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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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69. 중국 고대 4대 재녀(才女): 이청조가 도박고수? 댓글:  조회:2651  추천:40  2011-04-12
중국문화풍경 6969. 중국 고대 4대 재녀(才女): 이청조가 도박고수?중국 고대 4대 재녀라면 첫 사람으로 이청조를 꼽게 된다. 리칭조우(李清照-이청조, 1084년-약 1155년)는 남송시기 제남사람이다. 부친은 소동파의 학생으로서 유명 산문가이다. 리칭조우는 문재주로 일찍 이름 날렸고 18살에 시집갔으나 남편이 일찍 죽었고 1132년에 재가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졌다. 1134년 저명한 저서 《금서록후서(金石录后序)》를 남기었다. 중국근대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여류 작가로서 완약파(婉约派)의 대표적 인물이다. 청나라 때 《수옥집(漱玉集)》5권이 출간되었는데 사 78수, 시18수, 문 5편이 수록되었다. 차이원지(蔡文姬 약 177년-?)는 한말시기 저명한 금가(琴家)이다. 사서에도 그녀의 박학과 재능에 대한 기록이 있다, 차이원지의 부친은 조조의 친한 친구였다. 16살에 결혼하였으나 1년도 못가서 남편이 죽었고 23살에 흉노에게 붙잡혀가 좌현왕의 왕비로 되었다. 12년 흉노생활에서 자식 둘을 보았다. 208년 조조는 친구의 정을 생각해서 황금 천 냥, 백옥 한 쌍으로 그녀를 되찾아 왔는데 그때는 35살이었다. 조조의 알선으로 뚱시(董祀-동사)와 결혼하게 되었으며 이듬해 남편이 죽을죄를 범하게 되자 차이원지는 조조를 찾아 애원하였고 동사는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전하는데 의하면 조조가 차이원지가 소장한 서책에 흥취를 가진다고 하자 그녀는 4000 여권 장서가 있었으나 전란에 모두 소실되었다고 아뢰었고 조조의 실망하는 기색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400편을 암송하여 조조를 크게 기쁘게 하였다. 빤조오(班昭-반소)자는 한나라 사람이며 부친 빤뾰오는 당대 대문호였고 반소는 늘 황궁에 입궁하여 황후와 기타 귀부인들에게 경사를 읽어 드리었다. 빤조오는 14살에 결혼하였고 오빠를 도와 《한서(汉书)》를 편찬하였다, 이 책은 중국 첫 기전체단대사로서 ‘사기’와 명성을 같이하고 있다. 당시 대문호  마룽(馬融-마융)은 반소의 가르침을 받기위해 동관장서각외 꿇어앉았다는 일화도 있다. 반소의 또 다른 저서 《칠계(七戒)》 7편은 빤 씨 여자들의 가정교육 교재로 씌어졌으나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빤조오는 사학자이자 문학가이며 또 걸출한 정치가이다. 빤조오는 고희연을 넘어서 죽었다.  줘어원쥰(卓文君-탁문군, 약 기원전 179년-기원전 117년)은 한나라 사천사람으로서 대부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금은보화 속에서 자란 그녀는 17살에 시집갔지만 반년 후 남편이 죽어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가난한 서생이 타는 《봉구황(凤求凰)》에 마음이 움직여 17살 과부는 야밤에 서생에게로 달려갔고 이튿날 서생의 고향인 성도로 사랑의 도피를 연출하였다. 이 서생이 바로 훗날 서한시기의 유명한 재간둥이 사마상여(司马相如)였다. 한무제의 중용을 받은 사마상여는 점차 아내가 싫증났고 어느 날은 궁중에서 편지 한 장을 보내왔다. 13자가 적여 있었는데 ‘12345678910백천만’이었다. 총명한 줘어원쥰은 ‘만’ 뒤에 ‘억’ 없는 것을 알아보았고 ‘억’이 없다는 “무억(無亿)‘은 중국어에서 뜻이 없다는 ”무의(無意)’과 동음이므로 남편의 뜻을 알 수 있었다. 남편에 보낸 그녀의 답장 ‘도순서(倒顺书)’ 《원랑시(怨郎诗)》는 명구로 전해지고 있으며 《백두음(白头吟)》,《결별서(诀别书)》; 《망강정(望江亭)》도 널리 전해지고 있다. 탁문군과 사마상여의 사랑도주는 민간에 널리 전해졌으며 소설, 극의 소재로 되고 있다.   재미있는 ‘소문’이 있다. 이청조가 고금제일 여 도박고수라는 글이 인터넷에 떠 있다. 이유인즉 이청조는 중국도박유희를 전문 연구하였으며 《타마부(打马赋)》, 《타마도경(打马图经)》등 문장을 남겼고 각종 도박유희 오락성을 손금 보듯 잘 알고 있었다는 근거이다. 도박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큰 도박을 하던지 패한 적이 없다고 한다. 믿어지세요?
71    68. 중국 젊은 세대의 성의식 댓글:  조회:2734  추천:44  2011-04-11
중국문화풍경 6868. 중국 젊은 세대의 성의식:  얼나이(二奶-이내)와 매음(賣淫)중국사회는 많이 변해가고 있다. 그중에도 사람의 의식이 가장 앞서는 같다. 그 앞장에는 성의식이 서있을 거고 그 주인은 당연히 가장 빨리 서양문화를 접수하는 대학생들이다. 여대학생과 성이 손잡으면 당연 새로운 성문화의 뉴스거리가 가득 할 것이다. 2005년 4월, 대학재학중인 주이안(여)이 전 세계에 ‘나는 에이즈 감염자이다.’고 말함으로서 그녀는 중국 에이즈감염자 중 유일하게 자신의 병을 공개한 사람이 되었다. 기실 10년 전에 벌써 대학생 중에서 에이즈 감염환자가 발견되었다고 해당 인사가 말했다. 또, 2006년 7월중국 위생부 대변인은 대학생은 에이즈 감염전파의 위험한 집단이라고 발표했다. 이뿐만 아니다. 뉴스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살 먹은 여자애는 자신의 헤아릴 수 없는 성 파트너와 두 번이나 되는 임신과정, 성 교역체험을 일기형식으로 써 인터넷에 올려 쟁의를 일으켰다.2004년 베이징사범대학 성건강교육쎈터에서는 약 30개 대학 1만 여명 재학생 성 행위관념 조사를 진행하였다. 결과 남성대학생의 15.7%, 여대학생 5%가 성행위가 있었고 결혼 전 성행위를 천성하는 남성대학생은 57%, 여성대학생 26.7%였다. 또 중국 매체의 보도에는 이런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허다한 지역에서 주말이면 대학교 부근의 초대소(여관)는 초만원이다.’, ‘방은 부근 대학교 연애하는 학생들이 다 차지하여 장사가 더없이 잘된다.‘고 주인들은 말하고 있었다. ‘하룻밤 잠자리는 한번 쯤 별문제 아니다.‘ 라는 것이 부분적 대학생들의 심태이다. 자신들의 매성(买性)에 관한 그들의 태도는 더욱 비약적이다. 신빙성 있는 조사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 조사대상자 중 53% 남성, 5.8%여성이 ‘매성(买性)’을 생각해 보았으나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고 1.3% 남성은 매성하려 했으나 성공치 못했고 3%남성은 매성하였다고 답했다. 또 매음(卖淫)에 대한 태도는 20% 남성, 10% 여성이 매음을 생각해 보았으나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고 0.4% 남성은 매음하려 했으나 성공치 못했고 0.6% 남성은 매음하였다고 답했다. 여성의 0.2%는 매음하였다고 승인하였다. 작년 중국 주간지 《청년참고(青年参考)》는 문장을 발표하여 여대학생이라 자칭하는 여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XX지역 여대학생 중 최저 8-10%는 매음에 종사하며 몸은 팔지 않지만 웃음 파는 여학생은 4분의 1 정도라고 피로했다. 이 보도는 사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고 사후 보도가 사실과 어긋난다고 판명되어 해당 기자와 책임자가 처분을 당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사생활로 간주하고 있으며 타인의 간섭을 싫어하고 있다. 하지만 여대학생들의 성의식은 여전히 사회의 관심초점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신화네트도 문장을 발표하여 여대학생 중에서 존재하는 주말이내()현상을 보도한바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방학 때면 하이커우(海口-해구)시 일부 대학교 정문 앞에는 고급 승용차가 여대학생들을 싣고 사라진다. “주말얼나이(周末二奶)‘라고 당지 사람들은 이들을 부른다. 꽝뚱(廣東-광공) 보스와의 한 장 협의서로 그녀들은 대학생활 비용을 이어가고 있다. 주말얼나이에 관한 뉴스는 계속된다.2007년 2월 7일 자 《제로석간(齐鲁晚报)》에 따르면 제남 여대학생 왕모는 반포얼나이(反包二奶)사이를 개설하고 부친이 이내를 둔 사실을 폭로하였다. 하지만 당지 법원은 왕모가 모욕죄를 구성하였다고 판정하고 사이트의 폐제를 판정하였다. 중국 대지에서 성의식은 요동치고 있다.
