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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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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    프로이드의 딸 후계자 - 안나 프로이드 댓글:  조회:5070  추천:0  2015-03-29
  프로이드 행동심리이론 - 정신분석 이론                                /(박경원)   정신분석의 이론 개요. 정신분석에서는 본능을 인간정신 생활의 일차적 요인으로 보고 있다.   *이성 -충동적인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사리를 올바로 분별하여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에 작용하는 에너지를 생은 본능과 죽음의 본능으로 나누었다,  =생(삶)의 본능 =>생의본능인 Eros 생명을 유지 발전시키고. 사랑을 하게하는 본능이다 =>Ex)성욕. 배 고품. 갈증 등. =>죽음의 본능  자기를 파괴하거나 처벌하여 타인 등을 파괴시키는 공격적인행동.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은 서로 영향을 미치거나 상호 혼합되어 작용한다.  음식을 먹는 행위. 성행위. =>프로이드는 에너지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성적본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이를 리비도라 불렀으며 이것은 인간의 성격발달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간주하였다.  즉 리비도는 생물학적 힘 이아니라 정신적인 힘으로 성적본능의 에너지를 의미 하는데 출생 시부터 나타나고 아동의 행동과 성격을 결정하게 된다. =>인간의 의식수준  의식- 현재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경험과 감각을 뜻 한다.  전의식- 전의식은 현재는 의식되지 않지만 전에 의식했던 것이 저장된 것으로 주의 집중을 통해 의식 세계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경험이다.  무의식- 정신구조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인간행동을 결정하는 주된 원인이다   구강기-항문기-생식기-잠재기-사춘기 *실천모델등장  심리사회적 모델 = 개인의 심리. 사회 환경. 개인과 사회 환경. 기능주의모델 = 현재경험강조. 행주의 모델 = 스키너.               외적자극에 의한 동기화.               학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불안과 방어기재 =>불안은 각 개인에게 반격하거나 피해야만 하는 절박한  위험의 원천을 알려주는 자아의 기능이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불안은 개인으로 하여금 위급한 상황에 적합한 방법으로 반응 하도록 한다. =>불안은 자아를 위협하는 근원을 토대로 현실불안 신경 즉 적 불안 도덕적 불안으로 구분된다. =>현실불안 -두려움과 같은 것으로 정서반응 또는 외적환경에서 위협을 지각하는 것을 말하며 예를 들면 독사 맹수. 시험 등이 있다. =>신경 즉 적 불안 ld의 충동이 의식화 될 것이라는 다시 말하면 본능 특히 성적 공격적 본능을 자아가 조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에서부터 출발한다. =>도덕적 불안 super ego 로부터 벌의 위협을 밭았을 때 일어나는 정서반응을 말한다. =>자아방어기재는 압도되는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위한 전략으로 여기에는 다음 과같은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1)무의식 차원에서 반응 한다.  2)각 개인으로 하여금 현실을 왜곡해 지각하게 만들어 불안감의 위협을 덜 받도록 하는    것이다.   안나 프로이드  방아기재   + 안나 프로이드의 생애 +  Anna Freud는 1895년 12월 3일 비엔나(Vienna)에서 지그몬드 프로이트(Sigmund Freud) 와 마르타 프로이트(Martha Freud) 부부 사이의 막내 딸로 태어나 1982년 사망하였으며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제기한 자아의 방어기능에 대한 관점들을 정리하여 방어기제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 이론을 수립하여 성격발달에서 방어기제의 역할에 관한 이론을 확대시켰다.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을 발견한 것은 Freud의 큰 공헌이다. 방어기제란 위협적인 충동이나 외적위협을 직시하기보다는 자아를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심리적 책략들을 말한다(홍숙기 ・ 이인미 ・ 최윤미, 1992: 76) 방어기제는 원래는 프로이트가 기술하였으나 이후 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더 자세히 설명하였다.  여기서는 방어기제에 대한 개념과 안나 프로이드가 연구한 10가지의 방어기제를 설명하고 이어서 안나프로이드 이후의 방어기제들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1). 주요개념 (1) 불안  정신 분석 초기에 프로이트는 불안이란 부적절하게 해소된 리비도 에너지의 결과라고 보았다.  그는 억제된 성 충동과 해소되지 못한 신체적 흥분으로 높아진 긴장 상태가 불안 신경증으로 변화되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경증을 치료하는 동안 그의 생각은 변했고, 마침내는 불안에 대한 초기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다. 프로이트는 초기의 주장을 바꿔 정신 분석 후기에는 불안이란 개개인에게 반격하거나 피해야 할 위험의 원인을 알려주는 자아의 기능이라고 주장했다.  자아는 현실 원리에 따라 이드의 본능적 욕구와 초자아의 도덕적 양심을 조절해 주는 기능을 담당하는데, 불안은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내적 또는 외적인 위험을 자신에게 알려 줌으로써 자아가 거기에 대처하게 만든다. 프로이드는 신경증의 원인이 되는 불안을 은 세가지로 분류하였다.  (가) 현실적 불안: 실제적인 불안상황에 대해 느끼는 불안으로 원인이 외부 세계에 있다. 그래서 현재의 객관적 불안이라고도 하는데, 공포와 유사하다.  (나) 신경증적 불안:억압된 본능이 통제 불가능할까봐 생기는 불안으로 원인이 이드(id)에 있다. 이드의 충동이 의식화될 것이라는 것 때문에 긴장하고 그에 따라 생긴 정서 반응이 신경증적 불안이다.  (다) 도덕적 불안: 지나친 초자아의 발달로 도덕적 규칙이나 부모로부터 내사된것을 위배할까봐 느끼는 불안으로 자아(ego)가 초자아(superego)에게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할 때 생기는 불안이다.  이드가 비도덕적 생각이나 행동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할 때 도덕적 불안이 발생한다.   2). 방어기제란 무엇인가?   방어기제라는 말은 지그몬드 프로이드가 처음 사용하였으나 그 이론을 정리하고 정착시킨 사람은 그의 딸 안나 프로이드였다.  프로이드는 그의 논문 신경 정신증의 방어"(Neuropsychoses of Defense)에서 방어(defense)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후
789    프로이트 후계자 - 자크 라캉 댓글:  조회:4745  추천:0  2015-03-29
자크 라캉 이드, 자아, 초자아로 구분되는 프로이트의 2차 정신 기구 모델은 후계자들의 격렬한 의견 대립을 통해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분화된다. 하나는 생명의 본질을 이드에서 찾으며 인간이란 이드, 자아, 초자아가 끊임없이대립하고 상호작용하는 역동적 실체라는 주장이다. 나머지 하나는 자아의 자율성과 방어 기능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정신분석은 결국 자아의 강화와 이를 통한 현실 적응을 돕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프로이트의 여섯 번째 딸 안나 프로이트고 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자크 라캉이다.     상상계 라캉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상상계로 지칭하는데, 이는 이 세계가 가상이라는 말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이 이미지를 매개로 이뤄진다는 말이다. 라캉은 이를 '거울 단계'의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거울을 처음 본 어린 아이는 거울 속의 이미지가 '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는 '나'를 알아본다. 이 때가 바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최초로 인식하는, 즉 자아가 발견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나'라는 정체성이 나를 비춘 '대상'을 통해 밝혀진다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한낱 이미지에 불과한 대상을 통해 나를 인지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진짜 나'의 소외를 초래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코 진정한 '나'를 알지 못한다. 우리의 자아는 대상화된 '나'를 통해 인지되기 때문에 그것은 근본적으로 타자이며 수 많은 오해의 씨앗이 심어진 불완전의 토양이다.       한편 '나'의 이미지에 매료되는 거울 단계의 매커니즘은 나르시즘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자아의 발견은 안정된 자기 인식의 시작이 아니라 '진짜 나'와 '나를 비추는 이미지' 사이의 분열을 의미한다. 여기서 '나를 비추는 이미지'는 그 특성상 완벽한 이상향을 지향하면서 실제의 '나'와의 괴리를 가속화 하는데 그 이유는 거울 단계에서 지각되는 신체적 미숙함이 원인이다.  실제로 생후 6개월~1년 된 아이는 운동 신경의 발달이 미숙해 아직 자신의 몸을 완전하게 통제하지 못하며 몸이 주는 감각들도 파편화된 형태로 느낀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모습은 이상화된 전체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의 몸이 보여주는 완벽한 조화에 환호하면서 끌리게 된다. 그러나 아이가 이미지에 끌리면 끌릴수록 아이가 느끼는 실제 몸의 현실은 완벽한 자아의 상에 균열을 낳는다. 이렇듯 실제 몸의 불완전성과 이미지의 완벽함이 최초의 분열과 불안을 낳으면서 자아의 일체감을 위협하는 게 거울 단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때 불완전한 육체와 이상적 이미지를 봉합하는 것이 바로 나르시즘이다. 나르시즘은 '완전'에 대한 욕망으로 철저히 이상화된 자아를 만들어내지만 대상화된 자아의 불완전함은 엄연한 현실이다. 나르시즘은 우리를환상 속에 가둬두려는 마술의 집이다. 환상은 컴컴한 암막이 되어 현실을 가려 보지만 실제와 환상 사이의 균열은 점점 커져만 가고 그 안에선 썩은 내가 풍겨 나온다.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결국 연못에 빠져죽은 나르키소스의 신화는 썩은 내를 풍기는 나르시즘의 불길한 묵시록이다.        상징계 대상화된 자아가 속하는 곳이 상상계라면 실제 주체가 거하는 곳이 바로 상징계다. 라캉에 따르면 주체란 곧 '말하는 주체'다. 따라서 상징계는 언어에 의해 구조화되는데 라캉은 소쉬르의 기호론을 차용하여 이를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여기서 부터 두 손을 들었다. 소쉬르의 기호론이라는게(시니피에-시니피앙의 관계를 설명하는) 절대 쉬운 개념이 아닌데 여기다 라캉의 새로운 생각까지 덧붙여 지니 이건 완전히 암흑이다. 중요한건시니피앙(기표: 말해지는 것. 단어를 발음과 의미로 나눌 수 있다면 그 중 발음에 해당하는 것이 시니피앙이다.)이 자율적, 독자적으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정해지는 방식은 결국 상상계에 의존하기 떄문에 결국 주체는 소외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좀 더 들어가보자. 라캉의 언어론에서 시니피앙은 시니피에보다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라캉은 둘 사이에 거대한 가로막 하나를 질러 놓고 위에는 시니피앙을 아래에는 시니피에를 위치시키는데 시니피에는 이 가로막에 막혀 끝없이 침잠한다. 이때 시니피앙은 시니피앙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연쇄 사슬을 구성하는데 이 연쇄사슬이 바로 언어의 체계다. 이 때문에 언어의 체계는 그 자체로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니피앙 간의 구분은 단순히 말(발음)의 분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자'라는 시니피앙은 '남자'라는 시니피앙을 만나 서로 구분된다. '여자'를 '여자'이게 만드는 것은 '남자'를 포함한 다른 모든 시니피앙들이 '여자'와는 다르게 발음되기 때문이다. 시니피앙은 이렇게 상호 구분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립한다.  하지만 소리만 가지고는 의사소통이란 것이 이뤄질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발생시키는 소리의 다름을 통해 의미의 다름을 인지하는데 이는 소리가 특정 의미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캉의 이론에서 이 소리와(시니피앙) 의미(시니피에)의 만남을 주재하는 것이 바로 '주체'다. 문제는 이 주체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자'라는 단어가 사전적으로 생물학적인 여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만약 수 십차례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경험한 남자라면 여자를 '인정머리 없는 냉혈한'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가 여자라는 단어에서 어머니의 풍요로움과 따뜻함을 느낄 때 이 남자는 가슴을 찌르는 한기를 느낄 것이다.  이처럼 시니피앙은 시니피에와 일대 다 심지어 다대 다로 결합하면서 고정된 실체를 형성하지 못한다. 확실한 '나', '절대적인 기준'의 부재는 '이것이 진짜 주체인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다. 이것은상징계의 구성 조차 상상계의 근본적 결함인 오인 구조를 - 대상화된 자아를 진짜 나로 착각하는 -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주체는(진짜 주체) 상징계에서조차 소외 당한다.  사실 상징계에 대한 설명은 이후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책은 상징계를 '선험적 질서로서 주체를 벗어나는 타자의 영역'이라고 설명하고 '이를 상상계의 소타자와 구별하여 대타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며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라는 라캉의 핵심 이론이 전개되는데, 나는 '선험적 질서로서 주체를 벗어나는'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 시니피앙와 시니피에의 관계 - 그것이 왜 '타자의 영역'이 되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어 결국 줄줄이 사탕으로 이어지는 핵심 이론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말았다.      이렇듯 알쏭달쏭 장님 문고리 잡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느낀 바가 있어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라는 주장은 라캉의 이론 중 현대인의 실체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론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거울 단계의 매커니즘에서 살펴봤듯이 우리는 '내가 나'라는 사실을 명석판명하게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무언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사실 내가 나라고 '착각하는 존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라든가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체와 자아(대상화된 주체)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나-타자의 관계와 같다.그러므로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어'라는 말은 '네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어'라는 말과 사실상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수 많은 인간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게 아닐까? 안되겠다. 한 마디만 더 하자.  나-타자의 관계에서 타자란 '대상화된 주체'를 의미하지만 말 그대로 '타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아를 확인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 형상이 자신을 그대로 흉내내는 허구의 이미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어른의 세계에서 거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타자, 나와 더불어 사회, 문화를 형성하고 관습과 질서에 순종하는 타인을 의미한다. 확실히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을 통해 나를 확인한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 요리조리 눈치를 보며 이 사회를 살아간다. 중요한건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근본적으로 타인의 욕망을 추구한다. 동창회에 들고 나간 싸구려 백을 은근 슬쩍 가리게 되는 순간 당신의 마음 속에는 루이비통과 에르메스와 샤넬의 욕망이 싹 튼다. 그러나 그 욕망의 씨앗은 '나'로 부터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곳으로 부터 뿌려진다.  문화와 관습의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는 인간의 일탈을(진짜 '나'를 찾는 행위) 감시하는 거대한 감옥이다. 우리는 감시자를 자청하며 서로의 욕망을 서로에게 투영한다. 이 안에 진짜 나는 없다.  실재계 상징계는 언어를 통해 구조화 된다. 이 말은 상징계에 진입한 인간이 언어를 매개로 세계를 추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언어를 매개로 세상을 추상'한다는 말 속에는 결코 언어가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는못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렇다. 매개는 그저 매개일 뿐이다. 언어 자체가 실재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마치 언어 때문에 이 세계가 존재하고 언어가 아니면 실재를 드러낼 방법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언어와는 무관하게 실재는 우리 눈 앞에 존재한다. 우리의 우주가 고작 언어가 만들어지고 난 뒤에야 태어날 수 있었던 부차적 개념에 불과했던 것일까? 아니다. 우리가 구름을 연기라고 말하든 나무라고 말하든 구름은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위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구름이란 말에는 구름의 실재를 보여줄 수 있는 어떠한 단서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납득할 만한 설명 아닐까?  그렇다. 언어는 세상을 해설하는 도구일 뿐 결코 이 세상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해설은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느끼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그리고 듣는 사람의 지식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따라서 언어와 실재와의 관계는 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실재에 드리워진 거대한 장막이다.  라캉의 실재계는 언어의 장막 뒤에 숨어 있는 보드라운 속살을 말한다. 상징계는 끊임없이 이 속살을 사진 찍어 세상에 드러내려 하지만 그것이 언어라는 암실을 통과하는 순간 빛바랜 흑백 사진이 되버리고 만다. 그러나 흑백 사진에서 드러난 '색'의 결여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색'의 실재를 확신하게 만든다. 누가 그랬던가?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다름아닌 부재라고!       우리의 욕망이란 결국 결여된 것을 채우려는 갈망, 어두운 장막을 들춰내고 실재에 가 닿으려는 간절함이다. 하지만 실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을 통해서는 이 세계에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얻을 수 없는 것을 소망하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다고 눈을 감고 싶지만 부정의 강도가 높아갈 수록 존재의 크기는 커져만 간다. 그래서 또다시 욕망의 돌을 굴린다. 시지포스의 형벌은, 아마도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은유한 것이리라. 무의식과 실재 실재는 상징계의 작용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치 고요한 화산 밑에서 이글거리는 용암처럼 실재는 끊임없이 이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길 갈망한다. 그렇다면 이 화산을 폭파시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말장난 같지만, 실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글은 절대 그 방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실재의 끝자락이라도 잡아 그 모습을 글로 옮기려 하지만 손 끝으로 타자를 누르는 순간 실재는 언어의 어두운 장막에 가려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래도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화 되지 못한 것 논리적이지 못한 것 비언어적인 것이 우리의 실재다. 꿈에서 겪은 기괴한 이야기, 마음 속 깊숙히 숨어 있는 원초적 욕망들이 바로 우리의 실재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초현실주의 화법의 작품들이 범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표현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은 그들이 미치광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재를 직관하는 초인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이드'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자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담고 있는 원초적 에너지 덩어리라면 라캉의 실재가 자리하는 곳이 바로 무의식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실재는 존재한다. 우리는끝까지, 이 실재를 '이해'하려 들기 때문에 실재는 영원히 우리 앞을 배회할 뿐이다.        라캉과 프로이트, 그리고 지식인마을 시리즈 프로이트가 어려운건 정평이 난 사실이지만, 그래도 프로이트의 저작 몇 권을 훑어 본 뒤 내리는 판단에 따르면, 라캉이야 말로 난해의 극치다. 평생 정신과 의사로서 임상에 근거한 정신 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와 달리 라캉은 철학을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정신 분석학을 이론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 때문에 난해함은 배가 되었다. 프로이트를 이해하기 어려운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개념의 문제라기 보다는 일종의 심리적 거부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부모에 대한 성애와 거세 컴플렉스를 근간으로 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등 인간의 모든 삶을 성적 문제로 환원하는 태도).  반면 라캉은 개념 자체가 너무나 어렵다. 실재계와 상징계의 대립은 수 천년간 철학계를 전쟁터로 만들어 온 관념론-유물론의 대립을 연상케 하며 '실재(존재)의 드러냄' 같은 개념은 악명 높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떠올리게 한다. 고작 한 권의 책으로 라캉을 판단하기엔 이를 수 있지만, 어쨌든 내 첫 느낌은 그렇다.  정신 분석학이 흥미로운 분야인 것은 사실이지만 책 한 권을 읽고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앞으로 이 분야의 책을 선뜻 집어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참,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게 하나 있는데, 그렇다고 이 책 자체가 어렵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정신 분석학은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볼 생각이다.    
788    <세계의 기원> - 화가 - 구스타브 쿠르베 댓글:  조회:3608  추천:0  2015-03-29
  처음 그림은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이다.   Courbet, Gustave  / The Origin of the World / L'Origine du monde 1866 Oil on canvas 18 1/8 x 21 5/8 in. (46 x 55 cm) / Musee d'Orsay, Paris   아래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걸린 그림과 관객들.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어떤 미술사 책이던 사실주의 이야기 할 때면 반드시 나오며, 근/현대 서양미술을 이해하자면 그를 거쳐야만 한다.     쿠르베의 말 중 다음이 유명한 데,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주의가 무언인가를 잘 나타낸 말이라고 하겠다.   또 “회화는 반드시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는 사실주의의 대상이 무엇인가를 잘 요약한 말도 남겼으니, 쿠르베를 오늘 날 운동권 화가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기원(The Origin of the World)   운동권 환쟁이 쿠르베를 졸졸 쫓아다니던 무리에 제임스 휘슬러라고 있었고, 그 휘슬러에게 조안나 란 애인(愛人)이 있었다.   휘슬러가 이탈리아로 잠시 간 사이 쿠르베는 ‘세계의 기원’을 그렸다. 여행에서 돌아온 휘슬러에게 쿠르베가 그림을 보여 주자 애인 조안나가 모델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채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쿠르베가 휘슬러에게 조안나를 모델로 그려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으나, 그게 설마 음부만 클로즈 업 한 그림이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모델 서는 것도 모델 나름이지 저런 걸 그리면서, 화가 쿠르베와 모델-음부(陰部)의 주인 조안나 사이가 범상했을 리는 없고, 휘슬러는 두 사람을 두고 떠나 버린다.       춘화(春畵)-포르노와 예술 작품의 경계는 대단히 애매한 것이다.   그림은 55x46cm 로 별로 크지 않다. 당대 대부호 이자 오입장이의 부탁을 받고 그린 그림이었다.   우리 모두 저기서 태어났으니 세계의 기원이 맞기는 맞다.   맞기는 맞으나….. 뭐 어떻게 논설을 까고, 철학적 설명을 붙이던, 또 아무리 예술의 고장 프랑스 파리 라고 하더라도 19세기 당시 미술관에 저런 그림을 버젓이 걸어 놀 수는 없었다. 몇몇끼리 은밀히 돌려 가며 보던 그림이었다.   1866년 이래 그림 주인이 이리저리 바뀌다가, 마지막 소장자(所藏者)가 프로이드의 제자로 그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1901-1891) 이었다.   정신분석학의 핵심 대상이 성(性)이니, 그림의 소장자로 딱 어울린다.   라캉이 죽고, 상속세 조로 납부하여, 프랑스 정부 재산이 되었다.   1995년 드디어 파리 오르세 미술관 (Musee d'Orsay)에 걸리니 작품이 나온 지 꼭 129년 만에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다.  
787    超現實主義 댓글:  조회:4075  추천:0  2015-03-29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이란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이란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제 1차 대전이 종결된 이듬해인 1919년부터 제 2차 대전 발생 직후까지의 약 20년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문학·예술상의 전위운동. 이 운동은 2차 대전 후에도 이 파의 이론적 지도자였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살아있는 동안, 파생적으로 계속되었다. 이 운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차례로 등장한 다른 전위 운동(퀴비슴, 미래주의, 표현주의, 다다이슴 등)에 비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 기본 이념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헤겔의 관념론을 원용하여 인간 정신의 전면적 해방을 위한 시스팀을 확립하고자 하는 일종의 신비 사상에 의존했던 점과, 또한 유럽의 정치적·사상적 풍토가 파시즘의 위협에 직면해 있던 시기에 있어서 그 정신 해방의 이념을 인간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마르크시즘과의 접촉·융합에서 찾고자 했던 점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쉬르레알리슴은 그 운동 기간을 통하여 많은 뛰어난 시인, 작가, 화가, 조각가를 배출해냈다. 루이 아라공, 르네 샤르, 트리스탄 짜라 등의 시인, 레이몽 크노, 미셀 레리스 등의 작가, 호안 미로, 이브탕기, 앙드레 마송, 르테 마그리트, 맨 레이, 한스 벨머, 마타 에차우렌, 위프레도 람 등의 화가, 한스 아르프, 알베르토 쟈코메티, 헨리 무어 등의 조각가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 운동의 생성·발전에 주력한 가장 대표적인 쉬르레알리스트로서는, 사랑을 테마로 해서 새로운 미의 기준을 창조한 폴 엘뤼아르, 언어 기능을 구사하여 유머와 릴리시즘을 풍부하게 한 방자맹 페레의 두 시인과 콜라지 수법에 의해 초회화적 세계를 개척한 막스 에른스트와 독자의 편집광적 비판 활동을 에로틱한 욕망의 개발에 적용한 살바도르 달리의 두 화가를 들 수 있다. 쉬르레알리슴의 발생은 1919년, 파리의 다다운동의 기관지로 창간되 「문학」지상에 앙드레 브르통과 필립 수포의 공동작인 「자장(磁場)」의 일부를 연재한 시기를 기원으로 한다. 이 작품은 당시 무의식에 관한 연구에 전념하여 특히 프로이트 학설에 심취해 있던 이 두 시인이 의식 속에서 표출되는 이미지를 되는 대로 아무런 정정도 없이 언어로 전사하는 방법, 소위 자동기술법(自動記述法)을 실험하기 위해 쓰여진 산문인데, 이 실험을 통해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쓰여진 문장이 스스로 사고(思考)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의식적으로 쓰여진 문장에 비해 순도(純度)가 높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1924년 브르통, 엘뤼알, 아라공 등에 의해 「쉬르레알리슴 혁명(革命)」이란 기관지가 발간되면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같은 해 브르통은 유명한 「쉬르레알리슴 선언」을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쉬르레알리슴을 「이성에 의한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또 미학적, 윤리적인 일체의 선입 관념도 없이 행해지는 사고의 받아쓰기(dictee)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그에 의하면 보통 사람의 사고 방식은 처세술, 고정 관념(固定觀念), 이성 등에 의해 얽매어 매우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빙산이 커다란 부분을 바닷물 속에 감추고 있는 것처럼 그 상식의 바닥에는 넓은 하의식(下意識)의 부분이 있어 늘 제약(制約)을 밀어내고 모습을 드러내고자 싸우는데, 그것이 억압이 늦춰진 틈을 타 꿈의 세계, 무의식의 행동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쉬르레알리스트는 이 깊숙이 숨겨진 정신 생활을 보다 절실한 현실이라고 보아, 직관적이며 물질적인 것에 의해 그 가능한 표현의 극한에까지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기법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방법을 크게 나누면 오토마티슴과 데페(이)즈망이라는 것이다. 쉬르레알리스트들은 이런 기법에 의한 최초의 전람회를 1925년에 열었다. 주요한 출품자는 에른스트, 아르프, 마송, 키리코, 맨 레이 등이었고 뒤에 뒤샹, 탕기, 재코메티가 참가했다. 1930년 일부 회원들이 마르크시즈멩 접근함으로써 운동은 분산되었고, 제 2차 대전 이후는 달리, 탕기, 에른스트 등이 도미(渡美)함으로써 운동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특히 자산가의 딸로 에른스트와 결혼했던 페기 구겐하임은 그녀가 경영하던 화랑인 「금세기 예술」을 통해 쉬르레알리슴을 미국에 소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리하여 쉬르레알리슴의 영향 아래 추상표현주의란 새로운 회화의 조류가 탄생하여 미국화단을 지배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다시 두 번째로 국제 초현실주의전이 개최된 것은 1947년의 일이었다. 그후 1964년에는 다시 「쉬르레알리슴-원천·역사·주변」전(展)이 파리의 화랑에서 개최되었으나, 너무 왜곡되고 편견에 치우친 전시회라는 쉬르레알리스트들의 항의를 바도 취소되었다. 1966년 브르통이 작고하자, 그 이듬해에 「다다·쉬르레알리슴, 그 유산」전(展)이 뉴요크 근대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개최되어, 쉬르레알리슴은 근대 미술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운동으로서의 평가가 더욱 확고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초현실주의 ( 超現實主義 surrealism / surrealisme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예술운동. 쉬르레알리슴이라고도 한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처음에 쉬르나튀랄리슴[超自然主義]이라는 명칭을 생각했으나, 철학용어로 오해받을 것을 염려하여 초현실주로 고쳤다고 한다. 미술사에서 이 운동을 예시한 미술가들은 보쉬, 아르침볼도, 피라네시, 고야, 롭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르동, 데 키리코(De Chiroco,1888~1978) 등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이들과 비슷한 특징 때문에 샤갈 또한 이 운동의 선두주자로 언급된다. 이들은 무의식이 프로이트의 이성의 통제를 뛰어넘어 잠재된 충동과 상상의 세계를 해방시킨다는 학설을 원용하여 자동기술법에 의한 다양한 기법을 개발했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자동기술적인 글을 썼고, 미로, 아르프, 마송, 에른스트 같은 화가들은 프로타주와 꿈의 현실적 재생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을 통해 시각적인 등가물을 창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화와 조각의 복잡한 기법들은 순수한 자동기술법에 의한 불완전하기 때문에 최소한 어느 정도의 의식적인 작업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발견 된 오브제'와 꿈이 강조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회화의 가장 특징적인 면은 과거에 꿈을 그린 그림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즉, 꿈의 공간의 단순한 재생산 (예컨대 탕기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듯)과, 논리적으로 서로 상관이 없는 대 상들을 암시적으로 병치해 꿈의 특정한 감성적 특질을 전달하는 것과의 차이 점이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은 비기능적이거나 전혀 기능성이 없으면서도 정 교하게 구성된 물체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대상을 그들의 규범적인 대에 서 끌어내려 진열함으로써 다다이스트인 뒤샹과 피카비아의 방법을 이어받고 있다. 비논리적인 병치의 방법은, 환상의 구조에 객관적 실재의 환영을 보여하 려했던 19세기 후반의 아카데믹한 그림이나, 라파엘 전파의 매우 섬세한 양식 과 유사한 사진기술과의 결합 속에서 달리와 마그리트에 의해 특히 발전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혼란스러운 인상은 사실주의적 처리와 비현실적 주제 사이 의 대조에 의해 강화되었다. 달리, 만 레이, 한스 벨머 그리고 다른 초현실주의자들 역시 막연한 잠재의식 연상을 유발시켜 다양하고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법을 개발하였다. 초현실주의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하여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나 추상예술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달리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밀한 묘사력은 사실(寫實)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 마송, 미로, 에른스트의 작풍(作風)에도 추상화의 경향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성·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초현실주의 뿌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다다이즘에서 찾아야 한다.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기성의 전통·질서에 대한 파괴운동이었던 만큼 비합리를 예찬하고 때로는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흐르며, 콜라주와 같은 새로운 기법, 오브제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도 채택했으며, 초현실주의 강력한 무기인 에로티시즘에 이르러서는 다다이즘의 비도덕적인 자세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기원을 더 먼 곳에 찾아본다면, 그것은 당연히 입체주의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20세기의 예술운동 속에서 야수파나 표현주의 이상으로, 입체주의는 혁신적인 공간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야수파나 표현주의가 원색주의를 택하고 강렬한 감정표현을 주체로 삼았다고 한다면, 입체주의는 종래의 회화를 부정하는 순수한 이념화(理念化)만을 꾀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한 개의 화면을 완벽한 평면으로 보는 관점이며, 일찍이 세잔이 추구한 원근법이라든지 전경·후경의 배치와는 별도의 구성, 별도의 공간개념을 필요로 하였다. 초현실주의 공간은 많은 경우, 상상적 공간이며 비현실의 공간이다. 따라서 초현실주의는 간접적으로 입체주의의 계열을 잇는 공간파악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그 때까지 빙산처럼 수중에 가리어 있었던 무의식의 영역에 눈을 돌렸다. 즉, 이성(理性)의 반대의 극점, 합리의 반대쪽의 세계이다. 초현실주의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술은 이성과 감성, 정신과 마음이 합치는 지점에 그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미 예술은 그러한 조화·통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의 자아는 밝음과 어두움의 두 부분으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독일 낭만파 문학에서 영향받은 독일 낭만파의 회화는 O.룽게나 C.D.프리드리히의 회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무한대의 동경을 그 특질로 삼고 있다. 또 그들의 작품에는 종교적 감정이 짙게 스며들어 있다. 초현실주의는 종교감정 대신에 프로이트의 리비도설(說)이 도입된다. 따라서 인간의 숨겨진 부분에 상상력을 펼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술적으로 보아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인 V.위고는 그의 데생에서 이미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오토마티슴)에 가까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여류작가 G.상드가 풍경화 속에다 이끼나 꽃 같은 것을 붙인 것도 일종의 콜라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모두 무형체를 지향하였다. 창조력이란 그것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현존하는 것을 뛰어넘어, 비구상(非具象)의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낭만주의는 자아를 절대시하고, 그것에 무제한의 능력을 부여했을 때에 비로소 초현실주의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마그리뜨 : '피레네의 성 ' ]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가능한 한 참되게 표현하려고 하는 초현실주의의 갖가지 시도는 시· 회화·사진·영화 속에서 현실적인 연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당시의 모순된 현실과 결부되어 예술일반의 인식을 비약시키고 20세기 특유의 환상예술을 발흥(勃興)시키게 된다. 특히 미술의 경우 초현실주는 종래의 공간의식과는 별도의 비현실세계를 겨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새로운 테크닉을 필요로 하였다. 도밍게스의 데칼코마니, 에른스트의 프로타주, M.레이의 레요니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와 같은 테크닉이 충격의 효과를 미리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인 R.마그리뜨에 이르면 큰 바위덩어리를 공중에 띄워놓는다든지, 낮이 밤으로 변해 있는 등 정신의 전위(데페이즈망)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기법에 있어서의 데페이즈망과 정신에 있어 그것이 초현실주의의 최대의 표현기능인 것이다. 초현실주의 선언(I) : 1924 1924년 10월 앙드레 브르통은 정식으로 < 초현실주의자 혁명> 지를 통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다. 브르통은 " 초현실주의여, 친애하는 상상력이여, 우리는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가!. 우리를 열광시키는 단 하나의 말, 그것은 자유가 아닌가!" 하고 말하면서 상상력과 과거의 인습과 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선언과 함쎄 초현실주의 미술은 막스 에른스트를 비롯하여 마송(Andre Masson,1896~1987)과 호안 미로(Joan Miro,1893~1983)가 참여하면서 활발히 전개된다. 마송은 르네상스시대 화가인 웃첼로와 입체주의에 관심을 갖고 그림을 시작하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비현실 세계에 관심을 갖고 자동기술을 작품제작에 도입한다. 1924년 전후에 스페인 화가인 미로는 '배고픔 때문에 생겨난 환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미로의 그림은 클레(Paul Klee,1878~1910)의 간결한 기호적 풍경에 환상을 접목시킨 또다른 현실의 모습이다. 한편 1924년에는 에른스트의 초기 대표작인 < 꾀꼬리에 위협받는 두아이> 가 제작된다. 초현실주의 선언(II) :1925~1929 1925년은 부르통의 주선으로 파리 피에르 화랑에서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공동전시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기도 한 해이다. 비록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으나 키리코를 비롯해 에른스트, 마송, 미로와 다다이스트 만레이, 장 아르크 그리고 피카소까지 참여한 대규모 초현실주의 전시로 현대미술사에 기록될 중요한 사건이다. 한편 1925년 8월 10일 프랑스 프르닉 바닷가에서 에른스트는 프로타주 기법을 발견하여 초현실주의 미술에 새로운 표현으로 주목받게 된다. 문지르기라는 프로타주(Frottage)기법은 '객관적 우연'의 이미지를 탄생시키며, 초현실적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낸다. 무의식의 감정이입이 이루어지는 프로타주 기볍은 이성이나 취향, 생각 등의 의식적인 행위를 배제하는 것이다. 또한 에른스트는 프로타주 기법을 화가의 의식과 활동을 최대로 제한하면서 자동적인 정신반응을 표현하려는 미술에 있어서 '자동기술법'이라고 말한다. 1928년 에르스트가 프로타주 작품을 연작으로 제작할 때 , 미로와 마그리트(Rene Magritte,1893~1967)의 등장이 주목된다. 미로는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단순한 정밀 묘사직인 그림에서 벗어나 문자나 알아보기 힘든 기호들을 화면에 가득 채우는 그림을 그린다. 마그리트는 벽지 제조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1926년 브뤼셀에서 메장스나 르콩트, 폴 누제 등의 문학가들과 초현실주의 그룹을 형성하고 1927년 이후 파리에 체류하면서 본격적인 이준 이미지의 우연한 만남이나 환상세계를 그리기 시작한다. 한편 1929년 12월 15일 브르통은 '제2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다. 이것은 초현실주의를 단순한 예술사조로 발전시키기보다 정치, 사회의 연결된 혁명으로 전개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은 작품제작이나 미의 자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각되지 못한 것과 예술의 미개척 분야를 밝히고 정치적, 사회적 혁명사상을 예술가들이 추구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첨차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이러한 선언과 별개로 자신들의 독자적 성격을 갖고 초현실주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과 거리를 두게 된다. 후기 : 1930~1938 1930년 '편집광적 비평(paranoia critic)'이라는 방법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했던 스페인의 화가 달리(Salvador Dali,1904~1989)가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정치나 사회적 성격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주제들로 , 극사실적 묘사에 의한 정신병자의 편집광적 심리가 나타나는 초현실주의 회화를 탄생시킨다. 초현실주의 오브제로 가장 충격적인 작품을 제자한 작가는 쟈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4~1966)이다. 그는 1931년 < 흔적의 시간> 과 1932년 < 새벽 4시의 궁전> 이라는 조각적 입체 작품을 만들어 초현실주의 오브제 미술가로 주목받게 된다. 1936년 5월 22일 파리 샤를르 라통 갤러리에서 열린 < 오브제의 초현실주의전> 은 여러가지 초현실주의 오브제 미술의 유형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일상적 오므제를 비롯하여 상상의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을 갖추며,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이제 유렵에 국한시키지 않고 미대륙과 오세아니아에서 발견된 오브제들로 영역을 확장하고 한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의 활발한 오브제 작업과 함께 평면작업에서는 1937년 카나리아 제도의 떼네리프 출신 오밍게즈(Oscar Dominguet, 1906~1958)가 '데칼코마니(decalcomanie)'라는 기법을 만든다. 2차 세계대전 바로 직전이 1938년 1월 파리의 보자르 화랑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구제전'의 개회는 대규모의 마지막 초현실주의 전시이다. 마치 초현실주의 미술의 종언을 예고한 듯 이 전시는 기존의 미술과 전혀 다른 무질서와 몽상적 환상의 축제로 이루어진다. '초현실주의 국제전'은 전재잉 임박했을 무렵인 1938년 유럽의 분위기와 너무 흡사한 기괴함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전시였다. 초현실주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이성이나 객관성에 의한 현실을 부정하면서 삶을 바탕으로 한 비이성적인 것과 주관적인 자세를 요구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꿈이나 환상보다 상상력에 의해 초현실세계를 그린 것이다. 1966년 앙드레 브르통의 죽음으로 초현실주의는 막을 내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파로서의 초현실주의는 일단 이론적인 면에서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으며, 미학적인 면에서의 영향은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크다고 할 수 있다.    
