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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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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페이스
2014년 07월 22일 09시 25분  조회:2848  추천:10  작성자: 김혁


. 중편소설 .

 

라이프 스페이스


(Life space . 生活空間)

 

 

김혁

 

 


…양은 자그만 플라스틱함속에 갇혀있었다. 성냥감크기와 맞먹을 함이였다. 전자애완놀이감(电子宠物)이라 했다. 독실의 뙤창처럼 함에는 작은 형광막이 달려있었다. 그 아래 배렬된 팥알만한 버튼중에서 ON을 누르면 형광막속에 양 한마리가 (적절히 말하면 양의 형체가) 나타난다. 탄소연필의 굵직한 선으로 그려진듯한 양은 소학생의 도화책에 그려진 그것처럼 엉성함에 가까운 모양을 짓고있었다. 허나 그것을 애숭이의 원시적인 놀이감으로 치부해선(절대) 안되였다.
맴, 맴— 파렬음으로 울줄도 알았고 배고픔과 추위, 지어 밝음과 어둠에 대해 표현할줄도 알았다. 울음소리와 함께 hungry(배고프다)dark(어둡다)는 표시가 형광막의 웃모퉁이에 나오면 인차 버튼을 눌러 먹이를 주거나 물을 주어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보채는 아이처럼 끝없이 울어댈것이고 소홀하면 “죽”어버릴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놀이감은 던져버리게 되는것이다.
시상에! 별 기뜩찬 물건 다 있네? 
생일날, 남편이 전자오락물을 선물했을 때 색시는 거짓말 같은 놀이감의 공능에 대한 설명에 생게망게 눈확을 키웠다. 일본사람들이 발명한 오락제품, 양 말고도 개, 돼지, 캉가루, 말… 벼라별 형태가 다 있다고  했다. 허나 남편은 굳이 그녀에게 양을 골라주었다. 그녀가 양띠생이였던것이다. 
색시는 놀이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놀이방법에 익숙해감에 따라 양(전장양)은 그녀의 손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양의 따스한 털을 만지듯이 형광막을 애틋하게 어루쓸기도 했고 모방음이지만 양의 단조롭게 풀이되는 울음소리에도 색시는 전률 같은 련민을 느끼군 했다. 경건한 신교자의 손에 마냥 들려있는 념주나 성경책처럼 전자양은 그녀의 손아귀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잘 때에도 벗어둔 목걸이와 함께 머리맡에 꼭 놓아두군 했다. 밤에 몇번씩은 깨여나 형광막에 켜지는 파르슴한 야광불빛을 빌어 “잠자는 양”을 오래도록 지켜보기도 했다. 전자양을 지켜볼 때마다 색시는 고향의 앞뜰에서 어리쳐놀던 자기집 바둑이를 생각했다. 미채복(迷彩服)을 입은듯이 무의가 유난히도 선명하고 코가 마냥 개구장이 코처럼 축축한 바둑이였다. 바둑의 눈은 갈색 비슷한 색조를 머금고있었다. 모든 유순하고 귀염성스런 동물의 눈은 모두 그런 애련한 빛갈을 띄고있다고 색시는 생각했다. 바둑이는 작년 봄에 죽었다. 강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먹고 죽었다. 강의 웃목에 언젠부텀가 종이공장이 섰고 그때부터 강은 구질한 녀인네의 속곳을 빨아낸 물처럼 혼탁하게 변해버렸다. 그 물에서 부유하고있는 고기들은 이전의 고기들처럼 약삭빠르지 못했다. 그래서 손쉽게 잡을수 있었고 바둑이에게까지 생전부페가 차례졌는데… 온몸으로 경련하던 바둑이는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 솜뭉테기처럼 구겨박힌 바둑이를 안고 그녀는 몹시도 울었다. 양징맞게 생긴 발이 상할세라 버선까지 신겼던 바둑이였다. 버선을 신은 바둑이는 그녀를 따라 동네 마실돌이를 곧잘 다니군 했고 때가 늦어지면 그녀 봉당에 벗어둔 그녀의 신우에 누워자군 했다. 그런 바둑이를 무엇이 주살했는지 그녀는 그 영문을 쇠통 알길이 없었다. 바둑이도 이렇게 플라스틱함에 넣어 자기 신변에 꼭 간직할수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색시는 생각해보았다. 꿈결에 바둑은 늘 그녀를 찾고 반기였는데 깨여나보면 그 애모쁜 생령은 전자양으로 화하여 색시의 숨결가까이에 있는것이였다.

색시는 정덩이가 큰 녀자였다. 원체 눈가에 입귀에 일신에 배여있는 정덩이가 요사이는 버거운 충만감으로 더 크게 팽만해오르고있었다. 가정이라는 신비한 궁정에 처음 들어선 색시는 하늘같은 충족감을 아름벌게 안고있는것이였다. 그리고 색시는 임신 석달이였다. 새록새록 달라지는 몸태와 마음가짐이 그녀를 더욱더 그녀답게 건신스럽게 만들었다. 바둑이가 다시금 꿈결을 찾아드는것도 전자양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는것도 바로 이러한 몸과 마음의 변화로부터 비롯된것이였다. 원체 헐렁한 멋으로 입던 블라우스가 조붓해오르고 완벽하던 몸 맨두리가 자기의 그것 같지 않게 날로 삐여지고 무거워오르는것을 의식할 때면 색시는 경아와 행복감으로 반죽된 전률에 가슴을 할딱거렸고 그 가슴을 눅잦히려 들 때마다 전자양을 들여다보군 했다. 괜스레 먹이도 주고 물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 전자양은 분수를 지키련듯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그런 양이 용용 귀여워 색시는 혼자 웃군 했다.
전자양은 색시의 유일한 벗이였다. 남편이 출근한 뒤면 혼자 집에 남아야 했다. 아직 가벼운 일쯤은 찾아할수 있다고 했지만 남편이 혼겁을 떨며 굳이 집에서 놀게 했다. 색시네 고향에서 녀인들은 만삭이 되여서도 밭일까지 거들군 했다. 허나 시가지 사람들은 그들과는 달랐고 원체 꼼꼼한 남편은 더욱 달랐다. 조금난 무거운 물건을 들어도 시한폭탄이라도 쥔듯 제지시켰고 찬물에 손을 넣어도 불덴 사람처럼 소리질렀다. 그런 남편이 색시는 감사했고 그로 해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그에 따르는 고충은 남편 모르게 큰것이였다. 고향의 향정부 강당같이 널직한 집은 7층높이에 있었다. 일전 같으면 개암 뜯으러 산자락을 톱던 본때로 단숨에 치달아 오르련만 몸태가 변한 지금에 와서는 오르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러니 그녀는 날개죽지여물지 못한 새같이 언제나 보금자리를 지켜 죽치고 앉아있어야만 했다. 어느 한번 례사롭게 층계를 내여갔다와서 남편에게 단단히 신책을 들었다. 얼음아가위꼬챙이(冰糖葫芦)를 파는 장사군령감의 사구려소리를 용케 가려듣고 아래를 향해 구명을 바라는 사람처럼 기다리라 목청 깨지게 소리질러놓고는 힘겹게 사들고 올라온 아가위를 바작바작 깨물어 단숨에 먹어치웠다. 남편이 볼가봐 꼬챙이들을 짧게 끊어 휴지통에 버렸는데 남편이 귀신같이 알아차렸던것이다. 층계를 내리다 넘어지면 어쩌냐? 격렬한 운동은 아이에게 불리하다! 게다가 불결한 한족령감태기가 “침을 발라” 만든 아가위를 먹고 병이 나면 어쩔려구? 하고 남편은 필요이상으로 야단을 떨쳤다. 그후로 모든 물건은 남편이 사올렸고 쓰레기도 남편이 내려버렸으며 그녀의 소풍도 남편의 배동과 부축임이 있어야 진행될수 있었다. 색시는 자기가 플라스틱함속에 갇힌 전자양과 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갑하고 자꾸만 갑갑했다.

