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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밖에 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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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허영란 - 날개 댓글:  조회:2561  추천:0  2008-02-23
허영란 - 날개 일어나라 아이야 다시 한번 걸어라뛰어라 젊음이여 꿈을 안고 뛰어라 날아라 날아라 고뇌에 찬 인생이여일어나 뛰어라 눕지 말고 날아라 어느 누가 청춘을 흘러가는 물이라 했나어느 누가 인생을 떠도는 구름이라 했나날아라 날아라 고뇌에 찬 인생이여일어나 뛰어라 눕지 말고 날아라 어느 누가 청춘을 흘러가는 물이라 했나어느 누가 인생을 떠도는 구름이라 했나
84    서시(序詩) : 윤동주 시 댓글:  조회:2071  추천:0  2008-02-23
서시(序詩) : 윤동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83    소질이 있다는것은 ... 댓글:  조회:1742  추천:0  2008-02-23
소질이 있다는것은 ...     소질이 있다는것은 어떤 표현을 두고 하는 말인가? 어떤 사람을 소질이 있다고 말할수 있는가? 아래에 생각하였던것을 적어보려 한다.     1, 소질이 있다는것은 옳고그름(是非)을 가르는데서 표현된다. 어떤 것은 옳은것이고 어떤 것은 그른것인가를 알고 그래로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어른들이거나 교원이라 해도 틀린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소질은 누구나 다 구비하는것이 아니여서 그런것일까?     2, 소질이 있다는것은 정의(正义)감이 있는데서 표현된다.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不义)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인지 불의를 외면하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신과 관계되지 않는 일이면 되도록 피하려고만 한다. 이것도 누구나 다 구비할수 있는 소질이 아니여서 그런것일까?     3, 소질이 있다는것은 부정당한 리익(不当利益)을 거절하는데서 표현된다. 정당한 리익은 적극적으로 쟁취해야 하지만 부정당한 리익은 눈앞에 가져와도 거절할수 있어야 한다. 학생의 학습과정에서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하여 보고쓰기를 하는것도 부정당한 리익을 얻는것이라고 볼수 있는것이다. 우리 말에는 "바늘도적이 소도적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각도에서 학생들이 보고쓰는것을 그대로 두거나 보고쓰라고 하는 사람은 학생을 교육하는것이 아니라 학생을 해치는것이라고 볼수 있는것이다. 이런 소질도 아주 힘든것인지 모른다.     이외에도 더 다른 표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능하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상의 몇가지가 그냥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기타 내용도 생각나는대로 여기에 보충하려 한다. 2008년 2월 23일 20시 56분    
82    나의 일기책에 적었던 한 마디 댓글:  조회:3430  추천:0  2008-02-22
나의 일기책에 적었던 한마디         나의 일기책에도 좌우명이라고 할만한 한단락의 말이 있었다. 그것을 완정하게 쓴것은 2006년이지만 유관내용에 대한 생각은 오래전부터였다.       아래에 이 말을 적어보기로 한다.       말한대로 해야 하고 아는대로 해야 한다.     맞는것은 견지하고 틀린것은 고쳐야 한다.     어떤 원인으로 개변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목적으로 개변하지 말아야 한다.       言行一致,知行统一;     对的坚持,错的改正;     不能因为什么而改变;     不能为了什么而改变。       그중의 두번째 말은 후에 보충한것이다. 그번 교장과의 담화가 있은후 보충한것이다. 그 일은 2002년에 있은 일이다. 그것은 한마디 말의 보충만이 아니였다. 그러한 정도로 어디에서 잘못되였는가를 알고싶은 심정이 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어떤 관념 혹은 가치에 대한 쟁론이였다. 그러나 나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냥 그 여덟글자(对的坚持,错的改正)뿐이였다. 내가 물어보는 말에는 대답을 하려 하지 않았던것이다.       나는 그냥 그렇게 고집이 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나의 생활경력과 관계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때도 적지 않다. 그렇게 자기주위의 사람에 대한 신심이 없는것이 문제가 된것 같다. 이런 일을 두고 환경이 사람을 개변시킨다고 할것이다. 그래서 그냥 주의하는 문제가 "한수 남기는것"이였다. 다른 사람에 대해 신임을 주더라도 의외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대책도 그냥 준비한다. 그렇게 준비를 충분히 하고보면 어떤 의외에도 태연하게 대처할수 있다. 이렇게 하느라니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든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을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쓸모도 없는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하기때문이다.       맞는것은 맞는것이고 틀린것은 틀린것이다. 많은 경우에는 그냥 기분에 따라 맞는것도 틀린것으로 틀린것도 맞는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는 옳고 그름을 꼭 갈라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원칙성적인 문제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본다. 이런 고집때문에 말을 들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그냥 그것을 고칠수 없다. 맞는것은 견지해야 할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냥 그렇게 할때가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어찌할수 있는가? 그래서 의혹은 커가고 일은 그런대로 하게 된다. 내가 고집한다고 그 무엇이 개변되는것도 아니니 "나 혼자 힘으로는 아무런 일도 할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할때도 있다.       이 말을 처음으로 생각하였을때 조선어로 썼던지 아니면 한어로 썼던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번역도 잘 되였는지 알수 없다. 그러나 더 큰 의혹은 그것뿐이 아니다.   2008년 2월 22일 6시 50분
81    "교육을 하는데도 거짓이 필요하다" 댓글:  조회:2258  추천:0  2008-02-21