786    다빈치 / 모나리자의 비밀 댓글:  조회:2347  추천:0  2015-03-29
처음 눈에 띄는 그림은 모나리자입니다. 모나리자만큼 비밀이 많은 그림도 드물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빈치의 레오나르도 라는 뜻의 이름입니다.)의 이 작품은 미술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림에 얽힌 이야기들이 워낙 비밀스러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그림입니다. 자, 그럼 먼저 모나리자를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루부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의 실제 크기는 77cm x 55cm 의 크기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큰 그림이 아닙니다. 원래는 그림의 양쪽에 기둥을 설치해서 걸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는데 17세기 초 액자로 만들기 위해서 당시 무지한 표구업자가 가로, 세로를 어느 정도 잘라 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잠시 이 작품의 이름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모나리자라는 이름은 영어 이름입니다 (Mona Lisa). 프랑스어로는 ‘라 조콩드’, 이태리어로는 ‘ 라 조콘다’ 입니다.. 모나리자의 모나는 마돈나 (Madonna)의 준말 몬나(Monna)인데 이태리어로 부인이라는 뜻입니다. 모나(mona)는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게 옳다면 제목이 흉칙스럽습니다.   정리해보면 모나리자는 리자부인 정도가 되겠지요. 그러면 ‘ 라 조콩드’ 나 ‘라 조콘다’는 조콩드의 아내, 조콘다의 아내 정도가 됩니다.     모나라자의 작품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게 된 이유는 모나라자의 모델이 누구인지 아직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유력한 모델의 이름은 피렌체의 비단상인이었던 프란체스코 디 바르톨로메 디 자노비 델 조콘다의 부인 리자 게라르다니 입니다.       당시부터 누구의 초상화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꽤 있었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혹시 모델이 여러 명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나리자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신비로웠기 때문입니다. 얼굴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습니다. 모나리자의 미소로 모델의 건강을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부자연스러운 미소는 천식을 앓고 있었기때문이라는 사람, 매독을 앓고 있어서 수은을 약으로 복용 중이었을 거라는 사람,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잘 때는 이를 갈았을 거라는 사람, 한쪽 근육 마비를 앓고 있었을 거라는 사람 등 참으로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처음에는한 사람을 그렸지만 나중에는 여러 사람을 섞어서 그렸을 것이라는 가설도 등장했습니다. 1992년 컴퓨터그래픽 전문가 릴리안 슈워츠라는 사람이 모나리지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상화를 컴퓨터로 합성한 결과, 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일치 한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모나리자의 모델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자신이었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아마 아래 같은 모습으로 확인했을 것입니다.         좀 무섭죠? 그러나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의 선이 참 많이 닮았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편에는 모나리자를 도둑 맞았다가 되 찾은 이야기와 모나리자가 미술의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무게에 대해서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 한때 도독 맞았던 모나리자 였습니다.=     모나리자에 대한 관심은 작품이 만들어진 당대부터 높았습니다. 모나리자는 처음 프랑스 왕 프랑스와 1세의 소유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랑스와 1세의 궁정 화가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모나리자는 여러 작품들과 함께 욕실에 걸려 있었습니다.   당연히 습도가 높아지자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후에 덫 칠을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검은 색 옷 부분이 반짝거리는 이유가 덫 칠 때문이라고 합니다. 뒤늦게 높은 습도로 그림이 망가진다는 걸 알고 루브르 궁전으로 옮겼습니다.   얼마 후 프랑스 시민 혁명이 일어나고 왕정이 무너지자 왕의 재산은 국가의 재산이 됩니다. 좀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나폴레옹은 자기 침실에 모나리자를 걸어두고 ‘마담 리자’ 라고 부르면서 2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18세기, 19세기에 가장 유명한 그림은 모나리자였습니다.   수 많은 문학가와 화가들이 모나리자에 대한 감탄의 말을 남겼습니다. 화가 중 장 밥티스 코로는 ‘진주의 여인’이라는 작품을 모나리자와 비슷한 구도로 그려 대 선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잠깐 보시면,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이런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도난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911년 8월 20일은 주말이었습니다. 모나리자를 구경하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가운데 이태리 남자 3명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유명한 작품에 해코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유명한 작품에 유리를 씌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도 역시 1910년에 그 작업을 했고 아까 모나리자 앞에 있던 이태리 남자 중 한 명은 그 작업을 직접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모나리자를 훔치기로 한 계획을 세운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계획은 모나리자 복제품 여섯 개를 만든 다음 모나지라 진품을 훔치고 복제품을 진품인 것 처럼 미국과 남미에서 비싼 값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월요일은 박물관이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모나리자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것은 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고 막대한 현상금과 포상금이 걸리고 점성술사가 동원되었지만 모나리자의 행방은 찾을 수 가 없었습니다. 당시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 옆 허름한 집, 트렁크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도난범으로 몰린 유명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피카소였고 또 한 사람은 아폴리네르였습니다.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 내린다 –‘라는 ‘미라보 다리’라는 시를 쓴 시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이기 때문에 언제고 한 번 미라보 다리를 가지고 글을 써 볼 생각입니다.   어찌 되었건 나중에 두 사람의 의혹은 벗겨지지만 시간은 점차 흘러 사람들이 모나리자를 잊어 갈 때가 된 2년이 흐른 어느 날이었습니다. 모나리자를 훔친 도둑 중 한 명이 시간이 지나도 약속된 돈이 도착하지 않자 모나리자를 가지고 이태리로 가서 이태리 경찰에 신고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태리 사람이니까 당연히 모나리자도 이태리의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이태리로 가지고 왔다고 주장하여 죄를 피 해보고자 했고 실제로 감방에 가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빨리 모나리자를 돌려 달라고 아우성이었고 이태리는 전국 순회 전시회를 열어서 이태리 사람들에게 모나리자를 관람할 기회를 줍니다.   처음부터 이태리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프랑스에 줄 생각이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만 애가 탔던거죠. 미국 전시회때 사진을 보았더니 모나리자 앞에 미군 해병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더군요. 참으로 파란만장한 모나리자 입니다.       = 모나리자의 미소을 띄게 하는 기법 =     모나리자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하기 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역사가 한, 두 명의 영웅에 의해서 움직였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 그런 저의 생각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율리우스 시이저가 그렇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렇습니다. 이 두 사람의 특징은 어떤 하나의 장르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부문에서 눈부신 업적을 나타냈다는 점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발명가, 과학자, 해부학자 등 , 어느 한 분야에서도 무시하기 어려운 업적을 쌓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그런 이유 때문에 오늘 날에도 신비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유행했던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의 주요 소재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였습니다.   이제 모나리자 이야기를 정리 해 보겠습니다.   모나리자를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스푸마토 (sfumato) 기법입니다. 모나리자가 오늘날까지도 신비스러움을 간직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에 스푸마토 기법이 쓰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잠깐 스푸마토 기법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스푸마토 기법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처음 사용한 기법이라고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우리가 먼 곳을 바라보면 먼 곳에 있는 사물은 색깔도 흐릿하고 선도 흐릿합니다. 물론 가까이 있는 것은 선도 선명하고 색상도 진하죠. 이 것을 그림 그릴 때 적용한 것이 스푸마토 기법입니다.   스푸마토라는 말은 ‘안개처럼 사라지다’ 라는 스푸마레 (sfumare)에서 나온 말입니다. 스푸마토 기법을 우리나라 말로는 안개 마감법 또는 공기원근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수 많은 붓 질을 통해 어두운 색부터 밝은 색으로 덧칠하면서 경계를 나타내는 선을 없애는 것입니다. 잠시 모나리자의 입을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확인 된 사실이지만 아주 작은 붓으로 미소를 띈 입 부분만 30겹 이상의 붓질을 하였다고 합니다. 입술의 선이 없습니다. 다음 사진은 모나리자의 뒤 배경입니다.           역시 선을 의도적으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모나리자의 얼굴이 훨씬 도드라져 보입니다. 혹시 위의 그림에서 이상한 곳 2곳을 찾으셨는지요?   다시 한 번 보시죠.     첫째, 눈썹이 없지 않습니까? 당시에는 이마를 넓어 보이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의 한 방법이었고 합니다. 가끔 눈썹을 단 모나리자 페러디를 보게 되는데 정말 이상합니다. 눈썹이 없어서 더욱 신비로운 여자는 모나리자 뿐일겁니다. 둘째, 어깨 위의 오른쪽 배경과 왼쪽 배경의 높이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왼쪽은 구불 구불 길이 보이는데 오른쪽은 호수가 있습니다. 그 나마 높이도 맞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그렸는지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더 공부를 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려진 ‘성 요한’을 보시겠습니다. 기법도 기법이려니와 남성과 여성을 섞어 놓은 듯한 얼굴 역시 모나리자 만큼 신비스럽습니다. 혹시 모나리자를 다시 만나시거든 그녀처럼 웃어 주시기 바랍니다.             모나리자 미소의 비밀을 아시나요? 아마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하고 그 미스터리를 둘러싼 논쟁과 연구가 된 그림을 말하자면 모나리자일 것입니다.      모나리자의 원본은 루브르박물관에서 두꺼운 방탄유리에 사람들의 접근도 6m만 허용되고 있습니다. 한해 약 800만 명 이상이 그 앞에, 그것도 10분을 선다고 하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위키백과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인간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인상 깊은 사물, 관찰한 것, 착상 등을 즉시 스케치하였다.”이렇게 소개 되어 있습니다.    그가 그린 모나리자는 보는 사람에게 신비감을 주고 그 감흥도 무척 오래간다고 합니다. 모나리자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요? 아는 분들도 많으시니 간단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완성한 이후 이 그림은 보존을 위해 세정도 하고 광택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먼지도 쌓여 변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과학기술자인 “파스칼 코테”는 2004년 루브르 박물관으로부터 모나리자의 실사촬영을 허가받아 2억 4천만 화소의 고화질 멀티스펙트럼 HD카메라로 3년여에 걸쳐 모나리자의 비밀에 연구하였습니다.       먼저 눈썹 이야기를 해보죠. 아주 예전에는 처음부터 눈썹이 없는 줄 알았는데 500년전에는 있었답니다. 왜 지금은 볼 수 없는 걸까요. 3가지 가설이 존재하는데 흙과 기름을 섞어 미세하게 그린 눈썹이 밑바닥 물감에 스며든 것, 시간이 흐르면서 기름이 색소와 함께 투명해진 것, 속눈썹을 그릴 때 사용된 광택제를 완벽하게 닦아내지 못해 눈썹이 사라진 것 중 하나랍니다.      두번째 미소의 신비입니다. 모나리자의 눈가와 입가 등에 산화망간 성분의 얇은 막을 최대 30겹까지 입혔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나타난 ‘스푸마토 기법’은 여러 겹의 물감과 광택제를 덧칠해 사물의 윤곽선을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흐릿하게 처리하여 깊이감과 그림자의 효과를 만들어내 깊이감과 온화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는 더 강하고 뚜렷했으며 입 꼬리 부분을 검정색으로 처리한 ‘명암법’으로 미소가 더욱 크게 보였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원래 머리모양은 지금과 달리 쪽진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윽한 신비의 미소도 알려진 것처럼 평온한 모습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는데 작품 속 주인공의 손 모양이 편안한 자세가 아니라 주먹을 꼭 쥐고 있다고 합니다.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자세를 그리려다 다 빈치가 마음을 바꿔 지금과 같은 그림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TIP 몇가지만 이야기하렵니다.    1. 모나리자의 25가지 비밀 -코테가 찍은 '모나리자' 적외선 분석사진, 다빈치의 발명품들.    2. 모나리자는 캠퍼스가 아니라 포퓰러 나무 화판에 그려졌고 누군가는 잘라졌다는 주장도 했지만 화판은 온전하게 남아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림의 크기가 우리 상상보다 작아서 그런 주장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크기가 어느 정도냐고요. 77×53CM 정도입니다.    3. 모나리자의 인기는 그림이 완성된 때부터 높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랑스와 1세의 궁정 화가였기 때문에 모나리자는 처음 프랑스 왕 프랑스와 1세의 소유였습니다. 모나리자는 여러 작품들과 함께 욕실에 걸렸는데 습도가 높아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덫 칠을 하였다고 하는데 검은 색 옷 부분이 반짝거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높은 습도로 그림이 망가진다는 걸 알고 루브르 궁전으로 옮겼는데 프랑스 혁명 후 이 그림은 국가소유가 됩니다. 좀 황당한 이야기로 나폴레옹은 침실에 모나리자를 걸어두고 ‘마담 리자’ 라고 부르면서 2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18세기, 19세기에도 유럽에서는 가장 유명한 그림은 모나리자였고 많은 화가와 작가들이 모나리자에 대한 찬사의 말을 남겼습니다. 장 밥티스 코로는 ‘진주의 여인’이라는 작품을 모나리자와 비슷한 구도로 선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4. 마지막으로 모나리자의 모델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그림과 다빈치의 초상을 반반으로 하여 비교하고 자화상이라는 주장까지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해를 발굴하여 비교하려는 발상까지 했습니다. 기록 등을 확인한 정설로는 리자 게라르디니라는 여성이랍니다. 게라르디니는 1479년 피렌체에서 출생하여 16세에 부유한 비단상인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의 두번째 부인이 되어 다섯 자녀를 낳았다고 합니다. 모나리자가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506년 게라르디니의 나이 24세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뒤 피렌체의 산토르솔라 수녀원에 들어가 4년동안 지내다 1542년 7월15일 사망에서 사망했고 시신은 수녀원 경내 묻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극이 숨어 있습니다. 이 수녀원은 이후 수백년 동안 담배 공장, 대학 시설로 쓰이다가 1980년대부터 이탈리아 재무경찰의 막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극은 당시 공사를 하면서 이곳에 '모나리자'의 모델이 묻혀 있는 것을 알지 못했고, 2007년 지하 주차장 공사를 하면서 무덤들의 부서진 잔해와 더불어 수녀원의 기초가 발굴됐고 이 쓰레기들은 피렌체 교외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30년간 리자 케라르디니의 안식처를 찾기 위해 기록과 온갖 연구를 한 다빈치 전문가 쥬세페 팔란티는 게라르디니의 유해가 지금은 약 30m 높이의 풀로 덮인 언덕으로 변한 쓰레기 매립지에 파묻혔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늦게나마 피렌체 시가 이 수녀원 터에 예술센터를 짓고 그녀의 유해도 발굴할 예정이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785    립체주의 화가 - 피카소 댓글:  조회:2665  추천:0  2015-03-29
입체주의 화가 피카소 그림모음                 The Tragedy, 1903, Chester Dale Collection -  피카소가 청색시대에 그린 이란 작품이다.  그는 마드리드 시절부터 가난한 이들과  곡예사, 거리의 악사들을 즐겨 그려왔다.일곱 명 정도입니다. 공식      청색시대의 자화상 (1901)   거의 무명이었던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이 대부분 청색조를 이룬다 하여 청색 시대라고 불렸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심한 성병에까지 찌들었던 화가는 청색을 이용하여 비참하고 궁핍한 자신의 모습을 오히려 신비롭게 표현하였습니다. 피카소는 당시의 괴로움과 절망을 새로운 예술의 원천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부채를 든 여인 (1908) 그의 첫번째 연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그린 작품입니다. 파리의 빈민굴에서 만나 가난을 벗하며 살았던 시간들이었으나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피카소에게있어 페르낭드는 며칠동안이라도 꼼짝하지 않는 훌륭한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병과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었습니다.         누드, 나는 에바를 사랑해 (1912) 언뜻 바라보았을 때는 추상화인 듯하여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회화를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신비로운 효과를 내는 분석적 입체파의 진수를 보여주던 시기의 작품입니다. 그는 작품 속에 갸날픈 연인 에바와 자신의 모습을 해체한 후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다시 조합하여 그려넣었습니다.         올가 피카소의 초상 (1923) 처음으로 피카소란 성을 준 자신의 부인을 고전적인 표현으로 그렸습니다. 붉은 스카프와 푸른 드레스가 눈처럼 하얀 피부와 어울려 그녀를 더욱 우아하게 하네요. 올가를 그린 이 그림은 과연 피카소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달라보입니다. 한 화가가 하나의 화풍을 다 이루지 힘들지만, 그의 생애에는 여러 가지의 화풍들이 한번에 등장합니다. 여기에 그의 천재성이 있다고 사람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거울 앞의 소녀 (1932) 앞면과 옆면을 동시에 나타나게 그린 이 작품을 보면 “빛은 직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직진하는 빛으로는 보일 수 없지만 빛을 휘게 함으로써, 또 다른 면을 보이게 하였지요. 이러한 생각은 공간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깨뜨리는 것이었고, 전통적 물리학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리 테레즈 (1937) 부드러운 곡선과 은은한 색상을 통해 여성스럽고 따뜻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그녀의 헤어 스타일이 잘 나타나 있지요. 그는 마리 테레즈를 주제로 하여 그린 작품들이 특히 많습니다. 젊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는 피카소에게 있어 최고의 모델이었던 것이죠.           우는 여자 (1937)   와 더불어 피카소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 작품이죠. 내전으로 인해 불바다에 휩싸인 스페인을 보며 슬퍼하는 연인 도라 마알을 모델로 한 작품입니다. 전쟁의 공포와 아픔을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 피카소는 자신의 정치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회적으로도 더욱 인정을 받게 됩니다.           프랑소와즈, 클로드와 파로마 (1951) 연인이었던 프랑소와즈와 그녀가 낳은 아들 클로드와 딸 파로마를 함께 작품에 담았습니다. 그녀 또한 젊고 아름다운 여류 화가였으며,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의지가 강하였고 주관이 뚜렷하였습니다. 그녀는 “떠나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피카소에게 “그렇게 하세요. 그것이 당신을 더 행복하게 할거에요.” 라며 당당히 그를 버립니다.         꽃을 들고 있는 자클린 (1964) 두번째로 결혼한 여인 자클린은 피카소가 죽을 때까지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를 도왔던,생애 마지막 동반자였습니다. 그녀는 피카소가 죽자, 집안을 검은 커튼으로 가리고, 식탁에 그의 자리를 남기는 기이한 행동들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가 없는 현실을 이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손을 겹치고 있는 자클린 (1964) 결코 80세가 넘은 화가의 작품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힘과 패기가 느껴집니다. 화가의 강한 터치 만큼, 유난히 긴 목과 큰 눈은 모델에게도 강한 의지가 있음을 엿보이게 합니다. 그녀는 50살의 나이차를 극복하는 결혼을 행함으로서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게르니카 (1937)     설명2 1881년 10월 25일 에스파냐 말라가에서 출생하였다. 14세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였는데, 이때부터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였다. 이 무렵 당시 바르셀로나에 들어와 있던 프랑스와 북유럽의 미술운동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특히 A.르누아르, H.툴루즈 로트레크, E.뭉크 등의 화법에 매료되어 이를 습득하는 데 힘썼다. 1897년 마드리드의 왕립미술학교에 들어가 바르셀로나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고 1900년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 다음해 재차 방문하여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제작활동을 하고 있던 젊은 보헤미안의 무리에 투신하였다. 당시의 그의 작품에는 위에 열거한 화가들 외에 P.고갱, V.고흐 등의 영향도 많이 반영되었으나, 점차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소위 ‘청색시대(靑色時代)’로 들어갔으며, 테마는 하층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의 참상과 고독감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1904년 몽마르트르에 정주하면서부터는 색조가 청색에서 도색(桃色)으로 바뀌는 동시에(도색시대) 포름으로는 과거의 에스파냐예술, 카탈루냐지방의 중세조각, E.그레코, L.F.J.고야 등이 지닌 독특한 단순화와 엄격성이 가미되어 갔다. 테마는 작품 《공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소녀》 《광대》 《곡예사가족》 등에서처럼 곡예사들을 묘사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어릿광대나 곡예사는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니고 그 생활의 이면을 파헤친 애수였다.1905년 G.아폴리네르와 교유하고 다음해에는 H.마티스와 교유하였다. 그러나 작풍은 P.세잔의 형체관을 살려나가 점점 단순화되고, 1907년의 영원히 기념할 명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이르러서는 아프리카 흑인 조각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는 동시에 형태분석(形態分析)이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G. 브라크와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으로, 그와 함께 입체파운동에 들어가 1909년에는 분석적 입체파, 1912년부터는 종합적 입체파시대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는 이미 20세기 회화의 최대 거장이 되었고, 종합적 입체파수법을 1923년경까지 계속하면서 여러 가지 수법을 순차적으로 전개하였는데, 활동범위도 J.콕토와 알게 되면서 무대장치를 담당하는 등 점점 확대되어 갔다. 즉 1915년 《볼라르상(像)》과 같은 사실적인 초상을 그리고, 1920년부터는 《세 악사》 등 신고전주의를, 다시 1925년에는 제1회 쉬르레알리슴전(展)에 참가하였다. 또 1934년에는 에스파냐를 여행하여 투우도 등을 그렸으며 1936년의 에스파냐내란 때는 인민전선을 지지하고, 다음해 프랑코장군에 대한 적의와 증오를 시와 판화로 나타낸 연작 《프랑코의 꿈과 허언(虛言)》 및 전쟁의 비극과 잔학상을 초인적인 예리한 시각과 독자적 스타일로 그려낸 세기의 대벽화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통곡하는 여인》도 이 무렵의 작품이며 이때부터 피카소 특유의 표현주의로 불리는 괴기한 표현법이 나타났다.        제2 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는 에스파냐에서 지냈으나 다음해 독일군의 파리 침입 직후 파리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지하운동 투사들과 교유하고, 1944년 종전 후는 프랑스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주로 남프랑스의 해안에서 생활하면서 그리스신화 등에서 모티프를 취하여 밝고 목가적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독특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도기(陶器) 제작과 조각에도 정열을 쏟고 석판화의 제작도 많아 이 영역에서도 새로운 수법을 창조하였다. 그 후 6·25전쟁을 테마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1951), 《전쟁과 평화》(1952) 등의 대작을 제작하여, 현대미술의 리더로서 거장다운 활약을 하였다.           .    
784    추상화란?... 댓글:  조회:7267  추천:0  2015-03-29
1개의 답변 답변 추상이란 점, 선, 면, 색채 등의 조형요소만으로 이루어지는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이 정의의 뒤에는 식별할 수 있는 요소(Recognizable factor)가 그림의 유일, 절대적인 지침이자 방향이었던 20세기 이전의 구상회화가 버티고 있습니다. 또한 구상회화의 영향력은 20세기의 2/4분기까지 절대적인 세력이었읍니다. 추상을 지향하는 화가들까지도 '이것은 추상이되 구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변명을 그림에 심을 수 밖에 없었던 시기입니다.  1차대전 이후, 실존적 인간의 절망적 상황과 양자역학 등의 영향으로 앵포르멜과 같은 본격적인 탈화면 경향의 추상이 시도됩니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 화면의 주변에 맴돌던 앵포르멜의 화면을 다시 화면으로 정착시킨 것이 추상표현주의라고 평가됩니다. 아래는 "미술이야기"에서 발췌했습니다. 추상의 개념 양자역학은 추상화의 산실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리가 허구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 양자역학이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은 인간이 인간을 그린다는 것이 허구라는 이야기가 될까. 그래서 인간이 개입되지 않거나 인간과 무관한 조형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인간과 분위기를 함께 그린다. 그리고선 실체에서 분위기를 빼거나 분위기에서 실체를 제거한다. 호크니는 풀장에 다이빙의 순간을 그린다. 그러나 사람은 간곳 없고 물튀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것은 경직되고 개념화된 화면이 된다.  또 앙드레 드렝은 풍경 속의 인물을 하나의 색점으로 표상한다. 인체라는 실체에 쏟아지는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배경과 똑같은 점으로 그려낸다.  그것이 추상화였다. 추상화에서 인체가 빠지면 안되는 이유는 뒤샹의 작품에서도 극명하게 보여진다. 뒤샹이라면 이제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머리칼을 쥐어뜯는 흉내부터 내는 것이 좋다. 그만큼 골치아픈 화가이다. 평론가들도 자료만 모아두고 미술사의 평가를 기다릴 정도이다. 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직역해서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라고 많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신부도 노총각들도 없다. 그들이 쓰리라고 생각되는 도구와 분위기를 통해 단지 인간의 냄새가 암시될 따름이다.    추상화의 태동과 모네 모네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중에서 인상파를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화가로 평가된다. 그 중요성은 194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후광 아래 더욱 강조되었다. 색채의 영역에서 팔레트를 더욱 밝게 사용했다. 우중충하고 침울한 톤 대신 밝고 맑은 안료가 등장했다. 인상주의의 무한한 색채표현의 가능성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모네는 캔버스를 여럿 펼쳐놓고 시간마다 다른 캔버스에 루앙 성당과 건초더미를 그렸다. 그려진 것은 자연에서 얻은 순간적인 느낌이 아니라 가변적인 인상을 일관성 있는 빛으로 파악하려 했던 새로운 시각과 자율성이었다. 그거야 추상화 아닌가? 그렇게 묻겠지? 아니면 그렇게 물어주기 바란다. 사실 그것이 추상화의 태동이었다. 모네는 만년에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수련을 그렸다. 히로시게의 판화집 에 그려진 다리를 본따 일본풍으로 꾸몄다. 에서 이미 회화의 자율성은 암시되어 있었다. 수련에서 그 자율성은 극대화하여 추상으로 향하게 된다. 모네에게 추상이란 그림이 자신의 세계를 주장하고 형성하여 가는 자율성을 의미한다. 수련을 그릴 당시 모네는 거의 실명상태였다. 그때 그려진 그림이 화가의 의지에 따라 그려졌겠는가. 그림이 요구하는 질서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추상회화는 태동하고 있었다.     추상화의 성장과 마티스 마티스에게 표현은 인물이나 대상 및 에워싼 공간 비례등의 장식적 구성이다. 그 과정에서 음악의 상태가 십분 고려된다. 하모니, 멜로디, 리듬을 살리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한다. 이 제거는 본질환원의 과정을 연상케한다. 잘 계산되고 논리적으로 추론가능한 화면은 현상학적 접근방식으로 극대화한다. 그 결과로 탄생하는 것이 추상화면이다. 현상학이란 본질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언어나 사상 사유 등을 괄호 안에 가두어 나감으로써 현상에서 환원된 선험적인 본질을 찾아나간다.     뜨거운 추상-칸딘스키 칸딘스키는 추상화를 실증적으로 체계세운 화가로 평가된다. 인간사회의 공통적인 심적 정서적 바탕을 추상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칸딘스키는 법률가 지망생이었다. 45세가 지나 겨우 추상화풍을 정립했다.  칸딘스키의 작품을 보면 이게 무슨 그림이야 라는 말이 나오지? 도대체 뭘 그렸는지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하고 불평하지 말기 바란다. 이 그림은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다. 먼저 즉흥곡이라고 악보같은 제목이 붙어 있지? 미술과 연관은 노젓기라는 제목에 있다.  화면에는 배를 암시하는 빨간 아치형의 선이 있다. 그러고보면 노젓는 사람은 그리다만 것처럼 웅크리고 있다. 이제 알겠지? 이 그림은 석양에 노젓는 사람처럼 어느 부분만이 강조되어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추상화같다면 그것은 미적분 함수를 닮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대수함수는 이다. 한번 미분하여 이 가 그려졌다. 그리고 또 한번 미분하면 뭐가 나올까. 노젓기를 다시 거꾸로 놓고 석양에 보자. 어떻게 보일까? 그것이 두 번째 미분의 결과로 나올 추상화이다. 칸딘스키는 그렇게 대상성에서 비롯하는 추상화를 다졌다. 조형요소에 의한 추상이 대중에게 이해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렀던 것이다. 표현적 추상의 사상은 19세기 말까지 소급된다. 칸딘스키는 1911년에 의식적으로 추상작품을 창조했다. 풍경화나 인물화 또는 정물화 등의 일상적인 주제를 벗어나 음악의 상태로 접근했던 것이다. 그리고 색채가 있었다. 칸딘스키는 회고록에서 태초에 색채가 있었다라고 할만큼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추상형태들에 상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강도를 부여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 색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차가운 추상-몬드리안 몬드리안은 1908년에 로 성공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아수파적인 색채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큐비즘의 형체분할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어 줄곧 대상의 분해와 재해석에 매달린다. 밀물은 수직선으로 표현했다. 썰물은 수직선이다. 자연에서 연상되는 색채를 도식화했다. 노랑은 태양광선의 찬란한 움직임이다. 파란색은 공간의 무한확장이다. 빨강은 노랑과 파랑을 통합하는 중간색이다. 그것을 그래픽 디자인처럼 그렸다. 그가 주장한 신조형주의는 단순화에 역점을 두었다. 다양한 현상을 기호화함으로써 순수한 리얼리티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그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감과 대상 뿐 아니라 자신과의 악전고투로 얻어지는 결과였다.   추상, 구상에서 벗어나다 루치오 폰타나는 화면을 찢어 세계를 인간에게 직시하도록 했다. 포트리에는 화면을 밟을 수 있는 바닥에 깔았다. 일그러지고 갈라진 석고의 화면은 추함의 미학을 낳는다. 장 뒤뷔페는 가공되지 않은 예술이라는 뜻의 라르 브뤼를 하나의 이즘으로 제시한다. 나뭇잎이나 흙을 석고에 이개어 캔버스에 바르기도 한다. 클레처럼 아동화를 소재로 선택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전후의 불쾌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교황의 젊쟎은 초상화를 절규하고 찢어발긴 듯한 그림을 그린다. 알베르토 부리와 안토니오 타피에스는 어둡고 바위같은 릴리프와 찢어지고 불태운 천을 배치한다.  앙포르멜은 산발적인 유럽 작가들의 구심점이었다. 앙포르멜은 1952년 미셀 타피에가 사용한 말이다. 자발적인 테크닉을 위해 구상적이고 기하적인 그림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볼스, 포트리에, 아르퉁, 술라쥬, 마티외 등이 활약했다.   점, 선, 면, 색채-추상의 정립 폴록 신화의 제작자는 페기 구겐하임이다. 1942년, 먼저 자신이 운영하는 금세기화랑에 초현실주의자들의 전시를 연다. 당시 미국에 망명해왔던  마타, 달리, 마송 및 남편인 에른스트 등의 전시에 폴록을 끼워넣는다. 그러자 평론가 알프레드 바는 추상표현주의라는 애매한 이름을 붙여준다. 또 다른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는 액션 페인팅이라 불렀다. 한스 호프만과 아쉴 고르키의 그림에서 착안했다. 구멍 뚫린 깡통에서 페인트를 흘리고 다니는 폴록의 그림과 큼지막한 붓으로 휘저어 그리는 드 쿠닝의 그림에서 행위를 강조했다. 그러나 유럽의 앙포르멜과 연관지을 속셈이었다.   20세기 미술에서 추상을 조망하면 몇 개의 징검다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징검다리를 건느면서 다른 징검돌들을 보시면 더 쉽게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징검다리의 큰 돌 옆에는 작은 돌들이 큰돌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받혀줍니다.  때로는 작은 돌들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783    자동기술법 대가 ㅡ 잭슨 폴록 댓글:  조회:4135  추천:0  2015-03-29
자동 기술법 "액션 페인팅"의 대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그는 1912년 미국 와이오밍주에 있는 농장에서 태어나 1930년 뉴욕으로 옮겨와 정착했다. 이 곳에서 그는 벽화에 관심을 갖게되며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의 그림은 자신의 삶과 성격에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다. 일찍이 일거리를 찾아 가출한 아버지의 부재, 다섯 아들을 거느리고 가난한 살림을 꾸려간 어머니는 완전히 무절제했으며 자식들을 멋대로 내버려 두었다. 무책임하고 버릇없이 자란 잭슨 폴록은 18세 때 미술 지망생이던 두 형을 따라 대책 없이 뉴욕으로 갔으나 세계 경제 공황 속에서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며 알코올에 빠졌다. 우울증과 자격지심 등의 콤플렉스와 끓어오르는 반항감은 그를 더욱 알코올 중독으로 빠지게끔 하였다. 그의 난폭하고 심술궂은 기질은 거리의 개들을 발길로 차기도 하고 목청이 터져라 욕지거리를 쏟아내는가 하면 파괴적 음주벽으로 곧잘 병원이나 경찰서 신세를 지곤 했다. 20대 중반부터 그는 알코올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수없이 많은 융학파 정신과 의사를 거치며, 당시 미국 예술가들이 즐겨 썼던 "집단적 잠재 의식"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보편적 진실에 이르는 길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처럼 사적(私的)인 환상과 잠재의식을 끌어내는 작업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는멕시코 원주민식 벽화와 원시 미술과 신화를 차용한 피카소의 그림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20대 후반, 그의 그림들은 유치하고 조잡했다. 그 후 30세에 같은 그룹의 동인이었던4년 연상의 여류 화가"리 크레이스너"와의 만남은 잭슨 폴록에게 가장 큰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화가로 성공하기 위한 현실적 센스를 갖고 있던 그녀는, 폴록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고자신의 작업을 중단하면서까지 그에게 헌신적이었다. 폴록은 평생 처음으로 마음의 위안을 찾았고,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녀는 폴록에게 페기 구겐하임을 소개했고 새로운 젊은 화가들과의 접촉을 알선함으로써 그에게 커다란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적 역할을했다. 잭슨 폴록은 페기 구겐하임 전시로 미술계의 관심을 끌었고, 특히 몬드리안에게서 "신선하고 가장 독창적인 화면"이라는호평을 받음으로써 큰 각광을 받게 되었다. 몬드리안의 호평으로 큰 각광을 받기 시작하게 된 작품 이 그림의 선을 거부하는 독립적인 낙서 형태의 분산된 선 요소는 5년 후 물감을 들이부어 만든 선들의 추상 화면으로 발전된다. 1940년대 말 어느날 갑자기 그를 유명하게 해준 방울 떨어뜨리기 "드리핑(dripping) 기법을 발명하게 된데는 "앙드레 마송"의그림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 *앙드레 마송 - 1924~27년 사이 자동기술법에 의한 회화를 창시. "새로운 필요가 새로운 기법을 요구한다"던 그는, 이 시기부터 물감방울을 떨어뜨려 만든 그물들로 온통 뒤덮힌 작품들을 한다. 그의 그림들이 표출하는 끊이지 않는 힘은 그의 내적 리듬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왼손에 4리터 정도 되는 물감통을 들고 오른손은 붓자루, 막대기 등을 바꿔 들고 캔버스 가장자리를 구부린 자세로 춤추듯 왔다갔다하며 깡통의 물감을 들이 붓기도 하고줄줄 흘리거나 막대기에 물감을 묻혀 뿌리기도 한다. 쉬지 않고 움직이며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명 "액션 페인팅"이라 불리는 이러한 독특한 제작 과정은 다음 반세기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즉 자기 내부의 불안. 자격지심. 억압. 강박 관념을 뛰어넘어 오직 그 "과정"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을 때, 그 결과 누구도 흉내낼 수없는 가장 자신을 닮은 독창적 화면이 만들어졌으며,  바로 그 점이 잭슨 폴록의 성공을 가져다주는 핵심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한 그가 즐겨 듣던 재즈 음악은 작업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재즈야말로 미국에서 창조된 유일한 예술 형태이며 그림도 그런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밤낮으로 재즈 음악에푹 빠져있었다. 1951년부터 잭슨 폴록은 "드리핑" 기법을 조금씩 버리기 시작하고 종종 보다 전통적 회화기법인 나이프와 붓을 다시 사용하기도 하였다. 당시 그는 갈색이나 검정색의 에나멜 물감 자국들이 남기는 찬란한 데생들을 종이와 캔버스 위에 수도 없이 그려댔다. 이 작품들은 몸짓이기도 했고 암시이기도 했다. 때로는 완전한 추상이고 때로는 얼굴 모양을 띠기도했다. NO 7 초상화와 꿈 잭슨 폴록의 가장 특기할 만한 성공작은 , 식으로 번호가 매겨진 그저 반사작용적인 매듭이라 할 수 있는 흑백화들이라 하겠다. 그의 내면의 드라마나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의 분열,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어느 것도 택할 수 없는 불가능성, 융(Jung)식의 정신분석학자들이 그에게 적용한 유력한 치료법도 어쩌지 못한 잭슨 폴록의 정신적 혼란 같은 것들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그는 말기에 자신의 작품에 다시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다. 바다 회색(Ocean Greyness)에서 처럼 바다, 빛, 계절들, 곧 자신의 기상천외함을 일깨워 주었던 자연의 힘을 환기시키는 이름들을 다시 찾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알코올 증세를 돌보아 주던 친구 주치의의 죽음으로 폴록은 다시 입에 술을 대기 시작했고 이라는 대작 한 점과 몇장의 드로잉으로 명맥을 유지해 가던 중 44세 되던 해 음주 운전 사고로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마침 폴록전을 기획하고 있던 뉴욕의 현대미술관은 이를 회고전으로 바꿔 유럽 순회까지 했으며 그의 그림값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가 죽기 바로 전 6천 달러이던 작품은 다음해 3만 달러에 거래됐으며 마지막 대작 은 15년 후엔 200만 달러에 거래됐다. 당시 현대회화로서는 최고가였다. 반세기가 지난 그의 그림값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중요한 그림은 거의 시장에 내놓지도 않는 실정이다. 영화 배우 에드 헤리스는 잭슨 폴록의 전기를 보고 크게 감명받아 10년이나준비하고 연구하여 완벽한 폴록이 되어 영화를 만들었다. 잭슨 폴록을 이해하는 아주 훌륭한, 예술성 높은 영화였다. 이 시대에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도 공감이 가는, 꼭 봐야할 영화라 생각된다. 특히, 폴록이라는 인물과 혼연일체가 되게하는 마지막 장면과 배경 음악은 압권이다.(개인적 느낌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으나 사실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흥행은 커녕 이틀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782    초현실주의 시초 화가 - 죠르지오 데 키리코 댓글:  조회:2392  추천:0  2015-03-29
          죠르지오 데 키리코는 실제로 초현실주의 선언보다 먼저 등장한 화가니 초현실주의 선언과 함께 새로 생겨난 화가들과 같이 묶어 버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명백하게 초현실주의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매우 사실적인(사실적인 것이 눈에 보여지는 형태를 똑같이 묘사한 ''사진같은 그림''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형상들이 화면에 가득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초현실주의 화가의 대표로 알고 있는 ''달리''의 사실감과는 거리가 있다. 달리의 그림에는 그야말로 우리의 꿈 속에 등장하는 괴이한 상상들이 가득 차 있지만, 데 키리코의 그림은 너무 있을 법한 풍경이다. 꿈이라고 해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둘의 그림이 주는 느낌은 놀랍게도 동일하다는 생각이 된다.  데 키리코는 원래 공학도였다고 한다. 그림 또한 앙리 루소의 조금 어설픈 테크닉의 작품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그의 이력을 보아 데 키리코가 의도한 효과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의 그림은 항상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는 오후 시간 나른하면서 무엇인가 사건이 터지기 직전의 오묘한적막감을 느끼게 해 준다.  데 키리코는 동시대에 유행하던 큐비즘이나 미래파와는 전혀 색다른 그림을 그렸던 화가였다. 그는 카를로 카라와 함께 형이상학파라는 화파를 만들었다. 그의 그림은 언뜻보기에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들로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되면 어딘지 모르게 신비스럽고, 한편으론 불길한 느낌마저 든다.  비평가들은 ''가장 사실적인 묘사기법을 사용해서 부조화를 창조할 때 우리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이하고 오묘한 경험을 하게된다.'' 라는 평가를 하였다.  영화에서 연쇄 살인이 터지기 전의 오후에...유난스럽게 스산하고, 적적한 거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이 비유를 확인이나 해 줄 듯 "데 키리코"의 [ 1914]라는 작품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르네상스식의 건축물과 그 사이로 난 길 위로 보이는 두 사람의 그림자이다. 왼쪽에 밝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르네상스식 건축물, 원근법이 쓰여져 있긴 한데, 뒤로 갈수록 급속도로 축소되고 있다. 현실적인 원근법이 쓰여졌다고 하기 어렵다. 문이 열린 마차와 아치형태의 열주, 그리고 이 무섭고 한산한 건물의 어둠 속에서 혼자 굴렁쇠를 굴리는 소녀.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는 소녀의 앞에 수상한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몸은 어둠에 싸인 건물에 가려졌기 때문에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또는 선량한 시민인지, 어린이 살인범인지 분간할 길이 없다. 만약 내가 굴렁쇠 소녀 옆에 있었다면 그 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조화인 것이다. 늘 보는 평범한 것이 부조화로 인해 달라 보일 때 우리는 기이한 경험을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현실속에서 볼 수 있는 건축물이긴 하나, 과장된 원근법을 사용하여 왠지 낯선 느낌을 준다. 길위에는 한 소녀가 굴렁쇠를 굴리면서 뛰어가고 있다. 그녀가 뛰어가는 방향을 시선으로 ?다보면, 오른쪽 건물 뒤로 정체모를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이 그림은 여러가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건물 뒤에 서 있는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는 소녀를 기다리는 걸까? 트레일러는 왜 문이 열려 있을까? 저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무엇을 실으려고 하는걸까? 사람들은 왜 그림자로 표현되었을까? 이런 저런 질문을 떠올리면서 그림을 보다보면 왠지 불길하고 으시시한 느낌이 든다다. 마치 꿈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데 키리코는 매우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들을 그렸지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우리가 완벽하게 알아볼 수 있는 지극히 현세적이고 일상적인 것이다. 즉, 등장하는 사물 그 자체가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아니다.  [ 1914]에는 아폴로상의 머리, 외과의사의 수술용 장갑, 공,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 르네상스식의 건축물... 각각 보았을때는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사물들이지만, 그들의 기묘한 조합이 그들을 낯설고 환상적이게 한다. 또한 사물의 비정상적인 크기는 사물 자체의 친숙성을 오히려 낯설다. 담에 걸려있는 아폴로상과 장갑은 건물과 비교할 때 비정상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는데 이들이 왜 한 장면속에 묘사되어 있는지도 알수 없다.  데 키리코의 이런 그림들은 상징주의자 로트레아몽의 싯구를 떠오르게 한다. "수술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기이한 아름다움..." 데 키리코의 사물들도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낯익은 대상이라도 그것이 놓여있는 본래의 일상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여 있을 경우, 우리는 매우 낯설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기법을 초현실주의자들이 매우 좋아했었는데, 전문용어로는 전치 혹은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고 한다. 데키리코의 그림에는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연상시키는 대상이 항상 등장한다. 이태리는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을 누렸던 나라일 뿐아니라, 15~16세기 르네상스라는 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한 후, 17세기가지 유럽 문명의 중심지로서 지위를 누렸던 나라였다. 그러나 18세기이후 불란서에 문화 선진국의 지위를 빼앗긴 이후 현대에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유럽내에서 후진적인 위치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현대의 이태리인들은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와 과거의 찬란함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데 키리코의 그림에서도 그러한 이태리인들의 정조를 읽을 수 있다. 