허나 갑갑한 외로움보다 더 큰 고충이 하나 있었다. 집은 남편이 회사로부터 분여받은것이였다. 높고 크고 비싼 집이였다. 집값은 그녀가 듣고 기겁초풍할 정도로 비쌌다. 그만큼한 앳된 나이에 이만한 집을 쓰고 사는 젊은이들이 이 큰 도회지에서도 많지 않았다. 모두가 남편이 잘난 덕분이였다. 남편은 그냥 두고보아도 오나벽하게 좋은 집에 또 집값의 절반쯤을 내치고 장식을 했다. 응접실의 등을 바꾸어달고 베란다로 나가는쪽을 늄합금으로 격리시키고 침실의 벽을 새로운 색조로 칠하고 문변두리마다 나무로 둘레를 치고 주방의 천정을 낮게 드리우고 화장실의 멀쩡한 타일을 뜯어 새로 달고 … 침대며 쏘파며 책상이며 탁자며 옷장이며 경대며를 사들였다. 새집들이 하던 날 세상에! 하고 색시는 황홀감과 만족감에 전률했다. 허나 그 전률은 얼마 못가서 다른 전률로 변해버렸다. 별천지같은 집은 온통 황금빛의 냄새로 충일해오르고있었다. 그것은 멋의 냄새였고 풍요의 냄새였다. 허나 시각적으로 직결되는 냄새보다 치부에 선뜩 닿는 냄새가 있었다. 회벽의 냄새, 장식페인트의 냄새, 가죽쏘파의 냄새, 가구의 점착제 냄새… 그 냄새는 작렬하는 고추가루폭탄처럼 색시를 향해 던져졌다. 색시는 물밑에 가라앉은 사람처럼 학학대며 냄새의 수면우로 떠오르려 허둥거렸다. 냄새는 독즙을 바른 동침끝처럼 색시의 코속을 찔렀고 눈확을 찔렀다. 색시는 덴겁히 달려가 창을 벌컥 열어젖혔다. 하늘이라도 받아 마실듯 심호흡을 했다. 허나 텐넬을 나선 후각의 질주는 다시 다른 텐넬속으로 몰입되여갔다. 밖은 매연으로 꽉 차있었다. 매연은 유괴하는 악당처럼 큼직하고 바짝 마른 헝겊뭉치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검은 보자기로 그녀의 눈을 감쌌다. 울컥 욕지기가 치밀어올랐고 구정물이라고 받아마신듯한 이질감에 색시는 진저리를 쳤다. 창속으로 몸을 움츠렸다. 창속에서 눈앞까지 박두해온 냄새의 독아가 다시 한번 새시를 단단히 그리고 집요히 물어떼였다.
첫날부터 색시는 기침하고 토하고 열이 올라 꼬박 밤을 지샜다. 그녀와는 달리 남편은 무사튼튼했다. 기동차가 앞을 스쳐도 휘발유냄새가 좋다며 코를 흡— 들이마시였다. 색시는 문을 열면 페부가 아프도록 찡한 향간의 싱싱한 공기, 앞뜨락이 미여지게 만개한 초록빛 소채의 냄새, 몇걸음에 닿을수 있는 앞강물의 물내음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하다못해 우사를 지날 때 맞혀오든 소똥의 냄새도 이에 비하면 외제향수와 같은 향유로 느껴질것이였다. 임신오조도 없이 무양히 지내던 색시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남편은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에 갔대야 《우황청뇌환》 몇갑을 달랑 던져주었고 저마다 신체소질차이니 용빼는 수가 없다고 했다. 남편은 그러는 색시가 보기에 안쓰러워 호텔방을 잡아주었다.
에어콘이 있는 방에서 그녀는 물을 금시 갈아댄 어항의 고기처럼 새로운 률동을 찾았다. 애매한 돈을 일주일가량 휘뿌리다 색시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남편이 통풍에 신경을 무척 쓴 덕분에 냄새의 무리는 많이 주자를 놓았다. 허나 잔여는 여전히 악당처럼 집요히 색시를 추적해왔다. 다시 열을 내며 토악질해대며 색시는 냄새에 불편해지는 심기를 바로 잡고 그에 적응하려 애를 썼다. 개살구에 체한 속을 삭이려 애쓰던 그때처럼 애쓰고 또 써서 들쉼날쉼이 능해진 수연초단자처럼 정상으로 환원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후로 색시는 늘 묵지근한 두통을 짐짝처럼 달고 다녔다. 꼭 그녀처럼 냄새의 중독하에 시달리는 사람이 또 한사람 있었다. 색시의 시아버님이였다.
색시의 남편은 우로 누님 셋을 둔 막내였고 그의 아버지는 마흔을 넘겨 아들을 보았다고 한다. 막내동인 남편이 이제는 삼십을 넘겼으니 그 나이가 어중간한 누님 두분은 불성사납게 (꼭 같은 페암으로) 일찍이 가고 세째누님과 둘이만 남은터였다. 집도 널직하고 아들도 이만하면 사회동량이니 부담없이 옵시사 하고 모셔온 아버지는 일흔에서도 몇고개 허위허위 넘어선 나이였다. 시아버지를 맨 처음 대하던 때 색시의 첫인상은 남편이 아버지와 도무지 닮은양이 없다는것이였다. 년로한 연고도 있었겠지만 남편같은 당당함과 박력과 그에 밑받침된 튼실함을 유전의 뿌리로 내렸을 시아버지에게서 도무지 체취할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이 적은 로인이 이 세상 어디도 없었다. 다박솔 수염속에, 가려 보이잖는 입은 밥 자시는데만 사용되는거나 아니냐고 요행 합석한 어느 밥상에서 색시는 버릇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만큼 어려운 시아버님이였다. “사위사랑은 장모에게, 며느리사랑은 시아버지에게 있다”고들 하는데 색시는 이 가문의 문턱을 넘은 뒤로 시아버님과 말 몇마디조차 나누어보지 못했다. 남편이 잘해주어서 세상 부럼 없었지만 시아버지의 침묵으로 각인된 뒤모습을 볼 때마다 색시는 어려웠고 야속했다.
냄새의 세례를 이겨낸지 얼마 안되여 또 다른 골치거리가 그녀에게 생겨났다. 한밤중이면 색시는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깨군 하였다. 야밤에도 주책에 가깝게 쏘다니는 차량의 악지스런 소리에 이명(耳鸣) 비슷한 증세까지 생긴 그녀의 귀에 그 소리는 다른 농도와 줄기로 잡혀들었다. 랭동기의 작동소리는 아니였고 화장실에 켜둔 일광등이 내는 소리도 아니였고 (농가의 구석에서 울던 여치소리는 더구나 아니였다)… 하지만 분명 집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색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속옷바람으로 침실을 나섰다.
소리는 다른 한 침실, 시아버님의 방에서 나고있었다. 방은 불을 죽인 상태인데 소리는 실타래처럼 굴러나오고있었다. 목구멍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의 파장으로 때로는 궁글게 때로는 유연하게 이어지군 했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면 신음같기도 애원같기도 한 소리였다. 온 집안에서 굼닐고있는 화학품의 이질적인 냄새때문에 아버님도 그녀처럼 앓고있는지라 색시는 이튿날 두통약을 자시게 하고 그런대로 묵과해두었다. 허나 밤마다 그 소리의 파장은 멈출줄을 몰랐고 대신 잔잔한 흐느낌으로부터 높은 소리로 껑충 뛰여올랐다. 게다가 나중에는 새로운 내용물까지 보태여져 완정한 말마디까지 이루었다. 그 말마디는 대체로 한두가지뿐, 입속에 뭉그려 내뱉았지만 그 불투명한 갈파중에서 색시는 한마디만은 가려들을수 있었다. 소리는 저녁마다 어김없이 혹은 짐짓 그러는듯이 울렸고 때론 마디마디가 강약을 가미쳐주며 악청으로 변조되기까지 했다.
가자! 돌아를 가!
가자! 돌아를 가아!
그 소리에 저녁이면 색시는 잠 같은것을 아예 깨끗이 반납해야 했다. 놀라 남편의 품을 파고든적도 한두번 아니였다. 그런 경황도 모르고 남편은 이불자락을 잔뜩 구겨안은채 세상 모르고 잠의 나락에 빠져있었다.
아침, 색시가 아버님이 큰병에 든거나 아니냐고 걱정을 달고 물었다.
너무 신경쓰지 마. 시골서 상경하여 임자처럼 습관이 안돼서 그러는거…
남편은 그녀의 걱정을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남편의 일상에서 화락한 정의 소유자임을 느끼고있었으나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 정의 열도가 달랐다. 자기를 향한 잉걸불의 익어번짐이 아니라 타고 버린 콕스처럼 미열이였다. 부자간 역시 평소에 말의 나눔 같은것조차 적었고 부모가 자식에 대한 높음과 권위 같은것도 없었다.
그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서로를 다치지 않지만 또 서로를 바라볼수는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살아가고있었다. 집에는 늘 황량한 침묵이 흐르고있었다. 남편이 효도에 등한시한거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도 있었으나 남편의 문벌이나 인끔으로 봐선 그런 무지막지한 정도일수는 없었다. 자기보다 훨씬 조건이 월등한 집에 들어서서 자격지심에 그 무엇이든 생광스럽고 다르게 보이는 색시에게 있어서 도회지사람들의 정감표달방식은 자기들과는 달리 이런 식인가보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있는 도회지 량반들이 마음의 무늬를 도무지 읽어낼수 없었다.
시아버지는 식사조차 따로 했다.
늘 저러셨어! 개다리소반에 놋그릇으로 혼자서 자시는것이 아버지의 본분이고 품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지금이 어느땐데… 소반도 없고 놋그릇도 없어.
색시와 함께 단둘의 식탁을 마련하고 안해입에 좋은 찬을 골라 넣어주며 옥시글거리는 식사가 좋은 모양, 남편은 명절을 제외하곤 시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이 안쓰러워 밥도 더 떠들고 입가심물도 들고 아버님방에 들어설라치면 외려 아버님이 성가스러운지 수저를 들다말고 며느리가 나가기를 기다리는것이였다. 그리하여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하고 색시는 아버님문방에 곽밥 조달하듯이 음식상을 차려만 올렸고 한겻이 지나보면 빈 그릇들이 싱크대우에 올려져있는것이였다. 간혹 아버님방을 떼고 들어서 보면 아버님은 늘 침대가 아니라 늘 베개나 쏘파방석 같은것을 안고있었다. 그것도 그저 안고있는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빼앗기기라도 할것 같이 부등부등 그러안고있었다. 얼굴은 협심증환자처럼 고통스러워보였다. 크게 아픈것으로 알았으나 그런게 아니였고 평소에 어쩌다 문을 열고 들어서보면 아버님은 여구하게 꼭 그런 모양을 하고있었다. 아빠트단지에도 로인활동실이 있으니 가서 화투장이라도 번지라고 권유했으나 령감님은 평생 놀음과는 강을 사이두고 살아왔다고 했다. 문구장에 구경이라도 가라고 권하고싶었으나 도시 가녁쪽에 있는 문구장으로 가려면 뻐스를 두세번 갈아타야 했다. 아버님이 어떻게 지루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견뎌나가는지 색시는 궁금했다. 시간의 형벌을 이겨내느라 아버님은 저렇게 힘들고 괴상한 동작을 반복하고있는걸가? 간식으로 빵이나 쥬스 같은것을 들여가도 아버님은 잡숫질 않았다. 혹간 시원한 사과배를 보면 숟가락으로 호비작여서는 힘들게 자시군 했다. 그리고 어느결에 숟가락은 싱크대에 올려져있고 로인님방의 문은 다시 견고한 성체의 문처럼 굳게 닫히군 했다. 화장실로 가다가 며느리와 맞띄게 되면 아버님은 웃음이라도 지어보려 했다. 허나 풍상에 할퀴여 화석화된 얼굴에서 그 흔한 웃음은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웃음 비슷한 근육조합을 만들어보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색시에게는 우는것처럼 보였다. 그런 우는것 같은 웃음도 차차 사라지고 그저 잠시의 일별이 그것을 대체했다. 물건을 가득 집어넣은 호주머니처럼 처진 눈확을 치켜올리며 며느리를 쳐다보는 아버님의 목청에서는 침묵과 함께 응고된 가래침이 목젖의 울림으로 떨꺽 하는 예상외의 높은 소리를 내군 했다. 자시는것이 적어서 화장실출입마저 드물어갔고 로인님의 방문은 청태 돋은 동굴의 문처럼 깊이깊이 닫혀있었다. 그 문이 영원히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색시는 불안감과 함께 떠올린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새도 남편이 하는 모양으로 시아버님과 두서없이 애매한 거리를 만들고있었다. 시아버님 스스로가 재여 만들어낸 거리일수도 있지만 그 거리는 초점을 잘 맞추지 않는 망원렌즈의 부면(负面)으로 내다본것처럼 흐릿하고 불확실했다.
그러고보니 늘 색시곁에 있고 색시와 가장 도타운것은 그 전자양일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런 짓거리도 잠간사이, 양에게 “먹이”를 먹이고 “물”을 먹이고나면 색시는 심심하고 갑갑하고 울적해지는것이였다.
어느 한번 남편이 관상용 물고기를 사왔다. 둥근 어항을 사고 그속에 비닐로 만든 수초를 넣고 분경(盆景)같은 가짜 암석을 넣었다. 산소방출기도 어항에 부착해놓았다. 산소기는 수은대를 쳐든 흡독자처럼 꾸르륵꾸르륵 기승스레 물방울을 뿜어올리고 있었다. 그 인공의 풀과 인공의 돌과 인공의 공기속에 물고기 두마리가 안주를 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것 같이 전신이 새까만 물고기였다. 캐씽구라미라고 하는 아열대의 물고기였다.
웃기는 놈들이야 암놈 숫놈이 꼭 붙어서 살지. 그러다 개중에 한놈이 죽게 되면 남은 놈은 따라서 죽는대. 우리처럼 잉꼬부부!
남편은 물고기네 세간을 들여앉히고나서 색시의 기색을 살폈다. 그녀의 기쁨과 무료를 위해 일껏 마련한것이였다.
임자 금붕어가 어떻게 우는지 알어?
남편은 아직도 무감각한 그녀의 흥심을 유발시키련듯 평소의 그같지 않게 얼굴을 우스꽝스레 변형시켜보았다.
금붕! 뿔루루루-금붕! 뿔루루루-하고 울지.
시상에! 색시는 남편에게 매달리며 웃었다. 오래만에 웃어보는 큰 웃음이였다. 남편의 노력에 보응해주려는 뜻도 없지 않은 그런 웃음이였다.
창턱에다 물고기의 령지를 잡아주었다. 어항속은 진기한 호박(琥珀)속처럼 생동했다. 높은 창턱이라 창밖의 풍경과 겹쳐보면 어항은 꼭마치 마천루의 꼭대기로 부표하는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매연으로 자오록해지는 저녁께면 어항은 탁한 물밑에 버려진 수정구처럼 보였다. 캐씽구라미가 유연한 몸집을 격렬히 비틀 때면 외부로부터 덮씌워오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의 마지막 깨끗한 령지를 보호하려는 그런 상념의 몸놀림으로 보였다. 흑옥같은 물고기의 눈을 들여다보며 색시는 캐씽구라미는 왜 이렇게 새까말가? 깨끗한 섬지역에서? 도시에 이주해 살며 미연에 그을려 이렇게 된걸가? 하고 의문을 가져보았다.
전자양과 함께 그녀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었던 개씽구라미는 도회지에 이사온지 며칠 못가 죽고말았다. 수면우에 떠올라 탄성한계로 늘어졌는데 마냥 정열적으로 흔들던 기발같던 꼬리는 아래로 드리워져있었다. 암놈인지? 수놈인지? 하나가 먼저 죽었는데 남편의 말처럼 다른 놈도 인차 따라 죽었다. 색시는 섬찍한 눈길로 어항을 들여다보았다. 바둑이가 죽었을 때와 못지 않는 충격이 예리한 쇠못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산소방출기는 무치한 흡독자처럼 꾸르륵꾸르륵 수연대의 소리를 계속 내고있었다.
수도물탓일거야. 수도물을 하루밤 재워 줘야 하는건데. 혹시 먹이때문인지도 몰라. 지금은 물고기 먹이도 가짜가 있으니깐…
남편은 캐씽구라미의 죽음을 두고 형사처럼 추리를 반복하고있었다. 남편의 말처럼 수도물에 문제가 있는것 같았다. 이곳의 수도물에서는 늘 이상한 냄새가 났다. 장농에 넣어둔 장뇌환냄새 같은 … 식기에 담가두고보면 이튿날이면 노란 침전물이 생기군 했다. 그래서 아침이면 남편은 꼭꼭 7층을 달아내려 약수물을 받아오군 했다. 약수차는 아침마다 촌마을의 배달부처럼 어김없이 왔다. 간혹 시간때문에 받지 못할 때면 멋스레 포장한 트링크에 들어있는 순정수(纯净水)를 사왔다. 걸러내고 또 걸러냈다는 물은 깨끗하기는 했지만 자갈 삶은 물같이 무맛이였다. 그리고 색시는 분명 플라스틱용기의 뇌리치근한 냄새를 음미해낼수 있었다. 수도물때문에 곤경을 치른적도 있었다. 처음엔 배탈이 났는데 그쯤은 약과이고 수도물로 그곳을 씻었더니 염증을 앓았다. 결벽에 가까운 그녀와 마냥 양장을 고수하는 깔끔한 남편이 불결해서가 절대 아니였다. 그렇다면 캐씽구라미는 분명 물탓에 잘못된것이였다. 아니면?
남편은 다른 한쌍의 캐씽구라미를 모셔왔다. 물을 정성껏 갈고 먹이도 포장먹이가 아니라 늪이나 물웅뎅이에 사는 비싼 진홍빛 기생물을 사서 주었더니 별고없이 자랐다. 그렇게 탈없이 자라주는 물고기가 색시는 괜스레 감사하기만 했다.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차차 적어지자 색시는 다시 한번 어김없이 다가오는 계절처럼 선연한 무료를 느꼈다. 전자애완물의 버튼을 열싸게 누르고 캐씽구라미네 집—어항을 똑똑 노크도 해보고 하다가 색시는 어떤 물건에 눈길이 미치고 생각이 미쳤다. 방이 세개 딸린 집이라 그들 부부가 한칸, 시아버님이 한칸 차지하고 남은 한칸을 남편은 작업실로 만들었다. 그곳에 컴퓨터 한개가 놓여있었다. 남편은 어느 이름있는 컴퓨터공장의 위탁으로 컴퓨터대리판매부를 하나를 차리고있었다. 컴퓨터가 그렇게 잘 나가주어 남편은 성공한 실러리맨으로 떠올랐고 가정 역시 먹고 입는 걱정없이 잘 꾸며져가고있는것이엿다. 전에 색시는 컴퓨터를 본적 없었다. 컴퓨터를 보자 맨 처음으로 텔레비죤과 꼭 같은 물건이라 생각해두었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컴퓨터를 배워주었다. 작동원리를 배워주었고 유희를 배워주었다. 컴퓨터에 재미를 붙일무렵, 남편은 그녀가 컴퓨터를 배울감이 아니고 또 컴퓨터앞에 오래 앉아있으면 건강에 해롭다며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포기해버렸다. 그후로는 그저 컴퓨터의 먼지를 닦으면서 만져보았던 그녀였다.
색시는 어덴가 두려움이 동반된 심정으로 남편의 작업실로 들어섰다. 컴퓨터는 도고한 수녀처럼 백포를 뒤집어쓰고있었다. 색시는 조심스레 백포를 벗겼다. 컴퓨터가 문지광같은 외눈으로 그를 지릅떠보고있었다. 색시는 무거운 몸을 굽혀 힘들게 작업대밑에 달린 구멍에 프라그를 꽂아넣었다. 폭탄의 점화단추를 누르듯 작동버튼을 눌렀다. 팽—하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가 밝아졌다. 비온뒤의 닭이 쏘다닌 흔적 같은 형상의 영어자모들이 모니터속에 오글오글 숨어있었다. 키보드를 눌렀다. 남편이 배워준 기억을 애써 살리며 유희실을 찾았다. 그녀는 무얼 찾는데서는 선수였다. 자기손 같지 않게 말을 잘 듣지 않는 손을 구명물처럼 키보드에 얹혀있었다. 드디여 유희실로 들어섰다. 시상에! 색시는 커다란 배에 두손을 얹고 성취감에 이몸이 모이도록 웃었다. 트럼프유희였다. 수자와 꽃의 색을 맞추는 간단하기 그지없는 유희였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꽃을 서로 엇바꾸어 박아넣으면서 A로부터 K까지 맞추어내는 유희였다. 손때 오른 트럼프장을 침 발라가며 번져가는 번거로움이 생략되고 키보드만 가볍게 치면 트럼프장이 척 번져눕는 신선스런 컴퓨터유희였다.
검은 하트 8이 올라가고 붉은 다이아몬드 7이 올라가고 검은 스페이드 6이 올라가고 붉은 클로버 5가 올라가고…
A, 2, 3, 4, 5, 6, 7, 8, 9, 10 , J ,Q, K
붉은 하트 검은 스페이트
검은 하트 붉은 스페이드…
붉은 클로버 검은 다아몬드
검은 클로버 붉은 다아몬드…
적목탑을 쌓고 허무는 아이처럼 무진한 재미에 탐해버렸다. 배속의 아이도 그때면 즐거운듯 꿈틀이며 어떤 정감의 반향을 보이고있었다. 눈이 아물아물해나고 어깨가 욱신욱신해나서야 색시는 직성이 풀이였다.
그러다 전자애완물처럼 캐씽구라미처럼 어느날 그것도 시들해졌고 색시는 다시 한번 죽음같이 깊은 적적함에 빠져들었다. 전자양은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은듯 어제도 저제도 그런 모습이였고 캐씽구라미는  “수연대”의 꾸르륵 소리속에 블루스를 추듯 짝지어 놀고 컴퓨터는 수녀처럼 백포를 뒤집어쓰고있다. 그리고 시아버님의 방문은 그냥 호전(好战)파 장군이 없는 성채처럼 굳게 닫힌채로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벅적지근하게 칼고함이라도 질렀으면 벽이 시원히 뚫릴것 같았다. 그러나 창을 열지 않는것은 이곳의 법도처럼 간주되여오고있었다. 해동이 되기 바쁘게 도시에는 집짓기공사가 성세호대하게 펼쳐지고있었다. 색시네 아빠트앞 공터에서도 새집짓기가 한창이였다. 격렬한 전기드릴소리, 무언가 왕창왕창 깨물어 먹는듯한 콩크리트 믹서(搅拌机)의 소리, 거대한 트럭이나 뜨락또르, 견인차, 크레인의 동음소리…부르릉… 쾅쾅… 꺼르르르릉… 게다가 풀썩 분만해오르는 화약같은 먼지… 창만 열면 어쩌구려 복마전에 잘못 들어선 기분이였다. 그러나 그저 갑속에 (삐까번쩍 빛나는 호화주택이여도 어쩐지 갑속같은) 옥속에 수인처럼 갇혀 자질구레한 시간의 나락을 손톱 벗겨지게 한알한알 까먹고있는것만 같았다.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리길 색시는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노올자! 아무개야 노올자! 하던 동네의 주책에 가까운 마실돌이가 그렇게 그리울수 없었다. 옆집으로 서로 좋은 음식도 오가고 유쾌한 잡담도 오갔으면 좋으련만 이웃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한족집이였고 층계에서 간혹 마주쳐도 옷매장에 세워놓은 마네킹 같이 무표정으로 지나쳐버린다. 손잡이조차 없이 견고한, 불수강 열쇠로 뚜지고 힘껏 당겨야 하는 방범문(防盗门)이 쾅! 하고 닫히고나면 층계나 랑하는 그저 괴괴한 적막만이 감도는 사각(死角)지대이다.
딩동! 초인종소리만 울리면 사람이 그리운 색시는 무거운 몸매를 재빨리 놀려 문가로 다가간다. 견고한 방범문 빗장을 성큼 빼여낸다.
문을 함부로 열어주면 안돼. 자물쇄걸이도 없는 임자네 그곳과 달라. 떼강도가 우왁! 덮칠는지고 모르니깐…
남편이 신신당부했지만 색시는 초인종소리만 울리면 본가집어머니를 반기는양 자빠질듯 달려가 문을 따군 했다. 그만큼 그녀는 사람의 냄새를 그리워했던것이다. 남편은 방범문에 달린 작은 렌즈로 사람을 확인하라했지만 색시는 어쩐지 그것이 싫었다. 방범문의 렌즈로 내다본 사람의 얼굴은 떡반죽을 심술껏 비탈아 당긴 모습이였다. 그런 형상이 색시는 싫었고 그런 불신의 확인이 색시는 싫었다.
딩동! 문을 따고보니 낯모를 남자가 서있다. 광고팜플렛을 강다짐처럼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의무를 다 래행한듯 층계를 계단을 건너뛰며 성큼성큼 내려간다. 그 광고지로 색시는 종이학을 접는다. 저도 모르게 죽은 바둑이 생각이 나 강아지를 접는다.
딩동! 문을 따고보니 낯모를 아낙네가 서있다. 쇠수세미를 불쑥 내밀며 사라고 한다. 박박 긁어댈 쇠가마도 없지만 입성이 꾀죄죄한 아낙네의 고충을 헤아려 하나 사든다. 2원50전인데 3원을 내고 거스름돈은 찾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는 텔레비죤에서 보아 너무나 잘알고있는 날씨에 대해 구태여 묻는다. 비가 오나요? 안오나요? 왜? 온다구 했는데…
딩동! 문을 따고보니 이번에는 낯모를 아가씨가 서있었다. 생리대를 들고 공장가격보다도 눅으니 사라고 한다. 필요없게 된 몸이지만 공장가격보다 눅다니 한박스 사둔다. 묻지도 않은 말을 아무 사람하고나 말한다. 난 이런걸 많이 써요. 생리통도 심했구요…
딩동! 문을 따고보니 키가 꺽두룩한 사내 하나가 식칼을 들고 서있다. 식칼장사이다. 그리고 벙어리이다. 으바바 으바바… 괴성을 질러대며 식칼로 콩크리트바닥을 마구 쫓는다. 콩크리트바닥에서 불꽃이 번쩍번쩍 튕긴다. 식칼이 그렇게 단단하다는 뜻이다. 남편이 엄청난 액수로 한국산 주방도구 한세트를 사놓은것이 있지만 색시는 벙어리의 처경이 불쌍해 하나 사준다. 벙어리는 그녀를 향해 엄지를 빼들어보이고는 식칼이 든 방수포주머니를 절걱이며 층계를 내린다. 그러다 발을 겁디뎌 비명을 지른다.
타마디! 색시를 도적눈깔 해갖고 쳐다보다 구을듯이 층계를 내려간다.
시상에! 색시는 가짜벙어리 장사군임을 뒤미처 기수채고 조롱당한 느낌으로 자탄을 내지른다.
딩동! 문을 따고보니 반갑게도 시누이가 오셨다. 입덧이 날 때이니 몸보양을 잘해야 한다며 먹을것을 한구럭 사들고 왔다. 구운 통닭이였다. 미국식 작시법으로 만든것인데 캔더키프라이드닭이라고 했다. 기름기 있는 그런것이 전혀 입에 당기지 않았지만 감격해하며 받았다. 색시는 촌에서 명절 때면 팥을 두툼히 넣어 해먹던 시루떡이 무척 먹고싶었다. 곁에서 국먹어라 나물먹어라 하며 살뜰하게 돌봐줄 친지 하나 없는 색시였다. 시아버님에게 알릴가 하며 일어서는데 시누이가 막았다. 지나던 걸음에 들린터이니 조금 앉았다 일어서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괴춤에서 돈 300원을 내놓았다. 먹고싶은것을 사먹고 나머지가 있으면 아버지에게도 고기쪽으로 떠올리라는것이였다. 시누이는 늘 그랬다. 요행 와서는 친아버지 얼굴도 보지 않고 가버리기가 일쑤었다. 그러나 부양의 의무는 잊지 않으련듯 예정했던 부양비보다는 조금 넘쳐나게 달마다 어김없이 꼭꼭 가져왔다.
올캐가 애기설이하는 마당에 아버지를 그 기간이라고 내가 모셔야 하는건데…
시누이는 마냥 미안쩍은 기색이였지만 색시는 아량해주었다. 시누이는 살림이 궁한것은 물론 자기 남편보다 더 강하게 아버지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고있는것을 색시는 감득할수가 있었다. 귀가 린색한 아버님은 딸이 온줄도 모르고있었고 시누이는 엉뎅이가 따뜻해질새도 없이 훌쩍 일어나 가버렸다. 문켠에서 발길을 멈추고 몸태가 삐여진 꼴을 보니 낙자없이 “주전자” 달린 놈일거야!라고 더닥을 했다.
색시는 시누이가 사온 닭구이를 가슴패기쪽으로 잘게 찢어들고 시아버님 방으로 들어갔다. 시아버님은 여전히 그 본새 그 모양이였다. 온수온돌인 바닥에 베개를 잔뜩 그러안고 잠들어있었다. 색시는 음식그릇을 시아버님곁에 놓아주고 소리를 죽여 문을 닫았다.

