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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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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누아르”의 춤
2017년 10월 19일 16시 03분  조회:2465  추천:39  작성자: 김혁
 

. 단편소설 .


“피에 누아르”의 춤


김 혁

 

 

이바닥의 변두리 그곳의 변두리
보다 더 멀리서왔지, 너와 다른 나의 출신 
... ...

난 이방인 이라지
그래 아직까지 찬바람 배인 이방인
난 이방인 이라지
얼마나 걸릴까 너희들이 되기까진
난 이방인 이라지 
아직까지 낯선 냄새 풍기는 이방인
난 이방인 이라지
I'm a Stranger Stranger Stranger
... ...

난 이방인 이라지
그래 아직까지 찬바람 배인 이방인
난 이방인 이라지
얼마나 걸릴까 진실된 곳이 되기까진
난 이방인 이라지 
끝까지 낯선 냄새풍기는 이방인
난 이방인 이라지 
... ...

- 심바 자와디 “이방인”중에서




1, 

족욕기에 그녀의 두발이 곱다라니 담겼다.
족욕기는 내가 련인을 위해 특별히 주문해 산 것이였다. 
측백나무의 결이 곱게 살아난 목제 족욕기에 담긴 그녀의 발은 하나의 정교한 조각품을 방불케 했다. 내 련인의 발보다 더 고운 발이 이 세상 더없으리라 난 확신하고 있는터다. 
푼수라 웃을터이지만 내 련인의 발은… “예술의 발”이기 때문이다. 
내 련인은 이 도회지 발레극단의 수석 무용수다. 발레극이란 무언지 보지도 못하고 조선족 집거촌에서 자란 녀자애가 그 수석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는지는 그 자신만이 알 터이다. 
무리한 훈련에 련인의 엄지가 변형이 가기 시작하고 있다. 토스쥬를 신을때마다 아픔에 얼굴을 찡그리곤 한다. 그 것이 나에겐 형벌 같은 시각의 아픔이다. 하지만 그렇게 변형이 간 그 발이 내게는 아름답다. 그건 예술에 의한, 예술을 위한 발이니깐…
이제 몇달 후의 출국공연을 앞두고 그녀는 밤늦도록 련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니 그 발은 전에 비해 더 한 중압감으로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이면 나는 족욕기에 온도가 알맞춤한 물을 만들어서는 련인의 발을 담가준다. 씻어주고 안마해 준다. 
“슬리퍼 대령이요, ‘잠자는 공주’님”
나는 련인의 발을 수건에 감싸 물기를 닦아주고는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냈다. 발레극단에서 그녀의 보류 절목은 “숲속의 잠자는 공주”이다, 그래서 듣는 이들은 닭살 돋는다 할터지만 나는 내 녀자를 어디서나 그렇게 불렀다. 
그녀는 나를 “까뮈”라고 부른다. 내가 까뮈에 대한 연구테마로 박사학위를 타게 되였던 것이다. 곧 그 졸업론문집이 출간된다. 그리고 “숲속의 잠자는 공주”는 이제 보름 후면 실존주의 철학자에 심취된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나는 진기품을 보자기에 감싸 듯이 말끔히 닦은 그녀의 발을 슬리퍼 속에 밀어 넣어주었다. 

