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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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문화필록2 댓글:  조회:2775  추천:74  2008-01-31
문화필록2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문화를 떠나서는 생존할수 없다. 하지만 문화에 대해 전면적인 전문적인 리해를 지닌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익숙한것이 잘 아는 사물이 아닌것처럼(熟悉并不等于熟知) 우리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문화로서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문화를 대체할수는 없다.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언론을 계속하려면 문화의 형태와 특징, 문화의 표현방식에 대한 개괄적인 언술이 필요하다. 그럼 문화란 어떤 형태와 특징을 지니고 있을가? 인간과 인간사회와 련관성을 지닌 사물은 너무나도 복잡다단하며 또한 문화는 動적인 인류력사속에서 수다한 변화성과 표현성을 지니고 있기에 문화현상들을 분류하여 그 형태와 특징을  槪定한다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가능성 중에서 문화의 형태와 특징을 론한 설은 아주 많다. 그 수많은 설중에서 하기의 설법이 비교적 완벽하고 형상적이라 생각되므로 참고로 제공하고 싶다. 문화는 球체로서 3 분분으로 귀결된다. 1외곽부분: 문화가 이루는 물질적인 문명이다 . 인간의 비애성으로도 표현되는 물질의뢰성은 인류의 동물적인 생리성에서 기원이 된다. < 먹어야 량반> < 살아있는 개가 죽은 신선보다 좋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생존에 있어서 의식주가 제1의 결정적인 인자이다. 때문에 어떤 문화이던지 초급적인 목적은 물질생산과 물질생활에서 반영되며 또 물질적인 표현을 이룬다. 그 물질적인 표현은 또 생산도구와 생활용품으로 나뉘여진다. 문화의 물질성은 可視성을 제공하는 露出의 의미를 지닌다. 부동한 문화 또는 부동한 문화권에 대하여 비교를 진행 할 경우,문화의 외곽부분에 대한 비교가 직접적인 비교로 표현되고 있다. 2내심부분: 인간의 군체성은 인간사회의 물질생산과 물질소비의 규모화과정에 사회적인 조직적인 보장을 요구한다. 동일한 자연조건하에서도 생산력수준의 차이로 말미암아 생산조직과 생산방식은 부동할수도 있다. 생산조직과 생산방식을 기본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각종 시회제도가 바로 문화의 내심부분이다. 사회제도는 정치제도를 비롯한 여러가지 제도를 유기품이며 흔히는 제도문화라고 표현하는 실례가 많다. 사회제도는 자연적인 선택을 거친 사회운영의 루루로서 외곽문화인 물질문화보다는 은페성을 다소 지니게 된다. 때문에 문화비교에 있어서 문화의 내심부분에 대한 비교는 실증주의방법보다도 사변적인 력사적인 형이상학적인 방법이 많이 도입되여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겠다.        3핵심부분: 문화의 핵을 이루는 부분은 문화정신으로서 세상을 살어가는 근본적인 태도와 사유방식이다. 문화정신은 문화의 내심부분보다도 은페성이 강하며 <<세상구경>>을 못한 개인과 집단은 부동한 문화정신에 대한 감수성이 락오되여있다. 개방적이고 활동적이고 포용적인 전통과 경력을 지니였으며 사변성 론리성이 강한 개인과 집단은  문화의 핵심부분에 대한 감수와 리해가 민감하지만 그 반면을 이루는 개인과 집단은 문화비교에 있어서 흔히는 외곽부분에 머물기 십상이며 <<누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서 자고 어떻게 다니고>> 하는 물질적인 차원에만 머무르면서 간혹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입고 어떻게 자고 어떻게 다니고> 하는 사회제도의 차원에서 문화비교를 하기도 하지만 정신문화라는 차원에서 문화비교를 진행함은 좀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다.      문화의 3부분은 문화표현과 문화형태에 대한 형상적인 분류방식의 결과일뿐이다. 문화의 물질적측면과 사회제도측면 그리고 문화정신측면은 상대적인 독립성을 지녔을뿐이지 3부분 모두가 나머지 2부분을 떠나서는 존재할수 없다.  
59    문화필록 1 댓글:  조회:2729  추천:79  2008-01-31
문화필록 1      문화란 무엇일가? 衆言이 잡다하고 아직 권위적인 해석을 만들기는 힘들다. 한자로 文化란 紋의 化로서 언원의 원초적 의미는 인간이 지켜야 할 규칙의 생성과 변화 그리고 조화라고 해석이 된다. 그러므로 동양한자권에서 말하는 문화란 인간생존에 있어서의 준수하여야 할 리용하여야 할 객관법칙을 두드러지게 내보이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명이 되여있다. 하지만 서양권에서 말하는 문화란 고대 라틴어와 영어에서 지닌 어원의 의미가 정신경작으로 해석이 되여있으며 인간생명에 내재하는 생명초월의 욕망을 두드러지게 내보이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판정되여 있다. 이처럼 문화에 대한 언어적인 리해를 동서양식으로 구분한다면 동서양권이 문화에 대한 느낌과 내용표현이 조금 부동하다. 동양은 문화의 결과성과 객관성을 강조했고 서양은 문화의 출발점과 주관성을 강조했다. 문화에 대한 경전적인 해석이 160가지 된다는 설도 있지만 어느 설도 문화란 인류를 떠나서는 존재하할수 없는 현상이고 개념임을 공인한다. 인간생명이 없이는 인간사회가 없이는 문화를 운운할수가 없다. 한다면 왜서 동물세계에는 문화가 없고 인간사회에는 문화가 생성되고 발육되고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고 있는가는 물음에 문화란 인간의 제2자연성이라는 해석이 비교적 합리한 해석으로 생각된다.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고리에서 모든 동물들은 생존에 적합한 신체특징과 기능을 지니고 있지만 유독 인간만은 여러 종 동물들과 겨눌만한 신체특징과 기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힘과 속력에서 많은 동물과 비교가 아니되고 또 비상을 한다든가 물속에 잠입한다든가 등등의 신체적인 우세를 지니지 못했고 또 어떤 종류의 동물처럼 생리의 어느 부분이 특별히 발달되여 생존을 지속할수 있는 생리능력도 없다.(례를 들면 후각 촉각 시각이 고도로 발달된 동물) 때문에 인간은 기나긴 생존과정에 대뇌를 발달시켜 인간의 제2자연성이라는 문화를 촉구하면서 생물고리의 최상을 차지하게 되였다. 문화의 제2자연성은 문화가 존재하는 종극적인 원인으로부터 출발하여 문화에 대해 진행한 해석이다. 광의적인 의미에서는 문화와 문명이 합일성을 보이는 현상이고 개념이다. 다만 문명이란 문화가 만든 결과이고 표현이라는 점으로 보면 문명이란 문화의 성과성에 대한 해석으로도 보여진다.    문화가 생성된 원인과 문화가 만들어주는 결과 모두가 인간과 인간사회를 떠날수 없듯이 문화가 존재하는 과정도 인간 그리고 인간사회를 떠나지 못한다. 문화의 발생원인과 발전과정 발전결과로부터 보면 문화의 제일 뚜렷한 특징은 인간사회성이라고 인정된다. 문화의 다른 특징은 례를 들면 전파성 군체성 등등도 모두가 문화의 인간사회성이라는 특징으로부터 배태되였고 또 인간사회성으로 귀결이 가능하다.  
58    [잡담15] 아주 위험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댓글:  조회:3572  추천:61  2008-01-28
잡담 15 아주 위험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작년 10월 어느 날, 장춘-연길행 장거리뻐스를 탔다. 어느 한국인과 동행하여 한참 지껄이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중년남자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그러다가 한마디 건네왔는데 알고보니 적은 연변이고 현재 절강에서 일을 본다는 조선족이였다. 어려서부터 한족학교를 다녀서인지 조선어보다 중국어가 숙달된 그 분이 동행한 한국인하고는 별로 소통이 아니되는지 나와 중국어로 열심히 얘기를 했다. 초면이라 얘기 꺼리가 없었고 한국에 대하여 한국인에 대하여 말이 많았다.정말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연변에서 거의 5백명을 조직하여 한국에 연수생으로 보냈는데 인천부두에 내리여 통관중에 어떤 원인으로 통관이 못되고 여차여차의 곡절을 거쳐 다시 연변에 돌아왔는데 로무를 조직한 기관산하의 회사에 가서 수백명이 행패를 부렸고 또 술을 먹고 연길거리에서 보이는 한국사람들과도 걸고들어 손찌검도 했다는 등등. 그 얘기의 진실성에 대해 의심이 갔고 또 좋은 이야기가 아닌지라 나는 듣는둥 마는둥 하는데 한국사람들이 나쁘다는 한마디로 이야기를 끝내는것이였다. 한다면 나의 한국인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 내가 사는 동네에도 한국인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는 않는다. 랭정한 생각을 거친 판단은 아니지만 조선족들이 배우지 못했다고 경제형편이 좋지않다고 습성과 생각이 다르다고 우리를 깔보는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나는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아주 싫어한다. 井水不犯河水라는 일조를 지킬뿐이다. 한국에서 <<당했거나>> 한국인에게 <<당했거나>> 그리고 그런 경력과도 련관된 사람들속에는 저주의 정서가 다분한 언행을 하는 사람도 있음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돈 벌고 온 사람들이거나 한국인과 거래를 하면서 돈 번 사람들은 은정의 정서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착잡한 정서를 지닌 사람들도 적지않음을 느끼게 된다. 조선족사회가 한국사회와 한국인에 대하여 무감각적인 차거운 저주의 정서를 지니고 살아간다면 또 언론매체까지 동원하여 << 붙는 불에 키질 한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신호이다. 경제적손실도 빚어낼수도 있고 민족일치성을 둘러싼 감정도 파렬을 볼수가 있다. 중국에서 살 면목이 없다. 중국인들도 한국인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이 있지만 염오감을 느끼는 사람이 없음은 아니다.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아웅다웅한다면 우리는 어떤 무시를 당할지도 모른다. 소위 세계화시대에 세계인으로 된다는 우리가 또 피줄을 크게 여긴다는 우리가 제 민족의 <<부족점>>도 너그럽게 받아드리지 못한다면, 객관적인 판명을 하지못한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잘 어울릴 가능성이 얼마나 클가? 갈망지수가 크면 클수록 실망지수다 크다. 거의 20년 사이에 조선족사회가 한국경제에 대한 의뢰성이 너무나도 엄청 커지였다. 또한 심리적으로도 한구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갈망을 너무나도 불태우고 있다. 결과는 바람이 불면 풀잎이 자꾸 흩날린다.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생각,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는 실력을 키우는 일이 급선무이다.
