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3월 2025 >>
      1
2345678
9101112131415
16171819202122
23242526272829
3031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8110 ]

1030    해체시에 관하여 댓글:  조회:5211  추천:0  2015-04-20
  희망인가, 절망인가                 해체는 지금 막 시작되고 있는 해체이어야만 한다.                               -남진우, {바벨탑의 언어}, p.99          모든 아방가드는 일어나는 당시에는 아무리 새롭다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전통의 일부로 수렴되고 마는 운명이어서...                          -권택영,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p.11       1. 해체의 논리와 비논리   -왜 해체에 대해 말해야 하는가? 해체 시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듯 보인다. 그 이전 시대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80년대 시의 굵은 줄기 중의 하나로 해체시를 위치시키는데 독자들은 인색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난날 우리 시가 언어를 조탁하여 아름답게 대상을 묘사하고자 했던 묵시적 전통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이었기에 더욱 독자들의 관심을 주목시킬 수 있었다. 여러 시인 비평가들이 앞 다투어 작품으로, 혹은 이론으로 해체시의 당위성을 이야기해왔다. 리얼리즘 계열의 평론가들은 나름대로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애써 해체시를 평가 절하시키려고 애썼다. 자의든 타의든 해체 시 자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 존재를 검증받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해체시를 둘러싼 말들이 무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80년대는 지나갔다. 실제의 작품을 보더라도 80년대 초반 이성복, 황지우, 박남철 등에 의해 촉발된 해체 분위기는 80년대 후반에 들어 한 절정을 이루다 지금은 각개약진 식으로 다양해지기는 했으나 상당히 정숙해진 느낌이다. 모더니즘 혹은 요즘 많이 언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기본 방향으로 잡고 있는 {현대시사상}에서 꾸준히 해체를 하나의 묶음으로 정착시키려고 애써왔고, {문학사상}에서도 근래 해체 시 특집을 기획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를 둘러싼 해체의 분위기는 분명히 80년대의 그것이 아니다. 단언한다면, '80년대식 해체'는 이제 끝났다. 아니 한걸음 양보한다면, 지금 끝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또 철지난 사랑타령처럼 해체시를 들먹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숲에 있을 땐 나무 하나하나의 모양을 세밀히 보지만 정작 숲 전체를 조감할 수 없다는 흔한 상식을 상기하자. 우리는 80년대와 함께 해체시의 숲을 통과해, 지금 숲이 끝난 곳에서 뒤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또 과거가 역사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현재와 만나야한다는 교훈도 상기하자. 해체는 지금 완전히 분해 되지 않고 우리 주변을 떠돌아다닌다. 한 때 해체의 선봉에 섰던 황지우와 이성복이 이후 방향을 선회하긴 했지만, 그들의 선배 세대인 이승훈, 박의상, 박상배 등이 여전히 해체시를 만들고 있고, 그들의 후배세대인 장정일, 박상우, 황인숙, 최계선 등이 나름대로 실험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승자, 김영승, 김정란 등이 비록 성격은 다르지만 해체를 방법으로 차용하여 꾸준히 작품을 써오고 있다. 80년대가 끝난 지금 우리는 이들에게서 전 시대와는 다른 해체를 읽게되고, 그것이 90년대식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해체를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해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명백한 것처럼 보인다. 언어를 뒤집고, 그림이나 도표를 인용하고, 과감한 패러디를 쓰고, 대상을 감추거나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혹은 글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빈 공간으로 채우는, 한마디로 요약해 전통 시형을 파괴하고 새로움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해체이론은 이러한 정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더 이상 따지고 들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주로 해체시의 타당성, 다시 말해 해체시가 시로서 존재할 가치가 있는 가 아닌가에 집중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모더니즘의 입장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시의 영토를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리얼리즘 쪽의 논객들은, 시를 언어의 유희 즉 말장난 정도로 여겼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의 첨예한 대결은 해체에만 국한된 대결이 아니라 문학 전반을 바라보는 견해의 차이, 더 나아가 이 세상을 해석하는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의 차이라는 점에서 전혀 접근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해체시의 바른 평가와 방향설정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이전의 해체를 둘러싼 어떤 해석이나 이론에도 기대지 않기로 한다. 해체를 언어형식의 파괴로 파악할 때 우리는 엄청난 오해에 휩싸인다. 일상의 우리 대화 속에는 문장으로 기술할 때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을 수많은 언어의 단절이 숨어 있다. 말을 할 당시의 주변 환경, 상대방의 태도, 공통으로 갖고 있는 인식의 틀 등으로 인해 우리는 완전한 문장이 아니어도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거기에 마찬가지로 반응한다. 이것을 글자로 옮겼을 때 거기에는 엄청난 언어파괴 현상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대화를 두고 '해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한편 오늘의 시들이 갖고 있는 문자적 속성은 시에 숙명적인 제약을 가져다주었다. 인쇄되지 않은 시는 시로 인정되지 않는 모순 속에 살고 있으면서 그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시집이나 문학잡지를 통해 시를 읽는데 익숙해진 탓이리라. 그러나 엄격히 말해 시행을 이루는 글자들은 언어의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 아주 제한적인 약속일뿐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우리가 흔히 잊어버리는 사실, 따라서 주의력을 환기하고 생각해 보야 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다시 말해 시는 '글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는 글자로 옮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미지의 엄청난 수렁을 갖고 있다. 해체 시에서 다루는 도형이나 그림, 낯선 기호나 표식은 모두 그러한 언어의 일종이며 시인의 의도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해체라고 불렀던 것은 바로 이 '언어의 해체'가 아니라 '글자의 해체'였던 것이다. 해체를 언어의 해체가 아니라 글자의 해체로 이해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해체시 자체가 그런 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자의 해체는 언어가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형식의 해체로 국한된다는 뜻이며, 이점은 해체의 특징이자 곧 한계이기도 하다. 내용이란 시인의 세계관 또는 가치관일 것인데, 그들의 시에 이 내용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독자를 향해 여전히 충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완전한 해체, 즉 내용까지를 해체하여 텅 빈 세계를 보여주기엔 해체시인들의 욕심이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하여는 실제의 작품을 검토한 후 그 구체적 증거들을 찾아보는 것이 옳을 것 같아 일단 유보하기로 하고, 먼저 해체시가 나타나게 된 경위와 이유를 살피기로 하자. 해체가 80년대 시의 한 특징이긴 하지만 그 시대만의 것은 물론 아니다. 30년대의 모더니스트들, 특히 이상이라든지, 50년대의 후기 모더니스트, 즉 김구용 조향 박인환 등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해체의 시를 썼다. 모더니즘에서 벗어난 김수영에게서조차 그런 해체의 흔적은 얼마든지 발견된다. 70년대에도 이승훈이나 김광규 등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리고 본인들이 인정하든 아니든, 해체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왜 해체 시는 80년대에 유독 두드러져 나온 것일까. 해체시인들의 개인적인 상상력을 논외로 친다면, 여기에는 몇 가지 대답으로서의 가설을 세울 만 하다. 첫째는 전통적 시형식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로 새로움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렇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60년대 4.19가 미완의 혁명으로 마무리되고 군사정권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시는 리얼리즘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순수/참여의 소모적 논쟁을 겪기도 했고, 일부 현실비판 작가들이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현실에서 움츠러든 문학은 현실을 도피하고 언어의 아름다움이란 미명 아래서 시들시들 메말라 갔다. 유신 이래 이런 경향은 더욱 깊어져 당연히 새로움에 대한 갈증도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일부 반영이론 측의 시인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자유를 찾기 위한 염원이 지나쳐 문학을 이념의 충실한 매개물로 생각하고 현실을 그리는 데만 전념했을 뿐, 문학이 지녀야 할 정서 환기력에는 무관심하였다. 역시 새롭고 강렬한 방법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80년대에도 군사독재는 계속되었지만 광주의 봄을 겪고 난 우리의 의식은 훨씬 자유롭게 꿈꿀 여유를 얻게 되었고, 이것이 목마름과 잘 연결되어 새로운 시 형태를 낳게 하였다. 초기 황지우의 시에 살짝 감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이런 배경에서 생겨난 당연한 결과이다. 이런 점에서도 해체시를 두고 리얼리즘/모더니즘의 계파논쟁을 벌였던 지난날의 입씨름은 무익한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은,  산업화에 의한 사회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르는 우리들 인식구조의 변화가 해체를 가능케 하였다는 점이다. 요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소개와 연구서가 쏟아져 나오고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관심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관심과는 달리 이들이 느끼는 당혹함은 이들을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으로부터 회피하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고, 별로 대단한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해체시의 대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매우 유익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지금의 후기 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읽기는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어떤 한 가지 가치관으로 삶을 해석하려 해도 그 엄청난 다양성 때문에 전체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고도산업화 정책은 70년대를 지나면서 1차 산업 위주의 사회를 2차 산업 위주의 사회로 바꾸어 놓았고, 80년대 들어와 그 변화는 더욱 두드러져 다시 3차 산업 중심의 사회로 바뀌어 갔다. 2차 혹은 3차 산업 사회에서는, 인간의 개성은 몰락하고 개인이 거대한 조직의 일원으로 부속품 화 되어 간다. 인구의 도시집중화로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가까워도 진정 가까울 수 없는 사람들 틈에서 각 개인이 고립된 채 살아가야 한다. 80년대는 이러한 후기 산업 사회적 징조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였고,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는 해체의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파편화된 삶이 시에 반영될 때, 시는 파괴적 혹은 해체적 양상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앞의 두개의 가설은 해체의 등장을 무슨 필연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해체를 포함한 모든 새로움, 모든 아방가드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해체는 그 자체가 해체되어야 할 운명으로 시작되었다는 일부 평자들의 주장은 해체를 올바로 꿰뚫어본 견해이다. 왜냐하면 해체는 처음 그것이 나타났을 때는 새로운 환기력을 독자에게 안겨줄 수 있지만, 그것이 시일이 지나고 유사한 작품들을 여럿 본 연후에는 더 이상 새로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쯤 되면 해체는 관습이나 전통의 일부로 편입되어 더 이상 해체가 아니게 된다. 스스로를 '해체'해야 할 운명에 당도하는 것이다. 문학이나 사회현상, 나아가 과학의 발전까지도 이러한 패러다임의 발현과 세속화라는 반복된 경로를 밟으며 발전해 왔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80년대의 해체는 더 이상 해체가 아닌 셈이고, 나아가 80년대의 해체가 80년대만으로 규정될 특이점이 아니라 도전과 응전이라는 보편적 법칙에 의해 있었던 하나의 문화기류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그 본질을 파악하는데 올바른 지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해체적 글쓰기, 또는 해체적 글 읽기의 과정에는 공통으로 전제되는 조건이 하나 있다. '우리의 해체'라는 관형표현을 붙인 이유는 여러 지면에서 해체주의라고 어설프게 소개되곤 하는 서구의 해체와 우리의 것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해체는 해체의 대상이 시의 전면에 강하게 부각되어 나타나는 반면, 서구의 것은 대상 그 자체를 해체함으로써 해체의 흔적까지를 지워버리곤 한다. 예를 들어 장정일의 [백화점 왕국]은 비틀린 언어로 시인의 생활주변을 묘사하면서 그가 시에서 의도한 방향과는 조금 다른, 시 속의 현실로 독자들을 유도하지만, 그것이 거대한 조직 속에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비극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다. 그러나 쟈크 데리다로 대표되는 서구의 해체이론은 근본적인 면에서 다르다. {그래마톨로지}에서 그는 진리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화폐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고 금속으로서의 가치만 남은' 그런 화폐와 같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고 있다고 개탄한다. 즉 작품에서 구현할 진리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다 철저한, 불교적 냄새까지 띠고 있는 이러한 해체 개념은 해체의 마지막 단계를 이르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해체'는 독일의 구체시나 형태시의 또 다른 한 변형이 아니며, 또 그렇게까지 해체를 극단으로 밀고가지도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지만, 우리의 해체가 대상을 염두에 두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해체라는 점에서 불완전한 해체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2. 해체시인, 해체시, 해체적 글쓰기   지난 10년간의 세월이 해체의 시대로 평가될 수 있을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하지만 해체라는 표현 대신에 다양성이라는 좀더 부드러운 말을 쓴다면 분명히 80년대는 그 다양함이 어느 때보다 확대된 시기로 잡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문화현상에서 운동성이나 이데올로기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실천이 이론보다 강조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현상은 다양한 현실의 일부분으로, 가속적으로 다양성을 더욱 부추기는데 큰 몫을 했다. 실천이건 반영이건 80년대를 전체 속의 개인, 혹은 획일성 속의 다양성으로 우리의 의식이 변화해간 시대로 자리매김하더라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80년대는 전통서정을 노래한 시인, 현실변혁을 주창한 시인, 언어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시인 등, 모두 제 목소리를 갖고자 애썼던 시대였다. 해체 시는 바로 이러한 다양성의 대표적 표징으로 80년대를 상징하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우선 시어의 형태를 과감하게 바꾸려는 외형적 해체에서 시작하여 전통정서에의 반기를 든 온건한 양식의 해체에 이르기까지, 해체의 방법이나 정도가 시인에 따라 차이가 남은 당연한 일이다. 해체시인, 혹은 해체시라고 했을 때 그것들을 같은 색깔로 한 보따리에 묶어 보낼 수 없는 것이다. 그 거칠었던 시대를 뚫고 나온 지금, 해체시인들을 갈래 구분하는 일이 이제는 문학사적인 입장에서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해체 시 이론이나 시인 론이 화려한 질투 속에 집중적으로 있었기에 해체시인을 갈래 구분하는 일이 좀 수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해체시인이라고 우리가 흔히 일컫는 시인 중 소수의 몇몇 시인들만이 조명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해체의 폭을 남몰래 넓히고도 영광의 그늘에 소리 없이 감추어진 시인들도 상당수 있다. 그러니까 그 많은 해체시론과 시인론이 해체의 전반적 모습을 살피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스스로 인정한 오해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그간 많이 언급된 시인들을 다시 다룬다. 이 글을 통해 해체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필자의 한가지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체시를 쓴 모든 시인을 여기에 초대하는 것도 그렇게 생산적일 것 같지 않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가 주로 염두에 둔 시인과 시집을 연대순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80)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3) 이하석, {金氏의 옆 얼굴} (1984) 최승자, {즐거운 日記} (1984) 김영승, {반성} (1987)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1987) 박남철, {반시대적 고찰} (1988) 박상우, {사람구경} (1988) 황인숙,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1988) 박의상, {흔들리는 中心} (1989) 김정란, {다시 시작하는 나비} (1989) 이승훈, {너라는 환상} (1989) 최계선, {검은 지층} (1990)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들이 80년대의 해체를 이끌어갔고 지금도 활발히 작품을 쓰고 있는 대표적인 시인들이긴 하지만, 이들만이 해체의 전부는 아니다. 또한 이들의 작품 전부가 해체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해체시인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많은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일부 해체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고, 비록 지명도에 있어 뒤지긴 하지만 김종석이나 가나인처럼 극단적 해체시인의 부류로 넣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선 그들을 모두 뺀다. 해체시인을 세부적으로 갈래구분하기 위하여는 그 기준을 먼저 정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을 해체하는가'에 따라 거칠게 나눈다면 다음의 세가지 부류가 가능할 것이다. 시의 대상을  현실, 언어, 자아의 3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별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주변의 현실적 삶과 질곡을 일종의 알레고리적 수법으로 해체하는 것이 첫 번째 부류일 텐데, 여기에는 황지우, 이하석, 장정일, 최계선 등이 속할 것이다. 존재나 언어 자체, 혹은 비대상을 해체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두 번 째 부류로, 박남철,박상우,박의상,김정란,이승훈 등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자아의 확인이란 전통적 주제를 새로운 형식으로 바꾸어 나타내고자 하는 이성복, 최승자, 김영승, 황인숙 등을 한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기준을 달리하여, 해체의 정도, 다시 말해 겉으로 드러나는 파격의 정도만을 가지고 갈래구분한다면 두 구룹으로의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황지우,박남철, 박의상 등이 과격파라면 나머지는 온건파에 속하고, 특히 황인숙 같은 경우는 표현형태만을 가지고는 해체로 보기 어려운 면도 있다. 겉모양새로의 구분은, 분류 자체보다, 강도의 약화현상이 80년대 전반기에서 후반기로의 변이과정이라는데 더 큰 문학사적 주목을 필요로 한다. 초반의 과격함은 출구 없이 막힌 시의 흐름에 신선한 충격이 되기 위한 전략적 측면도 깃들여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해체는 같은 방법이 반복될 때 더 이상 해체가 아닌 불우한 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초기의 과격한 형태파괴가 후기에 들어 세밀해지고 조심스러워지면서 언어나 생활의 해체로 바뀌어갔다. 90년대로 접어든 지금 초기의 형태파괴시인들이 전통적 수법으로 복귀하거나 상당히 느슨해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간다. 해체의 대상이 무엇이었던가를 밝히면서 해체시인들이 설정한 목표와 한계를 간략히 짚어본다. 먼저 80년대 해체시의 선두이며 기폭제 역할을 했던 황지우의 예를 본다. 그를 생각하면, {시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처음 발간되었을 때 받았던 충격이 새삼 되살아난다. 독자들마다 받아들이는 방향과 폭이 물론 달랐을 테지만, 이상의 [烏瞰圖]이래 가장 강한 이질감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지금은 해체에 익숙해져 그의 시를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이런 파격이 과연 시로서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앞섰었다. 그러나 형태파괴가 가져다준 효과가 말을 곱게 다듬는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직설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그와의 기호소통체계를 묵시적 약속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했고, 그런 의미에서 성공했다. 이 시집은 현재 우리의 보편적 생활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의 형식을 띠고 있다. 가령, 꽤 긴 작품인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씨의 하루]라는 작품에서 작중 주인공인 송일환씨의 하루생활을 카메라로 비추듯 객관적으로 보여줄 때, [徐伐,셔 ,셔 ,서울,SEOUL]에서 '보성물산주식회사 종로 지점'에 근무하는 장만섭씨의 하루생활을 보여주었을 때, 혹은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에서 신문의 TV프로그램 한 조각을 옮겨놓았을 때, 우리는 이것이 우리들 삶의 현실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인지 안다. 우리가 그들 자신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여도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 붙이며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결국 이 시집을 일관하여 흐르고 있는 핵심은 우리의  현실 생활을 정확하게 재현해 내고자하는 노력이며, 이 시집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상황이나 인물들은 시인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들의 전형인 셈이다. 우리의 현 생활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 시집은 우리에게 가장 낯익은 것이 되어야할 시집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것일수록 시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이전의 시적 태도와 달랐기에 우리에겐 오히려 낯설게 보인 시집이었고, 이 점도 시인의 의도에는 음흉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시가 대상의 이차적 반영이라고 믿었던 통념을 깨고 대상을 일차적으로 반영함으로써 훨씬 리얼리즘에 가깝게 접근해 들어갔던 것이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낯설게 하기' 수법으로 이해될 수는 있지만, 더욱 흔히 생각하는 바의  '해체'는 전혀 아니다. 황지우 시인의 진정한 목적과 방법은 현실의 진솔한 반영이며, 언어를 사실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그를 해체시인으로 몰아버린 것은 평론가들이며 여기에 대하여 평론가들은 책임을 지고 그를 다시 새로운 리얼리즘 시인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황지우보다는 온건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역시 80년대 초반에 해체의 선두주자로 매김 당하는 이성복의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황지우의 대상이 주로 대사회적인 것이라면 이성복은 다분히 개인사적인 면을 속에 담고 있다. [루우트 기호 속에서]에서 보이는 어머니와 자의식의 성장관계라든지,[그날]에 나오는 가족들의 흩어진 모습 등은 그 증거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그의 내부는 스스로 닫힌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하여 통제된 내부이며, 이렇게 닫혀 있으면서도 인식의 성장과정을 참담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내부의 풍경을 그리는 것이 때로는 환상적 세계로 빠져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蒙昧日記]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개인이 집단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생각은 자아의 틀에만 빠져있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는 자아의 내부와 외부를 부단히 연결시키려고 하고 있지, 절대로 대상을 포기하거나 해체하려 하지 않는다. 박남철의 시는 마음이 너그러운 독자에게도 거칠게 읽힌다. 시인의 신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그의 주변을 장식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자신을 포함한 자아의 모든 것들을 그는 시의 대상으로 포착한다. 이 잡동사니 대상들은 황지우의 것처럼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갖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성복의 경우처럼 자아의 인식성장을 위한 보조수단이 되지도 않는다. 그에게 있어 시의 대상은 그냥 자기자리에 '있는' 것들로 우연히 체포되었을 뿐, 어떤 혐의도 둘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따라서 좋게 말할 때, 그가 해체하고자 애쓰는 대상은 존재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나쁘게 말하면, 그의 대상은 의미 없는 것들로, 그는 의미 없는 대상들을 가지고 시를 '만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존재가 의미를 잃을 때, 그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광인일기]는 욕설과 야유와 죽음에 대한 비난의 원색적인 말들로 가득 채워진 꽤 긴 시인데 (그의 다른 시에 비하면 그래도 짧은 셈이지만), 마지막 행의 (글자가 고딕으로 뒤집혀 똑같이 반복되며 끝남) 라는 것을 뺀다면 이 시가 의미하고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마지막 행을 위하여 그 이전의 많은 언어와 대상들이 동원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가장 경제적 표현으로 가장 큰 효과를 노리는 것이 시라고 하는, 그 낡아빠진 시의 개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박남철의 시에서는 앞 구절이 뒷 구절을 위해 기획되어진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앞의 욕설이 망자에 대한 분노나 슬픔을 환기시켜주지 못하고 욕설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이 작품 뿐만이 아니라 [박해미르] 시리즈 작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그냥 언어의 흩어짐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렀다면 지금 해체를 논하고 있는 이 자리에서, 박남철을 진정한 해체시인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대상 자체를 해체하고 언어를 기호화 혹은 알레고리화 함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가장 철저하게 해체를 실천하는 시인인지도 모른다. {地上의 人間}에서 최근 {용의 모습으로}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러한 해체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해체는 해체가 지닐 수 있는 결정적인 약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80년대 해체시의 한 표본이 된다. 시가 가치없고 일회용 종이컵 정도의 용도로 밖에는 쓰이지 않는 것이라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이천 오백원 정도의 돈을 지불하여 책을 사고 아까운 시간을 쪼개어 읽어야할 문학작품이라면 우리는 시를 두고 가치와 판단의 면모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언어는 의미화 되지 못함으로써 가볍게 공중에 떠 있는데, 가벼움과 유희가 목적이일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새로운 형식을 통해 독자에게 충격을 주려는 시도는 한번으로 족하다. 같은 것이 두번 반복될 때 그것은 더이상 새로움도 아니고 해체도 아니다. 박남철 시인에게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바와 같이 80년대의 해체는 해체가 스스로 해체되어야할 숙명을 안에 담고 있었다. 박상우가 보여주는 야유와 재치, 김정란의 자아와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독백도 색깔이나 지향점은 서로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박남철이 갖고 있는 해체의 속성과 한계를 함께 지니고 있다. 70년대부터 해체를 실천해온 이승훈과, 역시 비슷한 연배이지만 80년대 들어와서야 해체에 뛰어든 박의상에게도 엮시 같은 지적을 할 수밖에 없다. 이승훈의 '비대상'은 다르게 표현하면 '대상의 해체'일 것인데, 그가 언젠가 스스로 고백했듯, 비대상의 허무함이 시를 텅 빈 그릇으로 만들 때, 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박의상의 경우는 시행을 불규칙하게 배열하고 의미없는 언어를 반복하는 수법의 해체작품을 쓰고 있다. 이럴 때 시행의 배열은 시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定處]연작은 내용상의 '자리찾음'이 아니라 불규칙한 시행이 보여주는 바의 불확실한 현재 위치를 말하는 것이 된다. 이승훈이나 박의상에게 있어 의미 없는 대상의 존재는 시의 중심개념이 되고 있는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전제하기 위하여는 존재의 해체가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 박남철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가벼움이 가라앉지 않는 한 그들의 뿌리는 쉽게 고갈될 것이고, 스스로 자신의 시에 어떤 해석을 부가하더라도 독자들은 그들에게서 의미 찾기를 포기할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 황지우나 박남철과는 다른 유형의 해체시들이 여러 시인에 의하여 다양한 목소리로 나타난다. 그 중 대표적인 얼굴로 필자에게 떠오르는 시인은 장정일과 황인숙이다. 80년대 후반은 초반의 과격한 문자파괴를 거치고 난 이후였기 때문에 문자가 더 이상 해체의 대상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글자의 파괴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무것도 해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젊은 시인들은 인식했기 때문이다. 해체의 일차적 대상이 문자로 지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자는 글자 이전에 한 의미체계를 지닌 구조물이기에 글자의 해체를 통해서는 대상을 완전히 해체했다고 볼 수가 없다. 그 반대로 대상의 의미만을 비워두고 언어형식을 해체하지 않아도 완전한 해체에는 다다를 수 없다. 그렇다고, 양자의 장점만을 택한 방법, 즉 대상의 의미와 글자를 동시에 해체한다고 해서 해체시가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시집이다. 그의 시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래서 대부분 시가 길고 서술적이며 알레고리화 되어 있다. 이야기들은 대개 그의 개인사적인 매개물로 시작되지만 단순히 한 개인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는다. 평범한 보통사람의 머리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러나 중요한 만큼 무겁게 짊어지고 다니고 싶지 않을 그런 문제들을 향해 장정일의 상상력은 종횡으로 날아다닌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시의 표면에 드러내고 독자를 향해 말한다. 이야기의 재미에 이끌려 시를 끝까지 읽은 독자들은 시가 끝나고 나서야 그것이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섬뜩해진다. 그의 해체는 해체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쉽사리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일부 평자들은 그의 시를 두고 현대 도시의 물질화된 생활, 특히 미국식으로 변해가는 문명생활에 대한 야유와 경고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의 시에서 다루는 소재들이 주로 도시적 삶에서 얻은 것들이기에 그런 평가가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장정일이 다루고자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삶의 진실에 대한 회의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표제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요리과정에 대한 설명 뿐이고, [붉은 신호에 걸린 여자]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던 여자가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하이힐이 걸려 넘어지면서 길을 건너지고 되돌아가지도 못한다는 상황묘사 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요리책도 아니고 소설의 일부를 따놓은 것도 아니다. 재미는 있지만 시인이 이 작품을 쓴 의도를 찾기가 어렵다. 그가 [쉬인]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랄떠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들이 지금껏 생각해왔던 '진리'의 숭고함, 형이상학적인 속성, 세속으로부터의 거리감 등을 완전히 무시한데서 온 결과이다. 진실이 교과서에만 써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이나 주변에 얼마든지 흩어진 것이라는 역설적 표현이다. 따라서 그는 진실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진실을 찾고자하는 노력을 이야기를 통해 나타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최승자는 자의식이 강한 면에서 장정일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지만 그의 선배격인 이하석은 장정일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시인이다. 다만 보편적 진실보다는 이데올로기화된 진실, 즉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함으로써 삶을 개조시키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여기에 비하여 황인숙의 애매모호함이 장정일과 더욱 접근된 모습을 보여준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에서 황인숙의 시가 매력적인 것은 쉽고 활달한 말을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를 한마디로 규정하기 매우 어려운 다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 많은 경우에 의미해석을 강요하지 않고 그 분위기가 주는 막연한 느낌이 독자를 오히려 포근하게 감싸준다. 그의 작품을 두고 '둥근 시'라고 평하는데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역시 중요한 문제는 진실에 대한 문제, 즉 기존의 진실의 질서를 신뢰할 수 있는냐 하는 문제이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여 대상이 예전의 대상이 아닌 그만의 것인 대상이 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대상이 그의 것이되었을 때, 그는 세상의 신기로움과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고정된 진실이 아닌 열린 개념으로서의 새로운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황인숙은 진실을 해체하는 작업과 동시에 진실을 새롭게 구성하는 창조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 최계선이 낸 시집 {검은 지층}은 글자가 아닌 그림의 삽입이라는 점에서 박남철을 생각나게 하지만, 박남철과는 분명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활을 다룬 시들과 지질학적 상상력으로 인간존재를 다룬 시들이 혼재해 있는데, 눈에 얼른 띄는 것은 물론 후자의 것이고, 형태적 해체를 취한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단층이나 모래의 형상을 실제의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은 유감이지만 전혀 신기하지 않다. 다만 그것이 인류학적, 혹은 지질학적 인간존재를 다루고 있어 시의 영역을 넓히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시에 자연과학을 도입한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3. 무엇을 해체할 것인가   80년대에 해체는 리얼리즘에 대립되는 모더니즘의 방편으로 오해되는 가운데, 각 진영으로부터 해체 자체에 대한 깊은 천착 없이 심정적인 찬반의 평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80년대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모순이 바로 그러한 결과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사실 해체는 리얼리즘/모더니즘의 이분법적 기준과는 관계없이 어떠한 예술작용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일종의 아방가드인 것이다. 단순히 '새롭다'는 면에서는 모더니즘과 통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해체의 대상은 리얼리즘에서 다루는 사회성일 수도 있고 모더니즘에서 다루는 현대문명일 수도 있다. 그리도 동시에 이들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해체를 규정할 때 우리가 기준으로 삼아야할 것은 어떤 당파, 혹은 사조에 휩쓸려 있는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의 대상이 무엇이며 해체로 인하여 어떤 환기력을 갖을 수 있느냐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다. 앞에서  80년대의 중요한 해체시인들을 검토하며, 필자는 황지우 식의 비해체적 해체, 박남철 식의 무의미적 해체가 진정한 해체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그리고 장정일이나 황인숙의 시들이 보여주는 진리의 해체작업이 앞으로 우리시에서 해체시가 가야할 길을 어느 정도 밝혀주고 있음도 말했다. 이들의 차이점은 글자와 의미의 해체인가, 아니면 진리가 존재한다는 믿음의 해체인가로 요약된다. 진리는 존재하지만 그 진리는 교과서에 적혀있는 죽은 언어들이 아니라 삶의 구석구석에서 우리가 늘 얼굴맞대며 사는 일상에 있다. 고정된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일 때 이미 그것은 우리의 진리가 아니다. 즉 주어진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해체함으로써 새롭게 탄생된 진리를 알고 즐기는 행위가 바로 해체작업의 본질이다. 80년대의 해체시 중 대부분이 현실의 절망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면서도 해체가 본질적으로 절망을 위한 만가가 아니라 희망을 향해 열린 축복인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해체가 하나의 아방가드로 그 효력을 상실하고 새로운 아방가드가 해체의 해체에서 새롭게 시작할 것이라면, 지금의 해체가 무엇을 과연 해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의 지표를 정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물론 미래를 점치고 이론화한다는 것은 교조주의적 심판으로 흐르기 쉽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럴 위험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가지, 90년대의 해체는 삶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삶의 표면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서 진실을 추출하고 그 진리를 해체시킴으로써 보다 철저한 해체로 나아가야 하리라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세월이 흐르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진리도 바뀌고, 진리가 바뀌면 해체의 대상도 바뀐다. 따라서 해체는 늘 새롭게 시작하는 해체이어야 하는 것이다.    [출처] 정한용  |작성자 툭툭
1029    브레히트 시의 리해 댓글:  조회:4279  추천:0  2015-04-20
마리 A의 기억               / 베트톨트 브레히트     브레히트 시의 이해               /박찬일(연세대출판부)     1. 사용가치의 시       브레히트는 예술의 사용 가치를 중시하였다. 그런 점에서 당시 독일시단에서 쌍벽을 이룬 고트프리 벤과 대조를 이룬다. 벤은 문학을 통한 현실 참여에 반대했다. “가난한 자들은 올라가려고 하고 부자들은 내려가지 않으려고 한다. 끔찍한 세계, 그러나 3천년이 경과한 후에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다만 현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벤은 문학적 형식만이 세상을 혼돈에서, 무의미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형식만이 신앙이고 행위이다./손에 의해 어루만져졌으나,/그 후 손을 떠난 조각품은/씨앗을 품고 있는 조각품이다”, “삶은 망상”이라는 것. 삶에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형식만 남는다는 것이다. 형식이 “씨앗”이라는 것이다. 한편 브레히트는 상황을 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상황은 “사회적 인과관계의 복합체”. 사회적 인과관계의 복합체를 알아내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변화의 주체는 다수의 민중이고 변화의 객체는 소수의 지배계급이었다.     브레히트의 사용가치의 예술관은 계몽주의 전통에 맞닿아 있다. 계몽주의 작가들은 문학의 과제는 ‘유익함과 즐거움’이라는 호라티우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레싱은 특히 문학의 유익함과 교술적 의미를 강조하여 무대를 “도덕 세계의 학교”라고 하였다. 브레히트의 예술관은 칸트 이래의 ‘예술의 자율성’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모든 이해관계에서 벗어난”것이 “미적 취미”, 혹은 “아름다움”이었다. 예술은 사회적 이해관계, 경제적 이해관계,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뷔르거는 칸트가 예술을 최대 이윤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고 한 것으로 풀이했다.   2. 논리의 시     브레히트는 이성을 중시했다. 이때 이성은 시인의 이성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이성이기도 하다. 브레히트는 독자에게 이성을 요구했다. 장미는 시 한편이며, 독자는 꽃잎 떼어내듯 시행 하나하나(혹은 단어 하나하나)를 냉정한 논리로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훌륭한 시행과 잘못된 시행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능력 없이는 진정으로 시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이 능력은 논리적 능력이며, 진정으로 향유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즐긴다는 것이다.     브레히트의 창작미학상의 목표는 논리적으로 즐기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낯설게 하기 효과”(소외효과)이다. 낯설게 하기 효과는 시학적 개념이기도 하고 인식론적 개념이기도 하다. 소외시킨다는 것, 즉 낯설게 한다는 점에서 시학적 개념이고, 낯설게 하기를 통해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개념이다. 낯설게 만드는 과정이 논리적이다. 독자는 이 낯설게 만드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하나의 논리를 통과하면서 하나의 인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한편 브레히트는 시가 원래 “비사교적 요소들”이기 때문에 “주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주석이 시와 청자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청자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외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낯설게 하기는 벤야민에 의하면 감정이입 대신에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는 또한 벤야민에 의하면 “중단”과 관계 있다. 시에서 의 예를 보자.     아, 어떤 식으로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해야 할까     아, 어떤 식으로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해야 할까? 갑자기 짙은 빨강의 장미, 신선한 장미가 보이지 않는가? 아,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장미가 거기 있었네. 장미가 거기 있기 전에는 아무도 장미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장미가 거기 있었을 때 누구나 놀랐네. 출발하지 않은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 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이 시에는 시를 중단시키는 자아가 있다. 시를 중단시키는 자아는 ‘낯설게 하기 효과’를 노리는 자아이다. 중단은 낯설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발하지 않은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라는 구절이 중단시키는 자아의 말이다. 특히 “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라는 구절이 그렇다.  중단시키는 자아는 서사적 자아이다. 끼어드는 자아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서사적 자아는 첫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출발하지도 않은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라고 한 것이 그것. 둘째,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라고 한 것이 그것.     독자에게 시를 논리적으로 즐기라고 하고 시인에게는 낯설게 하기라는 논리적 형식을 요구하는 것은 헤겔로 연원하는 서정시 개념에 반대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서정시는 논리의 서정시가 아닌 ‘주관성’의 서정시이기 때문이다. 헤겔에 의하면 서사시는 “외적 실재의 형식”으로서 “사건 속에서 사실은 자유롭고 자립적으로 진행되며 서사적 자아는 뒤로 후퇴한다.” “객관적인 것”(내용)을 ‘주관성(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주관적인 것은 내면적 세계이며 “주관성”은 “직관, 느낌” 등이다.   3. 醜의 시     브레히트에게 보들레르의 쇼크는 부도덕적 쇼크로서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대도시의 정경, 대도시의 삶에 대한 기술은 부도덕적 쇼크의 판매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어 죽음, 주검, 파멸, 도박, 싸움, 신성모독 등에 대한 기술들이다. 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여 도덕적 단죄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쇼크에 관해서라면 브레히트도 보들레르 못지않다. 브레히트도 부도덕적 쇼크를 불러 일으켰으니 첫 시집 의 많은 시편들이 ‘부도덕’의 기록, 혹은 신성모독의 기록이었다.     악의 서술은 악(자본주의의 악)의 내용에 대해 ‘선의 방식’으로서의 대응이 아니라, 악의 내용에 대한 ‘악의 방식’으로서의 대응이라는 점에서 근대적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서술은 악의 내용에 대한 선의 방식으로서의 서술이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진선미의 법칙, 즉 진리의 법칙, 도덕의 법칙, 아름다움의 법칙을 따를 것을 요구하였다.     브레히트가 보들레르의 시편들을 부도덕적 쇼크라고 한 것은 그의 도덕적 엄숙주의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도덕적 엄숙주의자였다. 브레히트는 의 시편을 쓸 때는 도덕적 엄숙주의자가 아니었다. 보들레르의 시편들을 비판할 때 도덕적 엄숙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추의 미학은 ‘몰락’과 ‘폐물’에 ‘아름다움’을 부여한 것이다. 그의 초기 시집인 의 시편들은 19세기 말의 자연주의를 넘어 19세기 중반의 보들레르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자연주의에 와서 추의 미학이 보편적으로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는 산업화 시대의 문학이었다. 노동자, 빈민, 창녀, 알코올 중독자, 정신병자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한 문학이었다. 가난, 고통, 질병, 매춘, 살인이 미학으로서 자리 잡았다. 추의 미학이 자리 잡았다. 근대문학은 자연주의에서 전면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이 추하기 때문에 문학에도 추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추의 미학’은 리얼리즘의 확장에 기여하였다.   * 전통적인 진선미의 코드는 쉴레겔에 와서 완전히 그 위력을 상실한다. 문학예술은 진선미에서 완전히 독립한다. 진리 법칙, 도덕 법칙, 아름다움의 법칙에서 독립한다. 악과 추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문학적 형상화는 심미적인 것으로 정당화된다. ‘흥미로움/지루함’이었다. ‘흥미로움/지루함’의 코드가 이후의 문학의 잣대였다. 악과 추는 흥미로운 악과 추일 수 있고 지루한 악과 추일 수 있다. 지루한 문학보다 흥미로운 문학이 의미 있다면 의미 있는 악과 추일 수 있고 의미 없는 악과 추일 수 있다. 보들레르와 자연주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악과 추가 의미 있는 악과 추라면 ‘산업화 시대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 김수용 외, 악의 문학적 형상화 연구, 뷔히너와 현대문학, 제19호, 2002   마지막으로 브레히트의 시 두 편을 감상해보자.     마리에 대한 추억     1 푸르른 9월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나는 그녀를, 그 고요하고 창백한 사랑을 조용히 품에 안았네. 마치 부드러운 꿈인 듯 했네. 우리 머리 위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떠있었네. 그 구름을 나는 오래 쳐다보았네. 아주 하얗고 엄청 높은 곳에 있던 구름. 내가 다시 올려 보았을 땐 사라지고 없었네.     2 그날 이후 수많은 달, 수많은 세월이 조용히 흘러 흘러 사라져갔네. 자두나무들은 아마 베어졌을 것. 사랑이 어떻게 됐느냐고 그대가 물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리. 그대가 말한 뜻을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정말이네, 그녀 얼굴이 생각나지 않네. 다만 그녀 얼굴에 언젠가 키스를 했다는 사실뿐.     3 그 키스도 구름이 여기 있지 않았더라면 벌써 오래 전에 잊었을 것이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구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구름은 아주 희었네. 위에서부터 온 것이라네. 자두나무들은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을지. 그녀는 일곱 번째 아이를 가지고 있을지도. 그러나 구름은 몇 분 동안만 피어올랐고 내가 올려다보았을 대 벌써 바람에 사라지고 없었네.           악한 자의 가면       내 방 한쪽 벽면에 일본 목각 작품 한 개가 걸려 있다. 금색 칠을 한 악마 형상의 가면이다. 이마에 툭 불거진 힘줄을 감전된 듯 나는 본다. 그것은 악한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
1028    명시인 - 베르톨트 브레히트 댓글:  조회:3825  추천:0  2015-04-20
  세계의 명시/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의 해협 ** 히틀러를 지칭       시를 말하다 정끝별 l 시인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나의 어머니’)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몇 해 전 가을 잎들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땅에 아버지를 묻어 드리고 올 적에 나는 브레히트의 이 시를 생각했다. 180센티미터를 밑돌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 47킬로그램이셨다. 브레히트의 시에는 이처럼, 절박한 현실 속에서 다시 부르게 하는 힘이 있다.   1933년 2월 28일 브레히트는 가족과 함께 독일을 떠난다. 히틀러가 그를 정치사상범으로 몰아 체포 대상자 명단에 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1933년 망명), 핀란드, 파리, 모스크바, 미국(1941년 망명), 스위스, 동독으로 이어지는 15년간의 망명 생활이 시작되었다. 브레히트 자신의 표현대로 “구두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꿔 가며”, ▶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전전하는 동안 그의 문학은 강철처럼 단련되곤 했다. 나치즘이 초래한 학살과 전쟁의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브레히트의 생존력은 놀라웠다. 할리우드에 팔아먹을 영화 대본을 쓰기도 했고 스탈린을 찬양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탈출하듯 뉴욕을 떠날 때 그는 묘비명 같은 시 한 편을 남겼다. “호랑이를 피해 달아나니/ 빈대들에게 뜯기게 되었네./ 평범한 것들이/ 나를 먹어 치우고 말았네.” 미국에 망명할 즈음에 쓴 ‘사상자 명부’라는 시에서 브레히트는 죽은 동료들의 이름을 애도하듯 부르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병사한 마르가레트 슈테핀(Margarete Steffin),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베를린 시대의 영화감독 카를 코흐(Karl Koch)…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자신이 미워졌다.”라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탄생하게 된 지점이다. ‘살아남은’ 자신의 삶을 항변하려는 듯, 브레히트는 ‘폭력에 대한 조치’는 폭력보다 오래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다. 폭력 앞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되므로 폭력에 정면으로 대항하다가 희생당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폭력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이 폭력을 이기는 길이라고 그는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는 시이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는 1939년 초에 쓴 시이다. 이 시를 쓸 무렵 브레히트는 덴마크에 망명 중이었다. 벤야민의 회상에 따르면 브레히트는 농가의 마구간을 회칠하여 작업실로 썼는데 그 작업실의 떡갈나무 기둥에 “진실은 구체적이다.”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고 한다. 그의 다른 시들처럼, 이 시 역시 구체적이고 단순하고 분명하다. 브레히트는 학살과 전쟁의 주범이자 젊은 시절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를 ‘칠쟁이’, ‘엉터리 화가’라 희화화시킨다. ‘칠장이 히틀러의 노래’라는 시에서는 “칠장이 히틀러는/ 색깔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배운 바 없어/ 그에게 정작 일할 기회가 주어지자/ 모든 것을 잘못 칠해서 더럽혔다네./ 독일 전체를 온통 잘못 칠해서 더럽혔다네.”라고 쓰기도 했다. “아름다운 사과나무의 감동”보다는 이 ‘엉터리 화가’에 대한 분노가 브레히트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힘이었다. 사랑받고 있는 행복한 자,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돛단배, 따뜻한 처녀들의 젖가슴을 노래하는 아름답고 충만한 서정시 대신,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 40대인 소작인의 처의 구부러진 허리로 상징되는 현실의 결핍과 폭력에 대해서 쓰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부러 ‘운을 맞추’지 않은 거칠고, 구체적인 시에 대한 지향을 시사하는 시이다. 토질이 나쁜 땅에서는 나무가 굽어 자라듯, 나치즘의 광기가 휩쓸고 있는 그의 시대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임을 천명하는 시이다. 브레히트에게 시를 쓰는 일이란 “인간적인 행위로서, 모든 모순성과 가변성을 지니며 역사를 규정하면서 또한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사회적 실천”에 다름 아니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는 아도르노의 선언 또한 이 시로부터 비롯되었다. 야만적인 자본의 논리가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우리 시대 역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이다. 1퍼센트의 부자는 돈을 쓰는 재미에 빠져 서정시 따위에 무관심하고, 99퍼센트의 빈자들은 밥에 매달려 서정시를 외면하고 있다. 월가를 점령한 젊은이들은 이렇게 외쳤다. “Who's street?” “Ours street!” “We are ninety-nine percent!" 이런 외침이 거세지는 시대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임이 분명하다. 서정보다 자본이, 꽃보다 밥이, 노래보다는 목숨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2011년 가을, TV에서 월가의 시위 장면을 보면서도 나는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렸다. “암울한 시대에/ 그때도 역시 노래하게 될 것인가?/ 그때도 역시 노래하게 될 것이다./ 암울한 시대에 대해”(‘모토’)!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2.10-1956.8.14) / 1898년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뮌헨 대학 의학부 재학 중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위생병으로 소집되어 육군병원에서 근무하였다. 1928년 연극 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나중에는 전쟁 체험을 통해서 차츰 혁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덴마크, 미국 등에서 망명 생활을 했으며, 독일이 분단된 뒤 동독을 선택했다. 1949년 배우이자 아내인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극단 베를리너 앙상블을 창단하고 서사극을 발전시켰다. 1956년 지병인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1922년 로 클라이스트(Kleist) 상을 받았으며, 1954년 레닌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 , , , , , , , 등이 있다. 글 정끝별 / 1988년 에 시가, 1994년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 , , , 시론ㆍ평론집 , , , 등이 있다.     브레히트 딸 獨여배우 히오프 사망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브레히트 생가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 위치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생가. 브레히트는 반전과 비사회적인 가치를 담은 작품을 서술했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아우크스부르크는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일족이 세운 도시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베를린 AP=연합뉴스) '연극의 거장'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딸이자 독일 연극 배우인 한네 히오프가 2009년도 별세, 향년 86세.    베를린에 있는 브레히트 후손들의 사무소는 히오프가 독일 뮌헨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히오프는 1923년 3월 12일 독일 남부에서 브레히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오페라 가수 마리안네 초프의 딸로 태어났다.    히오프는 초프로부터 무용 및 연기 교육을 받았으며 후에 서독, 동독,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극장에서 공연을 펼쳤다.    그녀는 브레히트의 작품 '카라 부인의 총'과 '도살장의 성(聖) 요한나'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히오프는 1976년 연극계를 은퇴한 뒤 반전운동과 브레히트 유작 관리에 힘썼다.    브레히트는 서사극과 '낯설게 하기' 기법 등을 확립해 현대 서구 연극이론과 연극사의 한 획을 그은 극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1027    詩的 變容에 對하여 댓글:  조회:4282  추천:0  2015-04-20
  詩的 變容에 대하여   핏속에서 자라난 파란 꽃, 빨간 꽃, 흰 꽃, 혹시는 험하게 생긴 독이(毒栮), 이것들은 그가 자라난 흙과 하늘과 기후를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어디 그럴 필요가 있으랴! 그러나 이 정숙한 따님들을 그저 벙어리로 알아서는 안 된다. 사랑에 취해 흘려듣는 사람의 귀에, 그들은 저의 온갖 비밀을 쏟기도 한다. 저들은 다만 지껄이지 않고 까불거리지 않을 뿐, 피보다 더 붉게, 눈보다 더욱 희게 피어나는 한 송이 꽃. 우리의 모든 체험은 피 가운데로 용해한다. 피 가운데로 피 가운데로 한낱 감각과, 한 가지 구경과, 구름같이 피어올랐던 생각과, 한 근육의 움직임과, 읽은 시 한 줄, 지나간 격정이 모두 피 가운데, 알아보기 어려운 용해된 기록으로 남긴다.지극히 예민한 감성이 있다면, 옛날의 전설같이 우리의 맥을 짚어봄으로, 우리의 호흡을 들을 뿐으로 얼마나 길고도 가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랴! 흙 속에 어찌 풀이 나고 자라며, 버섯이 생기뇨? 무슨 솜씨가 핏 속에 시를, 시의 꽃을 피어나게 하느뇨? 변종을 만들어내는 원예가, 하느님의 다음 가는 창조자, 그는 실로 교묘하게 배합하느니라. 그러나 몇 곱절이나 더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이랴! 교묘한 배합‧고안‧기술, 그러나 그 위에 다시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되는 변종 발생의 찬스. 문학에 뜻을 두는 사람에게, “너는 먼저 쓴다는 것이 네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일인지를 살펴보라. 그리고 밤과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것을 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죽어도 못 배길 그런 내심의 요구가 있다면, 그때 너는 네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건설하라.”고. 이런 무시무시한 권고를 한 독일의 시인 마리아 릴케는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전 생애를 두고, 될 수 있으면 긴 생애를 두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의미와 감미를 모으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면 아마 최후에 겨우 열 줄의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시는 보통 생각하는 것같이 단순히 애정이 아닌 것이다. 시는 체험인 것이다.한 가지 시를 쓰는 데도 사람은 여러 도시와 사람들과 도시들을 봐야하고, 짐승들과, 새의 날아감과, 아침을 향해 피어날 때의 작은 꽃의 몸가짐을 알아야 한다. 모르는 지방의 길, 뜻하지 않았던 만남, 오래 전부터 생각던 이별, 이러한 것들과, 지금도 분명하지 않은 어린 시절로 마음 가운데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여러 밤의 사람의 기억-하나가 하나와 서로 다른-진통하는 여자의 부르짖음과,아이를 낳고 해쓱하게 잠든 여자의 기억을 가져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의 곁에도 있어봐야 하고, 때때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방에서 창을 열어 놓고, 죽은 시체도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기억이 이미 많아질 때,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말할 수 없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기억만으로는 시가 아닌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우리 속에 피가 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는 이름 없는 것이 된 다음에라야-그때에라야 우연히 가장 귀한 시간에 시의 첫 말이 그 가운데서 생겨나고, 그로부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열 줄의 좋은 시를 기다리고 일생을 보낸다면, 한 줄의 좋은 시도 못 쓰리라. 다만, 하나의 큰 꽃만을 바라고 일생을 바치면 아무런 꽃도 못 가지리라. 최후의 한 송이, 극히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하여는 그보다 작을지라도, 덜 고울지라도 수다히 꽃을 피우며 일생을 지내야 한다. 마치 그것이 최대의 것인 것같이 최대의 정열을 다하여-주먹을 펴면 꽃이 한 송이 나오고, 한참 심혈을 모아 가지고 있다가 또 한 번 펴면 또 한 송이 꽃이 나오고, 이러한 기술사와 같이.’   나는 서도를 까맣게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 서도를 예로 이야기할 욕망을 느낀다. 서도의 대가가 그 생애의 절정에 섰을 때에, 한번 붓을 들어서 한 글자를 이룬다 하자. 괴석같이 뭉치고, 범같이 쭈그린 이 한 자. 최고의 지성과 웅지를 품었던 한 생애의 전 체험이, 한 인격이, 온통 거기 불멸화하였다. 그것이 주는 눈짓과 부르는 손짓과 소곤거리는 말을 나는 모른다. 나는 그것이 그러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유추할 뿐이다. 이 무슨 불행일 것이냐! 어떻게 하면 한 생애가, 한 정신이 붓대를 타고, 가는 털을 타고, 먹으로써 종이 위에 나타나, 웃고 손짓하고 소곤거릴 수 있느냐? 어쩌면 한참 만에 손을 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나오는 기술에 다다를 수 있으랴. 우리가 처음에는 선인들의 그 부러운 기술을 보고, 서투른 자기 암시를 하고, 염언(念言)을 외고, 땀을 흘리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다. 그저 빈주먹을……. 그러는 중에 어쩌다가 자기 암시가 성공하는 때가 있다. 비로소 주먹 속에 드는 조그만 꽃 하나! 염화시중의 미소요, 이심전심의 비법이다. 이래서, 손을 펼 때마다 꽃이 나오는 확실한 경지에 다다르려면 무한한 고난과 수련의 길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그가 한번 밤에 흙을 씻고, 꾸며 놓은 무대 위에 흥행하는 기술사로 올라설 때에 그의 손에서는 다만 가화(假花) 조각이 펄펄 날릴 뿐이다. 그가 뿌리는 땅에 박고 광야에 서서 대기를 호흡하는 나무로 있을 때만 그의 가지에서는 생명의 꽃이 핀다. 시인은 진실로 우리 가운데서 자란 한 그루 나무다. 청명한 하늘과 적당한 온도 아래서 무성한 나무로 자라나고, 장림(長霖)과 담천(曇天) 아래서 험상궂은 버섯으로 자라날 수 있는 기이한 식물이다. 그는 지질학자도 아니요, 기상대원일 수도 없으나, 그는 가장 강렬한 생명에의 의지를 갖고 빨아올리고 받아들이고 한다. 기쁜 태양을 향해 손을 뻗치고 험한 바람에 몸을 움츠린다. 그는 다만 기록하는 이상으로 그 기후를 생활한다. 꽃과 같이 자연스러운 시, 꾀꼬리같이 흘러나오는 노래, 이것은 도달할 길 없는 피안을 이상화한 말일 뿐이다. 비상한 고심과 노력이 아니고는 그 생활의 정을 모아 표현의 꽃을 피게 하지 못하는 비극을 가진 식물이다.     박용철(1904~1938) 호 龍兒. 전남 광산 출신. 시인. 도쿄 아오야마 학원과 연희전문에서 수업. 1930년 《시문학》에 시 ,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1931년 《문예월간》을 출자 간행. 정지용, 김영랑, 이하윤, 신석정 등과 경향파에 대립하여 순수시 운동을 전개. 작품집에 《박용철 전집》이 있음  
1026    시인 - 朴龍喆 댓글:  조회:4931  추천:0  2015-04-20
  1904년 6월 21일 ~ 1938년 5월 12일[1]) 한국의 시인이다. 문학평론가, 번역가로도 활동했다. 아호는 용아(龍兒).       생애 전라남도 광산군(현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했다. 배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에서 수학하였다. 일본 유학 중 시인 김영랑과 교류하며 1930년 《시문학》을 함께 창간해 문학에 입문하였다. 1931년 《월간문학》, 1934년 《문학》을 창간하여 순수문학 계열에서 활동했다. "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가련다"로 시작되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 등 시작품은 초기에 많이 발표했고, 이후로는 주로 극예술연구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해외 시와 희곡을 번역하고 평론을 발표하는 방향으로 관심을 돌렸다. 1938년 결핵으로 요절하여 자신의 작품집은 생전에 내보지 못했다. 박용철이 사망하고 1년 뒤에 《박용철전집》이 시문학사에서 간행되었다. 전집의 전체 내용 중 번역이 차지하는 부분이 절반이 넘어, 박용철의 번역 문학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다.괴테, 하이네, 릴케 등 독일 시인의 시를 많이 번역했다. 번역 희곡으로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입센의 《인형의 집》 등이 있다.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번역한 작품들이다. 박용철은 1930년대 문단에서 임화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으로 대표되는 경향파 리얼리즘 문학, 김기림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문학과 대립하여 순수문학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이끌었다. 김영랑,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이 박용철과 함께 순수시를 옹호하는 시문학파 시인들이다. 박용철의 시는 대체로 김영랑이나 정지용의 시에 비하면 시어가 맑지도 밝지도 못한 결함이 있지만, 그의 서정시의 밑바닥에는 사상성이나 민족의식 같은 것이 깔려 있어, 그 점이 김영랑, 정지용의 시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특색이라는 평가가 있다.[2] 광주에 생가가 보존되어 있고 광주공원에는 〈떠나가는 배〉가 새겨진 시비도 건립되어 있다.                                                                     떠나가는 배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미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고향     고향은 찾어 무얼 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흐너진대   저녁 까마귀 가을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로 옛자리 바뀌었을라.     어린 때 꿈을 엄마 무덤 위에   남겨두고 떠도는 구름 따라   멈추는 듯 불려온 지 여남은 해   고향은 이제 찾어 무얼 하리.     하늘 가에 새 기쁨을 그리어보랴   남겨둔 무엇일래 못 잊히우랴   모진 바람아 마음껏 불어쳐라   흩어진 꽃잎 쉬임 어디 찾는다냐.     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생각    -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길이언만   서로의 굳은 뜻을 남께 앗긴    옛 사랑의 생각 같은 쓰린 심사여라.          눈은 내리네     이 겨울의 아침을   눈은 내리네     저 눈은 너무 희고   저 눈의 소리 또한 그윽하므로     내 이마를 숙이고 빌까 하노라   임이여 설운 빛이   그대의 입술을 물들이나니   그대 또한 저 눈을 사랑하는가     눈은 내리어   우리 함께 빌 때러라.       희망과 절망은   어느 해와 달에 끄을림이뇨  내 가슴에 밀려드는 밀물 밀물  둥시한 수면은 기름같이 솟아올라  두어마리 갈매기 어긋저 서로 날고  돛폭은 바람가득 먹음어  만리길 떠날 차비한다  그러나 이순간을 스치는 한쪽 구름  가슴 폭 내려앉고 깃발은 꺾어지며  험한 바위 도로 다 제 얼굴 나타내고  검정 뻘은 죽엄의 손짓조차 없다  남은 웅덩이에 파닥거리는 고기들  기다림도 없이 몸을 내던진 해초들  우연은 머리칼처럼 헝클어지도 않았거니  너는 무슨 낙시를 오히려 드리우노  희망과 절망의 두 등처기 사이를  시계추같이 건네질하는 마음씨야  시의 날랜 날개로도 따를 수 없는  걸음빠른 술레잡기야 이 어리석음이야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1  온전한 어둠 가운데 사라져버리는  한 낱 촛불이여.  이 눈보라 속에 그대 보내고 돌아서 오는  나의 가슴이여.  쓰린 듯 비인 듯한데 뿌리는 눈은  들어 안겨서  발마다 미끄러지기 쉬운 걸음은  자취 남겨서.  머지도 않은 앞이 그저 아득하여라.  2  밖을 내어다보려고, 무척 애쓰는  그대도 설으렷다.  유리창 검은 밖에 제 얼굴만 비쳐 눈물은  그렁그렁하렷다.  내 방에 들면 구석구석이 숨겨진 그 눈은  내게 웃으렷다.  목소리 들리는 듯 성그리는 듯 내 살은  부대끼렷다.  가는 그대 보내는 나 그저 아득하여라.  3  얼어붙은 바다에 쇄빙선같이 어둠을  헤쳐나가는 너.  약한 정 뿌리쳐 떼고 다만 밝음을  찾아가는 그대.  부서진다 놀래랴 두 줄기 궤도를  타고 달리는 너.  죽음이 무서우랴 힘있게 사는 길을  바로 닫는 그대  실어가는 너 실려가는 그대 그저 아득하여라.  4  이제 아득한 겨울이면 머지 못할 봄날을  나는 바라보자.  봄날같이 웃으며 달려들 그의 기차를  나는 기다리자. "잊는다"말인들 어찌 차마! 이대로 웃기를  나는 배워보자.  하다가는 험한 길 헤쳐가는 그의 걸음을  본받아도 보자.  마침내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라도 되어 보리라.          싸늘한 이마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듯 눈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은 새파란 불붙어 있는 인광 까만 귀뚜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 한 기쁨이랴. 파란 불에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 한 즐거움이냐.          이대로 가랴마는 설만들 이대로 가기야 하랴마는 이대로 간단들 못 간다 하랴마는 바람도 없이 고이 떨어지는 꽃잎같이 파란 하늘에 사라져 버리는 구름 쪽같이 조그만 열로 지금 숫더리는 피가 멈추고 가늘은 숨결이 여기서 끝맺는다면 ㅡ 아, 얇은 빛 들어오는 영창 아래서 차마 흐르지 못하는 눈물이 온 가슴에 젖어나리네.              밤 마음아 너는 더 어질어지렴아 너는 다만 헛되이 아 ㅡ 진실로 헛되지 아니하냐 남국의 어리석은 풀잎은  속임수 많은 겨울날 하로 빛에 고개를 들거니 가문 하늘에 한 조각 뜬구름을 바랐고 팔을 벌려 불타오르는 나뭇가지같이 오 ㅡ 밤길의 이상한 나그네야 산기슭 외딴집의 그물어가는 촛불로  네 희망조차 헛되이 날뀌려느냐 아 ㅡ 그 현명의 노끈으로 그 희망의 목을 잘라 걸으라 걸으라 무거운 짐 곤한 다리로 걸으라 걸으라 가도 갈 길 없는 너의 길을 걸으라 걸으라 불 꺼진 숯을 가슴에 안아 새벽 돌아옴 없는 밤을 걸으라 걸으라 걸으라          朴龍喆의 초기시   박용철의 초기시를 검토해 보면 그가 생전에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이 더욱 명쾌하게 설명될 수 있다. 애초부터 격조 있는 서정시를 지향한 점에서는 朴龍喆이 다른  詩文學  동인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해석에 있어서 그는 다른 동인들과 상당한 차이를 보여 준다. 이런 경우의 우리에게 좋은 보기가 되는 것이 , 등이다.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무로야 보낼겨냐    나두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골잭이 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모양    주름ㅅ살도 눈에 익은 아 ─ 사랑하든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회살짓는다    앞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두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두야 간다.                                                 ─ 전문        고향은 찾어 무얼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흐너진데    저녁 가마귀 가을 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도 넷자리 바뀌었을라.        어릴 때 꿈을 엄마 무덤 우에    남겨 두고 떠도는 구름따라    멈추는듯 불려온지 여나무해    고향은 이제 찾어 무얼하리.        하날가에 새 기쁨을 그리어보랴    남겨둔 무엇일래 못잊히우랴    모진 바람아 마음껏 불어쳐라    흩어진 꽃닢 쉬임 어디 찾는다냐.        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 생각    ─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길이언만    서로의 굳은 뜻을 남게 앗긴    옛사랑의 생각같은 쓰린 심사여라.                                                        ─ 전문       이들 작품은 그 말씨부터가 金永郞의 경우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미 살핀 바와 같이 金永郞은 감정을 정서의 상태로 바꾸는 데 역점을 두면서 말을 썼다. 그리하여 그 말들은 의미 내용을 갖는 게 아니라 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도록 쓰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朴龍喆의 詩는 그와 달라서 상당히 사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편이다. 그 결과 그의 말들은 감각의 상태에 그치기보다 다소간 서술적인 쪽으로 기울어진 게 되었다. 또 하나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이 이 작품에 나타나는 상실감정이라든가 우수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따지고 본다면 상실의 감정은 金永郞에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경우 상실의 느낌은 내면화되기 이전의 가벼운 감상에 그쳐 있다. 말하자면 마음 밑바닥에 닿는 내면적 깊이나 무게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朴龍喆의 경우에는 사정이 그와 다르다. 그의 우수나 상실감정 속에는 대개 思辨的 속성이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범박하게 보면 이것은 호흡 영역의 확장 시도인 동시에 정신의 깊이를 수용하려는 노력에 해당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제 나름의 논거가 마련된 자취도 검출된다.    넓은 의미에서 창작활동이란 제 목소리를 지니며 제 설 자리를 마련하는 일에 해당된다. 그런데 시문학파가 발족한 뒤 그 영역은 아주 제한되어 있었다.  詩文學  동인 가운데 한 사람인 金永郞은 이미 짧은 형식 속에 해맑은 가락을 담은 詩를 발표했다. 그리고 鄭芝溶은 독특한 말씨로 선명한 심상의 詩를 발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감각이나 정서만으로는 朴龍喆이 새로 기를 꽂을 여지가 없었던 게 당시의 우리 시단 상황이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나머지 이루어진 게 朴龍喆의 사변적 공간 개발 시도가 되는 셈이다. 아울러 그 말씨가 길어진 까닭도 바로 이런 데 있다. 이것은 분명히 朴龍喆이 그 나름의 설자리를 마련하고자 한 시도에 해당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시도가 시도로 끝날 수 없었던 데 있었다. 되풀이되지만 朴龍喆이 노린 것은 질적으로 정상에 속하는 서정시의 제작이었다. 그런데 그를 위해 사변적인 내용을 갖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였다. 물론 하잘 것 없는 제재나 옅은 내용을 바닥에 깐 작품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유의성을 가진다거나 철학적 깊이를 다룬 詩가 묵직하게 보일 공산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詩를 위한 여러 소인들이지 그 자체가 詩는 아닌 것이다. 이런 사실은 한국 근대시에 나타난 여러 사례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입증된다. 가령 개항기에 六堂이나 孤舟는 즐겨 문명․개화를 노래했다. 그런 내용은 당시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우리를 긴장케 하는 제재들이었다. 또한 신경향파와 카프의 경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목적의식을 내세운 그들의 詩는 어떻든 현실에 입각한 작품의 제작을 외친 나머지 씌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개화․계몽을 노래한 詩나 대지에 발을 붙이기를 기한 프로시 가운데 좋은 詩로 손꼽힐 수 있는 것은 아주 드물었다. 朴龍喆은 우리 근대시사가 이런 단계를 거친 다음에 그의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독자에게 즐겨 읊조려지는 詩를 쓰고 싶었던 시인이다. 그런데 실제 그의 詩는 그런 목표에 넉넉히 도달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 의욕과 실제의 거리를 의식한 순간, 그는 또 다른 시도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좋은 서정시 제작에 걸어버린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1025    시적 마술(변용) - 알베르 베갱 댓글:  조회:4586  추천:0  2015-04-20
                                            시적 마술(변용)          자기 내부로의 하강 - 내부를 향한 모든 시선-은 동시에 진정한 외적 현실을 향한 상승 -승천-의 시선이기도 하다.  자신의 껍질을 벗는 것은 모든 하강의 근본일 뿐 아니라 모든 진정한 상승의 토대이기도 하다.  자기내부로의 하강은 본질적인 최초의행위이다. 하지만 이 행위는 자연에 대한 정확한 관찰이 뒤따라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이전에는 사물의 표면에만 머물러있던 의식도 영혼의 심원한 근원에 담금질되고  본질적인 리듬에 따라 교육을 받게되면 절대적 권능에 도달하여 지고한 의식이 될 수 있다.     노발리스가 말하는 정복의 이 모든 과정들은 그의 정신에 내재하고 있는 두가지 욕구, 즉 부분들의 빠짐없는 통합을 통해서 모든것을 그 통일성 속에서 바라보고자하는 성향과 그로하여금 가시적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상징과 발현을 찾도록 이끄는 미학적 경향에 따른 것이다.  인간의 인격은 무의식과 의식의 조화 속에서만 완전하다. 그것은 조화 그자체, 고등한 변증법적 종합이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완전한 자연과 우리 영혼의 종합이다. 그에게는 정신적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우주의 전체적인 통일성만이 온전한 의미로 존재한다. 모든 것을 통합시키고 모든 것의 공존을, 모든 분리가 절대적 조화로 귀환함으로서 사라지고 말 미래를 믿으려는 생명욕구가, 통일성에 대한 근본적 갈망이 한 인간 존재속에 이렇게 깊이 뿌리내린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들에 대한 고찰 그리고 내적 경험을 통해 그는 끊임없이 보편화된 불완전과 분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로하여금 그래도 통일성의 도래를 믿게 만드는 방책은 '마술'이다. 자신의 절대력을 행사하는 지평위에 모든 것을 옮겨 놓으려 애쓰는 정신의 마술, 사물들을 통해 그리고 이미 이 세상에서 보이지않는 세계의 보편적인 흔적을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시적 창조의 마술.    그는  황금시대가 인간에게 약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에게 주어지려면,  인간자신이 모든 무의식을 통합시킬 고등한 의식을 통해 진정한 통일성의 소유행위인 시적 마술을 통해 그것을 창조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내적인 변화를 통해 우리 내부에 획득된 완벽한 의식은 동시에 우주를 변화시킬 것이다. 인류에게 조화를 창조하는 이 절대적 힘을 되돌려줄 사람은 바로 시인이다. 노발리스의 미학은 마법사인 이 시인이라는 개념에 집중된다.  "무한 보다도 정신이 더 쉽게 다가설 수있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 들을 수있는 것은 들을 수 없는 것에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감지할 수 없는 것에, 그리고 아마 생각되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것에 묶여 있기에"    사실 정령의 세계는 이미 우리에게 개방되어 있다. - 그것은 항상 드러나 있다. - 우리의 불완전한 현 상태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사물들 속에 각인된 정신의 발현을 포착하고, 우주를 거기에 수록된 모든 말들이 영원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투명한 하나의 텍스트로 바라보게 해줄 하나의 고행을 발견해야한다. 시인은 이런 고행을 따르는 사람이다.    시는 내적 근원에서 영감을 길어오고 자신 속으로 내려가는 신비스런 길로 접어든다. 성공한 작품은 언제나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을 ,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을 지니고 있다.  "우리 내부에 아직 감겨져 있는 눈에" 호소한다.     시는 영혼의 표상이고 전체성 속에 포착된 내적 세계의 표상이다. 그것은 표상 할 수 없는 것을 표상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낀다.    .. 시인은 말 그대로 정신나간 사람이다. - 그대신 모든 것이 그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는 문자그대로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고 영혼인 동시에 우주이다. 거기서 훌륭한 시의 무한한 특질이 생겨난다.    시인은 고로 내부의 유령들을 불러내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대결을 벌이게 하는 마법사이다.  감각적인 우주의 질료들은 시인에게 제공되어 절대적으로 개인적이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된다.  무한히 다양한 감각적인 세계의 면모들을 두고, 시인은 선별을 거쳐,  그가 그 개별성때문에 선택한 하나의 개별적인 현상으로 완전히 선회한다.     -  알베르 베갱의 에서 발췌          알베르 베갱 1901년 스위스 쇼 드 퐁에서 태어나 스위스 바젤 대학 교수와 문학 잡지 '에스프리'의 편집장(1950~57)을 지냈다. 마르셀 레몽과 더불어 제네바 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 그는 현대인이 직면한 본질적인 실존의 문제를 심도 있게 제기함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발자크, 블루아, 네르발, 파스칼 등 여러작가들에 대한 에세이를 다수 출간했다.  시적인 문체로 인간 영혼의 심층에 접근해 들어가는 그의 글쓰기는 단순한 문학 이론의 지평을 넘어 심오한 종교적, 정치적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1024    대상의 고유한 특성 잡기와 시적 변용 댓글:  조회:4341  추천:0  2015-04-20
대상의 고유한 특성 잡기와 시적 변용   1.여는말    시 창작 기법의 하나인 대상의 고유한 특성 잡기는 창의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나름대로 언급해 본다. 창의성은 라고 정의한 로데스의 창의성 정의를 문학에 도입해 보면   이전의 사례 참조는 좋은 시를 읽고 감상하며 필사를 해보는 것이다.  좋은 시를 읽고  필사하는 과정 안에 시의 비밀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필사하면서 집중하여 생각을 하면 그 시의 심상, 그 이미지를 쓰게 된 시인의 남모를 동기, 행을 바꾼 의도, 시 속의 소리 없이 숨쉬는 운율 등이 은근히 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읽고 지나쳐버리고 만다면 그 중요한 것들의 눈짓을 알지 못한다. 또한 시를 쓰는 방법도 자연 그렇게 터득되는 것이다. 어떠한 이론적 습득보다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기에 이렇게 하다보면 재조합의 기법이 터득 된다고 본다.    그리고 또한 창의력을 기르는 방법의 하나는 시 이외의 교양서적을 섭렵하는 게 좋다. 문학, 철학, 신화, 미술, 음악, 역사 등 교양의 축적이 폭넓은 시적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시 속에 좋은 시를 쓰는 왕도(王道)가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2. 대상의 고유한 특성 잡기와 시적 변용의 의미 확장       -시창작에 있어서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잡아라."    이는 어떤 한 대상의 고유한 특징을 잡아 의미를 확장시켜 전혀 다른 대상으로 만들어라.       우리는 가끔 시를 짓기 위하여 그 대상을 찾아 여행도가고 직접 그 대상이 있는 곳으로 찾아 간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앞서 언급한 과 일맥상통 한다고 생각 된다.  나 역시 3류 시인에 불과하지만 어디를 다녀와서 보고 온 것을 지었다고 하면서 감상해 보라고 보여주는 시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풍경이 전개되어 있는 모습만을 미사어구로 풍경화만 그려놓았을 뿐 이미지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아쉬운 점을 느끼곤 했었다.    그러면 이미지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란 무엇인가? 서두에 말한 이 바로 그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인터넷 여행을 하다가 주암호 억새라는 사진을 감상할 기회가 생겨 직접 현지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 사진을 통하여 현지에서 주암호의 억새 감상을 하는 느낌이 들더니 불현듯 을 읽었던 내용이 떠올라 주암호 억새 사진을 통하여 대상의  특성을 나름대로 찾아보고 그 의미를 확장시켜 전혀 다른 대상으로 만들어 보려고 한참을 생각 하였지만, 나의 상식으로는 주암호에 대한 정보가 깊지 못하고 단지 광주시민의 상수원지라는 사실밖에 더 이상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았고 억새의 사진을 보면서 전혀 다른 대상의 특징을 생각 하던 중 억새의 윗부분 하얀 부분이 바람에 누워있는 듯 휘어져 있는 모양이 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으로 떠올랐다.    광주시민은 주암호의 물을 마신다, 그렇다면 주암호를 광주의 이미지로 변환 시켜보자. 광주의 특성은 무엇일까? 역사적 사실로 접근해보자 하고는, 현대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광주학생독립운동, 5.18 등의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고 이 사건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에 5.18당시의 군중집회, 계엄군의 시민을 쫓으며 총을 쏘는 장면, 쫓기는 군중, 이러한 장면으로 주암호 억새를 의미, 확장시켜 전혀 다른 대상으로 이미지를 담아 보았기에 졸작을 소개하면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주암호 억새 / 이근모     가을이 되면 주암호에서는 허가 받지 못한 억새들이 집회를 하고 이를 바라보는 태양이 울고 있는 것을 본다.     억새의 눈물방울 호수를 가득 채우고 이름 모를 영혼들을 달래는 진혼곡 가을 물빛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봄을 피우기 위한 5월의 함성이 가을 햇살 아래서 벌이는 한 마당 집회는 겨울 저수지를 달래는 촛불 행사 같다.     억새풀, 꽹과리 상쇠 머리 돌리 듯 빙글빙글 돌리는 휘모리장단 소리 개 꼬리 쫓고 있다.     어디서 저 많은 개가 모였을까. 탕, 탕, 탕, 탕. 깽, 깽, 깽, 깽.     개털 태우는 향기 산야를 진동하고 주암호 붉게 물들인 눈물 억새 뿌리 적신다.      다음은 냉장고라는 저의 졸시를 앞서 소개한 이론에 의하여 소개한다. 먼저 냉장고의 특징은 보관 물품을 차게 하기위하여 작동을 할 때 윙윙 하고 기계를 작동 하는데 이를 울음소리로 발상 전환을 했고 냉장고에 보관 물품을 넣기 위하여 문을 열면 환하게 불이 켜진다는 것. 그리고 문을 꼭꼭 닫아야 냉동이 된다는 것,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전혀 다른 사랑의 이미지로 확장 전환 했다.     냉장고 / 이근모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당신의 열꽃 너무 뜨거워요. 당신이 그렇게 뜨겁게, 뜨겁게 다가올수록 나는 꼭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요. 가슴 붉어지게 왜 자꾸 문을 두드려요? 왜 자꾸 문을 열어요? 당신의 그 뜨거운 열정 나의 이 차가운 눈으로 녹여 버릴래요. 당신의 그 뜨거운 구애(求愛), 바람으로 피어날까봐 내 안에 가두고 한 눈 팔지 못하게 꽁꽁 얼려서 옴싹달싹 못하게 할거 에요. 그리하여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아 드릴게요. 당신이 뜨겁게 다가올수록 나는 더 빗장을 걸어요. 당신이 내 가슴을 엿볼 때마다 얼굴이 붉어져요. 당신을 품어야 하는 수줍음에...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당신의 그 뜨거운 사랑 감당하지 못해 나는 더 차가워지니까요. 파고들수록 마음 꼭꼭 걸어 잠근 채 어둠의 고요 안에서 가끔은 엉엉 울어야 되니까요. 나를 울게 하지 말아요.      다음은 지팡이라는 저의 졸시를 앞서 말한 이론에 의하여 소개해 봅니다. 지팡이 하면 흔히들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의 보조기구로 일반화 되어 있다. 그러나 보행이 어려운 사람의 보조기구로써의 지팡이와 맹인의 보행을 위한 지팡이는 그 대상의 고유한 특성이 다르기에 여기에 착안하여 지팡이가 전달해 주는 느낌으로 보행을 하는 맹인의 마음의 눈을 그려 의미 확장을 해본 시다.     지팡이 / 이근모       충장로4가 횡단보도에서 맹인의 지팡이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지팡이 소리로 앞서 가는 숙녀의 각선미를 보고, 뒤 따라 오는 애 엄마의 쳐진 젖가슴도 본다. 소주방 앞을 지날 때는 쇠주 잔에서 출렁이는 인생의 노래를 듣고, 국밥집 문 앞에서는 뚝배기에 담겨진 된장국 삶을 그린다. 지팡이 하나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심안(心眼)으로 피어나는 지팡이 소리, 딱. 딱. 딱.  나의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그릴 수도 없는 소리.     4.맺음말    우리의 현대시 형태를 나름대로 느꼈던 점을 이야기 하라면 압축이 기교의 중심이 되었던 시에서 드러냄이 시적 기교의 중심이 되는 시로 변천했다고 나름대로 정의 한다. 따라서 드러냄의 시적 기교의 성공은 적절한 시적 언어의 선택과 활용이라 할 수 있다. 적절한 시적 언어의 선택과 활용이란 감추면서도 드러내고 드러내면서도 감추어진 형식의 언어 사용 기법일 것이다.  이러한 기법의 하나가 시적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찾되 전혀 다른 의미 확장을 시키는 것이고 이 의미 확장을 시키는 요령이 바로 창의와 아이디어인 것이다.    창의와 아이디어의 발상은 아주 간단하다. 고정관념(固定觀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낯선 곳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불안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뜻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감에 대한 발견을 의미한다. 하여 우리는 항상 시창작의 새로움에 도전할 각오를 준비하여야 한다.   준비한 자만이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인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나의 스콜라철학 같은 괴변 문학 이론으로 변변치 못한 발표를 읽어 주신 시인 여러분께 존경과 감사를 전하면서 이태백의 시 창작 기술법을 소개하면서 마친다.     선경후정(先景後情)-  먼저경치(자연, 사물, 대상 등)를 서술하고 난후 화자의 마음(발상전환)을 그려내라 이는 앞서 소개한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잡아 전혀 다른 대상으로 확장 발상 전환 하라는 말과도 일맥상통 한다 하겠다.   감사합니다.     
