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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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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    곽말약, 그 배후... 댓글:  조회:6562  추천:0  2015-04-03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곽말약은 처와 다섯 자녀를 일본에 두고 중국으로 돌아가 항일 전쟁에 참여한다. 7월25일 새벽 4시반,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제에 가서 처와 아이들에게 남기는 글을 썼다. 침실로 돌아오니, 처는 이미 깨어 있었고, 베개머리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처의 앞이마에 키스를 하였지만 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선은 그대로 책페이지에 머물러 있었다. 곽말약은 방문을 나서, 여름 밤의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전철역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 전날 밤, 처는 곽말약의 의사를 이해하고 있었으나 남편에게 경계의 말을 당부하였다: ‘당신이 가는 것은 좋다. 다만 당신의 성격은 불안정하고 어디에 잘 빠지기 쉽다. 다만 당신은 사람으로서 성실하게 살면 된다. 여기에 있는 내가 설사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견디어 내겠다’. 이 새벽 이별이 그들의 인생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안나는 곽말약의 일본인 처 사토우 토미코(佐藤富子)의 중국명이다. 안나는 1895년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에서 기독교 목사 가정에 태어났다. 안나는 기독교학교를 졸업한 다음 1916년 동경 성누가병원에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중국인유학생 곽말약을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곽말약은 오카야마(岡山) 제6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으며,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곽약말은 심신양면으로 매우 쇠약하였을 때, 그는 안나를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곽은 안나의 얼굴에서 ‘불가사의한 순결한 빛’을 보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안나는 간호원의 일을 그만두고 오카야마로 가서 곽말약과 정식으로 동거하게 된다. 1917년, 안나는 동경의 이치가야(川谷)여자의학교에 입학하였지만, 곧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학교를 한 달도 다니지 못하고 퇴학하였다. 안나라는 이름은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이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형제 자매로 호칭하기로 한 것이다. 안나의 집에서는 그가 중국인 유학생과 동거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호적에서 제거해 버렸다. 1923년 곽말약이 규슈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일가 5인을 데리고 상해로 귀국하였다. 상해에서 곽말약은 문학활동, 정치운동에 뛰어들어 수입이 거의 없었고, 안나와 3인의 자녀들은 천신만고의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안나는 자신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자녀 셋을 데리고 일본으로 귀국하여 몇 개월 동안 산부인과 실습을 해서 다시 상해에 돌아와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곽말약 등이 발행하던 잡지들도 모두 폐간하게 되어 곽도 그 이듬에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다. 1924년 말에는 광동대학에서 초빙을 받아 다시 가족을 데리고 상하이에 갔다. 1928년 북벌이 실패로 돌아가자 곽일가는 일본으로 돌아와 동경교외의 이치가와(市川) 에 정주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곽은 중국 고대사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곽말약에게 있어서 안나는 첫사랑도 첫 결혼도 아니었다. 곽은 1892년 사천성 낙산현에서 태어나, 10살 전후에 이미 부모들이 그의 결혼 상대를 정해 놓았다. 그러나 그 상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1912년 20세 되던 해에는 부모들이 장씨 가문의 장경화와 결혼을 시켜주었다. 매파가 속임수에 놀아나 마치 ‘흰 고양이를 사온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포대를 열어보니 검은 고양이’와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결혼 5일째 되는 날 成都로 공부하려 나와 26년이 지난 1939년에야 다시 고향을 방문하게 된다. 또 성도에서 고등소학교에 다닐 때 곽말약은 동성애에 빠졌다. 후일 그는 ‘연애보다 더 엄숙한’ 것이였다고 자인하였다.  곽말약이 항일전선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난 다음 안나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고, 여러 가지 육체노동을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연일 경찰이 찾아와, 그녀를 괴롭혔고, 그 때를 연옥과 같은 생활이었다고 회고하였다. 그럼에도 착실하게 다섯 자녀들을 잘 양육하였다. 안나는 자식들을 일본 국적으로 바꾸라는 주위의 요구를 완강하게 물리쳤다. 언젠가는 이 자녀들을 데리고 남편 곁에 가서 일가 단란의 생활을 할 때가 올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한편 낭만주의자 시인 곽말약은 가는 곳마다 새로운 연인이 생겼다. 1927년 북벌 전쟁 시에도 같이 종군하였던 안림(安琳) 이라는 전우와 사랑에 빠졌다. 그가 이질에 걸렸을 때 정성스럽게 간호해 회복시켜 준 것도 안림이었다. 그리고 그가 일본을 떠나 1937년7월 중국에 도착하자 위리췬(于立群) 이라는 영화배우와 만나게 된다. 그는 막 21세가 된 위리췬과 사랑에 빠졌다. 그 후 위리췬은 40년 이상 곽말약의 여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1948년 봄 전쟁이 끝나고 안나는 신문지상을 통해서 곽말약이 중국에서 여전히 살아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소식을 접하고 자녀들을 대동하고 짐을 싸서 타이완, 홍콩을 경유해서 중국 본토에 들어갔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직전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였다. ‘전쟁이 터진 다음 나는 지금까지 계속 ‘적국의 아내’로 간주되었고, ‘나라는 판 도적’이라고 불리웠다. 나의 생활이 어떠했던가는 가히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애간장을 태우던 11년을 지난 지금 이제 남편 옆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쌓였던 근심 걱정이 마치 구름과 연기가 사라지듯 없어졌다.’고 감격스럽게 말하였다.  안나가 북경 곽말약의 집에 도착하니 곽은 돌연 나타난 안나 앞에서 한편 놀라기도 하고 한편 기쁘기도 하였다. 11년이 지났으니 안나는 이미 늙었고, 얼굴에는 생활고를 반영하듯 적지 않는 주름이 있었다. 검은 머리는 나이에 비해 빠르게 흰머리가 많아졌다. 안나는 만면에 눈물을 흘리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 주위에는 낮 설은 젊은 여자가 한 사람 있었고, 다섯 아이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안나는 이제야 사정을 알 수 있었다. 11년 전 헤어 질 때 남편에 대해 걱정하던 일이 적중한 것이다. 진퇴양난의 선택에 직면한 안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안나의 기독교 신앙은 그로 하여금 자기 희생의 결정을 내리도록 하였다. 안나는 곽말약을 집을 떠나 친구의 도움으로 대련(大連)으로 가서 정주하게 되였다. 안나는 그 후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그 이름은 곽안나로 하였다. 안나는 몇 사람의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평소 다른 사람들과 왕래를 하지 않았으며 일체의 사회 활동, 기자들의 탐방을 거절하였다.  한편 사천성에서 최초로 결혼식을 올린 장경화는 곽말약이 떠난 후에도 계속 곽의 부모를 정성껏 모시었다. 1939년 곽이 금의환향하였을 때 그는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어 앉아 불효를 용서해달라고 말하며 소리 내어 눈물을 흘렸을 때 아버지는 곽의 원처 장경화을 앞에 세워놓고 ‘너는 처에게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 30년 동안 그녀는 불효자식 너를 대신하여 두 노인을 섬겼다.’고 말하였다. 부친이 서거하였을 때, 곽말약과 위리췬은 다시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다. 장경화는 자기의 침실을 비워, 곽과 위리췬이 사용하도록 하였다. 장경화는 매년 북경의 곽댁에 남편이 좋아한다는 사천성 특산의 절임야채와 두반장을 보내왔다. 곽말약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울 때에는 안나에게 의지하였으나, 해방후의 영화로운 삶을 안나와 함께 향유하지 못하였다. 그 영화로운 시절에 함께 한 것은 위리췬이었다. 곽말약은 항상 때와 장소에 따라 사랑의 상대를 바꾸었지만, 그의 아내들은 결코 남편을 바꾸지 않았다. 1974년 가을 안나는 남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딸과 함께 대련에서 북경으로 향했다. 병실에서 80을 넘긴 두 노인이 마지막으로 만났다. 안나는 최근 일본에서 가져온 이치가와의 구옥의 집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두 노인의 최후의 상봉이었다.  1978년 6월12일 곽말약이 서거하였다. 위리췬과 장경화는 각각 1979년과 1981년이 서거하였다. 안나는 1983년 중국정부로부터 중일우호관계에 공헌했다는 공적으로 제1차 아시아아프리카 평화상을 받았고, 동년 전국정치협상위원회의 위원으로 피선되었다. 그리고 1994년 8월15일 곽안나는 서거하였다. 향년 101세. 곽말약 고가의 전시실에는 안나와 그 일가가 일본에서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장경화의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혁명이라는 남성 중심의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남자들의 배후에서 바쳐진 여성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출처] 곽말약과 그 배후 3인의 여성|작성자 삼헌  
829    중국 시가 류형, 및 작품 댓글:  조회:5801  추천:0  2015-04-03
  1. 중국 시가(詩歌)의 유형과 작품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一. 중국시가의 원류(源流) : 시경(詩經)과 초사(楚辭)   중국문학사의 주류를 가장 일찍이 형성한 것은 북방(北方)의 서주(西周)에서 춘추(春秋)에 이르는 시기였다. 중국 최고(最古)의 시가총집(詩歌總集)으로서 이 시기에 출현한 ≪시경(詩經)≫은 풍(風)․아(雅)․송(頌)으로 이루어졌는데, 서정시(抒情詩)가 위주였던 풍(風)은  관청(官廳)에서 민정(民情)을 살피려고 채집(採集)한 민요(民謠)였고, 사회시(社會詩)가 위주였던 아(雅)는 궁정(宮廷)의 연회(宴會)와 전례(典禮)에 쓰인 악가(樂歌)였으며, 종교시(宗敎詩)가 위주였던 송(頌)은 선조(先祖)와 제신(諸神)의 제사(祭祀)에 쓰인 악가였다. 집단적(集團的)이면서 실용(實用)을 목적으로 했던 ≪시경(詩經)≫은 공자(孔子)가 이를 제자(弟子)들의 교과서로 사용한 이후에 유가경서(儒家經書)로서의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시경(詩經)≫의 작법(作法)은 부(賦)․비(比)․흥(興)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부(賦)는 직서법(直敍法)으로 ‘그대는 참으로 아름답소’와 같은 직접적인 묘사를 말하고, 비(比)는 상징법(象徵法)으로 ‘그대는 한 떨기 붉은 수선화’와 같은 비유(比喩) 혹은 상징(象徵)을 말하며, 흥(興)은 암시법(暗示法)으로 ‘수선화 피어나니 그대는 아름답소’와 같은 정경교융(情景交融)을 말한다. 이러한 ≪시경(詩經)≫의 작법(作法)은 전통적으로 계승되어 중국시가(中國詩歌)의 수사법(修辭法)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춘추에 이어서 전국(戰國)의 시기에는 ≪시경(詩經)≫에 대한 반동으로 남방(南方) 초(楚) 나라의 새로운 시가(詩歌)로서 ≪초사(楚辭)≫가 있었다. 앞 장(章)에서도 언급했듯이 ≪시경(詩經)≫은 그 문체(文體)가 중국어의 리듬을 바탕으로 한 사언(四言)이 기본이었고, 내용은 백성들의 생활에서 우러나온 여러 가지 서정(抒情)이 거의 전부였던데 비해서, ≪초사(楚辭)≫는 문체가 춤의 리듬을 바탕으로 한 삼언(三言)이 기본이었고, 내용은 굴원(屈原)․송옥(宋玉) 등 작자 개인의 이상(理想)과 환상(幻想)이 그 줄거리였다.     二. 사부(辭賦)   사부(辭賦)는 원래 초사와(楚辭)와 한부(漢賦)를 통칭(通稱)하는 것이다. 한대(漢代)에 새로이 흥성(興盛)한 사부(辭賦)는 서정면(抒情面)에서 개인적인 성분이 감소되고, 서사영물(敍事詠物)에 치중하여 수사(修辭)에 힘쓰는 아름다운 문장(文章)을 나열하였다. 한대(漢代)의 사부(辭賦)는 형성기에는 초사(楚辭)의 형식을 답습(踏襲)한 것으로 가의(賈誼)의 <조굴원부(弔屈原賦)>․<복조부(鵩鳥賦)>와 매승(枚乘)의 <칠발(七發)> 등이 있었고, 전성기(全盛期)에는 초사(楚辭)에 비해서 산체화(散體化)된 장부(長賦: 大賦)로서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상림부(上林賦)>․<대인부(大人賦)>․<미인부(美人賦)>․<장문부(長門賦)> 등이 있었으며, 모방기(模倣期)에는 전성기(全盛期)의 사부(辭賦)를 모방․계승한 것으로 양웅(揚雄)의 <촉도부(蜀都賦)>와 반고(班固)의 <양도부(兩都賦)> 등이 있었다. 전변기(轉變期)에는 이전의 산체장부(散體長賦)에서 서정성(抒情性)을 위주로 하여 개성적(個性的)이면서도 청신(淸新)한 단부(短賦: 小賦)로 바뀐 것으로 장형(張衡)의 <귀전부(歸田賦)> 등이 있었다. 사부(辭賦) 가운데 초사(楚辭) 계통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등 대표작을 남기면서 후대까지 계승되었고, 한부(漢賦) 계통은 한대(漢代)의 고부(古賦)에서 육조(六朝)의 변부(騈賦), 당대(唐代)의 율부(律賦), 송대(宋代)의 문부(文賦)로 발전하였다.     三. 악부시(樂府詩)   한대(漢代)의 악부시(樂府詩)는 참신(斬新)하고 다양(多樣)한 형식과 정채(精彩)로운 서사(敍事) 수법을 갖추었으며 질박(質朴)하고 자연스러운 풍격(風格)을 지녔다. 주요 작품으로는 <전성남(戰城南)>․<십오종군정(十五從軍征)>․<고아행(孤兒行)>․<동문행(東門行)>․<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 등이 있었고, 이 가운데 <공작동남비>는 중국 고대의 가장 장편(長篇)이자 가장 뛰어난 서사시(敍事詩)로서, 한대(漢代) 말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봉건적인 가족제도와 전통적인 윤리도덕 때문에 희생된 초중경(焦仲卿)과 유란지(劉蘭芝)라는 젊은 부부(夫婦)의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시경(詩經)≫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악부시(樂府詩)는 가깝게는 오언시(五言詩)의 발생과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멀리는 당대(唐代) 백거이(白居易)의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에 영향을 미쳤다. 한대(漢代)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오언고시(五言古詩)의 대표작으로는 작자 미상(未詳)의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가 있는데 한대(漢代) 말기(末期)의 중하층(中下層) 문인(文人)들이 지은 것으로 보이며, 그 내용은 어지러운 동한말(東漢末)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고 세련된 오언(五言)과 진솔(眞率)한 서정성(抒情性)이 매우 탁월하다. 또한 한대(漢代)에는 초사(楚辭)와 한부(漢賦)의 영향으로 칠언고시(七言古詩)가 발생하였으나 아직은 미숙(未熟)하였다.     四. 오칠언고시(五七言古詩)와 오칠언율시(五七言律詩)   당송시(唐宋詩)의 사조(思潮)에 두드러지게 영향을 준 것은 크게 도불(道佛) 양교(兩敎) 및 후에 이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일어난 유가사조(儒家思潮)로 볼 수 있다. 한위육조(漢魏六朝)로부터 성당(盛唐)에 이르기까지는 귀족정치(貴族政治)의 전성시대(全盛時代)인 동시에 도불 양교의 발흥시대(勃興時代)였다.   당시(唐詩)는 성당(盛唐)이 황금시대(黃金時代)였고, 도불(道佛)의 사조(思潮)도 이때가 전성기(全盛期)였으며. 이 시대의 시인(詩人)으로는 시불(詩佛)로 칭(稱)해지는 왕유(王維)와 시선(詩仙)으로 칭해지는 이백(李白) 등이 있었다. 중당(中唐)에 이르러 안록산(安綠山)의 난(亂)을 전후(前後)해서 사회(社會)가 혼란(混亂)함에 따라 유가사조(儒家思潮)가 부흥(復興)되었고, 유가사상(儒家思想)을 가진 모든 시인(詩人) 가운데 가장 위대(偉大)한 존재(存在)로서 시성(詩聖)으로 칭해지는 두보(杜甫)의 작품(作品)은 태반(太半)이 사회문제(社會問題)에 관한 시(詩)였으며, 이러한 작풍(作風)은 작시(作詩)에 있어서 풍유(諷諭)를 자신(自身)의 임무(任務)로 삼았던 백거이(白居易)의 신악부(新樂府)에 이르러 더욱 노골화(露骨化)되었다.   당시(唐詩)를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송시(宋詩)의 완성자(完成者)로서 소식(蘇軾)은 송사(宋詞)와 문부(文賦)에 있어서도 완성자로서의 역할을 했고, 유(儒)․불(佛)․도(道)의 사상(思想)을 두루 섭렵(涉獵)하여 호방(豪放)한 풍격(風格)을 이루었으며, 가장 낭만적(浪漫的)이고 가장 열정적(熱情的)이며 가장 자유(自由)를 사랑한 시인(詩人)이었다.     五. 사곡(詞曲) : 송사(宋詞)와 산곡(散曲)   앞 장에서 언급했듯이, 송대의 새로운 시가로서 송사(宋詞)가 있었고, 원대의 새로운 시가로서 산곡(散曲)이 있었다. 송사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으므로 산곡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산곡(散曲)은 중국을 지배하게 된 몽고인들이 북곡을 숭상했기 때문에 유행하게 된 북곡(北曲)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다. 초기의 산곡은 초기의 사(詞)가 그랬던 것처럼 민간(民間)에서 유행하던 소곡(小曲)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뒤에는 좀더 많은 내용을 노래하기 위해서 당시에 소령(小令)으로 일컬어지던 여러 개의 소곡(小曲)을 모아서 대곡(大曲)을 이루고 이를 투수(套數)라고 하였다. 투수는 길이가 길기 때문에 서술적인 묘사 방법을 많이 쓰며, 복잡한 내용이나 고사(故事)를 노래하기에 편리한 형식이었다.         2. 중국 시가(詩歌)의 내용과 특징은 어떠한가?   우선 시경(詩經)의 첫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관저(關雎); 우는 물수리     꾸안꾸안 물수리                  關關雎鳩 강물 가에 머무니,                 在河之洲 아리따운 아가씨                  窈窕淑女 사나이의 좋은 짝.                 君子好逑   올망졸망 마름풀                  參差荇菜 이리저리 찾으니,                  左右流之 아리따운 아가씨                  窈窕淑女 자나깨나 그리네.                  寤寐求之   찾아도 못얻어서                  求之不得 자나깨나 생각하니,                寤寐思服 가이없는 내마음                  悠哉悠哉 잠못들어 뒤척이네.                輾轉反側   올망졸망 마름풀                  參差荇菜 이리저리 뜯으니,                  左右采之 아름다운 아가씨                  窈窕淑女 금슬좋게 사귀려네.                琴瑟友之   올망졸망 마름풀                  參差荇菜 이리저리 캐담으니,                左右芼之 아리따운 아가씨                  窈窕淑女 종고처럼 반기려네.                鐘鼓樂之       이어서는 편폭(篇幅)이 길어서 소개하기 어려운 초사(楚辭)와 한부(漢賦) 및 아직 민가(民歌)의 수준에 있었던 악부(樂府)를 제외시키고, 문인(文人)에 의한 본격적 개인문학(個人文學)이 이루어진 위진육조(魏晉六朝) 이후의 오칠언시 여러 편과 소식(蘇軾)이 「적벽회고(赤壁懷古)」라고 부제(副題)를 붙여 지은 <염노교(念奴嬌)>사(詞) 및 <적벽부(赤壁賦)> 등을 소개한다.   제 3 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위진육조시기에는 이 시대에 크게 성행했던 도불(道佛)의 영향으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비롯해서 도연명(陶淵明)․사령운(謝靈運) 등 전원(田園)․산수(山水) 시인(詩人)들의 청담지풍(淸談之風)이 크게 일어났고, 문인(文人)에 의한 본격적인 개인문학(個人文學)이 발달하여 화려(華麗)한 문학형식과 문장의 기교(技巧)를 추구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 문학작품으로는 도연명의 <음주(飮酒)>시(詩) 다섯째 편과 사령운의 <과시녕서(過始寧墅)> 및 제갈량(諸葛亮; 孔明)의 <출사표(出師表)>를 들 수 있다. 이들 작가를 간략히 소개하고 그 작품을 감상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도연명은 자연(自然)과의 융화(融化)를 통해서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感情)과 이상(理想)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중국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전원시는 자연 속에 융화된 꾸밈없는 감정의 노래로서 중국 자연시(自然詩)의 기원(起源)을 이루었다. 또한 사령운 이후에 중국의 자연시는 산수시(山水詩)가 주류(主流)를 이루었으나, 후대의 시인들이 자연과 완전히 융화되어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도연명의 문학적 경지(境地)를 고귀(高貴)하게 여겼으므로 전원시가 그 정통(正統)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함께 오래도록 불후(不朽)의 명작(名作)으로 평해지고 있는 <음주(飮酒)>시(詩) 다섯째 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 사는 곳에 움막을 지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 없네.    그대에게 어찌 그러한가 물어본즉, 마음이 멀면 땅도 절로 외지다네.    동녘 울밑에서 국화 송이 따드니, 아득히 멀리 남쪽 산 바라보이네.    산 기운은 해 기울어 아름다운데, 나는 새들 서로 어울려 돌아오네.    이런 중에 가식없는 참뜻 있으되, 밝혀 보려다 이내 할 말을 잊네.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위의 시에서 우리는 그가 자연과 융화된 경지가 이미 무아지경(無我之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람 사는 곳에 움막을 짓고 살되 마음이 멀리 자연에 있어 속세(俗世)의 잡념(雜念)이나 망상(妄想)이 없이 고요했으므로, 몸 또한 자연 속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주위의 시끄러운 소리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다. 따라서 한가로운 가운데 무심히 울밑의 국화(菊花) 송이를 따드는 순간에 아득히 먼 남쪽 산의 자연(自然)이 그에게로 성큼 다가왔던 것이다. 이 때 그의 경지는 이미 자기를 잊고 자연과 완전히 융화되어, 해 기울자 쉴 곳으로 돌아오는 새들과 한 몸이 된다. 그 역시 해 기울면 쉴 곳으로 돌아갈 것이니, 이는 타고난 본성(本性)대로 자연에 귀의(歸依)하여 그 변화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되, 이미 자기를 잊고 자연과 자기와의 분별(分別)이 없이 일체(一體)가 되어 있는 터에, 자연의 오묘(奧妙)한 섭리(攝理)로 보아서 당연히 그래야 함을 인간의 지식과 말로써는 설명하여 밝힐 필요도 없고 설명하여 밝힐 방법도 없는 것이다. 해 기울면 쉴 곳으로 돌아오는 새로써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形象化)한 그에게 있어서 자연은 결국 귀의(歸依)의 대상(對象)이었다. 이는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서 「천지가 나와 함께 영원히 존재하고, 만물이 나와 일체가 된다(天地與我幷生, 而萬物與我爲一).」라고 말한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人與自然合一)」 도가적(道家的) 경지를 추구한 것이다. 도연명은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오로지 자연의 변화에 따라 남김없이 귀의하리니, 타고난 그대로의 천성(天性)을 즐겨야 함에 어찌 의심(疑心)이 있겠는가(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라고 했듯이, 타고난 본성대로 자연에 귀의하는 삶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아울러 참고적으로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자  돌아가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논밭이  거칠어지려는데  어이  아니  돌아가리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스스로가  먹고사는  일로  마음을  구속하였거늘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근심에  싸여서  슬퍼만  하고  있으리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지나간  날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았고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다가올  일은  제대로  할  수  있음을  알겠으니 實迷途其未遠  실미도기미원          실로  어긋난  길이  아직  오래되지  않아서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지금이  옳고  이전은  글렀음을  안  것일세 舟搖搖以輕颺  주요요이경양          돌아가는  배  흔들흔들  가벼이  떠나가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불어  살랑살랑  옷자락을  휘날리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나그네에게  앞으로  남은  길을  물어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더디게  밝아옴을  한스러워  하네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허술한  내  집  바라보고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서둘러  달려가니 僮僕歡迎  동복환영                  머슴  아이는  반겨하며  맞아주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자식들은  문앞에서  기다리네 三徑就荒  삼경취황                  세  갈래  사잇길에  잡초가  무성해도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것들  손  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술  항아리에는  술이  가득  차  있네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병과  술잔을  끌어당겨  홀로  술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무  둘러보고  얼굴에  기쁨  짓네 倚南牕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앉아  거리낌  없이  즐기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비좁은  방이지만  쉬이  편안함을  맛보네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좋은  풍치  이루고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은  비록  나  있으되  언제나  닫혀  있네 策扶老以流憩  책부로이류게          지팡이에  의지해서  발  닿는  대로  가다  쉬고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아무  미련  없이  산굴을  벗어나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새들은  날다가  지치면  돌아올  줄을  아네 景翳翳以將入  경예예이장입          햇빛은  가물가물  머잖아  사라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홀로  선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머뭇거리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자  돌아가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원컨대  교제를  그만두고  왕래를  끊으리라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어울리기에  서로  맞지  않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세상에  나아가서  무엇을  바라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이웃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에  기뻐하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와  책을  즐기면서  근심을  잊으리라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사짓는  이가  내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면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장차  서쪽  밭에  나가서  농사를  지으리라 或命巾車  혹명건차                  때로는  휘장  두른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때로는  혼자서  조각배를  저으리라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그윽하고  깊숙한  산골짜기를  찾기도  하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하고  가파른  산  언덕을  넘기도  하리라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는  싱싱하게  뻗어서  무성해지려  하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소리내며  흐르기  시작하리니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세상  만물이  마땅히  제철을  만나련만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내  삶은  한스럽게도  저물어만  가는구나 已矣乎  이의호                      아서라  아서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세상에  살아있을  날이  앞으로  얼마나  되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째서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이  살지  않고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무엇을  찾아  허둥지둥  어디로  가려  하겠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현세의  부귀는  내  바라는  바  아니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내세의  천국도  기대해서는  아니  되리 懷良辰以孤往  회양신이고왕          좋은  시절이  왔다고  여겨지면  홀로  나가서 或植杖而耘耔  혹식장이운자          지팡이를  잠시  세워두고  김을  매기도  하리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가서  느긋하게  노래  부르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게  흐르는  시내를  바라보며  시를  지으리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오직  자연의  이치로  돌아가  사라지려  하거늘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무릇  천명을  즐겨야  함을  어찌  또  의심하리     사령운은 도연명과 비슷한 시기의 인물(人物)로서, 도 연명이 자연과의 융화를 통해서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과 이상을 문학적으로 승화(昇華)시킨 시인(詩人)이라면, 그는 자연 속에 묻힌 고독(孤獨)한 개체(個體)로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객관적(客觀的)으로 감상(感賞)하고 이를 문학으로써 묘사(描寫)한 시인이다. 그는 풍부한 수사(修辭)와 다듬어진 싯귀(詩句)로 아름다운 산수자연(山水自然)의 경치를 재현(再現)시킴으로써, 중국 자연시의 주류(主流)를 이룬 산수시(山水詩)의 창시자(創始者)가 되었다. 그의 산수시 가운데 고향(故鄕) 땅 시녕(始寧)의 별장(別莊)을 지나면서 지은 <과시녕서(過始寧墅)>시(詩)의 후반부(後半部)에서 일부(一部)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산을 넘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물길 따라 쉬지않고 우회하였네.    바위는 험하게 산악에 빽빽하고, 모래톱 층층이 물가에 연이었네.    흰 구름은 검은 돌을 감싸안고, 푸른 대 맑은 물결에 아양떠네.    민가는 구비도는 강 곁에 있고, 누각이 높은 산정 기슭에 있네.    (山行窮登頓, 水涉盡洄沿. 巖峭嶺稠疊, 洲縈渚連綿. 白雲抱幽石, 綠篠媚淸漣. 葺宇臨廻江, 築觀基層巓.)     위의 시에서 우리는 그에게 있어서 자연(自然)은 인간(人間)과 대립(對立)된 차원에서 그 아름다움을 객관적(客觀的)으로 감상(感賞)하기 위한독립적(獨立的) 대상(對象)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산수자연의 경치를 자신의 심미(審美) 기준(基準)에 따라 의도적(意圖的)으로 배치(配置)하여 시각적(視覺的)으로 묘사하였다. 위에서 「흰 구름은 검은 돌을 감싸안고, 푸른 대 맑은 물결에 아양떠네.」의 귀절은 자연을 인격화(人格化)하여 묘사하는 세련미(洗練味)를 지닌 동시에, 「흰 구름」․「푸른 대」․「검은 돌」․「맑은 물결」 등의 색채어(色彩語)를  대조적(對照的)으로 구사(驅使)하여 특히 회화적(繪畵的)이다. 그는 평소에 맑고 밝은 생활을 지향(志向)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의 양식(糧食)으로 삼았고, 이를 시로써 형상화(形象化)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시인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 문학작품으로는 왕유의 <녹채(鹿柴)>․<조명간(鳥鳴澗)>․<산중(山中)>, 이백의 <서악운대가송단구자(西嶽雲臺歌送丹丘子)>․<월하독작(月下獨酌)>․<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 두보의 <춘망(春望)>․<석호리(石壕吏)> 등 시(詩)와 소식의 <염노교(念奴嬌)>사(詞) 및 <적벽부(赤壁賦)>를 들 수 있다. 이들 작가를 간략히 소개하고 그 작품을 감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왕유는 도연명․사령운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 자연파(自然派) 시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중국 남종화(南宗畵)의 원조(元祖)가 되었을 만큼 뛰어난 화가(畵家)였다. 그가 살았던 성당(盛唐)은 도연명의 전원시와 사령운의 산수시를 계승하여 커다란 집단의 자연시파가 형성된 시기였다. 그의 자연시는 도연명을 계승하여, 세속을 초탈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전원 풍취가 넘쳐흘렀다. 그러나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그는 도연명의 도가적 무위자연(無爲自然)과는 달리, 불가적 정적(靜寂)과 청정(淸淨) 속에서 자기를 직관(直觀)함으로써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관조시(觀照詩)를 지었다. 따라서 그는 자연 속에 묻힌 고독(孤獨)한 개체(個體)로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감상하여 묘사한 사령운과도 시풍(詩風)이 달랐다. 그의 관조시는 자연과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이를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스스로의 감개(感慨)를 수렴(收斂)하여 용해(溶解)시켰던 것이다. 그의 자연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오언절귀(五言絶句)로서, 그 중 <녹채(鹿柴)>와 <조명간(鳥鳴澗)>의 두 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빈 산에 사람은 아니 보이고, 다만 사람의 말소리만 들리네.       노을 빛이 깊은 숲에 들더니, 다시 푸른 이끼 위를 비치네.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인적 드문데 계수꽃 떨어지고, 밤 고요하여 봄산은 비어있네.       달이 떠올라 산새들 놀래키니, 때때로 봄내 골짝서 지저귀네.       (人閒桂花落, 夜靜春山空. 月出驚山鳥, 時鳴春澗中.)     위 두 편의 시에서 우리는 그가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정적(靜寂) 속에 자기를 관조(觀照)하는 선적(禪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위에서 특히 강조된 것은 산중(山中)의 고요함이다. <녹채>에서의 두런거리는 말소리와 <조명간>에서의 떨어지는 계수(桂樹) 꽃은 주위의 정적감(靜寂感)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너무나도 고요한 나머지 잡념(雜念)이나 망상(妄想)이 끼어들 수 없는 공허(空虛) 속에서 그는 자기를 잊고 자연과 완전히 융화(融化)되어, 푸른 이끼와 한 몸이 되고 산새들과 한 몸이 된다. 깊은 숲의 푸른 이끼에도 해질 녘이면 고운 노을 빛이 비치고, 깊은 골짝의 산새들도 달뜰 녘이면 밝은 달 빛을 받으며 지저귀니, 이는 그가 자기가 존재(存在)하는 이치(理致)가 푸른 이끼나 산새들이 존재하는 이치와 같음을 직관적(直觀的)으로 깨달은 것이다.   위에서 사람은 아니 보이고 다만 사람의 말소리만 들리는 빈 산(山)과 인적(人迹) 드문데 계수꽃 떨어지는 고요한 밤의 빈 산은 우리에게 불가(佛家)의 공관(空觀)을 느끼게 한다. 또한 깊은 숲의 푸른 이끼에 비치는 노을 빛과 깊은 골짝의 산새들이 받는 달 빛은 우리에게 불가의 자비(慈悲)를 느끼게 한다. 이처럼 그의 자연시는 매우 평이(平易)하고 담박(淡泊)한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그 안에 심오(深奧)한 이치(理致)와 이상(理想)을 담고 있었다. 불가(佛家)에서 우주만물(宇宙萬物)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부처 아닌 것이 없고 모든 개체(個體)는 스스로가 천상천하(天上天下)에서 유일(唯一)하게 존귀(尊貴)한 존재라고 말하듯이, 왕유에게 있어서의 자연은 그에 융화됨으로써 자기의 참모습과 참가치를 직관하기 위한 관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와 아울러 위 두 편의 시에서 우리는 자연경치(自然景致)의 순간포착(瞬間捕捉)에 의한 시각적(視覺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자연경치의 순간포착에 의한 회화성(繪畫性)은 도연명과 사령운이 썼던 수법(手法)과 비슷한 것이지만, 그의 시에 나타난 독창적(獨創的) 회화성은 뛰어난 화가(畵家)로서의 예민(銳敏)한 관찰과 독실(篤實)한 불교신자로서의 선적(禪的)인 탐구(探究)가 바탕이 된 것이다. 소동파(蘇東坡)는 그가 그린 「남전연우도(藍田煙雨圖)」를 평하면서 「마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감상하면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畵, 觀摩詰之畵, 畵中有詩)」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 때 그 그림의 내용과 흡사한 것으로 생각해서 함께 인용했던 왕유의 <산중(山中)>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쪽빛 계곡물에 새하얀 돌 드러나고, 옥빛 시내엔 붉은 낙엽 섞이었네.   산길에는 애당초 비내린 적 없건만, 공허한 푸르름 사람 옷깃 적시네.   (藍谿白石出, 玉川紅葉稀. 山路元無雨, 空翠濕人衣.)     위의 시에서 우리는 시어(詩語)의 선택(選擇)과 배치(配置)를 통해서 극도(極度)의 시각적 형상미(形象美)를 드러내고 있는 그의 시풍을 엿볼 수 있다. 위에서 「쪽빛」․「새하얌」․「옥빛」․「붉음」 등의 대조적(對照的) 색채감(色彩感)과 「계곡물」․「시내」․「산길」․「공허한 푸르름」 등의 공간적(空間的) 배경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聯想)케 한다. 동시에 위에서처럼 「돌 드러남」․「낙엽 섞임」․「비내린 적 없음」․「공허한 푸르름」 등으로써 여름 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가을 되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자연의 그윽하고 산뜻한 정취(情趣)를 묘사하였다면, 그의 그림은 극도의 문학적 함축미(含蓄美)를 드러낸 한 편의 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시는 시각적 형상미와 문학적 함축미를 함께 지니고 있는데, 이는 심미(審美)를 추구(追求)하는 화가로서의 예민한 관찰과 함께 본질(本質)을 관조하는 불교신자로서의 선적인 탐구에 의한 것이었다. 위에서 「공허한 푸르름」은 온통 티 하나 없이 깨끗하여 물방울이라도 맺혀 떨어질 듯이 짙푸르게 우거진 녹음(綠陰)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 내린 적 없어도 사람의 옷깃을 적시는 푸르름은 역시 불가의 공관(空觀)을 느끼게 한다.   이백은 왕유와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던 인물로서, 지극히 열정적(熱情的)인 낭만시인(浪漫詩人)이며 천재시인(天才詩人)이었다. 그는 생각하는 바가 활달(豁達)하고 기백(氣魄)이 웅장(雄壯)하며 재기(才氣)가 흘러넘쳐서, 능동적으로 낭만적인 기질(氣質)을 발휘하였다. 또한 도교(道敎)에 심취(心醉)했던 그는 현실을 초월하여 산수자연(山水自然)을 방랑(放浪)하면서 유선적(遊仙的)인 시를 지었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그는 채석기(采石磯)라는 강가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술에 취한 김에 물에 비친 달을 건지려고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동요(童謠)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 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귀절은 그가 발휘했던 낭만적인 기질을 여실(如實)히 대변(代辯)해 준다. 일종(一種)의 유선시(遊仙詩)로서, <서악운대가송단구자(西嶽雲臺歌送丹丘子)>시의 전반부(前半部)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서악의 험준함은 어찌나 장엄한지, 황하가 가물가물 하늘 끝서 흘러오네. 황하 만리 달려 산을 쳐 뒤흔들고, 소용돌이 바퀴 돌듯 천지를 울려대네. 영광스런 서기 어려 오색 찬란하니, 천 년에 한번 맑아 성인을 나게하네. 큰 신령 포효하며 산 둘로 쪼개서, 홍수 파도 내뿜어져 동해로 달려가네. 세 봉우리 우뚝 서 꺾일듯 가파르고, 푸른 벽 붉은 골 손자욱 열려있네. (西嶽崢嶸何壯哉, 黃河如絲天際來. 黃河萬里觸山動, 盤渦轂轉秦地雷. 榮光休氣紛五彩, 千年一淸聖人在. 巨靈咆哮擘兩山, 洪波噴流射東海. 三峯却立如欲摧, 翠崖丹谷高掌開.)     위의 시에서 우리는 산을 밀어젖히고 바다를 뒤엎는 듯한 이백의 과장(誇張)된 표현을 볼 수 있다. 이는 그의 자유분방(自由奔放)한 낭만정신(浪漫精神)의 소산(所産)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격렬(激烈)한 표현을 하지 않고서는 풀릴 수 없는 강렬(强烈)한 사상(思想)과 감정의 뜨거움 때문인 것이기도 하다. 즉 그의 드높은 웅지(雄志)를 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울분(鬱憤)이 시의 표현에 반영(反映)된 것이다. 그의 시에 있어서 산수자연(山水自然)은 그의 격렬한 감정과 도교적 상상력(想像力)에 의해서 과장되고 변형(變形)된다. 그는 속세(俗世)에서 벗어난 대자연(大自然) 속에서 협소(狹小)한 인간사회의 추악(醜惡)함을 말끔히 씻고 이를 초월함으로써, 자신의 광적(狂的)인 기질에 맞는 삶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가난과 울분이 교차(交叉)하는 가운데 유랑(流浪)을 거듭했던 이백은 깨끗하고 거짓없는 자연을 정관(靜觀)하고, 소박(素朴)한 자연의 풍물(風物)과 대화(對話)를 나누면서 진실(眞實)된 삶을 간직하려고 하였다. 그는 술과 함께 달을 좋아했다. 달은 그에게 있어서 자연의 영원(永遠)함과 아름다움을 집약적(集約的)으로 느끼게 해주는 대상이었다. 그가 지은 <월하독작(月下獨酌)>시 4 편 가운데 첫 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       꽃 사이에 한 병의 술을 놓고는, 혼자서 술잔 드니 친구가 없네.     잔 들어 밝은 달을 불러 오고서, 그림자를 대하니 세 사람 되네.     달은 원래 술 마시지 못하는데다, 그림자 건성 내 몸 따라다니네.     잠시나마 달 그림자 함께 있으니, 즐겨 놂이 봄철에 맞아야 하네.     내가 노래하면 저 달이 서성이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가 흔들대네.     깨어서는 어울려 즐거움 나누다가, 취한 후에 저마다 흩어져 가네.     속정이 없는 교유를 영원히 맺어, 멀리 은하에서 만남을 기약하네.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위의 시에서 우리는 그가 자연을 벗삼고 이와 합일(合一)되는 차원에서 세속적인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 담담하고 맑은 교유(交遊)를 추구하는 낭만적인 멋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위에서 장차 아득한 하늘의 은하(銀河)에서 만날 수 있는 달은 인생(人生)의 유한(有限)함과는 상대적으로 영원히 변함이 없는 대자연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모순(矛盾)되고 어지러운 세속에 대한 감정이나 욕심(慾心)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언제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신을 맡겨 융화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그리 하였을 때 비로소 자신의 참되고 순수한 경지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자연과의 융화를 추구한 것으로서, 그가 지은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뭇 새들 높이 날아가 사라지고, 외로운 구름만 한가로이 흘러가네.     바라봐도 서로 싫증나지 않으니, 이는 오직 경정산이 있을 뿐이네.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위의 시에서 우리는 정적(靜寂)과 한가로움이 감도는 가운데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 간의 분별(分別)을 잊는 그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경정산은 안휘성(安徽省) 선성현(宣城縣)의 북쪽에 있는 유명한 산이다. 그는 이 아름다운 산이 그저 좋아서 하염없이(이렇다 할 생각이 없이) 바라본 것이고, 산도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아 주었다. 그는 산을 의인화(擬人化)시켜서 자기와의 분별을 없앤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바라보아도 서로 싫증이 나지 않았으니, 이는 그가 자기를 잊고 자연과 완전히 융화되어 산과 한 몸이 된 순수(純粹)한 경지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서로 싫증나지 않는 것은 오직 경정산 뿐이라고 하였으니, 그에게 있어서의 자연은 영원히 싫증나지 않는 벗인 동시에 궁극적(窮極的)인 귀의처(歸依處)였던 것이다.   두보는 이백과 병칭(竝稱)되는 중당(中唐)의 위대한 시인으로서, 이백의 성격이 격정적(激情的)이고 자유분방(自由奔放)했던 데 비하여 유가적(儒家的)인 윤리관(倫理觀)을 바탕으로 현실(現實) 속에서 착실하게 살려던 사람이었으며, 시형(詩型)에 있어서도 격율(格律)이 가장 엄격한     율시(律詩)를 잘 지었다. 또한 그는 일생을 통한 곤궁한 생활과 안록산의 난을 전후한 시기의 대혼란을 겪으면서 그가 체험한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모순을 반영하여 고시체(古詩體)로써 현실주의적(現實主義的)인 사회시(社會詩)를 짓기도 했다. 우선 그의 대표적인 율시(律詩)의 하나인 <춘망(春望)>시(詩)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나라는 부서져도 산천은 여전하여, 도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졌네.   시국을 슬퍼하여 꽃은 눈물 뿌리고, 이별 한스러워 새의 마음 놀라네.   전란의 봉화불 석 달을 이어지니,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에 해당되네.   흰 머리는 긁을수록 더욱 짧아져서, 모두어도 비녀를 이겨내지 못하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위의 시에서 우리는 두보의 우국지정(憂國之情)과 비전사상(非戰思想)을 엿볼 수 있다. 작자는 첫귀에서부터 ‘나라는 부서져도(國破)’라는 강렬한 시어(詩語)로써 처참한 전쟁상(戰爭象)을 긴박한 현실감을 띠면서 그려냈고, 이러한 상황을 다시 ‘산천은 여전하여(山河在), 도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진’ 모습과 대조시켜서 대단히 허무(虛無)하고 우울(憂鬱)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자신의 심정(心情)으로는 봄철을 맞아서 이슬을 머금고 피어난 꽃은 전란(戰亂) 중의 어려운 시국(時局)을 슬퍼해서 눈물을 뿌리는 것 같았고, 짹짹거리며 지저귀는 새소리는 가족(家族)과의 이별(離別)이 한스러워 마음이 놀라서 그러는 것으로 보였다. 이는 바로 작자 자신이 처한 상황과 심정이 그러함을 말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전란은 석 달 동안이나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으니, 집에서 온 편지를 한 통이라도 받는다면 그것은 만금(萬金) 만큼이나 귀한 것이 될 것이다. 이는 실제로는 전란 중이라 집에서 온 편지를 받지 못하여 헤어진 가족의 안부를 전혀 알 수 없는 애타는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더욱이 그의 몸은 이미 늙고 쇠약해졌으므로, 숱이 적은 흰 머리는 상투를 틀려고 긁어 올릴 때마다 더욱 짧아져서 비녀를 꽂을 수 조차 없었으니, 인생의 무상(無常)함 마저 느끼게 되어 더욱 비애(悲哀)에 젖었던 것이다.   이제 고시체(古詩體)로써 지은 현실주의적(現實主義的)인 사회시(社會詩)로서 <석호리(石壕吏)>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날 저물어 석호촌에 묵고 있는데, 관리가 한밤중에 사람을 잡아가네.   영감은 담장을 넘어서 달아나고, 할멈이 문밖에서 관리를 맞이하네.   관리의 호통은 어찌 저리 거세고, 할멈의 흐느낌 어찌 저리 애닲은가.   할멈의 하소연하는 말 들어보니, 세 아들이 업성을 지키러 나갔다오.   한 아들이 부친 편지가 왔는데, 두 아들은 최근의 전투에서 죽었다오.   산 놈은 어찌어찌 해서 산다지만, 죽은 놈은 영원히 끝장이 아니겠소.   