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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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잡담84] 민족 국가 그리고 인간 댓글:  조회:3977  추천:43  2009-01-24
[잡담84] 민족 국가 그리고 인간허동식  인간으로 살아갈가? 소속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갈가? 아니면 민족의 일원으로 살아갈가? 만일 多元선택의 화합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꼭  一元을 선택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퍼그나 존재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쵸몰랑마를 쳐다보면서 쵸몰랑마가 티벳족이라든가 인도인들에게만 속하는 산봉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또 티벳족이든 인도인들이든 쵸몰랑마는 자신들에게만 속하는 神山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제발 빌었다. 민족국가형식이 세계의 주류로 되고있지만, 인간과 인간사이, 민족과 민족 사이,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무역을 통해 이루어지는 물질교환을 내놓고도 인간이 인간을 인간처럼 생각해주고 대해주는 정신적인 교류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특별히 우리의 일상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 서양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기독교정신의 소유자이고 실행자이다. 물론 미국의 세계경찰패권도 현조하고 그들의 명예스럽지못한 식민지력사가 있기는 하지만, 현시점으로 보면 그들에게는 우리보다는 민족 대신, 국가 대신 인간을 최상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성이 뚜렷함은 사실이다.. 동아시아지역에 자리잡은 일본이든 한반도이든 중국이든 근대로부터의 정신초점은 민족생존에 두어왔음은 의심할바가 없다. 오늘도 그 지속성을 보인다. 일본의 國家神道이든 중국의 삼민주주의든 모택동주의든 조선의 주체사상이든 한국의 무엇이든 모두가 민족이라는 생존공동체의 리익을 최고리익으로 간주한 주의이고 실천이다. 이러한 주의와 실천에 대하여 손가락질할 자신은 없지만, 나는 적어도 의구심은 내보이고 싶다. 민족주의란, 특별히 협애한 민족주의란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는 비극사를 많이 만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조직이라든가 어느 개인의 정치야망에 리용되는 경우에는, 수많은 판단시비능력을 잃은 자들에게 접수되는 경우에는, 그 광기적인 他我 회손력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느 나라이든 민족이든 , 과거나 지금이나 바보는 없다. 제만 잘나체 접적거리려는 고심과 행위를 버려야 한다. 
139    [잡담83] 대만국회 육박전 댓글:  조회:4269  추천:34  2009-01-20
[잡담83]대만국회 육박전허동식TV에서 가끔 대만의 국회의원들이 침방울전쟁 대신 서로 때리고 패고 하는 육박장면을 보여준다. 저게 무슨 꼴이여? 우리의 인민대표대회라든가 정협회의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진행되는 박수치고 손들고 하는 질서정연한 모습과는 전혀 구별된다는, 난장판이라는 직감을 받을수가 있지만은, 나를 포함한 대륙인 대부분들이 대만 島情에 대해서 빗나가는 판단을 할수도 있는 일이다. 대만 국회의 지랄발광상 래력을 알려면은 대만이 대륙과 구별되는 사회운영을 한다는 점에 조금이라도 눈길을 돌려봄은 나쁜 점이 없는듯도 하다.   20세기 80년대 장경국에 의하여 진행된 대만의 민주화를 알려면 우선 손문선생에 의하여 창건된 중국국민당 과거를 돌이켜보기로 한다.   1905년, 일본에서 손문 등 인물들에 의하여 창립된 동맹회는 <驱除鞑虏,恢复中华,创立民国,平均地权”이라는 종지를 만들고 폭력수단으로 만청을 뒤엎고 민국을 건립하려는 민족적인 민주적인(삼권분리) 조직이였다. 동맹회는 중국에서 많은 무장봉기를 진행하였지만 종극목적을 이루지는 못하고 1911년 무창봉기(무창봉기가 동맹회가 지도한 봉기가 아니라는 관점도 있다) 뒤에는 내분렬되였다가 1912년에 송교인의 노력하에 여러 조직들과 합병되여 중국국민당으로 전변된다. 동맹회로부터 국민당으로의 전변은 단순한 조직명칭의 바꿈이 아니라 손문의 폭력혁명수단 대신 정당평화정치에로의 주장전변을 말해준다. 그래서 북양군벌인 원세개의 북양정부와 손문의 남경정부는 협상책으로 형식적으로나마 중국통일을 이루었고 국민당은 국회의 第一당으로 되고 원세개는 대통령으로 되였다. 헌데 원세개는 송교인을 암살하고 국민당을 해산하는 배은망덕과 황제로 되는 복벽추태극을 벌리였으며 국민당은 국회정치를 주장하는 정당으로부터 또다시 폭력혁명을 주장하는 혁명당으로 복귀한다. 1913년, 제2차북벌전쟁뒤에 손문은 혁명이 승리하면 다당제를 기초로 하는 국회정치가 아니라 ,혁명당이 직접 권력을 잡으려는 일당정치체재 구상을 내놓았고 러시아10월혁명뒤에 국민당은 러시아를 배워 以党建国 以党治国를 절대적인 리념으로 하였다. 손문이 서거하고 국민당은 삼민주주의 명목하에 민국건립뒤에도 정개석은 국내정치를 온정시키고 다음에 외적을 물리친다는 구실하에 정치 군사면에서  이당 특히는 공산당에 대한 탄압을 그치지아니하였다. 가렬처저한 항전시기에마저도 중국공산당의 신4군을 점멸하고 팔로군과도 티격태격 하면서 시종일관적으로 청나라말기인물인 증국번 리홍장한테 배운 무력일위책을 실행하다가  종국에는 내전에서 패하고 대륙에서 쫓겨난다. 대만에서의 국민당은 장개석과 장경국에 의하여 아주 오래동안 일당체재를 전개하고 토지개혁을 비롯한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잇따른 경제성장하에 서서히 민주화의 진전을 보인다. 대만 민주화진전에서 있어서 1970년 장경국이 미국방문 시에 재미대만민주운동파들의 총저격을 받은 사건과 유엔에서 탈퇴된 국제정세하에서 江南기자 암살사건이 촉매제로 되였다. 드디어 1987년 대만은 38년동안의 계엄령을 해제하고 党禁과 报禁을 해제하면서 다당제의 합법화와 언론자유의 합법화를 실행하였고 그 뒤에는 국민당이 야당으로 탈락하는 획기사건도 있게 되였다. 요즘에는 대만<대통령>마저 구류되어 판결을 한다고 떠들고 있으니 대만민주화의 진전을 간접적으로 크게 느끼게 된다.다시는 대만국회의 육박전을 비웃을 생각이 없다. 그 육박전이 아무리 치사하고 더럽다 하더라도 <림표반당집단>을 소멸하고 <4인방>을 분쇄한 군사정변보다는 사회본가가 적고 광명정대하다고 생각한다. <림표반당집단>이든지 <4인방>이든지 모두가 고층분쟁으로서 만백성하고는 전혀의 관련이 없었지만 모든 죄를 그들한데 덮씌우고 10억인구 거의가 휘말려들어갔다는 일은 력사대비극이며 앞으로는 발생하지 말어야 할 일이다.
