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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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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울음소리 한가닥 들을작시면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3578  추천:73  작성자: 김혁



닭울음소리 한 가닥 들을작시면
- 을유(乙酉)년 잡감



김 혁



이 세상 닭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싶었던 때가 있었다. 소학시절 《밤중에 우는 닭》이란 소책자를 보고서였다. 빈하중농들의 고열을 더 짜내기 위해 지주 놈이 신 새벽에 닭장으로 기여 들어 자는 닭을 들쑤시면서 닭울음소리를 내게 하다 들통이 났다는 아동이야기. 문화대혁명의 여파에 국민모두가 환혹(幻惑)에서 깨지 못한 풍토에서 그 이야기는 붉은 홍소병 이였던 나에게 닭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본격적인 기자로 발탁되기 전까지 내가 하고있던 일이 양계장부란공이였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적다. 연길의 동광양계장에서 1년 남짓이 달걀을 깨웠었다. 밤잠을 바로 자지 못하면서 부란기 속의 달걀들이 열을 고루 받도록 반시간에 한번 꼴로 달걀을 번져놓는 따분한 짓거리, 몹시 힘들었던 나는 달걀이 깨나는 시간이 21 일 이여서 망정이지 인간처럼 열 달이 아님에 안도를 머금었었다. 그러나 그런 경력 때문에 닭과 나 사이는 여느 때보다도 그 누구보다 도타워 졌다. 지금도 혹시 슈퍼에서 들렸다가도 가금 알 매장에서 나는 달걀을 손에 올려놓은 채 멍청하니 회심의 미소를 짓기가 일쑤다.