남편이 돌아오려면 아직도 반천은 걸려야 했다. 전자양에게 먹이를 주고나서 컴퓨터에 마주 앉았다. 패가 잘 떨어지지 않았다. 체중기에 넘쳐 꺼버렸다. 어항가까이에 가서 힘들게 들여다보았다. 죽지 마라, 죽지 마라!하고 캐씽구라미부부를 위해 건강을 빌었다. 용접실로 들어가 텔레비죤을 켜고 VCD를 봤다. 몇번이고 되풀이해본 VCD원판중에서 요행 보지 않은듯한 새 영화를 골라냈다.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원판의 뒤명에 잠이 깔린 얼굴이 비쳐들었다. 한되박 쏟아놓은듯한 잠때문에 더 무료해보이는 얼굴이였다. SF영화였다. 과학자들이 몇억년전에 멸종된 공룡을 복제해내는 기괴한 스토리였다. 쥬라기니, DNA니 대사로 오가는 기술용어들은 쇠통 알아들을길 없었으나 영화로 재현한 공룡만은 볼만했다. 축축한 뒤뜨락의 담에 찰싹 붙어있던 벽호(壁虎)를 몇백배로 확대한 모양이였다. 오전자로 드디여 공룡을 배육해내고 무서운 공룡이 은행나무숲이 아닌 마천루속에서 적음감을 잃고 자기를 제조한 주인공을 잡아먹으려 할 때 남편이 돌아왔다. 영화얘기를 하자 남편이 그녀의 경탄을 가볍게 받았다.
재미 있었어? 놀랄것 없어. 이제 사람도 복제해낼수 있다는데 뭘…
시상에! 사아람두요???
색시는 개구쟁이시절 강가에서 찰흙을 짓이겨 사람의 형체를 만들며 소굽에 빠져들던 일을 생각했다. 사내애들은 흙인형의 아래도리에 짐짓 과장된 성기를 달아붙이고 계집애들앞에 흔들며 훗훗거리군 했었다. 그래 정말 사람을 주물러 만들수 있단말인가? 무엇으로? 찰흙으로? 아니면? 남편이 말하던 인간복제에 관한 소식이 어느날 방송에서 흘러나오고있었다.
…1997년 2월 영국로슬린 연구소에서 성년양의 유전세포로 새끼면양을 성공적으로 복제해냈습네다. 그후 과학자들이 류사한 기술을 리용하여 소, 쥐 등 동물도 복제해냈습니다. 복제기술이 ㅅㅇ숙되여감에 따라 인류에 대한 복제도 완전 가망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구라파 19개 나라들에서는 인류복제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해나섰습네다. 공중들이 인류복제를 반대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습네다. 첫째, 복제인의 신분을 확정하기 어려운바 그들과 피복제자지간의 관계가 현유의 륜리체계에 접수될수 없습네다. 둘째, 인류의 후대번식과정에서 더는 량성이 공동으로 참여하지 않게 되면 현유의 사회관계, 가정구조의 접수하기 어려운 거대한 충격을 조성하게 된겁네다. 셋째, 생물다양성으로 볼 때 유전자구조가 완저히 같은 복제인의 대량 출현으로 하여 신형의 질병이 널리 전파될수…
색시는 라지오를 꺼버리고말았다. 귀신씨나락 까는듯한 소리는 최면가의 주문같이 그녀의 무료함을 더해줄뿐이였다. 다시 낡은 레코트 풀듯이 전자양을 돌보고 붉은 클로버와 컴은 다이아몬드와 붉은 하트, 검은 다이아몬드를 병렬시키고 캐씽구라미를 들여다보고 아버님에게 점심식사를 만들어드리는 과정에 색시는 중대한 결정 하나를 내렸다. 오래만에 밖으로 나가보려는것이였다. 요령껏 건조하기 그지없는 일상에 날로 참담해지는 심기를 조절해나가던 그녀의 인내에는 균렬이 생겼고 가출소녀같은 외곬 탈선으로 그 균렬어린 마음을 무마하고싶어졌던것이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집중영을 탈출하는 난민같은 긴장과 스릴과 쾌감 같은것이 그녀의 등을 자꾸만 밀어주는것이였다.

