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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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잡담44] 악의 표현과 정신자유 댓글:  조회:3686  추천:89  2008-06-24
[잡담44] 악의 표현과 정신자유허동식악이란 무엇인지 나의 연약한 언어문자로서 진술할 능력이 없다. 흔히는 윤리도덕적인 차원에서 악에 대한 해설을 많이 진행하는 환경에 묻혀 살면서 때로는 그런 해설들이 조금은 슴슴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얼마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계 소설가 고행건의 소설을 두고 누구와 담론하던중에 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고행건의 노벨수상작이 중국당대문학에서는 으뜸이라(물론 나와 대화 상대방의 개인적인 결론)고 합의를 보고나서 인간의 악중에서 어떤 악이 최상일가 의논을 했다. 저는 잘 먹으면서 남더러 배불리 먹지못하게 하는것이 악이겠다. 저는 꼬까옷을 차려입으면서 남더러 헐벗게 하는것이 악이겠다. 등등의 악을 렬거하고나서 인간의 개변할수가 없는 천성을 자신은 극치로 향유하면서 남더러 전혀 향유하지 못하게 하는 사유와 행위를 악의 표현으로 귀결해보았다. 그리고나서 나는 스스로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고 박탈함이 악의 표현으로 되지않을고 생각해본다.    인간의 자유란 인신자유와 정신자유로 보여진다. 인신자유를 억누른는 장면은 우리는 현실과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체험해보았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자유에 대한 압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별로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유능력을 지닌 인간에게는 정신자유가 생존자유라든가 인신자유에 못지않은 개념이며 인생경험이다. 우리가 애들한테 배워주는 력사는 물질사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인간의 정신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물질과 정신의 상호의존관계를 대함에 있어서 정신세계의 거룩함과 독립성을 무시하기도 한다. 인간의 정신세계의 신성함과 영원함을 인지하고 추구하는 인간과 족군이야말로 정신세례를 받은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해보니 어느 노벨문학수상작을 평한다든가 국외에서 발생한 어떤 사태를 평함에 있어서 과거에 정신자유의 속성을 전혀 모르고 읽어보니 아무것도 아니던데 , 또는 뭐라고 그렇게 지랄하노? 고 남의 제사상에 이걸 놓으라 저걸 놓으라 하던 자신의 언행을 비웃어본다.
99    [잡담43] 神에 대한 나름의 생각 댓글:  조회:3445  추천:64  2008-06-23
[잡담43] 神에 대한 나름의 생각허동식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神 實存의 구체적인 직접적인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못하고 있다. 반면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신 非存의 구체적인 직접적인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신론과 무신론이 거창하면서도 아웅다웅 하는 입싸움은 멈춘적이 없다. 과학이 신학과 철학을 초월하여 인류사회 패권자의 배역을 한것은 어느덧 백여년이 된다. 하지만 과학도 만능인것은 아니다. 과학주의  双刃剑이라 여겨지는 실험주의와 경험주의가 만능인것은 아니다. 과학실험과 직간접경험으로는 하나님의 존재 또는 비존을 아직 증명할수가 없다. 다윈의 생물진화론도 과학실험으로는 아직 증명할 가능성이 보이지않는다.      새삼스레 이런 이야기를 하고싶은것은 과학이 인류사회의 물질복지사업에 대한 결정인소를 부정함이 아니라 신에 대한 과거의 <혁명적> 인 생각을 반성할 필요성을 좀 느끼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는지는 알바가 없지만 하나님의 인간창조설이 현재까지도 인류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만들고 있음은 잘 알고 있다. 적어도 이런 전제조건으로 보여지는 력사현상으로부터 신이 인간사회에 주는 영향은 거대하며 과거 우리가 받은 신에 대한 교육과 기성관념을 다시 살펴볼 필요성이 느껴본다.     세상만물은 자아존재로서 존재할수도 있지만 참조물의 존재를 빌어 존재의 의미를 나타낼수도 있다. 흑인종은 존재하지만 백인종의 존재 또는 다른 종의 존재가 없으면 흑인종이라는 명칭방식으로 존재할수가 없다.    사람과 신의 존재도 그런 관계가 아닐가? 인간은 동물의 왕이라 자칭하고 있지만 제한된 동물임은 틀림이 없다. 그 제한성은 신의 존재를 빌어야만 인간에게 부여되여 뚜렷하게 표징으로 된다. 반면에 신의 존재도 제한성을 지닌 인간의 존재를 빌어야만 전지전능의 표현력을 지니게 된다.인간이라는 시점에서 보면 신과 인간은 상호의존일수도 있겠다.       인간의 자아공제능력은 무한대가 아님을 알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다스린다 하더라도 , 성인이 자아를 다스린다 하더라도 인성의 음영은 자주 표현되여왔다. 인성의 음영을 다스림에 있어서 인간은 갖은 수단을 다하여 왔지만 리상적인 효력을 보지못하고 있다. 물질세계의 풍족도도 좋고 사회제도의 완비함도 좋고 인성교육도 좋지만 모든 인간을 완전개조하지는 못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지도자들이 종교와 신의 힘을 빌어 인간의 음영적인 인성을 제한하고 공제하고 개조하는데 좋은효력을 본  실례가 있는듯도 하다.        신과 종교에 대한 생각, 나로서는 아무튼 많은 공부와 립증이 필요하다.
98    [잡담42] 상식이 진리가 아니다 댓글:  조회:3539  추천:82  2008-06-22
[잡담42]상식이 진리가 아니다허동식아주 어릴적에 동네에 결혼식이 있으면 저녁에 어른들이  신랑집에 모여들어 오락주석을 하나 만들고 신랑 신부에게 노래와 춤을 하게 하고 부산을 피우고 닭도 잡아먹고 술도 먹고 하던 기억이 있다. 한족들의 闹洞房하고는 형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역시 농경사회의 일종 오락문화방식으로서 한적하고 단일적이던 시골에 오락적인 교류적인 기분을 가져다 주었었다. 한번은 오락주석이 신랑에게 만일 홍수가 나타나 생모와 신부가 함께 물에 빠졌는데  한사람만 구해낼수없는 조건에서 누구를 구하면 좋겠는가 질문하고 신부더러 신랑 대신 답하라 하니 신부가 그래도 신랑의 립장에서 생모를 구하고 신부를 포기해야 한다고 대답하고 그 리유를 엄마는 하나밖에 없고 신부는 즉 마누라는 조건만 있으면 다시 만들수 있다였다고 하는 장면을 구경했다.. 그래서 좌중은 만족하고 다시 웃고 떠들고 신부의 효도관을 극찬하던 기억을 더듬어본다. 유학사상이 주류로 되여있으면 그 표현식의 하나로 효도가 아주 중요시된다. 효도란 가정과 혈연을 크게 여기는 유학 인문사상의 중심내용의 하나이다. 우리는 잘 리해하고 잘 써먹기는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효도가 아무리 상식적으로 보급이 되여있다 하더러도 우리와는 다른 문화원초이미지를 지닌 사람들은 그 진미를 리해하기 힘들고 효도를 최상으로 생각하지않을수도 있다. 신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문화권에서는 효도보다 앞서는것이 사람과 신 사이의 관계로서 人神관계를 초월한 효도는 나설 자리가 없다. 성실한 기독교자에게 효도가 아무것도 아닐가 있다. 이렇게 우리의 상식이 깨여진다.  족군의 형성에 있어서도 우리는 혈연성을 거의 관건적인 요소로 리해를 진행하고 상식으로 간주하지만 그 상식이 진리(완전하고 보편적인 사실)가 아닐수도 있음을 잊어버려서는 아니된다. 씨족에 관한 그리고 가정과 사유제의 발생에 대한 엥겔스의 론설을 하나의 旁증으로  우리가 아주 오래동안 족군과 혈연은 절대관계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사는 다 그런것은 아니다. 고대 희랍에서는 족군이란 혈연보다도 공동神을 둘러싼 합치성을 전제로 하여왔다. 말하자면 전혀 혈연이 없는 사람이 어느 어느 족군에 참석하려면 그 족군의 공동신에 반듯이 충성해야만 가능했다. 공동신을 모시면 그 족군의 혼인과 토지권을 향유할수 있었다. 누가 그 족군의 혈연을 지닌다 하더라도 공동신을 배반하면 그 족군으로부터 혈연성을 <박탈>당하고 추방을 받아야했던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어느 정도는 리해하기 힘들고 달통이 아니될수도 있지만 엄연한 력사사실이다. 우리의 혈통론의 우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것은 다만 우리의 보존되여온 생활방식일뿐 전 인류적인 생활방식은 아님을 새삼스레 느껴본다. 상식이 진리가 아님을 알려면 視點과 視域이 중요하다.  나의 시점에서만 출발함을 거절하고 나의 제한된 시역을 벗어남이 소위 지혜로운자의 길이다.  상식을 깨버리는 일이 학문의 길일수도 있겠다  
97    [잡담41] 문화학範式의 접목 댓글:  조회:3627  추천:84  2008-06-17
 [잡담41]  문화학範式의 접목  허동식부동한 언어와 문자를 행하는 두 사람이 동일한 문제에 대해 소통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부동한 문화학범식을 전제로 하는 두 사람이 사물에 대한 생각을 나누려면 같은 언어와 문자를 구사한다 할지라도 충돌을 이룰수도 있다.  <<중국은 봉건력사가 없다>>를 두고 재미있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쟁론이 발생하듯이 현재 우리는 문화범식의 접목이 아주 필요하다.  중국은 아주 오래동안 구쏘련에서 받아들인 문화학범식을 사용하고 있다.현재 세계적으로 보면 유럽과 미국의 문화범식이 거의 주류로 되여있고 보편화되여있다. 주류로 되여있고 보편화되였다 하여도 제일 좋은 문화학범식이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려면 그 범식을 모르고는 리해하기 힘들다.그래서 난장판도 벌어지고 있다.  문화반성이 필요함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자아반성이 철두철미할 정도로 되려면 남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만하다. 그런데는 도량이 필요하고 접목이 필요하고 공리성을 전혀 떠난 쟁론이 령단묘약이다. 누가 그만 아차 실수로 무례한 언행을 인터넷에 내비친다 하더라도 그런거야 뭘 하고 웃으며 지나치는 풍기를 만드는 선배님들이 고맙다. 그런 분들의 존재로 하여 우리의 문화반성도 좋고 쟁론도 좋고 경지가 새로워지고 수준이 높아지고 우리의 지혜를 좋게 만들어주리라 기도하고싶다.  사실 문화학범식은 아무것도 아니다. 부동한 사유방식이고 표달방식일 뿐이다. 문화범식이란 걸림돌에 걸리여 아이코만 부른다면 우리가 거창하게 외치는 세계화 일원이라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원이 된다 하더라도 소외된 일원일것이다.  세상에 어렵고 마음아픈 일이 많고 많지만 내 경력으로는 어느 돈 없는 날 배고프던 일과 어느 처녀를 좋아했는데 그 처녀가 전혀 눈길을 주지않던 일과 그리고 문자로 내 생각을 피력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살면서 느낀 생각을 아무렇게나 내놓을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조글로가 고맙다. 또 문화학범식의 접목과 여러가지 접목에서 조글로가 큰 기여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96    [잡담40] 뢰봉을 따라 배우자 그리고 기타 댓글:  조회:4623  추천:131  2008-06-17
 [잡담40]뢰봉을 따라 배우자 그리고 기타허동식 <<뢰봉을 따라 배우자>>는 나사못정신과 헌신정신 비슷한 정신이미지를 대중화적으로 보급하려는 의도가 안받침되였다고  생각된다.계급정치적인 인륜도덕적인 목적성이 다분한 모택동의 호소로서 특정시대 중국인이 아니면, 그 력사어경적인 배경을 잘 모르고는 리해하기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아주 어려운 말이다. 뢰봉시대를 모르는 個體문화배경을 지닌 외국인에게 뢰봉을 따라배우자를 해석하고 보급하려면 단순한 언어해석만도 세말은 될것이다. 뢰봉을 따라배우는데  뢰봉의 무엇을 따라배울건가? 뢰봉정신을 따라배우려면 뢰봉정신이란 무엇인가? 등등의 형이상학적인 문제뒤에는 또 수없는 뢰봉정신에 대한 具象적인 演義가 필요할것이고 아주 멀리로는 공자의 <<론어>>에 내비치는 중국인의 륜리도덕리상마저 해석이 필요함으로 그야말로  거대한 문화공정이 될수도 있겠다. 많은 사상가들의 언론을 읽고 받아들이고 해석함에 있어서 우리는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그 언론의 시대적인 력사어경을 전혀 버리고 언론만 곱씹는 행위를 많이 진행하여 왔다. 전목의 <<론어신해>>속에는 <<론어>>를 알려면 <<론어>>의 시대배경을 어느 정도 전달해주는 <<춘추>>도 같이 읽어야 한다는 단락이 있는데 참으로 지당한 생각이라 생각된다. 공자가 생활한 시대를 모르고는 <<론어>>를 알수가 없으며 지어 오독을 할수도 있고 誤用을 할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시대정신을 아주 초월한 성인이라 할지라도,우주만물에 대한 종교적인 명상을 누리는 철학가라 하여도 필경은 인간이므로 인간의 제한성을 받지않을수가 없다. 인간은 만물의 령장으로 자처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아왔으며 살어갈것이다. 인간이 인간임은 인간곁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존재로 하여 철학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돌이 돌임은 물의 존재로 하여 돌이 물이 아니라 돌이라는 해석과정이 있듯이 우주의 신비를 깨칠수가 거의 불가능한 인간은 異類의 존재로 하여  자아해석을 진행할뿐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뢰봉정신이 아닌 다른 정신이 뢰봉정신에 대한 제일 좋은 해석의 하나로 된다. 현재 <<뢰봉을 따라배우자>> 하면 뢰봉의 무엇을 따라배울건가 질문하는 중국인들도 있다.뢰봉시대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닌 그들의 질문에는 아래의 내용이 배포된것이 아닐가고 생각된다.1주위에는 인생관의 전변이 있으며 전통적인 집체의식과는 조금 다른 개체의식의 활발상이 싹트고 있다. 2 과거의 사상 망종행위에 대한 의심과 질문 그리고 비판이 싹트고 있다.  3 내용이 없는 정치구호라든가 내용이 모호한 정치사상에 대한 반발심도 존재한다 . 아무튼 주어진것만을 주는것만을 받아먹는 그런 시대는 끝났다.