781    초현주의 기법들 댓글:  조회:4581  추천:0  2015-03-29
초현실주의(surrealism:1924-1940)   1. 특징     1) 배경       *1차 세계대전, 다다이즘, 프로이드 정신분석학,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회화     2)특징       *1차대전 이후부터 2차대전 직전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문예운동       *이성을 거부하고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표현을 강조       *우연성을 드러내는 표현기법 활용 -자동기술법, 전치기법, 변형(데포르마숑), 콜라         주,  프로타주, 데칼코마니 등     3)주요작가            [키리코]  - 현실이면의 세계를 상징하는 형이상학적 회화         *초현실주의 운동에 영향을 줌         *형이상학적 회화의 주도자.         *그의 작품에는 텅 빈 도시의 한 모퉁이나 마네킹이 많이 등장         *원근법을 왜곡시키고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변형하여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느낌.         *대표작 : 거리의 우수와 신비       The Red Tower (La Tour rouge), 1913 Oil on canvas, 73.5 x 100.5 cm Peggy Guggenheim Collection       [마송] - 자동기술법          *대표작: 물고기들의 전쟁   Andre Masson. Automatic Drawing, 1924, Ink on paper, 23.5 x 20.6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에른스트]: 콜라주, 프로타주, 데칼코마니 기법 사용          *대표작: 비온 후의 유럽     장미빛깔의 새들, 비온 후의 유럽(위 두 작품 차례대로), 성안토니오.       [달리]: 변형된 환각적인 형태를 극사실적으로 표현           *편집증적 비평법(한 형태를 여러 가지 이미지로 착각하게 표현하는 것)           *대표작: 내란의 예감, 기억의 단편        내란의 예감(1936), 기억의 영속(1931)         [미로]: 시적, 환상적 유기적 기호를 자동기술법적으로 표현           *유기체적인 다양한 형태에서 무한한 상상의 즐거움과 유쾌함을 느낄 수 있음           *오토마티즘 기법, 서정적, 색채와 형태가 밝고 순수           *대표작: 네덜란드 풍의 실내       [마그리트]: 전치기법으로 비논리적이고 낯선 상황을 표현           *대표작: 허공위의 성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운동. 쉬르레알리슴이라고도 한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처음에 쉬르나튀랄리슴[超自然主義]이라는 명칭을 생각했으나, 철학용어로 오해받을 것을 염려하여 초현실주로 고쳤다고 한다. 초현실주의가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앙드레 브르통이 《쉬르레알리슴 선언》을 발간한 24년부터이며, 25년에는 이 운동의 첫 종합전이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초현실주의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나 추상예술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달리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밀한 묘사력은 사실(寫實)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 A.마송, J.미로, M.에른스트의 작풍(作風)에도 추상화의 경향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성·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초현실주의 뿌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다다이즘에서 찾아야 한다.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기성의 전통·질서에 대한 파괴운동이었던 만큼 비합리를 예찬하고 때로는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흐르며, 콜라주와 같은 새로운 기법, 오브제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도 채택했으며, 초현실주의 강력한 무기인 에로티시즘에 이르러서는 다다이즘의 비도덕적인 자세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기원을 더 먼 곳에 찾아본다면, 그것은 당연히 입체주의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20세기의 예술운동 속에서 야수파나 표현주의 이상으로, 입체주의는 혁신적인 공간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야수파나 표현주의가 원색주의를 택하고 강렬한 감정표현을 주체로 삼았다고 한다면, 입체주의는 종래의 회화를 부정하는 순수한 이념화(理念化)만을 꾀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한 개의 화면을 완벽한 평면으로 보는 관점이며, 일찍이 세잔이 추구한 원근법이라든지 전경·후경의 배치와는 별도의 구성, 별도의 공간개념을 필요로 하였다. 초현실주의 공간은 많은 경우, 상상적 공간이며 비현실의 공간이다. 따라서 초현실주의는 간접적으로 입체주의의 계열을 잇는 공간파악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그 때까지 빙산처럼 수중에 가리어 있었던 무의식의 영역에 눈을 돌렸다. 즉, 이성(理性)의 반대의 극점, 합리의 반대쪽의 세계이다. 초현실주의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술은 이성과 감성, 정신과 마음이 합치는 지점에 그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미 예술은 그러한 조화·통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의 자아는 밝음과 어두움의 두 부분으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자아의 확대라는 문제에 제일 먼저 눈뜬 것은 낭만주의였다. 여기에 미술사가들이 지적하듯, 낭만주의에서 직접 초현실주의로 맥을 잇는 정신의 계보가 있다. 한 예로서 독일 낭만파의 노발리스, L.티크, W.H.바켄로더의 사상을 생각할 수 있다. 《예술환상》의 저자인 바켄로더는 끝없이 감미로운 도취상태에 그의 예술의 뿌리를 박고 있었으며, 티크는 격렬한 자아의 분열상태 속에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티크의 대표작인 《프란츠 슈테른발트의 여행》 속에서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사상의, 이 끝없는 동요가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 나의 마음을 살짝 만지며 스쳐 지나가는 그 부드러움이 내 마음속에서 뿌리를 내려준다면, 나는 행복에 대해 말할 수도 있게 되고 예술가도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억압할 수가 없다. 불가항력이라고나 말해야 할지. 나의 계획·희망·신념 모두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새로운 감정에 빠져버리고 만다.” 또한 《푸른 꽃》의 저자인 노발리스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꿈의 세계 속에서 방황을 계속했던 사람이다. 독일 낭만파 문학에서 영향받은 독일 낭만파의 회화는 O.룽게나 C.D.프리드리히의 회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무한대의 동경을 그 특질로 삼고 있다. 또 그들의 작품에는 종교적 감정이 짙게 스며들어 있다. 초현실주의는 종교감정 대신에 프로이트의 리비도설(說)이 도입된다. 따라서 인간의 숨겨진 부분에 상상력을 펼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술적으로 보아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인 V.위고는 그의 데생에서 이미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오토마티슴)에 가까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여류작가 G.상드가 풍경화 속에다 이끼나 꽃 같은 것을 붙인 것도 일종의 콜라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모두 무형체를 지향하였다. 창조력이란 그것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현존하는 것을 뛰어넘어, 비구상(非具象)의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낭만주의는 자아를 절대시하고, 그것에 무제한의 능력을 부여했을 때에 비로소 초현실주의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가능한 한 참되게 표현하려고 하는 초현실주의의 갖가지 시도는 시·회화·사진·영화 속에서 현실적인 연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당시의 모순된 현실과 결부되어 예술일반의 인식을 비약시키고 20세기 특유의 환상예술을 발흥(勃興)시키게 된다. 특히 미술의 경우 초현실주는 종래의 공간의식과는 별도의 비현실세계를 겨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새로운 테크닉을 필요로 하였다. 도밍게스의 데칼코마니, 에른스트의 프로타주, M.레이의 레요니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와 같은 테크닉이 충격의 효과를 미리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인 R.마그리트에 이르면 큰 바위덩어리를 공중에 띄워놓는다든지, 낮이 밤으로 변해 있는 등 정신의 전위(데페이즈망)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기법에 있어서의 데페이즈망과 정신에 있어 그것이 초현실주의의 최대의 표현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표적인 미술가로서는 그 밖에 Y.탕기, M.뒤샹, A.자코메티, 레오노르 휘니, J.B.파렝, 투아이앙 등을 꼽을 수 있다. 초현실주의운동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에 하나의 변혁을 가져왔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다다이즘의 파괴적인 태도에 만족할 수 없었던 브르통, L.아라공, P.엘뤼아르, F.수포, A.페레, R.데스노스, 크르베르 등이 《쉬르레알리슴 혁명》지(誌)(1924∼29)를 통해 문학 운동을 펼쳤다. 영감(靈感)의 발생을 천명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꿈이 지니고 있는 여러 힘의 찬양, 자동기술(自動記述)에 대한 깊은 신뢰, 초현실적 사실의 열렬한 탐구와 평행하여 사회생활이 개인에게 강제하는 모든 것의 금지를 문제삼고 혁명을 통한 자유의 도래를 그려보며 영원히 온갖 제약을 파기하고, 종교적·정치적 신화를 타도하고 사회의 명령에서부터 해방된 개인의 승리를 보장하려 했다. 또한 문학·예술에 한정하지 않고, 윤리·종교·정치의 면에 있어서도 기성관념에 대한 수정을 가하는 하나의 주의로서 형성되었다. 1924년 브르통의 《쉬르레알리슴 선언》의 발표와 기관지 창간 이후의 수년간, 이 운동의 불길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문학작품으로서는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 《문체론》, 엘뤼아르의 《고뇌의 수도》, 브르통의 《나자》 등이 이 운동의 실험에 있어서 빛나는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이어 새로운 기관지 《혁명에 봉사하는 쉬르레알리슴》이 창간되고, 초현실주의와 초합리주의가 일체를 이루는 브르통과 엘뤼아르의 공동작 《무원죄수태》, 브르통의 대표시집 《자유로운 결합》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 일파의 혁명적 야심은 점차 인간의 미적·윤리적 개념의 전복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정치면에서의 직접 행동으로 옮아갔으나, 초현실주의의 이론과 공산주의 이론의 일치에 실패하여, 이 운동은 분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년 우크라이나의 하르코프에서 열린 국제혁명작가회의에 참석한 아라공은 소련에서 정치시(政治詩) 《적색전선》을 발표한 바 있는데, 후일 이 시가 프랑스에 전해지자 이른바, ‘아라공 사건’을 일으키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공산당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택한 아라공은 다음해 이 그룹에서 제명되었다. 30년대에 접어들자, J.위녜의 《쉬르레알리슴 소시선(小詩選)》, 브르통의 《새벽》, 엘뤼아르의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시집 《민중의 장미》, 화가인 S.달리의 《비합리의 정복》이라는 편집광적 비판의 방법에 관한 논문이 쏟아져나옴으로써, 문학·회화 양면에 걸쳐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할 수 있다. 이 무렵부터 초현실주의는 국제선전운동으로 나타나, 36년에는 런던에서, 38년에는 파리에서 브르통, 엘뤼아르가 중심이 되어 ‘국제쉬르레알리슴전(展)’이 열렸다. 그 사이 브르통의 《미친사랑》, 엘뤼아르 시집, 로트레아몽의 《전집(全集)》이 출판되는 등 성과를 거두었으나, 브르통은 36년의 에스파냐내란 이래로 공산당에 접근하기 시작한 엘뤼아르와 드디어 결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기간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이 초현실주의 운동의 재창조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평과 신화의 인식과의 방향으로 쏠렸다. 대전중에 브르통, 베레, 달리 등은 미국으로 건너가 해외에서 초현실주의의 선전을 계속하였다. 47년 귀국한 브르통이 파리에서 ‘국제쉬르레알리슴전(展)’을 열고 공산당과 실존주의자들에 대한 집단선언서 《즉시결렬》을 발표하였다. 이 방향에서 나타난 전후의 대표적 작품은 브르통의 시집 《샤를 푸리에에게 주는 오드》가 있다. 유파로서의 초현실주의는 일단 이론적인 면에서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으며, 미학적인 면에서의 영향은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크다.   1. 자동주의 automatisme   오토마티즘은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에 투영하려는 초현실주의의 의도를 나타낸 대표적 기법으로, 가능한 의식(고정관념,이성들의 영향)이 배제된 상태에서 손에서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움직임과 형태를 작품화한 것이다. 에른스트가 발견한 프로타주와 오스카 도밍게즈가 작품에 이용한 데칼코마니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형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오토마티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학 분야에서의 오토마티즘은 미술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구절들을 이성의 통제없이 무의식적으로 써내려가는 방법을 말한다. 초현실쥐의 미술의 초기인 1920년대에 이 기법이 주로 쓰였으며 대표적 작가로는 마송과 미로가 있다. 2. 프로타주 frottage   에른스트가 1925년 여름에 마룻바닥의 얼룩을 보고 있다가 거기에서 온갖 환각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고 발견한 기법으로, 나무 파편이나 나뭇잎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을 문질러 그림이 떠오르게 하는 수법을 말한다. 이 기법은 우연한 효과를 노리는 것뿐 아니라 몇가지 피사물을 의식적으로 짜맞추는 경우도 있고 혹은 거기에서 나타난 무늬에서 힌트를 얻어 붓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지 자체의 우연성을 중시하는 프로타주로 제작한 초기의 34점의 작품은 에른스트는 박물지 (historre naturelle)라는 책자로 출판했는데 여기에 등장한 형상들은 문질러 나타낸 나뭇잎,헝겊 따위가 인간의 머리,괴물,바다 풍경등으로 변모된 것이다. 3. 데칼코마니 decalcomanie 轉寫法   원래는 도기나 유리기구등에 특수한 종이에 그린 그림을 옮겨서 염색하는 기법으로, 회화에서는 미끄러운 성질의 종이에 물감을 칠하고 그것을 접었다가 다시 피거나 또는 다른 종이를 그 위에 대고 눌렀다가 뗄 때 생기는 우연한 효과를 작품에 이용한 것을 의미한다. 이 기법에 따른 우연한 형태 - 산맥, 산림수목, 인간장기 등 - 에 부분적으로 가필을 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영상을 표출하도록 한다. 1935년 오스카 도밍게즈가 그의 과슈작품에 처음으로 도입했으며 에른스트도 2차세계대전 직전에 종종 이용했다. 예전의 그림붙이기에 사용되었던 것과 근본적으로 달리 즉, 완성된 그림을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한 얼굴이나 어긋남의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4. 데페이즈망 depaysement 轉置,轉位法   어떤 물체를 본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것으로 문학에서 '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로트레아몽의 싯귀는 데페이즈망의 적절한 예라 하겠다. 초현실주의 회화에서는 낯익은 물체를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으므로써 꿈속에서 밖에 없는 화면을 구성했는데, 이는 심리적 충격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데페이즈망의 대표적 작가로는 마그리트를 들 수 있으며 꼴라주와 오브제도 일종의 전위라 할 수 있는데 이 방법들은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데 기여했다. 5. 레이요그램 rayogram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감광 재료 위ㅣ해 물체를 얹어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명암 속에서 추상적 사진을 찍은 것이다. 포토그램과 같은 것으로 파리에 있던 미국의 초현실주의자인 만 레이가 1923년 블룸이란 잡지 4월호 표지에 발표하면서 이 명칭을 붙였다. 후에 그는 자작집에서 레이요그래프로 고쳐 부르기도 했다. 1921년 자비로 출판의 한정판으로 레이요그램 작품을 트리스탄 짜라의 시와 함께 발표한 바 있다. 6. 꼴라주 collage   화면에 인쇄물,천,쇠붙이,나무조각,모래,나뭇잎 등 여러 가지 물질을 붙여 구성하는 기법으로 초현실주의 작품에서도 기성품에 손질을 가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물체끼리 조합시키므로써 별개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비유적,연상적,상징적 효과를 노리는 방법으로 쓰인다. 에른스트는 1919년부터 초현실주의적인 꼴라주작품을 시도했는데, 그의 작품은 잡지,카탈로그, 삽화등의 그림을 부분적으로 오려 아무 관련성없이 재배치하여 부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환상의 세계를 일깨운다. 또한 1924년 라는 작품에서는 문짝,손잡이 등의 사물을 꼴라주하여 초현실주의 사상에 부합되는 이미지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7. 오브제   예술과 관련없는 물견,또는 그 부분을 본래의 일상적 용도에서 떼어내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잠재한 욕망이나 환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 발견된 오브제, 환영 오브제, 봉상적 기능의 오브제, 존재적 오브제 등  
780    초현실주의 화가 - 랍곤살베스 댓글:  조회:2603  추천:0  2015-03-29
                                                                                                            랍 곤살베스(Rob Gonsalves)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공간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그림들의 주인공은 캐나다 출신 화가 랍 곤살베스.   의인화된 해바라기를 청중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사, 옥상위의 기타리스트를 청중마냥 내려다보고 있는 복층의 집들, 빙판길인지 밤 하늘인지 구분하기 힘든 공간을 유영하는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 등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그의 그림 속에 펼쳐진다.     1959년 토론토에서 태어난 곤살베스는 12살 때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16살 때 초현실주의파인 달리(Salvador Dali)와 탕기(yves Tanguy)를 접하며 정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90년 토론토 야외 예술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첫번째 전시회를 연 이 화가는  무의식의 발현을 모토로 하는 일반적인 초현실주의와는 달리 정교한 계획과 의식적인 화면구성으로 엮어내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매직 리얼리티(magic reality)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간 착시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장면의 사실적 묘사, 수학적 개념의 도입은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나 마그리트(Rene Magritte)와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그의 그림에는 기존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시각적 불편함과 공포가 없다는 점에서 대중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해외 저명인사들의 수집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779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댓글:  조회:3406  추천:0  2015-03-29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작품 세계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는 익숙한 우리의 감각을 뒤집고 관습을 거부하며 실제의 세계를 시험하기 위해 한 평생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창의성을 회화속에 표명함으로서 '어떤 불가능한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리하여 화가라는 이름을 거부하며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음악이나 글로 생각을 나누듯이 회화를 통해 사람들과 생각을 교류하려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에게 회화란 현상세계를 넘어서는 '메타 리얼리티'를 불러일으키는 수단이자 존재의 평범함에 대항하는 영원한 반항정신의 전달체였다. 그럼에도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는 달리 비현실적이고 터무니 없는 대상 창조에 지나치게 탐닉한 적은 결코 없었다. 일상의 익숙한 오브제들에 자신의 '시적 아이디어'를 가미하여 '뭔가 익숙하지 않은 다른 것'을 만들어 내었다.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에서 최초로 중요한 시기였던 1920년대 후반에 그는 영감처럼 떠오르는 수많은 관념에 사로잡혀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려 빠른 속도로 작업했다. 사실상 이후 작품에서 보이는 다양한 구성 요소와 부차적 이미지에 대한 주요 주제들이 이 시기에 형상화 되었다. 이 무렵의 대다수 작품들은 일상 세계의 요소들을 기발하게 재배치하여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정신 상태를 뒤흔드는 시적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1930년대는 예술가, 탐구가, 철학자로서 큰 성과를 이룬 시기였다. 그가 초기 작품에서 암시했던 여러 아이디어와 문제의식들을 구체화시켰으며, 완전한 시각적 결실을 맺는데 성공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죽음에 대한 몰두가 그의 회화세계를 지배했다. '관' 시리즈의 작품들이 이 시대의 경향을 대변했다.   1950년대에 들어서는 여러 형태와 크기의 바위에 매혹되었다. 이 시대에 유명한 를 통해 바위의 무거움과 부동성에 대한 일반의 고정관념을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공중부양'의 개념으로 깨어버렸다. 그림 에서도 바위는 구름처럼 공중에 붕 뜨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지 공간속에 일시 정지하고 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게 했다. 이것은 400년간 지속된 뉴턴의 절대공간과 시간관을 뒤엎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과학관에 회화적으로 동조하는 격이 되었다.       1960년대 초부터 사망한 67년까지는 현실과 환상의 이분법을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유리창과 이젤의 이미지를 계속 변용 실험했다. 에서 '그림 안의 그림'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실을 보는 창문'의 기능을 발휘하게 하여 숲의 외부와 내부 세계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면서 실재像과 그림像의 통합을 모색했다.    한편 주목받는 것을 싫어한 마그리트 자신의 특성은 말년 작품들에 자주 나타난 중절모를 쓴 남자의 익명성 속에 반영되었다. 이 남자는 배출할 길 없는 재능을 타고난 듯하지만 그 어떤 형이상학적인 고독감에 둘러쌓여 있는 분위기를 풍겨 철학하는 예술가로서 마그리트가 평생동안 부대낀 고달팠던 내면을 생생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기쁨(1926)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같은 소녀가 살아있는 새를 먹어치우는 엽기적 형상을 보여주는 이 그림에서 마그리트가 로트 레아몽이나 막스 에른스트같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이유없는 잔학행위를 통한 환각적 詩情 표출 방식에 어느 정도 경도된 듯함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시대 이후 그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약간의 객기가 묻어난 작품이다. 어쩌면 이것도 불가능함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마그리트 회화정신의 정상적인 발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위기에 처한 암살자(1926~27)   이 그림은 1920년 후반 사악한 악마적 천재로서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 숭상되던 범죄영웅 '팡토마'(Fantomas)의 스토리 중 하나를 회화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형사처럼 보이는 중산모를 쓴 두명의 침입자가 문밖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방안에는 끔찍한 여인의 시체가 침대위에 널부러져 있으며, 축음기 앞에 수상하게 서있는 암살용의자같은 남자는 그의 모자, 외투, 서류 가방이 놓인 정황으로 봐서 이 방에서의 탈출을 노리는 듯하다. 방 저쪽 창문가에는 3명의 남자가 방관자처럼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회화적 이미지를 통해 긴박한 상황을 형상화하는데 성공한 마그리트식 범죄스릴러물이다   연인(1928)   이 그림에서 엿보이는 유령같은 이미지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헝겊이나 스타킹으로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는 팡토마의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잠옷으로 얼굴을 감싼채 익사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라 할 수 있다.   불길한 날씨(1928)   구름을 밀쳐 내고 하늘에 떠있는 방해물들인 세가지 오브제의 부조화스러운 결합은 이 그림의 역설적 의미를 푸는 열쇠가 된다.   거대한 나날들(1928)   이 그림 역시 '팡토마'(Fantomas) 시대의 엽기적 블랙유머 분위기가 묻어나게 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강간의 폭력성을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카프카적 변신감을 통해 완화시키는 폼이 이 시대의 전도된 예술 및 도덕관을 재치속에 냉소감을 머금은 채 전하는 듯 하다..    불가능한 것의 시도(1928)   인간의 조건(1933)   실제의 대상과 그림으로 묘사된 것 사이에 존재하는 애매모호함을 '그림 안의 그림'이라는 주제를 통해 마그리트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방 안 캔버스 위에 그려진 풍경을 보는건가 창문 밖 풍경을 보는 것인가?.. 저기 서있는 나무는 우리 머리 속에 있는 관념상인가, 아니면 실제로 바깥에 존재하는 실상인가?..   가짜 거울 The False Mirror(1935)   여행자(1937)   분명한 연관관계가  없는 오브제의 결합이 구형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제시되어 여러 다양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고정된 시간(1939)   향수(1941)   이 그림은 독일이 2차대전 초 벨기에를 점령한 시기에 제작되었다. 이 나라 출신인 마그리트는 조국의 국가문양인 사자를 앞발 하나 뒤집은 채 등장시킴으로서 강점을 당한데 대한 자신의 아픔을 보여준다. 점령 전에 누렸던 자유의 향수에 젖어 다리 난간에서 명상하는 날개 달린 남자의 형상은 다름 아닌 자신을 묘사한 것이었으리라..   좋은 징조 The Good Omens(1944)   장롱속의 철학(1947)   감추어야 할 신체의 특징을 표현하는 주제는 이전 작품들에서도 간간이 나타난다.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발과 신의 결합이 다소 낯설기는 하나 익살스러움이 훨씬 더 느껴진다   길잃은 기수(1942)   실제로 보이는 것 이상의 신비하고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시적 관념을 도입한 것이 바로 이 의 연작 시리즈이다. 완결편인 여기에서 마그리트는 시적 탐구를 위해 형태에 대한 모든 연구는 잠정적으로 유보시킨 듯하다. 달리는 말에 올라탄 기수의 격렬한 움직임은 주위에 꼼짝않고 쥐죽은 듯 서있는 나무들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며 그 어떤 시지프적 숙명감을 자아낸다   기억(1948)   마그리트가 이런 주제로 그린 초기 작품들 중 하나이다. 관자놀이를 다친 고전적 조각상의 머리는 조르지오 데 카리코의 를 참조하였으며 부차적으로 로트레아몽의 도 참조하였다. 그가 참조한 이 두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신비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이다   개인적 가치(1951~52)   빗, 브러시, 컵, 성냥개비의 크기 관계를 변화시켜 잠자는 침실에 배열해 놓음으로서 침실을 하늘 밖으로 트여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바꿔놓는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전이시키려는 크기변화 시리즈 작품 중 하나이다.    자연의 은총(1952)   새들이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른 나무잎으로 변형되어 보이는 가운데 바다 저멀리 떠있는 상상의 섬들은 이 변형놀이에 그 어떤 신비감을 덧붙인다. 즉 비슷한 이미지들의 미세한 변형에 의해 일상적 상투성이 제거되자 자연 속에 숨겨져 있던 무엇인가가 갑자기 보여지는 듯 하다   골 콩드(1953)   유사(類似)의 관계는 원본과 복제 사이에 위계질서가 있으면서 그 동일성에 집착하나, 상사(相似)의 원리에서는 그 집착에서 벗어나 복제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속에 서로 간의 차이를 전개시킨다. 이 그림에서는 마그리트는 바로 그런 상사놀이의 진수를 보여준다. 즉 복제물 간에 미세한 뉘앙스의 차이를 만들며 동일한 이미지를 여러번 반복할 때 얻어지는 시각적 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공동의 발명(1953)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읽어온 독자들이 이렇게 상하체가 뒤바뀐 반신반어적 물체를 처음 보면 그 어떤 충격과 함께 상당히 낯설어 보일게다... 하지만 누구라도 한번 쯤 이런 존재에 대한 상상은 마그리트가 아니라도 이미 해보지 않았을까?..    헤겔의 휴일(1958)   여기서도 물을 받아들이는 물컵과 물의 스며듬을 막는 우산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오브제를 병치시켜 그 어떤 대응관계를 모색해 봄으로서 물질세계의 모든 독단적인 고정관념을 깨려 한다. 그 결과 역설의 개입을 통해 예기하지 못한 연관성을 재발견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   피레네 산맥의 성채 (!959)   이 작품은 우리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어버리려는 의도 속에 바다위에 풍선처럼 띄워진 거대한 바위성채라는, 거의 생각하기 어려운 역설을 기발하게 보여주고 있다.  허공에 떠있는 바위성채는 자신은 단단하게 지상에 뿌리박고 있어 안전하다 여기는 고정관념자들에게 사실은 언제 뒤집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더없이 불안한 상황에 그들이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역발상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빛의 제국(1954)   여기에서 보이는 것은 창문 안과 가로등에서 발산하는 빛에 비춰지는 잎이 풍성한 나무와 그 사이에 놓여있는 집 건물 뿐이다.  이상한 것은 구름으로 덮힌 대낮의 푸른 하늘이다. 가로등 빛이 눈에 띄는 밤의 풍경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푸른 하늘이 천연덕스럽게 그려진 것이다. 이렇게 현실의 양극적 대상들을 '낯선 병치'를 통해 서로에게 스며들게함으로서 그 어떤 그럴 듯한 '실제적 화합물'로 재탄생시키려는 마그리트의 회화철학적 시도는 이 후 본격화된다.   유클리드의 산책(1955)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창문 밖 정경의 일부가 동일한 광경을 묘사하는 실내 캔버스에 의해 감춰진 장면으로 다시 회귀한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요소가 첨가되어 색다른 대응관계가 성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원근법에 의해 멀어져 가는 거리의 형상을 탑의 원뿔 형태와 유사하게 대응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시각적 모호함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있다   걸작 또는 수평선의 신비(1955)   중절모를 쓴 남자는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마그리트 자신의 심성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는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떠돌며 살지만 자신의 내면적 욕구를 언제나 감추고 살아야 할 운명을 타고난 듯 하다.   아르곤의 전투(1959)   에서처럼 여기서도 바위는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채 공중에 붕 뜨있을 수 있다. 그런데 위로 뜨는지 아래로 떨어지는지 , 아니면 공중에 일시 정지하고 있는지는 갸름하기가 어렵다. '내부'와 '외부'의 애매모호함과 마찬가지로 마그리트는 '여기'와 '저기'라는 양극성을 통한 절대적 최종 배치를 결코 확정짓지 않는다.   모험정신(1960)   여기에서도 중절모를 쓴 남자는 배출할 데 없는 재능을 타고 났지만 금욕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고독감에 둘러싸여 있는 듯하다. 그는 또 평범함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항상 그것을 전복시키려는 모험정신에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    우편엽서(1960)   폭포(1961)   거대한 테이블(1962)   대상의 크기를 바꾸고 낯선 장소에 병치시킴으로서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하는 '생각의 불꽃'을 당기게 해준다. 떠있는 초생달을 보면 밤인 것도 같고, 뭉개구름의 질감으로는 낮인 듯도 하고..   아른하임의 영역(1962)   이 작품에 대해 마그리트 자신은 같은 제목의 이야기를 쓴 에드가 알란 포우가 무척 좋아할 '예술가적 상상력을 현실화한 것'이라 평했다. 웅장한 산은  자신을 두 날개를 펼친 새의 형태 속에 자신을 나타내어 보이지만 앞에 놓여있는 창문 난간 위 새둥지와 그 속 알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다시 거대한 새처럼 여겨진다. 여기서도 마그리트는 우리에게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환상의 창문을 제공하고 있다.   대가족(1963)   저 커다란 새가 그려진 작품의 제목이 "대가족"이라니... 어쩌면 마그리트는 관람자들이 당혹해하는 것을 즐기려 했는지도 모른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의식과 지식에 대한 그의 이율배반과 역설은 많은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켰지만, 우리에게 이런 그림을 제시함으로서 저 새의 날개처럼 상상력의 나래를 한껏 펼치게 한 것도 사실이다.   무한한 감사(1963)   백지 위임장 The Blank Check(1965)   말이 분할된 부분들이 모호하게 보여 나무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갸름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마그리트가 즐겨 다루었던 '현실과 환상간의 대립'에 빠져든다. 마그리트는 객관적 세계인 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가를 묻는 듯하다..   좋은 관계(1967)   세 개의 전이된 요소들은 하늘에 감추어진 미묘한 우주의 자취인 듯 하다. 이들은 우화적 의미 속에 새롭게 융합되기 위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얼굴과 맞지 않는 기구라는 사물은 안구라는 새로운 대상으로 융해되는데, 이는 어떤 사물을 다른 것으로 대치시키는 마그리트의 창작 기법의 하나이다.   삶의 예술(1967)   마지막 절규(1967)   낯선 방법으로 연관되는 대상을 중복시킴으로서 감추어진 존재의 비밀을 느긋하게 드러내 보이는 대가의 농익은 솜씨가 물씬 풍긴다   아름다운 현실(1967)   여기에서 사과와 테이블의 관계는 상대적 위치, 바다 배경, 공중에 떠있는 듯한 설정으로 인해 완전히 도치되어 나타난다. 먹는 과일로서의 사과에 대한 일반적 관념은 사라지고, 낯선 도치속에 전혀 새로운 이미지가 창출된다.    
