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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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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    와인, 나와 얼쑤~ 놀아보쟈... 댓글:  조회:8994  추천:0  2015-04-05
 와인 용어 *Appellation -.A.O.C와 동일한 의미인지,다른 의미가 있는지 헸갈립니다.   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 아뺄라시옹 도리진 꽁트롤레)   A.O.C.는 직역하면 “원산지 통제 명칭”이라는 의미인데  와인 라벨에 A.O.C가 표시될 경우에는 가운데'origine'의 자리에 원산지명칭이 삽입됩니다. 예를 들어 보르도 지역이라면 ‘Appellation Bordeaux Controlee’  이렇게 표시가 되는겁니다.     *맛에 대한 기본적 표현중 -.Dry하다 -.산도가 높다  -.떫고 강한 맛이다등등    -  Dry하다 : 단맛이 전혀 안나는 와인을 일컫는말입니다.    -  산도?.. 화이트와인일떄 산도라는 말을 씁니다.     .산도가 강한경우 : 드라이함, 산뜻함, 짜릿함     .중간정도의 산도인경우 : 산뜻함, 짜릿함     .낮은 산도의 경우: 달콤하고 원숙하다         -  타닌산?.. 레드와인의 경우에는..     . 높은 타닌 : 휘발성이 강한 쓴맛 드라이하다     . 낮은 타닌 : 부드러우며 마시기가 쉽다     - 피니쉬 : 와인을마시고 입안에 맴도는와인의 맛..이럴때는 피니쉬가 길다고한다.   와인의 맛이 위와 같은떄..와인용어로 바꾸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Light Wine/Medium Bodied Wine/Full Bodied Wine 구분방법?           - 바디(BODY) : 입안에서 느껴지는 와인의 중량     꽉찬듯(Full)한 맛을 느낄경우  FullBody  (와인이 드라이할경우)     중간정도의 (Medium)한 맛을 느낄경우 Mediumbody (단맛없이 약간 떫을때)     가벼운(Light)한 맛을 느낄경우 Lightbody (단기숙성와인이나 약간달거나/떫은맛이X)     + 와인을 직접 본사람이..느끼시는 와인의 느낌을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 Table Wine과 Rose Wine은 어떤 것인지요?   - 뱅 드 따블르(Vins de Table) - 테이블 와인 (Les Vins de Table) 이 포도주들은 원산지 표시를 전혀 할 수 없는 와인으로써~  만약에 프랑스 여러지역의 포도주를 섞었을 경우에는 Vins de Table de France(French Table Wine)이라 표기하고 유럽 여러 지역에서 온 포도주를 조합했을 경우에는 "Melange de vins de differents pays de 1'Union Europeenne"라고 표기하면 된다.여기에는 수확연도를 적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와인자체가 굉장히 저렴하다.   - 로제 와인 (Rose Wine)   로제 와인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이트와 레드 와인을 혼합하여 만드는 와인이 아니고. 레드 와인과 같이 레드 품종으로 시작하여 1차 발효기간 즉, 침용기간을 짧게 가져 포도 껍질의 색소가 약간만 묻어나도록 해서 생산되는와인이다^^. 그리고 나머지 과정은 레드 와인과 동일!      추가   ∴ 만드는 과정   - 레드 와인  레드 품종의 포도는 양조장에 들어서면 우선, 파쇄기(destemmer/crusher)에 들어간다. 이 과정을 통해서 포도송이에서 포도 알맹이들이 분리되고 알맹이들은 터뜨려지게 된다. 그리고는 곧바로 발효탱크에 옮겨져 1차 발효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을 달리 침용과정(maceration)이라고 한다. 이때 포도껍질의 적색 색소가 백색의 포도즙에 용해되어 보라빛이 감도는 색이 되는 것이다. 발효된 포도와 포도즙은 이제 압착기에서 포도즙과 껍질 등등이 분리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며, 다음은 2차 발효(말로락틱발효) 단계이고 이 과정도 끝나면 여과 과정을 통해 남은 효모 등을 걸러내는 단계를 맞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숙성 통 속에서 여러 날 숙성이 된 후 병입 되어 소비자들에게로 가게 된다. - 화이트 와인 화이트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는 백포도뿐이다? 그건 아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과즙은 백포도나 적포도나 다 같이 투명한 색이므로 두 가지 다 화이트 와인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려는 경우에는 레드 와인의 경우처럼 껍질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침용)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화이트 와인은 발효 과정에 먼저 색소나 탄닌 성분이 우러날 수 있는 소지를 제공하는 껍질을 없애기 위해서 압착을 하는데 이건 포도즙과 나머지 부분들을 분리해 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축출된 포도즙으로 발효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발효 후에 여과, 숙성, 병입절차를 거쳐 소비자에게로 가게 된다.    포도품종   ∴적포도 품종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보르도(Bordeaux) 지방, 쒸드 웨스트(Sud-Ouest:남서) 지방과 발 드 르와르(Val de Loire : 르와르강 계곡)에서 재배되는 품종이며 검은 딸기나무향기에 프랑브와즈(framboise)향기가 가미된 포도주를 생산한다.까베르네 프랑 포도주는 까베르네 쏘비뇽 포도주 보다 색깔이 옅고 탄닌 함량이 적다.   까베르네 쏘비뇽 (Cabernet Sauvignon) 주로 보르도 지방과 쒸드 웨스트 지방에서 재배되나 발 드 르와르 지방과 프로방스(Provence), 랑그독(Languedoc) 지방 등에서도 재배된다. 색깔이 진하고 탄닌 함량이 많으며, 미숙할 때는 녹색 피망 향기가 나지만 곧 낙엽이 덮힌 진흙 토양의 향기가 나는 포도주를 생산한다.   가메이 (Gamay)   보졸레 (Beaujolais)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이 나무만을 재배하며, 앙주(Anjou), 뚜렌느(Touraine), 싸브와(Savoie) 오베르뉴(Auvergne) 지방 등에서도 재배한다. 생산 후 곧 마실 수 있는 순하며 과일 향미를 지닌 포도주를 생산한다.   네비올로(Nebbiolo) 삐에몬테 지역에서 재배되는 이태리 최고의 적포도 품종으로 진하고 강건한 와인을   말벡 (Malbec) 지방에 따라 명칭이 다른 포도 품종. 까오르(Cahors)지방와인의 주요 구성성분이며 이 지방에서는 오쎄르와(Auxerrois), 뚜렌느지방에서는 꼬(Cot), 보르도 지방에서는 말벡(Malbec)이라 불린다. 탄닌 성분이 많고 색상이 강하며 조합용으로 사용된다. 메를로 (Merlot) 쒸드 웨스트 전지역에서도 재배되는 보르도 지방의 포도 품종. 까베르네 포도주보다 빨리 숙성되는 순하면서 향긋한 포도주를 생산한다. 쌩떼밀리옹(Saint-Emilion)과 뽀므롤(Pomerol) 포도주의 주성분이다.   삐노 느와(Pinot noir) 부르고뉴 레드 와인의 명성을 가져온 포도 품종. 삐노 느와 와인은 미숙할 때는 대개 특징적인 붉은 작은 열매 과일향을 갖고 있으나, 수년간의 숙성 후에는 야생 고기향을 띈다. 부르고뉴 레드와인 양조에 주로 사용되나 알자스, 쥐라, 뷔게 등의 다른 지방에서도 재배된다. 백포도주로 양조될 경우에는 샹빠뉴(Champagne : 샴페인) 양조에 사용된다.   진판델(Zinfandel) 이태리에서 전해진 품종으로 현재는 캘리포니아가 원산지가 된 것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재배되지 않는다. 딸기 향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 향기와 조직이 생동감이 넘친다. 여러 스타일로 만들어지며 스튜나 토마토 소스등과 잘 어울린다. 숙성되면 Cabernet Sauvignon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흡사하다.   ∴ 백포도 품종 샤도네이 (Chardonnay) 대부분의 유명한 부르고뉴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품종이며 샹빠뉴(Champagne: 또는 샴페인)지방, 특히 꼬뜨 드 블랑에서도 재배된다 ("샹빠뉴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은 이 포도로만 생산한다). 쥐라 지방과 르와르 계곡에서도 볼 수 있다.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섬세하고 마른 과일 향을 갖는 양질의 와인으로 재배지의 토양에 따라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꼴롱바르 (Colombard) 예전에는 샤랑뜨와 쒸드 웨스뜨 지방에서 증류용 (꼬냑, 아르마냑의 생산용) 와인을 양조하기 위해 재배한 품종. 근래에는 쒸드 웨스뜨의 뱅드 뻬이 양조용으로 많이 재배된다.   게부르츠트라미네르(Gewurztraminer) 알자스 지방에서 재배되며 이 지방 포도 나무의 20 %를 차지한다. 향이 강하고 짜임새 있는 힘찬 무감 미 화이트와인을 생산하는데, 포도작황이 좋은 해에는 감미 와인의 생산에도 사용된다.   뮈스까델 (Muscadelle) 주로 보르도와 도르도뉴(Dordogne) 지방에서 재배되며 다른 품종들, 특히 쏘비뇽과 쎄미용과 혼합되어 사용된다. 뮈스까 계열의 품종은 아니다.   뮈스까데 (Muscadet (믈롱 드 부르고뉴 : Melon de Bourgogne)) 발 드 르와르 지방의 향이 뛰어난 무감미 화이트와인인 뮈스까데 원산지통제명칭(AOC)와인의 생산에 사용되는 유일한 포도 품종이다.   삐노 그리(Pinot gris) 예전에는 또깨 달자스(Tokay d'Alsace)라고 불리운 푸른 빛이 도는 회색 포도로 알자스 지방 포도 재배량의 5%를 차지한다. 삐노 그리로 생산된 백포도주는 진한 향을 지녔고 힘차며 때로는 단 맛을 지니기도 한다. 싸브와, 발 드 르와르 지방에서도 재배되며 부르고뉴에서도 약간 재배된다.   리슬링 (Riseling) 알자스 지방의 가장 오래된 포도 품종으로 이 지방에서 재배되는 포도 품종의 20 %를 차지한다. 과일 향의 기품 있고 상쾌하며 탁월한 무감미 백포도주를 생산한다.   쏘비뇽(Sauvignon) 향기가 강하며 보르도, 쒸드 웨스트, 발 드 르와르 지방이 주된 재배지이다. 쌍쎄르(Sancerre), 뿌이퓌메(Pouilly Fum ), 깽씨(Quincy) 등의 화이트와인의 유일한 구성 품종이다. 쏘떼른(Sauternes), 몽바지악(Monbazillac) 지방 등에서는 쎄미용 품종과 조합되어 감미의 리꿰르 화이트와인을 생산한다.   산지오베제(Sangiovese) 끼안띠 와인의 주포도 품종으로, 산도의 균형이 잘 이루어져 있으며 기분 좋은 향기를 풍긴다.   쎄미용(Smillon) 보르도와 쒸드 웨스트 지방에서만 재배된다. 이 품종이 걸리는 귀부병(貴腐病)은 이 지방의 유명한 리꿰르 와인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쏘비뇽과 혼합되어 섬세하고 산미가 약간 있으며 전체가 조화된 무감미 화이트와인을 생산한다.   실바네르 (Sylvaner) 신선하고 과일향을 띈 가벼운 와인을 생산하는 알자스 품종. 단독으로도 사용되기도 하고, 또는 조합용으로는 알자스 고유의 백포도품종들의 조합인 에델쯔빅께르(Edelzwicker)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위니 블랑 (Ugni blanc) 프랑스에서 재배 면적 2위의 포도 품종. 특히 샤랑뜨(꼬냑 지방 포도원의 주품종)와 쒸드 웨스뜨 지방에서 재배된다. 랑그독, 프로방스, 꼬르스 지방의 일부 화이트와인의 제조에 사용되어 신선함과 산미를 더해 준다.   뮬러-투르가우(Muller-Thurgau) 뮬러-트루가우는 현재 독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는 품종으로 포도경작면적의 약 24%를 점하고 있다. 이 품종은 리스링과 실바나의 교배종(交配種)으로 리스링보다 부드러운 산미(酸味), 약간의 Muskat의 풍미가 있고, 신선하며 숙성 직후가 최적이다.   폴 블랑슈 (Folle blanche) 옛날에는 꼬냑 생산용으로 재배되다가 회색 탈저병에 약하여 샤랑뜨 지방에서 거의 사라졌던 포도 품종. 현재에는 낭뜨 지방의 그로 쁠랑 원산지명칭 우수품질제한(AO VDQS)와인에 사용되는 유일한 포도이다.   마까붸 (Macabeu) 주로 루씨용 지방에서 천연감미와인(VDN)과 꼬뜨 뒤 루씨용(C tes du Roussillon) 화이트와인 생산용으로 재배된다. 산미(酸味)가 거의 없고 향취가 풍부한 힘찬 포도주를 생산한다.   트레비아노(Trebbiano) 이태리의 북부와 중부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화이트 포도 품종으로 쏘아베, 오르비에토, 프라스카티를 만드는데 쓰인다.   삐노 뭬니에 (Pinot Meunier) 샴페인의 제조에 사용되며 주로 마른(Marne)과 오브(Aube) 지방에서 재배되나, 발 드 르와르 지방과 동부 지방 (모젤포도주 와 꼬뜨 드 뚤)에서도 재배된다. 흰 곰팡이 병의 일종인 뭬니에가 이름에 사용된 까닭은 잎에 흰 솜털이 덮여 있기 때문이다.    나라별 원산지              보르도 지역   이미 오랜 옛날부터 프랑스의 지롱드(Gironde) 지방에서는 포도 재배가 번성하였다. 4세기에는 로마의 집정관이자 시인이며 포도원 주인이기도 했던 오소니우스(Ausonius)가 보르도 와인을 널리 알리는 초대 사절이 되었다.아끼덴(Aquitaine)의공주와 영국 왕 헨리(Henry) 2세와의 결혼으로 보르도 와인은 1152년부터 영국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와인 애호가들의 요구 수준이 높아졌고, 와인의 질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또 이에 따라 가격도 차이가 나게 되었으므로 와인 제조 방법의 상당한 발전이 이루어 졌고, 또 이에 따라 가격도 차이가 나게 되었으므로 와인 제조 방법의 상당한 발전이 이루어 졌고, 무엇보다도 와인의 질에 가장 큰 관심을 쏟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한 A.O.C.안에서도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지는데, 1855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계기로 메독(Medoc)과 소테른(Sauternes)와인에 여러 등급이 생긴 것이 바로 그 예이다.   * 환경 프랑스의 남서부 대서양의 연안에 위치하며 북극과 적도의 정중앙에 놓여진 이 보르도 포도원은 지롱드(Gironde)도 전반에 걸쳐 있다. 가론(La Garonne)강과 도르돈뉴(La Dordogne) 강 그리고 수많은 지류들이 이 포도원을 지나가고 있어 자연적으로 풍부한 수자원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 지방의 온도를 조절해주며 따뜻하게 해주는 더운 바닷 바람인 골프 스트림과 지롱드강의 안으로 들어온 만(내포:內浦)과 강들이 있고 서풍을 막아주는 랑드 숲으로 인해 이 곳 기후는 매우 온화하다.   가론강의 좌안과 지롱드강의 내포 위에 펼쳐진 토양은 대개 자갈 많은 땅과 두께를 달리하며 쌓여있는 가론강의 퇴적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자갈 많은 토양(굵은 자갈, 조약돌, 모래)은 매우 배수가 뛰어나며 열기를 품고 있을 수 있어 포도알이 익는데 매우 좋다.) 명칭(와인) 메독  매독이란 '중간에 위치한 땅'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서양과 지롱드강의 내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지롱드와 가론 강 어귀의 좌안을 따라서 길게 펼쳐진 130km가 넘는 좁은 띠 모양의 땅으로 형성되어 있는 이 포도원의 독특한 특징은 크룹쁘라는 자갈, 모래, 조약돌 성분의 조그마한 언덕들이 이어지며 내포를 내려다 보고 있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척박한 토양은 배수가 뛰어나고 온기가 있어 이 지역의 주 품종인 까베르네 쇼비뇽에게 특히 알맞다. 메독와인은 골격이 있고 짜임새가 있으며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레드와인들이다. 지방명칭 ∴ 메독(Medoc) - 오 메독(Haut- Medoc) 위의 두 와인이 이 지역 생산의 60%를 차지한다. - 마고(Margaux) 아주 독하지는 않지만 산성도가 꽤 높고 그윽한 향취와 섬세함을 자랑하는 와인이다. - 셍줄리앙(St. Julien) 강하지만 섬세함을 지녔으며 주로 꽃향기의 미묘한 향을 풍긴다. - 뽀이악(Pauillac) 붉은 과일(까시스, 산딸기)향이 나며 강한 맛을 지니고 (꼬르세 : corse) 저장기간이 길다. - 셍 떼스테프(St, Estephe) 탄닌 성분이 많은 풍부한 맛을 지녔으며 섬세한 향이 난다. - 물리(Moulis) 다즙질(샤르뉘 : Charnu)이며 탄닌 성분이 많고 강한 향을 풍긴다.   - 리스트락(Listrac) 탄닌 성분이 매우 풍부하며 과일향이 난다.   [그라브] 메독에 이어서 그라브 명칭은 드라이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에 적용된다. 토질은 자갈등 중퇴적물 층이 모래 섞인 토양이나 점토성 토양에 섞여 구성된다. 몇 년전부터는 북부 그라브는 뻬싹-레오냥(Pessac-Leognan)이라는 자신만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이 지역은 더욱 짜임새 있는 레드와인을 생산한다. 여기에서 모든 그라브 지방의 그랑크뤼급 와인을 발견할 수 있다. 남쪽으로는 토질에 모래성분이 더 첨가되며 화이트와인 생산이 유리하므로 레드와인의 경우는 더 가벼운 성질을 띤다. 그라브 쉬뻬리웨르는 감미가 풍부한 화이트와인을 자랑한다. 그라브 와인도 그랑 크뤼 대상이 된다   [쏘떼른느 와 바싹] 스위트한 와인의 생산지인 이곳은 가론강 좌안에 위치하며 석회질의 규토, 그라브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에는 안개가 끼고 낮에는 활짝 개는 특수한 미기후가 형성되어 "보트리티스 시네레아균(Botrytis Cinerea)"이 왕성히 번식한다. 이 주류는 수확기에 다다른 포도에서 번식하여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서 당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신맛을 없애주며, 익은 과실(살구, 복숭아)향, 아카시아, 오렌지 껍질향을 내는 특수 방향 물질을 생성시킨다.   [쌩떼밀리옹] 이 지역은 도르돈뮤강의 좌안에 위치하며 리부른느 도시 주변지역에 퍼져있다. 메를로 품종이 주된 품종인 레드와인 지역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토양이 매우 다양하지만 대체로 진흙을 함유하고 있으며 이것이 메를로 품종에는 최적의 조건이 되는 것이어서 그 품종이 이 지역에서는 자신의 질적인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역 와인은 주로 장기 숙성용이 많아 힘차면서도 섬세하고 복합적이며 메독의 와인의 복합적이며 메독의 와인보다 향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빠른 것이 특징이다. 이 포도원은 상이한 토양들로 구성된 중세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석회질 고원, 석회 성분과 모래 진흙의 언덕들, 아래쪽은 진흙 섞인 모래가 주성분인 토양등이 대표적이다. ?? 떼밀리용 와인은 일반적으로 매우 짜임새가 있으나 토양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 떼밀리용과 ?? 떼밀리용 그랑크뤼(St.Emilion Grand Cru) 두 종류의 AOC가 있다. 주변 명칭으로는 루싹 ?? 떼밀리용(Lussac Saint- Emilion), 몽따뉴 ?? 떼밀리용(Montagne Saint- Emilion), ?嬋별? ?? 떼밀리용(Puisseguin Saint- Emilion), ?읒恬A? ?? 떼밀리용(Saint - Georges Saint- Emilion) 이렇게 4가지가 있다. 총 38,000헥타.   [뱅 데 꼬뜨(Vins des Cotes)] 지롱드강, 가론강, 도르도뉴강 우안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산지에 따라 독특한 개성과 특징을 지녔으며 색, 향기, 농도, 과일맛의 차이에 따라 구별된다.   [보르도 와 보르도 슈페리외르] 지롱드강 연안의 포도원 전역에서 생산된다. 주정도가 높으며 조화로운 맛, 감미로운 향, 혀 끝에서 녹는 부드러움이 그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좀 강한 맛의 보르도 슈페리외는 숙성될수록 풍미가 더해진다.   [엉트르 두 메르 (Entre-deux-mers)] 가론강(La Garonne)과 도르돈뉴 강(La Dordogne) 사이에 위치한 이 포도원은 이곳을 둘러싼 두 개의 커다란 강으로 인해 그러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대서양 연안의 늪지를 끼고 있어 마치 두개의 내포로 형성된 바다를 안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언덕에서 작은 골짜기로 갈수록 토양은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석회, 모래, 규암, 자갈 등이 대부분 진흙과 섞여있는 것이 특징이며 무감미 화이트와인만을 생산하는 포도원이다. 세미용품종은 와인에 부드러움을 부여하며 쇼비뇽품종은 입안에서 신선함을 돋구며 강한 향기와 과일향을 드러낸다. 이들은 모두 2,3년 안에 소비해야하는 아주 마시기 쉬운 와인들이다. [뽀므롤(Pomerol)] 이 지역은 지하 토양은 철분이 함유된 충적층으로 이루어진 특성을 갖고 있어 '쇠찌꺼기 '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와인들은 매우 강하며 풍부하고 대개는 붉은 열매나 숲의 어린 나무들의 향과 더불어 동물성 향이 살짝 난다. 뽀므롤에는 공식적으로 그랑 크뤼급 분류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지역의 명예를 빛내주는 샤또 뻬트뤼스(Chateau Petrus)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프롱싹(Fronsac)] 릴(l'isle)과 도르돈뉴강 사이에 진흙과 석회성분, 혹은 진흙과 모래로 이루어진 언덕에 위치한 프롱싹과 까농 프롱싹(Canon-Fronsac)은 알코올 함량이 높고 짜임새 있는 장기보관이 가능한 레드와인을 생산한다.                   부르뉴고 지역     포도원의 면적 24,000헥타   포도 품종  레드와인 -피노 느와(Pinot Noir), 가메(Gamay)  화이트와인- 샤르도네(Chardonnay), 알리고떼(Aligote) 색상별 비율 레드와인 - 48%화이트와인 - 52%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원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원 중 하나이다. 서기 약 300년경, 갈로 로망 시대에 한 로마 황제의 적극적인 진흥 정책으로 이 지역 포도원은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중세에는, 이 지방의 성직자들과 영주들이 부르고뉴 와인을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 알림으로써, 부르고뉴 와인은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예로, 당시 부르고뉴의 공작들은 거의모든 나라에 대표부를 설치하였으며, 그들이 지배하던 봉토는 오늘날의 네덜란드, 벨기에와 스위스 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미사집전과 환자 치료를 위해 와인이 필요했던 카톨릭 성직자들이 역시 수 세기에 걸친 와인 제조기술 완성의 노력을 통해 이 지방 포도원 발달에 큰 기여를 하였다. 환경 겨울에는 한냉하고 빙결기가 잦으며 여름에는 고온인 대륙성 기후이다. 어린 묘목에 치명적인 춘빙(春氷)현상을 막기 위해, 포도원 중앙에 화덕을 만들어 전체적으로 기온을 높인다. 토양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와인, 포도원, 상품명 또한 여러 가지이다. 샤블리(Chablis)포도원은 석회질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양은 석회질의 이회토(弛灰土)이다. 꼬뜨 드 뉘(Cote de Nuits)포도원은 가파르며 경사가 심하고, 석회질의 이회토와 편암질(片岩質)의 점토로 이루어졌으며, 동향이다. 좀 더 광활한 꼬뜨 드 본(Cote de Beaune)포도원은 남동향이며, 석회질, 점토, 규토로 이루어져 있다. 구릉이 연속하여 자리잡고 있는 마꼬네(Maconnais)포도원 역시 석회토와 점토성 석회토로 이루어져 있다.   부르고뉴 산지별 분류 Chablis (샤블리)   - Cote de Nuits 꼬뜨드뉘 Gevrey Chambertin 즈브리 샹베르땅Vosne Romanee 본느 로마네Vougeot 부조Nuits Saint Georges 뉘생 조르쥬Chambolle Musigny 샹볼 뮤지니   - Cote de Beaune꼬뜨드본 Pommard 뽀마르Aloxe Corton 알록스꼬르똥Puligny Montrachet 뿔리니 몽라쉐Chassagne Montrachet 샤샤니 몽라쉐Meursault 뫼르소 Maconnais 마꼬네 - Pouilly Fuisse 뿌이 퓌세   [샤블리(Chablis)] 오쎄르시 근처에 위치한 샤블리 포도원은 2,400헥타르에 펼쳐져 있으며 이 석회암 토양에 재배된 샤르도네 포도는 Bodyrk 있고 힘차며 섬세한 무감미 화이트와인을 생산한다. 샤블리 포도원 근처의 땅에서 수확된 포도로 만드는데 이 와인들은 생동감있고 가벼워 마시기 좋으며 햇포도주로 즉시 소비해야 한다   - 샤블리 그랑 크뤼(Chablis Grand Cru) 7개 끌리마에 해당하며, 끌리마의 이름이 AOC명칭에 첨부된다. 레 르뤠즈(Les Preuses), 레 끌로(Les Clos),그르누이으 (Grenouilles), 부그로(Bougros), 발미르(Valmur), 블랑쇼(Blanchot)등이다. 황금색의 와인이며 감미가 없고 색이 선명하며 10년까지 장기 숙성할 수 있다 - 샤블리 프르미에 크뤼(Chablis Premier Cru) 거의 그랑 크뤼만큼 우수한 고급와인이다 - 샤블리  수확후 2~3년동안에 완벽해지는 이 와인은 세련되고 과일향이 풍부한 와인이다.   [꼬뜨 드 뉘(Cotes de nuits)] 토양의 지하는 산성백포, 표면은 이회암으로 구성되었으며 약간 석회질이다. 부르고뉴 와인의 명성을 가져온 심오하고 풍요롭고 탁월한 레드와인만을 생산한다. 나폴레옹 1세가 가장 애음한 샹베르땡(Chamcertin), 벨벳처럼 부드럽고 레이스처럼 화려한 뮈지니(Musigny), 수도원의 영지였으며 현재 슈발리에 뒤 따스뜨뱅(Chevalier du tastevin)의 본거지인 끌로드 부조(Clos de vougeot),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와인의 하나를 생산하는 로마네 꽁띠(Romanee-Conti)등이 있다.   - 픽셍(Fixin) 제일 북쪽에 있으며 6개의 상급의 와인이 있으며 강한 맛과 장기보관이 가능하다.   - 즈브리-상베르뗑(Gevrey-Chambertin)  "와인의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강한 맛과 함께 특유의 감초 향내를 지니며 20년 이상 장기보관이 가능하다.   - 모레-셍-드니(Morey-St-Denis)  "제브레이-샹베르뗑"보다는 맛이 약하나 풍부하고 섬세한 맛을 지녔으며 딸기와 제비꽃의 복합향을 자랑한다.   - 샹볼-뮈지니(Chambolle-Musigny) "꼬뜨 드 뉘" 와인 중에서 가장 섬세한 맛을 지녔다.   - 부조(Vougeot) 따스뜨-벵(Taste-Vin)기사 수도회 본부가 위치한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에서생산 - 본-로마네(Vosne-Romanee) 로마네-꽁띠(Romanee-Conti), 따쉬(Tache) 등지에서 생산되며 부드럽고(므왈뢰 : moelleux), 달콤하며 그윽한 맛을 지녔다. 특히 부드럽고 풍부한 향내는 비할 데 없다.   - 뉘-셍-조르쥐(Nuit-St-Georges) 여러종의 상급 와인이 있다. 좀 더 북쪽에 위치한 특급 포도원의 것보다는 가벼운 맛(Leger)을 지녔으며 그윽함을 풍깁니다.   [꼬뜨 드 본(Cotes de Beaune)] 이 지방의 토질은 꼬드 드 뉘 지역과는 매우 다르며 꼬드 드 본의 토질은 매우 다양하여 자갈이 많고 철분이 함유된 소금 성분을 띤 점토, 석회질 토양, 이회암의 석회암, 맑은 이회암등을 포함한다. 볼레(Volnay), 뽀마르(Pommard), 본(Beaune), 알록스꼬똥(Aloxe Corton)등 우수한 레드와인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몽라쉐(Montrachet), 뫼르소(Meursault), 꼬똥 지방에 포도원을 소유했던 샤를마뉴 대제를 기념하여 명명된 꼬똥 샤를마뉴(Corton Charlemagne)등의 탁월한 화이트와인을 생산, 와이트와인은 섬세한 과일향을 지닌 원만하고 가벼운 무감미와인이며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와인이며 충분히 숙성된다. 레드와인도 완벽하게 균형을 유지하여 섬세하여 Body가 확고한 우수한 장기보관용 와인. - 꼬똥(Corton)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일한 상급 레드와인이다.   - 꼬똥-샤를마뉴(Corton-Charlemagne) 순수한 맛에 계피향이 나며 저장 기간이 긴 상급 화이트와인이다   - 본, 샤비니-레-본(Beaune, Savigny-les-Beaune) 매혹적이며 미묘한, 그리고 과일향이 나는 레드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 뽀마르(Pommard) 맛이 강하며 탄닌 성분이 많고 색이 짙은(꼴로레 : colore) 레드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 뫼르소(Meursault) 주정도가 높으며(제네뢰 : genereux), 잘 익은 포도와 개암 열매 향이 나는 화이트와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배가된다.   - 뽈리니-몽라쉐, 샤샤느-몽라쉐(Pulligny-Montrachet, Chassagne-Montrachet) 화이트와인을 제조하는 몇몇 상급 포도원에서 생산된다. 그 중 특히 몽라쉐는 "개암열매와 꿀, 편도향이 풍기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드라이 화이트와인"로 알려져 있다. [꼬뜨 샬로네즈(Cotes de Chalonnaise)] 이곳의 풍경은 포도원에 다양한 위치를 안겨준다. 몽따니(Montagny), 뤼이(Rully) 등의 명칭은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훌륭한 화이트와인을 생산한다. 피노 느와는 갈색 석회석 지대의 토양인 메르뀌레(Mercurey), 지브리(Givry), 뤼이 일부 지역에서 재배된다. 그외 비노 블랑, 피노 그리, 알리고떼, 가메등의 여러 품종을 안배하여 다양하게 재배할 수도 있다. 꼬뜨 샬로네즈의 북쪽에서 생산되는 부르고뉴 알리고떼 부즈롱(Bourgogne Aligote Bouzeron)은 매우 마시기 좋은 무감미 화이트와인이다. 서쪽으로는 꾸슈아 (Couchois) 포도원에서는 부르고뉴 레드, 화이트와인을 생산한다   - 메르퀴레, 지브리(Mercurey, Givry) 꼬뜨 드 본 와인과 흡사한 유형의 레드 와인이 생산된다. - 뤼이(Rully) 가벼운(레제 : Leger) 과일향의 화이트와인이 생산된다.   [마꼬네(Maconnais)] 과일풍미와 방향을 지닌 부르고뉴 크뤼의 또다른 생산지. 일반적으로 이회암질이며 화이트와인을 생산하는 남부는 점토-석회질토양. 마꼬네지역은 대부분 화이트와인이나 소량의 레드와인과 로제와인도 생산하며 가장 유명한 와인은 뿌이 퓌세(Pouilly Fuisse)이다. 이는 녹색을 띤 금빛의 무감미 화이트와인이며 섬세하고 방향을 지녔으며 일반적으로 숙성을 거치지 않고 마시거나 10년이상의 보관기간을 거쳐도 향기를 잃지 않는다. 마꽁 비라쥐는 전부 화이트와인이며 감미가 없고 과일향을 지녔으며 숙성을 거치지 않고 마시기에좋다.                                                                                                    보졸레 지역   포도원 면적 22,000헥타 포도 품종 적포도 - 가메(Gamay) 백포도 - 샤르도네(Chardonnay) 색상별 비율 레드와인, 로제 와인 - 99% 화이트와인 - 1%   환경 서쪽에서 부는 찬바람과 보졸레 지방의 산맥으로부터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언덕들이 잘 막아주며 이 곳 기후는 아주 온화하지만 가끔 한파가 닥치기도 한다. 토양은 주로 화강암과 편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메이 품종이 자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등급 보졸레 쉬페리에르(Superieur), 보졸레 비라주(Villages), 보졸레 크뤼(Cru)의 세 등급이 있다. 보졸레 크뤼는 오랜 기간 보관해 마실 수 있는 개성 있는 고급 레드와인으로 10개 지역에서 생산된다.   시루블(Chiroubles) - AOC 섬세하고 조화로운 맛과 함께 작약, 제비꽃의 향에 과일향이 복합되어 있다   브루이 (Brouilly) - AOC 까치밥나무 열매, 뽕 열매, 버찌 등의 과일향이 풍기는 와인으로 특히 출하된 첫해에 가장 맛이 좋습니다   꼬뜨 드 브루이 (Cote de Brouilly) - AOC 신선한 포도향과 제비꽃향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2의 브루이보다 좀 더 그윽하며(엘레강 :elegant) 복합향을 띠며(꽁플렉스 : complexe) 숙성 2~3년 후엔 그 섬세함을 만끽할 수 있다.   쌩 따무르(Saint-amour) - AOC 버찌술 향을 띠며, 강한 맛의 다즙질(샤르뉘 : charnu) 와인이다   플러리(Fleurie) - AOC 선명한 루비색에, 말린 장미와 보랏빛 붓꽃향을 띤 감미롭고 부드러운 와인이다.   쉐나(Chenas) -AOC 짙은 색에 탄닌 성분이 꽤 많은 편이며(샤르빵테 : charpente) 모란향이 약간 나는 와인으로 장기 저장이 가능하다.   모르공(Morgon) - AOC 산화철을 함유한 편암이 풍화되어 얻어진 "풍화암"으로 형성된 1,100ha의 지대에서 생산된다. 짙은 암홍색을 띠며 살구, 복숭아, 산버찌의 과일향이 난다. 맛이 진하며 숙성기간은 3~5년이다   쥴리에나(Juliena) - AOC 짙은 루비색에 향신료와 복숭아, 딸기, 물푸레나무 등의 과일향을 지닌 와인이다. 강하고 진한 맛을 지녔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맛이 좋아진다.   물렝 아 방 (Moulin-a-Vent) - AOC 초기에는 신선한 과일향을 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비꽃, 장미 등의 꽃내음이 난다.강하면서 조화된 풍미(에끼리브레 : equilibre)를 자랑하며 4~5년까지 저장이 가능하다.   레니에(Regnie) - AOC 레니에는 아름다운 루비빛의 색깔과 까치밥 나무 열매, 산딸기 등의 향과, 매우 우아한맛으로 매혹적이다. 이 와인의 힘찬 성질은 모르공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법령에 의해 매년 11월 세 번째 목요일 새벽 0시를 기해 전세계적으로 일제히 판매에 들어간다. 보졸레 누보라는 명칭은 엄격한 검사를 거쳐 일정 기준을 충족시킨 보졸레 지역의 햇포도주에만 붙일 수 있다. 즉 라벨에 AOC(원산지통제명칭)가 표기되며, 보졸레 누보는 보졸레 지역에서 첫 수확되는 적포도를 일주일 정도 발효시킨 후 4~5주간의 짧은 숙성과정을 거쳐 여과, 병입한다. 이 때문에 탄닌 성분 등의 추출이 적어 맛이 가볍고 상큼하다. 또 과일향이 풍부하고 신선한 것이 특징이다. 발효 과정이 짧기 때문에 일반 레드와인보다 엷게 착색되며, 이에 따라 핑크색을 머금은 엷은 붉은색을 띈다. 보졸레 누보의 포도 품종은 가메(Gamay)인데, 다른 품종에 비해 보존성이 약해 시간이 지날수록 품질이 떨어지며 쉽게 변질되는 특성이 있다. 보졸레 누보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또는 새해까지, 출하된 지 1~2개월 내에 가장 많이 소비된다. 통상 이듬해 부활절 전까지도 마시지만 이때는 신선한 맛이 적고 변질되기 시작해 와인으로서 생명력이 없어진다. 보졸레 누보는 레드와인이면서 화이트와인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약간 차게(섭씨 10~13도)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가벼운 음식이면 어느 것이든 잘 어울린다                                      라그독-루씨옹 (Langue d'oc -Roussillon)지역   포도원의 면적 40,000헥타   포도 품종  레드 와인 -까리냥(Carignan), 그르나슈 누아르(Grenache Noir), 쌩쏘(Cinsault), 무르베드르(Mourvedre), 쉬라(syrah) 화이트와인 -마까뵈(Macabeu), 그르나슈 블랑(Grenache Blanc), 부르불랭(Bourboulenc), 끌레렛뜨(Clairette) ,픽푸(Picpoul) 색상별 비율 로제와인 - 83% 레드와인 - 11% 화이트와인 - 6%   역사 랑그독 루씨용 지방에서는 이미 2,000년전부터 포도원이 마을마다 활기를 불어 넣어 주고 이 지방 풍경을 수놓아 왔었다. B.C. 5세기에 그리스인들에 의해 상업적 목적으로 최초의 포도원이 시작되었고 B.C. 1세기부터 로마인들은 이곳 토양의 다양성과 기후에 매혹되어 이 곳을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포도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고트족과 사라센과 침범이후 침체되었던 포도원은 9세기부터 교회에 의해서 재건되었고 17세기에 완공된 쎄뜨(Sete)항을 거쳐 내륙으로 통하는 운하의 건설에 힘입어 내륙지방과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브랜디의 수요가 증가되어 포도원의 규모는 더욱 확장되었다.   19세기말 이래로 주류 시장이 성장하면서 광대한 지방 환경과 풍부한 포도 수확량에 비례하여 이 지방의 뱅 드 따블의 생산이 크게 증가되었으며 1987년 10월의 생산 조건에 대한 법령제정이후 단일 품종 포도를 사용한 양질의 AOC급 와인의 생산도 주목할 만하다.   환경 이 곳은 지역적으로도 지중해 지역일 뿐 아니라 적고 불규칙적인 비와 고온 건조한 기후로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다양한 영향(대서양, 산맥, 고도)으로 가뭄에 대한 피해를 줄일 수가 있고 지상에서 불어오는 시원하고 건조함 바람과 바다에서 부는 온화하고 습기찬 바람사이에서의 계속적인 투쟁의 결과 포도나무와 포도에 대해서 놀랄만한 기술을 이루었다.   모리(Maury)의 검은 편암, 꼬르비에르(Corbiere) 지방 라그라쓰(Lagrasse)의 붉은 석회질 토양, 뤼넬(Lunel)의 구르는 자갈과 규토 등 이곳의 토양의 다양성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특징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프랑스에서 가장 넓은 포도재배지역으로 4개 도(道)에 걸쳐진 포도원의 면적은 38만 헥타르로써 프랑스 총재배면적의 38%에 해당한다. 많은 양의 프랑스 뱅 드 따블과 대부분의 뱅드 뻬이를 생산하며 천연감미와인(Vins Doux Naturels)로 유명한 이 지방은 뛰어난 원산지 명칭 와인들도 생산한다.   면적으로 볼 때 프랑스 제 2의 원산지명칭 포도원이다. 이 지방은 포도품종(품종의 다양화)과 양조기술(각 포도품종에 적합한 양조법을 실시하여 개별적으로 양조함, 온도조절, 등)을 개선하려는 정책을 끊임 없이 실시하여 고급와인의 생산량을 매년 증가한다   명칭(와인) 꼬뜨 뒤 루씨옹 (Cotes du Roussillon) 이 명칭은 단지 아글리(Agly)의 척박한 계곡들에 위치한 25개의 마을에서 만들어지는 레드와인으로 구성된다. 특이한 떼루아르 덕분에 까라마니(Caramany)와 라뚜르 드 프랑스(Latour de France)가 새로이 명칭에 편입되었다. 짜임새 있고 알코올 함량이 풍부하며 탄닌 성분이 많은 이 와인들은 가죽향, 감초, 숲의 냄새 등이 나며 몇 년 숙성 시킨 뒤에 제 맛을 낼 수 있다   꼴리우르(Colioure) 바다와 직면해 있으며 바뉠스 명칭과 같은 떼루아르인 편암의 테라스 위에 꼴리우르 AOC 와인에는 그르나슈 누아르로 양조된 레드와인와 로제와인이 있다. 레드와인은 수확량은 매우 적지만 색깔이 짙고 온화하며 잘 익은 과일 냄새가 강하게 나며 로제와인은 방향이 짙고 시원하다.   피뚜(Fitou) 랑그독 루씨용 지방에서는 최초로 1948년에 AOC명칭을 획득한 레드와인이다. 피뚜의 와인들은 주조통에서 최초 9개월 정도 숙성한 뒤에야 시장에 출하될 수 있다. 루비빛의 와인들은 들꽃향이 나며, 남프랑스의 황야에서 나는 풀의 향이 나는 육감적인 화인들로 몇 년후에는 향신료향과 야생적인 향등의 풍부한 부께를 얻게 된다.   꼬르비에르 (Corbieres) 만 3천 헥타르의 산악 지대에 위치한 이 포도원은 석회암, 석회질, 점토질, 편암 토양 등의 다양한 토질의 특성을 지난 4개월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주로 진한 레드와인으로 생산되나 화이트와인과 과일향기를 띤 로제 와인의 생산도 증가하고 있다   미네르브와 (Minervois) 정남향의 넓은 원곡에 올리브와 푸른 참나무 숲 사이에 자리잡은 미네르부아 포도원은 화이트와인을 주로 생산하며, 레드, 로제 와인도 생산한다. 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르로 만든 풍부하고 육감적인 레드와인은 야생꽃 향기, 향신료향 등이 난다. 미네르부아 로제 와인은 과일향이 풍부하며 화이트와인은 기분좋은 꽃향을 풍기며 매우 신선하다 블랑께뜨 드 리무(Blanquette de Limoux) 바위가 많은 석회암 토양에서 재배된 모작, 샤르도네, 슈냉 등의 품종에서 얻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발포성 와인이다. 가볍고 감칠 맛이 있으며 과일 향기와 좋은 방향을 띤다.   꼬또 뒤 랑그독 (Coteau du Langue d'oc) 이 명칭에 속하는 12개의 떼루아르를 가지고 있는 또또 뒤 랑그독은 레드, 로제, 화이트와인에 있어 매우 큰 다양성을 보여준다. 편암 지역은 부드러운 과일향이 나는 와인을, 진흙 석회 성분은 좀 더 짜임새 있는 와인을 선사한다.   천연 감미와인 (뱅 두 나뛰렐 Vins doux Naturels) 그르나슈, 마까붸, 말브와지, 뮈스까 품종에서 생산된 AOC 천연 감미와인이 매우 풍부하다. 그르나슈 누아르품종에서 생산된 바뉠스(Banyuls)과 리브잘뜨(Rivesaltes)등이 대표적이다.   쌩 쉬냥 (St. Chinian) 소나무와 금작화의 전형적인 향이 나는 와인의 산지.   끌라쁘 (Clape) 바다에 면해 있는 해안 지대   까브리에르 (Cabrieres) 진홍색이 감돌며 꽃향기가 감미로운 로제 와인 "에스따벨(Estable)"의 산지로 유명   쌩 사뛰르넹(St. Saturnin) 오랜 침전 기간을 거친 로제와인 "벵 뒨느 뉘 : Vin d'une nuit(밤의 와인)"의 산지로 유명. 지방명 와인 (Vins de Pays) 1년에 4백만 헥토리터의 지방명 와인을 생산해내는 이 지방은 프랑스 뱅드 뻬이의 전체 생산량 중 70%를 차지한다. 60여개 정도의 서로 다른 이름의 뱅 드 뻬이를 꼽을 수가 있다. 뱅 드 뻬이 독(랑그독 지방의 지방명의 와인)의 성공의 열쇠가 된 것은 특히 뱅 드 쎄빠쥬(Vins de cepages - 단일 품종 와인)에 있다              꼬뜨 뒤 론 (Cote du Rhone)지방   포도원의 면적 75,000헥타   포도 품종  레드와인 -시라(Syrah),쌩쏘(Cinsaut),무르베드르(Mourvedre), 그르나슈(Grenache) 화이트와인 비오니에(Viognier),마르싼(Marssanne),그르나슈(Grenache)루싼 (Roussanne), 부르불랭끄(Bourboulenc) 색상별 비율 레드와인 - 24%  화이트와인 - 14%  로제와인 - 55% 위치 Bourgogne 지방 남쪽 Lyon으로부터 Avignon까지 약 200km를 흐르는 Rhone강을 끼고 전개되는 포도재배 지대다.   역사 꼬뜨 뒤 론 포도원은 매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포도원으로서, 그리스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로마인의 지배하에서 발전하였다. 가장 처음으로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은 비엔느(꼬뜨 로띠 Cote Rotie) 포도원이었고, 그 후에는 기원전 1세기부터 일구기 시작한 에르미따쥬(Hermitage) 포도원이 명성을 얻었다. 한동안 쇠퇴의 길을 걷던 이 지역 포도원은 교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다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1305년부터 1377년까지 교황이 아비뇽에 머물기도 하였다. 18세기부터 론(Rhone)강 좌안과 북쪽에서 생산되는 와인도 "꼬뜨 뒤 론" 와인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 꼬뜨 뒤 론 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AOC 규정이 생기기 이전부터 이미 품질 향상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였다.   환경 - 산악지대 : 매우 가파른 언덕 위와 매우 좁은 화강암 테라스 위에 심어져 있는 포도나무들은 주로 적은 면적에서 재배된다. 일조량은 많으나 남쪽보다는 선선하고 아침 안개로 인해 온화한 기후를 형성한다. 남동향과 남서향은 좋은 일조향을 선사한다. - 해안지대 : 계곡이 펼쳐지면서 기복은 점점 완만해지고 포도나무는 조그만 언덕에 재배되며 강가를 따라 펼쳐진다. 매우 더운 이 곳의 지중해성 기후는 폭풍우의 형태로 불규칙한 비를 동반한다. 때때로 부는 매우 강한 바람인 미스트랄은 기본적인 기후 요소이다.   명칭(와인) 북부 꼬뜨 뒤 론 :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모두 AOC 와인으로써, 포도 품종(레드와인에 있어서는 '시라 Syrah'라는 단일 품종)이 유사하고 포도 재배 조건이 열악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론강의 가파른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토양은 화강암과 편암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꼬뜨로띠(Cote rotie)", "크로즈에르미따쥬(Crozes-Hermitages)"와 같은 레드와인은 매우 진하고, 빛깔과 강한 향기가 매우 독특하다. 이 와인은 오랫동안 즉, 십 여년동안 숙성 시켜야 그 향기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고아한 향취가 돋보이는 "꽁뜨리외(Condrieu)", "샤또 그리에(Chateau Grillet)"와 같은 프랑스 화이트와인도 생산된다   꼬뜨 로띠 (Cote Rotie) 남국의 태양광선이 강렬하게 내려 쪼이기 때문에 Cote Rotie(Roast Slope, 불타는 계곡)이름이 붙여졌다. 강렬한 햇볕을 받으며 자란 포도로 빚은 와인은 색깔이 짙으며 맛이 농후하고 수명이 길다. Cote Rotie는 색깔이 진하고 감칠맛이 있는 와인을 생산하는 Cote Brune(갈색계곡, 주로 Syrah 품종재배)와 색깔이 진하지 않고 가벼운 와인을 생산하는 Cote Blonde(Blonde의 계곡, 주로 Viognier 품종재배)의 두 경사면의 포도재배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주로 Syrah 품종으로 만든 Cote Rotie 와인은 깊고 맑고 색조를 띠며 맛은 섬세하고Ronder하고 나무딸기의 방향을 갖는다.   꽁드리예와 샤또 그리예(Chateau Condrieu & Grillet) Condrieu는 Viognier 백포도 품종으로 화이트와인만을 생산한다. 생산량은 작지만 품질이 뛰어나다. Dry, 우아하고 섬세함, 과실의 향미가 가득한 독특한 방향을 갖는다. 총면적 2ha인 Chateau Grillet는 독자적인 A.C.를 갖는다. Neyret Cachet가 소유하고 있는 Chateau Grillet 와인은 프랑스의 아주 뛰어난 화이트와인 중의 하나로 황금 색조이다.   에르미따쥬(Hermitage) 프랑스 궁정의 와인으로 명성을 얻은 Hermitage는 루이 15세때 그의 조카인 영국Charles Ⅱ세에게 두 병의 와인을 선물한 인연으로 오랫동안 영국의 모든 고급 식탁에 등장했다. Hermitage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Saint Patrick가 첫 부임지인 Gaul에 머무르는 동안 이 언덕에 포도나무를 심었다. 이 언덕에 남 프랑스의 알비타 이교도를 무찌르는데 참여했던 십자군의 기사였던 Gaspard de Sterimberg가 자기의 잔혹했던 과거를 참회하기 위하여 Hermitage(은자의 암자)에서 살고 있으면서 포도원을 개설하고 와인을 빚으며 살았다. 이 때, 많은 방문객이 찾아왔는데 자기가 빚은 와인을 전부 제공했는데, 이 연유로 Hermitage 와인이 유명해 지기 시작했다. 약 160ha의 포도원의 약 2/3는 Syrah 종을 주로 재배해서 농후하고 힘차며 희미한 인동초를 연상케 하는 방행을 가진 수명이 아주 긴 레드와인을 생산한다. 약 1/3 Roussanne와 Marsanne 화이트와인 품종으로부터 일반 화이트와인과 비교할 때 농후하고 수명이 긴 화이트와인을 생산한다   셍 조세프(St. Joseph) 레드와인은 산딸기와 제비꽃향을 지녔으며2~3년 후면 美酒로 숙성됩니다. 가볍고 신선한(후레: frais) 맛을 지닌 화이트와인으로 꿀과 아카시아향을 지닌다.   꼬르나 (Cornas) 색이 매우 진하여 일명 "흑포도주"라고도 불리우며 "꼬뜨 뒤 론"의 와인 중 타닌 성분이 가장 많다. (숙성 초기에는 강한 맛을 띠며 20년까지 저장할 수 있다.)   셍쁘레(St.Peray) 샴페인과 같은 방식으로 주조된 거품 와인이다   남부 꼬뜨 뒤 론 : 이 지역에서는 강을 경계로 토질은 모래와 석회질이 주를 이루며,작은 자갈이 섞여있다. 바로 이런 토양에서 "꼬뜨 뒤 론 빌라쥬(Cote du Rhone Villages)"를 만드는 포도 품종이 재배된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 로제 와인의 원조인 "따벨(Tavel)"과 "리락(Lirac)"인데, 이 두 가지 모두 크고 동그란 자갈의 토양에서 생산된다. 아비뇽 근접 북부 지방이기도한 에서는 프랑스에서 레드와인으로 가장 유명한 "샤또네프-뒤 빠브(Chateaunef du-Pape)" 포도원이 위치한다. 진한 빛깔의 향신료 향이 가미된 이 와인은 자극적이고 강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이 좋아지는 균형이 잘 잡힌 와인이다. 이 와인은 13가지의 포도 품종을 섞어 만든다. 샤또뇌프 뒤 빠프(Chateauneu-du-pape)  1309년 Roma 법왕청의 분열로 인하여 Roma로 부임하지 못하고 Avignon에 유배되었을 때 Chateauneu-du-pape(법왕의 새로운 집) 지역에 피서용의 별장을 지어놓고 지낸 데서 이 이름이 붙여졌다. 이 별장은 16세기 종교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는 흔적만 남아있다. Chateauneu-du-pape 지구에는 법적으로 10여종 이상의 포도품종을 적절히 섞어서 만들도록 허가되어 있다.   : 레드와인용 포도품종 - Syrah, Grenach, Clairette, Mourvede, Picpoul, Terret Noir, Counoise, Muscadin, Vaccrese, Picarden, Cinsault   : 화이트와인 포도품종 - Roussette, Marsanne, Bourboulenc, Carignan, Viognier, Pascal Blanc, Mauzac, Pinot Blanc de Bourgogne   지구는 강렬하고 풍부한 일조량과 작은 돌과 자갈이 많은 토양 구성으로 특색있는 양질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포도를 섞어서 만들기 때문에 각 품종이 갖는 포도의 향을 지닌다. 레드와인은 색깔이 짙고 부드러우며 Dry Full Body와인이다. 탄닌분이 많아 수명이 길다. 화이트와인은 작황이 좋은 해에 만들어진 와인은 가볍게 감미를 느끼고 감칠맛이 풍부하고 짙은 맛이 있다.   꼬뜨 뒤 론 제네리끄(Cote du Rhone "generiques") : AOC  주로 꼬드 뒤 론 전역에서 생산되는 레드와인이며 특히 남부 지방에서 집중 생산된다. "꼬뜨 뒤 론 프리뫼르(Cote du Rhone primeurs)"도 소량 생산된다.   - 꼬뜨 뒤 론 빌라쥐(Cote du Rhone Villages) : AOC  17개 마을(Villages)에 한정되어 생산되는 와인으로서 레드와인이 80%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분홍, 화이트와인이다. 이 와인은 "꼬뜨 뒤 론 빌라쥐"라고 명명되거나 "꼬뜨 뒤 론"이라는 명칭 뒤에 마을 이름이 첨가되기도 한다. AOC "꼬뜨 뒤 론"과 같은 포도품종이 쓰이지만 훨씬 엄격한 생산 조건이 요구되기에 생산량도 적고 주정도도 훨씬 높습니다. - 따벨(Tavel) : AOC  드라이 분홍 와인으로 부드러운 장미빛을 띠며(침용 기간이 짧은 데서 기인) 제비꽃 내음과 말린 과일향이 난다. 숙성 기간은 짧은 편이다. - 지공다(Gigonda) : AOC  주로 레드와인이며 강한 멋의 분홍 와인도 소량 생산된다. 진하고 탄닌 성분이 많으며(샤르빵떼 : charpente) 향신료이 난다. 10~15년 저장할 수 있다.             프로방스 지방     포도원의 면적 25,000헥타   포도 품종  레드와인 -그르나슈(Grenache),시라(Syrah),쌩쏘(Cinsault), 까리냥(Cariganan), 무르베드르(Mourvegre), 띠부랭(Tibouren),까베르네쑈비뇽(Cabernet Sauvignon) 화이트와인 - 롤(Roll), 위니블랑(Ugni Blanc), 끌레렛뜨(Clairette), 쎄미용 (Semillon) 색상별 비율 레드와인 - 25% 로제와인 - 47% 화이트와인 - 5%   역사 프로방스(Provence) 지방 포도원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원이다. 기원전 600년경부터 그리스인들은 이 지방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제조된 와인은 로제와인이였다. 그 후, 로마인들이 이 지역에 대규모 농토를 조직하였으며, 새로운 포도 종자를 도입함과 동시에 와인 제조 기술도 개량하였다. 중세에는, 프랑스 왕들이 와인을 매우 애호하였다. 프로방스의 엘레오느르(Eleonore)가 영국의 왕비가 된 것을 계기로 프랑스 와인이 영국 왕실에 소개되었다. 1977년에는 그 동안의 와인 제조 기술 개선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어, 꼬뜨 드 프로방스 와인이 그 질을 인정 받아 원산지 통제 명칭(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아뺄라시용 도리진 꽁트롤레)를 획득하였다 환경 토질을 보면, 전반적으로 부식토가 적어서 배수가 잘되고 자갈이 많아 포도 재배에 적합하다.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고운 저습하고 강우는 초봄과 늦가을에 집중되었으나, 그 양은 많지 않다. 때때로 불어로는 차고 건조한 '미스트랄'이라 불리우는 북풍도 포도 재배에 좋은 영향을 준다.   꼬뜨 드 프로방스 (Cotes de Provence) 이 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원산지통제명칭(AOC) 포도원으로 평균 80만 헥토리터를 생산한다. (프로방스 포도원의 80% 차지) 주로 과일향기와 무감미 분홍와인으로 알려진 꼬뜨 드 프로방스는 3-4년 숙성 후에 완벽해지는 레드와인과 우수한 무감미 화이트와인도 생산한다. 꼬또 덱 썽 프로방스(Coteaux d' Aix-En-Provence) 짜임새 있는 레드와인으로 무르베드르 품종을 주종으로 양조하면 동물향이 나며 쉐리가 주 품종이면 과일과 꽃향이 나는 섬세한 부케를 지닌다. 로제와인은 매우 힘차고 이곳에서는 드물게 양조되는 화이트와인은 햇포도주로 마신다. 레 보 드 프로방스(Les Baux-de-Provence) 최근의 새로운 명칭인 레 보드 프로방스는 적어도 12개월 정도 주조통에서 숙성된 레드와인이며 로제 와인의 경우 배출법(saignee;사혈법)으로 숙성시켜 매우 신선하다. 빨레뜨(Palette) 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지방의 방풍이 잘 된 석회암질의 원형 계곡에 위치한 아주 작은 포도원에서 생산된다. 여기에서는 오래 전부터 유명하고 섬세한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분홍와인이 생산된다 꼬또 바루아(Coteaux Varois) 자갈로 덮인 언덕과 석회질의 평평한 면을 구성된 이 명칭은 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르로 만든 강한 레드와인을 생산하며 기분 좋고 신선한 로제와인과 햇포도주로 마시는 과일향이 풍부한 무감미 화이트와인도 생산한다. 벨레(Bellet) 벨레의 작은 포도원은 니스의 높은 지대에 펼쳐지며 흔하지 않은 품종으로부터 양조되어 예외적인 와인이 생산되며 화이트와인은 풋 아몬드와 오레지 꽃, 감귤류 향 등이 은은히 나는 신선한 와인들이며 로제와인은 회향풀과 꿀 향이,장엄한 느낌의 레드와인은 체리향의 부케를 가지고 있다. 방돌(Bandol) 바다를 굽어보는 넓은 계단식 강의실 형태의 방돌 포도원은 석회질성의 척박하고 돌이 많은 토양에 테리스식으로 재배되고 있다. 이곳은 무르베드르에게는 최고의 떼루아르이다. 까씨스(Cassis)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절벽 밑의 까씨스 포도원이 있는 조그마한 항구로 이어지는 작은 골짜기는 흰 석회석 바위 위에 위치한 이 포도원을 보호하고 있다. 이 곳은 로마랭, 히이드향 및 꽃향기가 풍기는 무감미 화이트와인으로 유명하다. 소량의 레드와인과 방돌의 로제와인과 흡사하나 짜임새가 덜한 로제와인도 소량 생산하고 있다              샹빠뉴 지방   포도원 면적 30,000헥타   포도 품종  적포도 - 피노느와, 피노 뫼니에  백포도 - 샤르도네 색상별 비율  레드와인 1%  화이트 와인 99%   역사 아주 오랜 옛날부터 "샹파뉴(샴페인 Champagne)"이라 불리 우는 지역에는 포도원이 존재하였다. 로마 사람들이 이 지역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고 줄리어스 시저는 렝스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 도시는 후에 샴페인 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이 도시는 계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특히 중세시대에는 대관식이 치루어 지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 당시 이 지역에는 생산되던 와인은 보통 와인이다. 17세기말, 이 지역 사람들은 酒甁을 한 후, 날씨가 더워지면 와인에 거품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시원에서는 승려들이 이러한 발포 방법을 완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서 마침내, 사원의 재무담당이었던 동 페리뇽(Dom Perignon)이 이 방법을 완성시킴으로써 샴페인이 탄생한 것이다.   환경 비교적 온난한 기후도 특상품의 포도 생산에 큰 역할을 한다. 이 지역 연중 평균 기온은 10℃로, 포도의 성숙에 필요한 최저 온도인 9℃에 근사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이 지역 생산 포도의 독특한 맛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봄의 서리는 종종 꽃봉오리와 어린 포도송이를 위협하여 포도 재배인이 며칠밤을 각 포도나무의 밑둥에 난로를 놓아 따뜻하게 해주어야 할 정도이다. 토양은 대부분 백악질로 경작 가능한 흙이 1미터 미만의 두께로 덮고 있다. 지역분류 - 몽따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 : 랭스 산)  - 발레 드 라 마른느(Vallee de la Marne : 마른느 계곡)  - 꼬뜨 데 블랑(cote de Sezanne : 쎄잔느 구릉 지역)  - 오브(Aube)  - 바르-쒸르-오브(Bar-sur-Aude) 지방과 바르-쒸르-쎈느(Bar-sur-Seine) 지역.   저장 시장에 출하된 샴페인은 소비자가 즉시 소비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상태이므로 따로 숙성 시킬 필요는 없다. 샴페인은 상표에 따라 나름대로의 독특한 맛이 있다. 이러한 독특한 맛은 제조 연도에 따른 와인의 품질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러 특산 샴페인과 제조 연도가 다른 샴페인을 섞는 제조법에 의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 와인의 품질이 좋았던 해에 주조된 샴페인은 다른 해에 생산된 샴페인과 섞지 않는다. 그러한 해에 주도된 샴페인은 주조연도를 표시하여 저장 창고에 보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맛이 더욱 좋아지게 된다.                                                      알자스 지역   포도원의 면적 14,000헥타   포도 품종  레드와인 - 피노 느와(Pinot noir) 화이트와인 - 게부르츠 트라미너(Gewurztraniner), 토케-피노그리 (Tokay-pointgris),리슬링(Riesling),뮈스카 달자스(Muscat d'Alsace), 실바너(Slvaner), 피노 블랑 (Pinot blanc) 색상별 비율  레드와인,로제 와인 - 8%  화이트와인 - 82%  발포성 와인 - 10% 역사 알자스 와인의 역사는 로마 군단이 라인강 지역에 포도 재배 기술을 전파하기 시작한 서기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에는 알자스 와인은 왕실의 연화에서 애용될 정도로 유럽에서 가장 사랑 받고 또한 가장 비싼 와인 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그러나, 불행히도 30년 전쟁으로 인해 알자스 지방은 황폐되었고 많은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때 파괴된 포도원은 수세기 후인 제 1차 세계 대전말에야 복구 되었다. 오늘날, 알자스 지방은 50여년간의 피나는 노력과 엄격한 제품 품질 관리 덕택에 프랑스의 우수한 와인 생산지로 각광 받게 되었다 환경 보쥬산맥이 차갑고 습한 북서풍으로부터 보호해주며 남동쪽으로 노출된 포도밭은 프랑스에서 가장 건조한 기후와 포도수확 전 수개월간 풍부한 일조량의 혜택을 누린다. 석회질, 이회암, 화강암, 사암, 모래와 황토 등 매우 다양한 토양이 이 지방 포도밭의 독특한 특성을 이룬다 특징 수확은 일반 포도들의 공식적인 수확 철 이후에 시작되어 이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들은 매우 당도가 높다. 이 와인은 농익은 포도알이나 곰팡이(보트리티스 씨네레아) 핀 포도알로 만들어지는 모든 포도알에서 한꺼번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하나 계속적으로 고르는 작업을 통하여 선별하여야 한다. 향의 농도와 감미가 뛰어나며 복합적이고 지속적인 맛은 가위 일품이라 칭할 만하다.               발 드 르와르 지방   포도원의 면적 75,000헥타   포도 품종  레드와인 - 삐노 도니(Pineau d' Aunis), 그롤로(Grolleau), 가메(Gamay),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꼬뜨(Cot), 삐노 누아르(Pinot Noir) 화이트와인 - 슈냉(Chenin), 쑈비뇽(Sauvignon), 샤르도네 (Chardonnay), 뮈스까데 혹은 믈롱 드 부르곤뉴(Muscadet ou Melon Bourgognc) 색상별 비율  레드와인 - 24% 화이트와인 - 14% 로제와인 - 55% 발포성와인 - 7%   위치 파리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1070km에 이르는 Lotre강 연안의 와인 산지이다 역사 발 드 르와르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대부터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재배는 중세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지역의 빼어난 경관으로 인해 일찍이 많은 수도원이 이 지역에 자리잡게 되었고,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는 프랑스의 왕과 귀족들이 르와르 강변에 그들의 별장으로 사용할 성을 건설하였다. 이 지역의 와인을 맛본 왕과 귀족들은 그 가볍고 신선함에 감탄하였다. 그 후, 이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은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유럽 전역에 판매되었다. 기후 해안성 온대(온난한 겨울, 혹서 없는 겨울)이며, 일조량도 항상 풍부하고 강수량도 일정하다. 토양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지대가 높아지는 지역으로 낮은 구릉 지대를 제외하면 "뻬이 낭뜨" 지역은 대체로 저지대이며 앙주 지역은 해발 60m, 뚜렌 지역은 130m에 달한다.  명칭(와인)   낭뜨(Nantes)와인 제조 후 곧 마시는 가볍고 과일 향미가 나는 뮤스까데(Muscadet)와인의 본고장이다. 이 와인은 믈 롱 드 부르고뉴(Melon de Bourgogne)라는 포도 품종으로 제조하는데, 이 포도는 17세기말, 혹한으로 이 지역 포도 나무가 모두 동사한 후 이 지역에 들어온 것이다. 이 품종은 이 지역의 토양과 기수에 적합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그로 쁠랑(Gros Plant)이라고 하는 품종으로 만든 신선하고 가벼우며 빛깔이 연한 드라이 화이트와인도 생산된다   - 뮈스까데 "믈롱 드 부르고뉴(Melon de Bourgogne)"라는 품종만이 사용되며 명칭이 상이한 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 그로 쁠랑 VDQS (Gros Plants VDQS) 그 지방에서는 "그로 쁠랑"이라고 불리우는 "훨 블랑쉬(Folle blanche)" 품종만이 사용되며 순하고 신선하며 매우 드라이한 화이트 포도주이다   앙주 와인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로제 와인이 주종을 이룬다. 로제 당주(Rose d'Anjou)와 까베르네 당주(Caberbet de Saumur), 로제 드 르와르(Rose de Loire)는 드라이 와인이다 또한 앙주에서는 짙은 루비 색깔에, 산딸기 또는 제비꽃 향을 연상시키는 향취를 지닌 소뮈르(Saumur), 소뮈르 쌍삐니(Saumur Champigny)와 같은 훌륭한 레드와인, 녹색이 감도는 황금빛의 보리수 향, 꿀 맛이 나는 스위트 화이트와인이 생산된다   [앙주(Anjou)] 약간 감미가 있는 Rose가 유명하다   [쏘뮈르(Saumur)] 발포성, 비발포성 와인 생산, 발포성 쏘뮈르는 중간 감미 정도로 마시기 좋다.   [뚜렌 와인 (Touraine)와인] 바?? 파리지앙(Bassin Parisien : 파리분지) 남서부 끝부분에 위치하며 르와르강과 그 지류의 양안 100km에 걸쳐 있는 이 지역에서는 거품이 나는, 고 품질의 화이트와인 및 레드와인을 생산한다. 가볍고 섬세하며 과일 향미가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이 더해가는 부브레(Vouvray)와 몽루이(Montlouis)와인이 가장 우수한 화이트와인이다. 레드와인 중에서 향미가 좋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이 더해가는 쉬농(Chinon), 부르괴이르(Bourgueil)와 쌩 니꼴라 드 부르괴이으(Saint Nicolas Bourgueil)가 가장 우수하다. 부르괴이으(Bourgueil), 셍니꼴라드 부르괴이으(St. Nicolas de Bourguei) 레드와인 탄닌 성분이 많고 산딸기향이 풍기는 와인 쉬농(Chinon) 주로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품종을 사용하는 레드와인으로서 처음에는 꽃, 특히 제비꽃향이 두드러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일향(딸기)으로 변함 부브레(Vouvray) 슈넹(Chenin) 품종만이 사용되는 화이트와인으로 드라이하거나 반쯤 드라이한 또는 부드러우며(므왈레 : moelleux) 신선한 포도향, 잘 익은 마르멜고, 아카시아 향이 나는 와인. 몽루이(Montlouis) 드라이하거나 반쯤 드라이한 또는 부드러운 와인이 있으며 그 외에 거품이 일거나 탄산성 기포가 형성되는 것도 있음. 뚜렌(Touraine) 총 면적 5,000ha의 포도원으로 화이트, 로제, 레드와인이 생산되며 "가메이 드 뚜렌(Gamay de Touraine)"과 같이 저장기간을 거치지 않고 곧장 출하되는 와인도 만들어짐   중앙 프랑스 르와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강 한편에는 뿌이 휴메(Pouilly Fume)와 뿌이 쉬르 르와르(Pouilly sur Loire) 화이트와인이, 그 반대편에서는 새콤하고 과일 향미가 나는 상세르(Sancerre) 화이트와인이 생산된다   뿌이 퓌메(Pouilly Fume) : 화이트와인 쇼비뇽 블랑(Sauvignin Blanc)종으로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앙뜨와네뜨가 애음했다. 석회질이 풍부한 토양의 포도원에 Sauvignin Blanc종이 재배되고 있는데, 이 지방에서는 블랑 퓌메(Blanc Fume)와인을 생산한다. 녹색을 띤 아름다운 색깔을 가지며 상쾌하고 과일향이 강한 드라이 와인(Dry wine)이다. 뿌이 퓌메 와인은 우리 16세의 왕비 앙뜨와네뜨가 즐겨 마셨다 뿌이 쉬르 르와르(Pouilly Sur Loire) 샤쓸라(Chasslas) 종의 포도로 화이트와인을 생산하나 뿌이 퓌메(Pouilly Fume) 와인보다 질이 좀 떨어진다. 상세르(Sancerre) : 화이트, 레드, 로제 화이트와인 : 쇼비뇽 블랑(Sauvignin Blanc)종으로부터 과실 풍미가 풍부하고 입맛이 좋은 드라이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 피노 느와(Pinot Noir) 종과 가메이(Gamay)종으로 만들며 가볍고 좋은 향미의 레드와인이다. 생산량은 많지 않다 깽씨(Quincy) 쉐르(Cher) 지방의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쑈비뇽을 주로 재배하는 이 포도원은 화이트와인만을 생산한다. AOC 깽씨는 우아하며 야채향과 신선한 민트향이 많이 감도는 신선한 와인이다. 뢰이이(Reuilly) 이 곳 떼루아르에 매우 잘 적응한 쇼비뇽 블랑은 과일향이 매우 좋은 무감미 화이트와인인 뢰이이 와인의 주 품종을 이룬다. 그 외 삐노 누아르 품종으로 만든 맛이 매우 좋은 로제와 매혹적인 레드와인 등이 있다    와인의 적정온도   무겁고 중후한 맛이 나는 적포도주 - 보르도 지역와인, 부르고뉴지역와인, 바롤로지역와인   16℃ ~ 18℃   중간 정도의 무겁고 중후한 맛이 나는 적포도주 - 론강 계곡 지방와인, 보졸레, 알자스, 키안티 와인   13℃ ~ 15℃   가벼운 맛의 적포도주와 로제와인 - 샤브리, 무스까데, 알자스 리스링, 양주지방, 로제와인  10℃ ~ 13℃   백포도주 - 꼬뜨 뒤 프로방스, 따벨, 부르고뉴 와인  9℃ ~ 10℃   샴페인과 발포성 와인(스파클링 와인) - 베비끌리꿔, 폴레미등 같이 샴페인    6℃ ~ 8℃   [출처] 와인 용어|작성자 노연화  
869    北島 시모음 댓글:  조회:4353  추천:0  2015-04-05