"교육을 하는데도 거짓이 필요하다" http://blog.daum.net/lienhao/2357581     "교육을 하는데도 거짓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알고있는것과는 다른 리념이였다. 그사이 나는 그냥 이렇게 의문을 품은채로 교육을 하여왔다. 그리고 며칠간 블로그가 열리지 않은뒤 이런 문제의 토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그래서 생각하였던것들을 적어보려 한다.     공자는 "수양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하고 수양이 바르지 않으면 명령해도 듣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이외에도 "자신도 바로잡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바로잡겠는가"라는 말을 한적도 있다.     中国古代教育家孔子的名言是:“其身正,不令而行,其身不正,虽令不从”,“不能正其身,何以正人?”     교원의 공작은 성적보다 더 중요한것이 있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시범이고 사회에 대한 시범인것이다. 그래서 교원의 공작은 성적보다 시범작용이 더 중요한것이다. 그 성적이 교원평가의 필요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냥  시범작용만 강조할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것이다. 사회상에는 성적을 위해 수분도 증가하고 거짓도 보태는 현상이 있다. 교육을 하는 사람도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 혹은 교육을 하는 사람도 이런 일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为人师表具有鲜明的示范性。这是教师职业道德(二、为人师表的特征)中的一句话。     글을 쓰는데서 제일 싫은 일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것이다. 명인의 말이라도 싫은것이다. "명인이 말한것이면 도리가 있게 되고 나와 같이 이름없는 사람이 말한것이면 도리가 없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만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염오감만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그 말이 없으면 어떤 사람들은 설복할수 없으니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없는것이다. 지금의 사람들은 공자를 아주 숭배한다고 하니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 접수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제도 교육을 하는데도 거짓이 필요하다"고 고집할까?     실사구시라는 말이 있다. 실사구시는 모택동이 맑스주의 사상방법론의 중국화에 대한 개괄과 서술이다. 실사구시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해석하였다. "실사는 곧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고 시는 곧 객관사물사이의 내부적련계 즉 규률성이고 구는 곧 우리가 연구를 하는것이다."     “实事求是”是毛泽东关于马克思主义思想方法论中国化的概括和表述。……所谓“实事求是”,他解释说:“‘实事’就是客观存在着的一切事物,‘是’就是客观事物的内部联系,即规律性,‘求’就是我们去研究”。     이쯤 쓰면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거짓을 해야 할것인가" 하는것을 알게 될것이다. 그러면 무었때문에 실천가운데서는 아는대로 하지 못하는가? 2004년 4월 14일 4시 14분 
80    이 카테고리를 만드는 리유 댓글:  조회:1845  추천:0  2008-02-20
이 카테고리를 만드는 리유     이 카테고리는 학과학습의 지도와 직접적인 련계가 없다. 그냥 내가 학습한 경과를 적어보려고 만든것이다. 그리고 나의 학습경력으로 영어학습의 좋은 방도를 찾아보려고도 생각한다.     이 카테고리의 내용을 나의 학습기록이라고 해야 맞을것이다. 그냥 내용을 보면 리해할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에서 카테고리의 제목은 고치지 않으려고 생각한다.     매일 학습시간은 반시간 그리고 사용하는 프로그람은 bdc(轻轻松松背单词)이다.     설명은 이 정도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2008년 2월 20일 6시 52분
79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 댓글:  조회:1795  추천:0  2008-02-15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     어떤 기능을 학습하는데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직접 그 방면의 기능을 련습하는것이다. “손에 익으면 묘리가 생긴다”는 말이 여기에 적응되는듯하다.     말하는 능력을 제고하려면 부단히 말을 해야 한다. 말하는 과정에만 어떻게 말하는것은 정확한것이고 어떻게 말하는것은 착오적이거나 정확하지 못한가를 알수 있다. 여기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강연하는 기교를 련습하려면 강연하는 련습을 해야 하고 대화하는 기교를 련습하려면 대화하는 련습을 해야 한다. 강연하는 과정에 대화를 련습할수 있고 대화하는 과정에 강연을 련습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그냥 말하는 방법만 연구하고 말하지 않는다면 도리는 알아도 말은 못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것이다.    문장을 읽는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경상적으로 문장을 읽고 자신이 읽은것과 다른 사람이 읽은것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잘 생각할수 있다. 이렇게 얻은 체험이라야 진정으로 인상이 깊게 되고 효과도 있게 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 그리고 자신의 글을 읽는 과정에 다른 사람의 글을 읽던 인상과 비교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글을 쓰는 능력이 제고되게 된다. 이런 경우를 “보아서 익힌것은 보면 알고 들어서 익힌것은 들으면 안다”고 말해야 할것이다.    문제풀이도 마찬가지이다. 과도한 련습은 실증을 자아낼수 있지만 필요한 련습은 꼭 해야 한다. 그래야 경험을 루적할수 있고 기교도 장악할수 있는것이다. 한 문제도 풀지 않고 어떻게 그 기교를 잘 장악할수 있겠는가?     흥취보다 더 중요한것은 수요이다. 어떤 학습에 대한 수요가 산생되면 그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학습을 자각적으로 하게 된다. 이런 각도에서 승학의 수요도 학습을 주동적으로 하는 동력이 될수 있다.    “과학은 연구하고 기술은 련마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말하기 문장읽기 글쓰기와 같은 기능은 부단히 련습하는 과정에서만이 제고될수 있다. 그러니 부단한 련습만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수영기교의 학습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수영리론을 아무리 잘 학습한 사람이라도 물에 들어가 련습하지 않으면 영원히 수영기교를 배워내지 못한다고 한다. 학생들의 학습도 이러한 특점을 가지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한다. 2008년2월12일 8시42분
78    글을 쓰는 목적을 단정히 하여야 한다. 댓글:  조회:2132  추천:0  2008-02-14
