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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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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長篇小說

소설로 읽는 남경대학살
2017년 02월 10일 16시 56분  조회:2004  추천:14  작성자: 김혁

소설로 읽는 남경대학살

-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중에서


김 혁

오늘 12월 13일은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남경대학살 97주기가 되는 날이다.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12월 13일을 남경대학살에 따른 '국가 애도일'로 지정하고 전국적인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

1937년 12월 13일 고도(古都) 남경은 일본군의 마수에 떨어졌고 일본군은 남경을 함락한 이후

한달여 동안 적수공권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미친듯이 살륙했다.

남녀로소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고문, 강간, 생매장등으로 끔찍한 처형 방법도 상상을 초월했다.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버금가는 세계사적인 참극이다.

인류사에 이처럼 짧은 기간에 무차별적인 살륙전을 벌린 사례가 없다.

한개 도시의 일원(一圓)에서만 자행된 만행은 단기간에 저질렀다는 점에서 나치의 학살을 릉가한다.

​길림성 당안국에서 소장한 일본 관동군이 작성한 10만건의 문서중에서 뒤늦게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남경대학살 기간 당시 "남경에 조선인 위안부가 36명 있었다”, “1명이 열흘동안 일본 병사 267명을 상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몇줄의 기록이 내가 조선족 첫 위안부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을 집필한 동기가 되었다.

단지 상상해서 만드는 픽션이 아니라 생존자들의 진술,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문서, 르포 등 갖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삼아 력사의 진실과 아픔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력사의 질곡에 붙매였던 그녀들을 대상화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그들이 당한 전대미문의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반성과 공감과 치유를 부르는 그런 재현물을 쓰고자 했다.​

2015년 옹근 한해 12회에 나뉘어 조선족 권위문학지 "연변문학"에 련재된 "춘자의 남경"의 말미에는

주인공 춘자가 목도한 대학살의 피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남경의 아비규환의 ​모습이 국부로나마 재현되여 있다.


소설 집필기간 남경대학살 기념관을 찾은 필자

혈우(血雨)


네모난 해가 지고 네모난 달이 떠올랐다.
그 해와 그 달이 몇번 지고 몇번 떠올랐는지 춘자는 모른다.
뙤창 하나 없이 사면이 벽뿐인 방에서 출입문의 틈새로 새여 들어오는 빛은 장방형의 실루엣을 만들어 냈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환영같은 그 네모 난 해, 네모난 달을 헤아리면서 춘자는 날이 바뀜을 느끼고 자신이 놀랍게도 아직 살아있음을 매일 매일 느끼고 있다. 몸은 피둔하고 정신은 비몽사몽의 진펄사이에서 빠져들었다 빠져나왔다를 반복한다.
비소리가 들렸다.
한겨울인데도 이곳에는 비가 내린다.
춘자는 쑥색의 담요를 몸에 두르고 몸을 한껏 웅그렸다. 등을 대고 앉은 벽은 얼음기둥처럼 한기가 랭랭하게 스며든다.
추적추적 비소리와 더불어 꾸르륵 텅 빈 뱃구레는 배고픔을 하소연했다.
위안부들에게 매일 차려지는 음식은 멀건 옥수수죽과 조막손같이 작은 만두 그리고 죽순짠지뿐이였다. 그것도 처벌방에 갇힌 사람에게는 매일 한끼밖에 주지 않는다.
아래배쪽 속살이 아직도 띠끔띠끔 아파 온다.
춘자는 저고리속에 손을 넣어 배를 만졌다. 지렁이 지나간듯 오돌토돌한 흉터가 만져졌다. 상처는 이제 딱지가 앉으려 하고 있었다. 춘자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춘자는 “쇼바쯔(처벌방)”라는 방에 갇혀 있다.
일어 서면 머리가 닿고 앉으면 두 다리를 뻗을수 없어 쪼그리고 앉아야만 하는 조롱같이 작은 방이다. 위안소에서 소위 계률을 위반한 처녀들은 가차없이 “처벌방”에 갇혀야 했다. 처벌의 리유란 혹간 몸이 아파 들어온 병사를 거부했다던가, 위안소 관리인 “오까상”과 말대꾸를 했다든가 하는것들이였다.  “돌격1번”을 사용하지 않아도 처벌방에 갇혀야 했다.