138    [잡담82] 절대적인 변과 상대적인 불변 그리고 인간 댓글:  조회:3665  추천:24  2009-01-20
[잡담]절대적인 변과 상대적인 불변 그리고 인간허동식 <론어 子罕편>에는 <子在川上,曰:‘逝者如斯夫! 不舍昼夜。> 라는 말이 기록되여있다. 이 말은 定義式 론리식 思辯式 표현이 아니라 情形서술식 표현으로서 감탄호마저(물론 후세 사람들이 달아준것이기는 하지만) 달린 감성적인 표현어로 판단될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사람마다의 립장과 리해력이 다르고 사용하는 경우에 따라서  <子在川上,曰:‘逝者如斯夫! 不舍昼夜。>는 부동한 해석과 부동한 진미를 내보여왔다. 감히 우리말로 나름의 문자적인 번역을 해본다. < 공자가 강하(황하)에서 이르기를: 가는 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 공자의 이 한마디에 대해 錢穆과도 같은 大家들은 注解를 情形서술식으로 적었지만 공자는 분명 성인으로 받들리어 있으므로 본의와는 관련없이 철학적인 리해와 주해를 달아주는 사람도 많음은 사실이다. <가는 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라는 말에서 강하의 도도한 흐름으로부터 시작된 시간의 일직자 무한대흐름을 련상하는 해석도 있고 우주만물은 무궁한 변의 흐름속에 있다는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여러가지 파생적인 론단과 쟁론이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 공자가 강하에서 이르기를: 가는 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를 두고 철학적해석을 함에 있어서 객관사물의 변증을 연역하는 사람이 많고 인륜의 변증을 연역하는 경우는 적다. 력사적으로 보면 공자의 학술이 유학으로 전변되여 무궁한 변화속에서도 불변의 인륜리상을 구축하려는데 사용되여 왔으므로 객관사물만 아니라 인륜을 포함한 인간사회도 변하고 仁도 변한다 주장한다면 공자사상의 功利성이 지장을 받을가봐 우려되여서 그럴가 아니면 인간과 인성 그리고 인간사회의 기본특성이 상대적인 불변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가고 억측을 해본다. 나는 < 공자가 강하에서 이르기를: 가는 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에서 변과 불변에 대한 깨닫음과 표현이 내포되였다 생각된다. 고대희랍의 철학자 赫拉克利特는 <사람은 같은 강에 두번 뛰여들수가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었다.  이 명언은 변에 대한 명언으로서 세상만물은 무궁한 변화속에 존재한다고 전해지고 가르쳐지고 있지만 나는 <사람은 같은 강에 두번 뛰여들지 못한다는 판단어보다도 < 공자가 강하에서 이르기를: 가는 자는 밤낮을 가리지않는구나>는 情形어를 더욱 즐긴다. 赫拉克利特 절대적인 변만 이야기했을뿐 상대적인 불변에 대해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지만 공자는 인간을 상대하였을 때의 변과 불변의 현상을 동시에 생각했고 늬우쳤고 표현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상대해서는 우주만물 모두가  변 중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매 인간의 유한된 수명에 인한 유한된 자연생명 그리고 인류의 소위 몇천년이라는 문화력사시간을 상대로 하면 무궁한 변속에는 상대적인 불변의 사물도 엄청 존재함은 사실이다. 공자가 이른 강하는 흐르기는 하지만 , 흐름의 내용과 흐르는 공간과 흐르는 형식이 어떻게 변하든지 결국은 강하로만 정의된다. 강곬이 바뀌고 가물어서 마른다 하더라도 그 변속에는 강하라는---불변의 기본특징이 있다. 사람이 상대하는 인간과 인간사회도 천지개벽의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과 인간사회의 기본특징 그리고 범주를 벗어날수가 없다. 우주가 수축이 되든 팽창이 되든 하나님에 의하여 운행이 되든 자아운행이 되든 인간을 상대해서는 우주는 영원히 우주이다. 이러한 변화속의 불변은 순수 개념식의 불변만이 아니라 객관존재로서의 불변이며 감촉할수 있고 사실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다. 인간은 이러한 변과 불변속에서 살아간다. 때문에 무한한 周而不殆의 변을 상대해서는 무가내적인 소침에 빠질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우리는 매일 불변속에서의 아웅다웅 부르짖음도 하고 화합도 부르짖고 리익다툼과 체면다툼과 인식다툼을 그치지아니하고 있다.    
137    [잡담81]진시황과 석가모니 부처님과 자아중심주의립장 댓글:  조회:5001  추천:31  2009-01-06
 [잡담81] 진시황과 석가모니 부처님과 자아중심주의립장 허동식진시황의 업적을 론하는 세미나에서 누군가 허, 진시황이 뭐가 대단해? 진시황은 자전거 탈줄도 모르는 村人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린다면, 만장의 눈총을 받을것은  물론 정신병환자로 몰릴수도 있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석가모니부처님을 두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셨음을 화제로 한다는것도 어리석을수밖에 없다. 허황하고 어리석은 일 내면에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인성이라는 시각에서는 ,누구나 자아중심주의립장을 철저하게 떨쳐버린다는것은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자아중심주의를 고집함은 지금까까지도 우리의 虛점이라 느껴진다. 무엇을 고집하든 무엇을 진행하든 <나>라는 립장에서만 출발한다면 고집들이  <배부른 소리>로, 일성사는 <아불싸>로 전변할지도 모른다. 조선족농촌이 황페해지고 조선족기초교육이 망가진다 하더라도 누구든지 농사군들더러 한국에 나가지말고 연해도시로 나가지말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하며 살라고 권고할 리유가 없다. 조선족농사군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그들이 우리보다 잘 알고 농사일의 고됨과 농경지의 다소와 농산품市價는 그들이 우리들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을 대신하여 수판알을 튕기고 그들의 삶을 훌륭하게 만들어드릴 자신감과 능력이 없는 한, 어서 고향 농촌에 돌아오세요 라는 이야기는 산업화시대의 웃음거리로 될수밖에 없다. 로무수출 한국어시험이 어느 정도 조선어교육을 받은 조선족을 상대해서는 <식은 죽 먹기>라 하더라도 한국어시험제도가 전중국인을 상대한 중한사이의 협상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라는 생각만으로 우리의 립장만을 고집한다면 중국정부는 물론 한국정부도 난처해질것이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불리한 일면으로 전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연변산업경제가 거의 엉망으로 전변된것은 동북3성의 국민경제가 중국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탈락과 동북아국제정세의 불확정된 혼란성과 갈라놓을수가 없다. 헌데 인력우세도 없고 교통우세도 없지만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그런 불확정성에 중국인도 투자하기 싫어하는 동네에 외자를 받아들여 제조업수출업단지를 만들고 하염없이 기다린다는것도 자아중심주의립장의 산물이 아닐수가 없다. 인간의 리성주의와 비교할진대 , 감성주의는 <过街老鼠>임을 잘 안다면, 이제는 리성주의 훈련을 할 시기가 된듯도 하다. 위대한 변증법의 이야기는 모든것이 변화한다고 역설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변과 우리의 일상이 소위 <천지개벽>식 변화를 겪고 있지만 우리의 자아중심주의립장은  큰 개변을 보여주지못하고 있다. 자아중심주의립장을 버려야만이 현대사회에 걸맞는 실사구시가 있게 된다.  
136    [잡담80] 귀화라는 말이 싫다 댓글:  조회:9569  추천:54  2008-12-28
 [잡담80] 귀화라는 말이 싫다 허동식먼 옛날, 한반도에서 일본렬도로 거너간 사람들을 귀화인이라고 일본력사교과서가 적어두고 있다. 그 귀화라는 말을 배워 한국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을, 한국국적을 취득한 중국조선족들을 귀화했다고 하나? 나는 귀화라는 말이 싫다. 歸化는 무슨 귀화? 이 세상에 피줄기를 따져오면, 인간사의 흐름을 따져보면 어느 누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무덤자리에서만 뱅뱅 돌아치며 사는 종족이나 사람이 있을가? 인간사의 변화란 어느 종족이 어느 인간이 마음대로 주물러서 만들어지는것이 아니다. 과거가 있고 진공상태가 아닌 이상, 서로가 접촉이 있고 교류가 있고 반목이 있고 섞임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내 품에 안기는것은 귀화요, 남의 품에 안기는것은 반역이요 하는 언어의 慣性은 제밖에 모르는 인성관습이요 심리이며 기시문화를 만들어주는 장본인의 하나이다. 한류가 아무리 드세다 하더라도, 귀화라는 낱말을 밥먹듯 사용하는 한, 한류가 지나가는 미풍으로 될수밖에 없을수도 있다. 일본제품이 아무리 좋다해도 오늘날에도 일본국적취득을 두고 귀화인이라는 모자를 덮어준다면, 종국에는 남들부터 격리감을 받을수밖에 없다. 인간사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바보처럼 놀던 종족은 다 망하고 그래도 제노라 조금이라도 우쭐대던 무리들이 남아서 제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음은 사실이다. 어느 나라든, 어느 종족이든 남을 깔보지는 못한다. 이 세상에 이제는 운만 좋고 분발만 하면, 바보나라나 바보종족은 없다. 나는 中性표현이  적은 문화가 싫다. 그런 문화의 언어가 싫다. 귀화라는 말이 싫다.  
135    [잡담79] 독두부사건들 그리고 일중관계 댓글:  조회:9956  추천:50  2008-12-23
[잡담79] 독두부사건들  그리고 일중관계허동식근간에 일본 어느 민간조사에 50프로 이상의 일본인들이 중국에 호감을 지니지 않는다는 조사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많은 중국인들이 너들은 전쟁배상도 아니하고 수상들이 쩍하면 靖國신사를 참배하면서도 공연히 중국인들에게 호감이 없다고? 하는식의 정서를 드러내놓았다. 그런 중에서 중국인 누군가 많은 일본인들이 호감이 없다고 무서울것은 없다. 자강은 중국인의 필수이다. 자강에는 인간존엄을 지키자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의 대중호감부족에 대해 이야하던중에 중국의 식품업과 중국식품업이 일중관계에 가져오는,일본인들이 중국인에 대한 불신임감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중국교자사건으로부터, 중국의 삼록우유가루사건이 일본인들이 對中호감부족팽창의 촉매제로 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저 중국가람들은 국인들에게도 독약섞인 식품을 생산해 파는데 외국인과 가짜온천도 운영하는 우리 일본에 무엇을 아니팔가? 하는 생각을 많이 지니게 했다는 이야기다. 일본인들이 대중호감부족증에는 여러가지 복합된 원인이 있기는 하겠지만도, 반일정서를 지닌 중국인들에게는  靖國신사참배가 반일 또는 협일 촉매제로 되는것처럼 독두부사건들이 용한 촉매제로 됨은 사실인것 같기도 하다. 독술로부터 시작되는 중국식품업의 <악성사고>는 그치지않는듯하다. 환경오염과 독식품사용으로 앞으로 중국인들의 의료소비가 엄청 늘어날것을 예견하여 많은 외국상인들이 중국의 의료시장을 크게 노린다는 이야기를 풍문에 얻어듣고 나면 우리는 등골이 서늘해진다. 중국독식품사건은 어느 공장이 하나 망가지고 법조목이 하나 생겨나고 어느 범죄자가 사형받는다고 해결될 사회문제는 아니듯하다.  
