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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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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    詩의 病 댓글:  조회:4196  추천:0  2015-04-13
  詩の病(やまい 시의 병 -                                   本多 寿(혼다 히사시)    詩を書く人からも、書かない人からも受ける質問がある。 시를 쓰는 사람에게도 쓰지 않는 사람에게도 받는 질문이 있다.  「なぜ詩を書き始めたのですか?」「どうして詩を書くのですか?」 ‘왜 시를 짓기 시작하셨는지요?’  ‘왜 시를 쓰십니까?’  この質問は、なかなか答えるのが難しい。この質問を受けると私の頭の中では、「どうして詩を書き始めたのだろう?」「どうして詩を書くのだろう?」という自問が始まる。 이 질문은 좀처럼 답하기가 어렵다. 이 질문을 받으면, 내 머리 속에서는 ‘왜 시를 짓기 시작했을까?’ ‘왜 시를 쓰는 걸까?’ 하는 자문이 시작된다.  しかし、いくら自問自答しても、これが決定的な答えだという答えは見つからない。 그러나 아무리 자문자답을 해도 이렇다 할 결정적인 답은 발견되지 않는다.  そこで、「なぜか分からないうちに詩の病にかかり、未だに治らないので書き続けるしかないのです。死ななければ治らない病です」と答えることにしている。 그래서, “왠지 모르는 사이에 시병에 걸려 아직까지 낫지 않아서 계속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죽지 않으면 낫지 않는 병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기로 했다.  すると、詩を書かない人は首をかしげて変な顔をするが、詩を書く人は皆一様に納得した顔をする。私と同病なのだ。つまり、詩を書く人は死ななければ詩を書くことをやめない、あきらめの悪い人間なのだ。いや、こう言っては申し訳ない。 그러면,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묘한 표정을 짓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모두 하나같이 납득하는 얼굴을 짓는다. 나와 같은 병인 것이다. 즉 시를 짓는 사람은 죽지 않으면 시 짓기를 관두지 못한다. 포기가 서툰 인간인 것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미안지.  詩を書く人は、どうやら一生を台無しにしても、詩を書く覚悟を持っているらしい。たった一篇の詩と一回きりの人生を交換してもいいと純粋に思っているらしい。 시를 쓰는 사람은 일생을 망치더라도 시를 쓸 각오 되어 있는 듯하다. 단 한편의 시와 한번뿐인 인생을 바꾸어도 좋다며 순수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もちろん、私もそう思っている。そして思う。詩の病は、生の病なのだと。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시병은 삶의 병이라고.  人間、死ぬためには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生きないで死ぬということはありえない。人間、オギャーと生まれた以上、死ぬまで生きなければ死ねない。 인간은 죽기 위해서는 살아야 한다. 살지 않고 죽을 수는 없다. 인간은 응애~하고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살지 않으면 죽을 수 없다.  こうして考えてくると、生きるということも病なのだ。母体に生命が宿る瞬間、死もまた宿るのだ。遺伝子の構造が二重螺旋になっているように、生と死も二重螺旋になっているのだ。 이렇게 생각해보면 산다는 것도 병인 거다. 어머니 몸 속에 생명이 머무르는 순간, 죽음도 또한 머무르는 거다. 유전자 구조가 이중 나선이 되어 있듯이 생도 사도 이중나선이 되어 있는 거다.  したがって、生と死は一対であって別々に存在することはないのである。 따라서 생과 사는 하나이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そして、詩を書くということは、この生と死に深く関わることであることから、やはり 死ななければ治らない病なのである。 그리고 시를 짓는다는 것은 이 생과 사에 깊이 관여하는 것이므로, 역시 죽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 병인 거다.  それにしても、詩の病の病原菌はいったい、いつ、どこから、どうして私に侵入したの だろうか。 그렇다고 해도, 시병의 병원균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 왜 내게 침입했단 말인가.  それを、どんなに説明しても完全な感染経路を解明できるわけではないが、まあ、心あたりがないわけでもない。 그걸 어떻게 설명해도 완전한 감염경로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 가는 데가 없는 건 아니다.  というのは、私の長兄は詩人だったからである。末っ子の私と十五歳違いであった。 이유는 내 큰 형이 시인이기 때문이다. 막내인 나와는 15살 차이가 난다.  高校生になった十五歳の春、父が、家畜用の藁を保管する農業倉庫の二階の片隅に勉強部屋を作ってくれた。机を置き、布団を敷けるだけのスペースだった。そして、その部屋は長兄の部屋と障子一枚で仕切られただけのものだった。 고등학생이던 15살 봄, 아버지가 가축용 짚을 보관하는 농업창고의 이층 한 켠에 공부방을 만들어 주었다. 책상을 놓고 이불을 덮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방은 큰 형의 방과 장지문 한 장으로 구분만 되어진 것이었다.  しかし、消防士だった長兄は二十四時間勤務で一日置きの出勤だったから、私は一日置きに一人になれた。一人になると、隣の部屋が気になる。覗いてみると、本棚には私に見たことも聞いたこともない本が並んでいた。 그러나 소방수였던 큰 형은 24시간 근무로 하루 걸러 출근을 했기 때문에, 나는 하루 걸러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니 옆 방이 궁금해 졌다. 내다 보니 책장에는 내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それまで漫画か教科書ぐらいしか読んだことのない私だったが、長兄の留守に本棚を覗くというスリルも手伝って本を読み始めた。面白いというより一人だけの秘密が出来たというのが正しいだろう。そんな盗み読みの中で、ある日、兄の書いた詩に出会った。 그때까지 만화나 교과서 정도밖에 읽은 적이 없었는데 큰 형의 부재에 책장을 엿보는 스릴도 한몫 거들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다 라기보다는 혼자만의 비밀이 생겼다는 편이 나을지도. 그런 훔쳐 읽던 중인 어느 날, 형이 쓴 시를 만났다.  これは、他のどの本の盗み読みよりもスリルがあった。兄弟でありながら、知らない兄がいた。兄が詩人であったということに対する狼狽。そして、兄の心の秘密を覗くやましさ。 이것은 다른 어떤 책을 훔쳐 읽는 것보다도 스릴이 있었다. 내 형이면서도 알지 못하던 형이 있었다. 형이 시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당황스러움. 그리고 형의 마음을 엿보는 꺼림칙함.  詩人といえば、学校の教科書に出てくる有名な詩人しか知らない私にとって、詩人が身近に存在することの不思議。私は、兄の詩だけでなく、本棚にあるリルケやランボーなど外国の詩人の作品をはじめ、今まで知らなかった日本の現代詩人たちの作品を読みあさった。面白かった。ただ単に兄の本棚を除くスリルよりも、詩を読むスリルのほうが数倍面白かった。そのうち、わたしの中に不遜な憧れが生まれた。 시인이라면,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시인밖에 모르던 나에게 있어서, 시인이 바로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묘함. 나는 형의 시뿐만 아니라 책장에 있는 릴케나 랭보 등의 외국 시인의 작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몰랐던 일본의 현대 시인들의 작품을 읽어 들였다.  詩人になりたい、という憧れだ。同じ父母から生まれた兄弟なのだ。兄に詩が書けて私に書けないはずがない、と思いはじめたとき、私に詩の病原菌が侵入したのだろう。 시인이 되고 싶은 동경.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다. 형이 쓸 수 있다면 나도 못 쓸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에게 시의 병원균이 침입한 것일 게다.  しかし、憧れだけで詩が書けるわけではない。でも、私は密かに詩を書き始めた。そして、紆余曲折はあるが現在も書き続けている。 그러나 동경만으로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남몰래 시를 쓰기 시작했고 여러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현재도 계속해서 시를 쓰고 있다.  ただ、思い起こせば二十一歳のときに原因不明の病気で下半身不随になったときの経験と、そのときの聖書の読書体験が、私の詩作を決定づけたと思う。 돌이켜보면 21살 때, 원인 모를 병으로 하반신불수가 되었을 때의 경험과 그 당시의 성서읽기 체험이 나의 시작(詩作)을 결정지었다고 생각한다.  私は二十六歳を過ぎてから詩の雑誌に投稿を始めた。詩を書くことで生の意味を探り、詩を書くことで自分自身の体験や経験の内にある悲しみや痛み、怒りや喜びと向き合うことを学んだ。つまり、生を学び、生を問うことの意味深さに取り憑かれたのである。 나는 26살을 넘기고서부터 시의 잡지에 투고를 시작했다. 시를 지어서 생의 의미를 찾고, 시를 지어서 자기자신의 체험이나 경험 속에 있는 슬픔과 고통, 분노나 기쁨과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즉 삶을 배우고 삶을 묻는 의미의 깊이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だから、本当に詩の病にかかったのは二十六歳を過ぎてからだろう。そして、詩を書けば書くほど、生と死が密接不可分のものであることを思い知ることになった。 때문에 정말 시병에 걸린 것은 26살을 지나서부터일 게다. 그리고 시를 쓰면 쓸수록 생과 사가 밀접불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かくして詩の病も、生の病も、結局は死の病なのだ。死ななければ治らないのだ。 결국 시병도 삶의 병도 결국은 죽음의 병인 거다. 죽지 않으면 낫지 않는 거다.   生きている限りは終わらない何か、私自身の経験や予測を超える何ものかによって、生も詩も促しを受け続けているらしい。この私の存在の外からくる促しに、ついに自分自身を委ねていくしかないと思っている。 살아 있는 한, 끝나지 않는 무언가 내자신의 경험이나 예측을 넘는 뭔가에 의해서, 생도 시도 계속 재촉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나의 존재의 외부에서 오는 재촉에 결국 자기자신을 맡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こう書いてくると、詩を書くということを深刻に考えていると思われるかも知れないが実は最近、詩の病と仲良くして、詩の病を楽しもうと思いはじめている。 이렇게 쓰고 나면, 시를 쓴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되어질 지도 모르나, 사실은 최근 시병과 사이가 좋아져, 시병을 즐기려 하고 있다.      
949    <축구> 시모음 댓글:  조회:5952  추천:0  2015-04-13
  + 축구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이토록 치열할 수 있을까  침묵과 비명만이  극치의 힘이 되는  운동장에 가득히 쓴 눈부신 시 한 편  90분 동안  이 지상에는 오직 발이라는  이상한 동물들이 살고 있음을 보았다  (문정희·시인, 1947-) + 공 이야기 날개 없이 45분간의 비상 눈물 없이 45분간의 번민 태양이 이글거리는 시간 수평선들 휘감기고 무수한 입술의 인간 육신이  빚어낸 듯 관중석에선 고통도 낙담의 두려움도 들려오지 않는다 적도 형제도 포옹케 하는 최후 영웅의 무르익음 (카티 라팽·프랑스 여류시인) + 절대로  결코 클럽의 미친 서포터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스위퍼에게 늑골과 비골을 강타당해보지 않았다면 고통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진정한 동네축구를 해보지 않았다면 즐거움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추가 시간 때문에 게임에 져보지 않았다면 눈물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뒤에서 태클당한 동료 때문에 악다구니를 써보지 않았다면 연대감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골문을 향해서 날쌔게 돌진해 보지 않았다면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가차없이 차가운 운동장 바닥에 쓰러져 보지 않았다면 수치심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프리킥 벽을 쌓아보지 않았다면 우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방문 경기에서 승리의 구보를 해보지 않았다면 오르가슴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팀을 이루어 경기를 해보지 않았다면 좌파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경기장에서 "죽어라 검둥이"라는 외침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혼자 승리한 것으로 착각한 경험이 없었다면 이기심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윙으로 뛰어보지 않았다면 주변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홈팀 심판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아보지 않았다면 불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슬럼프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불면증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자살골을 넣어보지 않았다면 증오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친구야, 네가 결코, 정녕, 볼을 차보지 않았다면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월터 사아베드라·아르헨티나 축구해설자이며 시인)  + 날개가 없어도 공은 난다 얼마나 넓은 운동장인가 크기를 잴 수도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둥근 공들이 떠다니는 지구는, 그 안에 좁쌀보다도 작은 지구를 나는 너무도 힘들게 발로 굴리며 날마다 동동거리며 산다 알고 보면 나는 공(球)에서 나서 공(空)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데 때리거나 던지거나 차거나 공을 다루는 재주가 아예 없는 내가 0이 주 개 붙은 2002년 6월 느닷없이 사람들에 치이며 광화문 거리를 비집고 들어가 대애안∼미인구욱! 엇박자 손뼉을 치고 고함을 질러댔다 월드컵 4강, 독일과 한 판 붙을 때는 운 좋게 상암구장 목 좋은 자리에서 머리 흰 붉은 악마가 되어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돼지오줌깨나 새끼줄 뭉치를 차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우리 젊은이들이 겁도 없이 월드컵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이제 두 달도 안 남은 6월을 기다리게 됐고 다시 한 번 거리에 나가 악마들과 손뼉을 치며 발을 굴리고 싶은 것이다. 날개가 없이도 잘도 나는 바람둥이 공을 두고 헛발질도 못하는 내가. (이근배·시인) + 똥볼 축구시합 하러 운동장으로 나갈 때  내가 코딱지를 파먹으면서  개미 똥구녁 맛 같다고 하니까  주근깨가 다닥다닥한  여자 부반장 복실이가  멥쌀눈을 흘겼다  나는 동해물팀 공격수  등번호 9를 달고 냅다 달렸다  찬스를 잡아 슛을 했는데  아뿔사! 똥볼이 됐다  복실이가 메롱메롱 놀렸다  날아가던 황새가  똥볼에 놀라 물똥을 찍 쌌다  동해물! 장백산!  배고픈 아이들이  악머구리떼처럼 소리쳤다  오늘 축구시합은  복실이 때문에  재수 옴 붙었다  동해물팀이  3대 빵으로 깨졌다  (오탁번·시인, 1943-) + 로스 타임 내 내부에 진흙탕에 더러워진 손수건 같은 운동장 하나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공기가 빠진 축구공이 하나 방치된 채로 있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상한 과일처럼 풀밭에서 굴러온 공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우리 개구쟁이들은, 그러나 쇠약해진 동물을 못살게 굴며 올가미에 몰아넣듯이 골을 향해 매일매일 공을 차며 놀았다 그날들의 뒤엉켜 뛰어 돌아다니던 잔인하면서도 쾌활한 그림자가 배어있는 방과 후의 운동장 언제나 머리 위에 있어 스스로는  그림자를 지니지 않는 것 우리들이, 진정 발로 차고 싶었던 건 황금의 태양이  아니었을까 눈을 감으면  두 개의 기둥으로 세워진 골대가 그림자와 더불어 기울고 있다 저편 아득히 풀숲이 그늘져 있다 (혼다 히사시·일본 시인) + 축구하는 시 시는 구르는, 잔디 위에 인생을  굴리는 게임 같은 것. 악운을 거스르기 위해 맹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약속처럼, 시는 큰 화재 같은 것. 그곳에서 신의 사자(使者)들이 모든 믿음을 배제한 채 오직 스타디움의 강령에 의해 합창으로 사원을 불사르는 곳. 시는 세 개의 기둥으로 된 활. 마치 11개의 발자국으로 영광과 최고형의 징벌의 지옥을 넘나드는 기요틴 같은 것. 시는 둥근 신성을 케이블로 연결한 눈물 같은 것. 종국에는 수도 없는 페인팅의 밤으로 아이들의 웃음으로 끝나는 어떤 것. 시는 무한한 실수에 태연한 채, 울타리도 없는 운동장에서 골 연습에 열중하는 아저씨 바로 당신, 아니면, 아주머니 바로 당신. 시는 바로 완곡어법 없이 굴러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래서 때가 되면 우리 모두로 하여금 올림픽의 성취를 느끼게 하는 것. (호세 루이스 킨테로 카리요·멕시코 시인)  너도 나도 붉은색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하고, 오로지 하나의 패션으로 만들어 준 것은 정치도 경제도 문학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축구이다.     "얼마나 넓은 운동장인가/크기를 잴 수도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둥근 공들이 떠다니는 지구는,/그 안에 좁쌀보다도  작은  지구를/나는 너무도 힘들게 발로 굴리며/날마다 동동거리며 산다/알고 보면 나는 공(球)에서  나서/공(空)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데"(이근배, '날개가 없어도 공은 난다' 중).     축구는 이처럼 우리 삶을 성찰하는 시가 되었다. '시의 문법, 축구의 문법'은 축구에 대한 세계인의 교감과 시적 관심을 압축하고 있다. 이근배 이성부 오탁번 문정희 이장욱 등 한국시인 다섯 명을 비롯해 프랑스, 멕시코, 아르헨티나, 일본, 독일  시인들의 축구에 관한 시. 축구와 문학의 상관관계를 다룬 시들.     무엇보다 외국 시인들이 시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대중의 서사시로, 삶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놀이로, 유년의 원형적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여류시인 카티 라팽은 "날개 없이/45분간의 비상/눈물 없이/45분간의 번민/태양이 이글거리는 시간 수평선들 휘감기고/무수한 입술의 인간  육신이  빚어낸 듯/관중석에선 고통도 낙담의 두려움도 들려오지 않는다/적도 형제도 포옹케  하는/최후 영웅의 무르익음"('공 이야기' 중)이라며 축구경기를 인생의 서사시로  엮어낸다.     멕시코 시인 호세 루이스 킨테로 카리요는 "시는 구르는, 잔디 위에/인생을  굴리는 게임 같은 것"이라거나 "시는 바로 완곡어법 없이 굴러가는/법을  배우는  것. 그래서 때가 되면/우리 모두로 하여금/올림픽의 성취를 느끼게 하는 것"('축구하는 시' 중)이라며 축구를 시로 승화시켰다.     일본 시인 혼다 히사시는 "가난했던 소년 시절/상한 과일처럼/풀밭에서 굴러온 공은/분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중략)/언제나 머리 위에 있어/스스로는  그림자를 지니지 않는 것/우리들이, 진정 발로 차고 싶었던 건/황금의 태양이  아니었을까"('로스 타임' 중)라며 축구를 통해 유년시절의 꿈을 추억한다.     독일 시인 라인하르트 움바하는 "멍청한 공이 회전을 시작합니다 기류를 뚫고요./우린 모르겠습니다, 그 모두가 어디에서 왔는지./마냥 불가해합니다, 우주보다  더요/그런데 갑자기 수천 명이 욕하는 소리 들려 옵니다,/움짓움짓 골기퍼 뒤에서  놓인 것을요, 공요"('멍청한 긴 패스' 중)라며 자살골을 넣은 선수가 야유를 받는  상황을 풍자적 어법으로 그렸다.     축구에 대한 시와 노래가 들어 있는 시집 '공의 업적'을 낸 바 있는 아르헨티나의 축구해설자이자 시인 월터 사아베드라는 "결코 클럽의 미친  서포터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중략)/결코 뒤에서 태클당한 동료  때문에 악다구니를 써보지 않았다면 연대감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중략)/결코  경기장에서 '죽어라 검둥이'라는 외침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절대로' 중)라며 공을 차보지 않고는 인생을 알 수 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출처] "축구는 단순 스포츠 아니라 대중의 서사시" |작성자 Sdragon  
948    100세 할매 일본 시인 - 시바타 도요 댓글:  조회:4750  추천:0  2015-04-13
시바타 도요               무심코 한 말이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이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말을 고치지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외로워지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족 같은 구름 지도 같은 구름 술래잡기에 한창인 구름도 있다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해질녘 붉게 물든 구름 깊은 밤 하늘 가득한 별 너도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와 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 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 지 열 여덟 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나,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 하지 않아 아흔 여덟에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나이 아흔을 넘기며 맞는 하루하루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안부전화 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 제각각 모두 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하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희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했다고 기쁜 듯 얘기했던 적이 있어 그 후로 정성껏 아흔 일곱 지금도 화장을 하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 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 뵐 때마다 돌아오던 길의 괴롭던 마음 오래오래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 구름이 몰려오던 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지금도 또렷한 기억     뚝뚝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 돼   과감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단숨에 눈물을 흘려 버리는 거야   자, 새 컵으로 커피를 마시자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잊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람 이름 여러 단어 수많은 추억 그걸 외롭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왜일까 잊어 가는 것의 행복 잊어 가는 것에 대한 포기 매미 소리가 들려오네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어 있으면 안 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나서 뭔가를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 그리고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난 불행해.......”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 해가 비출 거야         시바타 도요는 올해 100세 할머니이다. 도요가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둔 100만엔을 털어 첫시집 '약해 지지마'를 출판 100만부가 돌파되어 지금 일본열도를 감동 시키고 있다.   1911년 도치기시에서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난 도요는 열 살 무렵 가세가  기울어져 갑자기 학교를 그만 두었다. 이후 전통 료칸과 요리점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더부살이를 했다. 그런 와중에 20대에 결혼과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33세에 요리사 시바타 에이키치와 다시 결혼해 외아들을 낳았다. 그 후 재봉일 등 부업을 해가며 정직하게 살아왔다. 1992년 남편과 사별한 후 그녀는 우쓰노미야 시내에서 20년 가까이 홀로 생활 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말한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들어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인간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 했네.   배운 것도 없이 늘 가난했던 일생. 결혼에 한번 실패 했고 두 번째 남편과도 사별한 후 20년 가까이 혼자 살면서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던 노파. 하지만 그 질곡 같은 인생을 헤쳐 살아오면서 100년을 살아온 그녀가 잔잔하게 들려주는 얘기에 사람들은 감동을 먹고 저마다의 삶을 추스르는 힘을 얻는다. 그 손으로 써낸 평범한 이야기가 지금 초 고령사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일본인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제 그녀의 위로가 현해탄을 건너와 한국사람들에게 그리고 미국에도 전해져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   ...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삶을 생각나게 하는글중에서'   2011年 9月 __100歲__를 記念하여、 第2詩集 를 출판하였다.       첫 시집   무심코 한 말이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이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말을 고치지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 그리고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난 불행해.......”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 해가 비출 거야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외로워지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족 같은 구름, 지도 같은 구름 술래잡기에 한창인 구름도 있다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해질녘 붉게 물든 구름 깊은 밤 하늘 가득한 별 너도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와 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 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 지 열 여덟 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나,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 하지 않아 아흔 여덟에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나이 아흔을 넘기며 맞는 하루하루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안부전화 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 제각각 모두 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하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희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했다고 기쁜 얘기했던 적이 있어 그 후로 정성껏 아흔 일곱 지금도 화장을 하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 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 뵐 때마다 돌아오던 길의 괴롭던 마음 오래오래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 구름이 몰려오던 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지금도 또렷한 기억   뚝뚝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 돼 과감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단숨에 눈물을 흘려 버리는 거야 자, 새 컵으로 커피를 마시자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잊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람 이름 여러 단어 수많은 추억 그걸 외롭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왜일까 잊어 가는 것의 행복 잊어 가는 것에 대한포기 매미 소리가 들려오네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어 있으면 안 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나서 뭔가를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   만 98세에 펴낸 시집이 160만부 가까이 팔리는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일본 할머니 시인 시바타(柴田) 도요가 20일 향년 101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시바타 할머니의 장남 시바타 겐이치는 고인이 이날 오전 0시 50분께 도쿄 북쪽 우쓰노미야(宇都宮)시 자택 부근에 있는 사설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장남은 "(어머니가) 정말 평화롭게 고통없이 가셨다"며 "어머니는 100세 때까지 계속 시를 쓰셨다. 원기는 있으셨지만 지난 반년 간은 걸을 때 부축을 받아야 했다"고 전했다.     시바타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취미였던 일본 무용을 할 수 없게 돼 낙담해 있다가 외아들의 권유로 92세 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산케이신문 1면 최상단에 위치한 '아침의 시' 코너에 그녀의 시가 소개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지난 2009년 10월 그는 99세의 나이에 첫 시집 '약해지지마'를 자비를 들여 출판했다.  1만부만 넘어도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일본에서 시바타 할머니의 시집은 158만부나 판매됐다.     [출처] 약해 지지 마 - 시바타 도요 시 모음|작성자 서울별빛
947    로동자시인 - 박노해 댓글:  조회:4929  추천:0  2015-04-12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첫마음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 있는 벗들에게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 있다.  첫 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우리의 소원은 부자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올해도 농사짓는 것이다  허리 숙여 불볕이랑을 기며  태풍 장마에 애간장을 졸이며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일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올봄에도 내 땅에 씨뿌리는 것이다  누가 내 가난한 소망을 가로막는가  누가 내 소박한 봄날을 깨뜨리는가  누가 사람을 먹여 살려온 이 들녘에  사람을 죽이는 전쟁기지를 세우려 하는가  너희가 무력으로 내 땅을 강점하고  너희가 총칼로 내 봄을 짓밟는다면  이제 우리는 나라도 없다  이제 우리는 정의도 없다  미군의 민주주의  미군의 안보  미군의 권리에  내 땅에서 울부짖고 쓰러지고 쫓겨나는 나라라면  나라도 없는 우리는 이제부터 평화의 독립군이다  농사를 내려놓고, 삽도 호미도 내려놓고,  먼저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  쫓겨난 빈손으로 촛불을 들고  너희들의 미사일  너희들의 전투기  너희들 탐욕과 전쟁의 마음을  내 안에서 조용히 불사르겠다  불살라, 이 새싹같은 촛불을 들고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저 우는 들의 눈물을 기름부어  너희들 무기의 어둠을 불사르겠다  우리들 인간의 봄을 시작하겠다  이제 나라도 정의도 없는 우리는  미군의 총칼에 울부짖고  미군의 폭력에 피흘리는  지구마을 어린 것들을 보듬어 안고  국경없는 평화의 봄을 꽃피우겠다  이 들녘에 떠오르는 아침해는  누구도 홀로 가질수는 없듯이  이 들녘에 차오르는 봄은  누구도 홀로 맞을 수는 없듯이  대추리 도두리에도  전쟁의 바그다드에도  새만금에도  쿠르디스탄에도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어야 한다  아아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길잃은 날의 지혜   큰 것을 잃어 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검은 산에 큰 산불이 나고 검은 바람이 불고 잎새도 가지도 둥치도 타 버린 참혹한 빈 산에 검은 산에 아 그래도 뿌리는 살아 불탄 몸 쓰러져도 새근새근 살아 여린 싹을 내 밀고 있었습니다 빛나던 꽃도 열매도 아닌 희망이던 가지도 둥치도 아닌 잊혀진 땅속의 씨알 뿌리들만이 타버린 한 시절의 몸을 껴안고 조용히 푸른 싹을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일어서 고개 들어보면 절망이지만 허리 숙여 들여다보면 희망입니다 IMF 이 나라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강력하게 몰아쳐 온 말 이제 갓 말 배우는 아이에서 허리 굽은 노인네까지 서울 도심에서 산촌 마을까지 온 겨레의 삶과 내면을 단번에 관통시킨 운명같은 말 IMF 누군가 예고라도 있었더라면 차라리 그 말이 우리 말이었다면 이 나라 내 삶의 파탄은 늘 밖에서 느닷없이 몰아쳐왔다 여전히 우리 운명의 테마는 「안과 밖」이었다 언제나 바깥 세계의 변화 속도는 우리 내부의 개혁 속도보다 훨씬 빨랐고 그 역사의 시간 차이만큼 이렇게 혹독한 결과를 불러오곤 했다 내 안과 밖의 IMF!     YS 탓인가 나라 경제 거덜난 게  『모두 내 책임이다』 YS는 비장하게 말하지만 모르는 소리 YS 탓만이 아니다 YS 탓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그대 그렇게 무능하고 오만 독선한 변절자라고 이제와 돌멩이를 던지는 그대 그를 대통령으로 찍었던 당신 탓이다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세월 문지르며 넘어가지 마라 오직 『우리가 남이가』 소리치며 줄줄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당신 책임이다 YS가 가장 개혁적이라며 힘을 실어 주자고 과거를 팔아 그를 추켜올린 당신 책임이다 YS만 탓하지 마라 변절자를 따르는 자는 자기도 따라서 변절되는 법 먼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자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자격도 없는 법 이제 와서 그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옳은 말도 모두 물리고 썩은 말이 될뿐     내가 나선 이유 솔직히 나는 내 죄를 안다 나도 거품이었고 부실했다 나는 지금 누구도 탓하지 않고 내 일생을 바쳐 쌓아온 것들이 발 밑에서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이건 분명 내 탓이다 나의 불찰이고 나의 무능이다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임을 나는 잘 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슬프다 이것이 내 노여움이다 이 모든 걸 내 죄로 알고 받아들이는 게 너를 조금도 참회시킬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거다 너는 어제도 오늘도 그러한 것처럼 내일 다시 숱한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 미치게 하고 한 순간 통째로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너희들이 떠넘긴 이 큰 죄와 고통이 고스란히 우리의 미래로 떠밀렸을 뿐이라는 것 그것이 나의 슬픔이고 나의 분노이다 그것이 내 탓이다 내 가슴을 치면서도 너를 향해 내가 나서는 이유이다     마지막 남은 믿음 정직하게 땀 흘리면 반드시 잘 사는 날이 온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나에게도 해 뜨는 날은 온다 이 작은 믿음 하나로 일만 하며 살아온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실직은 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렸지만 나에게는 이제 아내도 없고 아이도 없고 집도 돈도 친구도 없고 기술도 다 소용이 없고 내 일생을 지탱해온 모든 것들이 차갑게 무너지고 내가 딛고 선 삶의 믿음이 발밑에서 허물어지고 이제 나는 세상의 그 무엇도 믿지 않지만 그래도 이 차디찬 세상에서 아직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믿음이 있다면 그건 … 햇볕이 따뜻하다는 거다… 긴 밤을 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떨며 지새운 내 몸에 아직도 햇볕은 따뜻하게 평등하게 비춰준다는 이 진실 공원 벤치에 누운 내게도 햇볕은 따뜻하다는 이 마지막 진실 이 마지막 믿음     기차역 대합실로 간다 아침이면 졸음 달고 뛰어가던 내 몸은 컨베이어에 묶여 끌려가던 내 몸은 어느 날 툭, 끊어져 흐느적거리는 연처럼 내 발길은 허공의 시간을 걷는다 그래도 아침이면 구청으로 노동부로 공원으로 부지런히 다니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던져진 불량품처럼 기차역 대합실에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보곤한다 공공근로 다녀온 아내는 쓸모 없어진 의료보험 카드와 조합원 주택부금과 자녀 학자금융자증 차량 할부카드를 놓고 한숨과 짜증이 는다 정말 못할 소리까지 한다 이제 나는 힘을 잃었다 고치자고 해도 잘 안되던 못된 가장의 권위라도 남았으면 좋으련만 낮술에 못된 성질만 남아 정말 이대로 가면 나도 아내도 사람마저 버리겠다 언제부턴지 허공의 시간을 걷는 내 발길은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기차역 대합실로 떠밀려 간다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제 몸을 때려 울리는 종은 스스로 소리를 듣고자 귀를 만들지 않는다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 온 목수는 자기가 살기 위해 집을 짓지 않는다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우리들, 한번은 다 바치고 돌아와 새근새근 숨쉬는 상처를 품고 지금 시린 눈빛으로 말없이 앞을 뚫어 보지만 우리는 과거를 내세워 오늘을 살지 않는다 우리는 긴 호흡으로 흙과 뿌리를 보살피지만 스스로 꽃이 되고 과실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내일이면 모두가 웃으며 오실 길을 지금 우리 젖은 얼굴로 걸어 갈 뿐이다 오늘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참 좋은 날이다   늘 새로운 실패를 하자 돌아보면 내 인생은 실패투성이 이제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겠다고 조용히 울며 다짐하다가 아니야 지금의 난 실패로 만들어진 나인데 실패한 꿈을 밀어 여기까지 왔는데 나에게 실패보다 더 무서운 건 의미 없는 성공이고 익숙한 것에 머무름이고 실패가 두려워 도사리는 것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의미해지지 않는다 성공했지만 의미 없는 것들이 있고 비록 실패했지만 더 의미 있는 것도 있다 누군가는 의미 있는 실패라도 해주며 쓰러져야만 그 쓰라림을 딛고 넘어 새날은 온다 이제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준비에 실패함으로 실패를 준비하지 말고 실패를 정직하게 성찰하며 늘 새로운 실패를 하자     가을볕   흙 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 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 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은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우리 나라 양심선언 제1호 인물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 중에 지금의 국방부 장관 격인 군부대신 이근택이 그 날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 앞에서 제가 앞장서서 을사조약에 찬성한 것이 무슨 자랑거리나 되는 듯이 『이제 우리 집안은 더 혁혁한 권세를 누리게 되었지』 뻔뻔스럽게 지껄였다는데 마침 그 집 찬모가 밥상을 올리려고 창 밖에 있다가 이근택의 말을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 부엌칼을 집어들고 마루에 올라 소리쳤단다 『네놈이 그토록 악독한 줄은 미처 몰랐다! 그것도 모르고 네 종노릇하면서 밥을 빌어먹었으니 아이구 창피하고 억울해 못살겠다』 찬모는 이렇게 호통을 치고는 집을 뛰쳐 나갔단다 하인들이 쫓아오자 이 참모는 『동네사람들은 잘 들으시오 집주인이란 자는 역적이요 그래서 내가 바른말을 했더니 오히려 나를 잡으려 하고 있소』 고래고래 소릴 지르니 하인들도 더 이상 쫓지 못했단다 끝내 나라가 망하고 온 백성이 시일야 방성대곡 하고 순국자결이 줄을 잇는 먹구름 속에서도 이 얘기를 들은 민중들은 박장대소하며 후련해 했더란다 나는 이 찬모를 우리 나라 인물로 삼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데 나라 경제 거덜낸 IMF오적들 밑에는 사람다운 사람 하나 없나 하기야 이 머리가 그 머리인지 꿔온 머린지 빌린 머린지 『통 기억이 안난데이』     다시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가을 볕  가을 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 부시다.  가을 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       나는 젖은 나무   난 왜 이리 재능이 없을까  난 왜 이리 더디고 안 될까  날마다 안간힘을 써도  잘 타오르지 않고 연기만 나는  나는 젖은 나무  젖은 나무는  늦게 불붙지만  오래오래 끝까지 타서  귀한 숯을 남겨준다고 했지  그래 사랑에 무슨 경쟁이 있냐고  진실에 무슨 빠르고 더딘 게 있냐고  앞서가고 잘 나가는 이를  부러워 말라 했지  젖은 나무는 센 불길로 태워야 하듯  오로지 마음을 하나로 모아  용맹스레 정진할 뿐  젖은 나무인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긴 호흡으로 치열하게 타오를 뿐    박노해 시 모음 ★★★★★★★★★★★★★★★★★★★★ 천생연분  박노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걸로야 TV탈렌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들 견줄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서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꽃이야 강사 따르겠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 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내가 동료들과 술망태가 되어 와도  몇일씩 자정 넘어 동료집을 전전해도 건강걱정 일격려에 다시 기운이 솟고 결혼 후 3년 넘게 그 흔한 세일 샤스하나 못사도 짜장면 외식 한번 못하고  로션하나로 1년 넘게 써도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이 좋소. 토요일이면 당신이 무더기로 동료들을 몰고와 피곤해 지친 나는 주방장이 되어도 요즘 들어 빨래, 연탄 갈이, 김치까지 내 몫이 되어도 나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 조금만 나태하거나 불성실하면 가차없이 비판하는 진짜 겁나는 당신 좌절하고 지치면 따스한 포옹으로 생명력을 일깨 세우는 당신 나는 쬐그만 당신 몸 어디에서  그 큰사랑이 , 끝없는 생명력이 나오는가 곤히 잠든 당신  가슴을 열어 보다 멍청하게 웃는다. 못 배우고 멍든 공순이와 공돌이로 슬픔과 절망의 밑바닥을 일어서 만난 당신과 나는 천생연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억압 속에 시들은 빛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을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까부스고  밤하늘별처럼 흐르는 시내처럼 들의 꽃처럼 소곤소곤 평화롭게 살아갈 날을 위하여  우린 결말도 못보고 눈감을지 몰라 저 거친 발굽 아래 무섭게 소용돌이쳐 오는 탁류 속에 비명조차 못 지르고 휩쓸려갈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기쁨으로 산다 이 길을 그래도 나는 당신이 눈물나게 좋다 여보야 도중에 깨진다 해도 우리 속에 살아나 죽음의 역사를 넘어서서 이름 봄마다 당신은 개나리 나는 진달래로  삼천리 방방곡곡 흐트러지게 피어나 봄바람에 입맞추며 옛 얘기 나누며 일찌기 일 끝내고 쌍쌍이 산에 와서 진달래 개나리 꺾어 물고 푸성귀 같은  웃음 터뜨리는  젊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윽한 눈물을 짖자 여보야 나는 당신이 좋다. 듬직한 동지며 연인인 당신을  이 세상에서 젤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미치게 미치게 좋다.  ★★★★★★★★★★★★★★★★★★★★ 그대 나 죽거든  박노해 아영아영 나 죽거든 강물 위에 뿌리지마 하늘바람에 보내지 말고 땅속에다 묻어주오 비 내리면 진 땅에다 눈 내리면 언 땅에다 까마귀 산짐승도 차마 무시라 뒷걸음쳐 피해 가는 혁명가의 주검 그대 봄빛 손길보다 다독다독 묻어주오 나 언 땅 속에 길게 뿌리누워 못다 한 푸른 꿈과 노래로 흐를 테요 겨울 가고 해가 가고 나 흙으로 사라지고 호올로 야위어가는그대.. 어느 봄 새벽, 수련한 함박꽃으로 피어 날 부르시면은 나 목메인 푸르른 깃발 펄럭이면서 잠든 땅 흔들어 깨우며 살아날 테요 아영아영 나 죽거든 손톱 발톱 깎아주고 수염도 다듬어서 그대가 빨아 말린 흰옷 이쁘게 입혀주오 싸늘한 살과 뼈 험한 내 상처도  그대 다순 숨결로다 호야호야 어루만져 하아- 평온한 그대 품안에 꼬옥 보듬어 묻어주오 자지러진 통곡도 피 섞인 눈물도 모질게 거두시고  우리 맹세한 붉은 별 사랑으로, 눈부신 그 봄철로 슬픔 이겨야해. 아영 강인해야 해  어느 날인가 그대 날 찾아 땅속으로 오시는 날  나 보드란 흙가슴에 영원히 그댈 껴안으리니  ★★★★★★★★★★★★★★★★★★★★ 그리움 박노해 공장 뜨락에 따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 도는 아이들 얼굴 위로 개나리 꽃눈이 춤추며 난다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오란 작은 손 꽃바람 자락에 날려 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진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 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 오는 가간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 통박  박노해 어느 놈이 커피 한잔 산다 할 때는  뭔가 바라는게 있다는 걸 안다. 고상하신 양반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 등을 두드릴 땐 내게 무얼 원하는지 안다. 별스런 대우와 칭찬에  허릴 굽신이며 감격해도 저들이 내게 무얼 노리는지 안다. 우리들이 일어설 때 노사협조를 되뇌이며 물러서는 저 인자한 웃음 뒤의 음모와 칼날을 우리는 안다. 유식하고 높은 양반들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세상마다 뒹굴며  눈치밥을 익히며 헤아릴 수 없는 배신과 패배 속에 세상 살아가는 통박이 생기드만 세상엔 빡빡 기는 놈들 위해서 신선처럼 너울너울 나는 놈 따로 있어 날개 없이 기름바닥 기는 우리야 움츠리며 통박을 굴리며 살아가지만 통박이 구르다 보면 통박끼리 구르고 합쳐지다 보면 거대한 통박이 된다고 좆도 배운 것 없어도 돈 날개 칼 날개 달고 설치는 놈들이 무엇인지 이놈의 세상이 어찌된 세상인지 누구를 위한 세상인지 우리들 거대한 통박으로 안다. 쓰라린 눈물과 억압과 패배 속에서 거대한 통박으로 구르고 부딪치고 합치면서 우리들의 통박은 점점 날카롭고 명확하게  가다듬어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통박이 거대한 통박으로 하나의 통박으로 뭉쳐지면서 노동하는 우리들이 새날을 향하여 이놈의 세상을 굴려갈 것이다.  ★★★★★★★★★★★★★★★★★★★★ 준비 없는 희망  박노해 준비 없는 희망이 있습니다 처절한 정진으로 자기를 갈고 닦아 저 거대한 세력을 기어코 뛰어넘을 진정한 자기 실력을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 없는 준비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해 가는데 세상과 자기를 머릿속에 고정시켜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 그 해 겨울나무  박노해  1 그 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 소리도  순식간에 떠나 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 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빛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말도 필요 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 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 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 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긁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부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 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을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 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 민들레처럼  박노해  일주일의 단식 끝에 덥수룩한 수엽 초췌한 몰골로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끌고 어질어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잡범들 사이에서 "박노해씨 힘내십시요." 어느 도적놈인지 조직폴력배인지 노란 민들레 한송이 묶인 내 손에 살짝이 주어주며 환한 꽃인사로 스쳐 갑니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 노란 민들레꽃을 코에도 볼에도 대어보고 눈에도 입에서 ?줘보며 흠흠 포근한 새봄을 애무한 민들레꽃  한 송이로 환하게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하여 아~ 산다는 것은 정년 아름다은 것이야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이길래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민들레꽃을 바로 봅니다.  어디선가 묶인 손으로 이 꽃을 꺾어 정성껏 품에 안고 내 손에까지 쥐어준 그분의 애정과 속뜻을 정신 차려 내 삶에 새깁니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 꽃으로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 흔하고 너른 꽃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둥이 쇠창살 너무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말하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중에 수천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문으로 멍들은 상처투성이 가슴위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받아 들고 글썽이는 눈물로 결의합니다. 아- 아- 동지들,형제들 준엄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그렇게 저는 다시 설 것입니다.  ★★★★★★★★★★★★★★★★★★★★ 진짜 노동자  박노해 한세상 살면서 뼈빠지게 노동하면서 아득바득 조출철야 매달려도 돌아오는 건 쥐씨 알만한지 죽어라 생산하는 놈 인간답게 좀 살라고 몸부림쳐도 죽어라 쇳가루만 날아들고 콱콱 막히고 골프채 비껴찬 신선놀음 허는 놈들  불도자 처럼 정력 좋은 이윤추구에는  비까번쩍 애국갈채 제기랄 세상사가 왜이리 불평등한지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생각도 못하고 사는 놈은 죽은 송장이여 말도 못하는 놈은 썩은 괴기여 켈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실천하는 사람 동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진실로 인간 이제 진짜 노동자 이제 비암이라고 다 비암이 아니여 독이 있어야 비암이지 센방이라고 다 센방이 아녀 바이트가 달려야 센방이지 노동자라고 다 노동자가 아니제 동료와 어깨를 꼭 끼고 성큼성큼 나아가 불도자 밀어제께 우리 것 찾아 담은 포크레인 삽날 정도는 되어야  진짜 노동자지  ★★★★★★★★★★★★★★★★★★★★ 마지막 시  박노해 거대한 안기부의 지하밀실을  이 시대의 막장이라 부른다. 소리쳐도 절규해도 흡혈귀처럼 남김없이 빨아먹는 저 방음벽의 절망 24시간 눈 부릅뜬 저 새하얀 백열등 불어 불엇!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과  온 신경이 끊어 터질 듯한 고문의 행진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무너질 수는 없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 그것은 우리들 희망의 파괴 우리 민중의 해방 출구이 붕괴 차라리 목숨을 주자 앙상한 이 육신을 내던져 불패의 기둥으로 세워두자 서러운 운명 서러운 기름 밥의 세월 뼛골시게 노동하고도 짓밟혀 살아온 시간들 면도날처럼 곤두선 긴장의 나날 속에 매순간 결단이 필요했던 암흑한 비밀활동 그 거칠은 혁명투쟁의 고비마다 가슴 치며 피눈물로 다져온 맹세 천만 노동자와 역사 앞에 깊이 깊이 아로새긴 목숨 건 우리들의 약속 우리들의 결의 지금이 그때라면 여기서 죽자 내 생명을 기꺼이 바쳐주자 사랑하는 동지들 내 모든 것인 살붙이 노동자 동지들 내가 못다 한 엄중한 과제 체포로 이어진 크나큰 나의 오류도  그대들 믿기에 승리를 믿으며 나는 간다 죽음을 향해 허청허청  나는 떠나간다. 이제 그 순간 결행의 순간이다. 서른 다섯의 상처투성이 내 인생 떨림으로 피어나는 한줄기 미소 한 노동자의 최후의 사랑과 적개심으로 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  마지막 생의 외침 아 끝끝내 이 땅 위에 들꽃으로 피어나고야 말 내 온 목숨 바친 사랑의 슬로건 "가자 자본가세상, 챙취하자 노동해방"  ★★★★★★★★★★★★★★★★★★★★ 강철 새잎 박노해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엄흑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 아직과 이미 사이 박노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 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 줄 끊어진 연 박노해  한겨울 바람이 맵찬 어느 날이었어요 창살 너머 어둑한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줄 끊어진 가오리 연 하나가 뒤척이며  고행중이더군요 스스로를 산채로 파묻고 인연 줄도 다 놓아 버려 깊어 가는 감옥이 조금은 적막하지만 한사코 붙잡지 않습니다 탓하지도, 의지하지도, 소망하지도 않습니다. 난 지금 줄 끊어진 연처럼 홀로 빈 하늘 떠도는 듯해도 하하, 나는 나대로 고독한 긴장 속에 생명줄 내건 치열한 날들입니다. 보이는 줄만 줄일까요 세 손으로 거두어야만 삶일까요 이헐게 날면 되는 것을  줄 없는 줄을 타고 허공 찬바람 속에 몸 던져주며 나는 홀로 날았습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내 목숨 같은 외줄을 끊고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다시 이어지는 고투의 세월을  참흑한 투쟁과 묵상의 나날이었습니다 아- 눈 맑게 열리고 마침내 내 인연의 때가 오는 날 줄 없는 줄을 통해 아직도 첫 마음 밝혀든 그대에게 나 뜨거운 떨림으로 차전할 것입니다. 그래요 희망의 줄은 이미 저마다의 몸 속에 내장되어 있고 좋은 세상은 이미 현실 속에 와 자라고 있고 외줄의 때가 있고 거미줄의 때가 있고 밤새 거미 한 마리가 제 몸 속에서 투명한 줄을 뽑아 쇠창살에 잘 짜인 집을 짓더니 아침 햇살에 이른 영롱한 팽팽한  거미 줄망이 그대로 한 우주, 내 삶의 안과 밖이 이어지는 관계  그물 망으로 확 비추어 오더군요.  ★★★★★★★★★★★★★★★★★★★★ 겨울이 온다 박노해 와수수 가랑잎 쓰는 바람에 삭발한 머리 쳐드니 하늘은 저만큼 높아져 있다. 나는 이만큼 낮아져 있는데 시린 하늘 흰 구름은  옥담 질러 사라지고 나는 컴컴한 독방으로 사라지고 맑은 가을볕도 잠깐 여위어가는 가을 설움도 잠깐 벌써 독방 마루 바닥이 찹다 의시시 몸 웅크리며 겨울 보따리 풀어 해진 옥 궤맨다 아 어느덧 저만큼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벽 속에 시퍼렇게 정좌한 채  겨울 정진 깊어가는 날 온다 대낮에도 침침한 독거방 불빛 아래  갑자기 바느질 손 바빠진다.  ★★★★★★★★★★★★★★★★★★★★ 신혼일기  박노해 길고 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긴 이별에 한숨 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 뿜으며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야간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위로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소곤소곤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도 짧다.  ★★★★★★★★★★★★★★★★★★★★ 거룩한 사랑  박노해 성은 피과 능이다. 어린 시절 방학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피를 뭍혀 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깍 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 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끊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을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
946    박용래 시모음 댓글:  조회:6073  추천:0  2015-04-12
      [박용래 시인 시모음]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별리(別離)                                        노을 속에 손을 들고 있었다, 도라지빛.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손끝에 방울새는 울고 있었다.     연시(軟枾)                                        여름 한낮 비름잎에 꽂힌 땡볕이 이웃 마을 돌담 위 연시(軟枾)로 익다 한쪽 볼 서리에 묻고 깊은 잠 자다 눈 오는 어느 날 깨어나 제상(祭床) 아래 심지 머금은 종발로 빛나다. 월훈(月暈)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무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溫氣)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월훈                                                             곰팡이                                                   진실은 진실은 지금 잠자는 곰팡이 뿐이다 지금 잠자는 곰팡이 뿐이다 누룩 속에서 광 속에서 명정(酩酊)만을 위해  오오직 어둠 속에서 ...... . 거꾸로 매달려   저녁 눈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점묘(點描)                                               싸리울 밖 지는 해가 올올이 풀리고 있었다. 보리 바심 끝마당 허드렛군이 모여 허드렛불을 지르고 있었다. 푸슷푸슷 튀는 연기 속에 지는 해가 이중으로 풀리고 있었다. 허드레, 허드레로 우는 뻐꾸기 소리 징소리 도리깨 꼭지에 지는 해가 또 하나 올올이 풀리고 있었다   보름                                                        官北里 가는 길  비켜 가다가  아버지 무덤  비켜 가다가  논둑 굽어보는  외딴 송방에서  샀어라  성냥 한 匣  사슴표,  성냥 한 匣  어메야  한잔 술 취한 듯  하 쓸쓸하여  보름, 쥐불 타듯.    잔(殘)                                               가을은 어린 나무에도 단풍 들어 뜰에 산사자(山査子) 우연듯 붉은데 벗이여 남실남실 넘치는 잔 해후(邂逅)도 별리(別離)도 더불어 멀어졌는데 종이, 종이 울린다 시이소처럼   설야(雪夜)                                              눈보라가 휘돌아간 밤  얼룩진 벽에  한참이나  맷돌 가는 소리  고산 식물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돌리시던  오리오리  맷돌 가는 소리   밭머리에 서서                                            노랗게 속 차오르는 배추밭머리에 서서 생각하노니 옛날에 옛날에는 배추꼬리도 맛이 있었나니 눈 덮힌 움 속에서 찾아냈었나니 하얗게 밑둥 드러내는 무밭머리에 서서 생각하노니 옛날 옛날에는 무꼬리 밭에 채였나니 아작아작 먹었었나니 달삭한 맛 산모롱을 굽이도는 기적 소리에 떠나간 사람 얼굴도 스쳐가나니 설핏 비껴가나니 풀무 불빛에 싸여 달덩이처럼 오늘은  이마 조아리며 빌고 싶은 고향 쓰디쓴 담배재                                      - 유고시   아무리 굽어 보아도  보이지 않는  헤아리면 헤아일수록  헤아릴 수 없는  이러한 깊은 층층계에  나는 능금처럼  떨어져 있다.  이제 어머니의 자장가는  잃어버렸고  세정(世情)은 오히려 감상(感傷)이었다 벗은 나무처럼 서서  모호(模糊)한 인생(人生)이  너무 시를 쉽게 묶는가보다  오늘밤도 소복이 쌓이는    감새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  주렁주렁  감꽃 달고  고두박질 살아라  동네 아이들  동네서 팽이 치듯  감꽃  노을 속에 살아라  머뭇머뭇 살아라  감꽃 마슬의 외따른 번지 위해  감꽃 마슬의  조각보 하늘 위해  그림 없는  액자 속에 살아라  감꽃  주렁주렁 달고  감새,          박용래 朴龍來 (1925. 8. 14 ∼ 1980. 11. 21)          충남 부여(扶餘) 출생. 강경상업(江景商業)을 졸업하고 은행원·중고교 교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5년 시 《가을의 노래》, 1956년 《황토(黃土) 길》 《땅》 등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데뷔하였다. 그 후 《엉겅퀴》 《코스모스》 《소묘(素描)》 《저녁 눈》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여 1969년에 현대시학사(現代詩學社) 제1회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향토적인 정서를 시적 여과를 통해 간결하고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한 갈래를 형성하였다. 시집 《싸락눈》 《백발의 꽃대궁》과 공동시집 《청와집(靑蛙集)》, 시선집 《강아지풀》 등이 있다.    박용래     박용래 시비 위치 : 대전시 중구 사정공원 내 시 : 저녁 눈           시의 가랑잎 되씹는 바람 속 노새를 따라  박용래의 시는 감빛이다. 그의 시에는 감잎에 반짝이는 햇살과 하얀 감꽃과 홍시내음으로 가득하다. 그의 흔적을 찾아나선 며칠은 온통 회색 구름뿐인 겨울 하늘이었지만 줄곧 감냄새가 따라 다녔다. 오류동 막다른 골목을 시인 대신 지키고 있는, 키가 훌쩍 커버린 감나무를 만난 뒤로 시인의 자취를 따라 다닌 모든 길목은 감빛으로 물들었다.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 주렁주렁/ 감꽃 달고"라고 노래했던 대로 아직 그는 한 마리 감새로 우리 속에 살고 있었다.  박용래는 1925년 충남 논산 강경읍에서 태어났다. 기차가 지나가는 강경의 모든 풍경, 채운산과 놀뫼, 황산천과 그 나루터, 옥녀봉 등에서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서정을 모두 흡수하며 성장한다. 그의 시집 전체에서 정서적 모태가 된 고향이 끊임없이 반짝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한 박용래는 조선은행 서울본점으로 발령받아 상경한다. 20세가 되는 해인 1944년 조선은행 대전지점으로 전근오면서 문학적 열정을 얻게 된다. 징집영장을 받으며 은행을 사직하고, 다시 해방을 맞이하면서 시의 혼을 갖게된 박용래는 1946년 정훈, 박희선 등과 를 조직하고『동백』을 간행하면서 습작에 몰두한다. 이 무렵 줄곧 그의 영향을 준 박목월을 만나고, 1955년《현대문학》에 박두진의 추천을 완료하면서 문학적 지평을 열게 된다.  그의 시세계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연민과 공감으로, 청록파에 이은 전통적 리리시즘의 새로운 계승으로, 전통적 한의 정서 혹은 민중의 삶의 터전에 둔 문학적 토양 등 다양한 각도로 평가되었다. 모두 시인의 시 속에 처음부터 끝까지 넘치고 있는, 적막과 주황빛 햇살과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잘 읽어낸 것이리라. 이처럼 그의 시적 관심은 마지막까지 오직 독자적인 서정을 향토적인 사유 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가 그를 더욱 토속적인 세계로 끌고 가지 않았을까.  콩나물이나 키우라  콩나물이나 키우라  콩나물 시루에 물이나 주라  콩나물 시루에 물이나 주라 (「微吟」에서)  세상 구차함을 하얀 무명올로 가리우자  세상 억울함을 하얀 무명올로 가리우자 (「학의 落淚」에서)  오는 봄비는 겨우내 묻혔던 김칫독 자리에 모여 운다  오는 봄비는 헛간에 엮어 단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 우는 봄비여 (「그 봄비」에서)  위에 보이듯 그의 시세계 속에는 사소하고, 소외되고, 버려지고, 사라진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연민이 줄기차게 흐른다. 아무리 깊은 바다라도 물결에 닿는 빛살로 반짝이듯이 작고 잊혀지고 외로운 것들은 존재의 심연은 읽어내는 물비늘이었다. 그 허무한 아름다움들에 천착하고 있는 언어는 곧장 눈물과 상관되는 것이리라. 콩나물이나 하얀 무명올, 버들눈 같은 미세한 몸짓은 존재로서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눈물겨운 의지가 아닐까. 삶에 대한 응어리가 존재에 대한 눈물겨움으로 나타나, 그는 끊임없이 눈물줄기를 닦는 '눈물의 시인'으로 불렸던 것이리라.  시인은 1965년 대전시 오류동 17-15번지에 정착하면서 택호를 청시사(靑枾舍)라 칭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교사라는 사회적 직업을 버리고 전업시인으로 집을 지키게 되는데, 시의 푸른 터전으로, 시혼의 샘터로 자리잡는 이 청시사에서 첫시집『싸락눈』(1969)을 비롯한『강아지풀』(1975),『백발의 꽃대궁』(1979)등의 시집이 탄생하게 된다.  시집 제목에서만도 읽혀지듯이 박용래의 시세계는 향토색이 짙다. 그는 시를 외워서 썼다고 한다. 가슴에 담고 다니며 계속 언어를 고르고 외워 입 속에서 한 편의 시로 외워질 때 비로소 종이에 옮겼다고 한다. 낱말 하나하나, 마음으로 음미하며 정성을 다한 시의 정신이 정제된 시어에 그대로 드러난다. 언어에 대한 예민함과 결벽이 그가 얼마나 시에 순절한 위인이었던가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는 자기 작품을 거의 외우는 시인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자신을 시의 가랑잎을 되씹고 씹는 바람 속 노래라고 읊지 않았을까.  청시사는 박목월시인을 비롯한 한성기, 임강빈, 신정식, 홍희표, 최상규 등 글쟁이들과 이종수, 최종태, 권영우 등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가슴 더운 이들의 단골 술자리며 문학 사랑방이었다. 처음엔 꽃밭, 채소밭이 넓었던 이 초가삼간은 1973년 석조 슬라브의 현대식 주택으로 고쳐지어진다. 이 세월을 지켜본 감나무는 홀로 빈집을 지키던 시인의 뿌리 깊은 친구였다. 타향인 한밭에서 끊임없이 고향의 서정 속으로 달려가게 하던 친구. 박용래 시에서 유독 감이 많은 소재가 되고 감빛·감냄새가 가득한 것은 이 감나무 때문이리라. 아래는 한 시인에게 보낸 편지글의 부분이다.  -무성한 창 밖의 감나무가 방안에까지 들어올 듯 합니다. 집을 찾는 사람이 감나무가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 답답하다고 합니다만 나는 절대로 그 나무를 벨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한 그루 감나무가 무료한 朝夕을 한없이 위안해 줍니다. (후략)-  1980년 향년55세로 불현듯 시인은 지상을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대전 근교 산내의 천주교 묘지에 시인을 묻었다. 그가 그리운 세상은 1984년 10월 대전 보문산 공원에 박용래 시비를 세워놓고 한밭 곳곳에 남아 있는 그의 울음을 듣는다. 버드내 기슭, 목척교, 중앙시장 먹자골목 대포집들, 오류동 근처의 선술집들, 유성 들판을 비롯한 한밭 근교 등 술친구를 찾아 끝없이 한밭을 순례를 하던 시인의 울음을.  접시술은 마시던 시인은 가고 없다. 허름한 제재소와 물엿 가게, 짐꾼들의 요기를 돕는 옴팡집 주막이 있던 동네는 이제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고, 교통정체가 심한 중심로가 되었다. 시인이 종종 들리던 골목 앞 막걸리집은 고급 수입가구점이 되어 있었다. 작품 속에도 있는 은 대로에서 한 걸음 꺾어든 막다른 골목길로 초라하다. 오직 키 큰 감나무 한 그루만이 세기가 바뀐 지금도 시인의 서재 앞 마당가에 선 채 까치밥 두어 개 높다랗게 매달고 있었다.  반쯤 들창 열고 본다.  드문드문 상고머리 솔밭  넘어가는 누런 해  반쯤만 본다.  잉잉 우는 전신주  귀퉁이에 매달린 연 꼬리  아슬히 비낀 소년의 꿈도  반의 반쯤만 본다 (「물기 머금 풍경2」에서)  반쯤, 반의 반쯤만이라도 세상을 보고 싶어했던 박용래의 눈물은 이제 이 사이버 시대에 우리에게 어떤 향기로 전해지는 걸까. 상치꽃은 상치 대궁만큼 웃는다고 했던 시인의 웃음은 어떤 노래로 흐르게 걸까. 시인 떠난 후 급속도로 변해버린, 정보가 최고의 선이 된 인터넷 현실은 그가 쏟아 놓은 눈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손때 묻은 단지팽이를 돌리는, 그 팽이에 다시 크레용 색칠하는 일이리라. 멈추면 때묻은 현실이지만, 돌리면 눈부신 서정의 아름다움으로 차오르는 언어의 세계. 그 마술 같은 슬픔이 시인의 노래가 된다. 그래서 시인은 울 수밖에 없으리라.  한때 나는 한 봉지 솜과자였다가  한때 나는 한 봉지 붕어빵였다가  한때 나는 좌판에 던져진 햇살였다가  중국집 처마밑 鳥籠 속의 새였다가  먼 먼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오류동의 동전 (「오류동 동전」)  우리는 아직 시인의 울음이 필요하다. 외롭고 깊은 그리움을 위하여, 무엇보다 인간적인 슬픔을 위하여. 오류동의 동전이 되었던 그는 이제 이 사이버 문화 속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아마도 사람들의 잠을 재우는 창가 달빛이나, 사람들의 잠을 깨우는 자명종시계가 되지 않았을까.     