70    67. 중국인과 ‘얼서우훠’(二手貨-이수화): 중고품과 재혼녀 댓글:  조회:2145  추천:45  2011-04-02
중국문화풍경 6767. 중국인과 ‘얼서우훠’(二手貨-이수화): 중고품과 재혼녀중국어에서 화(貨)라 하면 물건, 물품을 가리킨다. 하지만 물품의 경우 비유하는 대상에 따라 각이한 뜻으로 해석된다. 물건의 교역과 이동은 부두를 통하여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나라 사이의 무역은 바다나 부두를 끼고 있는 지역이 우선 발달되기 마련이다. 즉 수로를 통하여 들어오는 물건을 수이훠(水貨-수화)라 한다. 지금은 항공운수가 많다. 하지만 ‘수이훠’란 단어는 대표적 의미로 지금도 사용된다. 수이훠는 밀수품이 아니다. 대리상을 거치고 않고 직접 출품회사에서 물건을 가져왔을 따름이다. 수화와 상반되는 단어는 항훠(行货-행화)라고 한다. 보통 수이훠의 가격은 항훠 보다 높다, 운수와 세관비용이 붙기 때문이다. 밀수품은 사사로운 교역으로 이루어졌기에 저우스훠(走私貨-주사화)라고 한다. 화(貨)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단어가 있다. 촨훠(窜貨-찬화); 시장경영학에도 없는 개념이지만 실체 판매에서는 골치 아픈 문제이다. 도우훠(倒货-도화), 충훠(冲货-충화)라고도 하는데 그 뜻인즉 제품을 지정된 관할지역을 초과하여 판매하다는 것이다.  로오수훠(老鼠货-노서화): 류추훠(流出货-유출화)라고도 하는데 쥐처럼 훔쳐온 물건이란 뜻으로 생산직장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서 몰래 훔친 물건을 말한다. 품질은 좋고 나쁨이 섞여 있고 가격은 싸다. 그리고 또 워이훠(尾货-미화)라고 있다. 꼬리 ‘미(尾)’자, 글자 뜻대로 마지막, 또는 나머지란 뜻이다. 중국 복장업종은 이미 ‘세계 가공공장’으로 불러지고 있다. 외국에서 명표 제품 원료가공을 위탁하면 오다보다 좀 많은 원자재가 제공된다, 가공업체는 물건을 계약대로 넘긴 후 나머지 원자재로 새로 똑 같게 가공하는데 이 제품을 미화라고 한다.5위안이면 가공이 괜찮은 셔츠를 , 10위안이면 좋은 바지를 살 수 있다. 전업시장을 통하여 미화를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북경 리저쵸(丽泽桥-려택교) ‘천난천(天兰天)’은 원근에 소문이 자자하다. 중국에서는 매년 수십 억 건의 복장을 가공한다. 통상 3-5%를 미화로 계산하는데 그 수치는 천문학적이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07년 5.1황금주일에 미화시장은 20만 인차의 고객을 접대하였다. 허베이(河北-하북), 탠진(天津-천진), 싼시(山西-산서). 뚱베이(東北-동북), 네이멍고(內蒙古-내몽고) 등 지역의 도화인(淘货人)이 3만 여명이다.  또 자료에 따르면 이 시장의 일주일 출하량은 60만 건을 초과하며 교역액은 700만 위안을 넘는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10억 원이다. 소매복장 가격이 20-50위안인 것이 60%를 점한다.이상의 많은 물건을 부르는 명칭은 중국의 상업경제가 자리 잡으면서 중국백성에게 익혀진 단어이다. 기실 물건에 관하여  가장 익숙히 알려진 것이 얼서우훠(二手貨-이수화) - 두 번 손을 거친 물건-이다. 민간에서 중고품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사전에는 방언으로서 재혼한 여자를 가리킨다고 적혀있다. 사람을 물건에 비유할 때는 그럴듯한 칭호인가 싶다.
69    66. 중국인과 대학 서열: 호간불여호흘(好看不如好吃) 댓글:  조회:2104  추천:57  2011-04-01
중국문화풍경 6666. 중국인과 대학 서열: 호간불여호흘(好看不如好吃)한국인은 늘 곁 포장에 신경을 쓴다. 자신의 옷 치례에도 여간 소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한국 상품은 무엇보다 눈이 즐겁다. 그에 반해, 중국인은 속을 굳힌다. 허술한 옷을 걸쳐도 주머니에는 항상 돈이 들어있고 뱃속에는 기름이 번지지하다. 멋보다 실속을 챙기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방식 또는 사유의식이 차이는 대학진학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우선 서울대학교에 붙어야 한다. 한국 제일의 대학이니깐 체면이 서는 것이다. 전공은 둘째로 되는 선택이다. 학부모나 학생이나 똑 같은 태도이다. 취업 때에도 서울대학교면 쉽게 통한다. 또 한국은 학연이 엄청 파워가 있는 풍속이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대학의 서열, 명성보다 학과, 전공을 따진다. 호간불여호흘(好看不如好吃)- 보기 좋은 것보다 먹기 좋은 것이 낫다-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학교서열은 조사기관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상위 5위권은 청화대학, 북경대학, 복단대학, 절강대학, 남경대학 순이다. 그 외 10위권으로 치면 상해교통대학, 무한대학, 길림대학, 화중과학기술대학, 남개대학 등이 있다.  청화대학은 력학, 재료과학공정, 전기공정, 전자과학, 정보통신공정, 통제과학공정, 계산기과학, 공상관리 등 학과에서 중국 제1위의 우세를 나타내고 북경대학은 수학, 화학, 철학, 언어문학. 생물학, 공공관리학 등 학과에서 제1위를 점한다. 중국인은 진학 때 서열도 중시하지만 자신의 희망 학과, 전공을 따져가면서 진학의 길을 선택한다. 이론경제학, 응용경제학, 법학, 사회학, 신문학 등을 전공하려면 중국인민대학이 우선 대상이 될 것이고 교육학, 심리학, 계통과학을 지망하면 우선 북경사범대학을 고려한다. 방직을 전공하려면 동북대학, 천진공업대학을, 구강의학은 사천대학을, 중의학은 광주중의약대학, 남경중의약대학, 상해중의약대학을, 약학은 중국협화의과대학을, 식품과학, 수의학, 축목학, 식물보호학은 중국농업대학을, 도서관관리 전공은 무한대학, 남경대학을, 토목공정은 동제대학을, 야금은 북경과학기술대학, 동북대학을, 컴퓨터과학은 국방과학기술대학을 우선 생각하는 것이다. 학과뿐만 아니라 전공까지도 고려하는 중국인이 많다. 반도체 분야는 길림대학이 유명하고 송나라 역사전공은 하북대학, 레이저광학은 장춘 레이저학원, 러시아어 전공은 흑룡강대학이 최고이다. 한국인들이 만든 만두는 껍질이 두껍지만 속이 적고 중국인이 만든 만두는 껍질은 엷지만 속이 많다, 중국인은 확실히 한국인보다 조금은 실용적인 것 같다.
68    65. 중국민속과 음식; 룽타이터우 츠주러우 댓글:  조회:1198  추천:46  2011-03-31
중국문화풍경 6565. 중국민속과 음식; 룽타이터우 츠주러우 (龙抬头 吃猪头-용대두 흘돈두)중국인의 가장 큰 명절은 당연 춘절, 즉 구정이다. 하지만 구정이 한 개월 지난 음력 2월 2일은 민간에선 ‘룽타이터우’(龙抬头-용대두) 명절로서 이 날은 돼지머리고기를 먹는다. 고대에서는 쭝허제(中和节-중화절)이라 불렀다. 천상에서 구름과 비를 관리하는 용왕이 머리를 쳐드는 날이라 한다. ‘2월 2일 용이 머리 든다‘는 설은 중국 고대천문학과 연관된다. 고대 중국에서는 28숙(宿)으로 일월성진의 위치를 표시하고 계절의 바뀜을 판단하였다. 2월에 접어들어 봄바람 인후 황혼 때면 ’용각성(龙角星)‘이 동쪽 지평선 위에 나타남으로 ’용대두‘라고 했다. 천상의 용이 머리를 쳐들면 새 봄이 찾아오고 더불어 우수가 많아지며 밭갈이가 중국의 남방에서 북방으로 이어진다. 이날을 춘룽제(春龙节-춘용절)라고도 불렀다. 음력 2월 2일 이날, 북방에서는 아침에 설 떡, 돼지머리 고기를 먹는다. 남자들은 이발하지만 여자들은 바느질을 안 한다. 또 우물도 깃지 않는다, 용머리가 흔들린다는 미신이다. 이런 전설이 있다. 무측 황후가 제왕이 된 후 옥제는 3년 동안 인간에 비가 오지 못함을 명하였으나 옥용(玉龙)은 가만히 비를 내려 보냈고 하여 천궁의 한 큰 산 밑에 눌리게 되었다. 옥제는 산 아래에 비석을 세우고 금두개화(金頭開花) 때 아니면 다시 릉소각(凌霄阁)에 돌아오지 못 할 것이라고 적었다. 사람들은 용왕을 구하기 위하여 금두를 사처에서 구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 2월 2일 이날, 옥수수 종사를 말리다가 노란 옥수수 알이 금두 같음을 깨달았고 옥수를 닦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매년 2월 2일이면 옥수수를 튀김을 민속으로 전해졌다.  백성들은 이날에 또 밀가루 국수, 춘빙(春饼-춘병)을 먹고 강냉이도 튀긴다.  동지에는 훈뚠(馄饨-혼돈)을 먹는 풍속이 있다. 일찍 남송시기 린안(临安)-임안사람들은 훈뚠를 먹었다. ‘동지에는 훈뚠을 먹고 하지에는 가루국수를 먹는다’(冬至馄饨夏至面)란 말과 같이 강남에서는 동지에 탕왠(汤圆-탕원)을 먹는 풍속도 있다. ‘가가도미작탕원 지시명조동치천’ (家家捣米做汤圆,知是明朝冬至天”-집집마다 쌀을 찧어 탕왠을 만드니 내일 아침이면 동지임을 알다. 탕왠은 백성의 명절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또 ‘탕왠을 먹으면 한 살 먹는다’는 민간속담도 있다. 북방의 적지 않은 지방에서는 동지에 개고기나 양고기를 먹는 풍속도 있다. 그리고 음역 7월 7일 칠석에는 콩과 쌀가루를 빚아 많은 쵸스(巧食-교식)를 먹고 8월 15일 추석에는 월병을 먹는다. 최초 월병은 가정에서 만들었으나 현대는 전문 업체에서 제조한다. 이외, 청명에는 삽류(揷柳)-버들가지를 꼽다-하고 9.9중양절에는 등고(登高)-높은 곳에 오르다, 상국(賞菊)-국화감상-한다.
