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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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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    <등산> 시모음 댓글:  조회:5921  추천:0  2015-04-17
  신석정의 '산으로 가는 마음' 외  + 산으로 가는 마음  내 마음  주름살 잡힌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먼길을 떠나네.  산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고산식물들이 자라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신석정·시인, 1907-1974)  + 산에서·4 등산하는 목적을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하는 재미를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얻은 걸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남은 걸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다네.  (김원식·시인, 강원도 영월 출생) + 등산  숨이 목에 찬다  힘들어 땅만 보고 앞으로 앞으로  이 깔딱고개만 넘으면 하늘밑  높은 꼭지에 닿겠지  능선을 넘고 계곡에 닿으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의 인사  들꽃들의 미소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영의 팡파르 울리고  말하지 않아도  엉덩이 땅에 내려앉고  목에 찬 숨이 환희로  눈에는 초록빛 가득하고  코에는 풀향기 넘치어  막혔던 가슴 뚫어지니  이곳이 선경이로구나  생각하면 더욱 선경이 되고  몸을 감싼 땀은  한줄기 얼음 되어 기쁨을 뿌리는 찰나  또 다른 기쁨으로 들어가려  걷고 걷는 등산  환희요, 기쁨이요, 즐거움이 가득한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려니 (박태강·시인, 1941-) + 등산과 삶  산을 오를 때면  먼 정상을 바라보지 말라.  발끝만 쳐다보며  한발 한 발 내딛으라.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포기하고 싶어도  온 길을 생각하며  되돌아가지 마라.  오르다 지칠 때면  그 자리에 잠시 멈추라.  팔 다리에 힘이 솟고  의지는 되살아나리라.  산을 즐기며  산과 대화를 나누라  바람소리 새의 노래에  산과 하나가 되라.  삶이란 산을 오르는 일  언제나 가파르지만  저기 정상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박인걸·시인) + 동반자 산을 오르다 바위를 만났다  자일도 없이 올라야 하는 바위  가능과 불가능을 잠시 생각한다  통과해야 하는 길이므로.  가능에다 동그라미를 친다  바위를 눈으로 더듬는다  그의 빈틈과 상처가 보인다  빈틈의 크기와 상처의 깊이를  마음에 새긴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중엔 확실하게  그의 틈에 손을 넣는다  바위의 지문과 내 지문이 섞인다  온몸을 그의 상처에 댄다  그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그의 틈과 상처를 내 것으로 품는다  두 몸이 하나가 된 마음  가파른 길을 통과해 간다 (유봉희·시인) + 산길 한 사람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에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 거란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이성복·시인, 1952-) + 등산 길  짙푸른 물결 속 뚫고  햇살 굴러 이는  고운 숨결 일렁이는 산골  땀흘려 헐떡이다  산새들 몰려가는 길섶에 앉으니  나무와 나무 사이 누벼온 보람인가  짜릿이 감도는 수액의 몸살 파고들어  찌든 도시의 찌꺼기 사라지고  영혼의 눈시울에  가득히 출렁이는 순수의 날개  훨훨 깃을 친다. (곽병술·시인, 1929-) + 산행법 山을 보고서는 사람의 말로 인사하지 말 것. 山은 산(生)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함.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서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山을 찾는 것이니까 山에 와서 세상 얘기를 해서는 안됨.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른 것은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임. 그럴수록 하느님 곁에 가까워지는 것. 그럴수록 삶을 가볍게 버릴 수 있음. 山行은 흙이 되는 연습임. 山을 보면 언제나 죽는시늉을 해야 됨. (박철·목사 시인) + 산행·2 이른 아침에는 나무도 우는구나 가는 어깨에 손을 얹기도 전에 밤새 모인 이슬로 울어버리는구나. 누가 모든 외로움을 말끔히 씻어주랴. 아직도 잔잔히 떨고 있는 지난날, 잠시 쉬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앞길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번 산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구 탓을 하랴. 등짐을 다시 추슬러 떠날 준비를 한다. 시야가 온통 젖어 있는 길. (마종기·시인, 1939-) + 도반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을 진 석양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알고도 애써 모른 척 밀어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이성선·시인, 1941-2001) + 산행  산이 그리워  산에 오른다  겨우내 뻥 뚫린 가슴  독아(毒牙)같은 꽃샘바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봄의 가슴 불지르는 진달래는  바위의 무심함을 탓하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산의 무심함에 나도 속상해  덩달아 눈 흘기는데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마다  산은 부끄러운 듯  한 섬 한 섬  앞가슴을 풀어헤친다  봉우리에 올라서야  산은 제 숨은 속살을 다 보이고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은 바다  진달래 위험한 향기에 취해  바위도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한다  (공석진·시인) + 산을 오르며  낮은 데서 바라보면  누가 저같이  높이 서고 싶지 않으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더라도 산꼭대기  작은 꽃보다 더 작은 우리  높이 더 높이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 올랐나  높이 올라가  더 높이 무엇을 세우려 하나  산 가운데  사람소리 울리지 않고  메아리만 저 혼자 되돌아온다  우리도 어차피  제자리로 올 것이지만  세상은  산꼭대기에 높이 선 사람의 편  엉거주춤 산 밑의 많은 사람들  나날이 오르면서  오르지 못하면서  산봉우리 오래 바라본다.  (천양희·시인, 1942-) + 북한산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삶이 괴롭고 슬픈 날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정상에 이르러서야 사랑과 용서의 길 일러주지만 가파른 산길 오르다 보면 그 길이 얼마나 숨차고 벅찬 일인지 안다 돌아보면 내 걸어온 생의 등고선 손에 잡힐 듯 부챗살로 펼쳐져 있는데  멀수록 넓고 편해서 보기 좋구나  새삼 생각하노니 삶이란 기다림에 속고 울면서 조금씩 산을 닮아가는 것 한때의 애증의 옷 벗어 가지에 걸쳐놓으니 상수리나무 구름 낀 하늘 가리키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길 보챈다 (이재무·시인, 1958-) + 겨울 산행 하얀 세계 어느 누가 당신을  먼저 정복할 수 있을까? 따스한 손 기다리는  소리 없는 침묵 겨울 그리고 산 그 가운데 멈춰진 자리  바람만 인다 야호∼ 소리 한번 지르면 꺼지지 않는 분화구처럼 내 몸에서 번지는 하얀 열기 우주 어느 공간 머물 때 나는 정상에 서 있었다. (노태웅·시인) + 산행기  때로는 시원한 때로는 절실한  울음을 쏟아내던 매미가  아이들에게 채집되고 있었다  울음으로 서까래 삼고  눈물로 등을 달았던  지난날 내 詩 또한,  표본 될 저 울음주머니처럼 간직할 가치가 있는가  묻고 물으며 산을 오를 때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절벽도 무엇도 아니었다  한 잔의 술도 한 숟갈의 밥도 아니었던 행간들,  나는 산 중턱에서 오름을 접고  철 늦은 울음을 울어야만 했다  (원무현·시인, 1963-) +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며 느끼고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시인, 1954-)              ◆ 이성선의 ´하늘 악기´ 외 + 하늘 악기 높은 하늘 중턱을 길게 이어져 떠가는 태백산맥 줄기 흐르는 강 하늘에 매놓은 악기줄 신이 저녁마다 돌아와 연주한다 일주일에 한 번 열흘에 한 번 저 높은 길에 내 발이 올라선다 내가 하늘 악기 위를 걸으며 그분 시간을 연주하는 날이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함구(緘口)  오래 산에 다니다 보니 높이 올라 먼데를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래 높은 데 오르다 보니 나는 자꾸 낮은 데만 들여다보고 내가 더 낮게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산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매사를 깊고 넓게 생각하며 낮은 데로만 흐르는 물처럼 맑게 살아라 하고 산이 가르쳤습니다 비바람 눈보라를 산에서 만나면 그것을 뚫고 나아가는 것이 내 버릇이었는데 어느 사이 그것들을 피해 내려오거나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올라갈 때가 많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낮은 데가 더 잘 보이고 내가 더 고요해진다는 것을 갈수록 알겠습니다나 나도 한 마리 미물에 지나지 않으므로 입을 다물어 나의 고요함도 산에 보탭니다  (이성부·시인, 1942-2012) +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며  세상을 건너는 법을 배웁니다  사무치는 바람소리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가는 소리 들어봅니다  세월의 찌꺼기 이내 바람에 부서집니다  바람소리에 폭우처럼 떨어지고  내 마음에도 부서져 폭우처럼 비웁니다  산을 둘러앉은  한줄기 내일의 그리움을 밟고  한줄기 그리움으로 산을 오릅니다  구름처럼 떠서 가는 세월 속에  나도 어느새 구름이 됩니다  소리 없이 불러 보는 내 마음의 내일  적적한 산의 품에 담겨  내 생각은 어느새 산이 됩니다  산을 오르며  내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되는 꿈을 꿉니다  홀로 서 있어도 외롭지 않을  산의 그리움을 배웁니다  (강진규·시인, 서울 출생) + 산을 오르는 당신  가슴 아픈  사랑의 열병  침묵으로 앓은 후  그대는 산을 올랐노라 했습니다  능선도 흐느끼는 길 따라  추억은 계곡에 버리고  미련은 소나무 가지에 걸어  이름 모를 산새 먹이로 주었노라 했습니다  모기의 흡혈 두려워  산을 멀리하던 그대의 변화  사랑의 아픔이  깊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대가 다녀간 높고 낮은 산  꺾어진 가지마다 걸어놓은 미련  아직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것은  산새들도 안타까워 먹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손희락·문학평론가 시인, 대구 출생) + 산울림 산에 올라  나무 그늘에 앉아 흐르는 땀을 훔친다. 먼 산을 바라보며 나를 보낸다. 야호~~~ 그 소리에 마음을 담아  멀리멀리 보낸다. 나를 떠난 소리는  마음을 헤아리기도 한 듯 산을 울려 다시 돌아온다. 산에 오를 때마다 정다운 대화를 나눈다. 풀, 나무, 돌, 바람, 새, 벌레, 햇빛, 구름,... 언제나 변치 않고 푸르름을 내뿜는 네가 한없이 부럽기만 하구나.  (허정虛靜·시인)  + 산에 가면 산에 가면 비바람만 불어도 서로서로 어깨를 다독여 주는 나무를 본다 산에 가면 뇌성벽력 요란해도 같이 비를 맞아 주는 바위의 묵묵함을 본다 철 따라 단장하는 산의 순한 세상은 천 년을 살고도 만 년을  늙지 않는 모습을 본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 가뻐 치부 속 깊은 숨 몰아쉴 때 우린 마음을 털어 산 속에서 만나는 이름 모르는 이들 덥석 손잡아 주진 못해도 반가운 인사로 복 지으며 천연스런 산이 되자 산에 가면 산에 가면 (혜유 이병석·시인) + 산 위에서 산 위에서 보면 바다는 들판처럼 잔잔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새싹처럼 솟아오르고 싶은  고기들의 설렘을. 산 위에서 보면 들판은 바다처럼 잔잔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고기비늘처럼 번득이고 싶은  새싹들의 설렘을. 산 위에 서 있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순한 짐승 그러나 너는 알 거야 한 마리 새처럼 날고 싶은  내 마음의 설렘을. (김원기·아동문학가, 1937-1988). + 등산·4 등산하는 목적을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하는 재미를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얻은 걸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남은 걸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다네.  (김원식·시인, 강원도 영월 출생) + 내려다보는 산  내가 산에 저 험한 산에 오르는 까닭은  눈빛, 그 서늘한 눈빛 때문이다  내가 산에 저 험한 산에 오르는 까닭은  모든 것의 등뒤를 비추는  그 서늘한 눈빛 때문이다  나의 이 장난 같은 일상 가운데  엄습해오는 그 눈빛  모든 것의 등뒤에 와  퍼부어대는 소나기 같은 눈빛 때문이다  내가 산에 저 험한 산에 오르는 까닭은  내려다보는 산은 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무산·노동운동가 시인, 1955-)   + 도봉산  굽이굽이  길다란 능선들의  저 육중한 몸뚱이  하늘 아래 퍼질러 누워  그저 햇살이나 쪼이고  바람과 노니는 듯  빈둥빈둥  게으름이나 피우는 듯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틈에  너의 온몸  연둣빛 생명으로  활활 불타고 있는가  정중동(靜中動)!  고요함 속  너의 찬란한 목숨  (정연복·시인, 1957-) + 산은 또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것 나는 인생이란 산맥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산맥에는 무수한 산이 있고 각 산마다 정상이 있다.  그런 산 가운데는 넘어가려면  수십 년 걸리는 거대한 산도 있고,  1년이면 오를 수 있는 아담한 산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정상에 서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한 발 한 발 걸어서 열심히 올라온 끝에 밟은 정상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그게 끝은 아니다.  산은 또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것.  그렇게 모인 정상들과 그 사이를 잇는 능선들이  바로 인생길인 것이다.  삶을 갈무리 할 나이쯤 되었을 때,  그곳에서 여태껏 넘어온 크고 작은 산들을  돌아보는 기분은 어떨까?  (한비야·오지 여행가, 1958-)     + 산으로 가는 마음  내 마음  주름살 잡힌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먼길을 떠나네.  산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고산식물들이 자라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신석정·시인, 1907-1974)    + 산에서·4 등산하는 목적을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하는 재미를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얻은 걸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남은 걸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다네.  (김원식·시인, 강원도 영월 출생) + 등산  숨이 목에 찬다  힘들어 땅만 보고 앞으로 앞으로  이 깔딱고개만 넘으면 하늘밑  높은 꼭지에 닿겠지  능선을 넘고 계곡에 닿으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의 인사  들꽃들의 미소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영의 팡파르 울리고  말하지 않아도  엉덩이 땅에 내려앉고  목에 찬 숨이 환희로  눈에는 초록빛 가득하고  코에는 풀향기 넘치어  막혔던 가슴 뚫어지니  이곳이 선경이로구나  생각하면 더욱 선경이 되고  몸을 감싼 땀은  한줄기 얼음 되어 기쁨을 뿌리는 찰나  또 다른 기쁨으로 들어가려  걷고 걷는 등산  환희요, 기쁨이요, 즐거움이 가득한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려니 (박태강·시인, 1941-) + 등산과 삶  산을 오를 때면  먼 정상을 바라보지 말라.  발끝만 쳐다보며  한발 한 발 내딛으라.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포기하고 싶어도  온 길을 생각하며  되돌아가지 마라.  오르다 지칠 때면  그 자리에 잠시 멈추라.  팔 다리에 힘이 솟고  의지는 되살아나리라.  산을 즐기며  산과 대화를 나누라  바람소리 새의 노래에  산과 하나가 되라.  삶이란 산을 오르는 일  언제나 가파르지만  저기 정상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박인걸·시인) + 동반자 산을 오르다 바위를 만났다  자일도 없이 올라야 하는 바위  가능과 불가능을 잠시 생각한다  통과해야 하는 길이므로.  가능에다 동그라미를 친다  바위를 눈으로 더듬는다  그의 빈틈과 상처가 보인다  빈틈의 크기와 상처의 깊이를  마음에 새긴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중엔 확실하게  그의 틈에 손을 넣는다  바위의 지문과 내 지문이 섞인다  온몸을 그의 상처에 댄다  그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그의 틈과 상처를 내 것으로 품는다  두 몸이 하나가 된 마음  가파른 길을 통과해 간다 (유봉희·시인) + 산길 한 사람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에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 거란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이성복·시인, 1952-) + 등산 길  짙푸른 물결 속 뚫고  햇살 굴러 이는  고운 숨결 일렁이는 산골  땀흘려 헐떡이다  산새들 몰려가는 길섶에 앉으니  나무와 나무 사이 누벼온 보람인가  짜릿이 감도는 수액의 몸살 파고들어  찌든 도시의 찌꺼기 사라지고  영혼의 눈시울에  가득히 출렁이는 순수의 날개  훨훨 깃을 친다. (곽병술·시인, 1929-)   + 산행법 山을 보고서는 사람의 말로 인사하지 말 것. 山은 산(生)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함.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서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山을 찾는 것이니까 山에 와서 세상 얘기를 해서는 안됨.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른 것은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임. 그럴수록 하느님 곁에 가까워지는 것. 그럴수록 삶을 가볍게 버릴 수 있음. 山行은 흙이 되는 연습임. 山을 보면 언제나 죽는시늉을 해야 됨. (박철·목사 시인) + 산행·2 이른 아침에는 나무도 우는구나 가는 어깨에 손을 얹기도 전에 밤새 모인 이슬로 울어버리는구나. 누가 모든 외로움을 말끔히 씻어주랴. 아직도 잔잔히 떨고 있는 지난날, 잠시 쉬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앞길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번 산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구 탓을 하랴. 등짐을 다시 추슬러 떠날 준비를 한다. 시야가 온통 젖어 있는 길. (마종기·시인, 1939-) + 도반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을 진 석양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알고도 애써 모른 척 밀어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이성선·시인, 1941-2001) + 산행  산이 그리워  산에 오른다  겨우내 뻥 뚫린 가슴  독아(毒牙)같은 꽃샘바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봄의 가슴 불지르는 진달래는  바위의 무심함을 탓하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산의 무심함에 나도 속상해  덩달아 눈 흘기는데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마다  산은 부끄러운 듯  한 섬 한 섬  앞가슴을 풀어헤친다  봉우리에 올라서야  산은 제 숨은 속살을 다 보이고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은 바다  진달래 위험한 향기에 취해  바위도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한다  (공석진·시인) + 산을 오르며  낮은 데서 바라보면  누가 저같이  높이 서고 싶지 않으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더라도 산꼭대기  작은 꽃보다 더 작은 우리  높이 더 높이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 올랐나  높이 올라가  더 높이 무엇을 세우려 하나  산 가운데  사람소리 울리지 않고  메아리만 저 혼자 되돌아온다  우리도 어차피  제자리로 올 것이지만  세상은  산꼭대기에 높이 선 사람의 편  엉거주춤 산 밑의 많은 사람들  나날이 오르면서  오르지 못하면서  산봉우리 오래 바라본다.  (천양희·시인, 1942-)   + 북한산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삶이 괴롭고 슬픈 날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정상에 이르러서야 사랑과 용서의 길 일러주지만 가파른 산길 오르다 보면 그 길이 얼마나 숨차고 벅찬 일인지 안다 돌아보면 내 걸어온 생의 등고선 손에 잡힐 듯 부챗살로 펼쳐져 있는데  멀수록 넓고 편해서 보기 좋구나  새삼 생각하노니 삶이란 기다림에 속고 울면서 조금씩 산을 닮아가는 것 한때의 애증의 옷 벗어 가지에 걸쳐놓으니 상수리나무 구름 낀 하늘 가리키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길 보챈다 (이재무·시인, 1958-) + 겨울 산행 하얀 세계 어느 누가 당신을  먼저 정복할 수 있을까? 따스한 손 기다리는  소리 없는 침묵 겨울 그리고 산 그 가운데 멈춰진 자리  바람만 인다 야호∼ 소리 한번 지르면 꺼지지 않는 분화구처럼 내 몸에서 번지는 하얀 열기 우주 어느 공간 머물 때 나는 정상에 서 있었다. (노태웅·시인)   + 산행기  때로는 시원한 때로는 절실한  울음을 쏟아내던 매미가  아이들에게 채집되고 있었다  울음으로 서까래 삼고  눈물로 등을 달았던  지난날 내 詩 또한,  표본 될 저 울음주머니처럼 간직할 가치가 있는가  묻고 물으며 산을 오를 때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절벽도 무엇도 아니었다  한 잔의 술도 한 숟갈의 밥도 아니었던 행간들,  나는 산 중턱에서 오름을 접고  철 늦은 울음을 울어야만 했다  (원무현·시인, 1963-) +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며 느끼고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시인, 1954-)     + 등산계명  5월이다  멀리서 여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얼마나 흐뭇한 현상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어느 한때의  유행성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무슨 놀이의 일종이나  아베크족 따위를 위해서 선택된  어떤 사치한 방법이 아니기를 원한다  봄이 충만한 산에 올라  봄의 정취를 맛보며  멀리서 찾아오는 여름을 기다리며  산의 엄숙, 정결, 자비,  대자연과 인생에 대한  계시와 교훈을 배우기로 하자  (김길남·시인, 1942-) + 등산  바람이다.  소금기 하나 없는 산바람, 신바람이다.  정상은 언제나  내 마음을 흔드는  팽팽한 그녀의 앞가슴  눈을 감을수록  사방은 황홀하게 피었다 지는  이름 모를 풀꽃 향기들의 수화.  문득 칡넝쿨이 몰고 오는 벼랑 아래로  폭포다.  뿌리 깊이 묻혀 있던  원시의 야성을 깡그리 일깨우는......  나는 더 이상  두 발로 걷는 인간일 수 없다.  돌이거나 나무이거나 산짐승이거나  숨이 벅찰 무렵부터  나는 이미 산의 일부로  치환되고 있는 것이리라. (임두고·시인, 1960-) + 등산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의 중량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 암벽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無明)의 벌레처럼 무명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벼랑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 (오세영·시인, 1942-) + 등산  오르는 것이 아니네  내려오는 것이네  굽이굽이, 두고 온 사연만큼  해거름 길어지는 산 그리메  막소주 몇 잔, 목젖 쩌르르 삼키듯  그렇게 마시는 것이네  거기 묵김치 같은 인생 몇 쪽  우적우적 씹는 것이네  지나 보면 세상사 다 그립듯  돌아 보이는 능선길  그게 즐거움이거든 (권경업·시인, 1954-)   + 등산  오른다.  탑보다 높이  빌딩보다도 높이  오를수록  가벼워지는  육신  정상  천국행 정류장에서  셔틀바람 타고  희열 만끽한다. (강신갑·시인, 1958-)   + 등산  산을 오름은  세속을 멀리하고자 함이다  더 높이 오르고자 함은  보다 멀리 바라보고자 함이다  어려운 고개도,  험난한 구빗길도  묵묵히 걸으며  자신과 말없이 씨름한다  새 소리, 바람 소리에도  새 힘이 솟는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의 먼지를 모두 씻어낸다  그래서 내 몸도 내 마음도  어느 사이 초록 빛깔이 된다  반드시 정상이 아니라도 좋다  종주거나 횡단인들 누가 탓하랴  산 속에서 산의 정기를 받고  산의 호연지기를 배워  인생을 성실하게, 겸손하게  그래서 모든 세상사를 순탄하게  이끈다면  여기에 무엇을 더 바라랴  산을 오름은  교만을 버리려 함이다  인내를 배우고자 함이다  보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자 함이다  마침내는  산을 닮아  산과 내가 하나 되고자 함이다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登山(등산)  내가 산을 오른다. 이밥일래 보리밥일래  풀 여름을 까고 노는  아이들의 냇둑 들판도 지나서  산을 오르고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오솔길 샘솟는 물을 마시면서  꽁지를 까딱이면서 나는 새들 찌르레기 소리조차 산을 흔드는  오존 그득한 오솔길. 길이 아닌 데로 오르다가  가시덩굴에 긁힌 사람 때로는 넘어지고 절뚝거리면서  숲 속으로 뻗쳐 내리는  햇살의 건강으로 회복되면서  또 오르고 오르는 산 집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세상은 약 떨어진 아편쟁이처럼  발아래 다소곳이 엎드려 있고  머리 위에 빛나는 태양 하늘이 거기 있다.  우두자국처럼 떠 있는 흰 구름 하늘이 나를 부르고 있다. (최진연·시인, 경북 예천 출생) + 등산 한 발 한 발 무거운 발걸음  자국마다 살아온 생각 밟고  올라온 능선을 뒤따라온  바람이 솔잎 흔들어 지우는데  가슴 열어 침묵하고 앉은 산아  옹이져 맺힌 삶  너의 품에 안겨서야  헐떡이며 가빠오는 숨 내쉬고  평정을 되찾는다  이제까지 지고 온 무거운 고달픔  산아래 내려놓고 정상에 올라  숲 속 풀내음에 고단함을 씻어내려  마음 속 비워놓고 앉아 있는데  하얗게 산허리에서 피어오르던 안개  산은 하늘이 되어  나는 구름 타고 앉은 신선이 되었구나  (박옥하·시인)   + 등산  고요가 좋아  푸름이 좋아  (그래 바위도 좋아)  그저 그냥  자꾸만 위로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어디서부턴가  어디론가  길이 있었다...  한 걸음도 좋고  반걸음도 좋았다  오르고 또 올라가면서  한 개씩  반 개씩  씁쓸한 삶의 기억들을 버려가면서  시간이 어디선가 주저앉아 쉬고 있어도  그저 올라가면서  나를 잊어가면서...  구우구 어디선가 산비둘기 울고  까아까 어디선가 산까치도 날고  어디선가 향긋이 꽃내음이 불었다. 아주 진하게  아아 산이었다. 산이 있었다  푸르고 고요한 산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시간은 어디로 갔지?  나는 어디로 갔지?  그저 웃는다...  어느 날인지  하늘은 티없이 맑은데  오직  산이 있었다  고요한  푸른  높이 솟은  과묵한 산이 하나 있었다  산이...  (이수정·시인) + 등산의 즐거움  산에 오르는 즐거움은 인생살이처럼  정상에만 있지 않다 어떻게 느끼며 오르내리느냐에 있다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겸손하고 조용한 자세로 말馬을 올라타야 한다 앙상하게 드러난 뿌리를 밟을 때 나무의 신음소리를 들어보고 나무 하나 바위 하나를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살결에서 생명체를 인식한다 나무들이 내뿜은 신선한 공기를 통째로 들이마시며 다람쥐와 산새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좋아하는 그들의 느낌을 나눠본다 계곡물을 보며 핏줄에 흐르는 피를 느껴보고 산오름 바람을 맞아 콧구멍을 크게 벌린다 맨발로 흙을 딛고 서서 나도 나무가 되어 본다 고요한 산의 침묵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산꽃들과 눈을 맞대어 보고 산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산이 된다 이것이 산에서 만든 나의 행복이다. (차영섭·시인) + 산을 오르며 우람한 산 앞에 서면 나의 존재는 얼마나 작은가! 겸허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도 가끔은 교만이 고개를 치켜드는 아직도 많이 설익은 나의 인생살이를 산은 말없이 가르쳐 주지. 높음과 깊음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 깊숙이 내려앉기 위해 가파르게 오르는 아름다운 삶의 길을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말없이 산은 내게 이야기하지.  (정연복·시인, 1957-)                     산을 오르며                             - 도종환 -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979    <동그라미> 시모음 댓글:  조회:4084  추천:0  2015-04-17
  박두순의 '둥근 것' 외  == 둥근 것 ==   둥근 것은 곱다. 이슬 눈빛이 곱고 빗방울 속삭임이 곱다.  둥근 것은 향기롭다. 모난 과일이 어디 있나 맛이 향기롭다. 둥근 것은 소중하다. 땅덩이도, 해도 별도 달도 둥글다. 씨앗도 둥글다 잎과 꽃과 뿌리까지 품으려니. 사랑스런 널 보는 눈이 둥글다. 네가 나를 용서할 때의 웃음도 둥글었다. (박두순·시인, 1950-) == 공은 둥글다 == 배고파 우는 아이야 무서워 우는 아이야 그만 눈물을 닦고 우리 축구를 하자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즐겁다 해는 저물고 돌아가는 집안에 빵은 없어도 공은 둥글다 지구는 둥글다 우리 눈물은 둥글다 우리 내일은 둥글다 (박노해·시인, 1958-)   == 둥굴레 ==  살아가는 일에 자꾸만 모가 나는 날은  둥근 얼굴로 다소곳하게 고개 숙인  너에게로 살금살금 다가서고 싶다  더 둥글게 열려있지 못해 우리 사이에  꽃을 피우지 못했던 날을 생각하면  마음은 계곡처럼 깊게 파인다.  잎을 꽃처럼 달고 사랑을 기다려보지만  내게는 바람 부는 날이 더 많았다  아직 내 사랑에는 모가 나있는 날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꽃을 잎처럼 가득 차려 두기 위해서는  내 사랑이 더 둥글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우리 서로 꽃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김윤현·시인, 1955-) == 둥근 길 ==  경주 남산 돌부처는 눈이 없다 귀도 코도 입도 없다 천년 바람에 껍데기 다 내주고  천년을 거슬러 되돌아가고 있다 안 보고 안 듣고 안 맡으려 하거나  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천년의 알맹이 안으로 쟁여 가기 위해 다시 천년의 새 길을 보듬어 오기 위해 느릿느릿 돌로 되돌아가고 있다 돌 속의 둥근 길을 가고 있다 새 천 년을 새롭게 열기 위해 둥글게 돌 속의 길을 가고 있다 (이태수·시인, 1947-) == 마음이 새고 있다 ==  꽉 조여지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차랑한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서 동그랗게 풍경을 담아낸다  아침부터 마음이 새고 있다  마음이 새고 있는 거기  맺혀서는 똑 떨어져  아슬아슬 건너오는 먼 풍경  쟁그랑 챙  아침 밥상 위에  식구들 숟가락 놓는 소리, 동그랗다 (강인한·시인, 1944-) == 둥근 자세 == 둥글게 스민다는 말이  소리 없이 울고 싶은 자세라는 걸 바다에 와서 알았다 둥근 수평선, 모래에 발을 묻고  둥근 흐느낌으로 울다가 스미는 파도, 나는 왜 당신의 반대편으로만 자꾸 스며 갔을까 내 반대편에서 당신은 왜 그토록 지루하게  둥근 원을 그리며 나에게로만 스민 빗물 보내왔을까 파도가 대신 울어주는 바닷가에서 둥글게 스민다는 말이 혼자 우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대신하여 울던 당신이 어두운 곳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는  오래오래 혼자 울던 당신이 이른 저녁 눈썹달로 떴다 울고 싶은 자세로 둥글게 떴다 세상은 울고 싶은 자세로 몸을 웅크리다가 둥글어졌을 것이다 수평선이 저렇게 둥근 것처럼 나를 비춰왔던 울음도, 나에게 스미어 왔던 당신도  수평선처럼 둥근 자세였다 멀리 떨어져야 잘 볼 수 있었다 헤어짐이 끝없기 때문에 사랑도 끝없다고 당신은 말한다 둥근 눈물로 혼자 말한다 (강미정·시인, 경남 김해 출생) == 둥글다 == 햇살이 비스듬한 저녁, 전철역 좌판할머니 등이 둥글다 검정비닐봉지를 건네는 손등 관절 꺾인 무르팍도 둥글다 나물 봉지를 받아든 손 덩달아 둥글다 골목길, 이끼 낀 담장, 털 곤두세운 고양이의 발톱, 낡은 목제의자에 몸을 내맡긴 노인, 맨드라미, 분꽃, 제라늄, 세발자전거… 오래 전부터 둥글다 한 줄기 쏟아지는 소나기 그 빗줄기 속을 뛰어가는 배달꾼의 뒷모습 일제히 쳐다보는 눈길들 모두 둥글다 (박해림·시인) == 동그라미 ==  너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동그라미 같아  오늘밤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저 보름달처럼 어느 한 구석 모나지 않은 사람 얼굴도 호박처럼 둥글  마음도 쟁반 같이 둥글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늘 순한 느낌을 주는 너 너의 모습을 살며시 훔쳐보며 나도 이 밤 문득  동그라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정연복·시인, 1957-)
978    <자연> 시모음 댓글:  조회:4186  추천:0  2015-04-17
    정연복의 '자연에 살다' 외  + 자연에 살다 흙에서 왔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누구라도 큰 자연의 일부인 것.    하늘 아래 땅 위를 걸으며 맑은 공기도 거저   얻어 숨쉬고 햇빛 달빛 별빛 쬐고 눈비 맞고 이슬에도 젖으며 바람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 파도소리 듣고 산이나 들판의 너른 품속에 들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쉬며  그뿐이랴 철 따라 꽃구경  단풍구경도 하면서 폭풍우 뒤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고단한 삶의 위안도 얻고  지는 꽃 떨어지는 낙엽에  슬며시 눈물 한 방울도 훔치며 한 그루 나무처럼 자라나고 또 늙어가면서 한세월 구름 흐르듯 살다가  한 점 노을로 지는 거지 고분고분  자연의 품에 안기는 거지. + 자연의 말 생을 따분해하지 말아요 인생은 참 짧아요. -하루살이 살아 있음이 희망이지요 눌 푸른 희망을 품고 살아요. -초록 이파리 남들이 몰라줘도 서운해 말아요 당신은 당신 모습 그대로 아름다워요. -들꽃 눈물이 마르지 않도록 해요 맑은 눈물은 생명을 싱싱하게 해요. -이슬방울 나는 그냥 가만히 있어요 그런데도 좋은 일을 많이 해요. -하늘 생각은 깊게 마음은 넓게 해요 그러면 거센 파도도 담을 수 있어요. -바다 뜨겁게 살고 뜨겁게 사랑해요 그리고 미련 없이 떠나요. -노을. + 자연의 말 산은 말이 없다 천년 만년 한마디 말없다 강물은 흐른다 말없이 유유히 흘러간다 하늘에 흰 구름 떠간다 그냥 고요히 떠간다 꽃은 피고 진다 철 따라 조용히 피고 진다. 이렇게 자연은 아무런 말이 없는데 사람같이  수다 떠는 법이 없는데 가만히 귀기울이면 자연이 속삭이는 말이 들려온다. + 자연과 사람 꽃이 철 따라 피고 지듯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자연의 일이다.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면 삶도 죽음도 겁낼 게 없다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니까 욕심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는 거다.  자연과 친해지면 삶이 평안하고 자유롭다 자연과 멀어지면 삶이 불안하고 옹졸해진다. 사람은 자연의 품안에서 참 사람다워진다 자연을 등지고 외면하면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 자연과 사람 나무는 사람이 없이도  꽃 피고 열매 맺을 테지만 사람은 나무가 없으면  숨막혀 죽을 거다. 강물은 사람 없이도  영원토록 유유히 흘러가련만 사람은 강물이 없으면  얼마 못 가서 전멸할 거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와 숲은 사람 없이도 건재하겠지만 그것들이 없으면 사람은 결코 살아남지 못할 거다. 이렇게 자연은 말없이 사람보다 강하고 영속한다 이래저래 사람은 자연의 은덕으로 살아가는 거다 자연은 사람의 고마우신 어머니 인간 생명의 젖줄이다. + 자연의 마음 하늘같이 넓고 맑은 마음 땅같이 온유하고 거짓 없는 마음 산같이 의연하고 넉넉한 마음 바다같이 깊고 큰 마음 호수같이 잔잔하고 투명한 마음 나무같이 고요하고 여유 있는 마음 꽃같이 순하고 고분고분한 마음 바람같이 자유롭고 막힘이 없는 마음 + 그냥 살아간다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 사시사철 늘 그 자리 가만히 있는 산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 철 따라 한결같은 모습으로 피고 지는 꽃 안달 떨지 않고 소란 피우지 않고 꼭 무슨 일을 이루겠다는 야망도 욕심도 없이 특별한 일없이  그냥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데도 조금도 밉지 않다 게으름뱅이 같지 않다
977    <하루살이> 시모음 댓글:  조회:3947  추천:0  2015-04-17
     하루살이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다 죽습니다.  하루가 하루살이의 일생입니다.  하루의 하루살이가 되기 위해  물 속에서 천 일을 견딥니다.  그 동안 스무 번도 더 넘게 허물벗기를 합니다.  천 일 동안 수많은 변신을 거듭하다  하루살이가 되면 하루를 살다 죽어버립니다.  하루를 살기 위해 천 일을 견디는 하루살이.  그것이 하루살이의 운명입니다.  (천양희·시인, 1942-) + 화끈하게 살다가 - 하루살이     화끈하게 살다 화끈하게 죽고 싶다  하루를 살아도 무아지경에서 살고 싶다  사랑 교미 출생 그리고 성장  추광성趨光性에 끌려  가로등을 들이받으며 춤을 추다가  이른 새벽 죽어 버린 하루살이  불에 뛰어들어 태워 버린 육신  부검剖檢하지 말라  시신에 손을 대지 말라  (이생진·시인, 1929-) + 인생과 같다 - 하루살이  인생은 초로  초로 같은 인생 하듯이  하루살이도 그렇게 말했다  'Ephemera'라는 학명은 희랍어로 짧은 생명이라는 말이다  만일 지금이라도 조물주가 하루살이에게 무엇이 되겠느냐고  다시 묻는다면 하루살이가 되겠다고 하지 않을 거다  조물주는 아무에게도 '너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지 않았다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탄생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일까  하루살이 역시 하루보다는 이틀을 살고 싶어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열 번 스무 번 아니 서른 번 껍질을 벗어가며  무엇이 되려고 이러나했는데  겨우 반나절  짝짓기 한번하고 가라 하는구나  하긴 길게 살아도 별 의민 없다  인생은 짧은데서 더 짜릿함이 있을 수도  더러는 인생이 길다고 푸념하는 이도 있더라  (이생진·시인, 1929-) + 하루살이  살펴가세요.  하루치의 사랑이 끝났습니다.  연속되는 게 어렵고 끝내 없다는 게 사는 거고 보면  우리들 사랑은 해를 따라 운행시키는 게  적절하고 지혜롭습니다.  그럼 사랑이 하루살이냐, 사는 게 하루살이냐  그렇게 붕붕거리며 화만 내지 마시고  하루살이처럼 간절하게 살 수만 있다면  하고, 마음 가슴 날개로 퍼덕거려 보십시오.  사랑이 얼마나 간절히 해 밝아오르고  얼마나 눈물겹게 달 지고 죽는 것인지  매일로 새롭게 깨닫게 된다면  우리 만남은 만년의 사랑입니다.  우리 사랑은 억년의 삶입니다.  (김하인·시인, 1962-) + 하루살이  근심 걱정을 떨치고  임종의 일각까지  허허한 공간에 바람을 보탠다.  자정은 촌음寸陰으로 저무는데  전기불빛 환희를 누리기 위해  이 밤사 목숨토록 날개를 저어왔다.  가소로운 인간의 눈초리를  무의식에 넘기고  주어진 생을 아깝지 않게 살다 간다.  하루의 생을 80년보다 후회 없이  비록 오늘 태어나  오늘 죽을 지라도  광명을 행해 날아오는 희망이 있었다.  날개 부러진 시체 속에  썩지 않는 희망의 영혼을  남기고 간다.  (김순진·시인, 1961-) + 하루살이 덕분에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시려는데  물그릇엔 하루살이 한 마리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물그릇에 빠졌느냐  벌컥벌컥 마시고 싶지만  하루살이 때문에  하루살이 후후 불며  하루살이 덕분에  체하지 않고 천천히  목은 축축해지며  하루살이 후후 불어가매  물그릇엔 파도가 출렁이고  하루살이 이리저리 떠밀리며  물을 마시매  체하지 않고 천천히  목은 축축해지며  물을 다 마신 하루살이  죽었다  죽은 하루살이 후후 불며  물 한 모금 더 마시려는데  물그릇엔 하루살이 또 한 마리  (차창룡·시인, 1966-) + 요약  모든 일은 시작하는 순간 반으로 요약된다  배부름은 첫 술에 요약되어 있다  어떤 술도 그 맛은 첫잔과 마주한 사람이 나누어 좌우한다  귀뚜라미는 소리로서 그 존재를 간단히 요약한다  평행한 햇살을 요약하여 업은 잎사귀 하나 아래로 처지고 있다  방향은 가늘게 요약되어 동쪽은 오로지 동쪽임을 묵묵히 담당한다  요란한 것들을 집합시켜 보면 사소한 것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물질은 한 분자에 성질을 전부 요약하여 담는다  한 방울 바닷물이 바다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  서해는 서해를 찾아드는 모든 강의 이름을 요약한다  목숨은 요약되어 한 호흡과 호흡 사이에 있다  파란만장한 생애는 굵고 검은 활자로 요약되어 부음란에 하루 머무른다  하루살이는 일생을 요약하여 하루에 다 산다  너는 모든 남을 요약하여 내게로 왔다  (이갑수·시인, 1959-) + 하루살이 어제는  아득히 사라지고 없다 내일은  까마득히 알 수 없다 오늘 이 순간만이 나의 것 아직은 가냘픈  날숨과 들숨이 오가는  지금 이 찰나만이 내 목숨의 시간 한치 앞도 기약할 수 없는 나는   하루살이도 채 못 된다 (정연복·시인, 1957-)    * * *   선의 열매를 맺기 전에는  선한 사람도 이따금 화를 입는다. 그러나 선한 열매가 익었을 때에는  선한 사람은 복을 입는다...      
976    <흙> 시모음 댓글:  조회:3886  추천:0  2015-04-17
문정희의 '흙' 외  + 흙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정희·시인, 1947-) + 깊은 흙 흙길이었을 때 언덕길은 깊고 깊었다 포장을 하고 난 뒤 그 길에서는 깊음이 사라졌다 숲의 정령들도 사라졌다 깊은 흙 얄팍한 아스팔트 짐승스런 편리  사람다운 불편 깊은 자연 얇은 운명 (정현종·시인, 1939-) + 갈퀴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 속 파고들 때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  눈 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  슬슬 제 살처럼 긁어 주고 있을 것이다  또 그걸 알고 으쓱으쓱 우쭐우쭐 맨머리 새싹은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다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 주는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  갈퀴를 만나 진저리 치는 저 살들의 환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사는 동안 가려워 갈퀴를 부른다  (이재무·시인, 1958-) + 사랑의 초상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의 사랑엔  늘 흙이 묻어 있다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단단히 뭉쳐진 흙덩어리들  머뭇거리며 서로, 손을 찾아 더듬는  어여쁜 몸짓에도 흙냄새가 난다  흙 묻은 사랑으로 사람들은  서로의 흙에 흙을 섞으며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고  만남은 만날수록 모자란다고  그리움은 그리울수록 그립다고  가슴 깊이, 흙 묻은 사랑을 걸어  눈물 젖은 손으로 서로를 쓰다듬지만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는 뿌리  도리 없는 슬픔  지상은 왜 이리 깊은 것이냐  그대,  몸을 더듬을 때마다 더욱 깊어지는  흙의 향기. (윤은경·시인, 1962-) + 한 삽의 흙  땅을 한 삽 퍼서 화분에 담으니 화분이 넘친다  한 삽의 흙이 화분의 전부인 것이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물을 먹고 있는 화분을 지켜보았다  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한 송이 꽃이었다 꽃에게는 화분이 전부였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한 삽의 흙이면 충분했다  우리가 한 삽의 흙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동요를  따라 부르던 시간,  열이 난 이마에 올려놓은  어머니의 손 그녀가 내게 전송해준, 두 개의  귤 그림  떨어져 있어도 함께한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짧은 문자 메시지들  그것들은 신이 미리 알고 우리 속에 마련해 놓은  화분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 속에서 꽃 피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하상만·시인, 1974-) + 흙 묻은 손   내가 사는 아파트 가까이  버려진 땅을 일구어 사람들은 밭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촘촘히 뜨개질을 하듯  심은 옥수수와 콩과 고추들.  꿀벌이 날아와 하늘로 꽁지를 치켜들고  대지의 꿀을 빨아들이고,  배고픈 새들은 내려와  무언가를 쪼아먹고 간다.  아파트 불빛처럼 외로운 사람들은  제 가슴의 빈터를 메우듯  호미를 들고 와 흙을 북돋워주고 풀을 뽑는다.  옥수수 잎에 후드득 지는 빗방울은  사람들의 핏방울로 흐르고,  저녁에는 푸른 별 같은  콩이 열린다.  흙 묻은 손으로  옥수수와 콩과 고추와 나누는  말없는 따뜻한 수화.  사람들의 손길 따라  흙은 순한 사람의 눈빛을 띤다.  사람들은 흙 묻은 손으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가을이면 흙에서 태어난 벌레들은  식구들의 옷을 기우고 박음질하는  재봉틀 소리로 운다.  슬프고 외로울 때면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는 사람들.  겨울에는 시리고 외로운 무릎을 덮는  무릎덮개처럼  눈이 쌓인다.  사람들이 일군 마음의 밭에 (이준관·시인, 1949-) + 그때엔 흙에서 흙냄새 나겠지  가야지 어서 가야지  나의 누추함이  그대의 누추함이 되기 전에  담벼락 아래 까맣게 영그는 분꽃씨앗  떨어져 구르기 전에  꽃받침이 시들기 전에  무엇을 더 보탤 것도 없이  어두워져가는 그림자 끌고  어디 흙 속에나 숨어야지  참 길게 울었던 매미처럼  빈 마음으로 가야지  그때엔 흙에서 흙냄새 나겠지  나도 다시 예뻐지겠지  몇 겁의 세월이 흘러  그대 지나갈 과수원길에  털복숭아 한 개  그대 내 솜털에 눈부셔하겠지  손등이 자꾸만 따갑고 가려워져서  (나희덕·시인, 1966-) + 근황 이후 요즈음 흙과 노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목젖을 씰룩거리며 꿀떡꿀떡 단비를  빨아대는 흙의 모습은 볼때기라도 한줌 꼬집어주고 싶도록 귀엽다 포실포실 분가루 날리는 엉덩이도 예쁘고 쌔근거리는 숨소리도 예쁘고 단내가 베어있는 불그레한 귓부리도 예쁘다 저에게 조금만 관심을 보이고 예뻐해 주면  좋아라 방실거리며  더 실한 것 더 좋은 것으로 되돌려 주고 싶어하는 의젓하고 대견한 녀석 은혜도 사랑도 입 싹 닦고 고개 돌리면  그만인 세상에 은혜를 은혜로 아는 정직한 녀석 가꾸고 꾸미지 않은 나를 땀으로 얼룩진 나를 더 좋아하는 (이섬·여류 시인, 대전 거주) + 흙의 이민 고사리는 산에서 밭으로 옮겨 심으면 삼 년 지나야 새순을 낸다 마흔여덟에 일흔을 바라보는 어머니 똥구멍을 물고 산밭에 따라갔다가 들은 말이다 어머니 손 안 간 흙이 없고 풀 없어서 손님처럼 서 있다가 '적응하느라 그렇겠지요' 한마디 뱉은 것이 실수였다 아이다 옛날 흙을 몬 잊어서 그런 기다 잊는다? 삼 년 전 그 흙이 고사리를 놓지 못하고 자기 살점 묻혀 떠나보낸 것 산 흙이 밭 흙과 만나 교통할 때까지 밭 흙에게 어색했던 일 반쯤이나 잊는 데 삼 년 걸린단다 집안의 형님 일가족이 미국 이민을 갈 때 고향 흙 한 줌 담아 갔다고 한다 유리병에 담긴 그 흙은 형의 후손에게 내력으로 남겠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형벌에 갇힌 것이나 아닐까 어떨 때는 사람보다 흙이 더 아플 때가 있다 (박형권·시인, 1961-) + 흙·81 - 어울려 산다 소나무, 참나무, 아카시아, 매화나무, 개나리, 생강나무‥‥‥ 억새, 쐐기풀,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양지꽃, 엉겅퀴, 띠‥‥‥ 하늘이 정해 준 자리에서 아무하고나 어울려서 참 마음 편하게 산다. 햇살도 나누고 목마를 때 내리는 빗방울도 나누어 먹는다. 더 많이 받으려고 다투지 않는다. 키가 크다고 뽐내지도 않고 키가 작다고 주눅들지도 않는다. 모양이 못났다고, 색깔이 예쁘지 않다고, 냄새가 아름답지 않다고 남의 것 흉내내지 않는다. 저만 못하다고 남을 얕잡아 보지 않는다. 저마다 생긴 대로 정해진 자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산다.   (전영관·시인, 충남 청양 출생)
975    <새> 시모음 댓글:  조회:4067  추천:0  2015-04-17
    남진우의 '새' 외 + 새   새는 그 내부가 투명한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물거품처럼, 부서짐으로써 스스로의 나타냄을 증거하는 새는 한없이 깊고 고요한, 지저귐이 샘솟는 연못과 같다 (남진우·시인, 1960-) + 작은 새  나무와 나무 사이 앞산과 뒷산 사이도 딱 한 걸음 신날 땐 하늘을 건너는 데도 단 한 걸음 (성명진·시인, 1966-) + 너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 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 (피천득·수필가) + 새들은 가볍게 하늘을 난다  파란 하늘에서  깃털 하나가 내려온다.  두 손을 모두어  깃털을 받는다.  작은 내 손 안에  포근히 내려앉는  깃털.  실바람처럼  가볍다.  가벼운 것일지라도 새들은  가끔씩 깃털을 버리는가 보다.  버릴 것은 버리면서  가볍게  하늘을 나는가 보다.  (권영상·아동문학가, 1953-) + 나무와 새            나무가 무슨 말로 새를 불렀길래 새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을까? 나무가 새에게 어떻게 해 줬길래 새가 저리 기분이 좋아 날개를 파닥이다가 짹재그르르 짹재그르르 노래 부를까? (이상문·아동문학가) + 새에게 새야, 너는 좋겠네 길 없는 길이 많아서, 새 길을 닦거나 포장을 하지 않아도, 가다가 서다가 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좋겠네. 높이 날아오를 때만 잠시 하늘을 빌렸다가 되돌려 주기만 하면 되니까, 정말 좋겠네. 길 위에서 자주자주 길을 잃고 길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길이 너무나 많은 길 위에서 나는 철없이 꿈길을 가는 아이처럼 옥빛 하늘 멀리 날아오르는 네가 부럽네. 길 없는 길이 너무 많은  네가 정말 부럽네. (이태수·시인, 1947-) + 새는 너를 눈뜨게 하고 이른 새벽 도도새가 울고 바람에 가지들이 휘어진다 새가 울었을 뿐인데 숲이 다 흔들 한다 알을 깨고 한 세계가 터지려나보다 너는 알지 몰라 태어나려는 자는 무엇을 펼쳐서 한 세계를 받는다는 것 두근거리는 두려움이 너의 세계라는 것 생각해야 되겠지 일과 일에 거침이 없다면 모퉁이도 없겠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는 일이라고 저 나무들도 잎잎이 나부낀다 어제는 내가 나무의 말을 들었지 사람은 나뭇잎과도 같은 것 잎새 한자리도 안 잊어버리려고 감미로운 숲의 무관심을 향해 새들은 우는 거지 알겠지 지금 무엇이 너를 눈뜨게 하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천양희·시인, 1942-) + 나무를 낳는 새  찌르레기 한 마리 날아와 나무에게 키스했을 때 나무는 새의 입 속에 산수유 열매를 넣어 주었습니다. 달콤한 과육의 시절이 끝나고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바람이, 떨어진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싹을 틔워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그렇듯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새떼가 날아갑니다 울창한 숲의 내세가 날아갑니다.     (유하·영화감독 시인, 1963-) +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여기 와 보면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에 바다를 가두고 사는 까닭을 안다 바람이 불면 파도로 일어서고 비가 내리면 맨살로 젖는 바다 때로 울고 때로 소리치며 때로 잠들고 때로 꿈꾸는 바다 여기 와 보면 사람들이 하나씩 섬을 키우며 사는 까닭을 안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 잎이 지고 눈이 내리는 섬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별빛을 닦아 창에 내걸고 안개와 어둠 속에서도 홀로 반짝이고 홀로 깨어 있는 섬 여기 와 보면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꿈의 둥지를 틀고 노래를 물어 나르는 새 새가 되어 어느 날 문득 잠들지 않는 섬에 이르러 풀꽃으로 날개를 접고 내리는 까닭을 안다. (이근배·시인, 1940-) + 참새가족과 홈리스  장마가 그치자 참새들이 고압전선 줄에 나와 앉아 깃털을 말린다 대도시의 참새들에게  최적의 보금자리는 최고급 아파트는  고압변압기였던가  옆집 앞집 온종일 켜놓은  케이블 TV와 냉장고, 컴퓨터 덕분에  일년 사시사철 돌아가는 전류 덕분에  등허리가 따사로워 행복감에 젖는 참새들 서대문 구치소 앞 눅눅한 잔디밭에 텐트를 친 홈리스들이 깃털 사이로 부리를 들이밀고 서로를 긁어주는  참새가족을  오래도록 지켜본다  (김금용·시인, 서울 출생) + 새  까만 새벽을 깨우는  너 어스름 저녁을 잠재우는 너 이렇게 하루는 너로 피고 진다. 한 줌이나 될까 작은 체구 부지런한 날갯짓 무척 피곤도 하련만  나뭇가지에서  한숨 고르고 나면 다시 허공으로  총총 떠나는  쉼없는 흐름 속 자유의 비행  너는 정녕  바람의 딸이렷다 (정연복·시인, 1957-)
974    <개나리> 시모음 댓글:  조회:4234  추천:0  2015-04-17
  개나리 처녀   개나리 우물가에 사랑찾는 개나리처녀 종달새가 울어울어 이팔청춘 봄이가네 어허야 얼시구 타는가슴 요놈의 봄바람아 늘어진 버들가지 잡고서 탄식해도 낭군님 아니오고 서산에 해지네   석양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개나리처녀 소쩍새가 울어울어 내얼굴에 주름이 가네 어허야 얼시구 무정구나 지는해 말좀해라 선황당 고개너머 소모는 저목동아 가는길 멀다해도 내품에 쉬려마 개나리      이해인   눈웃음 가득히  봄 햇살 담고 봄 이야기  봄 이야기 너무 하고 싶어 잎새도 달지 않고  달려나온  네 잎의 별꽃  개나리꽃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길게도 늘어뜨렸구나 내가 가는 봄맞이 길 앞질러 가며 살아 피는 기쁨을 노래로 엮어 내는 샛노란 눈웃음 꽃 개나리 꽃대에      나태주      개나리 꽃대에 노랑불이 붙었다. 활활.  개나리 가늘은 꽃대를 타고 올라가면  아슬아슬 하늘 나라까지라도 올라가 볼 듯 …  심청이와 흥부네가 사는 동네 올라가 볼 듯 … 개나리      전병철   병아리떼 다 어딜 가고  부리만 오밀조밀하게 모아서  꽃을 만들고  모양과 크기가 변함없는 형태로 마주서서  서로를 위로하고 토닥거려 주면서  하늘을 우러른다. 개나리     장수남   삼월. 봄이 왔네.  어제저녁 꽃샘추위 안달하더니. 이른 새벽 수줍은 노란 저고리  새색시 모셔왔네. 아침햇살 창문 열면   개나리 노란 옷고름. 이슬 한 잎   손 끝. 여민 가슴 푼다네. 개나리      이문조   나리 나리 개나리  노오란 개나리 봄 나라의 대표선수  노오란 운동복의 개나리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  개나리 다닥다닥 붙은  앙증맞은 꽃 무리  노오란 꽃 덤불 봄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꽃  전혀 까탈스럽지 않은 꽃  개나리 그러기에  너에게  정이 많이 간다. 개나리      류정숙   입춘이 몰고온  노란 제복의 합창단 방울종이 울리면  얼었던 가지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버들강아지 기어나와  눈 대신 귀를 키워  귀동냥으로 종소리 듣고  수직으로 뚫렸던  골목이  노랗게 휘어든다. 개나리      유소례   너의 창 밑에 파수병 되어  죽은 듯 살아 있는  마른 몸 하나  배반을 모르는 순종의 눈빛  봄을 알리는  척후대로 진치고 있다 부대끼는 허리  입술 깨물던  어젯밤의 통증은  나를 버리고 나를 일으키는  헌신의 다짐인가! 이른 아침  사열하는 사열대에  조롱조롱 부리를 벌리고  "봄이 왔어요"  외치는 소리가  노랗게 퍼져간다. 개나리       남경식   따스한 봄볕에 개나리  길가로 목을 내어 한 무더기 아이들과  해맑게 탄성을 지르며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개나리 피는 곳은  항상 따뜻하고 화사하여  그곳엔 열정과 환희와  모든 이의 사랑이 함께 머문다 재민이와 바다와  하늘이와 보람이와  그리고 여드름 닥지닥지 영근  선주의 꽃으로 피어난다 다시 보는 오래된 벗처럼  그렇게 함박웃음으로 노랗게  찾아왔고 내년에도  나와 너와 그와 또다른 모든 이들의 꽃으로  화사하게 환생하리라  사랑과 희망의 꽃이여. 개나리     정세훈 개나리가  창끝이 되어  내 동공으로 파고듭니다. 잠들지 말라고  깨어 있으라고  예수처럼 오고야 말  봄날을 위하여 예비하라고 후미진 울 밑으로부터  녹슨 공장 울타리를 타고 올라와  날카롭게 내 허기진 노동을 재촉합니다. 하품 나는 졸리운 삼월에. 개나리     정재영    겨우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빈혈기 가시지 않아  어지러움만 더하고 아직도 찬바람에  헛기침만 해대는 강가는 살얼음인데 황달기로 누렇게 뜬  영양실조의 얼굴. 개나리    손정모 언 땅에 물기가 돈다  몇 달을 고행(苦行)했다.  너는 먹먹한 설움을 털어 내며  햇살이 적요로이 조는 양달에서  앙상한 몸뚱이로 기를 뿜어낸다  솔잎이 드러눕고 달빛이 일어선다  솔잎에 매달려 며칠 동안을  하얗게 떨며  들려주던 바람의 목소리 이제 넌  두렵더라도  몸을 열 때가 되었어 목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푸른 바람결에 떠밀려  아뜩한 현기증에 몸을 떨던 너  어느새 아랫도리의 힘이 풀리면서  펑펑펑  하늘을 향해 기포들처럼 터지는  샛노란 바람구멍 서울의 개나리     손석철   서둘렀습니다  매연과 턱밑까지 깔린 아스팔트 열기  소음과 아귀다툼  빈부와 노동과 땀 서러움과 분노와  숨이 막혀 빨리 꽃잎을 내보냈습니다 개나리꽃     권성훈 가꾸지 않아도  우리보다 먼저 와  들녘에서 기다려주는  개나리  지난겨울 너무 추워  별빛 내려와  불을 지펴 놓았나  혼자 타지 않고  마음까지 태우고 있어  그저 보기만 해도  이리 눈부신데  가꿀수록 곰팡이 피는  세월,  미안한 마음  꽃잎 몇 개 떨어지고  몸만 왔다 가는. 개나리꽃     도종환 산 속에서 제일 먼저 노랗게  봄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나  뒤뜰에서 맨 먼저  피어 노랗게 봄을 전하는  산수유나무 앞에 서 있으면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손님을 마주한 것 같다 잎에서 나는 싸아한 생강 냄새에  상처받은 뼈마디가 가뿐해질 것 같고  햇볕 잘 들고 물 잘 빠지는 곳에서 환하게 웃는  산수유나무를 보면 그날은  근심도 불편함도 뒷전으로 밀어두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개나리꽃에 마음이 더 간다  그늘진 곳과 햇볕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  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깊은 산 속이나 정원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산동네든 공장 울타리든 먼지 많은 도심이든  구분하지 않고 바람과 티끌 속에서  그곳을 환하게 바꾸며 피기 때문이다. 검은 물이 흐르는 하천 둑에서도 피고  소음과 아우성 소리에도 귀 막지 않고 피고  세속이 눅눅한 땅이나 메마른 땅을  가리지 않고 피기 때문이다. 개나리꽃     이인석   활짝 핀 개나리꽃이  울타리마다  얼굴을 내밀고 섰다  안녕하시냐고  반가이 인사하는 것일까  안타까이 기다리는 사람 있어  발돋움하는 것일까 일제히 부르는 소리  손들어 저으며  그리운 사람을 찾는 소리  꽃잎마다 눈동자가 되어  그리운 사람 찾는구나  꽃잎마다 얼굴이 되어  그리운 이를 부르는구나 서울에도  평양에도  지리산 산골 마을에도  백두산 기슭 어느 외딴 마을에도  개나리꽃이 피었건만  기다려도 올 수 없는 사람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모두가 개나리꽃이 되어  일제히 부르는 소리  모두가 개나리꽃이 되어  일제히 손을 젓는 모습  이젠 그만 하라고  한결같이 아우성치는 소리…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안도현 내가 술로 헝클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어둔 길가에  개나리꽃이 너무 예쁘게 피어 있었지요  한 가지 꺾어 들고는  내 딸년 입술 같은 꽃잎마다  쪽, 쪽 뽀뽀를 해댔더랬지요 웬걸  아침에 허겁지겁 나오는데  간밤에 저질러버린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내 잘못이  길바닥에 노랗게 점점이 피를 뿌려 놓은 것을  그만 보고 말았지요 개나리야  개나리야  나는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인간이다 인간도 아니다 3월과 4월에 한반도 전역에 걸쳐서 노란색의 꽃을 피우는 개나리 학명에 한국이 들어간 나무이죠 (Forsythia koreana Nakai) 영국의 유명한 원예학자 윌리엄 포시스 (William A Forsyth)를 기념하기 위하여 붙였고 종소명인 코리아나(Koreana)는 수많은 개나리 종류가운데  한국에 자생하는 개나리가 세계를 대표하는 우리의 개나리로 인정받고 있는것 입니다 이렇게 전세계에 퍼져나간 개나리가 봄한철 사랑을 받는 봄의 꽃으로 금수강산을 노랗게 물들이나 자생지가 밝혀지지 않은것은  아마도 전국에 골고루 분포하기 때문일겁니다 서울과 경기도등 전국의 40여개 도 시 군에서 자신들의 꽃으로 지정한꽃이니 그만큼 개나리를 사랑하시나요? 서양에서는 황금의 종(Golden bell)이라는 예쁜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잎이나기도 전에 노란색꽃이 가지마다 달린것을보면 그렇게 불리는것이 당연한것이 아닐까요? 암꽃과 수꽃이 수분의 어려움으로 열매는 구경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9월에 달리는 열매는 연교 (連翹)라고 불리는데 차거운성질로 종기의 고름을빼고 해열제 소염 이뇨에 쓰이던 특이한 약재라고 합니다. 1442년 세종대왕에게 일본사신이 바친 진상품에 연교2근이 포함이 되었으니 그당시에는 아주 귀한약재였음을 알수있지요. 선조임금은 연교가들어간 청심환을 복용하고 순조임금은 연교를 주원료로한 가미승갈탕을 복용했으니 개나리 열매 연교는 우리선조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약재였다고 합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금수강산을 노랗게 물들일 개나리의 학명이 대한민국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꽃 이라는걸 아시고 기분좋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샛노랗게 피여나는 개나리를 아름다운 시로 표현한 작가들의 글에는 개나리에 대하여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애틋한 마음으로 적고 있어서 한편 한편 시를 읽는 기분이 봄볕처럼 따스해집니다. 꽃을 보는 마음은 누구나 기분이 상쾌해지고 가슴이 포근해지는걸 느끼지기도 하구요. 오늘 하루도 상쾌한 기분으로 가슴이 포근해지는 일들만 가득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송기원의 '개나리' 외  +== 개나리 == 어디엔가 숨어 너도 앓고 있겠지 사방 가득 어지러운 목숨들이 밤새워 노랗게 터쳐나는데 독종(毒種)의 너라도 차마 버틸 수는 없겠지 (송기원·시인, 1947-) +== 개나리 == (전사들이 다 사라져 적막한 교정에 겨울 지나며 제일 먼저 개나리가 피었다) 사람 같은 사람 하나  만나러  이른 아침 남몰래 깨어  크게 한번 외쳐보는 거다.  그리움 하나로  이 세상이 환해질 때까지  소리 없는 고함 한번 질러보는 거다. (최동현·시인) +== 개나리 ==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 (이은상·시조시인, 1903-1982) +== 개나리 == 너를 바라보는 동안 너의 맘속을 헤매는 동안 시름 깊어 황달이 져도  포기하진 않겠어 사립문 밖 걸려 있는 저 무언(無言)의 별 무더기들  노랗게 타는 봄볕 아래 저리 눈부신 것을 (마정인·시인) +== 개나리꽃 피는 봄 == 개나리꽃 피는  봄이 왔다  노란 꽃들이 재잘거리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의 어린 시절이 다가온다  웃음 가득한  개구쟁이 친구들의  보송보송한 얼굴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개나리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는 곳에 있으면  마음속까지 꽃 핀 듯이  벅차 오른다  즐거운 일이 생길 것 같다  문득 사랑에 빠질 것 같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개나리꽃 ==  마을마다  봄병아리 소리로  피어나는  개나리꽃,  누가 돌아오려나.  꽃길, 小路길로 해서  작은아씨  돌아오려나.  봄병아리 소리로 피어나는  개나리꽃,  꽃길 小路길로 해서  누가 돌아오려나.  작은아씨  돌아오려나. (김명배·시인, 1932-) +== 개나리 ==  한번은 보았던 듯도 해라  황홀하게 자지러드는  저 현기증과 아우성 소리  내 목숨 샛노란 병아리떼 되어 순결한 입술로 짹짹거릴 때  그때쯤 한번은  우리 만났던 듯도 해라  몇 날 몇 밤을 그대  눈 흡떠 기다렸을 것이나  어쩔거나  그리운 얼굴 보이지 않으니  4월 하늘  현기증 나는 비수로다  그대 아뜩한 절망의 유혹을 이기고  내가 가리 (김사인·시인, 1956-) +== 개나리꽃 == 함께 무리 지어 막강한  진노랑  빛의 물결 개나리꽃  덤불 속에 섰다. 방금 전까지 슬픔에 젖어 있던 나  졸지에 희망의 한복판에 있다. (정연복·시인, 1957-) * 개나리 꽃말은 '희망'이다.