945    <민들레> 시모음 댓글:  조회:4545  추천:1  2015-04-12
  김재진의 '너 닮은 꽃 민들레' 외 + 너 닮은 꽃 민들레 돌 틈에 피어 있는 너 닮은 꽃 민들레 시멘트 담 사이로 고개 내민 훤하고 착한 얼굴 작지만 약하지 않은 네 웃는 모습 보며 나는 네 노란 웃음 보며 나는 네게 가 안기고 싶다. 힘들어도 표 내지 않는,  밟혀도 꺾이지 않는, 네 얼굴 보며 나는 한 아름 하늘을 안고 싶다 (김재진·시인, 1955-) + 민들레 민들레가 핀다 아이들이 부는 팽팽한 풍선처럼 마음 졸이던 그런 봄날에 눈물 같은 풀꽃 데리고 소리, 소문 없이 그렇게 온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어도 고샅길을 지나 우리네 뒤뜰까지 왔다가 그렇게 간다 우리네 그리움도  거두어간다. (하청호·시인, 1943-) + 민들레 꽃 시골집 안마당이나 장독대 옆 아니면 야산 중턱에 아무렇게나 예쁘지도 않으면서 평화롭게 피어 있는  민들레꽃처럼 한세상 소리 없이 피었다가 조용히 잎 떨구고 가진 것은 모두 허무로 날려보내고 다시금 피어 나는  영혼의 꽃 무채색 하얀 솜털 눈부시게 반짝이며 당신이 부르시면 신부처럼  하이얀 꽃으로 당신에게 날아가리라. (김소엽·시인, 1944-) + 민들레 꽃대궁은 왜 속이 비었는가  민들레꽃 지켜보았네 수정이 끝나면 꽃대궁 더 높이 자라네 바람에 잘 흔들리려고 꽃대궁 얇아지네 살 수만 있다면 먼 곳까지 씨앗 날려주려는 여린 마음의 탄력 멀리 강화도까지 날아 온 꽃씨가 되어 민들레꽃 민들레꽃 지켜보았네 (함민복·시인, 1962-) + 민들레   먼 산엔 아직 바람이 찬데  가느다란 햇살이 비치는  시멘트 층계 사이에  노란 꽃이 피었다.  나는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고  잠시 황홀한 생각에 잠긴다.  무슨 모진 그리움들이 이렇게  고운 꽃이 되는 것일까.  모진 세월 다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살아온 나를  이렇듯 정신없이 붙들고 있는 것일까.  작은 꽃 이파리 하나로도, 문득  세상은 이렇게 환한데  나는 무엇을 좇아 늘 몸이 아픈가  황홀한 슬픔으로 넋을 잃고  이렇듯 햇빛 맑은 날  나는 잠시 네 곁에서 아득하구나.  (최동현·시인) + 사랑한다는 것 길가에 민들레 한 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안도현·시인, 1961-) + 남풍南風 하이얀 민들레가 하늘하늘 피어난 오월 들녘을 거니는데 "아, 하이얀 민들레가 피었네!" 하고 오월 들녘을 거니는데 남녘 그 어느 외진 산모퉁이  이름 없는 무덤에서 초연히 일어났을 법한  남풍 한줄기 하이얀 민들레 꽃 이파리 흔들어, 흔들어, 오네 사랑을 위해 한번, 무덤에 묻혀본 적 있느냐고 (정세훈·시인, 1955-) + 민들레  이제 몇 장 남지 않은 내 인생의 백지 위에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진술 같은  착한 시 몇 줄 쓰고 싶네  흙먼지 풀풀 나는 길섶에  가난하게 자리 비비고  기침 콜록이며 한세월 살았어도  밟히고 밟힌 꽃대궁 힘겹게 일으켜 세워선  어느 날 아침 노랗디노란 꽃 한 송이 피워  그 누가 보든 말든  민들레라 이름지어놓고 홀씨나 되어  바람 좋은 날 있으면 그냥 서운할 것도 없이  이 세상 홀홀이 떠나면 그만이듯  버리고 버린 나날 끝에  그런 시 몇 줄 쓰고 싶네  (이인해·시인) + 민들레의 영토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로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이해인·수녀, 1945-)    ==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그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릴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파,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곽재구·시인, 1954-) == 서울 민들레==   보도블럭 틈새에  노랗게, 목숨 걸었다  코흘리개 아이들 등교길 따라가다  봄 햇살 등에 업고 장난치며  놀다가, 길을 놓쳤다  꿀꺽-- 서산으로 넘어가는  봄. (김옥진·시인, 1962-) == 민들레의 연가==  은밀히 감겨 간 생각의 실타래를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날마다 봄 하늘에 시를 쓰는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 풀고 얇은 씨를 날리면  춤추는 나비들도 길 비켜 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해에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이해인·수녀, 1945-)  == 꽃의 자존심 == 뭉쳐놓은 듯 버려놓은 듯 땅에 바짝 엎드려 꽃자루 없이 앉은 앉은뱅이 꽃 피우는 노랑 민들레 흔해서 보이지 않고 흔해서 짓밟히는 꽃이 제 씨앗 은빛으로 둥글게 빚는 바로 그 순간 하늘로 꽃대 단숨에 쑥쑥 밀어 올리는 꽃의 마지막 자존심이 있다 (정일근·시인, 1958-) == 민들레== 민들레꽃 진 자리 환한 행성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가벼운 홀씨들이 햇빛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거장도 아닌 곳에 머물러 있는 행성 하나 마음의 끝에는 돌아오지 않을 행성 하나 있어 뿔뿔이 흩어질 홀씨들의 여려터진 마음이 있어 민들레는 높이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윤학·시인, 1965-) == 민들레== 풀씨로 흩날려  산천을 떠돌다  못 다한 넋이 되어  길가에 내려앉다  곧은 심지를 땅 속에 드리우고  초록이 어두워 대낮에도 노랗게 불 밝히며  겸손되이 자세 낮춘  앉은뱅이 꽃이여!  불면 퍼지는 하이얀 씨등  바람결에 흩날려도  머무는 곳 가리지 않는  떠도는 넋이여,  끝없는 여정이여!  뜯겨도, 짓밟혀도  하얀 피로 항거하며  문드러진 몸을 털고  다시금 고개 드는 끈질긴 생명 (손정호·시인) == 신기한 노랑 민들레 하나==     3월 14일 따뜻한 오후 2004년 신기하다  노랑 민들레 하나 잎은 바짝 땅에 붙고 꽃대도 없는 노랑 민들레 하나 자갈 깔린 마당 돌 사이에 피어난 노랑 민들레 하나 놀랍다는 느낌이 가슴에서 배로 스쳐 간다 정말 처음이야 저 노랑 민들레는 정말 신기해 (김항식·시인, 1925년 만주 흑룡강성 출생) == 민들레꽃 연가==     한적한 논둑 길 이름 없는 들풀 속에 자라나서 어느 봄날  노란 꽃잎 곱게 펼쳐 미소를 보낼 때 그때도 당신이 모른 척하시면 그리움으로 맺힌 씨앗 하나하나에 은빛 날개를 달아서 그대 창에 날려보내노니 어느 것은 바람에 방향을 잃고 어느 것은 봄비에 쓸려가기도 하겠지만 간절한 그리움의 씨앗 하나 그대 창에 닿거든 무심히 버려둬서  척박한 돌 틈에 자라게 하지 말고 그대 품 같은 따스한 햇살 잘 드는 뜨락에 심어서 이듬해 봄 화사하게 피어나면 내 행복의 미소인냥 아소서  (이임영·시인) == 나는 민들레를 좋아합니다 == 꽃집에는 민들레꽃이 없습니다. 그것은 팔 수 있는 꽃이  아닌가 봅니다. 마치 우리가 사랑과 다정함 우정과 소중한 사람을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야생으로 자라나 한적하게 꽃을 피우고 마침내 자신을 향해 허리를 굽힐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나는 당신에게 민들레꽃 하나를 꺾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몹시 원망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았습니다.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이 없는지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드레아 슈바르트·독일) == 앉은뱅이 부처꽃==  천지 사방에다 무허가 판잣집을 지은 그는  이름 없는 목수였다  갈 봄 여름 없이  연장통을 옆에 끼고  삼천대천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깎아지른 벼랑 위에 암자를 지었고  지붕 위로 날려온 흙 위에도 초가를 지었다  눕는 곳이 집이었고  멈추는 곳이 절이었다  몇 달 전부터 요사채 말석에  가부좌를 틀고 웅크리고 앉아  문득 한 소식을 얻었는지  노오란 안테나를 하늘로 띄우며  꽃씨 몇 개 날리며 천리 길을 떠나는 그는  제 앞으로 등기한 집 한 채 없이도  바닥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오늘은 민들레꽃이 세운 집 한 채를 보았다. (고영섭·시인, 1963-) == 작은 잎사귀들이 세상을 펼치고 있다== 시멘트 블록과 블록 사이 가느다란 틈 사이 돋아있는 민들레 잎사귀들이 작은 실톱 같다 이제 막 시멘트 블록을 힘들게 톱질하고 나온 듯하다  무엇이 저렇듯 비좁은 공간을 굳이 떠밀고 나오게 했을까 저 여리고 푸른 톱날들을 하나도 부러뜨리지 않고  시멘트 블록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다 이제 꽃대를 올리면 금빛 꿈의 꽃망울이 허공에 반짝 피어나겠지 시멘트 불록과 불록 사이 가느다란 틈 사이 작은 민들레 한 포기 푸르게 펼쳐놓은 세상을 본다 저 푸른 세상 속 그 무엇이 이렇듯 나를 잡아끌고 있는 것일까  아니 나는 짐짓 끌려가 또 한 세상 깜빡 빠져드는 것일까 시멘트 블록과 블록 사이 가느다란 틈 사이 실톱 같은 작은 잎사귀들이 푸르게 세상을 펼치고 있다  (이나명·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 민들레 압정==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이문재·시인, 1959-)
944    화투 48장의 뜻과 그 유래 댓글:  조회:7294  추천:0  2015-04-12
[출처] 화투 48장의 뜻과 유래 |작성자 바닷가애   화투 48장의 뜻과 유래  ###[ 이야기 1] ### 화투는 '19세기경 일본에서 건너온 놀이'라고 합니다만  정작 일본에서는 없어진 놀이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떻습니까?  명절때는 물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으례 필수로 여겨지지 않습니까?  게다가 한국인의 독창성(?)으로 부지기수의 '고스톱'방법을 만들어냈습니다.  '꽃 그림 놀이'라는 뜻의 語源  그럼 화투를 옆에 놓고 직접 봐가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화투를 한자로 쓰면 '花投'입니다.  원조격인 일본에서는 화찰(花札-하나후다)라고 부릅니다.  꽃이 그려진 카드를 던지는 게임, 또는 꽃이 그려진 카드를 맞추는 게임이라는 뜻이지요.  그럼 화투가 일본에서 만들어졌을 때 화투의 48장,  특히 1월부터 12월까지의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1월- '복과 건강'을 담은 松鶴  1월 - 맨 먼저 솔(松)과 학(鶴)이 나오지요?  먼저 솔부터 설명할까요?  일본에는 정월 초하루부터 1주일동안 소나무(松-마쯔)를 집앞에 꽂아두는 풍습이 있습니다.  카도마쯔(門松)라고 불리는 세시풍속으로 福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도 각 집마다 각 회사마다 변함없이 이뤄지고 있는 전통입니다.  이런 유래가 소나무가 1월을 장식하게 된 이유라고 합니다.  1월 화투에 솔과 함께 등장하는 게 학입니다.  우리도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치듯이 학은 일본에서도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결국 1월의 화투는 '福과 건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2월 - '우메보시'에서 보는 일본인들의 '매화'觀 2월 - 무슨 꽃입니까? 그렇죠. 매화입니다.  2월은 일본에서 매화 축제가 벌어지는 때입니다. 꽃도 꽃이려니와 특히 열매, 즉 매실로 만든 절임인 우메보시(梅干)는  일본인들의 입맛을 돋구는 대표적 일본음식입니다.  일본인을 어머니로 둔 어느 한국인의 수기에 보면  "한국에 살던 그 일본인 어머니가 "죽기 전에 '우메보시'가 먹고 싶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만큼 매화는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꽃입니다.  화투의 2월을 매화가 장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죠? 또 매화나무에 앉아있는 새는 꾀꼬리류의 휘파람새(鶯-우구이쓰)라고 합니다.  일본의 초봄을 상징하는 새라고 하더군요.  참고로 우리의 꾀꼬리는 일본에서는  '고려 꾀꼬리'(高麗鶯-코라이 우구이쓰)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뒤집어 해석하면 '우리나라의 꾀꼬리'는 일본에는 거의 없는 텃새라는 이야기가 되네요.  2월의 새를 잘 보시죠. 우리 꾀꼬리와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지?  제 눈에는 그게 그거인 것 같이 보입니다만...     3월 - 3光의 '사쿠라를 담은 바구니'는?  3월 - 3월은 잘 아시다시피 벚꽃, 즉 사쿠라(櫻)입니다.  3광(光)을 한 번 보실까요? 대나무 바구니에 벚꽃을 담아놓은 것 처럼 보입니다만  '만마쿠'(慢幕)라고 부르는 막이라고 합니다.  각종 式場에 둘러치는 전통휘장으로 쓰여진다고 하네요.  물론 제가 일본에서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4월 - '등나무'와 '비둘기'는 전통명가의 상징  4월- 검은 싸리나무처럼 보여 보통 '흑싸리'라고 부릅니다만  원래는 등나무(藤-후지) 줄기와 잎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등나무는 일본의 초여름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가마의 장식 또는  가문의 문장(紋章)으로도 자주 쓰이는 나무입니다.  일본에서 후지(藤)로 시작하는 이름들, 예를 들어 후지모토(藤本), 후지타(藤田),후지이(藤井)등의 이름이 많은 것도 '등나무'가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친숙한 나무인가를 설명해주는 사례이지요. 또 4월에 그려진 새는 비둘기(鳩-하토)입니다.  일본에서 비둘기는 '나무에 앉더라도 자신의 부모보다  더 낮은 가지에 앉는 예절바른 새'로 평가됩니다.  가문의 문장(紋章)에 쓰는 엄숙함이 담겨진 등나무인만큼  거기에 앉는 새도 '예절의 상징'인 비둘기를 썼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지요.    5월- '초'가 아니라 '창포'랍니다 5월- 우리는 초(草),  즉 난초라고 하지만 실제는 '창포(菖蒲-쇼우부)라고 합니다.  5월의 풍취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하는데 이 점은 우리하고 비슷하죠.  우리도 5월5일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감는 풍속이 있으니까요.    6월 - 향기없는 모란에 왠 나비? 6월 - 모란입니다.  일본에서는 '보탄'(牧丹-보탄)이라고 해서 꽃중의 꽃,  고귀한 이미지의 꽃으로 인식됩니다.  여기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발견됩니다.  한국에서는 모란은 향기가 없다고 해서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게 관례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모란의 향기를 확인했는지 나비를 그려넣었습니다.  6월의 '열끝 자리'화투를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요. 틀림없이 '나비'가 앉아있습니다.    7월 - 멧돼지의 등장이유는?  7월 - 속칭 '홍싸리'라고 하죠.  실제로도 7월의 만개한 싸리나무(萩)를 묘사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4월의 '등나무'를 '흑싸리'라고 오해(?)하는 것도  4월의 꽃이 이 7월의 꽃 생김새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싸리나무를 지나고 있는 동물은 멧돼지(猪-이노시시)인데  왜 멧돼지가 7월에 등장하는지는 아직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혹 아시는 분 있으시면 '댓글'형식으로 첨가해주시기 바랍니다.     8월 - '한국과 일본의 그림이 달라요' 8월 - 속칭 '8월의 빈 산(八空山)'이라고 합니다만  화투 48장중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뒤 그림이 바뀐 것이 이 8월이라고 합니다.  원래 일본화투의 8월에는 '가을을 상징하는 7가지 초목 (秋七草)'  - 억새, 칡, 도라지등 -이 그려져 있었는데  우리의 지금 화투에는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밝은 달밤과 세마리의 기러기가 떼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느쪽이 더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지요?     9월 - '일본 중앙절'과 '9쌍피'에 담겨진'長壽' 9월 - 국화이죠. 국준(菊俊)이라고도 합니다만  9월에 국화가 등장한 것은 일본의 중앙절(9월9일)관습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이때가 되면 '술에 국화꽃을 넣어 마시면서 무병장수를 빌었다'고 합니다.  9월의 '열끝자리-흔히 쌍피로 대용되는 그림'을 보십시요.  목숨 '수(壽)'자가 적혀있지요?  무병장수를 빌었던 9월 중앙절 관습때문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일본 왕실의 문양도 '국화'입니다.  무병장수의 기원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그렇다면  옛부터 '왕이건 상것이건 그저 오래살고 싶은 욕망'에는 차이가 없었나 봅니다.    10월 - 사슴은 사냥철의 의미? 10월 - 단풍의 계절입니다.  단풍과 함께 '사슴'이 등장하는 것은 사냥철의 의미라고 합니다.  단풍에 사슴이 곁들여진 아름다운 자연을 연상하는 것이 우리의 정서인데 반해  단풍철에 사슴사냥을 연상하는 것이 옛 일본인들의 정서였던가 봅니다    11월 - 일본에서는 '똥'이 12월이래요. 11월 - '오동(梧桐)'의 '동'발음을 강하게 해서 속칭 '똥'이라고 부르죠.  원래 일본 화투에서는 이 '똥'이 '12월'이었다고 합니다.  '오동(梧桐)'을 일본말로 '키리'라고 하는데  '끝'을 의미하는 '키리(切)'와 발음이 똑같아 마지막달인 12월에 배치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와서 11월로 순서가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똥광(光)'에 있는 닭대가리 같은 동물은 무엇인지 아시죠?  예, 왕권을 상징하는 전설속의 동물, 봉황입니다    12월 - 비'光'의 갓 쓴 사람은 도대체 누구?  12월 - 12월의 광(光)에 나오는 갓 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일본의 유명한 옛 서예가라고 합니다.  개구리가 버드나무에 오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것을 보고 '득도'했다는  한 서예가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비광(光)을 잘 들여다 보십시요.  다른 광(光)들과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옵니까?  틀림없이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네. 그렇죠.  다른 달의 광(光)은 '光'字가 아래쪽에 적혀있는데  이 비광(雨光)만큼은 '光'字가 위쪽에 적혀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비광(雨光) 아래쪽을 보면 '노란 개구리'가 보이시죠?  노란색이지만 '청개구리'라고 생각하면 추측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거꾸로 하는 청개구리의 설화에 따라 아래로 가야할 '光'字를  거꾸로 위에 적어넣었다는 가설도 가능합니다.  물론 진짜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人情이 담겨야 한국적 화투  일본인들에게 '화투'를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모른다'고 합니다.  일본에 그런게 있느냐는 반문도 많이 듣습니다.  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일본인들도 '화투는 한국인의 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스톱 망국병'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쨋든 화투는 한국인 특유의 분위기가 함께 해야 제 맛입니다.  서양의 포커처럼 침묵속에서 하는 놀이가 아닌  조금 시끌시끌한 분위기의 즐거움이 함께 해야 제맛입니다.  ### [ 이야기 2 ] ### 화투는 1543년 포르투칼 상인에 의해 최초로 일본에 전래된 서양의 카드인  카루타(かるた)에, 17세기 중엽 조선통신사를 통해 양반계층에서 유행하던  '수투(數鬪)놀이'가 접목되고, 일본 에도시대(江戶)의 우키요에(浮世繪)라는  풍속화가 결합하여 18세기 말에 완성된 것으로서,  화투의 그림은 왜색(倭色)이지만 놀이방법(ex : 고스톱)은 우리의 문화입니다. ※ 패의 종류와 그 속에 담겨진 한국과 일본의 정서차이    1월 : 송학(松鶴;솔) 일본에서는 설날부터 1주일동안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대문양쪽에  소나무를 꽂아두고 학(鶴)등의 경사스러운 그림의 족자를 걸어둔다는  일본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을 그린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와 학은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상징합니다.    2월 : 매조(梅鳥) 2월이 되면 동경도 오매시(靑梅市)의 매화공원을 비롯한 일본 전역의 공원에서  축제가 벌어질 만큼 매화는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꽃이며  꾀꼬리는 봄을 나타내는 시어(詩語)로 자주 사용되는 대표적인 텃새이지만  우리나라에서의 꾀꼬리는 매화가 피는 이른 봄에는 볼 수 없는 여름 철새입니다.    3월 : 벚꽃(사쿠라) 벚꽃은 일본의 국화(國花)이며 3월의 벚꽃축제는 헤이안(平安)시대부터 출발하여  이제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유명한 행사가 되었으며 광의 벚꽃 아래에 있는 것은 [만막]이라 불리는 것으로 지금도 일본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휘장이며  벚꽃 축제를 나타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역사문헌에서 벚꽃을 감상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일제 식민지 시대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림 A    그림 B 4월 : 흑싸리 일본의 전통시에는 계절마다 쓰이는 시어(詩語)인 계어(季語)가 있는데  흑싸리로 잘못 알고 있는 등나무는 초여름을 상징하는 계어(季語)이며  일본에서는 각종 행사시 가마에 장식하거나 가문의 문양으로 쓰이는 등  친숙한 식물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절개가 없는 덩굴식물이라하여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달밤(하현달)의 두견새는 원조(怨鳥),귀촉도(歸蜀途), 또는 망제혼(望帝魂) 이라고 하여 불길한 징조를 상징하므로  우리나라의 민화에서도 그려지지 않는 소재입니다. 패를 들때 그림 B와 같이 들어야 올바른 모양입니다.(KBS 프로그램『스펀지』참고) 등나무는 아래로 늘어져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열끗으로 사용되는 패의 그림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5월 : 난초(蘭草) 패에 그려진 꽃은 난초로 잘못 인식되어져 있지만  사실은 붓꽃(杜苕)은 보라색 꽃이피는 관상식물로서 아이리스(Iris)를 말하며  화투에 담겨진 내용은 습지의 야쯔하시라는 다리를 걸으며 붓꽃을 감상하는  전형적인 일본의 풍취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6월 : 모란(牡丹) 모란(牡丹)은 6월의 시어(詩語)로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귀한 이미지를 가진 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양꽃의 으뜸으로 장미를 가리킨다면 동양에서는 모란을 가리킬 만큼  꽃중의 왕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화에서는 신라의 선덕 여왕이 ‘당태종이 보낸 그림에  나비가 없음을 보고 모란에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고 말한 일화가 있어  모란에는 나비를 그리지 않는것이 관례로 전해내려오고 있어  모란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메시지가 부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7월 : 홍싸리 일본에서의 싸리는 가을 7초중의 선두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빗자루를 만드는  천한 수종이었으며 시조문학에서는 단 한번도 인용된적이 없는  일본인만의 독특한 정서를상징하고 있습니다. 함께 그려진 멧돼지는 7월의 사냥철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 역시 우리와는 다른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8월 : 공산(空山;공산명월) 일본패에는 가을 7초 중 하나인 억새풀이 가득히 그려져 있으나  우리의 것에는 생략되었습니다. 우리는 8월 15일을 추석이라 하여 조상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성묘와 차례로 이어지는 최대의 명절인 것에비해 일본에선 둥근 달을 보며 과일 같은 것을 창가에 두고  달에게 바치는 소박한 명절인 월견자(月見子:오츠키미)를 나타냅니다.    9월 : 국준(菊俊) 일본에는 고대 중국의 기수민속(奇數民俗)의 영향을 받아 중앙절(中陽節-9월 9일)에  술에 국화꽃을 넣어 마시며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는 일본의 관습을 나타내며  잔에 목숨 수(壽)자가 있는 것도 그런 연유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홀로 늦가을 서리속에 피어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지조있는 국화가 인고(忍苦)와 사색(思索)을 의미하며  일본의 무병장수(無病長壽)와는 다른 문화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0월 : 단풍(丹楓) 10월의 단풍은 '낮에는 홍엽(紅葉), 밤에는 홍등(紅燈)' 이라고 하며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 그 색채의 변화를 즐기는 일본인들의 풍취를 상징하며  함께 그려진 사슴은 근세에 성행했던 사슴 사냥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단풍 놀이는 우리 에게도 세시 풍속 중 하나였으나 풍류를 즐기면서  가을을 만끽하는 즐거운 단풍절에 하는 사냥은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습니다.    11월 : 오동(梧桐) 11월의 오동(梧桐)과 봉황(鳳凰)은 일본왕의 도포에 쓰이는 문양으로  왕권을 상징하며, 일본에서 오동이 12월인것은 오동을 뜻하는 [기리]라는 말이  '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동이란 본래 벽오동(碧梧桐)을 말하는 것이며, 오동과 봉황은  군자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출현한다는 영물인 봉황이 벽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 하여 고귀하고 품위있고 빼어난것의 표상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12월 : 비[雨] 광의 갓을 쓴 사람은 일본의 3대 서예가 중의 한 사람인  오노도후(小野道風;AD.894-966)이며  개구리가 버드나무에 오르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는 것을 보고 노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오노도후의 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것이며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고 합니다. 또한 비가 11월에 배치된 것과 수양버들이 등장하는것은  파란풀이 월동할 만큼 온난하며 11월에도 비가 내리는 일본의 아열대성 기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절과 맞지 않습니다. ※ 기본적인 점수에 해당하는 패    1. 광 - 광은 3장을 먹을때부터 점수로 인정하여 3장을 먹으면 3점입니다. - 광 3장 중에 비가 들어가면 비3광이라 하여 2점으로 계산합니다. - 광4장을 먹으면 비와 관계없이 4점으로 인정합니다. - 광5장을 모두 모으면 오광이 되어 15점으로 계산합니다..    2.열끗 - 열끗은 기본 무늬에서 추가적인 그림들이 있는 것인데,  5장을 모으면 1점이고 추가로 모으는 것 마다 1점씩 추가됩니다. - 7장 이상일 경우에는 멍텅구리(또는 멍따-멍텅구리 따블)라 하여  점수가 2배가 됩니다.    - 역시 열끗짜리 패이지만 고도리는 위의 그림과 같은 패3장을 모으는 것으로  5점으로 인정합니다.    3. 다섯끗  - 다섯끗은 띠 무늬가 있는 것으로, 5장을 모으면 1점이고,  한장씩 추가될 때마다 1점씩 올라갑니다.    - 또한 띠 무늬에 따라 각기 홍단, 청단, 초단 등으로 세분되는데  같은 종류를 모두 다 모으면 각각 3점을 얻게 됩니다.    4. 피  - 피 10장은 1점이 되고, 한 장씩 더 먹을 때마다 1점씩 추가합니다.            - 쌍피는 피 2장으로 계산합니다. - 국화 쌍피는 열끗이지만, 원할경우 점수 계산시 쌍피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943    러시아 詩의 태양 - 푸쉬킨 댓글:  조회:4088  추천:0  2015-04-12
러시아 시인 푸쉬킨의 삶과 시     푸쉬킨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엔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픔 법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알락센드르 푸쉬킨은 "러시아 시(詩)의 태양"이라고 일컬어진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문학가 중 한 사람입니다. 푸쉬킨은 시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한줄의 시 귀절이 바로 그 유명한 삶의 詩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라는 귀절 입니다. ------------------------------------------------------------------------------ ♧ 위시의 창작 배경은 시인 푸쉬킨이 모스크바 광장에서     소경 걸인을 만나게 된 연유에서 출발 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 러시아의 그 유명한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은  모스크바 광장에서 추운날씨에 누더기를 걸치고 구걸하는 한 소경걸인을 보게 됩니다.  광장에는 걸인들이 많았기에 그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푸쉬킨은 소경걸인을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나도 역시 가난한 처지인지라 줄 돈은 없고  돈대신 글씨 몇 자를 써서 주겠으니 그걸 몸에 붙이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얼마 후에 푸쉬킨은 친구들과 모스크바 광장에 갔는데 그 걸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푸쉬킨의 바지를 붙잡고는 ~~ “ 감사합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 전  글씨를 써주신 분이시지요 ! 신께서 도우셔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써주신 종이를 몸에 붙였더니 그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돈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였다.   푸쉬킨에게 그 소경걸인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날 써준 내용이 도대체 어떤 글 이신지요 ? "     “푸쉬킨은 말했습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 라 썼습니다.”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생각하였을 것 입니다. 지금은 비록 춥고 고단한 날을 보내고 있지만  봄을 기다리는 이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 입니다.  --------------------------------------------------------------- 위시는 일반적인 시어로 삶에 대한 진솔한 표현을 나타낸 작품으로 푸쉬킨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詩 입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과 꿈과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은 푸쉬킨 위대함을 말해준다. 시인은 현실의 삶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보따리와 지팡이가 나아요.   아니, 고생스럽고 배고픈 게 차라리 더 나아요.   그것은 내가 나의 이성을 존중해서도 아니고   이성과 헤어지는 것이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나 자유로이 둔다면   그 얼마나 활개치며   어두운 숲으로 달려가리!   열병에 걸린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그 얼마나 자유로이 멋진 꿈에 도취되어   나를 잊으리.   그리고 나의 파도소리에 귀기울이고   행복에 가득 차서   빈 하늘을 바라보리니   나 그 얼마나 힘차고 자유로우리   들판을 파헤치고   숲을 휘어뜨리는 회오리처럼   그런데 불행히도  미친다는 것은   페스트보다 더 두려운 일,   곧 갇히고   사슬에 묶이리니,   사람들은 창살 사이로 짐승을 찌르듯   찌르러 올 것이고,   그리고 밤에는 들을 것이다.   꾀꼬리의 울리는 낭랑한 목소리도 아니고   빽빽한 참나무숲의 웅성거림도 아니고   울리는 것은   친구들의 외침소리, 밤의 파수꾼의 욕설,   사슬이 쩔렁이고 삐걱이는 소리뿐. ----------------------------------------------------------------------------    내 그대를 사랑했노라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내 영혼에서 완전히 꺼지지 않나니   그러나 나의 사랑은 더 이상 그대를 괴롭히지도 방해하지도 않나니   내 그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니   내 다만 그대를 사랑했노라   이야기도 희망도 없이   때로 나의 소심함과 때로 나의 질투가 나를 괴롭혔지만   내 다만 그대를 사랑했노라, 그토록 진심으로 그토록 조심스레   신의 섭리에 따라 다른 이들이 그대를 사랑한 것만큼   위 시는 곤차로바와 결혼하기 전에 푸쉬킨이 사랑했던 여인 안나 올레니나에 대한   사랑했던 심정을 표현한 시 입니다.  사랑에 대한 애절한 심사가 문학의 열정에서도 빛을 발 합니다.    ---------------------------------------------------------------------------- 푸쉬킨의 일생   알렉산드르 푸쉬킨(Alexandr Pushkin)의 가족사를 보면 어머니의 증조할아버지는  Abram Petrovich Gannibal9(흑인)으로 아프리카 족장의 아들로 러시아인에게 노예로 팔려와 표트르 대제에게 바쳐진 후 신임을 얻게되어 귀족계급까지 오르게 되었다 합니다. 푸쉬킨은 열렬한 구애끝에 나탈랴 푸쉬키나(결혼전 성은 Goncharova)라는 경국지색의 아리따운 13세 연하의 미모의 아내를 얻었습니다.  네자녀를 두었던 곤차로바는 러시아(당시 황제시대)사교계에서 네덜란드 외교관이었던 단테스 데 헥케른D남작 과 염문을 뿌리게 됩니다. 단테스와 나탈랴가 내연의 관계라는 소문은 러시아 사교계에 소문이 나게 되고  드디어 불쾌한 소문을 접한 푸쉬킨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됩니다. 푸쉬킨의 아내는 미인이었지만,  젊고 잘생긴 남자들에게 환심을 사는 행실로 소문이 파다한 아내였다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 황제 짜르에게까지 그런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결국 1837년 1월 27일 상뜨 뻬쩨르부르크에서 두 사람의 운명적인 결투가 있었습니다. 이 결투에서 푸쉬킨은 단테스가  쏜 총알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나이 38세에 일생을 하직하게 됩니다. (단테스는 나탈랴 여동생의 남편으로 푸쉬킨에게는 처제의 남편이었습니다. 푸쉬킨의 정적들이 자유분방한 푸쉬킨을  제거하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러시아의 횃불 같은 시인 푸쉬킨은 아내의 행실에 노여워하는 바람에 슬픔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의 시처럼 노여워 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면 아마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전세계의 문학 독자들은 주옥같은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푸쉬킨은 아내를 탐하는 사람들로 부터 자신의 명예와 가족을 지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 ... ...     그 날도 페테르부르크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지만, 오후 4시가 넘어 교외 공터의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주변은 나무가 둘러싸고 있고 두껍게 눈이 쌓인 러시아의 전형적인 겨울 풍경이다. 총을 든 두 남자의 눈가에 분노와 긴장이 갈마들어 감돈다. 정적을 깨뜨리며 발사된 총탄. 한 남자가 배를 움켜쥐며 눈밭에 쓰러진다. 눈밭을 적시는 낭자한 선혈. 온 얼굴이 눈 범벅이 된 채 겨우 일어난 남자가 소리친다.   “브라보!”     남자는 페테르부르크 모이카 12번지에 있는 집으로 급히 옮겨진다. 때는 1837년 2월 8일 오후 4시 30분경. 남자는 이후 이틀 동안 심하게 앓았다.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남자. 아내는 남편의 비명에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남자는 아내가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방에 들어왔다.     “얼음을 달라!”    아내가 갖다 준 얼음을 이마에 올려 굴리다가 얼음을 먹는 남자. 그가 입을 연다.    “잘 있어! 친구들!”      곁을 지키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느닷없이 친구라니. 그가 부른 친구란 서재에 있는 책들이었다. 남자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꿈에서 책 더미 위로 올라갔어요. 책 더미가 너무 높아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지요.”   2월 9일과 10일에 걸쳐 모이카 12번지 주변에 2만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크게 놀라 명령을 내렸다. ‘장례식 장소를 비밀리에 변경할 것, 일반인의 장례식 참석 엄금, 가족과 친구들만 참석 가능, 군대는 비상 대기할 것, 황실 주치의를 보낼 것, 불법 결투를 벌였지만 사면할 것, 신문의 과격한 추모 기사는 엄금.’     결국 남자는 2월 10일 숨을 거두었다. 러시아 구력(舊曆) 1월 29일. 신력으로 2월 10일 오후 2시 45분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슈킨이 38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법으로 금지돼 있던 결투를 벌인 푸슈킨의 상대는 조르주 단테스. 러시아로 망명한 프랑스군 장교로 네덜란드 공사 헤케른의 양자였다. 푸슈킨이 단테스의 양아버지 헤케른에게 모욕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 단테스는 푸슈킨에게 결투를 신청한 터였다.     그들이 결투한 곳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서 있다. 결투를 위해 두 사람이 각각 자리 잡았던 곳이다. 푸슈킨의 소설 에서 렌스키는 오네긴과의 결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렌스키의 운명이 곧 푸슈킨의 운명이 되고 말았으니, 소설이 하나의 예언이었던가. 꽃다운 16살 소녀 곤차로바를 처음 만나 ‘아!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여인이야!’라며 정열을 불태웠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건만, 매혹적인 자태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1831년에 결혼해 네 명의 자녀들을 남겨두고 푸슈킨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곤차로바는 1844년 재혼).  
942    <매화> 시모음 댓글:  조회:6368  추천:0  2015-04-12
    :     매화는 그 끝덩으로 보면 괴벽한 노인을 연상케 하나 그 꽃은 아름다운 소녀를 생각케 한다.  : 속담에 흔히 꽃 같은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만약 꽃에다 비교한다면  : 그 꽃은 틀림없이 매화꽃이라야만    정내동 丁來東/수선(水仙)·매화(梅花)》    :  :  :   :   매화가 조춘만화(早春萬花)의 괴(魁)로서 엄동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화하는 것은 그 수성(樹性) 자체가  비할 수 없이 강인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동양 고유의 수종(樹種)이 그 가지를 풍부하게 뻗치고  번무(繁茂)하는 상태를 보더라도 이 나무가 다른 과수에 비해서 얼마나 왕성한 식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또한 매실(梅實)이 그 독특한 산미(酸味)와 특종의 성분을 가지고 고래로 귀중한 의약의 자(資)가 되어 효험이 현저한 것도 마땅한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     :   《김진섭 金晋燮/매화찬 梅花讚》     :  :  :   :   :  한 그루 매화가  : 그윽한 마을로 들어가는 시냇가에 피었네  : 물 곁에 있는 꽃이 먼저 피는 줄은 모르고  : 봄이 되었는데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다고 한다.  : 一樹寒梅白玉條  : 逈臨村路傍溪橋  : 不知近水花先昔  : 疑是徑春雪未消     :   《융호 戎昊/매 梅》    :  :  :   :   :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     :   《이색 李穡/목은집 牧隱集》     :  :  :   섣달 매화가 가을 국화 용하게도 추위를 침범해 피니  경박(輕薄)한 봄꽃들이 이미 간여하지 못하는데  이 꽃이 있어 더구나 사계절을 오로지 하고 있으니  한때에만 치우치게 고운 것들이야 견디어 볼 만한 것이 없구나.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  :  :   :   : 나부산 밑 마을 매화는  : 옥설의 골격에 빙상(氷霜)의 넋이다.  : 처음에는 아른아른 달이 나무에 걸려 있는 것 같더니  : 자세히 보니 송이송이 황혼에 빛나네  : 선생(자신)이 강해의 위에 와서  : 병든 학처럼 황원(荒園)에 깃들인다.  : 매화가 나의 심신을 부축하여  : 술을 짜 마시고 시(詩) 생각이 맑게 하네  : 봉래궁중의 화조의 사자가  : 푸른 옷을 입고 거꾸로 부상(扶桑)에 걸려 있는 건가?  :     :   《소식 蘇軾》     :  :  :   :   : 청제(靑帝)가 풍정(風情)을 품고 옥으로 꽃을 만드니  : 흰옷은 진정 서시(西施)의 집에 있네  : 몇 번이나 취위(醉尉)의 흐릿한 눈으로 하여금  : 숲 속에 미인(美人)의 흰옷 소매로 착각하게 하였던고.     :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  :  :   :   으스름 달밤에 그윽한 매화 향기가 스미어 들어올 때 그것이 고요한 주위의 공기를 청정화(淸淨化),  신성화(神聖化)하며 그윽하게 풍겨 오는 개(槪)가 있다.     :   《문일평 文一平/호암전집 湖岩全集》     :  :  :   :   :매화는 음력으로 섣달·정월 사이에 걸쳐서 아직 창 밖에 눈발이 휘날릴 무렵에  어느새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방긋이 입을 벌린다. 철골(鐵骨)의 묵은 등걸에 물기조차 없어 보이건만 그 싸늘한 가지  : 끝에 눈빛 같은 꽃이 피고 꿈결 같은 향을 내뿜는다. 그것은 마치 빙상(氷霜)의 맹위에 저항하려는 듯  의연하고 모든 범속한 화훼류(花卉類)와 동조를 거부하는 듯 초연하여 그 기개가 마치 고현일사(高賢逸士) 를 대하는듯 엄숙하다.  :     :   《장우성 張遇聖/분매 盆梅》     매화 관련 시 모음 |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매화나무 /황 금 찬 봄은 언제나 그렇듯이 늙고 병든 매화나무에도 찾아 왔었다. 말라가던 가지에도 매화 몇 송이 피어났다. 물 오른 버드나무 가지에 새파란 생명의 잎이 솟아나고 있다. 반갑고 온혜로운 봄이여 늙은 매화나무는 독백하고. 같은 봄이지만 나는 젊어가는데 매화나무는 늙어가네 버드나무의 발림이다. 가을이 없고 봄만 오기에 즈믄 해를 젊은 줄만 알았다네 -. ...........................................................................................................   설중홍매(雪中紅梅)/李 炳 喜 동지섣달 짧은 해 걸음 돌담아래 빈둥대던 햇살 立春 지났다고 매화가지 올라 놀더니만 초승달 돌아간 새벽녘 몰래 부푼 선홍젖꼭지 선혈로 쏟아낸 순결(純潔) 홍매화(紅梅花) 되었는가 춘설(春雪) 부끄러운 꽃잎 속살의 처연(凄然)함에 안아버린 첫정(情) 설중매(雪中梅)라 하였는가 무슨 연유(緣由)로 처녀의 속살로 봄눈을 품어 만고묵객(墨客) 울리는가 초록그리움 분홍입술로 머금었단 말인가   매화(梅花) / 서정주 梅花에 봄사랑이 알큰하게 펴난다.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 더 더는 못 견디어 하늘에 뺨을 부빈다.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梅花보다 더 알큰히 한번 나와 보아라. 梅花향기에서는 가신 님 그린 내음새. 梅花향기에서는 오신 님 그린 내음새. 갔다가 오시는 님 더욱 그린 내음새.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梅花보다 더 알큰히 한번 나와 보아라.   홍매화 / 도종환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자락 덮어도 매화 한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홍매화 한 송이 매화를 생각함 /나호열 또 한 발 늦었다 일찍이 남들이 쓰다 버린 쪽박같은 세상에 나는 이제야 도착했다 북서풍이 멀리서 다가오자 사람들이 낮게 낮게 자세를 바꾸는 것을 바라보면서 웬지 부끄러웠다 매를 맞은 자리가 자꾸 부풀어 올랐다 벌을 준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홍매화 / 이복란 북풍 한설은 살풀이 춤으로 그 장단이 끊일 줄 모르는데, 동지 섣달 새악씨 시린 코끝은 부끄러워 붉게 물들었는가 매화주 한 잔에 취한 척 노랫 가락이라도 뽑아 보련마는 대작해 줄이 없는 것이 서러운 것을, 서러움 앙 다문 붉은 입술에 육각모 서리꽃이 지기전에 봄은 오시려나.  
941    러시아 농민시인 - 이사코프스키 댓글:  조회:5026  추천:0  2015-04-12
  작사: 미하일 이사코프스키(Михаил Васильевич Исаковский, 1900-1973) 작곡: 마트베이 블란테르(Матвей Исаакович Блантер, 1903-1990)    카츄샤     1절 Расцветали яблони и груши Поплыли туманы над рекой.   라스비땰리 야블라니 히 그루쉬 뺘블리니 뚜 마니 나드 례꼬이 Выходила на берег Катюша На высокий берег на крутой 븨하질라 나 베렉 카쮸샤 나 븨소키 베렉 나 그루꼬또이   사과꽃 배꽃이 피었지. 구름은 강 위를 흘러가네. 카츄샤는 강 기슭으로 나와 높고 가파른 강둑을 걸어가네     2절 Выходила, песню заводила Про степного, сизого орла 브이하질라 페스뉴 자바질랴 프라 스체프노카 시지가 아를라 Про того, которого любила Про того, чьи письма берегла 프라 타골라 토라바 류빌랴 프라 타고 츼 피시마 베례글라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네, 초원의 잿빛 독수리에 대해서 사랑하는 이에 대해, 소중한 편지를 보내오는 이에 대해서     3절 Ой ты, песня, песенка девичья, Ты лети за ясным солнцем вслед. 오이 틔 폐스냐 폐셴카 제비치야 틔 레치 자 야스님 솔른쳄 프슬례드 И бойцу на дальнем пограничье От Катюши передай привет. 이 바이쭈 나 달리넴 파그라니치예 앗 까쮸쉬 페례나이 프리볘트   오! 노래야 처녀의 노래야, 저 빛나는 해를 따라 날아가, 머나먼 국경의 병사 하나에게 카츄샤의 인사를 전해다오     4절 Пусть он вспомнит девушку простую, Пусть услышит, как она поёт, 푸스찌 온 프스뽐닛 제부쉬꾸 쁘라스뚜유 푸스찌 온 슬르이쉿 깍 아나 빠욧 Пусть он землю бережёт родную, А любовь Катюша сбережёт 푸스치 온 제믈류 베례즈요트 라드누유 아 류보비 까츄샤 스볘례즈요트  그로 하여 순박한 처녀를 생각케 하고, 그녀의 노래를 듣게 하렴. 그로 하여 조국을 수호하게 하고, 카츄샤가 사랑을 간직할 수 있도록     1절 반복 Расцветали яблони и груши, Поплыли туманы над рекой. 라스비땰리 야블라니 히 그루쉬 뺘블리니 뚜 마니 나드 례꼬이 Выходила на берег Катюша, На высокий берег на крутой. 븨하질라 나 베렉 카쮸샤 나 븨소키 베렉 나 그루꼬또이   사과꽃 배꽃이 피었지. 구름은 강 위를 흘러가네. 카츄샤는 강 기슭으로 나와 높고 가파른 강둑을 걸어가네.     ========================   봄     이사코프스키 (번역 : 백석)   눈은 녹고 진펄이 푸르렀다 다리위론 다시금 달구지 덜컹 참새는 햇볕에 취했고나 눙금나문 꽃일어 흔들리노나   뜰악마다 일이야 있고 없고 아침부터 흥겨운 덜커덕 소리 지난겨울 들어온 더부사리에 마소떼 몰고 나는 풀밭이로다   봄 봄은 이곳 저곳 살아 숨 쉬고 봄 봄은 온곳에 설렁대노나 수탉은 지붕 끝에 날아 올라가 마을이 들썩하니 울어대도다   영창들 열렸구나 따스한 바람 강에선 흰 김이 사려오른다 아이들 해를 반겨 좋아 떠들고 늙은이들 가만히 살림을 생각코    
940    명시인 - 백석 댓글:  조회:6885  추천:1  2015-04-12
  ​백석(白石) 시 모음     ​ ​   백석(白石, 1912~?) ​ 본명 백기행(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오산고보를 졸업한 백석은 학창 시절부터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고향에서 문학 공부를 하던 1930년, 『조선일보』 작품 공모에 단편소설「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했으나, 1935년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섰으며, 1936년 첫시집 『사슴』을 200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 일제 말 창씨개명의 깅요와 강제 징용을 피해 만주로 가 그곳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 주옥 같은 시를 썼으나 곧 이어진 조국의 분단은 그의 이름과 그의 시들을 우리 문학사에서 너무도 오랜 시간 어둠 속에 매몰시켰다. 짙은 향토적 서정성 속에 북방 정서와 함께 우리 민족의 유구한 정서를 가득 담고 있는 그의 시가 해금됨으로써, 한국 문학은 활발한 연구와 함께 그의 깊은 시세계를 체험하고 있다.   이번에 간행되는 『모닥불』은 1988년 해금을 전후로 시작된 백석 시에 대한 활발한 연구의 결과물로, 남과 북에 흩어져 있던 시편들을 발굴, 한자리에 총망랑한 명실공한 백석 시전집이다. 특히 백석 특유의 향토성 짙은 시어들에 대한 엮은이의 풀이와 해석은 시인 백석에 대한 엮은이의 오랜 애정과 연구의 산물로 백석 시읽기의 참조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자료적 가치로서의 의도도 크다.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시절의 백석(1931) ​ 작가연보   1912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의  장남으로             태어남. 본명은 기행(夔行).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 부친은 한국 사진계의 초기 인물로 『조선일보』             의 사진반장을 지냈으나, 퇴임 후에는 귀향하여 정주에서 하숙을 침. 1918   오산소학교 입학. 1924   오산고보 입학. 동문들의 회고에 의하면 재학 시절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함. 1929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문학 수업에 정진함. 1930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하여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 조             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으로 유학.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 사범과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 1934   아오야마학원 졸업. 귀국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함.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 잡지인 『여성(女性)』지의 편집을 맡음. 1935   8월 31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이후 시 작품에 더욱 정진.『조광(朝             光)』지 편집부 일을 봄. 1936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200부 한정판으로 발간. 1월 29일, 서울 태서관(太             西館)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짐. 출판기념회의 발기인으로 안석영, 함대훈, 홍기문, 김규택, 이원조,             이갑섭, 문동표, 김해균, 신현중, 허준, 김기림이 참여함.            같은 해 4월에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감. 이때의 생활 소감            을 수필 「가재미, 나귀」(『동아일보』)로 발표함.            이 무렵, 함흥에 와 있던 조선 권번 출신의 기생 김진향을 만나 사랑에 빠짐. 이때 김진향에게  '자야(子            夜)'라는 아호를 지어줌. 1938   교직원을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옴. 1939   조선일보에 재입사하여 『여성』지의 편집을 돌보다가 다시 사임함. 1940   만주의 신찡(新京, 지금의 長春)으로 옮겨가서 '신경시 동삼마로 시영주택 35번지'의 중국인 황씨 집에            거처를 정함.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서 6개월 가량 근무하다가 창씨개명 강요로 곧 사직하고, 북만주의            산간오지를 기행함.            평론 『슬픔과 진실』을 만선일보에 발표함. 함께 신경에 와 있던 시인 박팔양이 발간한 『여수시초(麗水            詩抄)』의 출판기념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함.            토마스 하디의 장편 소설 『테스』를 서울 조광사에서 번역 출간함. 이 책의 출판 관계로 서울을 잠시 다            녀감. 1941  생계 유지를 위해 측량 보조원, 측량 서기, 중국인 토지의 소작인 생활까지 하면서 고생함. 1942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 종사함. 러시아 작가 바이코프의 작품 「밀림유정」 등을 번역함. 1944   일제의 강제징용을 피하기 위해 산간 오지의 광산에 숨어서 일함. 1945   해방과 더불어 귀국,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 함. 1946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비서로 조선 민주당의 일을 돌 봄. 1947   시 「적막강산」이 그의 벗 허준에 의해 『신천지』에 발표됨. 분단 이후 그의 모든 분학적 성과와 활동 ​            이 한국의 문학사에서 완전히 매몰됨. 1948   김일성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짐. 1949   숄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을 번역 출간. 1950   국군이 평안도를 수복했을 때 주민들이 그를 정주 군수로 추대했다고 전함. 1953   파블렌코의 『행복』을 번역 출간. 1954   러시아의 농민시인 이사코프스키의 시선집을 연변교육출판사에서 번역 출간. 1956   아동 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동화 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등의 평론을 발표. 1957   동화 시집 『집게네 네 형제』 발간. 1958   시평 「사회주의적 도덕에 대한 단상」을 발표. 1959   시 「이른 봄」 등 7편을 『조선문학』에 발표. 1960   이해 12월 북한의 『조선문학』지에 시 「전별」 등 2편을 발표. 1961   12월에 그의 마지막 시작품 「돌아온 사람」 등 3편을 『조선문학』지에 발표함. 그 이후의  생사는             전혀 확인되지 않으며, 아마도 숙청된 것으로 짐작됨. 1963   이해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음. 1987   첫 시집 『사슴』 이후에 발표된 시와 산문 94편을 정리한 『백석시선집』(이동순 엮음)이 서 울의 창작            과비평사에서 발간됨. 이후 월북문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단행됨. 그로부터 한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그의            작품이 아낌과 사랑을 받음.            시집 『가즈랑집 할머니』(김학동 엮음)와 『백석전집』이 새문사에서 출간됨. 1988   김자야 여사의 회고록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창작과비평』지에 발표됨. 1990   시선집 『맷새소리』가 미래사에서 출간됨. 1994  『백석일대기 1 · 2』(송준 엮음)가 도서출판 지나에서 출간됨. 1995  『백석시전집』(송준 엮음)이 학영사에서 출간됨.            『내 사랑 백석』(김자야 지음)이 문학동네사에서 발간됨. 1996 『백석』(정효구 엮음)이 문학세계사에서 간행됨.          『여우난골족』(이동순 엮음)이 솔출판사에서 간행됨.          『백석』(고형진 엮음)이 도서출판 새미에서 출간됨. 1997   동화 시집 『집게네 네 형제』와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도서출판 시와사회에서 출간됨.         『백석전집』(김재용 엮음)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됨. 창작과비평사 주간으로 '백석시문학 상'이 제정됨. ​   시인 김동명과 함께 영생고보 지육부(문예반)에서 교지 편집 중인 백석(1937년경)   ​ 영생고보의 지육부와 미술부 지도 교사 시절 미술부원들과 교정에서(1937) ​​​​ ​ 백석이 사랑했던 김자야(金子夜) ​ ​ 궁중무 「춘앵전」을 추고 있는 김자야(장발 화백이 그린 1930년대 엽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부분 ​ ​ 친구 정현웅 화백이 북에서 그린 1957년경의 백석(46세)     분단 이후 북쪽 고향에 남아 있던 이유로 한국 문학사에서 잊혀야 했던 백석의 시를 읽는 것은 또한 우리의 문학사를 온전하게 읽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백석 시의 특징으로 꼽히는 향토색 짙은 민속어는 단순한 북방 정서를 담은 풍물에 머물지 않는다. ​ 겉으로는 향토성을 지닌 지방어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 안에는 질박하고 정감 있는 우리의 일상과 민족혼을 담아내고 잇다. ​ 백석의 시에서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잇는 뭇사람들과 오리, 망아지, 토끼를 비롯한 동물, 곤충 등 유난히 작고 가냘프고 여린 것, 외롭고 못난 사물과 소외된 가여운 생명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명 공동체를 이룬다. ​ 이 어울림은 식민 통치자들의 제국주의적 규범화와 규격화, 구별화의 강압에 반대하면서,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온갖 개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로 자연과의 화해 속에 이루는 우리 고유의 정서가 배어 잇는 삶의 따스함을 노래한다.      작품 연보 ​ 1935~1936   정주성(定州城) / 산지(山地) / 주막 / 비 / 나와 지렝이 / 여우난골족(族) / 통영(統營) / 흰 밥 / 고야(古夜) / 가즈랑집 / 고방 / 모닥불 / 오리 망아지 토끼 / 초동일(初冬日) / 하답(夏畓) / 적경(寂境) / 미명계(未明界) / 성외(城外) / 추일산조(秋日山朝) / 광원(曠原) / 청시(靑枾) / 산비 / 쓸쓸한 길 / 자류(柘榴) / 머루밤 / 여승(女僧) / 수라(修羅) / 노루 / 절간의 소 이야기 / 오금덩이라는 곳 / 가키사키(柿崎)의 바다 / 창의문외(彰義門外) / 정문촌(旌門村) / 여우난골 / 삼방   ​ 1939년 7월 『문장』지의 삽화로 화가 정현웅(鄭玄雄)이 그린 백석의 캐리커처   1936~1940   통영(統營) / 오리 / 연자간 / 황일(黃日) / 탕약(湯藥) / 이즈 고쿠슈 가도(伊豆國溱街道) / 창원도(昌原道) / 통영(統營) / 고성가도(固城街道) / 삼천포(三千浦) / 북관(北關) / 노루 / 고사(古寺) / 선우사(膳友辭) / 산곡(山谷) / 바다 / 단풍 / 추야일경(秋夜一景) / 산숙(山宿) / 향락(饗樂) 야반(夜半) / 백화(白樺)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석양 / 고향 / 절망 / 외갓집 / 개 / 내가 생각하는 것은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삼호(三湖) / 물계리(物界里) / 대산동(大山洞) 남향(南鄕) / 야우소회(夜雨小懷) / 꼴두기 / 가무래기의 악(樂) / 멧새 소리 / 박각시 오는 저녁 /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 동뇨부(童尿賦) / 함남 도안(咸南道安) / 구장로(球場路) / 북신(北新) / 팔원(八院) / 월림(月林)장 / 목구(木具)     1940~1960   북방(北方)에서 / 수박씨, 호박씨 / 안동(安東) / 허준(許俊) / 귀농(歸農) / 국수 / 흰 바람벽이 있어 /  촌에서 온 아이 / 조당(澡塘)에서 / 두보나 이백같이 / 『호박꽃 초롱』 서시 / 산 / 적막강산 / 칠월 백중 /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 남신주의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이른 봄 / 공무여인숙 / 갓나물 / 동식당 / 축복 / 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 / 돈사의 불 / 전별 / 눈 / 탑이 서는 거리 / 돌아온 사람 / 손뼉을 침은 / 제3 인공 위성   『집게네 네 형제』 집게네 네 형제 / 쫓기달래 / 오징어와 한솥밥 / 귀머거리 너구리 / 산골 총각 / 어리석은 메기 / 가재미와 넙치 / 나무 동무 일곱 동무 / 말똥굴이 / 배꾼과 새 세 마리 / 준치 가시     ​ 영생고보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모습(1937)     모닥불  ​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 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가 있다. ----------------------------------- 갓신창 : 옛날의 소가죽으로 만든 신의 밑창. 개니빠디 : 개의 이빨.   ​ ​박각시 오는 저녁   당콩밥에 가지 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 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하늘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 박각시 : 박각시나방. 주락시 : 주락시나방. 돌우래 : 도루래. 땅강아지. 팟중이 : 팥중이. 메뚜기의 한 가지.   ​ 비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았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 두레방석 : 도래방석. 짚으로 엮어 짠 둥그스름한 방석.   ​ 청시(靑枾)   별 많은 밤 하늬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는다   ​ 산비   산뽕잎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들기가 나른다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들기 켠을 본다 ------------------------------- 자벌기 : 자벌레.   ​ 초동일(初冬日)   흙담벽에 별이 따사하니 아이들은 물코를 흘리며 무감자를 먹었다   돌덜구에 천상수(天上水)가 차게 복숭아남ㄱ에 시라리타래가 말러갔다 ------------------------------------ 돌덜구       : 돌절구. 복숭아남ㄱ : 복숭아나무. 남ㄱ은 나무의 옛 표기. 시라리타래 : 시래기를 길게 엮은 타래.   ​ 황일(黃日)   한 십리 더 가면 절간이 있을 듯한 마을이다 낮 기울은 볕이 장글장글하니 따사하다 흙은 젖이 커서    살같이 깨서 아지랑이 낀 속이 안타까운가보다 뒤울안에 복사꽃 핀 집엔 아무도 없나보다 뷔인 집    에 꿩이 날어와 다니나보다 울밖 늙은 들매남ㄱ에 튀튀새 한불 앉었다 흰구름 따러가며 딱장벌레    잡다가 연두빛 잎새가 좋아 올라왔나보다 밭머리에도 복사꽃 피었다 새악시도 피였다 새악시 복    사꽃이다 복사꽃 새악시다 어데서 송아지 매--- 하고 운다 골갯논드렁에서 미나리 밟고 서서 운    다 복사나무 아래 가 흙작난하며 놀지 왜 우노 자개밭둑에 엄지 어데 안 가고 누었다 아릇동리선    가 말 웃은 소리 무서운가 아릇동리 망아지 네 소리 무서울라 담모도리 바윗잔등에 다람쥐 해바라    기하다 조은다 토끼잠 한잠 자고 나서 세수한다 흰구름 건넌산으로 가는 길에 복사꽃 바라노라 섰    다 다람쥐 건넌산 보고 부르는 푸념이 간지럽다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 --------------------------------- 담모도리 : 담 모서리.   ​ 연자간   달빛도 거지도 도적개도 모다 즐겁다 풍구재도 얼럭소도 쇠드랑볕도 모다 즐겁다   도적괭이 새끼락이 나고 살진 쪽제비 트는 기지개 길고   홰냥닭은 알을 낳고 소리치고 강아지는 겨를 먹고 오줌 싸고   개들은 게모이고 쌈지거리하고 놓여난 도야지 둥구재벼 오고   송아지 잘도 놀고 까치 보해 짖고   신영길 말이 울고 가고 장돌림 당나귀도 울고 가고   대들보 우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도 모도들 편안하니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도들 편안하니 --------------------------------- 풍구재     : 풍구. 곡물에서 쭉정이, 겨, 먼지 등을 제거하는 농구. 쇠드랑볕  : 쇠스랑 볕. 창살로 들어온 햇빛. 새끼락     : 커지며 나오는 손톱. 발톱. 홰냥닭     : 홰에 올라앉은 닭. 쌈지거리  : 짐짓 싸우는 시늉을 하면서 흥겨워하는 것. 보해 짖고 : 줄곧 짖어대고. 채일        : 차일(遮日) 토리개 : 목화의 씨를 빼는 기구. 후치    : 홀칭이. 극쟁이. 쟁기와 비슷하나 보습 끝이 무디고 술이 곧게 내려감. 