그날 춘자는 광분하여 달려드는 장관의 손가락을 물고 늘어졌다.
어깨에 벌건 계급장을 달고 사병들의 옹위를 받으며 들어선 장관은 몹시 취해 있었다. 인중에 가증스럽게 쪼막 수염 한 가닥이 김쪼박처럼 붙어 있다.
 “기레이(이쁜데)”
“쪼막수염”이 비틀거리며 다가와 춘자의 턱을 쥐여 들어 올렸다.
외투의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납작한 철제술병 하나를 끄집어 냈다. 철제술병을 춘자에게 내밀었다.
“노므(마셔라)”
“모릅니다. 술 마실줄을”
춘자가 고개를 틀었다. 놈의 외투를 벗겨 벽에 걸려 했다. 그러는 춘자의 어깨를 놈이 왁살스럽게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벽에 밀어 붙혔다. 털부숭이 손으로 춘자의 볼을 움켜잡고는 벌려진 춘자의 입속으로 술을 부어 넣었다.
사레가 들려 춘자는 목줄기를 부여잡으며 괴롭게 기침을 했고 놈이 흐아흐아 웃었다.
“쪼막수염”은 또 기어이 “돌격 1번”을 착용하려 들지 않았고 착용을 권고하는 춘자의 귀뺨을 때려 쓰러 뜨렸다.
춘자는 가까스로 야수처럼 달려 들어 온몸을 부숴뜨릴듯 하는 놈의 수모를 견뎌 냈다.
수욕을 다 채운 놈이 춘자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쪼막수염”은 허우적거리며 바지 혁띠에서 무언가 떼냈다.
단도였다. 칼집에서 빼낸 칼이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철제술병을 들어 칼에 술을 부었다. 칼날을 타고 흘러내리는 술방울을 “쪼막수염”은 혀로 핥았다.
놈이 어떤 연극을 벌리는지 하회를 알수 없어 춘자는 불안한 눈길로 놈의 손길을 쫓았다. 놈이 칼에서 눈길을 떼고 탈진하여 누워있는 춘자를 내려다 보았다. 쪼막수염을 밀어 올리며 음습하게 웃었다.
홀연 놈이 춘자에게 다시 덮쳐들었다. 추자의 배를 가로타고 앉았다.
순간 살갗을 파고 드는 아픔에 춘자는 비명을 질렀다.
놈은 춘자의 박속같은 아래배쪽을 칼끝으로 긋고 있었다.
“이쁜 아가씨, 기넹(기념) 한번 남기자고”
“쪼막수염”은 춘자의 속살에 자기 이름자를 새기고있었다.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했으나 놈은 완력으로 춘자를 제압하고 배애 한글자 한글자 새겨나갔다.
놈은 한손으로 새기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한사코 반항하는 춘자의 얼굴을 짓뭉개 눌렀다. 그런 놈의 장지가 춘자의 비명을 토하는 입에 닿였다. 그 손가락을 물고 늘어졌다.
놈이 거세하는 돼지처럼 비명을 질렀다.
놈의 얼굴이 구겨진 마지(麻紙)처럼 일그러졌다.
“조센삐!”
놈이 주먹으로 춘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춘자가 의식을 찾고 보니 “처벌방”이였다.

한달여전,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를 걸치고 그들이 이른 곳은 남경이였다.
마차를 타고 오면서 연도에서 강을 보았다. 폭이 넓고 길게 이어진 큰 강이였다. 겨울에도 강은 얼지 않고 있었다.
“양자강이다. 지나(支那)에서 가장 긴 강이라더군…”
역에서 그녀들을 맞아 다시 마차에 태운 어눌한 조선말을 구사하는 일본 녀인네가 말했다. 그녀들을 보자 녀자는 광대를 말라올리며 웃었는데 웃을때 입안 가득 덧이가 보였다. 관례대로 그녀를 “오까상”이라 불렀다.
마차는 성문으로 들어섰고 제법 번화한 거리가 활짝 펼쳐졌다.
하늘 변을 가리며 치솟은 높은 건물, 분주히 오가는 멋진 복색차림의 인파, 그 사이 들려오는 낯선 말씨…
신사, 숙녀를 태운 인력거가 그들이 탄 마차를 앞질러 달렸다.
댕. 댕. 댕.
종소리 울리며 전차가 그들의 곁을 스쳤다.
길 복판으로 질주하는 기차바곤같은것을 처녀들은 희한한 눈길로 바라 보았다.
낯선 풍경을 두리번거리는 춘자를 보고 혜숙이 말했다.
“오다가다 이젠 대처로 왔네”
하지만 그 이색적인 풍경속으로 들어가면서도 처녀들은 석연치 않은 모습들이였다.
“집에서 점점 멀리 떠나오는구나”
한숨 한번 짓고나서 누군가 쫑알거렸다.
보따리를 가슴에 꼭 껴안으며 춘자가 말했다.
“여긴 칩(춥)지 않아 좋구나”