57    이천 화재에 부쳐 댓글:  조회:2655  추천:87  2008-01-17
         이천 화재 참사뉴스를 접하면서 울고싶었다. 울었다. 살아가려면 로동을 해야 할거고 로동을 하면 지구땅 어디에서든지 로동사고를 백프로로 면한다는것은 불가능함을 알고 있는데 왜 울고싶었을가? 울었을가?     전번달인가 우루무치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인명손실도 빚어내였는데 나는 큰 관심을 보인적도 없고 울고싶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헌데 왜 이천 화재는 나의 신경을 크게 건드리고 있을가?           10월에 고향에 돌아가니, 일을 할만한 분들은 거의가 한국으로 가있어 보고싶은 형도 형수도 누나도 조카들도 다 못보고, 한국행을 했다가 반년만에 귀국하여 위암을 앓는 매형을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울고싶었다. 울었다.        둔탁한 호미밖에 모르던 족속들이, 좋은 공부 못하여 못배운 사람들이이 땅에 금덩이가 우글우글하다는 고국으로 건너가, 물론 여러가지 악질적인 습성과 인성에 젖어있어 물의를 빚어내고 한국사회에 페단을 끼치기는 하지만, 물론 외화를 벌어 연길에 돌아와 고급아빠트도 사고 식당놀이도 하고 한다지만, 물론 모두가 애기 낳기를 싫어하는 세월이라 하지만은 애기를 업고 다니는 엄마들이 끼이지 않는 연길 풍경속을 거닐면서 울고싶었다. 울었다.        우리들 신세가 나를 울고싶게 만든다. 또 기정된 신세에 도전을 못하는 현황이 나를 더 울고싶게 만든다. 중국의 여러 동네를 다녀보면 자연조건과 인문환경이 연변보다 아니된 동네도 많다. 그런 동네에 사는 족속들이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은 삶을 영위하는 정신세계가 우리보다 많이 좋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의 고태연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크게 부러웠었다. 가난의 때를 좀 벗기는 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도 가난의 여백이  많이 남아있다. 물질과 금전에 대한 생각들이, 가정과 사회에 대한 생각들이,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로 하여 빚어지는 드라마는 나를 울고싶게 만든다. 울게 한다. 이천 화재를 두고 내가 할만한 일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남철심시인의 시 한수를 부친다.                                       네가 죽던 날                          남철심   네가 죽던 날 나는 아침을 먹고 이를 닦았다   소가죽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지하철을 타며 하품을 했다   조간지를 펼치다가 얼핏 너의 이름을 보고 시선을 다른 지면으로 넘겨갔다       타임카드에 팔아먹는 시간을 찍어놓고 온 하루 너를 잊고 살았다   지쳐서 돌아오는 길에 한잔 하고 나는 울었다   네가 죽는 날 살아서 나는 슬펐다
56    [잡담14] 통행증을 비롯한 여러가지 증에 대하여 댓글:  조회:3128  추천:83  2008-01-17
홍콩과 마카오에 려행을 가려 하는데 통행증을 만들수 없을가고 곁에 사는 친구의 부탁을 받았다. 언제는 성공안청에서 발급하던 홍콩마카오 통행증을 현재는 시공안국에 만들어주니 신분증과 호구부를 가지고 어느 요일 아침 몇시에 여차여차하라고 일러주었다. 만일 수수료 몇십원이 아깝지않으면 려행사에 부탁하면 순조롭고 빠를지도 모르니  여차여차하라고도 일러주었다. 몇일뒤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크게 혼났다고 했다. 시공안에 가니 인터넷으로 호구사출을 하면서 당신은 處급이니 통행증을 할려면 반듯이 직을 두고있는 대학의 허가 도장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 택시로 학교에 돌아와 소소된 學報의 도장을 받고 학교반공실에 가니 거기서는 당신은 국가간부인데 홍콩 마카오로 놀러가면 당신의 인신안전을 누구 책임지는가 하면서 도장을 박아주지 않아 내 돈으로 놀러가는데 당신들 무슨 상관인가 언쟁을 하여 겨우 도장을 받고 그 다음으로 인사처와 조직처의 면목을 아는 사람을 찾아 도장을 받고 마지막으로 교장사무실 도장을 받았지만은 교장이 회의중이라 교장의 싸인을 받지못하고 2시간 기다렸다가 교장을 만나 홍콩 마카오에서 돌아오면 술 한잔 사겠다는 우스개 답복을 하고서 싸인을 받았다나. 도장 다섯개과 싸인 하나를 받은 문서를 들고 시공안국에 가니 벌써 퇴근할 때라 오늘 화요일은 안되니 금요일에 오시요 하더란다. 내 동료들중에 려권이라든가 통행증이라든가를 대행해서 밥먹고 사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의 말에는 시공안국 규정은 두주일이면 통행증이 나온다고 하지만 업무일권들과 <<익숙하지못하면>> 당연히 힘들고 때로는 기계가 고장이 났소 누가 오늘 출근을 못했소 등 구실하에 한달 정도 걸릴 때도 있어 대행료 벌기도 많이 힘들다 한다.   또 내가 겪은 일이다. 90년대 초엽에 심천이라든가 주해로 출장을 갈라면 경제특구로 가는 통행증 없이는 특구공항을 나서지도 못한다는 이야기에 겁먹고  땀을 뻘뻘 흘리며 허리를 굽신굽신하며 통행증을 만들어(당연히 工本비를 내고) 심천에 도착하니 통행증은 무슨 통행증? 다른 사람들은 신분증에 20원을 내고 현지에서 통행증을 제꺽 만들어서 무사히 통과를 받고있는것이 아닌가? 그 다음부터는 나도 그 작법을 착실하게 배워서 실행을 했지만 속으로는 중국인이 중국땅  밟는것도 힘들다는게 어딘가 분했고 잘 사는 경제특구에서 나라의 규정을 리용해서 돈을 버는게( 그적에 경제특구로 들락날락하는 인구류동이 얼마나 됐을가?) 괘씸하기도 했다.      그리고 홍콩 마카오 통행증과 려권을 만들면서 나도 많은 신고를 했다. 나라에 소속된 기업에 직을 두었다고 나는 공안국인 아닌 성외사반공실에 가서 받았는데 이놈의 무슨 통행증인지 려권인지 하는것은 유효기가 각각 2년과 4년이라고 쓰여있지만은 성외사사무실의 령도가 바뀌면 또 판본이 바뀌면 다시 만들라 하기에 돈도 들고 힘도 들고 웃음도 들고 신물나는 고생을 여러번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려권을 3개 만들어 보았고 홍코 마카오 통행증은 아마 5번 만들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신강 하나스호수에 가면서도 국방통행증을 만들었고 파미르로 가면서 국방통행증을 만들었고 티벳으로 가면서 통행증을 만들었고 어느 미개방지역으로 가면서도 통행증을 만들었고, 내 평화시기를 살면서 통행증을 엄청나게도 만들었다. 사용했다. 물론 나라에서는 정부에서는 여러가지 정당한 리유가 있겠다  생각하지만은 중국인으로서 납세인으로서  어디에 발길을 주려면 소위 여러가지 통행증을 만들기 위하여 관료기관에 시달려야 하고 힘들게 번 돈을 내야 하고, 또 앉은 자리에 살면서 바깥출입을 금물로 하면서 산다 하더라도 여러가지 불필요한 증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것이 바로 우리의 과거이고 현재이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자연재해를 많이 받는 나라이다. 그래서인지 자연재해는 별로 대수롭지않게 여긴다는 느낌이다. 몇년전 싸스가 횡포를 부릴 때 처음 북경시에서는 아닌 보살하고 우린 싸쓰환자가 없다고 억다짐 거짓말을 하다가 나중에는 큰 골탕을 먹던 일이 그 실례의 하나가 아닐가? 하지만 人災는 좀 무서워한다. 그래서인지 인구류동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통제하고 또 통제과정에 돈도 벌고(현재도 주강삼각지지역에서는 외래인들의 림시거주정을 만들면서 엄청 남기고 있다.) 재미를 본다. 중국인으로서 내 힘으로 내 돈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살아가는데 힘들다는 사실은 나는 아직 리해를 진행하기가 힘들다. 분통하다.
