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이상적(形而上的) 시인 존던(John Donne)
안석근
1. 형이상적 시(詩)(metaphysical poetry)
‘형이상(形而上; metaphysical)’이란 말은 철학적 용어로 그 사전적 의미는 ‘형체를 초월한 것’, ‘형식을 떠난 것’, ‘무형(無形)’을 뜻하며 ‘형이하(形而下; physical)’와 대조되는 말로 쓰인다. 그리고 형이상의 존재를 연구하는 철학의 부문을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이라 한다. 형이상학이란 용어는 원래 그리스어 meta(後의 뜻)와 physica(자연학)의 결합어인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작을 편집할 때, 자연학적 논구(論究) 다음에 배열된 일군(一群)의 논문이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형이상학이 근세과학과의 대결 속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 것은 칸트의 비판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 중엽이래 형이상학은 여러 근세과학에 비해서 객관성이 적은 주관적 세계관으로 취급되어 본질을 뛰어넘은 일종의 가설(假說) 혹은 의사과학(擬似科學)으로 취급되는 경향을 띠었다. 전통적 개념으로의 형이상학은 ‘본체적’인 것의 반대인 ‘현상적(現象的)’인 것을 추구하는 학문 즉 현상학이었다. 이는 현상학적 환원에 의해서 자연적 태도 일반의 초월을 가능케 하여 절대자에의 통로를 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절대자의 존재양태를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을 형성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반(反)형이상학적 경향이 얼마동안 흐르다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막연한 의미로서의 형이상학의 부활이 논의되게 되고 이에서 ‘생(生)의 철학’, ‘실존철학’ 등이 비합리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나타났다.
17세기 영국의 형이상적 시인 존던(Donne, John; 1573-1631)을 위시하여 허버트(Herbert, George; 1595-1633), 커루(Carew, Thomas; 1594?-1639?), 서클링(Suckling, Sir John; 1609-1641), 러브레이스(Lovelace, Richard; 1618-1657?), 크래쇼(Crashaw, Richard; 1613?-1649), 본(Vaughan, Henry; 1622-1695), 마벌(Marvell, Andrew; 1621-1678) 등의 시의 전통을 부활시킨 것은 주로 T. S. 엘리어트의 공로였다고 할 수 있다. 엘리어트는 현대시(現代詩)의 진로를 천명하면서 형이상학 시의 특징을 지적하여 언급하기를 “존?던 일파의 17세기 시인들은 그들의 감수상태가 독서와 사색 같은 이지(理智) 작용으로 말미암아 상당한 변화를 받아서 사상을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힘, 달리 말하면 사상을 감정으로 개조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했다. 그의 지적에 의하면 사상을 감정으로 파악한다는 말은 달리 감정을 사색한다는 말이 된다. 즉 시인의 마음 속에서 사상과 감정이 분리되지 않고서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는 힘을 말한다. 형이상적 시인은 과학이나 학문을 하는 사람들처럼 사물이나 경험을 추상적으로 개념화하거나, 낭만주의자들처럼 그것을 감정 위주로 보지 않고서, 사물이나 경험을 있는 그대로 감정과 사상의 구별 없이 총체적으로 보는 감수성을 지닌 시인들이다. 여기서 현대시와 형이상학 시의 공통점으로서 ‘사상과 감정의 융합’을 들 수 있다. 형이상적 시인을 ‘지성시인(知性詩人)’이라 한다면 그와는 반대로 감수성이 사상과 분열되었던 빅토리아조(朝)의 시인들 중 테니슨(Tennyson, Alfred; 1809-1892)과 브라우닝(Browning, Robert; 1812-1889) 등을 ‘명상시인(瞑想詩人)’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다 사색은 하지만 그들의 사상을 장미의 향기처럼 직접 느끼지는 못한다. 감수성의 분열은 사물의 체험을 단순히 감정에만 의존하여 거기에 지적(知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감정을 휘어잡고 거기에 뚜렷한 윤곽을 주어 경험을 이미지나 심벌로 파악하는 표현이야말로 감정과 지성의 전인적(全人的) 체험을 낳는다. 사물을 감정으로만 파악하면 감상적인 시가 되고, 사상으로만 파악하면 사상시가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거기에 쓰인 이미지는 단순한 장식적 역할을 할 뿐, 기능을 갖지 못한다. (20세기 영미시의 형성, P. 120-127-이창배, 민음사)
다시 말해서 피지컬(physical, 형이하적)한 요소를 최소한도로 담은 문장은 감성의 고갈에 빠져 플라톤적인 관념에 빠지기 쉽고, 이를 피하려고 피지컬한 것을 최대로 갖는 문장은 권태롭고 흥미 없는 리얼리즘 즉 지나친 현실주의적인 것으로 기울어 무의미하고 무리한 문장이 되기 쉽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에서 자연주의적 문장은 매우 불완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하여 형이상적 즉 메터피지컬(metaphysical)한 것은 초자연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 여기서 창조된 글은 생생하고 명확한 것이 되어 과학적 서술과는 다른 풍부한 메터퍼(metaphor)를 가지고 진리를 전달한다. 미국의 시인이며 분석 비평가인 테이트(Tate, Allen; 1899-1979)는 이러한 시를 ‘상상력의 시’(poetry of the imagination)라고 불렀다.