1023    시적 변용과 형상화 댓글:  조회:3975  추천:0  2015-04-20
시적 변용과 형상화                              -문병란(조선대교수,시인)  요즈음 양산되는 시들을 보면 초보자이든 이력을 쌓은  경우든 시와 산문이 구분되지 않은 시적 해체를 보게 된  다. 의도적 해체나 반시운동은 그 나름대로 변혁 의지쯤  으로 볼 수 있으나 수필의 감상을 행과 연으로 전개했다  고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잡  문적 성격의 수시수상 낙서글 같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을  가지고 실험시, 새로운 시 떠들어도 난처한 일이다.  소설 한권으로 쓸 것을 짧은 시 한 편으로 쓴다면 전적으  로 시의 생명은 '함축적표현'1)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함축, 그것이야말로 시의 생명이며 비법일 것이다.  시적변용과 형상화 즉 시 만드는 기법에 대해서  이근모 시인의 '노을' 이라는 시를 감상하면서 췌언을  더할까 한다.  '변용'이란 일종의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으로 미술  용어 이기도 하다. 대상의 자연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  라 작가의 주관에서 모양이나 형태를 의식적으로 확대하  거나 변개하여 표현하는 그 기법을 문장이나 시문에서  차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30년 모더니즘 운동에 참여  한 박용철 시인의 ≪시적변용≫ 이란 평론이 그 한 예가  되겠다.  리어카 바퀴에 감겨있던 노을  불꺼진 방 어둠을 갉아 먹는다    이 싯구를 산문적으로 이해한다면 어리석은 헛수고에  그친다. 불이 어둠을 어떻게 갉아 먹는가. 이는 주관적  정서적 해석을 통해 실감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표현이  지나칠 때 난해성이 오지만 적당할 때 수많은 사실적 설  명과 논리적 사고를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갉아먹는다고  표현한 것이다.  가장 오래된 뇌세포만이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  생글생글 웃음짓는 홍안같이  서산 등선마루에 걸친 노을    마치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마취된 환자의 흐릿한 몽환  상태를 느끼게 하는 함축적 표현으로 ‘노을’을 정서적으  로 형상화 했다. 이 시 한 편만으로도 그가 만만찮은  T.S.엘리어트를 졸업한 모던한 시학도임을 직감케 한다.  읊으는 시와 만드는 시, 자연발생적 인습의 감상시와 주  지적 창조적 생각하는 시 의미하는 시가 아니라 존재하  는 시 현대적 모더니티란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사를 관류하는 수많은 업적의 결과물로써 시삼백에  사무사의 경지에 이르듯 선인들의 명시 몇 백편을 줄줄  이 외워야 깨치는 시미학의 경지가 있다.  이근모 시인은 야무지게 터를 닦아 적어도 자연발생적  인습적 감상배설의 푸념이나 넋두리의 경지를 벗어나 시  적 알맹이를 만지는 그 경지에 접근했음을 작품으로써  말해주고 있다.  의 끝부분은 다음과 같다.  팔고 남은 생선 한 마리  리어카 좌판에서 뒹굴고  석양에 지친 그림자 드리우며  문지방 들어서는 아들  치매 엄마 눈동자엔  첫돌 맞은 모습만이 생생할 뿐  파란중첩 삶의 애환  노을 저편으로 달린다.    위의 시는 누구의 흔적도 없이 오직 이근모의 이  다. 마치 반고흐의 그림을 보듯 어질어질하다. 필자는 이  것을 시적변용이라 한다. T.S.엘리엇 가라사대 '삼류 시  인은 모방하고, 일류 시인은 표절한다'고 했던가. 서투른  흉내는 이류가 되지만 감쪽같이 훔쳐먹고 완전히 소화  하여 피만들고 똥사버리는 기똥찬 천재는 표절(훔치기)  하는 것일까. 이근모를 천재라 한다고서 큰일날 일은 아  니지 않는가. 병사가 전쟁터에 나가서 이기려면 신무기가  필요하듯이 경쟁이 필요한 세상에 내놓는 시이라면 신무기  하나쯤 있어야 한다. 당신의 신무기는 무엇입니까? 물으면  이것이다 내놓을 시가 있어야 시를 쓰는 당위성이 있을 것  이다. '자인'의 시가 아니라 '졸렌'2) 의 시라고 만드는 시로  나아가려는 그의 모더니티에 대하여 다시 한번 기대를 건다.  주1)  함축적표현: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면에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  흔히 시에서 말하는 내포적 의미나 metaphor기능을 말한다.  주2)  자인(Sein)은 독일어로 존재. sollen은 당위의 뜻.   
1022    철학적 사유의 시적 변용 댓글:  조회:4265  추천:0  2015-04-20
              철학적 사유의 시적 변용                                                -- 시집 “꿈꾸는 시간”을 중심으로                                                                                                       김성열   춘광 시인의 시집 “꿈꾸는 시간”을 주의 깊게 읽어 온 나로서는 할 말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조금은 망설여진 면이 없지 않다. 인동초의 줄기처럼 눈 속을 뻗어나가는 그의 시적 에너지의 본류(本流)를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시집 원고를 다 읽고 나서 다시 더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철학가로서 그의 사유의 세계로 더 가까이 가보고 싶은 충동 때문 이었다. 그의 시에는 세계를 끌어안는 넓은 가슴이 있고, 소용돌이치는 내면세계의 어지러움을 질서 있게 정리하고 재단하는 기교가 있다. 감각세계의 모든 물상은 그의 내면에 전입되어 철학적 사유와 결합하여 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가 구축해 내는 시세계는 육화된 철학적 사유와 시의 주제가 결합한 화학 반응의 결과물로서 시적 변용을 이뤄 내는 독특한 정신세계인 것이다. 그의 시에는 꿈과 사랑의 형상물로 가득 차 있다. 관념으로 떠도는 동경의식은 세계의 모든 물상에 투사되고 재단되어 독특한 창조적 시공을 형상화 한다. 자연은 시적 대상과 소재의 중심에 놓여 있고 영원회기라는 사유의 섬에 맞닿아 있다. 이 시인은 시 쓰는 마음의 상태를 운명이라는 말로 대체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겸손하고 소박하게 보이지만 시작과정과 운명과의 엄숙한 거리는 냉혹하게 치열하고 숙연하다. 이러한 심리상태에서 튕겨져 나오는 시적 언어가 세속적인 일상어와 어찌 같을 수가 있을까. “소리치는 나를 가지런히 쏟아내어 그날이 올 때까지 사뭇 촐랑거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운명 속에 잠재 되어 있는 소박한 소망이다“라고 피력한 그의 단상은 그의 시세계를 조망하는 단서가 된다. 시를 쓰는 소망이 운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너무도 진솔한 자세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시는 이러한 맥락에서 어렵지 않게 이해되고 거리낌 없이 공감하게 된다.   어느 사이/나도 모르게/스며든 향기가 있습니다.//눈이 마주칠 때면/향기가 짙어/차마/ 바라보는 것조차 힘겹습니다.// 강물을 따라/길게 펼쳐진 들판에/영롱히 피어난 들꽃 한 송이//마치 코 끝에 찡하게 느껴지는/블랙러시안 칵테일 향기.../그런 것입니다.//이 가을날// 새 바람을 타고 온 색 고은 들꽃은/ 기다림이 안타깝지 않기에/향기로만 남고 있습니다// 들꽃을 바라보는/가을 속의 나그네는/혼자이고 싶은 그에게서//툭/툭/툭/외투를 털고/떠날 것을 준비합니다.                                                - 전문   이 시에서 세계를 끌어안는 시인의 넓은 가슴이 드러난다. 들꽃은 인간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원시적 상징물이고, 들꽃의 향기는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호흡하면서 느끼는 후각적 형상물(이미지)이다. 세계의 존재자에 대한 물리적 상태의 단순한 감각상이 아니라 내면세계의 철학적 사유와 결합된 형상물로 표출된 결과이다. 세계를 가슴으로 끌어안고 무한히 열려 있지 않으면 보여 질 수 없는 일이다.                                      원시적 순수의 실체인 들꽃의 존재에 인간의 때 묻은 관념으로 덮씌우기를 거부하는 시적 화자는 “혼자이고 싶은 그에게 외투를 털고 떠날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가슴으로 끌어 안는 세계내의 존재는 그 순수의 절대 자유를 인정하고 구속하지 않겠다는 넉넉한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에 제시되는 “강물” “들판” “들꽃” “가을”등의 자연현상은 시인의 열려진 가슴에 안겨지면서 순수한 존재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언젠가부터/내 마음엔/호수와 봄비가 있습니다//산모퉁이/작은 찻집엔/계절 따라/향수 짓고//이름 없는/가수의 촉촉한 열창은/봄비를 삼키는 호수의/눈물입니다//헤이즐넛 커피향은/창틀 사이로 스며가고/창밖으론 또다시/계절이 스치옵니다//시간이 흐르고/음악이 멈추면/그 추억/다시/비 적신 호수에 담고/아픈 작별을 합니다//하얀 눈을 삼키는 호수와/다시 만날 수 있기에/내 심정 향수로 남기고/떠날 수 있습니다.                                   -전문   잔잔하게 속삭이며 호수의 수면을 적시는 봄비, 언제나 넉넉한 자세로 기다림의 몸짓을 잃지 않는 호수, 이러한 풍경은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만날 수 있고 정서적 감흥도 쉽게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별과 정한의 형식을 통하여 질서 지어주는 비범한 수법으로 시적 조형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내 마음엔 호수와 봄비가 있습니다“로 시작 되는 1연의 호수와 봄비의 이미지는 화자의 내면세계에 자리 잡고 이별의 정한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 산모퉁이 작은 찻집의 향수와 추억, 가수의 촉촉한 열창, 호수의 눈물, 창틀 사이로 스며가는 커피향, 흐르는 시간 등의 시적 영상은 모두가 이별의 정한을 환기하는 정서적 등가물이고 그 추억은 다시 비에 젖어 아픈 작별로 이어지면서(6연) 하얀 눈을 삼키는 호수와 다시 만날 수 있기에 내 심정 향수로 남기고 떠날 수 있습니다(끝연) 이 같이 시인의 내면세계에 숙성 된 철학적 사유의 응결체로 현시 된다. 떠남을 재회의 향수로 남겨 둔다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설에 근거한 자기 정서의 시적 표출이라 하겠다. 늘쌍으로 무심하게 스쳐가곤 하는 주변의 자연현상을 회자정리의 철학적 사유물로 잘 재단하여 이별과 만남의 질서를 부여해 준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시 쓰기를 위한 양식적(樣式的) 상상력이 풍부하게 드러나고 잘 훈련 된 시적 기교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관념이나 상상의 세계는 기교적 가공이 가해지지 않으면 공허한 허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춘광 시인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며 능란하게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교에만 능하고 주제의식이나 시정신이 치열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시의 양식적 기교와 정신적 치열성이 조화롭게 작품에 반영 된다는 것이다.   동해의 파도는/수평선 끝에 닿아/푸른색이 출렁입니다//사랑 하나,/금빛 모래밭에 숨기며/ 미소 짓는 여인의/휘어든 몸짓은 /찬란한 햇살로 아름답습니다//쏴아∼/밀려드는 바다의 연가!//거기 물방울의 벅찬 부서짐으로/태양빛 반짝이며/솜털같이 부드러운 여인의 얼굴에 고운 수를 놓습니다.//시리도록/ 아름다운 모습!/파도의 유혹에/솔바람이/시샘하며 지나칩니다. //금빛 모래 속/ 숨어 있던 사랑 하나/두 팔로 바다를 들어/덩실 춤을 춥니다. - 전문                                꿈과 사랑이 시로 형상화 되었다고 정리,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다. 관념이 형상물로 조형되었다는 의미다. 시로 형상화 되었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도 내포된 뜻이다. 在天成象(재천성상),在地成形(재지성형),變化見矣(변화견의)라는〔周易 〕말에서 보듯이 象과 形을 구별하였고, 象은 하늘에서 形은 땅에서 이루어짐을 뜻하여 形과 象이합한 [形象]이란, 관념의 세계와 감각세계의 萬物을 일컫는다. 사랑과 꿈은 우리의 의식 내부에서 꿈틀대는 초감각적 바람의 뜻인데 이를 형체 있도록 조형하는 것이 시적 형상물(形象物)이 된다. 는 시인의 사랑과 꿈이 시 작품으로 구현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파도가 수평선 끝에 닿아 푸른색으로 출렁이는 1연은 이상과 꿈의 감각적 현상이다. 수평선이란 하늘과 바다의 접경 지역, 언제나 멀리서 손짓하고 있는 그리움의 표상이다. 여기에 푸른색으로 출렁이는 파도는 역동성을 부여하는 입체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랑 하나 금빛 모래밭에 숨기고는 고이 간직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미지)이고, 휘어든 몸짓은 찬란한 햇살로, 아름답다 함은 사랑의 가시적 현란함이다. “파도의 유혹” “태양빛 반짝임” “바다” “여인의 얼굴” “솔바람” “금빛 모래” 등의 시어로 조형 되는 이미지는 사랑과 꿈의 형상을 위하여 동원 된 언어이고, 이러한 시어들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감각적 형상물로 현시된다. 시인의 주제의식과 기교적 표현에 힘입어 더욱 상승작용을 일으켜 작품의 격을 높이고 감동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다.     나 지금//그곳에 가고 싶어라//살갗 젖어드는 오솔길 따라 오르면//서울 시내가 장난감 병정 놀이터로 보이는 곳!//절간 앞 다다르면//향내는 코끝에서 그윽이도 향기로워// 기왓장 쓰러진 마당//내 영혼도 쓰러져 행복한 꿈으로,//당나귀 귀 쫑긋 세운 정재스님 반가운 //흘러내린 촛농 향내음 따라//가을이 내리는 곳//도봉산 석굴암/나 지금//그곳에 가고 싶어라……                                            - 전문   한번 읽고 나면 평범한 개인적 독백처럼 들리지만, 디시 찬찬이 읽어 보면 서정적 자아의 진솔한 의미와 만나게 된다. 철학적 사유의 깊이가 잘 드러나고 있다. 영원회기의 궁극적 문제에 접근하는 존재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 시인의 사유가 시적 화자를 통하여 이르고자 하는 이상향의 지향점인 고독한 섬나라가 보일 듯이 아른거리고 있다. 표면적인 소재와 배경은 범속한 세속의 거리이고 스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는 산사의 마당 같은 곳이지만 그러한 시적 상관물이 이끄는 진의는 영원과 맞닿아 있는 철학적 사유의 형상물인 것이다. “나 지금 그곳에 가고 싶어라”로 시작된 발단부터 철학적 사유의 의지를 암시하는 의도된 표현으로 읽혀진다. “살갗 젖어드는 오솔길 따라 오르면 서울 시내가 장난감 병정 놀이터로 보이는 곳”과 같은 표현은 이 시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라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거느린다. 살갗 젖어드는 병정놀이터 쯤으로 보이는 서울 시가지가 어울리면서 나 지금 그곳에 가고 싶어라까지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문맥화 하고 있다. 이 시가 서사적 구조가 아니고 서정적 자아의 독백적 구조이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 구축을 위한 객관적 상관물로 선택 되어 있음을 보는 것이다. 춘광 시인은 이러한 상징적 문맥을 통하여 보다 넓은 시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다른 시 한편을 더 보기로 한다.     내가 존재할 때는/창가에 든 햇살이/눈부실 때입니다.//내가 존재할 때는 아침 햇살 반짝이는/ 한강 위에 있을 때입니다.//내가 존재할 때는 /하얀 분필을 내려놓고/박수를 받을 때입니다//내가 존재할 때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 잔 할 때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진정 내가 존재할 때는/ 이렇게/밤을 깊이 불러들여/그리움을 쏟아/하얀 백지를 물들일 때라고/말할 수 없습니다. - 전문   이 작품 또한 철학적 사유의 산물로 볼 수 있는 상징적 구조라 할 수 있다. “내가 존재 할 때는”의 존재란 시어가 전편 5연에 걸쳐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동일한 문장이 거듭해서 제시됨은 읽기에 지루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존재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를 환기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상징적 문맥을 추출하는 근거를 찾게 된다. 무한이 열려 있고 그 실체를 영원히 밝힐 수 없는 나의 존재에 대한 실체를 암시와 환기를 통하여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이 상징시를 쓰는 시인이나 읽는 사람이 공감하면 서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이 시의 묘미는 끝 연에서 기발한 반응을 보이는 곳에 있다. 4연까지는 내가 존재할 때의 상황 여건이 긍정적으로 진술 되었으나 끝 연에서는 같은 맥락의 존재 상황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내가 존재할 때는…하얀 백지를 물들일 때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는 논리의 부정이나 비약이 아니라 기발한 시적 변용이다. 결국 나의 존재에 대한 무한한 개방성을 암시 한다고 하겠다. 긍정-긍정, 긍정-부정과 같은 문맥은 시에서 허용될 수 있는 내면적 타당성(내재율)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시작기법을 거리낌 없이 활용하고 있는 춘광은 좋은 시인이다.   시집 “꿈꾸는 시간”의 시 5편을 예시로 그의 시세계와 작품 경향을 살펴보면서 네 갈래의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다. 첫째 그는 세계를 끌어안는 넓은 시인의 가슴을 가졌다. 둘째 복잡한 내면세계를 시적으로 질서지어 주는 양식적 상상력이 풍부하다. 셋째 꿈과 사랑 같은 관념을 형상화 해내는 시적 지향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넷째 상징적 재문맥화를 통하여 철학적 사유의 심연을 탐색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철학의 빈곤이라는 작금의 우리 시단에 춘광 시인과 같은 철학적 사유의 심연을 탐색하는 시작품이 많이 생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끝”              
1021    박용철 시론을 중심으로 댓글:  조회:4495  추천:0  2015-04-20
  ● 연기와 화염을 뿜으며               타오를 수 있는 이 무명화(無名花) - 박용철 시론 -●                                             / 김정수 1.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박용철의 시론을 「시적 변용에 대하여」(『삼천리 문학』. 1938)라는 그의 글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순수시 용어의 문제와 시문학파 우리는 일반적으로 '순수문학'과 '순수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중에서 '순수문학'이란 비평적 용어라기 보단 일종의 관습적 어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즉 상업적 '대중문학'의 상대적 용어로 정착한 어휘라서 뚜렷한 학술적, 비평적 보편함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고, 다만 편의적으로 이용되는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순수시'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순수시'에 비길 만한 '대중시'의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이 용어는 우리 문학의 뚜렸한 유파적 변별의식과 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 용어의 사용은 각기 다르다. 어떤 논자들에게는 이 용어가 현재 문제되고 있는 '순수문학'이라는 용어와 함께 '예술파' '예술지상주의' '기교주의' 등등의 용어가 동일한 함의를 갖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순수시의 범주를 사회주의에 반기를 든 시이자 예술품으로 완성된 시라고 이해하는 논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30년대 초반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유형의 시인군이 여기에 포함될 터이다. 이로 볼 때 시문학파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향에 '순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비평적 기준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시문학파의 시론은 순수시론이 아닌 시문학파 시론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 시문학파의 발생요건을 몇 가지로 간추릴 수 있는데, 그 요인들은 크게 문학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문학 외적인 요인으로는 '당대 정치적 현실의 악화' 문제와 한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광범한 확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문학 내적 요인으로는 안서 김억의 시론 작업과 해외 문학파의 성립, 그리고 모더니즘시와 시론의 형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러한 문학내외적 요인들로 인해 시문학파는 30년대 한국시단의 한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30년대 문학의 전방위적인 반 카프 경향이라는 심리적 공조가 보더 심층적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3. 박용철, 「시적 변용의 길」 그는 "우리의 모든 체험은 피 가운데로 용해한다"고 말한다. 즉 "피 가운데로, 피 가운데로, 한낱 감각과, 한 가지 구경과, 구름같이 떠올랐던 생각과, 한 근육의 움직임과, 읽은 시 한줄, 지나간 격정이 모두 피 가운데 알아보기 어려운 용해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는 보통 생각하는 것같이 단순히 애정이 아닌 것이다. 시는 체험인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체험만으로 시는 되지 않는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긴 생애를 두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의미와 감미(甘味)를 모으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의미와 감미를 모은다는 것은 박용철에게는 기억의 행위이다. "모르는 지방의 길, 뜻하지 않았던 만남,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이별"등을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이런 기억의 행위는 곧 한 편의 시를 완성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러 밤의 사랑의 기억, 진통하는 여자의 부르짖음과 아이를 낳고 해쓱하게 잠든 여자의 기억"들이 시인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억이 많아진 때 기억을 잊어버릴 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말할 수 없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기억만으로는 시가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들이 우리 속에 피가 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는 이름없는 것이 된 다음이라야" 한 줄의 시가 만들어진다. 즉, 기억이 기다림을 통하여 나와 일체가 될 때 시가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열 줄의 좋은 시를 다만 기다리고 일생을 보낸다면 한줄의 좋은 시도 쓰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좋은 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한한 고난과 수련의 길을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용철은 "시인은 진실로 우리 가운데서 자라난 한 포기 나무이다"고 말한다. 즉 시인이 "뿌리를 땅에 박고 광야에 서서 대기를 호흡하는 나무로 서 있을 때만 그의 가지에서는 생명의 꽃이 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꽃을 피우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래서 박용철은 시인을 두고 "비상한 고심과 노력이 아니고는 그 생활의 정을 모아 표현의 꽃을 피게 하지 못하는 비극을 가진 식물이다"고 말한다.  「시적 변용의 길」이라는 글에서 박용철은 시를 쓰는 과정의 구체화와 함께 시인의 자질됨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박용철에게 시는 시인의 자기완성이다. 시는 곧 시인의 삶 자체이자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독일의 시인 릴케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먼저 쓴다는 것이 네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일인가를 살펴보라. 그리고 밤과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네 스스로 물어보라 - 그 글을 쓰지 않으면 너는 죽을 수 밖에 없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죽어도 그런 내심의 요구가 있다면 그때 너는 네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건설하라"  4. 박용철 시론의 의의 박용철 시론의 의미는 창작 체험의 내밀한 부분을 최초로 언표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 시어로서의 언어가 지닌 마술성을 이 땅에서 최초로 논리화했다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당대의 많은 시인들이 제대로 된 한국어의 훈련 내지는 기술의 습득을 지니지 않고 조야한 논리나 구호만으로 시를 구성하려 했던 잘못에 대한 엄숙한 경고의 의미도 지닌다. 뿐만 아니라 박용철 논리의 많은 부분은 독특한 시론이 아니라 시를 쓰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환기했다는 의미도 지닌다. 즉, 시인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시적 완성에의 경로를 강조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1930년대에 형성된 이 시문학파 시론은 우리 근대문학이 그 시작에서 부터 빠져버렸던 오류를 극복하는데 중추적 역활을 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란 문학이며 그것은 언어를 매재로 하는 예술의 하나일뿐이라는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널리 인지케 함으로써 우리 근대 문학의 한 단계 비약을 가능케 했다는 말이다. 5. 나가면서 조금씨 게을러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아닌 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젠 정말 떠날 모양...
1020    詩야 나와 놀아보자... 댓글:  조회:4564  추천:0  2015-04-19
  @@ 시는 언어의 꿈이요, 삶의 증거이다. 시를 읽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시를 읽지 않고 잘 살 수는 없다. 시는 우리의 잃어버린 세계를 보여주고 어느 순간 구원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또 다른 자아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시를 읽어야 한다. 좋은 시를, 당신을 위로하는 시가 아닌 삶을 직시하는 고통을 주는 시를. 이를테면 거리에 좌판을 펼친 노인의 감은 눈과 벌어진 입이 만들어 준 주름진 노래와 짐 가득 실은 수레를 끄는 아버지와 딸의 뜨거운 노래, 창녀의 찢어진 입술에서 나오는 새의 노래등 시는 밤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많다. 그러면 당신은 잘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시는 적어도 좋은 시는 삶의 단단한 벽에서 터져 나온 바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없다면 생도 없다.   1. 시의 정의  시의 어원 같은 것은 우리가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시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내리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엘리어트의 '시에 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는 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이 말은 시대에 따라서, 시인에 따라서, 시의 종류에 따라서 시를 보는 안목이 모두 다름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지극히 상식적인 시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다.     " 시는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운율적인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언어 예술이다"(운문 문학)     "시란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유기적 구조를 지닌 운율적 언어로 형상화한 운문문학의 한 갈래이다." 1) 동양의 시관   동양 일원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詩'라는 한자의 구조를 보면 '言'과 '寺'의 합자(合字)임을 알 수 있다. '言'은 모호한 소리인 '음(音)'이나 말을 나타내는 '담(談)'이 아닌 '분명하고 음조가 고른 말'을 뜻한다. '寺'는 '持'와 '志'의 뜻을 가지고 있다. '持'란 손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말하며 '志'는 '우리의 마음이 어떤 대상을 향해서 곧게 나감'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시라는 말 속에는 '손을 움직여 일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동양의 시에도 서구와 같은 창작이나 행동의 뜻이 담긴 동일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詩三百 一言而蔽之曰思無邪(시 3백 수는 한마디로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孔子 (2) 詩言志(시는 뜻을 말로 나타낸 것)→書經   * 동양적 시관의 본질 : 흔히 '사무사(思無邪)'를 교훈적인 입장의 표명으로 보고, 동양 시관의 본질을 여기에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자가 편찬한 시경이 서정시로만 이루어져 있는 점이라든지, 주희가 시를 '좋은 소리와 마디가 있는 말에 의한 성정의 자연스런 발로'라고 본 점을 고려할 때, 서정적인 면이 결코 부차적인 사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서양의 시관 (1) 시는 운율적 언어에 의한 모방이다.→Aristoteles (2) 시는 힘찬 감정이 자유롭게 분출된 것이다.→ W. Wordsworth (3) 시는 체험이다.→ R.M.Rilke (4) 시는 미의 운율적 창조이다.→ E.A.Poe (5) 시는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의 도피이고,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T.S.Eliot (6) 좋은 시는 내포와 외연의 가장 먼 양극에서 의미를 통일한 것이다.→ Allen Tate (7) 시는 영원한 진실속에 표현된 삶의 이미지이다.→ P.B.Shelly (8) 시는 기본적으로 인생에 대한 비평이다.→ Matthew Arnold   * 서양 시관의 변화 과정 : 아리스토넬레스의 시에 대한 정의는 희곡과 서사시를 염두에 둔 이야기 문학이었다. 이러한 모방론의 전통은 18세기까지 이어져,서정시를 시문학 전체에 있어서 하급의 장르로 생각했었다. 19세기 이후 표현론이 대두하면서 비로소 시가 시인이 도달한 놀라운 정신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를 황홀하게 하고, 깊이 감동시키며, 심오한 즐거움을 준다는 주장을 하게되었다.     3) 현대의 시관 :   *일반적으로, 고양된 시인의 정서에 의해 독자에게 감흥을 줌으로써 사람의 윤리 의식의 밑바탕을 튼튼히 해 준다는 표현론적 효용론에 선다.  *시를 시인의 내부에 있는 본질과 연결시켜, 구체적인 작품보다 어떤 정신이나 성질로 보는 태도가 있다.    시의 정의 : 자신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 한국어로 보통 시라고 할 때에는 그 형식적 측면을 주로 가리켜 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시작품(詩作品:poem)을 말할 경우와, 그 작품이 주는 예술적 감동의 내실(內實)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정(詩情) 내지 시적 요소(詩的要素:poetry)를 말할 경우가 있다. 전자는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통합된 언어의 울림·리듬·하모니 등의 음악적 요소와 언어에 의한 이미지·시각(視覺) 등 회화적 요소에 의해 독자의 감각이나 감정에 호소하고 또는 상상력을 자극하여 깊은 감명을 던져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작품의 일종으로, 거기에서는 언어의 정동적(情動的)인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언어의 배열과 구성(構成)이 요구된다. 후자에 관해서는 시작품뿐만 아니라 소설·희곡 등의 문학작품으로부터 미술·음악·영화·건축 등의 예술작품, 더 넓혀서 자연이나 인사(人事)·사회현상 속까지 그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 가능하다.   시는 크게 서정시(敍情詩)·서사시(敍事詩)·극시(劇詩)의 세 가지로 구별한다. 서정시는 개인의 내적 감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근대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영어의 lyric poem이나 프랑스어의 po럐e lyrique는 본시 lyre(七絃琴)에 맞추어 노래 불렀던 데서 온 호칭이다. 서사시(epic poem)는 민족·국가의 역사나 영웅의 사적(事蹟)과 사건을 따라가며 소설적으로 기술하는 것인데 그리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극시(dramatic poem)는 극형식을 취한 운문(韻文) 내지 운문에 의한 극을 말하는데 셰익스피어, 코르네유, 라신, 괴테 등의 희곡이 이에 해당한다. 시에는 그 밖에 흔히 행(行)을 나눠서 쓰는 시와 대조되는 것으로 산문의 형식을 취하면서 그 속에 시적 감명(詩的感銘)을 담은 산문시(prose poem)가 있는데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로트레아몽의 《마르도롤의 노래》,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등이 유명하다. 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시어를 배열·구성하는 정형시(定型詩)가 있는가 하면 그와 같은 형식적인 규칙을 무시하는 자유시가 있으며 또한 그 내용에 따라 생활시(生活詩)·사상시(思想詩)·연애시(戀愛詩)·종교시(宗敎詩)·풍자시(諷刺詩)·전쟁시(戰爭詩) 등의 호칭도 쓰여지고 있다. 시 관련 어록 [1]시는 악마의 술이다. 《A.아우구스티누스/반회의파 反懷疑派》     [2]시를 쓰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그건 낚시질하고 똑같네. 아무 소용이 없는 것같이 보이지.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좋은 수확이 되는 법이거든. 《E.크라이더/지붕 밑의 무리들》     [3]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호라티우스/시론 詩論》     [4]시는 신(神)의 말이다. 그러나 시는 반드시 운문(韻文)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곳곳에 충일(充溢)한다. 미와 생명이 있는 곳에는 시가 있다. 《I.S.투르게네프/루딘》     [5]나의 시는 어지럽지만 나의 생활은 바르다. 《M.V.마르티알리스/풍자시집 諷刺詩集》     [6]시란 것은 걸작이든가, 아니면 전연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J.W.괴테》     [7]위대한 시는 가장 귀중한 국가의 보석이다. 《L.베토벤》     [8]시는 거짓말하는 특권을 가진다. 《플리니우스》     [9]시란 미(美)의 음악적인 창조이다. 《E.A.포》     [10]시는 단지 그 자체를 위해 쓰인다. 《E.A.포》     [11]시는 단 하나의 진리이다.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전한 마음의 표현이다. 《R.W.에머슨》     [12]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하나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이다. 《P.B.셸리》     [13]시란 그 시를 가장 강력하고 유쾌하게 자극하는 방법으로 사상의 심벌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예술이다. 《W.C.브라이언트》     [14]즉흥시는 진정 재지(才知)의 시금석(試金石)이다. 《J.B.P.몰리에르》     [15]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시는 다만 시를 위한 표현인 것이다. 《C.P.보들레르》     [16]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C.P.보들레르》     [17]감옥에서는 시는 폭동이 된다. 병원의 창가에서는 쾌유에의 불타는 희망이다. 시는 단순히 확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재건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시는 부정(不正)의 부정(否定)이 된다. 《C.P.보들레르/낭만파(浪漫派) 예술론(藝術論)》     [18]시란 영혼의 음악이다.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다. 《볼테르》     [19]한 줄의 글자와 공백으로 구성되는 시구는 인간이 삶을 흡수하고 명확한 말을 되찾아내는 이중의 작용을 한다. 《P.클로델/입장(立場)과 제언(提言)》     [20]나는 부재(不在)를 위해서 제기된 언어다. 부재는 모든 나의 재행사(再行使)를 격파한다. 그렇다. 그것은 다만 언어뿐이라는 것의 재빠른 소멸이다. 그리고 그것은 숙명적인 오점이며 헛된 완성이다. 《Y.본푸아》     [21]시의 세계는 식물계, 이것은 또한 지상의 사랑과 미의 왕국이다. 《R.기카드》     [22]시란 냉랭한 지식의 영역을 통과해선 안 된다. ……시란 심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마음으로 통해야 한다. 《J.C.F.실러》     [23]과학의 적절하고 직접적인 목적은 진리를 획득하고 전달하는 것이며, 시의 적절하고 직접적인 목적은 즉흥적인 즐거움을 전달하는 것이다. 《S.T.콜리지》     [24]내용이 끝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황금어의 피안에, 도시 성곽의 외부에, 토론의 형자(形姿)를 뒤로 하고, 사고 체계를 벗어나서 신비로운 장미는 개화한다. 서릿발의 열기(熱氣) 속에, 도배지의 희미한 무늬 속에, 제단의 뒷벽 위에, 피어나지 않는 불꽃 속에 시는 존재한다. 《M.아널드》    [25]시란 본질적인 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다. 《M.아널드》     [26]시란 간단히 말해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다. 《M.아널드》     [27]시란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로움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그 기원을 둔다. 《W.워즈워스/서정민요집 抒情民謠集》     [28]말은 어느 편이냐 하면, 시의 수면기를 재촉하는 부분이며, 상상(想像)이 시의 생명이다. 《O.펠섬/각오 覺悟》     [29]시는 최상의 행복, 최선의 정신, 최량이고 최고의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P.B.셸리/시가옹호론 詩歌擁護論》     [30]고대인의 시는 소유의 시며, 우리들의 시는 동경의 시다. 전자는 현재의 지반 위에 굳게 서지만, 후자는 추억과 예감의 사이를 흔들려 움직이고 있다. 《A.W.슐레겔》     [31]시란 어휘를 사용하여 상상력 위에서 하나의 환상을 산출해 내는 예술을 의미한다. 《T.B.매콜리》     [32]시란 이성의 조력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리와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시의 본질은 발견이다. 예기치 않은 것을 산출함으로써 경이와 환희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S.존슨》     [33]시인은 그의 예민한 흥분된 눈망울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굴리며, 상상은 모르는 사물의 형체를 구체화시켜, 시인의 펜은 그것들에 형태를 부여해 주며 형상 없는 것에 장소와 명칭을 부여해 줍니다. 《W.셰익스피어》     [34]시의 언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 《W.B.예이츠》     [35]시인의 시는 국어처럼 직접적이고 자연스런 것이어야 한다. 《W.B.예이츠》     [36]나에게 있어서 시는 목적이 아니고 정열이다. 《E.A.포》     [37]시적(詩的)이 아닌 한,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A.지드/사전(私錢)꾼》 [38]시는 모든 예술의 장녀(長女)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의 양친이다. 《W.콩그리브》     [39]만약 사람이 마력적인 시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 때부터 그대는 아름다운 생(生)을 알게 된다. 《J.F.아이헨도르프》     [40]도덕적인 시라든가 부도덕한 시라든가에 대해서 말할 것은 아니다. 시는 잘 쓰여져 있는가 아니면 시원찮게 쓰여져 있는가, 그것만이 중요하다. 《O.F.O.W.와일드/영국의 르네상스》     [41]시는 예술 속의 여왕이다. 《스프라트》     [42]시는 마치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 나가는 모래와 같은 것이다. 《R.M.릴케》     [43]시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은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나이 젊어서 이미 남아돌아갈 만큼 가지고 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시는 정말로 경험인 것이다. 《R.M.릴케/말테의 수기(手記)》     [44]나이 어려서 시(詩)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그것도 될 수만 있으면 칠십 년, 혹은 팔십 년을 두고 벌처럼 꿀과 의미(意味)를 모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최후에 가서 서너 줄의 훌륭한 시가 씌어질 것이다. 《R.M.릴케/말테의 수기(手記)》     [45]시란 진리며 단순성이다. 그것은 대상에 덮여 있던 상징과 암유(暗喩)의 때를 벗겨서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고 비정하고 순수하게 될 정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J.콕토/암살(暗殺)로서의 미술(美術)》     [46]열여덟 살 때 나는 시라는 것은 단순히 남에게 환희를 전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무 살 때, 시는 연극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나는 가끔 시를, 갱도(坑道) 속 함정에 빠져서 미칠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자기를 구출해 줄 다른 갱부들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희망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시인은 성자여야 합니다. (*장 콕토와의 인터뷰) 《P.토인비》     [47]시란 삶을 육성시키고, 그러고 나서 매장시키는 지상의 역설이다. 《C.샌드버그》     [48]시는 근본적인 언어방법이다. 그것에 의해 시인은 그의 사상과 정서는 물론 그의 직각적 메커니즘을 포착하고 기록할 수 있다. 《M.C.무어》     [49]시는 오직 인간의 능력을 발양(發揚)하기 위해서 우주를 비감성화시킨 것이다. 《T.S.엘리엇/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간략사전(簡略辭典)》     [50]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고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다. 《T.S.엘리엇/전통(傳統)과 개인(個人)의 재능(才能)》     [51]시의 세계로 들어온 철학이론은 붕괴되는 법이 없다. 왜냐 하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이 진리이건 우리가 오류를 범했건 그런 것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의미하에서는 그 진리가 영속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T.S.엘리엇/평론선집 評論選集》     [52]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데 있다. 《T.S.엘리엇/시(詩)의 효용(效用)과 비평(批評)의 효용(效用)》     [53]시란 「무엇은 사실이다」 하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좀더 리얼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다. 《T.S.엘리엇》     [54]리듬과 운율은 시에 있어 인위적이며 외면적인 첨가물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변화가 일어날 때 이들은 점점 더 무미하게 되어 드디어는 경시적이고 방해적 요소가 되고 만다. 《F.S.플린트》     [55]나는 정서를 스며들게 하는 것이――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감각 속에 작자가 느낀 것에 상응하는 하나의 진동을 일으키는 것――시의 특유한 기능이라 생각한다. 《A.E.하우스먼》     [56]우리의 일상생활의 정서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엔 차이가 없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 이것만이 단지 근본적인 차이일 뿐이다. 《I.A.리처즈》     [57]한 편의 시는 하나의 의식(儀式)이다. 따라서, 형식적이고 의식적 성격을 갖춘다. 시가 가지는 언어의 용법은 회화의 용어와는 달리 의식적이며 화려한 꾸밈새가 있다. 시가 회화의 용어나 리듬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것과 대조를 이루게 마련인 규범을 미리 전제로 하고 의식적으로 형식을 피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 《W.H.오든》     [58]시는 몸을 언어의 세계에 두고 언어를 소재로 하여 창조된다. 《M.하이데거/시론 詩論》     [59]시는 우리들이 익숙해서 믿어 버리고 있고 손쉽게 가깝고 명백한 현실에 비해서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 같은 느낌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뒤바뀐 것으로서, 시인이 말하고 시인이 이렇다고 긍정한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 《M.하이데거/횔덜린과 시(詩)의 본질(本質)》 [60]시는 법칙이나 교훈에 의해 완성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감각과 신중함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J.키츠》     [61]아무리 시시한 시인이 쓴 글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정말로 그를 이해한다면 좋은 시를 읽어 버림으로써 받은 인상보다야 훨씬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나. 내가 시를 읽고 싶지 않을 때, 시에 지쳤을 때, 나는 항상 자신에게다 그 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타이르는 바일세. 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단히 아름다운 감정이 내 마음속에서 진행중일 것이라고 타이르기도 하네. 그래서 언젠가 어느 순간에 내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가 있어 그 훌륭한 감정을 꺼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네. 《B.A.W.러셀/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對話)》     [62]시는 보통의 이성의 한계를 지난 신성한 본능이며 비범한 영감이다. 《E.스펜서》     [63]시는 어떤 리듬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체계화시켜 반복한다. 이것이 운율이다. 《R.S.브리지스》     [64]시는 시인의 노고와 연구의 결과이며 열매이다. 《B.존슨》     [65]시는 인류에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법칙과 패턴을 제공해 준다. 《B.존슨》     [66]시의 으뜸가는 목적은 즐거움이다. 《J.드라이든》     [67]시란 우리에게 다소 정서적 반응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해 주는 언어이다. 《E.A.로빈슨》     [68]한 편의 시는 그 자체의 전제(前提)를 훌륭하게 증명해 놓은 것이다. 《S.H.스펜더/시(詩)를 위한 시(詩)》     [69]시는 결국 야회복을 입은 산문은 아니다. 《J.콕토》     [70]실러는 어떤 편지에서(괴테에게 쓴 것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시적(詩的)인 기분」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있다. 실러가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나는 알 것 같다. 「시적인 기분」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연을 받아들일 때의 기분이고, 사상이 자연과 마찬가지로 생동하고 있다고 느낄 때의 기분일 것이다. 《L.비트겐슈타인/반철학적(反哲學的) 단장(斷章)》     [71]시는 자기 속에 가지고 있지 못하면 아무 데에서도 찾지 못한다. 《J.주베르/팡세》     [72]미합중국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詩)이다. 《W.휘트먼/풀잎》     [73]위대한 시는 아주 오래오래 공동의 것이고, 모든 계급과 얼굴색을, 모든 부문과 종파를, 남자만큼이나 여자를, 여자만큼이나 남자를 위한 것이다. 위대한 시는 남자나 여자에게 최후가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W.휘트먼/풀잎》     [74]언어는 이미 강제적으로 보편화하는 것으로 시는 보편화를 체현(體現)하고 사상에 활기를 주고, 다시 말하자면 우수한 실재(實在), 실제의 세계보다 고귀하고 더 선택된 세계를 낳게 된다. 시는 신자(信者)의 눈으로 볼 때 종교적 신앙이 부활에서 기대하는 효능을 사물에 대해서 부여한다. 시는 사물을 더욱 아름답고 순수하고 위대한 것으로 표현하며, 불멸성의 후광(後光)으로 이것을 둘러싼다. 그러므로 시인은 다른 생활양식의 예언자, 변용을 이루는 자연과 인간의 직관자이지만 산문은 이 세계의 언어이다. 시인은 올림포스의 주민이 한때 하계(下界)에서 생활을 한 자이며, 테살리아의 페레스 왕 아드메도스 곁에서 양을 지키는 아폴론이다. 거기서 시를 신들의 언어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문자 그대로 진실인 것이다. 《H.아미엘/일기 日記》     [75]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모두가 그렇듯이 시도 경탄을 강요한다. 《S.말라르메/예술(藝術)의 이단(異端)》     [76]몇 개의 발성으로 마치 주문(呪文)과도 같이 세속언어와는 별개의 새롭고 온전한 어휘를 재창조하는 시구는 말의 완전한 독립을 이룩한다. 《S.말라르메/예술(藝術)의 이단(異端)》     [77]비전의 확장. 《K.지브란/나는 네 행복(幸福)을 기린다》     [78]빅토르 위고는 그의 전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시(詩)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표현은 일종의 기이함이 될 수밖에 없으며, 한 작품에 그런 직접적 표현이 범람하고 있으면 그 작품 전체의 시적 아름다움을 말살하고 말 것이라고 증명하고 있다. 《P.발레리/문학론 文學論》     [79]시는 이해하기보다도 짓기가 더 쉽다. 《M.E.몽테뉴/수상록 隨想錄》     [80]시라는 것은 시적 천재 그 자체로부터 생기는 특성이며, 이와 같은 시적 천재가 곧 시인 자신의 시혼에 비치고 있는 심상(心像)이나 사상 또는 정서를 사로잡아서 이것을 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S.T.콜리지/시(詩)의 철학적(哲學的) 정의(定義)》     [81]시는 모든 지식의 숨결이자 정수(精髓)이다. 《W.워즈워스/서정민요집 抒情民謠集》     [82]위대한 시에는 이러저러한 것――깊은 생각, 훌륭한 소리, 또는 생생한 이미저리(imagery)――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일반론은 한낱 무지몽매한 독단에 불과하다. 시는 생각이 없을 경우는 물론이고 의미가 없을 경우에도 거의 성립할 수 있고, 혹는 감각적(또는 형식적) 구조 없이도 「거의」 성립할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에도 시가 도달할 수 있는 극점(極點)까지 도달한다. 《I.A.리처즈/시(詩)의 분석(分析)》     [83]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맥뤼시/시론 詩論》     [84]시(詩)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다. 하나의 짤막한 시편(詩篇) 속에서 시는 우주의 비전과 영혼의 비밀과 존재와 사물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시가 단순히 삶의 시간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삶만 못한 것이다. 시는 오로지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삶으로써만 삶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그 때서야 시는 가장 산만하고 가장 이완된 존재가 그의 통일을 획득하는 근원적 동시성(同時性)의 원칙이 된다. 다른 모든 형이상학적 경험들은 끝없는 서론(緖論)으로 준비되는 것인 데 비하여 시는 소개말과 원칙과 방법론과 증거 따위를 거부한다. 시는 의혹을 거부한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기껏해야 어떤 침묵의 서두(序頭) 정도이다. 우선 시는 속이 텅 빈 말을 두드리면서, 독자의 영혼 속에 사고(思考)나 중얼거림의 어떤 계속성을 남기게 될지도 모르는 산문(散文)과 서투른 멜로디를 침묵시킨다. 그러고 나서 진공(眞空)의 울림을 거쳐서 시는 저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 《G.바슐라르/시적(詩的) 순간(瞬間)과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순간(瞬間)》 [85]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詩經)에 있는 삼백 편의 시(詩)는 한 마디로 말해 사악함이 없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 《논어 위정편 論語 爲政篇》     [86]고시(古詩)는 충후(忠厚)를 주로 했다. 시라는 것은 언어만 가지고 구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깊이 그 의도를 관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기평(譏評)할 때에는 그 소위(所爲)의 악을 얘기하지 아니하고 그 벼슬의 존비와 차안의 미려를 들어 백성의 반응을 주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소식 蘇軾/동파전집 東坡全集》     [87]시란 뜻이 향해 가는 바라, 마음 안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 《모시 서 毛詩 序》     [88]시란 천지의 마음이요, 군덕(君德)의 사원이며 만물의 문호다. 《연감류함 淵鑑類函》     [89]시부(詩賦)란 선하거나 추한 덕을 칭송하는 길이며, 슬프거나 즐거운 정을 배설하는 길이다. 《왕부 王符/잠부론 潛夫論》     [90]시란 정(情)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 《백거이 白居易》     [91]시란 정신의 떠오른 영화(英華)요, 조화의 신비한 생각이다. 《서정경 徐禎卿》     [92]시에 아홉 가지 마땅치 않은 체격이 있으니, 이것은 내가 깊이 생각해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한 편 안에 고인의 이름을 많이 썼으니, 이것은 한 수레 가득히 귀신을 실은 체격이다. 고인의 뜻을 모조리 앗아다 쓴 것이 있으니, 용한 도적질도 오히려 옳지 못한데 도적질조차 용하지 못하니, 이것은 서툰 도적이 잡히기 쉬운 체격이다. 어려운 운을 달기는 했는데 근거(根據)한 곳이 없다면 이것은 쇠뇌를 당겼으나 힘이 모자란 격식이다. 그 재주는 헤아리지 않고 운을 번드레하게 달았다면 이것은 술을 제 양에 넘도록 먹은 격이다. 어려운 글자를 쓰기 좋아해서 남을 쉽게 현혹하려 했다면 이것은 함정을 파 놓고 장님을 인도하는 체격이다. 사연은 순탄하지 못하면서 끌어다 쓰기를 일삼는다면 이것은 강제로 남을 내게 따르게 하려는 체격이다. 속된 말을 많이 쓴다면 이것은 시골 첨지가 모여 이야기하는 체격이다. 기피해야 할 말을 함부로 쓰기를 좋아한다면 이것은 존귀를 침범하는 체격이다. 사설이 어수선한 대로 두고 다듬지 않았다면 이것은 잡초가 밭에 우거진 체격이니, 이런 마땅치 못한 체격을 다 벗어난 뒤에야 정말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 《이규보 李奎報/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93]무릇 시(詩)는 뜻을 주장으로 하는데, 뜻을 갖추기가 제일 어렵고 사연을 엮는 것이 그 다음이다. 뜻은 또한 기(氣)를 주장삼으니 기의 우열(優劣)에 따라 깊고 얕음이 있다. 그러나 기는 하늘에 근본하여 배워서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가 모자라는 자는 글을 만들기에만 힘쓰고 뜻을 먼저 두려 하지 않는다. 대개 그 글을 새기고 치장함에 있어서, 구절을 단청(丹靑)하면 실로 아름답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깊고 무거운 뜻이 없어서 처음 읽을 때는 잘된 듯하나 두 번째 씹으면 벌써 맛이 없다. 《이규보 李奎報/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94]세상에서 말하기를, 시는 문(文)의 쇠약한 것이요 율(律)은 시의 변한 것이라 하지만, 이것은 특별히 아로새기고 엮어 가는 공교함만을 가리킨 것뿐이다. 대체로 성정(性情)을 다스리고 풍속의 교화에 통달하는 일이 시 아니고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노수신 盧守愼/소재집 蘇齋集》     [95]무릇 남겨 두는 시는, 말은 간단하고 뜻은 극진한 것을 아름답다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과장하거나 풍부하고 화려할 것은 아니다.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96]시라는 것은 기(氣)를 주(主)로 한다. 기(氣)는 성(性)에서 나오고 뜻은 기에 의지하며 말은 정(情)에서 나온다. 정이란 것은 즉 뜻이다. 그리고 신기(新奇)한 뜻은 말을 만들기가 더욱 어렵다. 자칫하면 생경하고 난삽하게 된다. 그러나 문순공(文順公) 같은 이는 경사백가(經史百家)를 골고루 열람하고 그 꽃다운 향기에 삶아지고 고운 채색에 물들여졌다. 그런 까닭에 그 말은 자연히 풍부하고 고와서 비록 새로운 뜻의 지극히 미묘하고 어려워서 형상하기 어려운 곳이라도 그 말이 곡진(曲盡)하고 다 정숙(精熟)하다. 대체로 표현하는 재주가 시정(詩情)을 이기면 비록 아름다운 뜻이 없더라도 말은 오히려 원숙하지만, 시정이 표현하는 재주를 이기면 말이 비근(鄙近)하고 산만하여서 아름다운 뜻이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된다. 정과 재주가 겸비된 뒤라야 그 시는 볼 만한 것이 있는 것이다.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97]에 이르기를, 「기(氣)는 싱싱한 것을 숭상하고 말은 원숙(圓熟)코자 하는데, 초학(初學)의 시는 기가 싱싱한 다음이라야 장년(壯年)이 되어서 기가 표일(飄逸)하고, 장년의 기가 표일한 다음이라야 노년(老年)이 되어서 기가 호탕(豪宕)하여진다.」 하였다.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98]시라는 것은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본디 비겁하다면 제아무리 고상한 표현을 하려 해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사상이 본디 협애하다면 제아무리 광활한 묘사를 하려 해도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시를 쓰려고 할 때는 그 사상부터 단련하지 않으면 똥무더기 속에서 깨끗한 물을 따라 내려는 것과 같아서 일생토록 애를 써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천인 성명의 법칙을 연구하고 인심 도심의 분별을 살펴 그 때묻은 잔재를 씻어 내고 그 깨끗한 진수를 발전시키면 된다. 《정약용 丁若鏞/증언 贈言》     [99]대체로 두보(杜甫)의 시가 모든 시인들의 시보다도 으뜸인 점은 삼백 편의 사상을 잘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삼백 편은 모두가 충신·효자·열부·친우들의 측달충후한 사상의 표현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고 퇴폐한 습속을 통분히 여기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며, 진실을 찬미하고 허위를 풍자하며 선을 전하고 악을 징계하는 사상이 없으면 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의지가 확립되지 못하고 학식이 순정하지 못하며 큰 도를 알지 못하고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으며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없는 자가 시를 지을 수 없다. 《정약용 丁若鏞》     [100]보기 좋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모아 놓고 시라고 하는 것이야 비천한 잡배의 장난에 불과하다. 시는 선언이다. 만천하의 현재뿐 아니라 진미래제(盡未來際)까지의 중생에게 보내는 편지요, 선언이요, 유언이다. 《이광수 李光洙》     [101]시는 그 시인의 고백이다. 신의 앞에서 하는 속임 없는 고백이다. 구약에 시편만이 아니라 무릇 시는 시인의 심정 토로다. 시인은 시에서 거짓말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광수 李光洙/문학평론 文學評論》     [102]작품에는 그 시상(詩想)의 범위, 리듬의 변화, 또는 그 정조(情調)의 명암에 따라, 비록 같은 한 사람의 시작(詩作)이라고는 할지라도, 물론 이동(異同)은 생기며 또는 읽는 사람에게는 시작 각개의 인상을 주기도 하며, 시작 자신도 역시 어디까지든지 엄연한 각개로 존립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 마치 산색(山色)과 수면(水面)과 월광성휘(月光星輝)가 모두 다 어떤 한때의 음영에 따라 그 형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달리 보이도록 함과 같습니다. 물론 그 한때 한때의 광경만은 역시 혼동할 수 없는 각개의 광경으로 존립하는 것도, 시작의 그것과 바로 같습니다. 《김소월 金素月/시혼 詩魂》     [103]시란 작렬이다. 시의 생성은 아메바적 분열작용에서만 유래한다. 시와 시인은 같은 조각이다. 《김상용 金尙鎔》     [104]시를 직업으로는 못 한다. 정절(貞節)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까. 《김상용 金尙鎔》     [105]시란 곧 참이다. 《함석헌 咸錫憲/아름다움에 관하여》     [106]시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새로 출발하도록 고무하며 그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다. 《박두진 朴斗鎭/시(詩)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107]뒤집어서 말하자면 시는 새벽에 엄습하는 어두운 그림자, 죽음――그것을 이기는 기도, 삶 자체의 가장 순수한 보람의 사랑보다도 어느 의미에서는 더 충족적이며 순수한 자각과 생명 욕구의 가장 포괄적인 발현일 수 있는 것이다. 시가 더 내적이며 더 구체적이며 더 현실적인 삶의 징표(徵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삶의 내용, 가장 선택된 마지막 낙원, 가장 가능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되는 셈이다. 《박두진 朴斗鎭/시(詩)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108]시는 천계(天啓)다. 그러나 그 천계는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조지훈 趙芝薰/영원(永遠)과 고독(孤獨)을 위한 단상(斷想)》     [109]시란 지·정·의가 합일된 그 무엇을 통하여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조지훈 趙芝薰/영원(永遠)과 고독(孤獨)을 위한 단상(斷想)》     [110]시를 쓴다는 것은 생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 정신에서 결실되는 것이니,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더 아름답게 영위하려고 의욕하고 그것을 추구·갈망하는 데서 제작된다면 그 시인의 한 분신(分身)이 아닐 수 없다. 《신석정 辛夕汀/나는 시(詩)를 이렇게 생각한다》     [111]시에 있어서의 기술이란 필경 언어 사용술을 말하는 것인데, 시상은 언어를 통하여서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상에는 이미 거기에 해당되는 기술이 저절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 안에서 언어로 형성되는 시상을 그대로 문자로 옮기면 시가 된다. 《오지호 吳之湖》     [112]시란 사랑이다. 《김영일 金英一/동심 童心》     [113]시 또한 짙은 안개가 아닌가. 답이 없는 세계, 답이 있을 수 없는 세계, 그 안개 같은 실재를 지금 더듬고 있는 거다. 《조병화 趙炳華/인생(人生)은 큰 안개이다》     [114]피아노가 음악의 모체라면 시는 문학의 모체이다. 어떠한 산문작품이라 할지라도 시정신이 내포되어 있지 않으면 문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한흑구 韓黑鷗/싸라기 말》     [115]시작품(포엠)이란 포에지와 의미와의 차갑고도 뜨거운 긴장에서만 우러나오는 산물이어야 할 것입니다. 포에지와 의미 사이에 벌어지는 알력 갈등의 에너지는 실인즉 전달되어야 할 가장 뜻깊은 시의 에너지인지도 모릅니다. 《신동집 申瞳集/모래성 소감(所感)》     [116]시는 여하튼 어떤 양상에 있어서는 산문(散文)의 특징을 피하려는 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기자식(棋子式)의 언어가 아니고 시각적이며, 구체적인 언어이다. 그것은 감각을 그 모양 그대로 옮겨 놓으려는 직각(直覺)의 언어에 대한 하나의 타협이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들의 주의를 끌며, 우리들로 하여금 구상적(具象的)인 사물을 계속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우리들이 추상적 과정 안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그것은 청신한 형용사나 청신한 비유를 골라낸다. 딴은, 그것이 새롭고 우리들은 낡은 것에 싫증 났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낡은 것이 구상(具象)의 것을 전달하기를 멈추고 추상적인 기자(棋子)가 되기 때문에서다. 시인은 「배가 범주(帆走)하였다」는 기자식의 말을 쓰는 대신, 「뱃길을 더듬었다」고 하여 구상적인 심상(心象)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시각적인 의미는 오직 비유의 새 그릇에 의해서만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산문은 그러한 것이 새어 버리는 낡은 항아리이다. 시에 있어서의 심상은 한낱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직각적 언어의 본질 그 자체인 것이다. 시는 우리들을 데리고 지상(地上)을 걸어가는 보행자이며, 산문은 우리를 목적지로 운반하는 열차인 것이다. 