글을 쓰는 목적을 단정히 하여야 한다. 블로그에서 글쓰기 10       글을 쓰는데는 다 일정한 목적이 있다. 하지만 어떠한 목적으로 쓴 글이나 다 유용한것이 아니다. 유용한 글은 다른 사람의 발전에 리로운것이고 다른 사람의 발전을 촉진시킬수 있는것이여야 한다. 유용한 글을 쓰려면 글을 쓰는 목적부터 단정히 해야 한다.     첫째, 글을 쓰는 목적은 자신의 능력을 전시하는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목적을 자신의 능력전시로 하는 사람은 문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나게 하는것을 위주로 하게 되며 그로 인하여 유용한 글을 쓰는 목적을 이룰수 없게 된다.     둘째, 글을 쓰는 목적은 개인의 리익을 도모하는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경제적수입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로 말하면 글을 쓰는 표준은 경제적리익과 밀접히 련계되는것이다. 유용한 글이라도 경제상의 리익이 없으면 하지 않는것이다.     셋째, 글을 쓰는 목적은 불만을 토로하는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블로그와 같은곳에 글을 쓰는 목적이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는것이다. 그냥 자신의 일가지언을 진리처럼 서술하는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글을 사실을 헛갈리게 하고 시비관념을 혼돈시키는 작용만 한다.     넷째, 글을 쓰는 목적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을 공격하는 글만 쓴다. 그들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잘 알아보아야 하는데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닌것이다. 자신의 개인리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리익 혹은 집체의 리익을 손해주는 일도 서슴치 않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글을 쓰는 목적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나의 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글을 쓰는 목적은 사상의 해방을 위해서이다. 지금에 와서도 사상상의 락후로 인하여 맹목적인 집행을 하려 하거나 틀린것을 그대로 옴겨오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을 잘하려면 우선 먼저 사상부터 해방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좋은 일을 잘 하는" 목적에 도달할수 있다.     둘째, 글을 쓰는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는것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글을 쓰는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는것이지 모순을 격화시키는것이 아니며 문제를 확대하는것도 아니다. 그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에 사회여론의 방조를 받으려는 목적이 있는것이다. 나 한사람의 말은 무시해도 사회여론은 그냥 무시하지 못할것이 아닌가?     셋째, 글을 쓰는 목적은 교류를 더 잘 진행하기 위한것이다. 어떤 문제의 교류는 여러가지 원인으로 직접 진행할수 없다. 혹은 지역상 혹은 시간상 혹은 공작상의 원인으로 교류은 당면에서 할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인터넷을 통하여 진행하는 교류는 아주 필요한것이다. 그리고 교류를 진행하는 목적은 또 단결을 강화하려는데 있는것이다. 많은 모순이 료해가 적고 교류가 적은데 있다는 판단을 하였기에 글을 쓰는 교류방식을 택하는것이다.     글을 씀에 있어서 목적을 단정히 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유용한 글을 쓸수 있고 글을 잘 쓸수도 있는것이다. 2008년 2월 14일 22시 25분  
77    세상은 나눠야 댓글:  조회:2044  추천:0  2008-02-14
세상은 나눠야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집니다. 너나 없이 사랑을 나눌줄 알며는 좋은 세상 밝은 세상 만들어집니다. 세상을 나눠야 행복해집니다. 사랑도 나눠가고 아픔도 나눠가며 편한 세상 나누는 세상 이뤄집니다.   아픔은 나누면 나눌수록 줄어듭니다. 너나없이 아픔을 나눌줄 알며는 좋은 세상 밝은 세상 만들어집니다. 세상을 나눠야 행복해집니다. 사랑도 나눠가고 아픔도 나눠가며 편한 세상 나누는 세상 이뤄집니다.   2008년 2월 14일 12시 35분
76    언어환경이란 말을 생각하게 된다. 댓글:  조회:1509  추천:0  2008-02-14
언어환경이란 말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착오도 용납할수 있는 여유가 있는가?     외국어를 학습하는데는 언어환경이 마련되여야 한다. 혹은 언어환경이 있으면 외국어를 배우는데 유리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외국에 가서 몇년을 있은적이 있는 사람이건만 외국어를 잘 못한다는것이다. 그러면 언어환경이란 말을 어떻게 리해해야 할것인가?     언어환경이란 "그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이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과 같이 인원류동이 큰 시대에 보면 외국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부동한 언어로 교류를 할수 있는 작은 사회환경들이 존재한다. 례를 들면 미국에 갔더라도 거기에는 한어만으로도 모든 일을 할수 있을 정도의 환경이 있는것이다. 그런 연유로 외국에 갔었다 하더라도 외국어를 모르고 지낸 사람이 있는것이다. 외국어를 모르고도 지낼수 있으므로 꼭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것이다. 물론 그중에 전혀 외국에 가지 않고 그런정도의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언어환경이란 말은 그러한 말을 사용할수 있는 환경 그리고 언어사용의 시범을 수시로 볼수 있는 그러한 환경을 말하는것이다. 그러한 환경에서는 말을 틀리게 하였다는 판단을 하는 경우가 적다. 그냥 숙련되지 못하였기에 그렇게 말하는가 한다. 그러나 이런 환경을 떠난 정상적인 사회활동에서는 그렇지 않은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도 갚는다"고 할 정도로 언어사용에 민감하다. 그러니 이러한 환경에서는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될수 없는것이다. 좋은 언어환경이라고는 할수 없다.     말하는 능력은 말을 하는 과정에 련습된다. 말을 잘못할가 걱정만 하는 사람은 말을 잘 할수 없는것이다. 말 하는 련습은 현실생활외에 인터넷에서도 할수 있다. 인터넷에서의 교류는 현실생활에서의 교류에 비해 더 큰 자유도가 있다. 그래서 틀리게 하는 말도 허용되는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과정에 련습도 될수 있다.     현실생활에서도 그러한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자면 자유롭게 교류할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할것이다. 연변과 같이 경제발전이 아직 뒤떨어진 곳에서 누구나 다 인터넷을 사용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그러니 돈을 적게 들이고도 할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것이다. 그냥 돈을 받는것만이 응당하다고 생각하는것은 그릇된것이다.     학교로 말하면 학생의 배양이 우선이다. 그전의 학교의 교수조건이거나 학교의 교원자질만 중시하는 표준은 학생배양의 근본목표와는 다른것이다. 학교의 질이 어떠한가는 그 학교에서 어떤 학생을 배양하였는가를 우선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그래야 진정으로 교육을 "인민이 만족해하는 교육"으로 되게 할수 있는것이다. 2008년 2월 14일 12시 1분  
75    가져오기와 바꾸어놓기 댓글:  조회:1959  추천:0  2008-02-14
