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소감
정론직필(正论直笔)의 칼럼니스트를 꿈꾸다
김혁
10대에 필을 들어 붙박이로 글쟁이의 길을 걸어온지 30여년 이러구러 문학상들을 두루 섭렵해 왔다. 하지만 칼럼상은 처음이다. 그만큼 우리 매체와 문단에서의 공식적인 칼럼상도 이번이 처음인줄로 알고 있다.
사실 칼럼은 나에게 익숙하다. 작가와 매체기자의 이중의 신분으로 살아왔기에 칼럼은 내가 애용하는 또 다른 쟝르의 하나였다.
80년대 “길림신문”의 초창기, 1면의 현요한 자리에 “반디불”이라는 칼럼란이 있었는데 그 란에 북향, 설봉, 각설이 등 무려 13개의 필명을 번갈아대며 이 쟝르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그외에도 지금까지 거의 모든 우리말 언론지와 문학 간행물들에 독서칼럼, 력사칼럼, 인물칼럼, 영화칼럼, 문화시론들을 련작해 왔었다.
어느덧 나는 이 문단에서 칼럼을 가장 많이 써 온 한 사람이 돼버렸고 그런 나에게서 칼럼은 삼시세끼 밥처럼 익숙하다. 물리지 않고 소박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보배스럽다.
지금은 전직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나의 의욕으로 넘치는 칼럼창작은 아직도 저돌적인 진행형이다. 그리고 수상하는 이 시각까지도 이 쟝르의 개념과 의미에 대한 사유의 절차탁마(切磋琢磨) 는 계속되고 있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정보의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면서 다양한 의견 표출과 실시간 소통, 공유가 가능해지고 그를 보여주는 글들이 다양한 플랫폼들을 타고 실시간 넘쳐 나오고 있다.
대중적 형식으로서의 수감, 단평, 댓글 등 “칼럼 사촌”격의 글들이 인터넷, 위챗계정, 인스타그램에 넘쳐나고 있으며 칼럼의 분야도 려행, 영화, 음악, 정치, 경제, 시사, 심리, 과학, 의학, 음식, 등 으로 점점 세분화되며 다양해지고 있다. 이를 가리켜 전문가들은 “대중평자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1880년 전후 미국에서 발생하여 “뉴욕저널”에 주간 뉴스해설의 형식으로 련재된 것이 그 효시, 칼럼은 원체 가십과 유머를 중심으로 하는 글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변혁기를 살고 있는 우리 조선족공동체사회에서 칼럼은 경편(轻便)보다는 중후한 글발이여야 할 것이다. 위기설을 껴안고 부침을 겪고있는 조선족공동체는 더구나 정통적인 진지한 언론 글에 목 말라한다.
지금은 진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회의 양태들을 보여주고 진맥하는 정론직필(正论直笔)의 칼럼의 역할이 매우 막중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저널리즘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목소리의 등장에 기대를 가져 본다. 지능로봇이 글을 쓰는 시대로 세상이 아무리 바뀌여도 독자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미디어의 전달을 원한다.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다층적인 경험, 해석과 판단, 주장과 요구로 련결되는 보다 완성된 칼럼과 같은 쟝르의 출현을 언제고 바라고 있다. 또한 사회의 면면과 수요를 드러내는, 독자의 요구를 잘 담아낸 시효성있는 칼럼에 반응하고 갈채를 올릴 것이다.
여느 프로필에서 나는 소설가 외에도 력사칼럼니스트라는 자칭 직명을 굳이 붙여왔고 련작칼럼집도 책자로 펴냈었다. 나의 필은 향후에도 소설과 같은 픽션뿐아니라 애대하는 논픽션 칼럼으로도 마냥 달릴 것이다.
칼럼으로 인한 수상의 소감이 또한 편의 칼럼이 돼버렸다. 의미만만인 첫 칼럼상에 과람하게 뽑아준 관계자 여려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 2019년 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