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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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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미성(美声)처럼 들려오는...
2016년 10월 11일 09시 24분  조회:1700  추천:8  작성자: 김혁

. 평론 .
 
고백, 미성(美声)처럼 들려오는... 
-주향숙의 수필 '래생에 내가 만약 시인이라면'
 
김혁
 
 
      그만 고백에 귀를 빌려주고 말았다. 긴 고백에 참다랗게 귀와 마음을 깡그리 빌려주었다. 수필은 마음속에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고백의 문학일진대, 그 고백이 미성(美声)처럼 아름답게 들려온다.
 
    '래생에는 시인이 되고싶다. 그리고 좀 더 아름다운 시를 쓸수 있도록 괜찮은 시인이 되고싶다.'
  주향숙의 수필은 그닥 크지아니한 작은 소망을 고백하는것으로 시작된다.
  시인이 되여서 '오염된 세상에서 순수한 사랑을', '메마른 세상에서 가슴 설레이는 사랑을' 할수 있기를 소망하고, '차가운 세상에서 따뜻한 사랑을' 누릴수 있게 해준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고백의 말미에 믿음을 싣는다. '세상으로부터 몰려오는 어둠과 추위와 두려움과 아픔들을 그 아름다운 사랑을 담은 시로서 충분히 막아낼수 있을것이라 믿는다.'
     작가는 나지막한 고백에 이 소중한 전언을 하고싶었을것이다.
 
  자칫 제목과 소재가 주는 상투성으로 인하여 독자의 감상이 가벼워지지는 않을가? 빤한 전개나 결론에 이르지 않을가? 념려하며 읽었지만 오히려 그 성질을 문학적으로 잘 소화시켜놓고 있어서 부질없는 기우를 해소시켜주었다.
  단조로워 보이는 짧은 글이지만, 음미해 보면 그속에 산문시라도 읊는것 같은 시적인 함축의 정서를 내포하고있다. 이는 작가가 꽤 오래동안 수필과 시를 병행해 오며 벼린 붓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정서라 하겠다. 그동안 시인이 상습적으로 복용한 농도짙은 정서의 량이 작품의 행간마다에 잘 드러난다.
 
  요즘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면 모두 문학이 되리라는 소박한 인식으로 손쉽게 일기 수준의 글을 발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다른 작가, 작품과 변별성을 보여주려는 욕망에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감정의 과잉을 조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경우는 스스로 그 화려함의 과잉을 잠재운다. 그 감정에는 분식(粉飾)이 없다. 사랑이라는 가슴뛰게 하는 주체를 읊조리고있지만 작가는 평이한 심상과 안정된 붓놀림을 보여준다. 담백하게 담아낸 정서에 과장되지 않은 수사법이 접목된 필치에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평범한 체험이 특화되여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작품은 수필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세계를 무리없이 표현하였고,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 또한 무난한 편이여서 비평의 대상이 될만한 특이한 사안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수필이 고답적인 양식에 얽매여 있는것이 조금 안타까울뿐이다. 작가의 력량으로는 좀 더 컴퓨터 앞에 붙박혀 숙고의 키보드를 두드린다면 얼마든지 극복할수 있을것이였는데…
  그럼에도 이 수필에는 그로서의 나름의 소리가 있다.
  길지 않은 편폭에 난삽하지 않은 단어의 사용으로 느낌이 편안하게 다가오는데 이것은 아마도 별반 티나지 않는 형식에 일상적인 정서와 평이한 인식이 실려 생겨나는 도덕적 당위성때문일터이다. 하지만 나지막한 고백과도 같은 이런 편안함이나 잔잔한 감동이 나중에는 큰 울림통으로 다가오는것이다. 연주를 마치고 고느적히 누워있는 악기를 무심히 건드렸을 때 반응하듯 울림을 울었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은은한 여운… 작가의 가슴에서 되뇌이며 사색으로 빚어낸 화음들이 수필의 정서를 만들어내고 있는것이다.
 
  작가는 '래생이 오면'이라는 용어를 도입부에 몇번이고 중복하고 있다. 단락마다 곁들인 그 추임새가 흥미롭고 아름답다. 자칫 탐미와 센티멘털로 흐를 페단은 있었지만 그 반복구에는 가슴을 휘돌게 하는 힘이 있다. '사랑'이 주는 안온함에 '래세'라는 종교적 화두에서 오는 감정의 견인이 있기때문이다. 그러한 설파로 주향숙의 수필은 또 명상적이고 래세추구적인 모습이 된다.
 
  좋은 글월이나 좋은 음악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그 파장은 높고, 깊고 넓게 퍼져나가며 마침내는 세속의 온갖 잡음에 마모된 우리들의 눈을, 귀를 마음을 사로잡다. 주향숙의 이 수필이 바로 그렇게 귀와 눈과 마음을 빌려주고싶은 미성이다.
 