올해는 닭의 해



닭이 사람들과 친해진 지는 약 5 천년쯤 된다고 한다. 닭은 야계(野鷄)가 원래 종자였다. 인도나 동남아지방에서 맨 처음 야생 멧닭을 잡아다 사육 개량한 것으로, 우리민족에게는 6,7세기에 들어온 것으로 문헌은 전하고 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도 꼬리 긴 닭이 등장하는데 삼국시대 이전부터 길러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삼국지 동이전》이나 《후한서》《해동력사》에는 조선에서는 꼬리 긴 장미계(長尾鷄)를 키운다는 기록이 있으며 닭을 부를 때 《구구 라고 한다》고 씌여있다. 고대 인도사람들은 고구려를 《쿠쿠테 에스바라》라고 불렀던 바, 범어(梵語)로 쿠쿠테는 닭, 에스바라는 귀(貴)함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닭을 서조(瑞鳥)로 여겼다. 어둠 속에서 려명을 알리고 빛의 도래를 예고하기에 천조이고, 태양의 상징으로도 인식되어 왔다.《주역》에서 봐도 그렇다. 닭은 팔괘(八卦)에서 손(巽)에 해당하고, 손의 방위는 남동쪽으로, 려명이 시작되는 곳이다. 중국의 《회남자(淮南子)》에서도 《해 뜰 때면 천하의 닭들이 모두 따라서 운다》고 하여 닭이 새벽을 알리는 령물임을 밝히고 있다.
시계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을 알곤 했다.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면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하여 뫼를 짓고 제사를 거행했다. 고려시대에는 시보용(時報用)으로 궁중에서 닭을 길렀고 또 먼길을 떠날 때 시간을 알기 위해 몸집이 작은 당닭을 갖고 갔다는 기록도 있다. 침계(枕鷄)라고 하는 아주 작은 닭이 있어서 속이 빈 베개 속에 이 닭을 넣고 자면 자명종처럼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려 준다고 했다.
닭이 벽사( 邪)의 능력을 갖는다는 속신(俗信)도 그에서 발상 된 것이다. 사람들은 동이 틀 때 횃돼에 올라가 새날이 옴을 예고하는 닭 울음소리와 함께 어둠이 끝나 밤을 지배하던 마귀나 유령도 물러간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액막이나 재앙 쫓기에 닭이 많이 등장했다. 새해를 맞은 가정에서는 닭이나 룡, 범을 그린 세화(歲畵)를 벽에 붙여 잡귀를 쫓고 액이 물러나기를 빈다. 닭 머리를 문설주에 매달거나 닭 피를 집 주위에 뿌리기도 했다. 한편 복날 닭을 먹는 것도 삼복의 류행병을 막자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새벽에 닭의 울음이 열 번이 넘으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고 닭이 제때에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닭은 출세와 공명(功名)을 상징하는 그림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의 그림을 높이 걸었다. 닭이 이고 있는 볏은 관(冠)과도 흡사한데 관을 쓴다는 것은 바로 벼슬한다는 뜻, 그리고 수탉, 즉 공계(公鷄)의 公과 功의 음이, 울음 운다는 鳴과 名의 음이 같은 데에 착안해서 서로 련상시킨 것이다.
결혼식 초례상에는 반드시 닭이 필요하다. 혼인은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평생 의례인데 이때에 닭이 등장하는 것은 처자를 잘 보살피는 수탉의 도리와 알을 잘 낳고 병아리를 잘 키우는 암탉의 도리를 부부가 되는 이들에게 인지시켜 주기 위함이라고 본다.
닭은 사람과 늘 함께 하는 가축이므로 그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닭에 관한 속담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있다.
《소 닭 보듯 한다 》《닭 싸우듯 한다》《닭도 제 앞 모이는 긁어먹는다》《닭의 볏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 외에도 닭대가리라는 말은 사려가 깊지 못하고 지혜가 얕은 사람을 비꼬는 말이요, 닭 고집이라는 말은 하찮은 일에 고집을 부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가고 옴을 상징하는 닭의 울음소리는 인간에게 온갖 희비를 엇갈리게 하면서, 우리의 민속과 문학 작품에서 많이 형상화되고 있다.
닭아, 닭아 우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간단 말인가 !
고전소설 《심청전》에서 공량미 300석에 팔려 가는 심청이가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자탄하는 장면이다.
고기가 귀했던 옛날, 따로 먹이를 주지 않아도 지렁이 메뚜기 따위의 벌레와 갖가지 식물의 씨앗들을 주워 먹으며 자라서 살이 오지게 붙은 닭은 가난한 서민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 밑천이었다. 약효도 우수하여 명나라의 본초학자 리시진은 《본초강목》에서 《중국사람들은 조선 닭이 좋다 하여 이를 구하러 조선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적었다. 《동의보감》에서는《닭고기는 허한 것을 보 하는데 매우 좋아서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처방에 많이 사용된다.》고 하였다.
그중 일미가 삼계탕이 아닌가 싶다. 우리 조상들은 지친 몸을 보 해주고 내장을 따뜻하게 하여 기운을 끌어올리는 좋은 음식인 삼계탕으로 삼복더위에 떨어진 원기를 되살렸다.
펄펄 끓는 뚝배기 속에 보얀 국물, 인삼과 찹쌀, 밤, 대추를 닭의 밑에 넣고 푹 고아 우러난 삼계탕, 그 맛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류는 어느 소설에서 삼계탕을 최고의 음식이라 극찬하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젓가락을 갖다대면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뼈에서 떨어져 나와 쫀득하고 하 얀 덩어리로 변한 찹쌀과 함께 수프 속에 녹아든다. 봄에 녹아 내리는 빙 산처럼...》
아무튼 닭은 약용으로나 고기 맛으로나 그 가치가 뛰여날 만큼 우리한테만 주어진 소중한 보물이다.
요즈음에 와서 시골이나 유원지 같은 곳에 토종닭으로 곰을 해주는 음식점을 흔히 볼 수 있다. 연길에서도 북쪽으로 교외를 벗어나 대성이라는 촌마을에 이르면 닭곰을 해주는 집이 저 그만치 50여 집, 《닭 미식 촌》으로 불리고 있다.



