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의《마마꽃, 응달에 피다》에 대한 심리분석학적고찰
오광욱 (연변대학, 문학박사)
"마마꽃, 응달에 피다" (초판본) 2005년
"마마꽃, 응달에 피다" (재판본) 2014년
1. 들어가는 말
조선족문단의 유명한 중견작가인 김혁(1965~)의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1)는 작가의 자서전적요소가 짙은 성장소설이다. “문화대혁명”을 시대배경으로 사춘기 청년들의 방황과 갈등, 그리고 그들의 부동한 운명을 그려낸 이 소설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2)한국에서는 2009년부터 이 소설에 관한 석사학위론문과 평론들3)이 륙속 출현하였다. 지금까지 이 작품에 관하여 비교적 심도있는 연구들이 진행되였는데 전경업, 이새아 등은 이 소설을 사회력사적인 각도에서 우리민족의 생존환경과 그 심태를 보여준 작품으로, 혹은 시대가 개인에게 가져다준 상처에 대해 론의하였고 우상렬, 최미령 등은 이 소설을 왕삭(王朔)의《동물의 사나움》(动物凶猛)과의 비교를 통하여 내용, 형식 등 방면에서 성장소설의 여러가지 양상에 대해 론의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조선족문단에 출현한 전형적인 성장소설이고 더욱이 작가의 고백에서처럼 “성장기소년의 심리의 궤적”4)을 그린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론문은 보이지 않고있다. 하여 필자는 본고에서 김혁의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분석심리학의 리론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스위스 칼․융(Carl Gustav Jung,1875-1961)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고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실현(自己实现)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식의 중심에 흔히 “나”라고 부르는 자아(自我)가 존재하고 반대로 무의식의 중심에는 “모르는 나”인 자기(自己)가 존재하며 의식속에 있는 자아가 무의식속의 자기를 하나하나 깨달아 둘이 서로 상호보완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하나로 통합될 때 자기실현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자기실현은 사실 엄숙한것도 심각한것도 아니다. 바로 개인의 ‘평범한 행복’을 구현하는 과정이며 우리 모두가 가지고있으나 아직 실현하지 못한 삶을 가능한 한 많이 실현하는것이다. 한마디로 분석심리학은 자기실현은 인간의 삶의 본연의 목표이며 자아(알고있는 나)가 무의식세계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자기(모르는 나)를 부단히 파헤쳐 만나고 함께 “포옹”함으로서 자기실현의 최종 목적에 도달하며 이로써 자신의 행복, 나아가 전반 사회의 행복이 가능한것이라고 주장한다.
김혁의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주인공 김찬혁의 자기성장을 보여준 소설인것만큼 주인공이 어떻게 심리적으로 성장하고 자기실현을 하였는가를 재미있게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분석심리학적으로 보면 자기성장이 없는 자기실현은 있을수 없고 자기성장은 자기실현 그 자체이거니와 자기실현의 과정이라고 할수 있기때문이다. 작품에서 성장기의 내면적갈등을 보여주고있는 주인공 김찬혁은 의식의 세계에만 치우치지 않고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크나큰 호기심과 탐구정신, 즉 강렬한 자기실현욕구를 가지고있으며 미지의 무의식세계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만나고 통합하면서 원활하고 즐거운 자기성장을 이룩한다. 하지만 작품속의 주요 인물인 “똥파리”는 자기성장은커녕 무의식이 자아를 덮쳐 자아훼멸을 맞이한 비극적인물이다.