134    [잡담78] 혁명에 대해 약간 댓글:  조회:5685  추천:56  2008-12-11
  [잡담78] 혁명에 대해 약간허동식   일전에 상해 어느 대학교의 녀대학생 두명이 수업시간에 중국문화전통을 비판하고 현존 정부의 흉을 보는 교수를 반혁명분자로 밀고하였고, 파출소에서는 立案정찰, 말하자면 하나의 위법사건으로 취급했다는 소식으로 인터넷이 끓었다. 밀고의 무치함과 그 사회배경에 관한 의론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헌법으로 보장받는 언론자유의 실속성에 대하여, 대학교육의 向度에 대하여,중국관료문화의 본질과 관성에 대하여, 또 여러가지로 파생되는 의문과 토론과 생각들이 즐비하다. 무엇이 반혁명인가를 규명하려면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한다. 그럼 학리적으로 해석되는 혁명은 무엇일가? 百度 백과사전란에는 혁명이란 <고대에 조대가 바뀌고 성씨가 다른 天帝가 나타남을 혁명이라 하였고 근대로부터는 자연과 사회 그리고 인간사상의 심각한 질변을 혁명이라 한다. 古代以天子受天命称帝,故凡朝代更替,君主易姓,皆称为革命。近代则指自然界、社会界或思想界发展过程中产生的深刻质变> 는 泛내용적인 해석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란에는 혁명이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국체(國體) 또는 정체(政體)를 변혁하는 일>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자권에서의 혁명이란 사실 일본의 개창으로서. 현재 상용적인 사회학 의미에서는 폭력수단으로 진행되는 국체와 정치변혁을 가르킨다. 당대 중국사회사는 혁명람용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당대에 있어서 혁명이 지니는 내용이 복잡해지고 구체화되면서 정치인들의 리용지물로도 되였던 사실이다. 반당도 반혁명이고 반정부도 반혁명이고 보수적이여도 반혁명이고 락어족이여도 반혁명이고 하면서 혁명이 반혁명으로부터 연역되는 특색적인 중국현상을 이루어왔다. 그러면서 혁명은 어떤 정치목적과 사회목적을 이루는 과정에 異己를 지옥에 몰아넣는 상투수단으로 최악의 수단으로 둔갑을 하였다. 교수를 반혁명으로 밀고하고 립안정찰이 사실이라라는것은 법에 반혁명죄라는 죄조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반혁명죄목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간직하고싶다. 정말인지는 몰라도 모택동이 북경대학에서 도서관 관리일군으로 일하면서 대학수업을 방청하며 스승으로 모셨던 유명교수였고 중국의  全盤西化를 주장하던 호적이 1949년도에 싫어하는 국민당정부를 따라 대만에 건너간것도 중국의 어떤 조직과 부분인들의 사람과 사람사이에 원한만을 심어주는 지나친 경향을 반대하였기때문이라는 一說이 있다. 말하자면 지나친 원한강조가 가져오는 폭력혁명을 동조하지않았다는 이야기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오늘도 폭력혁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조직이 있고 사상이 있고, 또 반면에 폭력혁명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조직이 있고 사상이 있고 인도의 비항쟁독립운동과 같은 성공적인 사례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폭력혁명도 좋고 비폭력혁명도 모두가 제한성을 지닌 력사가 아닐수가 없다. 폭력혁명이 빠른 시일내에 압축적인 변혁을 가져올수는 있지만 생명과 물질재부의 손실이 엄청난것도 사실이며 비폭력혁명은 도덕적이고 비낭비적이기는 하지만 老牛慢車라는 타협적이라는것도 사실이다. 헌데 폭력혁명도 좋고 비폭력혁명도 좋고 그 선택은 개별인들의 욕심에 좌우지되지말고 민중들의 보편적인 의도에 따른 선택이였으면 좋다는 생각이 든다.
133    [잡담77] 문화대혁명과 중국당대문학 그리고 문화고행 댓글:  조회:5006  추천:52  2008-12-08
[잡담77]문화대혁명과 중국당대문학 그리고 문화고행허동식좋은 문학작품이란 때로는 인간이 인간본신과 인간고통의 정신극치에 대한 예술적인 기록으로 사색으로 반성으로 보여진다. 문화대혁명은 소위 <前例없는> 고난시대로 평판을 받지만 문화대혁명기간과 문화대혁명 뒤에 문화대혁명을 쓴 중국의 문학작품은 <전례없는> 작품이 아주 적다. 문화대혁명기간, 중국에는 진정한 문학작품이 없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 원인을 중국의 고압적 문화시책에만 귀결할수가 없다. 거의 동시기에 구쏘련이라든가 동유럽도 중국에 손색되지 않는 고압적 문화시책을 실행하였지만 <지하문학>이 융성되였고 위대한 문학인들이 추방당하고 감옥살이를 하면서 소위 서방세계에 의하여 <반체제문학>으로 불리우는 하나의 문학고봉을 이루었다. 반면에 중국은 문화대혁명이 거의 끝날 무렵에야 분명 당대사회의 비합리성에 도전하는 문학운동임에도 불구하고 <몽롱시>라는 말도 아니되는 엉뚱한 명칭을 붙힌 문학사조가 있었고 그 뒤에는 상처의 심층근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기록적이고 원망적인 <상처문학>과 중국인의 실존상황 개변과 령혼의 안위를 중국전통문화에서 찾아보려는 <뿌리찾기문학>이 목소리를 내는척하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모래속의 금빛이라면, 이 시기를 總結하는 진정한 령혼탈출기식 문학작품은 고행건의 작품과 王小波의 소설작품으로 보여진다. 이들의 령혼탈출은 어딘가 迷茫감과 허황함이 뒤섞여 있지만 중국인 정신생활의 현실에 부합되는 문학력작이다. 하다면 어찌하여 문화대혁명이라는 비옥한 땅에 문학이 진정한 꽃을 피우지못하고 말았을가? 심사숙고할 문제이다. 중국문인들도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골족>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지만, <반골사유>를 깊게 폭넓게 진행하는 문화유전인자는 많이 부족하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보면 중국고전문학은 고유된 중국문자놀이와 고대경전과 력사에 대한  주석에만 크게 머무르는 봉페문학이고 창조성이 허약한 문학이다. 명청시기에는 장회소설을 중심으로 서서히 근대문학의 특징을 지니기도 했지만 여전히 취미성과 可讀性이라는 기교에만 열중하고 중국인들의 정신생활을 외면하였다는 혐의를 떨칠수가 없다. 물론 <홍루몽>과 같은 력작도 있지만 중국고전문학을 人心向上적으로 인도하지는 못하였다. 중국고전문학의 사상개방결핍과 장시기의 문언문리용은 중국의 문학인들로 하여금 신문화와 외래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와 반항심을 지니게 했다. 력사적으로 보면 인도불교문화도 중국에서는 유교식으로 도교식으로 전변을 하였고 이슬람문화도 지역적인 종족적인 문화로서 중국사람들의 령혼을 세탁하여주지 못했으며 근대에는 중국인들이 기독교를 포함한 서유럽문화에 대한 리해는 아주 오래동안 소화불량증으로 표현되여 왔다. 신문화운동시기에 진행된 중국의 맑스-레닌주의 도입도 압축된 도입과정으로서 목소리가 높았을뿐 진정한 민중적인 사고적인 리해적인 문화전래의 열매를 영글지 못하였다.  문화의 봉페성과 오랜 전통의 일맥상통은 자연히 문학인들의 자아망상증과 정신세계의 허약증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자아망상증과 정신허약증에 시달리는 중국문학인들이 시역의 제한성과 진리탐구정신결핍증으로 진지한 문학작품을 내놓기 힘듬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개혁 개방뒤에도 , 왕삭의 <건달문학>이라든가 후현대주의류파가 어느 정도의 반역정신을 찾는 노력은 하였지만, 생활방식개변에만 열중하였기에 좋은 효력을 보이지는 못하였다. 중국은 아주 거창할 정도로 진행되였다고 생각되는 문화반성과 문화개조가 아직도  힘든 고행중에 있다. 중국문학은 바로 이 문화고행의 점오와 돈오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처럼 서방의 문예부흥의 위대함을 새삼스레 느끼기는 나로서는 처음이라 하겠다. 