55    호적제도에 대한 문화분석(選譯) 댓글:  조회:2758  추천:89  2008-01-08
호적제도에 대한 문화분석(選譯)                黄忠顺( 东莞理工大学 教授) 도시화의 급증에 따라 중국호적제도의 주요모순이 도시호적과 농촌호적의 모순으로부터 본적호적과 외지호적의 모순으로 전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공리적인 립장과 목적으로부터 아니라 사회정의와 사회공평을 수호하는 문화적인 입견으로부터 중국호적제도의 分割성과 등급성을 연구함도 필요성이 존재한다 1 현행되는 중국호적제도는 서방의 호적제도와 달리 인간의 민사적신분을 관리하는 공능외에도 사회치안을 통제하고 인구통계와 세무에 편리하며 또 사회자원과 경제분배를 관할하는 공능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분할성과 등급성 그리고 세습성을 특징하기도 한다. 규획경제시대의 산물로서 이런 호적제도는 시장경제시대에 6차에 걸친 조절을 거치면서 사회변혁에 적응하려는 적극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분할성과 등급성 그리고 세습성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개변을 찾아보기는 힘들다.문화적인 시각에서 보면 중국의 호적제도사와 중국문화사상의 평등의식의 결핍성이 상술한 호적제도를 만들고 있다 생각된다. 2 불평등한 신분제도와 등급제도는 사상가들의 평등에 대한 사색과 사상을 만들어주는 사회원인이다. 하지만 중국은 평등사상 대신 평균사상이 발달되여 왔다.평균사상은 사회적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기법으로서 사회모순을 완화하고 사회를 온정시키는 적극적인 면이 보이기는 하지만 절대가치관의 차원에서 사회의 평등과 공정성을 이루려는 리념으로 전변하지 못한 소극적인 면도 있다.물론 근대에 들어서서부터 강유위와 손문의 사상에 사회평등과 사회공정성에 대한 긍정면도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사회의식을 이루는 기반적인 작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신중국창립초기의 호적제도의 확립도 마찬가지로 실용성을 출발점으로 한 산물이다.개혁개방이래의 호적제도도 근본적인 전변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으며 관리자의 립장으로부터만 출발하여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과 장래에 우리에게 가져다줄 부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례를 들면 가공수출업을 위주로 하는 주강삼작주지역은 렴가의 농촌인력을 기반으로 하고있지만 농촌호적에 대한 정책이 큰 개혁이 없다면 경제불순기에 따르는 사회문제도 큰 우려점으로 되고있다. 3 문화가 제도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서방은 천성적인 평등사상으로 말미암아 현재는 호적제도의 불평등 흔적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중국은 평균사상의 지배아래 호적제도의 공리성이 많이 존재하며 현시대 이러한 호적제도에 대한 개혁은 불가피적인 사회점이라 보아진다.    
54    [잡담13] '근면하지만 가난한 중국인'으로부터의 잡담 댓글:  조회:4378  추천:89  2008-01-01
           <근면하지만 가난한 중국인>으로부터의 잡담      인터넷에서 어느 경제학자?의 <근면하지만 가난한 중국인>이라는 글을 읽어보았다.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하여 근면하기 그지없지만 경제제도와 운영제도의 락오로 하여 국민생산액이 낮은 편이고 경제성장중에서 지불하는 사회경제원가 과대하다는 등등. 말하자면 남들은 1원짜리 연필 하나를 생산하는데 임금10전 기술10전 원자재가 10전 세금을 비롯한 경제제도 운영제도로 하여 10전 하면 원가가 40전인데 중국은 임금5전 기술10전 원자재가 10전 세금을 비롯한 경제제도와 운영제도로 하여 20전 하여 원가가 45전으로 되니 남보다도 5전 적게 번다는 이야기다. 경제란 간단하게 산수적으로 완전표달이 되는것은 아니지만 경제의 활성화가 경제제도와 사회제도와도 련관이 많음을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사람들이 근면함으로 하여 여직도 싼 임금을 리용하여 무진한 반복로동(시간지출이 다른 나라보다 길다)을 하여 좀 먹고 살아가기는 하지만 남보다는 잉여가 적다. 잉여가 적은 원인이 여러가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경제제도와 운영제도의 불합리화와 락오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좀 벌리려면 내 좋은 기분에 내 좋은 생각에 내 돈으로 한다 하여도 중국 어디로 가든지 상관부문과 인사들의 행악질에 남들보다 많은 재부의 지불과 시간의 피략탈을 경유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항업마다 <잠재규칙>이라는 말도 잘 사용되는데 중국의 경제활동은 어느 모로 보면  테불우에서가 아니라 테불 아래에서 진행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저러한 <잠재규칙>에 물젖은 사람이다. 생각밖에 <잠재규칙> 아닌 어느 방식으로 일이 순조로운 진행을 보인다면 당사자가 더욱 당혹해지고 결국 성사가 될가 하고 의구심을 보일 정도로 <잠재규칙>이 살판친다. 이러한 우리들이 중국에 진출한 어느 미국회사가 중국사람들에게 와이로를 주면서 일을 했다가 미국의 세금조사와 회계조사에 들통이 나서 벌금을 했다는 뉴스거나 해외로 진출한 중국회사가 와이로를 너무 쓰기에 인심을 잃는다는 뉴스를 접하면 참으로 리해를 진행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또 그리고 조금 화제와는 멀리 떨어져나가지만 근대 중국의 위대한 학자 엄복이 서구고찰을 하고 서구는 民이 먼저 부하고 다음에는 나라가 富하는데 중국의 먼저 나라가 부하고 다음에 민이 부하려는 길을 택함이 옳은가고 자문한적이 있다는 아리숭한 기억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지성학적인 원인인지는 몰라도 중국중세기는 중앙집권의 길을 걸었다.재부를 집중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면서 북에서 내려오는 기마민족들을 대처하였다. 하지만 서구는 중세기에 분봉제의 길을 걸었다. 때문에 재부가 민간의 귀족들에게 나뉘여져있었고 토지도 왕의 공주가 시집가도 지참금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중국과 비교를 한다면 서구는 나라의 국토자원이 쪼각조각 나뉘여졌었고 어떤 귀족들 재부추적이 왕을 초과한 현상도 발생하였으니 중국과는 다른 력사상과 경제상을 보였었다.    근현대와 당대에 있어도 서구는 여전히 민간경제라는 길을 걸었다.물론 비상시기에 국가자본주의라든가 국가사회주의라든가는 경제형식을 도입한적은 있지만 그 주류는 민이 먼저 부하고 다음 나라가 부한다는 신조와 길이 그들의 집념이다. 하지만 중국은 근대에도 여전히 중앙집권식의 길을 택하였다. 청나라말기에 있는 양무운동도 국가가 주체한 경제개혁이였고 78년도에 시작된 개혁개방도 국가가 주체한 경제개혁의 길이다. 역시 중국식인 먼저 나라가 부하고 다음에 민이 부하자는 집념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집념을 사용하든지 력사적인 지리적인 현실적인 원인은 존재한다. 헌데 부동한 집념이 택한 경제성장의 길과 경제운영에 있어서의 사회경제원가도 아주 다름을 새삼스럽게 느껴본다.         졸문 처음에 산수적인 례를 든것럼 현재 우리와 다른 이들의 경제를 비교하면 경제적인 원가가 사회적인 원가가 조금 큰 차지를 보이는데 그 원인의 하나가 바로 상술한 집념의 차지이고 집념이 택한 경제방식의 차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환경이 조금 좋아졌다. 구쏘련과의 변경에도 수백만의 군인을 수비시킬 필요성이 적어졌고 미국을 위수로 하는 나라들과의 랭전지수도 줄어들었으며 국력도 어느만큼은 성장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나라의 모든것은, 적어도 국민경제의 명맥은 나라에서 잡아야 한다던 집념이 약화되면서 중앙기업들도 한참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있다.말하자면 경제의 민간화를 실행한다는 이야기다.        경제의 민간화가 순조로운 진행이 되고 민이 먼저 부하고 다음에 나라가 부하자는 적어도 민과 나라가 같이 부하자는 집념이 우리의 절대적인 집념이 되는 날이면 우리의 경제에 있어서 불필요한 경제제도와 사회제도로 하여 나타나는 원가차지가 사라지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사회경제원가를 향유할 좋은 날이 오리라 믿어진다.