973    <봄맞이> 시모음 댓글:  조회:4316  추천:0  2015-04-16
       ◆   + 봄아, 오너라 먼 남쪽 하늘 눈 덮인 산봉우리를 넘고 따스한 입김으로 내 이마에  불어오너라. 양지쪽 돌담 밑 소꿉놀이하던 사금파리 옆에서 새파란 것들아, 돋아나거라. 발가벗은 도토리들 가랑잎 속에 묻힌 산기슭 가시덤불 밑에서 달래야, 새파란 달래야, 돋아나거라. 종달새야, 하늘 높이 솟아올라라! 잊었던 노래를 들려 다오. 아른아른 흐르는 여울물 가에서 버들피리를 불게 해다오. 쑥을 캐게 해다오. 개나리꽃 물고 오는 노랑 병아리 새로 받은 교과서의 아, 그 책 냄새 같은 봄아, 오너라. 봄아, 오너라. (이오덕·소설가, 1925-2003) + 봄눈 나 오늘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봄바람에 살살 녹아나는 저 봄눈 앞에, (정세훈·시인, 1955-) + 경칩 부근 견디기 어려워, 드디어 겨울이 봄을 토해 낸다 흙에서, 가지에서, 하늘에서, 색이 톡 톡 터진다 여드름처럼  (조병화·시인, 1921-2003) + 봄을 위하여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다시 오는 봄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도종환·시인, 1954-) + 봄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물에 꽃봉오리 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아가씨 창인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김광섭·시인, 1905-1977) + 봄 풍경 싹 틀라나 몸 근질근질한 나뭇가지 위로 참새들 자르르 내려앉는다 가려운 곳을 찾지 못해 새들이 무작위로 혀로 핥거나 꾹꾹 눌러 주는데 가지들 시원한지 몸 부르르 떤다 다시 한 패거리 새 떼들 소복이 앉아 엥엥거리며 남은 가려운 곳 입질 끝내고는 후드득 날아오른다 만개한 꽃 본다 (신달자·시인, 1943-) + 난 지금 입덧 중 - 입춘  하얀 겨울,  치마끈 풀어내고 살그머니  가슴에 작은 꽃씨 하나 품었다.  설 넘긴 해가 슬금슬금 담을 넘자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  토해도 토해도 앙금으로 내려앉는 금빛 햇살  매운 바람 속에 꼼지락거리던  꽃눈 하나 눈 비비고 있다.  (목필균·시인) + 봄  멀리서 우리들의 봄은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아프게 아프게 온다고 했으니  먼 산을 바라보며 참을 일이다.  가슴에 단단한 보석 하나 키우면서  이슬 맺힌 눈으로 빛날 일이다.  (최종진·신부 시인) + 벗에게 부탁함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 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정호승·시인, 1950-) + 봄이 오는 쪽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차가운 얼음장 밑 실핏줄처럼 가느란 물소리 따사로운 소리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 귀기울일수록 힘세어지는 소리 알아듣는 가슴속에서 저 겨울산의 무거운 침묵 속 벼랑과 벼랑 사이 숨었다 피어나리  저 겨울벌판의 얼어붙은 땅 위에 납작 엎드렸다 피어나리 피어나 노래하리 은방울꽃, 애기나리, 노랑무늬붓꽃,  회리바람꽃, 지느러미 엉겅퀴,  땅비싸리, 반디지치, 숲바람꽃, 그리고 베고니아 베고니아 울어울어 마음에 가슴에  푸른 멍 붉은 멍들었을지라도 눈앞 코앞 하루 앞이 우울할지라도 계절이야 끊임없이 갈마드는 것 흥함도 쇠함도 갈마드는 것 이 모두도 지나가리니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봄을 버리지 않는 마음속에서 외따로 멀리도 바라다보는 눈雪길 속에서 (홍수희·시인) + 사기꾼 이야기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 언제나 추운 앞마당 내다보며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내일 아침엔 정말로 봄이 오고야 말 거라고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 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 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 (정성수·시인, 1945-) + 행복을 향해 가는 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걸음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간격 봄이 오고 있다 겨울에서 이곳까지 굳이  기차를 타지 않아도 된다 걷다보면 다섯 정거장쯤 늘 겨울 곁에 있는 봄 그 간격이 좋다 친하지도 무심하지도 않은 꽃과 잎사귀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슬픔과 기쁨 사이 가끔은 눈물과 손수건만큼의 그 간격이 좋다 허공을 채우고 있는 겨울, 나무와 나무 사이 외로움과 외로움 사이에 떠 있는 간이역 기차표와 역정다방의 여유 그만큼의 간격이 좋다 미처 떠나지 못한 겨울과 오는 봄을 내버려두고 그대와 나 사이 그 간격 속에 빠져버리고 싶다 (정용화·시인, 충북 충주 출생)        + 봄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반칠환·시인, 1964-)  + 봄 봄꽃은 승전가다.  혹독한 추위와  칠흑의 어둠을 이겨낸  그들 생명만이 부를 수 있는  승리의 찬가다. (김필연·시인) + 無言으로 오는 봄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天地神明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혀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말이 가장 많을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 보게나.  (박재삼·시인, 1933-1997)   + 봄이 오는 모습  봄은 나 봄입네 하고 오지 않는다 속으론 봄이면서 겉으론 겨울인 양 온다 그러다가 들통이 나면 그때야 비로소 꽃망울을 터트린다 경제도 그렇고 불황에서 호황이나 좋은 일은 그렇게 오는지 모르게 온다 (차영섭·시인) * 봄꽃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함민복·시인, 1962-) + 봄  봄은 그 이름만으로도 달뜬다 예서 제서 쭈뼛거리는 것들  쭈뼛거리다 돌아보면 터지고  터지다 못해  무덤덤한 심장까지 쫓아와 흔들어대는  연초록 생명에 오색 꽃들에...,  하늘마저 파래 주면 꽃잎 날리듯  심장도 풋가슴으로 춤을 춘다 애먼 걸 둘러대어도 이유가 되고  용서가 될 것만 같은 봄, 봄. (김필연·시인) + 난생처음 봄 풀 먹인 홑청 같은 봄날 베란다 볕 고른 편에 아이의 신발을 말리면 새로 돋은 연둣빛 햇살들 자박자박 걸어 들어와 송사리 떼처럼 출렁거린다 간지러웠을까 통유리 이편에서 꽃잠을 자던 아이가  기지개를 켜자 내 엄지발가락 하나가 채 들어갈까 말까 한 아이의 보행기 신발에 봄물이 진다 한때 내 죄가 저리 가벼운 때가 있었다. (김병호·시인, 1971-)  + 사람들 봄은  얼음장 아래에도 있고  보도블록 밑에도 있고  가슴속에도 있다  봄을 찾아  얼음장 밑을 들여다보고  보도블록 아래를 들추어보고  내 가슴속을 뒤지어 보아도  봄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 속에서  나는  봄을 보았다  봄은 사람들이었다.  (강민숙·시인, 1962-) + 그해 봄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나는 지쳐 쓰러져 있었고 병든 몸을 끌고 내다보는 창 밖으로 개나리꽃이 느릿느릿 피었다 생각해보면 꽃 피는 걸 바라보며 십 년 이십 년 그렇게 흐른 세월만 같다 봄비가 내리다 그치고 춘분이 지나고 들불에 그을린 논둑 위로 건조한 바람이 며칠씩 머물다 가고 삼월이 가고 사월이 와도 봄은 쉬이 오지 않았다 돌아갈 길은 점점 아득하고 꽃 피는 걸 기다리며 나는 지쳐 있었다 나이 사십의 그해 봄  (도종환·시인, 1954-) + 내 마음에도 봄이 오면 내 마음에도 봄이 오면 노랗고 빨간 꽃들이 지천으로 필까. 파아란 하늘 아래 연한 바람이 불고 연녹색 환희로 가슴 벅찰까. 오순도순 웃음소리가 들리고 포근한 정이 보드랍게 쌓일까. 내가 순수했던 어릴 적엔 몰랐네 마음에도 오솔길이 있었고  마음에도 꽃길이 있었고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네 마음에도 겨울이 길어 찬바람 불고 마음에도 슬픔이 많아 꽃이 진다는 걸..  아무래도 내일은  태양을 하나 따서 불지펴야겠다. 언 땅을 녹이고 언 마음을 녹이고 차가운 겨울 단숨에 떨쳐내고 꽃잎 같은 봄 하나 만들어야겠다. 마음에 푸른 숲 만들며 살아야겠다. 꿈결같은 그 숲길 나란히 걸으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어야겠다. (김용화·시인, 1971-) + 햇빛이 말을 걸다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권대웅·시인, 1962-)  + 봄날의 산책  어떤 길은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낯설지 않은 길, 길을 음미하며 찬찬히 걷다보면  나는 어느새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흔들흔들 걸음을 옮기면 그 사람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을 닮은 물푸레나무 아래 앉아 이야기하듯 잠깐 졸기도 하는 것이다.  맨몸을 드러내며 그 사람 앞에서 춤추다 무거운 햇살에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박순희·시인)  + 나는 봄이었는가  봄이 오고야 나는 나의 봄을 생각한다 나는 봄이었는가  바람 부는 날에도  눈보라 머리 풀어헤치던 날에도 나는 봄이었는가 봄은 봄이라 말하지 않는다 조용히 수줍게 올 뿐 나는 친구를 사랑하였는가 따듯한 마음을 꺼내어 주고 싶을 때 아픔 많은 친구를 위해 나눠줬는가 마땅히 줄 것 없어도 따듯한 마음을 내어주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다 나는 봄이었는가 봄이 오고야 나는 나의 봄을 생각한다 따듯하자고 만나는 사람을 흐뭇하게 하고 시냇물 졸졸 흐르게 하자고 꽃이 피면 새들은 천리 밖에서 온다 꽃이 피면 나는 봄이 되고야 만다. (윤광석·목사 시인) + 봄을 먹다  봄은 먹는 것이란다 제철을 맞아  살이 통통하게 올랐으니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것이란다 얼었던 땅을 쑤욱 뚫고 올라온 푸르고 향긋한 쑥에 깊은 바다 출렁거리는  멸치 한 그릇 받아 쌈 싸서 먹어 보아라 봄은 야들야들 부드러운  육질의 맛이다 生으로 먹으니 날맛이란다 자연에서 방금 건져내서 싱싱하다 매화 넣고 진달래 넣고 벚꽃도 넣고 빗물에, 산들바람에, 햇살에  한바탕 버무렸으니 저 봄을 뼈째 썰어 먹는 것이란다 살짝 씹기만 해도 뭉그러질만큼 살이 부드럽다 우리네 산하가 국그릇에 담겨 있어 후루룩 봄을 들여마시는 것이란다 맑고 담백한 봄국으로  입안에 향기가 가득 퍼지니  갓 잡아 비릿하면서도 감칠맛의 봄은 따스한 국밥이란다 허기진 속을 달래주는 부엌의  뜨거운 솥의 탕 같은 것이란다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 
972    <풀꽃> 시모음 댓글:  조회:3703  추천:0  2015-04-16
  서정흥의 '풀꽃들' 외    == 풀꽃들 ==  풀이란 풀들  모두 꽃을 피우더라  이름 아는 풀들  이름 모르는 풀들  모두 꽃을 피우더라  참말이지,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더라  아름다워 눈이 부시더라 (서정홍·농부 시인, 1958-) == 풀꽃 ==   우린 늘 헐레벌떡 쉴새없이 발을 굴렀다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다가 멈추어진 그 자리에서 이름 모를 풀꽃을 만났다 향기도 없고 빛깔도 없이 다만 하얀 웃음만 가득 담고 있었다 (진명희·시인, 1959-) == 똥풀꽃 ==     방가지똥풀꽃  애기똥풀꽃  가만히 이름을 불러 보면  따뜻해지는 가슴  정다워지는 입술  어떻게들 살아 왔니?  어떻게들 이름이나마 간직하며  견뎌 왔니?  못났기에 정다워지는 이름  방가지똥풀꽃  애기똥풀꽃  혹은 쥐똥나무,  가만히 이름 불러 보면  떨려 오는 가슴  안쓰러움은 밀물의  어깨. (나태주‥시인, 1945-) == 풀꽃 == 풀씨는  궂은 땅 마다 않고  꽃을 피운다  하늘의 뜻 받들어  푸른 빛깔 피워낸다  바람에 꺾임 없이  가늘게 살다가  이 세상 한 구석  밝은 빛 밝혀  어둔 마음 한 자락씩 지워내고  아무도 몰래  비탈진 자리  조용히 시드는 것을 (박덕중·시인, 1942-) == 풀꽃 ==  민들레꽃을  30분의 1로 축소하면  저 꽃이 될까.  잔디풀 사이로  가늘게 치밀어 올라  이제 막 피어난 자잘한 풀꽃!  별보다도 작은 꽃둘레건만  별처럼 또렷한 샛노란 꽃잎,  사나흘이면 소멸해 버릴 이름도 없는 저 별은  몇백 몇천 광년의 기약 끝에  드디어 여기  나타났는가.  그 가늘디가는 천공의 선율은  적막한 내 뜰을 한껏  설레이게 한다. (김종길·시인, 1926-) == 우도의 풀꽃 ==       저 멀리서 날아온 꽃씨가   우도에서 뿌리를 내리면  우도의 민들레가 되고  우도의 엉겅퀴가 되고  우도의 제비꽃이 된다.  푸른 바닷바람을 맞고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우도의 풀꽃은  이름을 갖고 다시 태어난다.  너른 잔디밭을 수놓은  우도의 풀꽃은  작은 꽃잎을 나풀거리며  그가 키운 사랑을  찾아온 나그네에게 건넨다.  어디서나  그대가 살아가고 있는 곳이  그대가 수놓을 꽃밭이라고. (조성심·시인, 전남 목포 출생) == 풀꽃 연가 ==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풀은 풀대로 나는 나대로  변할 줄 모르는  풀하고 나는 아무래도  고향이 같은가 봐  도시에 살아도  먼 산 구름만 바라보다  해지면 어머니 품속 같은 흙이 좋아  흙을 베고 잠에 드는 풀꽃  내 고향은 심심산골 단양  너의 고향은 어디더냐  도시에 몇십 년을 살아도  풀 티,  산골 티를 못 벗는  풀과 나는 아무래도  본래부터 같은 부류였나 보다. (최영희·시인) == 애기똥풀꽃의 웃음 ==  꽉 막힌 추석 귀향길이었다.  참아온 뒤를 보지 못해  다급해진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산골 외진 숲 속에 뛰어들었다.  벌건 엉덩이를 까내리자  숲 속에 숨었던 청개구리가 뛰어올랐다.  향기로운 풀내음 속에서  다급히 근심거리를 풀기 위해  안간힘 쓰는 소리를 듣고  풀벌레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쉿! 조용해! 무슨 소리가 났지?)  이 삼라만상의 갖가지 일에 부딪치면서 살다보면  더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참으며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처럼  참으로 힘드는 건 똥 참는 일이다.  참으로 시원한 건 똥 싸는 일이다.  숲 속의 애기똥풀꽃이 노랗게 웃었다.   (권달웅·시인, 1944-) == 풀꽃은 풀꽃끼리 ==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  가난이야 하나님이 주신 거  때로는 슬픔의 계곡까지 몰려갔다가  저리 흐르는 게 어디 바람뿐이랴 싶어  다시금 터벅터벅 되돌아오긴 하지만  도회지 화려한 꽃집이 부러우랴  밤안개 아침 이슬 모두 함께이거늘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  외로움이야 하느님이 주신 거  사람 속에 귀염받는 화사한 꽃들은  사람처럼 대접받고 호강이나 하겠지만  때로는 모진 흙바람 속에  얼마나 시달리며 괴로워하리.  때로는 무심히 짓밟는 발에 뭉개져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리.  시르렁 시르렁 톱질한 박일랑  우리사 연분 없어 맺지 못해도  궂은 날 갠 날도 우리 함께이거늘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 (허형만·시인, 1945-) == 풀꽃의 힘 ==  기름진 넓은 들에 봄날이 오면  흐드러지게 피는 자운영꽃.  농사의 밑거름이 되기 위하여  봄의 끝에서 죽음 속으로 몰락하면서도  꽃은 숙명이라고 슬퍼하지 않는다.  풀꽃은 썩 아름다우나 세상을 유혹하지 않고  왜 그다지 곱게 치장하는지  세상을 위해 온몸을 눕히면서 희생하는지를  말하려하지 않는다.  세상사람들은 날마다 치장하면서  풀꽃처럼 세상을 위하지도 않고  난센스로 풍성한데  풀꽃의 위대함은  한마디 불평 없이  아무런 항거 없이  농부의 쟁기보습 밑으로 몸을 눕히는  자유로움이며  봄이 오면 어느 날 살며시  쓰러졌던 그 자리를 다시 찾아오는  부활이다. (이풍호·시인, 충남 예산 출생) == 풀꽃 ==  아가 손톱 만한 이름 없는 풀꽃 하나 인적 드문 곳에서 온몸으로 웃고 있다 삶은 많이 고달파도 삶은 더없이 아름다운 거라고 말없이 소리 없이 얘기하고 있다. 나도 한 송이 풀꽃으로 살아야겠다 그저 나만의  빛깔과 모습으로 세상의 어느 모퉁이 한 점 무명(無名)한 풍경으로 조용히 피었다 총총 사라지고 싶다. (정연복·시인, 1957-)
971    <아버지> 시모음 댓글:  조회:4631  추천:2  2015-04-16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시인, 1970-)        아비  /  김충규  밥 대신 소금을 넘기고 싶을 때가 있다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에게 다그치며  굵은 소금 한 숟갈  입 속에 털어넣고 싶을 때가 있다  쓴맛 좀 봐야 한다고  내가 나를 손보지 않으면 누가 손보냐고  찌그러진 빈 그릇같이 시퍼렇게 녹슬어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내가 나를 질책하는 소리,  내 속으로 쩌렁쩌렁 울린다  이승이 가혹한가,  소금을 꾸역꾸역 넘길지라도  그러나 아비는 울면 안 된다   (김충규·시인, 1965-)          아버지의 안경  /  이탄 무심코 써 본 아버지의 돋보기 그 좋으시던 눈이 점점 나빠지더니 안경을 쓰게 되신 아버지, 렌즈 속으로 아버지의 주름살이 보인다. 아버지는 넓고 잔잔한 바다 같은 눈으로 자식의 얼굴을 바라보신다. 그 좋으시던 눈이 희미해지고 돋보기 안경을 쓰시던 날 얼마나 가슴 찡하셨을까. 돋보기 안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아버지의 주름살이 자꾸만 자꾸만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이탄·시인, 1940-)          아버지 보약  /  서정홍  형과 내가 드리는  아침, 저녁인사 한마디면  쌓인 피로 다 풀린다는 아버지  '58년 개띠'입니다.  나이는 마흔하고 아홉입니다.  이제 오십 밑자리 깔아 놓았다는  아버지 보약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아버지, 잘 주무셨어요?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아버지, 잘 다녀오셨어요?   (서정홍·아동문학가, 1958-)          못 위의 잠  /  나희덕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 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시인, 1966-)          아버지의 등  /  하청호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하청호·아동문학가)        아버지의 밥그릇  /  안효희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안효희·시인, 1958-)            희망이네 가정 조사  /  박예분  우리 아빠는 회사가 부도나서  지금 일자리가 없다.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 조사표에 열심히 대답하는 누나.  아버지의 직업은?  -지금 열심히 알아보고 있는 중임.  아버지의 월수입은?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 있을 예정임.  누나의 눈동자 속에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박예분·아동문학가)           아버지  /  신현득  고무판을 갈아주랴?  기름을 쳐주랴?  아버지는 기계의 마음을 안다.  아버지가 쓰다듬고  만져주면  콧노래 부르면서 돌아가는 기계  심장이 뛰는 소리  엔진 소리  기계처럼 순한 게 없지.  아버지 말을 잘 듣는다.  맡은 일을 두고 놀지 않는다.  기계의 숨소리로 가득 찬 공장  아버지도 기계와 함께  일하는 즐거움에 사신다.  비행기도 기선도  아버지가 기계를 달래어 만든다.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아버지  /  이원수  어릴 때 내 키는 제일 작았지만 구경터 어른들 어깨 너머로 환히 들여다보았었지. 아버지가 나를 높이 안아 주셨으니까. 밝고 넓은 길에선 항상 앞장세우고 어둡고 험한 데선 뒤따르게 하셨지. 무서운 것이 덤빌 땐 아버지는 나를 꼭 가슴속, 품속에 넣고 계셨지. 이젠 나도 자라서 기운 센 아이 아버지를 위해선 앞에도 뒤에도 설 수 있건만 아버지는 멀리 산에만 계시네. 어쩌다 찾아오면 잔디풀, 도라지꽃 주름진 얼굴인 양, 웃는 눈인 양 "너 왔구나?" 하시는 듯 아! 아버지는 정다운 무덤으로  산에만 계시네. (이원수·아동문학가, 1911-1981)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겉장이 나달나달 했다               전동균                    말기 췌장암 선고를 받고도 괜찬타, 내사 마, 살 만큼 살았데이,                  돌아 앉아 안경 한 번 쓰윽 닦으시고는 디스 담배 피워 물던 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신 뒤 항암 치료도 거부하고 모르핀만,                  모르핀만 맞으셨는데 간성 혼수에 빠질 때는 링거 줄을 뽑아 던지며                  살려달라고, 서울 큰 병원에 옮겨달라고 울부짖으셨는데,                  한 달 반 만에 참나무 둥치 같은 몸이                  새뼈마냥 삭아 내렸는데,                  어느 날 모처럼 죽 한 그릇 다 비우시더니,                  남몰래 영안실에 내려갔다 오시더니                  손짓으로 날 불러,                  젖은 침대 시트 밑에서 더듬더듬 무얼 하나 꺼내 주시는 거였다                  장례비가 든 적금통장이었다                                  간성혼수 ㅡ 간이 해독 작용을 못해서 암환자들이 겪는 발작, 혼수상태             귀여운 아버지        최승자(1952 - )         눈이 안 보여 신문을 볼 땐 안경을 쓰는       늙은 아버지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박씨보다 무섭고,       전씨보다 지긋지긋하던 아버지가       저렇게 움트는 새싹처럼 보일 수가         내 장단에 맞춰       아장아장 춤을 추는       귀여운 아버지         오, 가여운 내 자식.                                                                                           나팔꽃    정호승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담요 한 장 속에     권영상(1953-2008) 강릉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하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꿈쩍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 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ㅡ ,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ㅡ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못        정호승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별       박완호        목수였던 아버지는 죽어서      밤하늘 가득      반짝이는 순금의 못을      박아놓았네        텅,      빈,      내 마음에      화살 처럼 와 꽂히는      저 무수한      상흔들                                               부모     김소월(1902 -1934)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옛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을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생애         전길자(1944 - ) 서울        길게 이어진      몇 겹의 고통이      덕장에 걸려 있다      내장 다 빼버리고      얼었다 녹아내리기를 반복하지 않고서는      제 값을 받을 수 없다      살얼음 품어야만 제 맛을 내는      빳빳하게 긴장한 삶이어야 깊은 맛 우려내는 생애      한 번쯤 덕장을 빠져나가      겨울바람 피하고 싶었을까      한 번쯤 사랑에 녹아      허물어지고 싶었을까      하얗게 쏟아지는 눈발 끌어안고      곧추서서 기다리는      먼 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듯.                                                  현대시 2006년 1월                                       세살 아버지   강경호                              부지런하고 셈을 잘하던 아버지                            늘 엄하고 잘 웃지 않던 아버지                            지팡이 짚고 세 발로 걸으시네                            어머니 말씀 잘 안듣고                            말썽만 부리시네                            대꾸는 안하고                            히죽히죽 웃기만 하시네                            팔십 년 전 세 살 적 아이 되어버렸네                              맛난 것만 골라 잡수는 아버지께                            생선 가시 발라 숟가락에 얹어드리면                            내 막내딸 세 살처럼 잘도 받아 잡수시네                            길을 가다 힘에 부치면                            업어 달라 조르는 철없는 우리 아버지                            장성한 자식들 바라보며                            아침 나팔꽃처럼 환해지네                              점점 나이를 까잡수는 아버지                            팔십 년 기억 방전되고 있네                            덧셈 뺄셈 구구단 모두 잊고                            오늘은 배부른 젖먹이처럼                            곤하게 낮잠을 주무시네                                                                      2007년 봄호                         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 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이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ㅡ                        쉬! 우주가 조용했겠습니다                                                            아버님의 일기장   이동순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종일 본가 가                       하루 온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이다                       이가 전체의 팔 할이 휠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며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쓰셨을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부러 종일 본가를 해 보며                       일기장 빈칸에 이런 글귀를 채워 넣던                       아버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이 헤아려 보는 것이다                                                                       아버지       강경호                              고향을 떠나 아들네 집에 살러 갈 때                            평생하던 고생 끝이라며 좋아하던 아버지는                            집안의 나무를 뽑아 아들네 정원에 심었다                            무딘 삽이며 괭이, 쇠스랑                            하다 못해 농약통이며 쓸 일이라곤 없는                            얼개미까지 차에 실었다                            그 중에서도 농사 지은 쌀가마니를                            아들네 창고에 가득 채운 일이었다                              한 쪽 구석에서 농기구들이 벌겋게 녹이 슬어가지만                            쌀가마니를 만져보며 세어보는 재미로 살았다                            이태가 지나고 슬금슬금 창고의 쌀이 바닥나고                            아들네가 마트에서 새 쌀을 실어올 때                            아버지는 묵은 쌀처럼 풀기를 잃었다                            이제 아버지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장성한 아들도, 집도, 손주놈들까지도                            모두 아버지의 손 밖이었다                              한 삼십 년 쯤 후                            지금 내 손아귀에 노는 놈들 중                            어떤 놈에게 얹혀 사는 아버지가 된 나를 생각했다                            땅 한 평 갖지 못하고 쇠스랑이며 농기구도 없는 나를                            쌀 한 톨도 갖지 못한 나를                            아들네 정원에 심을 나무 한 그루 키우지 못한 나를                            주변에 널브러진 쓰레기만 가득한 나를                            그래서 갈 길이 바쁜 나를                                                       아버지         김경호 노래                           가슴깊이 묻어도 바람 한 점에 떨어지는                         저 꽃잎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                         돌아갈 수 있을까 날 기다리던 그곳으로                         그 기억 속에 내 맘 속에 새겨진 슬픈 얼굴                         커다란 울음으로도 그리움을 달랠 수 없어                         불러보고 또 불러봐도 닿지 않는 저 먼 곳에                         빈 메아리 되돌아오며 다 잊으라고 말하지만                         나 죽어 다시 태어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람                           단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나의 두 눈이 먼다 해도 난 그래도                         그 한 번을 택하고 싶어                           가슴 깊이 묻고 있어도 바람 한 점에 떨어지는                         저 꽃잎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                         떨어진 꽃잎처럼                                                                                아버지         김주택   아버지의 몸에선 바람소리가 들린다 늦가을 바람소리가 들린다 추수 끝난 빈 들판에 선 허수아비의 아랫도리 마른 수숫궁대 서걱이는 소리 그게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음성이다 소리 없는 침묵의 공간을 홀로 살아온 거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황토흙 속에 원죄인 양 지게 하나 걸머지고 그걸 지탱하고 살아온 거다 소나무 등걸처럼 생로병사의 70성상이 염주처럼 꿰어진 육신 아버지의 몸에선, 분명 바람소리가 들린다 늦가을 바람소리가 들린다       아버지        김형수(1959 - ) 전남 함평   머슴였던 울 아버지 바지게에 꼴짐지고 두렁길을 건널 때 등에 와서 얹히던 햇살은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 울 아버지 혼자 남아 밤 늦도록 일하실때 둠벙 속에 살고 있는 색시 같은 달덩인 얼마나 얼마나 처량한 친구였을까 그마저 구름이 가렸던 밤엔 어떻게 지냈을까 울 아버지 아버지의 그늘                     아버지      문인수                      붉새 아래 아버지                      황소 너머 서 계신다                        붉새 아래 아버지                      황소 빗질하시며 서 계신다                        아버지 허이연 입김 훅 훅 뿜어 소에게 불어넣는 것인지                      소의 거친 콧김이 아버지를 휘감고 있는 것인지 자욱한 안개 서서히 걷히면서                      소는 점 점 부풀어 오르고                      소는 바깥 마당에 스무마지기 한곳지기 안에 꽉 차서                      소잔등 둥두렷한 등성이 넘어 불쑥이                        해 떠오르고 붉게                      아버지 떠오르는                      이른 아침                                          아버지          박완호   아버지 내내 말이 없네 몇 년만에 다녀온 종친회 무슨 설움 깊었는지 무거운 듯 내리 덮은 눈꺼풀 옴짝달싹 않고 담배만 거푸 피우시네 해마다 여름이면 깊어가는 병, 이십 년이 지나도록 떨구지 못하고 상처처럼 새겨둔 아내 얼굴 탓일까 그토록 좋아하는 술 한 모금 못 마신 탓일까 제 심연에 갇힌 채 날개 꺾인 새처럼 돌아눕는 그의 마른 어깨가 한겨울 논바닥의 볏단 마냥 쓸쓸하다 온 몸의 털을 다 뽑아가도 아파하지 않을 손주녀석 장난해도 아랑 곳 없는 침묵 안, 낙엽 같은 상처 속으로 누구도 가 닿지 못하네     아버지      이윤학   활처럼 휜 논두렁을 걷는다 하나 둘 셋 튕겨나가는 개구리를 만난다   너라도, 새벽부터 불려나와, 논두렁 이슬을 털지 말아라 불쌍한 개구리를 쫓지 말아라   지게를 지고 걸어가시는 아버지 뒤를 지게 끈이 졸졸 따른다     아버지        이상진   아버지는 나무 쟁기를 지고 얼미 밭에 가서 밭을 가는데 소도 힘들고 아버지도 힘들어하신다 쟁기 옆으로 흙이 싹싹 갈려 넘어가는데 만져 보면 보릅보릅하다 소가 헛군데 가다가 밟으면 아버지는 또 다시 간다 아버지는 밭 하나를 가는데 그렇게 고생를 하신다 이 상진(경북 울진 진복분교 4학년) 1989년       아버지         임길택   말 한마디 없이 불쑥 들어오시어 그냥 앉아만 계시는 아버지는 오늘처럼 술에 취해 흥겨워하시는 아버지가 더 좋습니다   어머니가 뭐라시며 눈 흘겨도 못 들은 척 흘러간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흥얼 따라 하십니다   옆 방 이불 속 잠든 동생 옆에 누워 나도 아버지의 노래를 따라 불러 봅니다         아버지        정대구   새벽마다 나의 잠을 깨워 주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내가 나의 아이들의 새벽잠을 깨우는 새벽 다만 벽 위에 매달린 긴 잠이 무거우셨던게지 먼저 먼지 털고 일어나 내려오시는 걸 나도 어느 새 아버지가 되어 벽에 걸리고 지금 내가 잠을 깨워놓은 아이가 또 아버지가 되어 제 아이의 새벽잠을 깨우는 새벽 몇 삼년의 긴 잠에서 먼지 툭툭 털고 일어나 내려올 것인가 아버지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들이여 아들의 아들의 아버지여 정대구(1936 - ) 경기도 화성. 서울대        아버지          정영자   심부름 가는데 보니 아버지는 그 추운 데서 나무를 줍고 있었다 장갑도 안 찌고 손을 비비면서 나무를 줍는다 아버지요 춥니더 집에 가시더 알았다 한다 심부름 갔다가 뛰어가니 야야, 넘어질라 한다 정영자(경북 울진 온정초등 3학년) 1985년 12월       아버지           하청호   풀짐이 걸어온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풀짐만 삽짝문을 들어선다   쿵, 아버지는 산처럼 무거운 하루의 일을 부려놓고 성큼성큼 거인처럼 다가온다   얘야, 싱긋 웃으며 꼭 쥐어주는 산딸기 송이 아버지의 하얀 이빨이 산딸기처럼 상큼하다     아버지          함순녀   봄 여름 가을 겨울 지게를 내려놓을 줄 모르는 아버지.   남이 놀 때도 일하시고 무슨 일이 그렇게도 바쁜지 신발을 신고 밥 먹을 때가 많다   병이 나도 병원에 가실 생각은 않고 곧 낫겠지 하고 말하신다   일을 쉬었다 하라고 하면 내가 너희들 위해 이렇게 일하니 공부 열심히 하라 하신다   난 그러는 우리 아빠가 불쌍하다 함순녀(강원도 정선 봉정분교)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상국   어떤 날은 자다 깨면 소 같은 어둠이 내려다보기도 하는데 나는 잠든 아이들 얼굴에 볼을 비벼보다가 공연히 슬퍼지기도 한다   그런 날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지금은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들에서 돌아오는 당신의 옷이나 모자를 받아들면 거기서 나던 땀내음 같은 것 그게 생의 냄새였을까   나는 농토가 없다 고작 생각을 내다 팔거나 소작의 품을 팔고 돌아오는 저녁으로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는 우리 식구뿐만 아니라 저 들과 들의 바람까지 걱정하며 살았는데 나는 밤나무 한 그루 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지   그런 날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 상국(1946 - ) 강원도 양양            아버지가 걸으시는 길은     임길택   빗물에 파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가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는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 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가요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안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ㅇ벗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 번 못 펴고 큰 소리 한 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아버지의 등     정철훈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 너머 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 마루바닥에 쿵, 하고 고목 쓰러지는 소리   숨을 죽이다 한참만에 나가보았다 거기 세상을 등지듯 모로 눕힌 아버지의 검은 등짝 아버지는 왜 모든 꿈을 꺼버렸을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고 삼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처럼 휘적휘적 귀가한 나 또한 다 큰 자식들에게 내 서러운 등짝을 들키고 말았다   슬며시 홑청이불을 덮어주고 가는 딸년 땜에 일부러 코를 고는데 바로 그 손길로 내가 아버지를 묻고 나 또한 그렇게 묻힐 것이니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서러운 등짝 사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다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아버지의 씨뿌리기    강경호   저녁 무렵 팔순의 아버지가 고실고실 잘 마른 늙은 할멈과 아들과 며느리, 손주놈들 고쟁이를 빨랫줄에서 걷어 느릿하게 옥상 계단을 내려온다 까칠까칠하고 둔탁한 손으로 아이들 종이 딱지 접는 마음으로 정성껏 접는다 한때 잡초를 뽑던 손으로 씨를 뿌리던 농부의 손으로 당신 속곳은 할멈 속곳 위로 아들 속곳은 며느리 속곳 위로 큰 손주 작은 손주 막내 손주 순으로 끼리끼리 옷을 개어 차곡차곡 서랍에 쌓는다   시작시인선            아버지의 안경       정희성(1945 - )   돌아가신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서 눈이 침침해 세상일이 안 보인다고 내 안경 어디 있냐고 하신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나는 설합에 넣어둔 안경을 찾아 아버님 무덤 앞에 갖다놓고 그 옆에 조간신문도 한 장 놓아 드리고 아버님, 잘 보이십니까 아버님, 세상 일이 뭐 좀 보이는게 있습니까 머리 조아려 울고 있었다       아버지의 창 앞에서  김상훈(1919 -6.25당시 월북) 거창   등짐지기 삼십리길 기어 넘어 가쁜 숨결로 두드린 아버지의 창 앞에 무서운 글자 있어 '공산주의자는 들지 말라' 아아 천날을 두고 불러왔거니 떨리는 손 문고리 잡은 채 물끄러미 내 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고   태어날 적부터 도적의 영토에서 독스런 우로에 자라 가난해두 조선이 남긴 살림, 하구 싶든 사랑을 먹으면 화를 입는 저주받은 과실인듯이 진흙 불길한 땅에 울며 파묻어 버리고 내 옹졸하고 마음 약한 식민지의 아들 천근 무거운 압력에 죽음이 부러우며 살아왔거니 이제 새로운 하늘 아래 일어서고파 용솟음치는 마음 무슨 야속한 손이 불길에 다시금 물을 붓는가   징용살이 봇짐에 울며 늘어지든 어머니 형무소 창구멍에서 억지로 웃어보이던 아버지 머리 쓰다듬어 착한 사람 되라고 옛굴에 일월같이 뚜렷한 성현의 무리 되라고 삼신판에 물 떠놓고 빌고, 말 배울 적부터 정진법을 조술하드니 이젠 가야할 길 미더운 깃발 아래 발을 맞추려거니 어이 역사가 역류하고 모든 습속이 부패하는 지점에서 지주의 맏아들로 죄스럽게 늙어야 옳다 하시는고 아아 해방된 다음날 사람마다 잊은 것을 찾아 가슴에 품거니 무엇이 가로막어 내겐 나라를 찾든 날 어버이를 잃게 하느냐   형틀과 종문서 지니고, 양반을 팔아 송아지를 사든 버릇 소작료 다툼에 마음마다 곡성이 늘어가던 낡고 불순한 생홀 헌신짝처럼 벗어버리고 저기 붉은 기폭 나부끼는 곳, 아들 아버지 손길 맞잡고 이 아침에 새로야 더나지는 못하려는가 ... 아아 빛도 어둠이련듯 혼자 넘는 고개 스물일곱 해 자란 터에 내 눈물도 남기지 않으리 벗아!  물끓듯 이는 민중의 함성을 전하라 내 잠깐 악몽을 물리치고 한걸음에 달려가마         아버지 지게 위에 핀 꽃       유순예   산이 걸어오는 듯 나뭇짐을 진 지게가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는디 '아 글씨 꽃이 피고 있더랑께' 나뭇짐 속에서 아버지 허기진 목소리가 들렸는디 지게 위에는 진달래꽃이 망울망울 피어오르고 있었는디 저물던 해가 그 꽃잎을 가슴츠레 내려보다 갔는디 '그새 봄이 왔능가벼, 야들아 아부지 무겁겄다' 동생에게 젖을 물리던 엄마 목소리가 들렸는디 쪼르르 달려나가 지게 위에 꺾어오신 진달래꽃다발을 마루에 받아놓고 일곱 남매가 빙 둘러앉아 꽃잎을 따먹었는디 파르스름해진 입술들을 서로 손가락질하며 깔깔댔는디 아따 참말로, 마루 밑 새끼들을 품고 있던 누렁이 젖꼭지도 동생에게 물려준 엄마 젖꼭지도 진달래 꽃망울처럼 발갛게 부풀어올랐당께요 유 순예(1965 - ) 전북 진안           어버이            김소월   잘 살며 못 살며 할일이 아니라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있나니 바이 죽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은 금년에 열네 살, 아들 딸이 있어서 순복에 아버님은 못하노란다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서정춘   나는 아버지가 이끄는 말구루마 앞자리에 쭈굴쳐 타고 앉아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이 말꼬리를 쳐들고 내놓은 푸른 말똥에서 확 풍겨오는 볏집 삭은 냄새가 좀 좋았다고 말똥이 춥고 배고픈 나에게는 따뜻한 풀빵 같았다고 1951년 하필이면 어린 나의 생일날 일기장에 침 발린 연필 글씨로 씌어 있었다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서정춘(1941 - ) 전남 순천                                            노래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담배(달래) 먹고 맴맴   할머니가 돌떡 받아 머리에 이고 꼬불꼬불 산골길오 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아버지가 옷감 떠서 나귀에 싣고 딸랑딸랑 고개 넘어 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윤 석중(1911-2003) 1928년 12월 에서 아아...그래서 이때 호랑이가 나타나서 하는 말- 할멈,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였던가                                             터미널         이홍섭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강원도 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 병원으로 검진 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풀뽑기       문인수   아버지 따라가 묵정밭을 맨 적 있습니다 쇠비름풀 여뀌 발랭이 서껀 이런 저런 잡초들 수없이 뽑아 던졌습니다 검붉은 맨살의 흙이 드러 나면서 밭뙈기 한 두락이 새로 나는 것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일평생 마침내 논 서른 마지기 이루고, 그러나 송충이같은 자식들, 그 푸르게 일렁이던 논들 다 갉아먹어 버리고 빈 들 노을 아래 서 있던... 아버지, 일흔 중반 넘어서면서 망녕드셨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사 관심거리가 하나 둘 줄어들더니 마을이나 집안 대소사는 물론 식솔들의 잦은 불상사에 대해서도 영 남의 일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당신의 자식들, 심지어는 늘 곁에서 수발드는 어머니 보고도 당신 누구요 우리집 사람 못봤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아버지, 이미 다 닳아 치우고 없는 농토, 그 논에 물꼬 보러 간다며 나섰습니다 없는 소, 없는 일꾼들을 부렸습니다 품 안의 새끼들을 어르고 입안의 혀같은 당신의 아내와 자주 두런거렸습니다 그러기를 십여년, 어느날 아버지 검불같이 남아있던 당신의 육신까지도 뽑아 던졌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 비로소 아버지의 풀뽑기가 마저 끝났습니다 번듯하게 눕는 아버지의 땅 그곳으로 드는 아버지, 아버지, 보였습니다  
970    <채송화> 시모음 댓글:  조회:4330  추천:0  2015-04-16
  + 채송화에게는  베란다에서 키우는 작은 채송화 나를 하느님인 줄 안다 비 좀 내려 주세요 바람 좀 불게 해 주세요 가끔 나타나 물조리개로 흠뻑 비도 내려 주고 창을 활짝 열어 시원한 바람도 불게 하는 채송화에게는 내가 하느님이다 (신복순·아동문학가) +  채송화  키 큰 맨드라미가 부럽니  너는 웃는 모습이 귀엽잖아  내 마음의 꽃밭  맨 앞줄에 언제나 세우고 싶은  요 귀여운 꼬마 아가씨야  (심낙수·시인) + 채송화 별무리  지극히 낮은 곳으로  한없이 따뜻한 곳으로  고요히 한 몸 뉘이고 싶어요.  별들이 내려와 앉듯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빛나는 몸으로 있고 싶어요.  초가을 따뜻한 햇볕 하나라도  밤에 내린 고운 이슬 하나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유응교·건축가 시인) + 채송화     키가 작다고 어찌  미녀가 아니랴  칠월 펄펄 끓는 땡볕 아래  충청도 한산 모시 짜는 아가씨처럼  다소곳이 얼굴 붉히는 꽃  두 손 펼쳐 하늘을 우러러  별빛 쏟아지는 캄캄한 밤에도  파도 철썩이는 해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줏빛 순정을 키웠거니  키가 작다고 어찌  순정이 붉지 않으랴  (김종원·시인, 1949-) + 채송화 땅바닥으로 기어기어 목마른 땡볕 아래  일어섰다, 채송화  가로세로 줄지어 선 키 큰 꽃들 사이로  잔돌 밟고 오래오래 쓰러진 핏줄 손목 잡고  어울렸다, 땀 젖은 얼굴들  평생 앉은뱅이꽃으로 피어  빗물에도 목이 잠기는 설움 달래며  지렁이처럼 기어기어 살다 묻히는  숨죽인 꽃인 줄 알았다  장마에 살 썩어들어도  하늘 바라보다 눈멀던 할머니인 줄 알았다  비 갠 뒤 푸른 하늘 이파리흙 툭툭 털며  목마른 땡볕 아래 서늘한 입술 물고  채송화, 일어섰다  (주용일·시인, 1964-)  + 채송화  빨강 노랑 초록 분홍  핑크빛이  땅에 앉아서  넘치지도 좁지도  뽐내지도  흘리지도 아니합니다  혼자서는  채송화라 하지 않고  꽃이라 않고  피지 않고  어깨동무로     오시는 길목마다  님이 됩니다.  (이민영·시인)  + 채송화 갈라진 길바닥 틈새에  꽃 한 송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독한 시멘트 길바닥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흙바람 속에서 내민  어여쁜 목숨의 손.  혹독한 상처를 끌어안고  진주빛 별을 가슴에 심은  초록 눈길이  품속처럼 따사롭다.  세상을 이기고  홀로 조용히 빛나는  너의 웃음꽃 송이가.  (구명숙·교수 시인) + 채송화                     몽당연필처럼 짤막한 이파리에  송골송골 맺힌 보석함  피었다 지고, 또 피어도  세속에 물들지 않는 작은 소녀  햇살도 모르게  장독대 틈새 묻어 둔 상념  침묵으로 지키는 별빛  별꽃이겠지  빨강, 노랑, 하얀 꿈꾸며  휘파람새 유혹하니  가던 길 멈추고  꽃잎에 내려앉는 휘파람새  (소양 김길자·시인) + 비안도·민박집 채송화 어디서나 현실은 싱겁고 미래는 속기 쉬운데 이곳 채송화만은 그렇지 않다 태양의 남근을 잡고 발버둥치는 채송화의 입술에 색감이 돌고 파도소리가 언덕을 넘어오다 호박잎에 숨는다 (이생진·시인, 1929-) + 채송화 하늘을 우러러보기가  너무 목이 아픈지  가느다란 몸뚱이에  수십 개의 물 돌기를 달고  무거운 팔  나지막이 깔아 놓고  촘촘히 이어진 바람  억지로 내보내며  그래도 새어 나가지 못하고  남은 미아 바람 거두어서  피워 올린다  태양의 씨앗을 꽃술에다 담아  멀미하지 않게 포근히 안고는. (전병철·시인, 1958-) + 채송화·1  언제나 맨 앞에서 줄을 서야 하는 막내아들 녀석이다. 아이들이 꼬마라고 놀린다며 자주 울고 들어오는 막내야, 어쩌겠니. 너는 너일 뿐이야. 네 마음에 품은 꽃이나 정성껏 피우려무나. 키 작아도 대통령 될 수 있고 키 작아도 박사 될 수 있단다. 마침 화단 맨 앞에 줄지어 서서 뜨거운 여름을 용기 있게 극복한 듯 채송화 꽃들이 활짝 함박웃음 지으며 만개하고 있었다. (양수창·목사 시인) + 채송화 ·2  큼직한 선인장 화분에서 간신히 몸 비집고 끼어서 사는 이웃이다. 기(氣) 한 번 펴지 못하고 작은 키에 구부정하게 살던 채송화, 어느 날 선인장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비로소 환하게 웃는 그를 보았다. 아침 일찍 꽃들을 살피다가 마냥 신기롭게 바라보는  아들아, 딸아 너희들은 선인장이 좋으냐. 채송화가 좋으냐. (양수창·목사 시인) + 채송화  비가 내린다.  그칠 것 같지 않다.  비 오는 날, 채송화는  아우성이다.  빗물이 어떻게 꽃이 되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손녀딸에게 채송화를  무어라 설명해 줄까.  생명을, 얘들아  무어라 설명해 줄까.  비가 내린다.  그칠 것 같지 않다.  (김명배·시인, 1932-) + 채송화  창 밑 햇볕 잘 드는 곳에  한 줄로 나란히 줄 서서  도란도란 속살이던 정  꽃잎 이뻐서  아이는 고개 숙이고야 말았지  더 더 고개 숙이고야 말았지  얼마나 채송화 식구들이 어여쁜지  앉은뱅이 채송화 명랑함에  아이는 내내 밝고 밝게 커갈 수 있었던 게야  혼자서도  꽃 닮아 어여삐 여기는 마음 되어  기뻐함과 감사함 배웠으며  꽃 닮아 작고 작은 것들에  시선 줄 줄 아는 참된 즐거움  키워갔던 게야  이제  은빛 머리칼 되어서  그 채송화 도란거리는 정  그리워 참 그리워  모든 작은 것들 속에  꽃으로 피어있는 아기자기함  다시 발견하는 기쁨으로 살아가게 되누나  (정윤목·시인) + 채송화꽃 그녀  애끓는 사랑은  단칸방 신접살이도  달콤했었지만  살다보면 사랑은  세월에 무디어지고  애증으로 엉킨 정도  세월만큼 익어갔는데  노랑꽃 속에  빨간 꽃 속에  키 낮은 잎새 속에  여문 까만 씨앗이  눈물겹도록 작은데  어느 날 문득  폐암말기라는 지아비  사십도 못되어 떠나간다는데  모두들 흘러갈 그 길로  떠나간다는데  먼지같이 작은 씨알이  흩어져 흔적도 없이  그렇게 미운 정까지  털어내며  헤어짐도 아름답게  미소로 보내야 하는데  아깝다아깝다아깝다  엎드려 속울음 삼키는  그녀는 어찌할까  (목필균·시인) + 채송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면  나지막하게라도 꽃을 피우겠습니다  꽃잎을 달고 향기도 풍기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제 이름을 달지 못하는 꽃도 많습니다  토담 위라도 불만이 있을 리 없지요  속셈이 있어 빨강 노랑 분홍의 빛깔을  색색이 내비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메마르고 시든 일상에서 돌아와 그대  마음 환하게 열린다면 그만이겠습니다  몸을 세워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세상 살아갑니다  (김윤현·시인, 1955-)
969    <나이테> 시모음 댓글:  조회:3972  추천:0  2015-04-16
반칠환의 '둥근 시집' 외 + 둥근 시집  나무의 나이테 속에 벼려넣은  여름이 있고 겨울이 있다  천 개의 손끝에 송이꽃을 들고 불타는 햇빛을 연모하던 기억도 있다  뭇 바람의 제국주의자들이 흔들고 지나갈 때마다  박수를 치던 치욕의 기억조차 새기어놓았다  나이테는 그 여름의 연서이자  그 겨울의 난중일기이다  나이테는 밑동 잘린 고목의 유고 시집이다  천년 고찰은 저 둥근 시집을 읽으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천년 불상조차 한 번도 저 시 낭독이 싫어 외출한 적이 없다  풍경을 두드리는 바람은 견디기 힘든 유혹이지만  붓다의 처음 깨달음도 저 나이테의 그늘 아래서였다  나이테는 제 가슴에 새긴 목판 경전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좀벌레가 기어간다  저 느린 것들이 나이테의 경전의 마저 읽고 나면  곧 새로 늙은 젊은 기둥이 또 한 세월을 받치라  (반칠환·시인, 1964-) + 나이테 동그라미 하나 산새소리 동그라미 둘 산바람 소리 동그라미 셋 산골짜기 물소리 동그라미 넷 산토끼 발자국 소리 동그라미 다섯 내 노랫소리 (전영관·아동문학가) + 나이테에서 풀리는 산 소리 봄이 온 산길에 전나무 한 그루 지난해 감긴 산 소리를 풀어내고 있다. 뼈빗대는 새 소리 바위틈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 잎새를 누비는 바람 소리. 음반에서 풀리는 노래처럼 나이테에서 흐르는 산 소리, 봄 소리. (하청호·아동문학가, 1943-) + 나이테 밤이 이슥하도록 꿈길 곱게 펴 주시는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가 들린다. 꼭두새벽을 흔드는 귀에 익은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은물결처럼 출렁이는 깃발소리가 들린다. 세월의 목소리를 담아놓은 레코드. 나무 곁에 서면 안개 자욱한 먼, 먼 날의  고요가 들린다.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 나이테를 바라보며 네 그늘엔 조각난 탄피가 박혀 있다. 네 그늘엔 깨어진 거울이 잠들어 있다 지금은 말이 없지만 그 내부를 나는 안다.  물결이 스미듯 풀잎들이 흔들리듯 지나가는 역사는 언제나 순간이지만 네 깊이 심어 둔 日月은 늘 피묻은 싸움인 것을.  (이우걸·시인, 1946-) + 나이테와 옹이 매서운 칼바람이었다. 바위도 녹을 것 같은 혹서였다. 가을엔 강물이 곱기도 했지만 어느 해 봄인가, 탄생하는 가지로 몸살을 앓았다. 그 깊은 진통이 옹이로 남아, 지금은 시퍼런 대팻날 물어뜯기도 하지만 아름다워라. 굽이치는 물결의 나이테와 소용돌이 붉은 옹이가 이제는 내 가슴 저리도록 예쁜 너. 너는 나의 분신이다. (설태수·시인, 1954-) + 나이테  세월은 속절없는 것이라고  인간들이 똑똑한 척 말을 만들어 놓고  각다귀판에서 저마다 업을 쌓을 때  나무는 우두커니 서서 세월을 잡아  가슴에 옹골차게 쟁여놓았다  하 세월 똑같이 허비하고도  나의 속은  보이지 않는 나이가 그리움만 키워  아무짝에도 쓸모 없이  욕심과 뒤엉켜 보대껴온 것을  지구가 태양을 짝사랑하는 동안  음지와 양지, 포만감과  허기져 사경을 헤맨 계절까지  나무는 제 몸을 짐작만으로 더듬어  나이마저 보이게 꼼꼼히도 적었으니   지루했을 우주여행 기록이 참으로 아름답다  (권오범·시인) + 나이테 속을 걸어 제재소 옆을 지나다가 담 옆에 켜놓은 통나무 하나를 본다 잘린 단면의 나이테가 선명하다 여러 굽이 에돌아 만들어진 나무 속 등고선 해발 몇백 미터의 산을 품고 걸어온 첩첩의 붉은 산을 품고 나무는 산정을 오를수록 점점 몸피와 나이를 줄인다 청명한 공기와 햇빛으로부터 아득히 멀고 먼 걸음을 옮길수록 숨막히고 어두운 나무의 안, 안 가는 실금의 첫 나이테가 제 생의 마지막 등고선, 최고의 산봉우리였다네 숨을 고르며 오랫동안 산정에 서 있다가 하산한 나무 한 그루가 뿌리, 제 신고 온 투박하고 낡은 신발을 산 속에 벗어놓고 가지런히 누워 있네 (고영민·시인, 1968-) + 나이테  그 언젠가  깜깜한 둥근 오막살이집에서  안으로만 숨쉬어 온 열기들이  갑갑함을 못 이겨 사방을 허우적거리다  지친 나머지  그대로 타서 굳어 버린  흔적이 첩첩이 둘러 처져 있고  태양이 뱉어 버린 찌꺼기들이  버짐 되어 더덕더덕 들러붙어 있는  나무둥치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실의 액을 빼앗아 가는  새들의 휘파람 소리만이  보이지 않는 사슬을  열심히 감고 있을 뿐.  (전병철·교사 시인) + 나이테  밑동 잘린 나무를 무심히 바라보다  몇 해나 살다 저리 베어졌을까  하나 둘 셋...... 나이테를 센다  나이테 세기를 마치고 제대로 세었는지  다시 한 번 세어보려고 처음 나이테로 간다  동그랗고 예쁘다  다시 하나, 둘, 셋...... 나이테를 센다  동그랗고 반듯이 돌던 나이테가 구부러진다  동그랗고 반듯이 돌던 나이테 앞에 옹이가 있다  나이테는 옹이를 뚫지 못하고 구부러져 돈다  다시 돌아와서도 구부러져 돌고 돌다 다른 옹이를 만난다  또 다른 틈이 생기고 또 다르게 구부러지는 나이테  옹이와 마주칠 때마다 옹이를 뚫지 못한   밑동 잘린 나무의 나이테를 유심히 바라본다  사람 사람 사이의 옹이를 뚫지 못했던 내 삶의 등고선이다. (정재현·시인, 충북 괴산 출생) + 나이테  우리도 나무처럼  볼 수 없는 곳에  둥근 원을 긋고 살았겠지  가슴 깊은 곳에  희망의 금을 긋고  사랑의 금도 긋고  곰삭은 아픔도  좁은 가슴에 새기며 살았겠지  오늘  짚고 넘어온 세월의 둥근 금을 세다가  나이 탓만 하고 있다오  얼굴은 보이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고  이름은 떠오르는데 얼굴이 흐려지고  아마도 나이테에  건망증의 금이 더해가네 보네  아니면 새겨 놓은 금 하나 지워지고 있나봐. (노태웅·시인) + 나이테의 소리가 들리나요  시계 소리만 커지는 아침 열시  누군가 자꾸 벽을 두드리는 소리  그 울림 집안을 채운다  나가보니 머리에 빨간 모자를 쓴 딱따구리가  콘크리트 벽을 쪼고 있다  많은 나무 놓아주고 하필이면 벽을?  부리 아프게 두드려 보아도 벌레 한 마리 없는  집 한 칸 세들 수 없는 벽을.  눈 먼 새인가?  시각이 멀면 청각이 밝아진다는데  벽 속에 숨겨진 나무 소리를 듣나 보다  잠자고 있는 집안의 가구들을 깨워  그들이 먼 기억으로부터 일어나는  소리를 듣나 보다  저것 보세요!  책상 나무 무늬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마루 바닥이 물씬 송진내를 토해낸다  창틀에는 푸른 가지가 피어난다  어떤 나뭇가지는 벌써 하늘을 가릴 만큼 커져 있다  빨간 모자 쓴 딱따구리가 휙 날아간다  나무 창틀이 솟아올린 숲으로. (유봉희·재미 시인) 
968    반칠환시인 시모음 댓글:  조회:5315  추천:1  2015-04-16
