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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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잡담103] 중국의 관료주의 댓글:  조회:4323  추천:26  2009-05-06
       모택동할아버지를 비롯한 로일대 혁명가들은  수억의 중국인을 봉건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관료주의로 구성된 3大山의 압박으로부터 해방함을 인생목표로 하였다. 그 英魂들 모두가 저 세상으로 가버린 오늘날,  중국인을 억누르는 3대산은 어느 정도 허물어버렸을가? 봉건주의는 공산주의문화의 충격과 공상업시대 새로운 생산관계의 확립하에 엄청 붕괴되였고 제국주의는 이미 물러갔음으로 하여 념두에 두지않아도 괜찮다 하더라도, 수단을 가리지않는 혁명하에서도  관료주의는 자취를 감추지못하고 있으며 아직도 중국인을 억누르는 엄청난 巨山으로 존재함은 의심할바가 없다.  무정부사회가 아니고 공동체운행이 있는한, 관료주의를 철저하게 매장한다는것은 리론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관료주의가 산이든 언덕이든 우리의 일상과 문화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현실과, 또 관료주의를 대처하는 여러 방법이 미숙함은 불행한 현실이다.  90년대 초엽에 개혁개방의 교두보로 불리우던 광동으로 내려가면 대학생들이 정부기관에 취직함이 사회의 비웃음을 받았음은 보편적인 현상이였다. 그처럼 <하해>해서 돈벌고 인생을 빛내일 궁리가 없는 사람은 포부가 없는 부류로 취급을 받았었다. 헌데 1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 광동에서도 공무원 시험이 만원상태가 되여있고 대학생들은 그래도 되도록이는 공무원취직을 하려한다. 이런 현상을 <공부 잘하는 자는 관리学而优则仕>라는 유교문화전통으로만 습관적해석을 진행함은 현실의 진면목을 외면한 행위이다.. 중국에서는 오늘날에도 어떤 문화전통이라 할지라도 현실리익이라는 비옥한 토양이 없으면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대학생들이 공무원취직을 수선으로 함은 공무원들의 경제수입(공개적인것과 자적적인것)과 사회직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현실과 갈라놓을수가 없다. 2008년, 중국도시인수입이 공무원-사업기관직원-기업소직원이라는 순서로 배렬된다 한다. 수입 차지는 별로 크지는 않지만 중국은 권력이 재부로 변하고 재부가 권력으로 변하는 두가지 방정식중에서 첫번째 방정식이 절대적우세임을 부인할수 없다. 그러므로 그전에 하해를 해서 돈 벌던 사람들마저도 10여년이 지나간 오늘에는 < 아차, 내가 실수를 했구먼> 하는 후회를 쌓고 있으며 또 전 사회적으로 升官發財가 거의 普認가치취향으로 되여있다. 중국재정수입에서 지출되는 공무원들 봉급과 공무소비는 어느 정도일가? 중국의 2-3級도시를 둘러다니면 정부청사가 제일 으리으리하고 현상과 또 날마다 잡아내는 탐오분자(공무원과 국영기업지도자)들의 지갑내용을 뒤져보면 중국은 아직도 관료주의 나라임을 승인하지않을수가 없다.  복지국가는 < 大國家 小政府>이지만 중국은 여전히 촌장도 공무원 부류에 속할가 말가 하는 < 대국가 대정부>이다.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중국은 재정지출에서 공무지출이 차지하는 비률이 엄청 높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13억인구의 경제결실이 공무체계를 운영한다는것은 많은 사람들이 전혀 념두에도 두지않고 있으며 오히려 정부가 만백성을 먹여살리는것처럼 오도된 현상도 존재한다. 방대한 관료체재와 인원부하 그리고 부정과 불작위로 하여 우리의 교육투자는 교육으로 나라를 부흥시킨다는 말에 전혀 걸맞지않을 정도이며 국경선이 엄청 길고 주변상태가 별로 아니좋은 나라의 국방비는 국민소득액의 조금밖에 안된고 있음은 현실이다 그래서 주용기총리가 실수?로 중국정부를 밥통정부라고 이야기하신적이 있다. 중국정부의 무능을 이야하는건가? 아니면 중국정부가 소비형임을 이야기하신건가 정론은 없지만 그 한마디가 아직도 우렁찬 소리가 아닐수가 없다. 1945년 7월 황염배(1878-1965 저명한 교육가) 선생이 개인신분으로 연안을 방문하였을 때 모택동과 중국력사의 흥망성쇠 주기규칙을 토론한적이 있다. 모택동이 황염배선생과 연안방문의 감상을 묻자 황염배선생은 연안의 생기발랄한 풍기로부터 출발하여 단도직입적으로 < 흥도 망도 조석이다. 사람도 가족도 단체도 지어는 나라도 마찬가지로서 누구나 이 주기적인 규칙의 지배를 벗어난적이 없다. 처음에는 정진을 하지만 나중에는 나태한 풍기가 형성되고 국면을 수습하지 못한다.其兴也勃焉’,‘其亡也忽焉’。一人,一家,一团体,一地方,乃至一国家,不少单位都没能跳出这周期律的支配力。初时聚精会神,无人不用心不卖力,历时长久,惰性发作,到风气养成,虽大力无法扭转,且无 法补救。) 또 공산당 여러분의 과거와 오늘을 나도 조금은 알고있다. 다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 흥망성쇠의 주기적인 규칙을 탈선하기를 바란다 ……中共诸君从过去到现在,我略略了解了的,就是希望找出一条新路,跳出这周期律的支配)   황염배선생의 언론에 모택동은 흥망성쇠의 주기적규칙의 지배를 벗어나는 방법은 민주라고 하였다.세월이 흘러 모택동도 황염배선생도 모두가 고인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관료사회의 흥망성쇠 주기적규칙에 대한 생각과 민주방법론은 우리더러 생각을 곱씹게 한다
159    [잡담102] 마작담 댓글:  조회:3267  추천:24  2009-05-06
      대학교 시절, 동창친구들이 나를 구슬려 마작판에 처음으로 등장시키던 기억이 있다. 三缺一(4명이 하는 마작에 1명 부족함)이라는 튼튼한 리유로 식당권으로 계산되는 숙소내 십전내기였다. 물론 처음 해보는 마작이라 萬條餠風을 익히지도 못하고 참패를 했다. 그뒤에도 줄곧 마작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졸업뒤 회사를 다닌지 몇년이 되던 어느 년말총결 때, 호텔 회의실에 마작상을 7-8장 배렬하여 남녀들이 떠들썩 하는중에 또 三缺一이라는 튼튼한 리유로 할줄 모른다 발버둥치는 나는 마작판을 동참시켰다. 솔직하게 말해서 마작은 흥미가 없었지만 도박에는 흥미가 있었다. 헌데 배우면서 하는 마작에 청출어람이랄가 아니면 不會手氣好(할줄 모르는 사람의 운이 더 좋다)는 속어가 효력을 보였었는지 5원내기에 5백원 땄고 그 다음날 술 사고. 년간장례금을 3백원 받은 시절에 5백원 땄다는 일은 어떻게 보면 巨事가 아니였을가?  독서중에서도 마작을 접하게 된다. 賈平凹의 수필을 읽으면서 어떤 작자가 마작중에 2병을 單조해서 和했는데 너무 흥분김에 마작상에 딱하고 내리 조진것이 2병마작패가 두개로 조깨지면서 두개의 일병으로 되였다는 대목이 인상 좋았었다. 또 책 이름과 작자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근대 중국에 온 어떤 서양인들도 마작에 흥미가 대단했고 귀국시에는 마작을 구입해서 서재에 중국문물처럼 모셨다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마작을 하면 기문도 듣는다. 내가 사는 동네 최고급 호텔친구와 마작 하다가 너 우리 省에서 어떤 사람들이 마작을 제일 크게 하는지 아나? 민정국 扶貧辦 사람들과 부핀 돈을 신청하는 地懸사람들이여, 그 놈들은 돈을 한 트렁크씩 들고 와서 하더라 하여 입을 딱 벌리던 일. 또 누구는 돈 많은 장사군들이 마작을 크게 하던데 수작을 할가봐 (연변말로 깡토리 쓸가봐) 가운데 바구니를 달아놓고 내놓는 마작은 죄다 바구니에 집어넣더라를 이야기도 들려주었고. 천진 어느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증권시장에 상장하려는 기업소를 대신해서 증권관리부문 어른들과 마작을 하기도 하는데 임무는 마작에 지고 돈을 날려보낸는것, 하루밤에 백만원 날려보낸적이 있어 하는 말을 듣고 부럽기도 하고 가슴이 철렁철렁하던 일. 중국의 어느 구석에 가보아도 마작을 싫어하는 동네는 아직 보지못했다. 유명한 마작지인 사천성은 물론 공상업이 발달된 현대화 도시 홍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퇴근해서는 식사하던 식당에서 밥상을 마작상으로 바꾸어 마작놀이에 열중함을 구경하였었다. 또 도박을 엄금하는 이슬람교 주민들이 모여사는 신강 이닝시에 10여년전에 이미 큰길에 골목길에 마작방이 너무나도 즐비하여 내가 의문부호를 풀수없었고 내가 어릴적에는 마작이란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연변도 시골마저 <보톨>들의 마작놀이가 너무 무성하여 개탄되던 일들로부터 판단해보면 중국은 마작의 나라라고 부름이 과연 비슷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언제는 마작놀이를 <만리장성 쌓기>라고 형용했는데 현재는 <중국징수문화발양>이라고 고취하는 작자도 있다. 마작을 하면서 마작은 새 친구를 사귈수 있지만 옛친구를 잃는다는 말을 믿게도 된다. 마작판은 인품의 直露장으로서 아무리 간교한 작자도 인품을 깊이 감추기가 힘들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마작을 하고나서는 서로 지껄이는 소리가 허, 술은 먹을수록 친근해지는데 마작은 할수록 사이가 멀어지는구나. 또 마작판에서 얻은 녀자들에 대한 국한된 인상담도 있다. 대부분 마누라들은 남편이 마작을 하는것을 죽게 싫어하지만 진작 자신이 마작판에 나들기 시작하면 남자들 이상으로 광기적이라는것 . 사천성 성도의 한 애기엄마는 애가 물 고인 웅뎅이에 빠져 죽는것도 모르고 마작을 해서 남편과 시어머니한테 크게 매맞았다는 어느 뉴스를 나의 경험론판단의 유력한 근거로 하고싶다. 마작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임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마작에 대한 찬가도 조금 적어보기로 한다. 마작은 트럼프라든가 화투와는 달리 전제조건만이 결과를 지배하는것이 아니라 하는 과정에서 여건이 서서히 수시로 변하면서, 기교과 운에 따라 상황이 변한다는 점이다. 마작패를 한장 따오고 한장 내버리는 과정에서 4명의 博弈가 진행되며 변수가 시종일관 존재하는 변증적인 게임이다. 산수적으로 보면 莊家는 3명보다 패를 한장 더 가지고 시작하는 우세밖에 없으므로 하여 승패가 다른 게임보다는 조금 공평해보인다. 그래서인지 나같은 인간들은 아주 공평성만을 추구하는것처럼 령도자들과 마작을 하여도 일부러 패하는 기교를 모르는 엉청이로 산다. 年關이 되면 재정상황이 험악하거나 벌금지표를 완성하기 위하여 파출소는 마작판 수색에 열중한다. 파출소 경관들중에 돈내기 마작을 즐기는 분들도 꽤나 존재함은 사실이지만 공무중인 그들과 <제 코물도 닦아내지 못하는 주제에> 라는 말은 절때 삼가해야한다.  왜냐하면 류치장에 갈수도 있고 벌금액도 엄청 높아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신강에서 내려온 깡패들이 마작방을 겁탈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일본인들이 발명한 자동마작기가 스리슬슬  돌아가던 마작방 장사가 조금 힘들다고 한다. 도박심리는 인성본성의 하나이지만 나라마다 세금안내는 도박은 법적으로 거의 금지물로 法定되여있다. 그러면서도 국경지대에는 외국인을 상대하는 도박장을 운영하는 나라도 있다. 마작에 대한 이런 저런 잡생각들을 굴려보니 인간사회란 인성을 억제하는 흉내를 보이기는 하지만 또 인성을 리용하여 횡재도 하는 사회라는 슬픈 생각이 온다.   
