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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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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교 (彼岸桥)
2012년 02월 03일 12시 30분  조회:2995  추천:23  작성자: 김혁


 2011연변일보” CJ문학상 수상작품 


. 단편소설.

 
피안교 (彼岸)


 
 
김 혁
 

 
 
새로축조된다리를 바라보며그녀는고향의옛다리를떠올려보았다.
고향마을과 시가지를 련결해주는 하늘다리, 굵다란 동아줄에 의지해 그 무슨 작은 요정들이 건너는 동화속 다리인양 반공중에 걸려서는, 바람부는 날이면 단오날 그네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던 하늘다리… 그 다리를 활용하지 않으면 십여리 길을 에돌아가야 했기에 마을사람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그 다리에 몸을 싣곤 했다. 아이들은 그 다리를 건너 시가지 공원으로 희귀동물을 보러 갔고 젊은이들은 그 다리를 건너 시가지의 비디오방으로 한국드라마를 보러갔고 로인네들도 그 다리를 건너 시가지의 장터로 장보러 갔다.
어느 날인가 결국 그녀도 그 다리를 건너가고 말았다. 아버지의 굳은 만류도 물리친 채 손잡고 하늘다리를 건너 비디오방을 다니며 사랑이 싹튼 남편과 함께 시가지의 학교로 전근해 갔다. 민영교원이라는 서러운 홀대의 딱지를 달지 언정 겨우 학생 몇몇에 우사를 방불케 하는 촌마을 학교가 아니라 시가지의 층수 높고 채광 좋은 교실에서 귀티나는 시가지애들을 상대로 교편을 잡고싶었다.
그리고 시가지의 학교에서 민영교원이라는 딱지를 겨우 벗은지 얼마 안되여 그녀는 이번에는 시가지의 큰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고향으로 향한것이 아니라 출국붐의 장대한 대오에 합류해 한국으로 날아갔다. 남편의 굳은 만류를 물리치고서였다.
그렇게 한국에서13년을 지냈고 겨울이 다가오는 처처(凄凄)한 계절. 그녀는 드디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시가지로 들어오면서 기억속에 아련한 다리를 지나다 그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경아성이 튀여 나왔다.
어머, 다리가 변했네요.
예, 1억이나 부어서 다시 세웠답니다. 이제 때깔 많이 변했죠 이곳도…
택시기사는 분명 오랜만에 돌아오는 귀향객에게 관광안내원처럼 자상히 설명해 주었다.
쌍방향6차선도로, 숨통 트이게 훤한 다리로 차량이 마음껏 오가고 교두에 곁들인 부속광장에는 손으로 지구를 보듬는듯한 추상의 조형물이 솟아있는 운치있는 다리를 그녀는 차창밖으로 넋을 잃고 내다보았다.
타향의 품삯팔이에서 온몸 골골샅샅에 밴 채 응어리로 남아도는 피곤을 풀 사이도 없이 그녀는 다리부근에 음식가게 하나를 차리려고 돌아쳤다. 그동안 서울의 갈비집에서 일하면서 어깨넘어로 배웠던 재간으로 갈비집 하나를 차릴 예정이였다. 10년간 손톱 벗겨지게 일한 대가로 두둑해진 염낭사정으로는 가게 하나를 내고 운영하기에는 족했다.
가게를 내줄 건물주인에게 임대료를 내러 가다 그녀는 지금 강변도로에서 그만 용트림쳐 오르는 추억에 발길이 묶인것이였다.
“10년이면 뽕밭이 바다로 변한다”더니 이 자그만 시가지는 그새 많이 변했다. 불과 십여년 사이에 꽤 큰 도시로 변하고, 사람들은 터져날듯 많아지고 사람들의 생활도 뒤집힐듯 변해버렸다. 변한건 시가지뿐이 아니였다. 그녀의 신상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결혼생활이 결국 조종을 울린것이였다.
촌 마을 한 학교의 체육선생이였던 남편은 잘 생긴 얼굴, 큰 키에 적당히 단련된 몸을 갖고 있는 그녀의 첫사랑이였다. 그동안 “기러기 아빠”의 생활에 쭉줄린 나머지 안해더러 돌아오라고 전화에서 매일이고 닥닥질을 했던 남편은 10년채 되던 해에 더는 참아내지 못하고 결별을 선포했다. 남편의 결별선언을 듣고 뿔없는 소처럼 일하기만 했던 그녀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병가를 내고 앓아 누었다. 서로 팽팽히 당겨대던 희망의 줄다리기 한쪽 끝을 남편이 홀연 놔버렸기때문에 그녀가 뒤로 자빠진건 당연했다.
 
