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청도로그인
장학규
1
신우는 달려오는 택시를 막아서며 무작정 손을 설레발처럼 흔들었다. 벌써 20분은 훌쩍 넘긴것 같다. 출퇴근 고봉기도 아닌데 지나가는 택시마다 밉상스럽게 손님이 앉아있었다.
“올라타!”
신우는 위동이에게 소리치고 차 뒤문을 열고 미꾸라지처럼 쏙 기어들어갔다. 비대한 그가 이날처럼 민첩하게 움직인것은 처음이였다.
위동이와 한 아파트단지에 살고있는 신우는 생김새와 알맞게 한국에서 노가다판을 7~8년 구불다가 식당주방장을 한 마누라와 함께 청도로 귀국하여 추어탕집을 꾸린지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신문업을 하는 위동이가 가끔 손님들과 더불어 추어탕집에 다니다보니 친하게 되였고 따지고보니 또 동갑에 한동네여서 바로 말을 놓고 야자치기를 하게 된것이다.
위동이는 실웃음을 가늘게 지으며 미안하다는듯 길옆에서 그들과 더불어 20분간 좋이 함께 택시를 기다렸던 이름모를 두 녀인에게 목례를 올리고 부랴부랴 택시에 올라탔다. 뒤통수에 가시같은 눈길이 그대로 꽂이는것을 육감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자식이, 신사인척 하기는…”
“글쎄 그러나 이러나 욕 먹기는 마찬가지기는 하구나.”
“그러니까 차 몰고 가자고 했잖아”
신우가 투덜대는중에 택시기사가 어디로 갈거냐고 무척 짜증섞인 어조로 물어왔다. 불 같은 신우가 욱 하면서 한 성격하려는것을 위동이가 눈으로 어르듯 말리며
“교남.”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가 인차 이어서
“옛날 해변고속도로로 갑시다.”
하고 보충했다.
산동사내답게 우덕진 체격을 가진 기사는 시다달다 별 대꾸없이 그대로 차를 몰아댔다. 위동이는 이 자식이 도대체 말귀나 알아들었는지 무척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색 않고 신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잔치집 가는데 술 안 먹을수 없잖아. 괜히 차 몰고 갔다가 잡히면 어쩔라고?”
“퍼런 대낮에 웬넘이 잡는다더니?”
신우는 언제 기분 나빴더냐는듯 장난꾸러기처럼 대꾸했다. 위동이는 터덜터덜한 신우가 그래서 좋았다.
“잘못 걸렸다가는 12점이야 한꺼번에. 아니면 보름이구.”
“글쎄 그게 어디 쉽냐구? 얼빤한 넘들이나 걸리지.”
“세상 일 모른다. 거 왕경리 있잖아. IT업 한다던 그 친구말이. 며칠전 우리랑 모가만식당에서 한잔 하고 이촌으로 들어가다가 걸렸어. 면허 찢기구 보름 땡강했어.”
“왕경리 술 별로 못하잖아?”
“히히히…”
“자식이 허파에 바람 들렸나? 헤식게 웃기는…”
“거 청양입체교에서 308국도에 내리면 와리 십자길 있잖아. 거기 교통경찰이 가끔 있는데 왕경리가 용케 경찰 눈을 피해 건너갔거던. 그런데 갑자기 머리에 물이 들어간거야. 아무래도 그 길이 이촌 가는 길 같지 않더래. 그래서 차를 척 길가에 세워놓고 시벌건 얼굴을 한채로 술냄새까지 풍기며 교통경찰한테 다가가 이 길이 이촌 가는 길이 옳냐고 물었다는거야. 흐흐. 자기 절로 지옥문을 열었짐. 얼빤한 자식이 후후…”
“후하하…세상에 술 먹구 교통경찰한테 길 묻는 양반도 있구나 하하하…”
빠끔히 열린 차틈사이로 불어들어온 초봄의 싱그러운 바람이 급작스레 터진 상쾌한 웃음을 그대로 차창밖으로 훌 실어날라갔다.
오전 11시가 성급하게 막 꼬리를 내린 시간이였다.
그들은 지금 친구 덕호의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청양에서 교남으로 나가는 길이였다. 자가용으로도 좋이 한시간 정도는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동북 고향에 있을 때는 현성 사이를 오가는 일이 꽤나 번거롭고 그리고 아주 먼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청도에서 십수년 살고보니 이제는 그 정도의 거리는 대강 이웃에 마실 다니는 느낌이였다.
결혼식은 11시 58분에 거행된다. 이제는 결혼식 시간은 물론 정월 대보름에 왠쇼를 먹고 팔월 추석이면 쭝즈를 먹는 등 대개는 중국인 행세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본뜨면서 살아가고있는 셈이다.
이대로 달리면 그럭저럭 시간을 맞출수 있을것 같았다.
택시는 어느덧 여고구해상대교(女姑口跨海大桥)우를 달리고있었다. 저 앞으로 당장 청도의 새로운 핫이슈로 떠오른 홍도(红岛)가 거인마냥 숨 막히게 다가오고있었다. 미래 대청도의 공간 중심과 교통 중추로 기획된 홍도경제구는 블루경제구가 국가프로젝트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대청도의 새로운 발전엔진으로 부상하고있었다. 한때 청도시정부가 이전해올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더니 새해에 들어와서 난데없이 정무센터가 곧 자리잡을것이라는 관방의 공식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현지정부의 행정심사비준서비스센터의 이전만으로도 홍도는 어마한 파워로 위압감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인구 10만도 안되는 어촌구역에 70만 인구를 수용하는 청도판 ‘포동’을 건설하느라고 여기저기서 공사판이 여념없다.