158    [잡담101] 운시땜과 독서 댓글:  조회:3498  추천:33  2009-05-05
    연변방언에 운시땜이란 말이 있다. 운수놀음이란 뜻으로서 일상에 많이 사용되던 기억이다.    필연성중에 우연성이요 우연선중에 필연성이요 하면서 소위 개똥철학을 외우던 시절에는 독서중에도 운시땜이 있는줄은 잘 모르고살아왔다.           인간의 지혜와 경험과 명상이 구두가 아닌 문자로 傳承되여서부터  문명은 집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인터넷이 나타나기전까지는 서적이 인류문명창조와 보존에서 절대적인 집대성과 전승의 역활을 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헌데 수많은 나라에서는 기득권이 서적과 독서를 독점하고 만백성에게는 우민책을 베풀면서 그들의 독서를 제한하였던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유한된 인생에 유한된 인식수준에 많은 사람들에게는 독서의 운시땜도 많이 당해왔다.독서중에서 경제적원인과 시간적원인으로 하여 독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는것이 원통한데 인위적인 원인의 작간으로 독서의 자유를 빼앗기는것은 너무나도 분통한 일이다. 나는 문화독점과 문화專帝는 인류의 대적이라 생각하고 증오한다.    독서와 문화의 개방성을 충분하게 누린 민족과 나라는 태반이 재미있게 살고있다. 현대판 분서갱유를 거듭하는 민족과 나라는 태반이 적어도 령혼의 방황을 거듭하고 있다. 禪종이  不立文字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독서와 문화의 자유를 억누르지는 않았다. 이슬람교가 조금 배타적인 일신교이기는 하지만 독서의 자유를 빼앗지는 못하였고 오히려고대그리스의 수많은 문헌을 저장하는 역활도 하였다.살펴보면 유럽의 중세기와 동방의 중세기 그리고 근현대가 문화독점의 최고봉을 이루었다고 느껴진다.문화독점기를 사는 사람은 독서의 운시땜을 많이 당한다.운수 좋으면 좋은것을 많이 읽을수가 있고 운수 나쁘면 너절한것만을 받아당해야한다. 또 어떤 서적과 문화는 원체 너절한것이 아닌데 과대포장과 과대평가 때문에 너절한 대접을 받게 되는것이다.   요즘을 살면서 구입선택이 불가능한 상가로 들어가기를 싫어한다. 신발 하나를 사려는데 검은 구두만 파는 상가는 나는 실증을 느낀다. 운동화두 있고 괴상망칙하게 노오란 구두도 있는 상가가 좋아보인다.어떤 신발을 사든 내가 선택하고 판매원이 너무 과대소개를 진행함을 싫어한다.   등록이 아니된 다단계판매는 불법임을 알고 있다.그 다단계판매의 비결중에는, < 목사는 당신이 하느님을 믿든 아니 믿든 하느님을 줄기차게 이야기하는데 나중에 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믿어, 그렇게 판매를 하는거여>가 다단계판매 학교의 종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독서중에서 운수땜을 적게 당하려면 바로 그런 다단계식 상업비결과 정치비결의 옹노에 걸려들지 말어야 하겠다.
157    [잡담100] 화려한 기포와 인생 그리고 력사 댓글:  조회:3688  추천:29  2009-04-20
소설가 장애령이 인생은 화려한 旗袍이지만 그 속에는 이가 득실거린다고 이야기한적이 있다 한다. 인생의 고달픔과 그속에 감추어지는 이들은 속인들도 위인들도 성인들도 누구나 소유하게 되여있다. 령혼의 혼탁면과 행위의 너절함은 대부분 사람들은  깨끗하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누가 감히 태여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다고 장담할수가 있으랴? 그렇게 장담하는 장담하려는 작자야말로, 화려한 기포를 두벌 입은 작자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헌데 누구나 득실거리는 이를 감추기를 즐긴다. 감추기를 즐김은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어떤 이들은 자신의 기포는 자꾸만 여미면서도 남의 기포는 들추어내려는 심기를 지니고 있다. 일상에서의 내나 당신이나 마찬가지다. 백과인물란에 등록된 정치偉人이나 사상거인들도  마찬가지다. 령혼의 진실과 행위의 순간순간을 해빛아래 쪼이면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가 많음으로 하여 우리는 정치거인이고 문화거인이면서도 도덕난쟁이인 인물들도 배태하여왔다. 헌데 인생의 기포속에 이가 득실거리고 우리가 감추기와 들추기에 열중하지만,  인간은 사랑스러운 면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감추기와 들추기의 거듭남에는 적어도 인간이 화려한 인생에 대한 지구적인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엿볼수가 있다. 비록 인생은 고달프고 상처투성이고 이가 득실거리지만 우리 령혼의 깊은 곳에는  실존인생과 령혼갈망 사이의 전쟁을 기포입기와 기포벗기로 표현하여 왔다. 그 표현이 격렬한 사람이 있고 온화한 사람이 있다. 또 그 표현이 속적인 사람이 있고 예술적인 사람이 있다. 그래서 참회록도 있고 스님의 념불도 있고 고행도 있다. <레미제라불>이라든가 <부활>에는 그것들이 劇적으로 배렬되여있다. 인간과 인생이 이렇다면 인간의 삶을 집대성한 력사도 화려한 기포아래 득실거리는 이이고, 또 기포입기와 기포벗기이다. 진실하게 기록된 력사책에는 어느 민족과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그 과정을 직설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이야기하고있다. 화려한 기포와 그 내력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놓으셨을가 아니면 인간이 자생한 결과일가? 자문만 있고 자답은 없지만 오늘도 우리는 화려한 기포속에서 남모르게 이를 잡아내는 운동을, 화려한 기포를 벗고 벌거벗은채 이를 잡아내는 운동을  멈추지않고 있다.
