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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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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    굴원/ 어부사(漁父辭) 댓글:  조회:4243  추천:0  2015-04-01
  굴원(屈原)은 기원전, 그러니까 BC 343년 경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초(楚)나라에서 태어나 BC 289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하진 않다. 성(姓)은 굴(屈) 이름은 평(平)이고 자는 원(原)이다. 양쯔 강(揚子江) 중부 유역에 자리한 큰 나라였던 초(楚)나라에서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의 친척이었던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아 20대에 좌도(左徒)라는 중책을 맡을 정도로 총명하였고 또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그때부터 그의 명성은 초(楚)나라를 비롯한 인접 제(齊)나라와 진(秦)나라에까지 이름이 날 정도로 널리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굴원(屈原)   그 무렵 법령(法令) 입안(立案)을 두고, 조정의 정적(政敵)관계 였던 상관대부(上官大夫)와 충돌이 자주 일어나자 굴원을 시기하고 모함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결국엔 그의 터무니없는 중상모략(中傷謀略)으로 면직당하고 왕 곁에서 멀어지게 된다.   굴원(屈原)은 제(齊)나라와 동맹을 맺어 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며 소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진(秦)나라의 재상 장의(張儀)와 내통하고 있던 간신(姦臣)들과  회왕(懷王)이 총애하는 애첩(愛妾)의 집요한 방해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회왕(懷王)은 오히려 제(齊)나라와 단교하고 진(秦)나라에 붙었으나 진(秦)나라에 이용만당하고  결국에는 막내아들 자란(子蘭)으로 부터 살해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 아닐수 없다.   회왕(懷王)이 죽은 뒤 큰아들인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아버지를 죽게 만든 막내아들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이라 불리는 재상자리에 오르게 된다. 굴원(屈原)은 회왕을 객사케 한 자란(子蘭)을 백성들과 함께 강력 비난하다가  또 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 강(揚子江) 이남의 소택지(沼澤地)로 추방되고 만다. 지금 소개하는 "어부사(漁父辭)"는 그때 쓴 작품이다.       그는 유배지에서 울분을 삼키며 민속의식(民族意識)을 관찰하면서,  그의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초(楚)나라를 비롯한 인접국의 전설들을 본격적으로 수집했다.  맨 처음 회왕에게 내쫓기어 유배되었을 때는 굴원(屈原)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長篇) 서정시(敍情詩)인 "이소(離騷)"를 써서  자신의 결백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었다. "이(離)"는 "만나다"의 뜻이고 "소(騷)"는 "근심"이라는 뜻이니, 이소(離騷)란 곧 "근심을 만나다"라는 뜻이 된다. 이소(離騷)의 내용은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난 후의 시름과 연군(戀君)의 정(情)을 노래한 서정적(敍情的)인 내용으로 아주 긴 장시(長詩)이다. 굴원의 작품 이소(離騷)를 "이소경(離騷經)"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소경(離騷經)이라고 부르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그의 작품 이소(離騷)를 높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 글을 쓰면서... 원래는 어부사(漁父辭)보다는 그의 대표작으로 이름이 더 알려진 "이소(離騷)"를 소개코자 하였으나, 그 내용이 방대하고 산문형식의 詩라서 요즘의 시각으로 접하다보면  지루한 점이 많은지라 읽고자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 같아서 굴원의 또 다른 명작(名作) "어부사(漁父辭)"로 바꿔서 글을 썼다.   굴원(屈原)은 억울하게 모함 받고 쫏겨난 점을 애타게 간(諫)하며 충정(忠情)을 아뢰어 한 번은 용서 받은바 있었으나,  다시금 간신(姦臣)들의 참소(讒訴)를 받아 경양왕(頃襄王)에 의해 멀리 양자강 남쪽 강남(江南)으로 내쫓기는 몸이 되고 만다. 그로부터 그는 백성들로부터는 지조 강한 애국시인(愛國詩人)이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유명세를 타면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詩人이 되었다. 그는 유배에 대한 절망감으로 강가를 하염없이 거닐며 울분을 삭히며 詩를 짓기도하면서 10 년 간을 방랑 생활로 보낼 무렵 자신이 그토록 우려하고 걱정한 대로,  진(秦)나라에 의해 조국인 초(楚)나라가 결국 멸망 당하자,  울분을 참지 못한 굴원(屈原)은 온 몸에 돌을 매달고 미뤄 강 즉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만다. 그 때가 그의 나이가 54세 였다고 전하나 이 또한 정확하진 않다. 또 다른 문헌에는 62세에 자결했다고 전하기도 하는데. 앞 뒤의 정황과 당시의 수명을 유추해 보면 54세가 더 정확도가 높은 것 같다.     굴원(屈原)이 투신 자살한 현재의 지명(地名)인 멱수(汨水) 강가에는 그의 무덤이 있으며,  그 곁에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 세워져 애국(愛國) 충절(忠節)을 기리고 있다.  중국에서 굴원이 자결한 날인 음력 5월 5일을 단오절(端午節)이라고 해, 그를 추모하는 제일(祭日)로 정해져 내려오고 있다. "배로 굴원(屈原)을 구한다"는 뜻이 담긴 놀이로,  뱃머리에 용머리를 장식한 용선(龍船)을 타고 북을 치면서 경주를 벌이는 용선경도(龍船競渡)가  중국과 홍콩 마카오등에서는 지금도 음력 5월 5일에 열리는 연중 축제행사로 성대하게 치러진다. 당시 굴원(屈原)의 시신을 찾고자 백성들이 너도나도 배를 타고 와서, 물고기가 시신을 훼손치 못하도록 북을 치고 쫓으며  물속을 휘젖던 것에서 유래한 놀이가 바로 용선뱃놀이의 기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단오날에 간혹 쌀을 넣은 대통밥을 소태나뭇잎으로 싸는 것이나, 갈대잎이나 대나무잎으로 싸서 찐 수리취라는 떡을 물고기에게 던져주는 풍습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물속에 잠긴 굴원(屈原)이 물고기에게 뜯어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의 뜻에서 이어져 내려온 풍습이라고 한다.  대나뭇잎으로 싸서 찐 찰떡을 단오날에 강에 던져 물고기에게 주기도 하고,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풍습등은 모두 굴원(屈原)의 충정(忠政)을 기리는데서 유래한 풍습으로,  우리나라의 단오날 역시 중국에서 오래전에 전해진 풍습이 그 기원이라 하겠다.     어부사(漁父辭)는 굴원(屈原)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어부사(漁父辭)에는 굴원의 강직한 성품이 묻어나며, 어부의 달관(達官)한 삶의 자세와 굴원의 인품이 대조되어 그 빛을 더하는 작품이다. "모두가 취해 있으나 홀로 깨어있다"라는 "중취독성(衆醉獨醒)"의 고사성어는 이 어부사에서 연유한 말이다. 굴원(屈原)의 몇 몇 작품들은 고대 중국의 명시선집(名詩選集)인 초사(楚辭)에 실려 내려오고 있다.  이 시집(詩集)은 후세 詩人들이 굴원(屈原)과 송옥등 초나라 사람들의 전설적인 작품과 삶에 대해 쓴 글들이 실려 있는데, 워낙 오래전인 기원전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에 살던 인물들을  지금에 와서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거의가 불가능하며, 초사(楚辭)에 실려 내려오는 작품을 통해서 그의 삶과 詩 그리고 정신과 충정(忠政)을 헤아릴 수 밖에 없다.   굴원의 작품이 실린 초사(楚辭)의 내용들은 한(漢)나라 때 크게 유행한 한부(漢賦)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에게서 비롯된 시가인 초사(楚辭)는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와 같은 당(唐)나라 때의 詩人들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굴원(屈原)의 작품과 삶이 차지하는 비중은 문학사(文學史)에서 뿐만 아니라  충절(忠節)의 대명사로 높이 평가 되는 전설적인 인물로 기원전(紀元前)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詩人이며 정치가(政治家)였던 그가 대표격이라 하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충정(忠政)에서 우러나는 직언(直言)은 위정자(爲政者)들의 귀에 늘 거슬렸다. 쓰디쓴 말이기에 들었다 해도 무시하기 일쑤였으며, 직언을 하는 신하를 눈에 가시쯤으로 여기다 크게 화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언로(言路)가 막혀 소통이 없는 위정자(爲政者)는 결국에 가서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걸 역사는 빈번하게 반복해서 일러준다. 목숨을 걸고 충정(忠政)으로 간(諫)하는 자(者)를 이젠 찾아보기 어렵게 된 세상이지만, 지난 역사속에선 올곧은 선비들이 하나뿐인 소중한 목슴을 충정(忠政) 앞에 과감하게 던졌던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정직한 인품으로 길이길이 후손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위안(慰安)과 영광으로 여겼으며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다 갔다.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의 말처럼 "역사(歷史)는 돌고 돈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반복해서 돌고 돈다.  2천 년 전에 일어났던 답답한 일들이 지금도 종종 되풀이 되는 것을 보며, 人間의 과욕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지난날의 과오를 반복해서 되풀이하는 건 인간이 욕심으로 가득 찬 존재이기 때문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굴원(屈原)의 대표작 "어부사(漁父辭)"를 미천한 졸필(拙筆)로 여기 옴기고자 하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어부사(漁父辭): 어부 이야기 屈原旣放(굴원기방): 굴원이 이미 쫓겨나 游於江潭(유어강담): 강가와 물가에 노닐고 行吟澤畔(행음택반):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顔色樵悴(안색초췌): 얼굴색은 초췌하고 形容枯槁(형용고고): 모습은 수척해 보였다.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어부견이문지왈 자비삼려대부여): 어부가 그를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何故至於斯(하고지어사):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하니, 屈原曰, 擧世皆濁(굴원왈 거세개탁): 굴원이 말하기를, 세상이 다 혼탁한데 我獨淸(아독청): 나 홀로 깨끗하고 衆人皆醉(중인개취):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我獨醒(아독성): 나 홀로 깨어 있었습니다 是以見放(시이견방): 이런 까닭에 추방을 당했다.고 하니 漁父曰 聖人(어부왈 성인):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不凝滯於物(불응체어물): 세상 사물에 얽매이지 않지만 而能與世推移(이능여세추이):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갈 수 있어야 합니다. 世人皆濁(세인개탁):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何不淈其泥而揚其波(하불굴기니이양기파): 어찌 진흙탕을 휘어저 그 물결을 일으키지 않으며, 衆人皆醉(중인개취): 뭇 사람이 모두 취해 있거늘 何不飽其糟而歠其醨(하불포기조이철기리): 어째하여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를 마시지 않으십니까? 何故로 深思高擧(하고로 심사고거):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自令放爲(자령방위):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게 하십니까? 하니 屈原曰, 吾聞之(굴원왈, 오문지): 굴원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新沐者(신목자):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必彈冠(필탄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新浴者(신욕자): 새로 목욕한 사람은 必振衣(필진의):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安能以身之察察(안능이신지찰찰): 어찌 맑고 깨끗한 몸으로   受物之汶汶者乎?(수물지문문자호):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寧赴湘流(녕부상류): 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葬於江魚之腹中(장어강어지복중): 물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安能以皓皓之白(안능이호호지백):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而蒙世俗之塵埃乎(이몽세속지진애호):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하니 漁父(어부): 어부는 莞爾而笑(완이이소): 빙그레 웃고서, 鼓枻而去(고설이거): 노를 두드리고 떠나가면서, 乃歌曰, 滄浪之水淸兮(내가왈, 창랑지수청혜): 이렇게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 창랑의 물이 흐리면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내 발을 씻으리라. 하곤 遂去不復與言(수거불부여언): 마침내 떠나가고 다시는 대화가 없었다.    
819    굴원/ 리소(離騷) 댓글:  조회:3511  추천:0  2015-04-01
   이소경(離騷經)은 굴원의 이소.  다음은 원문과 해석본.    離騷經   帝高陽之苗裔兮,朕皇考曰伯庸。攝提貞于孟陬兮,惟庚寅吾以降。 皇覽揆余初度兮,肇錫余以嘉名。名余曰正則兮,字余曰靈均。 紛吾旣有此內美兮,又重之以脩能。扈江離與辟芷兮,紉秋蘭以爲佩。 汩余若將不及兮,恐年歲之不吾與。朝搴阰之木蘭兮,夕攬洲之宿莽。   日月忽其不淹兮,春與秋其代序。惟草木之零落兮,恐美人之遲暮。 不撫壯而棄穢兮,何不改此度?乘騏驥以馳騁兮,來吾道夫先路。 昔三后之純粹兮,固衆芳之所在。雜申椒與菌桂兮,豈維紉夫蕙茝? 彼堯舜之耿介兮,旣遵道而得路。何桀紂之猖披兮,夫唯捷徑以窘步。 惟夫黨人之偸樂兮,路幽昧以險隘。豈余身之憚殃兮,恐皇輿之敗績。   忽奔走以先後兮,及前王之踵武。荃不察余之中情兮,反信讒而齌怒。 余固知謇謇之爲患兮,忍而不能舍也。指九天以爲正兮,夫唯靈脩之故也。 曰黃昏以爲期兮,羌中道而改路。初旣與余成言兮,後悔遁而有他。 余旣不難夫離別兮,傷靈脩之數化。   余旣滋蘭之九畹兮,又樹蕙之百畝。畦留夷與揭車兮,雜杜衡與芳芷。 冀枝葉之峻茂兮,願俟時乎吾將刈。雖萎絶其亦何傷兮,哀衆芳之蕪穢。   衆皆競進以貪婪兮,憑不猒乎求索。羌內恕己以量人兮,各興心而嫉妒。 忽馳騖以追逐兮,非余心之所急。老冉冉其將至兮,恐脩名之不立。   朝飮木蘭之墜露兮,夕餐秋菊之落英。苟余情其信姱以練要兮,長顑頷亦何傷? 攬木根以結茝兮,貫薜荔之落蕊。矯菌桂以紉蕙兮,索胡繩之纚纚。 謇吾法夫前脩兮,非世俗之所服。雖不周於今之人兮,願依彭咸之遺則。   長太息以掩涕兮,哀民生之多艱。余雖好脩姱以鞿羈兮,謇朝誶而夕替。 旣替余以蕙纕兮,又申之以攬茝。亦余心之所善兮,雖九死其猶未悔。 怨靈脩之浩蕩兮,終不察夫民心。衆女嫉余之蛾眉兮,謠諑謂余以善淫。 固時俗之工巧兮,偭規矩而改錯。背繩墨以追曲兮,競周容以爲度。 忳鬱邑余侘傺兮,吾獨窮困乎此時也。寧溘死以流亡兮,余不忍爲此態也。 鷙鳥之不群兮,自前世而固然。何方圜之能周兮,夫孰異道而相安。 屈心而抑志兮,忍尤而攘詬。伏淸白以死直兮,固前聖之所厚。   悔相道之不察兮,延佇乎吾將反。回朕車以復路兮,及行迷之未遠。 步余馬於蘭皐兮,馳椒丘且焉止息。進不入以離尤兮,退將復脩吾初服。 製芰荷以爲衣兮,集芙蓉以爲裳。不吾知其亦已兮,苟余情其信芳。 高余冠之岌岌兮,長余佩之陸離。芳與澤其雜糅兮,唯昭質其猶未虧。 忽反顧以遊目兮,將往觀乎四荒。佩繽紛其繁飾兮,芳菲菲其彌章。 民生各有所樂兮,余獨好脩以爲常。雖體解吾猶未變兮,豈余心之可懲。 女嬃之嬋媛兮,申申其詈予。曰:「鯀婞直以亡身兮,終然殀乎羽之野。 汝何博謇而好脩兮,紛獨有此姱節。薋菉葹以盈室兮,判獨離而不服。 衆不可戶說兮,孰云察余之中情。世並擧而好朋兮,夫何煢獨而不予聽,」   依前聖以節中兮,喟憑心而歷玆。濟沅湘以南征兮,就重華而敶詞: 啓《九辯》與《九歌》兮,夏康娛以自縱。不顧難以圖後兮,五子用失乎家巷。 羿淫遊以佚畋兮,又好射夫封狐。固亂流其鮮終兮,浞又貪夫厥家。 澆身被服强圉兮,縱欲而不忍。日康娛而自忘兮,厥首用夫顚隕。 夏桀之常違兮,乃遂焉而逢殃。后辛之菹醢兮,殷宗用而不長。 湯禹儼而祗敬兮,周論道而莫差。擧賢而授能兮,循繩墨而不頗。 皇天無私阿兮,覽民德焉錯輔。夫維聖哲以茂行兮,苟得用此下土。 瞻前而顧後兮,相觀民之計極。夫孰非義而可用兮,孰非善而可服。 阽余身而危死兮,覽余初其猶未悔。不量鑿而正枘兮,固前脩以菹醢。 曾歔欷余鬱邑兮,哀朕時之不當。攬茹蕙以掩涕兮,霑余襟之浪浪。   跪敷衽以陳辭兮,耿吾旣得此中正;駟玉虯以乘鷖兮,溘埃風余上征。 朝發軔於蒼梧兮,夕余至乎縣圃;欲少留此靈瑣兮,日忽忽其將暮。 吾令羲和弭節兮,望崦嵫而勿迫。路曼曼其脩遠兮,吾將上下而求索。 飮余馬於咸池兮,總余轡乎扶桑。折若木以拂日兮,聊逍遙以相羊。 前望舒使先驅兮,後飛廉使奔屬。鸞皇爲余先戒兮,雷師告余以未具。 吾令鳳鳥飛騰兮,繼之以日夜。飄風屯其相離兮,帥雲霓而來御。 紛總總其離合兮,斑陸離其上下。吾令帝閽開關兮,倚閶闔而望予。 時曖曖其將罷兮,結幽蘭而延佇。世溷濁而不分兮,好蔽美而嫉妬。   朝吾將濟於白水兮,登閬風而繫馬。忽反顧以流涕兮,哀高丘之無女。 溘吾遊此春宮兮,折瓊枝以繼佩。及榮華之未落兮,相下女之可詒。 吾令豐隆乘雲兮,求宓妃之所在。解佩纕以結言兮,吾令蹇脩以爲理。 紛總總其離合兮,忽緯繣其難遷。夕歸次於窮石兮,朝濯髮乎洧盤。 保厥美以驕傲兮,日康娛以淫遊。雖信美而無禮兮,來違棄而改求。 覽相觀於四極兮,周流乎天余乃下。望瑤臺之偃蹇兮,見有娀之佚女。 吾令鴆爲媒兮,鴆告余以不好。雄鳩之鳴逝兮,余猶惡其佻巧。 心猶豫而狐疑兮,欲自適而不可。鳳皇旣受詒兮,恐高辛之先我。 欲遠集而無所止兮,聊浮遊以逍遙。及少康之未家兮,留有虞之二姚。 理弱而媒拙兮,恐導言之不固。世溷濁而嫉賢兮,好蔽美而稱惡。 閨中旣以邃遠兮,哲王又不寤。懷朕情而不發兮,余焉能忍與此終古。   索藑茅以筳篿兮,命靈氛爲余占之。曰:「兩美其必合兮,孰信脩而慕之? 思九州之博大兮,豈唯是其有女?」曰:「勉遠逝而無狐疑兮,孰求美而釋女? 何所獨無芳草兮,爾何懷乎故宇?世幽昧以昡曜兮,孰云察余之善惡。 民好惡其不同兮,惟此黨人其獨異。戶服艾以盈要兮,謂幽蘭其不可佩。 覽察草木其猶未得兮,豈珵美之能當?蘇糞壤以充幃兮,謂申椒其不芳!」   欲從靈氛之吉占兮,心猶豫而狐疑。巫咸將夕降兮,懷椒糈而要之。 百神翳其備降兮,九疑繽其並迎。皇剡剡其揚靈兮,告余以吉故。 曰:「勉陞降以上下兮,求矩矱之所同。湯禹嚴而求合兮,摯咎繇而能調。 苟中情其好脩兮,又何必用夫行媒。說操築於傅巖兮,武丁用而不疑。 呂望之鼓刀兮,遭周文而得擧。甯戚之謳歌兮,齊桓聞以該輔。 及年歲之未晏兮,時亦猶其未央。恐鵜鴃之先鳴兮,使夫百草爲之不芳!」 何瓊佩之偃蹇兮,衆薆然而蔽之。惟此黨人之不諒兮,恐嫉妒而折之。   時繽紛其變易兮,又何可以淹留。蘭芷變而不芳兮,荃蕙化而爲茅。 何昔日之芳草兮,今直爲此蕭艾也。豈其有他故兮,莫好脩之害也。 余以蘭爲可恃兮,羌無實而容長。委厥美以從俗兮,苟得列乎衆芳。 椒專佞以慢慆兮,樧又欲充夫佩幃。旣干進而務入兮,又何芳之能祗。 固時俗之流從兮,又孰能無變化。覽椒蘭其若玆兮,又況揭車與江離。 惟玆佩之可貴兮,委厥美而歷玆。芳菲菲而難虧兮,芬至今猶未沬。 和調度以自娛兮,聊浮游而求女。及余飾之方壯兮,周流觀乎上下。   靈氛旣告余以吉占兮,歷吉日乎吾將行。折瓊枝以爲羞兮,精瓊爢以爲粻。 爲余駕飛龍兮,雜瑤象以爲車。何離心之可同兮,吾將遠逝以自疏。 邅吾道夫崑崙兮,路脩遠以周流。揚雲霓之晻藹兮,鳴玉鸞之啾啾。 朝發軔於天津兮,夕余至乎西極。鳳皇翼其承旂兮,高翶翔之翼翼。 忽吾行此流沙兮,遵赤水而容與。麾蛟龍使梁津兮,詔西皇使涉予。 路脩遠以多艱兮,騰衆車使徑待。路不周以左轉兮,指西海以爲期。 屯余車其千乘兮,齊玉軑而並馳。駕八龍之婉婉兮,載雲旗之委蛇。 抑志而弭節兮,神高馳之邈邈。奏《九歌》而舞《韶》兮,聊假日以婾樂。 陟陞皇之赫戱兮,忽臨睨夫舊鄕。僕夫悲余馬懷兮,蜷局顧而不行。   亂曰:已矣哉,國無人莫我知兮,又何懷乎故都? 旣莫足與爲美政兮,吾將從彭咸之所居。   고양 임금님 끝 자손이며 백용 어른의 아들로서 인의 해 인의 달 첫 정월 인의 날 이 몸이 태어났네. 내가 날 적 그때를 헤아려 어버이 내게 이름 주시니, 이름은 정칙, 자는 영균 아름다운 이름 내려주셨네. 날 적부터 고운 성품에 좋은 재주를 안에다 지녀 겉으로 향초를 몸에다 감고 추란을 엮어 허리를 찼네. 이 몸 닦기를 매양 보족한 양 행여 저 해가 그냥 갈세라, 아침엔 비산에 목란 꽃 캐고 저녁엔 모래톱에 숙낭을 캐네.   쉬지를 않고 세월은 흘러 봄은 어디로 가을이 갈마들어, 초목이 시들고 우수수 낙엽지니 아! 고운 님 그냥 늙었네 한창인 이때 악을 안 버리니 이걸 어이 두고 못 고치시나, 천리마 타고 달려오시면 앞서 좋은 길 인도하련마는― 옛 삼왕의 순수한 덕이여! 향기로운 그 꽃들 때문일세, 산초 계수가 한 둘 뿐이었나 혜초 구리때가 줄지었었네 요순임금님 빛나신 덕은 바른 길 좇아 정도에 드심일세 폭군 걸․주의 창피한 행적은 못 갈 지름길로 달렸던 탓이리. 제 배나 채우려는 못된 무리로 어둡고 좁은 길 험난해 가니, 어이 이 한 몸이 걱정되오리 님의 수레 꺼질까 맘 설레네.   앞으로 뛰고 뒤로 달리며 선황의 뒤를 잇게 하렸더니, 이 내 충정은 몰라주고 참소만 믿고 벌컥 성내시네. 바른 내 말이 이 몸에 화 될 줄을 알고도 차마 못 그치옴은, 하늘이 아시리! 이 내 충정을 오직 알뜰한 님 때문일세. 저녁에 만나자 기약했더니 아! 중도에 마음 변하셨네. 변치를 말자 맹세한 말씀 다 깨뜨리고 마음 옮기셨네. 님과 이별이 애타오리만 고운 님 그 마음이 하도 서럽네.   쉬지를 않고 고운 님 위해 드넓은 밭에 난초 혜초랑, 약초 아욱 구리때 심어 고이 가꾸며 기다렸었네.   그 향초들 무성해지면 때를 기다렸다 베려 했더니…… 때 아니 병든 걸 슬퍼하랴만 그 많은 향초들 거칠어지는 것이―   앞을 다투며 욕심을 내더니 가득 찼어도 주린 양 허덕이네, 내가 저 같은 줄 혼자 여겨 괜한 날 두고 강짜를 부리네. 남들은 이욕에 허둥대지만 이 나는 전혀 아랑곳없네, 늙음이 덧없이 닥치기 전에 조촐한 이름을 전하는 것만이…… 아침엔 떨어지는 목란의 이슬을― 저녁엔 국화꽃 씹으며 지내옵네, 진정 이 마음 곱게만 간직하면 배고픈 것 쯤이야 뭐 서러우리. 목란 뿌리 캐어 구리때 맺고서 승검초 꽃술 엮어 함께 엮어 입고, 계수 가지에 혜초를 매고 호승의 긴 띠 곱게 둘렀네. 옛 어진 분을 본받는 이 나여! 세속 사람들은 아무도 행하지 않네, 지금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지만 팽함님 끼친 법 기여 따르오리.   긴 한숨 쉬며 남몰래 우는 건 고생도 하고 많은 민생이 애처로와, 선미를 닦으며 조심도 했더니 아침에 간했다 고대 버림 받았네. 혜초띠를 보고 날 아주 버렸나 그 위에 구리때도 내겐 있었지, 하지만 이 마음에 소중한 것을 아홉 번 죽어도 한 않으리. 알뜰한 님이여!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의 마음을 자세 안 보시니, 남다른 이 나를 헐뜯는 이들 날 음란하다니 원망스럽네. 아! 교묘한 사람의 재주여 그림쇠 놓고서 예사로 고치는…… 먹줄 비켜 두고 굽은 길로 좇는…… 애써 뜻 맞추려 알랑수만 일삼네. 시름에 겨워 넋 잃고 서서 궁한 세상을 나만이 겪네만, 아무 때 죽어 흔적마저 없어져도 그런 태도야 차마 못 취하리. 매가 딴 새와 어울리지 않는 건 정녕 예로부터 빈 말이 아닐세, 각과 원이 어디 맞는 예 보았나 길이 서로 다른 걸 누가 상종하리. 마음을 굽히고 뜻을 억눌러 허물을 참고 욕을 비키며, 청렴결백 바르게 죽는 걸 옛 성인은 참말 아끼셨네.   잘못 든 길을 한을 하고서 목 늘여 주춤 돌아갈까 섰네, 이 내 수레를 옛 길로 돌리며 이제야 깨닫고 물러를 가네. 난초 향그런 못가를 거쳐 산초 언덕에 달려가 쉬네, 나아가자 님께 허물만 만났으니 물러가 조촐히 몸이나 닦으리. 마름 연핑으로 저고리 지어 입고 연꽃을 모아 치마를 입네, 날 알아주는 이 없으면 그 어떠리 이 마음 정녕 꽃다운 것을― 이 내 갓은 산처럼 우뚝 솟았는데 치렁치렁 늘어진 광채 어린 긴 띠, 방향과 악취가 섞여 있는 속에서도 깨끗한 천성은 깎이지 않았네. 갑자기 뒤돌아 시선을 흘리며 사방을 이제 가서 구경할까 하네, 이 몸에 긴 띠 한결 빛 어려 아름다운 향기 서언히 풍기네. 줄기는 품성이 저마다 다른데 나만이 유독 결백을 즐겨, 사지가 찢겨도 변치 않을 걸 이 마음 행여나 고칠 줄이야. 이런 날 두고 우리 누님은 날 위해 애타게 나무라시네, 곤이 직으로 화를 입더니만 끝내 우산서 쉬 죽더라며, 네 어이 직언을, 결백을 즐겨 미쁜 절개를 너만이 두고서, 집안에 가득히 납가세, 꼴인데 너만이 따로 멀리 하는가! 남에게 일일이 말 못할 것을! 너의 그 충정을 누가 알아 주리, 당을 짓느라 급급한 세상에 어쩌자고 외로이서 내 말을 안 듣나.    
