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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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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아픔.com
2015년 12월 04일 09시 12분  조회:3062  추천:20  작성자: 김혁
 
 
 . 중편소설 .
 

www.아픔.com
 

김 혁


 
 
황금의 발
 
발이 보였다. 무작스럽게 큰 발이였다. 발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그 무슨 구름장우에서 날아내린 요괴가 발로 지상을 내려 밟듯이 발모양의 아크릴 간판은 옥상의 허공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아스스 빛을 뿜고 있었다.
“황금족도”
 남자는 간판이름을 소리내여 또박또박 읽었다. 
“’황금의 발’이라, 이름 한번 거창한데”
거창한 이름을 가진 발안마원앞에서 한손은 트렁크를 끈채, 석고를 댄 다른 한손은 목에 붕대로 감아 걸어 가슴앞에 데룽데룽 드리운채 서서, 행복은 간판이름을 읽었다. 
황금이라는 용어가 안마원의 높은 소비급별을 말해주는듯해서 그더러 한참이나 쭈뼛거리게 만들었다. 그러기를 한참, 한번 들어가보기로 했다. 사실 이 시간대에 이곳 말고는 주변에 불밝힌 려인숙이 없었던것이다. 스적스적 안마원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막상 들어서보니 조도가 낮은 핑크빛 벽등이 밝혀져 있는 안마원은 휑뎅그레했다. 
컹, 컹
소리를 앞세우며 구석 어디선가 강아지 한마리가 튀여 나왔다. 
베개통만한, 길게 늘어뜨린 털이 눈을 가린 장모의 강아지였다. 작은 강아지는 대적이라도 만난듯 두눈을 호동그랗게 뜨고 행복을 향해 맹렬하게 짖어댔다. 벽등의 빛을 담은 눈망울이 핑크색이다. 
부드러운 핑크빛을 따라 반가운 마음에 들어섰는데 맞아주는이는 없고 외려 죄꼬만 강아지가 들어서기도 전에 축객령을 내린다. 다시 나갈가 몸을 돌리려는데 인기척이 났다. 
“지노야, 지노”
헐렁한 마고자를 걸친 녀자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정수리에서 핑크빛이 부서져 내렸다. 강아지가 소리를 멈추고 녀자의 다리에 감겨들었다. 녀자가 강아지를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좀 마른편, 40대초반으로 보이는 녀자는 커다란 눈을 들어 행복을 핼금 쳐다보며 말했다.
“안마사가 없는데요”
손님의 답을 기다리지않고 또 한마디했다. 
“제가 해드려도 될가요”
그 한마디를 눈을 내리 깔며 말했다. 눈초리가 처마처럼 내리덮혔다. 
“아니, 안마는 됐구요.”
늦은밤에 안마원을 찾아 그냥 투숙이나 하려던 행복은 문칮거리며 말했다. 
“그냥 방 하나 들면 안될가요”
“그러세요. 방이 많아요”
번거로워 할줄로 알았는데 녀자가 쉽게 답이 나왔다. 녀자가 강아지를 내려놓고 앞에서 방으로 안내했다. 강아지가 녀자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찌걱 찌걱, 조립식 나무바닥이 신음소리를 냈다. 
4호방으로 안내한 녀자가 문켠에 서서 말했다. 
“계산은 나갈때 하면 되구요. 그럼...”
간단한 안내를 마치고 녀자와 강아지는 핑크빛 너울 저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녀자의 뒤를 바싹 따른 치켜 올린 강아지의 꼬리가 핑크빛 야광봉처럼 보였다. 
찌걱 찌걱, 조립식 나무바닥이 신음소리를 냈다. 
좁은 방이였다. 형광막이 작은 텔레비죤이 바람벽에 걸려 있었고 그곁에 분명 포샵을 받았을 거대한 가슴을 가진 수영복차림의 녀자가 모래톱에 선정적으로 드러 누운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방에 창문이 없었다. 
방에서 야릇한 냄새도 났다. 방향제냄새였다. 그냥 방향제이면 좋으련만 화장실용 방향제를 뿌린것 같았다. 컴퓨터도 없었다. 
창문이 없는 방을 둘러보노라니 불현듯 숨막히는 압박감이 가슴을 조여왔다. 
행복은 침대가녁에 걸터앉으려다 말고 방을 나왔다. 
안마원은 물밑속처럼 괴잠잠하다. 
어두운 복도에서 주춤거리다가 불이 새여나오는 방을 향해 다가갔다.
“저기요…”
주인장을 불렀다. 컹!하고 또 강아지가 짖었다.
“지노야!”
녀자의 소리가 들렸다. 이어 나무바닥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고 문이 열리며 주인장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세요?”
핑크빛을 머리에 떠인채 녀자가 물었다. 
“저, 인터넷이 되는 방이 없어요?”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혔다.
“돈은 더 드릴테니깐요.”
녀자가 잠간 동을 두더니 말했다.
“따라오세요”
조립식 나무바닥이 다시 찌걱찌걱 신음소리를 냈다. 
그제야 행복은 주인장 녀자가 한 다리를 쩔룩이고 있음을 알아차릴수 있었다. 그녀가 발을 옮길때마다 행복은 왠지 다친 팔에 따끔따끔 통증이 도져오는 느낌이였다. 
방금보다는 좀더 큰 방이였다. 
침대, 탁자, 텔레비죤같은 시설 외에도 욕조가 딸린 화장실도 있었다. 창문도 있었다. 커튼을 열어 보았다. 
멀리 네온사인이 분만해오르는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무엇보다 창문아래의 탁자에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제법 신형으로 보이는, 스크린이 큼지막한 컴퓨터였다. 
“계산은 나갈때 하면 되구요. 그럼...”
녀자가 또 한번 나무바닥을 울림통삼아 연주하듯이 절주맞은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행복의 시선이 탁자우에 놓인 사진틀에 머물렀다. 액자속에는 사춘기 소년으로 보이는, 계집애처럼 얼굴이 하얀 남자애와 엄마인듯한 녀인이 목을 얼싸 안고 있었다. 남자애와 엄마는 행복감으로 입매에 웃음을 가득 물고 있다. 
그 엄마가 바로 주인장이였다. 커다란 눈망울에 웃는 입매가 시원한, 밉지 아니한 얼굴이였다. 
아크릴 간판이 내리쏟는 불빛이 창문의 커튼에 어룽거렸다. 
씻기도 귀찮아 행복은 그대로 침대에 벌렁 드러 누워 버렸다.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다시 일어나 트렁크를 열었다. 
왼손으로 서툴게 트렁크의 지퍼를 열고 무언가 조심스레 꺼냈다. 한손은 석고를 대여 한손으로 하기에 행동이 서툴었지만 조심스럽게 그 물건을 꺼내 탁자우에 올려 놓았다. 
탁자우에 정히 올려 놓은 그것은… 납골함이였다. 
납골함을 멀끄러미 한겻이나 지켜보았다. 
가벼운 한숨 한번 짓고나서 남자는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았다.
 
사라진 과원
 
“싫담다, 아이 만나겠담다”
상대는 딱 잘라 말했다. 
“처제, 그래도 처제가 좀 설복해 보오”
“싫담다. 애가 만나기 싫담다”
수화기 저쪽의 목소리는 염천의 마른 저수지바닥처럼 건조했다. 칼로 베듯 단호하게 그 한마디만 복창했다. 
“애가 아이 만나겠다고, 죽어도 아이 만나겠다고 잡아떼는데 낸들 무슨 수가 있슴까?”
행복은 높은 말벽에 부딛쳐 있었다. 
건조한 고성이 수화기속 구멍을 타고 귀구멍을 후볐다. 
행복은 전화부스앞에 멍하니 서버렸다. 
상대가 전화를 놓았던지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뚜뚜…하는 통화 단절음이 들려 왔다.
그제야 행복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픈 팔을 부여잡고 돌아섰다. 
“돈은 내고 가야지, 돈”
전화부스속 아낙이 앙칼지게 소리 질렀다. 
바삐 지폐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또 무슨 귀신딱지람니까?”
아낙이 염소수염 령감이 그려진 퍼런 지폐장을 받아들고 뜨악한 기색을 지었다. 
행복은 앗차하고 소리를 지를번했다. 그가 내놓은것은 천원짜리 한화였던것이다. 
호주머니를 뒤집어봐도 인민폐가 없었다. 나올리가 없었다. 
“어쩌지요. 어제밤 금방 귀국해서 환전할새가 없었네요.”
행복이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거스름돈 안 받을게요. 기념으로다가 받아두세요”
행복이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바르며 말했다. 
“움마 별꼴이다. 정말”
아낙이 그냥 가라는듯 턱짓을 해보았다. 
“감사합니다”
행복이 몇걸음 가다가 뒤돌아 보았다. 아낙이 전화부스에서 몸을 반쯤 내민채 돈을 쳐들고 해빛에 비추어보고있었다. 
어디로 갈가 멍하니 행동방경을 구하다 무엇이 생각났던지 행복은  종종걸음을 다우쳤다. 
 