132    [잡담76] 미국이란 도대체 어떤 나라일가? 댓글:  조회:4767  추천:44  2008-12-05
 [잡담76] 미국이란 도대체 어떤 나라일가?             허동식    내가 미국을 얼마나 알고있을가? 미국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자연상황과 사회상황을 책과 텔레비를 통해 구경하는 흉내나 하는듯 마는듯 하는 정도의 수준이면서도 미국을 알고싶어한다. 미국을 다녀온 분들과 미국행 감상을 문의하면 학문을 하시는 분은 미국은 나라기질이 개방적이고 대범하더라 (其国质开放且大方) , 나라분위기는 기세가 호매롭고 드넑고 깊더라 (其氛围大气且恢宏)는 답을 한다. 현대화건축만을 좋아하는듯한  분은 미국도 락후해서 아직은 수많은 시골이 있더라는 우스운 답을 한다. 茶를 좋아하고  담배를 즐기는 분은 미국은 차를 풀 뜨거운 물이 없고 담배를 마음대로 피우는 장소가 적어서 불편하더라라는 답을 한다. 어느 돈있는, 노력하면 얼마든지 미국행을 할만한 한국분은 아니야, 비자내기가 힘들어 미국가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 화외음으로 미국은 싫다는 답을 한다. 조금 경제에 민감한듯한 분은 미국은 잘도 살더라, 사회복지보장이 잘 되여있더라는 답을 한다.     중국말처럼 仁者见仁,智者见智인가? 헌데 百闻不如一见이라 하니 나는 미국에 가보고싶다. 헌데 내 생에 영어를 못배운 유감으로 하여, 호주머니사정으로 하여 미국려행은 나에게는 아직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다만 미국에 대한 궁금증과 경모의 심리경향을 간직하고 있을뿐이다.     미국은 서양의 3권분리사상과 인권사상이 서유럽이상으로 실행되는 나라이다. 물론 인디안인들에 대한 멸종책과 종족기시책,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무차별압박 , 패권주의 세계경찰책 등 오점을 떨칠수는 없지만 책에서 구경하는 미국은 우리와 구별되는 점이 많으며 배울바가 많은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제도의 우렬을 론한 어느 책에서 미국사회제도는 현존하는 사회제도중에서 제일 좋은 제도라는 글귀를 읽은적이 있다 . 말하자면 미국사회가 인류가 바라는 최상의 리상사회는 아니지만 현존까지의 현실적으로 실현된 리상사회라는 판단이다. 남의 판단을 무조건 따르는 부류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에 대한 궁금증은 풀수가 없다.  
131    [잡담75] 방문취업제 한국어시험제에 대한 正視 댓글:  조회:5225  추천:50  2008-12-05
[잡담75] 방문취업제 한국어시험제에 대한 正視 허동식언제부터인지는  누구의 개창인지는 몰라도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유한 나라로 가서 무엇인가 좀 배울려면 부유한 나라의 언어문자를 배워서 등급시험에 합격되여야 한다는 제도가 실행되고 있다. 중국인으로서 영어권류학을 하려면 <퉈뿌>요 <야쓰>요가 넘기어려운 고비이고 쉽지않는 일본어등급시험도 있다 . 누구에게나 언어문자공부가 쉬운 일이 아니요, 한자권사람들이 印欧계 언어문자를 배운다는것은 <사둔의 팔촌에 걸리지도 않는 친구를 찾는 일이여서인지> 중국 향간에는 < 만일 중국이 잘 살게 되면 너희 미국놈들이 중국류학을 할 때는 너들더러 楚辭를 배우게 하고 구두어로는 대만가수 周杰倫의 중얼거림을 시험보게 할거다>고 핸드폰 메신저가 류행되던 일이 기억된다. 근년에 중국의 외국어등급시험에는 한국어도 등장하였다. 한족들과 기타 소수민족을 상대해서는 한국어등급수준시험제도가 중국에서 한국문화를 알리고 한국어의 체면을 챙기는 작용도 있어 좋은 일이기도 하겠지만 중국조선족의 최대경제래원인 한국로무수출에까지 한국어등급시험이 적용될줄은 중국조선족은 예상하지를 못했다. 중국공민의 일원이면서도 력사문화배경이 복잡한 중국조선족은 아직 방취제 한국어시험제를 개변할 현실적인 능력이 없다. 변화다단한 중한외교관계에 존재하는  중국정부와 한국정부의 난점, 그리고 국제관례 등 요인들이 소수인을 특혜할 제도를 만들어낼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배운 한족들이 한국에 가서 류학을 한다든가  취업을 한다든가 중국조선족과 동등한 권리를 향유함은 비난할바가 아니다. 또 중국조선족 모두가 한국에 밀려가는 현상에 대하여 중국정부가 외화벌이는 좋아하고 반면에 여러가지 우려심을 지니게 됨은 정당하고 정상적인 일이다. 또 한국이 외국로동자고용에 있어서 되도록이는 해외교포를 돌봐주려는것도 사리에 맞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부로커들에게 거금을 사기당하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과거에 비해서는  방취제 한국어시험제가 중국조선족에게는 좋은 일이 아닐수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현존 방취제 한국어시험제에 중국조선족에게는 불리한고 비합리적인 일면이 많이 존재한다. 제도보다도 제도집행과정의 세부적인 문제에서 중국조선족이  유리한 점들을 요구할 필요성이 많이 존재한다. 1. 시험장소의 선택: 동북3성 정부와 연변정부를 비롯하여 중국조선족민간단체들이 동북에 거주하는 중국조선족들의 시험장소 就近원칙을 요구하여야 한다.이런 요구가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면 여러가지 경로를 통하여 성공을 보일 가능성이 없는것은 아니다. 2. 시험자격 등록방법: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활용못하는 현실을 정시하여 일반적인 서면등록제도를 병행하여야 한다. 각 성의 상무청에서 로무수출을 주관하는 현실을 대비하여 상무청의 동정심과 지지를 받을 필요가 있다. 3. 시험비용: 려행사들이 비싼 대리비?/SPAN> 받고 또 중국조선족사회가 中介업과 중개업리익획득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물가국을 통한 물가정산감독도 필요하고 또한 정부가 주도하거나 민간에서 주도하는 한국어시험에 상관되는 무료봉사단체의 건립과 실행이 필요하다. 4.수험자의 년령문제: 수험자의 년령에 대한 규제는 한국인력시장요구 일면만을 강조한듯하다. 한국의 상관부문에서 중국조선족사회의 생존과 발전상황에 대해 사회학적인 리해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130    [잡담74] 중일한 3국 수뇌회의 댓글:  조회:3638  추천:49  2008-12-05
  [잡담74] 중일한 3국 수뇌회의    허동식   12월 일본에서 중일한3국 수뇌회의가 있다는 뉴스를 읽었다. 중일한 3국이 단독으로 협상을 한다는 회의라는데 동아시아경제문제를 비롯해 북한비핵화는 무조건 거론될것이다고 뉴스가 전한다.       중일한 3국이 단독으로 협상회의를 한다는것은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과거처럼 미국과 러시아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고, 의식형태대결시기처럼 옴니암니 침방울전을 할 필요도 없고.     세상이 이만치 걸어왔지만도, 서로가 가까이 살지만도, 다 같이 인간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면서도 중일한 3국은 무난히도 서로 헏뜯고 중상하고 혐오하면서 시야를 지나간 일에만 못 박는 행위를 진행하여왔다. 따라서 민감한 령토문제도 거론되면서 민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아직도 서로의 불신임과 협오감이 주류를 이룬다.     서유럽의 여러 나라사이에도 과거에는 동아시아와 비슷한 일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2차대전뒤에 시장자유경제를 전제조건으로 서로의 경제침투가 활발해지고 문화교류가 깊어짐에 따라 , 서로가 상대방의 異점존재를 존중하고 또한 同점을  찾아서 공인가치취향 구축에 힘써온 결과, 동아시아보다는 화목하게 살고있다.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밝은 거울이 아닐수가 없다.     현재 중일한 3국은 여전히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경제의 상호침투와 문화적인 동인점이 허약하다. 말로는 동일한 한자권문화권이?一衣带水라 하지만 상대방의 국민이 내 나라에 와서 땅을 산다는것은 엄금이 되여있고 문화심리는 거부감과 불신임이 살판침은 3국의 통병이다. 2차대전시에 일본이 아시아 큰형님 노릇을 한다고 중한2국과 남양각국에 끼친 피해와 자신이 겪은 피해가 아주 막심하였던 원인의 하나는 일본이 고취한 나는 사람이고 남은 사람이 아니라는 문화심리에 집결된다. 더불어 살아가련다고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면서도 공인가치취향을 무시한 일본의 작법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大敵이다. 그러므로 오늘과 래일에 있어서 중일한 3국이 문화同認점 발견과 실존구축은  큰 과제이고 평화공존의 필수조건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갑자기 친구도 경제능력이 비슷하면 사이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생각해본다. 봉페된 북한경제시스템이 이번 금융위기에서 받는 영향이 개방경제나라보다 적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원인인지는 잘 모르지만 중일한 3국 수뇌회의에 북한만이 묘하게 빠져나갔다는 점은 유감이 아닐수가 없다.  