귀향해서 맨 처음 한 일이 어쩌면 리혼수속이였다. 딸애의 부양권은 남편이 가졌다. 그동안 엄마라는 존재는 추석이나 설명절때만 걸려오는 전화속의 목소리로만 알아왔던 딸애도 아빠쪽을 원했다.그녀는 주저앉고 싶을 만큼 아득해졌다.
이런것인가? 이런것이였던가? 내가 바랬던것이?
그녀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잉어처럼 싱싱한 청춘에 고향을 떠나 이제 단물 빠진 껌처럼 질기고 뻣뻣해 보이는 얼굴로 돌아온 그녀는 마흔이 훌쩍 넘은 터수의 중년이였다. 그저 무양하게 곧게 뻗어 있는 다리라 믿었던 하늘다리에서 홀연 돌개바람을 만났을 때처럼 그녀는 당혹스러웠다. 발아래로는 아직도 건너야할 거대한 협곡이 밑도 끝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아가리를 벌린 채 존재하고 있었고 이제 그 다리를 어떻게 건너얄지 손잡아줄 사람도 없는 이 순간 아찔한 절망감과 당혹감으로 그녀는 그저 상실감의 동아줄만 부여잡은채 얼어붙고 말았다.
아이의 얼굴만은 한번 보여달라고 간청했다. 두살때 떠났으니 이제 열다섯살 된 딸애를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피자집에서 딸애와 만났다. 쭈볏거리며 자기앞으로 다가온 딸애의 어깨를 겹치고, 등허리를 부여잡고 다독였다. 자기 키를 넘게 훌쩍 웃자라버린 딸애를 의식하며, 어쩐지 자기 피붙이와도 서먹서먹해진 자신을 의식하며 그녀는 또 한번 눈물을 쏟으려 하고있었다. 아무말도 없이 피자의 가녁을 야금조금 뜯어먹는 딸애를 그녀는 자우룩이 젖어드는 눈으로 내내 지켜보았다.딸애는 꼭 처녀적 자기를 닮았다. 볼록한 이마에 초승달눈이며 가끔 코잔등을 찡그리는 모습까지도…
덩그마니 쌍꺼풀 진 딸애의 큰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그 눈은 남의 눈을 맞추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고있었다. 상처입고 두려워 떠는 짐승의 눈이 저럴가. 불안함이라고도, 슬픔이라고도 할수 있는 그 눈동자의 떨림에 그녀는 마음이 저릿했다. 깨끗한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손이 가지 않은 아이, 사랑의 손길 하나 결여된 어줍은 아이를 그녀는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피자 접시를 비우고나서 딸애는 몸을 일으켰다. 저녁자습을 나가야한다고 했다. 그런 딸애에게 그렇다할만한 위안의 말 한마디도 못해 주고 그녀는 그저 응 가봐!하고 응낙하고만 말았다. 그러다 딸애에게 주려고 지갑에서 챙겨왔던 돈다발이 그제야 생각나 딸애를 쫓아 나갔다. 어스름이 내리는 길거리에서 딸애는 어느새 어둠에 스며들고 없었다.
목덜미를 타고 체온을 낮추는 밤바람에 몸을 옹송그리고 그녀는 코잔등을 찡그린채 멍하니 피자집앞에 서버렸다. 가슴이 저린지, 쓰린지, 슬픈지, 그저 멍하게 얼빠져 있었다.
이런 꼴 바라고 내가 그렇게 긴 시간 타향에서 그렇게 독기 하나 품고 손 지문 지워지도록 돈을 벌어왔던가!
그녀는 화대를 채 못받고 손님을 쫓아나온 뒤안길의 녀자처럼 돈다발을 손에 든채 길녘에 서서 그만 서럽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길가는 사람들의 의뭉스런 눈길들이 그녀를 바라고 몰부어졌다.
 
