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시대, 위챗의 파워는?
위챗채팅방 '신사모' 설립대회 칭다오서
흑룡강신문사 산둥지사의 위챗채팅방 '신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신사모'로 약칭)'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4월 29일, 1,300여 명 방대한 회원을 가지고 있는 '신사모' 설립행사가 칭다오시 산하 현급시인 핑두에서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칭다오농일식품유한회사 김철웅 사장이 후원,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 회원이 모처럼 신청해 성황을 이루었다.
아침 8시 30분 청양구 세기공원 동문에서 농일식품에서 제공한 버스 두대에 갈라 타고 핑두로 이동한 회원들은 우선 농일식품 공장을 참관했다. 회원들은 김철웅 사장 부부의 안내하에 선후 고추가루 가공공장과 김치가공공장을 참관, 연후 핑두 위안중팡(圆中方)대주점으로 이동하여 ‘신사모’설립대회를 정식 가졌다.
흑룡강신문사 산둥지사는 1997년에 칭다오에 자리잡았다. 내년에 지사 설립 2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산둥지사는 그간 산해관 이남 유일한 합법적인 민족언론매체로서 현지 민족사회의 동태를 즉시적으로 전달하고 당과 정부의 관련 정책을 제때에 소개해왔다. 뿐만 아니라 민족단체의 설립을 주도하고 외자기업 유치를 돕는 등 매체 기능을 훨씬 초월하는 여러가지 많은 일들을 해오면서 민족사회로부터 높은 긍정과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IT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뉴미디어시대가 도래하면서 전통적인 종이매체는 엄중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모바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티비도 이젠 한물 건너간 시점이니만큼 종이매체는 더 엄중한 생존위협에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산둥지사는 진퇴 양난의 기로에 들어섰다. 인쇄비를 체불해가면서 몇년 버텼지만 점점 커가는 흑자 구덩이는 보기만 해도 두려웠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손을 씼고 나앉으면 마음도 편하겠지만 유일한 언론지를 잃게 되는 민족사회는 어쩔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문화관, 예술관, 공립학교, 잡지 등 문화 관련 기관이 전무한 이곳에서 신문마저 사라지면 그 문화갈증을 어떻게 해소한단 말인가?
이런 고민의 와중에 “우리도 한번 위챗공공계정을 개설해보자”는 건의가 나왔다. 2014년 3월 드디어 산둥지사의 위챗공공계정인 '해안선문화예술전파'가 고고성을 울렸고, 이 계정은 말그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해 말에 이르러 ‘해안선문화예술전파’를 팔로우한 팔로워가 1천명 선에 육박했으며 기사 조회수도 500회를 넘기기가 일쑤였다. 그만큼 산둥지사만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우세가 빛을 발했고 따라서 위챗의 파워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2015년 6월 24일에 발표한 '칭다오 강둥숯불구이 해변휴가촌을 찾아서'는 등재한 당날로 조회수 1천회를 돌파, 이후 며칠 동안 신문사의 전화는 휴가촌의 여러모를 문의하는 사람들로 인해 불날 지경이었다. 외딴 지역에 자리잡아 많이 한산했던 휴가촌에서도 갑자기 찾아드는 손님들에게 길 안내하느라고 일손이 딸려 야단법석이었다. 이 기사는 현재까지 조회수 5975회를 기록하고 있다.
산둥지사가 위챗에 올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6년 1월 19일 '백혈병에 걸린 4살짜리 김미나어린이를 도와주세요!'란 글을 발표하면서다. 최다 조회수인 6000회를 기록한 이 기사는 겉잡을 수 없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고 열흘도 되지 않은 사이에 근 10만 위안이란 거금이 모아졌다. 그것도 지사가 위치한 산둥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 지어 한국, 미국, 일본 등지에서 후원금이 쇄도했다. 환자의 부모에 의하면 미나가 입원해서부터 5개월이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총 2500여 명으로부터 30여 만 위안의 후원금이 전달되었는데 대부분 위챗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송금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거였다. 전통 매체는 전달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위챗은 무한한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었다.
2015년 산둥지사는 수년간의 연속적인 적자를 극복하고 쉽지 않게 흑자로 돌아섰다. 몇백 위안의 흑자가 대견한 것이 아니었다. 시대를 빨리 읽고 위챗의 파워를 존중하는 마인드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위챗공공계정이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서면서 팔로워들을 중심으로 위챗 채팅방 개설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증폭했다. 산둥지사에서는 독자들의 수요가 곧 지사의 생존의 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2015년 3월 지사 위챗 채팅방인 ‘신사모’를 개설, 기사를 싣는 공공계정과 독자와의 소통을 위주로 하는 채팅방을 병행하는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신사모’는 회원수가 1500명에 육박하면서 소통외에 취재 주문, 친목모임 주선, 공동구매 등 커뮤니티 역할도 해왔다.