닭에 대한 기문취담


세상에서 가장 알찬 사업은? - 알(계란)장사
세상에서 가장 야한 닭은? - 홀딱(닭)
닭은 닭인데 먹지 못하는 닭은? - 까닭
세상에서 가장 급한 닭은? - 후다닥(닭)
숨이 넘어가는 닭은? - 꼴까닥(닭)
병아리가 제일 잘 먹는 약은? - 삐약

딸애가 재밌다며 내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유머이다. 여느 짐승처럼 닭에 대한 기문과 취담은 많고도 많다.
닭에 대한 애착은 다만 우리 민족만이 있는 것 아닌 것 같다. 닭에 대한 끈끈한 인연을 가진 나라가 있다. 프랑스다.
프랑스 인은 원래 골 족이라고 하는 프랑크족의 한 부족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여기서 골(Gallus)이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닭이라는 뜻이다. 중세 시대, 골의 닭은 종교적인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고 집정내각에서 사용한 식기와 국새(國璽)에서도 닭은 새겨져있었다. 그것은 희망과 믿음을 상징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집정하면서 닭은 홀대를 받았다. 그는 닭보다 독수리를 즐겼다.《닭에게 무슨 힘이 있겠소. 그런 작은 미물이 프랑스와 같은 제국을 상징할 수 없소.》이것이 나폴레옹님의 지론이다. 나폴레옹에게 멸시 당하던 닭은 제3공화국에 이르러 거의 공식적인 상징으로 되였다. 국민 근위대의 깃발과 의복 단추에도, 19세기말에 건설된 엘리제궁의 철책에도, 20프랑 짜리 금화에도 모두 닭의 모습이 주조 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는 4년간에 걸친 독일군의 점령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는데 당시 닭의 용기를 빌어 항독운동에 나선 프랑스인의 담을 북돋기도 했다. 닭이 나치스의 독수리와 맞서 싸운 것이다.
근래에는 특히 스포츠 행사를 위시하여 해외에서 프랑스를 환기시킬 때 주로 사용된다.
일본과 우리 민족사이에도 닭을 두고 벌린 력사적인 암투가 있었다.
한일합방 직전에 조선에서는 일본에 보급되던 백색종자 닭을 들여와 민간에 나누어주고 기르도록 장려했다. 그러나 곧 나라가 일본의 마수에 떨어지자 뜻 있는 우국지사들은 《본디 흰 닭은 귀신으로 둔갑을 잘 한다》는 말을 퍼뜨렸다. 울긋불긋한 조선 닭을 기르던 사람들은 흰털의 일본 종을《왜 닭》이라고 부르며 일본 사람을 보듯이 싫어했다.
몇 해전 중앙TV에서 보았던 기사 하나가 떠오른다. 서북부 신강일대가 메뚜기 떼의 습격을 당했다. 하늘땅을 가맣게 메우며 덮친 메뚜기 떼는 평방 당 4,000마리나 되었다. 예산이 부족해 항공방제를 하지 못하게 되자 지혜로운 사람들은 닭을 풀었다. 1만 마리나 되는 닭 장군들이 메뚜기 소탕전에 나서 인간과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켜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취담을 들어보면, 미국에서는 해마다 기발하고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연구업적을 이룩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이그 노벨상》이라는 패러디 노벨상이 있다. 뉴욕의 과학유머잡지에서 선정하는《이그 노벨상》은 품위가 없이 천하다는 단어와 노벨이라는 단어를 합친 신조어.
이 잡지의 편집인은 《과학자들 가운데 노벨상을 결코 수상하지 못할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며《그러나 그들의 연구는 과학적 흥미를 유발하고 과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었기에 이 상을 설립했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올해의 《이그 노벨상》은 《닭은 멋진 외모의 남성과 녀성을 좋아한다》는 연구를 수행한 스웨덴 스톡홀름대의 매그너스 연구팀이 차지했다.
이들이 닭들에게 많은 인물사진을 보여준 결과 닭은 건장하고 잘 생긴 남성과 긴 머리에 도톰한 입술을 가진 잘 생긴 녀성만을 쫓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리상형을 보는 눈에서 사람과 닭이 비슷한 기호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이 연구팀의 연구결과.



