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혁의 문화시론 4]
구순(九旬)의 박물관
지난 년말과 년초, 룡정에서는 구순(九旬)의 로인장 두분이 련이어 “가학서거 (架鹤西去)”하셨다.
한분은 “룡정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최근갑옹, 또 다른 한분은 민족시인 심련수의 동생 심호수옹이다.
독립운동가의 아들로서 리직휴양한 후 달갑게 민족의 뿌리를 찾는 “심마니”가 되여 온 최근갑옹은 유서깊은 룡정에 3.13반일의사릉, 서전서숙옛터, 명동학교 등 민족의 발자취를 기념하는 9개의 유적비를 세우고 성역화하는데 만추를 불태워왔다. 모두들 즐겨 부른 그의 호는 “룡정력사의 산증인”, “비석아바이”였다.
최근갑옹과 필자
“윤동주에 버금가는 시인”으로 추앙받고있는 심련수시인의 동생 심호수는 룡정의 시교에서 형님의 소중한 육필 원고를 항아리속에 담아 무려 55년간이나 보존해왔다.
루루 파란의 세월, 목숨으로 보존해온 이 작품들은 “일제암흑기의 한민족문학사에서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것”으로 정평되고있으며 그로서 심련수라는 연변이 낳은 또 하나의 걸출한 민족시인의 존재를 존립시켰다.
지난해 심연수의 동생 심호수선생(가운데)의 자택을 찾은 필자
(왼쪽 윤동주의 조카 오인경 여사)
사실 현대인간들은 자연의 보물이든 인공의 유물이든 소중한것을 보존하는데 태만하기가 일쑤이다. 그리하여 금쪽같은 문화재들은 세월의 류수에 파이고 깎이고 바래진다. 게다가 인간의 망각이란 무책임때문에 감감 잊혀지기도 한다. 이런 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은 뻔하지만 이를 실천할 의지나 재원이 없는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문화재의 가치는 끊임없이 다음 세대에 전수되고 향유될때 제 의미를 갖는다. 세월의 더께에 쌓여 처박힌 서류더미속 력사나 문화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 일상속에 스며들어 존재할때 우리 문화는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민족을 위하여 후세를 위하여 온 몸을 던진 선각자들의 치렬한 몸짓과 웅숭깊은 소리, 그 헌신의 성과는 기록되고 보존되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선인들이 남긴 우렷한 력사와 비범한 지식과 장인의 기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우리는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는걸가? 이들을 승계해 나가는데 얼마만큼 신경을 쓰고 있는걸가?
이제 구순의 지킴이들을 우리는 홀연히 보냈다. “로인 한분이 죽으면 박물관 하나가 불탄것과 같다”던 외국속담이 흥감스럽지 않은 절실함으로 이 시각 떠오른다.
구순의 지킴이들은 평생을 걸고 우리의 보물들을 보존해왔다. 이제 보전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네들의 타계가 한 력사와 문화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도록 그들의 통찰을 기록하고 그 노력의 결실을 보존해야 한다.
룡정의 력사와 문화를 위해 로구를 투신해온 구순의 지킴이들, 오호애재(嗚呼哀哉)라 그들의 타계를 애닲아 한다.
"연변일보" 20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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