쟁기로 갈아놓은 논밭에 골을 타거나 흙이 얕은 논밭을 가는 데 씀. 보십         : 보습. 쟁기나 극쟁이의 솥.   ​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이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 ​지중지중        : 지정지정. 곧장 나아가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 쇠리쇠리하야  : 눈이 부셔. 눈이 시려. 깨웃듬이        : 돌출되어 기우뚱히 살짝 모습을 보이는 모양.   ​ 대산동(大山洞) - 물닭의 소리 3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 말이다 저 건너 노루섬에 노루 없드란 말이지 신미도 삼각산엔 가무래기만 나드란 말이지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 말이다 푸른 바다 흰 하늘이 좋기도 좋단 말이지 해밝은 모래장변에 돌비 하나 섰단 말이지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 말이다 눈빨갱이 갈매기 빨갱이 갈매기 가란 말이지 승냥이처럼 우는 갈매기 무서워 가란 말이지 ------------------------------------ ​가무래기 : 새까맣고 둥그란 조개.   ​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황토 마루 수무남ㄱ에 얼럭궁 덜럭궁 색동헌겊 뜯개 조박 뵈짜배기 걸리고 오쟁이 끼애리 달리고 소    삼은 엄신 같은 딥세기도 열린 국수당고개를 몇 번이고 튀튀 춤을 뱉고 넘어가면 골안에 아늑히    묵은 영동이 무겁기도 할 집이 한채 안기었는데   집에는 언제나 센개 같은 게사니가 벽작궁 고아내고 말 같은 개들이 떠들석 짖어대고 그리고 소거름    내음새 구수한 속에 엇송아지 히물쩍 너들씨는데   집에는 아배에 삼춘에 오마니에 오마니가 있어서 젖먹이를 마을 청눙 그늘 밑에 삿갓을 씌워 한종일    애 뉘어두고 김을 매러 다녔고 아이들이 큰 마누래에 작은 마누래에 제구실을 할 때면 종아지물본    도 모르고 행길에 아이 송장이 거적뙈기에 말려나가면 속으로 얼마나 부러워하였고 그리고 끼때    에는 부뚜막에 박아지를 아이덜 수대로 주룬히 늘어놓고 밥 한덩이 질게 한술 들여 트려서는 먹었    다는 소리를 언제나 두고두고 하는데   일가들이 모두 범같이 무서워하는 이 노큰마니는 구덕살이같이 욱실욱실하는 손자 증손자를 방구석    에 들매나무 회채리를 단으로 져다 두고 따리고 싸리갱이에 갓신창을 매여놓고 따리는데   내가 엄매등에 업혀가서 상사말같이 향약에 야기를 쓰면 한창 퓌는 함박꽃을 밑가지채 꺾어주고 종    대에 달린 제물배도 가지채 쪄주고 그리고 그 애끼는 게사니알도 두 손에 쥐어주곤 하는데   우리 엄매가 나를 가지는 때 이 노큰마니는 어늬 밤 크나큰 범이 한마리 우리 선산으로 들어오는 꿈    을 꾼 것을 우리 엄매가 서울서 시집을 온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 노큰마니의 당조카의    맏손자로 난 것을 대견하니 알뜰하니 기꺼히 여기는 것이었다 --------------------------------------- ​끼애리       : 짚꾸러미. 소삼은       : 엉성하게 짠. 엄신          : 엉성하게 만든 짚신. 또는 상제가 졸곡(卒哭)전에 신는 짚신. 센개          : 털빛이 흰 개. 게사니       : 거위. 벅작궁       : 법석대는 모양. 너들씨는데 : 한가히 왔다갔다하며 주위를 맴도는 것을 나타냄. 청눙          : 청랭(淸冷). 시원한 곳. 구덕살이    : 구더기. 싸리갱이    : 싸리나무의 마른 줄기. 상사말       : 야생마. 항약          : 악을 쓰며 대드는 것. 야기       : 어린아이들이 억지쓰고 떼쓰는 짓.   ​ 안동(安東)   이방(異邦) 거리는 비오듯 안개가 나리는 속에 안개 같은 비가 나리는 속에   이방 거리는 콩기름 쪼리는 내음새 속에 섭누에번디 삶는 내음새 속에   이방 거리는 도끼날 벼르는 돌물레 소리 속에 되광대 켜는 되양금 소리 속에   손톱을 시펄하니 기르고 기나긴 창꽈쯔를 즐즐 끌고 싶었다 만두(饅頭)꼬깔을 눌러쓰고 곰방대를 물고 가고 싶었다 이왕이면 향(香)내 높은 취향리(梨) 돌배 움퍽움퍽 씹으며 머리채 츠렁츠렁 발굽을 차는 꾸냥과 가    즈런히 쌍마차 몰아가고 싶었다 ----------------------------------​ 섭누에번디 : 벌레집에 잇는 누에의 번데기. 돌물레 : 칼, 도끼, 가위 등의 무뎌진 날을 벼리는 회전숫돌. 창꽈쯔 : 長掛子. 중국식의 긴 저고리. 꾸냥 : 고랑(姑娘). 중국 처녀.   ​ 목구(木具)   오대(五代)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다 찌그러진 들지고방 어득시근한 구석에서 쌀독과 말쿠지와 숫    돌과 신뚝과 그리고 옛적과 또 열두 데석님과 친하니 살으면서   한 해에 몇번 매연지난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얏맹    건을 지르터 맨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의 우에 모신 신주 앞에 환한 촛불 밑에 피    나무 소담한 제상 위에 떡 보탕 식혜 산적 나물지짐 반봉 과일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애하고 그리고 합문 뒤에는 흠향 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 것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줌 흙과 한점 살과 먼 옛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룩    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와…… 수원 백씨(水原白氏) 정주 백촌(定州白村)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 ​들지고방 : 들문만 나 있는 고방. 즉 가을걷이나 세간 따위를 넣어두는 광. 말쿠지 : 벽에 옷 따위를 걸기 위해 박아놓은 큰 나무못. 데석님 : 제석신(帝釋神). 무당이 받는 가신제(家神祭)의 대상인 열두신. 한 집안사람들의 수명, 곡물, 의류, 화복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본다 함. 최방등 제사 : 정주 지방의 전통적인 제사풍속인 차방등 제사로 5대째부터는 차손(次孫)이 지내는 특이한 제사. 대멀머리 : 아무것도 쓰지 않은 맨머리. 외얏맹건 : 오얏망건. 망건을 잘 눌러 쓴 폼이 오얏꽃같이 단정하게 보이는 데서 온 말. 교의 : 제사 때 신의를 모시는 의자. 보탕 : 몸을 보(補)한다는 탕국. 반봉 : 제물에 쓰는 생선 종류의 통칭. 합문(閤門) : 제사 때에 유식(侑食)하는 차례에서 문을 닫거나 병풍으로 가리어 막는 일. 흠향(歆饗) : 제사 때에 신명(神明)이 제물을 받아서 먹는 것.   ​ 수박씨, 호박씨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 와서 어진 사람의 짓을 어진 사람의 마음을 배워서 수박씨 닦은 것을 호박씨 닦은 것을 입으로 앞니빨로 밝는다   수박씨 호박씨를 입에 넣는 마음은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고 게으른 마음이나 이것은 또 참으로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이라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오랜 세월이 아득하니 오랜 지혜가 또 아득하니 오랜 인정이 깃들인 것이다 태산(泰山)의 구름도 황하(黃河)의 물도 옛님군의 땅과 나무의 덕도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뵈이는    것이다   이 적고 가부엽고 갤족한 희고 까만 씨가 조용하니 또 도고하니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손으로 오르나리는 때 벌에 우는 새소리도 듣고 싶고 거문고도 한 곡조 뜯고 싶고 한 오천 말 남기고 함곡관(函谷關)도 넘    어가고 싶고 기쁨이 마음에 뜨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앞니로 까서 잔나비가 되고 근심이 마음에 앉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혀끝에 물어 까막까치가 되고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는 오두미(五斗米)를 버리고 버드나무 아래로 돌아온 사람도 그 옆차개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벼개하고 누었든 사람도 그 머리맡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 ​닦은 : 덖은. 씨앗 따위를 불에서 볶아낸. 중국의 연길 지역에서 거주하는 조선족들은 지금도 이 말을 쓰고 있다. 밝는다 : '바르다'의 방언. 도고하니 : 짐짓 의젓하니. 함곡관 : 요동반도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목. 교통의 요지. 오두미 : 오두미도(五斗米道). 중국 민간 종교의 하나. 후한말에 노자로부터 부수주법(符水呪法)을 받았다고 하는 장릉(張陵)에 의하여 사천 지방에서 시작된 요병(療病)을 중심으로 하는 교법. 요병이 보수로 쌀 다섯 말을 거둔 데서 이렇게 일컬었음. 천사도(天師道). 옆차개 : 호주머니.   ​ 적막강산   오이밭에 벌배채 통이 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정주(定州) 동림(東林) 구십여 리 긴긴 하로 길에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 ​벌배채 : 들의 배추.   ​ 오리 망아지 토끼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    가 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버린다   장날 아침에 앞 행길로 엄지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지워 나는 산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난 토끼굴을 내가 막아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 동말랭이 : 산꼭대기. 시악 : 공연히 심술을 내어 화를 냄. 새하려 : 땔나무를 장만하러.   ​ 오금덩이라는 곳   어스름저녁 국수당 돌각담의 수무나무가지에 녀귀의 탱을 걸고 나물매 갖추어놓고 비난수를 하는    젊은 새악시들 --- 잘 먹고 가라 서리서리 물러가라 네 소원 풀었으니 다시 침노 말아라   벌개늪녘에서 바리깨를 뚜드리는 쇳소리가 나면 누가 눈을 앓어서 부증이 나서 찰거머리를 부르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피성한 눈슭에 저런 팔다리에 거마리를 붙인다   여우가 우는 밤이면 잠 없는 노친네들은 일어나 팥을 깔이며 방뇨를 한다 여우가 주둥이를 향하고 우는 집에서는 다음날 으례히 흉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 ​녀귀 : 못된 돌림병에 죽은 사람의 귀신 즉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 탱 : 탱화. 벽에 걸린 불화(佛畵). 나물매 : 나물과 밥. 비난수 : 귀신의 원혼을 달래주며 비는 말과 행위. 벌개늪 : 들판에 잇는 벌레가 많은 늪. 바리깨 : 주발 뚜껑.   동뇨부(童尿賦)   봄철날 한종일내 노곤하니 벌불 장난을 한 날 밤이면 으례히 싸개동당을 지나는데 잘망하니 누어 싸    는 오줌이 넙적다리를 흐르는 따근따근한 맛 자리에 펑하니 괴이는 척척한 맛   첫여름 일은 저녁을 해치우고 인간들이 모두 터앞에 나와서 물외포기에 당콩포기에 오줌을 주는 때    터앞에 밭마당에 샛길에 떠도는 오줌의 매캐한 재릿한 내음새   긴긴 겨울밤 인간들이 모두 한잠이 들은 재밤중에 나 혼자 일어나서 머리맡 쥐발 같은 새끼 요강에    한없이 누는 잘 매럽던 오줌의 스르릉 쪼로록 하는 소리   그리고 또 엄매의 말엔 내가 아직 굳은 밥을 모르던 때 살갗 퍼런 막내고무가 잘도 받어 세수를 하였    다는 내 오줌빛은 이슬같이 샛말갛기도 샛맑았다는 것이다 ------------------------------- ​벌불 : 들불. 싸개동당 : 싸개동장. 오줌싸개의 왕 내지는 오줌을 기어코 싸는 장소. 즉, 방안에서 오줌 싸는 통과제의. 잘망하니 : 질박하게. 얕은 물이나 진창을 밟거나 치는 소리가 나는 모양.   ​ 북관(北關)  - 함주시초(咸州詩抄) 1   명태 창남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女眞)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 백성의 향수도 맛본다 ------------------------------------------- ​끼밀고 있노라면 : 어떤 물건을 끼고 앉아 얼굴 가까이 들이밀고 자세히 보며 느끼고 있노라면. 배척한 : 배척지근한. 양념을 친 무우 등이 덜 익어 비린내가 나는. 가느슥히 : 가느스름하게. 희미하게.   ​ 가키사키(柿崎)의 바다   저녁밥때 비가 들어서 바다엔 배와 사람이 흥성하다   참대창에 바다보다 푸른 고기가 께우며 섬돌에 곱조개가 붙는 집의 복도에서는 배창에 고기 떨어지    는 소리가 들렸다   이슥하니 물기에 누긋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    고 눈물겨웠다   어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새벽 달같이 아 아즈내인데 병인(病人)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같이 누었다 --------------------------------- ​가키사키(柿崎) : 일본 이즈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항구. 배창 : 배안의 바닥. 왕구새자리 : 왕골 자리. 아즈내 : 아지내. 초저녁.   ​ 삼천포(三千浦) - 남행시초 4   졸레졸레 도야지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런 사람들이 둘러서서 어늬 눈 오신 날 눈을 치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려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 ---------------------------- ​기르매 : 소의 등에 얹는 안장.   [출처] ​백석(白石) 시 모음|작성자 ohyh45  
939    <그릇> 시모음 댓글:  조회:4563  추천:0  2015-04-12
  오세영의 '그릇' 외    + 그릇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오세영·시인, 1942-) * 사금파리: 사기그릇의 깨어진 조각 + 개밥그릇  하얀 쌀밥을 개가 먹다 반쯤 남겨 놓았다  돌아가신 울 할아버지 집에 들러보시면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시겠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이놈들  (심시인) + 그릇     그릇이 되고 싶다  마음 하나 넉넉히 담을 수 있는  투박한 모양의 질그릇이 되고 싶다  그리 오랜 옛날은 아니지만  새벽 별 맑게 흐르던 조선의 하늘  어머니 마음 닮은 정화수 물 한 그릇  그 물 한 그릇 무심히 담던  그런 그릇이 되고 싶다  누군가 간절히 그리운 날이면  그리운 모양대로 저마다 꽃이 되듯  지금 나는 그릇이 되고 싶다  뜨겁고 화려한 사랑의 불꽃이 되기보다는  그리운 내 가슴 샘물을 길어다가  그대 마른 목 적셔줄 수 있는  그저 흔한 그릇이 되고 싶다  (김시천·시인, 1956-) + 그릇에 관하여  얘야, 그릇은 담아내는 것보다  비워내는 것이 인생살이란다  어머니의 손은 젖을 대로 젖어서  좀처럼 마를 것 같지 않다  젖은 손을 맞잡고 문득 펴 보았을 때  빈 손바닥 강줄기로 흐르는 손금  긴 여행인 듯 패여 왔구나  접시들은 더러움을 나눠 가지며  조금씩 깨끗해진다  헹궈낸 접시를 마른행주로 닦아내는  어머니의 잔손질, 햇살도 꺾여  차곡차곡 접시에 쌓인다  왜 어머니는 오래된 그릇을 버리지 못했을까  환한 잇몸의 그릇들  촘촘히 포개진다  나도 저 그릇처럼 닦아졌던가  말없이 어머니는 눈물 같은 물기만  정성스레 닦아낸다  그릇 하나 깨끗하게 찬장으로 올라간다  (윤성택·시인, 1972-) + 밥그릇  밥하던 아내가  포개진 밥그릇이 빠지지 않아  나에게 들고 왔다  한 그릇에 조금 작은 그릇이 꼭 끼어있다  그릇이 그릇을 품고 있다  내 안에 있는 당신의 아픔  당최, 힘주어 당겨도 꼼짝하지 않는다  물기에 젖어 안으로 깊어진 마음  오늘은 저리 꼭 맞았나보다  한번쯤 나는 등뒤에서 너를 안아보고 싶었다네  선반 위,  씻긴 두 개의 밥그릇이  봉분처럼 나란하다  (고영민·시인, 1958-) + 밥 한 그릇 혼자 라면을 끓여 먹으니까 슬프다 그 동안 어머니가 해주신 밥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는지 이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제는 내 손으로 처음으로 밥을 해먹었다 내가 먹기 전에 밥 한 그릇을 먼저 어머니 무덤가에 갖다드렸다  (정호승·시인, 1950-) + 마음의 그릇  설거지통에서  부딪히며  묵은 때 닦이는  그릇은  콩 한 알 담아도  어울리고  된장 고추장 담으려 할 때도  거부하지 않는  평범한  찌그러진 양은그릇  당신께서  무엇에 필요로 하든  늘  비워 놓고 기다리는  그릇  (안갑선·시인, 경기도 안성 출생)   + 놋그릇을 닦으며  한 움큼 뭉친 지푸라기로  짚재를 찍어  몇 달째 벽장에 갇힌  속앓이 찬찬히 닦아낸다  살아 온만큼  얼룩진 내 안의 퍼런 녹들도  자꾸 닦아내면  쪼가리별이라도 돋아날까  손길이 지날 때마다 먹구름 걷혀지고  비 오는 밤에도  황금빛 쟁반달 뜬다  이팝나무 꽃살 하얀 밥   소담스레 담기고 싶어  대나무 살강 위  반짝반짝 뜬눈으로  또 한밤을 지새운다  (송연우·시인, 경남 진해 출생) + 밥그릇이 되고 싶다 아내가 친정 가고 없는 날  멍하니 누워 천장무늬 세고 있다  겨우 하루 지났는데  때도 안돼서 먹을 것 타령만 해대는  초등학생 아들녀석은  이웃집에 떠맡겨 버리고  아침도 굶고 점심도 거르고  그냥 게으른 벌레로 뒹굴고 있다  제 입 하나 넣는 것도 이렇게 귀찮은데  다른 입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어머니 늙어 홀로 빈 방 지키실 때  의사는 영양실조라고 진단을 내렸었다  아, 어머니  이 좋은 세상에 영양실조라니  어머니 세상 버리고 나서야  어이없던 웃음이 눈물로 돌아선다  나도 누군가의 밥그릇이 되고 싶다   (고증식·교사 시인, 강원도 횡성 출생) + 질그릇  옹기장이 손에서  갓 생명을 불어넣은 질그릇  둔탁한 모습이지만  내 안에는 열정이 넘쳐  아름다워 깨질까  걱정 없지만  누구한테나 편안한  성품으로 다가가고파  빼어난 목소리로  노랠 부를 수 없지만  가슴속 찬미가는  흥얼거릴 수 있어....  아무도 날  반겨주는 이 없건만  토담토담  정감이 오갈 때면  나 열정의 몸 바쳐  바시락 모시조개와 함께  구수한 된장국에 데워진  내 향내만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으리  (김세실·시인, 부산 출생) + 아버지의 밥그릇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안효희·시인, 1958-) + 그릇 코 묻은 동전을 만지다보면  파란 배추이파리 지폐가  간절하다  그릇의 입은 열려 있어도  채워도 채워도 쌓이지 않고  그릇의 믿은 닫혀 있어도  부어도 부어도 넘치지 않는  한번도 황홀하게 배불러보지 못한  우리들의 유한한  허기진 마음  (진의하·시인, 1940-)  +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이 집 한 채는  쥐들의 밥그릇  바퀴벌레들의 밥그릇  이 방을 관 삼아 누운  오래 전 죽은 자의 밥그릇  추억의, 욕창을 앓는 세월의 밥그릇  맵고 짠 눈물 찐득찐득 흘려대던  병든 복숭아나무의 밥그릇  멍든 구름의 밥그릇  상처들의,  이 집 한 그릇  밥그릇 텅텅 비면 배고플까봐  그대와 나 밥그릇 속에 눕네  그대에게서 아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냄새 나네  (김선우·시인, 1970-)
938    <봉숭아> 시모음 댓글:  조회:4668  추천:0  2015-04-12
  + 봉숭아    한여름 내내  태양을 업고  너만 생각했다  이별도 간절한 기도임을  처음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잊어야 할까  내가 너의 마음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네 혼에 불을 놓는  꽃잎일 수 있다면  나는  숨어서도 눈부시게  행복한 거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봉숭아 꽃  보여줄까 말까?  터뜨릴까 말까?  손톱 밑 반달이 보고 있어  그래 좋다  빨간색 커튼 가리자  톡 톡 톡  사랑이 익는 소리   (배종대·시인) + 봉숭아  너 여태껏  거기 있었구나  울퉁불퉁 토담 길  모두 시멘트로 바뀌고  다 사라진 줄 알았더니  갈라진 벽돌 틈새  용케도 뿌리를 내렸구나  손가락마다 빨갛게 동여매고  종일 담 밑에 웅크려 있던 순이는  LA로 이민 가서 소식조차 없는데  그녀가 버리고 떠난  그 앙증맞던 빨간 손톱만  여태껏  거기 남아 있었구나  (정소슬·시인, 1957-) + 봉숭아 꽃물  아홉 살 돌팔매가 잔별로 뜬 새벽 두 시  모닥불 약쑥 연기 진양조로 흔들리면  제풀에 불콰해졌지,  꽃잎파리 싸맨 손톱  손톱이며 가슴까지 으깬 꽃잎 동여매고  초경보다 더 붉게,  붉게 젖어 타던 속내  어머니  혼불 지피셨지  손가락 끝 끝마다  (박해성·시인, 1947-) + 봉숭아 뜨거운 햇살이 심장까지 내리찔러 등골에까지 땀 흐르는 한여름 날 사랑의 열기를 견디다 못해 순결한 처녀가 초경을 하듯 꽃잎을 피우더니 붉은 꽃잎에 꽃잎을 더하여 피어나고 있다 아직도 한번도 사랑을 못해 본 수줍은 계집아이 손톱을 빨갛게 물들여 놓는다 해맑게 웃는 웃음을 손으로 가리는 계집아이에게 순결은 사랑하는 이에게 단 한번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봉숭아 황홀한 꿈  여름 내내 너에게 가 스미고 싶은 마음이  태양 아래 막무가내 출렁이던 것을 아느냐  밤마다 너에게 가 닿는 황홀한 꿈,  서늘한 네 사립문 밖에 서성이는 별을 아느냐  쏟아지는 별빛이 청천벽력같이 네 영혼을 열어젖히는 찰나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붉은 선혈 뚝뚝 떨구듯  불 놓고 싶던 마음을 아느냐 정녕 그대는 아느냐  내 안에 붉디붉은 꽃 하나 피워 놓은 사람아  물들지 않은 사랑아  (이정자·시인) + 봉숭아  그 애를 기억하라고 한다면  봉숭아뿐이 안 떠오릅니다  손톱 끝의 빨간 봉숭아물  내 발끝에서 머리까지 온통 물들입니다  서양 매니큐어처럼 야하지도 않고  뭐랄까 그냥 옛날 우리나라  여자 이름 같은 것 있죠  그 애네 집은 유독  봉숭아가 참 많이 피어 있던 것 같아요  낮에 나온 반달마저도  붉어지는 그 애네 집이었습니다  봉숭아, 자꾸만 마음에다 짓이기다 보면  그 애의 얼굴이 손톱 끝에 걸립니다  그 애에게 못 부친 편지는  봉숭아 밭에 가득입니다  손톱 끝을 풀고 그 애를 읽습니다.  (서수찬·시인, 1963-)  +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을 때  언제였던가  그 겨울, 첫눈 내리던 날.  뽀얀 얼굴의 널 만났을 때,  봉숭아 꽃물 들인 손톱이 다 지워지기 전에  첫눈이 내렸다며 넌 기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사랑은 분명 이루어져야 한다.  겨울 나무 위의 하늘처럼  늘 비어 있는 내게  너는 여름 잎사귀처럼  싱그럽게 다가와야 한다.  그 동안 못 다한 사랑을  죽을 때까지 가슴으로 나누며  이 도시에서의 가장 기쁜  연인이 되어야 한다.  (손종일·시인, 1965-) + 봉숭아 햇살 젖은 칠월  뒤뜰에 봉숭아 진한 붉은색으로  제비꽃 그림을 그린다.  댕기머리 외갓집 누나가  초롱불 밑에 발갛게  손톱 물들이고 동생이 옆에 앉아  칭얼거린다.  손가락마다 풀잎 싸서  하얀 실로 칭칭 동여매고  여름밤 조심스럽게 반딧불 따라  잠꾸러기 밤잠 설친다.  아. 그립다. 여름이다.  외할머니 여름밤 옛날얘기  아이 무서워라 도깨비얘기  한참 바라보던 겁쟁이 보름달은  슬금슬금 뒷걸음치고는 아 예.  숨어있었다.  (장수남·시인, 1943-) + 봉선화 꽃물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 더 이상은 감출 길 없어 이 밤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여요 한 올 한 올  정성껏 사랑을 수놓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아는 듯 모르는 듯 얄밉기 짝이 없는 무심한 당신이라 해도 내 손톱마다 홀연 피어난   꽃들이야 알아보고 예쁘다 참 예쁘다 한 말씀은 해주시겠지요. 당신을 뜨겁게 사랑한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연분홍 봉선화 꽃물로 수줍게 살짝 표하는 내 마음.  (정연복·시인, 1957-)
937    <숟가락> 시모음 댓글:  조회:4326  추천:0  2015-04-12
+ 외할머니의 숟가락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숟가락부터 우선 쥐여주고 본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 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 고집 센 외할머니의 신조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쓰는가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고 마실을 가는가 들은 바는 없지만, 그 지엄하신 신조대로라면 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그릇의 따순 공기밥이어야 한다 그것도 꾹꾹 눌러 퍼담은 고봉밥이어야 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 상보처럼 덮여 있는 양철대문 앞에 서니 시장기부터 먼저 몰려온다 나도 먼길 오시느라 얼마나 출출하겠는가 마실간 주인 대신 집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들고 문을 딴다  (손택수·시인, 1970-) + 숟가락 숟가락을 드는데 어제는 누가 사용했을까? 누구의 입에 들어갔던 것일까? 사용한 자국도 없이 잘 씻기고 반짝반짝 닦여서 얇은 종이에 싸여 있지만, 입과 입을 연결시키며 우리들 모두 한솥밥 나눠 먹는 형제들로 만들고 싶어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따라 밥을 뜨는 내 숟가락에는 훈훈한 사랑이 구수하게 솟아나며 내 입맛을 돋우는 것이었다.  (박일·시인, 1969-) + 목이 부러진 숟가락  어머니는 목이 부러진  내 알루미늄 숟가락을 버리지 않으셨다  부뚜막 작은 간장종지 아래에다 놔두셨는데  따뜻해서 갖고 놀기도 좋았다 눈두덩이에도 대보고  배꼽 뚜껑을 만들기도 했다  둥근 조각칼처럼 생겼던 손잡이는  아끼기까지 하셨다 고구마나 감자를 삶을 때  외길로 뚫고 간 벌레의 길을 파내시는 데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내 몸은  탄저병에 걸린 사과나 굼벵이 먹은 감자가 되어  한 켜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다  숫제, 내가 한 마리 벌레여서  밤고구마나 당근의 단단한 속살을 파먹고 있고  내 숟가락은 아직 생기지도 않았고  어머니는 외할머니 댁 추녀 밑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그런 벌레 알 같은 생각을 꼼지락거리기도 한다  숟가락 손잡이로 둥글고 깊게  나를 파고 나를 떼내다가  지금은 없는 간장종지 아래에  지금은 없는 내 목 부러진 숟가락을  모셔두고 온다  (이정록·시인, 1964-) + 딱 한 가지 숟가락 하는 일은 딱 한 가지 하루 종일 놀다가 아침 저녁 잠깐씩 밥과 국을 떠 입에 넣는 일밖에 없다. 그런데 그 일 한 가지가 사람을 살리네 목숨을 살리네 고마운 숟가락 밥숟가락! (엄기원·아동문학가, 1937-) + 숟가락 너는 참 좋은 일만 한다  내 몸에 좋은 것을 넣어 주려고  매일 매일 내 입 가까이  와서는 한 발 들여놓았다가  다시 나가지  아예 쑥 들어왔다가  놀다 가는 것도 아니고  먹을 것만 쏘옥 넣어 주고  슬쩍 사라졌다가는  다시 와서 한 입 주고 가지   입맛 없을 때는 먹기 싫은데   꼭 한 입 넣어 주고야 마는 너는  참 대단한 녀석이야  식사가 끝나면 시치미 뚝 떼고  네 자리에  얌전하게 들어가   다음을 기다릴 줄도 아는 넌 역시 멋진 녀석이야 (한선자·아동문학가) + 떡잎   씨앗의 숟가락이다  뜨겁지 않니? 햇살 한 숟갈 차갑지 않니?  봄비 한 숟갈 씨앗의 첫 숟가락이다  봄이 아끼는  연둣빛 숟가락  (조영수·아동문학가) + 수저   아이가 두 시간째 주방에서 달그락거리고 있다 몸져누워 먼 세상일인 듯 듣는 아득히 낯선 소리 서툴게 부딪는 숟가락 소리, 살아있다는 건 누워서 듣는 달그락거리는 수저소리쯤 될까 죽은 후에도 저 하나쯤 가져가고 싶은 소리 숨이 끊어진 뒤에 마지막까지 남는 건 청각이라는데 문득, 아버진 무슨 소릴 가져갔을까 궁금하다 호흡기 떼기도 전에, 글쎄, 시트 밑에서 통장이 여섯 개나 나왔는데 우리도 모르는 통장이, 관리는 누가 하냐 첫째는 멀리 있어 안 되고 둘째는 좀 불안하고, 너는 생전에 아버지 애 먹여서 안 되고, 아버지의 일생을 가볍게 들었다 놨다, 마지막까지 통장통장 하던 소리, 육남매 덜걱대는 소리, 태어나서 시작되고 죽을 때 거두어가는 게 수저소리일 텐데 그 소리 대신, 결국 아버지는 자신의 통장을 다 가져가신 셈이다  (이규리·시인, 1955-)
936    시인의 明과 暗 댓글:  조회:4281  추천:0  2015-04-12
시인(詩人)의 명(明)과 암(暗) 문학은 현실의 거울이고 인생의 복사판이다. 문학은 현실과 인생의 의미와 방법과 목적을 확인도 하고 새롭게 창조도 하고 서로 공감하면서 위안과 감동과 구원을 주고 받을 수도 있다. 유한하고 일회적인 우리의 삶을 작품을 통하여 무한의 광장으로 끌어내서 보존하고 삶의 내용과 질을 좀더 유익하고 윤택하고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의 효용성이다. 말은 입 밖에 나오는 즉시 바로 사라지고, 그토록 공을 들여서 아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관리하는 우리의 몸은 백년도 못 가서 없어진다. 그러나 글(文)을 통한 기록이나 작품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여 영원성을 획득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 창작은 천부적인 재능이나 소질을 갖춘 특정한 소수(小數) 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좋아하나,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도전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재능의 결과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나 도전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성취할 수가 없다. 수없는 좌절과 실패, 시련과 고난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 만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예부터 지금까지 수 많은 성공인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서 증명한 사실이다. 국가 사회적으로 문화예술은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분야이다. 특히 문화 예술에서도 문학은 더욱 소외 받고 있는 영역이다. 문화예술의 거리라고 부르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는 소극장과 극장은 많아도 문학관이나 문학 관련 시설은 하나도 없다. 또한 문화예술의 거리라고 부르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는 갤러리와 전시관은 많아도 문학 관련 시설은 하나도 없다. 실질적으로 대학로는 연극의 거리, 인사동은 미술의 거리이다. 문학 창작은 개인적인 행위이고 결과물은 서점의 책으로 전시되며 읽는 행위도 개인적이라는 특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중과의 만남과 소통이 문화예술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 임을 상기한다면, 남산 아래의 ‘문학의 집 서울‘은 너무 외진 곳에 있다. 시인, 수필가, 소설가 등 문인이 되기 위한 절차는 대부분 문학 잡지의 신인 문학상 당선을 통해서 등단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관례이다. 시(詩)가 어렵다고, 무슨 뜻인지 모를 난해시(難解詩) 독자와 국민들에게 외면받는 경향도 있다. 그런가하면 인터넷 등에서 따돌고 있는 ‘시(詩)도 아닌 시’를 보고 시로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도 큰 문제이다. 문학과 시를 좋아하는 문학 애호가와 일반인들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시인이 되려는 시인 지망생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는 아름다운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줄(行)과 연(聯) 만 나누어 늘어 놓으면 시인줄 알고 시 창작을 전혀 배우지도 않고, 시인으로 등단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시인이 되려면 시 공부 좀 해야 한다고 말하면 기분 나빠한다. 시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시를 잘 쓴다는 인정만 받으려고 하는 이상한 잘못돤 인식들을 갖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고 잘못된 슬픈 문학 현실이다. 시를 조금도 배우지도 않고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시 같지도 않은 시를 써서 되겠다는 사람들을 등단시켜서 엉터리 시인을 양산(量産)하는 일부 문학잡지도 문학 수준의 저질화(低質化)와 혼탁에 큰 책임이 있다 공부하지 않은 실력없는 엉터리 시인들이 판을 치니, 독자와 사회에서 어찌 인정받고 권위가 서겠는가. 수필과 소설 등 다른 문학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시도 최소한 1년 이상은 열심히 공부해야 시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나는 고등학교 때도 지금은 동아리라고 부르는 문학써클 활동을 했고 전남일보에서 주최하는 ‘ 호남예술제’ 등 학교 내외 백일장에서 상도 탔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아일보 문화센터와 현대문학 부설 문예대학, 한국문인협회 문예대학 등을 몇 년간 동시에 공부하러 다녔다. 시집도 수백 권 읽고, 여름방학이면 청록파 박목월(朴木月) 시인의 큰 아들 박동규 서울대 교수가 주최하는 심상(心象)해변시인학교도 꼭 참석하고, 여러 문학강연이나 시 낭송회 등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공부하러 다니면서 오세영(吳世榮) 서울대 교수 등 지도를 받은 습작품(習作品)도 등단 후에 곧 시집을 낼 정도로 백 편 정도는 되었고, 전국적인 백일장과 현상문예 작품공모에서 입상도 했다. 국문학과가 아니고, 법대 나와서 정치권에도 조금 발을 담근 나는 처음에 엉터리 시인으로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많이 니아졌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력하지 않고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시의 길, 문학의 길, 인생의 길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멀고도 힘든 길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한 발 자국씩, 기초부터 하나씩 배우고 익히고 걸어가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진리이다. ‘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완성과 완전을 향하여 끝없이 노력하며 방황하다가 죽는 존재인지 모른다.  
935    <진달래> 시모음 댓글:  조회:4386  추천:1  2015-04-12
          + 아, 진달래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네 마음속에 자꾸 커 가는 이 짓붉은 사랑  무더기로 피어나 나를 흔드네 내 살아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리도 가슴 뛰는 일이네 내 살아 너를 훔쳐볼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숨막히는 슬픔이었네 파도치는 내 마음 감춘다는 건 다 말장난 아, 진달래 (홍수희·시인) + 진달래꽃 아리어라. 바람 끝에 바람으로 먼 하늘빛 그리움에 목이 타다 산자락 휘어잡고 文身을 새기듯 무더기 무더기 붉은 가슴 털어놓고 있는 춘삼월 진달래꽃. 긴 세월 앓고 앓던 뉘의 가슴 타는 눈물이런가. 大地는 온통 생명의 촉수 높은 부활로 출렁이고 회춘하는 봄은 사랑처럼 아름다운 환희로 다가온다. (박송죽·시인, 1939-) + 진달래 해마다 부활하는  사랑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네 가느단 꽃술이 바람에 떠는 날  상처 입은 나비의 눈매를 본 적이 있니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持病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 구름 스쳐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모질게 먹은 마음도  해 아래 부서지는 꽃가루인데  물이 피 되어 흐르는가  오늘도 다시 피는  눈물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진달래                                            신작로  잘려나간  산자락에  그네에  매달린  아기처럼  피어 있는     진달래  초연(超然)한  연분홍  색깔 너머로  무거운     하늘을 이고  마음 저리도록  그리운  내 님  모습 같이  피어 있다 (김근이·어부 시인) + 진달래 꽃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삼각산을 오르다가 나목(裸木)들의 더미 속 가녀린 여인의 몸 같은 진달래 한 그루가 몇 송이 꽃을 피웠다 수줍은 새악시 볼 같은 연분홍 고운 빛 그 꽃들은 속삭이듯 말했지 봄이다! 너의 그 가냘픈 몸뚱이 하나로 온 산에 봄을 알리는 작은 너의 생명에서 뿜어 나오는 빛나는 생명이여 말없이  여림의 강함이여! (정연복·시인, 1957-) + 4월의 진달래  봄을 피우는 진달래가  꽃만 피운 채  타고 또 타더니,  꽃이 모자라  봄이 멀까요?  제 몸 살라 불꽃  산불까지 내며  타고 또 탑니다 (목필균·시인) + 진달래와 어머니 진달래 숲길을 걷고 계신 어머니는 배고프던 옛날에 진달래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고 하신다. 진달래 한 송이를 맛보시면서 앞산 진달래를 꺾어 와 부엌 벽 틈마다 꽂아두면, 컴컴하던 부엌이 환했다고 하신다. 진달래 맛이 옛맛 그대로라고 하신다. 얼핏 어머니의 눈빛을 살펴보니 어머니는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계셨다. 처녀 적 땋아 내린 긴 머리 여기저기에 진달래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빨간 풍선처럼 이 산 저 산을 마구 떠다니시는 듯했다. (어머니, 너무 멀리 가지 마셔요.)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산에 피는 꽃이나 사람꽃이나 사람 홀리긴 매한가지라시며, 춘천을 오갈 때는 기차를 타라고 하신다. 일주일에 내가 이틀씩 다니는 경춘가도의 꽃길이,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다. 어머니 말씀이 제겐 詩로 들리네요 하니깐, 진달래 숲길에서 어머닌 진달래꽃 같은 웃음을 지으신다. (설태수·시인, 1954-) + 진달래 능선에서 진달래 한 송이 지게에 달고  꽃 같은 마음이라야 하느니라 하시던  아버지 그 말씀......  아버지 생전에  지게발통 작대기 장단에  한을 노래 삼아 콧노래 부르시더니  저승 가시는 길에  가난의 한을 씻기라도 하시듯  배움의 한을 씻기라도 하시듯  허리 굽은 능선에 빨갛게  꽃으로 서 계시는 당신  오늘도  진달래 불타는 산 허리춤에  꽃가슴 활짝 열고 계시군요  생시처럼  아버지!  당신 계시는 음택(陰宅)  진달래 타는 불꽃에  가슴이 아려  꽃잎에 이슬이 내립니다  (이계윤·시인) + 진달래와 아이들     지금은 없어진 이 땅의 보릿고개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높았다는.  밑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풀뿌리 나무껍질 따위로 연명했죠.  허기진 아이들은 산에 들에 만발한  진달래 따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다르데요.  어제 숲 속의 샘터로 가는데,  두 아이가 진달래 꽃가지를  흙을 파고 정성껏 심는 것을 보았어요.  물론 그들이 꺾은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꺾어서 버린 걸 말예요.  나는 집에 돌아와서야 깨닫게 되었지요  그 진달래는 내 가슴속에도 심어졌다는 것을. (박희진·시인, 1931-)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 김하인. 시인,소설가. 산가득 뒤덮듯 흘러내립니다 지난해, 산에 묻은 시퍼런 슬픔을 봉우리마다 얼마나 찧고 찧었는지 짓붉은 피 배어올라 사태집니다. ------------------♥♥♥♥♥------------------ 진달래 / 홍수희. 시인. 그땐 참 내 마음이 저리 붉었습니다 당신이 지나치며 투욱 떨어뜨린 불씨 하나가 내 영혼 가파른 벼랑 위로 잘도 활활 타들어 올랐습니다 타들어 오신 길 마저 닿을 듯 아슬한 그리움 문득 철렁이는 아픔되어도 다시는 그 후 지나치며 투욱 불씨하나 떨어뜨려 주지 않으셔도 그땐 참 이별도 사랑이라 저리 붉었습니다 그땐 참 눈물도 꽃잎이라 저리 붉었습니다. ------------------♥♥♥♥♥----------------- 진달래 / 이국헌. 시인. 눈을 감아라 봄날 산사에서는 숨을 고르다 아련히 떠오르는 그대들의 표표한 상징들 산꽃들이 날리며 물들어버린 산에는 아, 미치도록 점점이 뿌려지고 흩뿌린 선홍색 꽃잎들이 아스라히 따스운 피 뿌리는데 산마다 끝머리에서 혼백들이 온통 젖어들어 물드니 눈을 감아라. ------------------♥♥♥♥♥----------------- 진달래 / 박계희. 승려시인. 순이 볼 언저리 매양 돌던 배고픈 짝사랑을 이 산에서 저 산까지 다 먹어도 겨우내 주린 배는 부르지 않으리 척박한 땅의 맨살에 뿌리와 뿌리로 얽혀 육신을 부풀리는 살아 단 한번 양달진 가슴 쬐어보지 못했던 이들의 새붉은 노여움을 이 마을에서 저 마을까지 다 헤매도록 한세월 앓아온 내 사랑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리. ------------------♥♥♥♥♥---------------- 진달래 / 이해인. 수녀시인. 해마다 부활하는 사랑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네 가느단 꽃술이 바람에 떠는 날 상처 입은 나비의 눈매를 본적이 있니 견딜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눕는 우리들의 지병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구름 스쳐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모질게 먹은 마음도 해 아래 부숴지는 꽃가루인데 물이 피 되어 흐르는가 오늘도 다시 피는 눈물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934    <국화> 시모음 댓글:  조회:4784  추천:4  2015-04-12
        황국....박두진   먼 햇살 넋이 엉겨 숭어리져 솟은 얼굴 인연의 그 창 변두리 ??로운 해후여 안에 깊이 가라앞힌 하늘 푸른 가을 마음 체념의 모래 벌이 강을 따라 펼쳐간 강물 푸른 물무늬속 흔들리는 그림자 강물이 저절로듯 저절로인 기약의 다시는 못돌아올 꽃띄움의 흩날림 창아침 햇살가의 서로 해후여       당 신 .... 김용택  작은 찻잔을 떠돌던  노오란 산국(山菊)향이  아직도 목젖을 간질입니다.  마당 끝을 적시던  호수의 잔 물결이 붉게 물들어  그대 마음 가장자리를 살짝 건드렸지요.  지금도 식지않은 꽃향이  가슴 언저리에서 맴돕니다.  모르겠어요.  온 몸에서 번지는 이 향(香)이  山菊 내음인지  당신 내음인지 ...  나, 다 젖습니다.                 들국화....천상병   산등선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황국(黃菊) 몇 송이....황동규     소설(小雪) 날 엉거주춤 붙어 있는 나라 꼬리 장기곶 수리(修理)중 문닫은 등대박물관 옆 절벽 위에서 바람도 제대로 불지 않고 이리 불다 저리 불다 오징어 굽는 아줌마들의 눈만 쓰리게 하는  쓸쓸한 잿빛 바다를 한없이 만나보고 돌아오다 무심히 기림사에 들려 고요한 흥분 서린 황금빛 보살상을 만나보고 차 한 대 마주 오지 않는 가파른 성황재를 마냥 오르다 잿빛 찬바람 속에 고개 들고 빛나는 황국 몇 송이.  눈 저리게 하는,  아 살아 있는 보살상들! 얼은 눈물 조각은 아니겠지,  꽃잎에 묻어 있던 조그만 발광체들.       산국(山菊) - 이정록   들국화 꽃망울은 슬하 어린것들이다 못자리 골, 숟가락 많은 집이다 알루미늄 숟가락으로 퍼먹던 원기소 알약이다 마른 들국화 송아리는 해마다 산모가 되는 양순이다 반쯤 실성했던 머리칼을 하고서 연년생의 뿌리에게 독기를 내리고 있다   시든 꽃망울 속에 코를 박으면 죽어 묻히지 못한 것들의 살내음이 득시글거린다 소도 핥지 않는 독한 꽃 이곳에 누우면 내가 양순이다 소도 사람도 원기소 알약으로 작아진다 슬하 어린것들의 삭은 이빨에 광목실을 묶는, 늦가을 서릿발이다         들국화 - 나태주       바람 부는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생각 말자고,  아주 아주 생각 말자고.  갈꽃 핀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잊었노라고,  아주 아주 잊었노라고.  구름이 헤적이는  하늘을 보며  어느 사이  두 눈에 고이는 눈물.  꽃잎에 젖는 이슬.       들국화.... 김용택    나는 물기만 조금 있으면 된답니다 아니, 물기가 없어도 조금은 견딜 수 있지요 때때로 내 몸에 이슬이 맺히고 아침 안개라도 내 몸을 지나가면 됩니다 기다리면 하늘에서 아, 하늘에서 비가 오기도 한답니다 강가에 바람이 불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별이 지며 나는 자란답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찬 바람이 불면 당신이 먼데서 날 보러 오고 있다는 그 기다림으로 나는 높은 언덕에 서서 하얗게 피어납니다 당신은 내게 나는 당신에게 단 한번 피는 꽃입니다       들국화.... 곽재구        사랑의 날들이  올 듯 말 듯  기다려온 꿈들이  필 듯 말 듯  그래도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말 한마디  하루종일 울다가  무릎걸음으로 걸어간  절벽 끝으로  당신은 하얗게 웃고  오래 된 인간의 추억 하나가  한 팔로 그 절벽에  끝끝내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국화꽃 시 모음   국화꽃/효행시인 이성우   국화꽃 꽃잎마다 은은하게 퍼지는 돌아가신 아버지 향수가 있고 떨어진 낙엽에서 어머니의 음성이 들립니다   올해도 온통 가을은 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소리 없이 깊어만 갑니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보다. 한 송이 들국화 서정태 찬바람이 가슴을 스치고 지난다. 회색 구름 속에 피어난 미소를 잃은 모습 같은 한 송이 들국화 뚝 떨어진 가을 비 가슴에 안고 홀로 서 있다 내 님의 얼굴 닮은 잎 숙연한 모습으로 누구를 기다리는지 잎 새에서 뚝 떨어진 물방울 기다림에 지친 자의 가슴을 적셔놓고 깊어가는 가을 밤 당신을 향한 몸부림처럼 그렇게 소리쳐 부르고 싶다. 국화꽃 그늘을 빌려 장석남 국화꽃 그늘을 빌려 살다 갔구나 가을은 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 갔구나 국화꽃 무늬로 언 첫 살얼음 또한 그러한 삶들 있거늘 눈썹달이거나 혹은 그 뒤에 숨긴 내 어여쁜 애인들이거나 모든 너나 나나의 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들 있거늘 국화 앞에서 김재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귀밑에 아직 솜털 보송보송하거나 인생을 살아도 헛 살아버린 마음에 낀 비계 덜어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사람이라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니듯 꽃이라도 다 같은 꽃은 아니다. 눈부신 젊음 지나 한참을 더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꽃. 국화는 드러나는 꽃이 아니라 숨어 있는 꽃이다. 느끼는 꽃이 아니라 생각하는 꽃이다. 꺾고 싶은 꽃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꽃이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은 가을날 국화 앞에 서 보면 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굴욕을 필요로 하는가를. 어쩌면 삶이란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는 것인지 모른다. 어디까지 끌고 가야할지 모를 인생을 끌고 묵묵히 견디어내는 것인지 모른다. 노란 국화 한 송이 용 혜 원 가을에 사랑하는 이를 만날 때는 노란 국화 한 송이를 선물 하세요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가 두 사람을 더 가까이 있고 싶어지게 만들어줄 거예요 깊어만 가는 가을밤 서로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불어오는 바람도 포근한 행복에 감싸게 해 줄 거 에요 밤하늘의 별들도 그대들을 위해 빛을 발하고 밤길을 밝혀주는 가로등도 헤어지기 싫어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을 거예요 가을에 오십시오 송해월 그대 가을에 오십시오 국화꽃 향기 천지에 빗물처럼 스민 날 서늘한 바람에 까츨한 우리 살갖 거듭거듭 부비어대도 모자라기만 할 가을에 오십시오 그리움 은행잎처럼 노오랗게 물들면 한 잎 한 잎 또옥 똑 따내어 눈물로 쓴 연서(戀書) 바람에 실려 보내지 않고는 몸살이 나 못배길 것 같은 그런 날 날이면 날마다 그리움에 죽어가던 내 설움에도 비로소 난 이름을 붙이렵니다 내 영혼을 던졌노라고 그대 가을에 오십시오. 들국화 유인숙 겉으로 보기에 크고 아름다운 것이 향기로운 것만은 아니다 바람 찬 귀퉁이에 수줍게 피어나서 천상의 비밀을 한 몸에 또르르 말아 아침 이슬로 마시고 긴 숨 한번 들이 쉴 때마다 길들여지지 않아 거침이 없는 야생의 들국화 그 진한 향내가 근방으로 퍼져나가 벌과 나비 떼를 불러들인다. 국화꽃 오세영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듯 국화는 계절의 절정에서 목숨을 초월할 줄 안다. 지상의 사물이 조각으로, 굳어 있는 조각이 그림으로, 틀에 끼인 그림이 음악으로, 음악이 드디어 하늘로, 하늘로 비상하듯 국화는 하늘이 가장 높고 푸르른 날을 택하여 자신을 던진다. 서릿발 싸늘한 칼날에도 굴하지 않고 뿜어 올리는 그 향기 너에게 정호승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들국화 천상병 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흰 국화 한 다발과 라면 한 봉지 김에스더 흰 국화 한 다발 가슴에 들쳐 안고 너를 찾아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라면 한 봉지를 샀다 라면 한 봉지 달랑달랑 거리며 산 중턱을 오르다 눈에 익은 곳이 보이자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달려간다 눈물은 흘리지 않기로 한다 뚝뚝 떨어진 눈물이 땅을 적시면 눅눅해진 땅에 네가 한기를 느끼진 않을까 그렁그렁 맻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하늘을 본다 말없이 국화 꽃잎 오른손 한가득 훑어내어 여기저기 숨어 있는 너에게 이불처럼 덮어 주고 네가 심심할 떄 오독오독 씹어 먹던 라면 한 봉지 잘게 부숴 내가 오지 않는 동안 심심해 할까 여기저기 뿌려도 준다 갑자기 인사도 없이 숨이 턱까지 차도록 산을 달려 내려온다 그리곤 시냇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세수를 한다 눈물이 시냇믈 따라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도록 애꿎은 얼굴만 박박 문질러 댄다 들국화를 만나면 목필균 너를 바라보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아득히 사라졌던 기억들이 해마다 찾아와서 그림자 밟기를 하고 마음은 보내지 못하면서 보라색 손수건 흔들며 배웅하는 네 눈물 속에 올해도 가을은 소리 없이 깊어간다 들국화 나태주 바람 부는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생각 말자고, 아주 아주 생각 말자고. 갈꽃 핀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잊었노라고, 아주 아주 잊었노라고. 구름이 헤적이는 하늘을 보며 어느 사이 두 눈에 고이는 눈물. 꽃잎에 젖는 이슬.     들국화 곽재구 사랑의 날들이 올 듯 말 듯 기다려온 꿈들이 필 듯 말 듯 그래도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말 한마디 하루종일 울다가 무릎걸음으로 걸어간 절벽 끝에서 당신은 하얗게 웃고 오래 된 인간의 추억 하나가 한 팔로 그 절벽에 끝끝내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들국화 꽃잎에 이 남 일 황사 노을에 알몸 가린 태양도 별거 아니네. 동전만 하잖아. 수줍어 겨우 별빛에나 얼굴 내어놓는 초승달 좀 보게. 손톱보다 작은 것 같아.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남쪽 모악산도 히말라야 사진처럼 내 손안에 있어. 아마도 우주처럼 넓기만한 내 사랑도 들국화 꽃잎만한 네 가슴에 몽땅 담아 둘 수 있을꺼야.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 임 태 주 가을해가 풀썩 떨어집니다 꽃살 무늬 방문이 해 그림자에 갇힙니다 몇 줄 편지를 쓰다 지우고 여자는 돌아앉아 다시 뜨개질을 합니다 담장 기와 위에 핀 바위솔꽃이 설핏설핏 여자의 눈을 밟고 지나갑니다 뒤란의 머위잎 몇 장을 오래 앉아 뜯습니다 희미한 초생달이 돋습니다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는 손톱 끝에서 詩는 사랑하는 일보다 더 외로운 일이라는데 …… 억새를 흔들고 바람이 지나갑니다 여자는 잔별들 사이로 燈을 꽂습니다 가지런히 빗질을 하고 一生의 거울 속에서 여자는 그림자로 남아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를 씁니다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를 지웁니다 다시, 국화 옆에서 홍 수 희 넌 내가 만든 인조 국화, 사각사각 풀 먹인 흰 종이로 꽃잎 만들고 마른 침묵 오려서 푸른 잎새 만들었네 네가 탄생되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울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밤이면 밤마다 우리 집 거실에는 뻐꾸기가 새벽까지 울어대었네 아침이면 혀 치(値) 앞도 잘 모르는 회색 빛 안개, 블라인드 속에서 내 꿈 속의 스모그는 깊어만 가고 아, 하루가 까마득한 나의 가시거리(可視距離)는 너를 다시 내 안에 소생키 위해 하루 한 나절, 분무기로 뿜어 보는 어설픈 참회, 봄비처럼 낙화하는 네 슬픈 약속이여! 인생이란 그렇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서글픈 과녁, 언제나 엇나가는 화살 속에서 우리 진실 아프게 사위어 가네 난 네가 만든 인조 국화, 밤이면 밤마다 우리 집 거실에는 쉰 목소리 뻐꾸기 울어대었네 화병에 국화가 강희창 < 토라진 여직원에게 > 골이나 꽁 ~~~ 토라진 망울 하루만에 화들짝 앞니 들어내고 깔깔 댄다 언제쯤 시르르 ~~ 종말이 온다해도 한해 한번 화장 한껏 향수 날리며 신나게 살아보잔다 들국화 김진학 들길 가다 너를 만나 돌아선 발길 소리 없이 피는 너처럼 나 이승에 왔다가 소리 없이 지는 너처럼 나 가야 하겠지 마음 아파 개울건너 산아래 이어진 길 다 기운 가을에 너만 홀로 피었구나 걸어온 길 돌아보면 문득 가슴 한 자락 스치는 그리운 바람 이름 없는 들녘에 내 어찌 너처럼 피었는가 산 위에 물든 노을에 가을도 진다 들국화 최진연 푸른 계절이 저무는 광대한 제단 위에 자연은 그해 마지막으로 가장 오염되지 않은 꽃을 드리고 있었다. 칼을 쓴 춘향이 산발(散髮)로 앉아 비몽사몽 헤매는 밤 밖에는 비가 그쳤는지 구름 사이 언뜻언뜻 님의 얼굴 흐르는지 연지 볼이 젖다 마르다 달빛에 반짝이는 눈물 눈물자국. 자기의 관(棺)에 망치질하는 소리를 듣고 애통하는 복된 자가 그리 많지 않은데 제 임종을 바라보며 벌레들이 우는 소리 방울방울 매달린 그 무게로 더러 억세풀 서리에 쓰러져 누운 들국화들. 떠나는 모든 것들 곁에서 슬퍼하며 푸르름을 자랑하던 여름 회상과 눈보라치는 겨울의 예감 속에 입이 붙어 버린 듯 서 있는 나무들 꾀꼬리 떠났다고 서러워 마라 떠난 것은 다시 곧 돌아오리라. 푸른 계절이 저무는 장엄한 제단 위에 마지막 바쳐진 꽃의 제물 순결한 빛과 향기 골짝 가득 드리며 신에게 고개 숙여 경배하는 들국화들 소리 없는 겨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었다. 들국화 김세실 기다리래지 꽃필날을 그윽한 숲속의 향기속에서 티없이 맑은 진실이 넘친다. 기다리래지 꽃필날을 환희의 그날이 올때 너의 영혼을 닮고파 고운 인연의 나래 펴본다. 사림동 국화꽃 정 해 철 가을이 자리를 펴고 길게 드리운 밤 자락 위에 옷섶을 적실 것 같은 비가 내리고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그 길 한 자락엔 언제부터인가 국화꽃 서너 송이가 피어 있었다 시골 저 너메 어디쯤이면 피어있을 꽃이건만... 도심 속에 자태를 드리운 이 꽃은 비 온 뒤 은은한 달빛을 받아 노오란 그 모습이 한없이 곱기만 하다. 슬픈 국화꽃 민 경 교 갈 바람에 허리춤 흔들며 애써 모르는 척 하는 너의 슬픔 허리 꺾겨 대나무에 의지해온 너의 인생 목덜미에 슬픈 링 두르고 끝내 한 잎 두 잎 내려앉는 너의 모습 시골에 계신 우리 엄니 생각에 내 눈동자에 이슬 맺히네  
933    <목련> 시모음 댓글:  조회:5329  추천:0  2015-04-12
                                          목련에 관한 시 모음    목련 / 심언주   쪼끄만 새알들을 누가 추위 속에 품어 주었는지 껍질을 쪼아 주었는지 언제 저렇게 가득 깨어나게 했는지 가지마다 뽀얗게 새들이 재잘댄다 허공을 쪼아도 보고 바람 불때마다 촉촉한 깃을 털고 꽁지깃을 치켜 세우고 우왕좌왕 서투르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 벌써 바람의 방향을 알아챈 눈치다       그 목련 꽃이 / 김재황      겨우내 눈을 감고 무슨 알을 품었는지   봄이 오자 빈 가지에 하얀 깃의 어린 새들   저마다 배고프다고 입을 쩍쩍 벌립니다.     하늘궁전 / 문태준 목련화가 하늘궁전을 지어놓았다 궁전에는 낮밤 음악이 냇물처럼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생사 없이 돌옷을 입고 평화롭다   목련화가 사흘째 피어 있다 봄은 다시 돌아왔지만 꽃은 더 나이도 들지 않고 피어 있다 눈썹만한 높이로 궁전이 떠 있다 이 궁전에는 수문장이 없고 누구나 오가는 데 자유롭다   어릴 적 돌나물을 무쳐 먹던 늦은 저녁밥 때에는 앞마당 가득 한 사발 하얀 고봉밥으로 환한 목련나무에게 가고 싶었다 목련화 하늘궁전에 가 이레쯤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목련에 기대어/고영민   활짝 핀 목련꽃을 표현하고 싶어 온종일 목련나무 밑을 서성였네 하지만 봄에 면해 있는 목련꽃을 다 표현할 수 없네   목련꽃을 쓰는 동안 목련꽃은 지고 목련꽃을 말해보는 동안 목련꽃은 목련꽃을 건너 캄캄한 제 방(房)에 들어 천천히 귀가 멀고 눈이 멀고   휘어드는 햇살을 따라 목련꽃 그림자가 한번쯤 내 얼굴을 더듬을 때 목련꽃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봄 내내 나는 목련꽃을 쓸 수도 말할 수도 없이 그저 꽃 다음에 올 것들에 대해 막막히 생각해보는데   목련꽃은 먼 징검다리 같은 그 꽃잎을 지나, 적막의 환한 문턱을 지나 어디로 가고 말라버린 그림자만 후두둑, 검게 져내리는가       목련 박주택   어둠을 밀어내려고, 전 생애로 쓰는 유서처럼 목련은 깨어 있는 별빛 아래서 마음을 털어놓는다 저 목련은 그래서, 떨어지기 쉬운 목을 가까스로 세우고 희디흰 몸짓으로 새벽의 정원, 어둠 속에서 아직 덜 쓴 채 남아 있는 시간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으로부터 헤쳐 나오는 꽃잎들이 겨울의 폭설을 견딘 것이라면, 더욱더 잔인한 편지가 될 것이니 개봉도 하기 전 너의 편지는 뚝뚝 혀들로 흥건하리라, 말이 광야를 건너고 또한 사막의 모래를 헤치며 마음이 우울로부터 용서를 구할 때 너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말똥거리다 힘이 뚝 떨어지고 나면 맹인견처럼, 이상하고도 빗겨간 너의 그늘 아래에서 복부를 찌르는 자취와 앞으로 씌어질 유서를 펼쳐 네가 마지막으로 뱉어낸 말을 옮겨 적는다             목련 전차 / 손택수 목련이 도착했다 한전 부산지사 전차기지터 앞 꽃들이 조금 일찍 봄나들이 나왔다 나도 꽃 따라 나들이나 나갈까 심하게 앓고 난 뒤의 머릿속처럼 맑게 갠 하늘 아래, 전차 구경 와서 아주 뿌리를 내렸다는 어머니 아버지도 그랬겠지 꽃양산 활짝 펴 든 며느리 따라 구경 오신 할아버지도 그랬겠지 나뭇가지에 코일처럼 감기는 햇살, 저 햇살을 따라가면 나무 어딘가에 숨은 전동기가 보일는지 모른다 전차바퀴 기념물 하나만 달랑 남은 전차기지터 레일은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레일을 따라 바퀴를 굴리는 힘을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지난밤 내리치던 천둥번개도 쩌릿쩌릿 저 코일을 따라가서 動力을 얻진 않았는지, 한 량 두 량 목련이 떠나간다 꽃들이 전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 저 꽃전차를 따라가면, 어머니 아버지 신혼 첫밤을 보내신 동래온천이 나온다               목련을 끌어안다 / 김충규   아침에 잠에서 깨어 목련을 끌어안았다 꽃피는 순간을 지켜보고 싶어 목련의 남편처럼 종일 곁을 서성거렸으나 그녀는 경련하지 않았다 배가 불룩한 목련은 지금 임신 중, 그녀는 행복할까 목련을 가까이하면서 내 불행이 꽃피지 않기를 나는 빌었다 나는 불행하지 않다 절대 불행하지 않다 일기 대신 기록하는 불안한 문장들, 나는 행복을 꿈꾸지도 않으면서 왜 불행에 민감한 걸까   내가 잠든 사이 목련이 한꺼번에 뭉텅 꽃을 피워놓았다 오래지 않아 꽃잎들은 흩날릴 것이지만 그것이 목련의 불행은 아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다 비워버린 상태, 그것을 불행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출산으로 할쑥한 그녀를 위해 내 살을 한 근 베어내어 뿌리 곁에 묻어주고 싶다 소리 없이 함성을 지르는 목련의 흰 꽃잎들, 저것들을 먹여살리는 힘은 그녀의 뿌리에서 나오는 법 나 목련을 끌어안으며 네가 행복하다면 내 불행쯤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게…… 중얼거려보는 일이 내 일과이다 가난이 불행을 몰고 온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꽃잎들 후드득 지면 그 꽃잎들 잘근잘근 씹어 내 피가 되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목련과 그믐달 / 김나영   누가 슬어놓았나 저 많은 사생아들 수십 개의 입술이 움찔거리네 저 많은 입들 누가 다 먹여 살리나 잇바디 시큰이큰 젖 빠는 소리에 내 젖이 핑그르르-도네 매일 밤 누가 와서 수유하다 가는 걸까 허연 젖내 물큰물큰한 가지마다 뽀얗게 젖살 오른 몽우리들 입가에 허연 젖 뽀꼼뽀꼼 묻히고 한 그루 목련이 두둥실 만개를 하네 하늘엔 바싹 야윈 하얀 뼈 하나 * 시집/애지 2010   목련 후기 /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목련꽃 브라자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만할까  고 가시내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저......  (복효근·시인, 1962-)                 목련 아래서 묻는다 너 또한 언제이든  네 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  그날이 오면  주저없이 몸을 날려  바람에 꽃잎 지듯 세상과 결별할 준비  되었느냐고  나에게 묻는다 하루에도 열두 변  목련 꽃 지는 나무 아래서  (김시천·시인, 1956-) 목련 그늘 아래서는  목련 아래를 지날 때는  가만가만  발소리를 죽인다  마른 가지 어디에 물새알 같은  꽃봉오리를 품었었나  톡 톡 껍질을 깨고  꽃봉오리들이 흰 부리를 내놓는다  톡톡, 하늘을 두드린다  가지마다  포롱포롱  꽃들이 하얗게 날아오른다  목련 아래를 지날 때는  목련꽃 날아갈까 봐 발소리를 죽인다  (조정인) 홍역   목련나무는 맨 아랫가지가 먼저  꽃등을 밝혀 들고  윗가지로, 윗가지로 불을 옮겨 주고 있다  불씨를 받은 꽃봉오리들  타오르기 시작한다 활짝, 화알짝 홍역 앓는 몸처럼 뜨거운 꽃 눈물난다 저렇게 생을 채우라고 뜨겁게 우리의 생을 채우려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움은 올라온다 맨 아래 가지에서부터  가슴 속 뜨거움을 받아내는 꽃 아픔을 삭히는 화근내처럼  꽃도 제 몸을 태우는 향기가 난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뜨거움 때문에  뜨거움이 채우는 저 생생한 생 때문에  (강미정·시인, 경남 김해 출생) 깨끗한 슬픔  작은 마당 하나 가질 수 있다면  키 작은 목련 한 그루 심고 싶네  그리운 사월 목련이 등불 켜는 밤이 오면  그 등불 아래서 그 시인의 시 읽고 싶네  꽃 피고 지는 슬픔에도 눈물 흘리고 싶네  이 세상 가장 깨끗한 슬픔에 등불 켜고 싶은 봄밤  내 혼에 등불 밝히고 싶은 봄밤 (정일근·시인, 1958-)   지는 백목련에 대한 단상  목련 나무에서 화려한 설법이 떨어져 내린다  저 우윳빛 가슴, 겁탈 당한 조선시대 여인네 정절貞節같은,  품 한 켠 은장도로 한 생生을 접었다  옷고름 풀어헤친 짧은 봄날의 화엄경華嚴經 소리,  바람바람 전하더니, 거리 욕창 든 꽃잎 떨구며  봄날은 간다 아름다운 요절, 화려한 통점痛點,  동백의 투신은 투사의 모습이었고,  목련은 병든 소녀처럼 죽어갔다. 두둥실  명계冥界를 건너는 꽃들의 장송곡 따라 삼천 궁녀들  나무 위에서 자꾸만 뛰어 내리고 있다.  잎새들도 곧 뒤따르겠노라 하염없이 손 흔든다.  떨어진 목련꽃을 만진다. 화두話頭 하나 마음으로 뛰어 든다  내 생이 바짝 긴장한다  memento mori!* (김성수) *memento mori:  는 라틴어   목련꽃 지다  편지지에 녹색 잉크로 안부를 묻던 사람 있었지 지워져 가는 것들 속에 아슴히 남아 있는 몇 개의 밑그림 아직도 대문에 기대어 화장기 없는 내 얼굴 보고 싶을까 목련꽃 환한 사월 낮은 휘파람으로 창을 두드리던 사람 지금은 투덕한 아내의 미소 앞에 얼굴 붉히지도 않겠지 사월은 밤하늘 별빛 그대로인데 환장할 목련꽃 그대로인데.... (전길자·시인) 목련 목련이 지독한 생명의  몸살을 앓는 것을 며칠을 두고 몰래 지켜보았다 꽃샘추위 속 맨몸의 가지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꽃눈 틔우더니 온몸으로 온 힘으로 서서히 치밀어 올라 이윽고 꽃망울로 맺히더니 송이송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저 여린 생명의 고독하고 치열한 몸짓 목련은 쉽게 피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래서 목련은 저리도 당당하게 아름답구나 (정연복)   손남주의 '목련' 외   + 목련 시절이야 어떻던  담장 너머 가득 목련은 피어났다  대문 활짝 열어놓고, 환히 웃고 선  목련꽃 바라보며,  탕아는 당신의 뜰에서  참회로 울고 싶다.  남정네 투박한 영혼,  여로 지친 육신들  안식의 품으로 다스려 거두는가,  목련의 뜰.  훤칠한 키에  울안에서도 바깥 세상 궂은일, 갠일  속으로 다 가늠하고,  어려운 한세상 뿌리로 버티며  한 올 구김살도 없이 환한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여인 같은 꽃이여!  누구나를 다 좋아하고  누구나가 다 좋아하는  너그러운 눈빛,  우아한 자태에 기품은 감돌아,  흰색을 사랑하여 순결하고  자줏빛 짙어 고매한 사랑.  내 마음의 울안에  한 그루 목련 심어  한평생 당신의 주인이요, 종이  되고자.......  (손남주·시인, 경북 예천 출생) + 목련  입안에 함빡 봄을 머금고 와서 푸우~ 푸우~ 뱉고 있다. 봄이 화르르 쏟아진다. (오순택·아동문학가, 1942-) + 꽃밭에서 목련꽃이 흰 붕대를 풀고 있다 나비 떼가 문병 오고 간호원처럼 영희가 들여다보고 있다 -- 해가 세발자전거를 타는 삼월 한낮.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이모 아니면 고모 땅에 떨어진 목련꽃이 더럽다고 흉보지 마세요 예쁘게 피었다가  더럽게 지는 꽃이나 맛있는 밥 먹고  더러운 똥을 싸는  사람이나 다를 게 없잖아요 (신천희·승려 시인)  + 개화의 의미 목련이 일찍 피는 까닭은  세상을 몰랐기에  때묻지 않은 청순한 얼굴을 드러내 보임이요  목련이 쉬 지는 까닭은  절망했기 때문이요  봄에 다시 피는 까닭은  혹시나 하는 소망 때문입니다.  (김상현·시인, 1947-) + 백목련  청명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  앞 산자락에 하얀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하늘과 땅 중간에 피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문득 산을 바라보니  목련꽃은 간데 없고  그 자리에 하얀 뭉게구름만 떠 있습니다.  생이 얼마나 허무했으면  시든 꽃잎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저렇게 흰 목련구름이 되어  하늘과 땅 사이에 둥둥 떠 있을까요. (이재봉·시인, 1945-) + 목련 징하다, 목련 만개한 것 바라보는 일  이 세상에 와서 여자들과 나눈 사랑이라는 것 중에  두근거리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었으니  두 눈이 퉁퉁 부은  애인은 울지 말아라  절반쯤은, 우리 가진 것 절반쯤은 열어놓고  우리는 여기 머무를 일이다  흐득흐득 세월은 가는 것이니  (안도현·시인, 1961-) + 목련 내 어릴 적 어머니 분 냄새난다 고운 입술은 항상  말이 없으시고도 눈과 눈을  마주치면  애련히 미소지으시던 빛나는 치아와 곱게 빗어 올린 윤나는 머릿결이, 세월이  너무 흘러 무정하게도 어머니 머리에는 눈꽃이 수북히 피어났어도 추운 겨울 지나고 봄볕 내리는  뜨락에 젖빛으로 피어 앉은 네 모습에선 언제나 하얀  분 냄새난다  (홍수희·시인) + 木蓮花  목련나무 아래 딸아이와 함께 서 있었다 목련꽃을 한 송이 따 달라던  딸아이가  막 떨어진 목련 한 송이를 주워서 "아, 향기가 참 좋다"며  국물을 마시듯 코를 들이대고 있다가 "아빠도 한 번 맡아 봐" 하고 내민다  나는 손톱깎이 같은 바람이 뚝뚝 끊어먹은 우리들의 꿈 같은 하얀 그 꽃잎을 받아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는다 쉽게 꺾이지만 다시 피어나는  희망처럼 (최창섭·시인) + 겨울을 난 목련꽃들  목련의 하얀 꽃눈이다 둥그레 뭉쳐진 꽃눈이다 시리게 고운 시리게 고운 꽃눈이다 추위에 얼지 않고 견뎌내어 고마운 갈색 껍질 벗어내어 이른 봄 맞이하는 이른 봄 맞이하는 꽃눈이다 부시게 고운 꽃눈이다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더라도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더라도 사랑 받을 수 있고 사랑 줄 수 있는 꽃으로 피어나라 지구가 부시게 피어나라 (이윤정·시인, 1960-) + 목련 언제 모여들었을까 나무 가지에 하얀 새떼가 둥지를 틀었다. 향기로운 지절거림으로 먹먹해진 귀 바라보기만 해도 풍성한 둥지엔 햇살로 벙싯 살이 오져 가는 흰 날갯죽지가 눈부시고  갑자기 바람난 4월 봄비에  후두둑 날아오른 하얀 새떼의 비상,  빈 둥지에는 푸른 깃털이 잔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했다. (김지나·시인, 전북 전주 출생) + 목련꽃   지난해 가지치기한  목련을 보았네  목련 봉긋한 가슴들이  망울망울 맺히고 있었네  홀로 힘겹게  홀로 피었네  텅 빈 가지에서  아픔이 하얗게 피는 줄  모르고 있었네  고개를 떨구고  땅만 바라보고 있는 줄만  알고 있었네  봄이 이렇게  아프게 오고 있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  내 모습 부끄러워  땅만 보았네  (김귀녀·시인, 강원도 양양 출생) + 하늘궁전  목련화가 하늘궁전을 지어놓았다 궁전에는 낮밤 음악이 냇물처럼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생사 없이 돌옷을 입고 평화롭다 목련화가 사흘째 피어 있다 봄은 다시 돌아왔지만 꽃은 더 나이도 들지 않고 피어 있다 눈썹만한 높이로 궁전이 떠 있다 이 궁전에는 수문장이 없고 누구나 오가는 데 자유롭다 어릴 적 돌나물을 무쳐 먹던 늦은 저녁밥 때에는 앞마당 가득 한 사발 하얀 고봉밥으로 환한 목련나무에게 가고 싶었다 목련화 하늘궁전에 가 이레쯤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문태준·시인, 1970-)    