95    문천에 부치는 시 댓글:  조회:2671  추천:86  2008-06-09
문천에 부치는 시   허동식산정을 비추는 해빛이 다 내려오기를 기다릴려면 한나절 걸릴거라 판단이 되도록 쳐다보는 산벼랑은 아스라이 높았고 산아래 외가집에 떡 먹으러 가려면 형님 누나 없는 아이 홀로는 어딘가 겁날거라 생각이 나도록 내려다보는 골은 엄청 깊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동네 농가 정원에는 뙤약볕이 잘도 뛰놀았고 사품치는 민강의 언덕우 다락밭에서 얼굴이 까맣게 탄 사람들이 흰 이발 드러내어 자꾸자꾸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천료리의 짜고 매운 기운이 질척거리는 오붓한 거리에서 하루밤 자고 아침 일찍 깨여나 끼니을 배불리 먹고 정갈한 고요속에서 길을 떠나던 일은 몇해전의 기억이다   하지만 오늘은 먼 길을 떠난다고만 생각하고싶은 그대들 아침밥 배불리 먹고 가는가 아침밥 배불리 먹고 가는가   寄汶川   高望巍峨山岭曾自想: 要等到山顶上的阳光走下来 也得好一阵的吧 俯瞰深长沟壑曾自言: 要回山下姥姥家混个好吃的 没有兄长陪伴的孩儿会感害怕的吧   未料这山高沟深之域 农家庭院里雀跃着活泼的阳光 河岸梯田里演绎着 露出皓齿热情招手的一幕幕   在涌动着川菜麻辣之舞的县街 投宿了一夜 次日清晨醒来 吃早饭格外地多了些 之后离开沉静中的井然 记得已是好些年之前的事了   今日 我只在痴想: 正如当年路途中的我一样 他们只是踏上了新的一程 我只在痴念: 他们可是吃好了早饭的吧 吃好了早饭之后启程的吧
94    [잡담39] 문학도로서 모모시인을 보는 생각 댓글:  조회:4152  추천:87  2008-06-02
[잡담39] 문학도로서 모모시인을 보는 생각허동식     모모시인님은 내가 존중하고싶은 선배시인님이다. 이 글에서 모모시인님에 대한 생각을 사례로 든것이  큰 실례일수도 있다. 량해를 구하고싶다.       아주 어릴 때 라디오방송에서 모모시인님이 쓰신 장편서사시를 드문드문 시청하였다. 방송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고 재미있다는 생각도 없이 재미좋다는 생각도 없이, 다만 시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였다.     중학교시절에 조선어문에 실린 모모시인님의 시를 한수 배웠다. 무슨 뜻인지를 잘 모르고 선생님이 배워주는 그대로.     고중에 들어가면서 모모시인님의 시집 두권을 통독했다.시어의 현람함과 서정의 농후함에 감복을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모모시인님의 시를 별로 달갑게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운 그분의 시작이 <거짓말>이고 즐겨 읽던 두권의 시집도 (나로서는 시학의 입문서적일수도 있겠다) 언어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하였다.      나의 생각이 전변된 근본 원인은 시대가 변하고 사유가 개방되면서부터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다양해지였기 때문이다. 생면부지인 모모시인님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 나는 내 생각이 변한 구체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모모시인님에 대해서 객관적인 생각을  해보고싶지도 않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모시인님에게 불손한 일을 한번 저질렀다. 한국에서 오신 소설가 한분이 중국조선족문단의 어마어마한 분들과 교분이 두텁다는 이야기로 모모시인님을 말에 내였는데 나는 소설가분의 행실이 너무 미운탓에 감히 < 당신같은 인간도 소설을 쓰는가?>라는 말은 못하고 대신 < 당신하고 친한다는 모모시인도 내 눈에 차지않으니 당신도 저리 비키오>하는 내용을 말하고 싶어 <모모시인은 어용문이지요> 하고 눈쌀을 치켜들었다. 모모시인이 어용문인인지는 지금까지도 나같은 인간이 평판할 문제가 아니며, 또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詩作들도 자연 우렬이 선명해진다 하더라도, 모모시인님의 시작에 대하여 흥미가 적어졌다 하더라도, 그 소설가의 꼬락서니를 아주 보기싫어했다 하더라도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언감생심 어용문인 따위를 입밖에 휘두른것이 나쁜 일이다. 후회된다.     또 몇해가 지나니 나의 생각이 다시 변했다. 최시인님과 모모시인님의 시적을 담론하면서 나는 <그분은 천재입니다. 언어적인 천재입니다. 만일 그분이 나처럼 사상개방 시대를 만났드라면 세계 유명한 시인이 되실건데 >하고 감복의 언어를 터뜨리고 말았다.       작년인가 또 리시인님으로부터 모모시인의 시 <***>은 해방초기 수백만 조선족의 심경을 그린 시작이여 하는 말씀을 듣고 나는 완전 동의를 하고 말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으로 말이다.     현재 나는 문학도로서 어느 문학인을 보는 시각을 되도록이는 작품에 머물리려는 욕심을 부린다. 또 어느 문학인도 시대적인 환경적인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일반적으로 문학인도 인간으로서 不食人间烟火는 아주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학인더러 성인이 되라는 요구는 실천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어느 싸이트에서 김학철옹의 입을 빌어 모모시인님에게 구정물 비슷한것을 퍼붓는 글을 읽었다. 나로서는 좋은 글이 아니라 생각된다.     하여튼 모모시인님의 시작은 그처럼 처절한 환경에서도 좋은 시작을 내놓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내가 존경해야할 선배시인님이다.
[잡담38] 유태인과 독일인으부터 보는 인성의 음영 그리고 기타허동식유태교의 성경인 <구약>에는 유태인들의 인성이 적라라하게 문학언어로 기록되여있다. 인류의 신성한 도덕리상과는 아주 거리를 둔 탐욕과 질투 ,옹졸과 배신, 배타와 自大 등 인성의 음영, 바로 동물성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여있다. 2차대전시에 유태인들은 나치스의 피비린 멸종책속에서 수난을 받았다. 그 수난속에는 유태인들의 책임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유태인집거지역의 일부분 유태인지도자들이 나치스당국에 유태인들의 명단과 상관정보를 제공하였으며 나치스가 유태종족을 멸하는데 적극적인 협조를 해주었다. 유태인사상의 얼룩점이 아닐수가 없다. <구약>에 기록된 유태인성의 음영이 다시 발로되였다 생각된다. 하지만 그들은 저들의 반성에는 렬세이고 먼 남아메리카로 가서 어느 나치스 소위군관을 랍치하여 예루살렘에서 특대적인 판결을 하는데만 열중하였다. 이스라엘이 건국된뒤, 유태인들은 팔레스티나 아랍인들에게 만행을 많이 저질렀고 중동지역의 전쟁을 몇번이나 책동하였다. 먼 옛날에는 유태인이든 아랍이이든 모두가 闪족이였던 일은 모두가 까맣게 잊어버리고 현실적인 종교적인 리익을 쟁탈하느라 혈안이 되여있다. 현대판 인성의 음영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어느 종족이든, 어느 사람이든 다른 종족의 다른 누구의 인성의 약점을 논할적에는 적극성을 크게 보이지만 자기 종족과 자신을 논할적에는 발뺌을 잘 하고 분식을 하기에 열중한다. 이 세상에는 어느 종족을 물론하고 어느  누구를 물론하고 수정같은 과거를 지닌 자가 있으랴? 내가 보건대 순수도덕적인 종족이 없고 성인이 없다. 있다면 그것은 인공된 기록일뿐이다.    독일인들은 칸트라는 위대한 철학자를 배출하면서도 히틀러라는 악마를 배출하였다. 그래서 칸트를 론하면 칸트의 혈연성에 집약되고 히틀러를 론하면 히틀러의 사회성에 대하여 집약하는 징조가 다분하게 유전되고 있다.  2차대전 나중에 전쟁범들을 처리하면서 사회범죄와 개인범죄의 구별이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히틀러추종자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법적책임을 회피했고 서독정부의 각 분야에서 활약을 했다. 2차대전시에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을 저지르고도 히틀러와 나치당국의 명령을 부득불 집행하였다는 리유 하나로 法網을 새여나간 그 결과적인 사실에 대하여 지금도 사람들은 법리적으로 사회학리적으로 의문을 진행하고 있을뿐이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사유적인 행위적인 모순이 많다. 기독교에서는 조상의 잘못을 후대가 짊어지게 되여있지만 현대법리상에는 할아버지의 범행을 손자가 짊어질 리유와 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손자들더러 할아버지 범행결과를 감당하라는 사실과 추세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그것이 분명 잘못된 생각임은 잘 알지만  다른 종족과 다른 사람에게는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현상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역시 인성의 음영이다.   친일파를 제거한다고 떠듬도 어떻게 보면 현실의 리익다툼에 지나지않는다. 그리고 박정희대통령의 과거를 두고 <어디에 써먹으려고> 아웅다웅함도 또 서정주시인이 자신의 과거를 두고 <그거 뭐 지나간 일> 하고 얼버무리는것도 모두가 인성의 음영이고 약점이고 제한성이다.    한국의 어떤 네티즌들이 중국의 문천지진참사를 두고 잘코사니를 불렀는데 고위공직자들이 공개사과를 할 정도로 불화를 만들었고, 일본을 소일본이라고 하던 중국인들이 일본지진구조대가 잘 해주니 좋다고 야단을 부림도 그 속에는 인성의 음영이 유난히 표기된다. 소위 인문리성이란 다른 사람의 립장에서도 사물을 보고 판단하고 집행한다는 사상이라면 인성의 음영을 제거하는데는 그래도 인문리성이 바람직한 밀방이 아닐가?
