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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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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은장도
2008년 05월 14일 11시 34분  조회:4197  추천:51  작성자: 김혁


. 중편소설 .

 

바람 은장도

 

김 혁

 

 
 얇은 사 하아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비 일레라…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 조지훈의 “승무(僧舞)”중에서


(1)

 

 바람없는 호수는 면경(面镜)과도 같다. 호수가에는 상록수들이 바자처럼 둘레를 치고 그 둘레의 저변을 따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있다. 하얀 의상의 녀인들이 그곳에서 노닐고 있다. 나무그늘에서 턱을 고이고 앉아있기도 하고 꽃가지를 꺾어 코밑에 대보기도 하고 호수물에 섬섬옥수를 담가보기도 한다.
 “따가닥 따가닥…” 홀연 잦은 말발굽소리가 녀인들의 유흥을 비집고 들려왔다. 녀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연미복차림의 신사 하나가 껑충한 가라말을 타고 다가오고있었다.
고수머리에 깊숙한 눈, 날카로운 코마루에 사랑스러운 턱을 가진 애젊은 신사였다. 신사는 천착할듯한 눈길로 녀인들은 하나하나 참빗질했다. 그 타는듯한 따가운 시선을 피해 녀인들은 하나 둘 머리를 떨구어버렸다.
신사의 눈길이 맨나중에 선 녀인의 몸에 와 멎었다. 신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헛바람섞인 감탄이 새여나왔다. 첫눈에 선뜻 안겨오는 아름다움이 일신에 배여있는 여자였다. 고니처럼 미끈하게 뻗은 하얀 목에 태짐 하나 박힌 것이 신사의 눈길을 포박해갔다. 신사는 말등자를 밟고 내려 녀인쪽으로 다가갔다.
홀연 호수가 설레이였다.
기류를 이루며 파문을 이루며 물매미를 짓더니 돌고돌아 호수는 한장의 커다란 레코드음반으로 변해버렸다.
“봄날원무곡”의 선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신사는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녀인은 마다하지 않고 신사의 손을 받았다. 두사람은 가볍게 잔디우로 미끄러져갔다.
랑만의 왈쯔가 시작되였다.
녀인들은 곡조에 맞춰 두손으 사려잡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봄날이 왔어요, 봄날이 왔어요.
    아, 얼마나 아름다워요…”
    “두부요- 뜨끈뜨끈한 두부 사세요!”
    “콩물, 기름튀기요- “
    홀연 하나의 악청이 무르익어가는 곡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현수의 입가에 실렸던 미소가 거두어졌고 잠기 자부룩하던 두눈이 번쩍 뜨이였다. 끈끈한 잠의 포승줄에서 풀려나온 현수는 마른기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두팔을 쭉 뻗으며 아흐흑 기지개를 켰다.
살구꽃이 망울을 터치는 계절이 왔지만 새벽대기는 아직 카랑하게 매웠다. 현수는 일어날념 않고 이불을 턱밑까지 당겨 덮었다. 바람벽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 달력 하나가 결려있었고 장발의 팔등신 미녀가 선정에 가까운 웃음을 던져오고있다. 현수는 그 달력 미녀의 시원히 뻗어내린 목을 지켜보았다. 그가 찾고저 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침대머리에서 담배갑을 찾아들고 한 개비 붙여물던 현수는 검댕이가 게발린 성냥가치를 들고 달력앞으로 다가가 그 미녀의 목에 점을 쿡 찍었다. 태짐같은것이 또렷이 박혀졌다. 그 “태짐”을 현수는 한동안 지켜보았다.
  “우리 선생보다 못해…”
 현수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옷장의 전신체경에 팬티바람의 건장한 동체가 비껴들었다. 현수는 쑥스럽게 웃으면서 식지로 달력을 문질렀다. “인공태짐”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침대머리에 놓인 탁상시계가 막 일곱시를 가리키고 있다. 현수는 TV를 틀었다. 작달비 내리는 소리가 나며 화면에서는 눈꽃이 아물아물 흩날렸다. 현수는 손바닥으로 TV를 탁 쳤다. 화면이 나타났다. 흉부가 유난히 발달된 녀자가 5분간 건강미체조를 배워주고있었다.
 “하나 둘 셋 넷…둘둘 셋 넷 머리를 뒤로 돌리며 허리도 함께 돌립니다. 팔은 위로 쳐들고 자, 하나 둘 셋 넷…둘둘 셋 넷”
  현수는 그 박자에 보조를 맞췄다. 벅차게 팔다리를 저으며 또 한번 입속말로 되뇌였다.
  “우리 선생보다 못해.”
  “5분간 건강미체조”가 끝나자 가스로에 불을 달고 냄비에 라면 세개를 털어넣었다. 그리고는 체경앞에 다가가서 코밑과 턱에 허옇게 뻑뻑 비누칠을 해대기 시작했다.
   예술단에서 거리쪽을 향했던 기숙사를 비워 영업방으로 대외에 세주는 바람에 독신자배우들은 세방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단위에서는 마지못해 세방비의 일부를 대주었다. 그만큼 세방살이 독신자가 몇이 못되였다. 무용조에는 장현수 한사람뿐, 악대에 둘이 있었는데 세사람이 세방 하나를 맡고 합숙하고있는터였다. 그나마 열련에 빠져있는 한사람은 거의 미래의 처가집에 붙박혀있는터여서 현수와 첼로 켜는이 둘이서 지내는 때가 많았다.
황보라는 괴상한 두자 성씨를 가진 그 친구를 현수는 그 괴까다로운 성과 이름을 제쳐놓고 직설적으로 “첼로”라고 불렀다. 생김생김도 첼로를 방불케 하는 비만형의 친구였다.
“첼로”는 요사이 어느 나이트클럽에 가서 첼로 대신 전자풍금을 쳐주면서 일당 30원씩 벌군 했다. 상품경제 바람이 불어치니 “숭어도 뛰고 망둥이도 따라 뛰는” 형국이였다. 밤늦게 되면 나이트클럽의 그 많은 독실중에서 한칸을 찾아들고는 밤참도 얻어먹는 재미를 보고있는터에 현수는 그만 “독수공방”의 꼴로 되고만것이였다…
국수가 다 끓었다. 때와 같이 면도를 끝낸 현수는 파란 무우처럼 싱싱해 보이는 턱주걱을 기분좋게 만지면서 가스로앞에 마주선채로 국수를 건져먹었다. 절인 오리알 하나를 이마에 대고 딱 깨여서는 열심히 호벼먹었다. 다음 무대는 등장하는듯한 경쾌한 보법으로 살구꽃 화사한 거리로 뛰쳐나갔다.

 

(2)

 