행복은 또 한번 그 자리에 얼빠져 버렸다.
번지수를 잘못찾고 축문을 한참 외운 무덤앞에서 어찌할바를 모르는 묵은 문상객의 심경이면 이럴가?  
이 놀라움, 이 난감함…
마을은 사라지고 없었다. 토네이도에 날아갔던지, 아니면 쓰나미에 밀려 갔던지…
행복이네 마을 과수4대는 사라지고 없었다. 공상영화의 한장면처럼 마을은 말끔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산등성이에 무성한 사과배나무숲을 배경으로 그 아래 앉았던 노란지붕 회벽집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연한 록음이 눈뿌리 모자라게 펼쳐져 있다. 시원한 록음이 이렇게 공포로 안겨오기는 처음이였다. 
산과 언덕이 바뀌는 이변을 행복은 실감하고 있었다. 하긴 16년만에 밟아보는 고향이였다. “십년이면 뽕밭이 바다로 변한다”는데 십년하고도 반십년만에 찾았으니 바뀔법도 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하도 심해 행복은 현실감을 잡지못해 허우적거렸다. 
록음을 가르며 무언가 휙 날아 지났다. 그 물체에 눈길을 주었다. 
하얀 그것이 새려니 했는데 아니였다. 그것은 공이였다. 
공이 날으고 있었다. 
금방 티샷을 날린 골프모자를 쓴 이가 그 공을 쫓아가고 있다. 
콩나물대가리를 한껏 확대해 놓은것같은 골프채를 메고 종종 걸음으로 삼각기발을 세운 홀쪽으로 가고 있다.
뒤로 앙증맞은 전동차가 말 잘듣는 강아지처럼 졸졸 뒤따른다.
마을은 사라지고 대신 골프장이 들어 서 있었다. 
골프장은 마을의 초가를 밀어내고 과수원을 밀어내고 산등성이를 타고 멀리까지 뻗었다.
휙 공이 가까이 까지 날아와 떨어졌다. 
유니폼차림의 아가씨 하나가 말총머리를 찰랑 거리며 달아와 공을 주어들었다. 
“여기 과수4대 자리가 맞지요?”
아가씨는 외계인을 보기라도 하듯 행복을 빤히 쳐다보다가 모른다는둥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나서 뛰여 가버렸다. 
아가씨의 도도록한 엉덩이를 멍하니 지켜보는데 클럽하우스에서 누군가 나와서 행복을 향해 다가왔다. 
가까이 올수록 제복차림을 가려볼수 있었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30대의 남자는 약지로 코구멍을 후비며 다가와서는 행복을 향해 물었다. 
“용건이 뭡니까? 여기 막 들오면 안되는데…”
“아, 이 마을 살던 사람인데, 여기 과수4대자리 맞지요?”
경비원이 풀럭 실소를 터뜨렸다.
“골프장이 선지도 8년째인데…”
경비원이 눈시울을 좁히며 행복의 일신을 훑어보았다. 식지 약지를 바꾸어가며 코구멍을 열심히 후볐다. 3등배처럼 못생긴 큼믹한 코를 가진 경비원이 말했다. 
“과수4대 없어요. 4대가 아니라 7대 8대 13대 다 없어요. 싹 다 이사가고 밀어버렸지요.”
“그럼 여기 과수나무도 다 베여버렸답니까? 그 많던 배나무를”
“그럼요”
경비원이 코에서 후벼낸 이물질을 탁 튕겨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휙익, 공이 하얀 새처럼 머리우를 날았고 행복은 탄환이 없는 총을 작대기처럼 든 사냥군처럼 멍한 시선으로 그 공의 비상을 쫓았다.
“아저씨! 그만 나가세요. 이젠”
이번에는 약지로 귀구명을 후비면서 경비원이 재촉했다. 
 
   “애폴”이라는 이름의 사이트였다. 
술취한 나그네가 허우적이며 재를 넘다가 우연히 만난 주막같이 또 한번 걸치려 들리게 된 채팅 사이트…
사과라는 이름이 좋아서 들려보았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그렇고 그런”사이트였다. 녀자 욕탕에 잘못 들어왔나 움찔하기까지 했다. 온통 로출이 심한 녀자들이 선정적인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행복은 그전에는 “그렇고 그런” 사이트에 한번도 들어가 본적이 없는 백지같은 순둥이였다. 컴퓨터를 켜고 유희실에 들어가 트럼프장이나 번지는 정도의 그였지만 그런던 어느 날 배너광고가 깜박거리며 뜨는지라 무심하게 누르고 들어갔더니 눈이 휘둥그레해질 장면이 펼쳐졌다. 
몸매도 좋고 말씨도 상냥한 아가씨들이 홀딱 벗은 알몸으로 그를 부르고 있었다.
천국이 따로 없나 싶었다. “무료 체험”은 몇분도 안돼서 끝났고 아쉬운 감각이 들었다. 자리에 누웠으나 아가씨들의 환장하게 눈부신 몸매가 눈앞에 아른 거렸다. 잠을 깡그리 반납해야 했다. 
새벽녘에 일어나 다시 컴퓨터를 켰다. 결국 돈을 결제하고 화상채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동포 인부들을 개떡주물듯이 하대하는 건설현장의 십장을 뻰찌로 머리통을 갈겨 쓰러뜨리고는, 몇달이고 허접한 모텔에 숨어 살때 들어가게 된 사이트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쌍화점”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아가씨였다. 
멀미날듯 하얀 피부를 가지고 늘 토끼귀 머리띠를 하고있는, 그녀의 코의 왼편 언저리에 아래우로 두개의 짐이 가지런히 있었다.
그녀와 나눈 대화들, 그녀의 웃음 한 조각, 눈빛 하나, 관능적인 몸짓조차도 행복은 기억하고 있다. 
“왜 해피맨이죠? 닉네임이?”
어느날 그녀가 행복의 닉네임의 의미를 물어왔다. 
행복은 자신의 옅은 영어수준으로 그냥 이름자를 번역해 지은것이라고 차마 말 못했다. 간단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냥”
두 글자가 대화창에 떴다.
“글쎄 그냥 단거 맞죠. 그냥 넘 평범해서요. 닉네임이…”
코를 찡긋하며 그녀가 웃었다. 웃음을 타고 벗은 가슴이 흔들거렸다. 
   “사실 제 얼굴에 점이 두개 있어요, 찾을수 있어요?”
행복이가 고정상대로 되자 어느날엔가 그녀가 비밀을 드러내 보였다.
“여기 채팅하는 애들 모두다 화장빨, 조명빨, 각도빨 그리고 성형빨이더군요. 오늘 제가 저의 진모를 보여드릴게요. 서비스로다가요”
그녀가 민낯을 드러냈다. 화장을 지운 아가씨의 코언저리에 점이 두개 있었다. 
“이쁘네요.”
“뭐가요? 제가요?”
 “점이요”
행복의 말에 아가씨가 간지러움을 당한듯 쿡쿡 웃었다. 가슴이 더 크게 흔들거린다. 
명주실같은 웃음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귀전에 훈풍이 이는듯 하다. 
“사실 미인들은 모두 짐이 있대요. 코에 있는 점 미인점이라 하죠.”
말해놓고 나서 아가씨가 또 쿡쿡 웃었다. 토끼귀 머리띠가 흔들거렸다. 
“한국 배우들 봐요. 녀자들 다 얼굴에 짐이 있던데… 한가인, 전지현 그리고 장동건의 녀자도 모두 코에 점 있어요, 아 정말 배용준의 녀자도 코에 점이 있네요.
그래서 제 닉네임을 ‘쌍화점’이라 달았죠 뭘. 괜찬잖아요 닉네임이, ‘수호천사’, ‘꿀벅지’ 이런 닉네임에 비하면…아 정말 ‘박살공주’라 단 애도 다 있어요”
또 쿡쿡 웃는다. 
눈밑의 애교살이 예쁜, 잘 웃는 애다. 
눈밑에 애교살이 있는 얼굴 하나가 머리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사실 코 옆에 점이 있다면 심성이 착해 사람들에게 리용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그래요. 뜻하지 않는 상황으로 손해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나뭐라나. 관상쟁이들 말이얘요. 그래서 화장으로 가리고 있는거죠.”
그녀가 혼자말처럼 종알거렸다. 
“아저씨, 맞죠”
어느날 쌍화점이 물었다.
“왜 날 아저씨라 단정하남? 그쪽에서 보여? 내가?”
행복이가 허를 찔린듯 바삐 키보드를 두드렸다.
“아니 요즘은 모두다 핸드폰에 채팅앱을 깔고 해요. 컴퓨터로 하는건 나이가 많은 이들이 대부분이죠.”
“나이가, 죄끔 많지”
행복이 넉살을 떨었다.
 “여하튼 좋아보여요. 아저씬…”
말하면서 아가씨가 브래지어를 풀었다. 묵직한 가슴이 출렁 드러났다.
“내가 보이나 그쪽에서”
“아니요. 그냥 감각으로다가…”
그러던 아가씨가 팔로 가슴을 쓸어안으며 또 한번 물어 왔다.
“아저씨 조선족 맞죠?”
행복은 알몸으로 마주한것이 그녀가 아니라 자기이기라도 한듯 순간 당황해 했다.
쿡쿡 상대가 웃었다. 흔들거리는 가슴…
“아뇨, 농담이얘요. 그냥”
 