129    [잡담73] 중국과 한국의 은원 그리고 중국조선족 댓글:  조회:5084  추천:53  2008-12-02
      어떤 수로 사람간에 존재하는 과거와 오늘의 은원을 초월하여 좋은 래일을 지향할수가 있을가?  또 어떤 수로 인군 사이의 력사적인 현실적인 은원을 초월하여 화목한 미래를 넘나볼수가 없을가?  그림같은 소원이지만 나에게는 정답이 없다. 정답을 가르치는 분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정답에 대한 열망은 간직하여야만 한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이웃사이에 력사적으로 사이좋게 보낸 사실은 적다. 지성학적 원인으로 리익충돌과 문화충돌은 이웃사이에 판가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별히 그 모순체의 통일면을 무시하고 대립면만을 강조하는 문화소유자는 력사적 은원을 옴니암니 챙기게 된다. 중국과 한국은 어떠한 력사적인 현실적인 은원이 존재하는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정리할수 있는 립장이라면 우리는 그 은원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한다. 또 회피할수도 없다. 우리가 회피할수록 은원은 커가는 부스럼으로 될지도 모른다.   한국 유명시인 고은선생의 시 <황사 며칠>을 읽어보자.   겨우 우리 봄이 개나리꽃 진달래꽃슬픈 진달래꽃을 피우려 하는데무엇하러 청도(靑島) 장산(長山) 부황(浮黃)난 바다 건너우리에게까지 무더기 무더기 몰려오는가.우리 봄이 어떤 봄인지 아는가. 어떤 봄 어떤 아이들인지 아는가.한 되 술 차라리 마시지 않고 가슴팍에 퍼부어 울었느니라.가슴마다 가슴앓이 그믐달 넋을 묻어두고우리 봄의 애비 에미 바다에 뜬 아지랭이로 울었느니라.무엇하러 우리에게까지 몰려와하룻밤 만리장성(萬里長城)으로도 모자랄 봄을 덮어버리는가.참담하구나. 너희들의 경기(京畿)땅 북경(北京) 천진(天津)이나 황하(黃河)벌판이나 덮어서석양머리 호적(胡笛)소래 틀어막으면 되었지 무엇하러 몰려오는가.우리 봄이 어떤 봄인지 아는가. 우리 계집들이 몸을 팔아서몇 만(萬)의 몸으로 얻어온 봄인 것을 아는가.우리 여말(麗末) 한말(韓末) 애비들의 철천(徹天)의 한(恨) 땅에 묻고우리 아이들이 그 땅에 쓰러져서 이룬 봄인 것을대륙(大陸)아. 너희들은 모르리라. 우리 개나리꽃 진달래꽃을 모르리라.아아 머리에 인 것은 황사(黃砂) 뿐! 창대비 쏘내기 맞아이 흉흉한 황사(黃砂)바람 다 씻어버려도우리 울음 우리 울음의 가슴팍 씻게 못하는 것을.또 무엇하러 우리에게까지 몰려와서우리 하늘 우리 땅우리들이 돌아오는 어둑 어둑한 모퉁이들을 다 덮어버리는가.      고은선생의 이 시작를 읽으면 먼 옛날 한무제의 4군설치로부터 당대의 항미원조전쟁과 근간의 협중증과 협한증들이 줄을 지어 눈앞에 떠오름을 어쩔수가 없다.       민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중국과 한국은 현재 또 하나의 고비를 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행이 정부적인 차원에서는 량국 모두가 합상의 이미지를 다분하게 내보인다는 판단으로 심중의 우려를 줄여본다.        중국과 한국의 력사적 현실적 은원의 진행중에서 중국조선족은 가련상을 보이지않을수가 없다. 나도 얼굴을 보지도못한 외삼촌 한분이 항미원조에서 전사를 했고 또 아직도 무엇이 사회집단책임과 개인책임의 분리인줄을 전혀 모르는 수준으로서는, 또 중국조선족의 경제래원이 거의가 한국에 의존하는 현실과 우리가 떨칠수없는 망향과 향수의 감상중에서 중국조선족 거의가 지닌 모순적이고 자책적이고 무가내적이고 숙원적인 심리과정을 경력하고 있다.        중국조선족의 힘으로는 은원속에 은둔하는 중한관계 현실을 개변함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다만 중국에서 흔히 말하는 민간외교관이라는 낱말에서 잠시의 안위감을 찾아본다.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든가 한국기업소에서 통역을 한다든가 현재 조선말로 밥벌이하는 중국조선족들의 존재의미를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기도한다.  
128    [잡담72] 토지소유제 댓글:  조회:4951  추천:50  2008-11-23
 [잡담72]토지소유제허동식 인류는 정보시대에 이른 오늘날에도 물질재부획득은 그 대부분이 륙지에서 진행이 되여있다. 해양에서 물질생산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륙지생산에 비해서는 보잘것없다. 따라서 토지소유제가 사회제도의 핵을 이루어왔으며 해양소유제도 토지소유제의 사유범식과 습관을 방습하고 있으며 남극주라든가 태공자원에 대해서도 소유문제가 리용과 분쟁의 모순점으로 존재한다. 인간과 인간사이에, 나라와 나라사이에, 종족과 종족사이에 공평하고 합리한 질서를 확립하려는것은 인류사회의 주요한 목표이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 리상적인 질서가 가능할가? 아니면 신령의 힘을 빌어야할가? 그 실천이 바로 토지소유제를 비롯한 문명사의 기록이다. 중국사에 있어서 토지소유제는 줄곧 治水와 외적방침 그리고 사상一統보다도 우선을 보이는 지위를 보여왔다. 무역민족이 아닌 농경민족의 력사는 토지의 겸병과 토지탈취와 재분배가 그리고 그 주기적인 순환이 주축을 이루기 마련이였던 같다. 상식적으로 맑스주의와 레닌주의가 토지공유를 주장하고 실천하는것으로 배워왔지만 사실은 토지공유를 주장한 사람이 조선력사에도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있듯이 토지공유제는 맑스주의의 발명창조가 아니다. 신중국은 건국후로부터 지금까지 헌법에 의하여 토지국유제를 실행하여왔다. 책에는 로씨야10월혁명성공이 토지국유제를 비롯한 사회주의제도를 중국에 이식하였다고 하지만 현재 많은 학자들은 중국의 생존단원의 특수성(인구는 많고 경작지는 적음)과 세계정치군사정세가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완전약세 처한 형편에서 중화민족의 부흥을 꾀한 정영인물들은 재력과 물력 그리고 인력을 대집중하여 외세를 대처하고 중국사에 존재하는 흥망성쇠악순환을 소멸하기 위하여 사회주의제도를 채납했다는 말이다. 요새 중국에서는 토지개혁이 있다. 토지국유제는 보존하고 토지사용을 활성화하고 경작지를 보존하고 또 산업화와 도시화의 건전한 발전을 위하여 농촌토지에 대한 개혁을 실행한다. 기자가 국가급 토지관리당담관원과 중국에서 토지의 사유화가 불가능한것은 이델레오기(사회주의 길과 자본주의 길) 문제인가고 문의하자 그 관원은 아주 확정적으로 이델레오기문제가 아니라 토지자원이 빈약한 반면에  인구基數가 13억인 중국국정문제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토지사유화를 한다면 토지겸병뒤에 따르는 수많은 평민들 생존고난과 사회혼란이 우려된다는 이야기이다. 사회제도개혁은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과학실험하고는 달리 조금만 빈 구석이 나타지면 엄청난 사회대가가 지불된다. 때문에 開創적인  정치가란 말이 쉽지 그들이 받는 사회압력과 風險은 산수계산이 아니된다. 등소평할아버지가 진행한 개혁개방정책이 아주 위대한   開創은 아니지만 중국인들의 지긋한 애대를 받는것도, 박정희대통령이 엄정한 독재를 하였어도 많은 한국인들이 박정희대통령이 한국경제부상의 스다트를 만들어준 점을  잊지않는것도 모두가 만백성들이 정치가들의 고충을 충분하게 알고있음을 설명하여준다고 생각된다. 과거에 우리는 토지소유제를 이델레오기와 과격하게 근접시키는 과오를 범하였다. 사유제이든 공유제이든 모두가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으며 국정변화에 의하여 선택됨을  알아야한다. 현재 중국은 토지국유제라는 명목하에서 일부 사람들이 특권을 리용하여 부정을 감행하고 물질재부를 비법적으로 획득하는것이 큰 사회문제이며 또 국제환경 거의가 토지사유제임으로 하여 국제경제교류에서 받는 불신임이라 하겠다.
