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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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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자궁회귀본능 - 김혁의 “련꽃밥”을 읽다 댓글:  조회:738  추천:3  2020-08-01
  평론   자궁회귀본능 - 김혁의 단편소설 “련꽃밥”을 읽다   ​우상렬     인간에게는 자궁회귀본능이라는게 있단다. 우리가 나서 자란 고향이 바로 우리의 자궁의 하나. 인간은 어디에 가든지 이 자궁을 잊을 수 없어 항상 그리워한단다. 그래 자궁회귀본능이라는 것을 외우게 된다.    제1회 길림신문 “두만강” 문학상 수상작인 김혁의 단편소설 ‘련꽃밥’은 바로 우리의 자궁회귀본능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 시작에 주인공은 페촌이 된 고향마을을 찾아간다. 그것은‘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찾는 것이었다. 어쩌면 주인공은 고향을 잊고 살은지도 모른다. 고향이 물질적으로 가난해서 주동적으로 떠났으니 말이다. 이것이 의식세계의 직실한 보기이리라. 그런데‘간밤에 고향으로 간다는 흥분에 꺼둘려 충전을 깜박한’다. 고향은 무의식적인 자궁회귀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궁회귀본능은 타향에서 고생을 하면 더 발동되는 법. 주인공을 보자.  그는 냉동창고에서 악덕업주를 만나 육체적 고달픔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인격적 모욕까지 받으며 시까름을 당한다. 그래 경남의 오지 한우농장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아내의 위장결혼이‘진짜’결혼까지 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아내와의 해후는 비극의 생생 보기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고향은 ‘한때는 제법 풍요와 번성을 자랑했던 마을이였다.’바로 이 마을에서 주인공은 마을문화관의 책상물림-화이트칼라로 일을 했고 잘 나가는 축이었다. 그래 수상도 하고 사랑도 싹 트고 마을에서 가장 고운 연꽃 같은 아내를 얻게 된다. 그리고 자기를 빼 닮은 아들도 보게 된다. 한마디로 여기는 꿈이 피어나고 행복이 무르녹던 곳이다. 현실과 과거의 이런 대비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피어나는 것이 자궁회귀본능이다. 이것을 일종 향수라 해도 좋다.    이런 자궁회귀본능은 객관적인 계기나 자극에 의해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 작품에서 농장주가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이 바로 그것이다. 이 연꽃못이 자연히‘마을앞 커다란 자연 못에 련꽃이 무성해 련화촌으로 불리’던 고향마을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시도 때도 없이 연못에 나와 자궁회귀본능-향수를 달랜다.   ‘그 감흥에 옮아 들어’“‘우리 연변에도 련이 난답니다. 두만강 홍련이라고’”는 직접적인 주석으로 된다. 여기에 농장주의“‘그럴테지,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고향의 제것이 더 아름다울걸세’”는 정곡을 찌르며 가슴에 와닿는다. 여기에 농장주는 한 술 더 떠“‘이보게 옌벤 나그네, 이제 제것을 완상하러 가시게. 꽃잎이 싹 다 지기전에 말일세.’”는 직접적인 추동으로 된다.    이런 자궁회귀본능은 삶의 도리나 이치를 터득하게 되면서 실천으로 나아가게 된다.   “‘련꽃을 마음에 들이면 욕심을 씻고 평정한 마음을 가질수 있다고 선친은 늘 말씀하셨네. 무욕의 평정한 마음은 안락과 평화를 가져다준다는데 선친께서 가르치셨던 그 간단한 리치를 난 여태 실천해 오지 못했지.’”농장주의 이 말은 바로 그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그래 주인공이“‘나도 여태 완상할줄 모르고 살아왔슴다. 그 꽃 말임다’”고 되뇌인 것도 자연스럽다.    자궁회귀본능- 사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장 아늑한 자궁 같은 고향을 그린다. 이것은 어쩌면 집단무의식 같은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아름다운 못을 버리고 뿔뿔이 헤여져 떠났던것인가?’를 자기도 모르게 반문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집단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려 음미하며 완상하게 될 때 고향은 이제 추물이 아니라 더 아름답게 안겨온다.   ‘고향의 련못은 스스로 꽃잔치를 벌리고 있었다.’그리고 그것은 식물, 동물 등 생명의 하모니. 그것은 유구한 자연의 원생태. 한국 한우농장의 인공적인 것보다 더 진실하고 확실하다. 物是人非-자연은 그대론데 사람은 가고 없기는 하나. 그래 결국 사장 한 장으로나마 달래보는 자궁회귀본능. 현실은 이렇게밖에 별 도리가 없다. ‘빨리, 또렷이 인화되라고 사진을 따뜻이 손아귀에 품어 가슴에 대였다./내 가슴에서 련꽃 한점이 바야흐로 피여오르고 있었다.’  여기서 연꽃은 자궁회귀본능을 달래는 하나의 상징코드이다.   소설가 김혁의 ‘련꽃밥’은 식상하기 쉬운 한국제재를 정신분석학적인 자궁회궁본능이란 집단무의식으로 풀이하여 새롭다. 조선족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창출하여 좋다.    "길림신문" 2020-07-08   우상렬:  연변대학조한문학원 비교문학연구소 소장‧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박사생 도사(导师),  연변작가협회 이사.  [연구방향] : 중조일문학연구.  [주요 강연 과정]: 글쓰기 기초, 문학 개론, 미학 개론, 문학 비평 방법론 등.  [저서] : 2009년 조류와 한류의 비교문학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2009년 7월~2009년 12월) , 2015년 국가사회과학원기금 중점입찰사업 20세기 동아시아 항일서사정리 연구 자과제(子课题) 담당자 등 10부.  
30    상해탄 올드 데이스 댓글:  조회:725  추천:11  2020-04-16
  평론 상해탄 올드 데이스 -김혁의 장편소설 《무성시대》   리광일   저명한 다산작가이고 조선족의 중견소설가인 김혁의 장편소설 《무성시대》가 2018년 1기부터 2020년 2기까지 《장백산》잡지에 14차에 거쳐 련재를 끝냈다. 이로써 김혁의 여섯번째 장편소설이 완성된것이다.   김혁은1985년 단편소설 《피그미의 후손들》(《청년생활》, 1985년 8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고 곧이어 《노아의 방주》(1985), 《맥주 두병》(1985)을 련속 발표하였다. 1994년 중편소설 《미망의 도시》, 《적(笛子)》, 《바람 속에 지다》 등을 발표하면서 그의 중편소설창작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였다.   김혁의 장편소설창작은 2003년부터 시작되였다. 이해 첫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창작하고 《장백산》잡지에 1년간 련재하였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문화대혁명의 란장판을 그렸다. 이어서 출국붐 속에 스러진 조선족 녀인상을 그린 두번째 장편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2003)를 창작하고 《연변문학》잡지에 1년반 동안 련재하였다. 이외에 조선민족이 애대하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문학생애를 조명한 장편소설 《시인》(2010), 위만주국 황후인 완용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 《완용 황후》(2013), 조선족 최초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그린 《춘자의 남경》(2015)을 창작하였다.   작가의 말에서 지적하다싶이 김염에 대한 논픽션은 많이 나왔다. 하지만 그에 대한 픽션은 매우 적은 형편이다. 특히 이 작품은 조선족문단에서는 처음으로 되는 김염 관련 픽션물이고 첫 장편소설이다. 본고는 세가지 방면에서 김혁의 장편소설 《무성시대》의 특징을 살펴보려고 한다.   1. 연기자의 일대기적인 플롯   이 소설의 시작은 “캇!”으로 시작된다. 1928년 상해에 있는 명성영업공사의 촬영장에서 영화 《목란종군》의 촬영이 한창인데 이 영화의 엑스트라로 김덕린(김염)이 촬영에 참가한다. 촬영에서도 그는 주인공 풀샷을 주는데 끼여들었기에 감독은 “캇!” 하는 쇠소리를 냈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액션!”으로 끝이 난다. 1950년 상해영화제작소에서 처음으로 제작하는 영화 《대지중광》의 주역으로 된것이다. 감독의 이 한마디에 무성영화의 대가가 다시 수은등아래에 서게 된것이다. 이 작품은 “캇!”에서 시작되여 “액션!”으로 끝난다. 즉 애송이 엑스트라 김염이 영화촬영에서 연기를 잘못해 감독이 “캇!”(중지)하는것으로 시작하여 이미 영화황제가 되여 주역으로 영화촬영에 참가하여 감독이 “액션!”(시작)으로 끝나는 작품의 구성이 주목된다. 이 작품은 영화황제 김염의 연기자로서의 일대기적인 플롯을 갖고있는것이 특징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연기자 김염의 생애는 세개 단계로 살펴볼수 있다.   첫번째 단계는 1910년 태여나서부터 1927년 17세까지인데 연기자가 되기전의 준비단계이다. 1910년 서울에서 의사집의 셋째 아들로 태여났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아버지가 1912년 일제의 수배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2살되던 김염도 가족을 따라 흑룡강성 치치할에 온다. 영화를 보기 위해 열심히 빈 담배갑을 모은다. 담배갑 10개를 모으면 한부의 영화를 볼수 있기때문이다. 이렇게 부지런히 모아서는 영화를 보군 하였다. 저명한 경극배우 매란방이 출연한 영화 《천녀산화》를 세번이나 보면서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에게 불행이 따라온다. 아버지가 일제의 간첩에게 독살당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였다. 어머니 홀로 일곱 아들딸을 먹여살리기에는 역부족이였다. 그리하여 가정은 뿔뿔이 헤여지고 자식들은 친척집에 보내지게 되였다. 김염은 천진에서 사는 둘째 고모의 집에 보내졌다. 고모집에 와서도 영화에 대한 김염의 애착은 식을줄을 몰랐다. 완령옥의 사진이 박혀있는 영화월간지 《영화월보》에 빠졌고 영화에 매료되였다. 그리하여 고모부와 언쟁이 일러났는데 고모부 김규식은 시시껄렁한 영화에 빠지지 말고 소래 광산 김씨의 자손으로서 독립운동가의 자식답게 옳바른 정도를 걸으라고 을러멘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김염의 뜻을 꺾을수 없었다.  천진에서 김염은 명망높은 명문중학인 남개중학교에 입학하였고 학교운동회에서 달리기선수로 일등을 한다. 하지만 공부에는 흥미가 없고 고모부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염은 영화배우의 꿈을 버릴수 없었다. 민신영화제작사의 후요 감독과 절친한 사이인 《대공보》 천진주재소 허기자의 소개장을 받고 김염은 1927년 이른 봄, 친구들이 모아준 돈 7원을 갖고 무작정 동방의 할리우드이고 당시 중국영화산업의 메카인 상해로 떠난다.   두번째 단계는 1927년부터 1932년까지인데 일반 연기자로부터 영화황제가 되기까지이다. 상해에 도착한 김염은 민신영화제작사를 찾아가 후요 감독을 만나고 사흘후 영화촬영장에 가서 엑스트라 행인 정(路人丁)의 역을 맡는다. 기록계원의 자리가 차례지지만 감독에게 코밑치성 안해 한달도 못되여 기록계원에서 해고된다. 극장지기로 취직하여 고독과 고뇌를 거듭하지만 무료로 영화를 보면서 많은 연습을 거듭한다. 이 과정에 배우의 기량을 닦은것이다. 극장에서 민신영화제작사 복만창감독을 만나고 그의 소개로 남국영화연극제작사 연극쟁이 전한을 만난다. 이 만남은 우연이지만 김염의 연기생활의 한페지를 만들어준 만남이기도 하다. 전한과 김염은 함께 연극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전한의 제작사에서는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을 번안해 공연하는데 한번은 극중의 요한 역을 맡은 배우가 나타나지 않아 김덕린 대타로 무대에 등장한다. 공연은 대성공을 이루고 단번에 김염은 인기를 한몸에 안는다. 그동안 김염은 전한에게서 연극과 무대연기를 배운다. 후에 《열혈남아》라는 영화에 단역 대장쟁이로 출연하지만 영화가 실패한다. 상해에 온지 1년이 되는 1928년 설날, 김염은 상해 외탄의 불꽃놀이를 보면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리라 작심하고 자기의 예명을 김염이라 한다. 련화영화제작사에서 그의 연기인생에 큰 역할을 한 손유감독을 만난다. 두사람은 모두 남개중학교 출신이고 동갑이다. 손유 감독은 영화 《야초한화》의 남녀주역으로 김염과 완령옥을 기용한다. 김염은 어릴 때 영화잡지에서 보았던 완령옥을 만난다. 영화는 대성공을 이루고 히트를 친다. 이어서 《련애와 의무》란 영화에 김염과 완령옥이 주연으로 출연하는데 역시 대성공을 이룬다. 김염은 이어서 복만창 감독의 《련애와 의무》, 《일전매》, 《도화읍혈기》 등 세부의 영화에 출연하고 사동산 감독의 《은한쌍성》에 출연한다. 이제 김염은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길거리를 마음대로 다닐수 없게 되였다. 그는 스타가 되였다. 1932년, 영화전문지 《전성일보》가  “중국10대 영화명배우” 투표행사를 진행했든데 김염 1등을 했고 “상해의 영화황제”라는 칭호를 받게 되였다. 또한 《전성》영화잡지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명배우”, “가장 건장한 남자명배우”, “내가 가장 벗으로 사귀고 싶은 남자배우”  등 테마로 투표행사를 진행했는데 단연 김염 1등을 하였다. 김염의 등극은 상해 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열어갔다.   세번째 단계는 1932년부터 1950년까지인데 파란만장한 영화황제의 인생을 보여주었다. 전한이 김염의 녀성팬들이 편지를 보고 영화 《세 모던 녀성》을 만들고 손유 감독이 영화 《들장미》를 만든다. 이 영화의 녀주연은 왕인미가 맡는다. 김염과 왕인미가 만나고 1934년 두사람은 결혼한다. 1934년 손유 감독의 영화 《대로》에 김염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섭이가 영화의 주제곡 《대로가》를 작곡하며 김염이 직접 노래를 부른다. 김염은 좌익영화인으로 맹활약하며 좌익작가련맹이 성립된 1930년대는 “김염의 년대”라 일컬어진다. 그는 오영강 감독의 항일테마의 영화 《장지릉운》에 주연으로 출연하지만 영화가 국민당중앙 영화검열기관의 검열에 걸려 곤욕을 치른다. 할리우드 영화출연 제의가 들어오지만 영화가 락후한 중국과 초라한 중국인을 보여준다고 제의를 거절한다.  상해가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1939년 김염은 중경에 가서 중앙영화촬영소의 손유 감독의 영화 《장공만리》의 비행사역을 맡는다. 왕인미도 영화에 참가한다. 3년간 촬영하고 개봉하자 장병들속에서 인기를 얻는다. 상해 일본 주둔군 병영에서 일본군이 영화촬영제의를 하자 거절하고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게 되자 지인의 도움으로 김염부부는 향항으로 탈출한다. 다시 이들은 향항을 떠나 계림으로 피난하고 김염은 또 중경, 곤명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이들은 곤명에서 리혼한다.  일제가 투항한후 김염은 영화배우 류경의 소개로 대광명영화관에서 진이를 만난다. 김염과 진이는 사랑에 빠지고 드디여 향항에서 결혼한다. 1950년 상해영화제작소에서 촬영한 서도 감독의 영화 《대지중광》의 주역을 맡는다.   2. 력사적진실에 기초한 소설화   이 작품의 주인공 김염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때문에 작품은 력사의 현장을 비켜갈수 없다. 하지만 력사에 너무 집착하면 논픽션이 되기 쉽다. 이 면에서 작품은 력사와 소설의 관계를 잘 처리하였다. 이 작품에는 많은 력사적진실이 나타나고 특히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작품의 전반적인 플롯에서 중요한 공능을 하였다. 작품에 나오는 실존인물들은 고립적으로 등장하는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작품의 주선에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매우 인성적으로 처리되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은 주인공과 얼기설기의 관계를 갖고있으며 주인공의 변화와 성장에도 직결되였다.  김염이 상해에 도착해 처음 만난 영화감독은 후요이다. 그는 씨나리오 작가이고 영화감독이다. 뿐만아니라 중국 초기영화리론의 개척자이다. 그가 감독한 영화는 《서상기》, 《위군자》 등이 있다. 이외 항일제재의 영화를 많이 제작했고 후에 싱카폴에 갔는데 일제가 강점한후 항일죄목으로 1942년 살해당하였다. 후요는 김염이 상해에서 처음 만난 영화인이고 그를 영화촬영장에 데리고 간 사람일뿐 큰 의미는 없는 인물이다. 두번째로 만난 사람은 밥통감독 복창만이다.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밥통》, 《세 모던 녀성》, 《련애와 의무》, 《목란종군》 등 영화를 제작하였다. 해방후 향항과 대만에서 영화감독으로 있었고 1974년 향항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복창만은 김염이 전한을 만나게 해준 사람이라는 점에서 작품에서 인물형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였다. 세번째로 만난 사람은 전한이다. 전한은 김염이 영화배우로 성장하는데 큰 작용을 한 인물이고 김염이 좌익영화인으로 나가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전한은 문예활동가, 중국현대연극 3대 정초자의 한사람, 극작가, 희곡작가, 씨나리오작가, 소설가, 시인, 문예비평가 등 많은 칭호를 갖고있다. 후에 중국 국가가 된 《의용군행진곡》의 작사자이다. 1968년 “문화대혁명”에서 박해를 받아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하연은 “전한은 현대의 관한경이고 중국 연극혼”이라고 평가했고, 소숙양은 “전한은 5.4운동에서 산생한 문화거인”이라 평가했고, 조우는 “전한의 일생은 한부의 중국연극발전사”라고 평가했다. 김염이 영화배우로 성공하고 스타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손유 감독이다. 손유는 영화감독이고 씨나리오작가이다. 청화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류학을 가서 영화제작, 촬영, 편집, 화장 등을 배웠다. 해방전에 《들장미》, 《대로》, 《장공만리》 등 많은 영화를 제작했고 해방후 영화 《무훈전》을 제작했다. “문화대혁명”기간 영화 《무훈전》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1990년 상해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김염부부가 상해를 탈출하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오영강 감독이다. 그는 영화감독이고 씨나리오작가이다. 해방전에 《장지릉운》 등 영화를 제작하였고 해방후에는 《파산의 밤비》 등 영화를 제작하였다. 제1차 중국영화 금계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82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이외 작품에서 편폭을 들여 소개한 섭이, 완령옥, 왕인미, 진이 등도 있지만 특히 주목되는 인물들은 서왈보, 권기옥, 안창남, 최용덕 등인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기에 흥미롭다. 그리고 김염이 남경훈련소에 가입하는데 영향을 준 인물들이기도 하다. 서왈보는 독립운동가이고 한국 최초의 비행사이다. 시베리아에서 안창호, 리갑 등과 함께 군관학교를 설립해 독립투사를 양성하였다. 중국 보정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북경 남원항공학교를 졸업하였다. 풍옥상군벌의 항공대장, 남원항공학교장 등을 력임하였고 1926년 비행기추락사고로 사망하였다. 권기옥은 상해림시정부에서 활동한 한국 최초의 녀성 비행사이며 남경에서 항공서소속으로 10여년간 활동하면서 항일을 견지하였다. 평양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했고 중국 항공학교 1기생으로 공부하였다. 안창남은 한국 최초의 비행사이다. 일본에서 비행학교를 졸업하였다.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단체에 자금을 조달하고 비행기술을 가르쳤다. 1930년 불의의 비행사고로 사망하였다. 최용덕은 비행사이다. 의렬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중국공군군관학교를졸업한후 학교 교관, 중국수상비행대장, 중국공군지휘부 참모장 겸 공군기지사령관, 중국공군기지학교 교장 등을 력임하였다. 작품에서 김염의 형상은 매우 립체적이고 풍만하게 부각되였다. 상해탄의 영화계 대 스타이지만 그의 몸에서 오만함, 거만함, 건방짐을 볼수 없다. 오히려 인정이 넘쳐나는 인물형상이다. 배우가 되려고 홀로 상해에 와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꾸준히 노력하는 점에서 그의 강인한 성격을 볼수 있다. 그리고 성공한 후에는 동생들의 형편을 헤아려 상해에 데려다 공부를 시킨는 장면에서 혈육의 정을 아끼는 그의 둔후한 인품을 볼수 있다. 여가 시간이 나면 옥윤누나의 가게에 가서는 자건거를 타고 배달하는 장면에서는 시골사내의 솔직하면서 어딘가 귀염성스런 모습도 볼수 있다. 완령옥이 자살했을 때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정의감도 있다. 그런가 하면 고모부가 영화잡지를 불살르라고 윽박지를 때 자신이 즐기는 잡지를 끝까지 태우지 않는 무서운 고집스러운 성격도 있다. 그의 안해 진이의 증언에서도 나오고 작품에서도 나오지만 김염은 영화배우의 연기만 잘 하는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다재다능하다. 바이올린을 켤줄 알고, 의자를 만드는 등 목수일도 하고, 조각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뜨개질도 하고, 자동차 운전도 하고, 승마, 수영, 테니스, 축구, 롱구 등도 한다. 게다가 김치도 담글줄 안다. 영화황제가 아니라 잡가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이다.   인간 김염의 성격을 제일 잘 보여주는 장면은 상해의 눙탕에서의 세방집 생활이다. 단돈 7원을 지니고 상해에 온 그에게 생활의 여유는 없었다. 하여 싸구려 세방집에서 살게 되는데 하루에 상해의 골목거리 음식인 썽잰보를 하나밖에 먹지 못한다. 썽잰보가게주인의 온갖 멸시와 야유를 받아가면서 푸대접을 받지만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그는 모든것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한다. 심지어는 그의 예술생애의 첫 스승인 전한이 선물한 코트로 썽잰보 열개를 바꾸어 먹기도 한다. 후에 완령옥과 함께 주연한 손유 감독의 영화 《야초한화》가 히트를 치면서 하루새에 명배우가 되자 김염은 다시 썽잰보가게를 찾아간다. 가게주인이 알아보고 어쩔바를 몰라 하지만 그는 태연하게 썽잰보 100개를 사서 가게에 온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한턱 낸다고 한다. 김염의 너그러움을 알아볼수 있는 장면이다. 일반 사람들 같으면 목덜미에 힘을 주면서 호통을 치고 거들먹 거렸겠지만 김염의 몸에서 이런것을 볼수 없었다. 무명시절을 끝내고 스타로 되는 순간에도 그는 인간의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았고 단지 어려웠던 그 시절을 청산하는 하나의 행사로 처리하였다. 뿐만아니라 가게주인의 딸 쇼죠가 만들어주는 헝겊신도 반갑게 받는다. 이미 구두를 신고있는 그가 헝겊신을 신을 기회가 없으면서도 말이다. 인간 김염을 따스하게 마주하는 순간이 아닐수 없다.   3. 예술미의 추구와 강렬한 항일의식   작품의 주인공 김염은 1927년에 상해에 온다. 그가 1932년 영화황제가 되기까지 5년밖에 안된다. 그럼 무엇이 그를 황제로 만들었을가. 여기에서 예술, 특히 영화예술에 대한 김염의 끈질긴 추구와 갈라놓고 생각할수 없다. 김염이 후요 감독을 찾아갔을 때 그에게 맡겨진 역은 하잘것 없는 행인 정(路人丁)이다. 영화촬영이 생소했기에 실수로 감독의 욕을 먹기도 하였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집착은 이런 욕을 귀등으로 흘려버릴수 있었다.  “방금전 욕을 삼태기로 얻어먹은 사람같지 않은 모습이였다. 다부산즈자락을 들어 땀으로 벌창해진 얼굴을 씻으면서 덕린은 또 다른 촬영장면들을 지켜보고있었다. 주연배우들의 몸짓 하나, 손짓 하나를 이글거리는 눈속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고있었다.” “나라면 저 장면을 저렇게 연기할수 있었을가? 저 웃음은 지나치게 과장된것이였어. 지금 저 보폭은 너무 작아서 주인공의 마음을 보여줄수가 없네. 나라면 허리에 손을 얹지 않고 앞섶에 모아쥐였을 거야. 손부채질을 하기보담은 주먹으로 땀을 훔치는 장면이 더 실감날 텐데.” 이와 같이 김염은 주연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관찰과 연구를 진행했고 또한 자신이 구상한 장면들을 실제로 연기해보기도 하였다. 실제상황이 여의치 않아 먹고 살려고 극장지기로 일하게 된 주인공은 곤죽이 되도록 일을 하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고 무료로 영화를 볼수 있다는 자체가 매우 중요했다. 말하자면 돈을 내지 않고 배우학원을 다니게 된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는 배우들의 연기를 연구하고 모방하고 자신의 기량을 쌓아갔다. 동시에 꼭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고 또 다짐하였다. 이런 마음은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있다. “-나 기어이 이 길을 걸으리라.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이 길을 걸으리라. 고모부 앞에서 다진 서약을 위해서라도 이 길을 걸으리라. 배우로 꼭 성공하리라. 스크린에 큼지막이 떠올라 어머니와 만나리라, 고모부와 만나리라, 형님과 만나리라, 동생들과 만나리라. 다시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처럼 가문의 번영과 행복을 이루리라. 큰 배우가 되여 관객들의 갈채를 받으리라. 그들의 눈과 가슴에 꿈과 감동을 전하는 배우가 되리라.”  유명한 극작가이고 시인이며 문예비평가인 전한과의 만남은 김염의 예술의 길에서 중요한 공능을 하게 된다. 전한은 그의 문장에서 술, 음악, 영화는 인류의 3대 걸작이고 그중에서 영화는 가장 매력적이며 한낮에도 사람들을 꿈길로 유혹한다고 하였다. 김염은 이것을 외워두고있었고 이를 전한은 대견하게 생각한다. 특히 전한으로부터 연극의 모든것을 전수받을수 있은것이 다행이였다. 연기자로서의 기본적인 철학에서 아주 사소한것까지 배울수 있었다. 대사를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예술은 진보에서 이루어진다, 연기는 씨나리오에 대한 복제가 아니라 진보적인 행동의 지속과 연장이라는 가르침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법과 예술에 대한 신념을 알게 하였으며 그의 예술생활의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게 하였다. 드디여 주인공의 예명이 탄생하게 된다. 부모님이 주신 이름은 김덕린이지만 상해의 외탄에서 김염이란 예명이 만들어진다. 로신의 작품집을 읽고 예명을 생각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외탄의 불꽃놀이를 보면서 김염이란 예명이 뇌리속에서 불꽃을 발하며 떠올랐다. 이는 작품에서 하나의 고조를 이루는 부분인데 이렇게 적고있다. “-그래, 이제 새로운 배우로 새롭게 태여나는 거야. 난 타오를 거야, 활활 타오를 거야.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쳐도 꺼지지 않을 거야. 스크린의 별로 활활 타오를 거야. 무대우에서, 무대아래에서 이 세상을 비추는 자가 될것이야. 김염, 이제 나를 김염이라 불러다오!” 주인공의 법열이고 새로운 탄생이라고 할수 있다. 김염이 풋풋하고 개성적인 연기특색과 수준을 소유하고있었지만 그것이 영화감독과의 합작이 없으면 성공의 길을 걸을수 없다. 여기서 새로운 영화예술에 대한 견해를 갖고있는 손유 감독과의 합작은 큰 몫을 하였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류학파인 손유는 당시 중국의 영화계에 대해 나름대로의 새로운 견해를 갖고있었다. 상해의 영화계는 혁신이 필요하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그 변화된 의식을 실천해야 한다, 치고박는 무협지따위는 버려야 한다, 어제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바뀌여야 한다는 견해는 주인공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당시 잘 나가는 명배우들의 분칠한 경극가면과 같은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충고는 김염의 연기특색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조언이 되였다. 따라서 김염, 손유, 완령옥 세사람의 합작으로 크게 성공한 영화들을 많이 제작하였다. 이제 배우로 크게 성공한 김염은 자신의 일기책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내가 원하면 언제나 들어갈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과 배불리 먹을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아니 그 무엇보다 영화배우 ‘김염’이 되였다는 사실이, 나를 기다리는 씨나리오 대본이 있다는 사실이, 내 몸짓을 기다리는 촬영기와 내가 나오는 스크린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모여드는 관객들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행복하게 했다.” 이제 상해의 영화는 하나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되였다. 멜로영화위주로 녀성배우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던데로부터 김염을 중심으로 하여 반제, 반봉건이라는 시대적주제를 다룬 좌익영화가 흥기하게 되였고 단순한 오락에서 벗어나 문예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진정한 예술의 력역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면서 자체의 올바른 공능을 하게 되였다. 작품에서 김염이 일본군인의 영화촬영제의에 “기관총으로 나를 쏜다 해도 난 일본영화에 출연하지 않을거요.”라고 하면서 거절하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다.    영화황제가 된후 진보적인 인사들과의 만남은 김염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수 있는 시각을 주었다. 특히 일제의 중국침략후 항일의식은 당시 시대의 추세와 민심과 일맥상통하였으며 이는 또한 김염이 가족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원형적인 작용을 하였다. 그리하여 김염을 비롯한 작품의 주요한 진보인사들의 몸에서 강열한 항일의식이 드러났다. 김염의 항일의식은 가족배경에서 그 뿌리를 찾을수 있다. 김염의 아버지 김필순은 조선최초의 근대식병원인 제중원을 졸업하고 조선의 첫 양의사가 되였고 세브란스병원과 병원이 운영하는 의과대학교의 책임자이다. 하지만 주목되는건 그가 도산 안창호와 의형제이며 “신민회”의 멤버라는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사상가이고 독립운동가이며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을 창립하면서 활발하게 독립운동활동을 진행한 사람이다. “신민회”는 안창호의 발기로 1907년에 조직되였으며 사회계몽운동가들이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비밀리에 조직된 단체이다. 주요멤버는 윤치호, 안창호, 장지연, 신채호, 박은식이며 여기에 리동휘, 리갑, 리동녕, 리회영 등이 가세하였다. 김염의 아버지는 이러한 인물이였기에 치치할에서 일본간첩에게 독살당하였다. 뿐만아니라 김염의 고모부 김규식도 독립운동가이며 신채호, 려운형과 친분이 있다. 신채호는 20세기초 력사가, 언론인, 작가, 독립운동가이다. 그의 력사학은 조선 근대력사와 민족주의력사의 출발점으로 된다. 려운형은 조선의 독립운동가이고 정치가이다. “초당의숙”을 세웠고 “신한청년단”을 조직하였다. 그는 고려공산당에 가입하여 조선의 사정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가족배경에서 자라난 김염은 자연스럽게 항일의식을 갖게 되였다. 이런 의식은 그가 출연한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염과 왕인미가 주연한 영화 《들장미》는 일제의 “9.18사변”을 소재로 반일정서와 애국정서를 불어일으키려 한 영화이며, 김염이 주연한 《대로》도 항일소재의 영화이며, 김염과 왕인미가 주연한 영화 《장지릉운》도 항일제재의 영화이며, 김염이 주연한 영화 《장공만리》도 항일제재의 영화이다.  상해를 점령한 일본군은 일본과 중국이 합작한 영화를 만들려 하는데 이 영화는 무성이 아니라 영화이다. 그리고 김염을 주연으로 초청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김염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따라서 일제의 감시가 강화되고 지어 총알까지 배달되였다. 할수 없이 이들 부부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향항으로 탈출하지만 향항도 일제에게 점령당하여 별수 없이 중경, 계림, 곤명으로 전전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예술을 고체예술, 액체예술, 기체예술로 구분하는 설도 있다. 조각상같은것은 고체예술이고 영화같은것은 액체예술이고 음악같은것은 기체예술이라고 한다. 여기에 비추어보면 소설은 고체예술이 될것이다. 김혁의 이 작품은 소설이다. 하지만 주목되는건 이 작품은 “액션!”으로 끝난다. “액션!”이란 시작이란 뜻이다. 소설은 결속되였지만 작품은 끝나지 않은것 같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끝난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시작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편소설 《무성시대》는 액체예술이라고 평가내릴수 있다.   문단에서는 처음으로 되는 인물전기소설이라 할 수 있는 윤동주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시인 윤동주”에 이어 청나라의 마지막 황후인 “완용황후” 그리고 금번작인 조선족 영화황제 김염의 예술적 일대기를 다룬 “무성시대”에 이르기까지 김혁은 픽션과 논픽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민족의 인걸들을 조명하는 전기작품들을 인물평전에 이어 픽션작품으로도 련이어 내놓았다.  그의 또  한부의 픽션인물작품을 기대해 본다.    리광일(李光一)약력:    1962년 연길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교수, 박사생 지도교수.   저서 등 다수, 주편 (전2권),  논문 외 다수. 길림성 제7차사회과학우수성과상, 제6기조선족문학비평상, 해외한민족청년상 등 수상.      “장백산” 2020년 제2호  
29    김혁의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을 읽고 댓글:  조회:1058  추천:27  2019-09-21
  . 평론 . 세부의 충실성과 총체성의 원리 - 김혁의 장편소설 을 읽고   김호웅     김혁의 최근 력작 을 읽었다.   이 작품이 중일전쟁 때의 종군위안부를 다룬 작품이라고 하니 일부 독자들은 에로틱한 장면, 즉 성적인 욕망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장면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읽었을 것이다. 물론 에로틱한 장면도 있고 짐승 같은 일본군에게 당하는 종군위안부들의 처참한 모습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종군위안부문제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어제와 오늘의 총체성을 볼 수 있다. 총체성이란 무엇인가? 우리 중국에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는 않는다(只见树木,不见森林)는 속담이 있다. 전체가 아니라 국부적인 현상에만 집착한다는 뜻이다. 모택동도 에서 이 속담을 인용해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비판한 적 있다.    헝가리의 비평가 루카치(1885-1971)는 발자크를 비롯한 19세기 리얼리즘 작가들을 격찬하면서 그들은 단순히 꼼꼼하고 박진감 넘치는 묘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변증법적 운동의 과정 속에 있는 역사적, 사회적 현실의 총체성을 포착했다고 했다. 총체성은 작품에 반영된 현실의 부분들이 그 나름의 개별적 구체성을 지니면서도 서로 유기적 관련을 맺어 보편성의 차원에 도달함으로써 획득된다. 말하자면 인물이나 상황을 묘사할 때 특수한 것과 보편적인 것, 개별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을 통일시킬 때 소박한 묘사의 수준을 넘어서는 ‘올바른 문학적 재현’을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총체성은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말한다.       은 종군위안부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되 연변, 남경, 마쯔야마(또는 도꾜)를 배경으로 3대에 걸치는 조선족, 중국인과 일본인의 갈등과 충돌, 력사의식의 변화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게 단순한 염정소설이나 전쟁소설과 다른 이 소설의 매력이요, 성취라 하겠다.      구체적으로 보기로 하자.    이 작품은 일본 시고꾸 마쯔야마라는 도시의 봇장 시계탑 앞에서 시작되고 봇장 시계탑 앞에서 끝난다.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조선족 청년 종혁이와 그의 후배인 아릿다운 일본 아가씨 하루꼬의 사랑이라는 틀 속에서 주어지는 종군위안부들의 이야기, 따라서 이 소설은 하나의 액자소설의 구조를 취하며 전체적으로 정교한 일제 손목시계를 련상케 한다.    수많은 작은 치륜들이 서로 맛물려 하나의 정교한 시계를 만들듯이 수많은 개별적인 세부들이 교묘하게 직조되어 총체성을 만들어낸다.    평생 종군위안부의 상처를 안고 연변의 시골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이름이 춘자라면, 이 할머니의 손자며느리가 될 일본 아가씨의 이름이 하루꼬, 즉 춘자이다. 종혁이와 하루꼬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인데 종혁의 할머니는 남경에 종군위안부로 잡혀가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런데 하루꼬의 할아버지는 남경에서 종군위안부들을 짓밟은 일본군인이다. 앙숙이라 할까, 철천지원수가 서로 만난 셈이다. 하나꼬의 할아버지가 애용하는 파이프는 금릉(金陵), 즉 남경 산(产)인데 하나꼬가 할아버지에게 선물하고자 남경에서 사온 파이프에도  금릉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있다. 이는 중일전쟁 때 할아버지가 분명 남경에 주둔했고 종군위안부들을 다쳤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는 인물이나 사건, 장면, 대화, 소도구, 지어는 작중인물의 이름까지도 전반 시대상황 속에서 기기묘묘하게 련결된다. 이들은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내적 련관성을 가지고 정교하게 맞물려서 총체적인 의미를 창출한다. 뿐만 아니라 시종 현념을 깔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되 세부에 대한 묘사를 통해 개별적인 부분들의 구체성과 생동성을 보장함과 아울러 적재적소에 자유모티프를 깔아 독자들에게 필요한 력사지식과 문학지식을 주고 “적절한 숨돌리기”의 여유를 갖게 한다. 리얼리즘의 최고의 경지, 즉 세부의 충실성과 함께 전형적인 환경에서의 전형적안 성격을 창조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특히 이 작품은 풍상고초를 겪은 종혁의 할머니의 형상과 군국주의의 화신이라고 할만한 하루꼬의 할아버지의 형상도 잘 그렸다.    종혁의 할머니나 하루꼬의 할아버지는 모두 고양이를 좋아한다. 종혁의 할머니가 자기가 기르는 고향이들에게 남경에서 수난을 당한 친구들인 순화, 광옥이, 옥분이, 영신이, 혜옥의 이름을 붙여주고 눈 감을 때까지 친구들을 그린다. 그에 반해 하나꼬의 할아버지는 남경시절에 사용했던 파이프를 평생 간수하고 남경시절부터 즐겼던  옥루(玉露)라는 중국 차(茶)만을 마신다. “옥루”란 문자 그대로 여성의 성기에 맺히 이슬을 의미한다. 하나꼬 할아버자의 오리엔탈리즘 적인 취미와 향수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또한 작품의 적재적소에 다도, 하이꾸, 진달래와 같은 일본문화와 조선족문화를 의미하는 상징을 깔아 인물성격을 안받침하고 사건의 분위기를 창출한다. 다도, 나쯔메 소세끼, 하이꾸를 통해 일본문화의 저변에 흐르는 화, 경, 청, 적(和、敬、清、寂)의 철학과 휴머니즘, 예술정신을 은은하게 드러냄으로써 단순한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가해자인 일본에 대한 다면적인 이해를 가져오고, 새로운 세대들의 갈등과 의식의 전환을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연대(连带)와 평화의 가능성을 예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는 진일보 검토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첫째는 다도(茶道)를 “차도”라고 한 것은 물론 편집의 차실이겠지만, 다도의 미의식과 본질에 대해 좀 더 따져보아야 한다. 다도의 미의식을 화, 경, 청, 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도는 본질적으로 일기일회(一期一会, 평생 한 번 주어지는 만남)의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즉 일본문화 고유의 단발성(单发性)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벚꽃이나 꽃꽂이, 스모 역시 그러하다.  둘째는 일본의 독특한 에로스문화가 전시체제에서 어떻게 이용되었는가? 왜 젊은 병사들, 지어는 고등교육을 받은 군관들까지도 짐승보다 더 성에 집착했는지를 구명할 필요가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일본군의 사망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들에게 위안부가 필요했고 일본군은 성적 행위를 통해 공포와 절망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일례로 가미가제특공대는 비행시간이 20시간도 안 되는 초보 비행사들에게 출전을 앞두고 녀자들과 만나게 했다. 전투기에 목표물까지만 날아갈 수 있는 제한된 연료를 싣고 사지(死地)로 날아가야 하는 비행사들, 그들이 녀자들을 상대로 미친듯이 섹스를 함으로써 잠시나마 공포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녀자를 전혀 모르는 소년 비행사들은 능갈친 여자들 앞에서 오히려 물러서면서 빌빌 울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들 역시 전쟁의 희생품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군을 천편일률로 야수(野兽)같은 인간으로 너무 단순하게 묘사하지 않았나 한다.        총적으로  은 총체성의 원리, 액자소설의 틀, 다양한 성격과 갈등, 새로운 세대의 선택, 그리고 섬세한 소설적 언어, 기묘한 소설적 기법과 장치로 종군위안부라는 피눈물나는 역사를 증언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예술적으로 제시한 우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고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오늘, 이 작품은 자라나는 세대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필독서로 되리라 생각한다.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 2019년 3월 30일  
28    다매체시대와 우리 작가들의 예술적 탐구 댓글:  조회:684  추천:13  2019-03-03