“… <은장도>라는 제목의 무극입니다.
옛날 어느 한 고을에 사랑하는 남녀가 있었답니다. 사랑이 무르익어 혼수날까지 받아두었는데 총각이 그만 수자리를 나가게 됐지요. 두사람은 눈물뿌리며 재상봉을 기약했어요. 처녀는 몸에 지니고있던 은장도를 사랑의 징표로 총각한테 주면서 영원히 변심않겠다고 서약했어요.
총각은 매일이고 그 은장도를 만지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험난한 역고를 치러냈지요. 드디여 귀향날자가 돌아왔어요. 그런데… 영원히 기다려주마하던 그 처녀는 그 기간의 고생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을의 어느 한 제 아비벌 되는 갑부와 눈이 맞아버렸어요.
총각은 처녀의 배신을 꾸짖으며 마음을 돌려세우라 권유하면서 사랑의 징표인 은장도를 내보였지요. 허나 처녀는 매정하게 그 은장도를 뿌리쳐버렸어요… 이에 총각은 은장도로 그만 처녀를 찔러버렸답니다. 그리고 은장도를 강에 내던지고는 자기도 그 강물에 뛰여들었지요. 이렇게 … 이렇게 아름다운 전설을 무대에 올려보는겁니다…”
    차수경은 자기가 구상해왔던 무극의 경개를 감개에 젖어 이야기했다.
휴계실에서 그녀를 마주하고 개벙하게 둘러앉은 무용수들은 열심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차수경이 몇해간 뼈물러 창작해온 대형무극이였다. 3년에 한번 꼴로 년말에 있게 될 전국무용콩클에 이 극을 꼭 내놓으려고 고심하고있는 그였다. 그만큼 애젊은 나이에 1급무용가로까지 발돋움한 그녀의 창작은 언제나 남보다 신선하고 무거웠고 충격력이 있어 모두들 신중히 수긍해 들이고있는터였다.
  “그런데… 장현수 지금 뭣하고있는거얘요. 멍하니 망석중이 돼가지고.”
  차수경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사색에 잠겨있던 현수는 그제야 몽상에서 깨여났다. 고개를 떨구며 귀밑을 붉혔다. 방금전까지도 차수경선생의 젖혀진 옷깃우로 곱게 뻗은 하얀 목줄기에 박혀있는 까만 태짐을 쑥스럽게, 그리고 황홀경에 가깝게 지켜보고있던 그였다.
“그담… <흡진기>는 그게 또 뭐얘요?”
맨 등뒤에 앉아있던 무용수, <흡진기>라고 점명된 녀자무용수는 주먹만큼 큰 사과하나를 들고 소리를 죽여 야금야금 뜯어먹다가 자기를 점명하는 소리에  엉겁결에 소리높여 응수했다.
  “옛!”
그통에 웃음잔치가 벌어졌다. 먹새가 크고 무엇이든 잘 먹어주는바람에 “흡진기”라는 별호를 가진 그녀는  온 하루 이몸이 뻐근하게 씹어대지 않으면 직성이 풀려하지 않는 성미였던것이다.
   “이제 두고봐요. 그렇게 이어대다간 몸집이 로씨야 아줌마처럼 돼가지고 무대에도 오르지 못하잖나.”
   선생의 책망에 그 무용수는 헤식게 웃으며 등뒤에서 비닐구럭 하나를 어줍게 내밀었다.
“잡숴보세요. 차수경선생님.”
구럭에는 철 아닌 사과가 수북이 담겨있었다.
   “히야, 사과다, 사과!”
    무대조형을 이루듯 여기저기서 손들이 번쩍번쩍 쳐들렸다.
“가만!”
차수경이 “흡진기”의 손에서 사과구럭을 앗아냈다.
   “<흡진기>의 턱은 조금 있다 내기로 하고…”
차수경은 방금전의 구상을 이어나갔다. 모두들 시무룩해졌다가 다시 진지한 차수경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지금 우리 춤들이 태깔을 벗지 못하는 까닭은 표현방법과 수법들이 비슷하고 또 단일화 된데 있다고 보여져요. <은장도>에서는 이런 재래식격식을 버리려 해요. 완전히 파격해 버리는겁니다. 무대공간과 구도선사용에서는 일전에 써오던 평형식, 대칭식, 2등분식의 틀을 깨고 가- 만…”
손으로 형태를 지어가며 이야기하던 차수경은 구럭에서 사과를 끄집어냈다. 유난히 붉은 사과 두개를 남녀주역모양으로 복판에 놓고 푸르스름한 사과를 단역모양으로 배렬시키며 조형을 구축해냈다.
“… 틀을 깨고 불평형수법으로 형태며 립체미를 자연 그대로 형상화해 줍니다. 자 보세요…”
   차수경의 손놀림에 따라 사과들은 동(动)적인 모습으로 꼭마치 춤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으로 변조되여갔다.
“붉은 사과 그러니 바로 저 주역은 내꺼다.”
장현수가 그 움직임을 자세히 지켜보며 입속말로 소곤거렸다. 오기가 가득 묻은 그 어조에 곁에서 남자무용수 하나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임마, 너무 자신하지 마. 이 극단의 주역은 네가 뭐 도거리한줄로 알고있니?”
    차수경의 격정에 넘친 무용강의가 한단락 끝나자 모두들 사과의 성찬을 벌려나갔다.
   “헌데 차선생님, 우리 예술단에서도 처음인 이 대형극을 올리려면 30만원이나 든다고 하잖았어요?”
   누군가 극의 운명을 괘념하듯 질문을 내들었다.
  “네. 어제 지도부회의서 통과됐어요. 문화국과 예술단 10만원 대가로 하고 나머지 20만원은… 내가 맡기로 했어요. 찬조를 받아 온다든가…”
   “네? 선생이요?”
   “기실 30만원이란 많은 돈일수도 있지만 또 적은 돈일수도 있지요. 지금 동쪽단지에 짓고있는 호화 아빠트를 봐요. 비싼건 50만원, 제일 싼것이라도 20만원이나 하잖아요. 극만 공연된다면 집 한채의 향수에만 비기겠나요?”
차수경은 어덴가 결의에 어린듯한 어조로 말했다. 하디만 그 어조가 무거운 중하에 짓눌려있음을 모두들은 느낄수 있었다. 차수경의 손에서 유난히 큰 사과를 넘겨받던 현수는 어덴가 랭각되여가는 기분을 전환시켜보련듯 화제를 바꾸었다.
“참, 사과맛이 일품인데.”
   “때이르게 먹을수 있어 그렇지요. 한근에 4원50전이나 되는걸요. 알고나 잡숴요.”
  “흡진기”는 성찬의 주인공으로 된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며 득의연한 어조로 말했다.
  “철을 당겨 먹는다, 딱 그것만 아니고… 사과는 모든 과일중에서 유난히 독특한 것, 뭐라할가? 사연이 많이 깃들어있는 과일이얘요!”
   제법 사색이 되여 말하는 현수에게로 눈길이 일제히 쏠리였다.
   “자 봐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서 이브가 아담에게 넘겨준 사랑의 징표가 뭐얘요. 바로 이 사괍니다. 사과! 그때 아담은 이렇게 사과를 먹고나서…”
“야, 문자쓰지 마라, 지가 뭐 아담이라도 된듯한 기분으로 말해 제끼고있네.”
   “아담이 장현수라면 이브는 또 누구예요? 가만. 방금 누가 현수씨한테 사과를 넘겨줬던가요?”
   “흡진기”도 현수의 말을 꼬리물며 이죽거렸다.
“<흡진기>, 허튼소리 말아요.”
웬지 차수경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질렀다.
   “아담과 이브말고도 또 하나 있지.”
    현수가 사과를 한입 떼물며 롱탕질을 계속 쳐댔다.
    “사과를 따먹으라 귀띔해준 뱀! 징글징글한 뱀 말이얘요!”
현수가 뱀을 형용하며 험상궂은 모양을 짓는 바람에 “흡진기”가 “워메- ”하고 기급한 소리를 질러댔고 따라서 또 한번 웃음보가 터져올랐다.
차수경도 따라 웃으며 살며시 사과를 깨물었다. 그러다 새그러워 낯살을 찌프렸다. 그 찌프린 모습마저 현수에게는 아름답게 보였다.

 

(3)

 