                                반칠환 시인 1963년 충북 청주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2년 신춘문예 당선   1999년 대산문화재단 시부문 창작지원 수혜   2002년 서라벌 문학상 수상   시집   시와시학사 2001           시와시학사 2004  시선집   시와시학사 2003  장편동화       지킴이의 노래   1  하-, 그때가 언제였던가. 풍 맞은 늬 애비와 삼십대 초반 의 늬 에미가 머잖아 묵샘에 빠져 죽을 늬 큰성을 앞세우고, 다리가 휘도록 포대기 끈을 조른 갓난쟁이 둘째를 업고 이 솔뫼골 산지기 외딴집에 찾아드는 것을 보았다. 하마 사십 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다만 회초래기 같은 구렁이 새끼 였다.  어떤 인연이었을까. 그날 이후 나는 늬 에미, 산지기 외딴집 에서 등잔불에 그을은 칠남매를 내리 낳을 때마다 산파 대신 손 잡아주던 문고리처럼 늬 집에서 지금껏 머물러 살아왔다.   2  패가 망신하여 산지기 동생 오두막 열댓 살 뼈무른 조카 등 에 업혀온 늬 큰애비가 풍 맞은 애비보다 먼저 타고 가는 상 여를 보았다. 이태 후 그 춥던 겨울, 풍 든 애비마저 숨거둘 때 산발한 에미와 감자알 같던 늬 형제들이 오열할 때도 나는 그져 청뜰 밑에서 점점 예민해져 가는 청각을 곧추고 있을 뿐 이었다. 뭍짐승들의 소란스런 울음소리 틈에서도 젊은 암구 렁이의 목소리를 가려낼 줄 아는 나이라면 이해하겄는가. 그 때 나는 다만 늬 누이 한 줌 머리채만큼 자란 구렁이 총각에 불과했다.   3  인간의 나이 스무 살, 헌걸찬 인물의 늬 큰성이 뇌염에 걸 려 맥없이 샘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았다. 샘골 그득한 푸른 이내 탓이었을까. 안친 쌀보다 턱없이 큰 무쇠솥을 데우고 나 온 저녁 연기 탓이었을까. 까닭없이 코끝을 자극하는 재채기 를 털어내듯 나는 그저 음산한 울음을 나직이 풀었을 뿐이다. 그때 나는 제법 지겟작대기만큼 자란 청년구렁이로 세 번째 허물을 벗었다.   4  내남없이 주려 넘던 보릿고개였으나 사발입보다도 형제들 목구녕이 턱없이 크게 벌어지던 그 시절, 마른 눈물도 없이 술찌게미를 집어넣던, 새 주둥이처럼 빨간 늬 형제들의 목젖 을 보았다. 다만, 보았을 뿐이다. 나로서도 살찐 개구리 만나 기가 늬 형제 이밥보기처럼 어려운 시절이었다.   5  그 해, 울도토리가 여물 무렵이었다. 나는 다섯 번째의 허 물을 벗었다. 허물을 인간의 눈에 띄게 하는 것은 구렁이 세 계의 금기였으니, 칠칠치 못한 나의 허물은 두고두고 구렁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큰 허물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 의 실수는 나를 다른 구렁이의 운명으로부터 갈라놓는 것이 기도 했다. 흐물흐물 내 근육의 틀림대로 양껏 부푼 내 허물 은 실제 몸보다 크게 보였을 터, 마당을 쓸던 누이를 보고 에 미가 말했다 '두거라, 이거는 아마도 우리 집 업이 틀림없 다'.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에미의 목소리는 나 직하고 경건했다. 그 목소리는 나를 사로잡았다.   6  나는 곧 이 집으로부터 나직하고 경건하게 불리는 어떤 존 재가 되어야 함을 눈치챘고, 열심히 그 나직하고 경건한 존재 의 형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오래잖아 나는 그것이 이 집안 의 길흉화복을 당기고, 물리치는 가신의 역할임을 깨달았 다. 나직하고 경건한 존재의 다른 이름이 지킴이라는 것도 알 게 되었다.   7  늬 에미는 억척스럽고 총명했으며, 형제들은 착하고 똑똑 했다. 이것은 나, 지킴이의 말이 아니라 동리 사람들의 수군 거림이다. 큰성이 명문 중학교에 붙자, 둘째 성과 시째 성이 우등상을 타왔으며, 누이는 글짓기 상을 타고 에미는 장한 어 머니 상을 타왔다. 부끄럽지만 큰애비와 애비의 죽음도, 발가 락 움이 돋는 양말의 가난도 내 탓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 모 두 내 탓은 아니다.   8  지킴이가 된 나는 연애도 잊고 이 집에 '내 탓'을 얹으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가난했으나 스스로 꿈을 세울 줄 알았고, 꿈을 세웠으나 꿈을 위해 남과 다투지 않았으니, 아 무것도 도울 수 없는 나야말로 이 집에서 가장 가난한 지킴이 였다.   9  너 막내의 수염이 거뭇해지자 머리 큰 성들은 명절마다 수 군거렸다. '도시로 가자!' 나는 찬피동물의 속성도 잊어버린 듯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필시 이 이농 계획은 나를 빼놓은 구상이 틀림없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도시의 아파트에 깃들 어 사는 지킴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10  늬 가족이 도시로 떠나가던 날, 나는 아침 일찍 슬그머니 건너말 송골로 가서 이삿짐을 옮기는 너희 가족을 보았다. 나 직이 울었으나 늬 가족이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대관절 빈 집을 지켜야 하는 지킴이란 무엇인가. 그 해 가을. 겨울잠 준 비도 잊고 가으내 굶었다.   11  가끔 소식을 듣기는 했다. 첫째가 장가가고, 둘째가 장가가 고, 셋째가, 마침내 너 막내마저 장가갔다는, 형제들 모두 메 추라기 흩어지듯 분가해버리자 어지간히 늙은 나는 또 혼란 스러웠다. 나는 이제 첫째네 지킴이가 될 것인가. 둘째네 지 킴이가 될 것인가. 그러나 곧 깨달앗지. 모두 도시 속에 자리 잡은 그 어느 곳도 내가 갈 곳이 아님을.   12  늬 가족 떠난 지 십몇 년, 마당과 청뜰엔 잡초 무성코, 방마 다 들쥐들이 쑤알거리는 빈집이지만 아직도 이 집안엔 늬들 은 잊어버린 늬 형제들이 살고 있다. 성들은 부산하게 책가방 을 싸고, 오늘도 짱아찌 반찬에 보리밥 도시락을 싸는 에미 와, 빈집 지키며 처마 그림자를 재는 막내둥이가 이토록 선명 하거늘, 나는 언제까지나 이들의 유년을 꿈에 귀기울이며, '내 탓'을 얹기를 희망할 것이다. 어쩌면 오래잖아 이 집을 찾은 형제들 중 하나는 다시는 보지 못할 내 마지막 허물을 집어들고 나직하고 경건하게 중얼거릴 것이다. '아아, 이것은 우리 집 업이었지'라고       어머니 4    아유, 나야 뭐 손구락에 흙 안묻히고 쟤들 덕에 호강이 지유.  호강은 손바닥부터 나타날까? 모처럼 잡아본 엄마 손이 보 드라워 깜짝 놀라 살펴보니 주민증에도 흐릿하던 지문이 또 렷하다.  시상에 아파또에 살어보니 어찌나 존지 촌에선 다시 못 살 것 같아유. 따신 물 틀믄 따신 물 나오구, 즌깃불 화안하지. 테레비 잘 나오지, 호미질을 하나 낫질을 하나, 물지게 진다 구 어깨가 벗어지나, 애들 올 때마다 이놈 저놈 용돈 주구-, 이제 고생 다 끝났시유.  호강탄 우리 엄마, 앵무새처럼 되뇌는데 자세히 보면 먼산 바래기다. 검은 손 보얘졌으나 검버섯 더욱 선명해진 우리 엄 마, 종일 할 일 없다.       아버지 1   풍으로 떨던 아버지, 나 하나도 슬프지 않았네 내 나이 다섯 살, 지팽이 짚은 아버지 허리춤 풀어주며 오줌 시중 들어도 나 하나도 가엾지 않았네 어머니는 일하러 나가는 사람, 아버지는 그저 방 안에 있는 사람 이따금 콜록거리는 기침과 긴 한숨이 문턱을 넘어왔지만, 나 무시했네 나를 사로잡은 건 그보다 능구렁이나, 다람쥐 울음소리였 다네 어느 날 아버지, 잠자리 꼬리 밀짚 꿰어 시집 보내던 나를 불렀네 막내야. 산내끼 좀 가져다 다오- 고무신 꿴 아버지 댓돌 아래 나오시네 아부지, 산내끼 여기 가까스로 헛간으로 오신 아버지, 새끼줄로 목을 매시네 나 말리지 않았네 발버둥치던 아버지, 새끼줄이 끊어지자 청뜰에 떨어져 피 투성이가 되었네 나, 그제서야 앙 하고 울었네 아버지는 그 후로 일 년을 더 사셨네       누나야   누나야 다섯 살 어린 동생을 업고 마실갔다가 땀 뻘뻘 흘리며 비탈길 산지기 오두막 찾아오던 참대처럼 야무진, 그러나 나와 더불어 산지기 딸인 누나야 국민학교 때 '코스모스 꽃잎에 톱날이 박혀 있네 톱질하시던 아버지 모습 아련히 떠오르네' 동시를 지어 백일장에 장원한 누나야 나이팅게일이 되겠다고, 백의의 천사가 되겠다고 간호 대학에 간 누나야 졸업한 다음 시내 병원 다 뿌리치고 오지 마을 무의촌 진료소장이 된 누나야 부임 첫날 다급한 소식 듣고 찾아간 곳이 다름아닌 냄새 나는 축사, 난산의 돼지 몸 푸는 날이었다고 다섯 마린지 여섯 마린지 돼지 새끼 받아내느라 혼났다던 스물 두 살 누나야 못난 동생 시인 됐다고 그럴 줄 알았다고 머리 쓰다듬던 누나야 병든 엄마 병들었다고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링거병 꽂고 가는 양념딸 누나야 이제 곧 큰 길이 나고 사라진다는 고향 마을 중고개에 아직도 나를 업고 가느라 깍지 낀 손에 파란 힘줄 돋는 누나야 세상의 모든 누나들을 따뜻한 별로 만든 나의 누나야       반칠환의 가족사 시편은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감동이 있다. 맺힌 것이 있어야 시가 쏟아짐을, 가슴이 터질 것 같으면 시가 솟구침을, 나는 그의 유년기 추억담 시를 통해서 배운다. 충청도 산골 출신 촌놈 반칠환의 '속도'에 대한 명상도 촌각을 다투며 살아가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가뭄                                                       저 소리 없는 불꽃 좀 보아. 감열지처럼 검게 타오르는 들판, 그 위로 날던 새 한 마리 한 점 마침표로 추락한다. 하! 삼도내마저 말라붙어 차안과 피안의 경계가 없어졌다         갈 수 없는 그곳                                        - 1992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그렇지요,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상의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다는 그곳은 도대체 얼마나 험준한 것이겠 습니까.   새벽이 되기 전 모두 여장을 꾸립니다.  탈것이 발달된 지금 혹은 자가용으로, 전세 버스로, 더러는 자가 헬기로,  여유치 못한 사람들 도보로 나섭니다.  우는 아이 볼기 때리며 병든 부모 손수레에 싣고 길 떠나는 사람들,  오기도 많이 왔지만 아직 그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더러는 도복을 입은 도사들 그곳에 가까이 왔다는 소문을 팔아 돈을 벌기 도 합니다.  낙타가 바늘귀 빠져나가기 보다 더 어렵다는 그곳,  그러나 바늘귀도 오랜 세월 삭아 부러지고 굳이 더이상 통과할 바늘귀도 없이 자가용을 가진 많은 사람들, 벌써 그곳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 다.  건너가야 할 육교나 지하도도 없는 곳, 도보자들이 몰려 있는 횡단보도에 연이은 차량,  그들에게 그곳으로 가는 신호등은 언제나 빨간불입니다.  오랜 기간 지친 사람들,  무단 횡단을 하다가 즉심에 넘어가거나 허리를 치어 넘어지곤 합니다.  갈 수 없는 그곳, 그러나 모두 떠나면 누가 이곳에 남아 씨 뿌리고 곡식을 거둡니까.  아름다운 사람들, 하나 둘 돌아옵니다.  모두 떠나고 나니 내가 살던 이곳이야말로 그리도 가고 싶어하던 그곳인 줄을 아아 당신도 아시나요.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속도에 관한 명상    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 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 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누나야                                                    다섯살 어린 동생을 업고 마실갔다가 땀뻘뻘흘리며 비탈길 산지기 오두막 찾아오던 참대처럼 야무진, 그러나 나와 더불어 산지기 딸인 누나야 국민학교 때 '코스모스 꽃잎에 톱날 박혀 있네 톱질하시던 아버지 모습 아련히 떠오르네' 동시를 지어 백일장에 장원한 누나야 나이팅게일이 되겠다고, 백의 천사가 되겠다고 간호대학에 간 누나야 졸업한 다음 시내 병원 다 뿌리치고 오지마을 무의촌 진료소장이 된 누나야 부임 첫날 다급한 소식 듣고 찾아간 곳 다름아닌 냄새 나는 축사, 난산의 돼지 몸 푸는 날이었다고 다섯 마린지 여섯 마린지 돼지 새끼 받아내느라 혼났다던 스물두 살 누나야 못난 동생 시인 됐다고 그럴 줄 알았다고 머리 쓰다듬던 누나야 병든 엄마 병들었다고 누구보다 먼저 친정 달려와 링거병 꽂고 가는 양념딸 누나야 이제 곧 큰 길이 나고 사라진다는 고향마을 중고개에 아직도 나를 업고 가느라 깍지 낀 손에 파란 힘줄 돋는 누나야 세상의 모든 누나들을 따뜻한 별로 만든 나의 누나야         목격                                                       - 속도에 관한 명상   질주하는 바퀴가 청개구리를 터뜨리고 달려갔다 나는 한 생명이 바퀴를 멈추는데 아무런 제동도 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물결                                                          그랬구나! 가슴의 통증이 가시고 눈앞이 환해진다. 어리석고 아둔한 것처 럼 보이던 사람들의 굽은 어깨와 허리가 매화 등걸처럼 휘영청 내걸리고 가 슴마다 꽃이 핀다.  내 눈의 들보와 남의 눈의 티끌마저 모두 꽃핀다.  가장 아프고, 가장 못난 곳에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 걸려 있다니, 가슴 에 박힌 대못은 상처인가 훈장인가?  언제나 벗어던지고, 달아나고 싶은 통증과 치욕 하나쯤 없는 이 어디 있으 며, 가슴 속 잉걸불에 묻어둔 뜨거운 열망 하나쯤 없는 이 어디 있을 것인 가?  봄날 새순은 제 가슴을 찢고 나와 피며, 손가락 잘린 솔가지는 관솔이 되 고, 샘물은 바위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여, 내 근심이 키우는 것이 진주였구나, 네 통증이 피 우는 것이 꽃잎이었구나.         바퀴                                                       - 속도에 관한 명상 5   우리는 너 나 없이 세상을 굴러먹고 다닌다   아버님, 오늘은 어디서 굴러먹다 오셨나요   아들아, 너는 어디서 굴러먹다 이리 늦었느냐   여보, 요즘은 굴러먹기도 예전 같지 않아요   이거, 어디서 굴러먹다 온 뼈다귀야   바퀴를 타자 우리 모두 후레자식이 되어 버렸다       봄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어떤 채용 통보                                           아무도 거들떠보도 않는 저를 채용하신다니  삽자루는커녕 수저 들 힘도 없는 저를,  셈도 흐리고, 자식도 몰라보는 저를,  빚쟁이인 저를 받아주신다니  출근복도 교통비도, 이발도 말고 면도도 말고  입던 옷 그대로 오시라니  삶이 곧 전과(前過)이므로 이력서 대신  검버섯 같은 별만 달고 가겠습니다  미운 사람도 간다니 미운 마음도 같이 가는지 걱정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간다니 반갑게 가겠습니다  민들레도 가고 복사꽃도 간다니  목마른 입술만 들고, 배고픈 허기만 들고  허위허위 는실는실 가겠습니다  살아 죄지은 팔목뼈 두개 발목뼈 두 개  희디희게 삭은 뼈 네 개쯤 추려  윷가락처럼 던지며 가겠습니다  도면 한 걸음, 모면 깡충깡충 다섯 걸음!  고무신 한 짝 벗어 죄 없는 흙 가려넣어  꽃씨 하나 묻어들고 가겠습니다          어린이날                                                 공군 3579부대 기동타격대 반 방위병, 무사히 기지 방어 야간 근무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어, 풍년 전기밥솥 열어 김치에 밥 한 술 혼자 뜨는데, TV 채널을 돌리니 '오월은 푸르구나 - 우리들은 자란다아 -.' 이쪽으로 돌려도, 저쪽으로 돌려도, '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 '에이 재미없어.' ON/OFF 스위치를 픽 눌러 끄는데, '우리 막내둥이 오셨나?' 삽짝문 열고 칠순 노모가 들어오시네. '마실 다녀오셔유?' '아니다. 아침에 테리비를 보니까 오늘이 어린이날 아니냐. 우리 막내 뭘 슨물할까 하다가 막걸리 한 병 받아오는 질이다.' '야? 막걸리를?' 어머니, 빙긋 웃으며 빈 스뎅 그릇을 내미신다.         어머니 5                                                 산나물 캐고 버섯 따러 다니던 산지기 아내 허리 굽고, 눈물 괴는 노안이 흐려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 바라보신다 칠십년 산그늘이 이마를 적신다 버섯은 습생 음지 식물 어머니, 온몸을 빌어 검버섯 재배하신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 주름진 핏줄마다 뿌리내린다 아무도 따거나 훔칠 수 없는 검버섯 어머니, 비로소 혼자만의 밭을 일구신다.         언제나 지는 내기                                        소나무는 바늘쌈질를 한 섬이나 지고 섰지만 해진 구름 수건 한 장을 다 깁지 못하고 참나무는 도토리구슬을 한 가지 쥐고 있지만 다람쥐와 홀짝 내기에 언제나 진다 눈 어둔 솔새가 귀 없는 솔잎 바늘에 명주실 다 꿰도록 셈 흐린 참나무가 영악한 다람쥐한테 도토리 한 줌 되찾도록 결 봄 여름 없이 달이 뜬다          웃음의 힘                                                                          넝쿨 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은행나무 부부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 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한 걸음                                                   -속도에 대한 명상 11   드물게 나무 아래 내려온 늘보가 땅이 꺼질세라 뒷발을 들어 앞으로 떼놓는다 나뭇잎에 앉아 있던 자벌레가 활처럼 굽은 허릴 펴 삐죽 앞으로 나앉는다 맹수에 쫓긴 토끼가 깡총 뛰어오른다 버섯조각을 입에 문 개미가 쏜살같이 내닫는다 첫돌 지난 아기가 뒤뚱거린다 보폭은 다르지만 모두 한 걸음이다         호두나무                                                쭈글쭈글 탱글탱글 한 손에 두 개가 다 잡히네? 수줍은 새댁이 양볼에 불을 지핀다 호도과자는 정말 호도를 빼닮았다 호도나무 가로수 下 칠십년 기찻길 칙칙폭폭, 덜렁덜렁 호도과자 먹다보면 먼 길도 가까웁다     확인 못한 이야기들                                   참외밭 누나, 누나, 여기 누가 참외 따갔네? 꼭지만 남았어. 아, 그거! 아마 고슴도치가 따갔나보다. 너, 고슴도치가 왜 밤송이처럼 가시가 돋쳤는지 모르지? 이빨로 참외꼭질 갉아서 똑 뗀 담에 등가시로 콕 찍어서 짊어지고 엉금엉금 기어간단다. 증말이야? 뒤란에 다람쥐 성, 니째 성, 나 다람쥐 한 마리만 잡아 주면 얽으미에 넣고 키우지. 임마, 다람쥐를 어뜨케 잡냐. 아,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다. 장독대 뒤에, 밤나무 밑에 다람쥐 많지? 다람쥐가 밤 줏어 먹느라 정신 없을 때 갑자기 바람 불면 알밤이 떨어져 가끔 다람쥐들이 뒤통수 맞고 기절한다더라. 알밤 맞은 다람쥐 보면 내 주워서 너 주지. 너도 바람 불 때 잘 봐라? ..............알았어! 꿩동산 꿔어꿔꿔 - 엉 - 아부지, 꿩괴기가 닭고기보다 맛있나? 그으럼, 열이 먹다 아홉이 죽어도 모른단다. 아부지 그러면 꿩 좀 잡아오지. 니가 좀 잡아서 아부지 꿩괴기 맛좀 보여주거라. 에이, 내가 어떻게 잡아. 꿩 잡는 건 어렵잖다. 장끼 두 마리가 싸우기 시작하면 한 놈이 죽어야 끝나거든. 넌 가만히 쌈 구경하고 있다가 죽은 놈 한 마리 줏어오면 아부지가 구워주지. 으응............ 근데 어디서 싸워?       반칠환 시 모음 20편 ☆★☆★☆★☆★☆★☆★☆★☆★☆★☆★☆★☆★ 가뭄        반칠환  저 소리 없는 불꽃 좀 보아.     감열지처럼 검게 타오르는 들판,  그 위로 날던 새 한 마리  한 점 마침표로 추락한다.     하! 삼도내마저 말라붙어  차안과 피안의 경계가 없어졌다 ☆★☆★☆★☆★☆★☆★☆★☆★☆★☆★☆★☆★ 갈 수 없는 그곳  반칠환  그렇지요,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상의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다는 그곳은 도대체 얼마나 험준한 것이겠습니까.  새벽이 되기 전 모두 여장을 꾸립니다.  탈것이 발달된 지금 혹은 자가용으로, 전세 버스로, 더러는 자가 헬기로,  여유치 못한 사람들 도보로 나섭니다. 우는 아이 볼기 때리며 병든 부모  손수레에 싣고 길 떠나는 사람들, 오기도 많이 왔지만 아직 그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더러는 도복을 입은 도사들 그곳에 가까이 왔다는 소문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합니다. 낙타가 바늘귀 빠져나가기 보다 더 어렵다는 그곳,  그러나 바늘귀도 오랜 세월 삭아 부러지고 굳이 더이상 통과할 바늘귀도 없이  자가용을 가진 많은 사람들, 벌써 그곳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건너가야 할 육교나 지하도도 없는 곳, 도보자들이 몰려 있는 횡단보도에 연이은 차량,  그들에게 그곳으로 가는 신호등은 언제나 빨간불입니다. 오랜 기간 지친 사람들,  무단 횡단을 하다가 즉심에 넘어가거나 허리를 치어 넘어지곤 합니다.  갈 수 없는 그곳, 그러나 모두 떠나면 누가 이곳에 남아 씨 뿌리고 곡식을 거둡니까.  아름다운 사람들, 하나 둘 돌아옵니다.  모두 떠나고 나니 내가 살던 이곳이야말로 그리도 가고 싶어하던  그곳인 줄을 아아 당신도 아시나요.  ☆★☆★☆★☆★☆★☆★☆★☆★☆★☆★☆★☆★ 고요         반칠환  메밀묵 팔러 시내 가신 엄마, 앞들에 땅거미 지도록 돌아오지 않아  섬돌에 앉아 목 빼어 고갯길 바라보노라면  외딴집 외딴 마당은 아득히 고요해  건너 마을 저녁 연기도, 개 짖는 소리도 그치면  빈 묵판 달각이는 엄마 발자욱 소리 들려오도록  세상은 너무나 고요해  집 나간 강아지 검줄이 집도 고요해  빚 대신 팔려간 중송아지 없는 외양간도 고요해  장작불 사위어든 쇠죽솥 고래도 고요해  이태 전 돌아가신 아버지 기침소리도 나지 않는,  학교 간 누나도 돌아오지 않는 두 칸 방도 고요해  달이 먼저 뜰라나, 엄마 먼너 오실라나  토옥---- 톡!  가으내 바싹 마른 달맞이꽃 씨앗 터지는 소리 ☆★☆★☆★☆★☆★☆★☆★☆★☆★☆★☆★☆★ 구두와 고양이       반칠환 마실 나갔던 고양이가 콧등이 긁혀서 왔다 그냥 두었다 전날 밤늦게 귀가한 내 구두코도 긁혀 있었다 정성껏 갈색 약을 발라 주었다 며칠 뒤, 고양이 콧등은 말끔히 나았다 내 구두코는 전혀 낫지 않았다 아무리 두꺼워도 죽은 가죽은 아물지 않는다 얇아도 산 가죽은 아문다 ☆★☆★☆★☆★☆★☆★☆★☆★☆★☆★☆★☆★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하는  힘으로 다시 걷는다.  ☆★☆★☆★☆★☆★☆★☆★☆★☆★☆★☆★☆★ 누나야          반칠환  누나야  다섯살 어린 동생을 업고 마실 갔다가  땀 뻘뻘흘리며 비탈길 산지기 오두막 찾아오던 참대처럼 야무진,  그러나 나와 더불어 산지기 딸인 누나야  국민학교 때  '코스모스 꽃잎에 톱날 박혀 있네  톱질하시던 아버지 모습 아련히 떠오르네'  동시를 지어 백일장에 장원한 누나야  나이팅게일이 되겠다고, 백의 천사가 되겠다고  간호대학에 간 누나야  졸업한 다음 시내 병원 다 뿌리치고 오지마을  무의촌 진료소장이 된 누나야  부임 첫날 다급한 소식 듣고 찾아간 곳 다름 아닌  냄새나는 축사, 난산의 돼지 몸 푸는 날이었다고  다섯 마린지 여섯 마린지 돼지 새끼 받아내느라  혼났다던 스물 두 살 누나야  못난 동생 시인 됐다고 그럴 줄 알았다고  머리 쓰다듬던 누나야  병든 엄마 병들었다고 누구보다 먼저 친정 달려와  링거병 꽂고 가는 양념딸 누나야  이제 곧 큰 길이 나고 사라진다는 고향마을 중고개에  아직도 나를 업고 가느라 깍지 낀 손에  파란 힘줄 돋는 누나야  세상의 모든 누나들을 따뜻한 별로 만든  나의 누나야 ☆★☆★☆★☆★☆★☆★☆★☆★☆★☆★☆★☆★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반칠환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 둥근 시집        반칠환 나무의 나이테 속에 벼려넣은  여름이 있고 겨울이 있다  천 개의 손끝에 송이꽃을 들고 불타는 햇빛을 연모하던 기억도 있다  뭇 바람의 제국주의자들이 흔들고 지나갈 때마다  박수를 치던 치욕의 기억조차 새기어놓았다  나이테는 그 여름의 연서이자  그 겨울의 난중일기이다  나이테는 밑동 잘린 고목의 유고 시집이다  천년 고찰은 저 둥근 시집을 읽으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천년 불상조차 한 번도 저 시 낭독이 싫어 외출한 적이 없다  풍경을 두드리는 바람은 견디기 힘든 유혹이지만  붓다의 처음 깨달음도 저 나이테의 그늘 아래서였다  나이테는 제 가슴에 새긴 목판 경전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좀벌레가 기어간다  저 느린 것들이 나이테의 경전의 마저 읽고 나면  곧 새로 늙은 젊은 기둥이 또 한 세월을 받치라  ☆★☆★☆★☆★☆★☆★☆★☆★☆★☆★☆★☆★ 먹은 죄           반칠환  새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  지빠귀를 새매가 나꾸어 갔다  가까스로 허물 벗은 날개 말리던  잠자리를 물총새가 꿀꺽 삼켜 버렸다  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먹는다  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일이다  ☆★☆★☆★☆★☆★☆★☆★☆★☆★☆★☆★☆★ 물결         반칠환                                                    그랬구나! 가슴의 통증이 가시고 눈앞이 환해진다.  어리석고 아둔한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의 굽은 어깨와 허리가  매화 등걸처럼 휘영청 내 걸리고 가슴마다 꽃이 핀다.  내 눈의 들보와 남의 눈의 티끌마저 모두 꽃핀다.  가장 아프고, 가장 못난 곳에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 걸려 있다니,  가슴에 박힌 대못은 상처인가 훈장인가?  언제나 벗어 던지고, 달아나고 싶은 통증과 치욕 하나쯤 없는 이 어디 있으며, 가슴 속 잉걸불에 묻어둔 뜨거운 열망 하나쯤 없는 이 어디 있을 것인가?  봄날 새순은 제 가슴을 찢고 나와 피며,  손가락 잘린 솔가지는 관솔이 되고,  샘물은 바위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여,  내 근심이 키우는 것이 진주였구나,  네 통증이 피우는 것이 꽃잎이었구나.  ☆★☆★☆★☆★☆★☆★☆★☆★☆★☆★☆★☆★ 바람         반칠환 저놈은 대단한 독서광 아니면 문맹이 틀림없다 열흘째 넘기지 못한 서적을  돈 세듯 넘겨놓고, 포플러 잎 팔만대장경을 일제히 뒤집어 놓은 채 달아난다   ☆★☆★☆★☆★☆★☆★☆★☆★☆★☆★☆★☆★ 사라진 동화 마을                         반칠환 더 이상 불순한 상상을 금하겠다 달에는 이제 토끼가 살지 않는다. 알겠느냐 물 없는 계곡에 눈먼 선녀가 목욕을 해도 지게꾼에게 옷을 물어다 줄 사슴은 없느니라 아무도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로 올라갈 일이 없을 것이며 나무 위에 오른들 더 이상 삭은 동아줄도 내려오지 않느니라 흥부전 이후, 또다시 빈민가에 박씨를 물고 오는 제비가 있을 것이며 소녀 가장이 밑 없는 독에 물을 부은들 어디 두꺼비 한 마리가 있더냐 이 땅엔 더 이상 여의주 없음을 알 턱이 없는 너희들이 삼 급수에서 비닐 봉다리 뒤집어쓴 용이 승천하길 바라느냐 자아, 더 이상 철부지 유아들을 어지럽히는 모든 동화책의 출판을 금한다 아울러, 덧없이 붉은 네온을 깜박이는 자들이여 쓸데없는 기도를 금한다 하느님은 현세의 간빙기 동안 취침중이니 절대 교회 문을 시끄럽게 두들기지 말거라 너희가 부지런히 종말을 완성할 때 눈을 뜨리라 ☆★☆★☆★☆★☆★☆★☆★☆★☆★☆★☆★☆★ 새해 첫 기적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어떤 채용 통보        반칠환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저를 채용 하신다니  삽 자루는커녕 수저 들 힘도 없는 저를,  셈도 흐리고, 자식도 몰라보는 저를,  빚쟁이인 저를 받아 주신다니  출근복도 교통비도, 이발도 말고 면도도 말고  입던 옷 그대로 오시라니  삶이 곧 전과(前過)이므로 이력서 대신  검버섯 같은 별만 달고 가겠습니다  미운 사람도 간다니 미운 마음도 같이 가는지 걱정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간다니 반갑게 가겠습니다  민들레도 가고 복사꽃도 간다니  목마른 입술만 들고, 배고픈 허기만 들고  허위허위 는실는실 가겠습니다  살아 죄지은 팔목 뼈 두개 발목뼈 두 개  희디희게 삭은 뼈 네 개쯤 추려  윷가락처럼 던지며 가겠습니다  도면 한 걸음, 모면 깡충깡충 다섯 걸음!  고무신 한 짝 벗어 죄 없는 흙 가려 넣어  꽃씨 하나 묻어들고 가겠습니다  ☆★☆★☆★☆★☆★☆★☆★☆★☆★☆★☆★☆★ 어머니 5     반칠환 산나물 캐고 버섯 따러 다니던 산지기 아내  허리 굽고, 눈물 괴는 노안이 흐려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 바라보신다  칠십년 산그늘이 이마를 적신다  버섯은 습생 음지 식물  어머니, 온몸을 빌어 검버섯 재배하신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  주름진 핏줄마다 뿌리내린다  아무도 따거나 훔칠 수 없는 검버섯  어머니, 비로소 혼자만의 밭을 일구신다  ☆★☆★☆★☆★☆★☆★☆★☆★☆★☆★☆★☆★ 언제나 지는 내기          반칠환  소나무는 바늘 쌈질를 한 섬이나 지고 섰지만  해진 구름 수건 한 장을 다 깁지 못하고  참나무는 도토리구슬을 한 가지 쥐고 있지만  다람쥐와 홀짝 내기에 언제나 진다  눈 어둔 솔새가 귀 없는 솔잎 바늘에  명주실 다 꿰도록  셈 흐린 참나무가 영악한 다람쥐한테  도토리 한 줌 되찾도록  결 봄여름 없이 달이 뜬다 ☆★☆★☆★☆★☆★☆★☆★☆★☆★☆★☆★☆★ 웃음의 힘                                                         반칠환 넝쿨 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 월식       반칠환  돼지우리 삼은 큰 궤짝 걷어차며  이놈 팔아 나 중핵교나 보내주지  거듭 걷어차던 시째 성 집 나갔다  대처 나간 성들도 소식 없었다  사진틀 끌어안고 눈물짓던 엄마는  묵판 이고 나가다 빙판에 팔 부러졌다  말 없는 니째 성 더욱 말 없고  말 잘하는 누나도 말이 없었다  겨울 바람은 왜 쌀 떨어지고, 옷 떨어지고,  땔감 떨어진 집을 더 좋아하나  연기 솟는 방고래, 흙 쏟아지는 베름짝이  무에 문제냐고 하룻밤 묵어 가잰다  마실 갔다온 엄마가 말씀하신다  이상한 일도 다 있지 마실 갈 땐 둥실하던 보름달이  슬슬 줄어들어 그믐처럼 깜깜터니  돌아올 때 그짓말처럼 환하지 않더냐  그게 월식인 줄 대처 나간 성들은 알고 있었을까  얼음보다 더 찬, 멍석보다 더 큰 그믐달이  슬슬 가려주던 우리 집 언젠가  그짓말처럼 환해질 줄 알고 있었을까 ☆★☆★☆★☆★☆★☆★☆★☆★☆★☆★☆★☆★ 은행나무 부부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 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 한평생         반칠환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도 미뤄 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도 미뤄 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    
967    <소나무> 시모음 댓글:  조회:4814  추천:0  2015-04-16
  소나무에 관한 시 모음.♡˚。                       + 소나무  나이테를 보지 않고  눈어림으로 알 수 있는 버젓한 어깨  튼튼한 다리가 보기 좋다.    꽃보다 더 나은 푸른 솔이 좋다.   이런 거구나  이래야 하는구나.  냄새도 빛깔도  이름과 닮은  의젓한 나무.  네 모습을 보면서  소나무야  꿈까지 푸르게 꾸고 싶다.  (정두리·시인이며 아동문학가, 1947-)  + 소나무  소나무의 이름은  솔이야  그래서 솔밭에  바람이 솔솔 불면  저도 솔솔 하고  대답하며  저렇게 흔드는 거야  (이문구·소설가, 1942-2003)  + 소나무  생각이 바르면 말이 바르다.  말이 바르면 행동이 바르다.  매운바람 찬 눈에도 거침이 없다.  늙어 한갓 장작이 될 때까지  잃지 않는 푸르름.  영혼이 젊기에 그는 늘 청춘이다.  오늘도 가슴 설레며  산등성에 그는 있다.  (유자효·시인, 1947-)  + 소나무에 대한 예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한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황지우·시인, 1952-)  + 소나무  한 발만 더 디디면 벼랑인데  바로 거기서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가 있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는  늘 바르르 떨고 있는데, 에멜무지 금방 새로 변해  날아가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아슬함으로 잔뜩  발돋움한 채 바르르 떨고 있는데, 아직도 훌쩍  날아가지 않고 서 있는 저 나무가  기다린 것은 무어냐  (송재학·시인, 1955-)  + 새해, 소나무를 보며  올해는 저 소나무가 뾰족한 잎을 펴서   빗방울 하나라도 제 손으로 받아내며   공(空)으로 듣는 새소리  갚을 일이 있을까  아니면 더 푸르게  새의 눈을 찌르고서   뾰족한 잎만 봐도 저절로 울어대는   새들의 노래 소리를 공(空)으로 또 들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저 푸른 생각 끝에      송홧가루 가득 품어 임 오는 윤사월에   백년을 기다려 사는  그리움을 말하려나  (임영석·시인, 1961-)  + 리기다소나무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한 그루 리기다소나무 같았지요  푸른 리기다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던 바다의 눈부신 물결 같았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했지요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솥가지가 되어  가장 부드러운 솔잎이 되길 원했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  (정호승·시인, 1950-)  + 소나무 숲에는  소나무 숲에는 뭔가 있다  숨어서 밤 되기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은근할 수가 있는가  짐승처럼 가슴을 쓸어 내리며  모두 돌아오라고, 돌아와 같이 살자고 외치는  소나무 숲엔 누군가 있다  어디서나 보이라고, 먼데서도 들으라고  소나무 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함성처럼 흔들린다  이 땅에서 나 죄 없이 죽은 사람들과  다치고 서러운 혼들 모두 들어오라고  몸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람 부는 날  저렇게 안 우는 것처럼 울겠는가  사람들은 살다 모두 소나무 숲으로 갔으므로  새로 오는 아이들과 먼 조상들까지  거기서 다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밥 짓는 연기들은  거기 모였다가 서운하게 흩어지고  소나무 숲에는 누군가 있다  저물어 불 켜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마다  저렇게 먼데만 바라보겠는가  (이상국·시인, 1946-)     + 소나무의 나라  잊을 수 있을까, 소나무의 나라  언젠가 돌아가 누울  우리들의 나라  손금으로 흐르는 삶의 강물이 비치는  영혼이 흐리다  우리의 삶은 모래 위를 지나는 발자국  발을 들면 다른 모든 것들과 같은  허물어지는 형태를 하고  바람에 잊혀지는 흔적들  영원한 진리는 어디에 있나  영원한 나라는?  누구보다 맑은 영혼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가 바라보며 눈 감을 나라  소나무의 뿌리를 찾아다니는  잘 보존된 당신의 물  모래 먼지가 지워버린 그림  소나무의 나라, 하지만 이제는  잊을 수 없지만 잊혀지는 나라  차가운 가슴으로도,  별을 보지 않고도 너끈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사람들에도  눈물은 그냥 흘러가고  그냥 흘러가는 이 땅은  우리들이 기다리는 천국이 아니다  우리는 왜 외로운가  잊혀져 있을 수 없는  내 속에 자라는 나무  없어지고 사라지는 어떤 것에도  자신의 영혼을 바칠 수 없어  헤매던 숱한 날들의 기억이  모래 위의 흔적이 되어지고  우리들의 천국은 사막이 아니다  바람이 소나무 위에 앉는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  사랑을 위해 바친 목숨도 아름다워라  바람은 어제도 내일도 불지만  또 그렇게 부는 것만은 아니고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진리의 물  내 눈앞에서 잊혀지는 소나무의 나라  내 사랑의 나라  (서정윤·시인, 1957-)      박승우의 '절벽의 소나무' 외  + 절벽의 소나무  바위에 못을 박았다  스스로 길을 내며  안간힘으로 박았다  가파른 절벽에  소나무 한 폭  거뜬히 걸어 두었다  (박승우·아동문학가, 1961-)  + 바위 소나무  골짜기 오솔길에  비스듬히 혼자 버티고 서 있는  작은 바위 소나무  손가락만한 좁은 바위 틈  긁어모아도  한 줌 안 되는 흙  그래도 난 끄떡없어  가느다랗게 뿌리 내렸지만  기쁜 내일이 있어 좋아.  숨찬 솔바람이 몰아치면  가느다란 솔가지를 더 야무지게 세우며  이게 참음이라고 보여 주고  이따금 산새가 찾아오면  초록빛 솔잎에 앉히며  이게 행복이라 일러주고  (김완기·아동문학가)  + 늙은 소나무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여자를 안다고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사랑을 안다고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세상을 안다고  늙은 소나무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바람소리 속에서  이렇게 말하지만  (신경림·시인, 1936-)  + 소나무를 만나  바람을 다스리지 못하겠거든  산으로 가서 소나무를 만나  말 대신 눈으로 귀를 열어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절제하고, 절단하고  바람이 부는 날  하늘에다 온몸으로 수화하는  나무의 설법에 큰절하고  잘 늙은 소나무가 손짓해 주는  그 곁에 가서 뿌리를 내려라  어느덧 산을 닮아  푸른 자태가 제격이면  (박곤걸·시인, 1935-2008)  + 소나무·3  나의 텃밭은 버섯  즙은 해독제. 갈비는 땔감  가지는 지팡이로 길잡이가 되었느니라  몸은 기둥과 서까래  결 고운 가구가 되고  나의 체취는 향수. 살은 양식  잎은 떡을 빗고. 진은 껌이 되고  우듬지에서  밑둥치까지 버릴 것 없이  네게 유익을 주었느니라  너를 지키기 위해  우는 사자의 곡성을 지우기 위해  쉼 없이 초음파 소리를 내고  너를 위해 흘린 눈물은  박토를 옥토로 만들지 않았느냐  언제나  너의 본이 되고자  초지일관 낙락장송 된  나의 뜻 어찌 알겠느냐 !  (성지혜·시인, 1945-)  + 부처님 소나무  목포에서도  멀리 더 멀리  나가 앉은 홍도 단옷섬  절벽엔  소금 바람소리에 키가 자라지 않는  소나무 한 그루 살고 있다.  발 아래엔 풍란 한 포기 키우질 않는다.  빠돌 하나도 거느리지 않는다.  혼자 살고 있다. 친구도 먼 친척도 하나 없다.  저녁때면 이장을 맡은 낙조가  불그름해진 채로 한 번 휘익 돌아보고 갈 뿐  검푸른 바다 들판에  돔, 농어네 가족 희희낙락하는 것  물끄러미 바라보고,  시간이 들여다보고 물러나면  솔잎 옷 어쩌다 갈아입고…  한 번도 '호젓하다' 말하지 않는다.  입이 무겁다.  (이영신·시인, 1952-)  + 겨울 소나무  십 리 길 우체국에  편지 부치러 갔다오던 식전의 언덕길에서  몇 그루의 소나무를 만났다.  항상 무심히 지나쳐보던 그들이지만  배고픈 내가 보아 그런지  그들은 모두 배고파 허기진 사람들 모양이었다.  내가 도회가 싫은 시골 촌놈이라 그런지  그들도 먼 불빛의 도회에서  밀려온 사람들 같았다.  아니면  흉년 든 어느 해 겨울  굶고 얼어죽은 사람들의 원귀들일까?  부황난 사람들의 머리칼일까?  소나무들은 눈을 몰고 오는 바람 속에  천년도 더 묵은 울음을 울며  어쩌면 한마디 구성진 콧노래라도  골라내어 부르는 성싶었다.  아침 바람에 내가 허리 시려 그런지  그들도 몹시 허리가 시리운 듯  구부정히 모로 버티어 서 있었다.  (나태주·시인, 1945-)  + 소나무  솔잎도 처음에는 널따란 잎이었을 터,  뾰쪽해지고 단단해져버린 지금의 모양은  잎을 여러 갈래로 가늘게 찢은 추위가 지나갔던 자국,  파충류의 냉혈이 흘러갔던 핏줄 자국,  추위에 빳빳하게 발기되었던 솔잎들  아무리 더워도 늘어지는 법 없다.  혀처럼 길게 늘어진 넓적한 여름 바람이  무수히 솔잎에 찔리고 긁혀 짙푸르러지고 서늘해진다.  지금도 쩍쩍 갈라 터지는 껍질의 비늘을 움직이며  구불텅구불텅 허공으로 올라가고 있는 늙은 소나무,  그 아래 어둡고 찬 땅 속에서  우글우글 뒤엉켜 기어가고 있는 수많은 뿌리들.  갈라 터진 두꺼운 껍질 사이로는  투명하고 차가운 피, 송진이 흘러나와 있다.  골 깊은 갈비뼈가 다 드러나도록 고행하는 고승의  몸 안에서 굳어져버린 정액처럼 단단하다.  (김기택·시인, 1957-)  + 소나무의 옆구리  어떤 창에 찔린 것일까  붉게 드러난 옆구리에는  송진이 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단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기어가던 개미 한 마리  그 투명하고 끈적한 피에 갇혀버린 것은  함께 굳어가기 시작한 것은  놀라서 버둥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춘 개미,  그날 이후 나는  소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제 목숨보다도 단단한 돌을 품기 시작한  그의 옆구리를 보려고  개미가 하루하루 불멸에 가까워지는 동안  소나무는 시들어간다  불멸과 소멸의 자웅동체가  제 몸에 자라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나희덕·시인, 1966-) 
966    아찔아찔... 다ㅏ 건설되면 꼭 한번은 가봐야짐... 댓글:  조회:1952  추천:0  2015-04-16
  2015년 04월 14일 08시 47분        호남성 평강현(湖南省平江县) 막부산(幕府山)자연국립관광공원 현애절벽 잔도(栈道) 건설현장. ------------------------------------------- 부산 금정산 오름길에서 한북정맥 경기 포천 가평 운악산에서   호남정맥 전남 보성 봉화산 부근에서 경남 남해 설흘산 아래 다랭이마을에서 경남 남해 설흘산 아래 다랭이마을에서  
965    시 낯설게 하기와 조향시인 댓글:  조회:4314  추천:1  2015-04-14
      바다의 層階                                        조향(趙鄕, 본명 조섭제)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폰폰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 ―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깃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개정신보판 現代國文學粹, 自由莊(1952간)에서 발췌하여 엮은 1994년 간행 1詩,를 원문으로 옮겨 적었음.   ------------------------------------------------------------------------------------------------------------------   시를 왜 낯설게 써야 하는가     낯설게 하기, 즉 데빼이즈망depaysement의 본뜻은 고향paynatal에 편히 길들어있는 것들을 일부러 낯선 곳, 타향으로 보내 불편하더라도 낯가림을 겪도록 유도한다는 뜻을 지닌 불어의 어휘 de-paysement에서 연원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선 표현, 낯선 기법에 의해서만 독자나 감상자의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낯익은 것들은 지겹도록 우리를 지루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그러므로 낯익은 것들은 낡은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우리의 지각을 자극시키기는커녕 우리의 의식을 게을러지게 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든다. ‘가령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라는 농담을 처음 들었을 때는 재미있는 표현에 웃음이 났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었을 경우는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훌륭한 문학작품이란 사물을 異化, 끊임없이 낯선 관점으로 이끌어냄으로써 감상자, 관객, 독자의 의식을 혁신적으로 일깨워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이나 언어습관은 일상화되거나 기계화, 자동화되기 싶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기법으로 기존의 의미나 의식을 파괴하고 자율적 언어에 의한 독창적 의미의 틀을 이끌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적인 언어와 자율적인 언어의 차이란 평범한 보행과 예술가의 춤, 안무를 비교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문학적 언어 표현, 즉 자율적인 언어란 무용가가 창의적인 동작을 만들어 안무하는 춤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와 반대로 일상적인 걸음걸이는 누구나 타성에 젖어 다만 걸어다는 것 그 자체, 보행만을 의미하므로 무용가가 취하는 낯선 걸음걸이나 예술적 동작, 무대 위의 스텝과는 아무 연관도 없고 목적의식 자체도 다른 것이다. 자율적인 언어란 새로운 표현,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무기력한 언어습관에 의해 무뎌지고 무감각해진 세상을 새롭게 자극, 각성시킴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에 깊이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김영찬
964    조향시인을 그리며... 댓글:  조회:3856  추천:0  2015-04-14
Episode  조향  열 오른 눈초리, 하잔한 입 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쁜히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몰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다보았다.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그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쳐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갔다.  *** 시인소개---조향. 1917 - 1984. 경남 사천 출생. 본명은 섭제, 니혼 대학 상경과  수학. 신춘문예로 등단(1941)하여 동인지   을 주제했으며 동인으로 참여했다. 그는 시에 외래어를  대담하게 도입하고, 종래의 산문적 설명적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여  초현실주의 계열의 시풍을 확립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 ESQUISSE                                             1 눈을 감으며. SUNA는 내 손을 찾는다. 손을 사뿐 포개어 본다. 따스한 것이. ―――― 그저 그런 거예요! ―――― 뭐가? ―――― 세상이. SUNA의 이마가 하아얗다. 넓다.              2 SUNA의. 눈망울엔. 내 잃어버린 호수가 있다. 백조가 한 마리. 내 그 날의 산맥을 넘는다.              3 가느다랗게. 스물다섯 살이 한숨을 한다. ―――― 또 나일 한 살 더 먹었어요! SUNA는 다시 눈을 감고. ―――― 그저 그런 거예요! 아미에 하얀 수심이 어린다.                 4 ―――― 속치마 바람인데.…… ―――― 돌아서 줄까? ―――― 응! 유리창 너머 찬 하늘이 내 이마에 차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됐어요.                 5 SUNA가 화장을 한다. ―――― 화장도 예술 아녜요? SUNA의 어깨 넘으로 내 얼굴이 쏘옥 돋아난다. 나란히 나와 SUNA의 얼굴이. 거울 안에서. ―――― 꼭 아버지와 딸 같아요.              6 SUNA의 하얀 모가지에 목걸이. 목걸이에 예쁜 노란 열쇠가 달려 있다. ―――― 이걸로 당신의 비밀을 열어 보겠어요.              7 STEFANO의 목청에 취하면서. 눈으로 SUNA를 만져 본다. 오랜 동안. ―――― 왜 그렇게 빤히 보세요? ―――― 이뻐서. ―――― 그저 그런 거예요!              8 나의 SUNA와 헤어진다. 까아만 밤 ? 거리 . 택시 프론트 그라스에 마구 달겨드는. 진눈깨비 같은 나비떼 같은. 내 허망의 쪼각 쪼각들. 앙가슴에 마구 받아 안으며. SUNA의 눈망울이. 검은 하늘에 참은 많이 박혀 있다. 깜박인다. 「그저 그런 거예요」 -에피소드 (EPISODE)- 열오른 눈초리, 하잖은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보았다.       ―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그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얗게         비석이 되어갔다. 시인 김규태/ 조향시인의 빛과 그늘 극우 이념성향… 문단'이단아' 낙인 군사 정권시 매카시즘 광풍 주도 스캔들 폭로·신문사 테러 전력도 현대시 업적, 저돌적 기질에 묻혀       조향은 항시 빨간 페인트 통을 들고 다니는 시인으로 보였다. 빨강 물감을 가득 채워놓고 필요할 때마다 뿌리고 칠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는 페인트공은 아니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현대시의 전파자요, 창조자인데다 그 힘이 쩡쩡 구덕골을 울리는 동아대 교수였다. 아니 교수 중의 교수로 자부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그 자신의 시나 쉬르레알리슴에 관한 강의는 딴 사람의 추종을 용납하지 않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어찌된 영문인지 기성문단에선 아예 기피당하거나 상종하지 않으려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었다. 부득불 그에 대한 사나운 인심의 근원을 찾자면 한국전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눠 그가 인심을 잃은 얘기를 해야겠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이념 문제를 들고 나와 동료나 선배 문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더구나 5·16군사쿠데타 때는 군부가 지휘하는 사회정화운동에 적극 참여, 그 나름대로의 안목으로 대상자를 골라 빨강 리스트에 올리는 역을 맡았다. 이러한 사실은 그 보조역을 맡은 그의 제자 교수가 증언한 바 있다. 1970년대 어느 날, 서울의 박남수 시인이 부산에 내려왔다. 전화로 '부산 커피'에 좀 나오라는 것이었다. 광복동에 있는 이 다방은 조향이 잘 가는 곳이었다. 얼른 내키지는 않았으나 필자를 문단에 데뷔시켜 준 분의 말이라 거역할 길이 없었다. 그 자리에 놀랍게도 박남수는 조향과 마주 앉아 있지 않는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색은 할 수 없고 차를 함께 마셨다. 비단 박 시인뿐 아니라 피란 온 북한출신 문인들이 그의 붉은 리스트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 일단 빨간색으로 낙인찍히면 살아남기 어렵고 살아난데도 생존자체가 위협을 받는 때가 아니던가. 박남수는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맨 먼저 자신에게 페인트칠을 한 조향을 왜 만나는 것일까. 박남수 시인은 "그가 나에게 용서를 빌었기 때문"이라고 짤막하게 털어 놓았다. 용서를 빈 자에 대한 예우로써 부산에 오면 맨 먼저 만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관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이데아 문제'로 다른 사람의 가슴에 페인트칠을 한 경우지만 다른 사례 하나는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여 창피를 준 일대 폭로사건이 있었다. 부산이 피란 수도 때이다. 당시 주간지에 한 페이지에 걸쳐 김동리와 손소희와의 스캔들이 대서특필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조향이 직접 제공하고 쓴 기사였다. 이들 두 작가는 정식으로 재혼이 이뤄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두 사람이 한낮에도 남포동 한가운데를 팔짱을 끼고 활보한다니, 그들의 아지트가 영주동 산기슭에 있다느니 하는 매우 구체성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피란지 부산 문단이 곧 중앙문단이었던 시절이다. 피란 온 문인들은 물론 부산쪽 문인들까지 충격을 받을 만한 기사였다. 조향의 저돌적 기질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기성 문단의 우상에 대한 파괴적 행동양식이라고나 할까. 해석 나름의 폭로기사가 그를 일약 겁을 모르는 '부산의 나이트' 쯤으로 인식되게 했다. 그런가 하면 70년대에 와서 동아대의 캠퍼스 확장 문제와 구덕공원 점유관계를 둘러싸고 부산일보가 시민 편에 서서 동아대를 한창 공격하고 있을 때 그가 부산일보를 타도하는 일선에 나섰다. 윤전기에 모래 한 줌 뿌리면 끝장 보는 일이라고 부산일보 바로 뒤에 있는 마로니에 다방에 앉아 거의 공개적으로 테러를 지휘하기도 했다. 당시 동아대생들이 편집국에 난립, 곤봉을 휘두르고 집기를 부수는 등 일대소동이 벌어졌다. 위의 몇 가지 예를 보듯이 그가 극우적 행동 양식에 젖게 된 것은 해방공간에서 좌파인 건준(建準) 일부 적색인사와 투쟁한 전력 이후라니 그 속내를 소상히 헤아리기 어렵다. 결국 서울 등지의 예술인들에게도 이념적 공세를 가해 기피인물로 간주됨으로써 그의 쉬르레알리슴 운동조차 순수하게 바라보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향의 문학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그가 재직한 동아대에 대한 충성은 지극했다. 부산일보를 상대로 한 그의 행동만 봐도 총장이 탄복할 만한 일이 아니던가. 감히 신문사를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다니….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차기 총장을 노린다는 모함에 휩쓸려 동아대를 떠난다. 그가 당시 병원에 입원중인 정재환 총장을 만나 해명하려 했으나 정 총장은 이미 결심을 한 터였다. 조향은 예닐곱 번이나 병상을 찾아갔다. 총장은 조향이 왔다하면 눈을 딱 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쪽으로 오면 총장은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저쪽으로 다시 가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을 확인한 그 날 돌아와 짐을 꾸리고 무작정 서울로 떠나야 했다.     시인 김규태/ 조향의 빛과 그늘 거침없는 연애 즐긴 고독한 별 여교수와 팔짱끼고 광복동 거리 활보 장례식때 젊은 여교사가 관 붙들기도 문단서는 냉대받아 쓸쓸한 말년 보내       쉬르레알리슴의 왕국에서 미완의 황제로 군림했던 조향. 그는 일상인으로서, 자기류 시학의 명교수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한 인간으로선 끝내 한을 품고 사라진 고독한 별이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며 다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부산의 환락가는 광복동 거리였다. 서울의 명동과 진배 없었다. 조향은 이 거리를 너무 당당히 보란듯이 D대 체육과 여교수와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쯤은 예사로 여겼다. 60년대는 지금의 시각과는 아주 딴판의 시대였다. 조향은 이 거리에서 제자들을 만나도 스스로 팔짱은 풀지 않는다. 언제나 푸는 쪽은 여인 쪽이다. 조향은 거리에서 제자를 만나 곁에 팔짱을 끼고 오던 여교수가 팔을 풀면 그 여교수를 향해 "좋아하는 사람의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뭐가 부끄럽고 죄가 된다고 주저해. 여기 걸어 다니는 저 신사들도 알고 보면 다 위선자야." 그는 이렇게 사뭇 비분강개조로 설파한다. 도리어 제자들이 질려 그 자리를 뜨고 싶어 한다. 여류 시인 김춘방과는 아예 드러내놓고 팔을 끼고 다녔다. 필자도 여러 번 목격했던 사실이다. 김춘방과의 사이에 낳은 딸애를 집에 데려와 기른다는 말과 자기 큰딸이 그 애를 좋아해서 참 다행이란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 이전 50년대 후반에는 같은 과의 제주도 출신 J양과의 염문이 파다했다. 그는 23세 때 첫 결혼했으나 첫 부인과의 중매에 불만을 품고 초등학교 교사시절 동료와 사랑에 빠지고, 일본인 여교사와의 염문이 말썽이 되어 좌천되기도 했다. 줄곧 별거 해오던 첫 아내와 이혼하고 재혼하지만 그의 여성 편력은 그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속말을 숨기지 않고 털어 놓는 제자가 바로 신라대 총장을 역임한 시인 김용태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여인들을 가까이 두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 사람아, 사랑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 사랑이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위대한 힘"이라고 말했단다. 이를테면 명예나 돈이 아무리 있어도 애틋한 사랑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다. 김춘방이 늘 불쌍하다고 말해 왔다. 춘방이 일탈의 삶을 산 까닭도 6·25전쟁 중 중국인과의 뜻하지 않은 결혼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녀가 나중에 자살한 것도 결혼 생활의 불행과 더불어 아들의 걷잡을 수 없는 탈선이 복합되었기 때문으로 보고들 있다. 그녀는 경기여고를 나왔고 부산 최초로 부산극장에서 발레를 추었고 그 뒤에 시를 썼다.     용두산 공원 내 조향 시비.    그는 여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초현실주의는 위선을 가장 혐오한다. 그것이 사실주의와 다른 점이다. 연애를 하려면 위선적으로 사실주의적으로 하지 말고 자기처럼 초현실주의로 당당하게 해야 옳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60년대의 일이니 망정이지 요즘 같은 세태였다면 조향은 여인 편력 그 하나만으로도 강단에 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의 여인 편력은 서울에 가서도 쉬지 않아 기어이 장례 날 하관 때 일이 터졌다. 조향의 시신을 하관하려 할 때 26세의 초등학교 교사가 관을 붙들고 늘어졌다. 사랑은 당당히 초현실주의로 해야 가장 순수한 것이라는 교조적 신앙을 가졌던 그의 초현실주의의 연구회 회원이 주위의 눈을 전혀 의식치 않고 몸소 실천한 것이다. 대담하게도 관을 붙들고 "선생님! 저를 두고 어디로 가시렵니까." 그리고 "저도 함께 묻어 달라"고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이 지나치다 보니 옆에 있던 부인이 "저 년도 어서 같이 묻어라"고 고함쳤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의 시비는 사후에 용두산 공원에 '부산을 살다간 시인' 속에 포함되어 다음 시가 돌에 새겨졌다. '열 오른 눈초리, 한잔한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히 앉는다. 손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려다 봤다. /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구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갔다.'('EPISODE' 전문) 시인 조향은 1917년 경남 사천군 곤양면에서 태어나 진주고보를 나와 대구사범 강습과를 거쳐 일본대학 예술학원에서 수학했다. 1940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첫날 밤'이 입선되어 문단에 발을 디뎠다. 그는 일찍 동아대 국문과 교수와 문과대학장을 역임했으나 말년은 쓸쓸했다. 문단 쪽에서 그를 반기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해 서울로 온 뒤 그의 초현실주의 시학에 동조하는 모임이 있던 강릉 해변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67세, 1984년의 봄이었다. 문학과 일상의 행위가 모순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비록 그의 죽음은 릴케 같은 아름다운 모순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문학은 문학대로 평가해야 하는 경우다.  
