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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미안해요!
2015년 08월 19일 09시 41분  조회:1917  추천:17  작성자: 김혁

칼럼

할머니 미안해요!

황 호 관 (예장개혁 증경총회장, 논설위원)
 

 

 
  며칠 전에 연변에 다녀오는 길에 우연찮게 <연변문학> 6월호를 손에 넣게 되었다.
청담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시는 분은‘연변문학은 연변에 삶의 터를 잡고 살아가는 우리 피붙이들의 고통과 애환과 고민을 지역문인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담아내는 순수문예지’라고 소개한다. 연길의 조선족 문인들 중에는 한문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분들도 있지만 <연변문학>과 같은 월간문예지를 통하여 그 맥을 면면이 이어가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곳 문인들은 일제강점기에도 조국광복의 염원이라는 지상과제를 안고 분투노력하였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월간 문예지를 속간해 오고 있다고 한다.

  연변문학은 인천공한에 도착하기까지 두어 시간동안 나의 시선과 생각을 사로잡았다.

  특히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6) (김혁 著)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무심한 세월을 살아 왔는가를 돌아보며 가슴을 치게 하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작가 김혁 님에 대해서 전혀 아는바 없지만 그러나 그는 나에게 분명한 목소리로“당신에게도 의식이라는 것이 있기나 하오?”하고 묻고 있었다.

  연재물이기 때문에, 그것도 이미 5회분은 지나갔고, 6회분뿐(22 페이지)이니 어찌 그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있으랴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단 한 가지만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로 각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주인공 춘자와 그 일행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공포의 쑥색지대, 일본군 막사까지 끌려가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난한 조선의 딸들이기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방직공장 여공 모집>이라는 감언이설은 의심해 볼 여지도 없었다. 선금 10원을 받아 부모님 손에 쥐어 드리고 부자의 포부를 안고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이름도 모르는 간이역까지 실려 왔는데 완장 두른 왈패 같은“대일본제국의 장병들을 위해 봉사는 일이다. 대동아 성전을 위해 몸을 바치고 있는 그들의 지친 몸을 위로해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니 이런 날벼락이 또 있다는 말인가?

  춘자 일행 중에는 14,5세 돼 보이는 아주 어린소녀도 섞여 있었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어쩌다가 나는 이런 참담한 모양으로 할머님들께 미안합니다하는 말 한마디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돌아보면 일본군‘위안부’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오른 1990년대 초에는‘정신대’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정신대는‘일본국가’를 위해 솔선해서 몸을 바치는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가 노동력동원을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위안부’와는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때 일본에서는<종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종군’이라는 말에는 종군기자, 종군간호사처럼 자발적으로 군을 따랐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강제로 동원했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가난한 소녀들을 감언이설로 속여 유인한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될 용어이다.
  70년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우리 할머니들의 아물 줄 모르는 깊은 상처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분들, 아니 우리가 안고 있는 일본군‘위안부’문제는 현재진행형으로서 과거사로 돌리기에는 아직은 너무 이르다. 지금도 엄마여서 미안하다시며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 마흔 일곱, 차마지지 못하는 대한 꽃들이 피보다 진한 눈물을 쏟아내며 일본제국주의의 유물 아베의 당치도 않은 망언에 치를 떨고 계신데, 어떻게 70년 전에나 꾸었더라면 좋았을 악몽쯤으로 돌린단 말이며, 미안한 엄마의 그늘 아래서 죄지은 이방인처럼 숨죽여 살아가는 자녀들은 어쩌라고 과거사로 덮자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기독교한국신문 | 2015.08.17 


 

황 호 관 (예장개혁 증경총회장)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첨부파일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 에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옛적에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로 불렀다는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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