818    굴원/ 오언절구 댓글:  조회:3376  추천:0  2015-04-01
굴원(屈原)의 詩(五言絶句)    日月千年鏡 (일월천년경)  해와 달은 천 년을 비추는 거울이요  江山萬古屛 (강산만고병)  강산은 만고의 병풍이라네  東西日月門 (동서일월문)  동과 서는 해와 달이 드나드는 문이요  南北鴻雁路 (남북홍안로)  남과 북은 기러기들의 길이라네.     江山萬古主 (강산만고주)  강산은 만고의 주인이요  人物百年賓 (인물백년빈)  사람은 백 년의 손님이네  世事琴三尺 (세사금삼척)  세상일은 석자거문고에 실어 보내고  生涯酒一盃 (생애주일배)  삶은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것.     春水萬四澤 (춘수만사택)  봄 물은 사방의 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峰 (하운다기봉)  여름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도 많더라  秋月揚明輝 (추월양명휘)  가을달은 밝은 빛으로 드날리니  冬嶺秀孤松 (동령수고송)  겨울 산에 외로운 소나무가 빼어나구나.     日月籠中鳥 (일월롱중조)  해와 달은 새장 속의 새  乾坤水上萍 (건곤수상평)  하늘땅은 물 위의 부평초  白雲山上蓋 (백운산상개)  흰구름은 산을 덮는 일산  明月水中?(명월수중주)  밝은 달, 물속의 구슬이라네.     月爲宇宙燭 (월위우주촉)  달은 우주의 촛불이며  風作山河鼓 (풍작산하고)  바람은 산하를 두드리는 북이라네  月爲無柄扇 (월위무병선)  달은 자루 없는 부채  星作絶瓔珠 (성작절영주)  별은 끈 끊어져 흩어진 구슬.     春作四時首 (춘작사시수)  봄은 사계절의 처음이 되고  人爲萬物靈 (인위만물영)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네  水火木金土 (수화목금토)  수화목금토는 오행이요  仁義禮智信 (인의예지신)  인의예지신은 오상(五常)이라네.     夫婦二姓合 (부부이성합)  부부는 두 개의 성이 합 하였고  兄弟一氣連 (형제일기련)  형제는 한 기운으로 이어졌네  父慈子當孝 (부자자당효)  부모는 사랑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兄友弟亦恭 (형우제역공)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리.     耕田埋春色 (경전매춘색)  밭을 갈며 봄 빛은 땅 속에 묻으며  汲水斗月光 (급수두월광)  물을 길을 때는 달 빛도 함께 떠오리  西亭江上月 (서정강상월)  서쪽 정자에는 강 위로 달 떠 오르고  東閣雪中梅 (동각설중매)  동쪽 누각에는 눈 속에 매화가 피었네.     人分千里外 (인분천리외)  사람은 천리밖에 있어도  興在一杯中 (흥재일배중)  흥은 한잔 술 속에 들어있구나  春意無分別 (춘우무분별)  봄의 뜻은 분별이 없는데도  人情有淺深 (인정유천심)  인정은 깊고 얕음이 있구나.     山影推不出 (산영추불출)  산 그림자 밀어내도 나가지를 않고  月光掃還生 (월광소환생)  달 빛은 쓸어내도 다시 생기네  水鳥浮還沒 (수조부환몰)  물새는 떴다가 다시 잠기고  山雲斷復連 (산운단부연)  산 구름은 끊겼다가 다시 일어나네.     山高松下立 (산고송하립)  산이 높아도 소나무 아래 서 있고  江深沙上流 (강심사상류)  강이 깊어도 모래 위를 흐른다네  花開昨夜雨 (화개작야우)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風 (화락금조풍)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     雲作千層峰 (운작천층봉)  구름은 천층의 봉우리가 되고  虹爲百尺橋 (홍위백척교)  무지개는 백 척의 다리가 되네  秋葉霜前落 (추엽상전락)  가을에 잎은 서리 오기 전에 떨어지고  春花雨後紅 (춘화우후홍)  봄 꽃은 비 온 뒤에 더 붉어지네.     父母千年壽 (부모천년수)  어버이 천 년의 장수를 누리시고  子孫萬歲榮 (자손만세영)  자손은 만세의 영화를 누리시길  愛君希道泰 (애군희도태)  임금은 사랑하여 도가 태평할 것을 바라고  憂國願年豊 (우국원년풍)  나라를 걱정하여 해마다 풍년 들기 바라네.     妻賢夫禍少 (처현부화소)  아내가 어질면 남편의 화가 적고  子孝父心寬 (자효부심관)  자식이 효도하면 어버이는 너그러우며  子孝雙親樂 (자효쌍친락)  자식이 효도하면 두분 어버이 기뻐하시고  家和萬事成 (가화만사성)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져.     思家淸宵立 (사가청소립)  집이 그리워 맑은 밤에는 서성이며  憶弟白日眠 (억제백일면)  형제생각에 낮에도 졸고 있네  家貧思賢妻 (가빈사현처)  집이 가난하면 현명한 아내가 생각나고  國亂思良相 (국난사양상)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이 생각나네.     山靜似太古 (산정사태고)  산이 고요하니 태고와 같고  日長如少年 (일장여소년)  해는 길어서 소년과 같구나  靜裏乾坤大 (정리건곤대)  고요함 속에서 하늘과 땅의 큼을 알겠고  閒中日月長 (한중일월장)  한가한 가운데서 세월의 장구함을 느끼네.     歲去人頭白 (세거인두백)  세월이 흐르니 머리카락 희어지고  秋來樹葉黃 (추래수엽황)  가을이 다가오니 나뭇잎은 누래지고  雨後山如沐 (우후산여목)  비 온 뒤의 산은 목욕을 한듯하고  風前草似醉 (풍전초사취)  바람 앞의 풀은 술 취한듯 흔들리네.     細雨池中看 (세우지중간)  가랑비는 못 가운데서 볼 수 잇고  微風木末知 (미풍목말지)  산들바람은 나무 끝에서 알 수 있네  花笑聲未聽 (화소성미청)  꽃은 웃어도 웃음소리 들리지 않고  鳥啼淚難看 (조제루난간)  새는 울어도 눈물은 흘리지 않네.     白鷺千點雪 (백로천점설)  백로는 천 점의 눈이요  黃鶯一片金 (황앵일편금)  꾀꼬리는 한 조각의 금이라  桃李千機錦 (도리천기금)  복숭아꽃 오얏 꽃 일 천 베틀의 비단이며  江山一畵屛 (강산일화병)  강산은 한 폭의 그림이라네.     初月將軍弓 (초월장군궁)  초승달은 장군의 활이요  流星壯士矢 (유성장사시)  유성은 장사의 화살이라네  掃地黃金出 (소지황금출)  땅을 쓰니 황금이 나오고  開門萬福來 (개문만복래)  문을 여니 만복이 들어오네.        雨磨菖蒲刀 (우마창포도)  비는 창포의 잎을 갈고  風梳楊柳髮 (풍소양류발)  바람은 버드나무를 빗질하네  鳥耕蒼海去 (조경창해거)  물새는 푸른 바다를 가르며 떠나가니  鷺割靑山來 (로할청산래)  백로는 푸른 산을 가르며 날아오네.       洞深花意懶 (동심화의나)  골이 깊으니 꽃도 피는 것이 게으르고  山疊水聲幽 (산첩수성유)  산이 첩첩 하니 물소리도 그윽하네  氷解魚初躍 (빙해어초약)  얼음이 녹으니 물고기 먼저 뛰어오르고  風和雁欲歸 (풍화안욕귀)  바람이 따뜻해지니 기러기 돌아 가려 하네.   谷直風來急 (곡직풍래급)  골이 곧으니 바람은 급히 불고  山高月上遲 (산고월상지)  산이 높으니 달은 더디 오르네  실솔鳴洞房 (실솔명동방)  귀뚜라미 골방 속에 울고 있고  梧桐落金井 (오동낙금정)  오동 잎은 우물 속으로 떨어지네.    ☆.. 굴원 (중국 춘추전국 정치가 시인) : BC 343경 중국 중부 초(楚)나라~289경 초나라.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애국시인. 이름은 평(平). 원(原)은 자. 일찍부터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그의 시들은 초기 중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817    초나라 시인 - 굴원 댓글:  조회:4558  추천:0  2015-04-01
굴원(屈原, 기원전 340년 ~ 기원전 278년)은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의 시인 · 정치가다. 성은 미(羋), 씨는 굴(屈), 이름은 평(平)이다.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 초나라의 회왕 때에 좌도(보좌관)에 임명되었다. 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 정치가였으며, 회왕의 상담역으로 국사를 도모하고,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으나, 다른 이의 모함을 받아 신임을 잃고 끝내 자살하였다. 그는 이러한 아픔을 시 이소(離騷)에 담아 내었다. 이소란 '우수에 부딪힌다'는 뜻이다.   목차    1 추방 2 투신 3 작품 4 남긴 것들 5 같이 보기   추방 진나라의 소왕은 초 회왕의 진나라 방문을 요청하였다. 굴원은 반대하였으나, 회왕은 막내 아들 자란의 권유에 따라 진나라에 방문하였다가 억류당한 채 병사하였다. 큰아들 경이 경양왕으로써 왕위에 올랐고, 회왕의 막내 아들은 영윤으로 임명되었다. 굴원은 자신의 뜻이 반영되지 않고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자 낙담하였다. 마침내 양왕은 자란과 상관대부의 중상모략에 불구하고 굴원을 강남으로 추방하였다. 다음은 회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이소의 한 부분이다. “ 일월은 홀연하여 멈추지 않고 봄과 가을은 어김 없이 바뀐다 초목이 영락하는 것을 생각하고 미인이 늙어감을 두려워 한다 ” 투신 굴원은 멱라(汨羅江)에 돌덩이를 품에 안고 몸을 던져 죽었다. 굴원의 시 회사부를 통해 굴원이 투신한 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초나라는 이후 나날이 영토를 진나라에 빼앗기다가 50여년 뒤 결국 진나라에 멸망당했다. 멱라(汨羅)는 후난 성 상수(湘水)의 지류로 동정호로 흘러들어간다. 작품 그의 작품은 대개 울분의 정이 넘쳐 고대 문학 중 드문 서정성을 띠고 있다. 대부분의 시는 에 실려 있는데 라는 시가 특히 유명하다. 그 밖에 등이 남아 있다. 어부사(漁父辭) 이소(離騷) 남긴 것들 한나라 시절 가생이 장사왕의 태부가 되어 상수(湘水 - 동정호의 수원)를 지날 때, 시를 지어 물속에 던져 굴원의 넋을 달랬다. 단오절이 굴원을 기념하기 위하여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중국 음식 쫑즈도 굴원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다.     ☆ 굴원(屈原 B.C 340-278)의 이소(離騷)    초(楚)나라 사람. 왕족 출신인 굴원은 뛰어난 재능으로 20대에 임금의 총애를 받았으나, 그의 재주를 시기하는 사람에 의해 모함을 받고 추방을 당함. 그 후 초나라는 진나라에 패하고 굴원은 돌아갔으나 다시 쫓겨난다(49세). 굴원은 상강 기슭으로 오르 내리며 정치적 향수와 좌절 속에 유랑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돌 을 품은 채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62세의 생을 마감. 중국 최고의 비극적 시인으로 평가 한다.      일찌기 굴원은 회왕때 좌도(左徒) 벼슬에 있었는데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났으며 역대의 치란(治亂)에 밝아 회왕으로부터 신임이 두터웠다. 굴원이 회왕의 명을 받아 초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헌령(憲令)을 기초하고 있었는데 굴원과 왕의 은총을 다투던 상관대부 늑상이 그걸 가로채어 자신의 공적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굴원은 이를 거절하였다.  늑상은 이에 굴원을 회왕에게 참소하였다.  "굴원을 학식이 빙자하여 믿고 대왕을 업신여기며 무엇인가 딴마음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현명치 못한 회왕은 늑상의 말을 믿고 굴원을 멀리하였다.  굴원은 왕의 듣고 보는 것이 총명하지 않고 참소와 아첨이 임금의 밝음을 가로막는 것을 금심하고 비통해하면서 장편의 시를 지어 그의 울분을 토로하니 이 시가 유명한 굴원의 이소(離騷)이다. 이 이소라는 주제의 뜻에 대하여는 두가지 설이 있다. '이(離)'는 '이(罹)'와 같은 뜻으로 병이나 재앙에 걸린다는 뜻이고 '소(騷)'는 근심을 뜻하는 것이므로 '근심을 만난다'는 뜻이라는 견해이고, 또 하나는 후한 때 왕일(王逸)의 견해로 '이(離)'는 이별의 뜻이므로 '이별을 근심한다'라는 뜻이라는 설인데 앞의 설이 유력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굴원은 제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 친제파였다. 당시 초나라는 굴원의 반대파인 친진파가 득세하고 있었는데 이들 친진 세력들은 진나라의 장의가 6백리의 땅을 베어 주겠다는 미끼에 속아 제나라와 친교를 끊은 후 끊임없이 진나라의 침략을 받게 되고 초나라가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게 되자 회왕은 다시 굴원을 불러들여 다시 등용하려고 하였다. 굴원은 오직 조국 초나라에 공헌하겠다는 일념으로 수도인 영으로 돌아왔으나 재차 녹상의 참소를 입어 강남지방으로 추방되는 비운에 처해졌다.  굴원은 상수(湘水)가를 방황하면서 웅혼(雄渾)의 시 [천문(天問)]을 써냈다. 172가지 문제를 제기하여 비통한 울부짖음으로 천지에 의문을 호소하였다.  굴원이 상수가에 이르러 머리털을 풀어헤치고 못가로 다니며 침음(沈吟)하니 그의 모습은 아주 파리하고 수척해 있었다.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다.  "당신은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닙니까?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그러자 초췌한 안색으로 있던 굴원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맑다.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있다. 그래서 이곳으로 쫓겨난 것이다."  어부가 다시 물었다.  "사물에 구속받지 않고 세상의 추이에 몸을 맡기며 사는 것이 성인이 취할 방도라 들었습니다. 세상이 혼탁하다면 어째서 자신은 같이 취하시지 않으십니까? 가슴속에 주옥을 품었으면서도 왜 스스로 피할 방법을 찾지 않았습니까?"  굴원은 다시 대답하였다.  "얼굴을 씻고는 모자의 먼지를 털고, 의복도 간추려 입지 않는가? 결백한 몸을 그런 때로서 더럽힐 수가 없다. 차라리 그럴 바엔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될지언정, 어찌 세속에 몸을 더럽힐 수가 있겠는가?"  굴원은 이런 가운데서도 나라에 대한 걱정을 한시도 잊은 일이 없었다.  경양왕 19년(B.C. 280) 초나라는 지금까지의 친진 정책에서 180도 전환하여 반진 정책을 펴 여러 제후의 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반진 동맹을 재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진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하여 한북(漢北)과 상용(上庸)의 땅을 빼앗고 다음해에는 또 서릉(西陵)을 빼앗았다.  경양왕 27년(B.C. 278)에는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드디어 초나라의 수도 영을 함락시키고 선왕의 무덤인 이릉(夷陵)을 불태워버리니 경양왕은 진성(陳城, 하남성)으로 후퇴하였고 다음해에는 다시 초나라의 무(巫)와 금중을 점령하니 이곳은 초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는 곳이었다. 일찌기 회왕이 진나라에 억류당하면서까지도 끝끝내 내놓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요충지였는데 이제 진나라가 무력으로 빼앗아 버린 것이다.  굴원은 이 소식을 듣고 조국의 앞날에 실망한 나머지 분연히 '애영과 회사(懷沙)의 시'를 짓고 음력 5월 5일 돌을 품고 멱라수(호남성 상수의 지류)에 몸을 던져 순국(殉國)하니 이때 그의 나이 62세였다. 애국 시인이었던 굴원은 중국 시가의 세계에서나 중국인의 생활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중국 역대의 위대한 시인--이백(李白)과 두보(杜甫)도 예술. 품격. 덕성면에서 굴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호남성 도강현에 있는 굴원에 얽힌 고적의 하나인 천문대 구지는 지금까지 완전히 보전되어 있으며, 투신 자살한 멱라수 가에는 그의 무덤과 사당이 세워져 있다. 굴원이 죽은 음력 5월 5일은 속칭 단오절(端五節)이라 하여 그를 추모하는 제일(祭日)로 정해져 있다. 매년 이날이 되면 강남 지방의 사람들은 뱃머리에 용의 머리를 장식한 용선(龍船)의 경주를 성대히 벌이고 갈대잎으로 싼 송편을 멱라수 물고기에게 던져 주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물속에 잠긴 굴원이 고기에게 뜯어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놀이라고 한다. 단오절에 송편을 만드는 일은 전국적으로 펴져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으며 이같은 풍습은 중국에서뿐 아니라 멀리 일본.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에까지 전승되고 있다.    
816    세계 명시 모음 ㄴ 댓글:  조회:3278  추천:0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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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그때에도 역시 그랬지... 댓글:  조회:5058  추천:0  2015-04-01
    ▲남한 관광객을 위해 북한 회령시를 바라볼 수 있는 공사중인 전망대 앞에서 ▲북한을 드나드는 삼함 통상구 앞에서   ▲윤동주 생가 서시 시비 앞에서  ▲뒤편에 일송정이 바라보이는 비암산 초입 표지석 앞에서...김승종 시인, 조영일 이육사문학관 관장, 우광훈 연변작가협회 사무국장과...  ▲북한 회령시 전경 ▲두만강 물줄기가 동해로 흘러가고...         ▲화룡시에 있는 발해국 성터인 서고성...        ▲화룡시 평강평원중부에 있는 서고성은 발해국(기원 698~926) 중경현덕부의 유적지...발해국 200여년의 역사발전의 주요 도시로서 정치, 경제 문화중심지 중의 하나임.        
814    명시인 - 조향 댓글:  조회:4060  추천:1  2015-04-01
  SANATORIUM                                조향   SANATORIUM   옷도 벳드도 벽도 창장(窓帳)도 모두 희어 무섭게 깨끗해얄 곳인데두 이 무슨 악착한 병균(病菌) 살기에 이리 외론 곳이냐   저승으로 갈 채비를 하얗게 하였구나 병동(病棟) 유리창에 오후의 햇볕이 따가워 간호부 흔드는 손이 슬프기만 하여라   죽순, 1948. 3           `쥬노'의 독백                             조향   `쥬노'의 독백   참 우습지 커튼(curtain) 렉처(lecture)는 언제나 복숭아 빛깔인데 선생님들은 어두운 로비에서 케라라의 라라라 그렇지 라오스에서는 무엇을 자꾸 포기한다고 한다 고부랑깅 강아지는 낮 열한 시를 바라보고 한없이 울지 않았다 미인은 바크테리아를 기르는 선수들인데 낭자한 테블 위에는 자빠진 마네킹의 허벅지 네 살난 아들놈이 그 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 보더니 왜 이러냐고 갸웃이 묻는다 UP는 네루 수상의 찌푸린 표정을 보도하고 죄들이 옥수수처럼 알알이 영글어가면 붉은 발톱이 국경선을 할퀸다 목쉰 영감이 죽으면서 남겨 놓은 기침 소리가 겹쳐진다 기분 나쁜 오브제가 수세미의 모양 조랑조랑 달린 골목길에서 나는 낡은 황제의 모자를 쓰고 있다 석양은 녹색으로 물들어 가는데 영금을 보는 소녀의 외마디 소리 하품을 뱉으니까 트랜지스터 라디오 소리가 나더니 비둘기가 한 마리 어깨에 와서 오후 여섯 시를 구구거린다 셈본 성적이 좋지 않았지 그럼 팔랑고렁거리는 치마 자락은 어젯밤의 검은 빛을 갑자기 회상한다 되씹어 보면 사랑스러운 죄들이 시척지근한 트림과 더불어 꽤 생산될 것이니라 아아멘 자멘호프 박사의 암호 말씀인가요? 순정이 십자가에서 말라 죽었으니 말야 오늘 밤 골고다에서는 축구 시합이 있을 것이다 밤 곁에서 회색 기침 소리가 난다 손바닥에서 네가 수없이 멸해 간다   사상계, 1959. 10           가을과 소녀의 노래                        조향   가을과 소녀(少女)의 노래   하이얀 양관(洋館) 포오치에 소박한 의자가 하나 앉아 있다   소녀(少女)는 의자 위에서 지치어 버려 낙엽빛 팡세를 사린다 나비처럼 가느닿게 숨쉬는 슬픔과 함께……   바람이 오면 빨간 담장이 잎 잎새마다가 흐느낀다 영혼들의 한숨의 코오러스!   시집(詩集)의 쪽빛 타이틀에는 화석(化石)이 된 뉴우드가 뒤척이고,   사내는 해쓱한 테류우젼인 양 커어텐을 비꼬아 쥐면서 납덩이로 가라앉은 바다의 빛을 핥는다   먼 기억의 스크린처럼 그리워지는 황혼이 소녀(少女)의 살결에 배어들 무렵   가을은 대리석(大理石)의 체온을 기르고 있었다.   문예, 1950. 1           검은 SERIES                               조향   검은 SERIES     □ 1   (C․U) 유리창에 시꺼먼 손바닥 따악 붙어 있다. 지문(指紋)엔 나비의 눈들이……. (M․S) 쇠사슬을 끌고 수 많은 다리[脚]의 행진. (O․S) M 아카시아 꽃의 계절이었는데…… W 굴러 내리는 푸른 휘파람도……     ―― 밝은 목금(木琴) 소리 ――     □ 2   (M․S) 윤전기에서 쏟아지는 지폐의 더미. 그 더미 속에서 도오는 지구. (C․U) 지구는 잠시 정전(停電).           ―― 권총 소리 ―― (O․S)      W 오 소레 미오!      M 찢어진 EO S의 로비에서……     □ 3   (L․S) 사막의 뉴드 거기 한 쌍의 벌거숭이 실루에트 사뭇 내닫는다. 기일게 그리매가 따라간다.   W 옌 어디메에요!   M 죽음이 뵈는 언덕에서……        ―― 흑인 영가(黑人靈歌) ――     □ 4   (L․S) 기울어지는 성교당(聖敎堂) (M․S) 비스듬히 십자가. 탄도탄이 십자가에 명중. (L․S) 검은 태양.     ―― 바람 소리․사이 사이로 코오러스 ――     □ 5   (C․U) 유리창에 시꺼먼 손바닥. 파충류처럼 따악 붙어 있다. 그 손바닥 가운데 외눈동자가 꺼무럭. (B․C․U) 공포공포공포의 외눈동자.      ―― 허탈한 여인의 웃음 소리 ――     □ 6   (M․S) 정전된 지구의(地球儀) 도온다. 지구의 복판에 공포공포의 외눈동자. (B․C․U) 외눈동자. 외눈동자에서. 무수한 독나방 흩 어지며 날 아 난 다.      ―― 명랑하게 구르는 목금 소리 ――     □ 7   (L․S) 아무 것도 없는 회색 하늘. 참 광막하다. (O․S)    너희는 잘못 걸어 왔느니라!      ―― 그레고리아 성가(聖歌)․처량하게 풀룻 소리 꿰뚫고 나간다 ――   사상계, 1958. 11           검은 신화                                 조향   검은 신화(神話)   지하(地下)로 통하는 층층계. 물이끼 번져 가고. 아아라한 옛날의 Hierogramme들이에요. 죽어간 문명(文明)의 영광(榮光) 위에. 굴러떨어지는 세피아의 태양(太陽). 갸륵한 파국(破局)을 위한 Ceremony의. 싸이크라멘이 살랑 흔들리는데. 영구차(靈柩車)의 행렬(行列) 뒤에 물구나무선 최후의 인간(人間) 대열(隊列).   내 과거(過去)의 계제(階梯)에서 사태지는 시꺼먼 자장노래. Lu lul―la Hash a bye 난립(亂立)한 마름쇠를 넘어서 휘청거리는 군화(軍靴)들의 패잔(敗殘). 시간(時間)이 옴짓 않는 이 공동(空洞)을 너의 su―awl처럼 새까만 수실을 흔들며 바람들이 연신 회돌아 나간다. 그 속에 네 팔이 하나 떨어져 있다. 하아얀 수화기(受話器). 자꾸만 멀어지는 성가대(聖歌隊). halation 저쪽에서 나를 부르는 너의 하얀 소리. 나는 이 수많은 스산한 바람 속에 서 있다.   머리, 가슴이 세모진 Basedow 씨병(氏病) 환자(患者)들이 누워 있는 습지대(濕地帶). 돋아난 눈알들. 버슷버슷버슷버슷. 4444. 아아. 나의 가슴에도. 사막(砂漠)에는 바알갛게 반란(叛亂)이. 운하지대(運河地帶)의 계엄명(戒嚴命). 나쎌 씨의 낮잠을 위하여. italio처럼 늘어선 목내이(木乃伊)의 숲 속에서. 서궁남내다추초(西宮南內多秋草) 낙엽만계홍불소(落葉滿階紅不掃). nomos의 폐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   갑자기 3 반규관(半規管)의 좌초(坐礁). Mi Primavera! ¿Quien sera aquel hombre que nos mira? 평범한 밤은 처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이나 잡고 있다. 세상이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모두들 자고 있더라고. 육체(肉體)를 고발(告發)당한 투명인간(透明人間)들이 G․M․C에 자꾸 실려 가고. 그 위에서 인환(寅煥)이 손을 흔든다. 그랜드 쇼처럼 인간(人間)의 운명(運命)이 허물어지고 Mi Primavera! 너는 시꺼먼 바람의 border line 저쪽에 언제나 있으면서. 몬마르뜨르도 아닌 거릴 이렇게 걷고 있어요! 미친 오필리아의 웃음소리 아스팔트 위에 동댕이쳐지면. 젊은 교수(敎授)의 독백(獨白)의 회색(灰色). 인제 지구(地球)의 visa는 무효(無效)다.   문학예술, 1956. 12           검은 전설                                 조향   검은 전설   하얀 종이 조각처럼 밝은 너의 오전의 공백(空白)에서 내가 그즘 잠시를 놀았더니라 허겁지겁 하얀 층층계를 올라버린 다음 또아리빛 달을 너와 나는 의좋게 나눠 먹었지 옛날에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고대(古代)의 원주(圓柱)가 늘어선 여기 내 주름 잡힌 반생을 낭독하는 청승맞은 소리 밤이 까아만 비로오드의 기침을 또박또박 흘리면서 내 곁에 서 있고 진흙빛 말갈(靺鞨)의 바람이 설레는 하늘엔 전갈이 따악들 붙여 있다 참새 발자국 모양한 글자들이 마구 찍혀 있는 어느 황토 빛 영토의 변두리에서 검은 나비는 맴을 돌고 아으 다롱디리! 안타까비의 포복(匍匐)이 너의 나의 육체에 의상(衣裳)처럼 화려하구나 나는 골고다의 스산한 언덕에서 마지막 피를 흘린다 나의 손바닥에서 하얀 네가 멸형(滅形)하고 나면 물보라 치는 나의 시커먼 종점에서 앙상하게 걸려 있는 세월의 갈비뼈 사이로 레테의 강물이 흐른다 나는 검은 수선꽃을 건져 든다 쌕스폰처럼 흰 팔을 흔드는 것은 누굴까! 팔목에 까만 시계줄이 감겨 있다 인공위성 이야길 주고 받으면서 으슥한 골목길로 피해 가는 소년들의 뒤를 밟아 가니까 볼이 옴폭 파인 아낙네들이 누더기처럼 웃고 섰다 병든 풍금이 언제나 목쉰 소리로 오후의 교정을 괴롭히던 국민학교가 서 있는 마을에 아침마다 파아란 우유차를 끌고 오던 늙은이는 지금은 없다 바알간 석양 비스듬히 십자가 교회당 하얀 꼬리를 흔들면서 지나가는 바람결에 항가리아 소녀 탱크에 깔려 간 소녀들의 프란네르 치맛자락이 명멸한다 소롯한 것이 있다 아쉬운 것이 있다 내 어두운 마음의 갤러리에 불을 밝히러 너는 온다 지도를 펴 놓고 이 논샤란스의 지구의 레이아웃(layout)를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내일이면 늦으리 눈이 자꾸 쌓인다.   자유문학, 1958. 12           그날의 신기루                             조향   그날의 신기루(蜃氣樓)   형장(刑場) 검은 벌판. 쭈빗쭈빗이 늘어선 말목에 턱 괴고 붉은 달은 야릇이 웃었더니라. 귀곡(鬼哭)은 수수(愁愁) 기인 그리매들만 일렁였고.   우리 외삼촌의 콧날을 날려 놓고 펄럭이는 3․1의 깃발 꿰뚫어 놓고 서른 아홉 층층계를 굴러서 여기 내 앞에 동댕이쳐지는 총알. 한 개. 기기기기기기(旗旗旗旗旗旗)이천만개(二千萬個)가기기기인(旗旗旗人)마다기기기(旗旗旗)방촌(方寸)의인(刃)을회(懷)하고기기기(旗旗旗) 천백세조령(千百歲祖靈)이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旗旗旗旗旗旗旗旗旗旗旗)오등(吾等)을음우(陰佑)하며기기기기기(旗旗旗旗旗)   조선건국(朝鮮建國)사천이백오십이년(四千貳百五十貳年) 삼월일일(參月壹日)   피의 이끼 만발한 층층계 자꾸 올라가면 우리 모두의 마음의 하늘에 의젓한 그날의 신기루(蜃氣樓). 왁자악히 만세(萬歲) 소리만 쏟아지면서. 탄피(彈皮). 두개골(頭蓋骨). 또 외삼촌의 코가 떨어져 있고. 귀한 눈알들이 조선(朝鮮)의 하늘 우러르며 누워 있다. 피. 주검 겨레.   나도 너도 길이는 괼 3․1의 탑(塔). 꼭대기에. 훨훨 비둘기떼 오늘을 날고. 흰 구름 탑 허리에 감기며. 소년들. 하얀 장미꽃다발. 합장(合掌). 창가(唱歌) 소리. 만세 소리. 탑 너머 아아라히 깔려 있는 샛파란. 하늘. 하늘. 하늘.   고려(高麗)의 빛깔이다. 청자(靑磁)빛 우리 하늘 아래. 언제나 살아 있는 것. 맥맥(脈脈)히 영원히 흐르는 줄기. 하나만 하나만 있다.   자유문학, 1958. 4           나는야 뱃사공                             조향   나는야 뱃사공   나는야 뱃사공 어제도 오늘도 배움의 강 건너주는 나는야 뱃사공 어기어차 나룻배 사공이다!   이 언덕에 날 찾아온 그대들을 지혜의 노를 저어 수울렁 배를 띄워   저어쪽 언덕에 넘겨주곤 다시 돌아오는 나는야 뱃사공 어기어차 나룻배 사공이다!   동으로 서으로 헤쳐지는 그대들의 뒷모양 바라보며 돌아보며 잘 가라고 잘 되라고 비는 사람 나는야 뱃사공 어기어차 나룻배 사공이다!   조선교육, 1947. 9           날아라 구천에                             조향   날아라 구천에   학이드냐 봉이드냐 너희들 날아라 구천 그 높은 위에 눈부시는 눈이 부시는 궁궐 향해서 나의 너희들 높다랗게 날라도 보라! 머얼리 옛집 돌아보며 내려다보며 맑은 은하 건너 너희들 가는 곳 알고지라! 허구 많은 나라에도 배달의 피를 받아 태어난 젊은 너희들 가는 곳 진정 알고도지라! 구름 첩첩으로 머흘어도 뚫어라 빗줄기 거칠게 쏟아져도 참아얀다. 헝클어진 이 나라 바로잡고 겨레 위하여 젊은 너희들 피 끓어 올라라 곱게 고웁게…… 학이드냐 봉이드냐 날아라 너희들 구천 그 높다란 위에 싸움 없고 모자람도 없는 터전 닦으러 하얀 빨간 장미꽃 송이 송이 사철로 필 줄 아는 그런 나라 세우러 나의 너희들 구만리 창공 끝없이 날아라 날아보자!   조선교육, 1947. 9           녹색 의자가 앉아...                       조향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원제 :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있는 베란다에서   찐득찐득하다 진한 내출혈(內出血)․커피 냄새 밤이 뭉게뭉게 내 입 에서 기어나온다    나의 여백(餘白)이 까아맣게                      침몰(沈沒)해 간다 이끼가 번성하는 계절 늪지대(地帶)에는 송장                      들의 눅눅한 향연 파충류(爬蟲類)와 동침하는 여인(女人)들의 머리 위 황혼 짙어 가는 스카이                      라인에 비둘기떼만 하야니 박혀박혀박혀 가고가고 너도 아닌 나도 아닌                    저 검은 그림자는 누구냐! 올빼미의 것처럼 횟가루 벽에 박히는                                  두 눈 점점 클로즈업 되어 오는 것 이윽고는 점점 멸형(滅形)되어 가는 저것 그 언덕길          오리나무 수우(樹雨) 듣[滴]는 소리 마구 풀냄새도 풍기더니 ․ 향수(鄕愁)야 네바다이 우글거리는                    뒷골목에서 기적 소리가 나면 어디론지 떠나야 하는                   유령 들이 술렁거린다 가만히 입을 쪽! 맞춰 줄라치면 뽀오얗게       눈을         흘기           면서 `깍쟁이!' 하더니 너는 지금 빈 자리에 너의 투명한 것만 남겨                                놓고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있는 나의   베   란   다 에서 동화(童話)의 주인공이 들어갔                              다는 죽음의 돌문을 바라보고 나는 있다 삶의 뒤란에서 죽음들은 하아얀 수의를 입고 놀고는 있다 낙엽이 한   장 고요를     가로        지른            다   자유문학, 1957. 12           녹색의 지층                               조향   녹색(綠色)의 지층(地層)   나뭇가지를 간지르고 가는 상냥한 푸른 바람 소리도 들리고. 거기에 섞여드는 소녀의 한숨 소리 계집의 시시덕거리는 소리가소리가소리가. 나는 사람들과 화안한 웃음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무던히는 그립다. 내 머리 위로 지나간 검은 직선(直線) 위엔 짙은 세삐아의 밤이 타악 자빠져 있는데. 그 밑창에 가서 비둘기들은 목을 뽑아 거머테테한 임종(臨終)을 마련하고 있다. 참 많기도 한 세삐아 빛 밤밤밤밤. 밤의 꾸부러진 지평선엔 바아미리온이 곱게 탄다. 그럼. 너는 까아만 밤에만 내 앞에서 피는 하아얀 사보텐 꽃이다. 참 아무도 없는 밤의 저변(底邊)에서. 메키시코의 사막 지대, 너와 나와 사보텐 꽃과. 행복한가? 그럼요!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 밑에서 이렇게 당신이 내 곁에 누어 있고. 그럼요! 비쥬! 너는 박꽃처럼 밤을 웃는다. 특호(特號) 활자(活字)를 위하여. 오오. 오오. 디엔․비엔․푸우. 수상(首相)들의 비장(非壯)한 연설. 전파(電波). 파아란 전파(電波)가 지구(地球)에 마구 휘감긴다. 가이가 계기(計器)는 파업한다. 애인(愛人)들은 바닷가에 있다. 엘시노아의 파도 소리. . 끊임 없이 회상(回想)의 시제(時制)가 맴을 도는 여기. 녹색(綠色)의 지층(地層)에서. 화석(化石)이 되어 버린 나는 아아라한 고대(古代)처럼 잠자고 있다. 있어야 한다. 나는 영원을 산다. 개울 물 소리.   자유문학, 1956. 6           대연리 서정                               조향   대연리(大淵里) 서정(抒情)     □ 1 가을   여기는 마구 고요만 하구나 노오란 오후의 햇볕 어깨에 받으며 신문질 그러듯이 나는 바다를 앞에 척 펴 놓고 이렇게 쓸쓸한 시간 가운데 있구나 바다는 마구 칠한 부륫샨 부류우 오 바다는 굼실거리는 영원의 그라비유어! 바다여 너는 찬란한 생명을 가졌느냐?   수평 건너는 외대배기 예 제 어쩌면 가버린 이 모습처럼 저리는 희미한 애달픔이냐? 바다야 나는 너의 한없이 푸르른 역사를 모른다   온통 코스모스가 한밤 벌떼처럼 흩어진 여기 고추잠자리 능난한 곤두박질이 긋는 선(線)을 따라만 가다가 나는 그만 짙푸른 하늘의 애정에 현기증이 나 버리곤 한단다   소릴 치면 메아리가 돌아올 듯이 마주 다가앉은 솔이 푸른 산 그 너머가 해운대라는구야! …… 그래 은이 네가 너의 가제 결혼한 서방을 내버리고 미친 듯이 날 찾아와 눈에 이슬만 맺던 어쩌면 제법은 슬프기도 한 그 해운대의 이야길 너는 지금 어디메서 쓰다듬고 있느냐? 참으로 신기론 수수꺼끼가 아니냐 인생이란? 나는 네가 그리워라 나는 네가 그립지도 않아라   꾸겨질 적마다 솨아 하며 하얀 잇발들을 추껴 들고 내달아 오는 바다 이 손님도 없는 향연을 외로워란 듯이 흰 구름이 지나며 그림잘 떨어뜨려 놓는다 소년처럼 돌팔매도 쳐 보면서 돌아오다가 잔디에서 뒹구는 학생과 공연히 마주 웃었다 게으른 엿장사 가위 소리가 지나간 다음 오후의 한 나절은 옴짓 않는 고요가 뼈에 저린다     □ 2 봄   바닷물이 차츰 물러서노라면 젖은 모랫벌이 햇볕을 쬔다. 기다렸더란 듯이 조갤 호비려 달려드는 마을 가수내들 젊은 아낙네들 걷어 붙인 치마 밑에 볼통이 알밴 건강한 만져 보고도 싶은 다리 다리들에 연한 바람이 휘감긴다 홰홰 감기누나 간지럽게 감기는구나   이층 창 밀어 올리고 동해 푸른 바다 여인인 양 살뜰히 안아 들여 본다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발끝이 홰끈 들린다 바람이 마고 내 숨통을 막는구나 보리밭 거름 냄새 복숭아꽃 냄새 바다 냄새 남쪽 냄새 조개 잡는 아가씨 땀 냄새 살결 냄새 문주리 내 허파로 밀려 든다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 그래도 나는 연방 섰다 바람에 불리우며 이쪽으로 오는 여학생의 남빛 보레로가 눈에 스민다 그 위로 노랑 나비가 휘영휘영 하늘로 당기어 간다   눈이 아찔하게 노란 장다리꽃 길을 헐레벌떡 지나고 나면 복숭아도 오얏도 개나리도 버들 잎도 마구 피어 무르녹은 마을이 활짝 열린다 풀피리 소리가 가물어지자 송아지도 게으름을 피우면서 등골에 쪼르르 땀방울도 구르며 목구멍에 감기는 감기는 이 갈증! 봄은 갈증이냐 갈증은 봄의 행복이냐 아 포실한 이 갈증이여!   모자를 제껴라 이마를 솔솔 바람에다 맡긴다 내 게슴츠레 뜬 눈망울에 비최는 신작로 거기 해운대로만 달아나는 뻐스 뒤통수에 이는 뽀오얀 먼지 먼지 사라진 다음 아슴한 하늘 끝에 떠 오르는 네가 있다 참으로 있구나 십년 전의 네가 있구나 너도 이 길을 해운대로만 달렸었을 게 아니냐? 은아! 다시 오월 콧노래 부르던 오월 나란히 거닐던 오월이다 시간의 비석(碑石)에 아로새겨진 내 사랑의 생채기는 훈장(勳章)인 양 풍화(風化)되어 가는구나! 어쩌면 한바탕 비극 같은 게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렇구나…… 말이다   영문(嶺文), 1949. 11           디멘쉬어 프리콕스의 푸르른 산수           조향   디멘쉬어 프리콕스의 푸르른 산수(算數)   당나귀 등에 검은 신(神)들의 모꼬지. 신데렐라의 하늘에 다갈색(茶褐色) 코러스가 번져 나가면 너는 검은 화요일을 자맥질하면서 바람과 함께 스산히 서만 있다. 무례한 송충이 가든 파티를 꾀하고 나분이 내려앉은 헬리콥터는 호랑나비과(科)에 속하는데 멀거니 서서 광야(曠野)에 붙박힌 내 귀에 소리가 야릇한 소 리가 있어 소스라치는 소라들 계엄령은 검은 굵은 네모진 안경테이니라 시시하게 시시덕거리는 정치꾼들, 가 는 눈 실눈을 뜨고 얄밉게 교활을 피우면 군중들의 노호(怒號)는 세종로에 촘촘하고 요긴한 까마귀들은 한천(寒天)의 오점(汚點)이다. 평생이 굴비처럼 엮어져 있는 발코니에서 생명들은 모개흥정에 바쁜데, 은방울꽃들 을 주섬주섬 챙겨서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인간은 모욕당한 강아지다. 간헐적으로 간힐이 솟구치는 디멘쉬어 프리콕스를 거느리고 의사(醫師)의 손가락을 잘라서 옥상 정원에다 심었다. 관상용(觀賞用) 식물(植物). 자자브레한 고독들이 골목 으슥한 데로 몰려드는 황혼 무렵 유럽에서는 총상(銃傷)을 입은 대통령이 바래진 연설을 되뇌고 있는데, 그를 따르던 오뚝이들은 배신을 컴퓨터 출력(出力)에서 찾고 있다. 위스키 잔 위에 위기가 윙윙거리고 해해거리는 백노(白奴)들은 백로지 가면(假面)이다. 광대들은 아직 메이컵이 끝나질 않았어. 야! 뒤통수에다 구멍을 내고 똥물을 붜 넣어 줘얄 놈들! 나 를 보라! 나는 암흑(暗黑)의 십자가(十字架)다. 달이 지고 나면 모두들 층계참에 서서 울상을 짜 내면서, 몰 려 오는 아우성들을 일일이 체크한다. 온도계에서 빠져 나온 온기(溫氣)들은 빙판에 쓰러져 있고 당장에 잎사귀들을 뒤집어 놓을 듯이 노대바람이 지랄을 하는데 신들린 사람들처럼 퀭한 눈으로 이상한 색깔의 하늘을 핥고들 있구나. 아슴히 사라져 가는 것은 내 안에서 몰래 빠져 나간 너의 하얀 곡두지? 이로니는 로니고 로 니는 니컬이고 니 컬은 컬컬하구나. 컬럭 컬럭. 지구가 앓고 있다. 하아프가 유혹의 계절을 쓰다듬고 있는데 게으름은 녹색으로 칠해진 캔버스다. 도로아미타불은 구겨진 웃음거리판인데 한 마리 새가 되어 조촐하게 날아가자 우리는. 마지막 정거장에서 너를야 잃으면, 그 리운 새들을 위해서 나 의 기도를 다듬는 나는 멀쑥한 세공사(細工師). 집집마다에 등불이 매달려 가면 짐승들은 옹기종기 달빛을 받으며 모여 앉아서 승냥이의 거머퇴퇴한 강의를 듣고 있다. 의치(義齒)는 뽑아서 목걸이로 하고 감람나무 밑에 매달린 플래스틱 다리 시늉을 해 뵐까? 짓고땡이다. 나 를 밀치고 달아나는 키다리들을 비아냥거리지 말자! 받아쓰기를 잘 하는 물푸레나무 는 푸른 오르가슴을 걸치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무렴! 을축년 건방축이지! 같이 갈까 하다가 관 뒀어. 이런 멍청이 바보 청맹(靑盲)과니 도 없을 거야, 쯧쯧! 뵈오려 가려다가 못 가서 기뻐요. 곤히 잠든 할렐루야를 깨우지 말도록. 해바라기는 고호의 전설을 제본중(製本中)인데 요즘은 요사스런 인충(人蟲)들이 창궐하는 계절인가 봐! 어험! 위엄을 꾸며 보는 어릿광대들이 처마 밑에서 난잡․난삽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으니 말예요. 지 구의 축제일이 해반주그레하게 다가오 니까 떠나도 괜찮다는 거지. 가야금 시울 소리는 청승맞기만 하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니 어떻게 합니까 요다각형(凹多角形) 같은 거지요 뭐! ……………   전환, 1982           문명의 황무지                             조향   문명(文明)의 황무지(荒蕪地)   손을 번쩍 들면 내 앞에 와서 쌔근거리는 개쁜히 정지하는 크라이스라. 길들은 사냥개.   빽․미러 안에다 창백한 내 표정을 영상(映像)하며 주검의 거릴 내닫는다. 나는 약간 흔들린다.   죽어 쓰러진 엄마 젖무덤 파고드는 갓난애. 버려진 군화(軍靴)짝. 피 묻은 가제. 휘어진 철조. 구르는 두개골(頭蓋骨). 부서진 시계탑(時計塔). 전쟁이 쪼그리고 앉았던 광장(廣場)에는 누더기 주검들이. 탄환(彈丸) 자국 송송한 교외(郊外)의 병사(兵舍). 줄 지어 낙역(絡繹)한 제웅의 무리. 참 낙막(落寞)한 것.   유리창 바깥엔 돌아가는 지구의(地球儀). 옛날의 옛날의 나의 무랑루즈. 그 곁엔 찢어진 동화(童畵) 한 장 팔락이고. 동화(童畵) 가운데서 넌지시 포신(砲身)이 회전한다. 내 가슴을 시꺼멓게 겨냥해 온다. 이따금씩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리고 살갗엔 또야기도 돋아나고. 레스링처럼 씩씩하던 도시(都市)에는 이제. 넘어져 가는 기업(企業)들의 지붕 위를. 까마귀만 맴을 돌고.   지친 사상(思想)의 애드․바룽이 히죽이 걸려 있는 붉은 닥세리. 타다 남은 쇠층층계 황토빛 하늘을 괴고 섰는 문명(文明)의 폐허를 지나. 천둥․비바람 차장에 요란한 광야(曠野)로. 먹빛 저항(抵抗)이 치렁치렁 가로놓인다. 허줏굿 소리 자꾸만 들려 오는 여기. 아직도 운하(運河)의 언덕에선 모두들 새벽을 기다리고 있는데. 무당아씨, 어떻거고 싶지? ꡒShe answered : I would die.ꡓ 나는 죽고만 싶단다   내일을 잃은 지구(地球)엔 이윽고 까아만 막(幕) 이 나린다.   영문(嶺文), 1957. 11           밀 누름 때                                조향   밀 누름 때   밀 누름 때 하늘은 떨궈버린 행복처럼 눈이 부신데 가슴 활활 달고 등골에 땀도 송송 배는데 나는 구비치는 밀밭 머리에 섰다 섰구나! 이삭이 무르익은 냄새란 이렇게도 고소한게냐! 나는 무너져가는 청춘을 안고 계절의 한복판에서 영영 기절해 버린다   밀밭 두던 황토 사태 난 그늘에 호젓히 외로워라 하얀 오랑캐꽃 한떨기 나는 허수아비처럼 얄궂은 포―즈로 섰고 싶어라 나는 그 어느 불행히 미쳐 죽은 화가인 양 무르녹는 밀밭 머리 누른 에―텔의 파동에 취한다   푸르른 계절 그 황홀한 울고 싶은 풍경화 속에서 나는 나를 잃어 버린다 풍성히 탄력스러운 포곤한 숲 저어쪽에 바다가 호수처럼 게을음처럼 잠자코 누워 있다   간지러운 풀피리 소리에 재우쳐 깬 나는 짓궂은 소요정(小妖精)들인 양 휘파람을 날려라. 에나멜 느린 듯이 고운 하늘에 구멍이나 구멍이나 송 송 뚫어라!   죽순, 1947. 8           바다의 층계                               조향   바다의 층계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 뒀습니다.   ― 여보세요?   폰폰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엔진에 피는 들국화   ―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수화기(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깃폭들   나비는 기중기(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신문예, 1958. 10           BON VOYAGE!                               조향   BON VOYAGE!     □ 1.      BARCELONA 아 BARCELONA로     □ 2.   은빛 꼬마 스푸운을 조심스레 잠글라치면 짙은 세피아의 물결이 가울탕 잔(盞) 전에 남실거리며 소녀(少女)가 마악 부어 주고 간 우유(牛乳)가 가라앉았다간 송이송이 구름이 되어 피어 오른다   유리창 바깥엔 수많은 전옥(典獄)들처럼 거니는 어스름이 와 있는데 다시 가슴팍을 후비는 뱃고동이 울거들랑 버릇마냥 낡아 버린 항해도(航海圖)에다 애라(愛羅)! 불을 켜기로 하자   파아카아드 빨간 미등(尾燈)이 미끄러진 뒤 나의 에크랑에 굴절(屈折)하는 이십세기(二十世紀)의 서정(抒情)의 포제(Pose)   빌딩 모롱이에서 예각(銳角)을 그리는 검푸른 바람과 콱! 마주쳐 놓니까 개자(芥子)국을 홀짝 마신 때처럼 씽! 하고 콧잔등에까지 눈물이 팽그르르 괼 뻔한다   바다의 난간(欄干)에서 훈장(勳章)일랑 잃어버리고 별을 뿌리며 밤의 검은 팔에 휘감기는 나를 봐라 바다에서 바람이 오더니 내 넥타이를 만져 보곤 가버린다 바람은 검은 망토를  (★★)  있구나   애라(愛羅)! 나는 너를 보내러 왔다 항구로 왔다.     □ 3.   해협(海峽)은 출렁거리는 한 잔(盞) 페피아민트가 아니겠니? 데크에서 한쪽 다리를 지팡이처럼 짚고 서서 푸름이 사뭇 쏟아지는 하늘에 눈이 아프도록 박혀지는 빨간 기폭(旗幅)일랑 청춘(靑春)의 도안(圖案)으로 접어 두면서 너는 아슴히 넘실거리는 수평선(水平線) 위에다 가느다란 구역질을 뱉어 놓을 게 아닌가?   이방(異邦) 사투리 낙엽처럼 굴러 다니는 술렁거리는 부두(埠頭)에서 신데렐라(CINDERELLA)의 빨간 비드로(VIDRO)의 장화(長靴)를 신고 나도 너를 찾아야 할 날이 올 것을 안다.   애라(愛羅)! 새로운 것을 위하여 승화(昇華)의 닻줄을 감자 우리들의 태양(太陽) 우리들의 신기루(蜃氣樓)를 위하여……   오 아침 파아란 기항지(寄港地) 빨간 망토의 소녀(少女)들 새로운 신사록(紳士錄) 우리들의 공화국(共和國) 펼쳐지는 지도(地圖) 기어간 산맥(山脈)들   나는 너를 보내러 왔다 담배를 피워물면서 흐르는 바람 속에 서 있다 자꾸만 투명(透明)해지는 나의 육체(肉體)!   애라(愛羅)!     □ 4.      BARCELONA 아 BARCELONA로   백민, 1950. 3           붉은 달이 걸려 있는 풍경화                조향   붉은 달이 걸려 있는 풍경화(風景畵)   But who is that on the other side of you?       T. S. Eliot : The Waste Land   가로등이 갑자기 꺼져들 가고 나면. 페이브먼트 위엔. 여름처럼 무성해 가는 붉은 독버섯들. 독버섯들은 생쥐 귀처럼 생겼다. 거기 뱀 같은 외눈들이 차갑게 꺼무럭거리고. ꡒ좀생이 같은 놈들?ꡓ   외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몸뚱어릴 핥아온다. 내 몸에선 옴두꺼비의 혹이 쏙소그레 돋아나고. 모가지도 없는 붉은 망토자락의 그림자. 나는 뭬라고 연신 되뇌면서. 거리 모롱일 황급히 돌아 버린다.   검은 발자욱 소리가 내 뒤를 밟는다. 망토자락의 일으키는 바람이 차갑게 날 쫓아오면서. 나는 갑자기 고발(告發)당한다.   네거리. 아직도 분수는. 소록소록. 솟고 있는데.   무장(武裝)한 어휘(語彙)들을 거느리고. 