그들이 거처하게 될곳은 누른 흙으로 담장과 벽체를 두른 가옥에 주홍빛 창문을 낸 2층집 구조였다.
대문에 “상군남부위안소(上军南部慰安所)”라는 패말이 걸려 있었다.
함께 끌려온 30여명의 조선인 처녀들에 앞서 위안부들이 이미 와 있었다.
그네들이 탄 마차가 뜨락에 들어서자 창문으로 녀자들이 목을 빼들고 내려다 보았다.  복식이 판달랐고 소근거리는 말씨들이 달랐다. 바지런히 해바라기씨를 까서 부수듯 자잘한 말씨를 구사하는 그녀들은 중국인 처녀들이였다.
누군가 2층에서 달아 내려왔다. 출입문앞에 기대여 서서 마차에서 내리는 춘자네를 지켜 보았다.  
춘자는 우로는 목, 아래로는 발의 복숭아뼈까지 흘러내린 기다란 장포(長袍)차림의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량볼에 보조개가 깊이 파인 어린 소녀였다. 소녀는 하얀 저고리 검은 치마에 외머리태를 한 춘자를 신기하다는듯 지켜보고 있었다.
춘자는 저도모르게 옷깃을 한번 다듬었다. 떠날때 이모가 내준 새 옷은 이미 헌 걸레처럼 되여버렸다. 보푸라기 투성이에 여기저기 탈색이 되여있다. 옷 앞섶에 언제 튀였는지 피자욱같은것이 단추처럼 동그랗게 배였는데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와 눈과 눈이 한데 얽히자 그녀는 눈길을 다른데로 돌려버렸다.
까만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반짝거렸으나 그것도 잠시, 내리 깐 눈매는 순간에 생동함을 잃고 있었다. 다시보면 생기를 잃은 눈이였다. 마치 마른 우물의 동공과도 같은 무원조하고 구원을 갈구하는듯한 그런 눈길이였다.
그 눈동자에서 춘자는 다른 눈을 떠올렸다. 그 눈은 룡드레 촌에서 온 혜숙의 눈이였다.

광옥이가 달리는 군용트럭에서 뛰여 내린 소동이 벌어진뒤 트럭은 다시 달렸다.
흐느끼는 춘자를 실은 트럭은 달리고 달려 어느 간이역까지 와서는 또 한번 처녀들을 기차에 실었다.
꿈틀거리는 이무기같아 뵈는 기차가 춘자는 싫다. 처음 타보면서 호기심에 할랑거리는 마음으로 올랐던 기차였지만 그 기차는 수많은 턴넬들을 지나고 또 지나서 그녀를 지옥에 실어다 주었다.
이번에는 객차가 아니라 화물차다. 창문하나없이 무지하게 큰 쇠문을 무작스럽게 드르륵 밀어 열고 그녀들의 등을 마구 떠밀어 짐짝 실듯 기차에 실었다.
찬 바닥에는 그저 짚이 깔려져 있을뿐이다. 눈앞을 가려볼수 없을정도로 기차바곤은 컴컴했다. 그저 부딛히는 팔뚝과 어깨 그리고 서로의 입에서 풍겨나오는 긴장한 단김만으로 상대가 누군가를 간신히 가릴수 있었다.
기차의 덜컹거리는 동음이 춘자의 심장박동수와 겹쳤다.
“또 어델(어디를) 델꼬(데리고) 가는거야?”
어둠속에서 장님이 더듬듯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훑으며 춘자가 불안감을 못이겨 물었다. 그 불안감으로 허우적이는 손을 누군가 잡아주었다.
“혜숙이니?”
손의 임자를 알듯해 춘자가 물었다.
후유… 상대가 아무말도 없이 긴 한숨을 뱉어 냈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누구도 알길없다. 그저 기차의 동음만이 집요하게 귀바퀴에서 맴돌뿐이다.