새우양식장들이 해변가를 따라 촘촘히 널려있는것이 한눈에 보였고 그 너머로 칙칙한 갯벌이 육지까지 길다랗게 누워있었다. 세상에 유명한 홍도바지락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 이곳이 간척지로 변해버린다면 또 하나의 전설이 사라지는 셈인가.
“투다리 총부가 이 동네에 자리잡은지 여러해 됐어. 한회장은 참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야.”
“청도의 전설이지므. 직업소개소로부터 그룹회사 총수, 이건 그대로 드라마야.”
위동이의 찬탄에 신우도 간만에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에 수백개 체인점을 두고있는 투다리는 조선족기업가가 이끌고있는 그룹회사이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교남으로 들어가는중에 길을 잃고 잠간 헤맸다.
“우리도 내려서 교통경찰한테 물을가? 술 먹은것도 아닌데 무서울게 없지 킬킬”
신우가 옆구리를 지르며 킬킬거린다.
덕호한테 전화로 길을 물으니 거듭 창미달전자회사를 지나왔냐부터 물어왔다. 고속도로를 내리면서 바로 왼손편으로 있는 창미달전자는 위동이도 여러번 다녀간 기업이였다. 흑룡강성 탕원현에서 온 김씨성의 조선족이 그 주인이였다. 건물 자체를 구입하고 전자제품을 생산하고있는 김사장은 그래서 청도진출 조선족중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로 세인의 주목을 받는 기업인이였다.
“창미달 지나서 두번째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쭉 달려와. 양옆을 돌아보지 말고 곧추 앞으로 와. 얼마나 푸른 하늘이냐. 그 하늘아래 내가 서있으니까.”
참새같은 친구는 그 와중에도 일본 영화 “추격체포”의 대사까지 흉내내면서 주절거렸다. 려행사를 꾸리는 덕호와는 사업건때문에 만나 사귄 친구인데 말이 쉴새없는게 흠이라면 흠이였다.
그나저나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덕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길에서 버벅이는 사이에 결혼식 시간이 되여 행사장으로 들어가버린것이다. 대신 풋면목이 좀 있는 덕호의 처남이 당황한 눈빛을 하고 길가에서 서성이고있었다.
안내를 받으며 혼례식이 한창 진행되고있는 행사장에 들어가 조심스레 식탁에 앉다가 위동이는 누군가 급작스레 어깨를 와락 끌어안는바람에 초풍할 지경으로 놀랐다.
“니 위동이 아니야? 아이구 여기서 만나다니, 이게 몇년만이냐?”
얼굴도 미처 보지 못했는데 대방이 집안이 떠나갈듯 고아대며 위동이를 더 조여왔다. 위동이는 무안하여 얼굴을 붉히며 손에 힘을 주어 대방의 팔을 뜯어내고 돌아보았다.
실제로 반가운 친구가 맞았다. 한고향 한마을에서 함께 자란 짜개바지친구 범철이였다. 위동이가 대학에 가면서 다시 만나지 못했으니 20년이 다되는 셈이다.
2
느닷없이 웃층에서 들려오는 와당탕 소리에 눈을 뜨면서 습관적으로 손목을 쳐다보던 위동이는 불시에 후다닥 뛰여일어났다가 아 정말 오늘이 일요일이지 그렇게 속으로 주절대면서 도로 벌렁 드러누웠다.
시침은 오전 9시 38분을 가리키고있었다.
교남에서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범철이하고 반가운 김에 잔치상이 파하기 바쁘게 2차로 노래방에 가서 뭉글뭉글한 아가씨를 끼고 양주에 맥주에 와인까지 벌려놓고 마신것까진 생각났다. 그리고 범철이가 황도에서 식품무역을 하고있고 위동이가 어렸을적에 삼촌삼촌하고 불렀던 범철이 아버지가 월요일에 뒤늦은 환갑연을 크게 차린다는 말이 맞춤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깜박했던지는 전혀 모를 일이다. 제길…지난해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드문드문 발생하는 현상이였다. 전에는 아무리 많이 마시고 짬봉하면서 먹어도 흐트러짐 한번 없이 꼿꼿이 자기발로 집까지 찾아왔었다.
(신우가 데려다준거겠지.)
정상적인 생리반응인지 아니면 정말 어딘가 나사가 풀려서 잘못된건지 자신도 알수가 없었다.
오늘은 청도시내로 나가야 한다. 대학동창인 남수가 둘째아이 돐잔치를 굉장하게 차리기로 한것이다. 둘째도 딸년인데 큰딸하고 꼬박 12년 차이나고있었다. 남수는 작은 딸 얘기만 나오면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요즘 청도는 터울차이가 크게 나는 둘째를 낳는 바람이 꽤나 거세게 불고있었다.