53    [잡담12] 명예교수 객좌교수 댓글:  조회:5185  추천:85  2008-01-01
       명예교수와 객좌교수는 조금 구별이 있다. 명예교수는 어느 대학교에서 모모인에게 주는 명예로서 강의를 하고 연구를 하여 봉급을 받아먹는 직업이 아니라 다만 명함지에 번듯하게, 모모대학 명예교수 하는식으로 사치를 부리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되면(이름뿐이고 교수로서의 의무가 없다) 객좌교수는 교수라는 명예를 받으면 가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야 하고 연구를 해야 하고 하다못해 대학교에 인민페라도 내놓는 일을 도와야 한다고 거론이 되고 있다. 목하 중국은 많이 변하였다. 언제 <<고린내 나는 아홉째>>를 썩뚝썪뚝 잡아먹던 일이 었어냐 하는 배짱으로 지식과 학문에 대하여 지식인과 학문인에 대하여 존경의 극치에 올려모시고 조금 살아가는 흉내를 하는 이들은 례를 들면 어느 유명한 배우 어느 복장모델이 모모 대학교의 명예교수 또는 객좌교수로 되여 물의도 좀 만들고 있다.        대학교가 하도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도리상으로는 명예교수는 그저 그런대로 그저 체면적으로 그저 형식적으로 드리는 계관이고 객좌교수는 그래도 엄숙한 절차와 표준과 합의를 보이는 일이여야 하는데 요새는 명예교수와 객좌교수의 구별이 거의 없어지면서 살아가는 흉내를 보이는 분들만이 아니라 숨이 붙어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명예 아니면 객좌를 한다는 착각을 받을 정도로 관인들마저도 명함지에 번듯하게 교수라는 글자를 인쇄하여 삐라를 뿌리듯이 산포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어딘가가 답답하게 우습게 생각되는 일이다.. 몇년전부터 관인들도 돈을 내놓고 사는 석사연구생이요 박사연구생이요 하는 학력매매라는 붐을 일으키더니 요새는 처장이요 국장이요 청장이요 뜨르르한 분들의 일부가 명함지에 상술한 <<사람을 놀래 죽이는 문자>>를 인쇄해서 산포하는 붐을 일으키고 있는듯도 하다. 생각하니 어딘가 감사하기도 하다. 상업인도 좋고 관인들도 좋고 관본위 금전본위라 판명된 사회의 정영인물들이 지식을 존중하고 학문을 존중하는 붐을 만들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고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일인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다만 지식이라는 학문이라는 낱말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다. 지식이란 학문이란 공리성을 떠난 현학일지도 모른다고 리해가 깊어지는 오늘날, 명예인지 객좌인지 하는것들을 리용해서 분식을 하고 한자리 하는데의 수단까지로도 사용될수도 있다는것은 지식과 학문에 대한 리성적인 사유에 대한 목독이며분통한 일이다. 또 석사도 좋고 박사도 좋고 명예도 좋고 객좌도 좋고 그 속에 오고가는 금전과 인맥이라는 본전이 결국에는 민고의 부담으로 되여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52    [잡담11] 중국학술계에서 조선이라는 족칭에 대한 해석과 기타 댓글:  조회:4281  추천:75  2007-11-10
      족칭은 종족감정과 종족자존심과도 련관이 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정치리익을 떠나 학술적인 연구도 필요하다. 조선족이냐 한족이냐 하는 쟁론? 그 뒤에는 종족인지를 혈연성을 표준으로 하겠는가 지역성을 표준으로 하겠는가 아니면 사회제도와 이델레오기를 표준으로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내재한다. 심지어 경제적인 리익과 정치적인 리익이 본질적인 작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대 중국은 공산권나라로서 줄곧 조선과 조선족을 正칭으로 생각하여왔다. 그럼 중국학술계에서는 조선이라는 명사에 대하여 어떤 리해와 해석을 하고 있을가? <<중국민족개론>>(중앙민족대학출판사, 2001년 출판)을 읽어보면서 마침 조선이라는 족칭에 대한 집중적인 해석이 있으므로 졸문에 번역을 옮겨본다. 조선이라는 족칭에 대하여 해내외에는 5가지 해석이 있다 . 1 <<管子》(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관중이 집편했다는 고서, 중국력사에 영향준 백권 서적의 한권으로 꼽힘)에 기록된 发朝鲜은 <<大戴礼记>>(중국 서한시기 유학서적으로서 현재의 礼记) 기록된  息慎 肃慎 珠申 女真 朱里镇와 동음으로서 중국어로의 부동한 기록이다. 2 朝는 潮와  鲜는 仙과 동음으로서  汕이라는 강이름에서 기래되였다. 3 朝는 동쪽을 말하며 鲜는 鲜卑山을 말한다. 그러므로 조선이란 선비산 동쪽이라는 의미이다 4 토템숭배와 연관이 된다. 鮮은 물고기로서 그 물고기를 토템숭배하는 종족이라는 의미이다. 5 아침해가 밝게 솟는다는 의미이다.       나는 물론 어느 관점이 정확하진는 몰라도 우리는 흔히 5섯번째 관점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상술한 첫번째 관점이 조선이라는 족칭을 현재 만족의 조상으로 보고 있는 息慎 肃慎 珠申 女真 朱里镇과 일시하므로 이 책에 중국동북의 고대 종족을 렬거한 부분을 번역해보기로 한다. 고대문헌들과 민족학연구성과와 고고발굴학의 연구성과에 근거하여 동북지역과 린접된 내몽고지역의 종족에 대하여 3가지 맥락으로 구분할수가 있다 1肃慎系统: 肃慎 邑娄 勿吉 말갈 女真 满洲 (赫哲 鄂温克 鄂伦春 达斡尔 锡伯) 2여貊系统: 여맥 沃沮 부여 고구려 3 东胡系统: 乌桓 鲜卑 柔然 室韦 契丹 奚 蒙古 동북지역의 종족맥락에 대한 서술이 한국력사서적에서 우리 종족을 예맥계통으로 보는 관점과 비슷하다. 또 그리고 근년에 한국의 어느 학자가 우리선조를 동이족으로 생각한다는 說도 있고 중국의 어떤 학자들도 한반도에 사는 종족은 중국동부지역에서 살던 동이족이 빙하시기를 리용하여 바다를 건넜거나 또는 북상하여 동북을 거치여 조선반도로 들어갔다는 설을 주장하므로 이런 설과 련관된 부분도 번역해본다.. <<중국민족개론>>의 제1장은 중국의 저명한 인류사회학학자인 비효통의 <<중화민족의 다원화와 일통구조>>라는 학술론문으로서 <<한족의 남으로의 이동>>편에서 동이족의 이동설을 야간 곁들인 부분을 개략하여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유목족이던 동이족이 동부지역에 이주한뒤 황하중류지역의 앙소문화와 용산문화를 받아들이고 夏를 멸망시키고 商나라를 만든다. 그 상나라가 서에서 발기된 周종족에 멸되고 동이족 일부분은 화하족과 융합이 되였고 일부는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여 절강 복건 광동의 월족(동남연해 여러 종족에 대한 통칭)으로 되였고 장강을 거슬러 이동한 중남지역의 소수민족 일부를 구성한다 그리고 일부분은 바다를 건넜거나 혹은 동북을 거쳐 조선반도와 일본렬도로 이주하였다. 물론 조선과 일본렬도로 이주한 확실한 문헌기재도 없고 고고학의 발굴증거는 없지만 내가 30년대 석사론문에서 취급한 조선인과 강소연해지역의 주민들이  체질적으로 머리가 둥글고 신장이 작은  B형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계시를 받었고 만약 이 가설이 성립이 가능하다면 광서의 요족들도 체질적으로B형에 속한다는  사실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라 생각한다.나의 이런 가설적인 견해는 복건서족(월족의 후예)에 대한 현지조사와 문헌연구를 하신 범광단교수의 관점과 비교적 일치했고 그 분의 지지를 받았었다..     나로서는 참으로 읽기 힘든 책이고 리해하기 힘든 문제들이다. 하지만 단 한가지만은, 어느 종족이든간에 종족내부의 교류와 외부와의 교류가 없으면 순종이 되려다가 잡종들한테 당할수 있다는 점은 확신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족이냐 한족이냐 하는 쟁론?을 재미있는 의미있는 일로 생각해보고싶다.
51    [잡담10] 종족認知에 대한 생각과 기타 댓글:  조회:4704  추천:81  2007-10-24
잡담10    종족認知에 대한 생각과 기타      사람이 모여살면서 하나의 종족을 이루려면 집거환경의 동류성도 주요하지만도 동일한 생산방식과 생활방식을 전제조건으로 이루어지는 인문문화의 동류성도 아주 주요하다.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용하는 시간사유방식을 척도로 하여 말해본다면 하나의 종족이 이루어지기는 많아서 수천년 또 적어서 몇백년이 요구된다. 앞으로 인류사회발전 템포가 가속력화 되면서 종족형성의 시간소비가 적아질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종족구성이란 비교적 긴 시일내에 이루어지는 사회력사공정으로서 그 복잡성과 불예측성은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종족형성중에서 또 하나의 주요한 일건은 종족인지이다. 종족이 형성되는 과정에 또 형성된 뒤에 종족내부와 다른 종족의 인지를 받아야만 하나의 종족으로 생존이 계속된다. 종족인지의 결과는 종족명칭으로 집중적인 표현을 이룰수가 있다. 종족명칭은 자칭도 있지만 타칭도 있다. 또 서로 전환도 한다. 고대 중국의 황하강 지류에 속한 위수와 락수 그리고 분수하류지역의 종족은 화하족으로 자칭을 했지만 그 뒤에 남북조시기에 들어서서 북방초원에서 남하한 기마민족들이 황하류역을 지배하면서 황하류역의 종족을 한나라 이름자를 붙혀서 漢족이라는 조금은 기시적인 랭대적인 명칭으로 부르던 타칭이 현재는 화하족 후예들이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사용하는 자칭으로 되여 있다. 우리 조선족의 족칭은 자칭인지는 잘 몰라도 중국고서에 기록된 고조선과 련관이 된다. 뒤에 리씨조선이 력사무대에 부상하여서부터 자칭이든 타칭이든  조선인이라 불리웠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여 쓰달린의 민족리론이 성행하는 시기로부터 중국에 사는 우리 선조들과 우리는 조선인으로부터 조선족으로 불리우게 된다. 족으로 칭하든 인으로 칭하든 중국의 현실은 별로 기시적이 이미지는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시대가 바뀌여서 이름자를 만드는 방법이 변하듯이 종족명칭의 구성법이 변했을 뿐이라 생각하여도 무방하다. 조선족이요 韓족이요 하는 글을 읽어보면서 시작에는 나는 웃음 비슷한것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고 근년의 분위기를 되돌아보면서 나는 그 쟁명뒤에는 쟁명을 표현으로 하는 엄연하고도 위기적인 사실들도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우에서 얘기한 종족명칭의 자칭과 타칭은 종족내부의 종족인지감과 타족들이 어느 종족에 대한 인지감의 표현이다. 어느 종족이든 상대적인 독립성을 보존하려면 언어가 어떻든 문화가 어떻든 종교가 어떻든 경제가 어떻든 심지어 사회제도와 이델레오기가 어떻든간에 종족내부의 동일한 인지감을 느낄수가 있어야 하고 또 내부인지감을 멋지게 표현할수 있는 재간과 자신이 있어야 할뿐만아니라 다른 종족의 정식적인 장기적인 인지를 받어야 한다. 바깥세상에서 인지를 주지만 종족성원들이 인지감이 허약하다면 어딘가 허무해진다. 또 종족성원들끼리 종족인지감에 넘친다 하더라도 바깥세상에서 인지를 주지않는다면 어딘가 또 허무해진다.  거의 20년사이에 우리와 한국과의 거래가 퍽 많아지였고 또 중국내의 한국기업들과 중국을 목적지로 하는 한국려행자들의 급상승은 중국에 사는 한국인과 중국조선족의 거리를 많이 메워주었다.하지만 우리들의 념원과는 조금  다르게 근년에는 서로 종족인지감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1993년, 내가 처음으로 한국행을 하였을 때 나도 그렇고  만나는 한국사람마다가  혈연인지감과 언어인지감 그리고 음식인지감을 많이 느끼였다. 아마 그적에 중국에 다녀와서 조선족들을 만난 한국인들도 거의가 그런 기분이였으리라. 그러다가 그 뒤에 우리는 서로 음식투정이  많아졌고 언어투정도 많아졌고 한마디로 문화충돌도 발생하게 되였다. <한 입안에 있는 혀도 이빨에 깨물릴 때가 있다>고 하듯이 몇십년을 장벽을 사이두고 살아온 사연으로만 보아도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문화충돌의 뒤에 지나친 거부감과 리익감을 내용으로 하는 배경이 작간한다면 앞으로 세인의 웃음거리와 불필요한 사태를 이룰수도 있다. 우려심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류의할바이다..   우리는 한국인들 언행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고 말을 할수는 있지만도 우리도 우리자신을 삼가할줄을 배워야 한다. 만일 근년에 우리가 받은 <푸대접>만을 너무 념두에 두고 생각을 한다면 어떤 정서적인 보복적인 거부적인 행위를 만들수도 있다. 물론 중국에 사는 우리들이 요즘에 이르러서야 여러방면에 이르는 우리들의  상대적인 독립성의 필요성을 새삼스레 느껴본다는것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좋은 흉금을 우러르는 작업은그 누구에게도 유익한 일로 되지않을가 하는 생각이다.  