    평론   다매체시대와 우리 작가들의 예술적 탐구   김호웅 (연변대학 교수)   우리는 농업사회, 산업사회, 정보화사회를 거쳐 인공지능기술의 시대로 가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의 경우는 정보화사회, 즉 다매체시대에서 창작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모임의 테마는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1928—2016)는 1980년에 《제3의 물결》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내놓았는데, 인류는 농업혁명에 의한 제1의 물결, 산업혁명에 의한 제2의 물결이라는 대변혁을 경험했고 앞으로 20~30년 사이에 제3의 물결에 의한 새로운 변혁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 술 더 떠서 21세기는 디지털혁명의 시대라고 하면서 디지털혁명도 혁명인 이상 적잖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오늘의 세계상을 보면 그의 예언이 적중한 것 같다. 보통 20세기의 4대 발명으로 핵기술, 통신기술, 항공기술, 유전자기술을 들고 있다만, 그 중 "제3의 물결"을 선도해온 통신기술이 우리 인류에게 전례 없는 문화적 혜택을 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날마다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혹간 스마트폰을 집이나 직장에 두고 나왔을 때에는 누구나 다 숲속에 간을 두고 온 토끼처럼 불안해진다.    아무튼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과 위챗은 다매체시대의 중요한 표지로 되고 있으며 우리에게 커다란 편리를 주고 있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스마트폰 하나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다.   우리 작가들 중에도 석화 시인이나 정세봉, 김혁과 같은 소설가는 문학카페를 만들어가지고 자기의 작품은 물론 우리 문단의 동태나 최신작들을 속속 소개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은 알리페이(Alipay, 支付宝)같은 것은 이용할 줄 몰라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검색하거나 여러 가지 사전을 손쉽게 이용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11년 "9.11테러" 때 핸드폰을 통해 아내를 구출한 프랑스 기자의 이야기가 좋은 예로 된다고 하겠다. 그날 프랑스 빠리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뉴욕의 세계무역청사가 육탄공격을 받는 장면을 보고 그 빌딩에서 사무를 보는 아내에게 스마트폰으로 알려 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매체시대 역시 빛과 그늘을 갖고 있다. 다매체시대 우리 작가들이 직면한 곤혹과 위기를 적어도 아래와 두 가지 방면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각일각 홍수처럼 쏟아지는 매체의 방대한 정보량에 현혹되어 다만 그 가상의 세계에서 소재를 취하는 경향이다. 물론 다양한 매체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도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작가들이 자신의 개체적인 관찰과 체험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가상적인 공간에 갇혀서 살고 있고 여러 매체의 뉴스, 이러한 뉴스에서 전달하는 특이한 인물과 사건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작가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다양한 매체들에서 이미 모든 소재를 제공했다. 작가는 더 이상 새로운 세계와 이야기,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한 것들은 이미 만들어졌으니 새로운 조합만이 가능할 뿐이다.” 이렇게 생각할 경우, 작가의 개체적인 관찰과 체험에 의한 창조를 포기하고 최종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학론에서 주장하는 페스티시(pastiche)를 만들어내게 된다. 패스티시는 다른 텍스트에 대한 모방으로서, 그것은 기성 작품의 내용이나 문체를 교묘하게 모방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과장이나 풍자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패러디(parody)와는 달리 긍정적이고 가치중립적인 특성을 지니며 여러 작가의 여러 텍스트로부터의 부분적인 모방들을 가져다 자기 작품에 합성시켜 놓습니다. 이런 행위는 창조성을 생명으로 간주하는 작가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활자매체와 언어예술에 대한 회의와 자신감의 상실이다. 근대의 지배적인 매체인 활자매체와 결합된 문학은 그 결합으로 근대의 문화적 중심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매체시대에 와서 활자매체는 종래의 지배적인 위치에서 거침없이 추락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가능해진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매체들은 활자매체를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에 따라 문학은 더 이상 문화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다른 매체나 장르의 곁방살이나 시녀의 위치로 전락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들은 동화상(動畫像)이나 음향과 같은 예술에 도무지 미칠 수 없는 문학의 묘사나 표현력을 절감하고 기가 죽게 된다. 그래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문자와 동화상, 음향이 한데로 겹쳐지는 하이퍼텍스트( hypertext, 컴퓨터에서, 문자, 그래픽, 음성 및 영상을 서로 연결시켜 비순차적인 검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텍스트)의 형태로 옮겨가고자 한다. 최근에 나온 《중국조선족시화선집》이나 저의 제자 박아무개의 시집이 그러하다.  하지만 언어예술, 즉 문학의 생명력과 존재의미가 소진되고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언어예술은 모든 예술형태의 기초로 되며 다른 예술형태에 비해 사회생활을 보다 폭넓게, 깊이 있게 묘사할 수 있다. 작가는 어쨌든 언어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언어가 주는 보다 큰 상상력과 그 여백, 심리묘사의 깊이, 비유와 은유, 상징과 아이러니, 패러독스와 패러디의 매력을 알고 그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요즘 저는 한국 작가 김훈(金薰, 1948~ )의 《칼의 노래》를 읽고 언어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두고, 귀신도 울게 하는 그의 탁월한 문장력을 두고 전율할 정도로 놀랐다.   우리 문단의 경우, 나는 다매체시대 문학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우수한 작품을 속속 펴내고 있는 사례를 허련순과 김혁 두 소설가의 작품을 통해 보고자 한다. 물론 허련순의 장편소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와 프랑스 작가 메리메(Prosper Mérimée, 1803 - 1870)의 작품과의 상호텍스트성에 관해서는 김관웅 교수가 분명하게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는 허련순의 단편 《푸주간에 걸린 고기와 말 걸기》와 김혁의 단편 《www.아픔.com》에 대해 잠간 살펴보기로 하겠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폭넓은 독서를 통해 고금중외의 명작을 체화(体化)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 互文性)의 원리를 두 작가의 작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작품은 없다는 말과 같이 작가들은 선행 텍스트를 차용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으며 독자 역시 텍스트를 읽을 때 다른 텍스트를 참조할 수 있다. 또한 작가들은 의식적으로 선행 텍스트를 참고할 때도 있고 이미 선행 텍스트를 체화했기에 저도 모르게 선행 텍스트를 차용하거나 변형시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존의 성격패턴이나 인물관계, 모티프나 플롯을 교묘하게 차용해서 오늘의 생활을 담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쉽게 말하자면 약탕은 바꾸고 약은 바꾸지 않는 게 아니라 약탕은 바꾸지 않되 약은 바꾸는 수법을 구사한다. 허련순의 《푸주간에 걸린 고기와 말 걸기》는 한국의 어느 평론집의 제목을 빌려 쓰고 있고 소도구, 인물관계와 플롯은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를 묘하게 닮았습니다. 두 작품은 모두 귀중품인 금목걸이나 다이야반지를 손에 넣었다기 맹랑하게 잃어버리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배경이나 인물성격, 그리고 주제는 다릅니다. 모파상의 《목걸이》는 서민층의 허영심을 비판한 작품이라면 허련순의 《푸줏간에 걸린 고기와 말 걸기》는 물질주의사회에 살고 있는 일부 조선족형제들의 탐욕과 그로 인한 비도덕성을 꼬집은 작품이라 하겠다.    김혁의 단편 《“피에 누아르”의 춤》에서도 역시 모파상의 단편 《나의 삼촌 쥴》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만, 이 글의 주제를 진일보 논증하기 위해서는 한국작가 하근찬의 《수난이대》의 인물관계와 서사구조를 따다가 코리안 드림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은 조선족사회, 그 재활의 몸부림을 리얼하게 형상화한 김혁의 단편 《www. 아픔. com》을 례로 들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하근찬의 《수난이대》는 일제시대와 “6.25”전쟁의 아픔을 초극하고자 하는 서민의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수난의 초극이라는 주제를 한 팔을 잃은 아버지와 한 다리를 잃은 아들의 해후를 통해 해학적인 필치로 다룬 명작이라 할 수 있다.    김혁의 작품에 와서는 한 다리를 잃은 아버지가 한 다리가 불편한 안마방 마담으로 나오고 한 팔을 잃은 아들 역시 한 팔을 잃은 남주인공으로 변신한다. 둘 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크게 다쳐서 불구가 된 몸이다. 둘은 안마방에서 우연히 만났고 서로의 동병상련에서 몸을 섞는 사이까지 된다. 하근찬의 소설에서는 한 팔은 잃었지만 다리가 성한 애비가 한 다리를 잃은 아들을 엎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압권이라면 김혁의 소설에서는 깊은 밤 한 다리가 불편한 아낙과 팔 하나가 없는 남정이 섹스를 하는 장면이 백미라 하겠다. 불행한 남주인공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이다.    녀자가 깁스를 한 행복의 손을 들어 가슴에 얹어주었다. 어줍게 가슴을 만졌다. 건과(乾果)같은 녀자의 유두가 손에 들어왔다.  본능에 넘쳐 그 가슴을 와락 옴켜잡았다. 그러다 팔에 통증을 느끼며 나지막이 신음을 뿜었다.  녀자가 옷을 벗었고 의족도 벗었다. 행복은 짚이영에 튕긴 불씨를 치우듯 후딱 탁상등을 꺼버렸다.  그리고 다음순간 두 사람은 안타깝게 허둥거렸다.  어둠에 익숙하지 못해서가 아니였다.  한 사람은 오른 팔, 한 사람은 왼 다리,  상처입어 갈가리 해체된 몸뚱이를 어떻게 맞추어야 할지 몰라 헤맸다.  두 사람은 지접(止接)이 잘못된 괴상한 과수의 가지처럼 왜곡된 형상으로 한데 얽혔다.  그리고는 부서진 뼈가 잇기 듯, 찢겨진 피부가 아물어 붙듯 서로에게 들붙었다. 오늘만 있고 래일이 없는 곤충처럼, 단말마로 서로를 탐했다.  등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로 얼룩진 녀자의 얼굴이 척척했다. 그 척척한 얼굴에 자기 얼굴을 붙여 대였다. 다른 하나의 눈물이 마르려는 그 눈물자국 우에 길을 만들고 있었다.  입술과 입술이 얽혔다.  서로는 서로의 눈물을 마셨다.  그리고 마침내 녀자는 간호사 여러 명이 달라붙어 분쇄성골절을 입은 팔에 딱딱한 석고를 마구 댈 때처럼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처절한 장면의 설정과 절묘한 비유들, 시와 같은 짧은 호흡의 문장들, 코리안 드림의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서민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준 수작이라 하겠다. 1937년 독일 콘도르 비행단의 무차별 폭격으로 만신창이 된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의 참상을 그린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게르니카》를 방불케 하지 않는가! 요컨대 다매체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 빛을 충분히 이용할 때, 개체적인 체험을 토대로 하면서도 다매체를 통해 공금중외의 명작을 널리 읽고 여러 장르를 아우르면서 언어예술의 장점을 십분 살릴 때 우리 문학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매체시대를 살아가는 비법은 다른 장르들을 기웃거리거나 멜로드라마나, 무협지, 추리소설과 같이 똑같은 인물과 줄거리를 조금씩 변용하여 이야기를 엮는 작품을 창작해 여러 매체를 선점하는 게 아니라 독창적인 개성과 인류보편성을 결합시킨 작품, 조선족사회는 물론 한국이나 중국 주류사회에서도 읽힐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길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 문학의 거목 김학철 선생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소설은 약이 아니므로 억지로 먹일 수 없다고 했고 문학의 기본적인 바탕은 언어이므로 이것을 소홀히 여기거나 이에 대한 수양을 쌓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그것은 베실로 수를 놓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연변문학” 2019년 제2기      
27    朝鲜族“60后”作家的倾情书写 댓글:  조회:1577  추천:10  2019-02-28
  朝鲜族“60后”作家的倾情书写   郑风淑      一   改革开放以来,朝鲜族作家以“50后”、“60后”作家为中流砥柱,携手“30后”、“40后”、“70后”、“80后”作家,以饱含深情的创作,书写在党的民族政策光辉照耀下的延边各族人民,以及生活在全国各地的朝鲜族、海外务工的朝鲜族人的多彩生活、命运浮沉,掀起了朝鲜族文学的持续繁荣。 在这个过程中,金哲、林元春、朴善锡、南永前、金应俊等“30后”、“40后”作家继续坚持创作。他们的辛勤劳动对朝鲜族文学发展作出了不可磨灭的贡献。崔红一、许连顺、金勋、禹光勋、尹林浩、李惠善等“50后”作家佳作纷呈。金勋的小说集《京城里的“乡巴佬”》(2001年)、石华的诗集《延边》(2006年)、李惠善的长篇小说《生命》(2006年)、崔红一的长篇小说三部曲《龙井别曲》(2013-2015年)、许连顺的长篇小说《中国媳妇》(2015年)和《谁曾见过蝴蝶的家》(2015年)等,是其中较具影响力的代表作品。   作为承前启后、继往开来的朝鲜族“60后”作家,顾名思义就是指1960年代出生,文学起步大多始于1980年代中后期的作家。“60后”一代经历了复杂多变的历史时期,他们的视野相对宽广,精神、思维具备较好的均衡感。他们的文学是与中国改革开放至今活力四射的巨变时代同呼吸、共命运的文学。他们在20多岁最敏感的时候迎来改革开放时代,三十而立时被卷入市场经济大潮之中,该四十不惑了却迎来信息化时代,如今五十知天命了,正冷静地观察这个时代,然后继续创作新的作品。 需要特别指出的是,他们曾经经历过上世纪80年代后期到90年代前期中国社会市场化起步的大躁动,受市场经济的吸引,一些作家曾经弃文从商,但仍有很多人留在文学领域继续奋战。经过大浪淘沙,留下来的都是那些忠于文学、立志为文学献身的写作者。新世纪之后,随着散文体裁的大兴起,又有一批以散文创作为主的“60后”作家出现,其中也不乏那些大器晚成的优秀作家,主要是在八九十年代沉浮中坚守朝鲜族文学阵地的那些精英,或称狂热的文学信徒。   二   崔国哲是中国朝鲜族“60后”作家的代表之一,出生在南大村。他的童年和青年生活都是在乡村度过的。在凉水镇的南大村,他专心致志写作品,孜孜不倦地垒起了一座文字之塔。1987年,崔国哲25岁,在《天池》刊物上发表了处女作《乡村之光》,展露了一个小说家的才华。   崔国哲   “笋有多大,竹有多粗。钻出地面竹笋的粗细,决定竹子一生的粗细。无论成长十年也好,二十年也罢,竹子虽然会长高,会变得坚实,但它的粗细依然如初,是刚刚钻出地面时的竹笋的粗细,一成不变”。这是崔国哲小说《春天的葬礼》的词句。后来,他以这部作品获得了《天池》文学奖、金达莱文学奖等4项文学奖,他的创作才能进一步为人们所认识。 对于民族之根的不懈探索和对朝鲜族社会现实的不断反思,以及对于朝鲜族生活现状的细致描绘,是崔国哲的小说所体现的主要内容和特色。因此,他的小说始终具有浓郁的民族色彩和乡土气息。《光复的后裔们》(2010年)是崔国哲创作的第二部长篇小说。作品以朝鲜族小村庄“南大川”为背景,详细描绘了“光复”前后发生的巨大变化及生活在这种历史条件下的人们的不同命运。作品可贵之处在于极为生动地再现了朝鲜族人民面对历史大变革,时代如何改变了个人命运的真实面貌。该作品所描写的故事,正是中国朝鲜族史册中最真实的片段之一。 经过多年的辛勤努力,崔国哲创作了长篇小说3部,中短篇小说800余篇,散文100余篇,获得了各种文学奖20多次。     金革   金革是朝鲜族“60后”作家的又一个代表,是朝鲜族文学界少见的多产作家。 金革对阅读充满热爱,称他为“读书狂”都不为过。阅读为他的文学创作提供了很多养分。他的阅读不止局限于文学,而且还涉猎哲学、艺术、历史、宗教、天文学、生物、民俗等领域,包罗万象。他购置、收藏了大量图书,其书房有15000多册的书籍和6000多份影像资料。此外,他还常年订阅了十多种期刊。   1985年,金革发表短篇小说《侏儒们》,由此步入人们的视野,随后又陆续发表了《诺亚方舟》(1985年)、《品酒》(1985年)等。从此,他的短篇小说创作一发不可收拾。1994年,金革发表中篇小说《迷茫的城市》《笛子》《银妆刀》等,后来又创作了一系列具有超现实主义色彩的中篇小说,如《天才》(1995年)、《人鱼的小提琴》(1996年)、《坠落的翅膀》(1998年)、《病毒》(2000年)、《祖母的传说》(2003年)、《火祭》(2005年)、《原罪》(2006年)、《热铁皮屋上的猫》(2008年)、《木马与淑女》(2009年)等。还发表,出版6部长篇小说。   朴长吉   文学反映现实生活,文学创作离不开所处的时代,特别是诗歌,其灵感源泉与时代社会的变化密不可分。朴长吉是朝鲜族具有代表性的“60后”诗人之一。   他正好于1960年出生,其诗歌创作从1980年代起一直持续不断。迄今为止,他已出版《石磨》(2003年)、《短诗长叹》(2010年)、《抵达名为你的站点》(2016年)等多部诗集。这些诗集留有时代的痕迹。比如,《石磨》凸显上世纪八九十年代的创作特征,而《短诗长叹》《抵达名为你的站点》则带有新世纪以来的多元文化思潮。   三   从文学发展的规律来看,每个时期的文学思潮或文学观念都要由其相应时代的代表作家群来实现、来完成,无论是前代人还是后代人都无法替代。“60后”作家与“30后”、“40后”和“50后”作家有着不同的时代使命,他们必须更好地书写自己所生活的时代。 “60后”作家们关注的问题多种多样,比如民族历史轨迹与身份认同主题(如崔国哲的小说、金昌永的诗歌等),又如个人的不幸与上世纪六七十年代时代动荡的关系(如金革的小说),还有知识分子的懦弱与自尊(如韩永男的小说)等。工业化与城市化所带来的价值观的突变与人生本质的异化也是这一代作家聚焦的重要主题。   从创作风格上看,朝鲜族“60后”作家们大多个性鲜明,勇于创新,勇于开拓,经常涉猎多种文学体裁领域。韩永男和赵光明都是打破文学体裁边界的作家,是不甘寂寞的创新者。赵光明以小说创作起步,后来兼顾诗歌创作,最近几年又涉猎散文创作,在各个体裁领域都有所建树。韩永男早期以诗歌创作为主,新世纪之后,在坚持诗歌创作之外,还创作发表了大量的小说,出版了小说集《小岛,岛边,边缘人》,还曾涉足散文、报告文学和评论的写作。金革在小说写作中试验各种手法、技巧,同时涉足传记、散文等其他体裁的创作。   朝鲜族“60后”作家在各自不同的领域拓展着。特别是进入新世纪之后,他们的力量逐渐增强,群体规模也不断壮大。除了金昌永、朴玉男等“60后”优秀新生力量的先后补充外,随着新世纪前后的散文体裁大爆发,一大批优秀散文作家的加盟,进一步壮大了朝鲜族“60后”作家群。徐永彬、崔顺姬、金顺姬、南福实、杨银姬、姜贞淑、徐贞顺等都是颇具实力的散文作家,其中女作家居多。   总之,朝鲜族“60后”作家群勇于担负起社会和时代赋予的历史责任。他们无愧于时代,也无愧于历史,以个性鲜明的创作风格、包罗万象的主题意识和勇于探索的创作精神,写出一系列优秀作品。在当前的朝鲜族文学界,除了“60后”作家,还有从“30后”到“00后”的数代作家在一起努力创作着。正因为他们的持续努力,朝鲜族文学必将迎来持续繁荣的良好局面。   文艺报 | 2018年08月03日   朴长吉
26    2017 《민족문학》 문학상 수상 리유 댓글:  조회:1004  추천:12  2018-03-27
    2017《民族文学》年度奖授奖词 《舅舅的左脚》(小说·5期) 作者:金革(朝鲜族)   朝鲜族作家金革,多年坚持书写现实和鲜活的“民族记忆”,其笔下一系列赴韩务工家庭题材小说中的各色人物,已然交织成了一个民族在全球化、城市化背景下最震撼人心的交响。 其中小说《舅舅的左脚》更是以其独特视角及哲学意味奏出一段精彩华章。 《民族文学》   2017 《민족문학》 문학상 수상 리유  "피에누아르의 춤" ("민족문학" 2017년 5기) 저자: 김혁 조선족 작가 김혁은 다년래 현실 속 살아있는 ‘민족적 기억’의 재현에 주력하고 있다.  출국, 리산가족에 관한 계렬소설을 발표, 글로벌화, 도시화의 진척과정에서 엇갈린 삶과 운명을 화려한 문체, 강한 울림으로 보여주었다.  금번 수상작인 ‘피에누아르의 춤’은 이 계렬 중의 한부로서 독특한 시각과 철학적인 사고로 이채로운 수작을 펼쳐 보이고 있다.” "민족문학" 잡지사
25    김혁의《마마꽃, 응달에 피다》에 대한 심리분석학적고찰 댓글:  조회:2086  추천:10  2017-01-17
  김혁의《마마꽃, 응달에 피다》에 대한 심리분석학적고찰        오광욱 (연변대학, 문학박사)  "마마꽃, 응달에 피다" (초판본) 2005년 "마마꽃, 응달에 피다" (재판본) 2014년 1. 들어가는 말    조선족문단의 유명한 중견작가인 김혁(1965~)의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1)는 작가의 자서전적요소가 짙은 성장소설이다. “문화대혁명”을 시대배경으로 사춘기 청년들의 방황과 갈등, 그리고 그들의 부동한 운명을 그려낸 이 소설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2)한국에서는 2009년부터 이 소설에 관한 석사학위론문과 평론들3)이 륙속 출현하였다. 지금까지 이 작품에 관하여 비교적 심도있는 연구들이 진행되였는데 전경업, 이새아 등은 이 소설을 사회력사적인 각도에서 우리민족의 생존환경과 그 심태를 보여준 작품으로, 혹은 시대가 개인에게 가져다준 상처에 대해 론의하였고 우상렬, 최미령 등은 이 소설을 왕삭(王朔)의《동물의 사나움》(动物凶猛)과의 비교를 통하여 내용, 형식 등 방면에서 성장소설의 여러가지 양상에 대해 론의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조선족문단에 출현한 전형적인 성장소설이고 더욱이 작가의 고백에서처럼 “성장기소년의 심리의 궤적”4)을 그린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론문은 보이지 않고있다. 하여 필자는 본고에서 김혁의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분석심리학의 리론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스위스 칼․융(Carl Gustav Jung,1875-1961)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고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실현(自己实现)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식의 중심에 흔히 “나”라고 부르는 자아(自我)가 존재하고 반대로 무의식의 중심에는 “모르는 나”인 자기(自己)가 존재하며 의식속에 있는 자아가 무의식속의 자기를 하나하나 깨달아 둘이 서로 상호보완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하나로 통합될 때 자기실현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자기실현은 사실 엄숙한것도 심각한것도 아니다. 바로 개인의 ‘평범한 행복’을 구현하는 과정이며 우리 모두가 가지고있으나 아직 실현하지 못한 삶을 가능한 한 많이 실현하는것이다. 한마디로 분석심리학은 자기실현은 인간의 삶의 본연의 목표이며 자아(알고있는 나)가 무의식세계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자기(모르는 나)를 부단히 파헤쳐 만나고 함께 “포옹”함으로서 자기실현의 최종 목적에 도달하며 이로써 자신의 행복, 나아가 전반 사회의 행복이 가능한것이라고 주장한다.    김혁의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주인공 김찬혁의 자기성장을 보여준 소설인것만큼 주인공이 어떻게 심리적으로 성장하고 자기실현을 하였는가를 재미있게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분석심리학적으로 보면 자기성장이 없는 자기실현은 있을수 없고 자기성장은 자기실현 그 자체이거니와 자기실현의 과정이라고 할수 있기때문이다. 작품에서 성장기의 내면적갈등을 보여주고있는 주인공 김찬혁은 의식의 세계에만 치우치지 않고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크나큰 호기심과 탐구정신, 즉 강렬한 자기실현욕구를 가지고있으며 미지의 무의식세계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만나고 통합하면서 원활하고 즐거운 자기성장을 이룩한다. 하지만 작품속의 주요 인물인 “똥파리”는 자기성장은커녕 무의식이 자아를 덮쳐 자아훼멸을 맞이한 비극적인물이다.      본고에서 필자는 주인공 김찬혁의 자기성장과 작품의 다른 중요인물인 “똥파리”의 자아훼멸을 분석심리학적으로 접근하여 그 심층적인 의미를 확실히 하는 동시에 작품을 분석심리학적으로 연구하는 방법론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소설속의 작중인물에 대한 이러한 심리학적접근은 현시대 복잡다단한 생활속에서 심리적인 고통을 받고있는 이들에게나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수 있는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2. 김찬혁과 “똥파리”의 자아(Ego)      인간의식의 중심에 우리가 흔히 “나”라고 부르는 자아가 존재하고있다. 자아 또는 “나”는 의식된 마음을 통솔하고 또한 무의식의 마음과도 관계를 맺을수 있는 의식의 특수한 콤플렉스5)이다. 그래서 자아콤플렉스라고 한다.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느낌, 나의 리념, 나의 과거, 내가 아는 이 세계, 무엇이든 자아를 통해서 련상되는 정신적내용물들은 모두 의식이다. 바로 이 의식의 중심에 자아가 자리잡고 의식을 통치하고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자아가 없으면 인간정신의 성숙이나 개성화, 즉 자기실현은 불가능하다. 자아는 두가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나는 바깥세계와 관계를 맺고 이에 적응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의 내면세계를 살펴 이와 관계를 맺고 이에 적응하는 기능이다. 의식의 중심으로서 의식을 통제하고 견고히 하는것이 자아이지만 동시에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에 받아들여 이를 동화시키거나 그 뜻을 인식하는것도 자아의 몫이다. 그만큼 자아는 자기실현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되는것이다.6)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 김찬혁의 자아, 즉 김찬혁이 스스로 느끼는 “나”의 모습이 도대체 어떠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화상편에서 상세히 묘사되여있다. 머리가 보통 큰게 아니라 무지무지 커서 “가분수”라고 불리우며 그만큼 총명하여 동네에서 “총기가 있는 아이, 똑똑한 아이, 어른스럽고 진중한 아이”7)로 정평이 나있다. 그리고 “성미가 고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고 남의 집 바람벽에 쌍스런 그림을 그려넣거나 지나가는 계집애들의 태머리를 쥐여당겨놓고는 아닌 보살하는 그런 불량배들의 무리에도 가담하지 않았다.”8)여기서 “총명”하고 “똑똑”함은 지적으로 성숙되였음을 의미하며 “어른스럽고” “진중”함은 심리적으로 성숙되였음을 의미하는바 자아가 의식의 중심을 통치하고 자아의식이 어느정도 성숙되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은 무의식을 의미하고 “고분고분”하고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주인공 김찬혁은 자아의식을 의미하며 그런 불량배무리에 가담하지 않았다는것은 그에게 있어서 이미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분화되였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어린시절 김찬혁은 자아가 의식의 중심을 통제하고 자아의식이 어느정도 성숙되여 자기성장, 즉 자기실현의 필수조건을 갖추었고 의식과 무의식이 분화되여 이제는 자아가 무의식세계의 여러 내용물들을 서서히 맞이하고 파헤칠 준비가 되였음을 의미한다.      이런 김찬혁은 어느날 어머니의 심부름을 받고 물고기를 사러 늪으로 가며 늪에 버려진 죽은 아기를 보고 충격에 휩싸이며 “딱 이름할수는 없지만 분하고 억울하고 뭔가 잘못된것 같은”9)심정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아기의 죽음에 대한 무수한 의혹과 질문덩이들이 머리속에서 맴돌며 “처음으로 생명이라는 존재와 그 소중함, 그에 대한 인간의 처사에 대해 생각을 더듬었다.”10)    늪에 버림받아 죽은 아기는 무엇을 상징하고 그걸 목격한 김찬혁의 분하고 억울한 심정과 의혹을 어떻게 리해할수 있을까? 심리학적으로 늪은 그 깊이, 내용물 등을 가늠하기 어려운 존재인것만큼 미지의 세계, 즉 무의식세계를 상징하며 물은 모든 잠재적가능성의 원천, 무의식에 잠재한 모든 에네르기의 상징이다.11)그리고 죽음이 있음으로 하여 새로운 탄생이 있듯이 부모의 버림을 받아 죽은 아이는 김찬혁의 지금까지의 기존의 자아를 상징하며 성숙된 자아의 탄생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름할수 없는 울분과 고민은 주인공이 낯선 무의식세계의 진입을 앞두고 자기성장에 대한 내적인 갈등과 고민이 시작되였음을 의미하며 또한 아기의 죽음에 대한 반복적인 의혹은 낯선 무의식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욕구로 해석된다. 그리고 아기의 죽음으로 인하여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생각하고 느꼈다는것은 자아의식이 한단계 성숙되였음을 의미하는바이다.    한마디로 늪에 버려져 죽은 아기의 모습을 보았음은 김찬혁이 무의식세계를 마주하여 기존의 자아를 돌이켜보고 성숙된 자아의식을 가지고 심리적으로 힘든 고통을 감수하고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며 아름다운 미래를 향해 자기성장, 즉 자기실현을 시작하였음을 암시해 주고있는것이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찬혁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 절박해지며 어머니한테 집요하게 문의를 거듭한 결과 자신이 부모가 신분이 나쁜탓으로 버림받고 지금의 양부모한테 부양된 사실을 알게 된다. 진상을 알게 된 김찬혁은 “온몸의 실피줄이 터져버리는것만 같았고 발가벗기우고 네거리에 밀려난듯한 한없는 수치감을 느꼈고 온 세상이 공모해 나 하나만을 똥구덩이에 밀어넣은것만 같게 생각되였다.”12)자신의 정체가 밝혀지고 늪에서 본 죽은 아기가 눈에 자주 떠올랐고 김찬혁은 울분과 괴로움에 휩싸이게 된다. 여기에서 “버림받음”을 자기실현, 자기성장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새로운 정신을 이루기 위하여 자아가 기존의 낡은 정신으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이다. 즉 지금까지의 “나”를 버림으로써 자아가 안주해있었던 익숙한 세계로부터 분리되여 낯선 무의식의 령역에 입문하여 자기성장, 자기실현을 하는것이다. 칼융은 말한다. “어린이한테 있어서 버림받음, 내버림, 위험 등은 한편으로는 보잘것없는 출발점의 전형적형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에 가득찬 비범한 출생에 속한다. 이런 표명은 창조적인 성질을 지닌 정신적체험을 묘사하고있다.”13)융은 “버림받음”을 새로운 성장과 탄생을 위해서는 부수적인 현상이 아니라 필요한 조건으로 보았고 그 “버림받음” 고통의 의미를 알고 견디어 나간다면 정신의 창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자기성장의 값진 밑거름이 될것이라고 보았다. 김찬혁에게 심리적갈등이 생기는것은 자아가 창조적원천의 무의식을 통합해 자기성장을 이루고 자신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는 심리적으로 필연코 수많은 시련과 고통이 동반됨을 의미해주는것이다.    총적으로 주인공 김찬혁은 성숙된 자아가 무의식세계에서 완전히 분리되여 미지의 낯선 무의식세계에 대해 입문과 탐구를 시작하며 개성화의 실현, 즉 자기성장을 서서히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작중 중요인물인 “똥파리”의 자아는 어떤 모습일가?  “똥파리”에 대한 소개는 그가 유명짜한 불량배로부터 시작된다. “똥파리”는 “싸움질, 로략질을 밥먹듯 하는” 악명이 자자한 인간이며 말을 더듬는 언어장애자다. 우선 “황야의 무법자같은” 존재인 “똥파리”는 자신의 공격, 생존 등 본능적욕구에 따라 행동하는만큼 자아가 강한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인간임을 의미한다. 기분 나쁘게 말하면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가 언어구사를 제대로 못하는 말더듬쟁이라는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따위를 제대로 똑똑히 표현하지 못하는만큼 자아의 세력이 극히 미약함을 의미한다. 세번째로 “똥파리”무리는 모두 엄연히 본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는 “똥파리”를 포함한 이들에 대해 별명으로 대신하며 심지어 “똥파리”는 김찬혁을 무리에 받아들일 때 “찬혁이는 우리 네 사, 사람이다”14)라고까지 한다. 이름은 한사람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운명과 직결되고 그 사람의 자아를 대신한다고 할 때, 이같이 별명으로 본명을 대신함은 “똥파리”의 자아라는 개체의 형성자체가 불투명하거나 자아의 세력이 극히 미약함을 상징한다.      한마디로 “똥파리”의 불투명한 자아는 강한 무의식의 지배와 수시로 되는 공격에 기를 펴지 못하고 의식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힘이 약한 “불쌍한” 존재인만큼 자아의식이 성숙되지 못하였고 무의식세계가 거의 그 자신을 지배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똥파리” 의 자아는 항상 훼멸의 위험에 처해있는것이다.     3. 김찬혁과 “똥파리”의 페르조나(Persona)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인간의 자기성장과정에서 자아는 한편으로는 무의식의 내면세계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세계와도 관계를 맺어야 한다. 외부세계와의 관계에서 필요한것은 바로 개체의 외적인격인 페르조나이다.    페르조나는 고대 희랍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한다. 이것은 자아가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고 이에 적응해가는 가운데 형성된 행동양식이면서 집단무의식에 속한 일종의 기능 콤플렉스로서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고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15)페르조나는 우리말의 얼굴, 낯, 체면 등과 같은 개념이며 사명이니 본분, 도리니 하는 말은 페르조나를 표현하는것으로 사회집단이 개인한테 기대하고 요구할 때 생긴다. 부모의 앞에서는 자식의 페르조나, 안해앞에서는 남편의 페르조나, 후배앞에서는 선배의 페르조나, 이처럼 인간은 사회적관계속에서 이런저런 가면들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면서 생활하며 자기성장을 도모한다.    이제 주인공 김찬혁의 페르조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김찬혁은 “똥파리”무리에 가담하려고 그 패거리 일원이고 친구인 김표를 찾는다. 김표는 김찬혁의 의향을 듣고 “니가? 니같은 모주석의 훌륭한 어린이가?” 하며 앙천대소를 한다. 그리고 “똥파리”를 만났을 때 학급의 문예선전대골간이였기에 노래를 잘 불러 “똥파리”의 칭찬을 받는다. 뒤이어 김찬혁은 “똥파리”의 “시험”에 응해 “회충”과의 싸움을 거쳐 나중에는 “똥파리”의 승인을 받고 성공적으로 그 무리에 가담한다. 여기서 김찬혁은 원래 “모주석의 훌륭한 어린이”, “노래잘 부르는 애” 등 페르조나를 지녔지만 “회충”과의 싸움을 통해 이제는“불량배”라는 또다른 페르조나를 집어쓰기 시작한다. 그뒤 김찬혁은 자전거를 훔쳐오고 몸에 문신을 하고 패싸움을 하며 별명이 “앵무새”인 계집애를 “귀신집”에 가두어놓는 등 여러가지 악행을 저지른다. 이런 점은 그가 이미 “똥파리”무리에 가담하여 악당, 건달로 탈바꿈함으로써 “불량배”의 페르조나를 완전히 지녔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불량배”의 페르조나를 지닌 김찬혁은 상철형님에게서《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라는 소설을 지꿋게 간청하고 빌려 이틀동안 독파해버림으로써 공부를 잘하고 책읽기를 즐기는 김찬혁 자아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는 “쌍두마차”패와의 싸움에서 상철형님의 권고에 따라 싸움에서 빠지고 도망치며 “친구들이 생사결단을 벌리는 판국에 여우처럼 혼자서 빠지다니? 나는 아직도 똥코치임이 틀림없어.”16)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도 역시 김찬혁은 “불량배”의 페르조나에서 벗어난, 성미가 온순하고 말썽을 일으키기 싫어하는 자아의 숨기지 않은 본연의 모습을 나타낸다. 뿐만아니라 학교문예콩클에 참가하여 자신의 장끼인 시랑송을 하고 멋진 연극까지 선보이는 행동, “앵무새”라는 계집애를 골탕먹인 사건때문에 “앵무새”집으로 사과하러 가고 “앵무새” 벙어리엄마의 후덕한 마음씨에 얼굴까지 붉히며 자신이 저지른 못된 행동에 심심한 후회까지 하는 장면, “마스크귀신”을 만나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금붕어까지 얻어가져 기르는 장면 등등에서 우리는 남을 때리고 도적질하고 건달행세를 해야만 하는 “불량배”의 페르조나를 도저히 볼수가 없다. “똥파리”무리에 가담하여 싸움하고 빼앗고 남을 괴롭히고 “영웅행세”를 하는 “불량배”의 페르조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찬혁은 그러한 페르조나에 얽매이지 않고 책읽기, 공부하기를 즐기고 순박하고 선량하며 자유롭고 개방적인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김찬혁은 불량배와 자아를 동일시하지 않고 성숙된 자아의식의 지배를 받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때때로 나타낸것이다.     칼융의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개인이 자신의 페르조나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단일한 페르조나를 지녔을 때, 즉 사회적 의무로 대변되는 외적인격인 페르조나를 자아와 완전히 동일시할 때, 자아는 무의식의 내면세계와 내적관계를 상실당하여 인간정신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할뿐더러 심리적건강을 방해받게 된다. 하여 “페르조나는 가상(假相)이다”라고 칼융은 말한다. 페르조나는 사회속에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기능 콤플렉스이지만 그것이 바로 그 사람자신, 진정한 그 사람의 길은 아닌것이다.17)그리고 페르조나를 거짓, 가상이라고 여겨 없애야 할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격의 발전과정에서 여러가지 페르조나는 형성되여야 하고 다만 자아와 구별하고 상대적인것으로 구별되여야 자기성장이나 자기실현이 가능한것이다.      페르조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것이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고 할 때, 김찬혁처럼 페르조나에 얽매이지 않고 수시로 자신의 내면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것이야말로 자기성장이나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을 받고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가면에 빠지지 않고 자아에 충실함으로써 정신적으로 건강한 힘을 얻을수 있기에 소설속의 김찬혁은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를 유지하여 무의식세계를 좀더 살필수가 있는것이며 결국에는 자기성장을 도모할수가 있는것이다.    김찬혁에 이어  “똥파리”의 페르조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똥파리”는 불량배무리의 “우두머리”이고 힘으로 대변되는 “형님”이라는 페르조나를 시종일관하게 지니고있다. 즉 “똥파리”의 자아는 싸움질 잘하고 누구나 무너뜨릴수있는 강한 힘을 지닌 “나”이고 무리에서도 언제나 남을 지배하고 영웅적행세를 하는 “우두머리”이고 “형님”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시종 자아와 페르조나를 동일시하고있음을 알수있다. 뿐더러 “쌍두마차”를 힘으로 굴복시켜 자기 무리에 끌여들여 동생으로 만드는 장면, 특히 “사마귀”가 “똥파리”에게 있어서 분명히 “불량배선배”이고 나이도 많은 “형님”임에도 불구하고 “똥파리”는 후배, 동생의 페르조나를 바꿔쓸 대신 힘과 세력을 동원해 “사마귀”를 오히려 동생으로 만들고 “형님”의 페르조나를 고집하고있다. 이처럼 힘으로 대변되는 “형님”이라는 페르조나를 자기의 유일한 사명과 삶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똥파리”한테 있어서 자아와 외적인격인 페르조나와의 동일시때문에 자아는 내심을 살펴볼 겨를이 없고 자아는 무의식세계와 관계를 건립할수 없다. 그리고 “똥파리”가 “사마귀”를 위수로 하는 “마가네”패싸움에서 여지없이 참패를 당한후 히스테리적으로 변하게 되는것 또한 자신과 “형님”이라는 페르조나를 동일시하던 그가 자신이 항상 고집하던 “형님”의 페르조나가 상실됨으로서 생기는 도덕적혼란이거나 정신적인 충격인것이다.    한마디로 “똥파리”는 “형님”, “우두머리”의 페르조나에서 어느 순간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형님”의 페르조나를 고집하고 자아의 절대적인 모습으로 간주하고 행동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간의 단절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의식과의 관계단절때문에 살기 힘든 무의식의 공격적인 내용들이 자아를 수시로 침범하고 힘이 약한 자아는 항상 불안에 빠지고 훼멸의 위험에 처해있을수밖에 없는것이다.   4. 김찬혁과 “똥파리”의 그림자(Shadow)      칼융의 분석심리학에서 그림자는 의식에 가장 가까운데 있는 무의식의 내용이며 무의식의 의식화과정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심리적내용이다. 그림자는 자아의 어두운 면, 자아로부터 배척되고 버림받아 무의식에 억압된 자아의식의 여러가지 성격측면이다. 쉽게 말하면 그림자는 “나”가 싫어하는 “또다른 나”, 앞으로 “나”가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있는 나의 어두운 “형제”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부정적이고 열등한 측면과 자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도덕한 요소들로 구성되여있다. 이처럼 그림자는 우리가 직면하기를 꺼려하는 모든 렬등요소이고 아직 자아가 접수하지 않은 요소들이지만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들이기에 언제나 의식에 동화되려고 하며 우리가 그림자를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심하면 자아의식을 덮쳐 지배하고 자신뿐만아니라 남까지도 해칠수 있는 거대한 파괴적인 힘이 작동된다. 하여 칼융은 “사람들이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할 때 그것은 본능의 랭혹하고 위험한 양상을 지니게 된다”18)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자신의 그림자를 밖에 있는 다른 대상을 통하여 본다. 이를테면 상대방에게서 간사하다, 치사하다, 비굴하다 등 열등한 성향을 느꼈을 때, 자신의 간사함, 치사함 등 그림자가 대방에게 투사되여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칼융은 인간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그림자 투사로 인해 생긴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림자가 다른 사람에게 투사될 때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나와 같은 성(性)의 대상에 투사되며 거기서 우리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19)    자아의 버림으로 무의식에 억압되여 있는 그림자는 절대적으로 나쁜것이 아니다. 무의식에 억압되여 해빛을 보지 못하고 있기때문에 나쁜것처럼 보일뿐이고 의식화로서 그림자는 발전될뿐더러20)자기성장, 자기실현의 좋은 에네르기가 될수 있다. 자아가 그림자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살려서 자신의것으로 통합하게 되면 그속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힘이 의식세계를 지배하여 심리학적인 의미의 성숙이 이루어진다. 그동안 배척하고 버린 자아의 “또다른 나”, 어두운 “형제”인 그림자를 통합하는것은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며 자아가 무의식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했을 때, 에너지가 흐르는 온전하고 행복한 삶, 즉 칼융이 요구하는 자기실현을 이룰수 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주인공 김찬혁과 주변인물들간의 갈등, 또한 그 주변인물들간의 상호갈등을 그렸고 더 큰 의미에서 혼란의 시대,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묘사한것만큼 그림자를 그려낸 소설이라고 해도 억지는 아닌상싶다. 특히 제목자체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할 때, “마마꽃”은 주인공의 그림자를 의미하고 그러한 그림자가 무의식을 상징하는 “응달”에서 피였음은 주인공이 무의식세계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여 새롭게 탄생되였을뿐만아니라 자기성장을 이룩하였음을 시사하는 바다. 재미있는 표제이다. 이제 주인공 김찬혁이 어떻게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여 자아의 “친구”와 자기성장의 밑거름으로 만들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김찬혁은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똑똑한 아이”, “어른스럽고 진중한 아이”이고 “머리로 을 배격하면서 선생님들을 마구 떠박지른적이 없었고” 또한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성미가 고운 애”였다. 뿐만아니라 “앞장서 담임교원에게 대자보를 써붙이는 그런 영웅적기질을 가진 소년영웅들의 서렬에도 없었고” 계집애들을 희롱하는 건달도 아니였다.21)초중으로 진학함에 따라 김찬혁은 이런 자아의식이 성숙되고 자신이 싫어하는 그림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체육과대표였다. 김찬혁의 고백을 한번 보기로 하자. 길지 않기에 원문을 그래도 인용해본다.      “학창시절을 지낸 사람들이고보면 거개가 학급의 체육과대표에 대해 은연중 콤플렉스를 지니고있는것 같다. 그 무진장해보이는 힘, 까닭없는 위세에 질려 기가 죽는것이다. 더우기 질서와 법이 무시된 란리의 세월에 약골의 신체를 가진 애들에게 있어서 힘의 상징물로 대변되는 체육과대표에 대한 콤플렉스는 더욱더 큰것이였다”22)      김찬혁은 힘과 위세를 가지고있는 체육과대표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니고있다. 특히 자신은 약골의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힘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체육과대표에 대해 강한 콤플렉스를 지니고있다. 자신은 힘이 약하기에 항상 힘으로 모든 상대를 제압하는 체육과대표는 그가 싫어하는 인물이며 그의 그림자인것이다. 즉 김찬혁의 자아는 순진하고 힘이 약하기에 힘이 강한 상대는 김찬혁 자아의 배척과 버림을 받아 무의식에 잠재한 자아의 어두운 “형제” 인 그림자이며 그 그림자는 바로 힘이 센 체육과대표에 투사되여 나타난것이다. 한마디로 김찬혁은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한것이다.      그후 김찬혁은 김표의 소개로 모두가 부르죠아보다 더 미워하는 “똥파리”불량배무리에 가담한다. 불량배무리에 가담하는것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자신이 싫어하는, 힘이 강한 그림자를 직면한 김찬혁은 그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는것을 의미한다. 뿐만아니라 얌전하고 말썽을 안 일으키고 건달을 싫어하는 김찬혁에게 있어서 강탈, 싸움, 녀자를 희롱하는 등 악행을 일삼는 “똥파리”불량배무리는 김찬혁 자아가 싫어하는 또 하나의 그림자이며 이러한 무리에 가담함으로써 김찬혁은 그 그림자가 두렵다고 억압하거나 회피 또는 억제하지 않고 용감하게 직면하여 힘이 강한 불량배의 페르조나를 가짐으로써 불량배그림자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 받아들여 통합함을 의미하는것이다. 