남수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저 자식이 어떻게 저렇게 가정적이 되였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대학때부터 남수는 좀 바람기가 있었다. 뭐 바람기라기보다는 허울이 원래 잘 생겼으니까 녀학생들이 잘도 따라다녀 련애경험이 풍부하달가. 아무튼 위동이가 녀학생이랑 말 몇번 못했을 즈음에 남수는 벌써 학교 주변의 루추한 려관방을 자기집처럼 드나들었다.
청도에 와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도 그 식이 장식이였다. 더우기 단위의 파견을 받고 협력해주던 한국사장을 차버리고 포워딩회사를 독자적으로 오픈하고나서부터는 아예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사실 영업을 뛰느라고 여기저기 쏘다니는것도 있었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녀자 사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것이다.
남수는 딸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쯤에 한번 크게 가정이 해체될 위기에 몰린적도 있었다.
그날도 남수는 바이어들과 더불어 노래방에서 2차를 하고 배동했던 아가씨를 끌고 방을 열었다. 수학공식같은 일이여서 그렇겠거니 여기고 각자가 자기 뜻대로 뿔뿔이 헤여졌다. 그런데 남수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마누라한테 교대해야 한다는 핍박감은 있어서 일을 끝내기 바쁘게 아가씨를 쫓아버리고 부랴부랴 바지를 꿰차고 새벽이슬과 더불어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따라 오래동안 독수공방한 남수의 마누라가 발정이 난 모양으로 새벽까지 눈꼽을 뜯으면서 기다렸다가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참지 못하겠다는듯 불시에 그의 벨트를 낚아챈것이다. 순간 고름같은것이 가득 들어찬 콤돈이 거시기에 그대로 걸린채 밑으로 축 처져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엉? 이거 왜 여기 걸려있지?”
그때 술이 확 깨버린 남수가 얼결에 했다는 말이다.
마누라는 히스테리 들린듯 가위를 집어들고 달려들었고 남수는 그러는 마누라를 피해 어느새 문밖으로 도망쳐버렸다.
(아이구 못살아…)
위동이는 그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배를 끌어안고 뒹군다.
아닌 새벽에 동창 마누라한테 불리워가서 추궁당하고 아닌보살하고 헤식은 바보인척 하면서도 위동이는 억울함이나 창피함이나 힘든 느낌이 전혀 없었다. 대신 자꾸 웃음이 복부에서 생겨나 목줄기를 거쳐 구강에서 터지는것을 참느라고 죽는줄 알았다. 남의 불행이 경우에 따라서 전혀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처음으로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그 온몸에 충만하는 에너지를 해소하느라고 그 집을 나서서부터 거짓말 보태 달반가량 미친넘처럼 웃으면서 다녔다.
“이거 왜 여기 걸려있지?”
친구들이 남수를 만나 인사삼아 건네는 말이다.
가끔 “그건 왜 거기 걸려있지?” 이렇게 변형시키기도 하고 좀 멀면 “저건 왜 저기 걸려있지?’” 그런 식으로 시까스르기도 했다.
암튼 그런 남수가 둘째를 만들고나서부터 술담배 끊기보다 더 어렵다는 풍류행객을 칼로 자르듯 그만 딱 끊어버렸다. 마누라도 이젠 다 풀렸는지 남편을 보는 눈이 적의보다는 정이 좀 더 담겨있었다. 그래도 상처는 잘 잊어 안지는지 동창들 모임때면 꼭 과거를 꺼내 한번 료리해야 마음을 놓는다. 그때마다 장소의 분위기는 “이거 왜 여기 걸려있지?” 하는 복창과 더불어 바람 높은 하늘에 띄운 연마냥 붕 뜨군 했다.
열시가 다 되어서야 위동이는 부시시 일어나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30만 좀 넘어 주고 뽑은지 갓 두달도 되지 않는 신형 혼다 엘리시온은 흔들림 하나 없이 장성로를 따라 북으로 굴러갔다. 술에 찌든 몸을 풀려고 힐링스파로 찾아가는 길이였다.
“정사장님, 어서 오세요.”
후론트에서 뭔가 직원들에게 분부하던 미스리가 위동이를 발견하고 멀리서부터 달려왔다. 언제봐도 해사한 미스리이다. 이 힐링스파가 생겨서부터 지금까지 8년간 굳건히 한우물을 파고있는 미스리이다.
“윤사장님은 참 복도 많습니다. 미스리를 저한테 양보하면 안되겠습니까?”
언젠가 위동이가 가목사 출신의 윤사장에게 정색을 하고 건의한적이 있었다. 윤사장이 골프를 치던 손님을 접대하던 힐링스파는 집사같은 미스리의 인솔하에 계속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사장은 있나?”
“진국장이 만나자고 해서 공안국에 갔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아니…”
위동이는 곧추 3층의 남탕으로 들어가 대수 씻은후 다시 4층에 있는 안마실로 찾아갔다. 태국식 진한 마사지를 받고나니 11시반이 되어왔다. 잠간 가운을 입은채로 황토방에서 피곤한 눈을 감았다가 저도 몰래 피씩 웃음이 나갔다. 자기절로도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아닌게 아니라 주변 손님들이 웬일인가 하여 그를 흘끔흘끔 건너다보고있었다.
(이게 아닌데...)
위동이는 머쓱하여 가운을 여비며 일어섰다.