뻬이따오: 혁명에서 유랑으로  뻬이따오(北島, 1949∼)를 만나는 건 문화대혁명(1966∼1976) 10년간 철저히 억압되었던 중국 현대시의 시적 자아의 부활과 그 미완의 초상의 확인이다. 그리고 그의 시를 읽는 것은 역사와 문학의 쉼없는 조우 속에서 빚어지는 시적 철학적 경구(警句)와 냉정한 서정을 음미하는 과정이다.  본명이 자오전카이(趙振開)인 뻬이따오는 공교롭게도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연도인 1949년에 뻬이징의 상류가정에서 나서 중국 제일의 명문인 뻬이징 제4중학교에 다니던 중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지식의 획득보다 노동자, 농민의 계급의식 획득이, 합리적 의사소통보다 운동적 성격의 정치의식화가 우선시되었던 그 시대에, 뻬이따오는 잠시 홍위병(紅衛兵)에 참가했지만 곧 흥미를 잃고 노동자가 된다. 그래서 허뻬이성(河北省)의 어느 농촌에서 건축일에 종사하였고 나중에 뻬이징에 돌아와 일반기업에 입사한다. 혹독한 정치운동에 휘말려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당시의 모든 지식청년들처럼 그 역시 정규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한 셈이다.  뻬이따오가 시를 쓰기 시작한 시점은 1970년 말이었지만 연대 확인이 가능한 작품은 1972년의 것이 최초이다. 그리고 그가 본격적인 시 창작을 드러내고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은 계기는 역시 지하간행물 {오늘(今天)}의 창간(1978)이었다. 하지만 고작 9호를 발행하고 폐간당한 {오늘}의 동인들 중 뻬이따오를 비롯한 꾸청(顧城), 망커(芒克), 수팅(舒 ) 등의 시인들은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자신들의 작품을 필사본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유통시켰으며 1976년의 제1차 천안문사건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자기동일성을 확인하였다. 그 사건은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해 천안문 광장에 모인 수백만 군중들이 벌인 민주화 투쟁이었으며 그들은 기존 권력층을 비판하고 새로운 역사를 고취하는 격문과 시를 광장 곳곳에 게시하였다. 그 글들은 곧바로 사람들에게 필사되어 광범위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때 공개된 시들은 자그만치 만여 수에 달했으며 그 중에서 1500편을 엄선하여 엮은 {천안문시초(天安門詩抄)}가 1978년에 발행되기도 했다. 비록 이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뻬이따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래의 시도 천안문사건에 참여하면서 씌어졌다.  [회답]  비열함은 비열한 자의 통행증이며  고상함은 고상한 자의 묘지명이다.  보라, 저 도금된 하늘에  사자(死者)의 일그러진 그림자가 가득 비쳐 날린다.  빙하기는 벌써 갔건만  왜 곳곳이 다 얼음투성이인가?  희망봉이 발견됐건만  왜 죽음의 바다에서 온갖 배가 앞을 다투는가?  이 세계에 내가 온 것은  오직 종이와 밧줄, 그림자를 가져와  심판에 앞서  그 판결의 목소리를 선언하기 위한 것.  네게 말해주마, 세계여  나는 --- 믿지 --- 않는다!  네 발 밑에 천 명의 도전자가 있다면  날 천 한 번째 도전자로 세어다오.  난 하늘이 푸르다고 믿지 않으며  난 천둥의 메아리를 믿지 않는다.  난 꿈이 거짓이라 믿지 않으며  난 죽음에 대가가 없음을 믿지 않는다.  바다는 제방을 무너뜨릴 것이니  온갖 쓴 물이 내 가슴에 스며들게 하고  육지는 솟아오를 것이니  인류가 다시 생존의 봉우리를 선택케 하리라  새로운 계기와 반짝이는 별들이  거침없는 하늘을 메우고 있다.  그것은 오천 년의 상형문자이며  그것은 미래 세대의 응시하는 눈동자이다.  [回答]  卑鄙是卑鄙者的通行證  高尙是高尙者的墓志銘,  看 ,, 在那鍍金的天空中,  飄滿了死者彎曲的倒影.   川紀已過去了,  爲什 到處都是 凌?  好望角發見了,  爲什 死海里千帆相競?  我來到這個世界上,  只帶着紙, 繩索和身影,  爲了在審判前,  宣讀那些被判決的聲音.  告訴  , 世界  我 - 不 - 相 - 信!  縱使 脚下有一千名挑戰者,  那就把我算作第一千零一名.  我不相信天是藍的,  我不相信雷的回聲,  我不相信夢是假的,  我不相信死无報應.  如果海洋注定要決堤,  就讓所有的苦水都注入我心中,  如果陸地注定要上升,  就讓人類重新選擇生存的峰頂.  新的轉机和閃閃星斗,  正在綴滿沒有遮 的天空.  那是五千年的象形文字,  那是未來人們凝視的眼睛.  치졸한 권력투쟁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된 역사적 유토피아를 강요해 온 '세계'에게 시인은 "나는 --- 믿지 --- 않는다!"고 결연한 '회답'을 보낸다. 아무리 당연시되어 온 담론이라도, 혹시 그것이 "하늘이 푸르다"는 절대진리의 외표를 뒤집어 쓰고 있다 해도, '빙하기'가 지난 대지에 '얼음'을 깃들게 하고 "온갖 배가 앞을 다투는" '죽음의 바다'를 만든 담론이므로 '나'는 "믿지 않는다". 그리고 '천한 번째 도전자'가 되어 싸우리라 맹세하고 결국 새로운 '생존의 봉우리'로 인류를 이끌 '미래 세대의 응시하는 눈동자', 그 냉철한 인류정신의 잠재력을 믿는다.  역사의 전환을 바라는 뻬이따오의 외침은 실제로 실현되는 듯했다. 문화대혁명의 실세였던 이른바 사인방(四人幇)이 축출되고 떵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의 중심부에 복귀하여 개혁개방의 노선을 고취했으며, 1978년 12월에 공산당이 발표한 '사상해방'의 원칙에 힘입어 문예계에도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급진적 민주화를 외치던 웨이징성 등의 지식인들이 체포, 투옥되는 등 "바다가 제방을 무너뜨리는" 국면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뻬이따오가 1975년에 초고를 완성한 이 시를 뒤늦게 이 시기에 발표한 것은 아직도 '시대와의 불화'가 해소되지 않았음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고 - 위루어커 열사에게]  최후의 시각이 와도  유언은 남기지 않겠다  오직 어머님께 말씀 전하련다  저는 결코 영웅이 아니에요.  영웅 없는 시대에  그저 한 인간이 되고 싶었어요  고요한 지평선  산 자와 죽은 자의 줄을 가른다  난 하늘을 택할 수 있을 뿐  결코 땅에 꿇어앉아  자유의 바람을 막으려는  사형집행인을 커 보이게 하지 않겠다  별 모양의 총알구멍에서  핏빛의 여명이 흘러나오리  [宣告 - 獻給遇羅克]  也許最后的時刻到了  我沒有留下遺囑  只留下筆, 給我的母親  我 不是英雄  在沒有英雄的年代里,  我只想做一個人.  寧靜的地平線  分開了生者和死者的行列  我只能選擇天空  決不 在地上  以顯出 子手們的高大  好阻 自由的風  從星星的彈空里  將流出血紅的黎明  한 열사의 죽음에 대한 비장한 회고이면서 강렬한 이미지로 그의 미래지향적 신념을 형상화시킨 수작이다. 위루어커는 1970년 '반혁명분자'의 죄목을 뒤집어쓰고 처형당한 그의 친우이자 민주청년이었다. "별 모양의 총알구멍에서 / 핏빛의 여명이 흘러나오리"라는 시적 화자의 선언도 의미심장하지만, "영웅 없는 시대에 / 그저 한 인간이 되고 싶었어요"라는 시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알려진 대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의 중국은 노동자와 전사인 '영웅'이 횡행하는 시대였다. 공산당은 철저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영웅'을 전형화하고 이에 맞는 인물들을 모범적 영웅으로 찬미함으로써 대중의 의식개조에 활용하였다. 하지만 시인에게 그 시대는 '영웅 없는 시대', 게다가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시대로 인식된다. 즉 모든 개인들이 고유의 이성과 감성을 포기하고 '계급'의 그것으로 자리를 채워야 했으며 철저히 집단의 한 원자로만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제 '영웅'을 거절하고 '한 인간'이 되는 것이 '진정한 영웅'이 되는 길임을 천명하였다. 이것은 시대적이며 역사적인 선언인 동시에 현대시사의 차원에서는 간접적으로 '시적 자아'의 복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1949년부터 문화대혁명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중국 시단의 지배적 조류는 '송가(頌歌)'와 '전가(戰歌)' 두 양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정치사회적 장에서의 지배담론이 고스란히 문학예술의 장에 이식되어 자아의 표현과 개성적 세계인식으로서의 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되어 있었다. 개혁개방 직후 순수지향적 현대시의 최초의 물결이었던 '몽롱시(朦朧詩)'의 대표주자이기도 했던 뻬이따오는 이 시를 통해 '한 인간'의 고귀한 가치에 주목함으로써 은유적으로 중국 현대시에서의 시적 자아의 회귀를 암시하였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뻬이따오의 시는 주지시의 성향을 띠기 시작한다. 철학적 성찰과 시적 상상력이 대등하게 교차되면서 독특한 알레고리의 시세계가 구축된다. 먼저 [태양도시의 메모]라는 시를 살펴보자.  [태양도시의 메모]  생명  태양도 떠오른다  사랑  고요하고, 기러기떼 날아간다  거칠은 처녀지를  자유  흩날린다  갈기갈기 찢긴 종이조각이  자손  바다 전부를 담은 그림이  접혀 한 마리 백학이 되었다  아가씨  아른대는 무지개는  나는 새들의 화려한 깃털을 모았다  청춘  붉은 파도가  외로운 노에 스민다  예술  억만 개의 빛나는 태양이  흩어진 거울조각 위에 빛난다  인민  달은 찢겨 빛나는 밀알이 되어  성실한 하늘과 대지에 뿌려졌다  노동  손, 지구를 감싸고 있는  운명  아이는 멋대로 난간을 두드리고  난간은 멋대로 밤을 두드린다  믿음  푸른 분지에 양떼 넘쳐 흐르고  목동은 단조(單調)로 피리를 분다  평화  제왕이 죽어간 곳에  저 낡은 창이 가지 쳐지고, 싹을 틔워  불구자의 지팡이가 되었다  조국  그녀는 청동의 방패 위에 주조되어  박물관의 검은 벽에 기대어 있다  생활  그물  太陽城札記  生命  太陽也上升  愛情  恬靜, 雁群飛過  荒蕪的處女地  自由  飄   碎的紙屑  孫子  容納整個海洋的圖畵  疊成了一隻白鶴  姑娘  顫動的虹  採集飛鳥的花翎  靑春  紅波浪  浸透孤獨的   藝術  億萬個輝煌的太陽  顯現在打碎的鏡子上  人民  月亮被 成閃光的麥粒  播在誠實的天空和土地  勞動  手, 圍擾地球  命運  孩子隨意敲打着欄杆  欄杆隨意敲打着夜晩  信仰  羊群溢出綠色的 地  牧童吹起單調的朴笛  和平  在帝王死去的地方  那支老槍抽枝, 發芽  成了殘廢者的拐杖  祖國   被鑄在靑銅的盾牌上   着博物館黑色的板墻  生活  網  이 시의 각 연의 소제목을 이루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현대사의 각 단계마다 다양한 의미작용을 가졌으며 그만큼 현대인의 고뇌와 성찰을 요구했던 시대적 표제어들이다. 뻬이따오는 시라는 문학양식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무모하리만큼 과감하게 그 표제어들을 나열하고 그것들마다 형상화된 해석을 부여한다. 이 해석은 물론 시인의 철학적 성찰을 토대로 하고 있는 만큼, 모든 시니피앙들은 알레고리로서 독자의 눈에 다가온다. 하지만 그 시니피앙들은 본래 대상으로서의 물질성을 송두리째 박탈당하지 않았다. 각각의 시어들은 추상적 관념의 시적 발현인 동시에 뻬이따오 자신의 서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푸른 분지에 양떼 넘쳐 흐르고 / 목동은 단조(單調)로 피리를 부는" 세계는 평화로움을 꿈꾸는 그의 '믿음'이면서 '믿음'의 시화(詩化)인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평론가들은 그의 시의 특징을 '차가운 서정'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 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예술'과 '생활'이다. 예술을 "억만 개의 빛나는 태양이 / 흩어진 거울조각 위에 빛난다"고 해석한 그의 시선이 생활로 옮겨져 그것이 '그물'이라고 끝을 맺는 방식은 향후의 그의 시적 노선을 가늠케 한다. 부연하자면, 숱한 거울파편마다 태양이 되어 빛나는 예술은 단순히 다원화된 현대적 예술의 본질에 대한 찬미나 기대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적 주체의 달라진 실존적 조건, 즉 정치영역과 일상영역이 거의 일치되었던 과거의 조건과는 사뭇 달라진, 각종 사회적 역할과 지향이 중첩되고 파편화된 현대적 주체의 조건을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생활은 '그물'이다. 각 주체들은 독립된 공간을 전유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 공간들은 복잡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이 네트워크는 원활한 상호소통의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권력담론의 미시적 전파와 지배기능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시적 주체는 곧 생활의 주체인만큼, 그리고 시 텍스트는 생활이란 텍스트 위에 건축되는 만큼, 달라진 중국 현대의 조건은 민감한 뻬이따오로 하여금 새로운 철학적 성찰을 시도하게 하였다.  우화  그는 자기 우화 속에 산다  그는 더는 우언의 주인이 아니다  이 우언은 벌써 되팔리어  또 다른 살찐 손에 넘어갔다  그는 살찐 손에서 산다  카나리아는 그의 영혼  그의 목구멍은 장신구점에 있고  주위는 유리로 된 새장  그는 유리새장에 산다  모자와 구두 사이에서  저 사계절의 호주머니에  열두 개의 얼굴이 꽉 찼다  그는 열두 개의 얼굴 속에 산다  그가 배반한 저 강물이  바짝 그의 뒤를 쫓는다  개의 눈을 연상시키며  그는 개의 눈 속에 산다  온 세계의 굶주림과  한 사람의 풍요로움을 봤다  그는 자기 우화의 주인이다  寓言  他活在他的寓言里  他不再是寓言的主人  這寓言已被轉賣到   一隻肥 的手中  他活在肥 的手中  金絲雀是他的靈魂  他的喉 在首飾店里  周圍是 璃的牢籠  他活在 璃的牢籠中  在帽子與皮鞋之間  那四個季節的口袋  裝滿了十二張面孔  他活在十二張面孔中  他背叛的那條河流  却緊緊地追隨着他  使人想起狗的眼睛  他活在狗的眼睛中  看到全世界的饑餓  和一個人的富足  他是他的寓言的主人  [백일몽·6]  나는 광장이 필요하다  넓고 텅 빈 광장  그릇 하나 숟가락 하나  연 하나 외로운 그림자 놓을  광장을 차지한 자가 말한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새장 속의 새는 산보가 필요하다  몽유병자는 빈혈의 햇빛이 필요하다  길들이 서로 부닥치려면  평등한 대화가 필요하다  인간의 충동은 압축되어  우라늄으로, 안전한 곳에 숨겨졌다  조그만 가게에서  지폐 한 장, 면도날 한 개  독한 살충제 한 봉  탄생했다  [白日夢·6]  我需要廣場  一片空廣的廣場  放置一個碗,一把小匙  一隻風箏孤單的影子  占据廣場的人說  這不可能  籠中的鳥需要散步  夢游者需要貧血的陽光  道路撞擊在一起  需要平等的對話  人的衝動壓縮成   , 存放在可 的地方  在一家小店鋪  一張紙幣, 一片剃刀  一包劇毒的殺蟲劑  誕生了  위의 두 시는 모두 1980년대 중반 이후에 씌어졌다. 신랄하면서도 해독하기 힘든 이미지들의 조합, 행과 행 사이에 조성된 넓은 의미론적 간격,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전의 비장하고 의지적인 색채를 찾아보기 힘든, 건조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눈에 띈다. 하지만 이런 시적 전환은 뻬이따오의 본래의 형식관에 비추어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1981년에 {상하이문학(上海文學)}이란 잡지에서, "나는 영화의 몽타쥬 수법을 나의 시에 응용해서 이미지의 충돌과 빠른 전환을 꾀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이미지의 충돌'과 '빠른 전환'이라는 극도의 도약이 낳은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야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벌써 시적 낯설게하기의 독자수용적 측면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그의 시들은 여전히 '시대성'이라는 코드를 떠나서는 분명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위 시들은 분명 달라진 시대를 형상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다름'은 개인에 대한 시대의 억압과 이에 대한 항변을 책임지는 그의 시적 사명과는 무관한 '다름'이다. 오히려 달라진 시대는 더욱 그의 시선을 냉철하게 하고 세밀한 사유를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80년대 중반 이후의 중국에서, '개혁개방'의 현대화된 중국에서 인간은 비로소 독립된 공간을 획득했지만, 그 공간은 '우화'였기 때문이다. 우화는 그것 바깥에서 관조하는 인간에게만 우화일 뿐, 그것 안에 존재하는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활'이자 '삶' 그 자체이다. 강제된 관념으로 획분되고 경계지어진 우화의 공간 안에서 사는 인간은 그 우화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주인'이 아니다. 관조하는 인간(시인)은 본다. 그가 '유리새장' 혹은 '살찐 손' 안에서 살고 있음을. 그래서 시인은 [백일몽·6](장편인 이 시의 23편의 단시들 중 하나)에서 우화를 벗어나 '광장'을 요구하는, 아직 무엇으로도 점유되거나 질서화되지 않은 '광장'에 자신만의 원초적인 삶(숟가락, 그릇)과 도약(연)을 이루려는 '나'를 상정한다. 하지만 광장을 차지한 자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그 광장에서 '평등한 대화'를 나눠야할 개인들의 충동은 '우라늄'처럼 알지 못할 곳에 보관된다.  뻬이따오의 한층 깊어진 성찰의 시들은 1989년 6월 제2차 천안문사건 전후에 더욱 강화된 권력의 폭력성을 견뎌내지 못했다. 급진적 민주화세력의 주도자로 지목된 그는 결국 1989년 4월에 해외로 망명을 떠난다. 망명자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를 전전하다 1993년에 비로소 미국에 정착하였다. 다음 작품은 그 망명과정에서 창작되었다.  밤샘  달빛이 희미하게 잠을 비추고  강물이 우리 방을 뚫고 흐른다  가구는 어느 기슭에 닿으려는가  연대기만은 아닌  비겁함까지 깃든 기후 속에서  공인된 한편이  비오는 숲으로 우릴 몰았다  흐느끼는 방어선으로  유리 문진(文鎭)이 읽는다  문자들의 이야기 속의 상처를  얼마나 많은 산이 막아섰던가  1949년을  이름 없는 노래의 끝에서  꽃은 주먹을 쥐고 부르짖는다  守 夜  月光小于睡眠  河水穿過我們的房間  家具在 兒 岸  不僅是編年史  也包括非法的氣候中  公認的一面  使我們接近雨林   哭泣的防線   璃鎭紙讀出  文字述述中的傷口  多少黑山 住了  1949年  在无名小調的盡頭  花握握拳頭叫喊  뻬이따오는 1987년 한 스웨덴잡지의 방문기에서 다음과 같이 조국과 자신의 관계를 토로하였다: "나는 중국으로부터 떠날 수 없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하려 해도 중국은 멘탈리티, 언어, 역사, 그리고 내가 하려고 하는 모든 것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개인으로서는 바꿀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떠날 수 없도록 정해져" 있는데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는 타국 땅을 헤매며 시를 쓰면서도 조국에 두고 온 자신의 뿌리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현실세계가 어떻게 추락해서 사라지더라도 시의 사명은 영원히 숭고한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이 더더욱 조국의 현실을 잊지 못하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산이 막아섰던가 / 1949년을"!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이름 없는 노래의 끝에서' 주먹을 불끈 쥔다. '꽃'이 되어, 뿌리없는 꽃이 되어 가련하게 부르짖고 있다.  중국 현대시의 시적 자아를 복권하고 이른바 차가운 서정으로 시대적 메시지를 전했던 시인 뻬이따오는 현재 중국 현지에서는 과거의 인물이다. 망명 이후 4권의 시집을 타이완과 서구 각국에서 출간하였지만 중국에서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가 처음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던 문예지 {오늘}은 폐간되었고, 현재의 중국 시문학사는 그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라는 당국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 그는 단지 {오늘}과 몽롱시파의 한 구성원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는 여전히 '오늘'의 인물이다. 스웨덴, 미국의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후보로도 거명되고 있다. 지금은 뉴욕주립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1990년에는 망명한 친구들과 함께 미국 현지에서 {오늘}을 복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활발한 그의 창작과 사회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뿌리 뽑힌' 시인일 수밖에 없다. 조국을 사랑하지만 조국에게서 버림받은 그의 삶이, 그의 시가 언제 "어느 기슭에 닿아" 쉴 수 있을지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868    책 초판본 보물 사냥꾼 - (영국) 릭 게코스키 댓글:  조회:6006  추천:0  2015-04-05
  영국의 초판본 수집가이자 문학박사인 릭 게코스키가 들려주는 희귀 초판본 거래 시장의 흥미진진한 내막과 수집 문화, 20세기 영미 문학 걸작 20선의 초판본 발간과 거래 내력.   때로는 목숨과도 맞바꾸는, 위대한 작가의 데뷔 시절과 그들의 첫 책에 얽힌 기막힌 이야기들!!   “어떤 이는 책을 쓰고 어떤 이는 그 책을 읽는다. 또 어떤 이는 책을 숭배하고, 또 어떤 이는 보물(희귀본)을 추적하여 손에 넣은 후 더 비싼 값으로 책 숭배자에게 넘긴다.”       __개요 이 책은 희귀 초판본 거래 시장의 에피소드와 19~20세기 영미문학 걸작의 발간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 릭 게코스키는 ‘책 세계의 빌 브라이슨’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다방면으로 지식이 풍부하고 그 깊이를 인정받는 영국의 희귀본 거래업자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임스 콘래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그는 초판본 거래 시장에 매력을 느껴 대학 강사직을 포기하고 평생 직업으로 희귀본 거래업에 뛰어들었다. 그때까지 천편일률적이던 희귀본 거래업자들과는 달리 게코스키는 자신의 연구 주제이던 현대 영미문학의 고전 초판본을 주 영역으로 삼아 뛰어난 사업 수완과 깊은 문학적 소양으로 바탕으로 성공을 거둔 끝에 오늘날 세계적인 희귀본 거래업자로 꼽힌다. 이 책은 BBC 라디오 4의 인기 프로그램인 의 내용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당시 그는 해박한 지식, 번득이는 통찰력, 재기발랄한 수다솜씨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여 영국인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게코스키 자신의 도전적이면서도 희귀한 삶이기도 한 이 책은 그가 20여 년 희귀본 수집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날줄로 하고 영문학의 황금기라 할 20세기 전반 작가들의 데뷔와 작품 뒷얘기를 씨줄로 엮은 것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연합』부터 톨킨의 『호빗』, J.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잭 캐루액의 『길 위에서』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 영미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 20편의 발간 과정과 초판본 거래에 얽힌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놓고 있다.   희귀본 거래시장이라는 또 하나의 책 세상이 궁금한 독자, 헤진 원고 뭉치를 들고 10여 군데 출판사를 전전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풋내기 시절을 생생히 들여다보기 원하는 책 숭배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__초판본 수집이라는 또 하나의 책 세계 지금 한국 출판계의 화두는 도서정가제이다. 그런데 이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정가보다 두 배, 세 배, 심지어 십여만 배로 뛰어오르기만 하는 책의 세계가 있다. 바로 희귀본 거래시장이다. 우리에게 희귀본이란 훈민정음 해례본처럼 수백 년이 넘는 고문헌으로만 각인되어 있지만, 이 책의 저자 게코스키가 활동하는 영국에서는 현대의 ‘초판본’도 중요 목록을 차지한다. 책의 세계는 주로 절대 다수의 일반 독자와 소수의 작가, 그리고 인쇄업자와 출판업자, 서적상 등으로 이루어져있다.그러나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책의 세계에는 희귀본 거래업자들도 엄연한 자리를 차지한다. 책을 숭배하다 못해 발품을 팔아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거니와, 희귀본 거래업자는 이 수집가들을 매개하는 중개상이다. 물론 수집과 거래를 겸하는 사람도 상당수가 된다.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은밀한 열정(secret passion)’ 혹은 ‘점잖은 광기(gentle madness)’에 사로잡힌 이런 사람들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잘 알려진 『젠틀 매드니스』가 사재를 털어 책을 수집하여 개인 컬렉션을 구축하는 과정을 보여 주였다면,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책의 거래를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책은 또한 9천 파운드(1,700만 원)짜리 초판본을 생일 선물로 주고받는 사람은 팝음악 작사가, 톨킨을 숭배한 나머지 톨킨의 초판본도 아니고 톨킨이 걸치던 낡은 대학 가운을 구입하여 애지중지하는 어느 대학 강사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2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으로 원고 뭉치를 구입하고도 스스로 ‘임시 관리자’일 뿐이라며 순회 전시회를 기획한 미식축구 구단주의 이야기 등 우리에게는 낯선 수집의 문화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문화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수필가 박연구 씨는 한 고서점에서 우연히 “기껏 판지로나 쓰이고 있는 마분지로 된 수필집”인 이태준의 『무서록』을 발견하고 책의 저자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를 고심한 끝에 물경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르고 그 책을 구입하고 나서 “무슨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감싸 안고 그 집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한국 근현대 문학의 고전들, 가령 이광수의 『무정』이나 이인직의 『혈의 누』 초판본에게 우리가 어떤 대접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희귀본 거래시장은 이미 세계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나 런던 북페어가 신간 출판물을 거래하는 거대 규모의 국제전시회라는 점을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국제희귀본거래업협회가 격년제로 주최하는 희귀본 북페어가 벌써 16차까지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제16회 희귀본 북페어는 바로 2007년 12월 7일부터 9일까지 벨기에 미셀렌에서 개최되었다). 일본,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 내로라하는 문화강국들은 개별적인 전시회를 열 예정인데, 그 전통이 대부분 20년이 넘는다. 이런 희귀본 시장은 수집가를 위한 거래의 장일 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이 고서와 고전 출판물을 전시물로 접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체험장이 된다.   __희귀본이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 게코스키와 같은 보물 사냥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가치 있는 책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현대의 발간물을 취급하면서도 영미 문학의 고전에 주력한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이 점에서 우표수집과 책 수집은 차이가 있다. 둘째, 같은 값이면 초판본이어야 하되, 작가의 친필 서명과 헌사가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나비 수집에 취미가 있던 나보코프가 그레이엄 그린에게 보내는 헌사와 함께 나비 그림을 그려 넣은 『롤리타』 초판본이 희귀본의 대명사가 된 까닭이 그렇다, 셋째 책 자체가 예술적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담아야 한다. T. S. 엘리어트의 작품 목록에서 그다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편인 『시들(Poem』은 시인의 서명이 없는데도 1만 파운드에 팔렸다. 이는 이 시집의 북 디자인이 예술품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을 인쇄하고 제본한 사람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였음에야! 또 ‘아라비아 로렌스’(T. E.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도 내용보다는 호화 장정이 워낙 돋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게코스키의 말을 빌리면 ‘내용에 대한 형식의 승리’). 마지막으로 책이 발간될 당시의 겉표지(dustwrapper)까지 온전히 갖춰야 한다. 20세기 중반까지 영미 독자들은 양장 겉표지를 불필요한 덤으로 생각하여 벗겨 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오늘날 겉표지를 갖춘 책이 귀해졌다. 그리하여 때로는 본 책보다 겉표지가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한국 출판계에서는 양장 겉표지 위에 홍보 문구와 저자 사진을 넣은 ‘띠지’를 다시 두르는 경우가 많은데, 수집가의 입장에서는 이 띠지를 어떻게 처치할지 궁금해진다.   __책은 모두 저마다 ‘그 책’만의 이력서를 갖는다 게코스키가 다루는 책들은 우연치 않게 우리나라에서도 ‘고전’ 혹은 ‘추천 도서’로 꼽히는 것들이다. 학교의 독서목록은 딱딱하고 위압적인 풍채를 자랑하지만, 이 책은 한껏 인간적이고 경쾌한 면모로 이야기를 풀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처음, 첫 책’이기 때문이다. 신참내기 작가와 시인들은 출판사 문을 수도 없이 두르려도 번번이 퇴짜를 맞고(윌리엄 골딩의 은 스물세 번째 출판사를 만나고 나서야 발간될 수 있었다!), 편집자가 요구하는 대로 고치고 또 고쳐도 기약이 없어 처럼 탈고에서 출간까지 6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시대를 앞서는 내용 때문에 출판할 곳을 찾지 못하거나(), 외설 시비로 재판을 받고 금서목록에 오르기도 한다(, ). 우여곡절 끝에 첫 책이 나오긴 하지만, 기껏해야 1,500부, 심지어 500부()로 발간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고, 특집 문학지를 헌정 받았지만 작가의 이름이 엉뚱하게 표기되는 사고(헤밍웨이)도 생긴다. 게코스키는 이와 같은 에피소드를 웃음과 눈물로 전달해준다. 가령 제임스 조이스의 를 ‘즐겁게 독파’하기는 거의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가 세상에 태어나기까지의 내력은 드라마틱하기 짝이 없다. 문제작 을 읽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함이 필요하겠지만, 저자 나보코프가 나비 그림까지 그려 헌정한 그 유명한 파리 올랭피아 초판본 앞에서 그레이엄 그린과 게코스키가 보드카 한두 잔으로 흥정을 끝내버리는 장면은 한판의 재담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넘기기 충분하다. 1950년대 미국 비트 문화의 선구 역할을 한 잭 캐루액의 『길 위에서』는 무려 120피트 길이의 두루마리 원고뭉치로 더욱 유명하다(노먼 메일러는 이 뭉치를 보고 캐루액이 소설가가 아니라 행위예술가라고 말했다). 이 길고 거추장스러운 원고뭉치를 들고 6년 동안 헤매다 겨우 출판한 책이 미국 문화를 바꿔버린 것이다. 책은 또한 가슴 저린 탄식도 안겨준다. 미국판 라 할 은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고치고 또 고치기를 2년을 거듭하다가 좌절한 저자의 자살을 불러온 작품이다. 아들의 유고를 들고 출판사와 평론가의 문전을 전전한 어머니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 저주받은 걸작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작품의 제목은 천재가 등장하면 세상의 바보들이 연합전선을 펼친다는 조너던 스위프트의 경구에서 따온 것인데, 저자인 존 케네디 툴의 불운한 삶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이밖에도 영문학사상 천재로 꼽히던 오스카 와일드가 처럼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한 이야기, 헤밍웨이의 데뷔 작품집인 가 55페이지짜리밖에 채우지 못한 까닭이 그려져 있다.   데뷔는 언제나 어렵다. 훗날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오르는 이들도 처음에는 데뷔의 고통에 전전긍긍하던 풋내기였다. 그러니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이 풋내기 작가의 첫 책, 그것도 초판본을 보노라면 제본, 표지, 서체, 광고 문구 등 모든 것이 기념될 만하다. 책 수집가들이 초판본에 집착하는 이유, 소더비 경매장에 가 나왔을 때 모두들 숨죽여 결과를 지켜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듯하다. __지은이 릭 게코스키(Rick Gekoski) 이 책의 저자 릭 게코스키는 모든 책벌레들의 우상이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 영문학 박사 출신으로 희귀 초판본 거래업을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이색적인 인물이다. 영국 워릭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하던 그는 초판본 수집에서 황금의 세상을 발견하고 “좁은 방에 갇혀 사는 꽁생원 같은” 교수의 길 대신 “책을 사 모으는 열정으로 가득 찬 유쾌한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시작은 비록 무모했지만 희귀 초판본을 감별하고 낚아채는 ‘보물 사냥꾼’다운 안목을 자랑하며 숱한 거래를 ‘금전적으로’ 성공시킨 끝에 오늘날에는 영국에서 으뜸가는 초판본 거래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본문 틈틈이 그가 밝히고 있듯이 그의 성공 비결은 자신의 전공 분야를 잘 살린 데에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 분야이던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영미문학 거장들의 서명이 들어있는 초판본과 원고를 주력 분야로 삼았다. 헨리 제임스, 조셉 콘라드, T. S.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D. H. 로렌스, 헤밍웨이, 버지니아 울프, 사무엘 베케트 등 우리의 귀에도 익숙한 대가의 책과 원고가 그의 목록에서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책 세상의 빌 브라이슨’이라는 별칭 이외에도 문학 평론가로서도 깍듯이 대접 받는다. 그가 2005년 부커상 심사위원에 선정되었을 때 영국의 언론은 “20세기 중반의 대작에 정통한 게코스키가 심사위원이 되었기 때문에 아마도 진지한 작품이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현대 영국 문학계가 수준 높은 작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존 반빌의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The Sea)』가 그해 수상작으로 선정된 데에는 게코스키의 영향이 작용했다는 평이 나돌기도 했다).           01 | 올랭피아 출판사의 유일한 걸작      롤리타_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02 | “원고 값으로 100만 파운드를 가져오시오”      파리대왕_ 윌리엄 골딩 …    03 | 은둔 작가를 세상에 나오게 한 저작권 소송      호밀밭의 파수꾼_ J. D. 샐린저 …          04 | 내용에 대한 형식의 승리      지혜의 일곱 기둥_ T. E. 로렌스 …    05 | 스스로 호빗을 자처한 톨킨      호빗_ J. R. 톨킨 …    06 | 저자, 역자, 출판인 모두에게 내려진 사형선고      악마의 시_ 살만 루슈디 …    07 | 자살한 작가의 어머니가 살려낸 희비극      바보들의 연합_ 존 케네디 툴 …    08 | 서평 한 꼭지의 힘      길 위에서_ 잭 케루액 …    09 | 금서 출간을 밀어붙인 용감한 여성들      율리시즈_ 제임스 조이스 …    10 | 천재를 파멸로 이끈 위험한 사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_ 오스카 와일드 …    11 | 영국 출판사들도 출간을 겁먹다      동물농장_ 조지 오웰 …    12 | “초판이건 41판이건 무슨 상관인가?”      아들과 연인_ D. H. 로렌스 …    13 | 아내의 헌정 시집을 시장에 내다 판 남편      거상(巨像)_ 실비아 플라스 …    14 | 열세 번째 출판사에서야 초판 500부를 발행하다      해리포터와 현자의 돌_ J. K. 롤링 …    15 | 원화 한 장에 10만 파운드?      피터 래빗 이야기_ 베아트릭스 포터 …    16 | 누구나 데뷔는 고단하다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_ 어니스트 헤밍웨이 …    17 | 버지니아 울프가 손으로 인쇄한 책      시(詩)들_ T. S. 엘리엇 …    18 | 초판 50부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_ 이블린 워 …    19 | 연인을 위한 선물이 희귀본으로      2년 후_ 그레이엄 그린 …    20 | 편지에 휘갈긴 시도 수집의 대상?      높은 창_ 필립 라킨 …   
867    명시인 - 긴즈버그 댓글:  조회:5181  추천:0  2015-04-05
긴즈버그   Irwin Allen Ginsberg 1926. 6. 3 미국 뉴저지 뉴어크~1997. 4. 5 뉴욕 뉴욕시티. 미국의 시인. 19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문화운동인 비트 운동을 주도했다. 긴즈버그를 비롯한 이 운동의 참여자들은 비트 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데, 이들의 삶은 제도권 사회로부터의 일탈과 저항, 그리고 마약 사용으로 집약되었다. 그가 미술·음악·정치에 미친 영향은 이후 4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으며 애비 호프먼, 바츨라프 하벨, 보브 딜런, 오노 요코 등 다양한 인물들이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다고 한다. 법률가가 되려고 컬럼비아대학교에 입학한 긴즈버그는 중간에 전공을 문학으로 바꾸었고 잭 케루악, 윌리엄 S. 버로스, 닐 캐서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후 이들은 함께 비트 제너레이션을 이끌었다. 긴즈버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시 〈울부짖음 Howl〉은 기성 사회에 대한 노골적인 분노와 함께 그의 급진적인 정치이념과 동성애를 표현하는 작품이었다. 로렌스 펄링 게티의 시티라이츠 서점 출판부에서 그 시를 〈울부짖음 Howl and Other Poems〉(1956)이라는 시집에 수록해 출간했는데, 그 때문에 게티는 외설죄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곧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그 사건을 계기로 검열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긴즈버그의 작품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것은 아마도 시집 〈카디시 Kaddish and Other Poems〉(1961)에 실린 〈나오미 긴즈버그(1894~1956)를 위한 카디시 Kaddish for Naomi Ginsberg(1894~1956)〉일 것이다. 이 작품은 시인이 어머니에게 바친 시로서 시인과 어머니와의 관계, 정신병원에서의 어머니의 죽음 등을 다루었다. 1960년대에 비트 운동이 한풀 꺾이고 히피 시대가 막을 올린 다음에도 긴즈버그는 반(反)문화의 중심에 확고히 서 있었다. 그는 불교에 심취했으며, '비인'(be-in : 공원 등지에서 가지는 히피 모임)을 처음으로 조직했다. 또한 플라워 파워(flower power : 히피족)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마약 합법화 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을 벌였으며, 1968년에는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Democratic Party) 전당대회에서 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는 세계 각지를 여행했고, 미국에서의 정치적 저항도 계속했다. 1984년에는 긴즈버그의 시들을 1권의 책으로 묶은 〈시선집, 1947~80 Collected Poems, 1947~80〉이 출간되었다. 그는 〈미국의 가을, 1965~1971 The Fall of America : Poems of These States, 1965~1971〉(1972)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고, 미국도서상도 수상했으며(1990), 〈코스모폴리탄의 인사, 1986~1992 Cosmopolitan Greetings : Poems 1986~1992〉로 1995년 퓰리처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866    명시인 - 구상 댓글:  조회:4897  추천:0  2015-04-05
                가을 병실(病室)                                             구상    가을 하늘에 기러기 떼 날아간다. 내 앓은 가슴 위에다 긴 그림자를 지으며 북으로 날아간다. 한 마리 한 마리 꼬리를 물 듯이 一直線을 그으며 날아간다.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내 가슴 空洞에 내려 앉는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마지막 한 마리는 내가 붙잡았다.               팔딱               팔딱               팔딱 내 가슴이 뛴다.               끼럭               끼럭               끼럭 내 가슴이 운다. 끼럭 끼럭 끼럭 하늘이 운다.                끼럭 끼럭 나는 놓아 보낸다. 혼자 떨어져 날으는 뒷모습이 나 같다. 가을 하늘에 기러기 떼 날아간다. 나의 가슴에 平行線을 그으며 날아간다.         초토(焦土)의 시·8                                        -적군 묘지 앞에서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드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삽십(三十) 리면 가루 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기도                                                                땅이 꺼지는 이 요란 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사귐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허깨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이제 다가오는 불 장마 속에서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 모양 스러져 가는 어린 양들과 한 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거듭남                                                    저 성현들이 쳐드신 바  어린이 마음을  지각(知覺) 이전의 상태로 너희는 오해하지들 마라! 그런 미숙(未熟)의 유치란  본능적 충동에 사로잡히거나 독선과 편협을 일삼게 되느니, 우리가 도달해야 할  어린이 마음이란 진리를 깨우침으로써  자기가 자신에게 이김으로써 이른바 '거듭남'에서 오는  순진이요, 단순이요,  소박한 것이다.       나는 알고 또한 믿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욕망과 갈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오뇌와 고통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불안과 허망의 잔을  피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또한 믿고 있다. 이 욕망과 고통과 허망 속에 인간 구원의 신령한 손길이 감추어져 있음을,  그리고 내가 그 어느 날  그 꿈의 동산 속에 들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 나는 또한 믿고 있다.       날개                                                        내가 걸음마를 떼면서 최초에 느낀 것은  내 팔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제 칠순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느끼는 것도 내 팔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엄마의 손길을 향하여  기우뚱대며 발걸음을 옮기던 때나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에 매달려 어찌 어찌 살아가는 이제나 내가 바라고 그리는 것은  '제트'기도 아니요,  우주선도 아니요, 마치 털벌레가 나비가 되듯 바로 내가 날개를 달고 온 누리의 성좌(星座)를 꽃동산 삼아  첫사랑 어울려 훨훨 날으는  그 황홀이다.         네 마음에다                                              요즘 멀쩡한 사람들 헛소리에  너나없이 놀아날까 두렵다. 길은 장님에게 물어라. 해답은 벙어리에게 들으라.  시비는 귀머거리에게서 밝히라.  진실은 바보에게서 구하라.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길은 네 마음에다 물어라.  해답은 네 마음에서 들으라.  시비는 네 마음에서 밝히라. 진실은 네 마음에다 구하라.         시                                                            우리가 평소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이 아무리 말을 치장해도 그 말에 진실이 담겨 있지 않으면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느니 하물며 시의 표상(表象)이 아무리 현란한들  그 실재(實在)가 없고서야 어찌 감동을 주랴? 흔히 말과 생각을 다른 것으로 아나 실상 생각과 느낌은 말로써 하느니 그래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렷다. 그리고 이웃집에 핀 장미의 아름다움도 누구나 그 주인보다 더 맛볼 수 있듯이  또한 길섶에 자란 잡초의 짓밟힘에도  가여워 눈물짓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시는 우주적 감각*과 그 연민(憐憫)에서 태어나고 빚어지고 써지는 것이니  시를 소유나 이해(利害)의 굴레 안에서  찾거나 얻거나 쓰려고 들지 말라! 오오, 말씀의 신령함이여!                            * 하이데거의 "언어와 사고"에서의 말.                             * 폴 발레리의 시에 대한 정의.       시심                                                       내가 달마다 이 연작에다가  허전스런 이야기를 고르다시피 하여  시라고 써내니까 젊은 시인 하나가 하도 이상했던지 "그러면 세상에는 시 아닌 것이  하나도 없겠네요"하였다. 그렇다! 세상에는 시 아닌 것이  정녕, 하나도 없다. 사람을 비롯해서 모든 것과 모든 일 속의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것은  모두 다가 시다. 아니, 사람 누구에게나  또한 모든 것과 모든 일 속에는 진·선·미가 깃들어 있다. 죄 많은 곳에도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하듯이 말이다.*  그것을 찾아내서 마치 어린애처럼  맞보고 누리는 것이  시인이다.                        * 성서의 로마서 5장 20절         어른 세상                                                네 꼬라지에 어줍잖게  그리 생각에 잠겨 있느냐고  비웃지 말라. 내가 기가 차고 어안이벙벙해서 말문마저 막히는 것은 글쎄, 저 글쎄 말이다. 이른바 어른들이 벌리고 있는 이 세상살이라는 게, 그 모조리 거짓에 차있다는 사실이다. 저들은 정의를 외치며 불의를 행하고 저들은 사랑을 입담으며 서로 미워하고 저들은 평화를 내걸고 싸우며 죽인다. 내가 주제넘어 몹시 저어되지만  어느 분의 말씀을 빌려 한마디 하자면 저들이 어린이 마음을 되찾지 않고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듯이  저들이 어린이 마음을 되찾지 않고선 이 거짓세상의 그 덫과 수렁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홀로와 더불어                                               나는 홀로다.  너와는 넘지 못할 담벽이 있고  너와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고  너와는 헤아릴 바 없는 거리가 있다. 나는 더불어다.  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이 담겨 있고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이 배어 있고  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이 스며 있다. 이렇듯 나는 홀로서 또한 더불어서 산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白 蓮                                                      내 가슴 무너진 터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솟아난 백련 한 떨기 사막인 듯 메마른 나의 마음에다  어쩌자고 꽃망울 맺어 놓고야 이제 더 피울래야 피울 길 없는 백련 한 송이 왼 밤 내 꼬박 새어 지켜도 너를 가리울 담장은 없고 선머슴들이 너를 꺾어 간다손  나는 냉가슴 앓는 벙어리 될 뿐 오가는 길손들이 너를 탐내 송두리째 떠간다 한 들 막을래야 막을 길 없는 내 마음의 망울진 백련 한 송이 차라리 솟지야 않았던 들  세상없는 꽃에도 무심한 것을 너를 가깝게 멀리 바랠 때 마다  퉁퉁 부어오르는 영혼의 눈시울         오늘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혼자 논다                                                  이웃집 소녀가  아직 초등학교도 안들어 갔을 무렵  하루는 나를 보고  ㅡ 할아버지는 유명하다면서?  그러길래  ㅡ 유명이 무엇인데?  하였더니  ㅡ 몰라!  란다. 그래 나는  ㅡ 그거 안좋은 거야!  하고 말해 주었다. 올해 그 애는 여중 2학년이 되어서  교과서에 실린 내 시를 배우게 됐는데  자기가 그 작자를 잘 안다고 그랬단다.  ㅡ 그래서 뭐라고 그랬니?  하고 물었더니  ㅡ 그저 보통 할아버진데, 어찌보면  그 모습이 혼자 노는 소년 같아!  라고 했단다. 나는 그 대답이 너무 흐뭇해서  ㅡ 잘 했어! 고마워!  라고 칭찬을 해 주고는  그날 종일이 유쾌했다.                구상 具常 (1919 - 2004)                                     본명 : 구상준(具常浚) 세례명 : 요한 출생 :  1919년 9월 16일  학력 :  일본 니혼대학교  약력 :  1942년 북선매일신문 기자 1952년 효성여자대학교 부교수 1960년 경향신문 논설위원 1985년 문예진흥원 이사 1997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2004년 5월 11일 폐질환으로 별세    시집 『구상시집』(청구출판사, 1951), 『초토의 시』(청구출판사, 1956), 『까마귀』(흥성사, 1981),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큰손, 1982), 『드레퓌스의 벤취에서』(고려원, 1984),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현대문학사, 1984), 『구상연작시집』(시문학사, 1985), 『구상시전집』(서문당, 1986), 수필집 『침언부어』(민중서관, 1961) 등.      [시인 구상 이야기]   시인 구상(구상)씨는 남북 양체제에서 필화를 경험한 유일한 문인이다. 46년 구씨는 고향인 원산에서 사화집 "응향"에 시를 발표했다가 부르조아적, 퇴폐주의적, 반역사적, 반인민적인 반동시인으로 몰린다. 예컨대, 시작품「길」의 「안개를 생식하는 짐승이 된다」는 구절에 대해서 좌익 평론가들은 「사람이 밥 없이 안개를 마시고 산다는 게 얼마나 비과학적이며 관념적이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냐」며 유물사관을 잣대로 비난을 했던 것이다. 그 체제를 못 견뎌 월남한 구씨는 65년 8월 희곡 "수치"를 드라마센터의 무대에 올리려다 당국으로부터 공연보류조치를 당했다. 등장인물 중 빨치산 군관의 대사 "우리의 영웅이신 김일성 장군께서" 등이 문제가 되어서다. 북한에서 상투어로 쓰이고 있는 말을 작품에 사실성을 불어넣고 또 그러한 공산당을 비판하기 위해 동원된 것인데도 탄압을 받은 것이다.   시인 구상(구상)의 진짜 고향은 함경도 원산이 아니라고 한다. 그가 태어난 곳은 서울 이화동이다. 시인의 고향을 원산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게 된 것은 그 자신이 원산의 소농(小農) 가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東京 유학시절에 만난 사회주의 사상과 관련이 깊다.   구상 시인의 집은 젊은 시절 그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달리 대대로 班家(반가)였다. 할아버지가 울산부사였고, 큰아버지들은 창령 현감, 현풍 군수를 지냈고 아버지도 궁내부 주사로 있다가 한일합방 후에는 경찰학교 교관으로 한문을 가르친 집안이었다. 아산 李씨 집안인 구상 시인의 외가는 전통적인 천주교 집안으로 구상 시인의 아버지도 결혼과 함께 천주교회에 다니게 된다.   원산과 구상 시인네 집과의 인연은 시인이 네 살 되던 해에 맺어진다. 독일계 신부들이 원산에 교구를 개설하면서 교육사업을 구시인의 아버지에게 맡긴 것이다.   원산에서 보통학교(초등학교)를 마친 「서울집 도련님」 구상은 형처럼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수도원)에 입학한다. 구상 시인은 중도에 신학교 과정을 포기하고 만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풍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중풍은 하나의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신학교를 그만둔 후 그는 일반 중학교로 전학을 하지만 금방 퇴학을 당한다. 문학을 한다며 소위 不逞鮮人(불령선인: 불평불만을 일삼는 조선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主義者로 불렀지. 당시 主義者는 저항적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 버렸다」는 말이었지. 사실 내가 어려서부터 레지스탕스 기질이 있었어』   결국 시인은 고향을 떠나 노동판을 전전하고 야학당에서 공부도 가르치다가 일본 밀항을 감행한다. 일본으로 밀항한 시인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연필공장 노무자 등 일급 노무자로 전전하다가 선배의 권유로 일본 대학 종교과에 시험을 친다. 東京 유학생활 중 저항적 기질의 구상 시인은 사회주의에 경도되게 된다. 평등을 지고지순의 가치 중 하나로 삼게 되면서 자신의 출신 성분도 小農 출신이라고 숨기게 되는 것이다.   東京에서의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형님의 흥남교회 부임으로 집에 어머니가 혼자 남게 되면서 시인은 귀국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귀국 후 시인은 글만 읽으며 詩 작업에 매달렸다. 그런 그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서울집 도련님이 主義를 하다가 정신 이상에 걸렸다』며 폐인 대접을 했다. 게다가 마침 시인은 폐병까지 결렸다. 전쟁 말기의 일제는 다급해지자 폐병에 걸린 시인마저 징집을 하려고 했다. 징집을 피해서 선택한 길이 시인이 지나온 궤적에서 접어 버리고 싶어하는 親日(친일) 한국인이 함경도 원산지역에서 발행하던 「북선매일」 기자였다.    그가 자전적 詩에서 쓴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목숨을 부지하려는 일념과 펜을 잡는다는 매혹에 식민지 어용(御用)신문의 기자가 되어 용왕 앞의 토끼처럼 쓸개는 떼어놓고 날마다 성전송(聖戰頌)과 공출독려문(供出督勵文)을 써 댔다』는 북선매일의 기자를 한 것이다. 저항적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 피끓는 청년 구상이 그 일을 오래 할 리 만무했다. 그는 이내 기자직을 그만두고 교회 학원을 맡았다가 곧 광복을 맞는다. 광복된 조국은 「主義者 구상」을 한순간에 선각자이자 독립투사로 바꾸어 놓는다. 마을에서 인민투표를 했는데 그는 최고 득표자가 되었다. 여러 가지 대접도 받았다. 교원직업동맹 부위원장도 과거의 「주의자」 라는 꼬리표가 준 선물이었다. 이듬해 필화 사건에 연루된 구상 시인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자유를 찾아 월남을 결행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구상은 국방부 기관지인 「승리일보」를 만들고, 종군 문인단인 '창공구락부'에 참여한다.   『종군 문인단(창공구락부)을 창설하자는 제의를 받았죠. 그래서 아동 문학의 대가인 마해송 선생(당시 승리일보 고문)을 주축으로 사학자였던 이선근 선생(당시 대령)과 전투기 조종사였던 이계환 대위, 국방부 출판국장을 하던 지훈 조동탁 선생 등이 모여 공군의 모든 홍보 활동을 선도하고, 특별 정훈 교육은 물론 후방에서의 대민 사기 진작을 위하여 모였죠.』   당시 활동하시던 중 재미있는 일화에 대해서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구상은 답했다. 『쑥스러운 이야기라서 잘 하지는 않는 것인데…. 사관학교로 특강을 나간 적이 있었어요. 당시 민기식 장군과 서정철 부사단장이 정훈 교육을 나온 나를 굳이 대접하겠다고 인제에 있는 '명월관'이라는 술집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어요. 말이 명월관이지 판자집이나 다름없는 선술집이었죠. 여하튼 무척이나 폭음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어요. 차가 논으로 달려들어 갔거든요. 어쨌든 사고를 수습하고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으니까, 자초지종을 모르는 지인들이 나를 위로하며 한다는 말들이 모두 '이렇게 고생하시면서 정훈 교육을 하고 있으세요?'였어요.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해요.』   시인은 『나는 역사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의 말대로 일제시대 한때 「主義者」가 됐던 것도 , 작가로서 전쟁의 한가운데에 섰던 것도 그의 역사의식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전쟁 후 그는 反독재 투쟁에 앞장선다.   『나는 자유를 찾아서 남쪽으로 왔고 그 다음에는 자유를 위해서 민간인으로서 전쟁의 최일선에 섰던 사람이야. 그런데 전쟁 후에 이승만 정권이 자유를 억압하고 독재정치를 하니까 그래서 투쟁에 앞장섰던 거지』 1952년, 전세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승리일보가 폐간되자 구상 시인은 영남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1953년에는 「민주고발」이라는 사회평론집을 낸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비난한 이 평론집은 곧바로 판매금지령이 떨어졌다.   이러한 활동을 벌인 시인을 기다린 것은 감옥이었다. 자유당 정권은 利敵兵器(이적병기)를 북한에 밀송하려 했다는 혐의로 구상 시인을 잡아넣는다. 이 사건은 구상 시인의 친구가 남대문 시장에서 美製(미제) 진공관 2개를 東京대학에서 연체생물 연구를 하고 있는 사위에게 사보낸 것을 구실삼아 반공법 위반죄로 시인의 친구와 시인을 잡아넣은 사건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구속된 구상 시인에게 검찰은 15년 형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구상 시인은 최후 진술에서 『조국에 모반한 죄목을 쓰고 有期刑囚(유기형수)가 되느니보다 사형이 아니면 무죄를 달라』 고 말했다. 다행히 재판관이 무죄를 선언함으로써 시인의 감옥생활은 8개월여의 기간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자유당 정권 말기 민권투쟁을 할 때 나는 민권투쟁위원회의 부장이었고, 김대중, 김영삼 씨는 간사고 그랬어요. 나는 엄상섭이니 전진한이니 하는 분들과 시공관에서 강연도 하고 그러다가 잡혀 감옥에 갔지요. 감옥에 가서 8개월 지내다가 4·19 직전에 나왔어요. 감옥에서 줄곧 현실에 나서느냐, 문학의 길에만 정진할 것인가를 고민했었는데, 마침내는 문학의 길만을 가기로 결심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내가 소위 박정희 정권에 참여하지 않은 이야기만이 널리 알려져 있지요.(략) 좀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감옥에서 이미 결심한 바가 있어 민주당 때에도 현실 참여를 하지 않았고 박정희에게도 나를 남산골 샌님으로 그대로 놔두라고 했지요. 그런데도 자꾸 권하길래 그때 내가 서강대에 나가면서 카톨릭에서 경영하고 있던 경향신문의 논설위원으로 있었는데 그 신문사에 이야기하여 그해 가을에 동경의 지국장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말하자면 피신이었지요. 이 곳에 있으면서 참여는 안하면서 친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잘 했느니 못 했느니 시비를 할 수도 없고 해서 차라리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결심한 것이지요. 그러자 박정희 장군은 김팔봉 선생을 비롯한 주변 분들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나의 동경행을 만류하기도 했지요. 나는 현실에서 완전히 이탈해서 일본에 가서 60년대를 보내면서 폐를 두 번이나 수술했지요. 70년대에는 하와이 대학에 교수로 취직을 해서 5년 넘게 있었지요. 상주 작가로 동서문화센터에 가서도 있었고, 60-70년대를 그렇게 외국에서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그 사람이 대통령을 했지만 나와는 아무런 이해 관계를 갖지 않을 수 있었지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세상이 다 죽일 놈으로 모는 악당일지라도 친구는 친구니까 5년 동안 내가 제례미사를 드렸어요.』   시인 구상은 1959년의 감옥 생활 이후 그의 결심대로 일체의 사회적 직책을 맡지 않는다. 일체의 사회활동을 접은 시인이 그 후 걸은 길은 후학 양성을 위한 교수의 길이었다. 그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직자의 길을 걸었다.   朴대통령과 구상 시인의 인연 한가운데는 李龍文(이용문) 장군이 있다. 구상 시인은 李장군의 소개로 朴대통령을 만났다. 구상 시인이 李장군을 알게 된 것은 1949년에 육군정보국에 들어가면서다. 당시 정보국장이 李장군이었고 두 사람은 이내 친해져 밤낮 술자리를 하는 사이가 됐던 것이다.   『의기투합했지. 말이 통했어. 李장군이 소개해 준 朴대통령도 마찬가지였고』구상 시인의 말대로 세 사람은 의기투합했고 말이 통하는 사이로 서로에 대한 정 또한 깊었던 것 같다. 세 사람 중 李장군이 제일 일찍 세상을 떠나는데 그날이 1953년 6월24일이다. 비행기 사고로 李장군이 먼저 그들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날은 대구에서 저녁에 셋이 함께 만나 술을 마시기로 약속한 날이 기도 했다. 5·16 후 朴대통령이 정치외적으로 처음 한 일은 수유리에 있는 李장군의 동상 건립이었다고 한다. 구상 시인이 그 일에 간여했음은 물론이다. 朴대통령 逝去 (서거) 후에 세 사람 중 홀로 남은 구상 시인은 朴 前 대통령을 위해 5년 간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朴대통령과 시인의 사이가 어느 정도로 각별한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호칭이다. - 朴대통령을 부를 때 「박첨지」라고 불렀다면서요. 『官에 나가 있으니까 그렇게 불렀지(웃음)』  ―대통령 되기 전부터 그렇게 불렀습니까. 『아냐, 대통령 되기 전에는 서로 존대를 했지. 대통령 되고 나서 그렇게 불렀어』 ―한 나라의 최고 책임자였는데도요. 『나에겐 만만한 사람이었으니까』 ―대통령 각하라고 부른 적은 없습니까. 『없어, 그렇게 부른 적 없어. 朴대통령도 그걸 원하지 않았지』 ―그렇게 격식이 없을 정도로 가까이서 지켜본 인간 朴正熙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의협심이 많은 사람이었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래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어 . 군인 때 만났지만 아주 해박했어. 플라톤의 국가론도 읽고, 월남 패망사도 읽고 한 마디로 박학다식에 견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어』 ―朴대통령 이후로는 정계 입문을 권유받은 적이 없습니까. 『있지. 5共 출범할 때 소위 말하는 3許씨 가 찾아왔었어. 민정당 10인 발기위원회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이었어. 거절했지. 그 후에도 총재 고문이라든가, 전국구 의원 등의 제의가 있었지』   시인 구상과 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기인들과의 교류다. 절친한 친구인 천재 화가 李仲燮(이중섭), 시인인 空超(공초) 오상순,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선구자이자 「어린이 헌장」의 기초자인 馬海松(마해송) 선생을 비롯 세상을 떠난 사람에서부터 현존하는 걸레 스님 重光(중광)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마치 기인(奇人)들과의 교류가 취미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가 우리 시대의 아웃사이더들과 함께 하기를 즐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 규격품만 있으니까 재미가 없잖아. 非규격품인 奇人들은 재미없는 사회에 재미도 주지만 거리에 청량감을 주는 살수차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이중섭과의 우정은 남달랐다. 구상의 서재에는 특이한 그림이 걸려 있다. 옛날 이중섭 화백이 담뱃갑의 은박지에 연필로 그린, 그 유명한 천도 복숭아 그림이다.  "왜 어떤 병이든지 먹으면 낫는다는 천도복숭아 있지 않아. 그걸 먹고 우리 상(常)이 어서 나으라는 말씀이지."  구상 선생님이 폐 절단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문병을 가긴 갔지만 돈이 없어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중섭 화백이, 즉석에서 담뱃갑 속지인 은박지에다 구상이 평소 좋아하던 천도 복숭아를 그려준 것이다.   구상이 중섭과 공초 선생에 대해서  밝힌 글을 보자. 『어려운 시대를 함께 살았던 화가 이중섭은 절친하게 지내던 고향친우로, 일찍 세상을 떠나보내고 나니 그를 기억할 때마다 늘 가슴이 아프지요. 생전에 그림밖에 몰랐고 생존의 무기란 오직 그림뿐이었던 천재적인 화가였지요. 그러나 중섭은 뭇천재들이 그랬듯이 너무 비참하게 살다가 가엾게도 너무나 빨리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우리 신시 개척에 선구자이신 공초 선생에게 대해서는 내게 이런 일화가 있지요. 내가 영남일보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 하루는 그분이 찾아와 하시는 말씀이 “이 사회를 건질 묘방으로 날마다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 보는 묵상의 시간을 국가가 정해서 그 캠페인을 벌이자”는 겁니다. 선생 생전에 기행 일화는 많지만 그때는 그저 공초다운 말씀이라 생각하고 비현실적인 제안이다 싶어 신문에 사설화하지 못했는데 물질만능의 세태에 이르러 보니 선생의 그 치세훈이 절실해집니다.』   젊은 작가들에게 구 시인은 당부한다. 『말과 생각이나 느낌이 이원적으로 분리되어, 문학이라는 것을 말의 치레로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서로 대화를 할 때에도 말을 번드레하게 잘 한다고 해도 그 말 속에 등가량의 진실이 없으면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가 없지요. 소위 말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는 그 사람의 인식추구의 치열성과 진실성에 따르는 거지요.』라고.      