그리고 문예콩클에서 김찬혁은 체육과대표와 함께 재미있는 연극을 선보이는것도 그가 자신의 그림자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여 편안하고 활기가 차넘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정도의 자기성장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림자를 다룬 소설인것만큼 작품속의 많은 갈등에는 그림자가 보여지며 김찬혁은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는것을 많은 곳에서 보여주고있다. 작품에서 김표는 김찬혁의 또다른 그림자일뿐만아니라 심지어 “똥파리”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그림자이다. 김표는 변소틈새로 녀자들의 치부를 훔쳐보고 녀자들의 속옷을 훔치고 심지어는 생리대까지 훔치는 “치사하고” “치졸스런” 습관을 가진 인간인것만큼 김찬혁을 포함한 모두가 싫어하는 그림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여 김찬혁은 그와 친구로 사귀였고 김표의 소개로 “똥파리”무리에 가담한후 녀자의 생식기해도를 같이 볼뿐더러 “저녁에 나오면 굉장한것을 보여주겠다”23)는 김표의 말에 김찬혁은 저도 모르게 김표의 부름대로 나와 둘은 녀자목용탕을 훔쳐보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김찬혁은 “치사하고” “치졸한”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여 무의식속의 그림자를 의식화하여 “어두운 면”을 극복하였을뿐더러 그림자와의 통합을 통하여 자아와 무의식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음을 의미한다. 만약 김찬혁이 김표같은 치사하고 치졸한 사람을 시기하고 그에 대한 분노를 품는다든가 혹은 그런 너절한 인간이 싫어 욕하고 구박하면 그것은 그림자의 함정에 사로잡힌 상태, 즉 무의식의 그림자를 의식화하지 못하고 배척, 거부하는 상태로서 그 결과는 자아가 내면세계를 살피지 못해 자아와 무의식세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심리학적의미의 성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것이다. 필경 자기성장은 자아와 무의식의 지속적인 련계를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하는것을 념두에 두어야 한다.    한마디로 작품에서 김찬혁은 자아의 이런저런 그림자를 대면하지만 그것을 부정적으로 여겨 억압, 회피 또는 거부하지 않는 반면, 무의식속의 그림자를 대담하게 자신의것으로 받아들여 돌보고 통합시킴으로서 시종 무의식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정신적으로 더 성숙되고 인간적인 사람으로 되여가는것이다.      이제 “똥파리”의 그림자를 살펴보기로 하자. 힘이 세고 싸움 잘하고 영웅적기개를 내세우는 “똥파리”한테 있어서 그림자는 분명 약하고 비굴하고 치사한 모습 등이며 이러한 그림자는 그가 시종 억압, 거부하는 대상이다. “똥파리”무리가《꽃파는 처녀》라는 영화를 보러 갔을 때 기타 애들은 영화속의 감동적인 장면에 눈물을 훔치지만 “똥파리”만은 성냥개비 하나를 물고 씹어댈뿐 무표정하다. 영웅적기개를 주장하는 똥파리에게 있어서 남자가 눈물을 쥐여짜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인것만큼 “눈물 흘리는 남자”는 “똥파리”의 또 다른 그림자이다. 그런 그가 눈물을 거부함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자신의 그림자에 대한 억압, 외면과 거부이고 그 대가로 “똥파리”는 무의식의 공격에 심한 심리적갈등을 겪게 되며 모아산기슭에서의 울분과 고통의 눈물이 생겨나게 되는것이다.    그뒤 “똥파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배척하고 거부하는 모습을 시종일관하게 보여주고있다. 똥파리의 또 다른 그림자인, 별의별 치사한 짓거리를 다 하는 김표에 대해서도 “노기가 상설같이” 일어나고 김표에게 무서운 책벌을 안기고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리는 장면24), 자신의 녀자를 좋아한 상철이를 “광분하는 사자처럼 달려들어” 각목으로 후려갈기는 장면25)등등에서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강하게 배척하고 거부하는 “똥파리”를 쉽게 만나게 된다.    작품에서 “똥파리”의 훼멸은 자신의 그림자에 대한 억압과 거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자로 자부하던 “똥파리”가 “마가네”패싸움에서 여지없는 참패를 당하고 약자로 변했을 때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상대한다. 품위있게 실패를 인정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기분좋게 안아줄 대신 그는 역시 강하게 배척, 거부한다. 이제는 자아와 무의식세계와의 관계가 완전히 상실되고 살지못한 무의식의 내용들이 의식세계를 공격하여 “똥파리”는 변태적으로 변하였고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결국에는 자아훼멸에 이른것이다. 5. 나오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칼융의 분석심리학의 자아, 페르조나, 그림자 등 리론으로 접근하여 주인공 김찬혁의 자기성장과 “똥파리”의 자아훼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이상 론의한것을 다시 종합해보기로 하자.      작품에서 주인공 김찬혁은 성숙된 자아의식을 지녔고 자기실현, 즉 자기성장의 욕구를 가지고있는 소년이고 또한 무의식세계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탐구정신을 지녔기에 자기성장, 자기실현이 가능한것이다. 무의식세계와의 지속적인 련계를 취하기 위해 우선 김찬혁은 여러가지 페르조나를 쓰고 외부세계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자아와 페르조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자아 본연의 모습을 가끔씩 나타냄으로서 의식과 무의식사이의 지속적인 련계를 기할수 있었고 무의식세계의 내용물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창조적인 내용으로 변화시켜 자기성장을 해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렬등한 인격인 그림자를 억압, 배척, 거부하지 않는 반면, 그림자를 인식하고 살려서 자신의것으로 보기좋게 통합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무의식의 창조적인 힘이 자아에 스며들어 심리학적인 의미의 자기성장을 이루는것이다.    작품의 다른 중요한 인물인 “똥파리”는 자아훼멸에 이른 비극적인간이다. “마가네”패싸움에서의 참패는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 “똥파리”로 대변되는 자아가 무의식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점령당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작품에서 김표 외 김찬혁을 포함한 기타 사람들이 “똥파리”의 자아의식을 상징한다고 할 때 그들이 “똥파리”무리에서 떠남은 무의식의 공격에 “똥파리” 자아의식이 떨어져나가고 무의식에 점령당했음을 의미한다. 비록 장님이 된 김표가 “똥파리” 곁에 남았다고 하나, 눈이 멀었음은 심리학적으로 무의식상태를 상징하기에 “똥파리”는 그 자체가 무의식전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자아의식이 약한 “똥파리”는 자아와 페르조나와의 동일시, 그림자에 대한 억압, 배척, 거부를 지속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간의 소통을 진일보 단절시켰고 자아와의 관계를 맺지 못한 무의식의 살지못한 내용들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자아와 의식의 구조를 산산조각내버렸던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의 공격에 무너진 자아는 소멸됨으로써 전체정신의 훼멸을 의미하며 “똥파리”는 비극적운명을 회피할 수가 없는것이다.    김혁의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심리학적으로 우리들에게 많은 계시를 주고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태여나 사회와 관계를 맺고 여러가지 규범을 지니고 사회적자아로 태여날뿐만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과 대면하며 정신적으로 또 한번 태여나야 하는 정신적존재인만큼 자기성장을 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기필코 수많은 심리적고민과 갈등을 겪기 마련이다. 인간은 태여나 성장하여 사회적존재가 되면서 불가피면적으로  페르조나를 쓰지만 지식, 신분, 지위, 금전 등 기호에 의해 표현되는 이런저런 페르조나는 사회적관계속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표피적자아의 모습일뿐 인간 본연의 모습은 절대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자신의 표피적자아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래적인 모습을 찾아야 할뿐더러 자신을 둘러보고 진지하게 내적인 자신과 대면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심리적고통이 동반된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융은 진정한 자신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세계의 자신의 그림자를 억압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자기의 주동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만이 자신이 싫어하는 “어두운 나”를 통합하여 그속의 창조적인 힘이 의식세계를 지배하게 함으로써 심리학적인 의미의 성장, 즉 자기실현이 가능하기때문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는것은 평생동안 해나가야 할 작업이라고 칼융은 말하고있다. 그림자를 통합하는 작업에 앞서 다른 사람에게만 있다고 생각한 그림자가 내안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좀 더 낮은 자세로 바라다 볼수 있는 여유를 가질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겸손과 여유는 인간리해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여 일상생활에서 원활한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할것이다.                                      --------------------------------------------------------------------------------------- 참고문헌: 1) 김혁,《마마꽃, 응달에 피다》,연변인민출판사, 2005년 12월. 2) 소설은 연변작가협회 제5기 계약작가 작품으로 선정되였고 2000년《도라지》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단행본이 2005년《장백산》문학상과 제5회 “진달래”문예상을 수상. 그리고 이 소설에 관하여 평론가 전경업의《생명, 그 노래는 레드》, 연변대학 우상렬교수의《성장소설 과 의 경우》 등 론문이 있음. 3) 한국에서 발표된 평론을 보면, 2009년 한국숭실대학교 권성은의 석사론문《디아스포라 문학의 ‘공간’연구: 김혁의 를 중심으로》, 2011년 한국방송대학 이새아의《일상사로 끌어안은 문혁의 폭력》등 론문이 있음. 4) 김혁,《그 시대 사춘기의 제전에 바치는 조화--장편소설초판본 후기》,《마마꽃, 응달에 피다》,상해원동출판사, 2014년 8월, 389페지. 5) “‘콤플렉스’란 의식, 무의식 모두를 구성하는것이지만 특히 집단적무의식을 이루는 ‘콤플렉스’를 像, 또는 원초적 또는 근원적유형, 줄인말로 原型이라고 한다.”이부영,《분석심리학》,서울, 일조각, 1998년, 60페지. 6) 이부영,《자기와 자기실현》, 할길사, 2006년7월, 32페지 참조. 7) 《마마꽃, 응달에 피다》, 11페지. 8) 《마마꽃, 응달에 피다》, 11페지. 9) 《마마꽃, 응달에 피다》, 17페지. 10) 《마마꽃, 응달에 피다》, 19페지. 11) (德)汉斯·比德曼著,刘玉红等译,《世界文化象征词典》,漓江出版社,2000年1月,323页。 12) 《마마꽃, 응달에 피다》, 37페지. 13) (瑞士)荣格著,徐德林译,《原型与集体无意识》,国际文化出版社,2011年5月,133页。 14) 《마마꽃, 응달에 피다》, 65페지. 15) 이부영,《자기와 자기실현》, 할길사, 2006년7월, 44페지 참조. 16) 《마마꽃, 응달에 피다》, 106페지. 17) 이부영,《자기와 자기실현》, 할길사, 2006년7월, 46페지 참조. 18) 김성민,《악의 문제와 그 극복에 대한 고찰》,한국기독교신학논총,2001년 22기,382페지. 19) 이부영,《그림자》, 할길사, 1999년10월, 41페지 참조. 20) 이부영,《자기와 자기실현》, 할길사, 2006년7월, 133페지 참조. 21) 《마마꽃, 응달에 피다》, 11페지. 22) 《마마꽃, 응달에 피다》, 34페지. 23) 《마마꽃, 응달에 피다》, 296페지. 24) 《마마꽃, 응달에 피다》, 300페지. 25) 《마마꽃, 응달에 피다》, 312페지 "장백산" 2016년 4호  
24    아픔을 클릭하다 댓글:  조회:2125  추천:15  2015-12-25
평론 .   아픔을 클릭하다   ― 김혁의 중편소설“www.아픔.com”에서 본 우리 공동체의 아픔   김춘택     소설가로서 자신의 좋은 소설을 쓴다는 것보다 선배 소설가의 좋은 소설을 만난다는 것 흔열(欣悅)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김혁작가의 까마득히 먼 후배소설가로서 김혁 작가의 소설기량을 흠모하며, 그의 우수한 소설들을 애염(爱染)한다. 그런 나에게『도라지』편집부로터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을 선독(先读)하고 촌평(寸评)을 써달라는 청탁이 와서 선감(先感)할 기회를 가졌으니 나로서는 여간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경외지심(敬畏之心)을 가지고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을 열독하고 자격미달의 촌평을 쓰고 있지만 이의 동기는 본시 전문적인 문학평론가가 아닌 후배소설가의 신분으로서 선배소설가인 김혁작가의 우수한 소설을 독해(读解)하고 금후 자신의 소설창작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보감으로 삼기 위한데 있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나는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을 통해 김혁작가를“우리 중국조선족 삶의 뼛속 깊이까지 내려가서 우리 중국조선족 삶의 내면진통까지 깊이 파헤치는 예리한 작가”라고 경탄하고 싶다. 왜냐하면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은 급속히 한국화가 되어가고 있는 중국조선족의 병폐적인사회에서 한국화에 익숙하지 못하고, 맹목적인 한국화의 이질적인 의식체계와 갈등하여 아픔을 겪고 있는 두 주인공의 엇갈리고 비참한 운명을 세세히 파헤쳐 오늘날 우리 중국조선족이 진통하는 아픔을 예리하게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김혁작가는 굳이 오늘날 우리 중국조선족이 진통하는 아픔에 대한 그 치유와 극복의 대안(代案)을 따로 내놓지 않고 있는데 이는 우리 독자들(평자도 예외가 아니다) 스스로가 사색하여 찾아내야 할 몫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본고에서 독자(读者)의 신분으로서 평자는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에 대해 나름대로 독자(独自)적인 분석과 이해를 가져보기로 한다.     스토리 먼저 읽기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은 한국에서 아내를 잃고, 단짝친구를 잃고, 자신도 공상(公伤)을 입어 팔을 다친 행복이 헤어진 지 16년이 되는 딸을 찾기 위해, 친구의 골회를 묻어주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는 갈 곳이 따로 없다.    강보에 쌓인 딸애를 처녀인 처제에게 맡겨버리고 16년 만에 찾아오니 아빠의 얼굴을 모르는 딸애는 그를 만나기를 거부하고, 처제 역시 언니를 데리고 한국에 나가 이혼을 하고 희귀병으로 죽게 한 그를“불량배”를 피하듯 무시하고, 외면한다.    그리고 친구의 골회를 묻어주기 위해 고향마을인 과수4대에 가지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과수마을 대신 넓은 골프장이 펼쳐져 그를 외계인처럼 대한다. 별수 없게 된 행복은 박제품으로 유일하게 남은“선조사과배나무”밑에 단짝친구 배씨의 골회를 뿌려줄 수밖에 없다.    고향을 등지고 한국에 나가 행복을 찾으려 했다가 가족의 파산으로 상처를 입고 오도가도 할 곳이 없는 행복은 결국“황금족도”라는 안마원에서 요행 임시거처를 마련하지만 그곳에서마저 자신과 동병상련의 안마원주인장여자를 만나게 되어 그에게 아픔과 슬픔을 더해줄 뿐이다. 행복은 안마원주인장여자가 키우는 강아지“지노”의 장례를 통해 안마원주인장여자도 한국에게 나갔다가 다리 하나를 잃고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여 아들까지 빼앗긴 아픔과 슬픔을 알게 되고, 서로의 슬픔을 합성하지만“지접”이 잘 되어주지 않고 있다. 아들을 빼앗긴 안마원주인장여자와 딸을 만날 수 없는 행복은 서로의 아픔과 슬픔으로 보듬을 수 없다.    나중에 행복은 딸애의 용서로 딸애를 만나지만 딸애는 바로 그 자신이 아픔의 고독을 달랠 때“애폴”이란 사이트에서 화상으로 만났던 이성친구“쌍화점”이었음을 알게 되고 정신적으로 붕괴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이 소설의 스토리는 바로“우리 중국조선족들이 행복을 얻으려는 삶의 뼛속 깊이에서 상처를 입고 내면진통을 겪는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중국조선족에게 한국은“코리안 드림”을 마련해줄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한국이 중국조선족에게 줄 수 있는“코리안 드림”은 그리 많지 않으며 극소수의 중국조선족에게만 차례질 수 있는 기약할 수 없는 공상(空想)에 불과하다. 반대로 한국의“코리안 드림”을 바라고 한국으로 나간 중국조선족들은 파산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의 스토리가 말해주다시피“코리안 드림”을 바라고 나갔던 행복은 한국에서 아내를 잃고 파산되어 중국으로 돌아오지만 젖먹이로 시집을 가지 않은 처제의 손에서 자란 딸애의 버림까지 받는다. 그리고 그가 버리고 간 고향도 골프장으로 변해 단짝친구 배씨의 뼛가루 한 줌도 받아주기를 거부한다. 이런 현실은 현재 우리 중국조선족농경사회의 진모이다. 중국조선족이 땅을 버리고 한국에 가서 돈벌이를 하는 동안 그들의 고향은 이방인들에게 흡수되어 중국조선족이 나중에 돈을 벌어 다시 고향에 돌아와도 고향에는 발 디딜 자리조차 없다. 때문에 중국조선족은“멧돼지 잡으러 갔다가 집돼지를 잃는 셈”이 되는데 중국조선족은 모종의“행복”을 찾던 와중에 모종의“아픔”을 먼저 겪게 되는 것이다. 중국조선족이 모종의“행복”을 찾기 위해 먼저 모종의“아픔”을 겪는 것은 당연지사이기도 하다.    행복의 아픔 VS 주인장여자의 아픔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에서 행복과 안마원주인장여자는 각자 뼈저린 아픔을 가지고 있는데 어설픈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행복은 한국에서 공상으로 팔 하나를 잃고, 안마원주인장여자는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발 하나를 잃는데 이는 그들의 첫 번째 대결로“행복은 주인장여자가 한 다리를 쩔룩이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가 발을 옮길 때마다 행복은 왠지 다친 팔에 따끔따끔 통증이 도져오는 느낌이었다.”는 동병상련으로 무승부를 내리고 서로 보듬게 된다. 행복은“희귀병에 의한 이혼 후 한 달도 못된 죽음”으로 아내를 잃고, 안마원주인장여자는“한국에서 들려와서 입원수속을 하면서 이혼수속도 함께 하는 것”으로 남편에게서 버림을 받는데 이는 그들의 두 번째 대결로 행복이 서글픈 승부를 살짝 거두고 만다. 행복은“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의 몸인 처제에게 강보의 딸을 맡기고 16년 만에 나타났기”에 처제로부터“강보의 애가 처녀꼴이 잡히도록 여직 뭘 하다 이제야 나타났냐?”는 매도를 받으며 딸을 만날 수 없고, 안마원주인장여자는“애가 돌도 못 되어 돈에 환장해 집을 뛰쳐나간 년이니 볼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아들애를 빼앗겼는데 이는 그들의 세 번째 대결로 안마원주인장여자가 승부운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행복과 안마원주인장여자는 자신들의 뼈저린 아픔을“슬픔합성”으로 서로 보듬기로 하는데“지접(止接)이 잘못된 괴상한 과수의 가지처럼 왜곡된 형상으로 한데 얽혔다. 그리고는 부서진 뼈가 잇기 듯 찢겨진 피부가 아물어 붙듯 서로에게 들붙는 것”으로 어설픈 대결을 마무리하고 있다.    배씨의 장례 VS 지노의 장례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에는 두 가지 이색적인 장례를 상당히 많은 편폭을 들여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행복의 단짝친구 배씨의 장례와 안마원주인장여자가 키우던 강아지 지노의 장례이다.     행복은 한국에서 객사한 단짝친구 배씨의 유골을“술만 마시면 유난히도 고향타령을 하던 친구이기에 차마 타향 땅에 뿌릴 수 없어 반드시 고향에 가져다 안치하기”로 마음먹고 온갖 불편을 다 겪으며 끌고 다니다가 요행 고향에 가져다 뿌리는데 그 풍경은“배꽃가루 같이 뼛가루가 하얗게 날리고”있다. 장례란 참으로 암담한 풍경이지만 작가는 뛰어난 필치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는데 작가는 아마도 죽음의 아픔을 모종의“행복”으로 바꾸는 듯하다. 행복은 선조사과배나무 곁에 단짝친구 배씨의 골회를 뿌리면서“최할아바이 배씨가 왔습니다. 성이 배씨라서인지 배 농사를 그렇게 잘하던 배씨가 왔습니다. 배 농사를 그렇게 참하게 하던 친구라서 이제 아바이 곁에 모시니 같이 말동무를 하세요.”라고 고해성사를 하는데 이는 배씨의 안식처가 사과배의 고향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과배는 바로 중국조선족의 기원전설이고, 중국조선족의 문화형상이다. 때문에 작가는“성이 배씨(인간)여서 배씨(과일) 곁으로 가야 한다.”는 사상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배씨가 중국조선족으로 중국조선족의 고향에 묻혀야 한다는“낙엽귀근의식”이다.     안마원주인장여자가 6년째 함께 살던“아이”지노의 장례도 이 소설에서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현재 중국조선족사회는 한국출국으로 인해 견우직녀가정이 많은데 강아지는 서로 떨어져 있는“견우”혹은“직녀”의 양쪽 역할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 안마원주인장여자에게 자신이 6년이나 함께 살았던 지노는 바로“만날 수 없는 아들”인 셈으로 지노의 죽음은 또 다른 아픔이 된다. 그리하여 안마원주인장여자의 마음에는“얼핏 보면 그냥 흙더미로 보일 앙증맞게 작은 봉분”이 또다시 생겨나게 된다.   라틴아메리카의 고독 VS 중국조선족의 고독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은“중국조선족의 고독”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자신의 노벨상수상연설문인「라틴아메리카의 고독」에서 유럽의 우월주의와 맹동적인 당위성에 대해 예리하게 칼질한“항해술의 진보로 인해 아메리카와 유럽의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우리들의 문화는 이와 반대로 더욱 먼 곳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강조된 듯한 느낌이다.”와 다름 아니다.    때문에 우리 중국조선족도 자신의 모국인 한국의 우월주의와 맹동적인 당위성에 대해“중한수교이후, 중국조선족과 한국의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우리들의 문화는 이와 반대로 더욱 먼 곳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엄연히 가슴 아프게 한다.”고 예리하게 칼질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한 술 더 떠서“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방식을 통하여 우리의 현실을 설명하면 우리는 한층 더 자유롭지 못한, 한층 더 고독한 존재가 되어버릴 뿐이다.”고 스스로 라틴아메리카를 비난하면서 자아반성의 가시를 뽑고 있는데 우리도“우리 중국조선족의 것이 아닌 방식을 통하여 우리의 현실을 설명하면 우리는 한층 더 자유롭지 못한, 한층 더 고독한 존재가 되어버릴 뿐이다.”고 스스로 자신을 비난하면서 자아반성의 가시를 뽑아야 할 것이다.    과수원 VS 골프장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에서는 노스탤지어의 의식도 과수원 VS 골프장의 대결형식으로 첨예하게 반영되고 있는데“최로인이 백여 년 전에 이 마을로 이사 오면서 함경남도에서 가지고 온 사과나무가지에 이곳의 배나무가지를 지접했다. 혹독하게 추운 이곳의 기후에도 나무는 용케도 살아남아 이듬해부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았다. 사과도 아니고 배도 아닌 그것은 어른들의 주먹만큼 크고 살이 많았고 당도가 높았다. 맛본 사람들마다 천도(天桃) 못지않다고 감흥스럽게 엄지를 빼들었다. 마을사람들이 하나 둘 지접해 갔고 어느 때부터인가 마을은 과수원으로 변모해 갔다. 한때 이 마을의 사과배는 관내 뿐 아니라 일본, 러시아까지 수출되어 마을이 인방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던 과수4대는“사라지고 없었다. 토네이도에 날아갔던지, 아니면 쓰나미에 밀려갔던지… 공상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을은 말끔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산등성이에 사과배나무를 배경으로 그 아래 앉았던 노란지붕 회벽집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연한 녹음이 눈 뿌리 모자라게 펼쳐져 있다. 시원한 녹음이 이렇게 공포로 안겨오기는 처음이었다. 마을의 진산(鎭山)격이었던 산이 이제는 더는 과일을 달지 못하는 산, 콘크리트로 뒤덮인 산으로 돼”버린 골프장으로 행복의 앞에 나타난다. 과수원 VS 골프장의 대결에서 골프장이 강세로 승부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이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전반 중국조선족사회의 여기저기에서 연출되고 있다.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마을에 대한 행복의 그리움은 곧바로 중국조선족의 노스탤지어(nostalgia)의 반영이기도 하다.    아픔의 극복 VS 먼 행복의 대안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에서 독자들에게 깊은 사색을 남겨주는 앙금(沈淀物)이 있는데 그것은 행복과 안마원주인장여자가 어떻게 아픔을 극복하고 먼 행복의 대안을 찾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소설의 마무리를 볼 때 행복과 안마원주인장여자가 아픔을 극복할 희망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아픔이 더 첨가되었을 뿐이다. 행복이 요행 딸애의 용서를 받고 딸애를 만나는데 그의 딸애는 바로 행복이 고독을 달랠 때 드나들던“애폴”이란 사이트의 화상공간에서 이성친구로 사귀었던“쌍화점”이었다. 화상공간의 이성친구“쌍화점”이 자신의 딸임을 알았을 때 행복의 아픔은 완전히 극점에 다다라 정신적으로 붕괴상태에 이르고 만다. 안마원주인장여자도 자신의“애인”인 강아지 지노를 잃고 행복과의 하룻밤정사“슬픔합성”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기에는 너무 묘연하다. 때문에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에는 행복과 안마원주인장여자가 극복해야 할 아픔과 대결할“먼 행복의 대안”은 없다. 적어도 행복의 딸과 안마원주인장여자의 아들의 대에서나 묘연한 희망을 가져볼“먼 행복의 대안”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행복을 알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두 남녀 주인공의 아픔은 이미 행복을 잉태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치열하게 아프고 난 뒤에 얻는 것은 결국 행복이 아니라 반성인 것이다.       이상으로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을 읽고 평자의 나름대로 독자(独自)적인 분석과 이해를 가져보았지만 나 자신의 편파적인 독해로 인해 작가의 창작의도를 많이 왜곡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나는 소설을 쓰는 초학자로서 오늘 김혁작가의 우수한 신작소설 한편을 작가다음, 편집다음 세 번째로 읽으면서 내 소설창작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좋은 기회를 가져 무엇보다 기쁜 심정이다. 순수한 독자든, 작가이든, 문학비평가이든 한편의 좋은 소설을 만나 재미나게 읽거나 반성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김혁작가의 중편소설「www.아픔.com」을 읽을 때 중국조선족이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주인공 행복과 안마원주인장여자가 겪고 있는 아픔을 함께 겪게 되고, 공감하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 역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을 얼마간 씩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고로 나는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행복 찾으려면“www.아픔.com”에 들어가라고 권고하고 싶다. 그곳에는 아픈 자가 행복을 찾는 반성의 뼈저림이 있기 때문이다.   "도라지" 2015년 6호   ​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    돌아오지 못한 춘자 댓글:  조회:1969  추천:11  2015-09-14
▲ 조선족 최초 위안부 소재 장편소설이 연재되고 있는 "연변문학"지 ​ 지난주 에 ‘할머니 미안해요'란 제목의 컬럼이 실렸다. 필자는 황호관 목사님이었다. 황 목사님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 소재인 조선족 작가 김혁의 장편소설 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춘자 일행이 어떻게 위안부로 끌려왔으며, 그들이 당한 고초를 적나라하게 적었다. 가난한 조선의 딸들은 ‘방직공장 여공 모집’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힘겹게 아리랑 고개를 넘어 일본군 막사에 끌려갔다. 이들은 가난에 허덕이는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 중국의 전선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가는 동안 어디로 가는지를 몰랐다. 이들이 간 곳은 대동아전쟁에 몸을 받치고, 조선의 독립을 방해하는 일본제국의 장병에게 봉사하는 막사였다.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이국땅에서 벌어진 것이다. 조선의 딸들은 이렇게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농락당했다. 이 중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인 14.5세의 어린 소녀들도 끼어 있었다. 광복 70년을 보낸 이들의 한은 누구도 풀어주지를 못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일본제국의 패망과 함께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것도 이국땅에서 말이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도, 치가 떨린다. 결국 대부분 조선의 어린 딸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를 못한 채 만신창이 되어 이국땅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일본은 자신들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질 것에 대해 두려워, 일본군은 철수를 하면서 조선의 딸들을 집단 사살했다. 결국 이들은 고향에 돌아오지를 못했다. 이같은 일본의 만행에 대해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다. 목사인 나도 참지를 못하는데 국민들은 오죽하겠는가(?) 말이다. 여기에다. 친일 DNA를 물려받은 족속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으니, 더욱 슬프다. 더욱이 이렇게 희생을 당한 할머니들에게 ‘할머니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다. 우리의 소녀들은 일본제국의 희생자로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종군위안부’로 일본군으로부터 농락을 당했다. 여기에 우리의 지식인들은 가난한 가정의 소녀들에게 ‘일본군 위안부’로 나갈 것을 연설하고 다녔다는데 더욱 분노가 치민다. 또 분노하는 것은 일본정부가 역사적 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역사적인 기록들을 없애려고, 파렴치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성서는 간음하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바로 밑에서 농락당한 여성들을 더 이상 같은 민족, 아니 이웃에 의해서 농락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에서 이와 같은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이들의 한을 풀어주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본다. 헌데 일본정부는 자신들의 만행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정신대와 항일투사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위권 발동, 일본 정치계 인사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분명한 것은 광복 70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일제 36년의 치욕적인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광복 100년을 향한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친일DNA를 가진 인사들 역시 과거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꽃다운 청춘을 빼앗긴 정신대 할머니, 대한독립을 위해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던 항일투사 앞에서 자신의 언행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깊이 반성하고, 새세상을 향한 행진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김명환/ 인천갈릴리교회 담임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2    할머니 미안해요! 댓글:  조회:1905  추천:17  2015-08-19
칼럼 할머니 미안해요! 황 호 관 (예장개혁 증경총회장, 논설위원)         며칠 전에 연변에 다녀오는 길에 우연찮게 6월호를 손에 넣게 되었다. 청담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시는 분은‘연변문학은 연변에 삶의 터를 잡고 살아가는 우리 피붙이들의 고통과 애환과 고민을 지역문인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담아내는 순수문예지’라고 소개한다. 연길의 조선족 문인들 중에는 한문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분들도 있지만 과 같은 월간문예지를 통하여 그 맥을 면면이 이어가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곳 문인들은 일제강점기에도 조국광복의 염원이라는 지상과제를 안고 분투노력하였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월간 문예지를 속간해 오고 있다고 한다.   연변문학은 인천공한에 도착하기까지 두어 시간동안 나의 시선과 생각을 사로잡았다.   특히 장편소설 (6) (김혁 著)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무심한 세월을 살아 왔는가를 돌아보며 가슴을 치게 하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작가 김혁 님에 대해서 전혀 아는바 없지만 그러나 그는 나에게 분명한 목소리로“당신에게도 의식이라는 것이 있기나 하오?”하고 묻고 있었다.   연재물이기 때문에, 그것도 이미 5회분은 지나갔고, 6회분뿐(22 페이지)이니 어찌 그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있으랴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단 한 가지만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로 각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주인공 춘자와 그 일행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공포의 쑥색지대, 일본군 막사까지 끌려가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난한 조선의 딸들이기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이라는 감언이설은 의심해 볼 여지도 없었다. 선금 10원을 받아 부모님 손에 쥐어 드리고 부자의 포부를 안고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이름도 모르는 간이역까지 실려 왔는데 완장 두른 왈패 같은“대일본제국의 장병들을 위해 봉사는 일이다. 대동아 성전을 위해 몸을 바치고 있는 그들의 지친 몸을 위로해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니 이런 날벼락이 또 있다는 말인가?   춘자 일행 중에는 14,5세 돼 보이는 아주 어린소녀도 섞여 있었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어쩌다가 나는 이런 참담한 모양으로 할머님들께 미안합니다하는 말 한마디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돌아보면 일본군‘위안부’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오른 1990년대 초에는‘정신대’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정신대는‘일본국가’를 위해 솔선해서 몸을 바치는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가 노동력동원을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위안부’와는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때 일본에서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종군’이라는 말에는 종군기자, 종군간호사처럼 자발적으로 군을 따랐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강제로 동원했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가난한 소녀들을 감언이설로 속여 유인한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될 용어이다.   70년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우리 할머니들의 아물 줄 모르는 깊은 상처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분들, 아니 우리가 안고 있는 일본군‘위안부’문제는 현재진행형으로서 과거사로 돌리기에는 아직은 너무 이르다. 지금도 엄마여서 미안하다시며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 마흔 일곱, 차마지지 못하는 대한 꽃들이 피보다 진한 눈물을 쏟아내며 일본제국주의의 유물 아베의 당치도 않은 망언에 치를 떨고 계신데, 어떻게 70년 전에나 꾸었더라면 좋았을 악몽쯤으로 돌린단 말이며, 미안한 엄마의 그늘 아래서 죄지은 이방인처럼 숨죽여 살아가는 자녀들은 어쩌라고 과거사로 덮자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기독교한국신문 | 2015.08.17    황 호 관 (예장개혁 증경총회장)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 에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옛적에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로 불렀다는 "흐르는 강물처럼"  
21    스케일이 큰 서사구조안에 민족의 상흔을 보듬다 댓글:  조회:2029  추천:16  2015-02-03
스케일이 큰 서사구조안에 민족의 상흔을 보듬다 ​- 여섯번째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 련재하는 김혁 소설가   ■ 남경대학살 기념관에서의 저자   “력사라는 거대한 거푸집 안에 민족의 스토리와 애환을 무늬결 섬세하게 새겨넣은 력사물에 대한 작업이 요즘 내가 하는 전부의 일입니다.” 조선족문단의 권위문학지 “연변문학”이 새로운 판형으로 새해 첫기가 출간, 그 중 압권으로 김혁 소설가의 새로운 장편 “춘자의 남경”이 눈에 띄였다. 소재 또한 특이하면서도 우리 문단에서는 독보적이다. 바로 일본군위안부와 남경대학살이라는 소재를 한꺼번에 다룬다고 작가는 머리말에 밝혔다. 그 소재의 방대함과 시효성있게 이 다루기 어려운 묵직한 소재의 집필에 착수한 소설가를 만나보았다. 기자를 만나자 김작가는 하쿠다 나오키라는 작가를 아느냐고 선참 물었다. 일본에서 알아주는 베스트셀러작가인데 그의 대표작인 “영원의 제로”라는 소설을 해외에서 주문해 읽었고 영화로도 보았다고 했다. 일본의 자살특공대 소재를 다룬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소설이였는데 소설이 다룬 극우적인 경향은 물론 무엇보다도 이 작가가 도처에서 “남경대학살은 없었다”, “위안부는 거짓말”이다라는 망언을 서슴치 않는데서 경악을 느꼈다고 했다. “과거사 문제로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몇몇 일본 작가들의 극우적인 행보에 대한 유감과 작가로서의 책무감으로 이 소재를 다룰 생각을 갔게 됐다”고 김작가는 말머리를 열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 작가를 떠올렸다고 한다. 장순여(张纯如)라는 미국계 중국인 르포작가이다. 작가이자 사학가인 그녀는 남경대학살에 대해 저술한 르포로 유명하다. 그가 저술한 장편르포 “력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는 해외에서 커다란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1937년의 그 겨울, 남경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전대미문의 대학살 그 만행의 참상을 생생하게 되살린 보고서였다. 저자는 섬세한 필치로 남경의 대학살을 이야기했고 또 일본이 어떻게 력사속에서 대학살의 기억을 지우려 망녕되게 시도했는지 낱낱이 밝혔다. 하지만 그의 량심적인 집필은 일본 극우세력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들로부터 끈임없는 협박을 당해 왔던 그녀는 정신적 고통을 못이겨 2004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작가에 대해 중앙텔레비방송국 다큐프로에서 보고 그녀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녀의 문명(文名)을 알린 이 장편르포를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해 읽었다고 했다.   소설쓰기와 병행해 매체에서 20여년을 기자직으로 일해온 김작가로서는 르포가 갖는 매력에 대해 십분 잘 알고있었다. 르포의 매력에 푹 빠져 한때는 수천부가 팔려 당시 이슈로 된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를  출간한적도 있었기에 아직도 애대하는 쟝르라고 했다. 그 르포를 읽으며 저도모르게 혹한에 들린듯 부르르 진저리를 쳤었다고 했다. 이는 문단에서 “독서광”으로 알려진 김작가의 엄청 많은 열독리력중에서도 크게 경험하지 못했던 혹독한 떨림이였다고 했다. 그후로 cctv의 일곱시 뉴스에서 또 한번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길림성 당안국에서 소장한 일본 관동군이 작성한 10만건의 문서중에서 뒤늦게 발견된 기록에 대해 공개하는 뉴스였는데 뉴스에 의하면 남경대학살 기간 당시 "남경에 조선인 위안부가 36명 있었다”, “1명이 열흘동안 일본 병사 267명을 상대했다"고 한다. 그날 김작가는 이미 구상을 마무리한 다른 소재를 미루고 이 소재를 장편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위안부와 남경대학살 소재를 장편화하기로 하고 지난해 여름부터 차분하게 자료집필에 착수 했는데 뜻밖에 기성의 위안부 소재에 관한 작품이 너무나 적었어요. 관련 보고서나 르포, 론문들은 그런대로 적지않은데 예술적으로 재현한 픽션물이 적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많았지요. 그중 소설작품이 유독 적었습니다.” 몰아의 지경으로 하나에 몰입하는 작가로 알려져있는 김작가는 지난해 하반년을 옹근 위안부와 남경대학살의 사료를 뒤지고 수집하는데 시간을 바쳤다. 수십편의 문사자료집과 피해 당사자들의 진술서는 물론, 원체 영화수집에도 흥취가 있는지라 관련 다큐와 영화, 드라마도 수십편 보았다고 했다.  일본군국주의 실상을 깊이 료해하기 위해 수백만자에 달하는 대하실록소설 “태평양 전쟁”도 읽었다. 그 와중에 외려 위안부 소재의 소설작품이 일본 본토작가의 작품이 있는데 반해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없는데 대해 놀라움을 느꼈고 창작의 립지를 더 굳히게 되였다고 한다. “가와다 후미코라는 일본작가의 ‘빨간 기와집’ 그리고 한국작가 윤정모의 ‘에미이름은 조선빼였다’, 미국작가 모헤이더의 ‘난징의 악마’등 이 소재 관련 몇부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작가 엄가령의 남경대학살 소재 ‘금릉 13채’는 이미 몇해전에 읽었지요. 소설로서는 이 몇부가 작품성이 들쭉날쭉한 이 소재의 작품들중에서의 수작(秀作)이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이 작품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작가적 시각과 의무감에 대해 다시금 깊이 느꼈습니다" 새로운 장편의 창작을 위해 김혁작가는 지난 가을,  남경을 다녀오기까지도 하였다. 사비를 팔아 굳이 남경으로 향했던것은 남경대학살기념관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고한다. 당시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중국인의 수자“300000”이라는 수자가 도처에 새겨진 기념관에서 일본군인의 극한적 잔혹성을 보여주는 만여점의 자료들을 둘러보면서  다시한번 이 소재 작품창작에 매진해야할 각오를 머금었다고 했다. 일본은 위안부 강제동원 역시 부인하고있다. 불과 수십년전 중국과 한국등지의 에 우리의 할머니 세대들은 수십만이나 일본군의 추악한 만행의 희생자로 전락되였다. 하지만 1992년 부터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들에서 위안부 배상촉구시위가 작되였으나 일본 정부는 이후 22년이 넘도록 이를 랭랭하게 외면하고 있다.   “위안부는 자발적인 성매매이다”며 그 오욕의 력사에 대해 세탁하려하고있다. 이러한 “력사를 왜곡하며 세계의 도덕적 심판을 벗어나려는 일본인들의 단체기억상실증”이 외려 그 력사를 다시 기억해 내고 기록하게끔 한 소설가의 창작충동을 건드렸다”고 김작가는 말한다. “력사의 질곡에 갇혔던 불운한 그녀들을 대상화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대미문의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반성과 공감과 치유를 부르는 그런 재현물을 쓰고자 합니다. 단지 상상해서 만드는 픽션이 아니라 생존자들의 진술,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문서, 르포 등 갖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삼아 력사의 진실과 아픔을 재구성하고자 합니다.” 근 십년사이에 김혁작가는 다섯부의 장편소설과 한부의 장편르포와 문화시리즈 그리고 두부의 인물전기를 펴냈다. 거의 한해에 한부꼴로 펴낸 셈이다. 게다가 칼럼, 명상록, 소설, 편찬저서들도 곁들면 이 동안 그의 창작량은 그야말로 문단의 원로들이 격찬할만큼 “전무”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중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문혁에 관한 기억을, 문단 처음으로 소설화한 “시인 윤동주”는 연변이 낳은 겨레가 애대하는 시인 윤동주의 문학적 삶을,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는 흔들리고 있는 조선족공동체의 아픔속에 스러져가는 녀인들의 모습을, “완용황후”은 연변에서 숨진 청나라황후로부터 근대 동북의 근대사를 보여주고 있다. 또 집필을 마치고 출판을 앞두고 있는  “무성시대”는 중국영화황제 김염의 영화인생을 그린 장편소설로서 지난해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지지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작품들은 모두가 평론가들이 평하다싶이 “묵직한 사건과 인물들을 소재로 서사적 사건 전개의 구조가 선명하고 극적인 이야기성의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외 50여만자에 달하는 “일송정 높은솔, 해란강 푸른물”은 조선족문화의 발상지 룡정의 생성과 지금까지의 력사에 대한 완결판같은 작품이며 3년채 련재되고있는 문화 시리즈 “영화로 읽는 중국조선족”은 스크린의 각도에서 조선족의 백여년력사에 대해 다른 텍스트로 연구한 작품이다. 김혁 소설가가 들려주는 신작장편 “춘자의 남경”의 스토리만 들어보아도 주인공의 삶의 리력이 너무나도 장대해  “파란만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사적 개념이 우렷이 드러나 보인다. 자신의 근년래의 창작성과와 금후의 과제에 대해 김혁작가는 “’문학적 다큐멘터리’로 특징지을수 있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자신의 금후의 모든 창작성향이다”고 말했다. “소설의 본령이 곧 '허구적 사실성'의 설득력을 주요한 미덕으로 삼는것인데” 매체기자와 소설가로서의 병행된 삶을 수십년간 이어 왔기에 그 와중에 더듬어낸 이것이 바로 남보다 차별화되는 이러한 창작성향이라고 그는 말한다.   “신뢰할 만한 소설 창작 기량을 발휘해  주제와 소재의 명징성, 소설적 사건의 이미지화와 깔끔한 흐름등이 잘 조합되여 있는 대서사적인 작품을 다루는것”이 그의 근년래 그리고 금후의 창작방향이라고 해석한다.  “한 민족, 한 인물의 련대기적 사건에 대한 예술적인 재현만으로도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인간 내면을 탐사할수 있다”면서 “민족의 력사에 대한 화두와 메세지”를 끈임없이 던지면서 그 안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면성과 립체성을 규명하는” 방대한 제재들을 성실하고 우직한 작가정신으로 밀고 나가고있는 김혁 작가, 그의 신작이 기대된다.   신연희 ("연변일보" 문화부 기자)     "연변일보" 2015-1-19 "동포투데이" 2015년 1월 19일          