계엄령(戒嚴令)이 버티고 섰다. 비둘기의 광장(廣場)엔 주검만 널려 있고. 캐스터네츠를 울리며 지나가는 누더기 곡두의 행렬.   돌연 엄습해 오는 아고라포비아(agoraphobia)!   찢어진 탬벌린 소리가 요란하고. 허탈한 웃음소리들이 한바탕 소나기지고 나면. 수많은 상실(喪失)들이 줄지어 간다. 붉은 생쥐들이 내 발뒤꿈칠 와서 갉작거린다.   나는. 숨이. 가쁘다. 진땀이. 흐른다. 검은. 발자욱. 소리. ꡒ……저건. 대체. 누구냐?ꡓ   나는 간신히 미야(Miya)의 방문을 드윽 연다. ꡒ얼굴이 창백하시네요!ꡓ 미야(Miya)의 방 유리창에 가서 열없이 붙어 서 본다. 세모꼴 하늘엔 바알간 달이 걸려 있고. 달은 문둥이처럼 문드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미야(Miya)는 내 손을 꼬옥 쥐면서. ꡒ무서워요!ꡓ   먼 데서 총소리. 검은 고요를 뚫어 놓고. 흔들어 놓고. 아우성소리 점점 스러져 가고. 장송(葬送)의 코오러스도 들리지 않으면서. 꼭두서니빛으로 타오르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HARTA)   소파에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하 심심해서 달리(Dali)의 그림책이나 펼쳐 보자   `내란(內亂)의 예감(豫感)'   현대문학, 1967. 12           성바오로 병원의……                       조향   성(聖)바오로 병원(病院)의……   성(聖)바오로 병원의 때묻은 우울한 석고상(石膏像)을 왼편으로 흘겨 보면서. 나는 아침마다 펼쳐진 서울의 퀴퀴한 내장(內臟)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그래도 화려한 액센트 서콘플렉스(accent circonflexe)를 쓰고 다니는 요족(凹族)들의 계절은 와 있는데. 산상(山上)의 수훈(垂訓)은 일평생(一平生) 식물성(植物性)이다. 허무(虛無)를 한없이 분비(分泌)하는 곤충(昆蟲)들의 미학(美學)이 빌딩문을 드나드는 오후면. 푸른 수액(樹液)이 흐르는 너의 얼굴은 크로포트킨(Kropotkin)의 자연지리학(自然地理學) 교과서(敎科書) 곁에서 무던히는 심심하다. 반사경(反射鏡) 안에 고즈넉히 갇혀 있는 나비는 왕자(王子)의 체온을 지니면서. 아아. 나의 세인트 헬레느. 거무죽죽한 골목엘 들어서니까, 젖가슴을 내밀고 느런히 서 있는 여체(女體)의 톨소들이 일제히 웃어댄다. 성원자력원(聖原子力院) 앞에서 이족수(二足獸)들은 누더기 훈장을 달고. 실직(失職)한 강아지는 거울의 숲 속에서 절망을 잴강잴강 씹으면서. `나는, 나를 매혹하는 이 절망에 의하여 살고 있다.' 파아란 수목의 생리 속에 피어난 야외(野外) 조각전(彫刻展) 곁을, 연두빛 바람이 지나가면. 팅게리가 댕그렁거리고. 나의 연초점(軟焦點)에 와서 잠시 머무는 하아얀 너는 메론의 공화국이다. 도시(都市)는 이젠 사막이다. 붉은 닭세리. 이윽고, 하늘이 내리쉬는 검은 입김. 그 가운데 네온이 켜져 가면. 성당(聖堂)의 종소리. 이 검은 샤마니즘의 거창한 체계(體系). 에로이 에로이 라마 사바크타니. 구나방들의 군화에 짓이겨져 가는 장미랑 비둘기랑 모두모두……. 전갈좌(座)는 나의 성좌(星座)다. 미래(未來)는 시궁창에 쳐박혀서 궂은 비나 맞으면서 있고. 그리하여 지구(地球)의 레이아우트는 검은 빛이다 검은 빛이다.   현대문학, 1968. 8           장미와 수녀의 오브제                      조향   장미와 수녀(修女)의 오브제   하얀 아라베스크 짖궂게 기어간 황혼 낙막(落寞)이 완성된 꽃밭엔 수많은 수녀의 오브제.   인생이라는. 그럼. 어둠침침한 골목길에서 잠깐 스치며 지나 보는 너를…….   영구차가 전복한 거리거리마다에서 비둘기들은 검은 가운을 휘감고 푸른 별이 그립다.   네가 서 있는 소용도는 상황(狀況)에 짙은 세피아의 바람이 분다. 까맣게 너는 서 있다.   모의포옹(模擬抱擁)의 세레모니이! Psychose d'influence의 네거리에서.   네가 사뿐 놓고 간 검은 장미꽃. 내 이단(異端)의 자치령(自治領)에 다시 꽃의 이교(異敎)를 떨어뜨려 놓고. 들국화빛으로 하늘만 멀다.   taklamakan nakamalkata 사막의 언덕엔 갈대꽃 갈대꽃밭 위엔 파아란란 이상(李箱)의 달.   달밤이면 청우(靑牛) 타고 아라비아로 가는 노자(老子).   꽃잎으로 첩첩 포개인 우리 기억의 주름주름 그늘에서 먼 훗날 다시 서로의 이름일랑 불러볼 것인가!   패배의 훈장을 달고 예상(豫想)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하면…….   포르말린 냄새만 자꾸 풍기는 새까만 지구 위에서 어린애들의 허밍 소리만 나고……. 메아리도 없이 하 심심해서 나는 요오요오나 이렇게 하고 있다.   현대문학, 1958. 12           조개                                      조향   조개&      부제: 박생광씨(朴生光氏) 화(畵) `조개'에 제(題)함         내 귀는 조개껍질인가       바다 소리만 그리워라           ― JEAN COCTEAU, 「귀」   그믐 새까만 밤 하늘에 달 차라리 파아랗게 질리는 꿈이다   어린 양떼처럼 어디로들 몰려 갔느냐 별 별 푸른 별들아 하늘의 목동의 군호 소리도 없는데……   밤 새까매질수록에 하얘만 지는 바다 모랫벌 뱅뱅 꼬인 나선(螺旋) 주류에 앵 우는 바람이 그리워 허울 좋게 소라는 누었다   조개도 불퉁이도 아가미 벌려 밤을 마시고 바닷지렁이 길게 늘어져 있네   한 오리 불어 넘는 로망(ROMAN)의 바람도 없이 바다의 어린 겨레는 칠같은 밤에 차겁다 한사코 외롭다   자꾸만 멀어지는 바다 우짖음 싸아늘히 회도는 향수(鄕愁)야!   유성(流星)이려거든 동쪽으로 흘러라   밤이 한 고개 넘어 소연(騷然)한 새벽엔 굵은 행동의 곡선 다시는 늘이어라 바다는 짙푸른 생명의 영원에로 닫는다     4281년 정월, 진주(晋州) 다방(茶房) `화랑(畵廊)'에서   영남문학, 1948           초야                                      조향   초야(初夜)   일찌기 오욕(汚辱)을 배우지 못한 박날나무 처녀림(處女林)이래도 좋겠소!   한자옥 들여놓기도 못미쳐 끝까지 수줍고 정결(淨潔)한 훈향(薰香)에 마음 되려 허전할까 저윽이 두려워―.   쌍촉대(燭臺) 뛰는 불빛! 둘리운 병풍(屛風)엔 원앙(鴛鴦) 한 쌍이 미끄럽게 헤이고 속삭이고―.   댕그렁! 밤이 깊어가도 벽만이 그렇게 한결 정다웠던지 신부(新婦)는 순박(純朴)을 안고 그만 면벽(面壁) ― 마치 한 개 백고여상(白膏女像)!   원앙금침(鴛鴦衾枕)이 하마터면 울었을걸 신랑(新郞)의 서투른 손이나마 고즈넉이 쓰다듬었기에―.   매일신보, 1941. 4           크세나키스 셈본                           조향   크세나키스 셈본   불 붙는 구레나룻. 직선은 구우텐베르크다. 하아얀 월요일. 혹독한 계절에. `모든 동맥의 절단면에서 검은 아스팔트의 피를 떨어뜨리는 도시(都市)' 아자(亞字) 창(窓). 백 밀러. 까아만. 눈동자가. 안으로. 에메랄드의 층계. 내려 가면. 메스카린의 환각(幻覺)이. 가시내 냄새도. 어휘는 낙엽인데. 붉은 닥세리. 찢어진 밤의 주름 사이에 켜지는 육체들. 크세나키스의 셈본. 회회청 하늘엔. 총탄 자국이. 글쎄. 난만한 회색이다. 칠십(七十) 년대. 그리고. 동요(童謠)만 피어 나는데.   동빙고동은 도둑의 마을   동빙고동은 도둑의 마을 안개. 그리고. 검다.   신동아, 1970. 3           태백산맥                                  조향   태백산맥(太白山脈)   날짐승 길짐승 박달나무 산딸기 더덕순 도라지에 풀잎 넌출 이리저리 얽혀서, 시냇물 소리 졸졸 이슬도 하무뭇이 생명의 풍성한 씸포니   웃음도 울음도 가난함도 외로움도 모주리 겨레와 함께 겪어 온 세월에, 별처럼 아른아른 추억의 조각 조각들, 돌아볼쑤록 꿈인 양 머언 날이 있어라   날개 활활 치려무나 독수리! 너 그리는 너그러운 창공의 원(圓)! 그 써―클 밑에 아슴히 구비쳐 솟은 머언 산맥, 남으로 남으로만 벋어 나린 산줄기야!   초록 눈부시게 부풀어 오르는 계절 돌아오면, 너의 완연한 모습은 영원을 노래하는 줄기찬 리듬! 활활 풍기는 산정기 박하냄새 짐승의 발자국 냄새 얽혀진 너의 야성의 생리―그 송가 높이 부르렴!   태곳적 이곳에 첨으로 빗방울 떨어져 내려 한 방울은 동으로 또 한 방울은 서쪽 사태를 굴러  내려, 아! 여기 위대한 분수령(分水嶺)― 너는 조선(朝鮮)의 등성이뼈로 충성의 역사를 살아 왔고   다시 그 옛날 아득한 그 무렵에, 이 나라의 젊은 넋, 청춘의 군라상(群裸像)이 츨ㄱ잎 뜯어 몸 가리우고 굵다란 로망(ROMAN)의 산허릴 넘던 날, 우렁찬 그 민족의 코러스에 동해도 우쭐거려 퍼더기었다, 울릉도는 머언 하늘 갓에 사뭇 흐려만 보였다   달 밝은 밤, 별 송송 푸른 밤, 칠백리 구비구비 돌아 흐르는 낙동강 잔물결 위에, 골작마다 깃들인 흰 겨레의 평화론 숨소릴 조심조심 새겨 왔으나   아 언제부터 불행과 슬픔은 너의 옷자락을 핥기로 했으며 그 어느 원한의 때로부터 이 강토의 운명은 너의 허리 춤에다 사슬을 감았던가?   오늘 다시 불길한 일식(日蝕)의 그늘에서 귀신처럼 히히! 웃으며 너의 순결을 짓밟고 영원해야 할 연륜(年輪)에다 붉은 도낏날을 넣는 반역의 형제들 있어, 큼을 섬기는 슬픈 습성이 인민의 앞길에다 암담을 수놓는 이날   태백아! 모진 짐승인 양 굵게 사납게 몸부림 쳐라. 엄한 부성(父性)처럼 추상같이 꾸짖어라! 그리하여 천년 묵은 침묵을 찢고 화산 그러하듯이 인젠 진정 터져라!   죽순, 1947. 10           파아란 항해                               조향   파아란 항해(航海)   가뱝게 꾸민 등의자는 남쪽을 향하여 앉았다. 앞에는 바다가 신문지처럼 깔려 있고…… 바다는 원색판 그라비유어인 양 몹시 기하학적인 각선(脚線)을 가진 테―불 위에는 하얀 한 나프킨이 파닥이고 곁에는 글쎄……글자를 잃어버린 순수한 시집(詩集)이 바닷바람을 반긴다.   꽃밭에는 인노브제크티비테*의 데사잉! 당신의 젖가슴엔 씨크라멘의 훈장이 격이세요.   석고빛 층층대를 재빨리 돌아 올라 가면 거기 양관의 아―취타잎 유리창 여기선 푸른 해도(海圖)가 한 핀트로만 모여 든다.   IRIS OUT! 렌즈에는 해조(海鳥)의 휘규어!   ―― 그대는 인민의 항구가 그립지 않습니까? ―― 새로운 로맨티즘의 영토로…… 그렇죠? 수평선 위에 넘실거리는 새 전설의 곡선! 나는 산술책을 팽개치고 백마포(白麻布) 양복 저고릴 입는다. 나는 파아란 항해에 취한다. 나는 수부처럼 외롭구나.   19××년 향그런 무역풍 불어 오는 밝은 계절의 그 어느날 그대는 여기서 내 사상의 화석을 발견하시려는 건가?   나는 언제나 조선이 사뭇 그리울게니라.   ADIEU!   *인노브제크티비테: 비대상성(非對象性)   죽순, 1947. 8            
813    클릭하면 뜨는 시모음 댓글:  조회:6838  추천:0  2015-04-01
[시모음 목록 가나다 순으로 보기]         ㄱ 강유정 강인한 강은교 고원 고은 고정희 곽재구 구상 기형도 김광균 김규동 김기림 김남조 김남주 김동환 김명수 김명인 김상옥 김상용 김소월 김수영 김승희 김억 김영랑 김용택 김정란 김정환 김준태 김종해 김지하 김진경 김창완 김초혜 김춘수 김현승 김혜순     ㄴ 나태주 노천명 노향림     ㄷ 도종환     ㅁ 마광수 마종기 모윤숙 문덕수 문병란 문정희 문태준 시모음 민영 민용태     ㅂ 박남수 박남철 박노해 박덕규 박두진 박목월 박몽구 박봉우 박세영 박영희 박용래 박용철 박인환 박인환(박재삼) 박정대 시모음 박판식 시모음 백석 변영로     ㅅ 서정주 설정식 송기원 송수권 신경림 신달자 신동엽 신석정 신석초 심훈     ㅇ 양성우 양주동 오규원 오상순 오세영 오장환 오탁번 유안진 유진오 윤동주 이가림 이근배 이기철 이동순 이병기 이상 이상화 이성복 이성부 이승훈 이시영 이용악 이육사 이윤택 이은상 이제하 이하석 이형기 이호우 임화     ㅈ 장정일 전봉건 정양 정인보 정지용 정진규 정현종 정호승 정희성 조병화 조정권 조지훈 조창환 조태일 조향 주요한     ㅊ 천상병 천양희 최남선 최동호 최두석 최승자 최승호 최하림     ㅍ 피천득     ㅎ 하재봉 하종오 한용운 한하운 허영자 허형만 홍윤숙 황금찬 황동규 황명 황순원 황지우              
812    현대미술의 거장 - 훼르난도 보테로 댓글:  조회:4946  추천:0  2015-03-30
  현대미술의 거장 Fernando Botero/훼르난도 보테로     사색에 잠긴 화가 보테로       화가 Fernando Botero Angulo(1932 - )      Abu Ghraib 시리즈 앞에 서있는 화가 보테로     Fernando Botero/훼르난도 보테로, 1932년 4월 19일 남아메리카 북서부에 위치한 콜럼비아 안데스 고원 메딜린에서 가난한 행상이었던 아버지와 재봉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3형제 중에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이 시대의 가장 잘나가는 화가 가운데 한 인물이자 총아인 보테로가 4살 때 그는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성장하는 동안 열두 살이 되어서야 장학금을 받고 예수회 재단의 부속중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삼촌은 그를 1944년 투우사 양성소 학교에 입학시켰으나 그 곳에서 2년동안 머무는 동안 어린 보테로는 투우사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수채화로 투우경기 그림을 그리는 데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지역신문 El Colombiano가 주최하는 미술전시회에 처음으로 참여하여 라틴 아메리카 미술사를 오늘날에도 대표하는 인물로 우리 모두가 빼놓을 수 없는 당대의 아방가드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후리다 칼로의 남편 Diego Rivera등의 작품을 만나 영감을 얻게 되어 1949년 을 그는 창작하는 계기를 맞는다. 그러면서 그는 그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의 기초를 다져가게 되며 결국 그의 아방가드적인 시대를 앞서가는 누드화등으로 인하여 그는 결과적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간신히 고향 메델린에 있는 Universidad de Antioquia 부설 중고등학교를 1950년도에 맞추게 되었다.      Woman Crying 1949    1949년과 1950년에 보테로는 고향 메델린 근처에 있는 도시 Marinilla의 San Jose 고등학교에서 수학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로 옮겨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고 곧 이어서 첫 개인전을  1951년 고갱과 피카소의 영향 아래 Galeria Leo Matiz 에서 개최하고 1952년 일단의 화가들과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떠나며 잠시 마드리드에 있는 Academia de San Fernando에서 1953년까지 공부를 하는 동안 세계 미술관에서 한 획을 긋는 그 유명한 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고야와 벨라즈케즈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53년 그는 다시 빠리로 거처를 옮기며 루부르 미술관에 소장된 근대 프랑스 대가들의 작품에 무한한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되며 다시 르네상스의 메카 이태리 훌로렌스로 여행을 하게 되며 1953년부터 1954년까지 르네상스의 대가들인 Giotto, Uccello와 Piero della Francesca등의 작품을 공부하며 후레스코를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1955년 모국으로 돌아가 그는 보고타 국립미술대학에서 2년간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국립도서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지만 아방가드적인 그의 20개의 작품은 전통적인 미술관념에 익숙한 당대의 비평가들로 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며 결국 몇 작품밖에는 팔지를 못하고 만다. 그 후 그는 다시 Diego Rivera의 나라 멕시코로 거처를 옮겨 활동하며 그의 새로운 실험정신이 담긴 대표작 가운데 한 작품 Still Life with Mandolin을 통한 대담한 기법의 색감과 대상에 대한 그만의 새로운 표현 기법으로 점차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밖에서도 인정받는 화가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Still Life with Mandolin, 1957       Still Life with Mandolin, 1998     1957년 당시 추상화의 메카 뉴욕으로 거처를 다시 옮기며 1958년 모국 콜롬비아 살롱전에 나가 그의 대표작의 하나 Camera degli Sposi(The Bride’s Chamber)로 1등이란 대상의 영예를 얻고 같은 해 미국 수도 워싱턴 디 씨에서 개최된 개인전 첫날 모든 작품은 날게 도친 듯 매진되는 성황을 이루고 같은 해 뉴욕에서 개최된 구게하임 국제미술 전시회에 작품을 전시하게 되며 1960년 멕시코 비엔날레에 콜롬비아 대표로 참여하고 같은 해 그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로 옮겨 작품활동을 시작하며 1961년 뉴욕현대미술관이 그의 작품 를 구입한다. 그 후 1966년 독일 바덴 바덴에서 첫 유럽전시회를 개최한다.      Camera degli Sposi (Homage to Mantegna) II, 1961      Mona Lisa at Age Twelve     그리고 그는 유럽과 뉴욕을 오가며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국제적인 대가로서 작품활동을 시작하며 현재도 그의 작품전시회는 북미순회와 더불어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서 9월 17일까지 개최되고 있으며 이번 전시회가 모국 한국에서 개최되는 두 번째 그의 작품전시회가 된다. 기회가 되시는 분들 에게는 강력히 가보실 것을 권고하고 싶다. 아마도 이런 거장의 작품을 직접 모국에서 관전 할 수 있는 기회란 그렇게 자주 올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러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기전에는....   한때 그의 고향 메델린은 마약 카르텔의 본거지가 되어 악명 높은 마약거래의 두목으로 1993년에 죽은 파블로 에스코바의 집에서 두 점의 그의 작품이 걸리는 개인적인 불운을 겪으며 그의 고향 메델린 시에 기증한 조각작품 는 1995년 게릴라들의 폭탄 테러로 파괴되는 비운을 맞게 되며 간신히 마약조직의 납치를 모면하게 되는 위기를 모면한다.      Fernando Botero - Bird, 2006/ 폭탄 테러를 당한 조각 작품 새가 아님     그의 아들 훼르난도는 콜롬비아 전직대통령 Ernesto Samer의 대선에 마약 단체로부터 불법으로 유입된 선거자금으로 유죄선고를 받게 되어 화가 보테르는 아들과 3년간 단절을 하고 사는 아픔을 겪게 되며 추후 화해에 이른다.   이런 일년의 일들로 하여금 화가 보테르는 화가로서 정치색이 담긴 작품을 창작하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되며 현재 이라크에서 행하여졌던 미국 정부의 일년의 군사행동으로 행하여진 수감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고문행위에 대한 작품을 고발형식으로 Abu Ghraib 시리즈를 연작으로 창작하여 그의 일부를 미국 캘리훠니어 주립대학교 버클리 분교 미술관에 최근 기증하였다.   Abu Ghraib 시리즈 앞에 서있는 화가 보테로     화가 보테르는 현재 그리스 조각가인 Sophia Vari와 세번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200 밀리온 달러가 넘는 가치의 그의 작품과 더불어 그의 소장품인 인상파들의 작품과 20세기 추상화가들의 작품 90점은 모국의 고향 메델린의  미술관과 수도 보고타등의 미술관에 기증되어 있다. 현존 작가로서 그의 작품은 세계 미술시장 경매에서 한 작품만으로도 수십억을 홋가한다.   이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올리기까지는 거의 1주일이란 시간이 소요되었다. 현재 뉴욕에 계시며 특별히 보테로 작품에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계신 아이앰영님과 예술과 이지와 지성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을 위하여 여기에 극소수지만 거장 보테로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이미 그는 천여점이 넘는 작품을 창작하였다.   현재 화가 보테로는 프랑스 수도 빠리, 뉴욕, 그가 후레스를 공부하였던 이태리 시골의 작업장과 모국 콜롬비아를 오가며 현재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75년 이후 조각에 보다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전세계 주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미술 경매 시장에서 피카소 샤갈 미로등과 더불어 가장 많은 작품이 거래되는 인기를 얻고 있는 화가로서 견고히 그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화가 보테로의 대상들은 모두가 부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인체구조나 모든 정물 조차도 통통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의 초상화 조차도 누군가 그에게 물어 보았다. 왜 당신의 그림의 대상은 모두가 부풀려져 있고 비만인가라고 그러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번도 비만의 대상을 그린적이 없다. 다만 양감을 강조하였을 뿐이라고...." 거장 답고 작가다운 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너스도 모나리자도 모두가 비만의 통통한 여성상이다. 현란한 색감과 풍부한 양감의 그의 작품은 현재 전세계 각국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하물며 그의 조각상은 동남아시아 싱가포르에도 있다. 대한민국도 그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럼으로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이나 예술애호가들이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명화를 감상 할 수 있고 동시에 문화선진국임을 깨닫게 되기를 기원한다.             작가에 대한 비평이나 견해는 때로는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왜곡될 수 있으며 누가 될 수 있씀을 상기하며 그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모든 것은 글을 읽고 작품을 감상하게 되는 여러분들의 몫으로 남겨 놓습니다.     *  미술작품은 꼭 미술전문가나 전공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누구든지 보고 기쁘고 행복하고 내면에 충만함을 느끼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며 또한 특정한 보는 기법이나 방법이    있다라고는 더 더욱이 생각하지 않는다. 보고 행복하면 된다라고     믿고 생각하고 싶다. 극소수의 미술관의 전문 큐레이러나 미술가나    미술사학자들이나 미학의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Flowers      Woman With Dog 1996    크리스티 경매에서 수억을 호가한 작품       Still Life with Lobster, 2002      El Pueblo        El ladrón/도둑, 1980      Bailarines, 2000         Woman in the bathroom, 2000         자화상      Mano Grande, 1981/조각 작품      Pear, 1976      Donna Allo Specchio, 2003         Still Life with Bananas, 2006            Venus, 1977 - 1978     Self Portrait with Flag       Still Life with Blue Coffee Pot, 2002         Dog Turning a Corner, 1980       Still Life With Flowers       Adam and Eve, 1998       Venus, 1971, Charcoal on Canvas      Flowers, 1967        Cabeza de Cristo        Fish, 1961          Still Life With Green Bottle, 2002       Still Life with Lamp, 2000      Still Life With Le Journal      Picnic/소풍, 2002       Puppies, 1966      Bananas, 1990      Banistas, 2000        Homenage a La Tour, 1998        The Road, 2001      Dying Bull, 1985      The Kitchen Table, 2001      Dancing in Colombia, 1980      Dancing, 2002       La corrida, 2002          Oranges, 1999        Woman Reading, 2002      Venus      Reclining Woman With Cloth, 2002      Still Life with Oranges, 1967    
811    현대추상미술 창시자 中 - 바셀리 칸딘스키 댓글:  조회:2287  추천:0  2015-03-30
** Vasily Kandinsky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세계** - 바셀리 칸딘스키 (1866 - 1944. 12. 13 ) -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의 화가. 모스크바 출생. 1939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현대 추상미술을 창시한 한 사람이며 처음에는 법률과 경제학을 배웠으나,  1895년 인상파전을 보고 모네의 작품에 감명을 받고 이듬해인1896년 뮌헨으로 옮겨  아즈베와 슈투크에게 사사하여 화가로 전향하고 표현파인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뮌헨에서 예술가 집단인 ‘청기사’를 조직하여 비구상 회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810    현대미술의 거장 - 살바도르 달리 댓글:  조회:2194  추천:0  2015-03-30
    현대미술의 거장들  : 살바도르 달리, 빌헬름 텔의 수수께끼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했던 달리는 이를 빌헬름 텔의 형상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1930년 이후의 많은 작품들처럼,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고뇌를 밖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지도층의 무서운 아이(앙팡 테러블)로 우대되었던 자기연출법은 전후 전례가 없는 양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 '빌헬름 텔의 수수께끼'는 1933년에 제작되어 1934년 앙데팡당전에 전시됩니다. 앙드레 브르통과 그 추종자들은 이 그림을 보고 분노하여 그림을 파기하려 하며 달리를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이 작품 외에도 빌헬름 텔을 묘사한 작품이 있는데, 1930년도에 제작된 '빌헬름 텔' 과 1931년에 제작된 '빌헬름 텔의 고령'이 그것입니다.             반복되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아버지에게 집착하게 된 달리는 스위스의 국가 영웅인 빌헬름 텔의 형상으로 내면을 표현합니다.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 놓고 활을 쏜 빌헬름 텔은 달리에게 있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비정한 아버지에 다름 없었을 것입니다.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달리는 이 작품에서 자전적 암시와 정치성을 내세웁니다. 그림의 주인공인 텔은 비석판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위에는 시계 하나가 녹아내리고 있죠. (달리의 작품 '기억의 고집'이 떠오르는군요.) 묘비명은 그림의 제목을 재현하고, 텔의 우산 모자는 긴 혓바닥처럼 보입니다. 그의 등 쪽으로는 힘의 상징인 남근이 길게 늘어져 있으며, 끝 부분에는 받침대가 있군요. 이것은 달리의 세계에서 부활과 죽음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그는 팔에는 아이를 안고 있으며 아이의 머리 위에는 사과 대신 날고기가 얹혀 있군요. 아이는 곧 잡아먹힐 것처럼 보입니다. 작품 속 텔의 얼굴은 레닌과 꼭 닮아 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는 1904년 카탈루냐의 피게라스에서 태어납니다. 일찍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달리는 당시 아버지의 친구였던 한 화가에게 교육을 받습니다. 14세 때 첫 전시회를 열어 두각을 나타내었고, 그 후 입체파와 19세기 스페인 미술에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1920년대 말 본격적인 초현실주의 화풍을 보이게 된 달리는 1929년 파리에서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를 알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는 브뉘엘의 초현실주의적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에 협조하고, 최초의 초현실주의적인 그림 '어두운 게임'을 그리게 됩니다. 이후 한동안 뉴욕에서 사회지도층을 칭송하며 보낸 달리는 부와 명성을 얻게 되고, 1948년 유럽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대단한 명예과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더이상 작품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않다가 1989년 고향인 피게라스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빌헬름 텔의 수수께끼: - 1933, 캔버스에 유화, 201.5x346cm 스톡흘름 현대미술관 소장    
809    한반도 종교의 력사 댓글:  조회:4637  추천:0  2015-03-30
●한반도 종교(宗敎)의 역사(歷史)와 현실...● -일월신앙(日月信仰)- 최초 인류신앙(人類信仰)은 일월신앙(日月信仰)입니다. 모든 인간이 해(日)와 달(月)의 령신(靈神)은 두려움의 대상이며, 또 한 믿음(信)의 대상이 되었지요. 태양의 강렬함과 부드러움이 사람의 삶(生活)속에서 수 많은 변복(邊複)을 거치며,  삶과 죽음을 관장하게 되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고, 야(夜)의 세계에서 어둠의 무서움을 알기에 사람들은 일월신앙(日月信仰)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게 되었습니다.   -삼신신앙(三神信仰)- 하늘(天)의 재앙(災殃)과 하늘의 복(福)을 알았기에 이를 불(火)의 신(神)으로 받들게 되었습니다. 삶의 재앙(災殃)과 삶의 복(福)을 알아가니 이를 바람(風)의 신(神)이라 믿었습니다. 물(水)의 재앙(災殃)과 물(水)의 복(福)을 알았기에 물(水)의 신(神)이라 믿었습니다. 이를 삼신신앙(三神信仰)이라 이르며 우리네 삶에 삼재(三災)가 들면, 바로 화풍수(火風水)의 재앙(災殃)을 겪거나 화풍수(火風水)의 복록(福祿)을 받거나 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삼신신앙(三神信仰)을 받들어 모시며 액(厄)을 소멸(消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칠성신앙(七星信仰)- 인간의 삶인 변복(邊複) 속에서 칠성신앙(七星信仰)은 참으로 오묘한 우주(宇宙)의 흐름 속에서, 즉 우리 조상(祖上)님들은 신교 정신에 따라 하늘에는 절대적인 주재자가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하느님을 공경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祭天)의식이 오늘날 우리 생활속 깊이까지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우리 조상(祖上)들은 천지인(天地人) 합일 사상에 따라 인간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야 인간다운 삶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고, 하늘은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영혼이 돌아갈 고향으로 믿었습니다.   특히 우리 조상(祖上)들은 빛이 1→3(삼원색)→7(일곱 무지개)로 전개되고, 우리 몸이 1→3(삼혼三魂)→7(칠백七魄, 7개 챠크라)로 짜여 있듯이, 우주도 1(우주 본체)→3(자미원, 태미원, 천시원)→7(북두칠성 또는 4×7=28수)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즉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천제(天帝)를 대변하는 별로 보았고, 하느님의 자손(子孫)인 한민족(韓民族)으로선 죽어서도 원래 왔던 하느님 고향인 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 조상(祖上)들은 옛날 아무런 망원경도 없이 하늘을 보고 오늘날 봐도 놀랄만큼 정확한 천문도(天文圖)를 작성하고, 그 수 많은 별자리와 천체의 움직임을 파악했습니다. 별자리를 그냥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혜안(慧眼)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우리 민족(民族)은 예로부터 칠성신앙(七星信仰)이라는 매우 특이한 신앙(信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칠성신앙(七星信仰)은 고대 이래로 우리 민족(民族)만의 독특한 고유(固有) 전통신앙(傳統信仰)입니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이 우주(宇宙)에서 북두칠성(北斗七星)의 기운(氣運)을 받아서 태어난다고 칠성신앙을 믿어왔습니다. (얼굴에는 일곱개의 구멍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옛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장독대 위에 정안수를 떠 놓고 '칠성님'에게 소원을 빌어 왔으며, 우리 조상(祖上)들은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물론 수명(壽命)까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칠성님이 주관(主觀)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 왔으며 오늘날 까지 믿고 있습니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은 우리 조상(祖上)님이 믿던 삼신(三神)님을 별로 나타낼 때 붙여지는 이름이었습니다. 칠성신앙(北斗七星)의  신격화(神格化)한 칠성님 외에도 칠성신, 칠성여래(如來), 칠원성군(七元星君)등이 있습니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은 배달국과 단군조선시대(檀君朝鮮時代), 그리고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 백제(百濟), 가야(伽倻)는 물론 고려(高句)와 조선(朝鮮)의 별이었으며, 고조선(古朝鮮) 시대에 만든 고인돌의 뚜껑돌 위에 이미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특히 고구려(高句麗) 왕릉의 천장 벽화(壁畵)에서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의 형상이 다량으로 발견되었고, 광개토대왕비 상단 경주 호우총(壺?塚) 출토 청동 호우, 중원 누암리 출토 제기(祭器) 등 각종 고구려 유물에서는 정(井)자도 함께 발견었으며, 소설가 최인호씨가 96. 8 SBS가 방영한 「왕도의 비밀」에서 고구려(高句麗)의 상징 문양으로 제기한 우물 정(井)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곳을 나타내는 것을 밝혀으며, 최인호씨는 이 井자를 백두산(白頭山) 천지(天地)로 이것은 井을 땅에 적용시킬 때는 맞을 것이나 하늘에 적용시키면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을 비롯한 고구려(高句麗)인들은 스스로를 하늘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자손 즉 천손민족(天孫民族)으로 적고 있습니다.   북두칠성(北斗七星)과 관련된 이야기를 몇가지 추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요 세계 최초의 나라인 환국(還國)은 7명의 환인(桓因)이 3301년 동안이나 통치했는데, 이 7대에 걸친 7명의 환인(桓因)들은 북두칠성(北斗七星)과 모종의 관련이 있습니다.   절에 가보면 대웅전 뒤편에 칠성각(또는 칠성당, 칠성전)이라는 전각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일하게 우리나라 불교(佛敎) 사찰내에만 존재하며, 원래 불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것이지만, 이 전각은 한민족의 칠성신앙(七星信仰)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사찰(査察)내에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옛날 마을에 있던 칠성당(七星堂)도 바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성신(聖神)을 모셔놓고 기원하던 사당(祠堂)입니다.   민가에서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장독대 한 옆이 칠성당(七星堂) 자리가 되어 정안수(淨眼水)를 떠놓고 소원을 빌던 터전이었고, 앞에서 기술했듯이 중국 한족(漢族)은 동이족의 주성인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앙하다가 진(秦)나라 이후 중원을 지배하고 동이족을 북방으로 몰아내면서 금성을 주성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이라는 널판을 관 밑바닥에 깔고서 그 위에다 시신을 눕혔습니다. 여기서 죽는 것을 '칠성판 짊어지고 간다'고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칠성판은 널판에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모양을 형상화하여 아래와 같이 7개의 구멍을 뚫거나 먹으로 표시를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장례풍습(葬禮風習)은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민족(韓民族)만의 독특한 풍습입니다. 이것은 그 영혼(靈魂)이 본래 온 고향별인 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 돌아가라는 염원(念願)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면서 맨 먼저 지내던 초례(醮禮)는 칠성님께 드리는 인사였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임금들이 지내던 초재(醮齋)도 칠성님께 올리는 인사와 기원이었습니다.  이 칠성신앙(七星信仰)인 초재는 조선 중종·명종조에 유명무실해졌습니다. 경복궁과 창덕궁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자미원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을 호위하는 28수(宿) 별자리를 본 따 조경한 독창 예술품인 동시에 북두칠성(北斗七星) 신앙과 삼신상제 신앙의 대표작품이었습니다.   일월오악도 창덕궁의 인정전 실내도 경복궁 근정전과 같은 형상입니다.  소요정(逍遙亭) 네 개의 기둥에 일곱자씩 쓰인 글귀는 자미천(紫微天)을 묘사한 것입니다.  소요정 앞의 어정(御井: 임금샘)은 북두칠성(北斗七星) 모양을 나타내는(자미원을 태을천 太乙天이라고도 한다) 을(乙)자 모양으로 물길을 팠습니다.   소요정(逍遙亭)의 북쪽에 있는 청의정(淸?亭)은 삼신신앙(三神信仰)의 바탕인 원방각(遠方各)형으로 지었습니다. 소요정(逍遙亭)의 동쪽에 있는 정자는 이름을 아예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을 뜻하는 태극정(太極亭)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와 같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시대의 고궁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하늘의 궁궐, 자미궁(紫微宮)을 본 따 지은 대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민족 고유의 칠성신앙(七星信仰)을 바탕으로 합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나라와 민족을 지탱하던 정신적 지주였던 칠성신앙(七星信仰)을 몰아내기 위해 칠성신앙(北斗七星)의 대표작인 경복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총독부를 지으면서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칠성신앙(七星信仰)을 포함한 온갖 전통신앙(傳統信仰)을 탄압하여 없애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전통신앙(傳統信仰)을 미신으로 보는 것은 근대에 와서 서양 기독교의 영향외에도 일제의 이와같은 음모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 다행히도 총독부는 95. 8. 15일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철거되어 지금은 옛 모습대로 복구되었다. 민족정신의 정기를 바로 세운 쾌거였으나, 궁궐만 복구하였을 뿐 아직도 우리는 경복궁 조성에 간직되어 있던 진짜 의미인 칠성신앙(七星信仰)과 삼신상제(三神上帝) 신앙은 복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대다수 한국인은 경복궁에 그런 의미가 있었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으니 또 한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북두칠성(北斗七星)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속한 태을천(자미원)이 우주에서 어떠한 위치와 역할을 하기에 우리민족이 오랜 기간 그렇게 열렬히 신앙하여 왔고 궁궐조성에까지 그대로 모방하였는 가를 알아봅시다. (중국에서도 북경의 자금성[紫禁城]은 자미원[紫微垣]을 본 뜬 것이고, 자미원[紫微垣]의 색깔인 자줏빛 옷은 황제 이외에는 입지 못하는 황제의 색깔이었다). 하늘의 중심에는 북극성(北極星)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자미원(태을천)이 있고, 그 밖으로 28수(宿) 안의 태미원과 28수 밖의 천시원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천문의 분포를 3원, 28수 그리고 300의 성좌(별자리)와 1,460개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미궁(紫微宮)은 하늘의 핵심으로 상제가 머무는 곳이며, 이러한 자미궁(紫微宮)은 제후격인 28수(동서남북 각 7개)의 호위를 받고, 28수는 28수대로 해와 달, 목, 화, 토, 금, 수성의 7개 별인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고 있습니다. 하늘이 구천까지 전개되어 있다고 보았기에 자미궁(紫微宮)을 구천(九天)궁궐이라고도 하며, 이를 본따서 땅의 궁궐을 구중(九重)궁궐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다음은 지구와 북극성(北極星)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북극성(北極星)은 우주의 북쪽 끝인 황도북극에서 동쪽으로 23.5도 각도인 천(天)의 북극(北極)에 떠 있습니다.  지구의 축은 이 북극성(北極星) 을 향하여 23.5도 기울어져 있으며 태양 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반복합니다. 문왕팔괘(文王八卦)를 보면, 하늘(乾)이 서북쪽에 있고 땅(坤)이 서남쪽에 있는 데 이것은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말합니다. 지구는 황도 북극(北極)을 향하여 스스로 바로 서려고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북극성(北極星)과 반대편의 23.5도 각이 되는 곳에 있는 직녀성(織女星)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세차(歲差)운동을 합니다. 또한 북극성(北極星)도 항상 같은 위치에 있지 않고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도인(道人)들은 무슨 별을 봐야겠다고 응념하면 낮과 밤에 상관없이 해와 달, 별들을 관측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한반도의 모든 종교 역사를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이렇습니다. 1. 일월신앙 2. 삼신신앙 3. 칠성신앙 4. 불교신앙 5. 유교신앙 6. 도교신앙 7. 천주교신앙 8. 기독교신앙 ...