옷장에서 속박맞고있던 외출복을 꺼냈다. 초봄에 입을 때보다 퍽 줄어든상싶었다. 옷장에 달린 체경에서 거대한 배를 가진 녀인 하나가 색시를 마주보고있었다. 코언저리에 깔린 잠때문에 얼굴은 피곤하고 우울해보였다. 색시는 체경속의 녀인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허나 그 웃음은 그닥 명랑치 못했다. 웃음을 잘 만들지 못하던 시아버님 얼굴이 떠올랐고 명랑한 웃음을 되찾으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일념에 그녀는 저으기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허나 남편의 지엄한 분부를 부적처럼 가슴에 갈물이한 그녀는 물구나무서는 사춘기때같은 복잡한 심정으로 거울앞에서 서성이다가 드디여 문을 나서고말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색시는 층계를 내렸다. 초여름 그리고 정오의 해살은 쨍 하고 소리낼것 같이 비추어왔다. 색시는 눈시울을 좁혔다. 소리가7층에서 듣던 때와는 더 가배된 실감으로 귀청을 때렸다. 집앞의 공지에서는 헬멧을 쓴 인부들이 점심도 잊은채 땀에 번들거리는 구리빛 팔뚝을 과시하며 공연히 오갔고 전장처럼 모래며 진흙산이 솟은 사이로 거대한 트럭이 모래를 멱차게 싣고 비근대며 들어서고있었다. 부르릉 엔징 우는 소리가 글러브를 낀 권투수의 강타처럼 색시의 가슴놀이와 퀴바퀴를 강타해왔다. 색시는 질색을 하며 공지를 빠져나왔다.
대로를 지나니 강의 지류처럼 합착된 어느 뒤안길에 장거리가 펼쳐져있었다. 푸른 빛으로 살아오른 야채들이 여름을 알려주는듯했다. 익은 음식가게에서 색시는 만두 두개를 사들었다. 먹고싶은 시루떡은 가게에 없었다. 식욕을 느끼며 한입 떼물었다. 들척지금한 팥고물냄새가 울컥 치밀었다. 까닭없이 그 냄새가 싫었다. 고물을 다 털어버리고 껍데기만 멋적게 대충 씹어넘겼다. 목이 말라 올랐다. 랭식가게로 다가가 랭동한 과일시롭 한컵을 요구했다. 얼음이 서걱이는 과일시롭은 찼다. 헌데 사카린냄새 같은것이 났다. 한컵을 채 비우지 못하고말았다. 이번에는 도마도 한개를 집어들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도마도는 푸른 기운이라곤 없이 저질립스틱이라고 바른것처럼 붉에 농익어있었다. 허나 씹고보면 즙액은 기대와는 달리 생고기 씹는 맛이였고 게다가 열기를 머금기까지 해서 데친것처럼 데시근했다. 돌아보니 집에서 멀리 나와있었다. 앉아 쉬고싶었으나 시끌벅적한 장거리에서 마땅한 자리를 찾을길 없었다.
장거리곁에 소극장 하나가 있었다. 색시네 고향으로 온돌공연대가 가끔 내려오군 했다. 마을사람들은 돈 대신 쌀 한되박씩 들고와서는 공연을 보군 했다. 그중에서 소품이 가장 재미있었다. 소품을 할 때면 색시와 마을사람들은 하느라지가 다 보이도록 입을 벌리고 흐아흐아 서까래가 내려앉게 방성대소를 하군 했다. 그때 그 맛을 되살리며 다리도 쉬움결 색시는 극표 한장을 사들었다. 오늘은 《의자》라는 극이 공연되고있었다. 원체 극이 잘 나가지 않는 요즘 세월에 낮공연인지라 극장에는 관리자가 가련할 정도로 적었다. 애숭이 몇몇, 더운 날씨에도 밀착해앉은 련인 한쌍, 그리고 되게 할일없어보이는 나그네 한사람뿐이였다. 극장의 천정에서 선풍기가 날개를 헤아려볼수 있을 정도로 느릿느릿 돌고있었다. 드디여 종소리가 울리고 불이 꺼지고 막이 열리였다. 구들장을 울리게끔 웃음을 선물하던 익살누성이소품 같은 그런 극이 아니였다. 캐씽구라미처럼 까만색으로 정장을 한 나그네 하나가 방에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는다. 모자란것 같아서 또 하나를 가져다 놓는다. 그래도 모자란것 같아서 또 하나를 가져다 놓는다. 그래도 모자란것 같아서…
시상에! 별 지랄같은 극도 다 있네… 삐걱이는 편치 못한 의자에 앉아서 관객들은 재미라곤 서캐꼬리만치도 없는 《의자》를 구경하고있었다. 불평을 쉬새없이 까내는 해바라기 껍질을 함께 휘뿌리면서, 나중에 방에 의자가 꼴똑 들어차고 정장의 주인공, 단 한사람밖에 없는 주인공이 설 자리가 없어 문턱에 올라섰다가 뒤로 나동그라짐과 함께 극은 끝났다. 박수도 갈채도 생화도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하며 정채로운 위장면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돈지갑을 날치기당한 사람 같은 얼굴로 극장을 나서고있었다. 되게 할일없어보이고 생기라곤 없어보이던 나그네가 막이 이미 내린 무대쪽을 향해 하나 먹어라! 고 쑥떡감자를 먹이였다. 외국에서 들여온 극이라 했다. 공연안내팜플렛에는 관객들의 관람에 편리를 주게끔 극에 대한 해제가 첨가되여있었다.
물질적욕구로 팽창하는 오늘의 피페한 인문환경과 그로써 자초하는 인간 스스로의 파멸을 리얼하게 보여준 실험극… 색시는 놋요강 두드리는 소리같은 그 뜻을 다 알지 못했다. 그저 무대우에 놓여지는 의자들에서 그것보다 더 값진 집의 쏘파를 생각했고 그 쏘파거죽에서 풍겨오던 진저리쳐지는 냄새를 다시 떠올렸다.
쉰듯한 만두와 사카린냄새뿐인 시롭과 데친듯 물컹한 도마도와 공돈을 날린 극구경으로 색시의 긴긴 적막끝에 용기와 희망으로 뼈무른 외출이 막을 내렸다. 몸태의 변화때문이였던지 전에 없이 무픞이 접히는 피곤기가 몰려들었다. 스산한 랑패감으로 어깨를 추츠리며 7층까지 올랐다. 헐떡이며 문을 따던 색시는 전에 없는 풍경에 그만 그 자리에 무춤 멈춰서고말았다. 시아버님이 화장실문앞에 서있었다. 어데서 찾아냈는지 도라이바를 들고 문열쇠와 실랑이를 벌리고있었다. 갑작스레 들어선 며느리를 보고 시아버님도 흠칫 하던 일을 멈추었다. 시아버님은 항용 그러하듯이 내의바람에 맨발이였다. 둥근 내의깃으로 마른 목줄기가 겅충 드러나있었다. 내의 아래섶을 두손으로 사려쥐며 며느리의 표정을 살폈다. 떨꺽! 입에 고인 침덩이를 삼키는 소리가 요란했다. 치아의 구조로 원체 벌려졌는 입술을 어눌하게 놀려 오래만에 완정한 말마디를 만들어내였다.
잠글쇠가 … 짜부라졌더구나… 기래서 고치는 중이다…
무덤속에서 울려나오는것 같은 소리를 하고나서 아버님은 피하듯이 몸을 돌렸다. 막대기에 옷을 걸쳐놓은듯한 깡마른 몸매가 “성채”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색시가 문을 나설 때까지 화장실문 자물쇠는 아무런 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시아버님이 한 일이라고 추정할수밖에 없었다. 아버님이 로망에 드셨나? 색시는 저녁을 지을 생각도 없이 쏘파에 나동그라졌다. 매연이 카텐처럼 꺼수수 덮이는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어항속의 캐씽구라미들이 혼돈속의 춤을 추고있었다.
남편은 여느때처럼 늦게 귀가했고 몸에서는 술냄새가 났다.
미안하다, 많이 기다렸지. 과학기술대학서 우리 상점의 컴퓨털 스무대나 합동했지 않구 뭐냐. 인사턱으로 한잔 마셨어.
몹시 취한 모양 화장실로 가서 이발을 닦고 오면서도 남편은 자물쇠가 망가진것을 기수채지 못하고있었고 색시도 구태여 낮에 있은 일들을 말하지 않았다. 맛없는 만두 시롭 도마도와 재미없는 《의자》에 대해 무척 말하고싶었지만 그저 남편의 흐트러진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사람들 안마까지 시켜주겠다 했지만 뿌리쳐버렸어. 솔직히 말해서…
남편은 색시의 벗은발을 어루만졌다.
… 솔직히 말해서 우리 색시처럼 예쁘고 참한 녀자… 요즘 세월에 흔치 않아. 이제 당금 애엄마될 너에게 난, 난 미안한짓 안할거다. 안할거다…
색시는 남편의 야지랑스런 모습을 덤덤한 눈빛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종래로 신입병사처럼 긴장과 정직으로 굳어져있던 남편에게서 풀린 모습을 보는 경우가 로전사의 방심한 오발탄처럼 날로 늘어갔다. 알콜의 사촉으로 남편의 정감은 고무풍선처럼 잔뜩 부풀어있었다. 안해를 으스러져라 포옹하려다가 거대한 배때문에 곤난하게 되자 돌아가 뒤로 안해를 그러안았다. 헐렁한 옷속으로 쉽게 손을 집어넣어 원체 팽만했고 지금은 더 터질듯 위태롭게 부풀어오른 가슴을 희한하게 어루만졌다. 색시의 몸이 꿈틀했다. 오래동안 그 일을 잊었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잡혀들었다.
색시는 모두가 퇴근해버린 컴퓨터상점의 영업실에서 남편과 맨처음으로 관계를 가졌었다. 컴퓨터로 무언가 치고있던 남편이 홀연 곁에 곰상스레 앉아있는 그녀를 작업대우에 쓰러뜨렸다. 서른을 넘겨 자기보다 열한살 아래인 녀자를 사귄 남편은 분출해오르는 욕망의 염열에 헤덤볐고 남편될 사람의 사람됨에 반한 그녀는 별로 거부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서투르게 그리고 격렬하게 그녀를 다루었다. 단단한 작업대에 놓인 등쪽이 아파왔다. 허나 그보다 더 극심한 아픔이 다른쪽으로 전해왔고 잠시후 이름할수 없는 충종감이 달군 인두처럼 그녀의 몸 구서구석을 지겼다. 그녀의 주체할길 없는 손은 머리우로 뻗어 컴퓨터의 키보드우에 놓여져있었다. 남자에게서 정열의 파장이 올 때마다 그녀의 손은 그 파장을 부여잡기라도할듯이 키보드판을 부서져라 움켜잡군 했다. 그 식지가 건반을 건드리는 바람에 모니터에 글자가 현시되였다. 그녀는 터져나오는 무아의 감미를 숙녀답게 깨물어 입속으로 삼켜버렸고 그 방치할수 없는 감미를 그녀 대신 컴퓨터가 말해주고있었다. 그녀도 전률했고 컴퓨터의 모니터도 전률했다. 그 느낌이 모니터에 하나하나 현상되여나갔다.
!!! !!! !!! ! !! !!
그때의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하고 벅차던 감각이 다시 해조처럼 밀려와 색시더러 몸을 잊게 했다. 남편은 조심스럽고 힘들게 그녀를 범했다. 그런데… 바쁜 체위로 몸을 굽힌데서 그녀의 얼굴 가까이까지 닿은 남편의 머리칼에서 휘발유냄새가 났다. 그리고 담배냄새, 매연냄새도 조미료처럼 곁들여지고있었다. 향수냄새도 미약하나마 휘장뒤에 숨은 도적놈의 발구린내처럼 새여나오고있었다. 남편은 친구가 모터찌클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모터찌클에 앉아 며연이 담처럼 가로막는 거리를 술기운으로 뛰여넘고 해갈라왔을 남편… 혹여 어느 안마방에서 안해의 몸태때문에 못박는 욕망의 보상을 변형적으로 받고 왔을 남편(?). 원체 냄새에 심각한 알레르기를 갖고있는 그녀는 그 현념으로 얼룩진 냄새에 견디기 어려워했다. 남편은 어렵게 격정의 막바지에 올랐으나 그녀는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냄새에 대한 이질감때문에 격정은커녕 형벌같은 시간을 참고있었다. 남편이 기계처럼 생각되였다. 컴퓨터작업대우에서 컴퓨터와 한덩이가 되여 맨처음 그 일을 치렀을 때 그녀가 가진 생각이였다. 오늘 남편은 또 휘발유냄새까지 풍기고있지 않는가! 기계와의 STX! 시간과 환경이라는 담금질속에 쇠처럼 식어가고 딱딱해져가는 정감의 장도를 색시는 섬세한 후각으로 마음으로 읽어내고있었다.
미안해, 힘들었지… 남편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나서 이불속으로 기여들어갔고 인차 OFF가 눌러진 컴퓨터처럼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나 색시만은 잠들기 어려워했다. 땀 흘리며 무대우로 의자를 나르고있는, 캐씽구라미처럼 까만 정장을 한, 아니 남편처럼 정장을 한 배우가 생각났다. 배우의 분장한 얼굴과 원체 허연 남편의 얼굴이 겹놓였다. 남편이 의자를 나르고있었다. 침실로 날라들이고있었다. 더 놓을 자리가 없어 색시는 문턱우로 올라섰다. 그런데 남편은 창문가로 다가오더니 그녀를 창밖으로 밀어던지고 그 자리에 의자를 놓는것이였다. 색시는 소스라쳐 놀라며 환각에서 깨여났다. 자기가 환각속에 섰던 창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창으로 누군가의 눈이 침실을 들여다보고있지 않는가. 7층높이인지라 카텐까지 달지 않고 방심해있는 그들을 눈을 지릅뜨고 들여다보고있었다. 그것은 … 공룡의 눈이였다. 색시는 다시 한번 진저리를 치며 꿈에서 깨였다. 더위에 열기로 가득찬 침실이였지만 살진 가슴패기로는 식은땀이 줄지어 내리고있었다.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싶어 랭장고가 놓여진 주방으로 나갔다. 공교롭게도 시아버님이 어둠을 헤집으며 화장실로 가고있었다. 색시는 얼른 화장실 바깥벽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 화장실의 불을 켜주었다. 아버님은 여전히 아무말도 표정도 없었다. 떨꺽 소리가 나게 침을 삼키고는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색시는 망가진 화장실문 자물쇠를 생각하며 침실로 들어가려 했다. 이때 아버님이 기거하고있는 칸의 방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그속으로부터 … 아버님이 나오고있었다. 화장실의 문도 때맞추어 열렸다. 내의바람에 겅충한 목을 하고 치아의 구조때문에 벌려진 입술로 아버님은 애써 웃음을 만들고있었다… 시상에! 색시는 푸른 입술을 덜덜 떨었다.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청이 톱밥을 삼킨듯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색시는 온밤을 이렇게 깨고 잠들고 잠들고 깨고 하면서 연거번거 악몽에 시달렸다. 진짜로 현실상채를 확인했을 때 이번에는 아버님의 방으로부터 건조한 고성이 터져나오고있었다.
가자, 돌아를 가! 돌아를 가아!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오더니 랭장고문부터 열어젖혔다. 맨 웃층에 있는 소고기며 돼지고기의 정육덩어리들을 끄집어내여 복도에 쓰레기상자맞잡이로 놓여진 종이박스에 던져버렸다. 당혹감에 두눈을 동그랗게 치뜨는 색시에게 경고하듯 어미(语尾)가 분명하게 남편은 말했다.
이제부터 고기먹지 마라. 돼지고기, 더우기 소고기 먹지 마!
무슨… 일인데요?
란리가 났어. 란리들이…
남편은 핸드폰가방속에서 석간지 한장을 끄집어내여 펼쳤다. 톱소식을 식지로 구멍낼듯이 그루박았다.