20    무한경쟁시대 성패의 변증법 댓글:  조회:1768  추천:10  2014-11-09
. 평론 .​ 무한경쟁시대 성패의 변증법 - 김혁의 련작수필 “월드컵수감록” ​장춘식 ​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삶은 성공과 실패의 끊임없는 반복이라 말할수 있다. 요즘같이 무서운 무한경쟁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인생의 가치를 경쟁에서의 성공과 실패로 그 결과를 판가름하는 풍조가 팽배해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보는 시각에 따라 이런 무한경쟁에서 얻어지는 성공의 리면에는 패배의 요소가 포함될수도 있고 또 실패의 리면에는 성공의 요소가 포함될 수도 있다. 이것을 우리는 승패 혹은 성패의 변증법이라 부를수 있지 않을까 한다.​ 중진작가 김혁이 선보이고있는 련작수필 “월드컵수감록”은 올 여름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었던 브라질월드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성패의 변증법을 제시하고있다. ​ 첫편인 “자책꼴”에서는 축구경기에서 흔히 볼수 있는 자책꼴을 들어 이번 월드컵의 한 측면을 분석하고있다. 작가는 먼저 이번 월드컵의 첫 꼴이 자책꼴로 시작된 극적인 경과를 제시하고는 력대 월드컵에서 발생한 자책꼴과 그 당사자의 운명을 곁들여 론의하면서 자책꼴과 인간이 살아가면서 흔히 범하게 되는 실수를 련관시키고있다. 사실 자책꼴도 일종의 실수이다. 그러니 인간이 살아가면서 실수를 범하는것이 피할수 없는 현상인것처럼 자책꼴도 축구경기에서는 그리 희소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관객들 특히 광적인 축구팬들은 선수의 이런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심지어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꼴롬비아축구선수 안드레스 살다리아가 자책꼴을 넣었다고 며칠후 총격으로 살해당하는 비극까지 발생하는것은 무엇때문일까? 광팬의 광적인 우발행위와 같이 원인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핵심은 역시 무한경쟁의 이 시대 잘못된 가치관이 빚은 악과가 아닌가 한다. 작가가 자책꼴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이고있는것도 바로 이런 사회악에 대한 우려나 반감에서 비롯된것이리라. 작가는 물론 그냥 우려나 반감의 표시에 그치지는 않는다. 저 유명한 월드컵응원가인 “위아 더 원We Are The One”의 노래말을 들어 축구에서나 일상적인 삶에서 실수하고 자책에 빠진 이들에게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도록 격려하고있다. ​ 두번째편인 “월드컵을 보며 로자(老子)를 생각하다”에서는 이번 월드컵의 또 하나 극적인 에피소드였던 우루과이선수 수아레스의 렵기적인 행위를 문제삼고있다. 상대팀선수와 몸싸움을 하다가 상대선수의 어깨를 물어뜯은 행위는 아무리 경쟁이 심한 스포츠경기라고 해도 흔히 볼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그래서 렵기적이라는 표현을 하고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렵기적이기는 하나 이것 또한 따지고보면 일종의 실수에 속한다. 흥미를 끄는것은 작가가 이 에피소드에 이어 곁들여놓은것이 엉뚱하게도 로자와 그의 스승인 상용의 문답이야기라는 점이다. “동에 닿지 않을 련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달고있지만 역시 엉뚱하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매력적인 점은 그 엉뚱한 련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바이다. 로자와 상용의 문답에서 앞의 월드컵경기에서의 렵기적인 에피소드와 관련을 가지는 내용은 이빨이다. 인생은 때로 강한 이빨보다 부드러운 “이빨”이 더 유용할 때도 있다는 이 고사는 쇠도 씹어먹을수 있는 이빨을 가져야만 생존할수 있다는 현대인들의 생각을 전복하고있는것이다. 이것 또한 현대인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주는 삶의 지혜가 될것이다.​ ​세번째편인 “패자만가(敗者輓歌)”는 좌절을 겪은 세계 축구강팀들에 대한 얘기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전통적인 강팀들이 일찌감치 경기장을 떠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지난번 월드컵의 우승이였던 에스빠냐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잉글랜드도 같은 고배를 마셨다. 브라질은 그리 어이없지는 않았으나 8강전에서 독일에 1:7참패라는 수치를 당하고말았다. 당사자들에 대해 말하면 이런 이변은 혹독한 징벌이 되겠지만 관객의 립장에서는 오히려 흥미거리가 될수 있다. 지나치게 예측이 가능한 경기는 재미가 없기때문이다. 우승을 다투는 경기란 워낙 그런것이니까. 문제는 이 패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이다. 승자에 환호하고 승자에게서 뭔가를 배우려하는 반면에 패자에 대해서는 조소하고 심지어 타매하는 사회의 풍조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작가는 한번 패자는 영원한 패자가 아니며 실패를 딛고 일어설 때 성공이 이루어진다는 리치를 제시한다. 그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자만이 진정한 승자라는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패의 변증법이 아닐까?​ 4년마다 한번 열리는 월드컵경기는 온 지구촌이 환호하는 축제이다. 따라서 월드컵의 화제 특히 자책꼴이나 상대선수의 어깨를 물어뜯는 렵기적인 행위, 그리고 강팀들의 무력한 패배와 같은 이변들은 항간의 화제가 되기에 충분한 관심거리라 할수 있고 작가 김혁이 이에 대한 관심을 문학적으로 표현한것 역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주목이 필요한것은 월드컵이슈 혹은 에피소드 자체에만 있는것은 아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 우리 시대의 문제에 천착했다는데 좀 더 가치가 있는것이다.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패의 변증법은 유익하다.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심어주고있기때문이다.​ "장백산" 2014년 6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9    닳아지는 “뼈”들의 이야기 댓글:  조회:2098  추천:12  2014-11-02
. 평론 .   닳아지는 “뼈”들의 이야기 ―김혁의 중편소설 “뼈”를 두고  장하도   1. 문제제기 《연변문학》 지난 5호에 실린 김혁의 중편소설 “뼈”는 당대 중국조선족의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고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진지한 작가적사고와 깊은 사명감에 의한 주제의식으로 잘 그려낸, 심각한 사회적의미를 지닌 소설이다. 따라서 우리 조선족의 삶이 갈수록 많은 문제점을 산출하고있는 요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대담한 표현수단으로 주목을 받고있는 김혁의 이번 작품을 진지하게 의론하는것은 작가뿐만아니라 조선족소설의 전반적인 변화를 위해서라도 아주 가치 있는 작업이 아닐가 생각한다. 아래에 구조적인 측면에서부터 착수하여 “뼈”에 내재된 작가의식을 중점적으로 분석해보자. 2. “랭면”―음식에서 령혼까지 중편소설 “뼈”는 관속에 누운 “뼈”에 관한 시로부터 시작된다. 즉 이 소설은 제목과 함께 작품의 시작부터 “뼈”에 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할것임을 암시하고있는데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주된 이야기는 “뼈”를 둘러싼 여러가지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뼈”의 이야기는 여러개의 작은 이야기로 무어져있고 요일의 전개에 따라 펼쳐지는 일종의 순차적이면서도 단계적인 구조를 취하고있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처음 등장하는 장소는 랭면집이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먹는 랭면을 앞에 두고 주인공은 눈물을 쏟아내지만 어이없게도 화장실에 간 사이에 그의 트렁크가 도적맞힌다. 어렵게 도적을 잡기는 했으나 트렁크속에 든 “뼈”는 경찰의 의심을 잔뜩 자아내는 오해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부모님의 “뼈”였던것이다. ... 트렁크안에 두개의 비닐주머니가 들어있었는데 그 비닐주머니에 나뉘여 담겨져있는것은 뼈였다. 텅 빈 눈구멍이 선연하고 이발이 들쭉날쭉한 해골바가지며 굽이 나간 접시 같은 골반, 길다란 정갱이뼈… 분명 사람의 뼈였다. 랭면이 조선족의 대표음식중 하나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귀국해서 랭면부터 찾고 랭면을 먹으면서 눈물을 쏟는다는것은 고향에 대한 뿌리의식이 아직 남아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랭면집은 주인공이 민족적인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장소로 되는데 이러한 사건의 발단과 함께 랭면집이 헐리고 공터만 남았다는 소설의 결말은 그러한 민족적인 정체성을 확인할 장소나 기회마저 상실되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랭면은 단순한 음식문화뿐만아닌 민족의 정체성과 이어진 령혼의 존재감과도 직결된다 하겠다. 3. “묘소”―사람마저 매몰되다 원래 “묘소”란 죽은자를 묻는 장소이다. 그곳에 묻힌 사람은 산자에 의해 기리게 되고 정신적으로 보이지 않는 대화를 통해 일종의 문화적인 전통이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 “묘소”가 헐리고 두번다시 매몰된다면 어떤 상황이겠는가? 중편소설 “뼈”에서 주인공이 부모님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 찾아간 고향은 사람들이 거의다 떠나고난 텅 빈 마을이다. 원래 백여호가 넘던 동네에는 겨우 여섯호만 남아있고 그마저도 다섯호는 관내에서 온 한족들이다. 게다가 도시의 수원을 위한 저수지확장공사때문에 마을 전체가 수몰지(水没地)로 물에 잠기게 될 운명에 처해있다.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묘소조차 임자를 잃게 되였는데 이처럼 묘소의 부재는 곧 그 마을의 력사와 뿌리가 사라지게 됨을 의미한다. 작품에서 조막령감의 말은 그래서 더 가슴 아프게 와닿는 가시와 같은 충격을 준다. ...그런데 요쌔(요즘)는 모두 로문(늙은)한 어시고 이쁜 처자고 막 버리고 훌훌 떠나버리니 나 원 참, 돈이 좋아 그런다마는 사실은 그 돈이 웬쑤(원쑤)인게다, 웬쑤! 조막령감은 이 마을을 대표하는 세대이다. 따라서 수근이와 병태 등 몇몇이서만 조용히 이장을 하는 모습은 조막령감이 말하는 그 옛날 “온 동네가 다 나와서 제 집 일처럼 애고대고 울어줬던” 때와는 너무나 달라 마을이 피페 그 자체로 화하고있음을 잘 보여준다. 사람도 그전의 사람들이 아닌데 설상가상으로 마을마저 수몰지가 되여 묘소까지 위태롭게 된 고향, 고향은 말 그대로 황페하고 버려진 삶의 공간이요,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삶의 자취라 하겠다. 4. “명월”―이지러진 사랑 주인공 수근이가 이장에 이어 찾고싶은 사람은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전처와 아들이였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은 전처는 “사윈 초승달 같이 뺨이 훌쩍 패였고 풍만하던 몸매의 곡선도 허물어져보였다”. 한마디로 그 이름에 걸맞는 “명월”이 아니라 난데없는 초승달을 마주하게 된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초승달은 그가 일하는 명태가공소의 한족인 경리와 새살림을 꾸린터였다. 보름달이 초승달이 되고 초승달이 민족을 달리하는 가정을 꾸렸다는 사건은 주인공의 전처의 일이라 해도 민족적인 삶의 피페화뿐만아니라 이질화가 가속화되고있는 현실적인 모순을 잘 드러낸다 하겠다. 좀더 잘살아보려고 외국에 가는것이라고 한다. 그것때문에 “가짜리혼”을 하면서까지 모험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험의 대가는 너무나 처참한것이였다. 조선족들의 경우 이런 일들은 이제 비일비재하다싶이 되여 거의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타민족들한테는 충격 그 자체일수 밖에 없다. “명월”의 두번째남편의 아래와 같은 말은 그래서 우리의 정곡을 따끔하게 찌른다. ...내 생각엔 당신들 정말이 꽈이(怪)하다 했쏘. (중략) 뭐가 그리 쪼우지해서 밭이 뿌요(不要), 집이 뿌요, 애들이 뿌요, 푸무(父母) 뿌요하고 가뻐리고 했쏘? 돈이 잘 벌어오오 좋쏘. 돈이 좋긴 했쏘.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마니 벌어쏘. 그담엔 쩐머빤(怎么办)? 팡즈(房子) 메이라(沒了), 밭이 메이라, 로우퍼(老婆) 메이라, 위쓰왕퍼(鱼死网破) 그리 됐쏘 했는데. 당연히 경리의 말은 수근이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고 부상을 입은 옆구리를 더욱 아프게 한다. 물론 이 장면에서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독자라면 민족적인 삶의 위기나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자책감 비슷한것을 느낄것이다. 5. “스케트보드”―아이마저 잃다 주인공 수근이는 전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렵사리 하나뿐인 아들애 욱이와 상봉한다. 하지만 오래된 나날을 두고 부자간에는 이름 못할 차디찬 강물이 벽처럼 가로막혀있고 이들은 제대로 된 대화를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다. 오히려 아이의 요구에 의해 세트로 사준 스케트보드는 아이를 순식간에 학교앞에서 사라지게 만들뿐이다. ...“왜 인제야 왔어요? 어디서 뭘 하다가요?” “엄마와는 왜 갈라졌죠? 둘 다 좋은 사람 같은데?” 아들애는 아버지의 확답 같은것을 기다리지 않고 물음을 던진듯했다. 수근이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나래 펼친 새처럼 두팔을 휘저으며 저만치 미끄러져갔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아버지의 감회가 얼마나 컸으랴마는, 그것도 돈벌이하느라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한 자책감 또한 얼마나 컸으랴마는 아들애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깊고깊은 상처자욱으로 남았고 그 자욱을 메우기 위한 기회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흔히 아버지의 형상으로부터 아들은 남성으로서의 초기 모델을 형성하는데 그 모델의 성격여하는 곧바로 장차 아들애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그러한 모델을 상실한 아들애가 아버지와의 상봉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아들과의 그러한 소통장애는 주인공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한다는데 있다. 즉 주인공의 삶의 미래적인 추이는 아들과의 그러한 장애때문에 매우 암울하게 비쳐진다는것이다. 6. 수장의 뒤끝은 상실 부모를 수장한 주인공은 다시 기약 없는 출국길에 올랐다가 아들 욱이가 크게 다쳤다는 련락을 받게 된다. 그가 사준 스케트보드를 타다가 아들이 크게 골절상을 입은것이다. 아버지가 어쩌다 사준 선물때문에 아들의 생명이 위험할번했다는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가? 이는 아래의 한 단락에서 찾아볼수 있다. 코날이 왈칵 시큰해지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뚤렁뚤렁 아이의 얼굴에 떨어져내렸다. 부모님의 유골을 고향의 강에 안치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는데 그 응어리가 바로 아이였음을 수근이는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어렵지만 어쩔수 없는 한국행을 해야 하는 주인공의 발을 굳게 묶어두는 아들의 부상은 바로 주인공의 삶의 뿌리가 어디에 있고 삶의 의미와 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하나의 장치였을것이다. 또한 마감을 장식하는 “월요일: 상실”이라는 부분은 그렇기때문에 뿌리를 잃고 헤매이는 수많은 조선족들의 현재적인 삶의 이모저모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사색을 엿보이게 한다. 지금의 시대광장 동쪽에 위치한 랭면집―복무청사가 사라지고 텅 빈 공터만이 남았다는것은 랭면에 담그다싶이 했던 마음들이 모조리 공터에 버려졌음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즉 랭면집의 부재는 이 소설의 경우 주인공의 특수한 삶의 경험과 더불어 랭면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던 수근이네들―우리의 삶의 공간이 일시적이나마 사라졌음을 상징하며 뿌리를 잃어가는 우리의 삶의 모순된 현장을 상징적으로 꼬집는것이라 할수 있다. 이처럼 김혁의 중편소설 “뼈”는 우리한테 마땅히 있어야 할 “뼈”가 도대체 어떤것이여야 하는지를 흥미로우면서도 상징적인 여러가지 소설적장치로 잘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라 하겠다. 앞으로 보다 더 가치 있는 작품을 기대해마지않는다. “연변문학” 2013년 10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8    도시인들의 곤혹과 방황을 재현한 소설들 댓글:  조회:1899  추천:15  2014-08-02
평론 도시인들의 곤혹과 방황을 재현한 소설들 (발취)   김혁의 중편소설 “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   김관웅       190년대에 들어서서 도시에서의 경제체제의 개혁이 대면적으로 확산되여감에 따라 특히 중국경제의 제일 변둘리에 있는 중국조선족도시사회에서 실업은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였다. (중략)   무명시대에 있어서의 다원적인 도덕관, 가치관의 공존은 필연적으로 도시인들로 하여금 선택의 곤혹과 불안에 빠지게 하며 아울러 이에 따르는 침륜(沉沦)과 타락이 뒤따르게 된다. 특히 정치본위시대에서 경제본위시대에로 들어서면서 날로 팽배해진 인간들의 물욕은 사회상에 배금주의가 만연하게 하였고 적잖은 사람들은 배금주의가치관의 포로가 되여갔다. 우리의 작가들은 이런 사회현상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소설롤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김혁의 중편소설 “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 (“도라지” 1996년 제5호)은 한 천부적인 음악재능이 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금전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해 조강지처와 자식마저 버리고 돈많은 녀 기업인의 치마폭에 안겨든 도덕적인 타락과정을 보여주었다. 녀기업인의 사촉하에 예술을 포기하고 술공장을 경영하나 미구에 부도가 나는 바람에 자기가 그토록 사랑했던 음악에도 다시 돌아갈수 없는 상황에서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방황하게 된다. 방황하던 그는 대자연 바다의 유혹에 빠져듦으로서 음악의 신성함을 되찾으려 했으나 결국은 죽은 인어로 되고만다. ‘ 소설은 아름다운 리상과 랭혹한 현실사이에서 생겨나는 불협화음을 부조리극단적인 수법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금전의 부식을 받아 예술가가 시정배로 변질되여가는 인생의 비극을 보여준 작품이다. 1990년대초까지만해도 김혁의 “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처럼 지식인의 타락을 묘사한 작품들보다는 경제본위, 금전만능의 시대에 있어서의 지식인들이 겪게 되는 부당한 대웅에 대한 항거의 목소리를 전달한 작품이 더 낳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이시기까지만해도 중국에서는 “뇌력로동자보다 체력로동자의 경제수입이 더 많은 (脑体倒挂)”의 현상이 여전히 개변되지않고있던 상황과 관련되는것 같다. 변리돈을 꾸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연구성과도 돈때문에 발표하지못하는 지식인의 처량한 모습을 보여준 장춘식의 “최선생의 걸음걸이”, 지식인들의 경제수입이 무식쟁이보다 못한 현실과 지식인들을 우습게 여기는 이웃들을 두고 고뇌하는 대학교수의 심리를 그린 김재국의 “우리 이웃들”, 동부인하고 유흥장에 갔다가 돈이 모자라서 수모를 받아야만했던 작가의 처지를 그린 김혁의 “겨울 유흥장”(“천지” 1991년 제5호”), 30여년 교원생활을 한 우수교원이 돈 3만원을 구하지 못하여 아빠트도 분양받지 못하는 지식인의 궁상을 그린 리선희의 “세상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등은 이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 “중국조선족문학통사” 하권. 제4편 4장 개혁개방 후기 1990- 2010년의 소설문학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7    판타지의 매력 댓글:  조회:1875  추천:11  2014-07-07
. 심사평 .   판타지의 매력   김 호 웅     김혁의 《불의 제전》은 판타지(fantagy) 소설이라 이를 순문학으로 볼수 있는지 쟁론할 여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상상이 빈약하고 언어가 거칠고 메마른 오늘의 문단사정을 념두에 둘 때 현실에 안주할줄 모르는 김혁씨의 대담한 실험정신과 이 소설에서 보여준 풍부한 상상력, 미끈하고 윤택한 언어구사력 및 우리 민족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특별히 주목된다.   《불의 제전》을 보면 적봉(赤峰)을 성산으로 우러르는 남하족(南河族)과 산북족(山北族)이 곡성(哭城)이라는 담을 사이 두고 은연중 갈등과 마찰을 빚어내고있는데 이를 배경으로 남하족의 진(眞)이라는 화동(火童)의 눈물겨운 성장사와 그의 비장한 운명을 다루고있다. 불을 무서워하던 진이 화신무(火神舞)에 열광하게 되고 산북족의 유(柔)라는 처녀애와 열연에 빠지기도 하며 월경(越境)하여 산북의 불씨를 가져다가 가가호호에 나누어주는 등 여러 가지 남하족의 금기(禁忌)를 어긴 죄로 두 눈을 잃게 되지만 불과 회신무에 대한 집념은 버릴수가 없다.  나중에 진은 미친듯이 춤을 추고 북을 두드리면서 터져오르는 적봉의 용암속으로, 불속으로 걸어 들어가 열반(涅槃)한다.   이 소설은 우선 불을 매개(媒介)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있다. 상고시대 북방의 여러 부족과 삼한의 여러 나라가 봄, 가을에 있었던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음주(飮酒), 가무(歌舞)한 국가대회》도 불을 둘러싼 군중의 광희(狂喜)로 이어진 제의(祭儀)였다. 그리고 불은 우리민족의 경우 신화에서는 왕권, 영웅탄생, 정화(淨化) 등을 의미하고 우리 무속이나민속에서는 열정, 정화를 의미했으며 우리 풍습에서는 생명력과 복(福), 벽사(辟邪)를 의미하고 유교에서는 개화(改火), 불교에서는 자기 멸각(滅却)을 통한 승화를 의미하였으며 력사와 문학에서는 위기와 정열을 의미했다.   《불의 제전》에서는 불의 다양한 상징적의미를 유감없이 보여주고있는데 그 중에서도 어지러운 세상을 정화하고 멸각을 통한 승화의 의미에 포인트를 주고있다. 화신무에 열광하고 불속에서 열반하는 주인공 진의 형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것은 예술에 대한 집착, 열정적인 사랑, 만민을 위한 헌신성, 스승에대한 존경과 같은것들이다.   이러한 덕목들은 무지막지한 족장(族長)과 리해타산에 밝은 동료인 교(狡)와의 대비를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러한 환상적인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암시하는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민족이 국토의 분단을 극복하고 대동세계를 이루는 길은 우리민족 전체가 불의 세례를 받아 스스로를 정화하거나 재생해야 함을 암시하고있다.   이 소설은 작자의 해박한 지식, 환상적인 플롯, 장려한 언어구사와 깊이 있는 주제의 발굴로 말미암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김호웅 (연변대학 교수)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6    소설의 또 다른 가능성 댓글:  조회:2049  추천:10  2014-06-30
    . 평론 .   소설의 또 다른 가능성/한영남     중편소설 는 수필식 구조에 편승하여 력사의 편린들을 호불호, 잘잘못에는 함구한채 그냥 쏟아놓고있다. 여기서 수필식 구조라고 하는것은 전반 소설이 하나의 완정한 이야기인것이 아니라 파편적이고 력사시대적이라는데 그 리유가 있다. 환언하면 시공을 자유로이 뛰여넘으며 오로지 강이라는 하나의 줄에만 의지하여 전반 소설구도가 짜여졌다는것이다. 도합 일곱개의 소제목으로 된 소설은 그 개개가 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우리 민족의 한 횡단면들을 그대로 려과없이 보여주고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서로 련관이 없기도 하고 우리 민족이 겪었다는데서, 또 그것이 다 강을 둘러싸고 진행된 이야기라는데서 일정한 련관이 있기도 하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간단히 읽어보자. , 여기서 등장하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은 물론 배달겨레요 꼭뒤에 붉은 술 달린 벙거지를 쓴 사병들은 청군이다. 그들은 한창 "월강죄"를 범한 불법도강자를 처형하고있다. 한반도에서 간도땅으로 슬금슬금 이주해오기 시작하던 무렵의 이야기이다. , 쑹가라는 당지 지주와 이주소작농 김씨네 일가의 이야기. 쑹가는 소작료를 내지 못하는 김씨를 닥달하다못해 쌀이며 소금까지 덤으로 얹어주며 그 딸을 달라고 뻔뻔스레 요구한다. 아버지보다 열살이나 더 많은 되놈지주에게 팔려가느니 차라리 강에 뛰여드는 길을 택한 김씨네 맏딸, 이는 당시 간도땅에서 결코 생소한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죽지 않고 마을의 리훈장 아들한테 구원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그 리훈장의 아들은 그런 그녀를 이끌고 봉천(서간도)으로 결연히 떠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랑의 도피행각-난질가는것과는 전혀 별개의 장면이다. 그것은 희망이요 당시 어찌할수 없었던, 돈 없고 빽 없던 약한 자들의 유일한 선택이 아니였을가. , 일본놈들과 괴뢰군들의 련합토벌속에서 싸우는 동북항일련군 전사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있다. 재봉틀을 마련해가지고 돌아오다가 적들의 포위에 든 녀전사와 꼬마전사, 그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마침내 녀전사가 적들을 유인하고 꼬마전사는 재봉틀을 보호하기 위해 숨고 적을 유인하며 싸우던 녀전사는 총탄마저 떨어지자 서슴치 않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 해방을 맞아 땅의 주인이 된 사람들, 그러나 그 땅을 건설하기 위한 템포는 한시도 늦출수 없는 법. 나라에서는 국비류학생들을 파견한다. 거기에 김군은 합격되고 서로 사모하던 리양은 락방되고 만다. 그러나 그들의 인연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니 김군은 모스크바에서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고향대표단의 통역으로 따라온 리양을 만나게 된다. 김군은 속삭이듯 말한다. "기다려주오. 나 이제 고향에 돌아가리다" , 문혁이와 문화는 모주석께서 장강을 헤염쳐건넌 10주년을 맞아 수영내기를 한다. 그들은 홍기하라 이름이 바뀐 강에서 두번이나 겨루어보았으나 승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마침내 세번째로 도전해나선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그만큼 체력이 따르지 못하는 나이였다. 끝내는 그들은 표표히 흐르는 홍기하속에 사라져버리고 비보를 접한 교원과 부모들은 강안을 미친 사람들처럼 헤맨다. 당시의 력사를 재현함에 있어서 비극만큼 확실한것은 없는 듯 하다. , 중한수교의 물꼬가 트이면서 끈이 닿지 못해 한국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밀입국이라는 비정상루트를 통해 한국으로의 진출을 꾀한다. "코리안드림"의 또 하나의 풍경선이다. 항해도중에 폭풍을 만나 목숨을 잃거나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표류하는 일도 비일비재였지만 그들의 모험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 역시 지난 세기 90년대말 라는 장편르포를 펴낸적 있는 김작가로서는 대단히 익숙한 소재임에 틀림없다. 그에게는 풍부한 자료들이 있었고 그런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언젠가는 소설화하겠다고 했던적이 한두번이 아닌걸로 기억한다. 이번에 맛보기처럼 보여준 는 그래서 더구나 리얼하게 다가오고 작가의 필봉에 의해 우리에게는 보다 실감나는 현실로 체감되고있다. , 주인공 나는 라는 박사론문이 통과되고 일가족의 배려로 시성 타고르의 고향인 인도를 방문하게 된다. 인도에서 나는 갠지스강을 보러 가고 가이드 리따는 단순한 호기심때문에 이것저것 묻는다. 가이드 리따가 나의 고향에 있는 강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내 고향을 떠올리며 먹먹해진다. 그리고 나는 강의 흐름에 눈과 마음을 맡긴채 꿈꾸듯이 말한다. "그 강의 이름은 두만강이랍니다!" 다른 강을 보면서 고향의 강을 떠올리고 고향의 강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조선족임을 자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이 글이 기행문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을 다시 각인시켜주고있다. 그리고 전혀 본 소설과 상관없을듯 보이는 이 은 결국 인간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고향을 그리게 되고 자신의 뿌리와 피를 잊을수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도리를 묻어두고있다. 그래서 두만강이라는 말이 주인공의 입에서 나올 때 우리는 비로소 꿈에서 깬듯 무릎을 치게 되는것이다.   문예리론가들은 력사철학적인 사상으로 현실을 깨우치는것이 문학이라고 설파하고있다. 당연한것은 력사속에서 오늘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해결책을 찾고저 하는 작업은 문인들 모두가 여지껏 꾸준히 해왔고 그래서 맥맥히 이어져오던 중요한 제재요 소재였다는것이다. 특히 중국조선족이라면, 중국조선족의 력사를 조금이라도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거창한 해석이 필요없이 쉽게 한두가지씩 말할수 있는 력사의 파편들을 김작가는 전형화 내지 소설화시켜서 강이라는 긴 줄에 꿰서 우리앞에 밀어주고있다. 일단 그것은 소설이라는 장르이기에 가능한것이고 보다는 중편이기에 가능했을것이다. 독자들은 중편소설 라는 강을 마주하고 여러 강들에서 들려오는 세월의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거기에서는 우리 겨레가 세기를 뛰여넘어 겪어왔던 거의 모든 애환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넘실댄다. 요컨대 두만강에서는 간도땅으로의 이주가 시작되던 시기의 험악상을, 해란강에서는 이주해온 초기의 현지인들과의 갈등을, 송화강에서는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뒤엎기 위해 분연히 총을 들고 일제와 그 주구들과 피뿌리며 싸운 투쟁사를, 볼가강에서는 건국후 사회주의건설을 위해 다투어 쏘련으로, 조선으로 류학을 가던 사회상을, 홍기하에서는 전례없던 문화대혁명을 언급하면서 우리 민족도 어쩔수 없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황해에서는 중한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조선족들이 겪었던 피눈물나는 로무송출 내지 밀입국 사건의 진면모를, 갠지스강에서는 요즘 한결 자유로워진 출국으로 이루어진 인도기행에서 받아안은 감수를 묘파하면서 수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민족의 아픔과 설음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력사에 대한 반영은 여러가지 류형으로 분류되는데 일상적 반영, 학문적 반영, 미학적 반영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김작가의 상기 중편은 그 미학적 반영을 충분히 하고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헝가리의 저명한 문예리론가인 게오르크 루카치의 말을 빈다면 "소설이란 문학형식은 우리 시대에 가장 적합하고 의미있는 예술형식으로 이런 형식은 일체의 가치가 무너지고 형이상학적 지향이 사라져버린 오늘날의 력사적 상황에 있어서 진정한 가치와 총체성을 추구하려는 현대 인간의 의식과 동경을 형상화하고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중편소설은 오히려 소제목 하나하나가 장편으로, 그래서 전반 소설은 대하소설로 흘러야 하는것이 아닐가라는 로파심때문이다. 어쨌거나 흩어진듯 엄밀한 구성을 이루고있는 이런 소설적구조는 참신한 느낌을 주며 앞으로 이런 실험은 간단없이 진행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혁선생의 글은 언제나 볼만하다. 특히 이번 중편은 고요하기만 하던 우리 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것으로 예상된다. 굳이 대명사가 필요없는 김혁선생의 새로운 작품과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도라지" 2012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5    닳아지는 “뼈”들의 이야기 댓글:  조회:2309  추천:12  2014-06-27
. 평론 .     닳아지는 “뼈”들의 이야기  ―김혁의 중편소설 “뼈”를 두고   장하도       1. 문제제기  《연변문학》 지난 5호에 실린 김혁의 중편소설 “뼈”는 당대 중국조선족의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고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진지한 작가적사고와 깊은 사명감에 의한 주제의식으로 잘 그려낸, 심각한 사회적의미를 지닌 소설이다.  따라서 우리 조선족의 삶이 갈수록 많은 문제점을 산출하고있는 요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대담한 표현수단으로 주목을 받고있는 김혁의 이번 작품을 진지하게 의론하는것은 작가뿐만아니라 조선족소설의 전반적인 변화를 위해서라도 아주 가치 있는 작업이 아닐가 생각한다.  아래에 구조적인 측면에서부터 착수하여 “뼈”에 내재된 작가의식을 중점적으로 분석해보자.   2. “랭면”―음식에서 령혼까지  중편소설 “뼈”는 관속에 누운 “뼈”에 관한 시로부터 시작된다. 즉 이 소설은 제목과 함께 작품의 시작부터 “뼈”에 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할것임을 암시하고있는데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주된 이야기는 “뼈”를 둘러싼 여러가지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뼈”의 이야기는 여러개의 작은 이야기로 무어져있고 요일의 전개에 따라 펼쳐지는 일종의 순차적이면서도 단계적인 구조를 취하고있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처음 등장하는 장소는 랭면집이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먹는 랭면을 앞에 두고 주인공은 눈물을 쏟아내지만 어이없게도 화장실에 간 사이에 그의 트렁크가 도적맞힌다. 어렵게 도적을 잡기는 했으나 트렁크속에 든 “뼈”는 경찰의 의심을 잔뜩 자아내는 오해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부모님의 “뼈”였던것이다.   ... 트렁크안에 두개의 비닐주머니가 들어있었는데 그 비닐주머니에 나뉘여 담겨져있는것은 뼈였다. 텅 빈 눈구멍이 선연하고 이발이 들쭉날쭉한 해골바가지며 굽이 나간 접시 같은 골반, 길다란 정갱이뼈… 분명 사람의 뼈였다.   랭면이 조선족의 대표음식중 하나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귀국해서 랭면부터 찾고 랭면을 먹으면서 눈물을 쏟는다는것은 고향에 대한 뿌리의식이 아직 남아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랭면집은 주인공이 민족적인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장소로 되는데 이러한 사건의 발단과 함께 랭면집이 헐리고 공터만 남았다는 소설의 결말은 그러한 민족적인 정체성을 확인할 장소나 기회마저 상실되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랭면은 단순한 음식문화뿐만아닌 민족의 정체성과 이어진 령혼의 존재감과도 직결된다 하겠다.   3. “묘소”―사람마저 매몰되다  원래 “묘소”란 죽은자를 묻는 장소이다. 그곳에 묻힌 사람은 산자에 의해 기리게 되고 정신적으로 보이지 않는 대화를 통해 일종의 문화적인 전통이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 “묘소”가 헐리고 두번다시 매몰된다면 어떤 상황이겠는가?  중편소설 “뼈”에서 주인공이 부모님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 찾아간 고향은 사람들이 거의다 떠나고난 텅 빈 마을이다. 원래 백여호가 넘던 동네에는 겨우 여섯호만 남아있고 그마저도 다섯호는 관내에서 온 한족들이다. 게다가 도시의 수원을 위한 저수지확장공사때문에 마을 전체가 수몰지(水没地)로 물에 잠기게 될 운명에 처해있다.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묘소조차 임자를 잃게 되였는데 이처럼 묘소의 부재는 곧 그 마을의 력사와 뿌리가 사라지게 됨을 의미한다. 작품에서 조막령감의 말은 그래서 더 가슴 아프게 와닿는 가시와 같은 충격을 준다.   ...그런데 요쌔(요즘)는 모두 로문(늙은)한 어시고 이쁜 처자고 막 버리고 훌훌 떠나버리니 나 원 참, 돈이 좋아 그런다마는 사실은 그 돈이 웬쑤(원쑤)인게다, 웬쑤!   조막령감은 이 마을을 대표하는 세대이다. 따라서 수근이와 병태 등 몇몇이서만 조용히 이장을 하는 모습은 조막령감이 말하는 그 옛날 “온 동네가 다 나와서 제 집 일처럼 애고대고 울어줬던” 때와는 너무나 달라 마을이 피페 그 자체로 화하고있음을 잘 보여준다.  사람도 그전의 사람들이 아닌데 설상가상으로 마을마저 수몰지가 되여 묘소까지 위태롭게 된 고향, 고향은 말 그대로 황페하고 버려진 삶의 공간이요,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삶의 자취라 하겠다.   4. “명월”―이지러진 사랑  주인공 수근이가 이장에 이어 찾고싶은 사람은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전처와 아들이였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은 전처는 “사윈 초승달 같이 뺨이 훌쩍 패였고 풍만하던 몸매의 곡선도 허물어져보였다”. 한마디로 그 이름에 걸맞는 “명월”이 아니라 난데없는 초승달을 마주하게 된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초승달은 그가 일하는 명태가공소의 한족인 경리와 새살림을 꾸린터였다. 보름달이 초승달이 되고 초승달이 민족을 달리하는 가정을 꾸렸다는 사건은 주인공의 전처의 일이라 해도 민족적인 삶의 피페화뿐만아니라 이질화가 가속화되고있는 현실적인 모순을 잘 드러낸다 하겠다.  좀더 잘살아보려고 외국에 가는것이라고 한다. 그것때문에 “가짜리혼”을 하면서까지 모험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험의 대가는 너무나 처참한것이였다. 조선족들의 경우 이런 일들은 이제 비일비재하다싶이 되여 거의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타민족들한테는 충격 그 자체일수 밖에 없다. “명월”의 두번째남편의 아래와 같은 말은 그래서 우리의 정곡을 따끔하게 찌른다.   ...내 생각엔 당신들 정말이 꽈이(怪)하다 했쏘. (중략) 뭐가 그리 쪼우지해서 밭이 뿌요(不要), 집이 뿌요, 애들이 뿌요, 푸무(父母) 뿌요하고 가뻐리고 했쏘?  돈이 잘 벌어오오 좋쏘. 돈이 좋긴 했쏘.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마니 벌어쏘. 그담엔 쩐머빤(怎么办)? 팡즈(房子) 메이라(沒了), 밭이 메이라, 로우퍼(老婆) 메이라, 위쓰왕퍼(鱼死网破) 그리 됐쏘 했는데.   당연히 경리의 말은 수근이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고 부상을 입은 옆구리를 더욱 아프게 한다. 물론 이 장면에서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독자라면 민족적인 삶의 위기나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자책감 비슷한것을 느낄것이다.   5. “스케트보드”―아이마저 잃다  주인공 수근이는 전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렵사리 하나뿐인 아들애 욱이와 상봉한다. 하지만 오래된 나날을 두고 부자간에는 이름 못할 차디찬 강물이 벽처럼 가로막혀있고 이들은 제대로 된 대화를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다. 오히려 아이의 요구에 의해 세트로 사준 스케트보드는 아이를 순식간에 학교앞에서 사라지게 만들뿐이다.   ...“왜 인제야 왔어요? 어디서 뭘 하다가요?”  “엄마와는 왜 갈라졌죠? 둘 다 좋은 사람 같은데?” 아들애는 아버지의 확답 같은것을 기다리지 않고 물음을 던진듯했다. 수근이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나래 펼친 새처럼 두팔을 휘저으며 저만치 미끄러져갔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아버지의 감회가 얼마나 컸으랴마는, 그것도 돈벌이하느라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한 자책감 또한 얼마나 컸으랴마는 아들애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깊고깊은 상처자욱으로 남았고 그 자욱을 메우기 위한 기회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흔히 아버지의 형상으로부터 아들은 남성으로서의 초기 모델을 형성하는데 그 모델의 성격여하는 곧바로 장차 아들애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그러한 모델을 상실한 아들애가 아버지와의 상봉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아들과의 그러한 소통장애는 주인공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한다는데 있다. 즉 주인공의 삶의 미래적인 추이는 아들과의 그러한 장애때문에 매우 암울하게 비쳐진다는것이다.   6. 수장의 뒤끝은 상실  부모를 수장한 주인공은 다시 기약 없는 출국길에 올랐다가 아들 욱이가 크게 다쳤다는 련락을 받게 된다. 그가 사준 스케트보드를 타다가 아들이 크게 골절상을 입은것이다. 아버지가 어쩌다 사준 선물때문에 아들의 생명이 위험할번했다는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가? 이는 아래의 한 단락에서 찾아볼수 있다. 코날이 왈칵 시큰해지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뚤렁뚤렁 아이의 얼굴에 떨어져내렸다. 부모님의 유골을 고향의 강에 안치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는데 그 응어리가 바로 아이였음을 수근이는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어렵지만 어쩔수 없는 한국행을 해야 하는 주인공의 발을 굳게 묶어두는 아들의 부상은 바로 주인공의 삶의 뿌리가 어디에 있고 삶의 의미와 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하나의 장치였을것이다.  또한 마감을 장식하는 “월요일: 상실”이라는 부분은 그렇기때문에 뿌리를 잃고 헤매이는 수많은 조선족들의 현재적인 삶의 이모저모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사색을 엿보이게 한다.  지금의 시대광장 동쪽에 위치한 랭면집―복무청사가 사라지고 텅 빈 공터만이 남았다는것은 랭면에 담그다싶이 했던 마음들이 모조리 공터에 버려졌음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즉 랭면집의 부재는 이 소설의 경우 주인공의 특수한 삶의 경험과 더불어 랭면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던 수근이네들―우리의 삶의 공간이 일시적이나마 사라졌음을 상징하며 뿌리를 잃어가는 우리의 삶의 모순된 현장을 상징적으로 꼬집는것이라 할수 있다.  이처럼 김혁의 중편소설 “뼈”는 우리한테 마땅히 있어야 할 “뼈”가 도대체 어떤것이여야 하는지를 흥미로우면서도 상징적인 여러가지 소설적장치로 잘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라 하겠다. 앞으로 보다 더 가치 있는 작품을 기대해마지않는다.   “연변문학” 2013년 10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4    "주덕해의 이야기"의 청소년 위인전기적 의미 댓글:  조회:3101  추천:31  2011-04-09