865    시인들, 봄을 노래하다... 댓글:  조회:6134  추천:1  2015-04-05
                       꽃몸살                             장철문                            몸살 한 번 되게 앓은 뒤에                          산길 간다                          이 화창한 날을 보려고                          되게 한 번 튼 것인가                          볕살만큼이나 가벼운 몸이다                          배꽃보다                          거름 냄새 짙게 흩어진 날인데                          오늘이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시소 타는 그날인가                          당신만 늙어가는 것 같다고                          취로 사업도 잃은 아버지는                          백주에 약주                          아직도 아버지와 적대하는 내게                          형님은 나무라는 전화 넣고                          당신이 그랬듯이                          이쪽에서 당신을 품어야 할 나이인가                          배꽃보다                          분뇨 냄새 짙게 흩어진 날인데                          갓 피어나는 것들은                          갓 피어나는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것인가                          몸살 지난 몸처럼이나                          가벼운 봄날                          바람깃 같은 몸 데리고                          산길 간다                                                                   시집< 산벚나무의 저녁> 창비. 2003년                         꽃피는 봄날         남진우   햇살 아래 고드름처럼 녹아내리는 눈동자   텅 빈 눈구멍 속에 지렁이 떼가 꼬물거린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았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그 봄날 저녁                              엄원태(1955 - )                            그날 저녁엔 바람이 심하게 쏠려 불고                            나무들도 서 있기가 불편했습니다                          옮겨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향나무들은                          제 멋대로 가울고, 뿌리덩이를 쳐든 채                          황량히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서성대는 키 큰 나무들 위로                          음산히 구름들이 짓누르듯, 낮게 낮게 흐르고                          컴컴한 구름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하늘은                          남빛이 점차 짙어 어두워 같습니다                            밤이 오면, 누구는 저 거친 들판으로                          누구는 또 세상의 허술한 집들을 향하여                          습기찬 바람을 온 몸에 맞으며 갑니다                            제 몸 하나 가누기 어려워 쓸쓸하기만 한                          들풀들의 영토에도 밤은 내리고                          사람들은 그 어두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                          시린 어깨를 웅크려 잠들고                          꿈꾸어 아픈 밤을 지나서는 정말 우연히                          불확실한 새벽에 이르곤 하는 것입니다                                                           1990년 로 등단                                              그저 막연한                               신석종                                  봄은 아리다                                가끔은 그렇다                                  구덩이에서 꺼낸                                봄 감자를 날 것으로                                처음 먹을 때처럼                                  목이 아리다가                                눈이 아려져오고                                마음이 싸해진다                                  아리다는 건                                막연한 설움이다                                설명할 수 없는       금잔디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기다리는 봄    이병주   버들강아지 기지개 켜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들려오는 봄에 온다 하고 겨울에 떠난 임 아직 풀지 못한 그리움 그대로입니다   겨울 잔바람 피하려 먼 곳에 있는 노란 흰나비 빨리 오라 하는 것은 진달래 빨리 피워 임 오는 날 앞당기려 합니다                 긴 봄날    허영자     어여쁨이랴 어찌  꽃뿐이랴   눈물겹기야 어찌 새 잎뿐이랴   창궐하는 발병 죄에서조차 푸른 미나리 내음 난다 긴 봄날엔 ㅡ   숨어사는  섧은 情婦    난쟁이 오랑캐꽃 외눈 뜨고 내다본다 긴 봄날엔 ㅡ                                                                                     나비야 나비야         주병률(1960 ㅡ  ) 경주.1992년 현대시 등단.   봄, 하루해 짧아서 강물에 떠 가는 꽃잎 하나 보지 못하네   붉거나 희거나 그 꽃잎 떠나고 빈자리 사무쳐 밤바람 흥성한 봄날 저녁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애타는 마음 죄가 여기 있었네 그 꽃잎 내 안에 있었네               내사랑은           송수권   저 산마을 산수유꽃도 지라고 해라 저 아랫뜸 강마을 매화?도 지라고 해라 살구꽃도 복사꽃도 앵두꽃도 지라고 해라 하구 쪽 배밭의 배꽃들도 다 지라고 해라 강물 따라가다 이런 꽃들 만나기로서니 하나도 서러울 리 없는 봄날 정작 이 봄은 뺨 부비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 때문 저 양지 쪽 감나무밭 감잎 움에 햇살 들치는 것 이 봄에는 정작 믿는 것이 있기 때문 연초록 움들처럼 차오르면서 햇빛에도 부끄러우면서 지금 내 사랑도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며 크는 것 아니랴 감잎 움에 햇살 들치며 숨가쁘게 숨가쁘게 그와 같이 ? 부비는 것 소근거리는 것 내 사랑 저만큼의 기쁨은 되지 않으랴                                      내 손에 남은 봄          강인한   부드러운 능선의 칼금을 문 하늘 위로 제비가 왔다 생일이면 내 전생에 상제의 딸을 엿본 죄로 여기 서서   담 너머 눈부신 향기가 날아오고 영롱한 구슬소리가 종일토록 늙은 벚나무 꽃잎을 털어 목욕을 마친 그대 속살의 본홍 그대 속살의 향긋한 흰빛을 다 비춰줄 때까지 기다린다   후생의 내가 살아 바라보는 스스로의 옷이 문득 낯설고 오랜 기다림에 목이 말라 자꾸만 거울을 보는데 뒤꼭지 까만 밤이 발을 적실 듯 길게 흘러나온다   사랑이여 펼치고 펼쳐서 내 손에 남은 봄이 이제 많지 않다               내 척박한 가슴에 온 봄    김영승   우리 동네 향긋한 들길을 걸으면 두엄냄새 상큼히 코끝 찌르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학동들 등에 맨 예쁜 가방 위에 쌓인 변두리 황토 흙먼지 과수원 나무 사이사이 쥐불은 검게 타고 목장 젖소들 음매음매 되새김질 하는데 작은 교회 지붕에 숟가락처럼 걸린 십자가도 눈물겹고 이제 다시 돌아온 탕자의 무거운 발길 또 무섭다 무슨 변고가 또 있을까 나 같은 죄에 물든 미물도 다 살아가는데 새싹이 돋을 거라고 꽃이 또 필 거라고 그 무슨 못다 기다린 슬픈사람이 남아 있다고 봄비가 내리듯 술로 적셔야겠다 썩은 고목에 버섯이라도 돋게 해야겠다                         늦은 봄날                          강인한                           간장 항아리 위에                         둥근 하늘이 내려오고                         매지구름 한 장                         떴다가                         지나가듯이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가끔은 내 생각도 하는지                            늦은 봄날 저녁                          머언 그대의 집 유리창에                          슬며시 얹히는 놀빛                          모닥불로 피었다가                          스러지듯이                                                                                                       놓치다 봄날                        이은규                            저만치, 나비가 난다                          생의 귓바퀴에 봄을 환기시키는 운율로                            저 흰 날개에 왜                          기생나비란 이름이 주어졌을까                          색기없는 기생은 살아서 죽은 기생                          모든 색을 날려 보낸 날개가 푸른빛으로 희다                          잡힐 듯 잡힐 듯, 읽히지 않는 나비의 문장 뒤로                          먼 곳의 네 전언이 거기 그렇게 일렁인다                          앵초꽃이 앵초앵초 배후로 환하다                          바람이 수놓은 습기에                          흰 피가 흐르는 나비날개가 젖는다                          젖은 날개의 수면으로 햇살처럼 비치는 네 얼굴                          살아서 죽은 날들이 잠시 잊힌다                             이 봄날 나비를 쫓는 일이란,                           내 기다림의 일처럼 네게 닿는 순간 꿈이다                           꿈보다 좋은 생시가 기억으로 남는 순간                           그 생은 살아서 죽은 나날들                              바람이 앵초 꽃잎에 앉아                            찰랑, 허공을 깨뜨린다                            기록이 없을 나비의 문장에 오래 귀 기울인다                            꼭 한 뼘씩 손을 벗어나는 나비처럼                            꼭 한 뼘이 모자라 닿지 못하는 곳에 네가 있다                              어느 날 저 나비가                            허공 무덤으로 스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봄날,                            기다리는 안부는 언제나 멀다                                                                              다시 봄이 왔다                           이성복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둥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착지근한 혀,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었다                          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 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처럼                          갈기갈기 찢기우며 아우성치며 울고불고 머리칼 쥐어뜯고 몸부림 치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풀잎 아래 엎드려 숨죽이며 가슴엔 윤기나는 석회암이 깊었다                                                                                        시집 문지. 1986년                                                               대책없는 봄                            임영조                             무엇이나 오래 들면 무겁겠지요.                              앞뜰의 목련이 애써 켜든 연등을                            간밤엔 죄다 땅바닥에 던졌더군요                              고작 사나흘 들고도 지루했던지                             파업하듯 일제히 손을 털었더군요                               막상 손 털고 나니 심심했던지                             가늘고 긴 팔을 높이 뻗어서 저런!                             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챕니다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하느님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지만                             마을 온통 웃음소리 낭자합니다                               들불 같은 소문까지 세상에 번져                             바야흐로 낯 뜨거운 시절입니다                               누구 짓일까                             거명해서 무엇하지만                               맨 처음 발설한 것은 매화년이고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덩달아                             희희낙낙 나불댄 게 아니겠어요                                싹수 노란 민들레가 망보는 뒤꼍                              자꾸만 수상쩍어 가보니                                이런!                               겁없이 멋대로 발랑까진 십대들 ....                                 냉이 꽃다지 제비꽃 환하더군요.                                 몰래 숨어 꼬나문 담뱃불처럼                               참 발칙하고 앙증맞은 시절입니다                               나로서는 대책없는 봄날입니다                                                                           더딘 슬픔                           황동규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무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마저 놓치지 않으려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나는 봄                                                                    따뜻한 봄날                          김형영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웅큼 한웅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로카르노의 봄      헤세   우듬지들이 어두운 불 속에서 나부낀다 신뢰에 찬 푸르름 속에 더 어린아이처럼 더 새롭게 모든 것이 보라는 듯 열려 있다   자주 디뎌 낡은 계단들이 환심을 사려는 듯 영리하게 산 쪽으로 기울어 있다 불타 버린 담벼락으로부터 맨 먼저 핀 꽃들이 가녀리게 나를 부른다   산 개울이 초록 고추냉이 속을 헤집는다 바위들은 물방울 떨어뜨리고 해는 핥는다 기꺼이 잊을 용의가 있는 나를 본다 낯선 곳은 쓴맛이 난다는 것을                          먼 곳에서부터                      김수영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서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섭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몸살, 찔레꽃 붉게 피는                            오정국                             그 어디서 누가                           이토록 간절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어                           난데없이 내 입에서 이런 노래가 흘러나올까 찔레꽃,                           붉게 피는                            해질녘이면                          그 어딘가에서                          또 다른 내가 저물고 있듯이                            여태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도 풍경이 있고                          책이 있고                          출렁거리는 물결이 있기에                             내가 강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을 때                           누군가 등 뒤에서 내 몸을 일으켜주었다 그런                           이야기다, 이 끝나지 않는 문장은                             때때로 시가 되고                           강가의 모닥불이 되고                           불 곁의 목쉰 노래, 노랫가락이 되어                           이 마음 이리 서성거리고                             그 어디서 누가                           이토록 간절하게 노래를 불러                           난데없이 내 몸이 이런 몸살을 앓을까 찔레꽃,                           붉게 피는                                                                                  시집 세계사 2005                                                                                                                                                                                                                                                                                                                                                                                                                 몹쓸 꿈     김소월   봄 새벽의 몹쓸 꿈 깨고 나면! 우짖는 까막까치, 놀라는 소리 너희들은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   봄철의 좋은 새벽, 풀 이슬 맺혔어라 볼지어다, 세월은 도무지 편안한데 두새 없는 저 까마귀, 새들게 우짖는 저 까치야 나의 흉한 꿈 보이느냐?   고요히 또 봄바람은 봄의 빈들을 지나가며 이윽고 동산에서는 꽃잎들이 흩어질 때 말 들어라, 애틋한 이 여자야, 사랑의 때문에는 모두 다 사나운 조짐인 듯, 가슴은 뒤노아라              바람과 봄          김소월   봄에 부는 바람, 바람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내몸에는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봄길                           김명인                            꽃이 피면 마음 간격들 한층 촘촘해져                          김제 봄들 건너는데 몸 건너기가 너무 힘겹다                          피기도 전에 봉오리째 져내리는                          그 꽃잎 부리러                          이 배는 신포 어디쯤에 닿아 헤맨다                          저 亡海 다 쓸고 온 꽃샘바람 거기 부는 듯                          몸 속에 곤두서는 봄 밖의 봄바람!                          눈앞 해발이 양쪽 날개 펼친 구름                          사이로 스미려다                          골짜기 비집고 빠져나오는 염소떼와 문득 마주친다                          염소도 제 한 몸 한 척 배로 따로 띄우는지                          만경萬傾 저쪽이 포구라는 듯                          새끼 염소 한 마리                          지평도 뿌우연 황삿길 타박거리며 간다                          마음은 곁가지로 펄럭거리며 덜 핀 꽃나무                          둘레에서 멈칫걸자 하지만                          남몰래 출렁거리는 상심은 아지랑이 너머                          끝내 닿을 수 없는 항구 몇 개는 더 지워야 한다고                          닻이 끊긴 배 한 척                                                                          시집< 길의 침묵> 문학과 지성사. 1999년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 가지를 꺾다        박성우                                                        상처가 뿌리를 내린다                               화단에 꺾꽂이를 한다                             눈시울 적시는 아픔                             이 악물고 견뎌내야                             넉넉하게 세상 바라보는                             수천개의 눈을 뜰 수 있다                               봄이 나를 꺾꽂이 한다                             그런 이유로 올봄엔                             꽃을 피울 수 없다 하여도 내가                             햇살을 간지러워하는 건                             상처가 아물어가기 때문일까                               막무가내로 꺾이는 상처,                             없는 사람은 꽃눈을 가질 수 없다                               상처가 꽃을 피운다                                   봄 나들이        정양(1942 - ) 전북 김제. 우석대 교수.   지긋지긋한 이 아파트 말고 어느 산기슭 어느 시냇가에 집 하나 짓고 예쁘게 사는 것이 아내는 소원이라 한다 말 못하는 짐승들도 기르고 오가는 새들 모이도 뿌려주면서 채소랑 곡식이랑 감 대추들 다 가꾸어 고맙고 다정하고 아까운 이들과 골고루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런 소원쯤 언젠가 못 들어주랴 싶고 사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 산기슭 그런 시냇가를 틈날 때마다 눈 여기며 나는 늙는다 먼 길 나다니는 차창마다 그런 산천을 먼발치로 탐내는 것이, 부끄럽지만 어느새 버릇이 되어 있다 친해지는 건지 철이 드는 건지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햇빛 바르고 물길도 곱고 바람 맑은 곳 혼자서 점찍어보는 그런 그리운 데가 나다니다보면 참 많기도 하다 점찍어 보는 데가 너무 많은가 간이라도 빼주고 싶은 아내에게 간 빼낼 재주가 나에게는 영 없는가 간도 쓸개도 뱃속에 있기나 한가   모처럼 아내와 나선 봄나들이 나이 들수록 속절없이 산천은 곱다 꽃범벅으로 점찍어보는 그리움들이 먼발치로 자꾸 외면하면서 지나간다                    봄날에선가  꿈속에선가 릴케   어느 봄날에선가 꿈 속에선가 나 언제였던가 너를 만난 것이 지금 이 가을날을 우리는 함께 걷고 있다 그리고 너는 내 손을 쥐고 흐느끼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 때문에 우는가? 핏빛처럼 붉은 나뭇잎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리 언제였던가 한 번은 네가 행복했기 때문이리라 어느 봄날에선가 꿈 속에선                봄날에 글을 읽다가     정약용(1762-1836)   아침 해 맑은 눈을 녹이고 맑은 창엔 똑똑똑 물방울 소리 독서란 본래 즐거운 것 경세에 어찌 이름을 추구하리 요임금 순임금 때는 풍속이 질박했고 이윤과 부열은 몹시 근면했지 나도 늦게 태어난 것은 아니니 먼 훗날의 희망을 품어 보노라                 봄날 아침       로렌스(1885-1930) 영국     아아, 열린 방문 저쪽 저기 있는 것은 아몬드나무 불꽃 같은 꽃을 달고 있다 이제 다투는 일은 그만두자   아아, 열린 방문 저쪽 저기 있는 것은 아몬드나무 불꽃 같은 꽃을 달고 있다 이제 다투는 일은 그만두자   이제는 정말 봄! ㅡ 보라 저 참새는 자기 혼자라 생각하면서 그 얼마나 꽃을 못살게 구는가 너와 나는   얼마나 둘이서 행복해지랴, 저걸 보렴 꽃송이를 두드리며 건방진 모습을 하고 있는 저 참새 하지만 너는 생각해 본 일이 있니?   이렇듯 괴로운 것이라고. 신경쓰지 말지니 이제는 끝난 일 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름처럼 행복해지고 여름처럼 우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죽었었다 죽이고 피살된 것이니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나는 새로운 느낌과 열의를 지니고 다시 한번 출발하려 마음 먹는다   살고 잊는다는 것 그리고 또한 새로운 기분을 가진다는 것은 사치다 꽃 속의 새가 보이는가? ㅡ 저것은 흔히 취하는 일 없는 큰 소동을 벌이고 있다   저 새는 이 푸른 하늘 전부가 둥지 속에서 자기가 품고 있는 작고 푸른 하나의 알보다 훨씬 작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해진다 너와 나와 그리고 나와 또 너와   이제 다툴 일이란 하나도 없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보라 방문 밖의 세계는 얼마나 호화로운가                  봄날 오후       김선우   늙은네들만 모여앉은 오후 세시의 탑골 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악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마시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머리를 매만져주며 그 영감탱이 꼬리를 치잖여 ㅡ 징그러바서 높은 음표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징,그,러, 바, 서, 거죽이 해진 분첩을 열어 코티분을 콕콕 찍어바른다 봄날 오후 세 시 탑골 공원이 꽃잎을 찍어놓은 젖유리차엥 어름어름 젊은 나도 백여시처럼 클클 웃는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 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오래도록 듣는다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 싶다                      봄눈          정호승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봄바람   김억 하늘하늘 잎사귀와 춤을 춥니다 하늘하늘 꽃송이와 입맞춥니다 하늘하늘 어디론가 떠나갑니다 하늘하늘 떠서 도는 하늘 바람은 그대 잃은 이 내 몸의 넋들이외다                봄바람    김종해 개같이 헐떡이며 달려오는 봄 새들은 깜짝놀라 날아오르고 꽃들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속치마 바람으로 반쯤 문을 열고 내다본다 그 가운데 숨은 여자 정숙한 여자 하얀 속살을 내보이는 목련꽃 한 송이 탓할 수 없는 것은 봄뿐이 아니다 봄밤의 뜨거운 피가 천지에 가득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뜨뜻해지는 개 같은 봄날!               봄바람 맞는 노인     王伯(1277-1350) 고려 문신   어젯밤 산촌에 가랑비가 부슬부슬 대숲 밖 복사꽃이 환하게 피었네 봄빛에 취했나 백발의 저노인 꽃가지 꺾어 머리에 꽂고 봄바람 맞네              봄보다 따뜻한       문복주(1952-)     삼일 내내 눈 내리고 정형이 무너진 지리산 산골   눈길 따라 토끼 눈만 내놓고 여린 짐승으로 기어가며 낄낄거리는 아내                  봄볕     문 태준     오늘은 탈이 없다 하늘에서 한 움큼 춤쳐내 꽃병에 넣어두고 그 곁서 잠든 바보에게도 밥 생각없이 종일 배부르다 나를 처음으로 쓰다듬는다 오늘은 사람도 하늘이 기르는 식물이다                  봄볕에 굽다     고 영 봄볕 좋은 날 네 식구가 마당에 멍석을 깔아 앉아 숯불 화덕에 석쇠를 걸쳐놓고 꽃삼겹살을 굽습니다 봄볕에 익은 아이의 볼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숯불 속에도, 꽃 삼겹살 위에도 개나리 노란 꽃잎이 기분좋게 피었습니다 고기 굽는 냄새에 몸이 달아오른 동네 개들은 울대가 꺾이도록 짖어대고 우리 안 돼지들은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 갑니다 집짐승들의 사소한 소란 속에 봄볕은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게 내 집 마당에 평등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꽃 삼겹살 위에 봄볕이 자글거리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의 봄날은 얼마나 무료했을가요 살가운 봄볕에 구워진 자리마다 노란 개나리꽃이 꽃잎만 따먹어도 나는 배가 불렀습니다                     봄빛              이경진(1968 - ) 나는 그곳에 두터운 겨울 외투를 입고 갔었다 무채색에서 연두색을 도발하고 있던 햇살이 어린 것들을 바닥에 품고 겨울을 흘러온 진주 남강의 허리를 낚아채고 있었다 자기 땅에서 유배된 자들*을 쓰다듬다가 나도 그처럼 담담하게 낡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D단조가 햇빛에 변주되어 강물의 몸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그날, 그대는 어느 골목에서 마른 울음을 삼키고 있을까 생각했었다 죽은 자를 위한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 내 몸이 쪽빛 강물이고 싶던 오후   낯선 정거장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화사한 봄옷을 입고 촉석루 공원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늙은 부부와 그 위를 날아다니던 작은 새들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몇 번 버스가 그냥 지나가고 눈이 시려 왔다               봄빛소견    김석규 새로 돋은 풀잎을 물고 새들이 날아오른다 봄이 오는 길목에 무량으로 내리는 햇살 첫아이 초등학교 입학 시키고 가는 걸음으로 온다 아까부터 마을 쪽에선 아지랑이 타는 냄새 자운영 꽃밭 속으로 송아지는 달아나고 퍼담을 수 없는 바람만 종일 불고 있다                           봄 섬진강  박라연 백사장에는 촛불 켜놓고 물새들에게 쌀을 바친 마음들이 새하얗다 물새가 흘린 답례의 눈물 울음웅덩이 이루는 데 함께 살면서 각자 살아온 발자국들이 덩달아 울어버린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음 함께 아파한 적 많을 것 같은 봄 섬진강 저 반짝이는 물결들 속엔 어젯밤 내 심장을 떠난 거친 눈물들 맑게 씻겨져 끼여 있다는 것 굳은살처럼 박혀 있는 잘못된 인연 씻고 또 씻다 보면 안다 그 인연 수의 입히어 모래무덤 속에 묻어줘야 한다는 것 봄 섬진강의 제망매가 들으면 안다 심장이 터지도록 켜켜이 숨이 피는 꽃을 문신하며 사는 꽃 혈통이라는 것 자목련 백목련 청매화 홍매화 다투어 가의 무릎 베고 눕는 자태 보면 안다 봄 섬진강은 상처를 반짝이게 하는 文靑이라는 것 깊은 물의 연두 바람의 풋풋한 방황 나눠 마시는 것을 보면 안다 사람의 이슬을 알아봐주는 커다란 눈동자라는것                        봄소식          천상병 입춘이 지나니 훨씬 춥구나! 겨울이 아니고 봄 같으니 달력을 아래 위로 쳐다보기만 한다   새로운 입김이여 그건 대지의 작난인가! 꽃들도 이윽고 만발하리라   아슴푸레히 반짝이는 태양이여 왜 그렇게도 외로운가 북극이 온지대가 될 게 아닌가                       봄소풍     박성우 봄비가 그쳤구요 햇발이 발목 젖지 않게 살금살금 벚꽃길을 거니는 아침입니다 더러는 꽃잎 베어문 햇살이 나무늘보마냥 가지에 발가락을 감고 있구요 아슬아슬하게 허벅지 드러낸 버드나무가 푸릇푸릇한 생머리를 바람에 말리고 있습니다 손거울로 힐끗힐끗 버드나무 엉덩이를 훔쳐보는 저수지 나도 합세해 집적거리는데 얄미웠을까요 얄미웠겠지요 힘껏 돌팔매질하는 그녀   손끝을 따라 봄이 튑니다   힘껏 돌팔매질 하는 그녀 신나서 폴짝거릴 때마다 입가에서 배추흰나비떼 날아오릅니다 나는 나를 잠시 버리기로 합니다                        봄, 싫다        이규리 백골 단청, 하얀 절 한 채 지금 막 무너지고 있다 그걸 받아 안는 한낮 무너져도 소리가 없다 저걸 누가 고요라 했겠다 언제 왔다 갔는지 만개한 벚나무 아래 신발 한 켤레   봄마다 땅 속으로 마약을 주사하는지 이맘때, 거품 물고 사지를 틀다 몸서리 잦아드는 마흔 노총각이 있지 깜빡 까무러진 대낮이 있지 백약이 무효한 청춘 덤불처럼 걷어내고 이내 어깨를 허문 잠 누가 고요라 했겠다   더 이상 속지 말자 해놓고 속는데 꽃 탓이라 하겠나 약 탓이라 하겠나 너무 가까워서 안 보이는 것도 있지 취하게 하는 건 향이 아니라 취하고 싶은 제 뜻일 텐데   그래, 나무가 언제 꽃 피웠나!                     봄아, 오너라    이오덕(1925-2003) 청송 먼 남쪽하늘 눈 덮힌 산봉우리를 넘고 따스한 입김으로 내 이마에 불어오너라   양지쪽 돌담 앞에 소꿉놀이하던 사금파리 밑에서 새파란 것들아, 돋아나거라   발가벗은 도토리들 가랑잎 속에 묻힌 산기슭   가시덤불 밑에서 달래야, 새파란 달래야, 돋아나거라   종달새야, 하늘 높이 솟아올라라 잊었던 노래를 들려다오   아른아른 흐르는 여울 물가에서 버들피리를 불게 해다오 쑥을 캐게 해다오   개나리꽃 물고 가는 노랑 병아리 새로 받은 교과서의 아, 그 책 냄새 같은   봄아, 오너라 봄아 , 오너라                 봄아침           양애경 새벽 잠자리에서 반쯤 깨어 양쪽 어깨에 번갈아 얼굴을 묻으며 누군가 안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호 호 호 호이오 휘파람새가 노란색 장미 꽃잎을 수없이 감았다가 펼쳐 보여 주었다                    봄아침      이해인 창틈으로 쏟아진 천상 햇살의 눈부신 색실 타래   하얀 손 위에 무지개로 흔들릴 때 눈물로 빚어 내는 영혼의 맑은 가락   바람에 헝클어진 빛의 울을 정성껏 빗질하는 당신의 손이 노을을 쓸어 내는 아침입니다   초라해도 봄이 오는 나의 안뜰에 당신을 모시면 기쁨 터뜨리는 매화 꽃망울   문신 같은 그리움을 이 가슴에 찍어 논 당신은 이상한 나라의 주인   지울 수 없는 슬픔도 당신 앞엔 축복입니다                    봄에게1   김남조 아무도 안 데려오고 무엇 하나 들고 오지 않는 봄아 해마다 해마다 혼자서 빈 손으로만 다녀온 봄아 오십 년 살고나서 바라보니 맨손 맨발에 포스스한 맨머리결 정녕 그뿐인데도 참 어여쁘게 잘도 생겼구나 봄아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엄원태 몸 풀린 청량천 냇가 살가운 미풍 아래 수북해서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 위에 은실삼단 햇살다발 소복하니 얹혀 있고 방울방울 공기의 해맑은 기포들 바라보는 눈자위에서 자글자글 터진다   냇물에 발 담근 채 붓둑에 퍼질고 앉은 아낙네 셋 미나리를 냇물에 씻는 아낙네들의 분주한 손들 너희에게 묻고 싶다 다만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산자락 비탈에 한 무더기 조릿대들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노라 자랑하듯 햇살에 반짝이며 글썽이는 잎 잎들 너희에게도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만 하다고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봄 연못       프로스트 이 연못들, 숲속에서도 언제나 흠 잡을데 없는 하늘을 비추고 곁에 있는 꽃처럼 추위에 떨기도 하고 곁에 있는 꽃처럼 이내 사라지기도 할게다 하지만 개울이나 강이 되어 사라지는 대신에 뿌리 타고 올라가 어두운 잎을 이루리   나무는 그 새싹 속에 숨기고 있으니 여름 숲이 되어 자연을 어둡게 하는 힘 나무여, 다시 생각해 다오, 어제 눈이 녹은 물 그 꽃 같은 물을 그 물 같은 꽃을 빨아들여 마시고 쓸어버리는 데에만 그 힘을 모두 써버릴건가                                   봄은          이대흠                               조용한 오후다                               무슨 큰일이 닥칠 것 같다                               나무의 가지들 세상 곳곳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숨 쉬지 말라                               그대 언 영혼을 향해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지 알 수 없다                               마침내 그곳에서 탕, 탕, 탕, 탕 세상을 향해 쏘아대는 저 꽃들                               피할 새도 없이 하늘과 땅에 꽃들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이다    ----> 등단 당시 오세영 시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거셌음.                                                                                                                                                                    봄은 또 어이해서 찾아오는가         임보                                    지난 온 겨울을                                    진눈깨비로 절인 산과 들판에                                    봄은 또 어쩌자고                                    그 작은 해빙의 가는 물소리로                                    찾아오는 것인가?                                      지난 온 겨울을                                    북풍에 찢긴                                    빈 나뭇가지 마른 풀잎 위에                                    봄은 또 어쩌자고                                    그 여린 꽃눈으로                                    솟아오르는가?                                      지난 온 겨울을                                    호열자보다도 무서운                                    매서운 零下로 가득했던 골목                                    그리하여 주민들은                                    눈과 귀를 그들의 두터운                                    커튼 뒤에 숨기고                                    病棟처럼 죽어 있었던 빈 마을에                                    봄은 또 어쩌자고                                    그 푸른 유혹의 입김, 아지랑이로                                    그렇게 피어오르는가?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1900-1929)대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금성 3호. 1924년                       봄은 전쟁처럼           오세영                  늦바람 무섭다더니                  겨우내 적멸로 돌아가리라                  일제히 한 잎마저 벗고 동안거에 들었던 나뭇가지들                  입춘 지나 우수 지나 웅성 꿈틀거린다                  저, 저, 어누새 툭 불거진 눈방울 두릿두릿한 산수유 좀 보게                  살 오른 목련 봉오리 봉긋한 털가리개 좀 보게                  진달래 영산홍 아뜩한 입술부터 샐쭉, 적멸보궁이 눈앞이라도 못 참겠네 못참아                  여든 살 삭정이도 무릎을 일으켜 세우다 우지끈!                  큰일났네 산너머 전쟁이 온다네                  울긋불긋 아롱다롱 아무도 안죽고 무덤마저 살아나는 전쟁이 온다네                                                                                      봄은 해마다 ㅡ 괴테                                         꽃밭은 어느 새                                         언덕이 되어 흔들리고                                         그 곳에서 작은 꽃송이들이                                         새하얗게 나폴거린다                                         사프란이 활짝 피어                                         작열해 있고                                         스마라그드 꽃순도                                         핏빛으로 돋아난다                                         앵초꽃은 의기양양하게                                         뽐내고 있고                                         약삭빠른 제비꽃은                                         애써 숨는다                                         언덕에 존재하는 만물이                                         꿈틀거리고 피어나니                                         완연히, 봄은                                         소생하며 활동하도다                                         정원에는 꽃들이                                        화창하게 피어나니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고운 마음이로다                                        그 곳에는 끊임없이 나를 향한                                        불타는 눈길에                                        노래가 흘러나오고                                        즐거운 말이 샘솟는다                                        언제나 열려 있는                                        꽃들의 마음은                                        진지한 가운데 정답고                                       익살스런 가운데 순수하다                                       장미와 백합이 피는                                       여름이 와도                                       봄의 꽃들은                                       지지 않으리라                              봄을 기다리는 마음  신석정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봄을 그대에게            릴케                                   갖가지의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서 걷는 사람만                                   언젠가 한 번은 봄을 볼 수 있으리                          봄을 맞는 폐허에서       김해강 어제까지 나리든 봄비는 지리하던 밤과 같이 새벽바람에 고요히 깃을 걷는다   산기슭엔 아즈랑이 떠돌고 축축하게 젖은 땅우엔 샘이 돋건만 발자취 어지러운 옛 뒤안은 어이도 이리 쓸쓸하여 ...   볕 엷은 양지 쪽에 쪼그리고 앉어 깨어진 새검파리로 성을 쌓고 노는 두셋의 어린아이   무너진 성터로 새어 가는 한 떨기 바람에 한숨지고 섯는 늙은이의 흰 수염은 날린다   이 폐허에도 봄은 또다시 찾아왔건만 불어 가는 바람에 뜻을 실어 보낼 것인가 오 ㅡ 두근거리는 나의 가슴이여! 솟는 눈물이여!   그러나 나는 새벽바람에 달음질치는 동무를 보았나니 철벽을 깨트리고 새 빛을 실어 오기까지 오 ㅡ 그 걸음이 튼튼하기만 비노라 이 가슴을 바쳐 ㅡ                             봄의 금기사항       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 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여 사랑은 그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 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문학사상 2003년 5월호                         봄의 연못들     프로스트 숲 속에 있지만 거의 온 하늘을 깨끗이 담아주는 이 연못들은 연못가의 꽃들처럼 추워서 떨다가 그꽃들마냥 사라지리라 하지만 강이나 개울로 흐르지 않고 뿌리를 타고 올라 왕성한 잎을 피워내리라   자연을 짙게 물들이고 찬연한 여름 숲을 이를 힘을 그들의 숨겨진 봉우리에 감추고 있는 나무들 겨우 엊그제, 쌓인 눈에서 녹아내린 꽃같은 물과, 물과 같은 꽃들을 지우고 마시고 쓸어가 버릴 그 힘을 다 사용하기 전에 침착히 그 의미를 생각하여라                  봄의 줄탁            도종환 모과나무 꽃순이 나무껍질을 열고 나오려고 속에서 입술을 움찔움찔 거리는 걸 바라보다 봄이 따뜻한 부리로 톡톡 쪼며 지나간다 봄의 줄탁 금이 간 봉오리마다 좁쌀알 만한 몸을 내미는 꽃ㄷㄹ 앵두나무 자두나무 산벚나무꽃들 몸을 비틀며 알에서 깨어나오는 걸 바라본다 내일은 부활절   시골 교회 낡은 자주색 지붕 위에서 세워진 십자가에 저녁 햇살이 몸을 풀고 앉아 하루 종일 자기가 일한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애지.2006년 봄호.                         봄의 진동          고재종 조팝나무에 피죽새 운다 하여 그 소리 듣고자 뒷산에 갔더니만 아무리 귀 쫑긋대고 눈 씻어보아도 하늘은 정정하고 연둣빛만 차오를 뿐인데 대마침 저기 숲수평에서 꿩 꿔엉...적막을 깨는 장끼 소리에 순간 조팝꽃 새하얀 그 긴 꽃자루들이 바르르 떨리며 은잎 꽃잎 빗살 속에 마구 뿌리던 것이라니                            봄의 幻          남진우 봄이 오고 있다 몸속의 얼음이 녹아 조금씩 밖으로 스며 나오고 있다 나는 먼 나라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고 혼잡한 거리를 걷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몸 속의 추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저울이 기울어진다 땅엔 구름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있어 빗방울을 내리게 하는 걸까 새 한 마리 날아가는 모습에도 나는 텅 빈다 대기 속을 떠도는 햇살의 씨앗에 얼굴을 부비며 나를 끌어당기는 천상의 자석을 떠올린다 길가의 상점 유리창마다 하나씩 나를 남겨두고 나는 걷는다 잔잔한 바람에도 몸 전체로 번겨가는 잎파랑 눈을 감고 한 세기가 저물기를 기다리지만 내 몸은 어느덧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르고 자전거를 탄 아이가 길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봄이 와서 머무는 자리 몸속의 저울이 간신히 평형을 회복한다                         봄이 그냥 지나요      김용택                             올 봄에도                            당신 마음 여기 와있어                            여기 이렇게 내 다니는 길가에 꽃들 피어나니                            내 마음도 지금쯤                            당신 발길 닿고 눈길 가는데 꽃 피어날 거에요                            생각해보면 마음이 서로 곁에 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 않을 것 같아도                            우린 서로                            꽃 보면 쓸쓸하고                            달 보면 외롭고                            저 산 저 새 외롭고                            밤새워 뒤척여져요                            마음이 가게 되면 몸이 가게 되고                            마음이 안 가더래도                            몸이 가게 되면 마음도 따라가는데                            마음만 서로에게 가서                            꽃 피어나 그대인 듯 꽃 본다지만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어요                            당신도 꽃산 하나 갖고 있고                            나도 꽃산 하나 갖고 있지만                            그 꽃산 철조망을 두른 채                            꽃 피었다가                            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                            이 봄이 그냥 지나고 있어요                                  봄이되면     김용택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박영희 그냥 가도 좋으련만 회색빛 겨울 하늘은 기어이 어머니 머리에 내려앉아 흰머리 한올 심어놓고 가고   지리한 겨울 대지보다 먼저 당신의 품으로 씨앗들 품은 채 밭은 기침 몇번으로 지난 가을을 용서해버린 아버지는 파란 하늘에 파종을 하고   삼월이라 햇살도 고와 낮에 뿌린 씨앗들 밤이면 별로 돋아나 대지는 아침을 열고 하늘은 탄식을 걷어내고                                                         봄처녀    이은상(1903 -1982) 경남 마산                       봄처녀 제 오시네 새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님찾아 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리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볼꺼나                          봄 한낮       박규리 치자향 흐드러진 계단 아래 반달이랑 앉아 하염없이 마을만 내려다본다 몇 달 후면 철거될 십여호 외정마을 오늘은 홀로 사는 누구의 칠순잔친가 이장집 스피커로 들려오는 홍탁에 술 넘어가는 소리 소리는 계곡을 따라 산으로 오르지만 보지 않아도 보이고 듣지 않아도 들리는 그리운 것들은 다 산 아래 있어서 마음은 아래로만 흐른다 도대체 누구 가슴에 스며들려고 저 바람은 속절없이 산을 타고 오르느냐 마을 개 짖는 소리에 반달이는 몸을 꼬며 안달을 하는데 나는 어느 착한 사람을 떠나 흐르고 흐르다가 제비집 같은 산중턱에 홀로 맺혀 있는가 곡진한 유행가 가락에 귀 쫑긋 세운 채 반달이보다 내가 더 길게 목을 뽑아 늘인다                   봄 햇살 속으로   이해인 긴 겨울이 끝나고 안으로 지쳐 있던 나 봄 햇살 속으로 깊이 깊이 걸어간다 내 마음에도 싹을 틔우고 다시 웃음을 찾으려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을 감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 끝자리에는 지금껏 보았지만 비로소 처음본 푸른 하늘이 집 한채로 열려있다                                    봄, 희망            김영승                            일곱달 째 신문대가 밀려                            신문도 끊겼다                            저녁이면 친구인 양 받아보던 신문도                            이제 오지 않는다                            며칠 있으면 수도도 전기도 끊길 것이다                            며칠 있으면                            이 생명도 이 몸에서 흘리던 핏줄기도                            끊길 것이다                            은행의 독촉장과 법원의 최고장                            최후통첩장                            수많은 통고장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아내가 보낸 절교장도                            그 위에 놓여있다                              진달래가 피었노라고                            아내에게 쓰던 편지 위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가장 빛나는 것을                            나는 한 장 집어 들었다                     불취 불귀       허수경(1964 - ) 진주 어느 해 봄 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없는 봄 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이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 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만 없다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5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   3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조선문단 18호.                      산도화        박목월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산방山房의 밤       왕발(650-676) 당나라 거문고 안고 방문을 열어놓고 술잔을 잡고 情人을 대한다 숲 속의 못가, 달밤의 꽃 아래 또 다른 하나의 봄나라                 술받으러 가는 봄       이화은 물병아리 한 마리가 딱 반 되짜리 주전자 뚜껑만한 고것이 겁 없이 봄강을 끌고 가네 꼬리 물살이 풍경화 속 원근법 같기도 하고 후라쉬 비추고 가는 외로운 밤길 같기도 한데 고 뚜껑이 잠시 물 속으로 잠수라도 해버리면 강은 덩치 큰 아이처럼 철없이 길을 쏟아버리고 마는데 반 되가 턱없이 말술이 되기도 한다는 걸 오래된 풍경화 속 원, 근, 어디쯤에 후라쉬 불빛 가까이 들이대고 보면 거기 쭈그러진 아버지 반 되짜리 주전자 꽥꽥 혼자서 울고 있다네 술 받으러 가는 아이처럼 물병아리 달그락달그락 추억 쪽으로 너무 멀리 가지 말거라 봄은 겉 늙어버린 덩치만 큰 아이 같으니                              아득한 봄날       정진규                       모내기 전 무논 가득                       슬어놓은 개구리 알 도룡뇽 알들                       동그랗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알간 유리창                       그 안에 새까아만 외눈동자 하나씩                       눈 뜨고 있다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한창이던 찔레꽃 하얗게 눈발 날리고                       아득하다                       달래 간장에 밥 비벼먹고 나온                       심심한 동네 아이들                       개구리 알 도롱뇽 알 쪼그려 들여다보다가                       외눈박이다 도깨비 새끼다아                       논두렁길 줄지어 내달리는 한낮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하이네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온갖 꽃망울들이 피어날 때에                                    내 가슴 속에도                                    사랑이 움텄네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온갖 새들이 지저귈 때에                                    그리운 그대에게                                    불타는 사랑을 고백했지                                       아무도 없는 봄  이승훈 밖에 나가 음메 하고 돌아오고 방에 있다 다시 나가 하늘 보고 음메 하고 돌아오네 아무도 없는 봄 대문앞에서 지나가는 닭을 보고 음메 하고 돌아오지 책 읽다 말고 가슴이 막히면 또 뛰어나가 음메 하고 돌아오는 봄 머리 아프면 번개처럼 뛰어나가 골목 보고 음메 하고 지나가는 개를 보고 음메 하면 개가 웃지 웃어라 나를 먹어라 이 뼈다귀를 먹고 진창을 먹고 귀신을 먹어라 다시 돌아와 방에 앉지만 사는게 지옥이든 천국이든 밥 먹다 말고 다시 나가 음메 하고 돌아오는 봄                    어느 봄날  나희덕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 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 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 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연분홍          김억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살구꽃이 눈을 틉니다                            연분홍 송이송이 못내 반가와                          나비는 너훌너훌 춤을 춥니다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살구꽃이 나부낍니다                            연분홍 송이 송이 바람에 지니                          나비는 울며울며 돌아섭니다                                                           애모             김소월 왜 아니 오시나요 영창에는 달빛, 매화꽃이 그림자는 산란히 휘젓는데 아이, 눈 꽉 감고 요대로 잠을 들자   저 멀리 들리는 것! 봄철의 밀물 소리 물나라의 영롱한 구중궁궐, 궁궐의 오요한 곳 잠 못 드는 용녀의 춤과 노래, 봄철의 밀물 소리   어두운 가슴 속의 구석구석 .... 환연한 거울 속에, 봄구름 잠긴 곳에 소슬비 나리며, 달무리 둘녀라 이대도록 왜 아니 오시나요, 왜 아니 오시나요                      오는 봄              김소월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나 보내라 오늘 보니 백양의 뻗은 가지에 전에 없이 흰 새가 앉아 울어라   그러나 눈이 깔린 두덩 밑에는 그늘이냐 안개냐 아지랑이냐 마을들은 곳곳이 움직임 없이 저편 하늘 아래서 평화롭건만   새들게 지껄이는 까치의 무리 바다를 바라보며 우는 까마귀 어디로서 오는지 종경소리는 젊은 아기 나가는 조곡일러라   보라 때에 길손도 머뭇거리며 지향없이 갈 발이 곳을 몰라라 사무치는 눈물은 끝이 없어도 하늘을 쳐다보는 삶의 기쁨   저마다 외로움이 깊은 근심이 오도 가도 못하는 망상거림에 오늘은 사람마다 님을 여의고 곳을 잡지 못하는 설움일러라   오기를 기다리는 봄의 소리는 때로 여읜 손끝을 울릴지라도 수풀 밑에 서러운 머리결들은 걸음걸음 괴로이 발에 감겨라                                 올봄        김용택                           올 봄엔 때없이 바람이 불곤 하였습니다                           저물녘에 잠들었던 바람이                           한밤중에 깨어나                           잠긴 문을 아무데나                           흔들어대곤 했습니다                           아무도 문 열지 않았습니다                           나도 이불 속에서                           생각을 생각하며                           생각이 자리잡히지 않아                           돌아눕곤 했습니다                           잠들어 누운 대로 눈 뜨면                           새벽별 하나가                           금 간 벽 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습니다                                                                                                                        울 엄마 봄          정완영                               바빠진 우리 엄마 맨발 벗고 나선 엄마                               지독한 두엄 냄새 떡 주물듯 주물면서                               구덩이 호박씨 심고, 새 소리도 심는대요                                 어째서 울 엄마는 귀도 그리 밝은 걸까?                               흙 냄새 간질간질, 빗소리도 간질간질                               상추씨 촉 트는 소리도 간질간질 들린대요                      이따금 봄이 찾아와  나희덕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말을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중에서 얼어붙는다 허공에 닿자 굳어버리는 거미줄처럼 침묵의 소문만이 무성할 뿐 말의 얼음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따금 봄이 찾아와 새로 햇빛을 받는 말들이 따뜻한 물 속에 녹기 시작한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지랑이처럼 물 오른 말이 다른 말을 부르고 있다 부디 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하시라                               이래도 안오시겠어요        박남준                    아른아른 아지랭이가 먼 산들에 피어오르는 이 봄날                    겨우내 묵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들녘에 가보아요                    양지쪽마다 새순 곱게 피어올리는 냉이며 달래 씀바귀                                                                            이른 봄      톨스토이                            이른 봄                            풀은 겨우 고개를 내밀고                            시냇물과 햇빛은 약하게 흐르고                            숲의 초록색은 투명하다                               아직 목동의 피리 소리는 아침마다                             울려 퍼지지 않고                             숲의 작은 고사리도                             아직은 잎을 돌돌 말고 있다                               이른 봄                             자작나무 아래서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내리깔고                             내 앞에 너는 서 있었다                               내 사랑에게 보내는 응답으로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던 너                             생명이여!  숲이여!  햇빛이여!                             오오, 청춘이여!  꿈이여!                                                              이른 봄    헤세 바람이 밤마다 포효한다 그 축축한 날개가 무겁게 퍼덕인다 도요새들이 공중에서 비틀거린다 이제 아무 것도 더 잠자지 못한다 이제 온 땅이 깨었다 봄이 부르고 있다   가만, 가만히 있어라 내 마음아! 피 속에서도 비좁고 무겁게 격정이 솟구쳐 너를 옛길로 해서 인도하더라도 ㅡ 젊음 쪽으로는 이제 네 길이 가지 않는다                                이른 봄      호프만 시탈                        봄바람이 달려 간다                        잎사귀 없는 가로수 사이를                        이상한 힘을 가진                        봄바람이 달려 간다                          흐느껴 우는 소리 나는 곳에서                        봄바람은 몸을 흔들었고                        사랑에 가슴 아파 하는 아가씨의 흩어진 머리칼에서                        봄바람은 흔들었다                          아카시아 나무를 흔들어                        아카시아꽃을 떨어뜨리고                        숨결 뜨겁게 내몰아 쉬고 있는                        두 연인을 싸느다랗게 했다                          소리내어 웃고 있는 아가씨의                        입술을 웃고 있는 아가씨의                        입술을 살짝 어루만졌고                        부드러운 봄날에 눈을 뜬 들판을                        여기저기 찾아다닌 것이다                          목동이 부는 피리 속을 빠져 나와                        흐느껴 우는 소리와도 같이                        새벽놀 붉게 물든 곳을                        훨훨 날아 지나온 것이다                          연인들이 속삭이고 있는 방을 빠져 나와                        봄바람은 말없이 날았다                        그리고 희미한 낚시 불빛을                        허리를 굽히면서 끄고 온 것이다                          봄바람이 달려 간다                        잎사귀 없는 가로수 사이를                        이상한 힘을 가진                        봄바람이 달려간다                         벌거숭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미끌어지듯 지나가면서                       봄바람의 입김은                       창백한 그림자를 뒤따른다                         지난 밤부터 불고 있는                       이른 봄날의 오솔바람은                       향긋한 냄새를 지니고                       이 마을에 찾아왔다                                          이른 봄  아침          정지용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여 들어와                              참한 은시게로 자근자근 얻어맞은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러저                             수은방울처럼 동글동글 나동그라저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 싫어라                               쥐나 한마리 훔켜 잡을 듯이                             미다지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 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 새이로                             빠알간 산새새끼가 물레ㅅ북 드나들듯                               새새끼 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회파람이라                             새새씨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 ㅡ 저쪽으로 몰린 푸로우ㅇ피일 ㅡ                             페랑이꽃 빛으로 볼그레 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깎어 세운 대리석 기둥 인듯                             간ㅅ뎅이 같은 해가 익을거리는                            아침 하늘을 일심으로 떠바치고 섰다                             봄ㅅ바람이 허리띄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 오노니                             새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22호.1927년 2월                              이번 봄         정진규 요즈음엔 자주 절대예감 같은 게 찾아온다 이번 봄 해인사 가서 또 그걸 보았다 장경각 가파른 계단 올라 들여다보다가 나무 창살 사이로 드나드는 꽃바람결 한참을 만지다가 장경각 바닥에 떨어져 조금씩 배밀이 하는 봄 햇살 살 오른 햇살도 한참을 만나다가 아무래도 해독되지 않는 경판들 쌓인 높이만 아득하게 더듬다가 저녁 예불 시간까지 기다리면 기필코 황홀 하나 만지게 되리라는 그게 왔다 보았다!  법고였다 마음 心자로 한참을 휘몰아가던 북채가 마지막 마음 心자로 북 바닥을 드윽 긁고 지나갔다 몇 번을 그랬다 열렸다 터졌다 법을 끝낸 손, 어혈의 손에서 피가 듣고 있었다 나도 직방 돌아서 내 법고가 되어 있는 팽팽한 여자를 마음 心자 하나로 드윽 긁었다 열렸다 터졌다 경판 한 장을 새기었다 이번 봄                                   이 봄의 노래          정희성                               무엇이 이 산에 꽃을 피우나                               봄이 오면 해마다 진달래 피어                               이 마음 울연히 붉어오겠네                               가야지 어찌 아니 돌아가리                               그리운 보리밭 푸른 하늘아                               정답던 친구 어디 가고                               이 봄만 남아 푸르러지나                               만나면 부둥켜 울고 싶어서                               4월은 꽃보다 더욱 붉어라                                                      이제는 봄이구나   이해인 강에서는 조용히 얼음이 풀리고 나무는 조금씩 새순을 틔우고 새들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불러내고 이제는 봄이구나 친구야 바람이 정답게 꽃이름을 부르듯이 해마다 봄이면 제일 먼저 불러보는 너의 고운 이름 너를 만날 연둣빛 들판을 꿈꾸며 햇살 한 줌 떠서 그리움, 설레임, 기다림... 향기로운 기쁨의 말을 적는데 꽃샘바람 달려와서 네게 부칠 편지를 먼저 읽고 가는구나, 친구야                   일용직 정씨의 봄         이명윤 벚꽃 가득한 풍경을 파일에 담는다 휴대폰을 여는 순간 (봄이다) 부르튼 입술이 봄을 한입 베어 물면 당신 잠시나마 봄이 되지 않을까 한가하게 봄 타령이라니요 어쩌면 쓴웃음 짓겠지만 언제 또 다른 일 찾아야 할지 모를 불안이 습관적으로 피고 지는 저녁 밥이 되지 못하는 봄이란 사치스런 감성으로 피고 지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길 가 벚나무의 수많은 입이 터뜨리는 환한 웃음에 저게 다 출그도장이면 저게 다 밥이면 좋겠네 당신 잠깐의 미소로 행복할 수 있다면 봄이 그저 당신의 얼굴을 스쳐가는 가벼운 은유로 머물지라도 늦은 밤 찬밥을 얹은 숟가락에 꽃잎 한 장 올려주고 싶네 (계약기간을 연장합니다) 기다리던 통보가 오지 않는 당신의 저녁 계약하지 않아도 매년 찾아오는 봄 당신이 잃어버린 봄날의 한 컷을 돌려드리고 싶네                                     일획             장석주                       초봄에 매화 꽃눈 돋다, 어제와 다른 하늘 밑                       내닫는 호랑이다, 호랑이 눈동자다, 저 꽃들!                       아버지 가고 맞은 늦봄 천지에 모란꽃 붉다                       벚 꽃잎 분분하게 무너진다, 저 끊긴 인연들                       자다 깨다 설친 밤 개구리 떼 서책 읽는 소리                       물 빠진 개펄에 혼자 서 있는 민댕기물떼새                      오동은 곧고 소나무 굽었다, 무릇 금생이다                      풍란이 허공에 붓을 친다, 획이 굽은 듯 곧다                      하마 당신 올까, 무서리에도 꿋꿋한 까치밥                      아, 살아 움직인다, 명월 아래 기러기 떼 서체                      매화 국화 다 진 뒤 초겨울 앵두나무에 박새                      가는 길에 꽃 없어 섭섭할까 가지마다 설화!                                                                장터의 봄      김수우                            도살장에 팔려갈 늙은 소의 코끝에 붙은                            살구꽃잎 한 장                            소와 ?잎이 들여다보는                            길끝, 광주리 하나 걸어온다                              살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 시장꾸러미에 높다랗게 얹혀 실려가는                            붓꽃 몇 송이                            나를 본다, 모든 꽃은                            오랜 약속에 붙이는 느낌표이다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다                      적선        길상호(1973 - ) 충남 논산 마음이 가난한 나는 빗방울에도 텅텅텅 속을 들키고 마는 나는   뭐라도 하나 얻어 보려고   계절이 자주 오가는 길목에 앉아 기워 만든 넝마를 뒤집어쓰고 앉아   부끄러운 손 벌리고 있던 것인데   깜빡 잠이 든 사이 아무 기척도 없이 다가와 너는 깡통 가득 동그란 꽃잎을 던져 넣고 갔더라   보지도 못한 얼굴이 자꾸 떠올라 심장이 탕탕탕 망치질하는 봄 깡통처럼 찌그러든 얼굴을 펼 수 없는 봄                                첫치마            김소월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지고 잎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 난 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 치마를                                    눈물로 함빡이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초록 기쁨-봄 숲에서          정현종                         해는 출렁이는 빛으로                         내려오며                         제 빛에 겨워 흘러넘친다                         모든 초록, 모든 꽃들의                         왕관이 되어                         자기의 왕관인 초록과 꽃들에게                         웃는다.  비유의 아바지답게                         초록의 샘답게                         하늘의 푸른 넓이를 다해 웃는다                         하늘 전체가 그냥 기쁨이며 신전이다                           해여, 푸른 하늘이여,                         그 빛에, 그 공기에                         취해 찰랑대는 자기의 즙에 겨운,                         공중에 뜬 물인                          나뭇가지들의 초록 기쁨이여                            흙은 그리고 깊은 데서                          큰 향기로운 눈동자를 굴리며                          넌즈시 주고 받으며                          싱글거린다                            오 이향기                          싱글거리는 흙의 향기                          내 코에 댄 깔때기와도 같은                          하늘의, 향기                          나무들의 향기!                                                                               초봄    송길자                              겨우내 헝클어진 산수유 울타리에                              신행 온 햇살들이 입김들을 나누는 날                              북성산 냉이 돌나물 봄을 살짝 엿본다                                개나리 진달래꽃 신접 난 담장 아래                              보라빛 목련 가지에 맑은 바람 걸어주고                              작약순 흙을 비집고 빨간 촉수 내민다                                                                           초봄          정완영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마리 날아가며 하늘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                                                               초봄이 오다      하종오                          산수유 한 그루 캐어 집에 옮기려고                          산에 가만가만 숨어들었다                          나무는 뿌리를 밑으로 밑으로 내려놓았겠지                          자그마한 산수유 찾아 삽날을 깊숙이 꽂았다                          이제 한 삽 뜨면 산에게서 내게로 올 게다                          겨울 내내 집 안은 텅 비고 날 찾아오는 이 없었어                          이제 마당귀에 산수유 심어놓고                          그 옆에서 꽃 피길 기다리면                          이 산이라도 날 찾아오겠지                          삽자루에 힘을 주어도 떠지지 않아서                          뿌리 언저리 손으로 파헤쳐보았다                          산수유는 뿌리를 옆으로 옆으로 벌려놓고 있었다                          나는 삽날 눕혀 뿌리 밑을 돌아가며                          둥그렇게 뜬 뒤 밑동 잡고 들어올렸다                          한 그루 작은 산수유 실뿌리 뚜두두둑 뚜두두둑 끊기자                          산에 있던 모든 산수유들 아픈지 파다닥파다닥                          노란 꽃망울들 터뜨렸다                                                                              춘니春泥          김종길                              여자대학은 크림빛 건물이었다                              구두창에 붙은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게 숨이 차는 언덕길 끝은                              파릇한 보리밭 ....                              어디선가 연식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기엔 아직 철이 일렀지만                              언덕 위에선,                              신입생들이 노고지리처럼 재잘거리고 있었다                                                                                   춘래불사춘      양채영(1935 - ) 문경                                배반한 놈들의 이름과 낯짝                                그 말소리와 웃음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창 밖에선 봄눈이 친다                                오락가락 재수없는 잎눈은 얼겠지                                배반은 쉽다                                배반은 차갑다                                꽃샘바람에 실려                                내리는 눈발은                                얼까 녹을까 망설이며                                어지러이 어지러이                                이 창 밖에 분분하다                                                                                     1966등단                                               춘설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호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어름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귀롭어라                                         옹숭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귀던 고기입이 오믈 거리는                                         꽃 피기전 철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春信     유치환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춘일      오탁번                                          풀귀얄로                                          풀물 바른 듯                                          안개 낀 봄산                                          오요요 부르면                                          깡종깡종 뛰는                                          쌀강아지                                          산마루 안개를                                          홑이불 시치듯 호는                                          왕겨빛 햇귀                                                                                            시안. 2005년 봄호                                 하얀 봄   오남구(계간 시향 주간) 이른 아침 티 없이 하얀 봄 속으로 내가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고 집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글을 쓰다가 책상 위에 놓고 나간 봄의 A4하얀 종이 위엔 내 작은 키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어제 밤에 늦게까지 시를 말하며 마신 커피 그 붉은 눈을 뜨고 있는 카페인이 잠을 설쳐 놓아서 몽롱한 배경이 깔려 있다 엎지른 물도 얼룩을 남기고 있다 내가 승차장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하얀 봄 교향악이 울려 퍼지자 반짝하고 파랗게 보리밭이 떠오른다                                 해마다 봄이 되면         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햇빛이 말을 걸다     권대웅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 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피파의 찬가         로버트 브라우닝(1812 -1889) 계절은 이른 봄 시간은 아침 아침 중에도 일곱 시 저 뒷동산 구름에 이슬구슬 맺혔다 노고지리 퍼덕이고 달팽이 가시 위에 앉아 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니 이 세상이 평화롭도다               하늘 펄펄 꽃사태     박두진 어떻게 당신은 내게 믿음을 주셨을까 당신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셨을까 그때 내 영혼 홀로 방황하고 칠흑 벌판 끝도 없는 무인 광야 사막 소낙비 천둥 번개 우릉대고 깨지고 우박 폭풍 폭설 펑펑 퍼붓다가도 갑자기 햇덩어리 폭양 펄펄 용광으로 끓어 동남서북 어딜 가나 절망뿐인 천지 진실로 나는 광야에서 나고 자란 어린 들짐승 스스로를 저주하고 스스로를 연민 해온 외롭고도 완강한 탕자였나니 말을 하는 짐승 날 수 없는 영혼 피로 이은 향수와 날고 싶은 꿈 오늘도 내일도 어제도 모르고 목숨도 혼도 영도 그냥 그래도 넘어지며 일어서며 상처뿐인 영혼에 놀라워라 무지갤지 섬광일지 하늘 사다릴지 할렐루야 그 십자가 길 피로 사서 이기신 부활이신 당신 앞에 황홀하나니 진실로 바라는 것의 그 실상이며 영생이신 당신 믿음의 그 증거이신 사랑이신 당신 하늘 펄펄 꽃사태의 영광 우러러 탕자 하나 무릎 꿇고 울음 울어라  
864    명시인 - 김억 댓글:  조회:4359  추천:0  2015-04-05
봄은 간다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 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요점 정리  지은이 : 김억(金億)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에 가까움. 각운(-다,-데, -ㅁ), 3·4조 혹은 4·4조 의 음수율  성격 : 감상적, 상징적, 낭만적, 독백적  표현 : 감정이입법, 영탄법, 대구법(각 연이 2행 대구로 됨)  어조 : 봄밤에 대한 애상적 어조  심상 : 공감각적 이미지  구성 : 1-3연 가는 봄의 아쉬움과 상실감 4-5연 시대 상황이 주는 절망감 6연 침묵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 7연 가 버린 봄에 대한 탄식  제재 : 봄밤  주제 : 봄밤의 애상적 정서, 상실한 자의 애상적 정서  특징 : 감정이입, 대구법(2행 1연의 대구), 3·4조 1음보와 2음보의 교체, 대구법의 잦은 사용으로 딱딱한 느낌→완전한 자유시가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출전 : (1918)   내용 연구 밤(어둠, 암담한 현실의 상징)이도다 봄(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상실의 존재,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희망의 시간)이다.[대조를 통해 애상감 부각, 시간적 배경을 제시한 시구다. 밤은 암담한 현실의 상징이고 봄은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희망의 시간이다. 양자의 대조를 통하여 봄밤에 느끼는 섬세한 애상이 표현된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애달픈 심정을 드러냄)[희망이 없는 암담한 현실에서 봄은 생각에만 그친다. 시적 화자의 애달픈 심정을 표현한 시구다. '-데'의 각운이 나타난다.]  날은 빠르다.(덧없음, 아쉬움) 봄은 간다.(덧없이 가는 세월의 무상감을 표현하는 시구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아득하기만 한데, 시인이 창조한 시적 허용어)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무상감으로 생각은 더욱 많고 아득하기만 한데 슬픈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새'에 시인의 시적 감정이 이입이 되었다. '아득이는데'는 시적 조어(造語)로 '아득하다'라는 형용사에 동사의 연결어미 '-는데'를 붙여서 만들어 낸 말이다.]  검은 내(검은 밤 안개) 떠돈다. 종 소리 빗긴다.(비껴 간다,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소리)[검은 밤 안개와 들리지 않고 비껴가는 종 소리. 시적 자아가 인식하는 암담한 주변 상황을 표현한 시구다. '종 소리 빗긴다'는 표현은 청각이 시각으로 전이(轉移)한 공감각적 표현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침묵해야 하는 현실) 소리 없는 봄의 가슴[말로 드러내어 표현할 수 없는 애달픈 밤의 서러움과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봄에 대한 애상을 표현한 시구다. '-ㅁ'의 각운을 보여 준다.]  꽃은 떨어진다.('봄은 간다'에 상응하는 표현으로 상실감이 드러남) 님은 탄식한다.[가 버린 봄에 대한 탄식을 표현한 시구다. 이 글에서 '님'은 지금까지 표현된 주체로 보아서 시적 화자로 해석할 수 있다.]    밤 : 어둠, 암담한 현실의 상징  봄 :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상실의 존재,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희망의 시간  아득이는데 : 아득하기만 한데, 시인이 창조한 시적 허용어  빗긴다 : 비껴 간다  밤이도다 / 봄이다. : 시간적 배경을 제시한 시구다. 밤은 암담한 현실의 상징이고 봄은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희망의 시간이다. 양자의 대조를 통하여 봄밤에 느끼는 섬세한 애상이 표현된다.  밤만도 애달픈데 / 봄만도 생각인데 : 희망이 없는 암담한 현실에서 봄은 생각에만 그친다. 시적 화자의 애달픈 심정을 표현한 시구다. '-데'의 각운이 나타난다.  날은 빠르다. / 봄은 간다. : 덧없이 가는 세월의 무상감을 표현하는 시구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 무상감으로 생각은 더욱 많고 아득하기만 한데 슬픈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새'에 시인의 시적 감정이 이입이 되었다. '아득이는데'는 시적 조어(造語)로 '아득하다'라는 형용사에 동사의 연결어미 '-는데'를 붙여서 만들어 낸 말이다.  검은 내 떠돈다. / 종 소리 빗긴다. : 검은 밤 안개와 들리지 않고 비껴가는 종 소리. 시적 자아가 인식하는 암담한 주변 상황을 표현한 시구다. '종 소리 빗긴다'는 표현은 청각이 시각으로 전이(轉移)한 공감각적 표현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 소리 없는 봄의 가슴 : 말로 드러내어 표현할 수 없는 애달픈 밤의 서러움과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봄에 대한 애상을 표현한 시구다. '-ㅁ'의 각운을 보여 준다.  꽃은 떨어진다. / 님은 탄식한다. : 가 버린 봄에 대한 탄식을 표현한 시구다. 이 글에서 '님'은 지금까지 표현된 주체로 보아서 시적 화자로 해석할 수 있다.   이해와 감상 암담한 시대 상황을 인식한 데서 비롯된 작품으로, 독백체의 표현과 간결한 구조를 통하여 주관적 정서를 절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밤, 애달픈데, 간다, 깊은 생각,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밤의 설움,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등 일련의 이미지와 사물의 연쇄를 통해 상징주의 취미의 '암시·몽롱·밝음도 어둠도 아닌 음울·절망·염생(厭生)의 비조(悲調)'를 나타냄으로써 시적 상황을 모호하게 하였다. 이러한 모호한 형상화로써 이 시는 봄밤에 시적 자아가 까닭 없는 상실감으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느끼는 연민과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최초의 자유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주요한의 '불놀이'(1919)보다 앞서 발표된 것으로 문예 주간지 에 실린 선구적 작품이다. 이 시엔 교훈이나 계몽 의식의 보이지 않으며 한문투의 문장에서 벗어나 순 우리말을 구사하고자 한 흔적이 뚜렷하다. 완전한 내재율의 시는 되지 못하였지만 식민지 지식인 청년의 심리적 고뇌를 3.4조, 4.4조의 애조 띤 민요 가락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체 7연으로 각 연이 2행씩 형태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1,3,5,7연에는 '-다' 형태의 종지부가 나타나고, 2연에 '-데', 6연에 '-ㅁ'의 각운에 의한 율격 효과를 노리고 있다. 시 전체의 분위기는 어둡고 침울한데 어두운 현실을 '밤, 바람, 검은 내' 등의 상징적 시어로 표현하여 상징주의 경향을 느낄 수 있다. 신시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던 당시에 형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순 우리말을 구사한 한글시를 정착시키려 노력한 점을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심화 자료  김억(金億) 1896∼? 시인·평론가. 본관은 경주(慶州). 처음 이름은 희권(熙權), 뒤에 억(億)으로 개명하였으며, 필명으로 안서 및 안서생(岸曙生), A.S., 또는 본명 억(億)을 사용하였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 아버지는 기범(基範)이며, 어머니는 김준 (金俊)이다. 5남매 중 장남이다. 출생 연도는 호적상으로 1896년으로 되어 있으나, 김억 유족의 말에 의하면 1895년이라고 한다. 오산학교(五山學校)를 거쳐 1913년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영문과에 진학하였다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그 뒤 오산학교(1916)와 숭덕학교(崇德學校) 교원을 역임하였고, 동아일보사(1924)와 매일신보사 기자를 지냈으며, 한동안 ≪가면 假面≫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1934년 중앙방송국에 입사하여 부국장까지 지냈고, 8·15광복 후 육군사관학교와 항공사관학교 및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 출강한 적도 있었다. 6·25남침 당시 피난하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그의 계동 집에서 납북되었다. 그 뒤의 행적은 확실하지 않다. 1904년 고향에서 박씨가(朴氏家)의 규수와 혼인하였으나, 1930년 중반에 사별하고, 1944년 봄 신인순(辛仁順)과 재혼하였다. 문단 활동으로는 1914, 1915년 ≪학지광 學之光≫에 시 〈이별 離別〉·〈야반 夜半〉·〈나의 적은 새야〉·〈밤과 나〉 등을 발표한 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1918년 ≪태서문예신보 泰西文藝新報≫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번역과 소개 및 창작시를 발표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그 뒤 창조 및 폐허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창조 創造≫·≪폐허 廢墟≫·≪영대 靈臺≫·≪개벽 開闢≫·≪조선문단 朝鮮文壇≫·≪동아일보≫·≪조선일보≫ 등에 시·역시(譯詩)·평론·수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1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진 프랑스 상징파의 시와 타고르·투르게네프 등 해외 문학의 번역·소개에 있어서의 구실과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 과정에 그가 남긴 공적은 매우 컸다. 특히, 1921년 광익서관(廣益書館)에서 간행된 우리 나라 최초의 역시집 ≪오뇌(懊惱)의 무도(舞蹈)≫가 폐허 및 백조동인들의 초기 시에 미친 영향은 더욱 주목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행한 전신자적(轉信者的) 역할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1923년에 간행된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한국 최초의 근대시집으로서,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와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어 그의 전신자적 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연구에서도 선편(先鞭)을 잡고 그 보급을 위하여 강습소를 열기도 하였으며, ≪개벽≫에 〈에스페란토자습실〉을 연재하여, 뒤에 간행된 ≪에스페란토 단기강좌 Esperanto Kurso Ramida≫라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가 되었다. 또한, 김소월(金素月)의 스승으로서 김소월을 민요시인으로 길러냈고, 자신도 뒤에 민요조의 시를 주로 많이 썼다. 그리고 해외 시를 번역하는 데 주력한 다음, 이어서 민요시운동에도 적극성을 보였던 그는 1920년대 한국 근대시 형성기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였다. 첫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 전편에 흐르고 있는 감상주의적 색채는 역시집 ≪오뇌의 무도≫와도 그 맥락이 닿는다. 시적 서정의 단순성을 바탕으로 그 안에 시대의 아픔을 수렴시키고 새로운 율조를 창안하려는 실험의식에서 이 시집이 지니는 문학사적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기타 저서로는, 시집 ≪해파리의 노래≫ 이외에도 ≪불의 노래≫(1925)·≪안서시집≫(1929)·≪안서시초≫(1941)·≪먼동이 틀제≫(1947)·≪안서민요시집≫(1948), 역시집으로 ≪오뇌의 무도≫ 이외에 타고르의 시집 ≪기탄자리≫(1923)·≪신월 新月≫(1924)·≪원정 園丁≫(1924)·≪잃어진 진주≫(1924)가 있다. 한시 번역시집으로≪망우초 忘憂草≫(1934)·≪동심초 同心草≫(1943)·≪꽃다발≫(1944)·≪지나명시선 支那名詩選≫(1944) 2권·≪야광주 夜光珠≫(1944)·≪선역애국백인일수 鮮譯愛國百人一首≫(1944)·≪금잔듸≫(1947)·≪옥잠화 玉簪花≫(1949), 편저로 ≪소월시초≫(1939)·≪소월민요집≫(1948)이 있다. 산문집으로 학창여화 (學窓餘話)인 ≪사상산필 沙上散筆≫(1931)과 서간집 ≪모범서한문 模範書翰文≫ (1933) 등이 있다. 그밖에 중일전쟁 발발직후인 1937년 9월 종군간호부의 노래를 작사하였고, 일본의 고전인 ≪만엽집 萬葉集≫을 우리말로 변역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친일파군상(민족정경문화연구소 편, 1948), 韓國現代詩人硏究·其他(鄭泰榕, 語文閣, 1976), 韓國作家傳記硏究 下(李御寧, 同和出版公社, 1980), 韓國代表詩評說(鄭漢模·金載弘編, 文學世界社, 1983), 눈물의 詩人 金億論(朴貴松, 조선일보, 1936.2.23.∼29.), 岸曙의 先驅的位置와 文學(洪起三, 文學思想, 1973.5.), 近代民謠와 두 詩人(鄭漢模, 文學思想, 1973.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63    류시화 시모음 댓글:  조회:5535  추천:0  2015-04-05