그렇게 살갑던 “쌍화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창은 그냥 꺼져있다. 
귀향하기 전날도 “애플”에 들어갔다. 
하지만 애타게 찾는 그녀는 없었다. 
떠나면서 그녀에게 자신이 조선족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그동안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제도 오늘도 그녀의 창은 그냥 이사를 떠 난 빈집 마냥 비여져 있다. 
서운한 마음에 다른 창을 눌렀다.
한참 다른 사람들과 채팅중이던 아가씨가 반겨 맞았다.
“반갑습니다. 해피맨님”
그녀의 방에는 채팅하는 남자들은 많았다. 
그녀는 서슴없이 얇은 잠자리같은 원피스를 벗어 던졌다. 
브라자도 하지않은 가슴이 출렁 드러났다. 분명 보정물을 넣은듯 비현실적으로 큰 가슴이였다. 팬티도 벗어버렸다. 검은 숲이 보였다. 
수박덩이만한 가슴을 쓸어안고 아가씨가 류행가요에 맞추어 몸을 비꼬며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빙글 빙글 빙글 돌리지 말고 넌 
아슬 아슬하게 스치지 말고 넌
그만 좀 건드려 애매하게 건드려 넌
자꾸 위 아래로 흔들리는 나
 
위 아래 위 위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행복은 덴겁히 볼륨을 낮추며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밖에서 컹,컹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들린듯 했다.
“지노야 지노!”
주인장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찌걱찌걱 조립식 나무바닥이 신음소리를 냈고 쾅하고 문닫는 소리가 들렸다.
안마원은 또다시 괴잠잠해졌다. 
 
십장생(十長生)
 
행복은 다시 골프장을 찾았다.
    수화기 저쪽에서는 그냥 기계음을 다시 풀듯이 “싫담다 아이 만나겠담다”그 한마디뿐이였다. 그때마다 무가내로 돌아서곤했다. 
이제는 전화부스의 아낙도 일면식이 있다는듯 행복이을 보고 고개를 까땍해보였다.
    며칠이고 안마원에 박혀있었다. 
전화를 하려 안마원 앞 사거리의 전화부스를 몇번 찾았고 은행을 찾아 출입문앞에서 먹이를 찾아 서성이는 시라소니같은 아낙네들에게서 한화를 인민폐로 환전한것이 그 몇번의 외출이였다. 그러다 행복은 문득 할일을 찾은듯 다시 몸을 일으켜 골프장을 찾아온것이였다.
이제 말끔히 사라진 고향의 기억은 산마루를 눈금으로 더듬어 찾아야만 했다. 
산이라야 봉분처럼 밋밋한 완만한 산이였다. 
산세라고는 운운할수도 없는 밍밍한 산이였지만 그 이름없는 산을 서기로운 춤사위같이 저마다 가지를 뻗치고 잎을 단 사과배나무들이 운치를 더해 주었었다.  
봄이면 사과배꽃이 백사지처럼 하얗게 피여 온 산마루를 덮었고 가을이면 탐스러운 사과배들이 주렁져 향기가 백리를 달렸다. 
그러던 산이, 마을의 진산(鎭山)격이였던 산이 이제는 더는 과일을 달지못하는 산, 콩크리트로 뒤덮인 산으로 돼버렸다. 
산정을 향해 오르는 길은 모두 아스팔트길로 닦여져 있었다. 
붕대에 감은 한손은 그냥 가슴앞에 드리고 흰 보자기에 감싼 무언가를 들고 행복은 허위단심 산정을 향해 올랐다.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황토길이 이어졌고 먼지를 차며 한참 오르다 행복은 길녘에 멈춰서 버렸다. 
다행이 그가 찾고저 하는것이 남아 있었다. 
이 산마루에서 가장 수령이 많은 사과배나무였다. 이 산마루의 사과배는 모두 이 사과배나무로 부터 접종해 나온것이라할수 있었다. 
마을에서는 일찍 사과배나무곁에 “사과배모수(母樹)기념비”라는 키높이의 표지석을 세워 선조사과배나무를 기념했다. 
그사이 표지석은 철책에 둘러져 있었고 철대문에는 1등사과배만큼 큼지막한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다. 
철창을 부여잡고 들여다 보았다. 
나무는 이제는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행복이가 떠나기전에도 앙상한 가지에 나마 꽃을 달고 사과배도 달았던 나무였다. 
표지석도 그 모서리가 닳아 떯어져 있고 주위는 잡풀로 무성하여 살풍경이였다.
사과배나무는 이제는 고인이 된 마을의 최로인의 달작(達作)의 결과물이였다. 
최로인이 백여년전에 이 마을로 이사오면서 함경남도에서 가지고 온 사과나무가지에 이곳의 배나무가지를 지접했다. 
혹독하게 추운 이곳의 기후에도 나무는 용케도 살아남아 이듬해부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았다. 
사과도 아니고 배도 아닌 그것은 어른들의 주먹만큼 크고 살이 많았고 당도가 높았다. 맛본 사람들마다 천도(天桃)못지않다고 감흥스럽게 엄지를 빼들었다. 
마을사람들이 하나 둘 지접해 갔고 어느때부터인가 마을은 과수원으로 변모해 갔다. 한때 이 마을의 사과배는 관내뿐아니라 일본, 로씨야까지 수출되여 마을이 린방에 이름을 떨치게 되였다. 
  그런 사과배나무가 어떤 강력한 주문에 사라지듯이 말끔히 사라지고 없다. 그저 한그루의 나무만이 남아 그젯날의 영욕을 말해주는듯 했다. 
한손에 깁스를 한지라 보자기의 매듭을 입에 물고 다른 한손으로 철창을 잡은채 행복은 키높이의 쇠울짱에 매달렸다. 
바지아래단이 쇠울짱의 끝머리에 걸려 찌익 파렬음을 냈다. 바지를 째여가며 겨우 뛰여 넘었다. 
사과배나무아래에서 헐떡이며 보자기를 풀었다. 
납골함이 드러났다. 
봉안했던 납골함을 열었다. 
3년만에 빛을 보는 유골이였다.  곱게 빻은 쌀가루같은 뼈가루가 보였다. 
뼈가루를 움켜쥐였다. 퍼석퍼석한 뼈가루를 나무주위에 흩뿌렸다. 
나무를 마주하고 고개를 숙인채 고해성사를 하는사람처럼 말했다.
“최할아바이 배씨가 왔습니다. 성이 배씨라서인지 배농사를 그렇게 잘하던 배씨가 왔습니다.
배농사를 그렇게 참하게 하던 친구라서 이제 아바이 곁에 모시니 같이 말동무를 하세요.”
  바람이 일었다. 배꽃가루 같이 뼈가루가 하얗게 날렸다. 
문뜩 나무가지에 인공수분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수분용총으로 나무에 대고 쏘면 되지만 그때는 작은 링게르병에 넣은 꽃가루를 면봉으로 찍어서는 꽃술에 하나하나 묻혀주곤 했다.
머리에 꽃수건을 두른 안해는 행복의 곁에서 조근조근 끝간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수분했곤했다. 
눈밑의 애교살이 예쁜 안해는 무엇이 그리 우수운지 행복이의 변변찮은 우수개에도 황조롱이처럼 까르르 웃곤했다. 
곁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외톨이 배씨는 “그림이 따로 없구마이”하고 부러운 눈길로 지켜보곤 했다. 
배씨네 과원은 행복이네와 이웃해 있었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연거번거 재채기를 하면서도 친구는 자기집 수분을 마치고는 행복이네 사과배수분을 도와주곤했다. 성이 배씨여서인지 배농사를 제법 잘 짓던 단짝친구였다.
뼈가루가 하얗게 배인 손바닥을 멀거니 내려다 보며 되뇌였다.
“여보게 배씨. 집에 왔네. 포근한 배나무밑에서 시름놓고 쉬게나. 고향고향하더니… 그렇게 집에 오고싶어 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니”
 그만 울컥해나는 심정을 주체하지못해 행복은 나무앞에 쭈크리고 앉았다. 석고를 댄 팔을 어루쓸며 혼자서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납골함을 주체할길 없어 다시 보자기에 싸들고 다시한번 힘겹게 쇠울짱을 뛰여넘었다. 
황토길을 따라 산을 내리다 아스팔트길로 들어서는 접합점에서 행복은 걸음을 멈추었다. 
“천천히 같이가세나” 친구가 부르는듯 해 다시 뒤돌아보았다. 
철책에 둘러쌓인채 앙상한 가지를 뻗쳐든 사과배가지가 음울하게 보였다. 
 