127    [잡담71] 무조건애국주의 무차별애국주의 댓글:  조회:5030  추천:48  2008-11-21
 [잡담71] 무조건애국주의 무차별애국주의 허동식무조건애국주의 무차별애국주의 교육을 받아왔다. 헌데 무조건애국주의를 무차별애국주의를 선양한다고 애국주의자가 무조건 많아질가고 생각해본다. 전쟁을 하면 알건데, 우리 주위에 진정한 애국주의자가 얼마나 될지를 알건데 하고 애들처럼 허튼  생각을 굴리다가는 옛날을 기웃거려본다. 인터넷에서 한족들이 일제점령시기에 우리 조선인들이 일본군에 강제징병을 당한 일을 거론하여 조선인들의 애국심과 민족심을 평하는 글을 읽었는데, 그 아래에 조선족으로 짐작되는 한분이 당신네들 한족들도 항일전쟁시에는 위군에 몇백만명이나 참가하였던 일을 잊었는가 대성호질에 비슷한 리플을 적어놓은것도 읽었다. 력사에 있어서 인간이란 필경은 인간이다. 조선인도 좋고 한족도 좋고 필경은 인간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범인으로서 애국주의는 버려도 생존욕을 쉽게 버릴수가 없었다. 우리말 <살아있는 강아지가 죽은 사람보다 좋다>는 신조를 지키는 사람이 많았고  중국어의 苟活라는 낱말을 아주 무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적에도 오늘날과 비슷한 무조건애국주의 무차별애국주의가 성행하였을건데 어찌하여 일제의 음위하에서는 신성한 애국주의도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작용을 놀지를 못했을가? 물론 애국주의가 순수한 감정으로 존재하는 형태가 있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애국주의도 사실은 실리주의다. 말하자면 애국주의도 집단의 실리를 위한  한가지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다. 애국주의가 실리주의의 일종이라면 실리를 가져오지못하는 애국주의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할수 있다는 론리가 성립이 될수도 있다. 집정자의 차원에서 무조건애국주의와 무차별애국주의를 거창하게 요구하면서 집정자의 실책과 행위가 사실적으로 민고의 리익을 대표하고 그것을 위한 노력이라면 애국주의는 좋은 효력과 보편적인 사회의의를 지니게 된다. 반면에 집정자들이 집단내 만백성을 생존을 전혀 무시한다면, 全力을 동원하여 신성한 애국주의를 보급한다하더라도 아름다운 애국주의도 애매한 대접을 받을수가 있는것이다. 일제침략하에서 추풍락엽으로 말려지던 조선말기와 청나라말기가 바로 그러한  기록이 아닐수가 없다. 때문에 나는 애국주의를 책에 씌여진것처럼 실행하려면 집정자가는 책에 씌여진것처럼 집단내 리익을 골고루 봐주거라고 한마디 하고싶다.
126    [잡담70] 또 한국문화와 중국조선족문화에 하나 둘 댓글:  조회:5841  추천:71  2008-11-17
[잡담70] 또 한국문화와 중국조선족문화에 하나 둘허동식  문화판단에 있어서 문화의 우렬이라든가 우렬세를 론함은 조금은 장난기가 섞인 일로 될수도 있다. 특히는 구체적인 시공을 떠나 문화에 대한 단순한 <천평놀이>를 한다는것은 현대인으로서 삼가하여야 할 喜好일지도 모른다. 또 그러한 <천평놀이>에서 문화전반에 대한 관찰과 연구가 없이 개별적인 현상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게임을 진행함은 어딘가 게면쩍은 일이다. 허지만 상술한 이런 저런 도리를 아는척하는 내가 자꾸만 그 <천평놀이>에 집착됨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한국문화와 중국조선족문화를 놓고 보면 우렬세는 물론, 그 우렬도 선연하게 나타난다. 중국조선족방언을 배우는 한국인이 거의 없지만 한국말을 구사하려는 중국조선족들이 퍽 많아진것도, 료리법이라든가 회사운영방식이라든가 한국식이 성행하는것이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실상의 십중팔구를 이야하고 있다. 한국문화가 우리 중국조선족의 재래문화보다 우세적인 표현은 무엇일가? 一言으로 답하기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피부로 느끼고 아둔한 머리로 생각해왔던것을 내여놓고싶다. 抛砖引玉한다는 말은 너무나도 렴치없는 말이고 일개 글장난으로만 읽어주시면 고맙겠다.   1    한국인의 직업관: 우리는 대체로 직업을 생계를 만드는 수단으로만 생각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직업을 인생성취를 이루는 경로로 수단으로 생각한다. 직업적인 성공을 인생의 성공으로 보며 그러한 직업관이 분업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공상업사회에 있어서는 우리의 직업관보다는 훨씬 우수한 직업관이 아닐수가 없다. 2   한국인의 국가관: 우리는 나라돈이요 개인돈이요를 운운하지만, 한국인은 나라돈이자 국민의 돈이요, 국민의 돈이자 나라돈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소유하고 있으며 개인의 운명을 나라의 흥망성쇠를 정서면으로만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구체적으로 결부시키고 있다. 한국인들의 빈 소리가 나는 애국주의는 우리보다는 많이 적다. 3    한국인의 민주관: 당대에 있어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세계에서도 으뜸이라고 불리울 궤적과 기적을 보여왔다. 현존 한국인들의 민주사상수준은 우리의 스승으로 되기에는 추호의 손색이 없는듯하다. 반면에 우리는 민주에 대한 생각들이 소수와 다수라는 유치한 산수계산에 머물러있고 , 민주의 힘에 대해서는 거의 무식할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며 인테리들마저도 흔히는 관료체제에 아부하고 관료체재에 진입할 욕심만을 부리고 있다. 4  한국인의 시공관: 한국의 수출산업과 문화수준의 상승에 따라 한국인의 공간시야와 발길은 크게 넓어졌으며 과거를 질문하는 력사의식도 획기적인 전변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의 말처럼 < 중국이면 연변인가 하고 외국이면 한국인가 하는> 공간의식수준이며 과거에 대한 질문은 知識이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못하고 있다.         5       한국인의 개방기질: 한국인의 개방기질은 악착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에 비해서는 대범하고 전方位적이고 자신감에 넘쳐있다. 6    한국인의 종교상황: 종교이면 미신이라 하거나 교리를 알려하지도 않으면서 종교장소에 운집하는 우리와는 퍽 달리 한국인의 종교관은 다양하면서 활방상을 보여준다 . 마음가짐을 편안하게 하려는 한국인들의 정신몸부림은 우리가 배울바가 아닌가 생각한다. 7    한국인의 민족관: 한국인의 민족관은 혈통성만이 아니라 력사성과 공동리익성 그리고 미래성을 뒤받침한 민족심과 현실관에 집약된다.하지만 우리의 민족관은 아직은 과학적인 정리가 부족하고 공인점이 취약하다.  
125    [잡담69] 중국국가예산에 존재하는 문제점의 하나 댓글:  조회:4749  추천:66  2008-11-09
[잡담69]중국국가예산에 존재하는 문제점의 하나   허동식중국은 이미 세계3위의 태공대국으로 부상하였다. 2010년에는 달나라방문이 기획중이라고 한다. 태공사업과 련관도 회의도 있고 기념행사도 많아 중국인들의 자신심과 정열이 젖어있기도 하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 어딘가 허전하기도 하다. 텔레비에서 중국의 2彈1星에 유관되는 프로그램을 적어도 3번은 시청했던 기억이다. 과학가들과 군인들의 피타는 분발과 노력은 잘도 구현이 되였지만은 2彈1星을 하면서 재력을 얼마 소모했다는 말을 없었다. 그적에도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허전하더니. 지주가 소작농을 착취했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봉건국가에서 소작농들의 수확고에서 10% 를 조세로 뜯어갔다니 등등, 전통적인 농경사회를 비판하는 자태에서 편찬된 력사교과서마다 이런 조목들이 씌여져있었다. 헌데 나하고는 전혀 련관이 없는 일이라 그런대로 놓아보냈지만 부모님들 과거와 우리 일상과 련관시켜보면 가난한 나라일수록 국가예산이야말로 만백성의 물질생활수준의 제일 큰 영향인소임을 스스로 알게 된다. 2彈1星 프로그램을 보면 소시적에 째여지게 가난하던 시골 마을과 근들이 술 한잔 하시면서 기뻐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일모작에 경작술이 현재보다는 좀 뒤떨어진 그 시적에 생산대에서 공량을 하고나면 농사군들에게는 무슨 물질적인 여유가 있었을가? 중국의 2彈1星은 강력한 중앙집권하에서의 농사군들의 피땀이 재력으로 그 성공을 뒤받쳤음은 의심할바가 없다. 현재 진행중인 폭이 넓은 태공사업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과학가들의 심혈도 중요하지만 우리 중국국민들 모두가 참여한 물질재부 축적도 아주 중요하다. 헌데 나라에서는 국민의 돈을 소모하면서 어느 정도 소모했다는 말이나 한마디 있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가? 국민들의 감독수준도 높혀주고 참여의식을 높혀주고 국가예산의 투명화를 실현하는데 나쁜 점은 없는듯하다.   