67    64. 중국4대고도 베이징: 태평천자당중좌 댓글:  조회:1327  추천:45  2011-03-29
중국문화풍경 6464. 중국4대고도 베이징: 태평천자당중좌(太平天子当中坐)베이징(北京-북경)은 300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 전국시대에 잠시 연나라의 수도였다가 원나라 때 몽고족이 중국 통일 후 베이징을 수도로 정하였고 이후 거의 1000년 동안 수도로서의 입지를 지키고 있다.베이징은 현 중국의 수도로서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찾는 첫 정거장으로 되고 있다. 베이징의 많은 역사 문화유적을 한국인은 익숙히 알고 있다. 만리장성이 대표적 예이다. 베이징은 옹근 도시가 역사 문화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베이징의 현존 수십 개 고대 탑 중 최고 높이는 13층으로 된 천녕사탑(天宁寺塔)이다. 광안문외 위치하고 있으며 이름은 꽝린(光林-광임)이다. 제일 큰 종은 대종사에 걸려 있다. 명나라 영락 연간에 만들어 졌는데 500 여 년 역사가 있다. 높이 6.75미터, 최대 외경 3.3미터, 무게 46.5톤이다. 종신에는 불교경문과 악담이 새겨져 있다. 도리에 매달려 있는지 이미  250년이 된다. 명절이면 세 번 울리는데 사서에 따르면 ‘백 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종은 모래구멍(沙孔)이 하나 없는데 이는 고대 주조사의 기적이라 한다. 가장 오래 된 석비는 1964년 6월 석경산구에서 출토된 한유주서좌진군묘쌍비(汉幽州书佐秦君墓双碑)이다. 높이 2.25미터, 둘레 1.27미터, 사면은 장방형이다. 최대 도관은 ‘천하제일관’으로 불리는 백운관이다. 베이징 서편문외 삔허어(滨河-빈하)공원 옆에 있다. 713-741년에 건설되었으며 당시에는 탠창꽌(天长观-천장관)이라 했다. 중국에서 제조한 현존 최대 탁상시계는 베이징 고궁 죠타이땐(交泰殿-교태전)에 있다. 높이 약 6미터, 체형이 커 뒷면에 사다리가 있다. 베이징 이화원과 원만수산(园万寿山) 불향각 서쪽에는 보운각(宝云阁)이란 동정(铜亭)이 있다. 1755년 청나라 건융 연간에 주조되었는데 높이 7.77미터, 무게 207톤이다. 동전은 사방정자로서 불전 같아 보이며 금전(金殿)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내에는 무게 약 2톤이 되는 동으로 된 제사상이 있다. 정내 동벽에는 양국주, 장성, 한충, 고영고 등 4명 장인의 이름이 새겨졌는데 주조자인지는 불명하다. 최대 입불상은 옹화궁 만복각(万福阁)에 있는 마이다아라(迈达拉-만다라)불상이다. 불상 신장 26미터, 그중 지면에 선 높이가 18미터, 지하가 8미터이다. 불상은 네팔 산 박달나무 조각으로 되었으며 전신을 도금하였다. 최대 와불상은 향산 와불사에 있다. 신장 5미터 넘으며 원나라 기재에 따르면 주조시 50만 근의 동을 썼다고 한다.베이징 가장 오래 된 석연공교는 노구교이다. 1192년에 건설되었고 원, 명, 청나라 때 수건 하였다. 총 11개 구멍이 있으며 길이 266.5미터, 너비 7.5미터이다, 이태리 마크 버뤄는 유행기에서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고 독일무이의 다리’라고 칭하였다. ‘노구교사변’으로 일본은 전면적인 중국침략전쟁을 일으켰다. 고궁 동남쪽에는 천단이 있는데 세계최대 제천신단이다. 천단 면적은 고궁보다 4배 더 크다. 57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고궁(자금성)은 세계상 규모가 제일 크고 가장 잘 보관 된 제왕궁전이다.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명, 청 두 조대에 거쳐 24명 황제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자금성은 세계건축사의 가장 저명한 절작(绝作)으로 평가받고 있다. 1407년 명나라 주려는 베이징 황궁 건설을 명했으며 주요 설계자는 양청(扬青), 형복(蒯福) 등이고 10여 만 장인과 100 여 만 명 노무자가 동원되어 1420년에 완공되었다. 십삼릉은 세계에서 가장 집중된 황릉군의 하나이다. 베이징 서북쪽 50킬로미터에 위치, 13 제왕의 능묘가 있다. 1409년 명나라 주카이(朱棣-주체)가 건설을 시작하여 1644년 사릉을 수건하여 명나라 마지막 황제 주유(朱由-주유)를 안장하였다. 중국 여행을 하려면 베이징에서 스타트를 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66    63.중국4대고도 난징: 강남가려지 금릉제왕주 댓글:  조회:1326  추천:41  2011-03-28
중국문화풍경 6363.  중국4대고도 난징: 강남가려지 금릉제왕주(江南佳丽地,金陵帝王州)중국 사자성어에는 호거용판(虎踞龙盘) - 호랑이가 숨어 있고 용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 있다. 난징(南-난징)의 서쪽에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석두성(石头城)이 있고 동쪽에는 용이 누워있는 듯 같은 종산(钟山)이 있다. 삼국시기 유비의 명을 받고 난징에 온 제갈량은 ‘종산엔 용이 진을 치고 석두에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어 실로 제왕이 자리 잡을 곳이다’고 감탄하였다. 난징은 6000 여년의 문명사와 2400년의 성시역사가 있다. 229년 4월, 손권은 우창(武昌-무청)에서 황제에 등극하였으나 ‘쟨예이의 물을 마실지언정 우창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조야의 울부짖음 속에 건업으로 천도하여 난징건도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손권은 장사 환왕부를 황궁으로 정하고 길이 약 11킬로미터 되는 성시를 건설하였다. 이것을 발단으로 역사상 10개 조대가 난징을 서울로 하여 ‘십조도회(十朝都会)‘라고 불리워졌다. 난징은 특히 중국의 근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진, 송, 제, 량, 진이 연속 도읍으로 정하여 육조고도로 불리웠으며 1368년 주왠짱(朱元璋-주원장)은 난징에 서울을 정함으로서 처음으로 통일된 중국의 수도로 되었다. 당시 난징 도시발전의 고봉기를 맞아 당시 세계의 제1 대도시로 되었다. 1853년 태평전국은 이곳에 수도를 세우며 탠징(天京-천경)이라 개칭했고 1912년 중화민국의 성립되면서 쑨중싼 (孫中山-손중산)은 난징에서 중화민국임시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1927년 국민정부는 난징을 수도로 정하였다. 명태조 주원장은 1366년 8월부터 1386년까지 성벽을 쌓았는데 둘레는 약 33676미터, 옹성과 합치면 성벽 길이가 37140미터, 성문이 13개, 총안 13000여 개, 가건물 200여 개로서 둘레 29500미터인 프랑스 파리성벽을 초과하는 세계 제일로 꼽힌다. 이후 600여 년의 비바람 속에서도 아직 현존하는 성벽이 21351미터로서 중국내 제일 긴 성벽이다.  난징에는 허다한 문화유적들이 있다. 중산릉, 부자묘, 중화문, 영곡사(灵谷寺), 석상로(石象路), 삼국동오가 건축한 석두성 유적, 명나라 주왠짱 명효릉(明孝陵), 위화타이(雨花台-우화대) 등은 무한한 사색을 자아내는 경물이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난징은 치욕의 기억으로 남는다.  1937년 12월 13일, 당시 수도 난징을 침점한 일본군은 6주일 시간에 평민과 무기를 놓은 군인들에 대한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30만 명이 피살되었다. 난징이 점령된 1개월 내에 2만 여 차례 강간사건이 빚어졌으며 3분의 1이상에 달하는 가옥이 불탔다. ‘난징대도살’이다. ‘술집 어디 있는가 물었더니 목동은 멀리 행화촌을 가리키네’(借问酒家何处有?牧童遥指杏花村)남녀노소가 다 아는 당나라 대시인 두무우杜牧-두목)의 명시 《청명(清明)》중 ‘행화촌’이 바로 현 난징에 있다는 신문보도가 눈길을 끈다. 난징은 역사문화 도시로, 오늘은 현대경제도시로 유객의 발목을 잡고 있다.