932    김지하 / 五賊 댓글:  조회:4567  추천:0  2015-04-10
◈ 김지하 '오적(五賊)'       1970년 5월 《사상계》에 발표된 작품이다. 담시(譚詩)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택해 전통적 해학과 풍자로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풍자시이다. 1970년대 초 부정 부패로 물든 한국의 대표적 권력층의 실상을 을사조약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五賊)에 비유해 적나라하게 풍자함으로써, 문단에 파문을 일으키며 김지하라는 시인의 존재를 널리 알린 문제작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사상계》는 폐간되고, 작가와 편집인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1960년대의 시에 대한 강렬한 비판 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일제 통치 시대의 수혜 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오적'이라 일컫고, 이들을 모두 '犬(개 견)'자가 들어가는 신조어 한자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탈을 쓴 짐승으로 등장시킨다. 짐승스런 몰골의 다섯 도둑들이 서울 장안 한복판에서 도둑질 대회를 벌이는 것으로 사건을 전개시키며 고대소설처럼 등장 인물들을 차례대로 풍자해 나간다.   재벌과 국*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들의 부정부패와 초 호화판의 방탕한 생활은 통렬한 풍자를 통해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게다가 부정 부패를 척결할 임무를 부여받은 포도대장(경찰 또는 사법부의 비유)이란 인물은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을 잡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매수되어 오적을 고해바친 죄 없는 민초 '꾀수'를 무고죄로 몰아 감옥에 집어넣고 자신은 도둑촌을 지키는 주구로 살아간다. 작가는 포도대장과 오적의 무리가 어느 날 아침 기지개를 켜다가 갑자기 벼락맞아 급살한다는 고전적 기법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 소실되어버린 민족의 가락을 되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뚜렷한 목적 의식 아래 씌어진 작품이다. 창작 서사시로서 한국의 현대시문학사에 '담시'라는 새로운 형식과 전통적인 풍자 기법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야기를 소리로 형상화함으로써, 특권 지배층을 날카롭게 공격하고 피지배계층의 한을 드러낸 점과 판소리를 계승 발전시킨 점은 높이 평가된다.      이 시는 1970년 5월 '사상계'를 통해 '담시'라는 독창적인 이름으로 발표, 파문과 물의를 일으키며 김지하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오적'은 민중의 집단적 창조력에 의해서 긴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완성된 예술 형식의 하나인 판소리 양식으로 뒷받침되어 있으며, 일제 식민 통치의 암흑기 속에서 쇠잔하고 소실되어 버린 민족의 가락을 되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뚜렷한 목적 의식 아래 씌어졌다. 그것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 문학의 새로운 진로에 큰 빛을 던져 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 시를 대할 때에는 그 안에 담긴 내용 못지 않게 양식과 가락에 대해서도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담시란 '단형 서정시보다 길고 단편 소설보다 짧은' 길이 속에 당대의 정치적 문제를 기습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 시'의 독특한 장르이다. 기습성(담시의 발표 연도와 정치적 사건의 맥락에서의), 공격성(반민중적 소수 집단을 향한 정치적 풍자시라는 점에서), 이야기 전달성(담시의 형식적인 면과 감추어진 진실의 폭로라는 의도에서) 등의 특성을 지닌 이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역사적 현실의 가장 첨예한 내용의 요청에 부응하려는 시도에서 그 정당성을 지닌다.   '오적'을 보면 대뜸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은 표면 구조에 있지 않고 심층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적이라고 못 박은 사람들 즉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일제 식민 통치의 수혜 특권층이라 할 수 있다. 이 오적을 통해서 의도한 바는 이 작품에 그린 과장되고 희화화되고 풍자의 대상이 된 모든 인물들의 행태가 바로 불식되지 못한 일제 식민 유산의 부산물로,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근대화된 통치 질서를 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식민 잔재의 완전한 청산을 통한 새로운 인간에 의한 새로운 통치 이념의 구현이 필요하다는 방향 제시였다고 할 수 있다.      1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 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 옛날 상달 초 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 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 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 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 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 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 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 안에는 큰 황소 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 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 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 놈이 모여   십 년 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 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 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2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 해 입고 돈으로 모자 해 쓰고 돈으로 구두 해 신고 돈으로 장갑 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니,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 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 봐라 저 재벌놈 재조 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 치고 계자 치고 고추장 치고 미원까지 톡톡 쳐서 실고추과 마늘 곁들여   나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 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 까기 여념 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 쥔 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뜀에 정보 얻고 수의 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 샀다가 길 뚫리면 한 몫 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 원에 쓱싹, 노동자 임금은 언제나 외상 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 할애비요 구워 삶는 재조는 뙤놈 술수 빰 치겄다.   또 한 놈 나온다.   국*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 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 투성이 몽둥이에 혁명 공약 휘휘 감고   혁명 공약 모자 쓰고 혁명 공약 배지 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 들고 대갈 일성, 쪽 째진 배암 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 축재는 축재 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 선거는 선거 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건설이닷, 모든 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 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遇昧) 국민 그리 알고 저리 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3   셋째 놈이 나온다   고급 공무원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 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 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어허 저놈 뒤 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혜끗혜끗, 피두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간같이 높은 책상 마당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도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 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 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 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 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 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 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넷째 놈이 나온다   장성(長猩) 놈이 나온다   키 크기 팔대장성, 제 밑에 졸개 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이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 공단 울긋불긋, 천 근 만 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장성(長猩)놈 재조 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 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 한 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 먹고   엄동설한 막사 없어 얼어죽는 쫄병들을   일만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 지을 재목 갖다 제 집 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 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 쉬엇 열중 열중 열중 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 마누라 화냥끼 노리개로 묶어 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서수공방전(雲雨魚水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귀몰(神出鬼沒)   마지막 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 끼어 삐적삐적 술지게미 가득 고여 삐져 나와   추접무화(無化) 눈꼽 낀 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 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산이닷, 아사(餓死)한 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 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행여나 냄새 날라 질근질근 껌 씹으며   켄트를 피워 물고 외래품 철저 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 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 듣고 뒤쫓아온 말 잘하는 반벙어리 신문 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 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 자네 핸디 몇이더라?   4   오적(五賊)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놈들한테 붙잡히면 뼉다귀도 못 추리것다   똥줄빠지게 내빼 버렸으니 요즘엔 제사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겄다.   이라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이 몰씬몰씬 무르익어가는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五賊)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하늘에 날벼락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내려 쏟아져 퍼붓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포도대장 거동봐라   울뚝불뚝 돼지코에 술찌꺼기 허어옇게 묻은 메기 주둥이, 침은 질질질   장비사돈네팔촌 같은 텁석부리 수염, 사람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방울 눈깔   마빡에 주먹혹이 뛸 때마다 털렁털렁   열십자 팔벌이고 멧돌같이 좌충우돌, 사자같이 으르르르릉   이놈 내리훑고 저놈 굴비 엮어   종삼 명동 양동 무교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모두 쓸어모아다   꿀리고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 뜯고 물어뜯고 업어 메치고 뒤집어 던지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 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꺾고 깎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리고   직신작신 조지고 지지고 노들강변 버들같이 휘휘낭창 꾸부러뜨리고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쿠리, 긴 칼, 짧은 칼, 큰칼, 작은칼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 호각   개다리 소다리 장총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연탄 구토탄 똥탄 오줌탄 뜸물탄 석탄 백탄   모조리 갖다 늘어놓고 어흥 -   호랑이 방귓소리 같은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쪼그린 되민중들이 발발     전라도 갯땅쇠 꾀수놈이 발발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이 발발발 떨어댄다.   네놈이 오적(五賊)이지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다바이 다 합쳐서   오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녀, 포주, 깡패, 쪽쟁이 다합쳐서   풍속사범 오적(五賊)이 바로 그것 아니더냐   아이구 난 펨프이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껌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도롭프스팔이, 쪼코렛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오적(五賊)이 그아니냐   아이구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더욱 좋다. 거지, 문둥이, 시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 합쳐서   우범오적(五賊)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 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배고파서 돈벌라고 서울 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네다.   이리 바짝 저리 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 없이 쏙쏙 기어나오는 건   아니랑께롱   한 마디뿐이겄다   포도대장 할 수 없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 봐라   오적(五賊)은 무엇이며 어디 있나 말만 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 말 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옳다됐다 내 새끼야 그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 하도 좋아 제 무릎을 탁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 버렸던지 무릎뼈가 파싹 깨져 버렸겄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놈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겄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라   안 비키면 오적(五賊)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오적(五賊)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훌렁 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레 같은 저 함성 범 같은 늠름 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 일성,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갖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 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 손상, 백성 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렸다.    5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들러보니 눈 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 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 푸른 용트림이 기둥 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仙女) 가득    몇 십 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 원짜리 정원수(庭園樹)에 백만 원짜리 외국(外國)개   천만 원짜리 수석 비석(瘦石肥石), 천만 원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 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 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門)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女大生) 식모두고 경제학박사 회계 두고 임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제학박사 집사 두고 가정 교사는 철학 박사 비서는 정치학 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 박사   박사 박사 박사 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 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 속에 에어컨 넣고   새들 행여 죽을세라 새장 속에 히터 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 속에 냉장고 넣고    대리석 양옥(洋屋)위에 조선기와 살쩍 얹어 기둥은 코린트식(式) 대들보는 이오니아식(式)   선자추녀 쇠로 치고 굽도리 삿슈 박고 내외분합 그라스룸 석조(石造)벽에 갈포 발라   앞뒷퇴 널찍 터서 복판에 메인홀 두고 알 매달아 부연얹고   기와 위에 이층 올려 이층 위에 옥상 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風), 본따 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風), 돼지우리 왜풍(倭風)당당   집 밑에다 연못 파고 연못 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 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 듯 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강철 함롱, 봉그린 용장, 용그린 봉장, 삼천삼백삼십삼 층 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전자시계, 전자밥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 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거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액 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鳥蝴蝶人物)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 점 걸어 두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 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화기, 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이태리화기, 호피 담뇨 씨운테레비, 화류문갑 속의 쏘니 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 카메라, 산호책장 곁의 알씨에이 영사기, 호박필통에 꽂힌 파카 만년필, 촛불 켠 샨들리에,   피마주 기름 스탠드라이트, 간접 직접 직사 곡사 천장 바닥 벽 조명이 휘황칸칸 호화율율.   여편네들 치장 보니 청옥 머리핀, 백옥 구두 장식,   황금 부로취, 백금 이빨, 밀화 귓구멍 마개, 호박 밑구멍 마개, 산호 똥구멍 마개,   루비 배꼽 마개, 금파 단추, 진주 귀걸이, 야광주 코걸이, 자수정 목걸이, 싸파이어 팔지    에머랄드 팔지, 다이야몬드 허리띠, 터키석 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 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 암야에 횃불처럼   도도 무쌍(無雙)이라!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 콧구멍 볶음, 염소 수염 튀김, 노루 뿔 삶음, 닭 네 발 산적, 꿩 지느라미 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 발톱 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 안 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면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 식혜,   파인애플 화채, 무화과 꽃잎 설탕 버무림,   롱가리트 유과, 메사돈 약과, 사카린 잡과, 개구리알 구란탕, 청포 우무, 한천묵,   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짐빔, 선약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째주, 보드카, 람주(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놀짜로다   저게 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良心)이란 두 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6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 잔 두 잔 헐레벌떡 석 잔 넉 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 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쳐먹었는지 이빨이 확 닳아 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내 부딪쳐가면서 씹어 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 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껏 그 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이 말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 채어 오라 묶어 세운 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가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客愁)가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 찾고 쪼각달 희게 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 흐르는데   어쩔꺼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쌌는데 어쩔꺼나   콩알 같은 꾀수 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우리 꾀수 어쩔꺼나   전라도서 굶고 살다 서울 와 돈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 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 사정 누가 있어 바로잡나   잘 가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 가거라.   7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집 솟을대문,   바로 그 곁에 있는 개집 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 하매,   포도대장 이말 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 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 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 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 같은 거지 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931    김지하 시모음 댓글:  조회:4778  추천:0  2015-04-10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이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흐르락 소리 문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무화과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거울 겨울 2                                                설운 것이 역사다  두려운 것 역사다 두려워도 피할 수 없는 것 역사  아하 그 역사의 잔설 위에 서서 오늘 밤  별밭을 우러르며  역사로부터 우주를 보고  우주로부터 역사를 보고  잔설 속에서 아리따운 별밭을 또 보고.     길                                                          걷기가 불편하다 가야 하고 또 걸어야 하는 이곳 미루어 주고 싶다. 다하지 못한 그리움과  끝내지 못한 슬픈 노래를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눈물이 흐른다. 보내야 하고 잊어야 하는 이곳 눈 있어 보지 못한 너와  입 있어 말 못하는 내가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들녘                                                           무엇이 여기서  무너지고 있느냐  무엇이 저렇게 소리치고 있느냐  아름다운 바람의 저 흰 물결은 밀려와  뜨거운 흙을 적시는 한탄리 들녘  무엇이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느냐  참혹한 옛 싸움터의 꿈인 듯  햇살은 부르르 떨리고  하얗게 빛바랜 돌무더기 위를  이윽고 몇 발의 총소리가 울려간 뒤  바람은 나직이 속살거린다  그것은 늙은 산맥이 찢어지는 소리  그것은 허물어진 옛 성터에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붉은 산딸기와 꽃들의 외침소리  그것은 그리고 시드는 힘과 새로 피어오르는 모든 힘의 기인 싸움을  알리는 쇠나팔소리 내 귓속에서 또 내 가슴 속에서 울리는 피끓는 소리  잔잔하게  저녁 물살처럼 잔잔하게  붓꽃이 타오르는 빈 들녘에 서면  무엇인가 자꾸만 무너지는 소리 무엇인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   서울길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돌아오리란 댕기풀 안스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만남                                                           밤이라도 이리 깊으면  밤이라 할 수 없겠지 앞길 뒷길 다 끊긴 곳에 문득 노여움처럼  난데없는 희망 한 오리.   백방 8                                                      가지 말라  바다가 너를 삼키리라  가지 말라 바다가 너를 밟으리라  삼켜도 밟혀도 떠나가야 하는 바다  떠나가야 하는 바다  바다  네 이름  바다는 그대에게 내 그대에게 백방 뒤꼍 후미진 뻘밭 마지막 떠나던 목선  전 잡고 넘어지던 그대  그대에게 마지막 줄 것  이름뿐 마지막 줄  비단 주머니 속에 든 것은  바다뿐.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                                   아직은 따스한 토담에 기대  모두 토해버리고 울다 일어나 무너진 토담에 기대 우러른 하늘 아무것도 없는  댓잎 하나 쓰적일 바람도 없는 이렇게 비어 있고  이렇게 메말라 있고  미칠 것만 같은 미칠 것만 같은 서로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저 불 켠 방의 초라한 술자리 초라한 벗들 날이 새면  너는 진부령 넘어 강릉으로 오징어잡이, 나는  또 몸을 피해 광산으로 가야 할 마지막 저 술자리 서로 싸우지 않고는 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낯선 마을의 캄캄한 이 시대의 한 밤  토담에 기대 우러른 하늘  아아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   빈 산                                                        빈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저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사랑                                                         꽃 피어도  나비  오지 않는다 봄의 적막이  속에 든다 춥고  외로와  사랑하고저 하나 내밀어 볼 팔  없다 온 마음 맨몸이 죽도록  거리를 걷는다 피투성이로 걷는다  사랑하고저.   새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 새워 물어 뜯어도 닫지 않을 마지막 살의 그리움 피만 흐르네 더운 여름날  썩은 피만 흐르네 함께 답세라 아 뜨거운 새하얀 사슬 소리여 날이 밝을 수록 어두워 가는  암흑속의 별밭  청한 하늘 푸르른 저 산맥 넘어 멀리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뜨거운 햇살  새하얀 저 구름  죽어 너 되는 날의 아득함  아 묶인 이 가슴       새벽 두시                                                  새벽 두시는 어중간한 시간 잠들 수도 얼굴에 찬 물질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공상을 하기는 너무 지치고 일어나 서성거리기엔 너무 겸연쩍다 무엇을 먹기엔 이웃이 미안하고 무엇을 중얼거리기엔 내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럽다. 가만 있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생명                                                         생명  한 줄기 희망이다 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  한 줄기 희망이다 돌이킬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 노랗게 쓰러져버릴 수도 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는 이 마지막 자리 어미가 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  생명의 슬픔  한 줄기 희망이다.       애린                                                         땅 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 숨거나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 간에  변하지 않고는 도리없는 땅 끝에  홀로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내 작은 한 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 오리 햇빛 애린 나     중심의 괴로움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 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틈                                                            아파트 사이사이 빈 틈으로  꽃샘 분다 아파트 속마다  사람 몸속에  꽃눈 튼다 갇힌 삶에도  봄 오는 것은 빈 틈 때문 사람은 틈 새 일은 늘  틈에서 벌어진다     푸른 옷                                                         새라면 좋겠네 물이라면 혹시는 바람이라면 여윈 알몸을 가둔  옷 푸른 빛이여 바다라면  바다의 한때나마 꿈일 수나마 있다면 가슴에 꽂히어 아프게 피 흐르다 굳어 버린 네모의 붉은 표지여 네가 없다면  네가 없다면  아아 죽어도 좋겠네 재 되어 흩날리는 운명이라도 나는 좋겠네  캄캄한 밤에 그토록 새벽이 오길 애가 타도록  기다리던 눈들에 흘러 넘치는 맑은 눈물들에 영롱한 나팔꽃 한번이나마 어릴 수 있다면 햇살이 빛날 수만 있다면 꿈마다 먹구름 뚫고 열리던 새푸른 하늘  쏟아지는 햇살 아래 잠시나마 서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네 푸른 옷에 갇힌 채 죽더라도 좋겠네  그것이 생시라면  그것이 지금이라면 그것이 끝끝내 끝끝내  가리어지지만 않는다면.    황톳길                                                    (1)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2) 밤바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이파리 뻗시디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3) 대?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 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4)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5)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던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면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회귀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 뒤에 남기고  이리로 혹은 저리로 아메리카로 혹은 유럽으로  하나 둘씩 혹은 감옥으로 혹은 저승으로 가데  검은 등걸 속 애틋했던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무성한 잎새 시절 기인 긴 기다림만 남기고  봄날을 가데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아 저 모든 꽃들 가데. 不歸                                                         못 돌아가리  한번 딛어 여기 잠들면 육신 깊이 내린 잠  저 잠의 저 하얀 방 저 밑 모를 어지러움 못 돌아가리  일어섰다도 벽 위의 붉은 피 옛 비명들처럼 소스라쳐 소스라쳐 일어섰다도 한번  잠들고 나면 끝끝내 아아 거친 길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굽 높은 발자국소리 밤새워 천장 위를 거니는 곳  보이지 않는 얼굴들 손들 몸짓들  소리쳐 웃어대는 저 방 저 하얀 방 저 밑 모를 어지러움   뽑혀나가는 손톱의 아픔으로 눈을 흡뜨고  찢어지는 살덩이로나 외쳐 행여는 여윈 넋 홀로 살아  길 위에 설까   덧없이 덧없이 스러져간 벗들  잠들어 수치에 덮여 잠들어서 덧없이 한때는 미소짓던  한때는 울부짖던  좋았던 벗들   아아 못 돌아가리 못 돌아가리 저 방에 잠이 들면  시퍼렇게 시퍼렇게  미쳐 몸부림치지 않으면 다시는 바람 부는 거친 길  내 형제와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오적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머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재벌), 국회의원(국獪의猿) 고급공무원(고급功無猿), 장성(長猩), 장차관(暲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쌌는다.     형님                                                      희고 고운 실빗살 청포잎에 보실거릴 땐 오시구려 마누라 몰래 한바탕 비받이 양푼갓에 한바탕 벌여놓고 도도리 장단 좋아 헛맹세랑 우라질것 보릿대 춤이나 춥시다요 시름 지친 잔주름살 환히 펴고요 형님 있는 놈만 논답디까 사람은 매 한가지 도동동 당동 우라질 것 놉시다요 지지리도 못생긴 가난뱅이 끼리끼리       새 봄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사진출처(내 영혼의 깊은 곳)   [김지하가 말하는 '지하'라는 필명]   5. 16 군사 쿠데타 뒤니까, 아마도 스물두 살 때였나 보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학교 앞에 ‘학림’이라는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 곧 나의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때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인데 문단에 이미 같은 이름의 문사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 개인 시화전을 여는 것은 마치 시집을 한 권 내는 것만큼 ‘준문단적’, 혹은 ‘준준문단적’ 사건이었는지라 아무래도 필명(筆名)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점심때 소주를 사줘서 실컷 먹고 잔뜩 취해가지고 거기서 나와 동숭동 대학가의 아지트였던 바로 그 음악다방으로 가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돈도 버스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술은 오를 대로 올라 비틀거리며 종로길을 갈지 자로 걸어오던 때다. 그 무렵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흔한 것이지만 길가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주욱 늘어선 것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술김에도 괴상하게 여긴 것은 그 간판 위쪽에 다 똑같은 자그마한 검은 가로 글씨로 모두 한글로 ‘지하’라고 하나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실에 다방, 이발소, 이용실이 있다는 얘긴데 왜 하필 그 글자만은 유독 똑같은 한글, 똑같은 검은 글씨로 맨 위쪽에 가로로 조그맣게 써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것들이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그야말로 도처에 유(有) ‘지하’였다. ‘옳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김지하 金芝河 (1941. 2. 4 ~      )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본명은 영일(英一)이며, 지하(芝河)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을 안고 있다.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池學淳)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되었고, 같은 달 2년 동안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복학해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64년 6월 '서울대학교 6·3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4개월의 수감 끝에 풀려난 뒤, 1966년 8월 7년 6개월 만에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번역과 학생 연극에 참여하는 한편, 1969년 11월 시 전문지 《시인》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저항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사상계》 5월호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담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 〈오적〉으로 인해 《사상계》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의 발행인·편집인이 연행되었고, 《사상계》는 정간되었다.   김지하는 이때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국내외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석방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희곡 《나폴레옹 꼬냑》, 김수영(金洙暎) 추도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하였고, 1970년 12월 첫시집 《황토》를 발간하였다. 1971년 이후에는 천주교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계속 저항시 발표 및 저항운동에 전념하면서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4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주일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4년 사면 복권되고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1970년대 저작들이 다시 간행되었고, 이 무렵을 전후해 최제우(崔濟愚)·최시형(崔時亨)·강일순(姜一淳) 등의 민중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이름하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이때 변혁운동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시집으로 《애린》 《검은 산 하얀 방》과 최제우의 삶과 죽음을 담은 장시집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서정시집 《별밭을 우러르며》 등이 있다. 1990년대에는 1970년대의 활기에 찬 저항시와는 달리 고요하면서도 축약과 절제, 관조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일산 시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 《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하였고, 1994년 《대설, 남》과 시집 《중심의 괴로움》을 간행한 뒤, 1998년에는 율려학회를 발족해 율려사상과 신인간운동을 주창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민족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70년대 내내 민족문학의 상징이자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으로서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사면과 석방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로, 복역 중이던 1975년에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을 받았고, 1981년에 세계시인대회로부터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위의 저서 외에 시집으로 《꽃과 그늘》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예감에 찬 숲 그늘》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 등이 있다.   .................................................................................................................................    ■ 작가 이야기     민주화의 상징, 그 곰삭은 영혼의 언어 김지하는 5.16 쿠테타 이후 30여년 간 계속되었던 군부독재 상황에 온 몸으로 저항하면서 시를 쓴 시인이다. 그 시절 그는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였고, 그의 삶과 문학이 하나의 신화에 값하는 것이었다. 그는 척박한 황톳길 위에 내동댕이쳐진 육신의 상처를 붙안고 그 상처보다 더 곰삭은 영혼의 상처를 추스리면서 살아야 했다. 몸은 '오적'들에 의해 억눌리고 귀와 입은 틀어막혀 신산스런 모독의 상처를 붙안은 채 견디거나 버티거나 저항해야 했던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삶이면서 삶이 아니었던 것, 차라리 죽음에 가까웠던 것이었다. 하고보니 그런 나날들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이들은 역설적으로 죽음에 대한 속절없는 체험을 해야 했다. 1970년 그가 담시 '오적'을 발표하자 공안당국은 그를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한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부류의 부정부패 분자들을 통열하게 풍자하면서 생존권마저 박탈당한 채 고통받고 있는 민중의 현실을 정면에서 문제삼은 일종의 단형 서사시가 바로 '오적'이다.   김지하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치열하게 실존과 문학 등 모든 영역에서 그런 체험을 감당해야 했던 시인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시 제목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현실을 견디고 문학으로 싸워야 했던 것이다. 여러 형태의 죽임과 죽음 체험의 절정에까지 이르렀던 그였다. 그 절정에서, 혹은 타는 목마름의 절정에서, 그는 죽임의 현실을 초극하고 진정한 '생명의 바다'를 지향하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큰 시인다운 면모에 값한다.   시력(詩歷) 30년을 넘긴 그가 에서 이른 세계는 삶과 죽음의 세속적 갈림을 탈탈 털고 넘어선 해탈의 지평이요, 뭇 존재들이 서로 일으키고 피차의 경계를 허허로이 넘어서며 융섭하고 상생하는, 그래서 궁극으로 꽉찬 둥근 세계이면서 동시에 공(空)의 세계인 만공(滿空)의 우주이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 저서   첫 시집 『황토(黃土)』(1970) 이후,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 『검은 산 하얀 방』(1986), 『애린』(1986), 장시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6), 『별밭을 우러르며』(1989), 담시집 『오적』(1993), 『중심의 괴로움』(1994) 등의 시집이 있다. 이밖에도 대설(大說) 『南』(전5권, 1994년 완간)을 비롯해, 산문집 『나의 어머니』(1988), 『밥』(1984),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1984), 『남녘땅 뱃노래』(1985), 『살림』(1987), 장시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1991), 대담집 『생명과 자치』(1994),『사상기행』(전2권, 1999), 『예감에 가득찬 숲그늘』(1999), 강연 모음집 『율려란 무엇인가』(1999) 등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   [출처] [스크랩] 김지하 시 모음 |작성자 한동안  
930    <벚꽃> 시모음 댓글:  조회:4347  추천:1  2015-04-10
    벚꽃이 감기 들겠네     김영월 비가 그친 저녁  더 어두워지는 하늘가  이 쌀쌀한 바람에  여린 꽃망울들이 어쩌지 못하고  그만 감기 들겠네 그 겨울 지나, 겨우 꽃눈이 트이고  가슴 설레는데  아무도 보는 이 없고  꽃샘추위만 달려드네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이게 아니었네  좀더 따스하고 다정하길 바랬네 윤중로 벚꽃 잎은 바람에 휘날려  여의도 샛강으로 떨어지고  공공근로자 아주머니의  좁은 어깨 위에 몸을 눕히네     벚꽃 축제      박인혜 겨우내  비밀스레 숨어있던  그들이 환하게 피어났다 벚꽃 세상을 만들었다 벚꽃을 닮은 사람들이 다가오자  벚꽃은 꽃잎을 바람에 날리며 환영해준다 벚꽃의 세상이다 벚꽃 아래 사람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다  벚꽃 같은 사랑을 피고자 하는 연인들이 모여든다  벚꽃 닮은 강아지가 뛰어다닌다  벚꽃나무와 함께 아이들이 웃는다 벚꽃 세상의 사람들이  벚꽃 아래에서  벚꽃처럼 즐거워한다  벚꽃 세상에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은  벚꽃처럼 아름답다     밤벚꽃    도혜숙 해는 이미 져버린 지 오래인데 벚꽃은 피고 있었다 와∼ 벚꽃이 팝콘 같다 아이들 떠들썩한 소리에 갑자기 까르르 웃는  벚꽃 다시 보니 참 흐드러지게 먹음직스럽다     벚꽃    김태인 우리 마을 해님은  뻥튀기 아저씨 골목길 친구들이  배고프면 먹으라고 아무도 모르게  강냉이를 튀겼어요     벚꽃    김영월 요절한 시인의 짧은 생애다  흰빛이 눈부시게 떨린다  살아서 황홀했고 죽어서 깨끗하다     정오의 벚꽃     박이화 벗을수록 아름다운 나무가 있네  검은 스타킹에  풍만한 상체 다 드러낸  누드의 나무  이제 저 구겨진 햇살 위로  티타임의 정사가 있을 거네  보라!  바람 앞에 훨훨 다 벗어 던지고  봄날의 화폭 속에  나른하게 드러누운  저 고야의 마야부인을     벚꽃     이재기 백설기 떡잎 같은 눈 봄날 4월 나뭇가지에 온 세상의 나무를 네가 덮었구나               선녀 날개옷 자태인 양 우아한 은빛 날개 펼치며 송이송이 아름드리 얹혀 있구나 희지 못해 눈부심이 휑한 마음 눈을 뜨게 하고 꽃잎에 아롱진 너의 심성 아침 이슬처럼 청롱하구나 사랑하련다 백옥 같이 밝고  선녀 같이 고운 듯 희망 가득 찬 4월의 꽃이기에     벚꽃    권복례 그 깊은 곳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그곳에서 너는 참 고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왔구나  화장을 한 듯 안한 듯한 모습으로  너는 무슨 표 화장품으로 화장을 했니  나는 참존 화장품으로 화장을 한단다  그리고 나는 빨간 립스틱은 바르지 않는단다  왜냐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나면 내가 바라보아도  내가 아닌 듯 하거든  그래서 나는 아주 연한 립스틱으로 입술을 마무리하지  바라보아도 오래도록 싫증나지 않는 너처럼  나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구나  너 그 깊은 곳에서 무엇으로 치장을 했는지  나만 살그머니 가르쳐주지 않으련     벚꽃나무의 둘레가     곽진구 벚꽃나무의 둘레가 눈부시다  무엇이 저렇게  내 눈을 못 뜰 만치  눈부시게 다가오는가 싶었더니 꽃 속에 숨어 있는,  어느새 성장한 여인이 되어버린  딸애가,  오 귀여운 딸애가  주변의 예쁜 풍경을 거느리고  활짝 웃고 있지 않는가 항상 품안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한 그루의 벚꽃!  주변이  꽃의 살처럼 느껴졌다     벚꽃     안영희 온몸  꽃으로 불 밝힌  4월 들판 눈먼  그리움 누가  내 눈의 불빛을 꺼다오.     벚꽃 속으로    유봉희   첫사랑의 확인  눈감아도 환한 잠깐 사이에  잠깐 사이로  꽃잎 떨어져 떨어져도 환한 꽃잎  살짝 찍는 마침표  하얀 마침표     벚꽃    용혜원 봄날 벚꽃들은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무엇이 그리도 좋아 자지러지게 웃는가 좀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깔깔대는 웃음으로 피어나고 있다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기쁜지 행복한 웃음이 피어난다     벚꽃 봄빛의 따스함이  이토록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겨울 냉기를  하얗게 부풀려 튀긴 팝콘 팝콘 같기도 하고  하얀 눈꽃 같기도 한  순결한 평화가 나뭇가지에 깃들인다 그 평화는 아름다운 꽃무리가 되어  가슴 가득 피어오른다  사람들이 거니는 가로수의 빛난 평화를 4월의 군중과 함께 피어나는 벚꽃은  말끔히 씻기어 줄  젊은 날의 고뇌     벚꽃 천지天地에 저뿐인 양  옷고름 마구 풀어헤친다 수줍음일랑 죄다  땅 밑으로 숨기고  백옥같이 흰 살결 드러내  하늘에 얼싸 안긴다 보고 또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자태  찬란도 단아도  이르기 부족한 말 수십 여일 짧은 생  마른 장작 타듯 일순 화르르  온몸을 아낌없이 태우며  세상천지를 밝히는  뜨거운 사랑의 불꽃 아무리 아름다워도  찰나에 시들 운명,  순응이나 하듯  봄비와 산들바람을 벗삼아  홀연히 떠나버린 자리에  오버랩되는  고즈넉한 그리움     벚꽃 잎이 벚꽃 잎이 머얼리서 하늘하늘 떨리었다  떨다가 하필 내 앞에서 멈추었다  그 눈길이 내 앞을 운명처럼 막았다  가슴이 막히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흐느끼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었다  벚꽃 잎은 계속 지고 있었다   벚꽃의 꿈 가야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답고 눈이 부신가. 일시에 큰소리로 환하게 웃고  두 손 털고 일어서는 삶이 좋아라. 끈적이며 모질도록 애착을 갖고  지저분한 추억들을 남기려는가. 하늘 아래 봄볕 속에 꿈을 남기고  바람 따라 떠나가는 삶이 좋아라   벚꽃나무 잎새도 없이 꽃피운 것이 죄라고  봄비는 그리도 차게 내렸는데 바람에 흔들리고  허튼 기침소리로 자지러지더니  하얗게 꽃잎 다 떨구고 서서 흥건히 젖은 몸 아프다 할 새 없이  연둣빛 여린 잎새 무성히도 꺼내드네   벚꽃 봄의 고갯길에서  휘날리는 꽃잎 잡으려다가 깨뜨렸던  내 유년의 정강이 흉터 속으로  나는 독감처럼 오래된 허무를 앓는다 예나 제나  변함없이 화사한  슬픔,  낯익어라   벚꽃, 이 앙큼한 사랑아     최원정   햇살 한 줌에  야무진 꽃봉오리  기꺼이 터뜨리고야 말  그런 사랑이었다면  그간 애간장은  왜, 그리 녹였던 게요 채 한 달도  머물지 못할 사랑인 것을  눈치 챌 사이도 없이,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 얄궂은 봄날  밤낮으로 화사하게 웃고만 있는 게요 한줄기 바람에  미련 없이 떨구어 낼  그 야멸찬 사랑이라면  애당초 시작이나 말지  어이하여  내 촉수를 몽땅 세워놓고  속절없이 가버리는 게요  이 앙큼한 사랑아 <      
929    명시인 - 프로스트 댓글:  조회:3056  추천:0  2015-04-10
세계의 명시/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시를 말하다 정끝별 l 시인 “샘을 치러 나가 볼까 합니다;/ 그저 물 위의 나뭇잎이나 건져내려구요/ (물이 맑아지는 걸 지켜볼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 엄마소 옆에 있는 어린/ 송아지를 데리러 가려구 해요. 너무 어려서/ 엄마소가 핥으면 비틀거리지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목장’). 이런 청혼의 시를 받고 결혼하려 했으나 정작 그럴 듯한 청혼도 없이 결혼하고 말았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雪白)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 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자작나무’)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케 하는 이 아름다운 시에 버금가는 시를 써 보려 했으나 이 구절들을 몽타주한 시 한 편을 썼을 뿐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1910 한때는 ‘프로스트’와 ‘프루스트’를 헛갈려 했던 적도 있으나, 다른 한때는 프로스트의 시들이 내 시의 교본이었던 적도 있다. 누군가 말했듯 “프로스트는 프로스트(frost, 서리)”다. 그의 시가 은유의 교본이었듯 이 말 또한 은유다. ‘자연’과 ‘사실’과 ‘순간’에 집중했던 프로스트의 시는 담백하면서도 그윽한 깊이가 있으며, 서늘한 계시처럼 우리의 정신을 청량하게 한다. 그러니까 아침의 서리인 듯, 햇살을 반사하면서 녹아드는 흰빛의 그 무엇인 듯, 어렴풋한 순간 속의 깊은 속삭임인 듯, 작고 평범한 사실 속에 숨어 있는 충만한 기쁨을 선사하곤 한다. 그가 좋아했던 ‘낫’과 ‘펜’으로 그는, “생각을 일구는 행위”이자 “행위가 된 언어”로서의 시의 씨앗들을 일구었던 것이다. 프로스트는 내게 가장 미국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프로스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되어 “우리가 이 땅의 우리이기 전 이 땅은 우리의 땅”으로 시작하는 축시를 낭독했다. 그리고 2년 후, 암살되기 열 달 전의 케네디는 프로스트의 죽음에 부쳐 “‘오늘, 로버트 프로스트를 추모하는 이날은”으로 시작하는 추모사를 전했다. 그는 또한 미국적인 삶과 정서와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었다. 젊은 시절의 실의와 방황을 거쳐 구두점 주인, 주간지 기자, 농장 경영 등을 섭렵했던 삶의 편력, 노동과 전원과 종교를 터전으로 삼아 대자연의 긍정을 지향했던 성찰과 예지, 일상생활에서 발견한 은유의 언어 등이 모두 그가 대중성을 체화하고 ‘대중 시인(public poet)’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가지 않은 길’은 프로스트가 실의에 빠져 있던 20대 중반에 쓴 시이다. 변변한 직업도 없었고 문단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였고, 이 대학 저 대학에서 공부는 했으나 학위를 받지는 못한 채 기관지 계통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집 앞에는 숲으로 이어지는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그 길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이 시를 썼다고 전한다. 원제인 ‘The road not taken’은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 가보지 않은 길, 걸어보지 못한 길 등으로 번역되는데, 나는 선택적 의지가 강조된 ‘가지 않은 길’로 번역된 것을 좋아한다. 세상 모든 길은 두 갈래 길로 나뉜다. 간 길과 가지 않은 길, 알려진 길과 알려지지 않은 길, 길 있는 길과 길 없는 길! 삶이라는 이름 아래,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한 길만을 걸어야 한다. 그 누구도 두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평등한, 인간의 조건이다. 한 길에 한번 들어서는 순간, 결코 되돌아올 수도 없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뉴햄프셔 데리에 있는 로버트 프로스트 농장. 프로스트는 이곳에서 많은 명시들을 썼다. 아침, 가을 단풍이 노랗게 혹은 붉게 든 숲 속으로 난 두 갈래 길은 유혹적이다. 두 길이 모두 못지않게 아름답고, 쌓인 낙엽 위에 그 어떤 발자국도 없다면 더욱! 자,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시인은,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그러니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사람들이 적게 갔었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인 동시에, 그 길을 택함으로써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그 선택이 아름다운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나, 선택보다 우연 혹은 운명이 앞선 것이었다면?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것은 것이 아니라, 실은, 예정된 우연이나 운명의 길을 간 것이었다면?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 매일이라는 그리고 가야 할 길이라는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가야만 한다. 인생의 강자는 간 길에 대해 말이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더더욱! “문에 다다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문에 다다르게 되”(‘반드시 집에 가야지’)는 것처럼, 한 길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한 길을 걷게 되었을 뿐… 단지, “어느 가지에는/ 따지 않은 사과가 두세 개는 있을 것이”고, “아직도 나의 두 갈래 긴 사닥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천국을 향하여 뻗어 있”(‘사과를 따고 나서’)을 것이다.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3.26-1963.1.29) 187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아버지가 변사하여 뉴잉글랜드로 이주, 오랫동안 버몬트의 농장에서 청경우독(晴耕雨讀)의 생활을 계속하였다. 이때의 농장 생활 경험을 살려 소박한 농민과 자연을 노래해 현대 미국 시인 중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으로 꼽힌다. 그 후 교사, 신문기자로 전전하다가 1912년 영국에 건너갔는데, 그것이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 에드워드 토머스, 루퍼트 브룩 등의 영국 시인과 친교를 맺었으며, 그들의 추천으로 첫 시집 가 출간되었고, 이어 이 출간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915년에 귀국하여 미국에서도 신진 시인으로 환영받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 자작시를 낭송하는 등 미국의 계관시인적(桂冠詩人的) 존재였으며, 퓰리처상을 4회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위 두 시집 외에 , , , 등이 있다. 글 정끝별 1988년 에 시가, 1994년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 , , , 시론과 평론집에 , , , 등이 있다.  
