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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인가 소학에 다니는 딸애가 느닷없이 내게 선물꾸러미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웬일이냐 따져물으니 오늘이 곧바로 부친절이란다. 그런 명절도 있었나 설둥해하며 무척 감격한 기분으로 딸애의 선물꾸러미를 헤쳤다. 색종이로 곱벌로 감싼 그것은 영화디스크 한 장이였다. 영화에 편집광(偏執狂 )적인 애착을 가지고있는 나의 기호를 헤아려 딸애는 선물도 꼭 내 흥심에 사개맞게 사온것이였다. 영화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명감독 기다노.다께(北野 武)의 작품 <<불꽃>>이였다.기실 나는 이 영화디스크를 언녕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딸애가 사온 것은 시장의 불법장사군들이 자작한 해적판이였다. 거듭 보았었고 영상도 씨원치못한 그것을 나는 VCD에 밀어넣었다. 부친절에 딸애가 열심히 마련한 선물이라는 감회에 쌓여 다시한번 보기 시작했다.
아버지라는 호칭을 조금은 부끄럽고 서먹서먹하면서도 벅차게 듣던때가 어제같은데 어언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딸애가 태여난지 며칠안되던날 애의 기관지에 이상이 있으니 한번 검진을 하라는 의사들의 권장이 있었다.나는 사뭇 긴장해지는 마음을 안추리며 딸애를 투시계기아래 눕혔다.의사가 주먹보다 조금 더 작은 모래주머니를 딸애의 양손목에 지눌러놓자 딸애는 포박된 어린 양처럼 팔다리 한번 바동이지 못한채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는 그저 애모쁘기만 하였다. 의사들이 나에게 병력지를 내밀었다. 아이 이름을 짓지못했으면 그저 번호라도 달라고 했다. 허나 애가 태여나기전에 벌써 10여개의 이름중에서 사금일 듯 지은 이름이 있었다. 딸애의 이름은 소정, 작은 정자라는 뜻이다. 호젓한 명소에 작고 아담한 정자하나, 그곁에 애솔도 자라고 풀과 꽃도 어우러져 있고 개여울도 에돌아 흐르는 작은 정자, 딸애에게 몰부어지는 나의 애모쁜 정감을 담은 이름이였다. 그리고 성명을 적는 란곁에 년령을 적는 란이 있었다. 나의 펜은 그만 주춤 멈추어서고 말았다. 딸애는 이제 겨우 태여난지 여덟날밖에 되지않았던 것이다. 몇세라는 세(歲)자를 지우고 그란에 여덟날이라고 딸애의 나이를 적으며 나는 내곁에 살며시 다가온 하나의 작은 생명을 피부로 실감했고 이 여리디여린 생명을 위해서는 내 모든 것을 바쳐야겠다는 어떤 결의 같은 것을 무언중에 머금게 되었다. 그것이 아빠라는 명분으로 처음 내가 가져보는 상념이였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훌륭한 아빠의 의무를 리행해 나가지못한것같다.
청빈한 문인으로 내내 생활에 쪼들렸고 엉덩이 붙일 달팽이집조차 마련치못했던 나는 한달도 못된 강보의 딸애를 안고 또 이사길에 올라야했다. 들추는 운전실에서 엔징소리에 소스라쳐 놀라 우는 딸애를 조심스레 받쳐안고 나는 <<미안해 정아, 미안해 정아>> 하고 몇번이고 속으로 되뇌였다.
일곱 번째로 이사했다는 집이 겨우 8평방, 명색이 작가랍시고 지고이고다니던 수천권에 달하는 책짐을 한쪽벽에 담벽마냥 쌓아놓으니 집에는 누울 자리조차 변변치못했다. 다리가 책상밑으로 들어가고 머리가 가마쪽에 바싹 다가붙은 불썽 사나운 형국이였다. 그집에서 딸애는 돌생일까지 자랐다.