778    쿠쉬 그림 해설 댓글:  조회:7645  추천:0  2015-03-29
작가 소개       주요작품 Review        Section 1 : 무의식 (Unconsiousness)     "도시의 물고기", Fish in the City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50.8x80cm  ​ 어스름히 해가 저문 뒤의 도시, 저 멀리 도시는 안개 자욱히 희미해지고 창문으로는 작은 빛들이 남아있다.  일렁이며 흐르는 도시의 강에는 허공을 가로 지르며 커다란 물고기가 하나 유유히 헤엄친다.  흡사 미지의 세계를 보는 듯한 이 작품은 도시괴담을 연상시킨다.  사람들이 잠든 후 이 도시는 낮 한때 다리였던 곤충과 강이였던 물고기가 변신하여 깨어나는 시간이다.  여기서 인간은 관찰자일 뿐이다. 쿠쉬는 이 작품에서 도시의 밤의 일렁이는 에너지를 표현했다.     "아프리카 소나타", African Sonata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61x53.3cm 이 작품은 아프리카 동물들의 상징적인 오케스트라를 상상하게 한다.  코끼리는 트럼펫을 연주하고 순록들은 하프연주를 시작하려한다.  새들은 모여들며 축하 향연을 준비한다.  지상의 생명체들은 생명의 기쁨과 환희의 음악을 연주하려한다.  코끼리는 다른 동물들을 아우르는 포용력과 지혜, 관용을 상징하며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순록의 뿔은 성스러운 예언을 상징한다.  쿠쉬는 이 작품에서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동물들의 협연을 상상하였으며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려 했다.     "지중해로의 하강", Descent to Mediterranean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59x99cm 고대 로마인들에게 “우리들의 바다(Mare nostrum)” 라고 불렸던 지중해는  남, 북 또는 동서양으로 제국주의에 의해 분리되었던 국가의 시민들에게 연대감의 상징이었다.  괴테는 이탈리아에서의 하루라는 글에서 ‘자! 남쪽으로 뛰어가자!’라는 표현으로  당시 독일의 분단문제를 비유하기도 했다.  지중해로의 하강은 모든 여행자들은 그들 자신의 그림자,  즉 자아를 인식해야 한다는 쿠쉬의 의도가 담겨 있는 작품으로 무의식의 순례를 의미한다.   "잃어버린 선그라스", Forgotten sunglasses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94x48.3cm “떠난 그녀가 잃어버린 선글라스에 투영되었다.”  ‘이상한나라의 앨리스’의 캐롤은 고양이 체셔에게 조금씩 투명해지는 능력을 부여하였고 체셔는 점점 사라지지만 그의 웃는 모습만은 남았다는  고양이 체셔 이야기에서 영향 받아 그려진 작품이다.  유럽신화에 의하면 ‘눈’은 자아의 반영 또는 그 중요한 에너지로 추정되기도 했다.  잃어버린 선글라스를 통해 헤어진 연인의 부재를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간극의 차원에서 표현한 작품이다. " 현실과 비현실 또는 과거와 현재 그 사이에 있는 무의식의 상태를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Section 2 :  욕망 (Desire)       “에덴의 호두”, Walnut Of Eden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48.3x38cm  이 작품에서 유토피아적 세계와 그리움의 근원인 에덴을 재고하게 된다.  낙원이라는 평화스러운 공간안에서 태초의 생명에 대한 부드럽고 따뜻한 자궁 속 태아의 자세를 하고 있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에서 생명의 고귀함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세계의 아침'이라 명명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세포가 유연하게 모든 우주를 채운다고 설명한다.  본질이 다른 남성과 여성, 양과 음의 조화로운 모습을 호두 안의 소우주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그림에 등장하는 호두나무는 생명의 시작과 삶의 지속성을 의미하며  또한 대우주와의 연결고리로 해석된다.      "바늘의 눈", Eye of the Needle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88.7x71cm  과연 운명이란 정해져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떤형태로 존재할까.  오랜 옛날부터 신화에서는 운명에 관한 여러가지 설이 있었다.  그 중 그리스신화는 모이라 라는 세 여신이 그것을 주관한다고 믿었다.  인간의 운명은 ‘실을 꼬아만든 끈’에 비유되었는데  세 자매 중 첫째 클로토는 실을 엮고,  둘째 라케시스는 그것을 인간 개개인에게 나누어 주며,  셋째 아트로포스는 실을 끊어버리는 등의 각기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낙타를 이끌며 황금바늘로 비유된 어려운 ‘성공’을 이루려하는데  이 그림은 운명론적 해석과 성경에 의한 해석등 모순적 이미지를 유머러스하게 융합한 작품이디.       “붉은 지갑”, Red Purse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35.6x28cm " 작가는 지갑은 부와 축척의 상징으로, 붉은색은 사랑과 열정의 상징으로 묘사하였다.  사랑하는 두 연인이 서로를 품에 안는 동시에 그 사이에는 금전이 넘쳐 흐르는 듯한 설정은  탐욕과 욕망은 사랑도 갈라놓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의미한다.  쿠쉬는 미국의 유명작가의 ‘사랑이라는 만능열쇠로 행복의 지갑을 열어라 (opens the purse of happiness and only love is the master key)’  라는 문장을 회화적으로 표현하였다. “작별의 키스”, Farewell Kiss Vladmir Kush prints on canvas, 64.85x52cm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늘에 비추어질 것’ 이라는 작가적 철학을 가진 쿠쉬는  헤어지는 연인의 작별의 키스를 붉게 물든 석양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대지와 바다 그리고 하늘 이라는 대자연의 캔버스에 낭만적으로 은유하였다.  쿠쉬의 작품세계에서 주로 차용되는 구름, 바다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초현실주의 회화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환상적인 세계로의 초대로 포스트 달리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Section 3 :  환상 (Fantasy)       “나무 저편” Behind the Trees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124.4x99 cm   "사람을 만나는 일이 순록이나 큰 사슴을 만나는 일과 같았으면 좋겠다."  자연과 교감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았던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헨리 소로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사냥꾼에게 사슴의 뿔은 미래의 트로피, 먹음직한 먹이로만 비춰진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는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가능할 수 없다.  자연에 대한 존중과 생명의 소중함을 몽환적인 풍경 안의 사슴으로 표현하였고  생명의 파괴자인 상징적 의미의 사냥꾼을 불길이 이는 숲의 입구에 구성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치로 배치되었다.     “바람”, Wind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104x81.3cm   “집을 나서자 차가운 바람에 얼굴을 쓸렸다” 먼 곳은 붉게 물들고 빈집은 팔레트의 차가운 블루를 연상시킨다.  빈집에서 펄럭이는 와이셔츠는 안정적이지 않는 예술가의 생활을 대변한다.  이것은 불안감, 혼란스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작가 쿠쉬 자신의 이민자로서의 삶이 오버랩 되어 보여 진다.  작가에게 있어 흔들리는 와이셔츠는 이향, 동시에 귀향의 인사로 해석할 수 있다.  쿠쉬는 이 작품을 대표작으로 출품한 칸느 국제 전시회에서 외국작가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유럽의 현대미술계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돋이 해변”, Sunrise By the Ocean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63.5x53.4cm   쿠쉬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로서 ‘알’은 떠오르는 태양과 삶의 시작을 상징한다.  신화에서 알은 거대한 세상의 창조에 비유된다.  두 개로 깨어진 달걀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달걀의 노른자를 떠오르는 태양에 은유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예고한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 쿠쉬는 하와이에 정착하게 되는데 하와이 해변이 이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하와이에 정착하여 새로운 근기를 다지는 계기를 표현하였다.  해와 달이 천부(天父) 또는 세계 거인의 눈이라고 하는 관념을 특징으로 하는 폴리네시아 신화에 따른 것이다.           “꽃 배 (플라워 선박)의 입항", Arrival of flower ship Vladimir Kush prints on canvas, 78x99cm   회화역사상 가장 오래된 보태니컬 회화의 ‘보태니컬’의 모험에서 착안하여 표현한 작품으로  그림 속의 ‘꽃 배", 플라워 선박’은 19세기 영국에서 카리브해안의 타히티로 향하는  ‘바운티선박(Bounty)’을 모티브로 하였다. 독재적인 함장에 반란한 선원들은 타히티섬에 상륙하여 영주하게 되었다.  노역으로 피폐해져 있던 타히티 섬의 원주민들은 빵과 과일들이 가득했던 바운티호와 그 선원들을 환영하였다. 플라워선박은 그들이 염원하던 “파라다이스”이자 그 곳으로의 항해를 의미한다.  섬의 원주민들은 종려나무 가지로 인사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Section 6 : 드로잉 (Drawing)   "Always Together" Vladimir Kush Jewelry, Gold Diamond ring​       "에덴의 호두", Walnut of Eden Vladimir Kush 15x15cm      Section 6 : 드로잉 (Drawing)   "자기인식", Self Cognition Vladimir Kush 25.4x35.5      Dragonfly Biker Vladimir Kush 21.5x14cm      그리고 회화 작품 추가         CURRENT       FAMILY TREE     CHESS       AMARYLLIS     ARROW OF TIME     METAMORPHOSIS  
777    福建 土樓(숭산준령 서부 남부지역) 댓글:  조회:2301  추천:0  2015-03-28
  중국 복건성 투루(中國  福建省  土樓)     中國  福建省  土樓 世界文化遺産  2008年 指定   복건 서부와 남부의 숭산준령에 분포되어 있는 福建土樓는 독특한 건축풍격과 유구한 역사문화로 유명하다. 건축 모양은 원형, 정방형, 타원형등 여러가지로 되어 있다. 복건토루는 宋,元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서 세계적으로 유일한 산간지대의 대형 토루건축이다. 토루(土樓 / TuLou) 는 중국 객가인(客家人)들의 주거양식이다. 객가인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 타향에 사는 사람들이란 말로 삼묘족의 후예라고 한다. 중국의 유태인이라 불리우며, 전 세계에 수천만명(5~8천만)이 흩어져 살고 있으며 대만인구의 15%가량, 동남아시아 화교의 상당수가 객가인이라 한다. 이들은 머리가 좋고 부지런해서 유태인들과 세계 상권을 쥐고 다툴만큼 경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중국 사회(중원) 속에서 끊임없이 박해를 받아온 소수민족 객가인들은 해외로, 산골로 숨어들었고, 타민족으로부터 집단 방어하기 위해 토성과 각진형태의 집단 주거형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토루인 것이다.                                                                                                                                                                                                                                                    
776    쿠쉬 그림모음 댓글:  조회:8543  추천:3  2015-03-28
              작가 소개   블라디미르 쿠쉬는 세계가 인정하는  초현실주의의 거장으로 '러시아의 달리'로 불린다.   1965년 모스크바 생으로 초반에는  세잔느 등의 인상파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리다가 14세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초현실주의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화풍은  러시아의 군제대 후  다듬어지기 시작했는데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표현과 인상주의 모티브를 결합시켜 공상적 인상주의의 시조가 되었다.   "Union of Artist"전에 참여하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미국 L.A "American Odyssey" 전에서 환상적인 초현실주의 작품들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뛰어난 상상력과 몽환적인  동화적 표현으로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Always Together Current Millennium Watchman Atlas of Wonder Crusaders Above The World Horn of Babel Abandond Dwellings Black Horse At the End of the Earth     Pearl Ocean Sprouts Moonlight Sonata - Final Movement Princess Cinderella One Flew Over the Wasps Nest Eye of the Needle Garden of Eden Purple Horse at Chartres Sacred Bird of Yucatan  
775    초현실주의 화가 - 블라디미르 쿠쉬 댓글:  조회:3207  추천:0  2015-03-28
        블라디미르 쿠쉬 (Vladimir Kush)  출생 : 1965년 (러시아)                                                                                                                                                                                                                                                                                                                                                                                                                                                                                                                                                                                                                             작품 가격 얼마나 할까 ㄷㄷㄷ...  
774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 조엘 로빈슨 댓글:  조회:5065  추천:0  2015-03-28
조엘 로빈슨    Joel Robison Photography Conceptual photographer based out of British Columbia, Canada. *PRINTS* -... www.facebook.com 본문으로 이동         평소 초현실주의에 굉장히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창의력을 볼 수 있었으며 상상력을 가지게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데, 조엘 로빈슨이야 말로 한 번쯤 상상해보았던 동화같은 장면들을 직접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게 좋았어요.       사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와 진짜 대단하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단순하니 재미있게 볼 수 있었어요.       그럼 한 번 작품을 볼까요? '-'                      [출처] [초현실주의/사진작가] Joel robison(조엘 로빈슨)|작성자 갱아  
773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 카라스 이오누트 댓글:  조회:9904  추천:1  2015-03-28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카라스 이오누트(Caras Ionut)   카라스 이오누트(Caras Ionut)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디지털 아티스트로 사진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작가의 작품에는 초현실주의풍의 작품들이 많은데 아이나 동물 그리고 노인의 등장이 유난히 많습니다. 화려함이 묻어나는 가을이나 동화 같은 느낌이 드는 겨울 설경의 배경이 많이 등장 하기도하죠. 마치 꿈속에서 본듯한 느낌의 작품들에는 외로움, 환상, 모험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듯합니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감상자 스스로가 충분히 이야기를 떠올릴 만큼 깊이 있기도 합니다. 합성과 리터칭으로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만들어낸 작품들은 마치 그림을 보는듯하고 동화 속으로 안내할듯합니다.         거대한 물고기에 올라타고 낚시를 즐기는 빨간코트의 소녀가 묘한 분위기를 연출 하네요.     순록의 뿔이 나무가지일까요? 아니면 착시현상일까요?         그네를 타기는 한것 같은데 높이가 대략난감하군요.                       낡고 오래된 폐가 같은 집 지붕위로 솟은 사다리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요?         코끼리 앞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마치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소녀와 조금은 겸연쩍은 듯한 코끼리...                         낙엽들이 뒹구는 오래된 열차 칸에 알몸으로 홀로 있는 어린 소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동물들과 기차여행을 떠나는 소녀는 목적지가 어디일지 궁금해지는군요. ​ ​                 남루하고 힘들어 보이는 노인의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네요. 아마 타락한 천사의 말로일까요?           중력을 무시하고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낡은 배에 홀로 알몸으로 서있는 소년은 혼자 여행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있는 도시에 독거노인의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                             코끼리와 나란히 창 밖을 바라보는 아이, 누구를 기다리고 있나봐요.                 비행기 꼬리 부분에 앉아 셀카 봉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이 유쾌하기도 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카라스 이오누트의 작품에는 숲이 많이 등장합니다. 고전 동화에도 숲이 많이 나오는 것과 일맥 상통하는데요. 아마 신비로움과 환상적인 일이 벌어질듯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요.               꽃을 든 남루한 노인과 차가운 분위기는 왠지모를 슬픔이 묻어 나는군요.       카라스 이오누트 홈피   [출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카라스 이오누트(Caras Ionut)|작성자 오픈  
772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 에릭 요한슨 댓글:  조회:2358  추천:0  2015-03-28
                에릭 요한슨 / Erik Johansson (1985-) 독일에 있는 베를린에 거주하시고 계세요 이분 역시 살아계십니당   위 사진은 에릭 요한슨의 작품이에요! 저 사람 왜 저래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정상적인 사진도 가지고 왔답니당                                                                   사실 요청이 넘쳐나는데 굳이 이 분을 소개하겠다 한건.. 제 사심 가득 담아서 *-_-* 중학생 때 처음 보고 우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하고 초현실주의에 빠지게 된 계기를 마련해 주신 작가분이시거든요!                                               이 분은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감각이 뛰어나다' 라는 찬사를 밥먹듯이 듣고 다니는 사람이세요! 에릭 요한슨의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이전의 조엘 로빈슨의 작품들의 동화 같은 느낌과는 달리 현실과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을 것들을 잘 조화를 시켰구나~ 하는 느낌을 드릴거에용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바로 작품들 감상하실게요!                                                     어 이 사진들 완전 많이 봤는데?! 네 맞습니다 많이 보셨을거에요 사진으로 이런 시도를 하신 분은 아마 에릭 요한슨이 거의 처음일거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에릭 요한슨 하면 그냥 감각적인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로 생각하고 그 선에서 끝이겠지만   외국 사이트들에 에릭 요한슨을 치면 옆에 'Impossible Photography' 가 바로 뜰 정도에요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들이 Impossible Photography 라고 한 카테고리로 묶이는건 에릭 요한슨이 유일합니당 그 말인 즉슨 사람들이 딱 보면 알 수 있는 자신만의 느낌을 녹여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죠! (예술가는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게 반은 성공한거니까요~)                     오우 훈남삘... *-_-*           제가 에릭 요한슨 작품들 중 가장 먼저 본 작품이고 가장 애정하는 작품이에요!             이 분은 사진작가가 본직업이라서 스스로 재미로도 많이 찍고, 리터칭도 하고 프로젝트 요청도 많이 받아서 하고 계세요 대부분 사진작가를 한다 하면 어떠한 직업과 같이 부업으로 걸치시는 정도인데 사진의 대한 열정이 대단하구나 느끼실수 있을거에요! 물론 다른 사진작가분들 열정도 대단하세용 *_*                           참, 이 분은 사진을 따로 배우시지 않고 전부 독학이라고 하세요! 역시 재능과 감각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아요… 껄껄껄                       에릭 요한슨의 작품에서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보다도 사실주의적인 면들을 쉽게 엿볼수 있는건 아마도 그의 할머니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에릭 요한슨의 할머니께서 화가셨던지라 아주 어릴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하네요!                               에릭 요한슨도 커가면서 학생이 되자 컴퓨터와 카메라를 접하게 되면서 즐거워했었어용 처음에는 사진작가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대학 진학하고 이런 작품들에 대한 생각들이 차고 흐르고 넘쳐 흐르던 까닭에 사진을 찍는걸 주로 삼게 되었다고 하세요!                 이 사진도 유명하죠! 처음 봤을때 기발하다고 생각해서 몇초간 눈을 못 떼었던 작품이에요~               아 위에서 이 얘기를 안 썼구나!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하셔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분은 사진만으로도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젝트 작업을 같이 했었다고 하네요! 거의 경이로울 수준이네요 구글이랑 마이크로소프트라니….                           초반에 보았던 스타일과 비슷하죠?               위에 있는 사진이랑 밑에 있는 사진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개인적으로 그림이 현실이 된다고 생각할때 정말 짜릿하더라구용           겨울이랑 방이 하나가 되는 작품이에요! 눈 덮고 자다가 얼어 죽겠다...               이 작품의 이름은 Self-Realization, 즉 자기완성이에요! 제목을 알고 작품을 보니까 뭔가 달라보이지 않나요?         에릭 요한슨의 특징적인 사진이 또 나왔네용!             이 작품도 애정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도로가 정말 있었으면 좋겠어요        
771    초현실주의 화가 - 라팔 올빈스키 댓글:  조회:3680  추천:0  2015-03-28
  라팔 올빈스키(Rafal Olbinski)의 초현실주의 그림(1)   (1945 - American ) ( surrealist artist )               1945년 폴란드의 남부도시 키엘체(kielce) 에서 태어나 8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한 라팔 올빈스키(Rafal Olbinski)는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초현실주의 (Surrealism)적 감각을 보여주는 그림, 일러스트, 디자인을 남기며 그만의 작품 세계를 연출해내며 Time, Newsweek, Playboy, The New York Times 등에서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고, 여러 공공단체의 설계를 맡기도 할 만큼 다재다능함으로 미술계에서도 널리 인정을 받은 예술가이다.           Mozart - Don Giovani (돈 지오반니)       Verdi - Aida (아이다)       Puccini - La Boheme (라 보엠)       Puccini - La Boheme (라보엠)       Bizer - Carman (카르멘)       Rossini - Cinderella (신데렐라)       Verdi - Don Carlos (돈 카를로)       Verdi - Falstaff (팔스타프)       Mozart - The Marriage of Figaro (피가로의 결혼)       Saint-Saens - Samson et Dalila (삼손과 데릴라)         Benjamin Britten - The Turn of The Screw (나사의 회전)       Beethoven - Fidelio (피델리오)       Wagner - Flying Dutchman (방황하는 화란인)       Verdi - La Traviata (라 트라비아타)       Verdi - La Traviata (라 트라비아타)       Rossini - L'italiana in Algeri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Puccini - Madame Butterfly (나비부인)         Mozart - Magic Flute (마술피리)       Wagner - Siegfried (지그프리드)       Richard Strauss - Salome (살로메)    
770    초현실주의 화가 - 호앙 미로/호안 미로/후안 미로/ 댓글:  조회:7409  추천:0  2015-03-28
Joan Miro     Surrealism Spanish Painter, Sculptor and Ceramist 1893. 4. 20. ~1983. 12. 25.                           The Gold of the Azure Oil on canvas 1967 205 x 173.5 cm Fundaci? Joan Mir? Barcelona Spain       그는 유쾌한 화가로 유명하다. 상징적인 이미지는 설명하기 쉽지 않으면서도 화려한 색채와 결합된 단순한 형태들은 첫눈에 순진한 어린이 같은 인상을 준다.     초현실주의 특유의 어두운 느낌은 배제하고 화려한 색깔들로 내면의 판타지를 그려냈던 후안 미로.     추상과 초현실주의의 경계에 있는 듯한 작품들 속에는 그의 시각적 예술을 시(詩) 안에서 비교하며 스페인 특유의 강렬한 꿈과 시정이 감도는 분위기, 신비로운 환상, 때로는 천진스러운.... 그만의 절묘한 기술로 이루어진 독특한 아름다움과 신선한 정서를 주는 화가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Miro Art'이다.   찬란하게 눈부신 노란 빛, 마치 장다리꽃이 핀 들녘 같다. 얼마나 넓게 피었으면... 쪽 빛 하늘이 손바닥만 하다. 밝고 아름다운 색깔의 대비, 오묘한 알 수 없는 상징들.... 무한한 상상으로 이끄는... 감탄스러운 후안 미로의 세계다.                     Dancer Oil on canvas 1925 115.5 x 88.5 cm Galerie Rosengart Lucerne Switzerland                 The Port Oil on canvas 1945 130 x 162cm Private Collection         완전한 추상으로 보이는 그의 작품은 우주를 보는 듯 자연적인 요소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극도로 상징화하고 기호화한 추상적인 형상들은 율동감과 공간감을 자아내며 결과적으로 무의식, 자동기술법, 기호와 상징 등... 추상성이라는 그만의 특징을 담아내고 있다.                 Dutch Int?rior Oil on canvas 1928 129.9 x 96.8 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후안 미로의 중요 작품 중의 하나인 다. 단순한 알 수 없는 형상들이 밝은 색상 속에서 춤을 추는 듯... 무어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시선을 빨아 드리듯 아름답다.                 Blue III Oil on canvas 270 x 355 cm Mus?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Blue Series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그림 중의 하나다. 짙푸른 너른 공간에 극히 단순한 작은 점 두 개, 낙서 같이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선, 그게 전부다. 그래도 부족감 없는 충만 된 공간의 아름다움이 경이롭다. 감탄스러운 그의 그림이 나를 무한한 환상으로 이끈다. 푸른 밤의 우주일까, 마음껏 날아보는...가슴가득 신비스러운 환상에 젖는 그림!                     The Red Sun Oil and gorache on canvas 1948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USA       무언지, 어떤 의민지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보면서 느끼며 즐긴다. 소박하고 순수하고....아름답고 멋진 그의 그림세계를!                 Hermitage Oil, pencil on canvas 1924 114.3 x 147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Constellation Awakening at Dawn Gouache and terpentine paint on paper 1941 46 x 38 cm Private collection     물에 적셔 구긴 종이 위에 제작한 조그마한 23개의  연작 중의 하나로서 그의 회화 진로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계기이기도 하다.   미로는 1940년과 1941년 사이에 그려진 의 연작에서부터 여자, 새, 별 같은 인물과 원형이 나타나는 새로운 회화 공간을 전개하였다. 그림의 경계를 넘쳐흐르는 확장된 공간은 미로만의 창조된 세계로 특유의 규범을 가지고 있다.   보면 볼수록 무한한 공상의 세계 . 과연 이 아름답게 춤을 추는 듯하다.               Composition 1933               Painting 1953       “초현실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초현실주의 작가” “초현실주의의 모자를 쓴 가장 아름다운 붓이다.”     1924년 프랑스 시인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은 스페인 출신의 예술가 호안 미로를 이렇게 극찬할 정도로 생전에도 그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미로 자신은 정작 어떤 ‘주의’에도 속하기를 거부했다. 정체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Message from a Friend 1964                     Ladders Cross the Blue Sky in a Wheel of Fire Oil on canvas 1953 116 x 89 cm Private collection               Bathing Woman Oil on cnvas 1925 73 x 92 cm Mus?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La Harpie (The Harpy) 1969 129.87 x 93.04 cm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피인데 얼굴과 몸은 여자 모양이며 새의 날개와 발톱을 가진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괴물이다. 즉 남을 희생시키는 흉악한 욕심쟁이의 상징인 하피이다. 그러나 미로의 붓끝에서 탄생한 하피. 유모러스한 모습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La Caresse des etoiles Oil on canvas 1938 60.3 x 69.3 cm       원색 대비의 능숙한 붓터치 속에 역시 능숙한 선들로 어린아이가 그린 동화 같은 그림이다. 금방이라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꿈꾸는 동심의 세계를 보는 듯 경이롭고 즐겁다. 미로의 순수한 내면을 보는 것 같다.               Ciphers and Constellations, in Love with a Woman Gouache and terpentine on paper 1941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마치 어린아이가 낙서한 것처럼 순수한 형태와 색채의 어우러짐을 통한 원초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미로는 어떤 형상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했고 때로는 아이처럼 천진스럽게 자신의 내면을 표현했다.   기호와 상징으로 가득 찬 환상의 세계. 내 별자리는 어디 있을까? 무언지 모를 모든 공상들이 온 우주에 둥둥 떠다닌다. 보면 볼수록 친근해지고 즐거워지는 환상의 세계다.               Dog Barking at the Moon Oil on canvas 1926 73 x 92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작품도 그렇지만 이 작품에 주어진 타이틀 또한 즐겁고 경쾌하다.               Catalan Landscape (The Hunter) Oil on canvas 1923-24 64.8 x 100.3 cm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미로의 작품에는 초현실주의 특유한 어두운 분위기나 심리묘사는 적고 밝은 소박한 분위기와 모두를 순수한 상징기호로 표현하여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착하고 따뜻하게 웃는 아이가 된다.               Painting Oil on canvas 1927 97 x 130 cm Tate Gallery London UK                 Obra De Joan Miro       초현실주의(Surrealism)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초현실주의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대 변혁을 가져온 것으로 문학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초현실주의는 그 어떤 미술보다도 매력적이고 다양한 표현 형식을 보여주는 사조다. 초현실주의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나 추상예술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초현실주의의 달리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밀한 묘사력은 사실(寫實)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으며, J.미로뿐 아니라 A.마송, M.에른스트의 작풍(作風)에도 추상화의 경향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성·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성(理性)의 반대의 극점, 합리의 반대쪽의 세계이다.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가능한 한 참되게 표현하려고 하는 초현실주의의 갖가지 시도는 현실적인 연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당시의 모순된 현실과 결부되어 예술일반의 인식을 비약시키고 20세기 특유의 환상예술을 발흥(勃興)시키게 된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의 R.마그리트에 이르면 큰 바위덩어리를 공중에 띄워놓는다든지, 낮이 밤으로 변해 있는 등 정신의 전위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기법에 있어서의 전위적인 정신이 초현실주의의 최대의 표현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Painting Oil, rope and Case-arti on canvas 1950 99 x 76 cm Stedelijk Van Abbe Museum Eindhoven the Netherlands               Women and Birds at Sunrise Oil on canvas 1946 54 x 65 cm Fundaci? Joan Mir? Barcelona Spain       은은하지만 살아있는 듯 고도의 능숙한 붓터치의 화면을 배경으로 하고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선들에 제멋대로 걸려있는 듯 떠있는 듯 나열된 알 수 없는 상징 같은 형체들, 그 단순하지만 시선을 끄는 색감들.... 형언할 수 없는 공상의 세계로, 볼수록 묘하게 끌리며 유쾌해지는 아름다움이다.                 Woman in Front of the Sun Oil on canvas 1950 65 x 50 cm Private collection               Person Throwing a Stone at a Bird Oil on canvas 1926 73.7 x 92 cm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Large cave paintings Etching 1979       여러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그들을 거울삼아 작업의 토대를 만든 호안 미로.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vert)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미로(Miro)의 이름 안에는 거울(MIROir)이 있다.”                   Blue I 1961 Centre Pompidou-Metz museum Metz France               Seated Woman II(Femme assise II) 1939               The Nightingale's Song at Midnight and the Morning Rain Gouache and terpentine paint on paper 1940 38 x 46 cm Perls Galleries New York NY USA       이 구성 작품은 연작의 하나로 노르망디 해변의 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화면 전체를 동등하게 덮고 있는 작은 상형 문자의 구성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미로는 회화적 기호 체계를 순수하게 할 뿐만 아니라 1945년 이후 비구상 회화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공간의 개념을 발견하고 있다. 오묘하고 무궁한 공상의 세계다.                 Women and Bird in the Moonlight 1949               Danse de personnages et l'oiseaux sur un ciel bleu Oil on canvas 1968 173.6 x 291.6 cm     호안 미로 그림의 정점은 1940년대 고향 몽트뢰그에서 그린 '성좌 시리즈' 부터로 출발하며 별, 달, 원, 눈, 새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형상을 자유로운 우주 안에 배치하거나, 무한한 기운이 느껴지는 공간을 구성하게 된다.     당시 그가 좋아했던 밤, 별,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 그리고 시의 정신적 내면이 느껴지는 그림들을 그렸는데,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를 거치고 동양의 서체에서 감명 받았던 것 등의 다양한 영향들이 아우러진 특성을 갖고 있으며, 기호화 된 형상의 배열은 어린아이 그림이나 먼 태고의 벽화에서 보이는 간결함이 잘 드러나 보이고, 푸른색 바탕은 모든 생성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우주의 이미지로 묘사했다.               Nuctorne       앙드레 마쏭과 교류하며 오토마티즘(Automatisme 자동기술법 : 무의식적 행위를 통해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초현실주의 창작 기법)을 작업 강령으로 삼았지만, 그가 작품을 만드는 프로세스는 철저히 계산된 조형의 법칙에 따랐다.                 Painting Oil on canvas 1933 130 x 162 cm Narodni Gallery Prague Czechia               Maternity Oil on canvas 1924 92 x 73 cmM Private collection                 A Dew Drop Falling from a Bird's Wing Wakes Rosalie who Has Been Asleep in the Shadow of a Spider's Web Oil on canvas 1939 65.4 x 91.7 cm The University of Iowa Museum of Art The Mark Pamney Memorial Fun Iowa USA       미로는 특이하게도 화가보다는 앙드레 마송,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과 같은 시인들과 어울리며 초현실주의에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시와 비교하기를 좋아했던 미로다. 그림의 타이틀들이 대부분 시처럼 아름답다.     1925년에는 에 출품하면서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The Matador Etching 1969               The Two Philosophers 1936               Stars in Snails' Sexes Oil on canvas 1925 130 x 97 cm Private collection               A Star Caresses the Breast of a Negress(Painting Peom)               Woman with a Dove Lithograph 1969 85 x 61 cm               The Circus House Oil and pencil on canvas 195 x 280 cm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Smithonian Institution Washingto, DC USA                 Personnages et oiseaux dans la nuit Oil on canvas 1974 274.5 x 637 cm Centre Pompidou-Metz museum Metz France               Untitled Oil on canvas 1925 130 x 97 cm Private collection                 Harlequin's Carnival Oil on canvas 1924~1925 Albright-Nox Art Gallery Buffalo NY USA       이 그림은 미로가 유명세를 얻기 직전에 제작된 것으로서 화가도 자신의 상상력이 최대치일 때의 작품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대표작이다.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먹기 못한 화가는 혼미한 의식 상태에서 드러누워 천장 위에서 모종의 형체를 보게 된다. 그는 몰입해서 무의식의 세계를 옮겨 이 그림을 완성했다.     꿈의 구조가 비논리적인 사건들의 연쇄인 것처럼, 이 그림의 구성도 상상의 실타래가 개연성 없이 화면에 열거된 것처럼 보인다. 온전히 식별이 가능한 사물은 없다. 마치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원생동물로 변형된 삼물들이 화면 위에 떠있다. 미로의 진술에 따르면, 왼편 사다리는 상승과 탈출을 의미하며, 오른편에 화살로 관통된 초록 원형은 지구 정복에 대한 욕망을 뜻한다고 한다.               Blue II Oil on canvas 1961 270 x 355 cm Mus?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내가 좋아하는 이다. 극히 단순하지만 신선하고 투명하게 닥아 오는 색감들, 환상을 자아내게 하는 너른 공간에 크고 작은 오묘한 점들이 서로가 연결되어 이어지듯 흐르는 부드러운 곡선의 율동감까지 싱그럽게 살아있는 듯..... 경이롭고 아름답다.                         The Lark's Wing, Encircled with Golden Blue, Rejoins the Heart of the Poppy Sleeping on a Diamond-Studded Meadow Oil on canvas 1967 195 x 130 cm Private collection       봄의 찬가! 봄 햇살로 눈이 부신 푸른 언덕 기슭에 개나리일까, 꽃장다리일까,...유채꽃일까... 온 세상이 찬란하게 눈이 부신 봄빛으로 가득하다.     The Lark's Wing, Encircled with Golden Blue, Rejoins the Heart of the Poppy Sleeping on a Diamond-Studded Meadow     타이틀마저 시가 되어 더 한층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로의 봄. 미로의 내면에 흐르는 아름다움을 눈으로 실감하는...과연 아름다운 봄의 찬가 아닌가!                     Yousuf Karsh 作       인물사진 작가로 유명한 유섭 카쉬(Yousuf Karsh)와의 첫 만남에서 밝고 생동감 있는 호안 미로의 작품세계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어울리지 않는 정장차림에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호안 미로에게 작업복을 입히자 그의 아이 같은 재치와 유머러스함이 사진에 나타났다’   카쉬의 촬영 당시의 회고다.     미로는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삶과 예술적 진로는 어릴 적부터 카탈루나 지방의 대지와 연관되어있다. 보석상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 입학하고, 1912년 갈리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그는 그의 예술 이미지와는 반대로 고지식하고 제대로 훈련된 근면한 사람으로 말수는 적으나 체계적이고 신뢰가 있고 겸손하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1941년 뉴욕 현대미술 박물관에서의 미로의 대 회고전은 결정적으로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 부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즈음이 바로 그가 예술가로서의 성숙기에 도달하는 시기였고, 세계 제2차 대전 후는 조각, 도기, 판화에도 뛰어난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195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전에서 판화대상을 수상하였으며 미로는 국제적인 화가의 명성 속에서 스페인의 아름다운 섬 팔마 데 마요르카에서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호안 미로는 후기 인상주의, 야수파, 초기 입체주의 등이 완성된 시기에 그림을 시작한 화가로 현대 예술가의 제 2세대에 속한다. 초기에는 야수파의 경향이 나타나다 초현실주의 창시자인 시인 부르통, 아라공, 엘뤼아 등과 교제하면서 초현실주의로 전환하면서 초현실주의의 거장이 되었다.   분명히 식별되는 특이성을 성취한 20세기의 화가 중의 몇몇 소수에 지나지 않는 화가로서 그의 주제적, 상징적 세계의 독특한 화풍은 개인적일 만큼 분명하다.   밝고 가벼운 순수한 색채 평면에 그의 특유의 단순하고 소박한 조형 언어를 병합하여 화가로서의 그만의 특유한 초현실주의의 세계를 보여준다. 예술의 주도적 흐름에 동조하지 않는 그의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은 그 당시 예술과 멀리 떨어진 주변적 예술로 취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로의 특이성은 20세기 미술의 전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여러 특이성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며 손꼽히는 세계적인 화가로 오늘 날에 이르렀다.     미로 [호앙 미로, Joan Miro]     호안 미로는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 출신의 화가, 조각가, 도예가이다.   바르셀로나 미술 학교를 중퇴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 초기의 작품에는 사물에 대한 정밀한 형태적 감수성과   친밀감이 드는 서정적인 감동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23년부터 바실리 칸딘스키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바뀌었다.   그의 작품은 밝고 가벼운 색채와 소박하며 단순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신선한 정서가 풍긴다.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한 가 유명하다.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신시내티 호텔 벽화, 하버드 대학 벽화를 그렸다.   1954년 베네치아 국제전에서 판화 부문 국제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등이 있다.                                                             [1917]  E. C. 리카르트의 초상                       리카르트는 미로가 가리의 교실에서 알게 된 젊은 화가로서 바르셀로나 시대에 아주 가깝게 지낸 친구이다. 이 시기에 미로는 리카르트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친구들을 모델로 한 여러 점의 초상화를 남기고 있다. 당시 피레네 산맥 저쪽 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경향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얼굴의 처리에서 입체파의 영향을 볼 수 있으며, 배경의 우끼요에는 실제의 화면에 붙인 것으로서 빠삐에 꼴레(붙이는 것)의 영향이 보이며, 콘트라스트가 강한 원색들이어서 야수파의 영향을 받고 있다. 좌상의 팔레트는 훗날 미로의 기호와 같다. 전체적으로 봐서 화면은 장식적인 시각 효과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의 초상화 연작 중에서 이색적인 작품이다.           [1924] 카탈로니아 풍경(사냥꾼)         이 지방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로와 달리의 출생지이다. 에서는 흡사 매미가 허물을 벗듯 껍질을 벗어 내던지고 그 이면의 세계를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로의 시선에 비친 풍경은 엑스선을 투과한 육체와 같이 변모하고 미로의 내적 환상에 의해서 역조명되고 있다. 귀와 눈이 달린 나무, 카탈로니아 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문 엽총을 든 농부 등 어느 것이나 그가 말하는 [몽로치적]이다.     [1925] 낮잠        파리의 피에르 화랑에서 열린 최초의 초현실주의 전에 출품하는 등, 미로가 초현실주의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던 시기의 일련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바탕에 엷으면서도 거칠게 칠해진 푸른색은 바르셀로나의 지중해를 상상케 한다. 실과 같은 인간이 해안에 잠들어 있고, 하얀 유령과도 같은 포름이 숫자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는 광경은 잠깐 눈 붙인 낮잠 속의 꿈이라고 해도 좋다. 오른쪽에 활 모양의 선의 연속에서 몽리치 마을의 환상적인 암산(巖山)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조상이 것은 태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로가 꿈에서 본 고향의 꿈일 것이다. 누구나 고향을 생각하겠지만, 특히 미로에게 있어서 파리 생활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마음은 어느덧 젊은 날의 몽리치 마을을 간절하게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926] 새에 돌을 던지는 사람        1926년의 여름에서 다음 해인 1927년에 걸쳐 미로는 몽리치에 돌아와 카탈로니아의 자연 속에 파묻혀 거기에서 전개되는 환상의 광경이랄지, 좌우간 카탈로니아의 자연과 미로의 꿈이 여기에서 또 한 번 새롭게 융합되어 일련의 꿈의 풍경 시리즈를 그리고 있다. 은 이 꿈의 풍경의 비교적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거대한 발을 가진 사나이가 단순화되어진 새에 하얀 돌을 던지고 있다. 혹과 같은 육지의 두 개의 돌출부는 빨갛게 칠해져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몽리치의 바위를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남자의 손은 하나의 선으로 되어 돌이 날아간 흔적이 하늘을 깁고 있다. 미로는 도시의 밀실적인 환각과 대자연에 묻혀서 보는 꿈과의 두 개의 세계를 왕복하고 있다.                            [1928] 네덜란드의 실내 II         미로는 1928년 봄 2주간에 걸쳐 네덜란드에 여행했다. 특히 그에게 흥미를 갖게 한 것은 페르메르를 위시한 17세기의 화가들로서, 손에 와 닿을 듯하게 친밀하게 그려진 실내화 들이었다. 그 그림엽서들을 사 가지고 와서 그것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 이 이다. 이 작품은 3장의 연작 중 두 번째의 그림이다. 등이 카탈로니아의 작렬하는 태양 밑에서 전개되는 환상의 그림들이었다면, 이것은 네덜란드의 부드러운 광선이 스며드는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실내화이다.        [1939] 로잘리의 눈        """새의 날개에서 떨어진 한 방울의 이슬이 거미줄 그늘에서 잠자는 로잘리의 눈을 뜨게 한다."" 1939년 7월, 미로는 다시 노르망디에 가서 다음 해 5 월까지 체재하면서 정치적인 제작 활동을 계속한다. 그 가운데 10매 가까운 올이 굵은 마포에 그린 작품이 있다. 이것도 그 가운데 한 점이다. 우선 길게 붙여진 명제에서 초현실주의 시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꺼칠 꺼칠한 마포에 그림으로써 선은 더욱 힘차게 나타나고, 칠해진 색은 화면에 차분히 밀착됨으로써 심도를 더해 주고 있다. 평소 그가 즐겨 그리던 동물이 기호화되고, 그 특유의 포름으로 나타나 화면 전체를 꽉 메우고 있는 것이 퍽 이채롭다. "         [] 서커스   이 작품은 셀로텍스라고 하는 사탕수수의 섬유질로 만들어진 판이다. 사탕수수 올의 거칠은 바탕을 살리면서 제작된 작품이다. 빨강, 노랑, 검정색들은 칠했다 기보다는 뭉개듯이 바르는 기법으로 바닥의 셀로텍스에 밀착시키고 있다. 선은 빠른 속도로 드로잉하듯 경쾌하게 그려져 그래픽한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 시기의 미로는 파리나 바르셀로나의 벽에 그려진 낙서에 흥미를 갖고, 때때로 그것을 메모하여 돌아오기도 하였다.                  [] 여인, 새, 별        미로의 작품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면 우선 대부분의 작품이 캔버스에 의해서 그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서 별도 태어나고, 거미처럼 생긴 음부가 있는 여인이 되고, 세 가닥 모발을 가진 남자가 되고 달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다시 음악적으로 리드미컬하게 구성함으로써 화면은 밝고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미로가 갖고 있는 미로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그가 도달한 원숙하고도 높은 예술의 경지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1935] 산더미처럼 쌓인 배설물 앞의 한 남녀        이 작품은 동판 위에 유채 물감으로 그려져 있다. 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혓바닥을 내밀고 남근을 뻗치고 있는 기괴한 모습, 양손을 하늘로 내밀고 거미가 줄에 매달린 듯한 섹스의 주인공으로서의 여인을 본다. 두 사람 똑같이 지옥의 연옥에서 헤어나온 듯 빨갛게 온 몸이 물들어 있다. 까맣게 타다 남은 듯 하늘의 한구석만이 노랗게 남아 있는 곳에 인분인 듯한 덩어리가 꼬부랑하게 언덕 위에서 있다. 뒤팡은 미로의 이 시기를 [잔혹한 변모]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깜깜한 하늘은 스페인 내란의 암운(暗雲)을 예언하고나 있는 듯하다.                             [] 연인들에게 미지의 세계를 밝혀주는 아름다운 새        [] 회화 2 굵은 올의 캔버스에 밑칠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린 작품이다. 이 기법은 원래 마포가 갖고 있는 재질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그것을 작품에 이미지화한다는데서 흔히 쓰는 기법이다. 까만 선으로 그려진 윤곽은 더욱 명확하고 힘차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빨강, 노랑, 하얀 색들은 원색 그대로 면에 빈틈없이 칠해져 방법론적 의미에서는 어떤 작품보다 이지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들판에 한가롭게 노니는 소, 연못 속에 두려움없이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얼굴에 웃음을 한껏 머금고 자연을 바라보는 평화로운 아이, 이 모두가 꿈속에서 보는 듯한 목가적인 풍경이다. 작품 처리에서 보여 준 딱딱한 기법과 환상적인 이미지가 잘 하모니를 이루어 하나의 전원 교향곡의 세계로 이끈다.                                 [] 회화 3        이 작품을 통하여 자유롭고 화려한 삶을 노래한 미로의 세계를 본다. 캔버스에 물감을 흘린다거나 스며들게 하면서 한편으로 석고를 발라 거기에 토막된 새끼를 붙이는 등 자연의 드라마를 느끼게 한다. 미로의 손이 닿은 물체는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은 듯, 새끼도 여기에서는 곤충과 같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여러 가지 풍부한 표정을 가진 인물들, 새까만 그림자, 문양화된 의복 등 모두 미로가 즐겨 그리는 세계의 요소이며 우주인 것이다.                  [1955] 고블랭織의 타피스리          1955년경부터 미로가 제작에 손대기 시작한 도기, 석판화, 조각 등이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과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모두 불이나 흙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고,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우연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미로는 오히려 이러한 우연성을 높이 사서 작품에 도입하고 있다. 또한 짜는 사람과의 공동 작업을 전제로 한다는 데 일치한다. 회화 작품이 타피스리로 짜여졌을 때 어떠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가에 대해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 여인과 새 VII          시리즈 중의 한 작품이다. 미로는 1956년 바르셀로나를 떠나 마리요르카 섬 파르마에 아틀리에를 마련하여 이곳에서 제작 활동을 계속했는데, [너무도 훌륭하고 새로운 아틀리에에 미로가 흥분한 상태였다.]고 친구들이 전했다. 그의 만년을 은유하듯 일체의 장식성을 배제한, 선만으로 된 화면이 소박하기만 하며, 극도로 절제된 색 때문인지 작품에서 풍겨오는 품격이 한 차원 높아 보인다. 한 가닥의 선에서부터 하나의 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철저하게 계산되어 허술한 빈틈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1961] 청색2          [] 두 인물         이 화집에 게재된 작품 중에서 가장 만년의 작품이다. 강직한 필촉과 힘차게 그어진 선으로 태양은 더욱 붉게 불탄다. 이 작품은 전후(戰後)의 액션 페인팅을 연상케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캔버스를 통하여 시도하였던 여러 가지 방법이 종합적으로 결집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힘차게 내리그은 굵은 선, 바르고 뭉개고 뿌리는 등, 이렇듯 대담한 시도가 일찍이 그의 작품에서는 불 수 없었던 사건들이다. 이러한 작품이 나타나기까지 그에게는 73년간에 걸친 길고 긴 이미지의 수렵의 과정이 있었음을 쉽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1974] 어둠 속의 사람과 새             가로 길이만 6m가 넘는 호앙 미로의 초대형 작품    
769    초현실주의 화가 -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댓글:  조회:13534  추천:1  2015-03-28
수학적 화상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나는 우리 모두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비웃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예를 들어 이차원과 삼차원, 평면과 공간을 혼동시키고, 중력을 조롱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1941년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는 ‘수학적 화상’ 이라고 하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인 공간과 평면의 마술적 구조를 목판화와 석판화로 제작했습니다.   1944년 무렵부터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띤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대부분 그림 속의 상황이 현실과 무관한 설정이라는 것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묘사된 데 반해, 에셔의 작품은 순간적으로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연출되었습니다. 또 에셔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는 것은 반복과 순환이라는 고리입니다.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에셔는 반복되는 기하학적 패턴을 이용하여 대칭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쪽매맞춤’이라 불리는 테셀레이션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이란 규칙적인 공간분할을 의미하는 것으로 동일한 모양을 이용해 평면이나 공간을 빈틈이나 겹쳐지는 부분 없이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다양한 형태에 의한 공간분할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반사, 미끄럼 반사, 평행이동, 회전의 기법을 이용하여 규칙적 공간분할에 사용될 수 있는 변형 패턴들을 탐색했습니다.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 《하늘과 바다》(1938), 《대칭 45》(1941), 《도마뱀》(1943), 《높고 낮음》(1947), 《폭포》(1961) 등과 같은 작품을 보면 서로 대립되는 개념들을 테셀레이션 기법을 이용하여 한 화면에 담고 있다.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에셔의 작품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에셔의 작품은 1950년대까지는 예술적 정감이 그리 엿보이지 않는, 지극히 정적인 차가움만 감도는 수학적 세계와 같다는 시큰둥한 평가 일색이었지만 1950년대 중반부터 그의 유희적인 작품 의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적 화상의 달인 에셔에 대한 포스팅을 끝으로 초현실주의 포스팅을 마칠께요. 여러분들은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어떻게 보셨나요?   초현실주의는 빼놓을 수 없는 미술양식들 인데요. 그림이 다소 어려운 감이 있지만  그 의미와 시대상을 이해하면 조금은 즐겁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다음에는 잠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디자인의 시작에 대해 포스팅을 할려고 합니다. 열정의 예술시대 물랑루즈부터 디자인의 시작까지 포스팅을 할께요.    