65    62. 중국 4대 고도 뤄양: 뤄양목단갑천하 댓글:  조회:1451  추천:44  2011-03-24
중국문화풍경 6262. 중국 4대 고도 뤄양: 뤄양목단갑천하(洛阳牡丹甲天下)한국인들에게 뤄양(洛陽-낙양)은 낯선 도시일지도 모른다. 쟝제이스(蔣介石-장개석)의 옛 소굴인 난징, 진시황이 누워있는 시안 보다는 친절감이 덜 하다. 하지만 중국 쏘오린스(少林寺-소림사)에 대해서는 아주 익숙할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의 무협영화가 호황을 누렸고 지금은 무협채널이 흥행되고 있다. 더욱이 소림사’는 인도 달마 고승이 수련한 곳으로, 또 소림 13명 무승(武僧)이 당나라 황제 이세민을 구한 전설적인 이야기, 또 ‘소림사’ 세 글자는 강희 황제의 친필이어서  소림사는 해외에 높은 명성을 날리고 있다. 소림사에서 관광버스로 2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달리면 곧 뤄양이다.  뤄양은 낙수 양지쪽에 있다하여 얻은 이름이다. 화하문명의 주요 발상지로서 중국고대 부희, 여와, 황제, 요순, 하우 등  신화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기원전 770년 저우핑(周平-주평)왕이 낙읍(洛邑)으로 천도를 시작하여 선후 13개 조대가 이곳에 수도를 앉히고 장장 1500 여 년을 이어왔으며 수당이후에는 인구가 100만을 넘었고 사방납공 백국내조(四方纳贡,百国来朝)-사방에서 납공하고 백국에서 찾아오다. - 의 성세를 이루었다. 전하는데 의하면 목단은 측천무후의 위염에 눌리지 않고 겨울날 종일 피어있었기에 뤄양으로 ‘유배살이’를 오게 되었다고 한다. 목단은 오늘날 중국의 국화이다. 문학대가 구양수가 쓴 《뤄양목단기(洛阳牡丹记)》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단에 대한 전문서적이다. 뤄양은 무측황후가 유일하게 오랫동안 거주한 곳이다. 황제에 등극한 후 수도를 뤄양으로 정하였고 가무를 각별히 즐겼던 무측황후는 ‘10만’ 궁중악대를 조직하여 매일 대명황궁에서 연습하였고 놀이 갈 때는 수많은 대신과 10만 궁중악대를 거느리고 아침 일찍 대명황국에서 떠나 천하제일루-리징먼(儷景門-려경문)에 올라 가무를 감상하며 뤄양의 경치를 감상하였다. 문인묵객들이 잇따라 시를 쓰고 부를 지어 리징먼은 뤄양의 제일경관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 CCTV에서는 ‘대명황궁’이란 역사드라마도 방영하였다.  뤄양에는 중국 3대 석고 중 하나인 용문석고(龙门石窟)가 있다. 뤄양시 남쪽 13킬로미터의 아하 양안에 위치하고 있다. 북위 쇼원띠(孝文帝-효문제) 때(기원 493년)에 뤄양으로 천도하면서 건설하기 시작하여 서위, 동위, 북제, 수, 당, 5대, 송, 명 등 조대를 뛰어넘어 장장 500년에 걸쳐 이하 양안 절벽에 2000 여개 감실과 10만 여 조각상을 만들었다. 2000년 11월 용문석고는 ‘세계문화유산명록’에 등재되었다.  중국 제일의 고대 사원 백마사(白马寺) 역시 크게 알려지고 있다, 세계 유명한 불사,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후 관방에서 차린 제일 사원으로서 불교계로부터 사원(释源), 조정(祖庭)으로 높이 불러지고 있다. 한명제의 명을 받고 67년 불경, 불상을 서역에서 가져왔으며 68년 한명왕은 뤄양 융먼(雍门-옹문) 밖에 승원을 지을 것을 명하였고 불경, 불상을 가져올 때의 백마의 노고를 기념하여 승원을 백마사라고 이름 지었다. 백마사는 부지 200 여 무이다. 뤄양의 고대무덤박물관은 세계 최대 규모이며 ‘마사종성’ 등 뤄양 팔경은 풍격이 각이하고 수려하다. 그리고 삼국지의 관운장의 수급을 묻은 뤄양삼국유적도 흥미진진하다.  위나라 쇼원띠(孝文帝-효문제) 장릉, 쇈우띠(宣武帝-선무제)경릉, 쇼밍띠(孝明帝-효명제)정릉, 쇼좡띠(孝庄帝-효장제) 정릉 등 4명 황릉이 있는 뤄양, 중국 최고의 고도로 고색고향(古色古香)하다. 
64    61. 중국 4대 고도 시안: 동유로마 서유장안 댓글:  조회:1392  추천:22  2011-03-23
중국문화풍경 6161. 중국 4대 고도 시안: 동유로마 서유장안(东有罗马,西有长安)한국인에게 측천무후(測天武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요즘 방영되는 KBS드라마 ‘조대영’에서도 측천무후의 위엄을 자주 보게 된다. 죽어서 무자비를 남긴 중국 유일의 여황, 당고종 이치와 함께 그녀의 황릉이 바로 시안시 건성 북쪽 6킬로 되는 양산에 있다. 시안(西安-서안)은 마크 버러가 묘사한 고대 비단길의 시점이다. 옛적에는 창안(长安-장안)이라 불렀다. 신석기시대 선민들은 이곳에 촌락 반파촌을 건조하였다. 서안은 3100여 년 역사를 지닌 고도로서 중국 역사상 주, 진, 한, 당 등 12개 왕조가 이곳을 서울로 정했고 그 시간은 장장 1100 여 년에 달한다. 즉 3분의 1 넘는 시간은 중국의 수도로 그 이름을 빛내었다. 중국이란 중앙 국가란 뜻, 중국의 중심 지점은 바로 서안이다. ‘진중자고제왕제’(秦中自古帝王州”)-진중은 자고로 제왕의 지방-이라 하였다. 친스황(진시황-진시황)은 이곳에 중국건축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방궁을 건조하였고 한, 당시기 서안은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대외교류의 중심으로 당시 인구가 이미 백만을 초과하였다. ‘동유로마, 서유시안’, 서안은 지금 아테네, 카이로, 로마와 함께 세계 4대문명고도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중국고대 4대미인 양뀌이페이(楊貴妃-양귀비)의 로맨스가 길이 전송된 곳- 화칭츠(華淸池-화청지)도 시안시 동쪽 30킬로미터 되는 곳에 있다. ‘제련항종10월래 익기운유응산록’ (帝辇恒从十月来,羽骑云游应山绿)- 황제의 수레는 어김없이 10월이면 오고, 말 타고 운유하니 청산이 반기다.기재에 따르면 745년부터 755년까지 매년 10월이면 탕쇈중(唐玄宗-당현종)은 양귀비와 대신들을 이끌고 화청궁(지)에 와서 피한을 하였는데 이듬해 늦봄에야 창안으로 돌아갔다 한다. 아예 국사를 화칭츠에서 보았다. 화칭츠는 역사의 전성기를 맞았던 것이다. 중국의 현대사에서 화청지 역시 이름을 남기었다. 1936년 12월 12일, 짱쉐이량(張學良-장학량), 양후우청(楊虎成-양호성)장군이 국민당 쟝제이스 총재를 연금한 ‘시안사변’이 바로 여기에서 일어났고 이로서 국공은 제2차 합작을 보았고 장학량은 비극의 후반생 씨앗을 심었던 것이다. 지금도 화청지에는 장개석이 머물었던 5칸 집 옛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서안에는 너무나 많은 고적들이 모여 있다. 80 킬로미터 상거한 곳에 당태종 리쓰민 (李世民-이세민)의 황릉이 있고, 동쪽 70킬로미터 되는 곳에 있는 루관대(楼观台)는 성인 노자(老子)가 《도덕경》을 저서한 성지이며, 시안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친스황릉, 친스황병마용이 도사리고 있다. 시안에서 120킬로 상거한 곳에는 중국 5악의 하나인, 준엄함으로 이름난 화산이 솟아있다. 시안성벽은 가장 완정하게 보존된 중국 고대 성벽 건축으로서 세계에서 현존한 규모가 제일 크고 제일 완정한 고대군사성보시설이며 고대시안의 표지 건축물이다. 서인 남교 대자은사(大慈恩寺)내의 대안탑(大雁塔)은 ‘서유기’의 주인공 당나라 당승이 인도에서 취경(取經)하고 돌아온 후 역경과 장경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도 안탐의 양식을 모방하였다하여 안탑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도시의 역사는 그 민족의 역사라고. 시안을 두고 이르는 말 같다.  