가져오기와 바꾸어놓기 (우리가 처한 시대)     가져오기란 다른 사람의 경험을 그대로 옴겨와 자신의 성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가져오기는 다른 사람의 선진적인 경험을 학습하는것과는 다르다. 그냥 다른 사람의 작법을 표면적으로 모방하는데 “앵무새가 말을 배우는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바꾸어놓기란 다른 사람의 성적을 자신의 성적으로 기록하는것을 말한다. 그냥 자신의 스스로 공인하는 대가를 지불하면 되는것이다. 영예는 자신에게 남기고 리익은 다른 사람(실제로 일을 한 사람)에게 돌려지는것이다. 그래서 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천수관음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이 리해할수 있다. 하나는 한 사람의 능력이 아주 강하기에 손이 천개 있는듯하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으로 말하면 아주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할 일을 혼자힘으로 다 해낸다는 뜻이 된다. 두번째로는 한 사람이 어떤 방면의 공작에 아주 숙련되였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일에 숙련되였기에 아무리 복잡한 일이라도 아주 쉽게 해결하는것 같다. 일을 많이 한 결과인것이다. 최저한 많은 일을 겪었거나 체험하였거나 보아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세번째 해석은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지휘하여 일을 하는것을 말한다. 이런 경우 그 자신은 지휘나 하고 구경이나 하고 감독이나 한다. 일은 모두 다른 사람이 한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손이나 발처럼 리용한다는 말로 리해할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경우에는 “시키는대로 하기만 하라”고 한다. “머리를 쓰지 말고 손만 움직이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을 “말 할줄 아는 기계”로 보는것이 아닌가?     가져오기를 했음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그 가운데 내포된 함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냥 그것이 자신에게 필요한것을 가져다 줄수 있다는것만은 잘 알고있고 그것을 실현하는것이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는것만은 잘 알고있다.     바꾸어놓기를 하면 되는 일이니 더 깊이 연구할 필요는 없다. 그냥 “경험”재료를 모방하고 그중의 일부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놓으면 되는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냥 이름만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놓아도 되는것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이라야 그냥 그 “바꾸어놓기를 어떻게 하였는가”만 알아보면 되는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런 방식으로 성공했으니 내가 해도 성공할것이 아닌가?     동시와 서시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서시의 어떤 행동거지가 다른 사람의 찬양을 받는다고 그 겉모양을 따라 하느라 했는데 도리여 웃음거리가 되고 조소를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행동을 어떻게 하였는가만 보고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였겠는가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은것이 그 원인으로 되는것이다.     마음을 잘 먹었다 하여 일을 잘 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일을 잘하려면 필요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상응한 “대가”도 지불해야 하는것이다. 다른 사람의 신임을 받을만큼한 노력을 해야 하는것이다.     노력이 없이 하루아침에 성공할수 없다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허지만 힘든것은 싫고 편안한것만 바라는 마음이 있는것만큼 그렇게 기회만 노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갓 폭리시대를 경과한 사람들로 말하면 새로운 폭리시대의 산생을 기대하는것은 당연할것이다.     능력이 제한되니 이런 방법밖에 쓰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한 사람의 시간과 정력은 제한되여있다. 그렇게 제한된 시간에 많은 일을 하려 하니 그렇게 밖에 할수 없는것이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경우데도 그러하다. 접수도 되지 않는 일을 그냥 해야 하고 리해도 되지 않는 일을 그냥 해야 하니 적극성이거나 주동성이란 있을수 없는것이다.     편안할것만 바라니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냥 어린이다운 천성을 유지하려 하고 그로 인하여 오락을 할것만 바라니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런 사람으로 말하면 “공작하는 가운데서 느끼는 쾌락”은 감수할수 없고 공작이 그들에게는 언제나 의무인것이다. 다른 사람의 쾌락으로부터 쾌락을 느끼는 일은 있을수 없는것이다.     자신의 생각대로만 하려 하니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것이다. 부동한 의견은 듣고싶지 않고 자신이 구상한대로만 하려 한다. 그러니 어린이처럼 고분고분 말을 듣는 사람밖에 접수할수 없는것이다. 이러한 사람으로 말하면 조작능력이나 강한 사람이 기술이 숙련되거나 창조적능력이 있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것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그냥 자신의 생각과 구상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면 “마음에 드는것”이다.     우리에게는 외국의 것이면 다 좋은가 하는 결함이 있다. 그래서 가져온것이면 다 좋은가 한다. 어떤 것을 가져다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다른것을 가져온다. 그래서 가져오기라는 말이 주의(拿来主义)라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것이다.     혹은 과거의것은 다 좋다고 한다. 지금의 문화에서는 좋은것을 찾을수 없으니 고대문화에서 좋은 것을 찾아내는수밖에 없는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연구도 하지 않고 그냥 계승하려고만 한다. 고대문화로 외래문화를 바꾸어놓는것을 전통을 계승하는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외국인이 아니고 고대인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에게 해당되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외국인과 다르다 하여 시대에 떨어진것이 아니고 고대인과 다르다 하여 전통문화를 버리는것이 아니다.     현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우리로서의 기회와 도전이 있는것이다. 그런 기회를 파악하고 그런 도전을 이겨내는것이 우리의 새로운 문화인것이다. 이런 현실에 적응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여야 한다. 우리의 현실생활에 부합되지 않는 새로운 문화는 거절할수도 있고 우리의 현실생활에 부담이나 증가하는 전통문화는 버려도 되는것이다.     가져오기거나 바꾸어놓기를 할때 잘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라 하여 그냥 하여도 무방한가? “사람이 자신을 수호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人不为己,天诛地灭)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자신의 리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하여도 된다"(为达目的,不择手段)는 말은 아닐것이다. 잘 생각해보아야 할것 같다. 2008년 2월 13일 9시 36분
74    말하기와 언어기교 댓글:  조회:1518  추천:0  2008-02-13