92    [잡담37] 사천지진참사중의 교육공평성 댓글:  조회:3847  추천:53  2008-05-28
중국현대사회에 있어서 대부분 민중의 자녀들을 상대해서는 대학교란 바로 미래이다. 고등교육을 받으면 좋은 직업을 만들 챤스가 주어질것이고 장래의 경제수입도 높을것이고 살면서 덜 힘들거고 재미있을거고….. 등등이 바로 대학교입학의 직접적인 원동력이고 목적이다. 이런 현상의 좋고 나쁨은 다른 문제이지만 현실사회는 주류적으로 대학교육을 실리교육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공평성은 교육공평성에서 집중표현이 된다. 그 누구나 출신과 경제능력과 생활하고 있는 지역과도 큰 관련이 없이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한과 챤스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는것은 현대사회운행의 이념이다.        중국은 상기 공평교육이념과 아직은 거리를 두고 있다.  해마다 진행되는 고시와 대학생모집은 성급 행정 구역에 따라 각 대학의 지표를 발급하고 각 성마다 그 지표에 따라 또 응시생들의 점수와 지원에 따라 대학입학통지서를 발급한다. 그 과정은 공평성이 많이 결여되여있다.       례를 들면 북경에 소재한 많은 대학들이 북경시에 내리는 지표가 북경인구가 전국인구에서 차지하는 비례수보다도 엄청 높은 비례수로 되여있고(어느 해인가 북경대학교장이 이 문제를 두고 북경대학은 북경시정부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다는 말로 기자의 도전적인 물음에 우물우물한 답을 하여 물의를 일으킨 일도 있었다 기억된다.) 북경호적생이 북경대학에 입학해도 그 실력이 호적을 어느 지방성에 두었고 어느 지방대학에 입학한 학생보다 실력이 약할 가능성과 사실을 많이 만들고 있다. 또 편벽지역을 도와준다는 명의하에 티벳이라든가 청해성의 학생들은 일반대학에도 입학못할 실력이지만 중점대학에 입학되므로 해마다 교육수준이 높은 성에서(강소 산동 하남) 고시이민(高考移民)들이 편벽지역으로 호적을 옮기는 비법현상들이 많이 존재한다.       물론 중국의 고시정책이 중국 각지역의 불균형적인 발전을 전제로 공평성을 베푸는듯한 내용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공평성을 위한 불공평을 배태함이 사실이다. 현재까지의 중국의 대학입시와 대학생모집은 어느 모로 보면 대학응시생의 실력을 기준으로 하되 또 정치적인 구역적인 지방적인 등등의 기준도 한몫을 차지한다.        오늘 인터넷에도 사천과 지진참사지역의 대학생모집지표를 증가한다는 소식이 실렸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공평성을 떠난 행위로 보여진다. 지진지역의 대학응시생들을 이런 방식으로 지원한다는것은 인도주의차원에서 출발하는 면도 있겠지만 동시에 비지진지역 대학응시생들에게는 불공평이 주어진다. 비상시의 인도주의와 어느 제한된 공평성을 두드러지게 만들기 위해서 전역적인 불공평성을 진행한다는것은 제창할바가 못된다.               나로서는 참으로 리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화남리공대의 구체적인 조치는 좋은 조치이이지만 교육부의 조치는 쇼적인 일면을 지녔다 느껴진다.   四川1/5录取指标留给地震灾区高考生 2008-05-28 09:12:03 来源: 南方网(广州) 网友评论 0 条 点击查看 ·                                   核心提示:教育部已经下发了关于各高校增加对川招生计划的正式文件,当中规定今年在川招生的高校将增加2%的指标。同时,在招生录取过程中,对四川延考区(受灾区)与非延考区(非受灾区)的考生必须按照1:4的比例进行招生。  此外,不少广东高校也已对即将入学的灾区籍考生出台了一系列照顾政策。如华南理工大学就表示,今年四川灾区高考生一旦被华工录取,即可全免书费、免费提供生活用品,同时学校还将通过一系列有效措施切实帮助他们安心学习,健康成才。 (本文来源:南方日报 作者:谢苗枫 实习生 刘美华 程瑶)
91    [잡담36] 문천지진참사와 쌀독인심 댓글:  조회:4248  추천:82  2008-05-26
[잡담36] 문천지진참사와 쌀독인심허동식     사천성 문천은 거의 6년전이던가 내가 하루밤 투숙했던 동네이다. 한여름에도 저녁이면 크게 서늘하던 민강가의 오붓한 현성, 그 거리에서 기웃거리던 기억이 난다. 문천지진참사를 통하여 제노라고 우쭐거리는 인류가 천재지변앞에서는 아직도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새삼스럽게 느껴본다. 대신 우리 국인들이 여러가지 방식으로 문천지진참사에 사랑이 지긋한 손길을 뻗치고 있는 리유 하나로 쑥쓰러운 마음을 달래고싶다. 곁에 몇백원에서 몇천원에 이르는 돈액을 크게 서슴치않고 모금하는 사람들이 꽤나 살고있는 현상을 둘러보면 나는 국인들의 돈 씀씀이가 크게 전변되였음을 느낀다. 과거에 친구들 몇이 술 한잔 나누어도 결산시에는 너도 나도 눈치 살피기만 하던 깍쟁이 기질과 옹졸함이 많이 사라지고 대신 통이 크게 노는 양상을 보인다. 어느 사이엔가 국인들의 마음속에 련민과 사랑과 자존심이라는 심성이 번듯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느낀다. 련민과 사랑은 그 누구를 불문하고 지니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물질재부의 풍족도를 포함한 객관조건의 성숙이 사람의 좋은 심성을 가꾸어주는 관건적인 요인의 하나임을 알어야 한다. 중국은 민간적인 가난이 꽤나 오래 지속된 나라이다. 력사문화전통적으로 보면 국력을 이루는 인소인 물력과 재력을 대집중시키기 위하여 중앙집권제도에 알맞는 경제제도를 운행하여 왔으며 소위 조대가 바뀔 때마다 민간인들이 축적한 재부를 마구 겁탈한 력사실례가 많다. 또 의식적으로도 서방의 만백성이 부유하면 나라가 강력해진다는 신조와는 다른 나라가 부유하면 만백성이 부유해진다는 신조를 지켜왔다. 때문에 력사적으로 습관적으로 중국의 국가재부와 민간사회재부는 비례구조로부터 보면 국가가 민간사회보다 우선적이였던 우세적이였던 경향성을 보여왔다. 중국의 이러한 력사문화전통이 좋은 점도 있기는 하겠지만  마이너스적인 면이 없는것은 아니다. 국가와 민간사회의 물질재부 구조가 국가쪽에 너무 기울고 그 평형이 비합리적이여서 흔들리게 되는 경우에는 공무원의 탐오비리가 성행한다든가  국민의 국가귀속감이 적어지는 등 현상을 만들어 낼수 있음이 중국력사의 경험이고 교훈임을 알어야한다. 국가와 민간사회간의 재부분배구조와 방법은 구체적인 력사語境과 접속이 필요한 방대한 문제로서 나 따위가 조리정연하게 운운할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현재 문천지진참사를 두고 진행되는 국인들의 자원적이고 적극적이고 열심적인 모금 현상은 개혁개방과 새로운 물질재부분배방식이 민간사회에 가져다준 물질실리가 서서히 이루어주는 구체적인 문화현상이라 판단하고 싶어진다. 중국어에 <<가난한 동네는 부랑배가 많다(穷山恶水出刁民)》는 속어가 있고 우리 말에는 <<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는 속담이 있다. 상기 속어와 속담이 우리들더러 국민들의 사상교육에만 열중하지말고 인성에 부합된 <<쌀독인심>>을 중요시해야 함을 알려준다고 생각된다.  
90    [잡담35] 문단의 병 댓글:  조회:4131  추천:83  2008-05-21
[잡담35]문단의 병허동식어떤 사회집단이든지 어느 경우에는 정신지도자를 선택하게 되여있다. 권력차원에서 출발한 강압적인 선택과정이 있는가 하면 민간차원에서 출발한 자원적인 선택과정이 있다. 중국조선족은 근년에 전통적이고 절대지배적이였던 관방문화의 정신지도성을 조금 벗어나 자원적으로 정신지도자를 선택하는 길을 걸어왔다. 그 결과 김학철옹이 정신지도자에 가까운 이미지로 부상되였다고 생각된다. 김학철옹이 중국조선족의 정신지도자 류형으로 선택되는 과정에 문학계가 주도작용을 했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관방사회와 민간사회의 보편적이고 적극적인 승인을 받은것은 아니지만 김학철옹의 사회적인 민족적인 고귀인품과 렵기적이고 투쟁적인 인생경력에 인기되는 그 사회지위의 상징성은 부인하기가 사실 아직 어려운 일이다. 물론 김학철옹과 련관되는 문화정상설이 반발을 받은 일은 있지만 그것은 순수 문학적인 시각에서 판단된 일이며 아직은 김학철옹이 우리 심목에 심어놓은 정신지도자 역활과는 모순을 이루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김학철옹의 작품과 투쟁경력 그리고 사상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반면에 이상기후의 징조도 보이고 있다. 김학철옹이 돌아가신 뒤, 쩍 하면 김학철옹의 일언일행이 누구를 평판하고 누구를 끄집어내는데 리용되고 있음은 좋은 일이 아니다. 김학철옹도 인간으로서 시대적인 제한과 개인적인 제한을 받지않을수가 없다. 그러므로 김학철옹의 모든 언행이 과학적이고 정확하였다고는 리해할수는 없다. 특별히  누구든지 김학철옹의 언행을 단장취의하는 경우에는, 어느 구체적인 목적에 사용되는 경우에는 역효과를 내보일수도 있음을 알어야 한다.      식구들이 적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너무나도 작가의 개인적인 인품적인 면을 류의함은 오늘날 문단의 병일수도 있겠다. 또 김학철옹의 명의를 빌어 개인적인 작전을 진행함도 오늘날 문단의 병일수도 있겠다.