156    [잡담99]上訪과 城管과 단속반 그리고 이스라엘로 가는 복건인 댓글:  조회:3538  추천:32  2009-04-14
      북경대학 교수 孫東東이 중국의 上訪者들은 적어도 99%가 정신병환자라는 언론을 펴고나서 크게 욕보고 있다. 정신병리학의 시각으로 보면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에 一理가 있다면, 말하자면 손동동교수를 포함한 중국인 13억중에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도 성립이 된다. 헌데 손교수가 13억중에서 렬세족이 집중된 상방자만 채집하여  정신병리학언론을 사회학언론식으로 산포한 일은 렬세군체만 아니라 인성의 광명성에 대한 욕구를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는  모든 사람들더러 가슴을 철렁철렁 하게 만들었다.     上訪者가 많은 것은 중국의 < 우에는 정책이 있고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낱말에서 직접적인 근원을 찾을수가 있다. 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책적으로 행정적으로 원칙적으로 공평한것들을 크게 모시고 있지만 그 실행과정에 변형이 생성되여 불공평 또는 비리가 많이 존재하면, 사실적으로 심리적으로 당한 렬세족은 상방을 하기 마련이다. 나라를 어찌 미학적으로 가꿀수만 있을가? 상방자의 호호탕탕한 대렬이 북경으로 입주하여 때, 당직자들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만 <盛世>에 손상을 준다고만 생각함은 어리석고 유치한 사회정치 체면술이다. 어느 모로 보면 상방자들의 존재야말로 공평사회를 추진하는 원동력의 하나인데, 중국은 아직  그러한 원동력을 잘 리용하는 재간이 부족한듯도 하다.       또 중국에는 城管이라는 특수현상이 말썽거리다. 경찰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행정법집행자들로서 도시의 질서와 용모를 깨끗하게 하는 등등의 정부행위에 참가한다. 헌데 곳곳에서 城管들이 폭력으로 법을 집행하여  그것을 당한 렬세족들이 극단적인 수단으로 보복행위를 감행하기도 한다. 북경 해정구에서 골목장사를 하던 하북성 농민이 城管 부대장을  찔러죽인 일도 있었듯이 시장에서 거리에서 도시재건설중의 현장에서 성관들은 상대로 하는 폭력사건은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形象공정과 그속에 풍기는 생선냄새가 성관과 그 추종자들더러 불공평성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비합리성을 지니게 함으로서 현재 중국사회에 硬傷을 많이 남겨놓고 있다. 크게 보며는 성관만이 아니라 공안국도 좋고 법원도 좋고  사법기관들도 공평성을 잃고 실직상을 많이 보이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북경인이 상해 어느 공안국 청사에서 칼부림을 하여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든가 감숙성 민근현의 어느 로인이 작탄을 만들어 법원 회의실에서  법원원장과 함께 同歸한 일들이 발생하는것이다.      한국 대전에서도 불법체류자 단속반이 공무 집행중에 인권침해를 가행하여 한국사회와 교포사회의 손가락질을 받고있다. 불법체류자는 한국사회에서 특수부류의 렬세군체임은 틀림이 없다. 민주를 표방하고 인권을 추구하는 나라에서 문명적인 질서추구를 강구하는 동네에서 거의 폭력적인 執法대오의 행실은 나를 울분하게 만든다.      울분한 나중에 이스라엘로 로무를 가기 좋아하는 중국 복건성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전하고 싶다. 중국관방은 줄곧 팔레스티나편에 서고 있고 중국인들도 약자를 동정하는 심리가 작간하는 탓인지는 몰라도 보편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많이 질책하고 있다. 하지만  복건성 사람들은 줄곧 전쟁판인 이스라엘로 로무를 가기를 좋아한다. 그 원인은 예전에 어느  테러폭팔사건중에서  복건성의 불법체류자 2명이 이스라엘에서 객사했던 일과 연관이 된다. 이스라엘 정부는 밀항자였던 복건성 농민도 물론 불법체류자이기는 하지만 역시 테러사건의 피해자이므로 상응한 경제善待를 주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는 사망자 부모님생활비와 자녀의 생활비 그리고 안해의 생활비를 합계하여 70만딸러씩 무휼금을 복건성 2명 농민의 가정에 배달하였다.  이 사건뒤에 복건성에는 이스라엘로 가는 광란이 일어났었다.      끝으로 정보불균등에 대해서도 조금 말하고싶다. 정보사회에서 정보가 폭팔을 이루기는 하지만 매 개인을 상대해서는 정보가 불균등하다. 원인은 정보원-정보전달자-정보접수자 로 이루어진 시스템에서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정보가 불완정하게 전달이 된다. 우에서 이야기한 상방도 좋고 성관도 좋고 단속반도 좋고 복건성 농민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원본사건에 100%로 부합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나를 포함한 누구도 어떤 정보를 접수하든 반응은 보일수가 있지만 결론을 급히 내림은 삼가해야한다. 잡글들을 갈겨대면서 마음이 스스로 무거워진다.  
155    [잡담98] 미국의 覇와 德 댓글:  조회:3088  추천:26  2009-04-10
       오늘에 있어서 미국이 재채기를 한번 내뱉으면 지구의 어느 구석마다 감기를 하여 콜록거리거나 코물을 짜는 감기상을 내보이게 되여있다. 미국이 세계일위의 생산국이면서도 일위의 소비국이라는 경제容量을 소유하고 있고 또 무역성과 경제일체화를  기본특징으로 하는 세계경제상황으로 하여 누구든 좋으나 싫으나 미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수가 없다. 또 경제와 과학기술을 뒤받침하는 미국의 국사능력은 세인이 다 아는 터라 그 누구든 좋으나 싫으나 미국의 指令들을 전혀 무시할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하는 미국선거가 미국인의 선거만이 아니라 거의 세계인들의 선거로도 표출되기도 한다.      미국은 나젊은 국가이다. 1차대전시에 지성학적인 우세를 타고 전생장사를 하여 자본축적을 완성하였고 2차대전을 통하여 지역강국으로부터 세계강국으로 부상하였다. 또 영국에서 발원된 實驗리성주의가  미국의 사회제도와 문화사상에 이르기까지 무성한 꽃을 피우게 하여 세인들은 흔히는 미국이 미우면서도 고운, 우러러보이면서도 괘씸하고 원한스러운 애매상을 내보인다. 미국이 좋다 또는 나쁘다고 일면설이 성행하는 나라 또는 시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흔히는 정치가들의 음모였음도 알아야한다. 미국을 객관적으로 알고 미국의 패와 덕으로 이루어진 량면성과 복잡성을 간파함은 우리에게는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미국은 패를 신봉하는 나라이다. 패란 무력으로 자신의 리익과 의지를 전달하고 집행함을 이른다. 누구든가 미국의 리익과 기분을 조금이라도 거슬으면 미국은 방망이를 휘둘러왔다. 미국방망이에 맞어 넘어간 사람은 아프고 기분이 엉망으로 된다. 그래서 미국을 원쑤로 대처하는 나라와 사람들이 여지저기 존재한다. 그 중에 미국의 패성을 과대하여 자신의 국내정치에 리용하는 정치가들도 있어  미국은 어떤 장면에서는 몰골이 흉악한 짐승으로만 등장한다. 미국의 패성문화의 근원에 대하여 과거에 우리는 레닌의 제국주의설로만 귀결하였지만 오늘날에 곰곰히 생각하면 제국주의설에 많은 虛点이 존재함을 부인하지 못한다. 인류가 어떤 경제방식(생산관계)을 취하든 필경은 서로간의 물질리익관계를 맺어야한다 . 또 어떤 국가형태를 취하든 필경은 인간의 나라임으로 하여 인간능력의 제한성과 인성의 암흑상을 철저하게 떨쳐버릴수가 없다. 하지만 세인들이 미국의 패성문화에 대한 생각은 흔히는 도덕주의와 감성주에 머물러있고 정치주의에만 머물러 있어 명석한 리해와 연구가 조금 부족한듯하다. 말 타고 돛배를 타고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아대던 과거로부터 전투기를 타고 미싸일을 쏘아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실 패를 신봉하는 패자가 많이 존재하여왔다. 패자들의 흥망성쇠는 력사교과서마다 큼직하게 써놓았고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어느 나라이든 패자로 되려는 속궁리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나라사이의 세력균등이 절대적인 평형을 이룰수가 없다는 전제하에서는, 인간의 본성에는 저의 패기는 좋지만 남의 패기는 싫어하는 욕정이 존재하는한 미국은 미국의 패성은 존재의 필연성을 보인다. 그러므로 가령 현재의 미국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새로운 미국이 나질것은 당연한 일일것이다. 미국은 또 당근이라는 策을 신봉한다. 말 잘 듣는 누구에겐 물질리익과 문화리익을 조금 나누어주기도 하고 남들의 생계에 대해서도 인성적인 베품을 하기도 한다. 그 당근이 도대체 무게가 얼마이고 가격이 얼마닌가는 시와 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당근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 대하여 의구심을 품게는 하지만 오늘날에 있어서 쏘련의 꽁무니를 따랐던 나라는 거의가 가난하고 전제적이기지만 미국의 꽁무니를 따랐던 나라는 거의가 먹고사는 흉내도 보이고 민주의 냄새를 풍김도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의 德이라는 것이 미국의 원초목적이 무엇이든가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발생하여왔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2차대전시에 미국이 지불한 재력과 물력과 인력은 엄청남은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의 참전이 없었더라면 독일과 일본 그리고 이딸리아의 참패가 적어도 몇년간은 더 지탱되였을거라는 가설과 론리는 성립이 된다. 그리고 냉전시대에 미국이 구쏘련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억제하였음도 객관적으로 보면 인류의 益이 아닐수가 없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미국이 주장하고 실행하는 세력균등과 문화다원주의는 (물론 미국의 지배주의를 전제로 하는) 빈약하고 힘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삶을 소유하는데는 德적인 표현을 이루고 있다. 패와 덕은 도덕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 미국의 국가의지와 국가행위를 평함에 있어서는 도덕적인 범주와 정치적인 범주를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내보일 필요가 있다. 또 미국의 국가의지와 국가행위를 미국인들의 개인의지와 개인행위와 분간할줄도 알아야한다. 공자는 <제가 받기를 싫어하는 것을 남들에게 주지말라 己所不欲,勿施于人)고 하였다. 미국의 패만 생각하고 덕을 무시하는 사람이든 , 미국의 덕만 생각하고 패를 무시하는 사람이든 ,미국이든 미국인이든 , 미국이든 어느 나라이든, 미국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공자의 말을 따라배울 필요가 있다. 또 패와 덕이란 언어적인 표현을 하기 위한 분리법이다. 사실적으로 미국의 패와 덕은 큰 솥에서 이미 감자국으로 전변한 조미료와 감자이므로 감자국을 다시 조미료와 감자로 분리한다는것도 사실 힘든 일이다.  