928    <지구> 시모음 댓글:  조회:4567  추천:0  2015-04-10
    == 지구는 만원이다==  죽을 수 있다는 것  바위가 오랜 후 모래가 되고  나무도 마침내 쓰러져 썩는다는 것  저 이름 없는 풀꽃이 결국 시들듯  그대와 나  죽을 수 있다는 것  미움도 마침내 스러지고  그리움도 언젠가는 잊혀지듯이  저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가랑잎처럼  우리도 한 점 흙이 된다는 것  그렇게 사라져주는 것  그런 소멸의 길이  얼마나 축복된 길인가 (김영천·시인, 1948-) == 나는 한 평 남짓의 지구 세입자== 살다 보면  보증금 십만 원에 칠만 원인 방도  고마울 때 있다. 이별을 해도 편하고  부도가 나도 홀가분할 때 있다.  5만 원어치만 냉장되는 중고냉장고  걸핏하면 덜덜거려도  긴긴밤 위안될 때 있다.  세상과 주파수 어긋나  툭 하면 지직거렸던 날 위해  감당할 만큼만 뻗고 있는 제 팔들 내보이며  창가 은행나무 말 걸어올 때도 있다.  먼 훗날 지구에서 방 뺄 때  빌려 쓴 것 적으니  그래도 난 덜 미안하겠구나  싶을 때 있다. (이성률·시인, 1963-) == 지구는 하나==       지구는 하나, 꽃도 하나,  너는 내가 피워낸 붉은 꽃 한 송이  푸른 지구 위에 피어난 꽃이 아름답다  바람 부는 지구 위에 네가 아름답다. (나태주·시인, 1945-) == 지구를 한 바퀴==       아빠는 일터에 나가시고  혼자서 아기 키우는 엄마,  아기를 재워놓고  기저귀 빨려고  들샘에 나가서는  아기 혼자 깨어 우는 소리  귀에 쟁쟁 못이 박혀서  갖추갖추 빨랫감 헹궈 가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오듯  바쁘게 돌아옵니다.  마늘밭 지나 보리밭 지나  교회 앞마당을 질러옵니다. (나태주·시인, 1945-) == 발들이 웃으면 지구가 웃는다==  찬바람 부니 잠자리에 든 발이 먼저 시리다  심장과 먼 발이 시리다  온종일 바닥에서 나를 세우던  그 발 시려 온몸 시리고  온몸 시려 마음 시리다  어서 양말을 신겨야지  읽지 않고 정치면을 넘겨 버려도  사회면 반, 눈감고 지나도  지구 공 위에 함께 발붙인 이들의  발 시린 소리  따듯한 심장과 멀어서  지구가 발이 시립단다  차가운 밤은 깊고 길기만 한데  어서 양말을 신겨야지  발이 따뜻해야 온몸이 웃는다  모든 발이 따뜻해야 지구가 웃는다 (유봉희·시인) == 지구본 == 나보다 먼저  지구를 끌어안은 아이  흐뭇한 표정으로  지구본 돌려대며 내 꺼야  키득거리는 아이  하나님이 아이처럼 웃으셨다 (김신오·시인, 황해도 신천 출생) == 지구본을 돌리며==     지구본을 돌리고 있으면 세계는 적막하다  사막과 고원, 화산과 빙하가  오대양 육대주, 남극과 북극이  수박만한 씨알로 오므라들어  봄 가을 열두 달을 믿을 수가 없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할 하늘은  씨줄과 날줄 속에 들어앉고  내 나라 내 도시는 점으로 찍혀  산다는 것도 별 게 아니구나 알게 된다  차를 타고 내려서 또 차를 타는  동서남북을 믿을 수가 없다  믿어야 할 진리를 찾을 수가 없다 (이향아·시인, 1938-) == 지구는 아름답다==       아름답구나  호수 루이스*.  에머랄드 색깔이라 하지만  어찌 보면 고려의 하늘색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이육사의 청포도색 같기도 한 너의  눈빛,  살포시 치켜뜬 자작나무 속눈썹 사이로  꿈꾸듯 흰 구름이 어리는구나.  태고의 만년설로 면사포를 해 두른 너 로키는  지구의 정결한 처녀,  내 오랫동안 이를 믿어왔거니  그 청옥한 눈매가  그 무구한 눈짓이  바로 병색임을 내 오늘 알았노라.  모든 독을 지닌 것은 아름다운 것,  모든 침묵하는 것은 신비로운 것,  산성비에 오염된 호수에서는  아무것도 살지 못한다.  결핵을 앓는 소녀가 아름다워지듯  아마존에서, 킬리만자로에서  폐를 앓는 지구는 더 아름답다.  박명한 미인처럼 아름답다. (오세영·시인, 1942-)   * 호수 루이스(Lake Louise): 캐나다 로키 국립공원 밴프 가까이 있는 아름다운 호수, 근처 산봉우리의 하얀 만년설과 호수의 특이한 물색이 어울려 절경을 자아내고 있음. 그 특이한 물 색깔은 산성비의 오염에서 비롯된 것임. == 지구의 독백==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태양  짝사랑하느라 허송세월 할지라도  화끈한 느낌만으로도 족해  가지가지 생명체를 잉태할 수 있었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우여곡절 끝에 중심 잡았건만  잘못 키운 영장류 하나 때문에  스트레스가 떠날 날이 없는 몸  이골이 난 자반뒤집기로  애먼 세월만  무시무종 끌어당겨 허비하다보니  나도 몰래 오르는 체온  되바라진 인간들이  갈수록 묘혈을 파  몸살로 시난고난하다  결국엔 나도 달처럼 결딴나겠지 (권오범·시인) * 자반뒤집기: 고통을 못 이겨 몸을 마구 엎치락뒤치락하는 것 * 시난고난: 병이 오래 끌면서 점점 악화되는 모양 == 몸살 앓는 지구촌==       가을비 토닥대며  지붕을 때리는데  처처의 재해소식  참으로 심난하다  지구촌  편안한 날이  하루라도 없구나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지구촌==     구름 안개 몸을 휘감는 여기  높은 재 위에 올라선 지금  하늘과 땅이 한 움큼이요  삶과 죽음이 한순간일네  남북이  한 뼘도 채 안 되는데  이걸 가지고 피를 흘렸나  우주에서 내려다본다면  점 하나 찍은 듯 작은 지구  개미집 같은 지구촌에서  서로 싸우는 미련한 인간들  우습다  신이 보기에는  비극이기보다 가증하리라  그러나 우주가 넓고 커도  지구는 필경 인류의 보금자리  여기 생명을 붙이고  역사를 누리며 살아온 곳  우리 왜  하나뿐인 보배를  우리 손으로 깨뜨리려나  무자비한 칼 거침없이  휘두르는 강대국의 횡포  능멸의 그물, 유린의 발굽  못 벗어나는 약소민족의 아픔  이것이  지구를 더럽혀 온  인류의 비참한 역사다  애타게 두들겨도  열리지 않는 평화의 장벽  불러도 응답이 없이  대화조차 끊어진 적막  이 순간  텅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꼬 (이은상·시인, 1903-1982) == 하나뿐인 지구==       하나뿐인 지구 위에  숨쉬고 있는 사람들은  함께 살고 있는  꽃들과 동물들의 세계를 모른다  바다가 있는 천체는  오직 지구뿐인데  사람들은  물고기들의 씨를 말린다  농부들은  씨라도 뿌리고  가을 수확을 기다리는데  어부들은  봄, 가을 없이  새벽에서 밤까지  물고기를 낚는다  하나뿐인 지구를  껴안으며 살자  그러면  오직 사랑과 평화가  살아 나올 것을 (이지영·시인) == 지구가 멈췄다== 절간 진입로바닥에 엎드려 수레를 미는 사내 앞에  환경정화 단속원이 떴다 이제 겨우 마수걸인데 해넘이까지는 한참 멀었는데 도망치지 못하고  죽은 듯 꿈쩍도 않고 있다  뒤로는 부처님 품안이요 옆으로는 숨기 좋을 과수원이지만 저 너머 집에선 달빛 아래 삼겹살 파티를 기다리며 어린것들이 목을 뽑지만  진퇴양난 없는 다리 노릇을 하는 뱃가죽 밑에는 지구가 놓여 있는데 한 뼘 한 뼘 굴릴 때마다 달이 가까워오는 (원무현·시인, 1963-)
927    <자화상> 시모음 댓글:  조회:4194  추천:0  2015-04-10
  +==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시인, 1917-1945)  +== 자화상==  누군가  그대와 비슷한 이름만 불러도  온몸이 굳어  또 다른 누군가가  닮은 목소리로 스쳐 지나가면  그대로  석고가  되어버릴  어느 서툰 조각가의  그럴 듯한  실패작.  (이풀잎·시인) +== 자화상== 내 몸에 흐른 강이 몇 개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몇 개 이마에 매달린 납덩이가 몇 개 가슴 속 갈매기 깃발이 몇 개 털 빠진 기회의 꼬리가 몇 개 너무 가까워 보이지 않는 눈썹이 몇 개 아, 무엇이 무엇인가 무엇이 몇 개. (홍해리·시인, 1942-) +== 자화상·1 == 내가  기울면  산도  바다도  하늘도  기웁니다.  당신이  바로 서도  아직도  사뭇  기울어 있는  나.  산도  바다도  하늘도  바로 서 있는데  나 혼자 기울어서  모두 기울었다 합니다. (김영천·시인, 1948-) +== 자화상==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신현림·시인, 1961-) +== 자화상(自畵像)==  하얀 종이에  파스텔로 내 얼굴을  그렸습니다  머리칼도 눈썹도 입술도  하얗게 그렸습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슬픈 나를,  하얀 눈물을 그렸습니다  아무도 내 슬픔은 알아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 속엔  나만이 알 수 있는  슬픔이 있습니다. (최영희·시인) +== 자화상== 거울을 무서워하는 나는  아침마다 하얀 벽바닥에  얼굴을 대보았다  그러나 얼굴은 영영 안 보였다  하얀 벽에는  하얀 벽뿐이었다  하얀 벽뿐이었다  어떤 꿈 많은 시인은  제2의 나가 따라다녔더란다  단 둘이 얼마나 심심하였으랴  나는 그러나 제3의 나………제9의 나………제00의 나까지  언제나 깊은 밤이면  둘러싸고 들볶는다 (권환·시인, 1903-1954) +== 자화상==   푸른 하늘을 우러르는 일이 부끄러워  언제나 고갤 숙인 사람,  화살은 수없이 날렸지만 과녁을  맞춰 본 적 없었네  혹여, 발자욱 소리 들릴까  걸음걸이 항상 조심스러웠네  반세기는 늦게 세상에 태어나  뒤만 바라보며 실컷 자기 몫을 쓸쓸해하다가  시드는 낮달처럼  스러져 없어질 사람,  오늘같이 푸른 날은 흰 고무신 닦아 신고  뜸북새 우는 긴 논둑 길 걸어 보고 싶네 (김용화·시인) +== 자화상 == 제 몸을 부수며 종鐘이  운다 울음은 살아 있음의 명백한 증거, 마침내 깨어지면 울음도 그치리. 지금 존재의 희열을 숨차게 뿜으며 하늘과 땅을 느릿느릿 울려터지는 종소리, 종소리, 그것은 핏빛 자해自害의 울음소리. (이수익·시인, 1942-) +== 자화상(自畵像)== 돌과 돌들이 굴러가다가 나를 두들기고, 모래와 모래가 쓸려가다가 나를 두들기고, 물결과 물결이 굽이쳐 가다가 나를 두들기고, 너무도 기나긴 억겁의 세월, 햇살과 햇살이 나를 두들기고, 달빛이 나를 두들기고, 깜깜한 밤들이 나를 두들기고, 별빛과 별빛이 나를 두들기고, 아, 훌훌한 낙화가 꽃잎이 나를 두들기고, 바람이 나를 두들기고, 가랑비 소낙비 진눈깨비가 나를 두들기고, 싸락눈 함박눈 눈보라가 나를 두들기고, 우박이 나를 두들기고, 그, 분노가 나를 두들기고, 회의와 불안, 고독이 나를 두들기고, 절망이 나를 두들기고, 아니, 사랑이 나를 두들기고, 끝없는 뉘우침 끝없는 기다림 갈망이 나를 두들기고, 양심과 정의, 지성이 나를 두들기고, 진리와 평화 자유가 나를 두들기고, 겨레가 나를 두들기고, 끝없는 아름다움 예술이 나를 두들기고, 나사렛 예수 주 그리스도와 하느님, 말씀이 나를 두들기고. (박두진·시인, 1916-1998) +== 자화상(自畵像) == 나는 오랜 옛 서울의  한 이름 없는 마을에 태어나  부모형제와 이웃 사람의 얼굴, 그리고  하늘의 별들을 볼 적부터  죽음을 밥먹듯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에 피는 꽃의 빛깔과  황혼에 지는 동산의 가을소리도  이별이 곁들어져  언제나 그처럼 슬프고 황홀했다  술과 친구와 노래는 입성인 양 몸에 붙고  돈과 명예와 그리고 여자에도  한결같이 젖어들어  모든 것을 알려다  어느 것도 익히지 못한 채  오직 한 가지 참된 마음은  자기가 눈감고 이미 없을 세상에  비치어질 햇빛과  피어나는 꽃송이와  개구리 우는 밤의 어스름달과  그리고 모든 사람의  살아 있을 모습을 그려보는 일이다. (김동리·소설가, 1913-1995) +== 자화상(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것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숫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시인, 1915-2000) +== 베짱이, 나의 자화상== 죽은 벌레들이 땅에 떨어져 다음 해 한여름을  위해 거름기를 모을 때 혹은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과일이 단물 들어갈 때 내 삶은  어느 한 부위도 익지 못했네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만수위로 위험수위로  차오를 때까지 나의 노래만 불렀네  남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앉아  목쉬도록 노래하다  여름 끝까지 와버렸네  어쩔거나 어쩔거나 음풍농월로  젊은 날을 탕진해 버렸네  남의 것까지 거덜내 버렸네  문전박대 그 긴 겨울  시린 땅을 딛고 갈 마음의 신발  신발마저 벗겨져 세상하류까지 떠내려가 버렸네  그것도 모른 체 나부끼는 벽오동 나뭇잎으로  한여름 밤의 꿈에 부채질이나 했네  세상 언저리 언저리로만 떠돌았네  죽은 것마저 땅에 떨어져  한 줌 한 줌 거름기를 모을 때...... (김왕노·시인, 경북 포항 출생) +== 자화상==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라보는 일뿐이다  새 한 마리  밤새 무화과나무에서 울어대도  바람이 계절 따라 가슴을 흔들며  짙은 물감을 쏟아놓아도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식의 바구니를 채우고  감성의 샘물을 일굴수록  갈 길이 멀고, 지고 갈 짐이 많다는 걸 안다.  사람들은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지만  물살을 거꾸로 타고 오르는 힘겨움뿐  영리한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조차 숨가쁘다  다가오는 것들을 말없이 품어주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손 흔들어 보내는  생(生)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바라보는 일과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내 모습 이대로를 지키는 일뿐이다 (홍인숙·시인, 미국 거주 ) +== 유년기의 자화상==       학질을 되게 앓던 날 새벽  할머니는 정한 뽕잎 하나 따서  정낭 귀틀에 깔고 그 옆에 나를 앉혀  혀로 뽕잎을 세 번 핥게 하신 후  다시 나를 업고  해 뜨는 봉우리  까마득한 바위 끝에 앉히고  내 머리 위에  동서남북의 바람을 불러들여  학질을 재판하셨습니다.  알 듯 모를 듯 주문을 외시던 할머니는  품속 칼을 선뜻 꺼내  푸른 바다 뜨는 해를 향해  십자를 긋고  이어 그 무선 칼날로 내 머리를 그으셨습니다.  내 몸 안으로 부서져내리는 칼소리  내 몸 온 구석에 부서져 하얗게 빛나는 칼빛  할머니는 나를 업고 다시  개울로 가셨습니다.  할미꽃 잎사귀를 손바닥에 비벼  내 콧구멍을 막아주시고  징검다리를 건너뛰게 하셨습니다.  할미꽃 잎사귀의 독한 향기는  몸에 스미어 내 눈에 별빛이 번쩍이고  나는 별밭 징검돌 은하수를  반은 죽어 건너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하는 사이  칼빛에 두려운 학질 무리가  할미꽃 향기에 질려  별밭 하늘로 도망가고 말았는가.  돌아오는 마을 어귀에  풀꽃잎 까치울음 함께 떠서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30세의 자화상== 삼십이 되어도 장가도 못간 놈. 고자도 아닌데 세상 불구자로 벼랑 끝에 울고 있다 마지막 남은  밧줄 하나 불안하게 부여잡고 끙끙대며 때묻은 영혼으로 나부끼고 있다 어제는 시간의 아픔으로 홍역을 치렀고 오늘은 알몸으로 몸부림치며 나이 들수록 왜소해지는 자신을 보며 팔짱 끼고 앉아 덜거덕대는 가슴을 발가락으로 누르고 있다 (권영하·시인) +== 자화상 문답==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만 할까  거울 앞에서  문득 만나는 묵묵부답  어느덧 흰 머리칼이  덧없이 또 지나간 10년을 얘기하며  이마 앞에서 나부끼고 있다.  (강남주·시인, 1939-) +== 자화상 (自畵像)== 어느덧 사십 년 지나  골동품 다 돼가는 자물통 하나  묵비권을 행사하듯 늘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뜻맞는 상대와 내통하면  언제든 찰칵!  꼭꼭 잠가둔 마음을 푼다  천성이 너무 솔직하고 순진해  안 보여도 좋을 속까지  모조리 내보이는 자물통 하나  가슴속엔 싸늘한 뇌관을 품고  보수(保守)냐? 개혁(改革)이냐?  목하 고민중인 자물통 하나  남의 집 문고리에 매달려  알게 모르게 녹슬고 있다.    (임영조·시인, 1943-) +== 자화상·95==     내 나이 마흔 두 살  십이간지 중에 말띠로 태어나  사십 이년 세월을 갈무리했다.  멋진 갈기를 날리며  늘씬한 네 다리로 드넓은 초원을  달렸어야 마땅한데.  마구간에 갇힌 세상  발톱만 다듬다 사십 년이다.  말로 태어나 말로 살지 못한  가슴은 숯껌뎅이로 남아서  가끔씩 지구 밖에다 편지질하다  시심으로 불을 지펴서  내 영혼을 달래다 시인이 되었다.  일천 구백 구십 오 년은  그래서 뜻깊은 해이다. (목필균·시인) +== 예순 살의 자화상==  쓰레기통에 버려진 자전거 바퀴를 주어다가 만든 굴렁쇠를 굴리며  사내는 운동장을 달린다.  달리는 트랙은 반대방향이다.  땡볕 내려쬐는 빈 운동장을 예순의 그가 혼자서 달린다.  굴렁쇠는 가볍다.  운동장 옆 키 큰 미루나무 숲의 매미떼가 여물게 울뿐 아무도 없다.  그는 모처럼 해방감에 젖어  유년의 때까지 달려가려는 듯하지만  힘이 부친 듯 비틀된다.  그가 넘어진다.  굴렁쇠는 혼자서 저만치 굴러간다.  넘어진 굴렁쇠를 바로 세워 달리던 유년의 때완 다르게  굴렁쇠가 그를 일으켜 세운다.  넘어졌던 그가 일어나 굴렁쇠를 다시 굴린다. (김상현·시인, 1947-) +== 그릴 수 없는 자화상== 나는 내가 아니다 사진을 보든 거울을 보든 나는 나를 그릴 수 없다 내 몸 속에 내가 없고 벗어도 또 내가 아닌 아니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탈 자체가 되어 버린 고기 덩어리 태워 버리자 묻어 버리자 그리고 떠나자 나도 모르는 곳으로 예수나 석가의 얼굴은 아니지만 어머니 자궁 속에서 짓던 미소를 띠며… (구광렬·시인, 1956-) +== 자화상==  놈은  가슴속에 칼날 하나 감추고 있다  누군가 달려들면 내려칠 칼날을  놈은 날마다 칼날을 간다  날이 시퍼렇게 서도록  나를 보호해 줄 건 이것뿐이라며  갈고 또 간다  그러다가도  정작 휘둘러야 될 때가 되면  정말 휘둘러야 하는데  차마 차마 망설이다가  제 가슴이나 후비며  자상이나 입히는  써보지 못하는 칼날 하나  숨기고 산다 (이길원·시인) +== 자화상·2== 전신이 검은 까마귀 까마귀는 까치와 다르다 마른 가지 끝에 높이 앉아 먼 설원을 굽어보는 저 형형한 눈, 고독한 이마 그리고 날카로운 부리. 얼어붙은 지상에는 그 어디에도 낱알 한 톨 보이지 않지만 그대 차라리 눈발을 뒤지다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까치처럼 인가의 안마당을 넘보진 않는다 검을 테면  철저하게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 겨울 되자 온 세상 수북히 눈이 내려 저마다 하얗게 하얗게 분장하지만 나는  빈가지 끝에 홀로 앉아 말없이 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 검은 까마귀가 되리라 (오세영·시인, 1942-)
926    <할아버지> 시모음 댓글:  조회:4583  추천:0  2015-04-10
+ 할아버지 연장통  창고를 청소하다  눈에 익은 연장통을 보았다.  어릴 때 타던 세발자전거와 나란히 놓인  할아버지 손때 묻은 연장통.  - 세상에 쓸모 없는 물건이란 없는 거란다.  할아버지께선 늘 말씀하셨지.  연필깎이로 깎이지 않는 몽당연필도  밑창이 떨어진 낡은 내 운동화도  할아버지 손길만 거치면  뭐든 제 몫을 해내었지.  그래, 세상엔  쓸모 없는 물건이란 없는 거야.  환한 얼굴로 기뻐할 사촌동생을 떠올리며  할아버지 연장으로  세발자전거를 조이고 닦는다.  창고 속 먼지 쌓인 할아버지 연장통이  새삼 더 크게 보인다.   (강지인·아동문학가) + 할아버지와 시골집 겨울 방학 때 시골 할아버지 집에 갔지요 시골집도 할아버지를 닮아 나를 반겼어요 흰 눈 덮인 지붕은 할아버지 머리 같았고요 틈이 난 싸리문은 할아버지 이 같았지요 금이 간 흙벽은 주름진 할아버지 얼굴 같았고요 처마 끝의 고드름은 할아버지 수염 같았어요 아침에 일어나자 할아버지는 면도기로 수염을 쓱쓱 깎았고요 시골집은 햇살로 고드름을 살살 깎았지요 (김용삼·아동문학가) + 우리 할아버지 시간  약수터 갈 시간이  노인정 갈 시간이  진지 드실 시간이  9시 뉴스 나올 시간이  기다리시는 우리 할아버지에겐  한 발 한 발 느리게 다가온다.  뭐든지 미리 준비하시는 할아버지  시간을 미리 끌어다 쌓아두셔서  꺼내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다.  오늘은 내가  할아버지랑 장기도 두고  모시고 나들이도 해야겠다  시간을 먼저 써버려야  쌓아두시지 못할 테니까.  (배정순·아동문학가) + 돋보기 신문 속의 글자들 할아버지 눈앞에서 장난친다. 가물가물 작아지고 흐려지고 할아버지는 가늘게, 크게 눈 뜨며 겁주지만 글자들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 영호야, 돋보기 좀 가져오렴. 그제야 꼼짝 못하고 착해진 글자들. (정은미·아동문학가) + 보청기  할아버지 큰 귓속에 작은 귀 하나 닫힌 문을 삐그덕 열어 줄 마음이 넓은 귀 새들 노래, 바람 노래 다 옮겨 놓는 마음이 넉넉한 귀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우리들 사랑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또박또박 전해 주는 마음이 착한 귀. (한상순·아동문학가) + 발씻기 숙제  가을걷이 끝난 뒤 허리병이 도져 병원에 입원한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발을 엄마가 닦아 드립니다 콩 한 가마니 불끈 들어올릴 때 단단한 버팀목이었을 장딴지가 마른 삭정이 같습니다 바람 불면 쇄쇄 소리가 날 것 같은 마른 삭정이에서 뻗어 내린 잔가지 같은 외할아버지의 발 엄마는 조심조심 외할아버지의 발을 닦습니다 가끔 학교에서 내주는 부모님 발 씻겨 드리기 숙제, 엄마는 어렸을 때 미뤄 둔 그 숙제를 이제 하나 봅니다                (한상순·아동문학가) + 할아버지 자전거 뒤꼍에서 녹슬고 있는 할아버지 자전거 가만히 바큇살 돌려봅니다 그르르 그르르...... 가래 끓는 소리가 납니다 할아버지 몸을 닦아주시는 엄마처럼 자전거를 닦아 봅니다 손잡이 발판 의자......  할아버지 손때가 꼬질꼬질 남아있습니다 자전거를 할아버지 방문 앞에 올려놓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일어나실 것만 같습니다 (김애란·아동문학가) + 그늘 감나무 그늘에 멍석을 깔고 할머니들 재미난 이야기꽃 피우고. 감나무 그늘에 자리를 깔고 할아버지들 하루 종일 장이야 멍이야.  (최동안·강원도 강릉시 옥천 초등학교, 1970년 작품) + 조문(弔文)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 이 동네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프도록 야문 길이었다 돌아가셨을 때 문상도 못한 나는 마루 끝에 앉아,  할아버지네 고추밭으로 올라가는 비탈,  오래 보고 있다. 지게 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할아버지가 오르내릴  때 풀들은  옆으로 슬쩍 비켜 앉아 지그재그로 길을 터주곤 했다 비탈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던 그 길은  여름 내내 바지 걷어붙인 할아버지 정강이에  볼록하게 돋던 핏줄같이 파르스름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비탈길을 힘겹게 밟고 올라가던  느린 발소리와 끙, 하던 안간힘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그만 길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풀들이 우북하게 수의를 해 입힌 길,  지금은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 위로 조의를 표하듯 산그늘이 엎드려 절하는 저녁이다. (안도현·시인) 
925    <술> 시모음 댓글:  조회:4158  추천:1  2015-04-10
  - 술에 관한 시 -   + 선생님과 막걸리 해가 중천에 있고 겨울은 시작되었다 네모난 창에 등을 대고 언덕 내리막길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앙상한 미루나무 아래로 걸어 올라오시는 선생님 필경 우리 담임 선생님이셨다 울타리도 죄다 없어진 우리 집을 묻지도 않고 찾아오신 그 날 엄마는 신작로 중앙상회까지 내려가 오징어를 사왔다 콩콩 곤두박질 치는 심장은 곤로 속 심지보다 더 뜨거웠다 양조장집에 가서 막걸리를 두 됫박 넘게 받아오고 선생님은 오징어회를 맵지도 않은지 잘도 드셨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는 거지 나는 선생님이 떠난 후의 각오를 새롭게 했다 또 양은 주전자를 가지고 막걸리를 받아왔다 바닥에 쏟고 몇 번은 입을 대고 빨아먹었다 선생님은 두 번째 주전자마저 다 비우고서야 일어나셨다 무슨 말이 오갔을까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로든 도망쳐야 하는데 그날 밤 엄마는 아무말 없었다 그리고 한달 뒤 중학교 입학원서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그날 느이 담임이 와서 가지도 않고 막걸리만 마셨는데 막걸리 잔을 비울 때마다 너는 꼭 공부시켜야 한다고 하더라 지긋지긋한 술 느 아버지도 모자라 이젠 담임까지 와서 술타령이냐 나의 은인 담임 선생님 아마 그때부터 술을 가까이 하신 것일까 슬픔의 강 너머로 나의 선생님이 손짓한다 (최나혜·시인) + 술과의 화해  나는 요즘 고요하고 섬세하게 외롭다  나는 한때  어떤 적의가 나를 키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크기 위해 부지런히  싸울 상대를 만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그때는 애인조차 원수 삼았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솔직히 말해서 먹고 살만해지니까  원수 삼던 세상의 졸렬한 인간들이 우스워지고  더러 측은해지기도 하면서  나는 화해했다  너그러이 용서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더 크고 싶었으므로  대신 술이라도 원수 삼기로 했었다  요컨대 애들은 싸워야 큰다니까  내가 이를 갈면서  원수의 술을 마시고 씹고 토해내는 동안  세상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었고  책들은 늘어나거나 불태워졌으며  머리는 텅 비고 시는 시시해지고  어느 볼장 다 본,  고요하고 섬세한 새벽  나는 결국 술과도 화해해야 했다  이제는 더 크고 싶지 않은 나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나는 득도한 것일까  화해, 나는 용서의 다른 표현이라고 강변하지만  비겁한 타협이라고 굴복이라고  개량주의라고 몰아붙여도 할 수 없다  확실히 나는 극우도 극좌도 아닌 것이다  적이 없는 생애는 쓸쓸히 시들어간다  고요하고 섬세하게 외롭다  (강연호·시인, 1962-) +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은  나뭇잎 한 바구니나 화장품 같은 게 먹고 싶다  그리고...... 말들은 무엇 하려 했던가  유리창처럼 멈춰 서는 자책의 자객들......  한낮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누워 꽃나무들에게 사과한다  지난 저녁부터의 발소리와 입술을,  그 얕은 신분을  외로움에 성실하지 못했던,  미안해 그게 실은 내 본심인가봐  아무래도  책상 밑이나 신발장 속 같은  좀 더 깊은 데 들어가 자야겠다  그러한 동안 그대여 나를 버려다오 아무래도 그게  그나마 아름답겠으니  (김경미·시인, 1959-)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 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황지우·시인, 1952-) + 술 어젯밤 이슥하도록 동무들과 진탕 퍼마신 술 앙금으로 남은 숙취로 온몸이 돌덩이 같다 조금만 절제하면 좋았을 것을.... 늘 한발 뒤늦은 후회  술과 인연을 맺은 지도  삼십 년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녀석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한순간 참 얄밉다가도 노을이 지면 살짝 그리워지는  애증(愛憎)의 신비한 벗 술이여! (정연복, 1957-)       + 막걸리 홀로 마시는 막걸리도 내게는 과분한 행복이지만 벗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더욱 황홀한 기쁨이다 나를 내 동무 삼아 집에서 혼자 따라 마시는 서울막걸리는  왠지 쓸쓸한 우윳빛 하지만 벗과 눈빛 맞대고 서로의 잔에 수북히 부어주는  서울막걸리는  색깔부터 확 다르다 벗과 다정히 주고받는 투박한 술잔에 담긴 서울막걸리의 색깔은 남루한 분위기의  희뿌연 술집 조명 아래에서도 왜 그리도 눈부신지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뽀얀 살결 같다 + 소주 나를 빼닮아 잠잠히  투명한 영혼의 그대여 삶이 즐겁고 기쁠 때   마음이 힘들고 외로움에 겨울 때면 얼마든지 나를 들이켜도 좋으리 언제든지 그대 가까이  그대의 호명(呼名) 기다리고 있나니 그대 천 원 짜리 낡은 지폐로 나를 찾아와서 동그랗게 이 몸 안아 주면 나 그대의 좋은 벗 되어주리 애오라지 하나 간절한 소원 있다면 내가 행여 그대의 몸에  몹쓸 독이 되지 않는 것 그대의 귀한 생명을 응원하는 맑고 순수한 기운이 되는 것 그래서 그대와 나의  생명의 빛깔이 서로 닮아가는 것 + 술 어젯밤 이슥하도록 동무들과 진탕 퍼마신 술 앙금으로 남은 숙취로 온몸이 돌덩이 같다 조금만 절제하면 좋았을 것을.... 늘 한발 뒤늦은 후회  술과 인연을 맺은 지도  삼십 년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녀석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한순간 참 얄밉다가도 노을이 지면 살짝 그리워지는   애증(愛憎)의 신비한 벗 술이여! + 인생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눈물 같은 소주를 마시며 잠시 슬픔과 벗할지언정   긴 한숨은 토하지 않기로 하자 아롱아롱 꽃잎 지고서도 참 의연한 모습의  저 나무들의 잎새들처럼  푸른빛 마음으로 살기로 하자 세월은  훠이훠이 잘도 흘러 저 잎새들도 머잖아 낙엽인 것을 + 가벼운 슬픔 이틀이나 사흘 걸러 늦은 밤 막걸리를 마십니다 뽕짝 테이프를 들으며 쉬엄쉬엄 마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빛 술병에 담긴 750밀리리터 서울 막걸리  한 병이 동날 무렵이면 약간 취기가 돌며 스르르 삶의 긴장이 풀립니다 가슴 짓누르던 근심과 불안의 그늘이 옅어집니다  달랑 천 원이면 해결되는 내 생의 슬픔입니다. 이렇듯  나의 슬픔은 참 가볍습니다. + 도봉산에서 어둠이 사르르 커튼처럼 내리는  도봉산 자운봉 오르는 비스듬한 길 중턱 이제는 정이 든  바위들 틈에 앉아 막걸리 한 잔의 행복한 성찬을 차렸다 저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집마다 귀가(歸家)의 불빛은 점점이 포근한데 저기 우람한 산봉우리는  말이 없네     + 땅콩 세상 욕심과 거리가 먼 그 친구도 정 붙일 욕심 하나 필요했을까 호프집에 들어가면 500cc 생맥주 몇 잔에 허름한 안주 하나 시키는 것은 우리의 오랜 관습이건만 어쩌다 술자리 무르익어  호프 한 잔씩이라도 더하는 날엔 뿌듯하게 놓여 있던 안주도 어느새 우리의 인생살이 마냥 가난한 바닥을 드러내는데 때마침, 아롱아롱 주기(酒氣) 너머 벗의 당당하고 또렷한 외침 "여기, 땅콩 좀 더 갖다 주세요." 참 신기하게도 친구의 욕심은 늘 채워진다 불경기에 장사하기 힘들 텐데  싫다는 내색 없이 수북히 땅콩 한 줌   선물처럼 얹어놓고 가는 술집 주인의 넉넉한 손길 그래서 오늘도  벗들과의 행복한 술자리   + 아차산 손두부 방금 쪄낸 아차산 할아버지 집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툼한 손두부 한 모에 걸쭉한 막걸리 한 잔 따라놓고 벗과 마주앉아 도란도란 대화의 꽃 피우는 날은 고단한 인생살이 온갖 시름이야 잠시 내려놓아도 좋은 행복한 축제일 허름한 옷차림의 서민들과 하산 길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의 구수한 대화를 귀동냥하며 술맛은 점점 좋아지는데 자꾸만 더 먹으라며 내 앞의 종지그릇에 두부 한 점 살며시 담아 주는 벗의 다정한 마음에 누추한 할아버지 집은 어느새 지상 천국이 되네 + 오라, 인간의 집으로 여기는 인생 열차의   간이역 같은 곳 아차산 산행길의  가빴던 숨 잠시 고르며 한 구비 쉬었다 가는 고향 마을 사랑방 같은 곳   선한 눈빛의 할아버지가  사십 여 년 정성으로 빚어 오신 군침 도는 손두부 한 모 앞에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어렴풋한 첫사랑 연인의 뽀얀 살결 같은 우윳빛 서울막걸리 한 잔    주거니받거니 하며 기분 좋게 달아오르는 취기(醉氣)에 세상 살맛 새록새록 움트는 곳 한세월 살면서 켜켜이 쌓인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의 짐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내보이며 순수한 동심으로 되돌아가 낡은 천 원 짜리 지폐 몇 장뿐인 지갑이 얇은 사람도 이곳에 들어서면 어느새 마음만은 넉넉한 부자가 되는 곳 오라,  세상의 벗들이여 사시사철 아무 때나 들러도  소박한 인정(人情)이 넘실대는   따뜻한 인간의 집 아차산 할아버지 손두부집으로
924    <결혼 축시> 모음 댓글:  조회:4368  추천:0  2015-04-10
+ 행복하여라  그분이 맺어 주셨을까 오누이같이 다정한 두 사람 드넓은 우주에서  만난 그 예쁜 인연 단풍의 불덩이로 익어 오늘 백년가약을 맺네. 세상살이 희로애락 함께하는 한 쌍의 원앙(鴛鴦)으로 이 지상에서 저 하늘까지 세월의 이랑마다 사랑의 꽃씨 심으며 행복하여라 영원히 행복하여라 + 사랑은 아름다워라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으로 빛나는 저 두 송이 꽃을 보라 조각상 같은 용모의 듬직한 신랑  천사의 자태를 빼닮은 우아한 신부 원앙(鴛鴦)의 모습 벌써 완연한  한 쌍의 선남선녀.  사랑으로 눈부신 너희 있어 지금 우리들의 가슴은 고동치고 온 우주도 한순간 고요히 숨 멎으니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느낀다 사랑으로 하나 되는 둘의 영혼 속에 거룩한 신성(神性) 깃들어 있음을 우리는 또한 믿는다 모든 것 뛰어넘는 사랑의 힘을.  꽃 피는 봄날 있으면 쓸쓸히 낙엽 지는 날도 있어 이따금 닥쳐올 아픔과 시련의 때에도 보이지 않는 신뢰를 보석으로 여기고 서로를 토닥이는 따스한 위로와 무엇이든 감사하는 깊고 큰마음으로 소박한 사랑의 둥지를 틀어 행복하고 명랑한 자식들을 기르고  넘치는 양식은 이웃에게도 베풀며 백년해로(百年偕老)하여라 먼 훗날에도 사랑의 전설로 길이 남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쌍이 되어라.  + 아름다운 부부  몇 년의 우정이 자라 예쁜 사랑이 움트더니 오늘은 그 사랑 활짝 피어 백년가약을 맺는 복되고 복된 날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한  선남선녀의 결혼에  하늘 그분께서도 기쁨을 감추실 수 없는가 티없이 맑고 푸른 하늘    초록빛 잎새들을 하객(賀客)으로 보내 주시었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예의 바르고 모든 것  넉넉히 품을 줄 아는 큰마음으로 첫눈에도 신뢰감이 가는 신랑 엄마 아빠의 좋은 성품 쏙 닮아 이해심이 바다 같고 현모양처의 기품이 벌써 드러나는  참 우아한 신부   아무래도 두 사람은 천생연분(天生緣分)인가 보다. 꽃은 피고 지고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지만 사랑은 세월 너머 영원한 것 세상살이 희로애락의 동반자로 한평생 변치 않을 사랑을 맹세하는 너희 두 사람에게 하늘의 축복 있으리니, 서로의 장점보다 약점을  따듯이 보듬는 착한 사랑 삶이 순탄할 때보다도  더러 슬픔과 근심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한마음, 한 믿음을 더욱 굳세게 지켜 가는 깊은 사랑 아들 딸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되 세상의 그늘지고 아픈 구석도  살며시 돌아볼 줄 아는 넓은 사랑으로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겸손히 보여주는  아름다운 부부 되어라. + 사랑의 기쁨 만 삼 년의 풋풋했던 연애 알뜰히 열매 맺어  오월의 따순 햇살 아래 연둣빛 이파리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이제 어엿한 부부 되는  눈부신 한 쌍의 선남선녀(善男善女) 눈에 쏙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연인이다가도 때로는 누나 같고 엄마 같기도 한 오늘 따라 더욱 아리따운  자태의 신부  가끔은 무뚝뚝한 표정이어도 아가처럼 맑은 영혼에 속은 계란 노른자처럼 꽉 차서 한평생의 길동무 삼고 싶은 참 믿음직한 모습의 신랑  다정한 오누이인 듯 닮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점도 참 많은  그대 두 사람은 반쪽과 반쪽이 만나 보기 좋은 하나 되라고 하늘이 맺어준 연(緣). 마음과 마음 모아 알뜰살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영혼과 영혼 잇대어 늘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라 살아가다 보면 이따금 드리울 쓸쓸한 그림자 속에서도 광화문에서 첫 인연을 맺던 순간의 가슴 설렘 그 기억으로 천 날의 연애를 키운 그 정성으로 지금은 보름달같이 탐스러운  그대들의 육체 그믐달로 이우는 날 너머까지 천 년 만 년 두 사람의 사랑 영원하여라 + 사랑의 기쁨  초록으로 눈부신 오월의 세상은 아름다워라 사랑으로 눈부신 오월의 신랑 신부는 더욱 아름다워라 순백의 웨딩드레스에 싸여 지상을 거니는 천사의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신랑에게 다가서는  코스모스처럼 단아한 신부  지금 이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신부를 바라보는   바위같이 당당하고 믿음직한 모습에 순한 눈빛의 신랑  광활한 우주 속 수많은 사람들 중에   서로의 반쪽인 두 사람이 만나 연정(戀情) 새록새록 쌓으며   다정히 한 쌍의 연인이더니 오늘은 그 예쁜 연애  보란 듯이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어 세상 끝까지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기쁘고 복된 날. 오월의 하늘 아래 연초록 잎새들의 응원의 박수 받으며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하나니, 우리 사는 이 곳은 꽃 피고 낙엽 지는 기쁨과 슬픔 알록달록한 세상 삶의 행복에 겨운 날의  두 사람의 다정한 동행(同行)  이따금 닥쳐올 시련과 아픔의 날에도 늘 그 모습 그대로이기를  초록빛 그 하나로 영원을 사는  저 오월의 나무 잎새들같이 너희 둘의 사랑도 수백, 수천 년 푸르고 또 푸르기를. + 시월의 신랑 신부에게  서글서글한 눈매, 듬직한 모습의 신랑 코스모스처럼 순하고 명랑한 신부 이 두 반쪽이 만나 하나의 사랑으로 꽃 피는 오늘은 참 아름답고 복된 날 어쩌면 이리도 잘 어울리는 천생연분의 짝인지 꼭 다정한 오누이만 같아라 세상 끝날까지 변치 않을 사랑의 맹세 앞에   오늘 따라 시월의 하늘 더 푸르고 시월의 산들바람 더욱 싱그러워라.    이제 막 한 쌍의 원앙(鴛鴦) 되어   힘차게 날갯짓하는 그대들에게 길이길이 하늘과 땅의 축복 있으리니  건강과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치지 않는   행복한 사랑의 집 한 채 지으며,     겉으로 빛나는 사랑보다는 들국화 닮아 은은히 향기로운 사랑살이 엮어라 살아가다 이따금 궂은 날 오면  서로 믿고 따습게 위로하며 오히려 참사랑의 기쁨을 맛보아라. 아직은 한갓 실개천 같은 그대들의 작고 예쁜 그 사랑 알뜰히 보듬어 키워 수백 수천, 아니 수만의 사람들에게 사랑의 기쁨과 행복을 전하는 큰 강이 되어라 너른 바다 되어라 +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금 나의 작은 가슴은 사랑의 행복으로  한순간 터질 것만 같습니다   백설(白雪)의 눈부신 웨딩드레스에 싸여  한 걸음 한 걸음 공작새의 우아한 자태로 춤추듯  나를 향해 다가오는 너무도 아리따운 당신의 모습은 고스란히 순수의 천사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현재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울러 사랑합니다 어쩌면 아직은 내가 모르는 당신의 과거의 아픔과 약점까지도 나는 소중히 사랑할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먼 훗날 당신의 육체가 시들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겨도 나는 당신을 지금처럼 사랑할 것입니다 햇살 찬란한 기쁨의 날이나 달빛 어스름한 고통의 날에도 나는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할 것입니다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너와 나 다정히 하나 되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나의 연인이여, 나의 신부여 + 햇살     긴 세월 쌓인 그리움의 끝에서 만난 참 귀하고 아름다운 당신과  부부의 인연을 맺는 기쁜 오늘  때마침 하늘은 첫눈을 내려 우리의 사랑을 말없이 축복합니다. 간밤의 혹한에 몸서리쳤을 야윈 가지마다 포근히 내려앉은 따순 햇살 있어 나목(裸木)은 쓸쓸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가난하여도 사랑은 찬란하고 복된 것 한세상 살아가면서 굳이 자랑할 것 하나 있다면 우리의 목숨 지는 그 날까지 기쁜 날이나 슬픈 날에도 한결같은 사랑뿐이기를 바랍니다. 드넓은 세상의  한 점 작은 우리의 사랑이겠지만 그 사랑으로 우리는 한줄기 따스한 햇살이 되어 세상을 밝게 비출 것입니다.
923    <어버이날> 시모음 댓글:  조회:4955  추천:0  2015-04-10
      어버이날 시모음                                                      새   벽  (乾)                                                             --- 어 버 이 날                                                                                                                                                                                아 버 님                                         아 버 님                                       아 버 님 은,ㅡ                                                 남 들 을  위 한  하 늘,        그 렇 게 도  성 스 럽 게   펼 쳐  주 셨 소 이 다...                                   아 버 님                                          아 버 님                                          아 버 님 은,ㅡ                               자 신 을  위 한  하 늘,               단   한 자 락 도  못 갖 고  가 셨 소 이 다...                                          아   ㅡ  버  ㅡ  님  !  ㅡㅡㅡ                                                                (竹琳 . 김승종 시인. 1963~)               새벽(坤)                                                                                                                                                            어 머 님                                                     어 머 님                                                          어 머 님 은ㅡ                                          남 들 을  위 한  종 을,                       그 렇 게 도  수 천 만 번   쳐 주 셨 소 이 다 ...                                                   어 머 님                                                         어 머 님                                                         어 머 님 은ㅡ                                           자 신 을  위 한   종 은,                       단 한 번 도   못 쳐 보 고   가 셨 소 이 다...                                                                                                   어 ㅡ 머  ㅡ 님 ㅡㅡㅡ                                      (中國 . 延邊 . 竹琳 - 金勝鐘 詩之直, 1963년~) ♣ 엄마 ♣ 엄마  듣기만 해도  정겨운 이름입니다.  엄마는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식지 않는 사랑을  마르지 않는 사랑을 줍니다  엄마는 나의 온 세상입니다.  빛입니다  햇살입니다  고향입니다  그러나  난 엄마를 위해  내어준 게 없습니다  때때로  엄마 눈에 깊은 눈물  고이게 하고...  엄마  언제나 불러도  샘솟는 샘물입니다  맑은 옹달샘입니다  엄마는 내 잘못  다 용서해 주시고  안아 주십니다  엄마의  그 뜨거운 사랑으로  온 세상의 불신은  환하게 녹아 내립니다.  엄마, 엄마  아름다운 별이 있는 밤  엄마 품에  포옥 안기어 잠들고 싶어요  엄마, 엄마  부를수록 충만하고  눈물이 솟구치는  가슴저린 이름입니다.  (김세실·시인, 1956-)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정채봉·아동문학가, 1946-2001)   ♣ 노근이 엄마♣ 내 가장 친한 친구 노근이 엄마가 지하철역 남자 화장실 청소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부터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오줌을 깨끗하게 눈다 단 한 방울의 오줌도 변기 밖으로 흘리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노근이 엄마가 원래 변기는 더러운 게 아니다 사람이 변기를 더럽게 하는 거다 사람의 더러운 오줌을 모조리 다 받아주는 변기가 오히려 착하다 니는 변기처럼 그런 착한 사람이 되거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정호승·시인, 1950-)   ♥ 풀꽃 엄마♥  왜 지금까지 평화롭게만 보이던  풀밭이 싸움판으로 보이기  시작했을까?  시들어 가는 풀섶에  모여앉아 조잘거리는  새들의 소리가 왜 노래로  들리지 않는 걸까?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까지  손아귀에 풀씨를 힘껏  움켜쥐고 있는 풀대궁  익은 풀씨들을 새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 숙인 채 안간힘을 다하는  풀대궁  얘들아 잘 가거라  그리고 잘 살아야 한다  뒷전으로 뒷전으로  땅을 향해  풀씨들을 떠나보내고 있는  풀, 풀꽃, 풀꽃 엄마.  (나태주·시인, 1945-) ♥ 엄마의 전화♥ 잠도 덜 깬 아직 이른 새벽  엄마한테서 장거리전화가 왔다  서울엔 눈이 많이 왔다던데  차를 가지고 출근할 거냐고  설마 그 말씀만을 하시려고  아니다 전화하신 게 아니다  목소리 사이사이 엄마 마음  헤아리려 가슴 기울인다  웬일로 엄마는 전화하셨나  무슨 말씀 하고싶으셨던가  창 밖은 아직 일러 어둑한데  엄마한테서 새벽전화가 왔다  (강인호·시인)   ♥ 엄마 ♥ 검정고무신 손에 움켜쥐고  삼십리 길을 걸어왔네  엄마는 버선발로 뛰쳐나오시더니  가슴이 아리도록 끌어안으시네  "아이구 내 새끼"  "아이구 내 새끼"  돌에 채인 발이 아파와  깨끼발로 선 채로  "엄마 배고파, 밥 주라"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엄마는 말없이  울기만 하시네.  (공석진·시인)   ♠ 엄마의 푸성귀♠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장바닥에 앉아  채소 파는 저 할매  울 엄마 같네  울 엄마는  장날마다  푸성귀 뜯어  시장에 가셨지  엄마의 푸성귀는  내 공책이 되고 책이 되어  오늘의 내가 되었네  저 할매 보니  울 엄마가 보고 싶어  이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울 엄마  무덤가에  술 한 잔  눈물 몇 방울  뿌리는 게 고작이네.  (이문조·시인) ♠ 엄마가 된다는 것♠ 어느 날 글쎄 내가 아이들이 흘린 밥을 주워 먹고 먹다 남은 반찬이 아까워 밥을 한 그릇 더 먹는 거야 입고 싶은 옷을 사기 위해 팍팍 돈을 쓰던 내가 아예 옷가게를 피해가고 좋은 것 깨끗한 것만 찾고 더러운 것은 내 일이 아니었는데 그 반대가 되는 거야 아이가 사달라고 하면 줄서는 것도 지키지 않아 예전에 엄마가 그러면 엄마! 핀잔주며 잔소리를 했는데 내가 그렇게 되는 거야 아이가 까무러치게 울면 이해할 수 없어, 아무데서나 가슴을 꺼내 젖을 물리는 거야 뭔가 사라져가고 새로운 게 나를 차지하는 거야 이런 적도 있어, 초록잎이 아이에게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이가 아픈 거야, 그래서 공터에 가서 풀을 베다가 침대 밑에 깔아주기도 했어 엄마도 태어나는 거야 (이성이·시인)   ♠ 엄마, 난 끝까지♠  산다는 건 평생  생마늘을 까는 일이라고  엄마가 그랬어  서울이라는 매운 도시의 한 구석에서  마늘을 까며 내가 눈물 흘릴 때  작은 어촌 내가 자라던 방안에 앉아  엄마도 나처럼 마늘을 까고 있겠지  엄마는 내 부적이야  마늘처럼 액을 막아 주는  붉은 상형문자  내가  길을 잃고 어둠에 빠졌을 때  엄마가 그랬어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지만  연꽃은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엄마는 눈부신 내 등대야  등대가 아름다운 것은  길 잃은 배가 있기 때문이지  엄마가 빛을 보내 줘도  난 영원히 길을 잃을 테야  엄마, 난 끝까지 없는 길을 가겠어  (김태희·시인) ♧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언제나 식기 전에 밥을 먹었었다. 얼룩 묻은 옷을 입은 적도 없었고 전화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 있었고 늦도록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날마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했다. 날마다 집을 치웠었다. 장난감에 걸려 넘어진 적도 없었고, 자장가는 오래 전에 잊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어떤 풀에 독이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예방 주사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누가 나한테 토하고, 내 급소를 때리고 침을 뱉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이빨로 깨물고, 오줌을 싸고 손가락으로 나를 꼬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있었다. 내 생각과 몸까지도. 울부짖는 아이를 두 팔로 눌러 의사가 진찰을 하거나 주사를 놓게 한 적이 없었다. 눈물 어린 눈을 보면서 함께 운 적이 없었다. 단순한 웃음에도 그토록 기뻐한 적이 없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깰까봐 언제까지나 두 팔로 안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플 때 대신 아파 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찢어진 적이 없었다. 그토록 작은 존재가 그토록 많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게 될 줄 결코 알지 못했었다. 내 자신이 엄마가 되는 것을 그토록 행복하게 여길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내 몸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을 갖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몰랐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감정인지 몰랐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그 기쁨, 그 가슴 아픔, 그 경이로움, 그 성취감을 결코 알지 못했었다. 그토록 많은 감정들을.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작자 미상)   ♧ 엄마♧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배우는 말 세상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엄마.... (정연복·시인, 1957-)    손택수 시인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 외   ♧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시인, 1970-)   ♧ 아비♧  밥 대신 소금을 넘기고 싶을 때가 있다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에게 다그치며  굵은 소금 한 숟갈  입 속에 털어넣고 싶을 때가 있다  쓴맛 좀 봐야 한다고  내가 나를 손보지 않으면 누가 손보냐고  찌그러진 빈 그릇같이 시퍼렇게 녹슬어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내가 나를 질책하는 소리,  내 속으로 쩌렁쩌렁 울린다  이승이 가혹한가,  소금을 꾸역꾸역 넘길지라도  그러나 아비는 울면 안 된다  (김충규·시인, 1965-)   ♧ 아버지 보약 ♧ 형과 내가 드리는  아침, 저녁인사 한마디면  쌓인 피로 다 풀린다는 아버지  '58년 개띠'입니다. 나이는 마흔하고 아홉입니다.  이제 오십 밑자리 깔아 놓았다는  아버지 보약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아버지, 잘 주무셨어요?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아버지, 잘 다녀오셨어요?  (서정홍·아동문학가, 1958-)     ⊙ 못 위의 잠 ⊙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 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시인, 1966-)   ⊙ 아버지의 등⊙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하청호·아동문학가)   ⊙ 희망이네 가정 조사 ⊙ 우★ 아버지의 밥그릇 ★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안효희·시인, 1958-)   ★ 엄마는 육군 상병★ 고운 얼굴 이마에 세 가닥 주름  엄마는 육군 상병 아빠의 술 담배가 한 가닥  말썽꾸러기 내 동생이 한 가닥 공부 않고 컴퓨터만 한다고  내가 그은 한 가닥 셋이서 붙여드린 상병 계급장 지친 몸 눕히시고 코를 고실 때  열심히 가만가만 문질렀지만 조금도 지워지지 않는  상병 계급장 (심재기·아동문학가, 1938-)   ★ 어머니 1★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정한모·시인, 1923-1991)   ♥ 매달려 있는 것♥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나뭇잎.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물방울. 엄마한테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나. (신새별·아동문학가)   ♡ 엄마♡ 엄마는 아무리 불러도 좋다. 화나는 일도 짜증나는 일도 '엄마' 하고 부르면 다 풀린다. 엄마 곁에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무서운 게 없다. (서정홍·아동문학가)   ♥ 엄마의 등♥ 세벽 네 시 반이면 문을 여는 김밥 가게 가게 주인은 우리 엄마 엄마는 등에 혹이 달린 곱추랍니다 다 일어서도 내 키만한 엄마 김밥 한 줄 꾹꾹 눌러 쌀 때마다 등에 멘 혹이 무거워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의 혹을 살짝 내려놓고 싶습니다 끝내 메고 있어야 할 엄마의 혹 속엔 더 자라지 못한 엄마의 키가 돌돌 말려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나는 도르르 말린 엄마의 키를 꺼내 쭈욱 늘려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루만이라도 꼭 오늘 하루만이라도 곱추등 쫘악 펴고 한잠 푹 주무시게 하고 싶습니다. (한상순·아동문학가)   ♥ 밥 ♥ 어머니 누워 계신 봉분(封墳)  고봉밥 같다 꽁보리밥  풋나물죽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나는 배 안 고프다  남아돌던  어머니의 밥 저승에 가셔도 배곯으셨나  옆구리가 약간 기울었다  (이무원·시인, 1942-)   ♣ 어머니♣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박경리·소설가, 1926~2008)  
922    <우체국> 시모음 댓글:  조회:5386  추천:0  2015-04-10