“딩동”
이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느닷없는 초인종 소리에 나와 련인은 소스라쳐 놀라했다.
신문뉴스도 끝난 이 시간대에, 더우기 보름 후면 결혼식을 치르게 될, 일껏 꾸민 신혼의 보금자리로 찾아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 택배 시킨거라도 있나?”
“택배가 오면 이 시간에 오겠나요? ”
“음식 배달이라도 시켰나”
“내가 야식 먹는걸 본적 있나요? 참”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는 어깨전을 툭툭 건드리 듯 듣그럽게 울렸다. 
 “누구세요?”
나는 짐짓 목소리를 걸죽히 해서 중압감 있는 소리를 만들며 문을 땄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의 키가 무척이나 작았기에 나이 시선이 급히 아래로 쏠렸다. 그리고 순간 옹근 아파트를 들깨우며 극적인 소리가 터져 올랐다. 
“올쿠나, 맞꾸나, 우리 양머리 조캐”
보통 장년의 키보다 한 눈금 내려 온 작은 키, 다복솔 같이 더부룩한 머리칼, 오짓물을 바른 듯 윤나게 검은 얼굴, 눈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메밀 눈, 모나게 유난히 도드라진 울대뼈… 칙칙한 재킷차림의 침입자를 나는 한동안 헤아려 보았다. 
“외삼촌?”
곱슬머리인 나를 그렇게 부를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나의 입으로 드디여 뜨악한 한 마디가 새여 나왔다.
외삼촌이 풀쩍 뛰다싶이 하며 나의 곱슬머리를 두손으로 마구 엉클어 놓았다. 련인과의 로맨틱한 밤의 향연을 꿈꾸며, 은근한 향이 나는 “리앙뜨” 샴푸로 금방 감은 머리가 바람에 새집이 지듯 엉클어 졌다. 
“조캐, 이게 얼마만이냐 이게, 응 조캐?”
외삼촌은 흥분으로 넘어질듯 비틀거렸다. 그런 외삼촌의 팔뚝을 내가 덴겁히 잡아 부추켜 주었다. 
십일년인가, 아니 이제 십이년이 되는 듯 했다. 외삼촌을 못본지가…
외삼촌은 출입문 쪽 봉당에 철퍼덕 퍼더리고 앉아 신을 벗었다. 이제 기온이 막 치솟는 초여름이였지만 삼촌은 운두가 굉장히 높은 육중한 겨울신발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었다.  
내가 쪼그리고 앉으며 외삼촌을 거들어 주려 했다. 그런 나의 손을 외삼촌이 탁 뿌리쳤다. 
“치에라 임마”
예전에 들어 못보던 사투리 같은 걸 내뱉으며 외삼촌은 강한 거부를 보였고 나는 그만 떨떠름해 지고 말았다. 신발을 다 벗고 외삼촌이 무릎을 짚으며 일어 섰다. 힘들게 벗은 발은 꿉꿉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까만 양말차림이였다. 
“조캐, 아이고 양머리 조캐야”
외삼촌은 다시 나의 머리를 쥐여박으려다가 키가 닿지않자 그만 두었다. 그런 외삼촌에게서 술 냄새가 좀 나는 듯 했다. 
너무나 격한 상봉식에 극장의 맨 앞자리에서 조금 민망해진 관객 같은 표정으로 문칮거리고있는 련인에게 내가 인사를 시켰다. 
“울 외삼촌이요. 한국 갔던… 내 여자친굽니다”
그녀가 얼른 몸을 일으키며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오호!” 또 온 집채를 흔들 듯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카 며눌이구마”
곧 결혼 할 사이지만 막상 그런 호칭을 처음 들어 보는 그녀가 낯꽃을 확 붉혔다. 어색한 듯 족욕기를 들고 화장실로 사라졌다.
“저녁… 드셨어요?”
“묵었따. ‘백전풍’네 집에서 묵었다, 백전풍이 기억나지 울 뒷 집에 살던…”
성이 백씨인데다 백전풍병을 앓고 있는 동네 이웃을 삼촌은 말하고 있었고 나는 인차 칠하다 만 회벽집처럼 얼룩덜룩한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말하면서도 외삼촌의 눈길은 나의 몸에 들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또 톱질하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 제꼈다. 
“야! 우리 양머리 조캐, 천상선녀 같이 고분 여자두 얻구, 이제는 또  높으신 박사라메, 니 출세했구랴, 출세했어!”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양철통을 엎어놓고 란타하는 소리처럼 왁살스럽게 높다. 외삼촌의 목소리가 원체 이렇게 높았던지 나는 다시 뜨악해 졌다. 
쿵! 쿵!
곁 집에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전해 왔다. 전에 없던 소음에 항의하는 소리였다. 화장실 문이 빠꼼히 열렸고 그녀가 한쪽 눈만 내놓은 채 다람쥐처럼 살금 우리 쪽을 훔쳐 보고있었다. 

 그렇게 출국한 외삼촌과 12년만에(삼촌의 말로는 13년 7개월이라고 했다.) 다시 만났고 외삼촌은 덜컥 우리 신혼 집에 눌러 앉아 버렸다. 