바로 달포전에 위동이는 남수와 더불어 이 힐링스파에서 사우나를 즐기고 갈라졌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보니 남수가 웬일인지 먼저 와 문밖에서 기다리고있었다.
“남아도는 팬티 하나 주라.”
“왜?”
“바지속이 이상하게 허전해서 손 넣어보니 팬티 안입고 힐링스파 나왔네. 이대로 집가면 혀가 열가닥이라도 해명 못해.”
“킬킬킬…이번에는 이거 왜 여기 안 걸려있지구나 흐흐흐”
위동이는 배를 끌어안으면서도 고스란히 새 팬티 한장 찾아 넘겨주었다.
솔직히 나이 어린 동창 마누라한테 시달굼을 받고싶지 않았다. 해명을 하고 증명을 서는 일도 치사했다. 그보다 남수의 진지한 모습이 새삼스레 감동을 주고있었다. 이런걸 두고 격세지감이라던가.
힐링스파를 나와 차에 오르면서 스마트폰을 보니 남수한테서 전화가 세번이나 걸려왔었다.
“웬일이냐?”
“어디 가 죽었다가 이제 나오니? 언제 올거냐?”
“지금 떠나는 길이다.”
“임마 그러면 행사 끝나잖아.”
“끝나면 조오치. 내사 가서 부조돈만 주면 되는데므.”
“돈이 싫단다. 박사가 된다면서 볼편을 쥐였다.”
“정양학교에 우수 학생 하나 생겼구나.”
“누가 아니라니? 교장선생님도 오셨으니까 얼른 와.”
‘알았어.”
오늘은 술을 피할수 있을란지 모를 일이다. 아무렴 차를 끌고가니까 사람을 덜 시달구겠지. 하다못해 누구처럼 술 먹고 길 가다가 어리버리하게 교통경찰한테 길을 물을 정도는 아니 되겠지싶다. 솔직히 청도의 골목골목 길을 교통경찰보다도 더 훤하게 꿰고 있는 위동이기도 했다.
3
아침에 홀리데이인 오피스텔에 위치한 회사에 나가서 작업지시를 하는 사이에도 범철이한테서 전화가 두번 걸려왔다. 어제부터 계산하면 벌써 다섯통째이다. 위동이는 좀 짜증이 났다.
“왜 또 전화니?”
아마도 볼멘소리였던지 범철이답지 않게 기여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쁜 모양이구나? 그럼 끊을게.”
‘아니, 말해. 무슨 일이냐?”
“아버지 그러는데 니가 먹물 많이 먹었으니까 아버지 략력을 소개해주었으면 좋겠다는구나.”
“알았어. 지금 곧 갈게.”
위동이는 수시로 회사 업무를 체크할수 있도록 비서인 미스권더러 하루종일 핸드폰을 켜놓고있으라고 분부하고 바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속도가 빨랐던 모양으로 속이 울렁거리면서 욱하고 뭔가 치밀어올라 하마트면 그대로 오바이트할번 했다. 오래동안 위에 쌓이고 쌓인 알콜이 화학반응을 하는 모양새다.
어제도 안 마신다 안 마신다 하면서도 선후 빼갈 둬병은 들이킨거 같다. 점잖은 교장선생님과는 오래전부터 알고지내는 사이였다. 92무의 토지를 사서 자체 교사건물까지 짓고 새로운 정착지에서 민족교육에 전념하는 정양학교의 이야기는 거의 전설처럼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있었다. 하기에 어떤 장소에서나 위동이는 학교 관계자들이 눈에 띄우면 꼭 찾아가서 깍듯이 인사 올리고 술을 권해왔었다. 어제도 남먼저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술 한잔 권하고 한쪽 구석에 숨어들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동창들이 위동이를 그저 내버려두지 않았다.
“왜 저기 숨어있지?”
왜 여기 걸려있지가 왜 저기 숨어있지로 버전이 바뀐건 물론
“경찰아저씨, 술구멍이 어디유?”
왕경리가 찾아가던 이촌이 어느새 술구멍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어쩌면 청도바닥이 참 작았다. 고작 이틑전 일이 벌써 쫙 퍼진것이다.
그렇게 왁짝 고아대고 히히닥닥거리며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악세사리회사를 운영하는 한국인 문사장의 전화를 받고 대리기사를 불러 청양으로 돌아올때는 별로 길지 않은 초봄의 해가 꼬리를 감춘 뒤였다. 그리고 다시 곧 한국으로 철거하게 되는 문사장과 더불어 섭섭한 술에 위로의 술을 겸해서 두루 3차를 거치다보니 늦은 초봄의 아침해도 빠끔히 동녁하늘을 희게 물들이고있을 때였다.
“어허허…”
하품이 줄달음쳐 나왔다.
교주만해상대교에 올랐을즈음 도어홈에 놓아둔 핸드폰이 성급하게 울렸다. 운전중에 통화하는것도 처벌대상이라지만 망망대해우에 놓인 다리우에서는 감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대교답게 눈뿌리가 모자라게 쭉 길게 드러누운 교주만해상대교는 그저 보기에도 기가 질렸다.
“여보세요.”
“나 문사장인데 정사장 지금 어디예요?”
“아, 고향 어르신이 환갑연을 차리게 되여 지금 황도로 나가는 길입니다. 속이 괜찮아요?”
