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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란방과 최승희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5619  추천:75  작성자: 김혁
 

                . 칼럼 .

 

매란방 최승희

 

       김 혁
 

 

 

1

영화 “매란방”이 개봉되면서 세계적으로 다시 중국의 국수(国粹)인 경극에 관심이 모이고있다. “매란방”은 “신도 뛰여 넘을수 없다”는 재능을 가진 전설의 경극배우  매란방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중국제5대감독의 대표주자인 진개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중국과 향항의 톱스타들인 려명, 장자이 등이 열연을 펼쳤다.


영화 "매란방" 포스터

개봉과 동시에 2주 련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관련 드라마, 도서가 제작되며 전국전역에 다시한번 “매란방 열풍”을 일으켰다. 제 59회 베를린 영화제 주요경쟁부문에도 출품되여 베를린에서 유럽지역 개봉식을 가지며 반응이 좋아 영화표가 몽땅 매진되는 등 경극의 매력을 만방에 자랑하고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중국의 경극200년사에서 최고로 지칭되는 천재 경극배우 매란방. 경극에서 녀자역할을 맡는 남자 배우 화단(花旦)연기의 일인자로 중국대륙은 물론 미국 브로드웨이에 까지 진출하며 전세계에 경극의 아름다움을 알린 신화적 존재이다.

매란방은 1894년 강소성 양주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큰아버지 모두가 경극계의 명배우들인 경극세가(世家)에서 태여났다.
1934년경 두각을 나타내였고 그후 20여 년 간 북경을 중심으로 활약하며 경극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매란방은 새로운 형식의 녀장남우를 연기하면서 형식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고전극에 일대전환을 가져왔는데, 극의 내용과 연출법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19, 1924, 1956년의 3회에 걸친 일본 공연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또 그동안 미국, 쏘련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순회공연을 통해 경극의 존재와 그 진가를 세계에 널리 인식시켰다.

 매란방과 세계적인 희극대가 채플린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후에도 경극의 전통적 체계를 보전하면서 그 개혁과 발전에 힘썼다. 배우로 활약하는 한편, 중국 희곡연구원 원장을 맡아 후배 육성에 힘쓰고 많은 배우를 배출했다. 나아가 전국인민대표, 중화전국문학예술계련합회 부주석 등 요직에 있으면서 문화적정치적으로 많은 공적을 남겼다.

 모택동 주석의 접견을 받는 매란방 (우로부터 두번째)


대표작으로는 “천녀산화(天女散花),”백사전(白蛇传)”, ”귀비취주 (贵妃醉酒)”, ”패왕별희 覇王別姬”, ”대옥장화 (黛玉葬花)”등이 있다.

 중국 우표에 오른 매란방 

매란방을 경극계의 공전절후한 왕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 그의 인기를 실감하는 작은 일화를 곁들어 본다.

매란방의 출연료는 금괴 10개에 상당했다고 한다. 해방후 부자가 사라진 중국, 당시 최고 로임을 받는 사람이 바로 매란방이였다.
50년대 국가 주석 모택동의 로임은 408.8원(인민폐), 매란방은 자유직업자인만큼 출연료가 순 수입이었는데 1956년 매란방이 주동적으로 월급을 낮춘 후의 로임이 2100원(인민폐)에 이르렀다. 당시 청화대학의 교수는 매달 식사비 8원(인민폐)으로 산해진미를 먹을 수 있었다는 상황에 대비해 매란방의 로임 2100원은 어떤 개념인지 가히 가늠할 수 있다.
때문에 항미원조때 대포도 아닌 비행기를 직접 기증할 수 있었다는 매란방의 경제력이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2

여기 또 한분의 춤의 대가가 있다. 바로 민족 신무용의 개척자- 최승희이다.

강원도에서 태여나 서울에서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최승희는 1926년 일본에 류학하여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에게서 춤을 배웠다.


1929년 귀국하여 서울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차리고 1930년 2월 경성공회당에서 처음으로 신작발표회를 가졌다. 이 공연은 한국인 최초의 독자적인 춤 공연이였다.
두차례 일본 류학 이후에 국내에서 독자적인 근대 무용 공연을 가지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게 되었고 영화에 출연하고 자서전을 출간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1930년대 후반부터 유럽과 전미를 감동의 물결로 휩쓸며 '동양의 진주' '금강산의 화신'이란 갈채를 받았으며 피카소, 장 콕토, 로맹 롤랑,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당대 최고의 명사들을 반하게 했다.

 1947년 조선으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세워 소장에 취임하고 조선춤을 체계화하며 무용극 창작에 힘쓰다가1969년 타계했다.

 
조선 최초의 월드스타였던 최승희, 최승희의 삶은 그야말로 “격동의 20세기”를 관통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얼음과도 같은 시대에 그는 오로지 춤만 고집하면서 험난한 근현대사를 가로질러 세계로 발돋움하여 우리의 민족무용을 현대화하는데 헌신했다.
그녀의 작품세계에는 민족주의적, 국제주의적 성향이 짙게 배여있으며 그가 민족 무용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는 쉼없는 춤사위를 통해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당시 춤작품의 류통구조에 신기원을 열었으며 춤에 대한 천부적 자질과 함께 춤으로 세상에 군림한 신화적 존재로 각인되였다.


3

 연변대학 예술학원 리애순교수는 최근 발표한 론문 “중국무용의 현대화와 최승희의 역할” 에서 최승희가 중국에 예술무용을 전파하며 중국무용사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최승희는 세계 공연을 마치고 중국으로 와서 1941년부터 1946년까지 차원높은 예술무용을 공연하여 중국예술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44년 북경의 북해부근에 “동방무용연구소”를 차리고 중국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중국 예술전통을 익혀나갔다.

바로 이 시기 매란방과 최승희는 력사적인 조우를 가진다.
매란방등 경극계의 명배우들은 최승희를 수차 방문했고 그와 함께 무대예술방법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최승희의 높은 무용예술표현, 견해는 매란방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중국의 “화경일보”는 “노래를 위주로 하는 옛 경극은 최승희 무용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종국에 가서 변혁을 일으킬것 같다”는 소식까지 실으며 최승희의 실력과 역할을 강조했다.

 중국경극에 출연한 매란방과 최승희  (좌, 우)

중국 병영의 문예일군들에게 무용 강의를 하고있는 최승희.

경극대사 매란방과 교류하면서 최승희는 경극을 토대로 한 무용 창작론과 기본 동작을 모형화하고 교수체계를 정립해 중국 무용을 현대화하는데 기여했다.

한편 자신의 무용세계를 살찌우는데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승희는 실제 중국무용의 실험적 창작에도 참여해 여러 류형의 창작물을 탄생시켰다. 그중 중국의 고전문학과 경극의 검무를 소재로 만든 “패왕별희”와 당나라 양귀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양귀비연무지도”가 대표적이다.

퓨전(서로 다른 두종류 이상의것이 합해져 새로운것이 됨)의 시대로 불리는 요즘이다.
모든것의 경계가 소멸되고 다양한것들이 서로 뒤섞이는 탈중심시대, 새로운 퓨전문화가 우리주변을 노크하고 깃들고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를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읽어나가야 하는지를 대가들의 앞선 행보는 보여주고있다.

새로운 매체를 통해 새로운 형식으로 다시 조명되고있는 예술대가들의 모습들, 다시한번 경모를 머금고 보고 듣고 읽어본다.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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