“첼로”가 거울앞에 마주서서 넥타이를 조여매고있다.
머리를 정연히 벗어넘기고나서 턱밑에 돋은 여드름을 열심히 쥐여짰다. 출근할 때는 봉두란발에 아무 옷이나 대강 걸치고 초라한 행색을 짓던 그가 저녁에 나이트클럽에 갈 때면 각별히 몸단장에 신경을 쓰는것이였다. 침대우에 젖버듬히 누워 TV에 정신팔려있던 현수가 꼬집는 소릴 했다.
“야야. 선뵈러 가는거냐? 어둑시그레한 구석에서 건반이나 두드려주면 고작인데 누가 널 보아줍시산다고 뿌리고 바르고 야단이냐.”
“첼로”는 그 풍대한 체대에 걸맞게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나서 느릿느릿 대꾸를 했다.
    “그럼 넌 뭐냐? 저녁마다 치고박는 저 무협편이나 보는게 네 생활의 전부냐?”
   “야, 내가 그저 눅거리 영화에만 정신 팔려있는줄 아냐? 난 저 치고박는 무술동작들에서도 춤의 률동을 찾아본단 말이야.”
“말 한번 잘 배웠다, 너.”
“첼로”는 코김섞인 웃음을 웃었다. 그 비아냥이 흐르는 모습에 현수는 정색해지며 화제를 내들었다.
“그건 롱담으로 치구, 차암, 시끌시끌한게 요즘 세월이다. 나야 합동공처지니 나가서 떡팔든 약팔든 괜찮지만 너희들은 뭐냐. 당당한 예술단 량반님네들이 무도장 한구석에 가서 치고 불고 아래선 좋다고 볼따구니 붙이고 손 쥐고 엉뎅이 흔들고.”
   현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목청을 살렸다.
   “네가 하는 직업 뭐냐? 음악의 황후로 불리는 바이올린의 아버지처럼 생긴 첼로 아니고 뭐니? 음악가의 인격이고 뭐고가 다 없고 우아한 예술이 술냄새, 커피냄새에 절고 유흥에 취해서 흥청거리고있으니.”
   “첼로”는 여전히 느릿한 소리로 격정을 가볍게 받았다.
   “우리 예술단서 아르바이트하지 않는 배우 몇이나 되니? 성악조, 악대, 무용조 통틀어봐라.
지휘가선생도 어느 초중학교애의 피아노교학을 해주고 있고 성악조서 그 벨칸토 잘하는 박씨있잖니? 그마저 요사인 밤가수로 여기저기 뛰여다닌다던데.”
   “그래! … 벨칸토로 성에 가서도 1등, 2등까지 해옵신 분들이 그 좋은 목청을 바꾸어 염소감기앓는 소릴 하면서…”
현수는 벌겋게 흥분하며 말을 계속했다.
   “온몸을 막 학질환자 떨듯하면서 <리별이 이렇게 아픈줄 알았더면 다신 다시는 사랑을 않겠어요.> 하고 바보 같은 가사를 주어댈 때면 난 막 죽어버리고싶어. 염오감 그리고 염세감이 막 든단 말이야.”
“너무 심각하지 마라. 얘, 너처럼 예술이요. 인격이요 하고 있다간 하늬바람마시고 살겠니? 그리구 요즘 세월엔 예술이요, 인격이요 하면서 정색해하는 사람 대체 몇이나 된다고 그래? 지금 세월엔 돈 없으면 예술도 허물어지고 돈 없으면 인격도 기운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어성을 높였다.
  “차수경선생님 있잖니? 그리구 나 장현수 있고.”
   첼로공명함 같은 불룩한 배에 혁띠를 조여매면서 “첼로”는 의연히 낮지도 높지도 않은 소리로 말했다.
 “너 아직도 염분 더 보충해야겠다.”
  “뭐야, 나보다 겨우 두달 앞선 놈이 시뚝하긴? 그래 넌 염분을 너무 자셔 옥체가 그리 좋으시냐?”
다시 히죽거리며 롱탕을 쳐대던 현수는 홀연 TV화면을 바라보며 동공을 키웠다. TV에서는 아릿답기 그지없는 녀인 하나가 나와 생리대 광고를 하고있었다.
   “<이브>표, 부드럽고 편안합니다. 번거로운 나날에 녀성들의 건강은 <이브>, <이브>가 지켜줍니다…”
   “아니 저게 누구냐?…”
현수의 입에서 헛바람 섞인 소리가 새여나갔다. 철이르게 치마차림을 하고 나온 미모의 광고모델에게 현혹돼버린 감탄만이 아니였다. 우아하게 틀어얹은 머리, 부드럽고 그윽한 눈, 상아를 쪼은 것 같은 운두높은 코마루, 풍만한 오렌지빛 입술, 그아래로 연연히 흘러내린 하얀 목에 까만 태짐 하나…
도시녀성의 세련미를 일신에 풍기고있는 그 광고모델은 다름아닌 차수경선생이였다. 홀연 TV가 작달비내리는 소리를 내며 화면은 온통 아물아물 눈꽃으로 메워졌다. 현수는 침대에서 뛰여내려 TV를 박살낼듯 후려쳤다.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분명 차수경이였다. 방금정의 광고대사를 다시한번 되풀이하고있었다.
  “번거로운 나날에 녀성의 건강은 <이브>, <이브>가 지켜줍니다…”
현수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현수의 눈에 차수경선생이 저렇게 즉물형으로 보이기는 처음이였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저런 광고를 하고있다니?”
   “봐, 너의 지체높으신 안무가선생마저도 저렇게 구접스럽지 않은 광고를 하고있지 않니?”
   “첼로”는 때나 만난듯 현수를 시까슬러주었다. 자존심이 상처를 받은 양 현수가 벌컥 소리소리 질렀다.
   “야, 임마 여덟시가 넘었어. 네가 빨리 가서 톱질해야 그 주린 사내놈들이 다른 녀자 허리를 안아볼수 있지 않니? 그러니 빨리 꺼져! 가!… “
“역시 너는 염화나트리움을 더 보충해야겠어. 너무 격동하지 마라. 차수경이 너하고 무슨 사지어금이기에… 너의 안무지도, 과년한 로처녀, 그저 그런 정도인거지.”
   현수의 흐려진 기분에“첼로”는 얼른 세집방을 빠져나가버렸다.
으깨진 심정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던 현수는 체증기를 발설하며 TV의 채널을 드르륵 돌려버렸다.
다른 채넬에선 쏘세지광고가 나오고있었다. 드르륵 돌려버렸다.
“회춘령”보약광고가 나오고있었다. 드르륵 돌려버렸다.
주권시장의 인상폭명세가 나오고있었다.
온통 상품과 금전이 란무하는 세계였다. 현수는 텔레비죤의 플라그를 콱 빼여버렸다.
하나의 광란하던 세계가 갔다. 창문을 드르렁 울리며 어스름이 내린 거리로 바람이 일기 시작하고있었다. 현수는 창틀에 붙어서서 바람이는 거리를 언제고 내다보았다.

 

(4)

 

무극 “은장도”의 훈련은 본격적인 시작단계로 들어갔다. 련습홀에서 차수경이 극조인원들에게 열심히 시범을 해보이고 있다.
   “… 자 다음은 주인공 남녀의 열련장면입니다.”
반듯한 이마에 함함히 배인 땀을 씻어내리며 차수경이 장현수를 불렀다.
“자, 장현수 나와봐요.”
웬지 아침부터 볼이 밤알처럼 부어서 훈련에 열중하지 않는 그를 짐짓 시범상대로 불러낸것이였다. 차수경은 현수의 두어깨를 손으로 잡고 외다리로 오연하게 선 학과 같은 자태를 지었다.
   “…절주에 따라 자연스레 회전하다 중심을 남측의 팔에 주며 계속 한다리를 지점으로 다른 한 다리는 오금죽이기를 했다가 다시 높이 쳐듭니다. 남자분은 그 힘을 빌어 녀자분의 허리를 뒤로 꺾어…”
차수경이 말을 채 잊지 못하고 교성을 질렀다. 현수가 란폭함에 가깝게 차선생의 허리를 뒤로 꺾었던것이다. 그 사위대로 주저앉아버렸던 차수경이 허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아니, 싸리단 꺾고있는거얘요 지금! 좀 더 집중해서 해요.”
현수는 데퉁스레 다시 차수경의 자세에 수긍해나섰다.
   “자 오른쪽 비껴 앞 사선방향으로 몸을 향하여 남자분이 이끄는대로 끌려갑니다. 다음 두팔은 기본위치에서…”
차수경은 또 한번 동작을 맺지 못하였다. 현수가 콱 잡아제끼는 바람에 위치보다 멀리 뿌리워나가듯해서 비칠거렸다. 팔이 쑥 빠지는듯했다.
   “아니? 저치가 오늘 왜 저래?”
   “식혜먹은 고양이상 해가지고.”
   “돈거나 아냐. 선생하고 저게 뭐니. 시건방진 자식!”
    좌중이 웅성거렸다. 차수경은 당혹한 표정으로 현수를 지켜보았다. 여태껏 없었던 일이였다. 그 누구보다 춤의 세세절절에 열성을 보여왔고 그로 해서 전업생들을 엎누르고 마냥 주역을 빼앗아왔던 장현수였던것이다. 장현수는 모두들의 눈총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외려 그 어떤 도전이 출렁이는듯한 눈길로 차선생의 원망과 의혹에 가까운 눈길을 맞받고있었다.
“들어가요.”
차수경은 굳이 책망하지 않았다. 여전히 당혹함에 커다랗게 쳐들린 눈길로 현수의 훤칠한 뒤어깨를 지켜볼뿐이였다.
… 퇴근하자바람으로 차수경은 박물관을 찾았다. 무대도구로 쓰일 은장도 실물을 찾아보려는것이였다. 뜻밖에도 박물관입구에서 장현수를 만났다.
   “여긴 웬 일이죠?”
    “조금 구경거리가 있어서요. 선생은요?”
“나 여기에 소장해둔 민속복장이나 은장도가 없나 보러 왔어요. 무대도구를 본따 만들어야지요. 관장실이 몇층인지?”
차수경이 마악 들어가려다 무춤 맘춰섰다.
   “아깐 어찌된 일이죠?”련습홀에서 있었던 현수의 반상적인 거동을 떠올리고 차수경이 심각히 채문하였다. 장현수는 대답을 기피하고 대신 청탁 하나 내들었다.
“저와 함께 구경 하나 합시다. 그런 다음 답안 드리지요.”
현수는 2층전시청으로 올라갔다. 입구곁에 앉았던 수수깡 같이 마른 중국인령감쟁이한테서 관람권 두장을 사들었다.
   “뭔데요?”
차수경이 오리무중이 되여 물었다. 현수는 입구곁에 붙여진 포스터를 가리켜보였다.
   “천년전 미녀의 웃음을 보시렵니까? 강소성에서 출토된 천년전의 녀자시체
 성 박물관에서 기증특별전시. 기상천외의 구경거리를 놓치지 말기를 바람. 관람권 성인 20원, 아동 10원.”
차수경은 순간 기겁을 했다.
   “안돼요. 난 이런걸 못보아내요.”
   “아니 선생님은 보셔야 합니다. 꼭 보셔야 합니다. 보고나면 느낌이 많을겁니다.”
   현수는 뒤걸음치는 차수경의 팔목을 부여잡았다. 안들어가겠다고 부등부등 우기는 것을 현수가 강압에 가깝게 끌고 들어갔다.
전시청에는 사람이 몇몇밖에 없었다. 대청 한귀가 수족관(水族馆)의 커다란 어항을 방불케 하는 유리함 하나가 놓여있었고 너나가 호기심에 쳐들린 눈매로 들여다보고있었다.
“보세요. 선생님.”
눈을 딱 감았던 차수경이 본능적으로 눈시울을 언뜻 쳐들었다.
깡깡 말라버린 수목 같은 눈 귀 코가 시커먼 문지광 같고 간신히 붙어 색바랜 의복사이로 살은 문드러져 떨어지고 륵골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굴왕신 같은 형상 하나가 걸레처럼 그속에 구겨박혀있었다. 순간 기분나쁜 이질감이 들며 욕지기가 울컥 올라왔다. 차수경은 입을 막으며 덴겁하여 전시청을 뛰쳐나왔다. 층계의 란간을 부여잡으며 눈물이 쑥 나오도록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장현수가 어느새 따라나와 그곁에 섰다.
   “왜, 왜 강요하는거예요? 왜 이렇게 무례해요?”
차수경은 눈귀로 배여나온 물멀기를 지우며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현수를 쳐다보았다. 장현수는 머리를 숙였다.
   “용서하십쇼. 헌데 선생님- “
   장현수는 필요이상으로 목청을 한옥타브 높였다.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저 녀자, 저 전시청에 누워있는 천년전의 녀자 말입니다. 생전에 귀골높은 신분이였는지 비천한 천민이였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천여년이 지나서 자신이 전시품으로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본의 아니게 남들의 구경거리로나 되여버렸지요.
지금 사람들은 짜장 돌아버렸습니다! 돈에 미쳐버린거죠. 원체 저런 출토품들은 과학연구용으로 엄밀히 소장되여야지 않겠습니까? 헌데 돈에 미쳐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끄집어내고 또 광대처럼 내세우고있는겁니다…”
   “그런데는요?”
   벌겋게 흥분하며 달변을 쏟아내고있는 장현수를 보며 차수경은 그게 나와 무슨 관련의 끈이 있느냐는듯한 눈길을 던져왔다. 지페장들을 차곡차곡 모아쥔 전시청입구의 문지기령감이 련인들사이의 사랑싸움을 엿보는듯한 흥미로운 기색으로 이쪽을 유심히 지켜보고있었다.
   “선생님도 그런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함께 하고있지 않나 하는 로파심이 들어서 그럽니다. 주제넘는지 모르겠지만두…”
   장현수는 꽈배기처럼 배배탈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엊저녁 광고를 보고 텔레비를 박살내고싶었습니다. 그게 뭐얘요, 그게… 선생님은 신분있는 사람입니다. 국가 1급안무가란 말입니다. 이 바닥에서 선생님의 높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그렇게 지체높으신 선생이 그런 광고를 다 하다니요…”
   차수경은 장현수의 말을 곰곰히 들어주고있었다. 그러다 나지막이 웃었다. 어덴가 자조의 그늘이 드리운듯한 웃음이였다.
   “모두다 우리의 무극을 위해서였어요. 사실 광고제작사에서 높은 값으로 다가오기에 …”
   “고작해야 2천원좌우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구접스런 광고를 몇차례나 해야겠습니까? 열차? 백차? 그러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엉망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은 단지 개체적 존재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우리 전 예술단의 징표로 되는 인물이란 말입니다. 어찌 그런 선생님을 일상용구 같은 허드레물건이나 지어… 그런… 구접스런 물건과 병령시킬수 있습니까?”
   현수는 기성을 지르다싶이 하고 있었다. 차수경은 엷게 웃으며 현수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래 이 일로 그렇게나 화딱지 나셨어요? 여하튼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장현수는 차수경선생을 직시했다. 그러다 선생의 빼여난 미모와 기품에 기가 질려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이윽고 용기를 내여 혀아래소리로 여태껏 뼈무르고있던 말을 또박또박 뱉어냈다.
   “아마… 제가 선생님을 … 선생님을 사랑하고있나봅니다.”