768    안중근의사 유언, 어머니의 편지 댓글:  조회:6933  추천:0  2015-03-28
안중근의사 유언 그리고 어머니께서 보낸 편지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는 모친의 말에 따라 의사는 이후 공소도 포기한 채, 여순감옥에서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의 저술에만 심혈을 쏟았다. [안응칠역사]는 의사의 자서전이고, [동양평화론]은 거사의 이유를 밝힌 것이었다. 재판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의사는 일본인들에게 거사의 이유를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구구하게 이유를 밝혀 목숨을 구걸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싫었다. 그래서 의사는 공소를 포기한 뒤,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여 후세에 거사의 진정한 이유를 남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마저 일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시작하면서 이것이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사형 집행을 연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일제는 이를 무시하고 사형을 집행하였고, 그에 따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31세로 뤼순감옥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 동포에게 고함 >    내가 한국의 독립을 되찾고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3년동안 해외에서 모진 고행을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노력하여 학문에 힘쓰고 농업, 공업, 상업 등 실업을 일으켜, 나의 뜻을 이어 우리나라의 자유독립을 되찾으면 죽는자 남은 한이 없겠노라. 안중근의사의 애국시 내가 죽은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큰 뜻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순국직전 동포들에게 남긴 의사의 마지막 유언 -   조마리아(본명 조성녀. ? ~ 1927년)는 안중근의 어머니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백천 조씨이다. 아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제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자 항소하지 말라고 권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아들이 결국 처형된 뒤 중국 상하이에서 당시 임시정부 인사들에게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며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불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8월 조마리아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편지 >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인 줄을 알아라.   살려고 몸부림 하는 인상을 남기지말고  의연하게 목숨을 버리거라.   네가 만약 늙은 어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네가 사형언도를 받은 것이 억울해서 공소를 한다면  그것은 네가 일본에게 너의 목숨을 구걸하는 행위이다.  너는 대한을 위해서 깨끗하고 떳떳하게 죽어야 한다.   아마도 이 편지는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망치 아니 하노니..  내세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767    방순애 / 최룡관 댓글:  조회:4769  추천:0  2015-03-27
연변의 첫 하이퍼시집             -방순애의 [시간은 원이 되여]를 보고                        최흔   들어가는 말   필자는 흥분된 심정으로 방순애의 시집 [시간은 원이 되여]를 본다. 연변의 첫 하이퍼시집이라는데 그 의미가 크다. 중국조선족시단에서 하이퍼시가 싹이 트기 시작한것은 아마 2006년이라고 생각된다. 그후 려순희 황정인 심예란 허옥진 박장길 김견등 시인들이 하이퍼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하겠다. 하지만 하이퍼시를 써서 시집을 낸 시인들은 아직 없었다. 하이퍼시, 다선구조로 된 이시는 지금 유령마냥 일부시인들의 시상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하겠다. 다시점, 다초점, 다주제를 가지고 있는 하퍼시가 방순애의 머리를 삼키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끼까지 방시인은 간고한 려정을 거쳐 [시간은 원이 되여]를 완성하였다고 하겠다. 시인은 동시 240여수를 썼고 현대시60여수를 썼고 하이퍼시 170여수를 썼다. 오늘 시인은 하퍼시 170여수중에서 88수를 선재하여 시집을 내놓았다. 한수의 시가 그녀의 한방울의 피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88방울의 피가 오늘 독자들과 대면하게 된다. 하이퍼텍스트는 새로운 도전이며 혁신이다. 하이퍼라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여 묶은 [시간은 원이 되여]를 어떻게 읽을것인가에 대하여 필자는 나름대로 말하려고 한다     도약하는 이미지   방순애시인의 하이퍼시는 도약하는 이미지를 창출해낸것이 하나의 특점이라고 할수 있겠다. 도약을 통하여 이미지들은 분렬도 조성하고 집성도 조성하면서 한수의 시를 이룩한다고 하겠다. 시인의 시는 산문적인 필치와 운문적인 필치 두가지 형태로 쓰였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산문적인 필치로 쓴 시 한수를 보자    어떤 바위 스님되여 앉아있다 얼굴부터 새겨진 법글이 쭉 내려오고 몸의 구석진 곳들은  전설쪼각이다 마음속에서 지줄대는 이야기는 강을 따라 흘러가고 무성한 이파리 매달려있는 줄거리들 줄줄 타래진다  구름이 펜을 들고 쉬고있다 눈아래 서있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입은 닫겨있다  무거운 입술을 열면 하늘중심에서 우는 천둥이 지심까지 들썩인다 작은 귀뿌리는 점점 커진다 열쇠를 가지고 떠나는 사람들 갇히운 마음을 연다 진펄에 빠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이 시는 시집의 첫수이다.  보는바와 같이 1련은 스님에 대하여 쓰고 2련에서는 구름에 대하여 쓰고 3련에서는 귀뿌리에 대하여 쓰고있다. 스님에서 구름에로 도약하고 구름에서 귀뿌리로 도약하면서 시는 마무리를 짓고있다. 련과 련사이가 큰 도약을 이룩하였을뿐만 아니라 한개련에서도 도약이 진행되고 있다. 1련에서 스님은 전설쪼각이 되는가 하면 이야기가 강물처럼 흘러가는가 하면 무성한 이파리와 줄거리가 나온다. 2련에서는 구름이 의인화되면서 여러가지 사실이 나오고 있고 3련에서는 작은 귀뿌리, 열쇠가진 사람들이 나오는가 하면 진펄에서 헤매는 발걸음이 나오고 있다. 어찌보면 시가 대잡탕으로 이루어진 감이 난다. 이미지들이 아래와 같은 특점들을 가지고 있지 않을가 생각된다. 각련의 이미지와 이미지가 련결이 되는것이 아니라 분리되여 있고 이미지들이 각자 존재를 한다. 어느한 이미지가 다른 한 이미지의 결과이거나 원인이 되지 않는다. 이미지들은 중심에 의하여 조직된것이 아니라 중심을 떠나고 있어서 탈중심, 무중심을 이룩하고 있다. 이미지들은 또 현실적인 사실인것이 아니라 픽션으로 되여있는 허구이며 가상현실이라고 말할수 있다. 운문으로 된 시 한수를 더보기로 하자        상아의 노래   재빛나는 바다의 아침 상아는 검은색 옷을 입고 호화로운 요트에 앉아 입술에 노래를 담고있다   멍청한 후렴은 고해의 값을 벌거벗은 자연에 치르고 현기증나는 우수를 넓은 가슴에 대고 바순다   천개의 북이 물의 정적을 깨뜨리고 하늘속의 기류 바다의 조류를 률동키안에 주어담는다   [상아의 노래]전문이다. 의인화된 상아가 검은 옷을 입고 요트놀이를 한다[1련] 2련은 일년과는 관계없는 멍청한 후렴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3련은 천개의 북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한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가는것을 가히 도약이라고 하거나 뜀질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우리가 수백년동안 써오던 시의 구성이랄가 구조랄가 하는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수백년동안 써온 시는 단선구조이다. 단선구조는 하나의 사실을 중심으로 썼다. 하지만 이시에서는 상아, 멍청한 후렴 그리고 천개의 북이 나오고 있다. 이 세가지 이미지는 종적구성을 이를수 없는 서로 대등한 자격으로 등장하는 횡적구성을 이루면서 병렬적으로 배렬되고 있다. 시인의 시적사유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유의 공간이 확장된다고 하겠다. 이것은 어느한 초점에 매여있는 시인것이 아니라 시인의 절대적인 자유로운 상상의 산물의 태여남이며 움짐임으로써 시적상상의 자유분방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수 없을것이다. 하이퍼시가 다시점 다초점으로 된다는것을 이러한 수법으로 쓴 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가 하고 짚어보게 된다. 시인은 이미지와 이미지사이에 공간 혹은 간격을 주어서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데 (. 167쪽)는 조지p.란도의 말이 떠오르게 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겠다.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 시   재래로 시를 쓴다면 시적계기요 서두요 발전이요 결말이요 조응이요 하는 말들을 잘 살펴보아야 했던것이다. 오늘 시의 현주소도 그런 시가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방순애시인이 쓴 시는 이런 언어들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고있다. 또 기, 승, 전, 결이라는 언어로 방순애시의 시를 살펴본다는것은 아마 통하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방시인의 시는 이런 용어들과는 무관하다. 방시인의 시는 어떤 시인가? 방시인의 시는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 시라고 함이 타당할것 같다. [시간은 원이 되여]하는 시집의 시들은  이미지 토막과 토막의 배렬로서 그토막과 토막들은 시작이자 결말이고 결말이자 시작이라고 하겠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것처럼 (동상 96쪽)     원이 되여 굴러간다 원에 붙어 달리는 다리 그리고 원을 꺼꾸로 돌리는 개미들 보송보송한 구름이 땅에 내려올 때 갈고리를 바닥에 질질 끌며 걷는 방랑자들 모래위에 집을 짓고 텅빈 갑옷만 입고 너덜거린다 한치도 안되는 삶의 공간은 무대위에서 졸고있다 어두운 밤 잠자는 눈을 움직여본다 문자 없는 필기장에 글을 갈겨본다 환히 밝아진 벽빛을 남의 눈에 주지 말고 나에게 비춰보라 그러면 찌그러졌던 얼굴이 보름달로 변해간다 들끊는 대기는 게으른 손을 잡아준다 활기찬 발걸음은 앞을 재촉한다                                -전문   이 시는 이미지 집성으로  되여있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토막들의 모임이다. 시인은 어떤 고정된 감정으로 시를 쓰고 있는것이 아니라 열린 상상으로 이미지를 편집하고 있다겠다. 시간,원, 다리, 개미, 구름, 갈고리,방랑자, 집, 갑옷, 무대, 구름, 필기장, 벽빛, 얼굴, 손, 발걸음 등등 사물들이 독자적인 이미지로 되여 한시속에서 움직인다 한수의 시라기보다는 한수의 환상곡이라고 할수 있겠다. 이런 이미지들은 다 자기의 독립적인 토막을 이루고 있다. [한국의 문덕수시인은 토막을 단위라고 함] 이 토막들은 또 시인의 배렬처럼 요렇게만 놓이는것이 없다, 누구든 자신의 상상에 의하여 바꾸어놓아도 별문제이다. 어느것이 시작 인지 어느것이 결말인지 분명치가 않다. 사실 제일 마지막행을 앞에 가져다 놓아도 무리가 아니다. 줄글로 된 2련시인데 2련을 1련으로 만들어도 무방하다.어느한 이미지나 다 앞에 있어도 되고 뒤에 있어도 되고 중간에 있어도 된다.우리가 대 사막의 가운데 서있다고 하자. 어디가 사막의 시작이고 어디가 사막이 끝인지 보이지 않을것이다. 마찬가지로 배를 타고 바다속에 서있다고 하자 사면은 수평선이다 어디가 시작 이고  어디가 끝인지 누가 알랴. 하지만 사막은 사막대로 넘치고 바다는 바다대로 넘친다. 사막에 섰다면 선자리가 사막의 끝이고 시작이라고 해도 되고, 바다에 섰다면 선자리가 바다의 끝이고 시작이라고 해도 된다. 우에서 이미 언급되였지만 하이퍼시의 이미지들은 독립적인 각자 존재이면서 한시에 집합되였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것 같다. 이러한 시를 이미지덩어리라고 할수 있지 않을가. 이 세상의 어떤 사물이나 련계없이 절대적인 고립으로만 존재하는것이 하나도 없다. 어떠한 사물이나 한가지 성분으로만 구성된 사물도 없다. 하이퍼시구성은 자연과 문화와 우리의 사유에 부합될뿐만 아니라 오늘의 글로벌시대와 컴퓨터시대에 부응하 는것이라고 필자는 말하고싶다. 시문학력사를 소급해보면 1960년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시인 SJ 생종페르스의 시도 이런 수법이였고 201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 시도 이러한 수법이였다. 21세기에 와서 한국의 시인들인 문덕수, 심상운, 오남구, 김규화 등 한국시단을 리드하고 있는 전위적인 많은 시인들의 시들도 이러하다. 그러니까 방순애시인은 로 우리시와 세계의 시 흐름을  접목시키고 있다겠다. 그렇다고 해서 시가 완전완미하다고 하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도 부족한 점들이 많으리라고 생각된다.   폭력적 조합으로 된 이미지의  산재   방순애시의 이미지창출은 예측불가능이다. 한이미지로부터 파생되여 나오는 이미지도 그러하거니와 이미지와 이미지 링크도 느닷없이 새롭게도 돌발적으로  기이하고도 괴상하게 산출되고 있다겠다 하이퍼시의 언어로 명명해 본다면 알렉스이다.     여기서    돌은 하늘이 버렸을 때 침묵의 깃발을 든다 갈대숲은 겨울의 어둠속에서 하얀불을 지펴 자기를 지킨다 울창한 숲과 새들 그리고 나의 집 창가의 벽이 피를 흘리고 달은 구름속으로 숨어버린다 창백한 손은 이곳에서 떠다니는 거품을 거둬내고 무지개의 현에 맞춰 밤의 찬가를 부른다 날개가 없고 얼굴이 없어도 심연의 사색은 새벽 입김위에 가는 발자취를 한뜸한뜸 수놓는다   는 이 시집의 마지막 시다. 는 마지막 시의 첫구다. 모순되는 언어들의 집합이다. 의미가 심장하다. 하늘이 언제는 돌을 품고있었는데 버렸다는것이다. 언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증명할 어떠한 과학가도 고대학자도 없을것이다. 시인이 창출한 이미 지는  그로데스크하여 기이하고 괴상한  발상이라고 아니 할수 없다. 이 말을 풀이해 보면 하늘이 돌을 버렸다는것이다. 이 허구는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이라고 할수있 다 .하지만 너무 폭력적으로 조합했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그아래 시구도 그렇다 갈대숲이 하얀 불을 켜고 겨울이면 자기를 지킨다고 한다. 갈대꽃을 불로 전의시켰음이 확연하다. 그런데 이 불은 불이 아니다. 불이면 갈대가 다 타버릴것이 아닌가. 모순 어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창백한 손은 , 등등 이러한 이미지조합들은 의미를 전달하려는 일상적인 사유로서는 맞지도 않는 말들의 조합으로서 폭력적으로 강압적으로 억지로 주어맞춘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의 폭력적조합이야 말로 시구를 새롭게 하고 시를 새롭게 하는 현대시의 데크놀로지 이 다..    다시는 펴지지 않는 잔디들 자갈이 깔린 울퉁불퉁한 길이 놓여있다 세상 파도는 닫혀진 막을 열고 깊은 곳에 닻을 내린다 새로운 고뇌보따리는 새끼를 꼬고 밤거리 모퉁이를 지나 차도를 넘어 등에 착 달라붙는다                          에서   심장이 톡톡거리며 멈출줄 모른다 대굴대굴 굴러가며 돌아가는 빛은 시계속으로 들어가고 달빛에 용해된 몸은 도시로 들어간다 가고있는 발길에 말랑말랑한 물방울이 달린다                       에서    파란 하늘에 둥둥 달려있는 커다란 바위덩이위에 번화한 도시가 앉아있다        읽혀지는바와 같은 폭력적으로 창조된 이런 이미지들은 방순애시의 도처에 심심찮게 산재해 있다. .(에서) (에서) ()   선형적인 언어에 대한 일탈과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창조로 되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언어의 흐름을 새롭게 할뿐만 아니라 현실문법을 파괴하는 빛이 찬란하다고 해야 하리라. 시는 언제나 낡은것을 밀어내고 새것을 떠올리는 언어의 화살을 날림일것 이다. 이런 새로운 언어화살을 날리는것이 없다면 시의 창의성을 무엇으로 말할수 있겠는가. 이러한 언어로 된 이미지 창출이 많을수록 읽어보는 사람에게 새로운 세계 를 보여줄수 있는것이다. 시인만이 창조하는 새로운 세계가 없는 시들은 왕가물속의 풀잎처럼 나부라져 맥을 추지 못할것이다. 이러한것들은 언어의 폭력적조합이나 이미지의 폭력적조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언어의 폭력적조합이나 이미지의 폭력적조합은 현대시의 문턱이라고 할수 있다. 이 문턱을 넘어서야 현대시에 입문했다고 할수 있으며 하이퍼시에 도착할 가능성이  있는것이다. 이 문턱은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다. 언어연금술을 장악하면 이 문턱은 낮은것이요 언어연금술을 장악 하지 못하면 이 문턱은 높아지는것이다. 이 문턱은 다리가 길어서 넘어가는 문턱이 아니고 키가 커서 넘어가는 문턱도 아니고 시를 오래 썼다하여 절로 넘어가는 문턱도 아니다. 시적예술에 대한 피타는 노력과 새로운 탐구만이 이 문턱을 넘어서게 할것이다.  방순애시인은 이 문턱을 넘은것 같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창의성이 강하고 다채롭고 상상이 포만되였다고 할수 있겠다. 시인은 언제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며 자유롭게 풀의 세포속에도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고 우주의 해나 달속으로도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행운아일것이다.         나오는 말     우리가 걸어온 시문학의 길은 대개 이러하다고 할수 있겠다. 해방이 되여서부터 문화혁명까지 대아를 내세우는 시를 썼고, 개혁개방후에는 자아를 내세우는 시를 썼다겠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으며 우리의 시인들중 현실시풍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시인들이 무아의 시문학을 추구하고 있다. 무아의 시를 추구하는것은 지금은 시내물처럼 조잘대지만 앞으로는 대하로 굽이 칠것이다 시내물처럼 조잘대고 있는 시가 하이퍼시가 아닐가. 방순애의 시집 [시간은 원이 되여]는 하이퍼시로서  우리 시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다.는 시의 다선구조로 단선구조를 대체하였고, 객관이미지로 시인의 독백을 대체하였고,  사물을 변형 시키고 변현물의 움직임으로 설명과 해설을 대체하였고,  이미지의 편집자 자격으로 시에서의 자아를 축출하였다. 고정된 관념에서 일탈하여 무한한 상상을 펼치는 방순애의 시는 읽고 생각하던 시로부터 감각하고 사유하는 시로의 전의를 꾀한것 같다 애기가 금방 태여나면 눈도 뜨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지만 나날이 자라고 커가면서 어른으로 되기 마련이다. 하이퍼시도 지금은 갓 태 여난 한 아기에 불과하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이 아기는 눈눈을 뜰것이며 말을 할것이며 힘차게 달아다닐것이며 싱싱한 어른으로 자라날것이다. 방순애시인에게 아직도 과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시e는 추상성을 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때가 간혹 보인다. 시간의 흐름을 령혼에서 맛 보고(나비) 내부에서 일어나는 순간순간을 피부에 입력한다(마음의 그림) 몽상도 좋고 환상도 좋다 (감초의 그림자) 가는 가을날 잡고/가슴에 남은 말을 건네려고 하는데/그리움만 우두커니 세워놓고(서쪽달) 이러한 시구들은 형상성보다 추상성이 짙어서 머리에 영상이 떠오르지 않거나 희미하게 떠오른다. 앞으로 극복할바라고 생각한다. 시구는 사물운동의 세부를 섬세하게 그릴수록 그 힘이 더 강해진다. 추상적언어라렬의 멋진 말은 시에 손색을 주기가 일수이다. 시인은 모름지기 이에 류의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빈퉁재는 소리는 잘 나지만 속에 든것이 없는것과 같다. 쌀이 골독한 퉁재를 두드리면 소리는 잘 나지 않지만 속에는 쌀알이 가득 차있어 좋은것이다. 방순애시인은 또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하고 더 다채롭게 쓰겠는가를 연구하여야 하며 그 연구를 시적으로 표현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방순애시인의 새로운 정진을 기대하면서.                                     2013년 5월 8일 서재에서    
766    방산옥 / 최룡관 댓글:  조회:4055  추천:0  2015-03-27
   새로운 천지에서 타오른 시의 불길                  방산옥시집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를 보고                                  최흔   방산옥시집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를 보았습니다. 이 시집을 말하면 [새로운 천지에 타오른 시의 불길]이라고 함이 좋을것 같아서 시평이름을 달았습니다. 방산옥시인은 2년동안의 학습과 창작에서 동시 200여수를 습작하였고 그중에서   88수를 추려서 [바람도 빼똘빼돌]이란 동시집[비매품]을 묶어보았고, 현대시 200여 여수를 습작하였고 하이퍼시 200여수를 습작하였습니다. 하이퍼시 200여수중에서 92수를 선택하여 오늘의 하이퍼시집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를 정식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아래에 두가지 방면으로 방산옥하이퍼시집을 이야기하고저 합니다. 하나는 시의 령역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시의 이미지문제입니다. 이 방면에서 방산옥시인은 새로운 추구를 보여주었다고 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1   새로운 시령역을 개척한 시   시의 제재령역을 어떻게 탐구할것인가 하는것은 시창작에서 주요한 부분의 하나 라고 생각됩니다. 그 전형적인 실례로 남영전시인이 개척한 토템시가 있고 , 김파시인이 개척한 고구려 력사를 쓴 장편서사시 [고구려] 상중하 3권이 있고 최룡관의 련작시, 녀인의 누드를 시로 쓴 [금단의 열매]가 있습니다. 또 형식적인 것을 추구한 박운호의 가로세로 시가 있습니다. 하나의 새로운 시령역을 개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인이 그 령역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탐구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시적기교를 장악하고 운용하여 시로 만들어내야 하는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령역과 시의 제휴가 이루어져야 할뿐만 아니라 량자가 혼연일체를 이루어야 하는것으로서 이런 일은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방산옥시인은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에서 시적제재의 새로운 돌파를 가져왔습니다. 주역과 의학을 생활과 결합시켜 시로 만들었습니다. 이 시집에는 주역으로만 시로 만든것이 12수나 되는데 아래와 같은것들입니다. [봉선화], [8괘 합창단],  [자궁을 랭동시킨다-축도], [별들이 만든 새태양-인] , [3월이 분만한다 – 진토], [산중도사의 혀는 57자-간] [바람이 비몽둥이에 맞아-손2], [흙물에 짓는 련꽃집-태],[물의 별곡-감] , [폭포는 바람의 날개를 붙잡고-손1], [우뢰가 우주의 귀뺨을 친다-진], [버들과 련꽃형제-손] 이러한 작품들은 주역을 시화한 작품들입니다. 그외에도 많은 작품속에서 주역성격을 띤 이미지들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역을 쓴 시들의 제목을 보아도 범상치 않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시집의 첫수 [봉선화]는 봉선화가 여물면 알이 터져나오는것으로부터 착안하여 주역을 끌어내였는데 씨앗들이 튕겨나오면서 하늘이라 부릅니다. 바람이라 부릅니다 진동이라 부릅니다…. 하면서 건, 손, 진 하고 자기의 성을 소개합니다. 시에서의 의인화수법이 자연스럽고도 감칠맛 있게 표현되고 있다고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자궁을 랭동시킨다-축도], [별들이 만든 새태양-인]에서는 언어조합의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고 [산중도사의 혀는 57자-간]에서는 유모아와 풍자, 그리고 해학적인 이미지로서의 개성에 매도되고, [바람이 비몽둥이에 맞아-손2]와 [폭포는 바람의 날개를 붙잡고-손1], [우뢰가 우주의 귀뺨을 친가-진]들은 참신한 이미지를 우리앞에 던지고 있으며 그 이미지들은 돌발적인것들로서 우리를 느닷없이 기습하고 있습니다. [흙물에 짓는 련꽃집-태], [버들과 련꽃형제-손] [물의 별곡-감]등 테마들은 옹골차서 믿음을 주는 제목들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야릇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주역을 중심으로 썼지만 제목들 이미지가 여러가지 표현으로 되여 과히 딱딱하지 않고 엉뚱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기에 손색이 없다는것을 느끼게 되겠습니다. 주역뿐만 아리라 의사로서 의학적(특히 성)인것들에 대한 이미지도 직접 혹은 쐐기를 박는 식으로 쓰고있는데 방산옥시집의 주요한 제재의 하나로 리용되고 있습니다. [옥문], [용천혈], [침모내기], [감초], [청진기], [처방전1], [처방전2], [캡슐], [백내장1], [백내장2], [골반염] 등등 시들이 의학적인것을 이미지로 해설하였다고 하겠습니다.      방시인은 의사로서 성에 관한 박사라고 할수 있습니다. 방시인의 시집에는 성에 대한 시들과 시어들이 점철되여있습니다. 시인은 성을 아름다운것으로 신성한것으로 보고있으며 여러가지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근 한가지 표현만 보더라도 자라가 빼드는 목이다가. 물구나무이다가, 비몽둥이다가, 날개를 드리운 꿩이다가, 옹이다가, 태양이다가, 갓 쓴 기둥이다가, 구렁이다가, 노젓는 동북범이다가, .지렁이 다가, 도화산 낚시대다가, 시퍼런 검이다가, 대포이다가…..    실로 여러가지 표현이여서 이루다 렬거할수 없습니다. 방시인은 한사물을 여러가지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공력을 들였는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거이 모든 시들에 주역적인 이미지들과 의학적인 이미지들이 시집의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시집은 세가지 골격을 이루었다고 생각됩니다. 한가지는 주역이고 두번째는 의학이고 세번째는 우리의 현실생활입니다. 주역도 그렇고 의학도 그렇고 현실생활도 다가 이미지창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때론 각자존재형식이고 때론 혼연 일체를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많은 시들에서는 이 세가지가 각기 하나의 단위로서 하이퍼시를 구성하고 있다하겠습니다. 그럼 주역이나 의학을 제재로 한 시들은 하이 퍼경향이 없는가? 그런것이 아니라고 보아집니다. 그러한 제재의 시들도 하이퍼텍스 트에 속한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하이퍼시란 주지하다시피 중심이 없는, 다선구조로 된 시라고 간략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집의 커트를 [방산옥하이퍼시집] 이라고 달았습니다..   2   다음은 시의 이미지문제에 대하여 말하고저 합니다. 시집에서는 새로운 이미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해야 할것 같습니다.마치도 가마속에서 물이 설설 끓어번지 듯이 말입니다. 이미지들은 뒤의 이미지가 앞의 이미지를 밀어버리며 자리를 차지 하는데 마치도 물결이 세차게 흘러가는것 같습니다. 이미지 설정에서 시인은 마구잡이와 상상성 두가지 방법을 령활하게 응용하고 있습니다. 제1장에 오른 시들의 정채로운 이미지를 한번 살펴보는것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제 1장에는 모두 16편의 시가 실려있는데 새로운 이미지가 콸콸 넘쳐흐르는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대개 아래와 같습니다.   1, 우뢰가 우주의 뺨을 치다 2, 재목나무 타고 별과 대화하던 룡을 /벼락이 간을 뽑아 구름우에 심는다 3, 서쪽에서 해가 뜨고/ 기차가 하늘로 달린다 4, 장백산천지는 구름우에 옮겨졌고/ 폭포는 화성에 쏟아진다. 5, 닭알이 벼랑에 떨어져/ 뼈가 부서집니다 6, 우체통으로 날아가는 기차/벌벌 기여가는 비행기/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군함들     7, 지구층을 절단하다     8, 호랑이 심장으로 기차 만들고 / 창자로 기차길을 닦았습니다.     9, 다람쥐는 발걸음 소리로/땀을 모아 금붕어 키우고 10, 코구멍에 펌프가 고장났는가를/ 식도가 컴퓨터화면으로 감시를 한다.     11, 산새들이 산소통을 /등에 업고 날아내리다     12, 메추리가 벼잎군함을 타고 항행한다     13, 바람이 찢기는 한끝에 / 새들이 부딧쳐 떨어진다     14, 바위돌들은 지렁이/골받이에 가루가 되여     15, 바위눈에는 등불이 켜져있고     16, 글자가 삐뚤삐뚤 길을 닦고/ 길은 모양을 조각하며/ 소리를 낳는다     17, 안개가 … 아가기저귀가 된다.     18, 산을 뒤흔들던 계곡의 메아리가지에 / 새들이 앉아 노래부른다     19, 심장이 열리는 대뇌-추최에 스며들어/ 옹이를 박는다     20, 산새들이 주문을 외우고/ 주문의 마디마디가 /푸른 잎에서 쫑쫑 뛰여내린다.     이외에도 [우주핸들] [노란 폭우]같은 새로운 명사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에서 보는바와 같이 시는 언어이며 언어의 새로움이라고 해야 할것입니다. 시가 새로운가 새롭지 못한가. 시에 창의가 있는가 없는가는 하는것은 시속에 새로운 언어들이 나와서 새로운 이미지를 구성하는가 못하는가에 그 중요한 기준이 있다고 말해야 할것입니다. 일상적인 언어를 어떻게 새로운 언어의 흐름으로 다듬는가 안 다듬는가는 시의 생명력이 강한가 약한가를 가름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방산옥시인의 시언어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계발을 준다고 하겠습니다. 곰곰히 다시 읽어보아도 새말이 아니라고 할수 없는 언어의 창출과 이미지창출인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1500년전에 중국최초의 문학개론에서 류협은  수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수란 작품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말을 가리킨다…수(秀)는 한 작품안에서 여타의 다른 부분들과 비교되는 특출함을 통해 그 아름아움을 획득한다].. (문심조룡 155쪽에서) 방산옥시인의 상기한 언어조합과 이미지는 바로 [작품안에서 두드러진 말]이고 [한 작품안에서 여타의 다른 부분들과 비교되는 특출함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획득]하게 되는것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방산옥시인은 2년 남짓한 동안 시를 배우고 익힌 시인으로서 초학자라면 초학자이고  시인이라면 시인이겠습니다. 초학자라는것은 경력이 짧아서이고 시인이란것은 방산옥씨가 확실이 시를 썼고 쓰고있으며 앞으로도 쓸것이라고 생각되기때문입니다. 방산옥시인은 문학으로 발하면 이방인입니다. 의학자가 시를 하니까요.  방시인은 자기 나름대로 그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시의 기교에 기대여 언어를 조합하고 이미지를 만드는데 공력을 들인 같습니다. 그래서 범무서운줄 모르는 하루강아지 역을 담당하였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고 방시인은 시의 본연에 들어가 시적기교로 언어를 다듬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현대시의 본연은 바로 이질적인 언어의 폭력조합과 이질적인 이미지 폭력조합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습니다.(저는 이 말을 상투 적으로 써서 미안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또 씁니다) 우에 라렬한 이미지들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 수법은 현대시의 기본기교입니다. 때론 어떤 근사성을 고려하고 하는수도 있고 때론 아무런 근사성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사물과 사물이나 언어와 언어를 약혼시키고 결혼시킬 때도 있습니다. 마구잡이가 되는 조합들은 얼핏보면 란장판같지만 기실은 따지고 보면 그 련계가 간접적으로 멀리에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사물들이 고립적으로 존재하는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상호의 련계속에서 존재하게 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련계가 직접 보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시인은 바로 그 잘 보이지 않는것을 추구하는 언어의 마술사라 하겠습니다. 세상사물이 변하는것은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것은 상대적일뿐입니다. 방시인은 변한다는 절대성에 의거하고 주역오행설에 의거하고있는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한두가지만 보도록 합시다. 방시인은 [침모내기]란 언어와 [우주핸들] 이라는 언어를 창출하였습니다. [침모대기]란 언어는 이제까지 세상에 없던 언어입니다. [침]과 [모내기]합성어인데 이렇게 맞지 않는 언어를 조합하는것이 폭력적 조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 어떤것을 근거로 이런 언어를 창출하였는가가 문제입니다. 사람의 몸에 침을 꽂으면 한대한대를 꽂는자체가 모내기와 비슷한것 입니다. 침여러대를 놓았습니다. 우리는 침이 꽂힌 모양을 본다고 합시다. 그 모양이 모를 낸것과 비슷하다는것을 얼핏 알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폭력적언어조합이 성립된다고 해야 할것입니다. 다음 [우주핸들]은 상기한것과 완전히 다른 형태라고 보아집니다. [우주]와 [핸들]은 아무런 련계성도 없는 단어라고 해야할것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의 명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도 일상적인 사유로는 맞지도 않는다고 할수 있습니다. 자동차핸들하면 달리는 차의 방향을 잡아주는 방향판인것입니다. 그런데 우주속에는 핸들이 있지만 [우주핸들]이란것은 없는겁니다. 두사물사이의 어떤 련계성도 찾아보기 힘들고 또는 찾아볼수도 없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습적이고 돌연적인 단어에 놀라지 않을수 없기도 합니다. 그리고 난삽하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왜 허용되는가가 문제로 나선다고 생각됩니다. 필자는 이런 견해가 있습니다. 시는 생활의 진실이 아니라 예술의 진실입니다. [우주핸들]이란 사물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인것이 아니라 시인이 만들어낸 허사입니다. 이런 허사가 시에서 존재하게 되는것은 시가 우리의 주위에 존재하는 실물인것이 아니라 허상이기때문입니다. 시는 어찌보면 허상의 창조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우주핸들]이란것은 우주의 질서에 대한 상징물이며 우주질서를 물화한 상징이라고 보아집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구상적인 언어로 표현한것이라고 말입니다.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 즉 이미지라고 할 때 추상적인 사유나 추상적인 언어들을 구상화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구핸들]이 란 언어가 시에서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보아집니다. 우에서 례를 든 중에서 이미지폭력적조합에 대한것을 하나 살펴보는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산을 뒤흔들던 계곡의 메아리가지에 / 새들이 앉아 노래부른다]는 시구가 있습니다. 여기서 [계곡의 메아리가지에/ 새들이 앉아 노래부른다]고 합니다. 메아리와 가지의 어울림이 맞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런 사물이 없습니다. 없는 빈 곳에  [새들이 앉아 노래부른다] 고 합니다. 이런것을 이미지폭력조합이라고 필자는 말합니다. 없는 사물에 어떻게 새가 앉아 노래부르겠습니까. 그런데 가지에 새는 앉아 노래부른다고 할수 있습니다. 메아리가지는 우에서 근거없는 언어조합에 속하는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며 또 시에서는 막부득이한 경우를 내놓고는 추상적인 언어사용을 극도로 절제하여야 하는것입니다. 왜냐하면 의미지는 사물의 움직임을 똑똑히 밝혀야 하는것이 상례이기에. 메아리는 보이지 않는 청각이미지로서 그것을 시각화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어 [메아리]뒤에 구상어 [가지]라는것을 붙임으로써 보이지 않던 메아리가 보이게 되는것입니다. 이런것은 공감각의 일종인데 청각을 시각화한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질이 다른 사물이나 성질이 다른 언어를 련결해 놓으면 새로운 사물이나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게 마련인것입니다. 여기서 언어의 탄력이 생기게 되며 언어의 밀도가 빽빽하게 되는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언어의 탄력에 대한 추구, 언어의 밀도에 대한 추구는 시인들이 모름지기 장악하여야 할 기교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러한 추구는 시적창의가 절로 생성되게 되는 계기이며 도경이라고 할수있겠습니다. 여기서 사물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는 언어입니다. 언어란것은 사물의 상징일뿐이지 원 사물은 아닙니다. 물과 불이 끌어안았다 하면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물과 불이라는 사물을 직접 가리키는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상징하는 언어를 조합시킨것이 되겠습니다. 해석하 자면 긴데 본 텍스트가 방산옥시인의 시집에 대한 평이므로 명제만 제기하고 략합니다. 방산옥시인은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는 하이퍼시집을 5개장으로 나우어 92수의 시를 실었는데 나머지장들에도 이런 멋진 언어조합과 멋진 이미지조합들이 수두룩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봐주기를 기대합니다. 방산옥시인의 시집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는 연변에서 두번째로 출간되는 하이퍼시집으로서 방순애의 하이퍼시집 [시간은 원이 되여]와 함께 연변시단에서 하이퍼시의 쌍벽을 이룬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시평을 마치면서 방산옥시인에게 도마디만은 하여야 할것같습니다. 아직도 시언어 다듬에서 더 윤활하고 더 깐지고 더 깨끗하고 더 부드럽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시는 언어의 관을 넘는것이 근본인데 이 근본을 넘는데는 열두고개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금은 몇 고개를 넘었는가 자체로 더듬어보고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기를 바랍니다. [찢겨진 바람], [달을 뜯어먹다] 등 이미지들이 별로 구별이 없는 이미지들로서 중복되는데 앞으로 창작에서 이런 중복이미지들에 대하여  크게 중시하여야겠습니다.                                2014년2월 중순에.    