2. 사랑의 형이상적 시인
17세기 영국의 형이상학파 시인 중 하나인 존던(Donne, John; 1573-1631)에 대하여 동시대의 영국의 고전주의 작가이며 세련된 서정시인 벤 존슨(Jonson, Ben; 1573-1637)은 “존던의 시는 그의 그릇된 억양 때문에 교형(絞刑)에 해당되고, 이해되지 않아 사멸하리라”(* 영미작가론 P. 40-이양하, 신구문화사)라고 선언한 바가 있는데 선언 그대로 존던의 시는 그의 생전에 소수의 독자에게 읽히었을 뿐 사후 시집이 나온 뒤에도 많은 독자를 얻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그는 설교가, 산문의 대가(大家)로 더 잘 알려졌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엘리어트(T. S. Eliot)의 논문 이 나온 이래 존?던은 시인으로 부활되고 영시사(英詩史)상 대시인이란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 존던의 생애와 작품은, 본사 발행 ‘공석하, 안석근’ 공저 P. 90 이하 참조)
형이상적 시의 제일인자로 손꼽히는 존?던의 시는 단테의 이나 괴테의 , 밀턴의 처럼 ‘우주에 관한, 그리고 생존이라고 하는 위대한 드라마 속에서 인간의 정신이 실연(實演)하는 바 그 역할에 관한 철학적 개념에 영감을 얻어서 쓴 시(* 존?던 시집 P.162 해설-조신권, 정음사)’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그는 다른 형이상적 시인에 비해 소규모적인 형태의 시를 썼지만 그의 시의 형이상적 특질은 내용면에서 보다는 시의 스타일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형이상 시인에게 있어 인생경험은 지성(知性) 속에 이루어지는 정서와 개념의 결합관계로 나타나는데 이 관계는 감정적 정서적 관계가 아니라 논리적 관계이다. 즉 이 둘의 유기적 통일성과 예리한 분석을 형이상 시인들의 특색으로 볼 수 있다.
존던의 시적(詩的) 태도는 엘리자베드 시대에 유행했던 페트라르카(Petrarca), 스펜서(Spenser) 등의 소네트(sonnet) 시풍(詩風)에 반기를 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존?던의 시풍(詩風)은 1592년경 영국 르네상스 개화기에 풍미했던 시인들의 한결같은 주제인 페트라르카 풍의 연시(戀詩) 즉 사랑의 기쁨과 슬픔, 이루지 못한 사랑의 고통과 이별의 비애 같은 전혀 변화가 없는 것들과는 아주 다른 사실적(realistic)인 시풍으로, 아무런 시적 장식도 없고 그리스 라틴의 전설이나 신화적 요소도 없으며, 또한 연애시에 언제나 등장하는 양치기 소녀나 목동이 없고, 화사한 장미화원이나 초원, 태양 등에 비유된 미적 요소도 없다.
이러한 그의 리얼리즘은 자신의 연애경험을 현실 그대로 응시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극히 단순한 언어와 대화의 어조로 서술하려 했던 사실 속에 나타난다. 그리하여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던 종래의 영국의 시풍에 전혀 새로운 모습의 연애시를 창조해 주었다.