사람이 사람을 견디게 한다 강경화    길을 걷는다 사람이 그리운 날엔 수많은 이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도 그 뒤엔 늘 그리움 채우는 바람이 머문다   한참을 서 있는 우체국 앞 계단은 기다렸다 떠나보내는데 익숙해진 모습이다 어쩌다 나 그대에게 길들여진 길처럼   닮은 얼굴 하나 둘 우체통에 밀어 넣고 한 칸씩 볕을 따라 올라서서 본 거리는 줄에서 빗나간 글씨처럼 눈빛들이 살아있다   매양 담담히 스치는 이들이지만 때로는 사람이 사람을 견디게 한다 오늘도 거리를 나선다 참 푸른 바람 인다           북해 항로 강우식   먹고 살기 위하여 유민이 되어 식솔들을 이끌고 이 항로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던 아버지처럼 오늘 나는 한 마리 회유어로 북해 항로의 짙고 푸르른 막막한 바다 위 선단에 떠 있다. 북으로 오를수록 파고는 높푸르게 하늘과 맞닿고 나는 어이하여 학업도 작파하고 유빙이 칼끝 같은 바다의 끝자락에 떠 흐르는가. 표류하는 내 청춘의 꿈처럼 바다 물빛은 푸르른데 대학노트의 표지마냥 펄럭이는 물결 위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란 부표에 매달려 흔들리는가. 가끔 어디서 왔는지 갈매기조차 고적해 보이는 선창에 기대 휘파람을 호이- 호이 휘- 불면 괜히 젖 뗀 아이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그리워져서 메마른 가슴에도 어쩔 수 없이 글썽 눈물이 고이고 어머니께 그립다는 편지를 길게, 길게 쓰고 싶어도 북해 항로의 어느 바다 위에도 우체국은 없구나. 이 항로에 서면 잃어버린 사랑도 더욱 그리워지는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는 떠나보내지 말았어야지… 지난 여자의 눈 그리메도 선히 떠올려지는구나. 까닭 없이 내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일랑 무조건 여자에게 보상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소맷자락이 허옇게 소금기에 절은 오랜 뱃사람답게 나는 여자가 너무 너무 그리워서 다음 기항지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 여자나 만나 회포를 풀어야 하겠다는 기대를 가져보며 바위 같은 가슴을 탁탁 쳐본다. 북해 항로여, 나는 어느 산모롱이를 돌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갑자기 터져 나온 울음을 쏟듯이 모든 것을 털어낼 그늘이 없어 서럽구나. 갓 서른도 못 넘긴 나이가 괜히 억울하고 서럽구나. 이 바다 때문에 바다에 갇히어 사는 거 같아 서럽구나.       저물녘의 노래 강은교    저물녘에 우리는 가장 다정해진다. 저물녘에 나뭇잎들은 가장 따뜻해지고 저물녘에 물위의 집들은 가장 따뜻한 불을 켜기 시작한다. 저물녘을 걷고 있는 이들이여 저물녘에는 그대의 어머니가 그대를 기다리리라. 저물녘에 그대는 가장 따뜻한 편지 한 장을 들고 저물녘에 그대는 그 편지를 물의 우체국에서 부치리라. 저물녘에는 그림자도 접고 가장 따뜻한 물의 이불을 펴리라. 모든 밤을 끌고 어머니 곁에서.       휘파람 강인한    낡은 풍경을 쓰고 불빛은 꽃씨처럼 가벼이 떨어진다. 풍경 속을 흐르는 키 작은 안개, 소년이 걸어간다. 안개 속에서 그립고 흰 손이 나온다. 바람은 밤에 더욱 상냥하고 소년은 바람이 되어 밤의 우체국 안을 들여다본다. 어디엔가 숨어서 곤한 잠을 자는 내일의 안부, 나지막한 귀로, 풍경이 흔들린다. 하나 둘 먼 등불도 꺼져가고 소년이 띄우는 휘파람 하나 밤바람에 가만히 묻어난다.       안테나 위로 올라간 부처님 강준철   부처님이 법당이 답답하여 안마당을 거닐다가 물 한바가지를 마시고 안테나 위로 날아 올라갔다 수만 가정의 안방으로 부처님이 송신되었다. 그러나 전파 장애로 아무도 부처님을 보지 못했다   갈참나무에 올라가 목이 아프게 노래하던 부처님이 방송국으로 날아가 새로운 버전으로 노래를 불렀으나 이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T.V 수상기 고장으로 보지 못했다 이튿날 조간신문 톱기사에 “보지 못한 시청자들은 www.kbs.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라고 대서특필 되었다   목을 길게 빼고 부처님이 슬금슬금 내 방문 안으로 기어 왔다 그때 전화가 왔다 “우체국입니다. 댁으로 택배된 부처님이 반송되었습니다. 확인하시려면 2번을 누르세요!”   점심 때 국수를 맛있게 먹은 부처님이 민들레 홀씨를 타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들어가 이메일로 송신되었다 대부분 전송 실패로 되돌아 왔다   한사코 고개를 가로 젓던 부처님이 나무에서 추락하여 석간신문으로 배달되었는데 중생들이 광고인 줄 알고 휴지통에 버렸다       장래희망  고경숙    시골 조그만 우체국 창구에 앉아 매일매일 누군가 들고 오는 마음의 중량을 달아 동전 몇 닢 매기는 우표장사 하고 싶다 갯내 묻은 특산김 물량 넘치게 팔아 국장님께 칭찬도 듣고 초등학교 고사리들 저금 걷으러 가다 새로 부임한 총각선생님의 눈길에 얼굴 붉어도 보고 싶다 우체국 계단 제라늄화분에 물 주는 일도 빠뜨리지 말아 언제나 내 자리에서 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르신들 희뿌연 돋보기가 대신 되어 대처에서 보내온 용돈 찾아드리며 함께 뿌듯하고 싶다 타이트스커트 하늘빛 블라우스에 어느 날 눈먼 그대 내 앞자리에 우표 한 장 붙이고 머뭇거리면 못 이기는 척 그의 손을 잡고 풍선처럼 푸른 하늘로 도망치고 싶다 날아가고 싶다   지금부터 한 살씩 거꾸로 먹는다면 아마도 일흔다섯이면 이룰 수 있는 꿈, 장래희망이다.        별에게 묻다 고두현   천왕성에선 평생 낮과 밤을 한 번밖에 못 본다. 마흔두 해 동안 빛이 계속되고 마흔두 해 동안은 또 어둠이 계속된다. 그곳에선 하루가 일생이다.   남해 금산 보리암 절벽에  빗금 치며 꽂히는 별빛 좌선대 등뼈 끝으로 새까만 숯막 타고 또 타서 생애 단 한 번 피고 지는 대꽃 틔울 때까지 너를 기다리며 그립다 그립다   밤새 쓴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 아침 우체국에서 여기까지 길은 얼마나 먼가.       통증 고영민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지요 보내는 사람이 편지 도착 날짜를 정할 수 있다지요 한 달 혹은 일 년, 아니면 몇 십 년 뒤일 수도 있다지요 당신에게 편지 한통을 보냅니다 도착 날짜는 그저 먼 훗날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길 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십 번, 수백 번의 후회가 나에게 왔다가고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쓴 편지 한통을 받겠지요 겉봉을 뜯고 접은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겠지요 그때 나는 지워진 어깨 너머 당신 뒤에 노을처럼 서서 함께 편지를 읽겠습니다 편지가 걸어간 그 느린 걸음으로 내내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한 홉 한 홉 차올랐던 숨을 몰아 내쉬며 손을 내려놓을 즈음 편지 대신 그 앞에 내가 서 있겠습니다       하늘편지  고현수   나는 지금 하늘우체국을 짓습니다 하늘구름을 가져다 우체국을 짓고 우체국 정문 옆에 하얀 우체통을 세울 겁니다 그리고 하얀 등을 만들어 우체국 천장에 달 거에요 또 하나 더 있지요 맑고 맑은 구름만을 모아 우체국아저씨 몇 분을 빚을 거예요 지금 여기 강둑엔 바람집배원과 함께 있지요 알아요? 하늘로 가는 설레임! 잠시 후면 당신햇살마당에 나를 봉한 편지 한 통 놓일 겁니다       효자손  공광규    우체국 앞 가로수 곁에 아낙네가 죽제품 좌판을 벌여 놓았다 대나무로 만든 광주리와 키와 죽침 따위에 섞여 효자손도 눈에 띄었다 건널목 신호등이 황급하게 깜빡이지 않았더라면 그 조그만 대나무 등긁이를 하나 사 왔을지도 모른다 노인성 소양증만 남고 물기 말라 버려 가려운 등을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장난삼아 간질간질 긁어 주던 고사리 같은 손 이 작은 효자손이 어느새 자라서 군대에 갔다 옆에는 나직한 숨결마저 빈자리 어둔 창밖으로 누군가 지나가며 빨리 떠나라고 휴대폰 거는 소리 뒤에서 슬며시 등을 떠미는 듯 보이지 않은 손 벽오동 잎보다 휠씬 커다란 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부드러운 손       0.75평  곽재구   지금은 북쪽으로 간 장기수 이인모 노인은 6·25후 40년 세월을 0.75평짜리 독방에서 살았다 얼마나 좋았을까 그 방의 침침한 공기와 시멘트 가루와 어쩌다 길을 잃고 찾아든 바퀴까지 다 동무가 되었을 것이다 한 몸 누이면 달빛 한줌 뿌릴 공간 없으므로 외로울 틈도 없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편지 올 이도 없으니 우체국 갈 일도 없을 것이다 침대가 놓일 자리 없으니 오지 않는 연인 때문에 긴 밤 속 끓일 일도 없을 것이다 수석이니 난이니 고상한 취미에 넋 놓을 필요 없을 것이고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여줄 리 없으니 남쪽 동포가 IMF 구제금융에 점령당하고 북쪽 동포가 굶주림에 점령당한 사실도 하마 모를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 사과 박스 두 개 밀어 넣으면 숨찰 어두운 공간에서 로댕처럼 팔 괴고 앉아 콩밥도 먹고 똥도 싸고 심심하면 똑딱똑딱 시계초침도 세고 울다가 웃다가 0.75평에서 세상을 떠날 그날까지 바지에 찍 피오줌을 갈기고.       마늘 소포 - 둑길行 ․ 37 외 1편 구재기   도시에서 사시는 은사님께 올해도 마늘 한 접 부쳐 올리련다 보꾹 안쪽에 매달린 마늘 묶음에서 알이 굵은 놈만 골라내어 종합선물 빈 과자갑을 열고 한 접 넉넉하게 마늘을 넣는다 붉은 비닐끈을 알맞게 잘라 배배 꼬아 정성스럽게 싸고 있는 나를 아내는 슬프게 슬프게스리 굽어본다 ‘그까짓 것, 무얼 그리 해마다 보내려오? 차리리 다른 걸 부쳐 드리지‘ 그러나 부쳐 드릴 다른 걸 찾지 못한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비닐끈을 힘껏 잡아당겨 마늘을 묶는다   자전거에 마늘을 싣고 잘도 포장된 도로를 따라 달렸다 우체국에 갔다 창구의 직원이 무엇이냐며 저울대에 올려놓았다 3,230g  1,870원의 요금을 내놓으며 마늘이라고 대답했다 창구의 직원이 소포우편물수령증을 떼어 주고는 마늘값보다도 소포요금이 더 많겠다며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나는 괜스리 부끄러워 쫓겨나듯 우체국을 나왔다   우체국 앞에 햇살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무엇이 아내를 슬프게 하고 무엇이 나를 부끄럽게 하였는가 우체국 앞 구멍가게에 조무래기 몇몇 무리 지어 몰려오더니 마늘 한 접 값도 넘는 천 원짜리 몇으로 아이스크림과 바꾸어 히히거리며 열심히 핥아댔다     기다린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은 내일이면 다시 만나려는 사랑에 한 번 더 믿음을 더한다는 것이다    한 차례 소낙비가 지나간 자리 바람이 불고 낙엽이 촁촁촁 구르는 시월의 끝 무렵 으스스으 햇살조차 떨려오는 날    우체국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한 장의 우표를 사고 싶다는 것은 너로 하여 자못 기다림과 만나는 순간을 얻는다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너의 부름을 넉넉히 한다는 것이다 내일처럼 그렇게 버티어 있다는 것이다       자작나무  권경업      애동대동하던 날 눈 덮힌 잦은 골 백단목 여린 껍질에 서린 사연들 우체국 소인도 없고 더러는 주소도 잊어버린 채 수취인은 먼 도시의 世波 눈가의 잔주름으로 밀려들어 쉬 알아볼 수 없을 아낙   오늘은 그 숲 그 눈밭에서 다 전하지 못했던 사연들 회한으로 일어나 하얀 알몸으로 떨고 있을 잦은골 자작나무       압화 권운지   오래된 책갈피 펼치다 너를 만난다 한 때 이슬 맺히고 번개가 지나가던 몸 비로소 주술이 풀린 듯 고요하구나 내 마음 갈피에도 자국이 깊다   어느 이름 모를 지상의 우체국에서 세상으로 보내는 마지막 편지 속 눈물방울   더 이상 갈 곳 없던 육체의 마지막 그 곳 그 벼랑 위의 꽃     알락꼬리마도요 김경란   남쪽의 섬에서 바닷물에 밀려 편지가 날아왔네 알락꼬리마도요의 길고 가느다란 부리가 발신 우체국 소인消印의 검은 물결에 갇혀 어느 섬의 바다 소리, 따스한 해풍海風 아득히 멀어져 가는 기억의 한 끝을 물고 있었네 파도처럼 찢어지는 봉투 끝자락, 새 발자국만큼 작은 글씨들이 이내 바닷물결에 지워지고 있었네   생生은 언제나 아무렇지 않은 듯 저렇게 고르고 평온한 숨의 물결로 흘러가는데 모래 위로 밀려온 물고기의 아가미에 흔들리던 바다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내 사랑의 폐활량 부끄러운 기억만 모래 위에서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네 소인 자국의 검은 물결에 날아온 알락꼬리마도요만 모래빛 깃털을 반짝이고 있었네       잃어버린 지상을 찾아서 김경미   우체국은 어디쯤인가 편지를 들고   빌딩 옥상에 올라가 퇴근하는 저녁바다를 내려다본다 파도 위로 자동차 불빛들 주황색 구명조끼처럼 헤드라이트 불빛을 껴입은 채 파닥이고 길을 잃었음을 잊은 시든 물고기들이 정거장에서 반복과 번복의 물방울을 서로에게 뿜는다 플라스틱꽃처럼 아무도 마음까지는 젖지 않고 드물게 몇은 흙과 먼지로 빚던 인간의 숨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기억이 깊으면 붉은 폭죽 같은 두통의 생에 시달려야 한다 먼 원양어선들 끝없이 식인의 물고기들을 데려오고 인근해부두에선 날마다 태풍이 숙박계를 쓴다 종이꽃들마다 나무젓가락처럼 자주 다리를 벌리고 언제나 목이 탄다 무슨 일이 일어나긴 날 것인가   어둔 하늘 위 돋아오는 저 빛조각들은 별이 아니라 혹은 일제히 겨눈 총구들인가   혹은 구원의 방주로 불려올라간 우체국인가 내 편지 받을 땅의 몸 맑은 나무들인가 아무도 몰래 어둔 심해 속 손톱처럼 형광빛으로 떠다니는 도망한 땅들인가       별정 우체국 이경희   시장 모퉁이를 돌아들면 별정 우체국이 있다 나는 가끔 아들에게 보낼 우편물을 안고 우체국을 찾곤 하는데 스므 남짓 처녀둘이서 하루 종일 소국같은 웃음을 피워 물고 있는 문방구처럼 차려놓은 소포대 위에 가위 풀 테이프 볼펜 싸인펜 자 일호봉투 빈 소포상자가 어디로 갈지 모를 미지의 골목을 조용히 꿈꾸고 있다 한 중년의 여자가 모양새답지 않게 돋보기를 챙겨 끼고 미지의 골목을 더듬어 찾아가나 보다 꾹꾹 짚어가는 까만 볼펜 끝이 파르르 떨린다   세상의 모든 길들이 봉투 속에서 봉함되는 순간 다시 마음으로 열어가는 따뜻한 길을 본다 길은 점점 더 넓은 곳에서 좁아져 마침내 한점으로 서 있는 어느 막다른 골목끝의 그리운 사람들       어른이니까 나는, 김나영   모 문학상 동시 공모에 응모를 했다 어린아이의 마음쯤이야 어린아이의 눈동자쯤이야 쉽게 훔칠 수 있겠다 싶었다 어른이니까 나는,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렌즈처럼 갈아 끼우고 어린아이의 몸에 나를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어른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최대 관건이니까 혀 짧은 목소리도 천진한 속내처럼 부려놓았다 서둘러 쓴 동시 몇 편을 밀봉해 부치고 우체국을 채 빠져나오기 전 나는 얼른 어른으로 갈아입었다 날렵하게 가슴 환해질 명예와 짭짤한 상금 그 돈이면 몇 달간의 용돈도 되지 싶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따위의 반성은 잠시 서랍 안에 밀쳐두기로 했다 어른이니까 나는, 당선자가 발표되기 며칠 전 나는 어른에서 어린아이로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몇 번을 갈아입고 시상식장으로 가는 환상열차를 타고 '감사합니다, 제게 이런 과분한 상을 주시다니…'  나는 힘차게 달렸지만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어린아이의 세계로 진입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어린아이의 세계를 넘보기엔 비만한 정신에 붉고 두꺼워지는 몸 채워도 채워도 잃어가는 게 늘어나는 어린아이로부터 유배된 어른이니까 나는,       자작리 사생활 김남수   마을 한 채 짓고 싶네, 자작리    입구에 간이우체국 팻말을 바람개비로 매달고 담장 없는 앞마당에 자작나무 우편함을 외발로 세우는 거야 시간마다 열어보는 거야    앞산 가을걷이 소식 뜨락 채마밭 저녁상 차린다는 소식 한 묶음씩 들어앉아 있을 거야 뒤꼍 어미고양이 몸 푸는 시각도 달려와 있을 거야 쉬엄쉬엄 읽으며 밑줄을 긋는 거야 아침이 오는 소리로 답장을 쓰는 거야    편지를 부치러 읍내리로 나갈 일 있겠나 지천으로 배달된 이슬 한 장 솎아다 반짝 우표 붙이고 여치 울음 척척 문질러 봉하는 거야    수취인 : 자작나무 우편함 귀하 발송인 : 자작나무 우편함 드림    자작리 사생활 들통 나겠네 나, 바빠지겠네    간이우체국네자작나무우편함네앞산네채마밭네이슬네여치네어미고양이네    더불어 자작자작 살아가는 속사정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김남숙   받은 편지함 열어 읽은 편지 또 읽으며 담대해지려 했어요 받은 편지함 보낸 편지함 비워내며 아파하지 않으려 했어요 자꾸만 아린 가슴 눈물샘 터뜨리지 않으려 했어요 달라진 것 없는 세상 하고픈 말 듣고픈 말 얼마나 간절해서 이리 목이 메이는가 우체국 가서 보낸 편지 한달 지나 도착하고 다시 한달 지나야 받는 답장 그런 기다림도 있었는데 하루 가고 며칠 가고 몇 주밖에 안 되었는 걸 이리도 마음 졸여 쌓인 정을 비워 내는가 이야기 한 시간들 함께 한 마음들 왜 접속 않는 걸까 무슨 일 있는 걸까 무슨 큰일 있는 걸까       진해 김명인    간밤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던 로타리 옆 카페 취한 나를 누군가 억지로 택시에 태워 숙소로 안내했을 텐데 한낮이 다 되어 깨어나니 엊저녁 헤매던 그 로타리 근처다 화창한 일요일이라 이 오전은 인적도 드물고 차도 듬성듬성한데 함께 술 마시던 친구들 모두 어디로 갔을까 속은 쓰린데 멍하니 혼자뿐이다 건너편 회색 단층의 러시아 풍 오래된 우체국 유리창 안쪽을 기웃거리는데 누군가 있다! 뉘게 부칠 편지를 쓰고 있다! 빛깔 고운 벚 단풍 잎새에 아련한 파도소리로 소인 찍어 배달된 그런 엽서 예전에 나도 받았거니 절로 흥건한 추억이 가을을 담아서 반짝거린다       오래된 약속 김미성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라도 기다려야 하는 내 운명처럼 불쑥 등 뒤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운명은 장난처럼 찾아오길 좋아하니까 좀 늦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지켜지는 약속은 그리 많지 않으므로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가고 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슬프다 사람들은 꼭 지켜야 할 약속을 어긴 채 그것을 잊으려고 우체국에 와서 편지를 쓰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알 수 없는 누군가와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모양이다 오래 익은 버릇처럼 눈 내리는 날엔 나도 모르게 광화문 우체국 앞에 와서 잘 생각나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야만 한다고 고집하곤 한다   기억은 상실해가기 때문에 오늘은 어제나 새롭다 그럼에도 새로운 기억은 또다시 어제의 기억이 된다   그냥 지나쳐 가버린 건 아닐까? 약속한 그 사람이 혹시 나를 못 알아본 건 아닐까? 그래서 스쳐 가버린 건 아닐까? 그렇더라도 눈은 여전히 내리므로 내가 먼저 약속장소를 떠날 수는 없다 눈이 내리는 한 그 사람도 한번쯤 다시 되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약속한 그 사람이 이미 나를 지나쳐갔다 해도 눈 내리는 날 어쩔 수 없이 나는 잊혀져가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려야 한다       황금 물고기 김선진   개포1동 우체국 옆 담벼락을 기둥 삼고 지아비를 잃은 아낙네 앞치마를 두르고 황금붕어를 낚는다 겨울 바람을 막는 펄럭이는 비닐 가리개 안에서 주전자만 기울이면 붕어는 일렬종대로 나란히 헤엄친다 내장은 다 어디 가고 삶은 단팥만 배 터지게 물고 있나 뜨거운 불판 돌리고 뒤집고 또 엎어서 영혼이 빠져 나간 붕어를 팔고 있다 해거름 그림자 길게 누울 때까지 수 없이 붕어를 찍어내도 부부가 함께 낚던 그때만 하겠는가 짧은 해 어둠이 골목으로 마실 나올 때 식어가는 붕어가 약속한 듯 주둥이를 달싹인다.       월간지 김선호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배달된다 작은 별들을 별책부록으로 달고 거무스름한 우체국 소인을 가슴에 찍었다 나는 매달 보름이면 그녀의 스커트 깃을 넘긴다 달에겐 뒷면이 없음을 알리는 원색 화보들이 사랑에 목숨 걸다 퇴락한 여배우처럼 기억만 붙잡고 웃는다 발효된 글자들이 구름에 부딪치고는 허공에서 그림자가 되어 흘러 내린다 운석이 된 시간들은 외계 밖으로 떨어지고 표지에 그려 넣은 새들의 깃털은 지문에 지워졌다 바람 편에선 깨진 거울 이야기가 가득하다 사춘기 때 깨진 이후 물체를 온전히 반사하지 못하는 거울 달아난 조각들은 우주 어느 곳에 박혀있는지. 맞춰지진 않지만 달마다 연재된다 내 몸에 차올랐던 붉은 달은 초승달이 되어 부메랑처럼 날아간다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김소연   네 발 짐승이 고달픈 발을 혓바닥으로 어루만지는 시간. 누군가의 빨아 널은 운동화가 햇볕 아래 말라가는 시간. 그늘만 주어지면 어김없이 헐벗은 개 한 마리가 곤히 잠들지. 몸 바깥의 사물들이 그네처럼 조용히 흔들리고 있어.   (깊은 밤이라는 말은 있는데 왜 깊은 아침이란 말은 없는 걸까)   언덕 위 사원에는 감옥이 있었고, 감옥에는 돌 틈 사이 작은 균열에 대고 감옥 바깥의 사물들에게 끊임없이 혼잣말을 속삭이던 한 공주가 있었대. 감옥은 그녀를 가둘 수 있었겠지만 그녀의 속삭임만은 가둘 수가 없었대. 속삭임은 사람의 퇴화한 향수들을 들어 올려 안개처럼 난분분하게 흩어졌고 언젠간 소낙비처럼 우리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올 거래. 우린 비를 맞겠지. 물비린내를 맡겠지. 자귀나무가 수백 개의 팔을 좍좍 뻗어 이 모든 은혜들을 받아내겠지. 사방천지 검은 나무들이 나무이기를 방면하는 시간이 올 테지.   사람이 보트에 모터를 달기 위해 전념해오던 시간, 강물은 물총새의 날갯짓을 오랫동안 지켜보다 손바닥을 날개처럼 활짝 폈겠지. 그리곤 모난 바위를 동글동글하게 다듬었겠지. 그 바위들이 언덕 위로 굴러 올라가 사원의 탑이 되는 시간. 아무도 여기에 없었을 거야. 언제나 그런 때에 우린 그곳에 있지 않지. 단지 물가에 집을 짓고 어리석음을 자식에게 가르치고 자식의 이마 정중앙에 멍울을 새겨 넣지. 격렬한 질문들을 가슴에 담고 자식들은 낙담한 채 고향을 떠나지. 강물이 보다 두터워지는 또 다른 아침. 물가에 나가 겨드랑이를 씻고 사타구니를 씻는 부모들은 자신의 선의를 반성하지 않은 채 수많은 아침을 맞지.   이제 나는 사원 너머 시장골목 어귀에 먼지를 뽀얗게 얹은 채 졸고 있는 작은 우체국에 갈 거야. 너의 질문에 대한 나의 질문이 시작되는 아침. 우리가 잘못되기 시작한 건 허무를 이해하기 시작한 그때부터가 아닐까. 나는 조용히 아랫입술을 깨물며 돌계단에 앉아 강물에 비친 검은 얼굴을 보고 있어.   (아침에 보던 것들은 다음날 아침에야 다시 볼 수가 있겠지)   오늘은 무얼 할까. 맨발의 사람들이 두 팔을 힘껏 써서 너럭바위에 이불빨래를 너는 시간. 세찬 비는 어제의 일이고 거센 강물은 오늘의 일이 되는 시간.       하늘우체국  김수우    시립묘지 납골당 입구 하늘우체국은 열두 달, 가을이다 오늘도 헐렁한 쉐터를 입은 가을이 소인을 찍는 중, 우표 없는 편지들이 시시로 단풍든다 몰래 지나는 바람에도 집채만한 그림자들 일어서는 말의 잎새더미들, 한장 한장 젖은 목소리로 뒤척인다   하늘우체국에서 가장 많은 잎새말은 ‘사랑해요’이다 ‘미안해요’도 가랑잎 져 걸음마다 밟힌다 ‘보고 싶어요’ ‘편히 쉬세요’ ‘또 올께요’도 넘쳐흘러 하늘이 자꾸 넓어진다 산자에게나 망자에게나 전할 안부는 언제나, 같다, 언제나, 물기가 돈다   떠난 후에야 말은 보석이 되는가 살아생전 마음껏 쓰지 못한 말들, 살아 서로에게 닿지 못한 말들, 이제야 물들며 사람들 몸속으로 번진다 가슴 흔들릴 때마다 영롱해진다 바람우표 햇살우표를 달고 허공 속으로 떠내려가는 잎새말 하나, 반짝인다, ‘내 맘 알지요’       편지 3 김시천   썼다 지우고 지우고 다시 쓰고 겉봉에 주소와 이름까지 다 쓰고 나서 한참을 보고 다시 또 본다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붙이면서 다시 보고 우체통에 넣기 전에 또 한참을 바라보다가   오늘 알았다 나는 비로소 산다는 건 이렇게 제 마음을 꺼내어 들고 보고 또 다시 보면서 저무는 일이라는 걸   ##  저무는  하루        서시  김영은   가로수 밑을 지나다 툭! 나뭇잎 떨어지고 발이 멈춘다 집어든 손가락 끝에서 가을이 시리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아직도 가슴에 있고 문득,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바람이 미는 대로 정처없이 흔들린다   그림자 작게 접어 제 몸 속에 집어넣고 낙엽은 걸음이 조급한데 작별인사는 될수록 짧게 서둘러 떠나는 발자국 소리, 서걱 서걱 서걱...... 멀어지는 모습 뒤로 흰구름이 눈부시다   지난 여름 사랑은 모든 걸 휩쓸고 지나간 전쟁 같았지 그 화염 속 아직도 나는 쓰러져 있는데 깊어질수록 보이지 않는 그대 마음 상처는 꽃잎처럼 붉구나   우체국 가는 길 마음은 편지보다 한 발 앞서고 낙엽 뒤에서 흩어진 시간을 만지작거리다 돌아서는 시선 끝, 하늘이 푸르다 아직 편지는 부치지 못했고 가. 을. 이. 깊. 다.       귀 먼자(KIMEUNJA) 김은자   공항에서 잃어버린 두 개의 이민가방이 도착한 것은 미국에 도착하고 육개월 후, 동네 간이 우체국 찌그러진 깡통 이민 가방이 내 발 앞에 놓여을 때 이름표에는 이름이 반쯤 지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KIMEUNJA 귀. 먼. 자. 로 불렀다 운명 같은 해독 이후 나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모국어가 목마른 날이면 먹먹해진 귀를 홀로 만지며 대숲을 뒹구는 사람들 틈 속에서 지퍼를 열면 붉은 울음이 빗방울처럼 매달려 있었다 이민 올 때 엄마가 사준 꽃무늬 원피스는 아직도 한쪽 팔이 꺾인 채 옷장 한 켠 박제처럼 걸려 있다 귀머거리의 속성은 엷게 떨다 눈을 잠가 버리는 것 겨울에 떠나 여름에 도착한 개화를 모르는 그리움 깊숙이 손을 넣으면 이민 올 때 언니가 사준 벙어리 장갑이 딸려 나온다 귀가 멀면 입도 멀어지는 법 異國은 명치뼈 아래께 느껴지는 통증 같은 것 흰 편지에 봉인된 얼굴들을 넣고 돌아서는 色色의 사람들 발음 틀린 소통이 오래 아프다       마지막 편지 김초혜   완성될 줄 모르는 편지는 너에게 도달되지 않고 공간에 머무르면서 우체국으로 접수될 줄 모른다   부치지 못할 편지는 쓰지도 말자면서 돌아서는 법을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연습하지만   정작으로 돌아서야 할 시간에는 변두리만 돌다가 다시 돌아서 버리는 건망증   필생에 한 번 혼자서만 좋아하고 잊어야 되는 삶의 징벌       우체국 계단 김충규   우체국 앞의 계단에 나는 수신인 부재로 반송되어 온 엽서처럼 구겨진 채 앉아 있었다 빨간 우체통이 그 곁에 서 있었고 또 그 곁에는 늙은 자전거가 한 대 웅크려 있었다 여름의 끝이었고 단물이 다 빠져나간 바람이 싱겁게 귓볼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편지 혹은 엽서를 안 쓰고 지낸 지 몇 해가 지났다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애써 기억의 밭에 파종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길 건너편의 가구점 앞에서 낡은 가구를 부수고 있는 가구점 직원들, 그리움도 세월이 흐르면 저 가구처럼 낡아져 일순간 부숴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낡은 가구처럼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정 그리워서 미쳐버릴 지경에 이르면 내 이마에 우표를 붙이고 배달을 보내리라 우체국의 셔터가 내려가고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갔다 여름의 끝이었고 나는 아직 무성한 그리움의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김현성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우체국 가는 길   김현태    이른 아침에 우체국에 갑니다 출판사에서 받아 온 시집과 밤새 쓴 편지 한 장을 자전거에 싣고 우체국에 갑니다   아침햇살이 신호등이 걸릴 때마다, 내 생이 브레이크를 질끈 잡을 때마다 행여, 자전거 뒷칸에 매단  누우런 봉투가 아파하지 않을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체국은 항상 사람향기가 납니다 그리움 향기가 가득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말 못할 그리움이 더 많은가 봅니다    내 이름보다도 그대 이름이 크게 적힌 봉투를 저울에 올려 놓습니다 몇 그램이나 나갈까, 우체국 아가씨는 방황하는 저울바늘의 끝을 바라 봅니다 문득, 봉투의 무게가 내 사랑의 무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스레 두볼이 바알갛게 달아오릅니다     며칠 후면, 지구의 한 모퉁이에 닿을 내 그리움의 편린들  악어 입 같은 우체통에 고이고이 묻어 두고 자전거에 몸을 싣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겨울바람이 자전거 앞바퀴에 걸려 치즈처럼 얇게 잘리었는지, 바람 끝이 맵습니다 가슴팍이 왈칵, 시려 옵니다       낭만우체국 나태주   나는 이런 우체국을 알고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우체국 문을 열고는 휑하니 마을로 술 마시러 나가는 중늙은이 우체국장이 근무하는 우체국 여자 직원 혼자서 하루 종일 사무실을 지키는 우체국   한나절을 두고 찾아오는 손님도 별로 없고 전화조차 잘 걸려오지 않아 여자 직원은 뜨개질을 하다가 하품을 하기도 하는 우체국 (요즘 세상에 그런 곳이 있을까 싶지만)   어쩌다 마을의 노인이 돈이라도 찾으러 오면 여자 직원은 비로소 제 할 일이 생겼다는 듯  방글방글 웃으며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히 가세요, 수선을 떠는 우체국 그 바람에 출렁, 파문이 생기는 우체국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다시금 적막에 휩싸이고 마는 우체국   나도 가끔은 이 우체국에 우편물을 부치러 가는 날이 있다 볼일을 보고서도 나는 금방 오지를 못하고  한참동안 우체국 안에서 머뭇거린다 왠지 모르게 곧바로 우체국 문을 밀고 돌아오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서다   목소리가 참 이쁘네요, 꽃이 막 피어나는 것 같애요 실없이 지꺼리는 말 한마디에도 우체국 여자 직원은 하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정말 그 웃음이 다시 한 번 꽃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이런 우체국을 오늘 낭만우체국이라 부르고 싶다.       느리게  나호열    우체국은 산 속 저물녘에 있다 이 가을에 나는 남루한 한 통의 편지 산길 초입 그리고 저물녘에서 느릿느릿 우체국을 찾아간다 블랙홀처럼 어둠은 황홀하다 문득 아찔한 절벽 위에 몸을 가눌 때 바위에 온몸을 부딪치고 으깨어지면서 물은 맑고 깊어지는 흩날리는 꽃잎이다 바람은 또 이렇게 깊은 산에 들어야 솔내음을 품어 낼 수 있는 것 이 가을에 우체국 소인이 찍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에게 가는 길 - 장생포 도순태   햇살이 뜨겁던 날 장생포에 갔다. 고래가 사라진 장생포에는 붉은 햇살이 흔적만 남은 고래막 외벽에 황량하게 내렸다.   옛 분주함도 허름한 옷같이 세월의 뒤안길에서 깨어진 유치창처럼 서서히 늙어가고 있었다.   이층 다방 사진 속에는 오래 전 고래 한 마리 혼자 물마시며 빈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붕이 낮은 우체국에서 엽서를 샀다. 언젠가 돌아 올 고래를 기다리며 서 있는 장생포 방파제가 슬퍼 보인다고,   기다림은 늘 그늘진 기다림을 만든다고 어젯밤 내 꿈에 찾아온 그에게   비릿한 바다내음 같은 이야기를 실어 보냈다.   돌아서 뽑은 자판기 커피의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질 때 눈물이 났다.   똬리를 튼 한 마리 뱀장어 가슴에 넣고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 그도 나도 있었다.   혼자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한다는 그처럼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슴에 묻고 산다.   기다림에 지친 바다 앞에서 다 젖은 내 안으로 고래 한 마리 살아 꿈틀거리며 돌아왔다.       그리운 우체국 류  근   옛사랑 여기서 얼마나 먼지 술에 취하면 나는 문득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선량한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우표 한 장 붙여주고 싶으다 지금은 내 오랜 신열의 손금 위에도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시절 낮은 지붕들 위로 별이 지나고 길에서 늙은 나무들은 우편배달부처럼 다시 못 만날 구름들을 향해 잎사귀를 흔든다 흔들릴 때 스스로를 흔드는 것들은 비로소 얼마나 따사로운 틈새를 만드는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이별이 너무 흔해서 살아갈수록 내 가슴엔 강물이 깊어지고 돌아가야 할 시간은 철길 건너 세상의 변방에서 안개의 입자들처럼 몸을 허문다 옛사랑 추억 쪽에서 불어오는 노래의 흐린 풍경들 사이로 취한 내 눈시울조차 무게를 허문다 아아, 이제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해가 지는 곳 어디쯤에서 그리운 제 별자리를 밝혀 두었으리라 차마 입술을 떠나지 못한 이름 하나 눈물겨워서 술에 취하면 나는 다시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거기 서럽지 않은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사소하게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안부 한 잎 부쳐주고 싶으다       비파나무 그늘 마경덕    일제히 소인을 찍고 있는 나무들, 봄부터 쓴 장문의 편지들이 쏟아진다 허공에 쓰는 저 간절한 필체들 해마다 발송되는 편지들은 모두 어디로 가나    켜켜이 쌓인 주소불명, 수취거절, 수취인부재 미처 소인도 찍지 못한, 저 미납의 사연들   비파를 타던 그 사내 단물이 흐르는 목소리를 내 일기장으로 옮겨오곤 했다 그 소리를 만지며 사나흘 울었다 울음소리에 비파나무 귀는 파랗게 자라 그때 나를 찢고 다시 썼다    몸은 기억한다 그때 우리는 젖은 머리를 털고 있었다  손끝이 스칠 때 비파나무 그늘도 가늘게 떨렸다 빗물에 젖은 열개의 손가락으로 그의 갈비뼈를 더듬고 싶었다 끈끈한 시간의 뒷면에 혀를 대면  그는 떨어진 우표처럼 기울어 있다    우체국은  마감된 하루를 가지 끝에 내건다 어둑한 그늘 아래 시큼한 연애가 익어가고 비파를 켜듯, 그 사내를 연주하고 싶던 그 가을 건너간 마음이 수취인불명으로 걸어 나온다   한 다발의 묵은 편지를 태우듯 노랗게 발등으로 떨어지는 기억을 털어내는 우체국 앞 나무들  키 큰 비파나무가 마지막 현을 퉁긴다 수없이 반송된 계절이 또 한 페이지 넘어간다       우체국을 지나며 문무학   살아가며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가을날 우체국 근처 그쯤이면 좋겠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엔 우체국 앞 만한 곳 없다 우체통이 보이면 그냥 소식 궁금하고 써 놓은 편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다   그대가 그립다고 그립다고 그립다고 우체통 앞에 서서 부르고 또 부르면 그 사람 사는 곳까지 전해질 것만 같고   길 건너 빌딩 앞 플러타너스 이파리는 언젠가 내게로 왔던 해묵은 엽서 한 장 그 사연 먼 길 돌아와 발끝에 버석거린다   물 다 든 가로수 이파리처럼 나 세상에 붙어 잔바람에 간당대며 매달려 있지만 그래도 그리움 없이야 어이 살 수 있으랴.       가을 우체국 문정희   가을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인보다 때론 우체부가 좋지 많이 걸을 수 있지 재수 좋으면 바닷가도 걸을 수 있어 은빛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낙엽 위를 달려가 조요로운 오후를 깨우고 돌아오는 길 산자락에 서서 이마에 손을 동그랗게 얹고 지는 해를 한참 바라볼 수 있지   시인은 늘 앉아만 있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뚱뚱해지지   가을 우체국에서 파블로 아저씨에게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시인이 아니라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가 아니라 내가 직접 크고 불룩한 가방을 메고 멀고먼 안달루시아 남쪽 그가 살고 있는 매혹의 마을에 닿고 싶다고 생각한다       각이도* 그 후 2 박 일   법성포로 가자. 썰물이 석양을 배웅하며 당도하는 사이 육지에서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막배에 오르자. 포구의 사람들이 희미해지는 즈음이 그리움의 거리가 될는지도 몰라. 우럭떼를 불러들이듯이 내 손목을 마다하지 않고 잡아주던 각이도여, 몇 해 전 내가 그곳을 떠나오던 날, 선창가에서 한없는 눈빛으로 응시하던 견우라는 개를 기억한다. 이런 머언 후일에서야 그 눈빛의 의미를 알게 되었지. 떠나는 자보다 보내는 자의 쓸쓸함이 더욱 크다는 것을.   익명의 공간이었다. 육지라는 곳은, 나는 늘 한 자루 칼이었고 웃음 짓는 수많은 얼굴 뒤에선 수시로 화살이 시위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찰나에 베지 못하면, 언제 어디서건 그의 칼에 목이 잘릴지 모를 일이었다. 대게 우리는 배신과 피를 먹고 자랐다.   먼데 불빛이 그리워 질 때까지 너의 품에서 지내고 싶다. 추락과 부딪힘의 힘만으로도 파도는 진경眞景에 이름할진데, 다시 너를 떠날 때에는 소매를 걷고 첫배에 오르겠다. 굴비 열댓두름을 사가지고서 내게 쏜 화살의 주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려마. 햇살 한줌과 손끝의 온기도 함께 동봉하여서는 우체국의 유리문을 환하게 당겨보겠다. *전남 영광군에 속해있는 섬       떠도는 자의 노래 박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뭇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별정 우체국의 봄 박기섭   편지 배달 나간 봄빛은 오지 않고 별정 우체국 나직한 창 틈으로 바람난 아래윗각단 복사꽃만 환한 날       추석 무렵 박남준   모처럼 동네가 흥청거렸다 우체국 앞 삼미식당도 찬새미 송어횟집도 동창회다 뭐다 밀려드는 주문에 일손이 달렸다 고작해야 경운기나 일 톤 트럭이 서 있던 길목마다 미끈한 자가용들이 줄을 지어 들어섰고 아이들이 청년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들썩거렸다   잔치는 짧다 울긋불긋 단풍 같은 고향을 매달고 사람들은 떠나갔다 마을 길은 텅 비어 해는 더 바짝 짧아지고 밤새 환하던 집들은 벌써 깜깜해졌다 늙은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 잔기침 소리 너머 꼬부랑 꼬부랑 고로롱고로롱 풀벌레 소리 홀로 남아 등 굽은 가로등이 노안처럼 침침하다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박미라   코피를 쏟았다 검붉은 꽃잎이 수북이 쌓인다 꽃잎으로 위장한 편지 핏빛 선명한 이 흘림체의 편지를 나는 읽어낼 수 없다   행간도 없이 써 내려간 숨 막히는 밀서를 천천히 짚어간다 꽃잎 뭉개지는 비릿한 냄새 온 몸에 스멀댄다 기억의 냄새만으로도 노을이 타오르고 맨드라미 자지러지는 저녁을 맨발의 내가 엎어지며 간다 이 편지의 수취인은 내가 아니다 녹슨 우체통 속에서 늙어가는 뜯지 않은 편지를 먼지 자욱한 세상의 뒤쪽으로 반송한다   젖은 꽃잎을 떼어 빈 봉투에 붙인다 어딘가의 주소를 적는다 여기는 백만 년 후의 무덤이라고 쓴다   집 잃은 아이처럼 헤매는 비린내를 거두어 담는다 붉은 글자들을 손바닥으로 쓸어 담는다 받는 이의 주소를 적는다 몸이 쓴 편지를 읽을 줄 아는 마음에게 라고 쓴다 백만 년 전에도 마음이었던 그대 여기, 지워진 행간을 동봉한다       이팝나무 우체국 박성우    이팝나무 아래 우체국이 있다 빨강 우체통 세우고 우체국을 낸 건 나지만 이팝나무 우체국의 주인은 닭이다 부리를 쪼아 소인을 찍는 일이며 뙤똥뙤똥 편지 배달을 나가는 일이며 파닥파닥 한 소식 걷어 오는 일이며 닭들은 종일 우체국 일로 분주하다 이팝나무 우체국 우체부는 다섯이다 수탉 우체국장과 암탉 집배원 넷은 꼬오옥 꼭꼭 꼬옥 꼭꼭꼭, 열심이다 도라지 밭길로 부추 밭길로 녹차 밭길로 흩어졌다가는 앞다투어 이팝나무 우체국으로 돌아온다 꽃에 취해 거드름 피는 법이 없고 눈비 치는 날조차 결근하는 일 없다 때론 밤샘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빨강 우체통에 앉아 꼬박 밤을 새고 파닥 파다닥 이른 우체국 문을 연다 게으른 내가 일어나거나 말거나 게으른 내가 일을 나가거나 말거나 게으른 내가 늦은 답장을 쓰거나 말거나 이팝나무 우체국 우체부들은 꼬오옥 꼭꼭 꼬옥 꼭꼭꼭, 부지런을 떤다       용산을 추억함 박소란   폐수종의 애인을 사랑했네, 중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용산우체국까지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한강로 거리를 쿨럭이며 걸었네 재개발지구 언저리 함부로 사생된 먼지처럼 풀풀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의 몸 구석구석에선 고질의 수포음이 새어나왔네 엑스선이 짙게 드리워진 마천루 사이 위태롭게 선 담벼락들은 저마다 붉은 객담을 쏟아내고 그 아래 무거운 날개를 들썩이던 익명의 새들은 남김없이 철거되었네 핏기 없는 몇 그루 은행나무만이 간신히 버텨 서 있었네 지난 계절 채 여물지 못한 은행알들이 대진여관 냉골에 앉아 깔깔거리던 우리의 얼굴들이 보도블록 위로 황망히 으깨어져갔네 빈 거리를 머리에 이고 잠든 밤이면 자주 가위에 눌렸네 홀로 남겨진 애인이 흉만(胸滿)의 몸을 이끌고 남일당 망루에 올라 오, 기어이 날개를 빼앗긴 한 마리 새처럼 지옥불 일렁이는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쳐가는 불온의 미몽이 사이렌처럼 머릿속을 낭자하게 물들였네 상복을 입은 먹구름 떼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네 깨진 유리창 너머 파편 같은 눈발이 점점이 가슴팍에 박혀왔네 한숨으로 피워낸 시간 앞에 제를 올리듯 길고 긴 편지를 썼으나 아무도 돌아올 줄 모르고 봄은 답장이 없었네 영영 애인을, 잃어버린 애인만을 나는 사랑했네       폭설 박이화   밤새 보태고 또 보태어 쓰고도 아직 못다 한 말들은 폭설처럼 그칠 줄 모릅니다 우리, 그리움에 첩첩이 막혀 더 갈 데 없는 곳까지 가 볼까요? 슬픔에 푹푹 빠져 헤매다 함께 눈사태로 묻혀 버릴까요? 나 참 바보 같은 여자지요? 눈 오는 먼 나라 그 닿을 수 없는 주소로 이 글을 쓰는 난 정말 바보지요? 그래도 오늘 소인까진 어디서나 언제라도 유효하면 안 될까요? 끝없이 지루한 발자욱처럼 눈발, 어지럽게 쏟아지는 한 길가 빨갛게 발 시린 우체통이 아직 그 자리를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군요 한편에선 쿨룩이며 숨가쁘게 달려온 제설차가 눈길을 쓸고 거두어 위급히 병원 쪽으로 사라집니다 아, 그렇군요 내 그리움도 이렇게 마냥 응달에 쌓아 두어선 안 되는 거군요 아직 남은 추위 속에 위험한 빙판이 될 수 있겠군요 슬픔에 몸둘 바 몰라 저 어둔 허공 속 지치도록 떠도는 눈발처럼 나, 당신 기억 속에 쌓이지 말았어야 했군요 그러나, 그러나 그 사랑이 전부이고 다인 나에게는 해마다 어디로든 추운 겨울은 오고 큰 눈 도무지 그치지를 않네요       우체국 옆집 박정수   수취인 불명 도장 찍힌 그곳 매일같이 찾아와 제 집인 양 머무는 바람이 있다 첫사랑은 아카시아 같아서 때만 되면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데 우표를 붙인 적이 없는 마음 홀로 살구꽃 되었다가 빈 빨랫줄에 거미줄도 되었다가 수런수런 바람으로 자라서 종아리 하얀 계집아이가 공기놀이를 한다 햇살은 종일 풀숲에서 뒹굴고 오눨의 바람이 툭툭 기억을 흔드는 빨간 우체통을 지나는 그곳       나비 * 2 상희구   봄을 전령하는    노랑우표 한 장   우리 고장에는 우체국이 없습니다       오늘도 우체국에 간다 서경원   오늘도 난 우체국에 간다 마른 잎 수북히 추억처럼 쌓인 길 홀로 걷는 외로움도 축복이라며   하늘 호수에 담근 흰 구름 청량한 햇살에 말린 단풍잎과 그늘 한 점 없는 구절초의 보랏빛 미소 잔가지 눈물처럼 흔드는 방울새 울음소리   하나도 새지 않게 쪽빛 한지에 싸서 네 이름 꽃씨처럼 새긴 봉투에 넣고 떨리듯 기도를 하지 네 품에 안길 이 편지 바로 나였으면... 편지를 물고 가는 흰 제비도 기쁘게 날갯짓하겠다   오늘도 나는 우체국에 간다 너에게 나를 보내기 위해       지상에서 1 성윤석   저녁이었기때문견디며 괴롭게성장한나무와사 람들을엿보았기때문지 방관청과이층산동반점 그멀고도먼처마사이아래에서   누군가는비를긋고나는 비를세운다전파상오래 된세고비아기타소리현 이가늘수록높은음표를 건드리고퉁퉁슬픔치며 가던가수와70년대소리 아직도여기엔당신만이   잘가는집이있고우체국이  있고당신만이잘가지못하 는비탈이있다우리는모른 다그래도사라지진마라그 래도우리는최상의화질 로당신을찾아내야한다그   대는한편의영화도잊지마 라개봉관앞가는비굵어물 살로흘러간다       우체국 앞 평상 손순미   길은 저 혼자 우체국으로 들어가 버렸고, 바람은 측백나무 겨드랑이를 부채질하다 기절해버렸다 우체국 앞에는 한 토막의 평상이 놓여 있고 직원들은 편지를 쓰지 않는 인류의 앞날을 걱정하며 평상 위에 놓인 더위를 구경한다   한 남자가 평상을 향해 걸어온다 남자의 바지를 그대로 갈아입은 그림자를 데리고 온다 남자가 측백나무 쪽으로 평상을 옮기자 그림자는 황급히 배웅을 마치고 돌아간다 못난 남자에게서 태어난 불행한 껍데기는 가라! 노숙에 지친 남자가 겨우 헛소리를 삼키며 평상 위에 눕는다 약지가 없는 남자의 손이 나뭇잎처럼 흔들린다 여름이 이렇게 춥다니!   십자가를 짊어지듯 남자는 평상을 짊어지고 예수처럼 누워있다 영원히 오지 않을 부활을 꿈꾸지 않으며, 각도를 조금만 비틀면 폭염에 순교한 자로 기록될 광경이다   남자를 태운 평상은, 생각하면 눈물이 핑~도는 모양이다       장생포 우체국 손택수    지난 밤 바다엔 폭풍주의보가 내렸었다 그 사나운 밤바다에서 등을 밝히고 누구에게 무슨 긴 편지를 썼다는 말인지 배에서 내린 사내가 우체국으로 들어온다 바다와 우체국의 사이는 고작 몇 미터가 될까 말까 사내를 따라 문을 힘껏 밀고 들어오는 갯내음, 고래회유해면 밖의 파도 소리가 부풀어오른 봉투 속에서 두툼하게 만져진다 드센 파도가 아직 갑판을 때려대고 있다는 듯 봉두난발 흐트러진 저 글씨체, 속절없이 바다의 필체와 문법을 닮아 있다 저 글씨체만 보고도 성난 바다 기운을 점치고 가슴을 졸일 사람이 있겠구나 그러고 보면 바다에서 쓴 편지는 반은 바다가 쓴 편지  바다의 획순을 그대로 따라간 편지 수평선을 긋듯 반듯하게 접은 편지를 봉투 속에 집어넣고 뭍에 올랐던 파도 소리 성큼성큼 멀어져간다 뿌- 뱃고동 소리에 깜짝 놀란 갈매기 한 마리 우표 속에서 마악 날개를 펴고 있다       새가 된 시인 송수권   스륵스륵 향 연필 깎는 밤 창 밖에선 눈 오는 소리 인터넷 세상 속에서도 바람 불고 비가 오는 걸까 연필로만 향그런 시를 쓰는 시인 e-mail이 아니라 우체국에 가서 매일 편지와 원고를 발송하고 오는 새대가리 시인   답청踏淸 날 교외의 풀밭을 밟으며 족두리풀 풀각시 쪽을 지어 쪽- 소리나게 입맞춤하며 하늘 보고 새초롬하네요, 말하는 시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따금 운전 핀을 잊고 맹- 하니 서 있는 시인 나 완전히 새 됐어 혼자서 어깨짓을 하며 가만하게 웃는 시인   그 나이에 차 없이도 잘 나다니네요. 제자들이 핀잔하면 얘들 봐라, 물에 빠진 선비가 개헤엄치는 거 봤니, 달구지 누가 타는 건데, 패대기로 걷다가 구두창이 나간 것도 모르는 시인 늘 한쪽 어깨가 기울기만 한 시인   나 완전히 새 됐어 새벽 세 시에 횡단보도를 비틀거리다가 어느 날 구두창이 아니라 창이 나간 시인 강물에 재를 뿌리자 재빨리 날아가 새가 된 시인 그의 영혼이 너무 가벼운 게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 너무나 무거운 게 아닐까.    * '나 완전히 새 됐어'는 싸이의「새」에서 따온 구절임.       명자나무 우체국 송재학    올해도 어김없이 편지를 받았다 봉투 속에 고요히 접힌 다섯 장의 붉은 苔紙도 여전하다 花頭 문자로 씌여진 편지를 읽으려면 예의 붉은별무늬병의 가시를 조심해야 하지만 장미과의 꽃나무를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느리고 쉼 없이 편지를 전해주는 건 역시 키 작은 명자나무 우체국, 그 우체국장 아가씨의 단내 나는 입냄새와 함께 명자나무 꽃을 석삼년째 기다리노라면, 피돌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아가미로 숨쉬니까 떨림과 수줍음이란 이렇듯 불그스레한 투명으로부터 시작된다 명자나무 앞 웅덩이에 낮달이 머물면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종종걸음은 우표를 찍어낸다 우체통이 반듯한 붉은색이듯 단층 우체국의 적별돌에서 피어나는 건 아지랑이, 연금술을 믿으니까 명자나무 우체국의 장기 저축 상품을 사러 간다 *       삭제하다 송종규    피자를 시켜 놓고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텅 빈 오토바이가 도착했다 화를 내며 돌려보냈는데 오토바이의 두 바퀴가 철가방에 실려 왔네 뭔가 툭 부딪혔는데 어깨가 부러졌네 다급하게 아버지를 불렀는데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가지 않는데   누군가 슬쩍 곁을 스쳐 갔는데 파일이 삭제 됐다 초인종이 울리고 택배를 받으러 나갔는데 덩그러니 초인종만 매달려 있다 두통약을 먹었는데 웬, 하수구가 막혔다네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낡은 전화번호가 자꾸만 앞을 가로막는데   하수구에서 펑펑 검은 시간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몰상식하게 늙었고 치명적으로 헐거워졌다 발을 동동 굴렀지만 발은 허공에서 내려오지 않았네 음악은 쇳소리를 내면서 어디론가 둥둥 떠내려갔지만,   낡은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나서 세상은 복구되어 갔다 오토바이 바퀴와 아버지와 구름과 부러진 어깨를 싣고 우체국으로 달려갔네 혁명처럼, 은행나무 잎사귀가 흩날리고 있는 생의 한 날       나팔꽃 우체국 송찬호   요즈음 간절기라서 꽃의 집배가 좀 더디다 그래도 누구든 생일날 아침이면 꽃나팔 불어준다 어제는 여름 꽃 시리즈 우표가 새로 들어왔다 요즘 꽃들은 향기가 없어 주소 찾기 힘들다지만 너는 알지? 우리 꿀벌 통신들 언제나 부지런하다는 걸   혹시 너와 나 사이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다 하더라도 이 세계의 서사는 죽지 않으리라 믿는다 미래로 우리를 태우고 갈 꽃마차는 끝없이 갈라져 나가다가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저와 같은 나팔꽃 이야기일 테니까   올부터 우리는 그리운 옛 꽃씨를 모으는 중이다 보내는 주소는, 조그만 종이봉투 나팔꽃 사서함 우리 동네 꽃동네 나팔꽃 우체국       떠도는 자의 노래 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된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빨간 우체통 앞에서 신현정    새를 띄우려고 우체통까지 가서는 그냥 왔다 오후 3시 정각이 분명했지만 그냥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냥 왔다 난 혓바닥을 넓게 해 우표를 붙였지만 그냥 왔다 논병아리로라도 부화할 것 같았지만 그냥 왔다 주소도 우편번호도 몇 번을 확인했다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그대여 그 자리에서 발길을 돌려서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 껍질을 톡톡 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새여 하늘은 그리도 푸르렀건만 그냥 왔다 새를 조각조각 찢어버리려다가 새를 품에 꼬옥 보듬어 안고 그냥 왔다.       해발 680m의 굴뚝새 심은섭    면사무소에서 4㎞ 더 지나 우편번호 233-872에 살던 굴뚝새는 사내 굴뚝새를 산 14번지에 묻어 두고 경적소리와 높은 빌딩들이 난무하는 우편번호 100-866 69층 아랫목에서 무-말랭이가 되어 간다 우체국에서 지어준 100-866의 우편번호를 문패에 문신처럼 새겨놓고 살지만 산 14번지 바람소리 전해줄 우편배달부의 발길이 끊어져버린 지가 오래다 몇 날을 견딜 수 있는 수분이 얼마 남지도 않은 해발 680m에 살던 굴뚝새를 굴뚝새의 굴뚝새들이 바라보며 쌀독에 파랑주의보가 내려 호미자루를 놓지 못하던 날들과 냉수에 간장을 섞어 헛배 채우며 새우잠 자던 날도 미납된 등록금 영수증 머리맡에 두고 밤새워 신열을 내던 일들을 떠올린다. 절구공이에 짓이겨진 그녀의 가슴에는 슬픈 보석 몇 개 박혀 있다 두어 개의 천둥소리 하얀 달 몇 개와 서너 개의 태풍 그리고 몇 밤에 내린 무서리에 말라진 몸, 더 말려야 천국의 층계만이라도 가볍게 오르려는 듯 남아 있는 그들의 짐이 가벼워진다는 것도 안다 점점 더 멀어진 눈과 눈 사이의 간격 문 밖까지 나온 기침소리가 폐경을 맞는다 우편번호 없는 묘비를 들고 오후 내내 창 밖에서 서성이던 검은 도포를 입은 바람이 조등(弔燈)을 든 굴뚝새들의 포효를 뿌리치며 반송되지 않을 정량(定量)의 화석을 목관 속에 편히 눕힌다       해발 680m의 굴뚝새 심은섭   면사무소에서 4㎞ 더 지나 우편번호 233-872에 살던 굴뚝새는 사내 굴뚝새를 산 14번지에 묻어 두고 경적소리와 높은 빌딩들이 난무하는 우편번호 100-866 69층 아랫목에서 무-말랭이가 되어 간다 우체국에서 지어준 100-866의 우편번호를 문패에 문신처럼 새겨놓고 살지만 산 14번지 바람소리 전해줄 우편배달부의 발길이 끊어져버린 지가 오래다 몇 날을 견딜 수 있는 수분이 얼마 남지도 않은 해발 680m에 살던 굴뚝새를 굴뚝새의 굴뚝새들이 바라보며 쌀독에 파랑주의보가 내려 호미자루를 놓지 못하던 날들과 냉수에 간장을 섞어 헛배 채우며 새우잠 자던 날도 미납된 등록금 영수증 머리맡에 두고 밤새워 신열을 내던 일들을 떠올린다. 절구공이에 짓이겨진 그녀의 가슴에는 슬픈 보석 몇 개 박혀 있다 두어 개의 천둥소리 하얀 달 몇 개와 서너 개의 태풍 그리고 몇 밤에 내린 무서리에 말라진 몸, 더 말려야 천국의 층계만이라도 가볍게 오르려는 듯 남아 있는 그들의 짐이 가벼워진다는 것도 안다 점점 더 멀어진 눈과 눈 사이의 간격 문 밖까지 나온 기침소리가 폐경을 맞는다 우편번호 없는 묘비를 들고 오후 내내 창 밖에서 서성이던 검은 도포를 입은 바람이 조등弔燈을 든 굴뚝새들의 포효를 뿌리치며 반송되지 않을 정량定量의 화석을 목관 속에 편히 눕힌다       우산을 쓰다 심재휘   어제는 꽃잎이 지고 오늘은 비가 온다고 쓴다 현관에 쌓인 꽃잎들의 오랜 가뭄처럼 바싹 마른 나의 안부에서도 이제는 빗방울 냄새가 나느냐고 추신한다    좁고 긴 대롱을 따라 서둘러 우산을 펴는 일이 우체국 찾아가는 길만큼 낯선 것인데 오래 구겨진 우산은 쉽게 젖지 못하고 마른 날들은 쉽게 접히지 않을 터인데   빗소리처럼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났다고 쓴다 여러 날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말라 버렸다고 비 맞는 마음에는 아직 가뭄에서 환도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쓴다   우습게도 이미 마음은 오래 전부터 진창이었다고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쓴다       함피 우체국 심창만   우체국 앞에서 나는 어쩌지 못하네 사원을 거니는 소에게 우표를 붙일 수 없네 꽝꽝 고무 스탬프도 찍을 수 없네 그건 함피의 소에게 너무 놀랄 일이네 소가 기웃거리기에도 너무 작은 함피 우체국 되레 소를 따라가 버릴지도 모르네 무수한 돌들의 뒤꿈치와 원색의 염료들 그대에게 부쳐갈 우표를 나는 모르네 하루 한 번 해와 달과 우체부가 쇠똥 사이로 지나가고 늙은 寺院이 오래오래 제 그림를 거둘 때 탑이 된 우체통 앞으로 앞발 뒷발 번갈아 지우며 소들이 지나가네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들..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 할 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 바다를 건너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 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체국은 멀수록 좋다 안효희   누런 서류봉투 하나만큼의 하늘을 이고 천천히 걸어서 간다 비를 피해 가슴에 꼭 끌어안은 시 말랑말랑하고 따뜻하다   글자 한 자 한 자에 묻은 지문과 고통 새기며 상처의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우산 하나 받쳐 준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얘기, 밤마다 꿈으로 떠오르고 꿈속에서 살아난 깨알 같은 글자들 다시 끄집어낸다   마음도 젖어 있는 날 사랑이 익기를 기다리는 붉은 우체통   우체국에서 소인을 찍고 등기 속달의 바코드 앞에서 쭈뻣거리는 이름, 또 다른 내가 훨훨 날아간다 누군가의 곁, 잠시 섰다가 이내 잊혀질 붉게 물든 이름   수줍은 사랑을 위해 우체국은 멀수록 좋다       남원 가는 길 양애경    임실을 지나 남원 가는 길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면 조그만 동네에도 있을 건 다 있지 여기 살 수 있을 것 같지 북부농협에서 예금을 찾고 농협 상점에서 식료품을 사고 오수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며 당장 오늘부터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지 나는 넝쿨장미인지도 몰라 철사로 엮은 길가 담장에서 이제 막 무더기 무더기 피어나기 시작하는 붉은 꽃 한 송이 송이로는 보이지 않고 초록으로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에 중간크기 붓으로 몇 군데 문질러 놓은 것 같은 넝쿨장미로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여기서 내려서 논두렁 옆 둑길 하나로 걸어 들어가서 방 한 칸 얻고 편지를 쓰고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농협에 계좌를 트고 그리고 농협상점에서 쌀 한 봉지하고 비름나물 한 묶음 사고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 같아 어디 있는지 모르는 당신 더 찾지 못하게 꽁꽁 숨어서 살고 싶은 마음 허탕을 친 당신 한 번 더 차를 타고 나 사는 곳으로 찾아오게 하고 싶은 마음 지금 나 그런 마음 아닐까 몰라 임실에서 남원 가는 길.       마음 우체국 양재건   마을 속 교회 길 지나 불교 포교원 거쳐 성당 가는 길로 난 숲길 오르면 마음 밭에 아담한 우체국 하나 하늘이 내려앉은 듯 흐린 날 마음 울적해지면 가슴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무거운 마음 조각들 떼어내어선 광주리에 하나 가득 담아 우체국으로 향하네   숲길 지나 산 속 개울가 흐르는 물줄기 만나니 흐린 마음 있으면 조금 떼다가 제 흐르는 몸 속으로 흘러 보내라하네 숲 속 뛰어다니던 청설모들과 나뭇가지 사이 날아다니던 까치들도 길을 막고선 흐린 마음 있으면 도와줄 테니 몇 조각 떼어놓고 가라하네   비에 묻혀온 바람으로 솔 향내가 얼굴을 스치고 숲의 흔들림 소리 실로폰 소리같이 마음을 맑게 해주는 우체국엔 마음씨 곱게 생긴 아가씨가 정답게 맞아주며 수신 처를 물어 대한민국 “내 마음”시 “정답게”군 “받아줄”면 “고운님” 이라고 말하니 방끗 웃음 띄우네   하늘이 내려앉은 듯 흐린 날 우체국 앞에 퍼질러 앉아 무거운 마음 내려놓으니 맑은 날 햇살 가득 푸른 하늘 보다 오히려 가슴 후련하고 마음 밭에 우체국 하나 두고 있어 흐린 날에도 무거운 마음 전혀 두렵지 않으니          시집보내다  오탁번   새 시집을 내고 나면 시집 발송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속 표지에 아무개 님 청람(淸覽), 혜존(惠存), 혜감(惠鑑), 소납(笑納) 반듯하게 쓰고 서명을 한다 주소와 우편번호 일일이 찾아 쓰고 튼튼하게 테이프로 봉해서 길 건너 우체국까지 내 영혼을 안고 간다 시집 한 권 정가 8000원, 우표값 840원, ×200권, 300권...... 외로운 내 영혼을 떠나보낸다   십 년 전 《벙어리장갑》을 냈을 때 - 벙어리장갑 받았어요 시집 잘 받았다는 메시지가 꽤 왔다 어? 내가 언제 벙어리장갑도 사 줬나? 털실로 짠 벙어리장갑 끼고 옥수수수염빛 입김 호호 불면서 내게로 막 뛰어오는 아가씨와 첫사랑에 빠진 듯 환하게 웃었다   오 년 전《손님》을 냈을 때 - 손님 받았어요 시집 받은 이들이 더러더러 메시지를 보냈다 그럴 때면 내 머릿속에 야릇한 서사적 무대가 흐린 외등 불빛에 아련히 떠올랐다 서울역 앞 무허가 여인숙에서 빨간 나일론 양말에 월남치마 입고 맨 허리 살짝 드러낸 아가씨가 팥국수빛 입술로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가씨 몇 데리고 몸장사하는 포주가 된 듯 나는 빙긋 웃었다    지난가을《우리 동네》를 내고 많은 시인들에게 시집을 발송했는데 시집 받았다는 메시지가 가물에 콩 나듯 온다 - 우리 동네 받았어요 어? 내가 언제 우리 동네를 몽땅 사 줬나? 줄잡아 몇 만평도 넘을 텐데 무슨 돈으로 그 넓은 땅을 다 사줬을까 기획부동산 브로커가 된 듯 나는 괜히 우쭐해지다가도 영혼을 팔아 부동산을 산 못난 졸부의 비애에 젖는다   수백 권 넘게 시집을 발송하다 보면 보냈는지 안 보냈는지 통 헷갈려서 보낸 이에게 또 보내고 꼭 보내야 할 이에게는 안 보내기도 한다 - 손현숙 시집 보냈나? 난감해진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박수현 시인이 말참견을 한다 - 선생님이 정말 시집보냈어요? 그럼 진짜 숨겨 논 딸 맞네요 뒤죽박죽이 된 나는 또 중얼거린다 - 김지헌 시집 보냈나? - 서석화 시집 보냈나? - 홍정순 시집 보냈나? 마침내 이 세상 모든 여류시인이 시집을 갔는지 안 갔는지 죄다 아리송해지는 깊은 가을 해거름 내 영혼마저 흐리게 이울고 있다       풀꽃 편지 유경환   내 편지는 지금쯤 어딜 가고 있을까   낯선 우체부 고마운 마음 같은 큰 가방 속에 있을까   아니, 아직 시원한 들판을 기차 타고 달리고 있을까   아니, 겨우 우리 마을 우체국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부친 지 하루도 안 되었는데 갈피 속의 풀꽃 시들었을까.       춘설  유금옥   이 고장에서는 눈을 치우지 않습니다 이 고장에서는 봄도 치우지 않습니다 지난 가을 요양 온 나는 그리움을 치우지 않고 그냥 삽니다 대관령 산비탈 작은 오두막 여기서 내려다보면, 눈 내린 마을이 하얀 도화지 한 장 같습니다 낡은 함석집들의 테두리와 우체국 마당의 자전거가 스케치 연필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3월, 겨울이 긴 이 고장에서는 폭설이 자주 내리지만 치우지 않고 그냥 삽니다 여름도 가을도 치운 적이 없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도시처럼 눈을 포클레인으로 밀어내지 않습니다 다만, 담뱃가게와 우체국 가는 길을 몇 삽 밀쳐놓았을 뿐입니다 나도 山만한 그대를 몇 삽 밀쳐놓았을 뿐입니다   山 아래 조그만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면사무소 뒷마당,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포클레인 한 대가 보입니다 지지난해 들여놓은 녹슨 추억도 이 고장에서는 치우지 않고 그냥 삽니다       저녁에 스님이 스쳐갔다 유종인   셔터가 내려진 우체국 앞에서 괜히 우물쭈물하였다 이 우물쭈물의 시간이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몇 개의 바람떡을 빚으셨을까 이 우물쭈물을 어디 당신만 아는 곳에다 몰래 파묻어두었다 패랭이꽃이라도 피우고픈 저녁인데   못 먹는 떡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저물녘 우물쭈물 고르지 못하는 게 너무 많은 나도 참 내가 맘에 안 차서 저녁바람 속에 섰는데 문득 젊은 스님이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의 빗장을 담담히 열고 나가는 잘 빚어진 스님 옆모습만 나도 옆구리로 보고 있는데   어이 도반道伴! 그래도 요기는 좀 하고 가시게 짐짓 까까머리 불러 세워, 어느 절에 묵느냐 묻고 싶은 저녁인데, 그것도 내 속에만 우물쭈물 빚어지다 마는 겨를인데 마침 내 인기척도 모른 체 지나던 개가 붉은 우체통에 놀라 흠칫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곤 못 본 척 마저 길을 가는 저녁인데   저녁 한 끼를 못 넘어서는 맘이여 깨우치러 가지 않아도 깨우치러 오는 배고픔이 속가의 어머니 이름처럼 불 켜지는 식당 간판들이여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도솔천 밑 우체국 유홍준   눈구멍이 석 자나 들어간 사람이라야 보이는 도솔천, 머리카락이 떡덩어리가 된 사람만이 찾아내는 도솔천 밑 우체국 검정 누비바지에 털신 신은 사람이 마른 목구멍에 삼키는 침처럼 빨간 우체통 속으로 유서를 밀어 넣으면 관상 나쁜 미간처럼 좁은 포구 밖으로 또 무엇을 잡겠다고 고깃배는 떠나 아낙들은 말없이 동태 배를 훑는다 제 배를 제가 훑을 때 더 깊어지는 겨울 동구밖 언덕은 암 덩어리처럼 더 불거져 나오고 암, 암, 자꾸 나무를 옮겨 앉는 까마귀 어김없이 죽으려 돌아온 연어의 자취마저 사라지고 죽음이 구경거리였던, 죽음이 즐거움이었던 죽음이 뚝 끓겨 도솔천 푸른 시내 굽이쳐 흐르고 골짝 깊은 사타구니에 얼굴을 처박으면 커다란 땅거미 한 마리, 도솔천을 덮는다 덮쳐버린다       폭설  윤제림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몸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낯모르는 얼굴이나 간지럽혀봐야 대꾸도 없으니까 저렇게 머리채를 흔들며 집집을 때리는 거다. 점, 점......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삽시에, 일순에! 때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빠뜨리며 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우체국을 파묻는 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론, 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 거다.       바람개비 별 4 — 마음의 귀 이가림   바람구두를 신고 굴렁쇠를 굴리는 사나이 늘 마음의 귀 쏠리는 곳 그 우체국 앞 플라타너스 아래로 달려가노라면, 무심코 성냥 한 개비 불붙이고 있노라면   눈으로 약속한 시간에 마중 나오듯 그렇게 그대의 신발 끄는 소리……   저 포산包山 남쪽에 사는 관기觀機가 불현듯 도성道成을 보고 싶어 하면 그 간절함 바람으로 불어 가 산등성이 떡갈나무들 북쪽으로 휘이고 도성 또한 관기를 보고 싶어 하면   그 기다림 바람으로 불어 가 산등성이 상수리나무들이 남쪽으로 휘이는 것 옛적에 벌써 우리 서로 보았는가   내가 보내는 세찬 기별에 그대 사는 집의 처마 끝이나 그 여린 창문이 마구 흔들리는 뜨거운 연통관連通管이 분명 뚫려 있어 눈으로 약속한 시간에 달려가는 내 눈먼 굴렁쇠여!       가을 우체국 이기철   외롭지 않으려고 길들은 우체국을 세워놓았다 누군가가 배달해 놓은 가을이 우체국 앞에 머물 때 사람들은 저마다 수신인이 되어 가을을 받는다 우체국에 쌓이는 가을 엽서 머묾이 아름다운 발목들 은행나무 노란 그늘이 우체국을 물들이고 더운 마음에 굽혀 노랗거나 붉어진 시간들 춥지 않으려고 우체통이 빨간 옷을 입고 있다 우체통마다 나비처럼 떨어지는 엽서들 지상의 가장 더운 어휘들이 살을 맞댄다 가을의 말이 은행잎처럼 쌓이는 가을엽서에는 주소가 없다       동피랑에 오면 이동훈    동피랑에 오면 통영이 보인다.    강구안을 내려다볼 것 같으면 서귀포 앞바다와 남덕이 그리운 이중섭의 봉두난발이 보이고.    항구에 철선이 닿을 때면 오르내리는 손님과 화물을 좇는 김춘수의 반짝이는 눈빛이 보이고.    서문고개와 세병관 사이 아버지 집을 멀찍이 돌아서 지나는 박경리의 가여운 자존심이 보이고.    길 건너 이층집을 보며 중앙우체국에 편지 부치러 가는 유치환의 은은한 연애가 보이고.    명정동의 난이를 잊지 못해 술에 취해 시장 거리를 헤매는 백석의 닿을 데 없는 유랑이 보이고.    통영에 오지 못하고 통영의 멸치와 흙 한 줌에 울었다는 윤이상의 서러움이 보이고.    벽마다 꽃 피는 동피랑에 오면 중섭과 중섭의 사랑이 통영과 통영의 사람이 다 보인다.       풀 2 이명윤    1 풀 한 포기 보도블록 틈새 비집고 설레설레 고개를 든다 봄이 왔다고 한 소식 전하신다 들은 척 만 척 구두가 밟고 지나간다 납작해진 풀의 모습이 꼭 한 마디 욕설 같았다     2 노점상 일제단속 후 거리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리어카는 파란 천막으로 덮여 있었고 누군가 그날의 소란이 새지 않도록 밧줄로 꽁꽁 묶어 놓았다   (빨리안치워모못한다이눔들아챙그라앙어어이아줌마 가미쳤나저리안비켜어억어딜물어이런씨팔년이저리 비켜아악우리가튼사람은우에살라꼬야야야빨리뿌셔 어억헉이개새끼드라아차라리나알죽여라아아아아악)     3 비 그치고 우체국 가는 길 우연히도 다시 그를 보았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물기를 털며 허리를 편다 길가 고인 빗물 속 언뜻언뜻 비치는 하늘 입가에 피어있는 웃음꽃이 고왔다 이제 막 무언가 배운 초등학생처럼 도로변의 웃음들이 밟히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었다 봄은 모든 곳에서 피어날 권리가 있다 모든 숨소리는 그 스스로 존엄하다       아무것도 아닌 편지  이병률   어느 먼 지방 우체국 사서함번호가 적힌 편지가 배달되었네 면회를 와달라는 어느 감옥에서 보낸 편지 봉투엔 받는 이의 이름만 다를 뿐 버젓이 내 집 주소가 적혀 있었네   오래 책상 위에 올려둔 알지 못하는 이의 편지 화분이 편지봉투 위로 마른 꽃잎들을 한 웅큼 쏟아놓은 어느 날 새 봉투에 또박또박 그의 주소를 적고 편지를 밀어넣고 풀칠을 하였네 이 편지를 되받는 이는 누구인가 사랑이 참 많은 사람이어서 들판이나 강가에서도 물살처럼 또 어느 먼 곳에서도 터벅터벅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일런가 며칠 뒤 편지는 나에게로 되돌아왔네 그가 출감한 것으로 치자며 마음에서 꺼낸 못으로 집 한 채라도 지어올리기를 바라자며 내 감옥의 자물쇠들을 흔들어보네   과도한 세상이 다시 그를 결박하지 않기를 그가 더 이상 모두를 미워하지 않기를       우체국이 없는 나라 이복현   우체국이 없는 나라 난 지금 우체국이 없는 나라로 편지를 쓴다. 아직 아프게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무백(無白)의 흰 벌판에 가슴으로 쓰는 글 엊저녁, 눈이 내린 다음으로도 빈 가지를 울리던 높바람은 여전히 흐느끼는 갈대의 울음소리로 가슴에 남아 잿빛 하늘을 흔든다 찢어진 채 펄럭이는 깃발은 수평선을 향하여 고개 들고 일어서고 나는 항구를 찾아가는 표류선과도 같이 그대의 가슴을 찾아간다 이런 날, 닿지 않는 편지를 쓴다는 건 몹시도 서글픈 일이다 기대할 수 없는 답신의 편지는 슬프다 밤 새워 읽히지 않을 편지를 쓴다는 건, 우체국이 없는 나라로 편지를 띄운다는 건.       푸른 곰팡이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가도 또, 눌차만에 오시거든 이민아   꽃잎이 우표처럼 흩날리는 날 계절의 선창이 마음을 흔들어놓을 때가 있지요 가덕도 선창에 서면 꼭 그런 마음 들킨 듯 유행가도 한 소절 그립고, 추억은 파랑치지요 가덕도 등대가 목덜미처럼 내려놓은 둘레길 따라 동선새바지 느루 걸어 항월고개에 닿으면 정거마을 골목도 환했지요, 달 보는 봄밤이 먼데서도 그리운 이유를 여기 와서 알았지요     눌차만에 차오르는 겹진 파도는 추억의 밑줄 서로 다른 생의 길목을 향하던 정거장 아래로 밀물처럼 당신과 내가 누차 당도했었다는 걸, 바다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기억의 찬장을 열다 들킨 척 가만히 글썽이곤 하는 거지요   천가동 우체국에 발길이 머무는 것도, 그늘의 유랑을 오래 지켜보는 가덕도 등대에 회복의 탄성처럼 불이 밝아오는 순간을 보는 것도, 눌차만이 태풍 후 연잎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같아서지요 바로 당신이, 하늘의 둘레를 걸어온 사람들이 만월이 차오르도록 걷고 걸어 돌아와 웃는 까닭이지요 가도 또, 가덕도 눌차만에 오시거든, 그것 때문이지요       아침의 창원우체국 이상옥    출근길 등기우편 찾으러 아침 우체국에 들르다 수위실 젊은 아저씨 참 친절하다 전화로 금방 내 앞에 푸른 웃음 머금은 청년 하나 하늘에서 금방 떨어진 것처럼 불러 세운다 푸른 걸음 따라 오른 이층의 부산한 집배원들 손놀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우편물을 챙겨 담거나 하나같이 등 푸른 바다처럼 싱싱하다 저마다 “즐거운 편지”를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한 걸음 먼저 닿게 하려고 … 아, 日常이 주름 접힐 즈음 아침의 창원우체국으로 가서 당신이 아직 찾지 않은 등기로 배달된 희망 하나 찾으러 가도 좋다.       겨울 우체통 이상현    모두들 그냥 지나갑니다 바람도 사람들을 따라 그냥 지나갑니다 온종일 추워서 빨갛게 떨고 있는 겨울 우체국 오늘도 해 지도록 편지를 부치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날마다 텅 비어 있는 우리 동네 우체국 우편 배달 아저씨도 빈 손으로 그냥 돌아갑니다 빈 걸음으로 쓸쓸하게 돌아갑니다.       