“주덕해의 이야기”의 청소년 위인전기적 의미   리광일 (연변대학 조선-한국학 학원 교수)       요즘은 평전이 대세인것 같다. 문학작품내용이 많이 변했을뿐만아니라 형식도 많이 변했다. 조선족문단의 경우, 한때는 시작품이 각광을 받다가 후에는 소설중심으로 움직이더니 다음은 수필시대로 진입하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실화문학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로세대의 실화작품으로 김학철의 “항전별곡”을 들수 있고 차세대로는 류연산의 무게있는 실화작품 “혈연의 강”이 나타났다. 주목되는것은 “주덕해실화”가 창작된 점이다. 현재는 평전이 마구 쏟아지는 시기라고 보아도 무방할것 같다. 이미 “불멸의 영령-최채”(류연산) 등 평전이 나왔고 또한 집필, 편집, 출간 등 진행형으로 진척되고있다. 이런 평전은 모두 성인평전인데 반해 리혜선의 “김학철의 이야기”는 청소년 전기작품이지만 한국에서 출간된 점을 외면할수 없다.   이번에 출간된 김혁의 “주덕해의 이야기”는 청소년을 위한 중국조선족 위인전기라는 점과 연변에서 출간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금년은 주덕해 탄신 100돐이고 명년이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이라는 시점, 그리고 주덕해는 초대 당, 정 지도자이며 명실공히 조선족의 대표자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고 현재 청소년들이 “반지의 제왕”은 알고있지만 조선족의 위인인 주덕해를 알지 못하고있는 양상을 념두에 두면 청소년 위인전기 “주덕해의 이야기”가 지니는 의미는 간과될수 없다.   “주덕해의 이야기”는 작품내용의 구조적특징이 뚜렷하다. 12만자에 달하는 편폭에 16개 부분의 내용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조선으로의 이주, 다시 중국 화룡현 수동골로의 이주, 소학교생활과 야학교생활, 수동골에서 야학선생님을 따라 진행하는 항일활동, 혁명사업에 참가하기 위한 파혼, 흑룡강성 녕안현일대에서의 항일투쟁, 서대림자에서의 항일투쟁, 밀산에서의 항일투쟁, 연안에서 조선의용군생활, 할빈에서 조선의용군 3지대 정위로 싸우던 시절, 건국직후와 연변지구위원회 서기 겸 연변전원공서 전원시절, 조선전쟁시기 특무색출작업,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과 연변의 건설(성립당시 명칭은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이다. 길림성인민위원회 제2085호통지에 근거하여 1956년부터 연변조선족자치주로 명칭을 변경), 문화대혁명시기 박해를 받던 과정, 서거와 뒤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였다. 보다싶이 16개 부분에서 해방전에 해당되는것은 10개 부분, 할빈에서 활동은 2개 부분, 연변에서 활동은 2개 부분, 박해를 받고 서거하는 부분은 2개 부분으로 되였다. 전반 작품에서 많은 비중을 해방전에 두었음을 알수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초대 지도자인 주덕해의 해방후 업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해방전 그의 생애에 대하여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작가는 많은 편폭을 해방전에 할애하였다. 청소년 위인전기라는 장르가 편폭의 제한이 있음으로 하여 잘 알려져 있는 해방후부분은 간략하게 처리하면서 동시에 영화기법을 활용하여 긴축하면서도 역동감이 넘치게 처리하는 특징도 보여주었다. 이는 위인 주덕해의 생애와 청소년 전기라는 장르의 결합에 있어서 매우 과학적인 내용구조라고 인정하게 된다.   “주덕해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생애와 조선족이주사를 합일되게 처리했다는 특점이 있다. 기록문학으로서 전기작품은 흔히 따분하고 엄숙한 영웅사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청소년 전기라는 점에 주목하여 청소년의 눈높이를 맞추면서 기록성보다는 이야기성에 중점을 두었다. 말하자면 기록문학의 영웅사적패턴을 떠나 재미와 함께 진한 감동이 내재한 기록문학이 필요한 이 시대의 수요에 부응한 작품이라고 볼수 있다. 뿐만아니라 이 작품은 주덕해 개인의 위인전이면서 동시에 조선족의 력사와 매우 흡사하다. 작품에 사용된 사진 30장, 그림 18장은 단지 주덕해 개인과 관련된것뿐만아니라 조선족이주사와 관련된 사진이 매우 큰 비례를 차지하였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조선족의 이주사이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립사, 나아가 조선족의 정신사라고 인정할수 있다.   독립투쟁시기의 “15만원 탈취”사건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항일투쟁사에 빛나는 한페지이고 1930년 “5.30폭동”은 중국공산당의 지도하에서 연변을 비롯한 전 동북에서 항일전쟁의 시작을 선고하였다. 이후 각지에 항일유격대가 우후죽순마냥 나타났고 1934년엔 동북인민혁명군으로, 1936년엔 동북항일련군으로 발전하였다. 1938년 무한에서 조선의용대가 성립되여 1942년 조선의용군으로 발전하며 8.15해방후 동북에 진출하여 건국까지 해방전쟁에 참가하였다. 이런 혁명투쟁과정은 이 작품에서도 직접, 간접으로 반영되였다. 동북항일련군 제1군은 료녕성에, 제2군은 연변에 있었고, 기타 부대들은 흑룡강성에서 활동하였다. 주덕해의 발자취에 근거하여 이 작품은 주로 흑룡강성에서 활동하는 항일부대에초점을 맞추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을 끄는 작중인물은 안순복이다. 1930년대 항일혁명투쟁사를 배우면서 목단강에 뛰여든 동북항일련군의 “8명 녀전사”를 알았지만 오랜동안 그속에 조선족이 2명 있었음을 몰랐고 수십년이 지난후인 2009년에 그가 정률성, 리봉선 등 조선족과 함께 “새 중국성립에 특출한 공헌을 한 100명 영웅모범인물”에 선정될줄을 몰랐다. 더우기 그가 주덕해와 함께 항일했음은 더욱 몰랐다. 이와 같이 작품은 주덕해와 관련된 주변인물들을 까근히 밝혀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이 작품이 단지 한 개인의 성장사가 아니고 한 집단의 발전사, 변화사임을 보여주었다.   작품에서 주덕해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묘사되였다. 긴박한 상황에서 급히 피신해야 하는 와중에도 그는 직접 약혼녀의 집에 찾아가 죄송한 마음으로 혼사를 물린다. 책임감있는 그의 성격을 볼수 있는 장면이고 아울러 한 인간의 일생을 망칠수 없다는 휴머니즘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다. 뿐만아니라 적들의 진공으로 하여 피복공장의 녀전사들이 자기의 애를 한족백성집에 맡기는 부분도 감동적이다. 녀전사들의 찢어지는 마음도 독자들을 뭉클하게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분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주덕해의 형상도 매우 주목적이다. 흔히 볼수 있는 원칙과 과단성만 지닌 지도자의 패턴을 벗어나 피와 살, 그리고 짙은 정감을 지닌 주덕해를 립체적으로 볼수 있었던 부분이다.   위인전기작품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은 여러가지이다. 이 가운데서 주목되는 부분은 콜롬보스와 노벨에 대한 전기작품작업에 대한 견해이다. 한국의 경우, 이들에 대한 위인전기작품창작에 부정적인 자세이다. 콜롬보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정면적인 업적에 반해 토착민을 수없이 학살한 부면적인 면이 외면될수 없으며, 노벨의 폭발약은 광산개발 등에 활용되는 산업개발의 업적도 있지만 무기에 사용되여 대량살상이라는 부면적인 면이 외면될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외국인보다는 본 민족의 위인전기작품을 창작해야 할 필요성이 더없이 증폭된 상황이기도 하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립은 주덕해를 떠나서 운운할수 없다. 중앙의 민족정책의 실시와 더불어 성립되기도 하였지만 디아스포라서 조선족이 중국에서 정치적, 문화적, 민족적지위를 확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주덕해를 위시한 조선족혁명가, 선각자들이 없었다면 자치주의 성립은 불가능했으리라는 비약적인 가설을 세워보기도 한다. 주덕해를 단지 당, 정 지도자, 혁명가로만 인식하는것은 객관적인 자세가 아니다. 연변대학을 비롯한 연변내 대학교성립에는 주덕해의 심혈이 슴배여있는바 그는 연변대학의 초대교장이기도 하다. 뿐만아니라 아세아에서 두번째로 큰 과수원인 룡정과수농장 등 자치주성립초기 연변의 굵직한 사업은 주덕해를 떠나서 진척된것이 없다. 이런 그의 업적을 작품은 극화형식으로 처리하였음이 독자들의 주목과 상상을 불러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주덕해의 이야기”는 조선족 청소년 전기문학에 있어서 획기적인 작업이다.   기록문학의 본격적인 작업은 류연산에 의해 시작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의 타계로 하여 기록문학이 주춤하지 않을가 하는 우려가 없는것도 아니다. 이 작품의 출현으로 하여 다시 새로운 기운을 보게 되며 특히 청소년 위인전기문학의 부흥을 감히 기대해보기도 한다.   주덕해가 심한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험한 신체적, 정신적모욕을 주었던 문화대혁명 당시 일부 조선족“혁명가”들을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작가의 아량도 볼수 있다.   세기의 마지막순결을 지키려고 아집을 부리는 김혁의 이번 전기작품이 출현함은 이 시대에 새로운 기록문학의 붐이 일어남이 필요함을 제시하는것이 아닐가 한다. 작품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언어로 주덕해의 인생을 조명하였을뿐만아니라 항일투사이고 조선족대표자이며 위인인 주덕해의 진, 선, 미의 일체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한국의 아이돌그룹의 노래는 보는 노래이고 7080노래는 듣는 노래라고 한다. 김혁의 “주덕해의 이야기”는 눈으로 보는 작품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2011.4.8  
13    중국조선족 작가 김혁과 현재진행형의 상처들에 대한 보고서 댓글:  조회:3584  추천:25  2010-12-28
[한국 방송대문학상 평론부문 가작]   일상사로 끌어안은 문혁의 폭력   이새아 (방송대학 국문과 4학년)     1. 중국 조선족 작가 김혁과 현재진행형의 상처들에 대한 보고서   김혁은 조선족 문단 내에서 이미 중단편소설 70여 편, 장편소설 2편, 시, 수필 300여 편을 발표하며 20여차에 걸쳐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명한 중견작가이다. 여기에서 잠깐 ‘조선족’, ‘조선족 작가’의 의미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조선족에 대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담론들 ‘예를 들어 제2의 보모, 민족적인 동질성, 조선족을 이용한 여러 사기행각, 값싼 노동자로서 인식 등이 있겠다’는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이다. 사실 중국 조선족과 남한의 우리는 그동안 ‘한민족’이라는 민족적 동질감 내지는 공통된 모국어의 사용이라는 이유로 인해 서로를 하나의 테두리 안에 두어야 한다는 명분론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시각에서 출발된 여러 담론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오해와 상처를 남기는 결과만을 낳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김혁이라는 작가의 이름 앞에 우선 ‘중국 조선족 작가’ 라는 이름을 붙여 ‘중국’이라는 그의 국가적 정체성에 무게를 두고 이 작품을 논하려 한다. 작품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그의 국가적 테두리는 중국이고 또한 그는 중국의 근현대사의 정치적 질곡을 직접 경험하며 성장한 대표적인 세대이다. 또한 그의 조선족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은 김형규가 논하였듯이 ‘대등한 관계로 대립하는 국가(국적)와 민족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합이라는 전체와 이에 대해 부분적으로 이질적인 성격을 가지는 소수민족주의의 관계하는 것이기에’이 작품은 중국문학의 일부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조선족 작가의 작품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작품에 더해질 수도 있는 동정적인 시선들을 거두어들이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작품이 읽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김혁의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작가인 김혁 자신의 자전적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김찬혁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똥파리, 엄상철, 짜그배누님, 회충, 앵무새, 김표, 사마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인물들을 각각의 독립된 장으로 나누어 형상화하였는데 그들 모두는 ‘불확실한 우물과 불확실한 룡에 대해 불확실한 꿈으로 더듬던(프롤로그 중에서) 그 해 1976년을 보내었던 성장기의 아이들’이었다. 특히나 주인공 김찬혁의 성장기는 작가의 삶과 많은 부분 겹쳐있다. 주인공 김찬혁은 체육부장을 위시한 주변 친구들로부터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머니에게 그의 출생의 내막을 추궁하게 된다. 나의 닦달질에 못 이겨 어머니는 눈물 흘리며 드디어 내가 입양아라는것을 시인했다. 신분이 나쁜 나의 친부모가 운동 때 배겨내지 못하고 금방 태어난 나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지금의 어머니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우물곁에 병원이 있었고 그 병원에서 겨우 4근 3냥, 버러지 새끼 같은 강보의 나를 넘겨받은 것이다. (37면) 실제로 작가 김혁의 친부모 역시 문화대혁명 당시 지주, 교사와 같은 지식인, 수정주의자 등 성분이 나쁜 계급으로 분류되었고 그로인해 자신의 자식에게 그 화가 미칠까 두려워 현재의 부모에게 그를 맡겼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문혁이라는 역사적 현장에서 이러한 비극들은 비일비재한 일이었고 그것은 작가인 김혁 자신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닌 지극히 일반적인 비극, 그래서 비극적일 수도 없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김혁은 작품의 마지막에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현재의 근황을 전하면서 이 소설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힌다. 주인공 김찬혁은 밀린 공부를 하다가 신문사의 기자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작가 김혁의 현 직업도 신문기자이다.) 그리고 김찬혁은 ‘우리들의 어제 무훈담을 장편으로 펴내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무훈담이 이 작품을 뜻함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어렵게 결혼을 했던 상철형님과 ‘짜그배누님’은 이혼을 했는데 그 후 ‘짜그배누님’은 ‘한국령감때기’에게 시집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식탐이 유독 심했던 ‘회충’은 위암말기로 죽었다고 전한다. 김찬혁은 현재의 거리에서 한국과의 결혼을 주선하는 브로커 역할을 하다 잡힌 누님을 만나기도 하고 잡총구에 화약을 넣다가 폭발해서 실명이 된 김표를 안마원에서 만나기도 한다. 또 모택동 어록을 모택동보다 더 정확하게 앵무새처럼 외워대던 ‘앵무새’가 교회의 집사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모두‘운명의 어느 한 시간대에서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블랙홀에 잘못 빠져들어 중력을 상실해버린 아이들’이었다고 주인공은 작품의 말미에서 회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먼지가 쌓인 흘러간 역사의 상처가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바로 지금의 상처임을 작가는 말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자신의 구구절절한 일기장을 꺼내듯이 문혁이 일상에 가한 쓸쓸한 회상의 편린들을 엮어 보여준다. 그의 어조에는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 속에서 벌여지는 어이없는 삽화들은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한다. 50년대 이후 반 우파 투쟁, 정풍운동, 대약진 운동 등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이미 그들이 살아가던 곳이 어떻게 황폐화될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이미 일상화된 폭력 앞에서 그들의 저항은 삶의 터전 전체를 잃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다만 이제야 꾸덕꾸덕해진 스스로의 상처 위에 앉은 딱지들을 매만지며 그 시간들을 관통해온 그들의 현재의 삶이 이젠 안녕하냐고, 그래서 지금은 과연 괜찮냐고 묻는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도 감히 건드려 보지 못한 자신의 상처에 대한 들여다보기. 바로 이 소설은 그 물음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2. 상흔문학의 새로운 길, 문화대혁명의 일상성을 확보하다.   문화대혁명(이후‘문혁’이라고 지칭함)은 중국현대사에서 가장 참담한 시기로 뽑힌다. 1966년부터 1976년, 10년 동안 지속된 문혁의 정치사적 시각의 논의는 차치하고 문혁으로 인한 개인의 일상사와 인권의 파괴 양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맹목적인 충동과 유치한 리념이 너나의 심심을 얽동이던 세월이었다. 어느 한번 학교에서 투쟁대회를 벌렸는데 반혁명학술권위를 타도하자! 자본주의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를 타도하자! 고 선창을 받아웨치던 중 접수실의 령감이 주석대에 앉은 교도처주임에게 전화를 전달하느라 홍주임 전화!-하고 웨치자 다같이 홍주임 전화! 홍주임 전화! 하고 목청껏 받아웨치고는 뒤늦게야 소리죽여 킬킬거린적도 있었다.(중략) 하루가 멀다하게 벌어지는 투쟁대회와 비판대회에서 우리는 차츰 그 도에 넘는 격앙에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모습은 사실 문혁의 일반화된 풍경을 희화화한 예 중 가장 전형적인 모습의 하나이다. 모택동이 죽고 문혁을 일으킨 주범인 사인방(이것은 순전히 중국인들의 관점이다.)이 처형을 당하자 문혁은 형식적으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부터 문혁 시기를 비판하거나 문혁의 상처를 드러낸 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다. 그 시기의 이러한 작품들을 중국 문학사에서는 상흔문학(傷痕文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당시의 상흔문학은 지난 과거에 대한 폭로에 가까운 것이었지 무엇으로 인해 혹은 누구로 인해 중국인 전체가 그러한 세월을 살아야만 했는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들을 제기할 수 없었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이는 그들의 삶이 여전히 문혁으로 인한 고통의 그림자에 의해 포획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실제로 조선족 상흔문학은 중앙에서 듣고 싶어 하는 신음의 양상의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고 대다수 사람들은 상처의 치유를 포기하며 그들의 언어를 깊고 어두운 자신만의 방 안에 가두게 된다. 조선족 작가들과는 다르게 문혁이라는 상처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확보한 중앙의 지식인들은 문혁을 회상하고 고발한다. 가령 다이호우잉의 바진의 이 대표적이다. 또한 홍콩이나 서방국가로 망명 아닌 망명을 해야 했던 지식인들의 소설과 회고록이 적지 않게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지식인의 시각에서 쓰여진 지식인 중심의 문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위화의 은 상흔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데 그 의의가 높다. 그것은 중국 문학이 비로소 중국혁명, 대약진, 문혁 등의 역사적 사건들과 객관적 거리를 확보함과 동시에 그 세월을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투를 끌어안고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와 화해의 악수를 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화의 작품이 중국 현대 정치사를 통시적으로 관통하고 있다면 김혁의 작품은 그 현대사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이었던 문혁의 광란을 일상의 차원으로 끌어내어 문혁의 일상이 체화된 작가의 몸으로 당시의 풍경들을 직접 재구해 내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즉 조리돌림을 당했던 지식인의 절망적인 눈빛뿐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일그러진 표정들과 그런 험난한 세월 속에서도 어머니의 가슴을 닮은 사진을 찾아 헤매던 동년의 자화상들의 조각조각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내어 문혁이라는 거대한 일상사를 그려내었다. 생존, 그 자체가 국가의 폭력 아래 놓여 있던 시대를 돌아보며 쓴 그의 소설이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영정사진과도 같아서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은 소설과 더불어 참담해 질런지도 모른다.   3. 문혁의 그물망에 갇혀 버린 일상사들   문혁의 여러 지침들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었다. 즉, 그것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수반하기 이전에 이미 일상을 장악하고 쾌쾌한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주인공 김찬혁은 당시가 ‘머리에 뿔이 나고 몸에 가시가 돋힌 꼬마맹장의 이미지를 선호하던 시대’였지만 그는 심약한 인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는 뤼페어(생선의 일종)를 사려고 인공 늪에 갔다가 탯줄이 달려있는 채로 죽은 아기가 늪으로부터 건져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것은 그가 본 최초의 죽음이었고 그 충격의 여파로 죽은 아기가 웃으며 다가오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즉, 그가 동년을 지나 받아들여야 했던 세상은 죽은 아이의 시체처럼 끔찍한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수많은 금기와 취약한 의료 시설 속에서 유기된 영아들이 많았고’ 한편에서는 국가가 쥐어준 죄명을 안고 억울하게 죽거나 그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죽인 가해자가 국가일지도 모른다는 인식은 애초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상상의 영역이었고 당대의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에 대한 가해자가 그들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에 젖어있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내려진 여러 방침, 강령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그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즉, 일상의 모든 담론들은 문혁과 연관하여 논해지곤 하였다. 가령 빨리 걸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꽹과리소리와 함께 막이 열리면 잰걸음으로 등장하는 본보기극(일종의 혁명극으로 문혁시기에 공연된 유일한 연극임)의 주인공’과 오버랩 된다. 잠을 자는 시간조차도‘충(忠)자가 새겨진 베개를 사용’하게 되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마을엔 홍위병 처녀가 목매 죽은 집이 있어 사람들은 그곳을 에돌아 다녔고 라디오에서는 혁명 가곡만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산아제한 노래’나 혁명가만을 불렀다. 모 주석 어록책의 안표지는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는 공짜 목욕표를 잘 보관해두던 비밀 장소였고 의붓아버지는 신문의 최신동향(중앙정부의 지침)을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불리할 것 같은 사안들에 대비하며 전전긍긍하였다. (그 시절은 서로가 서로에게 투쟁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세상을 똑같이 모방한다. 동네 건달패들은‘싸움’이라는 단어 대신‘혁명하자’고 말을 하고 제대로 싸움이 붙지 않으면 어른들의 말을 모방하여 “혁명은 수놓이도 아니고 손님접대도 아니라고 모어른(모택동을 말함)이 말했잖냐”라고 말하면서 싸움을 더욱 부추긴다. 아이들이 사용하던 최악의 욕들은 문혁을 통해 중앙이 축출해내고자 했던 부류를 칭하여‘지주새끼, 공인역적, 반혁명수정주의분자, 구멍에서 태어난 우파새끼들’등이었다. 그러한 모방에는 모방에 대상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하시던 말을 따라 아무 의미도 모른 채 타인에게 건넸던 ‘빨갱이 같은 놈’과 같은 맥락의 모방, 그것은 그들의 일상 전체에 만연된 일상화된 폭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혁 시기의 또 다른 일반적 풍경의 하나가 대자보와 선전화였다. 작가 역시 이점을 놓치고 있지 않는데 그의 시선은 서로를 비난했던 대자보의 내용에 있지 않다. 작가는 누구나 대자보를 써야했던 시대-공격의 대자보든, 반격의 대자보든, 혹은 자아비판의 대자보든 간에-를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유독 많았던’시절이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대자보의 내용보다는 커다란 백지를 시원하게 하게 채워가던 그 필체들에 감탄한다. 모택동의 얼굴이 도배되다시피 하던 선전화에 대해 이렇게 기억한다.   는 집구석에 숨어 가만히 동네사람들에게 화투장도 그려주군 했다. (중략)-그 작은 그림딱지가 나는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흔상(감상:필자주)수준은 단눈에 호의나 적의를 가려볼수 있는 선전화에나 버릇되여있었다. 그러했던 우리에게 달이며 꽃이며 풀이며 새며 메돼지며 사슴이며가 변형되여 그려준 추상적이지만 보기 좋은 그 도안들은 하나의 신선한 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호의나 적의만이 가득했던 선전화가 일상의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지만 이 혁명의 일상 아래에서 아이들은 화투장의 그림을 통해서나마 그들의 동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화투장이 혁명과 투쟁의 세월을 그럭저럭 견디어 내려는 어른들의 회피책이었다면 아이들에겐 선전화의 대칭점에서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해 주었던 매개체가 되는 것이었다. 또 다른 문혁의 풍경에는 말마디에 모 주석 어록과 정치구호를 끼워 넣는 것이 규범처럼 유행하였던 대화의 방식들이 있는데 작가는 이 장면은 매우 독립적으로 삽입시키고 있다.   손님 : 《인민을 위해 복무합시다.》동무, 사진을 찍으려는데… 형님 : 《우리의 임무는 인민을 위해 책임지는것입니다.》몇 촌을 찍겠슴둥? 손님 : 《혁명을 틀어쥐고 생산을 촉진합시다.》3촌을 찍으려는데 값은 얼마요? 형님 : 《절약하면서 혁명합시다.》3촌에 60전이지만 2촌엔 40전입꾸마. 손님 : 《사회주의 풀을 요구할지언정 자본주의 싹을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그럼 2촌을 찍겠소. 형님 : 《기률을 강화하면 혁명은 곧 승리합니다.》날 따라옵소.   개그 콘서트의 한 장면 같은 손님과 주인(형님)의 대화는 당시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매우 격앙된 어조로 주고받았을 지극히 평범한 대화였음이 틀림없다. 정치구호를 외우는 부분에선 사람들이 자세를 곧게 하고 또박또박 이를 복창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 구호 뒤에 따라오던 일상의 대화들을 작가는 조선족들이 사용하는 방언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규율로 가득한 어조와 개인적인 방언의 어조 사이에 놓인 긴장감과 느슨함의 반복은 개인의 사적 공간 역시도 국가의 통제와 규율에 점령당해야만 했던 그들의 우울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일상을 비틀어서 폭로한다. 또한 작가는 '짜그배누님'을 통해 문혁의 다른 풍경들을 끄집어낸다. ‘짜그배’란 뜻은 짝짝이란 뜻으로 당시 용정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쓰이던 말이다. 즉 ‘량친 가운데 어느 한 쪽이 타민족이면 우리는 그들 사이에서 생겨난 자식을 짜그배새끼’라고 불렀다. 어쨌든 ‘짜그배누님’의 원래 이름은 최승미다. 그녀가 그런 이름을 갖게 된 데는 시대적인 맥락이 자리잡고있다. 대약진 시절, ‘영국을 릉가하고 미국을 따라잡자(超英勝美)라는 구호 때문에 많은 아이들의 이름이 초영(超英)이나 승미(勝美)였던 것이다.’이는 바로 문혁의 시발점인 일련의 중국 현대사가 아기의 이름조차도 그들의 부모가 원하고 추구하는 소망을 따라 짓는 것이 아닌, 국가의 정책 속에서 하나의 구호로 불렸음을 보여주며 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개인의 삶이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의 불행했던 현실들을 끊임없이 되뇌게 하는 태생적 상처의 표지가 되었다.   4. 문혁의 응달 속에서도 마마꽃은 피어나고   문혁 시기 투쟁의 대상들은 목에 흑판을 걸고 고깔모양의 모자를 쓴 채 비판을 당하였다. 이것은 문혁의 가장 전형화된 풍경이다. 아이들은 이런 문혁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한다. 김찬혁이 똥파리 무리의 성원이 되자 똥파리는 그동안 김찬혁을 괴롭힌 체육과대표를 잡아와서 어른들이 비판투쟁대회에서 하는 것처럼 목에 흑판을 걸어 놓는다. 김찬혁은 가해자의 자리에 서 있긴 하였지만 ‘금세 몸이 떨리고 딸꾹질이 터져 나온다.’그 시점에 언젠가 비판을 받으며 침세례를 받았던 늙은 지식인의 절망적인 눈길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슴속에 음각되어 지워지지 않는 한폭의 경상’이었던 것이다. 어느 비판 대회에서 몇 명의‘검은 오류분자’들의 얼굴에 주인공 김찬혁은 침을 뱉는다. 심지어‘어린지라 키가 닿지 못해 퐁퐁 뛰면서 침을 뱉는다.’그러나 마지막에 앉은‘비누거품이 일 듯 온통 침투성이인 반혁명학술권위’(늙은 지식인, 교수: 필자)앞에서 김찬혁은‘목구멍을 추키며 혀를 굴리며 침을 만들려 애를 썼지만’침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눈길을‘침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안경알 사이로’마주하게 된다.   나는 목구멍으로 짜내여 겨우 만들어냈던 침덩이를 꿀꺽 삼키고말았다. 진저리를 치며 뒤로 물러나 사람들의 틈새에 몸을 숨겼다. 경황함을 떼칠 수 없어 허겁지겁 집을 향해 뛰여갔다. 두억시니같은 눈길이 계속 나를 쫓는듯해 뒤를 돌아다보며 허겁지겁 집으로 뛰여갔다. 저녁, 온통 침에 게발려진 비닐테안경의 얼굴이 꿈자리를 커다랗게 매우며 달려들었고 나는 식은땀 흘리며 비명지르며 꿈에 가위눌려 깨어났다.   그 시대는 모든 인민들에게 가해자와 피해자 중 무조건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되는 척이라도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가해자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갖고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마치 마마꽃을 앓았던 김찬혁의 몸에 깊게 패여진 마마꽃 자국처럼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짐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악몽과 같은 무의식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려고 하였다. 메를로-퐁티의 말처럼 ‘역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도록 부추김과 동시에 역사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에겐 자신들은 역사와의 공모자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역사에 의해 부추겨진 범죄의 주동자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따라서 문혁의 열조에 들떠 있던 사람들 역시 결국 자신이 피해자이면서도 역사의 범죄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문혁이라는 거대한 집단적 폭력은 일상적 삶을 살아가던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았지만, 종국에는 누구도 그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에서 집단적 희생양을 요구한 것이 되었다. 문혁은 이렇듯이 억압과 통제, 그리고 폭력의 시대였지만 그런 동란의 세월 속에서도 자연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문혁의 폭력이 그토록 가혹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본성 자체를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성적 호기심으로 들떠 있기도 하고 짝사랑의 감미로움에 젖기도 한다. 아이에서 청년이 되는 과정을 경험하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고도 한다. 김혁의 이 소설은 문혁의 풍경 속에서 고통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의지와 서로를 보듬어 주던 따뜻한 손길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김찬혁이 어느 날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맨 몸을 바라보는 장면을 살펴보자. 나는 처음으로 나의 벗은 몸매를 살펴보았다. 은밀한 구석구석까지 살펴보았다. 귀퉁이에 혁명적구호가 새겨져 있는 체경 속에서 나는 혁명하려 하고 있는 한 남성을 보았다. 내 소중하면서도 흉물스레 느껴지던 부분에 눈밑의 봄싹 같은 것이 한 모숨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봄물이 팽팽히 차오르듯 일어서는, 동면에서 깬 뱀 대가리처럼 머리를 쳐드는 욕망의 다른 한 나를 보았다.   이렇듯 어른이 되어가는‘나’는 똥파리의 애인인 '짜그배누님'을 짝사랑한다. 나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짜그배누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찍힌 사진 한 장을 얻는 것이었다. 우연한 계기에 누님의 사진 필름을 발견한 나는 그 필름을 가지고 ‘혁명적열의로 격양된 사람들과는 역방향으로’걸어 대포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사랑의 열병으로 뜰뜬 ‘나’는 진달래꽃을 처음으로 의식한다.   나는 짜그배누님의 사진을 눈 가까이에 쳐들었다. (중략) 수줍음으로 단을 꺾고 잠복해있던 《포신》은 대번에 머리를 쳐들었다. 갈망에 넘친 그것은 튼실했고 뜨거웠다. 그 《포문》으로 나는 광분하는 도시를 겨누었다. 손을 천천히 그러다 잽싸게 움직이며 장탄을 했다. 조준경을 맞추었다.   그는 자신의 최초의 욕망을 높은 산 위에서 광분하는 도시를 향해 분출한다.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동물적 욕망이었고 어떤 세상의 광기도 이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이치었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김표는 여자의 속옷이나 생리대를 훔치는 등 성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변태적 행태로 표출한다. 그는 본보기극보다 재미있다면서 여성의 나체사진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김표의 주접스런 행동에 화가 난 똥파리는 그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린다. 집으로 돌아와서 짜그배누님과 나, 김표만이 마주하게 되었다.   “녀자것이 그렇게 보고…싶던?”(중략) “찬혁아, 너 자리 좀 비워주겐?” 누님이 나를 보고 말했다. 나는 곰상스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짜그배누님’이 출입문의 문걸쇠를 안으로 잠갔다. (중략) 김표가 보는 앞에서 누님이 쑥색옷의 단추를 벗겨 내렸다. (중략)숨겨졌던 하나의 포만한 유방이 출렁 튕겨 나왔다. 김표가 덴겁히 눈을 아래로 내리 떨구었다. 김표가 손을 잡아채려 했으나 누님은 꼭 움켜잡아 자기의 가슴에 포개주었다. “그럼 어디 만져봐, 괜찮다. 니 맘대로 만져봐라, 그리고 다신 그런 치사한짓 하지 마, 응?”   눈귀로 송진 같은 눈물이 꾸역 배여 나왔다. 이어 그것은 벌창해진 보물로 되어 말라붙은 피딱지를 적시며 흘러내렸다. 그것이 내게는 표어글발의 마지막 획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물감처럼 보였다. (중략)여지껏 천하의 죄를 혼자서 진 듯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맞아주고만 있던 김표가 소리내여 울기 시작했다. 김표는 곧 누님에게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는다. 당시 ‘홍색파였던 어머니와 캉다파였던 아버지가 파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여 떠났고 하나밖에 없던 누나는 지식청년이 되어 농촌으로 내려간 지 3년이 지난 시기’였다. 김표는 소리 내어 울면서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자리를 짜그배누님의 따뜻한 젖가슴을 통해 위로받는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인간 스스로가 지닌 양심과 삶의 의지, 타인의 따뜻한 손길들로 인해 그 어두운 시기를 견디어 낼 수 있었다.   5. “마마꽃, 응달에 피다”, 그리고…   작가 김혁은 에필로그를 통해 그의 문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당혹과 불안으로 정신이 진붉은 폐유처럼 술렁대던 세월, 마마귀의 주술에 걸렸던지 이 나라 사람들은 저마다 홍역을 앓는 것과도 같은 병력의 아픈 나날을 보내왔다. 아픔에 머리가 뜨거웠던 어른들은 그 시대를 람독했고 오독했었다. 우리는 어찌보면 란폭한 그 시대의 제물이었다.(중략) 넘어지면 일어나고 일어나면 다시 넘어져 상처를 입었다. 방향감 없는 매진으로 점철된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소품의 련속들, 우리가 잃어버린 질서는 그 때 그 세계가 잃어버린 질서였다. 그때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지 육신에 생채기로 남은 단순간의 상처뿐이고 지금에 와서야 정신에 남긴 핵복사같은 영원의 상처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상처와 시대가 우리에게 준 상처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처의 아픔보다는 그 상처를 만들던 과정이 더 생각날 뿐이다. 그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행될지 모르는 그러나 결국 넋을 놓은 채 무방비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는 세계의 폭력의 아픔과 함께 그것이 자행된 공간과 시간을 수많은 ‘소품’들로 전시해 놓았다. 바진이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문혁의 박물관’을 김혁은 소소한 소품들로 채워 ‘문혁의 민속박물관’을 만들었다. 더욱, 그가, 고마운 것은, 그가 비록 ‘중국’조선족 작가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지만 동시의 그의 모국어인‘마마꽃’을 잊지 않았다는 점. 그가 촘촘히 엮은 하나의 낯선 세상을 우리의 언어로 바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점, 그것이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더욱 소중하게 읽혀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2    현대의 아이로니와 작가의 성찰 댓글:  조회:2860  추천:27  2010-10-31
 현대의 아이로니와  작가의 성찰 2008년 문학풍경 일별   장정일       김혁의 소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2008년 겨울호)은 환상을 도입해 몽환과 진실의 융합을 시도한 색다른 아동소설로서 현실세계에서의 고민, 그 심각한 모순갈등을 태공의 환상세계에까지 확대시켜서 관조함으로써 아동들의 현실타개의 의지가 성인세계에 못지 않는, 혹은 그 이상의 절실함을 내재하고있음을 보여주고있다.   소설속 주인공이 리혼한 부모와 함께 떠난 환상적인 그린별려행은 인류의 태공려행시대를 전제로 상정하고있고 따라서 그 행로에는 로보트승무원, 번역성능을 갖춘 헬메트, 스크린, 인터폰같은 고급한 기기와 용암기둥, 풍차, 계곡같은 기이한 경물과 편리한 호텔시설, 그리고 서쪽하늘 해돋이같은 기상천외한 경관이 있지만 뜻밖에도 태공의 그린별 원주민들도 가족리산의 슬픔에 잠겨있다.   지상에서 이룰수 없어보이는 리혼부모 재결합에 대한 간절한 념원을 ‘해가 서쪽에서 뜨는’ 별나라까지 찾아가서 성취해보고자 하는 주인공의 의지는 지구에 살든 태공에 살든 가족, 가족사랑은 어린이 마음의 고향이요, 인간 심령의 종착역임을 재삼 되새겨보게 한다.  (하략) "연변문학" / 2010년 제3호      
11    미디어와 메시지 댓글:  조회:2486  추천:17  2010-10-31