이 세상 풍파 심하고 또 환난 질고 많으나

춘자가 홀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짓거리든 해야 육신을 친친 동이고 있는 이 어둠의 공포에서 벗어날것 같아서였다.
 
나 편히 쉬게 될 곳은 주 예비하신 주의 전

“이 세상 풍파 심하고”라는 성가를 불렀다. 그젯날 사슴골 교회에서 장모세 선생님이 배워주었던 성가였다.
깎은 밤처럼 단정한 밤색 옷차림에 빛나는 반듯한 이마를 가졌던 선생님은 지금 어데 계시는지?
우리가 겪는 이 환난을, 이 질고를 알고 계시는지?
그렇게 애틋해 하던 신영이가 귀축같은 놈들에게 유린당하고 무간나락으로 떨어져 갔는지를 알고 계시는지?
광옥이는 지금쯤 어떻게 되였는지? 총탄에 쓰러졌는지 아니면 살아남아 아직도 수림속에서 헤매는지?
우리가 겪는 이 환난 이 질고를 선생님은 알고 계시는지? 주님은 알고 계시는지?
광옥이에게 생각이 미치자 춘자는 심장이 뜯겨나간듯한 괴로움에 앙가슴을 부여 잡았다. 이제 이 생에 울 분량을 다 울어버려 더는 흐를것 같지 않던 눈물이 또다시 보뚝을 허문 봇물처럼 흘러 내렸다.

주 믿는 형제 자매들 그 몸은 떠나 있으나…

목메이는 소리로 춘자는 마지막절 까지 노래를 불렀다. 그런 그녀의 어깨를 혜숙이가 꼭 안아 주었다. 춘자의 손을 꼭 잡아 자기 가슴에 대여 주었다. 춘자와 꼭 같이 슬픔의 레일우에 올른 그녀의 가슴도 기차의 동음과 함께 오르내리고 있었다.

덜커덩.
기차가 어떤 역에 멈춰 섰다.
드르륵 무지하게 큰 철문이 열렸다.
갑작스레 덮쳐들어오는 한기 그리고 불빛에 처녀들은 눈시울을 좁혔다.
그것은 손전등의 불빛이였다. 수십개의 손전등의 불빛들이 란무하는 칼날처럼 처녀들의 육신을 훑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흐아! 괴성같은 홍소가 터져 올랐다. 춘자는 손전등 불빛뒤에서 쩌억 벌려져 홍소를 흘리고 있는 군인들의 벌건 입속을 보았다.
노부유키가 종이 메가폰을 들고 나와 그들을 향해 마주 섰다. 두 발꿈치를 착소리나게 모으고나서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성전을 위해 싸워주신 황군용사 여러분 수고많으셨습니다. 우리들이 몸과 마음으로 제공하는 호우시(봉사)를 받아주십시오.
주어진 시간은 한시간뿐이니 차바곤 세개로 나누어 공작하기를 바랍니다. 용사 여러분의 건강을 위하여 반드시 ‘돌격1번’을 사쿠요(착용)하시길 바랍니다.”
병사 몇몇이 킬킬 거리며 노부유키가 건네준 군용배낭에서 피임도구를 꺼내 나누어 주었다.
“용사 여러분의 건강을 위하여 반드시 ‘돌격1번’을 사쿠요(착용)하시길 …”
노부유키가 메가폰을 들고 거듭 강조했으나 그 말을 맺기도 전에 병사들이 그를 밀치고 우르르 기차바곤에 뛰여 올랐다.
“유끄리, 유끄리 데이오(천천히 천천히 해요)”
노부요키가 목에 피줄기를 세우며 소리질렀으나 광분하는 병사들은 이미 방죽을 무너뜨린 홍수였다. 병사들이 밀치는 바람에 노부유키는 바람개비처럼 맴을 돌았고 그의 손에서 메가폰이 떨어져 나뒹굴었다.
그야말로 산에서 내려 온 이리떼가 어린 병아리들이 있는 축사를 덮쳐드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밀치닥거리며 뛰여 올라 저마끔 위안부들을 바닥에 쓰러뜨렸다. 차바곤은 경악에 찬 비명과 괴기스러운 홍소소리로 가득했다.
미처 오르지 못한 사병들은 차바곤안에 손전등을 들이 비추며 킬킬거렸다. “빨리빨리 끝내”
“늑장부리지마”,
“다음은 내 쥰방(순번)이다”
기다림에 급해난 병사들은 멱따는 소리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때 역사쪽에서 노래소리가 터져 나왔다.
왁살스럽게 터져나오는 노래소리에 춘자는 와뜰 몸을 떨었다.
너무나 익숙한 노래였다.
그날, 춘자네가 이름 모를 역에서 군영에 실려 가서 맨 처음 처녀를 앗기던 그날, 온 군영과 그녀들의 육신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그 마당에서 들려왔던 바로 그 노래였다.
행진곡풍의 노래소리는 역사의 지붕에 처매 단 스피카에서 울려와 작은 역의 상공에 울려 퍼졌다.