털레털레 산을 내려 강가에 이르렀다. 
지친듯 돌서덜 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강이 에돌아나가는 산언저리가 모두 골프장으로 닦여 있다. 잘 정돈된 잔디밭이 눈뿌리 모자라게 안겨왔으나 감상할 흥심이 일지 않았다. 
보자기를 헤치고 비여버린 납골함을 꺼냈다. 나무아래 그대로 내쳐두고 올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데 버릴수도 없었던 납골함이였다. 
친구가 3년넘어 들었던 “유택”인데 허접한 물건버리듯 할수 없었던것이다.
납골함을 들여다 보았다. 
“실로 잘 맹글었구만”
납골함을 새삼스럽게 들여다 보았다. 
밤빛 옻칠을 올린, 원통형의 나무 납골함이였다.
“라전(螺鈿)기법으로 만든거여. 자네네 중국에서 당나라때에 나온 작법인데 한국까지 전해졌고 우리가 더 때깔곱게 만들었지.”
늙은 장의사가 이 납골함을 추천했다.
“중국에선 야광패(夜光貝)를 사용했지만 우리는 전복껍데기를 많이 사용했지. 야광패는 두꺼울테지만 우린 전복껍데기를 종이장같이 얇게 갈아서 붙였지.  
패각(貝殼)이 알록달록 청록빛깔을 띤것이 화려하지 않은가. 이런 박패법(薄貝法)은 중국에서도 한때는 없었던것이여”
얇게 간 조개껍질을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서 납골함의 겉면에 박아 넣거나 붙여 장식하는 알둥말둥한 칠공예기법을 장황하게 소개하면서 장의사는 극구 비싼 납골함을 팔려고 했다. 
행복은 두말없이 40만을 내주고 납골함을 사서는 친구를 모셨다. 불쌍하게 간 친구를 좋은 함에 모시고 싶었던것이였다.
납골함에는 십장생(十長生) 자개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해, 구름, 산, 바위, 물, 학, 사슴, 거북, 소나무, 불로초 등등 예로부터 오래 산다고 믿어 왔던 소재 열가지를 한데 모아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뜻으로, 자개무늬로 새겨넣은 십장생이였다. 
하지만 친구는 불로장생은 커녕, 마흔으로 가는 서른아홉 문턱에서 죽었다. 
부두에서 야간작업을 하다가 배씨는 사고로 비명에 갔다. 그것도 집채만한 랭동 컨테이너에 깔려 처참하게 숨졌다. 
컨테이너 하역이나 운반작업은 수십톤에 이르는 중량물을 취급하는데 하물이 락하하며 작업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자주 발생하곤했다.
원체 혈붙이가 없는 고아이고 또 타향에서 당한 횡사인지라 시체를 거두어 줄 이도, 울어줄이도 없었다.
친구 행복이가 혼자서 상주로 되여주었고 조문객으로 되여주었다. 
홀로 친구의 장을 치르고 행복은 익숙하던 부두를 떠났다. 정육점의 다져진 고기모양으로 질크러진 친구의 처참한 모습이 눈앞에 삼삼거려 더는 이곳에서 일할수가 없었던것이였다. 
그리고 조건이 더 나쁜 건설업체를 전전했다. 흔히 말하는 노가다를 뛰였다. 
그러면서도 그 무슨 값비싼것만 챙겨넣은 패물함처럼 납골함만은 지니고 다녔다. 
친구의 유골을 차마 타향땅에 뿌릴수 없었다. 술만 마시면 유난히도 고향타령을 하던 친구를 꼭 고향에 가져다 안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중 성질머리가 더럽기로 삼국지의 장비 뺨 칠 공사장의 십장에게 납골함이 발각되고 말았다. 숙소 침대밑에 간직했는데 짐을 움직이다 딸려나왔고 십장의 씰룩한 눈길에 띄웠던것이다. 
“이거 뭐꼬? 이거 사람 뼉다구 부수어 넣는 함 아닝교? 허벌라게 놀래뿌려꾸마 잉... 이거 무슨 신주단지라고 숙소에까지 모셔갖고 왔다냐? 
이런 썩을 놈의 짱꼴라 조선족새끼들땜에 나가 환장해불겄구만… 왐마 너 죽을텨?”
평소 함께 일하는 동포 인부들을 향해 야유와 폭언을 오물쏟듯 쏟아내여 “욕쟁이 십장”으로 불리는 자였다. 
조금만 일을 잘못 해도, 혹여 숨을 돌리려 쪼그리고 앉아 쉬다가 발각돼도 욕의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눈깔은 폼으로 달고 다니냐”, “나이는 똥구멍으로 처 묵냐”, “확 척추를 접어뿔랑께”, “창자를 쑥 뽑아 순대 만들어 줄까부다”… 온갖 팔도 방언을 다 동원해 욕설에 욕설을 물동이로 정수박이에 퍼붓듯 하곤했다. 
십장이 온갖 폭언을 동원해 욕을 삼태기로 퍼부으며 발로 납골함을 툭툭 걷어 찼다. 
행복이가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판난 목면장갑을 낀 손에는 도라이바가 들려 있었다. 
“내 친구요. 불쌍하게 죽은 내 친군데… 욕보이게 하면 네 죽고 내 죽고 해볼테요”
사이즈가 무지 큰 도라이바가 십장의 정수리를 겨누고 있었고 행복의 얼굴은 평소의 그것같지 않게 험악하게 변조되여 있었다. 늘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 십장의 폭언에도 대꾸 한마디 없던, 양순해보이는 그에게서 이런 완악한 표정이 나올수 있다는데서 동료인부들도 십장도 그만 못박혀 버렸다. 
“눈구멍에 띄지않는데 잘 간직해 둬라.”
십장이 스르르 꼬리를 내리며 돌아섰다. 그러면서 구시렁댔다. 
“왓따! 미련 바부탱이 짱꼴라 조선족놈들땜에 나가 환장해 불겠구만…”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간직해 온 납골함이였다. 
10여년간 불법체류자 딱지를 달고 지내온 터라 귀국수속이 어려웠지만 더욱 어려운것은 친구의 납골함을 지니고 나오는 문제였다. 사망증명서 서류를 지니고 령사관등 부서들을 몇번이고 들락거려서야 겨우 유골을 지니고 귀향할수 있었다.
    행복은 납골함의 덮개를 열었다. 
텅빈 납골함이 친구의 우묵한 눈처럼 행복이를 올려다 본다. 
납골함에 반근들이 고량주 한병을 넣었다. 한근들이는 술병이 너무커 넣을수 없어 반근들이를 넣은것이였다. 
한국술은 도수가 너무 낮아 물맛이고 도수 높은 매운 고향술을 마음놓고 마셨으면 좋겠다고 술마실때마다 입술을 감빨던 친구가 생각나서였다.
고향술을 담은 납골함을 두만강 강물에 띄워보냈다. 
함은 수면우에서 빙그르르 맴을 돌다가 넘어질듯 기우뚱거리면서 강심으로 떠갔다. 
그 모습이 마치 술 한잔 걸치고 왜틀비틀 숙소로 향하던 친구의 뒤모습 같아 보였다. 복도 징그럽게 없는 친구놈… 
행복은 손등으로 눈굽을 찍어 누르며 되녀였다. 
“한잔 드시게. 그리고 잘 가시게”
 
안마원에는 오늘도 눈씻고 봐도 손님이라곤 없다. 조도가 낮은 벽등이 켜진 복도에 들어서며 행복은 주인장을 불렀다. 
“저기요”
대답이 없다.
주춤거리다가 불이 새여나오는 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다음 순간, 행복의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 나왔다. 현실감을 다잡기위하여 두눈을 부릅떴다. 
편한 내의 바람으로 쏘파에 앉아 졸고있던 녀인, “돌아오셨어요”하고 천연스레 큰 눈망울을 들어 묻는 주인장의 한쪽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와 놀란 가슴을 안추렸다.
무서운 몽매(夢寐)에 꺼둘린듯한 마음이였다. 
행복은 소리나게 자기 머리를 툭 쥐여박았다.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어젖힌 자신을 후회했다. 그리하여 못볼 광경을 본것이 아닌가…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나지막한 노크소리였지만 행복은 깜짝 놀라했다. 
문을 열자 랑하에 서있는 주인장이 보였다. 통너른 훌렁한 몸뻬를 입은 그녀의 다리쪽에 눈길이 갔다. 다리는 멀쩡했다. 
“무슨 일인데요?”
“저, 바, 바느실이 없나해서요.”
행복은 급기야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뭐 따진것이라도 있나요? 주세요. 제가 꿰매 드리지요”
행복은 쭈뼛거리다가 쇠울짱에 걸려 째여진 바지를 곱다라니 내놓았다.
“그럼…”
주인장이 바지들 받아들고 돌아섰다.
찌걱찌걱… 나무바닥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절미
 