말하기와 언어기교 강연을 하는데도 절대적인 표준자세가 없다.     어떤 기교를 숙련되게 장악하려면 직접적인 훈련을 하는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과학은 연구하고 기술은 련마한다”는 말이 여기에 적용된다. 말하기는 말하는 과정에서 숙련되고 말을 하는데 장애가 없어야 언어기교도 련마할 가능성이 있는것이다.     말을 하는데서의 첫번째 장애는 “말을 잘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심리문제를 극복하는것이다. 첫째,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본적인 원칙이 있어야 한다. 금후의 법치사회에서 시비를 가르는 기본적인 원칙은 법률법규이다. 법률법규에 부합되는것은 옳은것이고 법률법규에 저촉되는것은 그른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턱대고 그른것도 옳다고 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시비관념을 혼돈하는 작용만 하게 된다. 둘째, 말하는 능력이 차한것을 극복해야 한다. 처음 말을 할때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이 없다.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고 듣는 사람이 삼가하라”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특히 교원이 학생과 교류할때에는 학생의 말을 잘 리해해주는 도량이 있어야 한다. 비교적 자유롭고 넉넉한 환경이 언어환경이 있어야 학생들의 말하기 능력의 제고가 빨라질수 있다. 셋째, 언어기교보다 정확한 표달을 더 중시해야 한다. 말을 하는 목적은 자신의 의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달하는것은 그 어는 언어기교보다 더 중요하다.      말을 하는데서의 두번째 장애는 “어떻게 해야 말을 잘할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것이다. 첫째, 말을 잘하려면 말을 들을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때 그가 말하려는 내용이 무엇이고 말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냥 들어주는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다. 왜냐 하면 그냥 그렇게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수 있는 장소를 찾는 사람도 있기때문이다. 둘째, 어떤 말을 듣고싶어하는가를 료해해야 한다. 이러한것은 말을 듣는 과정에 료해할수 있고 적당한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으로 료해할수도 있다. 셋째, 어떻게 말해야 접수 할수 있겠는가를 료해해야 한다. 듣는 사람이 접수할수 있는 방식으로 말해야만 말을 잘했다고 할수 있는것이다. 이러한것들은 언어기교에 속한다고 할수 있다. 주의해야 할 문제는 이런 기교를 사용함에 있어서 원칙성적인 착오를 범하지 말아야 하며 의기성적인 말이거나 충동성적인 말을 면해야 하는것이다. 그래야 문제해결에 도움을 하지 못하더라도 시끄러움은 증가하지 않을수 있다.    말을 하는데서의 세번째 장애는 “어떻게 말해야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것이다. 말을 하는데는 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이 있는것이다. 첫째, 의기성적인 말을 하는것을 삼가해야 한다. 많은 경우 모순의 산생은 의기성적인 말을 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지금과 같이 통신수단 등이 아주 발전한 정황에서 이 문제는 더욱 돌출하다. 그러므로 말을 할때에는 평온한 심정을 유지하는것을 주의해야 하면 자신의 능력으로 진정할수 없는 경우에는 될수록 말을 적게 하는것이 좋다. 둘째, 맹목적인 쟁론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다른 사람과 부동한 의견이 있는 경우 자신의 생각을 내심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외에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 잘 고려해보아야 하며 원칙성적인 큰 문제가 없다면 그 의견을 접수할수도 있는 도량이 있어야 한다. 셋째, 어느것이 주요한 문제이고 어느것이 차요한 문제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문제해결과 누구의 건의를 채납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문제의 해결은 주요한 문제이고 누구의 건의를 채납하는가 하는것은 차요한 문제인것이다.     말을 하는데서의 네번째 장애는 “화제가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것이다. 첫째, 자기에게 합리한 화제를 고를수 있다. 말하는것보다 말을 듣는것을 더 중시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경우 이런 방법이 비교적 합리하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관점을 잘 전달할수 있고 대방으로 하여금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할수 있다. 둘째, 대방에게 합리한 화제를 고를수 있다. 자아표달능력이 강하고 모든 일에서 자신의 관점을 갖고있는 사람과 교류하는 경우에 이런 방법을 쓸수 있다. 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전시하게 할수 있고 자신의 듣고싶은 말도 들을수 있는것이다. 셋쩨, 공동으로 관심하는 문제를 화제로 할수 있다. 평등한 각도에서 문제를 토론하거나 교류를 진행하는 경우에 이 방법을 쓸수 있다.     말을 하는데서의 다섯번째 장애는 “말을 하여 손해보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것이다. 첫째, “말이 많으면 쓸말이 없다”고 한다. 말을 많이 한것으로 필요없는 말을 한것으로 시끄러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그로 인하여 말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필요한 말만 하는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말하기를 련습하는데는 도움이 없다. 절대적으로 틀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것이다. 둘째, 연구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가 걱정한다. 자신의 연구결과가 다른사람에게 전해지고 그로 인하여 자신이 얻을 리익을 얻지 못할가 걱정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경우에 교류는 그냥 쓸모없는 일에만 그친다. 그리하여 진정한 학술교류는 특정된 환경에서만 진행될수 있다.     이상의 장애를 극복해야만 말을 부담없이 할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달할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말을 자주 해야만 어떻게 말해야 할것인가를 알수 있고 언어기교도 련습할수 있는것이다. 기실 언어의 기교가 어떠하던지 말하는 내용과 말하는 목적을 파악하는것이 가장 중요한것이다. 이런 각도로 보면 “문외한은 구경을 하고 전문가는 비결을 찾는다”는 말이 여기에 적용되는것이다. 혹은 “현상을 통하여 본질을 본다”라고 해야 더 적합할것이다. 그러니 언어기교에 숙련된 전문가로 말하면 언어기교는 쓸모도 없는 겉치례에 불과한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는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달하는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것이다.  2008년2월12일 22시 14분
73    현실생활에서의 실례과 결합하여야 물리를 잘할수 있다. 댓글:  조회:1441  추천:0  2008-02-01