. 평론 .   미디어와 메시지   - 김혁의 중편소설 '병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이번 3대문학지들에 게재된 소설들중에서 필자가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작품은 단연 김혁의 중편소설 '병독'이였다. 최근에 읽은 일련의 소설들중에서 이 작품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빼여난 작품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 문단에 흔치않은 포스터모더니즘계렬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포스터모더니즘에 대한 여러 해석들중에서 그 현학적인 허울을 벗겨버린다면 대체로 아래와 같은 특점들이 남아 있지 않을가 생각된다.   첫째는 엄숙주의, 권위주의, 리상주의에 대한 배척, 둘째는 대중예술과 고금예술 사이의 경계불명, 셋째는 혼성모방(混成模仿), 넷째는 저자와 독자관계의 재정립 등이다. 은 이러한 포스터모더니즘의 특징들을 발판으로 세워진 소설이라는 이름의 구조물이다.   소설은 컴퓨터광인 주인공 가 주위의 몇몇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을 일인칭 초점화자 시점으로 전경화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네티즌이 아니면 친인친척들로서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가까운 관계라고 하는것은 물리적인 공간이나 혈통적공간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심리적공간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라 자처하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심리라는 이 고상한(?) 단어는 벌써 가칙를 잃은지 오래다. 이 소설의 곳곳에서 우리는 정상적이고 단정한 (아니면 책벌레나 저능아와 같은?) 전통의 젊은 이들과는 전혀 상반되는 형상들을 만나게 된다.   주인공 는 거의 동시에 세명의 녀성들과 아무런 부담없이 섹스를 즐길뿐만아니라 자기 이모의 장례식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아 땀을 흘리다가도 녀자친구의 애완견 장례에서는 소리내여 울고있는 특이한 별종이다. s2o라는 아이디를 가진 의 녀자친구는 몸의 가장 은밀한 곳에 까지 나비문신을 새기고 있는 기상천외한 인물일뿐만 아니라 방송국의 모 pd가 자기 가슴을 만지는것을 보고 남자친구가 은근히 화를 내자 제쪽에서 외려 하고 항의하면서 자기 가슴은 인공으로 만든 가짜이기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도 처음 만난와 아주 자연스레 침대에 오른다. 에게는 천사로만 보이던 도 몇번의 섹스를 나눈 뒤에는 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컴퓨터를 안고 튀여 버렸고 양말씻는 기계로나 보이던 빨래판 같던 도 결국은 나를 떠나 일본남자와 결혼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정조나 도덕이니 량심이니 사랑이니 하는것들은 한낱 휴지쪼각에 불과하며 심지어 돈까지도 쓰레기에 다름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소설의 저자에게 하고 질문한다면 아마도 저자는 소설속의 주인공의 말처럼 '왜 내 정신도 생리통이다'하고 소리지를지도 모른다. 현실속에서 리얼리터를 별로 얻을수 없는 이러한 플롯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것인가? 이것이 우리 독자들 몫인것이다. Pd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위선적인 권위주의, 돈에 목이 매인 엄마로 상징되는 이른바 어른들의 리성주의, 교원으로 있는 이모의 훈계로 표현되는 소위 지성인들의 엄숙주의, 이러한 모든 기성질서에 대한 이들의 배척과 풍자는 상당히 의미있는것이라고 볼수밖에 없다. 무의미한 담론을 통해 표현하는 의미, 이것은 전형적인 포스터모더니즘의 기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진실이 없는것은 절대 아니다. 은 의 컴퓨터를 훔치긴 했지만(?) 그 대가로 성실하게 섹스파트너역활을 했고 또 부족한 부분은 돈으로 남긴다. 은 비록 아이디에 미안한 쫀쫀한 놈이지만 녀자친구와의 의리(?)만은 무섭게 지키는 위인이다. 도 친구의 일하나만은 착실하게 도와주는 의녀(义女)이며 역시 성실하고 의협심이 많은 괜찮은 남자이다. 이것이 그들의 진실인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정조가 있고 그들의 사랑이 있고 그들의 도덕이 있는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들은 소설속에서 모두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추락하는 모든것은 가치가 없고 무의미한것인가? 추락하는것은 모두 추락하는자의 몫인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것이다. 어쩌면 바로 여기에 이 소설의 핵이 있을수 있다. 이러한 의 넋두리같은 리유없는 반항을 우리가 왜 새겨들어야 하는가? 그들의 광란적인 환상체험을 우리가 왜 음미해야 하는가? 우리가 왜 의 선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러한 그들의 배척과 풍자가 바로 어른 세계의 반작용인탓이다. 이 점은 소설속에서도 여러번 제시되지만 특히 작품의 결말에서 잘 드러난다. 가 중고품으로 사온 컴퓨터는 이미 바이러스에 걸려 있다. 그것도 다른 바이러스가 아닌 바이러스다. 라는 영문문자만이 식욕과, 성욕, 물욕의 만족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욕구불만, 이제 그들에게 고픈것은 배가 아니라 머리인것이다. 배가 고프다고 나오니 그것보다 더 아이러니한 바이러스가 있을가? 그런데도 어른들은 유치하게도 식품이나 돈으로 아이들의 바이러스를 치료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것이다.   이 소설속에는 또 네수의 신세대 한국가요가 그대로 인용이 되여 있다. 짜깁기를 통한 혼성모방, 이러한 혼성모방을 통한 순수문학과 통속예술의 접목, 이러한 접목을 통한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파괴, 이것 또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법이다.   이외에도 지적하고 싶은것은 텍스트의 일인칭 초점화자 시점과 언어문제의 절묘한 조화, 의학에서의 하나의 치료과정을 방불케하기도 하고 또한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상징하는것 같기도 한 a로부터 z에 이르기까지의 서술단락, 독특한 개성과 아이러니한 상징성을 결부시켜 낯선 대상의 병치에 성공한 이름짓기 등은 모두 이 소설의 성공에 기여한바가 크다. 제한된 지면으로 하여 이러한 측면에 대해 상세히 다룰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특히 높이 평가하고 싶은것은 이 소설에서 보여준 김혁의 언어구사가 자유자제의 경지에 이름으로써 정말 는 점이다.   일찍 카나다의 석학 맥 루안은 라는 경세의 절구를 남겨 우리에게 미디어의 중요성을 상기시킨적이 있다. 매체가 전달하는것은 그 내용과는 전혀 다른, 곧 매체 그 자체의 특질일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선견지명이 아닐수 없다. 과학은 매체를 변화시키고 매체는 사람을 변화 시킴으로써 우리 사회는 저모도르는 사이에 과학과 매체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여 버렸다. 그리하여 편지세대, 전화세대, 텔레비죤세대, 컴퓨터세대 하는 신조어까지 생겨 나게 되였다. 오늘의 우리의 삶이 얼마나 물질적이고 관능적이고 감각적이고 기능적이고 경박한가 하는것을 직시한다면 그것이 매체의 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쉽게 간파할수 있을것이다. 편지로 사랑을 나눈는 련인과 전화로 사랑을 나누는 련인, 그리고 인터넷 메일로 사랑을 나누는 련인은 같은 생각을 할수가 없는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매체의 변화에 줄곧 둔감한 반응을 보이던 우리 문단으로서는 김혁의 에 감사해야 할것 같다.   김혁은 인터넷을 가리켜 얻음이자 잃음이고 바램이라고 했다. 우리도 이제는 그 잃음의 정체와 바램의 대상을 낱낱이 환기해 볼때가 된것이다.   서영빈 (문학박사, 북경 경제무역대학 외국어학원 원장)
10    은둔하는 고독한 영혼 댓글:  조회:3589  추천:25  2010-05-13
은둔하는 고독한 영혼 - 소설가 김혁인상기   김촌       김혁은 우리 문단에서 특이한 존재다. 10대에 문단에 등단했고 아울러 신문계에 입사하여 여태껏 문학과 신문기자사업을 병행해 왔다. 인생리력도 그나이에 비해 파란많고 굴곡적이여서 그러한 담금질속에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과 빛깔을 지닌 개성파 작가로 문단에서 자리매김해 왔다. 남들이 모두 동쪽으로 갈때 홀로 서쪽으로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남자, 마를줄 모르는 감성으로 팽배해 있고 웃음속에 울음을 감출줄 아는 남자. 그런 용기와 개성이 오늘의 “반골”기질을 가지고있고 각종 쟝르를 거침없이 구사하는 중견작가 김혁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경인년이 금방 걸음마를 뗀 정초의 어느날 나는 촬영기자와 함께 연길시 덕명호텔 부근에 위치한 김혁씨의 집문을 노크했다. 꽤 오래돼 보이는 건물, 값가는 기물은 별로 눈에 밟히지 않지만 그 대신집이 무너지게 겹겹이 둘러쌓인 책들이 유표하게 눈에 뜨인다. 높은 서가에 다 챙길수 없어 서가앞에까지 두겹세겹으로 거실 거의 중간까지 포진해있는 책이 저그만치7천여권이라고 한다. 수자도 대단하지만 문학저서뿐만이 아닌 력사, 종교, 철학, 영상학, 민속학등으로 갖가지 학과를 넘나드는 품종의 다양함이 충격적이다. 그뿐이 아니다. 수십년간 수집한 수천장의 영화테잎과 CD가 별도로 서가를 매고 꽃혀 있고, 지금은 구경하기도 어려운 수십년전의 련환화도 천여권이 넘게 차곡차곡 잘 정리되여 있었다. 그의 줄기찬 문학적행보의 원류를 만나는 대목이다. 고금중외의 명작들이 그의 사유와 영감의 샘을 깊게 하고, 온라인과 영상 등 다양한 양식으로 접하는 콘텐츠가 그의 정신세계의 반경을 한껏 드넓혀주고 있었다. 그의 문학세계가 남달리 다양하고 높고 깊은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님을 알수 있게 했다. 변두리를 허물고 글로벌시대의 중심을 향해 줄기차게 뻗어가는 거대한 파워의 실체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 많은 책과 영화와 씨름하며 다져온 지적인 바탕,무서운 가능성을 지닌 미래형 작가의 존재를 육감으로 느끼며 나는 가슴이 뜨겁도록 흥그러운 전율을 느껴야 했다. 김혁의 간단한 프로필에서도 그의 오로지 문학으로만 점철된 생애를 력력히 보아낼수 있다. 문화대혁명이 일던해 용정에서 출생 1985년 단편소설 "피그미의 후손"과 "노아의 방주"등 작품을 발표하며 19세에 등단 20세에 파격적으로 신문사 기자로 발탁 되여 "길림신문", "연변일보" 등지에서 20년간 신문기자로 활약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연변일보[해란강]문학상, [장백산]문학상, [도라지]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자치주 [진달래]문학상 한국재외동포재단 한민족 청년상 등 20여차 수차 수상 지금까지 “마마꽃, 응달에 피다”등 장편 3부 중편소설 “전재죽이기” 등 중단편소설 80여부, 시 300여수, 수필, 칼럼 200여편 명상 300여편 그리고 신문기사 천여편을 창작, 발표,간행했다.   “오늘로 오기까지 나는 정말로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져 왔다.”라고 말하는 담담하게 말하는 김혁씨. 그 담담한 어조에 비해 그의 삶의 길은 어쩌면 너무나 울퉁불퉁했다. 친부모의 버림으로 남의 집 양자로 자랐지만 다시 그 양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 혈육친지하나 없이 내내 홀로였고 혼인의 파국, 생활의 궁핍을 벗어보려 매달렸던 음식점, 서점, 신문사 등 사업의 잇달은 실패들로 오는 생활의 곤고, 때문에 오래동안 천문수자같은 거액의 부채에 시달렸고 게다가 사회의 부당한 대우 등으로 어려서부터40대가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무원조한 그에 대한 운명의  조롱과 학대는 오늘에도 계속되고있다. 세상살이의 올곧지 못함에 부대껴온 나날이였지만 그는 세상의 불쾌한 먼지와 소음의 기류를 덮어쓰고도 절망감의 정체와 아득바득 싸웠다. 그를 고통의 류황불에서 빠져 나오게 한 구원의 빛이 바로 문학이였다. 김혁은 “나에게서 극심한 고통과 거대한 불화를 해소할수 있는 방편은 오직 문학뿐”이라고말한다. 그의 블로그를 펼치면 메인화면에 “삶 자체는 오류의 련속이고 고통스럽지만 문학은 그 오류를 시정하고 그 고통을 덜어준다. 그 롱담같은 힘을 나는 믿는다”고 씌여있다. 그처럼 고통이 닥쳐오고 오래 될수록 그는 오로지 작품에 매달렸고 작품을 통해 낯선 인물들을 만나 현실에서 이룰수 없는 일들을 대신 이룰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는 다만 림시라도 웬만큼은 행복할수 있었다고한다. 하여 문학, 그 비실제적인 효응에 대한 매혹을 기르며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놓고 탐미해 들었다. 작품의 문학성보다는 환금성이 중요시되는 세월에 하필이면 이 세상 가장 열렬한 문학광으로 김혁은 등장했다. 소설, 시, 수필, 칼럼, 시나리오, 아동문학 등으로 각종 쟝르를 넘들며 끊임없이 수백, 수천편의 작품들을 량산했고 현학적인 표현이 넘치는 왕성한 실험정신으로 현실과 환상사이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자신의 작품세계의 령역을 만들었다. 온몸에 얼룩진 상처와 눈물자국... 그 눈물의 소진끝에 이룩해낸 문학세계, 누가 말했던가? 문학은 상처위에 핀 꽃이라고. 그가 유명한 독서광이고 영화광이라는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신간 잡지와 서적들을 미친 듯이 사 읽고 새로 개봉되는 영화 테잎들을 대량 소장하고는 보고 읽고, 읽고 본다. 그리고 쓴다. 그 피스톤의 작동 같은 따분한 동작이 여태껏 그가 소신을 잃지않고 해 온, 그리고 하고 있는 일상의 전부다. 일년사이에 4,5천원어치, 매달 박봉을 잘라 평균 3,4백원 어치의 책을 사다 읽는다. 사들여서는 허기 끝의 탐식처럼 읽는다. 어려서부터 길러 온 미친 듯한 독서 관습은 골수깊이 체질화되어 있다. 이 시가지에 있는 음향테프점에서 그를 모르는 주인장이 없을 정도로 그는 영화광이다. 개봉영화,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경전영화. 그리고 신예감독들의 끼 넘치는 실험영화 지어 애들이 보는 애니메이션까지 모조리 사들여 보면서 다양한 참조물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가꾸어간다. 어느 음향점의 구석에서 남들이 내쳐둔 흑백의 경전을 찾아내도 그는 그 CD한 장에서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한다. 스스로의 무드를 만들고 그로서 생성되는 엔돌핀에 도취되여 그는 문학이라는 거대한 씻김굿의 휘모리에 신들려 있다. 이 몇년간 문단에서는 그의 열절적이던 모습을 더는 찾아볼수가 없다. 그는 근 6년간이나 세상과 담을 쌓은채 두문불출하고있다. 오로지 창작과 독서만이 그의 일상이요 그의 전부이다. 그 속에 쌓여있는 7천여권의 책과 4천여부의 영화 테잎과 cd가 그의 전부다. 이 인고의 시간에 그는 오로지 창작에만 몰입하여 두부의 장편과 수백편의 칼럼과 명상을 펴냈고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자치주 진달래”문학상, 윤정석아동문학상 등 굵직한 상들을 따냈다. 지금 그는 시끌벅적한 곳을 피해 조용히 은둔하며 자신과의 어려운 싸움을 벌리고 있는것이다.   지금 우리의 문단에서 필요한 덕목이 바로 김혁씨와 같은 이러한 은둔자들의 자세라고 생각된다. 예술적완성도를 위해 공백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유와 끈기, 오랜 시간동안의 잊혀짐을 감수하면서도 단 한편의 작품을 위해 생의 모든것을 거는 장인정신이 요청된다. 최근년간 그는 다시 잠시 떠났던 신문계로 돌아왔다. “중국조선족이라는 공동체는 지금 새로운 격변기의 갈림길에 서있다. 사회발전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나타난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들은 참신한 분석과 연구를 수요한다. 따라서 사실과 진실을 바라보는 랭정과 온유와 절제의 쟝르가 더 절실하게 수요된다. 이런 현실은 다소 떠있고 격정적인 형식인 픽션(虛构)을 보완하는 다큐(紀录)나 논픽션(非虛构)에서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다시 떠났던 신문계로 돌아왔다”고 그는 근일의 행보에 대해 해석한다. 옛 기량을 살리며 맹활약하여 흔들리는 우리 공동체의 동태를 보여주는 신문기사들을 수백편써내고 그 진로를 진맥하는 칼럼 100편 가까이 펴냈다. 한편 이 몇해간 이라는 제명으로 조선족사회의 현황을 다룬 소설작품을 각 문학지에 련작하고 있다. 지금까지 10여편에 이르렀다. 그리고 조선족 력사를 소급하고 그 인물들을 만방에 알리기 위한 일환의 작업으로 항일로간부의 인물전기를 집필해냈고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를 금방 마무리 했다. 올해는 또 룡정 개척 110주년을 위한 장편기행문 집필에 이미 착수했다. 이후의 그의 모든 작품, 모든 쟝르와 문체는 모두 오로지 중국조선족의 운명과 비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질것이라고 한다. “이 작업이 언제 끝날는지 기약할수 없다. 나의 필봉이 멈추지 않는한 우리 민족의 비전을 위한 한 문필가의 고뇌적인 동참작업은 그냥 될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혁의 서재에 커다랗게 걸고있는 편액속의 글은 “녕정지원 (寧靜致遠)”이다. 제갈량(諸葛亮)의 ‘계자서(誡子書)’에 나오는 문구로 전문은 “담백이명지(淡泊以明志) 녕정이치원(宁静以致远)”이다. 담백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먼곳에 이르지 못한다는 뜻으로 깨끗하고 고요함을 유지하면서 또한 마음에 선입견을 두지 않아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먼곳에 이르는 경지의 선비의 옳바른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혁은 이 편액을 걸고 하루에도 몇번씩 바라보면서 진정한 문학인, 선비의 길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진정한 작가라면, 진정한 가(家)라면 이렇게 남의 이목에 띄지 않는 곳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을 저버리고 고절(高絶)하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사람이지 않을가!     "연변문학" 2010년 4월호            
9    문학의 참을 찾아서 댓글:  조회:3567  추천:29  2010-03-19
. 평론 . 문학의 참을 찾아서 ― 김혁의 소설 읽기 장춘식     0. 김혁, 누구인가? 1965 년 9월 9일 룡정 출생. 다섯살때 우리 글을 깨쳐 여섯살 소학교에 입학할 때에는 장편서사시를 줄줄 외우며 선생님들을 놀래운 천재의 소년. 그런 그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가? 그런데 그때문에 조금 탈선했다고 강제퇴학을 당하지만 퇴학을 당한 두달후엔가 그의 작문이 콩클에 입선하여 상패와 상금으로 라지오를 받게 된다. 선생님들도 소년의 능력을 인정하여 재등교통지를 냈으나 김혁은 고리끼처럼 사회대학을 다닌다고 룡정과수농장의 주물공장 주물공으로 취직을 해버린다. 이때 그의 나이 17세였다. 그 이듬해에 연길시교의 닭을 깨우는 부란공장에 부란공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다음해에는 소설로 문단에 등단을 하며 또 그 다음해에는 고2 중퇴 학력으로 신문사기자에 등용된다. 그후 김혁은 중단편소설 70여편, 장편소설 2편, 시, 수필 300여편을 발표하며 20여차에 걸쳐 문학상을 수상한다. 우리 문단의 중견으로 당당히 자리를 굳힌것이다. 《금방 사회인으로 들어선 19세의 소년으로서는 파란만장하고 화려하다 할만한 경력이였다. 바로 이러한 경력과 이제 쌓아가야 할 경력이 그의 소설의 심층구조를 이루고있음은 당연한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그의 경력이 문학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부터 비롯된 김혁의 문학은 과연 어떤 문학일가? 1. 순수에의 집착 소설은 자아와 세계가 상호우위에 립각한 대결을 벌이는것을 기본특징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러한 대결은 서사적으로 갈등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갈등은 이야기의 기본적인 모습이기때문이다. 김혁의 다수 소설들, 특히 작가 개인의 경험적요소가 많이 드러나는 작품에서는 기본적인 대결이 순수의 상징 혹은 지향이나 정신적인 삶의 원칙 대 세속적인 삶 혹은 물질적인 욕구 사이에서 벌어진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진선미(^善美) 대 위악추(伪恶醜)의 대결이라 할수 있을것인데 이들 대결의 그룹들은 그러나 진, 차진(次차차진…차차위, 차위, 위… 식으로 차원이 다양하여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 그러한 양상속에서 소설의 다양한 의미망이 이루어지는것이다. 정보의 다양성과 립체적묘사라는 시각에서 이는 김혁 소설의 장점이 된다고 할수 있다. 먼저 중편소설 《적(笛)》(도라지, 1994년 5호)의 경우 이러한 진선미와 위악추의 대결은 적(笛) 즉 피리로 대표되는 예술의 세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작품은 김혁이 문단에 등단하여 거의 십년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만큼 성숙기에 이루어진 작품임을 알수 있다. 여기서 대결의 초점은 예술에의 몰입과 세속적인 욕구 사이의 갈등에 맞추어져있다. 엑스타시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예술에 몰입한다. 김성호의 표현을 빌리면 《예술의 엑스타시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악사 피리로 령험을 찾아 무아의 경지에 거의 이르다가 대자연속에 그채로 굳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기본적인 줄거리다. 단 여기서 《대자연속에 그채로 굳어버렸다》는 표현은 약간의 어페가 있는것 같다. 왕의 부름을 거역하는 수단으로 왼손의 손가락을 돌로 짓이갠다는것은 피리 부는 예술가로서는 파멸이라 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른손으로 스승이 못다한 《악론》을 완성시키겠다는 결구부분의 의미로 보아서는 음악가로서의 파멸이라 보기는 어렵기때문이다. 작품에서 스승의 존재는 음악으로 대표되는 순수의 상징물이다. 세 친구의 음악적재질을 발견하고 가르치면서 음악의 최고경지라 할수 있는 《악론(乐論)》을 편찬한다는 표현은 결국 어떤 상징적인 모티프를 만들기 위한 장치라 할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상징된 순수, 즉 음악을 둘러싸고 세 제자들이 변화의 과정을 연출한다. 먼저 셋째가 순수를 포기한다. 하루동안 피리를 불며 음악에서의 퇴출을 위한 통과의례를 거쳐 현령이 되여 권력과 공명을 추구하며 이어 맏이도 같은 통과의례를 마치고 음악의 세계에서 퇴출하여 푸주간의 백정이라는 생계형의 삶을 선택한다. 이들 두 제자의 항복은 결국 세속적삶에의 귀의가 될것이다. 그만큼 순수를 지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겠다. 이것이 대결의 제1단계가 된다. 제2단계의 대결은 끝까지 순수, 예술의 경지를 고집하는 주인공 악사 즉 둘째제자의 신변 혹은 의식 내부에서 벌어진다. 먼저 자식이 우물에 빠져 죽고 이어 안해가 소금장수를 따라 도주하며 나중에는 애인인 《춘향루》의 녀인마저 자살하고만다. 주인공의 의지를 동요시킬만한 주변의 상황들이다. 비록 약간의 심적인 동요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결국 다 극복해낸다. 그리고 이즈음에서 악사의 예술적추구는 세상사람들에게 인정될듯한 상황이 벌어진다. 임금이 악사를 궁중에 불러들이는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다. 임금이 궁녀와의 섹스때 피리소리를 즐기기때문에 악사를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것이다. 이때에야 악사는 순수와 세속적인 삶은 통하지 않으며 심지어 타협마저 불가능함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순수를 선택한다. 자신의 손가락을 돌로 까서 궁중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남은 오른손으로 스승이 못다 쓴 《악론》을 완성시키고자 하는것이다. 작가가 인식하고있는 예술정신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섹스마저 음악의 경지와 률동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표현력은 작품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고있다. 중편소설 《바람과 은장도》나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 《꽃뱀》 등 작품도 작품의 구조나 주인공의 성격들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대결구조는 비슷하다. 한결같이 순수와 세속적삶의 대결로 이루어진것이다. 《바람과 은장도》에서는 장현수라는 인물이 춤으로 대표되는 순수에 집착한다. 무용선생 차수경에 대한 짝사랑은 그의 순수에의 집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그 순수의 상징이라 생각했던 차수경이 예술을 배반한다. 따라서 차수경을 칼로 찌르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될지도 모른다. 세속적인 삶에서는 범죄가 되지만 순수에의 지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고상한 행위라 볼수도 있기때문이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은 순수에의 지향성을 포기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이올린에 천부를 지닌 방황은 사랑과 물욕이라는 세속적인 삶의 욕구에 항복하며 결국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했던 술공장이 망하고 사랑의 욕구를 만족하고자 했던 기녀에게서 성욕외의 만족을 얻어내지 못하며 다시 자연의 유혹 즉 바다의 유혹에 빠짐으로써 음악의 신성함을 되찾으려 하나 그것마저도 실패하여 죽은 인어가 되여버린다. 비록 자아와 세계의 대결에서 자아가 패하는 셈이지만 작가의 지향성은 여전히 순수에 맞춰져있다. 《꽃뱀》 역시 비슷한 경우이다. 현식과 현우라는 쌍둥이 형제는 순수와 세속이라는 두 상징성을 지닌다. 윤주라는 녀성이 먼저 현식을, 그리고 나중에는 현우를 사랑하게 된다는것은 세속에 의한 순수의 유린을 의미하겠고 현식의 파멸은 순수의 파멸을 시사한다고 할수 있다. 그러니까 《적》에서 《바람과 은장도》,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 《꽃뱀》에 이르기까지 비록 더러 순수가 파국을 맞기도 하지만 작가의 지향성에서는 항상 순수를 우위에 놓고있는 셈이다. 다만 작가는 순수가 유린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가끔은 망설이고있기도 한다. 그만큼 작가의 고민과 현실인식이 절실하다는 말이 될것이다.   2. 새것에의 끊임없는 도전 김혁은 항상 고민하는 작가이며 동시에 항상 새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작가이다. 소설, 시, 수필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고 좀더 많은 정력을 쏟았다고 할수 있는 소설분야에서도 력사소설, 판타지소설, 황당소설, 초현실주의소설 등 여러 장르와 기법들을 두루 섭력한다. 중편소설 《천재죽이기》(도라지, 1995년 5호)는 그러한 김혁의 실험정신이 잘 표현된 작품이라 하겠다. 이 작품에 대해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나 규범의 파괴를 들어 이른바 쉐르알리즘 즉 초현실주의 소설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나 규범을 파괴하였다면(그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해체미학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보는것이 옳다. 이 작품이 초현실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으로 볼수 있는 리유는 환몽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주인공의 의식과 그런 주인공의 의식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태연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의식때문이 아닐가 한다. 초현실주의대가로 알려진 리상의 시와 소설작품들을 군데군데 인용함으로써, 또한 장절의 번호를 거꾸로 달았다든지 주인공의 이름을 엉뚱하게도 남성이라는 의미의 영어 man으로 하였다든지 하는 파격적인 구성 등은 그러한 환몽과 현실의 간격을 허물어버리는 역할을 하며 따라서 작품의 초현실적인 느낌을 강화시켰다고 볼수가 있다. 초현실주의는 경험의 의식적령역과 무의식적령역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수단이기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절대적실재, 즉 초현실속에서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일상적인 리성의 세계와 簫蘭??있다고 보는것이다. 《사업에서는 빼여난데 대인관계나 사교술에서는 풋바지저고리로 정평이 나있》는 어느 회사 직원인 man. 그는 백과사전을 페이지, 줄까지 통채로 기억하는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로 천재라는 말로 불릴만한 존재이다. 그런 그가 회사에서는 돌리우고 마누라에게는 눌리고 사회적으로는 외면당한다. 겨우 티브이 오락프로에 나와 시청자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심심풀이로 리용되다가 결국 버려지는것이다. 여기서 대결의 주체는 정의이다. 앞에서 지적한 순수의 다른 형태가 될것이다. 그리고 보는바와 같이 대결의 결과는 주체의 파멸로 잠정 결론이 난다.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병든 우리 사회의 세태를 비판한 셈이다. 여기에는 사회 격변의 시대 가치오류 혹은 가치상실로 인한 허무주의적인 인식도 내재되여있다. 그런 허무주의는 천재가 가장 필요한 지식산업시대에 천재를 죽이는 사회의 아이러니를 그려낸데서도 알수 있지만 리상이라고 하는 20세기 중반 허무주의시인의 시작품들을 간간히 인용함으로써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즉 초현실주의기법의 도입에는 허무주의적인 인식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단 작품에서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man에 대한 청소부아줌마의 관심에서는 작가의 긍정적인 인식이 엿보이기도 한다. 주류사회의 외면에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기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우선 순수 대 세속의 대결이라는 김혁 소설의 구조를 업데이트시키면서 외연 확대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찾을수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 눈에 띄이는것은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실험정신이다. 김혁이 추구하고있는 새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초현실주의라는 기법적인 시도에 이르러 괄목할만한 효과를 획득하고있는것이다. 은근히 드러나는 허무주의는 자제해야 하겠지만 서사적인 긴장감의 지속적인 유지와 동일 분량에 보다 많은 정보를 수용하면서 립체적이고 다각적인 주제의 표현에 성공했다는 점은 긍정해야 할바이다. 이것을 나는 항상 문학의 참(에 접근하고자 하는 김혁의 작가정신으로 보고싶다. 돌이켜보면 김혁의 문학행위는 그러한 문학의 참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에 다름아닌것이다. 3. 자기를 넘으라 중편소설 《불의 제전》은 우리 문단에서는 흔히 볼수 없는 판타지기법을 도입하고있다. 의사결정(투석처리)이나 범죄자 처벌의 방법(刺目刑, 《불기와 지짐》등), 불에 관련된 사실과 금기들, 불을 먹는 개 불독, 그리고 작품에 자주 나오는 화당(火塘), 화택(火宅), 남하족(南河族), 북산족(北山族), 곡성(哭城), 족장(族長) 등의 낱말들은 조건적인 설정이면서 동시에 일부는 고대 부족사회에서만이 존재했던 개념들이다. 판타지이면서 다분히 신화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설정이라 하겠다. 구태여 명칭을 붙인다면 판타지력사소설이라 부를수 있지 않을가 한다. 끊임없이 새것에 도전하며 문학의 참(에 다가가려는 또 다른 노력의 소산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대결구조에서는 다시 《적(笛)》의 그것에 돌아간다. 다만 이번에는 명(스승)과 진(제자) 즉 《적(笛)》에서의 스승과 제자가 대결의 공동주체가 되고 족장과 장로들이 대결의 객체가 되여 얼마간의 변화를 보이고있다 하겠다. 그러나 춤 즉 예술을 중심으로 대결이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부터 이웃부락 산북마을의 춤사위를 배우기 위해 담을 넘어갔다가 잡혀 척목형을 당하는 명, 무용경색에서 돈에 의한 부정심사때문에 우승을 빼앗기는 진과 같은 시각에 일어난 어머니의 죽음, 교, 염 등 화신무용단 무용수들의 리탈, 애인 유의 처형과 죽음 등 여러가지 시련들은 결국 순수와 세속의 대결로 이루어진것이다. 모든 고통과 분노를 이겨내고 불과 한몸이 되는, 그래서 인간에게 불을 주는 경지, 그것을 김혁은 예술의 극치라고 보는듯하다. 순수와 세속의 대결을 통한 순수에의 지향, 그것은 당연히 가치있는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여러 작품을 통해 하나의 지향을 반복 풀어나간다는것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문제의식을 제한 혹은 구속할 우려가 있다. 이 작품에서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낯설게 하기의 시도가 엿보이고 또 내용적으로도 곡성(哭城)을 사이에 둔, 원래는 같은 부족이였다가 력사적원인으로 분단된 두 부락의 관계설정, 부락민간의 교류와 비밀래왕에 반해 두 부락 통치자들의 정치적인 갈등 같은것을 통해 조선민족의 분단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것 등 작품의 의미확장을 위한 시도들이 보이지만 문제의식은 순수에의 지향, 그리고 그것을 파괴하며 소외시키는 현대사회 가치의식의 타락에 대한 비판에 한정되여있다. 작가 김혁으로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다른 작품들을 더 들 경우 김혁 소설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한정된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주제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또 다른 문제의식의 발견과 제시에 영향을 주게 되며 결국 사상의 페쇄를 야기시킬수도 있다. 비록 이 같은 주제의식의 집착이 작가 자신의 경력과 경험의 문제에서 비롯된것이라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좀더 개방적인 시각으로 주제발굴을 시도해야 하지 않을가 한다. 그래서 나는 김혁에게 자기를 넘으라는 충고를 주고싶기도 하다. 우리 문단의 중견이 되여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소설가로서 사회와 민족과 력사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응분의 역할을 해야 할것이다. 장춘식(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   연변문학 2006년 8월호          
8    인간화합의 무한한 가능성 댓글:  조회:2925  추천:24  2010-03-02
    인간화합의 무한한 가능성 - 김혁의 단편소설 "해가 서쪽에 뜬다면" 리혜선   제2회 윤정석아동문학상 산문부분 후보작에는 아동소설 "까마귀야 까마귀…", "진달래꽃이 피였습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두만강의 아들", "운무의 저쪽", "대결", 동화 "팔자수염대통령과 맺은 계약", 수필 "봄은 어디에서 올가요?", "솔고개"가 올랐다. 상기 아동소설들은 주제 및 형식면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고 일부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지만 또한 나름대로 한계점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 입선에서 탈락했으며 최종심사결과 김혁소설가의 아동소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 당선되였다. 아동과학환상소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한 가족이 “그린 별”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고뇌를 안고 가족 화합을 시도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스토리로 한 소설로서 착상이 특이하고 상상이 기발하다. 용이의 엄마와 아빠는 리혼을 하고 석달에 한번 꼴로 용이를 만난다. 용이의 엄마와 아버지는 서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몰라도"라는 말로 결별을 선언하였던것이다. 용이는 학교에서 있은 우주웅변행사에서 ““그린 별””관광 가족티켓을 상으로 타자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그린 별””로 엄마와 아버지의 관광을 유도한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 순간 용이는 서쪽에서 뜨는 해를 마주한 아빠와 엄마에게 가족의 화합을 간절히 호소한다. 완정한 가정에 대한 용이의 간절한 소망과 굳은 의지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가정에 대한 책임을 다시한번 되새겨보게 한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아이의 순진한 마음으로 인간의 화합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주고있다. 작품은 과학환상적인 수법과 초현실적인 수법이 혼합되여 독자들로 하여금 “그린 별”이라는 특이한 공간에서 가족의 화합을 위한 용이의 고심에 진실로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부차적인 인물로 부모를 리별한 “그린 별”의 리산가족인 그린3세의 고통을 그려내서 더욱 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작품은 “그린 별”이라는 이 특수한 공간에 대한 과학적인 자료들을 잘 활용했기때문에 묘사와 서술이 자연스럽고 대담해서 인류에게는 생소한 별나라와 별나라 외계인들이 독자들에게로 생생하게 다가오게 한다. 일부 허점이 보이고있다. 작자는 “그린 별”이란 이 특수한 환경의 신빙도를 강화하는데 신경을 쓰다보니 일부 중요한 부분을 놓친 느낌이 든다. 례를 들면 용이가 안고있는 개인적인 고통과 부모를 리별한 그린3세의 고통에 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며 아버지와 엄마로 엇바뀌는 공간의 변화를 독자들의 시선에 보다 합리하게 펼쳐주지 못한 점 등이다.   리혜선 (소설가)  
7    김혁의 판타지소설 "불의 제전" 댓글:  조회:2862  추천:66  2010-01-12
  판타지의 매력 김혁의 판타지소설 "불의 제전"  김 호 웅   김혁의 《불의 제전》은 판타지(fantagy) 소설이라 이를 순문학으로 볼수 있는지 쟁론할 여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상상이 빈약하고 언어가 거칠고 메마른 오늘의 문단사정을 념두에 둘 때 현실에 안주할줄 모르는 김혁씨의 대담한 실험정신과 이 소설에서 보여준 풍부한 상상력, 미끈하고 윤택한 언어구사력 및 우리 민족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특별히 주목된다.  《불의 제전》을 보면 적봉(赤峰)을 성산으로 우러르는 남하족(南河族)과 산북족(山北族)이 곡성(哭城)이라는 담을 사이 두고 은연중 갈등과 마찰을 빚어내고있는데 이를 배경으로 남하족의 진(眞)이라는 화동(火童)의 눈물겨운 성장사와 그의 비장한 운명을 다루고있다. 불을 무서워하던 진이 화신무(火神舞)에 열광하게 되고 산북족의 유(柔)라는 처녀애와 열연에 빠지기도 하며 월경(越境)하여 산북의 불씨를 가져다가 가가호호에 나누어주는 등 여러 가지 남하족의 금기(禁忌)를 어긴 죄로 두 눈을 잃게 되지만 불과 회신무에 대한 집념은 버릴수가 없다. 나중에 진은 미친듯이 춤을 추고 북을 두드리면서 터져오르는 적봉의 용암속으로, 불속으로 걸어 들어가 열반(涅槃)한다. 이 소설은 우선 불을 매개(媒介)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있다. 상고시대 북방의 여러 부족과 삼한의 여러 나라가 봄, 가을에 있었던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음주(飮酒), 가무(歌舞)한 국가대회》도 불을 둘러싼 군중의 광희(狂喜)로 이어진 제의(祭儀)였다. 그리고 불은 우리민족의 경우 신화에서는 왕권, 영웅탄생, 정화(淨化) 등을 의미하고 우리 무속이나민속에서는 열정, 정화를 의미했으며 우리 풍습에서는 생명력과 복(福), 벽사(辟邪)를 의미하고 유교에서는 개화(改火), 불교에서는 자기 멸각(滅却)을 통한 승화를 의미하였으며 력사와 문학에서는 위기와 정열을 의미했다.  《불의 제전》에서는 불의 다양한 상징적의미를 유감없이 보여주고있는데 그 중에서도 어지러운 세상을 정화하고 멸각을 통한 승화의 의미에 포인트를 주고있다. 화신무에 열광하고 불속에서 열반하는 주인공 진의 형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것은 예술에 대한 집착, 열정적인 사랑, 만민을 위한 헌신성, 스승에대한 존경과 같은것들이다. 이러한 덕목들은 무지막지한 족장(族長)과 리해타산에 밝은 동료인 교(狡)와의 대비를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러한 환상적인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암시하는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민족이 국토의 분단을 극복하고 대동세계를 이루는 길은 우리민족 전체가 불의 세례를 받아 스스로를 정화하거나 재생해야 함을 암시하고있다.  이 소설은 작자의 해박한 지식, 환상적인 플롯, 장려한 언어구사와 깊이 있는 주제의 발굴로 말미암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김호웅 (연변대학 교수)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6    괴재(怪才) 이재(異才) 기재(奇才) 댓글:  조회:3555  추천:40  2010-01-06
