신의 적이다, 이 말을
거의 선진적으로 깨우쳐
스스로 만든 장벽 넘어가지 않는다면
탄하노니
여자 절개의 무게 태산과 같고
여자 목숨의 무게 깃털과 같다 한들
오천년 피눈물이 부족하단 뜻이니까
저승 여자들이 줄지어 곡하외다
남자들이 싫어하는 여자 세 가지
그렇다고 곡만 할 수 없사외다
생존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하였으니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듯이 허허실실 병법이 허사는 아니외다
상고해 보건대
어찌하여 신사임당이
조선조 남자들의 철옹성 속에서
조선조 남자들의 붓으로 기록하는
현모양처상이 되었나이까
그것은 다름 아닌
조선조 남자들이 하나같이 지닌
세 가지 허를 깨쳤기 때문이외다
반상을 막론하고
조선의 남자들이 싫어하는 세 가지 허가 있으니
첫째는 남자 체면 깎이는 것 용납 않는 허요
둘째는 남자보다 높은 식견 인정 않는 허요
셋째는 남자 앞에서 큰소리 거북스런 허외다
그래서 남자가 싫어하는 세 가지 여자란
남자보다 잘난 체하는 여자요
남자 자존심 건드리는 여자요
남자보다 큰소리로 웃는 여자이외다
내 전략이 구식일진 모르지만
여자의 특질과 부드러움 이용하여
이 허를 찌르기란 어렵지 않사외다
다만 이는 전략이로되
이녁 살아 있는 뜻 당당하게 세우는
비수 한 자루 간직할 터인즉
여자는 최후의 피압박계급?
내 잠시 잠깐도 잊어 본 적이 없는
규방 여자들의 한이 있사외다
동지섣달 길쌈하는 소리는
날 잡숴, 날 잡숴,
여자 사지 찢어 나르는 소리요
달빛 설핏한 밤 다듬이질 소리는
여자 팔자 두룸박 팔자 여자 팔자 두룸박 팔자
여자 팔자 두룸박 팔자……
조선 여자 뒤통수 내리치는 비명이거늘
오직 천추의 한으로 간직할 뿐
이 결박 스스로 풀지 못했으니
어즈버
문명국이 된 오늘날까지
방직공장과 기성복 공장
그리고 또 무슨무슨 공장에서
우리의 이쁘고 이쁘고 이쁜 딸들이
저임금과 철야, 잔업에 시달리며
생산증대 길쌈과 바느질로
돈받이 달러받이 일삼는 것 아니리까
구중궁궐 기계실과 밀실에서
성폭력과 강간폭력 노동통제 남근에 깔려
어머니 당했어요, 현모양처 되기는 다 틀렸어요, 돈이나 벌겠어요!
기생관광 인당수에 몸 던지는 것 아니리까
딸아, 현모양처상을 화형에 처해라
네 비수로 정절대를 ㅤㅉㅣㅅ어라
단숨에 찢어발겨라, 이 불쌍한 것
여자의 이 아픔
여자의 이 억압
여자의 이 억울함
하늘을 찌르고 땅에 솟구친들
속시원히 노래한 시인이 조선에 있는지요
최근에 박노해라는 노동시인이
이불을 꿰매며, 라는 여자해방시를 썼다고 하나
찬찬히 뜯어보건대
나도 내 아내를 압제자처럼 지배하고 있었다……이런 고백에 지나지 않아요
원통하구려!