아무런 탈도 없던 애들이 너나가 기다리는 생일이면 탈이 생긴다고하던 늙은네들의 말이 그른데 없었다. 돌생일을 나흘 앞두고 딸애가 평가마에 손을 데이였던 것이다. 원체 다람이굴같이 작은집이라 딸애의 안전을 두고 밤을 설치며 걱정했지만 사달은 그만 나고야말았다. 손에 붕대를 칭칭 동이고 딸애는 생일을 맞았다. 생일상우에 차려진 풍성한 먹거리를 덥석 잡아쥐다 손이 아파 딸애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붕대를 동인 손이 생일 비디오에 그대로 찍혀 나왔다. 지금도 간혹 생일 테프를 다시 돌려볼때면 그 모습이 내게는 살촉같이 에이는 시각의 아픔으로 도져온다. 그날저녁 붕대를 동인 딸애의 조갑지같은 손을 보듬어쥐며 나는 못나게도 잠든 딸애의 볼에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기다려 이제 아빠가...>>하고 자기도 모를 말을 되뇌이고 또 되뇌이였다.
허나 궁핍하기 짝이없는 문인생활과 불우한 가정배경의 응달에 내쳐졌던 나는 여전히 훌륭한 아빠역을 연역해 나가지 못했다. 부모들의 혼인의 파렬로 딸애는 다시한번 애어린 나이에 신심을 혹사당해야 했다.
매양 어미집에서 주일에 한번꼴로 아이를 나의 셋방집에 데려오면 둘이서 쓸쓸한 주말을 보내군 했다. 나는 밤늦도록 아이와 동무하여 점토로 각종 동물을 만들어 창턱에 줄느런히 놓군했다. 허나 나의 전부의 시간을 할당해 아이와 즐겨도 아이의 눈망울에 스치는 엷은 애수같은 것을 나는 느낄수 있었다. 놀이터로 가서 애가 즐기는 뜀뛰기(蹦蹦床)를 하기도 했다. 두팔을 나래처럼 펼치고 한 마리의 새처럼 반공중으로 치솟으며 훌쩍 훌쩍 딸애는 뜀을 잘도 뛰였다.그런 딸애를 지켜보며 나는 (어서 나래를 굳혀서 저렇게 훨훨 날아야겠는데)하고 자괴와 기대에 어린 착잡한 눈길로 딸애를 지켜보군 했다...
언젠가 TV의 동물세계프로에서 남극의 펭귄이 새끼낳이하는 장면을 보고 심히 감동을 받은적이 있다. 그 지옥같은 혹한속에서 펭귄은 알이 얼어터질가 저어되여 두발우에 놓고 깨운다고 했다. 장장 60여일을 한자리에 못박힌 듯 붙박혀 알을 두발우에 보듬어놓고 새끼가 시련많은 세상에로 얼골을 내밀기까지의 그 엄혹한 과정을 다름아닌 숫펭귄이, 아빠펭귄이 완수해 나가는 것이다. 아, 일개 미물같은 동물도 이러할진대 우리가 무엇이 모자라서 무엇이 두려워서 아빠라는 그 이름의 성스러움을 지키지못하고 그 의무를 잘 감당해 나가지못하는걸가?
요즘 한국에서 수백만 독자들을 열루에 젖게했고 연변독자들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온 소설 <<가시고기>>는 불치에 걸린 자식을 위해 자신을 바쳐가는 아버지를 그린 감동소설이다.
몇해전 역시 한국의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던 소설 <<아버지>> 역시 아버지의 바다같은 다함없는 사랑을 다룬 동일부류의 작품이였다. 일전 <<아버지>>의 작가 김현정씨가 연변 행차를 했을 때 연회석에서 곁자리에 동석을 했던 나는 어떻게 되어 이 작품이 그렇게 히트할수 있었는가 비결을 물은적이 있다. 그러자 김현정씨가 요즘의 우리 아버지들이 아버지로서의 명분과 역활을 잘 지켜나가지못하고 있고 IMF와같은 엄혹한 시련앞에서 한 가정이나 한 개 사회는 아버지의 넓은 정감과 든든한 어깨를 수요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중들의 심태에 <<아버지>>라는 작품이 꼭 걸맞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고 그말에 동감으로 고개를 주억인적있었다.