현실생활에서의 실례과 결합하여야 물리를 잘할수 있다.     그전에는 물리를 잘 못하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로 말하면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학습가운데서 감수하였다는 내용들을 적어본다.     1, 정비례와 반비례관계를 확정하는 방법은 현실과 비교하는것이다. 질량과 무게사이의 관계가 있다. 우리의 경험으로 보면 질량이 큰 물체가 더 무겁다. 즉 무게와 질량의 관계는 정비례관계인것이다. 그것들사이의 전환상수가 바로 g인것이다. 그러므로 이 관계식은 G=mg이다. 정비례관계이므로 질량 m는 분자부분으로 될수 밖에 없다.     2, 단위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만약 계산에 사용한 공식이 정확하고 매개 량에 모두 기본단위(혹은 표준단위)를 사용하였다면 계산결과는 구하려는 량의 단위가 되여야 한다. 례를 들면 질량(kg)가 구하려는 량이라면 계산결과의 단위를 이 되는것이다. 만약 단위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익숙하다면 계산결과의 단위에 근거하여 공식의 정확여부를 판단할수도 있다. 례를 들면 N=kg·m/s↑2이다.     3, 문제풀이를 중시해야 한다. 일정한 량의 문제풀이는 문제풀이기교를 장악하는데 필요한것이다. "손에 익으면 묘리가 생긴다"(熟能生巧)는 말이 여기에 적응되는것이다.     이상은 내가 물리를 학습할때 사용했던 방법이라고 생각되여 적은것이다. 학습을 하는 목적은 편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의의있는 삶을 위해서인것이다. 그러니 학습을 한다하여 그냥 쉽게 성공하려니 생각하지 말고 노력을 하여 성공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도 나의 학습경험의 하나이다. 2008년 2월 3일 13시 23분    
72    전자자막의 사용과 관계되는 내용 댓글:  조회:1996  추천:0  2008-02-01
전자자막의 사용과 관계되는 내용     전자자막의 사용과 관계되는 내용은 두개부분이다. 프로그람을 다시 설정할때 필요한 내용들이다. 이 내용의 2007년도 일기책에도 있다.     첫부분: 기본화면의 내용.     屏号:0,1型     颜色:双色     宽度:768     高度:64     串口:com1     速率:38400     두번째 부분:설정내용. 프로그람을 다시 안장한 경우 설정해야 할 내용이다.     设置内容:     一、设置→通讯。     模式:串行通讯    延时:1秒     串口:com1    速率:38400     二、设置→显示屏     串口:com1-8    屏号:0         设定     类型:1型    双色       屏宽:768    屏高:64       开屏时间:  0(时)  0(分)     关屏时间:23(时)59(分)       비밀번호는 여기에서 생략한다. 나의 일기책에 있으며 필요하다면 굉덕(宏德)의 경리한테 물어볼수도 있다. 평소의 사용에서는 사용하지 않는것이다. 2008년 2월 1일 16시 33분
71    오늘의 공작내용을 적어본다. 댓글:  조회:2058  추천:0  2008-02-01
오늘의 공작내용을 적어본다.     오늘의 공작내용은 조금 번다하다. 기억의 편리를 도모하여 하나하나 적어둔다.     1, 나팔에서 나는 소음을 제거하라 한다. 그 소음은 확대기(혹은 확음기)로 인한 소리인데 제거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2, 화면이 좁은 문제를 해결하라 한다. 설비의 공능제한으로 할수 없다. 후에 찾아본다 했지만 해결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3, 책상의 앞면을 가리라고 한다. 같은 재료가 없으면 비슷한것이라도 사라 한다. 노트북컴퓨터의 사용선은 확대기의 옆으로 선을 내오라고 한다. 그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것이다.     4, 스위치의 덮개부분만 사라고 한다. 덮개만 파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까짓 스위치 하나때문에 온 도문을 다 돌아볼까?     오늘 포치한 일은 이런것뿐인것 같다. 천천히 돌아보아야 겠다. 2008년 2월 1일 14시 57분 
70    달 방문량 4000을 맞이하면서 ... 댓글:  조회:1909  추천:0  2008-01-31
달 방문량 4000을 맞이하면서 ... 블로그에서 글쓰기 9     이달의 방문량이 4000에 접근하고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동력의 하나가 방문량일것이다. 보는 사람도 없는 글을 누가 쓸 생각이 있겠는가?     "글장의 세계"도 방문량이 괜찮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냥 하루 20~30차 좌우이다. 자신의 수단으로 그 량을 증가하는 방법은 있으나 그런 방법은 쓰고 싶지 않다. 그냥 련습으로 쓴 글이 이곳에서의 방문량은 그곳보다 퍽 많다. 그래서 그냥 써가고 있는것이다. 이대로라면 금후의 방문량은 더 증가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도 해본다.     남들은 액외의 수입을 올리려 할 내용들을 나는 그냥 여기에 쓰려 한다. 수준이 낮은 원인도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보아주는것만으로도 만족이기때문이다. 나의 글가운데는 민감한 문제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더러 주저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가 전보다 많이 발전한 이상 근심할 필요도 없지 않는가?     그래서 그냥 써낸다. 금후에도 써보려 한다. 방문량의 증가만 있어도 만족이고 덧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보는 것만큼 동조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것으로도 안위를 느낄수 있다. 그런 문장을 보는 과정에 사고하는 습관을 키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없이 사는 사람이 우리주위에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금후 방문량이 더 많아질것을 기대하면서 ... 2008년 1월 31일 13시 20분
69    화학방정식을 읽을줄 알아야 한다. 댓글:  조회:1782  추천:0  2008-01-31
화학방정식을 읽을줄 알아야 한다.     화학방정식을 읽을줄 알아야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 화학방정식을 읽을줄 알면 아래의 몇가지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     1, 화학사실을 기억할수 있다. 화학방정식이 표시하는것은 화학사실이다. 때문에 화학방정식을 기억하면 화학사실을 알수 있는것처럼 화학사실을 알면 화학방정식을 쓸수 있다.     2, 화학방정식을 기억하는 난도를 낮출수 있다. 어떤 지식이든지 리해한 기초상에서 기억하면 기억하는 난도를 낮출수 있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도리이다.     3, 화학반응 원리를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 부동한 화학사실사이의 비교와 귀납을 통하여 화학반응의 원리를 쉽게 리해 기억할수 있다. 례를 들면 연소의 조건은 일반적으로 점화이고 산화-환원반응의 일반조건은 가열인것이다.     화학방정식을 읽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와(혹은 과) **가 ** 조건하에서 반응하면 **와(혹은 과) **이 생성된다. 화학방정식에서의 "+"은 와(혹은 과)로 읽고 "="는 "... 반응하면 ...생성된다."로 읽는다. 례를 들면       이 화학방정식은 "탄소와 이산화탄소가 점화하는 조건에서 반응하면 이산화탄소가 생성된다"로 읽는다. 2008년 1월 30일 19시 38분
68    은거 댓글:  조회:2158  추천:0  2008-01-28