154    [잡담97] 호쟁자들의 롱구시합 댓글:  조회:4161  추천:37  2009-03-31
한생에 처음으로 롱구시합을 구경하신 할머니 한분이 내밷는 말씀이 < 기차기두, 그 공이 하나에 얼마인지, 죽기내기로 공 빼앗기를 하는 저 총각들에게 공 하나씩 나누어주면 안되나?>고 . 인성에는 好爭이 은둔한다. 好爭이 스포츠경기에서도 곧잘 발로되고 전쟁마당에서는 井噴된다. 그래서 나도 어느 일망무제한 사막에서 뇌까린 말이 있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여기에 불러 땡크전 하면 안되겠나? 전쟁손실도 피면하고 전쟁욕도 만족시키고 사막소유인은 땅세를 받을수 있으니> 하고 얼토당치않은. 인간의 본초가 선인지 악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선과 악의 범주를 초월하여서도 인성의 호쟁을 엿볼수 있다는 자신심이 있다. 인간의 호쟁성이 인류사회발전변화의 원인중의 하나라는 말이 이제는 경쟁이 현대자본주의발전의 전제조건이라는 말로 전변하여 있는듯도 하지만 나는 어쩐지 감정적으로는 지나친 호쟁을 싫어한다. 특히는 인류의 숭고함을 표현하는 관용과 충돌을 이루는 호쟁말이다. 헌데 지나친 호쟁이란 놈은 시시각각 도사리고 있어 사는게 좀 불편스럽다. 요즘에 조선에서 위성발사준비중이라 미국과 일본이 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주공간은 인류의 공용지라고는 하지만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딲지가 붙은 조선이 위성발사를 하면 앞으로 어떻게 할가고 여러가지 우려심을 내보인다. 그 우려심들이 일본과 미국의 립장으로 볼 때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면에 조선이 저의 힘으로 저의 돈으로 저의 재간으로 위성발사이든 태공급 유도탄이든 실험을 하는데 론리상으로는 마구잡이로 간섭해야 할 일이 아니다. <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는 자유와 민주의 리념과는 리론적인 모순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리해를 진행하기 어려운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칸트의 이률배반률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근세로부터 반도는 호쟁자들의 교력장으로 등장하여왔다.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짜리러시아가 반도에서 서로 용을 쓰다가 그 다음에는 머나먼 미국까지 끼여들어서 언젠가는 공짜 땡크전장을 제공한적도 있으니 말이다. 호쟁자들이 벌리는 롱구시합은 할머니께서 구경하신 롱구시합과는 조금 구별이 된다. 스포츠경기에 사용되는 롱구공은 돈만 조금 내면 호쟁 총각들에게 하나씩 선물하기가 별로 어렵지않겠지만 호쟁자들의 롱구시합은 진정한 목적은 하나밖에 없는 공이기 때문이다. 내가 엉터리친 땡크전에 이용될만한 사막도 좋고 호쟁자들의 롱구시합에 이용되는 롱구장도 좋고 그런 장소를 내주기싫으면 자강이란 엄청 중요하다. 한국의 력사교과서는 초등학교판 중학교판 고등학교판 대학교판이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건대 어느 판본이든 번져보면 자강이 제일 큰 글자중의 하나일것이다.      
153    [잡담96] 문화학자의 언론으로부터 댓글:  조회:4038  추천:42  2009-03-26
     근간에 아주 읽어보고싶은 책이 있다. 중국근대의 문화거인으로서 중서문명에 대하여 관통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辜鸿铭의 책이다. 辜鸿铭은 말레시아에서 태여난 화교로서 영국류학과 독일류학을 경력하면서 영어와 프랑스어、독일어、라틴어、그리스어、말레시아어 등 9개의 언어와 문자에 능통하게 되였으며 13개의 박사학위를 받았고 뒤에는 중국의 고대경전에도 뛰여나게 능란했으며<론어>를 외국어로 번역하여 처음으로 중국의 고대경전을  서양세계에 알린 학자이다.그가 독일 류학시에 펴낸 책들이 이미 독일 어느 대학의 필독서로 지명되여 있어서 독일에 류학간 蔡元培와 林语堂도 크게 감탄했다는 기록도 있어 그야말로 뜨르르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중국북경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단발이 시체화되였던 시기에도 청나라 머리태를 끝까지 고집하여 학생들에게 <나는 보이는 머리태가 있지만 너들은 마음속에 보이지않는 머리태를 지니고 있다>는 언론도 하고, 강의 중 제일 재미있고 관건적인 순간에는 뚝 말씀을 끊고 에험 이젠 관건 대목인데 너들이 선생님을 식당으로 한번 모셔야 배워줄테다 고 렵기적이고 우습깡스러운 이야기도 남긴 분이다. 최초에는 서양에서 학문을 시작하고 나중에는 중국에서 학문을 하고 가르치신 분이 종극에는 그 시기의 중국문화의 대표적인 보수파학자로 등장했고 서양문명을 비판하고 중국문명을 찬미했다는 사실, 나는 이 문화거장의 책을 참으로 읽어보고싶었다. 헌데 책 구하기는 진짜 힘들고 잡지책에서나     辜鸿铭의 에피소드를 소개한 쪼박 글을 몇편 읽어본 정도이다. 그래서 궁금증이나 달래려고 백과사전을 검색하면서 辜鸿铭에 적힌 아래의 글들을 재미있게 읽어본다. 중화문명은 深沉、博大 纯朴하고 또 灵敏하다 중국인과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을 비교할진때 미국인은 博大、纯朴하지만 深沉부족이고 영국인은 深沉、纯朴하지만 博大부족이고 독일인은 博大、深沉하지만 纯朴부족이고 프랑스인은 독일인들의 타고난 深沉이 없고 미국인들의 博大와 영국인들의 纯朴도 지니지 못했지만 이상 3개국인들이 지니지 못한 灵敏을 지니고 있다. 매개의 문화單元에 판단적인 언어표현을 주입한다는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어떤 언어도 필경은 표현의 제한성을 받는것은 물론이고, 부동한 문화에 존재하는 부동한 氣質성을 한마디로 개괄한다는것은 일반인으로서 감히 엄두를 내지못할 일이다.( <국화와 칼>을 쓴 미국의 문화대학자도 형상적인 언어로 일본문화를 표현하였을 뿐이다). 헌데 辜鸿铭이 감히 이런 언론을 펴낸다는것은 리해가 아니되면서도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일로 생각된다. 深沉、博大 纯朴 灵敏은 중국어에서는 형상적인 언어이지만 서양에서는 그 구체적인 어원을 물론하고 종극에는 형이상학적인 용어일것이다. 또 우리 조선말로는 深沉、博大 纯朴 灵敏과 勇敢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가? 그리고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문화유인자에는 어떤 용어가 적합할가? 누군가 쉬운 말로 나의 의문에대답을 해주었으면 고맙겠다. 