"흑룡강신문" 2016-06-20 


수필
 
래생에 내가 만약 시인이라면 
 
주향숙
 


주향숙 프로필
 
연길시 의란향에서 출생, 
수필, 시 200여편(수)을 발표했다. 
" 도라지문학상" 등  수차 수상。
수필집《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자유》를 간행
연변대학 사범분원 부속소학교에 교원.
 
 래생에 무엇이 되여 다시 태여날지 아무도 모른다. 날개를 가진 한마리 작은 새가 될지 또 푸르게 넘실거리는 한그루 나무가 될지 아무렇게나 굴러가는 하나의 돌덩이가 될지 아니면 이름 없는 나무에 이름도 없이 맺히는 한알의 열매가 될지… 또 기어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여난다고 해도 어떤 모습이 되여있을지는 역시나 아무도 모른다. 사상가가 되여있을지 화가가 되여있을지 신학자가 되여있을지 아니면 가난한 농부거나 구제불능의 알콜 중독자거나…
 
  래생에 나는 한 사람으로 태여나고싶다. 그리고 래생에는 시인이 되고싶다. 그리고 좀 더 아름다운 시를 쓸수 있도록 괜찮은 시인이 되고싶다.
  시인이 된다면 노래하고싶은것이 참 많을것이다. 땅이며 하늘이며 불이며 공기며 바다며… 꽃이며 나무며 강아지며 토끼며 고래며…웅장하고 빛나고 우아하고 고상하고 참되고… 그렇게 우리의 세상에 넘쳐흐르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시로 표현할수 있다는것은 참으로 축복받은 인생일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인으로 태여날수 있다면 오로지 너와 나의 사랑만을 노래하고싶다. 이생에서 우리가 나눈 사랑을 래생에 고운 사랑시로 이야기하고싶다.
 
  너와 나는 늘 추운 겨울에 만났었다. 기어이 그 시간을 택한것도 아니였는데 우리는 늘 한해의 끝자락에서 서로를 만나군 했다. 꼭 마치 추운 겨울을 뜨겁게 살아내고싶은 그 정열처럼. 그만큼으로 뜨거웠던 우리의 사랑은 내 살갗에 문신으로 새겨져서 너와의 기억을 나는 아주 섬세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기억해낼수가 있다.
  부드러운 잔디밭을 밟으며 걷던 순간 얼굴에 그려지던 설레임의 무늬이며 밤이면 이불속에서 팔다리가 섞여들고 호흡이 섞여들던 그 순간의 열락의 뜨거움이며 아침 깨여서 한 이불안에서 함께 푸르스름한 새벽을 바라볼 때의 감동이며 영화관에서 내 손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만져줄 때 가슴으로 소용돌이를 만들던 따뜻함이며 어느 골목길에서 뒤짐을 지고 걸어가는 너의 뒤잔등을 바라보며 웃음짓던 행복감이며 지하철역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등을 돌리며 떠나야 했던 그 순간의 슬픔이며… 아무튼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낮과 밤을 그리고 그속의 모든것들인 해살과 비와 눈과 바람과 그리고 거리와 지하철과 시장과 음식점과 층계와 그리고 밥과 반찬과 술과 그리고 목욕을 같이 하고 입맞춤을 하고 미소짓고 바라보고 서로 껴안고 사랑을 나누고…그 모두를 다 기억하고있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늘 짧았다. 만나기까지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몸의 모든 세포가 갈증으로 타들어가도록 한없이 길었을뿐이다. 참을수 없는 그리움에 우울하기도 무기력해지기도 미친듯이 격해지기도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많은 그리움과 기다림을 나는 아름다움이라고 그 모든것과 상관없이 부를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는 언제나 뜨거운 불꽃으로 타올랐고 그것은 오랜 시간을 지나도 종래로 고갈되거나 희미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리움은 늘 지속되였고 고조되였을뿐이다. 그 뜨겁고 화려한 색갈들은 자칫 회색빛으로 물들수 있는 우리의 외로움과 아픔의 시간들에 배여들어서는 보다 곱게 물들이고있었다. 그래서 세상은 늘 고운 빛갈로 차올랐고 늘 따뜻했고 늘 밝았다.
  내 몸이 너의 몸을 찾는 그 절실함과 내 령혼 깊은 곳으로부터 너를 찾는 그 간절함 그것이 어떤것인지를 나는 잘 안다. 그러나 그 기쁨을 무어라 말할수 있으며 그 아픔을 무어라 말할수 있을지 나는 제대로 적을수가 없다. 나는 언어의 불충분함과 또 부적절함과 그 한계와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오로지 아름다움이라는 이 형용사외에는 다른 단어를 고르지 못했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이 단어가 마음에 든다.
 