808    연변작가협회 <공로상> 댓글:  조회:4726  추천:0  2015-03-30
                                                   
807    록색 시 몇점 댓글:  조회:1591  추천:0  2015-03-30
                없다가 있다가 좋다가   좋다가 있다가 없다가   없다가 좋다가 있다가   있다가 없다가 좋다가   좋다가 없다가 있다가   ㅡ 쿵쾅쿵쾅 쾅쾅... ㅡ 쾅쾅 쿵쾅쿵쾅...   나무는 말한다 나는 산새소리 듣기 좋다   꽃은 말한다 나는 꿀벌소리 듣기 좋다   모래는 말한다 나는 바람소리 듣기 좋다   바위돌은 말한다 나는 여울소리 듣기 좋다   E 선은 말한다 나는 싸이렌소리 듣기 싫다   ㅡ쾅쾅 쿵쾅쿵쾅... ㅡ쿵쾅쿵쾅 쾅쾅...   좋다가 없다가 있다가 있다가 없다가 좋다가 없다가 좋다가 있다가 좋다가 있다가 없다가 없다가 있다가 좋다가   살아서 한냥짜리 될가...!?...?!... 죽어서 천만냥짜리 될가...?!...!?... 모 두 들 종당엔 저기 저ㅡ 높은 산아래 한줌의 자그마한 이 되련만!!!   -벗님네들, 무사함둥...!...?...                그리운 외태머리                                            황홀한 꿈속에 한일자로 드리웠었네   이 내 마음 한자락에 찬란히 새겼졌다네   사시절 그 언제나 무언의 웨침표와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나붓긴 외태머리   사시절 그 언제나 무언의 웨침표와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반겨준 외태머리   음~   외태머리 하나 외태머리 하나   이 내 마음속 불태우며 울긋불긋 나붓겼다네    이 내 마음속 불태우며 싱글벙글 반겼다네   루루루 나만의 떠올려보는 그리운 외태머리야   루루루 나만의 떠올려보는 둘도 없는 추억속의 외태머리야...                                                       그 10월의 빛(66)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개굴개굴 ㅡ 복사꽃 피는 내 고향이다가                                옹기종기 ㅡ 꿀샘을 파는 초가삼간이다가                                새콤달콤 ㅡ 오얏 따주는 할배할매이다가                                시원컬컬 ㅡ 막걸리 빚는 시골의 향음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진단(震檀)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이다가                                10월의 빛, 그 어느날의 찬란함이다가                                ㄱ ㄴ ㄷ ㄹ...ㅏ ㅑ ㅓ ㅕ...이다가                                백두대간 너머 너머 두만강 압록강 건너 건너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 흐르는ㅡ                                그 마력(魔力)                                                  영원불멸, 영원불멸,                                아, 그 이름 세월과 더불어                                                       온 누리 만방에...                                루루천년의 푹풍 새하야니 일으키는 훈민정음!                                  단풍, 그 찬란한 대화                                                                                         노오랗게                                                    익어가다                                          빠알갛게                                                    번져오다                                          그리움의 넋이 모여                                          침묵으로 화답하는                                                   뭇산,ㅡ                                            우                                             러                                                 러                                          보는 사이에                                                     내 마음도                                                         불   불                                                         불   불         록색그늘앞                                                                  섣달그믐도,- 정월보름도,ㅡ ... ...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 ... 모두모두 알 한알 턱,- 점잖게 끼고 잘도 지나가오 서로 힐끔 서로 할끔 쳐다보며 잘도 오고지오 365.242195도 오호라, 알 한알 찰싸닥 끼고 아리아리 아리랑 쾌지나칭칭 강강수월래 이끼 누런 노을속에서 버둥대오 바랑(風囊)에 사금쪼가리 듬뿍 멘 도 에서 하얀 그림자 아롱다롱하오 ...꾸겨진 령혼과 ...텅 빈 령혼과 오늘도 근량쭝 나눠먹기로 서걱거리오     모두들 깻까잠둥 ! ... ? ...                    록색25시                                          乾방의         절주입니껴... 中방의         호르래기소리이시더... 坤방의          흐느낌도 함께라면... ... ...   명멸하는             어느 한 과... 작열하는             어느 한 와... 새롭디 새로운             어느 한 도... ... ...   앗, 52시~~~...         록색공룡     눈, 모든것이 고갈되여가고 있다하꾸마 코, 모든것이 여위여가고 있다하니껴 입, 모든것이 갈라터지고 있다하잼두 귀, 모든것이 훼멸되여가고 있다하닌디ㅠ 알, 모든것이 되여가고 있습니다 청정, 모든것이 末을 고하고 있소...     그, 어느 날 새벽녘,- 자연의 뒷소리여,,,     엇~허, 너도밤나무를 심으며,ㅡㅡㅡ                     록색무덤                                                                                                                                                                 잡,- 욕망                                   종기                                                                                    탐음                                        혼탁        동,-                                                                          공허                                    어둠 사,-                                                                    올가미                                                          니,-                                     척보도 내처 디딜 곳조차 없습니다...                                                            벽                                                                        메~ 울타리                                       소음                                                          아~                                                                              58덕목                                     48경계                                                          10중계률 리~                                   바늘 한개비 세워둘 거처마저 없습니다...                                                              여보소                                               淸瀞 = 허공 = 10분의 1                                           무덤前앞에서 굽썩 절하며 비워보기                                           무덤後뒤에서 홀로 가토하며 비워보기                                           무덤右편에서 묵은 풀 베버리며 비워보기                                           무덤左편에서 돌 줍어내며 비워보기...                                                    모두들 깻까잠둥...!...?...          록색서점邊                                                                          위대하시고... 저명하시고... 세계의 최초이시고... 포에지(詩)묶음 500부 印刷,- ... 서점가(邊) 詩매대는 먼지님의 잔치마당으로,ㅡ 서점가 詩매대는 곰팽이님의 향연으로,ㅡ  ...   엇~허~ 좋을씨구... 묶음 50000부 印刷,- ... 눈매로 향한 입매로 향한 콧매로 향한 귓매로 향한 볼매로 향한  누드쇼로 향한,ㅡ ... (모두들 무사함둥 ! ? ) (文學 詩왕관은 어디에서 팔고사고 함둥 ! ? )
806    안동간고등어 노래말 몇점 댓글:  조회:1332  추천:0  2015-03-30
           안동간고등어축제가                                                                                                        竹琳 . 김승종                                                                            여보소 벗님네들 청어당 특산품 안동간고등어를 아시나요                      고향의 인정미 풋풋하고 은근히 구수한 안동간고등어요                      전통먹거리로 사시사철 맛자랑 열어가는 안동간고등어요                      하늘과 함께 땅과 함께 찬란히 사랑을 나누는 안동간고등어요                      에헹요 데헹요 어절씨구 저절씨구 안동간고등어요                      푸른 물결속에서 오늘도 래일 향해                       최상의 신화로 대를 이어가는 안동간고등어요                          여보소 벗님네들 청어당 특산품 안동간고등어를 아시나요                      드넓은 청정의 바다에서 선물로 받은 안동간고등어요                      지구촌 너머로 방방곳곳 살림을 빛내이는 안동간고등어요                      태양과 함께 달과 함께 영원히 행복을 나누는 안동간고등어요                      에헹요 데헹요 어절씨구 저절씨구 안동간고등어요                      푸른 물결속에서 오늘도 래일 향해                      최상의 신화로 대를 이어가는 안동간고등어요                                      다시 만나요 안동간고등어 축제날                                                        (안동간고등어 축제 페막가)                                                                                                              반가워라 안동간고등어 축제날 정들었던 벗님네들                      다시 만날 기약을랑 잊지 맙시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고풍스러운 내 고향 -안동                     등푸른 생선 물결 설레이는 -안동, 안동간고등어 원조 -안동                      사랑입니다 불타는 사랑으로 흘러 넘치는 안동입니다                        아,~ 흥겨운 안동간고등어 축제날 우리 다시 만납시다                      얼쑤 지화쟈 좋을씨구 사랑을 위하여                      절쑤 지화쟈 좋을씨구 우리 모두 다시 만납시다...                          반가워라 안동간고등어 축제날 정들었던 벗님네들                      미풍량속 빛내이며 다시 만납시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고풍스러운 내 고향 -안동                     등푸른 생선 물결 설레이는 -안동, 안동간고등어 원조 -안동                      평화입니다 영원한 평화가 흘러 넘치는 안동입니다                        아,~ 흥겨운 안동간고등어 축제날 우리 다시 만납시다                      얼쑤 지화쟈 좋을씨구 평화를 위하여                      절쑤 지화쟈 좋을씨구 우리 모두 다시 만납시다...                      안동간고등어아리랑                                                                                                                                  시집가네 시집가 안동간고등어 시집가네                                   문경새재 넘어 시집가는 안동간고등어                                   소문났네 소문났소 옛맛 자랑이요                                   소문났소 소문났네 전통먹거리요                                  고향의 향취 듬뿍 담은 안동간고등어 시집가네                                   소문났네 소문났소 인기몰이요                                   소문났소 소문났네 동네방네요                                     아,~ 하~ 시집가네 소문났네                                   아리아리 안동간고등어 아리랑이요                                   아,~ 하~ 시집가네 소문났네                                   스리스리 안동간고등어 스리랑이요                                  살기좋은 내 고향 안동 - 안동간고등어아리랑...                                     시집가네 시집가 안동간고등어 시집가네                                   먼 바다 건너 시집가는 안동간고등어                                   소문났네 소문났소 옛맛 자랑이요                                   소문났소 소문났네 전통먹거리요                                  고향의 향취 듬뿍 담은 안동간고등어 시집가네                                   소문났네 소문났소 인기몰이요                                   소문났소 소문났네 사면팔방이요                                     아,~ 하~ 시집가네 소문났네                                   아리아리 안동간고등어 아리랑이요                                   아,~ 하~ 시집가네 소문났네                                   스리스리 안동간고등어 스리랑이요                                  살기좋은 내 고향 안동 - 안동간고등어아리랑...                                        안동간고등어타령                                                                                                          명물이로다 구수하고 맛좋은 안동간고등어로다                             마음 지쳐 입맛 없을 때면 안동간고등어 요리 제격이라네                             여보소 진수성찬 어서 오라 손짓하지만                             그래도 할매 손맛 듬뿍 배인 안동간고등어 맛 참 좋구려                                에루와 데루와 에헹요 데헹요 어절씨구                              오메가 쓰리 오메가 쓰리 안동간고등어 제격이로다                                특산이로다 구수하고 맛좋은 안동간고등어로다                            막걸리 한사발 생각날 때면 안동간고등어 요리 최고라네                            여보소 수라상이 어서 오라 손짓하지만                            그래도 옛맛 그대로 듬뿍 나는 안동간고등어 맛 참 좋구려                                에루와 데루와 에헹요 데헹요 어절씨구                              오메가 쓰리 오메가 쓰리 안동간고등어 최고로다                                                                                                                                                             낙동강 칠백리 여울소리 듣고싶었소                                            하회마을 흥겨운 탈춤을 보고싶었소                                            살기좋은 내 고향 안동이여                                            봉정사의 은은한 풍경소리 듣고싶었소                                             (독백;- 니 안동간고등어 머어봤나?...)                                             옛맛 살린 구수한 안동간고등어                                             향긋한 간고등어 더더욱 먹고싶었소                                             그 언제나 할머니 손맛 맛보고싶었소                                             고향이여 안동이여                                             간고등어의 원조 - 안동간고등어                                          아,~ 우리 생선 명가 청어당 - 안동간고등어여                                               세월과 더불어 꽃피여라 안동간고등어여                                                 도산서원 정다운 글소리 듣고싶었소                                             챗거리장터 소문난 간잽이 보고싶었소                                             살기좋은 내 고향 안동이여                                             대보름날 신명나는 차전놀이 보고싶었소                                             (독백;- 니 안동간고등어 머어봤나?...)                                             옛맛 살린 구수한 안동간고등어                                             향긋한 간고등어 더더욱 먹고싶었소                                             그 언제나 할머니 손맛 맛보고싶었소                                             고향이여 안동이여                                             간고등어의 원조 - 안동간고등어                                          아,~ 우리 생선 명가 청어당 - 안동간고등어여                                               세월과 더불어 꽃피여라 안동간고등어여                          그리워라 그리워 안동간고등어                                                                                                       타향에서 고향의 얼굴들을 보고싶을 때면                               스리슬슬 군침 도는 구수한 안동간고등어 요리 찾으며                               오늘도 올망졸망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려 봅니다                                 성스럽고 순결한 할머니손맛 그리울 때면                               스리슬슬 옛맛 살린 향긋한 안동간고등어 요리 맛보며                               오늘도 올망졸망 정다웠던 소꿉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아,~ 세월이 흘러 흘러 강산이 변해도                               그리워라 그리워 또 다시 반기는 청어당 안동간고등어                               아리 아리 스리 스리 오메가 쓰리 청어당 안동간고등어                               그 언제나 그윽한 그 맛자랑 빛내여가는 안동간고등어                               우리생선 명가 청어당 청어당-안동간고등어                                                              영원히 영원히 잊을수 없습니다                                     이역만리 낯설음에 마음 지쳐 입맛없을 때면                               스리슬슬 군침 도는 구수한 안동간고등어 요리 찾으며                               오늘도 올망졸망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려 봅니다                                 꿈결에도 챗거리장터 사구려소리 듣고싶을 때면                               스리슬슬 옛맛 살린 향긋한 안동간고등어 요리 맛보며                               오늘도 올망졸망 정다웠던 소꿉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아,~ 세월이 흘러 흘러 강산이 변해도                               그리워라 그리워 또 다시 반기는 청어당 안동간고등어                               아리 아리 스리 스리 오메가 쓰리 청어당 안동간고등어                               그 언제나 그윽한 그 맛자랑 빛내여가는 안동간고등어                              우리생선 명가 청어당 청어당-안동간고등어                                                             영원히 영원히 잊을수 없습니다                 
805    전라남도 광주 정률성 고향에서ㅡ 댓글:  조회:4715  추천:0  2015-03-30
                                                                   
804    그때 그때 저랬던가ㅠ... 댓글:  조회:5072  추천:0  2015-03-30
                                                 
803    그때 그때 이랬던가ㅠ... 댓글:  조회:5468  추천:0  2015-03-30
                                                                                                                                                                                                                                                                                                                                                                                                                                                                                                                                                                                                                                                                          
802    껌딱지에 령혼을 불어 넣는 길거리 화가 - 벤 윌슨 댓글:  조회:3068  추천:0  2015-03-29
Ben Wilson 예술가News            벤 윌슨(Ben Wilson)은 1963년 생으로 런던의 거리예술가랍니다. 예술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윌슨은 예술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었고 자신만의 캔버스를 찾는 도중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붙은 껌딱지를 발견했다고 하네요. 그 이후로 그는 껌딱지를 보며 '이것이 내 캔버스다'라고 생각 했다고 해요^^   그럼 벤 윌슨의 작품을 보러 가볼까요?         그의 손을 거쳐가면 지저분한 껌딱지도 요렇게 알록달록 생기를 찾네요! 그에게 껌딱지는 정해지지 않은 모양과 크기의 캔버스가 아닐까요?                  영어뿐만아니라 한국어도 있어요! 알록달록 주제가 한 가지에 국한 되어있지 않고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이렇게 운동화 옆에 있으니 얼마나 작은지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는 한복 입은 그림도 있어요. 영어뿐만 아니라 한글도 있다는 사실! 놀랍군요     벤윌슨은 껌딱지 아트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군요! "수입은 없지만 마음만은 부자다." "사람들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어떻게 보면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오브제에 의미를 부여하여 가치를 재탄생시키는 그는. 진정한 아티스트!!!!   이상 껌딱지 아티스트 Ben Wilson의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801    거리미술 거장 - 에드가 뮐러 댓글:  조회:3751  추천:1  2015-03-29
  에드가 뮐러의 신기한 3D아트   ​ ​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데 요즘엔 길거리에서 3D 같은 느낌의 예술작품들을 종종 볼 수 있게 되었죠~ 에드가 뮐러라는 아티스트가 이끄는 팀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착시를 일으키는 3D아트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 얼음 계곡 낭떠러지같은 이 작품을 여름에 보면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겨울인 지금 보니 뭔가 괜히 더 추운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_-;;   ​ 용암이 흐르는 절벽은 정말 언뜻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퀄리티가 좋습니다. 이렇게 그릴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었을텐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네요.   ​ ​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비나 눈이 오면 그냥 지워지는건지 궁금합니다. 또 궁금한게 다른 각도에서 봐도 이런 느낌일지... ㅎㅎ 쉽게 지워지진 않겠지만 결국 지워질텐데 지워진다면 뭔가 아쉬울 것 같네요~   ​ 애당초 이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유가 분필로 작품을 그려내는 작업을 보고 매력을 느껴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공부도 포기하고 어린 시절부터 거리 그림을 그렸다고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실제로 한번 꼭 보고 싶습니다!   [출처] 에드가 뮐러의 신기한 3D아트|작성자 헤드샷  
800    거리미술 거장 - 커트웨너 댓글:  조회:2519  추천:0  2015-03-29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우주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길거리 예술가 커트 웨너(Kurt Wenner)는 현재 길거리 예술가 및 건축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0대 후반부터 그래픽 아티스트로 돈을 번 그는 NASA에 들어가 우주 삽화 등을 그렸다. 르네상스 시절의 미술에 큰 관심이 많았던 웨너는 1982년 미술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고, 이후 '길바닥 입체 그림'을 선보이게 된다. 웨너의 길바닥 그림은 비슷한 종류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과 악, 구원 등 굵직한 주제와 살아 숨쉬는 듯한 입체 그림 기법은 그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주요한 구성 요소인데, 현재 그의 작품은 유럽, 타이완, 미국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799    거리미술 거장 - 쥴리안 비버 댓글:  조회:2680  추천:0  2015-03-29
    영국의 한 화가(?)라고 해야겠죠..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리는데..   쥴리안 비버(Julian Beever)의 작품들 입니다.         잘못하면 빠집니다.. 조심하세요..     미국 거리에 그린 JFK 대통령..     영국 런던 옥스포드 거리에 그려진 엘리자베스 여왕 1세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네요.. 정말 멋진 왕세자비였는데.. 교통사고로 죽었죠..     코카콜라네요.. 저 큰 것을 조그만한 병따개로 딸려고요??     앗 거리에서 금속 탐지기를 가동?? 혹시 금이라도 나올까봐요?? 설마..     헛 --;; 금이 나오네요..삽으로 파고 있습니다.. ㅎㅎ     기존에 발견한 금은 다 캐냈나 보네요.. 또 금속 탐지기를 작동하네요.. 또 나올까 --?     엄청 캤네요 --;; 무릎까지 들어갈 만큼.. 그런데 사람들이 조금씩 멈추고 금 캐는 걸 보고 있군요..      와.. 엄청 쌓였군요.. 저도 좀 주세요 --;;     거리에 대형 파리 나타남.. 그러나 우리 주인공은 간단하게 파리약으로 쒸~익 뿌리면 끝.     오.~ 길거리에서 벗고 그러면 안돼는데 --;; 여기가 해수욕장인가..     지구를 청소하는 청소부.. 쓰레기 치워 주세요..^^     옆에서 보니 --;; 그림 자체는 13m였습니다..     와우.. 이 사람이 여기서 수영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저도 같이 하고 싶네요..     위에 그림을 멀리서 보면 이런 그림이랍니다.. 보기보다 실제로는 상당한 그림을 그려야 할듯..     끔직하군요.. 가재가 아기를 잡아 먹나요?? 물론 아기도 그림이죠..^^     이런.. 아기가 없어졌네요.. --;; 가재는 배가 볼록하고.. 음..       소니 VAIO 노트북.. 설마 그려진 그림으로 인터넷 하는건 아니겠죠..?     완전히 블록을 들어냈네요.. 우리나라는 선거철만 되면 블럭을 들어낸답니다..     스파이더맨.. 벽돌위에 올라가 있는 주인공.. 근데 스파이더맨이 벽은 안타고 공중에 떠 있네요.. --;;       배트맨과 로빈입니다.. 사람이 자세를 저렇게 잡으니 더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자기의 도구 파스텔을 크게 나타냈네요..     이 작품 못 보셨나요??? 미술을 아는 분이라면 아실 듯.. 로세티의 걸작품 The Beloved       어떤게 진짜일까요? 알아 맞춰 보세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기 모습을 그린 그림..       오~ 얼음을 깨고 물개가.. 무엇인가요?? 돈? 아님 카드?     거리에 물웅덩이를 만들어서 배를 띄운다?? 물결 나타내는 것은 어려운 일 일텐데..     보도블럭을 들어낸 건 아닙니다.. 정말 보도블럭을 들어내고 땅을 판 것처럼 실사로 보이네요..     전부 그림이 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환상입니다..^^V     지나가는 미녀와 작품 만들기..     이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세상이 꺼꾸로 보이네요.. 혹시 땅속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요??     수영하시나요?? 참 설정도 재미있네요..^^     쥴리안 비버의 자화상을 거리에..     쥴리안 비버의 자화상     실제 모습.. 쥴리안 비버  
798    천재 예술가들 댓글:  조회:2413  추천:0  2015-03-29
  * 르네상스의 천재 예술가, 3대 거장  역사와 인물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부흥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내려는 운동으로, 근대 유럽문화의 기반이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의 정신과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이뤄냈지만, 특히 예술 분야에서 이룬 그들의 성취는 다른 무엇보다도 탁월하다. 르네상스라고 하면,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나 역동적인 조각품 등 아름다운 미술 작품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에서는 에서 다룬 르네상스 시대 세 명의 화가 이야기를 모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들, '르네상스 3대 거장'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다 빈치 [최후의 만찬] 1495년~1497년, 벽화(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460x880cm,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다재다능한 만능형 '르네상스인' 캐스트 원문보기 : 오늘의미술 - 르네상스와 르네상스인 천재는 재능과는 다른 말이다. 천재라는 말은 새로운 영역까지도 개척해야 얻을 수 있는 영광된 명칭이라면 다 빈치는 누구보다도 이 점에서 탁월했다. 그는 미술뿐만 아니라 해부학, 물리학, 광학, 군사학 등 다방면의 자연과학 영역에서 굵직한 발전을 이끌어낸 초인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에 대한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집요한 관찰력으로 새 영역을 열어나갔고, 새로운 지식을 창작활동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왕성한 호기심은 책임감을 크게 초과하였다. 그는 시작한 일을 대부분 끝내지 못한 채 다른 일로 넘어가곤 했다. 오늘날 일부 심리학자는 그를 주의력 결핍증 인간의 전형으로 보기도 한다. 그의 작품 [모나리자]의 경우도 배경과 인물의 세부 등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최후의 만찬' 등 밀라노 곳곳에 살아 있는 다 빈치의 흔적 캐스트 원문보기 :지구촌산책 - 밀라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 당시 밀라노에 입성해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을 그려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세나콜로]로 불리는 [최후의 만찬]에는 예수의 예언을 듣고 놀라는 12제자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 [최후의 만찬]이 훼손이 심했던 것은 레오나르 다 빈치가 당시 유행했던 프레스코화 대신 다양한 용매를 이용하는 ‘템페라’ 기법을 썼기 때문이다. 이 역시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데는 큰 몫을 하게 된다. ... 밀라노에 들어서면 도심 곳곳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그는 ‘명품 도시’ 밀라노가 아끼는 보석과 같은 존재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학기술 박물관에는 회화뿐 아니라 과학, 해부학, 지리학, 천문학 등에도 능했던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과학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그의 글과 그림 캐스트 원문보기 :세계인물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는 미술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말 그대로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쪽지 종이에 이런 저런 글과 스케치를 남겼다. 낱장의 그 종이들은 큰 것도 있었고 5-7센티미터 정도로 작은 것들도 있었다. 그는 이 쪽지 종이에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글을 적어 넣었다. … 레오나르도가 쪽지 종이에 남긴 글과 그림을 보면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었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그가 쪽지 종이에 남긴 그림들 중에는 오늘날의 낙하산, 비행기, 전차, 잠수함, 증기기관, 습도계에 해당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한 자리에 서다 캐스트 원문보기 :오늘의미술 - 다 빈치 VS 미켈란젤로 베네치아인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았던 피렌체인들의 예술적 욕심 덕분에 결국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는 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 아마도 이 역사적 결투에서 레오나르도 쪽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이 더 컸을 것이다. 1452년생 레오나르도는 당시 쉰을 넘긴 나이었고, 미켈란젤로는 1475년생으로 아직 20대였다. 이미 명성은 명성대로 얻은 관록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서른이 채 안 된 젊은 화가와 한 자리에서 기량을 겨뤄야 했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부담감이 아무래도 더 컸을 것이다. ... 그러나 양측 모두에게 부담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을까? 아쉽게도 스타들의 대격전은 최종 순간을 남겨 놓고 취소되고 만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중 '아담의 창조'] 1511년~1512년, 벽화(프레스코화), 바티칸 미술관 소장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치열한 삶을 산 위대한 천재 예술가 캐스트 원문보기 :세계인물 - 미켈란젤로 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위대한 작업 앞에서 우리는 경탄하기도 하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미켈란젤로의 과 같은 조작 작품들과 바티칸 시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와 과 같은 그림을 보면 비록 그것이 진품이 아니라 화보일지라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더군다나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조각가라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가 화가가 되어 붓을 들고 고개를 위로 쳐들고 천장에다 그림을 그리고 불멸로 만들었다. 그의 작품을 올려다보면서, 이 천재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단 말인가? 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시스티나예배당'을 둘러싼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이야기 캐스트 원문보기 :오늘의미술 - 미켈란젤로 VS 라파엘로 “교황 율리오 2세와 나 미켈란젤로 사이에 있었던 모든 불화는 라파엘로와 브라만테의 질투 때문이었다.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이들은 교황을 속여 무덤을 세우는 계획을 중지하도록 시켰다. 라파엘로도 충분히 이런 일을 꾸몄을 것이다. 왜냐하면 라파엘로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일흔 살을 내다 본 늙은 미켈란젤로가 과거를 회상하며 쓴 것이다. 라파엘로는 이미 20년 전에 죽었지만 미켈란젤로에게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 여전히 고통스럽게 기억되고 있었다. 정말 라파엘로는 그의 고향 선배 브라만테와 함께 미켈란젤로를 파멸시키기 위해 교황 율리오 2세를 속였을까? 도대체 미켈란젤로는 무슨 근거로 라파엘로의 예술적 성과를 자신의 아류라고 주장하는 걸까?       '피에타' 조각가로 살기 원했던 그가 남긴 최후의 작품 캐스트 원문보기 :오늘의미술 - 론다니니의 피에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주도한 불세출의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역시 ‘피에타’는 끊임없이 되돌아가게 되는 일종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거의 일 세기에 달하는 생애를 통해 여러 점의 ‘피에타’를 제작했으며 그에게 최초로 로마에서의 세속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던 작품이나 파란과 곡절로 점철된 삶을 마감하기 며칠 전까지도 정과 끌을 놓지 못하고 매달렸던 최후의 작품 역시 ‘피에타’였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미켈란젤로는 어지러운 시대를 살며 감내해야만 했던 한 천재의 인간적인 고독과 회한 그리고 영광의 상념들을 이 주제를 빌어 호소하고자 했 던 것은 아닐까. 미켈란젤로의 작품 더 보기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Raffaello Santi, 1483~1520)  
797    착시미술 댓글:  조회:3659  추천:0  2015-03-29
  에드가 뮐러(Edgar Mueller - 3D Street Art) Street Painting     ...               커트 웨너 (Kurt Wenner)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한때 NASA 에서  일러스트 작품을 하며 근무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건축과 거리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업중인 커트웨너   르네상스시대 미술작품들에 심취하여 80년대 초반에 이탈리아에서 미술공부를 하였고 이후  그의 종교적 철학과 접목된 원죄의식, 선과악, 구원등을 모티브로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은 물론 세계도처에서 그의 작품들을 만날수 있다.   완성된 작품으로  특정방향에서 바라볼때  입체적 착시현상이 극대화 된다.         커트웨너 다른 작품들  일반회화 작품  
796    한반도 문양 壽石 댓글:  조회:1756  추천:0  2015-03-29
                                                         
795    수석(壽石) 용어 댓글:  조회:7357  추천:1  2015-03-29