152    [잡담95] 내가 생각해보는 로신선생 댓글:  조회:3516  추천:32  2009-03-23
세월이 흘러 <성서>로 분식되던 로신선생의 글들이 서점가에서 많은 젊은 친구들의 냉대를 받고 있는듯하다. 언제는 중학교 교과서로부터 대학교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문학연구소로부터 학술언론매체에 이르기 까지 로신선생이 드팀없는 연구대상으로 빼곡하게 지목되였었지만 요새는 그 현상들이 퍼그나 淡化 되였고 대신 수많은 박래품을 비롯한 代替품들이 서점가를 학술언론지를 들락날락한다. 중국에 있어서는 로신선생의 수많은 납함들은 <하느님이 죽었다>고 웨치어 기독교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니체의 글처럼 세기적인 반성이고 비판이고 웨침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다. 비판성이 풍부하고 필봉이 날카롭고 문체는 야유적이면서도 심미성도 아주 훌륭했던 탓으로 중국근대문학사와 문화사에서 로신선생은 지나갈수 없는 풍경이다. 헌데 조금 불행한것은 로신선생의 작품과 로신선생의 인문사상이 로신이 서거한 뒤의 사회정치학에 지나치게 리용당한 점이다. 모택동이 로신선생에게 수두룩한 <위대한 家>를 선물했고 전 사회가 로신을 계급투쟁설의 <신령>으로 모셨던 력사사실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로신선생과 그의 글들을 正讀하는데 반면적인 영향을 많이 남기고 있다. 로신선생의 정신세계는 철저한 투쟁성과 비타협성으로 분출하기는 하였지만 그의 투쟁대상과 비타협대상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패한 북양정부라든가 국민정부라든가 또는 락오된 중국의 문화전통이 로신선생의 筆伐대상인듯하지만 사실은 력사적인 궤도에서 관찰되고 반성되고 비판되는 중국식관료주의가 로신선생의 진정한 敵이였음을 나날이 느끼게 된다. 로신선생이 바로 로신선생이였고 (鲁迅即鲁迅)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는 아직까지도 위대한 로신선생과 감히 신장을 비길만한 문화인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는 그 원인은 로신선생의 철저한 반관료주의 사상에 기인했다고 생각된다. 일개 문학가로서 력사적인 시각으로 문화적인 시각으로 현실사회를 해부하고 비판했다는 점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도 보기드문 擧事가 아닐수가 없다. 로신선생의 진정한 정신세계와 인문리상을 알려면 로신선생의 생활경력과  생활시대를 알아야 하며 또 로신문집을 리용할 생각을 조금 버리고 우선 그속에 내재하는 진정한 내용을 터득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 존재주의자로서 로신>이라는 글을 읽고 평소의 생각들을 모집해보니 나는 로신선생에게 <존재주의철학자로서 반관료주의가 무정부주의로 표현이 된> 문학가라고 家를 선물하고싶다. 로신선생의 꿈은  중국민중을 중국력사라는 관성적이고 관료적인 궤적에서 해방하여 참된 삶을 영위하게 하는것이였다. 로신선생은 방법론적으로 혁명성이 전혀 없은것은 아니지만  그의 사상체계는 본질적으로  보면 초계급적이고 초민족적인 반관료사상이 핵이였다고 생각해본다.( 민간에는 로신선생이 건국뒤에도 생전이였더라면 언녕 총살당했을거라는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一說이 있다)  
151    [잡담92] 중국의 내수_국내소비력 댓글:  조회:3685  추천:27  2009-03-19
[잡담92]공상업경제가 활발하지 못했던 과거,  <한족들은 돈이 있으면  낡은 신발속에 감춘다오> 하는 말들을 들은적이 있다. 돈을 은행에 저금하지않고 自行보존한다는 말로서 한족들이 돈벌기에는 뛰여났지만 돈 소비에는 깍쟁이라는  내용을 어느 정도로 내포한 말이다. 미국처럼 채무소비를 하기는커녕 돈 만 있으면 꽁꽁 챙겨두는 한족들-중국사람들의  저축의식과 저축능력은 세인들의 흠모심을 불러일으미기도 하였고 돈 씀씀이가 헤픈 한국인들더러 중국사람을 따라배우라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헌데 모든것은 하나가 둘로 나뉘여진다는 묘한 명구가 있다. 긍융위기 뒤에 중국은 수출산업이 엄청 수축되면서 내수로 경제발전을 촉구하는 책을 취하고 있다. 애국권을 발행하라는 제언도 있고 여행권을 발급하는 도시도 있듯이 국내소비력을 터치느라고, 국인들의 궤춤을 뒤지려고 벼라별 지랄발광을 다 하고있다. 중국의 국민경제도 소비형 경제여야 한다고 외국인들이 떠들고 중앙정부는 그래서 머리가 더 아프고 다음에는 지방관료들이 잘 보이느라고 한목 보느라고 되지도않을 쇼를 벌린다. 하지만 애국권도 여행권도 공짜는 아닌지라 깍쟁이 중국사람들은 무시해버린다. 몇년전부터 있은 백화점들의 <백원 사면 50원 반환>하는 활동에서 많이 당하던 경험들이 용을 친다. 사실은 금융위기전보다도 개인의 경제효익이 떨어졌으므로 소비를 줄이느라고 만백성은 많이는 끙끙 앓음소리만 낼 분이다. 중국사람들의 저축고에 조금 잉여는 있다. 헌데 그 잉여가 13억 인구에게 평균으로 나뉘여진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은 엄청 많고 없는 사람은 전혀 없다. 중국인들의 잉여구조가 어떠한가를 연구하는 학자도 기구도 있겠지만 중국사람은 별로 이여구조에 대해  말이 없는데 난데없는 외국인들이 중국은 독점항업의 리윤을 만백성에게 조금 반환하고 대형국유기업도 벌어들인 돈을 국민들에게 조그 빈환하여야만 진정한 소비경제로 전환된다고 지적을 한다. 근 십년간, 국민경제는 평균 10%의 성장을 보였고 국가수입은 20%의 성장을 보였지만 만백성들의 수입은 그것과는 큰 차지가 있는것이 바로 중국의 경제분배실정이다.  또 관료사회에서는 만백성들이 일상생활 비용을 내놓고도 보이지않는 비용도 엄청나게 지불해야 하니 수탈도  당해야 하니 ( 례를 들면 애를 좋은 학교에 보내느라, 령도자에게 잘 보이느라 설 세배도 하느라 골목시장에서 야채를 조금 팔아도 파출소에서 치안관리비를 내라 하니 ) 현재  중국의 돈을 쓰고싶은 사람들의 궤춤이 비여있는가 아니면  도대체 어느정도로 인민페가 곰펭이를 끼고 있는가 함은 경제학자들과 정부가 심사숙고할 문제이다. 그리고 나서 내수인지 국내소비력인지 하는 놈더러 높이 뛰기를 하라고  호소했으면 좋겠다.
150    [잡담91] 중국의 농민-자작농 댓글:  조회:4026  추천:23  2009-03-18
계급투쟁사를 주맥으로 하는 력사책은 중국의 중세기를 다룸에 있어서 지주계급과 소작농계급의 모순을 아주 중요시하고, 또 민족모순도 웬간하면 계급투쟁설에 맏겨버리는 , 말하자면 지주계급 상층인물들의 탐욕과 야망에서 민족모순의 원인을 캐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폭팔되는 농민봉기는 지주계급의 토지겸병에 따르는 계급모순의 격화에 因한다는 , 농경족과 유목족의 대결도 지주계급과 유목부족 집정자들의 부패성 때문에 여차여차하였다는 력사책을 암기하느라고 나도 꽤나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다.           누구나 복잡한 력사를 간단하게 표현하려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듯도 하다 특별히 정치만을 위해 복무하는 력사책은 복잡한 력사를 어느 리론의 틀에 합격시키느라고, 현세의 리익에 일격화시키느라고 소위 硬傷을 많이 소유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다행이 되도록이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력사학자들도 있어 력사학의 존재가 돋보인다. 몇년전 중국의 어느 력사학자가 중국중세기의 력사에 지주계급과 소작농들의 계급투쟁이 존재하지않은것은 아니지만, 황하이북은 다년간 자작농들이 소작농보다 많았다는 통계수자를 내보이면서, 또 력대의 중국 북방의 농민봉기 대부분은 자작농들이 관청의 수탈에 반항한 결과라고 주장한 글을 읽은적이 있다. 주류이델레오기와는 다르게 중국 중세기에 있어서 황하이북의 지주계급의 토지겸병은 험할 정도는 아니였고, 사회모순의 폭팔점은 관청이 자작농들에게 가져다 준 세금과 부역 등 가혹한 수탈이였다고 지적하여 글을 읽으면서 느낌이 퍼그나 새로웠다. 등소평할아버지의 도거리도 사실은 토지개혁이다. 집단농경으로부터 자작농경으로 전환이 생산력 발전에 적합한 농업책개혁이라는 말은 조금 어리벙벙한 얘기이고 해석이다. 어느 모로 보면 인성이 지닌 私에 알맞는 로동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농업책이라 평함이 더 합리한 해석으로 생각된다. 자작농경은 로동열정을 촉구하는데 좋은 수단이기는 하지만, 농업경제를 규모화함에 있어서는 대적이 아닐수가 없다. 테레비에서 중경에 적을 둔 어느 농민 근로자가 식구 네명이 농경지가 한畝밖에 없으므로 살기 위해서는 도시로 진출할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였다. 畝의 량에 대해서는 중경의 수확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네명이 한무의 수확으로는 전혀 살어갈수 없다는 결론을 주는 장면이였다. 조금 극단적인 실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로 중국 자작농들의 경제생존 실정을 내보인다고 생각된다. 중국의 농민들은 과거나 건국후에나 관청의 강압적인 경제책의 첫번째 대상이였다. 듣기 나쁜 말로는 수탈이고 듣기 좋은 말은 공량이고 농업세고 물세고 등이였다. 다행이, 현재는 국력의 상승과 산업화에 따라 ,중국의 국가 력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농민들- 자작농들이 거의 영원에 가까운 장기간의 면세책을 향유하게 된듯이 사회변화가 있다 생각되면서 스스로 싱글벙글해진다. (옛날에도 가끔 休养生息을 취한 황제가 있기는 하였지만 농민들이 조금 살어갈만한 정도이면 경제복구가 되면 관청의 수탈은 더욱 가혹해졌던 사실이다.)  