“지금 막 일어나는 중입니다. 정사장 암튼 대단해요. 또 전투겠네요.”
“매일매일 그렇고 그렇습니다.”
“점심 약주 한잔 할려고 했는데 안되겠네요. 담에 기약합시다.”
“네, 문사장님, 일 잘 될거니까 힘내세요.”
위동이는 진심을 담아 축복했다. 문사장은 위동이가 탄복하는 몇 안되는 한국기업가중의 한사람이다. 한때는 직원이 800여명에 달했으나 최저임금의 상향과 원자재 가격 폭등 및 환경보호정책의 실시로 로동밀집형 기업은 살아갈 립지가 점점 좁아져만 갔다. 여태껏 비쳐낸것만도 다행이였다. 그리고 빚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떠나는 모습도 문사장다왔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고 했네. 내 1년안에 꼭 새로운 아이템을 가지고 다시 오리다.”
엊저녁 문사장이 취해서 곱씹고 곱씹던 말이였다.
황도 금사탄까지 가는데 차가 많이 막혔다. 얼마전 교남시와 통합되여 대 황도구로 거듭난 이 지역에는 경제기술개발구, 보세구, 화물항구 등이 밀집되여있어 청도의 또다른 성장모델로 변하고있었다. 단순히 리모델링이 아니고 거의 재건축 수준으로 간다고 보면 틀림없다.
“너 일본차 몰고도 황도에 막 들어오는구나!”
벌써 밖에서 기다리던 범철이가 과장된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조어도 사건이 불거지면서 발생한 일본제 자동차의 피해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였다. 청도서는 황도의 일본기업이 제일 피해가 심했다. 파나소닉의 전자부품공장 등 일본 기업 10곳에 시위대가 쳐들어가 불을 지르고 생산라인을 파괴했다. 또 대형유통업체인 쟈스코 이오지마를 습격하여 창고에 보관되여있던 상품 1500만 어치의 절반 정도를 약탈해갔다. 도요타자동차 청도판매 1호점이 방화되는 등 타지역에서도 억울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일제 자가용을 가진 사람들은 전전긍긍했다. 차 브랜드에 오성홍기를 딱지처럼 붙이기도 하고 량옆 차문에 “조어도는 중국땅”이라는 글을 스티커로 새기기도 했다.
범철이네 식구들과 더불어 노인의 프로필을 정리하고보니 행사 시간까지 아직 시간반 정도 남아있었다. 소대 대장까지 하면서 위세가 있었던 범철이 아버지는 어느새 버쩍 말라 한없이 작아진 느낌이였다. 대신 범철이 어머니는 옛날 그대로 인정이 넘쳐나 시종 위동이 옆에 붙어앉아 손을 잡고있었다.
“어렸을때부터 공부 잘하더니 끝내 출세했구나.”
“범철이에 비하면 나는 거지나 다름 없어요.”
“넌 기자잖아. 돈 가지고 바꿀수 없지.”
범철이 아버지가 맞춤하게 끼여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쉽지 않게 홍조가 떠오르고 눈에는 광채가 났다.
“범철이 고생 많이 했네라. 배운게 있나? 뒷심이 있나? 고작 돈 3백원을 차비로 청도 와가지고 머리가 비였다고 한국사장의 괄시를 받으면서도 꾹 참고 10년 꼬박 쌍발했는데 망할넘의 사장이 오밤중에 튀는 바람에 근 2년 노임을 날리고 허망 나앉았어.
“아버지…”
“넌 가만 있어. 맞지 않나. 겨우 거리바닥에 천쪼각을 펴놓고 한국식품을 소매하다가 청관넘들한테 구박은 또 얼마 받았다고. 차차 작은 가게 하나 임대했는데 이번에는 공상국, 세무국, 소방대에 깡패까지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걸 시다바리하느라고 똥줄 뀌였어.그렇게 지금까지 6년 좀 넘어 체인점만 네개여.”
“우리 아버지 노망이셔. 나가 담배 한대 피자.”
범철이에게 끌려나가면서 위동이는 참 오래간만에 따스한 인정을 느꼈다. 사실 범철이한테 청도 조선족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신우는 수년간 부부가 한국가서 일해 목돈을 들고 와서 창업했고 남수는 대학 졸업후 특수인재로 청도에 인입되였다가 독립한것이다. 위동이 자신은 본사의 파견을 받아 온것이다. 그러니까 적수공권인 범철이는 순수 자기 노력과 힘으로 일어선것이다.
“오늘 저녁 우리집에서 밤 새도록 옛날 얘기랑 하자. 우리 부모님들이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 오래간만에 본다.”
“나도 그러고싶어. 그런데 아무래도 다음날로 미뤄야 할것 같구나.”
“왜?”
“찐따거라고 아는지 모르겠다. 한때 시남구 지역에서 내노라 하던 양반이야. 호텔도 하고 복장공장도 차렸던 분이야.”
“소문 들어 알고있어.”
“그분의 장인이 오늘 새벽에 세상 떴다는구나. 오늘 밤 지켜주고 내일 화장터까지 가야 해.”
“실은 나도 친구들 만나면 그저 넘기기 어렵지.”
4
황도를 떠난것은 저녁 8시가 좀 넘어서였다.