                                       [수석용어]   가공석(加工石) : 돌을 갈아 광택을 내거나 밑면을 절단한 돌 개구리석 : 돌갗이 푸르며 우둘두둘하여 마치 개구리 피부와 같은 돌 건폭형(乾瀑形) : 위 아래로 움푹 패여있으나 흰돌이 박히지 않아 물이 마른듯이 보이는 폭포형 검봉석(劍峰石) : 날카로운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돌 경석(景石) : 자연의 경치를 닮은 수석.산계석(山系石)과 수계석(水系石)으로 구분하기도하며 산계석                   은 원산석,평원석,토파석등. 수계석은 폭포석,호수석,계류석등 계류형(溪流形) : 산골짜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 골석(骨石) : 겉돌이 수마되어 떨어져 나가고 속돌만 남아 앙상하게 마른 돌 곰보돌 : 돌 표면이 벌집처럼 움푹움푹 패인 돌. 한탄강의 현무암에서 볼수있음 괴석(怪石) : 괴상하게 생긴 돌. 수석으로서 괴석이되는 이상적 조건은 수(秀:빼어남),수(瘦:살이붙지                   않고 마름),준(주름준:주름이 잡힘),투(透:구멍이 남) 교환석(交換石) : 서로 바꾸어 소장하고 있는 돌 구입석(購入石) : 돈을주고 사서 소장하고 있는 돌 굴림돌 : 수마가 덜된 돌을 자갈이나 모래와함께 드럼통에 돌려서 연마시킨 돌.굴림돌은 수석의 범주             에서 넣지 않음 기름돌(油石) : 베이비 오일따위의 기름을 바르면 더 돋보이는 돌 기석(奇石) ; 기묘하게 생긴 돌. 깨돌 : 깨같은 까막까막한 미립점(米粒點)이 박혀있는 수석 난석(蘭石) : 난초를 붙여 완상하는 돌 노태수석(老苔壽石) : 이끼를 올려 예스러움을 간직하는 돌 단봉석(單峯石) : 봉우리가 하나인 수석. 경석(景石)중 하나 단층형(斷層形) : 계단 모양으로 층을 이룬형태 단폭형(段瀑形) : 계단을 이루며 한단 한단 꺽여져 내려오는 폭포 돌갗 : 돌의 거죽(피부) 동굴형(洞窟形) : 안이 텅비어 넓고 깊은 굴처럼 되어있는 모양 동문형(洞門形) : 돌 아래쪽에 구멍이 시원하게 뚫려 나제통문(羅濟通門)과 같은 형태 동석(動石) : 움직이는 모습의 물형석이나 그러한 그림이 있는 문양석. 반대:정석(靜石) 따로돌 : (1)조석(造石) (2)손을 대서 만든 돌 (3)딴 갈래로 분류해야 하는 돌 때깔 : (1)선뜻 눈에 비치는 맵씨와 빛깔 (2)수석의 표피에 드러난 빛깔 마노석(瑪瑙石) : 호랑이와 표범의 머리와같이 생겼으며 무늬 빛깔도 그러함 먹돌 : 먹물처럼 검은 돌. 묵석(墨石) 명석(名石) : (1)뛰어난 돌 (2)수석으로서의 조건을 다 갖추고있음은 물론 고아한 기품과 고색이                   찬연하고 위용과 기품 그리고 힘을가진 수석 몽돌 : 별반 쓸모없으면서도 크지않은 둥글둥글한 돌 묵석(墨石) : 먹물처럼 검은 돌. 먹돌 문양석(紋樣石) : 돌 표면의 어떤 모양의 그림이나 꽃무늬 또는 문자가 그려져있는 수석. 무늬석 문자석(文字石) : 글자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수석. 문자석은 문양석의 하나임 물돌 : 수반에 연출할수 있는 수석 물형석(物形石) : 물건의 형태를 가진 돌. 만상석(萬象石) 미석(美石) : 색채석(色彩石),미석의 조건(1)색감이 선명하고 생기가 있어야함 (2)석질은 모오스 경도                   6정도는 되어야 함 (3)줄무늬가 있을때는 규칙적이어야한다 (4)수마상태가 양호해야한다                   티나 파(破)가 없어야한다 바위형 : 산이나 산기슭에 우뚝서있는 바위와같은 형태 배껍질 돌 : 돌갗이 배의 껍질과 같은 색과 모양의 돌 부봉(副峯) : 산경석에서 주봉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 빙폭형(氷瀑形) : 폭포에 물이 얼어붙은듯이 보이는 형태 뼈돌 : (1)단단하고 앙상하며 생긴모습이 동물의 뼈처럼 보이는 돌 (2)앙상하게 마른속돌. 골석(骨石) 산수경석(山水景石) :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상시켜주는 산 모양의 수석 산지(産地) : (1)산출지의 준말 (2)수석을 탐석한곳. 탐석지(探石地) 산형석(山形石) : 산의 모습을 가진 돌 삼면법(三面法) : 산형석의 감상하는 방법. 전후 좌우 상하의 세면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훌륭한                         산형석임 색감(色感) : 어떤 색에서 받는 느낌. 수석의 색감은 생기가있고 선명할수록 좋음 색채석(色彩石) : 색깔을 띠고있는 돌. 미석(美石) 석명(石銘) : 낱개의 수석에 붙인 고유한 이름. 수석명. 석명(石名) 석중석(石中石) : (1)이질석(異質石)이 들어있는 돌의 겉면을깨고 속에 들어있는 이질석을 드러나게                         하여 연마시킨 돌 (2)돌 겉에 이질석이 붙어있는 돌 석질(石質) : 돌의 본 바탕.돌의 품질. 모오스 경도 4이상의 경도, 정감어린 질감,입자 응결의 치밀도                   가 높을수록 좋은 석질이다 설산석(雪山石) : 산봉우리에 석영등이 붙어 눈산을 연상시키는 수석 섬형석(島石) : 섬 모양을 가진 돌(1)산형을 이룬 수석중 능선이 짧고 능선끝이 가파로운 단애를 이룬                       다(2)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포구를 이룬다 섭취돌 : (1)변변하지 못한돌 (2)별 대가를 치루지않고 얻을수 있는 돌 소장(所藏) : 값나가는 물건따위를 자기것으로 간직함. 소장한 수석   속돌 : 표피가 물씻김으로 떨어져 나가고 내피가 드러난 돌 손질 : (1)손으로 잘 매만져 다듬는일 (2)돌 자체를 변형시키지 않고 때를 씻어내거나 흙따위를 털어              내고 양석 시키는 일 수림석(樹林石) : 여러개의 나무가 늘어져있는 모양의 문양석 수마(水磨) : 물씻김. 물결에 씻기어 닳음 수문형(水門形) : 돌의 밑부분에 오목하고 길게 패여져 수반에 놓으면 배가 드나들수 있도록된 형태 수반석(水盤石) : 수반에 연출해야 더 돋보이는 수석 수석(壽石) : (1)자연의 아름다움을 축소시켰거나 물건의 형태 또는 무늬를 지니어 장식용으로 쓰이는                   작은 자연석(2)삼라만상의 형상을 닮은 축소된 돌로 방안에놓고 그미를 감상하는 자연석 수석의3요소 : 형(形, 질(質), 색(色) 쌀눈박이 돌 : 쌀알같은 크기와 모양의 미립자가 돌표면에 박혀 있거나 쌀알만한 크기의 작은구멍이                    송글송글 나있는 수석 쌍봉석(雙峯石) : 두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돌 쌍폭석(雙瀑石) : 두 폭포가 나란히 흐르는 모양의 수석 썩돌 : (1)침식되어  패인 모습이 썩은듯이 보이는돌 (2)쇠가 부식된듯이 푸석푸석한 돌 알돌 : (1)석중석에서 이질석이 특히 알처럼 둥근 돌 (2)좌대나 수반에 놓이지 않는 맨 돌 암초형(暗礁形) : 다소 거친 괴석형의 바위형 애석(愛石) : 오랫동안 소장하여 애착이 가는 돌. 애장석(愛藏石) 양석(養石) : 생경(生硬)한 느낌이나는 수석을 성숙되고 고태미가 나는 수석이 되도록함.양석방법은                   햇볕에 쬔다,손으로 자주 문지른다,일정한 간격으로 물을뿌려준다,이끼를 올린다. 연마석(硏磨石) : 인위적으로 갈아서 겉을 반들반들하게 만든 돌.  연봉석(連峯石) : 셋 이상의 산봉우리가 연이어있는 산형수석 연산석(硏山石) : 산봉우리가 연이어있는 수석 오석(烏石) : 검은 돌    운두 : 수반 둘레의 높이 원봉(遠峯) : 주봉과 부봉사이에 위치하며 멀리 보이어 원근감을 주는 봉우리 원산석(遠山石) : 멀리 보이는산과 흡사하게 생긴 수석 은폭(隱瀑) : 겉에서는 보이지 않고 숨어있는 폭포 인상석(人象石) :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닮은 돌 두상석(頭相石) : 사람의 머리모양을 닮은 수석 자구리 : 움푹움푹 패여들어간 자국. 자탐석(自探石) : 자기가 직접 탐석한 돌 장석(掌石) : 한손안에 쥘수있는 작은 돌. 촌석(寸石) 전래석(傳來石) : 조상이나 선조로부터 대대로 물려 내려온 돌 조석(造石) : 깍거나 구멍을 뚫는등 인위적으로 만든 돌. 조석은 수석이 아님 조수형석(鳥獸形石) : 새나 짐승을 닮은 돌 좌대(座臺) : 수석을 바로놓기위해 나무로 깍아 만든 받침. 돌받침 주름돌 : 움푹움푹 패인 자국이 줄을 이루고 있는 돌 주봉(主峯) : 산형석에서 가장 높고 중심이 되는 봉우리 지판(地板) : 수석밑에 까는 널판지 진묵석 : 짙은 먹물색의 돌 진오석 : 가장 검은 돌 질감(質感) : 재질에따라 달리 느껴지는 독특한느낌. 수석의 질감은 중량감,경도,수마상태와 관련 쪼코석 : 초코렛석- 초코렛 색갈을 가진 돌 처마석 : (1)서까래를 받치는 도리밖으로 내민 지붕 모양의돌 (2)처마와 같은 모양의 수석 첩봉형(疊峯形) : 산봉우리가 첩첩이 겹쳐진 산형 초가석(草家石) : 초가집 모양의 돌 촌석(寸石) : 아주 작은 돌. 촌품석(寸品石). 대체로 10cm이하로 한 손아귀에 들어가는 수석 추상석(抽象石) : 고정적이고 일정한 형태가없이 보는 견해에 따라 달리 해석하는 돌 축경(縮景) : 자연경을 축소시킨 경치. 수석은 자연의 축경임 침봉석(針峯石) : 뾰죽한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돌. 검봉석(劍峯石) 탐석(探石) : 강가나 바닷가 혹은 산등지에서 수석감을 고름 토중석(土中石) : 산이나 들의 땅속에서 파낸 돌. 강가나 바닷가의 모래나 땅에서 파내는돌은 토중석                         이 아님 토파석(土坡石) : 마당보다 조금 넓은 들판 뒷편에 언덕이 둘러 싸인 수석 투(透) : 맞뚫린 구멍 평석(平石) : 윗면이 넓고 평평한 돌 평원석(平遠石) : 넓은 평야 저편 끝에 산봉우리가 아득히 보이는 형태의 수석 피부석(皮腐石) :돌갗에 오돌도돌한 입자가 나 있는 돌 형상석(形象石) : (1)마음속에 떠오른 관념따위를 구상화한 돌 (2)현상으로서의 사물로 존재하지 않                         으면서 고정화된 개념이 뚜렷한 형태의 돌 호수석(湖水石) : 산형으로 생긴돌의 윗부분이나 중턱에 물이 고일수 있도록 움푹패여 호수를 연상 희귀석(稀貴石) : 드물고 진귀한 돌. 수석의 요건을 갖추지않은 희귀석(보석)은 수석이 아님   [출처] 壽石 用語(수석용어)|작성자 벽 소  
794    초현실주의 사진들 댓글:  조회:7995  추천:0  2015-03-29
  (이미지 출처 : http://www.hughkretschmer.net ) 포토그래퍼 Hugh Kretschmer의 사진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물흐르듯이 넘나든다. 그의 사진들 대부분이 광고나 잡지의 편집사진으로 쓰이지만, 동시에 각각의 사진들은 하나의 독립적인 아트웍으로써 많은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Hugh Kretschmer의 작품들은 모두 상상을 기반으로 한다. 꿈속에서 본 것들을 그리기도 하며 "만약 세상이 OO이라면 어떨까?"라는 가정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그의 사진 속에는 현실과 초현실의 요소들이 어우러져있다. 그 둘은 아주 말끔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마치 고전영화의 세트처럼 인공적이고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엉뚱하고 기발한 그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그 기발함 안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찾는 것은  Hugh Kretschmer 작품들의 또 다른 재미이다.         [출처] 초현실주의 사진들의 향연 by Hugh Kretschmer|작성자 arar  
793    초현실주의자들 그림 댓글:  조회:3988  추천:0  2015-03-29
초현실주의-달리          르네 마그리트-초현실주의     1898년 벨기에에서 출생한 마그리트는  1916년부터 브뤼셀의 아카데미 데 보자르(Academi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하면서  미술공부를 시작하였고, 이후 10여 년간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제작한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경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창조해 나가기 시작했고,  1927년부터 3년 간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류를 위해 파리에 머물기도 했다.   1925년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인 앙드레 브르통의「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결성된 초현실주의는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촉발된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 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사용해 거의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했던 것과  달리 마그리트는 사과, 돌, 새, 벨, 담배 파이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 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폭에 결합시키거나,  어떤 오브제를 전혀 엉뚱한 환경에 위치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은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 독수리를 돌의 재질과 같이 변형시키는 식으로 사물이 가진 성질 가운데 하나를 바꾸는 '변경', 성채와 나무 밑 둥을 결합하는 식의 '사물의 잡종화', 작은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식의 '크기의 변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 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등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1950년대에 들어서 마그리트는 기존의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양식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vache) 시기의 작업이 그것이다.  인상주의 작가, 특히 르누아르의 영향을 반영하는 주제와 화려한 색채, 표현적인 붓 터치로  특징지어 지는 마그리트의 인상주의 시기 작품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 상황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된다.  바슈 시기는 1957년 단 2주에 걸친 예외적인 실험으로  프랑스의 야수주의에 대한 영향과 동시에 풍자를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 시기를 제외하면 마그리트의 작업은 193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주제와 이미지(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단어의 사용, 인간의 조건, 중절모를 쓴 남자)가  평생의 작업에 걸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뿐 아니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로 대표되는 말과 사물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 현실의 3차원 공간과 캔버스 위의 2차원 공간 간의 모순을 다룬 인간의 조건 등 마그리트의 예술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마그리트의 면모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보다 경도되었던 것에 비해 마그리트의 작품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가진다. 실제로 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마그리트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작가였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며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철학적인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고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 음악(비틀즈의 음악과 애플 레코드사의 사과모양 로고), 영화(매트릭스 시리즈), 문학(김영하의 ), 교육(대학 입시 논술 고사 문제로 출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마그리트를 초현실주의의 거장에서 더 나아가 20세기 미술의 거장으로 칭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철학자 ◆ 마그리트 누구인가   벨기에 출신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20대 초반 벨기에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마그리트는 초기에 입체파와 미래파의 영향을 받았다. 1926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살바도르 달리와 후안 미로, 시인 폴 엘뤼아르 등과 교류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자들이 흔히 빠져들었던 자동기술법이나 꿈의 세계에 대한 편집광적 탐구에서 벗어나 현실의 신비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해 나갔다. 1967년 타계하기까지 독자적 초현실주의 세계를 보여주며 20세기 미술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1989~1967)는 상식의 속박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꿈꾸었던 그림 그리는 철학자다.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을 통해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작품마다 관습적인 사고를 거부하고 기발한 발상에다 시적인 조형성까지 담아내다 보니,미술계 일부에서는 그를 창조적인 가치혁신가로도 부른다. 특히 마그리트의 작품은 현대 대중문화의 '자양분'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 음악(비틀스의 음악과 애플 레코드사의 사과 모양 로고)을 비롯해 영화(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 복제),문학(김영하의 '빛의 제국'),교육(대입 논술고사 문제 출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마그리트의 색다른 미학세계로 들어가보자. '르네 마그리트전'이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사가 서울시립미술관,벨기에 왕립미술관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전시회는 마그리트의 작품과 생애,미술사적 의미까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국내에서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간간이 열렸던 해외 화가 작품전과는 전혀 다르다. 그동안의 전시회가 대표작에 포함되기 어려운 회화 몇 점을 들여와 다른 자료들과 함께 보여준 경우가 많았던 데 반해,마그리트전은 시기별 대표작에 속하는 작품이 대거 포함돼 있다. 전시 작품만 해도 오리지널 유화 70여점을 비롯해 과슈·드로잉·판화 50여점,사진 희귀 영상작업 및 친필 서한 150여점 등 무려 270여점에 달한다. 단일 작가를 주제로 한 전시회 중 국내 최대 규모다. 특히 유화 중에는 '심금' '붉은 모델' '검은 마술' '회귀' '신뢰' 등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상당수 들어 있다. 전시 작품 가격 총액은 6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전시를 준비하는 데도 3년이 넘게 걸렸다.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마그리트 재단을 비롯해 뉴욕,런던 등 해외 유명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마그리트의 걸작들과 세계 저명 컬렉터들의 소장품을 망라해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번 전시는 내년 가을 벨기에 왕립미술관 내에 개관하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의 완공 이전에 마련한 마지막 대규모 해외 전시로,마그리트 미술관 개관 이후에는 국내에서 이런 수준의 작품을 직접 접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마그리트의 생애를 따라가며 시기별로 작품을 배치했다. △완숙미 넘치는 회화 명작 △포스터와 광고 △2차 세계대전 전쟁 이미지 △회화적 변형시대 △영상작품 등 10개의 주제 아래 꾸며졌다. 4월1일까지 월요일 휴관.성인 1만원,청소년 8000원,어린이 6000원. (02)332-8182 김경갑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kkk10@hankyung.com             어떤 작품이 왔나   '세상의 상식에 끝없이 도전하는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감상하며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보세요.'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르네 마그리트 작품전(4월1일까지)'이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6개 전시실,10개 섹션으로 나눠진 전시장을 따라 '보물섬''신뢰''심금''광활한 바다' 등 마그리트의 시기별 대표작을 보며 그의 생애와 미술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특히 대학 논술시험에 대비한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창의성을 키울 수 있어 더욱 인기다. 국내 처음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는 '빛의 제국''회귀''신뢰' 등 회화 대표작 70여점과 과슈,드로잉,판화 50여점 등 회화 작품 120여점을 비롯해 사진,희귀 영상작업 및 친필 서신 150여점 등 총 270여점을 만날 수 있다. '괴기스러운 고요함과 긴장감이 화폭 가득 흐른다. 흰옷을 입은 두 남자가 야구하듯 세상을 후려친다. 정원 중앙을 가로지르는 가로수 양편으로 늘어선 신비감이 난간 기둥을 휘돌아 나직하게 이어지고,정체를 알 수 없는 거북이가 관람객에게 이야기를 강요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1927년 작 '보이지 않는 선수(The secret player·152×195cm)'의 모습이다. 가격이 120억원에 달하는 이 작품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초기작인 데다 동일한 모티브를 이어받은 후속작이 없어 해석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구두와 발을 합체시켜 새로운 오브제를 창조한 '붉은 모델(The red model·38×46cm)' 역시 일상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지만,논리와 상식을 유쾌하게 뒤집으면서 동시에 재미있는 결합을 시도한 명작.마그리트에게 있어 회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오브제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심금'은 포도주잔을 통해 대지의 생명이 결국 하늘과 만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과 인간의 내적 체험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양복 입은 신사들을 화면 곳곳에 무중력 상태로 배치한 '골콘드(겨울비)'는 신세계백화점이 로열티 1억원을 지불하고 지난해 말까지 본점 외벽에 확대 설치해 명물이 됐던 걸작. 이번 전시에선 유화 대신 과슈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중절모 신사의 코 앞에 파이프가 떠 있는 1965년 작 '신뢰(Good Faith·41×33cm)'는 유니폼과 같은 중절모와 양복,얼굴 전체를 가리지도 않은 파이프를 통해 개성을 표현했다. 시각예술의 수단으로 인식된 회화를 통해 뭔가를 감추고 뭔가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둔다. '검은 마술(Black magic·80×60)'은 아름다운 여체를 상·하반신의 서로 다른 색깔로 대비시켰다. 상체는 하늘색으로,하체는 피부색을 그대로 살려 여인의 나체를 하늘로 변화시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43년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할 당시 그린 '수확(The harvest·60×80cm)'은 르노아르의 1890년대 작품 '무제'를 소재로 감각적이고 에로틱하게 그린 작품이다. 군대의 공포감에 '환희'를 대비시켜 히틀러의 야망을 반박하려 한 내용을 담았다. 화려하고 타는 듯한 색채와 우람하고 소용돌이치는 붓놀림은 군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창밖의 배경과 캔버스 위의 그림을 묘하게 일치시킨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100×73cm)' 시리즈는 현실의 3차원 공간과 캔버스 위 2차원 공간 사이의 모순에 대한 의문을 관람객들에게 제기한다. 이 밖에 1927년 작 '폴 뉴제의 초상(Portrait of Poul Nouge·95×65cm)'은 자신의 지적 멘토인 초현실주의의 중추적 역할을 한 폴 뉴제를 표현한 작품.실제 연미복을 즐겨 입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폴 뉴제에게 격식 있는 의상을 입혀 그의 엄격한 행동양식을 표현했다. 특히 두 개의 초상을 나란히 그린 것은 생화학자라는 브루조아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가였던 뉴제의 양면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고문당하는 여사제(The torturing of the vestal virgin·97.5×74.5)'는 20세기 초기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조각과 인체 사이에 어디엔가 존재하는 듯한 애매모호한 존재의 등장을 그려냈다. 마그리트 회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이해할 수 없는 현실과 평범한 현실을 양립시키기 위해 수수께끼처럼 병치된 오브제와 결합된 혼란스럽고 감정적인 회화법을 보여준다. 이 밖에 벨기에에서 1970,71년 우표로 한정 발매된 '기억(Memory·46.5×37cm)'과 '이렌느 혹은 금지된 책(Irene or forbidden literature·54×73cm)' 등도 눈여겨 볼만한 작품으로 꼽힌다. 김경갑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kkk10@hankyung.com               "작품마다 창조적 파괴 … 가치혁신 실천"   르네 마그리트의 1927년작 '보이지 않는 선수(The secret playerx152×195cm)' 앞에서 우리나라 사회 각계 명사들은 눈이 반짝거렸다. 마그리트 작품 가운데 가장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다. 배경은 어딘지 모를 정원,크리켓 경기를 하는 하얀 옷을 입은 두 남자,정체를 알 수 없는 거북이 등 서로 연관성이 없는 소재 등을 면밀히 살핀다. 호기심에 찬 얼굴에 상상력이 꽉찼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천정배 의원 등 대선 주자를 비롯해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영화 '왕의 남자'를 만든 이준익 감독,인기 탤런트 송일국,방송인 배한성,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이국동 대한통운 사장 등이 마그리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을 다녀갔다. 이들은 마그리트의 작품을 감상하고 세상의 상식에 끝없이 도전한 '거장'답다며 충격적인 이미지와 참신한 상상력에 감탄했다고 호평했다. ○…이명박 전 시장(65)은 마스리트의 작품 '보물섬'을 감상하면서 "벨기에 출신 화가 마그리트는 한평생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한 작가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란 개념을 그림으로 실천한 작가"라고 평했다. 그는 "보통 사람은 한평생 한두 번 정도 삶의 변화를 시도하지만 마그리트는 한평생 가치혁신을 시도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마그리트 방식의 혁신적인 변화를 즐겨야 한다"고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최근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천정배 의원(53)은 마그리트 대표작 '심금'을 보고 "작품들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철학적 회화관이 눈에 띈다"며 "현대 대중문화에 많은 영향을 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전문가적인 소견을 피력했다. ○…MBC 사극 '주몽'에 출연해 지난해 연기 대상을 받은 인기 탤런트 송일국씨(35)는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아 마그리트의 대표작 '신뢰'에서부터 광고기획자들에게 영감을 준 '심금'에 이르기까지 270여점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도슨트(전시안내자)와 작품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평소에도 미국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 등 인기작가들의 전시회를 자주 관람한다는 그는 "고등학교 시절 그래픽 디자이너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요즘도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리거나 컴퓨터로 그래픽 작업을 하는데,마그리트의 작품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변형시키는 작업들은 최근 컴퓨터로 쉽게 할 수 있지만 마그리트는 이미 20세기 초에 이런 작업들을 작품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선 '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감상 소감을 피력했다. 특히 '광할한 바다''신뢰''순례자' 등은 소재들의 '엉뚱한 결합'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 같다며 "앞으로 연기에서도 마그리트식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미술관을 자주 찾는다는 앙드레 김(71)은 "마그리트는 자연과 인체의 아름다움을 미래 지향적인 신비감으로 풀어내 현대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거장으로 손색이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마그리트의 수작으로 꼽히는 '회귀'에 대해 "고향에 대한 귀소본능을 표현한 작품으로 보인다"며 "기하학적인 레이아웃과 색감에 시적언어를 결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요즘 마그리트의 예술철학이 기업들에 '가치혁신의 바이블'로 인기를 끄는 이유를 알겠다"며 "그의 작품이 팝아트와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영향을 준 만큼 패션계에서도 마그리트 바람이 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준익 감독(48) 역시 지난달 전시장을 찾아 1시간30분 동안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둘러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그는 "작품을 보면서 회화의 변형을 몸소 보여준 마그리트의 파격적인 예술세계가 가슴 한 쪽에 깊이 새겨졌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미술을 전공한 이 감독은 "마그리트의 걸작 '올마이어의 성''피의 소리'를 보는 순간 할리우드의 이방인으로 불리는 팀 버튼이 감독한 영화 '가위손'과 제작을 맡았던 '크리스마스의 악몽''유령신부' 같은 영화들에서 일관되게 변형한 영상 이미지가 마그리트 작품과 닮아있어 놀랐다"고 감탄했다. 그는 "마그리트 작품을 토대로 초현실주의적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 '매혹'을 제작 중"이라고 말했다. ○…방송인 배한성씨(61)는 "마그리트 그림은 환상적이고 시적이며 철학적인 데다 사색적이기도 하다"고 격찬한 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마그리트전을 보고 나니 그가 미술의 변혁을 시도한 화가이면서 가치혁신가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장 구성도 마그리트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선수'의 이미지를 컨셉트로 잡아 마치 정원을 산책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평소에도 샤갈,마티스 등 국내외 인기 작가의 전시를 자주 관람한다는 김신배 SK텔레콤 사장(53)은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 환경이 가치혁신 중심으로 급변하기 때문에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감성경영을 배우고 싶어 전시장을 찾았다"며 "앞으로 기업들도 세계 초일류를 지향하려면 마그리트 방식의 혁신적인 변화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1930년대 작품 '불길'을 살펴본 뒤 "자연의 아름다움을 붉게 물든 나뭇잎으로 표현한 것 같다"며 "개체 발생은 계통의 발생을 반복한다는 기하학적인 의미의 '프랙탈'을 연상시킨다"고 강조했다.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57)은 마그리트의 대표작 '대화의 기술'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마그리트가 거대한 돌 이미지를 차용해 '꿈(REVE)'이란 글자를 세긴 것은 다소 불안한 구성이지만 웅장한 삶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대한통운의 인재 경영은 이 같은 감성과 창의력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갑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kkk10@hankyung.com             ◆ 마그리트의 "말 말 말"     *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 나는 체념,인내,직업적 영웅주의,의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혐오한다.    나는 또한 장식미술,민속학,광고,발표하는 목소리,공기 역학,보이스카우트,방충제 냄새,순간의 사건,술 취한 사람들도 싫어한다.   * 나는 냉소적인 유머와 주근깨,여자들의 긴 머리와 무릎,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골목을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들을 좋아한다.   * 나에게 있어 회화는 색채를 병렬하는 예술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색채는 실제적인 면을 상실하고 대신 영감을 받은 사유를 드러내게 한다.   *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그리려 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   *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징은 시의 신비한 현실에 집착하기 위한 것이며 전통에 매우 충실한 생각에 속한다.   * 내가 생각하기에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소 생생한 감정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 들게 한다.   * 나는 우리의 멋진 말들이 목에 걸고 있는 쇠 방울들이 구덩이의 가장자리에서 자라나는 위험한 식물과 같다고 믿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사진찍기를 좋아헸고 말년에는 영화도 찍었습니다. 14살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15살에 만난 여자 조제트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파리 화단의 텃새로 작은나라 벨기에의 설움을 겪으며 저항하고 분노하던 그림도 조제트가 말리자 다시 초현실주의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우울증 환자였습니다. 끊임없이 꿈꾸고 새로움을 시도하는 엉뚱한 장난꾸러기 병자였습니다.     그의 아내 조제트와 함께   가족 사진     르네 마그리트 [1898.11.21~1967.8.15]           벨기에의 화가. 큐비즘(입체파)의 영향을 받았고, 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운동에 참가했다. 그러나 형이상회화파와 일맥상통하는, 신변 물체의 결합과 병치(竝置), 변모 등으로 신선하고 시적(詩的)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쪽을 좋아했다.   원어명   René Magritte 국적   벨기에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벨기에 레신 주요작품   《여름의 계단》(1937)   레신 출생. 1916년부터 브뤼셀의 미술학교에 다녔다. 얼마 동안 큐비즘(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다음, 1926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 체류하여, 시인 P.엘뤼아르 등과 친교를 맺고, 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A.브르통 등이 제창하는 오토마티슴이나 편집광적인 꿈의 세계 탐구에는 동조하지 않았으며, G.키리코 등의 형이상회화파와 일맥상통하는, 신변 물체의 결합과 병치(竝置), 변모 등으로 신선하고 시적(詩的)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쪽을 좋아했다.  작풍(作風)은 《여름의 계단》(1937) 등에서 볼 수 있듯이 1940년경까지 독자적으로 성숙했는데, 서로 고립한 현실적 물체와 논리를 뒤집음으로써 재미있게 서로 결합시키고, 명쾌하게 묘사하여 매혹적인 환상의 세계를 그렸다. 이러한 평이하고 깔끔한 작품들은 밤의 신비나 괴기를 즐기는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주목되었다.                                         천경자-1980년대 그림      발리섬의 소녀    모뉴먼트 밸리    재즈    윤사월    태국 무용수    마아가렛 미첼 생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나바호족의 여인    아이누 여인  누가 울어 1    아파치족의 여인    막은 내리고    자마이카의 고약한 여인   누가 울어 2  
792    民畵의 世界 댓글:  조회:5015  추천:0  2015-03-29
  [民畵의 세계] 한국만의 유일한 그림...민화               민화: 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여 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또는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된 실용화(實用畵)를 말한다. 조선 후기 서민층에 유행하였으며, 이규경(李圭景:1788∼1865)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이를 속화(俗畵)라 하고, 여염집의 병풍·족자·벽에 붙인다고 하였다.   대부분이 정식 그림교육을 받지 못한 무명화가나 떠돌이화가들이 그렸으며, 서민들의 일상생활양식과 관습 등의 항상성(恒常性)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였기 때문에 창의성보다는 되풀이하여 그려져 형식화한 유형에 따라 인습적으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민화는 정통회화에 비해 수준과 시대 차이가 더 심하다.   민화는 장식장소와 용도에 따라 종류를 달리하는데 이를 화목(畵目)별로 분류하면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어해도(魚蟹圖)·작호도(鵲虎圖)·십장생도(十長生圖)·산수도(山水圖)·풍속도(風俗圖)·고사도(故事圖)·문자도(文字圖)·책가도(冊架圖)·무속도(巫俗圖) 등이 있다.   ① 화조영모도: 민화 가운데 종목이 가장 많으며 꽃과 함께 의좋게 노니는 한 쌍의 새를 소재로 한 화조도가 많다. 화조도는 매화·동백·진달래·개나리·오동·솔·버드나무·메꽃·해당화 등과 봉황·원앙·공작·학·제비·참새·까치 등을 물이나 바위와 함께 그렸다.   또한 주로 병풍으로 재구성되어 신혼부부의 신방 또는 안방 장식용으로 쓰였다. 이 밖에도 작약·월계·모란·옥잠화·수선·들국화·난초에 나비나 메뚜기·꿀벌 등을 그린 초충도(草蟲圖)와 사슴·토끼·말·소·호랑이 등을 산수 속에 표현한 영모도가 있다. 이 소재들은 단독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으며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도 단독으로 그려 혼례식의 대례병(大禮屛)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② 어해도:물속에 사는 붕어·메기·잉어·복어·
791    정신분석학 / 프로이드 댓글:  조회:4818  추천:0  2015-03-29