구라파에 번진 공포의 광우병
구라파는 온통 공황상태에 빠졌다. 광우병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영국으로서 현재까지 16만 1663건이 보고됐고 스위스에서 205건, 아일랜드에서 123건, 뽀르뚜갈 13건, 주로 구라파에서 발견됐지만 중동의 오만, 카나다, 포플랜드에서도 한두건씩 발생이 보고됐다. 영국정부는 460만마리가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다 도살하는데 최소 6년은 걸릴것이라고 밝혔다.
20세기는 생산성이라는 광기가 세계를 지배한 세기였다. 풀 먹고 사는 소에게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후사료”를 만들어 먹이였다. 그쪽이 방목보다 수익성이 높고 노력도 덜 들기때문이다. 그래서 몇천년동안, 풀만 먹고 살아온 초식동물이 양고기와 동물내장 같은 육류를 먹게 된것이다. 스크래프병에 걸린 양은 사료원료가 됐고 이를 먹은 소들이 광우병에 걸려 떼죽음을 당했다. 소가 미친것이 아니다. 인간의 문명상태계가 미쳐가고있다는 신호이다. 
속보: 영국산 소고기 전면 금수 조치가 해제되기도전에 이번에는 벨기산 돼지고기가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에 오염됐다는 뉴스가 터졌다. 닭과 닭알도 함께 오염됐다는 소식이 뒤따랐다. 전세계적으로 벨지산 돼지고기 회수 소동이 벌어졌다…
시상에! 기럼 우리 이제부터 고기란거 못먹어요?
한동안은 먹지 말자.
설마 우리 여기까지 그런 병이 돌가요?
설마가 사람 죽인다구. 서양거라면 쓰레기두 입수해들이는 우리잖아. 절대루 먹으면 안돼. 더우기 임잔 이제 혼자 몸이 아닌데! 이거 진짜루 말세가 오는건감??
남편은 침몰하는 배에 난 구멍을 혼자 막는 사람처럼 황황한 기색이였다. 그바람에 색시도 남편의 불안에 옮아들기 시작했고 은연중에 처참히 죽은 바둑이를 머리에 떠올렸다. 페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고 죽어간 바둑이처럼 영문없는 액사를 당할수 있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멀리서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눈도 코도 다 보이게 실감되여왔다.
이제부터 우리 뭘 먹구 산대요?
하, 고기말고도 먹을거야 많지, 그 있잖아…
남편이 홀연 말을 갑자질렀다.
…여하튼 지방이 많은 고기는 몸에 좋지 않아. 지금 녀자들 밥 같은거 아예 먹지 않다싶이허구 살아가잖아. 다이어트 한답시구.
그렇다구 매일 과일로 하루 세끼를 에울순 없잖아요?
원체 흥감스러운데가 있고 벼룩을 보고도 비행기야! 과장을 잘하는 남편에게 색시는 자꾸만 의문덩이를 내들었다.
우리 녀자들이야 밥에 짠지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하루 건너 연회석인 당신 남정들은 어쩌겠어요? 고기 안먹구.
뭐, 그런대로 응부하지 뭐.
저녁식사는 콩나물국 하나만 달랑 놓고 했다.
그 며칠간 색시는 내내 음식공포증에 시달렸다. 텔레비죤이며 방송에서 광우병에 대해 련속보도를 했고 이곳 검역소들에서도 그 성향에 맞춰 자지방 육류에 대한 전면검사를 벌렸다. 그런데 사람들의 심기란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색시는 원체 육류쪽에 식성이 없는 사람이였는데 목먹는다고 하니 외려 시원한 소갈비국 생각에 미칠것만 같았다. 콩나물국에 소고기다시다를 넣어 먹어보았지만 “꿩대신 닭”이라고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에게서 단단히 신칙을 들었다. 독품을 몰수하듯이 다시다를 들추어냈고 일본산의 그 양념도 정육덩이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복도의 쓰레기상자에 날라들었다.
남의걸 잘 들여오고 잘 배워내는게 일본이라고. 봐, 문자조차 우리걸 가져다 획을 뜯어 만드는 잔나비들인디.
이것저것 확대경을 들고 대하고, 지뢰구역에 들어선듯 조심하는 남편이 저러다가 다른 병을 앓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가 미치다니? 색시는 일전 동네에서 미친 남자 한사람을 보았었다. 시가지의 어느 한 고무공장에서 일하며 농사군딱지를 벗은듯 마른 호기를 부리던 사람이였는데 펄펄 끓는 력청(沥清)에 전신화상을 입으면서 미쳐났다. 그 사람은 고무만 보면 달려들어 이발로 물어뜯군 했다. 향정부마당에 놓인 자동차나 자전거 다이야를 보면 물고 늘어지군 했다. 모철, 논두렁에 벗어놓은 고무신을 물어뜯기도 했고 애들 고무지우개도 엿가락처럼 씹어대군 했다. 그렇다면 소는 어떻게 미쳐날가? 원체 대 큰 소의 이발이 송곳이로 버려지고 둥그런 발톱이 모가 나서 영화속의 공룡처럼 사람을 한입에 베여무는 환각에 사로잡히며 색시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캐씽구라미가 미쳐나 어향에서 뛰쳐나와 땅우에서 풀쩍풀쩍 뛰여다니는 환영도 떠올랐다. 컴퓨터도 병을 앓는다던데? 어떻게 앓을가? 열이 날가?
우리가 구토설사하는것처럼 부속품을 토해낼가? 아니면 암종양이 생기듯이 형광막이 부풀어오를가? … 애 낳을 준비로 집에 붙박혀 침대우에서 노량으로 뒹굴며 녀자는 질정없이 생각을 적었다가는 지우고 지우고는 다시 적고 하였다. 여하튼 일전에는 홍역이나 감기 같은것을 병으로 치부하고 알약쯤으로 응부했는데 부르기조차 어려운 병들이 많이도 생겨나고있었다. 홍안병, 콘디롬마, 에이즈, 마천루종합증, 고소공포증, 자페증(自闭症), 컴퓨터천년충(千年虫), 광우병 등등등등…
이러한 절실한 우려에 시달리지 않고있을 사람이 있다면 단 한사람뿐 다름아닌 시아버님일것이다. 색시는 그런 시아버님이 오히려 부러워나기까지 했다. 허나 시아버님은 시아버님대로의 다른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한번 진지상을 차려들고 아버님방에 들어섰다가 색시는 시아버님이 무엇으로 등을 긁고있는것을 보았다. 황황히 뒤로 감추긴 했지만 색시는 그것이 무언지 일견에 보아낼수가 있었다. 아무말없이 응접실로 들어가 텔레비죤을 살펴보았다. 낚시대처럼 뽑아올리던 안테나가 보이지 않았다. 두가닥중에서 한가닥을 끊여내였다. 아버님은 그 안테나로 등을 긁고있었다. 일전에 아버님에게 참대로 만든 등긁개를 사드렸었다. 손잡이에 “복”자까지 새겨진 정교하게 만들어진 등긁개였다. 등긁개를 잃어라도 버렸나? 허나 출입시에 색시는 분명 침대머리에 놓여있는 등긁개를 보았다. 다행이 유선텔레비가 들어온 집이여서 텔레비안테나는 담쌓고 남은 벽돌신세였다. 그렇다지… 실로 로망이 드신걸가? 아니면 가려운걸 보시니 목욕하고싶은걸가?
아버님, 목깡할 때가 되잖았어요?
남편에게 안테나 사건에 대해 대주지 않고 색시는 완곡하게 물었다. 화장실문 자물쇠에 대해서도 남편이 묻지 않자 입을 봉하고있은 그였다.
뭐? 목욕??
남편이 놀라듯 응수해옸다. 그리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필요이상으로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시상에! 목깡 안하구 살아요??
색시가 폭발하듯 소리질렀다. 그러고보니 새집들이후 아버님이 목욕한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의 빨래는 남편이 세탁소로 가져가군 했다. 색시가 하려 들면 남편이 부득부득 앗아냈다. 아버님의 더러워진 옷가지와 이부자리를 챙겨가는 남편의 행동에서 요행 효도의 흔적을 보았던 색시였다. 
뭐 그런게 아니고… 헌데 당신 별거 다 신경쓰고 그래?
남편이 면풍든 사람처럼 어눌하게 입을 놀리며 확답을 갈무렸다. 자기쪽에서 증을 버럭 냈다.
아버님의 그 야릇한 증세는 등긁개로 대용된 안테나에만 그치지 않았다. 색시의 몸태가 변하기 시작하자 남편은 카세트테프 하나를 사주었다, 아침저녁으로 들으라고 했다. “태교(胎教)음악테프”였다. 산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좋다고 했다. 과연 고향의 여울물소리, 새소리를 듣는듯 맑은 곡조가 귀맛에 좋았다. 그런데 그 테프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님방에 들어서보니 시아버님이 몽땅 뽑아놓아 실타래처럼 엉켜진 테프를 주체할길 없어 당황해하고있는중이였다…
장식을 요란히 했고 맨웃층이여서 채광이 잘 들다보니 집은 늘 건조했다. 그래서 가습기(加湿器) 하나를 사놓았다. 보온병보다 조금 작은 가습기는 구석쪽에서 물안개를 퐁퐁 피워올리며 인공으로 딱딱해진 구석구석을 습윤하고 차분한 손길로 어루쓸어주고있었다. 자고나면 코와 입안이 늘 말라들군하는 색시에게서 가습기는 필수품이였다. 그 가습기가 보이지 않다가 령감님의 방에서 나왔다. 가습기의 부속품은 오간데 없고 그 플라스틱외각속에 아버님이 가래침을 뱉아낸 휴지덩이들이 골똑 차있었다. 염오와 반감이 상대가 년장자임을 알아볼 사이도 없이 욱- 치밀어올랐다. 색시는 처음으로 시아버님앞에서 불손하게 파동하는 정서를 엿보였다. 아버님은 아무런 항변도 없었다. 남의 집 창호지에 구멍을 내고 훈장앞에 불리워간 학생처럼 겅충 드러난 뒤덜미를 피나도록 긁고만 있었다. 그런 아버님이 색시는 불쌍해나기도 했다. 오죽 갑갑했으면 저런 방식으로 응어리진 적막을 해소하랴싶었다. 그래서 눈감아주었고 의연히 남편에게 일러바치지도 않았다.
그러한 관용은 기계에 대한 편집광(偏执狂)적인 로인의 증세를 더욱더 유발시켰다. 색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디스크는 령감님의 방에서 거울대용으로 사용되고있었다. 귀가 린색한 아버지를 위해 남편이 사준 보청기는 언녕 줄이 끊겼고 령감님은 그것이 뭐 박하사탕인듯이 입안에 놓고 달그락달그락 굴리군 했다, 그녀가 줄겨먹는 사과나 홍당무우즙을 짜내는 목즙기속에 감자가 들어있기도 했고 삼복염천의 에어콘에서 찬바람이던것이 금시 더운 열기로 변하여 확확 풍겨나오기도 했다. 요즘 들어 “성채”속의 주인은 “호전파장군”으로 둔갑하여 활동이 많아졌고 개구장이같은 못된 궁냥으로 다른 사람도 아닌 며늘아기를 괴롭히고있는것이였다.
아버님이 젊어서 손재간 피우셨나보죠? 라지오수리라든가 아니면 시계수리 같은…
색시는 아버님의 그 소재를 파악할길 없는 야릇한 행위— 기계에 대한 분수넘는 애착심리를 해제해보려고 남편에게 에둘러 물었다. 남편이 그 말을 듣자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아부지 일평생 가대기만 만져봤을뿐이야. 기계수리라니? 랭수 먹다 이발 부러질 소리…
그러던 남편의 기색이 심각한 빛으로 바뀌였다.
아부진 여태껏 시계조차 차보질 못했어. 우리 가문에 불효났지. 불효났어!
남편은 스스로의 애락한 감개에 빠져들었다. 묻지도 않은 말을 주근주근 터놓기 시작했다.
우리 고장은말이지, 임자네 고장보다말이지, 훨씬 깊은 산골이였다구…
적삼우로 부푼 색시의 배를 어루만지며 남편이 말을 이었다.
부끄런 말이지만 이곳의 대학에 붙어서야 난 처음 기차란걸 타봤어. 웃지 마! 그런 생둥이의 아버지나깐 이곳에 첨 온 아버지가 어떤 감수였겠나. 어디 생각해봐. 이건 “관청에 온 시골닭”도 아니구 뭐랄가? 아버질 닭에 비하긴 좀 그러긴 하지만두. 여하튼 눈알이 까집히고 정신이 홰홰 돌아갈 그런 세상별천지였을거야. 나까지도 첨엔 그랬는데… 아버진말이지. 이곳에 도무지 도무지 적응이 안돼하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몸살을 앓으셔. 그런데말이지 돌아가려 해도 이젠 다 끝난 장이야. 시내에 물을 대여주려고 우리 동리 골물을 터쳐 땜을 만들었어. 원체 쬐꼬만 동리인지라 물에 깝뿍 잠기고말았지. 그래서 아부지껜 이제말이지 고향이라는거 더는 없어…
남편은 컴퓨터키보드를 만져 모니터에 자기 생각을 현시하듯이 안해의 배를 만지며 감개를 풀어내고있었다. 전자회로가 끊어지는 소리 같은 한숨이 울렸고 색시의 가슴쪽에 손을 얹은채 남편은 OFF가 되여 잠에 곯아떨어졌다. 남편이 추억을 더듬고 있는 사이 색시는 남편의 고향과 진배없는 자기네 고향을 더불어 그 애련에 합탁시켜보았다. 나서 자란 보금자리에 대한 애틋한 정의 공감을 진하게 느끼며 남편의 손우에 자기손을 얹었다. 그런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너나 나나 내용물이 꼭 같은거라고… 그것과 자물쇠며 안테나며 테프며 가습기며 보청기며 에어콘이며 어떤 련관의 끈이 있는걸가? 현념은 줄창 속곳에 달라붙은 가시처럼 색시를 괴롭혔다.
…시상에! 난 몰라!!
시아버님에 대한 색시의 시상에 류다른 관용과 인내는 남편과 고향담을 애틋하게 나눈 그 이튿날 문득 한계를 넘고 작렬했다. 색시로 말하면 해도 너무 한 일이 끝내 일고야말았다. 색시에게는 손목시계 하나가 있었다. 전자시계가 란무하고 시계를 차지 않는게 시체멋인 요즘세월에 구식이고 윤택조차 없는 식계를 색시는 굳이 고수했다. 남편이 비싼쪽으로 사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고 시계는 그녀 신체의 한부분이기라도 한듯이 그녀 몸에 단단히 달려있었다. 지나간 고담처럼 끝없이 주절거리는것 같은 시계는 늘 색시를 대신해 눈물겨운 이야기로 시간가는줄 모르게 해주고있었다.
손목시계는 색시의 언니것이였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색시에게는 언니는 유일한 살붙이였다. 치렁치렁한 외태머리를 왼쪽어깨에 곱게 드리우고 다니는 언니는 보기 드문 고전(古典)미인으로 남편이 괴여올리는 색시보다 많이 예뻤다.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색시보다 두살 이상이였지만 퍽 조숙했고 언니에 엄마 역도 더불어 맡아왔다. 그렇게 예쁘고 좋기만 하던 언니, 조실부모의 박명을 타고난터에 우리들이라고 함께 천년만년 살고지고하자던 언니는 지금의 색시나이만 할 때 먼저 갔다. 동생을 뿌리치고 먼저 갔다. 바둑이가 죽은 그 이듬해에 죽었다. 바둑이가 먹고 죽은 물고기가 살고있는 강을 오염시킨 그 공장에서 일하다 죽었다. 언니는 포장차간에서 일했는데 종이토리를 감는 기계에 머리택가 끌려들어가는 액사를 당했던것이다. 색시가 오늘이고 래일이고 한 본새로 단발을 고집하는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때 지금의 남편과 회사의 직원들이 공장에 판매를 왔었다. 언니를 잃고 하늘같은 슬픔에 잠긴 그녀를 보고 남편은 껴안아주고싶도록 련민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기대에서 종이가 만장처럼 나붓기는 차간을 배경으로 울고 섰는 그녀가 그렇게 슬프도록 아름다워보일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번의 판매에서 남편은 실패했다. 허나 수익은 컸다. 색시를 얻은것이였다. 어디서 어떻게 기대야 할지 막연했던 색시는 컴퓨터처럼 기민한 남편의 추구와 일점 오차 없는 미래에 대한 설계에 숫접게 그의 뒤를 묻어서고말았다. 손목시계는 언니가 공장에서 년종상금으로 탄것이였고 언니의 유일한 유품, 그들 가정의 제일 값지다는 기물이였다.
그런 애환과 사랑 이야기가 담겨져있는 손목시계가 어느결인가 시아버님의 눈에 띄였고 호기심의 제물(祭物)로 되였던것이다. 시아버지의 그닥 깨끗하지 못한 요우에 먹다남은 물고기의 잔해처럼 널린 시계바늘, 시계태엽, 시계치륜들을 보고 색시는 치한으로부터 기습을 당한것처럼 비며을 질렀다.
아부지잇!— 저녁, 울었던 흔적이 력력한 색시에게서 사연을 접해들은 남편은 방문을 왁살스럽게 열어젖혔다. 아버지는 면부근육기능을 상실한 사람처럼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불러놓고 그런 처치곤란한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남편도 속수무책이였다.
시계 차고프면 차고프다 말씀이나 할것이지 기래요? 아부진 … 남편은 결김에 자기의 값비싼 손목시계를 벗어 아버지의 손에 콱 쥐여주고는 그냥 나와버렸다. 그것이 책망인지 안니면 불효에 대한 반성인지 남편자신도 알길이 없었다. 밤, 산산이 해체된 추억의 시계바늘을 맞추고 태엽을 다시 감으며 색시는 장밤을 울었다. 그 전자양조차 돌보지 않아 남편이 몸소 “먹이”를 주었다.