 

(5)

 

   장현수는 중심거리의 호화로운 아빠트단지앞에 한동안 서있었다. 시가지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주택을 신건, 이 도시의 갑부들이 자신의 호기를 현시하고있는 곳이였다.
그 아빠트의 2층에는 장현수의 외삼촌이 살고있었다. 홀라당 벗겨진 머리, 쌍둥이를 잉태한 막달 산모같은 뒤주배…
장현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염오하는 사람은 단둘뿐이였다. 한사람은 오페라“오쎌로”중에서 간계로 오쎌로와 에디모스나의 사랑을 깨뜨린 이아고였고 다른 한사람은 바로 이 외삼촌이였다. 외삼촌은 장식회사 몇개를 차려 이 시가지에서 다섯손가락안에 꼽힌 갑부로 살쪘다. 돈가리에 높직이 올라앉자 그가 맨처음 한 일은 가정성원의 그루바꿈이였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자기보다 스물여섯살이나 어린 처녀애를 맞아들였다. 그 바람에 그 안해가 달리고있는 장식회사 트럭앞에 몸을 던져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누님인 장현수의 어머니가  꾸짖자 무지막하게 누님과도 절연을 선포했고 또한 타매하는 조카 장현수에게 귀쌈을 갈기고 발길로 차서 내쫓았다. 그때로부터 외삼촌은 장현수의 뇌리에서 가장 혐오스런 인물로 메모되였던것이다.
그렇게 근 3년간이나 찾지 않던 외삼촌의 집을 오늘 현수는 찾으려 하고있는것이다. 한동안 멈칫거리다가 현수는 용단을 내린듯 들숨을 길게 한번 긋고나서 아빠트의 2층으로 치달아올랐다.
   땅거미가 내리고 도시의 상공으로 별이 하나 둘씩 들추어 나올 때 현수는 외삼촌의 집을 나섰다. 휘파람으로 “맥주통 뽈까”의 경쾌한 선률을 불며 , 엄지와 식지를 맞부벼 딱딱 소리를 내며 어깨바람이나서 길을 가는 현수의 얼굴은 발가우리하게 상기되여있었다. 사물사물 좋아지는 기분을 주체할길 없는 현수였다.
뜻밖에도 외삼촌이 일전의 험상을 바꾸고 느닷없이 이것저것 괘념의 물음을 묻기도 하고 저녁 한끼까지도 푸짐히 대접해주었던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현수가 궁극스레 말을 돌려가다 낯에 두툼히 철판을 깔고 차선생의 무극의 협찬에 대한 의향을 내비쳤을 때 외삼촌이 커다란 흥심을 보였던것이다.
   “차수경이라… 나두 그 녀자 얼굴 알고있다. 춘향이 뺨치게 잘생긴 녀자지. 너희들 단위서두 기둥으로 씌우고있는 것 같더구나. 요사이 광고에 자주 나오는 그 녀자 맞지? 그런 사람 가리켜 절세가인이라 하는거야!”
외삼촌은 연신 차수경에 대한 격찬의 말을 하였다. 그 용모에 심취됐던지 무극제작비용의 엄청난 액수를 듣고도 외삼촌은 놀라는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말쯤에 한번 면담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외려 자기쪽에서 아퀴를 지었던것이다.
   현수는 경쾌한 선률우에 뜬듯한 보법으로 달렸다. 앞에 전화박스가 보였다. 설레발치며 급급히 전화버튼을 눌렀다.
   “살랑살랑해요. 이 총각 전화통을 부셔먹고말겠네.”
   전화박스속의 풍대한 몸집을 가진 아낙이 격동에 전화버튼을 피아노건반 두드려대듯하는 현수에게 온곱지 못한 눈길을 던졌다. 허나 차수경선생에게 한시바삐 이 소식을 알리고픈 현수는 그 데퉁스러움을 개의치 않았다. 벌씬 웃으며 그 아낙에게 거수경례를 척 붙여보였다. 그리고는 수화기에 귀바퀴를 바싹 붙였다.
   “좋아도 해쌌네. 녀자친구 찾는 길인감.”
   “뚜-“ 신호음이 울리더니 이어 말소리가 들려 왔다.
   “여보세요?” 차수경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수저를 두드리는것 같은, 신변가까이에서 속삭이는듯한 그 자닝스런 목소리에 현수는 느닷없는 아슴푸레한 현기증의 발열을 느꼈다. 전화박스속의 염세스러운 모양을 지은 아낙을 방임한채 지어 자신이 전화를 걸고있다는 현실을 깜박 잊은채 현수는 환각의 늪에 몰입돼갔다.   
현란한 조명이 내린다.
무대우로 운무가 굼실굼실 흐른다.
높아가는 곡조속에 차수경선생과 둘이서 무대가 좁다하게 격정의 춤사위를 벌린다.
관람석에서 갈채가 터져오른다.
카메라의 섬광이 번쩍인다.
생화바구니가 올라온다…
    “여보세요?” 다시한번 소리높여 채문하는 소리에 현수는 정상상태로 환원할수 있었다. 허나 그 여흥의 동아줄에서 풀려나오지 못한듯 엉뚱한 통화를 하고말았다.
   “사랑합니다. 차수경선생님!”
아무런 화답도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곰삭이는듯 높은 숨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가 철컥 끊겼다. 현수는 한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버튼을 눌렀다.
“접니다. 장현숩니다. 선생님, 그런게 아니라…”
   “허튼짓 그만두세요. 장현수! 다시한번 분명히 말해주지만 우린 동료지간이얘요. 적절히 말하면 사제지간이란 말이얘요.”
   “선생님, 선생님 그런게 아니라…”
   전화가 또 한번 끊겼다. 장현수는 덴겁해 다시한번 버튼을 눌렀다. 받아주지를 않았다. 장현수는 진득한 한숨을 내 쉬였다. 기좋게 키워가던 비누풍선이 금세 터져버려 울상이 돼버린것같은 실망감을, 그것보다 가배로 되는 실망의 중하를 현수는 느끼고있었다. 현수는 뜨직이 몸을 돌렸다.
   “이봐요 저 총각, 전화비는 내잖고 례장감으로 쓸 작정인감?”
  전화박스속에서 앙칼진 소리가 터져나왔다.
거리에서 찬바람이 일고있음을 현수는 그제야 느낄수 있었다.
   “거스름돈은 안받으려나?- ”
   장현수는 몸을 잔뜩 옹송그리며 옷깃을 여몄다. 가로등아래 외로운 그림자를 흘리며 미적미적 걸음을 옮겼다. 답답하고 울적하고 쓸쓸하고 외로왔다.