차를 몬다는 핑계를 내세웠어도 어차피 맥주 두컵 정도는 마신것 같았다. 거기다 전날의 알콜이 채 분해되지 않은 상태여서 슬그머니 울기가 올랐었다. 다행히 범철이 부모가 위동이를 붙잡고 앉아 호랑이 담배 피울적 얘기를 늘어놓는바람에 엉거주춤 그때까지 주저앉았다가 저녁밥까지 얻어먹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교주만 해저터널을 벗어나면서 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였냐를 깊이 느꼈다. 7800메터나 되는 바다밑 긴 터널을 지루하게 달리고 금방 출구를 나와 유턴하는데 앞에서 느닷없이 경찰이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정례검사입니다. 면허증 좀 봅시다.”
(나무아미타불!)
속이 철렁했지만 내색않고 침착하게 면허증을 찾아 넘겨주었다. 경찰은 대수 훑어보는듯 하다가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전문 술냄새만 맡는 경찰의 얄팍한 수작이였다.
“하이얼로에 가자면 어떻게 가지요?”
엎딘김에 절이라고 위동이는 경찰에게 가까운 길을 물었다. 느닷없이 술 먹은 왕경리가 떠올라 입가에 묘한 미소를 떠올렸다. 순간이나마 괜히 왕경리처럼 긁어 부스럼 만드는게 아니냐는 위구심도 없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경찰은 상세하게 가르쳐주는것이였다.
“저 앞의 동서쾌속도로에 올라 그대로 곧추 달리면 하이얼로가 나집니다.”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위동이는 더이상 지체없이 액셀러레이터를 지그시 밟았다. 가끔 40킬로, 60킬로 하면서 속도제한피켓이 나왔지만 별로 짜증내지 않고 가라는대로 느끗하게 차를 몰았다.
어림잡아도 아마 1년에 화장터 출입을 스물번은 하는거 같다. 대수 그런대로 그럭저럭 지낼수 있는 집은 상여가 나가는 시간을 맞추어 화장터에 가면 된다. 그러나 연고가 있어 좀 가깝고 앞으로도 꾸준히 함께 가야 할 집은 밤시간을 함께 보내주는게 법처럼 되여있다.
장례집은 자정전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초저녁쯤엔 친척들이 망자를 지켜준다. 그리고 청도는 조선족로인협회가 동네마다 있어 상사를 도맡아 처리해주고있다.
친구들이나 동료 또는 가까운 사람들이 날을 새는것은 솔직히 주인의 면목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봐라, 이런이런 사람들이 와서 조문하고 밤을 함께 새준다 뭐 이런 심리가 다분했다. 신분이 어지간한 친구가 많고 힘이 되여주는 형제들이 적지 않다는 무언의 선언도 되는셈이였다. 모여온 사람들은 별로 할 일도 없고 늦은 밤에 술 한잔 나누고 그다음은 트럼프판을 벌리는게 관례였다.
찐따거는 말그대로 김씨 형님이란 말이다. 찐따거는 연변 출신으로 지금도 중국말에 엄청 서툴고 입만 열면 진한 사투리를 쓰고있다.
언젠가 조선족 망년회때 찐따거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연변버전으로 엮어 대박을 터친적이 있었다. 제목부터 깔끔하게 ‘천지꽃’이라 고쳐 불렀다.
내 베기시러 가게쓰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뭐이라 아이 할께 콱 갑소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천지꼬즈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망태기로 끄너가지구 그기다가 너러놓겠쓰구마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게가는 발짝마다 그 꼬즈 (가시는 걸음 걸음 노인 그 꽃을)
막 디디메 콱 갑소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내 베기시러 간다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써거져도 아이 울겠쓰꾸마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쳤나싶었지만 그 집에 가보면 교육사업을 하면서 받은 상장들이 수두룩했다. 연변주급은 물론 성급, 전국급의 상장도 있었다.
그리고 한족 친구들도 어지간히 많았다. 중국말이 나가지 않아 갑자르는것만 보면 어떻게 의사교류가 되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옆에는 중국인 친구들이 빌사이가 없었다.
찐따거는 청도바닥을 남보다 좀 일찍 밟은 편이였다.
80년대 말이였다. 여름방학시간을 리용하여 그 세월에 아주 희한한 물건이였던 데코데를 가져다 팔려고 광주쪽으로 나가다가 잠간 청도에 들르게 되였다. 속이 뚝 떨어지게 된장국 한사발 먹으려고 려관 주변을 발칵 뒤집었지만 조선족식당이라군 없었다.
(이게 될만한 장사군!)
찐따거는 그 길로 고향으로 회군하여 학교에 사표를 낸후 가산을 다 팔아가지고 다시 청도로 왔다. 그렇게 식당을 시작했다가 규모가 좀 작은 호텔로 번져졌고 다시 호텔에 든 한국손님과 합작하여 복장공장을 꾸리는데로 나아갔다. 찐따거는 드물게 처음부터 창업루트를 걸어온 사람이였다.
물론 일사천리로 내달린것도 아니였다. 한번은 복장 원단이 자꾸 딸려 80만원을 요구대로 원단공장에 선불해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와야 할 원단이 감감무소식이였다. 모든 라인이 3일이나 멈춰서는 사고가 터지고 전화로 사정하고 사람이 찾아가 다그치고 해도 진씨 성의 한족사장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해보니 진씨가 원단을 다른 회사에 우선 공급하고있었던것이다. 어차피 이쪽은 선불금을 냈으니 코가 궤여졌다는 계산이였다.