은거(隐居)     은거에 대하여 네이버의 사전에서는 이렇게 해석하였다. 은거[隱居][명사]세상을 피하여 숨어서 삶. 그러면 그때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은거하였을까? 은거의 원인     은거하는데는 은거해야 할 원인이 있는것이다. 속세(俗世)에서는 그냥 살수 없으니 은거밖에 할수 없는것이다. 그래서 고대의 사람들은 은거할라 하면 깊은 산속에 숨어살았다. 그렇게 누구도 알수 없는 곳에서 이름까지 숨겨가면서 살았다. 그럴 정도로 그때에는 은거할만한 곳이 있었다.     지금도 은거를 추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우리의 주위에는 자신이 우월하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고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할수 없으니 다른 사람의 결함을 지적하려고만 한다. 그러니 그런 사람의 눈길을 피하려면 자연히 은거를 생각하게 되는것이다.     "천하에 힘든 일이 없으나 마음을 쓰는 사람이 두렵다"(天下无难事,只怕有心人)는 말이 있다. 일이 힘든것보다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더 두렵다는 뜻이다. 또 "나쁜 일이 있는것은 두렵지 않으나 나쁜 사람이 있는것이 두렵다"(不怕没好事,只怕没好人)는 말이 있다. 이런것들도 은거를 택하는 원인의 한가지일것이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주의하지 않을수 없다. 그렇게 유명한 예수(耶稣)도 나중에는 종교의 심판을 받는다. 은거의 방식     은거의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누구도 찾을수 없는 곳에 은거하는것이 한가지이다. 그래서 누군가 찾으려 해도 찾을수도 없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것도 한가지이다. 그렇게 누구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를 곳에서 은거한다. 지금의 사회에서 문장에 필명(笔名)만 적는것도 한가지 은거의 방식일것이다.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역시 은거의 목적에 이를수 있는것이다. 그 다음은 능력상실처럼 위장한다. 기억력을 잃은 사람처럼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그냥 심부름이나 하는 정도로 있는다. 그러다나면 주위사람은 그냥 멍청이인가 한다. 그러면 묻는 사람도 없다.     그외에도 일부 특수한 형식의 은거가 있다. 공처(恐妻)는 한가지 은거이다. 공처가이므로 많은 일에 참여할수 없다. 자연히 말썽거리가 적어진다. 애완물을 키우는것도 한가지 은거이다. 애완물을 키우려면 일정한 시간이 들고 그로 인하여 쓸모없는 교제를 안해도 된다. 그만큼 마음도 편할것이다. 이렇게 보면 화분을 키우는 것도 일종의 은거이다. 그로 인하여 시간의 여유를 의의있게 보낼수 있는것이다. 은거할곳이 더는 없다.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 은거할곳은 더는 없다. 그럴 정도로 어는 곳에나 사람이 발길이 닫지 않는곳은 없는 것이다. 옛 사람처럼 어느곳에 조용히 은거하고 싶어도 그럴만한 곳이 더는 없는것이다. 아무리 깊이 숨어있는것 같아도 누구든지 다 찾아낸다.     이것뿐이 아니다. 하루라도 조용히 무엇을 연구할라 하면 누군가 찾아온다. 전화로라도 나오라고 한다. 그냥 거절할수 있는 경우 가 아주 적다. 그만큼 견결한 태도가 아니고는 안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디에 있을때나 누군가 감시하지 않는가 하는 감각이 온다. 그리고도 그것을 모를까 걱정하는지 "어느때 어떤일을 한 것을 안다"는 식으로 암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은거할 가능성이 없다.     그냥 그렇게 혼자 있어도 누군가 그냥 감시한다. 내가 겪은 일이여서 더 잘 리해되는 일이다. 그래서 나를 신경이 너무 예민하다고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냥 그런 일이 발생한 이상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수는 없을것이다.     나와 거래한 사람중에 나의 말에서 흠집을 잡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와도 거래하지 않는다. 그냥 혼자로 지내고있다.     나의 글들은 근간에야 해볕을 본다. 그전에는 그냥 궤짝에 감추어두었다. 그 글때문에 공작에 영향을 받을까 걱정이 되였기때문다. 그런데도 그 내용들을 안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 내 생각에는 잘 감추어두었다고 생각한 그 문장을 누군가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이 되는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때문에 소각해버린 문장은 얼마인지 나도 잘 모른다. 지금 블로그에 있는 문장은 다 근간에야 쓴 문장들이다.     집에서 책을 볼라 하면 주위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을수 있다. 그렇게 감시하는 사람이 있는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그냥 모르는척 해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컴퓨터를 사용해도 내 컴퓨터에는 누군가 그냥 손을 댄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정황을 감시하는지도 모른다. 그랬다고 무엇을 보아낼수 있는지 이상하게 만 느껴질뿐이다.     이쯤 보시면 알수 있을것이다. 내 행동에 대해서는 시시각각 누군가 지켜보는것이다. 그러니 은거는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은거할 필요는 없다.     이젠 더는 은거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견해가 정확한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것이라면 그냥 그대로 써도 괜찮다. 금후의 사회는 법치(法治)의 사회이다. 그러니 법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면 다 할수 있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는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특점이라면 살아서 의의있는 일을 하는것이다. 그냥 잘 먹고 잘 입고 구경거리를 다 하고 오락을 다 하는것을 목표로 한다면 그 삶의 추구는 동물이나 다름없다.     유익한 일을 하는데 제일 큰 장애는 사람이다. 특히는 기득리익(即得利益)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기득리익이 손해갈가 걱정하는 사람이 제일 큰 장애이다. 전에 비해서 지금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전처럼 이것저것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것이다. 그러니 유익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여도 괜찮은것이다.     어느 사람 혹은 어떤 관점 등은 모두 세상사람들로 말하면 선택문제(选择题)의 선택항(选项)과 같다. 자신의 관점 혹은 자신의 그런 선택을 받으려면 정확한 관점을 지녀야 하고 정확한 사람으로 되여야 한다. 그래야 선택문제에서 선택되는 그 선택항으로 되고 도태되는 선택항으로 되지 않는것이다. 맺는 말     은거는 목적이 아니다. 유용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잘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는것이다. 죽는것이 두렵지 않다 하여 죽는것을 택한다면 누가 나를 대신하여 내가 하려는 유용한 일을 하겠는가? 그러니 은거가 가장 효과있는 방법일것이다. 2008년 1월 28일 11시 55분     보충설명: 나는 력사사실같은데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혹 기억대로 쓰면 력사사실과 맞지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에 그냥 력사사실의 인용은 생략한다. 그만큼 금후에 내용을 찾는대로 수개를 하려 한다.  
