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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의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을 읽고
2019년 09월 21일 21시 49분  조회:1070  추천:27  작성자: 김혁
 
. 평론 .

세부의 충실성과 총체성의 원리

- 김혁의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을 읽고
 
김호웅
 
 
김혁의 최근 력작 <춘자의 남경>을 읽었다.
 
이 작품이 중일전쟁 때의 종군위안부를 다룬 작품이라고 하니 일부 독자들은 에로틱한 장면, 즉 성적인 욕망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장면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읽었을 것이다. 물론 에로틱한 장면도 있고 짐승 같은 일본군에게 당하는 종군위안부들의 처참한 모습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종군위안부문제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어제와 오늘의 총체성을 볼 수 있다. 총체성이란 무엇인가? 우리 중국에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는 않는다(只见树木,不见森林)는 속담이 있다. 전체가 아니라 국부적인 현상에만 집착한다는 뜻이다. 모택동도 <모순론>에서 이 속담을 인용해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비판한 적 있다. 
 
헝가리의 비평가 루카치(1885-1971)는 발자크를 비롯한 19세기 리얼리즘 작가들을 격찬하면서 그들은 단순히 꼼꼼하고 박진감 넘치는 묘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변증법적 운동의 과정 속에 있는 역사적, 사회적 현실의 총체성을 포착했다고 했다. 총체성은 작품에 반영된 현실의 부분들이 그 나름의 개별적 구체성을 지니면서도 서로 유기적 관련을 맺어 보편성의 차원에 도달함으로써 획득된다. 말하자면 인물이나 상황을 묘사할 때 특수한 것과 보편적인 것, 개별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을 통일시킬 때 소박한 묘사의 수준을 넘어서는 ‘올바른 문학적 재현’을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총체성은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말한다.
 

 
 
<춘자의 남경>은 종군위안부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되 연변, 남경, 마쯔야마(또는 도꾜)를 배경으로 3대에 걸치는 조선족, 중국인과 일본인의 갈등과 충돌, 력사의식의 변화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게 단순한 염정소설이나 전쟁소설과 다른 이 소설의 매력이요, 성취라 하겠다.   
 
구체적으로 보기로 하자. 
 
이 작품은 일본 시고꾸 마쯔야마라는 도시의 봇장 시계탑 앞에서 시작되고 봇장 시계탑 앞에서 끝난다.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조선족 청년 종혁이와 그의 후배인 아릿다운 일본 아가씨 하루꼬의 사랑이라는 틀 속에서 주어지는 종군위안부들의 이야기, 따라서 이 소설은 하나의 액자소설의 구조를 취하며 전체적으로 정교한 일제 손목시계를 련상케 한다. 
 
수많은 작은 치륜들이 서로 맛물려 하나의 정교한 시계를 만들듯이 수많은 개별적인 세부들이 교묘하게 직조되어 총체성을 만들어낸다. 
 
평생 종군위안부의 상처를 안고 연변의 시골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이름이 춘자라면, 이 할머니의 손자며느리가 될 일본 아가씨의 이름이 하루꼬, 즉 춘자이다. 종혁이와 하루꼬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인데 종혁의 할머니는 남경에 종군위안부로 잡혀가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런데 하루꼬의 할아버지는 남경에서 종군위안부들을 짓밟은 일본군인이다. 앙숙이라 할까, 철천지원수가 서로 만난 셈이다. 하나꼬의 할아버지가 애용하는 파이프는 금릉(金陵), 즉 남경 산(产)인데 하나꼬가 할아버지에게 선물하고자 남경에서 사온 파이프에도  금릉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있다. 이는 중일전쟁 때 할아버지가 분명 남경에 주둔했고 종군위안부들을 다쳤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는 인물이나 사건, 장면, 대화, 소도구, 지어는 작중인물의 이름까지도 전반 시대상황 속에서 기기묘묘하게 련결된다. 이들은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내적 련관성을 가지고 정교하게 맞물려서 총체적인 의미를 창출한다. 뿐만 아니라 시종 현념을 깔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되 세부에 대한 묘사를 통해 개별적인 부분들의 구체성과 생동성을 보장함과 아울러 적재적소에 자유모티프를 깔아 독자들에게 필요한 력사지식과 문학지식을 주고 “적절한 숨돌리기”의 여유를 갖게 한다. 리얼리즘의 최고의 경지, 즉 세부의 충실성과 함께 전형적인 환경에서의 전형적안 성격을 창조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특히 이 작품은 풍상고초를 겪은 종혁의 할머니의 형상과 군국주의의 화신이라고 할만한 하루꼬의 할아버지의 형상도 잘 그렸다. 
 