63    60. 상상을 초월한 상상: 세계 제8대 기적 - 친스황병마용 댓글:  조회:1220  추천:29  2011-03-21
중국문화풍경 6060. 상상을 초월한 상상: 세계 제8대 기적 - 친스황병마용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인은 알 수가 없는 상대라고 늘 말한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노리는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은 옳은 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 이것이 바로 중국 사람이다. 그중 하나가 시안 친스황병마용이다.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가 세계 제8대 기적이라고 극찬했던 것.‘황제’란 말은 한국 사람들도 익숙하다. 바로 이 ‘황제’란 단어를 만들어낸 천고의 위인이 바로 친스황(秦始皇-진시황)이다. 13살에 왕위에 올라 39살에 황제라 칭하였으며 기원전 230년부터 전 221년 사이에 전국시대 6국을 멸하고 중국통일 하였으며 다민족 전제주의국가를 세웠다. 친스황은 살아서 장성을 쌓고 민간에서 몰수한  무기 12개 금사람을 주조하였다. 아방궁과 여산묘(骊山墓)를 수건하였다.  수천 명 동남동녀를 동해로 보내 신선을 구하고 장생불로약을 얻으려 했다. 살아서 폭군의 악명과 기적을 남기고 죽어서는 땅 밑에 병마용을 묻었다.  1974년 3월. 친스황릉 동쪽 서양촌의 농민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하게 도용의 쪼박과 청동병기를 발견하였다. 수천 년 땅 밑 5미터 깊이 속에 잠들었던 수천의 진나라 용사가 땅위에 솟아오르는 기적의 순간이었다. 20세기 고고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였다. 친스황병마용은 친스황릉과 1.5킬로미터 상거하며 1호, 2호, 3호 갱을 주체로 하는 친스황병마용박물관은 부지 300여 무로서 규모가 굉대하고 기세가 웅위롭다. 역사 기재에 따르면 친스황은 70여 만 장인들을 동원하였으며 건조시간은 38년 이란 기나긴 세월을 이어왔다. 1987년 12월, 친스황릉과 병마용은 《세계유산명록》에 이름을 올렸다. 병마용에는 8000 병마용이 부활한 군단마냥 친스황릉을 지키고 있다. 친스황릉에서 발견된 청동 마차 무게는 2.3톤이며 7000개의 부속으로 되었다. 마차 천장 청동 덮개 막의 가장 얇은 곳은 1mm에 불과하다. 또 직경 6mm, 길이 5m인 청동선도 있다. 야금술의 수수게기이다. 2003년 1월 3일자 중국 원휘보오(文滙報-문회보)는 친스황병마용 ‘발견권’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시안시임동구 양씨 등 3명은 9명의 병마용 ‘발견자’를 대표로  진용박물관과 섬서성 문물국에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이들의 요구하면 ‘진병마용발견인’이라는 증서를 주고 두 번째는 병마용 1호 갱 소개에서 ‘당지 농민들이 우물을 팔 때 발견’이란 글 중 ‘농민’을 자기들의 이름으로 고쳐달라는 것이다. 이들의 요구가 거절된 뒤 시안 임동구 수리사업대에서도 친스황병마용관에 신청을 내어 소속 임원 손씨 등 사람들의 병마용 ‘발견권’을 인정해달라고 하였다. ‘신청보고’ 형식으로 이런 제기하다니, 이 역시 상상을 초월한 상상일 것이다.
62    59. 중국의 미녀: 등전간월 월하간미인(燈前看月 月下看美人) 댓글:  조회:1252  추천:33  2011-03-16
중국문화풍경 59 59. 중국의 미녀: 등전간월 월하간미인(燈前看月 月下看美人) 화산에서는 봉우리 보고 황산에서는 구름을 보고 태산에서는 소나무 본다. ‘燈前看月 月下看美人’-등잔 앞에서는 달 보고 달 아래서는 미인을 보다. 중국에는 미녀에 관한 전설이 많으며 또 민간에서 자주 유행된다. 중국 고대 4대 미인이라 하면 춘추시기의 시쓰(西施-서시), 서한시기의 왕쏘우쥔(王昭君-왕소군), 삼국시기의 디요찬(貂蝉-초산), 당나라의 양뀌퍼이(楊貴妃-양귀비)를 말한다. 사자성어 ‘침어낙안 폐월수화(沉鱼落雁,闭月羞花)’는 4대 미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침어- 전설에 의하면 시Tm가 월나라 포양(浦陽)강변에서 실을 씻고 있었는데 고기들은 그녀의 미모를 보고 놀라서(부끄러워) 물밑으로 숨어버렸다. 낙안- 왕쏘우쥔은 시집가는 길에 사막을 지나게 되었고, 자신의 비운을 감탄하면서 말 잔등에서 ‘출채곡(出寨曲)’을 탔더니 날아가던 기러기들이 슬픈 곡소리에 분분히 땅에 내려앉았다. 폐월- 디요찬이 화원에서 달구경하던 중 구름이 달을 가리웠다. 왕윤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초산이 달보다 예쁘다고 찬미했다. 수화- 양뀌퍼이는 꽃구경 중 자신의 운명을 감탄하며 손으로 꽃을 만지었다. 꽃술이 졸아들고 꽃잎이 내리 처지는 것이었다. 궁녀들은 꽃들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한다고 양뀌퍼이의 미모를 찬양했다. 중국에는 또 4대 명기가 있다. 천왠왠(陳圓圓-진원원) - 성은 형(형)씨, 어릴 적 어머니를 에우고 이모부를 따라 진원원이라 개명하였다. 소주의 무희였으나 문묵을 익혔고 미모로 이름이 자자했고 나중에는 우싼뀌이(吳三桂-오삼계) 첩으로 들어갔다. 리찡(李靖-이정) - 원명은 짱추천(张出尘-장출진), 수나라 대신 양소의 시기(侍妓)인데 늘 붉은 깃털을 들고 있었기에 홍불녀(红拂女)라고도 한다. 위쇈지(鱼玄机-어현기) - 장안 사람이며 당나라 시인, 시동(诗童)으로 알려졌다. 이익의 첩으로 있다가 출가하여 도사가 되었고 반 기생적인 생활을 하다가 시녀를 죽인 죄로 사형을 당하였다. 리스스(李师师-이사사)- 사(師)는 부처의 제자라는 뜻, 염색방의 딸로서 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기생집에 팔려갔다. 금기서화(금기서화)에 능했으며 미모로 이름을 날리었고, 송나라 휘종의 총애를 받았다.  중국에는 4대 미인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유명 요리도 있다. 서시 고향의 ‘서사설(西施舌), 상하이의 귀비닭(贵妃鸡), 초산두부(貂蝉豆腐), 소군오리(昭君鸭)가 그것이다. 또 서시의 고향에서는 작년 4월에 제1회 중국 서시문화절이 성황리에 열리었다. 서시의 고향 고리(故里)는 ‘천고의 미의 원지’로 부상하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중국 고대 4대미인은 모두 두 번 이상의 혼인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녀불사이부(“一女不事二夫)-여자는 두 남자 섬기지 않는다. -의 봉건사회에서 이 역시 천고에 길이 남을 것이다.  양옥환은 사랑을 위해 재가했고 왕소군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초산의 재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서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재혼의 범례로 칭송받고 있다.    
61    58. 전설의 산 화산: 화산자고일조로(華山自古一條路) 댓글:  조회:1585  추천:24  2011-03-14
중국문화풍경 5858. 전설의 산 화산: 화산자고일조로(華山自古一條路)화산자고일조로(華山自古一條路)-화산에는 자고로 길 하나밖에 없다. 중국의 40대 중반들은 영화 ‘화산을 지혜롭게 탈취하다(智取華山)을 기억할 것이며 화싼의 험난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화싼(華山-화산)에 대한 명구가 있다. 자고화산불납량 황제노자관불착(自古华山不纳粮,皇帝老子管不着)-자고로부터 화싼은 황량을 납부하지 않으며 황제나 벼슬아치도 이를 어찌할 수 없다. 산이 높으니 황제의 위엄도  멀어지는 격이다. ‘뽀랜떵’(寶蓮燈-뽀랜떵)은 중국 가가호호에 알려진 경전신화이야기이다. 홍콩에서 20집 드라마로 제작하였고 또 만화영화, 무대극으로도 편성되었다. 중국CCTV에서도 ‘뽀랜떵’을 방송하였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몰아왔고 옥고까지 치른 류쑈우칭(劉曉慶-유효경)이 측천무후 배역에 이어 뽀랜떵에서 서왕모 역을 맡아 더 인기를 모았다. ‘뽀랜떵’ 중 침향이 산을 가르고 세 성모를 이야기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화산 서봉에 있다. 서봉은 화산에서 가장 수려하고 험준한 산봉이다. 서봉 산정 취운궁 옆에 중간이 벌어진 거석-부피석(斧劈石)-도끼로 깐 석-이 있고 돌 옆에 긴 자루의 도끼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당년 침향이 산을 가른 도끼(神斧)라 한다.서악 화산은 섬서(陝西-섬서)성 화음현 성남에 위치, 해발 2200미터이다. 북쪽으로는 황허를 굽어보고 남쪽은 진령과 이어지며 먼 곳에서 바라보면 그 모양이 꽃 같다하여 화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또 서쪽이 쏘우화싼(少華山-소화산)과 인접하기에 타이화산(太華山-태화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싼은 자고로부터 외길밖에 없는데 북에서 남까지 약 20킬로미터이다. 산 위에서 많은 고대 건축물이 있어 유람객들은 선경에 들어선 느낌이 있다. 화싼의 선인장은 다양한 형태로 독특한 경치를 이룬다.당나라 대시인 리빠이(李白-이백)의 시구 ‘巨灵咆哮劈两山 洪波喷流射东海’가 화산의 전설을 말하고 있다. 대우치수 때 황하가 두 산에 가로막힌 것을 거령(巨灵)이란 힘장사 신이 한 손으로는 남쪽의 화산 산정을 쥐고 발로 북쪽의 쭝툐오싼(中条山-중조산)을 밀어 물길을 내었다. 하지만 너무 힘을 쓴 탓에 화산도 높은 것과 낮은 것으로 갈라졌는데 높은 것이 지금의 화산, 낮은 것은 소화산이 되었다. 지금도 화악봉 정상에 남긴 거령신의 다섯 손가락과 손바닥의 모양을 똑똑히 볼 수 있다.  화산에는 동, 서, 남, 북, 중 5개 봉이 있으며 주봉은 세 개인데 남봉 ‘낙안’(落雁)은 최고봉으로서 해발 2160미터이고 동봉 ‘조양’(朝阳)과 서봉 ‘연화’(莲花)를 합쳐 ‘천외삼봉’이라 부른다.         동봉에는 ‘도기정(赌棋亭)’이 있다. 봉우리에 조양대가 있어 일출을 볼 수 있기에 조양봉이라도 한다. 부근 청허동(清虚洞)앞에 봉우리 하나가 있으며 산정에는 양철로 만든 정자하나와 철로 된 장기판이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송나라 태조 쪼우쾅인(赵匡胤-조광윤)는 이곳에서 진단(陈抟)과 화싼을 걸고 장기를 들었는데 결국 송나라 태조 조광윤이 패하여 진단이 화싼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 이 정자를 도기정이라 부르게 되었다.화싼은 시안(西安)기차역에 관광버스로 통할 수 있다. 교통버스 18위안의 거리. 서안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화산은 또 하나 마음의 자석이 될 것이다.