이 십수년간 그녀는 붐비는 다리를 건너는 차량처럼 종착역이나 기착지 같은것을 생각할 사이도 없었다. 그저 다리를 꼭 지나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고향의 현실을 망각한채 머리속에서 홀로 축조되고있는 판타지속 다리를 겅중거리며 허위단심 넘었다. 그동안 그녀는 그렇게 희망과 욕망의 이차선 다리우에 보잘것없이 서 있었다.
한국에 가서 맨처음 갈비집에서 일했다. 분필을 고누잡고 칠판에 판서하던 손으로 기름이 진득하게 달라붙어 번지는 하얀 그릇의 전두리를 행주로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고 세제를 듬뿍 풀어 씻고 또 씻었다.얼굴이 불판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온 몸이 땀에 젖어 몸에서 꿉꿉한 냄새가 날 정도로 일했다.
주인장아낙의 시푸르뎅뎅한 얼굴과 거칠고 천한 언사가 마음에 들지않았지만 그런 일자리라도 차려진것이 그녀에게는 감사한 일이였다. 일을 마치고 탕개풀려 마주한 식사시간, 주인장이 손님이 먹다남긴 갈비를 밥그릇에 담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먹어. 먹을만해.
코잔등을 찡그린채 잠간동안이나마 그녀는 아득해졌다. 그녀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주변 사람들, 그들은 호기심과 홀대를 가득 담은 두눈의 초점을 그네들 형용어로는 “옌벤”에서 왔다는, 툽상스러운 함경북도 말씨를 구사하고있는 어딘가 어리쳐 보이는 그녀에게 모으고 있었다.
절망과 락담에 물젖어 그 손님들이 뜯다만 갈비 한접시를 단숨에 다 먹어버렸고 그런 그를 가게주인은 그냥 괴물보듯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동물원 철창안쪽에서 먹이를 먹는 더러운 동물이라도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밤늦게 일을 끝내고 월세를 맡은 자취방에 돌아왔다. 몸 하나 겨우 뉘일만한 작은 방에 관속 시체처럼 반듯하게 누워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가슴속에 일산화탄소가 들어차는것 같다. 햇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환기도 통풍도 되지 않아 늘 숨막히던 반지하 자취방. 그녀는 침침한 거기 에 처박혀, 조도(照度)낮은 알전구의 빛을 바라고 수선스레 날개를 터는 날벌레들과 함께 하며 고향의 물소리를 이명(耳鸣)으로 들었고 그 우에 가로놓인 하늘다리를 함께 건넜던 남편을, 그 다리가 있는 마을의 학교에서 평생 교편을 잡았던 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전한 옆구리를 의식하곤 엉엉 울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취방밖에서는 길 잃은 바람소리가 요란했다.
강가 강변도로우로 어둠이 성깃성깃 내리고 있다. 주위의 가게들이 불빛을 토해내고 도로변의 가로등들이 초파일에 사찰을 찾는 신자들이 추켜든 제등(提灯)처럼 일제히 불을 밝혀 든다. 산개하는 그 불빛들에 도시는 은성(殷盛)한 빛무리의 향연이다.
리혼수속을 마치고 고향마을을 찾았다. 놀랍게도 하늘다리는 그대로 있었다. 삭풍에 떠는 하늘다리에 “위험! 사용금지”라는 패쪽이 달려 바람에 덜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앞에 점도록 서있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이 하늘다리는 마을사람들의 희망의 유일한 통로였지만 이제 그 다리를 기억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세월동안 무수히 건넜을 다리. 오늘은 왜 이렇게 애틋하게 다가서는것일가!
전장에서 돌아온 귀환병처럼 그녀는 아버지 앞에 마주섰다. 어질러진 채로 가라앉아 있는 집, 그리고 그 안에 고향에 홀로남은 아버지가 천년의 세월을 지나온 미이라처럼 수분없이 앉아 있었다.