집안에는 더 이상의 사람은 없고, 오직 젖먹이 손자가 있을 뿐이라오.   가지 않은 손자의 어미가 있지만, 입고서 나갈 성한 치마조차 없다오.   늙은 몸이라 기운은 비록 없지만, 나으리를 따라서 밤에 가게 해주오.   서둘러 하양의 전쟁터에 나간다면, 내일 새벽에 밥 지을 수 있겠지요.   밤이 깊자 말하는 소리 끊어지고, 흐느껴 우는 소리 들리는 듯하였네.   날이 밝아 내 갈 길을 떠나면서, 오직 영감하고만 작별할 수 있었네.   (暮投石壕村, 有吏夜捉人, 老翁踰牆走, 老婦出門看, 吏呼一何怒, 婦啼一何苦, 聽婦前致詞, 三男鄴城戌, 一男附書至, 二男新戰死, 存者且偸生, 死者長已矣, 室中更無人, 惟有乳下孫, 有孫母未去, 出入無完裙, 老嫗力雖衰, 請從吏夜歸, 急應河陽役, 猶得備晟炊, 夜久語聲絶, 如聞泣幽咽, 天明登前途, 獨與老翁別.)     위의 시에서 두보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서 정치적 암흑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작자는 전편(全篇)의 모든 구절에서 한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했을 뿐 자신의 느낌을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에게 더욱 선명(鮮明)하고도 강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소식은 시의 극성기였던 당대(唐代)의 뒤를 이은 송대(宋代)의 시인으로서, 당시(唐詩)와는 다른 송대 특유의 시풍(詩風)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그는 당시(唐詩)가 감각(感覺)이나 분위기에 치우쳤던 것과는 달리, 논리적(論理的)이고 철학적(哲學的)인 시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시도 대부분은 개인적 서정(抒情)을 읊거나 자연의 경치를 노래했으며, 그의 독특한 예술적 성취(成就) 또한 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개인적 서정을 읊은 시에서 인생에 대한 적극적(積極的)인 관심과 진지(眞摯)한 감정을 토로(吐露)하였고, 자연의 경치를 노래한 시에서 시인으로서의 생활정취(生活情趣)와 산수자연(山水自然)의 생생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또한 호방(豪放)한 개성(個性)과 뛰어난 재기(才氣)를 지녔던 그는 유(儒)․불(佛)․도(道)의 사상(思想)을 고르게 수용(受容)한 거시적(巨視的) 인생철학(人生哲學)을 구비하고, 시와 산문은 물론이고 송대에 새로이 흥성한 시가인 사(詞)와 전통시가의 하나인 부(賦)에 있어서도 제재(題材)의 무한한 확대(擴大)를 이룩하여, 중국문학사상(中國文學史上) 가장 호방한 풍격의 작품을 지었다.   또한 이러한 그의 호방성(豪放性)은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詞)의 창작에서 특히 남김없이 발휘되었다. 그의 사는 호방한 표현에 사실적(寫實的)인 묘사를 구사(驅使)하면서 거시적(巨視的)인 인생관(人生觀)을 그 안에 담고 있다. 그의 사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그가 「적벽에서 옛날을 생각함」이라는 뜻으로 「적벽회고(赤壁懷古)」라고 부제(副題)를 붙여 지은 <염노교(念奴嬌)>사(詞)를 보면 다음과 같다.       큰 강은 동쪽으로 흐르며,     그 물결이 남김없이 쓸어갔으니, 천고의 풍류 인물들이었네.     옛 보루의 서쪽에 있으니,     사람들이 이를 두고 말하여, 삼국시대 주유의 적벽이라네.     흩어진 바위 구름을 뚫고,     놀란 파도는 강언덕을 찢으며, 천 무더기 눈을 말아올리네.     강산은 한 폭 그림일진대,     한 때는 호걸들이 그 얼마나 되었던가?       아득히 주유의 그 때를 생각해 보니,     소교가 막 시집을 왔었고, 씩씩한 모습에 재기를 드러냈지.     깃털 부채에 윤건을 쓰고,     담소하는 사이, 강한 적은 재처럼 날고 연기처럼 사라졌지.     옛 고장서 신선놀이 하니,     다정한 이들 마땅히 나를 비웃어, 벌써 흰머리가 생겼다나.     인간 세상은 꿈과 같으니,     한 잔 술을 강에 비친 달 위에 붓네.     (大江東去, 浪淘盡, 千古風流人物. 故壘西邊, 人道是, 三國周郞赤壁. 亂石崩雲, 驚濤裂岸, 捲起千堆雪. 江山如畵, 一時多少豪傑. 遙想公瑾當年, 小嬌初嫁了, 雄姿英發. 羽扇綸巾, 談笑間, 强虜灰飛烟滅. 故國神遊, 多情應笑我, 早生華髮. 人間如夢, 一樽還酹江月.)     위의 사(詞)에서 우리는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활약했던 주유(周瑜)와 제갈공명(諸葛孔明) 등 영웅 호걸(豪傑)의 삶일지라도 장엄(莊嚴)하고 영원(永遠)한 자연에 비하면 한낱 보잘 것 없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마디로 말한 그의 호방하고 거시적인 인생관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한 잔 술을 강에 비친 달 위에 부음으로써 영원히 자연에 귀의하려는 자신의 열망을 표현하였다. 이와 같이 자연을 영원한 것으로 인식하고 이에 융화되고자 하는 인생관의 철학적인 배경은 같은 시기에 지은 불후의 명작 <적벽부(赤壁賦)>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임술년 가을, 칠 월 보름 다음날,   소자 객과 배 띄우고, 적벽 기슭 노니는데,   맑은 바람 서서히 불어, 물결은 잔잔하니,   술잔 들어 객에게 권하면서, 명월의 시를 읊어, 요조의 장 노래했네.   이윽고, 동산에 달이 솟아, 남두성과 두우성 사이 배회하니,   흰 이슬안개 강 가로지르고, 물위에 비친 달빛 하늘과 맞닿았으며,   한 잎 갈대 배가 흘러가는 대로, 만 이랑 망망한 수면을 건너는데,   어찌나 넓은지, 허공에서 바람타고 날아, 그 멈춤을 모르는 듯하고,   훨훨 나부끼니, 속세 떠나 홀로 존재하며, 날개돋혀 신선된 듯했네.   ------   객이 말하기를, 달 밝아 별 드문데, 까막까치 남쪽으로 날아가니,   이는 조조의 시가 아닌가.   서쪽을 바라보니 하구이고, 동쪽을 바라보니 무창이며,   산천은 서로 얽혀서, 짙푸르게 우거졌으니,   이는 조조가 주유에게 욕본 곳이 아닌가.   형주를 격파하고, 강릉으로 내려와서, 흐름 따라 동쪽으로 올 때,   군선은 연이어 천리이고, 깃발들이 하늘을 덮었는데,   술 따라 들고 강을 굽어보며, 창을 가로놓고 시를 지었으니,   진실로 일세의 영웅일진대, 지금은 어디 가고 없는가.   ------   소자가 말하기를, 객도 저 강물과 달을 아는가?   흘러가는 것 이와 같으나, 아주 가버려 없어진 적 없고,   차고 비는 것 저와 같으나, 결국 늘거나 줄지 않았으니,   변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천지도 일순간을 멈추어 있지 못하지만,   불변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만물과 내가 모두 무궁하기 때문인즉,   그런데 또 무엇을 부러워 하겠는가?   또한 무릇 천지간에 있어, 만물은 각기 주인을 가졌으니,   만일 나의 소유 아니면, 터럭 하나라도 취해선 안될진대,   오직 강상의 맑은 바람 있어, 산간의 밝은 달과 더불어,   귀에 들리면 음악이 되고, 눈에 보이면 경치를 이루어서,   이를 취함에 막는 이 없고, 이를 써도 없어지지 않는즉,   이는 조물주의 무한한 보고로서,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것이네.   객은 기뻐하며 빙그레 웃고, 술잔을 가셔서 다시 따르니,   안주는 어느새 없어지고, 잔과 쟁반 어질러진 채,   서로 포개져 배에서 누워 자며, 동쪽이 어느새 밝은 것도 몰랐네.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 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橫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 如馮虛御風, 而不知其所止, 飄飄乎, 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 客曰,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下口, 東望武昌, 山川相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舳艫千里, 旌旗蔽空, 釃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無盡也, 而又何羨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唯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旣盡, 杯盤狼籍,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위의 부에서 소식은 초가을 적벽선유(赤壁仙遊)의 감상(感想)을 외면상(外面上)의 제재(題材)로 하고, 내면적(內面的)으로는 인간(人間)의 생사문제(生死問題)를 중심제재(中心題材)로 하여, 다양(多樣)한 구성(構成)과 시적(詩的) 정취(情趣)가 넘치는 내용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이 불후의 명문으로 성공한 일차적(一次的)인 요소는 제재선택(題材選擇)의 보편성(普遍性)과 표현기교(表現技巧)의 뛰어난 예술성(藝術性)에 있다. 특히 그 내면적 중심제재인 생사문제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근본적(根本的)인 것이다. 소식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親熟)한 소재(素材)인 산(山)․수(水)․풍(風)․월(月)의 대자연(大自然)과 주(酒)․객(客) 및 역사상(歷史上)의 영웅(英雄)을 인용(引用)하였고, 간결평이(簡潔平易)한 묘사(描寫) 및 자연스러운 기교(技巧)로써 예술적인 경지(境地)를 드러내었다.   이 작품의 첫 단락(段落)은 서두(序頭)에서 시간(時間)․상대(相對)․장소(場所)를 밝힘으로써 서사적(敍事的)인 유기문(遊記文)의 형식을 취(取)했고, 뛰어난 서경(敍景) 및 즉흥적(卽興的) 서정(抒情)으로 낭만적(浪漫的)인 분위기를 조성(造成)하였다. 특히 그 서경(敍景)의 회화성(繪畫性)은 낭만적(浪漫的)이고 상징적(象徵的)인 분위기의 서경묘사(敍景描寫)를 크게 뒷받침하는 것으로, 시화합일(詩畵合一)의 문예론(文藝論)을 주장했던 소식의 탁월한 시정신(詩精神)이 반영된 것이다.   우선 그는 자신을 삼인칭(三人稱)으로 묘사하여, 초가을 저녁 적벽(赤壁) 강물 위에 객(客)과 선유(船遊)하는 낭만적 구도(構圖)의 객관적(客觀的) 소재(素材)로 포함시켰다. 이어서 「맑은 바람 서서히 불어, 물결은 잔잔하다」라고 하였는데, 회화적(繪畵的) 측면에서는 잔잔한 수면(水面)에서 맑은 바람을 연상(聯想)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객(客)과 술을 나누고, 당이 곧 떠오를 것을 예견(豫見)하여 ≪시경(詩經)≫의 <월출(月出)>편(篇)을 외워서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는 모습은 정답고 한가롭기 그지없다.   우리는 그가 생(生)과 사(死)의 문제를 논함에 있어, 집착의 뿌리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사물로서 자연 속의 강물과 달을 예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그의 인생관은 변화하는 현상 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불변하는 본질 세계와 합일되려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변하는 측면과 불변하는 측면에서의 관점은 우선 ≪장자(莊子)≫의 <덕충부(德充符)> 편에서 「서로 다르다는 관점에서 보면 가까이 붙어있는 간과 쓸개일지라도 초나라와 월나라 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되고, 서로 같다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은 모두 하나이다(自其異者觀之, 肝膽楚越也, 自其同者觀之, 萬物皆一也)」라고 했듯이, 도가의 상대론적 입장과 내용이 일치한다. 이는 생과 사의 현상 역시 인간의 경험적 지식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본질적으로 차별과 대립이 있을 수 없는 대자연의 이치에 따를 때 생과 사는 서로 같아서 만물과 내가 모두 무궁하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이러한 현상과 본질은 불가에서의 색(色)과 공(空)의 문제로서, 이는 상대론을 넘어서고 있다. 색은 현상적인 것이고 공은 본질적인 것인데,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만법의 공한 모양은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色卽是空, 空卽是色, ---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增不減)」라고 했다. 이는 인(因)과 연(緣)이 서로 응하여 만법(萬法)이 존재한다는 전체적 연기관(緣起觀)에 의한 것이다. 현상과 본질은 서로가 전체적으로 주어지며 하나만이 존재하지 않아서, 현상의 이면에는 반드시 본질이 있고, 본질적인 것에는 독립적인 유무(有無)나 완전한 증감(增減)이 있을 수 없으며, 변하는 현상과 불변하는 본질은 서로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로 원융(圓融) 혹은 교융(交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과 사 역시 현상적인 것일 뿐 만물은 끊임없이 생성변화한다는 본질적인 이치로 볼 때 그 분별은 있을 수 없으므로, 현상 세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생사문제의 고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하겠다. 결국 자연의 무궁함을 부러워하지 않게 된 그는 청풍명월의 낭만적 대자연을 찾으면서, 철학적 인생관의 경지를 성큼 넘어서는 탁월한 시정신을 발휘한다. 만물이 모두 같다는 장자의 도가적 입장에서는 이목(耳目)의 즐거움에 마음을 둘 수 없고,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말하는 불가의 공에는 「눈․귀․빛․소리가 있을 수 없겠으나(無眼耳---, 無色聲---)」, 청풍명월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주관적 감각에 의한 것이 아니고 조물주 대자연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있는 그대로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속세의 소유 관념이 있을 수 없고, 그 가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것이다. 이곳에서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것이네.」라고 말을 맺은 그는 대자연을 이해하고 이에 융화되는 참된 경지와 인생을 긍정함에 따른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기상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현대시는 호적(胡適)이 미국에서 돌아와 문예잡지 ≪신청년(新靑年)≫을 중심으로 백화문학운동(白話文學運動)을 주창(主唱)하면서부터 이른바 신시(新詩)라는 이름으로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때 활동한 시인들은 대부분 구시(舊詩) 형식의 속박을 깨고 있다는 면에서 시의 형식만을 바꾸었을 뿐 의식은 옛 시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단조로웠다. 다만 유반농(劉半農)의 시는 민중에 대한 관심으로 새로운 면을 보여주었다. 그의 시 <한 장의 종이를 사이에 두고(相隔一層紙)>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집안엔 난로불이 피워 있고   영감은 과일을 사오라 시키며 말한다.   “날씨는 춥지도 않은데 불이 너무 뜨거워,   나를 데워 죽게 할 작정이냐!”   집 밖엔 한 거지가 누워 있는데,   어금니를 악물고   북풍을 향해 “추워 죽겠다” 소리친다.   집 밖과 집 안이란   다만 한 장의 종이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 屋子裏擺着爐火, 老爺吩咐買水菓,     說 “天氣不冷火太熱, 別任它烤壞了我.”     屋子外躺着一個叫化子, 咬緊着牙齒, 對着北風呼 “要死.”     可憐屋外與屋裏, 相隔只有一層紙! )     또한 곽말약(郭沫若)은 개인적 울분과 민족적 비애 그리고 뜨거운 열정의 낭만적인 열창으로 조국과 만족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비분강개함을 대신 노래하여 현대 낭만시의 선두를 장식하였다. 그의 시 <봉황열반(鳳凰涅槃)>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섣달 그믐 저문 하늘에   오락가락 비상하는 한 쌍의 봉황,   ------   숫봉황이 향나무를 쪼자   별 하나 하나가 불똥으로 튀어 나르고   암봉황이 화성으로 날자   연기 한 오래기 한 오래기가 하늘로 피어오른다.   ------   불길은 당신   불길은 나   불길은 저 사람,   불길은 곧 불길   날아라, 날아   노래하라, 노래해.   ( 除夕將近的空中,     飛來飛去的一對鳳凰,     ------     鳳啄香木,     一星星的火點迸飛,     鳳扇火星,     一縷縷的香煙上騰.     ------     火便是你,     火便是我,     火便是他,     火便是火,     翶翔! 翶翔!     歡唱! 歡唱! )     위의 시에서 중국의 근대사(近代史)를 외침(外侵)의 굴욕사(屈辱史)로 보고 근대사의 승리(勝利)를 외침과 봉건에 대한 저항으로 보았던 곽말약은 중국의 재생(再生)을 봉황(鳳凰)으로 상징(象徵)했다. 그 중국의 재생을 형상화(形象化)한 것이 바로 오백 년을 살고도 향나무를 모아서 거기에 불을 붙이고 죽은 잿더미에서 재생한다는 봉황이고, 그 봉황의 형상(形象)이 바로 비상(飛翔)이었다. 위의 시에서는 처음부터 ‘섣달 그믐 저문 하늘에 오락가락 비상하는 한 쌍의 봉황’을 등장시켰는데, 비상의 동작은 바로 불이나 힘의 종합적인 표현이었다.   또한 상징적으로 표현된 불길은 곧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짓눌렀던 봉건사상(封建思想)에 대한 화약(火藥)으로도 풀이되고, 민주주의 혁명을 도입한 중국의 새로운 창조(創造)와 저항(抵抗)의 불길로도 풀이될 수 있다. 하나는 과거를 불사르는 해방적(解放的)인 욕구의 불길이요, 하나는 미래를 점화하는 상향적(上向的)인 욕구의 불길인 것이다.   그후 문일다(聞一多)는 시의 격률(格律)을 완전히 무시한 이들을 비판하고, 백화(白話)로 지으면서도 시의 음악적인 미(美)와 함께 회화적인 미, 건축적인 미를 중시하면서 현대시의 새로운 격률 창조에 힘썼다. 그의 시 <사수(死水)>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는 썩어 문드러진 폐수   바람이 일어도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   차라리 망가진 구리나 고철들을 잔득 던지게나   그대의 반찬 찌꺼기나 식은 국물을 뿌리면서.   거기 구리조각들이 파랗게 비취가 되고   거기 쇠깡통에 복사꽃 녹이 슬지도 모른다.   거기 기름덩이에 곱게 비단을 짜고   거기 곰팡이에 구름노을이 자욱히 필지 모른다.   ( 這是一溝絶望的死水,                這是 一溝 絶望的 死水,     淸風吹不起半點漪淪.                淸風 吹不起 半點 漪淪.     不如多扔些破銅爛鐵,                不如 多扔些 破銅 爛鐵,     爽性潑你的剩菜殘羹.                爽性 潑你的 剩菜 殘羹.     也許銅的要綠成翡翠,     鐵罐上銹出幾瓣桃花,     再讓油膩織一層羅綺,     霉菌給他蒸出些雲霞. )     위의 시에서 문일다는 ‘폐수(廢水)’로써 부패와 부조리로 기능을 상실한 사회를 상징하고, 이를 사랑으로 관조한 끝에 차라리 멸망의 순환을 바라는 애국심으로, 그러한 부패 속에서도 녹슨 깡통을 복사꽃으로, 응결된 기름덩이를 곱게 짜여진 비단으로, 곰팡이 핀 어느 물체를 구름노을로 미화(美化)하는 감성(感性)을 발휘했다. 또한 시를 ‘예술을 위한 예술’로 신앙시(信仰視)했던 그답게 청각상(聽覺上)․시각상(視覺上)의 미(美)를 추구해서, 위의 오른 쪽에 예시(例示)한 것처럼 한 절(節)을 사행(四行)으로 쓰면서 한 행은 또 네 개의 음절 마디로 나누었으며, 매 음절 마디는 대개 두 글자 혹은 세 글자의 기본조직을 갖게 하였다.   이 무렵에 노신(魯迅)은 산문시집(散文詩集) ≪야초(野草)≫를 발표했는데,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세속적인 사회와 암담한 정치현실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대체로 매우 상징적(象徵的)인 방법으로 창조된 형상(形象) 속에 감정을 함축시키는 예술성을 구비하였다. 그의 산문시 <추야(秋夜)>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사는 집 뒤뜰에서는 담밖으로 두 그루의 나무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한 그루는 대추나무이고, 또 한 그루 역시 대추나무이다.      그 위의 밤 하늘은 괴이하게 높은데, 내 평생에 이렇게 괴이하게 높은 하늘을 본 적이 없다. 그는 마치 인간세계를 떠나서 사람들로 하여금 올려다 보아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쪽빛처럼 매우 푸르고, 수십 개의 별들의 눈, 차가운 눈을 반짝이며 깜박이고 있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를 드러내고 있어서, 스스로 자못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면서, 가득한 서리를 내 뜰안의 야생 화초에 뿌려 놓고 있다.      나는 그 화초들이 실제로 무슨 이름으로 불리우는지, 사람들이 그들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는지를 모른다. 나는 매우 작은 분홍꽃이 피었던 한 종류를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도 아직 피고 있지만 더욱 매우 작아졌고, 그녀는 차가운 밤 공기 속에서 움츠러들며 꿈을 꾸면서, 봄이 오는 것을 꿈에 보고, 가을이 오는 것을 꿈에 보고, 수척한 시인이 눈물을 그녀의 가장 끝 꽃잎에 닦으면서 그녀에게, 가을이 비록 왔지만, 겨울이 비록 왔지만, 다음에 이어서는 다시 봄이니, 나비가 어지러이 날고, 꿀벌이 모두 봄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거라고 말해주는 것을 꿈에 보았다. 그녀는 그때 빙긋이 웃었고, 그렇지만 안색은 불그스레 얼었으며, 여전히 움츠러들어 있었다.     (   在我的後園, 可以看見牆外有兩株樹, 一株是棗樹, 還有一株也是棗樹.         這上面的夜的天空, 奇怪而高, 我生平沒有見過這樣的奇怪而高的天空. 他彷佛要離開人間而去, 使人們仰面不再看見. 然而現在却非常之藍, 閃閃地睒着幾十個星星的眼, 冷眼. 他的口角上現出微笑, 似乎自以爲大有深意, 而將繁霜灑在我的園裏的野花草上.         我不知道那些花草眞叫什麽名字, 人們叫他們什麽名字. 我記得有一種開過極細小的粉紅花, 現在還開着, 但是更極細小了, 她在冷的夜氣中, 瑟縮地做夢, 夢見春的到來, 夢見秋的到來, 夢見瘦的詩人將眼淚擦在她最末的花瓣上, 告訴她秋雖然來, 冬雖然來, 而此後接着還是春, 胡蝶亂飛, 蜜蜂都唱起春詞來了. 她於是一笑, 雖然顔色凍得紅慘慘地, 仍然瑟縮着. )     위 산문시의 내용은 다시 대추나무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대추나무는 사람들이 대추를 다 따가고 잎새마저 모두 떨어져 버렸다. 별 반짝이는 하늘은 더욱 쪽빛으로 파래져서 불안한 것이 인간세계를 떠나서 대추나무를 피하려는 듯 했다. 대추나무의 줄기는 죽을 운명을 이겨내려는 듯 괴이하게 높은 하늘을 찔러댔다. 작은 분홍꽃의 꿈처럼 봄이 다시 오면 대추나무는 무성하게 잎이 돋고 열매가 맺힐 것이다.   작품의 내용에서 괴이하게 높은 하늘 아래 대추나무는 어려움에 처한 중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노신은 대추나무에 감정을 기탁하고 있지만 상징적인 방법으로 감정을 함축시켰을 뿐 현실을 구체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또한 작품 원문(原文)의 밑줄 그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같은 단어나 어휘를 지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길고 짧은 호흡이 어울어지는 운률적(韻律的)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는 현실주의(現實主義) 문학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주의 문학을 논함에 있어서 지나치게 현실적 의의(意義)에만 치중한 나머지 문학예술성을 도외시(度外視)한다면, 이는 문학이 아닌 선전(宣傳)이나 광고(廣告)로 전락(轉落)하고 말 것이다. 노신이 직접 말했듯이, 비록 모든 문예가 선전일지라도 모든 선전이 다 문예인 것은 결코 아니다. 기실 선전효과를 놓고 보더라도 문학 속에서의 호소력과 설득력은 오히려 현실적 의의 표현이 명시적(明示的)일수록 약해지고 암시적(暗示的)일수록 강해진다고 볼 수 있다.  
828    백두산 화산 력사와 개념도 댓글:  조회:7227  추천:0  2015-04-03
  “백두산 현지 탄화목(화산재에 불탄 나무 화석)을 분석한 결과 백두산은 1076년 전인 939년 대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분석 결과는 일본의 역사 기록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홍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자원분석실장은 지난달 23일 제주 제주시 삼도동 오션스위츠호텔에서 열린 ‘한중 백두산 마그마 연구 워크숍’에서 탄화목 분석 결과를 처음 공개했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이용해 탄화목에 남아 있는 탄소를 추적한 뒤 나무가 숯으로 바뀐 시기를 확인한 것이다. 탄화목처럼 과학적인 증거물을 통해 백두산 폭발 시기를 알아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백두산은 일본 후지산, 미국 옐로스톤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한 화산으로 꼽힌다. 용암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활화산보다 백두산처럼 땅속에 마그마를 잔뜩 품고 있으면서 화산활동만 멈춘 ‘조용한 화산’이 훨씬 위험하다. 언제든지 큰 폭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이 마지막으로 폭발한 건 1903년이다. 939년 대폭발을 일으킨 뒤 몇 차례 작은 폭발이 이어졌고, 약 1000년 뒤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939년 대폭발 당시 백두산 분화 규모는 7이었다. 이는 당시 분출된 화산재 양이 100km³에 이른다는 뜻인데, 이 정도면 한반도 전체를 5cm 두께로 덮을 수 있는 양이다. 1903년 폭발 때도 25km 높이까지 화산재를 뿜어냈다.
827    정지용 시모음 댓글:  조회:3857  추천:0  2015-04-02
              비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서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¹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1) 원문 : '새삼 돋는 비ㅅ낯'  ~~~~~~~~~~~~~~~~~~~~~~~~~~~~~~~~~~~~~~~~~~~~  슬픈 인상화  수박냄새 품어 오는  첫여름 저녁때.....  먼 해안 쪽  길옆 나무에 늘어 슨  전등.전등.  헤엄쳐 나온듯이 깜박어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 울려 오는  축향의 기적 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로 퍼득이는  세관의 깃 발.깃 발.  세멘트 깐 인도측으로 사폿사폿옮기는  하이얀 양장의 점경!  그는 흘러가는 실심한 풍경이여니..  부질없이랑쥬 껍질 씨비는 시름....  아아, 에시리. 황  그대는 상해로가는구료....  ~~~~~~~~~~~~~~~~~~~~~~~~~~~~~~~~~  말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 푸렁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  구성동(九城洞)  골작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혼에  누뤼가 소란히 쌓이기도 하고,  꽃도  귀양 사는 곳,  절터 드랬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고  산 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  옥류동玉流洞  골에 하늘이  따로 트이고,  瀑布 소리 하잔히  봄우뢰를 울다.  날가지 겹겹히  모란꽃닙 포기이는듯.  자위 돌아 사폿 질ㅅ듯  위태로히 솟은 봉오리들.  골이 속 속 접히어 들어  이내(晴嵐)가 새포롬 서그러거리는 숫도림.  꽃가루 묻힌양 날러올라  나래 떠는 해.  보라빛 해ㅅ살이  幅지어 빗겨 걸치이매,  기슭에 藥草들의  소란한 呼吸 !  들새도 날러들지 않고  神秘가 한끗 저자 선 한낮.  물도 젖여지지 않어  흰돌 우에 따로 구르고,  닥어 스미는 향기에  길초마다 옷깃이 매워라.  귀또리도  흠식 한양  옴짓  아니 ?다.  ~~~~~~~~~~~~~~~~~~~~~~~~~~~~~~~~~~  紅椿(홍춘)  椿나무 꽃 피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어린아이들 제춤에 뜻없는 노래를 부르고  솜병아리 양지쪽에 모이를 가리고 있다.  아지랑이 조름조는 마을길에 고달펴  아름 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 볼만 만지고 돌아 오노니.  실린 곳: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  엽서에 쓴 글  나비가 한 마리 날러 들어온 양하고  이 종이ㅅ장에 불빛을 돌려대 보시압.  제대로 한동안 파다거리오리다.  ── 대수롭지도 않은 산 목숨과도 같이.  그러나 당신의 열적은 오라범 하나가  먼 데 가까운 데 가운데 불을 헤이며 헤이며  찬비에 함추름 휘적시고 왔오.  ── 서럽지도 않은 이야기와도 같이.  누나, 검은 이밤이 다 희도록  참한 뮤─ 쓰처럼 주무시압.  해발 이천 피이트 산봉우리 위에서  이젠 바람이 나려옵니다.  ~~~~~~~~~~~~~~~~~~~~~~~~~~~~~~~~~~  석류  장미꽃처럼 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  호면  손바닥 울리는 소리  곱드랗게 건너간다  그 뒤로 흰게우가 미끄러져 간다  ~~~~~~~~~~~~~~~~~~~~~~~~~~~~~~~~~~~ 湖水(호수) 1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둘 로  폭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호수)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시집 : 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  산너머 저쪽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우 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 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맞어 쩌르렁!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 저녁햇살  불 피어오르듯하는 술  한숨에 키여도 아아 배고파라.  수저븐 듯 놓인 유리컵  바쟉바쟉 씹는 대로 배고프리.  네 눈은 고만스런 혹 단초  네 입술은 서운한 가을철 수박 한점.  빨어도 빨어도 배고프리.  술집 창문에 붉은 저녁 햇살  연연하게 탄다, 아아 배고파라  ~~~~~~~~~~~~~~~~~~~~~~~~~~~~~~~~~~~~~~~  유리창(琉璃窓)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시문학사  ~~~~~~~~~~~~~~~~~~~~~~~~~~~~~~~~~~~~~~ 유리창 2  내어다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 앞 잣나무가 자꾸 커 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쪼다.  아아, 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랏빛 유리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뺨은 차라리 연정스레이  유리에 부빈다, 차디 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 꽃!  도회에서 고운 화재가 오른다.  ~~~~~~~~~~~~~~~~~~~~~~~~~~~~~~~~~~~~~~ 그의 반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영혼 안의 고문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 솟아 올라 나래 떠는 금성,  쪽빛 하늘에 흰꽃을 달은 고산 식물,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 돌아 나간 시름의 황혼 길 위  나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 3호 1931.10  ~~~~~~~~~~~~~~~~~~~~~~~~~~~~~~~~~~~~~ 별똥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별똥은 본 적이 없다  난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  별똥 떨어진 곳에 가보고 싶다  내 눈에도 보였으면…  ~~~~~~~~~~~~~~~~~~~~~~~~~~~~~~~~~~~~~~ 새빨간 기관차  으으릿 느으릿 한눈파는 겨를에  사랑이 수이 알어질가도 싶구나.  어린아이야,달려가자.  두뺨에 피여오른 어여쁜 불이  일즉 꺼져 버리면 어찌 하자니?  줄 달음질 쳐 가자.  바람은 휘잉. 휘잉.  만틀 자락에 몸이 떠오를 듯.  눈보라는 풀. 풀.  붕어새끼 꾀여내는 모이 같다.  어린아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빨간 기관차처럼 달려가자!  ~~~~~~~~~~~~~~~~~~~~~~~~~~~~~~~~~~~~~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늬는 내 귀가 좋으냐?  늬는 내 코가 좋으냐?  늬는 내 손이 좋으냐?  내사 왼통 빨개졌네.  내사 아무치도 않다.  호호 칩어라 구보로!  ~~~~~~~~~~~~~~~~~~~~~~~~~~~~~~~~~~~~~ 내맘에 맞는 이  당신은 내맘에 꼭 맞는이.  잘난 남보다 조그마치만  어리둥절 어리석은 척  옛사람 처럼 사람 좋게 웃어좀 보시요.  이리좀 돌고 저리좀 돌아 보시요.  코 쥐고 뺑뺑이 치다 절 한 번만 합쇼.  호.호.호.호. 내맘에 꼭 맞는이.  큰말 타신 당신이  쌍무지개 홍예문 틀어세운 벌로  내달리시면  나는 산날맹이 잔디밭에 앉어  기를 부르지요.  [앞으로----가.요.]  [뒤로--가.요.]  키는 후리후리. 어깨는 산고개 같어요.  호.호.호.호. 내 맘은 맞는이.  ~~~~~~~~~~~~~~~~~~~~~~~~~~~~~~~~~~~~~~ 춘 설  문 열자 선뚝! 뚝 둣 둣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로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워라.  옹송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  꽃 피기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정지용시선.깊은샘.  ~~~~~~~~~~~~~~~~~~~~~~~~~~~~~~~~~~~~~ 카페 프랑스  옮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빗두루 선 장명등  카페 프랑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시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삣적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늘기는 불빛  카페 프랑스에 가자.  이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은 벌레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 * *  “오오 페롯(鸚鵡)서방! 굿이브닝!”  “굿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鬱金香 아가씨는 이 밤에도  更紗 커-튼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子爵의 아들도 아모 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오 異國種강아지야  내 발을 빨아다오  내 발을 빨아다오    황해문화, 2000년 여름호, p.156.  ~~~~~~~~~~~~~~~~~~~~~~~~~~~~~~~~~~~~~ 향 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조약돌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앓은 페에로의 설움과  첫길에 고달픈  청제비의 푸념겨운 지줄댐과,  꾀집어 아즉 붉어 오르는  피에 맺혀,  비 날리는 이국 거리를  탄식하며 헤매노나,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 바다 1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  바다 2  한백년 진흙 속에  숨었다 나온 듯이,  게처럼 옆으로  기어가 보노니,  머언 푸른 하늘 알로  가이없는 모래밭.  *정지용시집, 시문학사, 1935  ~~~~~~~~~~~~~~~~~~~~~~~~~~~~~~~~~~~~~ 바다 3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우로  밤이  걸어 온다.  ~~~~~~~~~~~~~~~~~~~~~~~~~~~~~~~~~~~~~~ 바다 4  후주근한 물결소리 등에 지고 홀로 돌아가노니  어데선지 그누구 쓰러져 울음 우는듯한 기척,  돌아서서 보니 먼 등대가 반짝 반짝 깜박이고  갈매기떼 끼루룩 비를 부르며 날어간다.  울음 우는 이는 등대도 아니고 갈매기도 아니고  어덴지 홀로 떨어진 이름 모를 서러움이 하나.  ~~~~~~~~~~~~~~~~~~~~~~~~~~~~~~~~~~~~~~ 바다7  바다는  푸르오,  모래는  희오, 희오,  수평선 우에  살포-시 내려앉는  정오 하늘,  한 한가운데 돌아가는 태양,  내 영혼도  이제  고요히 고요히 눈물겨운 백금 팽이를 돌리오.  ~~~~~~~~~~~~~~~~~~~~~~~~~~~~~~~~~~~~~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한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슬픈 기차  우리들의 기차는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온 하루를  익살스런 마도로스 파이프를 피우며 간 단 다.  우리들의 기차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 소 걸어가듯 걸어 간 단 다.  우리들의 기차는 노오란 배추꽃 비탈밭 새로  헐레벌떡거리며 지나 간 단 다.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마음만은 가벼워  나는 차창에 기댄 대로 휘파람이나 날리자.  먼 데 산이 군마처럼 뛰어오고 가까운 데 수풀이 바람처럼 불려 가고  유리판을 펼친 듯, 뇌호내해 퍼언한 물 물. 물. 물.  손가락을 담그면 포도빛이 들으렷다.  입술에 적시면 탄산수처럼 끓으렷다.  복스런 돛폭에 바람을 안고 뭇 배가 팽이처럼 밀려가다 간,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나는 차창에 기댄 대로 옥토끼처럼 고마운 잠이나 들자.  청만틀 깃자락에 마담 R의 고달픈 뺨이 불그레 피었다, 고운 석탄불처럼  이글거린다. 당치도 않은 어린아이 잠재기 노래를 부르심은 무슨 뜻이뇨?  잠들어라.  가여운 내 아들아.  잠들어라.  나는 아들이 아닌 것을, 웃수염 자리 잡혀가는, 어린 아들이 버얼써 아닌 것을.  나는 유리쪽에 갑갑한 입김을 비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이나 그시며 가 자.  나는 느긋느긋한 가슴을 밀감쪽으로나 씻어 내리자.  대수풀 울타리마다 요염한 관능과 같은 홍춘이 피맺혀 있다.  마당마다 솜병아리 털이 폭신폭신하고,  지붕마다 연기도 아니 뵈는 햇볕이 타고 있다.  오오, 개인 날씨야, 사랑과 같은 어질머리야, 어질머리야.  청만틀 깃자락에 마담 R의 가여운 입술이 여태껏 떨고 있다.  누나다운 입술을 오늘이야 실컷 절하며 갚노라.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오오, 나는 차보다 더 날아가려지는 아니하련다.  ~~~~~~~~~~~~~~~~~~~~~~~~~~~~~~~~~~~~~~~~~ 황마차(幌馬車)  이제 마악 돌아나가는 곳은 時計집 모롱이, 낮에는 처마끝에 달어맨  종달새란 놈이 都會바람에 나이를 먹어 조금 연기 끼인 듯한 소리로 사람  흘러나려가는 쪽으로 그저 지줄거립데다.  그 고달픈 듯이 깜박깜박 졸고 있는 모양이-가여운 잠의 한점이랄지요-  부칠 데 없는 내맘이 떠올릅니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쓰다듬을 받고 싶은  내 마음이올시다. 가엾은 내 그림자는 검은 喪服처럼 지향없이 흘러나려갑니다.  촉촉히 젖은 리본 떨어진 浪漫風의 帽子 밑에는 金붕어의 奔流와도 같은  밤경치가 흘러나려갑니다. 길옆에 늘어슨 어린 銀杏나무들은 異國斥候兵의  걸음세로 조용조용히 흘러나려갑니다.  슬픈 銀眼鏡이 흐릿하게  밤비는 옆으로 무지개를 그린다.  이따금 지나가는 늦인 電車가 끼이익 돌라나가는 소리에 내 조고만 魂이  놀란 듯이 파다거리나이다. 가고 싶어 따뜻한 화로갛을 찾어가고 싶어.  좋아하는 코-란 經을 읽으면서 南京콩이나 까먹고 싶어, 그러나 나는 찾어  돌아갈 데가 있을나구요?  네거리 모퉁이에 씩 씩 뽑아 올라간 붉은 벽돌집 塔에서는 거만스러운  12시가 避雷針에게 위엄있는 손까락을 치여들었소. 이제야 내 목아지가  쭐 삣떨어질 듯도 하구료. 솔닢새 갚은 모양새를 하고 걸어가는 나를  높다란 데서 굽어보는 것은 아주 재미있을 게지요.  마음놓고 술술 소변이라도 볼까요.  헬멧 쓴 夜警巡査가 필일림처럼 쫓아오겠지요!  네거리 모통이 붉은 담벼락이 훔씬 젖었소. 슬픈 都會의 뺨이 젖었소.  마음은 열없이 사랑의 落書를 하고 있소.  홀로 글성글성 눈물 짖고 있는 것은 가엾은 소-니야의 신세를 비추는  ?안 電燈의 눈알이외다. 우리들의 그 전날밤은 이다지도 슬픈지요.  이다지도 외로운지요. 그러면 여기서 두 손을 가슴에 념이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릿가?  길이 아조 질어터져서 뱀눈알 같은 것이 반쟉 반쟉어리고 있오.  그두가 어찌나 크던동 거러가면서 졸님이 오십니다.  진흙에 ? 붙어 버릴 듯하오. 철없이 그리워 둥그스레한 당신의 어깨가 그리워.  거기에 내 머리를 대이면 언제든지 머언 따뜻한 바다 울음이 들려오더니......  ......아아, 아모리 기다려도 못오실 니를 ......  기다려도 못 오실 니 때문에 졸리운 마음은 幌馬車를 부르노니,  회파람처럼 불려오는 幌馬車를 부르노니, 은으로 만들은 슬픔을 실은 원앙새  털 깔은 幌馬車, 꼬옥 당신처럼 참한 幌馬車, 찰 찰찰 幌馬車를 기다리노니.  ~~~~~~~~~~~~~~~~~~~~~~~~~~~~~~~~~~~~~~~~~~~                                    【정지용(鄭芝溶)시인】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 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1950년 납북  시집 :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 시선』(1946),  『정지용 전집』(1988)  *절제된 언어의 구사는 정지용의 시에서 일관되는 특성이지만  그의 시세계가 그리는 궤적은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보인다.  정지용 시의 전개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23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시,  둘째, 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셋째,[옥류동](1937), [구성동](1928)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정지용의 종교시가 [카톨릭 청년](1933)의  창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지면에 대부분 그의 종교시가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초기의 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종교시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용의 신앙시는 1934년 [카톨릭 청년]에 발표된 [다른 하늘], [또 하나의 다른 태양] 이후 자취를 감추며  4년여의 침묵 뒤에 [옥류동], [비로봉], [구성동] 등이 발표된다.  이를 카톨릭 신앙의 전면적인 포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1930년대 후반에 나름대로 각고의 방향 모색을 시도했으며, [옥류동],  [백록담] 등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고 1939년 [장수산], [백록담]  등에서는 한층 더 정신주의에의 침잠을 시도하면서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견인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정지용의 대표작으로서 국민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작품 한 편을 들라고 한다면,  우리는 [향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지용의 [향수]를 노래하는 사람 모두가  언제나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감을 느낀다.  정지용은 [향수]에서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율격 언어로 응축시켜 한국인들이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는 심정적 통로를 열어 보였다.  [향수]가 그려내는 고향의 정경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이며 따라서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호소력에 힘을 더하는 것은  뛰어난 감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금빛 게으른 울음'이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에서 보이는 언어적 환기 효과는 당시로서는 특별한 예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표현한 [향수]는  뛰어난 감각적 표현으로 온 국민의 사랑 받아  첫째 연의 고향에 대한 공간적 환기와  둘째 연의 전형적인 농가의 풍경에서 제시되는 육친애의 그리움에 이어  셋째 연에서는 화자의 구체적인 성장 경험이 표현된다.  흙에서 자란 마음과 파란 하늘 사이의 화자의 행동 모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생겨나기 이전의 것으로서 유년 시절의 낙원에 대한 믿음을 연상시킨다.  그 정경은 어린 시절의 단순한 반추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이상과 낙원이  괴리되어 떠도는 현재의 상황을 시사한다. 넷째 연은 다시 구체적인 삶의  정경으로 돌아가고 다섯째 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포착된 고향집이 그려진다.  고향집이 내포하는 평화롭고 정겨운 감각으로 인해 가난의 어려움마저 넘어서고  있다.  [향수]는 20년대 초반의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와 고향을 그리는 젊음이 용해되어  있으며, 오늘의 우리들 또한 상실한 낙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그리고 이를 넘어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향수]는 생의 근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워 준다                 - 최동호 / 1948년생, 시인, 고려대 국문과 교수                                                              정지용 생가 / 정지용 문학관                    1910년대부터 50년대까지 현대시가 어떻게 변화.발전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문학독본', '산문' 등                                            정지용 시인의 시.산문지 원본이 전시되어 있습니                                                         줄겁고 행복한시간 되십시오..                                                                                                  
826    향수 명시인 - 정지용 댓글:  조회:4884  추천:1  2015-04-02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촌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름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 ​ ​ ​ ​ 작가소개   ​정지용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사변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알지 못하나 북한이 최근 발간한 조선대백과사전에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정지용 시집』『백록담』『지용문학독본』등이 있다. 그의 고향 충북 옥천에서는 매년 5월에 지용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1989년부터는 시와 시학사에서 정지용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출처] 정지용 -향수-|작성자 귀공자  
825    갑골문 / 곽말약 댓글:  조회:5564  추천:0  2015-04-02
       1. 甲骨文(殷商) 은상시기의 선조들은 특별히 귀신을 숭상했다.  크고 작은 모든 일, 즉 전쟁수렵경작을 비롯하여 자연의 풍우와 번개 등은 일종의 신의 역량으로 좌우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신령의 암시를 얻기 위해 신에게 점을 물었다.  점을 묻는 방법으로 처음에는 소나 말의 견갑골을 불에 태워 파열된 문양의 조짐을 보고 길흉을 정했다.  이후 수골(獸骨)과 갑골(甲骨)을 겸용했다.  그리고 점괘와 이와 관계된 일을 갑골에 새겼으니 이것이 바로 ‘갑골문’이다.   갑골문의 하남성 안양 소둔촌의 은허에서 최초로 출토되었다.  당시는 이것이 중요한 고물(古物)인지 모르고 혹 잘게 부수어 ‘도첨약(刀尖藥)’을 만들거나 혹은 대부분 약재로 쓰이는 ‘용골(龍骨)’로 사용했다.  이는 광서 25년(1890년에 왕의영(王懿榮)과 유악(劉鶚) 등이 발견했으며 1904년 손이양(孫詒讓)이 『계문거례(契文擧例)』를 편찬하여 처음 고증하고 풀었다.  이후 계속하여 발굴해서 약 10만 편 이상이 되었으며 현재 알고 있는 단독자는 약 5000자이며 이중에서 1500자 정도만 해독이 가능하다.  문자의 결구는 이미 단독자에서 합체자로 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약 20% 정도의 형성문자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들은 상당히 성숙한 것으로 현재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문자이다.    장기간의 연구를 걸쳐 동작빈(董作賓, 1895-1963)은 새겨진 글씨의 서로 다른 풍격에 따라 은나라 후기 약 300년간의 갑골문을 5시기로 나누고 또한 신구 양파로 분리했다.   제1시기는 반경(盤庚)에서 무정(武丁)에 이르는 기간으로(二世四王) 서풍은 웅장하고 위대하며 기세는 드높다.  제2시기는 조경(祖庚)과 조갑(祖甲)에 이르는 기간으로(一世二王) 서풍은 근엄하고 온유하면서 조용하다.  제3시기는 늠신(廩辛)과 강정(康丁)에 이르는 기간으로(一世二王) 서풍은 무너져 거칠고 구차하며 때로는 전도되어 틀리기도 한다.  제4시기는 무을(武乙)과 문정(文丁)에 이르는 기간으로(二世二王) 서풍은 혹 거칠고 성글며 고졸하면서 굳세거나, 혹 기울고 생동하면서 골력이 펼쳐지기도 하며, 혹 가늘고 작으면서 수려하다.  제5시기는 제을(帝乙)과 제신(帝辛)에 이르는 기간으로(二世二王) 서풍은 엄정하고 큰 글자는 비교적 적으며 작은 글자는 엄숙하고 공정하며 수려하면서 자태가 다양하다.    곽말약(郭沫若)은 『계수편ㆍ자서(契粹篇ㆍ自序)』에서 이렇게 말했다.   복사는 귀골에 새긴 것으로 그 새김이 정갈하고 글씨가 아름다워 수천 년 뒤인 우리들에게 정신을 전해준다.  문자의 작풍 또한 사람과 세상에 따라 다르다.…… 세상에 새김 문자가 존재함은 실로 일대의 법서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글씨를 새긴 사람은 은나라의 종요왕희지안진경유공권이다. 卜辭契于龜骨, 其契之精而字之美, 每令吾輩數千載後人神往. 文字作風且因人因世而異…… 足知存世契文, 實爲一代法書. 而書之契之者, 乃殷世之鍾王顔柳也.   도판은 제1시기의 대표적인 갑골문으로 가장 완전하며, 전체는 6단락으로 나누어졌으나 읽는 방향에 다름이 있다.  서풍으로 보면 필의가 상당히 웅장하고 호방하면서 통쾌하고 시원하며 필법이 정갈하고 능숙하면서 교묘하다.  필획마다 굵고 가늠이 다르며 한 필획에서도 암암리 경중이 있고 내리긋는 획은 더욱 입체감이 있다.  특히 왼쪽부분(제5단락) 선의 변화는 더욱 풍부하고 기세는 분방하며 골력은 굳세어 큰 기세를 이룬다.  가장 주의할 점은 각종 전절에 방절(方折)과 원전(圓轉)이 있다는 것이다.  방절은 비록 직선으로 서로 접하나 매우 교묘함과 동시에 경중과 음양으로 나누어 더욱 의미가 있으니 ‘日’‘貞’이 그러하다.  원전은 도법이 유창하고 경중과 굵고 가늠이 뜻에 다라 변해 마치 쓴 것과 같은 의취가 있으니 ‘旬’이 그러하다.  이러한 것은 서예뿐만 아니라 전각에 대해서도 매우 계발적인 의의가 있다.      