오천년 당한 수모 약이 될 수 없으리까
정작 길닦이가 없었나이까
아니외다
사백 년 전 경번당 당신은 이미
여자의 처지를 계급으로 절감했사외다
사백 년 전 난설헌 당신은 이미
여자의 팔자를 피압박 인민으로 꿰뚫었사외다
사백 년 전 초희 당신은 이미
남자의 머리를 봉건제 압제자로 명중했사외다
아니 아니 난설헌 당신은 최초로
조선 봉건제에 반기를 든 여자시인이며
여자를 피압박계급으로 직시한
최초의 시인이 아니리까
밤 깊도록 베 짜는 외론 이 심사
뉘 옷감을 이 몸은 이리 짜는가
팔베개 수우잠도 맛볼 길 없이
텅텅텅 북 울리며 베 짜는 몸엔
겨울의 긴긴 밤이 그저 추울 뿐
뉘 옷감을 이 몸은 이리 짜는가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마르노라면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시집살이 길옷이 밤낮이건만
이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가난한 여자를 위한 이 오언절구 절창에
어느 여자 무릎을 치지 않으리요
어즈버 하늘이 낸 시인 난설헌
조선에 태어난 백성 중에서
하늘이 낸 시인이 있더이까
난설헌 바로 당신이외다
조선에 터잡은 백성 중에서
하늘이 낸 천재가 있더이까
경번당 바로 당신이외다
조선에 뿌리내린 백성 중에서
하늘이 낸 절세가인이 있더이까
초희 바로 당신이외다
세상이 우러르던 재상 허엽과 강릉 김씨 딸로
당신 태어났건만
그 문벌 그 족벌이 무슨 소용 있으리
독서와 강의는 선비의 일이니
부인이 이에 힘쓰면 폐해무궁하리라, 하여
훈학에 힘입은 바 없고
문벌 족벌에 기댄 바 없으나
네 살박이 여자아이의 매서운 눈초리
네 살박이 딸의 처절한 분노는
하늘의 밑둥을 흔든 성싶사외다
오라버니 어깨너머로 깨친 글솜씨
백가서책을 스스로 통달하여
다섯 살에 시 지으니, 여신동이요
여덟 살에 백옥루 상량문 올리니, 조선의 문웅이요
스스로 난설헌이라 호를 짓고
수수편편 백옥 같은 시의 장강 이루니, 여자 두보요
안동 김씨 김성립과 혼인하여
천추의 삼한을 품고 살되,
하늘이여 어찌하여 조선을 내고 나를 내었나이까
하늘이여 어찌하여 남자를 내고 다시 나를 여자로 내었나이까
하늘이여 어찌하여 김성립을 남편으로 점지하였나이까
하늘을 대지른 그 울연한 기상 다스려
가이 득음의 경지에 넘나들 제
글자마다 주옥이요
글귀마다 산호 열려
천의무봉 시세계 천고명작 이루니,
이 세상 일 같지 않다 이르더이다
어즈버 하늘이 낸 시인
어즈버 하늘이 낸 천재
어즈버 하늘이 낸 절세가인이여
중국 대륙에 삼대 부인문장가가 있다고 하나
조대가와 반희와 설도가 당신에 견줄 수 있으리까
아까운 스물일곱 해
그 짧은 생애 마칠 때
평생의 시고가 시의 노적가리 이루었다 하건만
이녁 유언대로 한 점 재로 돌아가 무덤에 덮이니
아깝고 아깝도다
다만 친정에 남아 있던 유고 이백여 수가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 의하여
천육백육 년 중국에서 간행될 제
낙양의 종이값을 오르게 하였다니
주지번의 발문대로
이제 허난설재의 문집을 보니 아득히 티끌 속세를 초탈하여
아름다워 때묻지 않고 유현하면서도 구상이 있어 선경에
유영하는 제작품이 다시 선가仙家에 관통했으니……
백옥루각이 한번 이룩됨에 ……떨어진 글자욱은 모두 주옥을
이루어 인간 세계에 영원히 그윽한 감상을 하게 했구나 어찌
어리석고 하잘 나위 없는 우리들이 한숨짓고 억지로 읊어서
그 불평한 심사를 묘사하여 한갓 아녀자의 웃음과 빈축을
사는 것 따위리요……
한번 이룩된 백옥루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대 다시 없으리
- 고정희 시집 "여성해방출사표", 1990.
[고정희 시인 시모음]
겨울 사랑
그 한 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 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을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고요하여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무심히 지나는 출근버스 속에서도
추운 이들 곁에
따뜻한 차 한잔 끓는 것이 보이고
울렁거려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여수 앞바다 오동도쯤에서
춘설 속의 적동백 화드득
화드득 툭 터지는 소리 들리고
눈물겨워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중국 산동성에서 날아온 제비들
쓸쓸한 처마, 폐허의 처마 밑에
자유의 둥지
사랑의 둥지
부드러운 혁명의 둥지
하나 둘 트는 것이 보이고
우리동네 구자명 씨
―여성사연구 5
맞벌이부부 우리동네 구자명씨
일곱달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가을 편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가을이
흑룡강 기슭까지 굽이치는 날
무르익을 수 없는 내 사랑 허망하여
그대에게 가는 길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길이 있어
마음의 길은 끊지 못했습니다
황홀하게 초지일관 무르익은 가을이
수미산 산자락에 기립해 있는 날
황홀할 수 없는 내 사랑 노여워
그대 향한 열린 문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문이 있어
마음의 문은 닫지 못했습니다
작별하는 가을의 뒷모습이
수묵색 눈물비에 젖어 있는 날
작별할 수 없는 내 사랑 서러워
그대에게 뻗은 가지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무성한 가지 있어
마음의 가지는 자르지 못했습니다
길을 끊고 문을 닫아도
문을 닫고 가지를 잘라도
저녁 강물로 당도하는 그대여
그리움에 재갈을 물리고
움트는 생각에 바윗돌 눌러도
풀밭 한벌판으로 흔들리는 그대여
그 위에 해와 달 멈출 수 없으매
나는 다시 길 하나 내야 하나 봅니다
나는 다시 문 하나 열어야 하나 봅니다
꿈꾸는 가을 노래
꿈꾸는 가을 노래 들녘에 고개 숙인 그대 생각 따다가