50    [잡담9] 연역시대 댓글:  조회:4576  추천:81  2007-10-21
     맑스주의를 부인하는 자들의 한가지 리유로는 맑스주의 사상이 객관사물의 보편적인 원리와 귀납적인 규칙에만 신경을 쓰고 개별적인 현상과 특수한 규칙의 존재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관심했고 멸시했다는 명제를 들수가 있겠다.    맑스주의가 옳은지 아니지는 너무나도 방대하고 보잡한 문제이지만 또 맑스주의를 받아들인 정당이든지 나라이든지 맑스주의를 어떻게 리해를 했고 리용을 했는지도 사실은 복잡하면서도 력사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중국은 먼 옛날부터 <<실사구시>>라는 실용적이고 좋은 명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동안 어떻게 보면 불행할 정도로 맑스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실행을 하여왔다.    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맑스주의를 알뚱말뚱하게 <<정치경제학>>과 <<자본론>> 등 학과로 배우는 흉내를 하면서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마저 오리무중에 빠져서 어쩔줄을 모르던 상을 쳐다보면서 종교학 선생님이 하신<< 종교란 리해를 하고 신앙하는 사람도 있고 신앙을 하고 리해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씀에 나를 비추어보기도 했다.    그적에는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된지가 얼마 안 되였고 중국인들이 근대에 이르러서 늘 당한 고민적인 정서적인 표상적인 사고방식에 걸려들어 우리 대학생들도 흔히는 대륙문명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전제로 공상업물질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해양문명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숭배를 했고   추구를 했다. 그 결과 고배도 좀 맛보았고 많은 사람들은 심사숙려라는 사고방식과는 빠이빠이를 하고 현실적인 향락적인 생활방식을 인생의 가치관으로 두게 되였다.   그 무렵 엉뚱하게도 나는 <<연역시대>>라는 시를 썼는데 리론에서 현실을 연역하여 실행하는 여러면에 대한 정서를 적은 시였다.소위 <<연역시대>>란  리론에서만 출발하는것이 아니라 다른 종족과 나라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실행하는 시대를 포함할수가 있다면 현재도 많은 나라가 연역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연역이란 참으로 실존하는 사물이여서 바망이 하나로 한꺼번에 다 때려부시는 작업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또 진리라는것도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은 도리이므로 무엇이든지 진리로부터 완전무결한 연역만을 통해 살아간다는것도 어딘가 미지근한 느낌이 드는 방식임을 새삼스레 느껴본다.      
49    [잡담8] 중국공민의 사회복지보장 댓글:  조회:3368  추천:90  2007-09-28
잡담8중국공민의 사회복지보장허동식 중국이 계획생육책을 국책으로 선행한지가 거의 30년은 되는듯하다. 따라서 현재 인구증감률은 거의 리상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또 그래서인지 먹고 사는게 많이 좋아진듯도 하다. 하지만 어떤 국책이든지 플라스면이 있으면 마이너스면도 동반한다. 계회생육책으로 하여 앞으로의 인구의 로령화, 독자녀들의 소질락하 등이 중국의 큰 두통거리로 될거라 모두가 추측하고 있다. 이런 국세가 또 매 개인하고도 깊이 련관되는 일이기도 하다. 부질없는 이야기이지만도 우리 로후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가 ?고 친구들끼리 의논도 있다. 자식집에서 산다는건 어림도 없는 일, 왜냐하면 앞으로 수십년이 흐르면 젊은 사람 둘이 로인 넷을 먹여살리고 또 애를(계획생육책이 변하여 한쌍의 부부가 애를 한명이상 낳는것을 소위 제창할지도 모른다.) 낳아 키워야 하니 얼마나 힘들가? 그리고 우리 세대도 로인들과 한집에서 살기를 별로 원치를 않는데 앞으로야! 하고 말이다. 돈 좀 벌어서 시골 내려가 농사를 하겠다는 사람 , 양로원에 가겠다는 사람 답은 부동하지만 서로 힐끔힐끔 쳐다보고나니 결어는 돈으로 된다. 로후에도 돈이 있어야 자식과 사나 시골에 농사 하나 양로원에 가나 그 선택도 가능한듯하다. 그래서 나이 60이 되면 무슨 돈으로 살아갈가 생각을 굴리게 되였다. 현재 도시에서는 구식퇴직제도는 페기하고 3금(주택기금/의료보험/실업퇴직기금) 이라는걸 내는데 나는 한달에 거의 300원은 되는듯하다. 궁금해서 관련동료와 내가 퇴직하면 한달에 퇴직금을 얼마나 될가 문의했더니 현재수준으로 아마 천원은 될가? 확실하지 못하면서 또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아랍수자를 내뱉는다. 듣고나니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진다. 20년뒤에 한달에 천원으로 밥먹고 살아갈수가 있을가 하고 말이다. 인프레라는것도 있을텐데 고작 천원으로 무슨 마작을 하고 무슨  려행을 하고 무슨 술은 사먹을거?    곁에 사시는 장인님은 한달에 퇴직금을1200원 받으시는데 오늘 장모님이 아주 국제비밀인듯 딸 귀에 대고 << 너 아버지 퇴직금 한달에 또 150원 올랐다>> 하고 속삭이는 말끼를, 사실은  내가 알아듣지말아야 할 말을 동냥하고나서 조금 난처하기는 했지만, 아주 아닌척하고 그럼 퇴직금 올랐느데 장장 외우기만 하시지 말구 작은 장인님 살고 계시는 먼 시골고향에 한번 가보시지 하고 귀뜸해 보았다. 작은 장인님 바로 장인님 동생 되시는 분은 60여세의 농민으로서  시골에 사는지라 한달에 1350원커녕 한푼의 수입도 없이 아들집에서 손자나 보면서 로후를 보내고 있다. 장인님과 전화는 종종 통하지만 나는 만나뵈운적이 없다. 장인님과 작은 장인님 신세를 비교해본다. 장인님은 그래도 공인이라 주택도 분여받고 퇴직뒤에도 퇴직금을 받아 별로 자식한테 손을 내밀지 않아도 그럭저럭 밥먹고 살수가 있다고 판단되지만 시골에서 한생을 땅을 뚜진 농사군인 작은 장인님은 아무런 사회복지보장도 없으니 두분의 로후가 하늘과 땅 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같은 나라에서 한고장 한가정에서 태여나 비슷한 교육을 받았지만 직업선택이 다름이 운명의 작간으로 되여 만년에 너무나도 거리가 먼 생활을 누린다는 일은 나로서는 불합리하고 비인도적인 사회현상이라고 느껴진다. 49년 건국뒤에 중국은 쏘련의 길을 가기로 했지만중국시골에서는 쏘련식농장이 아니라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인민공사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중국농민들은 로농은 집체로 했고 로동과실은 거의 전부를 공량의 형식으로 나라에 바쳤으나 쏘련농장과도 다르게 중국공인들과도 다르게 현재까지 아무런 사회복지보장도 향유하지못하고 있다. 옛날 농민호구요 공인호구요 등급적인 차별적인 호적제도가 살판쳤고 근년에도 돈을 내고 시내호적을 사는 농민들도 있으니 중국특색의 호적제도와 관련되여 진행되는 희비극들이 바로 중국의 불합리한 도시와 시골의 결구와 차이를 유력하게 증명한다고 생각된다. 사회복지보장사업이란 국민소득이 어느 정도 되여야 진행되는 사회산업인줄은 안다. 중국은 아직은 그래도 가난하다. 우리 시골사람들도 무차별적인 공민대우를 거절할수가 있는 날이 오기를 삼가 빈다.     