방어도 공격도 쇠로 만든 성이라 믿음직하네
떠 있는 그 성은
해 뜨는 황국의 사방을 수호하리라 .

차바곤 바닥에 대자로 누운 춘자와 혜숙의 머리는 서로 맞닿아 있었다.
이리떼에 몸퉁이를 짓눌리고 휘둘리우며 두 사람의 머리가 쿵쿵 맞부딛했다.
둘의 눈이 한데 얽혔다. 어둠속에서 손전지불빛에 언뜻언뜻 드러난 그 눈길은 그렇듯 무원조했고 그렇듯 절망적이였다. 그렇게 처연한 눈길을 춘자는 여태 본적이 없었다.
춘자는 두눈을 감아 버렸다.

떠 있는 그 성은
해 뜨는 황국의 사방을 수호하리라

흔들리는 손전지불이, 귀청을 란타하는 노래의 고성이 그녀들의 몸을 훑고 흔들고 때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광란의 잔치가 끝나고 처녀들이 미처 혼나간 정신을 수습할사이도 없이 노부유키가 기차바곤에 뛰여 올랐다.
“17번, 21번, 23번, 36번, 42번 나와라”
손전지불로 얼굴들을 하나하나 비추어 보며 되는대로 10여명의 처녀들을 점명해 내였다. 처녀들은 노부유키의 윽박지름에 차바곤에서 내렸다. 너나가 비칠거리며 기차에서 내렸다. 그중에는 혜숙이도 있었다. 하신의 통증으로 혜숙이는 서지도 못한채 배를 부여잡고 쭈그리고 앉았다.
역구내의 한켠으로 트럭 한대가 왕방울눈같은 헤드라이트 불빛을 쏘며 달려 왔다. 달려와 처녀들 앞에 멈춰 섰다. 기차바곤에 앉은채 이 광경을 보는 춘자의 가슴으로 불길함이 엄습해 왔다.
“아가르(타라)”
노부유키가 처녀들을 떠밀었다.
“부대의 수요로 너희들은 다른곳으로 이도오(이동)한다”
혜숙이가 트럭에 오르다 말고 춘자쪽을 건너다 보았다. 또 한번의 무원조한, 절망적인 눈길을 춘자는 보아야 했다. 하염없이 춘자쪽을 바라고섰는 그녀의 눈에서 후두둑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쓰러져 있던 춘자는 팔꿈치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잠겨든 목소리를 살려 불렀다.
“혜숙아!”
이때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무작스럽게 철문이 닫혔다. 철문의 쇠소리가 춘자의 부름소리를 잘라 먹었다.
꽤액!
사나운 짐승의 포효처럼 기적이 울었다.
덜컹, 뒤로 한번 움칠하다가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흔히 “처벌방”에는 하루의 시간을 가두곤 했다. 소위 위안부들이 어긴 위안소의 계률이 크더라도 이틀, 사흘이 고작이였다. 하지만 춘자가 처발방에 내쳐진 시간은 길었다.
그 이전에도 춘자는 “처벌방”에 갇힌적 있었다. 위안소 탈출을 기도하다 잡혔던것이였다.
혼자서 트럭에서 뛰여 내린 광옥이를 생각하면 이 낯선 지역에 한시도 머물고 싶지 않았다. 또 그처럼 왜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을가 자신이 후회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위안소밖을 벗어나 갈래갈래 뻗은 골목길에서 춘자는 방향감을 잡지못하고 허둥댔고 인차 쫓아온 사람들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갔다.
눈두덩이가 붓도록 맞았고 이틀간 처벌방에 갇혔다. 아마 그때의 일도 있고하니 더 갑절로 처벌을 주는상 싶었다.
배에 난 상처에 딱지가 앉은것만 봐도 일주일은 더 되는것 같다.
“쪼막수염”이 내뱉었던 말이 다시 귀청을 때리며 떠올랐다.
조센삐
그녀와 같은 조선의 위안부들을 비하하는 욕이였다.
어려서부터 엄마의 욕을 귀에 못박히게 들으며 자랐던 춘자였다. 허나 엄마의 그 것은 끝없는 생활고에 찌들은 엄마가 습관처럼 내뱉는 어투였고 또 귀한 자식이 애틋한 나머지 하는 사랑의 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놈들이 내뱉는 욕은 이와 달랐다.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이 사이로 찌익 내뱉는 그 욕설은 그녀들의 자존을 란타해 탕갈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살갗을 파고들어 뼈를 부수고 골수깊이 박히는 말이였다.
노부유키가 늘 내뱉었던 말이였다. 이제 그 덤턱스러운 놈의 상판대기를 보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 곳에서 또 그 채찍형벌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처벌방”에 갇혀 처음에는 귀축같은 놈들의 얼굴을 보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랭하고 독한 어둠살만이 가득한 독방에 갇혀 있는 시간이 오래되자 불안이 그물그물 덮쳐왔다.
하루에 한번 들이미는 만두와 죽도 이제는 배당되지 않았다. 이대로 굶어죽이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물을 마시지 못해 목이 탔다. 자긋자긋 깨문 보풀딱지로 가득한 입술에서 배릿한 피냄새가 느껴진다.
바깥의 동정을 살펴 출입문에 귀전을 바싹 가져다 대기도 했다.
처벌방은 위안소 2층건물에서 담 하나 사이둔 폐가의 한방에 설치되여 있었다.
풍향이 바뀌면 위안소 2층의 소리가 귀에 잡혀 오기도 했다. 깊은 밤이면 노래소리도 간혹 들려왔다. 중국인 위안부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쇼탕(小唐)이라고 하는 량볼에 보조개가 깊이 파인 앳된 위안부소녀가 악기를 타며 노래를 부르곤했다.
소녀가 타는 것은 거북등 같은 곳에 네줄을 메운 비파라는 악기였다. 쇼탕은 연주를 하려고 그랬던지 오른손의 손톱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그 손톱으로 튕겨내면 청아한 곡조가 뿜어져 나오곤 했다. 곡조에 꼭 걸맞게 쇼탕은 명주실처럼 가는 소리로 노래부르곤했다.