824    곽말약 / 녀신 댓글:  조회:4165  추천:1  2015-04-02
    郭沫若의 ≪女神≫ 小考   金希珍 (仁荷大 講師)   Ⅰ. 緖論 Ⅱ. ≪女神≫의 형성과정 Ⅲ. ≪女神≫에 나타난 주제의식 1. 祖國愛와 民衆愛 2. 反封建 意識 3. 愛情과 煩悶 4. 汎神의 세계 Ⅳ. 結論   Ⅰ. 緖論   근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1920년대는 봉건 전제 국가였던 중국이 정치․사회․문화적 진통을 겪으며 근대화를 향해 달려가던 시기였다. 중국 내에서는 反帝國․反封建․軍閥打倒를 부르짖으며 五四運動이 전개되었으며, 외부적으로는 十月革命과 소련 무산계급정부의 수립이 라는 국제적 충격이 全世界로 파급되던 시기였다. 이와 같은 격동의 國內外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조명하고 자신의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였던 대표적인 시인 중 하나가 郭沫若(1892-1978)이다. ≪女神≫은 郭沫若의 첫 번째 시집으로 그의 文名을 최초로 문단에 드러낸 대표적인 詩集이다. 중국 현대문학사에 있어서 郭沫若의 ≪女神≫은 1920년에 등장한 최초의 現代詩集인 胡適의 ≪嘗試集≫ 보다 한 해 늦게 문단에 출현하였지만, 내용과 형식면에 있어서 중국 현대시의 기초를 공고히 하였다는 점에서 그 위치는 더욱 선명하다고 할 수 있다. 聞一多는 ≪女神≫의 출현에 대해 “新詩로 말하자면 郭沫若의 詩야말로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五四時期의 新詩 중 郭沫若의 ≪女神≫이야말로 新詩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 정신은 “완전한 時代精神이다.”라고 하였는데, 호적의 ≪嘗試集≫이 전통 격률시의 형식적 속박에서 벗어나 白話로 시를 창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의식이나 내용 면에서 그다지 대단치 못했던 반면 郭沫若의 ≪女神≫은 대담하게 형식의 속박을 벗어나 새로운 시적 제재와 주제를 통해 당시 중국 사회를 조명하고 사회 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초기 현대시로서 신시의 경지를 개척하였다는 점에서 ≪嘗試集≫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女神≫에 대한 고찰은 중국 현대시를 정확히 이해하고 나아가 중국 현대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기초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女神≫은 1921년 8월에 출판되었으며, 1918년 ~ 1921년 사이에 창작된 시 54수와 劇詩 3편을 수록하고 있다. ≪女神≫이 창작된 시기는 바로 五四運動 시기로서, 시집 전체를 통해 五四運動의 자유와 반항 정신이 관통하고 있다. 특히 “불(火)”의 정신이라고 표현되는 ≪女神≫의 기본정신은 五四時期 당시 청년 지식인들의 반봉건 사상과 새로운 중국을 향한 理想을 대변하는 것으로, 舊中國을 태워버리고 新中國을 꿈꾸는 강렬한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듯 ≪女神≫은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현대시로서의 독자적인 위치를 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五四運動의 개혁 정신과 낙관적 희망을 담아내며 의식면에서까지 현대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00년 5월 北京에서 五四運動 81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에서 미국 위스콘신대학 동아시아 語言文學系 및 歷史系의 周策縱 교수는 近來 대륙에서 전개되었던 학생운동을 五四運動과 상통하고 있다고 규정하며, 양자 모두 애국운동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현재의 학생운동이 보다 민주를 강조했을 따름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홍콩 중문대학 중국문화연구소 소장 陳方正은 대륙이 자본주의로 나아가거나, 혹은 계속 사회주의 길을 간다 하더라도 모두 반드시 끊임없이 어떤 위기 및 정치 개혁의 요구를 맞이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중국은 현재 위기에 처해있고 80년 전 五四運動은 外患에서 기인한 것인 반면 현재 학생들은 대륙의 진보를 위해 또한 합리적 생활을 위해 가두 시위와 수업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현대화 과정에 있는 중국의 상황에서 다시 제기되는 五四精神으로, 이를 통해 현재 중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혁의 요구와 학생 운동의 성격을 이해하고 역사적 진보를 이루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五四精神은 과거에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대정신이며, 영원한 청년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五四시기를 배경으로 창작되었고 五四運動의 정신을 명확히 표명하고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는 郭沫若의 ≪女神≫에 대한 고찰은 중국 현대문학의 이해를 위한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개혁 개방으로 현대화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Ⅱ. ≪女神≫의 형성과정   ≪女神≫은 1918년부터 1921년까지 郭沫若이 창작하거나 문예지에 기고했던 작품을 수록한 시집으로, 1921년 8월 5일 上海 泰東圖書局에서 출판되었으며, 19세기 독일 낭만파 작가였던 스트롬(Storm)의 작품 에서 “女神”이라는 이름을 인용하였다. 문단에 등장하기까지 ≪女神≫의 형성과정은 1919년 五四運動을 분기점으로, 五四 이전을 1단계, 五四 고조기를 2단계, 五四 이후를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五四運動 시기를 중심으로 분기한 것은 五四시기을 전후하여 郭沫若의 의식은 물론 작품 창작에 있어서 각기 다른 특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1. 제1단계(五四運動 以前 時期)   1918년 초 여름, 詩作生活을 시작하여 1919년 五四 이전까지 郭沫若은 10여 편의 시를 창작하였다. 이 기간을 郭沫若 자신은 “시의 覺醒期”라고 명명하였는데, 주로 하이네와 타고르의 영향으로 애정과 자연을 제재로 한 작품을 창작하였다.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다소 뒤떨어지지만 본격적인 창작을 위한 준비기간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의 최초의 작품인 을 비롯하여 등이 이 기간에 완성되었다. 이 시편들은 청신하면서도 담백하고 때로는 悲歌的 애조를 띄고 있으며, 대부분 애정의 기쁨과 환희를 노래하는 한편 조국에 대한 念慮와 鄕愁를 담고 있다. 郭沫若 자신은 이 기간의 창작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러한 詩篇들은 가장 이른 시기의 시로서, 舊式의 격식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하였다. ........당시 지은 등은 확실히 타고르와 하이네의 영향 아래에 있다.   郭沫若 스스로도 밝혔듯이 이 시기에 그는 바람, 달, 바다, 하늘 등 자연 景物을 통해 五四 이전 시기의 침울하고 답답했던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으며, 일본 여인 安娜와의 사랑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내용이나 형식 측면에서 볼 때 이 시기의 시편들은 舊式의 격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과도기적 형태이며, 문학적으로도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은 아니다.   2. 제2단계(五四運動 高潮期)   郭沫若은 1919년 하반기에서 1920년 상반기 사이에 이른바 “詩作 爆發期”를 맞이하여 ≪女神≫의 주옥같은 시편들을 대량으로 창작하였다. 이 기간이 바로 제2단계로서 五四運動의 고조와 더불어 도래하였으며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이전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성취를 이룬 창작의 황금시기라 하겠다. 이 기간의 시편들은 제1단계에 비해 내용이 풍부해진 것은 물론 한결 성숙해졌으며 이전의 感傷性에서 벗어나 五四 시기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힘차고 약동하는 시풍으로 전환하였다. 제재면에서도 정치적 소재, 자연 경물, 현실 생활, 물질 문명, 신화나 전설, 조국, 애정, 범신주의 등 노래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아울러 그는 자유와 이상을 노래하였으며 적극적으로 반봉건 의식과 반항 정신, 개성 해방 등을 표출하였다. 이처럼 詩風이 격정적이고 거칠은 함성으로 변모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이에 따른 시인의 내면적 변화를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들 수 있겠다. 시대적 배경이란 바로 1919년 발생한 五四運動으로, 五四의 반제국, 반봉건, 반군벌의 요구는 郭沫若의 의식을 각성시켰으며, 중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청년 郭沫若의 내면을 애국 열정으로 끓어오르게 하였다. 이러한 내면적 각성은 그의 내부에 팽배해 있던 시적 열정을 동요시켰으며, 五四運動의 고조와 더불어 폭발한 왕성한 創作熱로 인해 그는 수많은 시편들을 창작하게 되었다. 이외에 지적할수 있는 원인은 上海 『時事新報』의 副刊인 ≪學燈≫의 영향을 들 수 있겠다.   처음으로 나의 작품이 활자로 인쇄된 것을 보자, 정말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래서 나의 자신감 역시 점점 증대되었다. 나는 이미 완성한 시와 새로 쓴 시를 모두 계속하여 투고하였으며 투고한 것은 대부분 게재되었다. 이는 말할 필요 없이 나의 詩作 욕구를 증가시켰다.   이처럼 ≪學燈≫과의 만남은 郭沫若의 詩作 욕구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실제로 ≪女神≫의 작품들은 몇몇 작품만을 제외하고 대부분 ≪學燈≫을 통해 시단에 소개되었으며 시인으로서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더욱이 ≪學燈≫의 편집인이었던 宗白華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詩篇들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學燈≫의 紙面에 그의 시가 실리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투고만 하면 발표되었다. 당시에 대해 郭沫若은 “나는 시를 짓는 공장 같았다. 시는 販路를 확보하고 있었고, 시의 生産은 갈수록 왕성해지기 시작하였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또한 ≪學燈≫에 투고를 시작할 무렵 접하게 된 휘트먼의 ≪草葉集≫은 郭沫若에게 시적 열정을 분출할 수 있는 자극을 주었다. ≪草葉集≫의 특징인 형식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써 내려간 힘차고 생동감 넘치는 詩風은 五四시기의 시대 정신을 표출하기에 적합하였고 자신의 격정을 표현하기에 좋은 본보기가 된 것이다. 휘트먼의 시에 매료된 郭沫若은 거침없는 호방한 휘트먼 시풍을 빌어 자신의 詩作慾을 분출시켰다. 이와 같은 內外的인 원인으로 詩作의 爆發期를 맞이한 郭沫若은 “그러한 발작은 수시로 나를 엄습하였으며 일단 엄습하면 점치는 사람처럼 시를 써내려 갔다.”와 같이 狂的으로 詩作에 몰두하였으며 예술성과 시대성을 성공적으로 표현한 시편들을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제3단계(五四運動 後期)   제3단계는 1920년 상반기부터 1920년 하반기까지의 기간이다. 앞서 폭발한 격정적인 詩作 慾求와 情熱이 상실된 詩作의 消失期라고 할 수 있다. 郭沫若이 ≪學燈≫을 중심으로 창작활동을 전개하였음은 앞서 언급하였으나, 詩作의 消失 역시 ≪學燈≫과 더불어 찾아왔다. ≪學燈≫의 편집자였던 宗白華의 후임으로 부임한 李石岑과의 갈등은 郭沫若의 詩作 意慾을 꺾었으며, 발표 지면까지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한번은 그(李石岑-필자 주)는 나의 시를 다른 시인의 시 뒤에 발표하였는데, 그 시인의 시는 내가 ≪學燈≫에 발표한 적인 있는 이라는 시를 베낀 것으로, 단지 앞부분을 고쳐서 몇 글자 바꾼 것일 뿐이다. 이러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세세한 일들은 당시 내게 냉수를 퍼부은 듯 하였다. 이후로 나는 다시는 ≪學燈≫을 위해 시를 쓰지 않았으며, 더욱이 성난 파도처럼 일어났던 시작 욕망도 굳어져 버렸다.   이처럼 새로운 ≪學燈≫의 편집자의 부당한 처사와 표절 사건은 郭沫若의 詩興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발표 지면까지 사라지게 하였다. 비록 이러한 주변의 냉대와 부조화는 郭沫若의 시에 대한 열정을 식히기는 하였지만 완전히 소멸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의 內面에는 여전히 현실에 반항하고 자유와 이상을 추구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詩的 慾求 역시 동요하고 있었다. 그의 의식 속에서 시적인 열정과 현실과의 부조화는 때로 부딪히고 때로 결합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작품 가운데 정열적으로 高潮되다가도 우울하고 또한 悲壯하다가도 哀想的 정조를 띈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따라서 제3단계의 시풍은 1단계와 같이 청신하거나 담백하지도 않고 2단계처럼 정열적이지도 않은 중간 단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기간에 郭沫若은 괴테의 영향으로 劇詩를 창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라고 칭하는 를 창작하였다. 그밖에 3단계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1914년 1월 일본에 도착하여 유학생활을 하였던 郭沫若이 1921년 4월 3일 귀국하면서, 조국의 현실에 다시 한번 눈뜨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당시 중국의 암담한 현실과 직면하면서 조국에 대한 희망과 찬양 대신에 민중의 비참한 삶과 반식민지 상황에 빠진 중국의 현실상에 대해 분노와 슬픔을 나타내는 한편 깨어진 理想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표출하였다. 문학을 통해 중국을 개혁하고 잠자는 중국을 깨우겠다는 신념을 지녔던 郭沫若은 귀국 후 자신이 몸소 보고 체험했던 중국의 현실은 그에게 문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겨 주었으며, 다시금 그를 고민에 빠지게 하였다.   Ⅲ. ≪女神≫에 나타난 주제의식   1. 祖國愛와 民衆愛   (1) 조국애와 정치적 신념   이른바 예술이란 개인적인 신념이나 의식, 독창적인 미감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이 바로 시대적 감각이며 신념이 될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니게 되며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女神≫의 많은 시편들은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시대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며 형성되었다. 시 속에 나타난 조국과 미래를 향한 理想과 信念은 시인 개인의 것인 동시에 당시 조국 중국 전체에 팽배해 있었던 사회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인의 조국애를 바탕으로 조국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희망과 정치적 신념으로 형상화 되었다. 먼저 郭沫若 자신의 열렬한 애국심을 보여주는 시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아,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 나 그대의 애정을 버리지 않으리, 그대도 내 그리움을 버리지 말기를. 내 진정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이렇게 불타고 있다오!   아,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 그대는 나의 전생을 알고 있는지? 그대 나 검은 노예의 억셈을 뭐라 하지 마시오? 이 검은 노예의 가슴엔, 불같은 심장 뿐 이라오.   아,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 내 전생을 생각해 보니 본시 쓸모 있는 기둥이었다오, 오래 땅 속에 묻혀있어, 오늘 아침에야 햇빛을 다시 보게 되었소. 아,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 나 햇빛을 본 후, 언제나 고향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이렇게 불타고 있다오.   당시 일본에 유학하고 있었던 郭沫若은 조국을 사랑하는 여인에 비유하고 조국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난로 속에서 불타고 있는 석탄으로 묘사하며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염려를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그는 五四運動 이후의 중국에 대해 “내 마음 속에서 아주 아름답고 진취적인 아가씨와 같았으며 정말 애인과도 같았다.” 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의 아가씨의 형상과 상통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조국을 향한 끊임없는 애정과 더불어 사랑하는 여인인 중국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읽을 수 있다. 의 聶嫈 남매의 형상을 통해 표출된 시인의 각오는 더욱 비장하다. 구차한 생을 지속하기 보다, 장렬한 죽음을 택하리. 내 목숨 다하여, 저 백성을 구할 수 있기를!   가거라, 아우여! 네 붉은 피가, 자유의 꽃으로 피어나, 中華에 두루 만발하기를 원하노라! 가거라, 아우여!   는 戰國時代에 聶政이 포악한 韓나라의 재상 俠累를 중인 故事를 바탕으로 완성시킨 5막극의 劇詩이다. ≪女神≫에는 제1막인 聶嫈과 聶政 남매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이별하는 장면만을 수록하였다. 시 속의 聶嫈의 절규는 조국의 자유와 신생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낌없이 바치겠다는 시인의 애국심이다. 이러한 애국 열정은 그로 하여금 조국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게 하였으며, 미래를 향한 무한한 희망과 굳은 신념을 지니게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女神≫의 조국애는 미래지향적 자세를 지니고 있으며, 미래의 형상으로서 밝은 조국 새로운 중국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고 하겠다. 희망에 찬 조국을 향해 그는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   평화의 고향이여! 내 부모의 땅이여! 언덕 위 저토록 푸르름! 流水는 이토록 누렇구나!   나 뱃전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니, 수면처럼 평평한 대지, 푸른 버드나무를 빼곤, 거칠 것이 없구나.   작은 배 물결에 일렁이고, 사람들은 꿈을 꾸는 듯. 평화의 고향이여! 내 부모의 땅이여!   1919년 폭발한 五四運動은 중국을 오천년 간의 긴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 새로운 희망과 이상을 심어 주었다. ≪女神≫에 표출된 미래에 대한 강한 신념은 五四運動 당시 지식인을 비롯한 사회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사회의식으로, 그들은 五四運動을 통해 민주와 평등의 새로운 중국을 바라보았으며,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중국을 갈망하였다. 이는 당시 全中國人의 보편적인 신념으로서 시인은 이러한 사회의식을 ≪女神≫의 애국시로 탄생시킨 것이다.   나는 무산계급자이다: 나는 발가벗은 내 몸 이외에, 사유재산이라곤 없기에. ≪女神≫이 내가 만든 것이라서 내 것이라고 말할지라도 그러나, 난 공산주의자가 되고자 그녀를 공개하겠다.   ≪女神≫이여! 너는 가라, 나와 진동수가 같은 이를 찾아서: 너는 가라, 나와 발화점이 같은 이를 찾아서. 너는 가라, 사랑하는 청년 자매들 가슴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심금을 울리고, 그들 지혜의 빛에 불을 당겨라!   여기서 郭沫若은 무산계급자와 공산주의자가 되겠다고 직설적으로 외치고 있다. 이런 외침은 十月革命의 성공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그의 의식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당시의 중국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사회주의 국가라는 새로운 체제를 꿈꾸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신적 변화는 ≪女神≫에서 정치적 신념을 표출한 시로 등장하였는데, 주로 혁명가나 러시아 혁명, 노동자에 대한 찬양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아! 내가 경외하는 러시아! 내가 경외하는 개척자여!   시인의 가슴에 각인된 十月革命의 영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시구이다. 이러한 외침은 자신의 조국 중국에도 十月革命과 같은 혁명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의 의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郭沫若은 확실히 혁명을 통해 新生한 러시아를 중국이 동경해야 할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신념에서, 그는 사회주의를 지향함에 노동자를 향한 찬미와 찬양을 보내고 있는데, 이는 민중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의 차원도 아니고 어떤 계급 의식이나 이론에 근거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구, 나의 어머니! 저는 당신의 효자인, 밭가는 농부를 흠모합니다. 그들은 전인류를 돌보는 사람이며, 당신은 언제나 그들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지구, 나의 어머니! 저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탄광의 노동자를 흠모합니다. 그들은 전인류의 프로메테우스이며, 당신은 언제나 그들을 품어주십니다.   시인은 農夫를 지구의 “효자”, 인류의 “보모”로 그리고 鑛夫를 지구의 “사랑스러운 아들”, 인류의 “프로메테우스”로 부르며, 찬미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줌으로써 인류를 암흑에서 해방시킨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神이다. 따라서 프로메네우스는 인류를 어둠에서 해방시킨 해방자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구원의 존재라 하겠다. 바로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찾아준 해방자를 상징한다. 郭沫若은 러시아 혁명을 통해 인식하기 시작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의 하나로 농부나 광부 등 노동자 계층에 대한 찬미를 표시하며, 이들을 인류의 해방자요 구원의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상당히 모호한 것으로 이념적 각성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 救國救民의 해결책으로 그의 의식에 자리잡기 시작한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十月革命이나 노동 계층에 관심을 표명하였고,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十月革命-필자 주) 당시의 청년들을 불러 일으켰으며, 나 역시 그 중의 하나로 新社會에 대해서 진보적인 이해를 할 필요를 발생하게 되었다. 나는 마르크스, 레닌이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고 여겼으나,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오히려 막연하였다.   郭沫若 자신이 고백하였듯이, 이념적 차원이나 계급적 각성을 통한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이었다기 보다는 반봉건 반제국주의 차원이자 애국적 차원에서 이를 수용하였으며, 그것은 상당히 막연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郭沫若의 ≪女神≫에 나타난 정치적 신념으로서의 사회주의나 혁명, 노동자에 대한 찬사는 애국적 정조에서 출발한 것이며, 사상적 각성이 전제되지 않은 救國救民의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郭沫若은 비록 사회주의의 개념에 대해서조차 명확히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조국의 出路로 사회주의를 동경하였으며, 정치적 신념을 표출한 시로 탄생시킨 것이다.   (2) 민중애   郭沫若은 ≪女神≫에서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피지배 계층인 민중을 향하여 동정과 연민을 표시하면서, 이들의 피지배적인 삶을 통해 중국의 비참한 현실을 폭로하였으며, 帝國主義와 封建專制라는 이중적 지배 하에서 신음하고 있던 당시 중국의 상황을 고발하였다.   늙은 농부 내 심장의 피는 모두 말라붙었다, 보리밭사이로 어떤 이가 싸우라고 외친다. 황하의 물은 언제쯤 맑아질까? 인간의 생명은 언제 끝날지?   목동 아, 나는 투견 두 마리를 기를 순 없다; 늘상 만두 먹는 것을 다투니; 만두가 없어지면 양고기를 먹으려 할테니, 나는 양을 몰고서 도망갈 수 밖에.   농부와 목동의 입을 빌어 당시 중국 민중이 겪는 고통을 고발하였다. 국민들의 삶에는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세력 확장만을 위해 전쟁을 벌이는 군벌들의 횡포와 이에 따른 일반 국민들의 궁핍한 생활과 고통을 고발하였다. 日本으로 유학을 떠났던 郭沫若은 1921년 4월 上海로 귀국하였다. 그러나 그가 유학 생활을 하며 五四運動을 통해 동경하고 꿈꾸었던 조국은 실망과 좌절에 빠진 암울한 곳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평화의 고향이여! 내 부모의 땅이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귀국 후 접한 중국의 현실은 다시 한번 그를 절망에 빠지게 하였지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나 꿈에서 놀라 깨었네! 환멸의 비애여!   한가로이 떠다니는 시체, 썪은 고기 덩어리,   긴 남자의 옷자락, 짧은 여인의 옷소매,   보이는 건 전부 해골, 온 거리 가득 관 뿐, 난폭하게 뛰어들어, 제멋대로 다닌다.   내 눈에 눈물 흐르고, 내 마음은 구토한다.   나 꿈에서 놀라 깨었네! 환멸의 비애여!   중국의 참담한 현실로부터 충격을 받은 시인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귀국 이전에 郭沫若은 五四運動 이후의 중국을 “아,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로 노래하였지만, 귀국 후 중국이 그에게 안겨 준 것은 비참한 현실 뿐 이었다. 제국 열강들의 반식민적 상태에 놓인 당시의 중국에서 이상과 희망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죽은 시체와 같은 중국인들의 모습으로부터 커다란 실망과 분노를 느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호미자루를 멈추고, 고개 들어 나를 본다. 아 그의 온화한 눈빛, 그의 건강한 구리빛 얼굴, 그의 반백의 수염, 그의 근육 솟은 황금빛 팔. 나 그의 앞에 무릎꿇고 “ 내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발등 누런 진흙을 씻어주련다.   시인은 땅을 갈고 있는 늙은 노인의 모습을 통해 노동하는 민중의 형상을 재인식하고 있다. 노동으로써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이야말로 오랜 봉건주의의 지배와 제국주의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지탱해온 생명이다. 郭沫若은 이러한 민중을 계급 의식의 차원이 아닌 민족 차원에서 재인식하며 이들에게 관심과 찬사를 보냈다. 중국 근대사에서 민중은 역사의 담당 주체임에도 역사의 전개에 있어서 철저히 배제되고 역사적 격변 속에서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女神≫에 등장한 민중의 모습은 대부분 전쟁과 군벌의 횡포에 억압받고 고통 받는 형상들이다. 민중을 재인식하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전에 비해 진보된 일면을 나타내고 있으나, 다소 피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점 또한 그 한계로 드러난다. 이는 시인이 일본에 유학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런 창작 환경 때문에 자연히 현실에서 제재를 취하기보다는 주로 역사적인 고사를 빌어 형상화하려 했기 때문에 조성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제국주의와 봉건 군벌에게 지배당하는 민중의 고통을 노래한 ≪女神≫의 민중애를 표출한 시편들은 郭沫若의 민중에 대한 민족적 자각과 애국심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소 현실 인식을 결핍한 것으로 동정과 연민 그리고 관심의 수준을 탈피하지 못하였다.   2. 反封建 意識   (1) 개혁의 의지   ≪女神≫의 형성에 있어서 五四運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이미 앞서 언급하였다. 郭沫若은 ≪女神≫의 많은 시편 가운데 五四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반봉건의식을 나타내며, 新中國의 創造를 도처에서 외쳤다. 새로운 조국의 탄생을 열망하는 시인에게 개혁과 창조는 중국을 理想社會로 이끄는 원동력이며 지름길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그는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에 반항하며 舊中國의 타파를 주장하였고, 新中國의 창조와 新社會의 건설을 외쳤다. 이러한 태도는 확실히 반봉건적인 것으로 五四運動의 영향으로 더욱 견고해졌으며, 五四의 時代精神과 밀접하게 결합하였다.   태양의 찬란한 위세는 전 우주를 녹이려 한다! 형제들이여! 자, 어서! 빨리 와 파도를 탈지어다!! 우리의 혈기가 용솟음 칠 때, 우리의 정열이 타오르고 있을 때, 빨리 썩은 낡은 몸뚱이를 모두 씻어 버리기를! 새로운 사회의 재창조는 전부 우리에게 달려 있다네!   자신의 형제와 동포인 中國 國民을 향해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의 정열 아래에서 진부한 모든 낡은 것을 깨끗이 씻어버리라고 외치고 있다. 개혁과 개조에 대해 자각할 것과 동참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무수한 흰 구름 공중에서 일어나면, 아아! 장엄한 북빙양의 해맑음이여 끝없는 태평양은 있는 힘을 다해 지구를 쓰러뜨리려 한다. 아아! 눈앞에 용솟음쳐 오르는 거대한 파도! 아아! 중단 없는 파괴, 중단 없는 창조, 중단 없는 노력! 아아! 힘! 힘! 힘의 모습, 힘의 춤, 힘의 음악, 힘의 노래, 힘의 선율! 郭沫若은 지구의 끝에 서서 지구를 내려다 본다는 상상을 통해, 눈 앞에 전개되는 역동적인 흰구름, 북빙양, 태평양의 형상을 통해 개혁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표출하였다. 특히 “힘(力)”의 이미지와 형상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힘은 상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쓰러뜨릴 수 있는 위대한 힘이고 파괴적이면서도 창조적인 힘이다. 五四運動의 영향으로 郭沫若은 新社會에 대한 희망과 이상을 표시하는 한편 舊社會에 대한 파괴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제국 열강과 봉전 체제의 지배에 신음하고 있던 당시 舊中國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표출이며, 이 舊中國이 파괴되기를 바라면서도 새로운 중국의 탄생을 강렬히 열망하는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이를 수행할 강력한 힘의 존재를 갈망하면서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郭沫若은 改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창조의 선구는 파괴이다. ........엣 것이 파괴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은 탄생될 수 없다. 무너진 초가집 위에 다시 마천루를 건설할 수 없다.   우리의 사업은 지금 혼돈 중에 있기에, 먼저 파괴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정신은 반항의 불꽃이 되어 불타올라야 한다.   創造에 앞서 철저한 파괴를 부르짖고 있다. 舊中國에 대한 철저한 파괴가 선행되지 않는 한 新中國과 新社會의 탄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혁의 의지는 파괴와 개혁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새로운 중국의 탄생을 열망하는 시인의 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그 성격은 확실히 反封建的인 것으로 五四의 시대 정신과 일치하고 있다.   (2) 개성의 해방   五四시기의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은 인성과 개성의 해방을 주장하였으며, 문인들은 인성의 자유로운 표현을 문학의 이념으로 삼았다. 魯迅은 “최초의 문학 혁명의 요구는 인성의 해방이다.”라고 했으며, 郭沫若은 “문학이란 적나라한 인성의 표현이며, 우리 인성의 신비롭고 찬란한 정수가 통해내는 광채이다.” “초기에 나는 개성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이는 애국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시대의 요구와 일치했으니, 바로 반봉건의 요구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五四시기에 郭沫若을 비롯해 많은 문인들은 반봉건의 일환으로 개성의 해방을 주장하였으며 개성의 자유로운 표현을 자신들의 작품 속에 실천하려 하였다. 이러한 개성 해방 정신은 五四運動과 이에 따른 人性에 대한 각성 그리고 민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五四시기의 반제국 반봉건사상과 긴밀하게 결합하고 있었다. ≪女神≫의 많은 시편에서 이러한 개성해방의 요구는 “自我”에 대한 표현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나는 한 마리 天狗이다! 나는 달을 삼켰다. 나는 해를 삼켰다 나는 모든 별들을 삼켰다 나는 온 우주를 삼켰다 내가 바로 나다; 나는 달빛이고, 나는 햇빛이며, 나는 모든 달빛이며, 나는 X 광선이며, 나는 온 우주의 에너지의 총량이다!   나는 나는 듯 달리고, 나는 미친 듯 울부짖고, 나는 활활 타오른다. 나는 열화와 같이 활활 타오른다. 나는 바다와 같이 미친 듯 울부짖는다! 나는 전기처럼 나는 듯 달린다!   나는 난다, 나는 난다, 나는 난다, 나는 나의 피부를 벗기고, 나는 나의 살을 먹고, 나는 나의 피를 빨고, 나는 내 심장과 간을 씹고, 나는 내 신경 위로 난다, 나는 내 등골 위로 난다, 나는 내 두뇌 위로 난다.   내가 바로 나다! 내 안의 나는 폭발하련다. 29句 모두 “我”字로 시작하면서, 天狗의 형상을 빌어 시인 자신의 격분과 정열을 표출하고 있다. 詩에서 天狗는 해, 달, 별, 우주를 삼켜 버린 초우주적인 존재로, 이를 통해 등장한 “나” 역시 달빛이고 햇빛이고 별빛이며 X광선이며 에너지의 총량이 된다. 그러기에 “나”는 번개와 같이 빠르고, 바다처럼 울부짖고, 불처럼 타오르며 심지어 살갗과 피, 심장과 간을 씹다가 마침내 폭발하고 만다. 시속에 묘사된 “나”는 거대하고 정열적인 자신감에 충만한 형상이며, 五四시대가 요구하는 “나”의 모습이다. 이처럼 “나”를 극대화시키는 태도는 自我의 표현을 강조하는 郭沫若의 시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의 주요성분은 ‘자아표현’이다. 한 작가의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지 못할리 없다. 하이네의 시는 그의 일생의 진실된 기록이며 그의 눈물의 결정체이다.   詩作에 있어서 自我表現을 강조하는 郭沫若의 詩論은 個性을 구속하는 封建思想에 반대하는 대응책으로 제시되었으며, 인위적인 형식과 격율로 자유로운 詩情을 구속하는 전통 문학의 속박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우상숭배자이다! 나는 태양, 산, 바다를 숭배한다. 나는 물, 블, 화산, 장엄한 강을 숭배한다; 나는 태어남, 죽음, 광명, 흑암을 숭배한다; 나는 수에즈, 파나마, 만리장서, 피라미드를 숭배한다. 나는 창조 정신, 힘을 숭배하고, 피와 심장을 숭배한다; 나는 폭탄, 비애. 파괴를 숭배한다; 나는 우상파괴를 숭배하고, 나를 숭배한다! 난 또한 우상파괴자이다.   시속의 “我”는 먼저 우상숭배자라고 선포하면서 자연계의 모든 위대한 자연물을 숭배하고 있다. 또한 이 “我”는 인류 역사의 모든 문화 유산들을 숭배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자신은 우상파괴자라고 힘차게 외침으로써 이전에 자신이 숭배하였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我”의 형상은 전통적이고 봉건적 기존의 구속과 속박을 거부하는 반봉건적 모습이며 파괴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당시 郭沫若은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썼으며 모든 것을 전복하려 했고 태우려 했으며 심지어 나 자신까지 불태우려 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女神≫의 自我의 형상은 이처럼 철저하게 舊式의 모든 속박과 전통의 구속을 벗어버리고 파괴하려는 개혁자의 모습이다.   3. 愛情과 煩悶   ≪女神≫에서 애정과 번민을 노래한 詩篇은 주로 1919년 봄에서 가을에 이르는 기간에 창작되었다. 그러나 그 배경을 고찰해 보면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郭沫若이 일본 유학을 시작할 시기(1914-1921)는 바로 제1차 세계 대전기간으로(1914-1918), 세계대전에 편승한 일본의 제국주의는 중국에 대해 정치, 경제, 군사적 압력을 가하며 침략을 가속화시키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富國强兵과 救國救民의 理想을 품고 일본 유학을 시작하였던 郭沫若은 일본 여인 安娜와 사랑에 빠지면서, 반일감정으로 팽배하였던 재일 중국 유학생들로부터 “매국노”라는 멸시를 받으며 소외 당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녀와의 사랑은 그에게 정신적 위로와 기쁨을 주기도 하였다. ≪女神≫에는 그녀와의 사랑을 노래한 詩篇이 적지 않은데, 기존의 연구자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비록 애정을 노래한 시편들이 문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기존의 연구가 주로 행해진 중국 측의 연구 시각이 이데올르기나 정치적 시각에 편향되어 연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연히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추측된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선행 연구의 자세에서 탈피하여 인간적 면모와 순수한 감정을 담고 있는 이들 시편을 연구의 범위에 포함시켜 논의하기로 하겠다. 아! 진정한 해탈을 얻으려면, 역시 죽음 뿐!   죽음! 나 언제 너를 만날는지? 그대 나의 연인이라면, 나 그대의 젊은 연인이니. 내 마음은 그대를 그리며, 내 마음은 그대를 두려워 하네. 내 사랑하는 죽음! 나 진정 언제 그대를 만날 수 있는지? 는 1920년 1월13일 ≪學燈≫에 발표되었다. 죽음을 노골적으로 찬미하며 죽음으로의 해탈을 노래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의 의식이 극도의 비관과 절망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음을 연인으로 형용하면서 그립고도 두려운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염세적 분위기가 농후하다. 실제로 郭沫若은 당시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웠음을 고백한 적이 있는데, “때로는 중이 되려 하였다. 매일 단지 莊子와 王陽明과 ≪新舊約全書≫를 규칙적으로 읽었고, 하루 종일 靜坐에 몰두하였다.”라고 할 만큼 한계상황에 이르렀었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였고 이를 통해 현실적 고뇌와 고통을 탈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郭沫若은 일본에 유학하면서 처음에는 九洲大學 醫科에 입학하여 의학도의 길을 걸었으나, 도중에 文學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 이유는 17세 때 앓은 장티푸스의 후유증으로 인해 한쪽 귀의 청각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신체적 결함은 醫學으로 조국에 기여하겠다는 그의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으며, 다시 한번 그를 절망과 비관에 빠지게 하였다.   Hygeia 여! 그대 왜 나를 버렸나요? 만일 그대의 장밋빛 얼굴이 다시 내게 입맞춤 한다면, 나 이제 죽어도 영혼이 평안하리라. Hygeia 여! 그대 왜 나를 버렸나요? 고대 희랍신화에서 건강을 다스리는 神인 “Hygeia”을 향해 청각 상실이라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한탄하며 상심해 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그의 정신적 압박과 고통이 극심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郭沫若은 ≪女神≫의 대표적인 애정시로 를 들었는데, 본 고에서는 을 고찰하기로 하겠다.   달이여! 넌 도금한 낫 같구나. 넌 바닷가의 소나무를 베었고, 아, 나 역시 너에게 베어졌다!   흰 구름아! 넌 갈증을 푸는 얼음인지? 어떻게 해야 너를 삼켜, 불처럼 타는 이 가슴을 식힐 수 있는지?   시속의 “新月”이란 음력 초3-4일경에 뜨는 초승달로, 시인은 도금한 낫에 비유하였다. 바닷가 소나무 가지에 걸린 초승달과 달빛에 취한 자신의 형상을 낫이 소나무를 베었고 자신도 베어 버렸다고 형용하였다. 일반적으로 태양이 남성을 상징한다면 달은 여성을 상징한다. 달빛에 흠뻑 취한 시인의 모습은 바로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을 상징하며, 구름을 얼음으로 연상하며 타는 듯 한 자신의 가슴을 식히려는 것은 역시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女神≫의 애정과 번민을 노래한 시편들은 대부분 郭沫若의 초기시로 유학기간에 창작한 작품들이다. 그가 일본에 유학했던 때는 중국이 국내외적으로 더욱 어려움에 빠져있던 시기로 조국의 미래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던 郭沫若에게 정신적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더욱이 일본 여인과의 사랑은 그를 矛盾에 빠지게 하였고 동시에 기쁨을 안겨 주었다. 또한 청각 상실이라는 신체적 제약은 그가 선택한 의학도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로 등장하였고, 그를 극심한 상실과 비관에 빠지게 하였다. 이러한 내면적 혼란과 고통은 ≪女神≫ 속에서 애정의 환희를 노래하는 동시에 번민과 방황을 드러내는 詩篇으로 탄생하였고, 이를 계기로 郭沫若은 마침내 시인으로 문단에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女神≫의 애정과 번민을 노래한 시편은 다소 문학적 성숙도가 떨어지기는 하나, ≪女神≫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4. 汎神의 세계   汎神論이란 자연의 모든 것을 神으로 인식하면서 신과 자연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는 철학적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범신론은 종교가 품고 있는 신비적 경향을 이론화하려고 할 때 그 형태가 나타나는데, 첫째 자연이나 세계를 보편적인 神으로 여기는 그리이스 사상, 불교와 같은 형태, 둘째 모든 것에 통하는 것이 神이라고 여기면서 자아와 신의 일치를 주장하는 베에다(Veda)나 브라흐만(Brāhman)의 종교와 같은 형태가 있다. 郭沫若의 ≪女神≫에 나타난 범신의 세계는 앞서 말한 두 가지 형태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하나의 철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기 곤란한 복합적 성격을 나타낸다. 그는 범신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모든 자연은 단지 神의 표현이며, 나 역시 단지 신의 표현일 뿐이다. 위의 해석은 신이 바로 자연이고 자연이 즉 신이라는 입장으로, 郭沫若은 자연을 신이 창조한 피조물로 인식하지 않고 신이 內在해 있는 신의 부분적인 樣態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범신론에 대한 입장은 ≪女神≫에서 자연에 대한 열렬한 숭배와 찬양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자연과 자아의 합일을 통한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고 있다.   매화! 매화! 나 너를 찬미한다! 나 너를 찬미한다! 넌 네 자아에서 맑고 은은한 향기 토해내고, 어여쁜 꽃을 피우는구나. 꽃이여! 사랑이여! 우주의 정수여! 생명의 샘물이여! 만일 봄이 없다면, 삶에 사랑이 없다면,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 매화여! 매화여! 나 너를 찬미한다! 난 나 자신을 찬미한다! 난 내 자신을 드러내는 온 우주의 본체를 찬미한다! 본체를 찬미한다! 아직도 무슨 네가 있고? 아직도 무슨 내가 있고? 아직도 무슨 古人이 있고? 아직도 무슨 낯선 땅의 명소가 있겠는가? 모든 우상은 내 앞에서 사라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나 목청껏 파괴를 노래하리! 1920년 3월 22일 일본의 太宰府를 유람하며 지은 것으로, 범신적 색채가 농후한 작품이다. 여기서 매화는 우주의 精髓, 생명의 泉水, 전우주의 本體로서, 찬미의 대상이다. 이는 神 〓 宇宙의 本體, 自然 〓 神이라는 범신적 태도를 명확히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시인은 매화에 대한 찬미를 통해 자연과 결합함으로써 신과의 일치에 도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신과 합일되었을 때, 무슨 네가 있고 내가 있으며 古人이 있겠으며 우상이 있겠는가! 모든 만물은 신의 표현에 불과할 뿐 우상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시인은 우상의 소멸을 열렬히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범신론의 관점은 당시의 반봉건사상과도 부합하는 것으로, 그는 이러한 범신론적 입장에서 구시대적인 우상숭배를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봉건적인 인습, 제도, 전통까지도 부정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郭沫若은 범신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 하였다.   자아가 즉 신이고, 모든 자연은 전부 자아의 표현이다.   자아와 도의 본체는 하나이다. 이는 고대 인도 철학 중 베에다 혹은 우파니샤드 사상의 “我卽梵, 梵卽我”와 동일한 관점으로, 자아를 우주의 본체 바로 神으로 인식하는 철학적 태도이다. 이러한 인식은 ≪女神≫ 속에 자아에 대한 찬양으로 표현되었으며, 자아를 무한히 확대시킴으로써 거대한 형상과 역동적인 자아로 형상화 시켰다.   屈原   나는 조물주의 정신을 본받아, 자유롭게 창조하고, 자유롭게 내 자신을 표현한다. 나는 장엄한 산악과 웅대한 바다를 창조하고,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고, 바람과 구름과 천둥과 비 속을 질주한다. 내가 그것을 모으면 나 하나에 그치지만 푸어 놓으면 온 우주에 흘러 넘친다.   중 屈原의 형상을 통해 표출된 “我”는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포용하는 나로서, “我卽本體” “我卽神”의 관점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 이처럼 神의 경지로 上昇, 擴大된 自我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고 무한한 능력을 지닌 형상이다.   나는 한 마리 天狗이다! 나는 달을 삼켰다. 나는 해를 삼켰다 나는 모든 별들을 삼켰다 나는 온 우주를 삼켰다 내가 바로 나다; 에 등장한 我는 해와 달, 별 등을 삼키고 우주마저 삼켜버리고 우주의 본체, 우주의 중심이 된 형상이다. 그러므로 이 我는 나를 포함하고 너를 포함하고 그를 포함하며 모든 만물을 포함한다. 우주의 만물은 모두 자아의 표현이며 우주 자체가 바로 我이다. 이와 같이 범신론은 자아를 무한히 확대하고 자아의 역량을 무한히 확장시킴으로써 위대한 자아와 우주의 본체인 자아로 변모시킨다. 이는 강렬한 자아 표현으로서, 五四의 시대 정신의 개성 해방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다.   Ⅳ. 結論   ≪女神≫은 郭沫若의 첫 번째 시집으로, 그의 일본 유학기간에 창작되어 1921년 간행되었다. 본 고는 ≪女神≫을 고찰함에 종적인 연관성과 횡적인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그 형성과정과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먼저 ≪女神≫은 郭沫若의 창작의식과 외적인 영향인 五四運動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며 형성되었으며, 詩作 覺醒期와 詩作 爆發期, 詩作 消失期의 3단계 과정을 경유하여 탄생되었다. 타고르와 하이네의 영향을 받아 시에 대한 각성을 보이며 作詩하기 시작한 제1단계, 五四運動과 시대적 조류에 힘입어 휘트먼과 ≪學燈≫의 편집인 宗白華의 도움을 받으며 왕성한 詩作 意慾을 폭발시킨 제2단계, 외적인 영향으로 시작 의욕을 다소 상실하였지만 여전히 詩作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은 채 劇詩를 창작한 제3단계와 같은 세종류의 단계를 통해 완성되었다. 이 각 단계의 작품들은 각각 다른 格調와 詩風으로 ≪女神≫의 예술성과 문학성을 구성하고 있으며, 시인 郭沫若의 의식적 변화는 물론 시대 정신까지 반영하고 있었다. 주제의식에 있어서, ≪女神≫은 五四運動과 十月革命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암울한 현실의 억압과 질고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애국심을 바탕으로 찬란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으며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그는 비록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조차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였으나, 중국의 出路로 막연하게 나마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을 표출하고 있었다. 아울러 민중애를 드러낸 시편은 郭沫若의 민중에 대한 재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역시 그의 뜨거운 애국심에서 탄생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 인식을 결여된 것이기에 민중에 대한 관심과 연민의 수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1920년대 郭沫若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은 五四運動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새로운 중국에 대한 이상을 품게 되었고, 반제국 반봉건을 주장하며 구중국의 파괴와 신중국의 창조, 개성의 해방 등을 강조하였다. ≪女神≫에 표출된 개혁의 의지와 개성의 해방은 바로 이러한 五四運動의 시대 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개혁의 의지는 파괴와 개혁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으며, 새로운 중국의 탄생을 열망하는 시인의 열망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인성의 각성과 민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사회적 배경 아래 제기된 개성 해방의 요구는 시속에 자아의 무한한 확대와 자유로운 표현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女神≫ 중 애정과 번민을 표출한 시편들은 그의 시작 초기에 창작 된 것으로, 일본이라는 異國에서 현실과 이상의 갈등으로 고민, 방황해야 했던 그의 내면을 담고 있었으며, 격변의 시대를 보내야 했던 지식인의 고뇌와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女神≫에 나타난 범신의 세계는 먼저 자연찬미와 자연숭배를 통해 자연과의 결합을 통한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고 있었으며, 자아의 확대를 통한 개성의 자유로운 표현과 발전을 통해 자아가 바로 신이라는 관점을 나타내고 있었다. 더욱이 위대한 자아로 확장된 형상은 五四運動의 개성 해방 정신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범신론은 郭沫若의 초기 사상과 문학을 대표하는 특징으로, 그의 시 세계에 독특한 제재가 되었음은 물론 예술적 특색으로 형성되었고, 반봉건 사상과도 긴밀히 결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郭沫若은 문학생애를 회고하며 ≪女神≫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女神≫이후로 이미 시인이 아니었다. ....기교로 말하자면 ≪女神≫ 이후의 작품이 더 나을지 모르나, ≪女神≫시대의 그렇듯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내부에서 분출되는 감정은 없었다.   위의 회고에 비추어 볼 때, “내부에서 분출되는 감정”이란 바로 郭沫若 자신의 내면에 충만한 詩作에 대한 열정으로서, 그는 이러한 자신의 시작 욕구를 중국 사회 전반에 팽배하였던 반제국 반봉건 사상과 결합하여 ≪女神≫의 시편들로 탄생시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女神≫은 중국 신문학에 있어서 내용과 예술적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 평가받기에 충분하며 더불어 郭沫若의 문학생애에 있어서 비교적 순수문학적 자세를 견지했던 초기 문학의 낭만적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 參考文獻 ■   秋吉久紀夫, , ≪目加田誠博士還曆紀念中國學論叢≫ (目加田誠博士還曆紀念論文集刊行會 編, 東京; 大安出版社 1964년) 谷輔林, ≪郭沫若前期思想及創作≫, (山東人民出版社 1983년) 陳明華 編著, ≪郭沫若≫ (黑龍江人民出版社 1982년) 秦川 編輯, ≪郭沫若專集≫ (四川人民出版社 1984년) 高國平 編, ≪郭沫若論創作≫(上海文藝出版社 1983년) 郭沫若, ≪創造十年≫ (匯文閣書店 1972년) 趙家壁 主編, ≪中國新文學大系≫ 第2卷 (上海良友圖書印刷公司 1936년) 郭沫若著作編輯出版委員會編, ≪郭沫若全集≫ 歷史篇, (人民文學出版社 1982년) ≪沫若文集≫13卷 (人民文學出版社 1959년) 丁易 著, ≪中國現代文學史略≫ (文化資料供應社 1978년) ≪文學評論叢刊≫ 17집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83년) ≪郭沫若硏究論集≫ (四川人民出版社 1980년) 김익달 편, ≪철학대사전≫ (학원사 1963년) 郭沫若, 郭沫若, 郭沫若, 郭沫若, , 郭沫若, 郭沫若, , ≪創造週報≫ 23호(1923년 19월 31일) 郭沫若, 郭沫若, 郭沫若, 吳歡章,    