765    김파 / 최룡관 댓글:  조회:4346  추천:1  2015-03-27
  찬란히  터져오르는  이미지   --김파시인의 열번째시집 《태양의 언어》에 부쳐                          최흔    김파시인의 열번째 시집을 보았다.  립체시라는 일로를 줄기차게 걸어오던 김파시인이 오늘은 라는 디지털 하이퍼시라는 작탄을 터지웠다.  이미지들은 야밤의 폭죽불꽃처럼 찬란하다. 폭죽은 순간의 황홀을 보이고 사그러지지만 는 그런 순간을 영원으로 고착시키는 황홀경을 이룬다고 하겠다. 무의식, 하이퍼특점, 언어들의 독특성을 이 론문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무의식사유의 결실   김파의 열번째 시집 의 시들은 무의식에 절어있다. 사람들이 시를 쓰는 의식은 대개 세가지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현실의식이고, 둘째는 잠재의식이고, 세째는 무의식이라겠다. 어떤 의식으로 시를 쓰는가는 시인마다 다르다. 현실의식만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현실의식과 잠재의식을 혼합시켜 시를 쓰기도 하고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혼합시켜 시를 쓰기도 한다. 김파시인은 이런 류형의  사유로 시를 쓰는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무의식으로 시를 편집하고 있는같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의식이란 현실사물의 현상을 종합하고 처리하는 시를 말하고 잠재의식이란 한사물의 어느 한 현실로부터 시작하여 그 사물의 력사거나 시인의 기억을 더듬어 시를 작성하는것이라 하고, 무의식이란 말그대로 현실의식을 묵살해버리고 새로운 의식으로, 환상적으로 시를 시작하고 발전시키고 마무리하는 시라고 하겠다. 현실사물에 대한 모든 기성관념을 부정하고 새로운 관념으로 시를 쓰기에 무의식이라고 할수 있다. 때문에 시에 나타나는 제재들은 현실적인것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과 환각에 의하여 재구성된 표현들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이란 오직 시인에게만 있는 새로운 의식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없으면서도 있는 의식! 이제 김파시인의 시의 서두로써 이야기해 보자.     세월의 틈서리에 산란하는 말씀들 벼루기의 집장고도 --《무제》서두에서     시간의 얼마나 흘렀는가 고요가 사글어 곰팡이 낀다 고민이 쌓여 발요되는 열기 정감의 세포가 분해되고있다 --《무언의 대화》에서   태양이 늪얼음을 깁던날 치마자락으로 부채질하는 바람 바위살같에 소름이 돋힌다 녹 쓴 기억 닦아내고 윤활유 바르는 온도계 스케트날이 시간의 잔등 스친다. ---《기다리는 마음》   손톱끝에 지는 피방울 시간을 껍질벗긴다 후리드입술 콩나물 내뱉고 ---《예감에 찔리여》   우산 든 겨울 벌거 벗은 바위 --《서리낀 말씀》   다섯수의 시의 서두를 례로 들었다. 다섯수의 시의 서두는 김파시인의 시의 서두의 보편적인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에서 와 에서 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우리앞에 낯선 세계를 펼쳐주고 있다. 이 두시구는 현실관념이라고 할수 있지만 다음줄에 나오는 시구들과 련계시키면 그렇다고만 할수도 없다. 이말은 시간이 고요에 곰팡이 끼게 한다는것이다. 여기에서 제일 주목되는 언어는 와 이다. 구상물에 곰팡이가 낀다면 말이 되지만 고요라는 추상물에 곰팡이 낀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시적으로 통하는가? 무의식으로 쓰는 시는 생활의 모방이나 재현이 아니라 시인의 절대적인 상상에 의하여 다시 조직되여 그려지는 허상이기때문이다. 재조직된 허상이 아닌 시는 무의식으로 쓴 시가 아니라고 하겠다. 무의식으로 쓴 시는 있는것을 없게 하고 없는것을 있게 하기라고 말할수 있겠다. 의 서두도 마찬가지이다. 하는데 시간이란 껍질이 있고 속이 있는 사물이 아니다. 그런데 시인은 고 한다. 무엇이 시간을  껍질벗기는가 시인의 말대로 하면 이다. 피방울이 껍질을 벗기는 도구로 씌였으니까 피방울이 표현하는것은 피방울이 아니라 예리한 칼끝과 같은 은어의 표현으로 되고있다. 현실적인 의식이 슴배인것 같은 시행들이 실제는 아래에 오는 변형에 의하여 원뜻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의식에 동화되여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사물로 다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이 새로운 탄생은 시인의 시적사유의 사물이지 세상에 존재하는 현실적사물이 아니다. 그래서 싸르트르는 이미지의 핵심을 허상이라고 했을것이다. 현실의식이 작용하는 사물들이 허상의 영향아래 언어자체의 본뜻을 거세당하고 새로운 뜻으로 전이하게 된다. 그러니 워낙 새로운 사물의 운동으로 시작된 나머지 례들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런 시행들은 100프로 환각된 사물의 운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어느 시구나 다 시인이 새롭게 만들어낸것이 아니라고 할수 없다. > 여기서도 현실로 통하는것이 아니라 환각으로 통하는것이라고 밖에 할수 없다. >  이 의 서두도 허상적이거나 환상적이기는 위의 례들과 다를바 없다.
764    아방가르드/ 시론 댓글:  조회:4248  추천:0  2015-03-27
[아방가르드/시론]         디지털리즘의 시/ 질의응답의 현장   ―본 내용은 2005년 6월  배재회관에서 있은 한국시문학아카데미의 강연내용임        시문학아카데미 금요강좌(매주넷째주 금요일) 일 시: 2005년 6.24(금) 오후 5시 장 소: 배재회관(중앙일보사 근처) 연 제: 「디지털시대의 나의 시쓰기」(연사:오진현) 사 회: 이승복(홍익대 교수) 정 리: 이 솔(시인)       탈관념의 Showing ― '나의 시쓰기 과정'에 대한 몇 가지 질문/문덕수       오남구(오진현)은 그동안 탈관념, 접사와 염사, 디지털리즘 등의 화두를 던지면서, 자기 시의 논리화를 훨씬 넘어선 새로운 아방가르드 운동을 전개해 왔다. 이 방면의 기수라는 느낌도 들고 그만큼 화제도 많이 되뿌렸다. 이러한 전위적 몸짓만으로도 귀한 것이지만, 슬로건을 외치고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면, 자기가 내세우는 이론을 밑받침할 수 있는 논리 구축도 불가결한 것이며, 자기에게로 되돌아 올 반론의 부메랑도 각오해야 한다. 뼈아픈 자기성찰의 필요성,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전제에서 오진현의 「접사와 염사의 시점(視點) 문제」를 면밀하게 읽었다.   (1) 오진현은 ‘디지털리즘’(digitalism)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 개념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오진현은 디지트(digit), 디지털(digital)의 어원을 설명하면서, 디지털은 2진법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고,“디지털은 이런 가능성을 가진 것을 지칭한다.‘이즘’은 여기서 필자가 붙임”이라고 하여‘디지털리즘’이 자기의 조어임을 밝히고 있다.‘digital’에‘ism’이라는 말을 붙여 ‘digitalism’이라는 새 용어가 되는지 안 되는지 여기서 단언할 수 없다. 다만 기존 사전(Kenkyusha’s New English-Japanese Dictionary, 2002)에서는 digitalism을 “디지털리스 중독증”이라는 병리학의 용어라고 말하고 있다. ‘디지털리스’(digitalis)라는 것은 식물 이름이거나 그런 식물로 만든 일종의 강심제인 디지털리스 제제(製劑)를 의미한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오진현이 쓰고 있는 디지털리즘은 digital+ism=digitalism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데, 디지털이 가진 성질이나 기능을 하나의 개념 내지 관념으로 체계화할 수 있는 술어인지, 오진현 자신이 검증해야 할 것이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영문학자나 철학자의 조언을 받는 것이 좋다.)   (2) ‘접사’와‘염사’는 모두 사물에 대한 탈관념 시점에서의 시쓰기의 방법으로 생각된다. 오진현이 그의 시론에 도입한 용어다. 그런데 우리가‘탈관념 운운’하지만, 이 개념은 조향(1917∼1984)의‘오브제론’김춘수(1922∼2004)의‘대상의 붕괴’(『의미와 무의미』), 문덕수의 ‘대상에서의 해방(「내면세계의 미학」)’ 등의 선행 이론에서 발전되었고, 그러한 선행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탈관념은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해체론 등과도 관련된다.(불교의 유식론과도 관련될 것 같다.) 오진현은 이러한 여러 선행 이론의 성과를 받아들이고, 그 연속선상에서 자기 이론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3) 오진현은 ‘염사’(念寫)에 대하여 “내면세계의 잠재 영상을 촬영하는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일단 있는 그대로의 사물, 즉 관념의 제로 포인트(탈관념 상태 ― 본질의 상태)인 물체를 촬영한다는 점에 주목하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바로는“내면세계의 잠재영상”즉 있는 그대로의 내면세계의 현상이 현재 시점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물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내면세계의 잠재영상”은 생각 만큼 단순·소박한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의식(意識) 안팎의 시간과 공간의 구조가 내재되어 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융의 집단 무의식도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데, 이것을 오진현은 “잠재영상”이라고 포괄하여 ‘염사’로서 촬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로 가능할까. 또 불교의 선(禪)과도 관련시키고 있는데, 그 관련성에 대한 논리적 설득작업이 필요하다. 염사라는 촬영기술이 이런 무의식이나 집단 무의식의 촬영까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지울 수 없다.   (4) 20세기 모더니즘이 회화적 이미지를 강조하고‘말하기’(telling)보다는‘보여주기’(showing)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오진현의 디지털 시론에서는 말하기보다 보여주기 즉‘제시’(提示)를 강조하면서 자기 이론을 20세기 모더니즘과는  구별한다. 진일보라고 하겠다. 특히 자기 이론을 “디지털적 보여주기”라고 특정화한 것은 진전된 견해로 보인다.   (5) 오진현의 ‘염사, 접사’는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논리화 하느냐에 따라 시론상의 논의가치도 결정될 것이다. 오진현은 염사와 접사의 시점(視點)을  탈관념 시론의 방법으로서 이를 중시하고 있다. 특히 단일시점과 다시점을 구별하고, 다시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다시점 설정의 정당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시점 설정의 ‘기준’은 아예 말하지 않고 있다.「도표 1」에서의 P1, P2, P3 등은 시점 표지에 지나지 않고, 피카소의 「도표 3」, 백남준의 「TV시계」의 예에서도 다시점(복합시점)의 보기일 뿐, 시점의 기준을 말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작품 「日出山行」이 다시점의 예로서 적절한 것인지, 아니면 시점 발생의 가능성적 계기를 말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시점은 방위(동·서·남·북·상·하·좌·우 등), 차원(dimension: 공간적 넓이의 성질을 나타내는 1차원, 2차원, 3차원, n차원, 무한 차원 등), 주관과 객관, 인칭(1인칭, 2인칭, 3인칭 등), 관념(자유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기독교, 불교 기타) 등이 있겠지만, 자기가 주장하는 시점의 기준을 제시하여 분명히 밝혀야 한다. 오진현은 단시점보다는 다시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다시점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수긍할 수 있으나, 자기 시론에서의 그 정당성이나 필연성을 보완하기 위한 강성논리(强性論理)의 개진이 요구된다.   (6) 오진현은 “인식의 대상인 사물을 A라고 하고, 시인의 변수(인식의 변수)를 x라고 하면…”이라고 한다. “인식의 대상인 사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설명이 생략된 채 ‘A’라는 기호로 추상해버리는 것은 논술하는 방법으로서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시인의 변수(인식의 변수)”를 간단히 ‘x’라는 기호로 처리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대상을 대하는 시인의 변수 즉 “인식의 변수”도 x라는 기호로 처리하기 전에 타당한 논리와 객관적 설명이 요구된다. 시론에서는, 대상과,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시인) 사이의 상호관계는 매우 다양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탈관념의 시론이건 아니건 즉 어떠한 종류의 시론이건 반드시 확실하고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론의 핵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심 카테고리를 뭉뚱그리고  요약하여 “A”나 “x”라는 기호로 추상하여 처리해버리는 것은 논리빈곤이라는 의심을 면할 수 없다. 특히 시론에서는 만부득이하거나 필연적 이유 없이 논리를 수학공식으로 만들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문덕수의 몇 가지 질문 등 ―대답과 보충 / 오남구     (1) 디지털리즘에 관하여   물론 디지털이 가진 ‘성질’이나 ‘기능’을 하나의 개념이나 관념으로 체계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디지털시대가 전개되는 어떤 상태에 따라서‘주의’‘주장’‘설’ 등이 나올 것입니다. 우선 먼저 생각되는 것은, 디지털이 가진 성질이나 기능(특히 일종의 언어기능을 하는)에서 비롯되는 21세기 첨단과학의 영상시대가 빚어내는 디지털의 “인간확장”으로서의 긍정적인 면과 “인간축소(도구화로 전락)”로서의 부정적인 면의 양면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큰 이슈들이 나올 것이라 봅니다. 이를테면 조심스럽게 제기된, 미래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신체적 접근의 휴머니즘” 등일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미래사회를 예측하여 무모하지만 ‘디지털리즘’을 선언했고 그 선억적 의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디지털의 탈관념과 선행이론에 대하여   「대상의 붕괴」와 「대상에서의 해방」은 시의 대상에 초점이 있습니다.‘오브제’ 역시 대상(소재)를 해방시켜 버림으로써 ‘해방’이란 한 단어에 모아지는데, 여기에서‘관념의 해방’이란 관점에서 보면 모두 탈관념에 속합니다. 자크 데리다 등 언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러한 선행 이론들은 ‘언어의 탈관념’으로서,‘언어예술’과 언표의 확장은 이루었다고 봅니다. 물론 본인이 내세운 ‘탈관념’은 선행 이론의‘언어의 탈관념’에 기대면서, 역설적으로 언어의 반성적 이해를 하게 됩니다. 즉“언어가 처음 순수 직관에 의한 사물의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보면, 언어주의(또는 언어예술)의 무의미시의 지향은 곧 언어의 본적(사물)을 부정해 버리는 모순에 빠집니다.‘시는 본적지를 부정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탈관념’은 문덕수 시인의 ‘언어예술이면서 언어를 넘어선다’는 새로운 명제에 동참하게 되며, 협의의 탈관념으로서,“사물에 대한 탈관념”으로 좁히고, 그 방법으로서 ‘염사’와 ‘접사’라는 사진 기법을 디지털 시대의 시쓰기 기법으로 성립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점의 문제를 포함하여 선행 이론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염사’와‘접사’가 탈관념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언어로써 묘사하거나 기술하게 되므로, 선행 이론에 기대면서 기존과는 달리,“대상의 해방”이 아니라 대상의 ‘보여주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사물성을 보여주는 디지털 시쓰기의 다양한 방법이 발전됨에 따라 언어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디지털과 만나게 될 것이며‘디지털적 감각’의 또는‘디지털 방식’의 시적 수사학이 발달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염사에 대하여   염사를 설명하여,‘선적현상(禪的現象)’이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수행자나 이와 비슷한 자세에서 내면세계를‘보는, 또는‘떠오르는,‘느끼는’ 의미 등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염사와 접사는 ‘직관’이라는 같은 맥락에 있으며, 보거나 느끼는 방법으로서, 골똘히 생각하면 더욱 안 됩니다. 이때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연상에 지나지 않으며, 마치 그것은‘사고의 언어’와 같고, 무념한 상태에서 떠오르는 ‘잠재영상’은 ‘자연언어’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이란, 바로 ‘잠재영상’그 자체를 지시하며 다양한 상태로 있는 내면세계의 영상이나 그 느낌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잠재영상을 떠올리는 방법은, 선을 해보면 알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긴장하지 않은 상태로, 눈을 감고 집중하면 쉽게 잘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자동기술과 비교해 보면, 언어를 하나 백지 위에 써 놓고나면 자동적으로 그 다음이 써내려지는 자동기술을 체험한 적이 있는데, 이와는 달리 염사는‘회화적’이며, ‘느낌’이 움직이고, TV에서 방영되는 꽃을 보기만 해도 코앞에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작용을 input/output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4) 자크 데리다의 해체론과 탈관념   자크 데리다의 해체론은, 차연의 ‘차이’와‘연기’로써 설명됩니다.‘차이’는 소쉬르의 말로, 언어를 기표와 기의로 나누고, 기의 즉 언어의 의미는‘차이’에서 생긴다고 보는 것입니다. ‘차이’에 의해서 경계도 생기고 이름도 생기고, 이런 의미는 곧 관념으로 있게 됩니다. 그런데 자크 데리다는 이런 의미가 유동적이고, 불확실하고, 연기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미끄러짐으로써 해체된다는 것인데, 그래서 경계도 무너지고, 이름도 무너지고 주객의 구분도 없어지게 됨으로써 탈관념이 됩니다. 이것은 언어철학의 형식논리가 이른 탈관념일 것입니다. 저는 이와 구분하여‘직관시의 탈관념’이란 말로 거리 두기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형식논리 없이 사물의 직관적 인식에서 비롯되는 탈관념을 말함으로서, 인식론을 바탕으로 한 ‘선적’인 탈관념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과는‘탈관념’에 똑같이 이른다 해도 방법론이 다르다 하겠습니다. 앞으로 면밀히 동질성과 차이점을 연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보유 / 질의응답]   (1) 최근 포스트모던의 시와, 오진현 시인의 예문의 시를 비교해 보면, 뭔가 다른 ‘언어의 끼’랄까 맛을 느끼기는 한데, 아직 저로서는 특별히 잘 구분이 안 갑니다. 왜 그런지? 포스트모던과 간단히 비교해주십시오   최근 우리 문단의 포스트모던의 시들이 보여주는 경향은 크게 3가지로 나뉘어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패러디’이고 그 하나는 ‘매직’이고 그 하나는‘미니멀’로 압축되고 있습니다.‘매직’에 대해서는 이미 김춘수의 시에서 보았듯 기교를 넘어선 ‘트릭’으로서, 시가 ‘트릭’까지 가는‘언어 유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입니다. 역시 ‘패러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의 언어주의가 낳은 것으로, ‘창의성’이라든가 ‘독창성’이 문제 되는 일종의 ‘언어게임’으로 봅니다. 마지막 세번째,‘미니멀’은 언어의 다의적 의미를 절제하고 사물을 지시하며, 회화적 또는 구조적 표현을 하므로, 시의 ‘말하기’가 아닌‘보여주기’는‘이미지’ 성향의 시가 되겠습니다. 이 미니멀은 현대시의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언어중심주의’이므로,‘사물성’으로 이동한 인식논리의 디지털과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디지털은 감각적으로 명징하고 정밀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와 비교해 보면, 아날로그의 시계바늘을 보고 감각적으로 정확히 읽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디지털은 숫자로 표현되므로, 정확히 1초 2초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디지털 감각이라 하는데, 그 표현이 톡 톡 튀고‘생생히 살아 있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선적이든 아니든 일단 오진현 시인이‘탈관념’을 해버리면 자크 데리다와 마찬가지로, 주·객의 경계도 무너지고 해체된다고 보는데, 그렇다면‘누가 쓰고 누가 쓰여 지는가’의 중요한 주·객의 문제가 발생합니다.‘쓰고’‘쓰여지는’사이에 놓인‘의미’는 어떻게 됩니까?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에 대하여, 이승훈의 『탈근대 주체이론 과정으로서의 나』란 책의 인용문에 나오는 윤효녕 교수의 말에 동감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체에 대한 데리다의 입장이 “주체의 절대 부정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데리다의 주체 개념을 대승불교적 시각에서 새롭게 읽을 수 있다고 하며, “나뉘어지고 연기되며 구성되는 주체”라고 보고 있는데, 이승훈은 임제의 말을 다시 이용하여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어디가든지 거기서 주인이 되도록 하라, 그러면 내가 서 있는 곳이 그대로 진실된 곳, 극락, 부처님 자리이다” 즉, “원래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있고, 장소에 따라 이동하는 과정이 있고, 이 장소가 바로 주체, 주인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가든 거기서 주체가 될 때 그곳이 바로 진리라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렇듯 데리다의 주체 개념은 방황, 표류가 아니라 이런 표류가 바로 자유와 통하는 새로운 의미를 생산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탈관념은 역시 이러한 대승적 개념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3) 실험시를 쓰며,‘아방가르드’를 한 지가 30여 년이라고 하는데, 시작한 그 동기와 그에 대한 심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언어는 한계성(관념)이 있습니다. 노자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는 첫말로써 말로는 도(道)를 말할 수 없는 언어의 한계성을 전제(前提)하고 있습니다. 시는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언어의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를 극복하는 염화시중(拈華示衆)1)의 묘법 같은, 언어 이전의 사물성(事物性)은 하나의 희망입니다. 사물을 보여줌으로써 서로 소통하는 이런 탈관념의 화법(‘x화법’ 또는 ‘거시기화법’)이 있다면 거대한 언어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처음 이러한 단순한 생각이 끔찍한 ‘실험 30여 년 외로운 길’을 가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1975년 등단하자 해프닝을 벌였습니다. 시를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손에 꽃을 들고 “이것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누가 “꽃!”이라고 대답하면 꽃을 쓰레기 통에 던지면서, “쓰레기야!”라고 말했습니다. (『꽃의 문답법』 1999, 신세림, 출간) 이 해프닝은 ‘시=도(道)’라는 등식을 성립시켜놓고 벌인 의도적인 것이었으며, 이어서 “신은 고정관념의 대표 선수이다” “신은 시인 앞에 오면 한낱의 낱말이다” “시인은 낱말을 죽이고 또 창조한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이후 30여 년 동안 이 말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지 체험하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미당(未堂)의 영향이 컷던 것 같습니다. 등단 이후에 시가 참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의 시 모델이 될 작품을 골랐는데(선배들의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서정주의 「동천」, 김춘수의 「꽃」, 문덕수의 「꽃과 언어」, 이상의 「오감도, 시제1호」였습니다. 이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늘 어떤 전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듯 하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어 막막하기만 하여 커다란 산처럼 느꼈습니다. 지금도 그 시들은 내가 잘 이해하는지 모르지만, 30여 년 동안 실험해 온 과정이, 결국 모델로 골랐던 네 종류의 작품을 실험해 온 것처럼 생각됩니다.              
763    돈과 곰팽이 댓글:  조회:2057  추천:0  2015-03-27
땅에 10년간 묻었던 돈 곰팡이 껴        
762    파노라마...ㄷ 댓글:  조회:2161  추천:0  2015-03-27
파노라마, 환상적 기포                   
761    파노라마...ㄴ 댓글:  조회:1852  추천:0  2015-03-27
파노라마, 환상적 기포                               
760    파노라마... 댓글:  조회:2179  추천:0  2015-03-27
세계 유명 도시의 3D 파노라마, 환상적 기포 같아 [ 2015년 03월 27일 09시 16분 ]     AirPano 러시아 촬영팀이 지난 8년간의 시간을 들여 지구상의 일부 대표적 도시의 이미지를 줄여서 하나의 평면으로 전시했다./신화넷                                                
759    심상운 시와 기호 댓글:  조회:4232  추천:0  2015-03-23
시와 기호(記號)                                                                     심 상 운   1. 사물을 대리하는 기호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처음 제창한 사람은 파블로프(1849-1936, 러시아의 생리학자)이다. 그는 개에게 먹을 것을 줄 때마다 벨 소리를 들려주면 개에게는 벨 소리가 먹을 것 또는 식사의 기호가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을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에서 ’조건반사‘라고 한다. 그는 이 조건반사를 1차 신호계라고 하고, 자연언어와 그 내용에 따라 일어나는 여러 가지 반응을 제2차 신호계라고 명명했다. 이 기호는 그 형식적 특징에 따라 아이콘(icon:유상기호, 어떤 대상의 畵像 따위), 인덱스(index:지표기호, 화살표 등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경우), 심벌(symbol:상징기호, 약속된 기호로서 그 대표적인 것이 자연언어임)의 3종으로 분류된다. 20세기 대표적인 언어학자 소쉬르(1857-1913, 스위스, )는 언어라는 기호가 청각영상과 개념, 또는 '의미하는 것(시니피앙 記票)'과 '의미되는 것(시니피에 記意)'의 결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결합은 자의적(恣意的)인 것으로서 기호는 본질이 아닌 형식이라고 규정했다. 예컨대, ‘남을 가르치는 사람’을 한국인들은 선생(교사)이라고 하고 미국인들은 티처(teacher)라고 하고 중국인들은 라우스(老師)라고 발음하는 것이 그 근거다. 따라서 언어를 기호의 구성체계로서 실질적인 의미부분과 자의적인 기호부분으로 분리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2. 문덕수(시인, 예술원회원)는 그의 시집 『꽃먼지 속의 비둘기』(2007,7,30, '시문학사')에 게재한  대담형식의 시론「한국시의 동서남북 (Ⅱ)」에서 한국 현대시의 실험시(탈관념 시. 디지털 시, 기호시)의 근거를 소쉬르의 ‘기호학’에서 찾아내고 있다. 다음은 그 글의 일부다.    소쉬르의 기호학은 사물의 본질을 사물자체에서 찾는 실체론(實體論)을 관계론(關係論)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혁명입니다. 기호학이나 기호론이 시쓰기에 미친 영향을 몇 가지로 요약해 들어보겠습니다. 이것은 시의 실험적 모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초론이 될 것입니다. 첫째, 시의 대상이나 주체에 집착했던 태도를 떼어내어, 대상과 주체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게 됩니다. ‘관계의 장’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계’란 무엇입니까. 대상과 주체와의 사이에 있는 매개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기호입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과 소쩍새와의 관계(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미당), 다시 말하면 사물의 생성에 있어서 사물 상호간의 ‘인과’와 같은 것이 아니라, 대상과 주체 사이에 있는 기호나 언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소쉬르는 의미작용(signification)이라는 관점에서 언어학을 구성했는데, 그 의미작용이 다름 아닌 기호(sign)의 작용이 아닙니까. 소쉬르가 말하는 의미하는 것(시니피앙)과 의미되어지는 것(시니피에)이라는 두 가지의 관계에 의해서 된 것이 바로 언어기호입니다. 소쉬르의 언어학은 관계의 시스템에서 구성된 것입니다. 관계의 장으로의 전환은 사물의 실체나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의 존재보다는 ‘관계의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실체보다는 그 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구조주의 언어학이 발생했습니다. 실체에 대한 인식이 실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시점(視點)― 시점도 관계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의 변화에 따라 사물의 실체도 바뀌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론은 대상과 주체 사이의 ‘매개적 존재’(기호)를 강조하게 됩니다. 시론에서 사물이나 주체보다는 그 사이의 매재(媒材) 즉 기호를 중시하게 된 것은, 시에 있어서 언어실험이나 실험적 모험을 촉진하고, 그러한 혁명적 작업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것입니다. 둘째 언어기호나 기호는 실체를 가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소쉬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를 언급했습니다만, 언어기호의 이러한 관계도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언어기호 자체도 형식(形式)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의 방법론을 중시하는 시의 형식주의 이론의 근거도 바로 관계론에 의해서 성립하는 것입니다. 이미 상식화된 예입니다만, 산의 소나무를 보고 “저것이 소나무다”라고 언표해도, 산에 있는 소나무 전체를 추상적으로 지시하고, 그 의미가 어느 한 그루의 소나무에 부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소나무’라는 기호는 소나무A, 소나무B, 소나무C를 다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어학의 기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호가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언어가 인간의 경험을 버철화(virtual化)한다는 사실의 근거입니다.     라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3. 소쉬르의 ‘기호학’에 따르면, 실체를 가지지 않는 매재(媒材)로서의 언어기호는 현대시에서 고정된 의미가 없는 음악의 ‘소리’ 나, 회화의 ‘물감’ 같이 사용됨으로써 사실과 다른(관계없는) '언어의 독자적인 공간'을 열어준다. 예를 들면, “나는 태평양을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주머니에서 붉은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방금 수평선을 넘어간 태양이 흘린 피다.” 라고 했을 때, 이 텍스트는 어떤 의미(관념)나 사물(실제)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영역은 회화에서 추상화(抽象化)가 차지하고 있는 순수한 상상에 의한 선과 색채의 영역과 다르지 않다. 이 텍스트에서 ‘태평양’이란 기호에는 실제 태평양의 이미지가 들어 있지만, 텍스트 속의 태평양은 하나의 기표(시니피앙)일 뿐, 실제의 태평양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어느 상점의 간판이 ‘백두산 문방구’라고 했을 때, 문방구는 실제와 관련이 있지만 문방구를 수식하는 ‘백두산’은 실제의 백두산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기호일 뿐이다. 실제와 관계가 없는 기호라는 것은 언어가 의미와 실체의 속박과 간섭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기호는 고정된 의미가 없어서 분리와 결합이 자유로운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도 같다. 그래서 이 기호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를 제2의 실재(實在)라고 명명할 수도 있다. 미당(未堂)의 대표시「동천(冬天)」을 예로 들어 보자.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미당「동천冬天」전문     이 시의 눈썹, 새, 하늘 등의 언어들도 실체와 관계없는 기호화된 언어다. 따라서 시인의 상상(심리적 이미지, 형이상학적 판타지)은 상상 자체일 뿐, 실제의 사실과는 전혀 상관을 맺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시의 가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영상세계 그 자체를 맛보고 즐기는데서 더 찾아질 수 있다. 이 시는 그런 면에서 제2의 현실이라고 하는 디지털의 사이버 세계와도 맥이 닿는다. 따라서 이 시에서 어떤 의미를 발굴해 내려는 평론가들의 시도는 시를 관념화(고정화)시키는 불순한 작업이 될 뿐이다. 오남구의「달맞이-데몬스트레이션」을 읽어보자.     공이 뛰어간다. 집밖으로 뛰어간다. 퐁퐁퐁퐁 가로수를 심고 간다. 대낮 어린이 놀이터에서 심심하다. 햇빛이 폭포수를 쏟아 내고 퐁퐁퐁퐁 계단을 올라갔다. - 오남구「달맞이-데몬스트레이션」2연     실체의 세계(물, 사물)와 별도로 독립되어서 언어의 기호만으로 존재하게 되는 현대시의 현상(現象)은 초현실주의에서 주장하는 ‘오브제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컴퓨터가 열어 놓은 사이버 세계라는 제2의 생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상(virtual)의 세계는 현실과 경계선이 모호한 세계가 되었고, 그 범위가 무한히 넓어지기 때문에 ‘기호시’는 초현실주의의 ‘오브제론’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의 시는 시인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심리적인 이미지’나 ‘언어놀이(유희)’로 확대되기도 한다.「달맞이-데몬스트레이션」에서 공과 햇빛이 만들어내는 동영상 이미지는 만화영화(漫畵映畵)의 한 장면 같다. 공과 햇빛에는 어떤 의미도 들어있지 않다. 그들은 다만 시 속에서 캐릭터(character)의 역할을 하면서 상상의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현실의 소멸과 새로운 현실의 탄생이라는 순수한 언어의 기호가 창조해내는 가상공간의 세계 속으로 독자들을 유인한다.     겨울 저녁, 물고기는 투명한 유리 공간 속에 혼자 떠 있다. 느릿느릿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그는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k읍으로 간다고 했다. 흰 눈이 검은 돌멩이 위로 나비처럼 날고 있다. 유리 밖으로 뛰쳐나갈 듯 위로 솟아오르던 물고기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는 공중에서 부서져 내리는 하얀 소리들을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함박눈이 내리는 그의 설경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보이지 않고 그의 걸걸한 목소리만 떠돌고 있다. 유월 아침에 나는 겨울 물고기 그림을 지우고 초여름 숲 속의 새를 넣었다. 그때 설경 속으로 떠나간 그가 나온다. 오전 10시 30분, 나는 푸른 공기 속을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있다. -------심상운 「물고 기 그림」전문     이 시에 대한 정신재(문학평론가)의 견해(2007년 4월호 월평「실재 모색하기」) 에는 현대시의 영역 확대라는 공간이 들어 있어서 주목된다. 다음은 그 글의 인용문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시인은 시가 가지는 쾌락적 기능을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인이 20세기 상황에서와 같이 스타로 군림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시인들은 21세기 사람들의 입맛을 찾아 다양한 모색을 시도한다. 소비경향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산문의 몸짓을 선보이며, 의식과 무의식을 빠른 동작으로 오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시에서도 놀이가 전개된다. 이들 놀이는 의미를 찾고, 영혼을 고양시키고 실재를 모색하는 흔적 찾기의 놀이가 될 것이다. 심상운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이용하여 존재와 상황 간의 가로지르기를 하고 있다. ‘그’는 물고기를 촬영하고 있고, 물고기처럼 자연스런 흐름을 타고 있다. ‘나’는 그가 촬영한 그림에 새를 넣고 “설경 속으로 떠나간 그”를 회상한다. 나는 “오전 10시 30분” 푸른 공기 속을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 있다“. 여기서 물고기는 극화된 화자이고,‘그’는 극화되지 않은 화자이며, ‘나’는 시인의 생각을 대리하는 제2의 함축적 작가가 된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흐르는 이미지는 물고기이며, 새이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새는 공중에서 자유로이 활동하는 존재이다. ”설경 속“이라는 공간을 ‘그’는 기차여행을 하고,‘나’는 버스여행을 한다. 심상운은 극중 공간과 회상 공간과 현실 공간을 설정하여 놓고 놀이를 시도한다. 이런 놀이는 대비된 공간을 자유롭게 가로지르기 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이는 자유 연상법을 슬로비디오로 형상화하여 놓은 것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에서 오락 게임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여 사람들을 중독에 빠뜨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가 더 이상 진리를 핑계로 한 상아탑에 갇혀 있을 수만 없다. 진리가 상아탑 안에만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진리는 가까운 일상에도 있고 , 먼 우주에도 있는 법이다. 심상운은 그러한 진리를 찾아 때로는 물고기가 되고, 때로는 새가 된다. 그는 ‘설경 속’과 같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있으며, 의식과 무의식을 자유로이 오가는 꿈꾸기를 시도 한다.(생략) 작가들은 실재를 모색하기 위해서 해체나 가로지르기의 방법을 동원하였고, 이전에 경계 지어졌던 가치관을 허물고 탈경계를 모색하게 된다. 시 역시 각 시대에 걸맞는 양식을 가지고 발전되어 왔고, 현대인의 심리나 정서가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라고 하면서 그는 현대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4. 2007년 여름, 한국 영화계에는 관객 800만을 동원한 심형래의 SF영화 가 뜨거운 시비(是非) 속에 많은 화제를 뿌리면서 관객들에게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에 대한 시비의 원인은 가 영상(컴퓨터 그래픽의 판타지)에 비해서 스토리의 짜임이 부족하고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라는 평론가들의 지적에서 비롯되었다. 평론가들은 순수한 영상보다는 서사성과 관념(주제의식)을 중시한다. 의미가 불확실한, 맹목적(盲目的)에 가까운 영상에 대해서 그들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이런 그들의 자세는 현대시에서 탈-관념의 언어, 순수한 기호로서의 언어, 맹목적인 가상(virtual)의 세계(하이퍼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는 관념의 비유적인 표현, 의미의 표출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무장한 독자나 시인이나 평론가와 비슷하다. 그들은 관객이나 독자들이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서 능동적으로 작품에 참여하여 스토리(관념의 표출)보다는 영상(이미지)을 즐기고, 그 영상의 빈자리에 자신들의 상상을 넣는 ‘참여행위’가 새로운 시대의 영화와 시를 창조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지나친 상상일지 모르지만 심형래의 파동은 한국 현대시에서 ‘탈관념 시(기호시)’의 파동을 예고하는 전주곡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에서 인생론이나 교훈, 형이상학적 지향도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미 철학이나 도덕·규범 등에서 말해진 것들이다. 따라서 현대시를 언어예술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고정관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들은 창조성이 결여된 언어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현대시 -언어예술이면서 언어를 넘어서는 시(문덕수,『오늘의 시작법』2004, 개정판 )-   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언어의 밑바닥을 투명하게 응시하면서 ‘기호시의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758    문덕수 현대시론 댓글:  조회:4904  추천:0  2015-03-23