이제야 과연… 돌아오는가 보구나!
숨가쁜 기침에 감동을 섞어 아버지는 그녀를 맞아주었다.많은 말을 하려 했으나 기침이 아버지의 말을 끊어버렸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듯이 쿨룩거리는 기침은 선뜻하고 요란스러웠다.
싸락눈이 내려 앉은듯한 흰 머리칼, 시든 배추 겉잎같은 쭈글쭈글한 얼굴주름, 그리고 얼굴 곳곳에 앉은 검버섯, 꺾쇠인양 휘여진 허리… 하지만 숲속에 묻혀사는 산짐승의 눈처럼 눈동자는 청청하게 살아 있었다. 그 눈동자만이 당년의 마을학교 교장이였던 그이의 인끔높은 신분을 말해주는상 싶었다.
그녀의 코잔등이 찡그려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불효한 이 딸이 돈 많이 벌어왔으니 이제 옛말하며 삽시다! 하며 아버지를 만나 울지 않으려 했는데 막상 얼굴을 대하고 나니 주책없이 눈물이 앞서 번성거렸다. 그녀는 돋솟아 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기침에 괴롭게 꿈틀이는 아버지의 등줄기를 두드려 주었다.
더 긴 안부를 생략한채 아버지는 서둘러 고향마을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고향의 학교는 이미 페교되다싶이 되였는데 아직 아이 네명이 남았다고 했다. 학교의 건물이 목공소로 변했고 교실 하나만 남았는데 귀청을 찢는 전기톱, 전기대패의 소리속에서도 애들은 공부를 계속했다고 했다. 이제 한 학기만 남으면 초중으로 갈 시간인데 마지막 한사람으로 남아 가르치던 선생도 한국으로 로무를 가버렸다고 했다. 부모가 출국해서 돈이라도 있는 애들은 그런대로 시가지 학교로 전학했지만 대책 구할길없는 할미나 이모에게 얹혀있는 불쌍한 애들은 이제 소학도 바로 마치지 못하는 꼴이 되고 만다고 했다. 자신은 이제 애들을 가르칠 수준도 여력도 안되니 딸애더러 그 아이들을 마저 가르칠수 없겠냐고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갈그랑대는 음성으로 아버지는 긴말을 단숨에 털어놓았다.
나… 당장 맛집 하나 차릴건데요.
우색(忧色)이 완연한 아버지의 얼굴을 걱정스레 보면서도 그녀는 할수무가내라는듯 자르듯 말했다.
아버지의 농도짙은 한숨이 방안의 먼지를 흔들었다. 아버지의 그런 얼굴을 안쓰레 지켜보면서 그녀는 또 한분의 병색짙은 로인장의 얼굴을 머리에 떠올렸다.
이집 저집 문둥이처럼 옮겨다니면서 닥치는대로 일하다가 나중에 그녀는 중풍환자의 간호를 맡게 되였다. 중증환자에 대한 간호였지만 갈비집처럼 시시각각 들볶지 않아 좋았다. 무엇보다 품삯을 갈비집보다 훨씬 더 받아서 그게 좋았다.
풍맞고 쓰러져 때까치같이 마른 몸이 된 고래희의 할머니였다. 간호하기 쉬우라고 밀었던지 할머니는 까까머리를 하고 있었다. 박박 밀어버린 두상의 표피를 내밀고 뾰족이 솟아오르는 백발, 잿빛 장막이 시야를 가린것처럼 혼혼한 기운의 눈, 풍에 들려 얼레빗처럼 우로 휘여져 올라간 슬픔을 자아내는 합죽한 입매… 이제 어떤 의사 표시도 자신의것이 될수 없는 몸, 병마의 망토자락에 들씌워진 로인은 한갓 사육 당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물 컵을 머리맡에 놓고 퇴침을 베고 누워 틀이를 뺀데서 입가 주름이 묵은 대추처럼 쪼글쪼글 오그라든 입술로 우물거리며 할머니는 하루종일 무언가를 복창했다.
서억가아모오니이부울…
서억가아모오니이부울…