823    문학가 - 곽말약 댓글:  조회:6267  추천:0  2015-04-02
       [출처] 곽말약(郭沫若)의 ‘분서(焚書)’사건|작성자 삼헌   곽말약       궈모뤄 곽말약, (郭沫若, 병음: Guō Mòruò, 1892년 11월 16일 쓰촨 성 러산 시 ~ 1978년 6월 12일 베이징 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학자, 정치가, 극작가이다. 본명은 개정(開貞), 호는 정당(鼎堂)이며, 沫若는 자이다. 쓰촨 성 쟈딩 푸(嘉定府)의 중류 정도의 지주의 셋째 아들로서 출생하였다. 5세경부터 사서오경을 읽었다. 1914년 일본의 규슈대 의학부에 들어가 근대적인 과학연구 방법을 몸에 익혔다. 이 사이에 시작(詩作)을 시작했으며 1921년에는 창조사(創造社)를 결성하여 낭만주의 문학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일본 여자와 결혼하고 극작가로서 여성해방을 테마로 한 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중국 현대극 중 본격적인 사극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국민혁명의 기운이 고조되어 1926년 국민혁명군이 북벌을 개시하자 붓을 버리고 스스로 거기에 참가하여 우한·상해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1927년의 국공분열(國共分裂) 후 일본에 망명, 이로부터 10년간 중국 고대사회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당시의 새로운 출로(出路)를 탐구한 중국사회연구의 일환으로서 신비에 가려져 있던 고대사회를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연구하였다. 1937년 세계 2차대전 때 충칭으로 귀국하여 문화공작의 책임을 맡고 항일전선에 참가하여 선전활동에 종사하는 중에 극작(劇作)이나 평론 등을 많이 발표하였다. 그 때 발표된 희곡 〈굴원(屈原)〉(1942)의 내용은 혁명아 굴원이 중국을 위하여 항쟁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고대의 위대한 애국시인의 말을 빌어서 국민당의 부패 양상을 들추어내기도 하였다. 그 밖에 등의 사극이 있고, 이 나왔다. 1949년 파리평화회담에 문화인 대표로 참가하고, 중공 정무원 부총리겸 과학원장 등 요직을 거쳤으나, 문화 대혁명 초기 모진 비판을 받고 그 동안의 모든 발표작을 스스로 부정하고 나섰다. 작품목록 여신 《女神》 아침은 너무 늦다 족발 《豕蹄》 물결 《波》 지하의 웃음소리 《地下的笑聲》 곽말약 자서전 (4권) 《沫若自傳》(4卷) 이백과 두보 《李白与杜甫》 중국 고대 사상사 역사 소품 굴원 《屈原》 채문희 《蔡文姬》 참고 자료         분류:  1892년 태어남 1978년 죽음 중국의 역사가 중국의 시인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중국의 극작가 쓰촨 성 출신 쓰촨 대학 동문 스탈린 평화상 수상자 郭沫若은 중국 현대사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시인으로서 그의 신시는 5.4  시대의 새 시풍을 개척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는 모든 낡은 세력에 반대하  고 모든 낡은 전통을 깡그리 짓부술 전투적 시편들과 다가올 새시대를 정역  적으로 구가한 시편들을 많이 썼다. 이런 새로운 시으 출현은 당시의 '시단  에서 심지어는 사실주의 문학의 전반적인 영역에 있어서 획기적인 의미를  가진다.' 곽말약의 애국주의며 전투적인 시편은 중국의 신시 발전에 광활한  길을 개척하였으며 중국문학, 나아가 세계문학의 보고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  다.  곽말약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18년 이전부터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창작은 1919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러시아의 10월혁명의 영향과 5.4애국  운동의 거센 물결은 그의 애국주의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불후의 싲ㅂ  「女神」중의 대부분 시편들은 다 이시기에 쓴 것이다.  곽말약의 초기의 사상은 비교적 복잡하였다. 그는 신해혁명기에 새로운  교육을 받은데서 민주주의적 사사의 영향을 받았으며 외국시인들의 작품을  통하여 일부 무정부주의 사조와 범신론의 영향도 받았다. 그리고 10월혁명  의 햇살과 5.4애국운동의 물결은 그에게 또 사회주의 사상을 싹틔웠다. 그  러나 이 시기 그의 사상을 지배한 주도 사상은 혁명 민주주의였다. 그는 자  기의 혁명민주주의의 견지에서 주로 우주만물은 다 자신의 의지가 있으며  자신을 주재한다는 관념을 수용하였다. 이와 같은 범신론적 관념은 그에게  반항전신을 불러일으켰고 또 예술실천에서 그로 하여금 낭만주의적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게 하였다. 바로 이 시기에 내놓은 「女神」이 보여주다시  피 그 시편속에는 모든 우상과 낡은 전통과 제도에 반항하는 정신. 20세기의  창조정신과 무한한 힘에 대한 구가로 충만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반항적이고  창조적이며 낭만적인 사상은 당시 거세게 일어난 5.4의 애국주의 열긱를 더  욱 강렬하고 충분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후에 시인은 맑스주  의 사상을 학습하고 실제투쟁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점차 범신론을 부정하였  다.  시인 곽말약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문학활동을 더욱 넓게 전개하고자  1921년 4월에 상해로 돌아온후 이 해 7월에는 성방오, 욱달부 둥과 함께 '창  조사'룰 조직하고 그 이듬해 5월 1일에는 문학잡지 「창조」를 출판하였다.  이로부터 곽말약은 이 진보적 문학단체인 창조사의 지도자가 되었다. 1921  년부터 1922년 사이에 시인은 자기의 모순된 사상과 고적한 심정을 토로한  시집 「별나라」를 썼는데 이 시편들은 시인이 조국에 돌아와 피비린내 나  는 현실을 목격하고 인새의 쓴 맛을 본 훙 쓴 것이다.  1926년에 곽말약은 '혁명과 문학'을 발표하였다. 이 글은 그가 상해를 떠  나기전에 쓴 '문예가의 각오'와 마찬가지로 곽말약의 문예사상의 발전을 상  징하는 대표적인 글의 하나이다. 그는 이글에서 '그 자신이 혁명을 반대하  는 사람이라면 그가 지은 문학 , 그가 감상하는 문학은 더 말할 나위 없이  혁명을 반대하는 문학이요 지배계급을 변호하는 문학이다'라고 썼다. 여기서  밝혀 둘 것은 이와 같은 견해에는 초기 혁명문학 이론 탐구에서 단순화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계급론적 견지에 서서 문하고과  혁명과의 관계 및 문학의 사회적엯할을 해석하려 시도한것이며 또한 이로부  터 문예의 무목적론과 비공리주의적 관점을 비판하였는데 이는 매우 진보적  이라 할수 있다.  1927년 제 1차 국내 혁명전재의 실패이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10년동안  망명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10년간 그는 맑스주의적 유물사관으로 중국의  고문자학과 고대사회사를 연구하여 중국 노예사회의 존재를 논증하였고 기  타 학술 연구분야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좌익작가 연맹  동경지부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였으며 자신의 파란많은 지난날을 다감하게  더듬어 쓴 회상기 「나의 유년」,「창조 10년」을 썼다. 곽말약의 해외생활  10년에 대하여 주은래는 '혁명을 위하여 새로운 공헌을 하였고 새로운 힘을  준비한 10년'이라고 말하였다.  항일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국민당 반동파의 감시를 받는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도 줄곧 진지를 지키고 투쟁을 고수하였다. 이때 그는 진보적 신문  과 잡지를 출판하는 사업을 지도하는 한편 문예창작에 적극 종사하였다.  항일전쟁에서 승리한후 곽말약은 전국 문학협회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줄  곧 국민당 지배지역에서 장개석의 독재를 반대하여 투쟁하다가 1948년 공산  당 지배지역으로 돌아왔다. 그는 1949년 신중국이 성립된후 국가 영도사업  과 사회활동에 적국 참여하였으며 전국 인민대표대회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전국 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중국문련 주석, 중국과학원 원자의 중임을 짊어  졌다. 곽말약은 영도사업과 사회활동으로 바쁜와중에서도 조국과 혁명을 구  가한 많은 시를 썼으며 사극 「蔡文嬉」를 창작하였고 「이백과 두보」등  많은 역사, 문예 논문을 내놓았다.  곽말약은 5.4이래 중국현대 문예전선에서 줄곧 혁명을 견지하여 커다란 성  과를 거둔 문인이다. 그는 50년이래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시종일관 분투하는 과정에서 혁명적 지식인의 숭고한 애국주위 정신과 꿋꿋  하고 고결한 품성을 보여주었다. 무산계급의 문화전사이자 위대한 사상가이  며 문학가이며 저명한 사회활동가인 곽말약은 1978년 6월 12일 86세를 일기  로 생애를 마쳤다.  2. 곽말약의 문학  「女神」으로써 곽말약은 한 시대의 시풍을 새롭게 열였으며 이것은 5.4애  국운동의 삼물이며 文學革命의 소산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女神」5.4시대  의 굳건한 反帝 ·半封建의 혁명정신을 반영하고 혁명적 낭만주의의 독창적  예술수법을 보임으로써 5.4이후의 산사발전을 위한 하나의 좌표가 되었다.  이 작품은 철학적으로 ?體詩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는데 그것은 작품속에서  자연의 참니아 자아와 개성의 해방이라는 의미로 펴현되고 있다. 이 작품은  참신한 내용과 형식으로써 중국 신시 발전의 초석이 됨으로써 곽말약에게  중국 신문학에 있어서의 숭곳한 위치를 부여받게 한 시집이다.  「星空」은 기본적으로 「女神」생산시대의 작품이다. 「女神」의 사상적  특질을 대체로 유지하면서 風格에 있어서 다소의 변화를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소극적 정서를 표출하는 것이다. 5.4운동의 고조된 열기가 가신 뒤의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적인 현실에서의 좌절 그리고 새롭게 인식한 동포들의  비참한 생활상 등으로 인하여 그는 심각하게 현실을 고민하였고 그것이 그  로 하여금 소극적, 애상적, 정서의 詩를 쓰게한 것이다. 이 소극적 정서는  한편으로는 「女神」시대의 자아와 개성의 해방이나 ?시론 등이 현실에 반  항하는 무기가 되기에는 무력한 것임을 깨닫고 갈등을 일으킨데도 그 원인  이 있다. 이러한 사상적 모순의 갈등을 통하여 새로운 역량을 획득, 이후의  본격적인 혁명시를 쓰게 되는 것이다.  「甁」은 곽말약의 애정시집이다. 그가 한여인에 대한 연정의 촉발로 인  하여 쓴 연정시이다. 다시 말해서 말약의 순수한 인간적 감성의 발로로 이  루어진 감상적 낭만시인 것이다. 따라서 「甁」은 「女神」,「星空」으로부  터 「前茅」,「恢復」에 이르는 1920년대 그의 사상의 변화와 그에 따른 作  風의 변화라는 線上에서 이해하고자 해서는 안되며 예외적인 종류로 간주해  야 할 것이다.  「前茅」는 곽말약 최초의 革命詩集이다. 「前茅」에서는 「女神」중의  泛神論이 부정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분명한 階級意識을 보이  고 있다. 「前茅」에서 마르크스주의적 혁명을 노래하며 詩의 성격상 뚜렷  한 변화를 보임으로써 말약에게는 새롭고도 뚜렷한 하나의 文學바向이 설정  되는 것이다. 따라서 「前茅」는 말약의 新詩 창작에 있어 새로운 里程標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중국의 新詩運動이 革命詩歌로 발전하는데도 선구적 역  할을 하였다. 그러나 「前茅」는 다소 공허하고 無力한 感이 있다. 그것은  革命詩이면서도 실제적인 투쟁의 경험을 바타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恢復」은 곽말약이 일련의 목숨을 건 현실투쟁을 겪은 뒤의 창작이어서  詩가 내포하고 있는 사상과 감정이 비장하고 굳센 혁명투쟁의 의지가 뚜렷  하다. 「恢復」은 현실적 체험을 바타으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설득력을  갖는것이며 따라서 革命詩歌로서의 역량은 「女神」이나 「恢復」「前茅」  보다 더 크다 하겠다. 결국 「前茅」,「恢復」은 중국 革命詩歌의 시초이며  無産階級 문학의 ??라 할 수 있다. 곽말약은 이 「前茅」와 「恢復」의 두  시집으로써 중국에 있어서의 革命詩歌 창작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以上에서 보아 알 수있듯이 곽말약은 '無産階級革命文學'의 구호를 제창하  여 중국 無産階級 革命文學運動의 영향력있는 선도자가 되었는데 그는 新詩  이외에도 「屈原」등의 歷史劇으로써 革命文學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  였다. 그는 최초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운용하여 중국 역사를 연구하였  으며 독창적으로 古文文學과 古代史 연구를 결합하여 중국 마르크스주의 史  學의 개척자가 되었다.  곽말약의 평생의 治字精神의 특징은 일체의 文藝創作이나 學術硏究에 있  어서 시종 마르크스·레닌주의와 毛澤東思想을 깊이 인식하여 그것으로써  자신을 指導하는 思想으로 삼은 것이다. 이것은 말약의 모든 언론이나 저술  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동시에 공산주의자로서의 말약이 종사한 일체  의 과업은 명확한 목적을 ,가졌는데 그것은 無産階級의 革命을 위한다는 것  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창작이나 학술저작은 모두 강렬한 中國的 時代精神  을 내포하고 있다.  곽말약은 학문연구에 있어서 매우 민주적인 태도를 지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후배들과도 대등한 입장에서의 토론을 서슴지 않았다. 한편 스스  로는 근엄한 학문적 태도를 견지하여 어떤 문제를 연구할때는 신중하게 정  확한 관점을 세우고 풍부한 자료를 활용하여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  러한 그의 학문적 태도는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곽말약의 위대함은 광범한 문학범위와 방대한 작품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  언은 아니다.  3. 역사극과 소설  곽말약 사극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예것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받아들  인다는 점이다. 
822    곽말약 / 서예 댓글:  조회:2230  추천:0  2015-04-02
▼호남 장사 -구 제일사범-     ▼ 산동 태안 -태산-     ▼사천 성도 -무후사-     ▼ 복건 하문       ▼ 복건 하문 -고랑서-      ▼복건 천주 -평안교-       ▼윗글의 정자체       ▼광동 광주       ▼ 섬서 연안 -황제릉-          
821    눈보건 전신 지압법 댓글:  조회:7670  추천:0  2015-04-02
지적인 작업자를 위한 눈 스트레칭  눈에 좋은 전신 지압 - 사백, 인영, 견정, 곡지 툴바 메뉴 폰트변경하기 폰트 크게하기 폰트 작게하기 메일로 보내기 인쇄하기 스크랩하기 고객센터 이동 시력은 분명히 회복시킬 수 있다. 그것도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도 불편한 증상을 한층 호전시킬 수 있다.  우선 눈 근육을 단련하면 유연성이 회복된다. 동시에 몸 전체의 혈액순환을 개선하면 눈에 공급되는 영양의 질과 양이 달라지면서 불편한 증상이 나아질 뿐 아니라 시력이 좋아진다.  노안은 나이가 듦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으로, 근거리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 초점이 맺히기 시작하는 근점거리가 30센티미터를 넘으면 안경으로 시력을 교정해줄 필요가 있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노안은 근시, 원시, 난시인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고, 그 진행은 누구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눈 스트레칭을 실천해온 많은 사람들은 노안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들로 그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눈 스트레칭이란, 안구와 전신을 위한 체조에 혈액순환을 활성화하는 지압, 체온을 따뜻하게 올리는 다양한 방법을 조합하여 고안해낸 종합적인 시력 향상법이다. 오늘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지압 동작을 소개한다. 눈과 관련된 지압점은 온몸에 있다. 눈이 피로할 때나 눈이 건조할 때는 이 지압점들을 2~3분간 눌러보자. 조금 아플 정도의 세기로 누르는 것이 포인트! 눈에 좋은 전신 지압 :안정피로를 풀어준다! 사백 지압점을 각각의 집게손가락으로 위로 올리듯이 자극한다. : 안구건조증을 개선한다! 인영 지압점을 각각 집게손가락으로 누르듯이 자극한다. : 어깨결림에서 기인하는 눈의 피로를 치유한다! 견정 지압점을 반대쪽 가운뎃손가락으로 눌러 자극한다. : 충혈을 완화시킨다! 곡지 지압점을 반대쪽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자극한다. :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충혈을 개선한다! 삼음교 지압점을 반대쪽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자극한다. : 안정피로를 회복한다! 용천 지압점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자극한다.  
820    굴원/ 어부사(漁父辭) 댓글:  조회:4352  추천:0  2015-04-01
  굴원(屈原)은 기원전, 그러니까 BC 343년 경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초(楚)나라에서 태어나 BC 289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하진 않다. 성(姓)은 굴(屈) 이름은 평(平)이고 자는 원(原)이다. 양쯔 강(揚子江) 중부 유역에 자리한 큰 나라였던 초(楚)나라에서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의 친척이었던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아 20대에 좌도(左徒)라는 중책을 맡을 정도로 총명하였고 또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그때부터 그의 명성은 초(楚)나라를 비롯한 인접 제(齊)나라와 진(秦)나라에까지 이름이 날 정도로 널리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굴원(屈原)   그 무렵 법령(法令) 입안(立案)을 두고, 조정의 정적(政敵)관계 였던 상관대부(上官大夫)와 충돌이 자주 일어나자 굴원을 시기하고 모함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결국엔 그의 터무니없는 중상모략(中傷謀略)으로 면직당하고 왕 곁에서 멀어지게 된다.   굴원(屈原)은 제(齊)나라와 동맹을 맺어 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며 소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진(秦)나라의 재상 장의(張儀)와 내통하고 있던 간신(姦臣)들과  회왕(懷王)이 총애하는 애첩(愛妾)의 집요한 방해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회왕(懷王)은 오히려 제(齊)나라와 단교하고 진(秦)나라에 붙었으나 진(秦)나라에 이용만당하고  결국에는 막내아들 자란(子蘭)으로 부터 살해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 아닐수 없다.   회왕(懷王)이 죽은 뒤 큰아들인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아버지를 죽게 만든 막내아들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이라 불리는 재상자리에 오르게 된다. 굴원(屈原)은 회왕을 객사케 한 자란(子蘭)을 백성들과 함께 강력 비난하다가  또 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 강(揚子江) 이남의 소택지(沼澤地)로 추방되고 만다. 지금 소개하는 "어부사(漁父辭)"는 그때 쓴 작품이다.       그는 유배지에서 울분을 삼키며 민속의식(民族意識)을 관찰하면서,  그의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초(楚)나라를 비롯한 인접국의 전설들을 본격적으로 수집했다.  맨 처음 회왕에게 내쫓기어 유배되었을 때는 굴원(屈原)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長篇) 서정시(敍情詩)인 "이소(離騷)"를 써서  자신의 결백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었다. "이(離)"는 "만나다"의 뜻이고 "소(騷)"는 "근심"이라는 뜻이니, 이소(離騷)란 곧 "근심을 만나다"라는 뜻이 된다. 이소(離騷)의 내용은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난 후의 시름과 연군(戀君)의 정(情)을 노래한 서정적(敍情的)인 내용으로 아주 긴 장시(長詩)이다. 굴원의 작품 이소(離騷)를 "이소경(離騷經)"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소경(離騷經)이라고 부르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그의 작품 이소(離騷)를 높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 글을 쓰면서... 원래는 어부사(漁父辭)보다는 그의 대표작으로 이름이 더 알려진 "이소(離騷)"를 소개코자 하였으나, 그 내용이 방대하고 산문형식의 詩라서 요즘의 시각으로 접하다보면  지루한 점이 많은지라 읽고자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 같아서 굴원의 또 다른 명작(名作) "어부사(漁父辭)"로 바꿔서 글을 썼다.   굴원(屈原)은 억울하게 모함 받고 쫏겨난 점을 애타게 간(諫)하며 충정(忠情)을 아뢰어 한 번은 용서 받은바 있었으나,  다시금 간신(姦臣)들의 참소(讒訴)를 받아 경양왕(頃襄王)에 의해 멀리 양자강 남쪽 강남(江南)으로 내쫓기는 몸이 되고 만다. 그로부터 그는 백성들로부터는 지조 강한 애국시인(愛國詩人)이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유명세를 타면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詩人이 되었다. 그는 유배에 대한 절망감으로 강가를 하염없이 거닐며 울분을 삭히며 詩를 짓기도하면서 10 년 간을 방랑 생활로 보낼 무렵 자신이 그토록 우려하고 걱정한 대로,  진(秦)나라에 의해 조국인 초(楚)나라가 결국 멸망 당하자,  울분을 참지 못한 굴원(屈原)은 온 몸에 돌을 매달고 미뤄 강 즉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만다. 그 때가 그의 나이가 54세 였다고 전하나 이 또한 정확하진 않다. 또 다른 문헌에는 62세에 자결했다고 전하기도 하는데. 앞 뒤의 정황과 당시의 수명을 유추해 보면 54세가 더 정확도가 높은 것 같다.     굴원(屈原)이 투신 자살한 현재의 지명(地名)인 멱수(汨水) 강가에는 그의 무덤이 있으며,  그 곁에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 세워져 애국(愛國) 충절(忠節)을 기리고 있다.  중국에서 굴원이 자결한 날인 음력 5월 5일을 단오절(端午節)이라고 해, 그를 추모하는 제일(祭日)로 정해져 내려오고 있다. "배로 굴원(屈原)을 구한다"는 뜻이 담긴 놀이로,  뱃머리에 용머리를 장식한 용선(龍船)을 타고 북을 치면서 경주를 벌이는 용선경도(龍船競渡)가  중국과 홍콩 마카오등에서는 지금도 음력 5월 5일에 열리는 연중 축제행사로 성대하게 치러진다. 당시 굴원(屈原)의 시신을 찾고자 백성들이 너도나도 배를 타고 와서, 물고기가 시신을 훼손치 못하도록 북을 치고 쫓으며  물속을 휘젖던 것에서 유래한 놀이가 바로 용선뱃놀이의 기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단오날에 간혹 쌀을 넣은 대통밥을 소태나뭇잎으로 싸는 것이나, 갈대잎이나 대나무잎으로 싸서 찐 수리취라는 떡을 물고기에게 던져주는 풍습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물속에 잠긴 굴원(屈原)이 물고기에게 뜯어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의 뜻에서 이어져 내려온 풍습이라고 한다.  대나뭇잎으로 싸서 찐 찰떡을 단오날에 강에 던져 물고기에게 주기도 하고,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풍습등은 모두 굴원(屈原)의 충정(忠政)을 기리는데서 유래한 풍습으로,  우리나라의 단오날 역시 중국에서 오래전에 전해진 풍습이 그 기원이라 하겠다.     어부사(漁父辭)는 굴원(屈原)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어부사(漁父辭)에는 굴원의 강직한 성품이 묻어나며, 어부의 달관(達官)한 삶의 자세와 굴원의 인품이 대조되어 그 빛을 더하는 작품이다. "모두가 취해 있으나 홀로 깨어있다"라는 "중취독성(衆醉獨醒)"의 고사성어는 이 어부사에서 연유한 말이다. 굴원(屈原)의 몇 몇 작품들은 고대 중국의 명시선집(名詩選集)인 초사(楚辭)에 실려 내려오고 있다.  이 시집(詩集)은 후세 詩人들이 굴원(屈原)과 송옥등 초나라 사람들의 전설적인 작품과 삶에 대해 쓴 글들이 실려 있는데, 워낙 오래전인 기원전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에 살던 인물들을  지금에 와서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거의가 불가능하며, 초사(楚辭)에 실려 내려오는 작품을 통해서 그의 삶과 詩 그리고 정신과 충정(忠政)을 헤아릴 수 밖에 없다.   굴원의 작품이 실린 초사(楚辭)의 내용들은 한(漢)나라 때 크게 유행한 한부(漢賦)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에게서 비롯된 시가인 초사(楚辭)는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와 같은 당(唐)나라 때의 詩人들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굴원(屈原)의 작품과 삶이 차지하는 비중은 문학사(文學史)에서 뿐만 아니라  충절(忠節)의 대명사로 높이 평가 되는 전설적인 인물로 기원전(紀元前)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詩人이며 정치가(政治家)였던 그가 대표격이라 하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충정(忠政)에서 우러나는 직언(直言)은 위정자(爲政者)들의 귀에 늘 거슬렸다. 쓰디쓴 말이기에 들었다 해도 무시하기 일쑤였으며, 직언을 하는 신하를 눈에 가시쯤으로 여기다 크게 화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언로(言路)가 막혀 소통이 없는 위정자(爲政者)는 결국에 가서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걸 역사는 빈번하게 반복해서 일러준다. 목숨을 걸고 충정(忠政)으로 간(諫)하는 자(者)를 이젠 찾아보기 어렵게 된 세상이지만, 지난 역사속에선 올곧은 선비들이 하나뿐인 소중한 목슴을 충정(忠政) 앞에 과감하게 던졌던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정직한 인품으로 길이길이 후손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위안(慰安)과 영광으로 여겼으며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다 갔다.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의 말처럼 "역사(歷史)는 돌고 돈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반복해서 돌고 돈다.  2천 년 전에 일어났던 답답한 일들이 지금도 종종 되풀이 되는 것을 보며, 人間의 과욕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지난날의 과오를 반복해서 되풀이하는 건 인간이 욕심으로 가득 찬 존재이기 때문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굴원(屈原)의 대표작 "어부사(漁父辭)"를 미천한 졸필(拙筆)로 여기 옴기고자 하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어부사(漁父辭): 어부 이야기 屈原旣放(굴원기방): 굴원이 이미 쫓겨나 游於江潭(유어강담): 강가와 물가에 노닐고 行吟澤畔(행음택반):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顔色樵悴(안색초췌): 얼굴색은 초췌하고 形容枯槁(형용고고): 모습은 수척해 보였다.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어부견이문지왈 자비삼려대부여): 어부가 그를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何故至於斯(하고지어사):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하니, 屈原曰, 擧世皆濁(굴원왈 거세개탁): 굴원이 말하기를, 세상이 다 혼탁한데 我獨淸(아독청): 나 홀로 깨끗하고 衆人皆醉(중인개취):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我獨醒(아독성): 나 홀로 깨어 있었습니다 是以見放(시이견방): 이런 까닭에 추방을 당했다.고 하니 漁父曰 聖人(어부왈 성인):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不凝滯於物(불응체어물): 세상 사물에 얽매이지 않지만 而能與世推移(이능여세추이):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갈 수 있어야 합니다. 世人皆濁(세인개탁):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何不淈其泥而揚其波(하불굴기니이양기파): 어찌 진흙탕을 휘어저 그 물결을 일으키지 않으며, 衆人皆醉(중인개취): 뭇 사람이 모두 취해 있거늘 何不飽其糟而歠其醨(하불포기조이철기리): 어째하여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를 마시지 않으십니까? 何故로 深思高擧(하고로 심사고거):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自令放爲(자령방위):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게 하십니까? 하니 屈原曰, 吾聞之(굴원왈, 오문지): 굴원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新沐者(신목자):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必彈冠(필탄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新浴者(신욕자): 새로 목욕한 사람은 必振衣(필진의):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安能以身之察察(안능이신지찰찰): 어찌 맑고 깨끗한 몸으로   受物之汶汶者乎?(수물지문문자호):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寧赴湘流(녕부상류): 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葬於江魚之腹中(장어강어지복중): 물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安能以皓皓之白(안능이호호지백):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而蒙世俗之塵埃乎(이몽세속지진애호):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하니 漁父(어부): 어부는 莞爾而笑(완이이소): 빙그레 웃고서, 鼓枻而去(고설이거): 노를 두드리고 떠나가면서, 乃歌曰, 滄浪之水淸兮(내가왈, 창랑지수청혜): 이렇게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 창랑의 물이 흐리면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내 발을 씻으리라. 하곤 遂去不復與言(수거불부여언): 마침내 떠나가고 다시는 대화가 없었다.    
819    굴원/ 리소(離騷) 댓글:  조회:3608  추천:0  2015-04-01
   이소경(離騷經)은 굴원의 이소.  다음은 원문과 해석본.    離騷經   帝高陽之苗裔兮,朕皇考曰伯庸。攝提貞于孟陬兮,惟庚寅吾以降。 皇覽揆余初度兮,肇錫余以嘉名。名余曰正則兮,字余曰靈均。 紛吾旣有此內美兮,又重之以脩能。扈江離與辟芷兮,紉秋蘭以爲佩。 汩余若將不及兮,恐年歲之不吾與。朝搴阰之木蘭兮,夕攬洲之宿莽。   日月忽其不淹兮,春與秋其代序。惟草木之零落兮,恐美人之遲暮。 不撫壯而棄穢兮,何不改此度?乘騏驥以馳騁兮,來吾道夫先路。 昔三后之純粹兮,固衆芳之所在。雜申椒與菌桂兮,豈維紉夫蕙茝? 彼堯舜之耿介兮,旣遵道而得路。何桀紂之猖披兮,夫唯捷徑以窘步。 惟夫黨人之偸樂兮,路幽昧以險隘。豈余身之憚殃兮,恐皇輿之敗績。   忽奔走以先後兮,及前王之踵武。荃不察余之中情兮,反信讒而齌怒。 余固知謇謇之爲患兮,忍而不能舍也。指九天以爲正兮,夫唯靈脩之故也。 曰黃昏以爲期兮,羌中道而改路。初旣與余成言兮,後悔遁而有他。 余旣不難夫離別兮,傷靈脩之數化。   余旣滋蘭之九畹兮,又樹蕙之百畝。畦留夷與揭車兮,雜杜衡與芳芷。 冀枝葉之峻茂兮,願俟時乎吾將刈。雖萎絶其亦何傷兮,哀衆芳之蕪穢。   衆皆競進以貪婪兮,憑不猒乎求索。羌內恕己以量人兮,各興心而嫉妒。 忽馳騖以追逐兮,非余心之所急。老冉冉其將至兮,恐脩名之不立。   朝飮木蘭之墜露兮,夕餐秋菊之落英。苟余情其信姱以練要兮,長顑頷亦何傷? 攬木根以結茝兮,貫薜荔之落蕊。矯菌桂以紉蕙兮,索胡繩之纚纚。 謇吾法夫前脩兮,非世俗之所服。雖不周於今之人兮,願依彭咸之遺則。   長太息以掩涕兮,哀民生之多艱。余雖好脩姱以鞿羈兮,謇朝誶而夕替。 旣替余以蕙纕兮,又申之以攬茝。亦余心之所善兮,雖九死其猶未悔。 怨靈脩之浩蕩兮,終不察夫民心。衆女嫉余之蛾眉兮,謠諑謂余以善淫。 固時俗之工巧兮,偭規矩而改錯。背繩墨以追曲兮,競周容以爲度。 忳鬱邑余侘傺兮,吾獨窮困乎此時也。寧溘死以流亡兮,余不忍爲此態也。 鷙鳥之不群兮,自前世而固然。何方圜之能周兮,夫孰異道而相安。 屈心而抑志兮,忍尤而攘詬。伏淸白以死直兮,固前聖之所厚。   悔相道之不察兮,延佇乎吾將反。回朕車以復路兮,及行迷之未遠。 步余馬於蘭皐兮,馳椒丘且焉止息。進不入以離尤兮,退將復脩吾初服。 製芰荷以爲衣兮,集芙蓉以爲裳。不吾知其亦已兮,苟余情其信芳。 高余冠之岌岌兮,長余佩之陸離。芳與澤其雜糅兮,唯昭質其猶未虧。 忽反顧以遊目兮,將往觀乎四荒。佩繽紛其繁飾兮,芳菲菲其彌章。 民生各有所樂兮,余獨好脩以爲常。雖體解吾猶未變兮,豈余心之可懲。 女嬃之嬋媛兮,申申其詈予。曰:「鯀婞直以亡身兮,終然殀乎羽之野。 汝何博謇而好脩兮,紛獨有此姱節。薋菉葹以盈室兮,判獨離而不服。 衆不可戶說兮,孰云察余之中情。世並擧而好朋兮,夫何煢獨而不予聽,」   依前聖以節中兮,喟憑心而歷玆。濟沅湘以南征兮,就重華而敶詞: 啓《九辯》與《九歌》兮,夏康娛以自縱。不顧難以圖後兮,五子用失乎家巷。 羿淫遊以佚畋兮,又好射夫封狐。固亂流其鮮終兮,浞又貪夫厥家。 澆身被服强圉兮,縱欲而不忍。日康娛而自忘兮,厥首用夫顚隕。 夏桀之常違兮,乃遂焉而逢殃。后辛之菹醢兮,殷宗用而不長。 湯禹儼而祗敬兮,周論道而莫差。擧賢而授能兮,循繩墨而不頗。 皇天無私阿兮,覽民德焉錯輔。夫維聖哲以茂行兮,苟得用此下土。 瞻前而顧後兮,相觀民之計極。夫孰非義而可用兮,孰非善而可服。 阽余身而危死兮,覽余初其猶未悔。不量鑿而正枘兮,固前脩以菹醢。 曾歔欷余鬱邑兮,哀朕時之不當。攬茹蕙以掩涕兮,霑余襟之浪浪。   跪敷衽以陳辭兮,耿吾旣得此中正;駟玉虯以乘鷖兮,溘埃風余上征。 朝發軔於蒼梧兮,夕余至乎縣圃;欲少留此靈瑣兮,日忽忽其將暮。 吾令羲和弭節兮,望崦嵫而勿迫。路曼曼其脩遠兮,吾將上下而求索。 飮余馬於咸池兮,總余轡乎扶桑。折若木以拂日兮,聊逍遙以相羊。 前望舒使先驅兮,後飛廉使奔屬。鸞皇爲余先戒兮,雷師告余以未具。 吾令鳳鳥飛騰兮,繼之以日夜。飄風屯其相離兮,帥雲霓而來御。 紛總總其離合兮,斑陸離其上下。吾令帝閽開關兮,倚閶闔而望予。 時曖曖其將罷兮,結幽蘭而延佇。世溷濁而不分兮,好蔽美而嫉妬。   朝吾將濟於白水兮,登閬風而繫馬。忽反顧以流涕兮,哀高丘之無女。 溘吾遊此春宮兮,折瓊枝以繼佩。及榮華之未落兮,相下女之可詒。 吾令豐隆乘雲兮,求宓妃之所在。解佩纕以結言兮,吾令蹇脩以爲理。 紛總總其離合兮,忽緯繣其難遷。夕歸次於窮石兮,朝濯髮乎洧盤。 保厥美以驕傲兮,日康娛以淫遊。雖信美而無禮兮,來違棄而改求。 覽相觀於四極兮,周流乎天余乃下。望瑤臺之偃蹇兮,見有娀之佚女。 吾令鴆爲媒兮,鴆告余以不好。雄鳩之鳴逝兮,余猶惡其佻巧。 心猶豫而狐疑兮,欲自適而不可。鳳皇旣受詒兮,恐高辛之先我。 欲遠集而無所止兮,聊浮遊以逍遙。及少康之未家兮,留有虞之二姚。 理弱而媒拙兮,恐導言之不固。世溷濁而嫉賢兮,好蔽美而稱惡。 閨中旣以邃遠兮,哲王又不寤。懷朕情而不發兮,余焉能忍與此終古。   索藑茅以筳篿兮,命靈氛爲余占之。曰:「兩美其必合兮,孰信脩而慕之? 思九州之博大兮,豈唯是其有女?」曰:「勉遠逝而無狐疑兮,孰求美而釋女? 何所獨無芳草兮,爾何懷乎故宇?世幽昧以昡曜兮,孰云察余之善惡。 民好惡其不同兮,惟此黨人其獨異。戶服艾以盈要兮,謂幽蘭其不可佩。 覽察草木其猶未得兮,豈珵美之能當?蘇糞壤以充幃兮,謂申椒其不芳!」   欲從靈氛之吉占兮,心猶豫而狐疑。巫咸將夕降兮,懷椒糈而要之。 百神翳其備降兮,九疑繽其並迎。皇剡剡其揚靈兮,告余以吉故。 曰:「勉陞降以上下兮,求矩矱之所同。湯禹嚴而求合兮,摯咎繇而能調。 苟中情其好脩兮,又何必用夫行媒。說操築於傅巖兮,武丁用而不疑。 呂望之鼓刀兮,遭周文而得擧。甯戚之謳歌兮,齊桓聞以該輔。 及年歲之未晏兮,時亦猶其未央。恐鵜鴃之先鳴兮,使夫百草爲之不芳!」 何瓊佩之偃蹇兮,衆薆然而蔽之。惟此黨人之不諒兮,恐嫉妒而折之。   時繽紛其變易兮,又何可以淹留。蘭芷變而不芳兮,荃蕙化而爲茅。 何昔日之芳草兮,今直爲此蕭艾也。豈其有他故兮,莫好脩之害也。 余以蘭爲可恃兮,羌無實而容長。委厥美以從俗兮,苟得列乎衆芳。 椒專佞以慢慆兮,樧又欲充夫佩幃。旣干進而務入兮,又何芳之能祗。 固時俗之流從兮,又孰能無變化。覽椒蘭其若玆兮,又況揭車與江離。 惟玆佩之可貴兮,委厥美而歷玆。芳菲菲而難虧兮,芬至今猶未沬。 和調度以自娛兮,聊浮游而求女。及余飾之方壯兮,周流觀乎上下。   靈氛旣告余以吉占兮,歷吉日乎吾將行。折瓊枝以爲羞兮,精瓊爢以爲粻。 爲余駕飛龍兮,雜瑤象以爲車。何離心之可同兮,吾將遠逝以自疏。 邅吾道夫崑崙兮,路脩遠以周流。揚雲霓之晻藹兮,鳴玉鸞之啾啾。 朝發軔於天津兮,夕余至乎西極。鳳皇翼其承旂兮,高翶翔之翼翼。 忽吾行此流沙兮,遵赤水而容與。麾蛟龍使梁津兮,詔西皇使涉予。 路脩遠以多艱兮,騰衆車使徑待。路不周以左轉兮,指西海以爲期。 屯余車其千乘兮,齊玉軑而並馳。駕八龍之婉婉兮,載雲旗之委蛇。 抑志而弭節兮,神高馳之邈邈。奏《九歌》而舞《韶》兮,聊假日以婾樂。 陟陞皇之赫戱兮,忽臨睨夫舊鄕。僕夫悲余馬懷兮,蜷局顧而不行。   亂曰:已矣哉,國無人莫我知兮,又何懷乎故都? 旣莫足與爲美政兮,吾將從彭咸之所居。   고양 임금님 끝 자손이며 백용 어른의 아들로서 인의 해 인의 달 첫 정월 인의 날 이 몸이 태어났네. 내가 날 적 그때를 헤아려 어버이 내게 이름 주시니, 이름은 정칙, 자는 영균 아름다운 이름 내려주셨네. 날 적부터 고운 성품에 좋은 재주를 안에다 지녀 겉으로 향초를 몸에다 감고 추란을 엮어 허리를 찼네. 이 몸 닦기를 매양 보족한 양 행여 저 해가 그냥 갈세라, 아침엔 비산에 목란 꽃 캐고 저녁엔 모래톱에 숙낭을 캐네.   쉬지를 않고 세월은 흘러 봄은 어디로 가을이 갈마들어, 초목이 시들고 우수수 낙엽지니 아! 고운 님 그냥 늙었네 한창인 이때 악을 안 버리니 이걸 어이 두고 못 고치시나, 천리마 타고 달려오시면 앞서 좋은 길 인도하련마는― 옛 삼왕의 순수한 덕이여! 향기로운 그 꽃들 때문일세, 산초 계수가 한 둘 뿐이었나 혜초 구리때가 줄지었었네 요순임금님 빛나신 덕은 바른 길 좇아 정도에 드심일세 폭군 걸․주의 창피한 행적은 못 갈 지름길로 달렸던 탓이리. 제 배나 채우려는 못된 무리로 어둡고 좁은 길 험난해 가니, 어이 이 한 몸이 걱정되오리 님의 수레 꺼질까 맘 설레네.   앞으로 뛰고 뒤로 달리며 선황의 뒤를 잇게 하렸더니, 이 내 충정은 몰라주고 참소만 믿고 벌컥 성내시네. 바른 내 말이 이 몸에 화 될 줄을 알고도 차마 못 그치옴은, 하늘이 아시리! 이 내 충정을 오직 알뜰한 님 때문일세. 저녁에 만나자 기약했더니 아! 중도에 마음 변하셨네. 변치를 말자 맹세한 말씀 다 깨뜨리고 마음 옮기셨네. 님과 이별이 애타오리만 고운 님 그 마음이 하도 서럽네.   쉬지를 않고 고운 님 위해 드넓은 밭에 난초 혜초랑, 약초 아욱 구리때 심어 고이 가꾸며 기다렸었네.   그 향초들 무성해지면 때를 기다렸다 베려 했더니…… 때 아니 병든 걸 슬퍼하랴만 그 많은 향초들 거칠어지는 것이―   앞을 다투며 욕심을 내더니 가득 찼어도 주린 양 허덕이네, 내가 저 같은 줄 혼자 여겨 괜한 날 두고 강짜를 부리네. 남들은 이욕에 허둥대지만 이 나는 전혀 아랑곳없네, 늙음이 덧없이 닥치기 전에 조촐한 이름을 전하는 것만이…… 아침엔 떨어지는 목란의 이슬을― 저녁엔 국화꽃 씹으며 지내옵네, 진정 이 마음 곱게만 간직하면 배고픈 것 쯤이야 뭐 서러우리. 목란 뿌리 캐어 구리때 맺고서 승검초 꽃술 엮어 함께 엮어 입고, 계수 가지에 혜초를 매고 호승의 긴 띠 곱게 둘렀네. 옛 어진 분을 본받는 이 나여! 세속 사람들은 아무도 행하지 않네, 지금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지만 팽함님 끼친 법 기여 따르오리.   긴 한숨 쉬며 남몰래 우는 건 고생도 하고 많은 민생이 애처로와, 선미를 닦으며 조심도 했더니 아침에 간했다 고대 버림 받았네. 혜초띠를 보고 날 아주 버렸나 그 위에 구리때도 내겐 있었지, 하지만 이 마음에 소중한 것을 아홉 번 죽어도 한 않으리. 알뜰한 님이여!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의 마음을 자세 안 보시니, 남다른 이 나를 헐뜯는 이들 날 음란하다니 원망스럽네. 아! 교묘한 사람의 재주여 그림쇠 놓고서 예사로 고치는…… 먹줄 비켜 두고 굽은 길로 좇는…… 애써 뜻 맞추려 알랑수만 일삼네. 시름에 겨워 넋 잃고 서서 궁한 세상을 나만이 겪네만, 아무 때 죽어 흔적마저 없어져도 그런 태도야 차마 못 취하리. 매가 딴 새와 어울리지 않는 건 정녕 예로부터 빈 말이 아닐세, 각과 원이 어디 맞는 예 보았나 길이 서로 다른 걸 누가 상종하리. 마음을 굽히고 뜻을 억눌러 허물을 참고 욕을 비키며, 청렴결백 바르게 죽는 걸 옛 성인은 참말 아끼셨네.   잘못 든 길을 한을 하고서 목 늘여 주춤 돌아갈까 섰네, 이 내 수레를 옛 길로 돌리며 이제야 깨닫고 물러를 가네. 난초 향그런 못가를 거쳐 산초 언덕에 달려가 쉬네, 나아가자 님께 허물만 만났으니 물러가 조촐히 몸이나 닦으리. 마름 연핑으로 저고리 지어 입고 연꽃을 모아 치마를 입네, 날 알아주는 이 없으면 그 어떠리 이 마음 정녕 꽃다운 것을― 이 내 갓은 산처럼 우뚝 솟았는데 치렁치렁 늘어진 광채 어린 긴 띠, 방향과 악취가 섞여 있는 속에서도 깨끗한 천성은 깎이지 않았네. 갑자기 뒤돌아 시선을 흘리며 사방을 이제 가서 구경할까 하네, 이 몸에 긴 띠 한결 빛 어려 아름다운 향기 서언히 풍기네. 줄기는 품성이 저마다 다른데 나만이 유독 결백을 즐겨, 사지가 찢겨도 변치 않을 걸 이 마음 행여나 고칠 줄이야. 이런 날 두고 우리 누님은 날 위해 애타게 나무라시네, 곤이 직으로 화를 입더니만 끝내 우산서 쉬 죽더라며, 네 어이 직언을, 결백을 즐겨 미쁜 절개를 너만이 두고서, 집안에 가득히 납가세, 꼴인데 너만이 따로 멀리 하는가! 남에게 일일이 말 못할 것을! 너의 그 충정을 누가 알아 주리, 당을 짓느라 급급한 세상에 어쩌자고 외로이서 내 말을 안 듣나.    