본고에서 필자는 주인공 김찬혁의 자기성장과 작품의 다른 중요인물인 “똥파리”의 자아훼멸을 분석심리학적으로 접근하여 그 심층적인 의미를 확실히 하는 동시에 작품을 분석심리학적으로 연구하는 방법론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소설속의 작중인물에 대한 이러한 심리학적접근은 현시대 복잡다단한 생활속에서 심리적인 고통을 받고있는 이들에게나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수 있는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2. 김찬혁과 “똥파리”의 자아(Ego)
인간의식의 중심에 우리가 흔히 “나”라고 부르는 자아가 존재하고있다. 자아 또는 “나”는 의식된 마음을 통솔하고 또한 무의식의 마음과도 관계를 맺을수 있는 의식의 특수한 콤플렉스5)이다. 그래서 자아콤플렉스라고 한다.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느낌, 나의 리념, 나의 과거, 내가 아는 이 세계, 무엇이든 자아를 통해서 련상되는 정신적내용물들은 모두 의식이다. 바로 이 의식의 중심에 자아가 자리잡고 의식을 통치하고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자아가 없으면 인간정신의 성숙이나 개성화, 즉 자기실현은 불가능하다. 자아는 두가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나는 바깥세계와 관계를 맺고 이에 적응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의 내면세계를 살펴 이와 관계를 맺고 이에 적응하는 기능이다. 의식의 중심으로서 의식을 통제하고 견고히 하는것이 자아이지만 동시에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에 받아들여 이를 동화시키거나 그 뜻을 인식하는것도 자아의 몫이다. 그만큼 자아는 자기실현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되는것이다.6)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 김찬혁의 자아, 즉 김찬혁이 스스로 느끼는 “나”의 모습이 도대체 어떠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화상편에서 상세히 묘사되여있다. 머리가 보통 큰게 아니라 무지무지 커서 “가분수”라고 불리우며 그만큼 총명하여 동네에서 “총기가 있는 아이, 똑똑한 아이, 어른스럽고 진중한 아이”7)로 정평이 나있다. 그리고 “성미가 고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고 남의 집 바람벽에 쌍스런 그림을 그려넣거나 지나가는 계집애들의 태머리를 쥐여당겨놓고는 아닌 보살하는 그런 불량배들의 무리에도 가담하지 않았다.”8)여기서 “총명”하고 “똑똑”함은 지적으로 성숙되였음을 의미하며 “어른스럽고” “진중”함은 심리적으로 성숙되였음을 의미하는바 자아가 의식의 중심을 통치하고 자아의식이 어느정도 성숙되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은 무의식을 의미하고 “고분고분”하고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주인공 김찬혁은 자아의식을 의미하며 그런 불량배무리에 가담하지 않았다는것은 그에게 있어서 이미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분화되였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어린시절 김찬혁은 자아가 의식의 중심을 통제하고 자아의식이 어느정도 성숙되여 자기성장, 즉 자기실현의 필수조건을 갖추었고 의식과 무의식이 분화되여 이제는 자아가 무의식세계의 여러 내용물들을 서서히 맞이하고 파헤칠 준비가 되였음을 의미한다.
이런 김찬혁은 어느날 어머니의 심부름을 받고 물고기를 사러 늪으로 가며 늪에 버려진 죽은 아기를 보고 충격에 휩싸이며 “딱 이름할수는 없지만 분하고 억울하고 뭔가 잘못된것 같은”9)심정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아기의 죽음에 대한 무수한 의혹과 질문덩이들이 머리속에서 맴돌며 “처음으로 생명이라는 존재와 그 소중함, 그에 대한 인간의 처사에 대해 생각을 더듬었다.”10)
늪에 버림받아 죽은 아기는 무엇을 상징하고 그걸 목격한 김찬혁의 분하고 억울한 심정과 의혹을 어떻게 리해할수 있을까? 심리학적으로 늪은 그 깊이, 내용물 등을 가늠하기 어려운 존재인것만큼 미지의 세계, 즉 무의식세계를 상징하며 물은 모든 잠재적가능성의 원천, 무의식에 잠재한 모든 에네르기의 상징이다.11)그리고 죽음이 있음으로 하여 새로운 탄생이 있듯이 부모의 버림을 받아 죽은 아이는 김찬혁의 지금까지의 기존의 자아를 상징하며 성숙된 자아의 탄생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름할수 없는 울분과 고민은 주인공이 낯선 무의식세계의 진입을 앞두고 자기성장에 대한 내적인 갈등과 고민이 시작되였음을 의미하며 또한 아기의 죽음에 대한 반복적인 의혹은 낯선 무의식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욕구로 해석된다. 그리고 아기의 죽음으로 인하여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생각하고 느꼈다는것은 자아의식이 한단계 성숙되였음을 의미하는바이다.