《미상 未詳》     [117]시는 현실 이상의 현실, 운명 이상의 운명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고, 이 창조력은 언제나 현세적 속박의 반작용의 힘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어령 李御寧/통금시대(通禁時代)의 문학(文學)》     [118]「패러독스」 「아이러니」 「위트」 「메타포」 여러 가지 현대시의 무기는 새로운 신화를 우리 앞에 펼쳐 주고 있다. 《이어령 李御寧/전후문학(戰後文學)의 새 물결》     【시·묘사】     [119]시는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     구형의 사과처럼     무언(無言)이어야 한다     엄지손가락에 닿는 낡은 훈장처럼     조용해야 한다     이끼 자란 창턱의 소맷자락에 붙은 돌처럼     시는 말이 없어야 한다     새들의 비약처럼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마치 달이 어둠에 얽힌 나뭇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놓아주듯이     겨울 잎사귀에 가린 달처럼     기억을 하나하나 일깨우며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시는 비등해야 하며     진실을 나타내지 않는다     슬픔의 모든 역사를 표현함에     텅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     사랑엔     기운 풀과 바다 위의 등대불들     시는 의미해선 안 되며     존재해야 한다 《A.매클리시/시학 詩學》     [120]사람들은 시를     조그마한 사슬에 달아     내복 밑     벌거벗은 피부 위에 달고 있다. 《A.A.숄/시집 詩集》     [121]무상하기에 무상하지 않고     일시적이기에 결정적이며     시간적이기에 무시간적이고     단편적이기에 완전하며     무방비이기에 강력하며     모방할 수 있기에 반복할 수 없고     비논리적이기에 현실적이고     포착할 수 없기에 포착할 수 있다. 《A.A.숄/시집 詩集》     [122]나의 시의 장부(帳簿)는 어디에 있는가     이 나의……     종이도 없고 펜도 없고     시도 없이 나는 무(無) 앞에 있다. 《R.크노/시법(詩法)을 위하여》     [123]나의 시(詩)는 싸움이다. 《W.바이라우흐/나의 시(詩)》     [124]한 편의 시를 낳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리운 것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전촌융일 田村隆一/사천(四千)의 날과 밤》     [125]붓 놓자 풍우가 놀라고     시편이 완성되자 귀신이 우는구나.     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두보 杜甫》     [126]눈 내려 이 해도 늦어 가는데,     풍진은 하 번져서 수습 못하네.     벗님네 아스라이 서울을 떠나,     타향의 나그네로 오랜 세월을.     상대하니 문득 기쁜 얼굴이지만,     슬픈 노래 흰 머리털 어찌하리오.     소매 속에 감춰 놓은 몇 수의 시는,     방황하는 인생을 위로해 주네.     雨雪歲將晩     風塵浩未收     故人京國遠     久客異鄕遊     相對忽靑眼     悲歌堪白頭     袖中詩幾首     聊得慰淹留 《정도전 鄭道傳/삼봉집 三峯集》     [127]한 줄기 시의 연간(聯間)을 걸어가면서     어디엔가 반짝이고 있을     나의 오늘을 나는 짚어야 한다. 《신동집 申瞳集/어떤 시(詩)》     [128]이 고운 화병에 무엇을 꽂을 것인가. 옳지 그렇다. 시를 꽂자. 앵도알같이 열린 시를, 백합꽃같이 핀 시를, 난초잎같이 솟은 시를 멋지게 꽂는 것이 좋겠다. 《신동문 辛東門/수정화병(水晶花甁)에 꽂힌 현대시(現代詩)》     [129]겨울 하늘은 어떤 불가사의(不可思議)의 깊이에로 사라져 가고,     있는 듯 없는 듯 무한(無限)은     무성하던 잎과 열매를 떨어뜨리고     무화과나무를 나체(裸體)로 서게 하였는데,     그 예민한 가지 끝에     닿을 듯 닿을 듯 하는 것이     시(詩)일까,     언어(言語)는 말을 잃고     잠자는 순간,     무한(無限)은 미소하며 오는데     무성하던 잎과 열매는 역사의 사건으로 떨어져 가고,     그 예민한 가지 끝에     명멸하는 그것이     시일까, 《김춘수 金春洙/나목(裸木)과 시(詩) 서장(序章)》     [130]문득 한 줄의 시가 일어섰다.     작업모를 쓰고     장갑을 끼고     시는 어둠의 진한 성감대(性感帶)를     후볐다.     잠시 후 꽃의 기침 소리가 나고     텅빈 마당이 다시 조립되는 소리가 나고     삽질하는 시의 섬광이 번쩍이고 《이규호 李閨豪/시(詩)가 아침을》     [131]더듬거리며 되찾는 한두 마디 말     말에 시가 깃드는 아픔이여     시(詩) 시시 시줄의 눈발 따라     내 어린것보다는     쉽사리 익혀 갖는 나의 말법. 《박경용 朴敬用/폭설 暴雪》     [132]그러는 시의 주소는 여기에 있다. 지리하고 긴 회임(懷姙), 쉽사리 단안을 못 내리는 사념의 발열, 심층심리 안의 문답, 외롭게 희귀한 개성적 심상(心像), 선명하지도 밝지도 못한 사고의 교착(膠着), 암시, 모든 잠재의식과 꼬리가 긴 여운. 시인이 버리면 영 유실되는 것, 시인이 명명하지 않으면 영 이름이 붙지 못하는 것. 원초의 작업 같은 혼돈에의 투신과 첩첩한 미혹, 그리고 눈물 나는 긴 방황. 《김남조 金南祚/시(詩)의 주소(住所)는 어디인가》     【격언·속담】     [133]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에는 시가 있다. 《중국 中國》     [134]시(詩)는 낳는 것이지 만드는 것은 아니다. *The poem is born, not made. (*시는 체험에 의해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 《영국 英國》     【고사·일화】     [135]뮤즈 여신들은 자주 천상 올림포스에 올라가 그 아름다운 노래로 신들의 잔치 자리에 흥을 돋우었으나, 여느 때는 보이오티아 지방의 헬리콘 산에서 살았다. 헬리콘 산의 언덕진 산비탈은 향긋한 나무로 뒤덮여 독사의 독까지 삭아 없어진다는 성역(聖域)으로, 맑은 샘터가 많아 그 중에도 유명한 것이 아가니페 샘터가 있고, 또 천마(天馬) 페가수스가 지나간 발굽 자리에서 솟아나왔다는 히포크레네 샘터가 있다. 이 샘물을 마시면 영묘(靈妙)한 시상(詩想)이 저절로 떠오른다. 여신들은 또한 파르나소스 산을 즐겨 찾아가 아폴론 신과 자리를 같이하곤 했다. 이 산기슭에 키스탈리아라는 샘터가 있었는데, 역시 여신들의 성지(聖地)로, 그 샘물을 마시면 시상이 떠오른다고 한다. 이 샘터는 케페소스 강으로 흘러 들어 황천(黃泉)의 스틱스 강에 통한다는 것이다. 현대시가 메마른 것은 여신들의 이 아가니페 샘, 히포크레네 샘, 그리고 키스탈리아 샘이 말랐다는 뜻인가?     [136]어떤 사람이 당나귀를 타고 단테의 시를 읊으면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 버릇이 되어 시의 구절 구절의 끝마디마다 「이랴이랴」 하면서 당나귀 궁둥이를 두들겼다. 이것을 보고 있던 시인 단테는 벌컥 화를 내며, 「이놈아, 시 어느 구절에도 '이랴이랴'라고 써 놓지는 않았어[137]후에 존슨 박사의 전기를 쓴 보즈웰이 존슨 박사와 같이 점심을 먹으며, 「선생님, 솜씨 좋은 요리사가 탁월한 시인보다 세상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존슨 박사가 점잖은 표정으로, 「거리에 있는 개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겠지.」라고 대답하였다.     [138]앙드레 비이가 무어를 회견했을 때 무어는 이상한 말을 하였다. 「영국의 작가 토마스 하디는 자꾸 문법에 틀리는 말을 쓰게 되는 것이 싫증이 나서 산문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시를 쓰게 된 것이오.」 「그렇다면 산문보다도 시를 쓰는 것이 수월하시오?」 이렇게 묻는 비이에게 무어는 대답하기를, 「그렇지요. 왜냐 하면 시에는 여러 가지 제재와 규칙이 있어서 실상 그것들이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하였다.     [139]독일에서 나폴레옹과 괴테와의 회견 때의 일이다. 「오늘의 회견 기념으로 시(詩) 한 수를 지어서 나에게 줄 수 없겠는가?」 나폴레옹이 청하자, 괴테는 대답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시를 바치지 않습니다.」 하였더니, 나폴레옹은 되물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후회하고 싶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고 괴테는 그의 독재성을 은근히 비판하는 대답을 했다.     [140]어느 여름 괴테는 실러와 같이 드레스덴의 케르나 포도원에 갔다. 케르나는 독일 관리로서 실러의 친구였다. 쓸쓸한 시골에서 두 사람은 당시의 속된 사람들을 욕하는 풍자시를 많이 썼다. 케르나의 집 여인들은 머리맡 다락방에서 시를 짓는 친구들의 소리를 들었다. 다락방에서는 간혹 가다 킥킥거리며 웃기도 하고, 때로는 발 구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말했다. 「오늘도 그 속된 인간들에게 몹시 화를 내게 했군.」     P.발레리/문학론 文學論》    [144]구양수(歐陽脩)가 매성유(梅聖兪)에게 말하기를, 「세상에서 흔히 시인들은 거의가 궁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궁한 뒤라야 시가 좋아지는 탓이다.」 또 소동파(蘇東坡)는, 「구양수의 말이 절대 망언이 아니다. 그는 일찍이 시는 사람을 달(達)하게 만들지 시로 인하여 궁한 사람은 못 보았다라고 했는데, 나는 그것을 어떤 다른 격정으로 인한 발언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추천해요5 oh4344       추천해요0 gksalfm3311     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아마추어가 쓴 작문이 아니라 진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시인의 시란 [운율 중심의 문맥으로 완성 된 문장]이라고 정의 할 수 있지요. 왜냐면 시와 운율의 독특한 관계때문이지요.   시와 운율의 관계는 서로 떨어져서는 존립조차 불가능가한 특별한 관계지요. 그러므로 시인이 시를 쓴다는 행위는 곧 운율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흔히 시상 포착을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시와 운율의 독특한 관계상 시상을 포착한다는 뜻은 형상화할 운율을 포착한다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이 되는 셈이고요.   현재 대한민국 교육에서는 현대시의 운율과 음률(리듬)을 동일한 것으로 가르치는데 대단히 잘못된 지식의 오류이지요. 운율과 음률(리듬)은 아무런 연관성조차도 없으니 까요. 국어사전에 등재된 의미만 제대로 숙고해 보아도 해답이 나온 답니다.   운율의 한자는 운치 운(韻) 법 율(律)를 쓰지요. 국어사전에 등재된 운치의 뜻은 이고요. 시는 함축적 내포적으로 형상화 된 문장이어야 한다고하는 건 아시지요. 그 이유는 바로 시와 운율의 독특한 관계 때문이지요. 시라는 문장 속에 내재 되는 운율의 정체가 존제하도록 형상화하는 방법이 함축적 내포적 문장 뿐이거든요.   함축적 내포적 문장이란 어떤 형태의 문장일까요? 현대시 백년 역사를 대표할만큼 훌륭한 대표작을 거론해 본다면 이상님의 "오감도1" 을 비롯해 김영랑님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수영님의 "눈" "풀" 이육사님의 "말" 윤동주님의 "자화상" 공초 오상순님의 "방랑의 마음" 등등이 떠오르네요.   사전을 찾아 함축적 내포적이란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시면 아시겠지만 미당 선생의 "자화상"이나 "동천" 같은 문장은 함축적 내포적 문장이 아니지요.  즉 시인의 시라고 하기에도 창피스러운 작문 수준의 문장에 불과하다는 말이지요.   불행한 것은 이렇게 형편없는 작문 수준의 문장이 교육용 교재에 시로 등재 되어 시인의 작품으로 교육 되는 것도 모자라 현대시 백년 역사를 대표할 시인 열명에 뽑힌 동시에 대표작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미개한 현실입니까.   운율과 하등 관련도 없는 음률(리듬)을 현대시의 운율과 동일시하는 잘못 된 지식의 결과 습작 단계도 탈피 못한 아마추어 작문 글과 진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인의 시와의 변별성도 구분 못하는 실정이거든요.   현대시의 운율이란 시인이 인위적으로 형상화하는 의미가 그 골격이지요. 그러므로 음률(리듬)과는 연관성도 없는 것이고요. 그러므로 시(작문)는 누구나 쓸수 있지만 누구나 다 진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한미디로 말하면 시인의 시는-시인의 시로 부끄럽지 않은 시는-운율적으로 형상화한 문장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지요. 다시말하면 초반 부에 말한 것처럼 [운율 중심의 문맥으로 완성 된 문장만을 시인의 시]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 이유는 시와 운율의 독특한 관계 때문이고요. 즉 시인이 시를 쓴다는 자체가 운율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되어야 하므로 산문 문장처럼 문장 중심의 글이 아니라 문장 속에 내재 되어 있는 운율 중심으로 완성 된 문장을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이상님의 "오감도1"처럼 표면적 내용과 상관없이 함축적 내포적 문장 속에 형상화 되어 내재된 운율 중심의 문장으로 완성 된 문장을 지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인의 시라-영국 시인들은 구어체 시라고-한다는 거지요. 헌데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이렇게 훌륭한 구어체시를 추상적 상징적 시로 왜곡을 하고 있지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는 속담처럼 입으로는 시는 구어체로 써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상님의 "오감도1" 같은 훌륭한 구어체시를 눈 앞에 놓고도 문학박사니, 비평가니, 선생이니, 시인이니 하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추상적이니 상징적이니 하지요.    영국 시인들이 말하는 구어체시란 concrete poetry적 의미로 [운율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문장]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입구자 口語로 둔갑시켜 왜곡하고 있지요.   현재 대한민국 서점에 진열 된 시집들 중 진정 시인의 시로 부끄럽지 않은 시는 있을 까요? 있다면 어느 누구의 시집에 어떤 작품이며 과연 몇편이나 될까요? 아니 운율의 정체도 왜곡하며 잘못 된 오류의 지식이 오류 인줄도 모르는 채 교육하는 현재 대한민국에는 진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인은 있는 것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학 전문가들 중에 시에 대한 정통한 지식을 획득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걸 까요? 만약 있다면 미당 선생의 "자화상" 같은 아마추어 작문 수준의 글이 교육용 교재에 시로 등재 될 수 없었겠지요.   시는 자기 맘대로 막 쓰는 것이 아니지요. 왜냐면 시는 운율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장르적 특성이니 까요. 그러므로 시를 쓰러면 반드시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지요. 즉 시인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필히 장르적 특성 같은 기본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용어에 대해서도 정확하 숙지 해야 하지요. 그래야 많이 아마추어 작문과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 또는 구어체시의 변별성 같은 것을 제시할 수 있으니 까요.   시에 관심이 있으니시면 먼저 시와 운율의 관계상 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운율의 정체에 대해 알아야 하지요. 운율이란 시인이 인위적으로 형상화하는 의미가 그 골격으로 그 정체는 운치 운 자에 법 율자를 쓰는 형태라서 정리하면 [운치(고아한 품위가 있는 기상을) 법 율(함축적 내포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이지요. 그 성격은 [섭리적 논리에 따른 생리적 발산에 의한 정신적 소산을  불러 내는 것들]이라 할 수 있고요.   이렇게 시를 쓰는 방식은 따로 있어 아마추어 수준의 작문과 진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인의 시는 극명히 구분되는 동시에 변별성도 뚜렷하답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낸 시집이라 해도 그 수준은 다 들어 나지요. 예로 든 미당 선생의 "자화상"처럼이요.   현재 대한민국 교육에서 가르치는 시에 대한 지식은 오류가 너무 많은 데도 전혀 모르는 듯 하지요.   왜곡된 지식이 왜곡 인 줄도 모르고 잘못된 오류도 오류 인 줄 모르다 보니 오류가 진실처럼 풍토화 되어 오히려 진실을 배격하는 풍토가 되어 버린 듯 하거든요.  
1019    이규보 시론 댓글:  조회:5165  추천:0  2015-04-19
이규보(1168∼1241)의 [論詩] '시로 쓴 시론'       作詩尤所難 시 짓기가 무엇보다도 어려우니 語意得雙美 말과 뜻이 함께 아름다워야 하네. 含蓄意苟深 함축된 뜻이 진실로 깊어야 咀嚼味愈粹 음미할수록 맛이 더욱 알차네. 意立語不圓 뜻이 서도 말이 원만하지 못하면 澁莫行其意 난삽하여 뜻을 전하기 어렵다네. 就中所可後 그 중 뒤로 미뤄도 될 것은 雕刻華艶耳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라네. 華艶豈必排 화려한 문장을 굳이 배제하겠는가마는 頗亦費精思 모름지기 정신을 쏟아야 마땅하네. 攬華遺其實 꽃만 붙잡고 그 열매를 버린다면 所以失詩旨 시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되네. 邇來作者輩 요즈음의 글 짓는 무리들은 不思風雅義 풍아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外飾假丹靑 겉꾸미기로 미사여구 늘어놓아 求中一時嗜 한때의 기호에만 맞추려 드네. 意本得於天 뜻이란 본래 하늘에서 얻느니 難可率爾致 쉽게 이루어지기가 어렵다네. 自 得之難 스스로 어려운 줄 알고 있기에 因之事綺靡 그리하여 더욱 화려하게만 하여 以此眩諸人 이것으로 여러 사람을 현혹시켜 欲掩意所  깊은 뜻 없는 것을 엄폐하려 하네. 此俗 已成 이런 풍속이 점차 일반화되어 斯文垂墮之 문화가 땅에 떨어지게 되었네. 李杜不復生 이백 두보가 다시 나지 않으니 誰與辨眞僞 누구와 더불어 참과 거짓 구별하랴. 我欲築頹基 나는 무너진 터전을 다시 쌓으려 하나 無人助一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이 없네 誦詩三百篇 시 삼백 편을 외운다 해도 何處補諷刺 어느 곳을 풍자하여 보충하겠는가. 自行亦云可 스스로 행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孤唱人必戱 사람들은 반드시 비웃을 것을
1018    시로 쓴 시론 및 시어의 특성 댓글:  조회:4433  추천:1  2015-04-19
시로 쓴 시론을 통해 살펴본 시어의 특성            시법(詩法)   시는 둥근 과일처럼 만져지고 묵묵해야 한다.   엄지에 닿은 낡은 메달처럼 소리 없고   이끼 자라난 소매에 닳은 창시렁의 돌처럼 조용해야 한다.   시는 새들의 비약처럼 말이 없어야 한다.   시는 달이 떠오르듯이 시간 속에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달이 밤에 얽힌  나무로부터 가지를 한하나 풀어 놓듯이   겨울 잎새 뒤에 있는 달이 마음에서 기억을 하나하나 풀어 놓듯이   시는 달이 떠오르듯이 시간 속에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시는 사실이 아니라 동등해야 한다.   슬픔의 모든 내력으로는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를   사랑의 경우 기울어진 풀잎과 바다 위에 뜬 두 불빛을―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하다.                아치볼드 매클리시           시로써 시론을 쓴 경우는 상당히 많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창작이론에 대한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자신의 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로 쓰는 시론은 '시론'이라는  추상적이고도 딱딱한 내용을 정서적 체험을 통해 쉽게 이해시키면서도 초심자에게 시의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보다 쉽게 시창작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겠다.       매클리시의 은 갖가지 비유를 통해 시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시는 독자가 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주장이나 메시지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인 아름다움(美)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서 말하듯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은 매클리시의 말은 다분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문학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에 비하여 시인이 시를 대하는 태도를 쓰고 있는 것이 서정주의 이다. 한 개인으로서의 시인이 지닌 감성과 우주적 상념은 늘 아쉬움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그 아쉬움이 촉발하는 감정과 정서 세계는 끝없은 사물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시론                                               서정주   바닷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준단다. 詩의 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기독교적 심상을 바탕에 두고 범신론적인 사상의 세계를 두루 섭렵하는 시인 구상은 시론(詩論)을 '詩心-詩想-詩情-詩興'으로 나누어 쓰고 있다. 이는 시창작의 과정이면서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용적 가치까지 언급하고 있다.        먼저 시심(詩心)을 무아적 감동, 자연의 조화, 진실의 체험, 우주적 감각과 연민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순진무구(純眞無垢)의 상태에서 시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시상(詩想)은 시가 자아도취의 생산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관조의 자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도달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시정(詩情)은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진실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환희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끝으로 구상 시인의 시관(詩觀)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시흥(詩興)을 들고 있다. 시를 통해 삶의 흥그러움을 맛볼 수 있어야 하며, 그 속에서 삶의 진선미(眞善美)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구상 시인의 시로 쓴 시론은 아치볼드의 시론을 연상시키면서 차원 높은 시에 대한 경외감이 배어 있다. 여기에는 시의 도구화도 없고, 흥겨움만이 있다. 시가 사상의 도구로 전락함을 경계함과 아울러 신령스러운 힘의 조화 속에 온전히 나를 맡길 수 있을 때, 독자에 대한 공감도 얻을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詩論                                         구상     詩心에 든다. 일상적 욕구나 그 利害에서 벗어나 無我的인 감동과 감흥이 샘솟는다. 오묘한 자연의 造化와 그 풍경 앞에서, 극진한 인정과 진실을 실제로 접하고, 또한 생성과 소멸의 덧없음을 맛보며, 우주적 감각과 그 연민에 나아간다.   詩想에 잠긴다. 물 속에 비치는 제 모습에 취한 나르시스의 그런 생각이 아니라 水草를 헤어남과 낚싯밥에 다가오는 고기의 모습이나 동작을 떠올리면서 생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낚시꾼의 그 찌를 바라보는 一心不亂 상태다.   詩情에 젖는다. 그것은 쓰디쓴 고독을 되씹는 감방 囚人의 어두운 느낌이 아니라 내 안의 저 奧地까지 찾아 들어가 내 안에서 나뭇잎의 속삭임을 듣고 내 안에서 새들이 지저귀며 날음을 보고 내 안에서 어린 시절의 꿈이 되살아나고 헤어지고 사라진 벗들을 다시 만난다.   詩興에 취한다. 모든 생각과 느낌들이 모습을 갖추고 서로 어울리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내 마음이 그리고 기리는 그 동산에는 모든 생명이나 사물들이 신령한 조화 속에 영원하고 완전한 제 모습의 성취를 이루고 나는 現存에서부터 眞善美의 실체를 맛본다.        2. 시 창작에 도움을 주는 경구 속의 시어            0. 시인이 겁내야 할 것은 무엇을 다 못하고 끌고 가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아니라, 참으로 냉큼 다 먹어치워 버리거나 끝내 버리고 마는 일이다.(서정주: 에서)       0. 고도한 정서의 형성은 언제나 감정과 욕망에 대한 지성의  좋은 절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정주: 에서)       0. 자유시가 보여준 것처럼 시적인 요소는 모든 형식을 벗어나고 초월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시는 언어를 통해서 언어를 파괴하고 존재와 일치하련느 언어표현이기 때문이다. (박이문: 에서)   0. 큰 시인은 아무리 낡은 이미지라도 새롭게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 (김현: 에서)   0. 풍경을 묘사하든지, 감정을 묘사하든지, 혹은 세태의 어떤 단면을 묘사하든지 시를 묘사로서 출발하는 경우, 그는 이미 시의 인식적인 방법 위에 올라 서 있다.(김주연: 중에서)   0.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김수영: 중에서)   0. 예술을 위하 예술이라는 생각은, 그게 다행히 아주 저속한 게 아니라면, 아주 냉담한 것일 거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할까 합니다. 참된 사람이라면 누구도 인제는 그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넌센스를 믿지 않을 겁니다. 이러한 극적인 순간에 예술가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어야 합니다. 그는 그의 백합다발을 거들떠보지 말고 백합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어가야 합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82-1940, 스페인의 가장 신랄하고 뛰어난 만화가.   0. 시는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하며 인간의 심장을 만나야 하고, 여자의 눈, 거리의 나그네들, 황혼녘에나 별이 빛나는 한밤에 적어도 한 줄의 시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파블로 네루다, 중에서)   0. 시는 역사와 사회의 참다운 실체―언어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것(시)은 일상 대화와 논리적 추론을 지배하는 법칙과 다른 법칙들에 따라 언어를 재창조하려고 한다. 이러한 시적 변화는 언어의 가장 깊은 구석에서 일어난다. 시구(詩句)―유리된 낱말이 아니다―는 세포이며, 언어의 최소 단위 요소이다. 한 낱말은 다른 낱말들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한 어구는 다른 어구들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중략)     시가 말에 닿자마자 말들은 운율적 단위나 이미지로 변모한다;말들은 그들 스스로 서며 스스로 충족한다. 말은 갑자기 그 가몁성을 잃는다. 산문에서는 한 사물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길이 있으나 시에서는 단 하나의 길밖에 없다. 시적 언어는 대용어를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뭔가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돌이킬 수 없게 말해진 어떤 것이다. 달리 말해 본다면, 그것은 어떤 것을 '향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나 저것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니다. 시인은 공포에 대해서나 사랑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들을 보여준다. 돌이킬 수 없고 대피할 수 없는 채, 시의 언어는 그것 자체에 의거하지 않고는 설명항 수 없게 된다. 그것들(시적 언어)의 의미는 더 이상 저쪽에 있는 게 아니고 그것들 속에 있다. 그 이미지는 의미 '속에' 있다.(옥타비오 빠스, 중에서)   0. 내 작품에는 커튼처럼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걸어 놓을 우아함이나 효과나 독창성을 갖지 않으리라. 방해가 되는 것은 아무리 값진 커튼이라도 걸어 놓지 않으리라. 내가 말하는 것은 정확히 그 본질을 위해서이다. 고양시키거나 놀라게 하거나 매혹시키거나 위로해 줄 수 있는 자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라. (월트 휘트먼, 서장에서)   0. 이미지스트가 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 언어   1) 어느 무엇을 드러내지 않는 , 불필요한 낱말이나 형용사는 쓰지 말 것. '어렴풋한 평화의 땅'과 같은 표현은 쓰지 말아라. 그런 것은 이미지를 둔화시킨다. 추상과 구체를 뒤섞은 꼴이다. 그것은 자연적 대상물이 언제나 적절한 상징이라는 것을 작가가 깨닫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다.   2) 추상화를 두려워하라. 훌륭한 산문에서 이미 행해진 것을 어줍잖은 운문으로 다시 얘기하려 하지 말라.   3) 시 예술이 음악예술보다 조금이라도 단순하다고 생각하거나, 최소한 평범한 피아노 선생이 음악 예술에 쏟는 정도의 노력을 운문 예술에 쏟음없이 전문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1017    詩로 쓴 詩論 댓글:  조회:4725  추천:0  2015-04-19
  詩로 쓴 나의 詩論                                                                                                          洪海里 시인       1. 시인은 누구인가     * 詩人     시도 때도 없어, 세월이 다 제 것인 사람     집도 절도 없어, 세상이 다 제 것인 사람     한도 끝도 없이, 하늘과 땅 사이 헤매는 사람     죽도 밥도 없이, 생도 사도 없이 꿈꾸는 사람.         * 시인은 누구인가     바람이 자고 가는 대숲은 적막하다     적막, 한 시에 적막한 시가 나온다     그 시는 우주를 비추고 있는 별이다     시인은 적막 속에서 꿈꾸고 있는 者.           2. 시는 어디 있는가     * 詩를 찾아서     해 다 저문 섣달 초닷새 썩은 속 다 타 재 되고 빈자리 가득 안고 있는 詩人이여 네가 내 속을 아느냐고 슬픔을 다 버린다고 비워지더냐고 하늘이 묻는다 눈물 있어 하늘 더욱 눈부시고 추위로 나무들의 영혼이 맑아지나니 시인이여 그대의 시가 닿을 곳이 어디란 말인가 가라, 그곳으로 물 같은, 말의 알이 얼어붙은, 빛나는 침묵의 숲에서 고요한 그곳으로, 가라 시인이여 아직 뜨겁고 서늘하다 깊고 깊은 시의 늪은.         * 詩는 어디 있는가?     내일이 大雪 구름 사이 햇빛, 우레가 울어 詩가 눈앞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는 눈 뒤에 있었다 눈 뒤에는 하늘이 끝이 없다 포경선을 타고 작살을 던진다 고래를 잡으려고, 고래는 없다 詩는 손 안에 있는 줄 알았다 손바닥에는 텅 빈 하늘만 춥다 발바닥에 길이 있고 강물이 흐른다 산맥이 뻗어 있고 불의 집이 있다 詩는 집에 없고 불만 타오르고 있다.         * 내게 가는 길 없다고 해도     나에게 가는 길이 없다고 해도 안개 속으로 길을 떠나네 어차피 사는 일이 길을 가는 것 오리무중 헤매는 일 아니던가 이슬 속으로 젖어 가는 길 어쩔 수 없네 천근만근 끌어내리는 바짓부리 땅을 끌며 구절초 쑥부쟁이 하염없이 피어 있는 가을 속으로 나는 가네 나는 가네 하늘이 모든 노래를 지상으로 내려놓을 때 나는 떠나네 노래 속으로 나를 찾아서 흙냄새 풀냄새 바람냄새 물냄새 맑아 자음과 모음을 제대로 짚어내는 풀벌레들 노래가 노래를 벗어 비로소 노래가 되는 길이 멀리 달아나 나의 길이 없는 곳으로 바람 잠깐 불어 빗방울 몇 개 후득이고 금방 하늘이 파랗게 가슴 저린 쓸쓸함 속으로 몸 달아 애가 타고 가슴이 아파 한 마디 한 소절에 오체투지 나는 가네 너를 찾아 간다 나의 시여 나의 노래여!         * 한 편의 詩를 찾아서     내가, 나를 떠나고 나를 떠나보냅니다 우주가 내 속으로 굴러 들어옵니다 내가 우주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나를 찾아 봅니다 나를 그려 봅니다 요즘도 새벽이면 가벼운 날개도 없이 나는 비어 있는 우주의 허공을 납니다.         3. 시작詩作     * 초고(草稿)를 끌어안고     밀다 만 밀가루 반죽이거나 마구 잘려진 나무토막, 금나고 깨진 대리석 덩이이든가 아무렇게나 흩어진 동판이나 쇳조각     하늘에 놀고 있는 뭉게구름이나 바다 끝에 서 있는 수평선,     낯선 세상 고고의 울음을 세우려 집도의 앞에 누워 있는 산모 소신공양을 하고 태어날 아침에,     물맛이나 공기 빛깔로 낙화유수 이 강산을 물들이거나, 일 보 일 배로 한 生을 재는 자벌레나 백년을 가도 제자리인 달팽이처럼     나의 일생을 할喝!할 푸른 혓바닥을 위하여 소금을 뿌린다, 왕소금을 듬뿍듬뿍 뿌린다 황토 흙도 문 앞에 깔아 놓는다.         * 미완성 시에게     저 혼자 몸이 달아 네가 무릎을 꿇느냐 아니면 내가 꿇느냐 속이 타고 애가 달아 오체투지를 할 것이냐 항복을 할 것이냐 난리 치고 안달하며 먹느냐 먹히느냐 죽느냐 사느냐 끈질기게 매달리며 잡느냐 잡히느냐 씹느냐 씹히느냐 검게 탄 가슴 황토 냄새로 함께 노래하기 위하여 너에게 뛰어들고, 너른 세상으로 사라지기 위하여 광활한 우주로 날기 위하여 무작정 엎어지고 손목을 부여잡고 찬바람 골목길, 달빛 이우는 격정적인 입맞춤을 위한 나의 맹목과 눈을 감는 너의 외로움 속옷 한 번 벗기지 못하고 물어뜯어도 너는 피 한 방울 나지 않느니 푸른 입술 둥근 허리를 안고 영원을 꿈꾸다 정점에 이르지 못한 채 떠나고 또 떠나면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외로움, 세상은 지독한 감옥이지만 너와 나의 경계는 없다는 것을 너는 너 나는 나의 세상에서 섞이고 섞이는 너와 나를 위하여 기억하라 마지막으로 기억하라 나의 미완성 금빛 시여!         * 순순한 시     눈을 감아도 꿈이요 눈을 떠도 꿈이니 달빛에서 향이 나고 해에서도 꽃이 피네 설레는 햇살에 눈이 부셔 알게 모르게 사윈 것들마다 달뜨는 초록 알갱이들처럼 바람으로 돌아오는가 나물밥 먹으면 나물 향기 나고 물을 마시면 골짜기 바람 이우는 달이 차면 그리움도 지독한 형벌이라 너를 네게 보내는 죄를 짓는 일 나는 눈도 가리고 귀도 막노니 숨 가쁜 일 없어라 生이란 상처투성이 추억은 까맣게 타서 아픔이 되고 한 세월 건너가고 건너오는 것이 시 쓰는 일이 아닐 건가 한 편의 순순한 시 너에게 무작정 무너져 내린다.         * 시작詩作)     오순도순 살자고 흙벽돌 찍어 집을 짓듯이,     어린것들 굶기지 않으려고 농사를 짓듯이,     아픈 아이 위해 먼 길 달려가 약을 짓듯이,     시집가는 딸아이를 위하여 옷을 짓듯이,     길 떠나는 이 허기질까 새벽밥을 짓듯이,     기쁨에게도 슬픔에게도 넉넉히 미소를 짓듯이,     늦둥이 아들 녀석 귀히 되라고 이름을 짓듯이,         * 詩의 경제학 - 한 편의 詩, 천년의 詩     대는 침묵으로 소리를 담고 속 빈 파가 화관을 머리에 이듯,     속에선 조용히 물이 오르고 겉으론 불길 담담한,     온몸이 탱탱하고 아랫도리 뿌듯해 안고만 싶은,     오래 묵을수록 반짝반짝 빛나는 역린(逆鱗)과 같은,           4. 나의 시 또는 나의 시론     * 나의 詩 또는 나의 詩論     마음의 독약 또는 영혼의 티눈 또는 괴꼴 속 벼알 또는 눈물의 뼈.         * 나의 詩는 나의 무덤     詩 쓰는 것이 무덤 파는 일임을 이제야 알겠다 詩는 무덤이다 제 무덤을 판다고 욕들 하지만 내 무덤은 내가 파는 것--- 시간의 삽질로 땅을 파고 나를 눕히고 봉분을 쌓는다 詩는 내 무덤이다.     빙빙 날고 있는 무덤 위의 새 하늘이 그의 무덤이다 그는 날개로, 바람으로 詩를 쓴다 그가 쓰는 詩를 풀과 나무가 받아 꽃으로 피운다.                                                                            (우리시 제227호)   시로 풀어 쓴 시론     한석산     시라는 것은 창작이다 이 땅 우리겨례를 지킨 조선의 정신 말글 그 뉘도 흉내내지 못할 시심을 풀어내라 초안할 때는 먼저 문장을 써 놓은 다음 이것저것 다른 말로 바꿔 굴려봐라 어휘를 잘개 썰어 써라 작은 그릇에도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시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문학적 향기가 우러나오는 싱싱한 소제와 주재 취사선택 구성을 잘 해서 기승전결 격을 갖춘  차원 높은 시를 써라 직유보다는 은유나 비유 묘사와 진술 생략과 입축 상징과 암시 연상 작용을 할수 있게끔 하라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가슴 뭉클한 작품을 써라 우리 모두 핏속에는 시의 혼이 흐른다 다독多讀 많이 읽고  다사多思 많이 생각하고 첨삭添削 퇴고堆敲 되풀이하라 불멸의 명작은 퇴고에서 나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2년에 걸쳐쓴 "개미"를 120번 고쳐썼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200번 고쳐 썼다고 했다 갈고 닦는 글 다듬기 공들일 일이다... [출처] 시로 풀어 쓴 시론|작성자 감악   * 시로 쓴 이규보의 시론 연구     -(이승하, 시선 2003 봄 창간호) 중에서 일부  2. 시로 쓴 시론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인 시론은 고려조의 세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인로의 '파한집'과 이규보의 '백운소설' 및 '동국이상국집' 최자의  '보한집'에 나오는 시론은 절대로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다. 이 가운데  이규보는 신의론에 근거한 '설의'를 주장했는데 '論詩'는 시로 쓴 그의  시론이다. 전문을 내 나름대로 번역해본다.  시 짓기가 무엇보다도 어려우니  말과 뜻이 함께 아름다워야 하네.  함축된 뜻이 진실로 깊어야  음미할수록 맛이 더욱 알차네.  뜻이 서도 말이 원만하지 못하면  난삽하여 뜻을 전하기 어렵다네.  그 중 뒤로 미뤄도 될 것은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라네.  화려한 문장을 굳이 배제하겠는가마는  모름지기 정신을 쏟아야 마땅하네.  꽃만 붙잡고 그 열매를 버린다면  시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되네.  요즈음의 글 짓는 무리들은  풍아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겉꾸미기로 미사여구 늘어놓아  한때의 기호에만 맞추려 드네.  뜻이란 본래 하늘에서 얻느니  쉽게 이루어지기가 어렵다네.  스스로 어려운 줄 알고 있기에  그리하여 더욱 화려하게만 하여  이것으로 여러 사람을 현혹시켜  깊은 뜻 없는 것을 엄폐하려 하네.  이런 풍속이 점차 일반화되어  문화가 땅에 떨어지게 되었네.  이백 두보가 다시 나지 않으니  누구와 더불어 참과 거짓 구별하랴.  나는 무너진 터전을 다시 쌓으려 하나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이 없네  시 삼백 편을 외운다 해도  어느 곳을 풍자하여 보충하겠는가.  스스로 행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사람들은 반드시 비웃을 것을.  '동국이상국후집' 권제일 에 나오는 이 시에는 오늘날 이 땅의 시인이  새겨들을 만한 말이 나온다. 내 나름대로 시의 뜻을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해본다.  1~4행...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함축된 뜻이다. 즉 형식보다  내용이 우선한다.  5~8행...문장을 화려하게 꾸미려 하지도 말고 미사여구는 더더구나 동원  하지 말아야 한다.  9~12행...기교의 시 대신 정신의 시를 써야 한다.  13~16행...시류에 영합하려 들지 말고 그런 무리를 본받지도 말아야 한다.  17~22행...시의 뜻은 자연에서 얻는 것이어서 쉽게 이루기 어려운데 사람  들은 이를 속이려 한다.  23~26행...이런 풍속이 널리 퍼졌으니 이백과 두보 같은 이가 언제 다시 와  시의 진실과 허위를 밝혀내랴.  27~32행...나는 시의 기강이 무너진 이 시대에 꿋꿋이 나의 길을 가려 한다.  세상사람들이 아무리 비웃을지라도.  이동철은 이 시의 요지를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  1) 시는 표현과 의미가 모두 아름다워야 하지만,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의미이다.  2) 작금의 시인들은 표현에만 치우쳐서 깊은 뜻을 저버리는 폐단이 많다.  3) 이러한 그릇된 문단의 풍토를 시정하려고 노력해도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는다.  한편 정요일은......  ......  두 사람의 말을 토대로 '論詩'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한다.  시는 내용(의미)과 형식(표현)이 모두 아름다워야 하지만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역시 내용이다. 고상하고 멋있는 시는 환골탈태하거나 미사여구를  그럴듯하게 늘어놓은 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설하는'(設意)시이다. 특히  기교의 시를 쓰지 말고 정신의 시를 써야 한다는 말은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감각의 시가 아닌 혼신의 시를, 수사(修辭)의 시가 아닌 천품(天稟)  의 시를 써야 한다는 뜻도 새겨둘 만하다. 시류에 따르거나 남의 시를 흉내내지  않는 한편, 풍아의 전통에서도 벗어나지 않는 시작법을 내놓은 이규보의 시론에  나는 동의한다.  ......   
1016    현대시의 공감의 문제 댓글:  조회:4573  추천:0  2015-04-19
현대시의 공감의 문제         이숭원(서울여대 국문과 교수)             1. 시의 원초적 형태     현재 문예지에 발표되는 시작품을 보면 한 번 읽어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고급 독자들이 선호하는 문학계간지의 경우는 난해성의 수준과 빈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현대시의 난해성이 거론될 때마다 소통과 공감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면 독자와 소통하고 독자에게 공감을 주는 것이 시인의 의무이거나 시가 지켜야 할 기본사항이라도 되는 것일까? 이 문제는 간단히 답변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의 원초적 형태와 통시적 전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설은 서사 양식에 속하고 시는 서정 양식에 속한다. 서사는 사건을 서술하는 양식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거기에 비해 서정은 감정을 드러내는 양식이기 때문에 감정표출의 내용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서 자신의 감정을 발설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의 원초적 형태는 한 순간의 감정의 표출, 일종의 가벼운 탄식이나 감탄의 어사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독자(청자)가 필요 없는 독백의 형식에서 시가 싹텄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남아 전하는 우리 쪽의 고대 시가는 이러한 사정을 잘 말해준다. 「公無渡河歌」 의 경우, 우리의 작품이냐 중국의 것이냐 하는 논란을 떠나서, 그 노래의 유래를 살펴보면 우리는 거기서 시의 발생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조선 나루터의 뱃사공 곽리자고가 강가에서 배를 손질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흰 미친 사람(白首狂夫)이 술병을 들고 강으로 달려들었다. 그 뒤에 그의 아내가 울부짖으며 쫓아와 말렸으나 결국 남편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 아내는 구슬픈 노래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 후 남편을 따라 물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 노래의 내용은 ‘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마오. 기어이 그대는 물을 건넜네. 물에 빠져 죽어버렸으니, 그대를 어찌할거나.’로 되어 있다. 이 장면을 목격한 곽리자고는 집에 돌아와 아내인 여옥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여옥은 감격하여 공후를 끌어안고 그 노래를 불렀고 이웃의 친구에게도 노래를 전했다고 한다.   백수광부의 아내는 남편을 잃은 비탄의 심정을 스스로 노래했다. 어쩌면 그 노래는 처절한 절규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 노래를 하는 순간에는 옆에 누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남편을 잃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넋두리처럼 노래로 펼쳐낸 것이다. 곽리자고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그 노래를 들었으며,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사건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슬픈 사연을 전해들은 여옥은 마치 자신이 백수광부의 아내가 된 듯 공후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고, 그것을 이웃의 친구에게 가르첬다.   여기서 백수광부의 아내는 남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 원초적 서정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독백하듯 노래했고 곽리자고는 그것을 엿들었다. 곽리자고가 그의 아내에게 그 사연을 이야기한 것은 바로 서사적 행위를 한 것이다. 서사는 반드시 이야기를 듣는 대상이 필요한데, 여옥이 청자가 되어 곽리자고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에 대한 반응을 보였다. 그 사연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지어 부른 여옥은 백수광부 아내의 모습을 대신 보여준 연희자(배우)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서사나 극은 반드시 이야기를 듣거나 어떤 행동을 보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시는 그러한 대상 없이 말하는 사람 혼자만으로 존재한다. 백수광부의 아내는 저 혼자의 감성을 스스로 노래한 것이다. 이처럼 시의 원초적 형태는 어느 한 순간의 감정을 혼자서 토로하는 것이었다. 시가 문자로 정착되어 사람들에게 대량으로 정파될 때까지 그러한 시의 속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려시대의 노래로 전하는 「청산별곡」의 다음 구절을 보면 한 순간의 감정을 혼자 토로하는 독백의 성격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낮은 지내왔지만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찌 하리오.   어디에 던지던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던 돌인가?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 돌에) 맞아서 울며 지내노라.     - 「청산별곡」 4연과 5연       4연에는 현실을 떠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온 사람이 겪게 되는 외로움이, 5연에는 사람과 격리되어 혼자 사는데도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삶의 괴로움이 표현되어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과 괴로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출되어 노래로 불려진 것이다. 이 노래를 누가 들어주건 말건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노래를 듣고 노래를 부른 사람에게 당신의 사연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상대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는 서사 양식이 성립된다. 그러나 서정 양식에 속하는 시의 경우에는, 듣는 사람이 없어도, 다시 말해서 청자(독자)에 대한 소통이나 공감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감정이 언어로 표출될 수 있는 것이다.             2. 시와 독자의 문제     모든 서정 양식이 다 청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주술적인 고대 가요나 민요의 경우에는 청자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있다. 같은 서정 양식에 속하는 다음과 같은 시조의 경우에도 분명 청자(독자)가 설정되어 있고 소통과 공감이 당연히 전제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사람이 되어나서 옳지곧 못하면 미소를 갓 고깔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어와 저 조카야 밥 없이 어찌 할꼬 어와 저 아자바 옷 없이 어찌 할꼬 머흔 일 다 일러사라 돌보고자 하노라.     - 정철 「훈민가」, 8수와 11수       이러한 유형의 시조는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앞선 것이어서 소통과 공감을 창작의 전제로 삼고 있다. 이렇게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려는 의도에서 창작되는 시 양식이 비단 시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화기의 우국저항적인 시가나 일제강점기의 카프 계열의 시, 목적성을 앞세운 현대시에도 이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가 그러하고 1980년대의 민중시 계열에도 그러한 경향의 시가 많다. 그러나 목적의식을 앞세운 문학의 경우, 정철이나 개화기 우국인사들처럼 시대가 추구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을 때에는 문학작품을 통해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시대 조류가 다양해질수록 문학의 목적성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어느 시대에도 문학이 현실을 개혁하는 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던 문학운동가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문학이 인간의 정신을 일깨우고 새로운 의식을 갖게 함으로써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문학에는 그런 능력이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러한 목적성이 창작의 전제가 될 때에는 정작 그런 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정해진 선행의식 없이 창작의 절정을 향해 작가가 전력투구할 때 자연스럽게 그런 능력이 획득된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시는 목적성과 거의 결별하다시피하면서 개별 작품의 독자적 미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대담론의 엄숙함보다 소수담론의 발랄함이 의미 있는 덕목으로 제시되었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독자적 미학의 추구는 환상적 일탈과 엽기적 몽상으로 강화되어 나타났다. 소위 미래파로 호칭되던 시편들은 이미지의 현란한 변주를 넘어서서 돌발적이고 비약적인 자유 연상과 엽기적 위악성이 결합되면서 기존 시에 익숙한 사람들에 의해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때 문단에 소통의 단절이라는 주제가 하나의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경향을 대변한 황병승이나 김민정의 시가 상당히 많은 독자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들의 시집의 판매부수가 다른 시들보다 높은데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소통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선호하는 독자층과의 소통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이들의 시가 독자와의 공감에도 성공했다는 설명을 가능케 한다. 이것은 물론 그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문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과정을 시어의 측면에서 설명해 볼 수도 있다. 언어 사용의 일차적인 목적은 의사 전달이다. 우리는 자기의 뜻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때 자기가 아는 지식을 남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경우가 있고 자기가 느낀 감정을 남도 느낄 수 있도록 감정을 전달하려는 경우가 있다.   시의 경우 언어 사용은 당연히 후자 쪽이다.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때 감정 자체가 모호하고 다층적인 것이므로 함축적이고 내포적인 방향으로 언어가 사용될 수밖에 없다. 체험이나 감정의 양태가 일상적인 것과는 아주 다른 경우라면 그것을 표현하는 시의 언어는 한정된 의미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한정된 의미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미의 층을 거느리려 할 때 시의 애매성이 발생하고 애매성이 극대화될수록 대중과의 소통은 어려워진다. 삶의 영역이 복잡해지고 우리의 체험이 다양해질수록 정서적 반응이나 표현 양상도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더군다나 그 체험이 가시적 현실의 일면성을 넘어 환상의 다층적 세계로 확대될 때 시의 언어와 표현은 기존의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 시의 언어나 표현이 소통이나 공감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3. 공감의 층위     우리 주위에는 복잡한 체험을 다층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쉽게 이해되면서 깊고 넓은 공감을 주는 시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런 시들도 처음부터 공감을 예상하고 창작된 것은 아니다. 시인은 고립의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펼쳐내는 데 주력한 것인데, 독자들이 그 시의 의미에 공감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어떤 시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또 어떤 시들이 소수의 전문 독자층에게 공간을 일으키는가? 구체적인 작품을 대상으로 공감의 영역이 넓은 작품에서 출발해서 공감이 제한된 작품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공감의 층위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강릉고속버스터미널 기역 자 모퉁이에서 앳된 여인이 갓난아이를 안고 울고 있다 울음이 멈추지 않자 누가 볼세라 기역 자 모퉁이를 오가며 울고 있다      저 모퉁이가 다 닳을 동안 그녀가 떠나보낸 누군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앖을 것 같다며 그녀는 모퉁이를 오가며 울고 있는데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든 아이는 앳되고 앳되어 먼 훗날, 맘마의 저 울음을 기억할 수 없고 기역 자 모퉁이만 댕그라니 남은 터미널은 저 넘치는 울음을 받아줄 수 없다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돌아오는 터미널에서 저기 앳되고 앳된 한 여인이 울고 있다     - 이홍섭, 「터미널 2」 전문 (『터미널』 , 문학동네, 2011)       이 시는 버스 터미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을 평담한 시어로 표현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앳된 여인’이 ‘앳되고 앳된’‘ 곤히 잠든 아이’를 안고 운다는 설정이 가슴을 짠하게 하고 ‘누가 볼세라 기역 자 모퉁이를 오가며 울고 있다’는 설정도 상황의 사실성을 높여주면서 감정의 강도를 상승시킨다. ‘ 저 모퉁이가 다 닳을 동안’ ‘그녀가 떠나보낸 누군가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감상적인 예감도 이 시의 공감대를 넓히는 요소가 된다. 그런 대중적 감상성이 있어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전파된다. ‘기역 자 모퉁이만 댕그라니 남은 터미널은/ 저 넘치는 울음을 받아줄 수 없다’고 하여 세상의 무정함을 내비치는 것도 감상적 공감의 폭을 넓히는 구실을 하며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돌아오는 터미널에서/저기 앳되고 앳된 여인이 울고 있다’고 한 것은 개인의 슬픔을 인간의 보편적 비애로 확대하는 구실을 하여 공감의 깊이를 확보하게 한다. 대중적 감상성과 인간사의 보편성이 결합될 때 시적 공감이 영역이 가장 넓어질 수 있음을 확인케 하는 사례다.         어머니가 들려보낸 수박을 해마다 외할머니는 툇마루 청술레 그늘에서 갈랐다      수박을 앞에 둔 외할머니의 부엌칼은 슥, 평지봉투 뜯는 도구처럼 지나갔다      수박은 외할머니의 갑골 胛骨이었다 칼이 지나가는 소리와 빛깔의 청탁      갈라진 수박을 앞에 놓고 딱 한번 물으셨다 - 에미가 한번 안 온다더냐? - 할망구가 노망이 났등갑다 어머니의 말끝이 벼랑처럼 깊었다      그 해 가을 외삼촌이 편지를 보내왔다 아버지가 안채에 들이지 않고 문간의 고비 가녘에 다시 꽂았다      집 안팍 먼지 두루 닦아내시고 마을 공동 우물가에서 걸레를 헹궈 꼬옥 비틀어 짜던 그 동작에서   숨을 거두셨다 했다 그 동작 그대로 기울어지셨다 했다      외할머니의 임종은 아영면 월산리 구지내기쪽 노을이 했다     - 장철문, 「편지」 전문 (『서정시학』, 2012, 봄호)       이 시에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청술레, 갑골, 고비, 가녘, 아영면 월산리 구지내기 등에 대한 사전적, 지리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사전을 찾아보고 알 수 있는 사실적 차원의 이해다.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시에 명확히 제시되지 않고 암시만 되어 있는 사항에 대한 상상적 이해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왜 직접 들르지 않고 아들을 시켜 수박만 보냈는가? 외할머니는 자식이 있는데도 왜 아영면 워란리에서 혼자 사시다가 임종도 없이 돌아가셨는가? 외삼촌의 편지를 아버지는 왜 안채에 들이지 않고 문간의 고비 가녘에 꽂아두었는가? 이러한 전후 사정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문맥의 이면을 추측해 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 정보와 상상적 추정을 통해 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데 그러한 이해의 과정이 시 읽는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의 과정이 없다고 해서 공감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후의 문맥을 통해 우리는 할머니의 정갈하고 의연한 삶과 침묵 속에 오고가는 인정의 갈피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시에 제시된 독특한 시어와 상황들이 공감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 요소인가 하는 점이다.   ‘툇마루 청술레’라는 말은 외할머니의 삶을 효괴적으로 떠올려주는 소도구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할머니의 방 앞에는 덧붙여진 작은 툇마루가 있고 그 바깥쪽에는 청술레 나무가 있어 툇마루 쪽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바람이 솔솔 부는 툇마루 청실배나무 그늘에서 수박을 갈랐을 것이다. 지금은 점점 사라져 가는 청실배나무를 통해 남원의 토속적 정취를 함게 드러내는 효과도 있다.   수박을 할머니의 어깨뼈로 비유한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칼이 지나는 소리와/ 빛깔의 청탁’에서 연상되는 빠른 손동작의 속도감과 경쾌한 음감, 순식간에 드러나는 수박의 붉은 속살과 푸른 외형을 함게 나타내기 위해서였으리라.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외할머니는 ‘딱 한 번’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셨고, 그것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은 ‘벼랑처럼 깊었다’는 말로 표현되었다. 그러한 사연을 잘 아는 아버지인지라 외삼촌의 편지를 잠시 문간 고비 가녘에 꽂아 두었을 것이다.   그 편지에 담긴 내용이 마지막 세 연에 서술된 그 내요이리라. 언제나 꼬장꼬장하시던 할머니는 평소처럼 의연하고 정갈한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으신 것이다. 이 장면에서 다시 할머니의 갑골과 송연한 손짓과 소리와 빛깔의 청탁이 떠오른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정연한 짜임새 속에 한 편의 시가 구성되었고 그러한 시적 결구를 우리는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아랫목에 여자 둘이다 웃는데, 서로의 등짝을 때려가면서다 30분 거리 슈퍼에 가 투게더 한 통을 사서는 아이스크림에 숟가락 3개를 꽂아올 때까지 웃는데, 서로의 허벅다리를 꼬집어가면서다 순간 나 터졌어 하며 일어서는 여자 아래 콧물인 줄 알고 문질렀을 때의 코피 같은 피다 너 아직도 하냐? 징글징글도 하다 야 한 여자가 흰 양말을 벗어 쓱쓱 방바닥을 닦으며 웃는데, 피 묻은 두 짝의 그것을 돌돌 말아가면서다 친구다     - 김민정,「민정엄마 학이엄마」 전문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 지성사 2009)       ‘ ~다’로 끝나는 이 시의 방관적인 어미는 인상적이다. 너저분한 것은 제쳐놓고 본인이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겠다는 어투다. 이것은 배제의 어조이자 자유의 어법이다. ‘아랫목에 여자 둘이다’로 시작해서 ‘친구다’로 끝나는 단호한 화법의 울타리 안에는 허용되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친군데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같은 중년의 여자끼린데 무슨 말을 감추겠는가? 친근하게 다 말해 놓는 천진한 어법이 이 시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공감의 물결을 일으킨다. 50대의 갱년기 여자들이 등짝을 때려가며 웃고, 허벅다리를 꼬집으며 웃는데, 그 즐거운 장난은 동네 슈퍼에 가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30분 동안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터진 코피 같은 피, 시인이 여성이기 때문에 정확히 묘사했다. ‘콧물인 줄 알고 문질렀을 때의 코피같은 피다.’ 오랜 동안 친구로 지냈으니 거리낄 것이 없다. 그 자리에서 ‘흰 양말을 벗어 쓱쓱’ 닦는다. 그러고는 그것도 재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듯 피 묻은 양말 두 짝을 돌돌 말아가며 웃는다. 이래야 진짜 친구라 할 수 있으리라. 대명 천지에 웃음꽃을 피우는 이 부러운 친화의 장면 앞에 덧붙일 사설은 필요 없다. 이 이상 가는 공감은 다른 시에서 본 적이 없다. 이런 시로 한 묶음의 시집을 엮어내니 많은 독자들이 달려들 수밖에 없다.   2층 사는 남자가 창문을 부서져라 닫는다, 그것이 잘 만들었는지 보려고      여자가 다시 창문을 소리 나게 열어젖힌다, 그것이 잘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으니까      서로를 밀쳐내지 못해 안달을 하면서도 왜 악착같이 붙어사는 걸까, 더 큰 집으로 이사가려고      바퀴벌레 시궁쥐 사마귀 뱀 지렁이 이 친구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미움받고 있는가 알기나 할까, 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없어서      아줌마 아저씨들은 ‘ 야 야 됐어’ 그런다, 조금 더 살았다고      그러면 다리에 난간은 뭐 하러 있나 입을 꾹 다물고 죽은 노인네에게 밥상을 왜 차려주나     그런게 위안이 되지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빵 주세요 빵 먹고 싶습니다 배고픈 개들이 주춤 주춤 늙어가는 저녁      춤추는 언니들, 추는 수밖에     - 황병승, 「춤추는 언니들, 추는 수밖에」 전문 (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 지성사, 2007 )        김민정의 시보다는 대상에 대한 애정의 정도가 약하고 좀 더 드라이한, 그만큼 빈정대는 어조가 전면에 나서 있는, 이 시는 우리 삶의 실상을 리얼하게 잘 드러낸다. 젊은 부부의 싸움소리가 크다. 싸움의 횟수도 많아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것 같다. 그렇게 싸움을 하면서도 붙어사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싸우면서도 한 가족으로 지내는 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집을 늘리려 한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실상을 시인은 정확히 파악했다. 그렇게 싸움을 벌이면서도 그들이 싫어하는 상대는 한 번도 집안에 들인 적이 없다. 아군과 적군을 명확히 판별하는 선천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생을 조금 더 산 중년 부부들은 싸우면서 정이 드는 거라고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깨달은 듯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해하고 위로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이해와 위로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저마다 자기의 울타리에 갇혀 자기 재산과 식량에 집착하여 하루하루를 살고, 그렇게 늙어갈 뿐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저마다 춤추는 사람들이다. 어찌 언니뿐이겠는가? 모두들 시류에 맞추어 그렇게 춤추며 늙어갈 수밖에.   이렇게 해석하면 이 시는 삶의 실상을 제법 리얼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시구 사이에 감추어진 내용만 재구해 내면 어려울 것이 없는 시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다. 이 공감의 요소와 감추어진 것을 찾아 읽는 재미 때문에 다수의 독자들을 끌어들여 현제 10쇄를 돌파했다.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자면 자신이 받아들인 서적과 영화와 음악의 단편들을 조악하게 엮어놓은 황병승의 시보다 진실한 체험을 솔직하게 표현한 김민정의 시가 더 윗길에 놓이지만, 『여장남자 시코쿠』 로 알려진 황병승이란 이름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물론 김민정과 황병승의 시집에는 이보다 어려운 시도 많다. 그러나 그 시들이 소통 불가해한 작품은 아니다. 조금 더 정성을 기울여서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동원하여 읽으면, 닫혀 보이던 문을 열어주는 작품들이다. 시인들이 공감의 문턱을 높이고 그 문을 좁은 문으로 만들어 놓은 거은 자신의 체험과 감정이 예사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독특하고 특별한, 기묘하고 애매한 체험과 감정을 표현하려 할 때는 그만큼 일상의 어법에서 멀어지게 된다. 예술에서 내용과 형식은 긴밀하게 결합되는 법이기에 복잡 미묘한 체험과 감정이 단순하게 표현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소통과 공감을 내세워 쉽게 쓰라고 주문하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쓸 수 밖에 없는 필연적 동인과 근거가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들의 시를 이해하고 싶다면 독자쪽에서 지성과 감성을 넓히는 수밖에 없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 젖과 좆이 공평하게 공존하는 세계’, ‘두 짝의 젖통과 두 쪽의 불알이 나란히 누워 있는 세계’(김민정, 젖이라는 이름의 좆」)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sick fuck sick fuck 하고 돌아가는 회전목마’(황병승, 「회전목마가 돌아간다 Sick Fuck Sick Fuck」)에 동승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그럴 마음이 없다면, 굳이 소통이나 공감을 거론하지 말고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시에 다가가 마음을 터놓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면 될 것이다.    