963    사랑의 계관시인 - 김남조 댓글:  조회:4794  추천:0  2015-04-14
    편 지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내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평행선                                                       우리는 서로 만나본 적도 없지만 헤어져 본 적도 없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는 거리를 두고 가야만 합니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까 두려워하고 멀어지면 멀어질까 두려워하고 나는 그를 부르며 그는 나를 부르며 스스로를 저버리며 가야만 합니까 우리는 아직 하나가 되어 본 적도 없지만은 둘이 되어 본 적도 없습니다          가난한 이름에게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여인을 만나지 못해 당신도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까   검은 벽의 검은 꽃 그림자 같은 어두운 향로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겨울 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얼굴을 가리고 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   불신과 가난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어딘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 허무와 이별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때로 골똘히 죽음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당신도 고독이 아쉬운 채 돌아갑니까   인간이라는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이름에 울면서 눈감고 입술을 대는 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는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겨울바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었던 새들이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마저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혼령을 갖게 하오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갔었지. 인고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생 명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 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 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전 부싯돌임을 보라.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너로 말하건 또한 나로 말하더라도 빈 손 빈 가슴으로 왔다가는 사람이지 기린 모양의 긴 모가지에 멋있게 빛을 걸고 서 있는 친구 가로등의 불빛으로 눈이 어리었을까 엇갈리어 지나가다 얼굴 반쯤 그만 봐버린 사람아 요샌 참 너무 많이 네 생각이 난다 사락사락 사락눈이 한 줌 뿌리면 솜털 같은 실비가 비단결 물보라로 적시는 첫봄인데 너도 빗물 같은 정을 양손으로 받아주렴 비는 뿌린 후에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운 사랑으로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 아무것도 무상(無償)으로 주는 정의 자욱마다엔 무슨 꽃이 피는가 이름 없는 벗이여.         그대 있음에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설일(雪日)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정념의 기(旗)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 없는 것모양 걸려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래펄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서시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몹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하여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6월의 시                                          어쩌면 미소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그런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또 보리밭은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바단가도 싶고 은 물결 금 물결의 강물인가도 싶어 보리가 익어가는 푸른 밭 밭머리에서 유월과 바람과 풋보리의 시를 쓰자 맑고 푸르른 노래를 적자         네 생각 그 하나에                                         너를 재우고 돌아서던 손시린 돌무덤에 이제 나도 영원히 쉬려고 찾아온 거다 별이란 그저 잠잠히 순명하는 광망(光芒)이더구나 새삼 무에랴 우리를 일께워 섧게 만드리 인식할 것으로 믿자 너를 불러 네 옆에 이처럼 나 돌아왔음은 진실로 하늘이 짚어준 길이었거니 무서리 내 가슴에 잠기고 흰 눈깨비 성성히 덮혀오는 경루 한밤에도 오직 네 생각 그 하나에 나는 살았더니다       고 백                                                  열. 셀때까지 고백하라고 아홉. 나 한번도 고백해 본적 없어 여덟. 왜 이렇게 빨리세? 일곱. ..... 여섯. 왜 때려? 다섯. 알았어. 있잖아 넷. 네가 먼저 해봐 셋. 넌 고백 많이 해봤잖아 둘. 알았어 하나반. 화내지마 ..있잖아 하나. 사랑해       김남조 金南祚 (1927. 9. 26 -   )                                                                 1927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사랑과 인생을 섬세한 언어로 형상화해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는 계관시인이다. 대구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4년 후쿠오카[福岡] 규슈여고[九州女高]를 졸업했다. 1947년 서울대학교 문예과를 수료하고,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했다. 1991년 서강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0년대 초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강사를 거쳐 1955년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취임했으며, 1993년부터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2년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장(1984~), 한국여성문학인협회 회장(1986~), 대한민국예술원 회원(1990~), 방송문화진흥회 이사(2000~)로 활동하고 있다. 1950년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 《잔상(殘像)》 등을 발표해 문단에 등단했다. 이어 1953년 첫시집 《목숨》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사랑의 그리움을 노래한 첫시집은 가톨릭 계율의 경건성과 참신한 정열의 표출이 조화를 잘 이룬 초기 대표시집으로 평가된다. 이후의 시집 《나아드의 향유》(1955) 《나무와 바람》(1958) 《정념의 기》(1960) 등으로 이어지면서 뜨거운 정열의 표출보다는 종교적 구원의 갈망이 더욱 심화되어 절제와 인내가 내면화된 가운데 자아를 성찰하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풍부한 상상력으로 정감어린 세계를 그려낸 시집 《겨울 바다》(1967)를 비롯해 《설일(雪日)》(1971) 《사랑초서》(1974) 《동행》(1980) 《빛과 고요》(1983) 등 후기 시집으로 가면서 더욱 심화되어감을 알 수 있다. 특히 제8시집 《사랑초서》는 전편이 '사랑'을 주제로 다룬 연작시로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는 작가의 면모를 더욱 분명히 해준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인간의 영혼을 고양하는 사랑의 원초적인 힘을 종교적 시각에서 승화시켜 노래한 작가는 1950년대 등단 이후 현재까지 의욕적인 작품활동으로 30여 권이 넘는 시집을 발간했다. 삶의 근원이자 원동력인 '사랑'에 관한 지속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천착을 통해 생의 존재론적 탐구에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노천명(盧天命), 모윤숙(毛允淑) 등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류시인의 계보를 마련함과 동시에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1회 자유문인협회상(1958), 제2회 오월문예상(1963), 제7회 시인협회상(1974), 서울특별시문화상(1985),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88), 대한민국예술원상(1996) 등을 수상했으며, 국민훈장 모란장(1993)과 은관문화훈장(1998) 등을 받았다.   저서에 시집 《목숨》 《나아드의 향유》 《나무와 바람》 《정념의 기》 《풍림의 음악》(1963) 《겨울 바다》 《설일》 《사랑초서》 《동행》 《빛과 고요》 《바람세례》(1988) 《평안을 위하여》(1995) 《희망학습》(1998) 등이 있고, 수필집 《잠시 그리고 영원히》(1963) 《시간의 은모래》(1965) 《달과 해 사이》(1967) 《그래도 못다한 말》(1968) 《여럿이서 혼자서》(1971) 《은총과 고독의 이야기》(1975) 《사랑의 말》(1985) 《끝나는 고통, 끝이 없는 사랑》(1990) 《사랑 후에 남은 사랑》(1999) 등이 있다. 이 밖에 꽁트집 《아름다운 사람들》과 일역시집 및 다수의 시선집이 있다.    김남조 시 모음 67편 ☆★☆★☆★☆★☆★☆☆★☆★☆★☆★☆★ 너를 위하여 김남조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뜨는 것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내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김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기다려 줍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은 아닙니다. 먼저 사랑을 건넨 일도 잘못이 아닙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진정으로 사랑하여 가장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 됩시다. ☆★☆★☆★☆★☆★☆☆★☆★☆★☆★☆★ 보통 사람 김남조 성당 문 들어설 때 마음의 매무새 가다듬는 사람, 동트는 하늘 보며 잠잠히 인사하는 사람, 축구장 매표소 앞에서 온화하게 여러 시간 줄서는 사람, 단순한 호의에 감격하고 스쳐가는 희망에 가슴 설레며 행운은 의례히 자기 몫이 아닌 줄 여기는 사람, 울적한 신문기사엔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며 안경의 어룽을 닦는 사람, 한밤에 잠 깨면 심해 같은 어둠을 지켜보며 불우한 이웃들을 골똘히 근심하는 사람 ☆★☆★☆★☆★☆★☆☆★☆★☆★☆★☆★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김남조 너로 말하건 또한 나로 말하더라도 빈 손 빈 가슴으로 왔다 가는 사람이지 기린 모양의 긴 모가지에 멋있게 빛을 걸고 서 있는 친구 가로등의 불빛으로 눈이 어리었을까 엇갈리어 지나가다 얼굴 반쯤 그만 봐버린 사람아 요샌 참 너무 많이 네 생각이 난다 사락사락 사락눈이 한줌 뿌리면 솜털 같은 실비가 비단결 물보라로 적시는 첫봄인데 너도 빗물 같은 정을 양손으로 받아주렴 비는 뿌린 후에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운 사랑으로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 아무것도 무상으로 주는 정의 자욱마다엔 무슨 꽃이 피는가 이름 없는 벗이여 ☆★☆★☆★☆★☆★☆☆★☆★☆★☆★☆★ 겨울 꽃  김남조 1 눈길에 안고 온 꽃 눈을 털고 내밀어 주는 꽃 반은 얼음이면서 이거 뜨거워라 생명이여 언 살 갈피갈피 불씨 감추고 아프고 아리게 꽃빛 눈부시느니 2 겨우 안심이다 네 앞에 울게 됨으로 나 다시 사람이 되었어 줄기 잘리고 잎은 얼어 서걱 이면서 얼굴 가득 웃고 있는 겨울 꽃 앞에 오랫동안 잊었던 눈물 샘솟아 이제 나 또다시 사람되었어 ☆★☆★☆★☆★☆★☆☆★☆★☆★☆★☆★ 겨울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었던 새들이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마저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혼령을 갖게 하오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갔었지. 인고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그대 있음에  김남조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 물망초  김남조 기억해 주어요 부디 날 기억해 주어요 나야 이대로 못잊는 연보라의 물망초지만 혹시는 날 잊으려 바라시면은  유순히 편안스레 잊어라도 주어요 나야 언제나 못잊는 꽃 이름의 물망초지만  깜깜한 밤에 속 잎파리 피어나는  나무들의 기쁨  당신 그늘에 등불 없이 서 있어도 달밤 같은 위로 사람과 꽃이  영혼의 길을 트고 살았을 적엔 미소와 도취만이  큰배 같던 걸 당신이 간 후 바람결에 내버린 꽃 빛 연보라는  못잊어 넋을 우는  물망초지만 기억해 주어요 지금은 눈도 먼  물망초지만. ☆★☆★☆★☆★☆★☆☆★☆★☆★☆★☆★ 사랑  김남조 오래 잊히음과도 같은 병이었습니다 저녁 갈매기 바닷물 휘어적신 날개처럼 피로한 날들이 비늘처럼 돋아나는  북녘 창가에 내 알지 못할  이름의 아픔이던 것을 하루 아침 하늘 떠받고 날아가는 한 쌍의 떼 기러기를 보았을 때 어쩌면 그렇게도 한없는 눈물이 흐르고 화살을 맞은 듯 갑자기 나는 나의 병 이름의 그 무엇인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 사랑의 말  김남조 1 사랑은  말하지 않는 말 아침에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대문 중문 다 지나는 맨 뒷방 병풍 너메  숨어 사네 옛 동양의 조각달과 금빛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 생각만이 깊고  말하지 않는 말 사랑 하나 2 사랑을 말한 탓에  천지간 불붙어 버리고 그 벌이시키는 대로 세상 양끝이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 삼아 만났더니 아아 천만번 쏟아 붓고도 진홍인 노을 사랑은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 ☆★☆★☆★☆★☆★☆☆★☆★☆★☆★☆★ 사랑한 이야기  김남조  사랑한 이야기를 하랍니다 해 저문 들녘에서 겨웁도록 마음 바친  소녀의 원이라고 구김없는 물 위에 차갑도록 흰 이맛전 먼저 살며시 떠오르는 무구한 소녀라 무슨 원이 행여 죄되리까만 사랑한 이야기야 허구헌날 사무쳐도 못내 말하고 사랑한 이야기야 글썽이며 목이 메도 못내 말하고 죽을 때나 가만가만 뇌어볼 이름임을 소녀는 아직 어려 세상도 몰라 사랑한 이야기를 하랍니다 꽃이 지는 봄밤에랴 희어서 설운 꽃잎 잎새마다 보챈다고 가이없는 누벌에 한 송이 핏빛 동백 불본 모양 몸이 덥듯 귀여운 소녀라 무슨 원이 굳이 여껴우리만 사랑한 이야기야 내 마음 저며낼까 못내 말하고 사랑한 이야기야 내 영혼 피 흐를까 못내 말하고 죽을 때나 눈매 곱게 그려 볼 모습임을 소녀는 아직 어려 세상도 몰라 기막힌 이 이야기를 하랍니다 사랑한 이야기를 하랍니다. ☆★☆★☆★☆★☆★☆☆★☆★☆★☆★☆★ 상사(想思)  김남조 언젠가 물어보리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한 날 병든 날에 꿈에도 생시에도 영혼의 철사 줄 윙윙 울리는 그대 생각, 천번만번 이상하여라 다른 이는 모르는 이 메아리 사시사철  내 한평생 骨髓에 電話오는  그대 음성, 언젠가 물어보리 죽기 전에 단 한번 물어보리 그대 혹시  나와 같았는지를 ☆★☆★☆★☆★☆★☆☆★☆★☆★☆★☆★ 아가(雅歌) 2  김남조 나 네게로 가리 한사코 가리라 이슬에 씻은 빈손이어도 가리라 눈 멀어도 가리라 세월이 겹칠수록 푸르청청 물빛 이 한(恨)으로 가리라 네게로 가리 저승의 지아비를 내 살의 반을 찾으러 검은머리 올올이 혼령이 있어 그 혼의 하나하나 부르며 가리 나 네게로 가리 ☆★☆★☆★☆★☆★☆☆★☆★☆★☆★☆★ 연하장  김남조  설날 첫 햇살에  펴 보세요  잊음으로 흐르는  망각의 강물에서  옥돌 하나 정 하나 골똘히 길어내는  이런 마음씨로 봐 주세요  연하장,  먹으로써도  彩色(채색)으로 무늬 놓는  편지  온갖 화해와  함께 늙는 회포에  손을 쪼이는  편지  제일 사랑하는 한 사람에겐  글씨는 없이  목례만 드린다.  ☆★☆★☆★☆★☆★☆☆★☆★☆★☆★☆★ 허망(虛妄)에 관하여  김남조 내 마음을 열  열쇠꾸러미를 너에게 준다  어느 방  어느 서랍이나 금고도  원하거든 열거라  그러하고  무엇이나 가져도 된다  가진 후 빈 그릇에  허공부스러기쯤 담아 두려거든  그렇게 하여라  이 세상에선  누군가 주는 이 있고  누군가 받는 이도 있다  받아선 내버리거나  서서히 시들게 놔두기도 한다  이런 이 허망이라 한다  허망은 삶의 예삿일이며  이를테면  사람의 식량이다  나는 너를  허망의 짝으로 선택했다  너를 사랑한다  ☆★☆★☆★☆★☆★☆☆★☆★☆★☆★☆★ 가고 오지 않는 사람  김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려 줍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  요행이 그 능력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많이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 됩시다. ☆★☆★☆★☆★☆★☆☆★☆★☆★☆★☆★ 가난한 이름에게 김남조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검은 벽의 검은 꽂그림자 같은 어두운 香料(향료)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 겨울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얼굴을 가리고 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 불신과 가난 그 중에 특별하기로 역시 고독 때문에  어딘 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 허무와 이별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때론 골똘히 죽음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당신도 고독이 아쉬운 채 돌아갑니까 인간이란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이름 울면서 눈감고 입술 대는 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는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 가을 햇볕에  김남조 보고싶은  너  가을 햇볕에 이 마음 익어서  음악이 되네  말은 없이  그리움 영글어서  가지도 휘이는  열매,  참다 못해  가슴 찟고 나오는  비둘기 떼들,  들꽃이되고  바람속에 몸을푸는  갈숲도 되네  가을 햇볕에  눈물도 말려야지  가을 햇볕에  더욱 나는 사랑하고 있건만  말은 없이 기다림만 쌓여서  낙엽이 되네.  아아  저녁 해를 안고 누운  긴 강물이나 되고지고  보고 싶은  너  이 마음이 저물어  밤하늘 되네  ☆★☆★☆★☆★☆★☆☆★☆★☆★☆★☆★ 겨울나무  김남조 말하려나  말하려나  겨우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이 말부터 하려나  겨우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산울림도 울리려나  나의  겨울나무  새하얀 바람 하나  지나갔는데  눈 여자의 치마폭일 거라고  산신령보다 더 오래 사는  그녀 백발의 머리단일 거라고  이런 말도 하려나  ☆★☆★☆★☆★☆★☆☆★☆★☆★☆★☆★ 나의 시에게  김남조 이래도 괜찮은가 나의 시여 거뭇한 벽의 船窓(선창) 같은 벽거울의 이름 암청의 쓸쓸함, 괜찮은가 사물과 사람들 차례로 모습 비추고 거울 밑바닥에 혼령 데리고 가라앉으니 천만 근의 무게 아픈 거울 근육 견뎌내겠는가 남루한 여자 하나 그 명징의 살결 감히 어루만지며 부끄러워라 통회와 그리움 아리고 떫은 갖가지를 피와 呪言(주언)으로 제상 바쳐도 나의 시여 날마다 내 앞에 계시고 어느 훗날 최후의 그 한 사람 되어 주겠는가  ☆★☆★☆★☆★☆★☆☆★☆★☆★☆★☆★ 너에게  김남조  아슴한 어느 옛날  겁劫을 달리하는 먼 시간 속에서  어쩌면 넌 알뜰한  내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아비의 피 묻은 늑골에서  백년해로의 지어미를 빚으셨다는  성서의 이야기는  너와 나의 옛 사연이나 아니었을까  풋풋하고 건강한 원시의 숲  찬연한 원색의 칠범벅이 속에서  아침 햇살마냥 피어나던  우리들 사랑이나 아니었을까  불러 불러도 아쉬움은 남느니  나날이 새로 샘솟는 그리움이랴, 이는  그 날의 마음 그대로인지 모른다  빈방 차가운 창가에  지금이사 너 없이 살아가는  나이건만  아슴한 어느 훗날에  가물거리는 보랏빛 기류같이  곱고 먼 시간 속에서  어쩌면 넌 다시금 남김 없는  내 사람일지도 모른다 ☆★☆★☆★☆★☆★☆☆★☆★☆★☆★☆★ 다시 봄에게  김남조  올해의 봄이여 너의 무대에서 배역이 없는 나는 내려가련다 더하여 올해의 봄이여 너에게 다른 연인이 생긴 일도 나는 알아 버렸어 애달픔 지고 순정 그 하나로 눈흘길 줄도 모르는 짝사랑의 습관이 옛 노예의 채찍자국처럼 남아 올해의 봄이여 너의 새순에 소금가루 뿌리러 오는 꽃샘눈 꽃샘추위를 중도에서 나는 만나 등에 업고 떠나고 지노니  ☆★☆★☆★☆★☆★☆☆★☆★☆★☆★☆★ 雪日 김남조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지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 산에 와서 김남조 우중 설악이  이마엔 구름의 띠를  가슴 아래론 안개를 둘렀네  할말을 마친 이들이  아렴풋 꿈속처럼  살결 맞대었구나  일찍이  이름을 버린  무명용사나  무명성인들 같은  나무들,  바위들,  청산에 살아  이름도 잊은 이들이  빗속에 벗은 몸 그대로  편안하여라  따뜻하여라  사람이 죽으면  산에 와 안기는 까닭을  오늘에 알겠네 ☆★☆★☆★☆★☆★☆☆★☆★☆★☆★☆★ 산에 이르러 김남조 누가 여기 함께 왔는가  누가 나를 목메이게 하는가  솔바람에 목욕하는  숲과 들판  앞가슴 못다 여민 연봉들을  운무雲霧 옷자락에 설풋 안으신  한 어른을  대죄待罪하듯 황공히 뵈옵느니  지하地下의 돌들과 뿌리들이  이 분으로 하여 강녕康寧하고  땅 속에 잠든 이들  이 분으로 하여 안식하느니라고  아아 누가 나에게  오늘 새삼  이런 광명한 말씀 들려주는가  산의 안 보이는 그 밑의 산을  두 팔에 안고 계신  절대의 한 어른을  누가 처음으로  묵상하게 해주시는가 ☆★☆★☆★☆★☆★☆☆★☆★☆★☆★☆★ 산에게 나무에게 김남조 산은 내게 올 수 없어  내가 산을 찾아갔네  나무도 내게 올 수 없어  내가 나무 곁에 섰었네  산과 나무들과 내가  친해진 이야기  산은 거기에 두고  내가 산을 내려왔네  내가 나무를 떠나왔네  그들은 주인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 상심수첩 김남조 1  먼 바다로  떠나는 마음 알겠다  깊은 산 깊은 고을  홀로 찾아드는 이의 마음 알겠다  사람세상 소식 들으려  그 먼길 되짚어  다시 오는 그 마음도 알겠다  2  울며 난타하며  종을 치는 사람아  종소리 맑디맑게  아홉 하늘 울리려면  몇천 몇만 번을  사람이 울고  종도 소리 질러야 하는가  3  층계를 올라간다  한없이 올라가 끝에 이르면  구름 같은 어둠.  층계를 내겨간다  한없이 내려와 끝에 이르면  구름 같은 어둠.  이로써 깨닫노니  층계의 위 아래는  같은 것이구나  4  병이 손님인양 왔다  오랜만이라며 들어와 머리맡에 앉았다  커다란 책을 펴들고 그 안에 쓰인 글시,  세상의 물정들을 보여준다  한 모금씩 마시는 얼음냉수처럼  천천히 추위를 되뇌이며 구경한다  눈물 흐르는 일이 묘하게 감미롭다  5  굶주린 자 밥의 참뜻을 알듯이  잃은 자 잃은 것의 존귀함을 안다  신산에서 뽑아내는  꿀의 음미를.  이별이여  남은 진실 그 모두를  바다 깊이 가라앉히는 일이여  6  기도란  사람의 진실 하늘에 바침이요  저희의 진실 오늘은 어둠이니  이 어둠 바치나이다  은총은  하늘의 것을 사람에게 주심이니  하늘나라 넘치는 것  오늘 혹시 어둠이시면  어둠 더욱 내려주소서  7  전신이 감전대인 여자  바람에서도 공기에서도  전류 흘러 못견디는 여자  겨울벌판에서도 허공에서도  와아와아 몸서리치며 다가오는  포옹의 팔들. 팔들  8  그를 잃게 된다  누구도 못바꿀 순서란다  다른 일은 붙박이로 서 있고  이 일만 바람갈기 날리며 온다  저만치에,  바로 눈 앞에.  지금,  아아 하늘이 쏟아져 내린다  9  제 기도를 진흙에 버리신 일  용서해 드립니다  그간에 주신 모든 용서를 감사드리며  황송하오나 오늘은 제가  신이신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아아 잘못하실 수가 없는 분의 잘못  죄의 반란 같은 것이여  전심전령이 기도 헛되어  하늘은 닫히고  사람은 이런 때 울지 않는다  10  아슴한 옛날부터  줄곧 걸어와  마침내 오늘 여기 닿았습니다  더는 갈 곳이 없는  더는 아무 일도 생기잖을  마지막 땅에  즉 온전한 목마름에 ☆★☆★☆★☆★☆★☆☆★☆★☆★☆★☆★ 새 달력 첫 날 김남조 깨끗하구나  얼려서 소독하는  겨울산천  너무 크고 추웠던  어릴 적 예배당 같은 세상에  새 달력 첫날  오직 숙연하다  천지간  눈물나는 추위의  겨울음악 울리느니  얼음물에 몸 담그어 일하는  겨울 나룻배와  수정 화살을 거슬러 오르는  겨울 등반대의  그 노래이리라  추운 날씨  모든 날에  추운 날씨 한 평생에도  꿈꾸며 길가는 사람  나는 되고 니노니  불빛 있는 인가와  그곳에서 만날 친구들을  꿈꾸며 걷는 이  나는 되고 지노니  새 달력 첫 날  이것 아니고는 살아 못낼  사랑과 인내  먼 소망과  인동의 서원을  시린 두 손으로  이날에 바친다 ☆★☆★☆★☆★☆★☆☆★☆★☆★☆★☆★ 새 김남조 새는 가련함 아니여도  새는 찬란한 깃털 어니여도  새는 노래 아니여도  무수히 시로 읊어짐 아니여도  심지어  신의 신비한 촛불  따스한 맥박 아니여도  탱크만치 육중하거나  흉물이거나  무개성하거나  적개심을 유발하거나 하여간에  절대의 한 순간  숨겨 지니던 날개를 퍼득여  창공으로 솟아 오른다면  이로써 완벽한 새요  여타는 전혀 상관이 없다 ☆★☆★☆★☆★☆★☆☆★☆★☆★☆★☆★ 새로운 공부 김남조 마술을 배울까나  거미줄 사이로  하얗게 늙은 호롱불,  욕탕만한 가마솥에  먹물 한 솥을 설설 끓이며  뭔가 아직도 모자라서  이상한 약초 몇 가지 더 넣으며  혼 내줄 사람과  도와줄 이를  따로이 가슴서랍에 챙겨 잠그고  빗소리보다 습습하게  주문을 외는  동화속의 마술할머니  마술을 배울까나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먹물 가마솥에  좋은 풀도 많이 넣는  마술 할머니  내가 그녀의 제자 되어  새로운 공부에 열중해 볼까나  유년의 날  써커스의 말 탄 소녀를 본후  온세상 노을뿐이던  흥분과 부러움을  적막한 이 세월에  되돌려 올까나  마술을 배울까나  ☆★☆★☆★☆★☆★☆☆★☆★☆★☆★☆★ 새벽 외출 김남조 영원에서 영원까지  누리의 나그네신 분  간밤 추운 잠을  십자가 형틀에서 채우시고  희부연 여명엔  못과 가시관을 풀어  새날의 나그네길 떠나가시네  이천 년 하루같이  새벽 외출  외톨이 과객으로 다니시며  세상의 황량함  품어 뎁히시고  울음과 사랑으로  가슴 거듭 찢기시며  깊은 밤  십자가 위에 돌아오시어  엷은 잠 청하시느니  아아 송구한 내 사랑은  어이 풀까나  이 새벽에도  빙설의 지평 위를  청솔바람 소리로 넘어가시는  주의 발소리  뇌수에 울려 들리네  ☆★☆★☆★☆★☆★☆☆★☆★☆★☆★☆★ 새벽에 김남조 나의 고통은  성숙하기도 전에  풍화부터 하는가  간밤엔  눈물 없이 잠들어  평온한 새벽을 이에 맞노니  연민할지어다  나의 몰골이여  다른 사람들은  고난으로  새 삶의 효모와 바꾸고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맨몸 으깨어  피와 땀으로 참회하고  준열히 진실에 순절하되  목숨 질겨서  그 몇 번 살아 남는 것을  나의 고통은  절상 순간에  이미 얼얼하게 졸면서  죄와 가책에도  아프면서 졸면서  결국엔  지난밤도 백치처럼 잠들어  청명한 이 새벽에  죽고 싶도록  남루할 뿐이노니 ☆★☆★☆★☆★☆★☆☆★☆★☆★☆★☆★ 새벽전등 김남조 간밤에 잠자지 못한 이와  아주 조금 잠을 잔 이들이  새소리보다 먼저 부스럭거리며  새벽전등을 켠다  이 거대한 도시 곳곳에  불면의 도랑은 비릿하게  더 깊은 골로 패이고  이제 집집마다  눈물겨운 광명이 비추일 것이나  미소짓는 자, 많지 못하리라  여명黎明에 피어나는 태극기들,  독립 반세기라 한 달 간  태극기를 내걸지자는 약속에  백오십 만 실직 가정도  이리했으려니와  희망과의 악수인 건 아니다  참으로 누구의 생명이  이 많은 이를 살게 할 것이며  누구의 영혼이  이들을 의연毅然하게 할 것이며  그 누가 십자가에 못박히겠는가  심각한 시절이여  잠을 설친 이들이 새벽전등을 켠다 ☆★☆★☆★☆★☆★☆☆★☆★☆★☆★☆★ 생명  김남조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먼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전 부싯돌임을 보라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이 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은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 소녀를 위하여 김남조 그가 네 영혼을 부른다면  음성 그 아니,  손짓 그 아니어도  들을 수 있으리  그가 네 이름의 글씨 쓴다면  생시 그 아니,  꿈속 그 아니어도  온 마음으로 읽으리  그가 너를 찾을 땐  태어나기 전  다른 별에서  항시 함께 있던 습관  예까지 묻어온 메아리려니  그가 너를 부른다  지금 그 자리에서  대답하여라 ☆★☆★☆★☆★☆★☆☆★☆★☆★☆★☆★ 송(頌) 김남조 그가 돌아왔다  돌아와  그의 옛집 사립문으로 들었느니  단지 이 사실이  밤마다 나의 枕上에  촛불을 밝힌다  말하지 말자  말하지 말자  제 몸 사루는 불빛도  침묵뿐인걸  그저  온마음 더워오고  내 영혼 눈물지우느니  이슬에 씻기우는  온누리  밤의 아름다움  천지간 편안하고  차마 과분한  별빛 소나기  그가 돌아왔다 ☆★☆★☆★☆★☆★☆☆★☆★☆★☆★☆★ 슬픔에게 김남조 정적에도  자물쇠가 있는가  문 닫고 장막 드리우니  잘은 모르는  관 속의 고요로구나  밤에서 밤으로  어둠에 어둠 겹치는  유별난 시공을  너에게 요람으로 주노니  느릿느릿 흔들리면서  모쪼록  소리내진 말아라  오히려 백옥의 살결  따스해서 눈물나는  아기나 하나 낳으려무나  소리 없이 반짝이는  눈물 빛 사리라도 맺으려무나  나의 슬픔이여 ☆★☆★☆★☆★☆★☆☆★☆★☆★☆★☆★ 시인(詩人) 김남조 1  수정水晶의 각角을 쪼개면서  차아로 이 일에  겁 먹으면서  2  벗어라  땡볕이나 빙판에서도 벗어라  조명照明을 두고 벗어라  칼날을 딛고도 벗어  청결한 속살을 보여라  아가케를 거쳐  에로스를 실하게  아울러 明燈명등에 육박해라  그 아니면  죽어라  3  진정한 玉옥과 같은  진정한 詩人시인  우리시대  이 목마름  4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더하여  그 공막空寞 그 靜菽정숙에  첫 풀잎 돋아남을  문득  보게 되거라  그대여 ☆★☆★☆★☆★☆★☆☆★☆★☆★☆★☆★ 시인에게 김남조 그대의 시집 옆에  나의 시집을 나란히 둔다  사람은 저마다  바다 가운데 섬과 같다는데  우리의 책은  어떤 외로움일는지  바람은 지나간 자리에  다시 와 보는가  우리는 그 바람을 알아보는가  시인이여  모든 존재엔  오지와 심연,  피안까지 있으므로  그 불가사의에 지쳐  평생의 시업이  겁먹는 일로 고작이다  나의 시를 읽어 다오  미혹과 고백의 골은 깊고  애환 낱낱이 선명하다  물론 첫새벽 기도처럼  그대의 시를 읽으리라  다함 없이 축원을 비쳐 주리라  시인이여  우리는 저마다  운명적인 시우를 만나야 한다  서로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혼의 목마름도 진맥하여  피와 이슬을 마시게 할  그 경건한 의사가  시인들말고  다른 누구이겠는가  좋고 나쁜 것이  함께 뭉쳐 폭발하는  이 물량의 시대에  유일한 결핍 하나뿐인 겸손은  마음에 눈 내리는 추위  그리고  이로 인해 절망하는  이들 앞에  시인은 진실로 진실로 죄인이다  시인이여  막막하고 쓸쓸하여  오늘 나의 작은 배가  그대의 섬에 기항한다 ☆★☆★☆★☆★☆★☆☆★☆★☆★☆★☆★ 심장이 아프다  김남조 “내가 아프다”고 심장이 말했으나 고요가 성숙되지 못해 그 음성 아슴했다 한참 후일에 “내가 아프다 아주 많이”라고 심장이 말할 때 고요가 성숙되었기에 이를 알아들었다  심장이 말한다 교향곡의 음표들처럼 한 곡의 장중한 음악 안에 심장은 화살에 꿰뚫린 아픔으로 녹아들어 저마다의 음계와 음색이 된다고 그러나 심연의 연주여서 고요해야만 들린다고  심장이 이런 말도 한다 그리움과 회한과 궁핍과 고통 등이 사람의 일상이며 이것이 바수어져 물 되고 증류수 되기까지 아프고 아프면서 삶의 예물로 바쳐진다고 그리고 삶은 진실로 이만한 가치라고  ☆★☆★☆★☆★☆★☆☆★☆★☆★☆★☆★ 아버지 김남조 아버지가 아들을 부른다  아버지가 지어준 아들의 이름  그 좋은 이름으로  아버지가 불러주면  아들은 얼마나 감미로운지  아버지는 얼마나 눈물겨운지  아버지가 아들을 부른다  아아 아버지가 불러주는  아들의 이름은  세상의 으뜸같이 귀중하여라  달무리 둘러둘러 아름다워라  아버지가 아들을 부른다  아들을 부르는  아버지의 음성은  세상 끝에서 끝까지 잘 들리고  하늘에서 땅까지도 잘 들린다  아버지가 불러주는  아들의 이름은  생모시 찢어내며 가슴 아파라 ☆★☆★☆★☆★☆★☆☆★☆★☆★☆★☆★ 아침 기도 김남조 목마른 긴 밤과  미명의 새벽길을 지나며  싹이 트는 씨앗에게 인사합니다.  사랑이 눈물 흐르게 하듯이  생명들도 그러하기에  일일이 인사합니다.  주님,  아직도 제게 주실  허락이 남았다면  주님께 한 여자가 해드렸듯이  눈물과 향유와 미끈거리는 검은 모발로써  저도 한 사람의 발을  말없이 오래오래  닦아주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엔  이 한 가지 소원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침 은총 김남조 아침 샘터에 간다  잠의 두 팔에 혼곤히 안겨 있는  단 샘에  공중의 이슬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이날의  첫 두레박으로  순수의 우물, 한 꺼풀의 물빛 보옥들을  길어올린다  샘터를 떠나  그분께 간다  그분 머리맡께에 정갈한 물을 둔다  단지,  아침 광경에 눈뜨실 쯤엔  나는 언제나 없다  은총이여  生金보다 귀한  아침 햇살에  그분의 온몸이 성하고 빛나심을  날이 날마다  고맙게 지켜본다 ☆★☆★☆★☆★☆★☆☆★☆★☆★☆★☆★ 안식 김남조 이제 그는 쉰다  처음으로 안식하는 이를 위해  그의 집에  고요와 평안 넉넉하고  겨우 깨달아  그의 아내도  바쁜 세상으로부터 돌아와  손을 씻으니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바쁜 일이라곤 없어라  그가 보던 것  간절히 바라보고  그가 만지던 것  오래오래 어루만지는 사이  막힘 없이 흐르는 시간  가슴 안의 구명으로  솔솔 빠져나가고  머릿속에 붐비는 피도  옥양목 흰빛으로  솰솰 새어나가누나  울지 말아라  울지 말아라  남루한 그녀 영혼도  빨아 헹구어  희디하얗게 표백한다면  절대의 절대적 절망  이 숯덩이도  벼루에 먹 갈리듯  풀어질 날 있으리니  슬퍼 말아라  슬픔은 소리내고 싶은 것  조용하여라  달빛 자욱한 듯이  온 집안 가득히  그가 쉬고 있다 ☆★☆★☆★☆★☆★☆☆★☆★☆★☆★☆★ 안식을 위하여 김남조 겨울나무 옆에  나도 나무로 서 있다  겨울나무 추위 옆에  나도 추위로 서 있다  추운 이들  함께 있구나 여길 때  추위의 위안 물결 인다 하리라  겨울나무 옆에 서서  적멸한 그 평안  숙연히 본받고 지노니  휴식 모자라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여기는  내 자식들이  쉬라고 쉬라고 엄마를 조르는  그 당부 측은히  헤아린다 하리라  안식의 정령이어  산 이와 죽은 이를  한 품에 안아 주십사 비노니  겨울바람의 풍금  느릿느릿 울려 주십사고도 비노니  큰 촛불, 작은 촛불처럼  겨울나무와 내가  나란히 기도한다 하리라 ☆★☆★☆★☆★☆★☆☆★☆★☆★☆★☆★ 어떤 소년 김남조 꽃 배달처럼  나의 병실을 찾아온  소년에게  내 처지 지금 감방 같다 했더니  그 아이 말이  저는 어디 있으나  황무지며 사막이예요. 란다  넌 좀 낙관주위가 돼야겠어  놀라는 내 대꾸에  그건 비관주의보단 더 나쁜 거예요  헤프고 바보그럽고  맥빠져 있으니까요, 란다  아이야  천길 벼랑에서  밑바닥 굽어본 일  벌써 있었더냐  온몸의  뇌관이 저려들면서  허공에 두 손드는  시퍼런 투항도 해보았더냐  더하기로는  심장 한가운데를 쑤시던  사람 하나가  날개 달아  네 몸 두고 날아갔느냐  .... 아이야 ☆★☆★☆★☆★☆★☆☆★☆★☆★☆★☆★ 어머님의 성서(聖書) 김남조 고통은  말하지 않습니다  고통 중에 성숙해지며  크낙한 사랑처럼  오직 침묵합니다  복음에도 없는  마리아의 말씀, 묵언의 문자들은  고통 중에 영혼들이 읽는  어머님의 성서입니다  긴 날의 불볕을 식히는  여름나무들이,  제 기름에 불 켜는  초밤의 밀촉이,  하늘 아래 수직으로 전신배례를 올릴 때  사람들의 고통이 흘러가서  바다를 이룰 때  고통의 짝을 찾아  서로 포옹할 때  어머님의 성서는  천지간의 유일한 유품처럼  귀하고 낭랑하게  잘 울립니다 ☆★☆★☆★☆★☆★☆☆★☆★☆★☆★☆★ 연 김남조 연 하나  날리세요  순지 한 장으로 당신이 내거는  낮달이 보고파요  가멸가멸 올라가는  연실은 어떨까요  말하는 마음보다 더욱 먼 마음일까요  하늘 너머 하늘가는  그 마음일까요  겨울하늘에  연 하나 날리세요  옛날 저승의 우리집 문패  당신의 이름 석자가  하늘 안의 서러운  진짜 하늘이네요  연하나  날리세요  세월은 그렁저렁 너그러운 유수  울리셔도 더는 울지 않고  창공의 새하얀 연을  나는 볼래요 ☆★☆★☆★☆★☆★☆☆★☆★☆★☆★☆★ 영원 그 안에선 김남조 이별의 돌을 닦으며  고요하게 있자  높은 가지에서 떨어지려는 잎들이  잠시  최후의 기도를 올리듯이  아무것도 허전해하지 말자  가을나무의 쏟아지는 잎들을 뜯어 넣고  바람이 또 무엇인가를  빚는다고 알면  그만인걸  눈물 다해  한 둘레 눈물 기둥  불망인들 닦고 닦아  혼령 있는 심연 있는  거울이 되도록만 하자  이별의 문턱에 와서  마지막 가장 어여쁘게 내가 있고  영원 그 안에선  그대 날마다  새로이 남아 계심을  정녕 믿으마  말로는 나타 못낼  위안의 저 청람빛,  하늘 아래 생겨난 모든 일은  하늘 아래 어디엔가 거두어 주시리라 ☆★☆★☆★☆★☆★☆☆★☆★☆★☆★☆★ 오늘 김남조 1  눈 오늘 강물을 바라본다  어렴풋한 꿈속이듯 오랫동안  내 이렇게 있었다  오늘은 당신에게 줄 말이 없다  다만 당신의 침묵과 한 가지 뜻의 묵언(默言)이  내게 머물도록 빌 뿐이다  2  오늘 내 영혼을 당신에게 연다  마지막인 허락은  이래야만 함인 줄 알았기에 ☆★☆★☆★☆★☆★☆☆★☆★☆★☆★☆★ 올해의 성탄 김남조 정직해야지  지치고 어둑한 내 영혼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  내밀한 광기  또 오욕  모든 나쁜 순환을 토혈인 양 뱉고  차라리 청신한 바람으로  한 가슴을 채워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지등을 들고 성당에도 가지만  자욱한 안개를 헤쳐  서먹해진 제 영혼을 살피는 날이다  유서를 쓰는,  유서에 서명을 하는,  다시 그 나머지 한 줄의 시를 마지막인 양 끄적이는  어리석고 뜨거운 나여  만약에 만월 같은 연모라도 품는다며는  배덕의 정사쯤 쉽사리 저지를  그리도 외롭고 맹목인 열에  까맣게 내 두뇌를 태워 가고 있다  슬픔조차 신선하지가 못해  한결 슬픔을 돋우고  어째도 크리스마스는 마음놓고 크게 우는 날이다  석양의 하늘에 커다랗게 성호를 긋고  구원에서 가장 먼 사람이  주여, 부르며 뿌리째 말라 버린 겨울 갈대밭을  달려가는 날이다 ☆★☆★☆★☆★☆★☆☆★☆★☆★☆★☆★ 은혜 김남조 처음으로  나에게  너를 주시던 날  그날 하루의  은혜를  나무로 심어 숲을 이루었니라  물로 키워 샘을 이루었니라  처음으로  나에게  너를 그리움이게 하신  그 뜻을 소중히  외롬마저 두 손으로 받았니라  가는 날 오는 날에  눈길 비추는  달과 달무리처럼 있는 이여  마지막으로  나에게  너를 남겨 주실 어느 훗날  숨 거두는 자리  감사함으로  두 영혼을 건지면  다시 은혜이리 ☆★☆★☆★☆★☆★☆☆★☆★☆★☆★☆★ 음악 김남조 음악 그 위험한 바다에 빠졌었네  고단한 도취에 울어버렸네  살아 보아도  내 하늘에 무궁한 구름은  哀傷,  많은 詩를 썼으나 어느 한 귀절도  나를 건져 주지 못했다  사람 하나  그 복잡한 迷惑에 반생을 살고  나머지 쉽사리 입는  상처의 버릇  눈 오는 숲  나무들의 화목처럼  어진 일몰 후  편안한 밤처럼 ……  있고 싶어라  참말은 무섭고  거짓말은 부끄럽워 ☆★☆★☆★☆★☆★☆☆★☆★☆★☆★☆★ 의자 김남조 세상에 수많은 사람 살고  사람 하나에 한 운명 있듯이  바람도 여러 바람  그 하나마다  생애의 파란만장  운명의 진술서가 다를 테지  하여 태초에서 오늘까지 불어 와  문득 내 앞에서  나래 접는 바람도 있으리라  그를 벗하여  나도 더 가지 않으련다  삶이란 길가는 일 아니던가  모든 날에 길을 걷고  한 평생 걸어 예 왔으되  이제 나에게  삶이란  도착하여 의자에 앉고 싶은 것  겨우겨우 할 일 끝내고  내명 얻으려 좌선에 든  바람도사 옆에서  예순 해 걸어온 나는  예순 해 앉아 있고 싶노니 ☆★☆★☆★☆★☆★☆☆★☆★☆★☆★☆★ 이런 사람과 사랑하세요 김남조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사랑하세요.  그래야 행여나 당신에게 이별이 찾아와도  당신과의 만남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줄 테니까요.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과 사랑을 하세요.  그래야 행여나 익숙치 못한 사랑으로  당신을 떠나보내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기다림을 아는 이와 사랑을 하세요.  그래야 행여나 당신이 방황을 할 때  그저 이유 없이 당신을 기다려 줄 테니까요.  기다림을 아는 이와 사랑을 하세요.  그래야 행여나 당신이 방황을 할 때  그저 이유 없이 당신을 기다려 줄 테니까요.  ☆★☆★☆★☆★☆★☆☆★☆★☆★☆★☆★ 인인(隣人) 김남조 보이지 않는 고운 영혼이  네게 있고 내게도 있었느니라  보이지 않게 곱고 괴로운 영혼  곱고 괴롭고 그리워하는 영혼이  네게 있고  내게도 있었느니라  그것은  인기척없는 외딴 산마루에  풀잎을 비비적거리며 드러누운  나무의 그림자 모양  쓸쓸한 영혼  쓸쓸하고 서로 닮은  영혼이었느니라  집 가족 고향이 다르고  가는 길 오는 길 있는 곳이 어긋난도  한바다 첩첩이 포개진 물 밑에  청옥빛 파르름한 조약돌이  가지런히 둥그랗게  눈뜨고 살아옴과 같았느니라  영혼이 살고 잇는 영혼들이 마을에선  살경이 부딪는 알뜰한 인인  우리는 눈물겹게 함께 있어 왔느니라  짐짓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곱고 괴롭고 그리워하는 손짓으로  철따라 부르는 소리였느니라  철 따라 대답하는  마음이었느니라 ☆★☆★☆★☆★☆★☆☆★☆★☆★☆★☆★ 잠 김남조 그의 잠은 깊어  오늘도 깨지 않는다  잠의 집  돌벽 실하여  장중한 궁궐이라 하리니  두짝 문 맞물려 닫고  나는 그  충직한 문지기라  숙면의 눈시울이어  평안은 끝없고  만상의 주인이신 분이  잠의 恩賜를  그에게 옷 입히시니  자장가 없이도  잠은 더욱 깊어라  그의 잠은 깊고  잠의 평안  한바다 같아라  잠의 은사를 배례하리니  세월이 흘러  내가 잠들 때까지  잠을 섬기는  나는 그 불침번이리 ☆★☆★☆★☆★☆★☆☆★☆★☆★☆★☆★ 장엄한 숲  김남조 삼천 년 된 거목들의 숲은  겨우내 끝이 안 보이는 설원雪原  나무들은  그 눈 벌에 서 있습니다  어느 겨울  그 중의 한 나무가  눈사태에 떠밀려 쓰러질 때  하느님이  품 속에 안으셨습니다  나직이 이르시되  아기야 쉬어라 쉬어라 ……  하느님께선  이 나무가 작은 씨앗이던 때를  기억하시며  거대한 뿌리에서 퍼져나간  젊은 분신들도 알으십니다.  쉬어라 쉬어라고  하느님의 사랑은 이날  자애로운 안도安堵이셨습니다  가령에  삼천 년을 노래해온 새가 있다면  쉬어라 쉬어라고 하실 겝니다  이 나무 기나긴 삼천 년을  장하게 맥박쳐 왔으니까요  레드우드 품종의  그 이름 와워나로 불리우는  이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수면이요 안식이며  이후 삼천 년 동안  그는 잠자는 성자일 겝니다  장엄한 숲에서  이 겨울도  끝이 안 보이는 아득한 설원에서  ☆★☆★☆★☆★☆★☆☆★☆★☆★☆★☆★ 저무는 날에 김남조 날이 저물어 가듯  나의 사랑도 저물어 간다  사람의 영혼은  첫날부터 혼자이던 것  사랑도 혼자인 것  제몸을 태워야만이 환한  촛불같은 것  꿈꾸며 오래오래 불타려 해도  줄어드는 밀랍  이윽고 불빛이 지워지고  재도 하나 안남기는  촛불같은 것  날이 저물어 가듯  삶과 사랑도 저무느니  주야사철 보고지던 그 마음도  세월따라 늠실늠실 흘러가고  사람의 사랑  끝날엔 혼자인 것  영혼도 혼자인 것  혼자서  크신 분이 품안에  눈감는 것  ☆★☆★☆★☆★☆★☆☆★☆★☆★☆★☆★ 정념情念의 기旗 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앉는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 드린다. ☆★☆★☆★☆★☆★☆☆★☆★☆★☆★☆★ 참회  김남조 사랑한 일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 이대로 판결해다오 그 사랑 나를 떠났으니 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하였음이라고 준열히 판결해다오 겨우내 돌 위에서 울음 울 것 세 번째 이와 같이 판결해다오 눈물 먹고 잿빛 이끼 청청히 자라거든 내 피도 젊어져 새봄에 다시 참회하리라 ☆★☆★☆★☆★☆★☆☆★☆★☆★☆★☆★ 편지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귀절 쓰면 한귀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 평안스런 그대 김남조 평안 있으라  평안 있으라  포레의 레퀴엠을 들으면  햇빛에도 눈물 난다  있는 자식 다 데리고  얼음벌판에 앉아있는  겨울햇빛  오오 연민하올 어머니여  평안 있으라  그 더욱 평안 있으라  죽은 이를 위한  진혼 미사곡에  산 이의 추위도 불쬐어 뎁히노니  진실로 진실로  살고 있는 이와  살다간 이  앞으로 살게 될 이들까지  모두가 영혼의 자매이러라  평안 있으라  ☆★☆★☆★☆★☆★☆☆★☆★☆★☆★☆★ 평행선  김남조 우리는 서로 만나본적도 없지만 헤어져 본적도 없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테어 났기에 어쩔수 없는 거리를 두고 가야만 합니까 가까와지면 가까와 질까 두려워 하고 멀어지면 멀어질까 두려워하고 나는 그를 부르며 그는 나를 부르며 스스로를 져 버리며 가야만 합니까 우리는 아직 하나가 되어 본적도 없지만은 둘이 되어 본적도 없습니다. ☆★☆★☆★☆★☆★☆☆★☆★☆★☆★☆★ 하느님의 동화 김남조 절망이 이리도 아름다운가  홍해에까지 쫓긴 모세는  황홀한 어질머리로 바다를 본다  하느님이 먼저 와 계셨다  이르시되  너의 지팡이로 바다를 치면  너희가 건널 큰 길이 열릴 것이니라.  하느님께선  동화를 쓰고 계셨다  지팡이 끝이 가위질처럼  바다를 두 피륙으로 갈라  둥글게 말아 올리며  길을 내는 대목,  동화는  이쯤 쓰여지고 있었다  모세의 지팡이  물을 쳤으되  실바람 한 주름이 일 뿐이더니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 믿음으로 길이 열려  그들이 모두 바다를 건넜다  홍해 기슭 태고의 고요에  홀로 남으신 하느님,  오늘의 동화는  괜찮게 쓰인 편이라고  저으기 즐거워 하신다 ☆★☆★☆★☆★☆★☆☆★☆★☆★☆★☆★ 허망(虛妄)에 관하여  김남조 내 마음을 열  열쇠꾸러미를 너에게 준다  어느 방  어느 서랍이나 금고도  원하거든 열거라  그러하고  무엇이나 가져도 된다  가진 후 빈 그릇에  허공부스러기쯤 담아 두려거든  그렇게 하여라  이 세상에선  누군가 주는 이 있고  누군가 받는 이도 있다  받아선 내버리거나  서서히 시들게 놔두기도 한다  이런 이 허망이라 한다  허망은 삶의 예삿일이며  이를테면  사람의 식량이다  나는 너를  허망의 짝으로 선택했다  너를 사랑한다  ☆★☆★☆★☆★☆★☆☆★☆★☆★☆★☆★ 후 조 김남조 당신을 나의 누구라고 말하리 마주 불러 볼 정다운 이름 없이 잠시 만난 우리 이제 오랜 이별 앞에 선다 갓 추수를 해간 허허한 밭이랑에 노을을 등진 긴 그림자 모양 외로이 당신을 생각해 온 이 한철 인생의 백가지 가난을 견딘다 해도 못내 이것만은 두려워했었음을 눈 멀 듯 보고 지운 마음 신의 보태심 없는 한 개의 그리움 별이여 이 타는 듯한 가책 당신을 누구라고 말하리 나를 누구라고 당신은 말하리 우리 다 같이 늙어진 정복한 어느 훗날에 그 전날 잠시 창문에 울던 어여쁘디 어여쁜 후조라고나 할까 옛날에 그 옛날에 이러 한 사람이 있었더니라...... 애뜯는 한 마음 있었더니라...... 이렇게 죄없는 얘기 거리라도 될까 우리들 이제 오랜 이별 앞에 섰다. ☆★☆★☆★☆★☆★☆☆★☆★☆★☆★☆★    
962    영국 잉글랜드 시인 - 엔드류 마블 댓글:  조회:4371  추천:0  2015-04-14
만일 우리에게 충분한 세상과 시간이 있다면 연인이여, 그대의 수줍음은 아무 죄가 아닐거요. 우리는 앉아서 어느 길을 갈까 생각도 하며 우리의 허구한 사랑의 날을 보내기도 하련만. 그대는 인도의 갠지스 강가에서 루비를 찾고, 나는 험버강가에서 애틋한 사랑의 노래를 읊조려도 무관할 것이요. 나는 노아의 홍수 십년 전부터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는 원한다면 유태인들이 개종할 때까지 나를 거절할 수도 있겠지요. 나의 식물 같은 사랑은 제국보다도 광대하고 더욱 서서히 자랄 것이오. 일 백 년은 그대의 두 눈을 찬양하고 앞이마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보내고, 이 백 년은 그대의 두 가슴을 흠모하면서 삼 만 년은 육체의 다른 부분을 흠모하면서 보내리라. 육체의 각 부분을 기리는 데에 적어도 한 세대씩 걸릴 것이오. 그리하여 마지막 시대에 그대의 진심을 보게 되리라. 왜냐하면, 연인이여, 당신은 이만한 대우를 받을 만하고 나도 그 이하로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나 나는 등 뒤에서 시간의 날개 달린 전차가 달려오는 소리를 항상 듣나니, 그리고 저기 우리 앞엔 광대한 영원의 사막이 가로놓여 있소. 그대의 아름다움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이고 그대 차가운 대리석 무덤에서는 나의 사랑의 노래 이르지 못하리니, 벌레들은 오랫동안 지켜온 처녀성을 시식할 것이며, 당신의 고아한 정조도 티끌이 되고 내 모든 정욕도 한 움큼 재가 되리니, 무덤은 편안하고 아늑한 곳 이기야 하지만 그러나 거기엔 아무도 포옹해 줄 이 없으리.. 그러니, 아침 이슬 같은 고운 색깔이 그대의 피부에 물들어 있는 동안, 그리고 당신의 의욕적인 영혼이 모든 기공에서 찰나의 격렬한 불꽃을 발산하는 동안에, 자, 우리 할 수 있는 동안 즐깁시다. 한창 사랑에 빠진 맹금처럼, 천천히 씹어 먹는 시간의 힘에 시들기 보다는 차라리 우리의 시간을 한 입에 넣어 버립시다. 우리의 모든 힘과 온갖 달콤함을 굴려서 하나의 공으로 만들고, 거친 투쟁으로 생의 철문을 뚫어 우리의 쾌락을 작열시킵시다. 그리하여, 우리는 태양을 멈추게 할 수는 없더라도 태양을 달아나게 할 수는 있으리... ---------------------------------------------------------------------------------------------- 영국 잉글랜드 요스켜 주의 목사 아들로 출생.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4년에 걸친 대륙여행 후, 의회파에 속하는 귀족의 딸 가정교사가 됨. 이 때 서정시  등 많은 시를 씀. 1657년, 라틴어 비서관으로 밀턴을 도왔으며 이듬해부터 죽을 때까지 20년간, 고향인 헐에서 국회의원으로 활약. 왕정복고 후, 익명으로 정치적 풍자문서를 발표하여 궁정과 의회 지도자를 통렬히 비판. 전원의 우아하고 고요한 생활, 그곳에서의 명상을 묘사한 것이 많고, 강인한 지성과 부드러운 감성의 뛰어난 결합은 그의 시의 매력으로 평가됨. 그의 시는 고전 고대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영국적이고, 또 르네상스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전환기 시이기도 하다. -------------------------------------------------------------------------------------------------------------- 마블의 대표적인 작품 는 유혹의 시 일 뿐만 아니라 연역의 시이기도 하다. 카르페 디엠의 주제로 다음과 같은 삼단 논법이 전개된다. 1) 만약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다면, 여인의 수줍음은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2) 그러나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다. 3) 그러므로 이러한 수줍음은 죄가 될 수도 있으며, 가능할 때 사랑을 나누자. 작가는 각 단락의 접속사인 If , but, therefore, 로 즉 syllogism을 이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제 1 연에서 화자는 자신의 구애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가정법과 과장법을 쓰고 있다. 제 6 행에서 험버 강가에서 'complain' 하는 것은 사랑을 주제로 시를 쓰면서 전통적인 구애의 준비를 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courtly love 에 대한 Petrarchan conceit 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 이전부터 유태인이 개종할 때까지 모든 역사는 화자의 구애의 역사가 되고 있는데, 왜 작가는 그러한 사랑을 vegetable love 라고 표현했을까? 그것은 거대한 식물의 수명이 다른 어떤 생물의 생명보다도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이 성장은 일종의 맹목적이고도 목적도 방향도 없는 성장이기 때문에 vegetable love는 끝없는 시간의 개념인 동시에 그러한 구애는 지성이 결핍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 couplet 은 애인에 대한 찬사를 요약하고 있다. 제 2 연은 제 1 연과는 신랄하고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화자는 일생이 짧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더 이상 농담조의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고 엄숙한 어조로 말한다. 세월이 빠른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날개달린 전차" 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태양신 헬리오스가 타고 다니는 것이다. 또한 제 21-24행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바로 직후 파라오가 특별 병기 부대를 동원하여 뒤에서 추격하고 앞에는 홍해와 거대한 아라비아 사막이 놓여 있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모세에게 아우성 치는 급박한 상황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어조를 바꾸어서 이 시의 주제에 접근한다. 세월이 빨리 지나서 죽게 되면 애인의 미모는 찾아볼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대리석 동굴에 묻히기 전에 청춘을 즐기자고 말을 한다. 이 대리석 동굴이란 애인의 vagina를 암시한다. 제 27-28행에서 시인은 다시 제 1 연의 희롱적이고 반어적인 태도를 반복한다. 그러나 죽음과 육체의 부패가 끔찍한 것이지만, 화자는 그러한 것에 굴복하기를 거절하고 그러한 문제를 간접적으로 취급하면서, 기회와 시간이 주어졌을 때 즐기자고 말하며 육체적인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제1연의 과장은 제2연의 반어적 과묵(ironical understatement)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제 3 연에서는 이 논증의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 사용된 이미지들, instatnt fires, amorous birds of prey, at once our time devour, tear our pleasures 는 반어도 사양도 없이 신속함과 넘치는 활력의 효과를 내고 있다. 제 35 행에서는 연인의 아름다움을 아침이슬에 비유하여 그 아름다움이 일시적인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암시하고 죽으면 사랑도 정조도 의미가 없음을 이야기 한다. 제 40행의 chapped power 에서의 chaps 또는 chops 는 인간을 서서히 삼키는 세월의 입(jaws of time)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희랍 신화의 크로노스를 상기시키며, 세월을 크로노스에 비유한 것이다.(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9번) 마지막 2행은 제 39-40행의 시간에 대한 도전을 한층 더 강하게 표현한 역설이다. 이곳에도 성경과 신화의 인유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제우스는 암피트리온이 전상에 나가 있는 틈을 타서 암피트리온의 모습으로 변한다. 모습을 변형한 제우스는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동침을 한다. 이 때 제우스는 포옹의 밤을 연장하기 위해 태양에게 정지하도록 명령한다. 한편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아모리 부족과 전쟁할 때에 해야,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추어라 고 외치자 아모리 족속을 완전히 멸할 때까지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일이 발생했다. 이어 마지막 couplet 은 일종의 경구epigram 이여 역살이자 이 시의 요약이다. 뜻을 풀이하면 "만일 우리가 시간을 죽지 않게 될 충분한 힘이 없다면, 우리는 최소한 시간을 더 빨리 지나가게 할 충분한 힘은 있다" 라는 것이다. 즉 삶을 향유 하면서 즐거이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couplet 은 시간과 죽음의 개념을 다시 강조하여 제 3 연을 앞의 두 연과 연결시켜 준다. [출처] 수줍은 연인에게 -앤드류 마블|작성자 미선 이  
961    왕당파 시인 / 형이상파 시인 댓글:  조회:5904  추천:0  2015-04-14
   흔히 17세기 전기 영시를 논할 때 마치 이 시기의 영시가 존 던과 벤 존슨이 축이되는 두 학파로만 구분되는 것처럼 전제된다.이 두 학파는 때로는 형이상학파 시인(Metaphysical poets)과 왕당파 시인(Cavalier poet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던의 학파(School of Donne)와 존슨의 학파(School of Jonson)라고 이분되어 불리기도 하면서,이들이 마치 서로 대조되는 풍의 시를 쓴 것처럼 다루어지기도 한다.그러나 이 두 학파의 시는 차이점도 많지만 유사점 또한 많기 때문에 17세기 대부분의 시인들은 어떤 면에서는 두 학파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있다고 할 수 있다.   왕당파 시인  존슨의 영향아래 균형미를 지닌 세련되고 우아한 서정시를 주로 썼던 써클링(Sir John Suckling),헤릭(Robert Herrick), Thomas Carew, and 러블리스(Richard Lovelace) 등이 대표적  그들은 영국의 청교도 혁명 기간에 의회를 지지하는 의회당원들에 대항하여 찰스 1세(1625-49)를 지지한 까닭에 왕당파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영국의 상류계급 출신의 시인 집단으로 생활양식에서도 기사적인 면모가 있었다.시는 일종의 '고급스러운 소양'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주요 시인으로 꼽을만한 사람은 이들 가운데 나오지 않았다.  왕당파 시인들은 진지한 형이상학파 시인들과는 달리 대담한 연애시를 주로 썼는데.  Anthea, Althea, Amarantha, Lucasta 와 같은 환상적인 이름의 정부들에게 바치는 연애시뿐 아니라전쟁이나 명예 또는 왕에 대한 충성을 노래한 시를 쓰기도 했는데. 그들은 두드러진 자신들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직설적이고 구어체적인 언어를 사용했으며, 그런 방식으로 일상적이고, 아마추어적이며,애정어린 시들을 쓰는 것을 즐겼다. 그들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보다도 살아 있는 자잘한 삶의 이야기를 쓰곤 했다. 헤릭의 “Seize the day (Carpe diem)”과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는 왕당파 시인들의 인생 철학을 보여준다.   형이상학파 시인  Metaphysical 이라는 말은 Samuel Johnson이 제일 먼저 사용했다. 던(John Donne)을 비롯하여 허버트(George Herbert), 마블(Andrew Marvell)과 본(Henry Vaughan)이 있다. 그들은 비교적 쉬운 언어를 사용했으나 기상(conceit)이라 부르는 이질적인 비유의 심상을 창조해냈다. 던은 로마 카톨릭에서 영국 국교회로 개종하기 전까지 열정이 넘치는 연애시를 썼지만 1615년에 국교회 사제가 된 후에는 연애시를 쓰던 열정으로 종교시를 지었다.  ※기상(奇想, conceit)  본래는 '사상' 또는 '의견'의 뜻이지만 엘리자베스조 시에서는 넓은 의미에서의 비유를 가리키고, 형이상시에서는 기묘하며 뜻밖의 말을 사용하는 방법과 발상법을 나타낸다. 즉, 비유가 기상천외하고 정세한 고도의 창의성이 있는 직유나 은유를 말한다. 전혀 이질적인 것들을 유난히 세밀하게 비교하는 비유인 것이다.   *John Donne의 "Unified Sensibility"* 영문학 사상 Donne만큼 기이하고 특별한 인물은 없었다. 그의 생애와 작품은 동일인의 것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변화무쌍하고 독특하였으며, 가장 많은 비난과 찬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의 문법과 주제의 취급이 가히 몇 세기를 뛰어넘는 특별한 것이라는 점이 가장 커다란 이유일 것이다. 그의 작품이 300여년을 묻혀 있다가, 1912년 H. J. C. Grierson에 의해 재발굴되어, T. S. Eliot에 의해 재평가되는 전무후무한 운명을 겪은 것 역시 그의 특이함에 대한 반증이 된다.     Donne을 향한 최초의 비판은 18세기의 선두주자인 John Dryden에 의해 시작되었다. 획일성과 보편성을 추구하는 신고전주의자들에게 Donne의 특이성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Dryden은 Donne의 글이 "형이상학(metaphysics)을 추구하고 있다"고 불평하였고, Dr. Samuel Johnson도 Donne류의 시가 "heterogeneous ideas yoked by violence together"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그들을 한데 묶어 'Metaphysical School'이라는 곱지 못한 명칭을 부여하였다. 즉 그들의 시는 '시'라기보다는 '사상'에 가까우며, 그것도 억지로 조합된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당대의 문화에 비추어 당연한 비판이다.  Donne의 시는 정서를 통해 이해될 그런 시가 아니라, 정확한 분석과 해부를 필요로 하는 시이며, 또 그의 이미지들은 시의 범주를 벗어나, 과학, 연금술, 산문 등 시공을 가리지 않고 도입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듬의 파괴, 문법의 왜곡, 거친 산문체 등 Donne의 기벽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시대가 일렀다. 하지란 T. S. Eliot에게 이러한 특징들은 20세기의 시문학을 열어줄 보물들이었다. 그에게 Donne은 "사상을 장미향기처럼 느낄 수 있는 통합된 감수성(unified sensibility)의 소유자"였다. 분열된 감수성의 세계에서 시와 산문, 과학은 분리되어 인식되지만, Donne은 거의 무한한 정도의 폭넓은 인식능력과 시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다 넓은 범주에서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즉 Donne은 과학의 영역인 '사상'과 시의 영역인 '장미향기'를 동일한 범주로 인식하는 능력을 지녔다. 따라서 'heterogeneous ideas'로 평가절하되었던 Donne의 이미지들은 "telescoping of images"로 재평가되어져야 한다고 Eliot은 주장한다. 좁은 시각에서 볼 때 어떠한 관계도 없는 이미지들의 결합은 보다 넓은 시각에서 볼 때 그 의미의 유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Donne은 망원경과 같은 눈으로 보통의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한 범주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된다.    Donne의 매력은 바로 그의 현대성에 있다. 그는 시대를 뛰어넘는 인식능력으로 시의 영역을 무한히 넓혀, 범인들이 볼 수 없는 또다른 세계, 즉 역설(paradox)의 세계가 가능함을 최초로 인식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형이상파 시인   形而上派詩人 Metaphysical poet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던의 시에 나타나는 지적 복합성과 이미지의 응축을 지지하는 동시대의 영국 시인들을 가리키는 용어.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조지 허버트, 헨리 본, 리처드 크래쇼, 앤드루 마블, 존 클리블랜드, 에이브러햄 카울리 등이 있다. 이들의 작품은 시적 정서와 지적 교묘함이 어울어져 있으며 기상(奇想)과 기지를 그 특징으로 한다. 기상은 겉으로는 무관해 보이는 생각이나 사물들을 서로 연계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또 시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심사숙고하게 만드는 문학적 수법이다. 형이상시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분석하는 데 더 중점을 두며 의식(意識)의 심연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형이상시에 동원되는 완곡어법·아이러니·파라독스 등의 과감한 문학적 수법은 극적인 언어구사에 의해 그 효과가 강화되며 언어의 리듬은 주로 구어체를 구사하는 데서 얻어진다. 1930, 1940년대에 들어와 형이상파 시인에 대한 평가가 최고에 달했는데, 특히 T. S. 엘리엇이 발표한 문학평론 〈형이상파 시인들 The Metaphysical Poets〉(1921)이 그같은 성과를 가져오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 이 평론에서 엘리엇은 형이상파 시인들은 사상과 감정의 융화를 이룬 반면 그 후대의 시인들은 '감수성의 분열'때문에 그러한 융화를 이루지 못하고 지적이거나 정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반쪽 작품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형이상파 시인들이 활약하던 당대에는 '형이상'이라는 형용사가 경멸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1630년 스코틀랜드의 시인 윌리엄 드러먼드는 동시대의 시인들이 시를 형이상적 개념이나 학자적 궤변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려는 것을 반대하고 나섰다. 17세기말 존드라이든은 던이 '형이상학'을 너무 내세웠고 또 그같이 딱딱한 사상을 여성에게 강요하여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드라이든은 시란 부드러움으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뮤얼 존슨도 이들 시인들이 시(詩) 속에서 과시하는 학식을 빗대어 '형이상파 시인'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그 이후로 이 용어는 영문학계에서 널리 통용되었다. 형이상파 시인들의 시 정신을 재정립하기 위해 허버트 그리어슨은 〈형이상파 시와 17세기의 서정시 Metaphysical Poems and Lyrics of the 17th Century〉(1921)라는 시집을 편집했고 제임스 스미스는 F. R.리비스가 편집한 책 〈결단 Determinations〉(1934)에 〈형이상파 시에 대하여 On Metaphysical Poetry〉라는 논문을 실었다. 이들 두 책은 형이상파 시인들을 이해하는 데 주요한 자료이다.  