한마디로 늪에 버려져 죽은 아기의 모습을 보았음은 김찬혁이 무의식세계를 마주하여 기존의 자아를 돌이켜보고 성숙된 자아의식을 가지고 심리적으로 힘든 고통을 감수하고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며 아름다운 미래를 향해 자기성장, 즉 자기실현을 시작하였음을 암시해 주고있는것이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찬혁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 절박해지며 어머니한테 집요하게 문의를 거듭한 결과 자신이 부모가 신분이 나쁜탓으로 버림받고 지금의 양부모한테 부양된 사실을 알게 된다. 진상을 알게 된 김찬혁은 “온몸의 실피줄이 터져버리는것만 같았고 발가벗기우고 네거리에 밀려난듯한 한없는 수치감을 느꼈고 온 세상이 공모해 나 하나만을 똥구덩이에 밀어넣은것만 같게 생각되였다.”12)자신의 정체가 밝혀지고 늪에서 본 죽은 아기가 눈에 자주 떠올랐고 김찬혁은 울분과 괴로움에 휩싸이게 된다. 여기에서 “버림받음”을 자기실현, 자기성장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새로운 정신을 이루기 위하여 자아가 기존의 낡은 정신으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이다. 즉 지금까지의 “나”를 버림으로써 자아가 안주해있었던 익숙한 세계로부터 분리되여 낯선 무의식의 령역에 입문하여 자기성장, 자기실현을 하는것이다. 칼융은 말한다. “어린이한테 있어서 버림받음, 내버림, 위험 등은 한편으로는 보잘것없는 출발점의 전형적형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에 가득찬 비범한 출생에 속한다. 이런 표명은 창조적인 성질을 지닌 정신적체험을 묘사하고있다.”13)융은 “버림받음”을 새로운 성장과 탄생을 위해서는 부수적인 현상이 아니라 필요한 조건으로 보았고 그 “버림받음” 고통의 의미를 알고 견디어 나간다면 정신의 창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자기성장의 값진 밑거름이 될것이라고 보았다. 김찬혁에게 심리적갈등이 생기는것은 자아가 창조적원천의 무의식을 통합해 자기성장을 이루고 자신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는 심리적으로 필연코 수많은 시련과 고통이 동반됨을 의미해주는것이다.
총적으로 주인공 김찬혁은 성숙된 자아가 무의식세계에서 완전히 분리되여 미지의 낯선 무의식세계에 대해 입문과 탐구를 시작하며 개성화의 실현, 즉 자기성장을 서서히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작중 중요인물인 “똥파리”의 자아는 어떤 모습일가? “똥파리”에 대한 소개는 그가 유명짜한 불량배로부터 시작된다. “똥파리”는 “싸움질, 로략질을 밥먹듯 하는” 악명이 자자한 인간이며 말을 더듬는 언어장애자다. 우선 “황야의 무법자같은” 존재인 “똥파리”는 자신의 공격, 생존 등 본능적욕구에 따라 행동하는만큼 자아가 강한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인간임을 의미한다. 기분 나쁘게 말하면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가 언어구사를 제대로 못하는 말더듬쟁이라는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따위를 제대로 똑똑히 표현하지 못하는만큼 자아의 세력이 극히 미약함을 의미한다. 세번째로 “똥파리”무리는 모두 엄연히 본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는 “똥파리”를 포함한 이들에 대해 별명으로 대신하며 심지어 “똥파리”는 김찬혁을 무리에 받아들일 때 “찬혁이는 우리 네 사, 사람이다”14)라고까지 한다. 이름은 한사람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운명과 직결되고 그 사람의 자아를 대신한다고 할 때, 이같이 별명으로 본명을 대신함은 “똥파리”의 자아라는 개체의 형성자체가 불투명하거나 자아의 세력이 극히 미약함을 상징한다.
한마디로 “똥파리”의 불투명한 자아는 강한 무의식의 지배와 수시로 되는 공격에 기를 펴지 못하고 의식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힘이 약한 “불쌍한” 존재인만큼 자아의식이 성숙되지 못하였고 무의식세계가 거의 그 자신을 지배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똥파리” 의 자아는 항상 훼멸의 위험에 처해있는것이다.
3. 김찬혁과 “똥파리”의 페르조나(Persona)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인간의 자기성장과정에서 자아는 한편으로는 무의식의 내면세계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세계와도 관계를 맺어야 한다. 외부세계와의 관계에서 필요한것은 바로 개체의 외적인격인 페르조나이다.
페르조나는 고대 희랍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한다. 이것은 자아가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고 이에 적응해가는 가운데 형성된 행동양식이면서 집단무의식에 속한 일종의 기능 콤플렉스로서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고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15)페르조나는 우리말의 얼굴, 낯, 체면 등과 같은 개념이며 사명이니 본분, 도리니 하는 말은 페르조나를 표현하는것으로 사회집단이 개인한테 기대하고 요구할 때 생긴다. 부모의 앞에서는 자식의 페르조나, 안해앞에서는 남편의 페르조나, 후배앞에서는 선배의 페르조나, 이처럼 인간은 사회적관계속에서 이런저런 가면들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면서 생활하며 자기성장을 도모한다.