67    나의 운동기재 댓글:  조회:2128  추천:0  2008-01-25
나의 운동기재(运动器材)     나에게 있어서 집을 장식한후에 남은 수도관(饮用水给水管) 한토막, 사피관(蛇皮管) 한마디가 다 운동기재이다. 그래서 시간이 생기면 이런것들을 리용하여 내 나름대로의 운동을 한다.     수도관(길이 34.6cm)의 한쪽 혹은 가운데부분을 쥐고 좌우 혹은 상하로 손목, 팔굽, 어깨 등을 움직인다. 운동의 강도는 될수록 약하게 하고 운동시간 운동량을 일정하게 증가한다. 힘들다고 생각되면 인츰 휴식하고 나아진 다음 계속한다. 평소의 운동이 아주 적은 나에게는 이것도 좋은 운동이 된다.     사피관(길이 6.2cm)을 두세개 손가락으로 꼭꼭 쥐였다 놓았다 한다. 사피관의 한쪽이 조금 연하고 한쪽이 조금 단단한데 근거하여 때론 연한쪽을 때론 단단한쪽을 리용한다. 운동강도보다 운동량을 위주로 하느라면 운동효과가 생긴다.     운동은 언제나 자신에게 알맞게 해야 한다. 조금 운동하였다는 감이 나면서도 힘들다는 감이 없게 해야 한다. 70%~80%의 운동능력으로 하면 비교적 합당하다.     운동을 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이렇게 사소한 물건도 좋은 운동기재가 될수 있다. 관건은 운동에 대해서도 중시를 돌리고 운동도 하나의 공작내용과 같은 위치에 놓아야 한다. 나는 책을 자주 보다나니 운동을 할때에도 자리를 움직이기 싫다. 그래서 그냥 이와 같은 운동을 한다. 오락보다 운동을 더 중시해야 한다. 2008년 1월 25일 0시 23분
66    구경군 댓글:  조회:1713  추천:0  2008-01-25
구경군(看客)     일을 할라 하면 그 가운데 일을 시키는 사람,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구경군이 있다. 그렇게 각자는 다 자신이 맡은 배역(角色)이 있는것이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설계를 하고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하고 안배를 해야 한다. 일을 하는 사람은 일을 잘하기 위한 시간준비 기술준비 공구준비 등을 하여야 한다. 구경군은 그냥 구경만 하는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현상에 불과하다.     구경군은 구경만 하는것이 아니다. 이말저말 "쓸모없는 말"을 그냥 끝없이 한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비웃는가 하면 이 령도 저 령도도 평한다. 진정 능력이 대단한 사람같다. 일을 하는 경우에 사람은 일을 잘하려는데만 몰두하다나니 흔히 자신의 언행과 같은 기타 방면에 대하여 크게 중시하지 않으며 그로 인하여 실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거나 의기(义气)적인 말을 하게 된다. 그것이 구경군이 바라는 효과인것이다. 그래야  (어느분에게) 회보할 일(혹은 내용)이 있는것이다.     구경군은 구경만 하지 않는다. 전반 과정을 마음에 새겨둔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자신의 나름대로 판단하거나 혹은 자신의 방식대로 조사를 하고 자신의 생각을 회보한다. 그래서 될수록 좋은 방법이 선택되게 하는데 정확한 결책을 하는데 자신의 공로가 있다고 여긴다.     구경군은 구경만 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 자그마한 장애를 만들어놓는다. 그리고 해결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능력이 없다고 평한다. 그다음 자신이 "구세주"처럼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 "보라!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한다.     이 정도로 쓰면 구경군이 구경만 하지 않았다는것을 알수 있을것이다. 그래서 일을 할때면 이런저런 구실을 대고 하지 않고 구경만 하여도 일부 령도한테는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일만 하는 사람(일벌레)보다 낫다고 말한다.     형사본색(刑警本色)에 두사람이 담화를 하는데 그 뒤의 화면에서 서로 갈라져 가는 두사람은 각기 자신의 속호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록음기를 꺼내여 록음효과를 들어보는 화면이 있다. 우리의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지 모른다. 혹은 무선마이크(无线话筒), 혹은 대화기(对讲机), 혹은 이동전화(手机) 등을 사용한다. 이외에도 더 선진적인 도청기(窃听器) 바늘구멍촬영기(针孔摄像机)같은 설비를 쓰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그러기에 일을 할때에는 쓸모없는 말을 말아야 할것 같다. 혹은 그냥 말해도 괜찮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만큼 우리의 솔직한 사람(老实人)들도 련합해야 하는것이다. 그래야 일도 하지 않는 구경군이 더는 작용을 일으킬 공간이 없을것이다. 2008년 1월 25일 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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