  . 평론 .   괴재(怪才) 이재(異才) 기재(奇才) - 김혁과 그의 문학 김룡운   김혁 그는 누구인가?   김혁은 문학에 대한 끈질긴 투혼(投魂)으로 이미 중국조선족문단에서 모두가 공인하는 중견작가로서의 작가적 위상을 튼튼히 굳혔다. 그는 우선 다산작가로서 우리 문단에서 글을 가장 많이 발표한 사람중의 하나다. 19세에 처녀작 "피그미의 후손들"을 들고 문단에 데뷔한 이래 천부적인 기량으로 지금까지 "적", "천재 죽이기", "조모의 전설" "타인의 시간" 등 중편소설 40여 편과 "겨울유흥장", "어떤 개의 순애보", "마담의 전성시대" 등 단편소설 30여 편과 300여수의 시 그리고 200여 편의 수필, 칼럼을 세상에 내 놓았다. 게다가 중편소설집 "천재 죽이기", 르포집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등 단행본들을 합치면 그 량은 엄청나다. 30대 작가로서 이만큼 한 량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2003년에는 한해만도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2부를 발표 한외에 중편4편과 단편 2편을 발표했다. 한해에 이런 엄청난 수확을 거둔 것은 우리 문단에서 전례 없던 일이다. 그는 다산 작가일 뿐더러 다 쟝르 작가이기도 하다. 소설을 주로 하면서 시 수필 칼럼 아동문학 등 각 령역에도 족적을 남기며 골고루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1여년의 기자 생활중에서 1000여편에 달하는 기사도 발표했다. 창작기법의 창신에서도 언제나 맨 앞장에서 달려 쉐르알리즘 소설도 썼고 황당파 소설도 썼고 환상적 리얼리즘소설도 썼고 력사소설도 썼고 과학환상 소설도 썼고 추리소설도 썼다. 풍성한 창작은 찬란한 계관들을 안아 왔는바 해란강 수필문학상 아리랑 시문학상 장백산 시문학상 도라지 소설문학상 흑룡강신문 실화상 흑룡강출판사 동심컴 아동문학상. 라지오문학상, 연변작가협회문학상 한민족청년상 문단의 주요 상들을 거의 모조리 휩쓸이 하기도 했다. 김혁은 이미 문단이 주목할만한 탑을 쌓아 왔다. 그 탑의 진모를 살펴보는 것은 본인의 금후의 창작은 물론이려니와 우리 문단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결코 무의미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김혁은 창작에서는 누구보다 집요하고 창작욕구는 누구보다 강렬하고 창작에너지는 누구보다 풍부하다. 그의 가슴에는 이 세상에 대해 할말이 너무나 많다. 그것들은 뜨거운 암장으로 작가의 가슴속에서 굼실이다가 종당에는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변모하여 뿜겨져 나온다. 그 들끓어 번지는 암장은 어떻게 생기는 것 일가? 암장이 이루는 엘리멘트(요소) 내지 모체는 어디에 있는 것 일가 ?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그의 인생프로필에서 찾는다. 지금까지 밟아온 그의 삶의 그라프는 한마디로 아픔이요 상처다. 불운한 출생과 학구적인 대학을 나오지 못한 음영에 짓눌려 남보다 큰 성적가리를 쌓아올렸음에도 소외된 삶을 내내 살아 온 사람.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재와 인간의 가치는 하나의 커다란 물음표였다. 그는 존재에 대한 확인과 가치에 대한 확인 그리고 그로부터 자아실현을 완성하고저 글 속에 파묻혀 인생을 탐구하고 문학을 탐구한다. 그 와중에 그가 벗으로 사귄 것이 삶과 문학의 우상이였던 리상(李箱)이였고 번뇌와 고통을 힘과 용기와 신심으로 변화 시켜주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였다. 상처와 아픔은 김혁 문학의 뿌리다. 누군가는 상처는 무궁한 문학적 자산이라고 하였다. 삶의 길우에는 복병(伏兵)같은 상처의 돌부리가 무수히 있어 우리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린다. 우리는 그 덫을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풍경을 상처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혁은 자기의 인생 궤적우에 무수히 쓰러져 잇는 고통스런 시간의 쪼각들을 보면서 그 부서진 시간마다에 정성들이여 묘비를 세우고 묘비마다에 자기 나름대로의 비문을 써넣고 있다. 그 비문에서 이 구슬프고 고매한 가락을 뽑고 가 붉은 피를 토하고 가 네온사인이 드리운 거리를 방황하고 이 한 마리의 인어로 변하여 망망한 인간세상에서 헤염치고 이 오욕의 껍질을 벗고 승천하고, 불협화음에 질식하여 의 비극이 펼쳐진다. 그러나 김혁은 결코 주어진 삶 앞에 꿇어앉지는 앉는다. 그는 가치의 혼돈에 방황하고 도전하고 대전하고 잇으며 그 와중에 진정한 생명가치를 찾고 참다운 인성의 탑을 세우려 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인식은 리얼리즘문학만으로는 체현할수 없는바 그의 문학은 포스터모더니즘 내지 쉐르알리즘 쪽으로 경로 하게 된다. 포스터모더니즘의 리론가 모르스 페캄은 에서 이라고 말하며 고 주장한다. 모르스 페캄의 이 말은 김혁의 작품을 리해 하는 고리가 된다. 혼돈과 질서를 바로잡는데 엤어서 파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파괴가 거대한 파워를 발산하고 일반에게 잘 리해되지 않을 때 괴재(怪才), 이재(異才) 라는 말을 듣게 되며 그 파괴가 문학 예술적으로 승화했을 때 기재(奇才)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한편 또 해당시대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문학예술에서의 괴재 이재 기재란 해당시대의 사유와는 벗어나가면서 엉뚱한 사유로 엉뚱한 작품을 쓰는 사람이라 하겠다. 조선문학사에 나오는 김시습과 허균, 김립이 그렇지 않았던가. 중국문학사에서는 또 리백이 그렇지 않았던가. 오늘 이 짧은 글에서 김혁의 모든 작품들에 대해 일일이 살펴볼 수는 없는바 몇편의 대표작들을 골라 례문에 올려 보기로 한다. 여기에는 사뮬레이션(모의실험)이라고 볼 수있는 , , , , , , 등이 속한다.   새로운 창작기법의 부단한 추구   1,력사 소설- “적”(도라지 94년 5호)은 력사제재로 현실제재를 체현하고 있다는데서 기법 상에서 새로우며 력사이야기로 오늘의 구겨진 삶을 매질하고 있다는데서 현실적 의의를 가진다. 금전과 권력의 소외를 받아 온 작자의 작품에는 누구보다도 금전욕과 권세욕에 대한 비판이 짙게 깔려 있다. “적”은 시종 아련하고 연연한 언어외피로 먼 력사이야기를 기술하다가 급기야는 하나의 고결한 인덕의 인간을 우뚝 세워놓고 오늘의 비뚤어진 삶에 강타를 안긴다. 금전만능과 권세지상이라는 거창한 괴물이 소설 앞에서는 한 낱 하잘것없는 존재로 무릎을 꿇고 만다. “적”에서 작자는 옛 악공(樂工)의 예술에 대한 구도(求道)의 길을 펼쳐 보이는 작업을 통해 현실 속의 금전과 권세와 명예를 위해서는 추구도 버리고 그 어떤 비렬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구질구질한 인간들과 그들을 배태 한 세태에 대해 성찰, 질타하고 있다.   2,황당파 소설- 표현주의에 뿌리를 둔 황당파는 그 력사가 거의 80년이 됨으로 황당파소설이란 개념이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세상과 늦게 대화를 나눈 중국조선족문단으로 볼때는 낯선 개념이 아닐수 없다. 김혁은 90년대 중기에 “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도라지 95년 4호)을 내놓아 우리의 소설문학에 신선한 활력소를 주입해 주었다. 카프카에 의해 고봉에 이른 황당파소설의 특징은 인간의 의화와 소인물의 고통, 공포의 정서를 다루며 황당한 정절과 진실한 세절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에 굳이 황당파소설이라고 이름 붙힐 수 있는 것은 위에서 말한 이러한 특징을 너무나 잘 체현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인공 방황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전도유망한 음악의 길을 걷다가 황금전이라는 녀자의 재부에 환혹되여 예술의 길을 떠나 속세의 길을 걷게 된다. 세상을 음악의 곡조처럼 아름답게만 보아왔던 주인공에게 있어서 갑작스레 들이닥친 상품경제시대는 물욕 명예욕 도전과 암투로 득실이는 가혹한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극도로 절망하고 방황하던 끝에 마침내 바다를 영원한 안식처로 정하고 몸을 던져 한 마리의 인어로 변한다. 작중인물들의 이름은 모두가 뚜렷한 상징성을 띄고 있다. 방황하는 예술가와 금전만능의 대표인물과 사회의 병페를 보아내는 대변인으로 나선 사색 깊은 기자를 방황(彷徨), 황금전(黃金錢), 철인(哲人) 등 이름으로 상징화 했다. 이야기는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황당한 이야기 속에 물질만능시대에서 생성된 갖가지 의식형태에 대한 고찰과 분석이 엄숙하게 깔려 있다.   3,초현실주의 소설- “천재죽이기”(도라지 95년 5호)는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문 쉐르알리즘소설이며 김혁의 대표작의 하나이다. 소설에는 리상의 소설과 시가 여러 곳에서 얼굴을 내민다. 김혁은 리상을 문학에서의 우상으로 모신다. 리상은 전통문학에 대한 요 요 이다. 그처럼 김혁도 소설에서 우선 파괴와 반역을 앞세운다. 이 작품에서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 난다. 소설 소제목달기에서 처음으로 9자로부터 거꾸로 마지막 -1에 까지 이른다. 정상적 법규를 파괴함으로써 첫 시작부터 자기 소설이 쉐르알리즘 소설임을 선포한다. 후기 구조주의 대가 츠베탕 토도로프는 구조주의적 연구의 자기 파괴적 특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기서 김혁은 토도로프와 포옹한다. 주인공의 이름도 이왕과는 달리 영어로 되어있다. 남자라는 man. 필자의 독단인지 몰라도 주인공 man에 대하여 지식과 덕성으로서 골똑 찬 으로서의 인간이 아닐가고 생각해 본다. 이는 아이니 컬하게 붙인 이름일 것이다. 소설은 환몽과 현실사이를 넘나드는 정절로 한 공무원이 겪고있는 불행한 삶을 남다르게 보여 준다. 사업에서도 실력가, 지식소유에서도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천재. 그러한 인간이 회사의 버림을 받고 녀편네의 버림을 받고 사회의 버림을 받는다. 천재로서의 응분의 대우를 받을 대신 모든 것을 다 잃고 이 시대 순결무구한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을 작품은 무게있게 뼈아프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러면 김혁은 쉐르알리즘 소설을 쓰고싶어 썼을가? 아니다. 천재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천재를 살리기 위하여 이 작품을 썻던 것이다. 를 읽은 사람들은 작품에는 작자의 자화상 성분이 다분히 들어있지 않았나 느껴본다. 이 소설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고 이 소설에서 김혁이 가장 빼여지게 완성하고있는 것은 정신적 가치에 가해오는 물질적 가치의 횡포를 질식과 단절을 상징하는 으로 예술적처리를 한데 있다. 작품을 읽은 이들이라며 누구나 하는 리상의 시구가 나오는 장절에서 주인공이 장면에서 숨막히는 무가내를 느꼈을 것이다. 주인공은 세상의 몰리해 속에서 천재로부터 정신질환자로 추락해 간다. 작자는 인간가치의 훼멸을 붓끝에 꿰 달고 세상에 흔들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비관적인 호소가 아니다. 비극을 통해 비극을 극복하고 지식본위시대를 찾으려는 적극적인 삶의 제스처가 작품의 맥락 속에 보인다. 초현실주의에서 현실의 맛을 진하게 씹어보는 멋, 이것 역시 그만의 독특한 심미향연이 아닐가!   4,사이버 소설- “병독”은 우리문단에서 맨 처음으로 선을 보인 사이버소설이다. 언제나 새것에 민감한 김혁은 을 들고나와 사회의 을 없애려 시도한다. 은 불확실성, 몬따쥬수법,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불명확한 경계, 놀이성, 무작위성, 탈경전(脫經典) 등에서 추구를 보였기에 포스터모더니즘 계렬에 놓고 살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시종 꾀한 것은 사이버문학의 특징으로 되고있는 놀이성이고 무작위성이다. 그리고 몬따쥬수법이다. 하나 하나의 장면이 몬따쥬이며 놀이이며 작위가 없는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이 바이러스에 걸려 추락한다. 작품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채팅 하면서 남긴 아이디고 되어있다. 애인 격이던 , 마음으로 추구하던 , 청매죽마 , 딱친구 이들은 모두 주인공 의 곁을 떠나버린다. 돈 많은 남자와 붙어먹고 남의 컴을 어거지로 가져가고 일본남자에게 시집간다. 지어 애인의 애완견조차 죽어 버린다. 한마디로 떠오르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허무 속으로 추락해 버린다. 이들의 추락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병독은 표면으로는 컴퓨터에 있는 것 같으나 실질 상에서는 작품중의 매 인간의 머리에 잠복해 있다고 짚어 낸다. 신 세대들의 무작위한 놀이를 통해 기성세대들의 부박한 엄숙주의, 기성세대들이 세운 기존질서를 충격하고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배격과 풍자는 기성세대는 병들어 있다. 그 병은 배고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배픔은 식욕, 성욕, 물욕으로부터 오는 욕구불만일뿐더러 주요하게는 에서 비롯된 것이다. 은 신세대들의 질서없고 자유자재적인 생활상, 그 놀이성 속에 큰 상징적 의미를 띄고 있다. 작자는 사이버소설의 특징을 능란하게 살려 작품사이에 류행가요를 끼워 이야기의 맥락을 이어나가는가 하면 소제목 짜기에서도 컴퓨터 키보드의 모든 영어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에서 간과할수 없는 것은 신세대들만의 조야한 언어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언어관습으로만 볼 것 아니라 비뚤어진 기성질서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스트레스의 해소와 반발의 표현을 위한 재치 있는 구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사이버제재 소설에 무감각하다 할 수 있는 우리 문단에서 맨 처음 나온 사이버제재소설로서 은 이례적인 매력을 뿜고 있다.   5,공포 소설- 새로운 추구에서 지칠줄 모르는 김혁은 이번에는 또 조선족문단에서 맨 처음으로 되는 공포설 “산장” (도라지 2003년 1호)을 내놓았다. 공포계렬소설의 제1탄인 소설에 대한 창작담에서 김혁은 “우화적인 이야기를 공포라는 액자속에 담는 이러한 작업들에서 단 개인취미에서 발설된 렵기위주의 흥감질이 아니라 산업화에 동조한 피페해진 우리의 농촌풍경. 리흔붐이 사회에 끼치는 심각성, 문화대혁명이 남긴 원자병 같은 후유증, 경쟁사회에 일그러진 고단한 자아와의 만남, 불신 시대의 너나의 일그러진 심태 등 심각한 주제의 숨은 메시지를 작품의 분위기에 아우르는 군형적인 감각으로 도출해내 자칫하면 싸구려로 읽혀질 작품에 깊이 있는 울림을 부여하고자 한다.”고 피력했다. 소설가란 이야기 군이다. 이야기를 통해 비희고락을 발설하는 인간이다. 그 이야기가 구수하면 진짜 이야기 군이고 미미하면 엉터리라고 힐난을 받는다. 필자는 “산장을” 읽으며 김혁은 진짜 이야기 군이라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공포에 대한 탐구는 필요 적실하다. 사실 인간은 공포 속에서 사는 동물에 다름이 아니다. 공포 속에서 인간은 본질적 내함을 파헤치고 그로부터 현실 삶의 무게를 가늠해 보려는 작자의 의도는 기발하고 좋은 것이다. 그 시도가 창작개성이 무마되고 있는 우리 문학에 새로운 충격과 신선도를 알게 모르게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필자는 작품의 작은 허점을 아량하며 작품과 악수하고 싶다.   6, 대화체 소설- 마냥 열광적으로 생신 한 제재를 새로운 그릇에 담으려 꿈꾸기에 김혁의 작품에는 맨 처음이란 말이 많이 붙는다. 맨 처음으로 사이버소설을 썼는가 하면 맨 처음으로 공포소설을 썼고 이번에는 맨 처음으로 대화체 소설을 썼다. 중편소설 “화두”(장백산 2003년 3호)로 새로운 창작의 화두를 던졌다. 김혁은 담이 크다. 언감생심 서술이라고는 없이 순 말로만 된 대화소설을 썼다. 장난인가? 결코 아니다. 그는 문체의 이러한 창신을 통해 우리의 현실에 대한 우환의식이 담긴 대화를 끊임없이 펼친다. 그리고 그 대화 밖에서 각 인물 저 저마다가 겪는 각 류형의 이야기들을 만난다. 작품에서 김혁은 포스터모더니스가 아니라 알짜배기 리얼리스트로 주제를 밀어 나간다. 하지만 기법의 생신함은 작품 전체에 시종 관통된다. 기법의 생신함으로 무거운 주제를 깊이있게 갈파한 것이다.    상술한 작품 외에도 생태환경에 대해 환기시킨 “라이프 스페이스” , 의인화적 색채를 보인 “어떤 개의 순애보”, 시나리오 특성을 채용한 “원죄”, 추리기법으로 이채를 보인 “요청”등등으로 좋은 작품들이 많으나 이미 임범송교수 전국권교수 윤윤진교수 김병활교수 등 분들이 세세한 평론을 가했음으로 이 작품들에 대한 평은 본문에 넣지 않았다. 김룡운 (평론가, "문학과 예술"지 편집)                  
5    심금을 울리는 한편의 생명비가 댓글:  조회:3348  추천:33  2009-12-10
                                  심금을 울리는 한편의 생명비가                       - 김혁의 장편소설《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를 론함 최삼룡      김혁씨의 장편소설《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는 우선 전형적인 비애소설이다.  요즘 문학계에서는 그리 강조하지 않지만  소설학에는 오래전부터 비애소설이라는 쟝르가 있었다. 한자로 쓰면『悲哀小說』영어로는 『tragedy』 인생의 불행과  비참을 제재로 하여 독자들에게 비애감을 맛보게 하려는 소설을 비애소설이라고 하였다.  박신애라는 이름의 주인공, 초생달의 눈과 매력적인 덧이의 임자 20세의 그녀는 고향 공주촌을 떠나 국자가에 진출한후  몇년간  자기의 꿈을 실현하려고 아글타글하다가 나중에 한국으로 밀입국하는 도적배에서  마지막 생명의 비곡을  울리고 짧고도 고된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  혹자는 이러한 이야기는 중국조선족이라고 불리우는 이 민족공동체 내부에 요즘 들어 항다반사(恒茶飯事)여서 뭐 그리 놀랄바가 아니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예사로운 일이라고 해도  한편의 소설, 아니 한편의 장편소설로 씌여졌을 때는 신변에서 이따금씩 들리는 골목소식과는 틀리는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창조주체에 의하여 창조된 한편의 문학작품이기때문이다.  다음 김혁씨의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장편소설은 전형적인 「저층서사」소설이다.  저층서사(底層敍事)란 새 세기에 진입한 이래 중국사회에 이미 표면화된 민생문제에 대한 관조를 나타내면서  빈부차이, 새로운 도시빈민층, 도시에 진출한 농민공 등 밑바닥인 생을 영위하는 계층의 궁핍한 삶과 정신실존을 사실주의방법으로 표현하는 작품들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저층서사소설에서는 아직까지도 도시에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분망한 소외된 계층을  주요 묘술대상으로 삼고  이 부류 사람들의 처지를 우리 시대의 대사로 대할것을 주장하며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내면서 이를 통하여  시대의 일부 삐뚤어진 가치관념을 비판하고 아울러 개체생명의 독립과 존엄을 고양하고있다.   여기서도 혹자는 저층의 삶의 현장을 조명한 작품은 우리 문단에도 이미 적잖이 창출되였다고 하면서 뭐 대단한것이 없다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한부의 장편소설로서 우리 시대의 믿바닥인생을 영위하다 비명에 죽어가는 한 처녀의 짧고도 슲은 인생을 다룬 작품은 김혁씨의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가 우리 문단에 첫 작품인줄 안다.   그러므로 김혁씨의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라는 이 비애소설 내지 저층서사소설에 어떻게 접근하겠는가? 이 소설에 창조된 비극적 인물 박신애의 형상에 체현된 문화적내포는 어떠한가? 이 비애소설 혹은 저층서사 구경 어떻게 씌여졌는가?  김혁씨는 어째서 이 비애소설을 썼는가? 등등 문제에 대한 우리의 진지한 해답이 요청된다.    1)《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장편소설에 접근하는 몇가지 전제.    박신애라는 녀자는 공주촌이라는 농촌으로부터 국자가가는 도시에 들어온 사람이다.  이로부터 우리의 뇌리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것은 요즘 우리 민족사회에  박신애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북경 어느 조선족학자의 통계에 근거하면 개혁개방 30년래 할빈으로부터 대련까지 동북의 철도연선 크고 작은 도시에 진출한  농민신분의 조선족인구가 40만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통계에 근거하면 북경에 진출한 조선족이 10만이 되고  산동반도에 진출한 조선족이 20만이 넘고 산동반도밖의 동남부연해도시에 진출한 조선족이 10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과는 관계가 없지만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이 20만이 넘는다고 한다.(이 통계는 말그대로 불완전한 통계이다. 특히 이 통계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이 포함되였을수 있다.ㅡ필자 주)  그러므로 우리가 박신애라는 이 인물에 접근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할것은 박신애는 현대화건설의 물결속에서 도시에 진출한 100만 조선족의 일원, 하나의 생명개체라는것이다. 다시말하면 박신애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가 주는 제일 크고 제일 주요한 정보는 농촌을 떠나 도시에 진출한 조선족농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데 대한 정보이다.  물론 김혁씨의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이전에도 이 제재를 취급한 문학작품이 있었으며 개중에는 성공적인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와 같이 장편소설의 쟝르로 이 제재를 취급한 작품은 없었으며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처럼 예술문학적으로 성숙한 작품은 많지 않다고 말해야 할것이다.  다음, 박신애는 농촌으로부터 도시에 진출한 20세의 녀성이다.  여기서 주제어는 녀성인데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녀성주의 혹은 녀권주의 문제가 제기된다.  영어로 「feminism」즉 페미니즘은 중국에서 처음에는 「녀권주의」로 번역되다가 다시 「녀성주의」로 번역되는 개념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녀성의 사회적 , 정치적, 법률적 권리의 확장을 제창하는 주의 혹은 운동이다.  주지하다싶이 오래동안 전통문화에서 녀성은 주체로 되지 못하였으며 주류담론에서 남성과 녀성의 권리는 사실상에서 불평등하였으며 남성은 초자연적인 지위에 처하여있고  녀성은 여전히 남성의 한부분으로밖에 되지 못하였다.  이른바 페미니즘이란 남권의 압박에서 녀성의 해방을 주장하는 리론이며 운동이다.  문학창작에서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의 의식형태에 대한  청산이며 「녀성서사」의 발굴과 제창이며 남성문학과 다른 특색이 있는 녀성문학의 건설이다   페미니즘은 지난 세기 80년대로부터 중국문학계에 수용되기 시작하여 녀성의 독립자주와 물질, 정신상의 철저한 해방을 요구하는 녀성들의 시점에서 남권주의중심의 문학과 문화에 대하여 엄격한 해부와 비판을 진행함으로써 주국의 문학창작과 문학비평의 발전에 홀시할수 없는 공헌을 기여하고있다.  물론 성별로 보면 김혁씨의 작품활동을  「녀성사작」에 귀납할수 없지만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장편소설은 박신애라는 녀자의 비극적 운명을 반영하고있다는면에서는 이 소설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일부 페미니즘적시각이 요청되는것이 사실이다.  그 다음 박신애는 도시에 진출하여 성공한 인물이 아니고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비극적인물이라는데 대하여 충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작품을 한번 읽어본이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박신애가 국자가에 첫발을 들여놓아서부터 죽을 때까지 만나는 모든 사람중에서 신애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으며 ,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아울러  신애의 인생은 십분 비참한 인생이며 신애는 철저하게 비극적인 인물이다. 소설학에 근거하면 박신애는  계속 하강선을 그으며 발전하는 운명선에서 죽음으로 내달리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한부의 장편소설은 신애의 꿈이 어떻게 박살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수 있으며 혹은 박신애라는 이 한떨기 생명의 꽃이 어떻게 시들어가고 죽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소설에 접근함에 있어서 비극에 대한 리해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2)《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의 주인공 박신애라는 녀자.   우에서 언급된바와 같이 박신애라는 이 녀자 참으로 운명이 기막히게 불행한 녀자이다.  원체 신애는 어려서 어머니가 그녀에 대한 부양을 포기하는 바람에 다병하고 유약한  이모의 손아래에서 자랐다.  이모에게서 듣기로는 어머니가 신애를 낳고 죽었다고 하지만 기실 어머니는 처녀의 몸으로 신애를 밴 신애를 낳던참에 집에 버린채  야밤도주를 해버렸던것이다.  결국 신애는 일찍 남편을 잃고 네살  되는 아들을 키워가는 이모네 집에 얹혀서 엄마, 엄마라는 말 대신 이모, 이모 하면서 자랐다.  그러다가 갖 스무살이 되는 해 겨울 인구의 대이동이라고 불리우는 농민의 도시에로의 진출에 밀려 신애는 국자가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박신애라는 국자가에 들어올 때 이 시골녀인의 꿈은 구경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도시에 들어와 공부를 하여 무슨 교원이 되거나 학자가 되려는 꿈이 있고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 큰 부자가 되려는것이고 어떤 사람은 문학예술의 꿈을 실현하려 도시에 들어오지만 신애의 꿈은 너무나 소박하였다. 눈물이 날 정도로 소박하였다.  광천수차기사  인철이와 같이 처음으로 교회당에 갔을 때 하는 신애의 기도에서 우리는 그의 꿈이 무엇인가를 보아낼수 있다.  나더러 돈을 많이 벌게 해주옵소서. 김밥집 마담만큼은 못 되여도 나중에 그 절반만큼이라도 돈이 있게 해주옵소서. 앓지 말게 해주옵소서. 이제 귀찮은 감기 그만 하게 해주옵소서. 고향계신 호준오빠랑 이모랑 동생이랑 몰래 떠나 버린 나를 나쁜년이라 욕하지 말게 해석해주옵소서. 아무쪼록 그들이 무사하게 지내게 해주옵소서. 하루빨리 나도 경자처럼 시내물이 들게 해주옵소서. 그리고… 그리고 나에게도 다른 시내애들처럼 삐삐 호출기가 있게 해주옵소서 아멘!  사실 김밥집마담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딱히 모르겠지만 상식으로 추측해도 그리 많지 않을것이라는것이 뻔한데 신애는 그 절반만큼이라도 벌게 하여달라고 기도하며 국자가에 들어온후 지금까지 아직 경자를 만나 보지 못하였지만 전에 환고향한 경자를 본 인상으로 경자만큼 도시에 물들게 하여달라고 기도한다. 이렇게 소박한  꿈을 안고 국자가에 들어온 박신애는 임시 먹고 잘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특히 국자가의 지정학적위치의 우월성으로 녀자, 특히 젊은 녀자들이 임시로 입고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는 그리 힘들지 않는 도시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인생의 길에서  자기의 꿈을 이룩하려면 의식주문제의 해결뿐아니라 필연적으로 앞에 놓이는 「생물사슬」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례를 들면 최저한도의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여야 할뿐만아니라  영원히 독신으로 살수는 없고 결혼하여야 하고 자식을 낳아 독립인으로 키워야 하고  병이 나면 치료를 받아야 하고 혼자가 아닌 한 가정이 거주할 집을 마련하여야 한다.  분명한바 신애에게도 인생의 길에서  반드시「생물사슬」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는데 대한 정신적준비는 없었던것이다.  이를 우리는 국자가에 온 박신애의 모든 언행으로 증명할수 있다.  국자가에 진출한 그가  제일 처음 발을 붙인곳은 「오씨네 김밥집」이다.  같이 일하는 장아주머니도 좋았고 주인마담도 괜찮았고 여기서 성격이 쾌활한  광천수차기사 양인철과도 사귀고 같은 성씨의 털보아저씨 운수회사 박기사도 알게 되였다.  그러다가 김밥집이 파가이주를 당하게 되고 신애는 그 박기사의 소개로 운수회사에 차장으로 취직하게 된다.  간호사와 더불어 버스차장은 원래 박신애가 아주 선망하던 직업이였다.  과연 운수회사는 신애에게 새로운 생활을 약속하는것 같았고 신애의 꿈을 실현하는 새로운 공간을 열어주는것 같았다.  김밥, 김국, 오징어볶음, 두부볶음, 철판소고기구이, 조기구이, 오이무침, 버섯무침…하고  료리메뉴를 외우기보다 더 품위있고 운치있는 노릇이라 신애는 느껴졌다. 음식점에서 접시나 나르던 시골애가 차장이 되어 도시를 거침없이 누비며 달린다는것은 그녀로 말하면 중요한 전환이기도 했다. 매양 출입문곁의 차장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스쳐가는 도시의 풍경을 새로나온 그림책 보듯 흥미에 절어 지켜보며 신애는 가슴 들먹히 괴여오르는 만족감을 주체할길 없어했다. 그리고 신애는 시시때때 그 어떤 냄새를 맡을수 있었다. 봄의 훈향속에 담담한 휘발유냄새에 섞여 신애만 맡을수 있는 그내음은 시골처녀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감득할수 있는 희망의 냄새였다.  그리하여 집채처럼 큰 버스를 신애는 신명을 바쳐 닦으면서  이렇게 큰 버스, 이렇게 멋진 버스, 도시의 네거리를 보란듯이 누비는 버스의 차장은 바로 나다! 라는 흥분에 버거움을 잊었고 맡겨지는 모든 일에서 남보다 열성을 보이며 점심에 운수회사 공공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그 자체에 대하여 무한한 행복감에 잠기기도 하며 푸른 제복과 두리모자를 감추어가지고 나와 버스차장 제복차림으로 사진을 찍어 이모에게 붙여보냈던것이다.  아직 세속에 물들지 않은 단순한 시골처녀 신애는 운수회사의 버스차장이 되는것으로 자기의 꿈이 이룩된다는 착각의 늪에 빠져들어갔던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골처녀, 소박한 꿈의 소유자 박신애의 무의식에 깊숙히 간직된 소망을 잘  생각해볼것이 요청된다.  사실 변강의 시골농촌에서 스무살까지 향소재지를 중심으로 행동반경이 10리를 벗어나본적이 몇번 없는 그녀, 작품에서 딱히 밝혀진것은 아니지만 중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농촌처녀 신애에게도 농촌을 벗어나고 농업에서 해탈되고 농민이란 신분을 버리고 시민이 되려는 세기적인 숙망이 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앙금처럼 깔려있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가장 심각한 의미에서 박신애의 꿈이였을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신애의 이러한 소망을 여지없이 박살내였다.  「왕제」라는 1호차장 그녀의 권세앞에서 신애는 끝내 운수회사에서의 모든 희망을 포기하여야 하였다. 그녀는 이 운수회사의 차장중에서 왕질을 하는 녀자였는데  신애에게 한자(漢字)에서 죽음의 의미의 「死」와 통하는 「4」호선로 버스를 맡기고 목욕탕에서 남의 머리감는 비누도 빼앗아 쓰고 자기의 청소주번날에도 신애에게 강제로 소제를 시키고 신애에게 오는 표창신도 자기것으로 만들어 표양을 받는다.  다시 박기사의 도움으로 장거리차의 차장으로 자리를 바꾼다.  신애보다 1년 먼저 도시에 들어온 경자는 버스회사에서 신애의 곤혹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아직 시내 이곳저곳에 발이 익지 못한 촌바우, 눈에 띄는 변변한 옷도 없는 촌바우, 좋은 음식 먹어 못본 촌바우, 그런 촌바우에 존경심이 갈 사람이 있어. 업신보고 깔보기 마련이지. 나라도 그래. 먹기 좋은 떡부터 먹어치워야지. 이는 과정이다. 억울해도 참아야 돼. 네 눈에 먹기 좋은 다른 떡이 보일 때까지. 문제는 언제까지 남에게 만만한 떡으로 보이는가 하는거지"  경자가 신애의 현실상황을 놓고 장황설로 풀고있는 떡의 론리는 바로 권세자들앞에서 먹기 좋은 떡으로 되는 신애의 처지에 대한 가장 비근한 해석이지만 이에 대하여 신애는 납득되지 않았다. 신애로서는 아직 중국에서 권력의 힘이 얼마나 센가에 대하여 알수 없었던것이다. 자그마한 운수회사의 차장중의 우두머리도 이렇게 세력을  부리는데 진짜 권력을 잡은 권세자들의 세도야말로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런데 어느날 사람 좋은  박기사가 술에 흠뻑 취하여 신애를  「기사의 집」에 불러내서 자기의 녀편네에 대한 불만을 하소연한다. 신애는 별수 없이 온밤 내내  술을 마시는  박기사와 응부하는데 갑자기 박기사의  마누라와 그가 휘동한 한떼의 녀성들이 들이닥쳐 신애를 사정없이 구타하고 몸에 구정물까지 쏟아버리고 머리까지 마구 잘라버린다.  이 사건은 버스회사에서 박기사와 신애사이의 "염문"으로 확대포장되여 사람들의 화제로 된다. 치욕을 받은 신애는 억울한 심정으로 버스회사를 떠난다.  그후 경자의 하숙집에서  신애는 어느 여름날 4호버스안에서  도적을 발견하고 소리쳐 도난에서 면하게 했던 그 미남ㅡ 윤승원이라고 부르는 신사를 만나게 된다. 「늑대」표양복을 입은 이 남자는 박신애와  버스안에서 맺은 인연이 있는외에 또 그 출중한 미모와 스타일로 언녕 박신애가 마음속으로 반해버린 남자였다.  신애는 기꺼이 그 남자가 경영하는  「유리구두」라는 자호를 건 신발쇼핑몰에 판매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오래잖아  둘이는 애인관계를  맺게 되고 신애는 처녀의 정조를  윤승원에게 바치고 윤승원은  신애에게 유리구두 놀음감과 진짜 고급구두를 선물하고 또 신애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세방집을 잡아준다. 순진한 신애는 이 모든것을 진정한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결혼할 꿈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신애의 가슴에는 무지개가 솟고 신애의 육신은 행복감에 전률하고 신애의 심신속에서 희망의 나무는 창공을 향해 소리치며 자라나는것 같았다. 더욱이는      
4    김혁의 시나리오 소설 “원죄” 댓글:  조회:3541  추천:45  2009-11-24
  . 평론 .   김혁의 시나리오 소설 “원죄”   최삼룡   “장백산”잡지는 2006년도에 “재해”(박선석)와 “음모와 사랑” (지오) 두편의 장편소설과 “원적” (김혁 2기), “타지마할” (양은희 2기), “등대불빛은 또 깜빡거렸다” (원종철 3기), “나의 파란 많은 인생” (김근환 5기), “바다낚시” (박상춘 6기)등 5편의 중편소설 그리고 11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중에는 동포들의 삶의 현장을 투시하는 작가들의 안목이 높아지고 민족언어를 구사하고 이야기를 창조적으로 허구하고 형상을 창조하는 작가들의 기량이 늘어나고 또 문체가 다채로와지고 표달방식과 서사책략이 다양해지고있음을 과시하는 작품이 적지 않다. 이제 필자는 본문에서 “장백산” 2006년도에 소설을 일별하면서 떠오른 소감을 적어보려 한다. 먼저 “장백산” 2006년도 중편소설중 “원죄”와 “타지마할” 그리고 “바다낚시”를 주목하게 된다. “원죄”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다루고있다. 현대사화학에서 세대차(代沟)란 바로 두 세대사이에 생기는 가치관념, 심리상태, 생활습관 등 방면의 화제로 되고있는 청년세대와 로년세대의 차이를 취급했을뿐만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부친살해모티플를 리용하여 주제사상을 심화시키고있다. 인간에 대한 탐구의 형식의 일종으로서 소설은 작가들에게 왕왕 특수한 사건, 특수한 모티프에 반복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한다. 부친살해모티프는 바로 작가들이 반복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신화모티프의 일종이다. 파란의 인류학자 말리노프키(Malinowski 1884-1942)는 “미개사회의 성(性)과 억압”에서 부친살해 모티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있다. 프로이드는 “토템과 터부”라는 책에서 인류문화사의 최초의 중대한 사건에 대해 서술하고있다. 원시인의 무리는 모든 녀성을 혼자서 차지하려는 질투심 많고 거친 부(父)가 지배하고있었다. 그는 성장한 아들들을 무리에서 추방해버린다. 그러나 추방당한 아들들은 어느날 힘을 합해 아비를 살해한 다음 아비의 시체를 먹어치운다. 잡아먹힌 태초의 아비는 틀림없이 아들들에게 선망과 공포의 대상이였을것이다. 이제 아들들은 아비를 먹어치움으로써 아비와 동일시될수 있었으며 아들들은 아비가 가졌던 힘과 권위의 일부를 얻게 되였다. 이 시원적이며 원초적인 사건을 이른바 부친살해모티프라고 하는데 프로이드는 이것이 “문화의 시작이며 그 이후로 영원히 인간을 불안케 하는 중대한 사건”일뿐만아니라 “사회적조직, 도덕적구속, 종교 등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잊을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하였다. 여기까지 알고 이제 김혁의 “원죄”를 다시 읽어보면 이 작품은 제목으로부터 매개세부묘사에 이르기까지 부친살해모티프의 계시를 받고있음을 알수 있다. 작가 김혁은 결코 이 모티프를 반복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특점과 민족의 생존상황에 맞게 깊이가 있고 개성이 있는 현대소설을 창조하였다. 김혁은 또 이 작품에서 아주 개방적인 자세로 씨나리오문체를 차용하여 독자들의 인기를 끌고있으며 아울러 창조추체의 얼굴을 시종 나타내지 않고 목소리를 내내 내지 않음으로써 소설의 사상력도를 크게 하였다. 우리는 TV에 TV소설이 있는것처럼 문학에 씨나리오소설이 있는데 대하여 크게 이상해하거나 놀랠 필요가 없는바 작가의 대담한 문체실험을 지지해주어야 할것이다. “장백산” 2006년 소설을 놓고 조선족소설문학의 현주소를 생각해보자. 한 문학지가 해마다 장편소설 한편 내지 두편을 련재하고 중편 5편 내지 6편을 게재하고 단편 10여편을 게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소설문학이 수량상에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증거로 된다. “장백산”, “도라지”, “연변문학” 그리고 기타 잡지와 신문의 문예란에 발표되는 소설작품을 모두 헤아리면 200만인구의 소수민족에게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건국후 30년간에는 근근히 장편소설과 중편소설이 한두편밖에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 수량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예술질상에서도 우리의 소설문학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고있음을 “장백산”2006년도 소설을 통하여 기껍게 보아낼수 있다. 창작방법으로부터 조감해보면 우리의 작가들은 기본상 사실주의 문학의 방법과 원칙을 견지하는 기초상에서 비사실주의 문학의 방법, 모더니즘, 포스터모더니즘에서 부단히 자신의 텍스트를 살찌울수 있는 자양분을 흡수하고있다. 이로하여 우리의 소설문학은 오늘에 이르러 내용이 전례없이 풍부해지고 형식이 매우 다채로워지고있다. “장백산” 2006녀도 소설작품중에서 우리는 모더니즘 혹은 포스터모니즘이라고 단정할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창작방법상에서 우리의 소설문학은 사실주의 문학의 제 원칙에 충실한다는 증거로 된다. 물론 사실주의도 순수한 개념이 아니며 사실주의 문학의 력사도 곡절이 없는 것이 아니며 또 우리 조선족작가들의 사실주의에 대한 리해와 창작실천도 내내 정확하고 성공적인 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오늘에 와서 우리의 소설문학은 총체상에서 진정으로 사실주의 문학의 풍격을 갖추고있다고 결론할수 있다. 우리의 작가들이 동포들의 삶의 현장을 투시하는 안목이 상당히 높아지고 현실과 력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소재를 찾고 큰소리를 치지 않고 헛소리를 치지 않고 생활을 분식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시장경제의 바다속에서 피흘리는 령혼의 모지름을 겪는 민족의 생존상황과 정신존재는 전통문화를 고양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적여건에서 발로되는 민족렬근성을 무자비하게 고발하면서 자기의 문학작품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민족혼을 재주조하는데 필요한 정신적식량으로 되게 하기 위해 애쓰고있다. “장백산” 2006년도 소설을 통하여 우리는 또 우리의 작가들이 총체상에서 사실주의문학의 원칙을 숭상하면서도 개방적인 자세로 모더니즘, 포스터모더니즘에서 유익한 자양분을 흡수하고있으며 비소설류의 문학에서 유용한 방식와 기교를 배워다가 자신의 텍스트를 살찌우고있다는 것을 보아낼수 있다. “원죄”가 고대신화의 부친살해모티프의 영향을 받았을뿐더러 초현실주의문학에서 일부 기교를 배우고있으며 영화문학의 형식을 빌어서 쓰고있다는것과 “타지마할”이 인도의 고대건축에서 령감을 받고 상징주의문학에서 일부 기교를 재치있게 리용하고 또 실존주의문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는 것 그리고 “골회”는 포스터니즘의 핵심리념이라고 칭할수 있는 해체주의의 영향을 다분히 받고있다는 것 등등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바가 크다. 사실주의소설만 소설이고 소설이면 곧 사실주의소설이던 시대는 여기서도 언녕 끝이 났다. 이것은 우연하게 나타난 문학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작가들이 현대소설문학의 번영을 위해 장기간 애쓴 결과이며 우리의 소설문학이 발전도상에서 반드시 지나야 할 과정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작가들이 보다 개성적인 자세로 너무 전통적인 경전소설학에만 매달리지 말고 인류문학보고의 여러방법, 류파, 사조의 작품들을 보다 넓게 공부하면서 자기의 문학작품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싶다. “장백산” 2006년도 소설을 통하여 우리는 조선족소설문학의 현주소를 다음과 같이 개괄할수 있다. 우리의 작가들은 소설의 생명본체와 언어본체를 탐구하면서 또 사실주의문학의 방법과 원칙에 충실하면서 아울러 모더니즘포스터모더니즘에서 부단히 자양분을 흡수하였는바 그 결과로 인생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와 민족의 생존상황에 대한 심각하고 폭넓은 조명 그리고 다채로운 형식에 대한 추구가 있는 당당하게 에술문학으로 평가할수 있는 성과작들을 적잖게 창출해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 작가들의 문학상상력은 높지 못하며 투철한 문학정신을 가지고 작품활동에 몰두하는 작가는 많지 못하다. 한 작가가 문학적상상력을 키우고 치렬한 문학정신을 갖추는 것은 일조일석에 되지 않는바 장기적이고 부단하고 또 꾸준한 노력의 결과일것이다. 하고싶은 말 많지만 편폭관계로 이만 줄인다.   최삼룡 (전 연변사회과학원 소장, 평론가) "장백산" 2007년 1월호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3    생명, 그 노래는 레드 댓글:  조회:2874  추천:47  2009-11-12
  생명, 그 노래는 레드 (紅色) - 김혁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가 말하는  성장과 그 허무를 두고 전경업       이렇게 독자들은 추락했다. 마치도 매의 발톱에 잡혔다 다시 천적(天敵)이 와글대는 황량한 벌판으로 떨어진 병아리 마냥 그 시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전날의 기억을 전생 마냥 아득히 잊고, 훗날의 희망을 내세 마냥 묘연하게 조차 상상할 여지도 없이 그 시대에 뛰어 들었다. "어둠에서 벗어나려 종 주먹을 쥐고 달리는 아이"들, 우리는 방황과 허무 속을 헤매던 우리의 어제 날 모습을 김혁의 "마마꽃 응달에 피다"("장백산" 2003년~ 2004년)에서 생생하게 재생해 볼 수 있으며 그 시대가 우리들의 신상에 접목한 세포핵이 확산하는 모습을 감지하고 시대와 개체 접전의 메커니즘으로 우리들에게 가져다주는 풍성한 쓸쓸함을 만끽한다. 작품은 작가의 자서전적 성격을 충분히 띠고 있다. 타닥타닥, 회구(懷舊)를 담아 두드리는 키보드의 절주와 더불어 독자들은 작가가 마련한 "타임박스"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 붉은 색으로 란무했던 광란의 한 시대를 려행한다. 망각된 사회의 성장 작가가 분석하다시피 60년대로부터 70년대까지 해일처럼 중국의 대지를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은 그 인류사상에서 전후무후한 특수한 성격으로 하여 여느 제재보다 풍부한 창작의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 시대에 대한 재확인은 때 지난 것이 아니며 력사를 소급하는 견지에서 볼 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와 중후(重厚)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 문화대혁명에 대해 반영한 글은 "상처문학"이라는 하나의 류파를 생성시킬 정도로 많이 나왔다. 분노가 만들어낸 그 류파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문단은 이미 높은 평점을 주었다.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허다한 이 제재의 작품들은 개인의 불우한 체험과 수난사로부터 주관적 색채가 너무 짙게 배여 있다. 청일 색으로 항의와 의분에 넘쳐 마치 "공소문"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력사에 대한 판단이 개인의 단순한 정감으로 대체 되여 나온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이 제재의 도식화를 경향을 보였다 문화대혁명 박물관을 세우려 적극 추진했던 중국문단의 원로 파금 선생은 문화대혁명에 관한 진정 좋은 작품이 산출되려면 수난자뿐만이 아니라 그 2세 3세가 써야 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오늘의 문화혁명제재의 열독자는 단 문화대혁명의 경력자뿐이 아니다. 때문에 오늘의 새로워지고 바뀌여진 심미관과 력사관으로 어제를 뒤돌아보는 작업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재래의 문화혁명제재를 다룬 동류소설과는 완연 다른 참신한 기법으로 한 소년의 성장을 통하여 인권이 유린된 어두운 력사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인류의 고난에 대한 련민을 보였으며 그 특정된 환경 속에 인간의 변형된 심태의 궤적을 진맥하려 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한 무리 악동들의 지극히 비도덕적인 짓거리의 련속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로지 하나의 "충성"으로 깃발을 휘날리며 노도같이 달렸던 시대, 그들은 한 무리 반역자들이었다. 목적이 없고, 질서가 없는 무의미한 시대를 일탈과 폭력으로 배반했다. 이들은 사회 주류와 유리된 한 무리이다. 친어머니와 친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 김찬혁, 두상(頭狀)이 크고 그만큼 생각 많고 감성이 섬세한 "나"는 어느 날 가출하여 "망나니"무리로 이전하게 된다. "똥파리", "회충", "림표" 등 이상한 별호를 가진 부랑배들과 섞이게 되며 거기서 러시아와 조선족 혈통이 반반인 "짜그배 누님", 그리고 촬영을 사랑하는 "홍상청 형님"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귀신의 집"에서 사는 "마스크귀신"을 만나게 되고 또 현성의 악명 높은 "마가네 형제"와 "사마귀"무리를 만나게 되고 세력쟁투에서 실세한 "똥파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또 그 사이 사이에 사춘기의 안목으로 짜그배누님"에게 반하게되고, "짜그배누님"과 "똥파리", "상철형님" 사이의 삼각관계를 목격하게 되며 세상에 대해 희미하나마 눈을 뜨게 된다. 20세기 나치스의 폭행과 비견된다는 "문화대혁명" 너무나도 풍부한 내용으로 텅 빈 시대였다. 그러나, 시대야 비었든지, 가득 찼든지 인간은 자라나기 마련이요, 생명은 각자 나름대로의 가장 의미 있고 자기에게 알 맞는 방식으로 자기의 생명진로를 계속하기 마련이다. 개성과 관용과 성장과 생명개체를 말살한 시대, "충성"이라는 하나의 모드로 분식된 세상에서도 개체의 생명은 끈질긴 삶의 힘으로 자기의 진로를 계속한다. "똥파리"무리나 "사마귀"무리들은 모두 이런저런 원인으로 주류사회로부터 배척을 받은 무리들이요, 유리된 무리들이다. 그들을 어른들 세계에서 관개(灌漑)된 뒤틀린 가치관을 주입 받았다. 그 변형된 가치관 때문에 그들은 한결같이 삐여져 나가며 지어 갖가지 악행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해방군에 참가하지 못한 군대 콤플렉스를 가진 "똥파리"는 똥파리대로 싸움만 일삼고, 녀자의 사랑이 결여된 김표는 김표대로 남들의 정사를 훔쳐보고, 이붓아버지가 싫은 나는 "나"는 나대로 가정에서 뛰쳐나온다. 그들의 악취미는 서로 합세 되여 자전거도 훔치고 배우의 무용신도 훔치고, 정신질환자의 물건도 빼앗고 모주석저작 암기표병인 "앵무새"를 빈집에 가두어 넣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의 허무와 황당으로 점철된 성장과정에서 우리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인류력사에 전후무후했던 어두운 음영의 연대에 대해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된다. 한 인간의 성장은 사회가 그 인간을 어떻게 대하든 관계없이 자기의 진로를 계속하는 것이다. 사회가 포옹해 주든지, 사회가 배척하든지, 사회가 기시하든지 관계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성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젊고 개체적인 생명의 팽배하는 생리와 정감이 뒤틀린 세월 속에 내쳐짐으로 하여 비롯된 불안과 미쳐난 행위가 전반 소설에서 화자의 심리의 흐름으로 관통된다. 하나의 인간생명 개체는 사회라는 이 거대한 바위틈에 자라면서 환경에 따라 자기의 방식을 택하고 자기의 생명을 가장 적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작품에서 "나"의 첫 번째 이붓아버지가 악명 높은 "5.7간부학교"에 잡혀가 고역을 치른 빌미로 세상 뜸과 함께 새로운 이붓아버지가 "내"가 다니는 학교의 "공인선전대"로 들어오게 된다. 가장들로부터 드러나 보이는 사회직위의 불평등(공인선전대인 아버지와 "혁명위원회 주임"인 "체육과대표"의 아버지의 불평등과 계급차이), 그에 따른 학교아이들로부터 오는 조소, 이런 복잡한 가정, 사회 환경들은 자연 "나"를 "정 맞은 못처럼 고부라져" 사회의 한쪽 구석으로 내몰고 있다. 