89    사랑이라는 낱말 그리고 사랑에 대한 생각 댓글:  조회:2853  추천:85  2008-05-14
해빛이 반짝이고 꽃이 피여 시쓰고싶은 욕정이 잉태되는 봄날, 베란다에 홀로 앉아 사랑이라는 낱말과 사랑을 생각하면서 나는 조금 멍청해진다. 인테넷에서 사랑이라는 낱말의 어원을 검색하면 어느 국어사전의 思郞과 思娘이라는 한자에서 풀이되는 해석과 《사르다》 등 우리 말 고유어에서 풀이되는 해석을 읽을수 있다. 그리고 또 영어로 풀이하는 사람들의 이색적인 장난끼도 읽을수 있다. 사랑이라는 낱말의 어원에 대한 해석이 어느 풀이법이 정설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낱말에 대한 어학적인 해석을 떠나 사랑이라는 낱말과 사랑에 대한 나 스스로의 《풀이법》을 진행하고싶어진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우선 자연을 상대하는 문화심리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생존방식을 내포한 자연관의 표현이 아닐가고 생각된다. 우리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여 인간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주며 어느 정도의 농경수확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자연에 묻혀 살아왔다. 때문에 자연의 다변화적인 아름다움과 주기적인 신성함을 만끽하여왔고 그 중에 자연의 실리적인 은총을 받으면서 긴긴 세월속에 자기도 모르게 자연을 사랑하고 경모하고 우러러는 자연관을 키워왔다. 과거 우리는 만물이 령성을 지녔다 주장하는 샤머니즘을 신앙하였고 자연세계에 대한 탐구가 많은 진전을 보이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마음깊이 어디에는 자연을 사랑하고 경모하고 우러러는 자각심을 의연히 간직하고있다. 사랑이라는 낱말에 슴배인 우리의 상기 자연관을 더듬어보면서 현재 많이 사용되는 생태평형이라든가 생태주의라는 말과 비교를 해본다. 우리 말 사랑에 내재되고 표현되는 자연관은 소박하고 정서적인 면을 다소 지니여 생태평형이라든가 생태주의라든가 등 과학용어와는 큰 차이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 말 어경이라는 특수 조건하에서는 사랑이라는 낱말에 은밀된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의 대립성보다도 인간과 자연의 화합성을 고집하는 신성한 자연신앙이 엿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우리의 천인합일(天人合一)식 자연관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다음으로는 인륜의 문화심리이고 생존방식이다. 협소한 의미에서는 사랑이란 선조와 가족, 친지와 이웃 등 인간관계를 비롯한 혈연적인, 민족적인, 실용적인 원초이미지가 내비치기도 하지만 작은 울타리를 뛰여넘어 사랑이라는 낱말을 사회적인, 인류적인 차원에 두고 보면 인간리상의 흔적을 크게 내보인다. 사랑이라는 낱말은 기나긴 세월의 흐름속에서 북온대라는 농경권의 경제생성과 문화생성중에 익어온 언어이며 인간상존과 인간상경방식에 대한 귀납적인 결론이며 그 결론에 대한 우리 말 표현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낱말을 접하면 간혹 로천명시인의 시 《사슴》에서 읽을수 있는 사슴의 눈길과 관련시켜보기도 한다. 우수가 조금 흐를듯 말듯 하지만 순진함과 진지함이 빛나는 사슴의 그윽한 눈길은 우리의 낱말 사랑이 지닌 인류추구에 대한 시적인 구체표현이 아닐가? 나는 사랑이란 한자에서의 애욕과 련정이 내보이는 경지를 엄청 뛰여넘은 언어로 생각되고 유가의 인자와 동등하게 빛나는 인륜사상의 언어적 표현이라고 판단하고싶다. 물론 력사의 흐름속에서는 극악열상도 보였고 현실에서도 회피할수가 없는 민족갈등과 사회계층갈등으로 인하여 우리에게도 《무고무연한 사랑은 없다》는 인륜관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우리 말 어경중에서 모든 거치장스러운, 세부적인, 구체적인 전제조건을 내버리면 사랑은 위대한 인류리상이 아닐수가 없다. 우리 말 사랑은 하느님이 인간을 굽어보는 위대한 련민과 부처님이 인간을 고행에서 구해내려는 신성한 책임과도 근사한, 인간으로서 인간을 상대하는 인륜정신의 일로임을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말 사랑은 우리의 좋은 인성에로의 적극적인 행진욕구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또 다음으로는 우리식의 미학적인 존재가 아닐수가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 말 어경중에서는 현재까지 우리가 느끼고 만들고 추구하는 미물은 사랑이라는 낱말 하나로 귀결이 가능하지 않을가? 사랑이라는 낱말을 접하여 조금이라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만 하면 사랑은 서서히 아름다운 그림전시회로 음악회로 안겨진다. 사랑이라는 말에는 고려청자의 탱탱한 목소리가 울리고 노을이 붉게 타는 진달래동산의 기운이 감돈다. 나는 우리 말 사랑에 깃든 이런 아름다운 사연은 바로 우리 말 어경을 조건으로 사랑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의 복합작용아래서 사랑의 과정과 결과가 이루는 하나의 미학적인 경지라고 생각된다. 사랑이라는 말속에는 옥처럼 다듬어진 미가 생성되여있으며 우리의 미학적인 추구가 여실히 보여진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우리 정신세계의 시성이고 미성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종극에는 지에 대한 학문이다. 지에 대한 학문 즉 철학을 인간이 우주만물의 생성과 인간의 생성에 대해 진행하는 의문이며 인간이 인간본신의 인식능력과 행동능력에 대해 진행하는 의문이며 또 인간이 인간생명의 종극가치에 대해 진행한 의문이라 한다면 사랑이라는 낱말에는 상기의 모든 내용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담겨져 있다. 물론 문화사상사적으로 보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 언어로 진행한 형이상학적인 사변적인 의문과 풀이가 비교적 적은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사랑이라는 낱말과 애착되고 빈번한 사용에는 우리의 천문적인 사변욕구와 명상이 안받침되였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실리성을 따지는 문화권에 속하는 종족이며 또 우리 말이 구축한 정신세계는 어떤 종족들과 비교해볼진대 허약성 세습성 등 약점을 지니고있다. 하지만 우리 말 어경이라는 특수전제조건으로부터 출발하면 나는 사랑이라는 낱말은 로자의 도라든가 캉트의 절대정신이라든가와도 거의 비슷한 어떤 원본적인 철학명상이 잠자고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우리의 지성이고 탐구성이다. 우리 말 사랑을 다른 언어에로의 번역을 시도하면 어떻게 될가?  다른 언어는 잘 모르니 중국어의 애와 련에 맞추어본다. 구체적인 어경을 떠나 자연관적인, 인성적인, 미학적인, 지적인 면에서 보면 애와 련은 우리 말 사랑을 담기에는 작은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한다면 우리 말 사랑에 완벽하게 대결되는 중국어는 무엇일가? 부동한 언어와 문자가 구축하는 정신세계는 차이성을 지닌다고 한다. 우리 말과 훈민정음이 우리의 심성에 키워준 이색적이고도 근본적인 근원은 잘 모르지만 나는 용케도 사랑이라는 낱말 하나를 두고 우리의 정신세계의 한 구석을 살펴보았다. 사랑이여, 오늘도 베란다에 앉아 사랑을 또박또박 불러본다. 그러면서 우리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장래가 사랑이라는 위대한 말속에서 빛나지 않을 리유가 없음을 확인해본다.
88    [잡담34] 계란으로 돌 깨기 그리고 물방울이 돌에 구멍 내기 댓글:  조회:3883  추천:78  2008-04-28
잡담     <계란으로 돌 깨기> 그리고 <물방울이 돌에 구멍 내기>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비리가 폭등하고 있는 사회임음은 의심할바가 없다.사회의 어느 구석을 물론하고 리상적인 윤리도덕리상과 사회공리와는 현실은 거리를 두고 있다. 그 거리가 축소되고 있는 추세인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인지는 내가 판단할바가 아니지만 우리가 가꾸어야 할 사회의 비리와 불공정성에 대하여 태도표명을 할라치면 가끔은 < 사회란 원래 그런거여, 너무 고지식하지말고 너무 잘난체하지말고 밥이나 얻어먹고 잠이나 자면서 절때 계란으로 돌 깨는 짓을 하지말라>는 충고를 받게 된다. 충고를 하게 된다.      나를 생각해서 또는 남을 생각해서 하는 충고이기는 하겠지만 마음 어딘가는 구역질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다.      아주 오래동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무력한 계란의 존재로서 엄연한 사실존재인 돌을 깨려는 욕구마저 잃어버리고 있다. 계란으로 돌을 깨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러한 용기와 내재적인 원동력이 없이는 앞으로 몇백년이 흐른다 하더라도 개인과 기정사회의 타협만 영원히 지속될것이고 사회공리의 륭기는 전혀 구경하지 못할것으로 짐작된다.    80년대 중엽으로부터 말엽까지만 하여도 중국의 지식청년들은 유치하기는 하지만 사회정치리상을 어느 정도 품고 있었다. 헌데 89년 정치사건에 학생들이 말려든 일을 계기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대부분 학생들과 지식청년들은 완전한 속세주의풍기에만 빠져있다.중국인 고유의 天問적인 기질과 행위를 버리고만 있다.  나도 89년에는 대학교 3학년이였는데 적어도 어느 정도의 사회관심성을 지녔었지만 또 중국지식인들의  사회관심성이 아닌 정치관심성에(너도 나도 관직 하나를 얻으려는) 현상에 많은 실망을 느끼고나서 거의 20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연한 타락상만 보이고 있다. 그래서 <계란으로 돌을 치지 말라>는 충언을  외우는 부류에 속하고있다.    헌데 가증스러운것은 아버지 엄마로 되였으니 자식의 공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이고 (공부가 출세의 길이라 생각하므로) 또 그럴 때면 <물방울도 돌에 구멍을 낸다> < 돌도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 > 등등의 고귀한 말씀을 팔아먹고 있으니 내 생과 우리의 생은 슬픈 생이 ,위선자의 생이 아닐수가 없음을 느낀다.   