48    [잡담7] 베스터셀러 댓글:  조회:3565  추천:93  2007-09-20
잡담7베스터셀러허동식'베스터셀러' 라고 하는 외래어가 있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접해야 할 낱말이다. 판매권수가 많은 책을 이르는 어휘로 리해를 한다. 근년에 중국에도 매상고가 제일 많다 혹은 아주 엄청나다 하면서 작자가 서점에 앉아 싸인을 한 자서를 팔거나 각지로 돌아다니며 강연도 하고 책도 팔고 하는 거의 쇼적인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듯하다. 이런 현상들을 베스터셀러현상이라고 칭할수 있을가?  중국식 베스터셀러현상이 좋다 나쁘다고 간단명료하게 평판하기는 좀 힘든 일이다 . 또 평판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다만 잘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인가? 별로 아니 팔리는 책이 나쁜 책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싶다. 물론 책이 좋을수록 많이 팔리리기도 하겠지만 많이 팔린다 해서 무조건 좋은 책이라고는 판단할수는 없다. 그리고 많이 팔리지 않는다 해서 나쁜 책이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지난 세기에 <<모택동선집>>을 천문수자로 인쇄를 해서 정치와 행정 그리고 선전도구의 강력한 힘을 빌어서 많이 팔던 일을 되새겨본다. <<모택동선집>>이 아무리 위대한 저작이라 하여도 코물 빨아먹는 애들이나 문화수준이 여차여차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효능도 없었고 딱지를 만들려거나 창호지로 사용하려니 남들의 눈치가 무서워서 그저 궤짝구석이나 지키는 상징품으로 되였있던 일, 심지어 시집가는 녀자의 함에 들어가는 지참품까지로도 사용되였던 일들은 우스운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모택동선집>>이라는 사상명품에 대한 최대의 목욕중상이 아닐가 의심해본다. 한다면 많이 팔리는 책이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을 상대해서는 좋은 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해본다. 세월이 퍼그나 흘러간 현재, 몇사람이나 << 모택동선집>>을 읽고 있을가? 어느 출판사에서 <<목택동선집>>을 재판한다는 소식도 없고 서점가에 가도 <<모택동선집>>을 구입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오늘날의 상황을 두고 <<모택동선집>>은 아무렇지도 않은  책이라는 판단을 하기는 어렵다. 필경 <<모택동선집>>이란 거작이 아닐수가 없으므로 누가 감히 그런 판단을 내릴수가 있으랴? 한다면 또 좋은 책이라 하더라도 좋은 시대를 만나야 좋은 책으로  된다는 결론을 해보고싶다. <<성경>>은 세상에서 제일 많이 인쇄되고 팔리는 책이다. 참으로 좋은 책이다. 2000여년이라는 긴긴 세월속에서 인간의 성심과 지혜를 자랑하는 책으로서는 추호의 손색이 없는듯하다. 물론 이교와 이교도들의 분서라든가 배척을 받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누가 감히 <<성경>의 문화적인 가치를 부인할수가 있을가? 한다면 좋은 책만은 시간이라는 세월이라는 천평에 올려놓을수가 있다는 결론도 내리고싶다.   곁에 교수분이 한분 계시는데 그분의 학식은 틈을 잡을수가 없이 감복하고만 싶은 분이다. 그 분의 <<중국서북전략개발>>이라는 책을 한권 얻어 읽고 참으로 좋은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조금은 부산을 떨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중국서북전략개발>>은 그 분이 교수로 되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되여다는 일도 알게 되였고 또 옹근 천권을 인쇄했는데 몇년이 지난 현재도 600여권이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신세임을 알게 되였다. 한다면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하더라도 어떤 책들은 전문분야라는 문제 또는 어느 알고도 모를 원인으로 하여 13억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도서관만 하여도 수자를 헤아리기 어려운 나라에서 서점가의 랭대를 면치 못함을 좀 알게 되는듯하다. 한다면 좋은 책이라 하여도 잘 팔리지 않을수도 있다는 결론도 내리고 싶다.  아무튼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내에 자신에게 좋은 책들을 읽으려면 남의 눈치만 살피고 류행이나 따르다가는 아불싸를 만들기 쉽지 않을가 하는 로파심을 해본다.
47    [잡담6] 민주란 무엇인가 댓글:  조회:3288  추천:102  2007-06-28
잡담6     북경 어느 시골에서 촌간부 선거를 하면서 선거권 하나에 인민페 600원으로 매매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언젠가 대만적과 홍콩적을 가진 홍콩 친구 하나가 대만 어느 당이 공짜로 주는 왕복항공권과 사례금까지 받고서 대북에 가서 밤시장도 돌아보고 잘 먹고 잘 놀고 돌아왔다고 자랑하던 일이 생각힌다. 그적에는 나의 일상과는 너무 거리가 있어 선거권 매매에 대해 그저 웃고 지나쳤느데 거의 십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주변에도 돈으로 선거권을 팔고 사는 일이 있다고 하니 선거권이 무엇이고 민주가 무엇인지 책에서 배운 알랑말랑한 기억들이 툭툭 파손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선거권이든지 민주이든지 책에서 고취하는것도 아니며 교과서에서 배우는것도 아니며 하루아침 사이에 이루어지는 해볕쪼임이 아니라, 막대한 시간적인 문화적인 대가를 치불해야 됨을 느껴본다. 4년에 한번은 있는 인민대표선거 때문에 선거권 한장을 받아보기는 하지만 입후보자들도 모르는 신세라 또 술 한잔 얻어먹는 좋은 일이 없을줄도 잘 아는지라 선거권을 아무렇게나 버리고(소위 포기인가?) 한번도 인민대표 투표에 참가한적이 없다. 마음에 드는 인민대표를 선거하려니 입후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신세이고  또 마음 구석 어디에는 선거권이든지 민주이든지 저울에 달아놓고 인민페와는 어떤 환산이 될가 하는 고집스럽고 락오된 집착심을 지니고 있는 한, 회사에서 진행되는 선거도 그렇고 사회에서 진행되느 선거도 그렇고 그저 형식만으로 흐르고 재력랑비만 엄청나다고 판단하여 왔다. 정영인물식정치를 운운하는 사람들과 간접적인 선거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를 두고 돈거래가 많다 재력랑비가 크다 등 리유를 들어 우리가 배울바가 아니라는 결론을 한 적도 있었다. 허지만 우리식 선거도 마찬가지로 권력과 돈이 살판치고 있으니 또 재력랑비도 적은것이 아니니, 생각해보면 우리는 남을 웃을 리유가 전혀 없다.        선거란 민주란 그 절차가 중요하기는 하겠지만도 , 또 산수적인 방식(소위 소수가 다수에 복종한다?)도 도입해야는 하겠지만 무엇이 선거권이고 무엇이 민주인지를 잘 모르는 사회기반을 전제로 한다면 상술한 선거권을 팔고 사는 웃음거리도 생기기 마련이다.     촌선거민을 상대로 하면 인민페 600원이 적은 수액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돈 내고 촌장이 된 사람이 임기내에  그 본전을 찾고 리윤을 보려고 촌민들의 리익을 팔기도 하고 촌선거민들의 피땀도 빼앗으리라 예상한 촌선거민은 몇이나 있었을가?    민주의 혜택과 실질을 아직은 잘 모르는 동네에서는 선거권을 매매함이 자연스러운 일로도 생각된다.     그러면서 선거제를 표징으로 진행되는 민주란 바로 생활방식이고 사고방식이고 사람기질이라는 명언을 새삼스레 생각해본다.       