960    형이상시의 고찰 댓글:  조회:4464  추천:1  2015-04-14
          형이상시와 다형의 시세계                            문학평론가/ 박방현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에 대한 고찰       먼저 형이상시와 형이상학파시인(metaphysical poets)에 대해 일별해보고자 한다. 형이상시의 발생 동기에 대해 고찰해보자면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엄격하고 형식화된 소넷에 대한 염증과 복고적인 경향이 그 시대를 풍미했었고 그에 대한 식상食傷과 반동反動 심리에서 야기된 거부감이 팽배했으며 그뿐 아니라 17세기에 이르러 과학의 발달에서 오는 자각이 눈을 뜨게 된 데서부터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기존의 문예사조적 매너리즘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영국의 서정시인 중 일군의 시인들에 의해 형이상시가 시도되었으며 창출되기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런 형이상학적인 시에 관심이 많았던 시인들을 통칭하여 후대에 와서야 형이상학시인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형이상(形而上; metaphysical)이란 말은 철학용어로 그 사전적 의미는 형식을 떠난 것, 무형적(無形的)인 것, 형체를 초월한 것, 을 의미하며 형이하(形而下; physical)와 대조되는 말로 흔히 쓰여 왔던 것이다.   르네상스 초기의 시들은 영국의 서정시에 새로운 소재와 표현방식을 제공했고 또한 참신한 시풍을 불어 넣었거나 창안해내도록 했지만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안일한 매너리즘에 빠져 페트라르카풍의 낡은 제재를 반복하고 진부한 표현 방식을 답습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예사조의 흐름에 독자나 시인들은 식상하게 되었고 그러한 시풍들에 대해 불만이 대두되었으며 17세기의 시대추이에 따라 16세기 시와는 차별화가 되는 참신하고 새로운 내용이 있는 시를 탐색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기존의 미사여구의 수사적인 시와 결별하고 시인 자신들의 개인적인 사상이나 관념과 체험들을 시에 통합시키고자하는 시도와 독특하고 차별화된 새로운 방법을 가미하여 창작하게 된 시들이 바로 이고 그런 시를 썼던 시인들을 이름 하여 이라 명명했던 것이다.   그러한 시인들 중의 대표적인 시인은 존 던(Donne, John; 1573-1631)을 거명할 수 있고 그런 시풍을 선호했던 일군의 시인들로는 허버트(Herbert, George; 1595-1633), 헨리 본(Vaughan, Henry; 1622-1695), 엔드류 마블(Andrew Marvell; 1621~1678), 커루(Carew, Thomas; 1594-1639), 서클링(Suckling, Sir John; 1609-1641), 러브레이스(Lovelace, Richard; 1618-1657), 크래쇼(Crashaw, Richard; 1613-1649) 등의 시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17세기 ‘형이상학파시’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졌다. ‘형이상학파 시인’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사무엘 존슨이었고 야유적인 의미로 명명한 용어이며 ‘형이상학파’나 ‘형이상학 시인’이라는 어휘도 시인들 스스로가 자칭한 바가 없고 그런 시도를 꽤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허버트 그리어슨에 의해 ‘형이상학’이란 텍스트의 편집이 있었고 엘리엇이 1921년에 ‘형이상학 시인’이라는 에세이를 썼으며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허버트 그리어슨과 T.S. 엘리엇, 리쳐즈, 엠프슨, 테이트, 랜슴, 브룩스등에 의해 재평가되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시적 구조는 지적(知的), 논리적이고, 구어적(口語的) 표현을 많이 쓰고, 이미지와 비유의 대담성, 정교한 심리 분석 등의 특색이 있었다. T. S. 엘리엇의 비평을 계기로 해서 폭발적인 재평가를 받았으며 현대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필자가 이미 발표한 바 있는 다른 평론에서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란 어떤 시인가에 대해서 피력한 바가 있고 필자가 그 글의 일부를 여기에 다시 옮겨보겠다. 시인이고 평론가이며 현 한국 현대시인협회 이사장이었던 신규호교수는 형이상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6세기 후반 영국의 엘리자벳 시대의 천편일률적으로 형식화된 소넷에 대한 염증과, 스콜라 철학을 배경으로 하는 조잡한 복고적 경향에 대한 안티테제, 그리고 17세기 초엽의 과학에 대한 각성 등이 형이상시의 발생 배경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그리어슨이 을 편집하면서 ‘존 던 학파’, 또는 ‘형이상학파’라 칭했는데, 20세기에 와서 엘리엇, 리쳐즈, 엠프슨, 테이트, 랜슴, 브룩스 등 영미 비평가들이 이들의 시를 재평가하면서 그것이 이상적인 시로 일컬어지기 시작했다.   형이상시에 대한 17세기 초엽의 경멸적 비평과는 대조적으로, 이에 대한 엘리엇 등의 현대적 재평가는 일차적으로 19세기 낭만주의 전통에 대한 반발이었고, 엘리엇 자신의 시가 지니는 현대적 특성, 즉 객관적 상관물, 사상의 정서화, 전통의 계승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존슨 박사 등이 강조하는 형이상적 컨시트는 외면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체험의 영역 간에 놀랍고도 교묘한 유추에 의해 형성된다. 가장 이질적인 생각들이 ‘폭력적 결합’에 의해 동일화됨으로써 고정관념에 갇힌 언어를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형이상시의 의도라 할 수 있다. 아이러니, 컨시트, 풍자 등이야말로 불완전한 언어의 한계를 언어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시적 장치라고 하겠다.” 라 했고 박진환교수는 란 글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흔히 현대시를 메타언어라고 규정하는데, 메타란 두 의미론적 해석을 요구한다. 하나는 언어의 초월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뒤에 감추어진 비의秘意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초월적 기능은 의미의 확장이자 의미의 고정화를 거부하는 일종의 암시나 상징적 기능에 의탁된다. 그리고 비의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포착해 내는 일종의 새로운 의미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적 속성을 우리는 병치적 메타라고 하고 후자적 속성을 치환적 메타로 규정한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찾아 결합한다든지, 동질성 속의 이질성으로 이동한다든지 하는 일종의 변증법적 결합이다. 이러한 결합은 의미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대신 의미의 초월이나 의미의 암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의미의 물화나 의미의 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라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형이상시에 대해서 주목하고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시인을 지망하는 많은 초년생들이나 오늘날 대다수의 젊은 시인들이 지향하고 있는 부질없고 지나친 실험이나 상투적이고 편향적인 표현에 탐닉하고 있는 실정에 대해 커다란 아쉬움을 느끼고 오늘의 이런 시적 폐단을 최대한 억제하거나 탈피함은 물론 언어의 시적인 효과를 최대한으로 살리고 창조적 태도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며 나가서 존재의 궁극적 진실에 대한 긍정적 지향의지를 추구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주고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형이상시라고 보기 때문인 것이다.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병폐나 단점들을 지향함은 물론 21세기의 초두인 이 시점에서 보다 창조적이고 수준 높은 예술성을 지닌 시를 창작하기 위해 많은 시인들이 고심하고 있기에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형이상 시에 대해 깊은 관심과 주목이 필요하다고 필자 역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해 있는 우리시의 위기는 눈앞의 현상적인 사물시 만을 추구하고 지향함으로 통합적 감수성의 메커니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오늘날처럼 복잡다단하고 다원화된 시대 속에서 시가 건전하게 육성발전 되고 독자들로부터 멀어진 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지만 편도偏道된 물상적物像的인 사물시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것을 지양止揚하고 사상성과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가 서로 혼연일체를 이루는 통합과 조화의 감수성이 강조되는 시의 등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 비로소 독자들의 관심도 회복될 것이며 균형 잡힌 시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 분명하다. 오늘의 한국시는 누가 머라고 하든지 위기국면에 처해있음이 분명한 사실이고 이 위기로부터 탈출하여 독자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미래지향적인 건전한 시로의 이행과 변화가 참으로 필요한 시점에 와있기 때문이다.   형이상시의 특징을 기술해보자면 콘시트나 패러독스나 통징痛懲의 기법을 활용해 기존의 시가 지닌 미비점과 결점을 보완하여 시적 완결성을 추구하고 이상적인 시에 접근할 수 있는 시의 한 모델이 형이상시라 평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현대시에서도 본인은 만해 한용운 시인과 다형 김현승 목과木瓜 구상시인 등의 시를 접하며 형이상시의 매력에 깊이 매료된 바 있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형이상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고 우리 문단에 가장 비중 있는 시인들이자 평론가들인 문덕수교수를 비롯해서 성찬경 박진환 신규호 김지향 홍문표 교수 등 중량급에 속한 시인들이 입을 모아 한국시의 진로가 형이상시에 있음을 앞 다투어 피력하고 있고 이 분야에 관해서 지대한 관심들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한국시의 힘찬 부활을 통해 다시 독자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형이상시에 크게 주목할 필요가 있고 형이상시를 통해서 우리시가 부활의 홰를 크게 치도록 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기도 하다.   오늘날처럼 물질문명과 신자유주의 사회의 수많은 병폐와 시행착오 속에 함몰된 채 허우대는 현대인들에게는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며 종교적인 깊은 고찰과 사색이 절실히 필요하고 그런 추상의 관념세계와 우리들이 당면한 현실세계가 형이상시의 시 정신 속에 하나로 융화되고 조화를 이루며 우리들의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한 생존의 좌표설정에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물질일변도에 의해 잘 못된 시류의 폐단과 편향성을 시정하거나 제거하고 정신과 물질이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게 해줄 수 있는 제격의 시가 형이상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시인들 모두가 시의 침체와 위기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이고 오늘의 시세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며 발전적인 시의 세계로 진입함은 물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다가올 미래를 온전하게 준비하거나 대비하기위해서는 형이상시 만이 그 막중한 임무와 역할을 족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다시 말하지만 형이상시가 오늘의 시대정신에 잘 부합됨은 물론 격변하는 시대적 추이에 부응할 수 있는 안성맞춤이자 시대의 격조에 맡는 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위에서도 기술한 바 있지만 다시 한 번 형이상시의 원류에 대해서 일별해보자면 형이상학파 시운동은 17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존 던(John Donne) 외에 일군의 시인들이 있었고 그 중에 가장 유력한 형이상 시인으로는 존 던을 들 수 있다. 존 던은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 성공회로 개종할 때까지 종교적 박해를 경험했었고 뛰어난 교양과 운문의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빈곤 속에 살았다고 한다. 후에 세인트 폴 대성당의 수석 사제로 임명되었고 그런 배경은 존 던의 문학작품들이 초기의 연애시 풍자시 운문에서 말년에는 종교적 설법에까지 이르게 했으며 대담한 위트와 복잡한 언어구사를 했음은 물론 형이상시의 선구자로 자리하게 되었다. 존 던 시의 특징을 들어보자면 당시 시인들이 즐겨 쓰던 시적 장식은 물론 그리스와 라틴의 전설과 신화 같은 것이 없고 또한 그의 시에는 르네상스 시에 흔히 등장하는 목동이나 아름다운 장미화원이나 초원 등도 없다. 그의 시풍은 당시까지의 시단의 인습과는 전혀 다른 시풍이었고 또한 리얼리스틱했고 언어와 운율에서도 영국시의 흐름을 수정했던 것이다. 인습적인 시어와 비유 그리고 부드러운 리듬 대신에 풍자시에서나 사용했음 직한 반어적 표현과 일상 어법으로 구어적 리듬을 창조해 내었다. 뿐 아니라 가볍고 재기 발랄한 초기의 연애 시에서 후기에는 침울한 종교시로까지 변화해 갔다. 그의 후기 시는 죄나 죽음의 의식과 신앙이 복잡하게 서로 갈등하는 긴박한 고백과 대담한 이미지를 창출하여 격렬한 신에의 부르짖음으로 환치되었다. 존 단은 지성적인 예리함과 감각 내지는 관능적인 정열로 인생의 유한성과 무상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보여주었으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리얼리스틱한 면을 강하게 나타내고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논리적인 전개를 잘 창출해냈다.   그의 종교시에서는 기발한 기상을 사용하여 현실과 신앙세계의 갈등 그리고 천국에의 강한 열망을 보여주며 역설을 즐겨 사용했다. 두 개의 개념을 하나로 결합하여 확장하는 은유, 이른바 형이상학적인 비유(Metaphysical conceit)의 달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삶과 기쁨에 대한 건강한 욕구를 암시하며 반면에 깊은 감정들을 표출하기도 했다. 존 던의 많은 시편들에서 위트와 컨시트의 천재성을 감지할 수 있고 또한 다양한 시형과 불규칙한 리듬을 사용하여 매우 인습적이고 단조로운 분위기를 깨고 오히려 불협화음 속에 이루어지는 기상천외의 조화감과 다양한 경험의 유기적 동질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존 던의 시 중에서 그 예시로 아래에 두 편의 시를 소개해보겠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 (1572~1632)   그 누구도 온전한 섬으로 존재할 수 없나니  모든 개인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를 이루는 일부이다 만약 진흙이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유럽 땅은 그 만큼 작아지게 되고 모래톱이 그리될 지라도, 그대의 영지나 그대의 친우가 그리되어도 매 한가지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 자신의 상실이니 나는 인류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라 그러하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려 하지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기에             For whom the bell tolls a poem                          by John Donne (1572~1632)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ach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ner of thine own     Or of thine friend's were.     Each man's death diminishes me,     For I am involved in mankind.     Therefore, send not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벼룩               존 던           이 벼룩을 보라. 그러면 알게 될 테니.     네가 날 거절하는 것이 참으로 사소한 일이란 것을.      그놈이 먼저 날 빨고 이제 널 빨았으니     이 벼룩 속엔 우리 둘의 피가 섞여 있다.     넌 알고 있지, 이것이 아니란 걸,     죄악도 수치도 처녀성을 잃은 것도.          헌데 그놈은 구혼도 하기 전에 즐기고          두 사람 피 빨아 한 피로 만들고 배불렸으니          아! 우리 같음 이런 짓은 못 할텐데.         아 잠깐! 한 마리 벼룩 속에 생명이 셋.     우린 그놈 속에서 결혼보다 더 한 짓을 했다오.     이 벼룩은 너이고 또한 나이며,     우리의 혼인 침상이며 결혼식 올린 성전이니     너와 네 부모가 아무리 반대한들 우린 이미     이 살아있는 옥벽(玉壁) 속에서 만나 결합되었다.     네 일상 버릇대로라면 날 죽이고도 싶겠지만,     이 놈만은 살려주어야 한다,     그건 자살이며 신성모독이며, 세 생명 죽이는 범죄이니.                     잔인하게 별안간, 너의 손톱         무죄한 피로 붉게 물들였군.         너에게서 피 한 모금 빤 것 외엔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헌데 넌 자신 있게 말하길         너도나도 벼룩쯤은 물려도 괜찮다고 하니         옳도다! 공연히 두려워했구나.         벼룩의 죽음이 네 생명에 지장 없듯         내게 몸 허락해도 그대의 순결 지장 없겠지.              THE FLEA                    by John Donne (1572~1632)              Mark but this flea, and mark in this,     How little that which thou deniest me is ;     It suck'd me first, and now sucks thee,     And in this flea our two bloods mingled be.     Thou know'st that this cannot be said     A sin, nor shame, nor loss of maidenhead ;          Yet this enjoys before it woo,          And pamper'd swells with one blood made of two ;          And this, alas ! is more than we would do.         O stay, three lives in one flea spare,     Where we almost, yea, more than married are.     This flea is you and I, and this     Our marriage bed, and marriage temple is.     Though parents grudge, and you, we're met,     And cloister'd in these living walls of jet.          Though use make you apt to kill me,          Let not to that self-murder added be,          And sacrilege, three sins in killing three.         Cruel and sudden, hast thou since     Purpled thy nail in blood of innocence?     Wherein could this flea guilty be,     Except in that drop which it suck'd from thee?     Yet thou triumph'st, and say'st that thou     Find'st not thyself nor me the weaker now.     'Tis true ; then learn how false fears be ;     Just so much honour, when thou yield'st to me,     Will waste, as this flea's death took life from thee.           형이상시에 대한 해설은 이쯤해서 주리기로 하겠다. 이 논고의 제목에서 제시했듯이 이제 다형 김현승시인의 시세계를 일별해보고자 한다. 다형시인의 시 몇 편을 예시로 들어 검토하고 아울러 감상에 임해보고자 한다.       다형茶兄의 시세계       다형茶兄 김현승시인의 생의 이력을 여기 먼저 소개해보겠다. 김현승시인(1913.4.4~1975.4.15)의 아호는 다형茶兄, 남풍南風이고 부친은 김창국으로 고향은 전남 광주였다. 부친은 평양 숭실학교를 거쳐 평양신학교를 졸업했으며 그 시절 다형시인은 평양에서 출생했었고 부친이 목사가 되어 첫 부임지인 제주로 가게 되자 같이 가게 되었다. 그 후 부친은 고향인 광주 양림동으로 이사했으며 부친이 생을 마칠 때까지 양림 교회에서 다년간 시무했다고 한다. 다형은 이곳에서 7세 때부터 10여 년 동안 소년시절을 보냈고 광주 숭일 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 중학에 유학했으며 1932년 평양 숭실 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그 학교에 재학 하는 동안에 이란 시를 학교 교지에 발표하게 되었고 양주동의 인정을 받아 그 시가 다시 동아일보(1934. 3.25) 문예란에 발표됨으로 문단에 등단하는 절차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다형은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광주로 돌아와서 모교인 숭일학교에 재직하게 되었으며 왕성한 시작詩作활동을 했었다. 1937년까지 중앙일보, 동아일보, 또는 조선시단 등에 등 20여 편의 시를 발표했다고 한다. 허지만 다형은 38년부터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절필하고 시작을 중단했다고 한다. 아마도 일제가 우리말과 우리글을 못 쓰게 압력을 가했고 더구나 신사참배를 하도록 크리스천들에게 강요를 했기에 다형은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며 민족의식 때문에 절필을 했으리라 사료된다. 다형은 1946년 광주숭일중학교 교감으로 부임하면서 오랜 침묵을 깨고 시작활동을 재개하게 되었으며 정지용시인이 문화부장으로 재직한 경향신문에 주로 시를 발표했다고 한다.   다형은 1951년에 조선대학교 문리대 교수가 되었고 1955년 오늘의 한국문인협회의 전신인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전라남도 제1회 문화상을 수상했다. 이어서 다형은 1957년에는 한국문학가협회 상임위원이 되었고 1965년엔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위원장, 1970~73년까지 동 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한편 1960년엔 서울의 숭실대학교 교수, 그 후 1972년엔 동 대학 문리대 학장에 취임했다. 1971년에는 기독교문화협회위원장, 크리스천문학협회회장을 지냈고 지의 추천위원이기도 했다. 다형은 광주에 있는 동안에도 지를 창간하여 후진양성과 향토문학에 기여한 바가 컸다. 다형의 시집으로는 등이 있고 그 외도 란 시 해설집이 있다.   이제 다형의 시세계를 일별해보기로 하자. 아래 시는 다형의 이란 시이고 이 시는 필자가 발표한 다른 평론에서 이미 소개했던 시이기도 하다.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 시인에 대해 위에서도 밝힌 바 있는데 다형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미션 학교인 평양 숭실 전문대를 나왔고 그의 시의 주제는 고독이었다. 고독의 개념자체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듯이 위 이란 시어도 현상적인 사물이면서도 그 의미 해석에서는 다분히 추상성과 관념성을 강하게 지닌 어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형의 시편들에는 고독의 의미들이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고 또한 고독을 노래하되 절망을 전제한 고독이 아닌 절대자를 향한 강한 천착에서 울어 나온 긍정적인 고독이라 볼 수 있다. 제1연의 시는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눈물을 현상적 안목으로 볼 때는 눈에서 흘러나온 물기에 불과하지만 다형은 관념과 추상성을 가미하여 그 작은 눈물방울을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형상화했고 승화시켰으며 그러면서도 독자에게 전혀 거부감을 주지도 않은 채 자연스런 감동으로 이끌어간다. 이는 위에서 누누이 강조한 Conceit에 의해 현상적 눈물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세계로 끌어올렸고 시의 심상을 무리 없이 통합시켰으며 일치성을 이루는데 성공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심오한 시적인 의미확대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시연이라 볼 수 있다. 2연에서도 /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들이 흘리는 눈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수분과 염분과 소량의 무기물질로 이루어진 수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관념과 추상성을 용해시키고 이미지화하여 시인이 지닌 것 중에서 최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 눈물이라고까지 의미확대를 했으며 눈물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3연은 /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이 시연의 특이한 점은 현상적 눈물과 절대자라는 이질적이고 상이한 두 대상을 컨시트에 의해 무리하게 통합시켰음에도 불구하고 3연의 시행들은 시인의 절대자에 대한 최대의 외경심과 봉헌의 의지를 잘 표출했고 또한 구원을 꿈꾸는 절대 신뢰의 경지를 보여주는 시연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다형은 독자들에게도 무리 없이 깊은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4연에서는 /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사연의 시도 꽃과 열매를 대비시켜 꽃이 피는 것은 즐거움이고 환희이며 꽃이 지는 것은 분명 슬픔이고 애탄이지만 그 자리에 다시 열매를 맺게 하는 창조자의 위대하고 완벽한 창조의지를 잘 드러냈음은 물론 고도의 창조의지를 섬세하게 이미지화함으로 절대자에 대한 외경과 절대적인 전능성에 대해 극점까지 끌어올린 시연이며 현상과 추상의 세계를 잘 통합하고 상징화한 훌륭한 시연이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라고 마지막 결구를 맺고 있다. 위의 이란 시의 시작동기에 대해 다형의 막내딸인 피아니스트이고 음악박사이며 서울대음대 한서대학교대학원 겸임교수인 김순배 씨의 말을 빌리자면 부친인 다형시인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기배오빠’를 여윈 후의 절절한 심정이 들어있다. 그 오빠 이외에도 두 명의 형제가 일찍 세상을 버렸으니 그 모든 아픔이 부친의 시에 스며들어 있지 않을 수 없다.”라고 전하고 있다. 세 명의 어린 아이들과 사별했음에도 그 절절한 아픔이 비애나 애탄에 머물지 않게 했음은 물론 그 슬픔을 넘어선 창조자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오직 시를 통해 보여주었고 슬픔을 넘어서서 완벽하고 차원 높은 환희의 경지까지 승화시켰으며 높이 끌어올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는 다시 말하지만 이 시구는 그의 절대자에 대한 신뢰를 순전純全하게 표현해주는 시연이기도 하고 이 이란 시는 죽음마저도 초월한 절대자에 대한 커다란 신뢰와 그의 절대고독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까지 엿보게 해준다. 다음은 란 시를 보기로 하자.               플라타너스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느린다.     먼 길에 올제, 홀오로 되어 외로울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神이 아니다.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어느 먼-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窓이 열린 곳이다.       위시인 는 茶兄 시인의 시 중에서 독자들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는 시중의 하나이다. 위시에서 시의 소재이기도 한 플라타너스란 현상적 대상물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茶兄시인은 위시의 첫 연의 시의 모두에 이란 관념적 시어를 등장시킨다. 플라타너스와 추상명사 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고 생뚱맞기도 한 시어처럼 보인다. 더구나 첫 연의 마지막 시행에서 는 시연은 첫 시행의 의 물음에 대한 대귀對句 역시 엉뚱한 면이 없지 않다. 이는 플라타너스란 대상물을 하나의 사물로서 투시하고 그 대상을 직관력에 의해서 시화하려는 의도보다는 플라타너스란 대상물에 시인 자신의 형이상학적인 추상이나 관념을 투영시키고 컨시트(conceit)를 통해 조화롭게 합일시키며 일치성을 이루고자하는 의도성을 위 시연에서 우리들은 감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위시에서 플라타너스란 대상물을 통해서 시인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추상적 관념의 옷을 입히고자 하는 시적의도를 감지할 수 있고 나가서 위시가 성공한 시로 평가받는 것은 그러한 시화작업의 과정에서 전혀 무리가 없이 훌륭한 조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다시 언급해보자면 형이상시의 특징인 추상적 관념의 세계와 현상적 사물이 무리 없이 조화와 통합을 이루었기에 거부감 없이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훌륭한 시로써 변용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플라타너스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피조물이기도 하다. 창조자의 창조의지에 따라 봄이 되면 파란 잎을 피우고 여름이면 무성한 녹음을 만들어내며 위시에 표현했듯 그늘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가을이 오면 낙엽이지고 겨울이면 쓸쓸한 나목으로 서있기도 한다. 이와 같이 플라타너스는 생의 사계를 되풀이 하며 생존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플라타너스도 꿈이 있을까? 현란한 햇볕이 플라타너스에 비추면 향일성의 생존원리에 의해 잎을 피우고 가지를 뻗어내며 파란 무한공간을 향해 치솟아 오르며 마치 손을 벌리고 기도하는 모습처럼 거대한 몸뚱이를 만들어 간다. 아마도 플라타너스 역시 결코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존이나 자기구원의 세계를 꿈꾸고 있는지 모르고 어쩌면 플라타너스도 그런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허지만 플라타너스도 무상한 세월 속에서 동체와 가지는 노화되어 구멍이 뚫리고 고목이 된 채 어느 날 죽음에 이르게 되고 마는 것이다. 마치 우리 인간들이 모면할 길 없이 겪게 되는 생의 막중한 질곡의 하나인 생로병사란 동류항적 처지에 이르게 된다는 얘기다. 茶兄시인은 플라타너스의 생의 원리와 인간과의 상호간에 생명의 연결점을 간파했기에 란 시의 첫 연을 도출해냈고 위시가 많은 사람들이 애송할 수 있는 좋은 시로 창작되기에 이르렀으리란 유추가 가능해지며 얼핏 보아서는 생뚱맞은 듯했지만 와 시인의 추상적 관념의 세계가 마침내 그럴싸하고도 전혀 어색함 없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었으며 합일점에 이르게 되었으리라. 위시에서 다형은 형이상시의 시적논리를 훌륭히 성취시켰다고 볼 수 있다.   다섯 연으로 된 란 위시가 그런 맥락에서 바라보고 감상에 들어갈 때 플라타너스와 다형시인의 시세계가 동병상련적인 생의 아픔과 질곡과 고뇌와 고독의 문제가 혼연일체가 되어 매 연마다 절절한 시적감동으로 우리에게 전이되고 다형시인의 지적 감성적 시의 세계가 우리들에게도 그와 유사하게 감정이입이 이루어지게 되며 우리의 가슴을 폭넓게 적셔줌은 물론 그 시적감동에 흠뻑 빨려들고 마는지 모른다. 마지막 시연 속의 마지막 시행에서 라고 표현했는데 다형은 시인자신이 보듬은 생의 고독이 해소되기를 열망했을 것이고 그가 구원을 통한 영원한 나라로 입문할 수 있는 窓이 되어주기를 간구하는 구도적 사유에 대해 필자도 크리스천이기에 너무도 잘 공감이 가는 시구임을 미루어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당면한 생존이란 난해한 문제들 앞에서 다형의 위시가 전해주는 절절한 여운 때문에 우리들도 생에 대한 강한 연민과 애착과 구원에 대해서 깊은 침잠에 빠지게 되는지 모른다. 그 다음 시로는 를 감상하며 아울러 분석해보겠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謙虛한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肥沃한 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百合의 골자기를 지나 마른 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필자가 다른 평론에서도 거론한 바 있지만 한 시인의 시작품의 경향이나 시풍을 결정하는데 가장 유력한 영향을 주거나 결정하는 배경으로 세 가지를 거론한 바 있다. 첫 째는 그 시인이 성장한 역사적 배경을 들었고 두 번째로는 그가 출생하고 성장한 개인사적 환경을 들었으며 세 번째로는 그 시인이 처한 문예사조의 흐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이 논리가 누구에게나 꼭 적용되는 원리라고 강변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략 그렇게 보아도 무방하리라고 필자는 생각해왔다. 위시의 필자인 茶兄시인도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필자의 지론과 거의 일치하지 않나 생각되어진다. 김현승시인은 1913년 생으로 일제에 의해 강압으로 치러진 한일합방의 혼란기에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는 한일합방 이후 한반도에 세워진 총독부에 의해 통치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분을 저들의 의도대로 종속시켰다. 총독은 정권 및 병권을 한 손에 쥔 전제군주와 같은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소위 일제의 36이란 긴 탄압과 강권의 암흑시대가 전개되었던 것이고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다형시인도 1945년 해방을 맞기까지 험난한 시련의 시기 속에서 교육을 받고 젊은 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일제가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기독교의 목사인 아버지의 신분은 다형시인을 그 누구보다도 고뇌하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일이다.   2차 대전이 진행했던 1940년대를 전후해서 해방이 되기까지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를 하도록 일제는 강요했고 그에 반대하는 목사들을 순교하게 만들었으니 그 일제야 말로 김현승시인을 더없이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며 고독한 시인이 되게 했음이 분명하다.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에도 전쟁을 수행하던 동안 내내 8년이란 긴 세월을 절필했던 그 심정을 필자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그러기에 위시에 등장하는 란 시어에서 필자는 한없는 감동과 아픔을 느낀다. 다형시인은 고뇌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엘리트 지식인으로 또한 탄압받는 크리스천으로 거기 더하여 정서적으로 예민한 젊은 시인으로 그가 감내해야할 아픔이 어떠했을지 우리로서는 충분히 상상하기에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謙虛한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위 일연의 시에서처럼 落葉들이 지는 때를 맞추어 다형시인으로 하여금 謙虛한 母國語로 기도하게 했고 거기서 머물지 않은 채 주위의 탄압받는 동족들을 위하여 둘째 연의 시행에서처럼 //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으리라. 이어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肥沃한/ 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다형시인에게 수시로 밀려오는 생존의 모든 아픔들을 홀로서는 견디기가 어려웠고 또한 해결할 방도가 없었기에 전능하신 절대자를 향해서 누구에게도 눈치 채이지 않게 홀로 눈물의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핍박받는 모든 동포와 이웃과 시인자신까지를 포함해서 절절한 연민과 애정이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돌아보면서 진실로 그 모두를 사랑하기를 갈망했음이 분명하다.   마지막 셋째 연인 //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百合의 골자기를 지나/ 마른 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다형시인은 까마귀란 새에 대해서 유난하고 각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유추된다. 위시에서 뿐 아니라 까마귀가 다형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까마귀란 새는 전래된 속설에 의하면 영계를 꿰뚫어보는 안목이 있는 새로 지목되기도 한다. 마치 죽음의 전령사처럼 고래로부터 인식되어 온 듯하다. 까마귀가 울어대면 마을에서 사람이 죽게 된다고 알려져 왔다. 우리의 영상물들 속에서도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죽음을 예감케 하는 음향효과로 많이 활용하기도 한다. 뿐 이니라 보은의 새로도 알려져 왔다. 어미 새들이 늙어서 눈이 보이지 않으면 새끼 까마귀들이 먹이를 물어다가 늙은 어미 새들을 알뜰히 보살핀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의미로 미루어보아 까마귀는 결과적으로 우리인간들과는 긴밀한 유대가 형성되어왔고 육친의 정에 대해 각별하게 눈을 뜨게 해주기도 하는 익조라고 볼 수도 있다. 다형시인이 어떤 시적의도에서 채택한 시어인지는 확연히 알 수 없지만 까마귀는 시적 의인화를 위해 상징적으로 도입한 게 아닐까 추측된다. 마지막 시연은 삶의 질곡과 고통을 헤쳐 나온 후에 안락한 안식을 누리는 경지를 이미지화하기 위해서 등장한 시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위시는 일본제국주의 포악한 침략주의에 의해 언어를 상실 당했고 고유의 풍속과 문화를 말살 당했으며 긴 세월 고난을 헤치며 살아야했던 시인의 처지와 동족들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며 다형시인의 마음속에서는 끝없이 기도가 계속되지 안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한 고뇌 속에서 모국어에 대한 각별한 애착과 사랑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바로 가 아닐까 사료된다. 위시는 다형시인이 지닌 신앙적 철학과 추상적인 관념을 현실의 삶과 잘 조화시킴으로 이뤄낸 성공한 형이상시라고 보아도 무리가 전혀 없다는 얘길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이어서 다형시인의 시를 살피며 감상해 보자.                      絶對孤獨                                   김현승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永遠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體溫을 느낀다.   그 體溫으로 내게서 끝나는 永遠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는 나의 言語를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言語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無限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입을 다문다-나의 시는        필자는 위에서도 거론한 바 있지만 명망 받는 한 시인으로 성공을 하고 입지를 굳히기에 이르려면 몇 가지의 전제조건을 구비함이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첫째로는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나야 하고 다음은 피나는 노력을 해서 그 재질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 그 시인의 시풍이나 시적 개성을 결정하는 요건으론 역사적인 시대배경과 문예사조의 흐름과 그 시인이 개인적으로 처한 출생과 성장배경이 중요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茶兄시인은 위에서 누누이 밝힌 바지만 그 출생부터 순탄치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의 강요에 의해 한일합방이 이루어졌고 그 3년 후에 목사의 아들로 태어 낳다. 그가 성장한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서술해본다면 그가 유년시절이던 1919년에 3.1독립운동이 일어났었고 청소년 시절인 1929년엔 그가 살고 있던 광주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열화처럼 일어났으며 1941년엔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2차 대전이 발발했다. 연이어 1945년 드디어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고 1950년에 6.25가 발발함으로 동족상잔의 잔혹한 전란을 겪기에 이르렀다. 다형은 일제 강점기 36년 중 33년 동안이나 참혹한 암흑기를 몸소 견뎌야했음은 물론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다형시인은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생존의 고뇌와 정신적인 아픔에 노출되었을 게 분명하다. 그가 1940년대를 전후해서 8년이나 절필을 하고 시마저 쓰지 안했던 것은 그의 정신세계의 아픔이 어떠했을 지를 단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세 아이들의 죽음을 몸소 겪어야했고 그 죽음 앞에서 목사의 아들이었기에 겪어야하는 육신적인 고뇌와 영혼의 아픔은 각별했으리란 짐작이 들기도 한다. 필자는 위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란 어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고독이란 어휘는 자주 쓰기도 하고 흔히 듣기도 하는 귀에 익은 단어이지만 이란 말은 어찌 보면 생소하고 약간은 거부감을 느끼게도 하는 어휘이기도 하다. 다형시인이 다도茶道를 즐기고 또한 고독의 시인이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그의 생의 저변에는 위에서도 얘기했듯 고독의 문제가 밀도 있게 저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란 어휘가 귀에 익지 않은 어휘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은 어떤 의미의 고독을 얘기하는 것일까! 필자의 해석이 꼭 정석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첫 번째로 쉽게 해소되지 않는 고독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봤다. 두 번째로는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사물 사이에서 대두된 고독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봤다. 세 번째로는 인간 단독으로 풀 수 없는 고독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네 번째로는 절대자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성립할 수 있는 고독에 대해서 이라 명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다형은 크리스천으로 유태민족이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도는 민족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해서 아우스빗츠에서 6백만 명에 달하는 유태민족이 학살당했음도 알았으리라. 우리나라도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한 채 나라 잃은 민족으로 갖은 학대와 설음에 노출되어 고통을 당하는 처지에서 있었기에 양식 있는 지성인으로 크리스천으로 국권회복과 민족재건이 그의 기도제목이었을 것이고 그 기도의 응답이 쉽게 성취되지 않음에 때로는 절망했고 그로 하여 에 침잠해 있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란 시에서처럼 아이들의 죽음이 몰고 온 생의 고뇌는 하나님과 다형과의 단독자적으로 풀어야 했을 절박한 문제이기에 그토록 에 깊이 침잠하게 되지 않았을까 사료되기도 한다. 그런 정항들로 그는 고독할 수밖에 없었고 누구도 쉽게 이해하거나 접할 수 없는 에 개안하게 되었으리란 추론을 해보게 해준다.   다시 시의 원문으로 돌아가 보자. //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永遠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그가 처한 고독한 생존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가꿔온 영성을 통해서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고 의 문제로부터 잠을 깨고 개안을 했으리라는 유추를 가능케 하는 시연이다. //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體溫을 느낀다./ 그 體溫으로 내게서 끝나는 永遠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다형이 처한 현실과 그가 만지는 손끝에서는 아름다운 꿈과 몽환의 세계가 개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망의 무저갱으로 추락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의 신심과 긍정적 사유는 절망보다는 현실 속에서 다스한 체온을 느끼게 해주고 오히려 긍정적인 안목으로 희망과 꿈의 세계를 바라보게 해준다는 얘기일 것이다. // 그 끝에서 나는 나의 言語를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言語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한 때 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절필을 하고 에 침잠해 있으면서도 그 시적언어들이 부정적이고 절망의 언어로 퇴락되거나 결코 파기시키지 안했으며 또한 그 시적언어들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도 않은 채 가벼운 마음으로 꿈을 꾸듯 시로 형상화했고 표출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인 듯하다. // 나는 내게서 끝나는/ 無限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입을 다문다-나의 시는// 마지막 연의 시는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어느 날인가는 시적세계와도 결별을 고할 수밖에 없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지만 그 시의 세계에 대해서는 정겨운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애정과 미련을 결코 버릴 수는 없는 시인의 심적 결의를 잘 들어낸 시연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형시인의 많은 시편들은 고독의 문제와 절대고독에 대해 잘 형상화되었고 이미지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나가서 추상과 관념의 문제들을 현상적인 사물에 빗대거나 컨시트를 동원해서 전혀 무리함도 없고 또한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흠잡을 데 없이 형이상시로 시의 옷을 훌륭히 잘 입혔으며 시적변용에 성공했다는 점을 필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수용하고 싶다. 그의 시세계는 고독이 주제인 것이 사실이지만 결코 절망이나 부정의 세계 속에 함몰되거나 탐닉하지 않고 유신론적 철학자인 가 절대자에게 구원을 호소하고 요청했던 것처럼 그는 목사의 아들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그가 믿고 의지했던 하나님께 생의 고독과 구원의 문제를 전폭적으로 의지했다고 본다. 다형의 시속에 면면히 저류하는 고독이란 시적 주제는 오히려 그의 시세계는 물론 생존의 문제들까지를 보다 완숙한 단계로 끌어올리는 견인차적인 역할을 충분히 잘 해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다형시인의 이란 형이상시에 대해 시인이고 평론가이자 회장인 최규철 문인의 평을 여기에 소개해 볼까한다. “이런 형이상시는 우리나라 시인의 시 중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김현승의「절대신앙」,「마음의 집」, 김춘수의「모자를 쓰고」, 김종삼의「나의 본적」, 박남수의「손」, 문덕수의「꽃과 언어」, 박진환의「가을 이미지」, 허영자의「얼음과 불꽃」등이 그것이다. 아래 예시는 김현승의「절대신앙」이란 시이다.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 .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풀어 줍니다.          -김현승, 「절대신앙」전문 -     이 시에서 우리는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정신세계와 사물세계를 폭력적인 결합을 통해서 융합하는 형이상시의 시적 기상(Conceit)을 발견할 수 있다. 극도의 양극성을 띠우는 두 개의 사물에서 ’화자의 눈송이‘가 ‘절대자의 불꽃’ 속으로 뛰어 들어가 연소되어 삼켜지는 것은 절대 신앙을 가진 자만이 절대자의 불꽃 속으로 뛰어 들어가 자신은 사라지고 절대자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영광스런 상태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시의 제목인 ‘절대 신앙’이 암시해주고 있다. 박진환 교수은 그의 저서「21C의 詩學」에서 ‘불태우고 있는 그리하여 뜨거움으로 다가가는 신앙의 열정을 이에 상응하는 객관적인 상관물인 ‘불꽃’ 에 연관시켜 이 불꽃인 신앙심에 스스로를 던져 하나가 됨으로써 신앙의 절대성을 획득하기 위해 불과 하나가 될 수 있는,곧 불 속에서 녹아 하나가 될 수 있는,‘눈송이’ 에 연계시켜 등가물을 발견함으로써 육체의 소멸을 통한 정신에의 합일이라는 절대 신앙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러한 연상은 곧 컨시트(Conceit)에 의해서 만이 가능하다.” 라고 피력했다.            본고를 끝맺으며       필자가 독자들이 애송하는 다형의 시 수편을 형이상시의 예시로 도입했고 필자 나름대로 다형의 시에 흠이 되지 않도록 조심스런 마음으로 검토하고 곁들어 감상을 해봤다. 위의 시들에서 보다시피 직관적이고 현상적인 세계를 형이상시의 컨시트와 은유와 알레고리 등의 기법을 도입해 사물과 관념이란 이원화의 세계를 잘 통합 조화시켜 관념의 육화肉化 내지는 형상화에 성공했고 그렇게 쓰인 다형의 시편들은 필자 역시 시의 맛과 깊이를 더해준 성공한 시들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에 이 논고를 쓰기에 이른 것이다. 다형시인은 다시 말하지만 친일 시편들을 썼던 시인들과는 달리 33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일제의 갖은 압박과 탄압을 받았고 일제가 2차 대전을 수행하던 기간 중엔 다형은 열정이 왕성한 30세 전후에서 35세에 이르는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연대를 살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출세와 영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절필을 한 채 침묵하며 그토록 아끼던 모국어로 시 쓰는 작업마저 중단했었으니 다형이 얼마나 지조의 시인이었는가를 여실히 대변해주는 것이다.   또한 다형이 그가 아끼는 시편들은 대부분 가을에 썼다고 말했듯이 다형은 누구보다 가을을 사랑했고 그의 아호가 다형茶兄이듯이 그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깊은 고독에 침잠한 채 다향에 심취했던 것을 우리들은 잘 알 수 있다. 다형은 목사의 아들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다형이 남다른 고독에 눈을 뜬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인간과 인간사이도 그러하거니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남다른 고독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인간들은 항상 시제의 일치를 이룰 수 없기에 하는 얘기다.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기도와 간구를 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즉시 응답을 줄 수도 있고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응답하실 수도 있기에 인간들은 때로는 고독할 수밖에 없기에 하는 말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때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러기에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고독은 존재할 수 있고 그러기에 다형과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고독이나 절대고독은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뿐 아니라 일제치하에서도 모국어母國語에 대한 사랑이 남 달랐음을 다형의 시편들 속에서 우리들은 감지할 수 있고 다형의 그런 모국어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시정신이 우리시의 품위를 크게 격상시켰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형은 조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리고 의 추천위원을 지내면서 후진 양성에 진력했었다. 시단의 기라성 같은 중견 시인들인 이성부 문병란 손광은 임보 진헌성 문순태 오규원 김규화 박홍원 박봉우 윤삼화 강태열 박성룡 조태일 양성우 김준태 씨 등의 혁혁한 시인들을 많이 배출시켰고 여기에 모두 거명하지는 못했지만 3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많은 후진들을 육성해 낸 공로는 한국시사에 기리 남음은 물론 독보적인 위치와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길이길이 칭송을 받아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위에 수편의 예시들을 제시하고 감상을 곁들여 고찰해봤으며 형이상시와 다형의 시편들이 상사점을 공유하고 있음은 물론 배면에 흐르는 시적 풍토나 경향이 상통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필자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논거를 제시했다고 본다. 이제 필자는 이 논고에 대해 스스로 완벽하다고 자부할 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는 미숙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필자는 현재 폐암과의 투병 중에 있고 그런 중에 있음에도 에 대한 집필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다형 시에 대한 감상을 곁들여서 형이상시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고 일별해봤기에 안도하는 마음으로 이 논고를 끝맺으려 한다.    