“콩 고물 달람까? 팥 고물 달람까?”
음식난전에서 부지런히 떡을 네모지게 썰면서 떡가게 주인은 고개도 들지않은채 묻는다. 
오래된 솜씨인듯 손놀림이 나비의 날개짓처럼 현란하다. 
안해는 돈벌고 돌아와서는 복떡방 하나 차리는것이 소원이였다. 
생전에 장모가 떡을 잘 만들었다. 그 무슨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이 아니여도 여러 종류의 떡을 빚고 쳐서는 한보따리 딸집으로 가져다 주곤했다. 그런 어머니의 음식솜씨를 물려 받았던 안해였다. 
“인절미가 왜 인절미인지 아세요?”
어느 한번 안해가 떡에 관한 화제를 꺼내들었다. 
“옛날 임금님이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을 피해 한양을 떠났는데 피난길에서 녀인 하나가 한 광주리 가득 떡을 푸짐하게 담아 왕께 진상하였다합니다.
그 떡이 너무나 맛나서 왕은 ‘떡은 떡인데 대체 떡 이름이 무엇이오?라고 물었답니다. 그런데 녀인은 떡이름을 대답하지 못했답니다. 그러자 임금은 이 떡을 어느 집에서 만들어왔느냐고 물었고 녀인은 근처 임씨 집에서 만들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임씨가 만든 기막히게 맛있는 절미(絶味)의 떡이라, 임절미(任絶味)라 하는게 어떻겠소?’하면서 웃었고 그때로부터 떡을 ‘임절미’라고 부르게 되였고, 나중에 부르기쉽도록 ‘임’자를 ‘인’으로 바뀌어 ‘인절미’라고 부르게 되였다나 뭐라나… 여튼 우리 집안은 떡과 인연이 있나 봐요”
안해의 성은 임씨였다. 
그렇게 떡 만들기를 좋아했던 안해는 출국해서도 줄곧 복떡방에서 일했다. 
이곳에서는 명절뿐만 아니라 백일, 첫돌, 혼례, 회갑까지 떡이 필수였고 직장인은 아침 식사대용으로, 녀성들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떡을 찾기도 해서 명절이 아니여도 밀려드는 주문량으로 24시간이 모자랄때가 많았다. 
인절미, 시루떡, 송편등 일반적인 떡으로부터 주인장이 직접 개발한 이색적인 떡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만큼 허리 펼사이없이 온 하루 오금에 비파소리가 나도록 돌아쳐도 일은 진득진득 도무지 끝이 없었다.
섬약한 안해였지만 일만 접하면 몸을 던졌다. 눈앞이 안보일 정도로 부연 수증기가 자욱한 떡방에서 멥쌀을 일고 불려서는 기계에 넣어 가루를 냈다. 
종일 수증기속에서 일하다보니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앙가슴을 종주먹으로 두드려대였다. 그런 안해의 가슴패기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힘든 일이였지만 강보의 애를 동생에게 맡기고 떠나온 그로서는 힘들고 심란한 심기를 무마할수 있는것이 또 일이였다. 
행복은 인천 연안부두에 있었고 안해는 서울에 있었다. 불법체류를 쌍으로 달고있는 부부가 함께 마땅한 일자리를 찾는다는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서 요행 찾은 일자리를 두사람은 아꼈다. 
밭은 거리였지만 두 사람은 일년가도 한두번 만나기 어려웠다. 요행 만나서는 식사 한번 하고는 다시 헤여져 각자 달려가곤했다. 
만날때마다 다투어 버렸다. 힘든 투정에, 고향에 두고 온 딸 걱정담에 다투기가 일쑤였다. 고향서 싸움한번 안해본 잉꼬부부로 소문나 있던 두 사람은 어쩐 영문으로 타향에 와서 털 세우고 볏 세운 투계닭처럼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 행복이가 부두의 일자리를 때려치우고 증발되듯 사라진뒤에는 4년이 되도록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의 맨 끝자락 전남에 숨어있는 그녀를 안해가 용케도 찾아왔다. 그리고 피짚먹는 소처럼 눈만 껌벅이며 얼뜬해 있는 행복이 앞에 안해는 리혼이라는 막장 카드를 내밀었다… 
떡장수의 손짓이 멈추었다.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 사이 처제는 어느덧 30대를 훌쩍 넘긴 중년이 되여 있었다. 물러버린 떡처럼 어제의 풋풋하던 생기를 잃고 있었다. 
시집도 가지않은 처녀의 몸으로 강보의 조카를 맡아 친딸맞잡이로 키우고 있는 처제였다. 그 처제가 시장거리에서 떡가게를 차리고있다는 소문만 들었던 행복은 며칠간 시가지 사방 시장의 음식가게를 참빗질해서 용케도 처제를 찾아낼수 있었다. 
전화로 매몰차게 거절의사를 전하던 처제가 전화마저 받지않자 막무가내로 찾아 나선것이였다. 
하늘에서 바늘 찾기로 헤매다가 막상 찾아내여 앞에 서고보니 무슨 말부터 건넬지 몰라 행복은 문칮거렸다.
“장사는 잘되시오? 처제”
지극히 공식적인 인사를 건네고나니 자신이 시러배처럼 생각되였다. 
처제는 아무말도 없이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떡을 썰었다. 
역증이 들어간 손놀림이 빨라졌다. 잔뜩 힘이 들어간 팔뚝에 퍼렇게 지렁이가 섰다.  칼이 도마에 부딪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냥 서있기도 무엇해 또 한마디 했다. 
“처제, 배씨가 죽었네”
칼놀림이 뚝 멈추었다가 다시 빨라졌다. 도마를 쫓는 소리가 더 요란하게 울렸다. 
한때 처제를 무척 쫓아다녔던 배씨였다. 무혈무친 고아로서 마을에서도 윤이 나지못한 사림을 하고있는 배씨가 처제의 눈에 뵈일리 없었다. 하지만 바탕은 꺼슬꺼슬 무명이여도 마음씨만은 부드러운 비단같은 배씨여서 처제는 오빠맞잡이로 한때 절친하게 지내기도 했었다. 
떼돈 벌어와서는 처제와 결혼하고 친구 행복이와는 동서지간이 되고말겠다던 배씨의 꿈은 타향에서 그렇게 처참하게 으깨졌고 박살나버렸다. 
처제는 그냥 아무말도 없다. 힐긋 곁눈길로 팔에 석고를 댄 행복의 팔뚝을 훔쳐보고는 다시 고개를 수긋하고는 떡을 썬다. 
“콩고물 팥고물 몫몫으로 싸주오.”
뻘쭘해서 처제와의 대화거리를 찾으려 허둥이던 행복은 그냥 떡에로 화제를 돌리고 말았다. 
일매지게 썬 떡을 콩고물과 팥고물을 듬뿍 무쳐 각각 싸주었다. 
떡구럭을 받으며 행복이 슬쩍 말을 끼여 넣었다.
“5월5일이면 애 생일이 아니오. 그러니 꼭 한번 만나보고 싶소. 만나서…”
처제의 흰청많은 눈동자가 질러오는 바람에 핸복은 말끝을 흐렸다. 그 눈길은 이제와서 어떻게 애 생일은 기억하고있냐는듯한 눈길이였다. 
사실 한국에 와서 행복은 고향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아동절이 6월1일이 아니라 5월5일임을 알게 되였다. 그에서 딸애의 생일이 얼추 떠올랐고 그렇게 기억해 둔것이였다. 
“애가 여기 없어요.”
떡을 썰어 근을 달아서는 종류별로 포장지에 싸면서 처제가 말했다. 머리를 수긋하고 혼자말처럼 말했다. 
“일자리를 찾아 관내로 들어간지 오래요. 이제 걔도 열여덟이니 이모 말이 귀에 안잡혀들어요. 자립하겠다고 설쳐대는데...막을수가 있어야지요. 황차 친엄마도 아닌것이…”
처제가 후딱 고개를 쳐들었다. 다시 흰청이 많이 드러난 눈으로 행복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강보의 애가 처녀꼴이 잡히도록 여직 뭘하다 이제야 나타났냐? 눈길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사실은 처제…”
행복은 무언가 변명거리라도 찾으려 허둥댔다. 그동안 자신이 헤쳐왔던 가시밭길을 몇마디로 응축해 뱉어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해석을 하려고 입을 여는데 처제가 칼등으로 도마를 탕 내리쳤다. 
 “자꾸 처제처제 하지 말아요. 이제 와서 처제는 무슨 말라빠진…”
목소리가 얼음채찍이 되여 남자를 후려쳤다.
떡구럭을 든채 휘적휘적 돌아서 나오는데 처제, 아니 옛 처제의 고음이 행복의 발목을 부여 잡았다.
“여봐요”
행복이 일루의 희망을 품고 입귀를 말아올려 웃음을 지어보이며 돌아섰다. 
처제가 플라스틱 가면같은 얼굴로 말했다.
“떡값은 내고 가야지요”
 