46    [잡담5] 언어와 사유방식 댓글:  조회:3480  추천:114  2007-06-22
   잡담5   언어현상학이라는, 철학과에 속한다는 학문이 있다고 한다. 언어는 표상세계로서 객관사물의 반영이며 허상이며 그리고 부동한 특징을 지닌 언어가 인간의 사유상과 생활상 지어는 문화상마저 지배한다는 등등. 너무 어려운 학문이라 나로서는 상식적인 점마저도 느끼기 힘든 일이다.     한국에 보존되여 있던 공자제사를 지내는 법( 송나라 명나라 제사법)을 중국에 <<수출>>하여 산동성 곡부의 공자사당의 공자제사법(청나라 제사법)을 해제시키고 중국더러 문명하고 재래적이고 전통적이고 좋은 공자제사법을 받아들이게 했다는 한국의 유학자 한분을 모시게 되였다. 그 분이 중국교수들과 학자들과 그리고 대학생들과 담화도 나누고 강연도 하는 사이, 그 통역을 해보느라고 진땀을 흘리였다. 특히는 유학의 <<13경>>에서 나오는 원문이라던가 유학과 관련되는 인명 지명은 통역이 힘들어서 미안하기도 했다. 통역이 대충 끝나고 밥상에서 다음에는 강연을 즉흥식으로 하시지 말고 다문 얼마라도 강연고의 줄거리를 문자로 적어 달라는 말을 할가말가 하는데 , 내가 너무 난처한 상을 보였는지 곁에 있던 어느 학자 한분이 화두를 돌리시느라고 나하고 한국어는 어떤 언어인가고 물어보았다.               한국어는 알타이어계에 속하고 어족은 아직 결론이 없고 또 문자는 병음과 비슷한 자모문자인데 라틴문자와는 달리 상하좌우로 배렬이 되며 받침이라는게 있고 또 사용시 변형이 되는데 하고 아는척하고 조금 장황설을 늘여놓았다. 그러자 또 몇분이 중국의 한자와 비교하면 한글은 어떤 특점이 있는가고 했다. 엄청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천성적으로 참지를 못하는 성격이라 한자는 이미지적인 문자이고 은밀하지만 한글은 표현적이고 직성적이다. 또 중국어도  한국어도 론리성이 좀 결여되여서 사변성이 적으며 따라서 리성적인 표현을 하는데는 난점이 있지만은 감성적인 표현을 하는데는 부사와 형용사가 발달되여 있듯이 꽤나 멋지다고 능청을 떨었다.  그리고 유럽권의 언어는 유목족들이 부단히 변하는 객관환경을 살었기에 대방과의 의사소통을 잘 할려면 론리성과 정확성을 목적으로 하는 어법이라든가 론리법이 있어야 했기에 리성을 잘 표현하는 언어와 문자가 있게 되였지만 우리는 농경이라는 작은 울타리안에서 익숙한 환경과 사람들과 살면서 의사소통은 언어와 문자의 정확성과 론리성이 결여되였어도 손짓발짓 또는 눈치로라도 얼마든지 할수  있었기에 그런대로 잘 살어왔다는,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을 나의 << 유력>한 근거로 내 세웠다. 옳은지 틀렸는지는 모르지만 상대방들은 나의 자존심을 살려주느라고 조금 머리도 끄떡이는척도 했다.     사실 나는 여태껏 중국어든 한국어든 한자든 한글이든 감성적인 표현은 잘 되지만 리성적인 표현이 잘 진행되는 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다. 직관적이고 경험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또 욕먹을 이야이기도 하겠지만 살면서 조금 근심스러운 것은 이런 언어와 문자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리성사유가 결여되고 론리사유를 안받침으로 하는 추상적사고가 잘 안되는 일이 약점이라면 남한테 뒤지지 않을가? 하는 점이다.    우리의 잡지와 신문 또는 인터넷에 실린 들을 읽어보면 좋은 작품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리치로 사람을 설복하고 감정으로 사람을 감동시키一理服人,以情动人〉〉는 글들이 적음을 느껴본다. 흔히는 감동폭팔은 많지만 리치를 따지는 그런 글들이 적다는 느낌이다.      또 언어와 문자의 탓일가? 그리고 나는 리성적일가? 감성적일가? 나의 사유와 행동거지가 도대체 어느 부류에 속할가고 골머리를 앓아본다.
45    [잡담4] 중국의 협회 댓글:  조회:3933  추천:126  2007-06-14
 잡담 4        몇해전에 호남성작가협회에 소속되였던, 중국에서 꽤나 영향력이 있는 실화문학 작가 두분이 호남성작가협회를 자아탈회를 한 일이 있었다. 작가분들의 탈회의 구체적인 상세한 원인은 잘 공개되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작가분들이 호남성작가협회의 일상에 불만족이 많았고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도 실망을 크게 했었다는 의론도 있었었다.      그 무렵엔가 미국에서 대학교 교수를 하는 중국계 학자가 북경대학에서 민간조직에 대해 진행한 학술보고( 또는 강연)를 기록한 문장을 읽어보았다. 그래서 립법 사법 행정이 유기적인 분할을 이룬 나라에서는 국가권력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하여 민간조직이 발달되여 있으며 흔히는 국가와 정부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우리와는 달리 언제 어디서나 민간조직의 힘과 양향력이 사회의 일방적인 기둥으로 되여있고 좋은 역활을 하고 있음을 조금 알게 되였다. 나의 일상과 조금 관연이 있는듯한 우리의 소비자협회요 관광협회요 하는것들을 알아보면 소비자협회는 공상행적국에 소속되여 있고 관광협회는 관광국에 소속되여 있다. 그리고 장애인협회도 민정국인지 어느 국인지에 소속되여 있는듯하다.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없지만 우리의 많은 민간협회는 말이 민간조직이지 사실 경제적으로는 국가와 정부의 도움을 받고 인원적으로는 국가와 정부의 임명을 받고 행위적으로는 국가와 정부의 지령를 받아야한다. 따라서 이러한 민간협회들은 말 잘 듣고  눈치를 살피느라 독자적인 생각과 행위를 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여러 민간협회가 민간조직의 이름을 빌기는 했지만도 권력기관의 부정과 팽창을 견제한다든가 감독한다든가는 론리적인 사실적인 성립을 이루기가 참으로 어렵다. 다만 중국말로 <<남의것을 먹으면 말문이 막히고 남의것을 가지면 손가락질이 적다.吃了别人的嘴软 ,拿了别人的手短>>는 일리에 대한 적라라한 표현상만을 잘 이룬다.      근대로부터 사변과 변론 그리고 권력과 이델레오기의 상대적인  분산을 문화전통으로 하는 지역과 나라는 우리보다도 사회와 권력의 평행을 이루기 위하여 지불한 물질적인 대가와 생명의 대가는  많이 적다고 생각된다. 그들과는 달리 일통을 중심으로 국가기구로부터 시작하여 언론 등면에서도 작은 시골까지 공제시스템망의 구축을 특징으로 하는 우리는 평소에는 불필요한 물질랑비와 생명랑비를 공제하고 감소하기도 했지만도 관건적인 시기에는 말하자면 사회변혁과 동란시기에는 흔히는 막대한 물질재부의 손실과 생명도탄이라는 상을 많이 보여주었다. 아주 먼 천여년전의 이야기는 그만두고 우리가 조금은 잘 아는 명나라말기의 리자성봉기라든가 청나라 홍수전의 태평천국운동이라든가 그리고  문화대혁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하나로 귀결되는 권력시스템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그 순간에는 산재한 권력시스템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순간과는 많이 달리 평소에는 정상적인 발로를 할수가 없었던 민간의 힘과 욕망들이 리성적인 정상적인 발로의 경로를 아주 버리고 기형적인 히스테리적인 발로를 했었고 따라서 박산내고 태워버리고 죽이고 했다는 조금은 직관적인 결론을 얻게 된다. 우리의 피비린 교훈이 아닐수가 없다. 중용을 크게 여기는 문화전통과는 달리 극단으로 내닫았던 사회비극과 력사비극들의 내속에 대하여 잘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껴본다. 또 중국도 노벨문학상을 견주느라고 많이 힘내고 있는듯하다. 허지만 나의 어처구니 없는 생각에는 작가협회의 눈치를 보는 작가라면, 독자적인 사유와 평판척도를 지닌 작가가 아니라면 어림이 있을가?
44    조상숭배 그리고 복고주의 댓글:  조회:2143  추천:125  2007-06-14
조상숭배 그리고 복고주의   내 조상은 바보야 또는 우리 조상은 바보야 하는 사람과 종족은 별로 드물다. 인류가 망망한 대자연속에서 군체방식으로 가까스로 생존을 이어가다가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방식개변을 전제조건으로 가족이 생기고 씨족이 생기고 씨족련맹이라는 부족이 생기고 현재는 민족국가가 지구라는 땅덩어리우에서 국가조직의 제일 중요한 형식으로 존재하는 이상,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상숭배를 할 자유가 있고, 또 조상들의 력사와 업적을 다루어서 자랑하기를 좋아함은 많은 종족들의 습관적인 행위와 심리로 되여있겠지만도 조상숭배가 가끔은 전통문화를 발양한다는 가면구를 쓰고 현세와 리익을 다투는 공구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다. 섬서성의 황제릉에서 몇년간이나 황제제를 크게 지내여 화인세계가 공인하는 문화제로 되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웃 하남성에도 올해에는 황제제를 크게 했다던가 곡부에서 공자제를 지내여 조금 이름이 나니 작은 동네에서도 우리동네 문묘도 중국4대문묘요 거금을 써가면서 공자제를 지내는 현상이 연발되는 그 내속은 << 문화의 다리를 놓고 경제의 발전을 도모한다 文化搭台,经济唱戏>>는 명목아래 진행되는 소위 정치업적이라도 만들려는 쇼라는 판단을 하면 현재 각종 제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사실을 두고 조상숭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고싶다. 인륜으로 보면 조상숭배는 아름답기도 하겠지만 어떤 부족의 어떤 시기에는 별로 시원치 않은 결과도 만들어주었다. 조상숭배란 만물의 령성을 믿던 선사시대로부터 발생된 부족문화현상이다. 대부분의 부족들은 조상숭배를 통하여 생명을 준 조상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함과 동시에 조상들에게 생존보호와 부족번영을 기원했으며 더욱이는 부족내부의 모순을 약화하고 부족의 응집력을 도모하여 외부의 생존적수를 대처하던 상투수단으로 사용하여 왔다. 하지만 조상숭배도 총명한 숭배가 있고 둔한 숭배도 있다. 형식으로는 조상을 숭배하는척 했지만도 저의 조상들에 대한 무자비한 해부를 진행하고 다른 부족들의 조상들이 남긴 지혜도 배운 부족들은 가끔 성공을 보였지만 무조건 제밖에 조상이 없는것처럼 둔한 조상숭배를 고집한 종족들은 좋은 결과를 본적이 적다. 또 누구의 조상숭배가 민족주의를 고취하는데 크게 리용되여 남을 해치고 제 발등도 깐 력사도 있었기에 나는 가끔은 조상숭배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수가 없다. 그리고 또, 나로서는 요즘은 <<백가讲坛>>이라는 테레비프로그램을 구경할 용기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있어서 그 누구나 사물에 대한 벌언권은 있어야 하지만 중앙테레비라는 막대한 공공자원을 람용하여 개인적인 감성적인 표상적인 허구적인 중국경전에 대한 해석과 심득을 중형폭탄처럼 마구 쏟아부으면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또다시 언제처럼 우물안의 개구리로 전변할가봐 기우를 앓게 된다. 아직은 우물안의 개구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물을 기여나오려고 조금은 기술련마를 하는 도중에 소위 대사들이 <<야  너무 덤비지 말라이 . 우물안이 바로 세상이라>> 훈시를 하면 참으로 기분이 나쁘다.       근대로부터 중국은 복고주의가 몇번은 살판을 치기는 했지만도 가련하게도 성공한적은 없다.  조상이 만들었으면 무조건 좋은거고 우리의 체질에 적합하다고 소리를 질러보았자 현실은 서방의 공업문명과 민주문명의 위력 그리고 그 혜택을 우리는 거절할수가 없다.  