반가운 손님 밥을 짓고
코스모스 꽃길에 핀 그대 사랑 따다가
정다운 사람 술잔에 띄우니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늠연히 다가오는 가을 하늘 밑
시월의 선연한 햇빛으로 광내며
깊어진 우리 사랑 쟁쟁쟁 흘러가네
그윽한 산그림자 어질머리 뒤로 하고
무르익은 우리 사랑 아득히 흘러가네
그 위에 황하가
서로 흘러 들어와
서쪽 곤륜산맥 열어놓으니
만리에 용솟는 물보라
동쪽 금강산맥 천봉을
우러르네
날개
생일선물을 사러 인사동에 갔습니다
안개비 자욱한 그 거리에서
삼천도의 뜨거운 불기운에 구워내고
삼천도의 냉정한 이성에 다듬어낸
분청들국 화병을 골랐습니다
일월 성신 술잔같은 이 화병에
내 목숨의 꽃을 꽂을까, 아니면
개마고원 바람소릴 매달아 놓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장백산 천지연 물소리 풀어
만주대륙 하늘까지 어리게 할까
가까이서 만져보고
떨어져서 바라보고
위아래로 눈 인두질하는 내게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지요
손님은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고 있군요
이 장사 삼십년에
마음의 선물을 포장하기란
그냥 줘도 아깝지 않답니다
도대체 그 분은 얼마나 행복하죠?
뭘요...
마음으로 치장한들 흡족하지 않답니다
이 분청 화병에는
날개가 달려있어야 하는데
그가 이 선물을 타고 날아야 하는데
이 선물이 그의 가슴에
돌이 되어 박히면 난 어쩌죠?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에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향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더 먼저 더 오래
더 먼저 기다리고 더 오래 기다리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기다리는 고통 중에 사랑의 의미를 터득할 것이요.
더 먼저 달려가고 더 나중까지 서 있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서 있는 아품중에 사랑의 길을 발견할 것이요.
더 먼저 문 두드리고 더 나중까지 문 닫지 못하는 사랑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문닫지 못하는 슬픔중에 사랑의 문을 열게 될것이요.
더 먼저 그리워하고 더 나중까지 그리워 애통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그리워 애통하는 눈물 중에 사랑의 삶을 차지할 것이요.
더 먼저 외롭고 더 나중까지 외로움에 떠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외
로움의 막막궁상 중에 사랑의 땅을 얻게 될 것이요.
더 먼저 상처받고 더 나중까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은 복이 있나
니 저희가 상처로 얼싸안는 절망중에 사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요.
더 먼저 목마르고 더 나중까지 목 말라 주린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주리고 목마른 무덤 중에서라도 사랑의 궁전을 짓게 되리라.
그러므로 사랑으로 씨 뿌리고 열매 맺눈 사람들아
사랑의 삼보 - 상처와 눈물과 외로움 가운데서 솟는 사랑의 일곱 가지 무
지개
이 세상 끝 날까지 그대 이마에 찬란하리라.
모든 사라지는 것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사랑법 첫째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하늘에 쓰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가슴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곳,
수련꽃만 희게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전 죽지사
열두 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수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는 하늘에 쓰네.
봄비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강물 풀리는 소리는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 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산 숨결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강물
- 편지1
푸른 악기처럼 내 마음 울어도
너는 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암울한 침묵이 반짝이는 강변에서
바리새인들은 하루종일
정결법 논쟁으로 술잔을 비우고
너에게로 가는 막배를 놓쳐버린 나는
푸른 풀밭,
마지막 낙조에 눈부시게 빛나는
너의 이름과 비구상의 시간 위에
쓰라린 마음 각을 떠 널다가
두 눈 가득 고이는 눈물
떠나가는 강물에 섞어 보냈다.
지울 수 없는 얼굴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시대의 아벨
며칠째 석양이 현해탄 물구비에 불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닻을 내린 거룻배 위에는
저승의 뱃사공 칼롱의 은발이
석양빛에 두어 번 나-부-끼-더-니, 동서남북
금촉으로 부서지며 혼비백산
숲에 불을 질렀읍니다.
으-아, 솔바람 불바람 홀연히 솟아올라
둘러친 세상은 넋나간 아름다움
넋나간 욕망으로 끓어 오르고 있었읍니다.
아세아를 건너지른 `오그덴 10호'가
현해탄에 당도한 건 바로
이때입니다.
오그덴 10호*는
몇 명의 수부들을 바다 속에 처넣고
벼락을 때리며 외쳤습니다.