60    57. 중국의 제일 명산 황싼: 황산운무갑천하(黃山雲霧甲天下) 댓글:  조회:1487  추천:27  2011-03-10
중국문화풍경 5757. 중국의 제일 명산 황싼: 황산운무갑천하(黃山雲霧甲天下) 구름과 안개가 뒤엉키어 운무를 만들고 운무는 뭉쳐서 바다를 이루고 바다는 바위에 부딪쳐 파도를 일구고 파도는 흩어지면서 하늘을 이어놓다. 2억여 년 전, 이곳은 바다였고 그 후 세월의 침식과 풍화작용을 거쳐 기암괴석이 산을 이루게 되었다는 일설이 있다. 황산운무갑천하(黃山雲霧甲天下) - 황싼의 구름바다는 천하 제일이다.오악귀래불칸산 황산귀래불간악 (五岳归来不看山,黄山归来不看岳) - 오악을 다녀오면 산을 볼 필요가 없고 황싼에 다녀오면 오악도 볼 필요 없다.중국백성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말이다. 중국 유명한 여행가 쉬샤아커(徐霞客-서하객)이 ‘유황산일기(遊黃山日記)’를 남긴 후로 황싼은 더욱 유명해졌다.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쉬샤아커는 현재에도 대단한 인기를 누르고 있는 역사명인으로서 중국 우시(無錫-무석)에서는 중국 쉬샤아커 국제관광절를 개최하고 있으며 쉬샤아커해각중학교도 있다. 황싼은 고대에는 ‘천자도’라 불렀다. 웅위롭고 수려하고 또 신비막측하여 천제와 신선들의 거주지였다. 진나라 때 사람들은 산의 색상에 따라 이산(黟山)이라 불렀다. 당나라 현종 천보6년(747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전하는데 의하면 황제가 이곳에서 연단하였다하여 황싼이라 불렀다. 황싼은 중국 3대 명산지수, 세계문화와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황화, 장강, 장성과 더불어 중화의 상징으로 된다. 안후이(安徽 - 안휘)성에 위치하며 72개 봉우리와 24개의 계곡이 있으며 면적은 1200평방킬로미터로서 ‘500리 황싼’이라 한다. 황싼은 3일에서 이틀은 안개 날씨, 기송, 기암, 온천, 운해가 제일 유명하다.  황싼의 3대 산봉오리인 연화봉, 광명정, 천도봉은 모두 해발 1800 여 미터이며 10대 명송 중 옥병봉 아래의 영빈송이 가장 유명하다. 높이가 10미터이고 가슴둘레가 0.64미터, 수령은 800년, 황싼의 대표적 경관이다. 베이징 인민대회당 안후이청에는 황싼 영빈송 거폭 그림이 걸려있다. 많은 외빈들이 이 영빈송 앞에서 순간의 기억을 남기었다. 1994년 인민대회당 동대청에도 국화 영빈송을 걸었다. 작가는 황싼 관적 화가 유휘(劉暉)이다.황싼에는 기석들이 가득하다. 관세음을 배알하는 동자, 비래석(飛來石), 바다를 바라보는 원숭이, 수박 먹는 저팔계 등 이름을 가진 것만 1200여 개다.  황싼에는 허다한 물 경치도 있다. 이호(二湖), 삼폭(三瀑), 16천(十六泉), 24계(二十四溪) 역시 볼거리가 가득한 경관이다. 황썬에는 또 시선 리빠이(李白-이백)이 남긴 ‘산중문답’ 등 수편이 시편들이 남아있어 천년 묵 향기를 더해 주고 있다.
59    56. 중국 제왕의 산 타이싼: 태산안 사해개안(泰山安 四海皆安) 댓글:  조회:1360  추천:28  2011-03-07
중국문화풍경 5656. 중국 제왕의 산 타이싼: 태산안 사해개안(泰山安 四海皆安)중국 타이싼(泰山-태산)은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익숙한  ‘태산이 높다한들 하늘아래 뫼로다.’ 중 태산이 바로 싼뚱(山東-산동)성 태안에 있는 타이싼이다. 타이싼은 1987년 12월에 이미 세계자연과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평의위원회는 ‘장엄하고 신성한 타이싼은 2000년래 줄곧 제왕들이 조배하는 대상이었으며 산중의 인문호작(人文豪作)과 자연경관이 완미하게 화합, 융합되었으며 타이싼은 중국 예술가와 학자의 정신원천이며 고대 중국문명과 신앙의 상징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히었다. 문화와 자연을 사랑하고 등산을 특별이 즐기는 한국인들이 한번은 다녀올만한 곳이다. 타이싼(泰山)은 주봉이 1545미터이며 예로부터 ‘오악지수(五嶽支首)’, ‘천하제일 산’으로 불리웠다.  진시황부터 송나라 황제까지 72명 군주들이 타이싼을 찾았다. 친스황(秦始皇)은 등산 중 비를 만나 오대부송(五大夫松)전설을 남기었고 한무제(漢武帝)는 여덟 번이나 타이싼에 올랐다. 타이싼을 찾은 제왕들은 봉선대전을 거행한다. 봉선대전(封禪大殿)은 타이싼의 독특한 고대예의로서 타이싼 숭배와 신앙의 주요내용이다. 하늘의 고시를 새기고 천, 지, 신, 인의 관계를 화해하고 정신의지와 외재행동의 화합통일에 닿는다는 것이다. 당현종 때에는 타이싼 천제에 참가한 관리들에게 관직을 한 등급 올려주는 관례까지 있었다. 泰山安 四海皆安-타이싼이 평안하면 세상이 평안하다.  타이싼 대정(岱頂)일출은 제일가관으로 꼽힌다. 일출의 빛은 불광(佛光)으로 묘사되고 있다. 타이싼의 불광은 매년 6-8월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타이싼에는 또 석각(석각)이 많기로 유명하다. 현존하는 석각이 1696곳. 여기에는 제왕의 친필도 있다. 한국인이 익숙한 공자님도 타이싼에 올랐었다. 이를 기념하여 타이싼에는 ‘공자등임처’(孔子登臨處)라는 경관이 하나 또 생겼다. 금년에 타이싼 동쪽기슭 하양향 서상구촌 남산에서 거대한 기석이 선녀석(仙女石)이 발견되었다. 서있는 것과 누워있는 두 모양인데 3미터 높이에 4미터 너비, 약 50톤 무게이며 석면도형은 달에로 날아가는 상어 그림 같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선녀석 뒤의 천연동굴이다. 고찰에 의하면 선녀석은 1억여 년, 선녀동굴은 1000만년 이상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선녀동굴 입구는 좁아서 한 사람이나 들어갈 수 있으나 동굴 안은 높이가 2미터 너비가 5미터, 깊이가 20미터로서 10여 명을 용납할 수 있었다. 타이싼에서는 해마다 6월경에 타이싼국제등산절을 개최한다. 경제, 무역, 투자, 상담과 함께 진행되는 이 행사는 이미 21차례 진행하였다. 진짜로 유안불식타이싼(有眼不識泰山) - 눈이 있어도 타이싼을 알아보지 못했구나-이다.