124    [잡담68] 우리 편, 남의 편 댓글:  조회:5120  추천:62  2008-11-03
[잡담68] 우리 편, 남의 편허동식유년시절, 추운 엄동의 밤에도 시골 탈곡장과 운동장에서 순회방영대가 보여주는 영화를 많이 구경하였다. 영화내용에 대하여 리해를 잘 진행한적은 거의 없지만, 기억에 남은것은 영화화면에 새 인물이 출현되면 잘 생긴 인물은 정면인물이고 못 생긴 인물은 반면인물로 보편인정이 되여 판정이 되였지만 잘 생기지도 못하고 못나지도 않은 작자가 튕겨나오면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거의 한결같이 <저게 우리 편이요? 남의 편이요?>하고 의문을  내걸던 일들이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공유점보다도 인간과 인간사이의 리익구별점으로부터 출발되는 계급투쟁을 고리로 하던 시절, 탈곡장에서 볶은 콩알을 깨먹고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조무래기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군대놀이도 하던 아름다운 나의 기억속에는 우리 편, 남의 편을 통하여  진행하던 무단적이고 강압적이고 무지한 대뇌세척운동에 대한 분노가 슴배여 있다.  헌데 살면서 우리 편, 남의 편을 거절할수가 없는것도 현존의 사실이다. 어느 한국인이 나하고 < 만일 한국과 중국이 전쟁을 하면 총을 어디에 대고 쏘려는가> 물은적이 있다. 너무나도 무지한 물음으로 생각되고 나의 능력으로는 확실한 답복을 드릴수가 없는  물음이였다. <우리 편, 남의 편> 하는 문화에 지대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고 중국조선족에게는 제일 민감한 신경구역을 건드리는 그 물음은 건방지고 몰상식한 자의 행실로 여겨졌다. 그 동안 거의 십년은 흘러갔다. 헌데 < 우리 편, 남의 편>하는 생각과 주의들이 얼마나 퇴색하여 있을가? 경제세계화의 시대에 문화국수주의가 부흥을 일으키기도 하는 시절,  또 나라와 나라사이만이 아니라, 한 나라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가속도화되고 그래서인지 <화홥사회>라는 슬로건도 배워야 하는 오늘날, < 우리 편,, 남의 편>은 존재의 사회기반을 죄다 잃은것은 아니다.    < 우리 편, 남의 편>을 어떤 주의라고 생각하면 나에게는 너무나도 복잡한 과제로 되지만 < 우리 편, 남의 편>이 우리의 종족인지에서 표현되는 현상들을 조금 생각해보고 싶다. 조선족이냐 한인교포이나 하는 쟁론의 막후에는 < 우리 편이냐 남의 편이냐>하는 생각들과 그 생각들에 대한 공포심이 꿈틀거리지 않을수가 없다. 조선이란 고조선명칭에 그 유래되고 리성계의 조선왕조와도 련관이 된다.  중국 명나라에 <조선과 和寧>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국호를 만들어달라라고 한것이 조선이 선택되였고 1910년 한일강제합병 뒤에는 조선이 일본제국의 한개 지방으로 전변한 력사도 존재하였으며 장기간 대결상태를 이룬 북한이 조선인민공화국이니 한국의 민간은 조선이라는 명칭과 조선족이라는 명칭에 대하여 거부감을 지니기 마련이다. 한국이란 삼국통일전 남쪽의 삼한 국가명에서 유래되고 조선말기의 대한제국명과도 관련이 되므로  한국인들은 민족자주권과 정통성을 에워싸고 조선보다도 韓을 좋아함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조선 아니면 한국이라는 명칭을 좋아한다 싫어한다는 심리경향은 <우리 편, 남의 편>이라는 행위를 연역할가봐 두렵다. 총을 어디로 돌릴건가 물으시던 한국인도 그 심중에는 6.25동란의 그늘이 비끼여있고 < 우리편 , 남의 편> 을 잡담하는 나의 심중에도 그늘이 비끼여 있다
123    [잡담67] 조선족과 한국인의 문화충돌 댓글:  조회:6090  추천:76  2008-11-02
[잡담67] 문화충돌 시각으로 보여지는 중국조선족과 한국인 허동식이질문화는 접촉과 교류과정에 서로 상대되는 문화의 인자에 대한 흡수와 배척의 현상을 내보이게 되여있다. 그것을  문화충돌이라고 문자적 표현을 할수가 있다면, 현존 중국조선족과 한국인사이에는 분명 문화충돌 현상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문화충돌은 리익을 위한 공리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리익과는 큰 관련이 없이 다만 문화의 이질성에 따르는 가치취향이라든가 생활방식의 구별점에서 출발되는 경우도 있다.  중국조선족과 한국인의 리익은 현재 방향적으로 일치성을 보인다.   한국에서 취직하고있는 30여만명의 중국조선족들이 한국 어느 부류 사람들 일자리를 차지했다든가 그들의 임금수준 상승을 저애하고있다는 리유로는, 중국조선족들이 한국인보다는 임금이 적기에 한국자본가들에게 큰 착취를 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하한다는 리유로는 중국조선족과 전반 한국인 사이에 리익갈등이 존재한다고는 판단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상술한 경제현상은 한국사회의 경제실정과 경제책 그리고 경제규칙이 가져온 결과로서 중국조선족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은 다른 제3세계의 렴가의 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조선족들이 참여되는 경제활동이 한국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주도면은 너무나도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취업한 중국조선족의 주류는 한국의 자유경제운영방식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중에 있다. 또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소에서 취직하고있는 중국조선족들과 한국기업소의 리익의 일치성은 더 말할나위가 없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소의 온정되고 지속적인 경제상승이야말로 한국기업소에 취직하고 있는 중국조선족들의 기본적인 장래이고 경제생활래원의 근본보장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소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중국조선족들은 한국기업소가 아닌 중국내기업소라든가 다른 나라 기업소에 취직을 한다는것은 소유하고있는 기능과 문화수준 등 요인으로부터 보면 한족들보다는 렬세취직이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에도 중국조선족과 한국인들이 동아시아정치경제발전,  중한관계 전망, 북조선정상화 등을 포함하여 방향적으로 일치된 객관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심리적으로도  한국경제성장과 한반도통일과 민족대부흥을 크게 기대하고 있음도 부인할수가 없는 사실이다.( 근간에 한국국내에서 중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우려심을 보이거나 력사와 유관되는 령토문제 그리고 중국의 대북조선책으로 인하여 중국배척주의가 어느 정도 성행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력사상식이 있고 명석한 두뇌를 지닌 사람이라면 중국의 경제성장이야말로 북으로는 러시아를 견제하고 동으로는 일본군국주의를 견제하여 동아시아 세력균형을 이루는 좋은 길임을 알아야 한다. 동아시아 중세기부터 현재까지 매번의 세력균형이 파괴되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건립이 될 때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듯이 제일 큰 대가를  지불한것은 소국이였으며 한반도가 으뜸으로 화를 당했다는 과거를 잊으면 아니된다. 물론 중국이  한국의 경쟁자로서 한국경제와 민족생존에 영향을 주는 주인소로 될 가능성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국민정서를 열화시키고 현실적인 아닌 해결책으로 유도?하는 방법은 취할바가 아니다. )      상술한 사실들을 빌어 나는 중국조선족과 한국인간의 문화충돌은 공리성을 배경으로 하는 문화충돌이 아니라는 판단을 해본다. 한다면 공리성을 벗어난 문화충돌은 자연히 문화의 이질성에서 그 근원을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문화충돌을 서서히 풀어가는 해결책을 찾아볼수도 있겠다.  중국조선족문화와 한국문화는 동질성을 지니면서도 이질성이 다분한 문화의 격차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동질성만 강조하고 이질성을 무시라여 온 서로의 행위가 오늘날의 민간에서 많이 무성해진 <원망>의 직접적인 근원일수도 있다. 중국조선족들이 한국문화에 대한 리해가 편면적이고 옅으며 한국인들도 중국조선족문화에 대한 리해가 편면적이고 옅음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사실이다. 그 표현들로는 한국인들이 중국조선족들의 한국사에 대한 無知와 기능의 저하수준, 일하는 태도, 생활습관 등에 대한 비판을 들수가 있다. 또 중국조선족들에 의하여 의론되는 한국인들의 <좁쌀>기질이라든가 외래문화수용과 등급질서에 기존되는 언어습관에 대한 불신임을 들수가 있겠다.  