이제 주인공 김찬혁의 페르조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김찬혁은 “똥파리”무리에 가담하려고 그 패거리 일원이고 친구인 김표를 찾는다. 김표는 김찬혁의 의향을 듣고 “니가? 니같은 모주석의 훌륭한 어린이가?” 하며 앙천대소를 한다. 그리고 “똥파리”를 만났을 때 학급의 문예선전대골간이였기에 노래를 잘 불러 “똥파리”의 칭찬을 받는다. 뒤이어 김찬혁은 “똥파리”의 “시험”에 응해 “회충”과의 싸움을 거쳐 나중에는 “똥파리”의 승인을 받고 성공적으로 그 무리에 가담한다. 여기서 김찬혁은 원래 “모주석의 훌륭한 어린이”, “노래잘 부르는 애” 등 페르조나를 지녔지만 “회충”과의 싸움을 통해 이제는“불량배”라는 또다른 페르조나를 집어쓰기 시작한다. 그뒤 김찬혁은 자전거를 훔쳐오고 몸에 문신을 하고 패싸움을 하며 별명이 “앵무새”인 계집애를 “귀신집”에 가두어놓는 등 여러가지 악행을 저지른다. 이런 점은 그가 이미 “똥파리”무리에 가담하여 악당, 건달로 탈바꿈함으로써 “불량배”의 페르조나를 완전히 지녔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불량배”의 페르조나를 지닌 김찬혁은 상철형님에게서《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라는 소설을 지꿋게 간청하고 빌려 이틀동안 독파해버림으로써 공부를 잘하고 책읽기를 즐기는 김찬혁 자아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는 “쌍두마차”패와의 싸움에서 상철형님의 권고에 따라 싸움에서 빠지고 도망치며 “친구들이 생사결단을 벌리는 판국에 여우처럼 혼자서 빠지다니? 나는 아직도 똥코치임이 틀림없어.”16)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도 역시 김찬혁은 “불량배”의 페르조나에서 벗어난, 성미가 온순하고 말썽을 일으키기 싫어하는 자아의 숨기지 않은 본연의 모습을 나타낸다. 뿐만아니라 학교문예콩클에 참가하여 자신의 장끼인 시랑송을 하고 멋진 연극까지 선보이는 행동, “앵무새”라는 계집애를 골탕먹인 사건때문에 “앵무새”집으로 사과하러 가고 “앵무새” 벙어리엄마의 후덕한 마음씨에 얼굴까지 붉히며 자신이 저지른 못된 행동에 심심한 후회까지 하는 장면, “마스크귀신”을 만나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금붕어까지 얻어가져 기르는 장면 등등에서 우리는 남을 때리고 도적질하고 건달행세를 해야만 하는 “불량배”의 페르조나를 도저히 볼수가 없다. “똥파리”무리에 가담하여 싸움하고 빼앗고 남을 괴롭히고 “영웅행세”를 하는 “불량배”의 페르조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찬혁은 그러한 페르조나에 얽매이지 않고 책읽기, 공부하기를 즐기고 순박하고 선량하며 자유롭고 개방적인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김찬혁은 불량배와 자아를 동일시하지 않고 성숙된 자아의식의 지배를 받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때때로 나타낸것이다.
칼융의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개인이 자신의 페르조나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단일한 페르조나를 지녔을 때, 즉 사회적 의무로 대변되는 외적인격인 페르조나를 자아와 완전히 동일시할 때, 자아는 무의식의 내면세계와 내적관계를 상실당하여 인간정신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할뿐더러 심리적건강을 방해받게 된다. 하여 “페르조나는 가상(假相)이다”라고 칼융은 말한다. 페르조나는 사회속에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기능 콤플렉스이지만 그것이 바로 그 사람자신, 진정한 그 사람의 길은 아닌것이다.17)그리고 페르조나를 거짓, 가상이라고 여겨 없애야 할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격의 발전과정에서 여러가지 페르조나는 형성되여야 하고 다만 자아와 구별하고 상대적인것으로 구별되여야 자기성장이나 자기실현이 가능한것이다.
페르조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것이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고 할 때, 김찬혁처럼 페르조나에 얽매이지 않고 수시로 자신의 내면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것이야말로 자기성장이나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을 받고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가면에 빠지지 않고 자아에 충실함으로써 정신적으로 건강한 힘을 얻을수 있기에 소설속의 김찬혁은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를 유지하여 무의식세계를 좀더 살필수가 있는것이며 결국에는 자기성장을 도모할수가 있는것이다.