1015    창조적 시론을 위하여 댓글:  조회:4442  추천:0  2015-04-19
        ​ 시인 이승하 (신인상·미래작가상 심사위원)      1960년 4월 18일 경북 김천에서 출생. 1984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화가 뭉크와 함께」가 당선되어 등단. 1989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작품소개    1987년 시집《사랑의 탐구》 1989년 시집《우리들의 유토피아》 1991년 시집《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1993년 시집《폭력과 광기의 나날》 1994년 시집《박수를 찾아서》 1995년 시집《생명에서 물건으로》 1997년 시론집《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학》 1997년 소설집《길 위에서의 죽음》 1998년 산문집《그렇게 그들은 만났다》 1998년 선집《젊은 별에게》 1999년 시론집《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 2000년 시론집《한국 현대시 비판》 2001년 시집《뼈아픈 별을 찾아서》 2001년 시론집《한국 시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2002년 시론집《백년 후에 읽고 싶은 백 편의 시》 2002년 에세이《헌 책방에 얽힌 추억》 2003년 산문집《빠져들다》 2004년 시론집《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 2004년 시론집《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 2005년 시집《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2006년 문학평론집《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 2007년 문장작법《청소년을 위한 시쓰기 교실》 2007년 시집《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2007년 산문집《피어있는 꽃》 2008년 문학평론집《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2009년 시선집《공포와 전율의 나날》 2010년 시집《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 2010년 시론집《한국문학의 역사의식》 2013년 재외동포문학연구서《집 떠난 이들의 노래》 2014년 시론집《함동선의 시세계》 2014년 시집《불의 설법》 2014년 문학평론집《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2》      수상    1991년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2002년 제2회 지훈문학상 2008년 제13회 시와시학상 작품상 우리 시대의 창조적 시론을 위하여     김준오 선생의 시론을 등불삼아서     이승하         하늘에 계신 김준오 선생님께       선생님이 돌아가신 해가 1999년, 어언 16년이 다 되어갑니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나온 선생님께서는 나이 마흔인 1977년부터 부산대 국문학과에 재직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과 인연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1년에 삼지원에서 낸『시론』개정판을 봤더니 제 등단작을 ‘눌언(말더듬)의 시’라고 명명한 뒤, “언어의 위기의식의 산물로 우리는 또한 눌언의 시와 수다의 시를 보게 된다.”, “눌언과 수다는 둘 다 정상적 언어행위가 아니다. 이런 비정상적 언어행위를 통하여 시인들은 비정상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세계에 대한 효과적인 저항의식을 표명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선생님께서 제 시에 대해 언급을 해주신 것이 고마워 저서『한국 현대 장르 비평론』『도시시와 해체시』『현대시의 환유성과 메타성』, 편저『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유고문집『문학사와 장르』『현대시의 방법론과 모더니티』 등을 보며 큰 가르침을 얻었고, 제 딴에는 스승의 한 분으로 생각하며 사숙해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좀 더 오래 사셨다면 저는 시집 해설을 써주십사 하고 간청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년도 채우지 못한 연세에 돌아가셨고, 저는 김현을 잇는 탁월한 시 연구자가 돌아가셨다고 애통해했습니다. 선생님의 드높은 연구정신을 기려 후학들이 ‘김준오시학상’을 제정해 운영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학교에 있다 보니 간간이 논문도 쓰고 비평적 글쓰기도 하게 되지만 누가 뭐래도 저는 제 자신을 시인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등단 30년이 되는 해에 11번째 시집을 냈으므로 시집을 너무 많이 낸 셈이라, 작품이 모인다고 시집부터 낼 일은 아니라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등단 30년이 지난 지금, 회의가 일곤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는 산문화와 장형화와 소통 불능이 지나친 느낌이 있고, 문예지의 폭발적인 증가로 시인이 양산되고 있고, 시단에 뚜렷한 논의나 담론은 없고, 독자는 유수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을 외면하고 하상욱의『서울 시』 같은 시집에 열광하고 있고……. 이런 말을 저도 자주 하지만 자주 듣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동일성 시학에 대한, 도시시와 해체시에 대한, 장르론의 시대적 양상에 대한, 자기 풍자와 외적 풍자에 대한, 구조주의 비평과 현상학적 비평에 대한, 문학사와 패러디 시학에 대한 논의를 다시금 꺼내보면서 안타까움으로 땅을 치는 심정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선생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오늘날 시단의 문제점들에 대해 좋은 방안을 내놓으면서 생산적인 담론을 유도했을 테지요.     저는 요즈음 시단의 제 현상에 대한 비난을 유보하고, 제가 쓰고 있는 시를 몇 편 떠올려보면서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1980년대의 해체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체시는 우리 현대시의 전망이고 가능성이다. 사실 형태와 장르와 세계관을 해체한 해체시는 그 다원주의적 열린 태도와 조립에 의한 의미 창조, 우리 삶을 바라보는 인식 유형, 그리고 그 신선한 감수성으로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소외문화와 정치적 억압구조에 대한 몸부림으로서 해체시는 필연성을 지닌다. 그러나 세속적이고 경박한 태도, 거칠고 야비한 어조, 그리고 그 지나친 허무주의와 극단적 상대주의는 극복되어야 할 과제다.       평단에서는 저를 해체시를 쓴 시인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저는 『우리들의 유토피아』(1989)나 『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 같은 시집에다 ‘형태와 장르와 세계관을 해체한’ 시를 싣기도 했었습니다. 박남철 시인이 최근에 작고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해체시의 명맥이 끊어진 것이 아닌가 여겨지더군요. 저는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자주는 아니지만) ‘도시시와 해체시’를 쓰고 있는 구시대의 시인입니다. 졸시를 한 편 보여드립니다.                                                   해 뜨는 들판에다 다시 기(基)를 세운다 절망의 성기를 기는 열을 내고 빛을 내고     고마워해야 하리 우리는 모두 하늘 향해 발기한 기 덕분에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었다     보온밥통의 밥을 먹고 냉장고의 물을 마신다 그럼 영혼은 피 줄줄 흘리다가도 멎고 육체를 녹이는 산성비도 피할 수 있다     욕망하는 현대인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하늘을 향해 튼튼하게 발기하는 기여 너의 치부 깊숙이 나의 치부를 박아 넣으리라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들아 얼마나 많은 사산아를 수습해야 저 기가 가동을 멈출까     후폭풍이 너와 나의 살 껍질을 벗기는 이 들판에 누가 또다시 기를 세운다 아주 많은 죽음 이후   -「다시, 기를 세우며」 전문       시의 제 1연인 사진은 폴란드 화가 백친스키의 그림 「폼페이 화산 유적에서 발견된 두 남녀」입니다. 폼페이 화산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화산재가 인근 마을을 덮쳤는데, 때마침 한 몸을 이룬 남녀가 그 모습 그대로 화석이 되어 후대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화가가 그 화석을 직접 보고 이 그림을 그렸는지 소문을 듣고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가 이 그림을 봤을 때는 마침 일본 동북부 지방 해저에서 발생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뒤흔든 2011년 3월이었습니다. 원전 사고가 나면 인간이 이런 모습으로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로 써보았던 것입니다. ‘基’는 그러니까 발전시설을 다룰 때 쓰는 단위입니다. 원전 1호기, 2호기 하지 않습니까.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을 때도 그랬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마을을 덮친 화산재 이상으로 큰 재앙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 생산의 대부분을 원자력발전소에 의지하고 있는데,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더라도 원자력발전소가 안전시설을 완벽히 갖췄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사고가 전국 21개 원전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640회 이상 일어났다는 통계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원전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난다면? 이런 상상으로 쓰게 된 「다시, 기를 세우며」가 해체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저는 이 시를 쓰고선 ‘도시시와 해체시’에 값하는 시를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도시시를 산업사회에서의 삶의 양식과 의식을 반영하고, 그 문제적 양상을 제기한 시라고 하셨지요? 해체시에 대해서는 종래의 시에서 소재에 지나지 않는 현실을 전혀 예술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생경한 원료 그 자체로 보여주는 반미학의 새로운 시학에 근거하고 있으며, 현실을 판단하지 않고 전시하며, 변용하지 않고 편집한다고 하셨지요? 극단적인 실험이라는 형식적인 측면보다 저는 반미학과 ‘의심하기’라는 내용적인 측면을 중시했기에 해체이론, 해체미학의 자장 안에서 맴돌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사사진과 그림이 텍스트의 구성 요소가 된 저의 일련의 시들을 이데올로기적 탈중심주의 관점에서 논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중심의 해체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다원적 글쓰기 방식이라고 진단하셨지요. 장르혼합식 글쓰기가 시를 사회적․역사적․이데올로기적․미적인 다원적 문맥에 놓이게 한다는 선생님의 평가는, 중심의 해체를 시도하는 제 시의 경향을 적시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날 가미카제 특공대원에 대한 글을 읽고 몹시 힘들어 했었습니다. ‘神風特別攻擊隊’의 한 사람을 소재로 한 미당의 시「松井伍長頌歌」를 미당문학관에서 읽었을 때도 몹시 괴로웠는데 조선인 자살특공대의 수가 17명이나 된다는 기사를 읽고 잠을 못 이루며 애통해하다가 써본 시가 있습니다.     눈앞에 들어온 미국 항공모함 시계를 본다 그대 목숨 이제 1분 남았다 59초, 58초, 57초, 56초, 55초, 54초, 53초, 52초, 51초, 50초, 49초, 나 이제 죽는다 나는 사라진다 48초, 47초, 46초, 45초, 44초, 43초, 어무이―! 아부지요―! 누부야―! 형니임―! 마지막으로 한 번씩 불러본다 42초, 41초, 40초, 39초, 38초, 37초, 36초, 35초, 34초, 33초, 32초 조종대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31초, 30초, 29초, 28초, 27초, 26초, 25초, 24초, 23초, 22초, 21초 목표 지점! 항공모함의 함수를 향해 방향타를 꺾는다 급강하 시작 20초, 19초, 18초, 17초, 16초, 15초, 14초, 엄청난 풍압, 어금니를 깨문다 13초, 12초, 11초, 10초, 저 먼저 갑니더 하늘나라로 갑니더 나중에 뵙겠심더 9초, 8초, 눈을 감는다 심장이 따갑게 뛰고 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7초, 6초, 5초, 4초, 순간 눈을 뜨자 눈앞에 와락 달려드는 쇳덩어리 3초, 2초, 1초, 목련꽃 진다   -「어떤 목련에 대한 생각」 마지막 연       사진이 남아 있는 탁경현이나 노용우 같은 젊은이는 20대에 전사했지만 이 시에 등장시킨 박동훈은 17세 소년이었습니다. 「松井伍長頌歌」에서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의 둘째 아들”이라고 한 이는 인재웅이라는 젊은이였지요. 지금부터 70년 전,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는 미국 항공모함을 향해 경비행기를 몰고 돌진한 박동훈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탁경현(1920〜1945)                                                                                  노용우(1922〜1945)       폭약을 잔뜩 적재한 비행기의 연료통에는 기지로 돌아올 연료가 넣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무슨 죄가 있어 ‘가서 죽어라’는 명령에 복종해야 했던 것일까요? 아, 죄가 있기는 했습니다. 식민지에서 태어났다는 죄였지요. 저는 동훈 소년의 마지막 1분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항공모함을 향해 방향타를 꺾어 돌진하는 것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동훈 소년이 겪었을지도 모를 그 1분의 공포감과 절망감을 시로 써보았지만 이것이 뭐 애도가 되겠습니까, 명복을 비는 일이 되겠습니까. 그저 가슴이 아프고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죽은 소년과 청년들에 대한 애통한 마음이 이 시를 쓰게 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사진 한 장을 보고 깜짝 놀라서 순식간에 쓴 시가 있습니다. 코가 베어져 사라진 사진의 주인공은 비비 아이샤라는 이름의 아프가니스탄 여인입니다. 조혼제도와 남존여비사상의 희생자로, 남편의 학대를 못 이겨 달아났다가 붙잡혀 코와 귀를 절단하는 보복을 당했는데 다행히 서방에 이 사실이 알려져 미국 캘리포니아 주 그로스먼 재단 병원에서 인조 코 성형수술을 받아 다시 코 있는 얼굴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고 일본 교토에 있는 ‘이총(耳塚)’이 생각났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왜군이 조선인 12만 6000여 명의 코를 전리품으로 베어와 만든 무덤이 교토에 있습니다. 이총은 사실 비총(鼻塚)입니다. 에도시대 말기의 유학자인 하야시 라잔이 코무덤이 잔인하다면서 귀무덤으로 바꿔 부르자고 해서 명칭이 바뀌었을 따름이지요. 왜군은 전과를 보고하기 위해 조선인의 목을 베어 본국에 보냈지만 그 수가 늘어나자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도요토미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쓴 뒤에 교토의 이총을 찾아가 묵념을 드리고 왔습니다.     엎어지면 코 베어가는 세상 코 없는 얼굴이 날 빤히 쳐다본다 아침 신문에서 만난 코 달아난 얼굴 그대 후유- 안도의 한숨 내쉴 수 없으리 킁킁 냄새를 맡을 수 없으리 코가 간지럽지 않으니 재치기할 수 없으리 감기 결려도 콧물 흘릴 일 없는 코 아픈 아프가니스탄의 여인이여                                                                         교토에 가면 귀무덤이 있다 12만 6000명의 코가 그 무덤에 있다는데 그 많은 사람의 사지 육신은 조선반도에서 다 썩었는데 소금에 절여져 현해탄을 넘은 코는 400년이 지났는데 썩지 않았을까 개수에 따라 매겨진 전공 그 무덤을 파보면 코 뼈다귀가 소복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까     내 오늘 코에서 단내가 나도록 계단을 오르내렸다 코끝도 안 보이는 그를 코가 빠지도록 기다렸다 코가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내 코가 석 자 코가 비뚤어지도록 홧술을 마시고 드르릉드르릉 코를 골며 잠잔다 코기토 에르고 숨(Cōgitō ergo sum)! 코 없이 살아가라는 세상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코가 없다」 전문       사진 한 장이 저로 하여금 이 시를 쓰게 했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타게 했습니다. 아아, 12만 6,000명의 코가 베어져 이룬 무덤이 있다니! 저는 시가 우리 삶 가운데 들어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가 무기라는 김남주의 시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내면세계 추구나 자아에 대한 탐색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역사의식, 사회의식, 그리고 현실참여의식 같은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일종의 정치의식이라고 할까요. 개인의 삶은 사회의 부조리한 조건들로 말미암아 굴절되기 쉽고, 그런 이유로 개인은 사회와 맞서는 의지를 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회가 ‘건전한 사회’(에리히 프롬)가 아닐 때는 말입니다. 저는「화가 뭉크와 함께」라는 시로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일종의 ‘정치시’를 쓰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80년대와 정치시」라는 글에서 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지요.       우리의 삶이 정치화되고 시가 정치화되는 것은 하나의 필연적인 과정이다. 허세욱이 최근 중국 정치시를 번역ㆍ해설한 「反體制의 政治抒情詩」와 김광규가 번역한 「에리히 프리트의 참여시」는 현대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정치시에 있음을 반영하고 고무한다 하겠다. (중략) 정치시에서 시인의 시각은 매우 배타적이고 고정적이다. 이것은 적어도 진실의 면에서 정치현실이라는 전체상을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런 시각 밖의 진실은 또 한 번 왜곡되고 은폐되기 때문이다. 정치시는 애국시고 우국시지만 80년대 정치시는 너무 거칠다. 물론 거칢 자체는 우리의 정치시가 아직 저항과 투쟁에 근거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80년대 정치시는 그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를 너무도 명백히 지니고 있다.       저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지 않는 정치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잘 알면서도 줄기차게 실패작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이 세상에는 불의와 부조리가, 몰상식과 몰염치가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폭력과 광기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이기 때문입니다.     언제쯤 제12시집을 내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 시집은 서정시집이 아닐 듯합니다. 저는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면회를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참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생을 정신병원 안에서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그들의 싸늘한 눈빛 혹은 멍한 표정이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고는 했습니다. 또 몇 년 전부터 전국 여러 곳 교도소를 다니며 교화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갖고 시를 썼습니다. 그들 모두는 오랜 시간 벽에 갇힌 채 감시를 받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구속할 수 없는 삶의 희망과 꿈이 있는데, 그것을 시의 소재로 삼고는 했습니다. 다정다감한 서정시가 아니라, 조금도 곡필이 없는 거친 시, 윤기 없는 시를 저는 쓰고 있습니다. 이런 시는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쓰는, 이 모순된 세상을 향한 저의 ‘절규’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저작들을 수시로 펼쳐보면서 제 시어의 동력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제 시가 선생님의 시론에 빚진 게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발전하고 있는 것 같지만, 깊이 감춰진 모순들은 끊임없이 증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고 심신의 고통은 멈추지 않지요. 제 시는 바로 그런 고통에 대한 부르짖음이며 ‘생사의 고백’(코스타 가브라스)입니다. 선생님의 시론이 제게 빛인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오늘도 선생님의 시론을 머리맡에 두고 보며 힘을 내봅니다. 제 시에 피를 돌게 하는 귀중한 시론에 늘 감사를 드리며 명복을 빕니다.       ㅡ『시와사상』 봄호에서    
1014    김춘수 / 이승하 댓글:  조회:5029  추천:0  2015-04-19
        시간 : 1999년 1월 13일   장소 : 김춘수 시인 명일동 자택    이승하 : 안녕하십니까? 한동안 겨울 날씨가 너무 포근해 기상 이변에 따른 이상 난동인가 했는데 최근 들어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겨울이 겨울다워야 하지만 바깥 출입하시기에 불편한 날씨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김춘수 : 몸은 그저 그만한데 기억력이 많이 쇠퇴했어요.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잊어버리는 수가 다 있습니다. 와서 인사를 하는 사람이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 실례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미당 선생이 자고 일어나면 산 이름을 수백 개씩 외운다는데, 그 심정을 알겠어요.       이승하 : 그래도 선생님 연세가 올해 일흔여덟이 되신 것을 감안하면 아주 건강하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김춘수 : 내가 생일이 좀 늦어요. 11월 25일이니까 만으로 치면 일흔여섯 겨우 넘긴 셈인데 우리 나이로 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할까요. (웃음)       이승하 : 작년 12월, 시와시학상 수상식장에서도 장시간 축사를 하셨고, 문학아카데미 주관 시의 축제 행사 때에도 '시의 두 가지 유형'에 대해 장시간 특강을 하시고 질문도 받으셨다면서요? 저는 시의 축제 행사 때 가보질 못해 특강 내용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김춘수 :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서경』에 '詩言志家永言'(시는 뜻한 바를 말로 표현한 것이며 노래는 말을 가락에 맞춘 것)이란 말이 나오죠. 여기서 '뜻'이란 서양의 50년대 신비평 그룹이 말한 'poetry of the will'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will'은 의지가 아니라 관념이나 사상을 말하는 것이지요. 'platonic poetry', 즉 관념시도 거의 같은 말입니다. 이 유형은 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왔을 만큼 긴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근대에 들어서 'physical poetry'(물질시)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상이나 관념을 배제하는 또 하나의 유형이지요. 관념과 의지는 얕잡아서 말하면 메시지인데, 시에다 어떤 메시지를 담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겨난 것입니다. 관념이나 메시지는 사물에 대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물질시는 판단을 유보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지요. 어떤 사물과 사실을 묘사하는 데 그칠 뿐 주의 주장을 배제합니다. 시에는 크게 이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이 그날의 강연 요지였습니다.        이승하 : 선생님께서 한때 말씀하셨던 무의미시는 물질시의 갈래로 봐야겠군요. 그런데 1991년에 발간하신 시론집 『시의 위상』을 보니까 한국 현대시의 계보를 세 가지로 나누어놓았더군요. 사적인 개인의 감정을 드러낸 서정적인 가닥과 사회의식이나 역사의식이 두드러진 현실 참여적인 가닥, 그리고 문화의식이나 예술적 차원에서의 시대감각이 민감한,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는 가닥이 그것이라는 삼분법을 본 기억이 납니다. 지난번의 구분법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갈래가 하나로 합쳐졌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김춘수 : 아, 그럴 수가 있겠습니다.        이승하 : 우리 시를 보면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국내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현실 참여적인 가닥은 현저히 줄어든 셈인데, 한때 무의미시론을 주창했던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김춘수 : 사회 문제는 늘 있는 것인데 동구권 몰락으로 현실 참여시의 창작이 줄어든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요즘도 세상이 얼마나 어렵고 어지럽습니까.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의 갑작스런 위축은 그때 그런 시를 활발히 썼던 사람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어떤 기대가 있었다거나 시세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반증이지요. 다른 나라 시를 보더라도 사회 참여의 경향은 있어온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구권은 동구권이고 우리 사회는 우리 사회인데 왜 공산주의의 몰락이 우리 시인들한테 영향을 주었는지 이해가 잘 안 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래요.       이승하 : 메시지의 시를 배격해오신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뜻밖입니다. 아무튼 참여시론을 외친 김수영의 영향력은 후배 시인들과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여전히 절대적입니다. 김수영 시인과 그의 영향력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김춘수 : 김수영은 나랑 나이도 비슷했고 문단에 나온 것도 비슷했습니다. 나보다 한 살 위였죠. 그런데 선후배와 동년배 시인을 망라해 그처럼 내가 강한 압력을 느낀 사람은 없었습니다. 김수영은 모더니스트로 출발했는데, 그래서 부산 피난 시절 후반기 동인들과 가깝게 지냈지요. 후반기 동인과 그 주변 시인들 가운데 김수영은 내 눈에 그때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습니다. 후반기 동인은 저한테도 가입 의사를 타진해왔는데 저와는 기질이 맞지 않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어떻든 방법론과 기교에 있어 모더니스트임에 틀림없었던 김수영은 20년대를 풍미한 T.S. 엘리엇보다 30년대 영국 뉴 컨트리파를 이루었던 W.H. 오든과 스티븐 스펜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엘리엇이 내면성이 강한 시인이었던 반면 오든과 스펜더는 사회성 내지는 혁명성이 강했지 않습니까. 혁명성이 강한 시의 탄생은 유럽 지식인 사회의 좌경화와 스페인 내전, 미국 경제공황 등의 영향 때문인데, 4.19를 전후해 김수영도 뉴 컨트리파 시인들을 의식해 시적 전환을 꾀했던 것입니다. 김수영에 대해 의식·무의식적으로 경쟁의식을 갖고 있던 저는 그가 참여시론을 전개하자 그 반대의 경향인 내면세계를 더욱 열심히 파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려고 용을 쓰게 된 데는 김수영이란 존재가 의식되었기 때문이지요.       이승하 : 김수영 시인에게 그렇게 강력하게 경쟁의식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아까 미당 서정주 선생님 말씀을 잠깐 하셨는데 문단에서 오랜 교분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미당 선생님의 시세계는 선생님과 유사한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미당의 시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김춘수 : 그 무엇보다 그분한테는 니체 사상의 영향이 강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미당 자신도 보들레르보다 니체의 사상에 경도된 적이 있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문둥이」 같은 시를 보면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긍정과 예찬이지요. 도덕이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인데, 도덕을 초월하는 생명사상이 그의 초기 시에는 아주 강했습니다. 모국어의 유려한 구사와 아울러 미당 시의 이런 측면은 무척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승하 : 선생님께서는 90년대에도 정말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셨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시론집 『시의 위상』을 비롯하여 시집『처용단장』『비에 젖은 달』『서서 잠자는 숲』『들림, 도스토예프스키』4권을 90년대에 출간하셨습니다. 작품집 출간 계획이 지금 잡혀 있는 것이 있습니까?       김춘수 : 이 달 말경에 문학세계사에서 시집이 한 권 나올 예정으로 있습니다.       이승하 : 칠순에 접어들어 펴낸 다섯 권의 시집, 정말 왕성한 작품 활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춘수 : 작품의 질이 문제지요.       이승하 : 지난 겨울호『세계의 문학』에는 평론가 이태동 선생이 선생님의 문학을 총정리한 글을 실었습니다. 이태동 선생은 선생님의 시를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론적 추구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시적 궤적은 사계의 변천 과정에서 명멸하는 생명체의 그것과 유사함을 지니고 있다고, 즉 생명체의 성장 과정이 주변환경의 영향으로 굴절되는 모습을 보이듯이 외부적인 상황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타령조 기타』의 세계를 지나면서 관념을 멀리하고 실존적인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던데, 여기에 대해 동의하시는지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춘수 : 저도 이태동 씨의 그 글을 유심히 읽었는데 제 창작 의도와는 전혀 다른 진단을 하고 있더군요. 사계의 변천 과정이니 외부적인 상황과의 깊은 관계니 실존적인 현실묘사니 하는 것 등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이지만 여기에 대한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평론가가 제 시를 어떻게 보느냐는 그분의 자유 아닙니까. 상당히 긴 분량으로, 공들여서 쓴 글을 놓고 반박하기가 뭐합니다.      이승하 :『들림,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이태동 선생의 평가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패러디를 통해 부조리한 역사와 비극적인 삶의 현실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새로우면서도 허무적인 일면을 나타내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했습니다. 부조리한 역사와 비극적인 삶의 현실에 저항한 소설 속의 인물들에 대한 시적 형상화는 인정할 수 있지만 선생님 시의 허무적인 일면에 대한 언급은 선뜻 수긍하기 어려웠습니다.        김춘수 : 허무라는 말이 거두절미하고 갑작스레 나오니 당황하게 되더군요. 허무라는 말이 나왔으니 도스토예프스키 소설과 관련시켜 '허무'에 대해 이런 말은 하고 싶습니다. 그의 소설을 보면 혁명가들이 많이 나오지요. 그런데 상당수가 허무주의자예요. 도스토예프스키는 희랍정교주의자 내지는 슬라브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서구에서 들어온 사회주의니 혁명사상이니 하는 데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지요. 러시아가 공산주의 치하였을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금서였던 것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회주의자를 허무주의자와 같은 맥락에서 봤기 때문입니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혁명가들을 신을 잃어버린 사람들, 즉 니힐리스트라고 본 것을 공산당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승하 : 저는 죽음을 향한 인간의 도정이 결코 허무로만 귀결되지 않음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 내재되어 있음을『들림, 도스토예프스키』를 통해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신에 의한 인간 '구원'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오셨는지요? 예수의 다른 이름이 구세주인데, 선생님이 쓰신 시 가운데 예수가 나오는 것도 여러 편 있지 않습니까?       김춘수 : 나는 미션 계통의 유치원에 다닌 탓인지 어릴 때부터 기독교가 정서적으로, 감각적으로 몸에 배었습니다. 청·장년이 된 이후로는 기독교, 특히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꾸준한 관심이랄까, 집요한 관심이랄까. 성경은 지금까지도 내 애독서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책이 나왔는데 상당수를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성서에 기록된 기적(奇蹟)의 대목에만 이르면 번번이 좌절하고 말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에 대해서 지적인 관심으로만 접근하게 되더군요. 기적의 문제는 기독교인이라면 과학자 등 상당한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무조건 그대로 믿어버리지 않습니까. 나는 그게 납득이 안 되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에 대한 관심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에 있어서는 구원의 문제, 인간에 있어서는 존재론적인 문제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승하 : 지난번 시집을 보면 원죄, 혹은 선악의 문제로 고민하는 소설 속의 인간들이 다수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 자신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의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선생님 나름의 종교관을 펼쳐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김춘수 : 그럴 수 있지요.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느님을 믿는 희랍 정교주의자였지만 기독교를 일방적으로 찬양하지는 않았습니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를, 선인과 악인을, 혁명가와 반혁명가(지주·자본가·종교인 등)를 등장시켜 갈등케 했지요. 사람을 선인과 악인으로 딱 갈라서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극악무도한 인간과 천진무구한 인간이 나와 다같이 고민하고 갈등하지요. 신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분은 확실합니다. 한데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갈등의 양상만 보여줄 뿐입니다. 해결을 줄기차게 모색하되 해결된 세계는 보여주지 않아서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아주 공감했던 것입니다. 자기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 것, 갈등만 있고 해결이 없는 것, 그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세계는 예수에 대한 관심은 갖되 기독교인이 되지 못한 나의 종교관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하 : 선생님은『현대문학』1월호에「계단을 위한 바리에테」를 발표하셨고, 이번 호『시와시학』지에 연작시「의자를 위한 바리에떼」7편과「계단을 위한 바리에떼」3편을 발표하셨습니다. '바리에떼'란 다양성·변화·변용, 뭐 이런 뜻이니 변주곡으로 해석하면 될 듯합니다. 의자와 계단 같은 사물을 제목에 끌어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춘수 : 의자와 계단 연작시가 스무 편 정도 돼 이번에 나올 시집의 제목을 '의자와 계단'으로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자는 휴식과 기다림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의자에 앉으면 휴식의 상태가, 비어 있으면 기다림의 상태가 되지요. 나는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즉 정신의 안정을 꾀하고 싶은데, 종교적으로 말하면 구원을 얻고 싶은데, 내 의자는 늘 비어 있습니다. 내 의자는 늘 비어 있는 상태이고, 나도 거기 앉고 싶은데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정신적 안정을 줄곧 갈망하는데 한시도 안정이 안 되는 거지요. 계단이란 것은 무한정 올라갈 수가 없죠. 올라가게끔 만들어져 있지만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것이 계단입니다. 인간 본연의 이율배반성이나 자기모순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계단이 아닌가 합니다. 신학과 연결시키면 안티노미(antinomy)의 상태로 있는 것이 계단이고, 이것이 바로 인간이란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이승하 : 그러니까 의자는 구원의 불가능함을, 계단은 인간 존재의 이율배반성을 의미하는 것이겠군요. 의자에 가서 앉고 싶어도, 즉 기독교인이 되어 내 몸과 영혼을 신께 온전히 의탁하고 싶어도 내 의자는 늘 비어 있으니 휴식과 안정,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또 보통의 인간이 매일 도처에서 만나는 계단은 지혜이건 재산이건 명리이건 쌓아 올라가면 반드시 버리고 내려가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가를 일깨워주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사물을 갖고 사상을 들려준 상징화의 기법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김춘수 : 재미있다니 다행입니다.       이승하 :『계단을 위한 바리에테』는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어린 시절이 나오는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시적 화자와 니버가 친구로 등장합니다. 니버란 녀석이 내 호주머니에 밤 몇 톨을 쑤셔넣는데, 집에 가서 꺼내보니 껍질에 설탕가루가 묻어 있고 알은 다 썩어 있더라는 얘기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의적인 표현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하고…….       김춘수 : 라인홀드 니버란 이름은 독일식이지만 미국 국적이었지요.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입니다. 그의 저작 『인간의 운명』은 내가 대학에 다니면서 탐독했던 작품이지요. 사실에 있어 그 시의 니버는 어린 날의 나고, 니버의 친구는 이웃집에 살던 일본인 아이였습니다. 그 얘기는 자전소설 『꽃과 여우』에도 나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였을 겁니다. 이웃집에 사는 일본인 아이가 꼭 그런 식으로 짓궂은 장난을 하기에 나도 그렇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놈이 겁이 나 내 앞에 영 안 나타나는 겁니다. 그 일을 생각해보니까 니버 같은 유명한 신학자도 어릴 때는 그렇게 짓궂은 개구쟁이였는데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는 수양을 통해 유명한 신학자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그런 시를 지어본 것입니다.       이승하 : 그럼 계단을 올라가는 수행을 통해 인간적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노력을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으리라는 바람을 가져본 것이 이 시의 숨은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김춘수 :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지요.       이승하 :「의자를 위한 바리에떼」는 그 넷부터 시작하여 그 열까지 7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에 의자가 있어 '자리'나 '지위'를 생각했습니다만 읽어보니 그런 뜻은 들어 있지 않은 듯합니다. 의자에 얽힌 추억담으로 읽혀지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고,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그 넷'에는 헤르몬산, 갈릴리의 호수, 요단강이 나와 선생님의 종교적인 명상 같은 것을 엿보게 됩니다. 독자를 위해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해주시는 것이 가능할는지요?       김춘수 : 예수에 대한 관심이 하나의 갈망으로 굳어진 내용입니다.       이승하 : 아, 그렇습니까. '그 다섯'에는 죽어서 나비가 된 어릴 적 소꿉질 친구 '옥수나'가 나옵니다. 왜 옥수나가 대낮인데 공지초롱을 들리고 연못가 수련꽃 그늘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구요, "슬픔은 키가 작아/바람 부는 날 더욱 작게 몸을 웅그린다"는 것도 저로서는 제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파악되지 않습니다.       김춘수 : 옥수나란 이름은 지어낸 것입니다. 이름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유치원생쯤 되는 대여섯 살 때도 이성을 느낄 수 있거든요. 내가 좋아했던 계집아이가 죽고 없는 세상은 쓸쓸합니다. 슬플 때는 사람이 움츠러드는데 바람까지 부는 날엔 더욱 추워 웅크리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아이가 나비가 되어 환생하기를 꿈꾸는 것이지요. 이 시에는 평생 갈망이 충족되지 않는 데서 오는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은 근원적인 갈망을 평생 지고 가는 존재가 아닙니까. 존재 그 자체가 슬픈 것이지요.       이승하 : 유년시절에 느낀 이성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을 그려 인간의 유한성, 그것의 슬픔을 노래해본 시로군요. 의자는 기다림과 갈망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제목과 잘 들어맞습니다. 루오는 현대 화가 중에서도 기독교적 색채가 특히 강한 사람입니다. 루오가 「교외의 예수」를 그린 일에 상당한 상징을 부여한 듯합니다. 이 작품에 대한 선생님의 창작 의도는 무엇입니까?       김춘수 : 루오는 나이가 많이 들어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해 세계적인 화가가 된 사람이지요. 그의 작품「교외의 예수」에는 예수의 얼굴이 없고 윤곽만 있지 않습니까. 그 옆의 두 사람도 마찬가지고. 루오도 예수의 이목구비를 그려낼 수 없어 좌절감을 겪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수는 참 걷잡을 수 없는 인물이에요. (웃음)       이승하 :「그 일곱」과 「그 여덟」은 쉽고도 어려운데 어둠과의 대결 및 시간에 대한 은유적 처리로 느껴졌고, 「그 아홉」은 고향에서의 기억을 더듬은 시로 읽혀지던데요.       김춘수 :「그 일곱」은 기다리는 자를 그린 일종의 스케치입니다. 쓸쓸한 풍경화지요.「그 여덟」은 인간의 고독감을 그린 것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갈망하는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객관세상이어서 아무 감정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객체는 다 냉랭하다는 것이죠. 그 다음 시는 끝부분 "허리가 물렁물렁해진다"는 표현에 주목해주기 바랍니다. 앞서 말한 의자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는 일이 허전하기도 하고 뭔가 충족되지 않는 델리킷한 감정을 담은 것입니다.    이승하 :「그 열」에는 요한 바오로 2세와 한국의 예술가들이 나오는데, 일종의 풍자시로 읽혀집니다. 풍자시로 읽어도 괜찮은 작품인지 모르겠습니다.      김춘수 : 아닙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왔을 때 저도 초청을 받아 갔었는데 그분의 인상이 써놓은 그대로였습니다. 그가 풍겨주는 분위기와 그가 읽는 글(메시지)에 흡수·동화되어 흡족함을 느낀 상태를 그대로 그린 것입니다.        이승하 :「계단을 위한 바리에떼」는 계단에 얽힌 어린 날의 추억입니까? 「그 하나」와 「그 둘」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데 「그 셋」은 제 안목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잼이 자메이카의 약어라는 것과 계단과의 관계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제가 시를 보는 눈이 이렇게 미욱하여 영 부끄럽습니다.        김춘수 : 앞의 두 편은 성장의 한 과정을 그린 것이지요. 잼이 자메이카의 약어라는 것을 어디서 우연히 봤어요. 잼은 빵에 발라서 먹는 것인데 자메이카의 약어이기도 하다는 것이 신기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나라 이름조차 확 줄여서 사용하듯이 우리가 무엇에 도달하려면 제대로 순서를 밟아야 하는데 성급하게 하려 듭니다. 그런 것에 대한 경구적인 의미를 담아봤습니다.        이승하 :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지 않고 성급하게 이루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의 조급함에 대한 교훈적인 의미를 담은 시로군요. 이제까지 여러 시편에 대한 세심한 설명을 듣고 보니 선생님의 최근작들이 대체로 신 없는 세계에서의 인간 구원과 인간 존재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 작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내시는 시집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선생님의 시집은 해외 소개도 활발합니다. 시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영역되고 『꽃을 위한 서시』가 불역된 바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번역된 시집이 있습니까?       김춘수 : 강상구 씨 번역으로 일역 중인 것이 한 권 있고요, 서울대 서반아어과 교수가 번역하고 있는 것이 한 권 있습니다.       이승하 : 선생님은 시인이시지만 『한국현대시형태론』『시론』『의미와 무의미』『시의 위상』 등의 시론집을 내신 이론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평단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되시면 한두 가지만 지적해주십시오.       김춘수 : 월평 등 실제비평을 보면 영 엇나가는 평을 하는 수가 많습니다.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론적으로 모르지만 맛을 잘 구별하는 감식가가 따로 있지 않습니까. 시의 맛을 아는 사람이 실천비평을 하는 것이 좋을 텐데 외국 이론을 도식적으로 갖다 붙이려는 사람이 쓴 글을 보면 영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가 본시 조금은 어려운 것이지만 그 시를 현학적으로 해석, 더 어렵고 난삽하게 만드는 데 평론가가 일조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지요. 시에 대한 억지스런 해석, 그리고 도식적 해석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시를 보는 시야가 우리 세대보다 훨씬 넓어진 것은 다행스런 현상입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 시를 날카롭게 보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가 있구나 하고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승하 : 우리 시의 현주소와 관련하여 선생님의 불만 사항이나 평소에 조언하고 싶었던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김춘수 : 우리 시가 타성화되어 있는 면은 정말 우려할 만한 것입니다. 1910년대와 20년대의 시풍과 경향이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답습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왜 이렇게 많은 서정시가 씌어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시대 감각이 그렇게 둔하다는 것이지요. 이 시대는 서정시의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낡은 서정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고, 중견이든 신예든 그런 시를 쓰는 사람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1세기 전의 시풍이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이른바 순수서정시풍이 한 세기를 이어가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사례일 겁니다. 지금은 다들 손을 놓고 있는 해체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IMF 시대라 재벌도 구조 해체를 하지 않습니까. 타성화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작금의 서정시풍은 타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승하 :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1993년에 사진과 그림을 응용한 시를 여러 편 실은 시집을 내놓았는데 시인이 활자에 도전하고 있다고 도처에서 욕을 듣고는 작업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새로운 용기가 생겨납니다.       김춘수 : 또 하나 우려할 만한 것은 몇몇 시인들의 선(禪)에 대한 경도입니다. 선에 관심을 기울이면 양생(養生)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불가의 선사처럼 뭘 깨달은 것도 같고, 화두 같은 시를 써놓으니 기분전환도 되고 마음이 평안하게도 됩니다. 하지만 사회성과는 아주 멀어지고, 내면세계 혹은 존재론과도 멀어지게 되죠. 깨달은 척한다는 것은 사실 희극적인 현상 아닙니까. 선을 받아들인다면 하이꾸를 쓴 바쇼의 경지에 이른다면 또 모를까. 바쇼는 선사상에 입각해 시를 썼지만 관념성을 배제하고 즉물적인 시를 썼던 사람입니다.       이승하 : 어떤 시인들을 겨냥한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문단 활동이 어언 50년을 넘어섰습니다. 유치환·윤이상·김상옥 선생님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신 것을 기점으로 삼으면 55년이 된 셈입니다. 문학인의 길이란 어느 한때의 수확에 우쭐할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지속해 나가야 할 언어의 밭갈이여야 함을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됩니다. 선생님은 이제껏 전집이며 시선집을 제외하고 개인시집만 14권을 내셨습니다. 이제 곧 15권째의 시집이 나올 예정이고요. 작년의 인촌상 수상이나 재작년의 대산문학상 수상은 선생님의 뛰어난 작품에 대한 평가일 뿐 아니라 노년에 들어서서도 줄기차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 것을 기리기 위해서일 거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김춘수 : 늘그막에 무슨 상복인지 모르겠습니다. 2년 연속 큰 상을 받아 내가 시상식장에서도 후배들한테 미안하다고 얘기를 했었지요.       이승하 : 55년이란 긴 세월 동안 긴장감을 잃지 않고 계신 선생님이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긴 시간 대담에 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시 작품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1013    녀성해방출사표 시인 - 高靜熙 댓글:  조회:4711  추천:0  2015-04-19
죽음의 강을 건너기 위한 긴 노래                     / 시인 고정희 재평가 고정희의 장시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     1. 무가, 민중의 바람을 담은 노래   주검은 어디에나 있다. 신문지상의 부고란과 명절날 제사상의 지방에서 우리는 주검을 연상하며, 장례일과 현충일에도 수많은 주검을 떠올린다. 삶이 없었더라면 죽음 또한 없었을 터. 그러기에 죽음은 모든 생명체가 맞이해야 할 마지막 현실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흐르는 강은 넓고도 깊다. 시간의 강은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생자와 망자를 완벽한 타자로 만든다. 강의 양안에 선 생자와 망자가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는 없다. 이승과 저승은 건너갈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지극한 정성으로 신들의 힘을 빌어 한 척의 배를 만든다. 그 배의 이름은 굿이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가버린 망자를 불러 그의 혼을 달래주기 위해 살아 있는 식구들이 정성을 모아 마련한 배인 굿판. 삶과 죽음 사이에 흐르는 강 위에서 무당은 춤추고 노래함으로써 배를 저승의 기슭으로 나아가게 한다. 무당에 관한 옛 기록을 찾아보면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 유리왕 편에 나와 있어 그 연원은 기원전과 후의 경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 위에 뜬 그 배에서 우리는 지난 2천 년 동안 무당의 권능에 의지해 신을 불렀고(청신), 신을 지상으로 내려오게 했고(강신), 신을 맞이했고(영신), 신과 놀았으며(오신), 신을 다시 저승으로 보냈던(송신) 것이다. 신과 인간의 만남 및 생자와 망자의 만남은 내림굿이나 다리굿, 혹은 씻김굿 같은 소규모의 굿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 마을 사람들 전부가 정성을 모아 마을의 안녕과 생업의 번영을 비는 두레굿이나 대동굿에도 있었다.    굿판에서 신과 인간이 더불어 흥겹게 놀기 위해서는 무당이 노래를 해야 한다. 신을 불러오고 인간이 신과 함께 놀게 하는데 무가가 빠질 수 없다. 무가의 기본적인 요건은 음악적 가락과 문학적 사설이다. 음악적 가락은 청중의 신명을 돋우어 마음을 엑스터시의 경지로 몰아넣고, 문학적 사설은 청중을 머나먼 저승의 기슭으로 안내해 망자와 만나게 해줌으로써 잠시나마 생사를 초월케 한다. 생사를 초월한다는 것, 죽음의 강을 건넌다는 것은 내일-저곳에서의 삶을 중시해서가 아니라 오늘-이곳에서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굿을 통해 일상적인 삶에서 해소되지 못한 원초적 욕구의 맺힘과 사회적 갈등에서 오는 온갖 억눌림을 풀어왔다. 또한 굿을 통해 비명에 가 떠도는 혼을 죽음의 세계로 완전히 보낸 뒤 삶을 더욱 충실히 가꾸어왔다. 굿은 어찌 보면 망자와의 인연을 끊으려는 행위이며, 이승에서의 삶에 더욱 집착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무가 속에는 청승도 애소도 곡성도 들어 있지만 그 밑바닥에 고여 있는 것은 현실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민중의 다부진 힘, 신분 제약을 뚫고 나아가는 민중의 끈질긴 집념이다. 무당은 부정한 일을 담당하는 신들을 달래고(부정거리), 잘먹고 잘살고 싶어하고(성주풀이), 재생과 여성해방을 염원하고(바리공주),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고자 길 닦음을 하며(씻김굿), 잡귀마저 초청해 풀어 먹이는(거리굿) 긴 절차를 노래로 풀어가는데, 여기에는 민중의 바람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밤을 새며 부르는 무가에서 놀이의 기능을 배제하면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광녀의 고함에 지나지 않는다. 무가가 신명의 드러냄이나 정서적 유희가 아니라면 공허한 하소연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가에서 의사 표현의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면 오락으로 떨어져 예술적 향기를 풍기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열두거리 과정에서 듣게 되는 드라마틱한 노래에 담긴 현실 극복의 정신을 시로써 재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1991년, 43세를 일기로 작고한 고정희는 생전에 {초혼제}(창작과비평사, 1983)와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창작과비평사, 1989)란 두 권의 장시집을 낸 바 있다. 이에 앞서 낸 {실락원 기행}(인문당, 1981)에는 문제적 장시 가 실려 있다. 와 두 장시집은 굿과 시의 결합 가능성을 탐색한 소중한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논의도 가치 평가도 거의 되어오지 않았다. 시인의 작업은 70년대 탈춤부흥운동에 이어 80년대에 마당극이 마당굿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민중 문화의 원형질을 탐구하고 서사적 구조에 의거해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겠다는 의도로 행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신적 뿌리는 2천 년 동안 갖은 외래종교의 위세와 일제의 탄압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굿판에 닿아 있다.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계에서는 무당을 사탄에 버금갈 정도로 혐오스런 존재로, 무속을 광기에 찬 악의 세계로 취급하기도 한다.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교계에서도 무속을 종종 미신으로 취급하는데 기독교인이었던 고정희가 굿을 자신의 시세계로 왜 끌어들였을까 하는 의문은 마땅히 제기되었어야 함에도 제기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기독교와 무속은 죽음관이 판이하므로 기독교인이 자신의 시 속에 무속의 죽음관을 어떻게 수용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충분히 해명되었어야 했다. 아울러 기독교인 고정희가 굿과 시의 결합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올바르게 평가해야 할 필요도 있기에 이 한 편의 글은 씌어진다.    2.  흥겨운 놀이판의 재현   생전에 10권의 시집을 낸 바 있는 고정희의 제3시집 {초혼제}와 제7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장시집이라는 형식상의 특색과 굿의 현대적 의미를 탐색했다는 내용상의 특징 이외에,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다른 시집에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완연한데 유독 두 시집에서는 무속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무속세계에 대한 관심은 에 이미 예비 되어 있던 것이기도 했다. 시인이 생애 내내 기독교인이었음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이력과 그녀의 다른 시집들, 또 많은 산문(한 가지만 예를 든다. 고정희는 라는 평문에서 "모든 참된 문학작품은 그 속에 무엇인가 기독교적인 것을 담고 있고 또 참된 기독교는 무엇인가 시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대로 역사상 인류가 가진 모든 고전 속에는 성서가 증언하는 진리가 부분적으로 육화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성서와 문학은 둘 다 그 중심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구원'에 관심한다는 데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우규 편저, {기독교와 문학}, 종로서적, 1992, 446쪽)에서도 확인되고 있는데 왜 제3시집에 이르러 죽음관이 판이하게 다른 무속에다 자신의 시세계를 접목시켜야 했던 것일까. 처녀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배제서관)의 시편부터 살펴보면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잠든 메시아의 봉창이 닫히고   대지는 흰 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작은 길 하나까지 묻어버릴 때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 사람아.                                     ㅡ 부분   표제시 외에도 "바벨탑에 가위눌린 푸른 신경 하나"(), "하나님 부를 때/누가 말했는가"(), "에덴은 여전히 불꽃에 싸이고"(), "순례자의 크고 환한 웃음소리"(), "종말 때문에 울부짖는 내 머리칼 뒤"(), "조금만 더 가면 천국으로 들어가요"() 등 시집은 기독교인이 쓴 것임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시를 한두 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이 기독교의 죽음관과 일치하고 있다.    살지만 실상은 죽어 있는 나 곁에   죽었지만 실상은 살아 있는 자,    형벌의 수액은 이미   우리 뿌리 곁에 있다                                      ㅡ 부분   신약성경에서 죽음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이해되므로 죽음은 죄의 값이다. 인간은 죽어 은혜로운 생명의 주 하나님 앞에 인도되기 때문에 생명이 무화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보존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 된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의 죽음관이다(김경재, , {죽음이란 무엇인가}, 한국종교학회 편, 도서출판 창, 1990, 220쪽). 고정희는 죽음을 늘 예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살지만 실상은 죽어 있는 자"로 보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아우슈비츠의 유태인을 "죽었지만 실상은 살아 있는 자"라며 부활시키고 있다. 고정희에게 있어 죽음과 삶 사이에 흐르는 강의 의미는 같은 시의 "하나님 버린 목숨"과 "하나님 밖에 산다 버린 것들 속에/ 이미 버림받음이 있다"에 잘 나타나 있다. 살아 있더라도 하나님을 버린 목숨은 이미 죽은목숨이며, 하나님 밖에 사는 목숨은 이미 버림받은 목숨이다.      이렇듯 기독교인의 죽음관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던 시인의 죽음관은 제2시집 {실락원 기행}에 이르러 변모한다. 고정희는 스스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극히 인간 중심적인 종교인 무속의 죽음관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목만 일별하더라도 이 시집에는    과 함께 '잔양조' '중중몰이' '자진휘몰이' '휘몰이' '단몰이'를 부제로 한  연작과   가 공존한다. 판소리와 민요를 비롯한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 작업은 마침내 '저승의 잡귀'와 '司祭의 축복'을 한 시 속에 등장시킨다. 하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전통 율격의 시적 수용에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상태이다.    화계사 북소리   저승 문 두드리는 밤 일곱 시   (저승의 잡귀들도 사슬을 푼다는 밤 일곱 시)   잠시 마음에 채인 족쇄를 풀며   그대여 아무도 모르게 내가 운다   아무도 모르게 그대 우는 소리 듣는다   …(중략)…   한때 우리들의 피를 부풀린    司祭의 축복과 종소리 다 어디로 가고   …(중략)…   떠도는 원귀들도 잠재우고 싶구나                                  ㅡ 부분   기독교 세계에서 잡귀니 원귀 따위가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고정희는 낙원을 읽어버렸다는 전제하에 잡귀며 원귀를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무속은 불행한 죽음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는 데 집중하는 민간신앙인데, 바로 이 점을 중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속에서는 죽음을 현실로 일단 받아들이지만 죽음 자체는 불행한 것으로 여기고, 산 자의 노력에 의해 죽은 자는 신격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시인은 이 땅의 모든 억울한 주검들이 예수처럼 부활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떠도는 원귀들도 잠재우고 싶"어 한마당 굿판을 벌일 마음을 먹는다. 이 시집의 제10부는 장시 이고, 이 장시는 제3시집의 제4부로 다시 가감 없이 게재된다. 시인 나름대로 의욕을 가지고 한 작업이고, 제3시집은 장시들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전재해도 별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는 불림소리, 조왕굿, 푸닥거리, 三神祭, 還人祭의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을 예상하고 쓴 시인지라 각 마당의 서두에 무당이며 귀신, 탈꾼의 행위 내용, 그렇지 않으면 무대 상황을 설명해놓고 있다. 이중 첫 마당 불림소리는 무당이 굿을 시작할 때 흔히 하는 부정거리를 염두에 두고 쓴 시로 별 내용이 없다. 그러나 두 마당 조왕굿부터는 주목을 요한다. 조왕은 부엌을 관장하는 가신으로 가내의 모든 일을 정탐한다고 믿어져온 신이다. 시인은 귀하게 태어난 남성들이 이 사회를 억압과 지배가 상존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기를, 무당, 즉 여성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소망한다.    우리들이야 어차피 깨달음 더디고   뭇매 맞아도 아픈 줄 모르오니   으짜든지 우리 귀남자 자손   청맹과니 되지 않게 비나이다   귀머거리 되지 않게 비나이다   벙어리 되지 않게 비나이다   놀고먹지 아니하게 비나이다   등쳐먹고 살지 않게 비나이다   간 내먹고 살지 않게 비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들은 깨달음 더디고 뭇매 맞아도 아픈 줄 모르는 '여성'이다. 그런데 귀남자 자손, 즉 뭇 남성은 청맹과니,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기 십상인데도 그들 중 다수는 여성을 "등쳐먹고", "간 내먹고" 산다. 무당은 유교적인 가부장제 아래서 성차별을 당해온 이 땅의 여성을 대표하고 있고, 그래서 그녀의 사설은 성의 평등에 집중되어 있다. 무당은 제정이 분리된 이후 끊임없이 신분의 하락을 감내해온 계급상의 최하층민이었기에 무당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해방되어야 할 존재이다. 시인이 굿 절차나 무가의 사설보다 무당에 관심을 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마당 푸닥거리에서는 온갖 귀신과 도깨비며 탈들을 다 불러내는데, 이들을 통해 시인은 "원 없이 먹어보자"는 민중의 꿈을 드러낸다. 또한 더불어 잘살자는 치국평천 혹은 태평천국에의 꿈은 기독교적 세계관과는 많이 다르다. 죽음의 강을 건너 생자와 망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정희는 굿이라는 배에 이렇게 처음으로 동승한다. "탈탈 탈탈탈 탈탈 탈탈탈/ 봐탈 보탈 강탈 약탈/ 봉산탈 양주탈 무당탈 도깨비탈/ 입맞추고 넋맞추어 수신제가하여 보자" 같은 대목의 어수선함은 네 마당 三神祭에 가서도 무가라는 형식에 의존하고 있을 뿐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지만,    신 내린다 신 내린다   三神님 내리신다   땅 위에 멍석 깔고 하늘에 넋을 풀어   우리 神 오신 길에 還人祭를 올려라   백옥 같은 얼굴에 八字 눈썹 세우시고   백두산 코 해 같은 눈   천신님 내리신다 어흠 과 같이 음악적 가락에 대한 배려는 확실하다. 이런 대목에는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신명이 실려 있다. 특히 2음보, 3음보가 중첩되는 우리 가락이 살아나 있어 읽는 동안 흥이 난다. "창 받아라! 훠이 훠이/ 창 받아라 창 받아라 창 받아라/ 꽥 꽥"이나 "썩 썩 물러가라 둥둥", "허허 공중 잿더미로 날게 하리라/ 둥둥둥……" 같은 무당의 부르짖음에도 일정한 가락이 있어 흥겨운 놀이판을 재현한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절히 이용한 가락으로 무당과 청중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며, 시인과 독자와의 거리도 좁혀진다. '다섯 마당 還人祭'에서는 흰 옷 입은 당골네가 등장해 온갖 차별과 설음을 견뎌온 한 여성의 이력을 들려준다. 장시 의 대미는 다음과 같은 모성에 대한 예찬으로 장식된다.    저승 극락세계라도 이승만 못해   몇 굽이 돌아오는 추위에 기대어   빈 자리 적막에 기대어    사시나무 떨 듯 기다리는 어미   갸륵해라 갸륵해라 갸륵해라   다만 사람 하나 간절한 방   떠난 그대 수의 殮衣를    마름질하는 손   어미가 기다리는 것은 떠난 그대이다. 어미는 남성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사별한 여인이기에 "떠난 그대 殮衣를/마름질"하고 있다. 긴 시의 마지막 연에 가서야 제목이 왜 '還人祭'로 붙여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나온 셈이다. 여인이 무당을 앞세워 굿을 벌인 이유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세계로 가버린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생전 여인의 등을 쳐 먹고 간을 내 먹은 존재이지만 지금은 저승에 가고 없다. 저승이란 데가 제아무리 극락세계일지라도 이승만은 못한데, 임이 지금은 이승을 떠나고 없기에 무당을 불러 굿을 한 것이다. "저승 극락세계라도 이승만 못해"라는 구절은 고정희의 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열쇠이다. 죽음이 영생에의 문을 여는 순간이며 심판과 구원이 완성되는 엄숙한 순간임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죽음관을 믿고 있었을 시인은, 한 갸륵한 어미를 그려내기 위해 무속의 죽음관을 적어도 자신의 시에서는 이런 식으로 수용한다. 이 땅의 민중이 두려워한 것은 억울하게 죽어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강을 떠도는 존재였기에 무당을 앞세워 죽은 자를 보다 완전히 죽이는 데 주력해왔고, 그 과정이 곧 굿이었다. 사후세계가 설사 극락일지라도 우리가 중시해야 할 곳은 저승이 아니라 이승이라는 생각, 그것은 바로 민중의 생각이었다. 어미가 떠나간 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염의를 마름질하고 굿을 하는 것일 뿐, 그녀는 다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맺힌 한도 풀고, 이왕이면 건강하고 잘살아야 한다. 고정희가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꾀한 는 이처럼 기독교인의 세계관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며, 특히 죽음관에 있어서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기독교도 무속도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고 단정짓고 있지만 무속의 죽음관은 기독교의 죽음관과는 달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과 자유에 이르는 것"(로마서 8:21)이라는 인식이 없다. 부활과 영생사상이 없는 대신 한사코 거부하고픈 사후세계로 나날이 다가가는 우리네 삶을 긍정하는 데서 무속적 죽음의 인식은 출발한다. 그 인식은 삶이 배태한 환멸과 정말에의 터득으로 성숙하고, 마침내는 삶과 죽음을 굿이라는 한마당 놀이로써 한아름에 끌어안는다. 즉, 무속의 죽음관은 삶을 투시하여 생로병사의 비밀을 풀어보려는 것이며, 죽음을 삶 가운데의 엄연한 현실로 범주화하려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영존하는 하나님이 피조물을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는 구원의 순간이라는 기독교의 죽음관과는 완전히 달랐음에도 고정희는 무속의 죽음관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부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확신을 갖고서 굿의 세계를 확대해보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 장시집 {초혼제}가 탄생한다.    3. {초혼제} 난장판의 신명과 풀이   {초혼제}는 총 5부로 이루어진 장시집이다. 이중 1∼3부는 전체적으로 기독교인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 제1부 은 기독교계의 영결례 과정, 제2부 는 신학생이 고난주간에 올리는 기도, 제3부 는 추도식과 추도사의 외양을 빌어와 하나의 온전한 문학작품으로서는 그 형식에서부터 미흡한 바가 있다.    키리에, 키리에, 키리에   이땅에 당신의 자비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자유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해방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용서가 임하옵시며   (오, 주님 아니올시다)   이땅에 당신의 징벌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심판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분노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저주가 임하옵시며   (오, 그러나 그러나 주님 어찌 하리까)                                     ㅡ 부분   우리는 서로 무너졌나이다   비겁하게 비겁하게 무너졌나이다   신낭만주의를 앞세우며 무너졌나이다   신구호주의를 앞세우며 무너졌나이다   …(중략)…   신상상주의 신서정주의 신비평주의 신구조주의를 앞세우며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졌나이다                                     ㅡ 부분   이처럼 계속 되풀이되는 기도문 형식은 읽기에도 지루할 뿐 아니라 주제의 약화와 시적 감동의 약화를 동시에 가져온다. 80년대 초반기까지 노출된 우리 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문제점들에 대한 폭넓은 진단과 엄정한 비판이 행해지고 있지만, 반복과 나열에서 오는 긴장감 부재는 시인의 확고한 비판의식에도 불구하고 형식과 내용 양면 모두에서 실패를 노정하고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이 판이하게 다른 기독교와 민간신앙을 혼용한 것도 실패의 이유가 된다. 의 제3장 추도시에 "다음은 고인의 혼을 기리는 유족 대표께서/애통하고 절통한 마음 함께 나누고자/추도시를 봉헌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밤 부활이라 꿈꾸자" 등의 구절이 보여 기독교 색채를 띠고 있는 데 반해 제4장 추도사에는 "구천 황천 북망산에 고이 계신 우리임", "지하 명부전 어머님께서도/제주 봉헌 흡흡히 흠향하시고/얼기설기 내리소서" 등의 구절이 있어 무속의 죽음관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와 아울러 지나치게 폭넓은 사회 진단에서 오는 공허함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예시한 의 제5장 초혼제만 보더라도 의미도 분명하지 않은 신낭만주의에서 시작된 '신∼주의'는 신구조주의까지 12회나 나오며, '∼통일 기원축수'는 5회 '∼제 폐지 기원축수'는 6회 '∼통일'은 4회, '∼폐지'는 10여 회나 나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다루어지는 내용도 출애급의 광야에서부터 지하 명부전 우리 임네에 이르기까지, 각설이로 떠도는 전봉준에서부터 외제 선호사상 폐지에 이르기까지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고 있어 다채롭기는 하나 통일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제4부 와 제5부 은 무속과의 만남을 꾀함으로써 일단 형식과 내용의 통일을 이룩한다. 민중의 아픔을 위무하고자 쓴 시가 민중의 생활상을 전혀 담지하지 못한데서 온 실패를 극복하고자 고정희는 민중이 수세기를 향유해온 굿에 마당극을 결합시킨 마당굿의 형식에다 자신의 시를 의지(依支)하고자 한 것이다.      '마당굿을 위한 長詩'라고 제목 위에 쓴 은 총 49쪽에 달하는, 70∼80년대 소극장과 대학가에서 행해진 마당굿과 동렬에 놓이는 작품이다.     등 연희본은 마당굿을 위한 대본인데 은 시가 강조되고, 특히 마당극의 재담과 판소리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것이 연희본과 다른 요소이다. 총 세 마당으로 이루어진 시는 각 마당마다 4, 4, 3과장의 춤을 춘 후에 시작하라고 명시하고 있어 공연을 염두에 두고 썼음이 틀림없다.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은 도깨비들이 나와 잔치를 벌이며 재담을 하는 장면, 무당과 박수가 나와 굿판을 벌이는 장면, 상여꾼들이 상여소리를 부르는 장면, 남정네가 나와 판소리를 하는 장면 등을 통칭하여 난장판을 벌인다는 뜻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여느 마당극은 일정한 줄거리가 있으나 이 작품은 난장판처럼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등장인물들이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이야기하고 노래한다. 고정희는 왜 이 작품에서 극의 형식을 마다하고 굿을 도입한 것일까.      임진택은 (1982)에서 극에서 굿으로 옮아간 당위성을 설명한 바 있다. 목소리만 높고 다양성과 철학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한 70년대의 마당극을 극복하면서, "일상적인 생활과 놀이를 공유화하여 사람을 집합화하는 총체적인 예술운동이며 문화운동이며 사회운동으로서의 마당굿을 하게 되었다"(채희완/임직택, ({한국문학의 현단계Ⅰ}, 김윤수 외 편, 창작과비평사, 1982, 204쪽)는 그의 설명은 고정희의 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안내문이 된다. 각 거리마다 색다르게 놀고 색다르게 소리지를 수 있으며, 의례와 유희의 경계가 모호한 굿의 특징은 이 작품에 어지러운 난장의 성격을 부여한다. 판은 흥청망청 정신없이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의사 표현이 없지는 않다. 시인은 둘째 마당 중간 부분에 이르러 무당의 입을 빌어 농민과 도시근로자의 가혹한 생활상을 증언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인충'을 고발한다.    무 당: 물러가라 물러가라 농촌귀신 물러가라       일년 사시절 피땀으로 절은 농사       반절은 인충이 먹고 반절은 수마가 먹고       비료세 소득세 저기세 라디오 티뷔세 물고 나면       가을 수확은 검불뿐이니 사―람―이 죽었구나       …(중략)…   무 당: 물러가라 물러가라 도시귀신 물러가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식은 밥 한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십리 공장 길 걸어 지하 3층으로 내려가        한여름 같은 기계실에 혼 빼주고 넋 빼주고       마음도 다 빼주니       한 달 수입이 3만 5천 원이라   무당은 망자의 혼을 불러와 생자의 한을 풀어주고 미래의 복을 빌어 주는 제사장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농촌귀신 도시귀신 물러가라고 소리치며 사회악을 쫓는 혁명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외침 속에는 청중, 즉 독자의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해학의 정신이 들어 있다. 농민의 가을 수확은 검불뿐이고 도시근로자 한 달 수입은 결국 빈주먹밖에 남는 것이 없다는 불평을 듣고 있노라면 이 굿청이 성스러운 의례를 행하는 곳이 아니라 억눌린 욕구를 터뜨리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풀이'의 장소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 많이 위축되고 변질되어 있는 굿의 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굿이 생활과 동떨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생활하면서, 생활 가운데에 믿었던 민간신앙이었다고 고정희는 무당의 입을 빌어 설명했던 것이다. 무당은 이런 사설도 한다.    무 당: 내 뜻이 네 뜻이고 네 뜻 또한 내 뜻이니       살풀이 고풀이 원풀이 한풀이도 끝났으니       내일이면 이 고을에 사람이 올 것이오       사람 오는 굿판에 시나 한 수 지어 읊고       동구밖에 지등 달아 사람잔치 벌입시다   박 수: (고개를 끄덕이며 시를 읊는다.)       하늘에는 천황씨가 있고       땅에는 지황씨가 있네       동서남북 다리 위에       달도 밝은 밤       무당할멈 시 박수할아범 시       섞어서 환영하네       그 나머지 부귀공명은        내가 알 바 아니구나   굿을 끝낸 뒤에 하는 뒷풀이는 사람 잔치이다. 이놈 욕하고 저놈 칭찬한 도깨비 잔치도, 이놈 불러내고 저놈 보내버린 굿도 이제 다 끝났으니 시나 한 수 지어 읊고 동구 밖에 지등 달아 사람 불러모아 잔치나 벌이자고 한다. 굿이 궁극에는 귀신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잔치임을 암시한 대목이다.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은 이래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굿청에 진설한 온갖 음식도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요,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사람들이 온갖 시름 다 잊고 삶의 질곡에서 해방되자고 하는 짓이 아니냐고 무당이 말하자 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를 읊는다. 하늘에는 천황씨가 있고 땅에는 지황씨가 있다고. 그 나머지(시를 제외한 나머지) 부귀공명은 내 알 바 아니라고. 이 대목에 나오는 천황씨나 지황씨는 중국 전설상의 임금이 아니라 천지신명 정도의 뜻으로 쓰였다. 신이라면 복을 주기나 하지 산 사람을 해코지하지 말라는 뜻에서 쓴 구절이다. 죽음의 강을 건너기 위한 항진으로서의 굿의 의미는 이제 새로운 내일을 열기 위한 통과의례로서의 굿으로 확산된다. 무당과 박수는 함께 노래부른다. "인간 세상의 더러움/ 다 함께 깨끗해지고/ 온 세상 울퉁불퉁한 것/ 모두 변하여 고르게 되었네"라고. 