 

(6)

 

     비가 내리고있었다. 현수는 뻐스정류소의 간소한 비막이 처마밑에 좋이 두시간은 서있었다.
정류소 맞은켠에 숯불갈비집이 보였다. 갈비집의 호화스로운 간판의 네온싸인이 비안개속에 더 눈부셨다. 갈비집앞에 “벤츠”한대가 주차해있었다. 현수의 외삼촌 차였다. 현수는 여태껏 그 차를 지켜보고있었다. 갈비집을 나와서 그 차를 탈 사람을 기다리고있는것이다.
밤은 이슥했고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있어 거리에는 사람 하나 없이 한산했다. 점퍼깃을 올리고 두팔소매에 손을 집어넣은채 현수는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다.
올 들어 처음 비답게 내리는 억수의 비, 그 비에 유보도 변두리의 살구꽃이 떨어져내리고있다. 거리에 랑자한 그 락화를 보며, 그 슬프게 아름다운 꽃을 황홀이 지켜보며 현수는 단조로운 시간의 나락을 야금조금 기억의 편린으로, 그 편린의 날카로운 모서리로 썰어내고있었다.
     현수는 춤을 좋아했다. 소학교때부터 소년궁 무용조에 뽑히여 기량을 보여온 그였다. 뭐 어째도 공부에 집념해서 대학엘 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모성애에 짙은 념려도, 사내놈이 분 바르고 연지 찍고 무대우에서 진동한동 달아다니는 꼴이 뭐냐?는 친구들의 조소도 그에게는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그만큼 한곡의 좋은 음악이면 밥을 거르고 들을수 있고 그 음조에 혼을 매달고 눈물 그들먹해지는 자신의 음악감각과 롱구선수를 방불케 하는 자신의 매끈한 신장만으로도 춤에 전생의 인연의 끈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현수는 목소리가 이상스런 음조로 뒤틀려지고 코밑이 별스레 가무스레해지던 사춘기의 그해, 맨처음 차수경선생의 춤을 보았다.
그때 차수경선생은 승무를 추었다. 발군(拔群)의 위세로 빼여난 미모, 하얀 베적삼, 너울거리는 긴 소매… 끈끈한 가락에 연연한 춤사위를 벌려가다가도 잦은 가락에 숨가쁜 경쾌로 신들린듯 무대가 비좁게 감동의 보따리를 하나하나 터쳐주는 차수경선생, 게다가 밝은 조명아래 붉은 입술, 하얀 옥치의 웃음과 득달한자의 그것 같은 그윽한 눈매. 그 서기롭고 아름다운 모습은 수천명 관중들을, 그리고 예술의 겹대문앞에서 바장이고있는 한 소년을 뇌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장현수는 기립하고 갈채를 보내고있는 관중들사이에 끼여 죽어라고 박수를 쳤다. 어느새 감동의 눈물이 눈확으로 그득 넘쳐나오고있었다.
그날 저녁 차수경선생이 장현수를 찾아왔다. 꿈결에 찾아왔다. 수경선생의 얼굴은 처음 보는듯하면서도 그렇게 익숙했고 또한 그렇게… 요염했다. 아침에 깨여나 장현수는 이부자리가 축축히 젖어있음을 부끄럽게 발견했다. 장현수의 소년은 이렇게 완수되였다. 양말 한짝 씻어보지도 못했던 그는 그 요자리를 힘겹게 씻어 가만히 널며 자신이 춤과 어쩔수 없는 연분을 가지고있고나 하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그후 장현수는 시적으로 벌린 브렉댄스콩클에서 단연 1등을 했다. 그 평심위원들중에는 차수경선생도 들어있었다. 차수경선생을 그렇게 가깝게 하고 선생의 손에서 증서와 상금을 받아쥐던 그때를 현수는 죽어도 잊을수 없었다. 그후 예술단에서 전국소수민족운동회를 맞으며 대형광장무를 기획, 군중역을 사회에서 초빙했는데 장현수가 쉽게 입선됐고 그중 출중한 표현으로 하여 파격적으로 예술단에 입적했던것이다.
이렇게 장현수는 차수경선생의 호흡곁으로, 예술의 전당으로 운명적인 한보를 내딛게 되였던것이다.
   … 갈비집의 흔들이문이 열려졌다. 외삼촌의 잘 구워진 찐빵을 방불케 하는 얼굴이 나타났고 그 어깨너머로 차수경선생의 청초한 모습이 보였다. 두사람은 비에 쫓기다싶이 해서 차에 올랐다.
    “저, 선생님-“
     현수 달려가며 불렀다. 비소리에 두사람은 듣지 못하고있었다. 헤드라이트가 켜지고 엔진이 울리더니 차는 비속을 헤갈랐다.
현수의 연줄로 차선생과 외삼촌은 면담을 가졌고 장식회사에서 강개하게도 20만원의 협찬금을 주기로 일은 잘 진척되였다. 어느사이에 매스컴에서도 이를 보도했다. 민족문화의 축제를 위한 기업계의 훌륭한 동참이라고 높이 칭송했다. 여하튼 차수경선생에게 큰 조력을 줄수가 있어서 현수는 내심 기뻤다.
오늘저녁도 친구들없는 하숙집에 홀로 앉았노라니 차수경선생이 못내 그리웠다. 자기 주변에 아교풀처럼 끈끈히 도배된 선생의 형상을 지워버릴수가 없었다. 출근해서 매일 만나는 얼굴이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둘이서 만나 무슨 이야기든 끝없이 하고싶었다. 그저 조용히 마주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허나 차선생은 마냥 현수의 만남의 전화요청을 딱 잘라버리군 했다.
    “장현수, 나에겐 현수보다 두살이나 이상인 동생까지 있어요. 씨도 덜 여문 소릴 그만두세요.”
   “또 취한거나 아니세요?”
    “오늘 지도부에서 무극의 남주역을 현수에게 맡기기로 초보로 합의되였어요. 그러니 허튼 생각 집어치우고 사업에나 집념하세요.”
     이렇게 잘라버리군 했다. 그럴수록 차선생에 대한 현수의 경모와 련모는 장작이 덧놓여지는 잉걸불처럼 점점 더 세차게 타올랐다. 하여 선생의 집을 찾아가던둥 도중에 숯불갈비집으로 들어가는 선생과 외삼촌을 극적으로 목격하고 망부석처럼 굳이 가다린것이였다.
차가 비안개속으로 형체를 감추고있었다. 현수는 본능적으로 차를 쫓아 뛰였다. 차는 시가지 서켠으로 뛰고있었다. 외삼촌이 선생을 저택으로 전송하려는것임이 분명하다. 현수는 지름길로 차선생의 집을 향해 뛰여갔다. 코스를 뛰는 선수의 사명감처럼, 구명선을 뒤쫓는 물에 빠진자의 욕구처럼 정신없이 뛰였다. 진창길을 철썩철썩 밟으며 얼굴로, 입귀로 흘러내리는 비방울이며 땀방울을 푸푸 뿜어내며 억척스레 뛰고 또 뛰였다. 그러면서 웨치다싶이 되뇌이였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
차선생의 집 가까이까지 뛰여갔을 때 마침 차의 도어가 열리고 선생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차를 향해 손을 저어 보인 차선생이 손채양으로 비를 맞으며 현관으로 뛰여들어가려 했다. 현수는 달려가며 갈린 소리로 웨쳤다.
   “선생님!- “
   차수경이 무춤 멈춰섰다. 몸을 돌리고 손채양아래로 상대를 헤아렸다.
   “아니, 장현수 어찌된 일이얘요! 이 큰 비에…”
   “… 갈비집서… 나오는걸… 봤습니다… 그래서…”
   현수 숨이 턱에 닿아 말했다.
   “그래 여기까지 따라 달려왔단 말씀이세요?”
차수경은 악연히 놀라며 흰김이 서려오르는 현수의 머리며, 함씬히 젖어버린 일신, 흙감발이 된 신을 훑어보았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거센 숨을 곰삭이느라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그러는 그 얼굴에는 순진한 어린애 같은 행복한 표정과 사춘기의 불안감, 그리고 성숙에로 달리고있는이들의 고민과 추구가 혼반죽되여있었다.
차수경의 붉은 볼에 감동의 파장이 머물렀다. 자기보다 여섯살은 손아래인 제자에게서 뜻밖의 사랑의 고백을 들었을 때 차수경은 그저 웃고 지나치려 했다. 현수가 춤에 그 누구보다도 천부가 있다는것과 그 뛰여난 예술감응력에 가끔씩 놀라 다시금 그를 지켜본적 있었다. 그만큼 그에게 각근한 배려도 주었었다. 그리고 박력은 있지만 세련미가 없는 애젊은 피라고 생각했다. 그저 그뿐이였다. 그러던 얼마전 현수가 그에게 작은 열쇠 하나를 주었다. 설둥한 기색이 되여 그 열쇠로 자물쇠가 달린 노트를 연 순간부터 차수경은 그만 전설속의 온갖 칠정오욕이 담겨있다는 판도라의 함(盒)을 잘못 연것과 같은 심경이 되여버렸다. 그속에는 한 소년의 사춘기의 황홀한 꿈과 예술에 대한 미칠듯한 추구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꿈과 축구의 구구절절과 갈피갈피에는 차수경의 형상이 짙게짙게 배여있었다. 차수경은 그 집요한 추구앞에서 일순 어쩔바를 몰랐다. 그저 어린아이 타이르듯 어르기만 했다.
    “난 현수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얘요. 그저 사업에서 남보다 조금 빼여났달뿐이죠. 여덟시간 밖의 차선생은 그렇지 않아요. 게으르고 매정하고… 지어… 남몰래 담배까지 곧잘 피우거든요.”
    이렇게 타일러도 허사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결점까지도 모조리 사랑하고싶습니다.”
     현수가 자신과 예술사이에 레루장처럼 긴 같기부호를 긋고는 자신을 련모하고 지어 우상화하고있다는데서 차수경은 놀라왔고 우습강스러웠고 자랑스러웠고 또 불안했다.
현수는 말없이 내리는 비속에 체념하고 서서 차수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둠속에 유난히 빛나고있는 그 시선을 피해 차수경이 덴겁히 눈길을 돌렸다. 매양 그 무어나 다 태워버리고 오조시킬듯한 눈길이였다. 그 눈길에 닿으면 빙점아래의 붉은 수은주도 대번에 가열점에로 쭉 오르며 용해되여 암장처럼 뿜겨나올 것 같았다.
     “그만 … 돌아가요.”
      차수경은 눈께까지 흘러내린 현수의 머리칼을 쓸어올려주었다. 그 손을 현수가 와락 부여잡았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현수는 차수경의 허리를 감쳐안아 젖은 품으로 콱 끌어당겼다. 젖은 몸으로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불의식간의 놀라움과 한기에 차수경은 몸을 오싹 떨었다.     
다음 순간 뜨거운 입술이 얼굴에 날아들었다. 차수경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꺾었다. 그러는 선생을 장현수는 놓아주질 않았다. 부잇한 비안개속에 뒤로 젖힌 하얀 목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 목에 , 그 까만 태짐에 현수는 떨리는 입술을 대였다. 현수에게는 뿌연 비안개가 무대로 비쳐주는 으늑한 조명처럼 생각되였고 비소리는 관현악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조로, 그리고 자신과 선생은 생활의 거대한 회전무대우에 선 작은 배역으로 생각되였다.
밀고 부여잡고, 둘은 비속에서 조용한 춤사위를 벌렸다…