금릉의 성은 크기도 하여라
안으로 십팔리 밖으로 십팔리
그 풍경은 천하의 으뜸으로 알려 졌네

아름다운 곡조였지만 겨울바람이 소슬한 밤에 들을려니 왠지 청승맞기 짝이 없다.
비록 알아들을수는 없지만 그 곡조와 그 노래소리에 춘자네도 함께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병사들이 찾아드는 날이면 명주실처럼 가는 소리를 내던 그녀는 위안소에서 변형된 고성으로 울부짖곤 했다.
“이따이(아파요), 이따이!”
야수같은 놈들에게 고통을 호소하려 겨우 배운 일어 한마디로 목놓아 하소했다.
허나 수욕에 리성을 상실한 야수들은 그 절규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유난을 떤다고 “처벌방”에 가두까지 했다.
어느 한번 노래를 부르던 쇼탕이 비파를 팽개쳐 버렸다. 그리고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춘자네는 그녀와 그저 눈빛으로만 의사소통을 했다. 허나 이 순간만은 그 신산한 울음의 의미를 알것 같았다. 알수 있었다.
이튿날 쇼탕은 끊어진 비파의 줄을 다시 메웠다. 그리고 비파의 원뿔형 줄감개에 붉은 술을 달았다. 그리고는 춘자를 향해 비파를 들어 보였다. 파리한 얼굴에 잠시나마 웃음이 떠올랐다.
새로 단장한 비파를 들고 쇼탕은 또 노래를 부르기 지작했다.