2,

  나는 철이 들기까지 외삼촌네 집에서 붙박이로 자랐다. 
무능자처 아버지를 매정하게 뿌리치고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따라 대처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나가버렸고, 울화술만 대두병으로 부어 마시던 아버지는 결국 알콜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시시콜콜 앓다가 여섯살배기 나를 버렸고 이승을 버렸다. 사고무친이 돼버린 나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이 외삼촌네 집에 얹혀있을 수 밖에 없었다. 
외삼촌은 난쟁이를  겨우 면한 바라진 몸매였다. 외삼촌과 나의 어머니는 부모도 없이 오누이가 의지해 살았다. 잔병치레를 끝없이 했던 나의 어머니를 위해 외삼촌은 초중도 나오지 못하고 학업을 버린채 목재판이며 탄광소들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다보니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갔다. 
그런 외삼촌이였지만 조카인 나에게만은 지극정성이였다. 자식도 버리고 외간 남자와 야밤도주를 해 버린 누님 대신 미안한 보상을 자처해서 조카에게 하련 듯 했다. 그런 처경에도 내내 반급 일등인 나를 두고 학부형회에 가서는 “우리 아들”이라고 흥감스럽게 말했고 그런 외삼촌이 나는 죽도록 싫었다. 
내가 월등한 성적으로 시가지의 고중에 붙을 무렵 외삼촌은 한국으로 나갔다. 
한국으로 나가던 날 내가 그렇게 감질내였던 “니키”표 운동화를 사주며 미안천만 해 하던 외삼촌의 얼굴이 지금도 또록이 기억난다.
“내 서울가서 돈 많이 벌어 보낼게, 미안하다 불쌍한 우리 조캐, 조캐 미안하다” 
내 곱슬머리를 마구 엉클어 놓으며 외삼촌은 그 한 마디를 복창하 듯이 거듭 했고 그 얼굴은 당금 눈물이라도 쏟을 것처럼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역시 나처럼 출국하고 의지가지 없는 아이 셋을 집에 류숙시키고 있는 반주임네 집에서 자랐다. 그동안 어떤 증오를 기저에 깐 배심 같은 힘이 나의 몸에서 기생하고 있었다. 그 것은 나를 저버린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외삼촌을 비롯한 친지들에 대한 원망이였고 또 그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고픈 배심이였다. 고아나 진배없이 돼버린 내가 도회지의 일류 중점대학에 붙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도 있지만 바로 그러한 복잡하게 혼효(混淆)된 힘의 용오름이였던 같다. 
그동안 어머니는 한국에서 석달에 한번씩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전화 한 통 오는 법이 없었다. 어머니는 사춘기의 내게 있어서 석달에 한번 씩 오는 송금봉투와 같은 존재로 각인되여 남았다. 때로 돈보다 대신 전화 한 통이라도 오 는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더우기 설명절 같은 때면 그런 야속함이 나의 우두망찰한 동공 속에 애수처럼 흥건하게 고여들었다. 
나의 그녀 역시 어쩌면 나와 판박이로 꼭 같은 리력을 갖고 있었다. 부모들은 어린 그녀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함께 출국해 버렸고 할머니가 세상뜨자 가문 해의 수수짱처럼 깡말라 버린 그녀는 이모네, 고모네 집을 전전하면서 자랐다. 그런 동질적인 아픔이 있었기에 대학가 예술학원에서 얼짱으로 손꼽히는 그녀가 키도 작고 용모도 수수함에서 한 눈금 내려온 나의 불가능한 미션 같은 청혼을 두말없이 받아준 것이였다. 모두들 “수선화가 소똥에 꽂혔다”고 한탄들이 자지러졌다. 하지만 아픈 가슴끼리 맞댄 우리 두 사람의 애정은 쭈욱 변함이 없어 결혼까지 눈앞에 둔 것이였다.
   