그의 이러한 공헌 외에도 그의 시는 형이상적 위트를 지니고 있다. 양극성(兩極性)을 대비하거나 결합하는 지적 작용인 위트는 엘리어트의 말대로 “가능한 모든 경험을 표현하는 가운데 은연중 이루어지는 지적 인식 즉 사물의 다면성에 대한 의식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트는 얼핏보아 시의 내면적 의미와 별 연결이 없어 보이나 위트의 기묘한 작용으로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실례를 존?던의 시에서 엿볼 수 있다.
존던은 그의 “지적(知的) 유사성을 정서로서 동등하게 한다.”고 했다. 영국의 문예비평가인 그리어슨(Grierson, Sir Herbert John Clifford; 1866-1960)은 “존던이 사용한 기상적(奇想的) 비유 즉 컨시트(conceit)는 엘리자베드 시대의 문인들이 사용했던 컨시트보다 훨씬 지적이고 합리적이다. 또한 형이상학적인 것이 많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컨시트란 시인이 체험한 사상과 감정을 구현해주는 한 수단이라 할 수 있는데 콜리지(Coleridge, Samuel Tayler; 1772-1834)가 말한 상반된 혹은 조화되지 않은 일종의 ‘부조화의 조화’를 의미한다. 이를 다시 그 장단에 의해 ‘확대된 컨시트’와 ‘응축된 컨시트’로 나누어 볼 때 바로 존던의 시에서 그 예를 발견하게 된다.
고별(告別) : 서러워 말라
슬퍼하는 벗들이 이젠 운명했다고
또는 아니라고 말할 때,
덕망 높은 이들은 온화하게 죽어가며
자기들의 영혼에게 어서 가자고 속삭이듯,
우리도 소란 피우지 말고 의연히
눈물 홍수, 한숨 폭풍 보이지 말자.
세인에게 우리 사랑 말하는 건
우리 기쁨 모독함이니.
지진은 재앙과 공포 몰아오고,
그 피해 어떠한지 사람들 알고 있지만,
천체의 운행은 더 큰 변동
허나 실은 해를 주지 않는다네.
달빛 아래 우둔한 연인들 사랑
(오직 관능뿐이어서), 헤어짐을
못 견뎌 하니, 육체가 서로 떨어지면
사랑의 요소도 없어짐 때문.
허나 우린 우리조차 알 수 없는
승화된 사랑으로
우리 마음 서로 믿으니
눈, 입, 손 못 본다 하여 걱정할 것 없네.
우리 둘의 영혼 하나이니
내 떠난들 갈라지는 것 아니고
오직 퍼지는 것일 뿐.
공기 마냥 얇게 편 금박처럼.
우리 영혼 굳이 둘이어야 한다면
굳게 붙은 콤파스 두 다리처럼,
그대 영혼 견고한 다리, 그 움직임 안 보이나
다른 다리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네.
그대 다리 중심에 서 있으나,
다른 다리 멀리 배회할 땐
몸 굽혀 그 쪽으로 귀 기울이고
제자리 돌아오면 똑바로 서네.
그대 내게 이런 존재 되어주오.
난 비스듬히 달릴 다른 다리,
그대 굳게 서 있어야 내 그리는 원 바르고
나 떠난 곳으로 되돌아 올 수 있네.
A VALEDICTION : FORBIDDING MOURNING
As virtuous men pass mildly away,
And whisper to their souls to go,
Whilst some of their sad friends do say,
"Now his breath goes," and some say, "No."
So let us melt, and make no noise,
No tear-floods, nor sigh-tempests move;
'Twere profanation of our joys
To tell the laity our love.
Moving of th' earth brings harms and fears;
Men reckon what it did, and meant;
But trepidation of the spheres,
Though greater far, is innocent.
Dull sublunary lovers' love
(Whose soul is sense) cannot admit
Of absence, 'cause it doth remove
The thing which elemented it.
But we by a love so much refined,
That ourselves know not what it is,
Inter-assured of the mind,
Care less, eyes, lips and hands to miss.
Our two souls therefore, which are one,
Though I must go, endure not yet
A breach, but an expansion,
Like gold to aery thinness beat.
If they be two, they are two so
As stiffe twin compasses are two;
Thy soul, the fix'd foot, makes no show
To move, but doth, if th' other do.