김찬혁에 이어 “똥파리”의 페르조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똥파리”는 불량배무리의 “우두머리”이고 힘으로 대변되는 “형님”이라는 페르조나를 시종일관하게 지니고있다. 즉 “똥파리”의 자아는 싸움질 잘하고 누구나 무너뜨릴수있는 강한 힘을 지닌 “나”이고 무리에서도 언제나 남을 지배하고 영웅적행세를 하는 “우두머리”이고 “형님”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시종 자아와 페르조나를 동일시하고있음을 알수있다. 뿐더러 “쌍두마차”를 힘으로 굴복시켜 자기 무리에 끌여들여 동생으로 만드는 장면, 특히 “사마귀”가 “똥파리”에게 있어서 분명히 “불량배선배”이고 나이도 많은 “형님”임에도 불구하고 “똥파리”는 후배, 동생의 페르조나를 바꿔쓸 대신 힘과 세력을 동원해 “사마귀”를 오히려 동생으로 만들고 “형님”의 페르조나를 고집하고있다. 이처럼 힘으로 대변되는 “형님”이라는 페르조나를 자기의 유일한 사명과 삶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똥파리”한테 있어서 자아와 외적인격인 페르조나와의 동일시때문에 자아는 내심을 살펴볼 겨를이 없고 자아는 무의식세계와 관계를 건립할수 없다. 그리고 “똥파리”가 “사마귀”를 위수로 하는 “마가네”패싸움에서 여지없이 참패를 당한후 히스테리적으로 변하게 되는것 또한 자신과 “형님”이라는 페르조나를 동일시하던 그가 자신이 항상 고집하던 “형님”의 페르조나가 상실됨으로서 생기는 도덕적혼란이거나 정신적인 충격인것이다.
한마디로 “똥파리”는 “형님”, “우두머리”의 페르조나에서 어느 순간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형님”의 페르조나를 고집하고 자아의 절대적인 모습으로 간주하고 행동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간의 단절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의식과의 관계단절때문에 살기 힘든 무의식의 공격적인 내용들이 자아를 수시로 침범하고 힘이 약한 자아는 항상 불안에 빠지고 훼멸의 위험에 처해있을수밖에 없는것이다.
4. 김찬혁과 “똥파리”의 그림자(Shadow)
칼융의 분석심리학에서 그림자는 의식에 가장 가까운데 있는 무의식의 내용이며 무의식의 의식화과정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심리적내용이다. 그림자는 자아의 어두운 면, 자아로부터 배척되고 버림받아 무의식에 억압된 자아의식의 여러가지 성격측면이다. 쉽게 말하면 그림자는 “나”가 싫어하는 “또다른 나”, 앞으로 “나”가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있는 나의 어두운 “형제”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부정적이고 열등한 측면과 자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도덕한 요소들로 구성되여있다. 이처럼 그림자는 우리가 직면하기를 꺼려하는 모든 렬등요소이고 아직 자아가 접수하지 않은 요소들이지만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들이기에 언제나 의식에 동화되려고 하며 우리가 그림자를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심하면 자아의식을 덮쳐 지배하고 자신뿐만아니라 남까지도 해칠수 있는 거대한 파괴적인 힘이 작동된다. 하여 칼융은 “사람들이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할 때 그것은 본능의 랭혹하고 위험한 양상을 지니게 된다”18)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자신의 그림자를 밖에 있는 다른 대상을 통하여 본다. 이를테면 상대방에게서 간사하다, 치사하다, 비굴하다 등 열등한 성향을 느꼈을 때, 자신의 간사함, 치사함 등 그림자가 대방에게 투사되여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칼융은 인간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그림자 투사로 인해 생긴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림자가 다른 사람에게 투사될 때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나와 같은 성(性)의 대상에 투사되며 거기서 우리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19)
자아의 버림으로 무의식에 억압되여 있는 그림자는 절대적으로 나쁜것이 아니다. 무의식에 억압되여 해빛을 보지 못하고 있기때문에 나쁜것처럼 보일뿐이고 의식화로서 그림자는 발전될뿐더러20)자기성장, 자기실현의 좋은 에네르기가 될수 있다. 자아가 그림자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살려서 자신의것으로 통합하게 되면 그속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힘이 의식세계를 지배하여 심리학적인 의미의 성숙이 이루어진다. 그동안 배척하고 버린 자아의 “또다른 나”, 어두운 “형제”인 그림자를 통합하는것은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며 자아가 무의식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했을 때, 에너지가 흐르는 온전하고 행복한 삶, 즉 칼융이 요구하는 자기실현을 이룰수 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주인공 김찬혁과 주변인물들간의 갈등, 또한 그 주변인물들간의 상호갈등을 그렸고 더 큰 의미에서 혼란의 시대,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묘사한것만큼 그림자를 그려낸 소설이라고 해도 억지는 아닌상싶다. 특히 제목자체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할 때, “마마꽃”은 주인공의 그림자를 의미하고 그러한 그림자가 무의식을 상징하는 “응달”에서 피였음은 주인공이 무의식세계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여 새롭게 탄생되였을뿐만아니라 자기성장을 이룩하였음을 시사하는 바다. 재미있는 표제이다. 이제 주인공 김찬혁이 어떻게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여 자아의 “친구”와 자기성장의 밑거름으로 만들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김찬혁은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똑똑한 아이”, “어른스럽고 진중한 아이”이고 “머리로 을 배격하면서 선생님들을 마구 떠박지른적이 없었고” 또한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성미가 고운 애”였다. 뿐만아니라 “앞장서 담임교원에게 대자보를 써붙이는 그런 영웅적기질을 가진 소년영웅들의 서렬에도 없었고” 계집애들을 희롱하는 건달도 아니였다.21)초중으로 진학함에 따라 김찬혁은 이런 자아의식이 성숙되고 자신이 싫어하는 그림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체육과대표였다. 김찬혁의 고백을 한번 보기로 하자. 길지 않기에 원문을 그래도 인용해본다.