즉 이것은 이승에서의 모든 고통은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모두들 변하여 고르게 되자고, 평등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 시인의 의도를 담은 노래이다. 여기에는 이판 저판 난장판을 만들고 있는 여러 족속들의 삶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자리라면 억울한 농민도 불쌍한 도시근로자도 없을 것이라는 항변도 담겨 있다. 셋째마당에서는 판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어수선해진다. 육자배기와 판소리와 굿의 사설이 동원되고, 다음과 같은 소리꾼의 민요 가락도 나온다.    소리꾼: (남정네 춤에 맞춰)        빙빙 돌아보세 방방 뛰어보세        우리 임 돌아오니 아니 노지 못하리라        동동주 여기 있소 어야디야        설기떡 여기 있소 어야디야        인삼주 여기 있소 어야디야        사랑떡 여기 있소 어야디야   소리판뿐만 아니라 굿판에서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과 노는 것이다. 망자의 극락천도를 위해서는 빙빙 돌고 방방 뛰어서라도 신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굿판에 내려온 신은 준엄한 판관의 탈을 벗어 던지고 인간 사이에서 유쾌하기 이를 데 없다. 신도 감정은 인간과 같아, 놀아주어야 흥겹게 생자의 삶을 축복해준다. 그래서 신의 구실을 하는 무당은 혼신의 힘을 다해 땀 흘리며 춤추고, 울며 노래하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때로는 황홀경에 사로잡혀, 때로는 망아의 경지에서. 소리꾼의 말을 받아 남정네는 "저승극락 버리고 돌아왔으니/ 에따 행화가 천냥이로다"라고 노래한다. 그렇다. 저승이 어찌 극락이란 말인가. 시인이 표현하고픈 극락은 이 시의 말미인 남정네의 노래에 담겨있다. "붉은 꽃은 만 송이/ 푸른 잎은 즈믄 줄기/ 첫 번째 봄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가?/ 노래와 춤 삼현 소리 일제히 그치니/ 동녘에 붉은 해/ 새로 뜨는 시간이로구나"라는 남정네의 아름다운 노래는 날마다 맞이하지만 늘 새로운 이승의 아침이 바로 극락이라는 뜻으로,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려는 시인에게 어느덧 예언자의 풍모를 실어준다. 고정희는 몇 권의 시집을 낸 뒤 다시 한번 굿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4.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ㅡ여성해방을 위한 힘찬 노래   시인은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후기에서 "잘못된 역사의 회개와 화해에 이르는 큰 씻김굿이 이 시집의 주제"라고 하였다. 발문을 쓴 박혜경은 이 시집이 굿판의 사설조 가락을 기본 리듬으로 삼고 있다고 했으며, 시집 뒷표지에서 김혜순은 터닦기 노래굿이라고 시집의 전체적인 성격을 규정지었다. 자타가 이 시집의 시적 외양은 굿이라고 규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시집이 씻김굿 사설의 형식과 시를 적절히 결합시킨 한 권의 굿 시집일까.   거두소서 거두소서   칼날을 거두소서   금남로에 흩어진 넋   칼날을 거두소서   충장로에 흩어진 넋   칼날을 거두소서                                    ㅡ 부분   에헤야 노적이야   어기영차 노적이야   경상도 이노적 이 집으로 들여오소   전라도 싸노적 이 집으로 들여오소   이 논 저 밭 솟은 노적 이 집으로 들여오소   담울담울 쌓인 노적   우뚝우뚝 치뜬 노적   에헤루 노적이야   어기영차 노적이야                                    ㅡ 부분   전자는 기도의 형식이며, 후자는 민요조이다. 시집 전체를 보아도 굿판의 사설조 가락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일곱 거리의 무가와 뒷풀이로 이루어진 한 판 씻김굿으로 읽자면 결국 시에 담긴 정신이 굿과 얼마나 근접해 있는가를 살펴볼 도리밖에 없다. 씻김굿의 목적은 망자의 극락 천도에 있다. 망자를 극락에 들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영혼을 깨끗이 씻기는 의례인 씻김굿은 망자를 죽음의 세계로 보냄으로써 생자가 더욱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발복을 기원하는 굿이다. 그런데 시세계를 죽음관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무속의 세계보다는 불교의 세계에 보다 가까웠음이 드러난다. 형식에 있어서도 굿과는 거의 무관했으며, 내용도 무속세계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시인이 구사하는 언어 중 무속세계의 것은 없는 대신 불교언어는 자주 등장한다.    팔만사천 사바세계 생로병사(15쪽)   천상천하 남자독존 사생결단 살아낼 제(18쪽)   살아생전 백팔번뇌 즈려밟고 들어오신다(27쪽)   시왕길을 밝혀 가옵소사(36쪽)   일년 삼백육십오일 넘나드는 백팔번뇌 골짜기(42쪽)   사람이 여원무궁이고/ 극락이고(45쪽)   서방정토 극락까지 맑게 떴다(57쪽)   원왕생 원왕생 인도하사이다(65쪽)   제밥 먹고 약밥 먹고 염불 받아(88쪽)   극락세계 서방정토 훠이훠이 가옵소사(90쪽)   백팔 천지신명 마음속에 들어앉아(94쪽)   이처럼 시집 전체에 걸쳐 불가의 언어가 발견되고 있다. 가락도 무가와는 거리가 있으며, 죽음관마저 무속의 죽음관과 불교의 죽음관이 뒤섞여 있다. 이는 2천 년을 이어온 무속의 역사 속에 불교의 의례가 상당히 삼투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죽음은 생사의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을 위한 예비 단계이다. 내 생명을 연기(緣起)로 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연속과 순환이 윤회인즉, 불가에서 죽음의 세계는 가면 그만인 저승이 아니다. 문 밖이 북망이라는 말 그대로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죽음이지만, 나는 거듭 다시 살아날 수 있어 우주적 생명과 동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도 부처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무속 이상으로 인간 중심적인 종교이다. 인용한 몇 행만 보아도 유추가 가능한 이 시집의 대주제는 거칠게 정리해 다음과 같다.      인간인 이상 팔만사천 사바세계에서 생로병사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인데 천상천하 남자독존이로구나, 그리하여 일년 삼백육십오 일 여성들이 넘나들게 된 백팔번뇌의 골짜기를 어찌하랴, 부처는 부디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으로 원왕생 원왕생 우리를 인도하여주소서, 그곳이야말로 극락세계 서방정토가 아니겠는가.    페미니즘에 입각, 천상천하 남자만 독존하지 않은 세계가 도래하기를 시인은 이렇게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시인이 씻김굿의 형식을 빌어 시를 쓰면서 정작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불교는 스스로의 공력으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고, 특히 고래로 여인네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많이 믿어온 종교이다. 시인은 종교로서의 불교보다는 여성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극락세계 서방정토에의 꿈을 담고 있는 평등의 세계관에 매료되었다고 본다. 무속에 한동안 관심을 두었던 것도 무속이 여성해방의 염원을 담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남녀의 차별이 엄존하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굿은 주로 여성이 주관하여 행해온 것이다. 고정희는 굿이 여성의 억눌린 감정을 달래주는 기능을 했다는 바로 그 점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시인은 이 시집에서 애초에 마음먹은 대로 씻김굿의 형식을 차용하지 못했고, 씻김굿의 정신도 온전히 수용하지는 못했다. 단지 단군 이래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무수히 많은 이들의 혼을 달래주기 위하여 저승의 기슭으로 나아가는 배의 갑판에서 서툰 대로 굿을 벌이기로 했던 것이다.      불교의 사상과 의례를 대폭 받아들인 우리 전통 무속의 무덤 위에 핀 푸른 잔디는 바로 어머니들이다. 저 무덤 위에 다시 피어나야 할 민중은 누대로 자기 희생으로만 일관해온 이 땅의 어머니들이다. 어머니는 "이역만리 공출당한 고려 어머니"이며, "약지 잘라 혈서 쓰던 독립군 어머니"이며, "일제치하 정신대 우리 어머니"이며, "부역 나가 처형당한 우리 어머니"이며 "일사후퇴 때 죽은 어머니"이며,    자유당 부정에 죽은 우리 어머니   민주당 부패에 죽은 우리 어머니   삼일오 약탈선거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사일구혁명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오일륙 쿠데타 때 죽은 우리 어머니   한일협정 반대 데모 때 죽은 우리 어머니   부마사태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옥바라지 화병에 죽은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   넋이야 넋이로다   이 넋이 뉘신고 하니   광주민주항쟁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   애기 낳다 칼맞은 우리 어머니 이다. 이 땅의 어머니는 고려 때도 이역만리로 끌려갔었는데 국권이 일제에 빼앗기자 정신대로 또 끌려갔었고, 독재자가 부정을 일삼고 군인이 국가를 통치하는 과정에서도 최대의 희생양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1980년 5월의 광주에서는 죽기도 하고 남편이나 자식과 사별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억울한 주검이 없는 세상, 어머니의 통곡이 들려오지 않는 세상, 어머니가 아버지와 동격으로 대접받는 세상이 곧 '해방 강토'이며 서방정토 극락이다. 시인은 넷째 거리에서 망월동에 잠든 넋들을 위무하는 노래를 부르고, 일곱째 거리에 이르러 휴전선 철조망 너머 반도의 북쪽을 쳐다보며 통일의 노래를 힘차게 부른다. 여성해방에 이어 군사정권 타도와 분단의식의 극복에까지 그 진폭을 넓혀가는 시집은 '통일 산천'과 '해동 조선'의 아름다운 정경을 상상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모든 질곡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확신으로 시집 전편에 넘쳐나는 힘이 느껴진다. 그런데 시에 담긴 정신은 굿과 분명 일정한 거리가 있다. 앞서 지적한 형식의 불일치와 죽음관의 불통일 외에도 놀이의 정신이 빠져 있기 때문에 "큰 씻김굿이 이 시집의 주제"라는 시인의 말과 다른 이들의 언급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무당은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하여 청중에게 공수를 주고, 청중은 공수를 받고 망자와 화해한다. 화해의 자리는 결코 엄숙하지 않다. 무악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을 춤으로써만이 빙의(憑依) 상태에서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노래와 춤으로써 신에 접근하고 신이 되는 과정인 굿은 제의의 자리인 동시에 놀이의 마당이다. 제 명에 못 죽어 억울한 망자와 해준 것 없어 한스런 생자가 만나 대화하고, 영계의 신과 육계의 인간이 만나 화응한다. 씻김굿과 마당극의 놀이정신이 빠진 자리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돋아   하늘도 파랗고   들도 산도 파란 오월에   일천간장 각뜨는 수백 수천 무덤 앞에   아들 제상 차려놓고 어머니 웁네다   딸 제상 차려놓고 어머니 웁네다   …(중략)…     아제, 한잔합시다…… 음복하는 어머니   날 잡아잡숴, 주저앉아 웁네다   이 시집에는 이렇듯 눈물은 넘쳐나되 흥겨움은 없다. 황홀경과 망아는 모든 청중의 몸에 실려 희노애락이 담긴, 한바탕 어우러진 춤이 되고 한마당 휘어지는 노래가 되는데 는 이전의 와 에 비해 노래의 요소가 박약하다. 박혜경도 지적한 것인데, '∼습니다'나 '∼와' 등이 어미로 끝나는 문어체적 구문들이 많아 씻김굿의 분위기는 맛보기 어렵다. 앞서 인용한 바 있는,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가 나오는 시는 셋째거리―해원마당 의 두 번째 시이다. 5쪽이 채 안 되는 분량 속에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는 12회, '우리 어머니'는 21회, '∼하는 어머니'는 13회가 나온다. 이런 식의 반복법은 시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반복은 지루한 정도를 넘어 시적 감동마저 약화시킨다. 여성이 해방되어야 인간이 해방되고, 어머니의 한이 풀려야 해방 세상이 온다는 시인의 의도가 때로는 지나치게 많이 노출되어 있어 감동이 약화되기도 한다.      굿이 신탁과 제의로서의 기능만 했더라면 2천 년을 내려와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굿판에는 노래와 춤이, 장구와 징이, 음식과 술이, 먼 데 살던 친척과 친척보다 가까운 벗이 있었다. 그래서 굿판은 망자를 초청하는 죽음의 판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추임새를 연발하게 하고 어깨춤을 부추기는 멋진 살판이었다. 신명을 자신의 몸에 싣거나, 신바람이 난 사람과 혼연일체가 되어 풀어야 할 것들 다 풀어버리고 내일을 연 흥겨운 놀이판, 그것이 굿판의 모습이었다. 신과 한 자리에서 즐김으로써 인간은 신과의 종속 관계에서 평등 관계로 이행할 수가 있었다. 고정희는 굿의 의미를 청신-강신-영신-송신의 의미로 파악했지 영신과 송신 사이에 오신(娛神)이 들어 있으며, 이것이 굿 정신의 핵심임을 놓치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의 야심만만한 장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많은 장점과 아울러 수다한 허점을 갖는 시집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무가에 대한 더욱 깊은 연구와 굿 정신에 대한 천착이 있었더라면 이 시집은 한 시인의 대표 시집을 넘어 한 시대의 대표 시집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5. 노래 부르며 죽음의 강을 건너다   이때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판소리와 민요 등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씌어진 에서 고정희는 무속의 시적 수용을 과감히 수행한다. 이 작품에서 무가의 문학적 사설에 대한 연구는 부족해 보인다. 다만 무당이란 존재가 성차별을 감내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지켜온 신분상의 최하층민이란 점에 주목하였다. 성의 평등과 계급차별의 타파를 주장하고자 한 시인으로서는 자신이 기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당을 시적 화자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성해방의 측면에서 무당이라는 존재는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에는 굿판의 흥겨움이 그대로 살아 있고, 특히 사후세계보다는 이승에서의 삶을 중시한 점이 드러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던 시인이 무속의 세계관을 긍정하기로 한 뜻깊은 작품이다.      {초혼제}의 1∼3부는 기독교적 색채를 강하게 보여주지만 5부 은 마당굿의 형식을 도입해 굿 정신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다. 이 시에서 신은 인간의 소원과 현실적 욕구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협력자로서 기능하며, 신과 인간은 굿판에서 함께 신명이 난다. 그래서 굿판은 신성한 의례의 장이 아니라 억눌린 욕구를 터뜨리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풀이의 장소이다.      {초혼제}는 다섯 편의 장시로 이루어진 장시집이지만 이후 6년 만에 펴낸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보다 치밀한 기획 아래 씌워진 한 권의 장시집이다. 여성해방이 확대되어 군사정권의 정치적 억압도 사라지고 남북한 통일도 이루어져 서방정토가 저승이 아닌 이승이 되는 꿈을 노래한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해방에 대한 확신으로 힘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노래의 요소의 약하고 시인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어 시적 감동은 이전의 작품에 비해 현저히 약화되고 만다. 이 작품 이후 시인의 굿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며, 시집 출간 2년 뒤에는 시인의 육신마저 지상에서 사라진다.      기독교인이었던 고정희가 죽음관이 판이하게 다른 무속을 자신의 시에 끌어들여 아름다운 합일을 이루려 했으니, 이는 실패가 일찌감치 예정되어 있는, 무모하고도 고된 작업이었다. 와 에서 보여주었던 일정한 성취가 자신의 야심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에 이르러 실패로 귀결되는 과정은 애당초 합일이 불가능한, 당연한 결과였다고 본다. 무가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거니와 굿 정신과 유희 정신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부족은 기독교 시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정희의 혼신을 다한 노력이 문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기실 한국의 무속은 불교의 의례만 수용했던 것이 아니라 천주교, 기독교와도 일정 부분 친화를 시도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왔다. 그리고 쇠약해진 몸으로나마 지금도 죽음과 삶 사이를 흐르는 강에 무수히 많은 배를 띄우고 있다.      죽음에 대한 각기 다른 해답을 준비하고 있는 무속, 불교, 기독교가 삶을 바라보는 차원에서는 일치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음을 증명한 이가 바로 고정희이다. 무속을 자신의 시세계로 끌어들인 많지 않은 시인 가운데 고정희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는데, 시인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그녀의 장시는 다시금 평가되어야 한다. 기독교 시인의 무속 수용이란 우리 시문학사상 초유의 일로, 결코 손쉬운 결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정희의 일련의 장시가 재평가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신 중심적인 기독교의 죽음관을 신앙하는 상태에서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무속의 죽음관을 견지하는 아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정희는 장시를 통해 삶과 죽음을 한마당 굿판에서 껴안고, 기독교와 무속의 죽음관(때로는 불교의 죽음관까지)을 함께 수용하는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하여 긴 노래를 그렇게 목놓아 부르며 죽음의 강을 건너가야 했던 것일까.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 된다네 남자가 모여서 지배를 낳고 지배가 모여서 전쟁을 낳고 전쟁이 모여서 억압세상 낳았지 여자가 뭉치면 무엇이 되나? 여자가 뭉치면 사랑을 낳는다네 모든 여자는 생명을 낳네 모든 생명은 자유를 낳네 모든 자유는 해방을 낳네 모든 해방은 평화를 낳네 모든 평화는 살림을 낳네 모든 살림은 평등을 낳네 모든 평등은 행복을 낳는다네 여자가 뭉치면 무엇이 되나?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 된다네 "여자가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하여―이야기 여성사·6" ---------------- 어렸을 적 불렀던...긴 것은 기차..기차는 빨라...빠른 것은 비행기.....라는 구전동요처럼 생명-자유-해방-평화-살림-평등-행복으로 물고 이어지는, 여자가 뭉쳐서 만드는 세상과 지배-전쟁-억압으로 물고 이어지는, 남자가 만드는 세상을 대비하면서  가부장제 사회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네요. 남자인 저로서도 충분히 공감가게 하는 진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임당, 허난설헌 같은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킨 아래 시도 참 재미나네요. 왜 고정희 시인을 여성주의 시인이라 하는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시들입니다. -------------------- 사임당이 허난설헌에게  이야기 여성사 3  고정희  사임당상이라니 기상천외이외다  경번당 허 자매  그대 나보다 뒷세상에 태어났지만  기실 명문가에 적을 둔 정실규방 신세 한가지로 살아왔으니  그 허와 실 뼛속에 사무치리라 싶어  꾸밈 없는 속이야기 서둘러 봉하외다  오늘에사 나는  조선의 정실부인들이 모여 해마다  신사임당상이라는 것을 주고받으며  원삼 족두리 잔치를 벌이고  신사임당 사당까지 지어  여자 예절교육 본으로 삼고 있다 하는  비보를 접했기 때문이외다  아니 이는 분명 흉보 중에 흉보요  재앙 중에 재앙이라 아니할 수 없사외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의 조선은  십년 강산이 몇백 번씩 바뀌고  시대 또한 놀랍게 변하였다 들었사외다  여자들의 무예가 하늘을 찌르고  첨단과학 문명이 옷섶에 나부끼며  민주 진보 급진사상이라는 것이  머리 깨친 사람들의 대세라 들었사외다  그런 조성땅에 아직  손가락 하나 끄떡 않는 세 가지  바뀔 줄 모르고 변할 줄 모르는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니까  여자에게 현모양처 되라 하는 것이요  남자에게 현모양처 되겠다 빌붙는 것이요  여자가 남자 집에 시집가는 것이외다  시집가서 아들 낳기 원하는 것이외다  그 현모양처 표본이 바로 나 신사임당이라 하여  내 시대 율법으로  내 시대 관습에 특출한 여자 골라  여자들 이름으로 상 주고 박수 친다니  이 무슨 해괴한 시대 변고이니까  요즘 알아듣는 말로 치자면  절반 하늘  절반 땅  절반 경제  절반 나라살림 좌우하는 여자해방하면서  여자 팔자소관 하나 바로잡지 못한다면  기상천외 요절복통 하세월이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시대라지만  우리 해동 조선에 버티고 있으니  국토분단 장벽보다 먼저  민족분단 장벽보다 먼저  남녀분단 장벽 허물 일이 급선무이외다  삼종지도 장벽 무너지지 않는 집에  어찌 민주며 통일이 있으리까  또 내가 현모양처 모범이니  영원한 구원의 여인상이니 하여  칭송 아닌 칭송을 늘어놓는 것도  똑바른 사람이 할 짓이 아니외다  솔직히 말하건대 내  당대의 율곡을 길러 냈다고는 하나  당대의 여자 율곡을 길러 내는 일보다  자랑이 못 되며  사대부 집안에서 뼈가 굵은 탓으로 반상에 적응하는 자중을 조금 알고  시국관 거스르지 않는 지혜 조금 깨우쳤을 뿐  (이는 반가 정실부인들의  생존전략이외다)  규방에서 난초 치고 글 짓는 일이란  여자 한이 방울방울 아롱진 탓이로되  내 평생 절반을 친정집에서 살고  반평생 친정부모 모시는 데 바쳤으니  현모양처 계율로는 어림없는 일이외다  하물며 과학만능 우주시대 여자들이  어찌하여 현모양처 망령에 이끌린단 말이니까  오고 있는 시대를 좇아야 하외다  정실부인론을 곡함  그러나 허 자매  다시 거듭거듭 걱정하거니와  오늘날 해동의 어여쁜 여자들이  현모양처 허상에서 깨어나기란  일부일처 관습이 대세를 이루는 한  분단장벽보다 어려울 것이외다  요즘 시국관으로  사회변혁운동이란 말이 유행이라 들었사외다 이  사회변혁운동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부르주아 중산층 계급이라 들었사외다  버릴 수도 취할 수도 없는 계급  관습유지의 보호막인 계급  생각은 많으나 믿을 수 없는 계급  이미 체제에 순응하고 있는 계급  이것이 바로 중산층이라면  그것의 받침목은 중산층 부인들이 아닐 수 없사외다  말하자면 현대판 정실부인들이외다  이 말을 새겨듣기 바라외다  일례로 며칠 전 우주위성중계를 통해  여의도 텔레비전 방송에서 벌어지는  집중 여자토론회를 시청했사외다  그곳에 초청된 모든 정실부인들은  조선조 여자관을 빼다 박았더이다  시국의 변화에는 아랑곳없되  여자 일 남자 일 따로 있어서  여자는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기르는 일에  한치도 벗어나선 안된다는 것이외다  이 어찌 가슴 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일찍이 이익이 잘못했던 말,  여자는 학문을 해서는 안되고  재능을 날려서는 나라의 재앙이다, 엄포를 놨던 말이  우아한 유령으로 사라 있단 뜻이외다  대저 일부일처제란 무엇이니까  여자를 소유로 보자는 내막이외다  정실부인이란 무엇이니까  소실과 첩을 엄중히 처단하잔 여자율법이외다  소실과 첩이란 무엇이니까  기둥서방 문화의 희생물이외다  기둥서방 문화란 무엇이니까  무릇 남자의 성기 밑에  여자의 자궁을 예속시키자는  영원무궁한 음모이외다  그러므로 정실부인의 반열에 든 여자들은  여자가 여자 자신의 적이다, 이 말을  거의 선진적으로 깨우쳐  스스로 만든 장벽 넘어가지 않는다면  탄하노니  여자 절개의 무게 태산과 같고  여자 목숨의 무게 깃털과 같다 한들  오천년 피눈물이 부족하단 뜻이니까  저승 여자들이 줄지어 곡하외다  남자들이 싫어하는 여자 세 가지  그렇다고 곡만 할 수 없사외다  생존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하였으니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듯이 허허실실 병법이 허사는 아니외다  상고해 보건대  어찌하여 신사임당이  조선조 남자들의 철옹성 속에서  조선조 남자들의 붓으로 기록하는  현모양처상이 되었나이까  그것은 다름 아닌  조선조 남자들이 하나같이 지닌  세 가지 허를 깨쳤기 때문이외다  반상을 막론하고  조선의 남자들이 싫어하는 세 가지 허가 있으니  첫째는 남자 체면 깎이는 것 용납 않는 허요  둘째는 남자보다 높은 식견 인정 않는 허요  셋째는 남자 앞에서 큰소리 거북스런 허외다  그래서 남자가 싫어하는 세 가지 여자란  남자보다 잘난 체하는 여자요  남자 자존심 건드리는 여자요  남자보다 큰소리로 웃는 여자이외다  내 전략이 구식일진 모르지만  여자의 특질과 부드러움 이용하여  이 허를 찌르기란 어렵지 않사외다  다만 이는 전략이로되  이녁 살아 있는 뜻 당당하게 세우는  비수 한 자루 간직할 터인즉  여자는 최후의 피압박계급?  내 잠시 잠깐도 잊어 본 적이 없는  규방 여자들의 한이 있사외다  동지섣달 길쌈하는 소리는  날 잡숴, 날 잡숴,  여자 사지 찢어 나르는 소리요  달빛 설핏한 밤 다듬이질 소리는  여자 팔자 두룸박 팔자 여자 팔자 두룸박 팔자  여자 팔자 두룸박 팔자……  조선 여자 뒤통수 내리치는 비명이거늘  오직 천추의 한으로 간직할 뿐  이 결박 스스로 풀지 못했으니  어즈버  문명국이 된 오늘날까지  방직공장과 기성복 공장  그리고 또 무슨무슨 공장에서  우리의 이쁘고 이쁘고 이쁜 딸들이  저임금과 철야, 잔업에 시달리며  생산증대 길쌈과 바느질로  돈받이 달러받이 일삼는 것 아니리까  구중궁궐 기계실과 밀실에서  성폭력과 강간폭력 노동통제 남근에 깔려  어머니 당했어요, 현모양처 되기는 다 틀렸어요, 돈이나 벌겠어요!  기생관광 인당수에 몸 던지는 것 아니리까  딸아, 현모양처상을 화형에 처해라  네 비수로 정절대를 ㅤㅉㅣㅅ어라  단숨에 찢어발겨라, 이 불쌍한 것  여자의 이 아픔  여자의 이 억압  여자의 이 억울함  하늘을 찌르고 땅에 솟구친들  속시원히 노래한 시인이 조선에 있는지요  최근에 박노해라는 노동시인이  이불을 꿰매며, 라는 여자해방시를 썼다고 하나  찬찬히 뜯어보건대  나도 내 아내를 압제자처럼 지배하고 있었다……이런 고백에 지나지 않아요  원통하구려!  오천년 당한 수모 약이 될 수 없으리까  정작 길닦이가 없었나이까  아니외다  사백 년 전 경번당 당신은 이미  여자의 처지를 계급으로 절감했사외다  사백 년 전 난설헌 당신은 이미  여자의 팔자를 피압박 인민으로 꿰뚫었사외다  사백 년 전 초희 당신은 이미  남자의 머리를 봉건제 압제자로 명중했사외다  아니 아니 난설헌 당신은 최초로  조선 봉건제에 반기를 든 여자시인이며  여자를 피압박계급으로 직시한  최초의 시인이 아니리까  밤 깊도록 베 짜는 외론 이 심사  뉘 옷감을 이 몸은 이리 짜는가  팔베개 수우잠도 맛볼 길 없이  텅텅텅 북 울리며 베 짜는 몸엔  겨울의 긴긴 밤이 그저 추울 뿐  뉘 옷감을 이 몸은 이리 짜는가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마르노라면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시집살이 길옷이 밤낮이건만  이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가난한 여자를 위한 이 오언절구 절창에  어느 여자 무릎을 치지 않으리요  어즈버 하늘이 낸 시인 난설헌  조선에 태어난 백성 중에서  하늘이 낸 시인이 있더이까  난설헌 바로 당신이외다  조선에 터잡은 백성 중에서  하늘이 낸 천재가 있더이까  경번당 바로 당신이외다  조선에 뿌리내린 백성 중에서  하늘이 낸 절세가인이 있더이까  초희 바로 당신이외다  세상이 우러르던 재상 허엽과 강릉 김씨 딸로  당신 태어났건만  그 문벌 그 족벌이 무슨 소용 있으리  독서와 강의는 선비의 일이니  부인이 이에 힘쓰면 폐해무궁하리라, 하여  훈학에 힘입은 바 없고  문벌 족벌에 기댄 바 없으나  네 살박이 여자아이의 매서운 눈초리  네 살박이 딸의 처절한 분노는  하늘의 밑둥을 흔든 성싶사외다  오라버니 어깨너머로 깨친 글솜씨  백가서책을 스스로 통달하여  다섯 살에 시 지으니, 여신동이요  여덟 살에 백옥루 상량문 올리니, 조선의 문웅이요  스스로 난설헌이라 호를 짓고  수수편편 백옥 같은 시의 장강 이루니, 여자 두보요  안동 김씨 김성립과 혼인하여  천추의 삼한을 품고 살되,  하늘이여 어찌하여 조선을 내고 나를 내었나이까  하늘이여 어찌하여 남자를 내고 다시 나를 여자로 내었나이까  하늘이여 어찌하여 김성립을 남편으로 점지하였나이까  하늘을 대지른 그 울연한 기상 다스려  가이 득음의 경지에 넘나들 제  글자마다 주옥이요  글귀마다 산호 열려  천의무봉 시세계 천고명작 이루니,  이 세상 일 같지 않다 이르더이다  어즈버 하늘이 낸 시인  어즈버 하늘이 낸 천재  어즈버 하늘이 낸 절세가인이여  중국 대륙에 삼대 부인문장가가 있다고 하나  조대가와 반희와 설도가 당신에 견줄 수 있으리까  아까운 스물일곱 해  그 짧은 생애 마칠 때  평생의 시고가 시의 노적가리 이루었다 하건만  이녁 유언대로 한 점 재로 돌아가 무덤에 덮이니  아깝고 아깝도다  다만 친정에 남아 있던 유고 이백여 수가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 의하여  천육백육 년 중국에서 간행될 제  낙양의 종이값을 오르게 하였다니  주지번의 발문대로  이제 허난설재의 문집을 보니 아득히 티끌 속세를 초탈하여  아름다워 때묻지 않고 유현하면서도 구상이 있어 선경에  유영하는 제작품이 다시 선가仙家에 관통했으니……  백옥루각이 한번 이룩됨에 ……떨어진 글자욱은 모두 주옥을  이루어 인간 세계에 영원히 그윽한 감상을 하게 했구나 어찌  어리석고 하잘 나위 없는 우리들이 한숨짓고 억지로 읊어서  그 불평한 심사를 묘사하여 한갓 아녀자의 웃음과 빈축을  사는 것 따위리요……  한번 이룩된 백옥루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대 다시 없으리  - 고정희 시집 "여성해방출사표", 1990.      [고정희 시인 시모음]               겨울 사랑                                                   그 한 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 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을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고요하여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무심히 지나는 출근버스 속에서도 추운 이들 곁에  따뜻한 차 한잔 끓는 것이 보이고 울렁거려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여수 앞바다 오동도쯤에서 춘설 속의 적동백 화드득 화드득 툭 터지는 소리 들리고 눈물겨워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중국 산동성에서 날아온 제비들 쓸쓸한 처마, 폐허의 처마 밑에 자유의 둥지 사랑의 둥지 부드러운 혁명의 둥지 하나 둘 트는 것이 보이고         우리동네 구자명 씨                                    ―여성사연구 5 맞벌이부부 우리동네 구자명씨 일곱달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가을 편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가을이 흑룡강 기슭까지 굽이치는 날 무르익을 수 없는 내 사랑 허망하여 그대에게 가는 길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길이 있어 마음의 길은 끊지 못했습니다 황홀하게 초지일관 무르익은 가을이 수미산 산자락에 기립해 있는 날 황홀할 수 없는 내 사랑 노여워 그대 향한 열린 문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문이 있어 마음의 문은 닫지 못했습니다 작별하는 가을의 뒷모습이 수묵색 눈물비에 젖어 있는 날 작별할 수 없는 내 사랑 서러워 그대에게 뻗은 가지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무성한 가지 있어 마음의 가지는 자르지 못했습니다 길을 끊고 문을 닫아도 문을 닫고 가지를 잘라도 저녁 강물로 당도하는 그대여 그리움에 재갈을 물리고 움트는 생각에 바윗돌 눌러도 풀밭 한벌판으로 흔들리는 그대여 그 위에 해와 달 멈출 수 없으매 나는 다시 길 하나 내야 하나 봅니다 나는 다시 문 하나 열어야 하나 봅니다         꿈꾸는 가을 노래                                  꿈꾸는 가을 노래 들녘에 고개 숙인 그대 생각 따다가 반가운 손님 밥을 짓고 코스모스 꽃길에 핀 그대 사랑 따다가 정다운 사람 술잔에 띄우니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늠연히 다가오는 가을 하늘 밑 시월의 선연한 햇빛으로 광내며 깊어진 우리 사랑 쟁쟁쟁 흘러가네 그윽한 산그림자 어질머리 뒤로 하고 무르익은 우리 사랑 아득히 흘러가네 그 위에 황하가 서로 흘러 들어와 서쪽 곤륜산맥 열어놓으니 만리에 용솟는 물보라 동쪽 금강산맥 천봉을 우러르네         날개                                                  생일선물을 사러 인사동에 갔습니다 안개비 자욱한 그 거리에서 삼천도의 뜨거운 불기운에 구워내고 삼천도의 냉정한 이성에 다듬어낸 분청들국 화병을 골랐습니다 일월 성신 술잔같은 이 화병에 내 목숨의 꽃을 꽂을까, 아니면 개마고원 바람소릴 매달아 놓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장백산 천지연 물소리 풀어 만주대륙 하늘까지 어리게 할까 가까이서 만져보고 떨어져서 바라보고 위아래로 눈 인두질하는 내게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지요 손님은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고 있군요 이 장사 삼십년에 마음의 선물을 포장하기란 그냥 줘도 아깝지 않답니다 도대체 그 분은 얼마나 행복하죠? 뭘요... 마음으로 치장한들 흡족하지 않답니다 이 분청 화병에는 날개가 달려있어야 하는데 그가 이 선물을 타고 날아야 하는데 이 선물이 그의 가슴에 돌이 되어 박히면 난 어쩌죠?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에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향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더 먼저 더 오래                                     더 먼저 기다리고 더 오래 기다리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기다리는 고통 중에 사랑의 의미를 터득할 것이요.  더 먼저 달려가고 더 나중까지 서 있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서 있는 아품중에 사랑의 길을 발견할 것이요.  더 먼저 문 두드리고 더 나중까지 문 닫지 못하는 사랑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문닫지 못하는 슬픔중에 사랑의 문을 열게 될것이요.  더 먼저 그리워하고 더 나중까지 그리워 애통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그리워 애통하는 눈물 중에 사랑의 삶을 차지할 것이요.  더 먼저 외롭고 더 나중까지 외로움에 떠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외 로움의 막막궁상 중에 사랑의 땅을 얻게 될 것이요.  더 먼저 상처받고 더 나중까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은 복이 있나 니 저희가 상처로 얼싸안는 절망중에 사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요.  더 먼저 목마르고 더 나중까지 목 말라 주린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주리고 목마른 무덤 중에서라도 사랑의 궁전을 짓게 되리라.  그러므로 사랑으로 씨 뿌리고 열매 맺눈 사람들아  사랑의 삼보 - 상처와 눈물과 외로움 가운데서 솟는 사랑의 일곱 가지 무 지개  이 세상 끝 날까지 그대 이마에 찬란하리라.         모든 사라지는 것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사랑법 첫째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하늘에 쓰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가슴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곳, 수련꽃만 희게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전 죽지사 열두 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수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는 하늘에 쓰네.       봄비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강물 풀리는 소리는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 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산 숨결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강물                                                       - 편지1 푸른 악기처럼 내 마음 울어도 너는 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암울한 침묵이 반짝이는 강변에서 바리새인들은 하루종일 정결법 논쟁으로 술잔을 비우고 너에게로 가는 막배를 놓쳐버린 나는 푸른 풀밭, 마지막 낙조에 눈부시게 빛나는 너의 이름과 비구상의 시간 위에 쓰라린 마음 각을 떠 널다가 두 눈 가득 고이는 눈물 떠나가는 강물에 섞어 보냈다.          지울 수 없는 얼굴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시대의 아벨                                           며칠째 석양이 현해탄 물구비에 불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닻을 내린 거룻배 위에는 저승의 뱃사공 칼롱의 은발이 석양빛에 두어 번 나-부-끼-더-니, 동서남북 금촉으로 부서지며 혼비백산 숲에 불을 질렀읍니다. 으-아, 솔바람 불바람 홀연히 솟아올라 둘러친 세상은 넋나간 아름다움 넋나간 욕망으로 끓어 오르고 있었읍니다. 아세아를 건너지른 `오그덴 10호'가 현해탄에 당도한 건 바로 이때입니다. 오그덴 10호*는 몇 명의 수부들을 바다 속에 처넣고 벼락을 때리며 외쳤습니다. 오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안락한 처마밑에서 함께 살기 원하던 우리들의 아벨, 너희 따뜻한 난롯가에서 함께 몸을 비비던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풍성한 산해진미 잔치상에서 주린 배 움켜 쥐던 우리들의 아벨 우물가에서 혹은 태평 성대 동구 밖에서 지친 등 추스르며 한숨짓던 아벨 어둠의 골짜기로 골짜기로 거슬러 오르던 너희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믿음의 아들 너 베드로야 땅의 아버지 너 요한아 밤새껏 은총으로 배부른 가버나움아 사시장철 음모뿐인 예루살렘아 음탕한 왕족들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야 너희 식탁과 아벨을 바꿨느냐 너희 침상과 아벨을 바꿨느냐 너희 교회당과 아벨을 바꿨느냐 독야청청 담벼락과 아벨을 바꿨느냐? 회칠한 무덤들, 이 독사의 무리들아 너희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 고통을 짊어진 아벨 너희 족보를 짊어진 아벨 너희 탐욕과 음습한 과거를 등에 진 아벨 너희 자유의 멍에로 무거운 아벨 너희 사랑가로 재갈물린 아벨 일흔 일곱 날 떠돌던 아벨을 보았느냐? 아흔 아홉 날 한뎃잠을 청하던 아벨을 보았느냐?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돌들이 일어나 꽃씨를 뿌리고 바람들이 달려와 성벽을 허물리라 지진이 솟구쳐 빗장을 뽑으리라 바람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아벨의 울음은 잠들지 못하리 오 불쌍한 아벨 외마디 소리마저 빼앗긴 아벨을 위하여 나는 너희 식탁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아방궁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별장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교회당과 종탑을 엎으리라 소돔아 너를 엎으리라 고모라야 너를 엎으리라 가버나움아 너를 엎으리라 예루살렘아 너를 엎으리라 천사야 너도 엎으리라 깃발을 분지르고 상복을 입히리라 생나무 마른 나무 함께 불에 던지고 바다더러 산 위로 오르라 하리라 산더러 너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바람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울지 않는 종은 입에 칼을 물리고 뛰지 않는 말은 등에 창을 받으리 날지 않는 새는 뒷축에 밟히리 뒷날에 참회는 적당치 못하다 너희가 쫓아 버린 아벨 너희가 쫓아 묻어 버린 아벨 너희가 쫓아 묻고 부인한 아벨 너희는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시치미뗀 아벨의 울음 소릴 들었느냐? 금동이의 술잔에 아벨의 피가 고이고 은소반의 안주에 아벨의 기름 흐르도다 촛농이 녹아 흐를 때 아벨이 울고 노랫가락 높을 때 아벨이 탄식하도다 오 불쌍한 아벨을 찾을 때까지 나는 이 세상 어디든 달려가 너희 잔치상과 보신탕을 엎으리라 너희 축복과 토룡탕을 엎으리라 너희 개소주와 단잠을 엎으리라 돌들이 일어나 옥답을 일구고 지진이 솟구쳐 평지 풍파 일으키리라 바람더러 주인이라 주인이라 부르리라 너희의 어둠인 아벨 너희의 절망인 아벨 너희의 자유인 아벨 너희의 멍에인 아벨 너희의 표징인 아벨 낙원의 열쇠인 아벨 아벨 아벨 아벨 아벨 아벨…… 그때 한 사내가 불 탄 수염을 쥐어뜯으며 대지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눈물 흘리는 동안만이라도 주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다음날 신문은 오그덴 10호가 현해탄의 대기권을 완전히 떠나갔다고 보도했습니다.                    * 창세기 4장 2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첫아들 카인과                     둘째 아들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고 카인은 농부가 되                     었는데, 형 카인은 아벨에 대한 질투 때문에 아우를 들로 꾀어내어 쳐 죽였다.                      이때 야훼께서 이렇게 꾸짖으셨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 1981년 8월 초 한반도에도 상륙한 태풍 이름.       고백 (너 여섯)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 전 되 었 다                     고정희 高靜熙 (1948 - 1991)                           전남 해남 출생. 5남 3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1975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연가》 《부활과 그 이후》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허형륫ㅁ窪唜징ㅐ瀁예?ㅌ蒡仄퐈ㅁ믄예?등과 ‘목요회’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시창작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1984년부터는 기독교신문사, 크리스찬아카데미 출판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거쳐 여성문화운동 동인 ‘또하나의 문화’에서 활동하는 등 사회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였다.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사하였다.   시집으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이 시대의 아벨》(1983), 《눈물꽃》(1986),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녀성해방출사표》(1990), 《광주의 눈물비》(1990),《아름다운 사람 하나》(1991)와 유고시집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있다. 시집 가운데 《초혼제》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남도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어 민중의 아픔을 위로한 장시집(長詩集)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012    민중시인, 옥중시인 - 김남주 댓글:  조회:4822  추천:0  2015-04-19
            김남주 시인(1946~1994) 1946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시인은 64년 광주일고에 입학했으나 입 시 위주 교육에 반발하며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69년 전남대 영어 영문학과 입학했다. 이후 72년 12월 최초의 반유신 지하신문인 「함 성」을 제작·배포하고, 이듬해 2월 전국적인 반 유신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지하신문 「고발」을 제작·배포해 구속되면서 대학에서 제적처리 됐다. 고인은 74년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진혼가’, ‘잿더미’ 등 8편 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제적 후에는 전남대 앞에서 사회과학서점 ‘카프카’를 운영하면서 광주사회문화운동의 구심 역할을 맡았다. 79년 에는 서울에서 전위혁명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의 조직원 으로 활동하다 체포된 뒤 88년 12월 출소했으나 끝내 췌장암으로 일기 를 마쳤다다. 시인은 생전에 발표한 470여 편의 시 가운데 300여 편을 옥중에서 써 ‘옥중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휴지조각·우유팩·은박지 등에 깨알 같은 글씨로 꾸준히 쓴 시편들은 면회 온 부인과 지인들에 의해 세상 밖 으로 흘러나와 투옥 중에만 『진혼가』(84년), 『나의 칼 나의 피』(87 년), 『조국은 하나다』(88년) 등 3권의 시집으로 묶였다. 김남주 시 모음 ▲  똥파리와 인간 똥파리에게는 더 많은 똥을 인간에게는 더 많은 돈을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똥파리는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떼지어 붕붕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시궁창이건 오물을 뒤집어쓴 두엄더미건 상관 않고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무리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보라고 똥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떼지어 사는 똥파리를 보라고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두메산골 외딴 마릉 깊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무리지어 사는 인간을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내 고장이란 옛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똥파리에게나 인간에게나 똥파리에게라면 그런 곳을 잠시 쉬었다가 물찌똥이나 한번 찌익 깔기고 돌아서는 곳이고 인간에게라면 그런 곳은 주말이나 행락철에 먹다 남은 찌꺼기나 여기저기 버리고 돌아서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게 별 것 아닌 것이다 똥파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 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 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을 눈물을 나워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지는 잎새 쌓이거든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 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곁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떼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  저 창살에 햇살이(햇살 그리운 감옥의 창살)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 고운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 다순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 닿으면 어머니가 씹어주고는 했던 사각사각 베어먹고 싶은 빨간 홍당무가 된다. ▲  물따라 나도 가면서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건듯건듯 동풍이 불어 새봄을 맞이했으니 졸졸졸 시내로 흘러 조약돌을 적시고 겨우내 낀 개구장이의 발때를 벗기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오뉴월 뙤약볕에 가뭄의 농부를 만났으니 돌돌돌 도랑으로 흘러 농부의 애간장을 녹이고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동산에 반달이 떴으니 낼 모레가 추석이라 넘실넘실 개여울로 흘러 달빛을 머금고 물레방아를 돌려 떡방아를 찧으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봄 따라 여름가고 가을도 깊었으니 나도 이제 깊은 강 잔잔하게 흘러 어디 따뜻한 포구로 겨울잠을 자러 가지 ▲ 너희는 아느냐, 돌멩이 하나에 실린 력사의 무게를…. 돌멩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많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즘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대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 마는 미팔군 병사의 군화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 마는 입산금지의 붉은 팻말에도 있다 가까이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의 주둥이에도 있고 멀리는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 안 짓고 혼줄 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 맨 허리에도 있고 제 노동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휘여진 등에도 있다 높게는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려 도적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을 두른 부자들이 담벼락에도 있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심심찮게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 고관대작들이 평화통일 제의의 축제에도 있다 뿐이랴 삼팔선은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원격조종의 나라 아메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 속이 사탕에도 밀가루에도 달라의 이면에도 있고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 하고 동포여 동포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한강을 도강(渡江)하는 미국산 탱그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감옥의 담에도 있고 침묵의 벽 그대 가슴에도 있다. 산국화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풀잎이 지고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붉은 입술로 꽃이라 했지요 꺽일 듯 꺽이지 않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피면 들국화 노오란 꽃이라 했지요. 희망이 있다(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 아무리 아쉬워도 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 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 제각기 모두 제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 혹 그 언제인가 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 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 서로 속삭일 것이다. 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 어느 한 가슴에도 메아리의 먼 여운조차 남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노래가 왜 멎어야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 영원도 있어 희망이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찌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가. ▲  아이고! I Go!(날마다 날마다) 차에 깔려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흉기에 찔려 죽고 총기에 맞아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임이다 공부 못해 죽고 대학 못가 죽고 취직 못해 죽고 장가 못가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아이는 단칸 셋방에 갇혀 죽고 에미는 하늘까지 치솟는 전세값에 떨어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농부는 농가부채에 눌려 죽고 노동자는 가스에 납에 중독되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여름이면 흙사태에 묻혀 죽고 겨울이면 눈사태에 얼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낮에 죽고 밤에 죽고 아침에 죽고 저녁에 죽고 시도때도 없이 세상을 온통 죽음의 공동묘지 이 묘지에서 고개 들고 죽음이 세계에 항거한 자는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져 죽고 최루탄에 가슴이 터져 죽는다 노래(죽창가)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일이면 일로 손잡고 가자 천이라면 천으로 운명을 같이 하자 둘이라면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물이라면 건너주고 물 건너 첩첩 산이라면 넘어주자 고개 넘어 마을 목마르면 쉬어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가시발길 하얀 길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나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김남주의 시를 노래하다 꽃다지, 노찾사, 메아리, 노동자 노래단, 문민협, 박치 음 등등 사랑은(사랑) - 대학노래패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노동자 노래단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오월은 왔다 비수를 품은 밤으로 야수의 무자비한 발톱과 함께 바퀴와 개머리판에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를 새긴 전차와 함께 기관총과 함께 왔다 오월은 왔다 헐떡거리면서 피에 주린 미친 개의 이빨과 함께 두부처럼 처녀의 유방을 자르며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벌집처럼 도시의 가슴을 뚫고 살해된 누이의 웃음을 찾아 우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뚫고 총알처럼 왔다 자유의 거리에 팔이며 다리가 피묻은 살점으로 뒹구는 능지처참의 학살로 오월은 오월은 왔다 그렇게! 바람에 울고 웃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일어나거라 쓰러지지 않았다 오월의 무기 무등산의 봉기는 총칼의 숲에 뛰어든 맨주먹 벌거숭이의 육탄이었다 불에 달군 대장간의 시뻘건 망치였고 낫이었고 한 입의 아우성과 함께 치켜든 만인의 주먹이었다 피와 눈물 분노와 치떨림 이 모든 인간의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 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아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다 노래하지 말아아 오월을 바람에 일어나는 풀잎으로 '풀잎'은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학살과 저항 사이에는 바리케이드의 이편과 저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오월의 광주에는! ▲  벗에게 - 조국과 청춘 좋은 벗들은 이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네 살아 남은 이들도 잡혀 잔인한 벽 속에 갇혀 있거나 지하의 물이 되어 숨죽여 흐르고 더러는 국경의 밤을 넘어 유령으로 떠돌기도 하고 그러나 동지, 잃지 말게 승리에 대한 신념을 지금은 시련을 참고 견디어야 할 때, 심신을 단련하게나 미래는 아름답고 그것은 우리의 것이네 이별의 때가 왔네 자네가 보여준 용기를 가지고 자네가 두고 간 무기를 들고 나는 떠나네 자네가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준 말 "참된 삶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향한 끊임없는 모 험 속에 있다는 투쟁 속에서만이 인간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는 혁명은 실천 속에서만이 제 갈 길을 바로 간다는" 그 말을 되새기며 그대에게(지는 잎새 쌓이거든) - 개똥이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 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곁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떼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  고목 - 조국과 청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 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산국화 - 박치음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풀잎이 지고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붉은 입술로 꽃이라 했지요 꺽일 듯 꺽이지 않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피면 들국화 노오란 꽃이라 했지요. 김남주 육성 낭송 시선 전사 2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아니 수백만 명이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세계도처에서 나라 곳곳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산악에서 감옥에서 압제와 착취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어떤 사람은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 죽어갔다 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어떤 사람은 승리의 막바지에서 죽어갔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죽어갔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 쥐도 모르게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 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보아다오 동지여! 피의 양분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민족해방투쟁의 나무를 보 아다오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 낸 것은 그들이 흘리고 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 쑥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  학살 2 오월 어느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리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앗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잡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진혼가 총구가 나의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꽁구멍이라도 싹싹 핥아 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양심 나의 싸움은 미군(迷宮)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손이 되어 발가락이 되어 혀가 되어 삽살개 삼천만 마리의 충성으로 쓰다듬어 주고 비벼 주고 핥아 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의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나는 마지막 인사 오늘밤 아니면 내일 내일밤 아니면 모레 넘어갈 것 같네 감옥으로 증오했기 때문이라네 재산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네 노동의 대지와 피곤한 농부의 잠자리를 한마디 남기고 싶네 떠나는 마당에서 어쩌면 이 밤이 이승에서 하는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니 유언이라 해도 무방하겠네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네 잘 있게 친구 그대 손에 그대 가슴에 나의 칼 나의 피를 남겨두고 가네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만세! ▲  이 세상에 사슬로 이렇게 나를 묶어놓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는 벽으로 이렇게 나를 가둬놓고 주먹밥으로 이렇게 나를 목메이게 해 놓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부자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개처럼 묶어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짐승처럼 가둬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주먹밥으로 목메이게 해 놓고 잠자리에서 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천에 하나라도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그럴 사람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 봐라 나와서 이 사람을 보아라 사슬 묶인 손으로 주먹밥을 쥐고 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이 사람 앞에서 묶인 팔다리 앞에서 나는 자유다라고 어디 한 번 활보해 봐라 이 사람 앞에서 굶주린 얼굴 앞에서 나는 배부르다라고 어디 한 번 외쳐 봐라 이 사람 앞에서 등을 돌리고 이 사람 앞에서 얼굴을 돌리고 마음 편할 사람 있으면 어디 한 번 있어 봐라 남의 자유 억누르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남의 밥 앗아먹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는 ▲  어머니 어머니 그 옛날 제가 외지로 나설 때마다 동구 밖 신작로에 나오셔서 차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시던 어머 니 가가 먼 길 구풋하면 먹어두라고 수수떡 계란이며 건네주시고 옷고름 콧잔등에 찍어 우시던 어머니 이제는 예순 넘은 나이로 끌려간 자식놈이 그리워 철이 바뀔 때마다 옷가지 챙겨 들고 흰 고개 검은 고개 넘나드시는 어머니 서러워하거나 노여워 마세요 날 두고 언 놈이 뭔 말을 하더라도 내 또래 친구들 발길 뜸해지더라도 어머니 저를 결정할 사람은 저들이 아니니까요 사형이다 무기다 10년이다 남의 집 개이름 부르듯 하는 저 당당한 검사 나으리가 아닌니까요 높은 공부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 사슬 묶인 나를 굽어보는 저 준엄한 판사 나으리가 아니니까요 나를 결정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날 낳으신 당신이고 당신 같으신 어머니들이고 날 키워 준 이 산하 이 하늘이니까요 해방된 민중이고 통일된 조국의 별이니까요 ▲ 이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다른 감옥으로 압송되어 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구옥일까 아니면 대전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 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나도 여기서 차에서 내려 아이들이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저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나도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사슬 풀고 오라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을 걷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집으로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 차는 멈춰 주지를 않는다 강을 건너 내를 끼고 땅거미가 내린 산기슭을 달린다 강 건너 마을에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 편지 산길로 접어드는 양복쟁이만 보아도 혹시나 산감이 아닐까 혹시나 면직원이 아닐까 가슴 조이시던 어머니 헛간이며 부엌엔들 청솔가지 한 가지 보이는 게 없을까 허둥대시던 어머니 빈 항아리엔들 혹시나 술이 차지 않았을까 허리 굽혀 코 박고 없는 냄새 술 냄새 맡으시던 어머니 늦가을 어느 해 추곡 수매 퇴짜 맞고 빈 속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 앞에 밥상을 놓으시며 우시던 어머니 순사 한나 나고 산감 한나 나고 면서기 한나 나고 한 지안에 세 사람만 나면 웬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아버지 푸념 앞에 고개 떨구시고 잡혀간 아들 생각에 다시 우셨다던 어머니 동구 밖 어귀에서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혹시나 또 누구 잡아가지나 않을까 머리끝 곤두세워 먼 산 마른 하늘밖에 쳐다볼 줄 모르시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다시는 동구 밖을 나서지 마세요 수수떡 옷가지 보자기에 싸들고 다시는 신작로 가에는 나서지 마세요 끌려간 아들의 서울 꿈에라도 못 보시면 한시라도 못 살세라 먼 길 팍팍한 길 다시는 나서지 마세요 허기진 들판 숨가쁜 골짜기 어머니 시름의 바다 건너 선창가 정거장에는 다시는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 철장에 기대어 잡아보라고 손목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손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오 옥바라지를 해주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 별의별 수작을 다해도 입술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입으로 속삭였다오 면회장에 와서 기다리겠어요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15년 징역살이를 다하고 나면 내 나이 마흔아홉 살 이런 사람 기다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일까 5년 살고 벌써 반백이 다된 머리를 철창에 기대고 사내는 후회하고 있다오 어쩌자고 여자 부탁 선뜻 받아들였던고 ▲  권력의 담 나는 나가야 한다 살아서 살아서 더욱 튼튼한 몸으로 나는 보여줘야 한다 나가서 나가서 더욱 의연한 모습을 나는 또한 보여줘야 한다 놈들에게 감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전사의 휴식처 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무기를 바로잡기 위해 전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다는 것을 보라 창살에 타오르는 이 증오의 눈을 보라 주먹으로 모아지는 이 온몸의 피를 장군들 이민족의 앞잡이들 압제와 폭정의 화신 자유의 사형집행자들 기다려라 기다려라 기다려라 나는 싸울 것이다 살아서 나가서 피투성이로 빼앗긴 내 조국의 깃발과 자유와 위대함을 되찾을 때 까지 토지가 농민의 것이 되고 공장이 노동자의 것이 되고 권력이 민주의 것이 될 때까지. ▲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함께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1011    <길> 시모음 댓글:  조회:4600  추천:0  2015-04-19
    윤동주의 '새로운 길' 외  +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시인, 1917-1945) + 길 위에서 산을 만나면 산을 사랑하고 강을 만나면 강을 사랑하지 꽃이 많이 핀 아침을 만나면 꽃향기 속에서 너에게 편지를 쓰지 언덕 위에선 노란 씀바퀴꽃 하모니카를 불고 실눈썹을 한 낮달 하나 강물 속 오래된 길을 걷지 별을 만나면 별을 깊게 사랑하고 슬픔을 만나면 슬픔을 깊게 사랑하지 그러다가 하늘의 큰 나루터에 이르면 작은 나룻배의 주인이 된 내 어린 날의 바람을 만나기도 하지. (곽재구·시인, 1954-) + 길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대라고 부를 사람에게 그 길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끝없는 길을 (안도현·시인, 1961-) + 길  갈 때는  그 길이 좋더니  올 때는  이 길이 좋네요  아무래도  가는 마음과  오는 마음이  많이 다른가 봐요  (오보영·시인, 충북 옥천 출생) + 길     잠을 잘 시간에만 길이 보인다 꿈속에서만 세상을 걸어다녔는데 새벽녘에는 길이 다 지워져 있다 특히 잎 지는 가을밤은 더욱 그러하다 지상의 시간이 만든 벼랑과 벼랑 사이  떨어지는 잎새를 따라가 보면 아, 그 시각에만 환하게 외등이 켜져 있다 (김종해·시인, 1941-)  + 가는 길 길을 걸어본 사람은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지 산 하나를 오르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나네 그러나 가장 높은 산에 오르기만 하면 눈앞에 만리가 펼쳐지는구나 (호치민·베트남 민족운동 지도자, 1890-1969) + 첫 길 마음이 먼저 첫 길을 밟는다  발자국 하나 더 얹어  세상 속으로 간다  사람의 일들은 가파르고 험하나  가다 보면 길이 되는 그것이 희망이니  희망을 받아 세상을 열고 싶다  이제는 사람같이 살아 봐야겠다고 그래야겠다고  생각의 실마리가  새 길 하나 만든다  벽도 열면 창임을  위기도 기회임을 이제야 알겠다 삶이여  그 무엇으로 한 생이  제 그늘만큼 깊다 한들  오늘은 새해처럼 불끈 솟고 싶다  저 넓은 세상을 달고 (천양희·시인, 1942-) + 동그란 길로 가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교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박노해·시인, 1958-) + 새로운 길  나는 신문을 한 1년쯤 묵혔다 읽는다 어떤 때는 2, 3년, 더한 때는 10년이 지난 신문을 읽을 때도 있다 그렇게 읽어도 새로운 소식을  담은 신문이 내게는 정말로 신문이 될 수 있기 때문 나는 남들이 새로운 길이라고 소리치며 달려가는 길은 가지 아니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왁자지껄 그 길을 걸어서 멀리 사라진 뒤 그 길이 사람들한테 잊혀질 만큼 되었을 때 그 길을 찾아가 본다 그런 뒤에도 그 길이 나에게 새로운 길일 수 있다면 정말로 새로운 길일 수 있기 때문 나에게 새로운 길은 언제나 누군가에게서 버림받은 풀덤불에 묻힌 낡은 길이다. (나태주·시인, 1945-)  + 길 없는 길 강물 위에 앉았다가 일제히 하늘을 향해 비상해 오르는 수천 마리 철새 떼들의 일사분란 그들은 길 없는 허공 길을 평화롭게 날아 그들의 고향에 이른다 바다 속을 헤엄쳐 가는 수만 마리의 물고기 떼들 어떠한 암초와 수초에도 걸리지 않고 수만 리 길 없는 물길을 거슬러 그들의 모천에 닿는다 그러나 이 지상에 수천만의 길을 만들어 놓고도 제 길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해 좌충우돌 피를 흘리며 주저앉는 사람들 그들은 고향도 모천도 못 찾고 허둥댄다 길이 없으면  세상이 다 길인데 길을 만들어 천만의 길을 다 죽인다 (임보·시인, 1940-) + 길 우리 가는 길에 화려한 꽃은 없었다 자운영 달개비 쑥부쟁이 그런 것들이 허리를 기대고 피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빛나는 광택도  내세울만한 열매도 많지 않았지만 허황한 꿈에 젖지 않고 팍팍한 돌길을 천천히 걸어 네게 이르렀다 살면서 한 번도 크고 억센 발톱과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귀뚜라미 소리 솔바람소리 돌들과 부대끼며 왁자하게 떠드는 여울물소리 그런 소리와 함께 살았다 그래서 형제들 앞에서 자랑할 만한 음성도 세상을 호령할 명령문 한 줄도 가져보지 못했지만 가식 없는 목소리로 말을 걸며 네게 이르렀다 낮은 곳에는 낮은 곳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있다 네 옆에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있다 (도종환·시인, 1954-)  + 걷는다는 것은  걷는다는 것은 두 발로 풍경과 마을을  한 땀 한 땀 박음질한다는 것이다 걷다 잠시 뒤돌아보면 풍경과 마음이 날실과 씨실로 어우러져 짜여진 옷감 한 자락 하늘 가득 강물처럼 흐른다 걷다 집으로 돌아오면 세상으로부터 찌들은 낡은 옷자락 바람결에 사라지고 내 영혼에 들어와 박힌 맑은 옷 한 벌 길 위에서 얻어 입은 날이다 (전향·시인)  + 길 위에 서다  세상의 모든 길은  어디론가 통하는 모양이다  사랑은 미움으로  기쁨은 슬픔으로  생명은 죽음으로  그 죽음은 다시 한 줌의 흙이 되어  새 생명의 분신(分身)으로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가만히 머무르지 말라고  길 위에 멈추어 서는 생은  이미 생이 아니라고  작은 몸뚱이로  혼신의 날갯짓을 하여  허공을 가르며 나는  저 가벼운 새들  (정연복·시인, 1957-)
1010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 - 아이스킬로스 댓글:  조회:5190  추천:0  2015-04-19
아이스킬로스 Aeschylos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출생 BC 525/524 사망 BC 456/455, 시칠리아 섬 젤라 국적 그리스 고대 아테네의 3대 비극 작가 가운데 최초의 인물. 아이스킬로스는 합창과 낭송만으로 이루어진 초기의 극예술을 노래와?대사?및 행위가 어우러진 완전한 형태의 극예술로 끌어올렸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국내의 이기적 정치가들과 국외의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확립되어가던 혼란기에 성장했다. 그는 BC 6세기에 아테네를 지배한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들이 최고 권력을 장악하고 억압정치를 폈지만 겉으로는 평화로웠던 시대에 젊은시절을 보냈다.  아이스킬로스가 비극 발전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그는 그리스 연극에 별도의 역할과 대사를 가진 2번째 배우를 도입하여, 1명의 배우와 합창단만으로 연극을 꾸려나가는 관례를 바꾸었다고 한다. 20세기에 그의 영향을 가장 깊이 받은 작가들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폴 클로델과 미국의 극작가인 유진 오닐이었다. 오닐의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에 담겨 있는 위대함을 근대의 어떤 작품보다도 잘 포착하고 있다. 목차 펼치기 개요 원본사이즈보기 아이스킬로스 아이스킬로스, 그리스의 비극 시인, 작가 아이스킬로스는 합창과 낭송만으로 이루어진 초기의 극예술을 노래와 대사 및 행위가 어우러진 완전한 형태의 극예술로 끌어올렸다. 아이스킬로스의 연극에서는 대부분 무대 중앙에 정치적 존재인 한 남자가 서 있어서, 극작가의 관심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한다. 아이스킬로스는 참주정치(그리스에서 권력을 절대 남용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통치자가 절대권력을 행사한 정치) 시대에 태어나, 아테네 민주주의가 국내의 이기적 정치가들과 국외의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확립되어가던 혼란기에 성장했다. 아테네와 페르시아 사이에 벌어진 첫번째 전쟁에 참여했으며, 나중에는 아테네의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갈등을 관찰했다. 아이스킬로스의 희곡에 비극적 행위의 초점을 제공해준 것은 지도자의 국민에 대한 배려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가 서로 충돌하여 빚어낸 긴장관계이다. 출생과 배경 대체로 믿을 만한 파로스 연대기(그리스 역사의 주요한 연대가 적혀 있는 BC 3세기의 비문)에 따르면, 아이스킬로스는 마라톤 전투(아테네가 페르시아인들의 침략을 물리친 전투)가 벌어진 BC 490년에 35세였다. 그렇다면 그는 BC 525년에 태어난 셈이다. 그는 BC 6세기에 아테네를 지배한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들이 최고 권력을 장악하고 억압정치를 폈지만 겉으로는 평화로웠던 시대에 젊은시절을 보냈다. 아이스킬로스 일가가 엘레우시스(아테네의 북서쪽)에 살았다는 전설은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들 Batrachoi〉에 나오는 구절을 오해한 데서 생긴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사실일 수도 있다. 역사가헤로도토스는 다른 문헌들에서 아이스킬로스와 형제라고 불린 사람을 팔레네 주민으로 기록했으며, 이는 아이스킬로스 일가가 정말로 거기에 살았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에우포리온이라는 이름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 명성과 영향력 아이스킬로스의 생애는 성공의 연속이었다. 공식 목록에 의거한 어떤 기록에 따르면, 그는 13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고 한다. 즉 제목이 알려져 있는 80편 이상의 작품 가운데 52편이 1등상을 받은 것이다. 아테네 정부는 누구나 그의 작품을 축제 경연대회에서 재상연할 수 있다고 포고하는 유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 그는 소피스트 철학자 플라비오스 필로스트라토스(170경~245경)의 글에 '비극의 아버지'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그가 이 칭호를 받은 것도 바로 이때였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재상연된 구체적인 날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헌에는 그가 죽은 뒤에 상연된 그의 희곡이 우승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익살스러운 회상, 특히 〈새들〉·〈개구리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 때도 그의 작품이 재상연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테네의 정치가 리쿠르고스의 제안에 따라 BC 330년대에는 아테네의 3대 비극작가의 동상이 디오니소스 극장(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세워졌다. 이때 제작된 동상은 '공식' 동상들이 흔히 그렇듯 실물보다 다소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며, 로마 시대에 제작된 몇몇 복제품은 이 동상을 본떠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로마의 카피톨리누스 박물관에 있는 흉상은 중년이 훨씬 넘은 대머리 남자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진짜 초상, 즉 젤라 시민들이 주문해 만든 원작을 모형으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스킬로스의 두 아들도 비극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중 에우포리온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 아버지의 희곡들을 새롭게 상연해 4번 우승했다지만, BC 431년에는 자신의 힘으로 당당히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Medeia〉를 물리치고 1등상을 받았다. 아이스킬로스가 비극 발전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그는 그리스 연극에 별도의 역할과 대사를 가진 2번째 배우를 도입하여, 1명의 배우와 합창단만으로 연극을 꾸려나가는 관례를 바꾸었다고 한다. 이 혁신으로 그리스 연극은 줄거리 구성과 대사에서 훨씬 많은 다양성과 역동적인 긴장을 얻을 수 있었다. 무대 장치가인 아가타르코스가 그의 동료로 언급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규모의 채색 무대 장치(예를 들면 〈묶인 프로메테우스〉의 배경인 카프카스 산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무대 장치)가 그렇게 일찍부터 쓰일 수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어쨌든 그의 작품은 웅장하고 극적인 무대 효과(예를 들면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등장인물들을 운반하는 기묘한 방식, 〈에우메니데스〉에서 코를 골며 잠자는 복수의 여신들의 활인화)와 이국적이고 무시무시한 가면 및 의상으로 유명했다. 〈에우메니데스〉에서 합창단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관객에게 공포심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합창단의 기능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합창단의 규모를 줄이고 그 수를 12명으로 표준화한 것 같다. 초기 비극에서 합창단이 우세를 차지했다는 것은 단순한 가설이지만,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아이스킬로스가 '합창단의 역할을 줄이고 줄거리를 주인공으로 만든' 것은 사실인 듯하다. 동시에 그는 안무가의 도움을 마다하고 합창단을 직접 훈련시켰으며, 합창단이 연기할 새로운 무용 스텝을 직접 고안하기까지 했다. 그는 당시의 극작가들한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관례에 따라, 대부분의 작품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을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 겸 웅변가인 키케로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에서 수많은 단락을 인용하고 번역까지 했지만, 1세기에 이르자 로마인들은 아이스킬로스의 어려운 표현을 차츰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수사학자인 퀸틸리아누스는 아이스킬로스의 표현이 "조잡하고 지리멸렬하다"고 생각했다. 2세기에 이르자 아이스킬로스는 인기 있는 극작가 자리에서 뒤로 밀려났다. 1475년에 교황 식스투스 4세의 도서실에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 필사본이 고작 3권밖에 없었다. 그러나 18세기말 아이스킬로스는 '재발견'되었다. 〈아가멤논 Agamemnon〉은 나폴레옹이 좋아하는 작품이었고,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 시인의 천재성을 충분히 인식했다. 아이스킬로스의 영향은 퍼시 비시 셸리가 쓴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Unbound〉(1820)와 함께 영국 시의 주류를 이루었다. 20세기에 그의 영향을 가장 깊이 받은 작가들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폴 클로델과 미국의 극작가인 유진 오닐이었다. 오닐의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 Mourning Becomes Electra〉(1931)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에 담겨 있는 위대함을 근대의 어떤 작품보다도 잘 포착하고 있다.  