And though it in the centre sit,
Yet, when the other far doth roam,
It leans, and hearkens after it,
And grows erect, as that comes home.
Such wilt thou be to me, who must,
Like th' other foot, obliquely run ;
Thy firmness makes my circle just,
And makes me end where I begun.
성해(聖骸)
내 무덤 다시 파헤쳐
어떤 또 하나의 시체를 함께 묻을 때,
(무덤들은 여성의 머리가
침대 이상이란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내 무덤을 파내는 사람이
나의 백골에 감긴 금발 팔찌를 보면,
우릴 그냥 놓아두고
한 쌍의 애인이 누워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건 분주한 최후의 날, 그 영혼들이
이 무덤에서 만나 잠시 머물게 하는
어떤 방법이었다고 생각지 않을까?
만일 이 일이 우상숭배 시대나,
우상숭배 나라에서 생긴다면,
그땐 우릴 파내는 자가 우리를
주교나 왕에게 가져가
우릴 성해(聖骸)로 모시고; 그래서
넌 막달라 마리아가 되고, 난
그 곁에 다른 어떤 우상이 되어
모든 남녀가 우릴 경배하리라;
그리고 그런 시대에는 기적을 찾을 테니,
난 이 글로 그 시대에 전하리라
우리 순진한 애인들은 놀라운 기적을 이룩했다고.
첫째로, 우린 지극히 충실히 사랑했다.
헌데 우린 무얼, 왜, 사랑했는지 몰랐고,
우리 수호천사들이 성구별을 모르듯,
우리 또한 몰랐다.
오고 가고 하면서, 우린
어쩌다 키스는 했을지 모르지만, 식사 사이에는 안 했다.
최근 법으론 금지되었지만, 대자연이 풀어놓은
그 봉인(封印)에 우린 손도 대지 못했다:
우린 이런 기적을 행했으나; 아, 슬프도다, 이젠
모든 운율, 모든 언어 다 써도,
그녀가 어떤 기적 같은 존재였는지 말로 다 못하리.
THE RELIC
When my grave is broke up again
Some second guest to entertain,
(For graves have learn'd that woman-head,
To be to more than one a bed)
And he that digs it, spies
A bracelet of bright hair about the bone,
Will he not let us alone,
And think that there a loving couple lies,
Who thought that this device might be some way
To make their souls at the last busy day
Meet at this grave, and make a little stay?
If this fall in a time, or land,
Where mass-devotion doth command,
Then he that digs us up will bring
Us to the bishop or the king,
To make us relics ; then
Thou shalt be a Mary Magdalen, and I
A something else thereby;
All women shall adore us, and some men.
And, since at such time miracles are sought,
I would have that age by this paper taught
What miracles we harmless lovers wrought.
First we loved well and faithfully,
Yet knew not what we loved, nor why;
Difference of sex we never knew,
No more than guardian angels do;
Coming and going we
Perchance might kiss, but not between those meals;
Our hands ne'er touch'd the seals,
Which nature, injured by late law, sets free.
These miracles we did ; but now alas!
All measure, and all language, I should pass,
Should I tell what a miracle she was.
이들 시에서 우리는 존?던은 위트와 컨시트의 천재시인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존?던은 다양한 시형과 불규칙한 리듬을 사용하여 매우 인습적이고 단조로운 분위기를 깨고 오히려 불협화음 속에 이루어지는 기상천외의 조화감과 다양한 경험의 유기적 동질성을 보여 주었고 구어체의 리듬을 사용하여 극적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 이러한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이다.
벼룩
이 벼룩을 보라. 그러면 알게 될 테니.
네가 날 거절하는 것이 참으로 사소한 일이란 것을.
그놈이 먼저 날 빨고 이제 널 빨았으니
이 벼룩 속엔 우리 둘의 피가 섞여 있다.
넌 알고 있지, 이것이 아니란 걸,
죄악도 수치도 처녀성을 잃은 것도.
헌데 그놈은 구혼도 하기 전에 즐기고
두 사람 피 빨아 한 피로 만들고 배불렸으니
아! 우리 같음 이런 짓은 못 할텐데.
아 잠깐! 한 마리 벼룩 속에 생명이 셋.
우린 그놈 속에서 결혼보다 더 한 짓을 했다오.