이날 ‘신사모’ 설립대회는 칭다오진달래예술단(단장 엄정숙)의 무용 ‘장백의 진달래’와 ‘천년의 장고소리’로 막을 열었다.
흑룡강신문사 한광천 사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흑룡강신문사는 신문을 사랑하는 여러분을 주주로 모신다.”면서 “우리는 마름노릇을 잘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영만 산둥지사장은 ‘신사모’ 설립 취지에 대해 ‘자유성, 민족성, 공익성, 수익성’으로 귀납하면서 ‘신사모’는 회원들이 만든 집으로서 회원 자신들이 경영해야 한다고 보충했다.
설립식에서는 ‘신사모’운영위원을 임명, 회원수가 많아 채팅방이 3개인 점을 감안해 1그룹에 김광일, 임동호, 이길룡, 박위동, 남비, 김태송씨를, 2그룹에 김성일, 김일, 이성무, 김철, 조남호씨를, 3그룹에 김재룡, 최재문, 김봉웅, 배태남, 황동룡, 김행복씨를 임명했다.
농일식품에서는 이날 설립식의 관명권을 취득, 대형 버스 2대와 점심식사 대접, 그리고 매인당 김치세트 1박스를 후원했다. 이에 앞서 농일식품은 3년전부터 해마다 흑룡강신문에 5만 위안에 달하는 광고를 게재해오고 있다.
농일식품 김철웅 사장(1967년생)은 길림성 영길현 출신으로 199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한 후 칭다오에 진출, 칭다오다원식품의 초창기 주요 멤버로 활약하다가 1996년부터 독립적으로 고추, 마늘, 생강 등 농산물을 한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2000년 7월에 1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남새재배, 생산가공판매를 일체화한 '농일식품유한회사'를 설립하면서 '농일'표 김치를 본격적으로 출시했다. 농일김치는 한국의 CL , 종가집, 농심 등 대표적인 명가에 진출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몰아왔고 짧은 사이에 연간 수출액이 1억위안을 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한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휘청거리기도 했으나 빈사상태에서도 바이어와의 계약을 끝까지 이행한 보람으로 더불 신임을 얻어내며 기사회생했다. 농일식품의 제품은 10여 개 국가로 수출되고 있으며 직원은 260여 명을 두고 있다. 부동의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농일은 현재 제2차 창업으로 중국 최고의 김치공장 건설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농일식품 신공장이 오픈되면 김채생산능력이 일당 80톤에 달하는 업계 굴지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농일식품 신공장 오픈식은 다가오는 5월말에 거행될 예정이다.한편 다가오는 5월 18일에 온, 오프를 일체화한 ‘농일슈퍼’를 오픈하게 된다.
설립식을 마치고 청양으로 돌아온 후 운영위원들은 별도의 모임을 갖고 ‘신사모’의 앞으로의 운영에 관해 열렬한 토론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영양가 없는 펌글의 제약, 기업과 제품의 소개 등재, 오프라인에서의 친목 활동, 공익이벤트 조직 등 다양한 화제가 언급되었다.
이날 설립식에는 농일식품외에도 부산항공에서 칭다오-부산 간 왕복 티켓 2장,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윤동범 회장이 5천 위안, 칭다오 오성골프협회 이춘범 회장이 5천 위안, 칭다오 지은공업무역회사 허헌 이사장이 2천 위안, 칭다오 미시광피부관라센터에서 2천 위안, 칭다오지원화장품회사에서 고급 화장품 2세트와 마스크팩 10통, 하이라이활게 식당에서 200위안 짜리 식권 10매, 동일모자에서 모자 120개, 맥천산장에서 50위안짜리 식권 50장, 김철룡 사장이 고급 호텔방 4칸, 이우시 화잉무역(华英贸易) 장연화 여사가 지능컵 24개, 칭다오 연변상회 전치국 회장이 광천수 200병, 신한은행 이해화씨 비타500을 10박스, 153카센터에서 30위안 짜리 할인권 100장을 협찬했다. 흑룡강신문사 산둥지사에서는 천연소재 라쉬반 팬티 6장과 고급 쿨토시 110개를 선물로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