지그문트 프로이트(독일어: Sigmund Freud, 1856년 5월 6일 ~ 1939년 9월 23일)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학파의 창시자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억압의 방어 기제에 대한 이론, 그리고 환자와 정신분석자의 대화를 통하여 정신 병리를 치료하는 정신분석학적 임상 치료 방식을 창안한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또 그는 성욕을 인간 생활에서 주요한 동기 부여의 에너지로 새로이 정의하였으며, 자유 연상, 치료 관계에서 감정 전이의 이론, 그리고 꿈을 통해 무의식적 욕구를 관찰하는 등 치료 기법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뇌성마비를 연구한 초기 신경병 학자이기도 하였다. 신프로이트주의에서 프로이트의 많은 이론을 버리거나 수정하였으며, 20세기 말에 심리학 분야가 발전하면서 프로이트 이론에서 여러 결함이 드러났으나, 프로이트의 방법과 관념은 임상 정신 역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인문 과학과 일부 사회 과학에서 계속 영향을 주고 있다.     목차   [숨기기]  1 의과 대학 2 프로이트와 정신 분석 3 말년 4 성품 5 프로이트의 심리학 5.1 무의식과 꿈의 분석학 5.2 성과 심리 5.3 자기 방어 기제 6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 7 저서 목록 7.1 단행본 7.2 편집본 7.3 저서 목록 : 영어 8 각주 9 참고 문헌 10 바깥 고리   의과 대학[편집] 프로이트는 법을 공부하기로 했다가 빈 대학교의 의과 대학에 입학하여 다윈주의자였던 카를 클라우스 교수 밑에서 공부하였다.[1] 그가 의대를 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다윈의 ≪종의 기원≫과 괴테의 ≪자연≫에 대한 독서 때문이었다. 프로이트는 1885년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장 샤르코 밑에서 장학생으로 약 5개월간 연구하면서 히스테리와 최면술에 특히 관심을 가졌는데, 이것은 장차 정신분석학을 창안하는 데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된다. 당시 뱀장어의 생애 주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프로이트는 뱀장어의 수컷 생식 기관을 연구하면서 트리에스테의 오스트리아 동물학 연구소에서 4주간 지냈으며, 전임자들보다 별로 많은 것을 알아내지 못한 채 뱀장어 수백 마리를 해부하였다. 1876년에 그는 "뱀장어의 정소"라는 첫 논문을 Mitteilungen der osterreich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에 실었는데, 여기서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였다. 별달리 성공을 거두지 못해 명성을 얻지 못하자, 프로이트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꾸게 된다.[2][3][4] 1874년, 독일의 생리학자 에른스트 빌헬름 본 브뤽케가 '생리학 강의'를 출간하여 "정신 역학"의 개념을 제안하였는데,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을 공식화했던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물리학자 헤르만 폰 헬름홀츠와 협동하여 연구한 그는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는 에너지-체계이며, 이 법칙에 지배받는다고 주장하였다. 그 해에 빈 대학교에서 브뤽케는 의대 1학년생이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주임 교수였으며, 프로이트는 그의 새로운 "역학적" 생리학을 받아들였다. 브뤽케의 '생리학 강의'에서 그는 살아있는 유기체는 하나의 역학계이며 화학과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급진적인 견해를 내놓았다.[5] 정신 및 정신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한 프로이트의 역동적 심리학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였다.[5] 존 볼비에 따르면, 화학과 물리학의 원칙에 기반을 둔 프로이트의 기본적인 모델은 브뤽케, 메이네르트, 브로이어, 헬름홀츠, 헤르바르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6] 1879년, 프로이트는 1년간의 의무 군 복무를 수행하고자 연구를 잠시 접어두었으며, 1881년에 논문 "하급 어류종의 척수에 관하여"(Über das Ruckenmark niederer Fischarten)로 의학 박사(M.D.) 학위를 받았다. 프로이트와 정신 분석[편집] 1885년 10월에 프로이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신경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와 공동 연구차 파리에 갔다. 그는 나중에 이때의 파리 체류로 재정적으로 가망이 떨어지는 신경학 연구 대신 정신 병리 치료로 진로를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하였다.[7] 샤르코는 히스테리와 히스테리 환자의 최면 감수성을 전공하였으며, 그는 청중 앞 무대에서 히스테리 환자를 자주 시연하였다. 나중에 프로이트는 최면 기법을 가능성이 있는 치료 방식에서 버렸으며, 자유 연상과 꿈 분석을 선호하게 된다.[8] 샤르코 자신도 말년에 히스테리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였다.[9] 1886년에 프로이트는 마르타 베르나이스와 결혼한다. 그 뒤 자신의 신경과 진료소를 차린다. 아내의 아버지 베르만은 함부르크의 수석 랍비였던 이작 베르나이스의 아들이었다. 프로이트는 신경계 환자들에게 최면 기법을 실험하였으나 많은 대상자들에게 최면이 쓸모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이 치료 방식을 포기하였으며, 환자와 본인의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치료법을 썼다. 이 방식은 "대화 치료"로 알려지게 되는데, 대화의 최종적인 목적은 환자가 처음에 거부하고 있으며 무의식에 갇힌 강력한 감정 에너지를 풀어주어 위치짓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이렇듯 환자가 어떤 감정을 거부하는 것을 "억압"이라고 불렀으며, 그는 이것이 종종 정신의 정상적인 기능에 해를 끼치며 육체적 기능까지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를 "정신 신체증"(심신증)이라고 설명하였다. ("대화 기법"이란 용어는 원래 프로이트의 동료인 요제프 브로이어의 환자인 안나 O.(Anna O.)가 만든 말이었다) "대화 기법"은 정신 분석학의 기초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10] 나이 40대에 프로이트는 수많은 심신증 장애와 더불어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포, 그 밖에 공포증에 시달렸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꿈, 기억 그리고 본인의 인격 발달의 변천에 대해 탐색하는 데 몰두하였다. 이렇게 자신을 분석하면서 프로이트는 1896년에 죽은 자신의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에 대해 적대감을 느꼈으며,[11] 또 어린 시절 매력적이고 따뜻하며 포근했던 어머니 아말리아 프로이트에게 느낀 성적 감정을 상기하였다. 자기 분석을 계속하여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들을 모아 1899년 11월, 라이프치히와 빈에게 동시에 《꿈의 해석》을 출판했다. [12] 그리고 정신학 분석을 연구하여 빈 정신 분석 학회를 조직했다. 1900년과 1902년에 책을 출간한 이후로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늘어났으며, 지지자 집단도 생겼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비평하는 지지자들과 충돌하기도 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원래 프로이트의 생각을 지지하던 카를 융이었다. 두 사람이 결별한 이유는 융이 종교와 신비주의에 흥미를 가지고 다룬 탓도 있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비과학적이라고 보았다.[13] 말년[편집] 1930년, 프로이트는 심리학과 독일어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 상을 받았다. 3년 뒤에 나치가 독일에서 집권하였으며, 이들이 불태우고 없앤 책 가운데서도 프로이트의 책이 특히 두드러졌다. 1938년 3월에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였다. 그리하여 빈에서 반유대주의 감정이 들끓었으며, 프로이트와 가족의 집에는 비밀 경찰들이 들이닥치기도 하였다. 또 빈 정신 분석 학회가 해산당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책과 재산이 모두 몰수당하자, 프로이트는 "자유롭게 죽기 위하여" 망명길에 오르기로 결심하였다. 그와 가족은 1938년 6월에 빈을 떠나 런던 햄프스티드의 20 메어스필드 가든스(20 Maresfield Gardens)로 이주하였다. 스위스 코티지근처에 벨사이즈 길(Belsize Lane)과 피츠존 거리(Fitzjohn's Avenue)의 한쪽 모퉁이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프로이트는 구강암 때문에 생전에 30번이 넘도록 수술을 치렀다. 1939년 9월에 그는 의사와 친구 막스 슈어를 설득하여 자살을 돕도록 하였다. 프로이트는 미완성 원고 을 남겨두고 1939년 9월 23일에 죽었으며, 죽은 지 사흘 뒤에 그의 유해는 영국 골더스 그린 공동 묘지에 매장되었다. 성품[편집] 프로이트는 시간 약속 같은 것을 지나칠 정도로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었다. 영국제 양모 정장에 옷감은 꼭 아내가 골라준 것을 썼다. 젊은 시절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농담 삼아 "양복장이의 인상이 내게는 담당 교수의 인상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14] 프로이트의 심리학[편집] 무의식과 꿈의 분석학[편집] 무의식이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대중화 한 기구인 심리학의 정신분석학회의 창시자이다. 그는 최면과 최면이 어떻게 신경증 치료에 도움을 주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후에 '대화 치료'로서 지금 무엇이 알려져 있는가의 발전에 대해서 자유연상과 꿈의 해석을 지지하며 최면술을 포기한다. 이들은 정신분석학의 핵심 요소가 된다. 프로이트는 특히 그 당시에 히스테리라고 불렸던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이는 지금 전환신드롬이라고 불리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들과 환자에 대한 그의 치료는 19세기에 비엔나에서 논쟁이 되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프로이트의 아이디어는 그것들을 과학적 의학적 논문으로서 계속 논의되는 것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일반 문화에서 종종 논의되고 분석되어 왔다. 자유 연상(심리역동이론)은 심리학에 사용되는 기술로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창시되었다. 프로이트는 최면술이 틀리기 쉽고 의식이 있는 동안에 중대한 기억에 대하여 환자들이 회복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최면술로 치료하기를 그만두었다. 자유연상기법을 통해 프로이트는 명백하게 중요하지 않거나 잠재적으로 환자를 압박할 수 있는 혼란스러운 기억이 될지라도 그런 것에 관계없이 환자들에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말하도록 했다. 이 기법은 모든 기억은 단일 연합의 네트워크에 정렬되어 있고 당장이든 후일에든 그것은 중대한 기억과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불행하게도 프로이트는 기억해내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고통스럽고 중요한 기억이 환자에게 저항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결국 일정한 기억들이 철저하게 억압되어 있다가 정신의 의식 영역으로 뚫고 올라올 것이라는 견해를 갖게 된다. 프로이트의 궁극적인 정신분석학적 치료는 그것들을 정신 깊숙이 묻어버리는 내부적인 정신 갈등으로서의 이러한 기억들의 회상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며, 자유 연상 기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신에 관한 연구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성과 심리[편집] 프로이트는 신체 부위에서 리비도의 이동에 따라 쾌감을 추구하는 신체부분 또는 방법이 달라지는데 따라 발달 단계를 구분하였다.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성욕기로 나누는데 이를 심리성적 발달 단계(psychosexual developmental stage)라고 한다. 처음의 세 단계에서는 자신의 신체부위에서 만족을 추구하므로 〈전성욕기〉(pregenital stage)라고 한다. 뒤의 두 단계에서는 특정의 신체부위가 아니라 이성관계 등 사회적 활동을 통해 만족을 추구하므로 〈성욕기〉(genital stage)라고 한다. 1. 구강기(oral stage, 0~2세) 이 시기에는 입이 두 가지 형태의 행동을 한다. 먹고 마시는 흡입행동과 깨물고 뱉어내는 행동이다. 흡입 행동에 고착되면 먹고 마시고 흡연과 음주, 키스 등에 관심이 많으며 성장하여 낙천적이고 의존적이 된다. 이가 나올 때에 깨물고 뱉어내는 등 입의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고착되면 성격적으로 적대감, 질투, 냉소적, 비관적, 공격적이 되고 남을 통제하려고 한다. 2. 항문기(anal stage, 2~4세) 생후 첫 해에는 부모들이 아동의 욕구가 부모를 통하여 최대한 충족되지만 배변훈련시기부터는 아동은 차츰 욕구충족이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으며 거부되기도 하고 따라서 유예해야 함을 배운다. 이 시기에는 리비도가 항문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배변활동을 통해 쾌락과 욕구충족을 느끼는데 적절히 훈련하여 아동의 욕구가 충족되면 자신의 배설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창조물로 보기 때문에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성격이 된다. 배변훈련이 지나치게 엄하거나 잘 학습되지 못하면 부모의 요구에 대항하는 적대적, 가학적, 파괴적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항문을 이완시켜 배변하는 것보다 조이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경우 지나치게 깔끔하여 결벽증적인 성격이 나타난다. 그 밖에 융통성없는 기계적 성격, 구두쇠 심리가 나타난다. 3. 남근기(phallic stage, 4~6세) 리비도가 성기에 집중되어 이의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만짐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시기이다. 성 차이를 인식하고 출생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남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빠져 어머니를 성적 애착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두려움이 나타난다. 여아는 남아와 비교하여 남근선망 등 열등감과 좌절감을 겪는 동시에 아버지를 성적 애착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어머니를 적대시하는 일렉트라 콤플렉스에 빠진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콤플렉스 현상은 동성 부모의 성역할을 학습함으로써 해소된다. 해소 정도에 따라 성역할 정체감과 성인기의 이성에 대한 태도가 결정된다. 4. 잠복기(latency stage, 6~12세) 초등학교 시기부터는 성적 욕구의 만족이 신체의 특정 부위의 자극이 아니라 친구관계, 취미활동, 스포츠 등 사회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는 쾌락원칙을 버리고 현실원칙을 따르며 아버지의 권위와 금지 또는 양심에 따라 사회적 도덕적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5. 성욕기(genital stage, 12세 이후) 사춘기로서 성적 충동을 정상적인 성욕으로 통합하는 시기이며, 정서적 해방과 독립을 추구하는 심리적 이유기이다. 앞서의 단계들에서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갈등이 있다. 그러나 앞서의 어느 단계에 고착되지 않았다면 이성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이성관계와 또래관계 등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활동을 통해 만족을 찾고 원시자아의 충동을 승화시킨다. 자기 방어 기제[편집]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으로써 전략 압도되는 불안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함은 물론 기능을 수행하도록 도와준다. 자기 방어 기제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무의식 차원에서 작용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현실을 왜곡하게 지각하여 불안을 감소시키도록 한다는 것이다. ① 억압: 가장 기본적인 방어기제. 위협을 주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욕구, 사고, 기억이 의식화되거나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는 과정(예: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적 충동이나 욕구를 의식에 떠오르지 못하도록 함) ② 동일시: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특성(가치, 태도, 행동 등)을 내면화하는 과정 (예: 남아가 거세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방어하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성적 충동을 억압하고 아버지를 동일시함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을 해소하고 애정을 획득함) ③ 부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를 거부하는 것, 백일몽, 환상 (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 ④ 반동형성: 위협적인(공격적인) 충동을 의식수준에서 정반대의 충동, 말, 행동으로 대치하는 과정 (예: 음주욕구가 강한 사람이 금주운동에 참여하는 것) ⑤ 투사: 수용하기 어려운 충동, 사고, 감정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으로 귀인하는 과정(예: 자기 내부에 증오심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이 자기를 증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⑥ 주지화(지성화): 위협적인 대상에 대해 정서적으로 관련되지 않기 위해 그 대상에서 분리되는 과정(예: 불쾌한 경험을 해야 하는 전문가, 검시관, 간호사, 외과의사 등이 많이 사용) ⑦ 치환(전위): 현실적인 제약요인으로 인해서 충동이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때 다른 대상을 통해 충동이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과정(예: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난 후 동생에게 화풀이하는 형) ⑧ 승화: 치환의 한 형태로, 성적 충동이나 공격적 충동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예: 직접 충족시킬 수 없는 성적 충동을 그림이나 음악, 문학작품을 통해 충족시키는 예술가) ⑨ 합리화: 수용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실제 이유가 아니라 그럴 듯한 이유를 둘러대거나 변명을 통해 난처한 입장이나 실패를 모면하려는 일종의 자기 기만전략(예: 이솝우화의 ‘여우의 신포도’) ⑩ 고착: 새로운 발달단계로 이행할 때 경험하는 불안이나 좌절이 극심할 때 정상적인 발달이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중단되는 현상(예: 지나치게 의존적인 아동이 독립적인 행동을 학습하는 것이 불안한 경우 고착 방어기제 사용) ⑪ 퇴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초기 발달단계로 되돌아가거나 안정되고 즐거웠던 인생의 이전 단계로 후퇴하는 것(예: 성인이 토라지거나 말을 하지 않는 것) ⑫ 보상: 신체적 조건, 지적 특성, 성격 특성의 약점이나 결함을 극복하거나 감추는 것(예: 외모에 열등감을 느끼는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편집]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일 수 없다고 보았다. 아돌프 그륀바움은 정신분석학은 반증가능하며, 사실상 틀렸음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비판자들과 옹호자들간의 논쟁은 때때로 매우 격렬해져서, 이러한 논쟁들은 프로이트 전쟁으로 불린다. 행동주의 심리학, 진화심리학, 인지심리학은 정신분석학을 의사 과학으로 취급하여 인정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자들 역시 정신분석에 대해 회의적이다. [15]
790    프로이드의 딸 후계자 - 안나 프로이드 댓글:  조회:4755  추천:0  2015-03-29
  프로이드 행동심리이론 - 정신분석 이론                                /(박경원)   정신분석의 이론 개요. 정신분석에서는 본능을 인간정신 생활의 일차적 요인으로 보고 있다.   *이성 -충동적인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사리를 올바로 분별하여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에 작용하는 에너지를 생은 본능과 죽음의 본능으로 나누었다,  =생(삶)의 본능 =>생의본능인 Eros 생명을 유지 발전시키고. 사랑을 하게하는 본능이다 =>Ex)성욕. 배 고품. 갈증 등. =>죽음의 본능  자기를 파괴하거나 처벌하여 타인 등을 파괴시키는 공격적인행동.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은 서로 영향을 미치거나 상호 혼합되어 작용한다.  음식을 먹는 행위. 성행위. =>프로이드는 에너지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성적본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이를 리비도라 불렀으며 이것은 인간의 성격발달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간주하였다.  즉 리비도는 생물학적 힘 이아니라 정신적인 힘으로 성적본능의 에너지를 의미 하는데 출생 시부터 나타나고 아동의 행동과 성격을 결정하게 된다. =>인간의 의식수준  의식- 현재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경험과 감각을 뜻 한다.  전의식- 전의식은 현재는 의식되지 않지만 전에 의식했던 것이 저장된 것으로 주의 집중을 통해 의식 세계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경험이다.  무의식- 정신구조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인간행동을 결정하는 주된 원인이다   구강기-항문기-생식기-잠재기-사춘기 *실천모델등장  심리사회적 모델 = 개인의 심리. 사회 환경. 개인과 사회 환경. 기능주의모델 = 현재경험강조. 행주의 모델 = 스키너.               외적자극에 의한 동기화.               학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불안과 방어기재 =>불안은 각 개인에게 반격하거나 피해야만 하는 절박한  위험의 원천을 알려주는 자아의 기능이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불안은 개인으로 하여금 위급한 상황에 적합한 방법으로 반응 하도록 한다. =>불안은 자아를 위협하는 근원을 토대로 현실불안 신경 즉 적 불안 도덕적 불안으로 구분된다. =>현실불안 -두려움과 같은 것으로 정서반응 또는 외적환경에서 위협을 지각하는 것을 말하며 예를 들면 독사 맹수. 시험 등이 있다. =>신경 즉 적 불안 ld의 충동이 의식화 될 것이라는 다시 말하면 본능 특히 성적 공격적 본능을 자아가 조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에서부터 출발한다. =>도덕적 불안 super ego 로부터 벌의 위협을 밭았을 때 일어나는 정서반응을 말한다. =>자아방어기재는 압도되는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위한 전략으로 여기에는 다음 과같은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1)무의식 차원에서 반응 한다.  2)각 개인으로 하여금 현실을 왜곡해 지각하게 만들어 불안감의 위협을 덜 받도록 하는    것이다.   안나 프로이드  방아기재   + 안나 프로이드의 생애 +  Anna Freud는 1895년 12월 3일 비엔나(Vienna)에서 지그몬드 프로이트(Sigmund Freud) 와 마르타 프로이트(Martha Freud) 부부 사이의 막내 딸로 태어나 1982년 사망하였으며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제기한 자아의 방어기능에 대한 관점들을 정리하여 방어기제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 이론을 수립하여 성격발달에서 방어기제의 역할에 관한 이론을 확대시켰다.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을 발견한 것은 Freud의 큰 공헌이다. 방어기제란 위협적인 충동이나 외적위협을 직시하기보다는 자아를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심리적 책략들을 말한다(홍숙기 ・ 이인미 ・ 최윤미, 1992: 76) 방어기제는 원래는 프로이트가 기술하였으나 이후 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더 자세히 설명하였다.  여기서는 방어기제에 대한 개념과 안나 프로이드가 연구한 10가지의 방어기제를 설명하고 이어서 안나프로이드 이후의 방어기제들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1). 주요개념 (1) 불안  정신 분석 초기에 프로이트는 불안이란 부적절하게 해소된 리비도 에너지의 결과라고 보았다.  그는 억제된 성 충동과 해소되지 못한 신체적 흥분으로 높아진 긴장 상태가 불안 신경증으로 변화되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경증을 치료하는 동안 그의 생각은 변했고, 마침내는 불안에 대한 초기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다. 프로이트는 초기의 주장을 바꿔 정신 분석 후기에는 불안이란 개개인에게 반격하거나 피해야 할 위험의 원인을 알려주는 자아의 기능이라고 주장했다.  자아는 현실 원리에 따라 이드의 본능적 욕구와 초자아의 도덕적 양심을 조절해 주는 기능을 담당하는데, 불안은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내적 또는 외적인 위험을 자신에게 알려 줌으로써 자아가 거기에 대처하게 만든다. 프로이드는 신경증의 원인이 되는 불안을 은 세가지로 분류하였다.  (가) 현실적 불안: 실제적인 불안상황에 대해 느끼는 불안으로 원인이 외부 세계에 있다. 그래서 현재의 객관적 불안이라고도 하는데, 공포와 유사하다.  (나) 신경증적 불안:억압된 본능이 통제 불가능할까봐 생기는 불안으로 원인이 이드(id)에 있다. 이드의 충동이 의식화될 것이라는 것 때문에 긴장하고 그에 따라 생긴 정서 반응이 신경증적 불안이다.  (다) 도덕적 불안: 지나친 초자아의 발달로 도덕적 규칙이나 부모로부터 내사된것을 위배할까봐 느끼는 불안으로 자아(ego)가 초자아(superego)에게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할 때 생기는 불안이다.  이드가 비도덕적 생각이나 행동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할 때 도덕적 불안이 발생한다.   2). 방어기제란 무엇인가?   방어기제라는 말은 지그몬드 프로이드가 처음 사용하였으나 그 이론을 정리하고 정착시킨 사람은 그의 딸 안나 프로이드였다.  프로이드는 그의 논문 신경 정신증의 방어"(Neuropsychoses of Defense)에서 방어(defense)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후
789    프로이트 후계자 - 자크 라캉 댓글:  조회:4562  추천:0  2015-03-29
자크 라캉 이드, 자아, 초자아로 구분되는 프로이트의 2차 정신 기구 모델은 후계자들의 격렬한 의견 대립을 통해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분화된다. 하나는 생명의 본질을 이드에서 찾으며 인간이란 이드, 자아, 초자아가 끊임없이대립하고 상호작용하는 역동적 실체라는 주장이다. 나머지 하나는 자아의 자율성과 방어 기능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정신분석은 결국 자아의 강화와 이를 통한 현실 적응을 돕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프로이트의 여섯 번째 딸 안나 프로이트고 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자크 라캉이다.     상상계 라캉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상상계로 지칭하는데, 이는 이 세계가 가상이라는 말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이 이미지를 매개로 이뤄진다는 말이다. 라캉은 이를 '거울 단계'의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거울을 처음 본 어린 아이는 거울 속의 이미지가 '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는 '나'를 알아본다. 이 때가 바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최초로 인식하는, 즉 자아가 발견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나'라는 정체성이 나를 비춘 '대상'을 통해 밝혀진다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한낱 이미지에 불과한 대상을 통해 나를 인지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진짜 나'의 소외를 초래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코 진정한 '나'를 알지 못한다. 우리의 자아는 대상화된 '나'를 통해 인지되기 때문에 그것은 근본적으로 타자이며 수 많은 오해의 씨앗이 심어진 불완전의 토양이다.       한편 '나'의 이미지에 매료되는 거울 단계의 매커니즘은 나르시즘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자아의 발견은 안정된 자기 인식의 시작이 아니라 '진짜 나'와 '나를 비추는 이미지' 사이의 분열을 의미한다. 여기서 '나를 비추는 이미지'는 그 특성상 완벽한 이상향을 지향하면서 실제의 '나'와의 괴리를 가속화 하는데 그 이유는 거울 단계에서 지각되는 신체적 미숙함이 원인이다.  실제로 생후 6개월~1년 된 아이는 운동 신경의 발달이 미숙해 아직 자신의 몸을 완전하게 통제하지 못하며 몸이 주는 감각들도 파편화된 형태로 느낀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모습은 이상화된 전체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의 몸이 보여주는 완벽한 조화에 환호하면서 끌리게 된다. 그러나 아이가 이미지에 끌리면 끌릴수록 아이가 느끼는 실제 몸의 현실은 완벽한 자아의 상에 균열을 낳는다. 이렇듯 실제 몸의 불완전성과 이미지의 완벽함이 최초의 분열과 불안을 낳으면서 자아의 일체감을 위협하는 게 거울 단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때 불완전한 육체와 이상적 이미지를 봉합하는 것이 바로 나르시즘이다. 나르시즘은 '완전'에 대한 욕망으로 철저히 이상화된 자아를 만들어내지만 대상화된 자아의 불완전함은 엄연한 현실이다. 나르시즘은 우리를환상 속에 가둬두려는 마술의 집이다. 환상은 컴컴한 암막이 되어 현실을 가려 보지만 실제와 환상 사이의 균열은 점점 커져만 가고 그 안에선 썩은 내가 풍겨 나온다.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결국 연못에 빠져죽은 나르키소스의 신화는 썩은 내를 풍기는 나르시즘의 불길한 묵시록이다.        상징계 대상화된 자아가 속하는 곳이 상상계라면 실제 주체가 거하는 곳이 바로 상징계다. 라캉에 따르면 주체란 곧 '말하는 주체'다. 따라서 상징계는 언어에 의해 구조화되는데 라캉은 소쉬르의 기호론을 차용하여 이를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여기서 부터 두 손을 들었다. 소쉬르의 기호론이라는게(시니피에-시니피앙의 관계를 설명하는) 절대 쉬운 개념이 아닌데 여기다 라캉의 새로운 생각까지 덧붙여 지니 이건 완전히 암흑이다. 중요한건시니피앙(기표: 말해지는 것. 단어를 발음과 의미로 나눌 수 있다면 그 중 발음에 해당하는 것이 시니피앙이다.)이 자율적, 독자적으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정해지는 방식은 결국 상상계에 의존하기 떄문에 결국 주체는 소외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좀 더 들어가보자. 라캉의 언어론에서 시니피앙은 시니피에보다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라캉은 둘 사이에 거대한 가로막 하나를 질러 놓고 위에는 시니피앙을 아래에는 시니피에를 위치시키는데 시니피에는 이 가로막에 막혀 끝없이 침잠한다. 이때 시니피앙은 시니피앙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연쇄 사슬을 구성하는데 이 연쇄사슬이 바로 언어의 체계다. 이 때문에 언어의 체계는 그 자체로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니피앙 간의 구분은 단순히 말(발음)의 분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자'라는 시니피앙은 '남자'라는 시니피앙을 만나 서로 구분된다. '여자'를 '여자'이게 만드는 것은 '남자'를 포함한 다른 모든 시니피앙들이 '여자'와는 다르게 발음되기 때문이다. 시니피앙은 이렇게 상호 구분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립한다.  하지만 소리만 가지고는 의사소통이란 것이 이뤄질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발생시키는 소리의 다름을 통해 의미의 다름을 인지하는데 이는 소리가 특정 의미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캉의 이론에서 이 소리와(시니피앙) 의미(시니피에)의 만남을 주재하는 것이 바로 '주체'다. 문제는 이 주체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자'라는 단어가 사전적으로 생물학적인 여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만약 수 십차례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경험한 남자라면 여자를 '인정머리 없는 냉혈한'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가 여자라는 단어에서 어머니의 풍요로움과 따뜻함을 느낄 때 이 남자는 가슴을 찌르는 한기를 느낄 것이다.  이처럼 시니피앙은 시니피에와 일대 다 심지어 다대 다로 결합하면서 고정된 실체를 형성하지 못한다. 확실한 '나', '절대적인 기준'의 부재는 '이것이 진짜 주체인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다. 이것은상징계의 구성 조차 상상계의 근본적 결함인 오인 구조를 - 대상화된 자아를 진짜 나로 착각하는 -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주체는(진짜 주체) 상징계에서조차 소외 당한다.  사실 상징계에 대한 설명은 이후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책은 상징계를 '선험적 질서로서 주체를 벗어나는 타자의 영역'이라고 설명하고 '이를 상상계의 소타자와 구별하여 대타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며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라는 라캉의 핵심 이론이 전개되는데, 나는 '선험적 질서로서 주체를 벗어나는'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 시니피앙와 시니피에의 관계 - 그것이 왜 '타자의 영역'이 되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어 결국 줄줄이 사탕으로 이어지는 핵심 이론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말았다.      이렇듯 알쏭달쏭 장님 문고리 잡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느낀 바가 있어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라는 주장은 라캉의 이론 중 현대인의 실체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론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거울 단계의 매커니즘에서 살펴봤듯이 우리는 '내가 나'라는 사실을 명석판명하게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무언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사실 내가 나라고 '착각하는 존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라든가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체와 자아(대상화된 주체)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나-타자의 관계와 같다.그러므로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어'라는 말은 '네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어'라는 말과 사실상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수 많은 인간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게 아닐까? 안되겠다. 한 마디만 더 하자.  나-타자의 관계에서 타자란 '대상화된 주체'를 의미하지만 말 그대로 '타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아를 확인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 형상이 자신을 그대로 흉내내는 허구의 이미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어른의 세계에서 거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타자, 나와 더불어 사회, 문화를 형성하고 관습과 질서에 순종하는 타인을 의미한다. 확실히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을 통해 나를 확인한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 요리조리 눈치를 보며 이 사회를 살아간다. 중요한건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근본적으로 타인의 욕망을 추구한다. 동창회에 들고 나간 싸구려 백을 은근 슬쩍 가리게 되는 순간 당신의 마음 속에는 루이비통과 에르메스와 샤넬의 욕망이 싹 튼다. 그러나 그 욕망의 씨앗은 '나'로 부터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곳으로 부터 뿌려진다.  문화와 관습의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는 인간의 일탈을(진짜 '나'를 찾는 행위) 감시하는 거대한 감옥이다. 우리는 감시자를 자청하며 서로의 욕망을 서로에게 투영한다. 이 안에 진짜 나는 없다.  실재계 상징계는 언어를 통해 구조화 된다. 이 말은 상징계에 진입한 인간이 언어를 매개로 세계를 추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언어를 매개로 세상을 추상'한다는 말 속에는 결코 언어가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는못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렇다. 매개는 그저 매개일 뿐이다. 언어 자체가 실재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마치 언어 때문에 이 세계가 존재하고 언어가 아니면 실재를 드러낼 방법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언어와는 무관하게 실재는 우리 눈 앞에 존재한다. 우리의 우주가 고작 언어가 만들어지고 난 뒤에야 태어날 수 있었던 부차적 개념에 불과했던 것일까? 아니다. 우리가 구름을 연기라고 말하든 나무라고 말하든 구름은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위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구름이란 말에는 구름의 실재를 보여줄 수 있는 어떠한 단서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납득할 만한 설명 아닐까?  그렇다. 언어는 세상을 해설하는 도구일 뿐 결코 이 세상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해설은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느끼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그리고 듣는 사람의 지식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따라서 언어와 실재와의 관계는 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실재에 드리워진 거대한 장막이다.  라캉의 실재계는 언어의 장막 뒤에 숨어 있는 보드라운 속살을 말한다. 상징계는 끊임없이 이 속살을 사진 찍어 세상에 드러내려 하지만 그것이 언어라는 암실을 통과하는 순간 빛바랜 흑백 사진이 되버리고 만다. 그러나 흑백 사진에서 드러난 '색'의 결여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색'의 실재를 확신하게 만든다. 누가 그랬던가?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다름아닌 부재라고!       우리의 욕망이란 결국 결여된 것을 채우려는 갈망, 어두운 장막을 들춰내고 실재에 가 닿으려는 간절함이다. 하지만 실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을 통해서는 이 세계에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얻을 수 없는 것을 소망하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다고 눈을 감고 싶지만 부정의 강도가 높아갈 수록 존재의 크기는 커져만 간다. 그래서 또다시 욕망의 돌을 굴린다. 시지포스의 형벌은, 아마도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은유한 것이리라. 무의식과 실재 실재는 상징계의 작용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치 고요한 화산 밑에서 이글거리는 용암처럼 실재는 끊임없이 이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길 갈망한다. 그렇다면 이 화산을 폭파시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말장난 같지만, 실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글은 절대 그 방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실재의 끝자락이라도 잡아 그 모습을 글로 옮기려 하지만 손 끝으로 타자를 누르는 순간 실재는 언어의 어두운 장막에 가려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래도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화 되지 못한 것 논리적이지 못한 것 비언어적인 것이 우리의 실재다. 꿈에서 겪은 기괴한 이야기, 마음 속 깊숙히 숨어 있는 원초적 욕망들이 바로 우리의 실재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초현실주의 화법의 작품들이 범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표현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은 그들이 미치광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재를 직관하는 초인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이드'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자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담고 있는 원초적 에너지 덩어리라면 라캉의 실재가 자리하는 곳이 바로 무의식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실재는 존재한다. 우리는끝까지, 이 실재를 '이해'하려 들기 때문에 실재는 영원히 우리 앞을 배회할 뿐이다.        라캉과 프로이트, 그리고 지식인마을 시리즈 프로이트가 어려운건 정평이 난 사실이지만, 그래도 프로이트의 저작 몇 권을 훑어 본 뒤 내리는 판단에 따르면, 라캉이야 말로 난해의 극치다. 평생 정신과 의사로서 임상에 근거한 정신 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와 달리 라캉은 철학을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정신 분석학을 이론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 때문에 난해함은 배가 되었다. 프로이트를 이해하기 어려운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개념의 문제라기 보다는 일종의 심리적 거부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부모에 대한 성애와 거세 컴플렉스를 근간으로 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등 인간의 모든 삶을 성적 문제로 환원하는 태도).  반면 라캉은 개념 자체가 너무나 어렵다. 실재계와 상징계의 대립은 수 천년간 철학계를 전쟁터로 만들어 온 관념론-유물론의 대립을 연상케 하며 '실재(존재)의 드러냄' 같은 개념은 악명 높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떠올리게 한다. 고작 한 권의 책으로 라캉을 판단하기엔 이를 수 있지만, 어쨌든 내 첫 느낌은 그렇다.  정신 분석학이 흥미로운 분야인 것은 사실이지만 책 한 권을 읽고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앞으로 이 분야의 책을 선뜻 집어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참,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게 하나 있는데, 그렇다고 이 책 자체가 어렵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정신 분석학은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볼 생각이다.    
788    <세계의 기원> - 화가 - 구스타브 쿠르베 댓글:  조회:3454  추천:0  2015-03-29
  처음 그림은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이다.   Courbet, Gustave  / The Origin of the World / L'Origine du monde 1866 Oil on canvas 18 1/8 x 21 5/8 in. (46 x 55 cm) / Musee d'Orsay, Paris   아래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걸린 그림과 관객들.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어떤 미술사 책이던 사실주의 이야기 할 때면 반드시 나오며, 근/현대 서양미술을 이해하자면 그를 거쳐야만 한다.     쿠르베의 말 중 다음이 유명한 데,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주의가 무언인가를 잘 나타낸 말이라고 하겠다.   또 “회화는 반드시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는 사실주의의 대상이 무엇인가를 잘 요약한 말도 남겼으니, 쿠르베를 오늘 날 운동권 화가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기원(The Origin of the World)   운동권 환쟁이 쿠르베를 졸졸 쫓아다니던 무리에 제임스 휘슬러라고 있었고, 그 휘슬러에게 조안나 란 애인(愛人)이 있었다.   휘슬러가 이탈리아로 잠시 간 사이 쿠르베는 ‘세계의 기원’을 그렸다. 여행에서 돌아온 휘슬러에게 쿠르베가 그림을 보여 주자 애인 조안나가 모델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채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쿠르베가 휘슬러에게 조안나를 모델로 그려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으나, 그게 설마 음부만 클로즈 업 한 그림이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모델 서는 것도 모델 나름이지 저런 걸 그리면서, 화가 쿠르베와 모델-음부(陰部)의 주인 조안나 사이가 범상했을 리는 없고, 휘슬러는 두 사람을 두고 떠나 버린다.       춘화(春畵)-포르노와 예술 작품의 경계는 대단히 애매한 것이다.   그림은 55x46cm 로 별로 크지 않다. 당대 대부호 이자 오입장이의 부탁을 받고 그린 그림이었다.   우리 모두 저기서 태어났으니 세계의 기원이 맞기는 맞다.   맞기는 맞으나….. 뭐 어떻게 논설을 까고, 철학적 설명을 붙이던, 또 아무리 예술의 고장 프랑스 파리 라고 하더라도 19세기 당시 미술관에 저런 그림을 버젓이 걸어 놀 수는 없었다. 몇몇끼리 은밀히 돌려 가며 보던 그림이었다.   1866년 이래 그림 주인이 이리저리 바뀌다가, 마지막 소장자(所藏者)가 프로이드의 제자로 그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1901-1891) 이었다.   정신분석학의 핵심 대상이 성(性)이니, 그림의 소장자로 딱 어울린다.   라캉이 죽고, 상속세 조로 납부하여, 프랑스 정부 재산이 되었다.   1995년 드디어 파리 오르세 미술관 (Musee d'Orsay)에 걸리니 작품이 나온 지 꼭 129년 만에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다.  