물론 그녀는 그 전언을 알아들을수 없었다. 병이 쾌도를 보이고 발음이 말 배우는 아이들처럼 정확도를 잡아갈때야 그녀는 그 소리가 할머니가 부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간곡히 불러젖히는 소리였음을 깨달게 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할머니는 실제로 비구니였다고 했다. 하지만 속세의 인연을 잊지못해 사찰에서 도망을 나왔고 남자를 만났고 자식도 보았다고 했다. 그러다 병으로 그 남자를, 익사(溺死)사고로 자식을 련이어 잃는 비운한 삶의 길을 걸으면서 다시 버렸던 불도를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귀의의 마음을 먹었는데 중풍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그녀는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듯, 뿌리를 보이면 죽는다는 묘종(苗种)을 옮기듯 조심스럽게 할멈을 간호했다. 할머니가 탕약을 드실 시간을 정확하게 시간을 지켰고 정성스레 손을 씻고 비뚤어져돌아간 입귀에 경건하게 약물을 흘려넣었다.
그녀의 정성이 하늘을 울렸던지 드디여 할머니가 몸을 추슬리고 일어섰다. 볼에는 건강한 화색이 돌았고 돌아선 입매의 부드러운 미소는 건강을 되찾은 기쁨과 마음속의 평화를 내비치고 있었다.
몸이 차도를 보이자 할머니는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비구니 회관으로 나갔다. 꼭 몇해만이였다고 했다.
회관이라니 로인들이 화투나치고 신민요나 배우는 로인활동실처럼 생각했는데 아니였다. 회관을 꼭 사찰을 닮게 지었다. 소박하게 지은 비구니 회관은 영화의 한 장면을 스틸하기라도 한 듯이 절제돼 있고 담백했다. 열린 회관의 문사이로 탱화와 그앞에 설치된 불단이 보였다. 그런데 비구니 회관앞의 풍경에 그녀가 설둥한 기색을 지었다. 회관 정문앞 강도 내물도 없는곳에 나무다리 하나가 놓여져 있는것이 아닌가?
피안교다.
예?
피. 안. 교. 말사이에 휴지(休止)를 넣어 할머니는 한자한자 끊어 발음했다
사바 중생덜은 속진(俗尘)을 다 떨치지 못했응께 아무런 고통과 근심덜이 없는 열반 세계로 가려면 이 다리럴 건너야 한다. 피안은 깨달음의 열반세계이다. 이 피안굘 건너며 우리는 세속의 마음덜을 청정하게 씻어럴 버려얀다. 그렇게 때국이 앉은 마음덜을 씻어내고 닦아내면 그 안에 니가 보인다.
불교강론같은 할머니의 말에 알똥말똥해하는 그녀를 보다가 할머니가 또 말했다.
싸게(얼른) 돌아덜 가그라.
어디로요? 그녀가 다시한번 떨떠름해져 코잔등을 찡그리며 물었다.
니 갈곳으로덜, 집 생각에 진종일 혼구녕 열린 사람모양 하는줄 알고덜 있응께. 싸게 돌아덜 가그라.
그녀는 몸을 오소소 떨었다. 할머니의 그 한마디가 자장면 그릇에 씌운 랩을 벗겨내듯 그녀의 속마음의 연막을 벗겨낸것이였다.
“청초는 년년록이나 왕손은 귀불귀(春草年年绿王孙归不归)니 우리 인생 늙어지며는 다시 젊어지지 못하느니라”. 긍께 싸게 돌아덜 가그라. 돌아덜 가서 쇠같은 남정 잘 받들고 토끼같은 딸내미 잘 키우고 아직 땅 널찍할때 뗏장 한장이라두 묵직한 쪽으로 떠서 조상님 묘자리에 덮어덜 드려라. 여그서 속아지 없는 사람들께 욕덜 보면서 알탕갈탕 돈 모아 나종에 할 도리가 그것이 아니드냐. 긍께 이제 더는 객지서 발바닥에덜 불나게 살지 말고 니 갈곳에덜 니 가얄곳에덜 싸게 돌아덜 가그라.
입으로 알싸한 독풀 냄새같은 탕약냄새를 흘리며 그녀의 손을 꼭잡고 할머니는 그 동안 묵혀두었던 그녀에 대한 괘념(掛念)들을 털어놓았다. 할머니의 곱아든 손에서 전해온 뜨거운 맥박이 고요하면서 강렬하게 고동치며 그녀의 몸을 장악해나갔다.
어쩌면 자신이 여직 건너온 다리는 허상의 다리였다. 그 수많은 허상을 헤치며 여기에 도달해 있다. 그런데 도착한 지점의 끝에서 되돌아보니 처음 출발했던 곳은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자신의 중심을 지탱해주던 철심 하나가 쑥 빠져나가는듯한 상실감을 느껴 그녀는 진언을 바라는 신자의 눈매가 되여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며 섶을 깔끔하게 여민 옷매무새. 할머니는 옛날의 비구니로 돌아가 있었다. 절름이며 피안교를 넘어 맵싸한 향불 냄새가 새여나오는 회관으로 할머니는 들어갔다. 그러다 문앞에서 할머니는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할머니는 웃고있었다. 비뜰어진 입귀를 쳐들며 명주실처럼 가늘게 웃고있다. 웃으며 할머니는 그녀를 향해 손을 저었다.
싸게 돌아덜 가그라!
 