818    굴원/ 오언절구 댓글:  조회:3500  추천:0  2015-04-01
굴원(屈原)의 詩(五言絶句)    日月千年鏡 (일월천년경)  해와 달은 천 년을 비추는 거울이요  江山萬古屛 (강산만고병)  강산은 만고의 병풍이라네  東西日月門 (동서일월문)  동과 서는 해와 달이 드나드는 문이요  南北鴻雁路 (남북홍안로)  남과 북은 기러기들의 길이라네.     江山萬古主 (강산만고주)  강산은 만고의 주인이요  人物百年賓 (인물백년빈)  사람은 백 년의 손님이네  世事琴三尺 (세사금삼척)  세상일은 석자거문고에 실어 보내고  生涯酒一盃 (생애주일배)  삶은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것.     春水萬四澤 (춘수만사택)  봄 물은 사방의 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峰 (하운다기봉)  여름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도 많더라  秋月揚明輝 (추월양명휘)  가을달은 밝은 빛으로 드날리니  冬嶺秀孤松 (동령수고송)  겨울 산에 외로운 소나무가 빼어나구나.     日月籠中鳥 (일월롱중조)  해와 달은 새장 속의 새  乾坤水上萍 (건곤수상평)  하늘땅은 물 위의 부평초  白雲山上蓋 (백운산상개)  흰구름은 산을 덮는 일산  明月水中?(명월수중주)  밝은 달, 물속의 구슬이라네.     月爲宇宙燭 (월위우주촉)  달은 우주의 촛불이며  風作山河鼓 (풍작산하고)  바람은 산하를 두드리는 북이라네  月爲無柄扇 (월위무병선)  달은 자루 없는 부채  星作絶瓔珠 (성작절영주)  별은 끈 끊어져 흩어진 구슬.     春作四時首 (춘작사시수)  봄은 사계절의 처음이 되고  人爲萬物靈 (인위만물영)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네  水火木金土 (수화목금토)  수화목금토는 오행이요  仁義禮智信 (인의예지신)  인의예지신은 오상(五常)이라네.     夫婦二姓合 (부부이성합)  부부는 두 개의 성이 합 하였고  兄弟一氣連 (형제일기련)  형제는 한 기운으로 이어졌네  父慈子當孝 (부자자당효)  부모는 사랑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兄友弟亦恭 (형우제역공)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리.     耕田埋春色 (경전매춘색)  밭을 갈며 봄 빛은 땅 속에 묻으며  汲水斗月光 (급수두월광)  물을 길을 때는 달 빛도 함께 떠오리  西亭江上月 (서정강상월)  서쪽 정자에는 강 위로 달 떠 오르고  東閣雪中梅 (동각설중매)  동쪽 누각에는 눈 속에 매화가 피었네.     人分千里外 (인분천리외)  사람은 천리밖에 있어도  興在一杯中 (흥재일배중)  흥은 한잔 술 속에 들어있구나  春意無分別 (춘우무분별)  봄의 뜻은 분별이 없는데도  人情有淺深 (인정유천심)  인정은 깊고 얕음이 있구나.     山影推不出 (산영추불출)  산 그림자 밀어내도 나가지를 않고  月光掃還生 (월광소환생)  달 빛은 쓸어내도 다시 생기네  水鳥浮還沒 (수조부환몰)  물새는 떴다가 다시 잠기고  山雲斷復連 (산운단부연)  산 구름은 끊겼다가 다시 일어나네.     山高松下立 (산고송하립)  산이 높아도 소나무 아래 서 있고  江深沙上流 (강심사상류)  강이 깊어도 모래 위를 흐른다네  花開昨夜雨 (화개작야우)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風 (화락금조풍)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     雲作千層峰 (운작천층봉)  구름은 천층의 봉우리가 되고  虹爲百尺橋 (홍위백척교)  무지개는 백 척의 다리가 되네  秋葉霜前落 (추엽상전락)  가을에 잎은 서리 오기 전에 떨어지고  春花雨後紅 (춘화우후홍)  봄 꽃은 비 온 뒤에 더 붉어지네.     父母千年壽 (부모천년수)  어버이 천 년의 장수를 누리시고  子孫萬歲榮 (자손만세영)  자손은 만세의 영화를 누리시길  愛君希道泰 (애군희도태)  임금은 사랑하여 도가 태평할 것을 바라고  憂國願年豊 (우국원년풍)  나라를 걱정하여 해마다 풍년 들기 바라네.     妻賢夫禍少 (처현부화소)  아내가 어질면 남편의 화가 적고  子孝父心寬 (자효부심관)  자식이 효도하면 어버이는 너그러우며  子孝雙親樂 (자효쌍친락)  자식이 효도하면 두분 어버이 기뻐하시고  家和萬事成 (가화만사성)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져.     思家淸宵立 (사가청소립)  집이 그리워 맑은 밤에는 서성이며  憶弟白日眠 (억제백일면)  형제생각에 낮에도 졸고 있네  家貧思賢妻 (가빈사현처)  집이 가난하면 현명한 아내가 생각나고  國亂思良相 (국난사양상)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이 생각나네.     山靜似太古 (산정사태고)  산이 고요하니 태고와 같고  日長如少年 (일장여소년)  해는 길어서 소년과 같구나  靜裏乾坤大 (정리건곤대)  고요함 속에서 하늘과 땅의 큼을 알겠고  閒中日月長 (한중일월장)  한가한 가운데서 세월의 장구함을 느끼네.     歲去人頭白 (세거인두백)  세월이 흐르니 머리카락 희어지고  秋來樹葉黃 (추래수엽황)  가을이 다가오니 나뭇잎은 누래지고  雨後山如沐 (우후산여목)  비 온 뒤의 산은 목욕을 한듯하고  風前草似醉 (풍전초사취)  바람 앞의 풀은 술 취한듯 흔들리네.     細雨池中看 (세우지중간)  가랑비는 못 가운데서 볼 수 잇고  微風木末知 (미풍목말지)  산들바람은 나무 끝에서 알 수 있네  花笑聲未聽 (화소성미청)  꽃은 웃어도 웃음소리 들리지 않고  鳥啼淚難看 (조제루난간)  새는 울어도 눈물은 흘리지 않네.     白鷺千點雪 (백로천점설)  백로는 천 점의 눈이요  黃鶯一片金 (황앵일편금)  꾀꼬리는 한 조각의 금이라  桃李千機錦 (도리천기금)  복숭아꽃 오얏 꽃 일 천 베틀의 비단이며  江山一畵屛 (강산일화병)  강산은 한 폭의 그림이라네.     初月將軍弓 (초월장군궁)  초승달은 장군의 활이요  流星壯士矢 (유성장사시)  유성은 장사의 화살이라네  掃地黃金出 (소지황금출)  땅을 쓰니 황금이 나오고  開門萬福來 (개문만복래)  문을 여니 만복이 들어오네.        雨磨菖蒲刀 (우마창포도)  비는 창포의 잎을 갈고  風梳楊柳髮 (풍소양류발)  바람은 버드나무를 빗질하네  鳥耕蒼海去 (조경창해거)  물새는 푸른 바다를 가르며 떠나가니  鷺割靑山來 (로할청산래)  백로는 푸른 산을 가르며 날아오네.       洞深花意懶 (동심화의나)  골이 깊으니 꽃도 피는 것이 게으르고  山疊水聲幽 (산첩수성유)  산이 첩첩 하니 물소리도 그윽하네  氷解魚初躍 (빙해어초약)  얼음이 녹으니 물고기 먼저 뛰어오르고  風和雁欲歸 (풍화안욕귀)  바람이 따뜻해지니 기러기 돌아 가려 하네.   谷直風來急 (곡직풍래급)  골이 곧으니 바람은 급히 불고  山高月上遲 (산고월상지)  산이 높으니 달은 더디 오르네  실솔鳴洞房 (실솔명동방)  귀뚜라미 골방 속에 울고 있고  梧桐落金井 (오동낙금정)  오동 잎은 우물 속으로 떨어지네.    ☆.. 굴원 (중국 춘추전국 정치가 시인) : BC 343경 중국 중부 초(楚)나라~289경 초나라.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애국시인. 이름은 평(平). 원(原)은 자. 일찍부터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그의 시들은 초기 중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817    초나라 시인 - 굴원 댓글:  조회:5014  추천:0  2015-04-01
굴원(屈原, 기원전 340년 ~ 기원전 278년)은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의 시인 · 정치가다. 성은 미(羋), 씨는 굴(屈), 이름은 평(平)이다.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 초나라의 회왕 때에 좌도(보좌관)에 임명되었다. 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 정치가였으며, 회왕의 상담역으로 국사를 도모하고,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으나, 다른 이의 모함을 받아 신임을 잃고 끝내 자살하였다. 그는 이러한 아픔을 시 이소(離騷)에 담아 내었다. 이소란 '우수에 부딪힌다'는 뜻이다.   목차    1 추방 2 투신 3 작품 4 남긴 것들 5 같이 보기   추방 진나라의 소왕은 초 회왕의 진나라 방문을 요청하였다. 굴원은 반대하였으나, 회왕은 막내 아들 자란의 권유에 따라 진나라에 방문하였다가 억류당한 채 병사하였다. 큰아들 경이 경양왕으로써 왕위에 올랐고, 회왕의 막내 아들은 영윤으로 임명되었다. 굴원은 자신의 뜻이 반영되지 않고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자 낙담하였다. 마침내 양왕은 자란과 상관대부의 중상모략에 불구하고 굴원을 강남으로 추방하였다. 다음은 회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이소의 한 부분이다. “ 일월은 홀연하여 멈추지 않고 봄과 가을은 어김 없이 바뀐다 초목이 영락하는 것을 생각하고 미인이 늙어감을 두려워 한다 ” 투신 굴원은 멱라(汨羅江)에 돌덩이를 품에 안고 몸을 던져 죽었다. 굴원의 시 회사부를 통해 굴원이 투신한 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초나라는 이후 나날이 영토를 진나라에 빼앗기다가 50여년 뒤 결국 진나라에 멸망당했다. 멱라(汨羅)는 후난 성 상수(湘水)의 지류로 동정호로 흘러들어간다. 작품 그의 작품은 대개 울분의 정이 넘쳐 고대 문학 중 드문 서정성을 띠고 있다. 대부분의 시는 에 실려 있는데 라는 시가 특히 유명하다. 그 밖에 등이 남아 있다. 어부사(漁父辭) 이소(離騷) 남긴 것들 한나라 시절 가생이 장사왕의 태부가 되어 상수(湘水 - 동정호의 수원)를 지날 때, 시를 지어 물속에 던져 굴원의 넋을 달랬다. 단오절이 굴원을 기념하기 위하여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중국 음식 쫑즈도 굴원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다.     ☆ 굴원(屈原 B.C 340-278)의 이소(離騷)    초(楚)나라 사람. 왕족 출신인 굴원은 뛰어난 재능으로 20대에 임금의 총애를 받았으나, 그의 재주를 시기하는 사람에 의해 모함을 받고 추방을 당함. 그 후 초나라는 진나라에 패하고 굴원은 돌아갔으나 다시 쫓겨난다(49세). 굴원은 상강 기슭으로 오르 내리며 정치적 향수와 좌절 속에 유랑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돌 을 품은 채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62세의 생을 마감. 중국 최고의 비극적 시인으로 평가 한다.      일찌기 굴원은 회왕때 좌도(左徒) 벼슬에 있었는데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났으며 역대의 치란(治亂)에 밝아 회왕으로부터 신임이 두터웠다. 굴원이 회왕의 명을 받아 초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헌령(憲令)을 기초하고 있었는데 굴원과 왕의 은총을 다투던 상관대부 늑상이 그걸 가로채어 자신의 공적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굴원은 이를 거절하였다.  늑상은 이에 굴원을 회왕에게 참소하였다.  "굴원을 학식이 빙자하여 믿고 대왕을 업신여기며 무엇인가 딴마음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현명치 못한 회왕은 늑상의 말을 믿고 굴원을 멀리하였다.  굴원은 왕의 듣고 보는 것이 총명하지 않고 참소와 아첨이 임금의 밝음을 가로막는 것을 금심하고 비통해하면서 장편의 시를 지어 그의 울분을 토로하니 이 시가 유명한 굴원의 이소(離騷)이다. 이 이소라는 주제의 뜻에 대하여는 두가지 설이 있다. '이(離)'는 '이(罹)'와 같은 뜻으로 병이나 재앙에 걸린다는 뜻이고 '소(騷)'는 근심을 뜻하는 것이므로 '근심을 만난다'는 뜻이라는 견해이고, 또 하나는 후한 때 왕일(王逸)의 견해로 '이(離)'는 이별의 뜻이므로 '이별을 근심한다'라는 뜻이라는 설인데 앞의 설이 유력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굴원은 제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 친제파였다. 당시 초나라는 굴원의 반대파인 친진파가 득세하고 있었는데 이들 친진 세력들은 진나라의 장의가 6백리의 땅을 베어 주겠다는 미끼에 속아 제나라와 친교를 끊은 후 끊임없이 진나라의 침략을 받게 되고 초나라가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게 되자 회왕은 다시 굴원을 불러들여 다시 등용하려고 하였다. 굴원은 오직 조국 초나라에 공헌하겠다는 일념으로 수도인 영으로 돌아왔으나 재차 녹상의 참소를 입어 강남지방으로 추방되는 비운에 처해졌다.  굴원은 상수(湘水)가를 방황하면서 웅혼(雄渾)의 시 [천문(天問)]을 써냈다. 172가지 문제를 제기하여 비통한 울부짖음으로 천지에 의문을 호소하였다.  굴원이 상수가에 이르러 머리털을 풀어헤치고 못가로 다니며 침음(沈吟)하니 그의 모습은 아주 파리하고 수척해 있었다.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다.  "당신은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닙니까?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그러자 초췌한 안색으로 있던 굴원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맑다.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있다. 그래서 이곳으로 쫓겨난 것이다."  어부가 다시 물었다.  "사물에 구속받지 않고 세상의 추이에 몸을 맡기며 사는 것이 성인이 취할 방도라 들었습니다. 세상이 혼탁하다면 어째서 자신은 같이 취하시지 않으십니까? 가슴속에 주옥을 품었으면서도 왜 스스로 피할 방법을 찾지 않았습니까?"  굴원은 다시 대답하였다.  "얼굴을 씻고는 모자의 먼지를 털고, 의복도 간추려 입지 않는가? 결백한 몸을 그런 때로서 더럽힐 수가 없다. 차라리 그럴 바엔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될지언정, 어찌 세속에 몸을 더럽힐 수가 있겠는가?"  굴원은 이런 가운데서도 나라에 대한 걱정을 한시도 잊은 일이 없었다.  경양왕 19년(B.C. 280) 초나라는 지금까지의 친진 정책에서 180도 전환하여 반진 정책을 펴 여러 제후의 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반진 동맹을 재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진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하여 한북(漢北)과 상용(上庸)의 땅을 빼앗고 다음해에는 또 서릉(西陵)을 빼앗았다.  경양왕 27년(B.C. 278)에는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드디어 초나라의 수도 영을 함락시키고 선왕의 무덤인 이릉(夷陵)을 불태워버리니 경양왕은 진성(陳城, 하남성)으로 후퇴하였고 다음해에는 다시 초나라의 무(巫)와 금중을 점령하니 이곳은 초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는 곳이었다. 일찌기 회왕이 진나라에 억류당하면서까지도 끝끝내 내놓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요충지였는데 이제 진나라가 무력으로 빼앗아 버린 것이다.  굴원은 이 소식을 듣고 조국의 앞날에 실망한 나머지 분연히 '애영과 회사(懷沙)의 시'를 짓고 음력 5월 5일 돌을 품고 멱라수(호남성 상수의 지류)에 몸을 던져 순국(殉國)하니 이때 그의 나이 62세였다. 애국 시인이었던 굴원은 중국 시가의 세계에서나 중국인의 생활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중국 역대의 위대한 시인--이백(李白)과 두보(杜甫)도 예술. 품격. 덕성면에서 굴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호남성 도강현에 있는 굴원에 얽힌 고적의 하나인 천문대 구지는 지금까지 완전히 보전되어 있으며, 투신 자살한 멱라수 가에는 그의 무덤과 사당이 세워져 있다. 굴원이 죽은 음력 5월 5일은 속칭 단오절(端五節)이라 하여 그를 추모하는 제일(祭日)로 정해져 있다. 매년 이날이 되면 강남 지방의 사람들은 뱃머리에 용의 머리를 장식한 용선(龍船)의 경주를 성대히 벌이고 갈대잎으로 싼 송편을 멱라수 물고기에게 던져 주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물속에 잠긴 굴원이 고기에게 뜯어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놀이라고 한다. 단오절에 송편을 만드는 일은 전국적으로 펴져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으며 이같은 풍습은 중국에서뿐 아니라 멀리 일본.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에까지 전승되고 있다.    
816    세계 명시 모음 ㄴ 댓글:  조회:3381  추천:0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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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그때에도 역시 그랬지... 댓글:  조회:5657  추천:0  2015-04-01
    ▲남한 관광객을 위해 북한 회령시를 바라볼 수 있는 공사중인 전망대 앞에서 ▲북한을 드나드는 삼함 통상구 앞에서   ▲윤동주 생가 서시 시비 앞에서  ▲뒤편에 일송정이 바라보이는 비암산 초입 표지석 앞에서...김승종 시인, 조영일 이육사문학관 관장, 우광훈 연변작가협회 사무국장과...  ▲북한 회령시 전경 ▲두만강 물줄기가 동해로 흘러가고...         ▲화룡시에 있는 발해국 성터인 서고성...        ▲화룡시 평강평원중부에 있는 서고성은 발해국(기원 698~926) 중경현덕부의 유적지...발해국 200여년의 역사발전의 주요 도시로서 정치, 경제 문화중심지 중의 하나임.        
814    명시인 - 조향 댓글:  조회:4201  추천:1  2015-04-01
  SANATORIUM                                조향   SANATORIUM   옷도 벳드도 벽도 창장(窓帳)도 모두 희어 무섭게 깨끗해얄 곳인데두 이 무슨 악착한 병균(病菌) 살기에 이리 외론 곳이냐   저승으로 갈 채비를 하얗게 하였구나 병동(病棟) 유리창에 오후의 햇볕이 따가워 간호부 흔드는 손이 슬프기만 하여라   죽순, 1948. 3           `쥬노'의 독백                             조향   `쥬노'의 독백   참 우습지 커튼(curtain) 렉처(lecture)는 언제나 복숭아 빛깔인데 선생님들은 어두운 로비에서 케라라의 라라라 그렇지 라오스에서는 무엇을 자꾸 포기한다고 한다 고부랑깅 강아지는 낮 열한 시를 바라보고 한없이 울지 않았다 미인은 바크테리아를 기르는 선수들인데 낭자한 테블 위에는 자빠진 마네킹의 허벅지 네 살난 아들놈이 그 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 보더니 왜 이러냐고 갸웃이 묻는다 UP는 네루 수상의 찌푸린 표정을 보도하고 죄들이 옥수수처럼 알알이 영글어가면 붉은 발톱이 국경선을 할퀸다 목쉰 영감이 죽으면서 남겨 놓은 기침 소리가 겹쳐진다 기분 나쁜 오브제가 수세미의 모양 조랑조랑 달린 골목길에서 나는 낡은 황제의 모자를 쓰고 있다 석양은 녹색으로 물들어 가는데 영금을 보는 소녀의 외마디 소리 하품을 뱉으니까 트랜지스터 라디오 소리가 나더니 비둘기가 한 마리 어깨에 와서 오후 여섯 시를 구구거린다 셈본 성적이 좋지 않았지 그럼 팔랑고렁거리는 치마 자락은 어젯밤의 검은 빛을 갑자기 회상한다 되씹어 보면 사랑스러운 죄들이 시척지근한 트림과 더불어 꽤 생산될 것이니라 아아멘 자멘호프 박사의 암호 말씀인가요? 순정이 십자가에서 말라 죽었으니 말야 오늘 밤 골고다에서는 축구 시합이 있을 것이다 밤 곁에서 회색 기침 소리가 난다 손바닥에서 네가 수없이 멸해 간다   사상계, 1959. 10           가을과 소녀의 노래                        조향   가을과 소녀(少女)의 노래   하이얀 양관(洋館) 포오치에 소박한 의자가 하나 앉아 있다   소녀(少女)는 의자 위에서 지치어 버려 낙엽빛 팡세를 사린다 나비처럼 가느닿게 숨쉬는 슬픔과 함께……   바람이 오면 빨간 담장이 잎 잎새마다가 흐느낀다 영혼들의 한숨의 코오러스!   시집(詩集)의 쪽빛 타이틀에는 화석(化石)이 된 뉴우드가 뒤척이고,   사내는 해쓱한 테류우젼인 양 커어텐을 비꼬아 쥐면서 납덩이로 가라앉은 바다의 빛을 핥는다   먼 기억의 스크린처럼 그리워지는 황혼이 소녀(少女)의 살결에 배어들 무렵   가을은 대리석(大理石)의 체온을 기르고 있었다.   문예, 1950. 1           검은 SERIES                               조향   검은 SERIES     □ 1   (C․U) 유리창에 시꺼먼 손바닥 따악 붙어 있다. 지문(指紋)엔 나비의 눈들이……. (M․S) 쇠사슬을 끌고 수 많은 다리[脚]의 행진. (O․S) M 아카시아 꽃의 계절이었는데…… W 굴러 내리는 푸른 휘파람도……     ―― 밝은 목금(木琴) 소리 ――     □ 2   (M․S) 윤전기에서 쏟아지는 지폐의 더미. 그 더미 속에서 도오는 지구. (C․U) 지구는 잠시 정전(停電).           ―― 권총 소리 ―― (O․S)      W 오 소레 미오!      M 찢어진 EO S의 로비에서……     □ 3   (L․S) 사막의 뉴드 거기 한 쌍의 벌거숭이 실루에트 사뭇 내닫는다. 기일게 그리매가 따라간다.   W 옌 어디메에요!   M 죽음이 뵈는 언덕에서……        ―― 흑인 영가(黑人靈歌) ――     □ 4   (L․S) 기울어지는 성교당(聖敎堂) (M․S) 비스듬히 십자가. 탄도탄이 십자가에 명중. (L․S) 검은 태양.     ―― 바람 소리․사이 사이로 코오러스 ――     □ 5   (C․U) 유리창에 시꺼먼 손바닥. 파충류처럼 따악 붙어 있다. 그 손바닥 가운데 외눈동자가 꺼무럭. (B․C․U) 공포공포공포의 외눈동자.      ―― 허탈한 여인의 웃음 소리 ――     □ 6   (M․S) 정전된 지구의(地球儀) 도온다. 지구의 복판에 공포공포의 외눈동자. (B․C․U) 외눈동자. 외눈동자에서. 무수한 독나방 흩 어지며 날 아 난 다.      ―― 명랑하게 구르는 목금 소리 ――     □ 7   (L․S) 아무 것도 없는 회색 하늘. 참 광막하다. (O․S)    너희는 잘못 걸어 왔느니라!      ―― 그레고리아 성가(聖歌)․처량하게 풀룻 소리 꿰뚫고 나간다 ――   사상계, 1958. 11           검은 신화                                 조향   검은 신화(神話)   지하(地下)로 통하는 층층계. 물이끼 번져 가고. 아아라한 옛날의 Hierogramme들이에요. 죽어간 문명(文明)의 영광(榮光) 위에. 굴러떨어지는 세피아의 태양(太陽). 갸륵한 파국(破局)을 위한 Ceremony의. 싸이크라멘이 살랑 흔들리는데. 영구차(靈柩車)의 행렬(行列) 뒤에 물구나무선 최후의 인간(人間) 대열(隊列).   내 과거(過去)의 계제(階梯)에서 사태지는 시꺼먼 자장노래. Lu lul―la Hash a bye 난립(亂立)한 마름쇠를 넘어서 휘청거리는 군화(軍靴)들의 패잔(敗殘). 시간(時間)이 옴짓 않는 이 공동(空洞)을 너의 su―awl처럼 새까만 수실을 흔들며 바람들이 연신 회돌아 나간다. 그 속에 네 팔이 하나 떨어져 있다. 하아얀 수화기(受話器). 자꾸만 멀어지는 성가대(聖歌隊). halation 저쪽에서 나를 부르는 너의 하얀 소리. 나는 이 수많은 스산한 바람 속에 서 있다.   머리, 가슴이 세모진 Basedow 씨병(氏病) 환자(患者)들이 누워 있는 습지대(濕地帶). 돋아난 눈알들. 버슷버슷버슷버슷. 4444. 아아. 나의 가슴에도. 사막(砂漠)에는 바알갛게 반란(叛亂)이. 운하지대(運河地帶)의 계엄명(戒嚴命). 나쎌 씨의 낮잠을 위하여. italio처럼 늘어선 목내이(木乃伊)의 숲 속에서. 서궁남내다추초(西宮南內多秋草) 낙엽만계홍불소(落葉滿階紅不掃). nomos의 폐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   갑자기 3 반규관(半規管)의 좌초(坐礁). Mi Primavera! ¿Quien sera aquel hombre que nos mira? 평범한 밤은 처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이나 잡고 있다. 세상이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모두들 자고 있더라고. 육체(肉體)를 고발(告發)당한 투명인간(透明人間)들이 G․M․C에 자꾸 실려 가고. 그 위에서 인환(寅煥)이 손을 흔든다. 그랜드 쇼처럼 인간(人間)의 운명(運命)이 허물어지고 Mi Primavera! 너는 시꺼먼 바람의 border line 저쪽에 언제나 있으면서. 몬마르뜨르도 아닌 거릴 이렇게 걷고 있어요! 미친 오필리아의 웃음소리 아스팔트 위에 동댕이쳐지면. 젊은 교수(敎授)의 독백(獨白)의 회색(灰色). 인제 지구(地球)의 visa는 무효(無效)다.   문학예술, 1956. 12           검은 전설                                 조향   검은 전설   하얀 종이 조각처럼 밝은 너의 오전의 공백(空白)에서 내가 그즘 잠시를 놀았더니라 허겁지겁 하얀 층층계를 올라버린 다음 또아리빛 달을 너와 나는 의좋게 나눠 먹었지 옛날에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고대(古代)의 원주(圓柱)가 늘어선 여기 내 주름 잡힌 반생을 낭독하는 청승맞은 소리 밤이 까아만 비로오드의 기침을 또박또박 흘리면서 내 곁에 서 있고 진흙빛 말갈(靺鞨)의 바람이 설레는 하늘엔 전갈이 따악들 붙여 있다 참새 발자국 모양한 글자들이 마구 찍혀 있는 어느 황토 빛 영토의 변두리에서 검은 나비는 맴을 돌고 아으 다롱디리! 안타까비의 포복(匍匐)이 너의 나의 육체에 의상(衣裳)처럼 화려하구나 나는 골고다의 스산한 언덕에서 마지막 피를 흘린다 나의 손바닥에서 하얀 네가 멸형(滅形)하고 나면 물보라 치는 나의 시커먼 종점에서 앙상하게 걸려 있는 세월의 갈비뼈 사이로 레테의 강물이 흐른다 나는 검은 수선꽃을 건져 든다 쌕스폰처럼 흰 팔을 흔드는 것은 누굴까! 팔목에 까만 시계줄이 감겨 있다 인공위성 이야길 주고 받으면서 으슥한 골목길로 피해 가는 소년들의 뒤를 밟아 가니까 볼이 옴폭 파인 아낙네들이 누더기처럼 웃고 섰다 병든 풍금이 언제나 목쉰 소리로 오후의 교정을 괴롭히던 국민학교가 서 있는 마을에 아침마다 파아란 우유차를 끌고 오던 늙은이는 지금은 없다 바알간 석양 비스듬히 십자가 교회당 하얀 꼬리를 흔들면서 지나가는 바람결에 항가리아 소녀 탱크에 깔려 간 소녀들의 프란네르 치맛자락이 명멸한다 소롯한 것이 있다 아쉬운 것이 있다 내 어두운 마음의 갤러리에 불을 밝히러 너는 온다 지도를 펴 놓고 이 논샤란스의 지구의 레이아웃(layout)를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내일이면 늦으리 눈이 자꾸 쌓인다.   자유문학, 1958. 12           그날의 신기루                             조향   그날의 신기루(蜃氣樓)   형장(刑場) 검은 벌판. 쭈빗쭈빗이 늘어선 말목에 턱 괴고 붉은 달은 야릇이 웃었더니라. 귀곡(鬼哭)은 수수(愁愁) 기인 그리매들만 일렁였고.   우리 외삼촌의 콧날을 날려 놓고 펄럭이는 3․1의 깃발 꿰뚫어 놓고 서른 아홉 층층계를 굴러서 여기 내 앞에 동댕이쳐지는 총알. 한 개. 기기기기기기(旗旗旗旗旗旗)이천만개(二千萬個)가기기기인(旗旗旗人)마다기기기(旗旗旗)방촌(方寸)의인(刃)을회(懷)하고기기기(旗旗旗) 천백세조령(千百歲祖靈)이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旗旗旗旗旗旗旗旗旗旗旗)오등(吾等)을음우(陰佑)하며기기기기기(旗旗旗旗旗)   조선건국(朝鮮建國)사천이백오십이년(四千貳百五十貳年) 삼월일일(參月壹日)   피의 이끼 만발한 층층계 자꾸 올라가면 우리 모두의 마음의 하늘에 의젓한 그날의 신기루(蜃氣樓). 왁자악히 만세(萬歲) 소리만 쏟아지면서. 탄피(彈皮). 두개골(頭蓋骨). 또 외삼촌의 코가 떨어져 있고. 귀한 눈알들이 조선(朝鮮)의 하늘 우러르며 누워 있다. 피. 주검 겨레.   나도 너도 길이는 괼 3․1의 탑(塔). 꼭대기에. 훨훨 비둘기떼 오늘을 날고. 흰 구름 탑 허리에 감기며. 소년들. 하얀 장미꽃다발. 합장(合掌). 창가(唱歌) 소리. 만세 소리. 탑 너머 아아라히 깔려 있는 샛파란. 하늘. 하늘. 하늘.   고려(高麗)의 빛깔이다. 청자(靑磁)빛 우리 하늘 아래. 언제나 살아 있는 것. 맥맥(脈脈)히 영원히 흐르는 줄기. 하나만 하나만 있다.   자유문학, 1958. 4           나는야 뱃사공                             조향   나는야 뱃사공   나는야 뱃사공 어제도 오늘도 배움의 강 건너주는 나는야 뱃사공 어기어차 나룻배 사공이다!   이 언덕에 날 찾아온 그대들을 지혜의 노를 저어 수울렁 배를 띄워   저어쪽 언덕에 넘겨주곤 다시 돌아오는 나는야 뱃사공 어기어차 나룻배 사공이다!   동으로 서으로 헤쳐지는 그대들의 뒷모양 바라보며 돌아보며 잘 가라고 잘 되라고 비는 사람 나는야 뱃사공 어기어차 나룻배 사공이다!   조선교육, 1947. 9           날아라 구천에                             조향   날아라 구천에   학이드냐 봉이드냐 너희들 날아라 구천 그 높은 위에 눈부시는 눈이 부시는 궁궐 향해서 나의 너희들 높다랗게 날라도 보라! 머얼리 옛집 돌아보며 내려다보며 맑은 은하 건너 너희들 가는 곳 알고지라! 허구 많은 나라에도 배달의 피를 받아 태어난 젊은 너희들 가는 곳 진정 알고도지라! 구름 첩첩으로 머흘어도 뚫어라 빗줄기 거칠게 쏟아져도 참아얀다. 헝클어진 이 나라 바로잡고 겨레 위하여 젊은 너희들 피 끓어 올라라 곱게 고웁게…… 학이드냐 봉이드냐 날아라 너희들 구천 그 높다란 위에 싸움 없고 모자람도 없는 터전 닦으러 하얀 빨간 장미꽃 송이 송이 사철로 필 줄 아는 그런 나라 세우러 나의 너희들 구만리 창공 끝없이 날아라 날아보자!   조선교육, 1947. 9           녹색 의자가 앉아...                       조향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원제 :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있는 베란다에서   찐득찐득하다 진한 내출혈(內出血)․커피 냄새 밤이 뭉게뭉게 내 입 에서 기어나온다    나의 여백(餘白)이 까아맣게                      침몰(沈沒)해 간다 이끼가 번성하는 계절 늪지대(地帶)에는 송장                      들의 눅눅한 향연 파충류(爬蟲類)와 동침하는 여인(女人)들의 머리 위 황혼 짙어 가는 스카이                      라인에 비둘기떼만 하야니 박혀박혀박혀 가고가고 너도 아닌 나도 아닌                    저 검은 그림자는 누구냐! 올빼미의 것처럼 횟가루 벽에 박히는                                  두 눈 점점 클로즈업 되어 오는 것 이윽고는 점점 멸형(滅形)되어 가는 저것 그 언덕길          오리나무 수우(樹雨) 듣[滴]는 소리 마구 풀냄새도 풍기더니 ․ 향수(鄕愁)야 네바다이 우글거리는                    뒷골목에서 기적 소리가 나면 어디론지 떠나야 하는                   유령 들이 술렁거린다 가만히 입을 쪽! 맞춰 줄라치면 뽀오얗게       눈을         흘기           면서 `깍쟁이!' 하더니 너는 지금 빈 자리에 너의 투명한 것만 남겨                                놓고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있는 나의   베   란   다 에서 동화(童話)의 주인공이 들어갔                              다는 죽음의 돌문을 바라보고 나는 있다 삶의 뒤란에서 죽음들은 하아얀 수의를 입고 놀고는 있다 낙엽이 한   장 고요를     가로        지른            다   자유문학, 1957. 12           녹색의 지층                               조향   녹색(綠色)의 지층(地層)   나뭇가지를 간지르고 가는 상냥한 푸른 바람 소리도 들리고. 거기에 섞여드는 소녀의 한숨 소리 계집의 시시덕거리는 소리가소리가소리가. 나는 사람들과 화안한 웃음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무던히는 그립다. 내 머리 위로 지나간 검은 직선(直線) 위엔 짙은 세삐아의 밤이 타악 자빠져 있는데. 그 밑창에 가서 비둘기들은 목을 뽑아 거머테테한 임종(臨終)을 마련하고 있다. 참 많기도 한 세삐아 빛 밤밤밤밤. 밤의 꾸부러진 지평선엔 바아미리온이 곱게 탄다. 그럼. 너는 까아만 밤에만 내 앞에서 피는 하아얀 사보텐 꽃이다. 참 아무도 없는 밤의 저변(底邊)에서. 메키시코의 사막 지대, 너와 나와 사보텐 꽃과. 행복한가? 그럼요!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 밑에서 이렇게 당신이 내 곁에 누어 있고. 그럼요! 비쥬! 너는 박꽃처럼 밤을 웃는다. 특호(特號) 활자(活字)를 위하여. 오오. 오오. 디엔․비엔․푸우. 수상(首相)들의 비장(非壯)한 연설. 전파(電波). 파아란 전파(電波)가 지구(地球)에 마구 휘감긴다. 가이가 계기(計器)는 파업한다. 애인(愛人)들은 바닷가에 있다. 엘시노아의 파도 소리. . 끊임 없이 회상(回想)의 시제(時制)가 맴을 도는 여기. 녹색(綠色)의 지층(地層)에서. 화석(化石)이 되어 버린 나는 아아라한 고대(古代)처럼 잠자고 있다. 있어야 한다. 나는 영원을 산다. 개울 물 소리.   자유문학, 1956. 6           대연리 서정                               조향   대연리(大淵里) 서정(抒情)     □ 1 가을   여기는 마구 고요만 하구나 노오란 오후의 햇볕 어깨에 받으며 신문질 그러듯이 나는 바다를 앞에 척 펴 놓고 이렇게 쓸쓸한 시간 가운데 있구나 바다는 마구 칠한 부륫샨 부류우 오 바다는 굼실거리는 영원의 그라비유어! 바다여 너는 찬란한 생명을 가졌느냐?   수평 건너는 외대배기 예 제 어쩌면 가버린 이 모습처럼 저리는 희미한 애달픔이냐? 바다야 나는 너의 한없이 푸르른 역사를 모른다   온통 코스모스가 한밤 벌떼처럼 흩어진 여기 고추잠자리 능난한 곤두박질이 긋는 선(線)을 따라만 가다가 나는 그만 짙푸른 하늘의 애정에 현기증이 나 버리곤 한단다   소릴 치면 메아리가 돌아올 듯이 마주 다가앉은 솔이 푸른 산 그 너머가 해운대라는구야! …… 그래 은이 네가 너의 가제 결혼한 서방을 내버리고 미친 듯이 날 찾아와 눈에 이슬만 맺던 어쩌면 제법은 슬프기도 한 그 해운대의 이야길 너는 지금 어디메서 쓰다듬고 있느냐? 참으로 신기론 수수꺼끼가 아니냐 인생이란? 나는 네가 그리워라 나는 네가 그립지도 않아라   꾸겨질 적마다 솨아 하며 하얀 잇발들을 추껴 들고 내달아 오는 바다 이 손님도 없는 향연을 외로워란 듯이 흰 구름이 지나며 그림잘 떨어뜨려 놓는다 소년처럼 돌팔매도 쳐 보면서 돌아오다가 잔디에서 뒹구는 학생과 공연히 마주 웃었다 게으른 엿장사 가위 소리가 지나간 다음 오후의 한 나절은 옴짓 않는 고요가 뼈에 저린다     □ 2 봄   바닷물이 차츰 물러서노라면 젖은 모랫벌이 햇볕을 쬔다. 기다렸더란 듯이 조갤 호비려 달려드는 마을 가수내들 젊은 아낙네들 걷어 붙인 치마 밑에 볼통이 알밴 건강한 만져 보고도 싶은 다리 다리들에 연한 바람이 휘감긴다 홰홰 감기누나 간지럽게 감기는구나   이층 창 밀어 올리고 동해 푸른 바다 여인인 양 살뜰히 안아 들여 본다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발끝이 홰끈 들린다 바람이 마고 내 숨통을 막는구나 보리밭 거름 냄새 복숭아꽃 냄새 바다 냄새 남쪽 냄새 조개 잡는 아가씨 땀 냄새 살결 냄새 문주리 내 허파로 밀려 든다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 그래도 나는 연방 섰다 바람에 불리우며 이쪽으로 오는 여학생의 남빛 보레로가 눈에 스민다 그 위로 노랑 나비가 휘영휘영 하늘로 당기어 간다   눈이 아찔하게 노란 장다리꽃 길을 헐레벌떡 지나고 나면 복숭아도 오얏도 개나리도 버들 잎도 마구 피어 무르녹은 마을이 활짝 열린다 풀피리 소리가 가물어지자 송아지도 게으름을 피우면서 등골에 쪼르르 땀방울도 구르며 목구멍에 감기는 감기는 이 갈증! 봄은 갈증이냐 갈증은 봄의 행복이냐 아 포실한 이 갈증이여!   모자를 제껴라 이마를 솔솔 바람에다 맡긴다 내 게슴츠레 뜬 눈망울에 비최는 신작로 거기 해운대로만 달아나는 뻐스 뒤통수에 이는 뽀오얀 먼지 먼지 사라진 다음 아슴한 하늘 끝에 떠 오르는 네가 있다 참으로 있구나 십년 전의 네가 있구나 너도 이 길을 해운대로만 달렸었을 게 아니냐? 은아! 다시 오월 콧노래 부르던 오월 나란히 거닐던 오월이다 시간의 비석(碑石)에 아로새겨진 내 사랑의 생채기는 훈장(勳章)인 양 풍화(風化)되어 가는구나! 어쩌면 한바탕 비극 같은 게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렇구나…… 말이다   영문(嶺文), 1949. 11           디멘쉬어 프리콕스의 푸르른 산수           조향   디멘쉬어 프리콕스의 푸르른 산수(算數)   당나귀 등에 검은 신(神)들의 모꼬지. 신데렐라의 하늘에 다갈색(茶褐色) 코러스가 번져 나가면 너는 검은 화요일을 자맥질하면서 바람과 함께 스산히 서만 있다. 무례한 송충이 가든 파티를 꾀하고 나분이 내려앉은 헬리콥터는 호랑나비과(科)에 속하는데 멀거니 서서 광야(曠野)에 붙박힌 내 귀에 소리가 야릇한 소 리가 있어 소스라치는 소라들 계엄령은 검은 굵은 네모진 안경테이니라 시시하게 시시덕거리는 정치꾼들, 가 는 눈 실눈을 뜨고 얄밉게 교활을 피우면 군중들의 노호(怒號)는 세종로에 촘촘하고 요긴한 까마귀들은 한천(寒天)의 오점(汚點)이다. 평생이 굴비처럼 엮어져 있는 발코니에서 생명들은 모개흥정에 바쁜데, 은방울꽃들 을 주섬주섬 챙겨서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인간은 모욕당한 강아지다. 간헐적으로 간힐이 솟구치는 디멘쉬어 프리콕스를 거느리고 의사(醫師)의 손가락을 잘라서 옥상 정원에다 심었다. 관상용(觀賞用) 식물(植物). 자자브레한 고독들이 골목 으슥한 데로 몰려드는 황혼 무렵 유럽에서는 총상(銃傷)을 입은 대통령이 바래진 연설을 되뇌고 있는데, 그를 따르던 오뚝이들은 배신을 컴퓨터 출력(出力)에서 찾고 있다. 위스키 잔 위에 위기가 윙윙거리고 해해거리는 백노(白奴)들은 백로지 가면(假面)이다. 광대들은 아직 메이컵이 끝나질 않았어. 야! 뒤통수에다 구멍을 내고 똥물을 붜 넣어 줘얄 놈들! 나 를 보라! 나는 암흑(暗黑)의 십자가(十字架)다. 달이 지고 나면 모두들 층계참에 서서 울상을 짜 내면서, 몰 려 오는 아우성들을 일일이 체크한다. 온도계에서 빠져 나온 온기(溫氣)들은 빙판에 쓰러져 있고 당장에 잎사귀들을 뒤집어 놓을 듯이 노대바람이 지랄을 하는데 신들린 사람들처럼 퀭한 눈으로 이상한 색깔의 하늘을 핥고들 있구나. 아슴히 사라져 가는 것은 내 안에서 몰래 빠져 나간 너의 하얀 곡두지? 이로니는 로니고 로 니는 니컬이고 니 컬은 컬컬하구나. 컬럭 컬럭. 지구가 앓고 있다. 하아프가 유혹의 계절을 쓰다듬고 있는데 게으름은 녹색으로 칠해진 캔버스다. 도로아미타불은 구겨진 웃음거리판인데 한 마리 새가 되어 조촐하게 날아가자 우리는. 마지막 정거장에서 너를야 잃으면, 그 리운 새들을 위해서 나 의 기도를 다듬는 나는 멀쑥한 세공사(細工師). 집집마다에 등불이 매달려 가면 짐승들은 옹기종기 달빛을 받으며 모여 앉아서 승냥이의 거머퇴퇴한 강의를 듣고 있다. 의치(義齒)는 뽑아서 목걸이로 하고 감람나무 밑에 매달린 플래스틱 다리 시늉을 해 뵐까? 짓고땡이다. 나 를 밀치고 달아나는 키다리들을 비아냥거리지 말자! 받아쓰기를 잘 하는 물푸레나무 는 푸른 오르가슴을 걸치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무렴! 을축년 건방축이지! 같이 갈까 하다가 관 뒀어. 이런 멍청이 바보 청맹(靑盲)과니 도 없을 거야, 쯧쯧! 뵈오려 가려다가 못 가서 기뻐요. 곤히 잠든 할렐루야를 깨우지 말도록. 해바라기는 고호의 전설을 제본중(製本中)인데 요즘은 요사스런 인충(人蟲)들이 창궐하는 계절인가 봐! 어험! 위엄을 꾸며 보는 어릿광대들이 처마 밑에서 난잡․난삽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으니 말예요. 지 구의 축제일이 해반주그레하게 다가오 니까 떠나도 괜찮다는 거지. 가야금 시울 소리는 청승맞기만 하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니 어떻게 합니까 요다각형(凹多角形) 같은 거지요 뭐! ……………   전환, 1982           문명의 황무지                             조향   문명(文明)의 황무지(荒蕪地)   손을 번쩍 들면 내 앞에 와서 쌔근거리는 개쁜히 정지하는 크라이스라. 길들은 사냥개.   빽․미러 안에다 창백한 내 표정을 영상(映像)하며 주검의 거릴 내닫는다. 나는 약간 흔들린다.   죽어 쓰러진 엄마 젖무덤 파고드는 갓난애. 버려진 군화(軍靴)짝. 피 묻은 가제. 휘어진 철조. 구르는 두개골(頭蓋骨). 부서진 시계탑(時計塔). 전쟁이 쪼그리고 앉았던 광장(廣場)에는 누더기 주검들이. 탄환(彈丸) 자국 송송한 교외(郊外)의 병사(兵舍). 줄 지어 낙역(絡繹)한 제웅의 무리. 참 낙막(落寞)한 것.   유리창 바깥엔 돌아가는 지구의(地球儀). 옛날의 옛날의 나의 무랑루즈. 그 곁엔 찢어진 동화(童畵) 한 장 팔락이고. 동화(童畵) 가운데서 넌지시 포신(砲身)이 회전한다. 내 가슴을 시꺼멓게 겨냥해 온다. 이따금씩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리고 살갗엔 또야기도 돋아나고. 레스링처럼 씩씩하던 도시(都市)에는 이제. 넘어져 가는 기업(企業)들의 지붕 위를. 까마귀만 맴을 돌고.   지친 사상(思想)의 애드․바룽이 히죽이 걸려 있는 붉은 닥세리. 타다 남은 쇠층층계 황토빛 하늘을 괴고 섰는 문명(文明)의 폐허를 지나. 천둥․비바람 차장에 요란한 광야(曠野)로. 먹빛 저항(抵抗)이 치렁치렁 가로놓인다. 허줏굿 소리 자꾸만 들려 오는 여기. 아직도 운하(運河)의 언덕에선 모두들 새벽을 기다리고 있는데. 무당아씨, 어떻거고 싶지? ꡒShe answered : I would die.ꡓ 나는 죽고만 싶단다   내일을 잃은 지구(地球)엔 이윽고 까아만 막(幕) 이 나린다.   영문(嶺文), 1957. 11           밀 누름 때                                조향   밀 누름 때   밀 누름 때 하늘은 떨궈버린 행복처럼 눈이 부신데 가슴 활활 달고 등골에 땀도 송송 배는데 나는 구비치는 밀밭 머리에 섰다 섰구나! 이삭이 무르익은 냄새란 이렇게도 고소한게냐! 나는 무너져가는 청춘을 안고 계절의 한복판에서 영영 기절해 버린다   밀밭 두던 황토 사태 난 그늘에 호젓히 외로워라 하얀 오랑캐꽃 한떨기 나는 허수아비처럼 얄궂은 포―즈로 섰고 싶어라 나는 그 어느 불행히 미쳐 죽은 화가인 양 무르녹는 밀밭 머리 누른 에―텔의 파동에 취한다   푸르른 계절 그 황홀한 울고 싶은 풍경화 속에서 나는 나를 잃어 버린다 풍성히 탄력스러운 포곤한 숲 저어쪽에 바다가 호수처럼 게을음처럼 잠자코 누워 있다   간지러운 풀피리 소리에 재우쳐 깬 나는 짓궂은 소요정(小妖精)들인 양 휘파람을 날려라. 에나멜 느린 듯이 고운 하늘에 구멍이나 구멍이나 송 송 뚫어라!   죽순, 1947. 8           바다의 층계                               조향   바다의 층계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 뒀습니다.   ― 여보세요?   폰폰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엔진에 피는 들국화   ―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수화기(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깃폭들   나비는 기중기(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신문예, 1958. 10           BON VOYAGE!                               조향   BON VOYAGE!     □ 1.      BARCELONA 아 BARCELONA로     □ 2.   은빛 꼬마 스푸운을 조심스레 잠글라치면 짙은 세피아의 물결이 가울탕 잔(盞) 전에 남실거리며 소녀(少女)가 마악 부어 주고 간 우유(牛乳)가 가라앉았다간 송이송이 구름이 되어 피어 오른다   유리창 바깥엔 수많은 전옥(典獄)들처럼 거니는 어스름이 와 있는데 다시 가슴팍을 후비는 뱃고동이 울거들랑 버릇마냥 낡아 버린 항해도(航海圖)에다 애라(愛羅)! 불을 켜기로 하자   파아카아드 빨간 미등(尾燈)이 미끄러진 뒤 나의 에크랑에 굴절(屈折)하는 이십세기(二十世紀)의 서정(抒情)의 포제(Pose)   빌딩 모롱이에서 예각(銳角)을 그리는 검푸른 바람과 콱! 마주쳐 놓니까 개자(芥子)국을 홀짝 마신 때처럼 씽! 하고 콧잔등에까지 눈물이 팽그르르 괼 뻔한다   바다의 난간(欄干)에서 훈장(勳章)일랑 잃어버리고 별을 뿌리며 밤의 검은 팔에 휘감기는 나를 봐라 바다에서 바람이 오더니 내 넥타이를 만져 보곤 가버린다 바람은 검은 망토를  (★★)  있구나   애라(愛羅)! 나는 너를 보내러 왔다 항구로 왔다.     □ 3.   해협(海峽)은 출렁거리는 한 잔(盞) 페피아민트가 아니겠니? 데크에서 한쪽 다리를 지팡이처럼 짚고 서서 푸름이 사뭇 쏟아지는 하늘에 눈이 아프도록 박혀지는 빨간 기폭(旗幅)일랑 청춘(靑春)의 도안(圖案)으로 접어 두면서 너는 아슴히 넘실거리는 수평선(水平線) 위에다 가느다란 구역질을 뱉어 놓을 게 아닌가?   이방(異邦) 사투리 낙엽처럼 굴러 다니는 술렁거리는 부두(埠頭)에서 신데렐라(CINDERELLA)의 빨간 비드로(VIDRO)의 장화(長靴)를 신고 나도 너를 찾아야 할 날이 올 것을 안다.   애라(愛羅)! 새로운 것을 위하여 승화(昇華)의 닻줄을 감자 우리들의 태양(太陽) 우리들의 신기루(蜃氣樓)를 위하여……   오 아침 파아란 기항지(寄港地) 빨간 망토의 소녀(少女)들 새로운 신사록(紳士錄) 우리들의 공화국(共和國) 펼쳐지는 지도(地圖) 기어간 산맥(山脈)들   나는 너를 보내러 왔다 담배를 피워물면서 흐르는 바람 속에 서 있다 자꾸만 투명(透明)해지는 나의 육체(肉體)!   애라(愛羅)!     □ 4.      BARCELONA 아 BARCELONA로   백민, 1950. 3           붉은 달이 걸려 있는 풍경화                조향   붉은 달이 걸려 있는 풍경화(風景畵)   But who is that on the other side of you?       T. S. Eliot : The Waste Land   가로등이 갑자기 꺼져들 가고 나면. 페이브먼트 위엔. 여름처럼 무성해 가는 붉은 독버섯들. 독버섯들은 생쥐 귀처럼 생겼다. 거기 뱀 같은 외눈들이 차갑게 꺼무럭거리고. ꡒ좀생이 같은 놈들?ꡓ   외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몸뚱어릴 핥아온다. 내 몸에선 옴두꺼비의 혹이 쏙소그레 돋아나고. 모가지도 없는 붉은 망토자락의 그림자. 나는 뭬라고 연신 되뇌면서. 거리 모롱일 황급히 돌아 버린다.   검은 발자욱 소리가 내 뒤를 밟는다. 망토자락의 일으키는 바람이 차갑게 날 쫓아오면서. 나는 갑자기 고발(告發)당한다.   네거리. 아직도 분수는. 소록소록. 솟고 있는데.   무장(武裝)한 어휘(語彙)들을 거느리고. 