이 벼룩은 너이고 또한 나이며,
우리의 혼인 침상이며 결혼식 올린 성전이니
너와 네 부모가 아무리 반대한들 우린 이미
이 살아있는 옥벽(玉壁) 속에서 만나 결합되었다.
네 일상 버릇대로라면 날 죽이고도 싶겠지만,
이 놈만은 살려주어야 한다,
그건 자살이며 신성모독이며, 세 생명 죽이는 범죄이니.
잔인하게 별안간, 너의 손톱
무죄한 피로 붉게 물들였군.
너에게서 피 한 모금 빤 것 외엔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헌데 넌 자신있게 말하길
너도나도 벼룩쯤은 물려도 괜찮다고 하니
옳도다! 공연히 두려워했구나.
벼룩의 죽음이 네 생명에 지장 없듯
내게 몸 허락해도 그대의 순결 지장 없겠지.
THE FLEA
Mark but this flea, and mark in this,
How little that which thou deniest me is ;
It suck'd me first, and now sucks thee,
And in this flea our two bloods mingled be.
Thou know'st that this cannot be said
A sin, nor shame, nor loss of maidenhead ;
Yet this enjoys before it woo,
And pamper'd swells with one blood made of two ;
And this, alas ! is more than we would do.
O stay, three lives in one flea spare,
Where we almost, yea, more than married are.
This flea is you and I, and this
Our marriage bed, and marriage temple is.
Though parents grudge, and you, we're met,
And cloister'd in these living walls of jet.
Though use make you apt to kill me,
Let not to that self-murder added be,
And sacrilege, three sins in killing three.
Cruel and sudden, hast thou since
Purpled thy nail in blood of innocence?
Wherein could this flea guilty be,
Except in that drop which it suck'd from thee?
Yet thou triumph'st, and say'st that thou
Find'st not thyself nor me the weaker now.
'Tis true ; then learn how false fears be ;
Just so much honour, when thou yield'st to me,
Will waste, as this flea's death took life from thee.
스펜서(Spenser)는 존?던의 창작생활을 3기로 나누었는데 그 제1기(1590-1601)에 쓴 연애시들은 그의 다양한 연애관이 무의식으로 나타나 있음을 본다. 연인에 대한 태도에 있어 때로는 냉소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또 정열적인 호소의 장면이 있으며 더 나아가 연인의 무정함을 슬퍼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는 아이러니 속에 정열과 명랑성을 결합하면서 순진한 연인의 모습을 그려 보이기도 한다. 이를 좀 더 살펴보면 이러한 차이성을 지닌 것들 속에서 하나의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공통적 사상을 재구성해 보면 여기서 ‘사랑의 형이상학’이란 면에 접하게 된다.
그의 시 에서는 외부의 세계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자기 충족적인 ‘하나의 작은 신세계’ 즉 ‘소우주(小宇宙)’ 속에서 누리는 행복을 노래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연인들만의 독립된 자기 충족의 세계에의 ‘안주’의식 속에는 일종의 공포가 서려 있다.
해가 뜬다
부산스런 늙은 바보, 주책 맞은 태양이여,
넌 왜 이다지도 일찍
창문과 커튼을 뚫고 우리를 찾아드는가?
연인들의 계절이 너의 운행에 따라야 하는가?
이 잘난 체 하는 꼴불견아, 넌 가서
지각하는 학생 또는 사환이나 책하거라.
그리곤 왕실 사냥꾼한테나 가서 상감행차나 알려주고,
시골 개미들한테나 가서 겨우살이 준비나 하도록 이르거라.
사랑엔 도시의 계절도, 날씨도,
시간의 넝마 같은 시각도, 날이나 달도 없으니.
넌 네 빛이 그다지도 신성하고,
그렇게 강렬하다 여기는가?
네 빛쯤은 눈짓 한 번이면 어둡게도
흐리게도 할 수 있지만, 그 간만이라도 그녀 모습 못 볼까봐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 만일 그녀의 눈이 네 눈 어둡게 않는다면,
세계를 두루 살피고 와서 내일 늦게 나에게 말해다오.
향료 금은의 인도나라가 아직 거기 있는지,
또는 여기에 나와 함께 누워 있는지.
어제 네가 만났던 왕들에게 물어보렴.
그들은 다 이 침상에서 잤다 하리라.