그녀의 발레극단과 가까운 곳에 간신히 마련한 셋방 집은 “토끼 굴”처럼 협착하기 그지없었다. 침실 하나에 거실 겸 주방이 딸린 집이였다. 미안쩍은 대로 외삼촌을 거실의 쏘파에서 쉬라고 했다. 
“어구매, 내가 일하던 그 곳에 비함 천당이다!”
외삼촌은 녹쓴 치륜처럼 삭아 떨어진 치아를 보이며 왁살스럽게 웃고는 쏘파에 널브러져 버렸다. 
화적 같은 용모를 가진 외삼촌은 예기치 못한 길목에서 풀쩍 나타났고 그 이후로 우리의 수난은 시작되였다. 신혼 토끼들의 불면의 밤이 시나브로 막을 열었다. 삼촌이 코를 골았다. 그 것도 여간 고는 편이 아니였다. 음을 맞추지 못한 낡아빠진 첼로의 G음처럼 삼촌은 코골이의 악장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코 고는 소리가 우리의 작은 신혼집을 소음의 파도 너울우에 싣고 늠실거렸다. 그녀는 물론 나도 한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밤을 꼬박 팬 그녀의 눈가에 도렷하게 그늘이 졌다. 머리가 어지러워 내가 먼 륙교아래까지 가서 사온 꽈배기와 콩물도 먹지못하고 출근했다. 대신 그녀가 좋아했던 꽈배기와 콩물을 외삼촌이 흡족해 하며 깡그리 먹어버렸다. 
저녁이면 외삼촌은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조캐야. 우리 양머리 조캐야”하고 까랑한 목소리로 아파트 단지를 왕창 울리며 들어왔다. 
술은 번마다 백씨네 집에서 먹었다고 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외삼촌은 많은 말을 했는데 원체 언어 표달이 어누룩하고 그동안 어디서 배웠던지 어느 육자배기에도 붙이지 못할 사투리를 막 람발했다. 게다가 술이 들어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니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꼭 같은 내용들이 레코드 풀 듯 되풀이 되자 사투리와 술에 절어 곱슬머리처럼 고불고불 굽이쳐 나온 말들이 거개가 자신이 일하던 업체 사장들에 대한 분노의 발설임을 나는 간신히 헤아려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삼촌이 나의 테불우에 놓여진 액자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잘 생긴 나그네 누구냐?, 장인 어른이시냐?”
나는 그만 고소를 머금고 말았다. 액자 속 담배를 물고 쿨한 자세를 취한 이는 나의 연구분야의 장본인인 알베르 까뮈였다. 자유주의적, 인도주의의 모습을 제시한 소설가이자 극작가, 리론가, 모랄리스트이며,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 나아가서는 전세계에서 그의 세대의 대변가이자 다음 세대의 스승으로 추앙되였던 이 위대한 존재에 대해 외삼촌에게 어떻게 해석할지 머뭇거리는데 외삼촌이 불쑥 또 한마디 했다. 
“담배를 무척 즐기나 보네, 접때 같으면 내 울 동네 독한 화건종 담배를 갖다드렸을건데”
삼촌이 호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궐연 한개비를 꼬집어 내여 입에 물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쑥스럽게 웃으며 다시 궐연을 담배갑에 꽂아 넣었고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며칠전 안해가 집안에서 담배만은 안된다고 단단히 까박주었던 것이다.
 “이분 작가입니다, 프랑스 사람”
그제야 내가 삼촌이 궁금해 하며 나의 장인으로 오인하는 액자속 인물에 대해 짧게나마 설명했다. 
“작가? 쁘랑스 사람? 음허허, 그런걸 난 또”
삼촌이 두어깨를 들썩이며 극적으로 웃어제꼈다. 
처음 까뮈의 “이방인”을 읽었을때 나는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를 상상하기가 조금은 어려웠었다. 정작 이를 론문테마로 잡고 천착한뒤에 “부조리의 인간”에 메스를 들이 댄 그의 작품의 진수에 대해 깨쳐 알기 시작했다. 
지금 내 눈앞의 외삼촌도 부조리한 인간에 다름아니다. 어쩌면 외삼촌이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또 다른 분신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외삼촌의 부조리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가?

술을 마신 날이면 코골이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됐다. 나의 그녀는 린치를 당하는 사람처럼 귀를 막고 몸부림쳤다. 
“미안해”를  련발하면서 나는 그녀를 소음에서 막아주련듯 꼭 품어줄뿐이였다. 
아침마다 그녀는 내가 사온 꽈배기와 콩물을 먹지도 못한 채 출근했고 그 것은 또 모두 외삼촌의 아침거리로 충당되고 말았다. 
어느 한번은 삼촌이 보이지 않자 둘이 충동에 밀려 와락 껴안고 입맞춤을 하고 있는데 삼촌이 불쑥 쏘파뒤에서 머리를 쑥 내밀었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며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런 삼촌의 손에는 쏘파뒤편에서 주어낸 동전 한 잎이 들려져 있었다.
삼촌의 얼굴이 모주먹은 사람처럼 순간에 붉어졌다.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다가 탁자를 걷어 찼고 문설주에 이마를 탁 쫗고 말았다.  
“언제까지 여기 있으실 작정이얘요?”
내 심중은 그날 이후 며칠째 이마에 작은 혹을 달고 있는 외심촌을 향해 이런 말을 뭉뚱그리고 있었지만 뱉지는 못하고 있었다. 첩첩 소리를 내며 꽈배기를 씹어 대는 삼촌의 두툼한 입술을 보노라면 어느 한번 원족 갔다가 뱀에게 물린 나의 발목을 입으로 독즙을 빨아내고 한달내내 괴물처럼 부어 있던 외삼촌의 입술이 순간 떠올랐다. 그런 외삼촌을, 조금 툽상스럽지만 10여년만에 만난 외삼촌을 그렇다고 내쫓을 수도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였다. 원체 고고한 “백조의 호수”의 곡조가 흐르던 집 안에서는 외삼촌이 끝간데 없이 흥얼거리는 곡조의 아귀가 맞지 않는 끈적한 트로트 가락으로 차 넘쳤다. 
나는 원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곁집 남정이 복도에서 피우는 담배연기에도 그녀는 질색하며 창문을 쾅하고 닫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외삼촌이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다. 퇴근하여 들어서며 그녀는 식지로 코끝을 가리였다. 그런 그녀의 이마살은 잔뜩 찌프려져 있었다. 그렇다고 랑하의 창문에 매달려 투신하려는 사람처럼 몸을 반쯤 밖으로 내밀고 담배를 피우는 외삼촌을 말리기도 무엇했다. 
이동안 그녀의 량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원체 재깔이며 말이 많던 그의 앵도같은 입술은 꾹 닫혀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보 여린 그녀는 막상 퇴근할 때면 찬거리는 세 사람 분으로 사들고 있었다. 