계엄령(戒嚴令)이 버티고 섰다. 비둘기의 광장(廣場)엔 주검만 널려 있고. 캐스터네츠를 울리며 지나가는 누더기 곡두의 행렬.   돌연 엄습해 오는 아고라포비아(agoraphobia)!   찢어진 탬벌린 소리가 요란하고. 허탈한 웃음소리들이 한바탕 소나기지고 나면. 수많은 상실(喪失)들이 줄지어 간다. 붉은 생쥐들이 내 발뒤꿈칠 와서 갉작거린다.   나는. 숨이. 가쁘다. 진땀이. 흐른다. 검은. 발자욱. 소리. ꡒ……저건. 대체. 누구냐?ꡓ   나는 간신히 미야(Miya)의 방문을 드윽 연다. ꡒ얼굴이 창백하시네요!ꡓ 미야(Miya)의 방 유리창에 가서 열없이 붙어 서 본다. 세모꼴 하늘엔 바알간 달이 걸려 있고. 달은 문둥이처럼 문드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미야(Miya)는 내 손을 꼬옥 쥐면서. ꡒ무서워요!ꡓ   먼 데서 총소리. 검은 고요를 뚫어 놓고. 흔들어 놓고. 아우성소리 점점 스러져 가고. 장송(葬送)의 코오러스도 들리지 않으면서. 꼭두서니빛으로 타오르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HARTA)   소파에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하 심심해서 달리(Dali)의 그림책이나 펼쳐 보자   `내란(內亂)의 예감(豫感)'   현대문학, 1967. 12           성바오로 병원의……                       조향   성(聖)바오로 병원(病院)의……   성(聖)바오로 병원의 때묻은 우울한 석고상(石膏像)을 왼편으로 흘겨 보면서. 나는 아침마다 펼쳐진 서울의 퀴퀴한 내장(內臟)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그래도 화려한 액센트 서콘플렉스(accent circonflexe)를 쓰고 다니는 요족(凹族)들의 계절은 와 있는데. 산상(山上)의 수훈(垂訓)은 일평생(一平生) 식물성(植物性)이다. 허무(虛無)를 한없이 분비(分泌)하는 곤충(昆蟲)들의 미학(美學)이 빌딩문을 드나드는 오후면. 푸른 수액(樹液)이 흐르는 너의 얼굴은 크로포트킨(Kropotkin)의 자연지리학(自然地理學) 교과서(敎科書) 곁에서 무던히는 심심하다. 반사경(反射鏡) 안에 고즈넉히 갇혀 있는 나비는 왕자(王子)의 체온을 지니면서. 아아. 나의 세인트 헬레느. 거무죽죽한 골목엘 들어서니까, 젖가슴을 내밀고 느런히 서 있는 여체(女體)의 톨소들이 일제히 웃어댄다. 성원자력원(聖原子力院) 앞에서 이족수(二足獸)들은 누더기 훈장을 달고. 실직(失職)한 강아지는 거울의 숲 속에서 절망을 잴강잴강 씹으면서. `나는, 나를 매혹하는 이 절망에 의하여 살고 있다.' 파아란 수목의 생리 속에 피어난 야외(野外) 조각전(彫刻展) 곁을, 연두빛 바람이 지나가면. 팅게리가 댕그렁거리고. 나의 연초점(軟焦點)에 와서 잠시 머무는 하아얀 너는 메론의 공화국이다. 도시(都市)는 이젠 사막이다. 붉은 닭세리. 이윽고, 하늘이 내리쉬는 검은 입김. 그 가운데 네온이 켜져 가면. 성당(聖堂)의 종소리. 이 검은 샤마니즘의 거창한 체계(體系). 에로이 에로이 라마 사바크타니. 구나방들의 군화에 짓이겨져 가는 장미랑 비둘기랑 모두모두……. 전갈좌(座)는 나의 성좌(星座)다. 미래(未來)는 시궁창에 쳐박혀서 궂은 비나 맞으면서 있고. 그리하여 지구(地球)의 레이아우트는 검은 빛이다 검은 빛이다.   현대문학, 1968. 8           장미와 수녀의 오브제                      조향   장미와 수녀(修女)의 오브제   하얀 아라베스크 짖궂게 기어간 황혼 낙막(落寞)이 완성된 꽃밭엔 수많은 수녀의 오브제.   인생이라는. 그럼. 어둠침침한 골목길에서 잠깐 스치며 지나 보는 너를…….   영구차가 전복한 거리거리마다에서 비둘기들은 검은 가운을 휘감고 푸른 별이 그립다.   네가 서 있는 소용도는 상황(狀況)에 짙은 세피아의 바람이 분다. 까맣게 너는 서 있다.   모의포옹(模擬抱擁)의 세레모니이! Psychose d'influence의 네거리에서.   네가 사뿐 놓고 간 검은 장미꽃. 내 이단(異端)의 자치령(自治領)에 다시 꽃의 이교(異敎)를 떨어뜨려 놓고. 들국화빛으로 하늘만 멀다.   taklamakan nakamalkata 사막의 언덕엔 갈대꽃 갈대꽃밭 위엔 파아란란 이상(李箱)의 달.   달밤이면 청우(靑牛) 타고 아라비아로 가는 노자(老子).   꽃잎으로 첩첩 포개인 우리 기억의 주름주름 그늘에서 먼 훗날 다시 서로의 이름일랑 불러볼 것인가!   패배의 훈장을 달고 예상(豫想)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하면…….   포르말린 냄새만 자꾸 풍기는 새까만 지구 위에서 어린애들의 허밍 소리만 나고……. 메아리도 없이 하 심심해서 나는 요오요오나 이렇게 하고 있다.   현대문학, 1958. 12           조개                                      조향   조개&      부제: 박생광씨(朴生光氏) 화(畵) `조개'에 제(題)함         내 귀는 조개껍질인가       바다 소리만 그리워라           ― JEAN COCTEAU, 「귀」   그믐 새까만 밤 하늘에 달 차라리 파아랗게 질리는 꿈이다   어린 양떼처럼 어디로들 몰려 갔느냐 별 별 푸른 별들아 하늘의 목동의 군호 소리도 없는데……   밤 새까매질수록에 하얘만 지는 바다 모랫벌 뱅뱅 꼬인 나선(螺旋) 주류에 앵 우는 바람이 그리워 허울 좋게 소라는 누었다   조개도 불퉁이도 아가미 벌려 밤을 마시고 바닷지렁이 길게 늘어져 있네   한 오리 불어 넘는 로망(ROMAN)의 바람도 없이 바다의 어린 겨레는 칠같은 밤에 차겁다 한사코 외롭다   자꾸만 멀어지는 바다 우짖음 싸아늘히 회도는 향수(鄕愁)야!   유성(流星)이려거든 동쪽으로 흘러라   밤이 한 고개 넘어 소연(騷然)한 새벽엔 굵은 행동의 곡선 다시는 늘이어라 바다는 짙푸른 생명의 영원에로 닫는다     4281년 정월, 진주(晋州) 다방(茶房) `화랑(畵廊)'에서   영남문학, 1948           초야                                      조향   초야(初夜)   일찌기 오욕(汚辱)을 배우지 못한 박날나무 처녀림(處女林)이래도 좋겠소!   한자옥 들여놓기도 못미쳐 끝까지 수줍고 정결(淨潔)한 훈향(薰香)에 마음 되려 허전할까 저윽이 두려워―.   쌍촉대(燭臺) 뛰는 불빛! 둘리운 병풍(屛風)엔 원앙(鴛鴦) 한 쌍이 미끄럽게 헤이고 속삭이고―.   댕그렁! 밤이 깊어가도 벽만이 그렇게 한결 정다웠던지 신부(新婦)는 순박(純朴)을 안고 그만 면벽(面壁) ― 마치 한 개 백고여상(白膏女像)!   원앙금침(鴛鴦衾枕)이 하마터면 울었을걸 신랑(新郞)의 서투른 손이나마 고즈넉이 쓰다듬었기에―.   매일신보, 1941. 4           크세나키스 셈본                           조향   크세나키스 셈본   불 붙는 구레나룻. 직선은 구우텐베르크다. 하아얀 월요일. 혹독한 계절에. `모든 동맥의 절단면에서 검은 아스팔트의 피를 떨어뜨리는 도시(都市)' 아자(亞字) 창(窓). 백 밀러. 까아만. 눈동자가. 안으로. 에메랄드의 층계. 내려 가면. 메스카린의 환각(幻覺)이. 가시내 냄새도. 어휘는 낙엽인데. 붉은 닥세리. 찢어진 밤의 주름 사이에 켜지는 육체들. 크세나키스의 셈본. 회회청 하늘엔. 총탄 자국이. 글쎄. 난만한 회색이다. 칠십(七十) 년대. 그리고. 동요(童謠)만 피어 나는데.   동빙고동은 도둑의 마을   동빙고동은 도둑의 마을 안개. 그리고. 검다.   신동아, 1970. 3           태백산맥                                  조향   태백산맥(太白山脈)   날짐승 길짐승 박달나무 산딸기 더덕순 도라지에 풀잎 넌출 이리저리 얽혀서, 시냇물 소리 졸졸 이슬도 하무뭇이 생명의 풍성한 씸포니   웃음도 울음도 가난함도 외로움도 모주리 겨레와 함께 겪어 온 세월에, 별처럼 아른아른 추억의 조각 조각들, 돌아볼쑤록 꿈인 양 머언 날이 있어라   날개 활활 치려무나 독수리! 너 그리는 너그러운 창공의 원(圓)! 그 써―클 밑에 아슴히 구비쳐 솟은 머언 산맥, 남으로 남으로만 벋어 나린 산줄기야!   초록 눈부시게 부풀어 오르는 계절 돌아오면, 너의 완연한 모습은 영원을 노래하는 줄기찬 리듬! 활활 풍기는 산정기 박하냄새 짐승의 발자국 냄새 얽혀진 너의 야성의 생리―그 송가 높이 부르렴!   태곳적 이곳에 첨으로 빗방울 떨어져 내려 한 방울은 동으로 또 한 방울은 서쪽 사태를 굴러  내려, 아! 여기 위대한 분수령(分水嶺)― 너는 조선(朝鮮)의 등성이뼈로 충성의 역사를 살아 왔고   다시 그 옛날 아득한 그 무렵에, 이 나라의 젊은 넋, 청춘의 군라상(群裸像)이 츨ㄱ잎 뜯어 몸 가리우고 굵다란 로망(ROMAN)의 산허릴 넘던 날, 우렁찬 그 민족의 코러스에 동해도 우쭐거려 퍼더기었다, 울릉도는 머언 하늘 갓에 사뭇 흐려만 보였다   달 밝은 밤, 별 송송 푸른 밤, 칠백리 구비구비 돌아 흐르는 낙동강 잔물결 위에, 골작마다 깃들인 흰 겨레의 평화론 숨소릴 조심조심 새겨 왔으나   아 언제부터 불행과 슬픔은 너의 옷자락을 핥기로 했으며 그 어느 원한의 때로부터 이 강토의 운명은 너의 허리 춤에다 사슬을 감았던가?   오늘 다시 불길한 일식(日蝕)의 그늘에서 귀신처럼 히히! 웃으며 너의 순결을 짓밟고 영원해야 할 연륜(年輪)에다 붉은 도낏날을 넣는 반역의 형제들 있어, 큼을 섬기는 슬픈 습성이 인민의 앞길에다 암담을 수놓는 이날   태백아! 모진 짐승인 양 굵게 사납게 몸부림 쳐라. 엄한 부성(父性)처럼 추상같이 꾸짖어라! 그리하여 천년 묵은 침묵을 찢고 화산 그러하듯이 인젠 진정 터져라!   죽순, 1947. 10           파아란 항해                               조향   파아란 항해(航海)   가뱝게 꾸민 등의자는 남쪽을 향하여 앉았다. 앞에는 바다가 신문지처럼 깔려 있고…… 바다는 원색판 그라비유어인 양 몹시 기하학적인 각선(脚線)을 가진 테―불 위에는 하얀 한 나프킨이 파닥이고 곁에는 글쎄……글자를 잃어버린 순수한 시집(詩集)이 바닷바람을 반긴다.   꽃밭에는 인노브제크티비테*의 데사잉! 당신의 젖가슴엔 씨크라멘의 훈장이 격이세요.   석고빛 층층대를 재빨리 돌아 올라 가면 거기 양관의 아―취타잎 유리창 여기선 푸른 해도(海圖)가 한 핀트로만 모여 든다.   IRIS OUT! 렌즈에는 해조(海鳥)의 휘규어!   ―― 그대는 인민의 항구가 그립지 않습니까? ―― 새로운 로맨티즘의 영토로…… 그렇죠? 수평선 위에 넘실거리는 새 전설의 곡선! 나는 산술책을 팽개치고 백마포(白麻布) 양복 저고릴 입는다. 나는 파아란 항해에 취한다. 나는 수부처럼 외롭구나.   19××년 향그런 무역풍 불어 오는 밝은 계절의 그 어느날 그대는 여기서 내 사상의 화석을 발견하시려는 건가?   나는 언제나 조선이 사뭇 그리울게니라.   ADIEU!   *인노브제크티비테: 비대상성(非對象性)   죽순, 1947. 8            
813    클릭하면 뜨는 시모음 댓글:  조회:7242  추천:0  2015-04-01
[시모음 목록 가나다 순으로 보기]         ㄱ 강유정 강인한 강은교 고원 고은 고정희 곽재구 구상 기형도 김광균 김규동 김기림 김남조 김남주 김동환 김명수 김명인 김상옥 김상용 김소월 김수영 김승희 김억 김영랑 김용택 김정란 김정환 김준태 김종해 김지하 김진경 김창완 김초혜 김춘수 김현승 김혜순     ㄴ 나태주 노천명 노향림     ㄷ 도종환     ㅁ 마광수 마종기 모윤숙 문덕수 문병란 문정희 문태준 시모음 민영 민용태     ㅂ 박남수 박남철 박노해 박덕규 박두진 박목월 박몽구 박봉우 박세영 박영희 박용래 박용철 박인환 박인환(박재삼) 박정대 시모음 박판식 시모음 백석 변영로     ㅅ 서정주 설정식 송기원 송수권 신경림 신달자 신동엽 신석정 신석초 심훈     ㅇ 양성우 양주동 오규원 오상순 오세영 오장환 오탁번 유안진 유진오 윤동주 이가림 이근배 이기철 이동순 이병기 이상 이상화 이성복 이성부 이승훈 이시영 이용악 이육사 이윤택 이은상 이제하 이하석 이형기 이호우 임화     ㅈ 장정일 전봉건 정양 정인보 정지용 정진규 정현종 정호승 정희성 조병화 조정권 조지훈 조창환 조태일 조향 주요한     ㅊ 천상병 천양희 최남선 최동호 최두석 최승자 최승호 최하림     ㅍ 피천득     ㅎ 하재봉 하종오 한용운 한하운 허영자 허형만 홍윤숙 황금찬 황동규 황명 황순원 황지우              
812    현대미술의 거장 - 훼르난도 보테로 댓글:  조회:5075  추천:0  2015-03-30
  현대미술의 거장 Fernando Botero/훼르난도 보테로     사색에 잠긴 화가 보테로       화가 Fernando Botero Angulo(1932 - )      Abu Ghraib 시리즈 앞에 서있는 화가 보테로     Fernando Botero/훼르난도 보테로, 1932년 4월 19일 남아메리카 북서부에 위치한 콜럼비아 안데스 고원 메딜린에서 가난한 행상이었던 아버지와 재봉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3형제 중에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이 시대의 가장 잘나가는 화가 가운데 한 인물이자 총아인 보테로가 4살 때 그는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성장하는 동안 열두 살이 되어서야 장학금을 받고 예수회 재단의 부속중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삼촌은 그를 1944년 투우사 양성소 학교에 입학시켰으나 그 곳에서 2년동안 머무는 동안 어린 보테로는 투우사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수채화로 투우경기 그림을 그리는 데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지역신문 El Colombiano가 주최하는 미술전시회에 처음으로 참여하여 라틴 아메리카 미술사를 오늘날에도 대표하는 인물로 우리 모두가 빼놓을 수 없는 당대의 아방가드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후리다 칼로의 남편 Diego Rivera등의 작품을 만나 영감을 얻게 되어 1949년 을 그는 창작하는 계기를 맞는다. 그러면서 그는 그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의 기초를 다져가게 되며 결국 그의 아방가드적인 시대를 앞서가는 누드화등으로 인하여 그는 결과적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간신히 고향 메델린에 있는 Universidad de Antioquia 부설 중고등학교를 1950년도에 맞추게 되었다.      Woman Crying 1949    1949년과 1950년에 보테로는 고향 메델린 근처에 있는 도시 Marinilla의 San Jose 고등학교에서 수학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로 옮겨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고 곧 이어서 첫 개인전을  1951년 고갱과 피카소의 영향 아래 Galeria Leo Matiz 에서 개최하고 1952년 일단의 화가들과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떠나며 잠시 마드리드에 있는 Academia de San Fernando에서 1953년까지 공부를 하는 동안 세계 미술관에서 한 획을 긋는 그 유명한 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고야와 벨라즈케즈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53년 그는 다시 빠리로 거처를 옮기며 루부르 미술관에 소장된 근대 프랑스 대가들의 작품에 무한한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되며 다시 르네상스의 메카 이태리 훌로렌스로 여행을 하게 되며 1953년부터 1954년까지 르네상스의 대가들인 Giotto, Uccello와 Piero della Francesca등의 작품을 공부하며 후레스코를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1955년 모국으로 돌아가 그는 보고타 국립미술대학에서 2년간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국립도서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지만 아방가드적인 그의 20개의 작품은 전통적인 미술관념에 익숙한 당대의 비평가들로 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며 결국 몇 작품밖에는 팔지를 못하고 만다. 그 후 그는 다시 Diego Rivera의 나라 멕시코로 거처를 옮겨 활동하며 그의 새로운 실험정신이 담긴 대표작 가운데 한 작품 Still Life with Mandolin을 통한 대담한 기법의 색감과 대상에 대한 그만의 새로운 표현 기법으로 점차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밖에서도 인정받는 화가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Still Life with Mandolin, 1957       Still Life with Mandolin, 1998     1957년 당시 추상화의 메카 뉴욕으로 거처를 다시 옮기며 1958년 모국 콜롬비아 살롱전에 나가 그의 대표작의 하나 Camera degli Sposi(The Bride’s Chamber)로 1등이란 대상의 영예를 얻고 같은 해 미국 수도 워싱턴 디 씨에서 개최된 개인전 첫날 모든 작품은 날게 도친 듯 매진되는 성황을 이루고 같은 해 뉴욕에서 개최된 구게하임 국제미술 전시회에 작품을 전시하게 되며 1960년 멕시코 비엔날레에 콜롬비아 대표로 참여하고 같은 해 그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로 옮겨 작품활동을 시작하며 1961년 뉴욕현대미술관이 그의 작품 를 구입한다. 그 후 1966년 독일 바덴 바덴에서 첫 유럽전시회를 개최한다.      Camera degli Sposi (Homage to Mantegna) II, 1961      Mona Lisa at Age Twelve     그리고 그는 유럽과 뉴욕을 오가며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국제적인 대가로서 작품활동을 시작하며 현재도 그의 작품전시회는 북미순회와 더불어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서 9월 17일까지 개최되고 있으며 이번 전시회가 모국 한국에서 개최되는 두 번째 그의 작품전시회가 된다. 기회가 되시는 분들 에게는 강력히 가보실 것을 권고하고 싶다. 아마도 이런 거장의 작품을 직접 모국에서 관전 할 수 있는 기회란 그렇게 자주 올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러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기전에는....   한때 그의 고향 메델린은 마약 카르텔의 본거지가 되어 악명 높은 마약거래의 두목으로 1993년에 죽은 파블로 에스코바의 집에서 두 점의 그의 작품이 걸리는 개인적인 불운을 겪으며 그의 고향 메델린 시에 기증한 조각작품 는 1995년 게릴라들의 폭탄 테러로 파괴되는 비운을 맞게 되며 간신히 마약조직의 납치를 모면하게 되는 위기를 모면한다.      Fernando Botero - Bird, 2006/ 폭탄 테러를 당한 조각 작품 새가 아님     그의 아들 훼르난도는 콜롬비아 전직대통령 Ernesto Samer의 대선에 마약 단체로부터 불법으로 유입된 선거자금으로 유죄선고를 받게 되어 화가 보테르는 아들과 3년간 단절을 하고 사는 아픔을 겪게 되며 추후 화해에 이른다.   이런 일년의 일들로 하여금 화가 보테르는 화가로서 정치색이 담긴 작품을 창작하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되며 현재 이라크에서 행하여졌던 미국 정부의 일년의 군사행동으로 행하여진 수감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고문행위에 대한 작품을 고발형식으로 Abu Ghraib 시리즈를 연작으로 창작하여 그의 일부를 미국 캘리훠니어 주립대학교 버클리 분교 미술관에 최근 기증하였다.   Abu Ghraib 시리즈 앞에 서있는 화가 보테로     화가 보테르는 현재 그리스 조각가인 Sophia Vari와 세번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200 밀리온 달러가 넘는 가치의 그의 작품과 더불어 그의 소장품인 인상파들의 작품과 20세기 추상화가들의 작품 90점은 모국의 고향 메델린의  미술관과 수도 보고타등의 미술관에 기증되어 있다. 현존 작가로서 그의 작품은 세계 미술시장 경매에서 한 작품만으로도 수십억을 홋가한다.   이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올리기까지는 거의 1주일이란 시간이 소요되었다. 현재 뉴욕에 계시며 특별히 보테로 작품에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계신 아이앰영님과 예술과 이지와 지성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을 위하여 여기에 극소수지만 거장 보테로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이미 그는 천여점이 넘는 작품을 창작하였다.   현재 화가 보테로는 프랑스 수도 빠리, 뉴욕, 그가 후레스를 공부하였던 이태리 시골의 작업장과 모국 콜롬비아를 오가며 현재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75년 이후 조각에 보다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전세계 주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미술 경매 시장에서 피카소 샤갈 미로등과 더불어 가장 많은 작품이 거래되는 인기를 얻고 있는 화가로서 견고히 그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화가 보테로의 대상들은 모두가 부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인체구조나 모든 정물 조차도 통통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의 초상화 조차도 누군가 그에게 물어 보았다. 왜 당신의 그림의 대상은 모두가 부풀려져 있고 비만인가라고 그러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번도 비만의 대상을 그린적이 없다. 다만 양감을 강조하였을 뿐이라고...." 거장 답고 작가다운 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너스도 모나리자도 모두가 비만의 통통한 여성상이다. 현란한 색감과 풍부한 양감의 그의 작품은 현재 전세계 각국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하물며 그의 조각상은 동남아시아 싱가포르에도 있다. 대한민국도 그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럼으로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이나 예술애호가들이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명화를 감상 할 수 있고 동시에 문화선진국임을 깨닫게 되기를 기원한다.             작가에 대한 비평이나 견해는 때로는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왜곡될 수 있으며 누가 될 수 있씀을 상기하며 그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모든 것은 글을 읽고 작품을 감상하게 되는 여러분들의 몫으로 남겨 놓습니다.     *  미술작품은 꼭 미술전문가나 전공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누구든지 보고 기쁘고 행복하고 내면에 충만함을 느끼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며 또한 특정한 보는 기법이나 방법이    있다라고는 더 더욱이 생각하지 않는다. 보고 행복하면 된다라고     믿고 생각하고 싶다. 극소수의 미술관의 전문 큐레이러나 미술가나    미술사학자들이나 미학의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Flowers      Woman With Dog 1996    크리스티 경매에서 수억을 호가한 작품       Still Life with Lobster, 2002      El Pueblo        El ladrón/도둑, 1980      Bailarines, 2000         Woman in the bathroom, 2000         자화상      Mano Grande, 1981/조각 작품      Pear, 1976      Donna Allo Specchio, 2003         Still Life with Bananas, 2006            Venus, 1977 - 1978     Self Portrait with Flag       Still Life with Blue Coffee Pot, 2002         Dog Turning a Corner, 1980       Still Life With Flowers       Adam and Eve, 1998       Venus, 1971, Charcoal on Canvas      Flowers, 1967        Cabeza de Cristo        Fish, 1961          Still Life With Green Bottle, 2002       Still Life with Lamp, 2000      Still Life With Le Journal      Picnic/소풍, 2002       Puppies, 1966      Bananas, 1990      Banistas, 2000        Homenage a La Tour, 1998        The Road, 2001      Dying Bull, 1985      The Kitchen Table, 2001      Dancing in Colombia, 1980      Dancing, 2002       La corrida, 2002          Oranges, 1999        Woman Reading, 2002      Venus      Reclining Woman With Cloth, 2002      Still Life with Oranges, 1967    
811    현대추상미술 창시자 中 - 바셀리 칸딘스키 댓글:  조회:2402  추천:0  2015-03-30
** Vasily Kandinsky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세계** - 바셀리 칸딘스키 (1866 - 1944. 12. 13 ) -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의 화가. 모스크바 출생. 1939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현대 추상미술을 창시한 한 사람이며 처음에는 법률과 경제학을 배웠으나,  1895년 인상파전을 보고 모네의 작품에 감명을 받고 이듬해인1896년 뮌헨으로 옮겨  아즈베와 슈투크에게 사사하여 화가로 전향하고 표현파인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뮌헨에서 예술가 집단인 ‘청기사’를 조직하여 비구상 회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810    현대미술의 거장 - 살바도르 달리 댓글:  조회:2305  추천:0  2015-03-30
    현대미술의 거장들  : 살바도르 달리, 빌헬름 텔의 수수께끼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했던 달리는 이를 빌헬름 텔의 형상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1930년 이후의 많은 작품들처럼,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고뇌를 밖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지도층의 무서운 아이(앙팡 테러블)로 우대되었던 자기연출법은 전후 전례가 없는 양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 '빌헬름 텔의 수수께끼'는 1933년에 제작되어 1934년 앙데팡당전에 전시됩니다. 앙드레 브르통과 그 추종자들은 이 그림을 보고 분노하여 그림을 파기하려 하며 달리를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이 작품 외에도 빌헬름 텔을 묘사한 작품이 있는데, 1930년도에 제작된 '빌헬름 텔' 과 1931년에 제작된 '빌헬름 텔의 고령'이 그것입니다.             반복되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아버지에게 집착하게 된 달리는 스위스의 국가 영웅인 빌헬름 텔의 형상으로 내면을 표현합니다.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 놓고 활을 쏜 빌헬름 텔은 달리에게 있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비정한 아버지에 다름 없었을 것입니다.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달리는 이 작품에서 자전적 암시와 정치성을 내세웁니다. 그림의 주인공인 텔은 비석판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위에는 시계 하나가 녹아내리고 있죠. (달리의 작품 '기억의 고집'이 떠오르는군요.) 묘비명은 그림의 제목을 재현하고, 텔의 우산 모자는 긴 혓바닥처럼 보입니다. 그의 등 쪽으로는 힘의 상징인 남근이 길게 늘어져 있으며, 끝 부분에는 받침대가 있군요. 이것은 달리의 세계에서 부활과 죽음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그는 팔에는 아이를 안고 있으며 아이의 머리 위에는 사과 대신 날고기가 얹혀 있군요. 아이는 곧 잡아먹힐 것처럼 보입니다. 작품 속 텔의 얼굴은 레닌과 꼭 닮아 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는 1904년 카탈루냐의 피게라스에서 태어납니다. 일찍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달리는 당시 아버지의 친구였던 한 화가에게 교육을 받습니다. 14세 때 첫 전시회를 열어 두각을 나타내었고, 그 후 입체파와 19세기 스페인 미술에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1920년대 말 본격적인 초현실주의 화풍을 보이게 된 달리는 1929년 파리에서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를 알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는 브뉘엘의 초현실주의적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에 협조하고, 최초의 초현실주의적인 그림 '어두운 게임'을 그리게 됩니다. 이후 한동안 뉴욕에서 사회지도층을 칭송하며 보낸 달리는 부와 명성을 얻게 되고, 1948년 유럽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대단한 명예과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더이상 작품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않다가 1989년 고향인 피게라스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빌헬름 텔의 수수께끼: - 1933, 캔버스에 유화, 201.5x346cm 스톡흘름 현대미술관 소장    
809    한반도 종교의 력사 댓글:  조회:4852  추천:0  2015-03-30
●한반도 종교(宗敎)의 역사(歷史)와 현실...● -일월신앙(日月信仰)- 최초 인류신앙(人類信仰)은 일월신앙(日月信仰)입니다. 모든 인간이 해(日)와 달(月)의 령신(靈神)은 두려움의 대상이며, 또 한 믿음(信)의 대상이 되었지요. 태양의 강렬함과 부드러움이 사람의 삶(生活)속에서 수 많은 변복(邊複)을 거치며,  삶과 죽음을 관장하게 되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고, 야(夜)의 세계에서 어둠의 무서움을 알기에 사람들은 일월신앙(日月信仰)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게 되었습니다.   -삼신신앙(三神信仰)- 하늘(天)의 재앙(災殃)과 하늘의 복(福)을 알았기에 이를 불(火)의 신(神)으로 받들게 되었습니다. 삶의 재앙(災殃)과 삶의 복(福)을 알아가니 이를 바람(風)의 신(神)이라 믿었습니다. 물(水)의 재앙(災殃)과 물(水)의 복(福)을 알았기에 물(水)의 신(神)이라 믿었습니다. 이를 삼신신앙(三神信仰)이라 이르며 우리네 삶에 삼재(三災)가 들면, 바로 화풍수(火風水)의 재앙(災殃)을 겪거나 화풍수(火風水)의 복록(福祿)을 받거나 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삼신신앙(三神信仰)을 받들어 모시며 액(厄)을 소멸(消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칠성신앙(七星信仰)- 인간의 삶인 변복(邊複) 속에서 칠성신앙(七星信仰)은 참으로 오묘한 우주(宇宙)의 흐름 속에서, 즉 우리 조상(祖上)님들은 신교 정신에 따라 하늘에는 절대적인 주재자가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하느님을 공경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祭天)의식이 오늘날 우리 생활속 깊이까지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우리 조상(祖上)들은 천지인(天地人) 합일 사상에 따라 인간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야 인간다운 삶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고, 하늘은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영혼이 돌아갈 고향으로 믿었습니다.   특히 우리 조상(祖上)들은 빛이 1→3(삼원색)→7(일곱 무지개)로 전개되고, 우리 몸이 1→3(삼혼三魂)→7(칠백七魄, 7개 챠크라)로 짜여 있듯이, 우주도 1(우주 본체)→3(자미원, 태미원, 천시원)→7(북두칠성 또는 4×7=28수)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즉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천제(天帝)를 대변하는 별로 보았고, 하느님의 자손(子孫)인 한민족(韓民族)으로선 죽어서도 원래 왔던 하느님 고향인 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 조상(祖上)들은 옛날 아무런 망원경도 없이 하늘을 보고 오늘날 봐도 놀랄만큼 정확한 천문도(天文圖)를 작성하고, 그 수 많은 별자리와 천체의 움직임을 파악했습니다. 별자리를 그냥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혜안(慧眼)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우리 민족(民族)은 예로부터 칠성신앙(七星信仰)이라는 매우 특이한 신앙(信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칠성신앙(七星信仰)은 고대 이래로 우리 민족(民族)만의 독특한 고유(固有) 전통신앙(傳統信仰)입니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이 우주(宇宙)에서 북두칠성(北斗七星)의 기운(氣運)을 받아서 태어난다고 칠성신앙을 믿어왔습니다. (얼굴에는 일곱개의 구멍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옛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장독대 위에 정안수를 떠 놓고 '칠성님'에게 소원을 빌어 왔으며, 우리 조상(祖上)들은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물론 수명(壽命)까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칠성님이 주관(主觀)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 왔으며 오늘날 까지 믿고 있습니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은 우리 조상(祖上)님이 믿던 삼신(三神)님을 별로 나타낼 때 붙여지는 이름이었습니다. 칠성신앙(北斗七星)의  신격화(神格化)한 칠성님 외에도 칠성신, 칠성여래(如來), 칠원성군(七元星君)등이 있습니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은 배달국과 단군조선시대(檀君朝鮮時代), 그리고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 백제(百濟), 가야(伽倻)는 물론 고려(高句)와 조선(朝鮮)의 별이었으며, 고조선(古朝鮮) 시대에 만든 고인돌의 뚜껑돌 위에 이미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특히 고구려(高句麗) 왕릉의 천장 벽화(壁畵)에서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의 형상이 다량으로 발견되었고, 광개토대왕비 상단 경주 호우총(壺?塚) 출토 청동 호우, 중원 누암리 출토 제기(祭器) 등 각종 고구려 유물에서는 정(井)자도 함께 발견었으며, 소설가 최인호씨가 96. 8 SBS가 방영한 「왕도의 비밀」에서 고구려(高句麗)의 상징 문양으로 제기한 우물 정(井)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곳을 나타내는 것을 밝혀으며, 최인호씨는 이 井자를 백두산(白頭山) 천지(天地)로 이것은 井을 땅에 적용시킬 때는 맞을 것이나 하늘에 적용시키면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을 비롯한 고구려(高句麗)인들은 스스로를 하늘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자손 즉 천손민족(天孫民族)으로 적고 있습니다.   북두칠성(北斗七星)과 관련된 이야기를 몇가지 추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요 세계 최초의 나라인 환국(還國)은 7명의 환인(桓因)이 3301년 동안이나 통치했는데, 이 7대에 걸친 7명의 환인(桓因)들은 북두칠성(北斗七星)과 모종의 관련이 있습니다.   절에 가보면 대웅전 뒤편에 칠성각(또는 칠성당, 칠성전)이라는 전각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일하게 우리나라 불교(佛敎) 사찰내에만 존재하며, 원래 불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것이지만, 이 전각은 한민족의 칠성신앙(七星信仰)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사찰(査察)내에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옛날 마을에 있던 칠성당(七星堂)도 바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성신(聖神)을 모셔놓고 기원하던 사당(祠堂)입니다.   민가에서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장독대 한 옆이 칠성당(七星堂) 자리가 되어 정안수(淨眼水)를 떠놓고 소원을 빌던 터전이었고, 앞에서 기술했듯이 중국 한족(漢族)은 동이족의 주성인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앙하다가 진(秦)나라 이후 중원을 지배하고 동이족을 북방으로 몰아내면서 금성을 주성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이라는 널판을 관 밑바닥에 깔고서 그 위에다 시신을 눕혔습니다. 여기서 죽는 것을 '칠성판 짊어지고 간다'고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칠성판은 널판에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모양을 형상화하여 아래와 같이 7개의 구멍을 뚫거나 먹으로 표시를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장례풍습(葬禮風習)은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민족(韓民族)만의 독특한 풍습입니다. 이것은 그 영혼(靈魂)이 본래 온 고향별인 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 돌아가라는 염원(念願)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면서 맨 먼저 지내던 초례(醮禮)는 칠성님께 드리는 인사였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임금들이 지내던 초재(醮齋)도 칠성님께 올리는 인사와 기원이었습니다.  이 칠성신앙(七星信仰)인 초재는 조선 중종·명종조에 유명무실해졌습니다. 경복궁과 창덕궁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자미원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을 호위하는 28수(宿) 별자리를 본 따 조경한 독창 예술품인 동시에 북두칠성(北斗七星) 신앙과 삼신상제 신앙의 대표작품이었습니다.   일월오악도 창덕궁의 인정전 실내도 경복궁 근정전과 같은 형상입니다.  소요정(逍遙亭) 네 개의 기둥에 일곱자씩 쓰인 글귀는 자미천(紫微天)을 묘사한 것입니다.  소요정 앞의 어정(御井: 임금샘)은 북두칠성(北斗七星) 모양을 나타내는(자미원을 태을천 太乙天이라고도 한다) 을(乙)자 모양으로 물길을 팠습니다.   소요정(逍遙亭)의 북쪽에 있는 청의정(淸?亭)은 삼신신앙(三神信仰)의 바탕인 원방각(遠方各)형으로 지었습니다. 소요정(逍遙亭)의 동쪽에 있는 정자는 이름을 아예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을 뜻하는 태극정(太極亭)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와 같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시대의 고궁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하늘의 궁궐, 자미궁(紫微宮)을 본 따 지은 대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민족 고유의 칠성신앙(七星信仰)을 바탕으로 합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나라와 민족을 지탱하던 정신적 지주였던 칠성신앙(七星信仰)을 몰아내기 위해 칠성신앙(北斗七星)의 대표작인 경복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총독부를 지으면서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칠성신앙(七星信仰)을 포함한 온갖 전통신앙(傳統信仰)을 탄압하여 없애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전통신앙(傳統信仰)을 미신으로 보는 것은 근대에 와서 서양 기독교의 영향외에도 일제의 이와같은 음모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 다행히도 총독부는 95. 8. 15일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철거되어 지금은 옛 모습대로 복구되었다. 민족정신의 정기를 바로 세운 쾌거였으나, 궁궐만 복구하였을 뿐 아직도 우리는 경복궁 조성에 간직되어 있던 진짜 의미인 칠성신앙(七星信仰)과 삼신상제(三神上帝) 신앙은 복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대다수 한국인은 경복궁에 그런 의미가 있었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으니 또 한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북두칠성(北斗七星)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속한 태을천(자미원)이 우주에서 어떠한 위치와 역할을 하기에 우리민족이 오랜 기간 그렇게 열렬히 신앙하여 왔고 궁궐조성에까지 그대로 모방하였는 가를 알아봅시다. (중국에서도 북경의 자금성[紫禁城]은 자미원[紫微垣]을 본 뜬 것이고, 자미원[紫微垣]의 색깔인 자줏빛 옷은 황제 이외에는 입지 못하는 황제의 색깔이었다). 하늘의 중심에는 북극성(北極星)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자미원(태을천)이 있고, 그 밖으로 28수(宿) 안의 태미원과 28수 밖의 천시원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천문의 분포를 3원, 28수 그리고 300의 성좌(별자리)와 1,460개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미궁(紫微宮)은 하늘의 핵심으로 상제가 머무는 곳이며, 이러한 자미궁(紫微宮)은 제후격인 28수(동서남북 각 7개)의 호위를 받고, 28수는 28수대로 해와 달, 목, 화, 토, 금, 수성의 7개 별인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고 있습니다. 하늘이 구천까지 전개되어 있다고 보았기에 자미궁(紫微宮)을 구천(九天)궁궐이라고도 하며, 이를 본따서 땅의 궁궐을 구중(九重)궁궐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다음은 지구와 북극성(北極星)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북극성(北極星)은 우주의 북쪽 끝인 황도북극에서 동쪽으로 23.5도 각도인 천(天)의 북극(北極)에 떠 있습니다.  지구의 축은 이 북극성(北極星) 을 향하여 23.5도 기울어져 있으며 태양 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반복합니다. 문왕팔괘(文王八卦)를 보면, 하늘(乾)이 서북쪽에 있고 땅(坤)이 서남쪽에 있는 데 이것은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말합니다. 지구는 황도 북극(北極)을 향하여 스스로 바로 서려고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북극성(北極星)과 반대편의 23.5도 각이 되는 곳에 있는 직녀성(織女星)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세차(歲差)운동을 합니다. 또한 북극성(北極星)도 항상 같은 위치에 있지 않고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도인(道人)들은 무슨 별을 봐야겠다고 응념하면 낮과 밤에 상관없이 해와 달, 별들을 관측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한반도의 모든 종교 역사를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이렇습니다. 1. 일월신앙 2. 삼신신앙 3. 칠성신앙 4. 불교신앙 5. 유교신앙 6. 도교신앙 7. 천주교신앙 8. 기독교신앙 ...