그녀는 이 세상 전부, 난 거기의 왕자.
그 외 딴 것은 거기엔 없느니.
세상 왕들이란 우리의 연기를 흉내낼 뿐, 이에 비하면,
모든 영예 모조품이며 모든 재물 가짜일 뿐이라.
세상은 이같이 축소되었으니, 태양이여, 네 기쁨
우리 것에 비하면 절반도 못되리.
너도 늙어 편안하고 싶고, 네 임무는
세상을 따뜻하게 하면 되는 것.
여기 우리 방을 비춰 다오, 그럼 온 세상 비친 것이라.
이 침상은 너의 중심, 이 벽은 너의 궤도라.
THE SUN RISING
Busy old fool, unruly Sun,
Why dost thou thus,
Through windows, and through curtains, call on us ?
Must to thy motions lovers' seasons run?
Saucy pedantic wretch, go chide
Late school-boys and sour prentices,
Go tell court-huntsmen that the king will ride,
Call country ants to harvest offices ;
Love, all alike, no season knows nor clime,
Nor hours, days, months, which are the rags of time.
Thy beams so reverend, and strong
Why shouldst thou think ?
I could eclipse and cloud them with a wink,
But that I would not lose her sight so long.
If her eyes have not blinded thine,
Look, and to-morrow late tell me,
Whether both th' Indias of spice and mine
Be where thou left'st them, or lie here with me.
Ask for those kings whom thou saw'st yesterday,
And thou shalt hear, "All here in one bed lay."
She's all states, and all princes I;
Nothing else is;
Princes do but play us; compared to this,
All honour's mimic, all wealth alchemy.
Thou, Sun, art half as happy as we,
In that the world's contracted thus ;
Thine age asks ease, and since thy duties be
To warm the world, that's done in warming us.
Shine here to us, and thou art everywhere ;
This bed thy center is, these walls thy sphere.
그의 시 과 에서 우리는 그가 ‘무엇으로부터 안전을 구하고 있는 것인가?’를 엿볼 수 있다. 연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변화의 쇠퇴’이다. 즉 여성의 절조에 대한 편집광적(偏執狂的)인 집착이 하나의 두려움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연인들은 둘이 아닌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의 시 에서는 이러한 결합의 신비를 노래하고 있다.
새 아침
우리가 사랑하게 됐을 때까지 그대와 난
무얼 하고 있었나? 젖도 떼지 않은 채
어린애처럼 촌스런 쾌락만 빨고 있었나?
혹은 일곱 신도의 동굴 속에서 코만 골고 있었나?
그렇다. 이 기쁨 외 모든 기쁨 한낱 환상이었고,
비록 내가 어느 미인을 보고, 탐이 나 정복했다 해도,
그건 단지 그대의 환영일 뿐이었네.
허나 지금은 우리 영혼 깨어나는 새 아침.
이젠 서로 꺼려하며 경계하지 말기를.
진정한 사랑은 모든 애욕 일체 억누르고,
작은 하나의 방을 온 세계로 만드는 것이니.
해외 탐험가들에겐 새 세계를 찾아가게 하고,
다른 이에겐 지도를 주어 이, 저 세계를 찾아가게 하되.
그대와 난 하나의 세계, 둘이 하나되는 한 세계만 가지세.
그대 눈엔 내 얼굴이, 내 눈엔 그대 얼굴이 나타나고,
참되고 순결한 마음이 그 얼굴에 깃드니,
혹독한 북방도, 해 지는 서쪽도 없는
이보다 더 좋은 반구(半球)가 또 어디 있겠나?
사멸하는 건 무어나 혼합의 조화를 못 이루나니,
우리 사랑 하나이고, 또 그대와 나 똑같이 사랑하면,
어느 것도 느슨해지거나 사라져 버리진 않으리.
THE GOOD-MORROW
I wonder by my troth, what thou and I
Did, till we loved ? were we not wean'd till then ?
But suck'd on country pleasures, childishly ?
Or snorted we in the Seven Sleepers' den ?
'Twas so ; but this, all pleasures fancies be ;
If ever any beauty I did see,
Which I desired, and got, 'twas but a dream of thee.
And now good-morrow to our waking souls,
Which watch not one another out of fear ;
For love all love of other sights controls,
And makes one little room an everywhere.