1009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 댓글:  조회:5229  추천:0  2015-04-19
    그리스비극       신주(新酒)의 술통을 따는 봄의 대축제에는 비극을 상연하였고, 이것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합창찬가(디티람보스)가 토대이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테스피스가 BC 6세기 후반에 원형적(原形的)인 비극을 상연했다고 하나 비극의 창시자는 아이스킬로스(BC 525∼BC 456)였다. 그는 90여 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며 경연(競演)에서 13회(1회에 4편 상연)나 우승하였다고 하였는데 후세에 남아 있는 것은 7편에 불과하다.한 사람의 작가가 상연하는 4부작은 사티로스극(劇) 1편을 포함하여 모두 3편이다. 그 3부작이 완전히 전해지는 유일한 것으로 《오레스티아》가 있고 각 부작의 이름은 이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민족의식이 고양된 시기의 애국 시인이며, BC 6세기의 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가득 찼던 그의 작풍은 성장기에서 뒤떨어졌던 극작술(劇作術) 때문에 르네상스 시기에는 3대 비극시인 중 가장 낮게 평가되었으나 19세기 이후 그의 작가적 역량이 재발견되었다.소포클레스는 페리클레스 시대를 대표하는 원숙한 시인이며 비극의 완성자로 같은 시대 사람들 사이에서나, 르네상스 이후에 있어서나 그 성가(聲價)가 높다. 그는 123편의 작품을 써서 18회(일설에는 24회)나 우승하였으며, 3위 이하로 떨어진 일이 없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7편 중 세계 연극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오이디푸스왕(王)》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는 이를 격찬하여 비극의 전형(典型)이라고 하였다. 인간성을 강조하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숙명과 싸우는 인간의 무력과 비참을 그리다가 마침내 영웅적인 죽음으로써 정화(淨化:카타르시스)되는 과정으로,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가장 잘 실현하였다. 말년의 소포클레스에게 영향을 준 점도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92편 중 완전한 형태인 단 하나의 사티로스극(劇) 《키클로프스(외눈박이 도깨비)》와 17편의 비극, 위작(僞作) 1편이 전해진다.그의 작품에는 극작술상(劇作術上)의 여러 연구가 엿보인다. 그는 다채로운 작풍을 찾아볼 수 있는 그리스 비극에서 바로크적(的) 경향의 대표자이다. 합리주의에 입각한 전통 비판이 심판관의 비위에 거슬렸는지 우승 횟수는 그가 죽은 후 주어진 것을 합해서 5회에 불과하나 《메데이아》와 《트로야의 여인》이 후세에 남긴 비장미(悲壯美)는 유럽 근대 연극의 한 계보(系譜)이다. BC 386년 대(大)디오니시아제(祭)가 전기 3대 시인의 재연만을 상례로 하여 창작활동은 쇠퇴하고, BC 4세기의 관객층은 다른 스펙터클로 눈을 돌리게 되어 비극의 장르는 독서의 대상으로 고정되었다. 나중에 라틴문학으로 오비디우스나 세네카의 낭독을 위한 작품이 나온 것도 그 예이다.         그리스 3대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비극은 개인의식에 대해 출발하였으며 인간의 운명, 자연(신), 초월적인 것, 개인적인 심층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비극의 어원은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공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극적세계관은 자기완성을 향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인간을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로 인식하는대에 있다. 고전의 비극은 개인의 자유의지와 신의 결정론적인 운명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이루어 졌다.     비극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BC 6세기에 디오니소스신(神)의 제사와 함께 행하여진 합창 ·무용과 관련하여 합창대에서 1명이 이탈해 나와 합창대와 대화하는 풍습이 생겨 거기서 비극이 탄생하였다. 따라서 비극은 이 신의 제의(祭儀) 중의 한 행사였으며, 항상 이 신에 대한 봉납(奉納)과 경연(競演)의 형식을 유지하였다. 비극의 창조자는 테스피스인데 BC 543년 경연에서 승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비극은 겨울에서 이른봄에 결쳐 행하여진 3가지 디오니시아제(祭), 특히 3월의 대제(大祭)에서 상연되었다. 초기의 비극을 참된 연극으로 발전시킨 것은 아이스킬로스인데, 그는 한 사람이 하던 배우(俳優)를 2명으로 증원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개혁을 이룩한 것 같다. 그는 또 서정시 부분이 주였던 비극을 점차 회화 부분이 많은 긴밀한 구성의 연극으로 바꾸어 나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동시대의 서정시인 핀다로스와 같이 장대(壯大)하기는 하나, 구성보다는 정서를 북돋우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점에서 뛰어났다. 비극은 합창대 노래에서 주로 이암보스의 회화를 삽입한 형식을 최후까지 보존하고 있었는데, 아이스킬로스의 극은 특히 이 노래 부분이 좋다.       뒤에 나온 소포클레스는 아테네 고전기의 대표자로서, 엄정한 형식미와 긴밀한 구성에 있어서 비할 데 없는 업적을 남겼는데, 그는 배우를 3명으로 증가하여 구성상의 진행도 더욱 복잡화시켰다. 소포클레스보다 10세 정도 아래인 에우리피데스는 이미 소피스트의 새로운 견해의 영향을 깊이 받아, 벌써 아르카이크(archaique)한 시대의 최후의 정점에 선 고전적인 차가운 미(美)에는 만족할 수 없었고, 인간을 연극에서 추구하였다. 따라서 비극의 소재인 신화와 영웅전설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 해석하려 하였고 낡은 고정관념을 타파하려고 하였다. 또한 새로 나타난 웅변술을 무대에 내놓으려 하였으며, 심리를 분석, 마음의 추이를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노래만으로 구성되어진 극을 창시하고 완성하며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플롯을 만들어 갈등을 한층더 고조시키고 짜임새 있는 극으로 만들었다. 그리스의 비극 구조는 5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prolrgos - 독백, 극중 인물이나 해설자에 의해 진행된다. 2) parodos 3) epeisodion - 삽화 (코러스 노래 사이에 삽입된 대화) 4) stasimon - 막간 놀이로 나중에 변질, 감정성찰 5) exodos - 코러스나 오케스트라가 퇴장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아이스 퀼로스가 노래와 시로만 있던 초보적이던 극을 한층 발전시켜 대사와 행동을 무대위해서 보여주었고, 보통이 이인극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소포클레스는 더 많은 배우들과 코러스등을 등장시켰고 에우리피데스로 넘어오면서 오늘날의 연극의 기초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리스의 3대 작가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동시대에 살았고, 초보적인 극을 한층 발전 시켜나갔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스킬로스는 소포클레스의 스승이였고, 에우리피데스는 소포클레스의 아끼는 후배였다. 디오니소스제에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등이 승리를 거두며 명성을 떨쳤다. 아주 유명한 일화로 에우리피데스가 죽자 소포클레스는 디오니소스제에서 상복을 입고 슬퍼하였고 코로스와 배우들에게 관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 아이스킬로스   BC 525/ 524~BC 456/455 쯤 태어났다고 한다. 고대 아테네의 3대 비극 작가 가운데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조국인 아테네는 당시 페르시아와 전쟁중이였으며 전쟁에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3대 비극 작가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다. 아이스킬로스가 전쟁에 참여했다고 전해지고, 소포클레스가 전쟁에 승리를 위해 소년 합창단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 당시 에우리피데스가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아이스킬로스는 당시 평화로운 시대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비극을 쓰게된 계기는 정치인들의 생각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이 서로 충돌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살았던 당시 아테네는 외부의 침략을 받아 전쟁을 치르고 난후, 정치인들 사이에 양분화되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자들간의 팽팽한 갈등 관계에서 자신과의 생각이 충돌되어지자 그는 비극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아이스킬로스는 당시 합창과 낭송만으로 이루어진 초기의 극을 노래와 대사, 행위가 어우러진 완전한 형태의 극으로 발전시킨다. 아이스킬로스의 연극에서는 대부분 무대 중앙에 정치적 존재인 한 남자가 서 있어서, 극작가의 관심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했다. 아이스킬로스는 그의 모든 극에서 신들의 위대함을 보여주며, 지극히도 숙명적이고 운명적인 비극으로 신들에게 속해 있었다. 그 이유는 아테네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됨으로써 믿기 어려운 행운에 신들에게 감사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전쟁에 몸소 참가한 그로써는 더욱 그러했을 꺼라 보여진다. 그는 신들의 최후의 정의를 믿고 언젠간 정의가 신의 정의와 일치한다는 것을 항상 그의 비극에서 노래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영웅 전설로 유명한 에디프스의 두 아들의 싸움을 다룬 , , , < 오레스테이아>등인데 특히 는 최대의 걸작으로 완전히 남아 전해지고 있는 유일한 3부작으로 , , ,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정확히 누구의 아들이며 그의 일가는 확실하게 전해오는 것은 없지만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다른 문헌들에서 아이스킬로스와 형제라고 불린 사람을 팔레네 주민으로 기록했으며, 이는 아이스킬로스 일가가 정말로 거기에 살았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에우포리온이라는 이름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         ★ 소포클레스   기원전 7~6년 아테네에서 부유한 무기 제조업자 소필로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살았던 당시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로 민주주의가 한창 꽃피던 시기였으며 당시 그리스 문화의 최전성기였다. 아름다운 용모와 재능을 타고났고, 집안이 기사(騎士)신분에 속하였으므로 작가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명예로운 일생을 보냈다. 음악을 란푸로스에게, 비극을 아이스킬로스에게서 각각 사사하였다.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 축제 때는 그는 디오니소스제에서 스승인 아이스 퀼로스를 여러번이나 이기고 무려 24번이나 승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아테네를 너무도 사랑하여 평생을 아테네에서 살았다.     그의 작법은 3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이스퀼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화려하고 장중했다면, 두 번째는 엄밀하면서 기교적이였고, 세 번째는 원숙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비극적인 작시의 스승은 아이스킬로스였기에 그의 영향을 초기에는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스킬로스가 신의 위대함을 노래하며 비극의 주인공을 신으로 했다면, 소포클레스는 신의 힘과 위대함을 인식하고 공경하면서도 인간에게 비극의 주인공 자리를 내어 주면서 인간 자신의 내부적인 고통에 많은 치중을 두었다. 신이 주는 숙명적인 운명에서 인간 자신의 내부적인 갈등을 스스로 인식하는 자조적인 고통을 극에서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는 연극에서 소도구를 이용하기도 하고, 아이스킬로스의 극에서 두명이던 배우를 여러명으로 늘리며 코러스도 12명에서 15명으로 늘렸으며 배우들을 통하여 그들의 갈등관계와 각자의 성격을 생생하게 부각시켰다고 한다. 소포클레스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개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이스킬로스가 그리스 연극의 창시자였다면, 소포클레스는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라고도 할 수 있다.   소포클레스는 높은 관직에 자주 취임했고 나중에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10인의 장군에 선출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후에 10인의 국가최고위원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종교에도 깊숙이 관여해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을 자신의 집에다 모시고 찬가를 바쳐 불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는 90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에 123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썼다고 하나 제목만 전해질 뿐 현존하는 작품은 모두 7편이다. ,,,,,,등이다.         ★ 에우리피데스   기원전 484?∼기원전 406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의 한사람. 살라미스(Salamis)에서 태어나 아테나이(Athenai)에서 활동하가가 마케도니아(Makedonia)의 궁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우리피데스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천재적인 비극 작가의 한 사람이다. 아테네 태생이며 그의 부모는 야채 장수라고 알려져 있다. 그도 역시 디오니소스제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소포클라스가 정치정인 문제로 디오니소스제를 참여하지 않자, 그해 로 우승을 거머쥔다.   그는 소크라테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청년 시대를 궤변 사상의 새로운 경향과 동요 속에서 지냈기 때문에 당시의 다른 비극 시인과는 다른 새로운 경향과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전통과 종교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나는 점이 있으면 항상 비판적인 입장에서 고쳐 표현하였다 한다. 그는 3대 비극 작가중에서는 가장 근대적인 작가였다. 그의 희곡들은 윤리적·사회적인 논평으로 가득 차 있으며, 후세의 작가와 연설가들에게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논평들을 원래의 극적 문맥에서 쉽게 떼어내 도덕론이나 문집, 심지어는 그리스도교 설교문에까지 원용했다. 인간의 정념(情念)의 가공할 작용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은 그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특히 여성심리를 묘사하는 기법에서는 고대작가들 중에 따를 사람이 없다.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킬로스에 비하면 그의 삶은 비교적 불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후에 그의 명성은 다른 비극 대가를 압도하기까지 하였으며, 후세 문학에 끼친 영향도 절대적이다. 아이스킬로스가 신에 대해 절대적이였고, 소포클레스는 신을 공경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적인 문제를 다루며 신에 대한 절대적인 것을 소심하게 드러내지 않고 피해갔다면, 에우리피데스는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에도 영향을 받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작품수는 98편에 이른다고는 하나 소포클레스와 마찬가지로 제목만 전해지고, 존재하는 것은 19편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등이다.    
1008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 - 에우리피데스 댓글:  조회:5332  추천:0  2015-04-19
에우리피데스(그리스어: Ευριπίδης, 영어: Euripides, 기원전 약 480년 이전 ~ 기원전 406년)는 아테네 출신으로,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와 더불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으로서 오늘날 그가 쓴 18편의 비극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합리적인 예지·자유주의적·인도주의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그의 극은 근세 유럽의 비극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목차    1 생애 2 작품세계 3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     생애 아테네에서 출생하였으며 마케도니아에서 죽었다. 아낙사고라스에게서 배우고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와 사귀었고 영향을 주었다. 작품세계 92편의 극작품을 쓰고 5회의 우승을 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작품 18편외 다수의 단편(斷片)이 있다. 인간의 고뇌에 깊은 이해와 동정을 품고 또한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악업에 격노하며 운명이나 신의 뜻에 따르기보다 인간의 주지적(主知的) 합리성으로 이 세상의 복잡미묘함을 폭로하려는 에우리피데스는 근본적으로 '비극'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입장에 있었다고 평해진다. 그러나 그런대로 아테네 연극계에서 총아로 등장해 멀리 그리스 세계의 곳곳에까지 그 작품이 번져나간 것은 오로지 그의 교묘한 작극술(作劇術)과 그것으로 묘사되는 극히 일반적인 인간의 비애가 강력한 설득력으로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연출기법에서는 소포클레스와 달리 별다른 신기축(新機軸)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또한 소포클레스의 정묘한 작품구조의 균형과 박진감에 비하면 에우리피데스의 여러 작품에서는 야릇한 현실성 내지는 사실성의 무시와 강렬한 리얼리즘이 등을 맞대고 있어 독자나 관객을 불안한 긴장으로 감싸버린다. 허구다운 프롤로그에 역시 허구다운 신이 등장하는가 하면, 연애·질투·복수·간계·광기·비애와 같이 순수하고 인간적인 표정으로 감싸버린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있을 수 없는 장면에서 있을 수 없는 논쟁이나 비판이 사건의 흐름을 중단시키고, 보는 자와 보이고 있는 자와의 사이에 의식의 벽을 만드는 듯하나, 다시 격정으로 넘쳐흐르는 사건이 그 벽을 잊게 해버린다. 이건, 이건, 또는 나 등의 여러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격정적인 사건과 의식의 벽이 서로 부딪치는 충돌로 들볶여, 마지막엔 고즙(苦汁)처럼 남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비애와 제신에 대한 분노이다. 이러한 작품의 상연은 작가 스스로 만든 것 이외에는 몹시 어려웠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대사(臺辭)의 간명함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후세에 많은 독자를 매혹시키고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가장 비극적인 시인( 1953 a 30)'이라고까지 평하게 한 까닭이 되었을 것이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 《안드로마케 (비극)》 《알케스티스 (비극)》 《헬레네 (비극)》 《박코스 여신도들》(또는 박코이)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 《헤라클레스 (에우리피데스)》 《헤라클레스의 자녀들》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이온 (비극)》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또는 타우로이족 사이에서의 이피게네이아) 《헤카베 (비극)》 《오레스테스 (비극)》 《트로이아 여인들》 《탄원하는 여인들 (에우리피데스)》 《포이니케 여인들》(또는 페니키아의 여인들) 《힙폴뤼토스 (비극)》 《레소스 (비극)》- 진위 불확실 《키클롭스 (사티로스극)》- 사튀르 극
1007    명시인 - 잭 런던 댓글:  조회:3800  추천:0  2015-04-19
   먼지가 되느니 차라리 재가 되리라   먼지가 되느니 차라리 재가 되리라. 내 생명의 불꽃이 푸석푸석하게 메말라 꺼지게 하느니 찬란한 빛으로 타오르게 하리라. 죽은 듯이 영구히 사는 행성이 되느니 내 모든 원자가 밝게 타오르는 화려한 유성이 되리라. 인간의 진정한 소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다. 나는 단지 연명하기 위해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으리라.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리라.       -잭 런던의 시- 우리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매슬로우는 ‘우리가 가진 능력은 쓰여지기 위해 아우성 치고 있다.’ 고.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내 인생, 매일 매일 아우성치기.   [출처] 먼지가 되느니, 차라리 재가 되리라 - 잭 런던의 시|작성자 호호몰  
1006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 - 소포클레스 댓글:  조회:8267  추천:0  2015-04-19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고대 그리스어: Σοφοκλῆς Sophoklē̃s[*]; 기원전 497년 - 기원전 406년)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비극 시인이다. 아이스킬로스·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으로 꼽힌다.   목차    1 생애 2 작품 2.1 현존 작품     생애 소포클레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기원전 3세기 이후에 쓰여진 그의 전기가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497년 아테네의 행정 구역 콜로노스에서 부유한 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다. 16살 되던 해에 살라미스 해전을 기리는 연회에서 선창 소년으로 뽑혀 노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원전 468년 29세에 디오니소스제의 비극 경연에서 선배인 아이스킬로스를 물리쳐 명성을 떨쳤다. 펠로포네스전쟁을 전후로 하여 소포클레스는 정치 생활에 들어가 요직을 여러 번 지냈다. 페리클레스의 정치 노선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443년 델로스 동맹의 10명으로 구성된 통솔자에 선출되었으며, 펠로포네스전쟁 초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해군 제독으로 활약한 바도 있어, 그의 뛰어난 재질과 미모로써 아테네의 우상이 되고 시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사망 후에는 아테네 시민은 그에게 덱시온이라는 영웅 칭호를 주었다. 작품 그는 특히 비극예술의 완성자로서 유명하다. 비극 경연에서의 1등 우승은 24회나 되었다고 한다. 극·송가·비가·잠언 등 123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나 현존하는 것은 7편 뿐이다. 그 밖에 다수의 단편(斷片)이 있다. 그는 극에 있어서 3부극을 폐지하고 합창 대원을 늘리는 등 극의 단순성을 극복하였으며, 치밀한 구성, 완벽한 기교 등으로 비극을 완성시켰다. 그가 연극에서 추구한 것은 아이스킬로스와 같은 무한무궁의 확대가 아니라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에 깃들인 무한한 깊이였다. 그는 세 배우를 등용시켜 동시에 대화를 갖게 함으로써 극을 진행시키는 기법을 비롯해서 소도구의 연구나 배경화 등을 채용했다고도 전한다. 당시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극장 개축(改築)이나 관람요금의 지급 등 문화진흥정책으로 아테네의 연극 활동은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의 특색은 장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정교치밀한 대화를 통하여 모든 인물을 대조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인간을 단순한 입장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설사 입장을 같이하는 몇 사람의 인간 사이에도 개개의 인간 안에는 제거할 수도 없고 서로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중핵적인 힘이 깃들어 있음을 객관적인 대화의 기법으로 지적한다. 그리고 드라마는(해야 할 행위에의 결의로 시작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한 영웅적 책임감으로 결정(結晶)되는 과정을 드라마라고 부른다면) 그 중핵적인 힘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나타냈던 것이다. 나 과 같은 극작이 운명극이나 성격극으로도 해석되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처럼 일단은 운명의 굴레에 사로잡혔던 인간이 자기의 의욕적인 성격을 일관시킴으로써 암흑의 세계로부터 새로운 광명을 획득하는 것도 드라마의 근원을 성격 안에서 발견하고 대화의 묘로써 사건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라 하겠다. 현존 작품 《트라키스 여인들》 《아이아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또는 오이디푸스 튀라노스) 《엘렉트라》 《필록테테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또는 오이디푸스 콜로노스)   소포클레스Sophocles 명언모음^^ 간결한 격언 속에 흔히 많은 지혜가 깃들어 있다.  고난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나는 여자의 맹세를 물에 적어놓는다.   남자의 분노는 세월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만이 그것을 사라지게 할뿐이다.   단 하루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멸망시킬 수 있고 다시 소생시킬 수도 있다.   뜨거운 불 속에서 아무리 잘 단련된 강한 쇠라 할지라도 마지막에 가서는 너덜너덜한 폐물이 되고 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잘 한다는 것은 별개이다.  사람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우리를 이용하려는 사람, 즉 원수이다.  둘째, 우리를 이용하려는 동시에 우리에게 이용되어지려는 사람, 즉 친지(親知)이다.  셋째, 우리가 존경하고 또 그를 위해 힘있는 대로 도우려고 하는 사람, 즉 친구이다.  사람의 마음은 증오와 우정을 가졌을 때 어이없이 변하는 법이다.  성공은 수고의 대가라는 것을 기억하라.  스스로 돕지 않는 자에게는 기회도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  신은 행동하지 않는 자에게는 절대로 손을 내밀지 않는다.   아무리 대담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신이 숨통을 끊기 위해 바로 옆에 와 있는 것을 본다면                                                                                                                           너무나 놀란 나머지 뒷걸음쳐 도망갈 것이다.  여자에게 침묵은 훌륭한 장식물이 된다.  이성, 그것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자기 가정을 훌륭하게 다스리는 사람은 국가의 일에도 가치있는 인물이다.  전쟁은 그 수행에 있어서 악한 사람을 학살하는 일은 없고, 언제나 선량한 사람만을 학살한다.       
1005    칠레 민중시인 - 파블로 네루다 댓글:  조회:3893  추천:0  2015-04-19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년 7월 12일 ~ 1973년 9월 23일)은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이다.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강압에서 벗어나고자 사용한 필명이 나중에는 법적인 실명이 되었다.   목차     1 생애 2 문학세계 3 사회주의 운동 4 문학적인 평가     생애 7, 8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3세 때에는 신문에 작품을 발표했다. 14세 때 체코의 시인 J. 네루다의 시를 탐독하고, 1920년부터는 '파블로 네루다'를 필명으로 쓰기 시작했다. 소년 시절부터 눈부신 문학적 재능을 발휘한 그는 1921년에 〈축제의 노래〉 등을 발표하여 시단의 인정을 받았으며, 1923년에는 시집 《변천해가는 것》을 출판하여 시단에서의 위치를 다졌다. 초기 시의 대표작으로서 가장 많은 독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시단에서도 인정받은 작품은 1924년에 출판된 《20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이다. 이 시집에는 고통과 오뇌, 고독과 절망이라는, 네루다 시의 전형적인 테마가 가득히 담겨 있다. 1933년에는 시집 《지상(地上)의 거주지》를 내어 명성을 떨쳤다. 1934년부터 1939년까지 에스파냐에 주재하고 있을 때, 인민전선정부가 탄생하고, 이어서 내란과 프랑코 독재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인간적 연대(連帶)를 역설하는 정치 시인으로 변모하여 정력적으로 반(反)파시즘의 시를 썼다. 귀국한 후 1945년에는 상원 의원이 되고,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공산당이 비합법 단체로 인정되자 지하로 잠입하고, 이어서 망명을 하고 고난의 나날을 보냈다. 1950년에는 멕시코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노래한 웅장한 서사시집 《위대한 노래》를 발표했다. 여기에 수록된 장시 〈나무꾼이여, 눈을 떠라〉로 1950년 스탈린 국제평화상을 받았다. 52년에는 귀국하여 시 창작에 몰두했다. 70년에 아옌데 인민연합 정권이 수립된 후 주(駐) 프랑스 대사가 되었고, 1971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3년 9월의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자, 병상에서 격렬하게 항의하는 시를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저서에는 이 밖에 시집 《기본적인 오드》, 《세계의 종말》, 《불타는 칼》 등이 있다.[1] 문학세계 파블로 네루다는 20세기 가장 대표적인 시인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그의 시는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그의 문체는 매우 다양한데, 성적인 표현이 많은 사랑 시들 (흰 언덕 같은)과 초현실적인 시들, 역사적인 서사시와 정치적인 선언문들이 포함된다.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고 했다. 1971년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후에 그의 정치적인 행태 때문에 논란거리가 되었다. 1945년7월 15일, 브라질 상 파울루의 파깸부 운동장에서 그는 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혁명가인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를 기념하는 낭송회를 가졌다. 노벨상 기념 강연후 칠레에서는, 살바도르 아옌데의 초대로 에스타디오 나시오날(Estadio Nacional:국립 경기장)에서 7만 명 앞에서 낭송회를 가졌다.   사회주의 운동 네루다는 생에 많은 외교관 자리를 역임했으며, 칠레 공산당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보수적인 칠레의 대통령 곤살레스 비델라가 사회주의를 박해했을 때, 네루다의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친구들은 몇 달동안 칠레의 항구 발파라이소의 한 집 지하에 그를 숨겼다. 그 후 네루다는 산을 넘어 탈출하여 아르헨티나에 들어갔다. 반공주의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 당시, 암으로 입원한 네루다는 심장마비로 죽었다. 피노체트는 좌파시인 네루다의 장례식을 공개거행할 것을 반대했으나, 수천명의 칠레사람들은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의 통행금지를 어기고 공개적으로 애도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이 네루다의 장례는 칠레 군사독재정권 최초의 항거였다.네루다라는 필명은 체코의 작가이며 시인인 얀 네루다에서 얻어졌으며, 나중에는 그의 법적인 이름이 되었다. 네루다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칠레의 민중 예술인으로는 빅토르 하라(1932년-1973년)가 있다.하라는 피노체트의 군사독재정권의 국가폭력으로 살해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네루다는 아내에게 “그자들이 사람을 죽이고 있어. 산산조각이 난 시신들을 건네주고 있다고. 노래하던 빅토르 하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 몰랐어? 그자들이 하라의 몸도 갈기갈기 찢어놓았어. 기타를 치던 두 손을 다 뭉개놓았대.” 라고 말하며 분개하였다.[2] 문학적인 평가 파블로 네루다 시인의 시들을 《네루다 시선》(민음사)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출간한 정현종 시인은 “네루다의 시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생동이다”라고 말했다.[3] 스페인어학자인 민용태 시인은 네루다 시의 생동감을 한 단어로 ‘열대성’ 또는 ‘다혈성’이라고 표현했다.[2]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Ⅰ                                                                    〈 시 詩 〉                                                                 -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개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연약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Ⅱ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전 어느 가을날, 덕수궁 돌담길에 노란 은행잎이 가ㄹ 비에 떨어지던 날이었다.  울적한 심사 달래려 돌담길을 따라 시청을 지나, 나도 모르게 발길은 청계천 헌책방 골목에 가 있었다. 가을비는 계속 내리고, 비를 맞으며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책방을 배회했다.      이름도 모르는 헌책방에 들어가 책을 훑어 보다보니, 약  30여페이지의 얇은 〈스므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Twenty Love Poems and a Song of Despair)〉란 네루다의 시집을 만났다. 시집 첫 장을 열어 시를 읽어 보았다. 충격이었다.  시란 아름답고 난해한 언어로 시인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유희쯤으로 생각했는데, 이 시집을 읽어 보니 그러하지 않았다. 이 시집은 네루다가 막 청년기에 접어드는 스므 살에 자신의 사랑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들을 모은 시집이다.      그는 활화산活火山 같은 사나이다. 그의 시에는 모든 것을 불 태우고도 남을 용암溶暗이 붉게 철철 넘치고 있다. 무엇인가 암시적인 기법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 토해 내고 있다.                                    여자의 몸, 하얀 구릉, 눈 부신 허벅지                           몸을 내맡기는 그대의 자태는 세상을 닮았구나                           내 우악스런 농부의 몸뚱이가 그대를 파헤쳐                           땅속 깊은 곳에서 아이 하나 튀어나오게 한다.          네루다의 이 관능적  여인은 앞으로 그의 3천  5백쪽에 달할 장대한 시 세계의 상징이다.   시인은 사랑의 실패로 절망하지만, 그가 노래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다.  그의 절망은 대지로 이어지고 그의 대지는 시詩라는 생명을 잉태한다. 네루다의〈스므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서의 사랑은 이후 민중의 역사와 삶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 '일포스티노'란 영화의 선전표지>        몇년전 극장에서〈일포스티노〉란 이태리영화를 보았다. 이 작품은〈네루다의 우편배달부〉란 책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는 나폴리섬 근처에 있는 어촌 마을에 노벨상을 받은 칠레의 좌파 시인이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오면서 시작된다.      이 섬의 작은 우체국에는 전 세계에서 네루다에게 날아 오는 많은 편지가 쌓이게 되고 고민 끝에 그 곳의 우체국장은 어부 아들인 마리오 로뽈로를 고용한다. 처음에 마리오는 천재적인 로맨틱 시인 네루다와 가까이 지내면서 섬마을 여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그러나 네루다 사이에서 우정과 신뢰가 싹트고,마리오는 네루다의 영향으로 아름답고 무한한 시와 은유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또한 마리오는 아름답지만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베아트리체 루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놀라운 것은 마리오가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기 위하여 네루다의 도움을 찾던 중 내면의 영혼이 눈뜨게 되고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순박한 집배원이 유명한 시인에게 편지를 배달해 주면서,  자신의 순수한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세계적 명성의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1952년 본국 칠레에서 추방당한 후, 이태리 정부가 나폴리 가까이의 작고 아름다운 섬에 그의 거처를 마련해 준 실화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일 포스티노'는 이태리어로 '집배원'이라는 뜻이며, 주연을 한 마씨모 뜨로이지는 영화의 내용처럼, 영화 촬영이 끝난 직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Ⅲ        파블로 네루다, 시인이며 정치활동가이며  살아 생전 한 전설이 되었고그리고 죽어서도 영웅으로 환생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백년동안의 고독」이란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르시아 마르께스(Garcia Marquez)도 그를‘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극찬하고 있으며, 그의  시는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마르께스와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라고 알려진 시인의 실제 이름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바소알토(Neftali Ricardo Basoalto)로 1904년에 출생했다.  그는 그의 작품에「파블로 네루다」라고 서명하고 있지만, 철도 노동자인 그의 아버지는 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들을 못마땅해 했다.      네루다는 남부 칠레에서 큰 후, 1921년에는 그 자신 불어 강사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학에 등록하기 위해 산티아고로 갔지만,곧 시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을 떠났다.1923년 그는 처녀시집〈황혼의 노래(Crepuscularil)〉을 출간하고, 다음 해에는 아주 로맨틱 (romantic)하고 에로틱(erotic)한 시편들로 모아진〈스므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도 발간했다. 이 시집은 네루다의 시집 중 가장 사랑을 받은 책으로,그의 생전에 스페인어로만 백 오십만부 이상이 팔렸다.      1927년에서 1935년 기간 중  네루다는 버마, 실론, 자바, 싱가포르, 아르헨티나 그리고 스페인에서 각각 칠레 외교관으로 근무했다.1930년 그는 첫 결혼을 하였는데, 그 결혼은 불행으로 끝났다. 몇년후 그는 1955년까지 같이 살게 되는 델리아 델 카릴과 결혼하기 위해 그의 첫부인과 헤어졌다. 1920년대 1930년대에 그는〈대지에 살다 (Residencia en la tierra)〉란 두권의 시집을 냈는데,이 시들은 스페인에서 가장 뛰어난 초현실주의 시로 꼽히고 있다.        파시스트인 프랑코의 스페인 침공으로 야기된 스페인 내전에서 그는  문 명과 전쟁의 야만성을 목격 하였고, 이를 계기로 그는 정치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7년에는〈대지에 살다〉의 제3시집이, 그리고 1950년에는〈모든 이를 위한 노래(Canto General)〉란 시집을 출간했는데 이들 책속에 현실 참여적인 정치시가 포함되었다.〈대지에 살다〉란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학구적(Academics)이거나 예술지상주의적인 독자를 위한 시가 아니라, 노동자나 정치적으로 억압 받은 자들을 위한 시였다.                                                                                                                  〈네루다와 델리아 델 카릴〉        또한 네루다는 그 자신 라틴 아메리카 시인이라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모든 이를 위한 노래〉란 시집은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을 찬미하고 있으며, 이 시집에는 아마도 네루다의 가장 유명한 시로 평가되는 〈마추 피추의 정상(The Heights of Ma cchu Picchu)〉가 수록되어 있다.      시집〈모든 이를 위한 노래〉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들은, 1940년대 후반기 네루다가 반정부적인 발언으로 체포 위기에 빠지자 이를 피하기 위해 도망지에서 쓰여졌다. 그는 1949년 조국인 칠레를 탈출한 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1952년이 되어서 다시 조국으로 돌아 왔다. 3년후 그는 마틸다 우르티아와 결혼하여, 그녀와 함께 남은 여생을 산티아고와 칠레의 해안에 있는 네그라섬에서 보냈다. 그 섬은 그에게 그의 자전적인 시집인〈네그라섬의 추억〉등 후반기의 시에  주요한 모티브가 된 영감을 주었다.                                       네루다는  1950년에 국제 평화상, 1953년에 스탈린 평화상, 1965년에 옥스포드 대학으로부터 문예박사학위를  그리고 1971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69년에 그는 칠레 공산당 당수로 추대되었지만, 그의 친구인 살바도로 알랜데에게 양보했다. 4년 후 알랜데가 암살을 당했을 때,네루다도 암투병 중이었으며 며칠후 그도 죽었다. 그는 생전에 시,에세이,산문 등 34권의 책을 남겼으며, 또한 그의 70세 생일에 출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8권 분량의 시편들과 회고록을 남겨 두고 죽었다.      네루다는 한 종류의 시인 스타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그는 어떠한 한 시적 형태를 완성하고 나서는 다시 다른 형태로 변화 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의 영역은 아주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에서부터  아주 격정적인 정치적인 수사修辭 까지 광범위 했다.아마도 네루다 같이 아주 높은 수준의 많은 우수한 시적성취를 이룬 시인을 만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네루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세계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본질적으로 네루다의 시는,  인간이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끊임없는 변화를 대변한다. 젊은 시절에는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작품인 〈황혼의 노래〉와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를 썼으며 뒤이어 좀더 영적인 작품〈조물주의 시도〉〈고무줄새총에 미친 사람〉을 쓰게 되 었다.  외부세계와 이러한 세계가 주는 창조적 자극에서 내적 자아의 영역으로 침잠하게 되면서  독보적이고 신비로운 작품 〈대지에 살다〉가 탄생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시형식에서 벗어나, 매우 개성적인 시적 기법을 창조해냈다. 그가 스페인 내전 기간에 쓴 시들은 더 사실성이 강하고,  외부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더 많이 깨닫게 되었음을 나타내준다. 이러한 현실지향적이며 고발조의 시에 이어 장엄한 서사시〈모든 이를 위한 노래〉가 나왔다. 그러나 이 웅장한 문체는 사라지고 좀더 단순한 주제를 다룬 사회비평시가 등장하게 된다.                                      그의 주제와 기교의 다양함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했다. 〈100편의 사랑 노래(Cien sonetos de amor)〉에서는 사랑이,  〈이슬라 네그라의 회고록 (Memorial de Isla Negra)〉은 향수 어린 자서전이다. 네루다는 "나는 장대한 연작시를 계속해서 써나갈 계획이다. 왜냐하면 이 시는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의 말로써만 끝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으며,  실제로 그 마지막 순간은 1973년 9월에 왔다.                                                                            Ⅳ                                                  〈난 오늘 밤 가장 슬픈 시를 쓸수 있네〉                                                                                    -‘스므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중에서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예를 들어, "별로 수 놓아진 밤,                                   떨고 있네, 푸른, 별들이, 저 멀리서"                                   밤바람은 하늘을 돌며 노래하네.                                   난 오늘 밤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난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가끔씩은 날 사랑했네.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를 품에 가득 안았네.                                   끝없는 하늘 아래 오랫동안 키스했네.                                   그녀는 날 사랑했고, 나 또한 때때로 그녀를 사랑했네.                                   날 바라보는 그 커다란 두 눈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난 오늘 밤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그녀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잃어 버렸다고 느끼면서.                                   커다란 밤을 듣거니, 그녀 없어 더욱 큰 밤,                                   풀잎에 이슬 내리듯, 영혼에 시가 내리네.                                   내 사랑이 그녀를 잡아 두지 못한 게, 뭐 그리 중요하랴.                                   밤은 별로 빛나고, 그녀는 내 곁에 없네.                                   이게 다야. 멀리서 누군가 노래하네, 멀리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은 게 못마땅해 하고 있네.                                   내 시선은 다가 갈 그녀를 애타게 찾아,                                   내 가슴도 그녀를 찾지만, 이미 곁에 없네.                                   우리가 함께 있던 밤,                                   그러나 그때의 우리들은, 이제 예전 같지가 않아.                                   이젠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그건 그래,                                    하지만 얼마나 사랑했던가.                                   내 목소린 그녀의 귀에 가서 닿을 바람을 찾고 있어.                                   이젠 다른 사람 것이겠지, 이전엔 내 것이었던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고운 살결, 끝없이 깊은 눈망울.                                   이젠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그건 그래,                                    하지만 어쩌면 사랑하는지도 몰라.                                   사랑은 이다지도 짧고, 그러나 망각은 그 처럼 긴가.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를 내 품에 안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내 영혼이 못마땅해 하고 있네.                                   이것이 그녀가 내게 주는 마지막 고통일지라도,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 바치는 마지막 시가 될지라도.  