43    내가 좋아하는 시-'바다의 아버지 L형' 댓글:  조회:2952  추천:152  2007-06-05
내가 좋아하는 시-'바다의 아버지 L형'허동식곁에 살던 친구 하나가 선원이였다. 아주 오래전에 대련항에서 야채를 나르는 장사군으로 가장하고 밀차를 밀고 원양선에 오른것이 부산항에 내렸다가 << 돈 벌려면 배군을 해라>>는 로인들의 말을 듣고 한국 원양어선에 오른것이 거의 오년을 태평양 대서양을 넘나들면서 남극하고 가까운 아르헨띠나 해역에서 북조선 어선하고도 만나고 중국어선하고도 만나서는 어떻게 어떻게 프로노 록화테프하고 술하고 무엇들을 물물 교환도 해보았다는 친구, 현재는 이것저것 장사를 해서 돈도 좀 벌고 괜찮은 자가용도 끌고 다니고 리혼도 잘 하고 결혼도 잘 하는 친구, 당신 그래도 피땀으로 벌어온 돈으로 장사를 했으니 말이지 하고 내가 고향에 있는 어느 농사군 형이 한국어선에서 몇년간 그물을 댕기느라 손마저 변형이 됐는데 고향에 돌아온 지금은 여차여차하게 삶이 시원치가 않다고 이야기 했더니 그게 머저리지 노예질을 했으면 노예주도 해야지 하고 재미있는 대답을 하던 친구, 참으로 어딘가 내 마음에 드는 친구.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하고 우리 교포들은 농사군들이라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일하거나 어선에서 일하려면 우선 직업적인 교육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치였더니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여 , 선원 하나를 1년 교육시키는 비용이 선원 하나의 2년 봉급이여 하는 말씀에 나는 입을 딱 벌리고는 가슴 어딘가 막 답답해지던 일.    다행이 한국에 나가 계시는 친지들속에는 배군으로 일하는 사람이 없어 한숨이 좀 나온다. 그러면서 어쩐지 리범수시인의 << 바다의 아버지 L형>>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다.  바다구경도 못했던, << 사실  수영은 개발헤염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개도 먹지 아니하는 돈>>  때문에 <<바다의 아버지>> 되여있지만도 마음 어딘가에는 아름답고 소박하고 진지한 것들을 많이도 소중히도 간직하고 살어가는 이들 , 참으로 우리들더러 <<풀려진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이들이다. 남 다 자는 밤이면 멀리 한국에서 사는 형님 누나 그리고 조카들이 그리우면 우리 리범수시인의 시 << 바다의 아버지 L형>>을  다시 한번 읽어 보자. 읽으면서  눈물이라도 흘리자.
42    [잡담3] 난감한 일 댓글:  조회:3501  추천:133  2007-06-03
       사람이 살면 난감한 일은 면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마작집에서 친구들이 떠들면서 마작을 하는데 친구의 친구의 친구 하나가 우리하고 마작놀이를 해보련다고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 또 녀자라 서로 자아소개도 하고 인사도 나누는데 나는 우스개로 저는 아무개입니다 남자입니다 하고 한마디 했더니 곁에 있는 싱거운 친구 하나가 더붙여서 마작군중에 시를 제일 잘 쓰느 사람, 시인중에 마작을 제일 잘 하는 아무개입니다 했다. 종래로 시인으로 마작군으로 자아평판을 해본적이 없는 나인지라 얼마나 난감했던지.        아들놈하고 거리를 돌다가 꼬시고 싶었던 처녀를 만났느데 마침 아들놈이 무엇을 사달라고 아빠 아빠 하고 칭얼거린다. 참 난감해진다. 분명 아직은 총각이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봉변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아들놈하고 이제부터 아빠가 네가 모르는 이쁜 녀자들을 만나 대화를 하면 그럴 때마다 아빠라구 부르지 말구 형님이라 불러라 했더니 집에 돌아오자 바람으로 제 엄마한테 자초지종을 고해버려 마누라 아니꼬운 눈길을 받으면 또 난감해진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 한사람이 절육수술을 받으면 온 가정이 영광스럽다  一人结扎,一家人光荣》는 시골 화장실 바람벽에 쓰어진 계획생육 표어를 외국인들에게 번역해주고는 중국은 산아제한을 화장실에서 하나? 그럼 그 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장금 타는게 아닌가? 등등의 질문을 받으면서 난감했었다. 나는 주제에 난감한 일이 생기면 조금은 어물넙적 받아넘기지만 남들은 어떤 난감한 일을 당하고는 어떻게 마무리를 볼가?        광주시에 오토바이를 타고 강도를 하는 날강도들이 많다. 그래서 강도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구간에 어느 경찰이 주식놀이에서 대부자들이 많이 탄생한다는 근일에 << 날강도를 할거면 주식놀이를 하라>고 프랑카드를 걸어놓았다나? 참으로 진심으로 날강도를 치부의 길로 권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느데 요즘 언론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그 경찰은 난감한 고비를 어떻게 넘기고 있을가?        안전벨트를 매지앓고 운전하는 사람을 보고 당신 왜서 콤돈을 끼지않고 운전하나?  安全带를 이야기한다는것이  安全套로 이야기러 전변하는 소위 口误를 저지른 사람은 얼마나 난감했을가? 평민들이야 소인들이야 난감한 일을 당한다 해도 나처럼 그럭저럭 넘길수 있지만 만날 가면구를 쓰고 살어야 하는 어른들 -가면구종족은 난감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는걸가?.       어느 저명한 과학가가 손녀벌 처녀와 결혼했느데 과학가의 손녀가 할머니 복수를 하는지 아니면 무슨 쇼를 하는지 현재 할아버지와 사는 그 녀자의 아버지와 결혼한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자자하니 그 과학가는 장인님을 손녀사위로 불러야 하니 얼마나 난감할가? 국무원 총리가 기자인터뷰에서 농산물 가격이 절때 오르지않는다고 장담을 한 일주일 뒤에 밀가루 가격이 껑충 오르던 일이 있었던 10여년전 그 국무원 총리는 얼마나 난감했을가?     또 살면서 어른들의 난감한 쇼를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쇼를 믿지는 말라고 다짐을 해본다.  
41    행복이란 무엇인지 댓글:  조회:2845  추천:138  2007-05-29
       티벳에 가면 때벗이가 많이 되여 옛날보다는 현지인들 원초적인 생활상을 구경하기가 힘들다.좀 구석진 고산초원지대일지라도 목축민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핸드폰을 들고 맥주를 마시고 하니 어디 티벳 냄새가 나는가? 그래서 버렸어 다 버렸어 하고 한탄하는 려행객들도 있으니 나는 나의 생각으로 당신네들 그렇게 고약한가? 저희들은 현대물질문명의 덕을 실컷 보면서도 왜서 티벳인들은 가난하고 락후되고 원시적인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가? 고 한마디 내뱉기도 했다. 아무리 돈을 쓰고 려행을 한다 하더라도 다만 제 눈요기를 하기 위해서는 티벳인들더러 구식생활방식을 보존해달라는 욕념을 내보이는 려행객들의 심사는 알길이 없었다.   헌데 그런게 아니야, 잘 먹고 잘 입는다고 행복한것은 아니야 하고 대답을 하는 분들도 있었기에 행복이란 무엇인가 생각도 해보았다.행복이란 사실 심리적인 감응으로서 제가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아야 행복한것은 틀림이 없다. 산해진미에 릉라주단에 고관대작에 하는 따위의 조건이라든지 평판의 척도가 있다 할지라도 누구나 자신이 행복감에 도취되여야만 행복한것이다. 아무리 잘 살고 남들의 흠모의 눈길을 받는다 하더라도 행복감이 결여된 사람이라면 행복할수가 없다. 누구나 어느 사회나 어느 종족이나 자신의 습관과 환경에 걸맞는 행복관을 지니고 있다. 티벳인들은 현세보다도 래세에 대한 관심이 커서 좀 굶주리고 헐벗은 삶을 할 지라도 부처님에 대한 깨끗한 마음가짐을 지니고 극락세계로의 진입을 행복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그들의 생활상이요 행복감이요 하고 쑥덕쑥덕 공론한다는게 어딘가 미안하기도 하다.   현재 중국인들은 개혁개방 초기보다 행복지수가 많이 내려갔다. 도시인도 그렇고 시골인도 그렇고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어졌고 행복감이 지속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소요되기에 갈팡질팡 하는 삶을 지내고 있다. 라는 장편소설을 쓴 여화라든가 와 라는 장편소설을 쓴 가평와의 이야기를 빈다면 중국인들은 확실히 마음이 허공에 둥둥 떠서 사회신인감 위기와 전통적인 도덕륜리의 상실로 불행한 삶을 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회사 아래는 먹자골목인데 밤낮으로 먹고 마시고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또 그 대렬에 끼여들어 곤드레 만드레 마시고 마작도 하고 이렇게 사는 내가 좀 근심스럽고 괘씸하기도 하다. 행복의 口腹화가 싫기는 하지만 그 옹노에 걸려들어 발악하는 나의 모습을 추라한 그림 하나로 그리고싶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관에 대하여 검토해볼 욕심이 많아짐을 어쩌할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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