아빠의 지혜와 힘이 수요되는 사회, 아빠의 위치가 터를 잡아햐하는 가정에서 아빠라는 명분을 지니고있는 나 그리고 당신들은 할 일이 너무나 많음을 책을 읽은 감흥보다 더 크게 느끼게 되였다.
문예기자 10여년에 오락권에 대해 도타운 정감을 가지고 있지만 원체 그닥 좋아하지 않던 녀가수 하나가 있었다. 미안한 토파이지만 그의 이름은 한홍(韓紅), 실팍하기 그지없는 몸매와 지지리 못생긴 용모로 팔등신 미녀들이 란무하는 중국의 거대한 가요계에 비집고 나서는 그녀에게서 미감대신 반감을 느꼈고 괴물을 보는듯한 눈길로 그녀를 지켜보거나 그녀가 등장하면 TV의 채널을 다른곳으로 돌려버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번 그녀가 작사작곡하고 친히 부른 노래 한수와 그 노래에 깃든 사연을 듣고 온몸으로 전율하고 말았다.
남방의 모 도회지에서 있은 진실한 사연, 젊은 아버지 하나가 네 살잡이 아들애를 데리고 놀이터로 가서 공중삭도를 탔는데 사고로 그 삭도가 추락하게 되었다. 삭도우에 탔던 전원 10여명이 모두 죽음을 당했는데 그중에서 딱 그 네 살잡이 아들애만 살아남았다. 삭도가 땅에 꼰지는 순간 아버지가 두손으로 아들애를 받쳐올려 삭도 밖으로 밀어냈던것이였다. 사고현장으로 달려왔던 구조대원들은 눈앞의 광경에 그만 목이메여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애의 아버지는 여전히 창밖으로 두손을 쳐들어 애를 받쳐올린 모양으로 숨졌던 것이다.
이 사건에서 크낙한 감동을 받고 그 지지리못났으나 마음만은 고왔던 한홍이, 아직 처녀 가수였던 한홍이 애의 부양을 맡아나섰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위해 즉흥으로 노래 한수를 지었다. 그 노래는 지금 한홍의 대표작으로 불리고 있다. 한수의 아름다운 서정시같은 그 노래 제목은 <<날이 밝았습니다 아버지>>이다.
<<그날은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던 날이였습니다
아름다움이 동반한 어느 풍경구에서
나는 무원조한 사람들의 눈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소슬한 바람이 불던 그날 아버지는 내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두손으로 나의 새로운 탄생을 만들었습니다
날 떠나지 말아주세요 아버지
이 낯설은 세계를 나혼자 어찌 걸어갈수 있으오리까
그날은 유난히도 별이밝은 밤이였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내손을 잡아주시며 희망은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날 떠나지 말아주세요 아버지
나 이제 아버질 위해 아름다운 화원을 만들어야겠는데요
나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웃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았습니다>>
지금 나는 색안경을 끼고 대했던 한홍의 팬으로 후딱 전변을 하고 말았을뿐더러 이 노래를 곧잘 부르군한다. 구절구절 정감을 허비는 가사를 되뇌일때마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참뜻을 감흥만이 아닌 무거운 음조로 느끼군한다.
우리는 여직껏 모성에 대해서는 소리높이 찬미해왔지만 역시 사랑의 큰 줄기인 부성에 대해서는 그저 무심히 대해 온것같다.
모성과 부성은 서로 농도와 줄기가 다른 양상을 지니고 우리 모두를 보듬고 있다.
