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 참사뉴스를 접하면서 울고싶었다. 울었다. 살아가려면 로동을 해야 할거고 로동을 하면 지구땅 어디에서든지 로동사고를 백프로로 면한다는것은 불가능함을 알고 있는데 왜 울고싶었을가? 울었을가?
전번달인가 우루무치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인명손실도 빚어내였는데 나는 큰 관심을 보인적도 없고 울고싶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헌데 왜 이천 화재는 나의 신경을 크게 건드리고 있을가?
10월에 고향에 돌아가니, 일을 할만한 분들은 거의가 한국으로 가있어 보고싶은 형도 형수도 누나도 조카들도 다 못보고, 한국행을 했다가 반년만에 귀국하여 위암을 앓는 매형을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울고싶었다. 울었다.
둔탁한 호미밖에 모르던 족속들이, 좋은 공부 못하여 못배운 사람들이이 땅에 금덩이가 우글우글하다는 고국으로 건너가, 물론 여러가지 악질적인 습성과 인성에 젖어있어 물의를 빚어내고 한국사회에 페단을 끼치기는 하지만, 물론 외화를 벌어 연길에 돌아와 고급아빠트도 사고 식당놀이도 하고 한다지만, 물론 모두가 애기 낳기를 싫어하는 세월이라 하지만은 애기를 업고 다니는 엄마들이 끼이지 않는 연길 풍경속을 거닐면서 울고싶었다. 울었다.
우리들 신세가 나를 울고싶게 만든다.
또 기정된 신세에 도전을 못하는 현황이 나를 더 울고싶게 만든다.
중국의 여러 동네를 다녀보면 자연조건과 인문환경이 연변보다 아니된 동네도 많다. 그런 동네에 사는 족속들이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은 삶을 영위하는 정신세계가 우리보다 많이 좋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의 고태연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크게 부러웠었다.
가난의 때를 좀 벗기는 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도 가난의 여백이 많이 남아있다. 물질과 금전에 대한 생각들이, 가정과 사회에 대한 생각들이,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로 하여 빚어지는 드라마는 나를 울고싶게 만든다. 울게 한다.
이천 화재를 두고 내가 할만한 일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남철심시인의 시 한수를 부친다.
네가 죽던 날
남철심
네가 죽던 날
나는 아침을 먹고
이를 닦았다
소가죽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지하철을 타며
하품을 했다
조간지를 펼치다가
얼핏 너의 이름을 보고
시선을 다른 지면으로
넘겨갔다
타임카드에
팔아먹는 시간을 찍어놓고
온 하루
너를 잊고 살았다
지쳐서 돌아오는 길에
한잔 하고
나는 울었다
네가 죽는 날
살아서
나는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