금릉의 성은 크기도 하여라
안으로 십팔리 밖으로 십팔리

그러던 그 노래소리가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춘자네가 도착한 이 곳은 첫날부터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쾅 쾅
어디선가 포성이 간헐적으로 울려 왔다.
탕탕, 따다당
총소리도 들려 왔다. 마치 콩볶는 소리처럼 끝없이 들여 왔다.
덤턱스럽게 큰 것이 지나가는듯 으르렁하는 쇠바퀴 소리도 들려 왔다.
“으고꾸나아(꼼짝하지 말고 있어라)”
“지금은 센지죠교오(전시상황)이다. 위안소 밖을 한발자국도 나가면 안된다. 섿다이(절대) 안된다”
덧이 “오까상”이 처녀들을 향해 윽박지르는 소리도 들려 왔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부터인가는 쥐죽은듯이 고요해 졌다.
그 고요함이 더욱더 불안을 가배 시켰다.
    “누구 없소? 게 누가 없나요?”
    목청껏 소리질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나레까 기데?(누구 없어요?”
위안소에서 엉성하게 나마 배워둔 일본어로 부르짖었다.
하지만 밖은 역시 물밑처럼 괴잠잠하다.
춘자는 쾅쾅 문을 두드렸다.
그러다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판난 버선발에 걸친 고무신도 해여져 밑창이 말랑말랑했다. 발이 못견디게 아팠으나 춘자는 필사적으로 처벌방의 문을 걷아찼다. 물밑에서 솟아오르려는 사람처럼 단말마로 비명지르며 필사적으로 문을 걷어 찼다.
우지끈!
  나무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찬 바람이 훅 들이 닥쳤다.
추위에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덴겁히 쑥색 담요를 머리우부터 뒤집어 썼다.
비칠거리며 처벌방을 나왔다.
갑자기 어둠속에서 나온 춘자는 밝은 빛에 현기증을 느끼며 두 손으로 눈을 가리였다.


위안소는 텅텅 비여 있었다. 어느새 철수 했는지 횅댕그렁하게 말끔히 비여 있다. 기차에 실려 왔던 수십명의 조선인 처녀들도, 어눌한 조선말, 중국말을 쓰며 꺼드럭대던 관리인 “오까상”도 앳된 얼굴의 쇼탕도 어디로 갔는지 없다.
대문가에 걸었던 위안소 간판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춘자는 담요를 뒤집어 쓰고 골목길로 나왔다. 혹시 누군가 뒤쫓아 나오지 않나 해서 위안소쪽을 되돌아 보았다. 아무도 쫓아오는이가 없다.
허겁지겁 걸음을 옮기는 그의 황황한 눈길에 무언가 밟혀왔다. 그 물건을 확인하는 순간 까닭없는 공포가 후려치듯 덮쳐왔다.
그것은 비파였다.
분명 쇼탕이 타던 현악기 비파였다.
비파의 원뿔형의 줄감개에 빨간 술이 달려 있으니 분명 그의 악기가 맞았다.
비파는 공명함이 깨져 있었고 줄이 끊어져 문어발처럼 너불거리고 있었다. 더럽혀진 빨간 술이 소슬한 바람에 나붓겼다.
쇼탕이 그렇게 아끼던 악기였다. 어느 한번 신기하게 눈여겨보는 춘자에게 만져보라고 내주었다. 가야금비슷한 그 악기를 받아들고 춘자는 조심스럽게 줄을 튕겨 보았다.
탱! 맑고 쟁쟁한 소리가 났다.
둘은 마주보며 어줍게 처량하게 웃었다.
으깨진 비파를 보노라니 쇼탕의 하얀 얼굴이 떠올랐고 불안감이 엄습해 들었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춘자는 알수 없었고 그 미지의 상상이 그녀에게 국수발 불듯 공포를 배가시켜주었다.
다시 위안소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주홍빛 대문과 주홍빛 창틀이 눈에 안겨오자 새삼스러운 공포가 느껴졌다.
올크러진 상상과 공포를 주체할길 없어 춘자는 뒤미처 뛰기 시작했다.
먹지 못한 몸은 삭풍에 내쳐진 허수아비같았다. 하지만 허우적거리며 일심으로 뛰기 시작했다. 위안소만 멀리 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뛰였다.