“학창시절을 지낸 사람들이고보면 거개가 학급의 체육과대표에 대해 은연중 콤플렉스를 지니고있는것 같다. 그 무진장해보이는 힘, 까닭없는 위세에 질려 기가 죽는것이다. 더우기 질서와 법이 무시된 란리의 세월에 약골의 신체를 가진 애들에게 있어서 힘의 상징물로 대변되는 체육과대표에 대한 콤플렉스는 더욱더 큰것이였다”22)
김찬혁은 힘과 위세를 가지고있는 체육과대표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니고있다. 특히 자신은 약골의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힘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체육과대표에 대해 강한 콤플렉스를 지니고있다. 자신은 힘이 약하기에 항상 힘으로 모든 상대를 제압하는 체육과대표는 그가 싫어하는 인물이며 그의 그림자인것이다. 즉 김찬혁의 자아는 순진하고 힘이 약하기에 힘이 강한 상대는 김찬혁 자아의 배척과 버림을 받아 무의식에 잠재한 자아의 어두운 “형제” 인 그림자이며 그 그림자는 바로 힘이 센 체육과대표에 투사되여 나타난것이다. 한마디로 김찬혁은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한것이다.
그후 김찬혁은 김표의 소개로 모두가 부르죠아보다 더 미워하는 “똥파리”불량배무리에 가담한다. 불량배무리에 가담하는것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자신이 싫어하는, 힘이 강한 그림자를 직면한 김찬혁은 그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는것을 의미한다. 뿐만아니라 얌전하고 말썽을 안 일으키고 건달을 싫어하는 김찬혁에게 있어서 강탈, 싸움, 녀자를 희롱하는 등 악행을 일삼는 “똥파리”불량배무리는 김찬혁 자아가 싫어하는 또 하나의 그림자이며 이러한 무리에 가담함으로써 김찬혁은 그 그림자가 두렵다고 억압하거나 회피 또는 억제하지 않고 용감하게 직면하여 힘이 강한 불량배의 페르조나를 가짐으로써 불량배그림자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 받아들여 통합함을 의미하는것이다. 그리고 문예콩클에서 김찬혁은 체육과대표와 함께 재미있는 연극을 선보이는것도 그가 자신의 그림자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여 편안하고 활기가 차넘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정도의 자기성장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림자를 다룬 소설인것만큼 작품속의 많은 갈등에는 그림자가 보여지며 김찬혁은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는것을 많은 곳에서 보여주고있다. 작품에서 김표는 김찬혁의 또다른 그림자일뿐만아니라 심지어 “똥파리”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그림자이다. 김표는 변소틈새로 녀자들의 치부를 훔쳐보고 녀자들의 속옷을 훔치고 심지어는 생리대까지 훔치는 “치사하고” “치졸스런” 습관을 가진 인간인것만큼 김찬혁을 포함한 모두가 싫어하는 그림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여 김찬혁은 그와 친구로 사귀였고 김표의 소개로 “똥파리”무리에 가담한후 녀자의 생식기해도를 같이 볼뿐더러 “저녁에 나오면 굉장한것을 보여주겠다”23)는 김표의 말에 김찬혁은 저도 모르게 김표의 부름대로 나와 둘은 녀자목용탕을 훔쳐보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김찬혁은 “치사하고” “치졸한”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여 무의식속의 그림자를 의식화하여 “어두운 면”을 극복하였을뿐더러 그림자와의 통합을 통하여 자아와 무의식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음을 의미한다. 만약 김찬혁이 김표같은 치사하고 치졸한 사람을 시기하고 그에 대한 분노를 품는다든가 혹은 그런 너절한 인간이 싫어 욕하고 구박하면 그것은 그림자의 함정에 사로잡힌 상태, 즉 무의식의 그림자를 의식화하지 못하고 배척, 거부하는 상태로서 그 결과는 자아가 내면세계를 살피지 못해 자아와 무의식세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심리학적의미의 성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것이다. 필경 자기성장은 자아와 무의식의 지속적인 련계를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하는것을 념두에 두어야 한다.