모성의 원리는 좋건 나쁘건 모든 것을 포옹하는 <<감싸는 기능>>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에 비해 부성의 원리는 주체와 객체, 선과 악, 상과 하를 분류하고 절단하는 <<끊는 기능>>으로 나타난다. 하여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세절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나중에 정체적으로 진하게 느낄수 있는 크고 근엄한 무언의 사랑으로 표현되여 왔던 것이다. 이 세상의 민족이나 문화권에 따라 이한 원리들은 우세하고 잠재되는 차이를 보이고있는데 우리 조선족의 경우는 모성원리가 압도적이고 부성의 원리는 잠재되여 있는 전형적인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다. 동방에서 관음사상이 모성원리를, 서방에서 기독교사상이 부성원리를 잇게 했다고 전문가들은 그 근원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기쁠 때 터치는 감탄성이나 긴요한 관두면 내뿜는 구원성에서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부르지 아버지를 부르지 않는다. 이렇게 일상에서 체질화로 분류된 사회구조와 정감으로 볼때 우리의 아이들이 아버지보다 어머니을 더 따르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의 어느 조사통계표가 보여준데 의하면 대중가요에서 즐겨 쓰는 낱말의 빈도 가운데 최고로 많은 낱말의 1위가 <<어머니>>, 허나 아버지는 겨우 108위에 처해있다고 한다. 우리 조선족 가요계에서 한때 가사는 툽상스럽기 그지없으나 십분 류행되였던 <<어머니 노래는 많고많지만 아버지 노래는 적었답니다>>는 노래가 그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재미나는 일례라 하겠다. 그만큼 이한 의식구조의 그늘아래 아버지대역을 잘 연역해 나간다는 것은 실로 쉬운일이 아니다.
영국의 가정문제 전문가인 차리드박사에 의하면 현대 아버지들이고보면 너나가 억압적인 배역속에 살아간다고 했다. <<오늘의 문명사회에서 아버지들은 무가내로 몽유병과같은 병태적인 역을 놀고 있다. 안해나 자식들에게는 부유한 상인, 수입높은 골프선수와 형형색색의 플레이보이들이 선망의 상대가 되어있다. 그들은 자기의 남편 자기의 부친이 지위와 금전을 모두 소유한 절대적인 능력자로 될수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나 가정이 지어준 모식에 따라 우리의 아버지들은 자기의 배역을 놀려 애쓰는바 그 모습이 곧바로 어떤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몽유병 환자를 방불케 하는 것이다.>> 그 무형의 억압은 아버지들로 하여금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잃게하고 있고 영욕심을 훼멸시키고 있으며 자기의 신체를 혹사하게 하고 정신을 위축시키고 있다. 사내들은 흔히 자기는 생명의 원천이며 번식의 근본이며 경제생활의 지배자로 여기고 있고 그 의무때문에 뛰고있기에 남자들의 억압감은 날로 커만 가고있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다싶이 류체와 자유락체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회전속도가 크면 클수록 락하속도도 큰바 훌륭한 아버지로 거듭나려하면 할수록 그 기망했던바를 이루기가 더욱 쉽지않은 것이다.
딸애가 선물한 기다노.다께의 영화 <<불꽃>>은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이다. 기다노. 다께가 감독과 주역을 동시에 맡은 영화는 일심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해왔던 한 경관이 사회의 비리와 몰리해속에 서서히 죽어가는 슬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세대주로서 총몫을 떠메지못하여 빈한한 가정과 불치의 병에 걸린 안해때문에 마냥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사건해명중에 죽어간 동료의 미망인과 불구가 된 동료를 위해 수모를 무릅쓰고 사회 깡패들에게서 돈을 꾼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주인공은 나중에 경관으로서 은행을 털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잠시나마의 위안을 남긴다. 그리고 해변가에서 꽃불폭죽을 터치는 안해와 아이를 지켜보며 권총으로 자결한다. 그 찬연한 웃음을 선지피와 함께 흘리며 쓰러지는 이다노 다께의 형상은 내내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다노. 다께는 작품마다 사나이들의 정감세계를 세세히 그려내여 국제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고 영화광인 나역시 이다노의 영화라면 사죽을 못쓴다.