808    연변작가협회 <공로상> 댓글:  조회:5003  추천:0  2015-03-30
                                                   
807    록색 시 몇점 댓글:  조회:1675  추천:0  2015-03-30
                없다가 있다가 좋다가   좋다가 있다가 없다가   없다가 좋다가 있다가   있다가 없다가 좋다가   좋다가 없다가 있다가   ㅡ 쿵쾅쿵쾅 쾅쾅... ㅡ 쾅쾅 쿵쾅쿵쾅...   나무는 말한다 나는 산새소리 듣기 좋다   꽃은 말한다 나는 꿀벌소리 듣기 좋다   모래는 말한다 나는 바람소리 듣기 좋다   바위돌은 말한다 나는 여울소리 듣기 좋다   E 선은 말한다 나는 싸이렌소리 듣기 싫다   ㅡ쾅쾅 쿵쾅쿵쾅... ㅡ쿵쾅쿵쾅 쾅쾅...   좋다가 없다가 있다가 있다가 없다가 좋다가 없다가 좋다가 있다가 좋다가 있다가 없다가 없다가 있다가 좋다가   살아서 한냥짜리 될가...!?...?!... 죽어서 천만냥짜리 될가...?!...!?... 모 두 들 종당엔 저기 저ㅡ 높은 산아래 한줌의 자그마한 이 되련만!!!   -벗님네들, 무사함둥...!...?...                그리운 외태머리                                            황홀한 꿈속에 한일자로 드리웠었네   이 내 마음 한자락에 찬란히 새겼졌다네   사시절 그 언제나 무언의 웨침표와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나붓긴 외태머리   사시절 그 언제나 무언의 웨침표와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반겨준 외태머리   음~   외태머리 하나 외태머리 하나   이 내 마음속 불태우며 울긋불긋 나붓겼다네    이 내 마음속 불태우며 싱글벙글 반겼다네   루루루 나만의 떠올려보는 그리운 외태머리야   루루루 나만의 떠올려보는 둘도 없는 추억속의 외태머리야...                                                       그 10월의 빛(66)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개굴개굴 ㅡ 복사꽃 피는 내 고향이다가                                옹기종기 ㅡ 꿀샘을 파는 초가삼간이다가                                새콤달콤 ㅡ 오얏 따주는 할배할매이다가                                시원컬컬 ㅡ 막걸리 빚는 시골의 향음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진단(震檀)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이다가                                10월의 빛, 그 어느날의 찬란함이다가                                ㄱ ㄴ ㄷ ㄹ...ㅏ ㅑ ㅓ ㅕ...이다가                                백두대간 너머 너머 두만강 압록강 건너 건너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 흐르는ㅡ                                그 마력(魔力)                                                  영원불멸, 영원불멸,                                아, 그 이름 세월과 더불어                                                       온 누리 만방에...                                루루천년의 푹풍 새하야니 일으키는 훈민정음!                                  단풍, 그 찬란한 대화                                                                                         노오랗게                                                    익어가다                                          빠알갛게                                                    번져오다                                          그리움의 넋이 모여                                          침묵으로 화답하는                                                   뭇산,ㅡ                                            우                                             러                                                 러                                          보는 사이에                                                     내 마음도                                                         불   불                                                         불   불         록색그늘앞                                                                  섣달그믐도,- 정월보름도,ㅡ ... ...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 ... 모두모두 알 한알 턱,- 점잖게 끼고 잘도 지나가오 서로 힐끔 서로 할끔 쳐다보며 잘도 오고지오 365.242195도 오호라, 알 한알 찰싸닥 끼고 아리아리 아리랑 쾌지나칭칭 강강수월래 이끼 누런 노을속에서 버둥대오 바랑(風囊)에 사금쪼가리 듬뿍 멘 도 에서 하얀 그림자 아롱다롱하오 ...꾸겨진 령혼과 ...텅 빈 령혼과 오늘도 근량쭝 나눠먹기로 서걱거리오     모두들 깻까잠둥 ! ... ? ...                    록색25시                                          乾방의         절주입니껴... 中방의         호르래기소리이시더... 坤방의          흐느낌도 함께라면... ... ...   명멸하는             어느 한 과... 작열하는             어느 한 와... 새롭디 새로운             어느 한 도... ... ...   앗, 52시~~~...         록색공룡     눈, 모든것이 고갈되여가고 있다하꾸마 코, 모든것이 여위여가고 있다하니껴 입, 모든것이 갈라터지고 있다하잼두 귀, 모든것이 훼멸되여가고 있다하닌디ㅠ 알, 모든것이 되여가고 있습니다 청정, 모든것이 末을 고하고 있소...     그, 어느 날 새벽녘,- 자연의 뒷소리여,,,     엇~허, 너도밤나무를 심으며,ㅡㅡㅡ                     록색무덤                                                                                                                                                                 잡,- 욕망                                   종기                                                                                    탐음                                        혼탁        동,-                                                                          공허                                    어둠 사,-                                                                    올가미                                                          니,-                                     척보도 내처 디딜 곳조차 없습니다...                                                            벽                                                                        메~ 울타리                                       소음                                                          아~                                                                              58덕목                                     48경계                                                          10중계률 리~                                   바늘 한개비 세워둘 거처마저 없습니다...                                                              여보소                                               淸瀞 = 허공 = 10분의 1                                           무덤前앞에서 굽썩 절하며 비워보기                                           무덤後뒤에서 홀로 가토하며 비워보기                                           무덤右편에서 묵은 풀 베버리며 비워보기                                           무덤左편에서 돌 줍어내며 비워보기...                                                    모두들 깻까잠둥...!...?...          록색서점邊                                                                          위대하시고... 저명하시고... 세계의 최초이시고... 포에지(詩)묶음 500부 印刷,- ... 서점가(邊) 詩매대는 먼지님의 잔치마당으로,ㅡ 서점가 詩매대는 곰팽이님의 향연으로,ㅡ  ...   엇~허~ 좋을씨구... 묶음 50000부 印刷,- ... 눈매로 향한 입매로 향한 콧매로 향한 귓매로 향한 볼매로 향한  누드쇼로 향한,ㅡ ... (모두들 무사함둥 ! ? ) (文學 詩왕관은 어디에서 팔고사고 함둥 ! ? )
806    안동간고등어 노래말 몇점 댓글:  조회:1406  추천:0  2015-03-30
           안동간고등어축제가                                                                                                        竹琳 . 김승종                                                                            여보소 벗님네들 청어당 특산품 안동간고등어를 아시나요                      고향의 인정미 풋풋하고 은근히 구수한 안동간고등어요                      전통먹거리로 사시사철 맛자랑 열어가는 안동간고등어요                      하늘과 함께 땅과 함께 찬란히 사랑을 나누는 안동간고등어요                      에헹요 데헹요 어절씨구 저절씨구 안동간고등어요                      푸른 물결속에서 오늘도 래일 향해                       최상의 신화로 대를 이어가는 안동간고등어요                          여보소 벗님네들 청어당 특산품 안동간고등어를 아시나요                      드넓은 청정의 바다에서 선물로 받은 안동간고등어요                      지구촌 너머로 방방곳곳 살림을 빛내이는 안동간고등어요                      태양과 함께 달과 함께 영원히 행복을 나누는 안동간고등어요                      에헹요 데헹요 어절씨구 저절씨구 안동간고등어요                      푸른 물결속에서 오늘도 래일 향해                      최상의 신화로 대를 이어가는 안동간고등어요                                      다시 만나요 안동간고등어 축제날                                                        (안동간고등어 축제 페막가)                                                                                                              반가워라 안동간고등어 축제날 정들었던 벗님네들                      다시 만날 기약을랑 잊지 맙시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고풍스러운 내 고향 -안동                     등푸른 생선 물결 설레이는 -안동, 안동간고등어 원조 -안동                      사랑입니다 불타는 사랑으로 흘러 넘치는 안동입니다                        아,~ 흥겨운 안동간고등어 축제날 우리 다시 만납시다                      얼쑤 지화쟈 좋을씨구 사랑을 위하여                      절쑤 지화쟈 좋을씨구 우리 모두 다시 만납시다...                          반가워라 안동간고등어 축제날 정들었던 벗님네들                      미풍량속 빛내이며 다시 만납시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고풍스러운 내 고향 -안동                     등푸른 생선 물결 설레이는 -안동, 안동간고등어 원조 -안동                      평화입니다 영원한 평화가 흘러 넘치는 안동입니다                        아,~ 흥겨운 안동간고등어 축제날 우리 다시 만납시다                      얼쑤 지화쟈 좋을씨구 평화를 위하여                      절쑤 지화쟈 좋을씨구 우리 모두 다시 만납시다...                      안동간고등어아리랑                                                                                                                                  시집가네 시집가 안동간고등어 시집가네                                   문경새재 넘어 시집가는 안동간고등어                                   소문났네 소문났소 옛맛 자랑이요                                   소문났소 소문났네 전통먹거리요                                  고향의 향취 듬뿍 담은 안동간고등어 시집가네                                   소문났네 소문났소 인기몰이요                                   소문났소 소문났네 동네방네요                                     아,~ 하~ 시집가네 소문났네                                   아리아리 안동간고등어 아리랑이요                                   아,~ 하~ 시집가네 소문났네                                   스리스리 안동간고등어 스리랑이요                                  살기좋은 내 고향 안동 - 안동간고등어아리랑...                                     시집가네 시집가 안동간고등어 시집가네                                   먼 바다 건너 시집가는 안동간고등어                                   소문났네 소문났소 옛맛 자랑이요                                   소문났소 소문났네 전통먹거리요                                  고향의 향취 듬뿍 담은 안동간고등어 시집가네                                   소문났네 소문났소 인기몰이요                                   소문났소 소문났네 사면팔방이요                                     아,~ 하~ 시집가네 소문났네                                   아리아리 안동간고등어 아리랑이요                                   아,~ 하~ 시집가네 소문났네                                   스리스리 안동간고등어 스리랑이요                                  살기좋은 내 고향 안동 - 안동간고등어아리랑...                                        안동간고등어타령                                                                                                          명물이로다 구수하고 맛좋은 안동간고등어로다                             마음 지쳐 입맛 없을 때면 안동간고등어 요리 제격이라네                             여보소 진수성찬 어서 오라 손짓하지만                             그래도 할매 손맛 듬뿍 배인 안동간고등어 맛 참 좋구려                                에루와 데루와 에헹요 데헹요 어절씨구                              오메가 쓰리 오메가 쓰리 안동간고등어 제격이로다                                특산이로다 구수하고 맛좋은 안동간고등어로다                            막걸리 한사발 생각날 때면 안동간고등어 요리 최고라네                            여보소 수라상이 어서 오라 손짓하지만                            그래도 옛맛 그대로 듬뿍 나는 안동간고등어 맛 참 좋구려                                에루와 데루와 에헹요 데헹요 어절씨구                              오메가 쓰리 오메가 쓰리 안동간고등어 최고로다                                                                                                                                                             낙동강 칠백리 여울소리 듣고싶었소                                            하회마을 흥겨운 탈춤을 보고싶었소                                            살기좋은 내 고향 안동이여                                            봉정사의 은은한 풍경소리 듣고싶었소                                             (독백;- 니 안동간고등어 머어봤나?...)                                             옛맛 살린 구수한 안동간고등어                                             향긋한 간고등어 더더욱 먹고싶었소                                             그 언제나 할머니 손맛 맛보고싶었소                                             고향이여 안동이여                                             간고등어의 원조 - 안동간고등어                                          아,~ 우리 생선 명가 청어당 - 안동간고등어여                                               세월과 더불어 꽃피여라 안동간고등어여                                                 도산서원 정다운 글소리 듣고싶었소                                             챗거리장터 소문난 간잽이 보고싶었소                                             살기좋은 내 고향 안동이여                                             대보름날 신명나는 차전놀이 보고싶었소                                             (독백;- 니 안동간고등어 머어봤나?...)                                             옛맛 살린 구수한 안동간고등어                                             향긋한 간고등어 더더욱 먹고싶었소                                             그 언제나 할머니 손맛 맛보고싶었소                                             고향이여 안동이여                                             간고등어의 원조 - 안동간고등어                                          아,~ 우리 생선 명가 청어당 - 안동간고등어여                                               세월과 더불어 꽃피여라 안동간고등어여                          그리워라 그리워 안동간고등어                                                                                                       타향에서 고향의 얼굴들을 보고싶을 때면                               스리슬슬 군침 도는 구수한 안동간고등어 요리 찾으며                               오늘도 올망졸망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려 봅니다                                 성스럽고 순결한 할머니손맛 그리울 때면                               스리슬슬 옛맛 살린 향긋한 안동간고등어 요리 맛보며                               오늘도 올망졸망 정다웠던 소꿉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아,~ 세월이 흘러 흘러 강산이 변해도                               그리워라 그리워 또 다시 반기는 청어당 안동간고등어                               아리 아리 스리 스리 오메가 쓰리 청어당 안동간고등어                               그 언제나 그윽한 그 맛자랑 빛내여가는 안동간고등어                               우리생선 명가 청어당 청어당-안동간고등어                                                              영원히 영원히 잊을수 없습니다                                     이역만리 낯설음에 마음 지쳐 입맛없을 때면                               스리슬슬 군침 도는 구수한 안동간고등어 요리 찾으며                               오늘도 올망졸망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려 봅니다                                 꿈결에도 챗거리장터 사구려소리 듣고싶을 때면                               스리슬슬 옛맛 살린 향긋한 안동간고등어 요리 맛보며                               오늘도 올망졸망 정다웠던 소꿉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아,~ 세월이 흘러 흘러 강산이 변해도                               그리워라 그리워 또 다시 반기는 청어당 안동간고등어                               아리 아리 스리 스리 오메가 쓰리 청어당 안동간고등어                               그 언제나 그윽한 그 맛자랑 빛내여가는 안동간고등어                              우리생선 명가 청어당 청어당-안동간고등어                                                             영원히 영원히 잊을수 없습니다                 
805    전라남도 광주 정률성 고향에서ㅡ 댓글:  조회:4958  추천:0  2015-03-30
                                                                   
804    그때 그때 저랬던가ㅠ... 댓글:  조회:5407  추천:0  2015-03-30
                                                 
803    그때 그때 이랬던가ㅠ... 댓글:  조회:5841  추천:0  2015-03-30
                                                                                                                                                                                                                                                                                                                                                                                                                                                                                                                                                                                                                                                                          
802    껌딱지에 령혼을 불어 넣는 길거리 화가 - 벤 윌슨 댓글:  조회:3193  추천:0  2015-03-29
Ben Wilson 예술가News            벤 윌슨(Ben Wilson)은 1963년 생으로 런던의 거리예술가랍니다. 예술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윌슨은 예술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었고 자신만의 캔버스를 찾는 도중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붙은 껌딱지를 발견했다고 하네요. 그 이후로 그는 껌딱지를 보며 '이것이 내 캔버스다'라고 생각 했다고 해요^^   그럼 벤 윌슨의 작품을 보러 가볼까요?         그의 손을 거쳐가면 지저분한 껌딱지도 요렇게 알록달록 생기를 찾네요! 그에게 껌딱지는 정해지지 않은 모양과 크기의 캔버스가 아닐까요?                  영어뿐만아니라 한국어도 있어요! 알록달록 주제가 한 가지에 국한 되어있지 않고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이렇게 운동화 옆에 있으니 얼마나 작은지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는 한복 입은 그림도 있어요. 영어뿐만 아니라 한글도 있다는 사실! 놀랍군요     벤윌슨은 껌딱지 아트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군요! "수입은 없지만 마음만은 부자다." "사람들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어떻게 보면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오브제에 의미를 부여하여 가치를 재탄생시키는 그는. 진정한 아티스트!!!!   이상 껌딱지 아티스트 Ben Wilson의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801    거리미술 거장 - 에드가 뮐러 댓글:  조회:3887  추천:1  2015-03-29
  에드가 뮐러의 신기한 3D아트   ​ ​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데 요즘엔 길거리에서 3D 같은 느낌의 예술작품들을 종종 볼 수 있게 되었죠~ 에드가 뮐러라는 아티스트가 이끄는 팀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착시를 일으키는 3D아트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 얼음 계곡 낭떠러지같은 이 작품을 여름에 보면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겨울인 지금 보니 뭔가 괜히 더 추운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_-;;   ​ 용암이 흐르는 절벽은 정말 언뜻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퀄리티가 좋습니다. 이렇게 그릴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었을텐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네요.   ​ ​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비나 눈이 오면 그냥 지워지는건지 궁금합니다. 또 궁금한게 다른 각도에서 봐도 이런 느낌일지... ㅎㅎ 쉽게 지워지진 않겠지만 결국 지워질텐데 지워진다면 뭔가 아쉬울 것 같네요~   ​ 애당초 이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유가 분필로 작품을 그려내는 작업을 보고 매력을 느껴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공부도 포기하고 어린 시절부터 거리 그림을 그렸다고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실제로 한번 꼭 보고 싶습니다!   [출처] 에드가 뮐러의 신기한 3D아트|작성자 헤드샷  
800    거리미술 거장 - 커트웨너 댓글:  조회:2626  추천:0  2015-03-29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우주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길거리 예술가 커트 웨너(Kurt Wenner)는 현재 길거리 예술가 및 건축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0대 후반부터 그래픽 아티스트로 돈을 번 그는 NASA에 들어가 우주 삽화 등을 그렸다. 르네상스 시절의 미술에 큰 관심이 많았던 웨너는 1982년 미술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고, 이후 '길바닥 입체 그림'을 선보이게 된다. 웨너의 길바닥 그림은 비슷한 종류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과 악, 구원 등 굵직한 주제와 살아 숨쉬는 듯한 입체 그림 기법은 그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주요한 구성 요소인데, 현재 그의 작품은 유럽, 타이완, 미국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799    거리미술 거장 - 쥴리안 비버 댓글:  조회:2779  추천:0  2015-03-29
    영국의 한 화가(?)라고 해야겠죠..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리는데..   쥴리안 비버(Julian Beever)의 작품들 입니다.         잘못하면 빠집니다.. 조심하세요..     미국 거리에 그린 JFK 대통령..     영국 런던 옥스포드 거리에 그려진 엘리자베스 여왕 1세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네요.. 정말 멋진 왕세자비였는데.. 교통사고로 죽었죠..     코카콜라네요.. 저 큰 것을 조그만한 병따개로 딸려고요??     앗 거리에서 금속 탐지기를 가동?? 혹시 금이라도 나올까봐요?? 설마..     헛 --;; 금이 나오네요..삽으로 파고 있습니다.. ㅎㅎ     기존에 발견한 금은 다 캐냈나 보네요.. 또 금속 탐지기를 작동하네요.. 또 나올까 --?     엄청 캤네요 --;; 무릎까지 들어갈 만큼.. 그런데 사람들이 조금씩 멈추고 금 캐는 걸 보고 있군요..      와.. 엄청 쌓였군요.. 저도 좀 주세요 --;;     거리에 대형 파리 나타남.. 그러나 우리 주인공은 간단하게 파리약으로 쒸~익 뿌리면 끝.     오.~ 길거리에서 벗고 그러면 안돼는데 --;; 여기가 해수욕장인가..     지구를 청소하는 청소부.. 쓰레기 치워 주세요..^^     옆에서 보니 --;; 그림 자체는 13m였습니다..     와우.. 이 사람이 여기서 수영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저도 같이 하고 싶네요..     위에 그림을 멀리서 보면 이런 그림이랍니다.. 보기보다 실제로는 상당한 그림을 그려야 할듯..     끔직하군요.. 가재가 아기를 잡아 먹나요?? 물론 아기도 그림이죠..^^     이런.. 아기가 없어졌네요.. --;; 가재는 배가 볼록하고.. 음..       소니 VAIO 노트북.. 설마 그려진 그림으로 인터넷 하는건 아니겠죠..?     완전히 블록을 들어냈네요.. 우리나라는 선거철만 되면 블럭을 들어낸답니다..     스파이더맨.. 벽돌위에 올라가 있는 주인공.. 근데 스파이더맨이 벽은 안타고 공중에 떠 있네요.. --;;       배트맨과 로빈입니다.. 사람이 자세를 저렇게 잡으니 더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자기의 도구 파스텔을 크게 나타냈네요..     이 작품 못 보셨나요??? 미술을 아는 분이라면 아실 듯.. 로세티의 걸작품 The Beloved       어떤게 진짜일까요? 알아 맞춰 보세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기 모습을 그린 그림..       오~ 얼음을 깨고 물개가.. 무엇인가요?? 돈? 아님 카드?     거리에 물웅덩이를 만들어서 배를 띄운다?? 물결 나타내는 것은 어려운 일 일텐데..     보도블럭을 들어낸 건 아닙니다.. 정말 보도블럭을 들어내고 땅을 판 것처럼 실사로 보이네요..     전부 그림이 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환상입니다..^^V     지나가는 미녀와 작품 만들기..     이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세상이 꺼꾸로 보이네요.. 혹시 땅속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요??     수영하시나요?? 참 설정도 재미있네요..^^     쥴리안 비버의 자화상을 거리에..     쥴리안 비버의 자화상     실제 모습.. 쥴리안 비버  
798    천재 예술가들 댓글:  조회:2534  추천:0  2015-03-29
  * 르네상스의 천재 예술가, 3대 거장  역사와 인물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부흥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내려는 운동으로, 근대 유럽문화의 기반이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의 정신과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이뤄냈지만, 특히 예술 분야에서 이룬 그들의 성취는 다른 무엇보다도 탁월하다. 르네상스라고 하면,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나 역동적인 조각품 등 아름다운 미술 작품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에서는 에서 다룬 르네상스 시대 세 명의 화가 이야기를 모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들, '르네상스 3대 거장'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다 빈치 [최후의 만찬] 1495년~1497년, 벽화(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460x880cm,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다재다능한 만능형 '르네상스인' 캐스트 원문보기 : 오늘의미술 - 르네상스와 르네상스인 천재는 재능과는 다른 말이다. 천재라는 말은 새로운 영역까지도 개척해야 얻을 수 있는 영광된 명칭이라면 다 빈치는 누구보다도 이 점에서 탁월했다. 그는 미술뿐만 아니라 해부학, 물리학, 광학, 군사학 등 다방면의 자연과학 영역에서 굵직한 발전을 이끌어낸 초인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에 대한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집요한 관찰력으로 새 영역을 열어나갔고, 새로운 지식을 창작활동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왕성한 호기심은 책임감을 크게 초과하였다. 그는 시작한 일을 대부분 끝내지 못한 채 다른 일로 넘어가곤 했다. 오늘날 일부 심리학자는 그를 주의력 결핍증 인간의 전형으로 보기도 한다. 그의 작품 [모나리자]의 경우도 배경과 인물의 세부 등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최후의 만찬' 등 밀라노 곳곳에 살아 있는 다 빈치의 흔적 캐스트 원문보기 :지구촌산책 - 밀라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 당시 밀라노에 입성해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을 그려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세나콜로]로 불리는 [최후의 만찬]에는 예수의 예언을 듣고 놀라는 12제자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 [최후의 만찬]이 훼손이 심했던 것은 레오나르 다 빈치가 당시 유행했던 프레스코화 대신 다양한 용매를 이용하는 ‘템페라’ 기법을 썼기 때문이다. 이 역시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데는 큰 몫을 하게 된다. ... 밀라노에 들어서면 도심 곳곳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그는 ‘명품 도시’ 밀라노가 아끼는 보석과 같은 존재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학기술 박물관에는 회화뿐 아니라 과학, 해부학, 지리학, 천문학 등에도 능했던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과학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그의 글과 그림 캐스트 원문보기 :세계인물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는 미술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말 그대로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쪽지 종이에 이런 저런 글과 스케치를 남겼다. 낱장의 그 종이들은 큰 것도 있었고 5-7센티미터 정도로 작은 것들도 있었다. 그는 이 쪽지 종이에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글을 적어 넣었다. … 레오나르도가 쪽지 종이에 남긴 글과 그림을 보면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었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그가 쪽지 종이에 남긴 그림들 중에는 오늘날의 낙하산, 비행기, 전차, 잠수함, 증기기관, 습도계에 해당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한 자리에 서다 캐스트 원문보기 :오늘의미술 - 다 빈치 VS 미켈란젤로 베네치아인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았던 피렌체인들의 예술적 욕심 덕분에 결국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는 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 아마도 이 역사적 결투에서 레오나르도 쪽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이 더 컸을 것이다. 1452년생 레오나르도는 당시 쉰을 넘긴 나이었고, 미켈란젤로는 1475년생으로 아직 20대였다. 이미 명성은 명성대로 얻은 관록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서른이 채 안 된 젊은 화가와 한 자리에서 기량을 겨뤄야 했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부담감이 아무래도 더 컸을 것이다. ... 그러나 양측 모두에게 부담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을까? 아쉽게도 스타들의 대격전은 최종 순간을 남겨 놓고 취소되고 만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중 '아담의 창조'] 1511년~1512년, 벽화(프레스코화), 바티칸 미술관 소장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치열한 삶을 산 위대한 천재 예술가 캐스트 원문보기 :세계인물 - 미켈란젤로 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위대한 작업 앞에서 우리는 경탄하기도 하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미켈란젤로의 과 같은 조작 작품들과 바티칸 시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와 과 같은 그림을 보면 비록 그것이 진품이 아니라 화보일지라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더군다나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조각가라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가 화가가 되어 붓을 들고 고개를 위로 쳐들고 천장에다 그림을 그리고 불멸로 만들었다. 그의 작품을 올려다보면서, 이 천재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단 말인가? 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시스티나예배당'을 둘러싼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이야기 캐스트 원문보기 :오늘의미술 - 미켈란젤로 VS 라파엘로 “교황 율리오 2세와 나 미켈란젤로 사이에 있었던 모든 불화는 라파엘로와 브라만테의 질투 때문이었다.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이들은 교황을 속여 무덤을 세우는 계획을 중지하도록 시켰다. 라파엘로도 충분히 이런 일을 꾸몄을 것이다. 왜냐하면 라파엘로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일흔 살을 내다 본 늙은 미켈란젤로가 과거를 회상하며 쓴 것이다. 라파엘로는 이미 20년 전에 죽었지만 미켈란젤로에게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 여전히 고통스럽게 기억되고 있었다. 정말 라파엘로는 그의 고향 선배 브라만테와 함께 미켈란젤로를 파멸시키기 위해 교황 율리오 2세를 속였을까? 도대체 미켈란젤로는 무슨 근거로 라파엘로의 예술적 성과를 자신의 아류라고 주장하는 걸까?       '피에타' 조각가로 살기 원했던 그가 남긴 최후의 작품 캐스트 원문보기 :오늘의미술 - 론다니니의 피에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주도한 불세출의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역시 ‘피에타’는 끊임없이 되돌아가게 되는 일종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거의 일 세기에 달하는 생애를 통해 여러 점의 ‘피에타’를 제작했으며 그에게 최초로 로마에서의 세속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던 작품이나 파란과 곡절로 점철된 삶을 마감하기 며칠 전까지도 정과 끌을 놓지 못하고 매달렸던 최후의 작품 역시 ‘피에타’였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미켈란젤로는 어지러운 시대를 살며 감내해야만 했던 한 천재의 인간적인 고독과 회한 그리고 영광의 상념들을 이 주제를 빌어 호소하고자 했 던 것은 아닐까. 미켈란젤로의 작품 더 보기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Raffaello Santi, 1483~1520)  
797    착시미술 댓글:  조회:3753  추천:0  2015-03-29
  에드가 뮐러(Edgar Mueller - 3D Street Art) Street Painting     ...               커트 웨너 (Kurt Wenner)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한때 NASA 에서  일러스트 작품을 하며 근무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건축과 거리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업중인 커트웨너   르네상스시대 미술작품들에 심취하여 80년대 초반에 이탈리아에서 미술공부를 하였고 이후  그의 종교적 철학과 접목된 원죄의식, 선과악, 구원등을 모티브로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은 물론 세계도처에서 그의 작품들을 만날수 있다.   완성된 작품으로  특정방향에서 바라볼때  입체적 착시현상이 극대화 된다.         커트웨너 다른 작품들  일반회화 작품  
796    한반도 문양 壽石 댓글:  조회:1851  추천:0  2015-03-29
                                                         
795    수석(壽石) 용어 댓글:  조회:7663  추천:1  2015-03-29
                                       [수석용어]   가공석(加工石) : 돌을 갈아 광택을 내거나 밑면을 절단한 돌 개구리석 : 돌갗이 푸르며 우둘두둘하여 마치 개구리 피부와 같은 돌 건폭형(乾瀑形) : 위 아래로 움푹 패여있으나 흰돌이 박히지 않아 물이 마른듯이 보이는 폭포형 검봉석(劍峰石) : 날카로운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돌 경석(景石) : 자연의 경치를 닮은 수석.산계석(山系石)과 수계석(水系石)으로 구분하기도하며 산계석                   은 원산석,평원석,토파석등. 수계석은 폭포석,호수석,계류석등 계류형(溪流形) : 산골짜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 골석(骨石) : 겉돌이 수마되어 떨어져 나가고 속돌만 남아 앙상하게 마른 돌 곰보돌 : 돌 표면이 벌집처럼 움푹움푹 패인 돌. 한탄강의 현무암에서 볼수있음 괴석(怪石) : 괴상하게 생긴 돌. 수석으로서 괴석이되는 이상적 조건은 수(秀:빼어남),수(瘦:살이붙지                   않고 마름),준(주름준:주름이 잡힘),투(透:구멍이 남) 교환석(交換石) : 서로 바꾸어 소장하고 있는 돌 구입석(購入石) : 돈을주고 사서 소장하고 있는 돌 굴림돌 : 수마가 덜된 돌을 자갈이나 모래와함께 드럼통에 돌려서 연마시킨 돌.굴림돌은 수석의 범주             에서 넣지 않음 기름돌(油石) : 베이비 오일따위의 기름을 바르면 더 돋보이는 돌 기석(奇石) ; 기묘하게 생긴 돌. 깨돌 : 깨같은 까막까막한 미립점(米粒點)이 박혀있는 수석 난석(蘭石) : 난초를 붙여 완상하는 돌 노태수석(老苔壽石) : 이끼를 올려 예스러움을 간직하는 돌 단봉석(單峯石) : 봉우리가 하나인 수석. 경석(景石)중 하나 단층형(斷層形) : 계단 모양으로 층을 이룬형태 단폭형(段瀑形) : 계단을 이루며 한단 한단 꺽여져 내려오는 폭포 돌갗 : 돌의 거죽(피부) 동굴형(洞窟形) : 안이 텅비어 넓고 깊은 굴처럼 되어있는 모양 동문형(洞門形) : 돌 아래쪽에 구멍이 시원하게 뚫려 나제통문(羅濟通門)과 같은 형태 동석(動石) : 움직이는 모습의 물형석이나 그러한 그림이 있는 문양석. 반대:정석(靜石) 따로돌 : (1)조석(造石) (2)손을 대서 만든 돌 (3)딴 갈래로 분류해야 하는 돌 때깔 : (1)선뜻 눈에 비치는 맵씨와 빛깔 (2)수석의 표피에 드러난 빛깔 마노석(瑪瑙石) : 호랑이와 표범의 머리와같이 생겼으며 무늬 빛깔도 그러함 먹돌 : 먹물처럼 검은 돌. 묵석(墨石) 명석(名石) : (1)뛰어난 돌 (2)수석으로서의 조건을 다 갖추고있음은 물론 고아한 기품과 고색이                   찬연하고 위용과 기품 그리고 힘을가진 수석 몽돌 : 별반 쓸모없으면서도 크지않은 둥글둥글한 돌 묵석(墨石) : 먹물처럼 검은 돌. 먹돌 문양석(紋樣石) : 돌 표면의 어떤 모양의 그림이나 꽃무늬 또는 문자가 그려져있는 수석. 무늬석 문자석(文字石) : 글자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수석. 문자석은 문양석의 하나임 물돌 : 수반에 연출할수 있는 수석 물형석(物形石) : 물건의 형태를 가진 돌. 만상석(萬象石) 미석(美石) : 색채석(色彩石),미석의 조건(1)색감이 선명하고 생기가 있어야함 (2)석질은 모오스 경도                   6정도는 되어야 함 (3)줄무늬가 있을때는 규칙적이어야한다 (4)수마상태가 양호해야한다                   티나 파(破)가 없어야한다 바위형 : 산이나 산기슭에 우뚝서있는 바위와같은 형태 배껍질 돌 : 돌갗이 배의 껍질과 같은 색과 모양의 돌 부봉(副峯) : 산경석에서 주봉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 빙폭형(氷瀑形) : 폭포에 물이 얼어붙은듯이 보이는 형태 뼈돌 : (1)단단하고 앙상하며 생긴모습이 동물의 뼈처럼 보이는 돌 (2)앙상하게 마른속돌. 골석(骨石) 산수경석(山水景石) :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상시켜주는 산 모양의 수석 산지(産地) : (1)산출지의 준말 (2)수석을 탐석한곳. 탐석지(探石地) 산형석(山形石) : 산의 모습을 가진 돌 삼면법(三面法) : 산형석의 감상하는 방법. 전후 좌우 상하의 세면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훌륭한                         산형석임 색감(色感) : 어떤 색에서 받는 느낌. 수석의 색감은 생기가있고 선명할수록 좋음 색채석(色彩石) : 색깔을 띠고있는 돌. 미석(美石) 석명(石銘) : 낱개의 수석에 붙인 고유한 이름. 수석명. 석명(石名) 석중석(石中石) : (1)이질석(異質石)이 들어있는 돌의 겉면을깨고 속에 들어있는 이질석을 드러나게                         하여 연마시킨 돌 (2)돌 겉에 이질석이 붙어있는 돌 석질(石質) : 돌의 본 바탕.돌의 품질. 모오스 경도 4이상의 경도, 정감어린 질감,입자 응결의 치밀도                   가 높을수록 좋은 석질이다 설산석(雪山石) : 산봉우리에 석영등이 붙어 눈산을 연상시키는 수석 섬형석(島石) : 섬 모양을 가진 돌(1)산형을 이룬 수석중 능선이 짧고 능선끝이 가파로운 단애를 이룬                       다(2)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포구를 이룬다 섭취돌 : (1)변변하지 못한돌 (2)별 대가를 치루지않고 얻을수 있는 돌 소장(所藏) : 값나가는 물건따위를 자기것으로 간직함. 소장한 수석   속돌 : 표피가 물씻김으로 떨어져 나가고 내피가 드러난 돌 손질 : (1)손으로 잘 매만져 다듬는일 (2)돌 자체를 변형시키지 않고 때를 씻어내거나 흙따위를 털어              내고 양석 시키는 일 수림석(樹林石) : 여러개의 나무가 늘어져있는 모양의 문양석 수마(水磨) : 물씻김. 물결에 씻기어 닳음 수문형(水門形) : 돌의 밑부분에 오목하고 길게 패여져 수반에 놓으면 배가 드나들수 있도록된 형태 수반석(水盤石) : 수반에 연출해야 더 돋보이는 수석 수석(壽石) : (1)자연의 아름다움을 축소시켰거나 물건의 형태 또는 무늬를 지니어 장식용으로 쓰이는                   작은 자연석(2)삼라만상의 형상을 닮은 축소된 돌로 방안에놓고 그미를 감상하는 자연석 수석의3요소 : 형(形, 질(質), 색(色) 쌀눈박이 돌 : 쌀알같은 크기와 모양의 미립자가 돌표면에 박혀 있거나 쌀알만한 크기의 작은구멍이                    송글송글 나있는 수석 쌍봉석(雙峯石) : 두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돌 쌍폭석(雙瀑石) : 두 폭포가 나란히 흐르는 모양의 수석 썩돌 : (1)침식되어  패인 모습이 썩은듯이 보이는돌 (2)쇠가 부식된듯이 푸석푸석한 돌 알돌 : (1)석중석에서 이질석이 특히 알처럼 둥근 돌 (2)좌대나 수반에 놓이지 않는 맨 돌 암초형(暗礁形) : 다소 거친 괴석형의 바위형 애석(愛石) : 오랫동안 소장하여 애착이 가는 돌. 애장석(愛藏石) 양석(養石) : 생경(生硬)한 느낌이나는 수석을 성숙되고 고태미가 나는 수석이 되도록함.양석방법은                   햇볕에 쬔다,손으로 자주 문지른다,일정한 간격으로 물을뿌려준다,이끼를 올린다. 연마석(硏磨石) : 인위적으로 갈아서 겉을 반들반들하게 만든 돌.  연봉석(連峯石) : 셋 이상의 산봉우리가 연이어있는 산형수석 연산석(硏山石) : 산봉우리가 연이어있는 수석 오석(烏石) : 검은 돌    운두 : 수반 둘레의 높이 원봉(遠峯) : 주봉과 부봉사이에 위치하며 멀리 보이어 원근감을 주는 봉우리 원산석(遠山石) : 멀리 보이는산과 흡사하게 생긴 수석 은폭(隱瀑) : 겉에서는 보이지 않고 숨어있는 폭포 인상석(人象石) :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닮은 돌 두상석(頭相石) : 사람의 머리모양을 닮은 수석 자구리 : 움푹움푹 패여들어간 자국. 자탐석(自探石) : 자기가 직접 탐석한 돌 장석(掌石) : 한손안에 쥘수있는 작은 돌. 촌석(寸石) 전래석(傳來石) : 조상이나 선조로부터 대대로 물려 내려온 돌 조석(造石) : 깍거나 구멍을 뚫는등 인위적으로 만든 돌. 조석은 수석이 아님 조수형석(鳥獸形石) : 새나 짐승을 닮은 돌 좌대(座臺) : 수석을 바로놓기위해 나무로 깍아 만든 받침. 돌받침 주름돌 : 움푹움푹 패인 자국이 줄을 이루고 있는 돌 주봉(主峯) : 산형석에서 가장 높고 중심이 되는 봉우리 지판(地板) : 수석밑에 까는 널판지 진묵석 : 짙은 먹물색의 돌 진오석 : 가장 검은 돌 질감(質感) : 재질에따라 달리 느껴지는 독특한느낌. 수석의 질감은 중량감,경도,수마상태와 관련 쪼코석 : 초코렛석- 초코렛 색갈을 가진 돌 처마석 : (1)서까래를 받치는 도리밖으로 내민 지붕 모양의돌 (2)처마와 같은 모양의 수석 첩봉형(疊峯形) : 산봉우리가 첩첩이 겹쳐진 산형 초가석(草家石) : 초가집 모양의 돌 촌석(寸石) : 아주 작은 돌. 촌품석(寸品石). 대체로 10cm이하로 한 손아귀에 들어가는 수석 추상석(抽象石) : 고정적이고 일정한 형태가없이 보는 견해에 따라 달리 해석하는 돌 축경(縮景) : 자연경을 축소시킨 경치. 수석은 자연의 축경임 침봉석(針峯石) : 뾰죽한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돌. 검봉석(劍峯石) 탐석(探石) : 강가나 바닷가 혹은 산등지에서 수석감을 고름 토중석(土中石) : 산이나 들의 땅속에서 파낸 돌. 강가나 바닷가의 모래나 땅에서 파내는돌은 토중석                         이 아님 토파석(土坡石) : 마당보다 조금 넓은 들판 뒷편에 언덕이 둘러 싸인 수석 투(透) : 맞뚫린 구멍 평석(平石) : 윗면이 넓고 평평한 돌 평원석(平遠石) : 넓은 평야 저편 끝에 산봉우리가 아득히 보이는 형태의 수석 피부석(皮腐石) :돌갗에 오돌도돌한 입자가 나 있는 돌 형상석(形象石) : (1)마음속에 떠오른 관념따위를 구상화한 돌 (2)현상으로서의 사물로 존재하지 않                         으면서 고정화된 개념이 뚜렷한 형태의 돌 호수석(湖水石) : 산형으로 생긴돌의 윗부분이나 중턱에 물이 고일수 있도록 움푹패여 호수를 연상 희귀석(稀貴石) : 드물고 진귀한 돌. 수석의 요건을 갖추지않은 희귀석(보석)은 수석이 아님   [출처] 壽石 用語(수석용어)|작성자 벽 소  
794    초현실주의 사진들 댓글:  조회:8114  추천:0  2015-03-29