787    超現實主義 댓글:  조회:3899  추천:0  2015-03-29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이란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이란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제 1차 대전이 종결된 이듬해인 1919년부터 제 2차 대전 발생 직후까지의 약 20년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문학·예술상의 전위운동. 이 운동은 2차 대전 후에도 이 파의 이론적 지도자였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살아있는 동안, 파생적으로 계속되었다. 이 운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차례로 등장한 다른 전위 운동(퀴비슴, 미래주의, 표현주의, 다다이슴 등)에 비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 기본 이념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헤겔의 관념론을 원용하여 인간 정신의 전면적 해방을 위한 시스팀을 확립하고자 하는 일종의 신비 사상에 의존했던 점과, 또한 유럽의 정치적·사상적 풍토가 파시즘의 위협에 직면해 있던 시기에 있어서 그 정신 해방의 이념을 인간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마르크시즘과의 접촉·융합에서 찾고자 했던 점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쉬르레알리슴은 그 운동 기간을 통하여 많은 뛰어난 시인, 작가, 화가, 조각가를 배출해냈다. 루이 아라공, 르네 샤르, 트리스탄 짜라 등의 시인, 레이몽 크노, 미셀 레리스 등의 작가, 호안 미로, 이브탕기, 앙드레 마송, 르테 마그리트, 맨 레이, 한스 벨머, 마타 에차우렌, 위프레도 람 등의 화가, 한스 아르프, 알베르토 쟈코메티, 헨리 무어 등의 조각가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 운동의 생성·발전에 주력한 가장 대표적인 쉬르레알리스트로서는, 사랑을 테마로 해서 새로운 미의 기준을 창조한 폴 엘뤼아르, 언어 기능을 구사하여 유머와 릴리시즘을 풍부하게 한 방자맹 페레의 두 시인과 콜라지 수법에 의해 초회화적 세계를 개척한 막스 에른스트와 독자의 편집광적 비판 활동을 에로틱한 욕망의 개발에 적용한 살바도르 달리의 두 화가를 들 수 있다. 쉬르레알리슴의 발생은 1919년, 파리의 다다운동의 기관지로 창간되 「문학」지상에 앙드레 브르통과 필립 수포의 공동작인 「자장(磁場)」의 일부를 연재한 시기를 기원으로 한다. 이 작품은 당시 무의식에 관한 연구에 전념하여 특히 프로이트 학설에 심취해 있던 이 두 시인이 의식 속에서 표출되는 이미지를 되는 대로 아무런 정정도 없이 언어로 전사하는 방법, 소위 자동기술법(自動記述法)을 실험하기 위해 쓰여진 산문인데, 이 실험을 통해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쓰여진 문장이 스스로 사고(思考)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의식적으로 쓰여진 문장에 비해 순도(純度)가 높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1924년 브르통, 엘뤼알, 아라공 등에 의해 「쉬르레알리슴 혁명(革命)」이란 기관지가 발간되면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같은 해 브르통은 유명한 「쉬르레알리슴 선언」을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쉬르레알리슴을 「이성에 의한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또 미학적, 윤리적인 일체의 선입 관념도 없이 행해지는 사고의 받아쓰기(dictee)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그에 의하면 보통 사람의 사고 방식은 처세술, 고정 관념(固定觀念), 이성 등에 의해 얽매어 매우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빙산이 커다란 부분을 바닷물 속에 감추고 있는 것처럼 그 상식의 바닥에는 넓은 하의식(下意識)의 부분이 있어 늘 제약(制約)을 밀어내고 모습을 드러내고자 싸우는데, 그것이 억압이 늦춰진 틈을 타 꿈의 세계, 무의식의 행동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쉬르레알리스트는 이 깊숙이 숨겨진 정신 생활을 보다 절실한 현실이라고 보아, 직관적이며 물질적인 것에 의해 그 가능한 표현의 극한에까지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기법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방법을 크게 나누면 오토마티슴과 데페(이)즈망이라는 것이다. 쉬르레알리스트들은 이런 기법에 의한 최초의 전람회를 1925년에 열었다. 주요한 출품자는 에른스트, 아르프, 마송, 키리코, 맨 레이 등이었고 뒤에 뒤샹, 탕기, 재코메티가 참가했다. 1930년 일부 회원들이 마르크시즈멩 접근함으로써 운동은 분산되었고, 제 2차 대전 이후는 달리, 탕기, 에른스트 등이 도미(渡美)함으로써 운동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특히 자산가의 딸로 에른스트와 결혼했던 페기 구겐하임은 그녀가 경영하던 화랑인 「금세기 예술」을 통해 쉬르레알리슴을 미국에 소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리하여 쉬르레알리슴의 영향 아래 추상표현주의란 새로운 회화의 조류가 탄생하여 미국화단을 지배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다시 두 번째로 국제 초현실주의전이 개최된 것은 1947년의 일이었다. 그후 1964년에는 다시 「쉬르레알리슴-원천·역사·주변」전(展)이 파리의 화랑에서 개최되었으나, 너무 왜곡되고 편견에 치우친 전시회라는 쉬르레알리스트들의 항의를 바도 취소되었다. 1966년 브르통이 작고하자, 그 이듬해에 「다다·쉬르레알리슴, 그 유산」전(展)이 뉴요크 근대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개최되어, 쉬르레알리슴은 근대 미술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운동으로서의 평가가 더욱 확고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초현실주의 ( 超現實主義 surrealism / surrealisme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예술운동. 쉬르레알리슴이라고도 한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처음에 쉬르나튀랄리슴[超自然主義]이라는 명칭을 생각했으나, 철학용어로 오해받을 것을 염려하여 초현실주로 고쳤다고 한다. 미술사에서 이 운동을 예시한 미술가들은 보쉬, 아르침볼도, 피라네시, 고야, 롭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르동, 데 키리코(De Chiroco,1888~1978) 등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이들과 비슷한 특징 때문에 샤갈 또한 이 운동의 선두주자로 언급된다. 이들은 무의식이 프로이트의 이성의 통제를 뛰어넘어 잠재된 충동과 상상의 세계를 해방시킨다는 학설을 원용하여 자동기술법에 의한 다양한 기법을 개발했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자동기술적인 글을 썼고, 미로, 아르프, 마송, 에른스트 같은 화가들은 프로타주와 꿈의 현실적 재생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을 통해 시각적인 등가물을 창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화와 조각의 복잡한 기법들은 순수한 자동기술법에 의한 불완전하기 때문에 최소한 어느 정도의 의식적인 작업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발견 된 오브제'와 꿈이 강조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회화의 가장 특징적인 면은 과거에 꿈을 그린 그림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즉, 꿈의 공간의 단순한 재생산 (예컨대 탕기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듯)과, 논리적으로 서로 상관이 없는 대 상들을 암시적으로 병치해 꿈의 특정한 감성적 특질을 전달하는 것과의 차이 점이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은 비기능적이거나 전혀 기능성이 없으면서도 정 교하게 구성된 물체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대상을 그들의 규범적인 대에 서 끌어내려 진열함으로써 다다이스트인 뒤샹과 피카비아의 방법을 이어받고 있다. 비논리적인 병치의 방법은, 환상의 구조에 객관적 실재의 환영을 보여하 려했던 19세기 후반의 아카데믹한 그림이나, 라파엘 전파의 매우 섬세한 양식 과 유사한 사진기술과의 결합 속에서 달리와 마그리트에 의해 특히 발전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혼란스러운 인상은 사실주의적 처리와 비현실적 주제 사이 의 대조에 의해 강화되었다. 달리, 만 레이, 한스 벨머 그리고 다른 초현실주의자들 역시 막연한 잠재의식 연상을 유발시켜 다양하고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법을 개발하였다. 초현실주의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하여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나 추상예술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달리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밀한 묘사력은 사실(寫實)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 마송, 미로, 에른스트의 작풍(作風)에도 추상화의 경향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성·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초현실주의 뿌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다다이즘에서 찾아야 한다.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기성의 전통·질서에 대한 파괴운동이었던 만큼 비합리를 예찬하고 때로는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흐르며, 콜라주와 같은 새로운 기법, 오브제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도 채택했으며, 초현실주의 강력한 무기인 에로티시즘에 이르러서는 다다이즘의 비도덕적인 자세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기원을 더 먼 곳에 찾아본다면, 그것은 당연히 입체주의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20세기의 예술운동 속에서 야수파나 표현주의 이상으로, 입체주의는 혁신적인 공간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야수파나 표현주의가 원색주의를 택하고 강렬한 감정표현을 주체로 삼았다고 한다면, 입체주의는 종래의 회화를 부정하는 순수한 이념화(理念化)만을 꾀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한 개의 화면을 완벽한 평면으로 보는 관점이며, 일찍이 세잔이 추구한 원근법이라든지 전경·후경의 배치와는 별도의 구성, 별도의 공간개념을 필요로 하였다. 초현실주의 공간은 많은 경우, 상상적 공간이며 비현실의 공간이다. 따라서 초현실주의는 간접적으로 입체주의의 계열을 잇는 공간파악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그 때까지 빙산처럼 수중에 가리어 있었던 무의식의 영역에 눈을 돌렸다. 즉, 이성(理性)의 반대의 극점, 합리의 반대쪽의 세계이다. 초현실주의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술은 이성과 감성, 정신과 마음이 합치는 지점에 그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미 예술은 그러한 조화·통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의 자아는 밝음과 어두움의 두 부분으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독일 낭만파 문학에서 영향받은 독일 낭만파의 회화는 O.룽게나 C.D.프리드리히의 회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무한대의 동경을 그 특질로 삼고 있다. 또 그들의 작품에는 종교적 감정이 짙게 스며들어 있다. 초현실주의는 종교감정 대신에 프로이트의 리비도설(說)이 도입된다. 따라서 인간의 숨겨진 부분에 상상력을 펼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술적으로 보아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인 V.위고는 그의 데생에서 이미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오토마티슴)에 가까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여류작가 G.상드가 풍경화 속에다 이끼나 꽃 같은 것을 붙인 것도 일종의 콜라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모두 무형체를 지향하였다. 창조력이란 그것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현존하는 것을 뛰어넘어, 비구상(非具象)의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낭만주의는 자아를 절대시하고, 그것에 무제한의 능력을 부여했을 때에 비로소 초현실주의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마그리뜨 : '피레네의 성 ' ]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가능한 한 참되게 표현하려고 하는 초현실주의의 갖가지 시도는 시· 회화·사진·영화 속에서 현실적인 연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당시의 모순된 현실과 결부되어 예술일반의 인식을 비약시키고 20세기 특유의 환상예술을 발흥(勃興)시키게 된다. 특히 미술의 경우 초현실주는 종래의 공간의식과는 별도의 비현실세계를 겨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새로운 테크닉을 필요로 하였다. 도밍게스의 데칼코마니, 에른스트의 프로타주, M.레이의 레요니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와 같은 테크닉이 충격의 효과를 미리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인 R.마그리뜨에 이르면 큰 바위덩어리를 공중에 띄워놓는다든지, 낮이 밤으로 변해 있는 등 정신의 전위(데페이즈망)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기법에 있어서의 데페이즈망과 정신에 있어 그것이 초현실주의의 최대의 표현기능인 것이다. 초현실주의 선언(I) : 1924 1924년 10월 앙드레 브르통은 정식으로 < 초현실주의자 혁명> 지를 통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다. 브르통은 " 초현실주의여, 친애하는 상상력이여, 우리는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가!. 우리를 열광시키는 단 하나의 말, 그것은 자유가 아닌가!" 하고 말하면서 상상력과 과거의 인습과 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선언과 함쎄 초현실주의 미술은 막스 에른스트를 비롯하여 마송(Andre Masson,1896~1987)과 호안 미로(Joan Miro,1893~1983)가 참여하면서 활발히 전개된다. 마송은 르네상스시대 화가인 웃첼로와 입체주의에 관심을 갖고 그림을 시작하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비현실 세계에 관심을 갖고 자동기술을 작품제작에 도입한다. 1924년 전후에 스페인 화가인 미로는 '배고픔 때문에 생겨난 환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미로의 그림은 클레(Paul Klee,1878~1910)의 간결한 기호적 풍경에 환상을 접목시킨 또다른 현실의 모습이다. 한편 1924년에는 에른스트의 초기 대표작인 < 꾀꼬리에 위협받는 두아이> 가 제작된다. 초현실주의 선언(II) :1925~1929 1925년은 부르통의 주선으로 파리 피에르 화랑에서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공동전시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기도 한 해이다. 비록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으나 키리코를 비롯해 에른스트, 마송, 미로와 다다이스트 만레이, 장 아르크 그리고 피카소까지 참여한 대규모 초현실주의 전시로 현대미술사에 기록될 중요한 사건이다. 한편 1925년 8월 10일 프랑스 프르닉 바닷가에서 에른스트는 프로타주 기법을 발견하여 초현실주의 미술에 새로운 표현으로 주목받게 된다. 문지르기라는 프로타주(Frottage)기법은 '객관적 우연'의 이미지를 탄생시키며, 초현실적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낸다. 무의식의 감정이입이 이루어지는 프로타주 기볍은 이성이나 취향, 생각 등의 의식적인 행위를 배제하는 것이다. 또한 에른스트는 프로타주 기법을 화가의 의식과 활동을 최대로 제한하면서 자동적인 정신반응을 표현하려는 미술에 있어서 '자동기술법'이라고 말한다. 1928년 에르스트가 프로타주 작품을 연작으로 제작할 때 , 미로와 마그리트(Rene Magritte,1893~1967)의 등장이 주목된다. 미로는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단순한 정밀 묘사직인 그림에서 벗어나 문자나 알아보기 힘든 기호들을 화면에 가득 채우는 그림을 그린다. 마그리트는 벽지 제조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1926년 브뤼셀에서 메장스나 르콩트, 폴 누제 등의 문학가들과 초현실주의 그룹을 형성하고 1927년 이후 파리에 체류하면서 본격적인 이준 이미지의 우연한 만남이나 환상세계를 그리기 시작한다. 한편 1929년 12월 15일 브르통은 '제2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다. 이것은 초현실주의를 단순한 예술사조로 발전시키기보다 정치, 사회의 연결된 혁명으로 전개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은 작품제작이나 미의 자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각되지 못한 것과 예술의 미개척 분야를 밝히고 정치적, 사회적 혁명사상을 예술가들이 추구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첨차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이러한 선언과 별개로 자신들의 독자적 성격을 갖고 초현실주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과 거리를 두게 된다. 후기 : 1930~1938 1930년 '편집광적 비평(paranoia critic)'이라는 방법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했던 스페인의 화가 달리(Salvador Dali,1904~1989)가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정치나 사회적 성격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주제들로 , 극사실적 묘사에 의한 정신병자의 편집광적 심리가 나타나는 초현실주의 회화를 탄생시킨다. 초현실주의 오브제로 가장 충격적인 작품을 제자한 작가는 쟈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4~1966)이다. 그는 1931년 < 흔적의 시간> 과 1932년 < 새벽 4시의 궁전> 이라는 조각적 입체 작품을 만들어 초현실주의 오브제 미술가로 주목받게 된다. 1936년 5월 22일 파리 샤를르 라통 갤러리에서 열린 < 오브제의 초현실주의전> 은 여러가지 초현실주의 오브제 미술의 유형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일상적 오므제를 비롯하여 상상의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을 갖추며,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이제 유렵에 국한시키지 않고 미대륙과 오세아니아에서 발견된 오브제들로 영역을 확장하고 한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의 활발한 오브제 작업과 함께 평면작업에서는 1937년 카나리아 제도의 떼네리프 출신 오밍게즈(Oscar Dominguet, 1906~1958)가 '데칼코마니(decalcomanie)'라는 기법을 만든다. 2차 세계대전 바로 직전이 1938년 1월 파리의 보자르 화랑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구제전'의 개회는 대규모의 마지막 초현실주의 전시이다. 마치 초현실주의 미술의 종언을 예고한 듯 이 전시는 기존의 미술과 전혀 다른 무질서와 몽상적 환상의 축제로 이루어진다. '초현실주의 국제전'은 전재잉 임박했을 무렵인 1938년 유럽의 분위기와 너무 흡사한 기괴함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전시였다. 초현실주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이성이나 객관성에 의한 현실을 부정하면서 삶을 바탕으로 한 비이성적인 것과 주관적인 자세를 요구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꿈이나 환상보다 상상력에 의해 초현실세계를 그린 것이다. 1966년 앙드레 브르통의 죽음으로 초현실주의는 막을 내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파로서의 초현실주의는 일단 이론적인 면에서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으며, 미학적인 면에서의 영향은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크다고 할 수 있다.    
786    다빈치 / 모나리자의 비밀 댓글:  조회:2215  추천:0  2015-03-29
처음 눈에 띄는 그림은 모나리자입니다. 모나리자만큼 비밀이 많은 그림도 드물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빈치의 레오나르도 라는 뜻의 이름입니다.)의 이 작품은 미술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림에 얽힌 이야기들이 워낙 비밀스러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그림입니다. 자, 그럼 먼저 모나리자를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루부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의 실제 크기는 77cm x 55cm 의 크기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큰 그림이 아닙니다. 원래는 그림의 양쪽에 기둥을 설치해서 걸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는데 17세기 초 액자로 만들기 위해서 당시 무지한 표구업자가 가로, 세로를 어느 정도 잘라 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잠시 이 작품의 이름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모나리자라는 이름은 영어 이름입니다 (Mona Lisa). 프랑스어로는 ‘라 조콩드’, 이태리어로는 ‘ 라 조콘다’ 입니다.. 모나리자의 모나는 마돈나 (Madonna)의 준말 몬나(Monna)인데 이태리어로 부인이라는 뜻입니다. 모나(mona)는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게 옳다면 제목이 흉칙스럽습니다.   정리해보면 모나리자는 리자부인 정도가 되겠지요. 그러면 ‘ 라 조콩드’ 나 ‘라 조콘다’는 조콩드의 아내, 조콘다의 아내 정도가 됩니다.     모나라자의 작품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게 된 이유는 모나라자의 모델이 누구인지 아직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유력한 모델의 이름은 피렌체의 비단상인이었던 프란체스코 디 바르톨로메 디 자노비 델 조콘다의 부인 리자 게라르다니 입니다.       당시부터 누구의 초상화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꽤 있었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혹시 모델이 여러 명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나리자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신비로웠기 때문입니다. 얼굴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습니다. 모나리자의 미소로 모델의 건강을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부자연스러운 미소는 천식을 앓고 있었기때문이라는 사람, 매독을 앓고 있어서 수은을 약으로 복용 중이었을 거라는 사람,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잘 때는 이를 갈았을 거라는 사람, 한쪽 근육 마비를 앓고 있었을 거라는 사람 등 참으로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처음에는한 사람을 그렸지만 나중에는 여러 사람을 섞어서 그렸을 것이라는 가설도 등장했습니다. 1992년 컴퓨터그래픽 전문가 릴리안 슈워츠라는 사람이 모나리지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상화를 컴퓨터로 합성한 결과, 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일치 한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모나리자의 모델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자신이었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아마 아래 같은 모습으로 확인했을 것입니다.         좀 무섭죠? 그러나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의 선이 참 많이 닮았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편에는 모나리자를 도둑 맞았다가 되 찾은 이야기와 모나리자가 미술의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무게에 대해서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 한때 도독 맞았던 모나리자 였습니다.=     모나리자에 대한 관심은 작품이 만들어진 당대부터 높았습니다. 모나리자는 처음 프랑스 왕 프랑스와 1세의 소유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랑스와 1세의 궁정 화가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모나리자는 여러 작품들과 함께 욕실에 걸려 있었습니다.   당연히 습도가 높아지자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후에 덫 칠을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검은 색 옷 부분이 반짝거리는 이유가 덫 칠 때문이라고 합니다. 뒤늦게 높은 습도로 그림이 망가진다는 걸 알고 루브르 궁전으로 옮겼습니다.   얼마 후 프랑스 시민 혁명이 일어나고 왕정이 무너지자 왕의 재산은 국가의 재산이 됩니다. 좀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나폴레옹은 자기 침실에 모나리자를 걸어두고 ‘마담 리자’ 라고 부르면서 2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18세기, 19세기에 가장 유명한 그림은 모나리자였습니다.   수 많은 문학가와 화가들이 모나리자에 대한 감탄의 말을 남겼습니다. 화가 중 장 밥티스 코로는 ‘진주의 여인’이라는 작품을 모나리자와 비슷한 구도로 그려 대 선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잠깐 보시면,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이런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도난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911년 8월 20일은 주말이었습니다. 모나리자를 구경하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가운데 이태리 남자 3명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유명한 작품에 해코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유명한 작품에 유리를 씌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도 역시 1910년에 그 작업을 했고 아까 모나리자 앞에 있던 이태리 남자 중 한 명은 그 작업을 직접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모나리자를 훔치기로 한 계획을 세운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계획은 모나리자 복제품 여섯 개를 만든 다음 모나지라 진품을 훔치고 복제품을 진품인 것 처럼 미국과 남미에서 비싼 값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월요일은 박물관이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모나리자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것은 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고 막대한 현상금과 포상금이 걸리고 점성술사가 동원되었지만 모나리자의 행방은 찾을 수 가 없었습니다. 당시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 옆 허름한 집, 트렁크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도난범으로 몰린 유명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피카소였고 또 한 사람은 아폴리네르였습니다.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 내린다 –‘라는 ‘미라보 다리’라는 시를 쓴 시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이기 때문에 언제고 한 번 미라보 다리를 가지고 글을 써 볼 생각입니다.   어찌 되었건 나중에 두 사람의 의혹은 벗겨지지만 시간은 점차 흘러 사람들이 모나리자를 잊어 갈 때가 된 2년이 흐른 어느 날이었습니다. 모나리자를 훔친 도둑 중 한 명이 시간이 지나도 약속된 돈이 도착하지 않자 모나리자를 가지고 이태리로 가서 이태리 경찰에 신고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태리 사람이니까 당연히 모나리자도 이태리의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이태리로 가지고 왔다고 주장하여 죄를 피 해보고자 했고 실제로 감방에 가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빨리 모나리자를 돌려 달라고 아우성이었고 이태리는 전국 순회 전시회를 열어서 이태리 사람들에게 모나리자를 관람할 기회를 줍니다.   처음부터 이태리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프랑스에 줄 생각이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만 애가 탔던거죠. 미국 전시회때 사진을 보았더니 모나리자 앞에 미군 해병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더군요. 참으로 파란만장한 모나리자 입니다.       = 모나리자의 미소을 띄게 하는 기법 =     모나리자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하기 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역사가 한, 두 명의 영웅에 의해서 움직였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 그런 저의 생각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율리우스 시이저가 그렇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렇습니다. 이 두 사람의 특징은 어떤 하나의 장르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부문에서 눈부신 업적을 나타냈다는 점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발명가, 과학자, 해부학자 등 , 어느 한 분야에서도 무시하기 어려운 업적을 쌓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그런 이유 때문에 오늘 날에도 신비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유행했던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의 주요 소재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였습니다.   이제 모나리자 이야기를 정리 해 보겠습니다.   모나리자를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스푸마토 (sfumato) 기법입니다. 모나리자가 오늘날까지도 신비스러움을 간직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에 스푸마토 기법이 쓰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잠깐 스푸마토 기법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스푸마토 기법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처음 사용한 기법이라고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우리가 먼 곳을 바라보면 먼 곳에 있는 사물은 색깔도 흐릿하고 선도 흐릿합니다. 물론 가까이 있는 것은 선도 선명하고 색상도 진하죠. 이 것을 그림 그릴 때 적용한 것이 스푸마토 기법입니다.   스푸마토라는 말은 ‘안개처럼 사라지다’ 라는 스푸마레 (sfumare)에서 나온 말입니다. 스푸마토 기법을 우리나라 말로는 안개 마감법 또는 공기원근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수 많은 붓 질을 통해 어두운 색부터 밝은 색으로 덧칠하면서 경계를 나타내는 선을 없애는 것입니다. 잠시 모나리자의 입을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확인 된 사실이지만 아주 작은 붓으로 미소를 띈 입 부분만 30겹 이상의 붓질을 하였다고 합니다. 입술의 선이 없습니다. 다음 사진은 모나리자의 뒤 배경입니다.           역시 선을 의도적으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모나리자의 얼굴이 훨씬 도드라져 보입니다. 혹시 위의 그림에서 이상한 곳 2곳을 찾으셨는지요?   다시 한 번 보시죠.     첫째, 눈썹이 없지 않습니까? 당시에는 이마를 넓어 보이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의 한 방법이었고 합니다. 가끔 눈썹을 단 모나리자 페러디를 보게 되는데 정말 이상합니다. 눈썹이 없어서 더욱 신비로운 여자는 모나리자 뿐일겁니다. 둘째, 어깨 위의 오른쪽 배경과 왼쪽 배경의 높이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왼쪽은 구불 구불 길이 보이는데 오른쪽은 호수가 있습니다. 그 나마 높이도 맞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그렸는지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더 공부를 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려진 ‘성 요한’을 보시겠습니다. 기법도 기법이려니와 남성과 여성을 섞어 놓은 듯한 얼굴 역시 모나리자 만큼 신비스럽습니다. 혹시 모나리자를 다시 만나시거든 그녀처럼 웃어 주시기 바랍니다.             모나리자 미소의 비밀을 아시나요? 아마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하고 그 미스터리를 둘러싼 논쟁과 연구가 된 그림을 말하자면 모나리자일 것입니다.      모나리자의 원본은 루브르박물관에서 두꺼운 방탄유리에 사람들의 접근도 6m만 허용되고 있습니다. 한해 약 800만 명 이상이 그 앞에, 그것도 10분을 선다고 하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위키백과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인간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인상 깊은 사물, 관찰한 것, 착상 등을 즉시 스케치하였다.”이렇게 소개 되어 있습니다.    그가 그린 모나리자는 보는 사람에게 신비감을 주고 그 감흥도 무척 오래간다고 합니다. 모나리자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요? 아는 분들도 많으시니 간단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완성한 이후 이 그림은 보존을 위해 세정도 하고 광택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먼지도 쌓여 변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과학기술자인 “파스칼 코테”는 2004년 루브르 박물관으로부터 모나리자의 실사촬영을 허가받아 2억 4천만 화소의 고화질 멀티스펙트럼 HD카메라로 3년여에 걸쳐 모나리자의 비밀에 연구하였습니다.       먼저 눈썹 이야기를 해보죠. 아주 예전에는 처음부터 눈썹이 없는 줄 알았는데 500년전에는 있었답니다. 왜 지금은 볼 수 없는 걸까요. 3가지 가설이 존재하는데 흙과 기름을 섞어 미세하게 그린 눈썹이 밑바닥 물감에 스며든 것, 시간이 흐르면서 기름이 색소와 함께 투명해진 것, 속눈썹을 그릴 때 사용된 광택제를 완벽하게 닦아내지 못해 눈썹이 사라진 것 중 하나랍니다.      두번째 미소의 신비입니다. 모나리자의 눈가와 입가 등에 산화망간 성분의 얇은 막을 최대 30겹까지 입혔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나타난 ‘스푸마토 기법’은 여러 겹의 물감과 광택제를 덧칠해 사물의 윤곽선을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흐릿하게 처리하여 깊이감과 그림자의 효과를 만들어내 깊이감과 온화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는 더 강하고 뚜렷했으며 입 꼬리 부분을 검정색으로 처리한 ‘명암법’으로 미소가 더욱 크게 보였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원래 머리모양은 지금과 달리 쪽진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윽한 신비의 미소도 알려진 것처럼 평온한 모습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는데 작품 속 주인공의 손 모양이 편안한 자세가 아니라 주먹을 꼭 쥐고 있다고 합니다.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자세를 그리려다 다 빈치가 마음을 바꿔 지금과 같은 그림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TIP 몇가지만 이야기하렵니다.    1. 모나리자의 25가지 비밀 -코테가 찍은 '모나리자' 적외선 분석사진, 다빈치의 발명품들.    2. 모나리자는 캠퍼스가 아니라 포퓰러 나무 화판에 그려졌고 누군가는 잘라졌다는 주장도 했지만 화판은 온전하게 남아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림의 크기가 우리 상상보다 작아서 그런 주장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크기가 어느 정도냐고요. 77×53CM 정도입니다.    3. 모나리자의 인기는 그림이 완성된 때부터 높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랑스와 1세의 궁정 화가였기 때문에 모나리자는 처음 프랑스 왕 프랑스와 1세의 소유였습니다. 모나리자는 여러 작품들과 함께 욕실에 걸렸는데 습도가 높아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덫 칠을 하였다고 하는데 검은 색 옷 부분이 반짝거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높은 습도로 그림이 망가진다는 걸 알고 루브르 궁전으로 옮겼는데 프랑스 혁명 후 이 그림은 국가소유가 됩니다. 좀 황당한 이야기로 나폴레옹은 침실에 모나리자를 걸어두고 ‘마담 리자’ 라고 부르면서 2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18세기, 19세기에도 유럽에서는 가장 유명한 그림은 모나리자였고 많은 화가와 작가들이 모나리자에 대한 찬사의 말을 남겼습니다. 장 밥티스 코로는 ‘진주의 여인’이라는 작품을 모나리자와 비슷한 구도로 선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4. 마지막으로 모나리자의 모델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그림과 다빈치의 초상을 반반으로 하여 비교하고 자화상이라는 주장까지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해를 발굴하여 비교하려는 발상까지 했습니다. 기록 등을 확인한 정설로는 리자 게라르디니라는 여성이랍니다. 게라르디니는 1479년 피렌체에서 출생하여 16세에 부유한 비단상인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의 두번째 부인이 되어 다섯 자녀를 낳았다고 합니다. 모나리자가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506년 게라르디니의 나이 24세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뒤 피렌체의 산토르솔라 수녀원에 들어가 4년동안 지내다 1542년 7월15일 사망에서 사망했고 시신은 수녀원 경내 묻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극이 숨어 있습니다. 이 수녀원은 이후 수백년 동안 담배 공장, 대학 시설로 쓰이다가 1980년대부터 이탈리아 재무경찰의 막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극은 당시 공사를 하면서 이곳에 '모나리자'의 모델이 묻혀 있는 것을 알지 못했고, 2007년 지하 주차장 공사를 하면서 무덤들의 부서진 잔해와 더불어 수녀원의 기초가 발굴됐고 이 쓰레기들은 피렌체 교외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30년간 리자 케라르디니의 안식처를 찾기 위해 기록과 온갖 연구를 한 다빈치 전문가 쥬세페 팔란티는 게라르디니의 유해가 지금은 약 30m 높이의 풀로 덮인 언덕으로 변한 쓰레기 매립지에 파묻혔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늦게나마 피렌체 시가 이 수녀원 터에 예술센터를 짓고 그녀의 유해도 발굴할 예정이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785    립체주의 화가 - 피카소 댓글:  조회:2518  추천:0  2015-03-29
입체주의 화가 피카소 그림모음                 The Tragedy, 1903, Chester Dale Collection -  피카소가 청색시대에 그린 이란 작품이다.  그는 마드리드 시절부터 가난한 이들과  곡예사, 거리의 악사들을 즐겨 그려왔다.일곱 명 정도입니다. 공식      청색시대의 자화상 (1901)   거의 무명이었던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이 대부분 청색조를 이룬다 하여 청색 시대라고 불렸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심한 성병에까지 찌들었던 화가는 청색을 이용하여 비참하고 궁핍한 자신의 모습을 오히려 신비롭게 표현하였습니다. 피카소는 당시의 괴로움과 절망을 새로운 예술의 원천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부채를 든 여인 (1908) 그의 첫번째 연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그린 작품입니다. 파리의 빈민굴에서 만나 가난을 벗하며 살았던 시간들이었으나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피카소에게있어 페르낭드는 며칠동안이라도 꼼짝하지 않는 훌륭한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병과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었습니다.         누드, 나는 에바를 사랑해 (1912) 언뜻 바라보았을 때는 추상화인 듯하여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회화를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신비로운 효과를 내는 분석적 입체파의 진수를 보여주던 시기의 작품입니다. 그는 작품 속에 갸날픈 연인 에바와 자신의 모습을 해체한 후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다시 조합하여 그려넣었습니다.         올가 피카소의 초상 (1923) 처음으로 피카소란 성을 준 자신의 부인을 고전적인 표현으로 그렸습니다. 붉은 스카프와 푸른 드레스가 눈처럼 하얀 피부와 어울려 그녀를 더욱 우아하게 하네요. 올가를 그린 이 그림은 과연 피카소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달라보입니다. 한 화가가 하나의 화풍을 다 이루지 힘들지만, 그의 생애에는 여러 가지의 화풍들이 한번에 등장합니다. 여기에 그의 천재성이 있다고 사람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거울 앞의 소녀 (1932) 앞면과 옆면을 동시에 나타나게 그린 이 작품을 보면 “빛은 직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직진하는 빛으로는 보일 수 없지만 빛을 휘게 함으로써, 또 다른 면을 보이게 하였지요. 이러한 생각은 공간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깨뜨리는 것이었고, 전통적 물리학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리 테레즈 (1937) 부드러운 곡선과 은은한 색상을 통해 여성스럽고 따뜻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그녀의 헤어 스타일이 잘 나타나 있지요. 그는 마리 테레즈를 주제로 하여 그린 작품들이 특히 많습니다. 젊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는 피카소에게 있어 최고의 모델이었던 것이죠.           우는 여자 (1937)   와 더불어 피카소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 작품이죠. 내전으로 인해 불바다에 휩싸인 스페인을 보며 슬퍼하는 연인 도라 마알을 모델로 한 작품입니다. 전쟁의 공포와 아픔을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 피카소는 자신의 정치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회적으로도 더욱 인정을 받게 됩니다.           프랑소와즈, 클로드와 파로마 (1951) 연인이었던 프랑소와즈와 그녀가 낳은 아들 클로드와 딸 파로마를 함께 작품에 담았습니다. 그녀 또한 젊고 아름다운 여류 화가였으며,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의지가 강하였고 주관이 뚜렷하였습니다. 그녀는 “떠나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피카소에게 “그렇게 하세요. 그것이 당신을 더 행복하게 할거에요.” 라며 당당히 그를 버립니다.         꽃을 들고 있는 자클린 (1964) 두번째로 결혼한 여인 자클린은 피카소가 죽을 때까지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를 도왔던,생애 마지막 동반자였습니다. 그녀는 피카소가 죽자, 집안을 검은 커튼으로 가리고, 식탁에 그의 자리를 남기는 기이한 행동들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가 없는 현실을 이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손을 겹치고 있는 자클린 (1964) 결코 80세가 넘은 화가의 작품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힘과 패기가 느껴집니다. 화가의 강한 터치 만큼, 유난히 긴 목과 큰 눈은 모델에게도 강한 의지가 있음을 엿보이게 합니다. 그녀는 50살의 나이차를 극복하는 결혼을 행함으로서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게르니카 (1937)     설명2 1881년 10월 25일 에스파냐 말라가에서 출생하였다. 14세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였는데, 이때부터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였다. 이 무렵 당시 바르셀로나에 들어와 있던 프랑스와 북유럽의 미술운동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특히 A.르누아르, H.툴루즈 로트레크, E.뭉크 등의 화법에 매료되어 이를 습득하는 데 힘썼다. 1897년 마드리드의 왕립미술학교에 들어가 바르셀로나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고 1900년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 다음해 재차 방문하여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제작활동을 하고 있던 젊은 보헤미안의 무리에 투신하였다. 당시의 그의 작품에는 위에 열거한 화가들 외에 P.고갱, V.고흐 등의 영향도 많이 반영되었으나, 점차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소위 ‘청색시대(靑色時代)’로 들어갔으며, 테마는 하층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의 참상과 고독감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1904년 몽마르트르에 정주하면서부터는 색조가 청색에서 도색(桃色)으로 바뀌는 동시에(도색시대) 포름으로는 과거의 에스파냐예술, 카탈루냐지방의 중세조각, E.그레코, L.F.J.고야 등이 지닌 독특한 단순화와 엄격성이 가미되어 갔다. 테마는 작품 《공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소녀》 《광대》 《곡예사가족》 등에서처럼 곡예사들을 묘사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어릿광대나 곡예사는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니고 그 생활의 이면을 파헤친 애수였다.1905년 G.아폴리네르와 교유하고 다음해에는 H.마티스와 교유하였다. 그러나 작풍은 P.세잔의 형체관을 살려나가 점점 단순화되고, 1907년의 영원히 기념할 명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이르러서는 아프리카 흑인 조각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는 동시에 형태분석(形態分析)이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G. 브라크와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으로, 그와 함께 입체파운동에 들어가 1909년에는 분석적 입체파, 1912년부터는 종합적 입체파시대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는 이미 20세기 회화의 최대 거장이 되었고, 종합적 입체파수법을 1923년경까지 계속하면서 여러 가지 수법을 순차적으로 전개하였는데, 활동범위도 J.콕토와 알게 되면서 무대장치를 담당하는 등 점점 확대되어 갔다. 즉 1915년 《볼라르상(像)》과 같은 사실적인 초상을 그리고, 1920년부터는 《세 악사》 등 신고전주의를, 다시 1925년에는 제1회 쉬르레알리슴전(展)에 참가하였다. 또 1934년에는 에스파냐를 여행하여 투우도 등을 그렸으며 1936년의 에스파냐내란 때는 인민전선을 지지하고, 다음해 프랑코장군에 대한 적의와 증오를 시와 판화로 나타낸 연작 《프랑코의 꿈과 허언(虛言)》 및 전쟁의 비극과 잔학상을 초인적인 예리한 시각과 독자적 스타일로 그려낸 세기의 대벽화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통곡하는 여인》도 이 무렵의 작품이며 이때부터 피카소 특유의 표현주의로 불리는 괴기한 표현법이 나타났다.        제2 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는 에스파냐에서 지냈으나 다음해 독일군의 파리 침입 직후 파리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지하운동 투사들과 교유하고, 1944년 종전 후는 프랑스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주로 남프랑스의 해안에서 생활하면서 그리스신화 등에서 모티프를 취하여 밝고 목가적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독특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도기(陶器) 제작과 조각에도 정열을 쏟고 석판화의 제작도 많아 이 영역에서도 새로운 수법을 창조하였다. 그 후 6·25전쟁을 테마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1951), 《전쟁과 평화》(1952) 등의 대작을 제작하여, 현대미술의 리더로서 거장다운 활약을 하였다.           .    