“이 간나새끼 내르 얼빤하게 보느구나.”
동업자인 한국사장의 눈치도 눈치거니와 당장 코앞에 다가온 납기일이 더 큰 문제였다.
찐따거는 무작정 가스통 두개를 차에 싣고 진씨네 공장으로 찾아갔다.
“천창재, 챈디 뿌요라. 뚱씨 게이뿌게이? 뿌게 워 스라.(진사장, 돈은 싫다. 물건 줄래 안줄래? 안 주면 난 죽는다.)”
찐따거는 가스통으로 진씨의 사무실 출입문을 막아놓고 밸브를 틀어 연후 곧바로 그 우에 앉으면서 주머니에서 라이타를 꺼내들었다. 너 죽고 내 죽자는 찐따거의 거동에 진씨는 그만 아연실색하여 부들부들 떨었다.
“찐따거, 지금 당장 보내줄테니까 이러지 마오.”
그 진씨가 바로 위동이보다 한발 앞서 조문을 와서 인사중이였다.
“정사자이, 느께와쓰까 벌금해야겠다이.”
찐따거는 뒤이어 들어서는 위동이를 다짜고짜 식탁쪽으로 끌어갔다.
“술마개 누가 따주.”
오래동안 서로 다녀 벌금이란게 술 먹인다는 소리란것을 잘 알고있는 위동이는 사양도 없이 술잔을 받았다. 오늘은 다시 움직일 일이 없으니 술 먹어도 괜찮을거 같았다.
저쪽 안쪽에서 알만한 사람들이 벌써 “떠우띠주”를 노느라고 정신들이 없었다. 구경군중에 시립병원에서 신경외과전문의로 일하는 장박사가 보여 손을 들어 인사를 보냈다. 장박사가 답례를 하는상싶더니 어느새 사람들틈을 비집고 다가왔다.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장박사에 진씨까지 끼여들어 술상이 꽤나 법석거렸다.
5
철썩 철썩
파도가 여느때보다 사나왔다. 찬공기가 몰려오면서 기온이 떨어질거라더니 아닌게 아니라 바람이 기승을 부린다. 왁작지껄하던 인간들의 소음이 가뭇 스톱되고 유독 바람소리가 회오리치는게 섬찍하기도 했다.
“제일식당이야. 싹다 그기로 와야대.”
찐따거가 일행을 와락 이끌고 떠나간 마당에 위동이와 장박사만 남았다. 따로 약속한것도 아니였지만 암묵적으로 뭔가 통하는 모양이였다.
찐따거의 장인은 원래 묘지를 사서 안장하려고 했었다. 저그만치 십수만원을 써야 했다. 사전에 노인협회에 자문했었는데 묘지를 쓰면 첫 삼년은 설이나 지일날은 물론 청명, 추석 등 날에도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계획을 취소했다. 상주여야 할 아들은 한국에서 일하고있고 딸 하나는 고향에 그대로 있었다. 찐따거 말을 빈다면 자기도 언제 어디로 훌쩍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 제사상을 모시기 어려웠던것이다. 불확실성은 화장터에 납골당을 모시는 방안도 부정했다. 결국 노인들의 건의대로 골회를 바다에 뿌리는걸로 결정되였다.
“어쩌면 바다물을 타고 정말로 고향에 찾아갈지도 모르잖아요.”
장박사는 약간 비감에 젖은 어조로 낮다랗게 말했다. 원래 목소리가 작은데 어조마저 착 갈아앉아 위동이는 귀를 곤두세워야 했다.
“내 말은 저 노인이 내일쯤은 조선반도에 등륙할거란 말이요.”
위동이는 본능적으로 장박사의 손길을 따라 바다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해빛이 맞춤하게 반사되면서 눈을 자극하여 눈물방울이 맺혀졌다. 장박사는 시무룩이 웃었다.
“감성적이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위동이는 뭐라고 변명하려다가 별로 무료한 노릇같아서 다시 눈길을 해변으로 돌렸다. 저 앞으로 올림픽요트센터가 바라보였다. 북경올림픽을 계기로 건설된 요트센터는 지금 청도의 표지성건축물로 자리매김하고있었다. 부지면적이 45헥타르가 되는 거대 건축군을 해변에다 지으려면 무엇무엇해도 방수처리가 엄청 중요했다. 그런데 그 방수공사에 리짼방수라는 청도조선족업체도 참여했다. 이 회사는 노산구정부 프로젝트는 물론 북해중공조선공장과 청도해저세계의 방수업무도 맡아 시공하기도 했다.
“바다도 누군가 흔드니까 출렁대는게 아닙니까?”
위동이는 자기도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내뱉고 장박사를 건너다보았다.
“자, 우리도 자리 찾아갑시다.”
“좋지요. 글찮아도 한잔하고 싶었습니다.”
둘은 마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흥부식당’이였다. 한국영사관이 위치한 부근인데 조용하고 아담하고 고급스러운 한국식당이였다.