현존 우리는 서로가 상대방 문화의 이질성을 깊이 감지할 필요성이 존재하다. 중국조선족들이 한국과 한국인 문화에 대한 리해를 깊이 진행하는 묘책은 무엇일가? 한국정부와 한국민간에서는 이 방면에서는 구체적인 대책이 조금 부족한듯도 하다. 말할것없이 중국조선족들도 체계적이고 지속된 대책을 내놓지못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한국인들에게도 중국조선족 문화를 조금이라도 실속있게 알릴수가 있을가? 한국사람들은 혈통주의문화에서 출발하여 같은 종족이라는 리념을 내놓고는 중국조선족문화의 실질을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가? 중국조선족들은 혈통은 한반도이고 어떤 장면에서는 우리 모두가 독립군의 후예인듯 자처하지만( 적어도 그런 욕구가 존재하고 대변인이 없는것은 아님) 대부분은 조선말기와 일제강점시기의 몰락농민의 후예임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선조들이 한반도 전통문화에 대한 소화시스템 평균수준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보다 뒤떨어져 있음은 사실이다. 그 뿐만 안니라 중국에 정착하여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시기의 영향( 일제강점시기 일제가 한반도와 만주에서 실행한 식민책과 객관생활환경도 부동함)과 중국전통문화의 직접적인 영향, 또 중국공산당과 북조선을 경과하여 장기적으로 우세적인 문화로 되였던 구쏘련 공산풍문화의 행정적인 사실적인 주입으로 하여 몇차례의 대뇌세척(洗腦)을 받았으며 따라서 그 문화의 구성요인과 맥락이 복잡하고 봉페적인 특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는 중국조선족은 한국인들에게 중국조선족문화를 조금이라도 빨리 실상을 알리려면 우선 자신의 <거울비추기>를 해봄도 바람직하다.옳바른 <거울비추기>가 없이는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남에게 알리는 과정에 과장법과 은둔법과 착오법이 나지기가 마련이다.  현존 중국조선족문화와 한국문화를 비교하면 중국조선족문화는 렬세문화임은 틀림이 없다. 인구와 경제상황 그리고 고대한국문화를 계승한는 면에서도 그 정통성의 부족으로 우리의 중국조선족문화는 렬세속에서 버득거리고 있다. 중국조선족문화를 렬세문화라고 한다면 반박을 촉구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민족정통성이라는 平臺와 세계시장경제라는 평대를 척도로 하면 우리는 사실 엄청난 후진이 아닐수가 없다. 사실 한국인들이 중국조선족에 대하여 혈통인지와 인도주의 등 정서를 지니고 있지만 대부분 한국인들은 현재까지 중국조선족문화에 대해서는 무관심과 기시를 보이고 있다. 그 흉수가 바로 한국문화의 우세이다 중국조선족문화의 렬세이다. 렬세문화를 우세문화앞에 사실적으로 내여놓는다는것이, 그 行路難이 우리가 직면한 문화충돌을 그복하고 사이좋게 어울려 살아가려는 길에 놓인 거대한 과제이다.  
122    [잡담66] 중화문명 하나 둘 댓글:  조회:4419  추천:68  2008-10-22
 [잡담66] 중화문명 하나 둘 허동식        고대 4대문명설에 이견을 지닌 사람이 없지는 않다. 4대문명설에서 문명이란 무엇인가는 문제가 파생되며 라틴어의 문명은 경작의 의미를 지녔고 중국어의 문명은 문자발명과 문자이용이 연관되며 현대문화학의  해설로부터 보면 문명이란 인간생존방식의 집중표현이라 하지만 사실 문명이란 쉽게 리해를 진행할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점에서도 인간으로서 아주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는 리해를 할수 있지만 간단하고 작은 문제일수록 언어로 문자로 리해를 완벽하게 표현할수 없는것은 현재까지 인간능력 불완전이라는 명제를  리해하는데도 도우이 된다.   고대 4대문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론쟁중에서 중화문명이 4대문명중에서 유일하게 오늘까지 존속된 문명이라는 설이 거의 정설로 되여있는듯도 하다. 여추위선생이 홍콩 봉황텔레비방송국에서 주최한 세계문명국순례활동에 참가하여 그 개인적인 기록과 감상을 모은 <千年一嘆> 이라는 책에서 시작되는 중화문명의 생명력에 대한 사고는 좋은 생각이기도 하지만 여러 문명중에서 중화문명만이 유일하게 오늘까지 완전지속이 되였다는 판단은 나로서는 어딘가 믿어지지 않는다.  중화문명이 오늘까지  완전지속이 되였다는 판단에 대한 의심은 그 근거로  1, 오늘날의 중화문명은 언어와 문자를 내여놓고는 중화문명을 이룬 요소중에서 외래문화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교와 기독교는 말할것이 없고 유럽대륙 리성문화의 일설로 되는 공산주의설이 러시아화되여 중국 현존사회문명에 주는 결정적인 영향력이 문명이란 정지상태가 아니라 동적인상태임을 알려주고 중화문명도 그 뿌리가 어느 정도 변이한 문명임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종족적인 구성으로부터 보아도 현재 중국인이 진시황 한무제시대의 중국인과 커다란 거리를 두고 있음은 의심할바가 없다. 동아시아라는 지역에서  몽고인종들만의 융합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다만 피부색이 변하지 않았을뿐이지 사실은, 중국인은 혈통적인 유전인자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유전인자도 기복적인 거대한 변화를 거치어 오늘날의 중국인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아니된다.  3. 중화문명에 대한 자신심과 숭고한 감정은 중국인으로서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또는 불필요한 일건이기도 하다. 입으로는 대천세계의 세계화를 부르짖고 속궁리는 나와 우리 하는 사유방식을 보존한다는것은 적어도 부동한 지역과 부동한 계통 문화를 존중하고 리해를 해야한다는 진리와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화문명이 완벽하게 보존된 유일한 문명이라는 말을 조금 삼가하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중화문명에 대한 감성적인 욕구적인 판단이고 <꿀을 바른> 일담이기 때문이다.  
121    [잡담65] 도둑질에 대해서도 약간 댓글:  조회:4429  추천:69  2008-10-22
[잡담65]도둑질에 대해서도 약간허동식유태교 <10계>나 불교교리를 물론하고, 각 나라 윤리도덕과 법치상황의 어제와 오늘을 물론하고, 도둑질은 인간이 하지말어야 할 첫번째 행위로 보여진다. 헌데 유감스러운것은 도둑질이라는 불도덕행위가 법치 행정 등 여러가지 조치에 의하여 어느 정도로 극복되여 왔을가? 좀도적행위는 광채롭지 못하여 삼가되거나 감옥살이를 곁들어 어느 정도는 극복이 되였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또는 소규모도둑질이 < 임꺽정>이라든가 <수호지>에 의하여 의적이라는 낱말이 있을 정도로 성행하여 왔으며, 좀도적을 방치하는듯 하면서 저들이야말로 극악의 도둑질로 살판치던 관료사회의 무한대연장,  또 대규모적인 도둑질도 미화되여 당당한 력사기록으로 인류사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앞에서는 나는 갑자기 인간의 악상에 대하여 경악을 금할수가 없다.  물질재부를 위한 종족사이의 전쟁도 좋고 나라사이의 전쟁도 좋고 계급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봉기도 좋고 모두가 공리목적성이 뚜렷하였으며 여러가지 수단으로 도둑질을 공개화하고 합리화하는 습관은 인간사회의 상투수단이 아닐수가 없다.     그러한 상투수단이 오늘날에도 창궐하다는 판단을 하면서 언제이면 인간본성의 일면으로 보여지는 도둑질이 끝장을 볼건가고 의구심을 품어보고 그러한 도둑의욕이 철저한 참패를 당하기를 기도라도 해보고싶다.   2차대전시에 일본군국주의라든가 나치스의 도둑의욕이 민족과 국가생존을 위한다는 변명하에 진행이 되다가 참멸을 당하기는 했지만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인간의 집단적인 도둑욕망은 크게 꿈질거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누구의 예언에 의하면 물질재부의 생산이 완전한 충족도에 이르면 인간의 열악적인 본성면이 변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정말 그렇게 될가고 의구심을 품게 된다. 하물며 물질재부가 충족하지못한 오늘날에 있어서 집단적인 민족적인 국가적인 도둑욕망은 다만 전쟁이라는 극단이고 유일한 수단으로 압살해야 하는가고 자문하고싶다.     이웃이 좀 사는 흉내를 보이면 자꾸만 전쟁위협도 하고 또 중국말로 소위 <내부모순을 외부로 분출>시키려고 그러는지 늘 집작거리는 일들이 우리의 심성을 못살게 군다.   어느  <저작>으로도 그 도둑의욕을 감출수는 없다. 또 물질재부가 충족하다 하더라도 인간의 인내와 양보만으로는 도둑의 본성을 고쳐주기도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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