골목길을 벗어났고 포구가 눈앞에 활짝 펼쳐졌다.
그리고 다음순간 춘자는 그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몽매(夢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처럼 현실감을 다잡기 위해 두눈을 올롱하게 치떴다.
넘실거리는 강을 마주한 포구에서 춘자는 무엇을 보았던가?
포구에는 무언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산채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그것이 당금 배에 실을 그 무엇인줄로 알았다. 하지만 다시 보는 순간 춘자는 정수리로 우럭우럭 뜨거운 피가 솟아오름을 느꼈다.
그것은…
시체였다.
시체더미였다.
시체가 집채처럼, 산처럼 쌓여 있었다.
시체들은 그 무슨 넝마조각처럼 형체가 비탈려져 있었고 피칠갑이 된 얼굴은 저마다 기괴한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시체더미주위에 흥건한 피가 고여있었는데 이미 응고되여 온 포구 바닥이 주홍빛으로 번들거렸다.
수십명의 쿠리(苦力)들이 장갑을 끼고 시체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시체들을 들어 방파제 우에서 강에 던져 넣었다. 그 무슨 공사장에서 토벽돌을 옮기는 인부들처럼 무덤덤한 기색으로 시체들을 맞들어 양자강에 던져 넣었다.
시체는 강바닥에 덧쌓여 새로운 둑을 만들고 있었다.
인부들의 장갑이 벌건 피로 물들어 있다.
던져 넣을때마다 방파제 아래 얼지않은 양자강의 물이 철썩 튕겨 올랐다.
튕겨오르는 물보라는 진붉은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붉은 물결이 수귀의 혀바닥마냥 널름거렸다.
문득 욕지기가 느껴져 춘자는 쭈그리고 앉으며 토악질을 해댔다. 먹지도 못한 속으로 멀건물을 토해 냈다.
무언가 발에 물컹한 기운이 느껴졌다. 춘자는 깜짝 놀라 발을 옮겼다.
그것은 사람의 팔뚝이였다. 잘려진 사람의 팔뚝이였다.
게걸음치는 그의 발에 또 무언가 걸채였다. 또 사람의 시신이였다. 물컹물컹 시체의 조각들이 허둥대는 그의 발에 밟혔다.
악악 춘자는 새청맞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누구하나 그녀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바탕 피의 광풍이 휩쓸고 간 성은 기괴하리만치 고요한 체념에 빠져 있었다.
석고를 바른듯 하얗게 질린 얼굴, 체념한듯한 얼굴의 사람들은 짐짝을 메고 들고 길바닥에 뒹구는 시체를 징검다리 넘듯 훌쩍 훌쩍 뛰여 넘어서 어디론가 황급히 가고 있다. 그들의 발치에 걸려 잘려진 머리통이 그 무슨 뽈처럼 데구르르 구울기도 한다.  
그저 부지런히 옮기는 걸음들만에서 어서빨리 이 지옥의 성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들이 엿보였다.
둘러보니 온 시가지는 오물의 사태를 뒤집어 쓰기라도 한듯 순식간에 더럽혀져 있었다.
깡그리 부서져 있었다.

건물도 성벽도 나무도 차량도 그리고 사람도…
포구 둘레의 사거리 구석구석에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다.

집채들은 불에 타버렸고 성벽은 무너져 있고 그 가녁을 따라 또 시체들이 쌓여 있다.

아직도 저 멀리서 뭉게뭉게 연기가 자우룩하게 피여 오른다.
어디선가 토혈하는듯한 녀인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끔찍한 현장앞에 움음소리라도 들려오면 실감이 나련만 울음은 인차 그쳤다. 이 도시 사람들은 이제 울음조차도 잃어버린듯 했다.
트럭들이 포구를 향해 몰려 오고있었고 트럭에 실린것은 모두가 시체였다.
화물을 부리듯 시체들을 우르르 쏟아놓으면 다른 트럭이 또 다가와 쏟아내는것 역시 시체였다.


꿈이리라, 꿈이면 아주 지독한 꿈이리라.

​춘자는 우묵한 악몽의 구덩이에 빠져들어 가위눌린 사람처럼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소한 겨울비는 피비린내를 몰고 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물에 바닥에 응고되였던 피물들이 다시 벌창해져 흐르기 시작했다.
비바람에 춘자의 검은 치마가 차랑차랑 나붓겼다.
하늘과 땅이 몰경계(沒經界)로 자오록히 내리는 피빛 겨울비속에 춘자는 망연자실 서버렸다.

"연변문학"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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