종혁의 할머니나 하루꼬의 할아버지는 모두 고양이를 좋아한다. 종혁의 할머니가 자기가 기르는 고향이들에게 남경에서 수난을 당한 친구들인 순화, 광옥이, 옥분이, 영신이, 혜옥의 이름을 붙여주고 눈 감을 때까지 친구들을 그린다. 그에 반해 하나꼬의 할아버지는 남경시절에 사용했던 파이프를 평생 간수하고 남경시절부터 즐겼던  옥루(玉露)라는 중국 차(茶)만을 마신다. “옥루”란 문자 그대로 여성의 성기에 맺히 이슬을 의미한다. 하나꼬 할아버자의 오리엔탈리즘 적인 취미와 향수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또한 작품의 적재적소에 다도, 하이꾸, 진달래와 같은 일본문화와 조선족문화를 의미하는 상징을 깔아 인물성격을 안받침하고 사건의 분위기를 창출한다. 다도, 나쯔메 소세끼, 하이꾸를 통해 일본문화의 저변에 흐르는 화, 경, 청, 적(和、敬、清、寂)의 철학과 휴머니즘, 예술정신을 은은하게 드러냄으로써 단순한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가해자인 일본에 대한 다면적인 이해를 가져오고, 새로운 세대들의 갈등과 의식의 전환을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연대(连带)와 평화의 가능성을 예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는 진일보 검토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첫째는 다도(茶道)를 “차도”라고 한 것은 물론 편집의 차실이겠지만, 다도의 미의식과 본질에 대해 좀 더 따져보아야 한다. 다도의 미의식을 화, 경, 청, 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도는 본질적으로 일기일회(一期一会, 평생 한 번 주어지는 만남)의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즉 일본문화 고유의 단발성(单发性)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벚꽃이나 꽃꽂이, 스모 역시 그러하다. 
둘째는 일본의 독특한 에로스문화가 전시체제에서 어떻게 이용되었는가? 왜 젊은 병사들, 지어는 고등교육을 받은 군관들까지도 짐승보다 더 성에 집착했는지를 구명할 필요가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일본군의 사망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들에게 위안부가 필요했고 일본군은 성적 행위를 통해 공포와 절망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일례로 가미가제특공대는 비행시간이 20시간도 안 되는 초보 비행사들에게 출전을 앞두고 녀자들과 만나게 했다. 전투기에 목표물까지만 날아갈 수 있는 제한된 연료를 싣고 사지(死地)로 날아가야 하는 비행사들, 그들이 녀자들을 상대로 미친듯이 섹스를 함으로써 잠시나마 공포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녀자를 전혀 모르는 소년 비행사들은 능갈친 여자들 앞에서 오히려 물러서면서 빌빌 울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들 역시 전쟁의 희생품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군을 천편일률로 야수(野兽)같은 인간으로 너무 단순하게 묘사하지 않았나 한다. 
 
 
 
총적으로  <춘자의 남경>은 총체성의 원리, 액자소설의 틀, 다양한 성격과 갈등, 새로운 세대의 선택, 그리고 섬세한 소설적 언어, 기묘한 소설적 기법과 장치로 종군위안부라는 피눈물나는 역사를 증언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예술적으로 제시한 우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고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오늘, 이 작품은 자라나는 세대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필독서로 되리라 생각한다.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 2019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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