149    철학자인 九葉파시인 鄭敏(역고) 댓글:  조회:2860  추천:61  2009-03-11
잡담93               邱景華 九葉파는 40년대 항전시에 서남련합대학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중국신시> 잡지에 현대파 시작을 발표하던 시인군으로서 대표시인들인 辛笛、穆旦、郑敏、杜运燮、陈敬容、杭约赫、唐祈、唐湜、袁可嘉 등 9명의 작품집이 1981년에 <구엽집>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됨으로 하여 구엽파로 이름지어진다 구엽파는 중국의 당대문학사에서 홀시할수없는 존재이며 그 작품집 <구엽집>은 경전시집이라고도 인정되기도 한다.      구엽파 시인중에 현재 홀로 생전인 정민 녀류시인은 1920생 福建성 闽侯태생으로서 1943年 西南联大 哲学系를 졸업하고   1948년<시집:1942—1947>을 출간하였고 1952年 미국 布朗大学研究院의 영국문학석를 졸업, 귀국뒤 中国社会科学院文学研 究所와 北京师范大学 교수로 재직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정민은 서남련대 학창시절에 중국 유명교수들인 冯友兰의 인생철학, 汤用彤의 魏晋玄学 郑昕의 康德철학 冯文潜의 서양철학사 冯至의 괴테 闻一多의 초사 등을 강의받았고 특별히 冯至와 里尔克의 영향을 받아 철학사상을 기반으로 인문정서를 經緯로 <지혜의 시>를 창작했으며 만년에는 실존주의 철학가 海德格尔의  명언인 < 시와 철학은 이웃이다>를 고취하였다.     항전시기 정민은 철학명상과 현실적인 민족재난사이의 모순속에서 허덕이면서 철학적인 지혜야말로 시인더러 고난중에서 생존격정을 불러일으키는 법보라고 인정하였다. 전통적으로 정서와 상상으로 시문을 엮는 중국시풍속에서 철학적인 명상을 누린 정민은 독특한 존재가 아닐수가 없었다.철학을 학문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정민은 < 철학은 민족과 인류의 발걸음, 그리고 생존을 관심하게 한다>고 말했으며 철학적인 사유와 방법으로 민족困境과 인류곤경을 해명하고 탈출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건국초기 미국류학을 마치고 귀국한 정민은 리상주의자였다. 하지만 58년도 우파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거쳐 정민은 리상주의를 의심하게 되였으며 후현대주의인 解構주의를 리해하면서부터 고전리상주든 현대리상주의이든 모두가 종극에는 피비린 력사를 만들어내며 < 인류는 다원문화의 공생중에서 寬容적인 합리적인 경쟁을 해야만이 ,리상세계에로의 최대접근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20세기 80-90년대, 중국의 수많은 학자들이 解構주의에 대하여 오독을 진행하고 解構주의가 전통문화를 반대하는 신식무기로 등장할 무렵,정민이 혜안적인 지혜로 해구주의란 2차대전뒤 냉전시대의 권위주의와 二元주의에 대한 명상이고 비판이라는 판단을 얻은것은 남다른 지혜와 발견이 아닐수가 없었다. 정민이 만년에 < 결구-해구의 시각: 언어 문화 평론> < 시와 철학은 이웃이다> 는 저작을 내놓아  중국 당대의 사회문화에 존재하는 고질병에 대하여 철학적인 진단을 진행하였다. 정민의 경력과 철학적인 사색으로부터 보면, 하나의 민족과 그리고 전통문화의 부활은 철학적인 사고와 실천을 떠날수 없음을 유력하게 설명하여 주고 있다.  
148    여추우선생과 秋雨含淚 댓글:  조회:3004  추천:29  2009-03-09
 [잡담 92]               여추우선생은 중국의 문화명인으로 잡힌다. 20세기 90년대에 상해戱劇학원의 원장직을 사직하고 문화려행을 시작하면서 <문화苦旅>  <山居筆記> 라는 책을 내놓아 문화민중들의 각광을 받았었다. 그 뒤에는 문화평론자 자격으로 홍콩의 봉황첼레비죤방송국 문화순례에 참가하여 <千年一嘆>이라는  책을 내놓았고 중국텔레비방송의 백가강단에 등단하여 꽤나 인기를 모으는 문화인으로 되였다.      헌데 余傑이라는 사람이 인터넷에서 문화대혁명시 여추우선생이 상해시위 선전부의 어용붓대로서 4인방의 여론기구였던 <학습과 비판>에 많은 비판문장을 발표한 과거를 발로시키고 여추위선생더러 공개참회를 하라고 요구하면서부터 , 또 여추우선생이 광채롭지못한 과거를 그거 뭐 하는식으로 얼룽땅둥  넘겨보내려는 心機를 내보이면서부터 여추우선생의 인기가 많이 하락하게 되였다. 사람은 완정된 사람이 없고 옥은 티없는 옥이 없다. 또 인품과 문품을 구별할수도 있는 일이므로 , 나는 여추우선생의 비교적 충실한 독자로 되여있었다. 특히 여추우선생은 중국이 滿淸에 대한 객관적인 력사태도를 지니지못했던 과거를 청산하는데 , 국가와 민족개념에 대한 재정리를 하는데 좋은 역활을 하였다고 생각하여왔다. 몇년전부터 있은 만청연구붐과 <강서건륭성세>붐도 어떻게 보면 여추우선생의 감성이 짙은 <문화苦旅>에서부터 시작되였을지 모른다고 판단해왔고 , 그래서 드문드문 백가강단에서 여추위선생의 강의를 시청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이 교수님이 조금은 쇼적인 면도 지니고 있고 <허튼소리>도 잘 하는구나고 생각되였다. 90년대 중반까지도 사실 중국에는 이색적인 서적이 많이 출판되지는 못했었다. 지금도 조금 여전하기는 하지만 중국의 인테리들은 독립적인 생각을 하고 독립적인 생각을 내놓기가 많이 힘들다. 소위 주류이델레오기와 빗나가면 재앙을 받을가 공포심에 휩싸인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보이지않는 문자옥이 존재하는건가? 스스로의 대답은 힘든 일이다. 현재 퇴직을 하는 인문과의 어떤 교수들은 < 크게는 나라일을 거론하지 말고 작게는 학교일도 관심하지 말라>는 충고를 서로 선사하고 있다니 중국인테리들의 생존풍기와 학문풍기는 고심해볼만한 일이다. 헌데 여추우선생은 민고를 관심하고 나라를 관심하는것이 그의 고질로 되였는지 작년 문천지진시에 큰 봉변을 당했다.  새로 내놓는 책 원고료를 지진참사에 기부하기는 했지만 지진난민들의 공용시설건설에서 두부공정을 한 관료를 조사하고 징벌해달라는 요구와 상관하여 < 너무 그렇게 떠들지 말라, 외국인들이 그것을 리용하여 중국을 헏뜯는다>는 내용을 담은 “含泪劝告灾民”을 써놓아 네티즌들부터 秋雨含泪는 악어의 눈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산채판사전에 수록되였다. 말하자면 秋雨含泪는 帮闲文人들의 太平粉饰을 비하하는 인기적인 신용어로 낱말로 되여있다. 관료사회에서 帮闲文人의 존재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여추우선생의 <실수?>가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다.
147    윤동주 詩作에서 표현되는 종교체험(신앙체험) 댓글:  조회:3736  추천:60  2009-03-03
  하느님이란 <신약>에서 나오는 하느님과 누구에게 冥冥중에서 환상되거나 감지되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나뉘어진다. 두번째 하느님은 종족과 언어와 시대에 따라 부동한 명칭으로 표현이 될수가 있다. 흔히 말하는 샤머니즘의 神靈도 좋고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알라도 좋고  자본주의기독교(新敎)에서의 하느님도 좋고 인도불교가 아닌 동방불교에서 나오는 부처님도 보살도 모두가 상술한 하느님 표현중의 事例라고  생각된다. 객관세계에 하느님이 實存하는가 虛存하는가 하는 쟁론과는 거의 상관이 없이, 아직도 많은 인간의 심목중에는 하느님이 존재함은 사실이다. 비종교인중에 종교인들의 신앙을 거짓으로 보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종교체험이 전혀 없거나 적은 비종교인이 종교인들의 경건한 신앙심을 리해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종교체험은 고난체험과 苦難체험중에서의 명상체험으로 실천이 된다. 때문에 자연조건(기후 지형과 련관되는 자연생존조건)이 빈약할수록, 사회조건이 험악할수록 그속에 進駐한 종족과 개인의 종요체험은 집중표현으로 남아있다. 중국의 중학교력사교과서에서 말하던  戰亂시대에 불교가 여차여차하게 흥기되였다는 一理가 바로 그것이다.    반도사에서 근대사는 고난의 력사가 아닐수가 없다. 반도에 먼 옛날에는 전혀 고난이 없은것은 아니지만, 력사란 멀리 가버릴수록 흔적과 기록만 남게 된다는 時間效應으로 하여 우리의 심목중에 짜릿하게 남은 상처중에서 근대의 상처가 유별나게 표현이 된다. 이런 전제조건하에서 근대에 이르러 전래된 종교와 재래의 종교와 새로운 종교가 반도에 흥기된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볼수가 있다. 그러한 고난의 시대를 살았고, 시인의 민감된 신경을 지니였으며 유력한 언어문자 표현력을 소유한 윤동주시인과 그 詩作중에 은밀하게 또는 유표하게 드러나는 종교체험은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윤동주 시작중의  <서시> ,<십자가>, < 또 다른 고향>만 읽어보아도 우리는 그속에 담긴 종교체험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 우러르는 하늘과 갈망하는 십자가, 그것은 고난중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며 하늘에 바라는 갈망이 아닐수가 없다. 고금중외에 종교체험으로 문학의 정수를 만든 작가와 작품이 수두룩하다. 우리 문학사중에서 종교체험이 다분하였고 재기있게 표현한 문학인중에서 윤동주시인이 으뜸이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146    [잡담90) 중국 조선족은 不歸의 길을 다시 걷는가 댓글:  조회:4226  추천:39  2009-03-02