87    [잡담33] 고대사 연구법에 대한 잡견 댓글:  조회:3462  추천:59  2008-04-13
      고대사를 씹어넘기는 직업은 아니지만, 력사를 하는 주제는 아니지만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고대사 연구법에 대하여 의논하고 싶다.         1 력사문헌연구법 . 문자가 나타나서 력사기록이 되여있는 시대는 보존된 문헌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고대사를 재현하는데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문자의 발전변화와 地名의 변화는 문헌연구법에 제한성과 誤점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력사기록이란 그 대부분이 기록자의 주관적인 인소도 작용한 결과이므로 력사문헌의 진실성을 두고 정사인가 야사인가 진실인가 신화인가 쟁론이 지속되는 일도 있으며, 그만큼 력사문헌도 자아의 제한성을 지니고있다. 그래서 력사문헌연구법은 고대사 연구의 만능열쇠가 아닌듯하다. 특별히 문자가 없었던 선사시대의 인물과 사건은 口頭로 전해내려오던것을 문자가 나타난뒤에야 기록했음으로 문헌연구로 선사시대를 판단하는것은 힘든 일이 아닐수가 없다.         2 考古학연구법. 조상들이 지층에 남겨둔 흔적들을 뒤집어서 력사문헌들과 맞물리려는 작업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자연변화로 하여 조상들이 남긴 흔적들이 많이 회손되여있고  또 지역에 따라 부족에 따라 생활습성이 다르고 喪葬습성이 다르기에 조상흔적이 적은 동네는 고고학의 재미를 보지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고고학학자들이 피땀을 지불한 연구결과도 개인적인 시대적인 제한성을 받음으로 하여 결국은 진실된 력사와는 다소의 거리를 두지않을수가 없다 . 따라서 고고학연구법도 고대사의 진실을 재현하는 만능열쇠는  아님을 판단하게 된다.           3 생활풍습연구법(명절 喪葬 례의 등 민속습관을 포함하여 복식 음식 주거 등)과 어학연구법.  부동한 언어를 구사했던 부족들이 流動하면서 새로운 생활풍습과 언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과거의 생활풍습 그리고 언어의 특징을 다소 보존하기도 한다. 때문에 지금까지 생활풍습 연구법과 어학연구법을 도입하여 부동한 생활풍습과 언어의 지역분포와 변화규칙을 해명하는 동시에 여러 부족의 공간이동의 맥을 그리려는 고대사 연구의 보조법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생활풍습연구법과 어학연구법은 고대사연구에 있어서 필경은 보조법에 속하며 만능열쇠는 아니다.. 좋은 실례는 아니지만 생활풍습연구법과 어학연구법(어원연구도 포함)을 리해하는데 도움이 되였으면 하는 욕심에서  내가 겪은 두가지 일을 적고싶다. 나느 청해성에 살고있는 土族의 민속박물관에 구경갔다가 조선족의 색동저고리가 전시되여 있어 크게 놀란 일이 있다. 색동저고리라는 共點을 두고 나는 조선족과 토족의 련관성에 대하여 여러가지 환상을 진행하였고 나중에는 토족은 흥안령에 살던 수렵민족인 선비족이 서진해서 청해지역의 토번과 잡거한 뒤 나타난 민족으로 인정되여있음을 전제조건으로  색동저고리라는 共點의 우연일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다만 색동저고리의 출생지는 대흥안령이구나 하는 나름의 생각과 추측만을 하였다. 실말로 토족의 민속박물관에 가서 그들의 색동저고리를 조선족의 색동저고리가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우선 너무 무단적이고 자아적인 생각임을 돌이켜본다. 또 감숙성에 유이그족이(裕固族)몇만명 살고 있는데 그 族源을 두고 돌궐어족에 속하지만 어원적으로는 고대몽고어에 속한다 하여 몽고족의 한갈래라는, 유이그족이 전해내려온 구두전설로 보면 西夏시기 黨項족의 후예라는, 생활습성으로 보면 吐蕃의 후예라는 여러가지 추측과 설이 있었는데 언젠가 유이그족어를 연구하던 중국학자가 웽그리아(항가리)를 방문하고 웽그리아아와 유이그족어에 많은 근사점이 존재함을 발견하고 유이그족을 흉노의 후예일수도 있다는 설을 하나 제기한적이 있다. 이 新說은 웽그리아인은 흉노가 서진해서 그 일부가 중유럽 항가리지역에 정착했다는 설과 일치성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 확실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으며 유이그족의 족원문제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4         신체특징과 유전인자에 대한 연구. 유전인자연구전에는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신체특징을 조사하고 분류하여 부족과 종족의 흐름에 대하여 해석하려는 연구법도 있었다(례를 들면 비효통은 강소인과 조선인의 신체특징을 비교연구하여 동이족의 리산을 연구한적이 있음). 근년에 유전인자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유전인자조사로 신체특징연구를 대체하려는 경향이 보인다.(얼마전에 한국의 어느 교수가 유전인자조사를 하여 한국인의 40%가 중국중원지역 농경인들의 유전인자와 가깝다고 한적이 있음) . 신체특징과 유전인자에 대한 연구법은 비슷한 자연생태환경에서 비슷한 인종을 만들어낼수 있다는 진화론과 조금 빗나가는 점이 존재한다면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역시 만능열쇠일수는 없다.  
86    [잡담32] 학술의 벽과 조선족대개조론 댓글:  조회:2604  추천:16  2008-04-06
        1   조글로에 박문희 선생님의 <학술의 벽…>>이라는 글이 올랐는데 읽어보고 싶지만 비밀글이라 읽지 못했다.(오늘 아침 읽어보았다) 맹랑한 김에 나도 학술의 <벽>을 생각해본다. 학술의 진미는 진실추구이다. 인류의 인식능력은 주객관원인의 제한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객관진실과 동등한 경지에 오르지 못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탐색한 어떠한 진실이든지 객관진실에로의 무한대 접근이며 객관진실의 완전무결한 재현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학술의 진실추구는 끝이 없다. 학술의 진실추구는 본질적으로 어떤 정치세력이든가 이델레오기와도 관계없이 또 어떤 민족도덕감정이라든가 공리성목적과도 관계없이 자아독존의 무한대라는 존재특점의 합리성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학술에는 학술 자아가 만들어놓은 <벽>이 있을수가 없다. 하지만 인류력사를 되돌려보면 학술에는 <벽>이 존재하여왔다. 그 <벽>을 뛰여넘기 위하여 진실추구를 최종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였다. 교회의 지구중심설을 부정하고 哥白尼의 일심론을 선양하여 종교재판소의 화형을 당한  布鲁诺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어찌하여 학술의 본의와는 다르게 <벽>이 생기는것인가? 인간과 인간사회는 다면체이고 복합체이다. 인류는 진실추구에 대한 황홀한 정신세계를 이루어온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물질성(물질세계에 대한 의뢰성과 무한대의 항락성) 을 버리지 못한다. 때문에 어느 학술이 누구의 물질리익과 사회상층건축과 이델레오기의 장애물로 되면 자연히 <벽>을 만나고 고난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학술의 <벽>이란 학술자아의 소생이 아니라 공리사회의 제한성이 가져오는 현상임을 새삼스레 느껴본다.           2   <조선족대개조론>이 학술의 <벽>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어떤 벽을 넘어섰을가?    나는 <<조선족대개조론>>만 읽어보았고 김문학선생의 다른 책들이라든가 문장을 읽지를 못했음으로  <조선족대개조론>만을 화제로 하고싶다. 첫째, <<조선족대개조론>>의 집필목적과 <벽> <조선족대개조론>의 첫머리와 맺음말에 씌여진 문자들을 읽어보면, 그리고 <조선족대개조론>이라는 글 제목으로부터 보면 김문학선생이 적극적인 사회목적을 두고 쓴 글이라 느껴진다. 소위 상아탑식 순수한 학술연구가 아니라 조선족사회를 진맥하려는 사회공리적인 본의가 적극적인 표현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족대개조론>에 이러한 김문학선생 자신이 만든 <벽>이라 할수 있는 목적과 기준이 있다면, 김문학선생이 뛰여넘은 <벽>은  김문학선생이 자신에게 만들어준 <벽>이 아니며 당연히 누구 또는 사회가 <조선족대개조론>을 감금하려는 <벽>임에 틀림이 없다. 두번째,  <<조선족대개조론>>의 연구방법과 언술방식 그리고 <벽> 김문학선생이 조선족사회를 연구한 방법이 실증주의 방법은 아님은 명백하다. 확실한 사회연구조사와 통계자료수집을 통하여  론거를 받침으로 하는 론증과정이 없이 조선족사회현상들을(김문학선생은 전형적인 사회현상이라 생각했을수도 있겠다.) 라렬하면서 또 언술수법이 엄연한것이 아니라 演義식으로 되여있어 일반 독자들의 취미성을 만족시킬수 있는 반면에 과격적이고 정서적이고여서 전통적인 <학술문>과 거리를 둔 글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조선족대개조론>이 정확한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벽>을 넘어섰음은 확실하게 보여진다. 때문에 김문학선생의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적이고 합리한 면을 지닌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이 <자유화>된 사회이다. 그 <자유화>에 비해서는 상술한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벽>은 난쟁이에 불구하다.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자유화>가 엄청난 원동력인 이상, 누구든지 김문학선생의 <조선족대개조론>의 학술방법과 언술방식을 비판하고 부정할수는 있지만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벽>으로는 <조선족대개조론>을 감금할 능력은 없다. 새번째, 김문학의 개인사항과 <벽> 김문학선생이 어떤 출신이든, 현재 중국국적이든 국제인이든 중국조선족사회에 대해 연구한다는것은 공리적인 목적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개인적인 학술자유에 속하며 그 학술성과가 어떤 집단이라든가 개인에게 리용당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일본이든지 한국이든지 중국이든지 어디에서든지 공개하는것도 김문학선생의 개인적인 학술자유에 속한다.  김문학선생이 중국조선족출신이므로 조선족사회의 부족점을 거론하지 말라 또는 <좋게> 거론하라는것은 <벽>이며 민족도덕과 민족감정 그리고 민족자존심이라는 <벽>이다. <조선족대개조론>에서 김문학선생이 상술한 민족도덕과 민족감정 그리고 민족자존심이라는 <벽>을 뒤여넘었는가? 나의 옹졸한 생각에는 상술한 <벽>을 완전히 뛰여넘지 못했다 판단한다. <조선족대개조론>의 언술이 아무리 졸렬하다 할지라도 어떠한 민족도 민족사회도 부족점이 없을수가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나 개인은 <조선족대개조론>의 언술을 객관적으로 읽어볼수있는 심리준비가 되여있다는 자아위안을 하고나면, <조선족대개조론>의 밑바닥에 애족감정이라는 정서가 흘렀음을 감지한 이상, 나는  <조선족대개조론>이 민족도덕과 민족감정 그리고 민족자존심이라는 <벽>을 완전히 뒤여넘지를 못했다 생각된다. 