58    55. 중국인의 뚝심: 양위중용(洋爲中用) 댓글:  조회:1143  추천:36  2011-03-03
중국문화풍경 5555. 중국인의 뚝심: 양위중용(洋爲中用)중국인은 쉽사리 서양화 되거나 다른 문화에 동화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명확한 철학이 있다. 양위중용(洋爲中用) - 서양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예술, 학술, 과학, 기술, 문화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이 외래어 사용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중국어를 습득한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한자로 표기된 명칭을 보고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외래어의 발음을 중시하는 것 보다는 상형자인 한자 특성을 살리면서 외래어를 번역하는 것이다. 奔馳-중국어로는 쏜살같이 내달리다는 뜻이다, 발음은 뻔츠, 하지만 실생활에서 뻔츠는 독일 명차 벤취(bonze)를 의미한다, 중국어로는 너무나 멋진 외래어 번역이다. 또 있다, 寶馬(보마) - 보(寶)자는 지붕아래 옥자가 묻힌 격이니, ‘보마’는 중국어로는 좋은 말, 보배 같은 말이란 뜻이다. 발음은 보오-마, 실제는 역시 독일 명차 BMW를 이르는 중국말이다. 벤취 보다 더 형상적인 좋은 번역이라 안할 수 없다.可口可樂- 중국어로는 입맛에 당기며 즐겁다는 뜻이다. 발음은 커-커우커어러, 세계적인 음료 코카코라의 중국어번역이다. 발음이 쉬워 삼척동자까지도 쉽게 번질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百事可樂-중국어로는 만사가 즐겁다는 뜻이다. 발음은 바이쓰-커어러, 펩시코라의 중문 번역이다. 같은 음료 SPRING은 雪碧로, 발음은 쉐이삐, 눈 설자에 청록색 벽자, 맑고 시원하고 상큼한 느낌이 저절로 오는 이름이다, 몇 개의 예를 더 보자.金利來-금전과 이익이 온다는 멋진 말이다. 발음은 찐리라이, 세계적인 명제품 금사자(GOLDENLION)의 중문 번역이다. 상상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번역이다.지금은 보편화 된 택시(TAXI), 중국어로는 的士-신사다운 맛이 나는 단어이다. 신사(紳士)와 어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브랜드 신 NIKE, 중국어 번역은 耐克- 발음은 나이-커이다, 나이(耐)는 견딘다, 커(克)는 극복하다는 뜻이 있다. 신발에는 너무나 알맞는 표현이다. 肯德基 - 중국어로는 뜯어서 먹는 닭이다, 德은 적(的)과 동음이며 基는 계(鷄)와 동음이다. 발음은 컨더어-지, 미국의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업체 KFC의 구운 닭이다. 미니치마는 迷你 - 즉 당신을 미혹한다는 뜻으로 번역하였고 전 중국의 방방곡곡을 휩쓴 가라OK는 일본어의 “がろォヶ”의 음역으로 앞 절반 “がろ”는 음역하고 뒤 절반 “ォヶ”는 그대로 옮겨온 특이한 번역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중국인이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뚝심“, 타인을 동화시킬 수는 있어도 자신은 수천 년에 걸쳐 동화되지는 않는 특유의 문화적 생명력이 외래어 사용에서도 돋보이는 점들이 많은 것 같다.
중국문화풍경 5454. 중국인의 숫자 치정: 칠불출문 팔불귀가(七不出門 八不歸家)중국인은 수학에 특수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또 오늘에 이르러서도 특별한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남조시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주충즈(祖冲之-조충지 429-500년)는 대명력(大明曆)을 간행하였는데 391년간 144개의 윤달을 두는 식으로 회귀년을 365.2428148일로 정했다. 또 그는 원주율을 3.1415926과 3.1415927 사이의 값으로 계산하고 아울러 원주율의 대략적인 값은 22/7(3.14)이고, 보다 정확한 값은 355/113(3.1415929) 라는 사실을 밝혔다. 355/113는 유럽에 비해 1,000여 년이나 빠른 것이다. 조상의 유전자를 작용인지 중국인은 일상에서 숫자를 애용한다. 2는 여성을, 3은 남성을 상징하며 5는 2와 3의 결합으로 혼인을 의미한다. 73, 84는 인생의 문턱이라 하여 84살을 넘기면 100살까지 산다고 믿는다. 또 칠불출문 팔불귀가(七不出門 八不歸家)-7일에는 출문하지 않고 8일에는 귀가하지 않는다.- 관습이 있다. 칠출(七出)은 아내가 집을 나간다는 처출(妻出)과 발음이 상사하다. 중국인은 홀수보다 짝수를 선호한다. 길일은 짝수를 선택하며 희사 때 상차림은 짝수의 요리를 올린다. 선물해도 술, 담배는 짝을 맞추어 선사한다.  반대로 백사(白事)-때는 홀수의 요리를 주문하는 관습이 있다.8은 재부와 관련 된 특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하이 경제무역청사도 88층이다. 9는 최대의 숫자로서 황제를 의미한다. 곤룡포에는 9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 중국인은 3자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노자는 3(三)이 만물을 낳는다고 했다. 아마 3은 공간을 만들고 우주를 만든다는 뜻에 기원을 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랜 세월을 거쳐 3은 풍부함, 넉넉함, 완벽함, 그리고 성공 등 다양한 이미지를 담게 되었다.많은 사자성어가 3과 관계있다. 한국인들이 익숙한 삼국정립(三國鼎立)- 천하를 세 개로 나누어 통치하는 주우거량(諸葛亮-제갈량)의 지혜; 삼고모옥(三顧茅屋)-주우거량을 모시려 세 번 초가를 찾는 유비의 정성; 일일삼추(一日三秋)-그리움으로 하루가 삼년같이 길어지는 느낌; 약법삼장(約法三章)-서로 약속을 지키려는 맹세; 삼생유행(三生有幸)-참으로 크나큰 행운을 비유하는 말; 입목삼분(入木三分)- 필력이나 말재주가 강하고 날카롭다; 삼령오신(三令五申)-여러 번 반복하여 강조하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아침에 세 번 생각하고 저녁이 되면 또 네 번 생각하는 불안한 모습; 거일반삼(擧一反三)-한 가지를 배우면 여러 가지를 알다; 삼인성호(三人成虎)-세 사람의 말이 호랑이를 만들어낸다- 등등이 있다.
56    53. 중국 고유어의 매력 2: 떵포 (燈泡-등포)와 왕빠 (王八-왕팔) 댓글:  조회:1481  추천:17  2011-02-21
중국문화풍경 5353. 중국 고유어의 매력 2: 떵포 (燈泡-등포)와 왕빠 (王八-왕팔)떵포우(燈泡-등포)는 중국어 단어에서 상용자로 구분된다. 전등을 켜다는 점등(點燈)으로서 여기서 점(點)은 (불을) 켜다, 붙이다로 사용된다. 점화(點火)의 사용법과 같다. 이 정도의 한어는 중국을 다녀왔거나 어느 정도의 중국어를 학습한 한국인은 알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어떤 때에는 글자의 뜻을 떠나 파생적 의미가 생긴다.두 남녀가 아득한 분위기에서 서로 좋아서 즐기고 있는데 제3자는 모종의 원인(때론 자신도 대방이 서로 좋아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으로 하여 그 장소를 멀쩡하게 지키게 된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 하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처지일수도 있다. 이럴 경우 제3자를 점떵포우(點燈泡) 또는 당떵포우(當燈泡)라고 표현한다. 소경이 촛불을 켜는 것처럼 자신에겐 도움이 없이 초만 낭비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거북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장수의 상징이다. ‘천년 학, 만년 규’인 것이다. 또 거북은 귀한 약재로 쓰이며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거북의 피를 받은 술로 손님에 대접하기도 한다. 중국어에서 거북, 자라를 망팔(忘八)이라 하는데 같은 발음으로 왕빠(王八-왈팔)이라 하면 오쟁이 진 남자를 말한다. 즉 아내가 바람피운다는 뜻이다. 심한 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들을 빗대는 고유어들이 있다. 따이뤼이모오즈(戴綠帽子-대녹모자) 녹색 모자를 쓰다-이다. 여편네가 바람피우며 다니는 남자란 뜻이다. 표현적으로는 이해가 힘든 대목이다. 아마 옛적에 녹색이 가장 천한 색상이여서 아직도 그 이미지가 극히 특수한 분야에 남아있는 것 아닌가 싶다. 황제는 검은색에 붉은 색, 나중에는 누런 황색이었으나 가장 비천한 백성, 차몰이꾼은 녹색단장이었다. 오늘날, 녹색은 옛적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났지만 유독 ‘녹색 모자를 쓰다’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상 싶다.바람피우는 여자를 두고 하는 고유어도 있다. 파신(破鞋)-낡은 신, 구멍 난 신-이다. 여러 남자들이 마음대로 싣다가 팽개치는 허술한 신이라는 표현이다. 더 심한 표현으로는 공공변소(公共厠所)-공중화장실-이다. 남녀의 정감을 떠나서 짐승처럼 배설하는 곳이란 표현이다. 또, 바람난 남자를 빗대는 고유어도 있다. 표오커(嫖客-표객)-몸 파는 기생과 놀이하다-이다. 중국에는 99가지의 집안을 말아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밖에서 오입질과 도박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파설도 취파설표(不怕说赌,就怕说嫖)’- 도박보다 기생 질하는 것이 더 두렵다. 기생께 빠지면 친구마저 없기 때문이다.