오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안락한 처마밑에서
함께 살기 원하던 우리들의 아벨,
너희 따뜻한 난롯가에서
함께 몸을 비비던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풍성한 산해진미 잔치상에서
주린 배 움켜 쥐던 우리들의 아벨
우물가에서 혹은 태평 성대 동구 밖에서
지친 등 추스르며 한숨짓던 아벨
어둠의 골짜기로 골짜기로 거슬러 오르던
너희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믿음의 아들 너 베드로야
땅의 아버지 너 요한아
밤새껏 은총으로 배부른 가버나움아
사시장철 음모뿐인 예루살렘아
음탕한 왕족들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야
너희 식탁과 아벨을 바꿨느냐
너희 침상과 아벨을 바꿨느냐
너희 교회당과 아벨을 바꿨느냐
독야청청 담벼락과 아벨을 바꿨느냐?
회칠한 무덤들, 이 독사의 무리들아
너희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 고통을 짊어진 아벨
너희 족보를 짊어진 아벨
너희 탐욕과 음습한 과거를 등에 진 아벨
너희 자유의 멍에로 무거운 아벨
너희 사랑가로 재갈물린 아벨
일흔 일곱 날 떠돌던 아벨을 보았느냐?
아흔 아홉 날 한뎃잠을 청하던 아벨을 보았느냐?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돌들이 일어나 꽃씨를 뿌리고
바람들이 달려와 성벽을 허물리라
지진이 솟구쳐 빗장을 뽑으리라
바람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아벨의 울음은 잠들지 못하리
오 불쌍한 아벨
외마디 소리마저 빼앗긴 아벨을 위하여
나는 너희 식탁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아방궁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별장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교회당과 종탑을 엎으리라
소돔아 너를 엎으리라
고모라야 너를 엎으리라
가버나움아 너를 엎으리라
예루살렘아 너를 엎으리라
천사야 너도 엎으리라
깃발을 분지르고 상복을 입히리라
생나무 마른 나무 함께 불에 던지고
바다더러 산 위로 오르라 하리라
산더러 너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바람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울지 않는 종은 입에 칼을 물리고
뛰지 않는 말은 등에 창을 받으리
날지 않는 새는 뒷축에 밟히리
뒷날에 참회는 적당치 못하다
너희가 쫓아 버린 아벨
너희가 쫓아 묻어 버린 아벨
너희가 쫓아 묻고 부인한 아벨
너희는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시치미뗀
아벨의 울음 소릴 들었느냐?
금동이의 술잔에 아벨의 피가 고이고
은소반의 안주에 아벨의 기름 흐르도다
촛농이 녹아 흐를 때 아벨이 울고
노랫가락 높을 때 아벨이 탄식하도다
오 불쌍한 아벨을 찾을 때까지
나는 이 세상 어디든 달려가
너희 잔치상과 보신탕을 엎으리라
너희 축복과 토룡탕을 엎으리라
너희 개소주와 단잠을 엎으리라
돌들이 일어나 옥답을 일구고
지진이 솟구쳐 평지 풍파 일으키리라
바람더러 주인이라 주인이라 부르리라
너희의 어둠인 아벨
너희의 절망인 아벨
너희의 자유인 아벨
너희의 멍에인 아벨
너희의 표징인 아벨
낙원의 열쇠인 아벨
아벨 아벨 아벨 아벨 아벨……
그때 한 사내가
불 탄 수염을 쥐어뜯으며
대지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눈물 흘리는 동안만이라도
주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다음날 신문은
오그덴 10호가
현해탄의 대기권을 완전히 떠나갔다고
보도했습니다.
* 창세기 4장 2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첫아들 카인과
둘째 아들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고 카인은 농부가 되
었는데, 형 카인은 아벨에 대한 질투 때문에 아우를 들로 꾀어내어 쳐 죽였다.
이때 야훼께서 이렇게 꾸짖으셨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 1981년 8월 초 한반도에도 상륙한 태풍 이름.
고백 (너 여섯)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
전
되
었
다
고정희 高靜熙 (1948 - 1991)
전남 해남 출생. 5남 3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1975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연가》 《부활과 그 이후》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허형륫ㅁ窪唜징ㅐ瀁예?ㅌ蒡仄퐈ㅁ믄예?등과 ‘목요회’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시창작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1984년부터는 기독교신문사, 크리스찬아카데미 출판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거쳐 여성문화운동 동인 ‘또하나의 문화’에서 활동하는 등 사회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였다.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사하였다.
시집으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이 시대의 아벨》(1983), 《눈물꽃》(1986),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녀성해방출사표》(1990), 《광주의 눈물비》(1990),《아름다운 사람 하나》(1991)와 유고시집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있다. 시집 가운데 《초혼제》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남도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어 민중의 아픔을 위로한 장시집(長詩集)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