류시화 시 모음 시 제목에 클릭하세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지금 알고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사랑이란 여행자를 위한 서시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 만났었다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누구든 떠나갈 때는 겨울의 구름들 안개 속에 숨다 잊었는가 우리가 전화를 걸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무 들 풀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두 사람만의 아침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그만의 것 세월 그건 바람이 아니야 뮤직박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잇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 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 거리자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명 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장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여행자를 위한 서시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물방울로 만나 물방울의 말을 주고받는  우리의 노래가 세상의 강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세상의 여행에 지치면 쉽게 한 몸으로 합쳐질 수 있었다 사막을 만나거든 함께 구름이 되어 사막을 건널 수 있었다 그리고 한때 우리는 강가에 어깨를 기대고 서 있던 느티나무였다 함께 저녁강에 발을 담근 채 강 아래쪽에서 깊어져 가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오랜 시간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함께 기울고 함께 일어섰다 번개도 우리를 갈라 놓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영원히 느티나무일 수 없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우리는 몸을 바꿔 늑대로 태어나 늑대 부부가 되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늑대의 춤을 추었고 달빛에 드리워진 우리 그림자는 하나였다 사냥꾼의 총에 당신이 죽으면 나는 생각만으로도 늑대의 몸을 버릴 수 있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이제 우리가 다시 몸을 바꿔 사람으로 태어나 약속했던 대로 사랑을 하고 전생의 내가 당신이었으며 당신의 전생은 또 나였음을 별들이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왜 나를 버렸는가 어떤 번개가 당신의 눈을 멀게 했는가 이제 우리는 다시 물방울로 만날 수 없다 물가의 느티나무일 수 없고 늑대의 춤을 출 수 없다 별들의 약속을 당신이 저버렸기에 그리하여 별들이 당신을 저버렸기에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마치 사탕 하나에 울음을 그치는 어린아이처럼 눈 앞의 것을 껴안고 나는 살았다 삶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그것이 꿈인 줄 꿈에도 알지 못하고 무모하게 사랑을 하고 또 헤어졌다 그러다가 나는 집을 떠나 방랑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등 뒤에 서면 다시 한번 쳐다본다 책들은 죽은 것에 불과하고 내가 입은 옷은 색깔도 없는 옷이라서 비를 맞아도 더 이상 물이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무엇이 참 기쁘고 무엇이 참 슬픈가 나는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생의 집착도 초월도 잊었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고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겨울의 구름들  1 겨울이 왔다 내 집 앞의 거리는 눈에 덮이고 헌 옷을 입은 자들이 지나간다 그들 중의 두세 명을 나는 알고 더 많은 다른 얼굴들은 알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소리쳐 그들을 부른다 내 목소리는 그곳까지 들리지 않는다 겨울은 저 아래 길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열중해 있는 것이다 2 겨울이 왔다 나의 삶은 하찮은 것이었다 밤에는 다만 등불 아래서 책을 읽고 온갖 부질없이 깊은 생각들에 사로잡힐 때 늘어뜨려진 가지, 때 아닌 붉은 열매들이  머리 위에서 창을 두드리고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희고 창백한 얼굴로 바깥을 내다보면 겨울의 구름들이 붉은 잎들과 함께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내 집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홀로 있었다 등불의 심지만을 들여다보며 변함 없는 어떤 흐름이 갑자기 멈춘 일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3 아니다,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책장에 얼굴을 묻고 참이 들곤 했다, 겨울이 왔다 나의 삶은 하찮은 것이었고 나는 오갈 데가 없었다 내 집 지붕 위로 겨울의 구름들이 흘러가는 곳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람은 그렇게 오래 불고 조용히 속삭이면서 더 큰 물결을 내 집 뒤로 데리고 온다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잊었는가 우리가 잊었는가 우리가 손잡고 나무들 사이를 걸어간 그 저녁의 일을 우리 등 뒤에서 한숨지며 스러지던  그 황혼의 일을 나무에서 나무에게로 우리 사랑의 말 전하던 그 저녁새들의 일을 잊었는가 우리가 숨죽이고 앉아서 은자처럼 바라보던 그 강의 일을  그 강에 저물던 세상의 불빛들을 잊지 않았겠지 밤에 우리를 내려다보던 큰곰별자리의 일을, 그 약속들을 별에서 별에게로 은밀한 말 전하던 그 별똥별의 일을 곧 추운 날들이 시작되리라 사랑은 끝나고 사랑의 말이 유행하리라 곧 추운 날들이 와서 별들이 떨어지리라 별들이 떨어져 심장에 박히리라  전화를 걸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마치 외로운 새 같다  긴 말을 늘어놓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당신은 한겨울의 저수지에 가 보았는가  그곳에는 침묵이 있다. 억새풀 줄기에 마지막 집을 짓는 곤충의 눈에도 침묵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침묵은 다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법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삶 그렇다, 나 또한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당신도 한때 사랑을 했었다. 그때 당신은 머리 속에 불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외롭다 당신은 생의 저편에 서 있다. 그 그림자가 지평선을 넘어 전화선을 타고 내 집 지붕 위에 길게 드리워진다..       나 무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주었다 내집뒤에  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때 그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들 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두 사람만의 아침 나무들 위에 아직 안개와 떠나지 않은 날개들이 있었다 다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었다 오솔길 위로 염소와 구름들이 걸어왔지만 어떤 시간이 되었지만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는, 여기 이 눈을 아프게 하는 것들 한때 한없이 투명하던 것들 기억 저편에 모여 지금 어떤 둥근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 그리고 한때 우리가 빛의 기둥들 사이에서 두 팔로 껴안던 것들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한때 우리가 물가에서 귀 기울여 주고받던 말들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고 새와 안개가 떠나간 숲에서 나는 걷는다 걸어가면서 내 안에 일어나는 옛날의 불꽃을 본다 그 둘레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숲의 끝에 이르러 나는 뒤돌아본다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 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게 달라고 물 솔의 물풀처럼 졸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 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시월의 빛 위로 곤충들이 만들어 놓은 투명한 탑 위로 이슬 얹힌 거미줄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가을 나비들의 날개짓 첫눈 속에 파묻힌 생각들 지켜지지 못한 그 많은 약속들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한때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삶을 불태우고 싶었다 다른 모든 것이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릴 때까지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빨리 내게서 멀어졌는가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여기, 거기, 그리고 모든 곳에  멀리, 언제나 더 멀리에 말해 봐 이 모든 것을 위로 넌 아직도 내 생각을 하고 있는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 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서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 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 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그만의 것 외딴 집에 홀로 사는 남자, 침묵은 그의 것 오후의 나른함과 권태는 그의 어깨죽지에서 피어오르고, 한두 시간쯤 시간을 내어 그가 산책하는 길에는 잎사귀가 넓은 붉은 꽃들이 피어있다, 붉은 꽃들 그의 그림자는 그의 것, 반항하지 않으며 그가 좋아하는 엉겅퀴풀들, 엉켜 있는 뿌리들, 시간의 얼룩들 위를 지나 우리는 가끔 마주치기도 하는 남자, 태양은 등 뒤에서 그의 뇌를 미지근하게 부풀린다 둥글고 딱딱한 것, 열에 들뜬 열매들 좁고 가파른 돌길을 걸어내려와 우리가 한쪽으로 비켜섰을 때 우리 발앞을 지나쳐간 남자, 그의 시간은 그만의 것, 그가 꿈꾸는 것과 위험한 생각들도 그만의 것 그가 비탈을 걸어 내려갈 때 그의 발이 굴러 떨어뜨리는 흙은 비탈에게 한 세계를 준다 그는 왜 모자를 썼을까, 왜 모자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을까, 그는 살아가는 일보다 꿈꾸는 일이 더 두렵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홀로 사는 남자, 이따금 한번도 내려가보지 않은 강 아래쪽의 풍경과 한 낮의 수증기, 구름들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오후에 한 두시간 쯤 시간을 내어 그는 어느 곳에 이른다 그의 삶은 그의 것, 그가 이르는 곳에는 그만이 서 있다, 꽃들의 그림자 그림자가 감추고 있는 그림자 산책하는 이들의 발길을 비웃는 비탈길에서 그는 미끄러진다, 미끄러져 내린다 우리가 놀고 있는 강 아래쪽으로 떠 내려온 남자, 죽음은 그의 것 햋빛을 피해 얼굴을 물 속에 처박고 뒤통수에 앉아 있는 검은 물잠자리도 그의 것, 이미 알수 없는 곳에 가 있고 알수 없는 그만의 것에 이끌려 있다   세 월 강물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강물이 소리내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그대를 만나 내 몸을 바치면서 나는 강물보다 더 크게 울었네 강물은 저를 바다에 잃어버리는 슬픔에 울고 나는 그대를 잃어버리는 슬픔에 울었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먼저 가 보았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그 서러운 울음을 나는 보았네 배들도 눈물 어린 등불을 켜고 차마 갈대 숲을 빠르게 떠나지 못했네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가 널 사랑하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야 불 붙은 옥수수밭처럼 내 마음을 흔들며 지나가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가 입 속에 혀처럼 가두고 끝내 하지 않은 말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 몸 속에 들어 있는 혼 가볍긴 해도 그건 바람이 아니야    뮤직 박스   나 어렸을 때 뮤직박스 하나를 갖고 있었다 태엽을 감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착했던 것 유리상자 안의 인형이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내 머리맡에 늘 놓여 있던 뮤직박스 나 잠이 들면 세상 전체가 뮤직박스가 되어 별자리들의 음악에 맞춰 끝없이 돌아가곤 했다 그것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슬픔을 잊었다 나는 나이를 먹고 뮤직박스는 어느새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집착했다 당신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잊었다 당신이 내 태엽을 감으면 나는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뮤직박스 속의 인형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당신은 그 뮤직박스를 버렸다 아무도 태엽을 감아 주는 이 없이 춤을 추던 그 동작 그대로 나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862    도종환 시모음 댓글:  조회:4917  추천:0  2015-04-05
도종환 시 모음 시 제목에 클릭하세요  가을사랑 겨울 골짜기에서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담쟁이 사연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인차리 5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사랑의 길 홍매화 돌아가는 꽃 흔들리며 피는 꽃 오월 편지 여린 가지 벗 하나 있었으면 홀로 있는 밤에 겨 울 나 기 그대 잘 가라 길 꽃씨를 거두며 끊긴 전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다시 떠나는 날 당신과 가는 길 당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아홉 가지 기도 어떤 편지 이 별 접시꽃 당신 종이배 사랑 풀잎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꽃잎 비 내리는 밤 늦깎이 깊은 물 어떤 날 맑은 물 어릴 때 내 꿈은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가죽나무 식민지의 이 푸르른 하늘 밑에... 만들 수만 있다면 먼 발치서 당신을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시집 - 부드러운 직선/시낭송(10편) 가을사랑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읍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읍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겨울 골짜기에서 낮은 가지 끝에 내려도 아름답고 험한 산에 내려도 아름다운 새벽눈처럼 내 사랑도 당신 위에 그렇게 내리고 싶습니다. 밤을 새워 당신의 문을 두드리며 내린 뒤 여기서 거기까지 걸어간 내 마음의 발자국 그 위에 찍어 당신 창 앞에 놓아두겠습니다. 당신을 향해 이렇게 가득가득 쌓이는 마음을 모르시면 당신의 추녀 끝에서 줄줄이 녹아 고드름이 되어 당신에게 보여주겠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바위처럼 돌아앉아 있으면 그래도 당신이 저녁산처럼 돌아앉아 있으면 바람을 등에 지고 벌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했었노라는 몇 줄기 눈발 같은 소리가 되어 하늘과 벌판 사이로 떠돌며 돌아가겠습니다.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 마음의 눈 녹지 않는 그늘 한쪽을  나도 함께 아파하며 바라보고 있지만  그대여 우리가 아직도 아픔 속에만 있을 수는 없다.  슬픔만을 말하지 말자. 돌아서면 혼자 우는 그대 눈물을 우리도 알지만  머나먼 길 홀로 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눈물로 가는 길 피 흘리며 가야 하는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밤도 가고 있는지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벗이여 어서 고개를 들자 머리를 흔들고 우리 서로 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 가자  그대여 아직도 절망이라고만 말하지 말자.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사연 한평생을 살아도 말 못하는 게 있습니다. 모란이 그 짙은 입술로 다 말하지 않듯 바다가 해일로 속을 다 드러내 보일 때도 해초 그 깊은 곳은 하나도 쏟아 놓지 않듯 사랑의 새벽과 그믐밤에 대해 말 안하는 게 있습니다 한평생을 살았어도 저 혼자 노을 속으로 가지고 가는 아리고 아픈 이야기들 하나씩 있습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연의 하나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서둘러 고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기다림으로 채워간다는 것입니다. 비어 있어야 비로소 가득해지는 사랑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몸 한쪽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아 골짝을 빠지는 산울음소리로 평생을 떠돌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흙에 묻고 돌아보는 이 땅 위에 그림자 하나 남지 않고 말았을 때 바람 한 줄기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모두 크고 작은 사랑의 아픔으로 절망하고 뉘우치고 원망하고 돌아서지만 사랑은 다시 믿음 다시 참음 다시 기다림 다시 비워두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찢긴 가슴은 사랑이 아니고는 아물지 않지만 사랑으로 잃은 것들은 사랑이 아니고는 찾아지지 않지만 사랑으로 떠나간 것들은 사랑이 아니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비우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큰 사랑의 그 속에 들 수 있습니까 한 개의 희고 깨끗한 그릇으로 비어 있지 않고야 어떻게 거듭거듭 가득 채울 수 있습니까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다시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인차리 5 인차리를 돌아서 나올 때면 못다 이룬 사랑으로 당신이 내게 슬픔을 남기고 떠나갔듯 나 또한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 때가 있음을 생각한다. 사랑으로 인해 꽝꽝 얼어붙은 강물은 사랑이 아니고는 다시 풀리지 않으리라 오직 한번 사랑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영원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확실히 살아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엔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번은 꼭 다시 만나야 하는 그날 우리 서로 무릎을 꿇고 낯익은 눈물 닦아주며 기쁨과 서러움으로 조용히 손잡아야 할 그때까지의 우리의 사랑을 생각하는 때문이다.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은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에게서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또 그렇게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남들은 그리움을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하지만 제게는 그리움도 살아있는 것이어서 목마름으로 애타게 물 한잔을 찾듯 목마르게 당신이 그리운 밤이 있습니다. 절반은 꿈에서 당신을 만나고 절반은 깨어서 당신을 그리며 나뭇잎이 썩어서 거름이 되는 긴 겨울동안 밤마다 내 마음도 썩어서 그리움을 키웁니다. 당신 향한 내 마음 내 안에서 물고기처럼 살아 펄펄 뛰는데 당신은 언제쯤 온몸 가득 물이 되어 오십니까 서로 다 가져갈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언제쯤 물에 녹듯 녹아서 하나되어 만납니까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쓸쓸히 자리를 펴고 누우면 살에 닿는 손길처럼 당신은 제게 오십니다. 삼 백 예순 밤이 지나고 또 지나도 꿈 아니고는 만날 수 없어 차라리 당신 곁을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바람처럼 제게로 불어오십니다.   사랑의 길 나는 처음 당신의 말을 사랑하였지 당신의 물빛 웃음을 사랑하였고  당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였지  당신을 기다리고 섰으면  강 끝에서 나뭇잎 냄새가 밀려오고  바람이 조금만 빨리 와도  내 몸은 나뭇잎 소리를 내며 떨렸었지  몇 차례 겨울이 오고 가을이 가는 동안  우리도 남들처럼 아이들이 크고 여름 숲은 깊었는데  뜻밖에 어둡고 큰 강물 밀리어 넘쳐 다가갈 수 없는 큰물 너머로  영영 갈라져버린 뒤론 당신으로 인한 가슴 아픔과 쓰라림을 사랑하였지  눈물 한 방울까지 사랑하였지 우리 서로 나누어 가져야 할 깊은 고통도 사랑하였고 당신으로 인한 비어있음과  길고도 오랠 가시밭길도 사랑하게 되었지.   홍매화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자락 덮어도 매화 한송이 그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을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홍매화 한 송이    돌아가는 꽃 간밤 비에 꽃 피더니  그 봄비에 꽃 지누나 그대로 인하여 온 것들은  그대로 인하여 돌아가리 그대 곁에 있는 것들은 언제나 잠시  아침 햇빛에 아름답던 것들  저녁 햇살로 그늘지리    흔들리며 피는 꽃 여린 가지 가장 여린 가지가 가장 푸르다. 둥치가 굵어지면 나무껍질은 딱딱해 진다. 몸집이 커질수록 움직임은 둔해지고 줄기는 나날이 경직되어 가는데 허공을 향해 제 스스로 뻗을 곳을 찾아야 하는 줄기 맨 끝 가지들은 한 겨울에도 푸르다 모든 나무들이 자정에서 새벽까지 견디느라 눈비 품은 잿빛 하늘처럼 점점 어두운 얼굴로 변해가도 북풍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가지는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엄동에도 초록이다. 해마다 꽃망울은 그 가지에 잡힌다.   벗 하나 있었으면 마음 울적할 때 저녁 강물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흙 속에서도 다시 먼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홀로 있는 밤에 이것이 진정 외로움일까  다만 이렇게 고요하다는 것이  다만 이렇게 고요하게 혼자 있다는 것이  흙 위에 다시 돋는 풀을 안고 엎드려  당신을 생각하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홀로 깊이 어두워져가고 있는 다만 이 짧은 순간을 외로움이라 말해도 되는 것일까  눈물조차 조용히 던지고 떠난 당신을 생각하면  진정으로 사랑을 잃고 비어 있는 것은 내가 아닌데  나도 당신으로 인해 이렇게 비어 있다고  내가 외롭다 말해도 되는 것일까  새로 돋는 풀 한 포기보다도 떳떳치 못하고 돌아오는 새들보다 옳게 견디지 못한 채  이것을 고독이라 말해도 되는 걸까  저 길고 긴 허공을 말없이 떨어져 어둔 땅 너머로 빗발들은 소리없이 잠겨가는데 빗방울 만큼도 참아내지 못하면서 겨우 몇 날 몇 해 홀로 길 걷는다고  쓸쓸하다 말해도 되는 것일까  흔들리기만 하면서 흔들리기만 하면서  고독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겨 울 나 기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 주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잃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그대 잘 가라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별들의 긴 눈물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름다와 보이는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잘 가라    길 아무리 몸부림쳐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정을 넘긴 길바닥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너는 울었지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는 길밖에 없을 거라는 그따위 상투적인 희망은 가짜라고 절망의 바닥 밑엔 더 깊은 바닥으로 가는 통로밖에 없다고 너는 고개를 가로 저었지 무거워 더이상 무거워 지탱할 수 없는 한 시대의 깃발과 그 깃발 아래 던졌던 청춘 때문에 너는 독하디 독한 말들로 내 등을 찌르고 있었지 내놓으라고 길을 내놓으라고 앞으로 나아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데 지금 나는 쫓기고 있다고 악을 썼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이라는 나의 간절한 언표들을 갈기갈기 찢어 거리에 팽개쳤지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던지는 모든 발자국이 사실은 길찾기 그것인데 네가 나에게 던지는 모든 반어들도 실은 네가 아직 희망을 다 꺾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너와 우리 모두의 길찾기인데 돌아오는 길 네가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던 안타까운 나의 나머지 희망을 주섬주섬 챙겨 돌아오며 나도 내 그림자가 끌고 오는 풀죽은 깃발 때문에 마음 아팠다. 네 말대로 한 시대가  그렇기 때문에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고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도대체 이 혼돈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너는 내 턱밑까지 다가와 나를 다그쳤지만 그래 정말 몇 면이 시 따위로 혁명도 사냥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한올의 실이 피륙이 되고 한톨의 메마른 씨앗이 들판을 덮던 날의 확실성마저 다 던져버릴 수 없어 나도 울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네 말대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 네 말대로 무너진 것은 무너진 것이라고 말하기로 한다 그러나 난파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렇게 잠겨갈 수만은 없다. 나는 가겠다 단 한 발짝이라고 반 발짝이라도    꽃씨를 거두며 언제나 먼저 지는 몇 개의 꽃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이슬과 바람에도 서슴없이 잎을 던지는  뒤를 따라 지는 꽃들은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시드는 꽃밭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어 주먹에 쥐며 이제 기나긴 싸움은 시작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고 삶에서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것이 남아있는 우리들의 사랑임을 압니다. 꽃에 대한 씨앗의 사랑임을 압니다.   끊긴 전화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였을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거리는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달려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그러했었다 나도 이 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항아리 깊은 곳에 버린 것을 눌러 담듯 가슴 캄캄한 곳에 저 혼자 삭아가도록 담아둔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나 혼자만 서성거리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을 허공에 던지다 단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돌아선 날들이 많았다. 이 세상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생 저 혼자 기억의 수첩에 썼다 지운 저리디 저린 것들이 있을 것이다 두 눈을 감듯 떠오르는 얼굴을 내리닫고 침을 삼키듯 목끝까지 올라온 그리움을 삼키고 입술 밖을 몇번인가 서성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되가져간 깨알같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한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였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 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다시 떠나는 날 깊은 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물고기처럼 험한 기슭에 꽃 피우길 무서워하지 않는 꽃처럼 길 떠나면 산맥 앞에서도 날개짓 멈추지 않는 새들처럼 그대 절망케 한 것들을 두려워 하지만은 않기로 꼼짝 않는 저 절벽에 강한 웃음 하나 던져 두기로 산맥 앞에서도 바람 앞에서도 끝내 멈추지 않기로   당신과 가는 길 별빛이 쓸고 가는 먼 길을 걸어 당신께 갑니다. 모든 것을 다 거두어간 벌판이 되어 길의 끝에서 몇 번이고 빈 몸으로 넘어질 때 풀뿌리 하나로 내 안을 뚫고 오는 당신께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이 땅의 일로 가슴을 아파할 때 별빛으로 또렷이 내 위에 떠서 눈을 깜빡이는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동짓달 개울물 소리가 또랑또랑 살얼음 녹이며 들려오고 구름 사이로 당신은 보입니다. 바람도 없이 구름은 흐르고 떠나간 것들 다시 오지 않아도 내 가는 길 앞에 이렇게 당신은 있지 않습니까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당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초저녁달이 떴습니다. 당신과 헤어지던 팔월입니다. 당신과 함께 죽음에 맞서 싸우던 그 뜨겁던 여름 석달처럼 올해도 뜨거운 여름입니다 당신에게서 얻은 겨자씨만한 사랑을 이 세상에 심고 가꾸는 일이 어찌 이리 어렵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는 죽음으로 가는 길까지도 하나 되어가지만 미워하는 사람 어두운 사람들의 밭에 씨앗 하나 가꾸고 풀 한 포기 뽑아내는 일이 이 세상에서는 어쩌면 이리 어렵습니까 크고 하나인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작은 여럿인 것을 사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가는 길은 초저녁달이 구름을 헤치고 가는 것처럼 그렇게 가는 길이 아닙니다. 풀벌레 울음이 깊은 밤의 가운데를 뚫고 가는 것처럼 그렇게 은은히 가지 않습니다. 자식을 찾는 어머니의 애끓는 목청처럼 갑니다. 모래밭에 쓰러진 이에게 마지막 남은 내 몫의 물을 내어주고 내가 타는 목으로 가듯 가는 길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던 그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는 일보다 이 세상을 두루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더 어려운지 알게 하시려는 뜻으로 새기며 조용히 견디고 있습니다. 지금은 나를 여기 가두고 창 밖으로 흐르는 세월을 봅니다. 비가 내리다 그치고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면서 아침이 오고 저녁바람이 부는 것을 봅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 곁을 울면서 떠나고 손에 끌려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 그들의 돌아서던 뒷모습까지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말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우리를 미워하던 이들까지도 사랑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여기 이 자리에 끝까지 남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결코 삿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 감옥에 홀로라도 남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기로 함께 손을 잡고 다짐하던 처음 그 마음 한가운데 남아 먼 길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많아서 함께 나눈 사랑보다 함께 해야 할 사랑의 날들이 더 많아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 그저 살아가는 일이 될 때까지 여기 이 자리에 남기로 합니다.    아홉 가지 기도 나는 지금 나의 아픔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아픔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나의 절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절망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깊은 허무에 빠져 기도합니다 그러나 허무 옆에 바로 당신이 계심을 알게 하소서 나는 지금 연약한 눈물을 뿌리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남을 위해 우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죄와 허물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또 다시 죄와 허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내 이웃의 평화를 위해서도 늘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영원한 안식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모든 영혼을 위해 항상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용서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굳셈과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욱 바르게 행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어떤 편지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한 사람의 아픔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처음 만난 그 숲의 나무들이 시들고 눈발이 몇 번씩 쌓이고 녹는 동안 나는 한번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나던 그때는 내가 사랑 때문에 너무도 아파하였기 때문에 당신의 아픔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헤어져 돌아와 나는 당신의 아픔 때문에 기도했습니다. 당신을 향하여 아껴온 나의 마음을 당신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의 아픔과 나의 아픔이 만나 우리 서로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생각합니다.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동안은 행복합니다. 진실로 모든 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줄 수 있는 동안은 행복합니다.     이 별 당신이 처음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는 이것이 이별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내 안에 있고 나 또한 언제나 당신이 돌아오는 길을 향해 있으므로 나는 헤어지는 것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꾸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이것이 이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별은 떠날 때의 시간이 아니라 떠난 뒤의 길어지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인가 합니다. 당신과 함께 일구다 만 텃밭을 오늘도 홀로 갈다 돌아옵니다 저물어 주섬주섬 짐들을 챙겨 돌아오면서 나는 아직도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당신이 비록 내 곁을 떠나 있어도 떠나가던 때의 뒷모습으로 서 있지 않고 가다가 가끔은 들풀 사이에서 뒤돌아 보던 모습으로 오랫동안 내 뒤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헤어져 있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가도 이 세상이 다 저물기 전의 어느 저녁 그 길던 시간은 당신으로 인해 한 순간에 메꾸어 질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접시꽃 당신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짖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어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을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종이배 사랑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 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 더 건너야 하는 나이여서 지금 어깨를 마주 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햇볕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써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하던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내가 쓴 그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 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낯선 섬의 감탕밭에 묶여 있는 시간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 한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내 마음의 전부였음을 바람결에 종이배에 실려 보냈다 되돌아오기를 수십번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이 한마디 네 몸 깊은 곳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풀잎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괴로움입니다 풀잎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괴로움입니다.. 별빛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괴로움입니다.. 사랑은 고통입니다..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던 것들을 우리 손으로 허물기를 몇 번, 육신을 지탱하는 일 때문에 어둠 속에서 울부짖으며 뉘우쳤던 허물들을 또다시 되풀이하는 연약한 인간이기를 몇 번, 바위 위에서 흔들리는 대추나무 그림자 같은 우리의 심사와 불어오는 바람같은 깨끗한 별빛 사이에서 가난한 봄들을 끌고 가기 위해 많은 날들을 고통 속에서 아파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건널 수 없는 강을 서로의 사이에 흐르게 하거나 가라지풀 가득한 돌자갈밭을 그 앞에 놓아두고 끊임없이 피 흘리게 합니다.. 풀잎하나가 스쳐도 살을 베히고 돌 하나를 밟아도 맨살이 갈라지는 거친 벌판을 우리 손으로 마르지 않게 적시며 적시며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깨끗이 괴로워해본 사람은 압니다. 수없이 제 눈물로 제 살을 씻으며 맑은 아픔을 가져보았던 사람은 압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고통까지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들을 피하지 않고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살며 사랑하는 일도 그렇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도 그러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우리 몸으로 선택한 고통입니다.    꽃잎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다. 피었다 저 혼자 지는 오늘 흙에 누운 저 꽃잎 때문도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형언 할 수 없는 시작도 아지 못할 곳에서 와서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저 외로운 나부낌 아득하고 아득하여   비 내리는 밤 빗방울은 장에 와 흐득이고 마음은 찬 허공에 흐득인다 바위 벼랑에 숨어서 젖은 몸으로 홀로 앓는 물새마냥 이레가 멀다하고 잔병으로 눕는 날이 잦아진다. 별마다 모조리 씻겨 내려가고 없는 밤 천리 만길 먼 길에 있다가 한 뼘 가까이 내려오기도 하는 저승을 빗발이 가득 메운다.    늦깎이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 때문에 고통은 깊어갑니다. 이별이 온 뒤에야 사랑을 알고 사랑하면서 외로움은 깊어갑니다. 죽음을 겪은 뒤 삶의 뜻 알 것 같아 고개 드니 죽음이 성큼 다가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짧은 동안 잃지 않고 얻는 것은 없으며 최후엔 또 그것마저 버리게 됩니다.  깊은 물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물은 기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든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 여울을     어떤 날 어떤 날은 아무 걱정도 없이 풍경소리를 듣고 있었으면 바람이 그칠 때까지 듣고 있었으면 어떤 날은 집착을 버리듯 근심도 버리고 홀로 있었으면 바람이 나뭇잎을 다 만나고 올 때까지 홀로 있었으면 바람이 소쩍새 소리를 천천히 가지고 되오는 동안 밤도 오고 별 하나 손에 닿는 대로 따다가 옷섶으로 닦고 도 닦고 있었으면 어떤 날은 나뭇잎처럼 즈믄 번뇌의 나무에서 떠나 억겹의 강물 위를 소리없이 누워 흘러갔으면 무념무상 흘러 갔으면   맑은 물 맑은 물은 있는 그대로를 되비쳐 준다  만상에 꽃이 피는 날 산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잎 하나 남지 않고 모조리 산을 등지는 가을 날은 쓸쓸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 준다. 푸른 잎들이 다시 돌아오는 날은 돌아오는 모습 그대로 새들이 떠나는 날은 떠나는 모습 그대로 더 화려하지도 않게 구태여 더 미워하지도 않는다 당신도 그런 맑은 물 고이는 날 있었는가 가을 오고 겨울 가는 수많은 밤이 간 뒤 오히려 더욱 맑게 고이는 그대 모습 만나지 않았는가   어릴 때 내 꿈은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셕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 흙이 되고 싶어요.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피었던 꽃이 어느 새 지고 있습니다.  화사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꽃들이  지난 밤비에 소리없이 떨어져  하얗게 땅을 덮었습니다.  꽃그늘에 붐비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화사한 꽃잎 옆에 몰려 오던 사람들은  제각기 화사한 기억속에 묻혀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잎 비에 진 뒤 강가엔  마음없이 부는 바람만 차갑습니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살아가야 할 날들만 길고 멉니다. 꽃 한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가죽나무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것을 안다.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꼬여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 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를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이 푸르른 하늘 밑에 또다시 가을이 오면 나뭇잎 몇개가 떠서 지켜보는 그 날의 하늘도 오늘처럼 이렇게 푸르렀을 겁니다 푸르른 가슴으로 그들도 젊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과일처럼 자라오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을 겁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그들도 보장된 미래와 영예롭게 빛나는 자신의 이름 하나를 가꾸기 위해 제복 속에서 꿈꾸고 행복하였을 겁니다. 적어도 식민지에 대하여 눈뜨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내 이웃의 삶과 빼앗긴 땅에 대하여 생각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나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사랑하면서부터 이 땅에는 피 흘리며 지켜야 할 것이 있음을 알면서부터 그들은 사랑보다는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남보다 먼저 깨어 피 흘리며 살았습니다. 자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문을 닫은 채 창 안에서 흘리는 소리없는 비웃음도 받았습니다 물살이 거세면 물살만을 탓하고 불길이 세차면 불길만을 두려워하며 사랑에 대하여 평등에 대하여 정의에 대하여 한 발짝도 걸어 나갈 줄 모르는 사람들이 등 돌리고 서서 질타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 모두를 짓밟아온 이민족의 총대 밑에서 아직도 다만 기다려야 한다고만 하는 사람들과도 섞여 살았습니다. 용기에 대하여 민족에 대하여 지나치다고만 탓하는 근엄한 꾸지람을 들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 땅을 지켜온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아니다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해온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이민족의 총칼 앞 그 가장 가파른 선봉에 서서 쓰러지던 이들은 누구였습니까 이민족과 야합하여 동족의 등을 밟고 선 사람들의 주먹을 향하여 가장 먼저 팔 걷고 나서던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렇게 살아 오랏줄에 꽁꽁 묶여 차디찬 감옥으로 가장 많이 끌리어가던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분단된 이 나라 눈물의 이 나라 철조망을 걷어내는 일까지 두려워하지 않으며 함께 걸음을 딛던 이들은 누구였습니까 태극기의 그 절반의 붉은 피를 목에 걸고 목메어 목메어 통일의 그 날을 향해 가는 이는 지금 또 누구입니까 식민지의 이 푸르른 하늘 밑에 또다시 가을이 오면 그들도 이 땅의 많은 이들과 똑같이 사랑하고 아파하고 사랑하는 이의 어깨에 기대어  투정할 줄 아는 젊은 가슴들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장례행렬이 끊이지 않는 죽음의 이 시대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버리고 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 땅은 진정 누가 피 흘리며 지켜오는 나라입니까 이토록 푸르른 가을하늘 밑에 끊임없이 붉은 피 흐르는 이 나라는.    만들 수만 있다면 만들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남길 수만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기억만을 남기며 삽시다.  가슴이 성에 낀 듯 시리고 외로웠던 뒤에도  당신은 차고 깨끗했습니다. 무참히 짓밟히고 으깨어진 뒤에도  당신은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사나운 바람 속에서 풀잎처럼 쓰러졌다가도 우두둑 우두둑 다시 일어섰습니다.  꽃 피던 시절의 짧은 기쁨보다  꽃 지고 서리 내린 뒤의 오랜 황량함 속에서  당신과 나는 가만히 손을 잡고 마주서서  적막한 한세상을 살았습니다.  돌아서 뉘우치지 맙시다  밤이 가고 새벽이 온 뒤에도 후회하지 맙시다.  만들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먼 발치서 당신을 처음엔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사람들 뒷 편에서 당신 모습 바라보다 돌아왔습니다  사람들 틈에 쌓여 있는 당신 모습이  전보다 더 야위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나를 알아보시지 못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왜 당신에게 좀더 가까이 가서  내 자신을  당신에게 드러내보이기 부끄러운 것일까요 혼자 맘으론 당신이 내 목소리를 잊지 않고  계시리라 생각하곤 하면서  이렇게  다시 천천히 되돌아 걸어오곤 하는 것인지요  돌아오는 길에 먼 어둠 속에서 불빛 두어 개 반짝이는 걸 보았습니다.  별 몇 개 그 위에 희미하게 떠서  내가 생각하는  당신 마음처럼 반짝이는 걸 보았습니다.  나는 왜 당신 앞에  가까이 나서기가 부끄러운 것인지요  처음엔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 자꾸만 당신 앞에 떳떳하지 못하여  나 혼자만 생각하는 당신 향한 이 마음을 그리움이라 말하고  당신이 기쁘게 나를 알아보실 때까지  내가 몰래 보내는  나의 이 작은 목소리를  다만 기다림이라고 달래보면서  살고 있는 걸까요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리 비록 개울처럼 어우러져 흐르다 뿔뿔이 흩어졌어도 우리 비록 돌처럼 여기 저기 버려져 말없이 살고 있어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으나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벚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있는 자리마다 깊디 깊은 침묵이 있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있는 그곳에도 봄이 오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없이 흔들리는 붓꽃잎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 또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자리로 바람이 가득가득 밀려옵니다. 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데가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땅을 다녀갑니까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와 머물다 소리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오월편지    
861    박노해 시모음 댓글:  조회:4953  추천:0  2015-04-05
박노해 시 모음 시 제목에 클릭하세요    하늘     신혼일기 천생연분 그리움 통박 진짜 노동자 준비 없는 희망 그해 겨울나무        민들레처럼 강철새잎 마지막시    그대 나 죽거든 아직과 이미 사이     거룩한 사랑 고난은 자랑이 아니다 줄 끊어진 연 겨울이 온다 참혹한 사랑       하늘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수도 살릴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만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겠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짖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신혼일기 길고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긴 이별에 한숨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뿜으며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야간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위로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소곤소곤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도 짧다.  천생연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걸로야 TV탈렌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들 견줄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서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꽃이야 강사 따르겠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 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내가 동료들과 술망태가 되어 와도  몇일씩 자정 넘어 동료집을 전전해도 건강걱정 일격려에 다시 기운이 솟고 결혼 후 3년 넘게 그 흔한 세일 샤스하나 못사도 짜장면 외식 한번 못하고 로션하나로 1년 넘게 써도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이 좋소. 토요일이면 당신이 무더기로 동료들을 몰고와 피곤해 지친 나는 주방장이 되어도 요즘들어 빨래, 연탄갈이,김치까지 내 몫이 되어도 나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 조금만 나태하거나 불성실하면 가차없이 비판하는 진짜 겁나는 당신 죄절하고 지치면 따스한 포옹으로 생명력을 일깨 세우는 당신 나는 쬐그만 당신 몸 어디에서  그 큰 사랑이 , 끝없는 생명력이 나오는가 곤히 잠든 당신 가슴을 열어 보다 멍청하게 웃는다. 못배우고 멍든 공순이와 공돌이로 슬픔과 절망의 밑바닥을 일어서 만난 당신과 나는 천생연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억압 속에 시들은 빛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을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까부스고  밤하늘 별처럼 흐르는 시내처럼 들의 꽃처럼 소곤소곤 평화롭게 살아갈 날을 위햐여 우린 결말도 못보고 눈감을지  몰라 저 거친 발굽 아래 무섭게 소용돌이쳐 오는 탁류 속에 비명조차 못지르고 휩쓸려갈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기쁨으로 산다 이 길을 그래도 나는 당신이 눈물나게 좋다 여보야 도중에 깨진다 해도 우리 속에 살아나 죽음의 역사를 넘어서서 이름 봄마다 당신은 개나리 나는 진달래로  삼천리 방방곡곡 흐트러지게 피어나 봄바람에 입맞추며 옛얘기 나누며 일찌기 일 끝내고 쌍쌍이 산에 와서 진달래 개나리 꺽어 물고 푸성귀 같은 웃음 터뜨리는  젊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윽한 눈물을 짖자 여보야 나는 당신이 좋다. 듬직한 동지며 연인인 당신을  이 세상에서 젤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미치게 미치게 좋다.  그리움 공장 뜨락에 따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 도는 아이들 얼굴 위로 개나리 꽃눈이 춤추며 난다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오란 작은 손 꽃바람 자락에 날려 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진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 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 오는 가간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통박 어느 놈이 커피 한잔 산다 할 때는  뭔가 바라는게 있다는 걸 안다. 고상하신 양반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 등을 두드릴 땐 내게 무얼 원하는지 안다. 별스런 대우와 칭찬에  허릴 굽신이며 감격해도 저들이 내게 무얼 노리는지 안다. 우리들이 일어설 때 노사협조를 되뇌이며 물러서는 저 인자한 웃음 뒤의 음모와 칼날을 우리는 안다. 유식하고 높은 양반들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세상마다 뒹굴며  눈치밥을 익히며 헤아릴 수 없는 배신과 패배 속에 세상 살아가는 통박이 생기드만 세상엔 빡빡 기는 놈들 위해서 신선처럼 너울너울 나는 놈 따로 있어 날개 없이 기름바닥 기는 우리야 움츠리며 통박을 굴리며 살아가지만 통박이 구르다 보면 통박끼리 구르고 합쳐지다 보면 거대한 통박이 된다고 좆도 배운 것 없어도 돈날개 칼날개 달고 설치는 놈들이 무엇인지 이놈의 세상이 어찌된 세상인지 누구를 위한 세상인지 우리들 거대한 통박으로 안다. 쓰라린 눈물과 억압과 패배 속에서 거대한 통박으로 구르고 부딪치고 합치면서 우리들의 통박은 점점 날카롭고 명확하게  가다듬어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통박이 거대한 통박으로 하나의 통박으로 뭉쳐지면서 노동하는 우리들이 새날을 향하여 이놈의 세상을 굴려갈 것이다.    진짜 노동자 한세상 살면서 뼈빠지게 노동하면서 아득바득 조출철야 매달려도 돌아오는 건 쥐씨알만한지 죽어라 생산하는 놈 인간답게 좀 살라고 몸부림쳐도 죽어라 쇳가루만 날아들고 콱콱 막히고 골프채 비껴찬 신선놀음 허는 놈들  불도자처럼 정력좋은 이윤추구에는 비까번쩍 애국갈채 제기랄 세상사가 왜이리 불평등한지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생각도 못하고 사는 놈은 죽은 송장이여 말도 못하는 놈은 썩은 괴기여 켈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실천하는 사람 동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진실로 인간이제 진짜 노동자이제 비암이라고 다 비암이 아니여 독이 있어야 비암이지 센방이라고 다 센방이 아녀 바이트가 달려야 센방이지 노동자라고 다 노동자가 아니제 동료와 어깨를 꼭 끼고 성큼성큼 나아가 불도자 밀어제께 우리 것 찾아 담은 포크레인 삽날 정도는 되어야  진짜 노동자지    준비 없는 희망 준비없는 희망이 있습니다 처절한 정진으로 자기를 갈고 닦아 저 거대한 세력을 기어코 뛰어넘을 진정한 자기 실력을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없는 준비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해 가는데 세상과 자기를 머릿속에 고정시켜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해 겨울나무 1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 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빚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말도 필요 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 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긁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부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을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귿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민들레처럼 일주일의 단식 끝에 덥수룩한 수엽 초췌한 몰골로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끌고 어질어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잡범들 사이에서 "박노해씨 힘내십시요." 어느 도적놈인지 조직폴력배인지 노란 민들레 한송이 묶인 내 손에 살짝이 주어주며 환한 꽃인사로 스쳐 갑니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 노란 민들레꽃을 코에도 볼에도 대어보고 눈에도 입에서 ?줘보며 흠흠 포근한 새봄을 애무한 민들레꽃 한 송이로 환하게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하여 아~ 산다는 것은 정년 아름다은 것이야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이길래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민들레꽃을 바로 봅니다.  어디선가 묶인 손으로 이 꽃을 꺾어 정성껏 품에 안고 내 손에까지 쥐어준 그분의 애정과 속뜻을 정신 차려 내 삶에 새깁니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꽃으로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 흔하고 너른 꽃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둥이 쇠창살 너무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말하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중에 수천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문으로 멍들은 상처투성이 가슴위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받아 들고 글썽이는 눈물로 결의합니다. 아- 아- 동지들,형제들 준엄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그렇게 저는 다시 설 것입니다.    강철 새잎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엄흑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마지막 시 거대한 안기부의 지하밀실을  이 시대의 막장이라 부른다. 소리쳐도 절규해도 흡혈귀처럼 남김없이 빨아먹는 저 방음벽의 절망 24시간 눈 부릅뜬 저 새하얀 백열등 불어 불엇!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과  온 신경이 끊어 터질 듯한 고문의 행진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된다 더이상 무너질 수는 없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 그것은 우리들 희망의 파괴 우리 민중의 해방출구이 붕괴 차라리 목슴을 주자 앙상한 이 육신을 내던져 불패의 기둥으로 세워두자 서러운 운명 서러운 기름밥의 세월 뼛골시게 노동하고도 짓밟혀 살아온 시간들 면도날처럼 곤두선 긴장의 나날 속에 매순간 결단이 필요했던 암흑한 비밀활동 그 거칠은 혁명투쟁의 고비마다 가슴치며 피논물로 다져온 맹세 천만 노동자와 역사 앞에 깊이 깊이 아로새긴 목숨 건 우리들의 약속 우리들의 결의 지금이 그때라면 여기서 죽자 내 생명을 기꺼이 바쳐주자 사랑하는 동지들 내 모든 것인 살붙이 노동자 동지들 내가 못다 한 엄중한 과제 체포로 이어진 크나큰 나의 오류도  그대들 믿기에 승리를 믿으며 나는간다 죽음을 향해 허청허청  나는 떠나 간다. 이제 그 순간 결행의 순간이다. 서른다섯의 상처투성이 내 인생 떨림으로 피어나는 한줄기 미소 한 노동자의 최후의 사랑과 적개심으로 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  마지막 생의 외침 아 끝끝내 이 땅 위에 들꽃으로 피어나고야 말 내 온 목숨 바친 사랑의 슬로건 "가자 자본가세상, 챙취하자 노동해방"    그대 나 죽거든 아영아영 나 죽거든 강물 위에 뿌리지마 하늘바람에 보내지 말고 땅속에다 묻어주오 비 내리면 진 땅에다 눈 내리면 언 땅에다 까마귀 산짐승도 차마 무시라 뒷걸음쳐 피해가는 혁명가의 주검 그대 봄빛 손길보다 다독다독 묻어주오 나 언 땅 속에 길게 뿌리누워 못다 한 푸른 꿈과 노래로 흐를 테요 겨울 가고 해가 가고 나 흙으로 사라지고 호올로 야위어가는그대.. 어느 봄 새벽, 수련한 함박꽃으로 피어 날 부르시면은 나 목메인 푸르른 깃발 펄럭이면서 잠든 땅 흔들어 깨우며 살아날 테요 아영아영 나 죽거든 손톱 발톱 깎아주고 수염도 다듬어서 그대가 빨아 말린 흰옷 이쁘게 입혀주오 싸늘한 살과 뼈 험한 내 상처도  그대 다순 숨결로다 호야호야 어루만져 하아- 평온한 그대 품안에 꼬옥 보듬어 묻어주오 자지러진 통곡도 피 섞인 눈물도 모질게 거두시고  우리 맹세한 붉은 별 사랑으로, 눈부신 그 봄철로 슬픔 이겨야해. 아영 강인해야 해  어느 날인가 그대 날 찾아 땅속으로 오시는 날  나 보드란 흙가슴에 영원히 그댈 껴안으리니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살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아직과 이미 사이 거룩한 사랑 성은 피과 능이다. 어린 시절 방학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피를 뭍혀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깍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 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 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끊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을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고난은 자랑이 아니다 고난은 싸워 이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역경은 딛고 일어서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좌절은 뒤어넘으라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눈 뜨라고! 고통을 피하지 말고  맞서 싸우려들거나 빨리 통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고통의 심장을 파고들어 그 안에 묻힌 하늘의 얼굴을 찾으리고 고난은 살아낸 그대여 그것은 장한 인간 승리이지만 맑은 눈 뜨지 못하면 철저히 무너지고 깨어져 내려 먼지만큼 작은 자신으리 실상을 보지 못하면 내세운 정의와 진리 속에 숨어있는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면, 고난을 ?고 나온 자랑스러운 그대 역시 또 하나의 닻입니다. 슬픔입니다.  고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승화시킨 사람이 아니라면 생의 가장 깊은 절망과 허무의 바닥에서 맑은 눈으로 떠오른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앞을 비추이는 희망의 사람이 아닙니다. 행여 제가 고난받았다고 얼굴을 들거든 침을 뱉어 주십시요 고난받았기에 존경받는다면 그것은 나의 치욕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고난이 나를 키웠고 고난이 나를 깨우쳤고 고난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배웠고 그대를 만났습니다. 아- 나에게 고난은 자랑이 아니라 아름다운 슬픔입니다.    줄 끊어진 연 한겨울 바람이 맵찬 어느 날이었어요 창살 너머 어둑한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줄 끊어진 가오리 연 하나가 뒤척이며 고행중이더군요 스스로를 산채로 파묻고 인연 줄도 다 놓아 버려 깊어가는 감옥이 조금은 적막하지만 한사코 붙잡지 않습니다 탓하지도, 의지하지도, 소망하지도 않습니다. 난 지금 줄 끊어진 연처럼 홀로 빈 하늘 떠도는 듯해도 하하, 나는 나대로 고독한 긴장 속에 생명줄 내건 치열한 날들입니다. 보이는 줄만 줄일까요 세 손으로 거두어야만 삶일까요 이헐게 날면 되는 것을  줄 없는 줄을 타고 허공 찬바람 속에 몸 던져주며 나는 홀로 날았습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내 목숨 같은 외줄을 끊고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다시 이어지는 고투의 세월을  참흑한 투쟁과 묵상의 나날이었습니다 아- 눈 맑게 열리고 마침내 내 인연의 때가 오는 날 줄 없는 줄을 통해 아직도 첫마음 밝혀든 그대에게 나 뜨거운 떨림으로 차전할 것입니다. 그래요 희망의 줄은 이미 저마다의 몸 속에 내장되어 있고 좋은 세상은 이미 현실 속에 와 자라고 있고 외줄의 때가 있고 거미줄의 때가 있고 밤새 거미 한 마리가 제 몸 속에서 투명한 줄을 뽑아 쇠창살에 잘 짜인 집을 짓더니 아침 햇살에 이른 영롱한 팽팽한 거미줄망이 그대로 한 우주, 내 삶의 안과 밖이 이어지는 관계 그물망으로 확 비추어 오더군요.    겨울이 온다 와수수 가랑잎 쓰는 바람에 삭발한 머리 쳐드니 하늘은 저만큼 높아져 있다. 나는 이만큼 낮아져 있는데 시린 하늘 흰 구름은  옥담 질러 사라지고 나는 컴컴한 독방으로 사라지고 맑은 가을볕도 잠깐 여위어가는 가을 설움도 잠깐 벌써 독방 마루 바닥이 찹다 의시시 몸 웅크리며 겨울 보따리 풀어 해진 옥 궤맨다 아 어느덧 저만큼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벽 속에 시퍼렇게 정좌한 채  겨울 정진 깊어가는 날 온다 대낮에도 침침한 독거방 불빛 아래  갑자기 바느질 손 바빠진다.    참혹한 사랑 그대 소식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 못 본지 벌써 7년인데 얼굴이 몹시 안되었더라고 그동안 크레 앓아 몹쓸 수술까지 받았다고 사람들과도 잘 만나지 않는다고 내 얘기 듣고 말없이 울기만 하더라고 바보같이... 바보같이... 그렇게 혹독하게 시대앓이를 하다니 그냥 좀 살지 몸이라도 챙기지 다들 돌아가 따뜻한 자리를 잡는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다 바친 그대가 왜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나도 가끔은 웃으며 사는데 그래 내가 힘들까 봐 엽서 한장 없었나요 혼자서 여린 몸에 그 패배를, 가혹한 상처를 그렇게 지독히 앓아야만 했나요 누구보다 빛나는 재능과 아름다움이 아까웠어요 맑은 열정과 가능성이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그 ?치울 때까지만 좀 떨어져 하라고 했던 거에요 그런데도 울며 꽃 꺾어 던지며 현장으로 수배길로 오시더니 이렇게 쓰러지자고, 피투성이로 망가지자고 한사코 조은 길만 골라 걸으셨나요 이제는 더 울지 마세요 슬픔도 착함도 버리세요 떨리는 기다림도 버리세요 남들처럼 대충 잊어버리세요 그대 안의 나도 지워버리세요 많이 늦었지만 따뜻하게 둥그렇게  이젠 부디 행복하세요. 바보같이... 바보같이 ... 아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꽃같이 싱싱하던 그대가 아니라  다시는 필수 없는 흘러간 꽃이라도 그대의 좌절 그애의 상처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내 남은 목숨이 다하도록  멀리서... 곁에서...   
860    김남조 시모음 댓글:  조회:4934  추천:0  2015-04-05
 김남조님 시 모음 시 제목에 클릭하세요                        따뜻한 음악 평화 하얀 새 사람 풍경 허망에 관하여 지나간 사람 겨울바다 약 속 편 지 참 회 그대 있음에 너를 위하여 아침 기도 사랑의 말 가난한 이름에게 가고 오지 않는 사람 저무는 날에 사랑의 말 그 젊음에게 빗물같은 정을 주리라 바다 장엄한 숲 새벽전등 가을 햇볕에 겨울 사랑 겨울꽃 이 바람속에 너를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 정념의 기(旗) 고백 하늘 거기서 그를 보리니 아침 은총 네 생각 그 하나에 너를 위하여 기쁨 고요 나무들 겨울에게       따뜻한 음악   바다 건너 더 먼 곳 그의 집으로 나는 가리 세월의 가룻발도 내릴 만큼은 내려 투명한 적설이 되었으리 그는 의자에 앉아 있고 어린 아이가 하듯이 내 몸을 그의 무릎 위에 얹으리 한 생의 무게를 젯상에 올리는 적멸한 예식에 온 세상 잠잠하리 그 사이 흐르는 눈물은 눈물의 끝까지 흘리리라 이윽고 작별하여 나의 지정석으로 되돌아올 때 가장 따뜻한 음악 하나가 동행하여 오고 이후 언제나 언제나 울리리라   평화    누구라도 그를 부르려면 속삭임으론 안 된다 자장가처럼 노래해도 안 된다 사자처럼 포효하며 평화여, 아니 더 크게 평화여, 천둥 울려야 한다 그 인격과 품위 그 아름다움 그가 만인의 연인인 점에서도 새 천년 이쪽저쪽의 최고인물인 평화여 평화여 부디 오십시오, 라고 사춘기의 순정으로 피멍 무릅쓰고 혼신으로 연호하며 그 이름 불러야 한다   하얀 새    누군가가 나에게 순백의 새를 보내 주었다 첫 날의 새는 편지처럼 정감 어려 노래했고 다음 날의 새는 날개에 묻혀 온 햇빛가루로 주변을 반짝이게 하더니 세 번째 새는 섧게 울어 하늘 그리워함을 일깨웠다 광활한 하늘 벌판으로 돌아가거라 돌아가거라고 새들을 날려 보내니 저들 중천에서 선회하다 사라지고 가슴 안 추억의 새들까지 희고 빛부시게 푸드득이노니 세월 너머 오래오래 이러하리니   사람 풍경  그는 「사랑」을 몰랐다 좋은 사라미라 싶은 이나 예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칭찬 비슿이 말하거나 미소 비슿이 웃어주면 타는 듯 몸이 더워오는 황홀감이 「사랑」인 줄 알았다 사랑을 위해 목숨도 버린다는 말이 흐릿하게 잡히는 기억 속에서 거룩한 숯불로 피어올라 이 종교에 입교까지 했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세월이 흐르는 강가에 꽃이 피며 꽃이 간혹 웃어 주었다 어찌 어찌하여 그가 결혼하게 되었는데 식장에서 주례가 그에게 물었다 이 여자를 사랑하는가. 한평생 사랑하겠는가. 그는 몹시 어지러웠다 어떤 아슴한 메아리가 전류처럼 위험하게 황야를 선회하고 있었다     허망에 관하여  내 마음을 열 열쇠꾸러미를 너에게 주마 어느 방 어느 서랍이나 금고도 원하거든 열거라 그러하고 무엇이나 가져도 된다 가진 후 빈 그릇에 허공부스러기쯤 담아 두려거든 그렇게 하여라 이 세상에선 누군가 주는 이 있고 누군가 받는 이도 있다 받아선 내버리거나 서서히 시들게 놔두기도 한다 이런 이 허망이라 한다 허망은 삶의 예삿일이며 이를테면 사람의 식량이다 나는 너를 허망의 짝으로 선택했다 너를 사랑한다     지나간 사람  말하지 않고 보낸 은밀한 진실 하나가 남아 있다 그의 죽음 그 외엔 용서 못할 어떤 잘못도 있을 수 없으리란 그 말 한마디를 나는 가슴 깊이에 묻었다 그 시절 나는 낡은 풍금의 모든 음계를 시도 때도 없이 울려 어지러이 소리내는 위태롭고 다급한 처지였고 사실은 그에게 마음 끌려 평형 가늠할 수 없었음을 옹색한 궁리로 그를 버려 그를 잊으려고 한 계절도 못다 채운 그를 떠나 보내었다 오늘 진종일 비가 내리고 어둠이 빗물 위에 엎드리니 그 사람을 등에 업은 듯하고 그 사람이 오히려 태산같은 어둠을 업은 듯도 하여 그가 두고 간 관용과 우수의 무게를 새삼 쓸쓸히 깨닫는다     겨울바다  겨울바다에 가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싶던 새들도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혼령(魂靈)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약 속  어수룩하고 때로는 밑져 손해만 보는 성 싶은 이대로 우리는 한 평생 바보처럼 살아버리고 말자. 우리들 그 첫날에 만남에 바치는 고마움을 잊은 적 없이 살자. 철따라 별들이 그 자리를 옮겨 앉아도 매양 우리는 한 자리에 살자. 가을이면 낙엽을 쓸고 겨울이면 불을 지피는 자리에 앉아 눈짓을 보내며 웃고 살자. 다른 사람의 행복같은 것, 자존심같은 것 조금도 멍들이지 말고, 우리 둘이만 못난이처럼 살자     편 지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귀절 쓰면 한귀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참 회  사랑한 일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 이대로 판결해다오 그 사랑 떠났으니 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하였음이라고 준열히 판결해다오 겨우내 돌 위에서 울음 울 것 세번째 이와 같이 판결해다오 눈물 먹고 잿빛 이끼 청정히 자라거든 내 피도 젊어져 새 봄에 다시 참회하리라.     그대 있음에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너를 위하여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 수 없을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아침 기도        목마른 긴 밤과 미명의 새벽길을 지나며 싹이 트는 씨앗에게 인사합니다. 사랑이 눈물 흐르게 하듯이 생명들도 그러하기에 일일이 인사합니다. 주님, 아직도 제게 주실 허락이 남았다면 주님께 한 여자가 해드렸듯이 눈물과 향유와 미끈거리는 검은 모발로써 저도 한 사람의 발을 말없이 오래오래 닦아주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엔 이 한 가지 소원으로 기도드립니다.   사랑의 말  (1) 사랑은 말 하지 않는 말 아침에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대문 중문 다 지나는 맨 뒷방 병풍 너메 숨어사네 옛 동양의 조각달과 금빛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 생각만이 깊고 말 하지 않는 말 사랑 하나 (2) 사랑을 말한 탓에 천지간 불붙어 버리고 그 벌이 시키는대로 세상 양끝이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삼아 만났더니 아아 천만번 쏟아 붓고도 진홍인 노을 사랑은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     가난한 이름에게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여인을 만나지 못해 당신도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까 검은 벽의 검은 꽃 그림자 같은 어두운 향로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겨울 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얼굴을 가리고 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 불신과 가난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어딘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 허무와 이별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때로 골똘히 죽음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당신도 고독이 아쉬운 채 돌아갑니까 인간이라는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이름에 울면서 눈감고 입술을 대는 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는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가고 오지 않는 사람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려 줍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많이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가 됩시다.      저무는 날에  저무는 날에 -김남조- 날이 저물어 가듯 나의 사랑도 저물어 간다 사람의 영혼은 첫날부터 혼자이던 것 사랑도 혼자인 것 제 몸을 태워야만이 환한 촛불 같은 것 꿈꾸며 오래오래 불타려 해도 줄어드는 밀랍 이윽고 불빛이 지워지고 재도 하나 안 남기는 촛불같은 것 날이 저물어 가듯 삶과 사랑도 저무느니 주야사철 보고지던 그 마음도 세월 따라 늠실늠실 흘러가고 사람의 사랑 끝날엔 혼자인 것 영혼도 혼자인 것 혼자서 크신 분이 품안에 눈 감는 것     사랑의 말 1 사랑은 말 하지 않는 말 아침에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대문 중문 다 지나는 맨 뒷방 병풍 너메 숨어 사네 옛 동양의 조각달과 금빛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 생각만이 깊고 말 하지 않는 말 사랑 하나 2 사랑을 말한 탓에 천지간 불붙어 버리고 그 벌이 시키는대로 세상 양 끝이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 삼아 만났더니 아아 천만번 쏟아 붓고도 진홍인 노을 사랑은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     그 젊음에게  서로가 찾았더니 우리 예 와서 만나는구나 별떨기 꽃떨기의 큰 아기들아 만남을 점지하시는 분이 광명한 등불을 비추니 니네의 어여쁨 눈도 부셔라 젊은 날 유혈의 진실들엔 가슴 쓰려라 서로가 찾았더니 만나 즉시 알아 보겠구나 먼저 세상서부터 아마도 훗세상까지 핏줄 줄곧 당기는 우리 지나온 나의 세월 목이 타던 땡볕보다 더욱 더한 시금 용광로에 구워져 보검 되는 니네의 의용, 장하고 아름답게 용솟음치거라 사랑하거라 아..아,, 젊은 이들아     빗물같은 정을 주리라  너로 말하건 또한 나로 말하더라도 빈 손 빈 가슴으로 왔다 가는 사람이지. 기린 모양의 긴 모가지에 멋있게 빛을 걸고 서 있는 친구 가로등의 불빛으로 눈이 어리었을까. 엇갈리어 지나가다 얼굴 반쯤 그만 봐버린 사람아. 요샌 참 너무 많이 네 생각이 난다. 사락사락 사락눈이 한줌 뿌리면 솜털같은 실비가 비단결 물보라로 적시는 첫 봄인데 너도 빗물같은 정을 양손으로 받아 주렴.   너는 뿌린 후에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 사랑으로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 아무것도. 무정(無情)으로 주는 정의 자욱마다엔 무슨 꽃이 피는가 이름없는 꽃이여.     바다 바다여 나의 좋으신 분을 수평선 너머 네가 업어 뫼신 후 날마다 천도(天桃) 한 알을 상에 올리네 즈믄 날 만경창파 머리 풀어 바치는 나의 제사 어느 듯 서리 묻은 내 귀밑머리 어쩔라나 어쩔라나 오늘은 영혼 안의 그 바다에도 하늘복숭아 가지만 휘어지고     장엄한 숲  삼천 년 된 거목들의 숲은 겨우내 끝이 안 보이는 설원雪原 나무들은 그 눈 벌에 서 있습니다 어느 겨울 그 중의 한 나무가 눈사태에 떠밀려 쓰러질 때 하느님이 품 속에 안으셨습니다 나직이 이르시되 아기야 쉬어라 쉬어라 …… 하느님께선 이 나무가 작은 씨앗이던 때를 기억하시며 거대한 뿌리에서 퍼져나간 젊은 분신들도 알으십니다. 쉬어라 쉬어라고 하느님의 사랑은 이날 자애로운 안도安堵이셨습니다 가령에 삼천 년을 노래해온 새가 있다면 쉬어라 쉬어라고 하실 겝니다 이 나무 기나긴 삼천 년을 장하게 맥박쳐 왔으니까요 레드우드 품종의 그 이름 와워나로 불리우는 이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수면이요 안식이며 이후 삼천 년 동안 그는 잠자는 성자일 겝니다 장엄한 숲에서 이 겨울도 끝이 안 보이는 아득한 설원에서      새벽전등  간밤에 잠자지 못한 이와 아주 조금 잠을 잔 이들이 새소리보다 먼저 부스럭거리며 새벽전등을 켠다 이 거대한 도시 곳곳에 불면의 도랑은 비릿하게 더 깊은 골로 패이고 이제 집집마다 눈물겨운 광명이 비추일 것이나 미소짓는 자, 많지 못하리라 여명黎明에 피어나는 태극기들, 독립 반세기라 한 달 간 태극기를 내걸지자는 약속에 백오십 만 실직 가정도 이리 했으려니와 희망과의 악수인 건 아니다 참으로 누구의 생명이 이 많은 이를 살게 할 것이며 누구의 영혼이 이들을 의연毅然하게 할 것이며 그 누가 십자가에 못박히겠는가 심각한 시절이여 잠을 설친 이들이 새벽전등을 켠다     가을 햇볕에  보고 싶은 너 가을 햇볕에 이 마음 익어서 음악이 되네 말은 없이 그리움 영글어서 가지도 휘이는 열매,참다 못해 가슴 찢고 나오는 비둘기떼들, 들꽃이 되고 바람 속에 몸을 푸는 갈숲도 되네 가을 햇볕에 눈물도 말려야지 가을 햇볕에 더욱 나는 사랑하고 있건만 말은 없이 기다림만 쌓여서 낙엽이 되네 아아 저녁 해를 안고 누운 긴 강물이나 되고지고 보고 싶은 너 이 마음이 저물어 밤하늘 되네     겨울 사랑  겨울은 성숙한 계절 봄에 사랑이라 싶은 한 마음을 만나 望月의 바람 부풀더니 가을엔 그 심사 깊어만 져 모진 기갈에 시달렸지 눈 시린 소금밭의 짠맛보다도 더 매운 겨울 모랫바람 수수천만 조각의 삭풍이 가슴 맞대인 이 쩡한 돌거울에 눈꽃 송이송이 흩날리고 눈부시며 눈부시며 드대 보이옵느니 피가 설었을 젠 못 얻은 사랑 삼동 바닥 없는 추위에 無償의 축원 익혀 오늘 임맞이하네.     겨울꽃  1 눈길에 안고 온 꽃 눈을 털고 내밀어 주는 꽃 반은 얼음이면서 이거 뜨거워라 생명이여 언 살 갈피갈피 불씨 감추고 아프고 아리게 꽃빛 눈부시느니 2 겨우 안심이다 네 앞에 울게 됨으로 나 다시 사람이 되었어 줄기 잘리고 잎은 얼어 서걱이면서 얼굴 가득 웃고 있는 겨울꽃 앞에 오랫 동안 잊었던 눈물 샘솟아 이제 나 또다시 사람 되었어     이 바람속에 바람은 찢겨진 피리의 소리 하설은 파적(破笛)의 피울음이 아니고야 바람은 분명 찢겨진 피리 나도 바람처럼 울던 날을 가졌더랍니다. 달밤에 벗은 맨몸과도 같은 염치 없고도 어쩔 수 없는 이 회상 견뎌 낸 슬픔도 지나고 못 견딘 슬픔도 지나고 모두 물처럼 이젠 흘러 갔는데 잊어 버리노라 죽을 뻔하고 잊히움에서 못내 쓰라린 가슴 왜 아직 이런 것이 남았답니까     그 너를 위하여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세상  신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보이지 않는 깊고 높은 것 그 확신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사람을 위하여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위하여 고독한 의지와 사랑 준령의 등반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생명 있는 모든 것을 품속에 안아주는 자연을 위하여 죽은 후에도 영원히 안고 있는 대지를 위하여 땅의 남편인 하늘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태어날 아기들과 미래의 동식물을 위하여 이름없는 거 잊혀진 거 미지의 것을 위하여 가급적 다수를 위하여 그러고 보니 모든 걸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정념의 기(旗)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 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업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     고백  열. 셀때까지 고백하라고 아홉. 나 한번도 고백해 본적 없어 여덟. 왜 이렇게 빨리세? 일곱. ..... 여섯. 왜때려? 다섯. 알았어. 있잖아 넷. 네가 먼저 해봐 셋. 넌 고백 많이 해봤잖아 둘. 알았어 하나반. 화내지마 ..있잖아 하나. 사랑해     하늘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날마다 슬퍼함으로 슬픔에 배부를 것이요 다른 굶주림은 모두 잊으리라 사랑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도 끝을 알 것이요 끝에선 하나가 먼저 떠나리로다 이날에 하늘을 보리니 수식어는 모두 죽고 다만 하늘이리라     거기서 그를 보리니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 더 깊은 밤에 어쩌면 희뿌연 새벽녘에라도 아버지가 오실 줄 믿고 기다리는가 그의 아이들 모두 깨어 있고 바깥은 습습한 밤비. 외등 하나 온밤을 골목길 비추느니 절통할 일이로고 심장 둘레의 곱디고운 혈관을 절개하고 그 여섯 시간 만에 오늘 같은 밤비 속을 낯설은 순례지 홀로 길떠난 사람 세상살이 이리도 깊고 광막한 타향인 곳인가 남의 자의 땅에도 익숙지 못한 실어증의 안개만 자욱하고 지평이 하늘에 닿은 가슴 안의 사막 그러나 해가 뜨면 동서남북을 새로이 배우련다 우물을 파서 새맑은 물거울에 모든 빛나는 것을 돌려오고 그 빛부신 중심에서 그를 항상 보리라     아침 은총  아침 샘터에 간다 잠의 두 팔에 혼곤히 안겨 있는 단 샘에 공중의 이슬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이날의 첫 두레박으로 순수의 우물, 한 꺼풀의 물빛 보옥들을 길어올린다 샘터를 떠나 그분께 간다 그분 머리맡께에 정갈한 물을 둔다 단지, 아침 광경에 눈뜨실 쯤엔 나는 언제나 없다 은총이여 생금(生金)보다 귀한 아침 햇살에 그분의 온몸이 성하고 빛나심을 날이 날마다 고맙게 지켜본다     네 생각 그 하나에  너를 재우고 돌아서던 손시린 돌무덤에 이제 나도 영원히 쉬려고 찾아온거다 별이란 그저 잠잠히 순명하는 광망(光芒)이더구나 새삼 무에랴 우리를 일깨워 섧게 만드리 인식할 것으로 믿자 너를 불러 네 옆에 이처럼 나 돌아왔음은 진실로 하늘이 짚어준 길이었거니 무서리 내 가슴에 잠기고 흰 눈깨비 성성히 덮혀오는 경루 한밤에도 오직 네 생각 그 하나에 나는 살았더니라     너를 위하여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기쁨  이 기쁨 처음엔 작은 꽃씨더니 밤낮으로 자라 큰 기쁨 되고 위태한 꽃나무로 섰네 아, 이젠 불이어라 가책의 바람으로도 끌 수 없거니 새벽잠 깨면 벌써 출렁이는 마음 한 쌍의 은행같이 연한 슬픔과 또 하난 기쁨이래요 말하지 말아야지 나 이번엔 죽도록 말하지 말아야지 불시에 하늘이 쏟아지던 옛날의 그 한마디 이 마음의 이름     고요  이젠 말을 버릴까 싶네 몇백 년 늙어버린 말과 울음에게 가서 쉬어라 가서 쉬어라고 거대한 하늘 물뿌리개 봄비 적시는 이날에 작별하고 싶네 겨우내 노래하던 새 묘지에서도 노래하던 새 몇백 년 그럴 양으로 성대가 더욱 트인 새여 노래여 날아가거라 날아가거라고 손짓해 보내고 싶네 소리내는 모든 건 내 하늘에서 석양으로 저물어가고 청정한 고요 하나 남은 삶의 실한 고임돌이었으면 싶네     나무들  보아라 나무들은 이별의 준비로 더욱 사랑하고만 있어 한 나무 안에서 잎들과 가지들이 혼인하고 있어 언제나 생각에 잠긴 걸 보고 이들이 사랑하는 줄 나는 알았지 오늘은 비를 맞으며 한주름 큰 눈물에 온몸 차례로 씻기우네 아아 아름다워라 잎이 가지를 사랑하고 가지가 잎을 사랑하는 거 둘이 함께 뿌리를 사랑하는 거 밤이면 밤마다 금줄 뻗치는 별빛을 지하로 지하로 부어내림을 보고 이 사실을 알았지 보아라 지순무구 나무들의 사랑을 보아라 머잖아 잎은 떨어지고 가지는 남게 될 일을 이들은 알고 있어 알고 있는 깊이만큼 사랑하고 있어     겨울에게  들어오너라 겨울, 나는 문고리를 벗겨둔다 삼복에도 손발 몹시 시렵던 올해 유별난 추위 그 여름과 가을 다녀가고 너의 차례에 어김없이 달려온 겨울, 들어오너라 북극 빙산에서 살림하던 몸으로 한둘레 둘둘 말은 얼음 멧방석쯤은 가져왔겠지 어서 피려무나 겨울, 울지도 못하는 얼어붙은 상처 얼얼한 비수자국, 아무렴 투명하고 청결한 수정 칼날이고 말고 거짓말을 안 하는 진솔한 네 냉가슴이고 말고 아아 그러면서 소생하는 새봄을 콩나물 시루처럼 물 주며 있고 말고 하여간에 들어오기부터 해라 겨울,  
859    시인 - 백하 댓글:  조회:4397  추천:0  2015-04-05
  박세영       박세영 (朴世永, 1907~1989) 경기 고양 출생.  1946년 월북. 새 옷을 입으련다 - 어린이날에 보내는 노래 박세영 할아버지 우리나라 빼앗겼고 아버진 울며 살았는데 우린 해방을 맞았다 아주 잃을 뻔한 조선 누구나 일해야 산다는 우리 새나라의 일꾼이 되련다 욕심쟁이도 없고 거짓도 없고 가난뱅이도 없다는 빛나는 새나라 사람이 되련다 너털뱅이 헌옷을 빨아 입는 것보다 우리 새옷을 입으련다 다 같이 입으련다 동무야! 온 조선의 동무야! 우렁차게 외치자 오늘 어린이날에 한마음 되어 달려나가자 시인 박세영(朴世永, 1907∼1989)은 우리 문학사가 잃어버린 여러 문학인 중의 한 분이다. 그는 일본 강점기 때 카프의 맹원이자 비해소파로 굳건한 신념을 지닌 인물이자, 해방 이후 1980년대 말까지 주*문학의 선구자로 조선문학인 가운데 가장 중심적 위치의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시집 《산제비》(1938)와 《류화(流火)》(1945), 《진리》(1947), 《승리의 나팔》(1945), 《박세영시선집》(1956), 《밀림의 역사》(1952), 《박세영 동시선집》(1962) 등이다. 그의 시에 대한 학계, 비평계의 평가는 “자연을 통해 시대적 울분과 회상을 술회한 불안문학”(백철), “대륙적 풍모와 남성주의”(김재홍), “항일문학의 실천적 지성”(윤여탁), “아지프로가 강조된 교술적인 서술시”(황정산), “민족애의 발현, 유이민의 비애감, 자연과의 합일의지 표현”(심치열), “서간체 시적 양식의 개발”(박은미), “디아스포라의 표현”(박수연), “정치적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한 시인”(최명표) 등으로 요약된다. 가장 대표적인 시로 거론되는 작품 〈산제비〉는 ‘산제비’라는 시적 대상물에 의탁하여 자유와 리상, 해방의 도래에 대한 자신의 꿈을 상징적 기법으로 노래하고 있다. 감상적 회고나, 랑만적인 전원시에 머물지 않고 시인의 의지를 시적 대상을 통해 형상화하면서 그 수준을 점차 심화시켜간다. 산제비야 날아라 화살같이 날아라 구름을 휘정거리고 안개를 헤쳐라 땅이 거북등같이 갈라졌다 날아라 너희들은 날아라 그리하여 가난한 농민을 위하여 구름은 모아는 못 올까 날아라 빙빙 가로 세로 솟치고 내닫고 구름을 꼬리에 달고 오라 — 〈산제비〉 부분 시인 박세영은 1902년 7월 7일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두모리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백하(白河)이다.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주변의 힘겨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며 노력과 희생정신으로 살아갔다. 서울 배재고보 출신으로 송영, 나도향, 김복진, 박팔양, 김소월, 윤극영, 이기영, 윤기정, 박영희, 임화 등과 교유하였다.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에 뜻을 두고 카프의 핵심 멤버로 사회주의계열의 각종 동인지 및 사화집 발간 활동을 펼쳤으며, 필화사건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8·15해방도 청진 감옥에서 맞았다. 조선문학가동맹 중진으로 활동하다가 1946년 전반기에 월북하여 북조선 문예총에 가담하였다. 주로 찬양과 주민들에 대한 노력 혁신, 선전선동을 위주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였고, 1959년에는 조선의 〈애국가〉를 작사하여 국가 2급 훈장을 받았다.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문예총 국가상임위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 작가동맹 상무위원 등을 지내는 등 조선문학의 중진으로 활동하다가 1989년 2월에 사망하였다.  
858    네개의 이름을 가진 시인 댓글:  조회:4277  추천:0  2015-04-05
(서울) 김정선 기자 = 1910년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어난 시인 이찬은 1974년 사망해 조선의 애국렬사릉에 묻힌 것으로 알려져있다. 16년 간 이찬의 삶과 문학을 연구해온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응교(45) 와세다대 문학부 객원교수가 이찬의 문학세계를 시대 순으로 비평한 '이찬과 한국 근대문학'을 펴냈다. 책에서 이찬은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시인"으로 소개됐다. 1930년대 이찬은 자신의 글에 이름을 한자인 '李燦'으로 표기했고 그동안 그와 관련된 연구 결과를 살펴봤을때 1940년대 '아오바 가오리'(靑葉薰)라는 이름으로 친일문학 활동을 했으며 1950년대에는 '리찬'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혁명 시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어 1987년 한국에서 조선문학이 해금되면서 그와 관련된 논문이 발표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이찬'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책에 따르면 1928년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찬은 초기에 현실 인식을 나타낸 작품세계를 보여주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관적 랑만주의를 엿볼 수 있는 시를 발표한다. 김 교수는 이찬이 "좌절된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절망하고 먹고 살아야 할 생계 문제에 봉착해 절망과 도피를 경험했다"며 "1940년대 이후에는 친일시 '송출진학도'(送出陳學徒) 등 친일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해방이 되자 함경도로 돌아간 것을 두고 김 교수는 "그는 월북 시인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간 시인이었다"며 "그의 시에는 늘 조선의 어촌 마을, 국경 마을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찬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지은 조선의 혁명시인이며 조선에서는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민족과 운명'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찬 시인은 근대문학의 안테나 같은 존재로 경향시, 옥중시, 낭만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시, 친일시, 조선 혁명시 등 우리 문학의 첨예한 변화를 모두 보여준다"고 말했다.