1004    <바보> 시모음 댓글:  조회:4558  추천:0  2015-04-19
나호열의 ´큰 바보´ 외 + 큰 바보  슬픈 일에도 해죽거리며 웃고  기쁜 일에는 턱없이 무심한 사람  그 곁을 애써 피해 가지만  걸어가야 할  먼 길  바보가 되어 가는 길 (나호열·시인, 1953-) + 바보들  동네 골목길  담벼락에 쓰인  커다란 낙서  ˝바보˝  어릴 적  바보가  아주 큰 욕인 줄 알았다  어른이 되어서야  바보가 욕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바보˝는 ˝순수˝의  이음동의어  모든 것이 돈으로  저울질되는 오늘날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  ˝바보˝  그 바보들 틈에서  노는 것이  마냥 즐겁다. (이문조·시인) + 나는 바보  욕하면  그 욕을 먹을지언정  따라서 욕하지 못한다  때리면  그 매를 맞을지언정  맞서서 때리지 못한다  버리면  버림을 받을지언정  스스로 버리지 못한다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바보  소유에 욕심이 없고  손에 쥔 것으로 만족하며  홀로 있어도 외로움을 모르고  이웃의 미움도 받아들이고  위험에도 두려움을 모르며  가난할지라도 불평하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는  고민일랑 웃어넘기고  자존심은 땅에 묻어놓고  높은 사람 앞에서도  굽실거리지 않으며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지 않고  남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한평생 원수를 맺지 않고  하루를 살아도 감사하는 사람  바보라고 놀려도 웃기만 하고  싫어해도 등 돌리지 않으며  내일에 대하여 근심이 없는  이런 바보가 되고 싶다.  (박인걸·목사 시인) + 바보의 노래  작은 몸 하나로  겨울을 버티고 있어야 하는 자야  눈물을 가슴으로 훔치며  살아 있어 산다하는  마음은 구천같이 떠도는  가슴 아픈 자야  등에는 한 보따리 슬픔이던가  가슴에는 하나 가득 아픔이던가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허리엔 쓰디쓴 미련을 차고  밤마다 종이 펴고 그림 그리는  네가 있어 행복했던 꿈을 그리는  네가 있어 아름다운 추억 그리는  바보 같은 자야  이제 길을 떠나자  비오면 오는 대로  바람불면 부는 대로  그래도 슬프면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가자  외로운 산길이면  울면서 가자  산너머  그리운 마을  찾아서 가자 (김진학·시인, 경북 영천 출생) + 바보처럼 살라 하네 밤새 숨었다가  아침에 얼굴 내민 해가  웃으라 한다 시린 등 쓰다듬으며  괴롭거나 슬프더라도  웃으라 한다 그날이  그날인데 하루를 지나며 만물을 살피고  구석구석 밝혀 주며 웃으라 한다  세상이 야속타 용광로가 끓어도  서러워 말라 다독이며 날 보고 날 보고 웃으라 한다 (하영순·시인)  + 바보가 바보에게 우린 돈을 잘 모르고 세상 지위에도 관심이 없고 좋은 음식 좋은 옷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지요 특히 교만이나 아집 시기나 분노 이러한 것도  자존이나 탐욕이 별로 없으니 남의 나라 얘기 같지요 그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창을 열고 새소리를 듣지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터로 가지요 길가는 이웃에게 ˝어머 오늘은 얼굴이 밝아 보여요! 무슨 좋으신 일이라도!˝ 반갑게 인사하고 님이 보내준 커피 한 잔 아침햇살을 받으며 가볍게 몸을 데우지요 우린 늘 누구에게나 손해를 보며 살지요 그래도 히죽 웃는 마음은  아파하기보다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뭘!˝ 이런답니다. 그래도 한세상 살아가는 데는  이 마음 버리고 싶지 않아요 내게 주어진 것 모두 없어져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나를 닮은 바보가 있잖아요 그 바보가 나를 사랑하는 한 나는 평생 이 바보의 길을 갈 거예요 설령 그 바보가 계산물이 들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 길을 갈 거예요 세상사람 전부가 날개를 달고 하늘로 훨훨 날아다녀도 나는 내 마음의 정원에 꽃을 심고 바다향기를 내 발등에 뿌리며 그냥 황톳빛 이 길을 갈 거예요 별로 날고 쉽지가 않거든요 바보는 머리가 나빠서 피곤한 일은 싫어하거든요 계산이 복잡하면 아주 싫어요 그냥 바보로 살다 죽고 싶어요.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그것 어디다 쓰죠? 내게도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런 순수에의 고집은 있답니다. 호호호호! 그대도 내 손을 꽉 잡고 바보걸음을 걸어봐요 세상물결 위를 느릿느릿 웃으며 걸어봐요 마음이 무거우면 세상 물결 속으로 가라앉는답니다 그러니 가볍게 걸어봐요 내 손을 더욱 꽉 잡고!  (유국진·시인, 경북 영덕 출생) + 바보야! 그게 사랑이야  바보야!  넌 정말 바보구나  그게 바로 사랑이야  네가 어미 젖꼭지를 깨물어도  네가 어미 얼굴을 꼬집어도  네가 어미에게 칭얼거리며 떼써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미소 짓는 마음  그게 바로 사랑이야  바보야!  차라리 바보가 되렴  그게 바로 사랑받는 비결이야  모자라는 널 감싸주고 싶고  부족한 널 도와주고 싶고  텅 빈 가슴을 채워주고 싶고  널 보면 뭔가를 해 주고 싶은 마음  그게 바로 사랑이야  바보야!  차라리 순수한 바보가 되렴  그게 바로 주고받는 사랑의 비결이야  어눌하지만 진실한 말을 하고  돌아가지만 온유한 생각을 하고  더딘 것 같지만 순리에 순종하는  너에겐 내 사랑 다 주어도 아깝지 않는 마음  그게 바로 사랑이야 (함영숙·시인, 하와이 거주) + 바보 같은 인생  내 몸이 썩어간다 신장이 썩고 위장이 썩고 항문이 썩는다 머리가 썩고 입이 썩는다 말초 신경들은 20년이 넘은 당뇨로  버티다 버티다 급기야 전의를 상실했고 위벽은 술과 담배로 거울처럼 금이 가고 항문은  먹는 것마다 활화산 용암으로 용해된 고름으로 촉촉이 썩어가는 두엄자리다 두피에서는 부스럼 딱지들로 벽이 헐고 입안은 뿌리 없이 부서진 이들로 늘 사막처럼 서걱거린다 아내는 게으른 탓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담배와 술을 끊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나는 내 몸의 어디부터 방어벽을 세워야할지 모른다 제 몸 하나 간수도 못하고 그 날 그 날이 좋아 산다 아내는 오래도록 함께 하지 못할까봐 내심 걱정이고 어머니는 살아생전 자식을 앞세울까봐 그게 두려워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하신다 그래도 난 바보처럼  술이 좋고 담배가 좋고 빨라야될 이유가 없는 적당한 게으름이 좋다  (조찬용·시인, 1953-) + 바보 촛불은 어둠을 밝히려  제 몸을 태우고 광대는 남을 웃기려 바보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기에 우스개 소리를 하고 다른 사람이 덜 힘들게 하기 위해 내 몸을 아끼지 않는 나는 바보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쁨을 주고 웃음을 주는 나에게 바보라고 하는 소리는 나를 슬프게 합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밉고 나를 절망 속에 빠뜨립니다 날 사랑하는 이는 어디 있나요 바보이기에 사랑하기 더 어렵던가요 사랑한다는 말을 할 용기조차 없기에 뜨거운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나는 바보라고만 하던가요 오늘도 밤이 깊어 갑니다 내 사랑하는 이는 외로운 나에게 전화 하나 없이 깊은 밤을 망각 속에서 보내는가 봅니다 아 슬픈 바보의 노래는 촛불처럼 깜빡이는 전등불 밑에서 눈물에 젖어 휘돌아만 갑니다 (최범영·시인, 1958-) + 사람들은 모두 바보입니다  마음으로 다 할 수 없는  말을 풀어서 글을 만듭니다  가까워도 닿을 수 없는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모읍니다  세월이 꽃피는 계절에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음만 간절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바보입니다.  (정영자·시인이며 문학평론가, 1941-) + 시인은 바보인가 봐  시인은 타인들의 사랑의 아픔과  이별의 슬픔까지도  위로를 해 주고  마음을 달래주며  눈물까지 닦아주면서도  오직  자신의 아픔과 슬픔은  달랠 줄 모르고  가슴속에 두고두고  혼자서  울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바보인가 봐  (손채주·시인) + 바보 詩人  제 살 베어  제 뼈 깎아  詩를 쓰고  제 돈으로 책을 찍어  친절하게도  우표까지 붙여  보내주는 바보  경제라고는 모르는 바보  물질 만능  자본주의 시대에  경제원리도 모르는 바보  그 바보가  바로 詩人이라네. (이문조·시인) + 바보야 바보야 바보야 바보야 프로야구 텔레비전 중계나 보면서 고스톱 화투짝이나 만지면서 모두모두 잊어버려 이 바보야 거꾸로 치솟아오르는 피, 까짓거 모두모두 비워내는 게야 날마다 무너지고 깨어지는 세상 까짓거 눈감고 비켜가는 게야 당당함이라든가 위험한 적의敵意 따위는 모두 지워 버리는 게야 짖지 않고 또 짖지 않은 채 꼬리를 감추고 살아가는 게야 포장술집의 소주잔을 잔째로 기울이며 무너진 황성 옛터를 찾아가는 게야 아아, 바보야 바보야 오늘밤 누가 와서 나의 비애를 돌로 쳐 다오 (김종해·시인, 1941-) + 바보사막  오늘 사막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니  출발하기에 앞서  사막은 가도 가도 사막이라는 것  해 별 낙타 이런 순서로 줄지어 가되  이 행렬이 조금의 흐트러짐이 있어도  또 자리가 뒤바뀌어도 안 된다는 것  아 그리고 그러고는 난생 처음 낙타를 타 본다는 것  허리엔 가죽수통을 찬다는 것  달무리 같은 크고 둥근 터번을 쓰고 간다는 것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러서  단검을 높이 쳐들어  낙타를 죽이고는  굳기름을 꺼내 먹는다는 것이다  오, 모래 위의 향연이여. (신현정·시인, 1948-2009)
1003    <한글> 시모음 댓글:  조회:4715  추천:0  2015-04-19
+ 우리글 한글 1학년 교실에 가 보면 국어 책을 편 아이들 모두가 무궁화꽃이시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의 말과 글을 써야 한다고 세종 대왕님이 심으신 스물여덟 그루의 한 글 나 무 ...... 그 밑에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 잎사귀를 줍는다. ㄱ도 줍고 ㄹ . ㅁ 도 줍는다. 주운 것은 그들 몫. 처음으로 그들에게 빛깔이 생기고 처음으로 그들에게서 향내가 난다. 골목대장 상수도 오늘부터는 겨레의 아들이 된다. 울보 은옥이도 오늘부터는 겨레의 딸이 된다. 그들에게 꽃. 달. 별 ...... 이런 말을 쉽게 알고 쉽게 쓰게 하기 위하여 한글은 있고 한글을 위하여 이 땅에는 1학년 . 2학년 ...... 수많은 어린 세종 대왕님이 살고 계신다.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한글이 좋아요  ㄱ, ㄴ, ㄷ, ㄹ …  ㅏ, ㅑ, ㅓ, ㅕ …  자음과 모음이 모여  글자를 이루니 이것이 한글이라.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이니라.  쓰기 편하고 읽기도 쉬우니  누구나 쉽게 배우리라.  다양한 표현도 가능하니  누구든 한글에 감동하리라.  한글이 쓰여 있는 옷을 입고  한글이 쓰여 있는 모자를 쓰고  하루를 생활하는 사람들  작은 실천이 곧  한글 사랑 나라 사랑이다.  끝말잇기, 빙고게임, 수수께끼 놀이  한글 게임을 하면 서로 친해지고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힘은 커진다.  2009년엔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족*의  공식문자가 되니  우리 한글의 자긍심도 뿌듯  "한글이 좋아요."  우리 모두 널리 알리고  마음껏 즐기자고요.  (이제민·시인, 충북 보은 출생)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중 하나.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부톤섬의 바우바우시가 이 지역 토착어인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공식문자로 한글을 도입. + 한글 예찬 반 천 년 넘는 이전 한반도 조선에  인류사에 우수성이 남을 소리글자  세종임금 삼십 년 고뇌로 빛을 발해  위대한 한글이 창제되었어라  두 획만 그어도 글자 되고  스물네 자 어울리면 못 쓸 말이 없는  민족의 말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이 보배로운 표음문자  세상의 글자 중 말소리를 가장 많이 적으며  감성을 가장 사실 가깝게 나타내니  그 독창성 과학적 우수성은 세계가 아네  유네스코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보존했네  이제, 소중한 민족 자산 긍지와 자부심으로  아끼고 살려 길이 보존해야 하리  글자 없는 소수민족 글눈이 되게 해야 하리  우리 한글이 세계 공통어 되는 날 오리니  세계로 나가자  한민족이여, 한겨레여  우리 미래는 밝다, 희망이 있다.  (조남명·시인, 충남 부여 출생) + 우리말  네게는 불멸의 향기가 있다. 네게는 황금의 음률이 있다. 네게는 영원한 생각의 감초인 보금자리가 있다. 네게는 이제 혜성같이 나타날 보이지 않는 영광이 있다. 너는 동산같이 그윽하다. 너는 대양(大洋)같이 뛰논다. 너는 미풍같이 소곤거린다. 너는 처녀같이 꿈꾼다. 너는 우리의 신부(新婦)다. 너는 우리의 운명이다. 너는 우리의 호흡이다. 너는 우리의 전부이다.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이 일을 어쩌리. 네 발등에 향유를 부어 주진 못할망정, 네 목에 황금의 목걸이를 걸어 주진 못할망정, 도리어 네 머리 위에 가시관을 얹다니, 가시관을 얹다니......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세상에 이럴 법이... 우리는 못났구나, 기막힌 바보로구나. 그러나, 그렇다고 버릴 너는 아니겠지, 설마.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내 귀에 네 입술을 대어 다오. 그리고, 다짐해 다오, 다짐해 다오.   (김동명·시인, 1900-1968) + 훈민정음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세종대왕의 말씀 세계 60여국에서 400여개 대학에서 배우는 과학적이고 뛰어난  대한민국 글자 얘들아! 자음 모음 합해서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 아름다운 글로 아름다운 동시를 쓰자. 우리말, 우리 글이 있는 나라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얘들아! 땅, 하늘, 바다, 산 꽃, 토끼, 개, 물고기 자유로운 한글로 표현해보자.  (박선자·시인, 전남 고흥 출생) + 한글  한글은  우리말의 집이다.  하늘의 뜻을 받아  우리말의 집을 지으신 분에게  나는 영원히 감사를 드린다.  영혼의 말을  적는 글은 한글이다.  내가 살아온  평생  나는 한글에서  우리들의 얼을 찾았고  겨레의 음성을  또 거기에서 들었노라.  지금 그는 어찌되었을까  43년 동경 신지꾸  작은 우리의 책방에서  최현배님의 '우리말본'을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성도, 이름도, 고향도 모르면서  그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그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알고 싶구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주시던  한글  그 글자 속엔  어머님의 음성과  아버지의 음성이  지금도 숨쉬고 있다.  한글의 모국어의 집이다.  (황금찬·시인, 1918-) + 한글 이름  쓰기 좋고  읽기 좋은  과학적인 글  우리 한글  한글을 사랑해서  아들 이름도 한글로  큰 소나무처럼 자라  늘 푸르라고 "한솔"  우주처럼 큰마음의 사람 되라고 "한울"  이름 예쁘다고  누가 지었냐고  할 적마다  어깨가 으쓱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한글 이름  한글날 맞아  더욱 자랑스럽네. (이문조·시인) + 모국어  징용으로 끌려간 동포들이 일본 땅 탄광 합숙소 벽에다  '고향에 가고 싶어요'라든가 '배가 고파요'라고 모국어로 쓴 말들이  언뜻언뜻 와 닿으면서 동포들의 탄 묻은 얼굴에 맺힌 눈물방울이  구주 하늘 아래 얼어붙는 것이 보인다  그들의 마음이 몇 안 되는 글자를 벗어나  마구 가슴 벅차게 소용돌이치는 것은  내 가슴이 식지 않은 화로처럼 다독일수록  살아나는 불씨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까  내가 수없이 뱉어내는 말들이  그들의 절실한 말에 비하면 아무 소용없는 것  서투른 붓끝으로 밝히는 내 가슴은  아직 모국어의 깊은 맛에 닿지 못하고  껍질만 벗기고 있는 것인지 (강영환·시인, 1951-) + 말의 빛  쓰면 쓸수록 정드는 오래된 말 닦을수록 빛을 내며 자라는 고운 우리말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억지 부리지 않아도 하늘에 절로 피는 노을 빛 나를 내어주려고 내가 타오르는 빛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언제나 부담 없는 푸르른 소나무 빛 나를 키우려고 내가 싱그러워지는 빛 "용서하세요"라는 말은 부끄러워 스러지는 겸허한 반딧불 빛 나를 비우려고 내가 작아지는 빛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모국어 엄마(母)가  생명의 근원이듯이 모국어(母國語)는 겨레의 뿌리. 남의 나라 말이 아닌 순수한 우리말로 갖가지 감정을 표현하고 시를 쓸 수 있다는 것 크나큰 기쁨이다 놀라운 축복이다. 이 땅에서 태어난 아가들의 첫말  '엄마'라는 두 글자는 또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가. (정연복·시인, 1957-)
1002    <소> 시모음 댓글:  조회:4515  추천:1  2015-04-19
    권정생의 '소' 외  + 소 보리짚 깔고 보리짚 덮고 보리처럼 잠을 잔다 눈 꼭 감고 귀 오구리고 코로 숨쉬고 엄마 꿈꾼다 아버지 꿈꾼다 커다란 몸뚱이 굵다란 네 다리 - 아버지, 내 어깨가 이만치 튼튼해요 가슴 쫙 펴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는 보리짚 속에서 잠이 깨면 눈에 눈물이 쪼르르 흐른다 (권정생·동화작가, 1937-2007) + 묵화(墨畵)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시인, 1921-1984) + 白牛 멀리서 보기엔 큰 양(羊)인가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두툼한 뿔과 큰 눈 분명 소다 그런데 소가 저렇게 희다니? 하기사, 사람도 흑인, 백인이 있지 않던가? (임보·시인, 1940-) + 꽃등심  정육점 진열장 한 켠에  꽃처럼 예쁜 이름표가 붙어있어    소의 시체의 한 부분일 뿐인  한 덩어리 고기가  꽃으로 불리워질 수 있다니  채식으로 오직  채식으로 맑아진 피와 영혼이  제 갈비뼈 사이에 피운 꽃  기껏해야 짐승의 시체나 먹고 사는  육식의 이 야만의  족속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등심초 꽃 이름으로  숯불 위에 몸을 누이는  살꽃의 소신공양 (복효근·시인, 1962-) + 정육 오늘은 소 잡는 날 현수막 붉은 너털웃음에 파묻히는 깜깜한 속살 달빛 좋은 데로 두 근만 주시오 에이 여보, 달빛 치고 좋지 않은 데가 어디 있수 초승달에 오금 저리며 제 몸에서 기름덩이와 뼈 찬찬히 발라내는 밤 (권덕하·시인) + 소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김기택·시인, 1957-) + 아버지의 소 땡볕 속에서 쟁기를 끄는 소의 불알이 물풍선처럼 늘어져 있다 아버지는 쟁기질을 하면서도 마음이 아프신지 자꾸만 쟁기를 당겨 그 무게를 어깨로  떠받치곤 하셨다 금세 주저앉을 듯 흐느적거리면서도 아버지의  말씀 없이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는  소 감나무 잎이 새파란 밭둑에 앉아서 나는  소가 참 착하다고 생각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버지는 동네  앞을 흐르는 거랑 물에 소를 세우고 먼저 소의 몸을 찬찬히 씻겨주신 뒤 당신의 몸도 씻으셨다 나는 내가 아버지가 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으나 파킨슨씨병으로  근육이란 근육이  다 자동차 타이어처럼 단단해져서 거동도  못하시는 아버지의 몸을 씻겨 드리면서야 겨우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힘들고 고단한 세월을 걸어오시는 동안 아버지의 소처럼 나의 소가 되신  아버지 아버지가 끄는 쟁기는 늘 무거웠지만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위해서 백합처럼 흰  내 어깨를 내어 드린 적이 없다 입술까지 굳어버린 아버지가 겨우 눈시울을 열고  나를 바라보신다 별이 빛나는 그 사막의 밤처럼 깊고 아득한 길로 아직도 무죄한 소 한 마리 걸어가고 있다 (이상윤·시인, 경북 포항 출생)   + 착한 소 시행의 마지막 구절을 막 끝내자  잉크가 다한 볼펜  기진맥진 원고지의 여백에  펄썩 쓰러져 버린다.  편히 쉬어라.  피어리어드는 내 눈물로 찍겠다.  돌아보면 너무도 혹사당한 일생.  경지는 다만 소만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 참 많은 밭을 갈았구나.  땀과 눈물과  심장에 고인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아낌없이 쏟아내고 너는 지금  후회 없이 이승을 떠나는구나  내 시가 너를 따를 수만 있다면… 잘 갈아 씨 뿌린 밭두렁에  거품을 문 채 쓰러진  착한 소 한 마리.  (오세영·시인, 1942-) + 흔들리는 차 짐차에 누렁소 한 마리 실려 갑니다. 중심을 잡으려 하지만 달리는 차는 누렁소를 흔듭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저렇게 흔들리며 어디로 가나. 누렁소가 눈을 끔벅끔벅 뒤따라오는 차에 실린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흔들리며 어디로 갑니다. (남호섭·아동문학가, 1962-) + 팔려 가는 소 소가 차에 올라가지 않아서 소장수 아저씨가 "이랴" 하며 꼬리를 감아 미신다. 엄마소는 새끼 놔두고는 안 올라간다며 눈을 꼭 감고 뒤로 버틴다. 소장수는 새끼를 풀어 와서 차에 실었다. 새끼가 올라가니 엄마소도 올라갔다. 그런데 그만 새끼소도 내려오지 않는다. 발을 묶어 내리려고 해도 목을 맨 줄을 당겨도 자꾸자꾸 파고 들어간다. 결국 엄마소는 새끼만 보며 울고 간다. (조동연·경북 경산 부림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시) + 어미소의 눈물  엄-매  엄---매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큰 눈으로 주인을 향해  흘리는 애틋한 눈물     젖이 불어 몸부림치며  일주일 넘게 새끼 생각에  우는소리. 눈물  애간장을 태우는데  목석 아닌 주인도 같이 운다     오일장날 어미와 새끼가 나란히  시장에 갔다가  새끼는 팔려가고  어미만 돌아와  돌아오지 않는 새끼 생각에     몇 일 밤낮을 울면서  새우는 엄마소  말 못하는 소의 새끼사랑  저러한데  사람의 자식사랑 오죽 할까 !  (박태강·시인, 1941-) + 소 커다란 눈망울 가득 하늘 담은 순한 소 뚜벅뚜벅 한 걸음 한 걸음 제 갈 길로 가는 우직한 소 코뚜레에 메이고서도 안달 떨지 않는 소 그 억센 뿔 좀처럼 들이대지 않는 소 이따금 음매 음매 구슬피 우는 소 머리부터 발끝, 꼬리까지 남에게 몽땅 주고 가는 바보 같은 소 너는 꼭  예수나 부처의 모습이다 (정연복·시인, 1957-)
1001    꾸바 시인, 혁명가 - 체 게바라 댓글:  조회:3979  추천:0  2015-04-19
    '행복한 혁명가' 외  + 행복한 혁명가  쿠바를 떠날 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뿐더러 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이 많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한 혁명가라고. + 참된 삶   북미의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문맹의 인디언이 되는 게 낫다.  + 나의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 동참   의지와 신념만 있으면 행운은  무조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믿는  젊은 지도자 카스트로가  자신의 혁명 대열에 합류하자고 했다.  그는  무장투쟁으로 자신의 조국을  해방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물론 동참하겠다고 했다.  나에게도 행운이 따라올지 모르겠다.  이제 그곳에서 나는  방랑하는 기사의 망토를 벗어버리고  전사의 무기를 받아들임으로써  빗발치는 총알 속을 누벼야 하리라.  + 여행   여행에는  두 가지 중요한 순간이 있다.  하나는  떠나는 순간이고  또 하나는  도착하는 순간이다.  만일  도착할 때를  계획한 시간과 일치시키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말라.  + 핀셋   혁명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혁명은  핀셋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핀셋을 요구할 때는  망설임 없이 사용한다.  해산의 고통은  더 이상 잃을 것밖에 없는 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라는  희망을 안겨다준다.  역사는  망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다.  폭력은  착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피착취자들 역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단지  적절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마르티는 이렇게 말했다.  싸움을 피할 수 있는 데도  싸움을 하는 자는 범죄자다.  그런 자는  피해서는 안 될 싸움에는  꼭 피한다.  + 개인 이기주의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이 오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개인 이기주의다!  그것은 감기 바이러스와 같아  늘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전염시킨다.  전염 경로인 공기와 물을 없앨 수도 없다.  마음을 개조시키는 오직 정신혁명뿐이다.  그것은 인류 최고의 무기인 사랑이다!  그 사랑은  만능 열쇠처럼 어떠한 것도 열 수 있다.  + 말의 힘 나는 깨달았다.  단 한 사람이나  단 한 사람의 말이  순식간에 우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정상으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 편지 - 아버지에게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가  저를 부릅니다  레닌의 말들이  절절이 울려오는  쿠바의 그 풍광으로  제 가슴을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아버님,  저는 지금  아바나로 갑니다  + 편지 - 부모님께   내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의 진실을 찾아 헤맸습니다.  때로 헛된 고생도 했지만,  바로 그 와중에서  나를 영원으로 이끄는  한 여자를 만나  이제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나의 죽음을  어떤 경우에도  절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때때로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 결정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는  천식이 아주 심할 때다  그 때가  내가 가장 신중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 선택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 희망   게릴라로 싸우던 동안에는 물론  심지어 지금까지도  카스트로의 이야기는  내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당신들은 아직  당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무기를 방기한 게릴라로서의  지불해야 할 대가는  바로 목숨이기 때문이다.  적과 직접 부딪쳐 싸울 경우  살기 위해 의지해야 할  유일한 희망은  바로 무기뿐이다.  그런데 그 무기를 버리다니!  그것은  처벌받아 마땅할 범죄다.  단 하나의 무기,  단 하나의 비밀,  단 하나의 진지도  적들에게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쿠바   나는  쿠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과테말라에서는  과테말라인처럼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인처럼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느껴졌다.  + 갈증  날씨가 흐리고 슬픈 날이다  목이 말라서 카라코레빵으로 갈증을 달랬다  갈증으로 고통받는 목을 잠깐씩 속이는 것은  정말 할 짓이 못된다  그래서 파블리토가 권총을 차고  사냥꾼 하나와 물을 찾으러 갔다  그러나  돌아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또 다른 대원들이 찾아 나섰지만  끝내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진장 노력하며 견딜 만큼 견디다가  어쩔 수 없이 암말 한 마리를 잡았다  갈증으로 온몸이 바싹 말라가다 보면  배고픈 것은 차라리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내일도 물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 바다  보름달이 바다에 그림자를 비추고 파도가 은빛으로 부서지며 철썩거렸다 우리는 바닷가 모래 위에 앉아 끊임없이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나는 바다를 언제나 절친한 친구로 생각했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항상 가장 좋은 충고도 아끼지 않는 그런 친구 말이다 + 질투 - 나의 연인 치치나에게   날마다 피를 토할 듯이 기침을 하자  내 몸을 걱정하던  한 연약한 매춘부의 위로의 키스가  문득,  여행 떠나오기 이전의  내 잠자던 기억을 괴롭혔다  모기떼가 잠들지 못하게 하던 그날 밤  비록,  이제는 아득한 꿈이 되어버린  치치나를 생각했다  끝나버린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즐거웠기에  씁쓸함보다는 달콤함으로 남아 있는  그녀가 그리웠다  나는 치치나에게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고 잔잔한 키스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은  새로운 청혼자에게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속삭이고 있을 그녀의 집으로 날아가  깊은 밤의 어둠 속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내 머리 위의 거대한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들은 마치  '이것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내 가슴 깊은 곳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 괴테 전기   내 중대에 간호병으로  새로 들어온 여성대원  하이디 산타마리아에게  괴테 전기를 빌려 읽었다  기억해 둘 만한 구절에  밑줄을 쳤다  "극도로 예민한 사람만이  아주 차갑고 냉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둘러싸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그 껍질은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해진다."  + 고통   오늘 전투에서 적군을 사살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인 건  처음이었다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심장을 정확히 맞추려 애썼다  적이라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죽이지 않는 게 좋다.  + 베일 속의 사내   그 사내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광채와  네 개의 하얀 앞니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미래는 민중들의 것입니다  서서히, 혹은 갑자기  전 세계의 모든 민중이 권력을 잡을 겁니다  당신은 이 사회에 나처럼 아주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당신을 파괴시키는 이 사회에  당신 스스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날 밤,  그 사내의 말이 밤새도록 내 가슴 깊이 울렸다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만일,  어떤 지도자가 이 세계를 둘로 나눈다면  난 기꺼이 민중 편에 설 것임을,  그리하여  귀신에 홀린 듯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적진의 바리케이드와 참호를 공격할 것이고  분노를 내뿜으며 무기를 피로 물들일 것이고  내 손에 잡힌 그 어떤 적이라도 단숨에 깨부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껏 내 코를 팽창시켜, 유유히  매운 화약냄새와 낭자한 적들의 피 냄새를 음미하리라  그런 다음 또다시 내 몸을 바짝 긴장시킨 채  다음 전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리라  열광하는 민중들의 환호성이  또다른 새로운 곳에서 힘차게 울려퍼질 수 있도록  + 나환자촌   칼차키에스 계곡  순수한 신앙이 깃든 하얀 교회  그리고 오래된 돌들이 풍기는 향기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고고학자가 되었으리라  더 있다  보아야 할 것이 더 있다  산중에 쓸쓸히 서 있는 오두막  계속되는 굶주림과 수탈  벼룩....  저주받은 것들  사방에 버려진 넝마주이 아이들  허망한 꿈에 젖은 눈동자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  영양결핍으로 불룩 튀어나온 배  그리고 아메리카....  나환자들과 맹인들을 치료하며  나병은 전염되지 않는다고 안심시켰다  그들과 축구도 하고 산책도 했다  또 사냥도 떠나 짐승들을 잡아오기도 했다  우리가 나환자촌을 떠날 때  그들이 뗏목을 만들어주었다  그 뗏목에 "맘보 탱고"라고 이름 붙였다  또 송별 파티도 열어주었다  비가 내렸지만,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강기슭의 나환자촌이 점점 멀어져갔다  손을 흔드는 아마존 밀림 속의 맹인들....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 체 게바라에 대한 평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과테말라에서 혁명가가 되고  쿠바에서 싸우다가  볼리비아에서 죽은 그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다."  (장 폴 사르트르·프랑스 철학자)  "별이 없는 꿈은 잊혀진 꿈"이라고 시인 엘뤼아르는 말했다.  별이 있는 꿈은 깨어 있는 꿈이다.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체 게바라는 한번도 눈을 감아본 적이 없었다.  (장 코르미에·『체 게바라 평전』 저자)  "체 게바라의 죽음은 우리 시대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프랑수아 미테랑·프랑스 대통령)  + 체 게바라의 유골을 보며 볼리비아에서 발견되었다는 체 게바라의 유골 사진이 신문에 나왔다. 휑한 두개골과  앙상한 갈비뼈와 쓸쓸한 두 다리 세상의 모든 뼈들처럼 외롭고 무섭고 서글퍼 보인다. 어디에도 남아메리카를 열광시키고 긴장시키던 혁명가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영혼은 살에 있다가 바람이 되는가 구름이 되는가. 사람들은 살을 버리고서야 인종과 계급과 신분을 떠나서 완전한 평등을 이루는가. 세상의 모든 뼈들과 별다를 것 없는 체 게바라의 유골을 보며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산을 본다. (차옥혜·시인, 1945-) * 체 게바라(Che Guevara, 혁명가, 1928,6.14-1967,10.9)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사르트르)으로 평가받는 체 게바라는 위대한 혁명가이자 가슴속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서정을 품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집시 생활과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한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 문학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소포클래스, 랭보, 세익스피어에 심취했고 잭 런던과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글귀를 암송하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의대를 졸업한 후 보다 더 넒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나환자촌들의 삶과 궁핍한 농민들의 현실을 목격한 다음,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그 후 쿠바로 건너간 그는 카스트로와의 만남을 계기로 게릴라 혁명투쟁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총알이 빗발치는 게릴라 전투기간 동안에도 그의 배낭 속에는 언제나 괴테, 보들레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네루다, 마르크스, 프로이드, 레닌 등의 책들이 떠나질 않았다.  일기에는 수많은 전투 기록과 그 기록 곳곳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간결한 시(詩) 같은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그만큼 그의 역사와 민중에 대한 애정은 뜨거웠다.  그리고 쿠바 혁명 성공 이후, 또다시 게릴라복으로 갈아입은 체 게바라는 앞에 열린 권력의 열매를 따기보다는 고통받는 민중의 편을 택하여 볼리비아 밀림으로 들어가 혁명운동을 이끈다, 아내와 자식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쿠바의 권력도 모두 반납한 그는 자신의 순수한 초심을 지키기 위해 볼리비아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불과 3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이산하 )  
1000    <아내> 시모음 댓글:  조회:4718  추천:1  2015-04-19
  + 아름다운 아내  아내여, 아름다운 아내여.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해 주지 않았어도  변치 않고 살아주는 아름다운 아내여.  세상의 파도가 높을지라도 좀처럼 절망하지 않는  나의 아름다운 아내여. 방파제여.  당신은 한 그루 나무다.  희망이라는 낱말을 지닌 참을성 많은 나무다.  땅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꽃을 피우는 억척스런 나무다.  아내여, 억척스런 나무여.  하늘이 푸르다는 것을 언제고 믿는 아름다운 나무여.  나의 등이 되어주는 고마운 나무여.  아내는 방파제다.  세월 속의 듬직한 나무다.  (윤수천·시인, 1942-) + 아내의 꽃 꽃들은 얼굴을 마주볼 때 아름답다  술패랭이꽃이 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아내의 얼굴에 핀 기미꽃을 본다  햇볕의 직사포를 피하기 위해  푹 눌러쓴 모자에도 아랑곳없이  자꾸 얼굴에 번져가는 아내의 꽃,  사시사철 햇볕이 없을 수 없듯 피할 수 없이  아내의 얼굴엔 피어난 꽃이 늘어간다  아내는 몸 꼭대기에 꽃밭을 이고 다니는 것이다  기미꽃, 죽은깨꽃, 주름꽃  다양한 아내의 꽃밭에서 그래도 볼 위에  살짝 얹어진 웃음꽃이 가끔씩 위안으로 피어난다  술패랭이꽃들이 몸을 부비는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아내의 손바닥에 글씨를 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항상 내 곁에 있다고  (김경진·시인, 1967-) + 아내 시편 베개를 같이 베고 한몸이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연극보다 더 연출하며 사는지 몰라 시린 날 웅크리고 자는 내 모습 보면 알듯이. 이내 속 그대에게 어찌 다 밝힐 수 있나 더불어 그대 속에 어찌 더 편할 수 있을까 가슴 섶 열어젖혀도 뒷모습 숨게 마련인데 가끔은 모진 바람에 앞자락 다 헤집어져도 알아서 속상할 일은 나 홀로 삭히는 게야 살포시 햇살 한 줌을 아내에게 덮는 이 아침에. (이승현·시인, 충남 공주 출생) + 내 아내   나 바람 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襤樓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미당 서정주·시인, 1915-2000) + 아내의 구두 아내의 구두굽을 몰래 훔쳐본다 닳아 없어진 두께는 곧 아내가 움직였을 거리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쪽으로만 기대었던 굽이 다른 한쪽 굽을 더 깊게 파이게 했다 덜 파인 쪽에 힘을 주면 굽의 높이가 같아질까 나를 받아주기 위해 제 몸만 넓혀갔지 헐렁한 건강 한 번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구두 밑창을 갈면 왠지 낯설 것 같은 구두, 버리면 지나간 가난이 서릿발처럼 일어설 것 같아 신발장에 슬며시 들여놓는다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으며 눈물 흘렸을 때 군말 없이 동행해주었던 구두 핼쑥해진 아내의 얼굴처럼 광택이 나지 않는 구두 아무렇게나 신어도 쑥쑥 들어가는 구두가 키를 맞추겠다면서 높은 구두는 고르지도 않던 아내에게 숫처녀 같은 구두 한 켤레 사주고 싶다. (박정원·시인, 충남 금산 출생) + 아내의 봄비  순천 웃장 파장 무렵 봄비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 갔는데  파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원 조갯살 오천원  도사리 배추 천원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서 가다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 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꽃 피겠습니다  (김해화·노동자 시인, 1957-) + 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의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 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은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황지우·시인, 1952-) + 아내의 빨래공식   아내의 빨래공식은 늘 일정하다 물높이 중간에 놓고 세탁 십 분 헹굼 세번 탈수 삼 분 후에 다시 헹굼 한번 그러나 간혹 공식이 파기될 때가 있다 남편 잘 둔 친구를 만났다던가 나의 시선이 그녀를 빗나갔다 싶은 날이면 아내의 빨래 법칙엔 밟아빨기가 하나 추가된다 그런 날이면 나는 거실에 앉아 아내가 세탁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잔소리가 어디서부터 터질 것인지 마음 졸이며 지켜보다가 거실을 정리하다가 하지도 않던 걸레질을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하고 온 날에도 아내가 빨래하는 시간만 되면 늘 긴장한다 예정된 공식대로 세탁기가 돌아가면 그제서 오늘의 스포츠 뉴스를 본다  (이기헌·시인, 1958-) + 아내를 생각함  집이 그리운 사람은 사랑할 줄 안다 세상의 딸들은 어미가 되고 어머니의 길을 간다 우리가 언제 변덕스러운 적이 있었나 사랑은 언제나 안에 있었다 자본주의에 실패한 사랑,  아내를 고생시킨 사람은 사랑할 줄 안다 사치스러운 아내들은  속고 사는지 모른다 용기만 가지고 살아온 가시나무 여전히 그대는 나의 표준이다  (최병무·시인, 1950-) + 고단孤單 아내가 내 손을 잡고 잠든 날이었습니다 고단했던가 봅니다 곧바로 아내의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 훗날에는, 함부로 사는 내가 아내보다 먼저 세상의 만남과 손을 놓겠지만 힘이 풀리는 손을 느끼고 나니 그야말로 별세別世라는 게 이렇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날이 오면, 아내의 손을 받치고 있던 그날 밤의 나처럼 아내도 잠시 내 손을 받치고 있다가 내 체온體溫이 변하기 전에 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아내 따라 잠든 내 코고는 소리를 서로 못 듣듯 세상에 남은 식구들이 조금만 고단하면 좋겠습니다 (윤병무·시인, 1966-) + 파랑새 행복의 파랑새는 저 멀리 살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나의 곁을 빙빙 맴돌고 있음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긴 사람 이 세상에서 나에게 밥상을 가장 많이 차려준 사람 이 세상에서 나의 안팎을 누구보다 세밀히 알고 있는 사람 내 삶의 환한 기쁨과 보람 몰래 감추고픈 슬픔과 고독의  모양과 숨결까지도 감지하는 사람 그리고 나 때문에 종종 가슴 멍드는 사람 하루의 고단한 날개를 접고 지금 내 품안에 단잠 둥지를 틀었네 작은 파랑새여 아내여 (정연복·시인, 1957-)
999    <자본주의> 시모음 댓글:  조회:4645  추천:0  2015-04-19
    + 자본주의 그래 돈 내면 되잖냐. 침 뱉고 싶을 때 침 뱉고, 오줌 깔기고 싶을 때 오줌 깔기고서. (정세훈·시인, 1955-) + 자본주의의 사연  성동구 금호 4가 282번지 네 가구가 사는 우편함 서울특별시의료보험조합 한국전기통신공사전화국장 신세계통신판매프라자장우빌딩 비씨카드주식회사 전화요금납부통지서 자동차세영수증 통합공과금 대한보증보험주식회사 중계유선방송공청료 호텔소피텔엠베서더 통합공과금독촉장 대우전자할부납입통지서 94토지등급정기조정결과통지서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 아닌가 (함민복·시인, 1962-) + 자본주의·1     돈은 아름답다  진리와 도덕보다 부드럽다  그러나 눈과 귀도 없는 그것이  인간의 심장을 파먹고  뼈까지 발라먹는 세상이여  등이 굽은 자도  배불뚝이도 잡아먹고  인간은 온데 간데 없고  종말이 올 때까지  돈은 아름답다. (전홍준·시인, 1954-)  + 자본주의의 밤       이 밤 속에  그는 굴복한다  그는 굴종한다  그는 굴러간다  이 밤은 좋은 밤  이 밤 속에  그를 옮기며  그를 표현하며  그를 기록하며  이 밤이 마치  애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는 몰두한다  그는 몰입한다  그는 몰락한다  오 빌어먹을  이 밤 속에  그가 배우는 건  허리를 졸라매는 법  요염한 웃음으로 덮인  이 밤 속에  가슴 타는 습기로 덮인  이 밤 속에  그는 먹는다  그는 폭음한다  그는 포식한다  이 밤은 좋은 밤  이 밤은  그를 포위하고  그를 포섭하고  그를 포옹하는  이 밤은  포악한 밤  폭력의 밤  폭로의 밤  폭언의 밤  그는 폭행 당한다  그는 포복한다  그는 포병인지 모른다  (이승훈·시인, 1942-) + 부르도자 부르조아                                                           반이 깎여 나간 산의 반쪽엔 키 작은 나무들만 남아 있었다. 부르도자가 남은 산의 반쪽을 뭉개려고 무쇠 턱을 들고 다가가고 돌과 흙더미를 옮기는 인부들도 보였다. 그때 푸른 잔디 아름다운 숲 속에선 평화롭게 골프 치는 사람들 그들은 골프공을 움직이는 힘으로도 거뜬하게 산을 옮기고 해안선을 움직여 지도를 바꿔 놓는다. 산골짜기 마을을 한꺼번에 인공 호수로 덮어 버리는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누군가의 작은 실수로 엄청난 초능력을 얻게 된 그들을. (최승호·시인, 1954-) + 바보 詩人  제 살 베어  제 뼈 깎아  詩를 쓰고  제 돈으로 책을 찍어  친절하게도  우표까지 붙여  보내주는 바보  경제라고는 모르는 바보  물질 만능  자본주의 시대에  경제원리도 모르는 바보  그 바보가  바로 詩人이라네.  (이문조·시인) + 아름다운 편견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자동차를 모는 사람보다 더 크다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으로 지구와 함께 깨끗이 자전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선 주인이고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석유를 동력원으로 지구를 착취하고 더럽히는 자본주의에 엎드린 노예라는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네 발 남의 힘으로 가는 사람 두 발 자기 힘으로 가는 사람 어느 누가 더 진화하고 위대한가? 이 위인은 안다 자전거가 넘어질 때 넘어지는 방향으로 운전대를 꺾어야 바로 선다는 것을 넘어지는 반대쪽으로 운전대를 꺾으면 금방 넘어진다는 것을 작고 느린 길로 핸들을 돌려야 크고 빠른 도로에 패인 상처를 아물게 하고 건강하게 굴러가는 삶이라는 자전거를 타는 농부가 자동차를 모는 회장보다 더 크다는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때론 편견도 아름답다 (김정원·교사 시인, 1962-) + 밥과 자본주의 - 새 시대 주기도문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 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사슬이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사슬이 된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북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 (상향∼)  (고정희·시인, 1948-1991) + 밥과 자본주의 - 가진 자의 일곱 가지 복 그때에 예수께서 자본시장을 들러보시고  부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자본을 독점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부자들의 저승에 있게 될 것이다  땅을 독점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땅 없는 하늘나라에 들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독차지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권력 없는 극락에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배불리 먹고 마시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고픈 식탁에서 멀리 있을 것이다  철없이 웃고 즐기고 떠드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저 세상에서 받을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아첨꾼 때문에 명예를 얻고 칭찬받은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그들의 선조들도 매국노를 그렇게 대하였다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는 행복하다  너 - 희 - 는 불 - 행 - 하 - 다  (고정희·시인, 1948-1991) + 자본주의 혈압이 뚝 떨어졌소  즉시 나는 병동 중병실로 옮겨졌소  고혈압에는 약이 있지만 저혈압에는 약도 없다고 하는  간병의 말에 나는 덜컥 겁이 나는 것이었소  제기랄 까딱하다가는 옥사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오  내가 죽으면 여보(엄살이 아니오)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전해 주오  자본주의를 저주하다 남주는 죽었다고  그놈과 싸우다 져서 당신 남편은 최후를 마쳤다고  여보 자본주의는 자유의 집단수용소라오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자본가들에게는  인간을 상품처럼 매매할 수 있는 자유  인간을 가축처럼 기계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자유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모가지를 삐틀어 그 인간을  공장 밖으로 추위와 굶주림 속으로 내몰 수 있는 자유까지 허용되지만  노동자에게는 굴욕의 세계를 짊어지고 굶어 죽을 자유 밖에 없다오  시장에서 매매되는 말하는 가축이기를 거부하고  기계처럼 혹사당하는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노동자들이  한 사람의 인간성으로 일어서기라도 할라치면  자본가들은 그들이 길러 놓은 경찰견을 풀어 노동자를 물어뜯게 하고  상비군을 무장시켜 노동자들을 대량 학살케 한다오  여보 자본주의 그것은 인간성의 공동묘지  역사가 뛰어넘어야 할 지옥이라오 아비규환이라오  노동자를 깔아뭉개고 마천루(魔天樓)로 솟아올라  천만근 만만근 무게로 찍어누르는 마(魔)의 산(山)이라오  무너져야 할 한시 바삐 무너뜨려야 할. (김남주·시인, 1946-1994) + 삶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기도  다이어트를 위해 한 끼의 식사를  애써 참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종일 폐휴지를 줍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밟고 살면서도  이불 대신 바람을 덮고  내일을 걱정하는 불면의 밤이 있습니다  가난이라는 삶의 한계 앞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힘겨운 삶이 있다면  차라리 눈을 감고, 사람이여!  나는 눈물의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밥상에도  자본주의는 이익을 배당하지 않았고  오늘 저녁 잠자리에도  민주주의는 평온의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법과 도덕은 무엇이며 종교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자유의 신은 말이 없고  평등의 신은 눈을 감은 지 오래라면  사랑의 진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희망의 나무는 어느 땅에 심어야 합니까  어차피 끝을 알 수 없어도  사유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  내게 과분한 물질이 있다면, 사랑이여!  지친 자에게 한 줌의 햇살이 되게 하시고  목마른 자에게 한 모금의 샘물이 되게 하소서 (이채·시인)  
998    <<껍데기>>시인 - 신동엽 댓글:  조회:3002  추천:0  2015-04-19
  *껍데기는 가라 시 분석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연에서의 '4월'은 4.19 혁명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2연에서의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은 동학 혁명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3연에서는 '아사달 아사녀가 부끄럼 빛내'는 순수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4연의 내용은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과 정의와 자유, 민주에의 열망을 확인하고 이것을 억압하는 모든 비본질적 요소(독재, 폭력, 외세 등)가 사라지기를 희망하며 쓴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동엽의 또 다른 시인 '봄은' 이라는 시에서 '쇠붙이'가 등장하고 있는데 '봄은' 이라는 시를 분석해보면,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봄'은 통일과 화해의 시대를 상징하며 '남해와 북녘' 이라든지 '바다와 대륙 밖'은 외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봄의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든지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라는 부분은 결국 평화와 통일의 시대는 외세에 의해서가 아닌 자주적인 우리힘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시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결국 '쇠붙이'는 분단의 원인이 된 갈등과 대립을, 좀 더 단순하게 보면 철조망, 칼, 총 등과 같은 것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에서 1960년대 한국이 지니고 있던 주요모순인 남북분단의 현실 극복은 물론 1960년대 자본주의 사회 자체의 기본모순과 독재와 외세의 억압 등을 '껍데기'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러한 모순들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4.19 혁명의 정신과 동학 혁명의 정신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997    자본주의 그는,--- 댓글:  조회:3167  추천:0  2015-04-19
  자본주의 1.0 :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 자본주의 2.0 : 1930년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수정자본주의”. 자본주의 3.0 : 1970년대 말, 시장의 자율을 강조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4.0 : 성공한 사람이 더 큰 성공으로 나아가도록 장려하되, 낙오한 사람들을 북돋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책임을 강조하는 “따뜻한 자본주의”. 자본주의   인본주의  돈나고 사람났나  사람나고 돈났지 ... 개인주의 사회주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 민주주의 전제국주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다 ... 원래 라는 말은 資재물을 本근본으로 삼는 생각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란 모든 것의 근본이 인것이지요?   오늘 무엇을 먹을까? 이 필요하네 오늘 무엇을 입을까? 이 필요하네 어떤 집에서 잘까?이 필요하네 가끔씩 의 반대말이 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의 반대말은 입니다.   개인주의란 개인이 모든 것을 척도가 되는 것이며 사회주의란 사회가 개인보다 우선하여 모든 것을 결정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 더 말씀드리면 의 반대말은 입니다. 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이고 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이지요.   그러니 는 기본으로 두고 냐 를 기본으로 두고 냐 입니다.   무엇이 중심이어야 할까요? 바로 人사람이 本근본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입니다. 의식주에도 사람이 중심이 되면 사람에게 좋은 옷을 만들고 사입고 사람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고 사입고 사람에게 좋은 집을 만들고 사입죠   그래서 옷도 친환경적 소재를 이용하여 편하고 몸에 거스르지 않아야 하며,   음식은 첨가물이나 이런것이 비교적 덜한 친환경적인 음식을 만들며   집도 가족 구성원들이 웃음꽃이 피어날 공간이어야 하니까 한 채면 충분합니다. 가족이 적으면 작은집에 가족이 많으면 큰집에 살면되구요..   아이들이 이 기본이 되는 교육을 받을거구요 경제는 이 기본이 되는 경제구조가 될것이구요 정치도 이 기본이되겠지요.   그러니 는 기본으로 두고 냐 를 기본으로 두고 냐 입니다.   민주주의-사회주의-인본주의 민주주의-개인주의-자본주의 이런식으로 조합하여 선택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의 는 투표로 결정한 것도 아니며 우리가 태어나 보니 어느날부터 자본주의였지요.   정치권이 얼마든지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 의 폐해를 줄여서 의 나라들처럼 적인 정책을 많이 마련할 수도 잇는 것입니다.    @@ 요구르트냐 사회주의냐...     요즘도 여전히 통찰이 담긴 칼럼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김규항이 쓴 '요구르트'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의 핵심이 담긴 대목을 같이 읽어보자. "불가리아의 장수 마을(요구르트 먹고 장수한다는 광고에 나온 그 마을)엔 더 이상 장수 노인들이 없다. 마을 묘지엔 1990년 즈음 세 해 동안 죽음 사람들의 묘로 그득하다. 마을 사람들의 얘기는 이렇다. '사회주의 시절엔 안락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진 않았다. 소박하나마 집과 자동차도 나왔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노인들은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다.'"   어떤 나라가 행복한 세상이 될까요  ......   돈이 최고인 나라 가 행복한건가요 ??     자본주의, 그는 누구인가...                                              김용택   껍데기는 가라- 신 동 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요? 자본주의 사회란 공정한 사회일까요? 자본주의란 ‘생산 수단을 가진 자본가 및 기업가 계급이 그 이익 추구를 위해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입니다.   ‘재산의 사적 소유’가 보장된 사회. 이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이나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입니다. 공정한 경쟁이라고요? 부모의 후광, 재산과 교육 그리고 부모로부터 얻은 여러 가지... 그것을 가진 사람과 전혀 아무것도 갖지 못한 맨손인 사람과 벌이는 경쟁이 공정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자본주의에서 경쟁이란 급수제한이 없는 권투선수들이 링 위에서 붙는 경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과 어린아이가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연상하는 자본주의 사회란 체제의 모순으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악한 자본은 산업자본주의에서 만족하지 않고 금융자본주의로, 또 신자유주의라는 형태로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시합 전에 승부가 결정난 경기... 그래서 그런 경기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았지요. 특히 마르크스와 같은 사람은 사유가 아닌 공유를 주장했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런 사회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았답니다. 쏘련이나 중공이 망한 이유나 북한이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이유도 인감의 욕망과 자본이 허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유니 공산이란 말 자체가 불순한... 아니 말도 꺼내지 못하게 국가보안법이니 뭐니 하면서 막고 있는 게지요.   민초들이 깨어난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런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물과 공기, 토지나 사회간접은 개인의 소유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소유권을 갖도록 하는 사회민주주의 즉 사민주의라는 체제를 도입,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는 자본주의가 잘 발달한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유럽사회는 교육이나 의료를 민영화 하지 않고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게지요.   공유와 사유...! 자연은 인간에게 누구나 공평하게 살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요? 부모의 재산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까지도 대물림되는 회복불가능한 양극화로 치닫고 있습니다.   2013년 수출액 5,596억불로 무역수지 흑자 441억불, 국민소득 2만 6,205달러로 세계 10위위 경제대국이라는 나라에서 노숙자가 넘쳐나고, 가계부채 1000조라는 이해 못할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결과에서 핀란드와 함께 1, 2위를 다투는 나라에서 ‘주관적 건강’과 ‘학교생활 만족도’, ‘삶의 만족도’, ‘소속감’, ‘주변상황 적응’, ‘외로움’ 등 6가지 영역에서는3년 연속 꼴찌를 못면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자신의 실제 학년보다 4개 학년 정도 앞서 공부하면 대학에 합격하고 3개 학년만 앞서 공부하면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떨어진다’는 4당 3락이라는 말이 학부모들에게 유행어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양극화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요, 가난은 개인의 능력부족이 만든 결과가 아니라 체제가 만든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국가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겠지요. 그러나 정부는 사회복지라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것은 굶주리는 사람에게 죽지 않을 만큼 자선을 베푸는 시혜차원의 선별적 복지를 시행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없는 사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의사나 판검사가 될 수 없는 사회. 이런 사회는 폐쇄적인 계급사회입니다.   이제 우리도 양반사회나 골품제 사회 같은 폐쇄적인 계급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지혜택의 기준이나 대상을 차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복지사회로 가야합니다. 꿈이 없는 젊은이가 사는 세상은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는 삭막한 세상입니다. 민초들이 깨어나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 한 약자들의 고통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996    폭탄주 제2탄 댓글:  조회:5178  추천:0  2015-04-19
酒道 갖추면 즐겁고 경제적인 술 - 폭탄주   ‘폭탄주’ 하면 사람들이 공포심부터 느끼는데 그건 잘 몰라서 그런 겁니다. 제대로 즐기면 가장 민주적이고 경제적인 술이다.   폭탄주 2대 원칙   1, 비싼 양주로는 절대 폭탄주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 가업으로 전해 내려올 정도로 지극한 정성을 들여 만든 비싼 양주를 다른 술과 섞어 마시는 것은 그 술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2, 마시길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절대 강권하지 않는다는 것. 이는 애주가의 가장 기본적인 매너다.   ※폭탄주의 유래   폭탄주의 원조는 우리나라가 아니다.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은 1920~30년대 미국 몬태나 주의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다. 그 영화를 보면 주인공 형제가 마을의 술집에서 폭탄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실연한 형이 ‘위스키 믹스’를 주문하자 바텐더가 맥주가 가득 채워진 잔에 위스키 잔을 떨어뜨려 건네는 것.   또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제작된 ‘강철의 심장(Heart of the steel)’이라는 영화에서도 제철공장 노동자들이 파업과 공장폐쇄 등을 겪으면서 시름을 달래기 위해 폭탄주를 마신다.   이 두 영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폭탄주가 시작된 곳은 미국이라는 게 정설이다. 1900년대 초 미국의 탄광과 벌목장, 부두, 철강공장 등에서 일하던 가난한 노동자들이 즐겨 마신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가 폭탄주의 원조라는 것. 술 이름을 직역하면 ‘끓게 만드는 술’이다. 맥주와 양주를 섞지 않고, 맥주를 마신 뒤 곧바로 양주를 들이켜는 ‘체이서(Chaser)’라는 주법도 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 북유럽에는 ‘잠수함(Submarine)’이라는 폭탄주가 있다. 500cc 맥주잔에 독일 술 ‘슈납스’를 담은 잔을 떨어뜨려 마시는 술이다.   우리나라에는 100년 전 막걸리 반 사발에 소주 한 잔을 섞어 마시는 ‘혼돈주’ 또는 ‘자중홍(自中紅)’으로 불리는 술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또 1960년대에는 소주와 맥주 또는 막걸리를 섞거나, 소주에 콜라 또는 맥소롱 등을 섞어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금의 폭탄주와는 다른 형태의 혼합주다. 요즘 형태의 폭탄주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3년경 당시 박희태 춘천지검 검사장이 춘천지역의 검찰과 경찰, 언론사 관계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선보였을 때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졌다.   ※폭탄주의 도수   과연 폭탄주의 도수는 얼마나 될까? 이는 폭탄주를 즐기기 위해 알아둬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다.   보통 맥주(알코올 도수 4~5도) 한 잔의 용량은 230cc다. 양주(40~43도) 한 잔은 35cc. 이 둘을 섞는 과정에서 맥주 양은 양주 양만큼 줄어 195cc가 되지만, 양주 양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를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폭탄주 한 잔의 도수는 10.35도가 된다. 이는 12~13도인 청주나 백세주보다도 낮은 수치다. 참고로 같은 방법으로 소주와 맥주를 섞으면 알코올 도수는 9도 정도 된다.   대신 한 가지 술만 마시는 것보다 취하는 속도는 빨라진다. 맥주에 포함된 탄산가스가 위에서 높은 도수의 양주를 빠르게 흡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과음의 위험성이 있다.   ※폭탄주가 좋은 9가지 이유   첫 번째 ‘경제적’이라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회식을 할 경우 보통 상급자나 식사에 초대한 사람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 회식이 잦을 경우 누구든 비용이 부담되기는 마찬가지. 이럴 때 폭탄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폭탄주를 돌리면 술자리가 빨리 끝날 뿐 아니라 안주 비용도 절약되기 때문.   두 번째, ‘건강’에 좋다. 19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당시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은 국회청문회에서 “왜 폭탄주를 마시는가”라는 한 국회의원의 질문에 “양주가 너무 독해서”라고 답한 바 있다. 실제로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의 독한 술을 그대로 마실 경우 식도를 지나치게 자극해 염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탄주는 이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셈이다.   세 번째, ‘공평’하다. 보통 회식자리에서는 상급자에게 술잔이 몰리는 경우가 많다. 술을 못하는 상급자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적어도 이런 상급자에게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폭탄주만큼 민주적인 것은 없다.   네 번째, ‘단합’을 유도한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회식자리는 산만해지고 소란해지기 쉽다. 이럴 때 폭탄주를 제조하면 참석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자연스레 개인적인 대화도 줄어든다. 그리고 폭탄주를 마신 뒤 잔을 흔들어 소리를 내면 모두 박수를 치면서 모임 전체의 단합된 분위기를 유도할 수 있다.   다섯 번째, ‘기념’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정부 부처 간 또는 기업 간 회합을 하거나 어떤 일을 두고 협상이 타결됐을 경우 기념 또는 축하의 의미에서 폭탄주를 마실 수도 있다. 또 간혹 직장 내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불화를 푸는 데도 폭탄주는 유용하다.   여섯 번째, ‘약자’를 보호한다. 업무상 접대를 하는 사람은 약자의 처지에서 상대방보다 많은 술을 마시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폭탄주는 좋은 방어수단이 된다.   일곱 번째, ‘강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 술자리는 간혹 상대방을 테스트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특히 폭탄주 대결은 의지와 담력, 체력 싸움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폭탄주 대결에서 이길 경우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대내외 관계도 잘 풀리는 경향이 있다. 강한 이미지가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 ‘엔터테인먼트’다. 폭탄주를 제조하는 방법은 수십 가지가 있다. 그 과정을 함께 즐기면 하나의 놀이이자 오락이 된다.   아홉 번째, ‘분위기 메이커’다. 회식자리라도 가끔 썰렁할 때가 있다. 주고받을 만한 마땅한 대화 주제가 없는 경우나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동석했을 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럴 때 폭탄주는 대단한 효력을 발휘한다. 폭탄주는 썰렁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객쩍은 소리도 할 필요 없이 자연스레 분위기를 살려준다. 특히 친밀감을 높이는 데 폭탄주만한 수단을 찾기 힘들다.   ---- 폭탄주의 종류 ----   * 뇌관 : 양주가 가득 채워진 잔, * 폭약 : 뇌관이 들어갈 만큼 맥주가 채워진 잔.   ※태권도 주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놓고 그 위에 뇌관을 올린다. 주먹으로 젓가락을 쳐서 뇌관을 맥주잔 안으로 떨어뜨린다. 주먹 대신 수도(手刀)를 이용하면 ‘가라테 주’(오른쪽), 장풍을 날리듯 손바닥을 이용하면 ‘쿵후 주’가 된다.   ※가랑이 주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놓고 그 위에 뇌관을 올린다. 젓가락 사이를 손가락이나 얼음 집게를 이용해 벌려서 뇌관을 떨어뜨린다.     ※골프 주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놓고 그 위에 빈 양주잔을 올린다. 양주잔에 양주를 가득 부은 다음 숟가락 또는 다른 기구로 골프 스윙하듯이 젓가락을 쳐서 뇌관을 떨어뜨린다. 지역에 따라 ‘스윙 주’로도 불린다.   ※회오리 주 (Tornado) 가장 일반적인 폭탄주다. 폭약에 뇌관을 넣은 다음 냅킨을 잔 위에 씌워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잔을 빙빙 돌리다가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재빨리 돌리면서 순간적으로 팔을 쭉 뻗는다. 술잔 안에서 회오리가 생긴다. 비교적 잘 희석돼 주당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이 술의 또 하나 특징은 제조 후 생긴 젖은 냅킨을 천장이나 벽에 붙이는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 회오리 주에 얼음 한 조각을 띄우면 ‘다이아몬드 주’가 된다. 주로 여성용이다.     ※슬라이딩 주 맥주잔 위에 신용카드나 명함을 올려놓고 그 위에 뇌관을 얹는다. 그런 다음 카드나 명함을 순간적으로 빼내 뇌관을 떨어뜨린다.   ※월드컵 주 모 정치인이 선보였던 술.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놓고 그 위에 뇌관을 올린다. 젓가락을 발로 차서 뇌관을 떨어뜨린다.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금테 주 맥주잔에 맥주를 80% 정도 채운 후 잔 위에 냅킨을 놓고 그 위에 양주 한 잔을 천천히 붓는다. 냅킨을 여과해 맥주잔에 흘러내린 양주가 비중의 차이 때문에 맥주와 섞이지 않고 윗부분에 뜬다. 마치 금테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양주 대신 소주로 만들면 ‘은테 주’가 된다.   ※비아그라 주 빈 맥주잔에 빈 양주잔을 넣고 먼저 양주를 채운다. 맥주를 양주와 섞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맥주잔의 3분의 1 정도 따른다. 맥주 수면 위로 뇌관이 볼록 튀어나온 형태가 된다. 맥주 양이 정통 폭탄주의 절반 정도다. ‘변강쇠 주’로도 불린다.   ※쌍끌이 주 1999년 한-일 어업협상에서 쌍끌이 어로법이 문제가 된 때에 등장한 변종 폭탄주. 폭탄주 두 잔을 연거푸 마시는 주법이다.   ※동전 주 폭탄주 위에 냅킨을 씌우고 동전을 올려놓은 뒤 참석자들이 순서대로 담뱃불로 구멍을 뚫어 동전을 빠뜨린 사람이 마시는 술. 담뱃재가 술에 섞일 수 있어 위생적이지 못하다. 놀이 성격이 강하다.   ※수류탄 주 캔맥주 바닥에 구멍을 낸 뒤 맥주를 조금 따른다. 그리고 양주를 넣어 맥주 캔을 가득 채운 뒤 살짝 흔들어 섞는다. 캔을 따서 마시거나 빨대로 마신 뒤 빈 캔을 천장에 ‘투척’한다.   ※‘잘 부탁합니다’ 주 빈 맥주잔에 뇌관을 거꾸로 집어넣는다. 그 다음 맥주를 가득 채운다. 절대 한 번에 마실 수 없다. 조금 마신 뒤 다시 맥주잔을 바로 세웠다가 다시 마시기를 4~5차례 반복해야 잔을 비울 수 있다. 숨을 껄떡댄다고 해서 ‘껄떡 주’로도 불린다.     ※폭포 주 빈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놓고 그 위에 뇌관을 얹는다. 뇌관 위로 맥주를 부어 넘치게 해 아래 맥주잔을 채운다. 뇌관을 먼저 마신 후 폭약을 마신다.   ※청산리 벽계수 주 폭포 주의 발전 형태. 빈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이용해 빈 양주잔을 2단으로 쌓아올린다. 맨 위의 양주잔에 양주를 가득 채운 다음 맥주를 부어 넘치게 해 아래 양주잔과 맥주잔을 차례대로 가득 채운다. 마실 때는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뒤늦게 참석한 사람에게 벌주로 많이 활용된다. 일명 ‘3단주’.       ※타이타닉 주 맥주잔에 맥주를 60% 정도 채운 뒤 빈 소주잔을 띄워 양주를 조금씩 부으면 잔이 가라앉는다. 보통 놀이로 활용된다.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양주를 부어 가라앉힌 사람이 마시는 것. ‘함몰 주’ 또는 ‘북어뢰정 격침 주’로도 불린다.   ※물레방아 주 맥주잔에 양주잔을 앞뒤로 덧붙여 잡고 마시는 술.   ※드라큘라 주 레드 와인에 뇌관을 넣어 만든 술. 뇌관으로 양주 대신 코냑을 사용하기도 한다. 마신 뒤 입가에 흐른 레드 와인이 드라큘라가 피를 빨아먹은 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 ‘흡혈귀 주’라고도 한다.   ※T자 주 빈 맥주잔에 뇌관을 넣은 뒤 맥주를 80% 정도 채운다. 그 다음 레드 와인을 뇌관 위로 천천히 따르면 와인이 양주를 밀어내고 양주잔을 채운 다음 맥주 위로 떠서 T자 모습을 나타낸다.     ※삼색 주 맥주잔의 3분의 2 정도가 거품이 되도록 따른다. 그 다음 레드 와인을 천천히 따르면 거품 아래 와인이 채워진다. 밑에서부터 맥주-와인-거품 순서가 되는 것.   ※정충하초 주 폭탄주 위에 냅킨을 덮은 후 가운데에 구멍을 낸다. 그 사이로 우유를 부으면 뇌관으로 흘러내려가는 모습이 마치 정충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술이다. 오락성이 강하다.   ※티코 주 양주잔에 맥주를 채운 다음 양주를 두세 방울 떨어뜨린 것.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나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약식 폭탄주.     ※샤워 주 빈 맥주잔에 뇌관을 넣은 뒤 맥주병을 엄지손가락으로 막고 흔들어 분수처럼 터져나오는 맥주를 잔에 채운다. 맥주는 대부분 거품이 된다.   ※충성 주 만들기 전에 “쭛쭛에게 바친다”라고 선언한다.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놓고 그 위에 뇌관을 올린 후 (쭛쭛을 향해) “충성”을 외치며 머리로 테이블을 쳐서 뇌관을 떨어뜨린다. 일명 ‘박치기 주’.   ※사정 주 폭약에 양주 한 잔을 부어 폭탄주를 만든 다음 술이 흐르지 않도록 랩으로 잔을 싼다. 회오리 주를 만들 때처럼 잔을 돌렸다가 테이블 위에 힘차게 내려놓은 뒤 이쑤시개로 랩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그 사이로 술이 분수처럼 치솟는다. ‘미사일 주’ 또는 ‘분수 주’로도 불린다. 오락성이 강하다.   ※도미노 주 맥주잔을 사람 수대로 잇대어 놓고 맥주를 채운다. 맥주잔과 잔 사이에 뇌관을 올려놓은 뒤 첫 번째 뇌관을 쓰러뜨리면 도미노처럼 뇌관이 맥주잔 속으로 빠진다. 오락성과 함께 참석자가 동시에 폭탄주를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성화봉송 주 폭탄주 제조자가 빈 맥주병을 거꾸로 뒤집어 성화처럼 폭탄주를 올려서 마실 사람에게 전달한다. 순번이 된 사람이 술을 마시고 제조자에게 다시 돌아올 때까지 원래 상태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병에서 술잔이 떨어지면 안 된다.   ※황우석 주 황우석 줄기세포 파문을 전후해 새롭게 생겨난 신생 폭탄주다. 줄기세포 연구논문이 알맹이 없는 조작으로 드러난 것을 빗대 뇌관을 맥주 대신 ‘맹물’로 채워 폭약에 장전시킨다    