작중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그 당시 정치풍토에 뼈 속까지 물든 가장을 둔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런 환경으로 하여 아이들은 너나없이 "굽은 길"을 택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5.7간부학교"에 가서 죽은 적수 "사마귀"가 거의 비슷한 가정 환경을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수용과 리해가 바로 이런 것들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이런 특이한 시대환경은 너무나도 메말랐고, 성장과정의 "나"와 나의 무리들, 그리고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문화의 사막에서 헤매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문화의 감로수가 없는 "사막"은 이들을 병적인 인간으로 탈변하게 했다. 포악하기 짝이 없는 성미를 가졌고 여태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똥파리"가 영화 "꽃 파는 처녀"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용변을 보다말고 얼굴을 싸쥐고 우는 장면이 바로 이런 상황을 생동하고도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풍요로운 사회와 문화의 영양이 수요되는 성장과정과 이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메마른 사회환경은 결국 허무하고 변형된 인간들과 그 세대를 배출하고 만 것이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우리문단에서 흔치 않는 성장장편소설이다. 성장소설을 첫 장편의 텍스트로 잡은 김혁의 소설에서 우리는 작가의 남다른 감수성과 이 풍부한 령역의 선택이 여태껏 결여된 우리 문단의 둔감을 느껴볼 수가 있겠다. 작가는 소설의 앞머리에 단 "작가의 말"에서 "전대미문의 대 사변 속에서 사회의 정신적 폭력에 의해 결손 감을 갖고있는 아이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고 그들의 단순한 시각이 대사변속의 가치관과 부딪치며 나오는 변형된 일상사를 보여주면서 력사의 대사기와 진 모습을 도출하려 했다" 고 창작 의취를 밝혔다. 가독성 짙은 작품이 어찌 보면 그저 렵기적인 에피소드의 라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기저에는 성장기 소년의 심리의 궤적이 섬세히 깔려 있어 작품의 맥락을 통합시켜주고 련속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전대미문의 병적인 역사시기를 거쳐 성장한 이들은 결국 그 유전인자와도 같은 그 음영의 락인으로 하여 문화대혁명이 결속 된 뒤에도 여전히 자기의 낙인을 벗지 못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때 사진관의 일개 점원 이였던 "홍상청"은 그후 사진관의 경리가 되였고, 바람둥이로 소문났던 "짜그배누님" 역시 개혁개방 후에는 자기에게 가장 잘 알 맞는 "국제혼인매파"가 되고, 사냥총을 가지고 놀다가 눈에 상처를 입어 시력을 상실한 "김표"는 여전히 자기 신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맹인안마사"로 되었던 것이다. 소설이 말하는 바, 인간은 사회가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 관계없이 자기의 성장진로를 계속한다, 그러나 그 성장과정에 처했던 사회환경은 결국 생명개체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역시 김혁 소설가가 성장소설에서 념두에 둔 내용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건의 진술방식과 인물형상부각에 대한 반란 많은 생동한 인물형상을 주조해 냈던 김혁은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인물형상 부각을 회피하고 있다. 회피가 아니라 소설자체의 발전추세에 따라 부각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작중의 인물이 작가의 의도에 의한 "성장"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성장"을 하도록 방임하면서 다만 자기의 이야기와 정감을 계속 풀이해 나가기만 했던 것이다. 하여 작중인물들은 바로 우리 곁에 와 있게 되고, 살아 숨쉬게 되고, 원시생활의 자연으로 회귀하여 독립적인 "인간"으로 풍만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김혁은 이번 작품에서 작중인물들을 자기 사상표출의 도구로 삼지 않고, 그들을 하나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해 줌으로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발전을 가져오도록 하고 있으며, 또 그럼으로 매 하나의 인물들은 모두 자기의 살아 숨쉬는 개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은 것이다. 작품에서는 작중인물의 외표에 대한 묘사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사건의 진술과 "나"의 감각, 다른 친구들의 감각과 표정에서 독자들은 자연 그 인물을 육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똥파리"의 경우, 그에 대한 묘사는 때 날파람 있게 싸우는 것을 제외하고 상세한 묘사가 거의 없는 듯 하다. 다만 늘 성냥개비로 이빨을 쑤시고 말마디에 마다 "똥" 자를 달아 욕설을 퍼붓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건의 전개와 그 황당한 짓거리들의 속출로부터 독자들은 "똥파리"에 대해 눈앞에 마주서서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로서 "똥파리"는 작가가 자기의 의도를 대변하는 도구가 아닌, 문단에서 그 플롯을 찾기 어려운, 이채로운 반면인물로 나타난 것이다. 어찌 보면 김혁은 인물묘사를 거부하는 듯하다. 피뜩피뜩 스쳐지나가며 한 두 마디에 그치고 만다. 지어 소름이 끼치는 "귀신의 집"에 있는 "마스크귀신"에 대한 묘사도 별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사건 진술을 통하여 우리는 등꼴에 식은땀이 나도록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또 "실눈을 하고 웃었다"는 한 마디에서 그처럼 공포로 떨게하는 "마스크귀신"의 외로움과 괴로움에서 벗어난 마음, 사회가 만들어낸 귀신이 아닌 사람으로 어울리려는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고, 한마디 분식도 없지만 콩나물 바가지를 두고 가는 "마스크귀신" 어머니의 행동거지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삭막한 인정 때문에 목말랐고 아이들이 베푼 작은 인정에 감동하고, 감사해 하느냐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혁은 그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이야기"라는, 소설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을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다. 천일야화 같은 흥미 있는 이야기의 흥건한 덩이들이 잘 제련된 언어와 화법 같은 이미지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명쾌하게 지속적으로 흐른다. 그 영화각본을 읽는 것 같은 도약적이고 절주 빠른 이야기 방식은 직관적이면서도 핍진하게 독자들을 동란과 미스터리의 30여년 전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따라서 작자와 작품을 이야기만이 아닌 품격(品格)높은 소설작품으로, 이야기꾼만이 아닌 재치 있는 소설가로 격상시키고 있다. 김혁의 첫 장편이지만 우리는 다산작가로 많은 인물을 만들던 작자가 현학적으로 인물을 부각하려는 흔적을 볼 수 없다. 작중 인물들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자라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작품 속에서 자기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자기의 성격발전을 하고 있다. 이런 "성장"과 발전은 지어 소설이 다 보고 난 다음에도 독자들의 생활과 머리 속에서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 독자만 소설 속의 인물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의 인물 역시 독자와 함께 살아 숨쉬게 되고, 현실의 생활 속에서 자기의 "성장"과 발전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어스름이 보이는 족속의 락인 작품의 행간에서 우리는 조선족이라는 우리 족속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고, 중국이라는 이 크나큰 땅덩이, 가렬처절한 역사와 파란만장한 수난사를 겪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조선족들의 낙인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작가가 태여나 자라난 룡정의 풍경이 작품의 곳곳에서 극적인 사건들의 무대로 펼쳐진다. 룡정 지명기원우물, 해란강, 말발굽 산, 대포 산, 령수 탑, 그리고 그에 따른 유래와 전설들... 불확실한 연대가 배태한 불확실성을 가진 인물 역시 여느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인물 형상들이다. 사춘기 "나"의 마음을 그처럼 얽어매고, 그를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3층에서 뛰어내리면서 "빨간 무용신"을 얻어주었던 "짜그배 누님", 어떤 사람들은 누님이 그의 어머니가 모스크바에 갔을 때 러시아사람과 "바람을 피워" 난 딸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와 중국에서 함께 살다가 계선을 갈라 리혼을 한 한족사이에 태어났다고 한다. 작자는 그 출신의 수수께끼를 풀어 보이지 않고 있다. 작자는 이를 독자들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그럼으로 하여 독자들의 상상의 공간은 더 커지게 되고, "짜그배 누님"은 작자 의사 표달의 도구가 아닌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독자들 앞에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그보다 문제는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바로, 그 "짜그배 누님"의 신세가 바로 우리 조선족들의 운명의 축소판인데 있는 것이다. 근대 이민을 시작해서부터 우리의 이민 1, 2세들은 조선반도를 떠나 러시아 연해주나 당시 "만주"라고 불렸던 중국 동북으로 이주를 했다. 그 과정에 갖은 고통을 겪기도 했고 많은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우리의 고향이 조선인지, 아니면 중국인지, 러시아인지를 모르는 때도 있었다. 어쩌면 러시아 사람의 딸인지 중국사람의 딸인지를 모를 "짜그배누님"의 신세가 바로 이를 말해주는 듯 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친어머니가 누구인지는 더구나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놀려주는 체육과대표의 입을 통해 자기가 "주어온"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던져버린 아기가 떠있는 늪에서 자기의 신상에 대해 어렴풋이 깨쳐 알게된 것이다. 소설은 특정된 년대에 내쳐진 우리 민족의 생존환경과 그 심태에 대해 잘 파악을 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발생된 대사변속에 처한 소수민족의 운명과 그 양태, 이는 작품의 폭을 확장시켰을 뿐더러 더 많은 독자 권을 포섭하고 있다. 하면서 작품은 우리만의 빛깔로 중국문단의 문화대혁명수작에 비해 농도와 줄기가 다르게 읽혀지게 될 것이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접하면 누구나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속도감 , 그리고 읽고 난 다음에도 재미나게 음미해보는 매력을 갖고 있다. 미풍이 초원을 스쳐 지나듯 약간의 손놀림으로 흐르는 인물과 환경에 대한 묘사, 그러면서도 거칠게 흐르지 않고 섬세한 감각과 확실한 전달을 주는 방식, 지나간 년대를 반영했지만 현대인들에게도 손쉽게 읽힐 수 있는 활달한 문체의 구성, 지나간 한 년대와 그 시대 인물군상의 특점에 꼭 걸 맞는 묘술(描述)들이 작품 전체에서 점진적으로 자유분방하게 개인의 소사(小事)로부터 사회의 대사를 아우르면서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주를 마쳐도 여음을 울리는 악기처럼 독자들의 머리 속에 머무는, 머물러서 떠나지 않는 작품, 여기서 작가의 작품을 다루는 높은 기교와 깊이를 감지할 수 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여러모로 최근 몇 년간 우리 문단의 장편소설 중 수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경업 ("도라지"잡지사 사장, 길림시 문화관 부관장)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2    버려진 자의 고뇌 댓글:  조회:3741  추천:51  2009-10-09
  . 칼럼 .   버려진 자의 고뇌 - 김혁의 소설집 출간에 부쳐    우리의 조선족문단에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30대의 젊은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혁, 문학의 거의 모든 쟝르를 섭렵하면서 기자라는 딱지까지 붙이고있는 사람, 소설에, 시에, 수필에, 르포에, 다큐멘터리에, 아동문학에... 문학이라는 궁전의 구석구석에까지 그가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런 그가 소설창작집을 묶었다. 참으로 경축할만한 일이다.   문여기인(文如其人)이란 말이 있다. 김혁의 소설을 읽고나면 그 말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김혁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얼마만큼은 알고있다고 자부하고있는 나에게 있어서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강렬한 느낌이 있다면 바로 그
1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 댓글:  조회:4026  추천:73  2007-06-29
. 평론 .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              ㅡ 작가 김혁에 대한 이야기                조성일         들어가면서   우리 말 속담에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후생각고”(後生角高),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사자성어와도 뜻이 통한다. 말하자면 젊은이나 후배가 나이가 젊고 의기가 장하므로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닦으면 선배를 릉가하는 경지에 이를것이라는 기대와 존중의 뜻이 담긴 말이다. 필자가 사술한 속담과 사자성어를 음미하노라니 김혁씨가 생각난다. 김혁씨가 바로 선배들을 릉가하고있는 우리 문단에 우뚝 솟은 중견작가로 각광을 받고있으며 광범위한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문인 수위자(首位者)들의 보좌에 착석하고있다.    나는 김혁씨보다 나이가 많아 같은 또래가 아니고 또 서로 다른 직장에서 일하다보니 소통의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그의 작품을 통해 그의 밑바닥인생살이에서의 처절한 몸부림, 놀라운 예술적천부, 빼여난 예술적감수성, 지칠줄 모르는 독서와 독학에 의한 연박한 지식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무더기로 쏟아내는 질높은 작품생산력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고 그의 앞날이 어디까지 어떻게 다채롭게 펴지게 될지 알수없는 흐믓한 기대에 마음이 설레였다. 이 설레임은 최근에 이르러 나로 하여금 그에 대한 감수를 피력하도록 정서적흥분속에 빨려들어가게 하였다.   역경을 딛고 일떠선 “오뚝이”   20세기의 실존주의 철학가 하이데거는 “인간은 피투성(被投性)존재”라고 하였다. 그가 말한 피투성의 존재란 세상속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뜻이다. 던져진 인간의 삶은 고해(苦海)일수 밖에 없다. 김혁씨의 인생살이도  례외가 아니다. 김혁씨는 전대미문의 문자옥(文字獄)인 “문화대혁명”전야인 1965년 9월에 룡정에서 태여났다. 그의 미혼부모는 가정의 결사적인 반대와 당시 사람들의 무서운 시선 탓에 룡정병원에서 태여난지 사흘밖에 안되는 그를 보자기에 쌓인채로 무정하게 버렸다. 그가 태여나자마자 풍을 일구고 담이 목에 막혀 우유도 넘기지 못해 죽어가는 절체절명의 시각에 이웃 로인의 비방(秘旁)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탄생의 고고성을 울렸다고 한다. 이렇듯 김혁씨는 소름이 끼치는 화택(火宅)속에서 불운의 화인(火印)을 찍고 세상에 버려졌다가 다시 소생하여 밑도 끝도 없는 괴로움의 바다인 고해를 항해하게 되였다. 김혁씨는 양부양모의 슬하에서 자랐다. 동년에 양부양모의 배려도 받았지만 불우한 운명을 면하지 못했다.생모가 류산하려고 각가지 약들을 람복한 바람에 엄중한 칼슘결핍증에 시달려 몸은 장작개비처럼 말라있었고 머리만은 어른의 모자를 쓸수 있을 정도로 컸다고 한다. 그는  옹근 동년을 병원에서 보내다시피하였다. 그러나 소학을 졸업할 무렵 친아버지같은 양부가 “문화대혁명”때 장기간의 투병생활에 지쳐 세상을 뜨시고 나중에 이붓아버지가 가장으로 들어와서 오누이를 만들어준다며 3살짜리 녀자애를 수양했다. 이붓아버지의 잘못된 처사로 하여 가정은 화목을 잃게 되였다. 이붓아버지와 양모는  사사건건 싸움으로 나날을 보냈다. 바로 이때에 김혁씨는 자기가 생부생모에 의해 세상에 버려진 아이, 양모양부에 의한 입양아라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이는 그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였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사춘기의 그는 자기의 정체성 혼란에 함몰되여 사회의 불량배들과 휩쓸리기 시작했으며 순식간에 문제아로 추락되였다. 그는 결국 고중 2학년때 한차례의 큰 무리싸움의 주모자라는 죄목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따라서 고중 2학년, 이것이 그가 가진 학력의 전부였다. 정규적인 교육의 길에서 중도이폐되고 게다가 의붓아버지에 의한 가족의 갈등으로 하여 가정이 파산됨에 따라 김혁은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완전한 고아, 외톨이로 된다. 따라서 그는 다시 차디찬 세상에 동댕이쳐져 삶의 근원적인 허무의식 못지 않게 생존의 위기의식에 심하게 시달리게 된다. 고립무원한 그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울며 겨자먹기로 생존을 위해 일터를 찾아나선다. 그는 샌들장사 실패의 쓴맛도 눈물겹게 씹어야 했고 하수도 덮개와 스팀을 만드는 주물공장, 양계장 등 일터로 정처없이 전전하면서 힘에 버거운 고된 로동에 무거운 부하를 겪어야 했고 죽살이를 쳐야 했고 홍역을 치러야 했다.     이런 번중한 로동의 고달품속에서도 그는 독서를 잊지 않았고 글쓰기에서도 심혈을 몰부었다. 이런 때(1986년)에  길림신문사의 사장은 그의 양양한 필재를 발견하고 그를 길림신문사의 기자로 취직을 하게 한다. 하지만 고중2학년의 초라한 학력을 가진 뜨내기 막벌이군이 기자로 발탁되는 조건은 가혹했다. 2년의 시간은 고험기로 견습기자, 그 기간 로임이나 장려금은 한푼도 없으며 대신 원고료는 발급한다는 조건이였다. 김혁씨는 이 기회를 인생 역전의 중요한 기회로 간주한 나머지 그 조건을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만20세였다.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사이에 2년간의 견습기자의 생활을 마치고 합격된 기자로 되여 우수한 성과를 떠올렸고 1994년에 연변일보사에 전근되여 2002년 연변작가협회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문예부간 편집기자로 맹활약하였다. 하지만  두 신문사의 기자생활에서 대학졸업장이 없다는 단 한가지 리유로 대학문을 갓나와 취업한 애숭이들보다도 적은 가련한 정도로의 로임을 받았고 직함이나 대우, 집 분배 등 기본적인 면에서 아무런 보장도 없었다. 실로 그는 사람의 능력을 보지 않고 대학졸업장 한장을 중요한 증거로 삼아 인사를 결정하는 그 세월의 불합리한 인재채용제도의  희생물로 되여 억울함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오기와 치기로 무소의 뿔처럼 생벽을 지르며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였다. 2002년 김혁씨는 연변작가협회로 전근되여 창작련락부 사업과 연변작가협회 사이트 편집을 담당하였다. 그는 자기의 본직사업을 열심히 함과 더불어 문학창작에서도 풍만한 성과를 떠올리고있었다. 그는 쨍하고 해 뜬 날이 왔다고 기쁨이 샘솟아올랐다. 하지만 이런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2004년에 접어들어 한 문인의 작품출간 기념모임에 참석였다가 기념파티후 돌연적으로 일어난 황당한 사건에 말려들어 공직을 떼우고 또다시 세상의 밑바닥에 내버려지며 조사조의 조사를 받는 한편 엄청난 현찰을 꾸어서 부과해야만 하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극한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 세대주로 가정을 담당해야 할 나이에 어수룩한 일에 휘말려 이변을 당한  그는  3년동안이나 “문인집시”로 이리저리 굴려다니는, 벼랑끝에 매달린 암담한 삶을 힘겹게 지탱하다가2007년에 겨우 연변일보 편집부로 전근되여 작년말까지 근무하다가 올해 벽두부터 그 자리를 잃게 되는 고배를 마시게 되였다. 행렬을 잃고 땅에 떨어진 기러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김혁씨는  에서 흘러간 자기의 인생을 두고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오늘로 오기까지 나는 정말로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져 왔다. 어떻게 되다보니 내가 걸어온 길은 다른 사람들이 여유작작 노량으로 걷고있는 탄탄대로가 아닌 뒤안길, 아니면 국도를 벗어난 진창길이 아닌가 싶다. 삶의 길이 너무나 울퉁불퉁하였다. 삶의 굽이굽이에서 해일처럼 밀려와 연줄로 들이닥친 불상사가 호된 일격으로 육신을 강타했다”.”나의 삶은 조악하였다. 강보의 몸에 버려졌고 양모와 의붓아버지의 끝없는 소시민적갈등속에서 암울한 사춘기를 지내왔고 대학문전도 못간 몸으로 엘리트속에 묻혀 필봉 하나만 믿고 신심을 혹사해왔으며 청빈한 문인신세때문에 혼인이 파열되였다. 30대중반이 넘도록 안식할 보금자리 하나 마련 못해 수천책의 책 꾸러미를 지고 메고 열다섯번씩 이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오로지 사랑하는 딸애와 타향 멀리 떨어져 함께 지낼수없는 살을도려내는 마음의 진통속에 거액의 비빚짐에 눌리워 수년간 내내 리자돈을 꾸어대야 하는 나날이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실로 그의 삶은 현실에서의 갈등과 좌절, 가난과 고통, 고독과 소외, 불행과 절망으로 점철된 눈물겨운 처절한 삶이였다. 실존주의 철학가들이 말한것처럼 그의 삶은 “불안의 정조(情調)”속에서 시달린 끝없는 콤플렉스였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운명의 노예가 아니였다. 남다른  의력과 용단 그리고 각고의 노력으로 자기의 불우한 운명과 지속적으로 대결하면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역전의 삶을 일궈냈으며 향후 또 그런 감격적인 인생드라마를 쓰리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가 옛날 어른들이 말한 어두운 구름밖으로 나오면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인다는 운외창천(雲外蒼天)의 도리를 되새기며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인생 승리자의 길에서 숨가쁜 질주를 계속하리라는 나의 기대는 변함이 없다.   독서삼매경에  빠진 독서광   나는 김혁씨의 사이트에 매일마다 방문하는 네티즌이다. 몇년전에 나는 그의 사이트에서 그의 프로필에 겯들어진 사진 한장을 보고 깜짝 놀랐고 경탄을 금치 못한적이 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가슴이 뭉쿨해진다. 그 사진인즉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정도의 엄청난 분량의 책이 꽂힌 서재 및 그 서재에 들어가지 못한 엄청난 책들이 방바닥에 모로 누워있는 정경을 배경으로 하고 그 앞에 팔장을 끼고 상념에 잠겨 앉아있는 포즈를 취하고있는 김혁씨를 찍은 사진이다. 듣는바에 따르면  바람벽을 꽉 메운 서재와 그 주변도 부족해서 침실, 주방 지어 화장실에까지 책을 쌓아놓고있다고 한다. 나의 서재에도 책이 많다고 자부하였는데 김혁의 서재를 보고나서는  나의 서재가 너무나도 초라하다고 느껴졌다. 김혁씨는 자기 서재에 “허강재”(虛崗齋)란 이름을 붙혔는데 빈 언덕, 몸과 마음을 비운 곳이란 뜻을 이르는 말이다. 그가 말하는 이 소우주(小宇宙)와 그의 자택 곳곳에는 1만여권의 책과 5천여부의 영화 테이프가 소장되여 있다고한다. 그는 이 소우주속에서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에 함몰된 독서광으로 살아오고있다. 그의 독서범위는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 철학, 력사, 종교, 천문학, 회화, 동식물학,  민속 등등  매우 넓은데 이런 분야의 책들을  대량적으로 구매하여 읽는다. 신간 베스트셀러면 죄다 사들이는 외에도 주문하거나 사서 읽는 잡지만해도 10여 종류나 된다. 그의 독서시간도 우리를 못내 감동을 먹게 한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독서에서 잡식적인 취미를 가졌던 만큼 홀로 조용할 대면 무게있는 명작이나 철학서들을 새겨 읽고 술 마신 뒤면 자유분방한 시집을 펼쳐들고 명절이 맞뛰면 권수가 좀 많은 판타지나 연정소설같은 기분 좋은 족으로 찾아쥐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종합지같은것을 읽는다. 그리고 휴식일이면 할리우드 영화 한편, 중국영화 한편씩 , 정극 한편, 오락물 한편씩 곁들이면서 온 하루 영화파티를 벌린다”. 보다싶이 김혁씨는 장서가로 책을 소장한것이 아니다. 읽고 생각하고 쓰기위해 엄청난 재력난에 시달리면서도 책을 사서 탐독하였다. 독서광으로서의 그의 미친듯한 책읽기는 하루이틀에 생긴 일이 아니다. 그는 양모의 슬하에서 다섯살때에 철자를 죄다 떼였고 독서가 가능하였다. 소학교에 입학하던 날 그는 입학등록을 책임진 선생님들  앞에서 교과서 읽기는 물론 모택동의 이며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장시 이며를 줄줄 외워 그의 남다른 기억력과 암송력은  현장의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을 놀라게 했다. 동년시절 애초의 독서생활은  련환화(蓮環畵) 읽기가 주되는것이였다. 그는48권으로 된 , 40권으로 된 , 이며 22권으로 된 며 15권으로 된 과 같은 고전명작들, 그리고 구쏘련의 문호 고리키의 자서전적인 3부작 , ,  등을 모두 그림책으로 읽었다. 이 시기에 그가 맨 처음 매료되였던 그림책은 고리키의 이였다. 소학교 4학년때부터는  성인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장편도 손에 쥐였다. , , , , …등을 읽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것은 구 사회를 경유하여온 분의 자서전적소설였다. 그는 양부양모의 덕택으로 신화서점에 나오는 련환화들을 모조리 사들여 읽었다. 이렇게 동년시절에 천권에 달하는 련환화를 읽고 소장하였다. 따라서 당시에 룡정신화서점의 극성스런 “꼬마단골”, 룡정에서 책이 가장 많은  “소년장서가”로  소문이 났다. 그는 청년기에 들어서면서 동년시절보다 더욱더 신들린 사람처럼 걸탐스럽게 독서를 했다. 그는 독서에 미쳐 닥치는대로 읽고 읽으면서 끝없는 환상의 나라, 그리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는 글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문학을 하고싶었다. “문화대혁명”이 력사의 뒤안길에 사라지자 그는 왕성한 열정으로 세계명작들을 거의 다 읽었으며 연변출판사와 북경민족출판사에서 간행된 잡지와 총서들을 빠짐없이 사들여 그 간행물을 통해 세계문학과 중국문학, 중국조선족문학을 본격적으로 독파하였으며 그리고 미술, 영화, 노래 등도 놓치지 않고 좋아했으며 음식탐을 하는 허기진 애마냥 그 경전과 류행들을 그의 두뇌속에 정성스럽게 부어넣었다. 그는 지금까지 내내 붙박이로 자기의 옹근 몸둥아리를 책더미속에 부장품처럼 묻어버렸다. 그의 일상에서 독서가 없는 나날이란 상상할수 없다. 청소년시절에 체계적인 정규교육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한 콤플렉스에 상처입은 그는 남보다 몇배로 되는 책을 읽었다. 그것이 그의 생리적행위로 굳혀졌고 체질화되였다. 독서는 그가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되였고 친구가 되였다. 부모 대신 독서가 그를 키웠다. 남다른 독서 탐닉의 지적생활을 통해 동서고금의 많은 현인들을 만났으며(讀書尙友) 세상과 사회에 대한 지식과 시각을 넓혔으며 삶의 온갖 모습을 보게 되고 외로움과 고난, 소외를 물리치고 선과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근질긴 투쟁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온갖 혼란스런 생각, 감정, 사건들을 정돈하고 새로운 꿈을 키우는 심전경작(心田耕作)을 꾸준히 하였다. 또한 그는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냈다. 김혁씨는 자기의 독서에 대한 느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좋은 작품 한권에 좋은 영화 한부에서 나는 법열(法悅)을 느끼듯 몸을 부르르 전율한다. 그 속에 진리의 말씀이 있고 슬기의 샘터가 있고 고난을 이겨나가는 주문이 있고 뮤즈의 노래가 있다. … 그 속에 들어앉아 무더기로 사들인 신간 잡지와 서적들을 미친듯이 읽고 새로 개봉되는 영화 테이프들을 대량 소장하고는 보고 읽고, 일고 본다. 그리고 쓴다. 그 피스톤의 작동같은 따분한 동작이 여태껏 내가 해온,그하고 있는 그리고 할줄밖에 모르는 짓거리다. 순수한 심안(心眼)으로 보고 읽는 그것이 내 인생에 보탬이 될 황금의 열쇠인줄을 나는 안다. 그것은 내 불운을 ‘액막이’해 줄 팥 한주머니이다”. 바로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그는 서중유락(書中有樂)의 마음가짐을 갖고 지금까지 독서광으로 살아오고있는것이다. 고금중외의 이름난 영재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하나의 별명을 가지고있다. 바로 “독서광”이다. 그들은 입을 모아 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력점찍어 말하고픈것은 독서광이라 해서 다 유명한 사람으로 되는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영재들은 죄다 독서광이라는 점이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던 안중근, 독서로 눈병이 난 와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던 세종대왕, “만권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 몸은 서럽기만 하다”고 했던 괴테…등은 남들보다 몇배 많은 독서량으로 혜안을 얻어 성공적인 삶을 얻어낸 독서광들이다. 김혁씨도 바로 이런 독서광에 속하는  조선족문단의 중견작가가이다. 실로 그는 정규적인 학교 선생들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무사자통(無師自通)한 지성인이며 자신의 처절한 삶을 문학적자원으로 승화시킨 장한 모습을 독서로 보여준 기인(奇人)이다. 무서운 독서가 결국은 그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고 인생과 운명을 바꾸는 에네지로 되였다.   문단의 앞자리에  우뚝 솟은 작가    김혁씨에 대한 글을 쓰노라니 러시아의 대문호 막심 고리키가 내 머리에 떠오른다. 고리키는 소학교때 천연두에 걸려 입학한지 5개월만에 자퇴하게 되였다. 그것이 그가 가진 학력의 전부였다. 빈약한 학벌로 인해 제본소(製本所)의 막일꾼, 과자가게의 점원, 려객선의 접시닦기, 수위, 부두로동자 등 일을 하면서 언제나 밑바닥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그러던 그가 려객선에서 한 요리사의 조수로 일하던 때부터 요리사의 선실에 있는 책을 가까이 하게 되였다. 그는 독서에 취미를 붙이게 되였고 미치듯이 글을 읽는 독서광이 되였다. 그는 책속에서 자기가 보지 못한 세계를 접하면서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하는 과정에 문학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다.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또 썼다. 드디어 24세가 되던 해 처녀작 를 발표하여 독자들의 넓은 공명대를 획득하여 소설가로 일약 변신하였다. 뒤이어 ,  등을 발표하여 러시아의 하층생활을 묘파한 대표적인 작가로 부상되였고 종당에는 장편소설  등을 창출하여 세계적인 문호로 각광을 받게 되였다. 실로 그는 초라한 학력을 가졌지만 독서와 독학, 모진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 창출해 낸 그의 문학세계는 뭇사람들이 경탄을 금치 못하는, 또한 그만이 가질수 있는 독특한 예술세계였다. 김혁씨의 에 따르면 소학시절에 자기가 맨 먼저 매료되였던 작가는 고리키이고 작품은 그림책으로 각색한 고리키의 작품 이라고 고백하였다. 김혁씨는 고리키의 소설  등 작품들을 탐독하면서 모름지기 그의 영향을 받았던것이다. 김혁씨의 동년시절을 보면 고리키의 동년시절과 닮은데 있다. 그는 고리키처럼 어린 시절에  사회의 저층에서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냈고  그런 와중에서도 저급적인 학력으로 인한 콤플렉스를 이겨가며 독학과 독서에 이악스레 달라붙었고 문학에 매료되여 자기의 힘겨운 삶을 묻혀내는 글을 쓰고 또 썼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의 우수한 창작성과로 조선족문단의 앞자리에 우뚝 솟은 중견작가로 자리를 단단히 굳히였다. 김혁씨에게 있어서 문학은 처절한 삶과 한의 문학이며 그의 삶을 구원해주고 그의 삶의 의욕과 에네지를 준 구원의 문학이요, 힘의 문학이다. 그는 을 통해 문학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형상적으로 묘파하고있다. “문학은 내가 컴컴한 생의 동굴속에서 변신을 이루게 하는 쑥과 마늘이였고 내 삶의 절망속에서 희망을 바란 자기투척이였고 내 무채색의 삶을 채색으로 만들어주는 조색판이였다. 아픈 나날에 내 흩어지는 마음과 행동을 붙들어주고 위로해준것이 바로 그 문학이였고 초라니같던 나를 어엿이 증명해준것이 바로 그 문학이였고 끊임없는 생활의 의욕의 에너지를 준것이 바로 그 문학이였고 상처투성의 내 삶을 표구할수 있게 해준것이 바로 그 문학이였다”.    1985년 그가 19세가 되던 해에 처녀작인 단편소설 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 까지  , , ,  등 장편소설, , , , , , ,,,, ,  등 중편소설, 장편르포, ,  등 인물전기, 장편력사기행 , 문화력사시리즈  등을 발표함과 더불어 단편소설 80여편,시 300여수, 명상시리즈 500여편, 수필과 칼럼 200여편을 독자들에게 선물함으로써 조선족문학 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그는 상술한 성과와 기여로 하여 국내외의 각종 문학상을 30여회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김혁씨는 우리 문단에 라이벌이 없는 다산작가이다. 그가 창출한 수많은 작품들이 다룬 내용과 인물들은 다양하지만 크게 두가지로 개괄할수 있는바 하나는 밑바닥인생들의 처절한 몸부림에 대한 취급이요, 하나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사색과 고민이다. 김혁씨의 작품에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밑바닥인생의 처절한 삶을 다룬 “처절함의 미학”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불우한 운명과 처절한 인생체험을 회피하지도 숨기지도 않고 자기 작품에 녹아들게 하였다. 바꿔말하면 그가 이 비정한 세계에서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성장기에 자기가 겪어야 했던 가혹한 체험을 독자들에게 설파하였으며 가슴속에 고여있는 한과 서러움과 괴로움을 이야기하였다. 그의 소설 , , , , , 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을 보면 그 소설들에 부각되고있는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죄다 방황과 좌절을 거듭하고 근원적인 아픔에 시달리면서 죽어가는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나는 이런 인물형상들을 통해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불안의 정조”속에서 비장한 혈투로 몸부림치는 사회의 저층에 깔린 인간들의 령혼을 읽어낼수 있었고  불투명한 시대에 자기의 실존을 위해 쓰러질듯 휘청거리면서도 약속없는 미래를 향해 힘겨운 행보를 하고있는 “소인물”들의  불안과 실망, 소외와 고독, 아픔과 슬픔을 절감할수 있었으며 빛에 가려진 지난한 어둠속 약자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력사적의미를 읽을수 있었다. 추호도 의심할 나위없이 이 모든것은 김혁씨의 밑바닥 체험에서 우러나온것들이다. 김혁씨의 밑바닥인생 체험을 바탕으로한 그의 추구와 아픔의 묘파는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양상이 변모하기 시작한다. 다시말하면  그가 말한것처럼 “나의 육신밖의 아픔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아픔을 피부로 느끼”면서 “갓길에 섰던 나의 필봉은 새로운 좌표를 찾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이 무르익혀짐에 따라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의 조선족 한국초청사기사건을 다룬 장편르포 ,도시와 외국으로의 진출과정에서 조선족녀성들이 겪게 되는  아픔을 다룬 장편소설 , “중국조선족 문제 테마소설”이라는 부제하에 변혁기 중국조선족의 고뇌를 취급한 작품들이 그 사례로 짚어본다.  또한 그는 자기의 필묵을 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사색에 힘입어 우리 민족의 력사와 우수한 인걸들을 조명한 ,  등 인물전기, 장편력사기행 , 문화력사시리즈 , 장편소설  등 수작들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김혁씨는 타인을 쫓아다니면서 뒷북을 치거나 부화뢰동하는 창의성없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불같은 열정과 남다른 의력과 각고의 정신으로 새것에 부단히 도전하며 과감하게 새로운 실험에 투신하는 작가이다. 그는 국내외 문학사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자기의 고유한 문화감수력을 바탕으로 한 자기나름의 개성적인 작품창출에 모를 박아왔다. 초현실주의 소설 , 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계렬시, 신사실주의소설 , 황당파소설 , 사이버소설 , 판타지소설,그리고 지적섬광이 짙게 묻어나는 문화칼럼 등이 그 사례라 하겠다. 이런 작품들에서 표출된 기발한 아이디어, 내용과 공간의 확장, 다양한 현대표현기법의 능란한 사용, 화려한 문체는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실로 나는 그의 낡은 틀을 까부시고   기성의 벽을 허무는 선봉정신과 반역정신에 감동을 금할수 없으며 그의 천부적인 재질에 매료되지 않을수 없다. 김혁씨는 누구인가고 물을때 소설가 하나의 타이틀로만으로 대답할수 없다. 그의 문학은 소재나 형식, 그 어느면에서나 문학예술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말하자면 그는 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 이를테면 소설,시, 수필, 칼럼, 르포, 다큐멘터리, 아동문학…등을 섭력하면서 자기의 글쓰기를 계속해왔고 문학이라는 전당의 구석구석에 이름을 남겨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있다. 그를 소설가라하는것은 물론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아동문학가, 지어는 “아이디어 뱅크”라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나는 그의 이런 창작의 다양한 성향을 감안한 끝에 소설가 김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글을 엮으면 그의 전면을 다룸에 어려움이 느껴져 작가 김혁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였다. 실로 그는 다쟝르작가로, 다면수로 우리앞에 당당하게 다가오고있으며 그만큼 우리 조선족문학예술에 대한 기여가 다방위적이라고 말할수 있다.   나오면서   나는 실존철학을 공부하면서 다음과 같은 지론을 머리속에 새겨넣었다. 피투성(被投性)존재로서의 인간은 언제나 지금 던져져있는 자기의 상황을 알아차리고 그 상황을 지속적으로 깨고 새로운 자세로 살수 있는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이 “가능성”은 욕망으로서 인간의 실존을 바쳐주고있는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따르면 김혁씨는 불우한 과거를 가지고있을뿐만아니라 현재의 삶도 순탄하지 않다. 그는 자기의 천부와 빼여난 예술적감수력, 지독한 독학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수많은 훌륭한 작품을 창작혀 우리 조선족의 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하였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대우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한때 일시적인 충동으로 하여 말려들어간  황당한 사건으로 하여 공직에서 추방되여 월급도 없이 원고료에 의해 생계를 힘겹게 유지하고있다. 그 일이 있은지도 10년이 지났지만 그에게는 관대가 따르지 않았고 해탈할수 있는 출구가 열리다가 최근에는 또 막히고 말았다. 그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없다. 몇푼도 안되는 원고료에 기대어 생활을 엮어가고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매일마다 분초를 다투며 글을 써내야 하는 생계형작가의 운명을 면치 못하고있다.문학은 그에게 “밥그릇”으로 되였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부적”으로 되여버렸다. 묻노니 그가 무슨 죄를 범했다고 그의 인생과 문학의 행로에는 지속적으로 찬비만 내리는가. 하지만 김혁씨는 이런 처절한 삶에 주눅이드는 약자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강렬한 욕망과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나이다. 그는 이렇게 자기의 속심을 거침없이 들어내고있다. “남과 달리 단 한곳에 아집을 거는것은 기실 괴로운 일이다. 어쩌면 줄곧 예술적인 요구와 현실사이의 간극에서 괴로워하고있는 나는 나 자신의 률법대로 살아가는 실성한 인간일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유폐된 자아를 지니고 세상으로부터 중절된 인간일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생의 어느 시기 블랙홀에 잘못 빠져들어가 중력을 상실해 버린 사람일수도 있다. 하지만 주어진 운명을 속여 비켜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미 나는 혼자서 쉼없이 달리는데 익숙해 있다. 스스로의 무드를 만들고 그로서 생성되는 엔돌핀에 도취되는 나는 문학과 예술이라는 거대한 씻김굿의 휘모리에 신들려 있다. 속박없는 본연의 삶에 대한 동경은 자기구제의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 그 내가 달려가는  궁극은 문학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숙명으로 문학이라는 이 황금의 밭뙈기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거급날것이다”. “문학이라는 궁극의 다리를 건너는 나의 ‘오체투지(五体投地)’의 행보는 계속 될것입니다. 젊음과 어제를팔아 걸어 온 이 길을 진통속에서 마저 걸어갈것입니다. 멈추지 않을것이며 에돌아가지 않을것이며 더욱이 샛길로 빠지지 않을것입니다”.   욕망과 신념과 꿈이 없는 무기력과 좌절과 절망은 죽음의 모습이며 욕망과 신념과 꿈은 가능성이며 밝은 빛이다. 나는 김혁씨가 마라톤 선수처럼 끝까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용기를 갖고 문학의 산상봉을 톱아오르는 성스러운 길에서  지난날의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부단한 도전과 실험을 거쳐 문학의 새로운 금자탑을 구축하길 바라마지않는다.  내가 읽은 어느 한 책에 의하면  독자가 소설가에게 “어떤 소설가가 되고 싶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없이 “마지막 작품이 그의 대표작인 사람”이라고 대답하였다. 일리가 있는 대답이다. 문학사를 보면 데뷔작이 대표적작품으로 된 작가가 많다. 하지만 세상뜨기 전의 작품이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가도 적지 않다. 톨스토이 말년의 걸작이라 할수있는 장편소설 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인 이 그 일례이다. 마지막 작품이 대표작이라는 것,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문학성과를 계속 크게 넓혀간다는것, 문학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해서부터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했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계속 성장하고 더 좋은 작품을 쓴다는것은 작가로 놓고 볼때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김혁씨의 경우에는 험산준령이 아닐수 없다.  가는 길에 그 어떤 병풍상서(病風傷署)와 풍상고초가 있더라도 희랍신화에 나오는 시스포스가 끝없이 바위덩이를 산꼭대기까지 짐져 올리는 정신으로  모든 난관을 박차고 일취월장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내가 나이가 많아 그의 최후의 웃음을 볼수 없지만  천당에 가게 되면 먼저 간 동료들과 같이 그의 창창한 앞날을 기원하며 향후 그가 부각할 유종의 미를 감상하면서 축복하리라. “장백산”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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