한마디로 작품에서 김찬혁은 자아의 이런저런 그림자를 대면하지만 그것을 부정적으로 여겨 억압, 회피 또는 거부하지 않는 반면, 무의식속의 그림자를 대담하게 자신의것으로 받아들여 돌보고 통합시킴으로서 시종 무의식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정신적으로 더 성숙되고 인간적인 사람으로 되여가는것이다.
이제 “똥파리”의 그림자를 살펴보기로 하자. 힘이 세고 싸움 잘하고 영웅적기개를 내세우는 “똥파리”한테 있어서 그림자는 분명 약하고 비굴하고 치사한 모습 등이며 이러한 그림자는 그가 시종 억압, 거부하는 대상이다. “똥파리”무리가《꽃파는 처녀》라는 영화를 보러 갔을 때 기타 애들은 영화속의 감동적인 장면에 눈물을 훔치지만 “똥파리”만은 성냥개비 하나를 물고 씹어댈뿐 무표정하다. 영웅적기개를 주장하는 똥파리에게 있어서 남자가 눈물을 쥐여짜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인것만큼 “눈물 흘리는 남자”는 “똥파리”의 또 다른 그림자이다. 그런 그가 눈물을 거부함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자신의 그림자에 대한 억압, 외면과 거부이고 그 대가로 “똥파리”는 무의식의 공격에 심한 심리적갈등을 겪게 되며 모아산기슭에서의 울분과 고통의 눈물이 생겨나게 되는것이다.
그뒤 “똥파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배척하고 거부하는 모습을 시종일관하게 보여주고있다. 똥파리의 또 다른 그림자인, 별의별 치사한 짓거리를 다 하는 김표에 대해서도 “노기가 상설같이” 일어나고 김표에게 무서운 책벌을 안기고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리는 장면24), 자신의 녀자를 좋아한 상철이를 “광분하는 사자처럼 달려들어” 각목으로 후려갈기는 장면25)등등에서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강하게 배척하고 거부하는 “똥파리”를 쉽게 만나게 된다.
작품에서 “똥파리”의 훼멸은 자신의 그림자에 대한 억압과 거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자로 자부하던 “똥파리”가 “마가네”패싸움에서 여지없는 참패를 당하고 약자로 변했을 때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상대한다. 품위있게 실패를 인정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기분좋게 안아줄 대신 그는 역시 강하게 배척, 거부한다. 이제는 자아와 무의식세계와의 관계가 완전히 상실되고 살지못한 무의식의 내용들이 의식세계를 공격하여 “똥파리”는 변태적으로 변하였고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결국에는 자아훼멸에 이른것이다.
5. 나오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칼융의 분석심리학의 자아, 페르조나, 그림자 등 리론으로 접근하여 주인공 김찬혁의 자기성장과 “똥파리”의 자아훼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이상 론의한것을 다시 종합해보기로 하자.
작품에서 주인공 김찬혁은 성숙된 자아의식을 지녔고 자기실현, 즉 자기성장의 욕구를 가지고있는 소년이고 또한 무의식세계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탐구정신을 지녔기에 자기성장, 자기실현이 가능한것이다. 무의식세계와의 지속적인 련계를 취하기 위해 우선 김찬혁은 여러가지 페르조나를 쓰고 외부세계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자아와 페르조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자아 본연의 모습을 가끔씩 나타냄으로서 의식과 무의식사이의 지속적인 련계를 기할수 있었고 무의식세계의 내용물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창조적인 내용으로 변화시켜 자기성장을 해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렬등한 인격인 그림자를 억압, 배척, 거부하지 않는 반면, 그림자를 인식하고 살려서 자신의것으로 보기좋게 통합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무의식의 창조적인 힘이 자아에 스며들어 심리학적인 의미의 자기성장을 이루는것이다.
작품의 다른 중요한 인물인 “똥파리”는 자아훼멸에 이른 비극적인간이다. “마가네”패싸움에서의 참패는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 “똥파리”로 대변되는 자아가 무의식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점령당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작품에서 김표 외 김찬혁을 포함한 기타 사람들이 “똥파리”의 자아의식을 상징한다고 할 때 그들이 “똥파리”무리에서 떠남은 무의식의 공격에 “똥파리” 자아의식이 떨어져나가고 무의식에 점령당했음을 의미한다. 비록 장님이 된 김표가 “똥파리” 곁에 남았다고 하나, 눈이 멀었음은 심리학적으로 무의식상태를 상징하기에 “똥파리”는 그 자체가 무의식전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자아의식이 약한 “똥파리”는 자아와 페르조나와의 동일시, 그림자에 대한 억압, 배척, 거부를 지속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간의 소통을 진일보 단절시켰고 자아와의 관계를 맺지 못한 무의식의 살지못한 내용들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자아와 의식의 구조를 산산조각내버렸던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의 공격에 무너진 자아는 소멸됨으로써 전체정신의 훼멸을 의미하며 “똥파리”는 비극적운명을 회피할 수가 없는것이다.