우체국 아가씨 이생진   우체국 가면서 생각했다 꼭 연인네 가는 것 같다고 가다가 개울을 건너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를 꺼내 마시며 생각했다 꼭 연인네 집 앞에 온 것 같다고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난롯가에 앉았던 아가씨가 일어서서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냐고 묻지도 않고 일부인을 꽝꽝 내리친다 봉투가 으스러져 속살이 멍드는 줄도 모르고 꽉꽉 내리칠 때 내 손가락이 바르르 떨었다       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1974 이시영   항구 남쪽에서도 귀신이 나왔다고 한다 해안통 쪽에서 나타나 시내 복판으로 들어가는 더벅머리 셋을 보았다고 한다 사람들을 향하여 무슨 말을 중얼거리다가 볼일이 있다고 재빨리 사라졌다고 한다 아무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없다   光州에서도 대낮에 여우가 나왔다고 한다 온몸에 불을 켜고 충장로를 달리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여우는 사람들 다리 사이로 빠져 달아나면서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아무도 그 말을 소리낸 사람은 없다   永登浦에서도 여자 둘이 나왔다고 한다 야근을 하고 돌아가는 새벽 철둑길에서 여자 둘을 본 여자들은 집에 와 문을 걸어닫고 사흘 낮밤을 숨어 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그들을 본 사람은 없다   龍山우체국 옆길에서도 붕대를 감은 대머리들이 나왔다고 한다 어깨들을 끼고 돌아가는 삼각지를 불러제끼며 돌아갔는데 아무도 그들을 기다린 사람은 없다 삼각지를 따라 부른 용산 술꾼들은 땅을 치며 하룻밤을 새우고 왔는데 이튿날부터 술을 끊었다고 술꾼 중의 1인이 쉬쉬하며 내게 전해왔다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이언지    가을, 입질이 시작되었다 만물이 보내는 연서가 속속 배달 중이다 온몸이 간지럽다 배롱나무 붉은 글씨는 화사체라고 하자 작살나무가 왜 작살났는지 내야수는 내야에만 있어야 하는지 계집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작살나게 이쁜 열매가 미끼였다고 의혹은 무조건 부인하고 보는 거야 경자년이 정해년에게 속삭인다 낮은 음들이 질러대는 괴성에 밥숟갈을 놓친 귀들 은해사 자두가 맛있었다고 추억하는 입술을 덮친다 누가 빠앙 클랙슨을 누른다 -당신의 유방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테이프을 갈아끼우는 사이 농염의 판타지가 물컹 섞인다 비탈 진 무대에서 마지막 스텝을 밟는다 끼어들고 싶다 소리와 소리 사이 스텝과 스텝 사이, 소문과 소문 사이 납작하게 드러눕고 싶다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죽은 나에게 말 걸고 싶다 거시기, 잠깐 뜸들이고 싶다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노랑 소인이 찍힌 연서는 하룻밤만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사라져 도착할 것이다 소멸을 윙크하는 가을 프로젝트 데카당스도 이쯤이면 클래식이다       쏙독새에게 부치다 이영식   동네 간이우체국에서 시집을 부쳤네 등기도 속달도 아니요 야생화 그려진 우표 두 장 붙여 빨간 우편함에 밀어 넣었다네 내 시집이, 시집가는 곳은 해남 땅끝마을 후박나무가 있는 집 나무늘보 걸음처럼 느릿느릿 내 노래는 해거름 바닷가에 닿겠지 저 아무개 님은 첫날밤 옷고름 풀 듯 내 첫 시집을 펼칠 것인데 기다리던 안부, 알싸한 향기는 무슨 책갈피마다 생의 비린내만 진동할 테지 쏙독쏙독- 어둠 썰어놓는 쏙독새 울음소리와 함께 시의 행간을 더듬어갈 사람 그럴수록 내 노래는 속내를 감추고 후박나무 그늘 속으로 잦아들 것인데 애인아, 땅끝이라는 지상의 주소만큼 막막함 끝에 닿는 그리움이 어디 있으랴 별정우체국 먼지 낀 창가에 서서 내 가슴에도 꽃잎 우표 몇 장 눌러 붙이고 바닷가 사서함 어디쯤 쏙독새 울음 쪽으로 귀를 기울여보네       마지막 편지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 2 이영춘   토요일 오후 그대에게로 가는 마지막 편지를 부치러 간다. 집시의 샹송 같은 우울을 접어서 우울 속에 흐르는 눈물을 접어서 그대에게로 가는 마지막 편지를 부치러 간다 텅 빈 우체국, 우체통 속에 내 마지막 언어를 구겨 넣고 돌아서는 토요일 오후 하늘 지붕은 낮게 내려 앉고 그래도 남은 말, 못다 쓴 어휘 하나씩 골라 생각 밖으로 내 던지며 절망과 슬픔을 앞 세우고 나는 빈집으로 돌아온다.       안개중독자 이외수   그대가 떠나고 세상의 모든 길들이 지워진다 나는 아직도 안개중독자로 공지천을 떠돌고 있다 흐리게 지워지는 풍경 너머 어디쯤 지난날 그대에게 엽서를 보내던 우체국은 매몰되어 있을까   길 없는 허공에서 일어나 길 없는 허공에서 스러지는 안개처럼 그토록 아파한 나날들도 손금 속에 각인되지 않은 채로 소멸한다 결국 춘천에서는 방황만이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다       서른 부근 이은림   초등학교 동창녀석에게 미뤘던 답장을 쓰고 도서관을 나선다 뻑뻑한 회전문 밀치고 몇 개의 계단을 딛고, 우체통에 편지를 찔러 넣는다 횡단보도를 절반쯤 건넜을 때 느닷없이 쏟아지는 진눈깨비 어쨌거나 첫눈이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오늘따라 발자국이 느리게 몸에서 빠져나간다 보증금 500만원 월  20만원짜리 반지하 자취방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다 천주교이문성당 성인용품점 뷰티러브 영원산부인과 삼일여관을 지나고 푸른피아노 제일은행 동문부동산을 스친다 터진 진주목걸이의 알맹이처럼 진눈깨비, 아무렇게나 널브러진다 앞서 가던 길이 힘겹게 커브를 튼다 人道 끝에 겨우 몸을 얹은 플라타너스가 몇 장의 이파리를 놓친다 굼뜬 발자국들 옆으로 자매식당 모닝글로리 LG25가 비켜선다 어느새 발끝은 집 근처  명성빌딩 앞에서 멎는다 4층짜리 명성빌딩 1층 상가 경원가전재활용품센터 앞에는 설치미술품처럼 넣여진 낡은 가전용품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거세지는 진눈깨비가 비늘처럼 덮이기 시작한다 딱딱한 빛 내뿜는 비늘더미들 기억 저편에서 오래된 광고필름이 차르르차르르 돌아간다 금성김치 냉장고,  대우세탁기 예예, 삼성 크린 가스렌지… 늘어진 전선들은 자궁 떠난 탯줄처럼 꼼짝 않는다 가로등이 弔燈마냥 우울하게 흔들린다 진눈깨비 점점 더 거세진다 급한 사선을 그으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얼어붙은 그림자 위에도 진눈깨비 박힌다   동수원 우체국 63-507호라는 주소를 가진 동창녀석 벌써 3년 가까이 복역 중이다 녀석에게 한번도 罪名 물은 적 없다  드문드문 보내는 답장마다 서른이 가까워졌다는 말만 습관처럼 내뱉을 뿐 서른서른서른… 중얼거릴 때마다 울컥울컥 끓어 넘치는 설움 그래서 요즘 자주 화상을 입는다 화상연고처럼 차가운 진눈깨비, 두 손으로 비벼본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가리키고 큼직한 숫자를 새긴 버스들 월계 상계 우이동으로 허둥지둥 달려간다 종점인지 시발점인지 알 수 없는,       우체국  이재무   우체국 옆 지날 때면 다 풀지 못한 밀린 숙제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 불쑥 솟아나 발걸음 앞에 덫을 친다 마음의 서랍 속에는 부치지 못한 편지, 잘못 배달된 푸른 사연 몇 장 눈을 뜨고 내 가슴 읽고 간 기러기는 강바람 거슬러 날아간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 우체국 옆 지날 때면 몸 속의 소년 비 온 뒤 초록으로 일어서고 가슴의 처마 끝으로 늙지 않는 설렘의 물방울 듣는 소리 또렷하다       비 이정환   비가 왔다, 각시붓꽃 자욱한 서정의 안뜰 먼 데 우체국이 젖어 환히 붉은 그 아침 비는 내리어 우표가 잘 뜯겨졌다 어느 날엔가 내 안에 닿은 당신의 편지 소인 찍힌 자리, 잠시 눈빛 머물렀을 그 아침 울음에 싸인 먼 데 산을 보았다       바닷가 편지 이종암    바닷가 벼랑에 강단지게 서 있는 한 그루 해송은 우체국이다 파도와 바람의 공동 우체국   수평선, 지평선 너머의 소식들 푸른 솔가지 위로 왔다가 가네 영원한 定住는 없다는 걸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나는 예감하네   물 알갱이 하나 햇살 따라 바람 따라 오고 가는 것 누가 여기 이 자리에 나를, 또 너를 비끄러매려 해도 소용없는 일임을 알겠네   소용없는 길 위에 서서 내가 본 만큼의 내용으로 그 빛으로 편지를 쓰네 봄날 흙 속으로 내려가 앉는 물의 걸음으로, 숨을 놓으며 쓰네       편지의 꿈 이하석   송전탑 아래서 에코나비고*의 유충을 줍는다. 예쁘다. 아파트 거실 텔레비전 옆에 두니 몇 번인가 허물을 벗은 다음 날개까지 난다. 어두운 구석에 알들을 슬어놓는다. 자주 날려보내고 쓸어낸다. 그러나 이미 바퀴벌레보다 더 교묘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그 기계충들이 점령했음을 안다.   편지를 꼭 우체국에 가서 부친다면, 이메일들을 저것들이 먼저 점검하고 소리의 색깔까지 씹어대는 게 기분 나쁘기 때문이리라, 나도 자주 핸드폰 밧데리를 뽑고 컴퓨터를 끈다. 그러나 그걸 끝내 버리지 못하니, 나도 그 기계충들에 사로잡힌 셈이다. 형형색색의 기계충들을 애완으로 기르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그런 내게 자주 연락두절을 투덜댄다. 그 투덜대는 소리의 전파를 야금야금 파먹는 기계충들의 이빨이 가지런하다.    *열 안테나 주위에 살며 송수신 전파를 먹고사는 기계충.       우체국 가는 길 이해인    세상은 편지로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하나 미루나무로 줄지어 서고 사랑의 말들이 백일홍 꽃밭으로 펼쳐지는 길   설레임 때문에 봉해지지 않는 한 통의 편지가 되어 내가 뛰어가는 길   세상의 모든 슬픔 모든 기쁨을 다 끌어안을 수 있을까   작은 발로는 갈 수가 없어 넓은 날개를 달고 사랑을 나르는 편지 천사가 되고 싶네, 나는 *       우체국에서  이향아     우표를 산다. 11월 해풍에 엽서를 쓴다 아슬한 고향의 열차를 타듯   저 창구에는 숱한 사람들이 뿌리고 간 세세한 통사정 내가 또 두고 갈 쓸쓸한 고백   우주의 귀퉁이 협소한 주소에 당신은 내가 아는 땅 위의 한 사람   벌거벗은 목숨 곤곤한 물살을 순수의 바가지로 길어 올려서 떠나 보내야지, 속죄하듯 풀어서 전해야지   오늘도 흐린 날씨 자욱한 먼지 속에 창천에 파묻힐라 매운 눈물 한 방울       당일 택배 이희숙   별난 음식 차리면 자식 생각 목에 걸려 아침시간 우체국엔 발길이 분주하다 겹겹이 에두른 상자 아이스팩 다 녹을까   성인병 불러들인 빨간불 켜진 식탁 간편한 인스턴트 그 맛에 길들여질까 어미 정 녹아든 반찬 애면글면 보낸다.       폐허주의자의 꿈 장석주   1. 술취한 저녁마다 몰래 春畵(춘화)를 보듯 세상을 본다.   내 감각속에 킬킬거리며 뜬소문처럼 눈뜨는 이 세상, 명륜동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도보로 십분 쯤 되는 거리의 모든 밝음과 어두움.   우체국과 문방구와 약국과 높은 육교와 古家(고가)의 지붕 위로 참외처럼 잘 익은 노란 달이 뜨고 보이다가 때로 안 보이는 이 세상.   뜨거운 머리로 부딪치는 없는 壁(벽), 혹은 있는 고통의 形象(형상). 깨진 머리에서 물이 흐르고 나는 괴롭고, 그것은 진실이다.   2. 날이 어둡다. 구름에 갇힌 해, 겨울비가 뿌리고 웅크려 잠든 누이여.   불빛에 비켜서 있는 어둠의 일부, 희망의 감옥 속을 빠져나오는 연기의 일부, 그 사이에 풍경으로 피어 있던 너는 어둡게 어둡게 미쳐가고   참혹해라,   어두운 날 네가 품었던 희망. 문득 녹슨 면도날로 동맥을 긋고 붉은 꽃피는 손목 들어 보였을 때, 나는 네가 키우는 괴로움은 보지 못하고   그걸 가린 환한 웃음만 보았지. 너는 아름다운 미혼이고 네 입가에서 조용히 지워지는 미소.   열리지 않는 자물쇠에서 발견하는 생의 침묵의 한 부분, 갑자기 침묵하는 이 세상 비가 뿌리고, 비 젖어 붉은 녹물 땀처럼 흘리고 서 있는 이 세상 가다가 돌아서서 바라봐도 아름답다.   3. 무너진 것은 무너지지 않은 것의 꿈인가?   어둠은 산비탈의 아파트 불빛들을 완벽하게 껴안음으로 어둠다와진다.   살아 떠도는 내 몸 어느 구석인가 몇 번의 투약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몇 마리 기생충, 그것이 나를 더욱 나답게 하는 것인가?   효용가치를 상실하고 구석에 팽개쳐져 녹슬고 있는 기계, 이 세상에 꿈은 있는가? 녹물 흘러 내린 좁은 땅바닥에 신기하게도 돋고 있는 초록의 풀을 폐기처분된 기계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체국 가는 길 전다형   봉투의 주둥이를 입으로 훅 분다 추신으로 눈이 새까만 채송화 꽃씨를 함께 넣는다 만삭의 봉투가 뒤뚱, 봄 벚꽃길 열고 네거리 우체국 간다  나냐너녀 노뇨누뉴 왕벚꽃 말문 트는 돌담을 따라 시옷이응 지지배배 초등학교 담장을 지나 두근두근 사랑의 능선을 돌아 붉은 우체통 기다리는 소박한 우체국으로 들어선다     앉은뱅이저울이 벌떡 일어나 눈이 까만 채송화 꽃씨를 안아 올린다 그립다 사랑한다 씨알 굵은 고백은 아껴두고 사랑의 변죽만 울렸던가 꽃대궁에 올라앉은 잠자리가 부드러운 날개를 사뿐 접는다 날아가듯 저울 눈금이 요동친다 꽃씨가 꽃대의 거리를 재는지 발가락이 허공을 툭툭 찬다 발뼘을 잰다 봉함엽서 봉투의 솔기가 자꾸 터진다          휘파람새 한 마리 푸드덕 붉은 마음을 물고 날아간 그곳, 추신으로 넣은 채송화 꽃씨가 속닥속닥 꽃말을 터뜨린다 하얀 치아를 활짝 드러내고 깔깔 쏟아놓을 비단길, 중년의 아낙이 연초록 설레임을 펼쳐 읽는다 그곳에는 활짝! 만개한 주름들도 다 핀다 화들짝 눈부시게 펼쳐낸다       가을 우체국에서 정문규    지금까지 받은 사랑의 선물 다시 돌려드립니다   너무나 많이 받아 더 이상 저장할 공간이 없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단풍잎 제 마음도 함께 부칩니다   그 동안 다정했던 봄과 여름도 고마웠습니다    답장은 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하얀 겨울로 가는 망각의 열차를 탔거든요   안-녕-히-계-세-요       우체국이 헐리다 정선호   오래된 우체국을 인부들 허물고 있다 몇 십 년 동안 동네 입구에 서서 제비들 세상과 교신을 맡아 수없이 날아다니던 곳, 이젠 수명 다하여 재건축 위해 그동안 받고 보냈던 편지만큼의 먼지 날리며 허물어지고 있다   제비들이 떨어지는 먼지들 물고 지구를 떠나 달을 향해 간다 달에서 먼지 긁어모아 화성과 목성, 그보다 멀리 있는 별들과 지구와의 교신을 위해 계수나무 옆 공터에 우체국을 짓고 있다 우주의 모든 생명들이 누구나 편지를 적을 펜 만들기고 하고 편지를 보낼 초고속 우주선 만들고 있다 또 과거 우주인들 지구인들에게 편지 보낼 수 있게 타임머신 만들고 있다   그대 몇 달 후에 뜬 달을 자세히 보라 계수나무 옆 우체국 한 채 보일 것이며 수많은 편지들 그대 머리 위로 밤마다 우수수 쏟아질 거다       청산우체국 가는 길  정유화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대둔사 입구에 있는 불두화 꽃나무는 어느 새 제멋대로 꽃을 달고 불경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은 지 성깔대로 사다리도 없이 벽을 오르며 이웃집 창문 안을 염탐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담벽은 등이 굽어질까 봐 꿈틀거리고 있고요. 앉아 있던 풀잎들이 오금이 저리다고 제멋대로 일어서서 리듬체조를 하니까, 너무 오래 서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다고 투정하는 버드나무는 앉아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겠다고 기어코 허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어떤 바위는 마냥 누워 있었더니 엉덩이가 짓물렀다고 하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달라고까지 합니다. 황금새는 계곡 구석구석에 황금소리를 깔면서 제멋대로 마음에 드는 나무들의 품속만을 골라 다니고 있지요. 이제 그들의 반란을 통제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들을 불러모아 살게 하던 내 문장 속의 살림살이가 거의 바닥이 났거든요. 사실 그들을 기르기 위해 내 품속에 아껴두었던 지난 봄의 햇살과 바람 가을 저녁놀 계곡의 함박눈까지 거의 다 뿌려주고 말았거든요. 또한 그 동안 내가 이름을 붙여주고 물을 주고 잠을 재워주었던 언어의 손길이 그들에게는 감옥처럼 생각되었나 봅니다. 그것을 알기라도 한 듯 심지어 벼를 가꾸어 온 그 여자조차 떠나려는 눈치입니다. 시를 아껴먹던 그 여자.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청산우체국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곳에 칩거하면서, 그들을 다시 불러모을 수 있는 새로운 문장을 짓기 위해.       우체국 앞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정윤천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기억을 가진 사람과,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누구라도 한 사람을 기다려본 기억이 없는 사람의 인생의 무늬에는 어딘가 차이가 있을 것도 같았다.     모든 생의 바닥으로는 다른 빛깔의 그늘이 와서 깔리고, 모든 생의 그 그늘들은 다른 방식으로 스러지기도 할 것 같았다.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등에 대고서라도, 이제라도 `그’를 한번 기다리며 서 있어보라고,   가만히 말을 건네주고 싶었던 가을날이 있었다.       여름편지  정일근   여름은 부산우체국 신호등 앞에 서 있다 바다로 가는 푸른 신호를 기다리며 중앙동 플라타너스 잎새 위로 여름편지를 쓴다 지난 여름은 찬란하였다 추억은 소금에 절여 싱싱하게 되살아나고 먼 바다 더 먼 섬들이 푸른 잎맥을 타고 떠오른다 그리운 바다는 오늘도 만조이리라 그리운 바다는 만조바다에 섬을 띄우고 밤이 오면 별빛 더욱 푸르리라 여름은 부산우체국 신호등을 건너 바다로 가고 있다 나도 바다로 돌아가 사유하리라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섬들을 풀어 주며 그리운 그대에게 파도 소리를 담아 편지를 쓰리라 이름 부르면 더욱 빛나는 7월의 바다가 그대 손금 위에 떠오를 때까지       律呂集 75 - 이름에 대하여 정진규   언제나 내 이름이 변함이 없는 것이 이무래도 오래전부터 수상하였으며 제일 괴로운 내 대목이었다 固有名詞라는 말로 나를 요약 정의할 수는 없다고 오래전부터 나는 확신해 왔다 내가 들여다 본 오늘 아침의 나만 하드래도 그렇다 어제 저녁의 내 우체통과 쇠뜨기 풀, 그 우체국과 그 쇠뜨기 풀에 대한 감성의 두께마저 달라진 내 이름을 자고나면 달라지는 내 이름을 똑같은 억양으로 부르고 쓴다는 것은 인간들의 무모한 약속이며 질서이며 구속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나는 알았다 다른 사물들, 자연들은 이미 탯줄 끊었을 그때부터 제 이름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그때그때 다른 이름들로 태어날 줄 알았던 것이다 응답을 알았던 것이다 사람만 귀머거리였다 청맹과니였다 우체통은 내가 사랑의 화물선! 하고 부르면 네! 손 번쩍 들어 그렇다고 대답하였으며 쇠뜨기 풀도 내가 소도 잘 뜯지 않아 이름만이라도 그렇게 불러달라고 내 앞에 다가앉은 풀! 그렇게 부르면 네!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런 응답들로 모두 열려 있었다 그래서 세상은 넓다 내가 시를 쓰게 하였다 사람은 모두 빗장이 걸려 있다 사람! 불러 보시게 끝소리가 닫혀진 입시울 소리이며 풀! 불러 보시게 끝소리가 끝없이 울리는 울림소리 아니신가 열려 흐르는 물소리 아니신가       장승포 우체국 정호승     바다가 보이는 장승포우체국 앞에는 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소나무는 예부터 장승포 사람들이 보내는 연애편지만 먹고 산다는데 요즘은 연애편지를 보내는 이가 거의 없어 배고파 우는 소나무의 울음소리가 가끔 새벽 뱃고동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어떤 때는 장승포항을 오가는 고깃배들끼리 서로 연애편지를 써서 부친다고 하기도 하고 장승포여객선터미널에 내리는 사람들마다 승선권 대신 연애편지 한 장 내민다고 하기도 하고 나도 장승포를 떠나기 전에 그대에게 몇 통의 연애편지를 부치고 돌아왔는데 그대 장승포우체통 푸른 소나무를 바라보며 보낸 내 연애의 편지는 잘 받아보셨는지 왜 평생 답장을 주시지 않는지 *       혜화동 우체국 아가씨 조병화   혜화동 우체국 아가씨들은 젊다 예쁘다, 명랑하다 여학생들 같다, 유니폼이 산뜻하다   농담으로 애인이 있습니까, 말을 걸면 결혼을 했습니다, 웃으며 아이도 있다고 수줍어 한다   웃는 얼굴이 유리창 햇살에 비쳐 혜화동이 환해진다   나의 우편물들은 어린 이 엄마 손에 가려져서 국내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온 세계로 가고, 온 세계에서 온다   우편물에 묻어, 오고, 가는 따뜻한 손의 향기,   오늘도 가고 오늘도 온다   부지런히, 정확히,       黑板 조정권   내가 걸어가고 있을 때, 비에 젖은 가로수가 발바닥을 말리며 햇빛 속으로 따라오고 있었어, 나는 갇혀 있는 5月의 우체국길을, 주머니에 가득한 햇살을 만지면서 걸었어, 그전에 내가 머문 時節에 못을 박았어. 햇살은 식어 있었어. 안소니 파킨스 얼굴이 지워져 있는 이 黑板, 그 벽까지 내가 먼지를 흘리고 돌아왔을 때, 내가 흘린 먼지들이 내 길을 따라 기어나오고, 누나 누나, 어디에서나 햇살은 식어 있었어, 이놈의 黑板, 젊음이 깨어진 얼굴을 그리면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방에 들어가 울었어. 울면서 나는 들었어. 가로수의 소리침, 소리의 門 뒤에서 하얗게 지워지는 햇살들, 지워지면서 다시 흘러내리는 내 얼굴의 面角을 건져내면서, 나는 하얗게 비어가고 있었어.       눈의 여왕 진은영   그녀에게서 훔쳐온 것은 모두에게 어울린다 사물들은 하얀 곰가죽을 덮어쓴다 부푼 보리씨가 자라고 청소용 트럭, 빨간 우체통 그리고 떠다니는 집들   자동차는 멈춰 있고 폐타이어들이 굴러다닌다, 내 애인의 유두처럼 까맣다   그런 아침 사람들은 칼날처럼 일찍 일어나 피 묻은 자줏빛 살덩이의 살해자를 찾으러 다닌다   바람에 묶인 흰 털들이 공중으로 도망친다       젊은 우체국장이 있는 풍경   채필녀    우체국이 새로 생겼어요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 신호등은 없지만 무단횡단이 가능하죠 주.정차도 할 수 있어요 빨간 우체국을 한 백개쯤 붙여놓은 건물이에요 나는 엽서를 사러 들어갔어요 커다란 우체통 속으로 미끌어지듯이요 문을 여는 순간 꽝! 가슴에 스탬프가 찍혔어요 젊디 젊은 우체국장이 앉아있지 않겠어요? 어서 오세요! 샘 솟는 목소리, 그는 뱃속에 샘물이 있어요 책상이며 화분, 액자, 모든게 새거였고 휴지통엔 휴지가 하나도 없었어요 온도 습도가 알맞아 동양난이 촉촉하게 피어있어요 나는 주소불명의 편지처럼 어리둥절했어요 젊은 우체국장이라니, 뜻 밖의 소포 같은, 축하의 전보 같은,   젊은 우체국장이 있는 우체국에 오시지 않겠어요? 그대, 한장의 엽서가 되고 그리운 편지, 소중한 선물이 되어 어디든 속달로 날아갈 거에요 수취인 불명, 거부, 상실, 부치기 힘들 때, 어서 오세요! 젊은 우체국장과 물결과 바람이 새파란 빛살로 차오르겠지요? 너무 멀다구요? 밤에는 봄이 안 오나요?   (근처에 다른 구경거리 없냐구요? 있죠, 우체국에서 2분만 가면 대덕면사무소가 있는데 뜨락의 국화, 우표 전시장처럼 다양하고 벌떼들 잉잉거림, 관람객의 탄성이지요)       콘체르토  최하연   섬이 있다네, 교회가 있다네, 섬에는 우체국이 있고 좁은 길이 있고, 어둠 속에 숨은 달이 길의 끝을 자꾸만 늘이고 있다네, 바다는 끝내 수평선에 목을 매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네,   뒤돌아보면 하나 이상의 하나가 자꾸만 따라온다네, 앞서 가지도 않으면서 기다리지도 않으면서, 섬의 하루는 달빛을 따라 바다로 간다네, 오늘은 만선이었고, 만선 직전의 어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네, 얼마나 더 가야, 그 섬에 닿을지, 얼마나 더 가야, 나는 섬 밖에서 섬을 바라볼 수 있는지, 누군가 모든 길들을 처음으로 되돌리고 있는데,   교회의 종탑은 순간 반짝인다네,        우체국  탁영환   손바닥 둘만한 행복 하나로 접어 규격봉투에 넣어 네게 부치마. 하늘로 넘나드는 마음 묶어 되도록 작게 여미어 싸 무게를 달면 그토록 엄청나던 무게 가장 작게 오그려 수취인 분명한 소포로 네게 부치마. 계절의 사태진 숲에서 아직도 집이 없어 눈물 어린 감정, 그러고 있거든 허공세계 돌아온 바람등에 실어 너만이 알아볼 듯 물들인 낙엽으로 그렇게 네게 띄우마.       독도 우체국 편부경   기다림이 길었습니다 굽은 등이 걸어온 느린 걸음의 날들 길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강아지풀 억새와 뿌리로 만나 그 속삭임만으로 해가 뜨고  지다가 눈바람에 목 메이다가 돌아본들 망망해협을 서성이다가   고향이 없다던 뜨거운 별들 밤마다 신발을 벗던 등대 웅크린 꿈길 더듬어  심해의 기다림이 쌓은 독도 별정우체국   머지않았습니다 독도리 사람들 낯익은 목소리로 우체국마당을 쓸고 뭍으로 간 이웃 돌아와 주머니 속 깊은 술병 꺼내들 날이 쪽배 뒤척임 위에 갈매기 목청 선연할 때 이 번지 저 번지 모여앉아 목 메인 이야기로 물소리 지워질 오래된 수채화 같은 시골마을 풍경이   거기 우체통에 발걸음 잦을 날이       미치겠네 함성호    우체국에 불이 났다네 우리집 차도와 인도의 경계석이 박살났네 며칠은 청구서가 배달되지 않겠다고 사람들은 불구경을 하면서도 우리집 경계석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네 미치겠네 경계석이 무너진다고 악을 써대도 소방관들은 한가롭게 불꽃에 물을 주고 있네 아내는 큰일났다 큰일났다 하면서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나는 경계석 근처에서 안타까워 떠날 수 없네 미치겠네 바퀴는 너무 무거워 우리집 경계석이 버틸 수 없네 아무도 우체국에 맡긴 사연은 없는지 사람들은 불꽃에 귀를 기울이다 집으로 돌아가 고기를 굽고 있네 미치겠네 우리집 경계석은 모양도 좋고 높이도 적당해서 앉아 있기 좋았다네 우체국에 불이 났다네 우리집 경계석도 박살났다네 미치겠네       비, 우체국 하순희   난 한 촉 벌고 있는 소액환 창구에서 얼어 터져 피가 나는 투박한 손을 본다. “이것 좀 대신 써 주소. 글을 씰 수 없어예” 꼬깃꼬깃 접혀진 세종대왕 얼굴 위로 검게 젖은 빗물이 고랑이 되어 흐른다 “애비는 그냥 저냥 잘 있다. 에미 말 잘 들어라.” 갯벌 매립 공사장, 왼종일 등짐을 져다 나르다 식은 빵 한 조각 콩나물 국밥 한 술 속으로 밤새운 만장의 그리움, 강물로 뒤척인다. 새우잠 자는 부러진 스치로품 사이에 철 이른 냉이꽃이 하얗게 피고 있다 울커덩 붉어지는 눈시울, 끝나지 않은 삶의 고리       첫눈 오는 날                          한연순   눈답지 않은 눈이 내린다 먼 먼 그리움처럼   우체국에서  마음을 부치고 돌아 나와   낙엽 위에 내려앉기도 전에 어디론가 사라지는 형체조차 희미한 기억을 따라간다   지친 어깨 위로 무거운 가방 위로 사뿐 사뿐히 눈답지 않은 눈이 내리는 것은   오호  하염없이 돌아가고 싶은 은빛 모래 바닷가   눈답지 않은 눈 첫사랑        우체국 이야기 홍윤숙   이제 우체국에 가서 원고를 부치는 노고도 필요 없어졌지만 전화나 팩스 같은 문명의 이기로 대개는 볼일을 보고 말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옛날처럼 편지나 시를 쓰면 그것들을 들고 골목을 지나 큰길을 건너 나들이 가듯이 우체국에 간다 우체국 아가씨도 옛날처럼 상냥한 소녀는 아니어서 낯선 얼굴의 무표정한 눈총이 서먹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숨결이 그리워서 필요도 없는 말을 몇 마디 주고받으며 풀칠을 하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다 냇물 속에 떨어지는 잔돌 같은 작은 음향 그 소리 들으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감동에 가슴 젖는다 날마다 무언가 변하여 가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남아 있다는 그 작은 감동이 나를 위로한다 오늘도 한 통의 편지를 들고 차들이 질주하는 큰길을 건너서 옛날의 내 어머니 새 옷 갈아입고 나들이 가듯이 우체국에 간다 아, 거기 기다리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의 따스한 숨결       우체국을 가며 황규관   다시 이력서를 써서 서울을 떠날 때보다 추레해진 사진도 붙이고, 맘에도 없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로 끝나는 자기소개서를 덧붙여 우체국을 간다 컴퓨터로 찍힌 월급명세서를 받으며 느낀 참담함이 싫어 얼빠진 노동조합이나 제 밥줄에 목맨 회사 간부들과 싸우는 것이 마치 아귀다툼 같아서 떠나온 곳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밥 때문에 삐쩍 마른 자식놈 눈빛 때문에 이렇게 내 영혼을 팔려는 짓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왜 그럴까, 알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 늘 패배하며 산다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가면 금빛 들판에서 비뚤어진 허수아비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내게는 욕심이었다 이력서를 부치러 우체국을 간다 한때 밤새워 쓴 편지를 부치던 곳에 생生의 서랍을 샅샅이 뒤져 1987년 포철공고 졸업 1991년 육군 만기제대 이따위 먼지까지 탈탈 털어서 간다       시골 우체국 황동규    지도에서 막 사라지려는 權相老 현판의 절 하나 찾기 위해 소백산맥 남쪽 기슭을 오르내리다 잠시 전화 걸려고 들른 시골 우체국, 직원 하나가 하도 친절킬래 일부러 마음 내려놓고 편지를 쓴다. 오늘 날씨도 흐리려다 말았다. 모든 활엽수들이 입을 벌리고 서 있다. 시골 포장도로 끼고 흐르는 개울엔 물이 기어다닌 흔적도 없다. 그 직원이 입에 손 살짝 대었다 떼듯 부드럽고 단단한 미소 지은 우체국은 접시꽃으로 잘못 볼 뻔한 마음 芙蓉꽃과 잔 꽃들을 모아   넉넉한 꽃이삭을 만들고 있는 부처꽃으로 將嚴되어 있었고, 바람이 꽃 이파리만 가볍게 흔들었고, 매미가 삼중창으로 울었다.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단층 우체국이 그 자리에서 위로 떠오를 것 같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 직원과 우체국이 우주 영화 전광 속처럼 번쩍이며 사라지고 사방에 소백산맥에는 보이지 않던 雪山들이 소리없이 솟아올랐다       가려워진 등짝 황병승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다 작년 이맘때는 失戀을 했는데 비 내리는 우체국 계단에서 사랑스런 내 강아지 짜부가 위로해주었지 ‘괜찮아 울지 마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짜부는 넘어지지 않고 계단을 잘도 뛰어내려갔지 나는 골치가 아프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짜부야 짜부야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엄마가 그랬을 텐데!’ 소리치기도 귀찮아서 하늘이 절로 무너져 내렸으면 하고 바랐지 작년 이맘때에는 짜부도 나도 기진맥진한 얼굴로 시골집에 불쑥 찾아가 삶은 옥수수를 먹기도 했지 채마밭에 앉아 병색이 짙은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걱정하지마 아직은 안 죽어’ 배시시 웃다가 검은 옥수수 알갱이를 발등에 흘렸었는데 어느덧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 또다시 와서 지나간 날들이 우습고 간지러워서 백내장에 걸린 늙은 짜부를 들쳐업고 짜부가 짜부가 부드러운 앞발로 살 살 살 등짝이나 긁어주었으면 하고 바랐지       붉은 우체통 황지우   버즘나무 아래 붉은 우체통이 멍하니, 입 벌리고 서 있다 소식이 오지 않는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思想이 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여, 비록 그대가 폐인이 될지라도 그대를 버리지 않겠노라 고 쓴 편지 한 통 없지만, 병원으로 가기 위해 길가에서 안개꽃 한 묶음을 사는데 두 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뱃가죽에 타이어 조각을 대고 이쪽으로 기어서 온다    
921    <나그네> 시모음 댓글:  조회:4111  추천:1  2015-04-10
  + 나그네 교범  네 몸이 밀고 지나온 풍경이 조금  찌그러졌다 하여 마음 아파하지 말 것  지나친 그 자리에 금새 다시 채워질  허무에 대해 마음 쓸 일 없음에야  쥐어박히거나 사탕 받아 배워온 대로  지나쳐온 자취마저 고이 깎아  반듯이 해 놓을 것까지야....  이제 또 휘더듬어 가야할 시간들이  구겨질 데 대하여 미리 걱정하지 말 것  켜켜이 늘어선 거미줄 장막  맨 얼굴로 걷어가야 하는 네 팔자임에야  그래도 가끔은 뒤돌아볼 줄 아는  사랑 한자락 펴놓고 퍼질러 앉아  너 혼자만의 휴식을...  쉴 때 너만의 자리 없다면  그저 그냥 자그마한 몸놀림으로  옆에 괜한 사람 건드리지만 않게  눈물 훔칠 때도  세게 코 풀어버리지 말 것  허나 옆에 누구 없을 땐  둑 터진 홍수처럼이나  통곡하거나 박장대소해도 되느니  혼자 벙어리 울음 울어  네 몸 깎아먹지 말 것.  (손우석·시인) + 나그네  저도 모른다. 나그네는 걷다가 왜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지 모르고 길에서 쉰다. 모르고 올려다보는 저 정처(定處).  (문인수·시인, 1945-) + 나그네 지금처럼, 마냥  걷고 또 걷다가  진홍색 노을 지는  밋밋한 능선 아래  갈대꽃이 흐드러진  저곳에 묻히련다  아무도 모르게,  타는 가슴만 안고  (신석종·시인, 1958-) + 나그네 워낙 허술한 바닥이라  애당초 뿌리내리긴 힘들어  누구도 주인공은 아니야  부귀영화에 눈멀어  오점(汚點) 찍고 가면서  알속 없는 봉분(封墳)만  그리 치장하는가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나그네   그렇고말고.  나는 단지 한 사람의 나그네에 지나지 않지.  이 지상에서의 일개 순례자말이다.  자네들이라고 해서  그 이상의 존재라 할 수 있을까? (괴테·독일 작가, 1749-1832) + 길을 찾는 나그네여  나그네여  그대가 가야 할  곳도 때도 모르며  안개 속 길섶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서성이는가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것을  예부터 인간은  물으며 찾으며 그렇게 살아 왔느니  (이문호·조선족 시인) + 나그네는 새 집을 짓지 않는다     나그네는  새 집을 짓지 않는다  지금 있는 곳은  잠시 머물고 있는 곳일 뿐  때가 되면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욕심을 갖지 않는다  지금 가진 것은  잠깐 지니고 있는 것일 뿐  때가 오면 다 두고 가기 때문이다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나그네  산길 가다  산너머서 오는  나그네를 만나  어디서 오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않고  웃고만 있더라.  (이문조·시인)    + 나그네  길 너머  저편에  아무것도 없다  가야 한다  나그네는 가는 것  길에서 죽는 것  길 너머  저편에  고향 없다  내 고향은  길  끝없는 하얀 길  길가에 한 송이  씀바귀  피었다.  (김지하·시인, 1941-) + 나그네·1  언제나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나그네.  반가이  맞아주면 그뿐  무엇을 더 원하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떠도는 나그네.  개울 건너 산 넘고  휘파람을 불며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  인적이 드문 곳에  발자취를 남기는  나그네.  (이제민·시인, 충북 보은 출생) + 가을 나그네     어이 보여드려야 합니까  이 깊은 속내를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이 영롱한 속울음을  돌아서라, 돌아서라  하얗게 손 흔들어대  스산한 가슴 한 자락  여울목에 내려놓고  처연한 바람 됩니다  가을 나그네.  (강대실·시인) + 겨울 나그네  가슴이 텅 비었어요  마른 잎새 하나 달려 있는  겨울 나무처럼  칼날 바람에  하얀 눈발 날리는데  벌거벗은 나무에  걸린 초승 달  뼈다귀 앙상한  대추나무에 기대서서  눈물 글썽하게 한숨짓는  갈 길  아직도 먼  겨울 나그네 (김종익·시인) + 사랑 나그네  떠나야 할 눈물이 보일 때에는  머물지 말자.  슬픔과 기쁨이 마주할 때에도  망설이지 말자.  잊지 못하는 것은 잠시  미련은 그리운 사람의 몫이다.  보내지 못하는 사람의 아픔도  돌아보지 말고  연인의 서글픈 미소가 보일 때에도  홀연히 떠나자.  동트기 전 길을 떠나는 것은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늘 마음을 비워두고  인연을 털고 떠나는 사랑의 눈길을  기다리지 말자.  (이남일·시인, 전북 남원 출생) + 나그네 길  한 걸음 또 한 걸음  인생의 질곡을 짊어지고  힘겹게 걷는 노인  굽은 등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좌우를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 모습  무엇을 생각하며  어디로 가시는 것일까  잠시 쉬었다 가는 나그네  휘청거리는 몸  지팡이 하나에 의존한 채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  종착역이 가까운 인생 나그네  본향에서 풀어놓을  이력의 보따리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김귀녀·시인, 1947- + 나그네 길     아직은  아니라고  준비도 안 했던 청춘인데             희로애락의 시간이  모두 멈추어 버리고      빈손으로 왔다가  옷 한 벌 걸치고  떠나버린 나그네             남은 건   가족들의 울음소리만  메아리로 돌아오고  결국. 화환 하나만  덩그러니 두고서 홀연히  떠나버린 나그네             한 세상 소풍  마치는 날엔  모두가 그리움으로만 남아             고운 추억  한 아름 안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나그네길일세  (온기은·시인) + 별 하나의 나그네 되어 내 그대의 나그네 되어 그대 하늘로 돌아가리라 마지막 시대의 마지막 노래를 부르며 내 다시 창을 열고 별을 헤어보리라 함박눈이 까맣게 하늘을 뒤엎어도 그대 하늘의 가슴속으로 나는 아직 고통과 죽음의 신비를 알지 못하나 내 그대 별 하나의 나그네 되어 그대 하늘로 돌아가리라   (정호승·시인, 1950-) + 나그네       나그네의 멋은 소재所在가 없다는 거  물결 따라 구름 따라  혹은 바람 따라 가면서도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는다는 거  내 고향은 요 너머 하면서도  한번도 고향에 들르지 않는 외로움  사람을 마주 보면 외로움이 부끄럽긴 하지만  나그네는 그 멋에 지나고 나서야 후회한다는 거  가는 길 오른쪽에 바다가 나왔다가  왼쪽으로 구부러져서 박달나무  첩첩 산중으로 들어가고  그러다 저물면 동굴에 누워  시커먼 어둠에 싸여 갈 길이 막히더라도  나그네는 군소리 내지 않는다는 거  (이생진·시인, 1929-) + 나그네 조상 대대로 토지 없는 농사꾼이었다가 꼴머슴에서 상머슴까지 열 살 스무 살까지 남의 집 머슴살이였다가 한때는 또 뜬세상 구름이었다가 에헤라 바다에서 또 십 년 배 없는 뱃놈이었다가 도시의 굴뚝 청소부였다가 공장의 시다였다가 현장의 인부였다가 이제는 돌아와 고향에 황토산 그늘에 쉬어 앉은 나그네여 나는 안다 그대 젊은 시절의 꿈을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으니 보습 대일 서너 마지기 논배미였다 어기여차 노 저어 바다의 고기 낚으러 가자 통통배 한 척이었고 풍만한 가슴에 푸짐한 엉덩판 싸리울 너머 이웃집 처녀의 넉넉한 웃음이었다 그것으로 그대는 족했다 그것으로 그대는 행복했다 십 년만에 고향에 돌아와서도 선뜻 강 건너 마을로 들어서지 못하고 바위산 그늘에 쉬어 앉은 나그네여  (김남주·시인, 1946-1994)
920    푸쉬킨 / 타골 / 뚜르게네프(클릭해 보세ㅛ) 댓글:  조회:2986  추천:0  2015-04-09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Save Me From Madness, God                 시베리아 깊은 광맥속에       Message to Siberia                작은 새                             A Little Bird 타골         바닷가에                           On The Seashore                기도                                       -                 유적(遺謫)의 땅                 The Land Of The Exile                나 혼자 만나러 가는 밤       When I Go Alone at Night to My Love..                 동방의 등불                             -                 삶 - 패자의 노래                       -                             -                          On the Nature of Love                            -                          The Kiss                            -                          When and Why                내가 부를 노래-기탄잘리13       -  뚜르게네프  노인     내일,내일만은!     스핑크스                  거지     개                       둥지도 없이
919    독일 시모음(클릭해 보기) 댓글:  조회:4212  추천:0  2015-04-09
        괴테    첫사랑                               Verlust              들장미                               The HeathRose(英譯)              툴레의 임금님                     The King Of Thule(英譯)                            목자탄식의 노래                 The Shepherd's Lament(英譯)               오월의 노래                       May Song(英譯)              눈물젖은 빵을                     WHO Never Ate With Tears                         먹어본 적이 없는 자                   His Bread(英譯)               마왕                                 The Erl-King(英譯)              미뇽에게                           To Mignon(英譯)              나그네의 밤노래                 The Wanderer's Night-Song(英譯)                    신비의 합창                       Chorus Mystics(英譯)     쉴러    환희의 송가                       Ode To Joy(英譯, 獨語)              장갑                                   Der Handschuh                타향에서 온 소녀                 Das Madchen Aus Der Fremde              이상과 생명                         Ideals(英譯)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순례자 하이네    로렐라이                           Lorelei(英譯)              너는 한 떨기 꽃과 같이         Eine Blume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Wer Zum Ersten Male Liebt              내 소중한 친구여                 Teurer Freund                  원망하지 않으리                   Ich Grolle Nicht                            맹세보다는 키스를               O Schwore Nicht Und Kusse Nur              노래의 날개 위에                 Auf Flugeln Des Gesanges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Erklaerung    릴케    가을날                               Herbsttag              가을에                                 Herbst              두이노의 비가 1                     Duineser Elegien 1(英譯)              오 주여 누구에게나              당신은 미래이십니다             Du Bist Die Zukunft              고독                                     Einsamkeit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지키는 사람처럼              이웃    헤세    방랑                                     Wanderung              들을 건너서                           Felder              귀향                                     Heimkehr              가을                                     Herbst                흰구름                                 Wolken              낙엽                                     Blatt              방황                                     Auf Wanderung(英譯)              그대 없이는                           Without You(英譯)  
918    프랑스 시모음(클릭해 보기) 댓글:  조회:3901  추천:0  2015-04-09
         프랑스시 1              라마르틴                 보들레르                 랭보                                  위고                       베를렌                     구르몽    프랑스시 2              잠                           아뽈리네르             엘뤼아르                                  발레리                   꼭토                         프레베르     
917    미국 시모음(클릭해 보기) 댓글:  조회:3135  추천:0  2015-04-09
       롱펠로우        화살과 노래               The Arrow And The Song                        인생 예찬                   A Psalm Of Life                                           잃고 얻은 것               Loss And Gain                        바다의 노래               The Sound Of The Sea                        비오는 날                   The Rainy Day                                       연인의 바위                                           마을의 대장장이         The Village Blacksmith                      포우              애너벨리                   Annabel Lee                                           엘도라도                     Eldorado                        헬렌에게                   To Helen                        F--s S, O--d에게       To F--s S, O--d                        꿈                              A Dream    휘트먼           열린 길의 노래             Song Of The Open Road                                  강 건너는 기병대         Cavalry Crossing A Ford                              오! 나의 선장이여         Oh! Captain                                      낯 선 그대에게             To A Stranger                            짐승                           The Beast                              시집 '풀잎'의 서시                                             첫 민들레                        나 여기 앉아 바라보노라    디킨슨           애타는 가슴                   If I Can Stop One Heart                                 달랠 수 있있다면         from Breaking                        길에 뒹구는 저 작은 돌   How Happy Is The Little Stone                        죽음을 위해                   Because I Could Not Stop                             내가 멈출 수는 없어                         For Death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다 I Like A Look Of Agony                        내 인생은 장전된 총       My Life Had Stood-A Loaded                                                                            Gun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                                         있는 것                         황야를 본 적 없어도    프로스트        자작나무                       Birches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창가의 나무                   Tree At My Window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서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밤에 익숙해지며                         불과 얼음    에머슨           무엇이 성공인가?             This Is To Have Succeeded                        콩코오드 송가                 Sung At The Completion                                                                 Of The Concord Monument                        우화                               Fable                            로도라 꽃                       The Rhodora                         브라마                             Brahma                        각자와 모두                     Each And All     파운드           찻집                        인사                               Salutation                        소녀                                                 지하철 정거장에서             In A Station Of The Metro   
916    영국 시모음(클릭해 보기) 댓글:  조회:3355  추천:0  2015-04-09
         영국시 1           워즈워드               키츠                   E. 브라우닝                            바이런                 테니슨                 R. 브라우닝    영국시 2           쉘리                     토마스 하디         엘리어트                            하우스먼    영국시 3           쉐익스피어           던                     밀턴      
915    세계맥주 댓글:  조회:5803  추천:0  2015-04-09
        수많은 나라에 그야말로 수도 없는 맥주가 만들어지고 팔리고 있는 곳이 유럽이다. 이곳에 소개된 것들은 그나마 대한민국에 수입되는 종류가 서술되어 있으며 이마저도 사실 유럽 맥주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1.1. 독일의 맥주 독일은 맥주 항목에서 전술된 맥주 순수령 등을 통해 맥아, 홉, 효모, 물을 제외한 부재료가 들어간 맥주의 생산을 제한해 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큰 브랜드는 없지만 브랜드의 수 자체가 많다. 라거의 나라라고 할 만큼 라거가 많지만 남부 바이에른을 중심으로 한 밀맥주 또한 유명하다.         바이엔슈테판(Weihenstephan) :  바이에른 주 프라이징에 위치한 독일의 맥주 회사. 국내에는 바이엔슈테판이라는 명칭으로 발매되어 있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국립 맥주회사로 성 코르비니아노와 12인의 수도사가 725년에 설립한 베네딕트 수도원의 양조장을 시작으로 하여, 1040년에 본격적으로 양조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1000년이 넘게 이어져오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을 보유한 회사이다.  뮌헨 공과대학의 양조학 연구, 교육기관으로도 명성이 높아 전 세계의 수많은 브루마스터들이 바이엔슈테판에서 교육받았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효모은행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전 세계의 수많은 맥주 회사들이 바이엔슈테판의 효모를 사용하고 있다.  상면발효, 하면발효 가리지 않고 여러가지 스타일의 맥주를 양조하고 있지만, 주력은 밀맥주이다.  대한민국에는 헤페바이스, 크리스탈, 둔켈, 비투스 등 네가지의 밀맥주와 필스너, 오리지날, 미국의 사무엘 아담스와 같이 만드는 샴페인 에일인 인피니움이 유통되고 있다. 이 중 크리스탈은 효모를 걸러낸 크리스탈 바이스, 둔켈은 흑밀맥주인 둔켈 바이젠, 비투스는 도수가 높아진 바이젠 복, 오리지날은 헬레스 라거이다. 헤페바이스는 처음에 느껴지는 특유의 바닐라 향과 은은한 단맛, 적당한 바디감과 피니시에서 살짝 풍기는 독일산 노블 홉의 꽃과 허브, 비온 뒤 숲의 향을 갖고 있다. 바이스비어의 특징도 잘 보여주는 맥주로, 다른 헤페바이스에 비해서 맛과 향을 이루는 요소들이 잘 드러나 있으면서도 각각의 균형이 매우 뛰어나며 질감도 매우 부드럽다. 그런 이유로 헤페바이스는 맥주 평가 사이트인 BeerAdvocate에서 독일 맥주 중 부동의 평점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류 갤러리에서도 밀맥주의 甲이자 수입맥주의 끝판왕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크리스탈은 효모를 걸러낸 탓에 헤페바이스보다 가볍고 산뜻한 느낌을 주고 둔켈은 헤페바이스보다 구수하고 살짝 쌉쌀하며 캬라멜 맛이 있고, 비투스는 전체적으로 헤페바이스가 진해지고 묵직해진 맛이다. 주의할 것은 상면발효 맥주의 특성 상 온도가 차가우면 향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냉장고에서 꺼내서 바로 먹지 말고 잠시 방치하여 섭씨 8도 가량에서 마시면 특유의 향과 맛을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헤페바이스 전용잔은 물결치는 회오리 무늬로 아름답기로 유명한데다가 유리잔으로 유명한 독일 라스탈 사의 제품이므로 잔덕후들이 매의 눈으로 행사를 기다리는 품목 중 하나이다.          5,0 Original : 브라운슈바이크의 펠트슐뢰스헨 양조장에서 제조하는 맥주로, 2009년에 외팅어가 인수해 자회사가 되어 사실상 외팅어 계열 맥주로 분류된다. (참고로 독일어에서는 소숫점에 ','을 쓴다.)  2012년 들어 이마트를 중심으로 팔리고 있는데 외팅어가 한국맥주보다 약 100~200원 비싸게 파는 반면 얘는 대놓고 한국 맥주보다 싸게 판다. 아무리 비싸도 한국 맥주보다 비싸게 파는 경우는 없다. 더구나 독일에서는 대놓고 0.5유로대의 충격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그러나 저가 맥주라는 한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평이 갈린다. 현재 필스너(검은색 캔), 엑스포트(빨간색 캔), 밀맥주(옅은 주황색 캔) 세 종류가 정식으로 수입되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이것 말고도 무알코올 밀맥주, 자몽이나 레몬 과즙 섞은 맥주,  레모네이드나 콜라를 섞은 라들러 계열의 맥주도 시판하고 있다.  또 독일의 대형 마트 체인인 알디 쥐트(Aldi Sud)의 PB 상표 맥주인 '칼스크로네(Karlskrone)' 중 밀맥주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디벨스 알트(Diebels Altbier) : 전세계 알트비어 중 생산량 1위를 달리는 제품. 달리 말하면 독일에서도 1위를 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진한 색과 과일향이 특징이다. 슈마허(Schumacher), 슐뤼셀(Schlussel), 위리게(Uerige), 프랑켄하임(Frankenheim) 등 알트비어 관련 유명 브루어리에 비하면 맛이 덜하다고 한다. 맛이 좀 빠지는 맥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알트비어보다도 구하기 쉽다는 것이 장점.     가펠 쾰쉬(Goffel Kolsch) : 독일 쾰른지방의 맥주. 지역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쾰쉬 스타일의 맥주이며, 구 수하고 씁쓸한 맛이 덜하며 탄산감이 있고 깔끔한 편. 쾰쉬 중에서도 에일보다는 라거에 가까운 맥주라는 평을 듣고 있다. 깊은 맛을 기대하고 사면 실망하게 되는 맥주.         프뤼 쾰쉬(Fruh Kolsch) : 역시 독일 쾰른지방의 맥주. 홉 향이 은은하게 나고 부드러운 맛을 가지고 있다. 약간 달달한 맛도 난다. 빨간색과 하얀색이 섞인 캔 디자인이 특징이다.         뢰벤브로이(Lowenbrau) : 독일 맥주. 뮌헨에서 14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맥주이다. 잡맛이 없이 깨끗하며 맥아향이 풍부한 전형적인 헬레스 라거 타입의 맥주이다.         바슈타이너(Warsteiner) : 독일 맥주. 독일 시장 5위권 안에 들어가는 브랜드 중 하나로서, 일반적인 라거맥주인 Premium Verum과 흑맥주인 Dunkel 두 가지가 주력 상품이다. 일명 '미스 독일' 혹은 '맥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별명에 걸맞는 독일 맥주 특유의 우아한 맥아향과 깔끔한 뒷맛이 특징. Verum 기준으로 다른 독일 맥주보다는 쌉쌀한 맛이 적고 깔끔한 편이라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독일 외의 유럽지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맥주라고 한다. 실제 항공기에도 자주 탑재되는 맥주. 국내에는 신세계의 자회사인 신세계 L&B에와 계약해 대형마트 매장은 E-MART등 신세계계통에서만 판매한다. E-MART 판매 가격도 괜찮은편이라서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2013년 바슈타이너 양조장의 폐수에서 박테리아가 검출되었다는 소식 이후 이마트 내 가격이 미친듯이 하락했다(...)         벡스(Beck's) : 브레멘의 지역 맥주로 맥주병에 그려져 있는 열쇠 문장은 브레멘 시의 문장이다. 수많은 맥주가 난립하고 있는 독일 맥주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얻고 있는 맥주.  독일 내 판매량에서 항상 5위권 안에 들어가는 브랜드이다. 독일 필스너 특유의 상큼한 첫맛과 자극적인 쓴맛, 그리고 깔끔한 뒷맛을 잘 나타내주는 맥주이다. 다른 독일 맥주보다는 약간 쓴편. 알콜도수 5 %. 여담으로 벡스의 모기업은 벨기에의 거대 맥주기업 안호이저부시인베브에 피인수된 상태이다. 독일인이 맥주 맛도 모르면서 맥주 만든다고 설치는 나라 정도로 생각하는 벨기에로 벡스가 넘어가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비트부르거(Bitburger) : 독일 맥주. 독일 시장 5위권 안에 들어가는 브랜드중 하나로서, 독특한 슬림하고 길쭉한 병이 특징이다. 필스너 특유의 강한 홉의 맛과 향에 깔끔한 목넘김과 뒷맛이 특징으로서,  다른 독일 맥주에 비해 쓴맛이 적고 깔끔한 맛을 낸다. 참고로 이름 근처에 Bitte ein Bit 라는 문구를 작게 써놓았는데 이는 대략 'Please, a Bit(Bitburger)'의 의미정도가 되겠다.           스테판브로이(Stephans Brau) : 독일 맥주. 아래의 L시리즈나 5.0 시리즈처럼, 한국에선 저가 독일맥주 3대장 중 하나. 국내에선 GS25가 주로 수입해오며, 편의점에서 파는 맥주 중에선 나름 가성비가 뛰어난 편. 수입 초창기엔 2300원에 팔기도 했으며 겨울시즌에도 2500원에 팔만큼 가격 후려치기가 잘 된 편. 한국에는 라거, 필스너, 헤페바이젠, 흑맥주가 판매중이다.       슈나이더(Schineider) : 칼 자이스와 로덴스톡과 더불어 3대 광학회사로 꼽히는 그 슈나이더 말고 독일의 밀맥주 전문회사. 2011년 12월 현재 수입되고 있는 제품은 헤페바이스인 운저 오리지날과 바이젠복인 운저 아벤티누스, 클리어바이스인 마인 크리스탈, 미국 브루클린 양조장과의 협업으로 출시한 홉의 향이 강조되는 IPA 스타일과 바이스비어의 퓨전인 마이네 호펜바이세의 4종류이다. 이중 슈나이더 아벤타누스 아이스북(Schineider Aventinus Eisbook)은 도수가 무려 12%에 이르는 고알콜 맥주로서, 밀맥주의 끈적임이란 무엇인지 온 입으로 흠뻑 표현하는 점이 특징이다. 맥주통 위에 둥둥 떠다니는 얼음을 떠내어 만드는 제조법답게, 그 맛에서 밀과 알코올맛 범벅이라는 인상을 여실하게 전달해준다. 밀맥주 좋아하는 사람은 맛있게 먹을 듯. 단, 12%의 알콜이 맥주알콜로 적당한 사람 한정. 호펜바이세는 슈나이더와 브루클린에서 각각 나오는데, 슈나이더의 제품은 노블 홉의 특징이 강조되어있고 브루클린의 제품은 시트러시가 강한 미국 홉의 특징이 강조됐다고 한다.            에어딩어 바이스비어(Erdinger Weißbier) : 독일에서 바이스비어(밀맥주)로 유명한 회사로, 대표적인 독일 바이스비어 중 하나이다. 풍부한 거품과 탄산감이 특징으로, 바이스비어 특유의 느낌을 잘 맛보여주는 맥주 중 하나이지만 헤페바이스 특유의 맛과 향은 다른 헤페바이스에 비해 약한 편이며 바이스비어 중 가장 라거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다.     외팅어(Oettinger) : 독일 맥주 회사.외팅어는 2004년에 크롬바허를 제치고 독일 판매량 1위로 올라선 회사로, 저렴한 가격에 수준급의 맛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광고를 일절 안하고, 중간유통을 없앴으며, 자동화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여 저가화에 성공했다. 5,0 Original 이라는 맥주로 저가 시장에서 경쟁하던 회사를 인수하여 자회사로 두고 있기도 하다. 가끔 저가형 맥주라고 까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싸다고 해도 맥주를 물처럼 마시는 독일 시장에서 1위를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외팅어의 경우 독일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맥주를 생산한다. 심지어 무알콜제품도 있으니 선택폭이 매우 넓다. 이마트에서 외팅어의 제품들을 국산 캔맥주와 비슷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외팅어 필스너(Oettinger Pilsner) : 필스너 스타일 맥주. 전형적인 독일 필스너의 맛으로서 깔끔하고 쌉쌀한 맛을 가지고 있다.   *외팅어 익스포트(Oettinger Export) : 익스포트 스타일의 맥주. 도르트문터의 고유 스타일인 익스포트 스타일의 맥주이며 같은 라거인 필스너에 비해 홉향은 적고 맥아향이 강조되어 있다.   *외팅어 슈퍼포르테(Oettinger Superforte) : 알콜도수 8.5 %. 복맥주 중에서도 강하고 진한 맛을 자랑한다. 설탕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외팅어 헤페바이스(Oettinger Hefeweiß) : 외팅어 브랜드 내 맥주 중 가장 인기가 많은 맥주. 호가든과 먹는 방법이 같으며 맛도 비슷하지만 오렌지 향은 별로 안나고 밀맥주 특유의 향이 강하며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한번 필터로 거른 후 다시 효모를 첨가하는 호가든과 달리 필터를 원래부터 거치지 않은 것이 특징.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외팅어 브랜드의 맥주로서, 가격이 다른 수입맥주에 비해서 싼 편이다. 다만 2010년대 들어 무슨 이유인지 외팅어 필스너는 있지만 외팅어 헤페바이스는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2012년에는 이마트에서 자주 들여온다. 특이사항(?) 으로 국군복지단에서 판매하는 수입 맥주 중 하나로써 보통 PX보단 마트에서 찾을수 있다. 덕분에 맥주덕후 직업군인에게 있어선 오아시스같은 존재다.         카나비아(Cannabia) : 독일 맥주. 1996년이라는 비교적 최근에 웰빙 바람을 타고 나온 유기농 맥주이다. "카나비아"라는건...그렇다! 카나비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런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대마에서 추출한 성분을 첨가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그걸 제외하면 전형적인 독일 맥주이며, 크롬바허와 비슷한 느낌이다. 한국에 소량 정식 수입되고 있으며, 홍대 인근의 몇몇 바에서 취급 중. 클럽에서 손에 한병 들고 마시면 간지가 난다 카더라.         크롬바허(Krombacher) : 독일 맥주. 독일 시장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맥주다. 한국의 수입상은 크롬바커라고 부르고 있다. 독일 필스너 특유의 느낌을 잘 나타내주며, 맛은 쌉쌀함이 강한 편이다. 다른 독일 맥주보다는 탄산이 좀 더 많아 '톡쏘는 맛'이라는 고정관념도 충족시켜준다. 쓴 맛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독일 맥주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맥주. 은근히 할인매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맥주 중 하나로, 330ml 병 기준 대략 3천원 안팎의 가격으로 판다. 알콜도수는 4.8%. 가장 유명한 필스너 외에도 둥켈, 밀맥주(바이스비어)도 있는데, 바이스비어의 경우 싸지 않은 가격 때문에 파울라너, 에어딩어, 바이엔슈테판에 좀 밀리는 이미지다.           