  한국(韓國)의 현대시(現代詩)   문 덕 수 (文德守))   1     시(詩)의 내용(內容)은 정서(情緖)와 사상(思想)이다. 정서는 감화적(感化的) 요소(要所)로서, 유기체(有機體)의 전신적(全身的) 감각(感覺)이지만, 사상은 지각(知覺), 지식(知識), 신념(信念), 의견(意見)의 종합물(綜合物)이다. 그러나, 시의 효용(效用)이 궁극적(窮極的)으로는 감동(感動)과 쾌락(快樂)에 있으므로, 사상은 어디까지나 종속적(從屬的) 요소다. 그것은 언제나 정서와 융합(融合)이 되어 나타난다. 간혹 사상이 중시(重視)된 시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예외다. 만약 사상 위주(思想爲主)의 시가 있다면, 그것은 시가 아니라 시의 형식(形式)을 빈 철학적(哲學的), 수상적(隨想的) 단편(斷片)일 것이다. 시는 어디까지나 시로서 족하다. 아무리 위대(偉大)하고 심원(深遠)한 사상일지라도, 정서와 융합된 것이라야 한다. ‘시는 사상의 정서적(情緖的) 등가물(等價物)’이라는 엘리어트의 말은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示唆的)이다.   시의 정서는 일정 불변(一定不變)의 것이 아니다. 정서의 차이(差異)는 한이 없다. 생리(生理)에 따라, 또 그 시가 생산(生産)된 당대(當代)의 여건(與件)에 따라 천차 만별(千差萬別)이다. 이것이 정서(情緖)의 주관성(主觀性)이다. 그리고, 시의 참신성(斬新性)과 독창성(獨創性)도 여기서 나타난다.   한국(韓國)의 현대시(現代詩)에서 그 정서가 가장 불건전(不健全)하고 병적(病的)인 것을 찾는다면, 1920년 전후의 낭만주의(浪漫主義)의 시일 것이다. ‘폐허(廢墟)’와 ‘백조(白潮)’를 중심 무대(中心舞臺)로 대량 생산(大量生産)된 이 무렵의 정서는 감상주의(感傷主義) 바로 그것이다. 비애(悲哀), 눈물, 애수(哀愁), 울분(鬱憤), 탄식(歎息), 절망(絶望) 등이 그 당시(當時)의 정서의 목록(目錄)이다.     검은 옷을 해골(骸骨) 위에 걸고   말없이 주톳빛 흙을 밟는 무리를 보라,   이 곳에 생명(生命)이 있나니   이 곳에 참이 있나니   장엄(莊嚴)한 칠흑(漆黑)의 하늘, 경건(敬虔)한 주토(朱土)의 거리   해골(骸骨)! 무언(無言)!   번쩍이는 진리(眞理)는 이 곳에 있지 아니하랴.   아, 그렇다 영겁(永劫) 위에.                 이러한 죽음의 예찬(禮讚)은 그 일례(一例)에 지나지 않는다. 박 영희(朴英熙)의 ‘유령(幽靈)의 나라’와 ‘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 이 상화(李相和)의 ‘나의 침실(寢室)로’와 ‘이중(二重)의 사망(死亡)’, 그리고 홍 사용(洪思容)의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등은 이 무렵의 정서(情緖)의 극단(極端)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정(詩情)은 불가피(不可避)한 역사적(歷史的) 요청(要請)의 산물(産物)이었다. 3‧1 독립 운동(三一獨立運動)의 실패(失敗)로 인하여 조국(祖國)의 현실(現實)은 암담(暗澹)해졌다. 유럽의 낭만주의(浪漫主義)의 말기적(末期的) 증세(症勢)가 조수(潮水)처럼 밀려 왔다. 실의(失意)와 비탄(悲歎)에 잠긴 젊은 기질(氣質)은 그것들에 쉽게 동화(同化)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불행한 감상적(感傷的) 낭만주의의 포로(捕虜)가 되어 버렸다. 방법의 발견이나 사상의 확립(確立)을 위한 생(生)의 재인식(再認識)이 실행(實行)되지 못한 채 낭만적(浪漫的) 격정(激情)으로 시를 썼던 것이다.   이러한 낭만주의 시의 감상(感傷)과 대극적(對極的)인 것이 주지시(主知詩)의 정서다. 주지시는 낭만적 감정(感情)과 음악성(音樂性)을 배격(排擊)하고, 이미지와 지성(知性)을 중시(重視)한다. 이미지는 비유(譬喩)에 의하여 형성된 언어(言語)의 회화성(繪畫性)이다. 지성은 감정을 억제(抑制)하고 조절(調節)한다. 주지시의 무기(武器)는 정열(情熱)과 결부(結付)된 상상력(想像力)이 아니라, 지성과 결부된 ‘환상(幻想)’이다. 이것이 1930년대 주지주의(主知主義)의 이론(理論)이며, 그것은 그대로 흄, 파운드, 엘리어트 등의 영미(英美) 주지주의의 이론이기도 하다.     낙엽(落葉)은 폴란드 망명 정부(亡命政府)의 지폐(紙幣)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瀑布)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急行列車)가 들을 달린다.             ‘낙엽’이 죽음이나 인생에 비유(譬喩)되지 않고, ‘망명 정부의 지폐’에 비유되었다. ‘길’과 ‘넥타이’의 유추(類推)도 참신(斬新)하다. 이런 점에서, 낭만주의(浪漫主義)와는 이질적(異質的)인 신선(新鮮)한 감각(感覺)을 느낄 수 있다. 시각적(視覺的) 이미지의 효과(效果)를 거두고 있다. 감정의 대량 방출(大量放出)도 억제(抑制)되고, 사물(事物)을 보는 태도(態度)도 다소 객관적(客觀的)이다. 김 광균(金光均)의 ‘외인촌(外人村)’에는 ‘분수(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 소리’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에는 직유(直喩)와 은유(隱喩)가 겹쳐 있고, 시각(視覺)과 청각(聽覺)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 사상이 스며들 여지(餘地)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주지시는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낭만주의적(浪漫主義的) 처지(處地)에서 ‘방법의 지각(知覺)’을 가지려 했다는 것은 시사상(詩史上)의 획기적(劃期的)인 일이다. 그러나, 방법의 기초(基礎)가 되는 인생관(人生觀)과 세계관(世界觀)에 대한 인식(認識)이 없었다. 고전주의적(古典主義的)인 생(生)의 자각(自覺)이 없었다. 방법의 발견과 생의 자각은 별개(別個)의 것이 아니라 동일(同一)한 것이다. 이것이 분리(分離)되어 강조(强調)될 때 기형(畸形)이 탄생(誕生)한다. 기형은 미숙(未熟)을 의미(意味)한다. 그리고, 시의 회화성(繪畫性)을 주장(主張)하면서도 시가 ‘언어(言語)의 예술(藝術)’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회화성이 한계(限界)에 부딪혔을 때 또 다른 감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30년대의 주지시는 부분적 성과(成果)밖에 가두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2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언어는 음성(音聲)과 의미(意味)의 결합체(結合體)다. 또, 의미에는 형상(形象)이 있다. 음성은 음악(音樂)으로 통하고, 의미, 즉 개념(槪念)은 철학(哲學)으로, 형상은 그림으로 접근(接近)한다. 음성만을 강조할 때 순수시(純粹詩)가 되고, 형상만을 강조할 때 순수(純粹)한 회화시(繪畵詩)가 된다. 그리고, 개념만을 강조할 때 철학시(哲學詩)나 관념시(觀念詩)가 된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므로, 이 세 부분은 종합(綜合)되어야 한다. 만약 극단적(極端的)으로 분리되어 강조된다면, 시 자체의 본질(本質)에서 멀어지게 된다.   개념을 강조하는 시는 목적 의식(目的意識)을 가지기 쉽다. 그런 시는 자칫하면 선전(宣傳)이나 계몽(啓蒙)의 수단(手段)으로 타락(墮落)하기 쉽다. 감화적 요소인 정서(情緖)는 종속적(從屬的)인 것이 되거나 사상의 의상(衣裳)밖에 되지 않는다. 1925년 무렵의, 생경(生硬)하고도 조잡(粗雜)한 목적시(目的詩)가 그 표본(標本)이다. 6‧25 이후의 참여시(參與詩)도 그런 함정에 빠질 위험성(危險性)이 있었다.   조국이 외세(外勢)의 말굽 아래 신음(呻吟)할 때, 시가 애국 운동(愛國運動)에 참여(參與)함은 역사적(歷史的) 요청이다. 또, 시인이 그 시대에 대한 책임감(責任感)을 통절(痛切)히 느낄 때, 시가 사회에 참여함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 경우(境遇)에도 시는 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평범(平凡)한 사실에서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시를 택할 것이냐, 조국을 택할 것이냐 하는 물음은 우문(愚問)에 불과하다. 문제는 애국적(愛國的) 정열과 사회적(社會的) 책임감이 시정(詩情)으로 승화(昇華)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데 있다. 시정이 영역(領域)은 한이 없다 애국적 정열과 사회적 책임감도 고귀(高貴)한 정서(情緖)다. 시정의 고상(高尙)한 영역에 속한다. 시의 사회적 참여에는 한계(限界)가 잇는 것이다.   목적시나 참여시의 대극(對極)에 순수시(純粹詩)가 있다. 순수시는 개념(槪念)까지 거세(去勢)하지는 않으나, 정치적(政治的) 목적 의식(目的意識)은 반대한다. 시는 언어의 예술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주옥(珠玉) 같은 언어의 조탁(彫琢), 청징(淸澄)하고 섬세(纖細)한 정서(情緖)의 순화(純化), 미묘(微妙)한 음악 등은 시를 예술의 위치(位置)에 올려 놓은 것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뗘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정치적 목적 의식(目的意識)은 전연 없다. 정서의 투명(透明)한 순화와 언어의 본연(本然)의 미감(美感)이 반짝일 뿐이다. 윤 선도(尹善道) 이후 잠시 가라앉았던 한국의 시정이 여기서 다시 발흥(發興)한 셈이다. 순수시(純粹詩)는 정서의 진수(眞髓) 그 자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매력(魅力) 있는 정서의 결정(結晶)임은 부인(否認)할 수 없다.   3     시의 발전은 일조 일석(一朝一夕)에 기대(期待)할 수는 없다. 돌연 변이(突然變異)는 희귀(稀貴)한 예외다. 의식적(意識的)이건 무의식적(無意識的)이건 간에 전통(傳統)에 접맥(接脈)되어서 비로소 가능(可能)하다. 아직도 한국시(韓國詩)의 주류(主流)는 전통적(傳統的)인 시에 있다고 하겠다.   김 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은 고려 속요(高麗俗謠)인 ‘가시리’에 접맥(接脈)되어 있다. ‘가시리’에 담겨 있는 차원(次元) 높은 이별(離別)의 정한(情恨)은 ‘진달래꽃’에 와서 극한 상황(極限狀況)을 보여 준다. 설움, 눈물, 이별, 사랑 등의 정한은 민족의 보편적(普遍的) 정서(情緖)에 닿아 있다. 그러나, 그의 정서는 건강(健康)한 것이 못 된다. 감상의 색조(色調)를 띠고 있다. 또, 소극적(消極的)이다. 어떻게 냉혹(冷酷)한 이 현대(現代)를 감당(勘當)해 나갈지 의문(疑問)이다. 그리고, 그의 율조(律調)는 민요조(民謠調)이며, 사상적(思想的) 기반(基盤)은 유교적(儒敎的) 휴머니즘이다. ‘산유화(山有花)’에서조차 완전한 자연 귀의(自然歸依)를 성취(成就)하지 못했다. 그는 이 백(李白)에게보다 두 보(杜甫) 쪽에 더 접근(接近)하고 있다. 그만큼 그는 불행하였다.   전통에 접맥된 일군(一群)의 시인으로서 세칭(世稱) 생명파(生命派)와 청록파(靑鹿派)를 들 수 있다. 이들은 1940년 전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시사상(韓國詩史上)의 2대 산맥(二大山脈)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에게 오면 정서와 사상이 일체(一體)가 되어 나타난다. 그만큼 편협성(偏狹性)이 적다. 한국시의 원숙(圓熟)한 일면을 보게 되는 기쁨이 있다.   생명파의 두 시인은 유 치환(柳致環)과 서 정주(徐廷柱)다. 이 둘은 초기(初期)에는 다 같이 니이체와 보들레르의 문전(門前)에 열심히 드나들었다. 이리하여, 이 둘의 기조(基調)는 우연(偶然)히도 생명 의식(生命意識)의 앙양(昻揚)이라는 점에서 일치(一致)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공통적(共通的)인 출발점(出發點)은 낭만주의(浪漫主義)다. 유 치환의 초기 시는 문명(文明) 이전의 건강(健康)한 원시적(原始的) 생명(生命)의 희구(希求)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다가, 동양적(東洋的)인 무위(無爲)와 허정(虛靜)의 세계를 거쳐 간다. 그는 한국 현대시(韓國現代詩)의 허무(虛無)와 의지(意志)라는 새로운 영토(領土)를 확장(擴張)하였다. 니이체보다는 보들레르에 더 심취(心醉)된 서 정주는 원죄(原罪)의 업고(業苦)를 짊어진 육성(肉聲)의 몸부림을 쳤고, 그것을 한동안 겪자 동양(東洋)의 숲 속을 그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최후(最後)로 안착(安着)한 곳이 불교(佛敎)와 신라(新羅)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兜率天)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불 때   춘향(春香)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이 시의 소재(素材)와 동기(動機)는 물론 우리의 고전(古典)이지만, 그 사상은 불교다. 특히, 불교의 윤회 사상(輪廻思想)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정은 불교라는 종교 사상(宗敎思想)과 융합(融合)되어, 새로운 서정(抒情)의 변경(邊境)을 개척(開拓)하고 있다. 그는 ‘꽃밭의 독백(獨白)’이라는 작품에서 “물 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치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 앞에 섰을 뿐이다.”하고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바로 우리 시의 한 지평선(地平線)을 열고 있는 그 지난(至難)한 몸짓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의 현대시에 푸르고 아스라한 고도(高度)와 몸서리치는 유현(幽玄)한 심도(深度)를 더하고 있다.   생명파와 가까우면서도 조금 먼 듯이 보이는 일군(一群)의 시인은 청록파다. 박 목월(朴木月), 박 두진(朴斗鎭), 조 지훈(趙芝薰)은 모두 자연(自然)에 귀의(歸依)해서 각기 특색(特色)이 있는 산수도(山水圖)를 그려 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자연파(自然派)라고도 한다. 박 목월의 향토색(鄕土色)이 짙은 순수(純粹)한 산수(山水)의 서경(敍景), 박 두진의 기독교적(基督敎的)인 정결(淨潔)한 갈망(渴望)이 착색(着色)된 청산(靑山), 조 지훈의 선미(禪味)가 깃들인 고아(古雅)한 풍류(風流)는 가히 당대의 일품(逸品)이라 할 만하다. 지금까지 우리 시사(詩史)에는 자연 그 자체를 노래한 시는 없었다. 반드시 인생과 관계(關係)되어 표현되었다. 그런데, 청록파에 와서 비로소 자연이 자연 그 자체로서 독립(獨立)된 의미(意味)와 정서(情緖)를 가지고 표현된 것이다. 한국의 신문학사(新文學史)를 통해서, 한국의 ‘자연’이 실재(實在) 그 자체로서 부각(浮刻)된 것은 청록파의 공로(功勞)라 하겠다. 이 밖에도 신 석정(辛夕汀), 김 용호(金容浩), 신 석초(申石艸), 박 남수(朴南秀), 김 현승(金顯承) 등의 작품에는 각기 특이(特異)한 시정이 담겨 있다.   4     6‧25는 현대시의 한 분수령(分水嶺)이었다. 사변(事變)을 계기(契機)로 하여 현대시는 참여시(參與詩), 순수시(純粹詩), 전통시(傳統詩), 주지시(主知詩) 등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시의 구조면(構造面)에서도 큰 변혁(變革)이 일어났다.   참여시란, 시의 사회 참여(社會參與)를 조장(助長)하는 현실주의 시(現實主義詩)를 말한다. 시인도 사회에 적극(積極) 참여하여, 사회적(社會的) 책임(責任)을 지고 시대의 증인(證人)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시는 현실(現實)에 대한 비판(批判), 저항(抵抗), 고발(告發)의 내용을 담게 된다. 참여시와는 대극에 서는 것이 순수시(純粹詩)다. 이에는 객관적(客觀的) 순수시와 주관적(主觀的) 순수시가 있다 객관적 순수시는 낭만적(浪漫的) 주정(主情)을 배제(排除)하고, 참신(斬新)하고 선명(鮮明)한 이미지를 중시한다. 1934년부터 일어난 이 땅의 주지주의를 계승(繼承)한 것이다. 주관적 순수시는 심층 심리(深層心理)의 이미지를 포착(捕捉)하는 데 주력(注力)한다. 이상(李箱) 이후의 또 다른 내면 세계(內面世界)의 미학(美學)이 대두(擡頭)된 것이다. 객관적 공간(空間)과 객관적 시간(時間)의 질서(秩序)를 뒤엎고 내면 세계의 질서를 창조(創造)하는 것이다. 목적 의식이나 개념(槪念)을 배제하려고 하는 점에서 객관적 순수시와 같다.   전통시는 김 소월 서 정주, 박 목월 등의 정서(情緖)를 이어받고 있다. 멀리 고려 속요(高麗俗謠)와 향가(鄕歌)에까지 닿는다. 전통적 정서가 어떻게 현대화(現代化)하느냐가 큰 문제가 된다. 이와 상반(相反)되는 곳에 주지시가 있다. 영미(英美) 주지주의를 도입(導入)한 새 경향(傾向)이다. 기지(機智), 의식(意識)의 흐름, 패러디 등의 다양(多樣)한 방법이 실험(實驗)되고 있다.   6‧25 사변 이후의 특이한 현상(現象)은 시 구조(詩構造)의 변혁(變革)이다. 종래(從來)의 평면적(平面的)인 시가 입체적(立體的)인 시로 변화했다. 또, 종래의 무시간적(無時間的)인 것이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가 공존(共存)하는 시간성(時間性)으로 변했다. 장시(長詩)도 많이 생산되었다. 시 속에 이야기 줄거리도 도입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현대시를 갈망(渴望)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내용을 요구한다. 방법과 내용의 혁신(革新)이 없이 새로운 시는 창조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시의 창조는 과거의 시에 대한 반역(反逆)이요 모험(冒險)이다. 미래에 대한 창조적(創造的) 정열에 의거(依據)한 부정 정신(否定精神)이 필요한 소이(所以)다. [출처] 한국(韓國)의 현대시(現代詩)/문덕수|작성자 진솔당  
757    사진...? 그림...? 댓글:  조회:2046  추천:0  2015-03-23
   
756    강경애 문학비 댓글:  조회:4188  추천:0  2015-03-23
강경애문학비 앞에서 (일송정 내)
755    김창걸 문학비 댓글:  조회:4596  추천:0  2015-03-23
김창걸문학비앞에서 (룡정 지신진)  
754    명사진작가 - 인물사진 거장 카쉬 댓글:  조회:2449  추천:0  2015-03-22
    Yousuf Karsh (1908-2002) Armenian-born Canadian Photographer     '얼굴'이란 우리말의 의미는.. 얼 : '영혼'이라는 뜻이고... 굴 : '통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멍한 사람들을 보면 '얼빠졌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의 얼굴과 산사람의 얼굴은 다릅니다. 기분이 좋은 사람의 얼굴과 아주 기분이 나쁜 사람의 얼굴은 다릅니다. 사람의 얼굴은 우리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사람의 얼굴은 마치 영혼이 나왔다 들어왔다 하는 것처럼 바뀝니다. 그러기에 변화 무쌍한 것이 얼굴입니다. 얼굴은 정직합니다. 첫인상이 결정되는 시간은 6초가 걸린다고 합니다. 첫 인상이 결정하는 요소는 외모, 표정, 제스처가 89% 목소리 톤, 말하는 방법 13%, 그리고 나머지 7%가 인격이라고 합니다. 표정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표정과 감정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근육 80개로 되어 있는데 그 80개의 근육으로 7,000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신체의 근육 가운데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가장 오묘한 것이 바로 얼굴입니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인상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이처럼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지 요. 또한 변화 될 수 있는 것도 우리들의 모습이겠지요. 영혼이 잘 통하는 얼굴 생명이 잘 통하는 얼굴 기쁨이 잘 통하는 얼굴 감사가 잘 통하는 얼굴 희망이 잘 통하는 얼굴 항상 이런 서로 잘 통하는 얼굴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카쉬의 작품은 ......   전세계 15,312명의 인물을 촬영한 다양한 인물 사진이다.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인물의 초상사진 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아르메니아인으로 투르크에서 종교 박해와 궁핍을 견뎌내야 했던 그는 16세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가 퀘벡의 셔브룩에 살던 사진 작가인 삼촌과 합류했다.   1928~31년 보스턴에서 화가이자 초상사진작가의 견습생이 되었고, 잠시 동안 미술학교에 다녔다. 1932년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서 오타와의 한 사진작가 밑에서 일했는데 그는 은퇴하면서 자신의 사진관을 카르시에게 임대해주었다.   카르시는 1935년 캐나다 정부의 공식 초상사진 작가로 임명되었다.   1941년 오타와에서 만든 윈스턴 처칠 경의 초상은 영국의 전시(戰時) 지도자인 그의 고집스러운 결단력을 훌륭하게 보여주었고, 카르시에게 처음으로 진정한 국제적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는 왕족·정치가·예술가·문인 등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으며, 계속해서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초상사진도 촬영했다.   격식을 존중했던 그는 대상의 얼굴을 세심하고 실감 있는 모양으로 나타내기 위해 조명을 미묘하게 사용함으로써 대상의 인상에 걸 맞는 불후의 이상적인 표현을 얻어냈다.   그의 사진집으로는 〈운명의 얼굴들 Faces of Destiny〉(1946)·   〈위대한 인물사진 Portraits of Greatness〉(1959)·   〈위대함을 찾아서 In Search of Greatness〉(1962)·   〈카르시 사진작품집 Karsh Portfolio〉(1967)· 〈우리시대의 얼굴 Faces of Our Time〉(1971)· 〈카르시 초상사진 Karsh Portraits〉(1976)· 〈카르시의 캐나다인 Karsh Canadians〉(1978) 〈카르시:50년 회고집 Karsh:A Fifty-Year Retrospective〉 등이 있다.         위 사진은 카쉬가 사진 작업을 하는 장면             Yousuf Karsh, Audrey Hepburn, gelatin silver print, 1956   오드리 햅번이 카쉬를 처음 만난 것은 1956년 미국 헐리우드에서였다. 햅번을 촬영할 당시 카쉬는 “당신의 내면에는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이 보입니다”라고 지적하자, 그녀는 세계 2차 대전 때 자신의 비참한 경험 담을 카쉬에게 털어놓았다는 일화가 있다.   햅번의 내면에 담긴 또 다른 모습을 시각적으로 완성한 카쉬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된 후, 한 유명인은 자신이 햅번만큼 아름답게 나와야 촬영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오드리 햅번 작품은 그녀의 심벌과도 같은 사진이다. 카쉬의 초상 사진 중 보기 드문 옆모습을 촬영한 사진으로, 45도 조명에서 밝은 부분 쪽으로 카메라를 옮겨 그녀의 흰 얼굴을 더욱 강조했다.   이리하여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상처럼 매끄러우면서도 절대적인 햅번의 아름다움이 완성되었다.   Audrey Hepburn   절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그들을 사랑할 차례입니다.         Clark Gable 커다란 별을 따라 똑바로 가는 거지. 하늘 아래로 쭉 뻗어있는 길이 우리를 집으로 안내해 줄 거야.         Walt Disney   우리의 꿈은 모두 현실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그 꿈을 추구할 용기만 갖고 있으면 말이다       Yousuf Karsh, Winston Churchill, gelatin silver print, 1941   윈스턴 처칠은 카쉬의 업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인물사진가로서의 카쉬의 명성이 바로 처칠과의 촬영을 기점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현재 처칠 작품은 사진 역사상 가장 널리 재생산되는 이미지로 유명하다.   카쉬와 처칠과의 만남은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상이 된 지 1년 후, 처칠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후 캐나다의 수도 오타 와를 방문했다.   당시 캐나다 수상이자 카쉬의 후원자였던 매킨지 킹은 그를 초청 하여 처칠이 캐나다 의회에서 연설을 하는 동안 그의 표정이나 기분, 태도 등을 관찰하게 했다.   연설을 듣고 난 후, 카쉬는 전날 조명과 카메라를 준비해 두었던 연설자 대기실에서 처칠을 기다렸다.   처칠이 팔짱을 끼고 캐나다 수상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보고 각광을 켜자 놀란 처칠은, “이게 뭡니까, 이게 뭐에요?” 라며 소리를 질렀다.   카쉬는 당시 두려웠지만 한 발작 앞으로 나아가 이야기했다.   “각하, 제가 감히 이 역사적 순간을 기념으로 남길 수 있는 행운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처칠은 가만히 카쉬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왜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카쉬는 더욱 긴장했다. 처칠은 시가에 불을 붙이고 장난스럽게 연기를 한 번 내뿜으며 마음을 누그러뜨린 후, “한 장 찍어도 좋소” 라고 회답했다.   카쉬는 “조명과 카메라를 준비해 둔 곳까지 이 거대한 인물이 투덜거리긴 했지만 움직이게 한 것은 참 대단한 일이었다. 이날까지도 나는 그 사건이 나의 외교적 기술을 뽐낼 수 있었던 기회라고 여긴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처칠이 담배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쉬는 재떨이를 내밀었지만, 그는 담배를 내려놓지 않았다.   카쉬는 우선 카메라 쪽으로 돌아가 모든 것이 차질 없이 준비되 었는지를 확인한 후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카쉬는 그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며 입에서 시가를 뺏어냈다. 카쉬가 카메라로 돌아왔을 때, 처칠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듯한 억센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바로 그때 카쉬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잠깐의 적막이 흘렀지만, 곧 처칠은 인자하게 웃으며 “한 장 더 찍으시게”라고 말했다.   촬영이 끝난 후 그는 카쉬에게 직접 걸어와 악수를 청하며 “당신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도 가만히 사진을 찍게 할 수 있군요” 라고 했다.   이리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을 이끌어왔던 영국 총리의 강인한 내면을 담은 완성도 높은 윈스턴 처칠 작품이 탄생될 수 있었으며, 작품의 제목이 “으르렁거리는 사자”가 된 것이다.     Winston Churchill   나는 창조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다. 다만 창조주께서 나를 만나야 하는 시련의 준비가 되어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Ernest Hemingway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태양이 저녁이 되면 석양이 물든 지평선으로 지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떠오른다. 태양은 결코 이 세상을 어둠이 지배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태양이 있는 한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Leonard Bernstein   음악은 이름 지을 수 없는 것들을 이름 짓고 알 수 없는 것들을 전달한다       Andy Warhol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을 하는 것도 예술이고 성공적인 사업을 하는 것도 예술이다.         Christian Dior   패션은 느낌입니다. 이유가 있어선 안되죠     Martha Graham 춤은 영혼의 감춰진 언어이다 위대한 무용가는 테크닉이 아니라 열정 때문에 위대하다.       George Bernard Shaw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버나드쇼의 묘비명        Albert Schweitzer 파도는 출렁이는 바다 표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을 뿐 파도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처럼 나도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 수 없고 나의 삶 또한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과의 경험을 통해 늘 존재할 뿐이다.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지녔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지닌다.         Martin Luther King   인생에서 가장 나쁜 죄악은 옳은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Mohammad Ali   챔피언은 경기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챔피언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소망, 꿈, 이상에 의해 만들어진다.       Fidel Castro 온갖 협박과 비열한 광기에 의해 위축되어 있는 인간은 감옥이 혹독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70명의 내 동지들을 살육한 야비한 독재자의 광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감옥 역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십시오. 역사가 나를 무죄라 할 것입니다.         Mikhail Gorbachev   평화 없이 번영은 없다. 인류가 전쟁과 영원히 결별하는 것이야말로 보다 나은 미래의 길을 열을 수 있는 토대이다.           Helen Keller   내 눈은 언제나 행복과 불행 모두에 주목합니다.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더 깊이 탐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언제나 행복과 불행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습니다.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광경들도 있지만,   불행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광경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고 비참한 광경에 눈을 감고 외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것도 삶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눈감는 것은 마음과 정신에 눈감는 것이니까요         Elizabeth Taylor   나는 평생 화려한 보석들에 둘러 쌓여 살아왔어요 하지만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건 그런 게 아니었어요.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과 사랑. 그것뿐이었어요.       Grace Kelly   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한 여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Jackie Kennedy   난 평생 케네디를 잊을 수 없었어요 그를 사랑해서가 한가지 이유고 그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서가 다른 한가지 이유에요         Ingrid Bergman   한번도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거에요 내가 불륜을 저지르는게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Yousuf Karsh, Sophia Loren, chromogenic print, 1981   소피아 로렌은 고전적인 미의 기준을 제시한 세계적인 영화 배우. 그녀를 만난 카쉬는 “소피아 로렌처럼 지성과 프로근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여배우를 촬영한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작업이다”라고 고백했다. 카쉬가 촬영한 소피아 로렌 작품은 파리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이른 오후에 찍은 것이다. 그녀는 여느 엄마처럼 자신의 두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다.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왔고, 그들 사이에 넘쳐나는 사랑과 애정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주로 흑백으로만 주로 작업하던 카쉬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이지 섹스심벌이었던 소피아 로렌의 관능미를 표현하고자 과감하게 컬러 사진으로 표현했다.   또한 한 여배우가 나이가 들면서 지성미와 완숙미가 어우러져 여유로움이 넘치는 모습도 함께 표현하고자 했다. 카쉬는 이 사진에서 화면의 위 측과 아래 측을 검게 처리함으로써 관람객은 그녀의 얼굴에 보다 편하게 몰입할 수 있다.   Sophia Loren 섹시함이란 실제 당신이 갖고 있는 게 50% 그리고 남들이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게 50%다       Humphrey Bogart   나는 연기를 따로 배우지 않는다. 나는 그저 자연스럽게 연기할 뿐이다. 나는 특별히 연기한 건 없지만 잉그리드 버그만이 내 앞에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얼굴을 보면 저절로 로맨틱한 기분에 빠져든다.       Lawrence Olivier 나는 아주 심플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즉 눈을 똑바로 뜨고 거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Alfred Hitchcock   서스펜스가 무엇인지 알려드릴게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방에 들어갑니다. 갑자기 폭탄이 터져 네 사람 모두 뼈도 못 추리게 됩니다. 이럴 경우 관객은 단지 놀라기만 할 뿐이죠.   그러나 나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남자가 포커판이 벌어지는 탁자 밑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의자에 앉아 포커를 하고 시한폭탄의 초침은 폭발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이 무의미한 대화라도 관객의 주의를 더 끌 수 있는 것이죠. 관객은 '지금 그런 사소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좀 있으면 폭탄이 터질 거란 말이야!' 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폭탄이 터지기 직전 게임이 끝나고 일어서려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죠. '차나 한잔 하지.' 바로 이 순간 관객의 조바심은 폭발 직전이 됩니다. 이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서스펜스'라는 겁니다.         Albert Einstein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간은 진리와 인생 그리고 불가사의한 현실의 구조를 직시할 때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두려움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매일 이 불가사의한 세계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신성한 호기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목적에 자신의 온 힘과 정신을 다해 몰두하는 사람만이 진정 탁월한 사람이다. 이런 까닭에 탁월해지는 데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요구된다.       Albert Camus   인간이란 죽는 존재다.. 그러니 반항하면서 죽어야겠다.       Bertrand Russell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고 (思考)만큼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 멸망보다 두려워하며 죽음보다 두려워한다. 사고란 불온하며 혁명적이고 파괴적이며 공포스럽다. 특권자와 제도권, 익숙한 관습에 무자비하다. 지옥의 구덩이를 들여다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고는 위대하며 신속하고 자유로우며 세상의 빛이자 인류의 가장 큰 영예이다.         Carl Jung 사람은 자신의 가슴속을 들여다 볼 때 비로서 시야가 트이게 된다. 밖을 보면 꿈을 꾸지만, 안을 보면 깨어나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다.       George Bernard Shaw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비상한 능력, 그것이 바로 천재의 모든 것이다         Herbert Von Karajan   자신의 목표를 모두 달성한 사람은 목표를 너무 낮게 정한 사람이다.       Jean Sibelius   비평가들의 말에 신경을 쓰지 마라. 비평가를 찬양하는 동상이 세워진 적은 없다.      Jascha Heifetz   내가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그것을 알고, 이틀을 안 하면 비평가가 알고, 삼 일을 안 하면 청중이 안다         Pablo Casals   넌 네가 어떤 존재인가를 아니? 넌 하나의 경이로움이야 넌 매우 특별한 사람이야. 네가 나이를 먹고 성장해가는 매 순간 마다 너와 같은 아이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어. 넌 셰익스피어가 될 수도 있고, 미켈란젤로 같은 화가나,베토벤 같은 음악가도 될 수 있어 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래,넌 정말 놀라워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들 역시 놀라운 존재들이지 넌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너처럼 똑같은 놀라운 존재인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넌 그때 가서 이 세상을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가치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해       Glenn Gould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늘 혼자서 보냈다. 그건 내가 비사교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예술가가 창조자로서 작업하기 위해 머리를 쓰기 바란다면 자아규제(바로 사회로부터 자신을 절단시키는 한 방식)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을 산출하고자 하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사회 생활면에서 다소 뒤떨어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Marc Chagall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이다       Max Ernst   창의력이란 약속의 땅을 되찾기 위한 성전(聖戰)이다.         Ansel Adams   좋은 사진을 위한 법칙이란 없다. 단지 좋은 사진만 존재할 뿐이야         Georgia O'Keeffe 아름다운 꽃도 잠시 멈추고 바라보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듯, 무언가를 바라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친구가 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Giacometti   하나의 조각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물음표이며 질문이며 또한 답이다. 그것은 완성된 것일 수도 없고 완벽한 것일 수도 없다. 질문도 제기될 수 없다         Joan Miro 예술 작품 그 자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슨 씨앗을 뿌리게 될까 하는 사실이다. 예술은 죽고 한 장의 그림은 사라질 수 있다. 남는 것은 오직 그것이 뿌린 씨앗     Norman Rockwell   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Pablo Picasso 창조가 있기 전에 먼저 파괴가 있어야 한다. 고상한 취향이란 얼마나 불쾌한 것인가! 그 취향이란 창의력의 적이다.      Joan Baez   당신은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선택할 수 없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Grey Owl (Archibald Belaney)   기억해라. 네가 자연에 속해 있는 것이지, 자연이 네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Mother Teresa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어느 곳에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당신이 있어야 할 곳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고 있느냐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노력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Yousuf Karsh, Pablo Casals, gelatin silver print, 1954
753    명화가 - 호안 미로 댓글:  조회:2581  추천:0  2015-03-22
Joan Miro     Surrealism Spanish Painter, Sculptor and Ceramist 1893. 4. 20. ~1983. 12. 25.                           The Gold of the Azure Oil on canvas 1967 205 x 173.5 cm Fundaci? Joan Mir? Barcelona Spain       그는 유쾌한 화가로 유명하다. 상징적인 이미지는 설명하기 쉽지 않으면서도 화려한 색채와 결합된 단순한 형태들은 첫눈에 순진한 어린이 같은 인상을 준다.     초현실주의 특유의 어두운 느낌은 배제하고 화려한 색깔들로 내면의 판타지를 그려냈던 후안 미로.     추상과 초현실주의의 경계에 있는 듯한 작품들 속에는 그의 시각적 예술을 시(詩) 안에서 비교하며 스페인 특유의 강렬한 꿈과 시정이 감도는 분위기, 신비로운 환상, 때로는 천진스러운.... 그만의 절묘한 기술로 이루어진 독특한 아름다움과 신선한 정서를 주는 화가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Miro Art'이다.   찬란하게 눈부신 노란 빛, 마치 장다리꽃이 핀 들녘 같다. 얼마나 넓게 피었으면... 쪽 빛 하늘이 손바닥만 하다. 밝고 아름다운 색깔의 대비, 오묘한 알 수 없는 상징들.... 무한한 상상으로 이끄는... 감탄스러운 후안 미로의 세계다.                     Dancer Oil on canvas 1925 115.5 x 88.5 cm Galerie Rosengart Lucerne Switzerland                 The Port Oil on canvas 1945 130 x 162cm Private Collection         완전한 추상으로 보이는 그의 작품은 우주를 보는 듯 자연적인 요소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극도로 상징화하고 기호화한 추상적인 형상들은 율동감과 공간감을 자아내며 결과적으로 무의식, 자동기술법, 기호와 상징 등... 추상성이라는 그만의 특징을 담아내고 있다.                 Dutch Int?rior Oil on canvas 1928 129.9 x 96.8 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후안 미로의 중요 작품 중의 하나인 다. 단순한 알 수 없는 형상들이 밝은 색상 속에서 춤을 추는 듯... 무어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시선을 빨아 드리듯 아름답다.                 Blue III Oil on canvas 270 x 355 cm Mus?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Blue Series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그림 중의 하나다. 짙푸른 너른 공간에 극히 단순한 작은 점 두 개, 낙서 같이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선, 그게 전부다. 그래도 부족감 없는 충만 된 공간의 아름다움이 경이롭다. 감탄스러운 그의 그림이 나를 무한한 환상으로 이끈다. 푸른 밤의 우주일까, 마음껏 날아보는...가슴가득 신비스러운 환상에 젖는 그림!                     The Red Sun Oil and gorache on canvas 1948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USA       무언지, 어떤 의민지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보면서 느끼며 즐긴다. 소박하고 순수하고....아름답고 멋진 그의 그림세계를!                 Hermitage Oil, pencil on canvas 1924 114.3 x 147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Constellation Awakening at Dawn Gouache and terpentine paint on paper 1941 46 x 38 cm Private collection     물에 적셔 구긴 종이 위에 제작한 조그마한 23개의  연작 중의 하나로서 그의 회화 진로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계기이기도 하다.   미로는 1940년과 1941년 사이에 그려진 의 연작에서부터 여자, 새, 별 같은 인물과 원형이 나타나는 새로운 회화 공간을 전개하였다. 그림의 경계를 넘쳐흐르는 확장된 공간은 미로만의 창조된 세계로 특유의 규범을 가지고 있다.   보면 볼수록 무한한 공상의 세계 . 과연 이 아름답게 춤을 추는 듯하다.               Composition 1933               Painting 1953       “초현실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초현실주의 작가” “초현실주의의 모자를 쓴 가장 아름다운 붓이다.”     1924년 프랑스 시인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은 스페인 출신의 예술가 호안 미로를 이렇게 극찬할 정도로 생전에도 그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미로 자신은 정작 어떤 ‘주의’에도 속하기를 거부했다. 정체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Message from a Friend 1964                     Ladders Cross the Blue Sky in a Wheel of Fire Oil on canvas 1953 116 x 89 cm Private collection               Bathing Woman Oil on cnvas 1925 73 x 92 cm Mus?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La Harpie (The Harpy) 1969 129.87 x 93.04 cm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피인데 얼굴과 몸은 여자 모양이며 새의 날개와 발톱을 가진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괴물이다. 즉 남을 희생시키는 흉악한 욕심쟁이의 상징인 하피이다. 그러나 미로의 붓끝에서 탄생한 하피. 유모러스한 모습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La Caresse des etoiles Oil on canvas 1938 60.3 x 69.3 cm       원색 대비의 능숙한 붓터치 속에 역시 능숙한 선들로 어린아이가 그린 동화 같은 그림이다. 금방이라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꿈꾸는 동심의 세계를 보는 듯 경이롭고 즐겁다. 미로의 순수한 내면을 보는 것 같다.               Ciphers and Constellations, in Love with a Woman Gouache and terpentine on paper 1941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마치 어린아이가 낙서한 것처럼 순수한 형태와 색채의 어우러짐을 통한 원초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미로는 어떤 형상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했고 때로는 아이처럼 천진스럽게 자신의 내면을 표현했다.   기호와 상징으로 가득 찬 환상의 세계. 내 별자리는 어디 있을까? 무언지 모를 모든 공상들이 온 우주에 둥둥 떠다닌다. 보면 볼수록 친근해지고 즐거워지는 환상의 세계다.               Dog Barking at the Moon Oil on canvas 1926 73 x 92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작품도 그렇지만 이 작품에 주어진 타이틀 또한 즐겁고 경쾌하다.               Catalan Landscape (The Hunter) Oil on canvas 1923-24 64.8 x 100.3 cm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미로의 작품에는 초현실주의 특유한 어두운 분위기나 심리묘사는 적고 밝은 소박한 분위기와 모두를 순수한 상징기호로 표현하여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착하고 따뜻하게 웃는 아이가 된다.               Painting Oil on canvas 1927 97 x 130 cm Tate Gallery London UK                 Obra De Joan Miro       초현실주의(Surrealism)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초현실주의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대 변혁을 가져온 것으로 문학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초현실주의는 그 어떤 미술보다도 매력적이고 다양한 표현 형식을 보여주는 사조다. 초현실주의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나 추상예술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초현실주의의 달리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밀한 묘사력은 사실(寫實)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으며, J.미로뿐 아니라 A.마송, M.에른스트의 작풍(作風)에도 추상화의 경향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성·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성(理性)의 반대의 극점, 합리의 반대쪽의 세계이다.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가능한 한 참되게 표현하려고 하는 초현실주의의 갖가지 시도는 현실적인 연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당시의 모순된 현실과 결부되어 예술일반의 인식을 비약시키고 20세기 특유의 환상예술을 발흥(勃興)시키게 된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의 R.