995    폭탄주 유래 / 종류 댓글:  조회:5749  추천:0  2015-04-19
 *****    폭탄주 유래, 종류    *****        1. 폭탄주란 무엇인가?  미국 몬타나州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을 보면, 주인공  두 형제가 동네 마을의 바에서 폭탄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실연한 兄이 위스키 믹스를 주문하자, 바텐더가 맥주 잔에  위스키 잔을 퐁당 떨어뜨려 건네 주는 것이다.  또 다른 영화 '강철의 심장 (Heart of the Steel)' 에서도  제철공장의 노동자들이 노조파업과 공장 폐쇄 等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활고와 시름을 달래려 폭탄주를 마신다.  이러한 폭탄주가 1980년대 以後 우리나라의 정치인·법조계·  경제관료·언론인과 경영자 等 사회 각층의 엘리트 집단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또 사회 저명인사들이 落馬하거나 망신 당하는  事例가 발생하고, 국무회의 席上에서 폭탄주 금지 문제가 거론되기도  하고, 이제는 초등학생까지도 폭탄주라는 말을 알 정도가 되고 있다. 맥주를 가득 담은 글래스에 위스키 잔을 떨어뜨려 맥주거품이  풀쩍 튀어 오르는 형태가, 마치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 폭탄의  원자雲 같다고 해서 이름이 지어진 폭탄주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以前에도 맥주와 막걸리,  맥주와 소주 等을 섞어 마시는 혼합주법은 있었다.  이제는 맥주와 양주를 섞는 정통 폭탄주는 기본이고,  포도주와 과일주인 리쾨르, 멕시코의 테킬라, 中國의 백주 等  여러가지 酒種을 혼합해 마시는 폭탄주가 등장하고 있다.  外國의 칵테일은 거의 대부분 술과 쥬스나 과일즙, 식물성 음료  等을 혼합하는 것이며, 술과 술을 섞는 칵테일은 아주 드물다.  술과 술을 섞는 한국의 폭탄주가 수십 種에 達하는 것은,  外國과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2. 폭탄주의 유래  맥주를 폭약으로 하고 위스키를 뇌관으로 하는 우리나라 폭탄주의  뿌리를 찾아보면, 비슷한 형태의 술이 外國에도 진작부터 있었다.  미국의 탄광, 벌목장이나 부두 또는 철강공장 等에서 일하는  노무자들이 즐겨 마신 '보일러 메이커 (Boiler Maker)'가 폭탄주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온몸을 취기로 끓게 하는 술' 이란 뜻에서,  '보일러 메이커'란 술이 고된 일을 하면서 벌이가 넉넉치 못한  사람들에게 싼 값에 빨리 취하게 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서양 칵테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일러 메이커'는 맥주를 마시고  그 다음에 양주를 잇따라 마시는 '체이서(Chaser)', 또는 맥주잔에  위스키를 섞어마시는 우리나라 스타일의 폭탄주 두가지 의미로 쓰인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等 北유럽에도 '잠수함(Submarine)' 이라는  형태의 폭탄주가 있다. 500cc 맥주잔에 독일 술 슈납스를  가득 담은 잔을 떨어뜨려 마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이러한 형태의 폭탄주가 등장했을까?  어떤 이는 삼국시대에도 다른 종류의 술을 섞어 마시는  원초적 형태의 폭탄주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國內에서는  100年 前 '혼돈주' 라는 일종의 폭탄주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혼돈주란 半 사발의 막걸리에 소주 한 잔을 섞은 혼합주로  '자중홍 (自中紅)' 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해방 後, 우리나라에 주둔했던 美軍이 폭탄주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보일러 메이커'를 이 땅에 전파했다는 주장도 있다.  1960년대 以後에는 소주에 맥주 또는 막걸리를 섞어 마시거나,  소주에 콜라 또는 소화제인 멕소롱 等을 섞어 마시는 酒法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형태의 맥주에 위스키를 혼합해 만드는 폭탄주는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983年경 춘천 지역의  검찰·경찰·언론 等 기관장들의 모임에서 폭탄주가 개발되었다는  것이 定說이다.  이러한 폭탄주가 법조계에 이어 軍으로, 언론계 等으로  전해져 간 것으로 추정된다.  폭탄주의 개발과 보급 시기는 국내산 양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80년대 前後와 시점이 맞아 떨어진다. 경제 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하고, 양주가 흔해지면서 양주를 大量으로 마시게 되고,  맥주에 양주를 혼합하여 마시게 된 것이다.    3. 폭탄주와 알코올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실 경우, 알코올 도수 40-43度의 독주를  그대로 마시게 되나, 폭탄주로 마시면 순하게 된다.  폭탄주의 알코올 도수 및 알코올 함량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ㄱ. 폭탄주의 알코올 도수  폭탄주는 알코올 도수가 10% 수준이므로, 청주(12-13%)와 비슷하다.  그러나 폭탄주 한 잔을 마시면 거기에 포함된 알코올 함량은  소주 2잔分에 해당한다.  a. 양주 폭탄주  일반적 맥주잔의 용량은 230 – 250cc,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4-5%. 양주잔은 일반적으로 35cc, 알코올 도수는 40 – 43%.  따라서, 35cc 양주잔에 양주를 가득 채운 뒤, 230cc의 맥주잔에  넣으면, 맥주는 195cc 만큼 들어간다. 그러면 맥주+양주의  알코올 도수는 10.35%가 된다. 즉 알코올 도수 12-13%인  청주나 백세주보다, 다소 낮은 정도인 것이다.  b. 소주 폭탄주  같은 방법으로 55cc 소주잔으로 25% 알코올 도수의 소주 폭탄주를  만들 경우 9% 수준이 된다. 따라서, 알코올 도수로 보면  위스키 폭탄주나 소주 폭탄주가 거의 비슷하다.  ㄴ. 폭탄주의 알코올 함량  위스키 폭탄주의 알코올 도수는 10% 수준이나,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알코올 함량이다. 즉 맥주잔으로 폭탄주를 만들었을 때, 들어있는 알코올 총량은 23그램이다. 이 정도면 소주나 위스키  各 2잔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a. 알코올 도수 40 – 43%의 위스키 한잔 (35cc)에는  알코올이 14.5 – 15.05 그램 들어있다.  b. 알코올 도수 22-25%의 소주 한잔 (55cc)에 담긴 알코올 함량은  12.1 – 14.75 그램이다.  c. 맥주 한 잔 (230 – 250cc)에 알코올 4.5%의 맥주를 가득 채우면,  10.35 – 11.25 그램의 알코올이 된다.  따라서 위스키 폭탄주 한 잔은 소주 두 잔을 한꺼번에 마시는 셈이며,  이는 양주 스트레이트 1.6잔에 해당된다.  ㄷ. 취하는 속도  맥주에는 탄산가스가 들어 있어 소주나 위스키와 같이 도수가 높은  술과 섞어 함께 마시게 되면, 탄산가스의 작용으로 위 속의 알코올이 빨리 흡수된다. 결국 과음의 위험성이 있을 수 있다.  4. 왜 폭탄주를 마시는가?  구미 국가에서는 기업이나 단체·조직 구성원들이 단체로  회식을 하는 기회가 흔치 않다.  근무를 마치면 곧장 귀가하여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하거나,  家事를 돕던지 부부동반으로 사교모임에 참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양 문화권 中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직장동료들이  단체로 큰 연회를 갖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단체·군대 等 거의 모든 조직 사회에서  집단으로 회식 자리를 갖는다. 직장 모임·동창회·단체 모임 等  집 밖에서 술을 마시는 기회가 잦다.  우리가 집단 회식에서 갖는 술자리는 여흥이 아니라 '일의 연장선'  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술자리는 업무상 '스트레스  해소의 場'이기도 하며, 조직內 인간관계에서 융화를 이룰 수 있는  '半 공식적인 자리'인 셈이다.  이러한 '유유상종의 음주 공동체'에서 업무적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同時에 인간관계 구축을 통한 정보 교환, 非공식적인  의사소통 等 개인의 고립과 단절을 극복하고 조직에 적응하고자  하는 것이다.  해마다 우리 국민이 마시는 술 中 맥주가 500㎖ 기준 약 35億병,  양주는 약 4천만병이다.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세 以上 成人 한 사람이 평균 맥주 119.7병,  위스키 1.4병을 마신 셈이다.  위스키와 포도주 等의 소비 급증에 따라 年間 전체 술 수입금액도  2000年 2億 2200만불에서, 지난 해 2億 5600만불로 15% 증가했다. 특히 영국산 위스키 수입액은 1億 7800만불에 達해,  세계 4位의 스카치 위스키 수입국가로 기록됐다.  이와 같은 양주 수입에 따라 외화 유출의 비난은 물론이려니와,  폭탄주의 병폐에 대해서 논란이 많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폭탄주를 마시는 것일까?  ㄱ. 폭탄주는 '경제적인 주법'  우리나라에서는 단체 회식을 할 경우, 上司 또는 특정 관리자가  식사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관례적이다.  이럴 경우 上司로서는 회식 비용을 줄이기 위해 폭탄주를  이용하기도 한다. 폭탄주를 돌릴 경우 술 자리가 빨리 끝날 수 있고,  안주 비용이 절약되기도 한다.  폭탄주 자리가 끝나고 나서 살아 남은 끈질긴 사람들끼리  2次를 가게 되면, 그야말로 집단회식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ㄴ. 폭탄주는 '건강용'  지난 1999年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과 관련된 국회 청문회에서  前 대검 공안부장은 "왜 폭탄주를 마시는가?" 라는 질문에,  "양주가 너무 독해서" 라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다. 양주를 그대로 마시면 43도이나,  양주에 맥주를 혼합한 폭탄주로 마실 경우 알코올 도수는  10도 수준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ㄷ. 폭탄주는 '공평한 주법'  우리 사회에서 술 좌석을 주도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술 부담이 크다. 上司가 술자리의 모든 사람들과 一對 一로 대작을  하다가는 혼자 곯게 된다. 上司에게 술잔이 몰리기 때문이다.  조직 생태적으로 부하들은 上司에게 '예의上 성의의 한 잔'을  권하게 되고, 上司는 답잔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혼자 가장 많이 마시게 되고, 가장 먼저 만취하기 십상인 것이다.  군대나 직장 等에서 上司가 술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술을 덜  마시고자 할 때, 폭탄주는 아주 '평등하고 유리한 酒法'이 되는  것이다. 地位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모두 한잔 씩이기 때문에,  적어도 上司에게는 폭탄주란 '민주적'인 것이다.  ㄹ. 폭탄주는 '단합용'  우리 사회의 집단 회식자리는 흔히 산만해지고, 개별적 대화로  소란스럽다. 이 경우 폭탄주는 개별적인 私談을 금지시키고,  모든 참석자들의 시선을 폭탄주 제조에 집중시킨다.  폭탄주를 마시고 잔을 흔들어 딸랑 딸랑 소리를 내고,  모두 박수를 치면서 모임 전체의 단합된 분위기를 유도한다.  ㅁ. 폭탄주는 '기념주'  정부 부처間 또는 기업間 업무적인 타결이 이루어 질 경우,  관련 조직間의 회합에서 기념 또는 축하의 의미에서  폭탄주를 마시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오랜 갈등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폭탄주를 마시고 감정의 앙금을  푸는 것처럼, 폭탄주는 對立과 不和를 푸는데 이용된다.  한국인들은 술을 마시고 감정이 이완되어 통합하기를 기원할 때,  '이왕이면 폭탄주'를 마신다.  ㅂ. 폭탄주는 '弱者를 위한 술'  기업에서 외부 인사를 접대할 경우, 상대방 보다 훨씬 弱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경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폭탄주는 좋은 방어 수단이 된다.  신분에 관계없이 똑 같은 量의, 똑 같은 횟수의 술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ㅅ. 폭탄주는 '과시용'  폭탄주 대결은 의지와 담력과 체력을 나타내게 된다.  술자리는 상대방을 테스트하는 광장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폭탄주 자리에서 살아 남고, 상대방 보다 세다는 소리를 들으면,  '비즈니스도 잘 풀리고 대외적, 대내적 관계도 잘 풀린다.'  '폭탄주를 몇 잔을 마신다' 라는 기(氣) 싸움에서 이기게 되면,  그 강인한 이미지를 절대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ㅇ. 폭탄주는 '술자리의 엔터테인먼트'  폭탄주 술자리는 술만 마시는 자리가 아니다. 폭탄주를 제조하고  마시는 모든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박수치고 즐기는 자리인 것이다.  폭탄주를 제조하는 방법에는 수십 가지가 있다.  이러한 과정은 함께 즐기는 하나의 놀이이며 오락이다.  ㅈ. 폭탄주는 '분위기 메이커'  모임에서 서로 주고 받을 마땅한 이야기가 없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술 자리에 同席해야 할 때, 또는 上司가 사무실에서 부하를  야단치고 술자리에 와서 서먹서먹할 때, 분위기는 아주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폭탄주는 아주 유용하다. 마시고 취해 서로 객적은 소리를  안해도 봐주고 용인하게 된다. 폭탄주는 이럴 경우 사교감과  친밀감을 높여주는 '분위기 메이커'가 된다.   5. 폭탄주의 종류 정통 폭탄주는 맥주에 위스키를 혼합한 칵테일이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재료와 제조 방법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재료도 맥주와 위스키 外에 포도주, 소주, 중국 백주 (배갈),  이온음료, 보드카, 테킬라 等을 섞기도 한다. 다만, 폭탄주를 들면서 피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프레미엄級 고급 위스키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오랜 기간 오크통속에서 숙성시킨 고급 위스키를 맥주와 혼합하여  마신다는 것은 일종의 모독이므로, 절대로 피함이 옳다. 둘째,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마시기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권해서는 아니 된다. 폭탄주의 종류에는 그 재료의 혼합방법에 따라 3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원자 폭탄주 맥주잔에 맥주를 거품이 덮도록 따르고 뇌관인 위스키 잔을 퐁당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때 거품이 풀쩍 튀는 모양새가 마치 원자雲과  흡사하다고 해서 원자 폭탄주라하고 이를 정통 폭탄주라고도 한다. 둘째, 수소 폭탄주 맥주잔에 위스키를 붓고, 맥주를 작은 양주잔에 넣어 섞는 것이다.  사실上 알코올 도수 40 – 43도의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어서  아주 독하다. 웬만한 주당들도 기피한다. 셋째, 중성자 폭탄주 맥주잔에 위스키를 따르고 여기에 위스키를 넣으면 중성자탄이 된다.  한마디로 맥주잔을 100% 위스키로 채워 마시는 것이라서,  '주선(酒仙)'級 이라야 마실 수 있는 폭탄주이다. 以上의 세가지 폭탄주 가운데 원자 폭탄주가 고전적 정통 폭탄주이며,  以下 원자 폭탄주의 제조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 태권도주 맥주컵에 맥주를 가득 따르고 젓가락 2개를 벌려 놓은 後,  그 위에 양주를 채운 양주잔 뇌관을 얹는다.  테이블을 따라 정권(주먹)을 뻗어 젓가락을 날려, 양주잔을  맥주잔 안으로 퐁당 떨어뜨리면 '태권도주'가 만들어진다. 2) 가라데주 태권도주와 같은 방법이나 수도(손바닥)로 젓가락을 쳐서  양주잔을 떨어뜨리면 '가라데주' 라고 한다. 3) 가랑이주  맥주잔 위에 젓가락 2개를 놓고 그 위에 양주 뇌관을 얹는다.  젓가락 두 개 사이에 손가락이나 얼음 집게를 넣어 쫙 벌려서  양주잔을 퐁당 빠뜨리면 '가랑이주' 라고 한다.  4) 골프주  맥주컵 위에 젓가락 2개를 걸쳐 놓고 빈 양주잔을 놓는다.  양주잔에 술을 부은 다음 또 다른 젓가락이나 숟가락으로 스윙해,  양주 뇌관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골프에서 이름을 따서 일명 '스윙주' 라고도 한다. 5) 회오리주 정통 폭탄주 中에서 상당히 많이 보급된 폭탄주이다. 먼저 정통 폭탄주를 만든다. 양주 알잔에 양주를 따라,  맥주를 채운 잔에 부어 섞는다. 그 다음 냅킨을 잔 위에 씌워  손바닥으로 막고 잔을 빙빙 돌리다가 손목에 스냅을 주어 확 뻗는다. 그러면 술잔 안에서 회오리 폭풍이 일어난다.  맥주와 양주가 잘 섞여 맛이 부드럽다는 게 주당들의 평가이다.  회오리주를 만든 다음 술에 젖은 냅킨을 위나 뒤로 던져 술집 천장이나  벽에 붙어 '척' 소리가 나게끔 던지는 놀이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6) 다이아몬드주 회오리주에 얼음 한 조각을 띄우면 조명을 받아 보석처럼 빛난다.  얼음을 띄우는 것은 술을 적게 부으면서 모양을 보기 좋게 한 것이다.  주로 女性用이다. 7) 슬라이딩주 맥주잔 위에 신용카드나 명함을 얹어 놓고 여기에 양주뇌관을 얹는다.  그런 다음 카드나 명함을 순간적으로 살짝 빼버리면,  양주잔이 맥주잔 위에 떨어진다. 8) 월드컵주 某 정치인이 선보였던 술이다. 맥주잔 위에 올린 젓가락 두 개를  발로 휙 쳐서 떨어 뜨리는 것이다.  "아무리 기발한 폭탄주라지만, 술잔 위에 있는 젓가락을 발로 차다니"  하고, 처음 본 사람은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9) 금테주 맥주를 80% 정도 채운 後 잔 위에 냅킨 한 장을 놓고 양주잔의  양주를 따른다. 냅킨을 여과하여 잔에 떨어진 양주가 비중의  차이 때문에 맥주와 섞이지 않아, 금테를 두른 것처럼 보인다. 10) 비아그라주 (페니스주, 변강쇠주) 이름은 고약하지만 마시기는 편한 폭탄주다. 맥주잔에 넣은 양주잔에는  양주를 채운다. 그런 다음 양주와 섞이지 않게 맥주잔의 3분의 1정도 맥주를 따른다. 양주 위로 맥주를 부어도 된다. 그러면 맥주 위에  양주잔이 볼록 튀어나온 형태로 폭탄주가 만들어 진다.  마치 맥주 위에 양주잔이 서있는 모습이 남자의 성기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다양한 이름이 붙었다.  정통 폭탄주보다 맥주 양이 절반 이하로 적다. 따라서 큰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술이 세지 않은 사람이나 女性들에게 좋다.  자주 애용되는 폭탄주의 일종이다 11) 사정(射精)주 (미사일주, 물총주) 폭탄주 술자리의 오락용이다. 양주를 알잔에 따른 다음, 맥주를 가득 채운 맥주잔에 붓는다. 여기까지는 회오리주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  그런 다음 랩으로 맥주잔 위를 씌운다. 그리고 랩에 이쑤시개로  작은 구멍을 뚫는다. 잔을 손으로 돌려 회오리주를 만든 다음,  술상 위에 탕 소리가 나게 내려 놓는다. 그런 충격에 따른 술잔 內의  압력으로 랩의 작은 구멍을 통해 술이 높이 치솟는 모습을 따서,  사정주라고 한다. 듣기 민망해 미사일주나 물총주로도 표현된다. 12) 쌍끌이 폭탄주  1999年에 한일 어업협상에 쌍끌이 어로법이 문제가 되자 선보인  변종 폭탄주. 某 신문사 간부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쌍끌이주는  정통 폭탄주 두 잔을 만들어 나란히 놓는다. 그리고 한 잔씩  연거푸 들이켜, 한 번에 폭탄주 두 잔을 마시는 셈이다. 13) 소방주 폭탄주에 냅킨을 씌우고 동전을 올려놓은 뒤 참석자들이 순서대로  담뱃불로 구멍을 뚫어 동전을 빠뜨린 사람이 마신다. 담뱃재가 술에  섞일 수도 있어 별로 위생적이지 않다. 놀이 성격이 강하다. 14) 수류탄주 맥주 캔의 따개 밑 부분에 구멍을 낸 뒤 맥주를 조금 밖으로 따른다.  그런 다음 양주를 맥주 캔에 넣어 가득 채운 다음 조금 흔들어 섞는다.  그리고 캔을 따서 마시거나 빨대로 빨아 마시기도 한다. 다 마신 後  빈 캔을 천장에 '투척'한다고 해서, 수류탄주라고 부른다. 15) '잘 부탁합니다'주 (껄떡주) 먼저 위스키잔에 위스키를 채운다. 빈 맥주잔을 거꾸로 양주잔 위에  덮는다. 그런 다음 양주잔을 꼭 잡고 맥주잔과 같이 뒤집는다.  그러면 맥주잔 안에 양주가 담긴 위스키 잔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여기에 맥주를 붓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폭탄주는 절대 한번에 마실  수 없다. 거꾸로 뒤집은 양주뇌관에서 위스키가 조금씩 흘러나온다.  그래서 폭탄주를 조금 마신 뒤 다시 맥주잔을 바로 세우고  또 마시기를 4-5번은 반복해야 한다.  숨을 껄떡거리며 마신다고 해서, 껄떡주라고도 한다. 고개를 여러 번 앞으로 숙여서 마셔야 하기 때문에 술자리의  제일 막내나 새로 리더가 된 사람이 '여러분 잘 부탁합니다'고  요청하는 의미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16) 폭포주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놓고 그 위에 위스키가 가득찬 양주 뇌관을  얹는다. 위스키잔에 맥주를 부어 철철 넘치게 한다.  그러면 맥주가 양주잔을 넘쳐 밑의 맥주잔으로 떨어진다.  마치 폭포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폭포주라고 부른다.  먼저 위스키 잔을 마시고, 젓가락을 치운 다음 맥주 잔을 비운다.  폭탄주 제조과정에서 미리 양주와 맥주가 충분히 섞이게 되므로,  마시는 것이 부드럽다고 주당들은 말한다. 17) 청산리 벽계수주 (3단주) 폭포주의 발전 형태로 먼저 빈 맥주잔위에 젓가락을 두 개 얹는다.  그 위에 빈 양주잔을 올려 놓는다. 다시 젓가락 2개를 얹고,  그 위에 빈 양주잔을 올려 놓는다. 술을 붓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a. 맨 위의 양주잔에 양주를 따라 가득 채운다. b. 양주잔 위로 맥주를 붓는다. 그러면 맥주가 양주잔 안에서 양주와 섞이면서 양주잔 위로 흘러내려 먼저 중간에 있는 양주잔을 채운다.  중간의 양주잔을 채운 다음에는 다시 술이 철철 넘쳐 맨 아래  맥주잔을 채운다. c. 술 마시는 순서는 맨 위의 양주잔, 그리고 중간의 양주잔,  아래 맥주잔 順이다. 뒤늦게 참석한 사람에게 벌주(後來者 三杯酒)로 많이 활용된다. 18) 타이타닉주 ('함몰주' 또는 '北어뢰정 격침주') 미국 영화 '타이타닉'의 이름을 본떠 市中에 유행하는 폭탄주다.  비교적 폭탄주를 천천히 마실 수 있는데다 술자리에서의 오락성까지 겸해, 관리들 뿐 아니라 대학생 等 젊은 층에서도 사랑을 받는다.  제조법은 맥주컵에 맥주를 60%정도 넣고 빈 소주잔을 띄운다.  소주잔에 양주를 조금씩 넣으면 잔이 무거워지면서 천천히 맥주잔  밑으로 가라앉는 것이 마치 거대한 타이타닉호가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타이타닉주로 불린다.  또는 '함몰주' 라고도 한다. 이때 양주잔 대신 소주잔을 쓰는 이유는 소주잔은 바닥 면적이 넓어  빈잔을 넣으면 맥주 위에 뜨게 되며, 3분의 2정도 양주가 차면  맥주 속으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19) 물레방아주 맥주잔에 양주잔을 덧붙여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잡고 마시게 되면,  양주잔에서 맥주잔으로 양주가 흘러 들어가 맥주와 섞이도록 만든  폭탄주이다. 미리 양주와 맥주를 섞지 않고 양주를 맥주잔에  흘러 들게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양주가 조금씩 섞이기 때문에 마시는게 그리 어렵지 않다. 20) 박치기주 (충성주) 이 충성주는 먼저 만들기 前에 '□□에게 바친다' 라고 선언을 한다.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놓고 그 위에 양주잔을 얹은 후, □□을 향해  '충성' 하고 경례를 한 다음 머리를 술상에 꽝 박으면, 그 충격에  양주잔이 살짝 튀어 올랐다가 젓가락 사이로 빠져 맥주잔 안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박치기주는 술자리 처음부터 마시기 보다는,  정통 폭탄주 等으로 어느 정도 마셔 취기가 오른 다음,  끝날 무렵 오락용으로 이용되는 편이다. 21) 드라큐라주 (一名 흡혈귀주) 포도주에 양주를 넣어 만든 폭탄주로 마신 後 포도주가 자기도 모르게  양쪽 입가로 흐르는 모습이 드라큐라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지은 것.  포도주에 양주를 넣는 것 보다 코냑을 넣는 것이 마시기에도,  몸에도 좋다. 포도주에 중국산 배갈을 넣는 경우도 있는데,  권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독하다.  폭탄주는 시원한 感이 드는데, 드라큘라주는 끈끈하다. 22) 무지개주 맥주에다 숙취 해소제인 '멕소롱'과 이온음료인 '포카리 스웨트'를  차례로 부으면 色色으로 차이가 난다.  그래서 무지개주라고 부르는데, 맛은 별로라는 평가다. 23) T자주 맥주잔에 위스키를 담은 양주 뇌관을 넣은 뒤 맥주를 80% 정도 채운다.  여기에 붉은 포도주를 양주 뇌관위로 가만히 따르면 양주잔에 있는  양주가 밀려 나오면서, 포도주가 양주 뇌관과 맥주 위에 깔려  T자 모습을 나타낸다.  또는 맥주잔에 맥주를 ⅔ 가량 따른 後, 양주잔에 포도주를 채워  가만히 맥주잔에 넣고는, 계속해서 양주잔 위로 포도주를 부어  맥주잔을 채우면 T자 모습이 만들어 진다. 24) 삼색주(三色酒) 맥주잔의 3분의 1정도에 맥주를, 나머지 3분의 2는 거품이 되도록  따른다. 그런 다음 적포도주를 천천히 따르면 맥주거품 밑으로  포도주가 천천히 들어가 맥주 위와 맥주 거품사이에 자리하게 된다.  즉 맥주의 노르스름한 색깔, 그 위에 포도주 색깔, 다시 그 위에  하얀 맥주 거품이 있어 보기에 좋다. 이때 맥주를 갑자기 부으면,  맥주와 와인이 섞여 제조에 실패하게 된다. 25) 정충하초주 맥주잔에 맥주를 따르고 양주 뇌관을 넣는다. 그런 다음 종이 냅킨을 맥주잔 위에 덮는다. 냅킨 가운데 구멍을 낸다. 구멍을 일부러 내지  않더라도, 톡톡 건드리면 맥주에 젖어 찢어진다. 거기에 우유를 조금 부으면 양주 뇌관으로 우유가 들어간다. 우유가 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정충처럼 보여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오락용이다. 26) 티코주 대우의 경승용차인 티코의 이름을 딴 것이다.  큰 맥주잔을 쓰지 않는 게 특징이다. 양주 알잔에 맥주를 거의  가득 채운 다음, 양주를 두 세 방울 떨어뜨린 것이다.  소주 한잔만 마셔도 생리적으로 쓰러질 정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나 女性을 위해 등장한 약식 폭탄주이다. 27) 샤워주 맥주 잔에 양주를 채운 양주 잔을 먼저 넣고, 병 맥주를 1/4 가량  따로 따라 낸 後에 병 입구를 엄지손가락으로 막고 상하로 흔든다.  그런 다음 맥주 병 입구를 양주잔이 담긴 맥주 잔 위에 대고  조심스럽게 엄지손가락을 조금 떼면 맥주가 분수처럼 쏟아져 들어간다.  그 형태가 마치 샤워하는 것 같다고 해서, 샤워주로 이름 지어졌다.  28) 도미노주 맥주 잔을 인원 數대로 (3잔부터 20, 30 잔이라도 좋음) 잇대어 놓고 맥주를 따른다. 잇대어 놓은 맥주 잔과 잔 사이에 양주 잔들을  얹은 後 양주를 따른다. 그리고는 첫번째 양주잔을 손가락으로  살짝 밀치면 고려화학㈜의 TV CF에 응용되었던 도미노 게임 그대로, 모든 양주잔들이 각각 다음 맥주잔에 퐁당, 퐁당 빠지게 된다.    
994    맥주컵 종류 댓글:  조회:8450  추천:0  2015-04-19
        대부분의 맥주컵은 맥주의 색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필스너'라 불리는 길쭉한 형태의 맥주컵을 사용해요. 필스너를 이용하면 황금빛 맥주와 하얀 맥주거품의 조화가 잘 돋보이게 해주거든요~ ​ ​ ​       숙성기간이 오래된 고급맥주라면 '고블렛'을 이용해요. 숙성기간이 오래될수록 맥주의 향이 짙고 강하기 때문에 맥주의 향을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된 형태의 맥주컵이랍니다! ​ ​ ​ ​ ​ ​ 다음으로 소개하는 맥주컵은 둥근 '바이젠'이에요. 거품이 많은 밀맥주는 거품을 줄여주는 이 바이젠을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죠.   왜 밀맥주의 거품을 줄이는 컵을 써야하냐고요? 맥주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황금비율이 맥주가 7이고 맥주거품이 3이기 때문이에요. 너무 많은 맥주거품이 있어도 맛있게 맥주를 즐기기 어려워요~ ​ ​ ​ ​ ​ ​ 다음으로 보이는 맥주컵은 참 낯이 익죠 ㅎㅎ 크림거품을 살리기 좋은 맥주컵인데요. 이 컵은 '텀블러'에요.     이 컵은 크림생맥주의 맛을 잘 살려주거든요^^ ​ ​ ​ ​ ​ 덧붙여서 맥주의 향과 풍미를 잘 느끼고 싶다면 맥주컵 '튤립'을 사용하세요! 맥주향을 잘 느끼게 해줘서 평소 먹던 맛과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죠. ​ ​ ​       마무리로 신기한 맥주컵을 소개할게요. 한쪽은 맥주컵, 한쪽은 소주잔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이네요~ 그래도 잔을 따로 사용하는게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 ​ ​       이 맥주컵은 맥주컵안으로 와인잔이 들어온 형태로 마치 와인을 마시는 느낌을 주고요. 캠핑을 갔을 때 분위기를 낼 수 있어 활용하기 좋은 맥주컵 같아요! ​ ​ ​ ​ ​ ​ 지금까지 다양한 종류의 맥주컵을 소개해드렸어요. 앞으로 맥주 드실땐 맥주컵도 고려해서 맥주를 마셔보세요. 좀 더 맛있게 맥주를 마실 수 있을거예요^^       [출처] 종류가 다양한 맥주컵 |작성자 맥땡    브랜드마다 다른 맥주잔 디자인   밑이 편편한 원통 모양의 잔, 튤립 모양으로 위가 퍼져 있는 잔, 혹은 다리가 달린 잔...  등 다양한 형태의 맥주잔은 맥주의 맛을 즐기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과거 장인들이 만들어내던 예술 작품과도 같은 훌륭하고 멋진 맥주잔이 아니어도, 심플하고 투명한 유리 맥주잔은 맥주 빛깔의 미묘한 자연스러움을 돋보이게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맥주 회사들은 자사의 브랜드나 상징물 등이 장식된 모양의 맥주잔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맥주잔 입구의 넓이에 따라 향기의 발산 정도가 달라지는 등 맥주 맛에 영향을 미치므로 자사의 맥주와 적합한 디자인의 맥주잔을 택해야 한다.         임페리얼 파인트 .브리티시 에일을 마실 때 많이 적용되는 임페리얼 파인트는 전통적으로 왕관 문장이 찍혀 있다. 아일랜드의 기네스 잔도 임페리얼 파인트 형태를 띠며, 하이네켄 잔의 경우 임페리얼 파인트를 변형한 모습으로, 크기를 좀 더 작게 디자인했다.       튤립 튤립 모양의 컵에 자루가 있다. 고블릿의 일종으로 향이 특히 좋은 맥주에 적당하다. 향을 한데 모아 주어 코로 냄새를 맡는 데 가장 이상적인 잔으로 벨지언 에일에 많이 사용된다. 튤립 잔을 가진 벨기에 맥주 듀벨은 여러 가지 과일 향으로 강한 알코올이 느껴지지 않는, 벨기에가 자랑하는 최고의 에일로 꼽힌다.     고블릿 볼 형태의 잔으로 발과 자루가 있다. 비교적 잔 입구가 넓기 때문에 미세한 향을 깊이 들이켤 수 있어 맛이 진한 맥주에 적합하다. 손으로 맥주를 빨리 덥힐 수 있어 향의 발산을 돕고 보기에도 격이 있어 맛이 진한 고급 에일에 주로 사용된다. 스타우트, 올드 에일, 발리와인 등에 적합하다.       기본형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잔으로 다양한 형태의 맥주를 담기 무난하다. 국내 맥주잔의 형태가 단일하다는 것은 국내 맥주 대부분이 라거 맥주로 스타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있지만, 아직 맥주에 대한 전통적인 문화가 자리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각형 14세기 벨기에에서 제조된 맥주 호가든의 잔이다. 특유의 육각형 잔은 전통성과 독창성을 상징하며 다른 맥주잔에 비해 두께가 두텁다. 이는 맥주의 차가움을 오래 유지시켜 호가든의 황금빛 구름색이 지속될 수 있도록 특별히 디자인한 것이다.     머그 500cc, 1000cc 맥주로 많이 알려진 머그는 표면이 울퉁불퉁하게 처리되어 있어 다루기 쉽다. 크고 넓은 잔 입구는 맥주의 향을 쉽게 맡게 한다. 머그는 독일에서 대부분의 라거 맥주에 두루 사용된다. 특히 머그잔에 담긴 맥주는 축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바이젠 잔 윗부분이 활처럼 약간 휜 형태로 키가 크다. 어딘가 둔해 보이는 듯하지만 남부 독일 밀맥주인 바이젠의 과일향을 딱 알맞은 정도로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신맛이 강한 베를린의 밀맥주는 입구가 넓은 샴페인 잔을, 벨기에의 밀맥주는 땅딸막한 텀블러 잔을 사용한다. 같은 밀맥주라도 즐기는 방법이 다르다.   필스너 필스너 역시 맥주의 풍부한 향이 코로 잘 전달되도록 고안되었다. 약간 긴 형태와 투명한 유리는 필스너의 반짝이는 황금색과 계속 올라오는 기포의 흐름을 눈으로 잘 볼 수 있게 한다.   플루트 좁고 길쭉한 원통 모양이다. 이러한 형태는 향이 좋은 맥주에 적합한데, 맥주의 향을 한데 모아주고 바로 코로 전달하는 통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형태의 특성상 맥주 기포가 오래가도록 해준다.    
993    잡타령 모음 댓글:  조회:6691  추천:0  2015-04-19
      시인 / 소설가 방영주 내 고향에 가면        어려서부터 고향을 뜨지 않고  젊은 나이에 이장을 하고  고무신 가게를 하며 유선방송사를 하고  중장비를 하고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실라치면...  안주가 참 좋아유.  비인에서 많이 나는 생선  전어(전어축제가 있음)  꼴뚜기(꼴뚜기 축제도 있음)  참맛(소금과 호미만 있으면 얼마든지 잡아 먹을 수 있음)  간제미무침회  각종 어패류가  아주 싱싱허유.  참 좋은 고향인디  떠나서, 이렇게...  참 싱싱하고 좋은 조개들도 많은데  참조개, 대합, 모시조개, 백합, 고막 등등  그 많은 조개들...  그리고 소라, 고동, 자젓...  언젠가 한번은 파도에  조개가 쓸려와 리어카를 끌고 가  삽으로 퍼 온 적도 있는데...  한번 가봐유.  바다에서 일출과 일몰을  모다 볼 수도 있지유.  특히, 조개탕을 만들어 놓고  한잔하면서 보는 일몰의 그  장관이란...ㅎㅎ            낙조를 보며 살아온 삶           고향을 떠나면서부터는 아니지만...  나는 몸이 약했다.  본시 우량아로 출생된 나는  어렸을 적에 심하게 앓았다.  그래서인지 몸이 약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10리 길을 걸어 오다가  아무 데나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몸에 이상이 있어(임파선인지 뭔지 모르겠다)  고향, 충남 서천 비인 월명산 자락의 조부모님에게  요양 차 맡겨진다. 거기서 바다의 생물과 산의 식물들을  마구 잡아, 뜯어 먹고 악동짓을 하며 건강을 회복한다.  그러나 나를 떠나 보내던 부모님의 말씀이  언제나 가슴 한복판에 남아 있었다.  "넌 너무 말을 안 들어서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거야."  아마도 어머니가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거라는 것은 내가 성장한 후의 생각이다.  나는 가끔 혼자, 할아버지 집 돌담에 앉아,  우리 나라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는 비인의  그 솔모리 바닷가에 선지처럼 붉게 번지는  낙조를, 쓸쓸히 바라보곤 했다.  부모님과 동생들을 그리워 하며...  어린 나이에 왜 막 떠오르는 해가 아니라,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를 보며 자라왔을까.  내 외로움의 씨는 이미  그때부터 잉태된 것이 아닐까 싶다.  몸이 건강하여져(그 이후로 병원 한번 가보지 않은 나)도  그냥 맥없이 쓸쓸하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고향의 낙조가 남긴 음영인 듯 싶다.           함께 술마실 사람...          가끔 마음이 답답하거나  우울해지거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한잔하고픈 생각이 간절한데  요즘은 전과 달라  혼자서 먹는 술집이 드물어  또 나이도 들고하여  혼자 마시면 이상한 눈으로 힐끔힐끔  영 술맛이 잡치고  이럴 때  말은 안해도  눈길 한번 안주어도  그냥 앞에서  같이 마셔줄 사람이  간절한데  주제가 물러터져서  뭐 가까이 하는 사람도 없고  술은 마시고 싶고  주위에 사람은 없고  어쩌다 변심하여 아는 사람을 불러  한잔 할라치면  아직까지 별 연락이 없다가  왜 갑자기 나를 불렀나  탐색하느냐고  눈만 초롱초롱 술맛은 이미 달아난지 오래  누구 흔쾌히 같이 술마실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아...                      술집 근처를 서성이며...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살았다.  자의식이 강한 때문일까?  내 자신에 뭔가 인간적이 결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살다보니 참 편하긴 한데  불쑥 길거리로 나서면 왠지 외롭다는 생각이  물밀 듯이 몰려오곤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누구라도 붙잡고  술집에 들어가 정담을 안주 삼아 한잔 하고 싶다.  그리고 툭툭 털고 자신들의 갈 길로 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쓸쓸한, 그리고 사람은 많지만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나는, 혼자 자작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술집을 기웃거린다.  그러나, 거기도 없다.  요즘은 방석에 앉아 둘 이상이 먹어야 하는 안주들 뿐이고,  혼자 그런 곳에 들어가 2인분을 시켜놓고  술을 들기도 참 무엇하다.  나는 하늘을 향해 하아, 한숨을 내뱉다  등을 돌리기 일쑤이다.  여행을 가도 그렇다.  젊었을 때에는 돌아다니는 것이 좋아  그저 기차나 버스만 타도 즐거웠는데,  요즘은 어디에 가도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그리고 동네에서 느끼던 그 감정이  먼저 불쑥 떠올라, 어디로 떠나는 것도  좀 그렇다. 그러며 자신을 타이른다.  사람들과 가까워지자, 뭔가 취미생활을 하자,  그러나 잠시 후면 그런 생각은 잊어버리고  또 혼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 지겨운, 권태로운, 쓸쓸한 인간살이의 사슬을  언제나 끊을까 싶다.           이후텁지근하고 무더운 여름도?! ...     알고 보면 내 한정적인 인생의 한 부분일 텐데.  이 여름이 후딱 지나가고 가을이 온다면  바로 내 인생의 한 부분도 그렇게  의미없이 가 버린다는 이야긴데...  더구나 내가 시한부 인생이고  가을이면 죽게 된다면 이 더운 한 순간 역시  얼마나 소중한 시간일까.  사람들은 그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더운 여름,  집에서 짜증이나 내고  여름을 의미 없이 보낼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뜨거운 태양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여름을 극복하고 싶다.       올 여름은...               참으로 무더웠다.  겨울 태생인 나는 더위에 약하다.  남보다 땀이 많이 만다.  남 보이기에 참 민망하다.  많은 시간을 강원도에서 보낸 것같다.  태백산 단군성전 근처와 바닷가는 참 시원하다.  거기서 많은 생각들을 가다듬었다.  올 가을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여기저기서 보내준 책들을 읽고  시를 쓰며 소일했다.  빨리 이 여름이 갔으면 좋겠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쓸쓸한 기분이 들고 하면,  책상에 붙어 소설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성큼 다가서는 느낌이다.  나의 가슴은 부푼다.  글을 쓸 때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평택에 가면 ... 평택(平澤),  평평한 못,  평야며,  분지다  산  없어,  계곡 없다  안개  자주 끼고,  공기 탁하다  어디,  둘러봐도  삭막 황량이다  연일,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업소만 는다  평택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배설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며 산다  사람이  사람한테 괴로우면  자연에 씻어내야 할 텐데……  헌데,  평택에도,  볼 만한 것 하나 있다  내리 강둑 가 봐라  붉은 피 콸콸콸 쏟아내는 저녁 놀  사행천 황구렁이로 빛나고  서녘, 이승 것 아닌성 싶다  평택  사람들,  그것 모른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느냐 바뻐서……     기차 여행을 떠나요 ...     어느 가을,  기차 타고  여행 떠났지  그 시절  내 삶은  한껏 푸르렀어  내 젊음은  어느덧  쓰잘데없는 일상에 소진되고  나는  잃어버린 젊음을 찾아  밖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지  차창 너머로  따라오는 풍광들,  노을, 단풍, 금파(金波)의 물결…  모두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 위에 덮치는  지난날의 단상들…  울컥 치미는  계절의 서글픔  아니,  주검을 향해 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했던가  문득,  이마의 주름을 만지며  언젠가 그곳에 피어날  저승꽃을 그리워한다        오늘 문득 김삿갓이 그리워져서...               ... 오늘은 참 하도 기분이 그래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술을 꽤 많이 마시고  여기에 글을 올리는데  문맥이 좀 안 통해도 봐주세요....  김삿갓의 본명는 김병연이다.  김병연은 향시에서 장원을 하는데...  빌어먹을, 하필 글제가  자신의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항복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걸한  사람이었까?  김병연, 의기충천한 그의 글,  자신의 조부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난도질하였을까?  집에 와 알고 보니 자신의 조부.  그것을 감추고 살아온 부모들...  김병연, 얼마나 허망했을까?  충효를 지상 최대의 명제로 알고 살아 온 조선 사람들...  조부는 국가를 배반한 불충자,  자신은 그런 자손이면서 동시에 조부를 몰아부친 불효인,  김병연은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자리를 알았을 터이다.  설사 벼슬에 올랐어도,  자신의 재주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력을 들추어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을 터.  김병연은 결국 이런 아이러니를 알고 가출을 한다.  김병연은 자신의 아픔을 술 한잔에 시 한 수로  달래면서 조선 시대, 그 형식에 치우치고  꼴값스런 사람들을 풍자하며 방랑의 길을 떠돈다.  김병연은 자신의 아픔을 아픔에서 그치지 않고  해학과 풍자로 자신을 극복한 사람이다.  사실 김병연은 대단한 시인이 아니다.  그의 시들은 어떻게 보면 말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왜 김병연이 지금까지 노래방에서까지 사랑을 받고 있는가?  그것은 김병연이 천형의 수형처럼 자신의 아픔을 짊어지고  외롭고 쓸쓸한 인생길을 가면서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으려 한 예술가, 문학가로서의  모습 때문일 터이다.  김병연은 술과 방랑, 그리고 수없는 스캔들을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풀려 한 사람이다.  요즘, 김병연 같은 사람이 곁에 산다면  그를 욕하기에 입술이 없어질 터이다.  왜냐하면 소인배들이 그런 대범한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그런 것 밖에 없으니까...  그러면서도 그런 사람들은  노래방에 가면  "방랑시인 김삿갓"을 제 목청을 다해 잘도 부른다.  헌데, 뭘 알고나 그러는지....  그 사람의 아픔을...  황당한 이야기 ...     몇 년 전의 이야기다.  아마 '6시 내고향'이 아니었나 싶다.  서해에 있는 호도라는 섬이 소개되었다.  어류와 어패류가 풍부한 섬이라고 자랑이었다.  썰물이 되자 바위 사이에 해삼 등속이 널려 있었다.  본레 텔레비전을 믿지 않는 나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 봤다.  꼭이 해산물 때문은 아니었다.  안 가본 섬이라,  그냥 한번 가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섬에 내렸다.  얼마 후, 썰물이 시작되었다.  나는 바위들을 돌았다.  어디에도 해삼은 없었다.  소라도 없었다.  내 고향 서천 비인에 가면 흔한 고동마저도 얼마 없었다.  소주가 생각났다.  해삼 파는 아줌마가 있었다.  가격을 물으니 내가 사는 평택보다도 비쌌다.  테레비에 물이 빠지면 해삼이 지천이던데요.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아줌마는 피식 웃었다.  PD가 바위 사이에 해삼을 뿌려놓고 촬영했단다.  꼭, 그래야 되나?  6시 내고향을 보면 모든 농촌이나  어촌이 즐겁고, 잘 먹고, 잘 놀고 있는 곳으로 보여진다.  우리의 농촌이나 어촌이 정말 그럴까.  젊은이들은 모두 대처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얼마나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가?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왜 젊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는가?           그저 욕심만 많아서...               며칠 전이었다.  한 후배가 술을 마시며 말했다.  "좀 재미 있게 사우. 뭔 욕심이 그리 많아요."  "그려, 난 재주가 메준데 묙심만 많아서 탈이지.."  하고는 쓰게 웃었다.  그래, 난 정말 욕심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다.  남들이면 뭔가 한가지씩 챙기고 들어앉아  폼 잡고 있을 나이쯤에 늦게 문단에 나와(만 38세)  참으로 허덕이며 여기까지 왔다.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촉박하고  그래서, 언제나 허둥지둥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소설도 그렇다.  이번에는 꼭 좋은 작품을 쓰겠다고  이를 악물고 시작하지만 써 놓고 보면 맨날 그 타령이다.  참 맥이 빠진다.  그래서 재미 있게 살아보려고 시내를 나가 보아도  재미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겨우 술 먹고 머리 아프고 속 쓰린 일 밖에는...  나는 알고 있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글 쓰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재미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가을이 온다.  나는 또 소설 비슷한 것을 쓰기 위해  자료들을 뒤적거리고 있다.  진정한 재미를 위해...       - 삶 -   ...           플라타너스를 보며            나무도 허물을 벗어야            자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검은 껍질 속에 숨어 있던            하얀 속살            너무,            아름답다           껍질을 벗는            아픔을 감수하지 않고는            그 어느 것도 성숙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에           나는,            문득,            하늘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돈의 유전(流轉)     돈이  많은 사람  돈을 지키려  평생을 허비하고  돈이  없는 사람  돈을 얻으려  평생을 허비하네  돌고  돌아  돈이라 했거늘  돈이  내 옆으로  굴러간다하여  아쉬울 것도 없고  돈이  내 앞에  멈춘다하여  좋을 것도 없네  공수레  공수거  갈 때는  모두가 빈손이거늘  조물주의  깊은 속내이거늘           가을의 끝인지 겨울의 초입인지 모를 길목을 서성이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군요.  낙엽이 떨어져 우왕좌왕하다가  길모통이에서 서성이다 비를 맞아 시체처럼 누웠습니다.  이런 날이면 잃어버린 사람들이 못견디게 그리웁지요.  이별... 사별...  모두들 어디에서 무엇들을 하고 있는지...  곧 마지막 남은 나뭇잎도 떨어지고 나목은 삭풍에 징징 울 것입니다.  이 가을이 옷자락의 끝을 감추기 전에 편지를 써요.  그리고 독한 소주에 끈끈한 낙지 발가락이라도 질겅질겅 씹으며  조금은 우울해질 필요가 있지요.  우울이라든가 고독이라든가 그런 정서는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정서가 아니겠어요.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  결실에서 죽음으로 가는 계절,  우리 조금은 이 세상의 마지막 센티멘텔리스가 되어  우울해져 봅시다.  고독해져 봅시다.  저 김현승 시인의 '마른나무 가지 위의 까마귀'처럼  절대고독을...  거기서 우리는 인간을 만나고, 신을 만날 것입니다.     양말을 깁는 여자 ...     요즘은 무엇을 꿰메 입거나 신지를 않는다.  팬티나 양말 같은 것은 빨기가 싫어서  그냥 사 입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양말에 구멍이 났다고  꿰메 신는 사람들은 거의가 없다.  그만큼 살기가 좋아졌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게을러졌다는 뜻일까.  언젠가 어떤 자리가 되어서  여러 사람과 술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꿰멘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양말을  의도적이랄만치 남의 눈에 잘 띄게 노출시키고  앉아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살기에 팍팍한 그런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임 중에서 가장 잘 사는 편에 속했다.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요즘처럼 거치레에 열중하는 사람들,  월세를 살면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별종으로 보일지 모르나  어쨌든 내 눈에는 보기 좋았다.  남편의 구멍난 양말을 꼬매는 아내,  그것을 자랑스럽게 당당히 신고 다니는 남편,  얼마나 사랑스런 모습들인가.  그가 아주 행복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술잔을 권했다.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거치레로 변해가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편리 이면에 숨은,  거치레 뒤에 숨은,  사랑과 정성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동창회에 다녀와서...       거의 40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처음으로, 파주 초등학교 58동창회 카페를  중심으로 하는, 약식 동창회에 다녀왔다.  처음은 잘 모르겠는데  자세히 보니 옛날 얼굴이 되살아 났다.  나이를 먹어도 동창은 동창인 모양이었다.  육두문자를 써 가며 곧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가도 바로 마주보며 히히,  웃는 모습이 예날의 그들처럼 참 귀엽고 천진스러웠다.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봤으면 아주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잘못하면 침소봉대하여  사건을 만들고 극점으로 치닫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 종종 그런 곳에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다.  한 해가 다가고 있다.  혹시 나에게도 묵은 감정이 있으면 툭툭 털어 버리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싶다.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께  뜻있는 망년과 희망의 새해가 되시기를 기원한다.     가짜는 가라!! ...   얼마 전, 우리 유행가에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는 노래가 있었다. 얼마나 우리 사회에 가짜가 많으면 그런 노래가 아줌마의 막춤과 함께  유행하였나 싶다.  우리 문단도 그렇다.  사실 작가나 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작품이다. 나머지는 모두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 한 시인이나 작가의 작품이 문제이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무엇이냐, 문단적 지위가 무엇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진정한 시인이나 작가는 죽고 나서 정확한 판단을 받는지도 모른다.  우리 문단 무질서는 아마도 문단 선거로 더욱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문단 임원에 "등극"하기 위해서 각종 암투와 음해와 실력행사로 그리 된 것 같다.문단은 정치판이나 비지니스의 장소가 아니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하나의 작품을 얻기 위해서 밤을 세워 피땀을 쏟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무하고, 격려하며, 채찍질을 하는 자리여야 한다.  문학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찾으려는 사람들. 임원에 오르고, 상을 사고, 목소리만 높히고, 하는 사이비들은 진정한 문학인의 자세는 무엇인가를 한번 되짚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쓸데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하나의 올바른 시의 시어를 얻기 위해,하나의 좋은 소설의 정확한 어휘를 찾아내기 위해, 밤을 세워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쓸데 없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문학을 올바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문학을 사랑하며, 자신의 혼이 깃든 작품을 얻기 위해 피땀을 흘려 밤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글을 좀 못 써도 상관없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좋은 시인이나 작가가 될 것이므로. 하지만 한번 썩은 머리와 가슴은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다.  아예 그럴 자신이 없어서, 현실적인 욕심이 앞서서,  사이비들은 목소리를 높히며 문단을 흐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진정한 문인들, 홀로 골방에 처박혀 문학의 혼을 불사르는 사람들을 경원시하거나 온갖 술수로 억누르려 든다. 이 역시 자신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이다. 하지만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은 언젠가 모두 밝혀지고 문인의 자리에서 격리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소위 "친일문학인"들에서 그 징후를 엿볼 수 있지 않은가. 역사의 심판이란 준엄한 것이다.  요즘 문인들은 도의가 땅에 떨어져 가고 있다.  나이와 문단 경력이 많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문단 경력이 많으면 많은 대로, 설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올곧은 마음으로 진정한 작품활동을 계속하는 사람은, 예우를 해줘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천시하는 데 누가 우리를 존중해 줄 것인가. 문단은 제대로 된 작품 하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높히는 "가짜"들의 판이 되어 가고 있다. 참으로 가치관이 전도되어도 한참이다.  문단 임원에 "등극"하기 위해서  교활한 협잡과 중상모략과 아전인수식의 자기 당위성을 강조하며, 온갖 물을 흐리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문학 발전을 위해 자중해야 할 터이다.  그래서 저 부여 신동협 시인의 피맺힌 절규  "진짜만 남고 가짜는 가라"라는 메시지가  더욱 가슴에 남는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달력을 받고  새해에 대한 소망으로  가슴이 수박만하게 부풀었었는데...  벌써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제 가슴은 이제 절벽이다 못해  푹 파여져 있는 형국입니다.  언제나  산다는 게 그런 것이라고  자위해 보지만  바람 빠진 웃음만 풀풀 나오는군요.  산다는 게  알고 보면  저승문을 향해 한 발 한 발 걷는 것인데...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이 한 해를 허둥거리며 달려왔는지...  가끔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여행을 떠나 저 산하에  내 그림자를 비춰보고 싶건만...  이래저래 모든 삶의 끈들은  나를 놔주지 않고  또 그렇게 내년도 보내게 될 것인가...  나는 벌떡 일어나고 싶어요.  그리고 나를 속박하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군요...      새해에 눈이 펑펑, 서설이라고 하죠. ...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아  흰눈이 펑펑 왔네요.  이런 눈을 우리는 서설이라고 하죠.  전에는 풍년이 든다고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강아지도  컹컹 제 목청을 다해 뛰며  참 좋아했지요.  그래서 서설이라고 했죠.  올해도 어느 곳에서나  풍년이 들어 우리들  얼굴 좀 폈으면 좋겠네요.      겨울은 부활을 준비하는 상서러운 계절 ...   폭풍은 대기를 정화하고  해일은 바다 속을 깨끗이 하고  폭우는 대지를 대청소하며  연약한 생물은 도태시키고  강한 생명은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인데...  강추위 역시 약한 생명과 해충은 죽이고  강한 생명은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자연의 지략일텐데...  우리는 겨울을 죽음의 계절이라고 생각해야 되는가요?  이 겨울에 우리는 강한 인내를 배우고  새로운 탄생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여, 내년 봄의 부활을 꿈꾸는 그런 찬란한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추위에 웅숭그리며 떨지 말고 가슴을 활짝 펴고  저 대지로 나가 대지의 소주처럼 맑은  그리고 매섭도록 차거운, 삭풍을 폐부 깊숙이  넣어 봅시다. 얼마나 맑고 신선할까요...?        뱀띠, 겨울 생 ...     우리 선조들이 정해놓은 12지간이 어쩌면 정말  우리 삶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뱀띠 12월생이다.  뱀으로 따지면 동면에 들었을 때가 아니던가.  그래서 더위를 많이 타는 모양이다.  여름이 정말 싫다.  젊었을 때는 혈기로 산으로 바다로 놀러 다니고  교직에 있을 시에는 방학이 있어 좋았는데.  요즘엔 함께 놀러갈 사람도 없고 매일 방학이다.  어디 가고 싶어도 낮의 그 섬쩍지근한 태양이 두렴다.  내 피가 특별히 맛있는 모양이다.  밤이 되면 모기가 사정없이 괴롭힌다.  게다가 나는 땀을 많이 흘린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다.  겨울에도 조금만 더운 데 가면, 또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을 뻘뻘 흘린다. 민망하다.  의심을 받을 상황이 되면 괜히 땀을 흘려 역시 자신과 남을 민망하게 한다.  이 빌어먹을 여름 언제나 가려나,  오늘 비나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지금도 방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머리가 멍해 아예 글은 쓰지도 않는다.  멍한 머리로 써놓은 작품을 시원해진 다음에 고치려면  더 힘들기 때문이다.  내게는 정말 빌어먹을 여름이다.  그런데 여기에 열심히 글을 쓰는 분들을 보면 존경, 감탄해 마지 않는다.  나는 겨우 이런 낙서 비슷한 글이나 쓰고 있는데...  아우튼 이러다 시원한 바람이 나고,  그러면 또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겠지...         사회인의 자세 ...     사회인으로서 우선 세계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해동포는 모두 한 인류라는 의식을 갖고 서로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남는 부분은 나눠 가져 도와가며 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요구되는 것이 민족관, 국가관일 터이다. 우리는 단일 한민족으로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살아온 민족이다. 그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가정이나 직장에서 나 하나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소아적인 자세에서 벗아나, 대아적인 자세를 갖고 나보다는 남을 위해, 그리고 소속된 집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에...   살아가는 동안에  저  들판  가득,  함박눈 덮어  아무 생명 보이지 않아  내  마음  어둡기만 한데  진정한  내 마음의  봄,  언제 오려나  하지만  나는,  눈치채고 있지요  저 눈속에  벌써 대지의 생명 꿈틀거리며  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눈물인가요. 눈의 눈물인가요. ...       눈이 오네요 저 하늘 멀리서 눈이 내려요 엄마는 항상 눈을 좋아했는데 나도 눈이 좋아하는 줄 알고 보내주네요 저 먼 하늘나라에서 환하게 웃으며... 그런데 내 눈에서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나요 이것은... 눈물인가요 눈의 물인가요 
992    술타령 모음 댓글:  조회:5653  추천:0  2015-04-19
            술(酒)의 철학(주객들의 술타령)     *누구나 술을 마시게 되면 곧잘 솔직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그 솔직함이 좋아서 *흰눈이 소록소록 내리는 날 밤 뒷골목 포장마차의 목로에 앉아 고기 굽는 희뿌연 연기를 어깨로 넘기며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지 모른다.   *그들이야말로 인생의 멋과 낭만을 아는 사람이 아닌가?             술이란?..                        *인생 강의실 - 술집 *고전학 강의실 - 막걸리집 *서양학 강의실 - 양주집   *사장은- 여자에 취해 정신이 없고 *전무는- 술에 취해 정신이 없고 *계장은- 눈치보기 정신이 없고 *말단은- 빈 병 헤아리기 정신이 없고 *마담은- 돈 세기에 정신이 없다.       술에 취하면   1단계 - 신사, 2단계 - 예술가, 3단계 - 토사, 4단계 - 개           1 병은 ~~~ 이선생 2 병은 ~~~ 이 형 3 병은 ~~~ 여보게 4 병은 ~~~ 어~이 5 병은 ~~~ 야 ~ ! 6 병은 ~~~ 이새끼 7 병은 ~~~ 병 원.         *술은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술은 언제나 수심이며, 수심(愁心)은 언제나 술인고 술 마시고난 후 수심인지, 수심난 뒤 술 인지 아마도 술 곧 없으면 수심 풀기 어려워라                     *술에 취하는 형태는*         *초전박살형, 후전박살형, 전천후요격기형. 삼배(三杯)이면 대도(大道)로 통하고, 말 술이면 자연에 합치된다. 애주가는 정서가 가장 귀중하다.     *얼큰히 취하는 사람이 최상의 술꾼이다. 술은 최고의 음식이며 최고의 문화.술은 비와 같다. 진흙 속에 내리면 진흙을 어지럽게 하나, 옥토에 내리면 그곳에 꽃을 피우게 한다. *술잔의 마음은 항상 누룩선생에 있다. 술은 백약의 으뜸이요, 만병의 근원이다.             *첫 잔은 -술을 마시고, *두 잔은 -술이 술을 마시고, *석 잔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        *청명해서 -------한 잔 *날씨 궂으니-----한 잔 *꽃이 피었으니---한 잔 *마음이 울적하니-한 잔 *기분이 경쾌하니-한 잔         *술은 -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사랑은- 자유를 빼앗아 버린다. *술은 - 우리를 왕자로 만들고 사랑은 - 우리를 거지로 만든다.    *술과 여자, 노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평생을 바보로 보낸다. 인생은 짧다.   그러나 ~     *술 - 잔을 비울 시간은 아직도 충분하도다. *술 - 속에 진리가 있다. *술 - 은 사람의 거울이다. *술 - 잔 아래는 진리의 여신이 살아 있고 기만의 여신이 숨어 있다. *술 - 속에는 우리에게 없는 모든 것이 숨어 있다. *술 - 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그것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진리고, 전부이니라 나는 입에다 잔을 들고 그대 바라보고! 한숨 짓노라! *까닭이 있어- 술을 마시고 *까닭이 없어- 술을 마신다.        *그래서 오늘도 마시고 있다. 주신처럼 강열한 것이 또 있을까. *그는 환상적이며, 열광적이고, 즐겁고도 우울하다.   *그는 영웅이요, 마술사이다.         *그는 유혹자이며, 에로스의 형제이다.        *공짜 술만 얻어 먹고 다니는 사람은 -공작. *술만 마시면 얼굴이 희어지는 사람은-백작. *홀짝홀짝 혼자 술을 즐기는 사람은 -자작. *술만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은-홍작.             *혹자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는 술, 돈, 여자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신은 단지 물을 만들었을 뿐인데                           *우리 인간은 술을 만들었지 않는가? *술이 없으면 낭만이 없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사리를 분별할 수 없다.!   *한 잔은- 건강을 위하여, *두 잔은- 쾌락을 위하여, *석 잔은- 방종을 위하여, *넉 잔은- 광증을 위하여.     여러분 이런 모임, 저런 모임에 과음 폭음 자제하시고 이선생~ 이 형까지만, 이새끼는 아니되옵나니 부디 우리 인연을 다할 때까지 건강하시라요!!!     
991    <꽃씨> 시모음 댓글:  조회:4019  추천:0  2015-04-19
  + 꽃씨와 도둑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피천득·수필가, 1910-2007) + 씨앗 속에는 씨앗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어 작은 점 하나가 큰 나무가 되나. 씨앗 속에는 엄마가 그려 준 설계도가 들어 있지. 햇살 일꾼 바람 일꾼 물 일꾼 흙 일꾼이 와서 뚝딱뚝딱 만들 때 정성을 다해 만들라는 부탁 편지도 들어 있지. (백무산·시인, 1955-) + 꽃씨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딱딱한 땅을  뚫게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세상을 물들이는 꽃이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정말 정말 조그마한 자기 몸이 꽁꽁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리란 걸 (안오일·아동문학가) + 꽃씨 까만 꽃씨에서 파란 싹이 나오고. 파란 싹이 자라 빨간 꽃 되고. 빨간 꽃 속에서 까만 씨가 나오고.  (이태선·목사이며 아동문학가) + 꽃씨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서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가 숨어있다 (최계락·아동문학가) + 나팔꽃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정호승·시인, 1950-) + 분꽃 씨처럼  만두 껍질 같은 씨앗들의 옷을 살짝 만지면  더 야물어진 까만 꽃씨가  톡  톡  떨어집니다.  꽃씨 속의 하얀 가루를 손바닥에 모아서  친구들의 손등에 발라 주며  소꿉놀이를 합니다.  까만 꽃씨 속에는  하얗고 보드라운 분가루가 있어  나는  꽃씨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예쁜 꽃을 피워 꽃밭을 만드는 꽃씨처럼  나는  친구들의 마음에 고운 화장을 해주고 싶습니다.  (박명자·아동문학가, 1940-) + 마음씨  모나지 않은  꽃씨 같아야 한데요.  너와 나 사이  따스함 묻어나면  연한 새싹 돋아나는  마음씨.  흙이  봉숭아 꽃씨 속에서  봄을 찾아내듯  마음씨 속에서  찾아내는 동그라미.  가슴 깊이 묻어 두면  더 좋데요.  (오순택·아동문학가, 1942-) +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 온 뒤의 햇빛 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 그 티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 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방  꽃 속에 있는  층층계를 딛고  뿌리들이 일하는  방에 가 보면  꽃나무가 가진  쬐그만  펌프  작아서  너무 작아서  얄미운 펌프  꽃 속에 있는  층층계를 딛고  꽃씨들이 잠들고 있는  방에 가 보면  꽃씨들의  쬐그만 밥그릇  작아서  작아서  간지러운 밥그릇  (오규원·시인, 1941-) + 동글동글 세상의 모든 씨앗들은 동글동글하다 그 작은 동그라미가 움터 파란 잎새들이 돋고 세상의 어느 모퉁이를 밝히는  방실방실 꽃들이 피어난다. 세월의 강물에 깎이고 깎인  조약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가 손 같은 동그란 조약돌 하나  가만히 만지작거리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 없고 평화의 파도가 밀려온다.    흐르는 세월의 강물 따라 이 마음도 날로 동그랗기를.... (정연복, 195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