그러다 굳게 닫혔던 그녀의 입이 급기야는 열렸다. 며칠 만에 열린  그 입술은 투명한 고음을 뱉어 냈다. 그 소리는 랑하에서도 들을 수 있었고 퇴근하던 나는 덴겁히 집으로 뛰여 들어갔다. 
그녀가 봉당에 선채로 두 손으로 얼굴을 잔뜩 싸쥐고 있었다. 외삼촌이 누웠는 쏘파쪽으로 눈길을 돌리던 나의 두 눈 역시 허깨비라도 본 듯 뒤집히고 말았다. 
쏘파 아래에 무언가 놓여있었다.
쏘파아래에… 발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낮술을 한 듯 소파에 누워있던 외삼촌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뜨악하니 느침이 흘러내리는 입 언저리를 닦던 외삼촌이 그제야 무언가 기수챈 듯 얼른 그 발을 주어들었다. 주체할바를 모르다가 덮고 자던 재킷으로 그 발을 후딱 덮어 버렸다. 
“미, 미안해 조카 며눌이”
우리 둘의 경악한 두쌍의 눈은 못볼 것을 본 것처럼 온통 외삼촌의 발에 몰부어 져 있었다. 
외삼촌은 격자무늬가 있는 재킷으로 신통히도 발을 닮은 그 의족을 감쌌다. 그리고는 외발로, 하지만 그렇게 재빠른 속도로 겅중겅중 밖으로 뛰쳐 나갔다. 
 

3, 

우리들의 결혼식은 교내 식당에서 열렸다. 전국에서도 몇 손 안에 꼽히는 이 유명대 여느 졸업생으로서도 볼 수 없었던 결혼식이였다. 
그녀와 나는 두 사람다 남다른 결혼식을 치르려 했다. 그렇다고 지중해의 수중결혼이나 세계 최고봉의 티벳 안나푸르나 산아래에서의 그런 랑만이 팽창해 오르는 결혼식이 아니였다. 결혼식은 나의 졸업론문집 “까뮈의 ‘이방인’ 연구”의 출간기념회와 더불어 치르었다. 이 품위있는 결혼식에 모두들 갈채를 올렸다. 
지도교수들의 축하에 이어 나의 출간기념 소감 그리고 몇달 후 출국공연을 앞둔 신부의 춤표현도 있었다. 
그녀는 몇달 후면 한국으로 가서 한 발레극단의 창작발레 “이방인”의 일원으로 뛰게 되여 있었다. 한국에서 온 늙은 발레 교수에게서 레슨을 받았고 그 유명 교수가 나의 그녀의 숨은 기량을 보아내였다. 
“여느 무용수들과는 체형도 다르고 유연성이나 근력도 다르다”며 그녀의 타고난 끼와 끈기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그 늙은 교수가 많은 경쟁자 속에서 대담하게 나의 그녀- 조선족 무용수를 기용한 것이였다. 
나의 졸업작품처럼 그녀가 해외에서 처음 선보이는 춤 역시 까뮈와 관계있었다. 이러한 예술적인 교감이 우리 둘 사이를 더 돈독히 하게했다. 
그녀의 춤사위는 더없이 우아했고 모두들은 결혼식이 아니라 극장에 모여 온 듯 그녀의 춤에 온통 정신이 몰부어져 있었다. 

