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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대
김 혁
1,
요즘의 신새대들은 “상산하향(上山下乡)”이라는 낱말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소학시절이였던 70년대에는 중국 전역에서 “상산하향” 운동은 거세차게 불어쳤다.
“상산하향”이란 도시의 “지식청년”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에 정주하며 농업. 목축업 등 생산로동에 참가한 운동이다.
당시 연변 각지에서는 대도시 상해에서 온 지식청년들을 처처에서 찾아볼수있었다. 당시 시골이나 진배없는 변강오지에 살고있던 우리는 지식청년들이 가져다 준 나일론 양말이나 츄잉껌을 받아안고 세상 둘도 없는 진품을 선사받은듯 그렇게 좋아했었다. 지금도 연변지역에서는 당시의 형용어를 빌어 깔끔하거나 잘 생긴 사람들을 보면 “상해사람 같다”는 말이 류행되고있다.
“상산하향”운동은1956년 정부가 지식청년들이 시골로 가서 농업생산 및 사회주의 건설에 참가하도록 호소하여 이후 매년 100만 명 규모의 지식청년이 농촌 및 산골로 내려가서 정주하기 시작한것이 시초이다.
문화대혁명 초기에 홍위병운동으로 일시 중지되지만 1968년 “인민일보”가 “지식청년이 농촌으로 내려가 빈하중농으로부터 배우는것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모택동주석의 최고지시를 전달하자 대규모의 “상산하향”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였다.
2,
“상해지식청년 연변하향 40돐기념활동 및 환영대회”가 8월18일 연변예술극장에서 성황리에 펼쳐졌다.
40년전 이땅에 하향했던 1만8천여명 상해지식청년가운데서 1200여명이 연변을 다시 찾아 회포의 정을 흠뻑 나눴다.
연변주당위 서기가 연변인민들을 대표해 이들에게 축사를 드렸다. 그는 수많은 상해지식청년들이 동북지역에 하향해 당지 여러 민족 인민들과 함께 어깨겯고 로동하고 생활하면서 변강소수민족지구의 번영, 발전을 위해 적극 기여를 한 데 대해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조국은 하향지식청년들을 잊지 않을것이고 력사 또한 저버리지 않을것이며 연변인민들은 더우기 이러한 정을 잊지 않을것이라고 지적했다.
연변에 내려와 물 설고 낯설은 곳에서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 연변은 “제2고향”으로 다름없었다. 이들 중에서 어제의 역경과 아픔을 딛고 오늘날까지 매진하여 현임 국가 국토자원부 부장, 중국공상은행 행장, 상해복단대학부교장 등 고위급 간부와 지명인사들도 배출되였다.
40년만에 연변을 찾은 그들은 감개에 넘쳐 연변과 상해간의 거리를 더욱 까갑게 하여 서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교류와 합작을 추진하면서 공동으로 더욱 아름다운 미래의 장을 펼쳐나가기 위하여 연변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관심하고 지지할것이라고 표했다.
3,
미국의 1920년대. 력사는 이 시기를 “광란의 년대”라고 부른다. 1차대전이 끝나 온정을 찾고 물질적 풍요가 찾아왔지만 정신적 허기는 점점 깊어 갔으니 이 시대 젊은이들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부른다. 20세기 미국소설의 걸작으로 불리는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伟大的盖茨比)”는 바로 그 시대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린 작품으로 그들의 상실감과 환멸을 잘 보여준다.
이들처럼 문화대혁명시기의 지식청년들을 중국의 “잃어버린 세대”라고 부른다.
40년전, 조국의 부름을 받은 수천만의 피끓는 젊은이들이 군복을 입고 완장을 끼고 배지를 달고 변경으로 농촌으로 떠나는 렬차에 몸을 실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사고, 영양실조, 천재지변 등으로 희생되였다. 배움의 기회를 상실하였고 도시에 돌아와 보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것은 실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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