 

(7)

 

    차수경이 무용련습홀의 거대한 거울앞에서 홀로 열심히 뛰고 있다. 차수경에게 있어서는 남보다 퇴근시간이 반시간가량 늦게 되여있었다. 그 반시간에 구상과 기량을 무르익히는데 버릇되여온 그였다. 그러는 차선생의 모습을 장현수는 마냥 문짬으로 지켜보아 왔었다. 장현수는 한동안 비싯거리다가 문을 밀고 무용홀로 들어섰다.
    “엊저녁의… 무례함을… 용서해주십쇼.”
     장현수는 남의 집 장독대를 부시고 훈장앞에 불리운 학생 같은 꼴을 지었다. 경직되였던 몸을 풀며 차수경이 한켠에서 타올을 집어들고 이마며 목으로 내배인 땀을 씻어내렸다.
    “마침 잘 왔어요. 지금 극의 마지막 장절이 탐탁치 못해서 홀로 익혀보는중이얘요. 주인공이 사랑하는 처녀를 은장도로 찌르는 그 장면 말이얘요. 주인공의 하나하나의 동작에는 안타까움 그리고 허망스러움이 깃들어야 하는건데… 그저 상식적이고 평면화된 동작을 지어서는 안돼요.”
     차수경은 현수 말은 못들은둣 완연 스승의 모습으로 돌의 표피처럼 딱딱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차수경이 한켠에 놓여진 록음기의 테이프를 풀었다. 무극의 곡조가 나왔다.
     “자, 이리봐요. 잡념을 버리고 열심히 따라해요.”
차수경이 자세를 지으며 한켠에 멍청한 꼴을 짓고있는 장현수를 불렀다. 장현수는 그제야 덴겁해 응수하며 선생의 곁으로 다가섰다. 싱긋한 땀내가 섞인 체취가 담담히 끼쳐왔다. 장현수는 그 훈향을 흡 들이마셨다. 선생을 따라 돌고 뛰고 구을렀다. 홀연 선생의 목에 눈길이 가 닿았다. 하얀 목의 태짐부근에 발가우리한 입도장의 흔적이 알렸다. 비 내리는 엊저녁을 떠올리며 장현수는 불의불식간에 낯꽃을 확 붉혔다. 은연중 동작이 흐트러졌고 그 동작을 마무리짓지 못한채 현수는 비틀거렸다.
     “안되겠어요. 그만.”
     차수경이 거울속으로 장현수의 눈길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장현수는 반찬먹다 들킨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다시 시범을 잘 봐요. 좀더 집중해서 해요.”
차수경이 곡을 다시 풀고 시범을 해보였다. 처절한 음조에 동작을 맞추던 그가 홀연 입을 열었다.
춤을 추면서 이야기했다. 방금전의 딱딱함을 벗은 어덴가 회한이 푸근히 담겨진 소리였다.
     “나에게도…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장현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차선생의 사랑담이였다.
    “지금 단위에 신진들이 많이 바뀌여 저의 과거를 잘 모를뿐이지요. 그이도 무용배우였어요…”
     차수경은 여전히 춤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대신 춤에 깊이 빠져있었다. 아니면 과거에 대한 추억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 우린 무용파트너였어요. 그이가 리몽룡을 맡으면 제가 춘향이 되고 그이가 로미오를 맡으면 제가 쥴리에트로 되고… 모두들 하늘이 내린 짝이라 했어요. 
그인 춤기량이 높고 완연예술에 빠져버린 사람이였어요. 우리가 지금 하고있는 <은장도>의 초보구상도 그이가 내놓은것이였어요. 경모하고 사랑할만한 사람이였지요. 우린 지독하게 사랑을 했댔어요… 그러던 어느 한번…”
    차수경의 춤사위가 조금 늦추어졌다.
“… 림장의 생활을 반영한 무용을 만들려고 그인 림장으로 갔어요. 눈내리는 수장으로 말이예요. 생활체험을 한답시고 벌목공들과 함께 채목을 했지요… 그러다…”
     차수경이 맴을 돌았다. 고통스러움을 잊으련듯 빠르고 격렬한 회전을 하였다. 다시 느린 보법으로 돌아와 차수경이 축축히 젖은 소리로 숨가쁜 추억을 이었다.
     “그러다 그만 넘어가는 통나무에 다리를 치였어요… 다리… 한쪽다리가 아니고 두다리가 모두 엉망이 되였어요. 분쇄성 골절이 됐던거얘요. 치료의 가망은 전혀 없었어요. 나중에 다리를 자르고말았지요…”
     차수경은 극정을 이야기하듯 기억의 반추에 삽입되였던 추억을 춤사위에 담아 풀어내리고있었다.
     “… 그인 완연 절망했어요. 그인 무용가였어요… 무용가가 두다리를 잘랐으니 그 고통인들 어디에 비할 수가… 그가 옥생각을 먹을가봐 우린 그의 신변에서 예리한 철기며 약이며를 죄다 집어치워버렸어요…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절망의 심연에서 구할수 없었어요…
그의 침방에는 제가 선물한 그림 한폭이 있었어요… 드가(德加)의 <춤추는 무녀>… 너무나 아름다운 파스텔화였지요… 그인 그 액자의 유리를 깨고 그 유리조각으로… 그 유리조각으로… 손목의 정맥을 베였어요…”
     곡이 끊겼고 차수경은 춤사위에 맞춰 조용히 무너져내렸다. 그 동작 그대로 한동안 그 자리에 무너져있었다. 련습홀에는 썰물후의 모래사장 같은 참담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한켠에 장현수는 돌처럼 뿌리내여있었다. 소절마다 추를 달아맨듯 무게를 느끼게 하는 그 말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오는 감정의 굴절에 빠져버린 그였다.
이윽고 차수경이 몸을 일으켰다. 타올로 눈언저리를 문질렀다. 다시 스승의 그것과 같은 메마른 표정이 그의 얼굴에 지어졌다.
    “자, 오늘은 이만해요.”
    차수경이 휴게실로 가려 련습홀의 문을 열다말고 몸을 돌렸다. 여전히 그 꼴 그대로 서있는 장현수를 바라고 나직이 한마디 했다.
    “그후로 전 모든 사랑을 물리쳐버렸어요. 기실 전 이미 시집간 녀자얘요. 예술에게 시집가버린거죠.”