이튿날 남편은 회사에서 말미를 맡았다. 전에 없던 일이였다. 색시를 배동해 택시에 올랐다. 울음으로 밤샘을 하고난 색시는 남편을 두들겨 깨우고는 고향으로 가보고싶다고 했다. 맞아줄 이도 없는 고향이지만 그저 가보고싶다고 했다. 가봤대야 모기밖에 누가 우릴 더 반기겠어? 하는 남편에게 매달리며 죽은 바둑이가 보이고  죽은 언니가 보이는 꿈자리때문에 자기보담은 아이를 위해 고향으로 가서 방토를 해보겠다고 했다. 억지를 쓰며 간청해서 남편의 수긍을 받아냈다. 택시의 뒤좌석에 색시를 힘겹게 부축해 앉히며 남편은 그동안 색시를 너무 등한시했고 배동하여 외출 한번 못했다는 자책지감이 들어했다. 그러고보니 거금으로 삯낸 택시비지만 아깝지 않았다.
눅신한 열기에 엿물처럼 눌러붙은 아스팔트길로 택시는 느릿느릿 글러갔다. 앞에도 뒤에도 흘레하는 잠자리마냥 붙어선 장대한 물결의 차량들이 도시의 혈관속에서 뇌혈전환자마냥 행동의 자유를 잃고있었다. 도시에서는 경적이 금지됐으므로 운전기사들은 그저 차창밖으로 한쪽만이 검게 그을린 팔뚝을 저으며 불손한 어성들을 뜅겨냈다. 붉은등은 그들과 척지기라도 한듯이 피줄선 눈을 지릅뜨고있었고 땀을 뻘뻘 흘리는 교통감리들은 지휘봉을 몽둥이 삼아 질서를 지키지 않는 기사들의 정수리를 후려치고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고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의 물결은 채바퀴를 새여나가는 모래알모양 차량사이를 비집고 흩어져나가고있었다. 어데를 봐도 차와 사람과 소음과 열기뿐이였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갈수 있다는 들큼한 상념에 조용히 하회를 기다리고있던 색시가 견디기 어려웠던지 뒤좌석의 구멍난 틈새로 해면을 호비작호비작 뜯고있었다. 오랜만에 정성껏 분을 두들긴 얼굴이 땀에 씻겼고 물이 빠진 강바닥의 돌처럼 자잘게 얼굴에 깔린 잠이 형체를 드러냈다. 기사가 기다림에 생중난 그들을 위문해주련듯 라지오를 틀었다.
…오늘은 세계 인구날(人口日)입네다. 20세기를 돌이켜볼 때 우리는 많고많은 대변혁이나 사건중에서 그 어느 문제도 인구폭발문제처럼 지구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것이 없다는걸 쉽게 발견할수 있습네다. 지구의 생태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자원을 소모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 많은 인구를 먹여살리는가 하는것이 오늘날 인류앞에 놓여진 중대한 난제입네다.
세계인구의 장성속도는 놀아울 정도로 빨라지고있습네다. 세계인구는 1804년에 10억에 달했지만 1920년에는 20억, 오늘에는 60억에 접근하고있습네다…
씨부랄! 새끼만 까고들 있었나?
운전기사가 방송을 들으며 걸죽한 욕설을 입에 담았다. 그러는 기사의 뒤통수를 향해 색시가 보얗게 눈을 흘겼다.
…유엔의 추측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0년후면 세계인구는 89억에 달할것이며…
아따, 기사아저씨이! 하필이면 교과서 읽는 소릴 듣고 앉았어요.
남편이 흥미 덜하다는듯 방송의 따분한 내용물에 반감을 표했다. 기사도 그 반감에 동감인양 방송을 바꿔 테프를 꽂았다. 중국 노래가 울려나왔다. 향간에서 류행되고있는 “자주 집으로 가봐요”라는 제명의 노래였다.
자주 집으로 가요 집으로 가봐요
어머니를 도와 그릇도 씻어드리고
아버지의 굽은 등을 도닥여도 줘요…
그 노래가 지금의 심기에 꼭 맞는듯 부부는 눈을 맞추었다. 색시가 곡조에 맞춰 노래가락을 흥얼거렸다.
도심에서 떠난 택시가 도시를 완연 벗어나 시교와 린접된 국도에 들어서기까지 꼬박 한시간을 잡았다. 그제야 색시는 속도를 느꼈고 택시에 앉은 자신들을 다시금 실감했다. 또 두어시간가량 달려 어느 고개마루에 오른 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했다. 다 왔어요? 남편의 어깨에 기대여 땀에 젖어 졸고있던 색시가 눈을 떴다. 그런데 남편도 그렇고 백미러에 비쳐진 기사의 눈고 그렇고 고개 아래를 뚫어져라 내려다보고있었다. 그 눈길들은 분명 무언가 찾고있었다. 그 눈길과 색시의 눈도 합세하였다. 시상에! 순간 색시는 헛밟은것처럼 움찔했다. 하마트면 비명을 지를번했다. 고개 아래에는 강이 있었고 그 강우에는 색시네 고향으로 통하는 유일한 경로인 다리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다리로 색시네 고향의 많은 사람들이 건너왔다. 허나 전쟁이라도 피하는것처럼 건너는 왔지만 건너가는 사람은 적었다. 색시도 남편을 따라 그 다리를 건너오면서 가는 목이 꺾이도록 뒤를 돌아보았었다. 그런데 그 다리가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강에는 색시네 아빠트앞 공터처럼 헬멧을 쓴 인부들이 까맣게 널려 먹이를 나르는 개미떼처럼 분주히 오가고있었다. 강녘에 “다리확장공사시공중, 통행금지!”라고 씌여진 패말이 보였다. 씨부랄! 하고 기사가 맹랑한 소리를 냈고 람루한 기분으로 남편은 색시의 표정을 읽었다. 색시는 누가 다치면 울음을 터뜨릴것 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고향으로 한번 가보려던 감몽은 그렇게 잠시 깨여졌고 다시 전자양과 캐씽구라미와 클로버 하트 다이몬드 스페이드와의 시틋한 상봉이 색시를 맞아주었다. 날은 환장할 정도로 더웠다. 찜통더위에 사람도 땀흘리고 하루종일 작동상태인 에어콘도 땀을 흘렸다. 색시는 무거운 배를 퍼더버리고 앉아 두손은 뒤로 바닥을 짚고 헐떡이기가 일쑤었다. 남편이 사다주며 백당부를 한 안태보(安胎宝)약이 손 펼치면 잡힐데 있었지만 색시는 약먹을 물 뜨러 가기조차 귀찮았다. 다행히 비가 올 기미가 보여 색시는 좋았다. 대줄기 작달비라도 한줄금 두들겨 내렸으면 내연기관처럼 달아오른 도시의 열기를 식혀낼수 있을것 같았다. 허나 소낙비 직전의 무더위는 발광에 가까웠다. 물속의 캐씽구라미조차 더위에 지쳐 금붕! 금붕! 울어대는것 같았다. 더위때문인지 아버님의 악동이 같은 해괘한 짓거리를 더는 볼수 없어 색시는 그나마 편했다.
종내 비를 기다려내지 못하고 색시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목욕을 하고싶어졌다. 땀으로 끈적끈적한 몸뚱아리를 박박 씻고싶었고 더위는 포박되여 까닭없이 심술궂어지는 심기도 씻어내리고싶었다. 몸태때무에 변형이 된 옷을 힘들게 벗어내렸다. 욕조에 들어앉을수 없어 바닥에 타올을 깔고 앉았다. 자그만 화장실에도 열기는 밀도 짙게 재여있었다. 금방 받아낸 수도물이라도 금세 미적지근해지는것이였다. 소래에 물을 받아 어깨에 끼얹었다. 물은 가슴패기의 깊은 곬을 따라 흘렀고 완만하게 둥시런 배를 감싸고 흘러내렸다. 일전에는 남편과 둘어서 꼭꼭 “원앙욕”을 하군 했다. 욕조에 둘이 비집고 앉아 서로의 요긴한 부분을 샅샅이 만지며 목욕절반 장난반으로 롱탕질을 쳐댔다. 그에 생각이 미치자 빈 욕조를 바라고 색시는 혼자서 얼굴을 붉혔다. 이것이 마지막 목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해산 기일이 이제 며칠이 남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색시는 자기배같지 않은 만삭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남들처럼 임신무늬가 생기지 않은 배는 깨끗하고 풍요로워보였다. 그속에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아기가 보채지도 않고 점잖게 어머니와의 상봉을 마지막차처럼 기다리고있다고 생각하니 색시는 금세 비누거품처럼 부풀어오르는 행복에 켜워지는것이였다. 아가야 넌 어떤 얼굴로 나를 맞아주려나?
이때였다. 색시는 꽈르릉! 하는 천둥소리를 들었다. 드디여 비가 내리고있나보다. 그런데 천둥소리는 유난히도 가까이에서 들렸다. 화장실문이 열렸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사진기의 마스네슘섬광처럼 번쩍이는 번개불빛의 후광속에 화상실문가에는 … 시상에! 사람이 서있었다. 내의바람에 껑충한 목을 하고 치아의 구조때문에 입을 헤 벌린채로 맨발바람의 누군가가 허깨비처럼 서있었다. 시아버님이였다! 색시는 덴 가마에 올라선것처럼 악당치는 소리를 질렀다. 엉뎅이에 깔린 타올을 재빨리 끄집어내여 본능적으로 몸을 가리려 했으나 부풀어오를대로 오른 치부를 다 가릴수가 없었다. 그저 악몽의 문짝에 옷자락이 끼여 오도가도 못하는 심야의 녀인처럼 온몸으로 경악하며 악! 악! 하고 색시는 단말마의 비명을 질러댔다. 오늘 보니 두상(头像)이 무지스럽게 커보이는 시아버지는 정지된 시계처럼 동공 하나 움직이지 않고 버캐를 허옇게 문 입술을 실룩이며 침 한번 삼켰다. 떠얼컥! 비좁은 화장실에서 그 소리는 쇠덩어리의 실추소리처럼 둔중하게 울렸다. 그러는 령감의 손에 어데서 찾아냈는지 망치 하나가 불끈 쥐여있었다. 떨어져 갓도는 단추알처럼 령감의 눈알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확 살아오른 눈빛이 멈춘 그곳에 온수기가 달려있었다.
어떻게 화장실을 빠져나왔고 재빠르게 옷가지들을 꿰여입었는지 그 순간만은 색시의 뇌리속에 하얗게 지워지고 없었다. 화장실에서 천둥소리같은 질타성이 탕! 타아앙! 울려나옸다. 령감님이 망치를 들고 온수기를 사정없이 후려서 부서뜨리고있었다.
색시는 무거운 몸매의 사람 같지 않게 층계를 단숨에 달아내렸다. 독전(毒箭)같은 비가 그녀의 전신에 꽂혀들었다. 비물에 질척해진 공지를 가랭이에 흙탕꽃을 피워가며 색시는 첨벙첨벙 뛰여갔다. 대로곁에 공중전화박스가 있었다. 구명선처럼 덮쳐가 헤덤비며 번호를 눌렀다. 틀려서 다시 눌렀다. 전화기를 꼭 잡은 다른 한손은 전기드릴을 잡은 인부의 손처럼 달달 떨리고있었다.
여보시요? 여보시요? 말씀하세요. 여보시요?
드디여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가 걸렸고 받은 사람은 고맙게도 남편이였다. 어쩐지 눈물이 돋솟아올았다. 색시는 악에 받쳐 소리소리 질렀다.
못살아!-