파울라너(Paulaner) : 독일 맥주. 바이엔슈테판이나 에어딩어처럼 밀맥주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다. 상기한 두 회사의 헤페바이스와 비교하면 특유의 맛과 향이 가장 진하다. 맛과 향의 강도를 보면 파울라너>바이엔슈테판>>>에딩거 정도. 가격대가 상기 브랜드보다 약간 저렴한데다가, 할인마트의 세계 맥주 할인 행사시 꽤나 자주 세일 목록에 오르는 맥주인지라 약간의 정보 수집과 함께 적절히 발품만 팔아주면 상당히 싼 가격에 구입 할 수 있다는 점이 꽤나 매력적이다. 덕분에 밀맥주에 관심이 생겼다면 입문용으로 사서 마시기 가장 좋은 브랜드라 평가받는다. 문제는 맛도 좋고 평판도 좋은 탓에 할인 행사시 품절크리를 빠르게 자주 맞는다는 점이 좀 안습. 행사 때면 아예 박스째로 실어 가는 사람도 있다.       호프브로이(Hofbrau) : 독일 맥주. 뮌헨에서 생산되며 독일 여행시 필수코스로 취급받는 호프브로이하우스로 유명하다. 바이에른 지역 맥주답게 밀맥주의 퀄리티가 상당히 좋다. 한국에서는 밀맥주하면 파울라너를 먼저 꼽지만 정작 뮌헨에서는 호프브로이와 뢰벤브로이 그리고 바이엔슈테판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국내에서도 호프브로이 생맥주를 취급하는 곳이 간간히 생겨나고는 있지만 가격은 후덜덜하다.           L : 최근 롯데마트에서 반값 수입맥주라면서 들여놓기 시작한 독일맥주. 바이젠(밀 맥주), 다크(흑), 라거의 세 종류가 있는데 외팅어랑 가격이 똑같다.  사실 외팅어와 롯데가 합작해서(라고쓰고 롯데는 포장만)만든 제품으로 바이젠은 약간 맛이 연한 편이며 라거의 경우 살짝 달달한 느낌이 들어서 호불호를 타는 편이다. 세븐일레븐에도 판매를 시작하였다.      1.2. 체코의 맥주  지리적인 인접성도 있고 해서 독일과 유사하게 보리나 밀맥아 향이 충실한 특성을 가진다. 물론 독일의 아류는 아니며, 하면발효 타입 중에서도 가장 밝은 색을 갖는 종류인 필스너는 체코의 플젠 지방에서 유래했다.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 체코의 맥주. 본래 발음은 "필스너 우르크벨"에 가깝다. 도수는 4.4%이다. 필스너 본연의 잘 조화된 보리맛과 엄선된 특별한 홉의 매력적인 쓴맛과 복잡한 향이 특징이다. 필스너를 처음 제조한 체코의 양조장에서 제조한 맥주인데, 처음 개발할 당시에는 '필스너'는 이 맥주만을 가리키는 상표였지만, 독일 및 다른 유럽 지역에서 제조법을 털어서 맥주를 만들어서 너도나도 필스너라는 상표를 붙여 팔자 나중에는 그냥 상표가 아니라 맥주 종류를 의미하는 말이 되어 버린다. 필스너가 최초의 라거 맥주이므로 필스너 우르켈은 현존하는 모든 라거맥주의 원형이 된다. 필스너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체코의 플제니(Plzeň) 지방을 독일어로는 Pilsen이라고 쓰고, 지명을 형용사화는 독일어 규칙에 따라 Pilsener가 된 것이 줄어서 Pilsner가 된 것이다. 독일의 맥주제조법과, 독일과는 다른 체코의 보리와 물, 그리고 자츠 홉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지금까지도 체코의 자텍의 자츠 홉은 노블 홉의 하나로 세계 최고 수준 홉으로 꼽힌다. 이후 체코와 독일에서 다른 필스너 계통의 맥주가 난립하여 필스너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바람에 필스너라는 단어가 홉이 강조된 라거 맥주의 종류를 가리키는 수준의 단어가 되자 독일 법원에 소송을 낸다. 그러나 독일 법원은 플제니 지방과 필스너 우르켈이 원조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용어가 맥주 맛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판결한다. 결국 자신들의 원조성을 강조하기 위해 나중에 우르퀠(original)이라는 말을 붙여 내놓는다.  홉이 강조된 필스너의 원조 답게 맥주 초보자가 접할 때는 맛이 쓰게 느껴지지만 애초에 사용된 자츠 홉이 쓴 맛이 적은 노블 홉이라서 아로마 홉이나 비터링 홉 가리지 않고 홉이 팍팍 쓰인 IPA 등에 비하면 맛이 쓰다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자츠 홉 특유의 풀 냄새와 유사하면서도 향긋하고 섬세한 아로마를 맥아의 맛과 향이 뒷받침해 뛰어난 균형을 자랑한다. 대한민국에 유통되는 값 또한 비싸지 않으며 500 ml 캔을 2500원에 파는 행사를 자주 진행하기 때문에 맥주 덕후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의 가격을 공격할 때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2013년 1월 30일에 출고가가 11.8% 인상되었다. 그래서 보통 가격으로 사기에는 만만치 않은 가격의 맥주가 되었으나 다행히 할인행사는 계속 하고있다. 다만 워낙 인기가 많아 파울라너와 함께 빠르게 품절크리를 맞는 경우를 볼 수 있으니 주의.             감브리너스(Gambrinus) : 1인당 맥주 소비량이 가장 높은 나라 체코 내에서도 맥주 시장 점유율 36.2%를 차지하고 있는 체코 대표 맥주. 깊고 풍부한 맥주 맛과 부드러운 목 넘김, 마지막은 쌉싸름한 홉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참고로 필스너 우르켈과 같은 여과시설, 충전라인을 공유한다고 한다. 국내에선 감브리너스 프리미엄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Budejovicky Budvar) : 체코의 맥주. 특이하게도 병 입구 주변을 병뚜껑까지 금박이 둘러싸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맥주인 버드와이저와 같은 이름을 쓰고 있어 명명권에 대한 분쟁이 있지만, 인지도는 버드와이저가 더 높다.  이 때문인지 병 밑면에 Budweiser Budvar라고 표기되어 있다. 100% 맥아를 사용한 필스너로 버드와이저와는 맛이 많이 다른데, 끝맛이 고소한 점은 비슷하나 보헤미안 필스너답게 라거치고는 홉향이 강하고 쌉싸름한 편이며 잘 따르면 거품도 풍성하다.  2013년 10월 홈플러스에서는 3000원대 이상인데 이마트에서는 행사 없이 2000원대라서 비교적 맥주 라인업이 빈약한 이마트를 맥덕들이 찾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스타로프라멘(Staropramen) : 필스너 우르켈, 부드바르와 함께 체코 3대 필스너로 꼽히는 맥주. 체코의 라거답게 묵직하고 쌉싸름하다가도 깔끔한 뒷맛이 일품이다. 필스너 우르켈이나 부드바르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맛은 뒤지지 않는다. 간혹 대형마트에서 1000원대에 풀릴 때가 있다.           코젤(Kozel) : 산양이 맥주잔을 들고 있는 그림이 표지에 그려져 있다. 종류가 다양하나, 현재 한국에서는 라거, 프리미엄, 다크정도만을 구할 수 있다. 이 중에서 다크(Dark)가 인기가 많다. 도수도 3.8도에 불과하고, 초콜렛 향도 많이 나기 때문에 여성들어 좋아해서 Lady's Beer라고 불린다.     1.3. 벨기에의 맥주 수도원에서 비상업적으로 제조되는 트라피스트 에일들과 역시 수도원에서 제조법을 인수받아 만들어지는 Abbey(수도원) 맥주가 유명하다. 숙성기간이 상당히 긴 맥주들이 많고, 트라피스트 에일 중 트리플, 쿼드러플 같이 10도 이상의 도수를 가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트라피스트 에일들은 맥주 덕후들의 최고의 로망이며, 트라피스트 에일 중 하나인 베스트블레테렌 12는 거의 모든 맥덕후들에 의해 최고의 맥주로 손꼽힌다. 또한 맥주 종류가 가장 다양한 국가로 유명하다.             호가든(hoegaarden) :  벨기에산 맥주. 원어 발음대로 하면 후하르덴에 가깝다.  다른 맥주와는 달리 밀이 원료로 많이 들어가 있으며 오렌지향 스파이스가 첨가되어 있어 맛이 부드럽고 향기로워 여성들도 즐겨 찾는 맥주이다. 코리앤더와 오렌지 필 향이 들어있다는 것 같다. 다만 사람에 따라 매우 싫어하기도 한다. 비단 호가든 뿐 아니라 밀맥주는 취향을 좀 타는 편. 색은 밝고 희끄무레하다. 다른 밀맥들이 탁하고 뿌옇게 진한 색을 띄는 것과는 대조된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호가든 전용잔에 따라먹는것을 추천한다. 우선 잔의 2/3 지점에 있는 선까지 호가든을 따르고 남은 1/3부분엔 맥주거품을 충분히 내어 따라야 그 맛을 제대로 즐길수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남은 효모를 따라내기 위한 것. 병을 많이 흔들어 거품을 많이 내어 따를수록 오렌지 향이 진하게 난다.  최근에는 오비에서 국내생산하는 호가든, 통칭 '오가든'이 횡행하고 있어 구입시 주의를 요한다. 수입 호가든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orz 오비 측에서는 호가든과 오가든의 맛이 다른 것은 호가든이 수입되어 오면서 맛이 변질되어 그런 것이고 오가든이 진짜 호가든의 맛이라고 하는데 사실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맥주가 와인도 아니고 맛이 비행기 좀 타고 온다고 변질하지도 않으며 (물론 술 자체가 보관시에 주의점이 있기는 하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인 사항일 뿐), 오가든에는 오렌지 필이나 향초가 들어가지 않는다. 당연히 원래 맛이라고 하는 것은 뻥이고, 비슷한 맛을 낸다고 하면 맞을 듯. 거기에다가 맥주덕후들은 국산맥아를 사용했거나 하이 그래비티 브루잉 공법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의심도 하고 있다. 호가든을 따른후 기네스를 조심스럽게 따르면 층이 분리되며 더티호라 불리우는 일종의 맥주칵테일이 된다.         듀벨(Duvel) : 벨기에 스트롱 골든 에일. 원어로는 두블에 가깝게 발음한다. 처 음 먹어봤을 때 악마의 맥주라고 불릴 만큼 맛있어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도수는 8.5도. 맛은 새콤달콤하고 첫 향은 과일 향이 난다. 알콜 도수가 높은 편이나 알콜향이 강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1~2 년 정도 숙성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와인병 사이즈 750ml짜리도 판다. 구형 750ml병은 코르크 마개가 달린 병이었는데 신형은 크기만 큰 보통 병으로 바뀌어서 아쉽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전용잔이 항아리 모양의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맥주.         레페(Leffe) : 벨기에 남부 레페 수도원에서 1152년부터 제조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맥주. 다른 맥주에 비해 도수가 약간 높다. 이는 설탕을 팍팍 집어넣어 발효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 설탕을 넣은 관계로 맛도 아주 달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제품은 레페 블론드와 브라운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레페 블론드는 라거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에일이며 6.6도의 높은 도수를 갖고 있는 맥주이다. 특유의 나무향과 톡 쏘는 맛이 특징. 레페 브라운은 레페 중에서도 오리지날로 불리우는 두벨(dubbel) 스타일로, 역시 6.5도로 도수가 높으나 쓴맛이 적고 초콜릿과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       스텔라 아르투아 (Stella Artois) : 회사명과 상표이름이 같다. 벨기에 1366년 벨기에 동남쪽의 맥주 마을로 불리는 뢰벤에서 처음 생산되었다. 유럽에서 인기있는 맥주 중 하나이며, 세계 맥주시장에서 5위에 들어가는 제품이다. 최고급 홉인 사츠(saaz)홉을 사용하며, 알콜 도수는 5.5도이며, 쌉싸름하면서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빌리안브로이(Willianbrau), 마르텐스(Martens) : 이마트에서 영어식 표기인 윌리안브로이/마튼즈라는 이름으로 수입해 자사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맥주로, 둘 다 네덜란드와 가까운 벨기에의 보홀트(Bocholt)에 있는 마르텐스 양조장에서 만든다. 빌리안브로이 브랜드로는 바이첸과 알트 에일, 다크 라거, 무알코올 네 종류가, 마르텐스 브랜드로는 필스너, 골드, 엑스포트 세 종류와 레모네이드를 섞은 저알코올 칵테일 맥주 라들러가 수입되어 시판되고 있다. 서부 독일의 알트비어 제조법으로 만드는 알트 에일의 경우, 영국산 에일의 가격이 부담스러운 이들이나 독일식 알트비어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가장 싸고 접근성 좋은 품목이다. 다만 브랜드 이름만 다를 뿐 겹치는 종류의 맥주가 몇 가지 있으니 주의. 예로 엑스포트의 경우 같은 양조장 제품임에도 담부르거(Damburger)라는 브랜드명으로 팔리는 캔 제품이 있고, 필스너도 하켄베르크(Hackenberg)라는 브랜드의 캔 제품이 따로 있다. 참고로 마르텐스 브랜드보다 하켄베르크 브랜드가 약 500원 가량 더 싸다. 500ml 캔 가격이 국산 동량 제품에 비해 저렴하며 PET병 제품의 경우 가격이 1리터에 24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성비로 인하여 지갑 얇은 맥덕후들을 만족시켜준다. 본격 할인마트 저가 맥주의 신호탄 격인 제품. 이 제품이 등장한 이후 롯데마트에서는 상술한 L 맥주를 선보였으며 홈플러스에서는 베어 비어 시리즈를 선보였다. 단, 벨기에에서 생산하는 맥주라고 하지만 벨기에 전통 맥주를 생각하면 안된다. 생산지만 벨기에일 뿐, 사실상 가까운 나라인 독일 시장을 노린 독일 맥주 스타일로 양조한 제품들이다. (다만 엑스포트의 경우 옥수수를 첨가해 만든다.) 실제로 독일의 대형 마트 체인인 알디 쥐트에서 염가에 판매하는 자사 브랜드인 칼스크로네 맥주 중 골드와 알트비어 두 종류도 마르텐스 양조장에서 제조한 것이다.     1.4. 네덜란드의 맥주 벨기에의 옆동네로 역시 독일 '맥주순수령'에 구애받지 않고 트라피스트 양조의 전통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라거가 지배하는 동네이다. 하이네켄이라는 대형 브랜드를 보유하고도 그런 이유로 벨기에보다는 존재감이 많이 약한 편.               하이네켄(Heineken) : 네덜란드의 대표적 맥주 브랜드. 네덜란드어로는 헤이너(네)켄이다. 5%와 4.3% 두가지 종류가 있다. 색이 좀 옅은 것이 특징. 증류수와 맥아를 섞은 보리, 효모로만 만들며, 효모는 1886년 것을 지금도 사용중이다. 미국인들이 버드와이저에 비해서 톡쏘는 맛이 없다고 '오줌'이라고 까기도 하는데 사실 버드와이저는 쌀맥주고, 이쪽은 역사가 있는 정통 맥주인데다가, 톡 쏘는 맛은 단지 탄산맛이고, 맥주로서는 당연히 이쪽이 제맛이 난다.  정제된 쌉쌀함의 목넘김과 묵직한 뒷맛이 그나마 대량 생산된 라거 맥주 중에선 특별한 느낌. 국산맥주 보단 당연히 맛과 향에서 월등하며 한국에선 칼스버그와 더불어 일본산 맥주들을 빼면 유럽 맥주 중에선 거의 투 TOP을 달릴 정도로 인기가 좋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대형매장이나 마트에서 할인행사도 자주 하는 편. 이마트의 경우 할인행사만 잘 잡으면 500mm 한 캔에 1500원(!?)으로 국산 맥주 쌈싸먹는 가격에 득템도 가능하다. 다만 이렇게까지 초저가 세일 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세일행사를 하면 2500원. 그래도 용량과 맛을 생각하면 국산맥주 보다 훨씬 가격대 성능비가 좋다. 일본 맥주들과 더불어 대형마트에서 국산맥주들을 밀어내고 있는  일등공신 중 하나. 하이네켄 다크라는 흑맥주도 나오고 있는데, 나쁘진 않은데 정통 흑맥주는 아니며 개량된 종류이다.  버드와이저, 호가든처럼 한때 국내에서 라이센스 생산을 하기도 했다.  OB맥주에서 1981년부터 1987년까지 국내생산을 했다.  이후 버드와이저 생산계약을 1987년에 체결하면서 한국에서의 하이네켄은 네덜란드 완제품이 수입된다.         그롤쉬(Grolsch) : 네덜란드산 맥주. 원어 발음대로 하면 흐롤스에 가깝다. 다른 라거맥주에 비해 좀더 긴 발효기간을 가진다고 하며, 하이네켄과 비슷한 느낌이나 좀더 톡 쏘는 맛이 있고 거품이 풍부한 것이 특징. 은근히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는 맥주이다.  할인매장에서 간혹 보이긴 하지만 흔하지는 않은 맥주. 바에서는 330ml가 15000원에 팔리는데  네덜란드 현지에서는 330ml 6캔(식스팩)이 5유로도 안한다...  네덜란드에서는 하이네켄보다 더 싼 맥주. 이게 널리 알려지면 아마 바에서 깽판치는 사람 많이 늘어날지도... 병마개로 된 일반적인 병과 스윙탑이라는 마개로 된 병(좌측에서 2번째)이 있는데 스윙탑 병은 엄마들이 참 좋아하신다. 스윙탑 병은 재활용이 가능하여 참기름, 들기름, 식용유, 올리브유, 간장, 각종 소스 병으로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 하지만 그롤쉬 스윙탑은 병 값 때문인지 가격이 꽤 비싸다.           테스코 라거 (Tesco Lager) : 롯데의 L과 마찬가지로 홈플러스, 원래는 영국 테스코의 PB 상품이다. 따라서 네덜란드 상품으로 놓기는 애매하지만 아무튼 원산지는 네덜란드이다. 요즘은 홈플러스에서도 보기 힘들다.     1.5. 영국과 아일랜드의 맥주 포터와 스타우트로 유명한 영국과 아일랜드는 전세계적인 라거 열풍에 힘입어 라거의 점유율이 높다. 그렇지만 이 두 국가의 에일에 대한 애정은 지금도 높은 편으로, 영국은 한때 수익성 문제로 에일 맥주가 대부분의 펍에서 퇴출될 뻔 했다. 에일을 지키기 위한 시민 단체가 출범하고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영국은 에일 맥주를 지킬 수가 있었다.           기네스(guinness) : 스타우트(Stout)의 한 종류로 아일랜드산의 유명한 브랜드로, 기네스로 인해 아일랜드의 스타우트가 포터를 압도할 수 있게 되었다.  흑맥주 중 하나로, 꽤 씁쓸하면서도 달콤 쌉싸름한 맛을 가지고 있다. 만들 때 보리를 볶아서 쓰기 때문에 색이 까맣고, 흑맥주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거품이 마치 크림 같으며 향이 오래 가는 좋은 술. 다양한 계열상표를 가지고 있다. 일단 국내에서 판매하는 병/캔맥주는 Draught(보통 알콜 도수 4.3도)가 대부분인데, Original(4.3도)과 Foreign Extra(7.5도), 그리고 온갖 계열이 더 있다. 도수가 8도 가량 되는 것도 있다. 한국에 수입되지 않는 종류들의 경우는 맛이 매우 독특하므로 취향을 탈 소지가 있고, 혹자는 '한약 맛'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맛들이면 Draught나 다른 흑맥주류가 물처럼 느껴지게 된다. 기네스 맥주 캔 안에는 위젯이란 플라스틱 공이 하나 들어 있다. 캔을 따는 순간 압력차로 공 안의 질소 가스가 뿜어져나옴으로써 기네스 특유의 크림 거품을 만들어낸다. 특허가 걸려 있는 물건으로 개발에 100억 정도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계열사가 된 킬케니 맥주에도 같은 위젯이 들어가 있다. 기네스 처음 마셔보는 사람은 이걸 이물질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병 안에는 로켓이라고 하여 길쭉한 모양으로 같은 역할을 하는 물건이 있었는데, 2012년 이후에는 없어진 듯 하다. 한편 좋은 맥주잔에는 레이저로 에칭 무늬를 박아 넣어 비슷한 효과를 얻기도 하는데  위젯의 질소가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거품과는 좀 다르다. 직접 컵에 따르면 안쪽 면에서 폭포수처럼 거품이 아래로 흐르는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이는 같은 기술을 쓰는 킬케니도 동일. 폭포가 진정된 후 조금 더 따르면 한 잔이 완성된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18세기 후엽 들어 처음 만들기 시작했는데, 만든 사람 이름이 아서 기네스라서 기네스 맥주다. 아서 기네스는 1759년에 버려진 양조장을 1년에 45파운드씩 9천년(!?)간 임대 계약을 체결한다. 그 뒤에 10년간 동네 양조장으로 활동하다가 영국으로 수출을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참고로 기네스 가문은 아일랜드 토박이였는데도 카톨릭이 아니라 개신교를 믿고 잉글랜드쪽에서도 거의 지배층으로 푸시를 해줬기 때문에 아일랜드인들이 독립을 외치던때 가문의 사람들이 죽는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호가든을 따른후 기네스를 조심스럽게 따르면 층이 분리되는데 이것이 바로 더티호 라 불리우는 일종의 맥주칵테일이다.           뉴캐슬 브라운 에일(Newcastle Brown Ale) : 영국산 맥주. 뉴캐슬 지방에서 만들었던 맥주이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영국의 펍에서 상당히 인기있으며 생맥주로도 파는 듯. 전체적으로 깔끔한 맛이며, 쓴 맛이 억제된 고소한 맛이 난다. 병의 로고나 디자인이 굉장히 투박하게 생겼다. 한국에서는 상당히 구하기 어려운 편에 속했으며, WABAR 같이 브랜드화된 수입맥주가게에서는 목록에만 있을 뿐 구비되어 있지는 않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대형마트 주류코너라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맥주가 되었다. 다만 국내 대형마트에서 5000원 이상에 풀리고 있어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다.         풀러스 런던 프라이드(Fuller`s London Pride) : 영국산 맥주. 페일 에일이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잉글리시 에일인 만큼 맥주 애호가라면 꼭 한번 마셔보자. 일반적인 라거보다 향이 풍부하고 진하며,(색도 진하다) 탄산이 덜하다. 처음 마시면 아마 스타우트나 밀맥주를 마실 때의 느낌 정도만큼의 '이게 맥주 맛이야?' 하는 놀라움을 겪을 것이다. 안주 없이 플랫한 잔에 따라 마시는 걸 추천. 단, 국내에서는 영국 에일의 본좌급으로 취급되나, 실제 영국 현지에서는 워낙 에일 종류가 많은 탓에 별로 대단한 맥주는 아니라고 한다. 드래프트(생맥주)로 마시면 특유의 달콤한 보리향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테넌트(Tennents) : 셀틱의 스폰서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산 맥주.           스미딕스(Smithwicks) : 아일랜드산 맥주. 아이리시 에일이다. 1710년부터 생산했으며, 아이리시 에일 특유의 붉은 빛을 띄고 있는 것이 유명하다. 캔부터 빨간색. 도수는 3.8%. 은근히 구수하고 진한 맛을 가지고 있다. GS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비치해두고 있다.             브루독(Brew Dog) : 스코틀랜드의 크래프트 맥주 제조사로, 여러 희한하고 정신나간 맥주를 제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본적으로는 브루독의 대표적인 맥주인 펑크 IPA(Punk IPA)나 테스코와 제휴하여 한국 홈플러스에도 수입되고 있는 하드코어 IPA(Hardcore IPA)처럼 정상적인 맥주도 만든다. 그러나 비아그라가 들어간 맥주를 만든다던가  30도가 넘어가는 맥주를 만들더니 42도짜리 맥주까지 만들고, 이 때문에 건강을 해치는 술을 만든다고 욕을 먹자 조롱하는 듯 1도짜리 맥주를 만드는 등 기행을 일삼는 브루어리. 코어 제품은 몇 개 안되고 여러 한정 제품을 만들며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며, 아예 한번 만들어서 병입 후 다시 만들지 않는 Abstrakt 시리즈도 존재한다. 뛰어난 맥주도 여럿 만들어서 맥덕들 사이에서는 나름 호평을 받고 있으며, 가끔 뛰어난 한정판은 재생산 요청을 받기도 한다고.           영스 더블 초콜렛 스타우트(Young's Double Chocolate Stout) : 영국산 맥주로 스타우트 스타일의 맥주지만 이 맥주는 양조 시 맥아의 잔당을 많이 남기는 스위트 스타우트(Sweet Stout)로 구분되며 기네스와 같이 잔당을 적게 남기는 드라이 스타우트(Dry Stout)와는 약간 다른 스타일의 맥주이다. 이름에 더블 초콜렛이 들어간 이유는 초콜렛 몰트와 진짜 초콜렛을 집어넣었기 떄문에 더블 초콜렛 스타우트라고 불리우며 실제로도 은은한 단맛과 함께 커피와 비슷한 느낌의 진한 다크초콜릿의 풍미를 맛볼 수 있다. 캔 버전과 보틀 버전이 있으며 캔 버전은 기네스와 같은 질소 위젯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더 부드러운 초콜릿의 풍미를 강조시켜준다.            올드 스펙클드 헨(Old Speckled Hen) : 영국산 맥주로 런던 프라이드와 같은 계통의 잉글리시 에일이다. 런던 프라이드와 마찬가지로 매우 달콤한 보리향을 내는 진중한 스타일의 잉글리시 페일 에일이며 홉의 씁쓸함과 진한 몰트향의 균형이 절묘한 페일 에일이다. 기네스와 마찬가지로 보틀은 탄산이 들어가 있으며 캔 버전은 캔 밑바닥에 질소 발생장치가 들어있어 잔에 맥주를 따르면 기네스 폭포와 같은 질소가스의 대류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1.6. 기타 유럽의 맥주     에델바이스 바이스비어 스노우프레시(Edelweiss Weißbier Snowfresh): 오스트리아 맥주. 병 옆에 알프스산이, 병 아래에는 에델바이스 꽃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오가든이 되어버린 호가든의 대체제로 많이 찾아, 호가든과 비슷한 벨기에 밀맥주 계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독일의 바이스비어에 허브가 첨가한 것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밀맥주 특유의 풍부한 맛과 상큼한 향에, 알프스 허브가 첨가되어 박하향이 나는것이 특징이다. 이 향이 특이해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척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풍선껌 향이라거나 역한 향이 난다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위스에서 인기있는 브랜드라고 한다. 병뚜껑이 보통 맥주 모양이지만 돌려서 딸 수 있다.           지퍼(Zipfer): 오스트리아 맥주. 일반적인 맥주병과 달리 주스병처럼 라벨로 뚜껑부분까지 감싸야 있는 것이 특징으로, 뚜껑 부분을 잡고 돌려 딸 수 있게 되어있다. 5.4%로 일반 맥주보다 약간 강하며 유럽 맥주 특유의 진하고 강한 맛이 특징이다.            크로넨버그 1664(Kronenbourg 1664): 프랑스산 맥주. 알자스-로렌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양조된다. 1664는 양조장 설립년도를 뜻한다. 프랑스 맥주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는 맥주라고 한다. 기본 라거와 블랑(Blanc), 두 종류가 있으며 라거는 옥수수가 첨가된 평이한 맛. 이쪽은 한국에서는 행사를 하지 않는 이상 보통 3500원 이상이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다. 블랑(blanc)은 밀맥주로 특이하게도 병이 파란색이다. 코리앤더와 오렌지 껍질이 함유돼있어 독특한 맛이 나는데, 쉽게 말해서 호가든의 그 맛에서 코리앤더 향이 첨가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병도 예쁘고 가볍게 즐길 수 있어 비교적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맥주. 다만 코리앤더 향이 강해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KEO : 키프로스산 맥주. 지중해에 있는 나라라 부드러운 맛의 이미지가 있지만, 필스너 스타일의 라거 맥주이기 때문에 씁쓸한 맛이 강하다. 다만 맛의 깊이는 독일이나 북유럽 맥주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           에페스(Efes) : 터키산 라거 맥주로 1960년대 맥주업에 뛰어든 처음에는 당연히 제조기술과 경험이 부족하여 프랑스 기술력과 합작을 해야 했지만 이젠 독자적으로 제조하고 있다. 유럽에서 열린 맥주 페스티벌에서 우승도 하며 이슬람 국가에서 만드는 맥주 중에 가장 맛이 괜찮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유럽에서도 구하기 쉬운 맥주로 Efes 그룹은 유럽에선 5번째로, 전 세계적으로 12번째로 규모가 큰 맥주 그룹으로 클 정도이다. 몰도바,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세르비아, 러시아에서는 판매율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이며 러시아 맥주인 스타리 멜닉 (Stary Melnik)을 인수했다. 전 세계 90여 개 나라에 수출되다 보니 한국에도 수출되어서 홈플러스나 수입주류 가게에서 구할 수 있다. 그 밖에 터키와 덴마크가 합작해 만든 회사인 튀보르그(Tyborg)맥주도 국내에 수입되고 있다.           빡세(FAXE) : 10도의 소맥에 근접하는 그야말로 빡세(?)고 빨리 취하는 덴마크의 맥주. 표지에도 아주 마초스럽게 도끼를 휘어잡은 바이킹들이 근육을 뽐내며 배를타고 호쾌하게 항해하며 야만족을 때려잡고 있다. 도수는 쎈편이지만 마실 때는 크게 부담이 안되며 탁월한 독일 캔맥주의 맛이 난다. 즐거운 맛으로 빨리 취해서 빨리 맛이갈 수 있는(...) 강력한 맥주. 아쉽게도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은 듯. 독일 등 북유럽 여행에서 꼭 즐겨보자.     비라 모레티 (Birra Moretti) : 이탈리아산 페일 라거이다. 하이네켄 산하 브랜드.   ☆        
914    한국 시모음(클릭해 보기) 댓글:  조회:3229  추천:0  2015-04-09
       우리詩 1             한용운               심훈               김영랑                            최남선               이상화             정지용                            변영로               김소월    우리詩 2             이육사               김동명             김남조                            유치환               윤동주             한하운                              이상                 조지훈             천상병       우리의 옛詩1       고대가요(古代歌謠)                              향가(鄕歌)                              경기체가(京畿體歌)                               고려 속요((高麗 俗謠)                                 악장(樂章)                               가사(歌辭)    우리의 옛시2       한시(漢詩)-三國                                                                 한시(漢詩)-高麗                                                             한시(漢詩)-朝鮮                              고려 時調                                                                  조선 時調        우리詩 1             한용운               심훈               김영랑                            최남선               이상화             정지용                            변영로               김소월    우리詩 2             이육사               김동명             김남조                            유치환               윤동주             한하운                              이상                 조지훈             천상병       우리의 옛詩1       고대가요(古代歌謠)                              향가(鄕歌)                              경기체가(京畿體歌)                               고려 속요((高麗 俗謠)                                 악장(樂章)                               가사(歌辭)    우리의 옛시2       한시(漢詩)-三國                                                                 한시(漢詩)-高麗                                                             한시(漢詩)-朝鮮                              고려 時調                                                                  조선 時調  
913    명시인 - 디킨슨 댓글:  조회:4661  추천:0  2015-04-09
에밀리 디킨슨 1830-1886   미국 시인   미국의 여성 시인. 매사추세츠 주 에머스트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일생 동안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지냈다.   에머스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마운트 홀리요크 신학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시쓰는 일에 전념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처자가 있는 목사와의 사랑이 실연으로 끝나자 그녀의 시적 재능은 둑을 터뜨린 봇물처럼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녀가 쓴 시 1775편 가운데 생전에 발표된 것은 단 7편에 불과하다.     그녀의 시는 자연과 사랑 외에도 퓨리터니즘을 배경으로 한 죽음과 영원 등의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운율에서나 문법에서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19세기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미지즘과 형이상학파적 시의 유행과 더불어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작품으로는 〈상처난 사슴은 높이 뛴다〉 등이 있다.   주요저서 : 《전시집(全詩集)》(1855) 《전서간집 (全書簡集)》(1858)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헐떡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길에 뒹구는 저 작은 돌     길에서 혼자 뒹구는 저 작은 돌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 출셀랑 아랑곳없고 급한 일 일어날까 두려움 없네   천연의 갈색 옷은 지나던 어느 우주가 입혀줬나   혼자 살며 홀로 빛나는 태양처럼 다른 데 의지함 없이   꾸미지 않고 소박하게 살며 하늘의 뜻을 온전히 따르네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그가 나를 위해 친절히 멈추었다.   마차는 바로 우리 자신과 불멸을 실었다.     우리는 서서히 달렸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가 너무 정중하여   나는 일과 여가도 제쳐놓았다.     아이들이 휴식 시간에 원을 만들어 뛰노는 학교를 지났다.   응시하는 곡식 들판도 지났고 저무는 태양도 지나갔다.     아니 오히려 해가 우리를 지나갔다. 이슬이 스며들어   얇은 명주, 나의 겉옷과 명주 망사-숄로는 떨리고 차가웠다.     부푼 둔덕처럼 보이는 집 앞에 우리는 멈추었다.   지붕은 거의 볼 수 없고 박공은 땅 속에 묻혀 있었다.     그 후 수 세기가 흘렀으나 말 머리가 영원을   향한듯 짐작되던 바로 그 날보다 더 짧게 느껴진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아. 그것이 진실임을 알기에-   사람은 경련을 피하거나 고통을 흉내낼 수 없다.     눈빛이 일단 흐려지면-그것이 죽음이다. 꾸밈없는 고뇌가   이마 위에 구슬땀을 꿰는 척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 인생은-장전된 총     내 인생은 - 장전된 총으로 구석에 서 있던- 어느 날   마침내 주인이 지나가다- 날 알아보고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국왕의 숲을 헤매면서 사슴사냥을 하고 있다.   내가 주인 위해 말할 때마다- 산들이 당장 대답한다.     내가 미소지으면 힘찬 빛이 계곡에서 번쩍한다.   베수비어스 화산이 즐거움을 토해내는 듯하다.     밤이 되어 멋진 하루가 끝나면 나는 주인님 머리맡을 지킨다.   밤을 함께 보내다니 푹신한 오리 솜털 베개보다 더 좋다.     그분의 적에게- 나는 무서운 적이다. 내가 노란 총구를 겨누거나   엄지에 힘을 주면 아무도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한다.     비록 그분보다 내가- 더 오래 살지 모르나 그분은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한다.   나는 죽이는 능력은 있어도 죽는 힘은 없으므로-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영혼 속에 머무르면서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면서 결코 멈추는 일이란 없다.     광풍 속에서 더욱더 아름답게 들린다. 폭풍우도 괴로워 하리라.   이 작은 새를 당황케 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었는데.     얼어들 듯 추운 나라나 멀리 떨어진 바다 근처에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 한 번이라도 빵조각을 구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황야를 본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히드 풀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파도가 어떤 건지 알고 있다오.     나 아직 하느님과 말 못 했어도, 저 하늘 나라에 간 적 없어도,   지도책을 펴놓고 보는 것처럼 그 곳을 자세하게 알고 있다오        
912    명시인 - 에머슨 댓글:  조회:4299  추천:0  2015-04-09
무엇이 성공인가                (미국)- 에머슨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 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의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This Is To Have Succeeded                - Ralph Waldo Emerson  To laugh often and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ople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eciation of honest critic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that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 콩코오드 송가                      - 에머슨 강 위에 걸친 조잡한 다리 옆에 그들의 기는 4월의 미풍 맞아 펼쳐졌도다. 여긴 예전에 무장한 농부들 진을 치고 온 세상 뒤흔든 총을 쏘았던 곳. 적군은 오래 전에 말없이 잠들고 승리자 또한 고이 잠들었노라. '시간'은 무너진 다리를 휩쓸고 내려가 캄캄한 강물 따라 바다로 흘러들었다. 이 조용한 강물 옆 푸른 방죽 위에 오늘 정성어린 비석을 세우노니 우리의 조상처럼 우리 자손이 저승으로 떠난  날에도 그들의 공적 기릴 수 있도록 그들 영웅들을 과감히 죽게 하고 그들의 자손을 자유롭게 한 정령이여, '시간'과 '자연'에 명하사 영웅들과 그대 위해 세우는 이 탑 고이 간직케 하옵소서! Sung At The Completion Of The Concord Monument                           - Ralph Waldo Emerson    By the rude bridge that arched the flood, Their flag to April's breeze unfurled, Here once the embattled farmers stood, And fired the shot heard round the world. The foe long since in silence slept; Alike the conqueror sleeps;  And Time the ruined bridge has swept Down the dark stream that seaward creeps. On this green bank, by this soft stream, We set today a votive stone; That memory may their deed redeem, When, like our sires, our sons are gone. Spirit that made these heroes dare To die, or leave their children free, Bid Time and Nature gently spare  The shaft we raise to them and thee.   우화                  - 에머슨 산과 다람쥐가  시비를 벌였다.  "이 눈꼽만한 건방진 놈아"  하고 산이 부르자, 다람쥐 녀석이 대답한다. "너는 크기야 무척 크다. 그러나 삼라 만상과 춘하 추동이 한데 합쳐져야 1년이되고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차지하는 위치를 부끄럽게 생각 않는다. 내가 너만큼 크지 못하지만, 네가 나만큼 작지도 못하고, 내 반도 날쌔지 못하지 않냐. 물론 네가 나에게  매우 아름다운 길이 되어 주긴 하지만. 재능은 각자 다르다.만물은 잘, 현명히  놓여있다. 내가 숲을 짊어질 순 없지만, 너는 밤을 깨지는 못한다." Fable                  - Ralph Waldo Emerson The mountain and the squirrel Had a quarrel, And the former called the latter, "little prig":  Bun replied, You are doubtless very big, But all sorts of things and weather Must be taken in together To make up a year, And a sphere. And I think it no disgrace To occupy my place. If I'm not so large as you, You are not so small as I, And not half so spry: I'll not deny you make A very pretty squirrel track; Talents differ; all is well and wisely put; If I cannot carry forests on my back, Neither can you crack a nut.   로도라꽃                  - 에머슨   오월,해풍이 이 벽지에 불어 들 때  나는 갓 핀 로도라꽃을 숲속에서 보았다. 그 잎 없는 꽃이 습지의 한 구석에 피어 황야와 완만한 강물에 기쁨을 주고, 웅덩이에 떨어진 자줏빛 꽃잎은  그 고운 빛깔로 시커먼 물을 환하게 했었다. 여기에 홍작이 깃을 식히러 와서 새의 차림을 무색케하는 그 꽃에 추파를 던질지도. 로도라여, 만일 사람들이 너에게 물어  왜 이런 아름다움을 이 땅과 이 하늘에 헛되이  버리느냐 하거든, 그들에게 일러라, 만일 눈이 보라고 만들어 진 것이라면, 아름다움에는 그 자체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왜 너는 여기에 나타났느냐? 장미의 적수여 나는 물을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의 단순한 무지로 추측컨대, 나를 생기게 한 바로 그 '힘'이 너를 생기게 했으리라. The Rhodora                    - Ralph Waldo Emerson On Being Asked, Whence Is The Flower? In May, when sea-winds pierced our solitudes, I found the fresh Rhodora in the woods, Spreading its leafless blooms in a damp nook, To please the desert and the sluggish brook. The purple petals fallen in the pool Made the black water with their beauty gay; Here might the red-bird come his plumes to cool, And court the flower that cheapens his array. Rhodora! if the sages ask thee why This charm is wasted on the earth and sky, Tell them, dear, that, if eyes were made for seeing, Then beauty is its own excuse for Being; Why thou wert there, O rival of the rose! I never thought to ask; I never knew; But in my simple ignorance suppose The self-same power that brought me there, brought you.  브라마(梵天)                  - 에머슨  붉은 피에 젖은 살인자가 자신이 살인자임을 생각하거나, 피살자가 자신이 피살자임을 생각한다면, 나 브라만이 만들고, 지나다니고, 다시 되돌리는 불가사의 한 길을 그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이라. 멀거나 잊혀진 것도 내게는 가까이 있으니 빛과 그림자가 그런 것 같음이라. 사라진 신들도 내게는 보이고 명예와 수치도 내게는 하나이니라. 내게서 떠나는 자는 잘못 아는 것이니 멀리 날아가 도망친다 할지라도 그 날개 자체가 나이기 때문이니라. 나는 의혹이며 묻는 자이니 브라만이 부르는 노래이니라. 강한 신들도 나의 처소를 그리워하고 성스러운 일곱 존자들도 헛되이 동경하느니라. 그러나 선한 것을 사랑하는 겸손한 자여, 나를 찾고 경외하라. BRAHMA                    - Ralph Waldo Emerson If the red slayer think he slays,    Or if the slain think he is slain, They know not well the subtle ways    I keep, and pass, and turn again. Far or forgot to me is near;    Shadow and sunlight are the same; The vanished gods to me appear;    And one to me are shame and fame. They reckon ill who leave me out;    When me they fly, I am the wings; I am the doubter and the doubt,    And I the hymn the Brahmin sings. The strong gods pine for my abode,    And pine in vain the sacred Seven; But thou, meek lover of the good!    Find me, and turn thy back on heaven. Each And All                   - Ralph Waldo Emerson                                                       LITTLE thinks, in the field, yon red-cloaked clown Of thee from the hill-top looking down; The heifer that lows in the upland farm, Far-heard, lows not thine ear to charm; The sexton, tolling his bell at noon, Deems not that great Napoleon Stops his horse, and lists with delight, Whilst his files sweep round yon Alpine height;  Nor knowest thou what argument  Thy life to thy neighbor's creed has lent. All are needed by each one; Nothing is fair or good alone. I thought the sparrow's note from heaven, Singing at dawn on the alder bough; I brought him home, in his nest, at even; He sings the song, but it cheers not now, For I did not bring home the river and sky;-- He sang to my ear,--they sang to my eye.  The delicate shells lay on the shore; The bubbles of the latest wave Fresh. pearls to their enamel gave, And the bellowing of the savage sea Greeted their safe escape to me. I wiped away the weeds and foam, I fetched my sea-born treasures home; But the poor, unsightly, noisome things Had left their beauty on the shore With the sun and the sand and the wild uproar. The lover watched his graceful maid, As'mid the virgin train she strayed, Nor knew her beauty's best attire Was woven still by the snow-whitsaid, 'Ie choir. At last she came to his hermitage, Like the bird from the woodlands to the cage;-- The gay enchantment was undone, A gentle wife, but fairy none. Then I said,'I covet truth; Beauty is unripe childhood's cheat; I leave it behind with the games of youth:'-- As I spoke, beneath my feet The ground-pine curled its pretty wreath, Running over the club-moss burrs.  I inhaled the violet's breath; Around me stood the oaks and firs; Pine-cones and acorns lay on the ground;  Over me soared the eternal sky, Full of light and of deity; Again I saw, again I heard, The rolling river, the morning bird;-- Beauty through my senses stole; I yielded myself to the perfect whole      각자와 모두     저 들판의 붉은 코트 어릿광대는  그대가 산꼭대기에서 보고 있는 걸 생각지도 못하며;    저 멀리 고원목장 어린 암소의 아득한 울음소리 그대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 아니고;    교회종지기가 울리는 정오의 종소리 또한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온과 그의 군대     말을 멈춰 그 소리에 귀기울여  즐겁게 들을 거라 생각지도 않으며;    그대 인생이 그대 이웃 읊조리는 사도신경에  어떤 도움을 줄 건지 알지 못할지라도    모든 것은 각각에게 필요한 것이며  제 홀로 유익하거나 정당한 것 아무것도 없나니     나는 새벽 오리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  참새 소리를 천국의 것으로 여겼도다.    저녁때 참새 둥지 채 옮겨 집에 두었는데; 녀석은 노래 부르지만 즐겁지가 않네,    강과 하늘을 가져오지 않아서 그런가봐 새는 내 귀에, 모두는 내 눈에 노래했던 거라네.    깨질 듯 아름다운 조개들 바닷가에 있어, 파도의 거품들이 금방 밀려와     그 속 진주들 화려한 광택 빛나게 하고 사나운 바다는 포효하는 굉음을 내면서    나로부터 벗어나며 인사를 하네  나는 해초와 거품을 걷어내어    바다의 보물들을 집으로 가져왔지만 초라하고 보기 싫은 하찮은 것들이 되었네    태양과 모래와 파도소리의 아름다움을 바닷가에 두고 와서 그런가봐..    연인은 그 우아한 소녀를 눈여겨 보며  처녀들의 행렬에서 뒤 처지기를 기다렸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백설' 성가대에 계속 묶여있을 것같았네      마침내 그녀를 그의 외딴집에 데려왔는데  숲속 새를 새장 속에 넣은 것 처럼    얌전한 아내 되었지만 우아한 멋 없어지고  쾌활하고 황홀한 매력 또한 사라졌네     그래서 난 진리를 갈망한다고 말했는데  아름다움은 미숙한 어린애의 속임수며     청춘의 유희로 끝나버린다고; 또 난 말했네, 내 발 밑 땅바닥의 소나무는    화환처럼 둥근 원을 그리며 이끼 낀 돌 막대 위로 뻗어 있고      나는 제비꽃 향기를 마시네; 내 주위에 참나무와 전나무들이 둘러 서있고     솔방울과 도토리들은 땅바닥에 구르고; 빛과 신성이 가득차고 충만한 영원한 하늘은    내 머리 위 높이 솟아 있네; 나는 다시 보았고, 다시 듣게 되었다네.    출렁이는 강물과, 새벽녘 새의 노래를.    아름다움이 몰래 내 감각 속으로 파고들어 나는 그 완벽한 조화에 굴복하고 말았다네.     
911    고대 로마 시인 - 호라티우스 댓글:  조회:4838  추천:0  2015-04-09
호라티우스 Quintus Horatius Flaccus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출생 BC 65. 12, 이탈리아 베누시아 사망 BC 8. 11. 27, 로마 국적 로마 로마에서 활동한 서정 시인, 풍자작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로마에서 활동한 뛰어난 서정 시인이자 풍자작가이다. 브루투스 진영에서 군대 호민관으로 활동하다가 패한 뒤 이탈리아로 도주한 호라티우스는 이후 금고 서기직을 맡아 일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즈음 문인 마이케나스를 만나게 되는데, 그를 통해 옥타비우누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무렵 호라티우스는 제1권과 17편의 를 쓰고 있었다.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무찌른 뒤에는 와 제2권을 발표했고,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와 함께 지위를 굳히자 로 방향을 바꿔 88편의 짧은 시로 이루어진 3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아우구스투스가 ‘100년제’라고 부르는 고대 축제를 되살리자, 를 지었다. BC 8년 아우구스투스를 상속자로 지명한 뒤 세상을 떠났다.   원본사이즈보기 호라티우스 호라티우스, 청동 메달(4세기) 그의 〈송가 Odes〉와 운문 〈서간집 Epistles〉에 가장 자주 나오는 주제는 사랑과 우정, 철학 및 시론이다(→ 색인 : 아우구스투스 시대). 호라티우스는 아마 이탈리아 중부 산악지방에 사는 사벨리인이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노예였지만, 호라티우스가 태어나기 전에 자유를 얻어 경매인의 조수가 되었다. 그는 또한 토지를 조금 갖고 있었고, 아들을 로마로 데려가 같은 사벨리인인 유명한 오르빌리우스(호라티우스의 말에 따르면 체벌의 신봉자)의 학교에서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할 만한 여유도 있었다. BC 46년경 호라티우스는 아테네로 가서,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지는 강연을 들었다. BC 44년 3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해된 뒤, 아테네를 포함한 제국의 동부지역은 일시적으로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카이사르의 동지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및 젊은 옥타비아누스(뒤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유언장에서 외종손자인 옥타비아누스를 개인 상속자로 지명했다. 호라티우스는 브루투스의 군대에 들어가 '군대 호민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이것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민의 아들에게는 이례적인 명예였다. BC 42년 11월 필리피에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를 토벌하기 위한 전투가 2차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호라티우스와 그의 동료 호민관들은 계급이 그들보다 높은 장교가 없었기 때문에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연합 군단 가운데 하나를 맡아 지휘했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참패를 당하고 전사한 뒤, 호라티우스는 옥타비아누스가 지배하는 이탈리아로 달아났지만, 베누시아에 있는 아버지의 농장은 제대 군인들에게 정착지를 제공하기 위해 몰수된 상태였다. 그러나 호라티우스는 로마로 가서, BC 39년에 일반 사면령이 내리기 전후에 금고 서기 자리를 얻었다. 36명의 금고 서기는 비록 하급직이지만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BC 38년초 그는 가이우스 마이케나스를 소개받았는데, 마이케나스는 이탈리아 중부의 에트루리아 출신으로 문인이자 옥타비아누스의 정치 참모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호라티우스를 그와 친한 작가들의 명단에 올려놓았다. 오래지 않아 호라티우스는 마이케나스를 통해 옥타비아누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무렵 호라티우스는 〈풍자시 Satires〉 제1권을 쓰고 있었다. 6보격의 운문으로 씌어진 이 10편의 시는 BC 35년에 발표되었다. 그리스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풍자시〉에서, 호라티우스는 공직생활을 단호히 거부하고 평온함을 통해 지혜를 얻고자 했다. 그는 여기서 윤리 문제(재산과 지위를 얻기 위한 경쟁, 극단적 행위의 어리석음, 서로 관용을 베푸는 것의 바람직함, 야망의 해악)를 논하고 있다. 또한 그는 17편의 〈서정시 Epodes〉도 쓰고 있었다. 이 작품은 격한 어조의 조롱을 보여주며, 예로부터 인신 공격과 조롱에 사용된 운율을 채택했지만, 호라티우스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악습을 공격하고 있다. 이 시의 어투는 필리피 전투 이후 그가 느끼고 있던 불안한 기분을 반영한다. BC 30년대 중엽에 그는 마이케나스에게서 사비니 구릉지대에 있는 안락한 집과 농장(로마에서 북동쪽으로 35㎞ 떨어진 리첸차에 있는 언덕일 가능성이 많음)을 받았다. 이것이 선물인지 빌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집과 농장은 평생 동안 그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었다. 옥타비아누스가 그리스 북서쪽의 악티움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무찌른 뒤(BC 31), BC 30~29년에 호라티우스는 〈서정시〉와 8편의 시로 이루어진 〈풍자시〉 제2권을 발표했다. BC 27년에 승리자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와 함께 확고한 지위를 굳히자, 호라티우스는 〈송가〉로 방향을 바꾸어 BC 23년에 88편의 짧은 시로 이루어진 3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그가 작가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활발하게 시를 쓴 시기는 이때였다. 호라티우스는 〈송가〉에서 그리스 초기 서정 시인들의 후계자임을 자처했지만, 낱말을 섬세하고 절제 있게 구사하는 독특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랑과 포도주, 자연(거의 낭만적으로), 친구와 중용(그가 좋아하는 주제였음)을 노래했다. 〈송가〉의 일부는 마이케나스나 아우구스투스에 관한 것이다. 그는 아우구스투스가 다시 도입하려고 애쓰고 있던 고대 로마의 미덕을 찬양했지만, 그를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그 자신이었고, 송가를 하나의 주제나 분위기에만 한정하지는 않았다. 아우구스투스는 호라티우스에게 개인비서 자리를 제의했지만, 그는 건강이 나쁘다는 핑계로 그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거절을 괘씸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들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처음 3권의 〈송가〉 가운데 마지막 송가는 호라티우스가 그런 시를 더이상 쓰지 않을 작정이었음을 암시한다(그는 BC 23년에 시를 발표한 뒤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 실망했을 것임). 그의 서간체 시집(BC 20~19년에 발표한 제2권으로 〈풍자시〉를 좀더 성숙하고 심오하게 변형한 문학적 '편지들')에 실린 마지막 시는 '천박한' 서정시를 버리고 좀더 교훈적인 종류의 운문을 택하겠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 직후에 그는 3편의 서간체 시(첫번째 책에 실린 어떤 서간체 시보다 훨씬 긴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창작 활동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호라티우스는 모든 풍자적 요소를 버리고 부드럽게 비꼬면서도 분별 있는 태도를 취했지만, 중용을 찬양하는 진부한 말도 그의 손이 닿으면 결코 따분하지 않다. 그중 2편은 2번째 책으로 묶여 나왔고, 3번째 서간시인 〈피소 삼부자에게 보내는 편지 Epistles to the Pisos〉에는 후세 사람들이 〈시론 Ars poetica〉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마지막 3편의 서간시는 느슨하고 대화적인 형식 속에 문학비평을 싣고 있는데, 특히 〈플로루스에게 보내는 편지〉(서간체 시집 제2권 제2편)는 호라티우스가 왜 서정시를 버리고 철학을 선택했는가를 설명해준다. 훌륭한 시는 즐거울 뿐만 아니라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호라티우스는 생각했다. 좋은 글의 비밀은 지혜('미덕'이라는 뜻을 함축)이다. 시인은 자신의 가장 좋은 점을 아낌 없이 주기 위해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플로루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BC 19년에, 〈시론〉(이 책은 젊은 시인들에게 지침이 될 30여 개의 격언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BC 19~18년경에, 제1권의 마지막 서간체 시는 BC 17~15년에 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명한 이 마지막 시는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쳐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가 호라티우스에게 보낸 편지도 오늘날 남아 있는데, 여기서 황제는 그때까지 그런 헌정을 받지 못했음을 탄식하고 있다. 이 마지막 서간체 시에서 호라티우스는 로마 초기의 문학적 배경에 비추어 당시의 시가 가진 장점을 역설하고 있지만, 이것은 분명 호라티우스 자신의 방법론을 옹호한 것이다. 이무렵 호라티우스는 사실상 계관시인의 지위에 올라 있었고, BC 17년에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정권과 지난해에 주창한 도덕 개혁을 종교적으로 엄숙하게 승인할 목적으로 '100년제'(Secular Games)라고 부르는 고대 축제를 되살리자, 호라티우스는 이 축제를 위해 〈세기의 찬가 Carmen saeculare〉를 지었다. 이무렵 호라티우스는 서정시 형식으로 돌아가 있었기 때문에 이 찬가는 서정시 운율로 씌어졌다. 이어서 그는 15편의 송가로 이루어진 4번째 〈송가집〉을 완성했는데, 이 시들은 대부분 이전의 송가들보다 진지한(그리고 정치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이 시들 가운데 마지막 송가는 BC 13년에 씌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우구스투스의 참모 자리에서 물러나 있던 마이케나스가 BC 8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황제에게 마지막으로 요구한 것 가운데 하나는 "저를 기억하시듯 호라티우스를 기억해주십시오"였다. 그러나 그후 1~2개월 뒤 호라티우스도 아우구스투스를 상속자로 지명한 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에스퀼리누스 언덕에 있는 마이케나스의 무덤 근처에 묻혔다. 인생의 후반기에 호라티우스는 늘 로마에서 봄을 보냈고 다른 때도 잠깐씩 로마에 와서 지내기도 했는데, 그는 로마에 집을 한 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따금 남쪽 바닷가에서 겨울을 보냈고, 여름과 가을에는 대부분 사비니의 농장에서 보냈지만, 때로는 로마 동쪽에 있는 티부르(티볼리)나 프라이네스테(팔레스트리나)에서 지내기도 했다. 짧은 〈호라티우스 전기〉(이 전기의 내용으로 보면 분명 2세기에 활동한 전기작가 수에토니우스까지 거슬러 올라감)는 아우구스투스가 그에게 보낸 익살스러운 편지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 편지를 보면 시인은 키가 작고 뚱뚱했던 것 같다. 호라티우스 자신도 키가 작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가 44세 때 자신을 묘사한 것에 따르면, 그는 일찍 백발이 되었고, 햇빛을 좋아했으며 성미가 급해서 걸핏하면 화를 내지만 금방 화를 푸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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