 

(8)

 

      일요일, 장현수는 해종일 네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시가지 변두리의 자그마한 례물점까지 뒤져서야 원했던 그림 하나를 살수 있었다. 정교하고 사치한 액자에는 파스텔화 한폭이 끼여져있었다. 하얀 의상차림의 무용수가 무대복판에서 아름다운 춤자태를 짓고있는 그림이였다.
“참 좋은 그림이죠. 지금 세월에 인상파대가 드가의 명작까지 알고 사가는 사람이 드문데…”
월봉의 3분의 1을 잘라서 서슴없이, 그것도 희색이 만면해서 그림을 사고있는 장현수를 보고 점원은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현수는 곁들어 라이터도 하나 샀다. 점화단추가 붉은 심장모양으로 된, 짤깍 켜지면 불과 함께 명곡 “솜다리”의 곡조까지 은은히 들려오는 앙징맞게 예쁜 라이터였다.
하숙집으로 돌아와 장현수는 그 라이터의 한귀에 예리한 칼끝으로 무언가 새겨넣었다. 도금칠이 벗겨지며 “장현수”라는 이름 첫자 자모중의 ㅈ자가 새겨졌다. 사랑의 징표삼아 장신구 같은 라이터를 먼저 선물하고 “춤추는 무녀”는 몇달후 정월께, 선생의 생일날에 드리려는 들큰한 환상을 하였다.
     저녁엔 합숙하고있는 “첼로”와 함께 한식관으로 갔다. “첼로”가 술 한잔 사겠노라고 잡아끌었던것이다. 두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해낼수 없으리만큼 풍성한 음식이 차려졌다.
    “아니 오늘은 이게 어찌된 일인감? 자기 머리비듬도 남이면 주잖던 첼로님께서…”
     구두쇠로 통하고있는 친구의 반상적인 거동에 현수는 동공을 키웠다.
“먹어라 먹어.” “첼로”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현수앞에 찬을 자꾸 집어주기만 했다. 술이 몇순배 돌고 술기운이 화닥화닥 피여오르자 “첼로”는 그제야 본제를 꺼내들었다.
    “이것이 우리들사이의 <최후의 만찬>으로 될것 같다.”
    “건 또 어느 장단에 붙여 하시는 말씀인지…”
김치찌개를 훌훌 불며 떠마시던 현수가 경아의 낯빛을 지었다.
    “나 직업바꿈을 하려고 그런다.”
    “네 그 풍만한 옥체에 싸이판으로 로무 나가려 그러니?”
    “아니 롱담 아니고 진짜야!”
     “우리 예술단이 메마른 시국에 적만 남겨두고 홀라당 빠져 굿이나 보려구.”
     “아니 완연 버렸어. 지금 세월에 직업이 다 뭐니?”
     “뭐? 버렸다구? 대체 어떤 직업이기에? 어디 대통령자리라도 비였더냐?”
     “멍첨지한테로 가려고 그런다.”
    “멍첨지라니?”
    “멍멍! 강아지 말이야. 애완견사육회사 있잖니?”
장현수는 입에 물었던 맥주를 푸! 내뿜고말았다. 입가에 맥주거품이 게발린채 네거리에서 낯도깨비나 만난 기색을 지었다. 호주머니를 부산히 뒤지며 담배를 찾았다.
“첼로”가 복무원을 불러 “락타”한갑을 요구했다. 담배를 절반쯤이나 태우고나서야 현수가 입을 열었다.
   “너 돌았다. 완전히 돌았어.”
   “막지 마. 그리고 비웃지도 마, 난 이미 용단을 내렸어.”
    “너 네가 어떤 신분인지 알고나 있니? 넌…”
    “첼로”는 현수의 말을 중등 잘랐다. 현수의 본을 내여 말을 받았다.
    “알고있어. <음악의 황후이신 바이올린 아버지같게 생긴 첼로>를 다루는 연주가야. 하지만 지금 세월에 음악만으로는 허기진 배를 못말려.”
   “그렇다고 그 연주가의 손으로 강아지 털이나 쓰다듬고 강아지 똥이나 쳐대야 한단 말이냐?”
현수는 숭어마냥 몸을 벌컥 솟구며 열기를 뿜었다.
   “그건 비단 제 자신의 인격을 낮추는것일뿐만아니라 신성한 음악을 모독하는거야. 아무리 애완견장사가 돈벌이 잘돼도 그렇지. 그래 네 존안에는 음악이고 예술이고 개보다 못해보이느냐?”
 “교과서 읽지마. 넌 아직 세상돌아가는 리치에 참눈이 밝지 못해…”
   “첼로”는 담담한 기색으로 현수의 상설 같은 노기를 가볍게 받았다. 그 무여지한 배포유에 현수는 그만 기가 딱 질렸다.
    “됐다 됐어! 소귀에 첼로타기로구나. 에이- 김샌다. 술이나 따라아, 임마!”
   현수는 억병으로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현수가 소리소리 지르는 바람에 무슨 변고라도 생겼나싶어 한식관 마담이 뛰여왔다. 이미 취기가 오른 현수는 마담을 보고 피씩 웃어보였다.
    “별일없을테니 걱정말아요. 아줌마, 친구사이에 한잔 들어가니깐 너무너무 좋아서 그래요. 그러게 자꾸만 걱정스런양 하지 말라니깐요.
우린 예술단서 일봅니다. 난 춤추고 저 놈은 첼로켜고, 자 봐요, 아줌마. 이 자식 꼭 마치 챌로처럼 생겼죠…”
    현수는 “첼로”를 등뒤로 껴안고 그의 풍대한 배를 손가락으로 박자 짚으며 다른 손의 식지로는 첼로의 코밑에 대고 밀고 당겼다. 마담이 풀럭 실소를 뿜었고 곁두리의 복무원들도 그 모습이 재미나다는듯 기침소리처럼 쿡쿡 웃었다. 그 웃음이 멎기도전에 현수의 장난기 묻었던 얼굴이 험상궂게 변조되여갔다.
    “그런데 이 첼로가 지금 줄이 끊어져버렸어요. 망가지고있단말이얘요!”
하면서 현수는 주먹으로 “첼로”의 그 풍성한 배허벅을 모질게 들이박았다…
    “첼로”는 취하여 자기를 주체하지 못하며 자꾸자꾸 무너져내리는 현수를 끌다싶이해서 하숙집으로 향했다.
밤바람이 불어왔다. 여름날의 혼탁함을 실은 바람이였다. 갑갑해난듯 현수가 자축자축 활개치며 네거리가 터져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딸리아민요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의 구절이였다. 악청을 지르다싶이 노래를 불렀다.
    “여름날의 마지막 한송이 장미가 /피여나고있네/ 장미의 모든 반려는 죽어갔다네/ 그래도 장미는 계속 피여나려 하네…”

 

(9)

 