닭과 함께 춤을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칭송된다.
머리에 있는 볏(冠)은 문(文)을 상징하고, 삼지창 같은 발은 내치기를 잘 한다 하여 무(武)로 여겼으며, 적과 용감히 싸우므로 용(勇)이 있다고 하였고, 먹이가 있으면 자식과 무리를 불러 먹인다 하여 인(仁)이 있다 하였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을 알려주니 신(信)이 있다 하였다. 게다가 우리 인간에게 알과 고기를 주니 그보다 더한 익조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 조상들의 생각이었다.
닭은 다른 가축에 비해 취소(就巢, 알을 품음)성이 강하다. 몸은 작지만 한꺼번에 20알 정도를 품어 부화시킬 수 있다. 알을 품으면 매우 열심인데 식음을 끊고 뜨거운 가슴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새매 따위의 육식 새들이 병아리를 낚아채려 들면 급하게 새끼들을 불러 품안으로 모으고 만약 병아리가 새들의 발톱에 걸려들면 어디에 그런 힘과 용기가 숨어 있었던지 날개를 푸드득 이며 크게 싸움을 벌인다.《암탉이 제 새끼를 품안에 모으듯 한다》는 말은 바로 지극한 모성애를 상징하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닭의 그런 모성에 감격하여 《어미 닭과 병아리》라는 시를 지은 적 있다.
제 새끼를 건드리면/목털은 곤두서서/ 고슴도치를 닮았네/ 낟알을 찾아내면/ 쪼는 체만 하고/ 새끼 위한 마음으로/ 배고픔을 참네
사실 닭처럼 부지런한 동물도 흔치 않을 것이다. 모이를 쪼지 않고 멍하니 있는 닭을 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알을 품을 때와 홰를 치며 울 때 정도만 빼 놓고는 하루 종일 먹이를 먹으러 고개를 조아리며 다닌다.
또한 수탉은 그 자부심과 사나움,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점을 닭싸움이라는 일종의 스포츠에 활용해왔다. 볏을 곤두세우고 상대에게 용감하게 달려드는 모습에서 닭의 강인함과 용맹성을 찾을 수 있다.
또 수탉이라는 이름은 남성의 성적 능력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수탉은 남성이 갖춰야 할 조건인 가정을 지키려는 용기와 시간의 변화를 판단하는 현명함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리상적인 남성 상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생태학자인 데스먼드 모리스는 닭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닭은 자연상태에서는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로서 농장이나 야생지, 모이통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흔히 《쫓기서렬》로 알려진 사회적 위계(位階)질서를 발전시킨다. 자기보다 우인 닭에게는 복종하고, 아래인 닭은 거느리는 것이다. 개개 닭들이 무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안정적인 질서를 유지하는데, 많게는 90마리의 무리에서도 그 서렬이 유지된다고 한다. 닭은 한낱 흙 속을 헤집고 뒤져 벌레와 풀 따위를 알아서 찾아 먹는 놓아먹이는 새이다. 하지만 그들은 해와 바람과 별을 알았다. 이는 자연순환에 깊이 조률돼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이들에 비추어 볼 때 혼란에 허둥대는 우리의 사회적 위계와 질서는 극히 중요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누구나 다음은 무슨 띠의 해인가 살피고 그 띠 동물에서 새해의 운수를 예점(豫占) 하려 한다. 새로운 띠 동물을 대하면서 그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를 통해 어떤 새로운 기대를 걸어 보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올해에는 을유년 닭의 해, 우리모두 시간을 알리는 닭처럼 새끼를 품는 닭처럼 새매와 싸우는 닭처럼, 자부심을 지니고 사랑을 알며 신의를 지키는 강인한 인간으로 자신을 가꾸어 봄이 어떨가!
불교에서는 닭을 깨달음의 주체를 지닌 동물로 여기고 있다. 닭울음소리에 귀기울인 서산대사의 일화가 그 일례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때 70의 나이로 승병을 모집하여 서울을 되찾는 데 공을 세운 승려. 큰 의문에 부닥쳐 울증(鬱症)에 빠져 있던 서산대사가 하루는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낮닭이 홰를 치며 크게 울었다. 닭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대사는 의문이 풀리면서 확연히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대사는 다음의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홀연히 본래의 내 집을 얻고 보니(忽得自家底)/모든 것이 다 이러할 뿐(頭頭只此爾)
천만금의 보배도(萬千金寶藏) 본래 한 장의 빈 종이일 뿐이로다. (元是一空紙)
이제 외마디 닭 울음소리 들을작시면 (今聽一聲鷄)/장부의 할일 모두 마쳤어라(丈夫能事畢)

대사의 이 시구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바라나니 을유년 닭 해를 맞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짧은 닭 울음이 깨달음의 기연(機緣)이 될진저.


원숭이해를 보내면서
- 허강재(虛崗齋)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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