  비록 늘 함께하지 못했지만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부르고싶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아픔을 변명하고 위안받고싶은것은 절대 아니다. 기쁨만이 즐거움만이 행복만이 눈부시는것만이 사랑일수는 없다.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무엇을 보다가 괜히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 무엇이 특별히 생각난것도 무엇이 불쌍해진것도 무엇이 슬픈것도 아닌데말이다. 때로는 밥을 먹는데도 길을 걷는데도 밤에 잠을 자거나 아침 깨여서 눈을 뜨는데도 다 커다란 용기가 수요된다는것을 깊이 느끼군 했다. 때로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심하게 두려워지기도 했다. 문득 네가 떠나버릴가봐 문득 내가 아파질가봐 문득 세계의 종말이 올가봐…그렇게 더는 너를 볼수 없을것같은 생각이 갈마들 때면 침착하지 못하게 허둥대군 했다. 하지만 사랑은 늘 자신의 신비로운 능력으로 다시금 제대로 일상을 살아내도록 다독여주었으며 나더러 자신의 빛갈을 알게 만들어주었고 뜨거운 열정으로 세상을 껴안고 살아가게 만들어주었다. 이 오염된 세상에서 순수한 사랑을, 이 메마른 세상에서 가슴 설레이는 사랑을, 이 차거운 세상에서 따뜻한 사랑을 누린 나는 이생에 태여나게 된것을 고마와하며 너와 한 하늘아래 살게 된것을 고마와한다.
 
  래생에 내가 전생의 사랑을 시를 읊조린다면 너 역시 나를 알아볼것이라 믿는다. 이생에서 우리가 전생에서 그리워했음을 잘 알고있었듯이 말이다. 우리는 함께 했던 순간순간을 영원히보다 더 영원히 기억하고있을것이기때문이다.
  래생에 내가 다시 시로 너를 만나면 우리 더는 이생처럼 아프게 사랑하지 말고 더 행복하게 더 평화롭게 더 그윽하게 사랑했으면 좋겠다. 슬픈 사랑을 나눈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눈이 푹푹 내리는 날 흰 당나귀를 타고 깊은 시골에라도 찾아들고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런 일상을 보는이에게는 되려 구질구질해보일지도 모르는 그런 일상을 함께 평범하게 살아보고싶다. 아침 문을 나서느라 몸을 굽혀 신을 신는 너를 무심히 바라보며 웃어주고싶고 함께 땀흘려 일하다가 서로 마주보며 너의 이마에 돋은 땀방울을 닦아주고싶고 그냥 최저의 말만으로 때론 말도 없이 변화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아도 좋을듯하고 낡은 밥상에 마주앉아 간단히 장국에 밥을 말아먹고싶고 네가 내 무릎을 베고 누우면 너의 머리칼을 만지고싶고 그러다가 너의 귀구멍을 파주고도싶고 밤이면 한 이불안에서 조용히 너의 우에 포개여져 잠들고싶고 그러다 혹 내가 먼저 깨여나면 너의 숨소리를 들으며 미소지으며 내려다보고싶고…이처럼 고요하고 밋밋하고 느릿하고 사소한 일상들이 내게 얼마나 충실하게 풍성하게 절실하게 다가오는지를 깨닫고싶다. 매일매일 같은 날이여도 리유도없이 친밀하고 소중해지는걸 깨닫고싶다. 나 혼자의 생명이 너와의 생명과 더불어 살아갈수 있다는게 아름다움이라는걸 깨닫고싶다.
  래생에 내가 만약 시인이라면 나는 이렇게 이생에서 미치도록 불타올랐던 그 많은 그리움들을 시로 처절하게 읊조리고싶다. 어쩌다 만나면 허기진 령혼끼리 뜨겁게 비벼 광적인 열락을 만들던 그 절정으로 치닫던 찬란함을 시속에 라체로 드러내며 뒹굴고싶다. 비명을 지를만큼 강렬했지만 숨죽여울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스쳐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계절속에 남아서 바람으로 울어대던 오열을 시로 터뜨리고싶다. 그리고 이제 래생에 다시 만나 사랑보다 더 뜨거운것이 더 가치있는것이 더 오래가는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나누게 될 우리의 사랑의 기적과 감사함을 시로 그려내고싶다.
  그리고 래생의 다음 래생에는 그 무엇이 되여 어디에서 태여나더라도 너를 담은 나의 시를 새긴채 태여나고싶다. 그 시만으로 내 몸을 감싸고 행복하게 살아낼수 있을것 같다. 세상으로부터 몰려오는 어둠과 추위와 두려움과 아픔들을 그 아름다운 사랑을 담은 시로서 충분히 막아낼수 있을것이라 믿는다.
 
  래생에 운좋게 한 시인으로 태여날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흑룡강신문" 2016-06-07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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