어떤 장례
 
떡구럭을 들고 지척지척 안마원으로 다가가는데 주인장이 무언가 들고 나오는것이 보였다. 
종이박스를 두손으로 받쳐든 주인장은 행복이를 보자 기다리던 친지에게 하소하듯 말했다.
“지노가 죽었어요.”
오리무중에 빠진듯한 표정의 행복이를 보고 덧붙였다.
“강아지가요.”
아침나절에도 안마원을 나서는 자신을 졸졸 따라나서는지라 동그란 머리통을 다독여주고 털을 쓸어주었던 강아지였다. 
며칠전 한밤중에 안마원에 들어서는 자신을 향해 새되게 짖어대던 장모의 강아지는 그사이 익숙해진듯 행복의 다리에 감겨들곤했다. 하는짓이 이뻐서 맥주병과 함께 사들고 들어서던 북어를 찢어 입에 물려도 주었었다. 
축 쳐진 어깨로 서있는 녀자가 받쳐든 종이박스우에는 자그만 꽃삽이 놓여져 있었다. 아마 강아지를 묻으러 가는것 같았다.
“도와 드릴가요”
녀자가 거부를 보이지않았다.
요행 택시를 불러세웠다. 안마원이 비행장부근 시가지 외곽에 위치해 있었지만 택시는 외곽에서도 더 깊숙히 산쪽을 향해 달렸다. 
뒤좌석에 올라 타서는 두사람은 아무말도 없었고 그런 두사람을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훔쳐 보았다. 말 한마디도 없고 그냥 행선지도 없이 산쪽으로 가자는 두사람의 모습이 아무래도 수상쩍었던 모양이였다. 
차안에서는 거북한 침묵이 흘렀고 그 침묵을 깨련듯 기사가 라디오를 틀었다. 디이얼을 돌려 FM 주파수를 맞추자 점심뉴스가 흘러나왔다.
- 지속되는 저온랭해로 하여 왕년에 비해 사과배꽃이 만개하지 못한 연고로 올해 “사과배꽃축제”가 원 지정된 날자보다 지연될 예정입니다… 
- 어제 오전, “해외귀국자창업좌담회”가 열렸습니다. 귀국한 해외로무업자들은 해당 부문에서 귀향하여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보편적 특혜성이 강한 창업우대정책들을 출시할것을 한결같이 건의 했습니다…
- 성인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을 협박해 금품을 뜯은 이들이 검거됐다고 외신이 전혔습니다. 
한국 인천 서부경찰서는 인터넷 성인 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을 협박해 현금을 받아 낸 조선족 A씨를 공갈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이들은 중국 현지에까지 컴퓨터시스템을 들여놓고 신원을 알수없는 녀성들을 고용해 다시 한국의 고객들과 화상채팅으로 접속하도록 유도한 뒤 라체쇼를 보여주며 함께 음란한 행위를 하는 모습을 록화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 현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뉴스를 듣는 행복의 뒤덜미가 붉어져 있었다.
다행이 주인장은 뉴스를 듣는둥 마는둥 하고있었다. 가는내내 고개를 숙인채 종이박스에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정오뉴스가 끝날무렵에 택시가 어느 산더기앞까지 와서 멈추어 섰다.
둘은 부시럭거리며 종이박스와 삽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절기는 초여름이였지만 막상 숲에 들어서니 바람이 셌다. 숲바람이 우수수 소리내며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화분통을 호비작이던 꽃삽이라 땅파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한손을 상한터라 작은 종이박스 하나를 묻을 땅을 한참이나 파야했다. 여름이 성큼 가까와졌음에도 땅은 아직도 채 풀리지 않은것 같았다. 겉흙을 치우기까지는 쉬워도 정작 깊게 파려니 힘이 들었다.
잠간새에 뒤덜미가 흥건해졌고 이어 줄지은 땀방울이 벌건 흙속으로 뚤렁뚤렁 떨어져 내렸다.
그동안 녀자는 종이박스를 품에 꼭 껴안고 있었다. 때때로 종이박스에 볼을 대기도 했다.
구덩이에 내려놓기에 앞서 녀자가 종이박스에 입을 맞추었다.
하관이라도하듯 천천히 구덩이에 박스를 내려놓았다. 흙을 덮었다. 흙덩이가 부실부실 떨어져 쌓이자 녀자가 목멘소리로 부르짖었다.
“지노야 잘가!”
앙증맞게 작은 봉분이 생겨났다. 얼핏 보면 그냥 흙더미로 보일, 하지만 봉분을 삽등으로 두드리고 공글어 정성스럽게 작은 “유택”을 만들었다. 
행복은 삽을 던지며 봉분앞에 주저앉았다. 
멀거니 서있던 녀자도 그냥 서있기가 힘들었던지 봉분곁에 한쪽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았다.
산속 어딘가에서 이름 모를 새가 울음을 토하고있었다. 새 울음소리가 저리도 애닮고 청명하고 요란하다. 너무나 애닯아 괴이쩍게 들리기 까지했다. 거기에 훌쩍거리는 녀자의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겹쳐들었다.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눈언저리를 훔쳐내고 녀자가 새의 투명한 고음에 귀를 기울였다. 붉어진 눈시울로 녀자가 입을 열었다.
“트럭에 치였어요. ‘해방패’, 그 덤턱스럽게 큰 차에 치였으니 살아남겠어요. 차들이 고속으로 오가는 시교 길곁집이라 그렇게 조심했건만… 차는 뺑소니쳤고”
오전나절에 강아지가 차에 치이던 경상에 대해 말했다. 
“나와 육년째 같이 살던 애였는데…”
녀자가 또 훌쩍 코를 치걷었다.
“어쩜 우리 집안은 차와 전생에 무슨 원쑤관계를 졌던지. 저도 차에 치여 이 모양 이꼴이 됐죠. 그것도 한국서 말입니다.”
녀자가 엊저녁 행복에게 들켜버린 자신의 몰골을 해석하련듯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남보다 일찍 서울로 나갔어요. 
잘 나가다가 불체자 단속반에 맞띄웠죠. 단속반을 피해 겁모르고 3층에서 뛰여 내렸죠.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더랬습니다. 그까진 좋았죠. 그런데 일어나서 길을 뛰여 건느다 차에 치인거죠… 돈 벌러 나갔다 다리 한짝을 내주었습니다.” 
녀자가 행복이를 건너보았다. 녀자의 시선이 행복이의 깁스를 한 팔에 머물러 있었다. 어떻게 된 상처냐고 묻는듯 했다.
“일하다가 10층 발판우에서 쇠파이프 한가닥이 떨어지는 바람에…”
마른 침 한번 삼키고나서 행복이도 입을 열었다.
“뼈를 다쳤죠. 락하방지그물이 펴져 있다지만 빈 구석이 많습니다. 팔에 맞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해 둬야죠. 머리나 어깨나에 맞았더라면…”
“저도 다행이라 생각해 둡니다.”
녀자가 자조처럼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서울 연지동에서는 단속반을 피해 층집에서 뛰여내렸다 죽기까지 했습니다. 쉰넘은 흑룡강 녀자가 말이얘요.
요즘은  많이 느슨해졌지요. 불체자가 업체주인의 귀뜸을 받고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다쳤는데 이런걸 산업재해로 봐야한다는 판결까지 나온적 있답디다.” 
후유~
주르르 제 설음많은 사연을 토해놓고 나서 녀자가 직성이 풀린듯 하얗게 한숨을 내쉬였다. 
호주머니에서 물컹거리는것이 맞혀오자 행복은 그것을 끄집어 냈다. 정오도 지난지라 배가 허출해 났다. 녀자를 향해 내밀었다.
“드세요.”
녀자의 눈이 빛났다.
“움마 떡이네요”
“네 떡입니다. 잠시만요”
막상 떡을 앞에 두고 수저가 없어 쩔쩔 매다가 행복이가 몸을 일으켰다.
다박솔의 가지를 꽃삽으로 툭 쳐서 꺾어 들었다. 껍질을 벗겨서 저가락을 만들어 녀자에게 넘겨주었다.
녀자가 배시시 웃었다. 웃는 입매가 고왔다. 
녀자가 떡하나 집기를 기다려 행복은 흙묻은 손을 앞섶에 쓱쓱 문지르고나서 집게손을 해들고 떡을 집어 입에 넣었다. 
녀자가 애모쁘게 봉분의 흙을 어루만졌다. 떡을 우물거리며 분명치 않는 어조로 말했다. 
“우리 지노는 이제 아픔도 배고픔도 없는 좋은 곳으로 갔을터지요”
다시 새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리도 애닮고 청명하고도 요란한…
순간 행복은 목이 꺽 메였다. 떡이 한덩이의 설음으로 되여 목에 떡 걸려버렸다. 무지근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모지름을 썼다. 
“움마. 걸렸네요”
녀자가 종주먹을 해갖고 행복이의 등짝을 학교운동대회때 응원북을 치듯 사납게 두드려댔다. 
겨우 떡이 넘어갔고 눈물이 쑥 나왔다. 
 