김혁의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심리학적으로 우리들에게 많은 계시를 주고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태여나 사회와 관계를 맺고 여러가지 규범을 지니고 사회적자아로 태여날뿐만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과 대면하며 정신적으로 또 한번 태여나야 하는 정신적존재인만큼 자기성장을 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기필코 수많은 심리적고민과 갈등을 겪기 마련이다. 인간은 태여나 성장하여 사회적존재가 되면서 불가피면적으로 페르조나를 쓰지만 지식, 신분, 지위, 금전 등 기호에 의해 표현되는 이런저런 페르조나는 사회적관계속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표피적자아의 모습일뿐 인간 본연의 모습은 절대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자신의 표피적자아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래적인 모습을 찾아야 할뿐더러 자신을 둘러보고 진지하게 내적인 자신과 대면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심리적고통이 동반된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융은 진정한 자신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세계의 자신의 그림자를 억압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자기의 주동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만이 자신이 싫어하는 “어두운 나”를 통합하여 그속의 창조적인 힘이 의식세계를 지배하게 함으로써 심리학적인 의미의 성장, 즉 자기실현이 가능하기때문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는것은 평생동안 해나가야 할 작업이라고 칼융은 말하고있다. 그림자를 통합하는 작업에 앞서 다른 사람에게만 있다고 생각한 그림자가 내안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좀 더 낮은 자세로 바라다 볼수 있는 여유를 가질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겸손과 여유는 인간리해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여 일상생활에서 원활한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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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김혁,《마마꽃, 응달에 피다》,연변인민출판사, 2005년 12월.
2) 소설은 연변작가협회 제5기 계약작가 작품으로 선정되였고 2000년《도라지》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단행본이 2005년《장백산》문학상과 제5회 “진달래”문예상을 수상. 그리고 이 소설에 관하여 평론가 전경업의《생명, 그 노래는 레드》, 연변대학 우상렬교수의《성장소설 과 의 경우》 등 론문이 있음.
3) 한국에서 발표된 평론을 보면, 2009년 한국숭실대학교 권성은의 석사론문《디아스포라 문학의 ‘공간’연구: 김혁의 를 중심으로》, 2011년 한국방송대학 이새아의《일상사로 끌어안은 문혁의 폭력》등 론문이 있음.
4) 김혁,《그 시대 사춘기의 제전에 바치는 조화--장편소설초판본 후기》,《마마꽃, 응달에 피다》,상해원동출판사, 2014년 8월, 389페지.
5) “‘콤플렉스’란 의식, 무의식 모두를 구성하는것이지만 특히 집단적무의식을 이루는 ‘콤플렉스’를 像, 또는 원초적 또는 근원적유형, 줄인말로 原型이라고 한다.”이부영,《분석심리학》,서울, 일조각, 1998년, 60페지.
6) 이부영,《자기와 자기실현》, 할길사, 2006년7월, 32페지 참조.
7) 《마마꽃, 응달에 피다》, 11페지.
8) 《마마꽃, 응달에 피다》, 11페지.
9) 《마마꽃, 응달에 피다》, 17페지.
10) 《마마꽃, 응달에 피다》, 19페지.
11) (德)汉斯·比德曼著,刘玉红等译,《世界文化象征词典》,漓江出版社,2000年1月,323页。
12) 《마마꽃, 응달에 피다》, 37페지.
13) (瑞士)荣格著,徐德林译,《原型与集体无意识》,国际文化出版社,2011年5月,133页。
14) 《마마꽃, 응달에 피다》, 65페지.
15) 이부영,《자기와 자기실현》, 할길사, 2006년7월, 44페지 참조.
16) 《마마꽃, 응달에 피다》, 106페지.
17) 이부영,《자기와 자기실현》, 할길사, 2006년7월, 46페지 참조.
18) 김성민,《악의 문제와 그 극복에 대한 고찰》,한국기독교신학논총,2001년 22기,382페지.
19) 이부영,《그림자》, 할길사, 1999년10월, 41페지 참조.
20) 이부영,《자기와 자기실현》, 할길사, 2006년7월, 133페지 참조.
21) 《마마꽃, 응달에 피다》, 11페지.
22) 《마마꽃, 응달에 피다》, 34페지.
23) 《마마꽃, 응달에 피다》, 296페지.
24) 《마마꽃, 응달에 피다》, 300페지.
25) 《마마꽃, 응달에 피다》, 312페지
"장백산" 2016년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