집 가까이에 있는 다방에서 색시는 영 오지 않을것 같던 남편과 마주 앉았다. 창밖은 여전히 흐려있었고 암울한 날씨처럼 남편의 표정은 차마 보아내려갈수 없도록 험했다. 뜨거운 차 한잔이 다 들어가고 그만한 따스함이 두려움에 오갈든 가슴에 채워져서야 색시는 진정을 할수가 있었다. 머리칼에서는 아직도 비물이 뚤렁뚤렁 빈 차잔에 떨어져내렸다. 남편이 또 티슈를 집어 건네주었다. 남편은 처음 보는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아니, 담배필터를 씹고있었다. 그리고 차물을 랭수처럼 들이켰다. 차잎이 입가에 추레하게 달라붙었다.
울엄만 아부지보다 다섯살우였어…
남편이 긴긴 침묵때문에 가라앉은 목청을 가다듬고나서 한 말이였다. 색시는 아직도 피해의식이 가득찬 얼굴을 들어 남편의 입을 쳐다보았다.
아부진 아홉살에 엄마한테 장가들었지…
그런 남편을 색시는 제지시킬 힘조차 나지 않았다.
…아부지와 엄만 진갑까지 함께 쇠였댔어.
점욕당한 자기처럼 흥분하지 않고 무관한 입담거리를 꺼내고있는 남편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만해욧!-
늦여름 땡볕에 오른 고추가 되여 색시는 힘을 모아 기성을 질렀다. 카운터에서 계산에 골몰하고있던 웨이터가 흠칫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남편은 여전히 침착했다. 또 한개비의 담배를 꺼내들었다. 필터쪽을 떼내여 입에 넣고 지근지근 씹었다. 동강난 말을 서두르지 않고 붙여나갔다.
…그런 부모를 둔 우리 형젠 무척 행복했었지. 부모에게 더 큰 기쁨을 주려고 우린 그분들을 이곳으로 모셔왔어. 물론 아버지와 어머닌 안오겠다고 버퉁겼어. 우린 강다짐으로 끌었어. 그것을 효도라 생각허구…
색시는 네 맘대로 지랄춤 춰바라는듯 잠자코 있었다. 들끓던 분노가 체념으로 잦아들고있었다. 남편이 얼굴을 들어 그런 색시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흐려있었다. 허나 강했다.
엄만… 엄만 누님네 집에 들었어. 막내동인 내게 부접거리를 얹을수 없다면서말야. 내가 누님보다 드 크고 더 좋은 집을 쓰고있었지만. 그러던 엄만, 엄만…
잠언풍의 말투로 흐르던 남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황사장(黄沙场)의 맞바람을 지나는듯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엄만… 이사짐을 푼 그날 저녁 죽었어. 목욕하다가 … 목욕하다가 온수기에 감전되여 죽은거야!…
아! 색시의 입에서 헛바람같은 경아성이 새여나왔다. 개천에서 나와 립신양명한 아들딸의 효성어린 지청구에 못이겨 돌맹이 하나 풀 한잎에 정한이 스민 고향을 떠났고 극락인지 아니면 염마전인지 쇠통 알길없는 도시에 겁먹은 눈길로 들어섰던 부모님, 한짝도 락오없이 짝지어 세파의 구름길을 헤쳐나는 홍안(鸿雁)같은 부모님들이였는데…
색시는 그제야 운무에 가렸던 시아버님의 그 광기에 가까운 집착의 근원을 리해할수가 있었다. 그 실어증(失语症)에 가까운 과묵과 두문불출의 자기학대에 대해 알것만같았다. 반세기 넘어 죽음같은 고해의 현애탄도 다 넘어왔는데 천륜지락이 당금 아지랑이처럼 펼쳐질무렵 어이없게 그렇게 가버린 누님같던 부인네의 죽음을 두고 도깨비 보물함처럼 도무지 영문을 알길 없는 철천지의 기계를 바라 두눈을 흡뜬 시아버님의 피로문 절망을 며느리는 방불히 보는것만 같았다. 불쌍한 아버님! 리해, 그리고 량해가 저 하늘의 천둥과 번개처럼 순간에 엇갈렸다. 꼭같은 비운이 지울래야 지울수 없는 흉터같이 속살깊이 남아있는 그녀였기에 가슴을 짓누르고있는 그러한 정감의 바위돌의 무게를 색시는 너무나 잘알고있는것이였다…