Let sea-discoverers to new worlds have gone ;
Let maps to other, worlds on worlds have shown ;
Let us possess one world ; each hath one, and is one.
My face in thine eye, thine in mine appears,
And true plain hearts do in the faces rest ;
Where can we find two better hemispheres
Without sharp north, without declining west ?
Whatever dies, was not mix'd equally ;
If our two loves be one, or thou and I
Love so alike that none can slacken, none can die.
황홀
침상 위 베개처럼,
아기 가진 배 부어 올라,
오랑캐꽃 드리운 머리 누인 곳에,
우리 둘 서로 좋아 앉아 있었네.
우리 손 서로 굳게 맞잡고
거기서 솟은 향유 우리 손 맺어주고
우리 시선 얽혀 눈과 눈, 두 겹 실 한 가닥으로
한데 꿰매 붙였었네.
이같이 손을 서로 잡는 것만이
우릴 한 몸 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우리 눈 속의 영상이
우리가 낳는 자식이었네.
팽팽히 맞선 두 진영 사이에, 운명의 여신이
희미하게 매달아 놓은 것인지,
(그 품위를 높이려 육신 밖으로 빠져나간)
우리 두 영혼 그녀와 나 사이 매달려 있었네.
이같이 우리 영혼 거기서 타협하는 동안,
우리 육신은 무덤 앞 조상(彫像)마냥,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아무 말도 안 하고 누워 있었네.
만약 사랑으로 세련되어
영혼의 언어 이해하고
극진한 사랑으로 온통 정신이 되어버린 누군가
적당한 거리에 서 있기만 하면
그는 (두 영혼이 뜻과 말이 같아 어느 쪽이
말했는지 모르지만)
아마 거기서 새로 다듬어져
그가 왔을 때보다 더 순결하게 떠났으리.
이 황홀함은 우리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말해주며 (우린 말했지),
이로써 우린 그게 성행위가 아니란 걸 알고
또한 참 사랑의 동기가 무언지 몰랐던 것도 알았네.
모든 영혼은 어느 거나
자신도 모르는 혼합물을 갖고 있어,
사랑은 이 혼합된 영들을 또 다시 혼합하여
둘을 하나로 만들어, 이것도, 저것도 되게 하네.
오랑캐꽃도 한 그루 옮겨 심으면
그 힘 색깔 크기가
(전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두 배 세 배 강해지고 증가되듯이.
사랑이 두 영혼 속에
활력소를 불어넣을 때,
거기 흘러나오는 보다 강한 영혼은
고독한 외로움 달래주네.
그리하여 우린 새로운 영혼 되어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지 알게되네.
우릴 구성한 것은 곧 영혼이며
어떤 변화도 침해할 수 없네.
-이하 생략-
The ECSTASY
Where, like a pillow on a bed,
A pregnant bank swell'd up, to rest
The violet's reclining head,
Sat we two, one another's best.
Our hands were firmly cemented
By a fast balm, which thence did spring ;
Our eye-beams twisted, and did thread
Our eyes upon one double string.
So to engraft our hands, as yet
Was all the means to make us one ;
And pictures in our eyes to get
Was all our propagation.
As, 'twixt two equal armies, Fate
Suspends uncertain victory,
Our souls, which to advance their state,
Were gone out, hung 'twixt her and me.
And whilst our souls negotiate there,
We like sepulchral statues lay ;
All day, the same our postures were,
And we said nothing, all the day.
If any, so by love refined,
That he soul's language understood,
And by good love were grown all mind,
Within convenient distance stood,
He, though he knew not which soul spake,
Because both meant, both spake the same?
Might thence a new concoction take,
And part far purer than he came.
This ecstasy doth unperplex
(We said) and tell us what we love ;
We see by this, it was not sex ;
We see, we saw not, what did move :
But as all several souls contain
Mixture of things they know not what,
Love these mix'd souls doth mix again,
And makes both one, each this, and that.
A single violet transplant,
The strength, the colour, and the size?
All which before was poor and scant?
Redoubles still, and multiplies.
When love with one another so
Interanimates two souls,
That abler soul, which thence doth flow,
Defects of loneliness controls.
We then, who are this new soul, know,
Of what we are composed, and made,
For th' atomies of which we grow
Are souls, whom no change can invade.