… 밤안개에 젖어드는 다리는 이승의것 같지않게 신비스럽고 령묘해 보였다. 강변도로를 허청허청 걸으며 그녀는 다리가 그려내는 풍경의 언어를 조심조심 읽어 내려갔다.어제를 떨치고 새로운 위용을 자랑하는 다리를 지켜보며 그녀는 강한 언질을 받았다. 그녀는 새롭게 건너야할 다리를 마주하고있었음을문뜩깨달았다. 자기가 왜 속살이 다 닳도록 고향을 향하는 연어의 처절한 회귀처럼 긴 시간을 에돌아 이곳으로 돌아왔는지를 알것만 같았다.
딸애의 초점잃은 눈길, 갈그렁이는 아버지의 목소리, 목공소의 톱질소리속에 이어지는 랑랑한 글소리… 그녀가 짓뭉기고 외면해온 시간의 흔적들이 다리아래의 강물과 더불어 아우성치며 지나가고 있었다.맛집 가게 하나 차리려는 욕심보다 더 지그시, 더 오래 뒤통수를 잡아끄는 힘의 정체가 무언지 이제야 알것같다. 다만 작은 힘이라도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를 만들어 주던 까막까치의 모습이 되여 고향에 버려진 애들을 돕고 싶었다.
그녀는 며칠전 금방 번호를 맞춘 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버튼을 눌러 몇번이나 찾았던 영업방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합니다. 가게 그만둘려 합니다.
나지막하나 무게가 실린 목소리로 그녀는 끝내 이 한마디를 뱉고야 말았다.
조명장치가 돼있는 다리는 그 무슨 발광체처럼 온몸 자체로 빛을 발하고 있다. 빛은 진실한 색조의 모본단결처럼 그녀의 눈동자를, 그녀의 마음을 다잡아 끈다.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시켜왔던 방황의 아픈 시간들을 저 따스한 빛살아래 녹여버리고 온유함을 얻고 싶었다.
싸게 돌아덜 가거라!
어디선가 할머니의 말씀이 환청인듯 들려와 그녀는 다리에 오르기 앞서 잠간 뒤를 돌아봤다.
피. 안. 교…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언을 떠올려 보았다.
고개를 드니 대교의 운치를 보여주는 거대한 날개형의 조형물이 파란 불을 밝혀들고 있다. 이 밝은 빛은 아마도 어둠이 지치도록 아름다운 나래짓을 멈추지 않으리라!
바람에 새집이 진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그녀는 어떤 장력(張力)에 끌리듯 다리로 다가갔다. 다리는 활짝 몸을 열어 그녀를 받아들였다.
 
- 끝-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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