좀 빗나가는 이야기이지만 아침마다 애국가를 부르는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 경우가 있고 날마다 제 조국을 욕하는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인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반면에 <조선족대개조론>에서 김문학선생이 자신의 개인사항으로 말미암아 민족도덕적인 감정적인 자존적인 <벽>을 뒤여넘지 못했음임야말로 <조선족대개조론>이 학술성이 부족한 직접적인 주관원인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네번째, <조선족대개조론>과 김문학선생의 매국배족 그리고 <벽> 畵蛇添足이기는 하지만 <조선족대개조론>과 김문학선생이 매국배족의 락인을 받았다는 <사실>(김문학선생의 근년의 저술과 구체적인 언행에 대한 전면적인 료해가 없이는, 구체적인 語境을 떠난 斷章取義에 가까운  분석만을 읽고, 어느 교수의 문장 하나를 두고 김문학선생에게 매국배족이라는 력사정치개념을 착용함은 나는 시기상조라 보여진다)의 련관성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조선족대개조론>의 내용과 형식에서는 김문학선생이 매국배족으로 전락할 직접적인 필연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조선족사회를 비판했다고 하여서 필연적으로 매국배족으로 전변한다는 론리도 성립불가능이다. 시간의 순위로 보면 <조선족대개조론> 뒤에 김문학선생이 <매국배족의 언행>을 떠들고  있는데  그러한 後現象인 김문학선생의 <매국배족의 언행>으로 前현상인 <조선족대개조론>을 비판하고 전부 부정한다는것은 론리가 타당하지 않다. 김문학선생의 근년의 <매국배족언행>으로 오래전의 <조선족대개조론>을 해석하려는 현상이 있다면, 나는 그런 현상속에서 우리들이 직면한 주관주의라는 감성주의라는 <벽>을 느낀다.   다섯번째,  <조선족대개조론>의 홍보와 <벽> 조선족사회의 언론체계는 언론인들의 구성과 언론지들의 구성이 자아의 특점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조선족사회에서 경제 사회 문화의 언론을 주도하는 분들이 많이는 문학과 련관을 두고 있으며 언론거재물도 문예지와 많이 련관되여 있다.  <조선족대개조론>이 크게 고명한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언젠가 흑룡강 김**?라는 분이 <청년생활>에 조선족사회 조사보고와 비슷한 좋은 글을 련재하였고 그 사회반응이 <조선족대개조론>보다 적었던 기억이 난다.-작자분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음만을 알고있음) 언론계(사실은 문학계)의 론의를 일으키고 <조선족대개조론>과 련관되는 홍보자 홍보지들마저 거의 사회민족정치의 변두리에 내몰고 있음은 어론계를 대변하려는 우리 문학계에 엄연한 <벽>이 크게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할뿐이다.    <칼도마>장사나 <밀고제>나 문학계에 존재하는 <벽>의 표현이다. 김문학선생이 지금 바다건너 일본에서 <조선족대개조론>을 두고 내가 이러쿵 저러쿵하는것을 알면 아직도 <벽>속에서 게임을 하고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우리들을 코웃음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85    [잡담31] 연변내기와 남도치 그리고 한국인 댓글:  조회:4289  추천:111  2008-04-01
연변내기와 남도치 그리고 한국인허동식<내기>든지 <치>든지 꼬리말로서 야유의 의미를 내비친다.  연변내기 하면 연변깍쟁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여왔고 연변말로는 연변좁쌀로 표현된다. 연변사람이 남도치들로부터 이런 평판을 받아온것은 연변사람의 생존환경과 생활물질래원의 부족 그리고 생활소비구조의 특점과 집체화시대의 연변특징에서 인기된다. 연변은 송화강류역과 료하류역과는 달리 산이 많고 평원이 적어 인구에 비해서는 경작지가 적은 농경지역이다.따라서 농업생산도 생활도 조금은 精細적이다.옛날 설명절 같은 때면 안쪽의 남도치들은 돼지를 한마리 반마리 잡아놓고 한달 반달 먹지만 연변은 욕심뿐이지 그렇게 흥정망정할 능력을 지니지 못했었다.촌에서는 생산대를 단원으로 돼지를 잡고 돼지고기를 인구당으로 분배를 하면 근과 냥으로 세분했으니 남도치들은 연변사람들의 그러한 고초를 잘 모르고 연변사람을 연변깍쟁이 연변내기로 불렀다.또 연변사람들은 다 같은 유농족이기는 했지만은 안쪽사람들에 비해서는 정착성이 뚜렷하여 만날 이사하는 현상이 적었고 제한된 수입을 세분하여 입은 풀칠하지만은 주거에는 무난히도 신경을 쏟았다.그래서 안쪽사람들이 연변에 오면 잘 먹을수있는 대접은 못받았지만 촌락이 정연하고 깨끗함을 부러워 했던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연변이 나라의 말을  잘 듣는 붉은 지역이였고 그것이 연변사람들의 생활방식에 작용한것도 사실이다. 공량이란 경작지면적과 소출과 그리고 인구를 감안하여 定量하여야만 도리에 맞겠지만  집체화시대에 연변지역은 배를 곯으면서도 공량경색을 했으니 연변사람들 쌀독상황은 얼마나 막심했을가? 이러저런 연고로 연변인들은 연변내기로 연변깍쟁이로 불리울수밖에. 또 연변의 시골사람들 발길은 대부분이 연길구경이나 했을가 말았을가 하는 정도였고 화룡 룡정지역은 거의가 중국말이야 죽어라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정도로서 중국이면 연변이고 연변이면 중국인가 하는 공간인식수준을 내비치었으니 장춘 길림 할빈 심양 대도시도 둘러볼수 있었던 지역적우세를 지닌 안쪽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촌사람으로 보였던것이다. 나의 외삼촌과 이모는 연변출신이지만 흑룡강 길림 그리고 료녕을 줄곧 이사를 하면서 살어왔다. 좀 늦기는 했지만 대학 다닐 때, 외삼촌과 이모네 동네로 가본적도 있고 또 길림지역의 조선족촌락을 둘러보았고 동창생들중에 남도치들이 많아서 안쪽사람들의 생활상을 얼마 정도는 알고 있다 생각한다. 남도치들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지역에 살다보니 씀씀이가 대범하다.연변은 흉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들은 흉년에 대한 개념이 빈약했고 먹는데는 거의 돈을 아끼지 않았었다. 반면에 자칫하면 이사를 하는 습성 때문이여선지( 이사를 하면 집은 이전할수 없다.) 주거개선에 대한 투입이 적었었다. 연변사람들은 상술한 생활상을 보이는 안쪽사람들을 보면 촌락이 어지럽다 먹을줄밖에 모른다는 평판을 하였음도 자연스러운 일이다.또 랭전시기여서 북한만을 정통으로 생각한 연변사람들은 안쪽사람들의 남쪽말씨의 진미를 잘 모르면서도 또 중국말을 많이 섞어 사용하는 언어습관을 받아들일수가 없었기에 아빠야 밥 먹으라이 하는식을 비웃기도 했으며 그들을 남도치라고 불렀던것이다. 연변내기와 남도치, 연변사람들과 안쪽사람들이 서로 대방의 내실을 알고 살어간다면, 모두가 어느 정도의 풍족상을 지니는 날을 맞을수가 있다면 <내기>와 <치>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될것이다.  한국에 가면 연변내기가 남도치보다도 좀 빼돌림을 받는다고 한다.연변사람이 좀 약고 신용성이 결여되고 의리가 약하다는 원인도 있겠지만도 연변내기들이 북조선과 비슷한 말씨를 쓰고 문화적으로도(특히는 음식문화) 북쪽에 치우고  또 6.25동란이 한국인들의 심성에 큰 상처를 남긴 사실과도 관련이 된다. 중국조선족은 보가위국이라는 중국당국의 호소만이 아니라 반도땅을 침략한 미국군을 조선반도로부터 몰아내기 위해서 지원군에 참가했다는 실상을 잘 아는 한국인이 별로 많지는않다. 6.25동란뒤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을 포함하여 반공책의 영향을 많이 받었기에 한국인들은 중국조선족도 6.25동란의 책임을 분담하여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헌데 우리는 언제 한번 정식적으로 사과를 한적도 없으니, 또 오늘날에도 핵이요 미싸일이요 뒤숭숭하니 북조선인에 대한 생각과 북조선과 문화적으로 조금 동일성을 보이는 연변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편차가 없을수가 없다.  
84    [잡담30] 학술과 학술쟁명의 기준에 대한 잡견 댓글:  조회:3045  추천:83  2008-03-31
잡담30  학술과 학술쟁명의 기준에 대한 잡견허동식학술이란 낱말에서 학과 술을 분리하여 學은 발견적이고 초창적이고 탐구적인 작업이지만 術은 學에 대한 보충이고 해석이며 學을 정리하는 작업이라는 설이 있다. 근년에 開創식사회구축을 두고 중국학술문화를 담론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으며 중국문화의 학의 결여와 술의 발달상태를 두고 반성하는 학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상술한 관점을 지닌 분들은 전중국에 모택동사상을 술적으로 연구하여 밥먹는 사람은 얼마얼마이고 <홍루몽>과 로신 덕분에 밥먹는 사람이 얼마얼마이고 하면서 또 중국근현당대의 걸출한 사상가인 모택동의 사상마저도 국외에서는 그의 군사리론만이 인지를 받는 현상을 一例하면서 중국인들의 초창적인 사유능력에 대해, 중국문화에 내재한 창조배태능력에 대하여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학과 술의 분리법이 중국인들의 문화반성의 세밀성을 보여준다 생각하면 또 중국인들이 문화반성 흐름이 아주 거창한 一面도 지닌다는 생각을 해본다.물론 사회정치환경의 돌변하에 정치인들과 형세를 만구한다는 명목에 의하여 중국의 문화반성이 기형적인 면을 보인적은 없는것은 아니지만 근현당대에 있어서의 중국문화반성은 기본상에서 자존성과 허위성을 초월한 全域적인 리성주의 특징도 보여주었다 생각된다.청나라말기에 있었던 보수파와 양무파 그리고 유신파들의 론쟁이라든가 신문화운동을 거쳐 신민주주의론의 융기 그리고 80년대중엽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여러가지 문화주장과 학설들의 활발상 자유상이 설명하여 준다.     또 중국문화반성은 세밀하고 거창한 문화반성이기는 하지만 정영인물들의 문화반성이 민중들의 문화반성에 同時성과 보편성을 가져다주지못하는 유감이 과거로부터 오늘까지 지목된다.       학과 술의 분리를 통한 중국문화반성의 一毛에 대한 리해를 적고나니 학술쟁명의 기준에 대한 생각을 적어본다. 우리는 누가 어떤 학술연구를 한다면 그런 학술연구를 진행하여 무엇을 할려고? 하는 공리적인 학술목적기준을 잘 사용하고 있다. 또 어떤 학술성과가 있다면 그 학술성과가 좋은가 나쁜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정서적인 도덕적인 시비적인 기준을 사용함도 비교적 보편화되여있다.  하지만 학술이란 학술쟁명이란 인간의 공리성을 초월한, 인간의 정서와 도덕이 내배인 인생관을 초월한 기준인 ,다만 인간의 진실과 진리에 대한 인식욕구를 만족시키는 기준도 존재한다. 이런 기준을 학술의 실용성과 被리용성을 벗어나 인류가 자신의 인지능력을 무한대로 확대하려는 본성요구를 재현하는 기준이라 말할수 있겠다. 서양권에 공리적인 도덕적인 학술과 학술쟁명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동양에 비해서는 진실과 진리만을 추구하는 경향성이 뚜렷하다.그 원인은 희랍정신의 진실과 진리에 대한 태도와 추구가 유전되였기 때문이 아닐가 생각해본다.서양권은 공리성과 도덕성을 전혀 버린 다만 <진리>를 위하여 생명의 대가를 낸 사례가 많지만 동양권은 누가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값없는 죽음을 한다고 비웃음을 당하는게 상례이다. 진리라는 말이 우리에게도 조금 익숙한 말이고 우리에게 <진리>와 <신앙>을 위하여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면, 진리와 동등한 진실을 위하여 죽은 사람은 우리 주위에 몇이나 될가? 생각해본다 학술과 학술쟁명에 대한 공리적인 기준과 도덕적인 기준 그리고 진리적인 기준이 학술과 학술쟁명의 부동한 경지를 만들어줌을 알아야한다.  