기다노.다께의 영화에는 그 어떤 공식같은 것이 있다. 배우로서는 한눈금 내려온 용모로 너무나 수수하여 어덴가 데데한 보통나그네를 닮은 꼴인 그 자신이 감독과 주역을 동시에 맡는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거의 모두가 중년의 보통시민, 말단사원, 깡패소인물 등 사회변두리 인물이며 모두다 주인공이 죽는 것으로 결말을 맽는다. 영화에 녀성인물이 거의 없다싶이 되어있고 영화마다 시작과 결말부분에 하늘이 나오군 한다. 파아랗고 너넓은 하늘... 영화평론가들은 이다노. 다께에게 <<하늘 콤플렉스>>가 있다고 분석한다. 그에대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이다노. 다께는 그것이 바로 사회와 가정에서 성숙을 보이고 있는 아버지의 심태를 보여주는 징표라 확답한다.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라는 낱말은 여러 가지 색채로 나의 감성사전속에 오버랩되여 있다. 매양 내가 비관하고 우울에 빠졌을 때 매양 처세중에서 자기의 심리상의 엄중한 결함을 느낄 때 작가며 기자라는 명색으로 자기의 성장도로에 대해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각도로 해부해 볼때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나에게 미쳐온 영향을 떼쳐버릴수가 없다. 남들과는 달리 특수한 환경속에서 자란 나에겐 아버지가 셋이다. 강보의 나를 무정히 버렸던 친아버지와 나를 부양해주신 양아버지 그리고 양아버지가 세상뜬후 다시 들어온 이붓아버지 이렇게 셋이다. 피덩이를 무정히 버렸던 친아비는 36년만에 <<내가 니아비다>>고 인제야 문뜩 나타났다. 근엄했지만 나에게만은 언젠나 사근사근했고 친자식없는 유감을 외려 사랑으로 바꿔 나에게 깡그리 몰부었던 양부는 <<문화대혁명>>에서 치른 고생을 빌미로 내가 소학 4학년때 세상을 버렸다. 그후 우리 양모를 네 번째 여자로 맞아들인 얼굴마저 추악했던 양부는 우리가정에 끝없는 불화만 안겨주다가 환갑년을 훨씬 넘긴 나이에 망령되게 또 한번의 리혼을 하고 다섯 번째 로친을 찾아갔다. 이들은 여러 가지 양상의 아버지를 내앞에 펼쳐주었다. 근엄하면서도 깊은 사랑을 가진 아버지, 무정하고 랭혹하기 짝이없는 아버지, 공리와 허영으로 골똑 찬 아버지의 모습을 연극아닌 실생활로 나의 가슴에 락인찍어 주었다. 그렇게 자라오다가 수염터기가 깊어져 이젠 나도 아버지이다. 아버지란 그 이름 의 진정한 함의는 대체 무얼가? 나의 많은 아버지들은 결국 나에게 그렇다할 확답을 주지못했다. 이는 이제부터 내가 주해를 달아나가야할 과제이다.
기다노.다께의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창을 열고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언제봐도 그저 그렇고 그렇던 하늘이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새삼스레 높다.그리고 너넓다. 스모그(매연, 안개)가 짙어가는 요즘세월일지라도 마냥 흐릴줄모르는 하늘을 만들어 가야겠는데, 화초가 우거지고 개여울이 에돌아흐르는 작은 정자의 아름다운 풍경을 무양히 지켜나가기 위해선 맑고 티없는 그리고 너넓은 하늘같은 모습으로 거듭나야겠는데...
요즘따라 되새겨보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웬지 가슴에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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