       인간사에 있어서 인간의 공간이동이 불귀의 길로 되는 사례가 많다. 개인적인 사항으로 하여 개체가 불귀의 길을 걷는가 하면 사회사항으로 하여 群體가 불귀의 길을 걷는다.    19세기 말엽으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거의 절반에 가깝게 불귀의 삶을 지내였다. 한 고장에 머물러 살면서 3-4대를 넘기면 흔히 그 동네를 고향이라 한다. 언어로도 그렇게 표현하고 심중으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나이와 비슷한 동북에 사는 한족친구들과  너 고향이 어딘가 물으면 거의  백프로가 동북 어디 어디라고 한다. 적관을 거의 목숨처럼 여기는 중국인들도 관내의 산동이라든가 하북은 까맣게 잊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동북에 이주하기전의 고향은 하고 다시 물으면 절반 정도가 관내 어디어디라고 대답하고 할아버지 고향을 가보았나는 물음에 그들의 대답이 별로 시원치가 않아 내가 나는 너 할아버지 고향에 가보았어 하고 한마디 하면서 흠모에 가까운 눈길을 받은적이 몇번 있었다. 중국에는 <어느 고장의 황토가 사람을 묻어주지 않는가 > 하는 말이 있고 우리 말에는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다. 농경사회의 향수를 달래는 말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이런 말들이 거의 실존의미를 잃을 정도로 인구이동이 빈번해지고 규모화되여있다. 중국은 산업화과정에서 수많은 농사군들이 타향으로 도시로 불귀의 길을 메우고 있다.  금융위기로 하여 2000만에 이르는 농민근로자들이 시골고향에로의 귀로에 오르기는 했지만 잠시적인 현상일뿐이다. 농민근로자들에 대한 기능련마가 잘 실행이 되고 경제가 어느 정도 복구가 되면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거창한 물결속에서 우리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의 농민근로자들은 물을 거스르는 수영을 할 재간을 날마다 잃을것이며 또 물을 거스르는 수영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질것이다. 한국이라든가 연해지역과 빠이빠이를 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일을 하는것도 바람직한 일로 보이는듯도 하다.  그래서 농경지를 되찾자는 운동 비슷한 일들을 인터넷에서 읽어보면서 <조사연구가 없이는 발언권이 없다>는 모택동할아버지의 명구를 뒤전에 하고 나름의 생각을 굴려본다. 현존 농업생산력과 농산품시장가격을 전제로 할 때에는 고향의 농업은 반듯이 規模경제를 기반을 갖추어야한다. 금방 도거리를 할 때의 기억인데 논과 밭을 나누어서 식구 몇이서 두헥타르가 힘들었다. 현재 인구가 감소되여서 상황이 변하기는 하였겠지만 연변은 산간구릉지대라 인구에 비해서는 경작지가 풍족한 동네는 아니다. 물론 하남성 강소성 산동성 등 인구大省보다는 형편이 조금 좋을수도 있겠지만 기후상황과 수확고를 변수로 하여 생각한다면 연변의 경작지상황과 인구상황이 현재 규모경제를 할만한 조건을 갖추었을가 하는 우려심을 버리지못한다. 중국의 시책은 전중국을 상대로 하기에 국부지역의 특수성을 다 돌볼수가 없는 특점을 지니고있다. 현존 시책이 연변에 적합한가? 중국 조선족의 농업규모경제에 적합한가는 매체의 여론에 의해서 정해지는것은 아니다. 우리의 정부와 전문가들이 열심히 조사를 하고 연구를 하고 대책을 세움을 기다리고 있을뿐이다. 대책이 있고 실행이 있으면, 그 다음에야 중국조선족이 걷는 길이 불귀의 길인가고 자문을 해볼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145    잡담89 문화대혁명중의 맹장과 일제시기 친일자 댓글:  조회:3830  추천:24  2009-03-02
      문화대혁명시 우파 양친을 잃고 천신만고를 지낸 사람의 하소연에 비슷한 과거사를 듣게 되였다. 나중에 그는 인과보응인지는 몰라도 우리 단위에서 문화대혁명시 행악질을 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문화대혁명이 끝나서 중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하였다. 중국전통문화에서 민간사상의 빛발점의 하나로 보이는 인과보응은 용케도 오늘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새빨간 미신임을 알고 있지만은 민간인들이 아직도 인과보응를 즐기고 바라는 심리가 작간하는 탓일줄도 모른다. 사실 문화대혁명시 맹장들의 어떤 인생종극은 인과보응이 효력을 보인 결과가 아니라 , 수많은 맹장들이 자신들의 사회정치지위의 하락에 잇따르는 경제력 하락과, 새사회에 대한 불만과 울분 또는 마음속의 자책과 고충에 시달리여 중병에 걸려 죽었을지 모른다는 설이 더욱 설복력이 있지만은 중국민간은 그 공훈메달을 인과보응설에 달아주기를 즐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중국에서는 소위 림표 4인방의 잔여세력을 없애버리는 운동을 전개하지않은것은 아니다. 이 소멸운동의 규모와 효력에 대하여 아직은 정론이 없지만, 사실상으로 부추베기에 지나지않았다. 그처럼 싱싱하던 부추를 베어버리기는 하였지만 부추뿌리—붕당문화는 소멸하지 못했으므로 그 잔여가 오늘까지도 남아있음은 사실이다. 나는 사회변혁시의 부추베기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싶다. 부추는 필경 땅밑에 뿌리를 둔 식물로서 부추를 완전해제하려면 땅을 갈아번지고 부추뿌리를 건져내야 한다. 헌데 그렇게 하려면 필경은 땅을 갈아번져야 하므로 채마전과 사회부추밭은 다른 식물들도 엉망이 되도록 재앙을 받을것이다. 말하자면 사회에 존재하는 어떤 부추이든지 전문적인 부추밭에 사는 경우가 적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혈연적으로 문화적으로는 다른 식물 또는 야채들과 같이 생태를 이루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연고로 어떤 운동이나 변혁을 물론하고 부추베기는 필경은 부추베기로 표현이 되였고 부추뿌리소멸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대혁명은 소위 전민운동이였으므로 문화대혁명이 끝나서 맹장들에 대한 철저한 해결책을 하였다면 중국인구중의 많은 수자가 총살을 당했거나 옥살이를 해야 했을것이다. 특히 확대화가 문화특징으로 되여있는 중국에서는  그 적의 많은 중앙급간부들마저도 그런 봉면을 면치못했을것이다. 또 소위 맹장이란 인간이 평판척도를 내놓는 이상, 맹장이 아니였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도 맹장모자가 차려졌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중국인들은 문화대혁명시에 당하기만 했다는 아우성과  흉내를 내였지만 파금선생처럼 문화적으로 인성적으로 문화대혁명을 생각한 사람은 참으로 적다. 문화대혁명중에 조금이라도 적극성을 보인 사람을 죄다 죄인으로 내몰았다면 그 시대를 살아온 성인들은 거의가 죄인이라는 나름의 판단을 하여본다. 하지만 사회란 지속성을 지니게 되였음로 사실상 문화대혁명중에서 죄행을 감행한 사람들도 많이 남아있게 되였고 둔갑술을 사용한 이들도 있고 인과보응이 아닌 飞黄腾达을 이룬 사람도 적지않았다. 일제가 망하고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친일자는 거의 죄악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는듯도 하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조상이 독립군이라는 직접증거를 내놓을수 있는 사람은 무상영광이고 또 어떤 실리추구에 리용될수도 있는듯도 하다. 하지만 일제시기의 친일에 대하여 리성적인 생각을 굴리는 사람은 적다. 망국과 친일의 죄악을 조선왕조의 무능과  개별적인 력사임물에게만 맡겨버림은 어딘가 비극적인 일이다. 친일이란 술어를 산수처럼 확실하게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감성적인 현대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일본식민지당국에 세금을 낸 일도 친일로 판정이 될수가 있다. 이 판정에 일리가 있다면 모든 조선반도인들이 죄다 친일분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제점령시에 목숨으로 민족의 존엄과 생존을 지켜온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럭저럭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였음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런 부류의 中性자들을 친일자로 내몰지않은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만일 중성자들마저 친일자로 내몰고 총살했더라면 우리의 사람 종자는 몇이나 남았을가? 미군당국이 여차여하게 친일자를 반공에 리용했다는 점은 도리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인간사회 존재방식이 지속성을 떠날수가 없으므로 하여, 많은 중성자는 물론 친일자들이  권세가로도 된 력사를 만들어놓은듯도 하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사회변혁시의 부추베기는 부추뿌리캐기로 전변한 일도 있고 흐지부지한 전변을 보인 경우도 많다. 혁명성으로 유명한 프랑스인들도 2차대전뒤에 독일군인들과 살았던 녀인들을 까까머리를 하여 거리돌림이나 시켰고 贝当(1차대전시 프랑스민족영웅, 1940년 2차대전시에 독일에 투항한 프랑스총리)과 같은 개별인물들이 재판을 당했을뿐 친독자들에게 확대화책을 실행하지않았다. 독일의 많은 나치분자들도 2차대전뒤에 정부요직을 누린것이 사실이다. 유태인들도 친나치스자들을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하였다. 중국에서는 8년항일이 끝나고 백여만 괴뢰군들이 국민정부와 공산당무장이 서로 쟁취하는 대상으로 되기도 했다. 요즘 중국에서는 대한간 왕정위의 남경괴뢰정부건립의 진정한 심리동기와 진정한 목적에 대해서 재정리하는 사람도 있다. 력사사건들과 인물들이 현세리익과 정치세력분쟁에 리용되는 일은 중외에 날마다 발생되는 이야기지만 왕정위연구와도 같은 일은 다행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림표 4인방이라든가 리완용이라든가 리승만이라든가 하는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시각점을 보일 시대가 도래한듯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부추뿌리캐기란 위대한 문화반성이고 력사반성이여야지 절때 새로운 부추베기운동의 출발점으로 되여서는 아니된다.    