959    사랑의 형이상적 시인 - 존던 댓글:  조회:5072  추천:0  2015-04-14
    사랑의 형이상적(形而上的) 시인 존던(John Donne)                                                                                                                 안석근                                                           1. 형이상적 시(詩)(metaphysical poetry)    ‘형이상(形而上; metaphysical)’이란 말은 철학적 용어로 그 사전적 의미는 ‘형체를 초월한 것’, ‘형식을 떠난 것’, ‘무형(無形)’을 뜻하며 ‘형이하(形而下; physical)’와 대조되는 말로 쓰인다. 그리고 형이상의 존재를 연구하는 철학의 부문을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이라 한다. 형이상학이란 용어는 원래 그리스어 meta(後의 뜻)와 physica(자연학)의 결합어인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작을 편집할 때, 자연학적 논구(論究) 다음에 배열된 일군(一群)의 논문이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형이상학이 근세과학과의 대결 속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 것은 칸트의 비판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 중엽이래 형이상학은 여러 근세과학에 비해서 객관성이 적은 주관적 세계관으로 취급되어 본질을 뛰어넘은 일종의 가설(假說) 혹은 의사과학(擬似科學)으로 취급되는 경향을 띠었다. 전통적 개념으로의 형이상학은 ‘본체적’인 것의 반대인 ‘현상적(現象的)’인 것을 추구하는 학문 즉 현상학이었다. 이는 현상학적 환원에 의해서 자연적 태도 일반의 초월을 가능케 하여 절대자에의 통로를 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절대자의 존재양태를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을 형성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반(反)형이상학적 경향이 얼마동안 흐르다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막연한 의미로서의 형이상학의 부활이 논의되게 되고 이에서 ‘생(生)의 철학’, ‘실존철학’ 등이 비합리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나타났다.   17세기 영국의 형이상적 시인 존던(Donne, John; 1573-1631)을 위시하여 허버트(Herbert, George; 1595-1633), 커루(Carew, Thomas; 1594?-1639?), 서클링(Suckling, Sir John; 1609-1641), 러브레이스(Lovelace, Richard; 1618-1657?), 크래쇼(Crashaw, Richard; 1613?-1649), 본(Vaughan, Henry; 1622-1695), 마벌(Marvell, Andrew; 1621-1678) 등의 시의 전통을 부활시킨 것은 주로 T. S. 엘리어트의 공로였다고 할 수 있다. 엘리어트는 현대시(現代詩)의 진로를 천명하면서 형이상학 시의 특징을 지적하여 언급하기를 “존?던 일파의 17세기 시인들은 그들의 감수상태가 독서와 사색 같은 이지(理智) 작용으로 말미암아 상당한 변화를 받아서 사상을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힘, 달리 말하면 사상을 감정으로 개조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했다. 그의 지적에 의하면 사상을 감정으로 파악한다는 말은 달리 감정을 사색한다는 말이 된다. 즉 시인의 마음 속에서 사상과 감정이 분리되지 않고서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는 힘을 말한다. 형이상적 시인은 과학이나 학문을 하는 사람들처럼 사물이나 경험을 추상적으로 개념화하거나, 낭만주의자들처럼 그것을 감정 위주로 보지 않고서, 사물이나 경험을 있는 그대로 감정과 사상의 구별 없이 총체적으로 보는 감수성을 지닌 시인들이다. 여기서 현대시와 형이상학 시의 공통점으로서 ‘사상과 감정의 융합’을 들 수 있다. 형이상적 시인을 ‘지성시인(知性詩人)’이라 한다면 그와는 반대로 감수성이 사상과 분열되었던 빅토리아조(朝)의 시인들 중 테니슨(Tennyson, Alfred; 1809-1892)과 브라우닝(Browning, Robert; 1812-1889) 등을 ‘명상시인(瞑想詩人)’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다 사색은 하지만 그들의 사상을 장미의 향기처럼 직접 느끼지는 못한다. 감수성의 분열은 사물의 체험을 단순히 감정에만 의존하여 거기에 지적(知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감정을 휘어잡고 거기에 뚜렷한 윤곽을 주어 경험을 이미지나 심벌로 파악하는 표현이야말로 감정과 지성의 전인적(全人的) 체험을 낳는다. 사물을 감정으로만 파악하면 감상적인 시가 되고, 사상으로만 파악하면 사상시가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거기에 쓰인 이미지는 단순한 장식적 역할을 할 뿐, 기능을 갖지 못한다. (20세기 영미시의 형성, P. 120-127-이창배, 민음사)   다시 말해서 피지컬(physical, 형이하적)한 요소를 최소한도로 담은 문장은 감성의 고갈에 빠져 플라톤적인 관념에 빠지기 쉽고, 이를 피하려고 피지컬한 것을 최대로 갖는 문장은 권태롭고 흥미 없는 리얼리즘 즉 지나친 현실주의적인 것으로 기울어 무의미하고 무리한 문장이 되기 쉽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에서 자연주의적 문장은 매우 불완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하여 형이상적 즉 메터피지컬(metaphysical)한 것은 초자연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 여기서 창조된 글은 생생하고 명확한 것이 되어 과학적 서술과는 다른 풍부한 메터퍼(metaphor)를 가지고 진리를 전달한다. 미국의 시인이며 분석 비평가인 테이트(Tate, Allen; 1899-1979)는 이러한 시를 ‘상상력의 시’(poetry of the imagination)라고 불렀다.   2. 사랑의 형이상적 시인     17세기 영국의 형이상학파 시인 중 하나인 존던(Donne, John; 1573-1631)에 대하여 동시대의 영국의 고전주의 작가이며 세련된 서정시인 벤 존슨(Jonson, Ben; 1573-1637)은 “존던의 시는 그의 그릇된 억양 때문에 교형(絞刑)에 해당되고, 이해되지 않아 사멸하리라”(* 영미작가론 P. 40-이양하, 신구문화사)라고 선언한 바가 있는데 선언 그대로 존던의 시는 그의 생전에 소수의 독자에게 읽히었을 뿐 사후 시집이 나온 뒤에도 많은 독자를 얻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그는 설교가, 산문의 대가(大家)로 더 잘 알려졌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엘리어트(T. S. Eliot)의 논문 이 나온 이래 존?던은 시인으로 부활되고 영시사(英詩史)상 대시인이란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 존던의 생애와 작품은, 본사 발행 ‘공석하, 안석근’ 공저 P. 90 이하 참조)    형이상적 시의 제일인자로 손꼽히는 존?던의 시는 단테의 이나 괴테의 , 밀턴의 처럼 ‘우주에 관한, 그리고 생존이라고 하는 위대한 드라마 속에서 인간의 정신이 실연(實演)하는 바 그 역할에 관한 철학적 개념에 영감을 얻어서 쓴 시(* 존?던 시집 P.162 해설-조신권, 정음사)’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그는 다른 형이상적 시인에 비해 소규모적인 형태의 시를 썼지만 그의 시의 형이상적 특질은 내용면에서 보다는 시의 스타일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형이상 시인에게 있어 인생경험은 지성(知性) 속에 이루어지는 정서와 개념의 결합관계로 나타나는데 이 관계는 감정적 정서적 관계가 아니라 논리적 관계이다. 즉 이 둘의 유기적 통일성과 예리한 분석을 형이상 시인들의 특색으로 볼 수 있다.   존던의 시적(詩的) 태도는 엘리자베드 시대에 유행했던 페트라르카(Petrarca), 스펜서(Spenser) 등의 소네트(sonnet) 시풍(詩風)에 반기를 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존?던의 시풍(詩風)은 1592년경 영국 르네상스 개화기에 풍미했던 시인들의 한결같은 주제인 페트라르카 풍의 연시(戀詩) 즉 사랑의 기쁨과 슬픔, 이루지 못한 사랑의 고통과 이별의 비애 같은 전혀 변화가 없는 것들과는 아주 다른 사실적(realistic)인 시풍으로, 아무런 시적 장식도 없고 그리스 라틴의 전설이나 신화적 요소도 없으며, 또한 연애시에 언제나 등장하는 양치기 소녀나 목동이 없고, 화사한 장미화원이나 초원, 태양 등에 비유된 미적 요소도 없다.   이러한 그의 리얼리즘은 자신의 연애경험을 현실 그대로 응시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극히 단순한 언어와 대화의 어조로 서술하려 했던 사실 속에 나타난다. 그리하여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던 종래의 영국의 시풍에 전혀 새로운 모습의 연애시를 창조해 주었다.   그의 이러한 공헌 외에도 그의 시는 형이상적 위트를 지니고 있다. 양극성(兩極性)을 대비하거나 결합하는 지적 작용인 위트는 엘리어트의 말대로 “가능한 모든 경험을 표현하는 가운데 은연중 이루어지는 지적 인식 즉 사물의 다면성에 대한 의식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트는 얼핏보아 시의 내면적 의미와 별 연결이 없어 보이나 위트의 기묘한 작용으로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실례를 존?던의 시에서 엿볼 수 있다.   존던은 그의 “지적(知的) 유사성을 정서로서 동등하게 한다.”고 했다. 영국의 문예비평가인 그리어슨(Grierson, Sir Herbert John Clifford; 1866-1960)은 “존던이 사용한 기상적(奇想的) 비유 즉 컨시트(conceit)는 엘리자베드 시대의 문인들이 사용했던 컨시트보다 훨씬 지적이고 합리적이다. 또한 형이상학적인 것이 많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컨시트란 시인이 체험한 사상과 감정을 구현해주는 한 수단이라 할 수 있는데 콜리지(Coleridge, Samuel Tayler; 1772-1834)가 말한 상반된 혹은 조화되지 않은 일종의 ‘부조화의 조화’를 의미한다. 이를 다시 그 장단에 의해 ‘확대된 컨시트’와 ‘응축된 컨시트’로 나누어 볼 때 바로 존던의 시에서 그 예를 발견하게 된다.                고별(告別) : 서러워 말라           슬퍼하는 벗들이 이젠 운명했다고             또는 아니라고 말할 때,         덕망 높은 이들은 온화하게 죽어가며             자기들의 영혼에게 어서 가자고 속삭이듯,                                         우리도 소란 피우지 말고 의연히             눈물 홍수, 한숨 폭풍 보이지 말자.         세인에게 우리 사랑 말하는 건             우리 기쁨 모독함이니.           지진은 재앙과 공포 몰아오고,             그 피해 어떠한지 사람들 알고 있지만,         천체의 운행은 더 큰 변동             허나 실은 해를 주지 않는다네.           달빛 아래 우둔한 연인들 사랑             (오직 관능뿐이어서), 헤어짐을         못 견뎌 하니, 육체가 서로 떨어지면             사랑의 요소도 없어짐 때문.           허나 우린 우리조차 알 수 없는             승화된 사랑으로         우리 마음 서로 믿으니             눈, 입, 손 못 본다 하여 걱정할 것 없네.           우리 둘의 영혼 하나이니             내 떠난들 갈라지는 것 아니고         오직 퍼지는 것일 뿐.             공기 마냥 얇게 편 금박처럼.            우리 영혼 굳이 둘이어야 한다면             굳게 붙은 콤파스 두 다리처럼,         그대 영혼 견고한 다리, 그 움직임 안 보이나             다른 다리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네.           그대 다리 중심에 서 있으나,             다른 다리 멀리 배회할 땐         몸 굽혀 그 쪽으로 귀 기울이고             제자리 돌아오면 똑바로 서네.           그대 내게 이런 존재 되어주오.             난 비스듬히 달릴 다른 다리,         그대 굳게 서 있어야 내 그리는 원 바르고               나 떠난 곳으로 되돌아 올 수 있네.                       A VALEDICTION : FORBIDDING MOURNING                                                                  As virtuous men pass mildly away,              And whisper to their souls to go,          Whilst some of their sad friends do say,             "Now his breath goes," and some say, "No."                                So let us melt, and make no noise,                                                     No tear-floods, nor sigh-tempests move;         'Twere profanation of our joys               To tell the laity our love.             Moving of th' earth brings harms and fears;               Men reckon what it did, and meant;                                      But trepidation of the spheres,                Though greater far, is innocent.              Dull sublunary lovers' love                 (Whose soul is sense) cannot admit            Of absence, 'cause it doth remove                                                   The thing which elemented it.              But we by a love so much refined,                That ourselves know not what it is,            Inter-assured of the mind,                 Care less, eyes, lips and hands to miss.                                       Our two souls therefore, which are one,                 Though I must go, endure not yet            A breach, but an expansion,                 Like gold to aery thinness beat.              If they be two, they are two so                          As stiffe twin compasses are two;            Thy soul, the fix'd foot, makes no show                 To move, but doth, if th' other do.              And though it in the centre sit,                 Yet, when the other far doth roam,                                          It leans, and hearkens after it,                 And grows erect, as that comes home.              Such wilt thou be to me, who must,                Like th' other foot, obliquely run ;           Thy firmness makes my circle just,                                                  And makes me end where I begun.                                        성해(聖骸)                 내 무덤 다시 파헤쳐               어떤 또 하나의 시체를 함께 묻을 때,               (무덤들은 여성의 머리가               침대 이상이란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내 무덤을 파내는 사람이                        나의 백골에 감긴 금발 팔찌를 보면,                   우릴 그냥 놓아두고             한 쌍의 애인이 누워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건 분주한 최후의 날, 그 영혼들이             이 무덤에서 만나 잠시 머물게 하는             어떤 방법이었다고 생각지 않을까?                                만일 이 일이 우상숭배 시대나,                 우상숭배 나라에서 생긴다면,                 그땐 우릴 파내는 자가 우리를                 주교나 왕에게 가져가                     우릴 성해(聖骸)로 모시고; 그래서              넌 막달라 마리아가 되고, 난                     그 곁에 다른 어떤 우상이 되어              모든 남녀가 우릴 경배하리라;              그리고 그런 시대에는 기적을 찾을 테니,              난 이 글로 그 시대에 전하리라              우리 순진한 애인들은 놀라운 기적을 이룩했다고.                     첫째로, 우린 지극히 충실히 사랑했다.                      헌데 우린 무얼, 왜, 사랑했는지 몰랐고,                   우리 수호천사들이 성구별을 모르듯,                   우리 또한 몰랐다.                         오고 가고 하면서, 우린               어쩌다 키스는 했을지 모르지만, 식사 사이에는 안 했다.                         최근 법으론 금지되었지만, 대자연이 풀어놓은                   그 봉인(封印)에 우린 손도 대지 못했다:               우린 이런 기적을 행했으나; 아, 슬프도다, 이젠               모든 운율, 모든 언어 다 써도,               그녀가 어떤 기적 같은 존재였는지 말로 다 못하리.                                          THE RELIC                       When my grave is broke up again                     Some second guest to entertain,                     (For graves have learn'd that woman-head,                     To be to more than one a bed)                          And he that digs it, spies                 A bracelet of bright hair about the bone,                          Will he not let us alone,                 And think that there a loving couple lies,                 Who thought that this device might be some way                 To make their souls at the last busy day                 Meet at this grave, and make a little stay?                        If this fall in a time, or land,                      Where mass-devotion doth command,                      Then he that digs us up will bring                      Us to the bishop or the king,                           To make us relics ; then                 Thou shalt be a Mary Magdalen, and I                           A something else thereby;                 All women shall adore us, and some men.                 And, since at such time miracles are sought,                 I would have that age by this paper taught                 What miracles we harmless lovers wrought.                         First we loved well and faithfully,                       Yet knew not what we loved, nor why;                       Difference of sex we never knew,                       No more than guardian angels do;                            Coming and going we                 Perchance might kiss, but not between those meals;                            Our hands ne'er touch'd the seals,                 Which nature, injured by late law, sets free.                 These miracles we did ; but now alas!                 All measure, and all language, I should pass,                 Should I tell what a miracle she was.     이들 시에서 우리는 존?던은 위트와 컨시트의 천재시인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존?던은 다양한 시형과 불규칙한 리듬을 사용하여 매우 인습적이고 단조로운 분위기를 깨고 오히려 불협화음 속에 이루어지는 기상천외의 조화감과 다양한 경험의 유기적 동질성을 보여 주었고 구어체의 리듬을 사용하여 극적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 이러한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이다.                     벼룩           이 벼룩을 보라. 그러면 알게 될 테니.         네가 날 거절하는 것이 참으로 사소한 일이란 것을.          그놈이 먼저 날 빨고 이제 널 빨았으니         이 벼룩 속엔 우리 둘의 피가 섞여 있다.         넌 알고 있지, 이것이 아니란 걸,         죄악도 수치도 처녀성을 잃은 것도.             헌데 그놈은 구혼도 하기 전에 즐기고             두 사람 피 빨아 한 피로 만들고 배불렸으니             아! 우리 같음 이런 짓은 못 할텐데.           아 잠깐! 한 마리 벼룩 속에 생명이 셋.         우린 그놈 속에서 결혼보다 더 한 짓을 했다오.         이 벼룩은 너이고 또한 나이며,         우리의 혼인 침상이며 결혼식 올린 성전이니         너와 네 부모가 아무리 반대한들 우린 이미         이 살아있는 옥벽(玉壁) 속에서 만나 결합되었다.             네 일상 버릇대로라면 날 죽이고도 싶겠지만,             이 놈만은 살려주어야 한다,             그건 자살이며 신성모독이며, 세 생명 죽이는 범죄이니.                    잔인하게 별안간, 너의 손톱         무죄한 피로 붉게 물들였군.         너에게서 피 한 모금 빤 것 외엔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헌데 넌 자신있게 말하길         너도나도 벼룩쯤은 물려도 괜찮다고 하니         옳도다! 공연히 두려워했구나.         벼룩의 죽음이 네 생명에 지장 없듯         내게 몸 허락해도 그대의 순결 지장 없겠지.                    THE FLEA                  Mark but this flea, and mark in this,         How little that which thou deniest me is ;         It suck'd me first, and now sucks thee,         And in this flea our two bloods mingled be.         Thou know'st that this cannot be said         A sin, nor shame, nor loss of maidenhead ;             Yet this enjoys before it woo,             And pamper'd swells with one blood made of two ;             And this, alas ! is more than we would do.           O stay, three lives in one flea spare,         Where we almost, yea, more than married are.         This flea is you and I, and this         Our marriage bed, and marriage temple is.         Though parents grudge, and you, we're met,         And cloister'd in these living walls of jet.             Though use make you apt to kill me,             Let not to that self-murder added be,             And sacrilege, three sins in killing three.           Cruel and sudden, hast thou since         Purpled thy nail in blood of innocence?         Wherein could this flea guilty be,         Except in that drop which it suck'd from thee?         Yet thou triumph'st, and say'st that thou         Find'st not thyself nor me the weaker now.         'Tis true ; then learn how false fears be ;         Just so much honour, when thou yield'st to me,         Will waste, as this flea's death took life from thee.           스펜서(Spenser)는 존?던의 창작생활을 3기로 나누었는데 그 제1기(1590-1601)에 쓴 연애시들은 그의 다양한 연애관이 무의식으로 나타나 있음을 본다. 연인에 대한 태도에 있어 때로는 냉소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또 정열적인 호소의 장면이 있으며 더 나아가 연인의 무정함을 슬퍼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는 아이러니 속에 정열과 명랑성을 결합하면서 순진한 연인의 모습을 그려 보이기도 한다. 이를 좀 더 살펴보면 이러한 차이성을 지닌 것들 속에서 하나의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공통적 사상을 재구성해 보면 여기서 ‘사랑의 형이상학’이란 면에 접하게 된다.   그의 시 에서는 외부의 세계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자기 충족적인 ‘하나의 작은 신세계’ 즉 ‘소우주(小宇宙)’ 속에서 누리는 행복을 노래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연인들만의 독립된 자기 충족의 세계에의 ‘안주’의식 속에는 일종의 공포가 서려 있다.                                 해가 뜬다               부산스런 늙은 바보, 주책 맞은 태양이여,             넌 왜 이다지도 일찍         창문과 커튼을 뚫고 우리를 찾아드는가?         연인들의 계절이 너의 운행에 따라야 하는가?             이 잘난 체 하는 꼴불견아, 넌 가서             지각하는 학생 또는 사환이나 책하거라.           그리곤 왕실 사냥꾼한테나 가서 상감행차나 알려주고,           시골 개미들한테나 가서 겨우살이 준비나 하도록 이르거라.         사랑엔 도시의 계절도, 날씨도,         시간의 넝마 같은 시각도, 날이나 달도 없으니.                넌 네 빛이 그다지도 신성하고,              그렇게 강렬하다 여기는가?          네 빛쯤은 눈짓 한 번이면 어둡게도          흐리게도 할 수 있지만, 그 간만이라도 그녀 모습 못 볼까봐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 만일 그녀의 눈이 네 눈 어둡게 않는다면,              세계를 두루 살피고 와서 내일 늦게 나에게 말해다오.            향료 금은의 인도나라가 아직 거기 있는지,            또는 여기에 나와 함께 누워 있는지.          어제 네가 만났던 왕들에게 물어보렴.          그들은 다 이 침상에서 잤다 하리라.                 그녀는 이 세상 전부, 난 거기의 왕자.               그 외 딴 것은 거기엔 없느니.           세상 왕들이란 우리의 연기를 흉내낼 뿐, 이에 비하면,           모든 영예 모조품이며 모든 재물 가짜일 뿐이라.                세상은 이같이 축소되었으니, 태양이여, 네 기쁨                우리 것에 비하면 절반도 못되리.                                    너도 늙어 편안하고 싶고, 네 임무는              세상을 따뜻하게 하면 되는 것.            여기 우리 방을 비춰 다오, 그럼 온 세상 비친 것이라.            이 침상은 너의 중심, 이 벽은 너의 궤도라.                    THE SUN RISING                  Busy old fool, unruly Sun,                Why dost thou thus,           Through windows, and through curtains, call on us ?           Must to thy motions lovers' seasons run?                Saucy pedantic wretch, go chide                Late school-boys and sour prentices,              Go tell court-huntsmen that the king will ride,              Call country ants to harvest offices ;            Love, all alike, no season knows nor clime,            Nor hours, days, months, which are the rags of time.                   Thy beams so reverend, and strong                 Why shouldst thou think ?             I could eclipse and cloud them with a wink,             But that I would not lose her sight so long.                  If her eyes have not blinded thine,                  Look, and to-morrow late tell me,               Whether both th' Indias of spice and mine               Be where thou left'st them, or lie here with me.             Ask for those kings whom thou saw'st yesterday,             And thou shalt hear, "All here in one bed lay."                     She's all states, and all princes I;                   Nothing else is;              Princes do but play us; compared to this,              All honour's mimic, all wealth alchemy.                   Thou, Sun, art half as happy as we,                   In that the world's contracted thus ;                 Thine age asks ease, and since thy duties be                 To warm the world, that's done in warming us.               Shine here to us, and thou art everywhere ;               This bed thy center is, these walls thy sphere.     그의 시 과 에서 우리는 그가 ‘무엇으로부터 안전을 구하고 있는 것인가?’를 엿볼 수 있다. 연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변화의 쇠퇴’이다. 즉 여성의 절조에 대한 편집광적(偏執狂的)인 집착이 하나의 두려움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연인들은 둘이 아닌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의 시 에서는 이러한 결합의 신비를 노래하고 있다.                          새 아침           우리가 사랑하게 됐을 때까지 그대와 난         무얼 하고 있었나? 젖도 떼지 않은 채         어린애처럼 촌스런 쾌락만 빨고 있었나?         혹은 일곱 신도의 동굴 속에서 코만 골고 있었나?          그렇다. 이 기쁨 외 모든 기쁨 한낱 환상이었고,         비록 내가 어느 미인을 보고, 탐이 나 정복했다 해도,         그건 단지 그대의 환영일 뿐이었네.                  허나 지금은 우리 영혼 깨어나는 새 아침.         이젠 서로 꺼려하며 경계하지 말기를.         진정한 사랑은 모든 애욕 일체 억누르고,         작은 하나의 방을 온 세계로 만드는 것이니.         해외 탐험가들에겐 새 세계를 찾아가게 하고,         다른 이에겐 지도를 주어 이, 저 세계를 찾아가게 하되.         그대와 난 하나의 세계, 둘이 하나되는 한 세계만 가지세.           그대 눈엔 내 얼굴이, 내 눈엔 그대 얼굴이 나타나고,         참되고 순결한 마음이 그 얼굴에 깃드니,         혹독한 북방도, 해 지는 서쪽도 없는         이보다 더 좋은 반구(半球)가 또 어디 있겠나?         사멸하는 건 무어나 혼합의 조화를 못 이루나니,         우리 사랑 하나이고, 또 그대와 나 똑같이 사랑하면,         어느 것도 느슨해지거나 사라져 버리진 않으리.                    THE GOOD-MORROW            I wonder by my troth, what thou and I          Did, till we loved ? were we not wean'd till then ?          But suck'd on country pleasures, childishly ?          Or snorted we in the Seven Sleepers' den ?          'Twas so ; but this, all pleasures fancies be ;          If ever any beauty I did see,          Which I desired, and got, 'twas but a dream of thee.            And now good-morrow to our waking souls,          Which watch not one another out of fear ;          For love all love of other sights controls,          And makes one little room an everywhere.          Let sea-discoverers to new worlds have gone ;          Let maps to other, worlds on worlds have shown ;          Let us possess one world ; each hath one, and is one.            My face in thine eye, thine in mine appears,          And true plain hearts do in the faces rest ;          Where can we find two better hemispheres          Without sharp north, without declining west ?          Whatever dies, was not mix'd equally ;          If our two loves be one, or thou and I          Love so alike that none can slacken, none can die.                                           황홀            침상 위 베개처럼,             아기 가진 배 부어 올라,          오랑캐꽃 드리운 머리 누인 곳에,             우리 둘 서로 좋아 앉아 있었네.                    우리 손 서로 굳게 맞잡고              거기서 솟은 향유 우리 손 맺어주고          우리 시선 얽혀 눈과 눈, 두 겹 실 한 가닥으로              한데 꿰매 붙였었네.                     이같이 손을 서로 잡는 것만이              우릴 한 몸 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우리 눈 속의 영상이              우리가 낳는 자식이었네.                   팽팽히 맞선 두 진영 사이에, 운명의 여신이              희미하게 매달아 놓은 것인지,          (그 품위를 높이려 육신 밖으로 빠져나간)              우리 두 영혼 그녀와 나 사이 매달려 있었네.                   이같이 우리 영혼 거기서 타협하는 동안,              우리 육신은 무덤 앞 조상(彫像)마냥,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아무 말도 안 하고 누워 있었네.                    만약 사랑으로 세련되어              영혼의 언어 이해하고          극진한 사랑으로 온통 정신이 되어버린 누군가              적당한 거리에 서 있기만 하면                    그는 (두 영혼이 뜻과 말이 같아 어느 쪽이               말했는지 모르지만)           아마 거기서 새로 다듬어져               그가 왔을 때보다 더 순결하게 떠났으리.                      이 황홀함은 우리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말해주며 (우린 말했지),           이로써 우린 그게 성행위가 아니란 걸 알고               또한 참 사랑의 동기가 무언지 몰랐던 것도 알았네.                      모든 영혼은 어느 거나                자신도 모르는 혼합물을 갖고 있어,           사랑은 이 혼합된 영들을 또 다시 혼합하여                둘을 하나로 만들어, 이것도, 저것도 되게 하네.                      오랑캐꽃도 한 그루 옮겨 심으면                그  힘 색깔 크기가           (전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두 배 세 배 강해지고 증가되듯이.                      사랑이 두 영혼 속에                활력소를 불어넣을 때,           거기 흘러나오는 보다 강한 영혼은                고독한 외로움 달래주네.                       그리하여 우린 새로운 영혼 되어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지 알게되네.                우릴 구성한 것은 곧 영혼이며                어떤 변화도 침해할 수 없네.                                           -이하 생략-                                                                            The ECSTASY           Where, like a pillow on a bed,            A pregnant bank swell'd up, to rest         The violet's reclining head,            Sat we two, one another's best.           Our hands were firmly cemented             By a fast balm, which thence did spring ;         Our eye-beams twisted, and did thread             Our eyes upon one double string.           So to engraft our hands, as yet             Was all the means to make us one ;         And pictures in our eyes to get             Was all our propagation.            As, 'twixt two equal armies, Fate             Suspends uncertain victory,          Our souls, which to advance their state,              Were gone out, hung 'twixt her and me.            And whilst our souls negotiate there,               We like sepulchral statues lay ;          All day, the same our postures were,               And we said nothing, all the day.             If any, so by love refined,               That he soul's language understood,           And by good love were grown all mind,                Within convenient distance stood,             He, though he knew not which soul spake,                Because both meant, both spake the same?           Might thence a new concoction take,                And part far purer than he came.             This ecstasy doth unperplex                (We said) and tell us what we love ;           We see by this, it was not sex ;                We see, we saw not, what did move :             But as all several souls contain                Mixture of things they know not what,           Love these mix'd souls doth mix again,                And makes both one, each this, and that.             A single violet transplant,                The strength, the colour, and the size?           All which before was poor and scant?                Redoubles still, and multiplies.              When love with one another so                Interanimates two souls,            That abler soul, which thence doth flow,                Defects of loneliness controls.              We then, who are this new soul, know,                 Of what we are composed, and made,             For th' atomies of which we grow                 Are souls, whom no change can invade.     존?던은 ‘사랑’은 ‘하나’임을 긍정하면서도 그 ‘다양성’도 긍정한다. 즉 통일성과 다양성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 된다. 그의 시에서 연인끼리의 ‘황홀’은 ‘성적(性的)’인데 있는 것이라기보다 일종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성 이상(以上)’에로의 초월을 남녀 중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연인들의 법열(法悅)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리쉬만은 존?던이 추구하는 이상적 사랑은 성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정신적 사랑이었고 다분히 종교적인 성격이 농후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존?던이 육체적인 것을 부인하진 않았다. 그는 정신적인 사랑을 이상으로 하면서도 육체를 긍정함으로써 그 육체가 이데아적(ideal)인 것을 제시해주는 수단이 된다고 믿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존?던은 플라톤적 리얼리스트(Platonic Realist)라고 할 수 있다. (* 형이상학적 시인 존?던의 시 P. 162 -조신권, 정음사)   실제로 존?던은 그가 1596년, 1597년 양 차에 걸친 원정 뒤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여행했다고 전하는데 특히 스페인 원정에서 많은 서적을 구해와 런던에서 독서에 전념하면서 사교적인 활동으로 술, 여자, 이야기 등으로 세속적 일락(逸樂)에 빠져 변화 많은 일과를 보냈다. 그는 토머스 이저튼 경(Sir. Thomas Egerton)의 비서장이 되면서 이저튼 부인의 질녀 앤 모어(Ann More)와의 비밀 결혼이 탄로되어 감금되고 비서직에서 해임됨으로써 출세의 꿈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캔터베리 대승정(大僧正)의 선언으로 그들의 결혼은 정식으로 인정되었으나 그 후 15여 년 동안은 불우와 실의를 겪는 가운데 늘 죽음만을 생각하는 암담한 날을 보내게 되었다.   존던은 여인을 지나칠 정도로 신격화해서 과장적인 수사(修辭)를 사용한 시를 보낸 바가 있는데 즉 베드포드(Bedford), 헌팅톤(Huntington) 두 백작 부인에게 보낸 시가 그것이다. 그러나 존?던의 연애시의 대상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이 될 수 있을 만큼 그의 사랑의 대상은 불분명한 것이 많다. 그러므로 그의 대부분의 연애시는 하나의 상상(想像)의 소산으로 보아야 옳을 듯 싶다. 그가 실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미워하고 저주하고 냉소하고 음행한 애인, 사랑을 얻지 못 할 때의 비참한 절망을 아는 동시에 사랑을 얻은 때의 황홀한 도취도 알고, 순전한 육체의 사랑을 아는 동시에 영성(靈性)의 사랑도 잊지 않은 강렬하고 진폭(振幅)있는 사랑을 한 애인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인 것 같다.           (* 영미 작가론 P. 44, 45-이양하-정음사)   존던은 그의 시 에서는 연인들의 상태가 불사조(不死鳥)의 전설에 비유되어 그들은 죽어서 영생하는 성자들의 지위에까지 오른다. 이러한 컨시트는 사랑으로써 살 수는 없어도 죽을 수는 있다는 아이러니를 통하여, 연인들을 부활의 기대 속에 영원히 산다는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처음에 시구(verse)의 컨시트에서 애정시(愛情詩)의 한 형식인 소네트로, 종국에는 성가(聖歌, humn)로 발전시킨다. 사랑으로 성도의 대열에 가담한 연인들이 객관적인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연인의 참된 본보기를 통하여 세상을 지배하고 크게 영향을 끼친다. 이렇듯 존?던의 시의 논리는 과학적인 의미에서는 모순된 불합리한 논리이나 시적인 의미에서는 매우 타당성을 가진다. 이 시의 컨텍스트는 연인의 평범한 사랑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성적 의미와 더 나아가 정신적이며 신앙적인 이미지가 서로 연관되어 결국 주, 객관의 구분이 난해하다. 존?던의 시는 평면적인 사랑의 논리가 아닌 총체적인 통일성을 꿰뚫어 가지는 세계 즉 형이상적인 사랑의 시의 전형이라 하겠다.   [출처] 사랑의 형이상적(形而上的) 시인 존 던(John Donne) _ 안석근 |작성자 나무    
958    形而上學(사회과학부문) / 形而下學(자연과학부문) 댓글:  조회:6081  추천:0  2015-04-14
형이상학     형이상학(形而上學 · Metaphysics)으로 번역되는 영어 낱말 "메타피직스(Metaphysics)"는 그리스어의 메타(meta: 뒤)와 피지카(physika: 자연학)의 결합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하였다.[1]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1]그리고 라틴어 의 역어로 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다른 정의로는, 형이상학은 사회의 근본 체계, 사회 현상, 모든 지식들 또는 인류 대다수에게 그보다 나은 지식일지라도, 그것들의 근원은 변증된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개별적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이념이기도 하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부문을 "제1철학"이라 하고 동식물 등을 연구하는 부문을 "자연학"이라 했다.[1] 그가 죽은 후 유고(遺稿)를 정리·편집함에 있어 제1철학에 관한 것이 "자연학" 뒤에 놓여 그때부터 메타피지카(metaphysika: 형이상학)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1] 형이상학에 대한 동서양의 견해는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차이로는 서양의 경우 인간은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없다는 견해가 많은 반면, 동양의 경우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2]   목차    1 서양의 형이상학 2 동양의 형이상학     서양의 형이상학 서양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형이상학이라는 말은 여러 뜻으로 쓰이고 있다. 볼프는 철학을 표상력(表象力)에 의한 형이상학(이론)과 의욕력에 의한 실천철학(실천)으로 나누었다.[1] 칸트가 형이상학이라 칭하는 것은 주로 볼프를 따르고 있으나 기존의 형이상학적 논의는 독단적이라 해서 배척했고,[1]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논하는 기존의 형이상학과는 다르며 인식론에 기반을 둔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정립하려고 하였다.[3] 헤겔에 와서는 형이상학이 회복되어 사유(思惟)의 형식이 동시에 실재의 형식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적 논리가 주장되었다.[1] 하이데거, 야스퍼스도 형이상학을 주장했으나 객체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자각존재의 의미이다.[1] 변증법에서는 형이상학이 자기에게 대립하는 것을 고정시켜 생각한다고 주장한다.[1] 동양의 형이상학 서양에는 인간은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없다는 선입견이 있다.[2] 때문에 형이상학적 진리들은 사색 · 추론, 또는 근거 없는 신념 또는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2] 또한 서양에서는 모든 사상 체계는 서로 간에 대립 또는 모순되어, 하나가 진실이라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2] 반면, 동양에서는 인간은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2] 또한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알기 위해 사색 · 추론 · 신념 또는 신앙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2] 그리고 하나의 형이상학적 진리에 대해 여러 가지의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이들 여러 가지 해석은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고 보며 각각의 해석은 다양한 종교적 · 사상적 · 철학적 배경 또는 경향성을 가진 여러 다른 사람들 중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이끔에 있어 특히 적합하다고 본다. ----------------------------------------------------------------------------------------------------------------------- 답변 고마워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 형이상학에 관련되거나 바탕을 둔. 또는 그런 것.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 형이하학에 관련되거나 바탕을 둔. 또는 그런 것.   형이상학(形而上學) :  1.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 명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의 제목에서 유래한다.  2. 헤겔ㆍ마르크스 철학에서, 비변증법적 사고를 이르는 말. 3. 초경험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형이하 또는 경험적 대상의 학문인 자연 과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형이하학 (形而下學)  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주로 자연 과학을 이른다.   형이상학(形而上學)은 사물의 본질이나 존재의 근본 원리 등을 사유(思惟)나 직관에 의해 연구하는 학문인데 반해서, 형이하학(形而下學)은 형체가 있는 사물에 관한 학문으로 주로 자연과학을 말합니다.  
957    영국 형이상학파 시인 - 존단 댓글:  조회:5030  추천:0  2015-04-14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존단 John Donne (1572-1631)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하나의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구라파는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며,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존단(John Donne. 1572~1631) 런던에서 태어났다. 17세기 영국 형이상학파의 대표 시인이다. 43세 때 사제가 되어 성직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시는 일반적인 의미의 철학적인 사고를 강요하지 않고, 사랑이나 죽음의 문제들을 현실적이고 형식적인 면에서 경쾌하게 노래하고 있다.  존단 John Donne (1572-1631)  영국의 시인, 산문가, 성직자.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공부했으나 학위는 얻지 않았다. 런던 링컨 법학원에서 법학 공부를 하기도 했다. 청년기에 집안의 종교였던 가톨릭을 포기하고 영국교회로 개종한다. 청년기에는 연애시를 많이 써 인기를 얻었다. 국쇄상서의 비서로 일하다 그 조카딸과 비밀 결혼을 하였다가 비서직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한동안 변호사로 일하며 살다가 43세에 영국 교회의 사제가 되었다. 그는 뛰어난 설교자였으며 그의 설교는 당대의 가장 훌륭한 설교로 평가받았다. 그는 청년기부터 계속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대표작에는 (1607), (1610), 그리고 후기의 (1618), (1623-1624) 등이 있다. 1621년에 제임스 1세로부터 성 바울 대성당의 주임사제로 임명받아 죽을 때까지 그 직에 있었다.  18세기 들어서 비평가들로부터 난해하고 기이한 시를 쓴다는 악평을 받았지만 20세기 초에 와서 뛰어난 시인으로 재평가받았다. 특히 그가 많이 사용한 들이 의미있는 시적 기교임을 인정받았다. 그 기법은 동시대의 궁정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를 비롯하여 그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시인들을 영문학사에서는 이라고 부른다. 이라는 말은 18세기 비평가들이 단의 난해하고 기이한 언어사용법을 비꼬아 부른 말이었다.
956    無韻詩 댓글:  조회:4393  추천:0  2015-04-14
무운시   無韻詩 blank verse 각운(脚韻)이 없는 약강(弱强) 5보격(步格) 시행. 영어로 된 극시(劇詩)와 산문시의 대표적 운문 형식이며, 이탈리아어와 독일어 극시의 표준형식이기도 하다. 무운시의 풍부함과 자유자재로움을 제대로 살리려면, 각 행의 강세와 휴지(caesura)의 위치를 변화있게 구사하고 언어의 변화하는 음감(音感)과 감정적 뉘앙스를 잘 반영하며, 각 행들을 내용에 따라 단락으로 묶는 시인의 기교가 필요하다. 그리스·로마의 각운 없는 영웅시를 변형·발전시킨 무운시는 다른 고전 운율과 함께 16세기경 이탈리아에 도입되었다.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프란체스코 마리아 몰차는 1514년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이스Aeneid〉를 번역하면서 일련의 무운시를 썼다. 또 16세기에 잔 조르조 트리시노가 쓴 비극 〈소포니스바 Sofonisba〉(1514~15)와 조반니 루첼라이가 쓴 교훈시 〈레 아피 Le api〉(1539)에서도 무운시가 쓰였다. 루첼라이는 '무운시'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 'versi sciolti'를 처음으로 쓴 사람이기도 하다. 무운시는 곧 이탈리아 르네상스 극의 기본 운율이 되어, 아리오스토의 희극들과 타소의 〈라민타 L'Aminta〉, 구아리니의 〈일 파스토르 피도 Il pastor fido〉 같은 주요작품들에서 이용되었다 (→ 색인 : 이탈리아 문학). 영국에서는 서리 백작 헨리 하워드가 16세기초에 소네트를 비롯한 이탈리아 인본주의 시 형식들과 더불어 무운시를 들여왔다. 토머스 새크빌과 토머스 노튼은 영국 최초의 비극 〈고르보덕 Gorboduc〉(1561 초연)에 무운시를 이용했고, 크리스토퍼 말로는 〈탬벌레인 Tamburlaine〉·〈파우스트 박사 Doctor Faustus〉·〈에드워드 2세 Edward II〉등에서 무운시가 지닌 음악적 특성과 감정적 호소력을 발휘했다. 셰익스피어는 무운시를 탁월하게 구사하여 영국의 위대한 극시를 탄생시켰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희극들은 무운시를 운을 밟은 10음절 2행연구 및 산문과 결합시키고 있으며 음절의 길이보다 강세에 역점을 둔 무운시가 쓰이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햄릿 Hamlet〉·〈리어 왕 King Lear〉·〈오셀로 Othello〉·〈맥베스 Macbeth〉·〈겨울이야기 The Winter's Tale〉 같은 후기 희곡에서 구사한 시적 표현은 매우 유연하며 운율있는 대사를 이용해서 미묘한 인간의 기쁨, 슬픔과 당혹감 등 미묘한 감정들을 잘 전달하고 있다 (→ 색인 : 영국 문학). 무운시는 어느 정도 퇴조하는 듯했으나, 밀턴의 〈실락원 Paradise Lost〉(1667)에서 다시 한번 그 매력을 발산했다. 밀턴의 무운시는 어순도치, 라틴어식 단어, 다양한 강세, 행 길이, 휴지, 서술적이며 극적인 효과를 얻기 위한 단락나누기 등 다양한 기교를 구사하여 지적으로 복잡하면서도 유연성이 있다. 18세기에는 제임스 톰슨이 묘사적인 장시(長詩) 〈4계절 The Seasons〉에서 무운시를 썼으며, 에드워드 영은 〈야상(夜想) Night Thoughts〉에서 힘과 정열에 넘치는 무운시를 썼다. 또한 워즈워스는 무운시로 시 정신에 대한 일종의 자서전 〈서시(序詩) The Prelude〉(완성 1805, 출판 1850)를 썼다. 셸리는 극 〈센시 The Cenci〉(1819)에서, 키츠는 〈하이피리언 Hyperion〉(1820)에서 무운시를 구사했다. 무운시는 셰익스피어의 감정이 고양된 비극에서부터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성의 가면 A Masque of Reason〉(1945)에 나오는 가라앉은 회화체 어조에 걸쳐 매우 융통성있게 쓰였다. 오늘날 무운시는 현대인을 과거와 이어주는 운율로서 현대인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쓰인다. 독일극에서 무운시는 고트홀트 레싱의 〈현자 나탄 Nathan der Weise〉(1779)에서 탁월하게 구사되었으며, 괴테·실러·게르하르트·하우프트만의 작품에서도 쓰였다. 그밖에 스위스·러시아·폴란드의 극시에서도 널리 쓰였다 (→ 색인 : 독일문학).  
955    詩의 飜譯 댓글:  조회:4485  추천:0  2015-04-14
“셰익스피어의 시에는 압축과 상징, 비유가 많아 단어 하나에도 많은 의미가 농축돼 있어요. 그걸 산문으로 번역하면 공간 제약이 없으니 특정한 뜻을 전달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건 셰익스피어가 정해 놓은 길이 아닙니다. 뜻도 늘어지고 긴장감도 사라지죠. 리듬이 안 살아나면 말에 내포된 의미와 느낌도 함께 죽습니다. 반면 ‘당신은 장미다’라고 압축하면 ‘당신’에 없는 뜻이 장미에 옮겨 붙고 장미에 인간성이 더해져 충돌하면서 많은 의미가 생겨나게 돼요. 원초적인 의미의 충격과 상상력이 피어나고 거기에 음악이 붙으면 정서, 감정이 증폭됩니다. 그때 관객들이 빨려드는 거죠.” 그도 그럴 것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38편 가운데 운문 대사 비율이 80% 이상인 작품은 22편에 이른다. ‘맥베스’는 95%가 운문 대사일 정도다. 결국 셰익스피어가 쓴 원전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운문 번역이라는 것. ‘약강 오보격 무운시’(약강 음절이 시 한 줄에 다섯 번 나타나는 각운이 없는 시)로 분류되는 대문호의 시를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 최 교수가 활용한 것은 우리 시의 운율인 3·4조, 4·4조였다. 그 결과 원문 한 줄의 자음과 모음 숫자, 우리말 12~18자에 들어가는 자음과 모음 숫자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극이라는 게 삶을 무대에 재구성하는 거니까 우리 인생과 닮았잖아요. 그러니 사람이 한 호흡으로 가장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음의 양도 영어와 한국어가 비슷하다는 말이죠.” 셰익스피어가 의미 압축을 위해 앵글로색슨어, 켈트어에 라틴어를 섞어 썼듯 그 역시 우리말에 한자어를 섞어 옮겼다. 독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산문의 배열에 익숙했던 독자들은 ‘이게 뭐냐’는 반응이었고, 또 하나는 ‘나를 왜 이렇게 고생시키냐’는 것이었다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그렇잖아요? 한 번 읽으면 아름다워 보이지만, 읽고 또 읽으면 뒤에 숨겨진 통한의 정서가 드러나죠. 운문은 압축이기 때문에 한 번 읽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읽고 또 읽은 독자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리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죠.” 오는 8월 정년을 앞둔 최 교수의 일생이 셰익스피어에 사로잡혔듯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은 세계 문화계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변주하는 데 여전히 열광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어떤 작가도 셰익스피어만큼 인간의 희로애락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지는 못했습니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관점을 고집하지 않고 보편적 인간상을 보여 줬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지금도 ‘현대적’이며 ‘현재의 우리’를 비출 수 있는 거죠.”
954    <장미꽃> 시모음 댓글:  조회:4826  추천:0  2015-04-14
  + 장미꽃  화병에 꽂아 두었던  빨간 장미꽃 한 송이  자줏빛으로 쪼그라진 채  말라죽었다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무심코 꽃송이에  코를 대어 봤더니 아직도  은은하게 향내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도로 꽃병에 꽂았다  비록 말라죽기는 했지만  향기만은 아직 살아 있기에  죽으면서도  향기만은 빼앗길 수 없다는 듯  품속에 꼬옥 품고 있는 장미꽃!  꼭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오삼·아동문학가, 1943-) + 장미       작은 뜨락의 장미꽃이 유월 아침 이슬  몽글몽글한  젖가슴을 품어 안고 있습니다.  (노현숙·시인, 경북 의성 출생) + 장미 빨갛게 소리치는 저 싸 ·늘 ·함.  (홍해리·시인, 1942-) + 장미 생각날 때마다 잊어버리려고 얼마나 제 가슴을 찔렸으면 가시 끝에 핏빛 울음일까? (이훈식·목사 시인) + 장미 깊숙이 묻혀 버린 그 진한 비밀들이  아픈 피 쏟으면서 빠알간 살 드러낸다  한 계절 여백을 채워도 가시 찔린 넋두리뿐  (송명·승려 시인) + 장미  누가 그 입술에 불질렀나  저토록 빨갛게 타도록  누가 몸에 가시울타리 쳐 둘렀나  그 입술에 입맞춤 못하도록  나도 그 입술이고 싶어라  불타는 사랑의 입술이고 싶어라  이별이 내게 입맞춤 못하도록  가시 울타리 치고 싶어라  (손석철·시인, 1953-) + 장미가 되리 무슨 칼로  가슴을 여며내면  저리 핏빛 꽃잎이 될까  무슨  불로 구워내면  저리 핏빛으로 燒成될까  무슨  사랑으로 문지르면  흰 가슴이  저리  붉은 피로 묻어날까  장미가 피는 날엔  가슴 아파라  장미가 피는 날엔  가슴 아파라  (류정숙·시인) + 장미         술잔을 비우고  장미로 안주하다  꽃의 독소  퍼진들 어떠랴  그것이 해롭기로니  사랑의 독보다 더할까보냐  (정숙자·시인) + 성난 장미  성난 것인지 발정한 것인지  예사롭지 않은 노란 장미  내게 덤비는 것 같은데  도망칠 곳이 없다  힘없이 당하는 꼴이 됐다  즐거운 비명이라도 칠까  도무지 식물 같지 않은 열기  내가 꽃이었으면  당하고 말았을 뜨거운 열기  (이생진·시인, 1929-) + 모시는 말씀 - 장미의 이름으로  가시를 갈아 꾹꾹 눌러 쓴 초청장을 보냅니다  초록 바퀴를 가진 바람 우체부 편에  짤막한 파티  절정에 이른 몸짓으로 밤잠 설치며 겹겹이 타오를 줄 아는  당신만을 모십니다  들숨과 날숨 사이  빗물에 적신 햇볕을 끼워 짠 아랑주(紬)에  살점을 문질러 진하게 물들인  새빨간 야회복을 입고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이 꼭 오신다면  몰래 감추어둔 꽃술 한잔도 마련하겠습니다  5월이라고 쓴 팻말을 따라  꿈의 계단으로 올라오십시오  (권천학·시인, 일본 출생) + 장미원에서 저 붉디붉은  장미 한 송이  꺾어드릴까요  그대로 하여  붉어진 내 가슴  꺾어드릴까요  그대 아니면 쓸모없는  내 나머지 인생을  꺾어드릴까요  (강인호·시인)  + 한 송이 장미꽃     장미꽃 한 송이  뜰 위에 피었네  그 집  그 뜰은  초라한데  장미꽃 곱게도 피어 있네  아침에는 함초롬이 이슬을 먹고  뜨거운 양지쪽 한낮에도  장미꽃 누군가 기다리며  말없이 그 뜰을 지켜 섰네  장미꽃 한 송이 피어 있네  가난한 그 뜰에 피어 있네  (임종호·시인, 1935-)  + 아내는 장미꽃  아내는 장미화다  가끔 화(花)를 낸다  곱지만  잘못 건드려 가시에 찔린다  아내여,  자꾸 피지 마라  릴케도 장미가시에 찔려  눈꺼풀 완전히 닫았대  (양전형·시인, 제주도 출생) + 6월의 장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부활의 장미  피었다 지는 것이야 쉬운 일이지만  그 향기까지야  쉽게 잊혀지겠습니까? 사랑하는 것쯤이야 쉽게 한다고 하지만 그리워하는 것까지야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먼 훗날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사무친 가시가 되고 당신은 숨가쁜 꽃봉오리가 되는 하나의 뜨거운 몸이 되어요 (정문규·시인, 전남 화순 출생) + 평신도의 장미  흰 장미와  붉은 장미가  지하에서  나의 시에 맺히는  아침의 이슬  주여  주여  주여  어리석은 것으로  충족한 오늘 속에서  밤의 명상과  아침의 찬송가  환한 긍정의 눈을 뜨고  마음 가난하게 살기를 다짐하는  평신도의  짧고도 힘찬 기도  진실로  당신이 누구이심을  짐작하는 것으로만  빛나는 풀잎새  흰 감자와  자줏빛 감자가 알을 배는  땅 밑으로 스미는  사랑의 입김.  주여  주여  주여  하루에 세 번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것으로  지팡이를 삼고  오늘을 사는  어리석고 충만한 자의  이마에  저녁햇살.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되는  풍요 속에서  순간마다 피어나는  생기 찬 당신의 모습.  (박목월·시인, 1916-1978) + 장미의 내부 어디에 이런 내부를 감싸는 외부가 있을까. 어떤 상처에 이 보드라운 아마포(亞麻布)를 올려놓는 것일까. 이 근심 모르는 활짝 핀 장미꽃의 내부 호수에는 어느 곳의 하늘이 비쳐 있을까.  보라, 장미는 이제라도 누군가의 떨리는 손이 자기를 무너뜨리리라는 것을 모르는 양 꽃이파리와 꽃이파리를 서로 맞대고 있다. 장미는 이제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다. 많은 꽃들은 너무나 충일하여 내부에서 넘쳐나와 끝없는 여름의 나날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점점 풍요해지는 그 나날들이 문을 닫고, 마침내 여름 전체가 하나의 방, 꿈속의 방이 될 때까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오스트리아 시인, 1875-1926) + 장미의 열반 한철 통째로  불덩이로 생명 활활 태우며 한밤중에도 치솟는 송이송이 불면의 뜨거운 불꽃이더니 이제 지는 장미는 살그머니  고개를 땅으로 향하고 있다. 불타는 사랑은 미치도록 아름다워도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나 아름다움은 없음을 알리는 자신의 소임 하나  말없이 다하였으니 그 찬란한 불꽃의 목숨  미련 없이 거두어들이며 이제 고요히 열반에 들려는 듯.  (정연복·시인, 1957-)
953    멕시코 시인 - 옥타비오 파스 댓글:  조회:4857  추천:1  2015-04-13
어떤 시인(外1수)     옥타비오 파스[멕시코]                          /현중문 譯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Lozano-1914년 3월 13일- 1998년 4월 19일)          ―음악과 빵, 우유와 술, 사랑과 꿈, 이 모두가 공짜이다. 서로 사랑하는 상대방끼리 죽도록 아린 포옹으로 생긴 상처는 샘이다. 그들은 날카롭게 칼날을 세워 마지막 만남을 준비한다. 목숨을 건 만남이다. 불꽃을 튀기고 몸씨름을 하면서 밤을 세운다. 인간이 인간의 먹이감이다. 안다는 것은 꿈꾸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꿈꾸는 것은 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정신이 모든 시에 불을 붙였다. 언어를 포용하고, 이미지를 포용했다. 인간과 사물 사이의 괴리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제 이름 짓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고, 상상하는 것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 그러면, 곡괭이를 집어들라. 이론화하라. 확실하게 하라. 대가를 치르고 월급을 받아라. 한가한 시간에는 배가 터지도록 풀을 뜯어라. 신문 지면은 넓고도 넓으니 말이다. 아니면 저녁마다 다탁 위에서 혀가 부르트도록 신물나게 정치를 논하라. 입을 다물거나 제스처만 보여라-―이나 저나 똑같은 것이지만. 어차피 너는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불명예나 교수대밖에 출구가 없다. 네 꿈은 너무 야무진데, 강고한 철학이 없구나.        ― 『독수리 혹은 태양?』     여기(Aqui)  옥타비오 파스[멕시코]/현중문 譯            이 거리를 지나는 내 발걸음 소리는   되울린다           저 거리에서   그곳에서             이 거리를 지나는   내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그곳에서   안개만이 현실이리니                   『불도마뱀 1958-1961』(1962)에서            
952    아르헨티나 시인 - 후안 헬만 댓글:  조회:4336  추천:0  2015-04-13
묘비명          / 후안 헬만(Juan Gelman)     새 한 마리 내 안에 살았다. 꽃 한 송이 내 피를 떠돌았다. 내 마음은 바이올린이었다.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 나를 사랑해주었다. 봄, 맞잡은 두 손, 행복함에 나도 즐거웠다.   내 말은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새 한 마리 눕는다.                                   꽃 한 송이.                                                 바이올린 하나.)     **시집: 《새 한 마리 내 안에 살았지》                           (성초림  옮김)   후안 헬만(Juan Gelman) :   기억과 망각 속에서 나는 쓴다 '나를 주는 것은 아픈 일'   여덟 살 소년은 이웃집에서 사는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소녀를 위해 좋은 시를 적어 보냈다. 그래도 소녀의 사랑을 얻을 수 없자 결국 본인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소녀의 마음은 얻지 못했지만 열한 살 소년의 시는 문학잡지에 실린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지만, 어느 날 자신이 시인이라고 선언하고 그날로 대학을 중퇴한다. 그리고 청년공산당 동료들과 함께 '딱딱한 빵' 동인을 결성, 시 낭송회를 연다. 그러나 부조리한 세상과 타협을 거부한 그는 공산당과도 결별하고 극우 무장단체의 협박 속에 강제로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다. 그에게 붙여진 혐의는 국가반란죄. 그는 13년 동안 숱한 나라들을 전전하며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에 대항한다. 파블로 네르다 문학상, 세르반테스 문학상에 빛나는 후안 헬만, 그가 의지한 것은 언제나 시였다. 이웃집 소녀를 사랑할 때처럼 시는 세상에 대한 그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나보고 고르라고 한다면, 난 우리가 많이 아프다는 걸 알 수 있는 이 건강함을, 이렇게 불행하게 살 수 있는 행운을 택하리라.     후안 헬만( Juan Gelman, 1930~)                                       / 구광렬(시인)     2010년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을 예정이던 지난 10월 7일 해거름, 조선일보 문학 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르헨티나 시인 후안 헬만(Juan Gelman)이 유력한 노벨상후보라는 것. 미리 대비해 글을 준비해줬으면 하는, 이르자면 원고청탁이 그 내용이었다. 놀라왔다. 고은 시인과 시리아의 아도니스, 일본의 하루키 등이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는 상황에서 후안 헬만은 다소 예외였기에. 하지만 많은 부분 놀라움은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왔다. 다름 아닌 그와의 친분 때문.                             소위 비판적 사실주의(realismo crítico) 작가인 헬만의 시는 다분히 공격적이다. 그의 시가 많은 부분 저항을 다루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저항의 시대가 아닌 평화의 시대에도 그의 시는 당시 서정시와는 확연히 달랐다. 1956년 그의 첫 시집 ‘바이올린과 다른 문제점들(Violín y otras cuestiones)’은 당시 중남미의 네루다풍 서정시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는 처음부터 네루다식 전통 서정시와는 거리를 두었다. 1963년, 탱고(Tango)를 거꾸로 한 시집 ‘고탱’(Gotán')'은 말로만 변화를 얘기해선 안 되고 실제로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하던 시대였던, 소위 신인간주의 문학 시대의 작품이다. 중남미에서 헬만의 민중일상서정시는 마치 맞춤복처럼 시대적 각광을 받기에 이른다. 파블로 네루다풍의 시들로는 그 혁명적, 혁신적 변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헬만은 시집 ‘고탱’에서 일상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의 조화와, 일명 탱고적 수사와 리듬이 자아내는 소위 헬만류 상호텍스트성을 선보인다. 감상(感傷)과 요염(妖艶)으로 풀이되는 대중적 철학의 우수(憂愁)가 깔린 탱고의 부드러움이, 딱딱한 현실적 소재와 주제를 보다 더 부드럽게 만들어, 독자의 읽는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네루다의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래(El Canto general)’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메타포나 리드미컬한 음악성은 보이지 않지만, 시집 ‘고탱’에는 독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일상생활 회화체 문장이 갖는 현장감과 생동감, 풍자, 유머 등이 살아 있다.     남자 하나 죽었다 사람들은 그의 피를 숟가락으로 담고 있다 친애하는 후안 결국 넌 죽음에 이르렀구나 부드럽게 젖은 너의 조각들도 이젠 너에게 소용없구나   바늘구멍 사이를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었니 네가 도망치지 못하게 아무도 손가락으로 막질 않았구나   사망전후,  그는 그의 뼈에 기댄 채 슬프게 울고 있었다   이제 너를 내려놓는다, 동생아 너로 인해 땅이 떨고 있다 우린 지켜볼 것이다 불멸의 광기에 밀려서 어디로 네 손들이 다시 튀어 나올 것인지를                                                                             시‘마지막’(Final)전문        ‘후안’은 우리의 ‘철수’처럼 중남미의 평범한 남자이름이다. 그리고 사실(Fact)에 관한 한, 그냥 신문기사를 넘겨보는 정도로만 묘사되어 있다. 독자는 피해자로서, 혹은 가해자 또는 공범으로서 좀 더 정교하고 자상한 해석을 가하면서 생략 된 사실부분을 스스로 완성해나가야만 한다. 즉 바르트가 말하는 독자 또한 단순한 수용자에서 벗어나, 작가의 기호와 자신의 독서행위간의 대화를 통해, 텍스트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도출해 낼 수 있는 ‘텍스트의 즐거움’을 맛보는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첫 연의 첫 번째 행은 마치 아나운서가 뉴스를 진행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세 번째 행에선 살해된 남자를 2인칭으로 부르며 혼잣말을 하고 있다. 다시 3연에 와선 3인칭 단수가 피살자가 된다. 그리고 다시 피살자가 2인칭이 되는 마지막 연은 그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라, 독자들을 향해 던지는 화두이다. ‘우린 지켜볼 것이다./ 불멸의 광기에 밀려서/어디로 너의 손들이……’ 그의 손들, 그것은 살해된 이의 불멸성을 의미하며, 죽은 자를 따르는 모든 산 자들이 그러하리란 것을 의미한다. 그 화두는 두 말할 것 없는 ‘저항’이다. 다음에 소개할 시 ‘내 사랑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선 그 ‘저항’이 은유 없이, 여과 없이 직선적, 평면적으로 노출된다. 장소적 배경은 물론 사랑하기도 쉬웠지만 고문당하기도 쉬었던, 1960년대 중남미대표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헬만은 ‘밑 빠진 의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정신없이, 아픈 몸으로, 거의 살아있는 상태로/ 내가 태어난 도시를 위해 먼저 울음 운 시들을’옥중에서 썼다.       밑 빠진 의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정신없이, 아픈 몸으로, 거의 살아있는 상태로 내가 태어난 도시를 위해 먼저 울음 운 시들을 쓴다 그 많은 시련 속에서도 내 사랑하는 아들들이 여기서 태어났다고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아름답게, 달콤하게 ……써야만 한다   도망치거나, 남거나, 하질 않고 저항하는 법을…… 더 많은 시련, 형벌, 망각이 있을지라도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써야만 한다                          - ‘내 사랑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Mi Buenos Aires querido)’ 전문       199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여행했을 때다. 시내 박물관 옆 조그마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선 난, 깜짝 놀랐다. 탁구 점수표 같은 가격표 때문. 시간별로 끝자리를 올려 아이스크림 가격을 수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옷을 사러갔다가 흥정하는 사이 물건 값이 올라 구입치 못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연간 1,000% 이상의 인플레이션, 10,000페소 자리 지폐를 찍어내기 위해 몇 배의 돈이 들어갔기에, 돌아오는 지폐에다 0을 덧붙여 다시 유통시키던 시대. ‘이빨을 위한 빵도 없는 그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다음 시는 적나라하게 직설한다.     아버지, 하늘에 계신, 이제 그만 내려오슈   불쌍한 할머니가 가르쳐준 주기도문도 잊어버렸소 불쌍한, 지금은 잠든, 씻을 필요도 없게 된, 옷을 얻기 위해 거리를 헤맬 필요도 없게 된, 부드럽게 투덜대며 밤 새워 당신에게 먹을 것을 구하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이제 그만 내려오슈 잠시 내려와 이 모퉁이에서 굶어 죽어가는 날 좀 보슈 무슨 소용으로 태어났는지 직장도 없이, 빈털터리 손을 바라보는 날 좀 보슈   잠시 내려와 보시라니깐요 이 낡은 구두를, 이 텅 빈 창자를, 이빨을 위한 빵도 없는 이도시를,. 몸은 불덩이처럼 열이 오르고 쏟아지는 빗물 아래 파고드는 송곳추위. 한번 내려 오슈, 제발 내 영혼을 만져주고 가슈, 제발   난 훔치지 않았어요 죽이지도 않았어요 마냥 어린애였어요 하지만 날 때려요, 때린다구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계신다면 내려와 보슈, 제발 아님,  공수병에 걸릴래요 전염시킬래요 목에 피가 솟도록 소릴 지를래요                              -시 ‘어느 실업자의 기도(Oración de un desocupado)’ 전문                   아르헨티나는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호르헤 비델라(Jorge Rafael Videla, 1925~)의 공포정치로 그 후 약 3년간 일명 '치옥의 전쟁'(Dirty War) 통에 빠진다. 의회를 해산하고 법관의 80%를 군인으로 교체한 군사평의회(Junta)는 일부 중요한 헌법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곤 무구한 시민들을 연행, 투옥, 고문, 사형시켰다. 명분은 좌익 게릴라 척결이었지만 실은 반대세력을 무자비 탄압하기 위한 조치였던 바, 그 희생자 수는 무려 3만여 명에 이른다. 리오 델라 플라타.(Río de la plata)강, 스페인어로 은(銀)의 강이란 뜻. 그 은빛 물결은 핏빛이 돼버렸다. 마약을 먹인 뒤 발가벗겨 무자비하게 비행기에서 떨어뜨렸다. 카리브 해로 흘러들어가는 이 강구에 수 만 명이 수장되었던 바, 은퇴한 한 해군 조종사의 1995년 '비행' 이란 제하의 고백서에 따르면, 그가 복무하던 공군기지에 매주 수요일 수 십 명의 희생자들이 실려 왔으며, 자신의 부대에서만 최소한 2,000 여명이 대서양 한 가운데 던져졌다는 것이다. 임산부는 뱃속애기를 빼낸 뒤 던져졌으며, 애기는 강제입양 당했다. 바로 후안 헬만의 며느리, 마리아 클라우디아(María Claudia)가 그 희생자 중 하나이다. 뱃속의 애기는 우루구아이에 입양되었으며, 그녀의 시체는 카리브 해 물고기 밥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가득이나 공격적인 헬만의 시는 한층 더 공격적인 어조를 띠기 시작한다.     네 이름을 부르리 밤이나 낮이나. 난 너와 잠자리를 함께하리 난 네 그림자와 성교하고 난 네게 내 미친 심장을 보여주리   난 널 미치광이처럼 짓밟을 것이며 난 파코와 함께 널 죽일 것이며 로돌포와 함께 널 죽일 것이며 아롤도완 너를 죽여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며 내 아들과는 너를 내 아들의 아들과는 너를 디아나와 함께 난 너를 호떼와 함께 난 너를 너를 일백 번 죽이기 위해 사랑하는 얼굴이 필요치 않으리   네가 죽을 때까지 난 너를 죽이리 내가 너를 죽이리                   -시, 기록 Ⅰ (Nota Ⅰ) 전문           난 이미 내일 죽었거든 난 그저께 죽을 거야 날카로운 칼로 76을 파버릴거야 파코의 뿌리를 깨끗이 하기 위해 파코의 잎새를 깨끗이 하기 위해 망가진 노새처럼 땅에 박힌 날 도와주려했던 사람들, 후에 77이 되고 로돌포의 눈들을 만나기 위해 지금은 텅 빈 시선들, 뼈를 씻어야할 거야 사라지는 그림자완 거래를 하지 않을 거야 가슴, 뼈 위에 뿌려지는 흙, 차가운 땅바닥에 누인 친구들이여, 용기를 다오 그림자들이 주위를 날아다니는구나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몸 어느 부분을 멈추게 할 순 없지 심장도 낱말도 낱말, 심장도 친구들이여               - 시, 기록 Ⅱ(Nota Ⅱ) 전문       1976년은 아르헨티나 국치의 해다. 이미 ‘그들은 내일 죽었으며, 그저께 죽을 목숨’이었다.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들의 서러운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시인은 ‘날카로운 칼로 76을 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2,000년 말, 드디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루구아이에 입양되었던 외손녀 마리아 마까레나(María Macarena)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20여년 만에 외할아버지 후안 헬만과 조우하게 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내 중심에 위치한 대통령궁 정면엔 약 500평 남짓한 공원이 자리한다. 이름 하여 ‘오월광장’.  지금도 실종자 가족들은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곤 자식을 돌려달라며 하염없이 침묵의 원(圓)을 그린다. 그녀들이 바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가족모임인 우리의 ‘오월어머니회’의 모태인 아르헨티나 ‘오월광장 어머니’회원들이다. 올 1월 초, 필자는 EBS 세계테마기행 촬영 차 그곳을 들렀다. 오월광장어머니회 회원들과의 면담을 위해서였다. 이어서 달려간 곳이 바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신공항부근에 위치한 군사학교(군정시절엔 헌병대였다). 담벼락에 걸려있는 설치예술품들. 젊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 적힌……. 에칭으로, 판화로, 그림으로, 조각으로, 겉모양새야 어찌되었던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심장이 따갑도록 말해주고 있었다. 그중에는 열네 살 소녀도 있었고 열아홉 임산부도 있었다. 파코(Paco), 로돌포(Rodolfo), 아놀도(Anoldo), 디아나(Diana), 호테(Joté).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설치물들엔 벌건 녹이 끼여 있어 마치 피를 흘리고 있는 듯 담벼락을 지날 땐 음산한 기운마저 느꼈지만, 쇠붙이에 붙은 녹 덩이가 어찌 그들이 흘린 피보다 더 진할 수 있겠는가. 희생된 ‘파코의 뿌리를, 파코의 잎새를 깨끗이 해주기 위해’서라도 시인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그 어떤 것도 멈추게 할 수 없는’혁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난폭하게 요구한다 몇몇 이들은 그 광경을 좋지 않다고 여기고 한 남자, 미치도록 날고 싶어 하고 몇몇 이들은 그를 이상하다, 아프다 생각하고 한 남자, 혁명을 갈구하고 마른 벽을 오른 뒤, 가슴을 열고선 심장을 꺼내 헌병대의 의견에 반대하며 한 여인을 향해 마구 흔들어대고   마침내 한 남자 세상의 지붕 위를 정신없이 날자 사람의 마을은 불타오르기 시작하고 ‘고탱(Gotán)’의 깃발,  타오르기 시작하고                   - 시, 의견들(Opiniones) 전문         멕시코는 스페인어 권 망명문인들에게 관대하다. 레온 펠리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사울 이바르고옌, 그리고 후안 헬만. 세계적인 문인들이 멕시코에서 저작생활을 했으며, 하고 있다. 모두 조국에서 추방당했거나 망명한 작가들이다. 헬만과 필자와의 첫 만남은 1997년 어느 봄날, 필자의 또 다른 친구, 우루구아이 시인 사울 이바르고옌이 주간으로 있던 멕시코 엑셀소르(Excelsor)신문사에서 이루어졌다. 1930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익히 아는 바처럼 남미출신의 대표적 저항시인들이다. 각자의 조국인 우루구아이와 아르헨티나에 민주정부가 들어섰건만 앞서 말한 바처럼 아직도 그들은 멕시코에서 생활한다. 이바르고옌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멕시코도 이만하면 자기 조국이 아니냐고 한다. 헬만에게 이유를 물으니, 답이 더 괴짜다. 멕시코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기 때문이란다. 저항시인들의 답치곤 너무나 알량하다. 하지만 그들만의 여유 있고 이유 있는 저항 방식에서 우러나온 현답이 아닐까 한다. 끝으로 바이올린 심장을 가진 친구, 후안 헬만을 위해 쓴 졸시 한 편을 덧붙인다.       지금쯤 아르헨티나에 있었으면 하는 자네에게 편지를 쓴다네 편지여백에 암소 한 마리와 당나귀 한 마리를 그려 둠세 자네가 이 편질 읽을 즈음 암소의 젖에선 자네가 좋아하던 Alpura표 우유냄새가 풍기고 유난히 크게 그려질 당나귀 귓바퀴에선 아, 에, 이, 오, 우 우리시절의 인사가 성탄종소리처럼 풀어졌으면 하네   아 참, 자네 침실 앞 쓸쓸한 망고나무를 위해 새 한 마리 그려 넣는 것도 잊질 않겠네 하지만 색칠은 자네가 하게 시절이 빨간색을 원하면 빨갛게 노란 색을 원하면 노랗게 아님 그냥 편지지색으로 두든지 그래도 자넨 파란색으로 칠할 걸세 색깔이 다르다고 새소리까지 다르겠냐는 둥 엄살스런 군더더기까지 붙이며 말이야   참 자네 심장은 바이올린이랬지 언제 꽃 한 송이 자네 혈관 편으로 보내겠네 그 향기 또한 자네가 정하게 손으로 만지는 향기 귀로 듣는 향기 눈으로 보는 향기 하지만 자넨 쉬 권태에 빠질 코를 위한 향기는 원치 않을 걸세   언젠가 페론의 마누라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지어다’ 시건방 떨 때 자네의 눈은 아르헨티나를 위해 피눈물 흘렸고 자네의 입은 아르헨티나를 위해 또 울부짖었지 죽을 때도 서서 죽은 ‘체 게바라’처럼 천만 번 죽어도 결코 무릎 꿇지 않으리라…… 결국 자네 심장이 켜대던 음악으로 아르헨티나의 귀는 뚫리지 않았나   역시 자네 군더더기엔 질퍽한 향기가 있네 그려 이제 조국 아르헨티나에서도 살만 하지 않냐는 질문에 자넨 답했지 바이올린 심장을 뜨겁게 연주해 줄 여인이 더 이상 그곳엔 없다고…… 더구나 연주회는 밤낮 열려야 한다고 친구여, 미구에 자네의 그 바이올린 심장을 나에게도 차용해줄 수 없겠나 비록 연주해줄 여인은 없지만   아무튼 이 편지는 아르헨티나로 갈 걸세. 잘 있게                   2006년 1월 9일      바이올린 심장도, 연주해줄 여인도 주위에 없는 친구, 광렬     페론당의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아르헨티나정부는 헬만을 사면 복권시켜준다. 1989년, 그의 귀국은 성대했다. 도처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은 ‘유토피아는 시와 함께 온다.’란 켓치플레이즈를 걸고선 거장시인의 귀국을 진정으로 환영했다. 아르헨티나 ‘국가시인 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헬만은 “난, 시를 쓰지만 군인이다. 단지 비무장일 뿐. 모든 시인에겐 인류를 위한 보다 나은 길을 개척할 의무가 있다”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수상의 영광을 군부독재아래 희생된 아름다운 영혼들에게 돌린다는 말도 잊질 않는다.  