색시는 남편의 뒤를 묻어 다시 집에 들어섰다. 집은 폭풍우가 지나간 숲처럼 고요했다. 화장실문은 열린채로이고 추락해버린 비행기의 잔해처럼 온수기의 흉칙하게 찌그러진 외각과 튕겨난 파편이 욕조며 타일바닥에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어항에 부착된 산소방출기는 꾸르륵꾸르륵 흡독자같은 “수은대”의 소리를 그냥 내고있었고 그 극독을 받아 마시기라도 한듯 캐씽구라미가 꿈틀거리며 단말마적인 춤을 추고있었다. 남편이 아버님의 방을 노크했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순간 짧고 다급한 비명이 적요한 실내를 찢었다.
자멸을 시도한 시아버님은 구급을 들이댔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말았다. 집도(执刀)의사가 아버지의 배속에서 수술해낸것을 소반우에 받쳐들고 나왔다. 햐얀 가제우에 놓인 시아버지가 삼켰을 물건을 보는 순가 색시는 흑- 찬바람을 들이키고말았다. 전신의 신경들이 올올이 직립을 했다. 검붉은 피덩이에 반죽되여나온 그것은 남편이 언젠가 아버님에게 주었던 시계의 잔해였다. 바늘, 치륜, 태엽… 랑하의 벽에 등을 맞대고 섰던 색시는 손바닥으로 벽을 만지며 스르륵 미끌어져내렸다. 단단한 일격의 두통이 왔고 속이 메슥거려올랐다. 그것은 잠시, 복부를 척살(刺杀)하는것 같은 진통을 느껴 색시는 배를 부여잡았다. 사려문 어금이로 신음이 새여나왔고 신다리를 타고 뜨거운 압류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색시는 밀랍인형처럼 허실상몽으로 내내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내내 울었다. 사람의 몸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흘러나올수 있다는것이 울고있는 색시에게마저도 이상했다. 그렇게 울고있는 자신의 처경이 불쌍해 다시 눈물이 장마의 힘을 받은 개천처럼 흘렀다. 세상이 그렇듯 참독할수가 없었다. 시상에! 어쩜 그럴수가! 아버님은 처참히 스스로를 보냈고 색시는 , 열달잉태의 고임(苦任)에 시달렸던 색시는 그만 죽은 아기를 낳았다. 병원의 간호장도 남편도 아기를 보고 혼겁을 했다. 색시자신도 그 아기에게 눈길이 미치는 순간 실성을 하고말았다. 아기는 공상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외계인같은 그런 끔찍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귀도 없고 코도 없고 눈은 외눈이였고 팔은 생략된채 고기의 지느러미같이 손만이 량어깨에 달려있는 … 장시간의 심리의 불온증세와 외부로부터 온 복사(辐射)같은 물질의 충격으로 빚어진 기형이라고 의사들은 분석했다.
꿈은 그렇게 동강이 났고 꿈은 잃은 색시는 거대한 상실감에 몸져누워버렸다. 일주일째나 색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전자병의 후유증처럼 색시가 받아안은 충격은 시간의 힘으로 떼칠수 없는것이였다. 맥을 버린 안해와 붕괴된 일상을 어떻게 환원시켰으면 좋을지 몰라 남편은 살이 패일 지경이였다. 장시간의 말미를 맡고 안해를 동무해주었다. 방급전에도 저녁찬거리를 장만하려 장으로 나갔고 안해의 잊혀진 식성을 자극할 음식물을 만들어내려고 해가 기울도록 무진 애를 쓰고있었다.
남편마저 자리를 비운 집안은 죽음처럼 고요했고 호화스러운 부장품(附葬品)을 가득 채워놓은 관속과도 같았다. 어항의 산소방출기가 뿜어내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리군했으나 그것은 방창처럼 고요의 의미를 더 부여해줄뿐이였다. 홀연 어데선가 가냘픈 소리가 새여나왔다. 소리는 옷장속에서 새여나오고있었다…
맴, 매앰- 전자양의 울음소리였다. 그동안 전자양을 남편이 보살펴주었다. 그 전자양이 배고팠던지 아니면 목말랐던지 울어대고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 애련한 소리는 색시에게 있어서 지휘관의 부름과도 같은것이였다. 허나 더위 먹은 소 여물 반가운줄 모르듯 세상사가 귀찮아진 지금에 와서 그 소리는 역겹게만 들려왔다.
맴, 매앰- 전자양은 계속 시끄럽게 울어대고있었다. 전자양이 꼭마치 아기들처럼 울었다. 색시는 시끄러웠고 체증기가 치밀어 올랐다. 앓고있던 사람 같지 않게 벌떡 일어나 옷장문을 왁살스럽게 열어젖혔다. 그 전자물건은 옷장에 걸린 색시의 옷호주머니속에서 울고있는것이였다. 색시는 그것을 끄집어내여 침실밖에 힘껏 뿌리쳤다. 침실문을 쾅- 닫아버렸다. 허나 전자양은 울음을 멈추지 않고있었다. 젖 달라 보채는 아이들처럼 악패듯 울었다. 색시는 드디여 분노했다. 비여진 령감님의 방에서 무언가 찾아들고 나왔다. 망치였다. 가증스런 그 전자물은 벼룩이처럼 쏘파밑에 굴러들어 울고있었다.
간신히 손을 집어넣어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망치를 들어 힘껏 짓쫗았다. 전자양이 튕겨나며 “뺑소니”를 쳤다. 색시는 무릎걸음으로 쫓아가 다시 한번 내리쫗았다. 파편쪼각이 얼굴에 튀였고 색시는 울컥 뿜겨나오는 피의 분수를 환영으로 보았고 처음으로 파괴의 호쾌한 쾌감을 맛보았다. 이번에는 작업실의 문을 발길로 차 열었다. 컴퓨터가 백포를 뒤집어쓰고 수녀처럼, 검은 수건을 쓴 마귀할멈처럼 내숭떨며 놓여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색시의 눈에 발광체가 그물거렸고 드러난 견갑골에는 팽팽한 긴장이 서려있었다. 색시는 망치를 두손으로 단단히 부여잡고 작업대를 향해 한발두발 죄여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퍽 늦게서야 집에 들어섰다. 가까이가 아니라 물목이 구전한 중심 장거리에까지 다녀온것이였다. 각종 소채가 남편의 손에 들려진 구럭을 임신부의 배처럼 불려주고있었다. 그속에는 소갈비 한짝과 소고기의 정육덩어리도 들어있었다.
여보, 나 소고기 사왔어. 오래만에 소고기맛을 보는구만.
남편은 침실쪽을 향해 소리 높이 말했다. 외국에서도 소고기 수금령을 해제했으니 이제 시름놓고 고길 먹게 됐소. 그래도 푸른 검역도장이 찍힌걸 확인하고 사왔지.
안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요사이 그런 안해에게 버릇된 남편은 안해쪽을 방치해둔채 주방에 들어섰다. 제법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준비를 서둘렀다.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련듯 응접실로 나가 텔레비죤을 틀었다. 개시곡의 경쾌한 곡조가 한적하던 실내를 뒤흔들었다. 요란맞은 그림영화가 나왔고 이어 저녁뉴스가 나왔다.
…환경검출소에서 어제 내린 비의 강우질을 검출한 결과 놀라운 소식이 발표되였습네다. 어제 우리 도시에는 산성비가 내렸던것입네다. 산성비는 건축물을 부식하고 생태계통을 파괴하며 인체건강에 커다란 해를 주고있습네다. 우리 도시는 이미 국가이산화류황동제지역에 들어섰습네다…
남편은 소식을 들으며 마늘을 까고 파를 썰고 갈비를 두드렸다. 남은 고기를 랭장고의 얼음층에 넣으려고 문을 열었던 남편은 그만 당혹감에 두눈을 올롱하니 치뜨고말았다. 랭장실에 아침까지 보이지 않던 물건이 들어있는것이였다. 소랭이에 음식물을 담아 들여놓았나 생각했던 남편은 그 실체를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고말았다. 그것은 그 무슨 음식그릇 같은것이 아니라 … 어항이였다.
그채로 집어넣은 어항은 이미 돌결되여 있었다. 유리외각은 깨여져버리고 물이 어항처럼 반구체(半球体)를 이루고있었다. 남편은 유리쪼각에 손을 긁히면서 얼음을 끄집어내였다. 얼음은 고목에서 파낸 호박(琥珀)처럼 투명했다. 그리고 주방불빛에 투영되여 등롱처럼 반짝이고있었다. 그속에 물고기 두마리가 얼어붙어있었다. 상상도 못할 변고를 당한 물고기는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있었다. 원체 눈꺼풀이 없는 고기의 눈이 더 커보였다. 박제된 공간에서 캐씽구라미는 공포에 잔뜩 질린 눈으로 역시 그런 눈을 하고있는 주인을 지켜보고있었다… □


                                  
"도라지" 2000년 1월호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Don't say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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