장박사와는 13년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때 위동이는 금방 청도로 조동해온 장박사를 취재하게 되였다. 한국기업의 대대적인 진출과 더불어 청도는 여러 분야의 조선족 인재가 대폭 수요되였다. 대부분 투자유치분야에 집중되였지만 의료, 세관, 공항, 관광, 매체 등 부문에도 동북의 조선족들이 수혈되여왔다. 장박사도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나이가 동갑인데다가 두루 가정사도 엇비슷하고 위동이 엄마와 장박사가 또한 동성동본이여서 둘은 만나자마자 인차 친한 사이로 되였다. 장박사는 그후 병원의 파견으로 일본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실은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따로 만나자고 눈치했습니다.”
장박사는 참 난감하다는듯 서양인들처럼 두팔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가 과장된 제스처를 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그만큼 많이 고민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우리 사이에 우물쭈물할 일이 없잖아요.”
“하긴…내 아무래도 해외동포 하나 만들것 같소이다.”
“엉?”
위동이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두눈을 휘둥그래 떴다. 그러는 위동이가 재미있다는듯 장박사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띄우며 느닷없이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얼마전 카카오톡으로 받은건데 너무 신기해서 그대로 두었소.”
위동이는 스마트폰을 받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요즘의 아들 시리즈”란 문장이였다.
1, 사춘기가 되면 남남, 군대 가면 손님, 장가 가면 사돈.
2, 낳을땐 1촌, 대학 가면 4촌, 군대 다녀오면 8촌, 결혼하면 사돈의 8촌, 애 낳으면 동포, 이민 가면 해외동포.
3,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4, 출가시킨 후에 아들은 큰도둑, 며느리는 좀도둑, 딸은 이쁜 도둑
5, 잘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
6,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메달.
7, 3대 정신나간 여자: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의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8, 노후생활: 아들 둘 둔 엄마는 모시기를 서로 미루는 바람에 오며가며, 딸 둘 가진 엄마는 해외여행, 딸 하나 가진 엄마는 딸집 설거지, 아들 하나 둔 엄마는 양로원.
위동이는 허리가 부러져라고 앞뒤로 몸을 흔들며 히스테리 들린듯 웃어제꼈다.
“껄껄껄…그러니까 명호가 이민간단 말입니까?”
“남은 정색해서 말하고있는데 이러면 너무 하는게 아닙니까?”
“아, 미안. 아까 메시지 너무 웃겨서요. 그나저나 명호 올해 대학졸업이잖습니까?”
명호는 한중수교후 청도호적 첫 조선족대학생으로 화제를 몰아왔던 인물이다.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 떠난다우.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나.”
“심각하군.”
“그러니까요. 난 떠돌이가 우리세대에서 마무리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쎄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는 정말 먹지 못해서, 살기 힘들어서 정든 고향을 떠나온게 아닙니까. 우리까지도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지금은 생각하는거면 다 가질수 있는데도 뭐가 모자란건지?”
“자아가치 또는 인간의 존엄 뭐 그런 유혹때문에 아닐가요?”
위동이는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장박사는 더이상 말이 없이 부지런히 맥주를 들이켰다. 둘은 승벽이라도 하듯이 한잔 또 한잔 들이키다보니 잠간사이에 6병짜리 세트 하나가 없어지고 새로이 한 세트가 들어왔다. 다시 말없이 한병을 비울 무렵 어눌한 무드를 깨려는듯 위동이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위동이가 그걸 무시하고 술잔을 드는데 장박사가 침묵을 깨뜨렸다.
“받어요.”
“괜찮습니다. 또 술 먹자는 전화입니다. 백프로…”
어차피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했다. 남수처럼 꼭 팬티를 입으란 법은 없다. 사람은 노팬티바람으로도 그네를 날릴수 있는거다. 목 졸라 토하게 하는게 무슨 장땡인가. 되는대로 살자. 우리가 이룩한것으로 만족을 하면서 살자. 뒤일은 뒤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하자.
이렇게 장박사에게 말하고싶었지만 웬일인지 그 말이 목안에서 맴돌뿐 도무지 나가주지 않았다.
아무렴 말 안해도 장박사처럼 알만한 사람은 눈길로도 표정으로도 알아듣는다. 무엇이나 다 말해버릴 리유는 없다.
“들은 주령인데 마지막으로 건배제의를 하나 합시다.”
문밖에 대리기사가 대령하고있다는 보이의 전갈을 받은 위동이는 맥주컵을 들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 청도 와서 가족같이 지내온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가 ‘가’하고 선창을 떼면 우리같이 ‘족같이’하고 합창을 합시다 그려.”
장박사는 잠간 어리둥절했다가 불시에 후다닥 뛰여일어나며 잔을 부딪쳐왔다.
순간 청도의 그 하나의 공간에 색다른 주령과 웃음이 동반되여 가득 채워졌다.
“가~”
“족같이~”
그리고 오래오래 회오리가 되여 메아리쳤다.
위동이와 장박사가 어깨동무를 하고 “흥부식당”을 나섰을때는 사납던 바람이 어느새 사그라지고 따스한 봄날씨로 변해있었다.
앞마당의 파란 풀싹이 돋아난 그 사이로 거리로 나가는 길이 유난히 뚜렸했다.
내일도 일상을 계속 영위해가자. 한국인병원의 김원장과 약속대로 먼저 미팅하고 그다음은…옳지 전화 계속 들어오고있지….
2013년 3월 청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