951    혼다 히사시 시모음 댓글:  조회:5031  추천:0  2015-04-13
  과수원1 혼다 히사시      나는 천 그루 밀감나무에 둘러싸여 잠이 든다  나는 천 그루 밀감나무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눈을 뜬다  과수원의 하루는 언어의 세상 밖에 있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농사일에 지친 몸을 밀감나무에 기대고서  눈을 감으면 친근했던 죽은 자의 영혼  눈을 뜨면 친근한 새와 짐승들의 영혼  바람은 영혼들이 돌아다니는 밀감나무 아래에  자신의 육체를 괭이 한 자루처럼 방치해 놓고  과수원 속의 좁다란 길을 방황한다    ***    실존적 불충족감에 가득 차  나는 휘어지게 열린 밀감나무 가지를 꺾는다  삶의 의미로 통하는 과수원길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열매와 가지를 희생시켜야 할까  하늘은 파랗고 과수원 길은 어둡다  Sentiment de vide⑴  세상 어디에도 신은 없다  사람의 언어는 나날이 가난하다  하늘에서는 벗겨진 매미의 수많은 껍질이 쏟아져 내린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잘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더욱 모른다-'⑵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저쪽인지  이쪽인지  원래 있던 자리로 가는 건지    ***    뒤따라 온 개가 추월하며 앞으로 달려 나가  문득 뒤돌아보았던 그 지점에 접어들었을 때  뜻밖에도 '초의미'⑶를 만나고 말았다  Sein(존재)가 Anders-sein(다른 존재)로  Anders-sein(다른 존재)가 Sein(존재)로 교체된다  그 위치에 섰을 때  밀감 꽃은 일제히 피어 향기를 내뿜고선  일제히 소멸한다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어딘가에서 개가 짖고 있다  그때 나와 개의 존재는 Bezogen-sein(관계 존재)⑷이다    ***    슈라이히는 인간 세계와 초의미의 관계를 말했다  '신은 가능성의 오르간 앞에 앉아 세상을 작곡했다.  우리 가련한 인간은 단지 인간의 목소리(Voxhumana)만을 듣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전체는 얼마나 더 멋진 것일까'  나는 밀감나무 가지에 매달아 놓은 트랜지스터라디오의 스위치를 켠다  과수원에 인간의 목소리가 흐른다  나는 고독의 수렁에서 괴로워하기로 한다    ***  자살곡선⑸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온갖 어려움과 빈곤의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자살은 적고  평화롭고 편리한 생활일수록 자살은 많다고 한다  이 자살곡선이 나타내는 불가사의한 역설을 더듬어 가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없다'의 기로가 드러난다  나는 과수원을 헤매고 있다  여기를 어떻게든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히하지 않다    ***    '자신이라는 것과 자신을 말하는 것은 같다"⑹는 말에  괴로워하면서  나는 과수원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다  '나'는 어떤 존재와의 관계에 있어서  '나'인 것일까  존재 그 자체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나는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 것일까  밀감나무 가지를 휘감고 올라간 덩굴을 떼 놓으면  진정으로 해방된 쪽은  밀감나무인가 덩굴인가  나는 말을 의심하며 나라는 존재를 의심한다  밀감나무 이파리 위를 구름이 흘러간다  저수조의 더러운 물 속에 태양과 개구리가 함께 떠 있다  '존재 그 자체에 대해 더 생각해 보라'는 소리가  과수원 밖에서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자  삼나무 우듬지에서 한 마리 갈가마귀가 울고 있다    ***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 그루 밀감나무는 모두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밀감나무'라는 통합적 명사(名辭) 속에서는 그저  한 그루의 밀감나무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는  다양함과 동시에 단순하고  단순함과 동시에 다양하다    ***    라틴어의 'finis'는 종말을 의미하면서 또한  목적을 의미하는 말이라 한다  과수원을 걸으면서  왼쪽 뇌로 이 라틴어를 반복하고  오른쪽 뇌로 뫼비우스의 띠를 그리고 있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새가  '영원'이라는 소리로 울고 있다    ***    '정신으로 치유해라, 약이 아닌'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무좀으로 고민하고 있다    ***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겨난 것은 고요함이다'⑺고 바람이 중얼거리며 휘익 지나쳐 간다  바람의 행방을 바라보며 나는 밀감나무 가지를 자른다  하얀 절단면에 연필로 '사랑'이라는 글자를 쓴다    ***    '신이 생각하고 원했던' 인간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인간이 생각하여 원했던' 신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신 역시 인간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 사람은  아마도 마르틴 · 부버  과수원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은  신도 인간도 필요 없을 만큼 아름답다    ***    밀감나무 그늘에 냉이가 무성하게 자랐다  폰 · 하틴베르크는  사랑이란 한 사람의 인간을 신이 '원했던' 것처럼 보여 주는 것  이라 했다 한다  나는 냉이를 뽑으며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표현에 붙들려 있다    ***    수선화꽃이 일제히 피어난 날 저녁 무렵  나는 목욕물을 데우면서 '불(火)'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불' 불길도 아니고  '불' 열도 아니고  '불' 입김도 아니다  '불' 을 부정하는 '불'  '불' '불' 속에 있고 '불'이 아닌 '불'  '불' '불' 밖에 있고 '불' 인 '불'  '불' 고목을 태우는 '불'  '불' '슬픔' 이라는 어감  '불' '아니다' 라는 어감  '불' '빨강' 이라는 어감  '불' '해' 라는 어감  '불' '불' 이라는 어감  나는 '불'에 태워지고  '불'에 의해 타오르는 침묵에 사로잡혀  과수원에 떠도는 수선화 꽃향기로 정화되어 가면서  생의 근원의 무구한 어둠에 나타나는 현상인 파란 번개를 보고 있었다    ***    과수원의 천 그루 밀감나무를 통해  계속 변용해 가는 한 그루 '미완의 나무'를 본다  '끝나지 않은 것에 의해 삶은 촉구되고 있다'고 말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나는 슬슬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둘도 없는 '나'라는 존재의 중심으로  고독의 한 가운데로  '미완의 나무' 가지 아래를 빠져나가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    밀감 밭 한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멀구슬나무에서  새가 울고 있다  '오라 고독한 자여, 고독한 자에게로'라고 말한  신비가 시메온인 척하고 있다  나는 태양을 뒤로 하고  자신의 그림자 속의 바위를 파내려다가  '무(無)'의 관을 잘못 파낸 것인지도 모른다    ***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삶의 근원으로'라는 이정표가 썩고 있다  일찍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나그네들이 다녀간 이 길을  나 또한 혼자서 가리라  뒤따라 올 사람을 위해 나뭇가지를 꺾어 가면서  삶의 한가운데를 가자    ***    하루 종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제 창고 2층에서 발견한 고서 속의 격언이  내 머릿속에 구름처럼 떠오른다  '당신은 자서전을 쓰며 바로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선택받은 자로서  마지막 순간에라도 정정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아라'    ***    개불알꽃 차전초 냉이  제비꽃 살갈퀴  개나리 벚꽃 복숭아꽃 배꽃  수선화 물망초  과수원은 꽃이 한창이다  밀감나무 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가지에 직박구리가 쉬고 있다  나는 치유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로받기 위해 과수원을 걷는다  공기 속에서 수많은 벌들의 날개 소리를 들으면서  모아지는 꿀의 양과 그것이 있는 곳을 생각한다  '무위 자연'이라는 말은 누구의 말이었던가  시는 아름다운 무위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갑자기 개가 나타나  들판 끝을 향해 짖어 댄다  그곳에 누가 있는지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    눈을 깜빡이지 않고  작열하는 지상 위에 길게 뻗은 자신의 그림자를 응시한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자 순간  하얀 내 그림자가 허공에 떠 있다는 불가사의  진지하게 서로 마주본 적 있는 남자와 여자의  눈꺼풀 뒷면에도 분명  서로의 그림자를 비추는 하늘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엇인가  작은 물고기 같은 것이 내 이마를 스쳐간다  잇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언어들은 그러나  모두 한 그루의 나무의 무성한 잎사귀처럼  법칙에 얽어매어져 있다    ***    과수원 입구에 풀잎을 묶어 놓고서 누군가가  그 소박한 올가미에 걸려 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신이 인간과 맺은 계약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비가 그친 후 들판에 나타난 무지개가 쓸쓸하다    ***    배나무 가지에 달팽이 한 마리가 기어간다  어디에서 왔을까  드러난 바위 위에 새의 깃털 하나  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  내 죄는 항상 내 앞에 있습니다'⑻  나는 이 이상의 구절은 모른다    ***    어긋난 척추로 인해 고개를 숙인 내 목덜미로 내려오는 구름이 무겁다    ***    연금술사 제랄 · 도른의 속삭임이  갑자기 이름이 '꿈'인 집고양이 울음소리로 바뀌어 들려 온다  '중심으로 향하면 어떤 한계도 없다, 그 힘과 비밀의 깊음은 무한하다'    ***    나는 밀감의 농밀한 입자 하나에 대해 상상한다  '무(無)'라는 것은 중국에서 숫자의 최종 단위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밀감 한 개는 '무'로 확한되고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볼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없는데도 보인다는 논리의 모순은 근사하지 않은가  과수원에 몸을 감추고 숨죽여 명상에 잠긴다  그때 내가 당신의 눈에는  하나의 밀감일지도 모른다    ***    매일매일 금이 간다는 어감에 붙들려 있다  매일매일 나날의 균열을 들여다보고  날짜의 사각(死角)에 ?(물음표)가 붙은 낚싯줄을 드리운다  그리고 ?(물음표)의 바늘에 걸린 날의 밝음 속에 드러나는 '사물'의  의외로 평범한 형태 속에 숨어 있는  무지개의 십자가라든가 천 개 다리 달린 뱀에게 놀라기도 하는 것이다    ***    '다수성(多數性)이란 웅성거림이다'라고 바슐라르는 말한다 그러나  나는 천 그루 밀감나무의 억만 잎의 웅성거림을 들으면서  때로는 그것이 은총처럼  빛의 음악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수원의 높은 하늘을 보라  보이지 않는 악보에서 넘쳐흐르는 소리처럼  종달새가 울고 있다  그리고 밀감나뭇잎 그늘에 핀 흰 꽃봉오리는  꾸밈음표와 같다  그리고 나는 고독하며 침묵에 만족하고 있는  단 한 사람의 청중이다    ***    한 그루 나무 내부에 무수한 강이 흐르고 있다  각각의 강바닥에 여자가 누워 있다  나무를 끌어안으면 나뭇가지 끝에서 여자의 비명이 오른다  나뭇가지에서 일제히 새들이 날아오른다  순간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내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뒤돌아보니 물빛 흐르는 나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미소짓는 여자  여자를 끌어안고 여자 안에서  나뭇가지 꺾어지는 소리에 섞여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난다    ***    '저녁놀'이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이 창가에 펼쳐져 있다  하루가 끝나고 희미해져 가는 빛 속에서  나는 차츰 음영을 잃어 가는 세상을  '후기'를 읽는 것처럼 읽고 있다  이것이 평소의 버릇이다    ***    '편안하게 있으면서 위기를 생각한다'(격언)  밀감나무에 꽃이 피고 파란 열매가 잎 그늘에서 빛난다  성숙에서 부식으로  부식에서 소멸로  하루는 무사히 지나간다  오늘 또 하나  내 병의 이력이 늘어났다    ***    카시오페아  귀뚜라미  봉선화  나는 밤의 과수원을 걸으면서  돌멩이 한 개를 줍는다  그때 문득 배 한 척이 풀잎들의 물결을 헤치고  어둠 속으로 출범한다  비합리도 합리도 이치는 이치  아무도 모르는 사이 이슬이 풀잎 위로 내려온다  내 영혼은 오늘 저녁  밀감나무 아래 내버려 둔 육체를 그리워하고 있다           ⑴프랑스의 위대한 정신과 의사 자네가 정신쇠약이라고 자신이 병명을 붙인, 그 신경증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기재한 말로서, 내용이 없는 감정, 즉 공허감을 의미하며, 또한 실존적으로 공허한 감정, 사는 목표와 내용이 없다는 뜻이다. (후랭클, 「시대의 병리학」에서) ⑵후랭클, 『시대의 병리학』 중 「운명론적 태도」에서 ⑶후랭클, 『죽음과 사랑』 중 「정신분석에서 실존분석으로」에서 ⑷후랭클, 『죽음과 사랑』 중 「심리학 요법에서 로고테라피로」에서 ⑸후랭클, 『시대의 병리학』 중 「운명론적 태도」에서 ⑹마르틴 · 부버, 『나와 당신』에서 ⑺맹자 ⑻구약성서 시편 51 제3절     [출처] 퍼옴) 혼다 히사시 |작성자 툭툭
950    詩의 病 댓글:  조회:3889  추천:0  2015-04-13
  詩の病(やまい 시의 병 -                                   本多 寿(혼다 히사시)    詩を書く人からも、書かない人からも受ける質問がある。 시를 쓰는 사람에게도 쓰지 않는 사람에게도 받는 질문이 있다.  「なぜ詩を書き始めたのですか?」「どうして詩を書くのですか?」 ‘왜 시를 짓기 시작하셨는지요?’  ‘왜 시를 쓰십니까?’  この質問は、なかなか答えるのが難しい。この質問を受けると私の頭の中では、「どうして詩を書き始めたのだろう?」「どうして詩を書くのだろう?」という自問が始まる。 이 질문은 좀처럼 답하기가 어렵다. 이 질문을 받으면, 내 머리 속에서는 ‘왜 시를 짓기 시작했을까?’ ‘왜 시를 쓰는 걸까?’ 하는 자문이 시작된다.  しかし、いくら自問自答しても、これが決定的な答えだという答えは見つからない。 그러나 아무리 자문자답을 해도 이렇다 할 결정적인 답은 발견되지 않는다.  そこで、「なぜか分からないうちに詩の病にかかり、未だに治らないので書き続けるしかないのです。死ななければ治らない病です」と答えることにしている。 그래서, “왠지 모르는 사이에 시병에 걸려 아직까지 낫지 않아서 계속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죽지 않으면 낫지 않는 병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기로 했다.  すると、詩を書かない人は首をかしげて変な顔をするが、詩を書く人は皆一様に納得した顔をする。私と同病なのだ。つまり、詩を書く人は死ななければ詩を書くことをやめない、あきらめの悪い人間なのだ。いや、こう言っては申し訳ない。 그러면,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묘한 표정을 짓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모두 하나같이 납득하는 얼굴을 짓는다. 나와 같은 병인 것이다. 즉 시를 짓는 사람은 죽지 않으면 시 짓기를 관두지 못한다. 포기가 서툰 인간인 것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미안지.  詩を書く人は、どうやら一生を台無しにしても、詩を書く覚悟を持っているらしい。たった一篇の詩と一回きりの人生を交換してもいいと純粋に思っているらしい。 시를 쓰는 사람은 일생을 망치더라도 시를 쓸 각오 되어 있는 듯하다. 단 한편의 시와 한번뿐인 인생을 바꾸어도 좋다며 순수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もちろん、私もそう思っている。そして思う。詩の病は、生の病なのだと。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시병은 삶의 병이라고.  人間、死ぬためには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生きないで死ぬということはありえない。人間、オギャーと生まれた以上、死ぬまで生きなければ死ねない。 인간은 죽기 위해서는 살아야 한다. 살지 않고 죽을 수는 없다. 인간은 응애~하고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살지 않으면 죽을 수 없다.  こうして考えてくると、生きるということも病なのだ。母体に生命が宿る瞬間、死もまた宿るのだ。遺伝子の構造が二重螺旋になっているように、生と死も二重螺旋になっているのだ。 이렇게 생각해보면 산다는 것도 병인 거다. 어머니 몸 속에 생명이 머무르는 순간, 죽음도 또한 머무르는 거다. 유전자 구조가 이중 나선이 되어 있듯이 생도 사도 이중나선이 되어 있는 거다.  したがって、生と死は一対であって別々に存在することはないのである。 따라서 생과 사는 하나이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そして、詩を書くということは、この生と死に深く関わることであることから、やはり 死ななければ治らない病なのである。 그리고 시를 짓는다는 것은 이 생과 사에 깊이 관여하는 것이므로, 역시 죽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 병인 거다.  それにしても、詩の病の病原菌はいったい、いつ、どこから、どうして私に侵入したの だろうか。 그렇다고 해도, 시병의 병원균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 왜 내게 침입했단 말인가.  それを、どんなに説明しても完全な感染経路を解明できるわけではないが、まあ、心あたりがないわけでもない。 그걸 어떻게 설명해도 완전한 감염경로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 가는 데가 없는 건 아니다.  というのは、私の長兄は詩人だったからである。末っ子の私と十五歳違いであった。 이유는 내 큰 형이 시인이기 때문이다. 막내인 나와는 15살 차이가 난다.  高校生になった十五歳の春、父が、家畜用の藁を保管する農業倉庫の二階の片隅に勉強部屋を作ってくれた。机を置き、布団を敷けるだけのスペースだった。そして、その部屋は長兄の部屋と障子一枚で仕切られただけのものだった。 고등학생이던 15살 봄, 아버지가 가축용 짚을 보관하는 농업창고의 이층 한 켠에 공부방을 만들어 주었다. 책상을 놓고 이불을 덮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방은 큰 형의 방과 장지문 한 장으로 구분만 되어진 것이었다.  しかし、消防士だった長兄は二十四時間勤務で一日置きの出勤だったから、私は一日置きに一人になれた。一人になると、隣の部屋が気になる。覗いてみると、本棚には私に見たことも聞いたこともない本が並んでいた。 그러나 소방수였던 큰 형은 24시간 근무로 하루 걸러 출근을 했기 때문에, 나는 하루 걸러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니 옆 방이 궁금해 졌다. 내다 보니 책장에는 내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それまで漫画か教科書ぐらいしか読んだことのない私だったが、長兄の留守に本棚を覗くというスリルも手伝って本を読み始めた。面白いというより一人だけの秘密が出来たというのが正しいだろう。そんな盗み読みの中で、ある日、兄の書いた詩に出会った。 그때까지 만화나 교과서 정도밖에 읽은 적이 없었는데 큰 형의 부재에 책장을 엿보는 스릴도 한몫 거들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다 라기보다는 혼자만의 비밀이 생겼다는 편이 나을지도. 그런 훔쳐 읽던 중인 어느 날, 형이 쓴 시를 만났다.  これは、他のどの本の盗み読みよりもスリルがあった。兄弟でありながら、知らない兄がいた。兄が詩人であったということに対する狼狽。そして、兄の心の秘密を覗くやましさ。 이것은 다른 어떤 책을 훔쳐 읽는 것보다도 스릴이 있었다. 내 형이면서도 알지 못하던 형이 있었다. 형이 시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당황스러움. 그리고 형의 마음을 엿보는 꺼림칙함.  詩人といえば、学校の教科書に出てくる有名な詩人しか知らない私にとって、詩人が身近に存在することの不思議。私は、兄の詩だけでなく、本棚にあるリルケやランボーなど外国の詩人の作品をはじめ、今まで知らなかった日本の現代詩人たちの作品を読みあさった。面白かった。ただ単に兄の本棚を除くスリルよりも、詩を読むスリルのほうが数倍面白かった。そのうち、わたしの中に不遜な憧れが生まれた。 시인이라면,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시인밖에 모르던 나에게 있어서, 시인이 바로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묘함. 나는 형의 시뿐만 아니라 책장에 있는 릴케나 랭보 등의 외국 시인의 작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몰랐던 일본의 현대 시인들의 작품을 읽어 들였다.  詩人になりたい、という憧れだ。同じ父母から生まれた兄弟なのだ。兄に詩が書けて私に書けないはずがない、と思いはじめたとき、私に詩の病原菌が侵入したのだろう。 시인이 되고 싶은 동경.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다. 형이 쓸 수 있다면 나도 못 쓸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에게 시의 병원균이 침입한 것일 게다.  しかし、憧れだけで詩が書けるわけではない。でも、私は密かに詩を書き始めた。そして、紆余曲折はあるが現在も書き続けている。 그러나 동경만으로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남몰래 시를 쓰기 시작했고 여러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현재도 계속해서 시를 쓰고 있다.  ただ、思い起こせば二十一歳のときに原因不明の病気で下半身不随になったときの経験と、そのときの聖書の読書体験が、私の詩作を決定づけたと思う。 돌이켜보면 21살 때, 원인 모를 병으로 하반신불수가 되었을 때의 경험과 그 당시의 성서읽기 체험이 나의 시작(詩作)을 결정지었다고 생각한다.  私は二十六歳を過ぎてから詩の雑誌に投稿を始めた。詩を書くことで生の意味を探り、詩を書くことで自分自身の体験や経験の内にある悲しみや痛み、怒りや喜びと向き合うことを学んだ。つまり、生を学び、生を問うことの意味深さに取り憑かれたのである。 나는 26살을 넘기고서부터 시의 잡지에 투고를 시작했다. 시를 지어서 생의 의미를 찾고, 시를 지어서 자기자신의 체험이나 경험 속에 있는 슬픔과 고통, 분노나 기쁨과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즉 삶을 배우고 삶을 묻는 의미의 깊이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だから、本当に詩の病にかかったのは二十六歳を過ぎてからだろう。そして、詩を書けば書くほど、生と死が密接不可分のものであることを思い知ることになった。 때문에 정말 시병에 걸린 것은 26살을 지나서부터일 게다. 그리고 시를 쓰면 쓸수록 생과 사가 밀접불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かくして詩の病も、生の病も、結局は死の病なのだ。死ななければ治らないのだ。 결국 시병도 삶의 병도 결국은 죽음의 병인 거다. 죽지 않으면 낫지 않는 거다.   生きている限りは終わらない何か、私自身の経験や予測を超える何ものかによって、生も詩も促しを受け続けているらしい。この私の存在の外からくる促しに、ついに自分自身を委ねていくしかないと思っている。 살아 있는 한, 끝나지 않는 무언가 내자신의 경험이나 예측을 넘는 뭔가에 의해서, 생도 시도 계속 재촉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나의 존재의 외부에서 오는 재촉에 결국 자기자신을 맡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こう書いてくると、詩を書くということを深刻に考えていると思われるかも知れないが実は最近、詩の病と仲良くして、詩の病を楽しもうと思いはじめている。 이렇게 쓰고 나면, 시를 쓴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되어질 지도 모르나, 사실은 최근 시병과 사이가 좋아져, 시병을 즐기려 하고 있다.      
949    <축구> 시모음 댓글:  조회:5663  추천:0  2015-04-13
  + 축구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이토록 치열할 수 있을까  침묵과 비명만이  극치의 힘이 되는  운동장에 가득히 쓴 눈부신 시 한 편  90분 동안  이 지상에는 오직 발이라는  이상한 동물들이 살고 있음을 보았다  (문정희·시인, 1947-) + 공 이야기 날개 없이 45분간의 비상 눈물 없이 45분간의 번민 태양이 이글거리는 시간 수평선들 휘감기고 무수한 입술의 인간 육신이  빚어낸 듯 관중석에선 고통도 낙담의 두려움도 들려오지 않는다 적도 형제도 포옹케 하는 최후 영웅의 무르익음 (카티 라팽·프랑스 여류시인) + 절대로  결코 클럽의 미친 서포터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스위퍼에게 늑골과 비골을 강타당해보지 않았다면 고통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진정한 동네축구를 해보지 않았다면 즐거움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추가 시간 때문에 게임에 져보지 않았다면 눈물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뒤에서 태클당한 동료 때문에 악다구니를 써보지 않았다면 연대감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골문을 향해서 날쌔게 돌진해 보지 않았다면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가차없이 차가운 운동장 바닥에 쓰러져 보지 않았다면 수치심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프리킥 벽을 쌓아보지 않았다면 우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방문 경기에서 승리의 구보를 해보지 않았다면 오르가슴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팀을 이루어 경기를 해보지 않았다면 좌파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경기장에서 "죽어라 검둥이"라는 외침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혼자 승리한 것으로 착각한 경험이 없었다면 이기심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윙으로 뛰어보지 않았다면 주변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홈팀 심판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아보지 않았다면 불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슬럼프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불면증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자살골을 넣어보지 않았다면 증오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친구야, 네가 결코, 정녕, 볼을 차보지 않았다면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월터 사아베드라·아르헨티나 축구해설자이며 시인)  + 날개가 없어도 공은 난다 얼마나 넓은 운동장인가 크기를 잴 수도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둥근 공들이 떠다니는 지구는, 그 안에 좁쌀보다도 작은 지구를 나는 너무도 힘들게 발로 굴리며 날마다 동동거리며 산다 알고 보면 나는 공(球)에서 나서 공(空)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데 때리거나 던지거나 차거나 공을 다루는 재주가 아예 없는 내가 0이 주 개 붙은 2002년 6월 느닷없이 사람들에 치이며 광화문 거리를 비집고 들어가 대애안∼미인구욱! 엇박자 손뼉을 치고 고함을 질러댔다 월드컵 4강, 독일과 한 판 붙을 때는 운 좋게 상암구장 목 좋은 자리에서 머리 흰 붉은 악마가 되어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돼지오줌깨나 새끼줄 뭉치를 차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우리 젊은이들이 겁도 없이 월드컵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이제 두 달도 안 남은 6월을 기다리게 됐고 다시 한 번 거리에 나가 악마들과 손뼉을 치며 발을 굴리고 싶은 것이다. 날개가 없이도 잘도 나는 바람둥이 공을 두고 헛발질도 못하는 내가. (이근배·시인) + 똥볼 축구시합 하러 운동장으로 나갈 때  내가 코딱지를 파먹으면서  개미 똥구녁 맛 같다고 하니까  주근깨가 다닥다닥한  여자 부반장 복실이가  멥쌀눈을 흘겼다  나는 동해물팀 공격수  등번호 9를 달고 냅다 달렸다  찬스를 잡아 슛을 했는데  아뿔사! 똥볼이 됐다  복실이가 메롱메롱 놀렸다  날아가던 황새가  똥볼에 놀라 물똥을 찍 쌌다  동해물! 장백산!  배고픈 아이들이  악머구리떼처럼 소리쳤다  오늘 축구시합은  복실이 때문에  재수 옴 붙었다  동해물팀이  3대 빵으로 깨졌다  (오탁번·시인, 1943-) + 로스 타임 내 내부에 진흙탕에 더러워진 손수건 같은 운동장 하나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공기가 빠진 축구공이 하나 방치된 채로 있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상한 과일처럼 풀밭에서 굴러온 공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우리 개구쟁이들은, 그러나 쇠약해진 동물을 못살게 굴며 올가미에 몰아넣듯이 골을 향해 매일매일 공을 차며 놀았다 그날들의 뒤엉켜 뛰어 돌아다니던 잔인하면서도 쾌활한 그림자가 배어있는 방과 후의 운동장 언제나 머리 위에 있어 스스로는  그림자를 지니지 않는 것 우리들이, 진정 발로 차고 싶었던 건 황금의 태양이  아니었을까 눈을 감으면  두 개의 기둥으로 세워진 골대가 그림자와 더불어 기울고 있다 저편 아득히 풀숲이 그늘져 있다 (혼다 히사시·일본 시인) + 축구하는 시 시는 구르는, 잔디 위에 인생을  굴리는 게임 같은 것. 악운을 거스르기 위해 맹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약속처럼, 시는 큰 화재 같은 것. 그곳에서 신의 사자(使者)들이 모든 믿음을 배제한 채 오직 스타디움의 강령에 의해 합창으로 사원을 불사르는 곳. 시는 세 개의 기둥으로 된 활. 마치 11개의 발자국으로 영광과 최고형의 징벌의 지옥을 넘나드는 기요틴 같은 것. 시는 둥근 신성을 케이블로 연결한 눈물 같은 것. 종국에는 수도 없는 페인팅의 밤으로 아이들의 웃음으로 끝나는 어떤 것. 시는 무한한 실수에 태연한 채, 울타리도 없는 운동장에서 골 연습에 열중하는 아저씨 바로 당신, 아니면, 아주머니 바로 당신. 시는 바로 완곡어법 없이 굴러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래서 때가 되면 우리 모두로 하여금 올림픽의 성취를 느끼게 하는 것. (호세 루이스 킨테로 카리요·멕시코 시인)  너도 나도 붉은색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하고, 오로지 하나의 패션으로 만들어 준 것은 정치도 경제도 문학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축구이다.     "얼마나 넓은 운동장인가/크기를 잴 수도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둥근 공들이 떠다니는 지구는,/그 안에 좁쌀보다도  작은  지구를/나는 너무도 힘들게 발로 굴리며/날마다 동동거리며 산다/알고 보면 나는 공(球)에서  나서/공(空)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데"(이근배, '날개가 없어도 공은 난다' 중).     축구는 이처럼 우리 삶을 성찰하는 시가 되었다. '시의 문법, 축구의 문법'은 축구에 대한 세계인의 교감과 시적 관심을 압축하고 있다. 이근배 이성부 오탁번 문정희 이장욱 등 한국시인 다섯 명을 비롯해 프랑스, 멕시코, 아르헨티나, 일본, 독일  시인들의 축구에 관한 시. 축구와 문학의 상관관계를 다룬 시들.     무엇보다 외국 시인들이 시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대중의 서사시로, 삶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놀이로, 유년의 원형적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여류시인 카티 라팽은 "날개 없이/45분간의 비상/눈물 없이/45분간의 번민/태양이 이글거리는 시간 수평선들 휘감기고/무수한 입술의 인간  육신이  빚어낸 듯/관중석에선 고통도 낙담의 두려움도 들려오지 않는다/적도 형제도 포옹케  하는/최후 영웅의 무르익음"('공 이야기' 중)이라며 축구경기를 인생의 서사시로  엮어낸다.     멕시코 시인 호세 루이스 킨테로 카리요는 "시는 구르는, 잔디 위에/인생을  굴리는 게임 같은 것"이라거나 "시는 바로 완곡어법 없이 굴러가는/법을  배우는  것. 그래서 때가 되면/우리 모두로 하여금/올림픽의 성취를 느끼게 하는 것"('축구하는 시' 중)이라며 축구를 시로 승화시켰다.     일본 시인 혼다 히사시는 "가난했던 소년 시절/상한 과일처럼/풀밭에서 굴러온 공은/분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중략)/언제나 머리 위에 있어/스스로는  그림자를 지니지 않는 것/우리들이, 진정 발로 차고 싶었던 건/황금의 태양이  아니었을까"('로스 타임' 중)라며 축구를 통해 유년시절의 꿈을 추억한다.     독일 시인 라인하르트 움바하는 "멍청한 공이 회전을 시작합니다 기류를 뚫고요./우린 모르겠습니다, 그 모두가 어디에서 왔는지./마냥 불가해합니다, 우주보다  더요/그런데 갑자기 수천 명이 욕하는 소리 들려 옵니다,/움짓움짓 골기퍼 뒤에서  놓인 것을요, 공요"('멍청한 긴 패스' 중)라며 자살골을 넣은 선수가 야유를 받는  상황을 풍자적 어법으로 그렸다.     축구에 대한 시와 노래가 들어 있는 시집 '공의 업적'을 낸 바 있는 아르헨티나의 축구해설자이자 시인 월터 사아베드라는 "결코 클럽의 미친  서포터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중략)/결코 뒤에서 태클당한 동료  때문에 악다구니를 써보지 않았다면 연대감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중략)/결코  경기장에서 '죽어라 검둥이'라는 외침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절대로' 중)라며 공을 차보지 않고는 인생을 알 수 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출처] "축구는 단순 스포츠 아니라 대중의 서사시" |작성자 Sdragon  
948    100세 할매 일본 시인 - 시바타 도요 댓글:  조회:4495  추천:0  2015-04-13
시바타 도요               무심코 한 말이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이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말을 고치지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외로워지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족 같은 구름 지도 같은 구름 술래잡기에 한창인 구름도 있다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해질녘 붉게 물든 구름 깊은 밤 하늘 가득한 별 너도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와 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 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 지 열 여덟 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나,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 하지 않아 아흔 여덟에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나이 아흔을 넘기며 맞는 하루하루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안부전화 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 제각각 모두 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하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희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했다고 기쁜 듯 얘기했던 적이 있어 그 후로 정성껏 아흔 일곱 지금도 화장을 하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 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 뵐 때마다 돌아오던 길의 괴롭던 마음 오래오래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 구름이 몰려오던 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지금도 또렷한 기억     뚝뚝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 돼   과감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단숨에 눈물을 흘려 버리는 거야   자, 새 컵으로 커피를 마시자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잊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람 이름 여러 단어 수많은 추억 그걸 외롭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왜일까 잊어 가는 것의 행복 잊어 가는 것에 대한 포기 매미 소리가 들려오네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어 있으면 안 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나서 뭔가를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 그리고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난 불행해.......”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 해가 비출 거야         시바타 도요는 올해 100세 할머니이다. 도요가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둔 100만엔을 털어 첫시집 '약해 지지마'를 출판 100만부가 돌파되어 지금 일본열도를 감동 시키고 있다.   1911년 도치기시에서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난 도요는 열 살 무렵 가세가  기울어져 갑자기 학교를 그만 두었다. 이후 전통 료칸과 요리점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더부살이를 했다. 그런 와중에 20대에 결혼과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33세에 요리사 시바타 에이키치와 다시 결혼해 외아들을 낳았다. 그 후 재봉일 등 부업을 해가며 정직하게 살아왔다. 1992년 남편과 사별한 후 그녀는 우쓰노미야 시내에서 20년 가까이 홀로 생활 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말한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들어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인간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 했네.   배운 것도 없이 늘 가난했던 일생. 결혼에 한번 실패 했고 두 번째 남편과도 사별한 후 20년 가까이 혼자 살면서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던 노파. 하지만 그 질곡 같은 인생을 헤쳐 살아오면서 100년을 살아온 그녀가 잔잔하게 들려주는 얘기에 사람들은 감동을 먹고 저마다의 삶을 추스르는 힘을 얻는다. 그 손으로 써낸 평범한 이야기가 지금 초 고령사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일본인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제 그녀의 위로가 현해탄을 건너와 한국사람들에게 그리고 미국에도 전해져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   ...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삶을 생각나게 하는글중에서'   2011年 9月 __100歲__를 記念하여、 第2詩集 를 출판하였다.       첫 시집   무심코 한 말이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이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말을 고치지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 그리고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난 불행해.......”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 해가 비출 거야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외로워지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족 같은 구름, 지도 같은 구름 술래잡기에 한창인 구름도 있다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해질녘 붉게 물든 구름 깊은 밤 하늘 가득한 별 너도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와 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 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 지 열 여덟 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나,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 하지 않아 아흔 여덟에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나이 아흔을 넘기며 맞는 하루하루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안부전화 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 제각각 모두 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하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희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했다고 기쁜 얘기했던 적이 있어 그 후로 정성껏 아흔 일곱 지금도 화장을 하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 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 뵐 때마다 돌아오던 길의 괴롭던 마음 오래오래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 구름이 몰려오던 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지금도 또렷한 기억   뚝뚝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 돼 과감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단숨에 눈물을 흘려 버리는 거야 자, 새 컵으로 커피를 마시자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잊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람 이름 여러 단어 수많은 추억 그걸 외롭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왜일까 잊어 가는 것의 행복 잊어 가는 것에 대한포기 매미 소리가 들려오네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어 있으면 안 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나서 뭔가를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   만 98세에 펴낸 시집이 160만부 가까이 팔리는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일본 할머니 시인 시바타(柴田) 도요가 20일 향년 101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시바타 할머니의 장남 시바타 겐이치는 고인이 이날 오전 0시 50분께 도쿄 북쪽 우쓰노미야(宇都宮)시 자택 부근에 있는 사설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장남은 "(어머니가) 정말 평화롭게 고통없이 가셨다"며 "어머니는 100세 때까지 계속 시를 쓰셨다. 원기는 있으셨지만 지난 반년 간은 걸을 때 부축을 받아야 했다"고 전했다.     시바타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취미였던 일본 무용을 할 수 없게 돼 낙담해 있다가 외아들의 권유로 92세 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산케이신문 1면 최상단에 위치한 '아침의 시' 코너에 그녀의 시가 소개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지난 2009년 10월 그는 99세의 나이에 첫 시집 '약해지지마'를 자비를 들여 출판했다.  1만부만 넘어도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일본에서 시바타 할머니의 시집은 158만부나 판매됐다.     [출처] 약해 지지 마 - 시바타 도요 시 모음|작성자 서울별빛
947    로동자시인 - 박노해 댓글:  조회:4703  추천:0  2015-04-12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첫마음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 있는 벗들에게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 있다.  첫 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우리의 소원은 부자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올해도 농사짓는 것이다  허리 숙여 불볕이랑을 기며  태풍 장마에 애간장을 졸이며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일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올봄에도 내 땅에 씨뿌리는 것이다  누가 내 가난한 소망을 가로막는가  누가 내 소박한 봄날을 깨뜨리는가  누가 사람을 먹여 살려온 이 들녘에  사람을 죽이는 전쟁기지를 세우려 하는가  너희가 무력으로 내 땅을 강점하고  너희가 총칼로 내 봄을 짓밟는다면  이제 우리는 나라도 없다  이제 우리는 정의도 없다  미군의 민주주의  미군의 안보  미군의 권리에  내 땅에서 울부짖고 쓰러지고 쫓겨나는 나라라면  나라도 없는 우리는 이제부터 평화의 독립군이다  농사를 내려놓고, 삽도 호미도 내려놓고,  먼저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  쫓겨난 빈손으로 촛불을 들고  너희들의 미사일  너희들의 전투기  너희들 탐욕과 전쟁의 마음을  내 안에서 조용히 불사르겠다  불살라, 이 새싹같은 촛불을 들고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저 우는 들의 눈물을 기름부어  너희들 무기의 어둠을 불사르겠다  우리들 인간의 봄을 시작하겠다  이제 나라도 정의도 없는 우리는  미군의 총칼에 울부짖고  미군의 폭력에 피흘리는  지구마을 어린 것들을 보듬어 안고  국경없는 평화의 봄을 꽃피우겠다  이 들녘에 떠오르는 아침해는  누구도 홀로 가질수는 없듯이  이 들녘에 차오르는 봄은  누구도 홀로 맞을 수는 없듯이  대추리 도두리에도  전쟁의 바그다드에도  새만금에도  쿠르디스탄에도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어야 한다  아아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길잃은 날의 지혜   큰 것을 잃어 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검은 산에 큰 산불이 나고 검은 바람이 불고 잎새도 가지도 둥치도 타 버린 참혹한 빈 산에 검은 산에 아 그래도 뿌리는 살아 불탄 몸 쓰러져도 새근새근 살아 여린 싹을 내 밀고 있었습니다 빛나던 꽃도 열매도 아닌 희망이던 가지도 둥치도 아닌 잊혀진 땅속의 씨알 뿌리들만이 타버린 한 시절의 몸을 껴안고 조용히 푸른 싹을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일어서 고개 들어보면 절망이지만 허리 숙여 들여다보면 희망입니다 IMF 이 나라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강력하게 몰아쳐 온 말 이제 갓 말 배우는 아이에서 허리 굽은 노인네까지 서울 도심에서 산촌 마을까지 온 겨레의 삶과 내면을 단번에 관통시킨 운명같은 말 IMF 누군가 예고라도 있었더라면 차라리 그 말이 우리 말이었다면 이 나라 내 삶의 파탄은 늘 밖에서 느닷없이 몰아쳐왔다 여전히 우리 운명의 테마는 「안과 밖」이었다 언제나 바깥 세계의 변화 속도는 우리 내부의 개혁 속도보다 훨씬 빨랐고 그 역사의 시간 차이만큼 이렇게 혹독한 결과를 불러오곤 했다 내 안과 밖의 IMF!     YS 탓인가 나라 경제 거덜난 게  『모두 내 책임이다』 YS는 비장하게 말하지만 모르는 소리 YS 탓만이 아니다 YS 탓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그대 그렇게 무능하고 오만 독선한 변절자라고 이제와 돌멩이를 던지는 그대 그를 대통령으로 찍었던 당신 탓이다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세월 문지르며 넘어가지 마라 오직 『우리가 남이가』 소리치며 줄줄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당신 책임이다 YS가 가장 개혁적이라며 힘을 실어 주자고 과거를 팔아 그를 추켜올린 당신 책임이다 YS만 탓하지 마라 변절자를 따르는 자는 자기도 따라서 변절되는 법 먼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자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자격도 없는 법 이제 와서 그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옳은 말도 모두 물리고 썩은 말이 될뿐     내가 나선 이유 솔직히 나는 내 죄를 안다 나도 거품이었고 부실했다 나는 지금 누구도 탓하지 않고 내 일생을 바쳐 쌓아온 것들이 발 밑에서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이건 분명 내 탓이다 나의 불찰이고 나의 무능이다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임을 나는 잘 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슬프다 이것이 내 노여움이다 이 모든 걸 내 죄로 알고 받아들이는 게 너를 조금도 참회시킬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거다 너는 어제도 오늘도 그러한 것처럼 내일 다시 숱한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 미치게 하고 한 순간 통째로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너희들이 떠넘긴 이 큰 죄와 고통이 고스란히 우리의 미래로 떠밀렸을 뿐이라는 것 그것이 나의 슬픔이고 나의 분노이다 그것이 내 탓이다 내 가슴을 치면서도 너를 향해 내가 나서는 이유이다     마지막 남은 믿음 정직하게 땀 흘리면 반드시 잘 사는 날이 온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나에게도 해 뜨는 날은 온다 이 작은 믿음 하나로 일만 하며 살아온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실직은 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렸지만 나에게는 이제 아내도 없고 아이도 없고 집도 돈도 친구도 없고 기술도 다 소용이 없고 내 일생을 지탱해온 모든 것들이 차갑게 무너지고 내가 딛고 선 삶의 믿음이 발밑에서 허물어지고 이제 나는 세상의 그 무엇도 믿지 않지만 그래도 이 차디찬 세상에서 아직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믿음이 있다면 그건 … 햇볕이 따뜻하다는 거다… 긴 밤을 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떨며 지새운 내 몸에 아직도 햇볕은 따뜻하게 평등하게 비춰준다는 이 진실 공원 벤치에 누운 내게도 햇볕은 따뜻하다는 이 마지막 진실 이 마지막 믿음     기차역 대합실로 간다 아침이면 졸음 달고 뛰어가던 내 몸은 컨베이어에 묶여 끌려가던 내 몸은 어느 날 툭, 끊어져 흐느적거리는 연처럼 내 발길은 허공의 시간을 걷는다 그래도 아침이면 구청으로 노동부로 공원으로 부지런히 다니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던져진 불량품처럼 기차역 대합실에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보곤한다 공공근로 다녀온 아내는 쓸모 없어진 의료보험 카드와 조합원 주택부금과 자녀 학자금융자증 차량 할부카드를 놓고 한숨과 짜증이 는다 정말 못할 소리까지 한다 이제 나는 힘을 잃었다 고치자고 해도 잘 안되던 못된 가장의 권위라도 남았으면 좋으련만 낮술에 못된 성질만 남아 정말 이대로 가면 나도 아내도 사람마저 버리겠다 언제부턴지 허공의 시간을 걷는 내 발길은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기차역 대합실로 떠밀려 간다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제 몸을 때려 울리는 종은 스스로 소리를 듣고자 귀를 만들지 않는다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 온 목수는 자기가 살기 위해 집을 짓지 않는다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우리들, 한번은 다 바치고 돌아와 새근새근 숨쉬는 상처를 품고 지금 시린 눈빛으로 말없이 앞을 뚫어 보지만 우리는 과거를 내세워 오늘을 살지 않는다 우리는 긴 호흡으로 흙과 뿌리를 보살피지만 스스로 꽃이 되고 과실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내일이면 모두가 웃으며 오실 길을 지금 우리 젖은 얼굴로 걸어 갈 뿐이다 오늘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참 좋은 날이다   늘 새로운 실패를 하자 돌아보면 내 인생은 실패투성이 이제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겠다고 조용히 울며 다짐하다가 아니야 지금의 난 실패로 만들어진 나인데 실패한 꿈을 밀어 여기까지 왔는데 나에게 실패보다 더 무서운 건 의미 없는 성공이고 익숙한 것에 머무름이고 실패가 두려워 도사리는 것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의미해지지 않는다 성공했지만 의미 없는 것들이 있고 비록 실패했지만 더 의미 있는 것도 있다 누군가는 의미 있는 실패라도 해주며 쓰러져야만 그 쓰라림을 딛고 넘어 새날은 온다 이제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준비에 실패함으로 실패를 준비하지 말고 실패를 정직하게 성찰하며 늘 새로운 실패를 하자     가을볕   흙 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 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 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은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우리 나라 양심선언 제1호 인물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 중에 지금의 국방부 장관 격인 군부대신 이근택이 그 날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 앞에서 제가 앞장서서 을사조약에 찬성한 것이 무슨 자랑거리나 되는 듯이 『이제 우리 집안은 더 혁혁한 권세를 누리게 되었지』 뻔뻔스럽게 지껄였다는데 마침 그 집 찬모가 밥상을 올리려고 창 밖에 있다가 이근택의 말을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 부엌칼을 집어들고 마루에 올라 소리쳤단다 『네놈이 그토록 악독한 줄은 미처 몰랐다! 그것도 모르고 네 종노릇하면서 밥을 빌어먹었으니 아이구 창피하고 억울해 못살겠다』 찬모는 이렇게 호통을 치고는 집을 뛰쳐 나갔단다 하인들이 쫓아오자 이 참모는 『동네사람들은 잘 들으시오 집주인이란 자는 역적이요 그래서 내가 바른말을 했더니 오히려 나를 잡으려 하고 있소』 고래고래 소릴 지르니 하인들도 더 이상 쫓지 못했단다 끝내 나라가 망하고 온 백성이 시일야 방성대곡 하고 순국자결이 줄을 잇는 먹구름 속에서도 이 얘기를 들은 민중들은 박장대소하며 후련해 했더란다 나는 이 찬모를 우리 나라 인물로 삼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데 나라 경제 거덜낸 IMF오적들 밑에는 사람다운 사람 하나 없나 하기야 이 머리가 그 머리인지 꿔온 머린지 빌린 머린지 『통 기억이 안난데이』     다시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가을 볕  가을 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 부시다.  가을 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       나는 젖은 나무   난 왜 이리 재능이 없을까  난 왜 이리 더디고 안 될까  날마다 안간힘을 써도  잘 타오르지 않고 연기만 나는  나는 젖은 나무  젖은 나무는  늦게 불붙지만  오래오래 끝까지 타서  귀한 숯을 남겨준다고 했지  그래 사랑에 무슨 경쟁이 있냐고  진실에 무슨 빠르고 더딘 게 있냐고  앞서가고 잘 나가는 이를  부러워 말라 했지  젖은 나무는 센 불길로 태워야 하듯  오로지 마음을 하나로 모아  용맹스레 정진할 뿐  젖은 나무인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긴 호흡으로 치열하게 타오를 뿐    박노해 시 모음 ★★★★★★★★★★★★★★★★★★★★ 천생연분  박노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걸로야 TV탈렌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들 견줄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서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꽃이야 강사 따르겠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 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내가 동료들과 술망태가 되어 와도  몇일씩 자정 넘어 동료집을 전전해도 건강걱정 일격려에 다시 기운이 솟고 결혼 후 3년 넘게 그 흔한 세일 샤스하나 못사도 짜장면 외식 한번 못하고  로션하나로 1년 넘게 써도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이 좋소. 토요일이면 당신이 무더기로 동료들을 몰고와 피곤해 지친 나는 주방장이 되어도 요즘 들어 빨래, 연탄 갈이, 김치까지 내 몫이 되어도 나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 조금만 나태하거나 불성실하면 가차없이 비판하는 진짜 겁나는 당신 좌절하고 지치면 따스한 포옹으로 생명력을 일깨 세우는 당신 나는 쬐그만 당신 몸 어디에서  그 큰사랑이 , 끝없는 생명력이 나오는가 곤히 잠든 당신  가슴을 열어 보다 멍청하게 웃는다. 못 배우고 멍든 공순이와 공돌이로 슬픔과 절망의 밑바닥을 일어서 만난 당신과 나는 천생연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억압 속에 시들은 빛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을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까부스고  밤하늘별처럼 흐르는 시내처럼 들의 꽃처럼 소곤소곤 평화롭게 살아갈 날을 위하여  우린 결말도 못보고 눈감을지 몰라 저 거친 발굽 아래 무섭게 소용돌이쳐 오는 탁류 속에 비명조차 못 지르고 휩쓸려갈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기쁨으로 산다 이 길을 그래도 나는 당신이 눈물나게 좋다 여보야 도중에 깨진다 해도 우리 속에 살아나 죽음의 역사를 넘어서서 이름 봄마다 당신은 개나리 나는 진달래로  삼천리 방방곡곡 흐트러지게 피어나 봄바람에 입맞추며 옛 얘기 나누며 일찌기 일 끝내고 쌍쌍이 산에 와서 진달래 개나리 꺾어 물고 푸성귀 같은  웃음 터뜨리는  젊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윽한 눈물을 짖자 여보야 나는 당신이 좋다. 듬직한 동지며 연인인 당신을  이 세상에서 젤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미치게 미치게 좋다.  ★★★★★★★★★★★★★★★★★★★★ 그대 나 죽거든  박노해 아영아영 나 죽거든 강물 위에 뿌리지마 하늘바람에 보내지 말고 땅속에다 묻어주오 비 내리면 진 땅에다 눈 내리면 언 땅에다 까마귀 산짐승도 차마 무시라 뒷걸음쳐 피해 가는 혁명가의 주검 그대 봄빛 손길보다 다독다독 묻어주오 나 언 땅 속에 길게 뿌리누워 못다 한 푸른 꿈과 노래로 흐를 테요 겨울 가고 해가 가고 나 흙으로 사라지고 호올로 야위어가는그대.. 어느 봄 새벽, 수련한 함박꽃으로 피어 날 부르시면은 나 목메인 푸르른 깃발 펄럭이면서 잠든 땅 흔들어 깨우며 살아날 테요 아영아영 나 죽거든 손톱 발톱 깎아주고 수염도 다듬어서 그대가 빨아 말린 흰옷 이쁘게 입혀주오 싸늘한 살과 뼈 험한 내 상처도  그대 다순 숨결로다 호야호야 어루만져 하아- 평온한 그대 품안에 꼬옥 보듬어 묻어주오 자지러진 통곡도 피 섞인 눈물도 모질게 거두시고  우리 맹세한 붉은 별 사랑으로, 눈부신 그 봄철로 슬픔 이겨야해. 아영 강인해야 해  어느 날인가 그대 날 찾아 땅속으로 오시는 날  나 보드란 흙가슴에 영원히 그댈 껴안으리니  ★★★★★★★★★★★★★★★★★★★★ 그리움 박노해 공장 뜨락에 따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 도는 아이들 얼굴 위로 개나리 꽃눈이 춤추며 난다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오란 작은 손 꽃바람 자락에 날려 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진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 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 오는 가간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 통박  박노해 어느 놈이 커피 한잔 산다 할 때는  뭔가 바라는게 있다는 걸 안다. 고상하신 양반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 등을 두드릴 땐 내게 무얼 원하는지 안다. 별스런 대우와 칭찬에  허릴 굽신이며 감격해도 저들이 내게 무얼 노리는지 안다. 우리들이 일어설 때 노사협조를 되뇌이며 물러서는 저 인자한 웃음 뒤의 음모와 칼날을 우리는 안다. 유식하고 높은 양반들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세상마다 뒹굴며  눈치밥을 익히며 헤아릴 수 없는 배신과 패배 속에 세상 살아가는 통박이 생기드만 세상엔 빡빡 기는 놈들 위해서 신선처럼 너울너울 나는 놈 따로 있어 날개 없이 기름바닥 기는 우리야 움츠리며 통박을 굴리며 살아가지만 통박이 구르다 보면 통박끼리 구르고 합쳐지다 보면 거대한 통박이 된다고 좆도 배운 것 없어도 돈 날개 칼 날개 달고 설치는 놈들이 무엇인지 이놈의 세상이 어찌된 세상인지 누구를 위한 세상인지 우리들 거대한 통박으로 안다. 쓰라린 눈물과 억압과 패배 속에서 거대한 통박으로 구르고 부딪치고 합치면서 우리들의 통박은 점점 날카롭고 명확하게  가다듬어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통박이 거대한 통박으로 하나의 통박으로 뭉쳐지면서 노동하는 우리들이 새날을 향하여 이놈의 세상을 굴려갈 것이다.  ★★★★★★★★★★★★★★★★★★★★ 준비 없는 희망  박노해 준비 없는 희망이 있습니다 처절한 정진으로 자기를 갈고 닦아 저 거대한 세력을 기어코 뛰어넘을 진정한 자기 실력을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 없는 준비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해 가는데 세상과 자기를 머릿속에 고정시켜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 그 해 겨울나무  박노해  1 그 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 소리도  순식간에 떠나 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 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빛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말도 필요 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 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 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 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긁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부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 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을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 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 민들레처럼  박노해  일주일의 단식 끝에 덥수룩한 수엽 초췌한 몰골로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끌고 어질어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잡범들 사이에서 "박노해씨 힘내십시요." 어느 도적놈인지 조직폴력배인지 노란 민들레 한송이 묶인 내 손에 살짝이 주어주며 환한 꽃인사로 스쳐 갑니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 노란 민들레꽃을 코에도 볼에도 대어보고 눈에도 입에서 ?줘보며 흠흠 포근한 새봄을 애무한 민들레꽃  한 송이로 환하게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하여 아~ 산다는 것은 정년 아름다은 것이야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이길래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민들레꽃을 바로 봅니다.  어디선가 묶인 손으로 이 꽃을 꺾어 정성껏 품에 안고 내 손에까지 쥐어준 그분의 애정과 속뜻을 정신 차려 내 삶에 새깁니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 꽃으로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 흔하고 너른 꽃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둥이 쇠창살 너무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말하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중에 수천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문으로 멍들은 상처투성이 가슴위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받아 들고 글썽이는 눈물로 결의합니다. 아- 아- 동지들,형제들 준엄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그렇게 저는 다시 설 것입니다.  ★★★★★★★★★★★★★★★★★★★★ 진짜 노동자  박노해 한세상 살면서 뼈빠지게 노동하면서 아득바득 조출철야 매달려도 돌아오는 건 쥐씨 알만한지 죽어라 생산하는 놈 인간답게 좀 살라고 몸부림쳐도 죽어라 쇳가루만 날아들고 콱콱 막히고 골프채 비껴찬 신선놀음 허는 놈들  불도자 처럼 정력 좋은 이윤추구에는  비까번쩍 애국갈채 제기랄 세상사가 왜이리 불평등한지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생각도 못하고 사는 놈은 죽은 송장이여 말도 못하는 놈은 썩은 괴기여 켈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실천하는 사람 동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진실로 인간 이제 진짜 노동자 이제 비암이라고 다 비암이 아니여 독이 있어야 비암이지 센방이라고 다 센방이 아녀 바이트가 달려야 센방이지 노동자라고 다 노동자가 아니제 동료와 어깨를 꼭 끼고 성큼성큼 나아가 불도자 밀어제께 우리 것 찾아 담은 포크레인 삽날 정도는 되어야  진짜 노동자지  ★★★★★★★★★★★★★★★★★★★★ 마지막 시  박노해 거대한 안기부의 지하밀실을  이 시대의 막장이라 부른다. 소리쳐도 절규해도 흡혈귀처럼 남김없이 빨아먹는 저 방음벽의 절망 24시간 눈 부릅뜬 저 새하얀 백열등 불어 불엇!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과  온 신경이 끊어 터질 듯한 고문의 행진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무너질 수는 없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 그것은 우리들 희망의 파괴 우리 민중의 해방 출구이 붕괴 차라리 목숨을 주자 앙상한 이 육신을 내던져 불패의 기둥으로 세워두자 서러운 운명 서러운 기름 밥의 세월 뼛골시게 노동하고도 짓밟혀 살아온 시간들 면도날처럼 곤두선 긴장의 나날 속에 매순간 결단이 필요했던 암흑한 비밀활동 그 거칠은 혁명투쟁의 고비마다 가슴 치며 피눈물로 다져온 맹세 천만 노동자와 역사 앞에 깊이 깊이 아로새긴 목숨 건 우리들의 약속 우리들의 결의 지금이 그때라면 여기서 죽자 내 생명을 기꺼이 바쳐주자 사랑하는 동지들 내 모든 것인 살붙이 노동자 동지들 내가 못다 한 엄중한 과제 체포로 이어진 크나큰 나의 오류도  그대들 믿기에 승리를 믿으며 나는 간다 죽음을 향해 허청허청  나는 떠나간다. 이제 그 순간 결행의 순간이다. 서른 다섯의 상처투성이 내 인생 떨림으로 피어나는 한줄기 미소 한 노동자의 최후의 사랑과 적개심으로 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  마지막 생의 외침 아 끝끝내 이 땅 위에 들꽃으로 피어나고야 말 내 온 목숨 바친 사랑의 슬로건 "가자 자본가세상, 챙취하자 노동해방"  ★★★★★★★★★★★★★★★★★★★★ 강철 새잎 박노해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엄흑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 아직과 이미 사이 박노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 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 줄 끊어진 연 박노해  한겨울 바람이 맵찬 어느 날이었어요 창살 너머 어둑한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줄 끊어진 가오리 연 하나가 뒤척이며  고행중이더군요 스스로를 산채로 파묻고 인연 줄도 다 놓아 버려 깊어 가는 감옥이 조금은 적막하지만 한사코 붙잡지 않습니다 탓하지도, 의지하지도, 소망하지도 않습니다. 난 지금 줄 끊어진 연처럼 홀로 빈 하늘 떠도는 듯해도 하하, 나는 나대로 고독한 긴장 속에 생명줄 내건 치열한 날들입니다. 보이는 줄만 줄일까요 세 손으로 거두어야만 삶일까요 이헐게 날면 되는 것을  줄 없는 줄을 타고 허공 찬바람 속에 몸 던져주며 나는 홀로 날았습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내 목숨 같은 외줄을 끊고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다시 이어지는 고투의 세월을  참흑한 투쟁과 묵상의 나날이었습니다 아- 눈 맑게 열리고 마침내 내 인연의 때가 오는 날 줄 없는 줄을 통해 아직도 첫 마음 밝혀든 그대에게 나 뜨거운 떨림으로 차전할 것입니다. 그래요 희망의 줄은 이미 저마다의 몸 속에 내장되어 있고 좋은 세상은 이미 현실 속에 와 자라고 있고 외줄의 때가 있고 거미줄의 때가 있고 밤새 거미 한 마리가 제 몸 속에서 투명한 줄을 뽑아 쇠창살에 잘 짜인 집을 짓더니 아침 햇살에 이른 영롱한 팽팽한  거미 줄망이 그대로 한 우주, 내 삶의 안과 밖이 이어지는 관계  그물 망으로 확 비추어 오더군요.  ★★★★★★★★★★★★★★★★★★★★ 겨울이 온다 박노해 와수수 가랑잎 쓰는 바람에 삭발한 머리 쳐드니 하늘은 저만큼 높아져 있다. 나는 이만큼 낮아져 있는데 시린 하늘 흰 구름은  옥담 질러 사라지고 나는 컴컴한 독방으로 사라지고 맑은 가을볕도 잠깐 여위어가는 가을 설움도 잠깐 벌써 독방 마루 바닥이 찹다 의시시 몸 웅크리며 겨울 보따리 풀어 해진 옥 궤맨다 아 어느덧 저만큼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벽 속에 시퍼렇게 정좌한 채  겨울 정진 깊어가는 날 온다 대낮에도 침침한 독거방 불빛 아래  갑자기 바느질 손 바빠진다.  ★★★★★★★★★★★★★★★★★★★★ 신혼일기  박노해 길고 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긴 이별에 한숨 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 뿜으며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야간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위로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소곤소곤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도 짧다.  ★★★★★★★★★★★★★★★★★★★★ 거룩한 사랑  박노해 성은 피과 능이다. 어린 시절 방학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피를 뭍혀 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깍 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 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끊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을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
946    박용래 시모음 댓글:  조회:5809  추천:0  2015-04-12
      [박용래 시인 시모음]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별리(別離)                                        노을 속에 손을 들고 있었다, 도라지빛.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손끝에 방울새는 울고 있었다.     연시(軟枾)                                        여름 한낮 비름잎에 꽂힌 땡볕이 이웃 마을 돌담 위 연시(軟枾)로 익다 한쪽 볼 서리에 묻고 깊은 잠 자다 눈 오는 어느 날 깨어나 제상(祭床) 아래 심지 머금은 종발로 빛나다. 월훈(月暈)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무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溫氣)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월훈                                                             곰팡이                                                   진실은 진실은 지금 잠자는 곰팡이 뿐이다 지금 잠자는 곰팡이 뿐이다 누룩 속에서 광 속에서 명정(酩酊)만을 위해  오오직 어둠 속에서 ...... . 거꾸로 매달려   저녁 눈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점묘(點描)                                               싸리울 밖 지는 해가 올올이 풀리고 있었다. 보리 바심 끝마당 허드렛군이 모여 허드렛불을 지르고 있었다. 푸슷푸슷 튀는 연기 속에 지는 해가 이중으로 풀리고 있었다. 허드레, 허드레로 우는 뻐꾸기 소리 징소리 도리깨 꼭지에 지는 해가 또 하나 올올이 풀리고 있었다   보름                                                        官北里 가는 길  비켜 가다가  아버지 무덤  비켜 가다가  논둑 굽어보는  외딴 송방에서  샀어라  성냥 한 匣  사슴표,  성냥 한 匣  어메야  한잔 술 취한 듯  하 쓸쓸하여  보름, 쥐불 타듯.    잔(殘)                                               가을은 어린 나무에도 단풍 들어 뜰에 산사자(山査子) 우연듯 붉은데 벗이여 남실남실 넘치는 잔 해후(邂逅)도 별리(別離)도 더불어 멀어졌는데 종이, 종이 울린다 시이소처럼   설야(雪夜)                                              눈보라가 휘돌아간 밤  얼룩진 벽에  한참이나  맷돌 가는 소리  고산 식물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돌리시던  오리오리  맷돌 가는 소리   밭머리에 서서                                            노랗게 속 차오르는 배추밭머리에 서서 생각하노니 옛날에 옛날에는 배추꼬리도 맛이 있었나니 눈 덮힌 움 속에서 찾아냈었나니 하얗게 밑둥 드러내는 무밭머리에 서서 생각하노니 옛날 옛날에는 무꼬리 밭에 채였나니 아작아작 먹었었나니 달삭한 맛 산모롱을 굽이도는 기적 소리에 떠나간 사람 얼굴도 스쳐가나니 설핏 비껴가나니 풀무 불빛에 싸여 달덩이처럼 오늘은  이마 조아리며 빌고 싶은 고향 쓰디쓴 담배재                                      - 유고시   아무리 굽어 보아도  보이지 않는  헤아리면 헤아일수록  헤아릴 수 없는  이러한 깊은 층층계에  나는 능금처럼  떨어져 있다.  이제 어머니의 자장가는  잃어버렸고  세정(世情)은 오히려 감상(感傷)이었다 벗은 나무처럼 서서  모호(模糊)한 인생(人生)이  너무 시를 쉽게 묶는가보다  오늘밤도 소복이 쌓이는    감새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  주렁주렁  감꽃 달고  고두박질 살아라  동네 아이들  동네서 팽이 치듯  감꽃  노을 속에 살아라  머뭇머뭇 살아라  감꽃 마슬의 외따른 번지 위해  감꽃 마슬의  조각보 하늘 위해  그림 없는  액자 속에 살아라  감꽃  주렁주렁 달고  감새,          박용래 朴龍來 (1925. 8. 14 ∼ 1980. 11. 21)          충남 부여(扶餘) 출생. 강경상업(江景商業)을 졸업하고 은행원·중고교 교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5년 시 《가을의 노래》, 1956년 《황토(黃土) 길》 《땅》 등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데뷔하였다. 그 후 《엉겅퀴》 《코스모스》 《소묘(素描)》 《저녁 눈》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여 1969년에 현대시학사(現代詩學社) 제1회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향토적인 정서를 시적 여과를 통해 간결하고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한 갈래를 형성하였다. 시집 《싸락눈》 《백발의 꽃대궁》과 공동시집 《청와집(靑蛙集)》, 시선집 《강아지풀》 등이 있다.    박용래     박용래 시비 위치 : 대전시 중구 사정공원 내 시 : 저녁 눈           시의 가랑잎 되씹는 바람 속 노새를 따라  박용래의 시는 감빛이다. 그의 시에는 감잎에 반짝이는 햇살과 하얀 감꽃과 홍시내음으로 가득하다. 그의 흔적을 찾아나선 며칠은 온통 회색 구름뿐인 겨울 하늘이었지만 줄곧 감냄새가 따라 다녔다. 오류동 막다른 골목을 시인 대신 지키고 있는, 키가 훌쩍 커버린 감나무를 만난 뒤로 시인의 자취를 따라 다닌 모든 길목은 감빛으로 물들었다.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 주렁주렁/ 감꽃 달고"라고 노래했던 대로 아직 그는 한 마리 감새로 우리 속에 살고 있었다.  박용래는 1925년 충남 논산 강경읍에서 태어났다. 기차가 지나가는 강경의 모든 풍경, 채운산과 놀뫼, 황산천과 그 나루터, 옥녀봉 등에서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서정을 모두 흡수하며 성장한다. 그의 시집 전체에서 정서적 모태가 된 고향이 끊임없이 반짝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한 박용래는 조선은행 서울본점으로 발령받아 상경한다. 20세가 되는 해인 1944년 조선은행 대전지점으로 전근오면서 문학적 열정을 얻게 된다. 징집영장을 받으며 은행을 사직하고, 다시 해방을 맞이하면서 시의 혼을 갖게된 박용래는 1946년 정훈, 박희선 등과 를 조직하고『동백』을 간행하면서 습작에 몰두한다. 이 무렵 줄곧 그의 영향을 준 박목월을 만나고, 1955년《현대문학》에 박두진의 추천을 완료하면서 문학적 지평을 열게 된다.  그의 시세계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연민과 공감으로, 청록파에 이은 전통적 리리시즘의 새로운 계승으로, 전통적 한의 정서 혹은 민중의 삶의 터전에 둔 문학적 토양 등 다양한 각도로 평가되었다. 모두 시인의 시 속에 처음부터 끝까지 넘치고 있는, 적막과 주황빛 햇살과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잘 읽어낸 것이리라. 이처럼 그의 시적 관심은 마지막까지 오직 독자적인 서정을 향토적인 사유 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가 그를 더욱 토속적인 세계로 끌고 가지 않았을까.  콩나물이나 키우라  콩나물이나 키우라  콩나물 시루에 물이나 주라  콩나물 시루에 물이나 주라 (「微吟」에서)  세상 구차함을 하얀 무명올로 가리우자  세상 억울함을 하얀 무명올로 가리우자 (「학의 落淚」에서)  오는 봄비는 겨우내 묻혔던 김칫독 자리에 모여 운다  오는 봄비는 헛간에 엮어 단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 우는 봄비여 (「그 봄비」에서)  위에 보이듯 그의 시세계 속에는 사소하고, 소외되고, 버려지고, 사라진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연민이 줄기차게 흐른다. 아무리 깊은 바다라도 물결에 닿는 빛살로 반짝이듯이 작고 잊혀지고 외로운 것들은 존재의 심연은 읽어내는 물비늘이었다. 그 허무한 아름다움들에 천착하고 있는 언어는 곧장 눈물과 상관되는 것이리라. 콩나물이나 하얀 무명올, 버들눈 같은 미세한 몸짓은 존재로서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눈물겨운 의지가 아닐까. 삶에 대한 응어리가 존재에 대한 눈물겨움으로 나타나, 그는 끊임없이 눈물줄기를 닦는 '눈물의 시인'으로 불렸던 것이리라.  시인은 1965년 대전시 오류동 17-15번지에 정착하면서 택호를 청시사(靑枾舍)라 칭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교사라는 사회적 직업을 버리고 전업시인으로 집을 지키게 되는데, 시의 푸른 터전으로, 시혼의 샘터로 자리잡는 이 청시사에서 첫시집『싸락눈』(1969)을 비롯한『강아지풀』(1975),『백발의 꽃대궁』(1979)등의 시집이 탄생하게 된다.  시집 제목에서만도 읽혀지듯이 박용래의 시세계는 향토색이 짙다. 그는 시를 외워서 썼다고 한다. 가슴에 담고 다니며 계속 언어를 고르고 외워 입 속에서 한 편의 시로 외워질 때 비로소 종이에 옮겼다고 한다. 낱말 하나하나, 마음으로 음미하며 정성을 다한 시의 정신이 정제된 시어에 그대로 드러난다. 언어에 대한 예민함과 결벽이 그가 얼마나 시에 순절한 위인이었던가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는 자기 작품을 거의 외우는 시인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자신을 시의 가랑잎을 되씹고 씹는 바람 속 노래라고 읊지 않았을까.  청시사는 박목월시인을 비롯한 한성기, 임강빈, 신정식, 홍희표, 최상규 등 글쟁이들과 이종수, 최종태, 권영우 등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가슴 더운 이들의 단골 술자리며 문학 사랑방이었다. 처음엔 꽃밭, 채소밭이 넓었던 이 초가삼간은 1973년 석조 슬라브의 현대식 주택으로 고쳐지어진다. 이 세월을 지켜본 감나무는 홀로 빈집을 지키던 시인의 뿌리 깊은 친구였다. 타향인 한밭에서 끊임없이 고향의 서정 속으로 달려가게 하던 친구. 박용래 시에서 유독 감이 많은 소재가 되고 감빛·감냄새가 가득한 것은 이 감나무 때문이리라. 아래는 한 시인에게 보낸 편지글의 부분이다.  -무성한 창 밖의 감나무가 방안에까지 들어올 듯 합니다. 집을 찾는 사람이 감나무가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 답답하다고 합니다만 나는 절대로 그 나무를 벨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한 그루 감나무가 무료한 朝夕을 한없이 위안해 줍니다. (후략)-  1980년 향년55세로 불현듯 시인은 지상을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대전 근교 산내의 천주교 묘지에 시인을 묻었다. 그가 그리운 세상은 1984년 10월 대전 보문산 공원에 박용래 시비를 세워놓고 한밭 곳곳에 남아 있는 그의 울음을 듣는다. 버드내 기슭, 목척교, 중앙시장 먹자골목 대포집들, 오류동 근처의 선술집들, 유성 들판을 비롯한 한밭 근교 등 술친구를 찾아 끝없이 한밭을 순례를 하던 시인의 울음을.  접시술은 마시던 시인은 가고 없다. 허름한 제재소와 물엿 가게, 짐꾼들의 요기를 돕는 옴팡집 주막이 있던 동네는 이제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고, 교통정체가 심한 중심로가 되었다. 시인이 종종 들리던 골목 앞 막걸리집은 고급 수입가구점이 되어 있었다. 작품 속에도 있는 은 대로에서 한 걸음 꺾어든 막다른 골목길로 초라하다. 오직 키 큰 감나무 한 그루만이 세기가 바뀐 지금도 시인의 서재 앞 마당가에 선 채 까치밥 두어 개 높다랗게 매달고 있었다.  반쯤 들창 열고 본다.  드문드문 상고머리 솔밭  넘어가는 누런 해  반쯤만 본다.  잉잉 우는 전신주  귀퉁이에 매달린 연 꼬리  아슬히 비낀 소년의 꿈도  반의 반쯤만 본다 (「물기 머금 풍경2」에서)  반쯤, 반의 반쯤만이라도 세상을 보고 싶어했던 박용래의 눈물은 이제 이 사이버 시대에 우리에게 어떤 향기로 전해지는 걸까. 상치꽃은 상치 대궁만큼 웃는다고 했던 시인의 웃음은 어떤 노래로 흐르게 걸까. 시인 떠난 후 급속도로 변해버린, 정보가 최고의 선이 된 인터넷 현실은 그가 쏟아 놓은 눈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손때 묻은 단지팽이를 돌리는, 그 팽이에 다시 크레용 색칠하는 일이리라. 멈추면 때묻은 현실이지만, 돌리면 눈부신 서정의 아름다움으로 차오르는 언어의 세계. 그 마술 같은 슬픔이 시인의 노래가 된다. 그래서 시인은 울 수밖에 없으리라.  한때 나는 한 봉지 솜과자였다가  한때 나는 한 봉지 붕어빵였다가  한때 나는 좌판에 던져진 햇살였다가  중국집 처마밑 鳥籠 속의 새였다가  먼 먼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오류동의 동전 (「오류동 동전」)  우리는 아직 시인의 울음이 필요하다. 외롭고 깊은 그리움을 위하여, 무엇보다 인간적인 슬픔을 위하여. 오류동의 동전이 되었던 그는 이제 이 사이버 문화 속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아마도 사람들의 잠을 재우는 창가 달빛이나, 사람들의 잠을 깨우는 자명종시계가 되지 않았을까.     