슬픔의 합성
 
물밑속처럼 괴잠잠한 고요만이 감돌던 안마원에서 소요가 인것은 자정이 넘은 늦은 밤이 였다.
“게 서욧! 이봐요 아저씨”
행복은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밖에서 주인장이 달려나가며 지르는 고성이 들려왔다. 행복은 아픈 팔을 붕대를 감아 목에 걸 사이도 없이 방을 뛰쳐나왔다.
안마원 문전에서 주인장이 분명 손님으로 보이는 나그네와 실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요?”
행복이가 따져 물었다.
“발안마 받고 돈 안내고 그냥 튀려잖아요”
주인장이 흑기사라도 만난듯 행복을 향해 하소했다. 
덤턱스럽게 키가 크고 목덜미가 굵은 사내였다. 손님은 몹시 취해 있었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있었고 발은 허방을 밟으며 휘청거리고 있었다. 행복을 향해 삿대질하며 혀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당신 뭐야”
행복에게 바싹 다가선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에게서는 아직도 술냄새가 천지를 지동했다. 사내가 휘청거리며 행복이의 어깨를 떠밀었다.   
그 덩치에 조금은 겁이 났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돈 내고 곱다라니 가시오”
“당신 누구냐고”
“취했구만 빨리 집에 가시오. 결산은 제대로 하시고.”
“나 결산 안할란다 왜?”
“왜 안해유. 봉사 받았으면 돈은 제대로 내야지. 남자로 생겨서”
손님이 피식 물찌똥같은 웃음을 갈겼다. 주인장녀자를 돌아다 보았다.
“안마사가 너무 박색이잖아.”
팔짱을 가새지르고 섰던 주인장이 격분과 탄식을 한꺼번에 뿜었다. 
“나 원, 살다살다, 별꼴 다보갰네”
찌르릉 통증같은 흥분이 행복이의 팔을 거쳐 정수리까지 관통했다. 
커다랗게 다가온 사내의 낯짝에 행복이 얼굴을 바짝 가져다 붙혔다. 썩은 과일같이 문뱃내 나는 그 얼굴에 대고 소리소리 질렀다.
“나가 원 환장해 뿔겄네, 이런 미련 바부탱이 썩을놈들이 남자 망신 다 시키누만, 좋은건 입으로 처묵고 나이는 똥구멍으로 처묵냐, 확 척추를 접어뿔랑께, 창자를 쑥 뽑아 순대 만들어 줄까부다, 왐마 너 죽을텨?”
    취한도, 주인장 녀자도 경악함에 지릅뜬 눈으로 행복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50원짜리 지폐 한장이 쑤욱 행복의 손으로 넘겨져 왔다. 
   그리고 사내는 꽁지에 불달린듯 쥐처럼 어둠의 구멍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깨에 힘을 주며 행복은 지폐장을 주인장에게 넘겨주고는 안마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돌아서서 웃음을 참으려는듯 주먹을 말아 입에 대였다 그의 어깨가 겉잡지 못하고 오르내렸다. 
 
똑똑 
노크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자 주인장이 족탕기를 들고 서있다.
“금방은 고마웠어요. 이젠 지노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
녀자는 안마원 유니폼 차림이였다. 
“발안마 해드릴게요.”
“아니 괜찮습니다”
행복이가 덴겁히 밀막았다. 
“공짜로 해드릴게요. 피곤이 풀릴거얘요.”
녀자가 문을 밀고 들어섰다. 행복은 덴겁히 컴퓨터를 껐다. 
나무로 만든 족탕기에 발을 담갔다. 
물은 따뜻했고 녀자의 손은 부드러웠다. 
“어제는 째진 바지도 꿰매주고… 페만 끼치네요”
행복이 쑥스러워 하며 말했다. 
그날 저녁 비행장과 가까운 이곳에 투숙하게 된것이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터미널 앞의 택시들이 귀국하는 사람들에게 바가지료금을 덮어씌운다기에 택시를 거부하고 시가지쪽을 향해 무작정 걸어가다가 들리게 된곳이 바로 이곳, 짜장 이름 그대로인 “황금”의 쉼터였다. 
녀자는 나지막한 미소로 화답했다. 미소를 머금은채 실습기의 초보안마사처럼 열심히 발을 주물고 있다. 
“한국에서 들려와서 입원수속을 하면서 리혼수속도 함께 했어요.”
발을 주무르다 녀자가 또 묻지도 않은 이야기의 하편을 이어나갔다. 
“아이는 남편쪽에 넘어갔구요. 그동안 엄마 얼골도 모르고 자란 애가 기어이 아버지와 함께 하려 했지요. 
다리를 잃고 가족까지 잃어야하는 녀자에게 시댁쪽은 아무런 측은지심도 없어 했어요. 원체 극구 나가지 말라는것을 제가 부득부득 우겨 나갔으니깐요.”
이야기하면서 녀자는 발을 누르고 주무르고 쓸어주었다. 
“집만은 제게 남겨주었어요. 남편도 그사이 살려고 애썼나봐요. 숭어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이렇게 떼돈 번답시고 발안마원도 차려놓고있었더군요. 제가 보낸 돈으로요.
그런데 잘 안됐나봐요. 그냥 제게 리혼합의금 삼아 넘겨줬죠. 다시 영업구조로 만든 집을 고치기도 싫고 그래서 사주에도 없는 발안마사가 돼버렸죠. 
하필이면 발이 없는 녀자가 발안마원을…”
녀자가 처량하게 웃었다. 
하나의 얼굴이 행복의 뇌리에 그물그물 떠올랐다. 마지막 리혼카드를 들고 자신을 찾아 남도끝까지 왔던 안해였다. 그날도 모텔방 문켠에 서서 안해는 이렇게 처량하게 웃었다.
“이렇게 두더지처럼 숨어버리면 내가 못찾을줄 알았지”
그리고 한달도 못되여 안해는 비명에 갔다. 
희귀병이라고했다. 
“원발성폐고혈압”이라는 듣도보도 못했던 병으로 판명되였다. 
중환자실 입원 20여일 만에 타향에서 삶의 의지로 강건했던 맥을 그만 놓아버렸다. 
그냥 숨차다며 앙가슴을 두드려왔는데 그제야 폐질병을 잠재우고 있었음을 알수 있었다. 
리혼후 한달도 못된 죽음이였기에 처제는 형부를 몹시도 원망하고 있는것이였다.
“보시다싶이 안마원 잘 안돼요. 안마원 이름은 한번 거창하다만…”
녀자쪽 설음은 계속되였다.
“위치도 나쁘고… 무엇보다 다른 곳에선 젊고 이쁜 애들 쓰니깐요. 요정같은 애들이 손님 발도 주물고 다른곳도 주물러주니깐”
녀자가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런거 까지 하면서 치사한 돈 벌고는 싶지않고… 그러니 뉘라서 이런 쉬여빠진 아낙네를 찾겠어요, 더구나 병신 아낙을, 그래서 요행 손님 있으면 받고 없으면 그냥 살림집처럼 쓰고 있죠.” 
족탕기에서 발을 들어올려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발크림을 미끌미끌 발라 구석구석 문질러주었다.
미끄러지듯 녀자의 말도 흘렀다. 
“상처가 아물고, 의족도 습관이 되고… 다른건 다 참을만 했어요. 그런데 제일 어려운건… 아들애를 못보는것이였어요.
남편은 아들애를 못만나게 했어요. 애가 돌도 못되여 돈에 환장해 집을 뛰쳐나간 년이니 볼 자격이 없다는것이였죠.”
행복은 부지중 소리나게 한숨을 뿜고 말았다. 어쩌면 다리 부러진 노루 한자리에 모이듯 꼭 같은 동병상련의 처지였다.  
“무엇보다 애에게 이런 병신엄마가 있다는걸 속이고 싶었던거겠죠”
녀자가 서글프게, 독백하듯 말했다. 긴 연극대본 같은 이야기를 쉼표없이 하고 또 했다. 그동안 말동무가 그리웠나보다. 더욱이 애견까지 잃은 날이라 더욱 허전해버린 그 마음을 행복은 알것 같았다. 
녀자의 매끄럽던 손길이 또 한번 멈추었다. 
주인장의 눈길이 그윽히 향한 곳에 사진액자가 있었다. 엄마와 애가 목을 얼싸 그러안고 환하게 웃는…
“저 사진 합성이얘요”
행복이가 적이 놀라했다. 
“심통하죠”
녀자가 다시 손을 놀리며 말했다. 
“어럽게 애가 있는 학교를 찾아냈어요. 애원했더니 선생님이 애가 박혀있는 단체사진 한장 주더군요. 사진관가서 돈 엄청 퍼주고 다른 사람들 사진에 머리만 합성해 바꿔넣은거얘요. 심통하죠.”
행복은 다시 새삼스럽게 사진을 보았다. 신통한듯 신통하지도 않은듯 두 사람의 웃음이 액자에 포박된듯 보였다.  
“애는 그냥 학교 담넘어 체육시간에 봤어요. 이름은 진호라고 바뀌여 있었구요. 내가 지은 이름은 복이였는데 행복이라는 복. 리복이…”
행복이가 움찔했다. 다리 부러진 노루들이 힘겹게 산등성이를 넘고있는 환영을 행복은 보고 있다. 
“아프나요?”
 녀자가 발을 쥔 손에서 힘을 뺐다. 
 행복이가 머리를 저었다. 
“계속해요. 이야기를”
이야기에 은연중 빠져들어가고있는 자신을 느꼈다.
“이제 초중생이 되였네요. 에미 없이도 그렇게 밝게 이뿌게 큰 애가 고마웠어요. 그런데 며칠후 또 찾아가보니 애가 전학해 갔더군요.” 
녀자가 훌쩍 코를 치걷었다. 
“여기가 내 아들애를 위해 꾸며놓은 방이랍니다. 혹시 언젠가는 찾아올가 해서요. 그날 손님이 인터넷 되는 방에 들려니 처음 내줬지요.”
녀자는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원체 손님들이 그냥 발안마만 받고 밤을 지내지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손님은 왠지… 인상이 참 좋아보이더군요.”
녀자가 수삽한 빛을 감추려는듯 문뜩 발안마를 끝냈다. 부시럭거리며 발크림과 수건들을 챙겼다. 
족탕기를 들고 나가려던 녀인이 행복을 향해 물었다. 너무 낮게 말했기에 행복이 다시한번 되물었다. 
“무어라구요?”
녀자가 혀아래 소리로 말했다.
“혹시… 다른 안마는 안받으시겠어요”
행복은 녀자의 눈을 피해 시선을 돌렸다. 
조도낮은 탁상등의 음음한 빛속에서 빛나오르는 녀자의 눈동자를 느낄수 있었다. 그 눈동자는 채 꺼지지않은 콕스불처럼 은근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은근한 빛은 모르고 대이면 손이라도 델것 같았다. 
녀자가 또 한번 혀아래 소리로 말했다.
“공짜로 해드릴게요”
무거운 족탕기를 들고서있는 그녀가 안쓰러워 보였다. 
행복은 일어나서 녀자의 손에서 족탕기를 받아 구석에 놓았다. 
녀자는 탁자로 다가갔다. 아들애와의 합성사진을 손으로 쓸어 넘겨뜨렸다. 
그리고는 유니폼을 머리우로 확 벗어버렸다. 
세월의 중하를 못이겨 축 처진 유방이 참담하게 드러났다. 
행복은 못나게도 슬몃 부끄럽게 일어서는 자신을 느꼈다.
녀자의 향그러운 육향을 느껴본지도 몇년이나 되였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헤아릴수도 없었다. 그저 컴을 마주하고 기계적이고 변형적인 만족을 얻은것이 다였다.
말라버린, 하지만 봄을 맞아 수분을 기다리는 늙은 과수같은 그 몸뚱아리를 향해 다가갔다.  
녀자가 깁스를 한 행복의 손을 들어 가슴에 얹어주었다.
어줍게 가슴을 만졌다.
건과(乾果)같은 녀자의 유두가 손에 들어왔다. 
본능에 넘쳐 그 가슴을 와락 옴켜잡았다. 그러다 팔에 통증을 느끼며 나지막히 신음을 뿜었다. 
녀자가 옷을 벗었고 의족도 벗었다.
행복은 짚이영에 튕긴 불씨를 치우듯 후딱 탁상등을 꺼버렸다. 
그리고 다음순간 두 사람은 안타깝게 허둥거렸다. 
어둠에 익숙하지 못해서가 아니였다. 
한 사람은 오른 팔, 한 사람은 왼 다리, 
상처입어 갈가리 해체된 몸뚱아리를 어떻게 맞추어야할지 몰라 헤맸다. 
두 사람은 지접(止接)이 잘못된 괴상한 과수의 가지처럼 왜곡된 형상으로 한데 얽혔다. 
그리고는 부서진 뼈가 잇기듯, 찢겨진 피부가 아물어 붙듯 서로에게 들붙었다. 오늘만 있고 래일이 없는 곤충처럼, 단말마로 서로를 탐했다. 
등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로 얼룩진 녀자의 얼굴이 척척했다. 그 척척한 얼굴에 자기 얼굴을 붙여 대였다. 다른 하나의 눈물이 마르려는 그 눈물자국우에 길을 만들고 있었다. 
입술과 입술이 얽혔다. 
서로는 서로의 눈물을 마셨다. 
그리고 마침내 녀자는 간호원 여러명이 달라붙어 분쇄성골절을 입은 팔에 딱딱한 석고를 마구 댈때처럼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안마원 아크릴간판의 네온사인은 꺼져있었고 두꺼운 커튼을 뚫고 새벽의 빛이 간신히 스며들고 있었다. 
 