이때 덜컥!하고 문이 열렸다. 그렇게도 큰 소리로 왁살스러움에 가깝게 열렸다. 춤사위는 뚝 멎었고 모두들의 눈길이 문가에 쏠렸다. 
오, 마이갓!
순간 나의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 나가고 말았다. 
목발을 짚은 사람 하나가, 걷우어 올린 왼쪽 바지아래로는 허무처럼 아무도 없이 텅 빈 사람 하나가 겅둥겅둥 뛰여 들어오고 있었다.
“누구신데요?”
하객 몇이 나가며 저돌적인 그의 행보를 가로 막았다. 
“조캐, 내 조캐가, 결혼식 한다던데…”
급히 뛰여 온양 얼굴이 땀벌창이 된 외삼촌은 헉헉대며 아래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 빌렸는지 쥐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넥타이도 매고 있었는데 땀으로 흥건한 누른 셔츠에 매인 천박하게 뻘건 넥타이가 게게히 풀려 있었다. 
나는 덴겁히 달려나가 채문하는 하객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왜 이렇게 오셨어요? 말도 없이?”
내가 한껏 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외삼촌이 맹하니 나를 쳐다 보았다.
“하나 밖에 없는 조카인디. 외삼촌으로 생겨먹어 와야지”
외삼촌이 녹쓴 치륜처럼 삭아 떨어진 치아를 보이며 웃었다. 
“누구시니? 친지분이 오셨어?”
나의 지도교사가 가까이 와 악수의 손을 내밀며 관심조로 물었다. 
“네, 저…우리 마을서 살던 이웃집…사람…”
나는 혀아래 소리로 말을 뭉뚱그렸다. 
외삼촌의 얼굴이 얼음망치에라도 맞은 듯 와락 굳어져 버리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지도교수의 악수를 청하는 손이 가슴패기까지 다가와서야 외삼촌이 그제야 헤덤비며 나의 스승의 두손을 헐렁하니 부여 잡았다. 문칮거리며 말했다. 
“내 조카”
나와 외삼촌의 눈빛이 마주쳤다. 
“조, 조카 친구를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슴다”
외삼촌이 목구멍으로 갱엿이라도 넘기 듯 우물거렸다.
탕!하고 목발이 넘어졌다. 덴겁히 허리를 굽혔으나 목발이 손에 닿지 않아 외삼촌이 허우적 거렸다. 나는 급히 목발을 주어 삼촌의 겨드랑이에 끼워 주며 부축하려 했다. 
“치에라 임마”
삼촌이 나의 손을 뿌리쳤다. 거부하는 손길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절뚝이며 외삼촌이 구석 쪽의 의자를 찾아 앉았다. 
외삼촌은 나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목발에 옹근 몸체를 의지 한 채 높게 걸린 결혼식 현수막을 쳐다보고 있었다. 충혈된 동공이 텅 비여 보였다. 

결혼연은 다시 이어졌다. 하객들의 축사, 축가, 교배주, 학우들의 지꿏은 장난,  합영이 이어졌다.  
그 환락의 란장(亂場)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외삼촌이 보이지 않음을 발견했다. 
창가로 다가갔다. 괴물 같은 외삼촌의 느닷없는 출현에 기쁜 날 온통 신경을 들고있던 신부도 다가왔다. 
신부가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창유리 한 곳을 짚었다. 창밖으로 교정 저쪽 금방 피여 난 조팝나무꽃 화단곁으로 목발을 짚고 가고 있는 삼촌의 뒤모습이 보였다. 
목발을 짚고 한쪽 발로 잽사게 걷고있는 외삼촌의 걸음사위가 발레에서 한 다리 발끝으로 서는 “푸앵트 기법”처럼 보였다. 
이내 외로운 짐승처럼 꿈지럭이던 삼촌의 잔등은 교정의 솔나무 숲 사이로 사라졌다. 
이때 친구가 다가와 빨간색 봉투를 내게 건넸다.
“아까 그 고향 이웃집에서 오셨다는 분이 주시던데”
축의금이였다. 
축의금이 오늘 치고는 액수가 제일 많았다. 
 