784    추상화란?... 댓글:  조회:7035  추천:0  2015-03-29
1개의 답변 답변 추상이란 점, 선, 면, 색채 등의 조형요소만으로 이루어지는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이 정의의 뒤에는 식별할 수 있는 요소(Recognizable factor)가 그림의 유일, 절대적인 지침이자 방향이었던 20세기 이전의 구상회화가 버티고 있습니다. 또한 구상회화의 영향력은 20세기의 2/4분기까지 절대적인 세력이었읍니다. 추상을 지향하는 화가들까지도 '이것은 추상이되 구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변명을 그림에 심을 수 밖에 없었던 시기입니다.  1차대전 이후, 실존적 인간의 절망적 상황과 양자역학 등의 영향으로 앵포르멜과 같은 본격적인 탈화면 경향의 추상이 시도됩니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 화면의 주변에 맴돌던 앵포르멜의 화면을 다시 화면으로 정착시킨 것이 추상표현주의라고 평가됩니다. 아래는 "미술이야기"에서 발췌했습니다. 추상의 개념 양자역학은 추상화의 산실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리가 허구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 양자역학이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은 인간이 인간을 그린다는 것이 허구라는 이야기가 될까. 그래서 인간이 개입되지 않거나 인간과 무관한 조형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인간과 분위기를 함께 그린다. 그리고선 실체에서 분위기를 빼거나 분위기에서 실체를 제거한다. 호크니는 풀장에 다이빙의 순간을 그린다. 그러나 사람은 간곳 없고 물튀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것은 경직되고 개념화된 화면이 된다.  또 앙드레 드렝은 풍경 속의 인물을 하나의 색점으로 표상한다. 인체라는 실체에 쏟아지는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배경과 똑같은 점으로 그려낸다.  그것이 추상화였다. 추상화에서 인체가 빠지면 안되는 이유는 뒤샹의 작품에서도 극명하게 보여진다. 뒤샹이라면 이제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머리칼을 쥐어뜯는 흉내부터 내는 것이 좋다. 그만큼 골치아픈 화가이다. 평론가들도 자료만 모아두고 미술사의 평가를 기다릴 정도이다. 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직역해서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라고 많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신부도 노총각들도 없다. 그들이 쓰리라고 생각되는 도구와 분위기를 통해 단지 인간의 냄새가 암시될 따름이다.    추상화의 태동과 모네 모네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중에서 인상파를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화가로 평가된다. 그 중요성은 194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후광 아래 더욱 강조되었다. 색채의 영역에서 팔레트를 더욱 밝게 사용했다. 우중충하고 침울한 톤 대신 밝고 맑은 안료가 등장했다. 인상주의의 무한한 색채표현의 가능성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모네는 캔버스를 여럿 펼쳐놓고 시간마다 다른 캔버스에 루앙 성당과 건초더미를 그렸다. 그려진 것은 자연에서 얻은 순간적인 느낌이 아니라 가변적인 인상을 일관성 있는 빛으로 파악하려 했던 새로운 시각과 자율성이었다. 그거야 추상화 아닌가? 그렇게 묻겠지? 아니면 그렇게 물어주기 바란다. 사실 그것이 추상화의 태동이었다. 모네는 만년에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수련을 그렸다. 히로시게의 판화집 에 그려진 다리를 본따 일본풍으로 꾸몄다. 에서 이미 회화의 자율성은 암시되어 있었다. 수련에서 그 자율성은 극대화하여 추상으로 향하게 된다. 모네에게 추상이란 그림이 자신의 세계를 주장하고 형성하여 가는 자율성을 의미한다. 수련을 그릴 당시 모네는 거의 실명상태였다. 그때 그려진 그림이 화가의 의지에 따라 그려졌겠는가. 그림이 요구하는 질서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추상회화는 태동하고 있었다.     추상화의 성장과 마티스 마티스에게 표현은 인물이나 대상 및 에워싼 공간 비례등의 장식적 구성이다. 그 과정에서 음악의 상태가 십분 고려된다. 하모니, 멜로디, 리듬을 살리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한다. 이 제거는 본질환원의 과정을 연상케한다. 잘 계산되고 논리적으로 추론가능한 화면은 현상학적 접근방식으로 극대화한다. 그 결과로 탄생하는 것이 추상화면이다. 현상학이란 본질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언어나 사상 사유 등을 괄호 안에 가두어 나감으로써 현상에서 환원된 선험적인 본질을 찾아나간다.     뜨거운 추상-칸딘스키 칸딘스키는 추상화를 실증적으로 체계세운 화가로 평가된다. 인간사회의 공통적인 심적 정서적 바탕을 추상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칸딘스키는 법률가 지망생이었다. 45세가 지나 겨우 추상화풍을 정립했다.  칸딘스키의 작품을 보면 이게 무슨 그림이야 라는 말이 나오지? 도대체 뭘 그렸는지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하고 불평하지 말기 바란다. 이 그림은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다. 먼저 즉흥곡이라고 악보같은 제목이 붙어 있지? 미술과 연관은 노젓기라는 제목에 있다.  화면에는 배를 암시하는 빨간 아치형의 선이 있다. 그러고보면 노젓는 사람은 그리다만 것처럼 웅크리고 있다. 이제 알겠지? 이 그림은 석양에 노젓는 사람처럼 어느 부분만이 강조되어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추상화같다면 그것은 미적분 함수를 닮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대수함수는 이다. 한번 미분하여 이 가 그려졌다. 그리고 또 한번 미분하면 뭐가 나올까. 노젓기를 다시 거꾸로 놓고 석양에 보자. 어떻게 보일까? 그것이 두 번째 미분의 결과로 나올 추상화이다. 칸딘스키는 그렇게 대상성에서 비롯하는 추상화를 다졌다. 조형요소에 의한 추상이 대중에게 이해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렀던 것이다. 표현적 추상의 사상은 19세기 말까지 소급된다. 칸딘스키는 1911년에 의식적으로 추상작품을 창조했다. 풍경화나 인물화 또는 정물화 등의 일상적인 주제를 벗어나 음악의 상태로 접근했던 것이다. 그리고 색채가 있었다. 칸딘스키는 회고록에서 태초에 색채가 있었다라고 할만큼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추상형태들에 상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강도를 부여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 색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차가운 추상-몬드리안 몬드리안은 1908년에 로 성공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아수파적인 색채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큐비즘의 형체분할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어 줄곧 대상의 분해와 재해석에 매달린다. 밀물은 수직선으로 표현했다. 썰물은 수직선이다. 자연에서 연상되는 색채를 도식화했다. 노랑은 태양광선의 찬란한 움직임이다. 파란색은 공간의 무한확장이다. 빨강은 노랑과 파랑을 통합하는 중간색이다. 그것을 그래픽 디자인처럼 그렸다. 그가 주장한 신조형주의는 단순화에 역점을 두었다. 다양한 현상을 기호화함으로써 순수한 리얼리티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그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감과 대상 뿐 아니라 자신과의 악전고투로 얻어지는 결과였다.   추상, 구상에서 벗어나다 루치오 폰타나는 화면을 찢어 세계를 인간에게 직시하도록 했다. 포트리에는 화면을 밟을 수 있는 바닥에 깔았다. 일그러지고 갈라진 석고의 화면은 추함의 미학을 낳는다. 장 뒤뷔페는 가공되지 않은 예술이라는 뜻의 라르 브뤼를 하나의 이즘으로 제시한다. 나뭇잎이나 흙을 석고에 이개어 캔버스에 바르기도 한다. 클레처럼 아동화를 소재로 선택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전후의 불쾌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교황의 젊쟎은 초상화를 절규하고 찢어발긴 듯한 그림을 그린다. 알베르토 부리와 안토니오 타피에스는 어둡고 바위같은 릴리프와 찢어지고 불태운 천을 배치한다.  앙포르멜은 산발적인 유럽 작가들의 구심점이었다. 앙포르멜은 1952년 미셀 타피에가 사용한 말이다. 자발적인 테크닉을 위해 구상적이고 기하적인 그림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볼스, 포트리에, 아르퉁, 술라쥬, 마티외 등이 활약했다.   점, 선, 면, 색채-추상의 정립 폴록 신화의 제작자는 페기 구겐하임이다. 1942년, 먼저 자신이 운영하는 금세기화랑에 초현실주의자들의 전시를 연다. 당시 미국에 망명해왔던  마타, 달리, 마송 및 남편인 에른스트 등의 전시에 폴록을 끼워넣는다. 그러자 평론가 알프레드 바는 추상표현주의라는 애매한 이름을 붙여준다. 또 다른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는 액션 페인팅이라 불렀다. 한스 호프만과 아쉴 고르키의 그림에서 착안했다. 구멍 뚫린 깡통에서 페인트를 흘리고 다니는 폴록의 그림과 큼지막한 붓으로 휘저어 그리는 드 쿠닝의 그림에서 행위를 강조했다. 그러나 유럽의 앙포르멜과 연관지을 속셈이었다.   20세기 미술에서 추상을 조망하면 몇 개의 징검다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징검다리를 건느면서 다른 징검돌들을 보시면 더 쉽게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징검다리의 큰 돌 옆에는 작은 돌들이 큰돌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받혀줍니다.  때로는 작은 돌들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783    자동기술법 대가 ㅡ 잭슨 폴록 댓글:  조회:3953  추천:0  2015-03-29
자동 기술법 "액션 페인팅"의 대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그는 1912년 미국 와이오밍주에 있는 농장에서 태어나 1930년 뉴욕으로 옮겨와 정착했다. 이 곳에서 그는 벽화에 관심을 갖게되며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의 그림은 자신의 삶과 성격에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다. 일찍이 일거리를 찾아 가출한 아버지의 부재, 다섯 아들을 거느리고 가난한 살림을 꾸려간 어머니는 완전히 무절제했으며 자식들을 멋대로 내버려 두었다. 무책임하고 버릇없이 자란 잭슨 폴록은 18세 때 미술 지망생이던 두 형을 따라 대책 없이 뉴욕으로 갔으나 세계 경제 공황 속에서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며 알코올에 빠졌다. 우울증과 자격지심 등의 콤플렉스와 끓어오르는 반항감은 그를 더욱 알코올 중독으로 빠지게끔 하였다. 그의 난폭하고 심술궂은 기질은 거리의 개들을 발길로 차기도 하고 목청이 터져라 욕지거리를 쏟아내는가 하면 파괴적 음주벽으로 곧잘 병원이나 경찰서 신세를 지곤 했다. 20대 중반부터 그는 알코올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수없이 많은 융학파 정신과 의사를 거치며, 당시 미국 예술가들이 즐겨 썼던 "집단적 잠재 의식"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보편적 진실에 이르는 길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처럼 사적(私的)인 환상과 잠재의식을 끌어내는 작업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는멕시코 원주민식 벽화와 원시 미술과 신화를 차용한 피카소의 그림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20대 후반, 그의 그림들은 유치하고 조잡했다. 그 후 30세에 같은 그룹의 동인이었던4년 연상의 여류 화가"리 크레이스너"와의 만남은 잭슨 폴록에게 가장 큰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화가로 성공하기 위한 현실적 센스를 갖고 있던 그녀는, 폴록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고자신의 작업을 중단하면서까지 그에게 헌신적이었다. 폴록은 평생 처음으로 마음의 위안을 찾았고,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녀는 폴록에게 페기 구겐하임을 소개했고 새로운 젊은 화가들과의 접촉을 알선함으로써 그에게 커다란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적 역할을했다. 잭슨 폴록은 페기 구겐하임 전시로 미술계의 관심을 끌었고, 특히 몬드리안에게서 "신선하고 가장 독창적인 화면"이라는호평을 받음으로써 큰 각광을 받게 되었다. 몬드리안의 호평으로 큰 각광을 받기 시작하게 된 작품 이 그림의 선을 거부하는 독립적인 낙서 형태의 분산된 선 요소는 5년 후 물감을 들이부어 만든 선들의 추상 화면으로 발전된다. 1940년대 말 어느날 갑자기 그를 유명하게 해준 방울 떨어뜨리기 "드리핑(dripping) 기법을 발명하게 된데는 "앙드레 마송"의그림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 *앙드레 마송 - 1924~27년 사이 자동기술법에 의한 회화를 창시. "새로운 필요가 새로운 기법을 요구한다"던 그는, 이 시기부터 물감방울을 떨어뜨려 만든 그물들로 온통 뒤덮힌 작품들을 한다. 그의 그림들이 표출하는 끊이지 않는 힘은 그의 내적 리듬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왼손에 4리터 정도 되는 물감통을 들고 오른손은 붓자루, 막대기 등을 바꿔 들고 캔버스 가장자리를 구부린 자세로 춤추듯 왔다갔다하며 깡통의 물감을 들이 붓기도 하고줄줄 흘리거나 막대기에 물감을 묻혀 뿌리기도 한다. 쉬지 않고 움직이며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명 "액션 페인팅"이라 불리는 이러한 독특한 제작 과정은 다음 반세기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즉 자기 내부의 불안. 자격지심. 억압. 강박 관념을 뛰어넘어 오직 그 "과정"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을 때, 그 결과 누구도 흉내낼 수없는 가장 자신을 닮은 독창적 화면이 만들어졌으며,  바로 그 점이 잭슨 폴록의 성공을 가져다주는 핵심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한 그가 즐겨 듣던 재즈 음악은 작업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재즈야말로 미국에서 창조된 유일한 예술 형태이며 그림도 그런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밤낮으로 재즈 음악에푹 빠져있었다. 1951년부터 잭슨 폴록은 "드리핑" 기법을 조금씩 버리기 시작하고 종종 보다 전통적 회화기법인 나이프와 붓을 다시 사용하기도 하였다. 당시 그는 갈색이나 검정색의 에나멜 물감 자국들이 남기는 찬란한 데생들을 종이와 캔버스 위에 수도 없이 그려댔다. 이 작품들은 몸짓이기도 했고 암시이기도 했다. 때로는 완전한 추상이고 때로는 얼굴 모양을 띠기도했다. NO 7 초상화와 꿈 잭슨 폴록의 가장 특기할 만한 성공작은 , 식으로 번호가 매겨진 그저 반사작용적인 매듭이라 할 수 있는 흑백화들이라 하겠다. 그의 내면의 드라마나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의 분열,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어느 것도 택할 수 없는 불가능성, 융(Jung)식의 정신분석학자들이 그에게 적용한 유력한 치료법도 어쩌지 못한 잭슨 폴록의 정신적 혼란 같은 것들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그는 말기에 자신의 작품에 다시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다. 바다 회색(Ocean Greyness)에서 처럼 바다, 빛, 계절들, 곧 자신의 기상천외함을 일깨워 주었던 자연의 힘을 환기시키는 이름들을 다시 찾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알코올 증세를 돌보아 주던 친구 주치의의 죽음으로 폴록은 다시 입에 술을 대기 시작했고 이라는 대작 한 점과 몇장의 드로잉으로 명맥을 유지해 가던 중 44세 되던 해 음주 운전 사고로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마침 폴록전을 기획하고 있던 뉴욕의 현대미술관은 이를 회고전으로 바꿔 유럽 순회까지 했으며 그의 그림값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가 죽기 바로 전 6천 달러이던 작품은 다음해 3만 달러에 거래됐으며 마지막 대작 은 15년 후엔 200만 달러에 거래됐다. 당시 현대회화로서는 최고가였다. 반세기가 지난 그의 그림값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중요한 그림은 거의 시장에 내놓지도 않는 실정이다. 영화 배우 에드 헤리스는 잭슨 폴록의 전기를 보고 크게 감명받아 10년이나준비하고 연구하여 완벽한 폴록이 되어 영화를 만들었다. 잭슨 폴록을 이해하는 아주 훌륭한, 예술성 높은 영화였다. 이 시대에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도 공감이 가는, 꼭 봐야할 영화라 생각된다. 특히, 폴록이라는 인물과 혼연일체가 되게하는 마지막 장면과 배경 음악은 압권이다.(개인적 느낌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으나 사실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흥행은 커녕 이틀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782    초현실주의 시초 화가 - 죠르지오 데 키리코 댓글:  조회:2281  추천:0  2015-03-29
          죠르지오 데 키리코는 실제로 초현실주의 선언보다 먼저 등장한 화가니 초현실주의 선언과 함께 새로 생겨난 화가들과 같이 묶어 버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명백하게 초현실주의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매우 사실적인(사실적인 것이 눈에 보여지는 형태를 똑같이 묘사한 ''사진같은 그림''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형상들이 화면에 가득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초현실주의 화가의 대표로 알고 있는 ''달리''의 사실감과는 거리가 있다. 달리의 그림에는 그야말로 우리의 꿈 속에 등장하는 괴이한 상상들이 가득 차 있지만, 데 키리코의 그림은 너무 있을 법한 풍경이다. 꿈이라고 해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둘의 그림이 주는 느낌은 놀랍게도 동일하다는 생각이 된다.  데 키리코는 원래 공학도였다고 한다. 그림 또한 앙리 루소의 조금 어설픈 테크닉의 작품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그의 이력을 보아 데 키리코가 의도한 효과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의 그림은 항상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는 오후 시간 나른하면서 무엇인가 사건이 터지기 직전의 오묘한적막감을 느끼게 해 준다.  데 키리코는 동시대에 유행하던 큐비즘이나 미래파와는 전혀 색다른 그림을 그렸던 화가였다. 그는 카를로 카라와 함께 형이상학파라는 화파를 만들었다. 그의 그림은 언뜻보기에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들로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되면 어딘지 모르게 신비스럽고, 한편으론 불길한 느낌마저 든다.  비평가들은 ''가장 사실적인 묘사기법을 사용해서 부조화를 창조할 때 우리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이하고 오묘한 경험을 하게된다.'' 라는 평가를 하였다.  영화에서 연쇄 살인이 터지기 전의 오후에...유난스럽게 스산하고, 적적한 거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이 비유를 확인이나 해 줄 듯 "데 키리코"의 [ 1914]라는 작품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르네상스식의 건축물과 그 사이로 난 길 위로 보이는 두 사람의 그림자이다. 왼쪽에 밝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르네상스식 건축물, 원근법이 쓰여져 있긴 한데, 뒤로 갈수록 급속도로 축소되고 있다. 현실적인 원근법이 쓰여졌다고 하기 어렵다. 문이 열린 마차와 아치형태의 열주, 그리고 이 무섭고 한산한 건물의 어둠 속에서 혼자 굴렁쇠를 굴리는 소녀.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는 소녀의 앞에 수상한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몸은 어둠에 싸인 건물에 가려졌기 때문에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또는 선량한 시민인지, 어린이 살인범인지 분간할 길이 없다. 만약 내가 굴렁쇠 소녀 옆에 있었다면 그 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조화인 것이다. 늘 보는 평범한 것이 부조화로 인해 달라 보일 때 우리는 기이한 경험을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현실속에서 볼 수 있는 건축물이긴 하나, 과장된 원근법을 사용하여 왠지 낯선 느낌을 준다. 길위에는 한 소녀가 굴렁쇠를 굴리면서 뛰어가고 있다. 그녀가 뛰어가는 방향을 시선으로 ?다보면, 오른쪽 건물 뒤로 정체모를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이 그림은 여러가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건물 뒤에 서 있는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는 소녀를 기다리는 걸까? 트레일러는 왜 문이 열려 있을까? 저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무엇을 실으려고 하는걸까? 사람들은 왜 그림자로 표현되었을까? 이런 저런 질문을 떠올리면서 그림을 보다보면 왠지 불길하고 으시시한 느낌이 든다다. 마치 꿈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데 키리코는 매우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들을 그렸지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우리가 완벽하게 알아볼 수 있는 지극히 현세적이고 일상적인 것이다. 즉, 등장하는 사물 그 자체가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아니다.  [ 1914]에는 아폴로상의 머리, 외과의사의 수술용 장갑, 공,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 르네상스식의 건축물... 각각 보았을때는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사물들이지만, 그들의 기묘한 조합이 그들을 낯설고 환상적이게 한다. 또한 사물의 비정상적인 크기는 사물 자체의 친숙성을 오히려 낯설다. 담에 걸려있는 아폴로상과 장갑은 건물과 비교할 때 비정상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는데 이들이 왜 한 장면속에 묘사되어 있는지도 알수 없다.  데 키리코의 이런 그림들은 상징주의자 로트레아몽의 싯구를 떠오르게 한다. "수술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기이한 아름다움..." 데 키리코의 사물들도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낯익은 대상이라도 그것이 놓여있는 본래의 일상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여 있을 경우, 우리는 매우 낯설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기법을 초현실주의자들이 매우 좋아했었는데, 전문용어로는 전치 혹은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고 한다. 데키리코의 그림에는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연상시키는 대상이 항상 등장한다. 이태리는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을 누렸던 나라일 뿐아니라, 15~16세기 르네상스라는 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한 후, 17세기가지 유럽 문명의 중심지로서 지위를 누렸던 나라였다. 그러나 18세기이후 불란서에 문화 선진국의 지위를 빼앗긴 이후 현대에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유럽내에서 후진적인 위치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현대의 이태리인들은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와 과거의 찬란함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데 키리코의 그림에서도 그러한 이태리인들의 정조를 읽을 수 있다. 
781    초현주의 기법들 댓글:  조회:4302  추천:0  2015-03-29
초현실주의(surrealism:1924-1940)   1. 특징     1) 배경       *1차 세계대전, 다다이즘, 프로이드 정신분석학,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회화     2)특징       *1차대전 이후부터 2차대전 직전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문예운동       *이성을 거부하고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표현을 강조       *우연성을 드러내는 표현기법 활용 -자동기술법, 전치기법, 변형(데포르마숑), 콜라         주,  프로타주, 데칼코마니 등     3)주요작가            [키리코]  - 현실이면의 세계를 상징하는 형이상학적 회화         *초현실주의 운동에 영향을 줌         *형이상학적 회화의 주도자.         *그의 작품에는 텅 빈 도시의 한 모퉁이나 마네킹이 많이 등장         *원근법을 왜곡시키고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변형하여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느낌.         *대표작 : 거리의 우수와 신비       The Red Tower (La Tour rouge), 1913 Oil on canvas, 73.5 x 100.5 cm Peggy Guggenheim Collection       [마송] - 자동기술법          *대표작: 물고기들의 전쟁   Andre Masson. Automatic Drawing, 1924, Ink on paper, 23.5 x 20.6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에른스트]: 콜라주, 프로타주, 데칼코마니 기법 사용          *대표작: 비온 후의 유럽     장미빛깔의 새들, 비온 후의 유럽(위 두 작품 차례대로), 성안토니오.       [달리]: 변형된 환각적인 형태를 극사실적으로 표현           *편집증적 비평법(한 형태를 여러 가지 이미지로 착각하게 표현하는 것)           *대표작: 내란의 예감, 기억의 단편        내란의 예감(1936), 기억의 영속(1931)         [미로]: 시적, 환상적 유기적 기호를 자동기술법적으로 표현           *유기체적인 다양한 형태에서 무한한 상상의 즐거움과 유쾌함을 느낄 수 있음           *오토마티즘 기법, 서정적, 색채와 형태가 밝고 순수           *대표작: 네덜란드 풍의 실내       [마그리트]: 전치기법으로 비논리적이고 낯선 상황을 표현           *대표작: 허공위의 성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운동. 쉬르레알리슴이라고도 한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처음에 쉬르나튀랄리슴[超自然主義]이라는 명칭을 생각했으나, 철학용어로 오해받을 것을 염려하여 초현실주로 고쳤다고 한다. 초현실주의가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앙드레 브르통이 《쉬르레알리슴 선언》을 발간한 24년부터이며, 25년에는 이 운동의 첫 종합전이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초현실주의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나 추상예술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달리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밀한 묘사력은 사실(寫實)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 A.마송, J.미로, M.에른스트의 작풍(作風)에도 추상화의 경향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성·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초현실주의 뿌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다다이즘에서 찾아야 한다.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기성의 전통·질서에 대한 파괴운동이었던 만큼 비합리를 예찬하고 때로는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흐르며, 콜라주와 같은 새로운 기법, 오브제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도 채택했으며, 초현실주의 강력한 무기인 에로티시즘에 이르러서는 다다이즘의 비도덕적인 자세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기원을 더 먼 곳에 찾아본다면, 그것은 당연히 입체주의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20세기의 예술운동 속에서 야수파나 표현주의 이상으로, 입체주의는 혁신적인 공간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야수파나 표현주의가 원색주의를 택하고 강렬한 감정표현을 주체로 삼았다고 한다면, 입체주의는 종래의 회화를 부정하는 순수한 이념화(理念化)만을 꾀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한 개의 화면을 완벽한 평면으로 보는 관점이며, 일찍이 세잔이 추구한 원근법이라든지 전경·후경의 배치와는 별도의 구성, 별도의 공간개념을 필요로 하였다. 초현실주의 공간은 많은 경우, 상상적 공간이며 비현실의 공간이다. 따라서 초현실주의는 간접적으로 입체주의의 계열을 잇는 공간파악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그 때까지 빙산처럼 수중에 가리어 있었던 무의식의 영역에 눈을 돌렸다. 즉, 이성(理性)의 반대의 극점, 합리의 반대쪽의 세계이다. 초현실주의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술은 이성과 감성, 정신과 마음이 합치는 지점에 그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미 예술은 그러한 조화·통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의 자아는 밝음과 어두움의 두 부분으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자아의 확대라는 문제에 제일 먼저 눈뜬 것은 낭만주의였다. 여기에 미술사가들이 지적하듯, 낭만주의에서 직접 초현실주의로 맥을 잇는 정신의 계보가 있다. 한 예로서 독일 낭만파의 노발리스, L.티크, W.H.바켄로더의 사상을 생각할 수 있다. 《예술환상》의 저자인 바켄로더는 끝없이 감미로운 도취상태에 그의 예술의 뿌리를 박고 있었으며, 티크는 격렬한 자아의 분열상태 속에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티크의 대표작인 《프란츠 슈테른발트의 여행》 속에서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사상의, 이 끝없는 동요가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 나의 마음을 살짝 만지며 스쳐 지나가는 그 부드러움이 내 마음속에서 뿌리를 내려준다면, 나는 행복에 대해 말할 수도 있게 되고 예술가도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억압할 수가 없다. 불가항력이라고나 말해야 할지. 나의 계획·희망·신념 모두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새로운 감정에 빠져버리고 만다.” 또한 《푸른 꽃》의 저자인 노발리스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꿈의 세계 속에서 방황을 계속했던 사람이다. 독일 낭만파 문학에서 영향받은 독일 낭만파의 회화는 O.룽게나 C.D.프리드리히의 회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무한대의 동경을 그 특질로 삼고 있다. 또 그들의 작품에는 종교적 감정이 짙게 스며들어 있다. 초현실주의는 종교감정 대신에 프로이트의 리비도설(說)이 도입된다. 따라서 인간의 숨겨진 부분에 상상력을 펼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술적으로 보아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인 V.위고는 그의 데생에서 이미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오토마티슴)에 가까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여류작가 G.상드가 풍경화 속에다 이끼나 꽃 같은 것을 붙인 것도 일종의 콜라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모두 무형체를 지향하였다. 창조력이란 그것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현존하는 것을 뛰어넘어, 비구상(非具象)의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낭만주의는 자아를 절대시하고, 그것에 무제한의 능력을 부여했을 때에 비로소 초현실주의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가능한 한 참되게 표현하려고 하는 초현실주의의 갖가지 시도는 시·회화·사진·영화 속에서 현실적인 연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당시의 모순된 현실과 결부되어 예술일반의 인식을 비약시키고 20세기 특유의 환상예술을 발흥(勃興)시키게 된다. 특히 미술의 경우 초현실주는 종래의 공간의식과는 별도의 비현실세계를 겨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새로운 테크닉을 필요로 하였다. 도밍게스의 데칼코마니, 에른스트의 프로타주, M.레이의 레요니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와 같은 테크닉이 충격의 효과를 미리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인 R.마그리트에 이르면 큰 바위덩어리를 공중에 띄워놓는다든지, 낮이 밤으로 변해 있는 등 정신의 전위(데페이즈망)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기법에 있어서의 데페이즈망과 정신에 있어 그것이 초현실주의의 최대의 표현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표적인 미술가로서는 그 밖에 Y.탕기, M.뒤샹, A.자코메티, 레오노르 휘니, J.B.파렝, 투아이앙 등을 꼽을 수 있다. 초현실주의운동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에 하나의 변혁을 가져왔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다다이즘의 파괴적인 태도에 만족할 수 없었던 브르통, L.아라공, P.엘뤼아르, F.수포, A.페레, R.데스노스, 크르베르 등이 《쉬르레알리슴 혁명》지(誌)(1924∼29)를 통해 문학 운동을 펼쳤다. 영감(靈感)의 발생을 천명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꿈이 지니고 있는 여러 힘의 찬양, 자동기술(自動記述)에 대한 깊은 신뢰, 초현실적 사실의 열렬한 탐구와 평행하여 사회생활이 개인에게 강제하는 모든 것의 금지를 문제삼고 혁명을 통한 자유의 도래를 그려보며 영원히 온갖 제약을 파기하고, 종교적·정치적 신화를 타도하고 사회의 명령에서부터 해방된 개인의 승리를 보장하려 했다. 또한 문학·예술에 한정하지 않고, 윤리·종교·정치의 면에 있어서도 기성관념에 대한 수정을 가하는 하나의 주의로서 형성되었다. 1924년 브르통의 《쉬르레알리슴 선언》의 발표와 기관지 창간 이후의 수년간, 이 운동의 불길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문학작품으로서는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 《문체론》, 엘뤼아르의 《고뇌의 수도》, 브르통의 《나자》 등이 이 운동의 실험에 있어서 빛나는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이어 새로운 기관지 《혁명에 봉사하는 쉬르레알리슴》이 창간되고, 초현실주의와 초합리주의가 일체를 이루는 브르통과 엘뤼아르의 공동작 《무원죄수태》, 브르통의 대표시집 《자유로운 결합》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 일파의 혁명적 야심은 점차 인간의 미적·윤리적 개념의 전복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정치면에서의 직접 행동으로 옮아갔으나, 초현실주의의 이론과 공산주의 이론의 일치에 실패하여, 이 운동은 분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년 우크라이나의 하르코프에서 열린 국제혁명작가회의에 참석한 아라공은 소련에서 정치시(政治詩) 《적색전선》을 발표한 바 있는데, 후일 이 시가 프랑스에 전해지자 이른바, ‘아라공 사건’을 일으키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공산당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택한 아라공은 다음해 이 그룹에서 제명되었다. 30년대에 접어들자, J.위녜의 《쉬르레알리슴 소시선(小詩選)》, 브르통의 《새벽》, 엘뤼아르의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시집 《민중의 장미》, 화가인 S.달리의 《비합리의 정복》이라는 편집광적 비판의 방법에 관한 논문이 쏟아져나옴으로써, 문학·회화 양면에 걸쳐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할 수 있다. 이 무렵부터 초현실주의는 국제선전운동으로 나타나, 36년에는 런던에서, 38년에는 파리에서 브르통, 엘뤼아르가 중심이 되어 ‘국제쉬르레알리슴전(展)’이 열렸다. 그 사이 브르통의 《미친사랑》, 엘뤼아르 시집, 로트레아몽의 《전집(全集)》이 출판되는 등 성과를 거두었으나, 브르통은 36년의 에스파냐내란 이래로 공산당에 접근하기 시작한 엘뤼아르와 드디어 결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기간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이 초현실주의 운동의 재창조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평과 신화의 인식과의 방향으로 쏠렸다. 대전중에 브르통, 베레, 달리 등은 미국으로 건너가 해외에서 초현실주의의 선전을 계속하였다. 47년 귀국한 브르통이 파리에서 ‘국제쉬르레알리슴전(展)’을 열고 공산당과 실존주의자들에 대한 집단선언서 《즉시결렬》을 발표하였다. 이 방향에서 나타난 전후의 대표적 작품은 브르통의 시집 《샤를 푸리에에게 주는 오드》가 있다. 유파로서의 초현실주의는 일단 이론적인 면에서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으며, 미학적인 면에서의 영향은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크다.   1. 자동주의 automatisme   오토마티즘은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에 투영하려는 초현실주의의 의도를 나타낸 대표적 기법으로, 가능한 의식(고정관념,이성들의 영향)이 배제된 상태에서 손에서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움직임과 형태를 작품화한 것이다. 에른스트가 발견한 프로타주와 오스카 도밍게즈가 작품에 이용한 데칼코마니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형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오토마티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학 분야에서의 오토마티즘은 미술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구절들을 이성의 통제없이 무의식적으로 써내려가는 방법을 말한다. 초현실쥐의 미술의 초기인 1920년대에 이 기법이 주로 쓰였으며 대표적 작가로는 마송과 미로가 있다. 2. 프로타주 frottage   에른스트가 1925년 여름에 마룻바닥의 얼룩을 보고 있다가 거기에서 온갖 환각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고 발견한 기법으로, 나무 파편이나 나뭇잎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을 문질러 그림이 떠오르게 하는 수법을 말한다. 이 기법은 우연한 효과를 노리는 것뿐 아니라 몇가지 피사물을 의식적으로 짜맞추는 경우도 있고 혹은 거기에서 나타난 무늬에서 힌트를 얻어 붓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지 자체의 우연성을 중시하는 프로타주로 제작한 초기의 34점의 작품은 에른스트는 박물지 (historre naturelle)라는 책자로 출판했는데 여기에 등장한 형상들은 문질러 나타낸 나뭇잎,헝겊 따위가 인간의 머리,괴물,바다 풍경등으로 변모된 것이다. 3. 데칼코마니 decalcomanie 轉寫法   원래는 도기나 유리기구등에 특수한 종이에 그린 그림을 옮겨서 염색하는 기법으로, 회화에서는 미끄러운 성질의 종이에 물감을 칠하고 그것을 접었다가 다시 피거나 또는 다른 종이를 그 위에 대고 눌렀다가 뗄 때 생기는 우연한 효과를 작품에 이용한 것을 의미한다. 이 기법에 따른 우연한 형태 - 산맥, 산림수목, 인간장기 등 - 에 부분적으로 가필을 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영상을 표출하도록 한다. 1935년 오스카 도밍게즈가 그의 과슈작품에 처음으로 도입했으며 에른스트도 2차세계대전 직전에 종종 이용했다. 예전의 그림붙이기에 사용되었던 것과 근본적으로 달리 즉, 완성된 그림을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한 얼굴이나 어긋남의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4. 데페이즈망 depaysement 轉置,轉位法   어떤 물체를 본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것으로 문학에서 '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로트레아몽의 싯귀는 데페이즈망의 적절한 예라 하겠다. 초현실주의 회화에서는 낯익은 물체를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으므로써 꿈속에서 밖에 없는 화면을 구성했는데, 이는 심리적 충격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데페이즈망의 대표적 작가로는 마그리트를 들 수 있으며 꼴라주와 오브제도 일종의 전위라 할 수 있는데 이 방법들은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데 기여했다. 5. 레이요그램 rayogram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감광 재료 위ㅣ해 물체를 얹어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명암 속에서 추상적 사진을 찍은 것이다. 포토그램과 같은 것으로 파리에 있던 미국의 초현실주의자인 만 레이가 1923년 블룸이란 잡지 4월호 표지에 발표하면서 이 명칭을 붙였다. 후에 그는 자작집에서 레이요그래프로 고쳐 부르기도 했다. 1921년 자비로 출판의 한정판으로 레이요그램 작품을 트리스탄 짜라의 시와 함께 발표한 바 있다. 6. 꼴라주 collage   화면에 인쇄물,천,쇠붙이,나무조각,모래,나뭇잎 등 여러 가지 물질을 붙여 구성하는 기법으로 초현실주의 작품에서도 기성품에 손질을 가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물체끼리 조합시키므로써 별개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비유적,연상적,상징적 효과를 노리는 방법으로 쓰인다. 에른스트는 1919년부터 초현실주의적인 꼴라주작품을 시도했는데, 그의 작품은 잡지,카탈로그, 삽화등의 그림을 부분적으로 오려 아무 관련성없이 재배치하여 부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환상의 세계를 일깨운다. 또한 1924년 라는 작품에서는 문짝,손잡이 등의 사물을 꼴라주하여 초현실주의 사상에 부합되는 이미지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7. 오브제   예술과 관련없는 물견,또는 그 부분을 본래의 일상적 용도에서 떼어내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잠재한 욕망이나 환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 발견된 오브제, 환영 오브제, 봉상적 기능의 오브제, 존재적 오브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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