해피 투게더
 
“해피 투게더”라는 커피점이라고 했다.  
그집에서 뜨거운 우유를 곁들인 카페라떼를 잘 만들었고 그래서 딸애가 잘 다닌다고 했다. 
행복은 그야말로 칡넝쿨 한가닥에 의지해 낭떠러지에 간신히 붙어있다가 구원의 큼지막한 손을 부여잡은듯한 심경이였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넣어보려 했는데 처제의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딸애가 외지에서 돌아왔는데 만나겠다는것이였다. 
기쁨에 겨워 손을 휘젓다가 찔러오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기뻐서 하늘로 박차오를듯 하는 그녀를 전화부스속의 아낙이 못볼것을 본듯한 눈길로 내다 보았다.
안마원의 “황금의 발” 네온사인이 꺼지고 날이 밝을때까지 온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막상 아침이 오자 깜박 잠이 들었고 파아란 교복을 입고 귀가에 단발머리 찰랑이는 딸애가 멀리서부터 뛰여오자 홍소를 터뜨리며 맞아 달려가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였다.
이번에는 또 점심때가기다려졌다.
딸애를 만날수 있다는 복음을 듣고 시가지로 나가서 리발을 하고 면도를 했다. 
새 점퍼 하나를 사입고 구두도 새로 사 신었다. 
두살배기, 입가에 밥풀 가득 묻힌 채 숟가락을 허공에 휘저으며 밥상앞에서 그날따라 신나하던 애를 처제의 집에 두고 집을 나서서는 16년만에 처음 보는 딸애, 그 딸애앞에 정갈하고 멋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깁스를 한 팔을 얼굴을 찡그려가며 겨우 소매에 밀어  넣었다. 목에 붕대를 해 걸지 않았다. 
“행복하세요”
안마원 주인장이 문밖까지 따라나오며 어제까지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유난히 행복해 보이는 행복을 향해 손을 저어주었다. 
그래 행복해야지… 짐짓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커피점에 들어섰다. 
어쩌면 커피점 이름도 “해피 투게더”인 커피점은 도시복판 건물의 13층에 있었다. 
엘레베이트에서 내려 연신 머리를 매만지며 “해피투게더”라는 상호가 새겨진 유리문앞에서 행복은 마주섰다. 쌍방망이질 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유리문에는 예쁜 손글씨로 쓴 커피메뉴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그 사이로 커피점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앉은 처제가 보였다. 그러면 처제와 마주 앉아 문쪽으로 등을 돌린 쪽이 딸애일것이다. 
  행복은 심호흡을 길게하고나서 액세사리로 꾸민 문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밀었다. 
향긋하면서도 알싸한 커피향이 훅 끼쳐왔다. 
이때 딸애가 일어섰다. 카운터쪽으로 가서 금방 내린 커피를 손수 받아왔다. 
처제가 문가에서 문칮거리고있는 행복을 보아내고 손짓했다.
“어서 오세요”
그리고 커피잔을 내려놓는 애를 향해 말했다.
“왔다. 저기 네 아빠가 왔어”
이모가 턱짓을 했고 딸애가 머리를 돌렸다. 드디여 딸애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쪽을 향해 디밀던 행복이의 발길이 난딱 멈추어졌다. 
얼음채찍에 맞은듯 순식간에 얼어붙은 표정으로 남자는 무엇을 보았던가!
장발에. 흑옥같은 눈동자에, 멀미날듯 하얀 피부를 가진 열예닐곱살 딸애, 웃음을 지을가 말가 주저하는 그애의 코의 왼편 언저리에 아래우로 박혀있는 두개의 짐을 그는 분명 보았다. 
어떻게 13층 높이에서 비상구 계단으로 단숨에 달아내렸던지 행복은 몰랐다.
계단의 손잡이를 부여잡고 깊은 수면속에서 헤여나온 사람처럼 헐떡거렸다.  
공사현장에서 전동드릴을 처음 잡았을때처럼 전신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두 손으로 올올이 잡아뽑을듯 머리칼을 으득부득 부여잡았다.
으으윽, 
목구멍에서 괴상한 신음이 새여 나왔다. 이어 그 신음은 그악한 악성(惡聲)으로 변조되여 갔다. 
아아악, 
피를 뽑는듯한 절규를 뽑으며 남자는 깁스를 한 팔을 들어 사정없이 벽을 후려쳤다. 
석고의 파편이 튀였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다시 부러져 너덜거리는 팔을 부여잡으며 그자리에 주르르 주저앉아버렸다.
통증이, 쓰나미같은 거대한 통증이 팔에서부터 심장으로 서서히 번져 나갔다.
… …
... ...
 
“도라지" 2015년 6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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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성자 : 공무도하
날자:2015-12-09 09:00:01
시대나 인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문학이 진정한 문학이라 했는데,, 좋아요. 근데 너무 아픕니다.오랫동안 소설 창작 해오셨으니 그 문체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뛰어 납니다. 언어구사는 그야말로 화려했구요. 근데 아픔 해소의 대안이 보이지 않네요. 아픕니다. 그냥... 너무 아파요,, 아프지 말아야갰는데요, 조선족 공동체도,,더욱이 작가님 자신도 말입니다.
여하튼 좋은 소설 잘 보았습니다. 소설가님에게서 아프지 앟은 소설 기대한다면... 유머소설을 기대한다면 혹시 너무 오지랖 넓은 건가요?
1   작성자 : huayu
날자:2015-12-06 19:51:26
조선족의 90년대말기로부터 약장사,로무출국,리산아픔을 다룬 작품은 많았지만 이렇게 아프게 다룬 작품은 처음입니다.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일도 못했네요. 오리오리 가슴을 긁는 이야기들이 제 마음을 울리는군요.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는지..정말로 아픈 소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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