857    영화 <<금희와 은희의 운명>> 시나리오 작가 - 백인준 댓글:  조회:5780  추천:0  2015-04-05
다양한 명작 창작한  백인준   ---문화로 더 빨리 가까워진다           문학예술이란 타고난 재능이 없이는 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재능에는 한계가 있으니 한 사람이 여러 장르의 작품을 써내기는 어렵다. 또한 여러 장르의 우수작을 써내기는 더욱 어렵다. 허나 세상에는 글 쓰는 사람들이 부러울 지경으로 갖가지 장르의 작품을 성공시키는 작가들도 있다. 그가 바로 조선작가의 한 분인 백인준. 노시인 구상은 그에 대해 호감을 갖지 않았으나 새 세대의 작가였던 황석영 씨는 자기가 본 그대로 그 사람을 받아들였다. 1989년 3월 20일, 전쟁 후 남쪽 작가로서는 처음 북쪽에 간 소설가 황석영 씨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환영하면서 《잘왔소, 이게 얼마만이요.》라고 한 사람이 바로 백인준작가. 황석영 씨는 이렇게 당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백인준 위원장을 묘사했다. “백인준 선생은 금년에 일흔둘이며 연희전문과 와세다를 나왔고 시인 윤동주와 동경 시절에 같이 하숙을 했다고 한다. 시의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남의 땅 남의 나라에서 어머님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보니, 삶은 어려운데 시가 왜 이렇게 쉽게 써지느냐고 하는- 그 유명한 시를 쓸 무렵에 백선생과 윤동주는 함께 살았다고 한다. 백선생은 근년에 들어 영화문학을 하는데 4.19를 다룬 [성장의 길목에서]라든가 항일 무장투쟁을 주제로 한 시나리오를 여러 편 썼다. 그는 허리가 꼿꼿하고 어깨가 딱 벌어졌으며 머리가 벗어진 건강형의 체격으로 보였다. 《4월의 봄》예술축전을 함께 보다가 해외동포들의 순서가 되자 그들이 통일된 조국에 떳떳하게 돌아와 살지 못하는 나라 형편이 분하다고 눈물을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의 건강 비결에 대하여 물었더니 학생 때부터 테니스를 해왔다는데 요즈음도 아파트 근처의 코트에 나가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몇해 전의 남북 문화교류 때에 서울에 왔던 적이 있어서 비교적 서울을 잘 아는 편이었다.” 여기에서 일흔둘이라는 나이는 아무리 한국식으로 계산해도 맞지 않아 보인다. 보다 권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 자료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만능작가 백인준(1920. 10.27~1999. 1.20, 필자가 자료를 인용한 부분을 그대로 표기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작가. 다양한 명작들을 수많이 창작한 다재다능한 대문호였다. 평안북도 운산군 영웅리의 농민가정에서 출생하여 사립학교를 나온 후 평양과 서울, 외국에서 공부하였다. 청년시절부터 시인이 될 꿈을 안고 모대기던 그는 새 조국 건설로선을 무한한 감동속에 접한 후, 태양송가 《그대를 불러 우리의 태양이라 노래함은》(1947년)을 발표하는 것으로 새로운 문학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조국과 인민이 사랑하는 로동당시대의 세계적인 대문호로 성장하였다. 광복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지도원, 과장으로, 정권기관과 인민군대의 문화선전부문에서 사업하였으며 전쟁시기에는 조선인민군 군관으로 복무하였다. 1956년부터 조선작가동맹 현역작가를 거쳐 작가동맹 평안북도 지부장, 영화문학창작사 작가, 1969년이후부터 백두산창작단 작가, 부단장, 단장으로 사업하였다. 1986년부터 조선문학예술총동맹중앙위원회 위원장, 1996년부터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창작활동을 정력적으로 벌렸다. 또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6기-10기), 최고인민회의 부의장(1990-1998),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본부 의장(1993-1999)으로서 당과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문학예술을 발전시키며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였다. 그는 조선문학예술에서 형상창조의 첫 선구자의 한사람으로서 근 50여년간의 창작생활기간에 혁명력사를 형상한 성과작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다. 특히 그는 문학예술혁명이 수행되던 시기에 《꽃파는 처녀》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와 가극, 연극 등에 옮기는 사업과 5대혁명연극창조사업에서 특출한 공로을 세웠다. ▲ 백인준이 시나리오를 쓴 조선영화 (1974년)의 한 장면 그의 창작에서 특징은 시대정신에 민감하고 철학적으로 깊이가 있으며 주제와 양상이 다양하고 극성이 예리한것이다. 대표적인 작품들로 영화문학들인 《누리에 붙는 불》(1977년), 《민족의 태양》(1부 1987년, 5부 1991년), 《려명》(전후편, 1987년), 《친위전사》(1982년), 《성장의 길에서》(1-2부, 1965년), 《최학신의 일가》(상하편, 1966년), 《금희와 은희의 운명》(1974년)과 희곡 《최학신의 일가》(1955년), 서정시들인 《우리의 태양이라 노래함은》(1947년), 《크나큰 그 이름 불러》(1952년), 서정시 《조국에 대한 생각》, 풍자시《벌거벗은 아메리카》(1960년), 가사 《오직 한마음》(1968년), 시집으로 《인민의 노래》(1947년), 《소박한 사람들의 목소리》(1953년), 《벌거벗은 아메리카》(1961년), 《백인준시선집》(1993년)이 있다. 그는 또한 혁명적가정을 형상한 영화문학 《려명》(전후편 1987년), 항일의 녀성영웅을 형상한 영화문학들인 《사령부를 멀리 떠나서》(1978년), 《미래를 꽃피운 사랑》(1982년)을 내놓았다. 또한 문학평론활동과 다른 나라들과의 예술교류사업, 작가, 예술인후비육성사업에도 적극 참가하였다. 그는 생애말기에 불치의 병속에서도 여러편의 시들을 창작하였다. 그는 《최고훈장》수훈자(1980년), (1972년), 《조국통일상》수상자(1995년), 로력영웅(1972년)이다.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다. 그렇게 많이 렬거했으나 영화문학 《우리 동무들》같은 것들이 빠진 상태이다. 작품을 전부 적으면 정말로 놀라운 숫자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금희와 은희의 운명》은 쌍둥이 자매 금희와 은희가 북과 남에서 판판 다른 삶을 사는 모습을 그린 영화로서 《꽃파는 처녀》에 이어 중국에서도 한때 인기를 끌었었다. 그리고 《벌거벗은 아메리카》는 현대조선의 풍자시 걸작으로 꼽힌다. 유명한 노래 《최령감네 평양구경》도 그가 작사했다고 기억된다. 시대마다 뭇사람의 환영을 받고 문학사에 남을만한 작품을 써냈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생각된다. 또한 사회활동가로서도 뚜렷한 자욱을 남겼다. 그런데 그의 그 많은 작품속에서도 《최학신의 일가》(희곡과 씨나리오)가 가장 특이하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856    더는 쓰지 못한 시 댓글:  조회:4444  추천:0  2015-04-05
더는 쓰지 못한 시                     조선 김철     나의 구리단추를 젖꼭지인줄 알고  틀어쥔 채 놓지 않는 나 어린 아기  폭격의 연기 속, 엄마는 어디?  아, 군복 입은 사나이 엄마 될 순 없는가?!   에서.  
855    고향 댓글:  조회:4376  추천:0  2015-04-05
  고향 -(전남 곡성에서)                       북경 김철   손에 가시가 들어   닿으면 아프다   고향, 너는 내 가시 든 살점...     [출처] [북한기행] 김철 시집|작성자 미스터박스  
854    명시인 - 박팔양 댓글:  조회:4190  추천:0  2015-04-04
너무도 슬픈 사실 -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 박팔양       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비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친구께서도 이미 그 꽃을 보셨으리다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피기도 전에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봄의 선구자 연분홍의 진달래꽃을 보셨으리다.   진달래꽃은 봄의 선구자외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그 엷은 꽃잎은 선구자의 불행한 수난이외다   어찌하야 이 나라에 태어난 이 가난한 시인이 이같이도 그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오라는 봄의 모양을 그 머리속에 그리면서 찬 바람 오고 가는 산허리에서 오히려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 고 ― (‘학생’, 1930.4)       ■ 이해와 감상   우리의 시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시의 제재로 선택되는 것 중의 하나가 꽃이며, 그 중 진달래꽃은 우리 주위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이어서 그 동안 많은 시인들에 의해 주로 사랑과 관련된 주제를 취급하는 제재로서 특히 애용되었다. 그 비근한 예로 우리는 김소월의 을 들 수 있거니와, 위의 박팔양의 작품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달래꽃’을 그 제재로 취급하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 이 시의 진달래꽃은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이다. 다른 꽃들처럼 피었다가 지면 열매를 맺는 결실도 없이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일홍’과 같은 화려함이나 ‘국화’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도 없어서 노래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꽃이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어서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이다. 그러나 선구자는 불행하다. 자신의 희생이 가져오는 화려한 결실을 직접 맛보지도 못하며 스러진다. 시적 화자는 따라서 그 동안 희생된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에 진달래꽃을 부여잡고 운다. 시제에서 보듯 시적 화자는 ‘진달래꽃’을 ‘봄의 선구자’로서 인식하지만, 그것은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서는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희생자로서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러나 정작 진달래꽃 자신은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 결국 시인은 ‘진달래꽃’에 의탁하여 그냥 ‘오래오래’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적 삶을 비판하고, 순간에 스러지더라도 뚜렷이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선구자로서의 삶은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박팔양이 선택한 삶의 방향인 것이다.       ■ 박팔양 시인(1905~?)   1905년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했다. 배재고보 졸업 후 경성법학전문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1926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여, 초창기 계급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예술주의적 동호인 그룹 구인회에 가담하는 등 다양한 문학적 편력을 전개했다. 주요작품으로는, 시집, 소설등이 있다. 정지용 시인등과 활동하며 우리나라 시문학을 이끌었던 시인이다. 사회현실에 관심을 보인 경향시와 감상적인 서정시를 썼다. 호는 여수(麗水 : 如水). 이다. 1916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다니면서 김기진·나도향·박영희 등과 사귀었고, 1920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진학해서는 김화산·박제찬·정지용 등과 사귀면서 동인지〈요람〉을 펴냈다. 1924년〈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근무했고, 1926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했다. 1928년 〈중외일보〉·〈조선중앙일보〉 사회부장을 지냈으며, 1934년 '구인회'에 참여했으나 많은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이어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 사회부장 및 학예부장을 지내고 그곳에서 8·15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후 신의주에 정착하여 1946년 10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했고 평안북도 당위원회 기관지 〈바른말〉신문사 편집국장,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을 지냈다. 1946~49년 당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정로 正路〉의 편집국장 및 그 후신인 〈노동신문〉의 편집국장·부주필 등을 지냈다. 1949년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신문학과(新文學科) 강좌장, 1950년 6·25전쟁 초 종군작가로 활약한 공으로 국기훈장 3급을 받았으며, 1951년 대학으로 복귀했다. 1956년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을 지냈다. 195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58년 조소친선협회 중앙위원을 역임했으며 한때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있었다. 1966년 한동안 사상 검토 대상으로 곤욕을 치러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송가 서사시 〈눈보라 만리〉(1961) 등의 창작 기여를 인정받아 복권되었다. 19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신(神)의 주(酒)〉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뒤, 해방 때까지 발표한 시들을 그 성격에 따라 3가지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민족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쓴 경향시로서, 〈여명 이전〉(개벽, 1925. 7)·〈밤차〉(조선지광, 1927. 9)가 대표적이다. 둘째, 자유로운 정신과 새로운 수법을 바탕으로 쓴 모더니즘 계열의 시로서, 1928년 〈조선지광〉 8월호에 발표한 〈도시정취〉·〈태양을 등진 거리에서〉 등이 이에 속한다. 셋째, 자연과 인생을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읊은 시로서,〈승리의 봄〉(문학, 1939. 1)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감상적인 시에 대해서 임화·신고송·권환 등은 '소부르주아적이며 회고적 낭만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밖에 노동자의 참담한 생활을 그린 콩트 〈오후 여섯시〉(조선지광, 1928. 9) 등이 있으며, 평론에도 관심을 가져 한국 시문학사를 주체적·근대적으로 바라본 〈조선신시운동개관〉(조선일보, 1928. 2. 28~3. 1)을 발표했다. 서정시 〈노래는 강산에 울려 퍼지네〉(1956)·〈밀림의 5·1절〉(1959), 장편서사시 〈눈보라 만리〉(1961)·〈인민을 노래한다〉(1962) 등을 썼으며, 시집으로 〈여수시초〉(1940)·〈박팔양시선집〉(1949)·〈박팔양선집〉(1956) 등이 있다        
853    명시인 - 페테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댓글:  조회:4822  추천:0  2015-04-04
뉴욕에서 달아나다: 문명을 향한 두 개의 왈츠 - 작은 빈 왈츠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빈에는 열 명의 소녀와 하나의 어깨가 있다. 그 어깨 위에서 박제된 비둘기 숲과 죽음이 흐느끼지. 성에 낀 박물관에는 아침 잔영이 남아 있지. 천 개의 창이 있는 살롱이 있지.   아이, 아이, 아이, 아이! 쉬잇, 이 왈츠를 받아 줘.   이 왈츠, 이 왈츠, 이 왈츠, 바다에 꼬리를 적시는 코냑과 죽음과 “좋아요!”의 왈츠.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우중충한 복도 언저리, 안락의자와 죽은 책까지; 여기는 백합의 어두운 다락방, 달이 있는 우리의 침대에서 거북이가 꿈꾸는 춤 속에서, 사랑해.   아이, 아이, 아이, 아이! 부서진 허리의 이 왈츠를 받아 줘.   빈에는 너의 입과 메아리들이 노는 네 개의 거울이 있지. 소년들을 푸른색으로 그리는 피아노를 위한 하나의 죽음이 있지. 지붕 위로는 거지들이 있지. 통곡의 신선한 화관들이 있지.   아이, 아이, 아이, 아이! 내 품 속에서 죽어가는 이 왈츠를 받아 줘.   왜냐하면 널 사랑하니까, 널 사랑하니까, 내 사랑아, 아이들이 노는 다락방에서. 아이들은 따스한 오후의 소란한 소리들을 듣고 헝가리의 오래된 빛들을 꿈꾸고, 네 이마의 어두운 고요를 느끼고 눈빛 백합들과 양떼들을 본단다.   아이, 아이, 아이, 아이! “영원히 널 사랑해”하는 이 왈츠를 받아 줘.   빈에서 나는 너와 춤을 추리라, 강의 머리를 그린 가면을 쓰고. 히아신스 꽃이 가득한 나의 강변들 좀 봐! 내 입을 너의 두 다리 사이에 두고, 내 영혼을 사진들과 수선화들 사이에 두리라. 그리고 네 발등의 어두운 물결에는 내 사랑아, 나의 사랑아, 바이올린과 무덤, 왈츠의 테이프를 선사하리라.                    (번역: 민용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1898년 스페인 그라나다 근처 마을 푸엔테 바케로스에서 출생.                                      시집 『시 모음』『노래집』『집시 이야기 민요집』『이그나시오 산체스 메히아스의 죽음』 등.                                      희곡 「피의 결혼」「예르마」「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등.                                      1936년 8월 19일 생을 마감함 (스페인 내전 초기, 공화주의자였던 로르카는 파시스트 반란군에 체포돼 사흘 뒤                                      총살당함) ----------------------------------------------------------------------------------------- 사이버 문학광장 -황인숙의 시배달      로르카 시를 제대로 만난 건 민용태 선생님이 번역해서 《현대시학》에 게재한 ‘로르카 특집’(아마도)에서였다.   “파랗게 사랑해 파랗게./파란 바람, 파란 잎가지./ 바다에는 배/산에는 말./ 허리에 어둠을 두르고/ 베란다에서 꿈꾸는 여인,”(「악몽의 로맨스」 부분)   시들을 홀린 듯 읽으며 비수로 가슴께를 슥 베이는 듯했는데 그 시린 통증의 절반 남짓은 질투심이 유발한 것이었다. 내가 지적 근기 없는 인간이 아니었더라면 스토커처럼 그의 시들을 캐고 다녔으련만. 더 이상 알지도 못하면서 “로르카 최고!” “내 로르카!”만 남발하고 다녔나보다. 그로부터 일 년쯤 뒤,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쯤 전, 그라나다에 들른 친구로부터 달랑 한 문장 적힌 엽서를 받았다. “로르카가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곳, 나는 전율한다!”   그즈음 한 술집에서 레너드 코헨 노래를 들었다. 그 애절한 노래에 달콤하게 휘감겨 발끝을 까딱거릴 때 소설가 이인성 선배가 “저 가사 로르카 시야.”라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일러줬다. 아!?   앨범을 구해 몇 날 며칠 그 노래만 듣다가 열 개의 카세트테이프를 그 노래로 채우고 열 장의 종이에 가사를 옮겨 적었다. 열 명의 친구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서.   어휘 하나하나가 어둡고 향기롭다. 로르카 시가 대개 그렇듯 죽음이 있고, 숨 막힐 듯한  꽃향기가 있고, “아이, 아이, 아이, 아이!” 통곡소리가 있고. - 문학집배원 황인숙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오후 다섯시      오후 다섯시. 정확히 오후 다섯시였다. 한 소년이 하얀 시트를 가져왔다  오후 다섯시에. 석회 바구니가 준비되었다  오후 다섯시에. 나머니지는 죽음, 죽음뿐이었다. 오후 다섯시.   바람은 면화(棉花)를 앗아갔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산화물은 수정과 니켈을 소산시켰다  오후 다섯시에. 비둘기와 표범이 싸운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황폐한 뿔과 싸운 넓적다리  오후 다섯시에. 저음의 현(絃)이 울렸다  오후 다섯시에. 비소(砒素)의 종(鍾)과 연기  오후 다섯시에. 모퉁이마다 침묵의 무리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투우만이 기가 나서! 오후 다섯시에. 고체 무수탄소(無水炭素)의 땀이 나고 있었을 때  오후 다섯시, 투우장이 옥소(沃素)로 뒤덮여 있었을 때  오후 다섯시. 죽음이 상처에 알을 낳았다  오후 다섯시에. 오후 다섯시. 정확히 오후 다섯시 정각에.   바퀴 위의 관이 그의 침상이다. 오후 다섯시. 딱딱이와 플루트 소리가 그의 귀에서 울린다  오후 다섯시에. 바야흐로 투우는 그의 이마를 관통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에. 방은 고통으로 찬란했다  오후 다섯시에. 멀리서 이제 괴저(壞疽)가 오고 있다  오후 다섯시에. 초록 살에 백합의 돌출  오후 다섯시에. 상처는 태양처럼 불타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군중은 창문들을 부수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에. 오후 다섯시. 아, 그 운명의 오후 다섯시! 모든 시계가 오후 다섯시였다! 오후의 그늘이 진 다섯시였다!        (주* ㅡ자문한다.            당신의 운명의 시각은 언제인가?            당신은 지금 인생의 몇 시에 서 있는가?)   
852    명시인 - 베르톨트 브레히트 댓글:  조회:5929  추천:0  2015-04-04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詩 모음                                             * 1492년    ㅁ'민주적인 판사'로 번역된적도 있음. *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후손들에게 * 임시 야간 숙소 * 마리아 A.의 회상 * 연기  '''''''''''''''''''''''''''''''''''''''''''''''''''''''''''''''''''''''''''''''''''''''''''''''''''''''''''''''''''''''''''   1492년      미합중국의 시민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심사하는 로스 앤젤레스 판사 앞에 이탈리아의 식당 주인도 왔다. 진지하게 준비해 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새 언어를 모르는 장애 때문에 시험에서 補則 제8조의 의미를 묻는 질문을 받고 머뭇거리다가 1492년이라고 대답했다. 시민권신청자에게는 국어에 대한 지식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그의 신청은 각하되었다. 3개월 뒤에 더 공부를 해가지고 왔으나 물론 새 언어를 모르는 장애는 여전했다. 이번에는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누구였는가 하는 질문이 주어졌는데,(큰 소리로 상냥하게 나온) 그의 대답은 1492년이었다. 다시 각하되어 세번째로 다시 왔을 때, 대통령은 몇 년마다 뽑느냐는  세번째의 질문에 대하여 그는 또1492년이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판사도 그가 마음에 들었고 그가 새 언어를 배울 수 없음을 알아 차렸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회해 본 결과 노동을 하면서 어럽게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네번째로 나타났을 때 판사는그에게 언제 아메리카가 발견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리하여 1492년이라는 그의 정확한 대답을 근거로 하여 그는 마침내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1943) ㅁ '민주적인 판사'로 번역이 되기도 한다. ㅁ Bertolt Brecht(1898.2.10~1956.8.14 東獨) ㅁ 박귀훈 등재('구글'검색)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의레 나무를 못생겼다고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 해협;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의 해협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젓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 엉터리 화가 ; 히틀러를 지칭함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ㅁ 브레히트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김광규 옮김. 1986년 한마당 '''''''''''''''' 브레히트는 폭력에 대한 조치는 폭력보다 오래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다. 폭력 앞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되므로 폭력에 정면으로 대항하다가 희생당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폭력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이 폭력을 이기는 길이라고 그는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는 시이다.('생략') 야만적인 자본의 논리가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우리 시대 역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이다. 1퍼센트의 부자는 돈을 쓰는 재미에 빠져 서정시 따위에 무관심하고, 99퍼센트의 빈자들은 밥에 매달려 서정시를 외면하고 있다. 월가를 점령한 젊은이들은 이렇게 외쳤다. "Who's street?" "Our street!" "We are ninety-nine" 이런 외침이 거세지는 시대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임이 분명하다. 서정보다 자본이, 꽃보다 밥이, 노래보다는 목숨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ㅁ 정끝별 시인 / 네이버 '세계의 명시' 중에서       후손들에게   1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 하나 없는 이마는 그가 무감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끔직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저기 한적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은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내가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다오.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행운이다하면, 나도 끝장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먹고 마시라고.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고!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디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게는가?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나도 현명해지고 싶다. 옛날 책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쓰여 있다. 세상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짧은 한 평생 두려움없이 보내고 악을 선으로 갚고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망각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을 나는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2   굶주림이 휩쓸고 있다. 혼돈의 시대에 나는 도시로 왔다. 반란의 시대에 사람들 사이로 와서 그들과 함께 분노했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싸움터에서 밥을 먹고 살인자들 틈에 누워 잠을 자고 되는대로 사랑에 빠지고 참을성 없이 자연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의 시대에는길들이 모두 늪으로 향해 나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도살자들에게 나를 들어내게 하였다. 나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내가 없어서 더욱 편안하게 살았고, 그러기를 나도 바랐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을 그렇게 흘러갔다.   힘은 너무 약했다. 목표는 아득히 떨어져 있었다. 비록 내가 도달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보였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3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떠올라 오게 될 너희들, 부탁컨데,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겪지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생각해 다오.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였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 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애썼지만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 (1934/1938)       임시 야간 숙소   듣건데, 뉴욕 26번가와 브로드웨이의 교차로 한 구퉁이에 겨울철이면 저녁마다 한 남자가 서서 모여드는 無宿者들을 위하여 행인들로부터 동냥을 받아 임시 야간 숙소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책을 읽는 친구여, 이 책을 내려놓지 마라.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1931)       마리아 A.의 회상 Erinnerung an die Maria A.   1 푸르른 달인 9월의 어느날 어린 자작나무 아래서 말없이 나는 그녀를, 그 조용하고 창백한 사랑을 하나의 꿈처럼 내 품에 안았다. 그리고 우리 머리 위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떠 있어, 난 그걸 오래 바라보았다. 구름은 아주 하얗고 아득히 높아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는 벌써 거기 없었다.   2 그날 이후로 수많은, 수많은 달들이 조용히 헤엄쳐 내려와 사라져버렸다. 그 자두나무들은 아마 베어 없어졌을 것이다. 너는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어찌 되었느냐고?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분명히, 난 벌써 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 난 그걸 정말 모르겠다. 생각나는 건 단지, 내 언젠가 그 얼굴에 키스를 했다는 것.   3 그 키스도 구름이 떠있지 않았다면, 오래 전에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 구름을 난 아직도 알고 있고, 앞으로도 항상 알고 있으리라. 구름은 아주 하얗고, 위에서 내려 왔었다. 자두나무들은 어쩌면 지금도 변함없이 꽃을 피우며 여인은 아마 지금쯤 일곱 번 째 아이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구름은 그저 잠깐동안 피어올랐고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땐, 벌써 바람에 실려 사라져버렸다. ㅁ 브레히트 시집'가정 기도서(Die Hauspostille)'에서         연기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1953)     [출처] 1345 詩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詩 모음 *|작성자 훈이  
851    모방시 / 그 례문 댓글:  조회:5211  추천:0  2015-04-04
모방시가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 우선 시의 요소를 이해해야 합니다. 시의 요소에는 내용요소와 형식요소가 있습니다. 내용요소에는 '주제, 제재, 소재, 이미지' 등이 있고,  형식 요소에는 '시어, 시행, 연, 운율' 등이 있습니다. 모방시는 이와 같은 시의 요소 중에서 어떤 시의 형식 요소와 표현법을 그대로 모방해서 쓴 시를 말합니다. 즉, 행(줄)의 수, 연의 수, 운율 그리고 표현법이 원시와 비슷해야 모방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운율과 표현법과 어조 등은 그대로 본뜨고, 그 정해진 형식 안에다 새로운 소재와 주제를 담아 낸 시가 모방시라는 뜻입니다. 원래의 시와 모방시는 '주제'면에서만 다르고 그 외의 형식 면에서는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방시의 정의를 내린다면 '원시가 가진 형식적인 특징을 그대로 모방하여 새로운 주제로 재창조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모방시를 쓰게 하는 이유는 원시의 형식을 모방함으로써 그 우수함을 직접 느끼는 한편, 나의 창작으로 내용을 채움으로서 우수한 형식을 가진 한 편의 시를 써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좋은 시를 쓰기 위한 훈련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장난삼아 쓰지 말고, 그 시의 운율이나 표현 방법, 의미 등을 파악한 뒤 그 중에서 어떤 것에 중점을 두어 모방할 것인지를 생각한 뒤 써야 합니다. 때로는 혼자서 쓰지 말고 친구들과 모둠을 만들어 함께 써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음은 유재영 시인의 둑방길을 모방시로 써본 것입니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둑방길 (원시) *출처 : 3-1교과서 산책길 (학생작품) * 출처 : 교사용지도서 사랑길(학생작품) * 출처 : 상남중 수업활동  어린 염소  등 가려운    여우비도  지났다.    목이 긴  메아리가    자맥질을  하는 곳        마알간  꽃대궁들이    물빛으로  흔들리고        부리 긴  물총새가    느낌표로  물고 가는        피라미  은빛 비린내    문득 번진  둑방길        어머니  마른 손 같은    조팝꽃이  한창이다.  소나무  밑둥에    소북이 쌓인  함박눈.        꿈많은  산짐승들이    자고 있는  산책길        하아얀  눈꽃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작은  다람쥐가    먹이 찾아  나오는        상록수  은은한 향기    문득 풍긴  산책길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고요한  침묵뿐이다.  정아와  함께 웃던    그 미소가  피었다.         해맑은  눈동자가    별빛속을  흐른 곳        미리내  작은 물줄기    안개처럼  감싸주고        고옵게  긴 머리를    여신처럼  흩날리는        예리한  큐피트 화살이    문득 꽂힌   사랑길        천사의  선물과 같은    추억만이  남았다.       위 시의 표현을 살펴보자.   원시 은 시조인데, 현대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3장 6귀의 전통적인 형식으로 쓰지 않고, 각 수를 4행씩  나눔으로써 마치 자유시 같은 느낌을 주었다. 모방시인 과 도 같은 형식을 취했다.   원시 의 '마알간'은 표준말이 '말간'이므로 시적허용에 해당된다. 모방시 의 '하아얀(하얀)'과 의 '고웁게(곱게)' 역시 시적허용이다.   원시 첫수의 종장이 '흔들리고'로 끝나며 여운을 남기는데, 모방시 2편 역시 '흩날리고'와 '감싸주고'로 끝나면서 같은 효과를 준다.   둘째수의 경우 종결어미가 같다. 즉, 표현효과가 같은 것이다. --- 물고가는, 둑방길, 한창이다 --- 나오는, 산책길, 침묵뿐이다 ---흩날리는, 사랑길, 남았다   그밖에도 각 장의 형식이 대체로 같다. 예를 들면 첫째 수의 중장을 살펴보자. --- 목이 긴 메아리가 자맥질을 하는 곳 --- 꿈많은 산짐승들이 자고 있는 산책길 --- 해맑은 눈동자가 별빛속을 흐는 곳   "000한 000가 0000는 000장소"라는 문장 구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모방시 2편은 원시와는 주제와 내용을 달리함으로써 서로 다른 시로써의 창의성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국어1과] 27쪽 모방시 쓰기|작성자 목연  
850    패러디와 미술 댓글:  조회:5630  추천:0  2015-04-04
  다른 노래에 병행하는 노래란 뜻의 그리스어 파로데이아에서 유래한 패러디는 단순히 다른 작품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폭로하는 것이니, 대상이 되는 작품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퓌비 드 샤반(Pierre-Cecile Puvis de Chavannes, 1824~1898)은 프랑스 출신 화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물랭 루주의 화가 로트레크(Lautrec, 1864~1901)보다 40년이나 앞서 태어났고, 화가인 고갱(Gauguin), 쇠라(Seurat)뿐 아니라 《악의 꽃》으로 유명한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 등으로부터도 존경을 받던 인물이다. 샤반은 그 무렵의 흐름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지만, 엄청난 규모의 벽화들로 이름을 얻고 있던 화가였다. 지금은 우리에게 기억되는 이름이 아니지만 그 무렵 프랑스의 주요 기관 건물 벽화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였다. 그 반면에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 로트레크는 타고난 장애인이었다. 사촌간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그의 장애 원인은 오랜 세월 지속된 근친결혼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천재적 예술혼과 장애를 함께 전해 주는 근친혼이라면 썩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여하튼 그는 불구의 다리와 함께 아주 작은 키를 평생(서른일곱 살밖에 살지 못했으니 그렇게 긴 세월은 아니지만) 안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은 매우 뛰어나 어린 나이부터 데생에 소질을 보였고, 스무 살 무렵에는 이미 화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천재인데다가 고통스러운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기존의 세계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아래의 그림은 로트레크가 펼쳐 나갈 예술 세계의 지향점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는데, 바로 패러디화다. 패러디(parody)란 무엇일까? 다른 노래에 병행하는 노래란 뜻의 그리스어 파로데이아(parodeia)에서 유래한 패러디는 단순히 다른 작품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안고 있는 문제점(그것이 기법상의 것이든 철학적인 것이든)을 폭로하는 것이니, 대상이 되는 작품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그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적당히 모방하거나 왜곡시켜 ‘패러디했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얼마나 추잡한 짓인지 알 수 있다.   샤반의〈신성한 숲〉   로트레크의 〈퓌비 드 샤반의 ‘신성한 숲’에 대한 패러디〉     어쨌든 그 무렵 프랑스의 주요 화가로 활동 중이던 샤반은 환갑을 맞이한 1884년 살롱전에 앞의 작품 〈신성한 숲〉을 출품하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의 절름발이 천재이자 갓 스무 살이 된 로트레크는 이러한 현상이 영 못마땅했다. 그는 즉시 아픈 발을 이끌고 아틀리에로 들어가 이틀 만에 〈퓌비 드 샤반의 ‘신성한 숲’에 대한 패러디(Parodie du ‘Bois sacré’de Puvis de Chavannes)〉란 직설적 제목의 그림 한 편을 완성하였으니 바로 위의 그림이다.   원래 샤반의 그림이 신성한 숲을 노니는 여신들로 채워져 있는 반면 로트레크의 숲에는 여신들과 더불어 현대의 온갖 사람들이 노닐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압권은 자그마한 키에 불편해 보이는 다리로 뒤돌아서 있는 인물이니 누구이겠는가? 이렇게 해서 인간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썩 뒤떨어지지 않은 샤반은 스무 살 애송이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샤반의 이름이 후세까지 전해진다면 그의 덕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썩 기분 나쁜 일만은 아닐 터.             패러디는 대상이 되는 작품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패러디를 한 작품은 패러디 대상이 된 작품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의도적 모방   요즘 텔레비전 시사 교양 프로그램은 유행어 일색이다. 유행어는 주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나 사회자에 의해 생산된다. 예를 들어 이영돈 PD의에서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라는 유행어가 있다. 이를 신동엽이 에 가져와 오락적으로 사용하여 시청자들에게 코믹하게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이 유행어의 의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 이는지 알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아주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원본을 가져와 변형된 유형에 빗대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패러디(parody)란 기존 원본에서 따와서 재생산해 사용하는 콘셉트다. ‘잘 알려진’ 원작을 비틀어 풍자적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문학의 한 표현형식이다. 이는 ‘대응 노래(counter-song)’, ‘파생적인 노래’라는 뜻의 고대 희랍어 ‘parodia’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접두어‘para’에는 ‘대응하는(counter)’, ‘반(反)하는(against)’, ‘이외에(besides)’의 뜻이 있다.   패러디는 단순한 모방 차원이 아니고, 패러디의 대상이 된 작품과 패러디를 한 작품이 모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표절(剽竊)과 구분된다. 오늘날 영화, 연극, 드라마 등의 내용이나 이야기의 전반적 흐름, 등장인물의 말투 등을 모방해 표현하거나, 전 시대나 현재 시대의 권력적 허위의식이나 현실의 억압 요소 등을 조롱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도 하다.   원본 분석이 먼저   패러디를 제대로 하려면, 작가와 독자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한다. 작가가 대상 작품의 주제와 기법, 배경 등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패러디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하기 때문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KBS 1TV 의 ‘시청률의 제왕’은 출생의 비밀을 기본으로 하며 얽힌 가족 관계와 욕설 등이 난무하는 드라마를 풍자하고 눈에 띄는 간접광고물 노출도 부각시켰다. 이는 요즘 시청률만을 목적으로 하며 막장으로 달리는 드라마들을 풍자한 것이다. 또한 ‘뿜엔터테인먼트’에서는 개그우먼 김지민이 드라마의 장면 하나하나에 꼬투리를 잡는 까다로운 배우로 나오고, 개그우먼 신보라는 스태프를 3명씩 데리고 다니며 마치 왕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가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허세로 가득한 일부 연예인들을 풍자하는 것이다.   패러디는 사회문화적 상황과 연결하여 표현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권위적인 것에 대한 냉소와 도전적 시각이 기본 창조 본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패러디는 원본을 비판으로 재구성한 결과이며 모든 위장된 진실의 허구를 깨뜨리고자 하는 의식에 의해 생산된 담론(談論)적 콘셉트라고 할 수 있겠다.   패러디 하면, 아마도 광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법일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원작에 대한 친숙성으로, 모방을 통해 광고에 전이(轉移)시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작에서 느끼는 프리미엄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기존의 이미지에 전혀 새로운 기호와 상징을 첨가하여 반전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을 패러디한 광고로 다이아몬드 원석 업체인 드비어스(De Beers)의 광고가 있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모델의 머리모양이며 머리를 기울인 것이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르네상스 미술의 대가 보티첼리의 에 나오는 모습을 패러디한 것이다. 원작과 비교해 봤을 때, 원작에서 느껴지는 우아함과 당당함은 없지만 광고 효과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보티첼리, (1485) 캔버스에 템페라, 172.5×278.5㎝,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드비어스(De Beers)의 광고     심광현(1993)은 다음과 같이 패러디에 대해 언급한다.    “패러디의 강점은 원본을 떠난 또 다른 이미지를 통해 더욱 쉬운 경로인 우리 삶과 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보여 준다는 점이다. 원작의 친근한 이미지를 이용하여 좀 더 전달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패러디는 단순히 다른 작품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폭로하는 것이므로, 대상이 되는 작품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중매체와 일상생활을 통해, 다른 예술 작품 속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패러디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친숙함으로 또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패러디는 미래에도 새로운 의미를 재창조한 형태로 우리와 계속 커뮤니케이션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디지털 복제를 통해 원본의 형식을 차용해 뒤틀어 비꼬기는 아주 쉽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디지털 콘텐츠를 쉽게 선택하고 다르게 배열해 특정 대상을 조롱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 생산적인 패러디는 일상의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통찰을 일깨운다. 그러나 재미를 추구하는 극단적인 패러디인 엽기는 비판성을 상실한다.   1. 디지털 시대의 패러디   디지털 복제와 패러디 사이에는 분명히 친화력이 있다. 디지털 복제는 원본을 쉽게 조작하고 뒤틀고 바꿀 수 있도록 만든다. 그래서 네트 자체가 현실을 패러디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디지털 복제의 세계에서 원본의 형식을 차용해 뒤틀어 비꼬기는 아주 손쉬운 일이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는 패러디가 넘쳐난다.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딴지일보'가 주장하듯이 '히딱 디비기(다르기 보기)'와 '까발리기(까발려주마)'는 패러디의 중요한 요소이자 효과다. '히딱 디비지' 못하거나 '까발리지' 못하면 패러디는 실패한다. 닥치는 대로 까발리고 히딱 디비려면 무엇보다도 소재가 좋아야 하고 대상이 만만해야 한다. 소재가 은밀할수록, 대상이 공적일수록 패러디의 효과는 커진다. 은밀한 소재가 가차 없이 까발려질 때 사람들은 혼자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배설의 시원함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공적인 대상이 히딱 디비질 때 배설보다 더 시원한 통쾌감을 맛볼 수 있다. 소재가 은밀하면 은밀할수록, 대상으로 삼은 권력이 세면 셀수록 패러디의 영향력과 효과도 그만큼 폭발적이 된다.   가려진 실체를 보려면 가면을 '히딱 디비'거나 '까서 밝혀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까발리기'와 '디비기'의 도구가 바로 패러디다. 그런데 까발리는 작업의 효과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패러디의 비판 작업은 지속적인 반성과 교육을 통해 생산 작업으로 이어져야 생명력이 있다. 패러디는 불임의 문화를 욕하고 한심한 작태를 비웃고 조롱할 수 있지만 생산의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똑같이 불임이라는 한계에 이르게 된다.패러디가 웃음거리의 제공 차원을 쉽게 넘어서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판적인 패러디는 은밀한 소재와 공적인 대상의 꽁무니를 좇지 아니한다. 생산적인 패러디는 일상의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통찰을 일깨운다.일상의 핵심을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거두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깨임과 열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패러디의 역할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jamin)이 말한 '범속한 트임(profane Erleuchtung)'은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평범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패러디의 진정한 의미는 당대에 대한 비판을 통해 시대의 현실과 자기의 처지를 새롭게 각성하는 데 있다. 그래서 자기 처지에 대한 각성과 맞닿아 있지 않는 패러디는 말장난이나 정신의 발작에 지나지 않는다. 지배층을 조롱하고 권력 집단을 '히딱 디빌'지라도 스스로에게 각성의 실마리를 제시해 주지 못하는 패러디는 죽은 패러디다. 패러디가 엄숙주의를 고수할 필요는 없지만 시종일관 가벼움만을 추구하는 자세 또한 패러디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패러디는 대상에 대한 조롱인 동시에 스스로 아파지는 그런 뼈아픈 통찰을 담고 있어야 한다. 조롱과 야유를 통해 얻은 순간적 쾌감이 새로운 사회 구성의 창조적 힘으로 되살아나지 못하면 패러디는 또 하나의 허위의식으로 전락하게 된다. 패러디를 위한 패러디는 엽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2. 네트와 엽기   패러디가 극단화되면 엽기로 이어진다. 엽기 또한 패러디처럼 네트 문화가 변형과 따붙이기를 촉진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네트에서 유행하는 엽기물 중에는 '발상의 전환'이나 '발랄한 일탈'을 통해 '주류를 전복'하면서 '왜곡된 상식을 회복'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도 있다. 여기까지는 비판적 패러디의 연장으로서 각종 엽기 현상이 갖는 긍정적인 차원이다. 그러나 패러디는 마약처럼 중독이 강하다. 마약에 중독되면 점차 약발이 더 센 것을 찾듯이 패러디에 길들면 더 강한 패러디를 찾아 나서게 된다. 엽기는 패러디를 형식적으로 더욱 극단화한 형태다. 엽기는 비판성을 상실한 패러디가 재미를 좇아 극단화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소재의 선택이 넓고 감각적인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우리보다 더 열려 있는 일본 문화의 유입도 이러한 엽기 사조에 일조했다. 제도권 매체는 자기검열과 사회적 반작용에 민감하다. 그래서 소재 선정에 조심스럽고 사회적 평균인의 가치관을 거스르는 것들을 쉽게 다루지 못하는 데 반해 인터넷은 소재에서 누리는 자유와 관용도의 폭이 훨씬 넓다. 그리고 상호작용의 열린 매체이기 때문에 변형과 첨가와 왜곡이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혼탁한 사회 정치적인 상황과 문화 개방, 그리고 인터넷의 매체 특성들이 어울리면서 엽기 문화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엽기 문화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따라서 정상적인 꿈과 희망을 키우기 힘든 사회에 대한 혐오감의 뒤틀린 표현이자 이에 대한 극단적 조롱이기도 하다.   엽기물은 구토물이나 배설물 등 일상에서 더럽고 불결하다고 못 본 체하는 현상을 의도적으로 끄집어내거나 금기로 되어 있는 성행위나 살인 등 극단적인 행위를 주요 소재로 활용한다. 사회적 통념과 금기의 벽을 과감하게 뛰어넘는다는 시도 자체는 어떤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사회의식을 속에 담은 엽기는 비판적 패러디와 마찬가지로 고정관념과 편견을 무너뜨리고, 낡은 머리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극대화하면 부정의 힘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그러나 패러디의 힘이 절반은 주체의 비판정신에서, 나머지 반은 대상 자체에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엽기 또한 소재주의의 위험을 안고 있다. 기이함과 괴상한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엽기 매너리즘으로 연결될 경우 그것은 비판정신과 정반대인 허무주의의 틀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더구나 그것이 상업화의 추세와 연결된다면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질 것이다.   3. 패러디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보도 사진과 자신의 시의 결합물을 결합해 ‘낯설게 하기 효과’를 보여 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진실은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기계 복제 시대의 대표 산물인 사진의 현실 은폐 기능을 다음과 같이 잡아냈다. "르포 사진이 눈부시게 발전했는데도, 이 사진술은 진실을 밝히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다시 말해 사진은 부르주아의 수중에서 진실에 역행하는 무서운 무기가 되고 있다. 매일 인쇄기가 뱉어내는 엄청난 양의 사진 자료들은 진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실의 은폐에만 기여해 왔다. 사진기 역시 타이프라이터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브레히트는 『전쟁교본(Kriegfibel)』에서 사진과 시를 결합해 현실의 진실을 보여 주었다. 브레히트는 보도 사진과 자신의 시의 결합물을 '포토에피그람(fotoepigramm)'이라 불렀다. 그는 이를 통해 '에피그람'과 '사진'을 형식적으로 절묘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브레히트는 사진이 갖는 자명성을 부수고, 그 속에 숨은 구체적인 진실을 다시 끄집어내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브레히트는 시와 사진을 결합해 사진의 외형적 자명성을 의심토록 유도했다. 패러디의 '히딱 디집기'는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효과(Verfremdungseffekt)'와 이런 점에서 닮아 있다. 브레히트는 외형적 가짜 현실의 배후에 숨어 있는 진짜 현실로 인도하는 방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브레히트의 '포토에피그람'은 '기계 복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작가가 당대의 새로운 매체를 문학에 수용해 진실 전달에 합당한 생산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던 선진적인 시도였다. 브레히트는 각 시대에는 그에 맞는 예술 표현 형식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브레히트의 정신은 네트의 패러디를 비롯한 다양한 대안 문화 실험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가 말하는 '범속한 트임'은 대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데서 얻어진다. 이성에 기반하지 않는 패러디는 감성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데 만족하는 수준에 그친다. 욕하고 비하하는 대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패러디의 프리미엄은 크다. 패러디가 거둔 성공의 반은 패러디가 된 대상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패러디를 구사하는 자신의 힘이 약해도 대상의 강퍅함이 이미 웃음의 소지를 지니고 있다. 이런 점을 망각하고 패러디로 성취한 힘이 자신의 내공에 따른 것이라고 자만하면 얄팍한 상업적 패러디의 천박함에 이르게 된다.  
849    패러디, 모방, 표절에 대하여 댓글:  조회:5023  추천:0  2015-04-04
                             패러디, 모방, 표절에 대하여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 말은 대체로 모든 창조적인 결과물이 어떤 영향 관계에서 생성되게 마련이므로 하늘로부터 뚝 떨어진 것인 양 새로운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창작에 대하여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관점이 아닐까 싶다. 최근 연예가에 서태지와 이재수라는 두 사람 사이에 심상치 않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서태지의 노래를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만큼 세대간의 간극이 크기 때문일까. 기껏 내가 기억하는 서태지는 「난 알아요」라는 곡 말고는 우스꽝스러운 복장과 국적 불명의 춤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서태지의 「컴백 홈」이라는 노래를 이재수라는 음치가수('음치'와 '가수'란 두 단어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가 자신의 스타일로 패러디하여 부른 노래 「컴배콤」이 저작권 침해, 인격권 침해의 문제가 되어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졌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잠깐 패러디에 대한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패러디란 어떤 저명한 시인/작가의 시의 문체나 운율을 모방하여 그것을 풍자적으로 또는 조롱 삼아 꾸민 익살스러운 시문(詩文)을 말한다. 유명한 작품의 한 단어, 한 구절을 비틀어 바꾸거나 과장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그 본질이다. 넓은 개념으로 보면 모방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언론에서는 현직 대통령도 희화화(戱畵化)되고, 텔레비전에서는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낸 코미디가 나오기도 한다. 도올 김용옥 교수의 논어(論語) 강의가 인기를 끌자 코미디언 서 아무개의 '돌 선생 강의'라는 패러디가 나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대통령이나 도올 선생이 인격권 침해로 그들을 소송했다는 얘기는 없다. 그렇다면 서태지는 그보다 위의 어떤 신성 불가침의 존재일까. 패러디는 단순히 웃자는 데서 출발한다. 대중들이 보고 웃으면 그게 바로 패러디의 효과일 뿐이다. 영화에서도 패러디의 경우가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007 제임스 본드, 람보를 흉내낸 백발의 코미디 배우는 「못 말리는…」시리즈 영화의 단골 주역이다. 그가 「탑건」,「사랑과 영혼」,「타이타닉」 등을 혼성 모방한 영화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베토벤의 유명한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를 우리 나라에서 오래 전 김용선이 편곡한 대중가요 「정열의 꽃」이 있다. 아마 70년대일 것이다. 당시 이화여대 미대 출신의 가수 정미조가 그 노래를 불렀고, 요즘은 다시 김수희가 가사를 바꿔 부른 「정열의 꽃」을 들을 수 있다. 혹시 베토벤의 유족들이 저작권 운운하며 항의하러 오지 않을까. 음악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음률에 다른 가사를 붙이는 경우를 패러디라고 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특히 16세기에는 어떤 악곡의 선율이나 구성법을 빌어 작곡한 유사한 악곡을 패러디라 하였다. 그것은 풍자나 익살이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경의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의 경우와는 다르다. '패러디 미사곡'이라는 게 있을 정도였다. 문학에서의 패러디, 또는 모방을 생각해 본다. 패러디의 시조는 멀리 고대 그리스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의 풍자시인 히포낙스가 그 패러디의 시조라 한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도 실은 중세시대 기사도 전설의 패러디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독백이 있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텔레비전의 역기능이 심각히 우려되었던 미국의 1960년대에는 이것을 패러디한 "텔레비전을 보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로다(TV or not TV that is the question.)."라는 말이 유행했다던가.  패러디에 대하여 언급한 이사라 시인의 말을 들어본다.  린다 허천(Linda Hutcheon)에 의하면 패러디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주제와 형식을 표현하는 주요한 기법이며 모방의 한 형식이다. 그런데 패러디는 단순히 패러디된 작품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러닉하고 장난스러운 것에서부터 경멸적이고 조롱조인 것까지를 포함한 전도(顚倒)에 의한 모방이다. 그러나 패러디는 더 나아가 이전의 예술작품을 재편집하고 재구성하고 전도시킬 뿐만 아니라 초맥락화하는 통합된 구조적 모방의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협의로 볼 때는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를 '조롱하거나 희화화' 시키는 것이지만 광의로 볼 때는 텍스트와 텍스트 간의 반복과 차이를 의미한다. 패러디라는 용어는 '대응하다' 또는 '반(反)하다'의 뜻인 'para'와 노래의 뜻인 'odia'의 합성어 parodia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선행의 텍스트와 대응하거나 반한다는 데 있어서 패러디와 풍자, 패스티쉬, 상호텍스트성은 엄격한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패러디와 패스티쉬(pastish, 긁어모은 것)는 양자 모두 모방을 뜻한다. 그렇지만 패러디가 다른 텍스트와의 관계에서 차이와 변형을 강조하는 데 비해 패스티쉬는 모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그친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eric Jameson)은 중성 모방 또는 혼성 모방인 패스티쉬가 숨은 동기나 풍자적 충동, 웃음이 없는 공허한 패러디이며, 스타일상의 가면이고, 내부 깊이가 없는 표피적 모방이며, 여기저기 원전들을 차용하는 짜깁기라고 설명한다.  ―「실험적 기법」『시창작 이론과 실제』(1998, 시와시학사)  널리 알려진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은 많은 패러디 작품을 거느리고 있다. 황지우는 "내가 꽃에게 다가가 '꽃'이라고 불러도 꽃이 되지 않았다. 플라스틱 造花였다."라고 쓴 것도 있고, 오규원의 「'꽃'의 패러디」, 장경린의 「김춘수의 꽃」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장정일의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는 기발하며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 장정일의 시 일부 인용  남의 창작물 중 한두 군데라도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인 양 슬쩍 훔쳐 넣는 것을 표절(剽竊)이라고 한다. 그건 모방이라 할 수가 없다. 대중가요 쪽에서 이따금 일본 노래 한두 소절을 표절했다고 말썽이 나기도 하고, 문단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곧잘 불거져 나온다. 쉽게 말하면 남의 시가·문장·학설 따위를 자기 것으로 발표하는 일이 곧 표절이다. 최근 젊은 평론가가 저명한 평론가의 글에 대하여 감히 표절 사실을 밝히고, 그 문제로 인하여 오히려 자신이 피해를 당한 해괴한 사건이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금년도 신춘문예 당선 시 가운데도 그런 의심을 받은 작품이 있어서 어느 계간지의 홈페이지 게시판이 정월 한 달 내내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H일보의 당선작이 문제의 표절 의혹을 받은 시였다. 내 개인적인 견해를 말한다면 그건 분명한 표절이라고 생각한다.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이라고 이미 지상에 발표한 이후라서 철회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 전년도 어느 잡지에 발표된 텍스트의 시와 발상이 비슷하고 영향을 받은 듯하지만 표절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궁색한 변명이 뒤따랐다. 그가 투고한 다른 시들의 수준도 충분히 고려해서 확정된 결론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감때사나운 눈총을 받은 시 말고 다른 그의 시를 당선작으로 발표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긴 그렇다면 표절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난처한 입장이 될 수도 있으리라. 이미 고인이 되어서 그의 시를 거론하는 일이 좀 마음에 꺼려지긴 하지만, 분명한 평가와 정리를 해야 마땅하리라는 뜻에서 박정만의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시에 대하여 이제는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1966년에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가 그 작품이 일개 지방대학신문에 보름쯤 먼저 발표되었다는 사유로 당선이 취소되는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었다. 표절과는 관계없는 사안이었다. 다만 거대 신문사의 권위가 문제였다. 억울하게 낙선(?)의 고배를 든 나는 당선될 뻔한 시와 다른 시들을 묶어서 1966년 여름에 처녀시집 『이상기후』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1967년 조선일보에 당선되었다. 그 이듬해 1968년 박정만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하였는데 신문에 발표된 그의 시 「겨울 속의 봄 이야기」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겨울 속의 봄 이야기  Ⅰ  뒷울안에 눈이 온다.  ①[죽은 그림자 머언 記憶 밖에서]  무수한 어둠을 쓸어 내리는  구원한 하늘의 說話.  나는 지금 어둠이 잘려나가는  瞬間의  ②[분분한 落下 속에서]  눈뜨는 하나의 나무  눈을 뜨는 풀꽃들의  ③[건강한 죽음의 蘇生을 듣는다.]  무수히 작은  아이들의 손뼉소리가 사무쳐 있는  暗黑의 깊은 땅속에서  몸살난 昆蟲들은 얼마나 앓고  있는가.  四方에 思惟의 蟲齒를 거느리고  밋밋한 樹海를 건너오는  찬란한 아침 光線.  受胎한 女子의 房門 앞에서  나는,  靑솔과 반짝이는 銅錢 몇 잎을  흔들며  자꾸만 서성대고 있다.  Ⅱ  아침 한때 純金의 부리로  빨갛게  새들은 남은 殘雪을 쪼아대고  그때 무어라 귓속말로 읽고 가는  바람의 傳言.  수런거리며 은빛 비늘이 돋아  나는  樹皮의 깊은 안쪽에서부터  몇 개 새순이 자라나고 있는가.  ④[사랑의 品詞들로 점점이  물들어 가는 나의 눈과 목소리]처럼  ⑤[예지의 光彩가 가지 끝에 엉기어]  비쭉비쭉 푸른 血管이 일어서면,  저 유난히 커오르는 숨소리를  내 아내의 어린 살빛은 듣고 있다.  ⑥[자꾸만 바람 뜨거운 나뭇가지 끝에서]  까치들은 한 小節의 노랠 부르며 있고.  Ⅲ  ⑦[홀연 도련님 눈썹 위에 내려앉는  淸雅한 뻐꾸기 울음소리.]  봄의 젖줄을 잡아당기는  따스한 母情의 觸感을 한 줄기씩 내리어  꽃대의 燈心을 밝히고 섰는  어머니의 祝福을 누가 알까.  ⑧[家家戶戶의 문전마다]  ⑨[新春大吉이라 榜을 붙이고,]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옮겨 앉는 메아리.  時間은 상처 난 손을 떨어뜨리며 지나가고  ⑩[겨울 冷氣는 땅강아지 발목 앞에서  바쁘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 시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교묘한 혼성 모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표절이라 생각하지만. 박정만은 경희대에 재학 중이었는데, 그 때 국문과 대표인 친구가 내 절친한 동창이었고 그로부터 내 처녀시집을 받아 탐독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 시에서 많이 영향받았다는 얘기인데, '영향'과 '표절'은 엄연히 다르다. 여기 시행의 앞에 번호를 매긴 것들 아홉 군데가 말하자면 내 처녀시집 『이상기후』에 들어 있는 시들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된다.  ① 죽은 사람들의 그림자/ 머언 記憶 밖에서 ―'겨울 나무'에서  ② 純金의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의 분분한 落下 ―'市民들'에서  ③ 뛰어다니며 예감하는/ 건강한 우리들의 죽음. ―'市民들'에서  ④ 문을 두드리는/ 나의 손가락까지 점점이 물들어/ 파아란 잎사귀로 하늘대다 ―'人形'에서  ⑤ 봄철의 예지/ 스미어 있음인가,/ 빗속에/ 비 젖는 나무 줄기 속에 ―'겨울 나무'에서  ⑥ 미친 듯이 나부끼는 가슴 속의/ 바람 뜨거운/ 나무 ―'겨울 나무'에서  ⑦ 도련님 눈썹에 눈 내리는 돌개바람/ 돌개바람 속에 북소리/ 쇠북 소리/  冥界를 길어내는 피리 소리 ―'紙燈說話'에서  ⑧ 家家戶戶의 뜨락에서 ―'市民들'에서  ⑨ 吉兆. 吉兆,/ 紙燈을 걸어두었던 문설주에 ―'紙燈說話'에서  (신춘대길? '입춘대길'은 들어보았지만 그런 말도 대문에 써붙인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⑩ 여름이/ 땅강아지 앞다리에서/ 바쁘게 무너져 오는 것을 본다. ―이상렬 '씨 뿌리는 마음'에서 미리 밝혀 둘 일이 있다. 나와 이가림은 고교 동기동창이고, 이상렬은 고교 2년 후배, 박정만은 3년 후배라는 사실이다. 이상렬, 그는 불운한 무명 시인이었다. 신인상에 최종선까지 올랐다가 강서화(강은교)에게 밀려 떨어진 후 끝내 일어서지 못하였고, 지금 그는 고인이 된 사람이다. 신춘 당선시에 대하여 박정만은 내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으며, 오랜 세월 뒤 갖은 고초 끝에 불행한 생을 마감하였다. 어쩌면 내게 뿐만 아니라 다른 시인들에게도 빌려 쓴 구절에 대하여 용서를 구했어야 할 시가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나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한꺼번에 수많은 시들을 쓴 것에 대하여서는 경탄을 금치 못한다. 박정만 시인이 죽고 난 뒤 어느 잡지사가 앞장서서 그의 시비를 세우자고 하였을 때 나는 그의 사과를 끝끝내 듣지 못했으므로 냉담하였다. 나는 지금도 문제의 그 시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못한다. 그것은 표절, 아니면 교묘한 혼성 모방의 시이기 때문이다.  정녕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진리인가.   [출처] 패러디, 모방, 표절에 대하여 / ( ?)|작성자 진구자  
848    패러디시 쓰기 / 그 창작 댓글:  조회:5069  추천:0  2015-04-04
          패러디를 통한 시 쓰기와 창작 교육                                                                                   유영희(서울대 국어교육과 박사과정)                                                                                      1. 문제 제기                                      2. 표절, 모방 그리고 패러디                             3. 창조성의 새로운 범주 - 패러디                               (1) 메타 언어를 통한 자기 독립성                               (2) 언어 유희를 통한 의미 재구성                             4. 패러디 읽어내기와 시 쓰기                1. 문제 제기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           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속 버튼을            눌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 장정일,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민음사, 1988, p.64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           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           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김춘수전집}, 도서출판 문장, 1986, p.142   }}                        문학이 음악이나 미술, 사진 등과 다른  점은 그것이 언어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언어는 늘 변화한다.  그런데 변화는 아무 것도 없는 속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늘  있음을 전제로 해서 일어난다. 그래 서 언어는 재창조된다. 물론 음악이나 미술 등도 재창조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 고 각각의 작품들도 작가나 유파 속에 집단을 이루어 존재한다. 그림의 부분부분과 질료는 그런 것들을 벗 어나 따로따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각조각 나누어 보면 언어는 모두 일상 생활이나 기존의 텍스트 속에 녹아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이 나 름대로의 독특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을  작가의 경우에 한정시켜 살펴보면,  한 작가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은 일종의 경향을 이루게 되 고, 때로는 문단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위를 부여받아 일군의 세력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 데 그 독특한 문체라는 것도 내면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면 모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조합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떤 어휘들을 즐겨 사용하고, 어떤 통사적 구조를 선호하는가가 문체의 외면적인 성격을 규정 할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작가의 독특한 문체가  다른 작가의 작품 속에서도 드러날  때, 그것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이에 대해 상호텍스트성(간텍스트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왔다. 한 텍스트는 이 전 텍스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텍스트에는 이전 텍스트들의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는 것이다. 그러나 상호텍스트성은 다분히 우연적이고 비의도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것은 문화의 일반적인  속성에 의거하여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피력한다. 그러므로 상호텍스트성이라는 개념은 창 작자의 의도가 개입된 모방에 이르러서는 그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제 위의 두 시들을 살펴보자. 장정일의 시는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김춘수의 을 변주한 작품이 다. '변주'라는 용어가 주는 낯설음은 그것이 주로 음악에 사용되어 온 개념이기 때문이다. '변주'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하여 리듬, 가락 따위를 바꾸고  꾸며서 연주하는 일'이다. 그러나 장정일의  시를 살펴보면 리듬이나 가락, 즉 시의 형식적인 측면은 거의 김춘수의 작품과 동일하다. 오히려 주제,  즉  내용의 측면에서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꾸미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형식과 내용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 을 이루고 그것이 문학으로, 음악으로 장르를 형성해 간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인식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가가 교과서에도 나오는 익히 알고 있는 시를 바꾸어서 새로운 시로 쓴  까닭은 무엇일까? 아 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이미 김춘수의 시가 널리 알려져 있다는 사실과 관련을  맺고 있다. 시조의 경우, 우 리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형식적 자질 및  내용적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조나 한 수 지어  보게.' 하고 누군가가 권한다면 그 말이 의미하는 뜻이 무엇인지, 그 사람이 어떤 형식의 것을 원하는지 곧  인지하게 된다. 만약 그 사람의 말을 거절할 의사가 없다면 그 형식적 자질을 망가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 서 일정한 내용을 담아 그가 요구하는 형식의 것을 제시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김춘수의 시는 대부분의 독 자들에게 이미 어떤 형태로든 인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변주를 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그 의도 를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장정일의 시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기법을 패러디{{  ) 패로디의 개념 및 기능, 의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  이 글에서는 패로디의 범주를 너무 넓게 잡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패로디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고 있는 린다        허천(김상구, 윤여복 옮김, {패로디 이론}, 문예출판사, 1992)과 비슷한 관점에서  논의를 이끌어 가       고자 한다. 즉, 패로디가 글쓰기 전통의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글쓰기 전통에의  복귀이며, 전통에        대해 끊임없는 대타 의식을 지닌 생산적인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것이다.  }}로 범주화하고 그것의 개념과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에게는 독자로서의 시 쓰기 행위이며 독자에게는 작가의 비평 의식과 창작 의식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텍스트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측면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표절, 모방 그리고 패러디       표절이나 모방에 대한 논란은 예술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미술 분야에서 표절에 대한 시비는 위조  문제와 관련을 맺으면서 끊임없이 쟁점화되어 왔다. 미술에서 위작의 역사는 미술사와 더불어 시작되었으 며 그리스 시대의 미술가들은 팔리지 않는  동료나 제자의 작품에 자신의 서명을  기입하여 도와주었다는  위작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 유준상, 미술의 不正行爲에 대하여, 월간미술, 92년 1월호, p.99  }}  사실, 그 당시에 그것은 '사회성을 갖는 사실'로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이 사회성과 관련을 맺으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이는 고고학, 미학, 역사학 등의 여러 학문들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가능해졌고, 귀족 중심의 문화가 서서히 깨어지기 시작한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학의 경우에도 이미 기원전 7, 8세기의 그리스에서부터  명작의 시구나 문체를 모방하는 표현 기법들 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사실 문학사를 통하여 고대 로마 시대의 시인 베루길리우스를 비롯하여 제프리 초 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드라이든, 존 밀턴, 새뮤얼 테일러 코울리지, 로런스 스턴과 같은 영국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표절이나 도용의 혐의를 받지 않은 작가는 단 한 사람도 없다.{{  ) 김욱동, {문학의 위기}, 문예출판사, 1993, p.209  }}   그러므로 이제 표절과 모방의 범주를 확실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표절과 모방은 그야 말로 아주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그것에 접근하는 시각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 면 귀고리'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표절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91년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서양화  부문 수상작과 관련된 미술 분야의 표절 논쟁과  92년 이인화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 대해 제기된 문학에서의 표절 논쟁이 그것이다.       여론에서 문제삼기 시작하여 평론가들 사이의 지상 논쟁으로까지 발전한 이번  표절시비의 쟁점은 표절 여부와 작가의 윤리성에 대한 논란보다는 이 작품의 표절 여부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공식적인 태도와 이 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평론가들이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미술사적 논거  자체의 합당성 여부에 놓여 있다 고 볼 수 있다.{{  ) 심광현, 표절시비와 미술대전의 향방, 월간미술, 92년 1월호, p.118 }}      한 평론가의 올바른 지적처럼 이제 표절 문제는 윤리성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입장의 차이에 근거한  논쟁의 성격이 짙다. 원작 텍스트를 전용한 어떤 작품이  표절 시비의 대상이 되었을 때 비판론자는 이를  '표절'이나 '도용'으로 규정하지만 옹호론자는 이를 다른 개념으로, 즉 '인용'이나 '차용', '패러디',  '패스티쉬 (혼성모방)' 등으로 규정되도록 진술한다. 즉, 이러한 행위들은 의도의  차이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규정 되는 것이다.{{  ) 김수현, 예술작품에 대한 표절판정의 논리, 미학 제18집, 한국미학회, 1993, p.30        이 글에서는 표절 판정에서 자주 언급되는  '작가의 의도' 문제에 대해 그것이  원작은폐를 부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의미 해석과 가치 판단에 원작에 대한 지식이 개입되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의  능력이 다양한 층위를 이루고  있고, 지식의 개입 여부가        일괄적으로 추출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므로  실제적인 판정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작가의 의도는 표절에 대한 명백한 판단  기준이 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의 전체적 맥락인  것이다. 이렇게 표절이나 도용의 혐의를 두는 데 미시적 측면보다는 거시적 측면이 고려되어야 하는 까닭 은 문학 작품이 매체로 삼고 있는 언어의 특수성 때문이다. 언어는 시중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사용한 다음 에야 비로서 나의 손에 들어오는 화폐와 같아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가치나 이데 올로기가 침윤되어 있게 마련이다.{{  ) 김욱동, 앞의 책, pp.194∼195 }}  물론 그렇다고 해서 텍스트의 내용이나 형식적인 측면이 고려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에 대해서도 엄밀한 판정을 내려야 할 뿐 아니라, 작품 자체의 문학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복사'나 '조립', '베끼기', '빌려오기' 등으로 규정되고 있는 예술 작품의 창작 방법에 대한 용인은 작품의 미적 수준과 일정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자연스럽게 예술 창작의 한 방법론으로 규정되고 있는 모방의 개념으로 넘어가게  된다. 모방은 단순히 견습 작가들이 창작 방법을 습득하는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고대인 들이 이룩했던 예술적 탁월성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관점에서도 큰 의미와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남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흉내내는 것은 결점이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미덕으로 간주되 었을 뿐 결코 표절이나 도용으로 간주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김욱동, 앞의 책, p.212 }}   전통적인 미술에서 말하는 모방은 일상 경험의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충실한 복제인  단순 모방뿐 아니 라 본질의 모방 또는 이념적인 것의 모방까지를  포함해서 광범위한 범주를 갖는다.{{   최형순, 현대미술의 창작개념에 대한 연구 - 창작과 모방의 역학과 패러디,  서울대 석사, 1994년, p.11    }}  문학에서의 모방도 내용이나 형식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세계관이나 창작 방법과 관련된 포괄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왔다.    오늘날 모방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창작 방법은  패러디이다. 패러디는 모방의 한 형식이지만 항 상 패러디된 작품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닌 아이러닉한  전도에 의한 모방이다.{{  ) 김상구.윤여복 옮김, 린다 허천, {패로디 이론}, 문예출판사, 1992, p.14        린다 허천은 오늘날 패로디라고 부르는 것이 과거에는 모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고 지적하       면서 패로디와 모방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패로디=모방이라는 등식은 각각의  개념을        너무 단순화한 느낌이 없지 않으므로 보다 엄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후에 나오는 패로디와 관련된 논의들은 주로 이 책의 입론을 원용하여 전개해 나갈 것이다.  }}  그러므로 근대적 패러디에는 오늘날의 예술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아이러닉하며 비판적인 차원에서의 거리감이 가미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차이를 둔 반복으로서의 패러디는 비평적 거리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패러디는 당대의 문화적 조건과 여러 모로 결부되어 있다. 현대  예술에서 자아 반영의 양식에 대한 관 심이 최근에 증대되고 있으며, 비평적 연구에서 텍스트의 상호관련성이 강조된다는 측면에서 패러디는 주 목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패러디가 쟁점이 되고  있는 것도, 대중 문화의 홍수 속에  쏟아져 나오는 많은  작품들에 대한 가치 기준이 명확하기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창작 방법을 인정하는 현대의 예술 풍 토 때문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패러디 사가(historian)들이 문화적으로 세련되어서 패러디 작가 들로 하여금 패러디 독자의 능력에 의존할 수 있게 해주는 시대에 패러디가 번성했다는 데 동의하는 것이 다.{{  ) 린다 허천, 앞의 책, p.35 }}      당대의 문화에 대한 문화적 믿음은 우리가 지각하고 사유하는  행동 방식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우 리의 정서적.심리적 반응들을 조건지우고 수정한다. 