4,

며칠 후 외삼촌이 그간 머물러 있으며 신세를 졌던 백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외삼촌에게서 나의 핸드폰 전화를 알았다고 했다. 나더러 당장 자기네 가게로 오라고 했다.
가게는 그녀네 그녀의 발레극단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보신탕집이였다. 
“네 삼촌 엊저녁 비행기로 돌아갔다”
가게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수년 만에 만나지만 서로 수인사를 할 새도 없이 백씨가 입을 열었다. 
백씨가 술을 내왔다. 
“나 개고기를 먹지 않는데요, 낮술도 안 먹어요”
백씨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스스로 한 잔 소주를 따랐다. 주욱 마셨다. 하얗게 분칠한 창극 속의 인물처럼 하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진한 고량주 냄새와 함게 토해내는 첫 마디가 충격적이였다. 
“니 엄마는 14년전에 이미 죽었다”
나는 집채가 일렁이는 듯한 충격에 휘청거렸다. 
백전풍 환자의 험상궃은 얼굴을 한 지라 내가 개구멍 바지 시절부터 무섭게 보아 온 백씨는 늙어서 더구나 추레해진 얼굴로 괴담같이 무서운 말을 많이 했다. 
출국붐이 금방 시작되던 때라 당시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심했고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가 나의 엄마는 층집에서 추락사했다고 했다. 그래서 삼촌이 급히 엄마의 시신을 처리하러 출국했고 그 걸음에 눌러앉아서 돈을 벌어서는 여태 엄마의 이름으로 나에게 부쳐 보냈다는 것이였다. 
나의 손이 저도 모르게 소주잔을 잡았다. 백씨가 얼룩이 진 손으로 한 잔 부어주었다. 나는 단숨에 한 모금 들이 마셨다. 쫘악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술기운과 함께 이름 못한 슬픔, 서러움과 미안함과 같은 것이 전신의 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져내려갔다. 
그러다 외삼촌은 공사장에서 콘크리트를 반죽하는 레미콘에 미끄러져 들어가 발 하나를 잃었다고 했다. 일년도 안되여 의족을 부착하고 다시 공사장에 나타났다. 여기 저기 전전하며 소박맞으면서도 쉬운 일이라도 찾아하려 헤맸다고 했다.
  “그 지역서 유명하다 네 삼촌, 네 외삼촌 별명이 ‘우산귀신’이다, 발 하나 없이 외다리로 폴짝 폴짝 뛰여다니며 일한다고”
백씨가 또 한잔 비웠다. 자신의 잔을 비우고 나의 잔에도 첨잔해 주었다.
“노가다판서 하필이면 다리 한 짝 없는 사람 쓸 필요가 있나, 그 것도 불법체류 조선족을, 그래서 여기저기서 쫓겨다니다 요행 일자리라도 생기면 악착스럽게 일했다그러데.”
백씨의 목소리가 꺼룩하게 젖어 들었다.
“첨엔 외다리라는 걸 속이려고 무척 애를 썼단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성한 사람보다 다른 기미가 들통나군 했지, 더구나 오래된 의족이 낡은 구두처럼 판나고 삐걱거리더라네. 그래서…”
헐값으로 만든 의족이 탐탁치 않았는데 다시 만들려해도 값이 엄청 비싸 고향으로 의족을 만들어 잠간 온 터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의족값이 한국 못잖게 비싸자 치수까지 재놓고는 맞추지도 않고 외발로 가버렸다고 했다.
“불쌍한 사람…”
  백씨가 한 숨을 하얗게 내뱉었다. 구태여 주섬주섬 의족공장의 치수 견본서를 내 앞에 내놓으며 보라고 했다. 
  번성거리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나는 고개를 숙이며 한 손으로 소주잔을 다른 한 손으로 그 의족 견본서를 그러잡았다. 




5,

안해가 무대우에 섰다.
돔 모양의 천정에 샹들리에가 드리운 호화로운 극장, 푸른 커튼이 내려진 무대에서 토스쥬를 신은 발레리노들과 발레리나들 앞에 나섰다.
푸른색 빌로도 커버를 씌운 의자에는 관객들로 꽉 차 있었다.
스커트가 무릎위로 껑충 뛰여오른 “로맨틱 롱튀튀(발레복의 이름)”를 입은 안해의 예쁜 모습은 그야말로 무용복의 이름처럼 로맨틱의 극치였다. 
몇달 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드디여 창작발레극 “이방인”이 첫 막을 열었다. 현지 매체에는 까뮈의 극이 처음 발레무대에 오른다는 뉴스보다는 조선족 발레수가 무대에 선다는 것이 이슈거리였다. 공연 며칠전부터 대서 특필로 예고소식을 냈다. 
사랑하는 이의 첫 해외 출연 모습을 보고 싶었던 나는 사비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안해와 함께 서울행차를 했다. 