144    [잡담88] 민주의 힘 댓글:  조회:3659  추천:26  2009-02-19
  국민소득이 얼마정도 되면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욕망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현재 중국의 국민소득이 민주주의 표준소득과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중국은 아주 확연하게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며 서서히 민주주의 입구를 향하여 출발하고 있다는 생각이고 욕심이다. 민주주의란 입에 발린 사탕이 아니다. 또 의회제요 多黨제요 선거제도요 하는 표현방식만이 아니며 단순한 산수계산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전제하에서 신령도 말살하지못하는 인간과 인간사회의 畸形적인 난점을 극복하려는 이델레오기이며 인간사회제도이며 또 사회실천이며 생활방식이며 사유방식이다.. 오늘날에 있어서 진행되는 태공탐색이 인류지혜의 산물이라 한다면 민주주의도 인류지혜의 또 하나의 걸작이 아닐수가 없다. 근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는 수많은 고초를 겪기는 하였지만 결국은 인류사회를 이끄는 주류의식으로 되여있으며 인류의 위하여 造福萬代의 지위를 이루고 있다. 물론 민주주의가 만능은 아니지만, 실행중에 리론과 현실의 격차를 보이기는 하지만 그 원인의 대부분은 민주주의 본신보다도 민주집행과정의 오류에서 찾아볼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는 아직은 인류에게 민주주의보다 더욱 리상적인 주의가 존재하지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중국에 있어서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아직도 민주주의라 하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반동으로 내몰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인간마다 사람답게 어울려 살아갈수 있는 길이라는 전제앞에서는 어떤 기득권도 어떤 정치주장도 또 어떤 정치리용과 정치포장도 창백하여진다. 중국이 민주주의로 진입하려면 국가자본주의가 아닌 시민사회의 진전이 필요하다. 우리는 바로 국가자본주의로부터 시민자본주의에로의 전환중에 있다. 민주의 득을 얼마 보지 못한 족속으로서 많은 중국인들은 민주에 의심을 품고있다. 하지만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2차대전시 일제의 태평양함대 사령관이였던 야마모도(미국주재 일본대사관 무관을 지냈고 미국사회와 경제를 비교적 아는 일본군인)가 일본해병들이 미국과 미국인을 깔보는 정서를 드러내자 <너들은 너무나도 민주의 힘을 모른다, 미국이 깨여나면 일본은 어림도 없어> 하는 내용과 비슷한 말로 훈계하던 그 장면을 다시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143    [잡담87] 仁禪規律 관계 존재 댓글:  조회:3609  추천:34  2009-02-18
      어느 자리에서 중국문화를 강의하시는 교수님하고 仁에 대해 문의하였더니 그 분은 정면 확답을 하시지않고  너는 무엇을 인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시였다. 옆에 있던 누군가 통계에 의하면 <론어>에는 인에 대한 해석이 열가지 이상이며 리상적인 인간간계 총합이라  한마디 참여하니 그 교수님은 틀렸어 하고 한마디 했다. 그리고는 인에 대한 해석도 없이 무엇이 禪인가 물으셨다. 내가 중국인의 타력(초자연적인 신)에 의존하는 인생초탈에 대한 불신임이며 현실사회에서의 自力에 의한 인생추구라고 말하자 교수분은 또 틀렸어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선에 대한 해석이 없이 객관사물의 규칙(規律)이란 무엇인가 물었다. 누구도 감히 대답이 없으니 교수님은 내가 읽어본 책중에서 레닌의 규칙이란 관계이다는 한마디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 하고 한마디 하시였다. 그리고는 그럼 관계란 무엇인가 문의하셨다. 관계란 사물의 존재방식입니다 하고 내가 대답하자 교수님은 또 무엇이 존재인가 반문하시였다. 존재란 확실하게 철학적인 거창한 개념으로서 서양어에서 중국어로의 전환이 확실하지 못하고 중국어로는 표현이 힘들지도 모른다고 내가 답하자 교수님은 입가에 조금 웃음을 띄우고 그래 중국어에 不可言表가 있지? 이젠 술이나 먹자 하시였다. 고대 그리스(희랍)에는 소클라테스가 유명한 변론철학자였다. 소클라테스는 누구와 변론을 하면 상대방의 주장을 직접 반박함이 아니라 상대방에서 문제를 제출하여 상대방이 확실한 대답을 못하게 만들고 자아모순에 빠지게 한다음 껄껄 비웃는 변론방식을 취하였는데 그날 우리는 좀 배우려다가 소클라테스式 변론 , 즉 반문옹노에 걸려들어 골탕만을 먹었다.    
142    [잡담86] 군체적으로 표현되는 인간성중의 략탈성 댓글:  조회:3838  추천:31  2009-02-04
인간의 심령세계는 인성적으로 명암적인 구도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이중성격으로 심리해석이 되고 선과 악, 천사와 악마라는 종교해석으로도 되고 계급투쟁설을 포함한 사회현상발전설로도 해석이 되여있지만 아직은 좋은 해결책은 없다.        작게는 소인물로부터 위인에 이르기까지, 크게는 하나님의 총애를 독차지했다는 유태인으로부터 和문화를 종지로 한다는 중국인과 민주문화 선봉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인에 이르기까지. 야만시대의 인간이든지 문명시대의 인간이든지, 인간과 인간사회는 끊임없는 명상과 실천을 거듭하여 왔지만 自力과 自律로 인성의 명암성을 완전히 떨쳐버리는 성공을 보지못하고 있다.        인성의 暗性을 두고 말할진대, 군체적인 집중표현은 군체의 掠奪성이라 보여진다.        온가보총리가 유럽방문에서 중국和문화를 주장하고 중국의 세계패권 불가능과 不願설을 거론하는것은 서방세계에서 중국위협설과 《黄祸》이 륭성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협중성을 지니고 있음도 마찬가지로 력사의 陰影을 잊어버리지 못하였고 중국의 對조선책을 반대함이 근본원인으로 보여진다. 또 수많은 중국인이나 한반도인이나 일본을 대함에 있어서의 어느 정도의 무작정 태도는 일본인들이 지닌 국화와 칼중에서의 칼이라는 략탈성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남이 베풀어줌은 좋아하지만 남이 략탈을 거행함은 싫어한다. 내가 배운 중국력사교과서는 반식민지시대에 있은 렬강들의 략탈은 엄청 기록했지만 49년에 공화국창건시에 있은 외국과의 채무와 불평등조약을 무조건 무효로 한다는 점은 당연하게 거의 一字로 기록이 되여있다. 조계지인지 무엇인지 하는것도 외국인들이 많든 적든 돈내고 사용한 땅임을 확실하지만 우리의 심중에는 외국인들이 강제로 공짜로 빼앗았다는 인상밖에 남겨주지 않았었다. 쓰달린이 아무리 맑스주의자로 자처했지만 북유럽과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극동에서 진행한 토지점령과 략탈행위가 서방세계가 견결한 반공책을 취한 주요원인의 하나임도 사실이다. 일본군국주의가 대동아공동경영을 울부짖었지만도 사실은 략탈을 목적으로 한 침략이였기에 그 후세들마저 대성호질과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고 때로는 숨 한번 내쉬기가 힘든것이다. 한국에 사는 어떤 화교들로부터 한국정부책에 의하여 략탈을 당한 과거를 호소함을 조금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문화권만 아니라  유교문화를 울부짖는 동양도 략탈성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라고 판단이 된다.       공급과 수요, 또는 생산력수준과 인민들의 생활요구로의 불평형이 인간의 략탈성을 만들어낸다고 배워왔다. 헌데 묵가라든가 불교의 무욕설을 조금 읽고보면 인성의 략탈성이란 인간문명의 부작용품이 아닐가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141    [잡담85] 조선화교 중국조선족 댓글:  조회:4100  추천:45  2009-02-02
       90년대 어느 여름, 가욕관시 장성호텔 식당에서 식사중인데 식당 복무원이 와서 조선말을 할줄 아는가고 반색해서 묻는것이였다. 쳐다보니 얼굴이 조금 둥근 편이고 어딘가 조선족기질이 내보이는지라 나는 조선족녀자라고 판단했다. 헌데 알고보니 조선족은 아니고 북조선에서 돌아온 화교라고 하였다. 귀국해서 나라의 배정을 받았는데 부모는 강철회사에 출근하고 본인은 현지로동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 등 형편을 알려주었다.         정확한지는 모르지만은 현재 조선에 살고있는 화교는 50년대의 5만명에서 5천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조선시책은 2년동안 조선에 살지않고 중국에 산 화교는 조선호적 자동취소로 대하고 있으며 중국은 옛날 정부에서 조선으로부터의 귀국화교에게 베풀어주던 우혜책을 버리고 일자리가 있고 경제수입이 가능한 사람에게만 신분증, 말하자면 정식귀국을 인정해주는 시책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광복뒤 조선에서 살던 화교들도 중국에 많이 돌아왔다. 그러다가 60-70년대에 이르러서는 조선국적에도 참가하지않고 조선에 머물러 사는 화교들이 많지도 적지도 않게 5만명정도를 유지하였음은 그 주요원인이 조선의 복지가 중국의 복지보다 좋았고 량국의 사회정치환경이 모두가 <그럭저럭> 수준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화교이든 조교이든 교포이든 <물은 낮은데로 흐르고 사람은 높은 곳으로 오른다>는 말을 거역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어제이든 오늘이든 래일이든 높은 곳으로 오르는 이야기는 번창한 이야기일것이다. 헌데 번창한 이야기속에는 무가내와 비리성적인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생각같으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살고싶은 나라에 가서 살고싶지만 밀항이요 귀화요 국적가입이요 난민이요 하는것들이 인간들에게 시달림을 가져다준다. <고향으로 가는데 시험은 무슨 시험?><한국령사에게 편지를 쓰는> 등 행위사건들의 배후에는 어딘가 한국정부와 떼질이라도 하려는 심리가 작간하고 있음은 의심할바가 없다.         또 많으나 적으나 떼질심리를 지니고 있는 중국조선족들을 상대하는 한국정부의 시책은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구는 많고 땅이 졻은 나라의 무가내와 小氣적인 운영심리가 조금 내보이는듯도 하다.     나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라면 똑 같이 만드실거지 왜서라고 분별하게 만들어서 인간을 고생시키노? 또 높은곳에 오르려면 노력해서 오를거지 왜서 자꾸만 하늘에서 호떡이 하락하기를 바라누 하는 한탄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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