945    <민들레> 시모음 댓글:  조회:4350  추천:1  2015-04-12
  김재진의 '너 닮은 꽃 민들레' 외 + 너 닮은 꽃 민들레 돌 틈에 피어 있는 너 닮은 꽃 민들레 시멘트 담 사이로 고개 내민 훤하고 착한 얼굴 작지만 약하지 않은 네 웃는 모습 보며 나는 네 노란 웃음 보며 나는 네게 가 안기고 싶다. 힘들어도 표 내지 않는,  밟혀도 꺾이지 않는, 네 얼굴 보며 나는 한 아름 하늘을 안고 싶다 (김재진·시인, 1955-) + 민들레 민들레가 핀다 아이들이 부는 팽팽한 풍선처럼 마음 졸이던 그런 봄날에 눈물 같은 풀꽃 데리고 소리, 소문 없이 그렇게 온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어도 고샅길을 지나 우리네 뒤뜰까지 왔다가 그렇게 간다 우리네 그리움도  거두어간다. (하청호·시인, 1943-) + 민들레 꽃 시골집 안마당이나 장독대 옆 아니면 야산 중턱에 아무렇게나 예쁘지도 않으면서 평화롭게 피어 있는  민들레꽃처럼 한세상 소리 없이 피었다가 조용히 잎 떨구고 가진 것은 모두 허무로 날려보내고 다시금 피어 나는  영혼의 꽃 무채색 하얀 솜털 눈부시게 반짝이며 당신이 부르시면 신부처럼  하이얀 꽃으로 당신에게 날아가리라. (김소엽·시인, 1944-) + 민들레 꽃대궁은 왜 속이 비었는가  민들레꽃 지켜보았네 수정이 끝나면 꽃대궁 더 높이 자라네 바람에 잘 흔들리려고 꽃대궁 얇아지네 살 수만 있다면 먼 곳까지 씨앗 날려주려는 여린 마음의 탄력 멀리 강화도까지 날아 온 꽃씨가 되어 민들레꽃 민들레꽃 지켜보았네 (함민복·시인, 1962-) + 민들레   먼 산엔 아직 바람이 찬데  가느다란 햇살이 비치는  시멘트 층계 사이에  노란 꽃이 피었다.  나는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고  잠시 황홀한 생각에 잠긴다.  무슨 모진 그리움들이 이렇게  고운 꽃이 되는 것일까.  모진 세월 다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살아온 나를  이렇듯 정신없이 붙들고 있는 것일까.  작은 꽃 이파리 하나로도, 문득  세상은 이렇게 환한데  나는 무엇을 좇아 늘 몸이 아픈가  황홀한 슬픔으로 넋을 잃고  이렇듯 햇빛 맑은 날  나는 잠시 네 곁에서 아득하구나.  (최동현·시인) + 사랑한다는 것 길가에 민들레 한 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안도현·시인, 1961-) + 남풍南風 하이얀 민들레가 하늘하늘 피어난 오월 들녘을 거니는데 "아, 하이얀 민들레가 피었네!" 하고 오월 들녘을 거니는데 남녘 그 어느 외진 산모퉁이  이름 없는 무덤에서 초연히 일어났을 법한  남풍 한줄기 하이얀 민들레 꽃 이파리 흔들어, 흔들어, 오네 사랑을 위해 한번, 무덤에 묻혀본 적 있느냐고 (정세훈·시인, 1955-) + 민들레  이제 몇 장 남지 않은 내 인생의 백지 위에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진술 같은  착한 시 몇 줄 쓰고 싶네  흙먼지 풀풀 나는 길섶에  가난하게 자리 비비고  기침 콜록이며 한세월 살았어도  밟히고 밟힌 꽃대궁 힘겹게 일으켜 세워선  어느 날 아침 노랗디노란 꽃 한 송이 피워  그 누가 보든 말든  민들레라 이름지어놓고 홀씨나 되어  바람 좋은 날 있으면 그냥 서운할 것도 없이  이 세상 홀홀이 떠나면 그만이듯  버리고 버린 나날 끝에  그런 시 몇 줄 쓰고 싶네  (이인해·시인) + 민들레의 영토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로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이해인·수녀, 1945-)    ==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그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릴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파,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곽재구·시인, 1954-) == 서울 민들레==   보도블럭 틈새에  노랗게, 목숨 걸었다  코흘리개 아이들 등교길 따라가다  봄 햇살 등에 업고 장난치며  놀다가, 길을 놓쳤다  꿀꺽-- 서산으로 넘어가는  봄. (김옥진·시인, 1962-) == 민들레의 연가==  은밀히 감겨 간 생각의 실타래를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날마다 봄 하늘에 시를 쓰는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 풀고 얇은 씨를 날리면  춤추는 나비들도 길 비켜 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해에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이해인·수녀, 1945-)  == 꽃의 자존심 == 뭉쳐놓은 듯 버려놓은 듯 땅에 바짝 엎드려 꽃자루 없이 앉은 앉은뱅이 꽃 피우는 노랑 민들레 흔해서 보이지 않고 흔해서 짓밟히는 꽃이 제 씨앗 은빛으로 둥글게 빚는 바로 그 순간 하늘로 꽃대 단숨에 쑥쑥 밀어 올리는 꽃의 마지막 자존심이 있다 (정일근·시인, 1958-) == 민들레== 민들레꽃 진 자리 환한 행성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가벼운 홀씨들이 햇빛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거장도 아닌 곳에 머물러 있는 행성 하나 마음의 끝에는 돌아오지 않을 행성 하나 있어 뿔뿔이 흩어질 홀씨들의 여려터진 마음이 있어 민들레는 높이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윤학·시인, 1965-) == 민들레== 풀씨로 흩날려  산천을 떠돌다  못 다한 넋이 되어  길가에 내려앉다  곧은 심지를 땅 속에 드리우고  초록이 어두워 대낮에도 노랗게 불 밝히며  겸손되이 자세 낮춘  앉은뱅이 꽃이여!  불면 퍼지는 하이얀 씨등  바람결에 흩날려도  머무는 곳 가리지 않는  떠도는 넋이여,  끝없는 여정이여!  뜯겨도, 짓밟혀도  하얀 피로 항거하며  문드러진 몸을 털고  다시금 고개 드는 끈질긴 생명 (손정호·시인) == 신기한 노랑 민들레 하나==     3월 14일 따뜻한 오후 2004년 신기하다  노랑 민들레 하나 잎은 바짝 땅에 붙고 꽃대도 없는 노랑 민들레 하나 자갈 깔린 마당 돌 사이에 피어난 노랑 민들레 하나 놀랍다는 느낌이 가슴에서 배로 스쳐 간다 정말 처음이야 저 노랑 민들레는 정말 신기해 (김항식·시인, 1925년 만주 흑룡강성 출생) == 민들레꽃 연가==     한적한 논둑 길 이름 없는 들풀 속에 자라나서 어느 봄날  노란 꽃잎 곱게 펼쳐 미소를 보낼 때 그때도 당신이 모른 척하시면 그리움으로 맺힌 씨앗 하나하나에 은빛 날개를 달아서 그대 창에 날려보내노니 어느 것은 바람에 방향을 잃고 어느 것은 봄비에 쓸려가기도 하겠지만 간절한 그리움의 씨앗 하나 그대 창에 닿거든 무심히 버려둬서  척박한 돌 틈에 자라게 하지 말고 그대 품 같은 따스한 햇살 잘 드는 뜨락에 심어서 이듬해 봄 화사하게 피어나면 내 행복의 미소인냥 아소서  (이임영·시인) == 나는 민들레를 좋아합니다 == 꽃집에는 민들레꽃이 없습니다. 그것은 팔 수 있는 꽃이  아닌가 봅니다. 마치 우리가 사랑과 다정함 우정과 소중한 사람을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야생으로 자라나 한적하게 꽃을 피우고 마침내 자신을 향해 허리를 굽힐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나는 당신에게 민들레꽃 하나를 꺾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몹시 원망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았습니다.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이 없는지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드레아 슈바르트·독일) == 앉은뱅이 부처꽃==  천지 사방에다 무허가 판잣집을 지은 그는  이름 없는 목수였다  갈 봄 여름 없이  연장통을 옆에 끼고  삼천대천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깎아지른 벼랑 위에 암자를 지었고  지붕 위로 날려온 흙 위에도 초가를 지었다  눕는 곳이 집이었고  멈추는 곳이 절이었다  몇 달 전부터 요사채 말석에  가부좌를 틀고 웅크리고 앉아  문득 한 소식을 얻었는지  노오란 안테나를 하늘로 띄우며  꽃씨 몇 개 날리며 천리 길을 떠나는 그는  제 앞으로 등기한 집 한 채 없이도  바닥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오늘은 민들레꽃이 세운 집 한 채를 보았다. (고영섭·시인, 1963-) == 작은 잎사귀들이 세상을 펼치고 있다== 시멘트 블록과 블록 사이 가느다란 틈 사이 돋아있는 민들레 잎사귀들이 작은 실톱 같다 이제 막 시멘트 블록을 힘들게 톱질하고 나온 듯하다  무엇이 저렇듯 비좁은 공간을 굳이 떠밀고 나오게 했을까 저 여리고 푸른 톱날들을 하나도 부러뜨리지 않고  시멘트 블록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다 이제 꽃대를 올리면 금빛 꿈의 꽃망울이 허공에 반짝 피어나겠지 시멘트 불록과 불록 사이 가느다란 틈 사이 작은 민들레 한 포기 푸르게 펼쳐놓은 세상을 본다 저 푸른 세상 속 그 무엇이 이렇듯 나를 잡아끌고 있는 것일까  아니 나는 짐짓 끌려가 또 한 세상 깜빡 빠져드는 것일까 시멘트 블록과 블록 사이 가느다란 틈 사이 실톱 같은 작은 잎사귀들이 푸르게 세상을 펼치고 있다  (이나명·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 민들레 압정==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이문재·시인, 1959-)
944    화투 48장의 뜻과 그 유래 댓글:  조회:7023  추천:0  2015-04-12
[출처] 화투 48장의 뜻과 유래 |작성자 바닷가애   화투 48장의 뜻과 유래  ###[ 이야기 1] ### 화투는 '19세기경 일본에서 건너온 놀이'라고 합니다만  정작 일본에서는 없어진 놀이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떻습니까?  명절때는 물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으례 필수로 여겨지지 않습니까?  게다가 한국인의 독창성(?)으로 부지기수의 '고스톱'방법을 만들어냈습니다.  '꽃 그림 놀이'라는 뜻의 語源  그럼 화투를 옆에 놓고 직접 봐가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화투를 한자로 쓰면 '花投'입니다.  원조격인 일본에서는 화찰(花札-하나후다)라고 부릅니다.  꽃이 그려진 카드를 던지는 게임, 또는 꽃이 그려진 카드를 맞추는 게임이라는 뜻이지요.  그럼 화투가 일본에서 만들어졌을 때 화투의 48장,  특히 1월부터 12월까지의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1월- '복과 건강'을 담은 松鶴  1월 - 맨 먼저 솔(松)과 학(鶴)이 나오지요?  먼저 솔부터 설명할까요?  일본에는 정월 초하루부터 1주일동안 소나무(松-마쯔)를 집앞에 꽂아두는 풍습이 있습니다.  카도마쯔(門松)라고 불리는 세시풍속으로 福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도 각 집마다 각 회사마다 변함없이 이뤄지고 있는 전통입니다.  이런 유래가 소나무가 1월을 장식하게 된 이유라고 합니다.  1월 화투에 솔과 함께 등장하는 게 학입니다.  우리도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치듯이 학은 일본에서도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결국 1월의 화투는 '福과 건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2월 - '우메보시'에서 보는 일본인들의 '매화'觀 2월 - 무슨 꽃입니까? 그렇죠. 매화입니다.  2월은 일본에서 매화 축제가 벌어지는 때입니다. 꽃도 꽃이려니와 특히 열매, 즉 매실로 만든 절임인 우메보시(梅干)는  일본인들의 입맛을 돋구는 대표적 일본음식입니다.  일본인을 어머니로 둔 어느 한국인의 수기에 보면  "한국에 살던 그 일본인 어머니가 "죽기 전에 '우메보시'가 먹고 싶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만큼 매화는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꽃입니다.  화투의 2월을 매화가 장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죠? 또 매화나무에 앉아있는 새는 꾀꼬리류의 휘파람새(鶯-우구이쓰)라고 합니다.  일본의 초봄을 상징하는 새라고 하더군요.  참고로 우리의 꾀꼬리는 일본에서는  '고려 꾀꼬리'(高麗鶯-코라이 우구이쓰)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뒤집어 해석하면 '우리나라의 꾀꼬리'는 일본에는 거의 없는 텃새라는 이야기가 되네요.  2월의 새를 잘 보시죠. 우리 꾀꼬리와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지?  제 눈에는 그게 그거인 것 같이 보입니다만...     3월 - 3光의 '사쿠라를 담은 바구니'는?  3월 - 3월은 잘 아시다시피 벚꽃, 즉 사쿠라(櫻)입니다.  3광(光)을 한 번 보실까요? 대나무 바구니에 벚꽃을 담아놓은 것 처럼 보입니다만  '만마쿠'(慢幕)라고 부르는 막이라고 합니다.  각종 式場에 둘러치는 전통휘장으로 쓰여진다고 하네요.  물론 제가 일본에서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4월 - '등나무'와 '비둘기'는 전통명가의 상징  4월- 검은 싸리나무처럼 보여 보통 '흑싸리'라고 부릅니다만  원래는 등나무(藤-후지) 줄기와 잎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등나무는 일본의 초여름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가마의 장식 또는  가문의 문장(紋章)으로도 자주 쓰이는 나무입니다.  일본에서 후지(藤)로 시작하는 이름들, 예를 들어 후지모토(藤本), 후지타(藤田),후지이(藤井)등의 이름이 많은 것도 '등나무'가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친숙한 나무인가를 설명해주는 사례이지요. 또 4월에 그려진 새는 비둘기(鳩-하토)입니다.  일본에서 비둘기는 '나무에 앉더라도 자신의 부모보다  더 낮은 가지에 앉는 예절바른 새'로 평가됩니다.  가문의 문장(紋章)에 쓰는 엄숙함이 담겨진 등나무인만큼  거기에 앉는 새도 '예절의 상징'인 비둘기를 썼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지요.    5월- '초'가 아니라 '창포'랍니다 5월- 우리는 초(草),  즉 난초라고 하지만 실제는 '창포(菖蒲-쇼우부)라고 합니다.  5월의 풍취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하는데 이 점은 우리하고 비슷하죠.  우리도 5월5일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감는 풍속이 있으니까요.    6월 - 향기없는 모란에 왠 나비? 6월 - 모란입니다.  일본에서는 '보탄'(牧丹-보탄)이라고 해서 꽃중의 꽃,  고귀한 이미지의 꽃으로 인식됩니다.  여기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발견됩니다.  한국에서는 모란은 향기가 없다고 해서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게 관례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모란의 향기를 확인했는지 나비를 그려넣었습니다.  6월의 '열끝 자리'화투를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요. 틀림없이 '나비'가 앉아있습니다.    7월 - 멧돼지의 등장이유는?  7월 - 속칭 '홍싸리'라고 하죠.  실제로도 7월의 만개한 싸리나무(萩)를 묘사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4월의 '등나무'를 '흑싸리'라고 오해(?)하는 것도  4월의 꽃이 이 7월의 꽃 생김새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싸리나무를 지나고 있는 동물은 멧돼지(猪-이노시시)인데  왜 멧돼지가 7월에 등장하는지는 아직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혹 아시는 분 있으시면 '댓글'형식으로 첨가해주시기 바랍니다.     8월 - '한국과 일본의 그림이 달라요' 8월 - 속칭 '8월의 빈 산(八空山)'이라고 합니다만  화투 48장중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뒤 그림이 바뀐 것이 이 8월이라고 합니다.  원래 일본화투의 8월에는 '가을을 상징하는 7가지 초목 (秋七草)'  - 억새, 칡, 도라지등 -이 그려져 있었는데  우리의 지금 화투에는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밝은 달밤과 세마리의 기러기가 떼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느쪽이 더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지요?     9월 - '일본 중앙절'과 '9쌍피'에 담겨진'長壽' 9월 - 국화이죠. 국준(菊俊)이라고도 합니다만  9월에 국화가 등장한 것은 일본의 중앙절(9월9일)관습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이때가 되면 '술에 국화꽃을 넣어 마시면서 무병장수를 빌었다'고 합니다.  9월의 '열끝자리-흔히 쌍피로 대용되는 그림'을 보십시요.  목숨 '수(壽)'자가 적혀있지요?  무병장수를 빌었던 9월 중앙절 관습때문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일본 왕실의 문양도 '국화'입니다.  무병장수의 기원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그렇다면  옛부터 '왕이건 상것이건 그저 오래살고 싶은 욕망'에는 차이가 없었나 봅니다.    10월 - 사슴은 사냥철의 의미? 10월 - 단풍의 계절입니다.  단풍과 함께 '사슴'이 등장하는 것은 사냥철의 의미라고 합니다.  단풍에 사슴이 곁들여진 아름다운 자연을 연상하는 것이 우리의 정서인데 반해  단풍철에 사슴사냥을 연상하는 것이 옛 일본인들의 정서였던가 봅니다    11월 - 일본에서는 '똥'이 12월이래요. 11월 - '오동(梧桐)'의 '동'발음을 강하게 해서 속칭 '똥'이라고 부르죠.  원래 일본 화투에서는 이 '똥'이 '12월'이었다고 합니다.  '오동(梧桐)'을 일본말로 '키리'라고 하는데  '끝'을 의미하는 '키리(切)'와 발음이 똑같아 마지막달인 12월에 배치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와서 11월로 순서가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똥광(光)'에 있는 닭대가리 같은 동물은 무엇인지 아시죠?  예, 왕권을 상징하는 전설속의 동물, 봉황입니다    12월 - 비'光'의 갓 쓴 사람은 도대체 누구?  12월 - 12월의 광(光)에 나오는 갓 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일본의 유명한 옛 서예가라고 합니다.  개구리가 버드나무에 오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것을 보고 '득도'했다는  한 서예가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비광(光)을 잘 들여다 보십시요.  다른 광(光)들과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옵니까?  틀림없이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네. 그렇죠.  다른 달의 광(光)은 '光'字가 아래쪽에 적혀있는데  이 비광(雨光)만큼은 '光'字가 위쪽에 적혀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비광(雨光) 아래쪽을 보면 '노란 개구리'가 보이시죠?  노란색이지만 '청개구리'라고 생각하면 추측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거꾸로 하는 청개구리의 설화에 따라 아래로 가야할 '光'字를  거꾸로 위에 적어넣었다는 가설도 가능합니다.  물론 진짜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人情이 담겨야 한국적 화투  일본인들에게 '화투'를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모른다'고 합니다.  일본에 그런게 있느냐는 반문도 많이 듣습니다.  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일본인들도 '화투는 한국인의 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스톱 망국병'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쨋든 화투는 한국인 특유의 분위기가 함께 해야 제 맛입니다.  서양의 포커처럼 침묵속에서 하는 놀이가 아닌  조금 시끌시끌한 분위기의 즐거움이 함께 해야 제맛입니다.  ### [ 이야기 2 ] ### 화투는 1543년 포르투칼 상인에 의해 최초로 일본에 전래된 서양의 카드인  카루타(かるた)에, 17세기 중엽 조선통신사를 통해 양반계층에서 유행하던  '수투(數鬪)놀이'가 접목되고, 일본 에도시대(江戶)의 우키요에(浮世繪)라는  풍속화가 결합하여 18세기 말에 완성된 것으로서,  화투의 그림은 왜색(倭色)이지만 놀이방법(ex : 고스톱)은 우리의 문화입니다. ※ 패의 종류와 그 속에 담겨진 한국과 일본의 정서차이    1월 : 송학(松鶴;솔) 일본에서는 설날부터 1주일동안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대문양쪽에  소나무를 꽂아두고 학(鶴)등의 경사스러운 그림의 족자를 걸어둔다는  일본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을 그린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와 학은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상징합니다.    2월 : 매조(梅鳥) 2월이 되면 동경도 오매시(靑梅市)의 매화공원을 비롯한 일본 전역의 공원에서  축제가 벌어질 만큼 매화는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꽃이며  꾀꼬리는 봄을 나타내는 시어(詩語)로 자주 사용되는 대표적인 텃새이지만  우리나라에서의 꾀꼬리는 매화가 피는 이른 봄에는 볼 수 없는 여름 철새입니다.    3월 : 벚꽃(사쿠라) 벚꽃은 일본의 국화(國花)이며 3월의 벚꽃축제는 헤이안(平安)시대부터 출발하여  이제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유명한 행사가 되었으며 광의 벚꽃 아래에 있는 것은 [만막]이라 불리는 것으로 지금도 일본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휘장이며  벚꽃 축제를 나타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역사문헌에서 벚꽃을 감상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일제 식민지 시대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림 A    그림 B 4월 : 흑싸리 일본의 전통시에는 계절마다 쓰이는 시어(詩語)인 계어(季語)가 있는데  흑싸리로 잘못 알고 있는 등나무는 초여름을 상징하는 계어(季語)이며  일본에서는 각종 행사시 가마에 장식하거나 가문의 문양으로 쓰이는 등  친숙한 식물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절개가 없는 덩굴식물이라하여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달밤(하현달)의 두견새는 원조(怨鳥),귀촉도(歸蜀途), 또는 망제혼(望帝魂) 이라고 하여 불길한 징조를 상징하므로  우리나라의 민화에서도 그려지지 않는 소재입니다. 패를 들때 그림 B와 같이 들어야 올바른 모양입니다.(KBS 프로그램『스펀지』참고) 등나무는 아래로 늘어져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열끗으로 사용되는 패의 그림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5월 : 난초(蘭草) 패에 그려진 꽃은 난초로 잘못 인식되어져 있지만  사실은 붓꽃(杜苕)은 보라색 꽃이피는 관상식물로서 아이리스(Iris)를 말하며  화투에 담겨진 내용은 습지의 야쯔하시라는 다리를 걸으며 붓꽃을 감상하는  전형적인 일본의 풍취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6월 : 모란(牡丹) 모란(牡丹)은 6월의 시어(詩語)로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귀한 이미지를 가진 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양꽃의 으뜸으로 장미를 가리킨다면 동양에서는 모란을 가리킬 만큼  꽃중의 왕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화에서는 신라의 선덕 여왕이 ‘당태종이 보낸 그림에  나비가 없음을 보고 모란에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고 말한 일화가 있어  모란에는 나비를 그리지 않는것이 관례로 전해내려오고 있어  모란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메시지가 부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7월 : 홍싸리 일본에서의 싸리는 가을 7초중의 선두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빗자루를 만드는  천한 수종이었으며 시조문학에서는 단 한번도 인용된적이 없는  일본인만의 독특한 정서를상징하고 있습니다. 함께 그려진 멧돼지는 7월의 사냥철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 역시 우리와는 다른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8월 : 공산(空山;공산명월) 일본패에는 가을 7초 중 하나인 억새풀이 가득히 그려져 있으나  우리의 것에는 생략되었습니다. 우리는 8월 15일을 추석이라 하여 조상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성묘와 차례로 이어지는 최대의 명절인 것에비해 일본에선 둥근 달을 보며 과일 같은 것을 창가에 두고  달에게 바치는 소박한 명절인 월견자(月見子:오츠키미)를 나타냅니다.    9월 : 국준(菊俊) 일본에는 고대 중국의 기수민속(奇數民俗)의 영향을 받아 중앙절(中陽節-9월 9일)에  술에 국화꽃을 넣어 마시며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는 일본의 관습을 나타내며  잔에 목숨 수(壽)자가 있는 것도 그런 연유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홀로 늦가을 서리속에 피어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지조있는 국화가 인고(忍苦)와 사색(思索)을 의미하며  일본의 무병장수(無病長壽)와는 다른 문화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0월 : 단풍(丹楓) 10월의 단풍은 '낮에는 홍엽(紅葉), 밤에는 홍등(紅燈)' 이라고 하며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 그 색채의 변화를 즐기는 일본인들의 풍취를 상징하며  함께 그려진 사슴은 근세에 성행했던 사슴 사냥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단풍 놀이는 우리 에게도 세시 풍속 중 하나였으나 풍류를 즐기면서  가을을 만끽하는 즐거운 단풍절에 하는 사냥은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습니다.    11월 : 오동(梧桐) 11월의 오동(梧桐)과 봉황(鳳凰)은 일본왕의 도포에 쓰이는 문양으로  왕권을 상징하며, 일본에서 오동이 12월인것은 오동을 뜻하는 [기리]라는 말이  '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동이란 본래 벽오동(碧梧桐)을 말하는 것이며, 오동과 봉황은  군자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출현한다는 영물인 봉황이 벽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 하여 고귀하고 품위있고 빼어난것의 표상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12월 : 비[雨] 광의 갓을 쓴 사람은 일본의 3대 서예가 중의 한 사람인  오노도후(小野道風;AD.894-966)이며  개구리가 버드나무에 오르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는 것을 보고 노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오노도후의 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것이며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고 합니다. 또한 비가 11월에 배치된 것과 수양버들이 등장하는것은  파란풀이 월동할 만큼 온난하며 11월에도 비가 내리는 일본의 아열대성 기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절과 맞지 않습니다. ※ 기본적인 점수에 해당하는 패    1. 광 - 광은 3장을 먹을때부터 점수로 인정하여 3장을 먹으면 3점입니다. - 광 3장 중에 비가 들어가면 비3광이라 하여 2점으로 계산합니다. - 광4장을 먹으면 비와 관계없이 4점으로 인정합니다. - 광5장을 모두 모으면 오광이 되어 15점으로 계산합니다..    2.열끗 - 열끗은 기본 무늬에서 추가적인 그림들이 있는 것인데,  5장을 모으면 1점이고 추가로 모으는 것 마다 1점씩 추가됩니다. - 7장 이상일 경우에는 멍텅구리(또는 멍따-멍텅구리 따블)라 하여  점수가 2배가 됩니다.    - 역시 열끗짜리 패이지만 고도리는 위의 그림과 같은 패3장을 모으는 것으로  5점으로 인정합니다.    3. 다섯끗  - 다섯끗은 띠 무늬가 있는 것으로, 5장을 모으면 1점이고,  한장씩 추가될 때마다 1점씩 올라갑니다.    - 또한 띠 무늬에 따라 각기 홍단, 청단, 초단 등으로 세분되는데  같은 종류를 모두 다 모으면 각각 3점을 얻게 됩니다.    4. 피  - 피 10장은 1점이 되고, 한 장씩 더 먹을 때마다 1점씩 추가합니다.            - 쌍피는 피 2장으로 계산합니다. - 국화 쌍피는 열끗이지만, 원할경우 점수 계산시 쌍피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943    러시아 詩의 태양 - 푸쉬킨 댓글:  조회:3935  추천:0  2015-04-12
러시아 시인 푸쉬킨의 삶과 시     푸쉬킨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엔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픔 법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알락센드르 푸쉬킨은 "러시아 시(詩)의 태양"이라고 일컬어진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문학가 중 한 사람입니다. 푸쉬킨은 시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한줄의 시 귀절이 바로 그 유명한 삶의 詩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라는 귀절 입니다. ------------------------------------------------------------------------------ ♧ 위시의 창작 배경은 시인 푸쉬킨이 모스크바 광장에서     소경 걸인을 만나게 된 연유에서 출발 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 러시아의 그 유명한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은  모스크바 광장에서 추운날씨에 누더기를 걸치고 구걸하는 한 소경걸인을 보게 됩니다.  광장에는 걸인들이 많았기에 그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푸쉬킨은 소경걸인을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나도 역시 가난한 처지인지라 줄 돈은 없고  돈대신 글씨 몇 자를 써서 주겠으니 그걸 몸에 붙이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얼마 후에 푸쉬킨은 친구들과 모스크바 광장에 갔는데 그 걸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푸쉬킨의 바지를 붙잡고는 ~~ “ 감사합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 전  글씨를 써주신 분이시지요 ! 신께서 도우셔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써주신 종이를 몸에 붙였더니 그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돈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였다.   푸쉬킨에게 그 소경걸인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날 써준 내용이 도대체 어떤 글 이신지요 ? "     “푸쉬킨은 말했습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 라 썼습니다.”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생각하였을 것 입니다. 지금은 비록 춥고 고단한 날을 보내고 있지만  봄을 기다리는 이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 입니다.  --------------------------------------------------------------- 위시는 일반적인 시어로 삶에 대한 진솔한 표현을 나타낸 작품으로 푸쉬킨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詩 입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과 꿈과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은 푸쉬킨 위대함을 말해준다. 시인은 현실의 삶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보따리와 지팡이가 나아요.   아니, 고생스럽고 배고픈 게 차라리 더 나아요.   그것은 내가 나의 이성을 존중해서도 아니고   이성과 헤어지는 것이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나 자유로이 둔다면   그 얼마나 활개치며   어두운 숲으로 달려가리!   열병에 걸린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그 얼마나 자유로이 멋진 꿈에 도취되어   나를 잊으리.   그리고 나의 파도소리에 귀기울이고   행복에 가득 차서   빈 하늘을 바라보리니   나 그 얼마나 힘차고 자유로우리   들판을 파헤치고   숲을 휘어뜨리는 회오리처럼   그런데 불행히도  미친다는 것은   페스트보다 더 두려운 일,   곧 갇히고   사슬에 묶이리니,   사람들은 창살 사이로 짐승을 찌르듯   찌르러 올 것이고,   그리고 밤에는 들을 것이다.   꾀꼬리의 울리는 낭랑한 목소리도 아니고   빽빽한 참나무숲의 웅성거림도 아니고   울리는 것은   친구들의 외침소리, 밤의 파수꾼의 욕설,   사슬이 쩔렁이고 삐걱이는 소리뿐. ----------------------------------------------------------------------------    내 그대를 사랑했노라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내 영혼에서 완전히 꺼지지 않나니   그러나 나의 사랑은 더 이상 그대를 괴롭히지도 방해하지도 않나니   내 그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니   내 다만 그대를 사랑했노라   이야기도 희망도 없이   때로 나의 소심함과 때로 나의 질투가 나를 괴롭혔지만   내 다만 그대를 사랑했노라, 그토록 진심으로 그토록 조심스레   신의 섭리에 따라 다른 이들이 그대를 사랑한 것만큼   위 시는 곤차로바와 결혼하기 전에 푸쉬킨이 사랑했던 여인 안나 올레니나에 대한   사랑했던 심정을 표현한 시 입니다.  사랑에 대한 애절한 심사가 문학의 열정에서도 빛을 발 합니다.    ---------------------------------------------------------------------------- 푸쉬킨의 일생   알렉산드르 푸쉬킨(Alexandr Pushkin)의 가족사를 보면 어머니의 증조할아버지는  Abram Petrovich Gannibal9(흑인)으로 아프리카 족장의 아들로 러시아인에게 노예로 팔려와 표트르 대제에게 바쳐진 후 신임을 얻게되어 귀족계급까지 오르게 되었다 합니다. 푸쉬킨은 열렬한 구애끝에 나탈랴 푸쉬키나(결혼전 성은 Goncharova)라는 경국지색의 아리따운 13세 연하의 미모의 아내를 얻었습니다.  네자녀를 두었던 곤차로바는 러시아(당시 황제시대)사교계에서 네덜란드 외교관이었던 단테스 데 헥케른D남작 과 염문을 뿌리게 됩니다. 단테스와 나탈랴가 내연의 관계라는 소문은 러시아 사교계에 소문이 나게 되고  드디어 불쾌한 소문을 접한 푸쉬킨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됩니다. 푸쉬킨의 아내는 미인이었지만,  젊고 잘생긴 남자들에게 환심을 사는 행실로 소문이 파다한 아내였다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 황제 짜르에게까지 그런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결국 1837년 1월 27일 상뜨 뻬쩨르부르크에서 두 사람의 운명적인 결투가 있었습니다. 이 결투에서 푸쉬킨은 단테스가  쏜 총알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나이 38세에 일생을 하직하게 됩니다. (단테스는 나탈랴 여동생의 남편으로 푸쉬킨에게는 처제의 남편이었습니다. 푸쉬킨의 정적들이 자유분방한 푸쉬킨을  제거하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러시아의 횃불 같은 시인 푸쉬킨은 아내의 행실에 노여워하는 바람에 슬픔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의 시처럼 노여워 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면 아마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전세계의 문학 독자들은 주옥같은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푸쉬킨은 아내를 탐하는 사람들로 부터 자신의 명예와 가족을 지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 ... ...     그 날도 페테르부르크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지만, 오후 4시가 넘어 교외 공터의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주변은 나무가 둘러싸고 있고 두껍게 눈이 쌓인 러시아의 전형적인 겨울 풍경이다. 총을 든 두 남자의 눈가에 분노와 긴장이 갈마들어 감돈다. 정적을 깨뜨리며 발사된 총탄. 한 남자가 배를 움켜쥐며 눈밭에 쓰러진다. 눈밭을 적시는 낭자한 선혈. 온 얼굴이 눈 범벅이 된 채 겨우 일어난 남자가 소리친다.   “브라보!”     남자는 페테르부르크 모이카 12번지에 있는 집으로 급히 옮겨진다. 때는 1837년 2월 8일 오후 4시 30분경. 남자는 이후 이틀 동안 심하게 앓았다.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남자. 아내는 남편의 비명에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남자는 아내가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방에 들어왔다.     “얼음을 달라!”    아내가 갖다 준 얼음을 이마에 올려 굴리다가 얼음을 먹는 남자. 그가 입을 연다.    “잘 있어! 친구들!”      곁을 지키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느닷없이 친구라니. 그가 부른 친구란 서재에 있는 책들이었다. 남자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꿈에서 책 더미 위로 올라갔어요. 책 더미가 너무 높아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지요.”   2월 9일과 10일에 걸쳐 모이카 12번지 주변에 2만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크게 놀라 명령을 내렸다. ‘장례식 장소를 비밀리에 변경할 것, 일반인의 장례식 참석 엄금, 가족과 친구들만 참석 가능, 군대는 비상 대기할 것, 황실 주치의를 보낼 것, 불법 결투를 벌였지만 사면할 것, 신문의 과격한 추모 기사는 엄금.’     결국 남자는 2월 10일 숨을 거두었다. 러시아 구력(舊曆) 1월 29일. 신력으로 2월 10일 오후 2시 45분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슈킨이 38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법으로 금지돼 있던 결투를 벌인 푸슈킨의 상대는 조르주 단테스. 러시아로 망명한 프랑스군 장교로 네덜란드 공사 헤케른의 양자였다. 푸슈킨이 단테스의 양아버지 헤케른에게 모욕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 단테스는 푸슈킨에게 결투를 신청한 터였다.     그들이 결투한 곳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서 있다. 결투를 위해 두 사람이 각각 자리 잡았던 곳이다. 푸슈킨의 소설 에서 렌스키는 오네긴과의 결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렌스키의 운명이 곧 푸슈킨의 운명이 되고 말았으니, 소설이 하나의 예언이었던가. 꽃다운 16살 소녀 곤차로바를 처음 만나 ‘아!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여인이야!’라며 정열을 불태웠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건만, 매혹적인 자태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1831년에 결혼해 네 명의 자녀들을 남겨두고 푸슈킨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곤차로바는 1844년 재혼).  
942    <매화> 시모음 댓글:  조회:5983  추천:0  2015-04-12
    :     매화는 그 끝덩으로 보면 괴벽한 노인을 연상케 하나 그 꽃은 아름다운 소녀를 생각케 한다.  : 속담에 흔히 꽃 같은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만약 꽃에다 비교한다면  : 그 꽃은 틀림없이 매화꽃이라야만    정내동 丁來東/수선(水仙)·매화(梅花)》    :  :  :   :   매화가 조춘만화(早春萬花)의 괴(魁)로서 엄동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화하는 것은 그 수성(樹性) 자체가  비할 수 없이 강인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동양 고유의 수종(樹種)이 그 가지를 풍부하게 뻗치고  번무(繁茂)하는 상태를 보더라도 이 나무가 다른 과수에 비해서 얼마나 왕성한 식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또한 매실(梅實)이 그 독특한 산미(酸味)와 특종의 성분을 가지고 고래로 귀중한 의약의 자(資)가 되어 효험이 현저한 것도 마땅한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     :   《김진섭 金晋燮/매화찬 梅花讚》     :  :  :   :   :  한 그루 매화가  : 그윽한 마을로 들어가는 시냇가에 피었네  : 물 곁에 있는 꽃이 먼저 피는 줄은 모르고  : 봄이 되었는데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다고 한다.  : 一樹寒梅白玉條  : 逈臨村路傍溪橋  : 不知近水花先昔  : 疑是徑春雪未消     :   《융호 戎昊/매 梅》    :  :  :   :   :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     :   《이색 李穡/목은집 牧隱集》     :  :  :   섣달 매화가 가을 국화 용하게도 추위를 침범해 피니  경박(輕薄)한 봄꽃들이 이미 간여하지 못하는데  이 꽃이 있어 더구나 사계절을 오로지 하고 있으니  한때에만 치우치게 고운 것들이야 견디어 볼 만한 것이 없구나.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  :  :   :   : 나부산 밑 마을 매화는  : 옥설의 골격에 빙상(氷霜)의 넋이다.  : 처음에는 아른아른 달이 나무에 걸려 있는 것 같더니  : 자세히 보니 송이송이 황혼에 빛나네  : 선생(자신)이 강해의 위에 와서  : 병든 학처럼 황원(荒園)에 깃들인다.  : 매화가 나의 심신을 부축하여  : 술을 짜 마시고 시(詩) 생각이 맑게 하네  : 봉래궁중의 화조의 사자가  : 푸른 옷을 입고 거꾸로 부상(扶桑)에 걸려 있는 건가?  :     :   《소식 蘇軾》     :  :  :   :   : 청제(靑帝)가 풍정(風情)을 품고 옥으로 꽃을 만드니  : 흰옷은 진정 서시(西施)의 집에 있네  : 몇 번이나 취위(醉尉)의 흐릿한 눈으로 하여금  : 숲 속에 미인(美人)의 흰옷 소매로 착각하게 하였던고.     :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  :  :   :   으스름 달밤에 그윽한 매화 향기가 스미어 들어올 때 그것이 고요한 주위의 공기를 청정화(淸淨化),  신성화(神聖化)하며 그윽하게 풍겨 오는 개(槪)가 있다.     :   《문일평 文一平/호암전집 湖岩全集》     :  :  :   :   :매화는 음력으로 섣달·정월 사이에 걸쳐서 아직 창 밖에 눈발이 휘날릴 무렵에  어느새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방긋이 입을 벌린다. 철골(鐵骨)의 묵은 등걸에 물기조차 없어 보이건만 그 싸늘한 가지  : 끝에 눈빛 같은 꽃이 피고 꿈결 같은 향을 내뿜는다. 그것은 마치 빙상(氷霜)의 맹위에 저항하려는 듯  의연하고 모든 범속한 화훼류(花卉類)와 동조를 거부하는 듯 초연하여 그 기개가 마치 고현일사(高賢逸士) 를 대하는듯 엄숙하다.  :     :   《장우성 張遇聖/분매 盆梅》     매화 관련 시 모음 |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매화나무 /황 금 찬 봄은 언제나 그렇듯이 늙고 병든 매화나무에도 찾아 왔었다. 말라가던 가지에도 매화 몇 송이 피어났다. 물 오른 버드나무 가지에 새파란 생명의 잎이 솟아나고 있다. 반갑고 온혜로운 봄이여 늙은 매화나무는 독백하고. 같은 봄이지만 나는 젊어가는데 매화나무는 늙어가네 버드나무의 발림이다. 가을이 없고 봄만 오기에 즈믄 해를 젊은 줄만 알았다네 -. ...........................................................................................................   설중홍매(雪中紅梅)/李 炳 喜 동지섣달 짧은 해 걸음 돌담아래 빈둥대던 햇살 立春 지났다고 매화가지 올라 놀더니만 초승달 돌아간 새벽녘 몰래 부푼 선홍젖꼭지 선혈로 쏟아낸 순결(純潔) 홍매화(紅梅花) 되었는가 춘설(春雪) 부끄러운 꽃잎 속살의 처연(凄然)함에 안아버린 첫정(情) 설중매(雪中梅)라 하였는가 무슨 연유(緣由)로 처녀의 속살로 봄눈을 품어 만고묵객(墨客) 울리는가 초록그리움 분홍입술로 머금었단 말인가   매화(梅花) / 서정주 梅花에 봄사랑이 알큰하게 펴난다.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 더 더는 못 견디어 하늘에 뺨을 부빈다.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梅花보다 더 알큰히 한번 나와 보아라. 梅花향기에서는 가신 님 그린 내음새. 梅花향기에서는 오신 님 그린 내음새. 갔다가 오시는 님 더욱 그린 내음새.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梅花보다 더 알큰히 한번 나와 보아라.   홍매화 / 도종환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자락 덮어도 매화 한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홍매화 한 송이 매화를 생각함 /나호열 또 한 발 늦었다 일찍이 남들이 쓰다 버린 쪽박같은 세상에 나는 이제야 도착했다 북서풍이 멀리서 다가오자 사람들이 낮게 낮게 자세를 바꾸는 것을 바라보면서 웬지 부끄러웠다 매를 맞은 자리가 자꾸 부풀어 올랐다 벌을 준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홍매화 / 이복란 북풍 한설은 살풀이 춤으로 그 장단이 끊일 줄 모르는데, 동지 섣달 새악씨 시린 코끝은 부끄러워 붉게 물들었는가 매화주 한 잔에 취한 척 노랫 가락이라도 뽑아 보련마는 대작해 줄이 없는 것이 서러운 것을, 서러움 앙 다문 붉은 입술에 육각모 서리꽃이 지기전에 봄은 오시려나.  
941    러시아 농민시인 - 이사코프스키 댓글:  조회:4644  추천:0  2015-04-12
  작사: 미하일 이사코프스키(Михаил Васильевич Исаковский, 1900-1973) 작곡: 마트베이 블란테르(Матвей Исаакович Блантер, 1903-1990)    카츄샤     1절 Расцветали яблони и груши Поплыли туманы над рекой.   라스비땰리 야블라니 히 그루쉬 뺘블리니 뚜 마니 나드 례꼬이 Выходила на берег Катюша На высокий берег на крутой 븨하질라 나 베렉 카쮸샤 나 븨소키 베렉 나 그루꼬또이   사과꽃 배꽃이 피었지. 구름은 강 위를 흘러가네. 카츄샤는 강 기슭으로 나와 높고 가파른 강둑을 걸어가네     2절 Выходила, песню заводила Про степного, сизого орла 브이하질라 페스뉴 자바질랴 프라 스체프노카 시지가 아를라 Про того, которого любила Про того, чьи письма берегла 프라 타골라 토라바 류빌랴 프라 타고 츼 피시마 베례글라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네, 초원의 잿빛 독수리에 대해서 사랑하는 이에 대해, 소중한 편지를 보내오는 이에 대해서     3절 Ой ты, песня, песенка девичья, Ты лети за ясным солнцем вслед. 오이 틔 폐스냐 폐셴카 제비치야 틔 레치 자 야스님 솔른쳄 프슬례드 И бойцу на дальнем пограничье От Катюши передай привет. 이 바이쭈 나 달리넴 파그라니치예 앗 까쮸쉬 페례나이 프리볘트   오! 노래야 처녀의 노래야, 저 빛나는 해를 따라 날아가, 머나먼 국경의 병사 하나에게 카츄샤의 인사를 전해다오     4절 Пусть он вспомнит девушку простую, Пусть услышит, как она поёт, 푸스찌 온 프스뽐닛 제부쉬꾸 쁘라스뚜유 푸스찌 온 슬르이쉿 깍 아나 빠욧 Пусть он землю бережёт родную, А любовь Катюша сбережёт 푸스치 온 제믈류 베례즈요트 라드누유 아 류보비 까츄샤 스볘례즈요트  그로 하여 순박한 처녀를 생각케 하고, 그녀의 노래를 듣게 하렴. 그로 하여 조국을 수호하게 하고, 카츄샤가 사랑을 간직할 수 있도록     1절 반복 Расцветали яблони и груши, Поплыли туманы над рекой. 라스비땰리 야블라니 히 그루쉬 뺘블리니 뚜 마니 나드 례꼬이 Выходила на берег Катюша, На высокий берег на крутой. 븨하질라 나 베렉 카쮸샤 나 븨소키 베렉 나 그루꼬또이   사과꽃 배꽃이 피었지. 구름은 강 위를 흘러가네. 카츄샤는 강 기슭으로 나와 높고 가파른 강둑을 걸어가네.     ========================   봄     이사코프스키 (번역 : 백석)   눈은 녹고 진펄이 푸르렀다 다리위론 다시금 달구지 덜컹 참새는 햇볕에 취했고나 눙금나문 꽃일어 흔들리노나   뜰악마다 일이야 있고 없고 아침부터 흥겨운 덜커덕 소리 지난겨울 들어온 더부사리에 마소떼 몰고 나는 풀밭이로다   봄 봄은 이곳 저곳 살아 숨 쉬고 봄 봄은 온곳에 설렁대노나 수탉은 지붕 끝에 날아 올라가 마을이 들썩하니 울어대도다   영창들 열렸구나 따스한 바람 강에선 흰 김이 사려오른다 아이들 해를 반겨 좋아 떠들고 늙은이들 가만히 살림을 생각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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