55    52. 중국 고유어의 매력1 댓글:  조회:1419  추천:31  2011-02-16
중국문화풍경 5252. 중국 고유어의 매력1: 식초병(醋甁子)과 오징어볶음(炒鱿鱼)중국어에서는 ‘먹는다’(吃)와 ‘마시다’(喝)를 엄격히 구분하다. 대체로 고체, 예로 밥이나 과일이나 고기 같은 것은 ‘먹는다.’고 표현하고 액체, 예로 물이나 차나 술과 같은 것은 ‘마시다’로 표현한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도 있다. ‘흘수’(吃水)-물을 먹는다고 표현할 때가 있으나 그 뜻은 대체로 우물을 마실 때 우물 판 사람을 기억하고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방식으로 물을 씹어서, 음미한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선인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다른 특수한 사례가 있는데 츠추우(吃醋-흘초)-식초를 먹는다-이다. 원래는 허추우(喝醋-갈초)라 표현해야 하는데.자기가 좋아하고 흠모하는 상대가 멀쩡하게 자기를 제쳐놓고 다른 상대와 즐길 때 질투의 일종으로 인하여 가슴이 시쿰해오는 느낌, 그 느낌은 마치 식초를 마신 것 같아 츠초우(吃醋)로 표현한다. 한국어의 질투하다, 시기하다와 같은 뜻으로 통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초병자(醋甁子)-식초병, 또는 초단자(醋坛子)-식초항아리 등 표현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츠초우(吃醋)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어 표현에서는 이렇듯 형상, 느낌을 통하여 의미의 새로운 뜻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초우유위(炒鱿鱼-초유어) - 오징어 볶음요리이다. 일반 대중식당에서 늘 상에 오르는 요리이지만 특수한 장소에서는 완전 따른 뜻으로 해석된다.상사의 눈에 거슬렸거나 자신이 과오를 저질러 직장에서 잘렸다. 백수 신세가 된 그를 중국어로는 초우유위(炒鱿鱼)-오징어 볶음 요리가 되었다고 표현한다. 해고되었다 보다고 더 처참한 처지를 말해주는 사용법이다. 우리로서는 그 사용법에 대하여 어떠한 해석도 하기 어려운 것이다. 직장에서 잘린 것과 오징어볶음요리가 관계가 있는가? 어느 언어학자의 나름대로 해석에 따르면 직장에서 잘렸으니 이부자리를 돌돌 말아가지고 떠나야 하는 신세, 볶은 오징어가  돌돌 감겨있는 모양과 흡사한 것이란다. 중국요리에는 초우유좬(鱿鱼卷-유어권)이란 요리가 있는데 오징어의 한 면을 우물 정자로 저민 후 기름에 볶는데 오징어는 완전 동그랗게 말아진다. 돌돌 말은 이부자리와 흡사했다. 비슷한 사용법으로 홍안병(紅眼病)이란 말이 있다, 즉 눈알이 붉어지는 병인데 질투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을 빗대는 말이다. 저 사람이 홍안병에 걸렸다면 우리말에서는 저 사람이 토끼눈이 되었다와 같은 뜻이다. 사돈이 기와집 져도 배 아프다는 격이다.
54    51. 귀맛 좋은 한자의 숫자: 류류대순(溜溜大順) 댓글:  조회:1415  추천:31  2011-02-14
중국문화풍경 5151. 귀맛 좋은 한자의 숫자: 류류대순(溜溜大順)음악이나 노래 또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으면 우리는 듣기 좋다고 평한다. 청각적으로 유쾌하고 나아가 마음이나 기분이 즐겁다, 하지만 그림이나 도자기 또는 멋진 건물이 아무리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우리를 즐겁게 하더라도 듣기 좋다고 표현을 안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미적 감각은 청각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종의 경우 그림이나 도자기나 건물의 화외음(畵外音)을 우리가 상상으로 느낄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것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어 한자숫자는 듣기 좋다, 나쁘다고 표현을 한다. 중국의 독특한 숫자문화이다. 하지만 중국을 내왕하는 한국인들도 이런 경우를 경험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 본 기사인데 대개 내용은 아래와 같다.스웨덴 사람인데 상하이 동대로(동대로) 놀이감 시장에서 물건을 사게 되었다. 스웨덴에서는 물건 값을 흥정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만약 처음부터 가격 흥정을 시작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한다.  천원이 넘는 물건을 겨우 흥정하기 시작하여 겨우 300여원까지 내려왔다. ‘333원, 최고가격입니다.’ 외국인이 말하자 물건주인 아가씨는 안 된다고 한다. 듣기 싫다는 것이다. 외국인은 당연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가격에 뭐 듣기 좋고 나쁨이 있는가? 나중에 아가씨가 해석하는 것이었다. 숫자 3이 너무 많아 안 좋다, 듣기에 산(散)-헤어지다-과 같아서 우리가 친구로 사귈 수 없다는 듯, 최종 헤어진다는 뜻과 같아서 듣기가 나쁘다는 것이다. 아가씨는 계속해서 340원도 듣기 안 좋고, ‘4’는 죽을 사(死)와 같아 불길하고 350도 재미가 슬하니 나중에 360원으로 하자는 것이다. 류(溜)와 비슷하여 류류대순(溜溜大順), 친구와 헤어진 후에도 순순리리(順順理理)하다는 것이다. 나중에 360원 가격으로 외국인은 그 놀이감을 샀다.  중국에서 숫자는 수의 의미를 떠나 또 다른 뜻으로 통한다. 숫자 8은 발“發”과 동음으로서 횡재의 뜻과 통한다. 자동차 번호나 전화번호에 숫자 8이 많이 들어가면 의외의 가차가 부가된다. 8자가 들어간 특수한 번호를 중국에서는 경매에 내놓는 일이 허다하다.   숫자 9는 오래 될 구(久)로 통하며 최대의 숫자로서 중국인의 총애를 받는다.또 개별적 숫자는 함께 조합되면서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것도 있다. 250 숫자는 중국에서 ‘멍청이’, ‘바보’의 뜻으로 통하며 168 숫자는 이루파아(一路發-일로발)-줄기차게 횡재하다-로서 특히 상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숫자이다.
중국문화풍경 5050. 중국인의 너그러움:  이일경백(以一驚百) 법불책중(法不責衆 )징전필후 치병구인(惩前毖后,治病救人) -과거의 잘못을 교훈 삼아 뒷날을 경계하고, 질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구하다.중국 모저우뚱(毛澤東-모택동) 시대에 늘 쓰던 말이다. 사회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한국인과는 무척 다른 사유일수도 있다.한국인들은 이러한 느낌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말썽이 끊임없다. 매스컴도 끌려 다닐 정도로 피곤한 모습이다. 여권, 야당에서 서로 다투느라 말썽이요, 국회에서는 개회 여부로 시간을 보내고 또 누구는 피 터진 팔을 쳐들고 야만이라 질책하며 야단이요, 기업에서는 비자금으로 검찰에 들락거리고 학교에서는 한 달이 멀다하게 교육인적자원부와 시비 캐느라 바쁘고 노조는 파업으로 난리다. 최근만 보더라도 신정아 파문에 변양균 전 정책실장이 들통 났고 한 신문사는 신 씨 나체사진을 실었다고 공식사과하고  한 단계 마무리 되는가 싶더니 모 신문사 편집이 신정아를 성추행했다는 기사가 뜨고 국회의원은 진실을 조사하라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한다니 반대요, 찬성이요, 집회한다, 단식한다, 힘 드는 줄 모르는 모습이고 이것도 덜 시끄러워  세무총장이 검찰에서 구속되고 다른 쪽은 연세대 총장 부인이 수뢰하여 총장이 물러나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수천 명에 이르는 친일파 명단을 작성하고 청산한다고 재촉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모 국회 검사조가 800만원 넘는 식사를 대접받아 파문일고 성 접대 받았다 안 받았다 자랑처럼 지면을 구기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에게 온통 불만과 불안함을 더해주고 있다. 한국식 민주주의 관리방식일 것이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한국처럼 부정부패가 없는 것도 아니고 법이 한국보다 무른 것도 아니다. 중국 부장급 인물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눈 감고 마음대로 잡아내도 총살감이라는 항간에서 떠도는 말도 수다하다. 중국 복건성의 밀수사건, 요녕성 심양시 시장의 부패사건, 천진 라이원창 사건 등은 그 액수가 한국에서는 거의 선례가 없을 정도로 크다. 그렇다고 중국국민들이 나약해서도 아니다. 체제의 차이를 떠나서 이야기하면 사회를 관리하는 사고방식의 차이이다. 중국인은 모든 사건을 확대시키지 싫어한다. ‘대사화소, 소사화료’ (大事化小 小事化了)-큰일은 작게 하고 작은 일은 없앤다.-이다. 최소한 범위의 타격으로 최대한의 교육효과를 노리고 있다. 주범과 공범을 엄격하게 구분하며 처분에서도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주범에 대하여서는 참초게근(斬草除根)-풀을 베려면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하나 공범에 대해서는 치병구인(治病救人)-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구한다-의 수단을 쓰고 있다. 몽둥이와 당근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중국식으로 말하면 살계급원간(殺鷄給猿看)-닭을 잡아 원숭이에게 보이며 이일경백(以一驚百)-하나로 백 사람에게 경고한다.-하고 법불책중(法不責衆)-법은 많은 사람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 이다. 정적(政敵)은 적을수록 좋으니깐. 중공이 토지개혁 당시 지주, 자본가가 허다했으며 친일파도 적지 않았다. 위만주국이 1932년에 서서 1945년에 망했으니 그 동안 친일파가 얼마나 많겠는가? 일본이 조선을 통치한 것과 달리 위만주국은 중국군대, 중국인 정부를 그대로 두고 중국인을 내세워 통치했으니 친일파가 수십만 명으로 헤아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지주, 자본가, 친일파라 해도 그들에 대한 처벌 수준은 각이 했으면 총살은 극소수에 해당되었다. 위만주국 황제 부의마저도 중공당의 개조를 받지 않았는가?한국에서 만일 위 일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결말을 지었을지 궁금하다. 매스컴에서 떠들고 반대파 지지파들이 논쟁하고  고래싸움에 새우가 죽듯이 나중에 누구도 ‘득’ 보지 못하고 너나없이 깨끗하게 쓸어버렸을까? 그래야만 반대파건 지지파건 뒷말이 없겠으니 말이다. 속 시원 쓸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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