마그리트에 이르면 큰 바위덩어리를 공중에 띄워놓는다든지, 낮이 밤으로 변해 있는 등 정신의 전위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기법에 있어서의 전위적인 정신이 초현실주의의 최대의 표현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Painting Oil, rope and Case-arti on canvas 1950 99 x 76 cm Stedelijk Van Abbe Museum Eindhoven the Netherlands               Women and Birds at Sunrise Oil on canvas 1946 54 x 65 cm Fundaci? Joan Mir? Barcelona Spain       은은하지만 살아있는 듯 고도의 능숙한 붓터치의 화면을 배경으로 하고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선들에 제멋대로 걸려있는 듯 떠있는 듯 나열된 알 수 없는 상징 같은 형체들, 그 단순하지만 시선을 끄는 색감들.... 형언할 수 없는 공상의 세계로, 볼수록 묘하게 끌리며 유쾌해지는 아름다움이다.                 Woman in Front of the Sun Oil on canvas 1950 65 x 50 cm Private collection               Person Throwing a Stone at a Bird Oil on canvas 1926 73.7 x 92 cm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Large cave paintings Etching 1979       여러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그들을 거울삼아 작업의 토대를 만든 호안 미로.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vert)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미로(Miro)의 이름 안에는 거울(MIROir)이 있다.”                   Blue I 1961 Centre Pompidou-Metz museum Metz France               Seated Woman II(Femme assise II) 1939               The Nightingale's Song at Midnight and the Morning Rain Gouache and terpentine paint on paper 1940 38 x 46 cm Perls Galleries New York NY USA       이 구성 작품은 연작의 하나로 노르망디 해변의 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화면 전체를 동등하게 덮고 있는 작은 상형 문자의 구성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미로는 회화적 기호 체계를 순수하게 할 뿐만 아니라 1945년 이후 비구상 회화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공간의 개념을 발견하고 있다. 오묘하고 무궁한 공상의 세계다.                 Women and Bird in the Moonlight 1949               Danse de personnages et l'oiseaux sur un ciel bleu Oil on canvas 1968 173.6 x 291.6 cm     호안 미로 그림의 정점은 1940년대 고향 몽트뢰그에서 그린 '성좌 시리즈' 부터로 출발하며 별, 달, 원, 눈, 새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형상을 자유로운 우주 안에 배치하거나, 무한한 기운이 느껴지는 공간을 구성하게 된다.     당시 그가 좋아했던 밤, 별,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 그리고 시의 정신적 내면이 느껴지는 그림들을 그렸는데,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를 거치고 동양의 서체에서 감명 받았던 것 등의 다양한 영향들이 아우러진 특성을 갖고 있으며, 기호화 된 형상의 배열은 어린아이 그림이나 먼 태고의 벽화에서 보이는 간결함이 잘 드러나 보이고, 푸른색 바탕은 모든 생성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우주의 이미지로 묘사했다.               Nuctorne       앙드레 마쏭과 교류하며 오토마티즘(Automatisme 자동기술법 : 무의식적 행위를 통해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초현실주의 창작 기법)을 작업 강령으로 삼았지만, 그가 작품을 만드는 프로세스는 철저히 계산된 조형의 법칙에 따랐다.                 Painting Oil on canvas 1933 130 x 162 cm Narodni Gallery Prague Czechia               Maternity Oil on canvas 1924 92 x 73 cmM Private collection                 A Dew Drop Falling from a Bird's Wing Wakes Rosalie who Has Been Asleep in the Shadow of a Spider's Web Oil on canvas 1939 65.4 x 91.7 cm The University of Iowa Museum of Art The Mark Pamney Memorial Fun Iowa USA       미로는 특이하게도 화가보다는 앙드레 마송,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과 같은 시인들과 어울리며 초현실주의에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시와 비교하기를 좋아했던 미로다. 그림의 타이틀들이 대부분 시처럼 아름답다.     1925년에는 에 출품하면서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The Matador Etching 1969               The Two Philosophers 1936               Stars in Snails' Sexes Oil on canvas 1925 130 x 97 cm Private collection               A Star Caresses the Breast of a Negress(Painting Peom)               Woman with a Dove Lithograph 1969 85 x 61 cm               The Circus House Oil and pencil on canvas 195 x 280 cm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Smithonian Institution Washingto, DC USA                 Personnages et oiseaux dans la nuit Oil on canvas 1974 274.5 x 637 cm Centre Pompidou-Metz museum Metz France               Untitled Oil on canvas 1925 130 x 97 cm Private collection                 Harlequin's Carnival Oil on canvas 1924~1925 Albright-Nox Art Gallery Buffalo NY USA       이 그림은 미로가 유명세를 얻기 직전에 제작된 것으로서 화가도 자신의 상상력이 최대치일 때의 작품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대표작이다.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먹기 못한 화가는 혼미한 의식 상태에서 드러누워 천장 위에서 모종의 형체를 보게 된다. 그는 몰입해서 무의식의 세계를 옮겨 이 그림을 완성했다.     꿈의 구조가 비논리적인 사건들의 연쇄인 것처럼, 이 그림의 구성도 상상의 실타래가 개연성 없이 화면에 열거된 것처럼 보인다. 온전히 식별이 가능한 사물은 없다. 마치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원생동물로 변형된 삼물들이 화면 위에 떠있다. 미로의 진술에 따르면, 왼편 사다리는 상승과 탈출을 의미하며, 오른편에 화살로 관통된 초록 원형은 지구 정복에 대한 욕망을 뜻한다고 한다.               Blue II Oil on canvas 1961 270 x 355 cm Mus?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내가 좋아하는 이다. 극히 단순하지만 신선하고 투명하게 닥아 오는 색감들, 환상을 자아내게 하는 너른 공간에 크고 작은 오묘한 점들이 서로가 연결되어 이어지듯 흐르는 부드러운 곡선의 율동감까지 싱그럽게 살아있는 듯..... 경이롭고 아름답다.                         The Lark's Wing, Encircled with Golden Blue, Rejoins the Heart of the Poppy Sleeping on a Diamond-Studded Meadow Oil on canvas 1967 195 x 130 cm Private collection       봄의 찬가! 봄 햇살로 눈이 부신 푸른 언덕 기슭에 개나리일까, 꽃장다리일까,...유채꽃일까... 온 세상이 찬란하게 눈이 부신 봄빛으로 가득하다.     The Lark's Wing, Encircled with Golden Blue, Rejoins the Heart of the Poppy Sleeping on a Diamond-Studded Meadow     타이틀마저 시가 되어 더 한층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로의 봄. 미로의 내면에 흐르는 아름다움을 눈으로 실감하는...과연 아름다운 봄의 찬가 아닌가!                     Yousuf Karsh 作       인물사진 작가로 유명한 유섭 카쉬(Yousuf Karsh)와의 첫 만남에서 밝고 생동감 있는 호안 미로의 작품세계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어울리지 않는 정장차림에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호안 미로에게 작업복을 입히자 그의 아이 같은 재치와 유머러스함이 사진에 나타났다’   카쉬의 촬영 당시의 회고다.     미로는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삶과 예술적 진로는 어릴 적부터 카탈루나 지방의 대지와 연관되어있다. 보석상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 입학하고, 1912년 갈리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그는 그의 예술 이미지와는 반대로 고지식하고 제대로 훈련된 근면한 사람으로 말수는 적으나 체계적이고 신뢰가 있고 겸손하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1941년 뉴욕 현대미술 박물관에서의 미로의 대 회고전은 결정적으로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 부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즈음이 바로 그가 예술가로서의 성숙기에 도달하는 시기였고, 세계 제2차 대전 후는 조각, 도기, 판화에도 뛰어난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195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전에서 판화대상을 수상하였으며 미로는 국제적인 화가의 명성 속에서 스페인의 아름다운 섬 팔마 데 마요르카에서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호안 미로는 후기 인상주의, 야수파, 초기 입체주의 등이 완성된 시기에 그림을 시작한 화가로 현대 예술가의 제 2세대에 속한다. 초기에는 야수파의 경향이 나타나다 초현실주의 창시자인 시인 부르통, 아라공, 엘뤼아 등과 교제하면서 초현실주의로 전환하면서 초현실주의의 거장이 되었다.   분명히 식별되는 특이성을 성취한 20세기의 화가 중의 몇몇 소수에 지나지 않는 화가로서 그의 주제적, 상징적 세계의 독특한 화풍은 개인적일 만큼 분명하다.   밝고 가벼운 순수한 색채 평면에 그의 특유의 단순하고 소박한 조형 언어를 병합하여 화가로서의 그만의 특유한 초현실주의의 세계를 보여준다. 예술의 주도적 흐름에 동조하지 않는 그의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은 그 당시 예술과 멀리 떨어진 주변적 예술로 취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로의 특이성은 20세기 미술의 전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여러 특이성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며 손꼽히는 세계적인 화가로 오늘 날에 이르렀다.  
752    초현실주의 첫 기용자 - 기욤 아폴리네르 댓글:  조회:4153  추천:0  2015-03-21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출생 1880. 8. 26 사망 1918. 11. 9, 파리 국적 프랑스 1880. 8. 26 로마(?)~ 1918. 11. 9 파리. 프랑스의 시인. 본명은 Wilhelm Apollinaris de Kostrowitzki.   20세기초에 프랑스 문단과 예술계에서 번창한 모든 아방가르드 운동에 참가하고 시를 새로운 분야로 안내한 뒤, 짧은 생애를 마쳤다. 폴란드 망명자인 어머니와 이탈리아 장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혈통을 비밀에 붙였다. 비교적 자유롭게 자란 그는 20세 때 파리로 가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다. 1901년 독일에서 보낸 몇 개월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때의 경험은 자신의 시적 재능을 깨닫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라인 지방의 매력은 언제나 그의 추억에 남아 있었고, 이 지방의 숲과 전설에 깃든 아름다움은 나중에 그의 시에서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국 아가씨인 애니 플레이든을 사랑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는 런던까지 이 여인을 따라갔지만, 끝내 사랑을 얻지 못했다. 이 낭만적인 실연에서 영감을 얻어 유명한 시 〈사랑받지 못한 애인의 노래 Chanson du malaimé〉를 썼다. 파리로 돌아온 뒤, 아폴리네르는 문필가들이 자주 드나드는 카페의 단골 손님이자 작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또한 나중에 유명해진 몇몇 젊은 화가들, 즉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앙드레 드랭, 라울 뒤피, 파블로 피카소 등과 친구가 되었다. 그는 앙리 루소의 그림과 아프리카 조각을 동시대인에게 소개했으며, 피카소와 함께 그림만이 아니라 문학에서도 입체파 미학의 근본 원리를 밝히려고 애썼다. 그는 1913년에 〈입체파 화가들 Peintures cubistes〉을 발표했다. 그의 처녀작 〈타락한 마술사 L'Enchanteur pourrissant〉(1909)는 마술사 메를랭과 요정 비비안이 나누는 이상야릇한 대화를 시적 산문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듬해 그는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작품들로 이루어진 생기 넘치는 단편집을 〈이교 창시자 회사 L'Hérésiarque et Cie〉(1910)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어서 격식을 차린 4행련구로 씌어진 〈동물지 Le Bestiaire〉(1911)가 나왔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은〈알코올 Alcools〉(1913, 영어판 1964)이다. 이 시집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상상 속에서 다시 체험하면서 때로는 12음절 보격을 가진 정상적인 연으로, 때로는 짧은 무운 시행으로 그 경험을 표현했고, 구두점은 전혀 찍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폴리네르는 입대하여(1914) 보병 소위가 되었고, 1916년에 머리를 다쳤다. 제대한 그는 파리로 돌아와 상징주의적 소설인 〈살해된 시인 Le Poète assassiné〉(1916)을 발표했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 3번째 시집 〈칼리그람 Calligrammes〉(1918)을 발표했다. 이 시집을 지배하는 것은 전쟁의 이미지와 새로운 연애에 대한 그의 집착이다.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로 쇠약해진 그는 유행성 독감에 걸려 죽었다. 희곡 〈티레시아스의 유방 Les Mamelles de Tirésias〉은 그가 죽기 전해에 상연되었다(1917). 그는 이 희곡을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불렀는데, 초현실주의라는 용어가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프랑수아 풀랭크는 이 경희곡을 희가극으로 각색했다(초연 1947). 아폴리네르는 시에서 대담하고 무모한 기법을 실험했다. 그의 〈칼리그람〉은 독창적인 활자 배열 덕분에 시이면서 동시에 도안이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아폴리네르는 언어의 색다른 조합으로 놀라움이나 경악의 효과를 내고자 했고, 이 때문에 그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라고 부를 수 있다.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서로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들의  팔이 만든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길에 지친 물결들 저리 흘러가는데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사랑이 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이 떠나가네 삶처럼 저리 느리게 희망처럼 저리 격렬하게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하루하루가 지나고 또 한 주일이 지나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 기욤 아폴리네르  : 프랑스의 시인 ( 1880 ㅡ 1918 ),  시집 : 「알코올 」출간. 이탈리아 출생.                             가족과함께 리용으로 이주. 라그랑드 프랑스에 세 편의 시를 발표함.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보드레르, 말라르메,                            랭보, 베르렌으로 이어지는 현대시의 가교이자 상징주의에서 벗어나 비로서                            현실세계로 돌아온 시인이다. 자유적이면서도 전위적이고, 전통을 수호했고                            새로움 앞에서 거침없이 실험정신을 구현한 시인이다.       * 1907년,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소개로 화가 마리 로랑생을 만난다. 그리고 " 더 이상 사랑할 수는    없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마리에게 빠져든다. 마리가 미라보 다리에서 가까운 오퇴유 지역으로    이사를 하자 아폴리네르도 마리를 따라서 미라보 다리 가까이 이사를 한다. 마리와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를 오가며 , 미라보 다리 아래를 영원처럼 흐르는 센강 (세느 강)을 바라보며 , 영원한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미술품 절도범으로 몰리게 된 아폴리네르는 설상가상   으로 마리로부터 이별(離別)을 통보 받는다. 이 시는 아폴리네르가 잠시 갇혀 있었던 감옥에서   풀려나 미라보 다리를 걸으며 마리와의 사랑을 回想하며 쓴 시(詩)이다.    레오 페레를 비롯해 수많은 가수들이 곡을 붙이고 노래를 한 이 시(詩)로 인해 예술과 사랑의 도시,  파리가 더욱 빛났으리라. " 수르퐁 미라보 , 꾸레라 세느 "를 노래할 때마다 , 떠남 이후에 더욱 격렬해  지는 사랑의 부재(不在)는 흐르는 강물처럼 단조롭게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듯 빛났으리라.                                                    ㅡ   文學評論家  정끝별님의 해설에서 발췌함 ㅡ                                                                              아폴리네르는 아폴론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의 혈통은 꽤 복잡해서 그의 어머니의 내력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폴란드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모친은 사생아를 둘 낳았는데 이중 장남이 후에 시인이 되었고 형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또 동일인지의 여부도 현재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게 된 아폴리네르는 어려서부터 여기저기를 떠도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후에는 많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헤어지고 나면 그 실연을 기념하여 시를 쓰는 습관이 있던 그의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하게나마 그의 연애사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과히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21살 무렵에 아폴리네르는 라인 지방에서 어느 귀족 집안의 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채용되었는데 거기서 역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었던 영국 처녀 애니 플레이든을 만나게 되어 한동안 그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후 파리로 돌아온 시인은 몽마르트에서 피카소, 막스 자콥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얼마 후엔 마리 로랑생도 만나게 되었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아폴리네르는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군대에 지원을 했는데, 입대를 기다리면서 니스에서 이혼녀인 루이즈를 만나 깊이 빠져들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알제리에서 문학 교사를 하고 있던 마들렌과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게 되어 둘은 편지를 통해 사랑을 키워나가다 결혼까지 약속하고 시인이 나중에 휴가를 얻어 알제리까지 가서 둘이 함께 지내고 왔으나 어찌 된 일인지 그 후로는 조금씩 사랑이 식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아폴리네르는 포탄의 파편이 머리에 박히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되어 두개골 절제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회복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때 앙드레 브르통, 장 콕토 등과 만나며 문인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화가 자크린 콜브를 다시 만나 둘은 급속히 사랑에 빠져들게 되어 1918년 결혼을 했고 피카소가 결혼 증인을 섰다. 그러나 1918년 발생하여 오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악명 높은 스페인 독감이 부상으로 허약해진 시인의 몸을 덮쳐 불과 몇 달 전에 결혼식을 올렸던 성당에서 장례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아폴리네르는 밥벌이 수단으로 비밀리에 에로소설을 썼다고 한다. 당시엔 이런 류의 소설은 내놓고 팔지 못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비싼 가격으로 암거래되었다고 하는데 그는 이런 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발굴해서 편집하는 일까지 해서 고전에서 최근 작품에 이르기까지 30여 종의 작품을 골라서 해설까지 붙였다고 한다. 이러한 일을 하면서 그가 발굴해낸 작가가 바로 사드인데, 사드의 전집을 간행해서 20세기 초에 빛을 보게 만든 것은 순전히 그의 공헌이다. 또 그는 칼리그람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시도를 하였는데 이것은 시구로 어떤 형상을 만드는 것을 말하며 텍스트와 이미지를 오가는 실험적인 기법이다. 아래는 그가 만든 칼리그람이고 모자를 쓴 여인의 모습은 루이즈이다.              
751    명화가 - 마르크 샤갈 댓글:  조회:3603  추천:0  2015-03-21
[그림읽기] 마르크 샤갈[Marc Chagal](1887 - 1985)의 그림이야기 1887.7.7 ∼ 1985.3.28. 프랑스의 화가. 러시아의 비테프스크 출생.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에콜 드 파리 최대의 화가이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미술학교에 다닌 후, 10년 파리로 나와 A.모딜리아니와 F.레제 등을 배출한 아틀리에 라 뤼슈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큐비즘기법을 익혔다. 11년 앙데팡당전(展)에 첫 출품, 괴이하고 환상적이며 특이한 화풍으로 전위파화가와시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11년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성공한 후 그 해 결혼을 위해 일시 귀국하였으나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잇달아 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모국에 머물면서 미술단체의 요직을 맡았다. 고향에 미술학교를 열고, 19년 모스크바의 국립유대 극장의 벽화장식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맞지 않아 22년 베를린, 23년에는 파리로 돌아왔다. 이 때부터는 유화 외에도 화상(畵商) 폴라즈의 의뢰에 따라 많은 판화를 제작하여 에콜 드 파리의 유력한 작가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리고 환상적인 작풍으로 쉬르레알리슴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가 점차 격화되자 41년 도미,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에서 지냈다.  47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 50년부터는 남프랑스의 방스에 영주의 터전을 잡았다. 48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전(展)에서 판화상을 받았으며, 유화 ·판화 ·벽화등 ·스테인드 글라스 조각 ·도기(陶器) 제작을 비롯하여  무대 장식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초기 작풍은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슬라브의 환상감과 유대인 특유의 신비성을 융합시킨 독자 적인 개성을 강하게 풍겼다. 소박한 동화의 세계나 고향의 생활, 하늘을 나는 연인들이란 주제를 다루었고,  자유로운 공상과 풍부한 색채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풀어주는 매력이 있다.    * 현대미술의 거장_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1985) 샤갈은 피카소나 미로 등의 거장들에 비해 뚜렷한 미술사적 보루가 없다. 그러면서도 샤갈은 20세기 인류에게 가장 풍부한 신성의 영감과 상상력의 창조성을 선물한 대예술가로 추앙 받는다. 온갖 이념과 경향들의 각축장인 지난 20세기의 미술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위치에 있는 이가 바로 샤갈이다. 현재까지 어린 아이부터 노인층까지 가장 많은 애호가를 확보하고 있는 샤갈은 어떤 발명가로서의 예술가이기보다, 神 혹은 자연과 인간의 영적 매개자로서의  예술가로 회자된다. 샤갈은 1887년 러시아 비테프스크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 왕실미술학교와 즈반체바 미술학교를 거치면서   화업의 토대를 일군 그는 탁월한 데생의 소유자가 된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다 자유로운 그림을 위해 러시아를 떠난 샤갈은  베를린을 거쳐 파리에 정착한다. 41년부터 48년까지 한동안 나치를 피해 미국에 체류하기도 했지만, 그는 주로 파리를 무대로 활동을 하게 된다. 파리에 있는 동안 그는 거대 화상으로 유명한 볼라르를 만나 인정을 받았으며,   뉴욕에서 돌아왔을 때는 에메 매그에 의해 발탁이 된 것과,   1950년 방스에 정착한 것이 전기가 되어 그의 그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20세기 초 많은 경향이나 사조들과 열린 교류를 가지면서 그 장점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고 아울러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창출해내는 데서 샤갈의 천재성이 입증된다. 1차대전 후 샤갈이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는   유럽에 아방가르드라는 전위운동이 한참이었을 때였다.   어떤 면에서는 그 운동에 깊숙이 관여하기도 했던 작가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초월하기도 한 작가이다. 초창기 그의 작품은 반 고흐의 표현주의적 화풍에서 모종의 영감을 받고,  아울러 큐비즘에 강한 영향을 받아 분할적인 대상의 표현이 많이 시도되곤 하였다. 상상적인 도상들이 지배하고 있는 그의 그림을 초현실주의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의 정서가 궁극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초자아의 영계에 닿아 있는 것 같은 다름을 드러내고도 있다. 20세기의 많은 미술사가들이나 비평가들이 샤갈을 논할 때 의례적으로 행하는 어떤 양식적 구분을 통해 기술하기를 포기하고 온전히 그 작품 내면으로 진입하여 기술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테프스크 - "슬프고도 즐거운 나의 도시여!"   VITEBSK/ 10세기, 비트바 강과 드비나 강의 합류점에 세워진 비테프스크는 가장 오래된 러시아 도시들 중 한 곳이다. 19세기 말 이 상업도시의 인구는 약 7만 명을 헤아렸다. 그 규모가 굉장히 컸던 유대인 공동체는 하시디즘 신비주의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슬프고도 즐거운 나의 도시여! 어렸을 적에 난 널 유심히 관찰하곤 했었지 … . 주의에는 성당, 수도원, 가게, 조토의 벽화에 나오는 건물들처럼 소박하면서도 영원한 유대 예배당이 있었어 … ." 비테프스크는 또한 랍비들과 청소부들, 바이올리니스트들, 가족, 축제, 의식을 의미하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생폴에 이르기까지 샤갈은 늘 자신의 고향 도시를 언급했다. 처음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멀어졌던 이 도시는 꿈의 세계에서 뒤집힌다. 그러고 나서 1914년 고향으로 돌아간 샤갈은 다시 약국과 성당, 거지들을 더 자연스럽게 묘사한다.   이때 그는 홀로코스트가 집어삼키게 될 동유럽의 유대인 마을을 비통한 심정으로 후손들에게 그려서 보여준다. 1920년 모스크바로 떠날 당시 샤갈은 자기가 비테프스크를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세계의 은유이고 그의 정체성에 대한 강박적 추억인 이 러시아 마을은 그의 그림속에 끊임없이 다시 나타난다. 1973년 소련에 초빙된 샤갈은 자신의 탄생지에 가기를 거부했다. "그곳에 가서 뭘 보든 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내 그림을 살리는 요소들 중 하나를 구성하는 것이 그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난 너무나 고통스러우리라 … ." 샤갈은 아주 오래 전 "내 유일한 고향은 내 영혼 속에 있는 고향"이라고 배웠던 것이다.             도시 위에서   샤갈은 1914년 몇 달 예정으로 파리에서 러시아로 돌아갔다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그곳에 발이 묶이고 만다.   1915년 7월 25일, 샤갈은 6년 전에 만났던 벨라와 결혼한다. 그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유대인들은 이 나라에 불기 시작한, 러시아 제정의 차별 조처들로부터 그들을 풀어준 자유의 바람에 특히 민감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샤갈은 비테프스크로 돌아가 그곳 미술학교 교장에 임명된다. 1917년에서 1918년 사이 겨울에 그는 이라든가 처럼 신혼 시절 벨라와의 행복을 기념하는 대작들을 그린다. 샤갈은 를 두 장 그렸는데 거의 똑같다. 꼭 껴안은 두 사람이 하늘을 가로질러 간다. 무중력은 이 신혼부부의 행복감을 표현한다. 샤갈은 아방가르드적 경향의 작품들에서 우세하게 나타났던 상징표현들을 단순화시켜 여전히 몽상적이기는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 읽힐 수 있고 보다 '자연주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림 아래쪽의 비테프스크는 또렷이 알아볼 수가 있다. 전경이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어서 멀리 보이는 경치가 움푹 들어간 것처럼 보이고 수평 구도도 강조된다.   더구나 연인들이 옆으로 날고 있어서 이 구도는 한층 더 두드러져 보인다. 샤갈은 집들과 지붕들의 기본적인 질량감을 강조한다.   그는 마치 조각을 하듯 서로 대비를 이루는 빛과 어둠을 벨라의 옷에 새겨넣었다.  트레타코프 갤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는 는 견고하게 구조화되고 색깔들도 더 금속성이어서 큐비즘의 가르침에 대한 기억을 더 많이 담고 있다. 그런데 베엘레르 화랑에 걸려 있는 또 다른 그림에서는 선도 부드러워지고 질감도 더 있어 보인다.   지면은 따뜻한 색조가 주조를 이루는 반면 하늘을 나는 두 부부는 격리와 꿈의 색깔이라 할 수 있는 차가운 색조의 초록색과 푸른색 옷을 입고 있다.   이 젊은 여인이 환희의 표시로 손을 벌려 내밀고 있어서 두 사람은 한층 더 큰 반경을 그리며 비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당의 둥근 돔이 조심스럽게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긴 하지만,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종교적인 주제는 더 공상적인 주제들로 바뀌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샤갈에게 있어 사랑은 또한 성(聖)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Marc Chagal - 한 여름 밤의 꿈  Newlyweds with Eiffel Towel in the Background. 1982-83. Oil on canvas. 61x50. Private collection. Newlyweds with Paris in the Background. 1980. Oil on canvas. 116 x 89. Private collection. Couple on a Red Background. 1983. Oil on canvas. 81 x 65.5 cm. Private collection. Artist and His Wife. 1969. Oil on canvas. 92 x 65. Private collection. Artist and His Bride. 1980. Oil on canvas. 116 x 89. Private collection. Lovers over Sant-Paul. 1970-71. Oil on canvas. 145 x 130. Private collection. Laid Table with View of Saint-Paul de Vance. 1968. Oil on canvas. 100 x 73. Private collection. Fisherman's Family. 1968. Oil on canvas. 92 x 64. Private collection. Newlyweds and Violinist. 1956. Oil on canvas. 100 x 81 . Private collection. Le Champ de Mars. 1954/55. Oil on canvas. 149/5 x 105 cm. Museum Folkwang, Essen, Germany. Midsummer Night's Dream (Songe d'une nuit d'été). 1939. Oil on canvas. 117.1 x 88.6 cm. Musée de Peinture The Three Candles. 1938-40. Oil on canvas. 127.5 x 96.5 cm. Private collection. Bride with Blue Face. 1932-1960. Oil on canvas. 100 x 81. Private collection. Equestrienne (L'écuyère). 1931. Oil on canvas. 100 x 80.8. Stedelijk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Lovers in the Lilacs. 1930. Oil on canvas. 128 x 87 cm. Private collection. "Blue" Lovers. 1914. Oil on cardboard. 49 x 44. Private collection. "Green" Lovers. Gouache, oil on paper mounted on cardboard. 48 x 45.5. Private collection. "Grey" Lovers. 1917. Oil on canvas. 69 x 49. Private collection. Wedding. 1918. Oil on canvas. 100 x 119. Th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The Birthday. 1915. Oil on cardboard. 80.5 x 99.5 cm.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The Grand Parade. 1979/80  Oil on canvas. 119 x 132 cm. Private collection.    Couple on a Red Background. 1983. Oil on canvas. 81 x 65.5 cm. Private collection.    The Three Candles. 1938-40. Oil on canvas. 127.5 x 96.5 cm. Private collection.    White Crucifixion. 1938. Oil on canvas. 155 x 140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The Painter: To the Moon. 1917. Gouache and water-color on paper. 32 x 30 cm. Private collection.     I and the Village. 1911. Oil on canvas. 191 x 150.5 cm.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작품명 : (Song of Songs) 크기 : 148 X 172cm (1960) 소재지 : 프랑스 니스(Nice) 국립 미술관 이 작품은 작가가 라는 주제로 그린 그림 다섯개 중 첫 번 것이며, 이 작품을 보기 전에 먼저 샤갈이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를 살펴야겠다. 위에 언급한대로 그는 성서에 몰두하게 되면서 유대인의 좁은 삶의 테두리를 허물고 많은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우정을 키우면서 작품 활동의 폭 역시 넓어지게 되자 새로운 갈망을 느끼게 되었다. 야수파 작가인 앙리 마티스 (H. Matisse: 1869- 1954)가 방스의 도미니꼬 수도회 소속 로자리오 경당을 위한 작품을 만든 것처럼, 자기도 성당을 위한 작품을 제작키로 하고 이것을 남길 수 있는 성당을 찾던 중 같은 도시에 있던 가르멜 수도원 소속 성당으로 폐쇄된 상태에 있던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 그곳에 자기의 작품을 남기고자 결심하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 위에 감상한를 위시해서,,,, ,,,,, ,와 여기 소개하는을 완성해서 그의 성서적 신앙을 표현하고자 하다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제동이 걸리게 된다. 즉 그곳 교구장이신 주교님께서 여기 소개하는 이 작품과 아가를 주제로 한 다른 4점이 너무 에로틱해서 성당에 전시하기는 부적당하다는 판결을 하시자, 망연자실 하던 중 예술과 문화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감각을 지녔으며 문화부 장관으로 프랑스를 명실상부한 문화 대국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앙드레 말로 (Andre Malraux)의 도움으로 이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단독 미술관을 짓게 되면서, 성당용으로 만든 성미술 작품들이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미술관용으로 변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론적으로는 막힘이 없으면서 실재 표현에 있어선 너무 막힌 곳이 많은 교회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된다. 미망(迷妄)의 중생들을 인도하기 위해 항상 앞선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든 우리 교회는 역사 안에서 앞서 중생들을 인도해야 할 어떤 순간엔 그 복잡한 제도와 아무런 현실적 합리성이나 타당성도 없는 법과 전통이라는 덫에 걸려 뒷북도 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행착오를 자주 범했으며 이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외설에 대한 의혹으로 교구장님의 심려를 끼친 이 뜨거운 작품을 보자. 외설 시비는 그만두고라도 확실히 이 작품은 다른 성미술 작품과는 달리 뜨거운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솔로몬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아가서는 신랑과 신부의 혼례식 만남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성(性)에 대한 부정적인 염려가 대단했던 교회는 여기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성적인 표현의 진의(眞意)를 찾기보다 성적인 표현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교회의 가르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것을 숨기기 위해 우의적(寓意的) 해석을 해서 아가서에 나타나고 있는 신부는 교회요, 신랑은 바로 야훼 하느님으로 해석했으며 특히 끌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1090- 1153)는 에서 여기에 나타나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하느님과 신자, 교회와 하느님의 관계라는 철저히 영성적인 관계임을 강조했다. 17세기 까지 이런 식으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샤갈은 이 그림을 통해 시원하게 그 본래성, 즉 하느님이 원하신 성(性)과 사랑의 진면목을 마치 오래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문화재를 발굴해서 새롭게 단장하듯이 이 작품을 통해 산뜻하고 생기있게 드러내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성서적 사랑은 연인의 사랑처럼 뜨거운 것이기에 그의 작품 역시 아무 부담이나 망설임 없이 자연스럽게 뜨거움을 표현하게 되었다. 전통 안에서 교회가 전전 긍긍하며 분리시킨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의 구분, 거룩한 사랑(聖)과 속된 사랑(俗)의 구분이 샤갈에게는 애초부터 큰 의미가 없을 만큼 그는 성서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었기에 이 작품은 성애(性愛)의 열기로 뜨거운 신혼부부 신방의 색깔처럼 온통 붉은 색으로 단장되어 있다. 다음 아가의 구절을 음미하며 이 그림을 보자. “그리워라, 뜨거운 임의 입술, 포도주 보다 달콤한 임의 사랑, 임의 향내,  그지없이 싱그러운 임의 이름,  따라 놓은 향수 같아  아가씨들이 사랑한다오 아무렴 사랑하고 말고요. 임을 따라 달음질치고 싶어라  나의 임금님,  어서 임의 방으로 데려 가 주셔요.” (아가서1: 1-4)   과거 교회가 했던 신비적 해석, 아가서의 내용은 그리스도가 교회에 대해 가졌던 사랑의 관계라는 신비적 해석에서 떠나 그는 철저히 남녀의 사랑으로 묘사했고 이것은 작가의 성서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자기의 부부생활의 체험을 통해 완성된 것이었다. 그의 결혼생활은 어느 부부도 따르지 못할 만큼 뜨거운 사랑의 연속이었다. 그의 첫 번째 아내인 벨라와의 사랑은 참으로 대단했고, 그녀가 죽었을 때 너무 상심해서 9개월간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을 만큼 심한 충격을 받았으나 다시 재혼하면서 이 상처를 내딛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것처럼 성애(性愛)로 표현되는 부부생활은 그의 작품 활동에 엄청난 창조적 에너지를 가져다주었기에, 그의 결혼, 사별(死別), 재혼(再婚)과 같은 평범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사랑의 아픔과 슬픔, 회복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성서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그가 추구하고픈 최고의 이상과 부부 생활이라는 가장 만족스러운 자기 현실이 어우러진 멋진 아름다운 아가서의 세계를 관객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다. 아가서는 여러 동물들을 통해 많은 상징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데, 가령,, ,, 등인데 이런 표현은 작가의 인생관과 너무 어울리기에 그는 아무 부담이나 주저 없이 담대하고 시원하게, 교회 지도자들이 너무 에로틱해서 성당에 걸기엔 좀 뭣하다는 이런 염려스러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이 미술관이 개관된 후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대하면서, 신비적 해석으로 일관했던 교회가 주지 못했던 강렬하고 건강한 성서의 감동을 받고 있기에,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이유로든지 군덕지가 붙은 것이나, 복잡 미묘 아리숭한 것을 거부하는 현대인들에게 너무도 시원하고 통쾌하게 사랑의 복음 선포를 하고 있다. 어리석고 부질없는 상상인가? 만일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시대의 표징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혜안과 용기가 있어 작가가 의도했던 대로, 성당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다면 이 작품은 단순한 인간적 감동만이 아니라, 그동안 무심히 살아온, 더 나아가서 속된 것으로 여겨온 성애(性愛)로 표현되는 인간 사랑을 하느님 안에 통합된 고귀한 것으로 바라보는 감동이 훨씬 더 커서 “말로나 혀끝에 붙은 사랑이나” (요한 1서 3:18) 머릿속을 맴도는 그런 사랑이 아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마르 12: 30- 32)는 하느님 말씀의 이해에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상상을 하게 되면서,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복음 선포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제도적인 교회가 자신의 한계점 때문에 미진했던 면을 보완해 준 , 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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