우리의 근본적인 믿음들은  우리의 감각, 정서, 지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예술 작품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변화시킨다.{{  ) 최진희, 현대 미학에서의 '위조' 문제에 관한 연구 - 위조품의 가치와 그 존재론적  자격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       로, 서울대 석사, 1995, p.34 }}  그러므로 이중적 기호화를 통해  아이러닉한 전언을 보내고 있는 패러디는  독자의 다양한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창작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패러디는 창작 방법으로서뿐 아니라, 창작의 추동력으로서 상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패러디가 작가 의 의도와 관련된 단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 관객, 청자 등의 모든 수용자와 전체적 인 연관을 맺고 있는 다층적인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3. 창조성의 새로운 범주 -  패러디      (1) 메타 언어를 통한 자기 독립성      패러디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그것이 이미 알려진 텍스트를 내용이나 형식의 측면에서 수용자가 인식 할 수 있도록 재약호화한다는 것이다. 즉, 소설에 대한 소설, 시에 대한 시, 영화에 대한 영화 등의 방식으 로 인식되어지는 독특한 텍스트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때로 장르를 뛰어  넘어 소설을 시로, 시를 영 화로, 영화를 광고로 패러디하는 실험적인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미 형성된 텍스트를 유사한 내용이나 형식으로 재텍스트화하는 것은 주로 메타 언어적 측면에서 접근 된다. 특히, 패러디의 경우에는 그것이 결코 단순 모방이나 패스티쉬에 그치지 않는 새로운 독립성을 지닌 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메타 언어를 통한 자기 독립성의 획득은  구체적인 텍스트에서는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먼 저 권위에 의존하여 텍스트에 주목하게 하는 방식이 있다.       테레사는 안나 카레니나를 가슴에 안고/ 갈대바구니 저어 희고  견고한 침대 같은/ 토마스의 팔에 착륙 했다 가끔 침대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카레닌이라는/ 예쁜 강아지와 함께  그들은 오래 행복했다// 그녀는  어둡고 푸른 물 위를 흘렀다/  갈대바구니도 없었다 분홍치마 연두저고리/  떨어진 꽃잎처럼 젖어 옛집에  돌아왔다/ 집에는 그녀를 두려워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커다란 입을 가진/ 더러운 개를  키우고 있 었다 오래 행복했다{{  ) 성미정, 참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가여움, 시와 반시, 1994년 겨울호, p.52 }}            삐삐 아빠는 섬 감옥에 갇힌 채/ 바다로 병을 던졌다/ 병 속에는 살려달라는 내용의 쪽지가 들어 있다/  삐삐는 말을 타고 바닷가를 지나다/ 병을 줍고 아빠를 구할  결심을 했다/ 힘센 삐삐는 빗자루를 타고 날 아다녔다/ 한 손으로 역기를 들었다/ 삐삐는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었다/ 별것 아닌 손짓 발짓만으로/ 스릴  넘치는 액션도 없이/ 하지만 삐삐를 보면 슬펐다/  세상의 악에 홀로 맞서는 천진한 아이/ 주근깨와  코가  말린 큰 신발을 보면/ 가슴속에서부터 저며오는 눅눅한 우울/ 언젠가 소풍 갔을 때 나는 요구르트병에/ 살 려달라고 적은 나뭇잎을 넣어 시냇물에  흘려보냈었다/ 아직 나를 구원하려고  달려온 사람은 없어/ 넓은  바닷가 한 알갱이 모래를 줍는 일이란/ 실제로 삐삐는 죽었다고  했다/ 관 속에 들어간 삐삐를 누가 발견 할지/ 삐삐의 말괄량이 짓거리는 여전히 슬프다{{  ) 윤의섭,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문학과  사회, 1995년 가을 제Ⅷ권 제3호, 문학과  지성사, pp.1048∼       1049 }}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패러디한 성미정의 시는  대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원래 소설의 스토리를 시로 구성한 후에, 테레사에 대비되는  분홍치마 연두저고리의 그녀를 등장시 켜 대비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테레사의 경우에는 주로 내적인 자기 번민이 갈등 상황 을 유발하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가정 형편과 같은  외적인 요인들이 갈등 상황을 유발한 것으로 추정된 다. 그래서 '떨어진 꽃잎'과도 같이 흐느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 더러운 개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집은 자기를 지켜줄 수 있는 어떤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집 이요, 가족들이 눈치를 보며 자기를 슬금슬금 피하는 집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줄의 '오래 행복했다'는 역 설적인 진술로 보인다. 어쨌든 그녀에게 일상적인 삶은 되풀이되었을 것이며,  행복이라는 말은 오히려 사 치에 가까운 말이라는 의미에서의 '오래 행복'인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제목에서도 역력하게 알 수 있다.  개인의 의지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참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가여움'으로  패러디된다. 이것은  존재 자체가 관념적인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 삶의 실천적 문제로 전이됨을 의미한다. 즉, 현대에서의 대중 적인 삶의 조건들은 사유를 통해 규정되기보다는 상황 자체에 의해 이미 틀로 정착된 것임을 확연하게 보 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미정의 시는 밀란 쿤데라의 텍스트를  참고로 하였지만, 마침내 자기 독 립성을 확보하게 된다.   윤의섭의 시는 텔레비전에서 이미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는 {말괄량이 삐삐}에 대한 패러디이다. 이 시  역시 성미정의 시처럼 기존의 텍스트를 구성한 후, 그에 대하여 자신의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져 있다. 풍자적인 기법이 텍스트 전체를 이중화해서  보여 주며 수용자의 해독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의  악에 홀로 맞서는 천진한 아이'인 삐삐를 보면 신이 나기보다는 차라리  슬퍼진다. 그 당당함과 용기는 감 탄스럽지만 거대한 세상의 부조리에 대항하기에는 삐삐의 힘이 너무나 나약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있어 서도 삐삐의 행위는 슬픈 것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자신의 작은  실험으로 더욱 견고해진다.  살려 달라고 적은 나뭇잎을 삐삐 아빠가 병을 던졌듯이 흘려 보냈지만, 삐삐는 달려와 주지 않았다. 더 이 상 삐삐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희망은 사라지고 나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다. 다른 사람 에 대한 기대는 '넓은 바닷가에서 한 알갱이 모래를 줍는(찾는)' 행위처럼 아득한 것으로 퇴화하고 만 것이 다.    이처럼 권위에 의존하는 패러디의 형식은  여러 시인들의 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종교시로 불리우는  일군의 시들도, 성서 등의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권위를 내세우며 은폐된 의도를 기호 해독자에게 툭툭 던 진다.    종교시의 경우는 다소 예외라고 할 수 있지만,  권위에 의존하는 패러디는 일반적으로 풍자적인 기법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는 패러디가 아이러니라는 수사 기법에 의해 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특성과 맞물려  있다. 패러디처럼 풍자의 경우에도 아이러니를 창작 기법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에 의존하는 패러디와 상당 부분 맞물리기는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의존하고 있는 패러디도 하나의  유형을 형성한다.       아침 티브이에 난데없는 표범 한마리/ 물난리의 북새통을 틈타 서울 대공원을 탈출했단다/ 수재에 獸災 가 겹쳤다고 했지만, 일순 마주친/ 우리 속 세마리 표범의 우울한 눈빛이 서늘하게/ 내 가슴 속 깊이 박혀 버렸다 한순간 바람 같은 자유가/ 무엇이길래, 잡히고 또 잡혀도/ 파도의 아가리에 몸을 던진 빠삐용처럼/  총알 빗발칠 폐허의 산속을 택했을까/ 평온한 동물원 우리 속  그냥 남은 세명의 드가/ 그러나 난 그들을  욕하지 못한다/ 빠삐용, 난 여기서 감자나 심으며 살래/ 드가 같은 마음이 있는 곳은 어디든/ 동물원 같은  공간이 아닐까/ 친근감 넘치는 검은 뿔테안경의 드가를 생각하는데/ 저녁 티브이 뉴스 화면에/  사살 당한  표범의 시체가 보였다./ 거봐, 결국 죽잖아!// 티브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내가 드가?{{  ) 유하, 빠삐용-영화 사회학, {武林일기}, 세계사, 1995, p.98 }}         이 시는 영화 {빠삐용}을 패러디하고 있다. 빠삐용이 감옥에 갇혀 탈출하고자 하는 상황과 동물원의 우 리 속에 갇혀 있다가 자유를 찾아 도망을 친 한 마리의 표범이 처한 상황을 통해, TV 속에 갇혀 있는 '나'  자신과 현대인들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는 이 시는 그야말로 문명 비판적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특 히, 빠삐용이 탈출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자유를 포기하고 억압적인 삶을  지속하 는 드가는 동물원에 남은 세 마리의 표범과 비교되면서 일반화된다. 그것이 자유에 대한 욕구보다는 죽음 에 대한 공포가 강한 나약한 인간의 본성임이 표면화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 자신도 결코 그러한 인간 의 본성에 거역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나 난 그들을  욕하지 못한다/ 빠삐용, 난 여기서 감자나 심으며  살래'라는 시구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거봐, 결국 죽잖아!'하며 당연한  결과라는 듯이 TV를 지켜보 는 자신을 깨달으며 문득 놀라게 되는 작가의 모습에서도 그러한 기미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상황에 의 존하는 패러디의 경우에도 그 상황이 결국은  자기 자신의 상황으로 대치됨으로써 작가만의  고유한 자기  독립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는 부자집 안방에서 부르는 소리에는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왜놈이나 지체 높은 양반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고집이나 애국심을 말하려고 이 따위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부잣집  잔칫방 대신에 영화로움 대신에, 장텃바닥이나  어린이 놀이터 가설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는  기생년에 잽혀 노래를 불렀다고도 한다. 그가 촌놈이라거나, 오입쟁이라거나, 무슨 속 깊이 감춘  노여움이  있음을 말하려고 이 지랄을 떨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귀신이 우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귀신 울음 소 리에 모두들 소름이 끼치고, 귀신 오는 발자국 소리에 온갖 죄진 년놈들 몸을 움츠렸다고 한다. 그는 거꾸 로 귀신을 잠재우는 소리를 냈다고도 한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춘향가 한 대목을 듣고, 그의 재주를 칭찬 하려고 이 짧은 세 치 혓바닥 놀리는 것이 아니다. 모두들 가슴 추운 날, 다 잃어버린 날, 앉은뱅이.곱사.문 둥이, 그래도 무엇 한 가지 남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라고 한다. 모닥불이라도 피워, 그의  곱은 손 덥혀 주자고도 한다. 임방울. 그의 시를 지금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 이성부, 林芳蔚, {前夜}, 창작과비평사, 1981, pp.54∼55 }}      판소리 명창으로 특히, 춘향가 중 '쑥대머리' 부분을  더늠으로 잘 불렀던 임방울의 전설적인 삶을 소재 로 삼고 있는 이 시는 임방울의 삶에 대한 자세, 즉 세계관을 근거로  하여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다. 민중 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즐겼던 임방울은 신기에 가까운 귀곡성으로  듣는 이를  감동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정작 임방울의 삶을 이야기하려고 이  시를 쓰는 것은 아님을, 그 의 인간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 이 시를 쓰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독자들은 그럼에도 불구 하고 임방울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인 시선을 통해, 그것이 강한 부정을  통한 긍정임을 숙지하게 된다. 그  긍정도 과거 지향적이라기보다는 미래 지향적이다. '그래도  무엇 한 가지 남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라고 한다. 모닥불이라도 피워, 그의 곱은  손 덥혀 주자고도 한다.'에서 알 수 있듯이,  임방울의  삶은 한 판소리 명창의 삶으로 묻혀 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삶으로 재해석되 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쓰고 있지 않다는 화자의 진술은 결국 그의  시를 통해 '지금  우리의 시'를 쓰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권위에 의존하는 모든 시가 패러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초기의 시 텍스트에서는 대상 그 자체 에 대한 존경이 주를 이루어 현대적 의미에서의 패러디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텍스트의 인유 정도에 그치 는 경우가 많았다.{{  )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었다  낮었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銀河ㅅ물이 있어       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織女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       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七月 七夕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       는 멕이고,/ 織女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서정주, 牽牛의 노래, 한국현대시문학대계 16, 지식산업사,        1981, pp.40∼41) }} 이는 패러디가 현대성의 징표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패러디는 많은 문화 속에 존재해 왔지만 모두 명백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패러디가 편재해 있다는 사실은 패러디의 형식적 정의와 실용적 기능에 대한 재고를 초래한다. 패러디는 진정한 허구성의 패러다임이나 허구 창조 과정의 패러다임은 아닐지라도 확실히 자아 반영의 한 양식인 것이다.{{  ) 린다 허천, 앞의 책, pp.49∼50 }}   이처럼 메타 언어를 통해 패러디는 오늘의 삶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삶의 지표를 제시한다. 패러디에서  행해지는 전통적인 요소의 인유는 단순한 전통에의 복귀라기보다는 그것을  끊임없이 현대화하는 것과 관 련된다. 그러므로 메타 언어라는 차이를 통한 반복을 통해 패러디는  비판적 거리를 형성하여, 독자들에게  동시대의 문화에 대한 비평적 능력을 획득하게 한다. 이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패러디가 일정한 자기 독립 성을 가지고 독자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언어 유희를 통한 의미 재구성      패러디의 또 다른 특성은 주로 기법적인 측면에서 언어 유희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언어 유희는 모더 니즘과 풍자의 경우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모더니즘에서는 언어에  대한 실험의 한 양상으로 언어 유희가  드러났으며, 이는 주로 인간의 지적 활동의 소산인 경우가 많았다. 풍자에서는 패러디의 언어 유희와 거의  흡사한 양상이 드러나는데, 이는 패러디가 풍자와 갖는 공통된 속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 유희와 패러디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그것은 패러디가 지니고 있는 아이러니한 갈 등 상황이 놀이를 통해 해소되고 완화되어 일정한 텍스트적 자질을 형성한다는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 피 아제에 따르면 놀이 상태에서는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 발생한다 하더라도 진지한 상황에서 라면 불가피하게 철저히 붙들고 씨름해야 할 그러한 갈등이 놀이  상태에서는 어떤 보상이나 청산에 의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를 괴롭히곤 하는 복종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갈등 은 현실에서는 굴복이나 반항 또는 어느 정도의 타협에 의한 협동으로 귀결되곤 한다. 그러나 놀이에서는  그 갈등 자체를 아예 없애 버리는 것처럼 해 버리거나 가능하진 않지만 그럴 듯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맺힌 한을 푸는 방향으로 갈등의 양상을 변형시켜 버릴 수 있다. 놀이가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자아가 이런 방식으로 놀이의 전 영역을 지배하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J. G. 카웰티, 도식성과 현실도피와 문화, 박성복 편역, {대중예술의 이론들 - 대중예술 비평을  위하여}, 도서출       판 동연, 1994, p.92 }}   그럼 이제 시 텍스트에서 언어 유희적 양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일부분을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       시시껄렁한 詩가 아니라   詩詩껄렁하지 않을 바다를    쓰고 싶었지 파도가    되고 싶었다 時時로   현기증 나는 갈매기로   섬, 섬을 흔들고 싶었지   木船이 되고 싶었다   수평선이 되고 싶었지   싶었다. 싶었, 싶-      나제 놀다 두우고온 나아무닢빼는   엄마 겨테 누우워도 새앵가기나요   푸른 달과 희인구름 두웅실떠가는   연모세서 사아알살 떠어다니게쪼      피, 피곤한 항해의 하루 저, 접는 닻으로도   다, 다리 짤린 꾸움조차 꾸, 꿀 수 없어요   가, 각질 굳은 신발 거, 거친 수염으로 끌려가는   지, 지상에서 스으을슬 나, 낡아 가겠죠      -지 않았다.   파도 치지 않는 밤마다   노을 불쾌한 저녁마다   향기 나지 않는 낯마다   바람 불지 않는 아침마다{{  ) 양병호, 방학숙제-1. 동시 짓기, 시와 반시, 1994년 겨울호, pp.45∼46 }}         이 시에서는 여러 층위에서 다각적으로 언어 유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계열체를 이루는 일군의 시어들 이 가지런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詩', '詩詩', '時時' 등의 시어가 언어 유희의  형태를 띤 채 배열되 어 있다. 그리고 드러나는 활자로 재현되고 있는 '지  다 지 다 지 다. 피, 다, 가,  지, 다. 마다 마다 마다  마다'라는 독특한 시어의 재구성도 놀이 형태를 띠며 의미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동시 짓기'라는 부제가  상징하는 바와 같이, 텍스트의 가운데  부분에는 라는 동요가 소리나는 대로  씌어 있다. 이는  천진난만함과 느슨함의 상징이며, 시 전체가 상정하고 있는 불쾌함과 욕구의 불충족에 대한 대비적 구조이 다. 특히 눌변의 언어로 제시되고 있는 동요의 패러디는 편안함이 아닌 피곤함과 지침으로, 서정적이 아닌  현실적인 것으로 대비되어 있다. 즉, 이 시 텍스트는 여러 층위의  패러디가 텍스트 전체를 통괄하며 녹아  흐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비슷한 음절을 차용하여 언어 유희를 통해 패러디를 구현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아래 시의 경 우에는 피자집인 'HUT'과 '핫토'라는 발음의 유사성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내면서 문화에 대한 인식 을 새롭게 하고 있다. 특히, 이 시의 경우에는 제목이 그 시 전체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측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降雪에 따끈한 보리차 한 잔, 중학 1학년이던 나에게 그런 흐뭇한 겨울밤을 차려준 中國人 호떡집이 그 때의 花洞에는 있었다. 핫토 핫토 발음하며 통나무집이라고 뜻새김한 日人 英語선생도 그때의 京城第一高 等普通學校에는 있었다. 통나무집을 알지 못하는 나는  덩달아 핫토 핫토 하기만 했다.  그때는 또 서울이  얼마나 추웠던지 방(온돌)안의 잉크며 정강이가 다 얼어붙곤 했다. 한밤에는 불알도 얼어붙고, 달과 별, 꿈 도 다 얼어붙곤 했다.{{  ) 김춘수, (PIZZA), HUT, {서서 잠자는 숲}, 민음사, 1993, p.51 }}         또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의 이름이 지니고 유사성을 이용하여 언어 유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참 세상 많이 좋아졌지,/ 절로 말이 새어나오게시리/ 라디오 디제이까지 청취자에게 속삭인다/ 오공비리 로 4행시를 지어주시죠// 대세가 결판나서 그런가?/ 오공의 털로 만들어진  손오공 놈들까지도/ 이젠 단호 히 벗어나야 한다고/ 근두운 타고 날아가듯 벗어나야 한다고 떠드는/ 오공, 오공, 오공 시대// 참, 많이 부 드러워졌어/ 체제의 손바닥{{  ) 유하, 오공 시대, 앞의 책, p.32 }}         이 시에서는 {손오공}의 주인공 '오공'과 제5공화국의 준말인 '오공'이 지니고  있는 음운의 일차적인 유 사성을 이용하여 두 이미지를 교묘하게 엮어 내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과 손오공의 일화에서 등장한 '부처 님의 손바닥'을 '체제의 손바닥'으로 전이시키고, 그것이 엄격하고 벗어날 수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자 유롭게 까불어도 제재를 당하지 않는 부드러운 것임에 새삼 감탄하고 있다.  또 '오공의 털로 만들어진 손 오공'인 '오공'과 생명을 같이 하던 무리들조차도 이제는 단호히 벗어나야 한다고 이곳 저곳에서  떠든다는  풍자적 패러디는 우리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준다.    그런데 같은 풍자적 패러디이지만 풍자의 성격이 보다 강한 텍스트의 경우에는 약간  다른 경향을 드러 낸다.        잊을께요 서방님./ 피난민의 봇짐 위에 퍼붓던 소나기도/ 죽은 어미 젖꼭지를 빨며 울던 젖먹이도/ 잊을 께요 서방님./ 다락 속에 숨어 있다 겁탈당한 언니도/ 나룻배에 피난민을 실어나른 뱃사공도/ 아직도 이기 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이젠 정말 잊을께요 서방님./  어디로 가실까요 사막으로 가실까요/ 아랫도리로  가실까요 겨드랑이로 가실까요/ 피에 물을 탈까요 물에 피를  탈까요/ 무엇을 드릴까요 서방님./ 뒷모습만  드릴까요 헤어짐만 드릴까요/ 숫처녀의 발가락을 잘라 드릴까요/ 과부의 발바닥을 벗겨  드릴까요/ 그믐밤 에 첫사랑을/ 보름밤에 짝사랑을 훔쳐 드릴까요/ 무서워 무서워요 불을 켜요 서방님./ 서방질을 하게 하는  서방님도 잊을께요/ 시아버질 독살한 맏며느리도/ 아들이 아버지를 쏘아 죽인 보리밭도/ 옷걸이에 걸려 있 는 과부의 갈비뼈도/ 잊을께요 잊을께요 서방님.{{   정호승, 獄中書信 5,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비평사, 1979, pp.69∼70 }}         제목과 여성 화자의 독백은 우리의 고전인 {춘향전}의 한  대목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 가 춘향이와 유사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서는 큰 오산이다. 일편단심 이몽룡을 기다리던 춘향이처럼 겉으로 는 이 화자도 '서방님'에게 고분고분 순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헌신적인  태도에 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잊겠다고 주장하는 것들 - 언어 유희를 통해 - 의 내면을 살펴보면 그것이 비수 를 감추고 있는 서늘한 여인의 눈초리를 연상하게 된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청유형이지 만 강한 명령의 어법이 지배적인 '무서워 무서워요 불을 켜요 서방님'과 부조리한 일조차도 강요하는 서방 님에 대한 원망이 들어 있는 '서방질을 하게 하는 서방님도 잊을께요'라는 시구에서, 강하게 그러한 인상을  받게 된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이별이라는 본래 텍스트의 상황이 같은 이별이기는 하지만 전쟁이 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처참한  이별과 대비되면서 묘하게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함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하여 패러디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발함과 톡톡 튐이 상당 부분 감해지는 경향이 있을 알게  된다.    언어 유희를 통하여 의미를 재구성하는 패러디는 독자의 해석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중성을 확보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언어 현실을 반영하는 독특한 언어 감각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측면에서 언어 적 실험의 전형을 이루게 된다.    지금까지는 패러디가 시 텍스트에 구현되어  있는 방식 및 그 의의에  대하여 검토해 보았다. 그렇다면  패러디를 읽어내는 것이 시 쓰기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4. 패러디 읽어내기와 시쓰기      분명히 문학은 이제 핵심적인 사회적 담론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이미 상실하였거나 지금  그 위치를  상실하고 있는 중이다. 비록 문학 행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제도로서의 문학이 상 당히 약화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 김욱동, 앞의 책, p.18        이는 다분히 문학의 정전 논의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  같다. 문학의 정전을 기존의 제도 교육 내       에서 설정하였던 것과 동일한 범주에서 규정하게 되면, 문학은 촛불처럼 꺼져  버리지는 않을까 두       려워하며 떨고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전의 범위를 보다 확산하여 통속  문학이 아닌 대중        문학을 선별적으로 끌어 들인다면 꼭 불안에 떨며 서 있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인다. 특히, 문학 교       육은 다수의 대중들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필요성은 더욱 증대된다고        하겠다.    }}   이는 '탈장르'나 '장르확산'과 같은 현상에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즉 장르와 장르 사이에 놓여 있던 경 계선이 붕괴되고 한 장르가 다른 장르와 서로 혼합되면서 장르  특유의 성격이나 본질을 잃어버리는 속에 서 그러한 조짐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창작과 비평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하고 있다. 이제 시인은  더 이상 시를 쓰는  작업 자체에만 만족할 수 없다. 시를 쓰는 행위는 독자와의 소통을 염두에 둔 행위이며, 당대의 문화에 대 한 비평적 접근이다. 시인은 언어를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하여  전통적으로 비평이 점하고 있던 자리는 작가에게, 독자에게 조금씩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 다. 마찬가지로 창작은 천재만이 전유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비평가에게도 해당되는 창조적 활동이 되 었다.         진정으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비평가는 교육자의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가의  동기에서 비롯된다. 그 동기는 자유롭고도 아름답게 역할을 담당하려는 단순한 욕망, 내면적으로 부글거리 고 그 안에 큰 마력을 지니고 있는 관념에 외형적이고 객관적인 형체를 부여해 주는 단순한 욕망, 그리고  그 관념들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이 세계에 명료한 잡음을 만들어 내는 단순한 욕망인 것이다.{{  ) 김욱동, 앞의 책, p.156에서 재인용. }}      미국의 문학비평가 H.L 멩큰의 말과 같이, 비평은 일종의 창작  행위로서 그 의미를 부여받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은 비평과 무관한 행위인가. 창작 속에는 여러 가지 비평 활동이 기본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날 그것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이 패러디 기법을 통한  창작 행위이다. 패러디는 결코 기 생적 공생의 양식이 아니다. 패러디의 작용 속에는 텍스트의 생산과 수용의 행위가 관여되어 있기 때문에  패러디의 사상적 위상은 오묘하다.  패러디 속에는 이중의 목소리가 녹아 있고,  이를 통해 일종의 비평적  행위를 창출한다. 그것은 작가의 비평적 행위뿐 아니라, 텍스트를 해독하는 해독자로서의 독자에게도 비평 적 활동을 요구한다. 여기에 패러디 읽어내기의 교육적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근래의 메타픽션은 연기자와 관객, 작가와 공동 창조하는 독자 사이의 형식적 차이를 거의 유념하지 않 는다. 그리고 패러디는 다른 텍스트들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하나의  위협, 심지어 혼란을 야기시키 는 어떤 힘으로 간주되고 있다.  패러디는 문학의 규범들을 '비사실화하고 찬탈해'  버린다. 어떤 의미에서  다른 텍스트의 자질을 전용(표절 혹은 차용)하는 것은 개개의 상품으로서의 예술 작품의 공인된 위상에 오 명을 남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러디의 위반은 궁극적으로 패러디가 함몰시키려 고 하는 바로 그 규범들에 의해  공인된다. 심지어 조롱하면서 패러디는 다시  강화되는 것이다. 형식적인  의미에서 패러디는 조롱된 관행을 패러디 속에 명기함으로써 그 관행의 지속적인 존재를 보장한다. 그러므 로 패러디는 예술의 현주소뿐 아니라 예술의  출처를 밝혀줌으로써 예술의 합법성에 대한  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  ) 린다 허천, 앞의 책, pp. 123∼124 }}   이런 패러디의 기능 때문에 패러디는  오히려 전통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다. 앞에서 예를  든 텍스트들처럼 기존에 잘 알고 있던 텍스트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패러디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에 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패러디는 일종의 역사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린다 허 천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심장하다.         기호부여자와 해독자 사이의 묵계에 의해 모든 예술적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정확한 기호화의 의도가  수용자에게 인식되지 않을 경우, 그들 사이의 대화행위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은 패러디와 아이러니의  독 특한 일련의 전략의 일부이다. 환언하면, 일반적인 예술의 기호에 덧붙여, 독자들은 자신들이 읽고 있는 것 이 패러디이며, 어느 정도, 그리고 어떤 타입의 패러디인가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그들이 읽고  있는 작품이 단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만, 다시 말해서 패러디적이지 않은 작품으로 읽혀진다 해도 패러 디 되는 텍스트나 전통을 알아야만 한다.      패러디는 이제 독자들이 텍스트를 읽어내는 효과적인 하나의  기제일 수가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를 기 반으로 하고 있는 풍자와 유사한 읽기 방법이 동원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패러디된 텍스트와 대 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해도, 올바른 의미의 파악을 위해서는 패러디라는 전통이 가지고  있 는 규범적 성격을 독자가 인식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패러디와 글쓰기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패러디가 이중의 비평 활동 이라는 측면과 맞물리게 된다. 패러디된 작품은 일단 우리가 기존에 잘 알고 있던 작품에 대한 일차적 비 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미화한다. 그 다음에 오늘날의 상황에서 그것이 어 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이차적 비평을 한다. 역시 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미화한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한 편의 시 텍스트를 읽으면서 기존의 텍스트에 대한 비평까지도  함께 흡수하게 된 다. 이는 비평의 목적 중에 하나인 교육적 효과까지도 유발함을 의미한다. 즉 시 텍스트의 읽기를 통해 간 접적인 비평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위치가 독자의 위치로 전이됨을 의미한다.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코드를 해독해 내지 않 으면 안 되므로, 패러디를 구현하는 작가에게는 그러한 작업이 필수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미화'하는 것과 관련하여  패러디된 텍스트는 창작 교육의 역할도 담당한 다. 일반적으로 미학에서 말하는 창작 과정은 '창작적 기분 → 창작 구상 → 내적 정련 → 외적 완성'의 단 계를 밟게 된다. 패러디된 텍스트는 이 대부분의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문제 제기에서 제시한 바 있는 장정일의 을 살펴보 기로 하자. 작가는 김춘수의 을 읽는  순간 창작적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본래 텍스트가 주는  내용과 형식적인 자질이 작가에게 독특한 감응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질들은 원래 작가가  상정한 소재인 '꽃과 존재'에 대비하여 '라디오와  사랑'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게 해 준다.  '꽃'에서 '이름'이  문제가 된 것처럼 '라디오'에서는 '전파'가 문제가 된다. 라디오는 전파만 타게 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 고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내적  정련의 과정을 통해, 제2의 텍스트 는 외적 완성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의미에서의 모방이 아닌 재창조 작업이 되는 것이다.    동일한 문학과 문학, 미술과 미술,  음악과 음악의 장르라면 이러한  과정은 이처럼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예술 영역이 서로 혼합되는 경우에는 그 과정이 보다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각각 의 영역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규범이 모두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영 역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상에서 창조성의 새로운 범주인 패러디에 대해 살펴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비 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창작 교육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것이 기존의 교육 방법을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매체라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이에 대해 보다  실천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출처] 패러디를 통한 시 쓰기와 창작 교육|작성자 아수라  
847    패러디시 쓰는 법 댓글:  조회:7680  추천:1  2015-04-04
  패러디시  쓰는 법   패러디 시쓰기는 기존의 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제2의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시의 골격이나 분위기만을 빌어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닮는 것으로 흥미를 유발하면서 시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패러디시는 원시와 함께 이중적으로 읽는 묘미와 패러디의 신선한 발상으로 유머와 재미를 발견하는 것이 특징이 된다. 따라서 재미있으면서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패러디시의 원시가 많이 알려진 것을 선택하는 것은 독자가 원시에 대한 기존의 틀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재로 하기 때문에 패러디시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게 하지요. 이럴 경우는 원시를 제시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는 원시를 제시해야 패러디시를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러나 원시가 많이 알려진 경우가 아니라면 기존 원시에 대한 이해와 패러디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해야하는 부담이 독자에게 주어지게 때문에 패러디시의 발랄함을 발견하는데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기존에 많이 알려진 시를 가지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김소월의 이나 김춘수의 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해도 패러디시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모두가 새롭게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을 패러디한 시 모음  꽃의 패러디                           오규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내게로 와서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이 아닌 금잔화, 작약, 포인세치아, 개밥풀, 인동, 황국 등등의 보통명사나 수명사가 아닌 의미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 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의미의 틀이 완성되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될 그 순간 그리고 기다림 그것이 되었다.       주제 : 존재를 왜곡시키는 인식행위 특징 : ①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하여 유사한 형식과 구절을 반복하고 있다.           ② 사물을 인식하는 행위를 통해 존재의 본질에 대한 독특한 의식을 보이고 있다.         이 시는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이름을 붙이는 순간 존재는 왜곡된 모습을 보임을 노래하고 있다. 무의미한 존재였던 대상이 명명과 인식의 과정을 통해 의미 있는 존재로 변화하고, 이어 '나'와 '너'의 상호 인식을 통해 관계가 '우리'로 확산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김춘수의 ‘꽃’은 명명행위를 통해 대상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서로 그러한 관계를 맺기를 바라지만, 이 시에서 화자는 명명 행위가 곧 대상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존재의 본질은 인간의 부여에 의해 달라질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서 형성되는 것이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는 존재의 본질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 장정일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성격 : 패러디, 해체적 어조 : 풍자적, 반어적 특징 :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표현과 구성에 있어서 원작의 틀을 따르고 있음. 구성 : 1연 - 접근이 허락되지 않은 존재          2연 - 접근이 허락된 존재          3연 - 타인에게 접근의 허락을 받고 싶은 화자의 소망          4연 - 편리한 사랑을 원하는 '우리'의 소망 제재 : 라디오(김춘수의 시 '꽃'), 현대 도시 문명 주제 : 현대인들의 가볍고 경박한 세태에 대한 풍자       이 시는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parody)하여 재창작함으로써 원작과는 다른, 작가의 독특한 관점을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원작인 '꽃'의 의미를 뒤집어 현대 사회의 인스턴트 식(式) 사랑을 나타내고 있고,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다른 작품으로 오규원의 '꽃의 패러디'가 있다. 이 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인 '꽃'의 의미를 작가 특유의 방법으로 뒤집어 현대 사회의 풍속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과의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 메마른 태도로 나타나며, 또한 자신이 내킬 때는 애정을 나누다가도 마음이 바뀌면 상대가 곧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태도로 그려져 있다.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함으로써 작가는, '꽃'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은 진지하고 친밀한 인간 관계가 오늘날에도 감동과 갈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느냐는 반문을 던지고 있다.      
846    안중근을 흠모하다 댓글:  조회:5774  추천:0  2015-04-04
                      安重根 義士 追悼詩(안중근 의사 추도시)                                                                                       시 / 원세개   平生營事只今畢(평생영사지금필)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끝났구려.   死地圖生非丈夫(사지도생비장부)  죽을 땅에서 살려는 건 장부가 아니고 말고…     身在三韓名萬國(신재삼한명만국)  몸은 비록 한국에 있어도 만방에 이름을 떨치오.   生無百歲死千秋(생무백세사천추)  살아 백세 없는데 죽어 천년 가오리다…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끝났구려.    죽을 땅에서 살려는 건 장부가 아니고 말고…      몸은 비록 한국에 있어도 만방에 이름을 떨치오.    살아 백세 없는데 죽어 천년 가오리다…           * 청나라 총통이었던 袁世凱(원세개)가 안중근의사를 추모하여 지은 輓詩(만시)이다…   대한제국 병탄(倂呑)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한국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를 일본 지배층은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지만  그를 접했던 일본인들은 존경의 감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를 에도 막부 말기 서양에 맞서 싸웠던 '양이지사(攘夷志士)'처럼 바라본 것이다.  뤼순 감옥의 담당 간수이자 헌병대원이었던 지바 토시치(千葉十七)는 안의사에게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란 휘호를 받고 크게 감격했다. 귀일(歸日) 후 그는 미야기현(宮城縣)의 다이린사(大林寺)에 안중근의 위패를 모시고 1934년 사망할 때까지 명복을 빌었다.  지금도 다이린사 앞에는 안 의사의 위 휘호를 새긴  추모비가 서 있고 매년 추도식도 열린다.  뤼순 감옥 소장이었던 구리하라 사다기치(栗原貞吉)는  히라이치(平石) 고등법원장과 마나베(眞鍋) 재판장 등에게 선처를 탄원했으나 무산됐다. 안 의사가 흰 한복 차림으로 죽음을 맞고 싶다고 하자  그는 처형 전날 부인에게 한복을 만들게 해 안 의사에게 입혔다.  구리하라 소장은 안 의사 사후 사직하고 고향 히로시마로 돌아와  의학 관련일에 종사하며 1941년 사망할 때까지 공무직에 나가지 않았다.  하급 검찰관이었던 야스오카 세이시로(安岡靜四郞)도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라는 휘호를 받는데,  후일 며느리에게 "안중근은 깊은 교양의 소유자"라는 증언을 남겨 며느리가 '초대 총리대신을 죽인 암살자를 그렇게 평가해도 될까'라고 깜짝 놀랐다고 전한다.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었던 박은식(朴殷植)은 전기 '안중근'에서  "일인(日人)들도 그 의를 흠모하여 그 필적을 구하려는 이들이 아주 많았다"라고 쓰고 있다.  중국 근대 정치가 양계초(梁啓超)는 "영구(靈柩) 태운 마차 앞서가는데… 먼 하늘 바라보니 상복이나 입은 듯 먹장같은 구름안개 대지를 덮었네"라는  안 의사 애도시를 썼다. 손중산 양계초 주은래에서 중국의 국부 순중산(孫中山)은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듣고 다음과 같은 글로 찬양했다.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빛나리 약한 나라 죄인이요 강한 나라 재상이라 그래도 처지를 바꿔놓으니 이등도 죄인되리 중국 근대사의 정치가요 사상가인 량치차오(梁啓超)는 안중근은 해와 달처럼 영원할 것이며, 자기는 사마천이 안자를 추모하듯 살아서 안중근을 존경할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그 무덤 옆에 나란히 묻히겠다며 우러르는 마음을 표현했다. 폭풍이 야수마냥 울부짖고 싯누런 흙모래 대지를 휩쓸 때 흑룡강 연안에 눈보라 휘날리고     북국의 엄동설한 살을 에는데 그 사나이 지척에서 발포하니 정계의 거물이 피를 쏟았네 장하다 그 모습 해와 달 마냥 빛나리 (후략) 신중국 건설의 주역인 저우인라이(周恩來) 총리는 안중근 의거를 중국과 조선 인민의 공동투쟁 서막이라고 평했다.  “중일 갑오전쟁 후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중조인민 공동투쟁은 본세기 초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때부터 시작되었다.” □ 안중근 흉상 앞에서(하얼빈 안중근기념관) 장개석 장태염 원세개 풍옥상까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쓴 휘필 ‘장렬천추(壯烈千秋)’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걸려있다.  중국 근대 민주혁명가이자 사상가인 장타이옌(章太炎)은 ‘아시아주 제일의협(亞洲第一義俠)’이라는 글로써 안중근을 찬양하고 ‘안군비(安君碑)’도 집필했다.  심지어 북양대신 웬스카이(袁世凱)와 군인 정치가 펑위샹(馮玉祥) 그 외에 수많은 인사가 안중근을 찬양하고, 주은래 부인이 된 덩잉차오(鄧穎超)는 일찍이 1910년에 상하이에서 창작 화극 ‘안중근 이토 사살’에서 안중근 역을 연기한 기록도 나온다.  (할빈 - 서명훈 발제문에서)  
845    안중근 / 유묵 댓글:  조회:5745  추천:0  2015-04-04
    안중근 의사는 사형언도 2월14일부터 순국 3월26일까지 40여일간 사형집행을 기다리며 200여점의 유묵을 쓰셨다고 한다.    경천 敬天 안중근의사의 글씨입니다. 감정가 3억5천만원 하늘을 우러러라(하늘은 나라의 의미도 담고있다) 하늘의 뜻에 거스르지 말라    1910년 3월 여순 감옥에서 쓴 글씨로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글씨체라고 한다 삼중 스님께서 공개 하신것으로 일본에서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던 겄이다.    독립       안중근 의사의 가족사진    재판장으로 안중근 의사를 압송하는 마차    고막고어자시 (외로움은 믿는것보다 더 외로운것은 없다.)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속에 가시가 돋친다. 욕보동양 선개정략 (欲保東洋先改政略) 시과실기 추회하급 (時過失機追悔何及) 동양을 보존하려면 먼저 정략부터 고쳐야한다 때나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844    안중근 권총 보관함 댓글:  조회:7452  추천:0  2015-04-04
안중근 의사 ’권총 보관함’ 공개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 당시 사용한 권총이 보관됐던 상자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황인성)는 오키나와에 사는 일본인(58)으로부터 안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때 사용한 권총을 보관했던 상자를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가로 30㎝, 세로 20㎝, 높이 12㎝ 크기의 나무 상자인 권총보관함(사진)에는 ‘安重根義士之遺物 明治四十四年 七月十五日 栗原貞吉藏(안중근의사지유물 명치44년 7월15일 율원정길장)’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따르면, 안의사 처형 당시 뤼순감옥 소장이었던 구리하라 사다기치(栗原貞吉)가 안의사의 인격에 감명을 받아 상자를 만들어 권총과 함께 보관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이 상자는 1913년 만철(滿鐵) 총재를 역임한 고토 신페이(後藏新平)에게 넘어갔다가 만철의 부속도서관으로 옮겨져 해방 때까지 보관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출처] 안중근 의사 ’권총 보관함’ 공개|작성자 사무라이   안중근 의사 권총보관함 첫 공개               안중근 의사가 1909년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데 사용했던 권총을 보관했던 상자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황인성)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일본인이 안 의사의 권총 보관함을 기증해왔다"고 밝혔다. 목재로 만들어진 이 상자는 세로 20㎝, 가로 30㎝, 높이 12㎝의 크기. 표면에는 조각문양이 새겨져 있고, 덮개 안쪽에는 '피스톨 안중근의사지유물(pistol 安重根義士之遺物)'이라고 쓴 라벨을 비롯해 '신평 장(新平藏)'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도서관장(南滿洲鐵道株式會社 圖書館藏)' '만주제국 국립중앙박물관(滿洲帝國 國立中央博物館)' 등 소유권 이전 과정을 보여주는 문구들이 기재돼있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측은 "안 의사가 처형됐던 뤼순(旅順)감옥의 소장이었던 구리하라 사다기치(栗原貞吉)가 그의 권총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었던 상자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구리하라는 당시 안 의사의 인격에 감명받아 안 의사에게 차입물을 넣어주곤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숭모회 측은 "상자는 일본 패망 과정에서 유출됐다가 옛 일본인 가옥에 보관돼 온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상자 안에 들어있던 권총이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843    안중근 / 동서양의 력사를 바꾼 권총 댓글:  조회:7963  추천:0  2015-04-04
안중근 의사의 권총 - 동서양의 역사를 바꾼 총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7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첫 3발은 기차에서 내린 백발의 노신사에게 모두 명중했고, 나머지 4발은 주위의 수행원들을 맞추었습니다. 총알을 모두 발사한 청년은 태극기를 흔들며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쳤고,  처음 총탄을 맞은 백발의 노신사는 곧 사망에 이릅니다. 을사늑약의 원수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수괴였던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의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얼빈역에서의 저격 모습과 영화 '도마 안중근'에서의 저격 직후의 장면   이 의거는 한중 양국의 항일무장투쟁에 불을 지피게 되었는데, 쑨원, 장제스 같은 당대 중국의 지도자들도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찬양하고 기릴 정도였습니다. ‘5억 중화인도 해내지 못한 일을 단 한사람의 조선 청년이 해냈다.’는 원세개의 말처럼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역사를 바꿀 만한 사건이었는데요. 그 거사를 수행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가 사용했던 M1900형 브라우닝 권총은 아시아의 역사뿐만 아니라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데에도 일조한 바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실제 사용했던 브라우닝 M1900 권총   안중근 의사의 의거 5년 후, 동유럽에서 ‘사라예보의 총성’이라 불리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은 쇠약해진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범게르만주의’를 내세우며 동유럽에 대한 영향권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총독의 초청을 받아 사열식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 날이 1389년 오스만투르크가 세르비아 왕국을 정복하던 날이었기 때문에 현지인들을 더 격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황태자 부부는 세르비아 민족주의 단체 일원이었던 가브리엘로 프린치프라는 청년에게 암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프린치프가 썼던 총이 안중근 의사가 의거에 사용했던 브라우닝 권총과 같은 모델이었습니다. 민족의 자주 독립을 위해 거대한 세력과 맞섰던 두 남자는 공교롭게도 같은 권총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비록 사라예보 사건이 약 1000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인류 참극으로 번지긴 했지만, 역사를 바꾸었다는 점에서 하얼빈 의거와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가브리엘로 프린치프   이 브라우닝 권총은 천재 총기 제작자 존 모세 브라우닝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세계 각지의 유명 총기 회사들에게 퍼져나갔는데, 벨기에의 FN사에게도 특허가 매도되어 M1900 브라우닝의 이름으로 시장에 출시되었습니다. 20세기 첫 해에 출시된 이 권총은 이후 ‘자동권총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까지는 미국 콜트사의 6연발 리볼버 권총이 주도했지만, 이 브라우닝 권총의 슬라이드 작동식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사용될 만큼 획기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또 크기가 작아지면서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휴대할 수 있는 ‘포켓권총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도 브라우닝 권총의 작은 크기 덕분에 거사 당일 총을 외투 안주머니에 숨기고 역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영화 '도마 안중근'의 의거 장면   하지만 그 작은 크기 때문에 안중근 의사가 준비했던 덤덤탄(dumdum bullet)의 위력은 볼 수 없었습니다. 실탄에 홈을 길게 파서 탄이 더 쉽게 파열되게 만든 이 덤덤탄은 치명상을 입히기 때문에 현대 국가들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사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 검찰에게 ‘금이 그어진 탄을 샀다.’고 진술했지만, 거사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그의 손칼로 직접 덤덤탄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 ‘도마 안중근’에서는 총탄에 십자로 파여진 홈을 보고 의아해하는 동료에게 ‘하느님께서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안중근 의사가 발사한 탄환   그럼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가 사용했던 권총이 영화와 뮤지컬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한 번 알아볼까요? 아쉽게도 브라우닝 M1900 모델을 영화와 뮤지컬, 심지어는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렸던 안중근 의사 특별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1908년에 생산 중단된 이 총기를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조품이라도 만들었으면..’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같은 계열의 브라우닝 하이파워 모델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제작자 분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 '도마 안중근'에서 3정의 권총을 건네는 최재형. 실제로는 브라우닝 권총 2정과 리볼버 1정을 주었지만, 영화에서는 3정 모두 슬라이드식 자동권총을 건네고 있다.       영화 '도마 안중근'의 거사 장면. M1900 이후 후속모델인 브라우닝 하이파워 모델이다.       뮤지컬 '영웅'의 정성화 배우.   삼엄한 경계 속에서 누군가를 암살할 때, 3발 이상 발사하여 명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더 발사하기 전에 이미 제압당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을 명중한 뒤, 그가 이토였는지 확실하지 않았으므로 주변 일본인에게 4발을 더 발사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7발 중 단 한 발도 명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총을 양 손으로 파지하지 않고 한 손 파지에 의지한 채, 7발을 속사로 모두 명중시킨다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능력입니다. 어려서부터 사격에 남달랐다는 김구 선생의 회고가 있긴 하지만, 피나는 노력과 연습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꽃다운 젊음과 바꿀 단 한 번의 거사를 위해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다루었을 브라우닝 권총. 이 총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도 안중근 의사의 혼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842    안중근 / 권총 / 탄알 댓글:  조회:6178  추천:0  2015-04-04
안중근의사. 그는 일찍 이등박문을 꼭 죽이겠다고 손가락을 끊어 맹세했다.   1909년 10월 26일, 이등박문이 탄 렬차가 들어서기직전의 할빈역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 이등박문이 렬차에서 내렸다. 이등박문은 로씨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 렬차에서 회담한후 로씨아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 렬차에서 내렸다.   안중근의사는 사열을 받고 렬차로 돌아가는 이등박문을 쏘았다. 발사한 일곱발의 총알가운데서 네발이 이등박문을 명중하고 나머지 세발이 곁에 있던 수행비서관, 할빈 주재 일본제국 총령사, 만주철도 리사를 맞혔다.   안중근이 쏘았던 FN Browning M1900은 벨찌크 회사가 존.브라우닝의 설계로 1898년에 개발한 7련발 권총이다. 당시 여러 나라에서 특수부대나 고급장교들이 사용했다.   안중근이 이등박문에게 쏘았던 총알. 지금 일본 헌정기념관에 전시되여있다.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저격한후 로씨야군대가 안중근의 몸에서 수색해낸 총과 탄알.   지금 할빈기차역에는 당시 안중근이 총을 쏜 위치와 이등박문이 격사당한 자리가 표기되여있다. 연변인민방송 남철
841    명시인 - 아이헨돌프 댓글:  조회:4778  추천:1  2015-04-03
               Sezen Aksu - Vallnizlik Senfonisi (고독의 교향곡) 끊임없이 꿈꾸고 있는 모든 사물들 속에 노래가 잠들고 있어, 그대가 마법의 말 한 마디만 잘 건네면 이 세계도 노래하기 시작하리라. 詩 - 아이헨돌프[독일] ***----------------------------------***-----------------------------***          
840    詩의 意味論 댓글:  조회:5100  추천:0  2015-04-03
詩의 意味論 / 김주연       意味性의 意味     詩의 가장 바람직한 상태를 시가 지니고 있는 意味여부에 두는 주장이 있다. 하기는 시뿐만 아니라 문학, 나아가 예술 전반에 걸쳐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독자가 그 작품을 이해하여 가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로서, 엄밀히 말하여 의미를 포기한 작품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한 편의 시를 분석하는 데 대체로 세 가지의 입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의 인식, 시의 가치, 시의 의미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 분석의 입장은 전혀 軌를 달리하면서 횡적으로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기본 전제로 하고 종적으로 연결되는 이해의 순서로 파악된다. 언어 형태로 본 詩作, 그 가치로 본 시작, 그리고 독자가 거기서 획득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으로 시작을 나누어 분석하는 파이퍼의 견해는 그러므로 매우 타당하게 여겨진다. 말하자면 매우 고차적인 실험으로 이룩된 無意味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언어가 지니는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반복성을 벗어나는 곳에 있지 못하며, 넌센스라는 가장 우직한 장소에서 시도되는 일련의 遊戱는 토마스 만이 적고 있듯 ‘우리의 새로운 이로니’, 혹은 적어도 만에게서 발견되는 이로니性, 다시 말해 현대의 이로니와 같은 것으로 충분한 詩的 가치 위에 서 있는 예술로서의 의미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시에 있어 의미 문제는 시가 사회를 향해 무엇을 그때 그때 말해줄 수 있는가 하는 방향으로만 쏠리는 경향이 있어 의미 문제의 좌표를 분명히 하여 놓는 일은 시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 퍽 기초적인 업무가 될 듯하다. 아무리 창백한 시에 있어서도, 혹은 어떠한 다혈질의 시에 있어서도 量으로 계산된 의미는 비슷하게 나타나리라고 본다. 하이네에게서나 또는 노발리스에 있어서나 의미는 제대로의 부피로 존재한다. 그럴 것이 멧데르니히의 전제정치에 항거하여 쏟아놓은 하이네의 울분은 청년 독일파와 연결되는 의미 위에 서 있고 어둠과 죽음에 대한 찬가를 부른 노발리스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章을 마련하는 낭만성의 의미와 맺어진다. 자연에 대한 조용한 ?誦에 빠져 있던 아이헨돌프의 無爲에 가까운 시편에서 조차 의미를 쫓아낼 수는 없다. 더욱 벤을 비롯해 현대에 들어서 행해지고 있는 무의미의 질서가 행사하는 답답한 분위기의 의미는 의미 문제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스케일에 좋은 참고로서 등장한다. 인식과 가치와 의미의 문제로 시 분석의 입장을 설명해 놓고 보면, 따라서 어떻게 조립된 시가 가장 우수한 작품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나는 이 경우 이 세 가지의 요소가 서로 매우 알맞은 내접점으로 포개질 때 이른바 ‘힘’이 있는 시가 제작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흔히 金春洙에게는 의미가 없다. 또는 의미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라든가 金洙暎은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은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약간 어색한 느낌이든다. 내가 보기에는 두 시인의 차이는 의미의 제거 여부에 있다고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춘수에게서 발견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나는 오늘의 김춘수를 시인으로서 비판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정은 김수영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두 시인은 모두 자기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것은 또 다른 많은 시인에게 있어서도 비슷한 사정이 된다. 그러므로 시의 의미 여부에 시의 우수성을 부여하는 일은 대체로 편견인 것으로 보이며 이와같은 약간의 혼란은 인식과 가치의 의미의 정당한 분석과 평가로써 씻어지리라 믿는다.   純粹美의 자율성과 限界     본질을 밝혀둔다거나, 감정의 진실됨을 말해준다거나 하는 일이야말로 詩가 지니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서정시는 「色이 제거된 공동의 씨앗」이라는 벤의 시에 대한 확신에 대해서 나는 동의한다. 이러한 믿음 아래에서 시가 지니는 唯美的인 자율성이 논의되고, 이것이 벤이 말하듯 ‘색이 제거된’무의미의 상태에서 증류수와 같은 순수한 自轉의 아름다움을 구현한다면, 몇 가지의 문제점이 스스로 제기된다. 시의 긴장, 혹은 본질을 밝혀내는 照明, 그리고 감정의 진실성과 같은 막중한 시적 개념은 우선 그 개념이 매우 애매해 보인다. 긴장의 강도, 조명의 농도, 진실의 높낮이라 하는 것은 사실에 있어서 아주 측량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 唯美的인 자율성 속에서의 詩 작품은 흔히 과도한 唯美 제일의 형식에 의해서 침해되거나 혹은 윤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말하자면 관념이 너울거리는 그곳에 끼이게 된다. 金丘庸의 「四曲」과 같은 詩作은 적당한 예증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구경꾼을 웃길 수 있을까 답답한 詩여. 어떻게 하면 구경꾼에게 위로를 줄 수 있을까, 메마른 詩여, 어떻게 하면 나는 시간처럼 너의 것이 될 수 있을까, 不在의 詩여.   ‘어떻게 하면’으로 시작되는 부분이나 ‘詩여’하며 끝나는 부분의 押韻들은 전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오직 지리한 同質感 만을 줄 뿐이다.   도대체 여기서 ‘답답한’, ‘메마른’, ‘不在의’ 등의 형용사들은 어떻게 상이한 이미지를 조작하는 데 공헌하고 있는지 별로 알 길이 없다. 이것은 말하자면 시의 음운과 관련하여 시인이 노리고 있는 언어의 無效性 에 대한 실험이 완전히 무효화되고 있는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四曲 」에서만도 이러한 압운 효과의 실패는 도처에서 찾아진다.     잎은 젖꼭지를 위해 領域하고 꽃은 아기를 위해 지는데 불火로 沐浴하는 남녀들   正確한 目的의 充分한 喪失.     이 詩行에 이르면 관념으로 인한 시의 파탄을 보게 된다.「四曲」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은 문명에 대한 비판이 주제로서 시인은 이것을 주로 패러디와 시네포엠적인 처리로 社會詩의 냄새를 배제하고 시의 묘한 이로니 위에 서보려고 하는 듯하다. 그러나 생경한 한자어를 비롯해 경험적 언어와 비경험의 언어를 의식적으로 혼란시켜 서투른 형이상학과 윤리학의 달갑지 않은 뒷맛만을 남겨 놓고 있다. 지저분한 설명에 의해서 관념은 제대로의 이미지도 형성하지 못한 채 결렬되고 있다. 얼마든지 응축될 여지를 외면하고 「四曲」이 장시로 뻗어나간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 유미적인 자율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처음에 지적될 수 있는 한계의 이탈인 듯하다. 인식 이전의 純粹美의 파탄이다. 순수미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서사성에서 출발한 시이고, 디히퉁이 발레리의 서정시와 같은 서정성 위에서 잘 빨려진 상태라는것에 대체로 합의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의 보편성(Universalism)을 주장하는 것이 현대시의 중요한 핵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을이나 사회, 국가의 풍광은 이미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다만 야생화를 방불케 하는 싱싱하면서도 요조스러운 造花와도 같은 실체로서 작품은 존재한다. 발전하기에 따라서 드디어 작품은 하나의 풍광으로서 존재하기에 이른다는 이론은 이리하여 성립된다. 순수미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극도로 집단을 배제한다. 민족에 대해서도 여러 형태의 사회에 대해서도 거부의 몸짓을 취한다. 시인의 감성으로서 이것을 수용하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에의 거부는 마침내는 인간에 대한 거부로까지 나타난다. 미를 위해서만 순수한 것이다. 순수시가 지니는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나는 우리 현대시와 관련하여 생각할 때 약간의 의문을 가지게 된다.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近郊에서 보지 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 먹고 있다 越冬하는 忍冬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人間의 꿈보다도 더욱 슬프다.     金春洙의 「忍冬 잎」이 보여주는 시적 성과는 현실에 대한 울분이나 노여움도 아니고 한국 사람의 정서의 근본을 만드는 회한의 한숨도 아니다. 「忍冬잎」이라는 사물에 대한 인식이 시의 힘으로써 지탱되고 있다. 사실상 우리 시에 있어 김춘수만큼 철저한 인식의 시인도 드물다. 그것은 세계의 일반적인 질서에 이르는 개인의 눈을 그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정 속에서 아버지, 혹은 아들로서의 나, 집단 속의 성원, 국가에서의 한 시민의 자격이라든가 습관과 종교 그리고 어떤 모랄의 구속 밖에 있는 자아로서의 개인에 의한 인식은 시가 순수성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목적이다. 많은 다른 한국 시인에게 있어 그렇듯이 꽃은 김춘수가 즐겨 사용하는 시의 오브제다. 여기「忍冬잎」도 인식의 방법으로 이 시의 오브제로서 지배당하고 있다. 말하자면 忍冬 잎을 빌어 자연의 허무스러움을 탄하고 있다든가 인동 잎이 현실의 상징으로서 숨어 있다고는 보기 힘들며 다만 인동 잎이라는 사물이 내포하는 실체성 속에서 시적 실체일 수 있는 것만을 골라 제시하는 데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가 짚어보고 있는 이른바 시의 의미는 극도로 위축된 처지에 빠지게 된다. 윤리와 관념을 가진 인간성은 쏙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忍冬 잎」의 경우는 우리가 순수하게 인식의 시라고 받아들이기에 적잖게 주저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지적하여야만 될 것 같다. ‘이루지 못한 人間의 꿈보다는 더욱 슬프다’는 詩行에서 의문은 일어난다. ‘슬프다’는 형용사의 주체는 바로 숨겨져 있는 인간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지적이다. 그러니까 일체의 비유라든가 이미지의 상징성은 말끔히 가셔져 있으며 인식은 감상의 범주를 조금 상회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으로 시의 인식은 멈추어 있다. 파이퍼의 의견에 따르면 순수미와 가장 외형적인 단서는 시의 운율-외형율과 내재율이 포함된-에 있으며 가장 내적인 극렬성은 모든 행동과 사고의 선언을 벗어나는 데 있다. 이 두 가지의 노력은 실제로 시의 의미를 전체 시의 힘-균형에서 가장 침식해 들어가는 일이 되는 것으로 보이며 그 자율성의 한계는 필연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외형적인 단서를 중심으로 하여 볼때 金丘庸? 朴喜璡 혹은 趙炳華의 작품들이 의식적으로 순수미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근엄한 고전성 아니면 분열과 갈등 의식이 없는 낭만성이 그들에게서 나타난다.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의미’가 현실과 밀착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다시 詩作에 있어서 진지성과 유희성의 문제로 연결된다.   그러나 순수미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여기서 의미의 소재를 예술 기능으로서 파악하게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사고적 선언을 배제하는 내적인 극렬성에 있으며 이 경우 우리로서는 별로 마땅한 자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金春洙를 비롯한 朴南秀 혹은 全鳳健이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忍冬 잎」에서 얻어지는 것과 같은 성과를 넘어서는 작품을 보기가 매우 힘들다. 그렇지 않으면 趙炳華가 일으키는 일상적 도시 감정을 조직의 혼란을 통한 우회로로서 환상적인 분위기에 도달하는 全鳳健의 세계가 기껏 있을 뿐이다. 순수미의 세계는 발레리와 같은 대표적 시인에게서조차 성공적으로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완전한 지지를 얻기는 힘들다. 인식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절대표현만으로 얼마나 이룩되기 힘든가 하는 것을 발레리도 스스로 보여준 적이 있다. 이 경우 자연히 설명이 많아지고 관념의 詩로 흐르기 쉬우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된다. 그러므로 시가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고 그 자체가 절대자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행복한 순간으로 가기 위한 가장 가까운 자리에 김춘수 등의 시작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로서는 이들에게 우선 순수미의 한계를 말해주기에 앞서 일부 작품에서 보여지는 無爲에 가까운 작업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무위에 예술적인 이로니의 기능이 깔릴 수 있을 때까지 순수미는 추구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이 부근에 이르면 자연히 시적 무위는 과연 무위 자체에 의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이룩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의미의 붕괴를 통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이룩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進擊性과 遊戱性     시가 집중적이고, 본질을 조명하는 힘을 가진 것이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한, 그것은 존재자의 진지성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피할 도리는 없다. 마찬가지로 시는 하나의 형상화된 힘을 지닌다는 점에서 내려다볼 때, 그것이 유희성을 바닥으로 한 자유로운 헤엄 운동과 같다는 것도 서정시의 이론에 합일된다.   시는 언어의 아름다움 속에서 세계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가장 진실에 가까운 하나의 ‘이데’이다. 아름다움은 그것이 실재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으로 詩的‘이데’를 보여줄 때, 그러니까 결국 언어가 가장 아름답게 될 때 우리를 즐겁게 한다. 시의 언어는 시 속의 언어이자 인간의 언어이다. 시의 자율은 곧 인간에게 있어 하나의 의미로 맺어지는 것이다. 이 의미를 반영하는 각도는 그러나 대체로 두 가지의 견해에 의해서 대표되고 있는 듯하다. 그 하나는 처음부터 인식으로 시종하여 의미와 연결되는 입장이다.   바람이 인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바람은 바다에서 온다. 生鮮가게의 납세미 도다리도 그대는 나의 지느러미, 나의 바다다. 바다에 물구나무 선 아침 하늘 아직은 나의 純潔이다.     金春洙의 「處容三章」 終聯이다. 첫 行의 묘사에서 제二행으로 옮기면서 시는 자그마한 인식의 땅으로 들어선다. 바람이 바다에서 온다는 것은 이 詩聯에서 하나의 ‘내부의 묘사’인 것 같기 때문이다. 인식이란 말하자면 ‘내부의 묘사’인 것이다. 三,四,五,六행을 지나면서 이 ‘내부의 묘사’는 더욱 筆力을 얻어 가다가 마지막 二행에서 드디어 맑은 상징의 이미지로 인식은 끝나고 있다. 그러면 대체 이 시는 무엇을 의미한 것일까? 나로서는 이 작품에 걸려 있는 詩題의 구속에서 떠나 이 시의 의미는 ‘바다의 순결’인 것처럼 보인다. 바다는 상징인 것도 같고 혹은 분위기 전체를 상징으로 볼 때는 아닌 것도 같지만 맑고 비비드한 내부의 묘사는 ‘바다의 순결’에 대해서 생각게 한다. 그렇다면 이 시의 의미는 바다의 순결이다. 이것이 전체 시와의 관련성에서 어떠한 면모로 자리할 것인지는 물론 문제 밖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시련에서 처음 二행을 제외해 놓고 보면 우리 시에서 별로 찾기 힘든 ‘바다’라는 오브제에 대해 이 시는 주목할 만한 明澄한 인식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아마 그렇다면 이 시는 인식만으로 의미에 도달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첫 행에서 볼 수 있는 묘사의 평면성을 제외하고도 「處容三章」의 종련이 내부의 묘사, 곧 인식을 흐리게 하는 최대의 장애가 마지막 행 ‘아직은 나의 純潔이다’는 시행에서 일어나고 있다. 詩作 노우트에서 金春洙 자신도 밝히고 있는 대로 이 행의 설명은 비록 앞 행들의 유약한 탄력성을 보강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라 할지라도 나로서는 아직껏 우리 시가 인식만으로 의미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필연적인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무튼 그러나 이 정도의 작업은 우리 시에서는 인식만으로 의미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비근한 일이 된다. 그리고「處容三章 」에도 나와 있지만 이러한 인식의 시들이 알기 쉽게 내보여주는 일들은 인격의 거부인 것으로 보인다. “나의”, “내”등의 인칭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음에도 독자로서는 그것이 품고 있는 것이 막연할 뿐이니 말이다. 金春洙의 이러한 詩作 태도는 우리 시의 한 패턴으로서는 매우 보존함직 하지만 그의 시적인 관심이 ‘꽃’ 혹은 ‘處容’과 같은 한국적인 정서나 윤리에서 출발하였다는 검을 볼때 그의 작품은 아직도 무의미 이전의 의미에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나는 金春洙가 하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시작 태도를 시의 유희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와 대조적인 詩作 태도로써 의미를 추구하는 시인이 金洙暎이다.   우리는 격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었어 훌륭하게 얘기할 수 있었어 그의 약간의 誤謬는 문제가 아냐 그의 誤謬는 꽃이야 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라의 首都의 한복판에서   가령 ‘H'라고 이름된 그의 작품의 일부만 보더라도 사물에 대한 인식이 읽혀지기에 앞서 우리 피부에 강하게 와서 부딪치는 의미에 퍼뜩 놀라게 된다. 그것은 詩作의 실제에 있어 시도되는 것과는 逆順으로 의미가 다른 어떤 요소-이를 테면 인식이나 가치-보다 감성에 일차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의미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강조되는 시는 우리가 비유나 상징으로 먼저 느끼는 일보다 분위기로서 먼저 느끼는 일이 많다. 그리고 비유에 의한 이미지의 구축보다 상징의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기가 일쑤다. 'H’의 제二연은 사물에 대한 차근한 내부의 묘사를 포기하고 ‘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라의 首都의 한복판에서’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도 훌륭하고 약간의 誤謬는 오히려 꽃이라는 사회 풍자를 하고 있다. 이 경우 분위기로서의 이로니는 전혀 시인의 새로운 탐색, 인식에 의한 언어의 발견에서 유래한 것이라기보다는 산문적으로 문맥이 통하는 하나의 의미를 위해 필요한 언어들이 韻文的으로 기묘한 결합을 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당하다. 의미를 조작하려는 시인의 강한 의지가 그 속에 살아 있다. 적어도 金洙暎의 시는 내부의 묘사를 그 내부에서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항상 논리의 완벽성을 그 안에 안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그가 거의 언제나 시적 결단을 보류하는 ‘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라’같은 시행이 보여주는 침묵의 의미는 한 번 검토됨직하다. 아마도 김춘수의 시가 인식으로만 사물을 처리하지 못하고 무의미 이전의 의미를 즐기는 결함을 갖고 있다면, 김수영의 시는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구축해 놓고 그것을 갖다 기대어 놓을 현실의 벽을 고르지 못하고 있는 보류로서의 침묵이 아닐까 하는 해석이다. ‘이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나라’의 침묵은 시인 본래의 침묵과는 상당한 거리에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金洙暎의 이와 같은 의미에의 집착은 詩作의 태도로 보아 시적 진지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지성과 유희성, 어느 것이 보다 시의 힘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매우 쑥스러운 일이다. 시의 보람 있는 성과는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야기되는 것’과 ‘형상화되는 것’의 가치가 붙어진 다음 세계의 보편적인 질서의 발견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라는 것은 따라서 모든 시적인 것이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바로 일컫는 것이라고 믿어 무방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과 아름다움이, 그리고 진지함과 유희성이 합일의 순간에 도달하는 것, 그때 시의 좌우로 늘어선 인식과 감각과 그리고 언어의 唯美性을 구성하는 여러 형태들은 모두 각각의 질과 자격으로서 참여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훌륭한 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金春洙와 金收暎   상징적인 이야기로 해서 예술은 넌센스라는 말이 있다.이러한 견해는 결국 ‘인생은 넌센스’라는 말과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예술에 있어, 특히 시에 있어 센스는 넌센스라는 말이나 넌센스는 센스라는 말이나 결국 동일한 분석과 추론을 요구하는 이야기라고 본다. 실존하는 모든 것의 의미는 부인되지 못하며 이러한 의미들로 하여금 내부에서 비등하는 세계를 증발?표백하는 시가 넌센스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은 충분한 논거를 가지지만, 나는 그것 자체를 시의 의미로서 파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유미적인 자율성을 누리는 시를 볼 때 유희성이 바탕인 무의미가 그 본질을 이루는 것은 마땅하지만 ‘이데’로서 수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미를 전제로 한 어떠한 詩作도 그것이 의미를 전제로 하고 행해지는 한에 있어 그 의미는 건져지기 힘들 것이다. 김춘수와 김수영은 이 점에 있어 퍽 좋은 對比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춘수가 사물에 대한 천착을 할 때 김수영은 다만 관망하고 있으며, 김춘수가 묘사를 시작할 때 김수영은 그것을 기술하고 있다. 김춘수는 그것을 그대로 그의 내무의 인식으로 옮겨가며, 김수영은 수집된 인상들을 오브제로 수용하는데 거부 혹은 주저하고 있다. 외부에서 지배하려 든다. 인식의 철저성을 기하고 있다는 것이 곧 의미를 제거한다는 생각은 그러므로 옳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춘수의 인식은 우리 시가 인식으로 의미에 도달할 수 있는 정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김수영은 다만 상징으로서 주어지는 의미의 內包가 얼마나 단순하고 평범적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의미는 인식의 발전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적어도 오늘의 우리는 이러한 입장 위에 서야 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狀況과 人間』, 박우사, 1969.11.10)  
839    조기천 및 부동한 문학주장 /허동식 댓글:  조회:4539  추천:0  2015-04-03
조기천의 시 그리고 부동한 문학주장에 대한 생각                                                                                      허동식          연길행에서 만난 동창생 하나가 조기천의 시 이던지를 왕왕 암송하여 주었다.그 장소에서 나는 조금은 까맣게 잊어버린 조기천시인의 시를 생각해보고싶었다.      고중을 다닐 때에는 조기천의 시를 조선문으로 된 시의 최상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이 개인적인 편애였다면 도한 사회문화분위기가 만들어준 결과였으리라. 그래서 뒤에도 조기천의 시집도 마련하고 북경류리장에서 일본어로 된 시를 중국어로 번역한 을 한권 구입하고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나니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조기천과 조기천의 시를 까마아득하게 잊어버리고있다는 생각에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는 그럴사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현재 우리의 마음에 과거의 일원정치에 대한 부정심들이 우뚝 솟아있다고 한다면 조기천시인의 시작들 배후에 다소는 작간하여온 사회정치공리성 때문에 그의 시작들을 전혀 무시할수는 있겠다. 그러나 조기천의 시작들에 내재하는 아름다움들에 대하여 아주 내버린다는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조기천 시작들에 피여난 호방미와 격정미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불공평으로도 되겠다.       세상에는 부동한 문학주장들이 우거져있다. 그러나 매 하나의 문학주장마다가 사회적인 문학적인 개인적인 배경이 있다. 때문에 어떠한 문학주장을 해독하든지 그러한 문학주장뒤에 숨겨진 요인들을 읽어낼줄을 아는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구미와는 다른 문학주장을 접하였을 때에는 한마디노! 보다도 리지적인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물론 부동한 문학주장을 펴는 사람도 펴내보이는 문학주장을 보다 , 말하자면 명확하고 남들이 알아듣기 쉽게 표현하는것도 중요한 일이다.      고금중외에 있었던 문학주장들을 많고도 많다. 그러나 그 문학주장들을 분류해본다면 대부분은 문학의 내용, 문학의 방법 그리고 문학내용과 문학방법의 관계에 대한것들이다. 1 문학의 내용, 문학의 내용면에 있어서는 조금 과거에는 사회정치공리성의 영향을 엄청 받아왔다.그러나 어떠한 가치관과 사조의 영향을 받아왔던지 문학의 내용은 진실성이 최상의 규준이라고 생각된다. 인간과 인간사회가 아름답던지 추악하던지를 불문하고 문학의 내용이 진실하지못하다면 문학작품은생명성이 없다. 2 문학의 방법, 부동한 문학방법은 주로는 심미적인 취향이 가져오는 결과이다. 누구는 나무를 즐기고 누구는 꽃을 즐기듯이 부동한 시대에 부동한 문학인들은 자기의 심미취향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꽃을 즐기는 작자가 나무를 즐기는 작자를 삿대질하거나 진달래를 즐기는 작자가 국화를 즐기는작자를 삿대질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3 문학내용과 문학방법의 관계면에서는 어느 문학인도 그것을 아주 조화롭게 균형되게 처리한다는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그렇게 요구할수는 있지만 필경은 무한대의 접근에 불과하다. 문학내용과문학방법의 천평이 기울이지거나 흔들리는것은 정상적인 일로서 그것으로만 문학인과 문학작품을 평한다는것은 난쟁이 문학평론가들의 일이다.      