葛红兵교수의 카페에는 《中国应停止宣仇式反日宣传》는 글이 이미 자원 삭제되여 있음으로 알고있음-역자   葛红兵교수의《中国应停止宣仇式反日宣传》를 읽고- 감성과 리성사이                              自由奔马 솔찍하게 말해서 葛红兵교수는 나의 学长이다(명인과 인연을 맺으려는 혐의를 받을만도 하다). 하지만 나도 《中国应停止宣仇式反日宣传》을 읽고 입에 담지못할 더러운 욕설들이 마구 튕겨나오려 하는것을 어렵게 참았다. 인터넷에 한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또 무슨 보복행위를 할려고 그러는지 葛红兵교수 집주소를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葛红兵교수를 법에 기소한다(2007년 7월 가원량이라는 사람이 상해 어느 법원에 기소했음-역자 주)는 소식을 전해듣고나서부터 나의 정서가 조금 완하되였고 랭정한 생각을 해보고싶었다 . 나의 감성이 감염되기는 했지만 리성도 정상으로 돌아온듯했다.  우리의 자아문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문제는 일본에 대한 원한이라는 명제를 초월하여 리성주의 葛红兵교수와 감성주의 네티즌들 표현형태에 있다.   나도 读书人인으로서 리성의 중요성을 알기는 하지만 늘 감성주의에 감염되기도 한다. 나도 일본사람을 미워하고 일본사람을 욕하고싶다. 하지만 모든 일본사람이 아닌 일본전쟁범과 우익세력만을 상대해서말이다. 또 일본의 <蜡笔小新>  <聪明的一休> 등 그림영화도 좋아하고 川端康成과 大江健三郎의 소설도 즐긴다. 그리고 도쿄의 사랑이야기와 高仓健 그리고 午夜凶铃도 즐기고 카메라를 사면서 결국은 일제를 산다. 그러다가 항일전쟁과 신사참배를 생각하면  자신을 리성적인 사람으로 간주하면서도 격분된 정서를 삭일수가 없다. 일본인도 사람인줄은 알지만 일본관련문제를 론하면 머리속에는 늘 그들의 만행이 떠오른다.  나는 그들을 용서할 능력이 없다. 또 그 누구나 나더러 그들을 용서하라 강박한 일도 없음을 안다. 피비린 기록들인 항일전쟁 사진을 나는 보아야 하며 앞으로 자식을 데리고 볼것이다 . 왜냐하면 그것은 진실한 력사이고 우리의 마음을 저미는 악몽이기 때문이다. 건망증과 무감각이 우리의 렬근성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는한, 老好人식의 관용이 우리의 좋은 습성이 아닌 이상, 항일전쟁에 대한 기념과 선전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본현대인들을 리해할수는 있지만 력사를 감추려는, 진정한 민주의식과 평등의식을 잃어버린  일본우익정치인들은 리해하지 못한다. 나는 葛红兵교수의 본의는 理性이며 인테리의 反思精神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反思에 대해 反思를 진행할 필요성이 있다 생각된다. 그는 중국인들의 정서반발력에 대해 너무나도 경솔한 판단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이고 문학평론가이기는 하지만 중대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전심전의으로 감성과 리성을 투입한 언설을 진행하지않았다. 그의 언설은 너무 관방적이고 자태가 너무 높다. 자신을 너무나도 정영인물의 위치에 놓고 민중을 바보로만 보는 착오를 범했다. 우리의 항일전쟁기념은 아직은 우리를 협애한 민족주의로 몰고갈 정도는 아니며 또 더 중요한것은 우리 민중들이 력사를 잊어버리는 위험성이 력사를 외곡하는 위험성과 거의 동등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상황은 우리와 다르다. 독일은 력사에 대한 반성을 했으며 유럽나라들은 공동리익을 위하여 유럽공동체도 만들었다. 중국사람은 몇번 당하고서야 반항하는데도 일본인들은 력사문제에서 지속적으로 중국을 해버리고 있으며 따라서 중일모순은 升级할뿐이다. 목하 중일갈등은 절때로 중국인들이 력사를 두고 소처럼 반축한 결과가 아니다. 葛教授의 말씀이 나더러 소름이 기치게 한다.또 葛教授을 목독하는 음성들도 나더러 공포를 느끼게 한다. 언어의 폭행이다. 언어폭행이 행위폭행으로 전환한다면(갈교수를 법정에 내모는것이 합법적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합리성은 없다.) 더 무서운 일이다. 중국에 대해 좋은 심보를 품지않은 일본인들이 알면 깨고소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서적인 언행만 하는 민중은 몽매하며 리성주의 결여된 민중이다. 갈교수에게 한간이라는 모자를 씌우는 사람들이 홍위병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 네티즌들의 언행이 바로 葛红兵교수의 사람은 民主意识이 없으면 公正하고 客观적이며 就事论事적으로 问题를 볼수 없다는 말을 실증하고 있는 셈이다 . 또 일본인들더러 우리를 진보가 없고 아직도 약자를 깔보고 蒙昧하며 내부분쟁에 열정을 투입하는 근성을 버리지 못했다 비웃을 근거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갈교수나 네티즌들이나 모두가 쟁론의  分析이 深入하지못했고 높은 경지에 이르지못했다.
82    중국은 宣仇식 반일선전을 그만두어야 (역고) 댓글:  조회:2939  추천:49  2008-03-29
중국은 宣仇식 반일선전을 그만두어야 葛红兵 (상해대학 교수) 듣는 말에 의하면 일본에  중국 각지 <항일전쟁기념관>  <반일> 사진 철수요구를 목적으로 하는 초당파의원련맹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련맹의 진실한 목적은 나는 모른다. 만일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사실을 덮어감추려는것이면 우리는 마땅히 반격을 해야 하지만 만일 앞으로의 중일우호관계를 념두에 둔었다면 그들의 요구가 전혀 도리가 없는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중국각지의 2차대전기념은 여러가지 声光기술과 광학기술을 리용하여 일본인들의 살육과 간음 등 만행을 사실주의 수법으로 재현하고 있다. 내가 보건대 < 宣仇>가 기본 목적이여서 참관자에게 특히는 청소년들에게 正面적인 의의를 많이 주지를 못한다. 반면에 負面적인 의의로서 그들의 마음에 원한을 심어주고 < 전쟁이란 전인류의 재난이다>는 판단보다도 <우리는 강대해야만 전쟁에서 우리를 보호할수 있고 적들의 침해를 받지않을것이고 앞으로의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는 판단을 지니게 한다.       이런 선전은 애들더러 전쟁의 잔혹성과 반인류성이라는 관점을 지니게 하는것보다도 <정의>적이고 <복수>적인 전쟁을 갈망하게 함으로서 살기와 잔폭성을 지니게 할수 있다. 적의 잔폭성에 대하여 반복적이고 자세한 료해를 했다면 적보다도 더 잔폭해야만 적을 소멸하고 승리를 이룰수 있다는 론리를 지니게 할수 있기 때문이다.   宣仇式  2차대전기념은 중국의 2차대전기념이 직접적인 반일선전으로 변했고 일본도 2차대전의 희생자임을 잊게 하며 전쟁은 전인류의 재난임을 잊게 한다. 동시에 오늘날의 일본은 민주국가이며 민주국가란 전쟁수단이 아닌 시장경제수단으로 생존공간을 만들고 무력이 아닌 협상으로 권익을 얻음을 잊게 한다.  어떤 2차대전기념선전도 평화와 안녕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宣仇式기념은 반인류적이며 그 악과는 이미 목하 젊은이들의 狭隘好斗하고 仇恨을 荣耀로 간주하는 추세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재 각지의 2차대전기념에 리용되는 피비린 사진자료들이 <인성>교육에 적합하지 않으며 중소학생들이 좋은 인생관 인류관 전쟁관을 수립하는데도 좋은 역활을 보이지 못한다.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수많은 2차대전기념관을 참관했지만 그들이 2차대전에서 겪은 고난이 중국보다 가벼운것은 아니지만 피비린 사진들을 전시함을 많이 보지못했다. 우리는 아이들더러 인류는 善적이고 아름다운 존재이며 래일은 평화롭다는 마음을 지니게 하여야 한다. 나는 <영국인들은 어떻게 2차대전을 기념하는가>는 문장을 쓴 일도 있지만 우리도 영국인을 배워야 한다 생각한다.   2차대전이 끝난지 50년이 된다. 우리는 남아시아의 싱가포르 태국 등 나라를 배울점이 많다.그들은 仇日정서가 없이 일본과 사이좋게 보내고있다.또 仇德정서가 없이 독일과 사이좋게 보내는 프랑스 영국을 배워야 한다. 50년 뒤에도 날마다 우리가 락후한것은 일본침략을 받었기 때문이라고 언행을 진행하여서는 안된다.       원한은 독약이다.사람의 心智를 죽이는 독약이다. 또한 한 민족의 심지를 죽이는 독약이다. 1차대전에서 실패한 독일이 원한에 중독되여 2차대전을 발동했던 사실로부터 전쟁발동국가에 대한 징벌과 도덕멸시 그리고 책임추구가 어느 국한성을 넘어서면 생각밖의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음을 교훈으로 삼아야한다. 죄인(일본-역자 주)의 방식으로 죄인을 처벌한다든가 죄인더러 반복적인 사죄를 하라든가 죄인을 羞辱하는 방식(꿇어앉아 사죄)으로 죄인을 <교육>한다든가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중에서 우리도 죄인과 똑 같은 과오(죄가 아닌 过犯)를 범할수 있기 때문이다. 관용은 상처와 인성의 약점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다. 사람을 상대하든 국가를 상대하든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宣仇式 반일선전을 그만두어야한다. 2차대전기념도 반전쟁을 목표로 하여야하고 나라간의 원한과 적시상태를 선양하지말아야한다.     葛红兵,1968年11月生,新生代作家,批评家,文学博士,文艺学教授,英国剑桥大学东方所访问学者,上海大学中文系副主任,中国当代文学研究会理事、中国文艺理论学会理事,贵州师范大学中文系客座教授,中国当代中篇小说经典文库主编,20世纪中国文化散文精选编委。出版有长篇小说《我的N种生活》等4部,随笔集《人为与人言》等5部,长篇小说《沙床》由长江文艺出版社出版。学术方面,葛红兵教授1991年起先后师从曾华鹏、许志英先生从事中国现当代文学研究,出版《文学史形态学》等专著十余种,另有多卷本《葛红兵文集》面世。  "중국은 宣仇식 반일선전을 그만두어야"를 읽고서 1           葛红兵교수는 <중국은 宣仇식 반일선전을 그만두어야>라는 글을 쓰고 중국에서 광범한 독자들로부터 일본우익세력의 호응분자로서 매국한간이라는 비판을 받는, 그리고 극소수인들의 긍정도 받은 인물이다. 2          어떤 언론에서도 목청이 높은 사람이 진리의 소유자라고는 말할수 없다. 또 어떤 주장이라든가 생각이 다수인의 마음에 들어 좋은 평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닌 경우도 많음을 생각해본다. 많은 경우에는 다수인들보다도 소수인들의 안광이 더 예민하고 날카롭고 정확함을 느껴본다. 3          온가보총리의 < 우리는 원한을 지속할 생각은 없지만은 잊지는 않으련다—원문은 잘 기억이 안남 >는 한마디를 생각해본다. 물론 정치인의 외교어이다.론리가 있는 말이다.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할수 있을가? 중국인과 일본인중에서 어느 하나가 참여하지 않아도 이루어질수는 없는 목적이다. 4          葛红兵의 一言이 그의 본의와는 다르게 일본우익세력에 리용당할수도 있겠다. 그러는 경우에  葛红兵는 어떤 상책이 있을가? 우리는 또 어떻게 평판을 하여야 할건가? 5          도덕의 층차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인간도덕도 있고 집단도덕도 있지만 또 인류도덕도 있다. 도덕의 3층차가 주객관원인으로 모순체를 형성할 때, 어느 도덕을 기준으로 하여야 하는가? 6          소위 <매국역적에> 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학적인 해설도 있고 사회도덕적인 해설도 있지만 력사사실적인 해설도 있을것이다. 리홍장은 우리가 력사교과서에서 <마관조약>에 싸인한 청나라대신으로서 엄청난 매국역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홍장을 매국역적으로 판명함은 리홍장의 후세에 지속된 정치의 작간이며 <력사란 현실을 위해 복무한다>는 공리주의의 결과이다. 중국에 리홍장만큼한 애국자가 (청나라 황실을 사랑했든 국민을 사랑했든) 몇명이나 될가고 생각해본다. 7          일본우익세력이 기세 사납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평화를 사랑하지만 소수인들이 지랄발광한다>는 말이 진실여부가 어떠한지는 나는 전혀 모른다. 일본이 민주국가여서 어떠한 생존철학도  자유를 보장받아 우익세력도 합법성을 지니다 하지만 일본 곁에 사는 사람들은 옛날을 생각하든 앞으로의 <만일>을 생각하든 소름이 끼침을 느낀다. 또 일본인들도 <만일>을 앞둔 사유를 할 자유가 있음으로 하여 목하는 서로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나라와 나라사이 민족과 민족사이에 생존방식을 서로 강권함이 합당하지 않다고 우리는 생각한다.(우리가 남으로부터 그런 권고를 받을 때).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본인에게 우리의 생존철학을 강권하지는 못한다. 한다면 우리도 전쟁으로 일본우익세력을 교육해야 하는가? 어떤 방법이 있을가?     