  (이미지 출처 : http://www.hughkretschmer.net ) 포토그래퍼 Hugh Kretschmer의 사진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물흐르듯이 넘나든다. 그의 사진들 대부분이 광고나 잡지의 편집사진으로 쓰이지만, 동시에 각각의 사진들은 하나의 독립적인 아트웍으로써 많은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Hugh Kretschmer의 작품들은 모두 상상을 기반으로 한다. 꿈속에서 본 것들을 그리기도 하며 "만약 세상이 OO이라면 어떨까?"라는 가정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그의 사진 속에는 현실과 초현실의 요소들이 어우러져있다. 그 둘은 아주 말끔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마치 고전영화의 세트처럼 인공적이고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엉뚱하고 기발한 그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그 기발함 안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찾는 것은  Hugh Kretschmer 작품들의 또 다른 재미이다.         [출처] 초현실주의 사진들의 향연 by Hugh Kretschmer|작성자 arar  
793    초현실주의자들 그림 댓글:  조회:4220  추천:0  2015-03-29
초현실주의-달리          르네 마그리트-초현실주의     1898년 벨기에에서 출생한 마그리트는  1916년부터 브뤼셀의 아카데미 데 보자르(Academi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하면서  미술공부를 시작하였고, 이후 10여 년간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제작한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경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창조해 나가기 시작했고,  1927년부터 3년 간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류를 위해 파리에 머물기도 했다.   1925년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인 앙드레 브르통의「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결성된 초현실주의는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촉발된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 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사용해 거의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했던 것과  달리 마그리트는 사과, 돌, 새, 벨, 담배 파이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 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폭에 결합시키거나,  어떤 오브제를 전혀 엉뚱한 환경에 위치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은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 독수리를 돌의 재질과 같이 변형시키는 식으로 사물이 가진 성질 가운데 하나를 바꾸는 '변경', 성채와 나무 밑 둥을 결합하는 식의 '사물의 잡종화', 작은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식의 '크기의 변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 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등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1950년대에 들어서 마그리트는 기존의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양식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vache) 시기의 작업이 그것이다.  인상주의 작가, 특히 르누아르의 영향을 반영하는 주제와 화려한 색채, 표현적인 붓 터치로  특징지어 지는 마그리트의 인상주의 시기 작품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 상황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된다.  바슈 시기는 1957년 단 2주에 걸친 예외적인 실험으로  프랑스의 야수주의에 대한 영향과 동시에 풍자를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 시기를 제외하면 마그리트의 작업은 193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주제와 이미지(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단어의 사용, 인간의 조건, 중절모를 쓴 남자)가  평생의 작업에 걸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뿐 아니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로 대표되는 말과 사물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 현실의 3차원 공간과 캔버스 위의 2차원 공간 간의 모순을 다룬 인간의 조건 등 마그리트의 예술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마그리트의 면모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보다 경도되었던 것에 비해 마그리트의 작품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가진다. 실제로 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마그리트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작가였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며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철학적인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고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 음악(비틀즈의 음악과 애플 레코드사의 사과모양 로고), 영화(매트릭스 시리즈), 문학(김영하의 ), 교육(대학 입시 논술 고사 문제로 출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마그리트를 초현실주의의 거장에서 더 나아가 20세기 미술의 거장으로 칭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철학자 ◆ 마그리트 누구인가   벨기에 출신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20대 초반 벨기에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마그리트는 초기에 입체파와 미래파의 영향을 받았다. 1926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살바도르 달리와 후안 미로, 시인 폴 엘뤼아르 등과 교류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자들이 흔히 빠져들었던 자동기술법이나 꿈의 세계에 대한 편집광적 탐구에서 벗어나 현실의 신비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해 나갔다. 1967년 타계하기까지 독자적 초현실주의 세계를 보여주며 20세기 미술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1989~1967)는 상식의 속박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꿈꾸었던 그림 그리는 철학자다.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을 통해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작품마다 관습적인 사고를 거부하고 기발한 발상에다 시적인 조형성까지 담아내다 보니,미술계 일부에서는 그를 창조적인 가치혁신가로도 부른다. 특히 마그리트의 작품은 현대 대중문화의 '자양분'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 음악(비틀스의 음악과 애플 레코드사의 사과 모양 로고)을 비롯해 영화(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 복제),문학(김영하의 '빛의 제국'),교육(대입 논술고사 문제 출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마그리트의 색다른 미학세계로 들어가보자. '르네 마그리트전'이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사가 서울시립미술관,벨기에 왕립미술관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전시회는 마그리트의 작품과 생애,미술사적 의미까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국내에서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간간이 열렸던 해외 화가 작품전과는 전혀 다르다. 그동안의 전시회가 대표작에 포함되기 어려운 회화 몇 점을 들여와 다른 자료들과 함께 보여준 경우가 많았던 데 반해,마그리트전은 시기별 대표작에 속하는 작품이 대거 포함돼 있다. 전시 작품만 해도 오리지널 유화 70여점을 비롯해 과슈·드로잉·판화 50여점,사진 희귀 영상작업 및 친필 서한 150여점 등 무려 270여점에 달한다. 단일 작가를 주제로 한 전시회 중 국내 최대 규모다. 특히 유화 중에는 '심금' '붉은 모델' '검은 마술' '회귀' '신뢰' 등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상당수 들어 있다. 전시 작품 가격 총액은 6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전시를 준비하는 데도 3년이 넘게 걸렸다.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마그리트 재단을 비롯해 뉴욕,런던 등 해외 유명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마그리트의 걸작들과 세계 저명 컬렉터들의 소장품을 망라해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번 전시는 내년 가을 벨기에 왕립미술관 내에 개관하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의 완공 이전에 마련한 마지막 대규모 해외 전시로,마그리트 미술관 개관 이후에는 국내에서 이런 수준의 작품을 직접 접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마그리트의 생애를 따라가며 시기별로 작품을 배치했다. △완숙미 넘치는 회화 명작 △포스터와 광고 △2차 세계대전 전쟁 이미지 △회화적 변형시대 △영상작품 등 10개의 주제 아래 꾸며졌다. 4월1일까지 월요일 휴관.성인 1만원,청소년 8000원,어린이 6000원. (02)332-8182 김경갑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kkk10@hankyung.com             어떤 작품이 왔나   '세상의 상식에 끝없이 도전하는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감상하며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보세요.'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르네 마그리트 작품전(4월1일까지)'이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6개 전시실,10개 섹션으로 나눠진 전시장을 따라 '보물섬''신뢰''심금''광활한 바다' 등 마그리트의 시기별 대표작을 보며 그의 생애와 미술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특히 대학 논술시험에 대비한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창의성을 키울 수 있어 더욱 인기다. 국내 처음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는 '빛의 제국''회귀''신뢰' 등 회화 대표작 70여점과 과슈,드로잉,판화 50여점 등 회화 작품 120여점을 비롯해 사진,희귀 영상작업 및 친필 서신 150여점 등 총 270여점을 만날 수 있다. '괴기스러운 고요함과 긴장감이 화폭 가득 흐른다. 흰옷을 입은 두 남자가 야구하듯 세상을 후려친다. 정원 중앙을 가로지르는 가로수 양편으로 늘어선 신비감이 난간 기둥을 휘돌아 나직하게 이어지고,정체를 알 수 없는 거북이가 관람객에게 이야기를 강요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1927년 작 '보이지 않는 선수(The secret player·152×195cm)'의 모습이다. 가격이 120억원에 달하는 이 작품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초기작인 데다 동일한 모티브를 이어받은 후속작이 없어 해석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구두와 발을 합체시켜 새로운 오브제를 창조한 '붉은 모델(The red model·38×46cm)' 역시 일상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지만,논리와 상식을 유쾌하게 뒤집으면서 동시에 재미있는 결합을 시도한 명작.마그리트에게 있어 회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오브제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심금'은 포도주잔을 통해 대지의 생명이 결국 하늘과 만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과 인간의 내적 체험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양복 입은 신사들을 화면 곳곳에 무중력 상태로 배치한 '골콘드(겨울비)'는 신세계백화점이 로열티 1억원을 지불하고 지난해 말까지 본점 외벽에 확대 설치해 명물이 됐던 걸작. 이번 전시에선 유화 대신 과슈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중절모 신사의 코 앞에 파이프가 떠 있는 1965년 작 '신뢰(Good Faith·41×33cm)'는 유니폼과 같은 중절모와 양복,얼굴 전체를 가리지도 않은 파이프를 통해 개성을 표현했다. 시각예술의 수단으로 인식된 회화를 통해 뭔가를 감추고 뭔가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둔다. '검은 마술(Black magic·80×60)'은 아름다운 여체를 상·하반신의 서로 다른 색깔로 대비시켰다. 상체는 하늘색으로,하체는 피부색을 그대로 살려 여인의 나체를 하늘로 변화시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43년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할 당시 그린 '수확(The harvest·60×80cm)'은 르노아르의 1890년대 작품 '무제'를 소재로 감각적이고 에로틱하게 그린 작품이다. 군대의 공포감에 '환희'를 대비시켜 히틀러의 야망을 반박하려 한 내용을 담았다. 화려하고 타는 듯한 색채와 우람하고 소용돌이치는 붓놀림은 군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창밖의 배경과 캔버스 위의 그림을 묘하게 일치시킨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100×73cm)' 시리즈는 현실의 3차원 공간과 캔버스 위 2차원 공간 사이의 모순에 대한 의문을 관람객들에게 제기한다. 이 밖에 1927년 작 '폴 뉴제의 초상(Portrait of Poul Nouge·95×65cm)'은 자신의 지적 멘토인 초현실주의의 중추적 역할을 한 폴 뉴제를 표현한 작품.실제 연미복을 즐겨 입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폴 뉴제에게 격식 있는 의상을 입혀 그의 엄격한 행동양식을 표현했다. 특히 두 개의 초상을 나란히 그린 것은 생화학자라는 브루조아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가였던 뉴제의 양면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고문당하는 여사제(The torturing of the vestal virgin·97.5×74.5)'는 20세기 초기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조각과 인체 사이에 어디엔가 존재하는 듯한 애매모호한 존재의 등장을 그려냈다. 마그리트 회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이해할 수 없는 현실과 평범한 현실을 양립시키기 위해 수수께끼처럼 병치된 오브제와 결합된 혼란스럽고 감정적인 회화법을 보여준다. 이 밖에 벨기에에서 1970,71년 우표로 한정 발매된 '기억(Memory·46.5×37cm)'과 '이렌느 혹은 금지된 책(Irene or forbidden literature·54×73cm)' 등도 눈여겨 볼만한 작품으로 꼽힌다. 김경갑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kkk10@hankyung.com               "작품마다 창조적 파괴 … 가치혁신 실천"   르네 마그리트의 1927년작 '보이지 않는 선수(The secret playerx152×195cm)' 앞에서 우리나라 사회 각계 명사들은 눈이 반짝거렸다. 마그리트 작품 가운데 가장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다. 배경은 어딘지 모를 정원,크리켓 경기를 하는 하얀 옷을 입은 두 남자,정체를 알 수 없는 거북이 등 서로 연관성이 없는 소재 등을 면밀히 살핀다. 호기심에 찬 얼굴에 상상력이 꽉찼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천정배 의원 등 대선 주자를 비롯해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영화 '왕의 남자'를 만든 이준익 감독,인기 탤런트 송일국,방송인 배한성,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이국동 대한통운 사장 등이 마그리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을 다녀갔다. 이들은 마그리트의 작품을 감상하고 세상의 상식에 끝없이 도전한 '거장'답다며 충격적인 이미지와 참신한 상상력에 감탄했다고 호평했다. ○…이명박 전 시장(65)은 마스리트의 작품 '보물섬'을 감상하면서 "벨기에 출신 화가 마그리트는 한평생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한 작가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란 개념을 그림으로 실천한 작가"라고 평했다. 그는 "보통 사람은 한평생 한두 번 정도 삶의 변화를 시도하지만 마그리트는 한평생 가치혁신을 시도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마그리트 방식의 혁신적인 변화를 즐겨야 한다"고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최근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천정배 의원(53)은 마그리트 대표작 '심금'을 보고 "작품들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철학적 회화관이 눈에 띈다"며 "현대 대중문화에 많은 영향을 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전문가적인 소견을 피력했다. ○…MBC 사극 '주몽'에 출연해 지난해 연기 대상을 받은 인기 탤런트 송일국씨(35)는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아 마그리트의 대표작 '신뢰'에서부터 광고기획자들에게 영감을 준 '심금'에 이르기까지 270여점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도슨트(전시안내자)와 작품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평소에도 미국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 등 인기작가들의 전시회를 자주 관람한다는 그는 "고등학교 시절 그래픽 디자이너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요즘도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리거나 컴퓨터로 그래픽 작업을 하는데,마그리트의 작품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변형시키는 작업들은 최근 컴퓨터로 쉽게 할 수 있지만 마그리트는 이미 20세기 초에 이런 작업들을 작품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선 '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감상 소감을 피력했다. 특히 '광할한 바다''신뢰''순례자' 등은 소재들의 '엉뚱한 결합'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 같다며 "앞으로 연기에서도 마그리트식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미술관을 자주 찾는다는 앙드레 김(71)은 "마그리트는 자연과 인체의 아름다움을 미래 지향적인 신비감으로 풀어내 현대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거장으로 손색이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마그리트의 수작으로 꼽히는 '회귀'에 대해 "고향에 대한 귀소본능을 표현한 작품으로 보인다"며 "기하학적인 레이아웃과 색감에 시적언어를 결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요즘 마그리트의 예술철학이 기업들에 '가치혁신의 바이블'로 인기를 끄는 이유를 알겠다"며 "그의 작품이 팝아트와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영향을 준 만큼 패션계에서도 마그리트 바람이 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준익 감독(48) 역시 지난달 전시장을 찾아 1시간30분 동안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둘러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그는 "작품을 보면서 회화의 변형을 몸소 보여준 마그리트의 파격적인 예술세계가 가슴 한 쪽에 깊이 새겨졌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미술을 전공한 이 감독은 "마그리트의 걸작 '올마이어의 성''피의 소리'를 보는 순간 할리우드의 이방인으로 불리는 팀 버튼이 감독한 영화 '가위손'과 제작을 맡았던 '크리스마스의 악몽''유령신부' 같은 영화들에서 일관되게 변형한 영상 이미지가 마그리트 작품과 닮아있어 놀랐다"고 감탄했다. 그는 "마그리트 작품을 토대로 초현실주의적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 '매혹'을 제작 중"이라고 말했다. ○…방송인 배한성씨(61)는 "마그리트 그림은 환상적이고 시적이며 철학적인 데다 사색적이기도 하다"고 격찬한 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마그리트전을 보고 나니 그가 미술의 변혁을 시도한 화가이면서 가치혁신가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장 구성도 마그리트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선수'의 이미지를 컨셉트로 잡아 마치 정원을 산책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평소에도 샤갈,마티스 등 국내외 인기 작가의 전시를 자주 관람한다는 김신배 SK텔레콤 사장(53)은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 환경이 가치혁신 중심으로 급변하기 때문에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감성경영을 배우고 싶어 전시장을 찾았다"며 "앞으로 기업들도 세계 초일류를 지향하려면 마그리트 방식의 혁신적인 변화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1930년대 작품 '불길'을 살펴본 뒤 "자연의 아름다움을 붉게 물든 나뭇잎으로 표현한 것 같다"며 "개체 발생은 계통의 발생을 반복한다는 기하학적인 의미의 '프랙탈'을 연상시킨다"고 강조했다.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57)은 마그리트의 대표작 '대화의 기술'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마그리트가 거대한 돌 이미지를 차용해 '꿈(REVE)'이란 글자를 세긴 것은 다소 불안한 구성이지만 웅장한 삶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대한통운의 인재 경영은 이 같은 감성과 창의력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갑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kkk10@hankyung.com             ◆ 마그리트의 "말 말 말"     *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 나는 체념,인내,직업적 영웅주의,의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혐오한다.    나는 또한 장식미술,민속학,광고,발표하는 목소리,공기 역학,보이스카우트,방충제 냄새,순간의 사건,술 취한 사람들도 싫어한다.   * 나는 냉소적인 유머와 주근깨,여자들의 긴 머리와 무릎,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골목을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들을 좋아한다.   * 나에게 있어 회화는 색채를 병렬하는 예술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색채는 실제적인 면을 상실하고 대신 영감을 받은 사유를 드러내게 한다.   *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그리려 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   *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징은 시의 신비한 현실에 집착하기 위한 것이며 전통에 매우 충실한 생각에 속한다.   * 내가 생각하기에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소 생생한 감정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 들게 한다.   * 나는 우리의 멋진 말들이 목에 걸고 있는 쇠 방울들이 구덩이의 가장자리에서 자라나는 위험한 식물과 같다고 믿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사진찍기를 좋아헸고 말년에는 영화도 찍었습니다. 14살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15살에 만난 여자 조제트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파리 화단의 텃새로 작은나라 벨기에의 설움을 겪으며 저항하고 분노하던 그림도 조제트가 말리자 다시 초현실주의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우울증 환자였습니다. 끊임없이 꿈꾸고 새로움을 시도하는 엉뚱한 장난꾸러기 병자였습니다.     그의 아내 조제트와 함께   가족 사진     르네 마그리트 [1898.11.21~1967.8.15]           벨기에의 화가. 큐비즘(입체파)의 영향을 받았고, 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운동에 참가했다. 그러나 형이상회화파와 일맥상통하는, 신변 물체의 결합과 병치(竝置), 변모 등으로 신선하고 시적(詩的)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쪽을 좋아했다.   원어명   René Magritte 국적   벨기에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벨기에 레신 주요작품   《여름의 계단》(1937)   레신 출생. 1916년부터 브뤼셀의 미술학교에 다녔다. 얼마 동안 큐비즘(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다음, 1926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 체류하여, 시인 P.엘뤼아르 등과 친교를 맺고, 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A.브르통 등이 제창하는 오토마티슴이나 편집광적인 꿈의 세계 탐구에는 동조하지 않았으며, G.키리코 등의 형이상회화파와 일맥상통하는, 신변 물체의 결합과 병치(竝置), 변모 등으로 신선하고 시적(詩的)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쪽을 좋아했다.  작풍(作風)은 《여름의 계단》(1937) 등에서 볼 수 있듯이 1940년경까지 독자적으로 성숙했는데, 서로 고립한 현실적 물체와 논리를 뒤집음으로써 재미있게 서로 결합시키고, 명쾌하게 묘사하여 매혹적인 환상의 세계를 그렸다. 이러한 평이하고 깔끔한 작품들은 밤의 신비나 괴기를 즐기는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주목되었다.                                         천경자-1980년대 그림      발리섬의 소녀    모뉴먼트 밸리    재즈    윤사월    태국 무용수    마아가렛 미첼 생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나바호족의 여인    아이누 여인  누가 울어 1    아파치족의 여인    막은 내리고    자마이카의 고약한 여인   누가 울어 2  
792    民畵의 世界 댓글:  조회:5142  추천:0  2015-03-29
  [民畵의 세계] 한국만의 유일한 그림...민화               민화: 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여 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또는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된 실용화(實用畵)를 말한다. 조선 후기 서민층에 유행하였으며, 이규경(李圭景:1788∼1865)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이를 속화(俗畵)라 하고, 여염집의 병풍·족자·벽에 붙인다고 하였다.   대부분이 정식 그림교육을 받지 못한 무명화가나 떠돌이화가들이 그렸으며, 서민들의 일상생활양식과 관습 등의 항상성(恒常性)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였기 때문에 창의성보다는 되풀이하여 그려져 형식화한 유형에 따라 인습적으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민화는 정통회화에 비해 수준과 시대 차이가 더 심하다.   민화는 장식장소와 용도에 따라 종류를 달리하는데 이를 화목(畵目)별로 분류하면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어해도(魚蟹圖)·작호도(鵲虎圖)·십장생도(十長生圖)·산수도(山水圖)·풍속도(風俗圖)·고사도(故事圖)·문자도(文字圖)·책가도(冊架圖)·무속도(巫俗圖) 등이 있다.   ① 화조영모도: 민화 가운데 종목이 가장 많으며 꽃과 함께 의좋게 노니는 한 쌍의 새를 소재로 한 화조도가 많다. 화조도는 매화·동백·진달래·개나리·오동·솔·버드나무·메꽃·해당화 등과 봉황·원앙·공작·학·제비·참새·까치 등을 물이나 바위와 함께 그렸다.   또한 주로 병풍으로 재구성되어 신혼부부의 신방 또는 안방 장식용으로 쓰였다. 이 밖에도 작약·월계·모란·옥잠화·수선·들국화·난초에 나비나 메뚜기·꿀벌 등을 그린 초충도(草蟲圖)와 사슴·토끼·말·소·호랑이 등을 산수 속에 표현한 영모도가 있다. 이 소재들은 단독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으며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도 단독으로 그려 혼례식의 대례병(大禮屛)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② 어해도:물속에 사는 붕어·메기·잉어·복어·
791    정신분석학 / 프로이드 댓글:  조회:5120  추천:0  2015-03-29
지그문트 프로이트(독일어: Sigmund Freud, 1856년 5월 6일 ~ 1939년 9월 23일)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학파의 창시자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억압의 방어 기제에 대한 이론, 그리고 환자와 정신분석자의 대화를 통하여 정신 병리를 치료하는 정신분석학적 임상 치료 방식을 창안한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또 그는 성욕을 인간 생활에서 주요한 동기 부여의 에너지로 새로이 정의하였으며, 자유 연상, 치료 관계에서 감정 전이의 이론, 그리고 꿈을 통해 무의식적 욕구를 관찰하는 등 치료 기법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뇌성마비를 연구한 초기 신경병 학자이기도 하였다. 신프로이트주의에서 프로이트의 많은 이론을 버리거나 수정하였으며, 20세기 말에 심리학 분야가 발전하면서 프로이트 이론에서 여러 결함이 드러났으나, 프로이트의 방법과 관념은 임상 정신 역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인문 과학과 일부 사회 과학에서 계속 영향을 주고 있다.     목차   [숨기기]  1 의과 대학 2 프로이트와 정신 분석 3 말년 4 성품 5 프로이트의 심리학 5.1 무의식과 꿈의 분석학 5.2 성과 심리 5.3 자기 방어 기제 6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 7 저서 목록 7.1 단행본 7.2 편집본 7.3 저서 목록 : 영어 8 각주 9 참고 문헌 10 바깥 고리   의과 대학[편집] 프로이트는 법을 공부하기로 했다가 빈 대학교의 의과 대학에 입학하여 다윈주의자였던 카를 클라우스 교수 밑에서 공부하였다.[1] 그가 의대를 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다윈의 ≪종의 기원≫과 괴테의 ≪자연≫에 대한 독서 때문이었다. 프로이트는 1885년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장 샤르코 밑에서 장학생으로 약 5개월간 연구하면서 히스테리와 최면술에 특히 관심을 가졌는데, 이것은 장차 정신분석학을 창안하는 데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된다. 당시 뱀장어의 생애 주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프로이트는 뱀장어의 수컷 생식 기관을 연구하면서 트리에스테의 오스트리아 동물학 연구소에서 4주간 지냈으며, 전임자들보다 별로 많은 것을 알아내지 못한 채 뱀장어 수백 마리를 해부하였다. 1876년에 그는 "뱀장어의 정소"라는 첫 논문을 Mitteilungen der osterreich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에 실었는데, 여기서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였다. 별달리 성공을 거두지 못해 명성을 얻지 못하자, 프로이트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꾸게 된다.[2][3][4] 1874년, 독일의 생리학자 에른스트 빌헬름 본 브뤽케가 '생리학 강의'를 출간하여 "정신 역학"의 개념을 제안하였는데,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을 공식화했던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물리학자 헤르만 폰 헬름홀츠와 협동하여 연구한 그는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는 에너지-체계이며, 이 법칙에 지배받는다고 주장하였다. 그 해에 빈 대학교에서 브뤽케는 의대 1학년생이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주임 교수였으며, 프로이트는 그의 새로운 "역학적" 생리학을 받아들였다. 브뤽케의 '생리학 강의'에서 그는 살아있는 유기체는 하나의 역학계이며 화학과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급진적인 견해를 내놓았다.[5] 정신 및 정신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한 프로이트의 역동적 심리학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였다.[5] 존 볼비에 따르면, 화학과 물리학의 원칙에 기반을 둔 프로이트의 기본적인 모델은 브뤽케, 메이네르트, 브로이어, 헬름홀츠, 헤르바르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6] 1879년, 프로이트는 1년간의 의무 군 복무를 수행하고자 연구를 잠시 접어두었으며, 1881년에 논문 "하급 어류종의 척수에 관하여"(Über das Ruckenmark niederer Fischarten)로 의학 박사(M.D.) 학위를 받았다. 프로이트와 정신 분석[편집] 1885년 10월에 프로이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신경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와 공동 연구차 파리에 갔다. 그는 나중에 이때의 파리 체류로 재정적으로 가망이 떨어지는 신경학 연구 대신 정신 병리 치료로 진로를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하였다.[7] 샤르코는 히스테리와 히스테리 환자의 최면 감수성을 전공하였으며, 그는 청중 앞 무대에서 히스테리 환자를 자주 시연하였다. 나중에 프로이트는 최면 기법을 가능성이 있는 치료 방식에서 버렸으며, 자유 연상과 꿈 분석을 선호하게 된다.[8] 샤르코 자신도 말년에 히스테리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였다.[9] 1886년에 프로이트는 마르타 베르나이스와 결혼한다. 그 뒤 자신의 신경과 진료소를 차린다. 아내의 아버지 베르만은 함부르크의 수석 랍비였던 이작 베르나이스의 아들이었다. 프로이트는 신경계 환자들에게 최면 기법을 실험하였으나 많은 대상자들에게 최면이 쓸모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이 치료 방식을 포기하였으며, 환자와 본인의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치료법을 썼다. 이 방식은 "대화 치료"로 알려지게 되는데, 대화의 최종적인 목적은 환자가 처음에 거부하고 있으며 무의식에 갇힌 강력한 감정 에너지를 풀어주어 위치짓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이렇듯 환자가 어떤 감정을 거부하는 것을 "억압"이라고 불렀으며, 그는 이것이 종종 정신의 정상적인 기능에 해를 끼치며 육체적 기능까지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를 "정신 신체증"(심신증)이라고 설명하였다. ("대화 기법"이란 용어는 원래 프로이트의 동료인 요제프 브로이어의 환자인 안나 O.(Anna O.)가 만든 말이었다) "대화 기법"은 정신 분석학의 기초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10] 나이 40대에 프로이트는 수많은 심신증 장애와 더불어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포, 그 밖에 공포증에 시달렸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꿈, 기억 그리고 본인의 인격 발달의 변천에 대해 탐색하는 데 몰두하였다. 이렇게 자신을 분석하면서 프로이트는 1896년에 죽은 자신의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에 대해 적대감을 느꼈으며,[11] 또 어린 시절 매력적이고 따뜻하며 포근했던 어머니 아말리아 프로이트에게 느낀 성적 감정을 상기하였다. 자기 분석을 계속하여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들을 모아 1899년 11월, 라이프치히와 빈에게 동시에 《꿈의 해석》을 출판했다. [12] 그리고 정신학 분석을 연구하여 빈 정신 분석 학회를 조직했다. 1900년과 1902년에 책을 출간한 이후로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늘어났으며, 지지자 집단도 생겼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비평하는 지지자들과 충돌하기도 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원래 프로이트의 생각을 지지하던 카를 융이었다. 두 사람이 결별한 이유는 융이 종교와 신비주의에 흥미를 가지고 다룬 탓도 있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비과학적이라고 보았다.[13] 말년[편집] 1930년, 프로이트는 심리학과 독일어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 상을 받았다. 3년 뒤에 나치가 독일에서 집권하였으며, 이들이 불태우고 없앤 책 가운데서도 프로이트의 책이 특히 두드러졌다. 1938년 3월에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였다. 그리하여 빈에서 반유대주의 감정이 들끓었으며, 프로이트와 가족의 집에는 비밀 경찰들이 들이닥치기도 하였다. 또 빈 정신 분석 학회가 해산당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책과 재산이 모두 몰수당하자, 프로이트는 "자유롭게 죽기 위하여" 망명길에 오르기로 결심하였다. 그와 가족은 1938년 6월에 빈을 떠나 런던 햄프스티드의 20 메어스필드 가든스(20 Maresfield Gardens)로 이주하였다. 스위스 코티지근처에 벨사이즈 길(Belsize Lane)과 피츠존 거리(Fitzjohn's Avenue)의 한쪽 모퉁이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프로이트는 구강암 때문에 생전에 30번이 넘도록 수술을 치렀다. 1939년 9월에 그는 의사와 친구 막스 슈어를 설득하여 자살을 돕도록 하였다. 프로이트는 미완성 원고 을 남겨두고 1939년 9월 23일에 죽었으며, 죽은 지 사흘 뒤에 그의 유해는 영국 골더스 그린 공동 묘지에 매장되었다. 성품[편집] 프로이트는 시간 약속 같은 것을 지나칠 정도로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었다. 영국제 양모 정장에 옷감은 꼭 아내가 골라준 것을 썼다. 젊은 시절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농담 삼아 "양복장이의 인상이 내게는 담당 교수의 인상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14] 프로이트의 심리학[편집] 무의식과 꿈의 분석학[편집] 무의식이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대중화 한 기구인 심리학의 정신분석학회의 창시자이다. 그는 최면과 최면이 어떻게 신경증 치료에 도움을 주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후에 '대화 치료'로서 지금 무엇이 알려져 있는가의 발전에 대해서 자유연상과 꿈의 해석을 지지하며 최면술을 포기한다. 이들은 정신분석학의 핵심 요소가 된다. 프로이트는 특히 그 당시에 히스테리라고 불렸던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이는 지금 전환신드롬이라고 불리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들과 환자에 대한 그의 치료는 19세기에 비엔나에서 논쟁이 되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프로이트의 아이디어는 그것들을 과학적 의학적 논문으로서 계속 논의되는 것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일반 문화에서 종종 논의되고 분석되어 왔다. 자유 연상(심리역동이론)은 심리학에 사용되는 기술로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창시되었다. 프로이트는 최면술이 틀리기 쉽고 의식이 있는 동안에 중대한 기억에 대하여 환자들이 회복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최면술로 치료하기를 그만두었다. 자유연상기법을 통해 프로이트는 명백하게 중요하지 않거나 잠재적으로 환자를 압박할 수 있는 혼란스러운 기억이 될지라도 그런 것에 관계없이 환자들에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말하도록 했다. 이 기법은 모든 기억은 단일 연합의 네트워크에 정렬되어 있고 당장이든 후일에든 그것은 중대한 기억과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불행하게도 프로이트는 기억해내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고통스럽고 중요한 기억이 환자에게 저항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결국 일정한 기억들이 철저하게 억압되어 있다가 정신의 의식 영역으로 뚫고 올라올 것이라는 견해를 갖게 된다. 프로이트의 궁극적인 정신분석학적 치료는 그것들을 정신 깊숙이 묻어버리는 내부적인 정신 갈등으로서의 이러한 기억들의 회상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며, 자유 연상 기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신에 관한 연구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성과 심리[편집] 프로이트는 신체 부위에서 리비도의 이동에 따라 쾌감을 추구하는 신체부분 또는 방법이 달라지는데 따라 발달 단계를 구분하였다.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성욕기로 나누는데 이를 심리성적 발달 단계(psychosexual developmental stage)라고 한다. 처음의 세 단계에서는 자신의 신체부위에서 만족을 추구하므로 〈전성욕기〉(pregenital stage)라고 한다. 뒤의 두 단계에서는 특정의 신체부위가 아니라 이성관계 등 사회적 활동을 통해 만족을 추구하므로 〈성욕기〉(genital stage)라고 한다. 1. 구강기(oral stage, 0~2세) 이 시기에는 입이 두 가지 형태의 행동을 한다. 먹고 마시는 흡입행동과 깨물고 뱉어내는 행동이다. 흡입 행동에 고착되면 먹고 마시고 흡연과 음주, 키스 등에 관심이 많으며 성장하여 낙천적이고 의존적이 된다. 이가 나올 때에 깨물고 뱉어내는 등 입의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고착되면 성격적으로 적대감, 질투, 냉소적, 비관적, 공격적이 되고 남을 통제하려고 한다. 2. 항문기(anal stage, 2~4세) 생후 첫 해에는 부모들이 아동의 욕구가 부모를 통하여 최대한 충족되지만 배변훈련시기부터는 아동은 차츰 욕구충족이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으며 거부되기도 하고 따라서 유예해야 함을 배운다. 이 시기에는 리비도가 항문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배변활동을 통해 쾌락과 욕구충족을 느끼는데 적절히 훈련하여 아동의 욕구가 충족되면 자신의 배설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창조물로 보기 때문에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성격이 된다. 배변훈련이 지나치게 엄하거나 잘 학습되지 못하면 부모의 요구에 대항하는 적대적, 가학적, 파괴적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항문을 이완시켜 배변하는 것보다 조이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경우 지나치게 깔끔하여 결벽증적인 성격이 나타난다. 그 밖에 융통성없는 기계적 성격, 구두쇠 심리가 나타난다. 3. 남근기(phallic stage, 4~6세) 리비도가 성기에 집중되어 이의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만짐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시기이다. 성 차이를 인식하고 출생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남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빠져 어머니를 성적 애착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두려움이 나타난다. 여아는 남아와 비교하여 남근선망 등 열등감과 좌절감을 겪는 동시에 아버지를 성적 애착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어머니를 적대시하는 일렉트라 콤플렉스에 빠진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콤플렉스 현상은 동성 부모의 성역할을 학습함으로써 해소된다. 해소 정도에 따라 성역할 정체감과 성인기의 이성에 대한 태도가 결정된다. 4. 잠복기(latency stage, 6~12세) 초등학교 시기부터는 성적 욕구의 만족이 신체의 특정 부위의 자극이 아니라 친구관계, 취미활동, 스포츠 등 사회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는 쾌락원칙을 버리고 현실원칙을 따르며 아버지의 권위와 금지 또는 양심에 따라 사회적 도덕적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5. 성욕기(genital stage, 12세 이후) 사춘기로서 성적 충동을 정상적인 성욕으로 통합하는 시기이며, 정서적 해방과 독립을 추구하는 심리적 이유기이다. 앞서의 단계들에서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갈등이 있다. 그러나 앞서의 어느 단계에 고착되지 않았다면 이성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이성관계와 또래관계 등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활동을 통해 만족을 찾고 원시자아의 충동을 승화시킨다. 자기 방어 기제[편집]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으로써 전략 압도되는 불안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함은 물론 기능을 수행하도록 도와준다. 자기 방어 기제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무의식 차원에서 작용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현실을 왜곡하게 지각하여 불안을 감소시키도록 한다는 것이다. ① 억압: 가장 기본적인 방어기제. 위협을 주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욕구, 사고, 기억이 의식화되거나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는 과정(예: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적 충동이나 욕구를 의식에 떠오르지 못하도록 함) ② 동일시: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특성(가치, 태도, 행동 등)을 내면화하는 과정 (예: 남아가 거세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방어하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성적 충동을 억압하고 아버지를 동일시함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을 해소하고 애정을 획득함) ③ 부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를 거부하는 것, 백일몽, 환상 (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 ④ 반동형성: 위협적인(공격적인) 충동을 의식수준에서 정반대의 충동, 말, 행동으로 대치하는 과정 (예: 음주욕구가 강한 사람이 금주운동에 참여하는 것) ⑤ 투사: 수용하기 어려운 충동, 사고, 감정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으로 귀인하는 과정(예: 자기 내부에 증오심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이 자기를 증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⑥ 주지화(지성화): 위협적인 대상에 대해 정서적으로 관련되지 않기 위해 그 대상에서 분리되는 과정(예: 불쾌한 경험을 해야 하는 전문가, 검시관, 간호사, 외과의사 등이 많이 사용) ⑦ 치환(전위): 현실적인 제약요인으로 인해서 충동이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때 다른 대상을 통해 충동이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과정(예: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난 후 동생에게 화풀이하는 형) ⑧ 승화: 치환의 한 형태로, 성적 충동이나 공격적 충동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예: 직접 충족시킬 수 없는 성적 충동을 그림이나 음악, 문학작품을 통해 충족시키는 예술가) ⑨ 합리화: 수용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실제 이유가 아니라 그럴 듯한 이유를 둘러대거나 변명을 통해 난처한 입장이나 실패를 모면하려는 일종의 자기 기만전략(예: 이솝우화의 ‘여우의 신포도’) ⑩ 고착: 새로운 발달단계로 이행할 때 경험하는 불안이나 좌절이 극심할 때 정상적인 발달이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중단되는 현상(예: 지나치게 의존적인 아동이 독립적인 행동을 학습하는 것이 불안한 경우 고착 방어기제 사용) ⑪ 퇴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초기 발달단계로 되돌아가거나 안정되고 즐거웠던 인생의 이전 단계로 후퇴하는 것(예: 성인이 토라지거나 말을 하지 않는 것) ⑫ 보상: 신체적 조건, 지적 특성, 성격 특성의 약점이나 결함을 극복하거나 감추는 것(예: 외모에 열등감을 느끼는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편집]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일 수 없다고 보았다. 아돌프 그륀바움은 정신분석학은 반증가능하며, 사실상 틀렸음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비판자들과 옹호자들간의 논쟁은 때때로 매우 격렬해져서, 이러한 논쟁들은 프로이트 전쟁으로 불린다. 행동주의 심리학, 진화심리학, 인지심리학은 정신분석학을 의사 과학으로 취급하여 인정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자들 역시 정신분석에 대해 회의적이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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