838    조기천론 댓글:  조회:4347  추천:0  2015-04-03
책 소개     조기천의 장편서사시「백두산」(1947)은 북한 최초의 서사시이자, 북한문학사 안에서 항일혁명문학의 모범적 전형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북한 문학의 사상적ㆍ미학적 표본으로서 각광받아 온 작품이다. 해방 이후 북한 사회 건설을 추동하는 문학적 기폭제로서 기능해 왔다.       저자 : 조기천(趙基天)     1913년 러시아 연해주 스파스크 촌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조기천의 출생지는 함경북도 회령으로,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70년 카자흐스탄 알마아따 작가 출판사에서 출판된 『시월의 해빛』에 조기천의 약력이 1913년 스파스크 출생으로 명기되어 있고, 여러 증언 및 자료 등을 토대로 볼 때도 그의 출생지는 연해주 스파스크 촌인 것으로 확인된다.     17세에 스파스크 촌의 초ㆍ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인 1930년 연해주 우수리스크 시 조선사범전문학교에 입학해 1933년에 졸업했으며, 이 시기『선봉(先鋒)』 신문에 첫 시「파리꼼무나」(1930)와 더불어「공격대원에게」(1931),「야외연습」(1932) 등의 시를 발표했다.       1938년 7월 러시아 중(中)시베리아 옴스크 고리키 사범대학 러시아 문학부를 졸업하고 그해 9월부터 2년간 카자흐스탄 크슬오르다 시 조선사범대학 문학부에서 세계문학사를 강의했으며, 1939년 8월 모스크바 종합대학 대학원에 파견되었으나 조선인은 일본 간첩이 될 수 있다는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어 크슬오르다 시로 되돌아온다. 이후 대학의 교편생활을 접고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중앙아시아 고려인 신문인『레닌기치』에서 기자, 문화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소련군에 지원 입대해 소련군 장교로 북한에 들어오게 되며, 소련군정 기관지인『조선신문』에서 문예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7년부터 문예총 작가동맹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게 된다.       1946년「두만강」을 필두로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북한의 토지개혁을 소재로 한「땅의 노래」(1946), 항일무장투쟁을 다룬「백두산」(1947)을 발표하면서 북한 문단에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밖에도「생의 노래」(1947),「휘파람」(1947),「네거리에서」(1947),「우리의 길」(1947),「항쟁의 려수」(1948),「조선은 싸운다」(1951) 등의 시를 발표했다. 1951년 이기영ㆍ이태준ㆍ임화ㆍ한설야 등 당시 북한 문단의 최고 핵심 작가들과 함께 북한 최고의 훈장인 국기훈장 제2급을 수상했으며 1951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51년 7월 31일 밤 12시경 미군 항공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책 속으로   “가마 속의 물은 끓다가도 없어진다 ? 원천이 없거니 ? 허나 내물은 대하를 이룬다. 동무들! 우리는 대하가 되련다 바다가 되련다 우리의 근간도 민중 속에, 우리의 힘도 민중 속에 있다! 민중과 혈연을 한가지 한 빨찌산임을 우리 잊었는가? 우리 이것을 잊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민중과의 분리? 이것은 우리의 멸망, 이것을 왜놈들이 꾀한다 우리 이것을 모르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p.52)     철호는 물 얻으러 달려가고 소나무 밑 이름 모를 봄풀 우에 반듯이 누워 있는 소년 ? 그 크다란 불타는 두 눈 부릅뜨고 검푸른 하늘 노려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두 주먹 높이 들며 ? “끝까지 싸우라! 조선 독립 만세!” 높이 부르짖었다. 이렇게 총에 맞은 갈매기 바위에 떨어져 부닥쳐도 꺾어진 나래를 퍼덕이며 생과 투쟁에 부른다, 그렇게 마지막 부르짖은 소년 다시 스르르 모으로 쓰러진다. 입술로 두 줄기 피 흘러서 풀잎에 맺힌 밤이슬에 섞인다… (p.62)         출판사 리뷰      「백두산」은 ‘김 대장’이라는 ‘민중적 영웅’을 중심으로 항일무장투쟁의 승리와 해방의 의지를 역설하고 있으며, 이러한 민족 해방의 열망을 새 조국 건설이라는 과업과 연계시켜 당대의 실천적 각성을 촉구하는 암묵적 프로파간다의 역할까지 담보함으로써 해방 이후 북한 사회 건설을 추동하는 문학적 기폭제로서 기능해 왔다.     하지만「백두산」이 도식적인 김일성 우상화나 생경한 미적 형상화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풍부한 이야기성과 웅장한 스케일, 장엄한 비장미를 담보하면서 장편서사시로서의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한국 문학사 안에서 흔치 않은 ‘항일무장투쟁’이라는 소재를 ‘백두산’, ‘압록강’ 등의 민족적 표상을 통해 극적으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 따라서 「백두산」을 편향적으로 북한문학의 자장 안에 놓기보다는 남북한 문학사의 전체적인 조망 아래 그 다각적인 의미망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백두산」은 크게 머리시와 본시(本詩) 7장(총 46절), 그리고 맺음시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시와 맺음시는 해방의 감격과 ‘백두산’, ‘천지’, ‘백두산 호랑이’로 대변되는 해방 조국의 견결하고 위대한 민족적 형상을 격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새 조국 건설의 의지를 만방에 선포한다.「백두산」이 창작된 1947년을 전후해서 북한에서는 토지 개혁과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기반으로 한 새 조국 건설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북한 주민들의 사상 개조와 노동력 동원 등을 목적으로 한 대중적 문화교양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일환으로 문학가들 또한 당의 문예 정책인 ‘혁명적 낭만주의’, ‘고상한 리얼리즘론’ 등의 창작 방법에 기초해 전위적이고 선동적인 작품 창작을 추동했던바,「백두산」의 창작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불어 재소 고려인 시인으로서 프롤레타리아 계급 의식과 공산주의적 세계관 및 항일 의식으로 무장하고 있던 조기천의 사상적 배경은 조소 친선을 근간으로 새 조국(북한) 건설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적극적 요인이 된다.     이러한 해방 조국의 새로운 지향점은 본시의 ‘항일무장투쟁’ 서사와 조우하면서 그 역사적 정당성 및 진정성을 획득한다. 즉 ‘항일 무장 투쟁’을 통해 민족 해방의 활로를 개척했던 김 대장, 철호, 꽃분, 영남 등의 항일 전사들은 해방 이후 새 조국 건설의 대과업을 앞장서 이끌어 갈 민중적 영웅의 전범이자 혁명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새 조국 건설에 역사적 필연성 및 정당성을 부여한다.       ‘김 대장’은 항일 빨치산의 지도자로서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품성, 지사적 풍모, 무장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지략과 용맹성 등을 겸비한 ‘영웅적 성격’의 전형을 보여 주며, ‘철호’는 김 대장의 비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정치 공작원으로서 H시 야습 작전의 격전지에서 최후까지 맞서다 장렬히 죽음을 맞이하는 혁명 전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꽃분’은 철호의 비밀공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조력하면서 동지적 연정을 혁명 과업의 수행으로 승화시켜 나가며 ‘영남’은 일본 수비대의 총격으로 죽어 가면서도 “끝까지 싸우라!/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짖는 애국적 소년 전사의 형상을 극적으로 재현한다.     이처럼「백두산」의 주요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각각의 인물들은 고상한 도덕적 품격 및 시련과 고통에 의연히 맞서는 불요불굴의 의지, 대담하고 진취적인 기상과 헌신적 동지애를 겸비한 민중적 영웅상을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해방 이후 새 조국 건설에 헌신적으로 동참함으로써 해방 이전과 이후를 매개하면서 해방 조국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연속적 혁명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837    명시인 - 조기천 댓글:  조회:4271  추천:0  2015-04-03
  장편 서사시   백두산/ 조기천     머리시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하련다! 의 소리없는 웃음에도 격파 솟아 구름을 삼킨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로 이 땅을 파몰아치던 살풍에 마르고 탄 한가슴을 추기고 천년이끼오른 바위를 벼루돌 삼아 곰팡이 어렸던 이 붓끝을 육박의 창끝인듯 고루며 이 땅의 이름없는 시인도 해방의 오늘 말하련다!   첩첩 층암이 창공을 치뚫으고 절벽에 눈뿌리 아득해지는 이곳 선녀들이 무지개 타고 내린다는 천지 안개도 오르기 주저하는 이 절정! 세월의 류수에 추억의 배 거슬러올리라- 어느해 어느때에 이 나라 빨지산들이 이곳에 올라 천심을 떠닫으며 의분에 불질러 해방전의 마지막 봉화 일으켰느냐?   이제 항일에 의로운 전사들이 사선에 올랐던 이 나라에 재생의 백광 가져왔으니 해방사의 혁혁한 대로 두만강 물결을 넘어왔고 백두의 주름주름 바로 꿰여 민주조선에 줄곧 뻗치노니 또 장백의 곡곡에 얼룩진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력력하노니 내 오늘 맘놓고 여기에 올라 삼천리를 손금같이 굽어보노라!   오오 조상의 땅이여! 오천년 흐르던 그대의 혈통이 일제의 칼에 맞아 끊어졌을 때 떨어져나간 그 토막토막 얼마나 원한의 선혈로 딩굴었더냐? 조선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때 몇만의 지사 밤길 더듬어 백두의 밀림 찾았더냐?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웠고 사지를 문턱인듯 넘나든이 그 뉘냐? 산아 조종의 산아 말하라- 해방된 이땅에서 뉘가 인민을 위해 싸우느냐? 뉘가 민전의 첫머리에 섰느냐?   쉬! 바위우에 호랑이 나섰다 백두산 호랑이 나섰다 앞발을 거세게 내여뻗치고 남쪽하늘 노려보다가  산골을 깨친다 그 무엇 쳐부시련듯 톱을 들어 그리곤 휘파람속에 감추인다 바위 호을로 솟아 이끼에 바람만 스치여도 호랑이는 그 바위에 서고있는듯 내 정신 가다듬어 듣노라- 다시금 휘파람소리 들릴지 산천을 뒤집어떨치는 그 노호소리 다시금 들릴지!   바위! 바위! 내 알리 없어라! 정녕코 그 바위일수도 있다 빨지산초병이 원쑤를 노렸고 애국렬사 맹세의 칼 높이 들였던 그 바위                                           이 땅에 해방의 기호치던 장백에 솟은 이름모를 그 바위 또 내 가슴속에도 뿌리박고 솟았거니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더듬으며 가난한 시상을 모으고 엮어 백두의 주인공 삼가 그리며 삼천만이여, 그대에게 높아도 낮아도 제 목소리로 가슴 헤쳐 마음대로 말하련다!       조기천의 서사시   1. 조기천의 생애  분단이후 북한 문학사가 "평화적 건설시기"(1945. 8-1950. 6)의 걸작으로 꼽고있는 조기천의 서사시 『백두산』은 제주 4·3사건을 다룬 강승한의 서사시 『한라산』과 함께 가장 알려진 작품이다. 이 서사시는 비단 이 시기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분단시대의 북한문학 전시기를 통틀어서도 이념적 경직성이 지나치지 않는 8·15직후의 빈약했던 우리 문학가에서 드물게 보는 성과로 평가받을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른바 1970년대를 전후해서 본격화된 주체이념의 유일사상화 시기를 북한문학의 이해와 평가의 시대적 분수령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인 방법론인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도 『백두산』은 오히려 주체사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예술작품이 지닌 그 부정적 측면을 잘 극복한 뛰어난 형상성을 지니고 있다.  시인 조기천은 1913년 11월 6일 함경북도 회령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이내 시베리아로 이주해 갔다. 소련에서 그는 소년시절부터 지방신문이나 잡지를 통하여 짤막한 시들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옴스끄의 고리끼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는 중앙 아시아 끄실 오르따 조선사범대학에서 약2년간 교직에 있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전개했다. 8·15때 조기천은 중국 동북지방에 들어왔던 소련군에 참여했다가 이내 북한으로 오게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북한 문단의 구성요인이었던 재북·월북파,연안파,소련파 등의 구분에 따르면 소련파의 일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조기천은『조선신무넬에서 일하면서 1946년 3월 서정시「두만강」을 발표하여 처음 시인으로서의 얼굴을 나타낸다. 이 시는 일제 식민지 시대 때의 수난받는 민중상과 항일투사들의 투지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8·15의 감격을 노래한「울밑대에서 부른 노래」,토지개혁을 읊은「땅의 노래」등을 거쳐 1947년 『백두산』을 쓰게된다.  소련파였던 조기천이 이 시기에 가장 먼저 항일유격전을 소재로 하여 김일성을 부각시키는 작품에 손을 댄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상정할 수 있으나 어쨌건 이 시로써 그는 일약 북한문단의 일급으로 부상한다. 1948년 여순사건을 소재로 한「항쟁의 려수」를 발표하여 그는 북한당국으로부터 공로메달을 받았는가 하면 8·15기념예술축전에서 연 세 번이나 수석 표창을 받았다고 전한다.  1949년 여름에는 휴가를 이용하여 흥남인민공장을 방문하여 약20일간 노동자들과 함께 한 체험을 바탕삼아 1950년6월에 장편 서사시『생의 노래』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2개년 경제계획에 나서도록 노동자들을 독려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6·25가 일어나자 조기천은 9월에 종군작가로 나서서 낙동강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중에 저 유명한「조선은 싸운다」를 비롯하여「불타는 거리에서」「죽음을 우너수에게」「나의 고지」등 시작품을 썼다. 특히 "세계의 정직한 사람들이여!/ 지도를 펼치라/ 싸우는 조선을 찾으라"로 시작되는「조선은 싸운다」는 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지도에서 도시와 마을은 폭격으로 불타고 없으니 찾지 말아라는 이 시는 선전과 서정이 조화된 반전시로 세계문학사에 알려져 있다.  1951년 3월 조기천은 조선문학예술 총동맹 부위원장으로 피선된다. 그 해 5월 그에게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국기훈장 2급이 수여되기도 한다. 그 두 달 뒤인 7월 31일 조기천은 39세로 평양에서 폭격으로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품 속에서는 유고『비행기 사냥군』이란 서정서사시가 있어 사후에 발표되었다고 전한다.  조기천의 생애는 짧았기에 북한의 어떤 정치적 격변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애국적 시인"으로 남았고, 또한 그의 작품활동 기간은 "평화적 건설시기"와 "위대한 조국 해방전쟁시기"에 제한되었기 때문에 그 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기천은『생의 노래』에서 투철한 자신의 문학관을 토로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 소련 시절부터 익혔던 사회주의 미학관의 한 표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옛날엔/ 시가를 풍월이라 불렀다/ 그래서 시인이라 자처한 무리들은/ 화조월석을 찾았고/ 초로인생을 설어했는가?/ 그래서 그들에겐/ 외적의 나팔소리보다/ 꾀꼬리소리 더 높이 들리었고/ 달이 둥그는 걸 잘 알았는가?/ 시인이라 자처한 무리들은/ 병든 마음을 파고들며/ 인생의 비애를 찬미하며--/ 무엇 때문이었느냐?/ 지는 곷이 서러웠드냐?/ 조선의 가슴에/ 일제의 칼이 박혔는데--  『생의 노래』에서  8·15뒤 북한문학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창조를 그 바탕으로 삼으면서 민족형식을 강조하는 경향이었는데 비록 소련에서 소년기를 보낸 조기천 일지언정 이런 원칙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던성 싶다.  2.『백두산』의 주제로서의 보천보 전투  8·15직후 남북한은 문학적으로 다 일제잔재 청산과 새 사회 건설을 위한 완전독립을 이루려는 반외세운동 등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친일파에 대한 처벌문제와 반제·반봉건 의식의 문학이 가장 긴박한 과제로 등장했으며 이를 다룬 작품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남북한에서 다 토지문제를 다룬 작품이 상당량에 이르며 그 뒤로 오면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인간의 내면적 탐구를 주로 다루는 한국문학과 사회주의 개혁의지를 다룬 북한 문학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조기천의 『백두산』은 바로 그 갈림길에 이르는 길목에 있으면서 그 당시로서는 직접적으로 당면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항일빨치산을 소재로 했다는데서 이 시인의 특이한 역사적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이 서사시의 소재인 보천보 전투에 대해서는 항일투쟁사에서 여러 각도에 걸쳐 고찰된 것이 많은데 최근 소개된 와다 하루키(和母春樹)의「김일성과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사회와 사상』1988.11-12 연재)에 따르면 조국광복회 조직이 시작되면서 국내로까지 손을 뻗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그 지휘자는 김일성이었다고 한다. 커민테른 제7차대회의 새방침에 따라 항일연군 제1로군의 힘으로 조선독립투쟁을 수행한다는 결정이 이루어져 3개사가 공동으로 국내 진입작전을 입안하게 된 것이라고 와다 교수는 보고 있다.  즉 제6사는 장백에서 보천보를 공격하고, 제4사는 무송-안도-화룡으로 돌아서서 조선의 무산을 치며, 제2사는 임진강 일대에서 장백으로 향하도록 계획을 세웠는데 이런 제안은 김일성이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초적으로 간삼봉(間三峯)에서 만나기로 한 이 3개사 합동작전은 제4사의 최현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김의 제6사는 근대 민족해방 투쟁사에서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북한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이하 와다 교수의 글을 그대로 옮긴다.  김일성의 제6사는 무산에서의 행동을 통보받고 6월 4일밤, 100여명이 강을 건너고, 대안에서 조국광복회 청년 80여 명과 합류하여 보천면 보전(保田)을 공격했다. 보건은 일본인 26호, 조선인 280호, 중국인 2호, 합계 308호인 소읍으로서 조재소에는 5명의 경관이 있었다. 이 주재소를 비롯하여 면사무소·삼림구(森林區)·우체국·관공서 건물들이 불타버렸다. 부대는 〈10강령〉의 삐라를 뿌리고 철수했다. 철수할 때 혜산서(署)의 오가와(大川)의 경부가 이끄는 병력의 추격을 받자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물러갔다.  보천보 작전을 성공리에 끝마친 제6사는 장백의 밀영으로 일단 철수했다가 제4사·제2사의 도착을 기다려 간삼봉으로 이동했다. 총인원 400이라고도 하고 600이라고도 한다. 그 사이 조선 침입사건으로 초조해진 일본군은 함흥의 제74연대를 김석원 소좌의 지휘하에 출동시켜 국경 일대의 토벌전을 시도했다. 이 군대에 6월 30일, 간삼봉에서 기다리고 있던 3사 연합군의 타격을 가했다.  『사회와 사상』1988. 11. 187쪽  이어 와다 교수는 이 사건으로 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신원이 일제 기관에 의하여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다고 쓴다(보다 자세한 자료는 남현우 엮음『항일무장 투쟁사』대동, 253-266쪽 참고)  이 1937년 6월4일 사건을 주제로 한 것이 조기천의 『백두산』으로 이는 북한에서 항일 빨치산 투쟁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많은 예술작품이 다뤄온 역사적인 한 전형이 되었다.  그러나 조기천의 『백두산』은 이 보천보 사건을 다루면서도 결코 이 사건 하나만에 국한시키지 않는 항일빨치산 투쟁의 보편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서가고 있다. 즉 이 시에서는 김을 비롯한 몇몇 고유명사만 빼면 어떤 특수한 사건이 아닌 항일 투쟁의 민족적 보편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창작했다고 풀이한다. 예술적인 일반화를 시도하려는 동기에서 이 시는 사건발생의 명확한 연도와 지명을 밝히지 않았는데 예컨데 H시로 표기한 것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영웅주의를 벗어난 영웅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특정 사건의 특정 인물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민족적으로 일반화된 민중주체의 항일투쟁을 전형화 시킨다는 의도로 평범한 농민투사들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김만은 예외적 구상으로 이뤄져 있다.  3. 『백두산』의 구성과 특질  머리시와 1-7장에다 맺음시로 이루어져 있는『백두산』은 조기천 자신의 서정시「두만강」을 그 원형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즉「두만강」에 나오는 국토와 민족애가 『백두산』에 그대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째진 가난 속에 부대껴도/ 말 한마디 틀리랴 겁내며/ 눈물에 치마고름 썩어도/ 앞날을 바라고 한숨을 주이는/ 두만강이여. 이것이/ 그대 그려둔 조선의 여인이 아닌가?"(「두만강」)에 나타난 여인상이 그대로『백두산』의 꽃분이로 승화한다는 해석이 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우리의 민족문학에 나타난 여인상은 모두가 꽃분이일 수밖에 없다는 민족적 보편성이 성립할 소지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보편성을 먼저 내세우느냐 하면 분단 44년이 지나서 남북한의 이질화 현상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있지만 민족문학사의 긴 뿌리에서 본다면 결국은 동질성으로 볼 수 밖에 없음을 대전제로 삼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백두산』의 모든 인물들은 근대 이후 우리 민족문학사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반성을 지닌 인간상이 아닐까? 예컨데 꽃분이는 가난 속에서 민족의식을 지닌 채 자라나 빨치산 활동에 투신하여 박철호와 위험을 무릎 쓰고 항일선전 및 무장투쟁에 까지 가담한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 박철호가 죽어간 뒤에도 미래의 조국 건설을 위한 후비대로 눈물을 삼키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상정된다. 이런 한 여인상의 고난은 우리 민족문학사에서 너무나 많은 변형으로 나타난다. 신동엽의 시에서는 아사녀로 상징되며, 소월의 시에서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며 님을 보내드리는 그 여인상 모두가 우리의 꽃분이가 아닐까.  『백두산』은 그 앞머리부터 역사적인 현실성으로서의 평범성(곧 민중성)과 초자연적인 영웅성이 조화를 이룬 채 장엄하게 묘사된다. 이 조화로운 자연묘사는 영웅주의와 민중성을 하나의 역사적 진보의 작용으로 보려는 시인의 의도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에 나타난 영웅상은 한 개인적인 위대성의 표현이 아니라 집단적 영웅상으로 그려진다. 물론 시에는 김을 그 정점으로 삼아 짤막하나마 초인화시키고 있으나, 그것은 다른 빨치산 개개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함께 있는 것이지 초자연적인 홀로인 영웅주의로 우뚝 솟은 인물로 부각된 것은 아니다.  민중적 영웅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시적 구도로 『백두산』은 가장 민중적 형식인 구비문학의 각종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이는 철저한 전통적 민중성을 혁명의 기초로 삼으려는 의도된 문학적 형식이기도 한데 민요조로 이루어진 가락은 독자들에게 한결 친근감을 준다.  시적 사건 전개방법은 오히려 극히 단조롭다. 아내를 일본인에게 잃은 김운칠은 혜산에서 솔개 마을로 옮겨와 화전농으로 어렵게 살아간다. 딸 꽃분이는 조선광복회 회원일시 분명한 박철호가 정치공작원으로 국내에 잠입해 왔을 때 그에게서 1년동안 지도를 받는다. (2장) 꽃분이와 철호는 유인물을 만들다 일본경찰에게 들킬뻔 했으나 꽃분의 기지로 위기를 넘긴다. (3장) 임무를 끝낸 철호는 16세 소년 영남이와 떠났으나 압록강을 건너다 영남은 사살되고 만다. (5장) 이미 국내에 조직되어 있는 과옥회 회원들과 연계하여 잠입한 빨치산은 쉽게 폭동에 성공한 후 각종 정치사업을 끝내고는 물러간다. 폭동 성공은 물론 꽃분이와 철호가 그 앞장을 선다. (6장) 그러나 압록강 뗏목을 타고 국경을 넘어가던 중 철호와 청년빨치산 중 가장 용감했던 석준이 총에 맞아 전사한다. (7장)  이미 밝힌 것처럼 보천보 전투를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특정 지명을 쓰지 않은 것은 항일투쟁의 보편성을 전형화하기 위한 의도이다. 그러나 투쟁의 전형성은 먼저 투철한 조직의 부각으로 분명히 드러난다. H시에 들어온 빨치산들은 이미 만들어진 조직을 통하여 힘들이지 않고 잠입하여 쉽게 폭동을 일으킨 후 여유있게 물러간다. 그리고 이런 힘이 원천을 이 시에서는 민중의 편에 선 민중을 위한 조직으로 풀이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의 하나인 제4장은 나흘째 굶은 빨치산 대원들이 소 두 마리를 끌고 오자 그 소가 일본의 것이 아닌 조선과 중국 농민의 것임을 알고는 되돌려 주려다 실패하곤 그 대가라도 치뤄야 한다는 철의 규율이 나오는 대목이다. 제4장의 5절에 나오는 민중성의 강조는 근대이래 우리 민족문학사에서도 드물게 보는 구절이다.  항일빨치산이 지닌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하여 『백두산』의 맺음시는 "그러면 백두야/ 조선의 산아 말하라!/ 오늘은 무엇을 보느냐?/ 오늘은 누구를 보느냐?"고 묻도록 만든다. 바로 8·15직후의 한반도로 항일의 의지를 끌어들여 역사적 진로를 모색코자 하면서 이시는 끝난다. 물론 문학의 당시 입장이 선명하게 스며있다, 그러나 8·15직후의 북한 입장이란 오늘의 분단고직화 시대의 그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자유의 나라!/ 독립의 나라!/ 인민의 나라!/ 백두산은 이렇게 외친다!/ 백성은 이렇게 외친다!"는 마지막 구절은 당시 남북한 어디에도 들어맞는 말이었기도 하다.  이래서『백두산』은 분단시대 초기의 남북한 이질화가 옹고되기 이전의 동질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작품의 하나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서사시로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물론 오늘의 우리 입장에서 말한다면 일제 식민지 아래서의 구체적인 민중적 삶의 실체가 좀 약하다든가 하는 나대로의 비판이 따를 수도 있지만 8·15직후의 작품수준을 감안할 때 우리 문학의 수확인 점은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836    조기천 / 백두산 댓글:  조회:4358  추천:0  2015-04-03
[조기천]  [백두산]그 진행형 테마  1.「백두산」과 조기천  은 조기천이 북한 정권 수립 이전인 1947년에 쓴 장편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조기천의 대표작일뿐 아니라 해방공간에 북쪽에서 씌어진 항일무장투쟁 서사시로서 발군의 위치에 놓이는 것으로 회자돼 왔다.  이 작품은 1930년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을 기초로 하였으면서도 뚜렷한 날짜나 지명들을 사용치 않음으로써 일반화되고 전형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른바 보천모전투(1937.6.4)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드라마타이즈되어 있는 것이다.  조기천은 소위「평화적 건설시기」(1945.8~1950.6)에 북쪽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빈농인 그의 가정은 일제 강점하의 수탈에 쫓겨 시베리아로 망명, 유이민의 길을 떠난다. 그는 옴스크에 있는 고리끼사범대학을 마치고는 중앙아시아의 조선사범대학에서 2년간 교원생활을 했다. 이 무렵부터 조금씩 시창작을 하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 북한의 《조선신문》 문예부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전개한다. 1946년에는 두만강의 흐름을 역사에 견주어 쓴 서정시 을 발표하고, 이어서 1947년에 이 을 창작한 것이다. 오오 조상의 땅이여! 오천년 흐르던 그대의 혈통이 일제의 칼에 맞아 끊어졌을 때 떨어져나간 그 토막토막 얼마나 원한의 선혈로 딩굴었더냐? 조선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때 몇 만의 지사 밤길 더듬어 백두의 밀림 찾았더냐?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웠고 사지를 문턱인 듯 넘나든 이 그 뉘냐? 산아 조종의 산아 말하라- 해방된 이 땅에서 뉘가 인민을 위해 싸우느냐? 뉘가 민전의 첫머리에 섰느냐? -에서 이 시에서 직접 다루고 있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 전개된 항일 무장투쟁이다. 그렇지만 이 시는 일제하의 항일투쟁 정신을 이어받아 해방조국 건설의 추진력으로 삼고자하는 창작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서사시 은 지난 날 일제강점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연관되면서도 당대 현실에 암유적 대응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실제적 의도로서 씌어졌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은 남쪽에서 작품 공개는 물론 그에 대한 비평적 고찰 또한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차 ‘88년의 7?19 해금조치에 힘입어 《실천문학》 ’88년 겨울호에 「북한문학걸작선」으로 작품이 수록되고, 다시 ‘89년 1월에 실천문학의 시집으로 《백두산》이 간행됨으로써 일반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로는 시집 해설인 임헌영의 이 발견될 뿐 아직 본격적인 작업이 없는 형편이다. 2. 「백두산」의 서사시적 요건 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 시가 서사시적 요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은 「장편서사시」라고 명기되어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서사시란 무엇인가? 연전에 필자는 우리의 근대서사시를 살펴본 결과 서사시가 ① 서사적 구조를 지니고 있을 것, ② 역사적 사실과 연관?대응될 것, ③ 사회적 기능을 지니고 있을 것, ④ 집단의시을 바탕으로 할 것, ⑤ 창작된 당대현실과 암유적 관계를 지닐 것, ⑥ 노래체의 율문으로 짜여질 것, ⑦ 길이가 비교적 길어야 할 것 등을 그 범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비춰볼 때 은 모든 항목에서 대체로 부합됨을 알 수 있다. 즉 은 서사로서의 기본 요건인 일정한 성격을 지닌 인물과, 일정한 질서를 지닌 사건을 갖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① 서사적 구조를 지니고 있을 것」에 부합한다. 또한 은 일제 강점하 민족의 수난사와 민족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② 역사적 사실과 연관 대응될 것」이라는 조건에도 부합한다. 또한 은 일제 강점하의 항일무장투쟁사를 직접 형상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③④의 항목과 관련되며, 광복 후의 현실상황에서 새조국건설에 박차를 가하자고 하는 의도에서 집필됐다는 점에서는 「⑤ 당대현실과 암유적 관계를 지닐 것」과도 밀접히 대응된다. 아울러 노래체의 율문형식으로 씌어진 1,500여 행의 장시라는 점에서는 ⑥⑦과 연관된다. 따라서 은 서사시로서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최대 수난기에 처해서 그러한 민족적 위난을 타개하고 조국광복과 독립을 전취해 나아가려는 일제하의 무쟁투장과정의 한 모습이 서사시적 구성으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짐으로써 민족?민중서사시의 한 전형성을 확보한데서 이 작품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하겠다. 3. 「백두산」의 구성과 내용 은 머리시와 본시 및 맺음시로 구성돼 있다. 본시는 모두 7장으로 짜여졌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시 46절로 나뉘어져 있다. 전체시는 모두 약 1,564행 정도의 행 전개를 보여주는 바, 길이 면에서는 장편서사시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의 내용을 사건 전개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머리시 발 단 : 1장(1~7절) 전 개 : (1) 2장(1~7절), 3장(1~8절) (2) 4장(1~6절), 5장(1~5절) 절 정 : 6장(1~7절) 대단원 : 7장(1~6절) 맺음시 따라서 이 시는 서사적 플롯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극적인 사건의 전개로 인해 긴박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도 일단 장편 서사시로서 자리잡힌 면모가 발견된다. 먼저 「머리시」에서는 「천지(天池)」와 「호랑이」로서 백두산의 신비스럽고 위엄있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첩첩 층암이 창공을 치뚫으고 절벽에 눈뿌리 아득해지는 이 곳 선녀들이 무지개 타고 내린다는 천지 안개도 오르기 주저하는 이 절정! 세월의 유수에 추억의 배 거슬러 올리라― 어느 해 어느 때에 이 나라 빨찌산들이 이 속에 올라 천심을 본받으며 의분에 불질러 해방전의 마지막 봉화 일으켰느냐? (중략) 쉬―위― 바우 위에 호랑이 나섰다 백두산 호랑이 나섰다 앞발을 거세게 내여뻗치고 남쪽 하늘 노려보다가 「따―웅―」산골을 깨친다. 그 무엇 쳐부시련 듯 톱을 들어 「따―웅―」 그리곤 휘파람 속에 감추인다 (중략)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더듬으며 가난한 시상을 모으고 엮어 백두의 주인공 삼가 그리며 삼천만이여, 그대에게 높아도 낮아도 제 목소리로 가슴헤쳐 마음대로 말하련다! 천지와 백두산 호랑이는 오랜 이 땅의 역사 속에서 신성한 민족의 성소 또는 영물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녀왔다. 특히 백두산은 한 민족의 뿌리이자 영산으로서 민족혼과 민족정기의 표상성을 지닌다. 이 점에서 이 시가 백두산을 제재로 한 것부터가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백두산은 「조선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때/ 몇만의 지사 밤길 더듬어/ 백두의 밀림 찾았더냐/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웠고/ 사지를 문턱인 듯 넘나든 이 그 뉘냐? 」처럼 항일민족투사들의 피어린 자취와 연결됨으로써 민족의 성소이면서 삶의 역사적 현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해방된 오늘」로서 현재화함으로써 이 서사시가 지난 시기의 항일무장투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형상화하는 데만 목표를 두고 있는 게 아니라 창작된 시기 당대의 민족의 삶과 역사적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는 점을 포괄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의 발달부분은 제 1장인데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서사구조에서처럼 배경제시와 등장인물 제시 및 사건의 실마리가 열리게 된다. ① 고개 뒤에 또 고개― 몇몇이나 있으련고? 넘어넘어 또 넘어도 기다린 듯 다가만 서라! 한 골짜기 지나면 또 다른 골짜기― 이깔로 백화로 뒤엉켜 앞길 막노니 목도군이 고역에 노그라지듯 골짜기는 으슥히 휘늘어져 있어라! 울림으로 빽빽하여 몇 백리 백설로 아득하여 몇 천리 ② 그 다음…… 그담엔 홍산골이 터졌다― 총소리, 작탄소리, 기관총소리, 놈들의 아우성소리! 그담엔 절벽이 무너졌다. 다닥치며 뛰치며 부서지며 바위돌이 골짜기를 쳐부신다, 「만세!」「만세!」 ―골안을 떨치며 산비탈에 숨었던 흰 두루마기들 나는 듯이 달려 내렸다. (중략) 「한 놈도 남기지 말라!」 그이는 부르짖었다. 바른손 싸창을 바위 아래로 번쩍이자 마지막 발악쓰던 원쑤 두 놈이 미끄러지듯 허적여 뒤여진다― 「한 놈도 남기지 말라!」 그이는 재쳐 부르짖었다 이는 이름만 들어도 삼도 일제가 치떠는 조선의 빨찌산 김대장! (중략) 이날 밤 대장이 든 천막엔 새벽까지 등불이 가물가물…… 하더니 아침엔 눈보라치는데 정치공작원 철호 먼길 떠났다 (하략) 그러고 보면 이 시의 배경은 한 겨울 눈보라 몰아치는 백두산 밀림 속임을 알 수 있다. 그곳은 수많은 고개와 골짜기로 이어진 첩첩 산중 밀림 속이며, 「칼바람?눈보라?서리발」날리는 백두산의 밀영지 홍산골인 것이다. 여기에 일제 토벌대의 기습이 있게 되고, 육박전이 벌어지면서 수많은 항일무장투쟁전사들이 등장하고, 용맹한 빨치산 김대장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 시는 「흰옷 입은 무리」로서 항일유격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민중서사시적 성격을 지니며, 「새별」로서 빨치산 김대장의 활약이 돋보인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영웅서사시의 범주를 지닌다고 하겠다. 실제로 여기에 [절벽 사이 칼바람이 쌓인 눈 위에/ 뚜렷이 그려진 이 발자국/ 어디론지 북으로 북으로 가버린/가없이 외로운 이 발자국/어느 뉘의 자취인가?/어느 뉜지 북으로 웨 갔느뇨?/지난 밤 흰 두루마기 사람들/설피 신고 이곳 꿰여 북으로 갔으니/사람은 몇 백이나 되어도/발자욱은 하나만 남겨두고]처럼 유이민(流移民)들의 쫓기어 간 모습이 한숨과 눈물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민중서사시적인 측면을 강하게 지닌다. 여기에 철호라고 하는 젊은 정치공작원이 등장하여 밀명이 띄고 압록강을 건너 조국땅으로 잠입하는 데서 발단으로서의 제1장이 마무리된다. 전개 부분은 다시 2ㆍ3장과 4ㆍ5장으로 구분되는데, 그 주된 내용은 일제강점기 이땅 민중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항일빨치산들의 고난에 찬 삶의 역정을 묘파하는데 초점이 놓여진다. 김때장과 더불어 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철호와 꽃분이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사건이 구체적인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2ㆍ3장에서는 새로운 배경으로 조선땅 화전마을인 솔개골이 제시된다. 그러면서 꽃분이가 등장한다. [에그! 벌써 저무는데-] 칡뿌리 캐는 꽃분이 말소리 저물어도 캐야만 될 그 칡뿌리 저녁가마에 맨 물이 소품치려는, 쌀독에 거미줄 친지도 벌써 그 며칠 손꼽아 헤여서는 무엇하리! [에그! 벌써 저무는데!] 그래도 캐야만될 꽃분이 신세 (중략) 솔밭도 어둑어둑 맘 속도 무시무시 이때 그림자인 듯 언듯- 솔밭에서 사나이 나온다 [에구? 웬 사람인가?] 어느덧 꺼멓게 길막는다 귀신이냐? 사람이냐? (중략) [나는 박철호라 부르우, 얼마나 괴로우시우] 길막던 사나이의 첫말, 솔밭은 어둑해저도 꽃분의 뺨엔 붉은 노을- [아이고! 철호동무!] 가늘게 속삭일 뿐 처녀는 면목도 모르며 한 해나 그의 지도 받았다- 삐라도 찍어보내고 피복도 홍산으로 보내고. 중년은 되리라 한 그- 그는 새파란 청년, 강직하고도 인자스런 모습 호협한 정열에 끊는 눈- (스물넷이나 되었을까?) 머리 숙이는 처녀의 생각 (하략) 그렇게 보면 여기에는 철호와 꽃분이 사이에 일종의 연정관계가 복선으로서 암시됨을 알 수 있다. 간접적으로는 서로 전부터 선이 닿아 있었으면서도 직접적으로는 처음 만나게 된 이들 사이에는 애틋한 연정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러한 연정의 모습은 그것이 3장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 선포문]을 비밀리에 찍는 행위를 통해서 강한 동지애로 결집된다. 따라서 이들 두 남녀의 관계를 설정한 것은 이 작품 속에 일종의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불어넣기 위한 방법적 장치임을 알 수 있다. 3장에선 김윤칠, 즉 꽃분이 아버지로 초점이 옮겨진다. 그는 백두산 포수의 아들로서 의병에도 참여했던 항일투사이지만, [피투성의 을 다시 맞는 해 봄/안해도 뭇매에 맞아 죽고]와 같이 왜적에게 아내를 읽고는 품팔이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이 솔개골에 의식화된 화전민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이 3장에는 또한 「백두산 속엔 크나큰 굴/해도 달도 있고 별도 반짝이는/넓으나 넓은 굴 있는데/그 속에선 용사 수만이 장검을 간다고//령만 내리면 석문이 쫘악 열리고/용사들이 벼락같이 쓸어 나오고/이 땅에 해방전이 일어난다고」하는 전설이 삽입가요 형식으로 제시되어 있다. 또한 [백두산! 백두산!/너 세기의 증견자야!/칭키스한의 들띄우는 말발굽도/도요도미히데요시의 피묻은 칼도/너의 가슴에 잊히지 않은 상처를 남겼고/오백년 왕업도/사신의 두 어깨에 치욕의 짐이 되어//인민만은 자유의 홰불을 쳐들고/홍경래의 창기를 뒤따랐고/갑오의 싸움을 펼쳤다//피를 들고 이 일어났다]와 같이 이 땅 역사에 대한 비판과 증언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 꽃분이 일가의 비참한 생활상과 투쟁정신을 접합시킴으로써 이 시에 민족서사시, 민중서사시의 맥박을 강하게 불어넣게 되는 효과를 유발한다. [꿈 속에라도 잠꼬대 피하려고/혀 물어끊어 벙어리 되고/고문대에 매인 채 소리없이 죽어간/그 이름모를 청년]이나 [빨찌산 남편을 천정에 감추고/놈들의 창에 찔려 죽으면서도/남편이 알면 뛰어내릴까/한마디 신음도 안낸 그 마을 아낙네―/남몰래 꽃분이 맹세했다!]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민중들의 피어린 항일투쟁정신을 크게 강조하면서 꽃분이에게 그러한 투쟁정신을 접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꽃분이가 항일무장투쟁대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비밀리에 철호와 을 등사하다가 순사에게 발각될 찰나에, 처녀로서 젖가슴을 드러낼 정도로 용기와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대담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3장에서는 피압박 민족으로서의 수난과 함께 민중적인 고난의 과정 및 역사에의 동참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하겠다. 전개부분 4?5장에서는 항일유격대의 생활상과 정치군사활동이 주로 묘파되는 가운데 김대장의 용맹과 인자함으로서 그 인간성이 미화돼서 나타난다. 특히 이 부분에서 유격대의 근간이 바로 민중들이라는 점이 크게 강조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① 우둥불이 밤을 태운다― 무쇠같이 장백을 내려 누르는 캄캄한 밀림의 밤을! 끝없이 몰아 죄여드는 모진 어둠 머리 속에도 흑막이 드리운 듯― 허나 불길은 솟고 불꽃은 튀고 (중략) 빨찌산 우둥불 그것은 집이였고 밥이였다 그것은 달콤한 잠자리였고 그것은 레일의 투쟁― 하물며 [토벌]의 철망을 헤치고 사지를 육박으로 지났으니 그것은 승리의 상징 야반의 노도속 반 짝이는 구원의 등대 (중략) 깊은 잠 안식의 잠 그런데 한 분만이 잠 못들고 우둥불 옆에 비스듬히 앉아 밤 가는 줄 모르네― 이런 밤엔 그이는 책을 보았다― (중략) 불안의 구름장이 가슴가에 낮게 떠돌고 어느 구석에선가 절망이 머리 들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그러면 새 힘을 얻고 목적을 보았다― ② 그렇게 기다리던 식량부대 아침에야 돌아왔다 얻은 것이란 소 두 마리 뿐, (중략) 동전을 단 굴레, 수놓은 굴레......아낙네 솜씨, 독특한 코뚜레―민족의 이색― 어김없이 일본소는 아니다 [동무들! 우리 빨찌산들이 어느때부터 마적이 되었는가? 어느때부터 평민의 재산을 로략했는가? 이 소는 조선 농민의 소다 저 소는 중국 농민의 소다 이렇게 김대장이 말했다. 이것은 소를 돌려 보내라는 명령 (중략) [뉘가 소를 죽였는가?] 대장이 낮게 묻는다. (중략) [제가 죽였습니다......] 한걸음 나서며 말하는 청년 빨찌산 최석준, (중략) [그렇다면......] 찰칵―총재우는 소리 자, 나는 죽어 마땅하니 석준이 총박죽을 내민다, [기척!]―대장의 호령소리 (중략) 민중과의 분리― 이것은 우리의 멸망, 이것은 일제들이 꾀한다 우리 이것을 모르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인용한 구절들에는 항일 빨치산들의 생활상이 잘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목숨을 건 참담한 고행과 투쟁의 연속이며, 굶주림으로 이어지는 참담한 삶의 과정이다. 그러면서도 [우동불]처럼 남성적인 건강미, 북국적이고 야성적인 아름다움이 빛나는 것이기도 하다. 시 ①부분에서는 풍찬노숙하는 항일 유격대의 고달픈 삶의 모습과 함께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는 혁명투사로서 김대장의 모습이 미화되어 나타난다. 일컬어 앞에서 지적한 바 대로 [민중적 영웅주의]의 한 구현이라고 하겠다. 시 ②부분에는 궁핍과 기아 속에서도 규율을 생명처럼 알아야 한다는 유격대의 생활규범이 제시되어 있다. 식량부대가 조달해 온 소 두 마리가 조선농민의 소로 밝혀지면서 추장같은 김대장의 질타가 가해진다. 여기에 굶주림에 못이겨 청년빨치산 석준이 소를 도살하자 그를 총살하라고 하면서도, 끝내는 [소값을 물어주라]고 함으로써 그를 용서하는 김대장의 엄격하면서도 포용할 줄 아는 인간미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 항일 빨치산이 민중들을 기반으로 성립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중과의 혈연적 유대성을 강조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한편 5장에서는 압록강을 건너려다가 일본수비대의 총에 맞아 죽는 소년 빨치산, 즉 철호의 연락원인 영남을 콩해서 무명전사들의 고난에 찬 삶과 죽음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끝까지 싸우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꺾어진 나래를 퍼덕이며/스르르 모으로 쓰러진다/입술로 두 줄기 피흘러서/풀잎에 맺힌 밤이슬에 섞인다.../눈동자에 구름장이 얼른.../바람이 우수수―/소나무를 흔든다]처럼 어둠 속에 사라져 간 이름 없는 소년전사 영남의 죽음을 통해서 이 땅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펼치다가 사라져간 무명 전사들의 비장한 삶과 투쟁과정을 묘파한 것이다. 따라서 5장은 항일무장투쟁이 이러한 민중성에 기초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화 함으로써 제 6장의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영남의 죽음에 촉발되어 철호도 H시로 떠나고, 이어서 꽃분이도 그를 따라 무장투쟁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절정인 제 6장은 항일빨치산들의 국내침공작전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그 날짜나 장소가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이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나 미화 그 자체에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항일무장투쟁이라고 하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을 예술화함으로써 시대적 전형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 6장의 내용은 이들 항일유격대가 압록강을 넘어 전개한 H시 야습이 성공하는 모습에 초점이 놓여진다. 철호가 오랫동안 잠행하여 준비하던 일이 바로 이 H시 야습공작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① 이 나라 북변의 장강― 칠백리 압록강 푸른 물에 저녁해 비꼈는데 황혼을 담아 싣고 떼목이 내린다 떼목이 내린다 뉘의 눈물겨운 이야기 떼목우의 초막에 깃들었느냐? (중략) 강건너 바위 밑에서 휘-익 휘파람소리 나더니 떼목에서도 모닥불이 번뜩번뜩 (중략) 삽시간에 이어진 떼목다리 (중략) 군인들이 달아 나온다 달아 나와선 떼목으로 압록강을 건너온다- 빨찌산부대 압록강을 건너온다 (중략) 빨찌산들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일제가 짓밟은 이땅에 살아서 살 곳 없고 죽어서 누울 곳 없고 모두 다 잃고 빼앗겼으니 ② 바로 곁에서 신호의 총성 잠든 시가를 깨뜨린다. 그담 련이어 나는 총소리 총소리 우편국에서도 총소리 은행에서도 영림창에서도 어지러운 점선을 그으는 따-따-따-따-기관총소리 쿵-쾅-폭탄 치는 소리 적은 반항도 못하고 죽고 도망치고 (중략) 눌리우고 짓밟힌 이 거리에 반항의 함성 뒤울리거니 암담한 이 거리에 투쟁의 불길 세차거니 흰 옷 입은 무리 쓸어 나온다- (중략) [동포들이여! 저 불길을 보느냐? 조선은 죽지 않았다! 조선의 정신은 살았다! 조선의 심장도 살았다! 불을 지르라-] 이처럼 민족의 피눈물로 얼룩진 압록강을 넘어서 국내로 진공하여 일제 주구들을 쳐부수고 승리를 전취하는 항일 유격대의 활약상을 묘파한 것이다. 결국 유격대의 H시 야습전투는 [조선의 정신이 살아있다]라고 하는 항일 무장투쟁의 현장성을 제시함으로써 민족혼이 불멸하다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이 부분에서 항일 무장투쟁으로서 구체적 현장성과 민족운동의 실천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점은 중요한 일로 판단된다. 항일 독립투쟁이 민중적 기반 위에서 전개돼야 한다는 인식이 구체적 현장 묘사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7장 대단원에서는 항일 유격대가 H시 습에 성공하고 귀환하다가 퇴로에 역습을 당하고, 이때 영웅적인 전투를 전개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철호와 석준의 모습을 통해서 항일 무장투쟁의 고난으로 가득찬 역정과 그 비장미를 심화하고 있다. 허다가 철호 그만 우뚝 선다― 불의의 유탄이 전사의 심장을 꿰었다… [아하!] 우뚝 섰다가 앞으로 거꾸러져… 창―처절썩― 물결이 두 전사를 감춘다 압록강 찬 물결이… (중략) 강변에서 여자의 부르는 소리 [철-호-철-호-] 분명히 김대장의 목소리 허나…대답은 없었다 (중략) 사격― 례총소리 산하를 떨친다 [조선아! 조선아!] 너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사격 사격―] 례총소리 산하를 떨친다! 삼천리를 떨친다! 따라서 이 대단원은 끝내 사랑도 맺어보지 못하고 조국 광복도 보지 못한 채 고난과 형극으로 이어진 항일무장투쟁 끝에 장렬하게 죽어간 철호의 모습을 통해서 민족의 가슴에 새롭게 투쟁의 불길을 정화하는 것으로 대미를 이루고 있다. 아울러 맺음시에서는 백두산과 시인의 말을 통해서 이 땅에 새 조국 건설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맺음한다. 백두는 웨친다― [너, 세계야 들으라! 이 땅에 내 나라를 세우리라! 내 천만년 깎아 세운 절벽의 의지로 내 세세로 모은 힘 가다듬어 온갖 불의를 족쳐부시고 내 나라를, 민주의 나라를 세우리라! 내 뿌리와 같이 깊으게 내 바위와 같이 튼튼케 내 절정과 같이 높으게 내 천지와 같이 빛나게 세우리라― 자유의 나라! 독립의 나라! 인민의 나라! 백두산은 이렇게 웨친다! 백성은 이렇게 웨친다! 이렇게 본다면 이 작품의 함의가 쉽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항일 무장투쟁의 전형화를 통해서 이 땅에서 민족의 해방이 얼마나 어렵게 전취된 것인가를 강조하는 동시에 민주와 자유에 기초한 새 조국 건설을 강력히 외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백두산은 결론적으로 민족의 표상이며, 민중의 상징이라는 점이 제시된다. 따라서 이 시는 보천보전투라는 사실에만 연관지어서 살펴본다면 작품의 의미가 크게 절하되기 쉽다. 그러한 역사적 사건은 이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잘 알려진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시인은 처음부터 어떤 구체적인 사건의 예술적 형상화를 추구한 것이라기보다도 항일 무장투쟁의 수많은 에피소드들 가운데 무장투쟁의 성격을 일반화할 수 있는 소재들을 작가의 구상을 쫓아 임의로 구사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투쟁을 미화하거나 찬양하려는 것이 주된 목표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작품의 기본 전개는 [철호-꽃분]으로 표상되는 민중성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민중서사시적 성격을 더 지닌다고 하겠다. 특히 민족의 고난에 찬 운명과 역사적 진로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민족서사시의 성격을 강하게 띄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4.[백두산]의 주제 한편 서사시 [백두산]은 주제면에서 몇 가지 특성을 지닌다. 앞에서 우리는 [백두산]이 일제 강점기의 많은 저항적인 작품들과 같이 민족해방 의식과 민중해방의식이라는 두 가치축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해서 전개되고 있음을 살펴본 바 있다. 이러한 두 가치축은 사상적인 면에서 민족주체사상과 민중적 세계관이라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백두산]의 큰 사상적 뼈대는 민족적 주체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반외세 민족해방 의식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로 항일 투쟁을 통한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데 그 핵심이 놓여진다. ① 아아 칡뿌리! 칡뿌리! 이 나라의 산기슭에서 봄이면 봄마다 어김도 없이 꽃은 피고 나비는 넘나들어도 터질 듯이 팅팅 부은 두 다리 끄을며 바구니 든 아낙네들이 왜 헤맸느뇨? 백성이 한평생 칡넝쿨에 얽히였거니 이 나라에 칡뿌리 맣은 죄이드뇨? 음식내 치워 사람은 쓰러져도 크나큰 창고, 널따란 역장과 항구엔 산더미 같이 쌀이 쌓여 현해탄을 바라고 있었으니 실어간 놈 뉘며 먹은 놈 그 뉘냐? ② 갑오의 싸움을 펼쳤다 허다가 반만년 다듬기운 이 땅이 일제의 독아에 을크러질 제 백두야, 너도 가슴막히여 숙연히 머리 숙이였지! 그러나 인민은 봉화르르 일으켜 칼을 들고 의병이 일어났고 피를 들고 [3?1]이 일어났다. ③ 정의의 검이 침략의 목우에 내려지리라! 불의를 소탕하리라! 우리 애국의 기개를 살려 해방투쟁의 불길을 높이리라! (중략) [조선아! 조선아! 너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너의 민주 행복을 위하여 사격 사격―] 예를 들어본 이 세 부분에는 각기 민족해방을 통한 민족주체성의 확립을 강조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시 ①에는 일제 강점하 이 땅의 궁핍상이 제시되는 가운데 수탈자로서 일제에 대한 울분과 적개심이 분출되고 있다. [크나큰 창고, 널따란 역장과 항구엔/산더미 같이 쌀이 쌓여/현해탄을 바라고 있었으니]와 같이 일제의 식량 수탈이 무자비하게 전개되기 시작함으로써 이 땅의 궁핍화를 더욱 부채질한 역사적 사실이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1차 대전 후 농업 생산력이 크게 떨어지고 대규모 쌀폭동이 일어남으로써 식민지 조선에서 식량 증산을 강행하여 식량의 안정된 공급을 이루어야 할 절박한 사정에 빠졌던 실정이다. 그럐서 조선 땅은 일본의 식량생산기지로 전락하였으며 조선민중들은 더욱 궁핍하여 인용시에서 보듯이 칡뿌리 등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②부분에는 일제의 이 땅 강점과정과 그에 대한 전민족적인 저항으로 3?1운동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③부분에는 일제의 침탈이라는 근원적인 모순과 불의를 쳐부수고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쟁취하려는 혁명적 열정이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 [백두산]은 민족해방투쟁을 통해서 이 땅에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 주체사상이 그 뼈대를 이루고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이 시집의 결구가 [너, 세계여 들으라!/이 땅에 내 나라를 세우리라/내 나라를/민주의 나라를 세우리라!]라는 절규로서 마무리 된다는 사실 자체가 민족주체사상을 웅변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백두산]에는 민족의 주체로서 민중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민중적 세계관이 강력히 표출되어 있다. ① 일제가 짓밟은 이 땅에 살아서 살 곳 없고 죽어서 죽을 곳 없고 모두가 잃고 빼앗겼으니 물어보자 동포여! 가슴 꺼지는 한숨으로 이 강 건너 이방의 거친 땅에 거지의 서러운 첫걸음 옮기던 그 날― 그 날부터 몇몇해 지났느뇨? (중략) 빈민굴 어느 구석에선가 떼목에 치여 죽었다는 사나이를 거적에 싸서 방구석에 놓고 온 저녁 목놓아 울던 녀인의 사설도 끊치고 오뉴월 북어인양 벌거숭이 애들 뼈만 남은 젊은이들 꼬부라진 늙은이들― ② 장백의 높고 낮은 고개고개에 이 무덤이 첫 무덤이 아닌 줄이야 우리 어찌 모르랴! 침략의 피 서린 밤이 이 나라에 칭칭 걸치었으니 새 날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 헤여보라 몇 만이나 되는고? 어느 고개 어느 골짜기에 어느 나무 어느 돌 밑에 이름도 없이 그들이 묻히였노? ③ [가마 속의 물은 끓다가도 없어진다― 원천이 없거니― 허나 내물은 대하를 이룬다. 동무들! 우리는 대하가 되련다 바다가 되련다 우리의 근간도 민중 속에, 우리의 힘도 민중 속에 있다! 민중과 혈연을 한 가지 한 빨치산임을 우리 잊었는가? 우리 이것을 잊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민중과의 분리― 이것은 우리의 멸망 이거을 일제들이 꾀한다 인용한 이 세 부분에는 [백두산]의 민중적 세계관이 잘 집약되어 있다. 먼저 ①에는 당대 민중들의 궁핍한 참상이 날카롭게 제시돼 있다.[살아서 살 곳 없고/죽어서 죽을 곳 없고/ 모두가 잃고 빼앗겼으니]라거나 [가슴 꺼지는 한숨으로/이 강 건너 이방의 거친 땅에/거지의 서러운 첫걸음 옮기던 그 날]과 같이 일제의 무자비한 식민지 수탈정책으로 인해 생존권이 박탈된 채 신음하거나, 그나마도 이 땅에서 살지 못하고 시베리아 등으로 유이민길 떠난 민중들의 궁핍상이 제시된 것이다. 이러한 민중생존권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작품의 도처에서 예리하게 표출된 점에서 민중적 세계관이 엿보인다고 하겠다. 시 ②부분에서는 항일민족투쟁의 주체에 대한 의식이 드러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새 날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헤여보라 몇 만이나 되는고?]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이 땅의 이름없는 민중들인 것이다. [눌리우고 짓밟힌 이 거리에/반항의 함성 뒤울리거니/암담한 이 거리에 투쟁의 불길 세차거니/흰 옷 입은 무리 쓸어 나온다―/머리벗은 로인도 발벗은 여인도/벌거숭이 애들도](6장 6절)와 같이 남녀노소할 것 없이 이 땅의 온 민중들은 하나가 되어 항일 투쟁의 대열에 열렬히 참가한 것이다. 특히 ③부분은 이러한 민중적 세계관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항일투쟁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모든 역사 전개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점을 만해준다.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의 역사라고 하는 민중적인 세계관 또는 민중사관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실상 여기에서 민중적 세계관은 민족주체사상과 유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민중과의 분리―/이것은 우리의 멸망/이것을 일제들이 꾀한다]라는 구절 속에는 바로 민족해방의 길이 민중해방의 길로 연결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민족주체사상은 바로 민중적 세계관에 기초해야만 한다는 역사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실상 이 작품에 빨치산 투쟁의 고난상이 강조되고 김대장의 영웅주의가 부각되는 것도 이러한 민족주체사상과 민중적 세계관의 매개고리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적, 의도적 장치라고 풀이할 수 잇으리라. 따라서 서사시 [백두산]은 민족주체사상과 민중적 세계관이 만주의 항일 빨치산 유격 활동이라는 서사적 사건전개를 통해서 형상화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의 문학이 프로문학적인 빈궁문학과 항일혁명문학에 중심축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과 밀접히 조응된다고 하겠다. [백두산〓민족〓민중]이라는 등가 인식을 통해서 민족주체성을 확인하고 민중적 세계관을 확립하려는 중심 의도가 작품 자체의 예술성과 결합되어 민족문학의 한 성과를 거둔 데서 서사시 [백두산]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5. [백두산]이 지닌 결함 이렇게 본다면 서사시 [백두산]은 우리 문학사에서 흔치 않은 항일 무장투쟁사를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특히 남쪽의 문학사에서 이러한 항일 무장투쟁 과정을 시로써 형상화한 작품이 거의 다루어져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주목을 환기하는 것이 분명하다. 항일무장투쟁이 우리 민족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할진대 그것을 형상화한 작품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백두산]은 북한정권이 수립되기 이전의 전환기에 씌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제 강점기와 오늘날 분단 시대를 이어주는 한 매개고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백두산]이 오늘날 북한문학의 한 원형이 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백두산]은 오늘날 북한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사회주의 이념의 경직성이나 김일성 찬양 일변도의 우매성과는 달리 어느 정도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항일민족의식과 민중의식을 두 가치축으로 하면서 전형성?예술성을 견지하려 노력하였으며, 또 그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백두산]은 작품 자체를 통해서 남?북한이 하나의 민족 공동체이며 운명 공동체라는 점을 당위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적 형식 또는 감성적 체험의 차원에서 확인 시켜 준 노작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부분적인 면에서 서정성과 낭만성이 돋보이고 문체와 표현이 정제되어 예술성이 뛰어난 일면을 지니고 있다. 또한 부분부분 설화적 요소를 도입하거나 삽입 가요를 활용하는 등 민족문학적 양식화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꽃분이 일가의 삶이나 압록강?두만강?백두산 등 민중적 삶의 구체적 현장성을 확보한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작품 전체의 구성이 비교적 짜임새를 지니고 있는 것과 사건 전개가 극적 긴박감을 지님으로써 시적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을 성공시키는 데 중요한 힘으로서 작용한다. 사상성과 예술성에 있어 어느 정도 성공한 한 예라는 점에서 해방 공간에서의 한 시적 성과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백두산]은 주제의 형상화나 인물 형성에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발견된다. 아마도 이것은 주제를 지나치게 앞세운 데서 빚어진 무리의 결과라고 본다. 항일무장투쟁의 당위성이나 민중의식의 제고를 강조하려니가 자연히 목적의식이 작중인물을 압도하여 작품이 지녀야 할 내면성의 깊이를 결여하게 된 형국이다. 특히 이러한 결점은 인물의 성격에서 쉽게 드러난다. 김대장의 경우에는 옛날 이야기식의 신의성과 용맹성이 강조되어 오히려 희극적인 요소를 내포하게 된다. 축지법을 쓴다는 식의 허황성을 은근히 내비치면서 민중과의 연대감을 강조하기 위해 잡아온 소값을 물어주라든지, 밤새워 혼자 책을 읽는다든지 하는 등 인간미와 비범성을 함께 뒤섞는데서 오는 불일치가 엿보이는 것이다. 영웅성 과장에 따른 허황성과 인간성 강조에 다른 진실미 사이에 간극과 모순이 발생하여 아이러니의 희극성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일종의 의도의 오류를 빚고 있다고 하겠다. 민중적 삶의 고동스런 모습 속에서 성장하고 투쟁 속에서 성숙해가는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라 천부적인 초인으로서 의 일단이 의도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오히려 이 작품이 주는 감동이나 생동력은 철호나 꽃분이의 민중적인 생활 감각이나 투쟁성에서 비롯되는 요인이 크다. 이들의 고난에 찬 삶과 투쟁과정이 민중적인 전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단점이 드러난다. 이들의 용맹성이나 애국주의, 동지애, 희생정신 등이 돋보이는 것은 사실이만 이들에게서 인간미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 암시된 연정이 좀 더 성숙된 면모로서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형성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됐더라면 작품의 비장미가 더욱 고조됐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오직 투쟁만을 위해 일직선으로 달려감으로써, 이념에 의해 조작되는 으로 처리되고 마는 데서 아쉬움이 놓여진다는 말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투사의 모습으로서는 성공적인 면이 있다고 하겠지만, 인간적 따뜻함과 진솔함에서 우러나는 살아 있는 인간형 창조라는 점에서는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인간의 완성적인 모습도 실상은 실존적 인간의 구체성과 진실미, 그리고 생동감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 오늘날 북한문학이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의거한 당성?인민성?노동 계급성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러한 [백두산]의 주제와 인물 설정은 부족한 것이라는 점이 자명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두산]은 민족의 수난과정과 그에 대한 적극적인 투쟁과정을 비교적 큰 스케일로 다룸으로써 해방공간의 전환기에 충격을 가헸다는 점에서 의미가 놓여진다. 표면적으로 영웅담을 취급하고 있는 듯하지만, 내면적으로 민족적 수난과 고통의 극복 및 새 조국 건설을 향해 민중의 역동화가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두산]은 다분히 오늘날 북한 문학의 한 원형성을 지니고 있으며, 주제의 작위성이나 인물의 상투성을 지니고 있다는 문제점 또는 한계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백두산]은 분단의 장벽이 공고화되고 민족의 이질화가 심화돼 가는 이 땅의 비극 속에서 남북문학의 진정한 만남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한 봉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백두산]은 우리 문학사에서 현재 진행 중이며 미래완료형의 테마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의 그 날, 온 민족이 함께 해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그날까지 이 땅에서 계속적으로 탐구되고 다양하게 씌어질 상징적인 한 테마인 것이다. 고은(高銀)의 진행 중인 서사시 [백두산]도 그 한 예라고 하겠다. 
835    정끝별 / 詩心 댓글:  조회:4568  추천:0  2015-04-03
  시심(詩心)이란 무엇인가. 이런 딱딱한 질문으로 과연 시심을 꽃 피울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심을 꽃 피우기 위해선 시심이 무엇인가를 깊고 깊게 생각하는 노력이 반드시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질문은 자연스럽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시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시인 정끝별은 시심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나누어 주었다. 시의 뿌리가 어디에 있고, 꽃이나 이파리를 어떻게 피워낼 것인가까지 가늠해보겠다고 말하며 시적 표현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시적인 표현, 시적인 구절, 우리는 어디서부터를 시적인 표현이라고 하는가? 생각해보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소설가와 시인이 있었다. 소설가가 시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문둥이도 꽃이 피면 운다.” 시인이 “오! 자네가 시인이다.” 라고 감탄하며,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느냐고 극찬했다. 소설가의 답. “그게 아니고, ‘문둥이도 꼬집히면 운다.’” 재미있는 이야기 둘. 활자공이 있던 시절, 인쇄소에서는 활자공이 글을 심어 인쇄했다. 그가 ‘담벼락을 구기다’라는 구절을 썼다. 시인은 오자가 났다며 항의했다. 원래 시인의 시 구절은 ‘담배곽을 구기다’였던 것. 시인과 활자공, 누가 시인일까? 재미있는 이야기 셋.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의사가 말했다. “따뜻한 물을 많이 드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아픈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물을 구워줘.”   평범한 문장과 시적인 긴장을 유발하는 문장의 차이. 시는 이곳에서 출발한다. 차이는 아주 미세하지만 시적 긴장은 더 없이 증폭된다. 비문이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발생하는 어떤 ‘낯설게 하기’가 시를 만든다. 시는 일상적이지 않은, 문법적이지 않은, 산문적이지 않은 어떤 지점에서 우리를 반짝 눈 뜨게 하는, 그곳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정끝별 시인. 정끝별 시인은 이와 같은 작은 질문을 던진 후 자신의 시 을 낭송했다.   서두르다를 서투르다로 읽었다 잘못 읽는 글자들이 점점 많아진다 화두를 화투로, 가늠을 가름으로, 돌입을 몰입으로, 비박을 피박으로 읽어도 문맥이 통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네살배기 딸도 그랬다 번번이 두부와 부두의 사이에서, 시치미와 시금치 사이에서 망설이다 엄마 부두 부쳐준다더니 왜 시금치를 떼는 거야 그래도 통했다 - 일부   “단어 하나만 바꾸어도, 문장 하나만 다른 축으로,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 시켜도, 세계관이 다른 것들을 교차시키기만 해도 일상적, 상투적, 관념적 의식으로부터 한 바퀴 휙 달아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순간이 시적인 긴장, 혹은 시적인 미학을 일으킬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아요. 시는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한 것과 ‘저기 너머’라고 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것들 두 개가 상통하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어떻게 교집합을 만드는가에 따라서 시적인 상상력과 감각들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잘 알려진 지금, 여기. 그곳에서는 시가 출발하지 않을 것이다. 산문적이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가시적인 지금 이곳에만 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볼 만하다. 지금 여기와 저기 너머를 함께 상상하는 것. 거기서 시가 더욱 힘차게 발화할지 모른다는 정끝별 시인의 말.    ‘저기 너머’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시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의 뿌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시인은 이누이트 전설을 들어 이야기의 문을 열었다. “이누이트에는 외로운 사냥꾼과 물개 여인의 이야기가 있어요. 얼음과 눈만 있는 세계가 이누이트일 텐데요. 그곳에 외로운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수평선, 지평선도 없고 하얗기만 한 곳에서의 외로움과 실종감은 우리와 굉장히 다를 것도 같아요. 우리는 아무리 외로워도 아기자기 하잖아요. 사계절이 있고, 알록달록 하고요. 그 막막한 백색의 어떤 곳에서 사는 외로운 사냥꾼은 너무 외로운 나머지 얼굴에 눈물 계곡이 패일 정도로 외로운 사나이에요.”     시는 그런 ‘외로운’ 지점에 있는 것 같다고 시인은 말했다. 오롯이 외로움에 집중하고 그것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의 심층적 깊이가 얼마나 높고 깊어질까, 그 실존의 깊이와 높이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얼마나 그윽할까, 그런 생각을 시인은 한다. 현대인들은 외로워할 틈이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는 스마트폰, 그 안에 사람들이 들썩이고 있다. 사람뿐인가. 이야기들, 소식들, 다 소화시킬 틈도 없이 발화되는 어떤 것들이 그득하다. 외로움에 집중하는 곳에 시가 있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그것은 곧 외로울 수 없는 세상에 시의 토양이 얼마나 척박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중요한 지적이기도 하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외로운 사냥꾼은 어두운 밤, 여자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는 그 장면을 넋을 놓고 본다. 목욕을 마친 여인들이 물개 가죽을 하나씩 걸쳐 입고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본 외로운 남자가 물개 가죽을 하나 훔친다. 가죽의 주인, 물개 여인 한 명이 자리에 남았다. 외로운 남자는 물개 여인에게 자신과 7년만 살아달라고 말한다. 여인은 하는 수 없다. 둘은 7년을 약속하고 함께 살다 아이를 낳게 되었다. 물개 여인과 외로운 사냥꾼 사이에 태어난 아들의 이름은 ‘오룩(ooruk)’. 이 이름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시에서는 ‘음성상징’이라고 해요. 단어나 글자에는 발음했을 때 느낌이 있다는 거예요. ‘끝별’은 굉장히 딱딱하고 날카로운, 외국인은 절대 발음하지 못하는 이름이에요.(웃음) 글자가 가지는 이미지, 느낌이 있는데 ‘오룩’이라고 하는 느낌을 제가 굉장히 좋아해요. 두 번째 평론집에 『오룩의 노래』라고 끌어다 쓰기도 했었죠.”     이름을 붙여주는 것, 명명하는 것이 곧 시가 아닐까. 김춘수가 노래했듯 말이다.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되고, 시가 된다. 시는 부름, 명명이다. “‘오룩’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 그 이름이 가지는 느낌들이 시의 뿌리, 자궁 같은 단어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그것이 시라는 설명이었다. 언어, 부름, 명명에서 시는 시작한다. 애틋하고 의미 있는 존재를 늘 명명하고 부르며 소환한다. 우리가 하는 그 명명이 시다.   그렇게 물개 여인과 외로운 나무꾼은 오룩을 낳고 약속한 7년을 살았다. 8년째가 되자 물개 여인은 피부가 벗겨지고 갈라지며 고통스러워했다. 지상에 허락된 시간이 끝나자 죽어가는 물개 여인. 그러나 외로운 나무꾼은 가죽을 내놓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오룩, 오룩’하는 소리가 나요. 어린 오룩이 자신을 부르는 쪽으로 달려가죠. 가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집니다. 뭘까요? 물개 가죽이었어요. 오룩은 그 가죽이 엄마의 것인 걸 알아채요. 냄새 때문이었어요. 그 냄새를 맡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영혼이 갑작스런 여름 바람처럼 그를 뚫고 지나갔다.’” 살면서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어떤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가슴이 빠개지는 어떤 경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그런 순간이 또한 시적인 순간이고 시인은 말했다. “그 순간을 저는 ‘와락’이라는 시어로 표현해봤어요. 『와락』이라는 시집을 냈을 때 ‘hug’만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와락’은 ‘hug’만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밀려왔다 빠져 나가는 모든 형태를 설명하는 부사로 설명되는 거거든요. 오룩의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엄마의 냄새가 나는 그 순간이 ‘와락’의 순간이고, 시라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와락’의 순간들에서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와락’의 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행복한 사람, 부자인 사람이라고 정끝별 시인은 말했다. 그것이 슬픔이든, 고통이든 그런 순간이 많은 것이 부자일 터다. 연애를 많이 한 사람이 더 부자인 것처럼 말이다. 기억할 것이 많고, 자신을 통과한 것이 더 많은 사람일수록 부자라고 생각한다는 정끝별 시인은 시 쓰는 사람들이 겁이 없는 이유도 이런 데서 출발하는 것 같다고 이어 설명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특히 20대에는 죽음조차도 두렵지가 않았어요. 감당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뭔가 뚫고 지나가는 느낌을 시로 쓸 거야, 그 느낌을 기억해 둘 거야, 그걸 언어화할 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친구 중에 파란만장하고 이런저런 아픔이 많은 친구가 있어요. 제가 그 친구를 위로할 때 하는 말이, ‘하느님이 시인으로서의 너를 사랑하셔서 너의 언어를 더 높고 깊게 만들려고 너에게 이런 시련을 주나보다.’였어요.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언어가 훨씬 더 깊고, 낯선 경지, 지형도나 환경을 우리에게 선사해주는 것 같아요.”   다시 이야기다. 어린 오룩은 그 가죽을 엄마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죽을 주면 엄마가 떠날 것을 예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가죽을 준다. 물개 여인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자식이라는 존재 역시 자신의 살이다. 가죽을 찾았으나 살과 같은 자식을 두고 가는 어미의 심정이란 무척 어려울 것이 당연할 터. 그때 물개 여인이 이렇게 말한다. “나(물개 여인)나 오룩이나 시간 그 자체보다도 더 오래된 그 무엇인가가 자기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무엇인가’는 무엇일까. 시는 그곳을 자꾸 엿본다. 시인은 그곳을 엿보려고 하는 자다. 낌새를 엿듣고, 기미를 보는 자가 바로 시인이다. ‘그곳’은 달리 말하면 ‘심연’으로 말할 수 있을 텐데 나, 내 살을 뚫고 나온 자식, 시간 그 자체보다도 훨씬 오래된 어떤 곳에 시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곳을 가늠해보는 사람이 시인이리라.   물개 가죽을 입은 엄마와 오룩은 결국 헤어진다. 엄마가 떠나며 오룩에게 말한다. “네(오룩)가 노래 부를 수 있도록 바람이 네 허파 속으로 스며들 거야. 우리가 함께 했던 일상적인 도구들을 만지는 순간에 너는 노래하게 될 거야.”라고 얘기하며 오룩에게 숨을 불어 넣는다. “온통 얼음뿐인 그 막막한 곳에서 유일하게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은 물속일 것 같아요. 인간이 갈 수 없는 나라가 물속이겠죠. 엄마가 숨을 불어넣자 오룩은 엄마 덕분에 물속을 구경합니다. 물개 여인으로부터 숨을 받고 그로 인해 노래를 부르는 자가 바로 ‘오룩’이에요. 오룩은 커서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가수가 돼요. 그가 바로 최초의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시인 아닐까요? 저는 이 전설이 시인이 탄생하는 순간을 말한다고 해석했어요.”   물개 여인과 외로운 사냥꾼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정끝별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다섯 지점에서 살펴보았다. 외로운 자리(눈물 계곡이 얼굴에 패일 정도로 외로운 사냥꾼), 명명과 소환(‘오룩’이라고 하는 이름 붙이기), 가슴을 관통하는 지점(어머니의 냄새가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순간), 심연과 무의식(물개 여인이나 오룩, 시간 그 자체보다 오래된 무엇), 최초의 노래(바람이 허파에 스며들 듯 노래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로 시의 탄생을 짚어본 시인은 시적 영감(inspiration)에 대한 이야기로 자리를 이었다. 숨결, 숨쉬다라는 말의 어원과 연결되는 단어가 바로 inspiration이다. ‘in’은 ‘들어가다, 스며들다’를 뜻하고, ‘spire’는 ‘숨’을 뜻한다. 영감이란 곧 숨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영감’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물개 여인이 오룩에게 숨을 불어넣어줬던 그곳에서 연결되는 것 같아요. 모든 예술적인 것이 영감(inspiration)으로부터 오긴 하지만 시는 사실 ‘숨결’이라는 것이죠. 영감이 온다고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숨을 불어 넣어준다’는 것의 또 다른 은유들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시적 영감, 시의 근원, 시심이란 어디서부터 오는가.   “시적 영감은 어떤 경계, 저기 너머를 꿈꾸는 지점에서 외롭고, 절박하고, 뚫고 지나가는 것, 시간보다 오래된 그 무엇입니다. 이걸 통틀어 저 너머라고 한다면 시심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저 너머를 가늠하는 그런 상태, 자세, 기미, 태도들이겠죠. 또한 시심은 어떻게 발현이 되는가하면 시어는 모국어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을 ‘은는이가’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이 부분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단어예요. 우리는 감으로 다 쓰잖아요?”   시인은 자신의 시 를 낭송했다. 조사를 가지고 쓴 시, 시가 모국어의 가락과 숨결, 호흡을 가지고 쓴 시였다.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 말을 걸고 나는 사랑‘은’ 하면서 바람을 가둔다 안 보면서 보는 당신은 ‘이(가)’로 세상과 놀고 보면서 안 보는 나는 ‘은(는)’으로 세상을 잰다 당신의 혀끝은 멀리 달아나려는 원심력이고 내 혀끝은 가까이 닿으려는 구심력이다 그러니 입술이여, 두 혀를 섞어다오 비문(非文)의 사랑을 완성해다오  - 일부   시라는 것이 우리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이야기한 시였다. “최근에 절박해진 생각인데요. 파스칼이 말했듯 현대인이 외로워할 줄 모르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한다면, 저는 광포한 이 시대의 어떤 면들이 ‘안 보이는 것들을 없다고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지 않고,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척도화된 것들만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사실 중요한 것은 다 안 보이는 것들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시화되지 않는 것들 말이에요. 그것이 ‘오룩’의 노래에서 얘기했던 ‘저기 너머’의 지점들이 아닐까요. 누군가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고, 누군가는 안 보이는 이데올로기나 신념을 위해서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붇기도 하고, 안 보이는 신을 향해서 평생의 삶과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우리가 가장 불행한 게 뭘까요? 마음을 얻지 못해서 오는 불행이 가장 많을 거예요. 그것 역시 안 보이는 것들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마종진 시인은 이렇게 얘기했어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거기가‘시의 나라’라고요. 우리가 안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있을 때 힘이 세져요. 보이는 것을 믿으면 그것만 없어져도 무너지겠지요. 안 보이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자기가 부수지 않는 한 누구도 부술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안 보이는 것’으로 상징되는 것들은 무엇일까? 행복, 신념, 믿음, 사랑, 등과 같은 것들이 간절함과 연결되지 않을까. 간절한 건 안 보일수록 더 간절해지게 마련이다. 시인은 그 안 보이는 것을 가늠하고, 그곳을 엿보려고 하는 믿음이나 신념이 있는 사람들이다. 안 보이는 간절함에서부터 시적인 표현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시는 또한 관계라고 시인은 말했다. 재배치와 치환, 관계의 법칙만 알아도 시적인 표현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담벼락’과 ‘담배곽’을 치환한 것만으로 시적 표현이 터져 나온 것처럼 말이다. ‘꼬집히다’와 ‘꽃이 피다’에서 발생한 재배치로 시적 표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익숙하게 생각하는 모든 관계를 재배치할 때 시적인 상상력이 새롭게 출발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물음이 생긴다. “갑작스럽게 ‘왜?’라 고 관계를 재배치하는 것, 왜 이것과 저것이 같이 있어야 하지? 하고 묻는 거죠. 갖고 놀아보는 거예요. 거기서 아주 낯선 어떤 것들이 발생된다는 거예요. 시를 쓸 때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통속과 상투예요. 익숙한 것끼리 함께 있는 것이 통속이잖아요. 유행이고 흐름이죠. 예상하는 바대로 가는 거예요. 통속과 상투가 호소하는 지점은 익숙한 곳이에요. 그것을 시적이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쓴 시는 삼류 시가 되는 거예요. 팬시, 꽃무늬 시가 되는 거잖아요. 새로운, 낯선 것에 대한 발견이 없이는 시적인 발견도 없어져요. 익숙한, 통속적인 것을 어그러뜨리는 게 관계 재배치예요.”   관계를 끊어버리고, 다시 읽고 치환해내는 것, 그것은 조사, 단어, 문장, 행과 행, 연과 연, 사유, 패러다임, 축과 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놀라운 시적 상상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끝별 시인이 말하는 시심이란. 그는 여전히 시인이라고 하는 존재들은 밤에 잠 못자고, 뭔가가 오는 것을 자꾸 엿보고 귀 기울이는 자들, 저기 너머에 어떤 기미와 징조를 자꾸 들으려고 하는 자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여기의 절박함과 저기 너머의 깊이에 시의 깊이가 있다는 시인. “제가 ‘저에게 시란 기도이자 혁명이다’라고 얘기했던 것은 시가 저에게는 하나의 종교 같은 것이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도전할 수 없는 것을 꿈꾸는 ‘혁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시의 힘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가 쓰는 언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그 간단한 질문을 생각해 보시면, 여기 보이는 이것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얘기할 수 없지 않을까요.”            