81    김문학현상初探(역고) 댓글:  조회:3230  추천:118  2008-03-21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에서 이 글을 읽었습니다. 작자는 일본주재를 하는 북경인으로 느껴졌고 이 글의 관점도 분석도 세밀한것은 아니였지만, 김문학현상을 대함에 있어서의 自怒自暴이 아닌 자아반성과 민족자신감에 저는 감복했습니다.  우리가 배울 점이라 생각됩니다.김문학현상 初探 왕동(북경인) 1         2006년 8월 16일, 일본 모모 텔레방송국의 방송에서 중일한인들이 한자리에 모이어 고즈미수상의 참배문제를 두고 각자가  립장을 거론하는 장면을 구경했다.그래서 나는텔레비 화면에서 처음으로 김문학을  만났다. 중국인으로서 중일한문화비교를 한다는 학자라 하지만 중국인의 립장을 견결히 반대하고 고즈미의 신사참배를 찬성하는 김문학의 리유는 무엇일가고 알고싶었지만 김문학의 발언은 없었고 난처한 얼굴상만 드러내고 있었다. 김문학이 어떤 사람일가? 알고싶었다.    2  김문학은 누구인가? 김문학의 일본에서의 자아소개(광고)는 아래와 같다. 金文学さんは、1962年韓国系三世として中国瀋陽市に生まれた。家では韓国語、外では中国語を使っての幼児・少年時代を過ごしたという。 김문학은 한국계3세로서 1962년 심양에서 태여나 가정에서는 한국어, 바깥에서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유소년기를 보냈다 한다. 中国の大学では日本文学を専攻し、卒業してから6年間、大学講師を勤めた。1991年、同志社大学の招きで来日し修士課程を修了、引き続いて広島大学で博士課程を修了した。 중국대학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졸업뒤 6년간 대학강사로 근무했다.1991년에 동지사대학의 초청으로 도일하여 석사과정을 마치고 계속하여 히로시마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韓国人が中国で生まれ育ち、日本にくると三国人になるんです。三カ国にすごく愛着を感じています」 このように語る金さんは、たいへん落ちついた静かな感じの人で、日本語がすごく上手。とても韓国人や中国人には見えなかった。 한국계로 중국에서 태여나 자랐고 일본에 오니 3국인 되였다.그래서 나는 3국을 애착한다고 말하는 김문학은 듬직하고 조용한 감을 주는 사람으로서 일본어에 아주 능숙하여 중국인 또는 한국인이라고는 보여지지않는다  ◆著書は4冊ともたいへん面白く、日中韓の文化の違いがよく理解できた。저서로는 4권 모두가 재미있고 일중한의 문화차이를 잘 알려준다. 「裸の三国志」は、クールな表現で日中韓の文化の比較がなされていたが、「中国人民に告ぐ」「韓国人民に告ぐ」「反日という甘えを断て」は、いずれも痛烈な表現が目立った。このままの韓国と中国ではいけないという金さんの思い入れが、このように痛烈な文章を生んだのかも知れない。 <벌거숭이 3국지>는 평온한 표현으로서의 일중한문화비교를 진행하였고 <중국국민에게 알린다> <한국국민에게 알린다>  <반일정서를 버리자>는 통렬한 표현이 특징이다. 김문학의 한국과 중국은 현상태를 지속해서는 아니된다는 생각이 통렬한 표현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3       중국여론이 일본우익세력의 력사교과서를 견결히 반대하듯이 일본의 우익세력도 중국력사교과서를  견결히 반대하여왔고 그 반대중에 중국인의 참여가 있다면 큰 <설복력>을 내보일수 있다. 김문학이 그런 배역이다.김문학저서에 표현된 對中 증오심과 경멸감은 일본우익세력마저 비교가 아니된다.중국에서 태여나 자랐고 언담중에도  < 우리 중국 >을 내비치는 대학교선생 경력을 지닌 사람이 중국에 대한 염오정서를 꺼리낌없이 내쏘는 현상은 대표성이 있는 연구가치가 있을지도모른다. 우리는 김문학현상을 관상하고 김문학현상에 내재한 <가치>를 알아야 한다.    김문학현상의 원인은 国族인지가  혼란하다는 김문학의 정체불명성이다. 김문학의 언론이 대만의 黄文雄、金美玲을 대표로 하는 친일대만독립파와 설법이 부동하지만은 실질은 동등하다. 그들은 일본군국주의대외침략의 본질을 부정하고 식민통치를 가송하며 일본문화와 혈통의 우월성을 부르짖는다. 김문학이든  친일대만독립파든 모두가 동아시아현대史의 엇갈린 시비가 배태한 현상이다.   黄文雄、金美玲은 자신들의 중국혈통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중국혈통으로 하여 치욕감을 느끼며 또 다른 방면으로는 자신들의 <주체성>과 <독립>을 부르짖으나 일본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순상태에 처하여 있고 중국혈통이지만 일본을 숭배하고 ,하지만 독립하려는 3립모순속에서 정신압력이 아주 크다.   김문학은 <붉은기 아래서 성장>한 부류로서 일제점령시기와 2차대전뒤 일본과의 특정된 관계환경을 가져야했던 대만신세대와는 조금 다르다. 중국대륙체재가 어떻게 김문학을 만들었을가? 복잡한 문제이다. 4      첫째는 위만주국의 성질과 특점 그리고 발생과정에 대한 리해력과 관계된다. 위만주국력사연구는 중국근현대사에서 아주 황량한 령역이다.김문학은 위만주국을 일본이 <세계와 아시아에 가져온 거대한 은혜>로 착각하고 있으며 <세계화리념>에 부합되는 사실이라 인정한다. 김문학은 <만주가 계속 일본통치하에 있었다면 > <일본과 같은 세계강국으로 부상했을것이다>고 주장하는데 식민지가 식민지통치국과 함께강국으로 전변한다는 말은 력사론리성이 전혀 없지만 그는 우리의 위만주국에 대한 력사인식평가가 너무나도 간략되고 모호한 틈을 탄것이다.    두번째로는 김문학의 조선족이라는 민족배경과 련관이 된다.중국은 티벳 신강 내몽고 등 지역의 분렬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지만 조선족의  国族认知에 존재하는 隐患도 사실 엄중하다.만주에서와 관내에서의 할일전쟁에서 조선인은 특별군체였고 전쟁 뒤 중국적소유자로 되였다. 하지만 국족同感이 거의 없다.김문학의 언론으로부터 보면 위만주국이 강국으로 성장하는 상상에는 <조선반도>도 포함되여 있으며 그가 말하는 민족특성도 <대만민족>이라는 론조와 대응된다. 김문학이 일본에 있지만 중국내의 조선족도 김문학과 同道인 사람이 있다. 몇년전,고구려왕조쟁론중에 국내의 적지않은 조선족학자들과 민중들이 한국의 주장을 지지했으며 어떤 사람은 홈페지를 만들고 론문을 써 고구려는 중국에 속한적이 없다 하면서 중국동북의 령토주권에 대한 질의를 표하였다. 김문학현상은 개별현상이기는 하지만 실질은 조선족문제의 일종 발로이다. 김문학이 중국대륙체재하의 조선족이라는 점은 우리의 민족정책의 非完善과 비妥当을 설명하기도 한다.       세번째로는 김문학현상의 죄증 전부를 김문학개인에게 돌려서는 아니된다.객관인소의 작용도 실사구시적으로 승인해야한다.       제일 큰 객관인소는 중국대륙의 력사교육이  疏漏、偏颇와 认知错误(김문학의 학생시절은 현재보다도 엄중했다)등 문제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환경변화가 있고 지혜상승과 경력증가가 있으면 <이전에받은 교육은 거짓말이며 속임을 당했다>는 느낌을 가질수가 있으며 극단분자들은 어제날을 전부 부정하고 이단으로 전변할수도 있는 일이다. 김문학의 중국력사교육에 대한 비평을 개괄하여 빌어온다면a 만청-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혹은 김문학의 잘 외우는 만주국도 포함)에 이르기까지의 정권변화에 대하여 력사관이 투철하지 못하고 확실하지못하며 마레주의사확관을 억지공사로 응용하였고 너무나도 승리자의 자태만을 대변하여 暗伤이 많다. b 백여년간 당한 렬강침략으로 하여 중국력사교육은 원한에 사무친 피해자의식으로 차넘친다. 특정한 <반일교육>이 때로는 출현되고(子虚乌有)  <피해자교육>은 아주 일상적이다. 또 일본은 제일 큰 가해자(加害者)로만 보고 중국인의 민족적반성은 전혀 없다 c  력사교육에 있어서 考证이 적고 교육태도가 책임심이 약하며 력사결론이 空泛하여 력사사실세부가 비진실화된 경향이 많이 존재한다. 실례로는  남경대학살의 사망자인수에 대하여서 김문학뿐만아니라 중국대륙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도 앞으로는 질의를 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수자이다. 이상 세가지는 모두가 중국관방이 력사교육에서 개진할 점들이다.     이상이 필자가 김문학현상 출현에 대한 분석이다. 필자는 김문학의 언론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보다도 상기의 분석이 실제적인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偏激적인 사람을 상대해서는 口舌辩论도 창백무력하므로 얼굴을 붉혀 그런 사람과 크게 론전을 한대도 自贬身份만 차려질수가 있다. 또 세계 어느 나라든지 민족이든지 남을 멋지게 욕해서  “四夷宾服” 성과를 본적도 없고 다른 누구한테 된욕을 먹고 나라와 민족이 倾颓衰败한 일도 없다. 김문학더러 말하고싶은것은 다 말하라 하자 .중국이 요구하는것은 중국인의 自强이고 正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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