존?던은 ‘사랑’은 ‘하나’임을 긍정하면서도 그 ‘다양성’도 긍정한다. 즉 통일성과 다양성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 된다. 그의 시에서 연인끼리의 ‘황홀’은 ‘성적(性的)’인데 있는 것이라기보다 일종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성 이상(以上)’에로의 초월을 남녀 중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연인들의 법열(法悅)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리쉬만은 존?던이 추구하는 이상적 사랑은 성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정신적 사랑이었고 다분히 종교적인 성격이 농후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존?던이 육체적인 것을 부인하진 않았다. 그는 정신적인 사랑을 이상으로 하면서도 육체를 긍정함으로써 그 육체가 이데아적(ideal)인 것을 제시해주는 수단이 된다고 믿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존?던은 플라톤적 리얼리스트(Platonic Realist)라고 할 수 있다. (* 형이상학적 시인 존?던의 시 P. 162 -조신권, 정음사)
실제로 존?던은 그가 1596년, 1597년 양 차에 걸친 원정 뒤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여행했다고 전하는데 특히 스페인 원정에서 많은 서적을 구해와 런던에서 독서에 전념하면서 사교적인 활동으로 술, 여자, 이야기 등으로 세속적 일락(逸樂)에 빠져 변화 많은 일과를 보냈다. 그는 토머스 이저튼 경(Sir. Thomas Egerton)의 비서장이 되면서 이저튼 부인의 질녀 앤 모어(Ann More)와의 비밀 결혼이 탄로되어 감금되고 비서직에서 해임됨으로써 출세의 꿈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캔터베리 대승정(大僧正)의 선언으로 그들의 결혼은 정식으로 인정되었으나 그 후 15여 년 동안은 불우와 실의를 겪는 가운데 늘 죽음만을 생각하는 암담한 날을 보내게 되었다.
존던은 여인을 지나칠 정도로 신격화해서 과장적인 수사(修辭)를 사용한 시를 보낸 바가 있는데 즉 베드포드(Bedford), 헌팅톤(Huntington) 두 백작 부인에게 보낸 시가 그것이다. 그러나 존?던의 연애시의 대상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이 될 수 있을 만큼 그의 사랑의 대상은 불분명한 것이 많다. 그러므로 그의 대부분의 연애시는 하나의 상상(想像)의 소산으로 보아야 옳을 듯 싶다. 그가 실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미워하고 저주하고 냉소하고 음행한 애인, 사랑을 얻지 못 할 때의 비참한 절망을 아는 동시에 사랑을 얻은 때의 황홀한 도취도 알고, 순전한 육체의 사랑을 아는 동시에 영성(靈性)의 사랑도 잊지 않은 강렬하고 진폭(振幅)있는 사랑을 한 애인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인 것 같다. (* 영미 작가론 P. 44, 45-이양하-정음사)
존던은 그의 시 에서는 연인들의 상태가 불사조(不死鳥)의 전설에 비유되어 그들은 죽어서 영생하는 성자들의 지위에까지 오른다. 이러한 컨시트는 사랑으로써 살 수는 없어도 죽을 수는 있다는 아이러니를 통하여, 연인들을 부활의 기대 속에 영원히 산다는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처음에 시구(verse)의 컨시트에서 애정시(愛情詩)의 한 형식인 소네트로, 종국에는 성가(聖歌, humn)로 발전시킨다. 사랑으로 성도의 대열에 가담한 연인들이 객관적인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연인의 참된 본보기를 통하여 세상을 지배하고 크게 영향을 끼친다. 이렇듯 존?던의 시의 논리는 과학적인 의미에서는 모순된 불합리한 논리이나 시적인 의미에서는 매우 타당성을 가진다. 이 시의 컨텍스트는 연인의 평범한 사랑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성적 의미와 더 나아가 정신적이며 신앙적인 이미지가 서로 연관되어 결국 주, 객관의 구분이 난해하다. 존?던의 시는 평면적인 사랑의 논리가 아닌 총체적인 통일성을 꿰뚫어 가지는 세계 즉 형이상적인 사랑의 시의 전형이라 하겠다.
[출처] 사랑의 형이상적(形而上的) 시인 존 던(John Donne) _ 안석근 |작성자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