834    정끝별 시모음 ㄷ 댓글:  조회:4819  추천:0  2015-04-03
1964년 전남 나주생.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 《문학사상》 외 6편의 시가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  명지대 국어국문과 교수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  시론집 『패러디 시학』평론집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그만 파라 뱀 나온다   속을 가진 것들은 대체로 어둡다  소란스레 쏘삭이고 속닥이는속은  죄다 소굴이다   속을 가진 것들을 보면 후비고 싶다  속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속을 끓이는지 애를 태우는지  속을 푸는지 속을 썩히는지  속이 있는지 심지어 속이 없는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다   속을 알수 없어 속을 파면  속의 때나 딱지들이 솔솔 굴러 나오기도 한다  속의 미끼들에 속아 파고 또 파면  속의 피를 보기 마련이다   남의 속을 파는 것들을 보면 대체로 사납고  제 속을 파는 것들을 보면 대체로 모질다     속 좋은 떡갈나무   속 빈 떡갈나무에는 벌레들이 산다 그 속에 벗은 몸을 숨기고 깃들인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버섯과 이끼들이 산다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딱따구리들이 산다 그 속에 부리를 갈고 곤충을 쪼아먹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박쥐들이 산다 그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잠을 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올빼미들이 산다 그 속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깐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오소리와 여우가 산다 그 속에 굴을 파고 집을 짓는다   속 빈 떡갈나무 한 그루의 속 빈 밥을 먹고 속 빈 노래를 듣고 속 빈 집에 들어 사는 모두 때문에 속 빈 채 큰 바람에도 떡 버티고 속 빈 채 큰 가뭄에도 썩 견디고 조금 처진 가지로 큰 눈들도 싹 털어내며 한세월 잘 썩어내는 세상 모든 어미들 속     단팥빵1   빵집에 단팥빵 빵 일곱 개 맛있게 생긴 단팥빵 한 사내가 빵 사러와 아줌마, 단팥빵 하나 주세요 여기 있어요 단팥빵 한 개 사갔어요   빵집에 단팥빵 빵 여섯 개 포동포동한 단팥빵 아이들이 빵사러 와 아줌마, 단팥빵 여섯 개 주세요 여기 있어요 단팥빵 여섯 개를 사갔어요   빵집에 단팥빵 빵 없네 어떤 맛이었을까 단팥빵 빵 주인이 빵 사러 와 아줌마, 단팥빵 다 주세요 다 없어요 단팥빵 빵들을 가져갔어요   다 어디갔지? 달디단 울엄마!     사과 껍질을 보며   떨어져 나오는 순간 너를 감씨 안았던 둥그렇게 부풀었던 몸은 어디로 갔을까 반짝이던 살갗의 땀방울은 어디로 갔을까 돌처럼 견고했던 식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식탁 모퉁이에서 사과껍질이 몸을 뒤틀고 있다 살을 놓아버린 곳에서 생은 안쪽으로 말리기 시작한다   붉은 사과껍질은 사과의 살을 놓치는 순간 썩어간다 두툼하게 살을 움켜진 청춘을 오래 간직하려는 과즙부터 썩어간다   껍질 한 끝을 집어 든다 더듬을수록 독한 단내를 풍기는 철렁, 누가 끊었을까 저 긴 기억의 주름   까맣게 시간이 슬고 있는데     밥이 쓰다   파나마A형 독감에 걸려 먹는 밥이 쓰다  변해가는 애인을 생각하며 먹는 밥이 쓰고  늘어나는 빚 걱정을 하며 먹는 밥이 쓰다  밥이 쓰다  달아도 시원찮을 이 나이에 벌써  밥이 쓰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쓰고 글을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을 쓰고 관을 쓰고 쓰고 싶어 별루무 짓을 다 쓰고 쓰다  쓰는 것에 지쳐 밥이 먼저 쓰다 오랜 강사 생활을 접고 뉴질랜드로 날아가버린 선배의 안부를 묻다 먹는 밥이 쓰고  결혼도 잊고 죽어라 글만 쓰다 폐암으로 죽은 젊은 문학평론가를 생각하며 먹는 밥이 쓰다  찌개그릇에 고개를 떨구며 혼자 먹는 밥이 쓰다  쓴 밥을 몸에 좋은 약이라 생각하며  꼭 꼭 씹어 삼키는 밥이 쓰다  밥이 쓰다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고,  떼꿍한 눈이 머리를 쓰다듬는 저녁  목메인 밥을 쓴다      풋여름     어린나무들 타오르고 있어요  휘휘 초록 비늘이 튀어요  풋, 나무를 간질이는 빛쯤으로 여겼더니  풋, 나무 몸을 타고 기어올라  풋, 나무 몸에 파고들어요  가슴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을까요  어느새 휘감치는 담쟁이 덩쿨은? 온몸을 뒤틀며  뿌드득 뿌드득 탄성을 지르며  풋, 나무 힘줄 세우는 소리  용트림하는 풋, 나뭇가지 초여름 저물녘 입술 자국에  겨드랑이부터 뚝 뚝  초록 진땀을 흘리고 있어요  풀물냄새를 풍기는  저 풋, 나무  담쟁이 치마폭에 폭 싸여   밀물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봄 늦바람   늦바람이 건들건들 벚나무애 기대 휘파람을 불어대자 수런대는 가지의 그늘들 귓볼을 땅에까지 늘어 뜨리고 아 간지러워 꽃잎들 출렁 먼저 튀어나오고 제 꽃잎을 지키려고 잔뜩 독이 올라 가지를 뚫고 나오는 잎눈들 아직 발이 차다 이참에 늦바람은 벚나무 가지에 눌러 앉겠다고 아에 둥지를 틀겠다고 헛둘 헛둘 알통을 덥히고   내 애인이 씹던 츄잉껌은                           단물 빠진 껌 뱉기 전 애인의 빨간 입술과 고른 齒列 사이에서 짝 짝 두어 번 씹히다 퉤 던져진 쥬시후레시 스피아민트 오오 롯데껌 애인은, 나는 눈부신 여자가 그리워 은박에 싸인 탄력있는 속살 삼킬 수 있지만 못 먹는 그것은 내가 오르고 싶은 오르가즘 언제고 버릴 수 있는 후레쉬향 스피아민트향 같은 단물빠진 껌 그가 남긴 치흔의 휴식 속에서 까짓껏, 까짓껏, 껍을 씹는다 그가 씹던 오오 롯데껌들처럼 뒤틀린 과거 이미 뱉어진 사랑   첫눈  날선 삿대질을 되로 주고 말로 받던 그날밤의 창가에 느닷없는 점령군처럼 함박눈이 내렸것다 서로의 눈이 부딪치고 쨍그랑 겨누던 무기를 놓쳤던가 그랬던가 어둡던 창밖이 우연의 남발처럼 환해지는 저건 대체 누구의 과장된 헛기침이란 말인가 그러자 핸드폰을 귀에 댄 남자가 검은 허공을 향해 입을 벌리고 우산을 옆으로 든 여자가 흔들리는 네온싸인에 사뿐사뿐 제 얼굴을 비춰보고 오토바이를 세운 폭주족 크라운 베이커리 앞에 서서 환한 라이터를 지피고 달리던 자동차가 멈칫 쌓인 눈을 쓸어내리고는 천천히 미끄러져 가고 그렇게 무섭게 굴러가던 것들이 일제히 제 둥근 모서리를 쓰다듬고 있었더란 말인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내려앉으며  누군가의 어깨가 누군가의 어깨에 쌓이며 생애 첫눈을 뜬 장님처럼 서로의 눈을 맞추고 말았더란 말인가 염치를 잊고 손을 내밀고 말았더란 말인가, 용서라는 보고 또 보고도 물리지 않는 아 저건 누구의 신파였고 누구의 한물간 낭만적 연출이었던가 그리하여 창밖에 펼쳐진 단막의 해피엔딩이 끝날 즈음 뜨겁게 내리는 저 첫눈에게 그리고 또다시 속아넘어가버리고 말았더란 말인가   고집   참새는 천적인 솔개네 둥지 밑에 몰래 집을 짓는다  무덤새는 뜨거운 모래 밑에 제 몸 수백 배 집을 짓는다  고릴라는 잠이 오면 그제서야 숲속 하룻밤 집을 짓는다  너구리는 오소리 집을 슬쩍 빌려서 잔다  날다람쥐는 나무의 상처 속 구멍집을 짓는다  꿀벌과 흰개미는 집과 집을 이어 끝없는 떼집을 짓는다  수달을 물과 물 중간에 굴집을 짓는다  물거미는 물속에 텅 빈 공기집을 짓는다  바퀴벌레는 사람들 집 틈새에 빌붙어 산다  집게는 소라 껍데기에 들고 다니는 집을 짓는다  세상 모든 짐승들은  제 몸을 지붕으로 덮고  제 몸을 벽으로 세워  제 몸에 맞는 집을 짓고 산다  제 몸이 원하는 대로  제 몸이 기억하는 대로  큼직한 집을 짓는다 살아 있는 하루가 끔찍하다  하나 더 들여놓고 한 평 더 늘리느라 오늘도 나는   소금호수   거꾸로 뿌리를 쳐든 바오밥나무가 웃는다 칼라하리사막 언저리의 거대한 보츠와나 소금호수는 일 년 중 열 달이 건기여서 바람이 모래를 쓸어올려 세운 끝없는 신기루들이 아른아른 웃는다 보아구렁이가 인간을 삼키면서 웃는다 소금호수를 향해 가는 길에는 맨발자국이 바다거북처럼 파여 있곤 한다 온통 소금밭이 씨앗처럼 빨아들였을까 수천 년 전의 바다를 기억하는 바닥에 젖지 않는 온 생의 물기를 소금호수를 나오는 맨발자국이 쭈글쭈글 웃는다 기억해보면 반짝이는 소금껍질을 우두둑 우두둑 부수며 달려온 것도 같다 맨발이었다 벗어놓은 신발이 웃는다   바람을 피우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기공을 한다 했다 몸을 여는 일이라 했다 몸에 힘을 빼면 몸에 살이 풀리고 막힘과 맺힘 뚫어내고 비워내 바람이 들고 나는 몸 바람둥이와 수도사와 예술가의 몸이 가장 열려 있다고 했다 닿지 않는 곳에서 닿지 않는 곳으로 몸속 꽃눈을 밀어 올리고 다물지 못한 구멍에서 다문 구멍으로 몸속 잎눈을 끌어 올리고 가락을 타며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렇다면 바람둥이와 수도사와 예술가들이 하는 일이란  바람을 부리고 바람을 내보냄으로써 저기 다른 몸 위에 제 몸을 열어 온몸에 꽃을 피워내는 그러니까 바람을 피우는 일 아닌가! 공전 별들로 하여금 지구를 돌게 하는  지구로 하여금 태양을 돌게 하는  끌어당기고  부풀리고  무거워져  문득, 별을 떨어지게 하는  저 중력의 포만 팔다리를 몸에 묶어놓고  몸을 마음에 묶어놓고  나로 하여금 당신 곁을 돌게 하는  끌어당기고  부풀리고  무거워져  기어코, 나를 밀어내게 하는  저 사랑의 포만  허기가 궤도를 돌게 한다     
833    정끝별 시모음 ㄴ 댓글:  조회:4888  추천:0  2015-04-03
  정끝별시인 시모음         통속 / 정끝별   서두르다를 서투르다로 잘못 읽었다  잘못 읽는 글자들이 점점 많아진다  화두를 화투로, 가늠을 가름으로, 돌입을 몰입으로,  비박을 피박으로 잘못 읽어도 문맥이 통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네 살배기 딸도 그랬다  번번이 두부와 부두의 사이에서,  시치미와 시금치 사이에서 망설이다  엄마 부두 부쳐준다면서 왜 시금치를 떼는 거야 그래도 통했다  중심이 없는 나는 마흔이 넘어서도  좌회전과 우회전을, 가로와 세로를, 종대와 횡대를, 콩쥐와 팥쥐를,  덤과 더머를, 델마와 루이스를 헷갈려 한다  짝패들은 죄다 한통속이다  칠순을 넘기신 엄마는 디지털을 돼지털이라 하고  코스닥이 뭐냐고 하면 왜 웃는지 모르신다 웃는 육남매를 향해 그래봐야 니들이 이 통속에서 나왔다  어쩔래 하시며 늘어진 배를 두드리곤 하신다  칠순에 돌아가셨던 외할머니는 이모를 엄니라 부르고  밥상을 물리자마자 밥을 안 준다고 서럽게 우셨다  한밤중에 밭을 매러 가시고 몸통에서 나온 똥을  이 통 저 통에 숨기시곤 하셨다     날아라! 원더우먼     뽀빠이 살려줘요-소리치면  기다려요 올리브! 파이프를 문 뽀빠이가 씽 달려와  시금치 깡통을 먹은 후 부르르 알통을 흔들고는  브루터스를 무찌르고 올리브를 구해주곤 했어  타잔 구해줘요 타잔 - 외칠 때마다  치타 가죽인지 표범 가죽인지를 둘러찬  타잔이 아- 아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와  악어를 물리치고 제인을 번쩍 안아들던  아 정글 속의 로맨스  베트맨-. 슈퍼맨- 외치면  망토자락 휘날리며 날아와 조커와 렉스로더를 해치우고  마고트 키더나 킴 베신저의 허리를 힘차게 낚아채던  무쇠 팔 무쇠 다리 육백만불의 사나이들 그때마다 온몸이 짜릿했어, 헌데 말야  문 프린세스 헐레이션-  세일러문 요술 봉을 휘두르는 딸아이를 붙잡고  날 좀 풀어줘- 날 좀 꺼내줘-  허우적댈 때마다 기억나는 이름은 왜  어떻게든 살아나가 물리쳐야 할 악당들뿐일까  왜 난 부를 이름이 없는걸까, 꿈에조차, 왜         천생연분    후라나무 씨는 독을 품고 있다네 살을 썩게 하고 눈을 멀게 한다네 그 짝 마코 앵무는 열매 꼬투리를 찢어 씨를 흩어놓는다네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멀리, 흩어진 씨를 배불리 쪼아먹은 후 어라! 독을 중화시키는 진흙을 먹는다네 베르톨레티아나무 열매는 이름만큼이나 딱딱해 너무 큰 데다 향기도 없어 그 열매를 좋아하는 건 쳇! 토끼만한 아고우티뿐이라네 앞니로 껍질을 깨 속살과 씨를 먹고 남은 씨를 땅 속에 숨긴다네 다른 짐승이 찾기 어려울 만큼 깊이, 싹이 돋아나기 쉬울 만큼 얕게, 잊어버릴 만큼 여기저기 너에게만은 독이 아니라 밥이고 싶은  너에게만은 쭉정이가 아니라 고갱이고 싶은  그리하여 네가 나를 만개케 하는     미라보는 어디 있는가                                미라보  하면 파리의 세느강 위에 우뚝 선 다리였다가 옥탑방 벽에 붙어 있던 바람둥이 혁명가였다가 물리학자였다가 정치가였다가 당신이었다가 퐁네프의 연인들이 달리는 사랑이었다가 미라보, 미라보 하면 신촌이나 부산 어디쯤 호텔이었다가 파리젠느 감자를 곁들인 스테이크였다가 볏은 다리를 감춰주던 침대시트였다가 영등포동에 있는 웨딩타운이었다가 당신 사는 상계동이나 대전의 아파트였다가 엔티크한 삼인용 소파였다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보낸 사랑이었다가 미라보, 미라보, 미라보 하면 세면대에서 놓쳐버린 은반지였다가 간곡히 비어 있는 꽃병 속 그늘이었다 꼭꼭 숨어사는 누군가의 ID였다가 마른하늘에 살풋 걸리는 무지개였다가 문득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미라보, 미라보는 얼마나 격렬한가 이 얼마나 멸렬한가   자작나무 내 인생                                속 깊은 기침을 오래하더니  무엇이 터졌을까  명치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 나왔다 길가에 벌(罰)처럼 선 자작나무  저 속에서는 무엇이 터졌길래  저리 흰빛이 배어 나오는 걸까  잎과 꽃 세상 모든 색들 다 버리고  해 달 별 세상 모든 빛들 제 속에 묻어놓고  뼈만 솟은 저 서릿몸  신경줄까지 드러낸 저 헝큰 마음  언 땅에 비껴 깔리는 그림자 소슬히 세워가며  제 멍을 완성해 가는 겨울 자작나무 숯덩이가 된 폐가(肺家) 하나 품고 있다  까치 한 마리 오래오래 맴돌고 있다   동백 한 그루                                       포크레인도 차마 무너뜨리지 못한  폐허(肺虛)에 동백 한 그루  화단 모퉁이에 서른의 아버지가  우리들 탯줄을 거름 삼아 심으셨던  저 동백 한 그루 아니었으면 지나칠 뻔했지 옛집  영산포 남교동 향미네 쌀집 뒤 먹기와 위로  높이 솟았던 굴뚝 벽돌뿌리와 나란히,  빗물이며 미꾸라지 가두어둔 물항아리 묻혀 있었지  어린 오빠들과 동백 한 그루 곁에서  해당화 밥태기꽃 함박꽃 알록달록 물들다  담을 넘던 이마에 흉터가 포도넝쿨처럼 뻗기도 했지  동백 한 그루 너머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버지 밥상 내던지셨지 그릇들 깨졌지 아버지 서재 오래 비어 있었지  영산포 이창동 소방도로 되기 직전  포크레인이 아버지 대들보를 밀어붙이고  콜타르와 시멘트가 깨진 아버지를 봉인해버렸어도  탯줄 끝에 손톱만한 열매를 붙잡고  봄볕에 자글자글 속 끓고 있었지 저 동백 한 그루  오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가까스로 서 있었지  나 쉬하던 뿌리 쪽으로 고개를 수구(首邱)린 채   개미와 앨범                                   책장 꼭대기에 쌓여가는 앨범들  주저앉을 것만 같아  바닥에 내려놓으려는데  아이 앨범에서 시커먼 덩어리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진다  파르르 바닥에 흩어지는 수천의 개미떼  앨범을 보던 아이가  먹던 비스켓과 함께 닫아두었나 보다  먹이를 찾아 몰려든 개미떼들  식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비스켓을 쏠고  앨범을 쏠고  환한 웃음을 쏠며  아이 얼굴에 주름집을 짓고 있었나 보다  에프킬러를 뿌린다 꿈틀거리는 개미 일가들아  비스켓만 먹고 가지,  휘발하는 검은 시간 벌레들아  추억만은 놓고 가지,     옹관(甕棺) 1   모든 길은 항아리를 추억한다  해묵은 항아리에 세상 한 짐 풀면  해가 뜨고 별 흐르고 비가 내리는 동안  흙이 되고 길이 되고  얼마간 뜨거운 꽃잎  또 하루처럼 열리고 잠겨  문득 매듭처럼 덫이 될 때  한 몸 딱 들어맞게 숨겨줄  그 항아리가 내 어미였다면,  길은 다시 구부러져 내 몸으로 들어오리라  둥근 길  길의 입에 숨을 불어넣고  내가 길의 어미가 될 것이니,  내 안에 길이 있다  내가 가득찬 항아리다     첫눈 날선 삿대질을 되로 주고 말로 받던 그날밤의 창가에 느닷없는 점령군처럼 함박눈이 내렸것다 서로의 눈이 부딪치고 쨍그랑 겨누던 무기를 놓쳤던가 그랬던가 어둡던 창밖이 우연의 남발처럼 환해지는 저건 대체 누구의 과장된 헛기침이란 말인가 그러자 핸드폰을 귀에 댄 남자가 검은 허공을 향해 입을 벌리고 우산을 옆으로 든 여자가 흔들리는 네온싸인에 사뿐사뿐 제 얼굴을 비춰보고 오토바이를 세운 폭주족 크라운 베이커리 앞에 서서 환한 라이터를 지피고 달리던 자동차가 멈칫 쌓인 눈을 쓸어내리고는 천천히 미끄러져 가고 그렇게 무섭게 굴러가던 것들이 일제히 제 둥근 모서리를 쓰다듬고 있었더란 말인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내려앉으며  누군가의 어깨가 누군가의 어깨에 쌓이며 생애 첫눈을 뜬 장님처럼 서로의 눈을 맞추고 말았더란 말인가 염치를 잊고 손을 내밀고 말았더란 말인가, 용서라는 보고 또 보고도 물리지 않는 아 저건 누구의 신파였고 누구의 한물간 낭만적 연출이었던가 그리하여 창밖에 펼쳐진 단막의 해피엔딩이 끝날 즈음 뜨겁게 내리는 저 첫눈에게 그리고 또다시 속아넘어가버리고 말았더란 말인가            
832    정끝별 시모음 댓글:  조회:5203  추천:0  2015-04-03
정끝별 시인 , 대학교수 출생지대한민국 데뷔1988년 시 '칼레의 바다' 경력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수상2008년 제2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정끝별 시인 소개  출생 ; 1964년 11월 28일 (전라남도 나주)  소속 ;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학력 ;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국문학 박사  데뷔 ; 1988년 문학사상 - 칼레의 바다  수상 ; 2008년 제2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경력 ;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둥지새  발 없는 새를 본 적 있니?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에 쉰다지  낳자마자 날아서 딱 한번 떨어지는데  바로 죽을 때라지  먹이를 찾아 뻘밭을 쑤셔대본 적 없는  주둥이 없는 새도 있다더군  죽기 직전 배고픔을 보았다지  하지만 몰라, 그게 아니었을지도  길을 잃을까 두려워 날기만 했을지도  뻘밭을 헤치기 너무 힘들어 굶기만 했을지도  낳자마자 뻘밭을 쑤셔대는 둥지새  날개가 있다는 걸 죽을 때야 안다지  세상의, 발과 주둥이만 있는 새들  날개 썩는 곳이 아마 多情의 둥지일지도  못 본 것 많은데 나, 죽기 전 뭐가 보일까  자작나무 내 인생, / 세계사  ~~~~~~~~~~~~~~~~~~~~~~~~~~  사 랑  나오는 문은 있어도 들어가는 문이 없는  뜨겁게 웅크린 네 늑골  저 천길 맘속에  들어앉은  수천 년의 석순 끝  물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너를 향해 한없이 녹아내리는  몸의 꽃이 만든  몸의 가시가 만든  한번 열려 닫힐 줄 모르는  다 삭은 움막처럼  바람 속에서 발효하는  들어가는 문은 있어도 나오는 문이 없는  그 앞에서 언제나 오줌이 마려운  흰 책 / 민음사. 2000.5  ~~~~~~~~~~~~~~~~~~~~~  시 속에서야 쉬는 시인  그는 좀체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다  월간 문예지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했으니  그는 분명 시인인데,  자장면도 먹고 싶고 바바리도 입고 싶고  유행하는 레몬색 스포츠카도 갖고 싶다  한번 시인인 그는 영원한 시인인데,  사진이 박힌 컬러 명함도 갖고 싶고  이태리풍 가죽 소파와 침대도 갖고 싶다  그러니 좀체 시 쓸 짬이 없다  그가 시를 쓸 때는  눅눅한 튀김처럼 불어 링거를 꽂고 있을 때나  껌처럼 들러붙어 있던 사람들이 더 이상 곁에 없을 때  오래 길들였던 추억이 비수를 꽂고 달아날 때 혹은  등단 동기들이 화사하게 신문지상을 누빌 때  그때뿐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때마다  절치부심 그토록 어렵사리 쓴 시들은  그러나  그 따위 시이거나  그뿐인 시이거나  그 등등의 시이거나  그저 시인  시답잖은 시들이다  늘 시 쓸 겨를이 없는 등단 십 년의 그는  몸과 마음에 병이 들었다 나가는  그 잠깐 동안만, 시를 쓴다  그가 좋아하는 나무 몇 그루를 기둥 삼아  그가 편애하는 부사 몇 개를 깎아놓고  그가 환상하는 행간 사이에  납작 엎드려  평소에는 시어 하나 생각하지 않았음을  참회하며  시 속에서야 비로소 쉰다  흰 책 / 민음사.2000.5  ~~~~~~~~~~~~~~~~~~~  현 위의 인생  세 끼 밥벌이 고단할 때면 이봐  수시로 늘어나는 현 조율이나 하자구  우린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어차피 한 악기에 정박한 두 현  내가 저 위태로운 낙엽들의 잎맥 소리를 내면  어이, 가장 낮은 흙의 소리를 내줘  내가 팽팽히 조여진 비명을 노래할 테니  어이, 가장 따뜻한 두엄의 속삭임으로 받아줘  세상과 화음할 수 없을 때 우리  마주앉아 내공에 힘쓰자구  내공이 깊을수록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지  모든 현들은  어미집 같은 한없는 구멍 속에서  제 소리를 일군다지  그 구멍 속에서 마음놓고 운다지  흰 책 / 민음사.2000.5.  ~~~~~~~~~~~~~~~~~  밀물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흰 책 / 민음사, 2000  ~~~~~~~~~~~~~~~~~  강진 편지  버석이던 갈대잎은 바람에 쏠렸는데요 산벚꽃 웃음에  춘백(春栢)의 눈매는 헛헛히 무너졌는데요 그렇게 웃자란 꽃  핌은 온통 상처라 당신 곁 무릎쯤만 내어주고 싶었는데요  몸끝 어쩌지 못하고 물오르는 풀인지 향기인지  모란 잎새 그늘 불현듯 꿈틀대던 꽃대도 그 꽃대 끝에  서 떨던 소란한 저녁 물비늘도 내 영혼에 일렁이던 햇살도  한통속들이었는데요 그렇게 한백년 비껴 서있던 당  신 겨드랑이와 내 겨드랑이가 이제야 키 낮은 망대를 만  들다니  바라보는 일만도 그토록 망설임이었거늘 가슴에 서로를 묻는  일이야 만장(輓章)처럼 당신쪽으로 누운 풀자국에 내내 가  난할 것입니다 모란 냄새 선명한 하마 흔하디흔한 세상 봄  밤으로 나 내내 따뜻할 것입니다.  흰 책 / 민음사. 2000.5  ~~~~~~~~~~~~~~~~~~~~~~~  얼굴을 파묻다  흐르는 것들에서는 묵은 쌀겨 냄새가 난다  갓 담근 술항아리에서 포도알을 훔쳐 먹고  얼굴을 파묻던 한마당의 쌀더미는 따뜻했다  누렇게 좀먹던 스무 살 페루의 하늘도  쏟아질 듯 무겁기만 하던 원산도 별밭도  비어 있던 대성리 철둑길도 그늘 무성해  소나기 퍼붓고 세상은 선뜻 변했다  쌀벌레들은 다시 쌀더미에 향기로운 집을 짓고  푸른 들판에 누워 한 백년쯤 자고 싶어,  지친 男子는 잎도 지기 전 창백한 女子를 떠났고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서늘한 질투도  이만큼 지나쳐서야 눈치채는 것인데  이 늦은 저녁 쌀을 씻으며  치댈수록 부예지는 쌀뜨물에 얼굴을 묻고  다행이다, 쌀벌레 껍질처럼  어제가 낙낙히 뜰 수 있다는 것은  부박했던 노래가 떠내려 갈 수 있다는 것은  촤르르 촤르르 말갛게 씻겨진 마음이  잘 익은 밥 냄새를 피워올릴 수 있다는 것은  흰 책 / 민음사.2000.  ~~~~~~~~~~~~~~~~~~~~~~~  춘수(春瘦) / 정끝별  마음에 종일 공테이프 돌아가는 소리  질끈 감은 두 눈썹에 남은  봄이 마른다  허리띠가 남아돈다  몸이 마르는 슬픔이다  사랑이다  길이 더 멀리 보인다  삼천갑자 복사빛 / 민음사, 2005  ~~~~~~~~~~~~~~~~~~~~~~  입동/ 정끝별  이리 홧홧한 감잎들  이리 분분히 소심한 은행잎들  이리 낮게 탄식하는 늙은 후박잎들  불꽃처럼 바스라지는  요 잎들 모아  서리 든 마음에 담아두어야겠습니다  몸속부터 꼬숩겠지요  ~~~~~~~~~~~~~~~~~~~~~~~  상강 / 정끝별  사립을 조금 열었을 뿐인데,  그늘에 잠시 기대앉았을 뿐인데,  너의  숫된 졸참 마음 안에서 일어난 불이  제 몸을 굴뚝 삼아  가지를 불쏘시개 삼아  타고 있다  저 떡갈에게로  저 때죽에게로  저 당단풍에게로  불타고 있다.  저 내장의 등성이 너머로  저 한라의 바다 너머로  이 화엄으로  사랑아, 나를 몰아 어디로 가려느냐.  ~~~~~~~~~~~~~~~~~~~~~~  추억의 다림질  장롱 맨 아랫서랍을 열면  한 치쯤의 안개, 가장 벽촌에 묻혀  눈을 감으면 내 마음 숲길에  나비떼처럼 쏟아져  내친김에 반듯하게 살고 싶어  풀기없이 구겨져 손때 묻은 추억에  알콜 같은 몇 방울의 습기를 뿌려  고온의 열과 압력으로 다림질한다  태연히 감추었던 지난 시절 구름  내 날개를 적시는 빗물과 같아,  안주머니까지 뒤집어 솔질을 하면  여기저기 실밥처럼 풀어지는  여름, 그대는 앞주름 건너에  겨울, 그대는 뒷주름 너머에  기억할수록 날세워 빛나는 것들  기억할수록 몸서리쳐 접히는 것들  오랜 서랍을 뒤져  얼룩진 미련마저 다리자면  추억이여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다리면 다릴수록 익숙히 접혀지는  은폐된 사랑이여  ~~~~~~~~~~~~~~~~~~  블루 블루스  땅 속 저 깊은 흙구덩이에서도  검게 그을린 씨앗으로 남아  여덟 개의 꽃잎을 만들어냈다는  이천 년 만에 핀 젖빛 목련  여래나 금륜왕이 올 때까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히말라야 산록의 우담화  삼천 년 만에 피는 꽃  얼음 토탄이 되어서도  살아남았다는 기적의 씨앗  푸른 등꽃을 닮은 알래스카 루핀  일만 년 만에 핀 꽃  그러나  흙 속에서 얼음 속에서  싹도 피워보지 못한 채 죽어간  세상 모든 씨들  마음 속에서 죽어간  하 많은 기다림의 씨들  ~~~~~~~~~~~~~~~~~~~~~  천생연분  후라나무 씨는 독을 품고 있다네 살을 썩게 하고 눈을 멀게 한다네 그 짝 마코 앵무는 열매 꼬투리를 찢어 씨를 흩어놓는다네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멀리, 흩어진 씨를 배불리 쪼아먹은 후 어라! 독을 중화시키는 진흙을 먹는다네  베르톨레티아나무 열매는 이름만큼이나 딱딱해 너무 큰 데다 향기도 없어 그 열매를 좋아하는 건 쳇! 토끼만한 아고우티뿐이라네 앞니로 껍질을 깨 속살과 씨를 먹고 남은 씨를 땅 속에 숨긴다네 다른 짐승이 찾기 어려울 만큼 깊이, 싹이 돋아나기 쉬울 만큼 얕게, 잊어버릴 만큼 여기저기  너에게만은 독이 아니라 밥이고 싶은  너에게만은 쭉정이가 아니라 고갱이고 싶은  그리하여 네가 나를 만개케 하는  ~~~~~~~~~~~~~~~~~~~  오래된 장마  새파란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  잠기고 뒤집힌다는 것  눈물 바다가 된다는 것  둥둥  뿌리 뽑힌다는 것  사태지고 두절된다는 것  물벼락 고기들이 창궐한다는 것  어린 낙과들이  바닥을 친다는 것  때로 사랑에 가까워진다는 것  울면, 쏟아질까?  내일을 여는 작가 / 2001년 가을호  ~~~~~~~~~~~~~~~~~~~~~~~  물을 뜨는 손  물만 보면  담가 보다 어루만져 보다  기어이 두 손을 모아 뜨고 싶어지는 손  무엇엔가 홀려 있곤 하던 친구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북한산 계곡물을 보며  사랑도 이런 거야, 한다  물이 손바닥에 잠시 모였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물이 고였던 손바닥이 뜨거워진다  머물렀다  빠져나가는 순간 불붙는 것들의 힘  어떤 간절한 손바닥도  지나고 나면 다 새어나가는 것이라고  무심히 떨고 있는 물비늘들  두 손 모아 떠 본 적이 언제였던가  ~~~~~~~~~~~~~~~~~~~~~~  기억은 자작나무와 같아 1  무성히 푸르렀던 적도 있다.  지친 산보 끝내 몸 숨겨  어지럽던 피로 식혀주던 제법 깊은 숲  그럴듯한 열매나 꽃도 선사하지 못해, 늘  하얗게 서 미안해하던 내 자주 방문했던 그늘  한순간 이별 직전의 침묵처럼 무겁기도 하다.  윙윙대던 전기 톱날에 나무가 베어질 때  쿵 하고 넘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면 안다  그리고 한나절 톱날이 닿을 때마다  숲 가득 피처럼 뿜어지는 생톱밥처럼  가볍기도 하고, 인부들의 빗질이 몇 번 오간 뒤  오간 데 없는 흔적과 같기도 한 것이다.  순식간에 베어 넘어지는 기억의 척추는  시사사 2008. 3~4월호 / 나무의 노래 - 테마로 읽는 현대시  ~~~~~~~~~~~~~~~~~~~~~~~  가지에 가지가 걸릴 때  쭉쭉 뻗은 봄솔숲 발치에 앉아  솔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자니  저 높은 허공에  부러진 가지가 땅으로 채 무너지지 못하고  살아 있는 가지에 걸려 있다  부러진 가지의 풍장을 보고 싶었을까  부러진 가지와 함께 무너지고 싶었을까  부러진 가지를 붙잡고 있는 저 살아 있는 가지는  부러진 가지가 비바람에 삭아 주저앉을 때까지  부러진 가지가 내맡기는 죽음의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  살아 있는 가지 어깨가 처져 있다  살아 있는 가지들은 서로에게 걸리지 않는데  살아 있다는 것은  제멋대로 뻗어도 다른 가지의 길을 막지 않는데  한줄기에서 난  차마 무너지지 못한 마음과  차마 보내지 못한 마음이  얼마 동안은 그렇게 엉켜 있으리라  서로가 덫인 채  서로에게 걸려 있으리라  엉킨 두 마음이 송진처럼 짙다  2004.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 피어라, 석유 / 현대문학  시집 ; 삼천갑자 복사빛  ~~~~~~~~~~~~~~~~~~~~~  가지에 걸린 공  창공의 공터에  동그랗게 입을 다물고 있는  가출한 동안童顔  누가 데려다 놓았을까  백년 묵은 은행나무 가지 꼭대기에  수은등과 나란히 걸려 있었어  대낮의 아이들이 뻥이야 맘껏 차버린  놀라워라 고 뻥 한번 따라 올라봤으면!  차고 던지고 굴리고 튕기고 날리던  공터의 찬 발들이 쏜살처럼 쏘아 올렸을  오래된 뱃속의 허공  그러나 너무 세게 차지는 마라  공마다 가늠할 수 있는 속도와 높이는 다른 법  가지 사이사이가 모두 삼천포다  가지를 벗어날 수 없는 둥근 허기가  안에서부터 제 거죽 몸을 먹어치우는 사이  초겨울 까지 날아와 날카로운 부리로  가지에 걸린 공을 가늠하고 간다  제 집으로 들앉을 셈인가  시와사람 2005 봄호 /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5, 5-6월호  ~~~~~~~~~~~~~~~~~~~~~  어떤 자리  어떤 손이 모과를 거두어 갔을까  내가 바라본 것은 모과뿐이었다  잠시 모과 이파리 본 것도 같고  또 아주 잠시 모과 꽃을 보았던 것도 같은데  모과 이파리가 돋아나는 동안  모과 꽃이 피어나는 동안  그리고 모과 열매가 익어 가는 내내  나는 모과만을 보았다  바라보면 볼수록 모과는 나의 것이었는데  어느 날 순식간에 모과가 사라졌다  내 눈맞춤이 모과 꼭지를 숨 막히게 했을까  내 눈독毒이 모과 살을 멍들게 했을까  처음부터 모과는 없었던 게 아닐까 의심하는 동안  모과는 사라졌고 진눈깨비가 내렸다  젖은 가지 끝으로 신열이 났다  신음소리가 났고 모과는 사라졌고  모과 익어가던 자리에 주먹만한 허공이 피었다  모과가 익어가던 자리를 보고 있다  보면 볼수록 모과는 여전히 나의 것이건만  모과 즙에 닿은 눈시울이 아리다  모과가 떨어진 자리에서  미끄러지는 차연次緣의 슬픔  이 사랑의 배후  시집 ; 삼천갑자 복사빛 / 민음사  ~~~~~~~~~~~~~~~~~~~~~  속 좋은 떡갈나무  속 빈 떨갈나무에는 벌레들이 산다  그 속에 벗은 몸을 숨기고 깃들인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버섯과 이끼들이 산다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딱따구리들이 산다  그 속에 부리를 갈고 곤충을 쪼아먹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박쥐들이 산다  그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잠을 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올빼미들이 산다  그 속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깐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오소리와 여우가 산다  그 속에 굴을 파고 집을 짓는다  속 빈 떡갈나무 한 그루의  속 빈 밥을 먹고  속 빈 노래를 듣고  속 빈 집에 들어 사는 모두 때문에  속 빈 채 큰 바람에도 떡 버티고  속 빈 채 큰 가뭄에도 썩 견디고  조금 처진 가지로 큰 눈들도 싹 털어내며  한세월 잘 썩어내는  세상 모든 어미들 속  시집 ; 흰책 / 민음사  ~~~~~~~~~~~~~~~~~~~~  미라보는 어디 있는가  미라보  하면 파리의 세느강 위에 우뚝 선 다리였다가  옥탑방 벽에 붙어 있던 바람둥이 혁명가였다가  물리학자였다가 정치가였다가  당신이었다가  퐁네프의 연인들이 달리는 사랑이었다가  미라보, 미라보  하면 신촌이나 부산 어디쯤 호텔이었다가  파리젠느 감자를 곁들인 스테이크였다가  벗은 다리를 감춰주던 침대시트였다가  영등포동에 있는 웨딩타운이었다가  당신 사는 상계동이나 대전의 아파트였다가  엔티크한 삼인용 소파였다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보낸 사랑이었다가  미라보, 미라보, 미라보  하면 세면대에서 놓쳐버린 은반지였다가  간곡히 비어 있는 꽃병 속 그늘이었다  꼭꼭 숨어사는 누군가의 ID였다가  마른하늘에 살풋 걸리는 무지개였다가  문득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미라보, 미라보는 얼마나 격렬한가  이 얼마나 멸렬한가  ~~~~~~~~~~~~~~~~~  공전(空轉)  별들로 하여금 지구를 돌게 하는  지구로 하여금 태양을 돌게 하는  끌어당기고  부풀리고  무거워져  문득, 별을 떨어지게 하는  저 중력의 포만  팔다리를 몸에 묶어놓고  몸을 마음에 묶어놓고  나로 하여금 당신 곁을 돌게 하는  끌어당기고  부풀리고  무거워져  기어코, 나를 밀어내게 하는  저 사랑의 포만  허기가 궤도를 돌게 한다  문학수첩 2003 겨울호  ~~~~~~~~~~~~~~~~~~~~  그만 파라, 뱀 나온다  속을 가진 것들은 대체로 어둡다  소란스레 쏘삭이고 속닥이는 속은  죄다 소굴이다  속을 가진 것들을 보면 후비고 싶다  속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속을 끓이는지 속을 태우는지  속을 푸는지 속을 썩히는지  속이 있는지 심지어 속이 없는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다  속을 알 수 없어 속을 파면  속의 때나 속의 딱지들이 솔솔 굴러 나오기도 한다  속의 미끼들에 속아 파고 또 파면  속의 피를 보기 마련이다  남의 속을 파는 것들은 대체로 사납고  제 속을 파는 것들은 대체로 모질다  ~~~~~~~~~~~~~~~~~~~  바람을 기다리는 일  찔레와 포플러와 길과 물과 함께 있던  늘어진 버드나무 밑에 함께 기대앉던  자운영과 골풀을 쓰러뜨리며 함께 눕던  우포 물 언저리 빗방울로 맺히던  물위에 초록 기둥을 세우고  좀개구리밥꽃처럼 작은 방을 들이고  소금쟁이 지나는 길목에 덜컥 꽃을 피우고  개구리마저 튀어 오르는 물밑으로 열매를 맺고  큰물이 흔쾌히 거두어갈 때까지  빗방울이 화석이 될 때까지  늪이 물이 될 때까지  발목을 쥐고 있는  물에 뜬 사랑  눈이 머는 일  마음이 먼저 먹히는 일  먹먹한 물이 되는 일  저 갯버들 가지에 치마를 걸어놓고  오지 않는 바람을 기다리는 일  고여 있으되 오래 썩지 않는 일  여기 중독된 불멸  열린시학 / 2003, 가을 / 고요아침  ~~~~~~~~~~~~~~~~~~~~  늦도록 꽃  앉았다 일어섰을 뿐인데  두근거리며 몸을 섞던 꽃들  맘껏 벌어져 사태 지고  잠결에 잠시 돌아누웠을 뿐인데  소금 베개에 묻어둔  봄 마음을 훔친  저 희디흰 꽃들 다 져버리겠네  가다가 뒤돌아보았을 뿐인데  흘러가는 꽃잎이라  제 그늘 만큼 봄날을 떼어가네  늦도록 새하얀 저 꽃잎이  이리 물에 떠서  ~~~~~~~~~~~~~~~~~~~  희 망  구멍에 빠져 본 사람은  구멍을 제 몸 속에 넣고 다닌다  두 눈을 움푹 파헤치고  구멍을 등에 지고 가는  은빛 눈썹의 낙타야  지친 너에게 구멍은 오아시스였니?  배 한가운데 구멍을 안고 가는  베두인의 여자야  허기진 너에게 구멍은 집이었니?  구멍에 빠질 때마다  한 삽씩 네 눈에서 퍼냈던  꽃 핀 모래가  신기루  그 허방이었니?  ~~~~~~~~~~~~~~~~~~~  두 문 두 집  네게 닿고 싶어  서로를 보듬고 설 수 있는 짚단이 되고 싶어  까칠한 배꼽 감출 수 있는 울타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우선 문이 있어야,  나그네처럼  사막을 헤매던 모래집이 말했어  그만 자고 싶어  탯자리를 향해 행렬 짓는  늙은 코끼리처럼 남아프리카 케냐 어디쯤  페루의 새처럼 남아메리카 어디쯤  하지만 우선 이 문을 버려야,  진흙뻘처럼  기다림에 지친 붙박이집이 말했어  희 책 / 민음사  ~~~~~~~~~~~~~~~~~~  날아라! 원더우먼  뽀빠이 살려줘요―소리치면  기다려요 올리브! 파이프를 문 뽀빠이가 씽 달려와  시금치 깡통을 먹은 후 부르르 알통을 흔들고는  브루터스를 무찌르고 올리브를 구해주곤 했어  타잔 구해줘요 타잔―외칠 때마다  군살 없는 근육질 허리에  치타 가죽인지 표범 가죽인지를 둘러찬  타잔이 아―아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와  악어를 물리치고 제인을 번쩍 안아들던  아 정글 속의 로맨스  베트맨―, 슈퍼맨 맨― 외치면  망토자락 휘날리며 날아와 조커와 렉스로더를 해치우고  마고트 키더나 킴 베신저의 허리를 힘차게 낚아채던  무쇠 팔 무쇠다리 육백만불의 사나이들  그때마다 온몸이 짜릿했어, 헌데 말야  문 프린세스 헐레이션―  세일러문 요술봉을 휘두르는 딸아이를 붙잡고  날 좀 풀어줘― 날 좀 꺼내줘―  허우적댈 때마다 기억나는 이름은 왜  어떻게든 살아나가 물리쳐야 할 악당들뿐일까  왜 난 부를 이름이 없는걸까, 꿈에조차, 왜,  흰 책 / 민음사  ~~~~~~~~~~~~~~~~~~~~~~  뒷심  모든 그림자는 빛의 뒤편으로 무너진다는데  모든 풀은 바람 뒤로 밀리고 바람 뒤로 눕는다는데  모든 줄다리기는 뒤편을 향해 당겨진다는데  모든 말은 침묵 뒤편으로 고인다는데  모든 사람들은 뒤가 실해야 당당히 설 수 있다는데  모든 사랑은 기다림 뒤편에서 완성된다는데  모든 그림자에게 뒤는 내려앉기 위해 있다는데  모든 풀에게 뒤는 맞서기 위해 있다는데  모든 줄다리기에서 뒤는 버티기 위해 있다는데  모든 말에게 뒤는 숨기 위해 있다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뒤는 돌아보기 위해 있다는데  모든 사랑에게 뒤는 젖기 위해 있다는데  모든 앞에 대항하는 바로 그 심心  흰 책 / 민음사.  ~~~~~~~~~~~~~~~~~~~~~~~~~  한 집 눈물  집에 빠진 나 한 집  생에 그늘이 될 만한 집 한 채는 있어야 해요  집은 나 한 집 하기 나름인걸요  도장에 미장 새시하고 조명 갈고  버디칼 걸고 유리창까지 닦는다  환해진 집에 황홀한 나 한 집  집이 기침을 하면 나 한 집 약 먹는다  집이 오줌누고 싶어하니 나 한 집 똥눈다  집이 술잔을 들면 나 한 집 담배를 피워 문다  집이 바지를 벗자 나 한 집 단추를 푼다  집이 심심해하니 나 한 집 아이 낳아 준다  집은 날로 의기양양 나 한 집 업신여기고  나 한 집 더럽히고 나 한 집 깔아뭉개더니  너 나가 너 나가 다 나가 나 한 집 내차네  집을 ?i아다니느라 빚더미로 오른 나 한 집  나 한 집 옹골차게 등쳐먹은 잔인한 집  집에 내?i긴 가엾은 나 한 집씨  ~~~~~~~~~~~~~~~~~  봄마늘  욕설같이 불쑥 주먹같이  흰마늘쪽이 꿈틀,  매운 눈 비비며  폭음처럼 질주하는  숨가쁜 휘발성  시퍼렇게 물오른  상추 고추 사이 봄마늘 마늘고추장  마늘 향기 하얀 남도 마늘꽃  오 싱싱한 봄밤  꽃이 아니어도 풀이 아니어도  하르르 피워내는  저 화냥기 좀 봐  쉿! 쉿!  당차게 뿜어대는 저 독기 좀 봐  봄바다를 게릴라처럼  상추 고추 사이 봄마늘 마늘고추장  마늘향기 하얀 남도 마늘씨  자작나무 내 인생 / 세계사, 1996년  ~~~~~~~~~~~~~~~~~~~~  졸참나무 숲에 살았네  비가 내리었네  온종일 오리처럼 앉아 숲 보네  그렇게 허름했던 사랑의 이파리  허물어진 졸참 가지에  넘어지며 나는 가고 있네  내 나이를 모르고 둥근 하늘 아래  잎이 피네 짐처럼 피네  잎이 지네 나도 흙먼지  숲에 가득하네 세월의 붉은 새  나는 많이도 속이며 살았네  낡아 묻히면 방문치 않으리 아무도  꽃이 피리라 기약치 않으리  숲 기슭에 오리처럼 앉아 있네  비가 많이 내리네  자작나무 내 인생 / 세계사, 1996년  ~~~~~~~~~~~~~~~~~~~~~~  한 주먹  발레니나가 되겠다던  화가가 되겠다던  일곱 살배기 딸이 한 판 붙고 온 날  한 주먹이 되겠다네  세 놈을 한 방에 쓰러뜨린 수 있는 한 주먹  여자애라고 얕잡아보지 않을 한 주먹  한 주먹 키우겠다며 밤마다  나도 한 주먹 있었으면 좋겠네  한갓 시인이 되겠다는  한낱 풍경 감식가나 되겠다는  나를 갈고리에 걸고 내 마음을 파먹는  떠들썩한 빈말들 한 방에 날려버릴 한 주먹  한 주먹 키우겠다며 밤마다  한, 주먹, 쥐었다  한, 주먹, 폈다  ~~~~~~~~~~~~~~~~~  밥 심  돌고 돌다  설설  기고 기다  급기야  바닥에 박히는  부동심법  저 찰진  호구의  힘  좆, 팽이  現代詩學 / 2001년 9월호  ~~~~~~~~~~~~~~~~  봄의 화단에서  아파트 화단에 앉아 꽃씨를 심는다  다섯 살배기 흙손가락에서 피어나는 봄흙의  귓불에선 아직도 말간 배냄새가 난다  ,나도 씨였죠?  ,이 씨도 쑥쑥 자랄 거죠?  한껏 치켜올린 입술이 나팔꽃처럼 둥글게 피어나고  꽃씨를 품은 봄흙을  다독이는 살빛 떡잎이 둘  타클라마칸 고비의 황사를 견디며  지구의 저 저 저 모퉁이를 견디며  씨에서 잎으로 꽃으로 몸 바꾸며  ,나이테처럼  ,쑥쑥 높아지는 키의 눈금들이  ,해님에게 가는 계단이래!  꽃씨를 묻은 플라스틱 화분을 안고  계단을 오르는 위태로운 흙물 엉덩이를 보며  목숨을 피우려는 모든 것들은  저리 온몸으로 뒤뚱이며 오르는 것이구나  바람에 휘청,  넘어진 피와 멍이 너의 꽃이고 잎이었구나  저 계단에서  잠시 붙잡고 선 난간이 너의 뿌리였구나  2004 제18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사.2003  ~~~~~~~~~~~~~~~~~~~~~~~~~  주름을 엿보다  뼈와 뼈 사이에 살이 있다  벌어지고 구부러진 틈으로  검은 송사리 떼가 일구어놓은 물결이  살과 살을 잇는다  배를 묶어두는 밧줄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허공을 이어놓고  풀어내고 가두는 인연을 당길 때마다  흔들림을 정지시키며  배들을 튕겨주는 힘줄  송사리 떼가 들락이며 제 길을 넓힐 때마다  살과 살은 부드럽게 접혀지고  뼛속까지 출렁이는  이 오래된 계단을 따라  연하디연한 무릎 주름이 걸어들어간다  가만 보면  겹겹이 뜬 노곤한 봄날,누군가의  눈물 맺힌 밧줄이 풀리고 있다  2004 제49회 現代文學賞 수상시집 / 피어라,석유! / 현대문학  ~~~~~~~~~~~~~~~~~~~~~~~  사과 껍질을 보며  떨어져 나오는 순간  너를 감싸 안았던  둥그렇게 부풀었던 몸은 어디로 갔을까  반짝이던 살갗의 땀방울은 어디로 갔을까  돌처럼 견고했던 식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식탁 모퉁이에서  사과 껍질이 몸을 뒤틀고 있다  살을 놓아버린 곳에서 생은 안쪽으로 말리기 시작한다  붉은 사과 껍질은  사과의 살을 놓치는 순간 썩어간다  두툼하게 살을 움켜쥔  청춘을 오래 간직하려는 과즙부터 썩어간다  껍질 한끝을 집어 든다  더듬을수록 독한 단내를 풍기는  철렁, 누가 끊었을까 저 긴 기억의 주름  까맣게 시간이 슬고 있다  2005년도 소월시문학상 작품집에서  ~~~~~~~~~~~~~~~~~~~~~  춘장대 동백숲 / 정끝별  오백 년 동안 축축 늘어진 동백나무 가지가  바닥에 철렁 내려놓으며 들여놓은 동백나무 방들  미처 널어 말리지 못한 채 몇 철이나 쌓인  낙엽에 진 꽃에 어룽 햇살을 금침으로 깔아놓고  시간 없어 나 한 번 밖에 못했다며  젊은 아줌마를 앞세워 동백그늘을 나오는 아저씨라든가  그 나이에 한 번 허면 됐다며  추임새 좋게 동백 그늘에 드는 늙은 아줌마라든가  동백의 몸통은 쌍춘년 동백처럼 불끈불끈  동백의 팔다리는 춘삼월 정맥처럼 구불구불  봄이 길다는 춘장대 옆 마량리 화력발전소 뒤  그렇게 한 오백 년 동안  춘정의 봄군불을 때다 그만 벌겋게 데기도 하는  오백 년 된 동백숲의 온 몸 동력  내연(內燃)의 한 천년은 들고나겠네  ~~~~~~~~~~~~~~~~~~~~~  정거장에 걸린 정육점  사랑에 걸린 육체는  한 근 두 근 살을 내주고  갈고리에 뼈만 남아 전기톱에 잘려  어느 집 냄비의 잡뼈로 덜덜 고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에 손을 턴다  걸린 제 살과 뼈를 먹어줄 포식자를  깜박깜박 기다리는  사랑에 걸린 사람들  정거장 모통이에 걸린 붉은 불빛  세월에 걸린 살과 뼈 마디마디에  고봉으로 담아놓고 기다리는  당신의 밥, 나  죽을 때까지 배가 고플까요, 당신?  삼천갑자 복사빛 / 민음사, 2005  ~~~~~~~~~~~~~~~~~~~  옹관甕棺.1  모든 길은 항아리를 추억한다  해묵은 항아리에 세상 한 짐 풀면  해가 뜨고 별 흐르고 비가 내리는 동안  흙이 되고 길이 되고  얼마간 뜨거운 꽃잎  또 하루처럼 열리고 잠겨  문득 매듭처럼 덫이 될 때  한 몸 딱 들어맞게 숨겨줄  그 항아리가 내 어미였다면,  길은 다시 구부러져 내 몸으로 들어오리라  둥근 길  길의 입에 숨을 불어넣고  내가 길의 어미가 될 것이니,  내 안에 길이 있다  내가 가득 찬 항아리다  새로운 바람 / 다층  ~~~~~~~~~~~~~~~  또 하나의 나무  오십년째 이름없이 살던 참나무 한 그루  오늘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 되셨다  임학계 거목 김장수 씨 화장 유골이  살아 아끼시던 이 참나무 아래 묻혔으니  나무와 함께 살다 나무 곁으로 가셨으니  첫 겨울 개똥지빠귀 한 마리 놀러와  옹이에 앉아 휘파람 불어주고 있으니  참,나무 되어 장수하시겠다  손가락이 흰 자작의 딸이 아니었기에  어깨 처진 고배에 고배를 자작하였으니  언어를 호미 삼아 죽정밭 한 평쯤 자작하였으니  별똥을 쏟아내는 개똥벌레처럼  뼛속까지 하얗게 질린 채 자작거렸으니  나도 죽어 자작 나무 되어  별을 먹은 나무 되고 싶다  불힘 좋은 몸들,  나무들의 향기가 낯익다  유심 / 2004 가을호  오늘의 시 / 2005  ~~~~~~~~~~~~~~~~~~~~~  소금호수  거꾸로 뿌리를 쳐든 바오밥나무가 웃는다  칼라하리사막 언저리의  거대한 보츠와나 소금호수는  일 년 중 열 달이 건기여서  바람이 모래를 쓸어올려 세운  끝없는 신기루들이 아른아른 웃는다  보아구렁이가 인간을 삼키면서 웃는다  소금호수를 향해 가는 길에는  맨발자국이 바다거북처럼 파여 있곤 한다  온통 소금밭이 씨앗처럼 빨아들였을까  수천 년 전의 바다를 기억하는  바닥이 젖지 않는  온 생의 물기를  소금호수를 나오는 맨발자국이 쭈글쭈글 웃는다  기억해보면  반짝이는 소금껍질을 우두둑  우두둑 부수며 달려온 것도 같아  맨발이었다  벗어놓는 신발이 웃는다  ~~~~~~~~~~~~~~~~~  요요  당신이 나를 지루해할까 봐  내가 먼저 멀리 당신을 던져봅니다  달아날 수 있도록 풀어줌으로써  나는 당신을 포기합니다  포기의 복수  포기의 쾌락  그리고 포기의 보상  당신은 늘 첫 떨림으로 달려옵니다  던졌다 당기고  풀렸다 되감기고  사라졌다 되돌아오는  천 갈래 던져진 그물 길  오요, 오요, 오 요요  삼천갑자 복사빛 / 민음사 2005  ~~~~~~~~~~~~~~~~~~~~~~  자작나무 내 인생  속 깊은 기침을 오래하더니  무엇이 터졌을까  명치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 나왔다  길가에 벌(罰)처럼 선 자작나무  저 속에서는 무엇이 터졌길래  저리 흰빛이 배어 나오는 걸까  잎과 꽃 세상 모든 색들 다 버리고  해 달 별 세상 모든 빛들 제 속에 묻어놓고  뼈만 솟은 저 서릿몸  신경줄까지는 드러낸 저 헝큰 마음  언 땅에 비껴 깔리는 기림자 소슬히 세워가며  제 명을 완성해 가는 겨울 자작나무  숯덩이가 된 폐가(肺家) 하나 품고 있다  까치 한 마리 오래오래 맴돌고 있다  ~~~~~~~~~~~~~~~~~~~~~~~  세상의 등뼈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 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 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시안 / 2006 가을호  2008 제22회 소월시 문학상 작품집 우수상 수상작  ~~~~~~~~~~~~~~~~~~~~~~~~  게임의 법칙  그래? 내 입과 두 눈에  네 손가락들을 깊숙이 박아봐!  그래? 날 던져봐!  잘 굴러갈 거야  네 빗장뼈를 타고 코불쏘뿔처럼 달려가  네 심장의 핀들을 모조리  으스러뜨려 놓을 거야  그래 너!  지금은 날 요리조리 애무하고 있지만  그래 나?  아직은 아직은 터질 듯 도사리고 있지만  그래 너?  언젠가 날 내던지고 말걸, 그 순간  그래 나!  네 검은 허파속을 돌진해  뚝 끊긴 지평선 너머까지 돌진할 거야  온옴으로 끝장내줄 거야  어때?  의심에 질린 맞수들의  스트-라이크 사랑  ~~~~~~~~~~~~~~~~~~~~~  와락  반 평도 채 못 되는 살갗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 번을 내리치던 이 생生의 벼락  헐거워지는 네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 자락  제23회 2008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 2008  ~~~~~~~~~~~~~~~~~~  허공의 나무  -박수근 풍(風)으로  그 나무에 꽃 없다  피우지 못하고 꺾어버렸다  가슴에 더 할 말 없다고  사랑에게 뻗어가는 어깨 잘라버렸다  마음 다 펼칠 수 없다고  사랑에게 달려가는 발 묻어버렸다  문자 밖에서야 쓰여지게 될 것이라고  터져 나오는 꽃들 삼켜버렸다  그 나무에 숨 없다  뿌리처럼 비틀린  빈 목숨만이 붙어  옆얼굴이 울고 있다  ~~~~~~~~~~~~~~~~~  설렁탕과 로맨스  처음 본 남자는 창 밖의 비를 보고  처음 본 여자는 핸드폰의 메시지를 보네  남자는 비를 보며 순식간에 여자를 보고  여자는 메시지 너머 보이는 남자를 안 보네  물을 따른 남자는 물통을 밀어주고  파와 후추와 소금을 넣은 남자는 양념통을 밀어주네  마주 앉아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허기  마주 앉아 한 번 더 마주 보는 허방  하루 만에 먹는 여자의 국물은 느려서 헐렁하고  한나절 만에 먹는 남자의 밥은 빨라서 썰렁하네  남자는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여자는 숟가락을 들고 늦도록 국물을 뜨네  깜빡 놓고 간 우산을 찾으러 온 남자는  여전한 여자를 처음처럼 한 번 더 보고  혼자 남아 숟가락을 들고 있는 여자는  가는 남자를 처음처럼 한 번도 안 보고  그렇게 한 번 본 여자의 밥값을 계산하고 사라지는 남자와  한 번도 안 본 남자의 얼굴을 계산대에서야 떠올려보는 여자가  단 한 번 보고 다시는 보지 못할 한 평생과  단 한 번도 보지 못해 영원히 보지 못할 한 평생이  추적처럼 내리네 만원의 합석 자리에  시월과 모래네와 설렁탕집에  제23회 소월시 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 2008  ~~~~~~~~~~~~~~~~~~~~~~~  까마득한 날에  밥 하면 말문이 막히는  밥 하면 두 입술이 황급히 붙고 마는  밥 하면 순간 숨이 뚝 끊기는  밥들의 일촉즉발  밥들의 묵묵부답  아, 하고 벌린 입을 위아래로 쳐다보는  반쯤 담긴 밥사발의  저 무궁, 뜨겁다!  밥  ~~~~~~~~~~~~~~~~~  삼매三昧  직박구리가 목련꽃에 머리를 쑥 박고  이 뭐꼬! 꽁지를 한껏 치켜세운 채  검은 직박구리가 흰 목련꽃잎을  용맹정진 긴 부리로 촉 촉  장좌불와長座不臥! 가지에 힘껏 발톱을 박고  금세 한 목련 다 지고  목련 가지 끝 잎눈 하나가  하늘 경經 한 장을 바짝 끌어당기자  푸른 두 귀가 쫑긋,  벌어진 봄의 잎이란 무릇  세 그루 건너  배꼽마당처럼 허벅진 배꽃더미는  직박구리 봄의 무아無我다  ~~~~~~~~~~~~~  산사춘  갈 수 없는 것 맞지?  봄바람에 사태 졌던  흰 꽃잎  발목 삔 잎들만 남았으니  꽃 핀 길  걸어 잠근 가시만 남았으니  취할 수 없는 거 맞지?  바람에 길이 막혔으니  영혼의 뿌리까지 다 내주어 버렸으니  다시 그 꽃,  피울 수 없는 거 맞지?  이른 노을에 물들어  붉게 맺히는 인연의  시린 열매     
831    환경시 몇점 댓글:  조회:3988  추천:0  2015-04-03
환경시 모음   하나뿐인 우리의 지구  우리의 터전  하나뿐인 우리의 지구  기름진 땅  옛 조상의 피와 땀이 엉긴 곳  지금은 죽어 가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천혜의 자원  그 에너지로  수억 인구를 부양하다가  이젠 지치고 병들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강과 산에는  생활 쓰레기 산업 찌꺼기  산더미 이루고  자연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구는  슬픔과 울분을 억누르며  그 아픔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 땅의 주인들은 모르는 척  모르는 척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먼 길손님  꽃 속에서 웃고요  꽃 찾아온 나비  온종일 꽃밭을 누비네요.  다홍치마 색동저고리 입고서  달려온 봄 손님  봄,봄,봄,봄.  콧노래 불러요.  봄바람은 밤사이  단잠을 깨우고  강남 갔던 제비  온종일 하늘을 누비네요.        자연의 얼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자연의 얼굴에  낙서를 하네.  흉한 얼굴  상처난 얼굴  보기 싫네.  나뭇가지에도  여기저기  매달아 놓은 리본  손목이  아프다고  소리지르지만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네.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이  자연의 얼굴을  아프게 하지.    지구가 아프대요  지구가 아프대요  우리가 돌보지 않아서  울고 있네요.  우리가 버린 쓰레기로  화가 났어요.  지구는 끙끙 앓고 있어요.  오오 불쌍하여라.  지구가 아프대요  죽어 가고 있어요.  자연도 아프대요  우리가 돌보지 않아서  울고 있네요.  우리가 버린 쓰레기  병이 났어요.  강산이 끙끙 앓고 있어요  오오 불쌍하여라.  자연도 아프대요  죽어 가고 있어요  흙  흙은  어머니처럼 포근해요.  알몸의  어린 싹 꼭 껴안고  볼 쓰다듬어요.  어린 새싹  흙의 가슴 열어  방긋방긋  그것 봐!  쑤욱쑤욱  키가 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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