공연에 앞서, 서울에서 도착하자 바람으로 외삼촌을 찾았다. 
그리고 그이의 비보를 들었다. 
외삼촌은 부모와 꼭 같은 간병으로 진단을 받자 한 달 만에 죽었다고 했다. 암진단이 내린지는 오래 됐고 진단서를 받고도 그냥 일했다고 했다. 그러니 저번 고향 행차가 자신으로서는 마지막임을 외삼촌은 어쩌면 알고 다녀간 것이였다. 죽기전에, 살같을 괴롭히는 둔중한 의족이 아닌, 좀 더 편한 의족을 신어보는 것이 삼촌의 소원이라고 했다. 
외삼촌은 조선족을 도우는 어느 자선단체의 숙소에서 운명했다. 중국의 연고자에게 통지하려 하자 고향에 연고자가 아무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죽음의 막바지, 무원조함에 내뱉았을 처연한 말마디가 날카론 송곳처럼 나의 앙가슴을 찔러 댔다.

그 자선단체의 사무실을 찾아 나는 우두망찰 천장을 우러르고 서버렸다. 
소음이 자오록한 공사장에서 목발을 짚은채 무거운 자재를 메고 외발로 겅중겅주 뛰여다니는 외삼촌이 환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속죄의 마음으로 외삼촌에게 vip공연 티켓을 갖고 왔던 안해도 그만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우중충한 마음을 억누르며 안해는 예술의 전당 무대우에 섰다. 
발레극의 안무인 내 안해를 발탁했던, 그 늙은 발레교수가 공연에 앞서 특별히 나의 그녀를 무대앞에 모셔 소개를 했다. 
소감을 부탁하는 사회자의 말에 이윽토록 안해는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눈에 붙인 반짝이 화장때문이였던지 안해의 눈에는 이슬이 비쳐든 듯 보였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발레극의 제목이 '이방인'이고 저의 남편도 다름아닌 까뮈의 ‘이방인’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슴다. 비행기에서 남편에게서 이방인에 관한 얘기를 들었슴다. 그리고 낱말 하나를 배웠슴다.”
그녀가 생소한 단어를 배우는 소학생 처럼 또박또박 말을 새겨 뱉았다.
“‘피에 누아르’라는 낱말을요”
“피에 누아르?”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피에 누아르’ 프랑스어로 ‘검은 발’이라는 뜻이라고 함다. 그리고 ’이방인’을 쓴 까뮈가 바로 ‘피에 누아르’였다고 함다. 
까뮈는 프랑스에서 알제리로 이주해 온 가난한 로동자 집안 출생이였는데 알제리에서 태여난 프랑스인을 가리키는 ‘피에 누아르’로 불렸다고 함다. 
‘피에 누아르’들은 유럽인도 아니고 아랍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통 알제리 인도 아니였기에 늘 편견과 기시를 받았다고 함다.”
그녀가 고개를 수긋하고 잠시 문칮거리다가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우리 조선족이 바로… ‘피에 누아르’가 아닌가 생각해 봄다.”
좌석이 다시 한번 크게 웅성거렸다.
안해가 좌석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말했다.
“이 발레를 이방인으로 해외에서 떠도는 모든 조선족 ‘피에 누아르’들에게 바침다.”


그녀는 감성으로 무대를 누볐다. 눈부신 무대 조명 속에 그의 눈에 간간이 비친 이슬을 나는 가려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춤사위를 쫓는 나의 눈에도 주체할길 없는 눈물이 그득 차 있었다. 
안해의 춤사위를 지켜보며 나는 무용수들의 분장실 캐비넷에 넣어둔 안해의 트렁크를 떠올렸다. 
그 속에는 내가 외삼촌에게 미처 드리지 못한 중국에서 맞추어 가져 온 “발” 한 짝이 들어 있었다.

(끝)
 
“민족문학” 2017년 제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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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4 ]

4   작성자 : 고독문천
날자:2017-12-19 14:54:33
작품읽는 내내 나와겹친지난일들이 생각나면서 가슴이 울렁,그리고 눈물.
잘읽엇습니다
3   작성자 : 독고문천
날자:2017-12-19 14:49:33
명작입니다
2   작성자 : 김혁
날자:2017-11-21 11:17:48
덕담과 격려의 댓글에 일일이 답복을 주지 못함에 송구함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1   작성자 : 춤꾼
날자:2017-11-10 14:15:42
역시 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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