    수확의 계절에 무대에 올린 “은장도”는 풍요론 수확을 가져왔다. 관중들이 접하기 어려운 무극극종이였지만 번마다 만좌를 이루어 예정했던 공연기일을 연장해야만 했다. 그에 따라 외성의 조선족잡거지역들을 돌며 공연해 역시 선풍을 일으켰다. 여느 매스컴이 말하다싶이 “극은 그 묵직한 예술력량으로 불황의 늪에 빠진 연예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있었다.
이날은 선전부 부장이며 문화국 국장이며 주요지도자들이 극을 관람하고 극에 높은 격찬을 주었다. 극이 끝나자 배우들은 스스로 밤시장에 모여 축하의 성찬을 벌렸다. 주역을 맡은 현수의 기쁨은 그 누구보다 절정에 닿아있었다. 그런데 웬지 그 성찬에 녀주역이며 안무인 차수경선생이 보이지 않았다. 차선생과 이 격정을 함께 나누고픈 현수는 저으기 허전한감이 들었다. 며칠전 어줍게 라이터를 선사했을 때  소리없는 웃음과 함께 말없이 받아주던 차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라이터로 담배 한가치를 붙여물고 어스름이 내리는 창가에서 춤에 대한 구상(혹은 저돌적인 이 제자에 대한 생각?)을 하고있을 차선생을 그려보았다. 들큰한 웃음을 입귀에 물며 현수는 기쁘게 술을 많이 마셨다.
밤은 자정으로 다가온다. 홀로 하숙집을 향할 때까지도 현수는 기쁨과 격정을 곰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중심거리를 지나치던 그의 눈에 외삼촌의 집이 보였다. 늦은 밤이였지만 불이 밝혀져있었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외삼촌의 집으로 치달아 올라갔다. 부풀디부푼 이 격정을 아무와라도 함께 나누지 않으면 그 체증된 기쁨에 질식할것만 같았던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 조금은 미안쩍게 허나 상기된 얼굴로 현수는 초인종을 눌렀다. 응대가 없다. 다시한번 길게 눌렀다. 역시 응대가 없다. 실망감을 안고 층계를 내리는데 절컥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잠옷바람의 외삼촌이 문을 반쯤 열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아 외삼촌!” 현수는 반색해하며 뛰여갔다.
     “현수로구나. 헌데 오밤중에 왜?”
   “한밤중인데는요. 외삼촌네 집인데 그런 허물도 세워야 합니까?”
    현수는 끼니때 찾아온 손님을 보듯 귀찮은 표정을 짓고있는 외삼촌을 밀치다싶이하며 접대실로 들어가 쏘파우에 벌렁 주저앉아버렸다. 잠옷깃을 여미며 한켠에 켕긴 표정으로 섰는 외삼촌을 보며 현수가 말했다.
   “극이 잘돼서 너무 기뻐 그럽니다. 여하튼 외삼촌이 고마웠어요. 그렇게 큰 도움을 주어서.”
    외삼촌의 얼굴에 어덴가 힘든 웃음이 지어졌다.
   “오늘 령도들도 관람하러 갔댔다면서. 전국콩클에 이 극을 내보기로 합의가 다된 셈이더라. 래일저녁 내 한상 차리고 단장님과 배우들을 청할란다. 축하해줘야지.”
    외삼촌은 역시 그 자리에 엉거추춤 선자세로 말했다. 그러면서 자주 침실쪽을 곁눈질했다. 흥분의 도가니에 흠씬 빠져들었던 현수는 뒤늦게야 외삼촌의 궁한 표정을 읽어낼수 있었고 따라서 옷걸이에 걸려있는 녀자용 핸드빽을 보아낼수 있었다. 딸 같은 녀자를 맞아들이고 전처를 비명에 가게 하며 야단법석을 떨던 외삼촌은 그 애젊은 처녀와도 두해를 채 지내지 못하고 갈라져버렸다. 그리고 여태 혼자서 지내고있는터였다.
(령감태기. 그러니 가만히 군재미를 보고있었고나. 실로 안스러운 걸음을 했는걸.)
현수는 침실쪽을 곁눈질하며 속웃음을 웃었다. 허나 다음 순간 버림받은 외삼촌댁의 참사가 떠올랐고 녀자를 주리게 밝히고있는 외삼촌에 대한 염오가 욱 치밀어올랐다. 황홀함이 끊기고 체증된 심경이지만 조카인지라 축객령은 내리지 못하고 오만상만 찌프리고있는 그 모양이 얄밉고 우스워 현수는 배포유하게 그 자리에 눌러앉아 떠날념을 않았다. 악동들 같은 장난기 묻은 웃음을 지으며 탁자우에 놓인 담배갑에서 담배 한개비를 꺼내물었다. 그러면서 딴전을 부렸다.
    “외삼촌, 이 조카의 연기가 괜찮았죠?”
    “응 좋았다, 좋았어.”
     외삼촌은 다른 곳에 눈을 팔며 대답을 괴여올렸다. 현수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꿀꺽 삼키며 라이터를 켜들었다. 불이 확 일었다. 그리고 음악이 터져나왔다. 낮고 연연한 가락이였지만 현수에게는 신경을 지끈 란타하는 질타성처럼 들렸다. 현수는 몸을 흠칫 떨었다. 명곡 “솜다리”의 음조였다.
현수의 입에서 담배가 떨어져나갔다. 현수는 라이터의 뒤면을 뒤집어보았다. 커다랗게 커다랗게 클로즈업되며 현수의 시야로 예리한 창끝처럼 박혀들어오는 “ㅈ”! 현수는 라이터를 팽개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앞을 막아서며 기급한 소리를 지르는 외삼촌을 밀치며 침실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시몬스 침대우에 이불을 잔뜩 끌어 머리까지 뒤집어쓴 몸뚱아리가 보였다. 현수는 달려들어가던 그 서슬대로 이불을 콱 제껴버렸다. 풍만한 알몸뚱이를 한껏 옹송그리면서, 하얀 살갗을 한사코 가리면서 얼굴을 죽어라고 베개에 틀어박는 녀자… 그 와중에도 그만이 가질수 있는 유연하고 아름다운 목에 박힌 태짐을 현수는 분명히, 분명히 보았다.
현수의 수정체에 불이 피여 황황 일었다. 현수의 입에서 괴상한 절규가 터져올랐다. 현수는 미친 사람처럼 침방을 뛰쳐나와버렸다.
    층계를 달아내리다 넘어져 콩단처럼 뒹굴었다.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깊은 호수에서 악어에게 쫓기는 려행자처럼. 깊은 수림에서 늑대에게 쫓기는 심마니처럼, 허깨비에 놀라 쫓기는 야행자처럼 죽어라고 뛰고 뛰였다.
밤택시 하나가 그의 앞을 스치다 까악! 쇠갈기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머리가 불쑥 나오고 욕설이 터져나왔다.
   “죽고싶어 환장냐? 쌍놈새끼!”
허나 택시를 방임한채 욕설도 듣지 못한채 현수는 뛰기만 했다. 그러다 그 체력의 한계를 넘고 또 넘어서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가로등을 짚으며 길녘에 서버렸다. 단김을 헉헉 뿜어내였다.
하늘 향해 머리를 한껏 젖혀버렸다. 밤하늘의 자그만 별들이 소슬한 가을바람에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안주하지 못한 령혼들이 방황하는것 같은 별, 그 별이 현수에게는 뭉근한 시각적 괴로움이였다. 현수는 머리칼을 집어뜯으며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아! 아!! 아!!!”
    응고된 슬픔을 도무지 깨뜨릴수가 없어 목울음도 뿜겨나오지 않아 그저 고함만 지르고 또 질렀다.

 

(10)


    장식회사에서 마련된 축하연회는 시가지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회관에서 있었다. 모두들 즐거워하며 식탁에 둘러앉았다.
현수만이 침체된 모습이였다. 염병을 앓고난듯 표상이 우울하고 해갈했다. 여느때와 달리 빗지 않고 눈께까지 흘러내린 머리칼사이로 사람마다를 째려보고있었다.
    “다음은 우리의 무극에 두터운 협찬을 주신 장식회사의 최경리께서 축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필줄 모르는 깡마른 체구의 단장이 평소와는 달리 필요이상으로 격동하며 소리높여 말했다. 박수가 터져올랐다. 한동안 지속된 요란한 박수가 끊겼다.
그런데 한사람의 박수소리만은 끊길줄 몰랐다. 현수였다. 의자에 젖버듬히 앉아 현수는 야유어린 자세로 박수를 짝짝 쳐대고 있었다. 곁에서 팔을 당겨내려서야 박수는 멎었다.
현수의 외삼촌이 비대한 몸집을 힘들게 일으켰다. 마른기침을 두어번 짜내고는 입을 열었다.
    “에- 우리는 무극 <은장도>에 많은 돈을 협찬했습니다. 허나 민족문화의 번영을 기리는 의미에서 본다 할 때…” 또 박수소리가 울렸다. 한사람의 박수소리였다. 현수였다. 곁에서 덴겁해하며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외삼촌이 마른기침을 또 한번 깇고나서 말을 이었다.
    “…민족문화의 번영을 기리는 의미에서 본다 할 때 이 돈은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아주 유용하게 쓴 돈이라고…”
    최경리가 밤새껏 구사해낸 화려한 연설은 또 한번 현수의 박수소리에 끊겼다. 이번에도 곁에서 제지를 했고 단장의 아니꼬운 눈초리가 질러왔다. 최경리는 말을 채 마무리지 못하고말았다. 현수쪽을 힐끗 건너다보고나서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잔을 추켜들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다 함께 잔을 듭시다!”
   모두들 의자를 덜컥이며 일어나 잔들을 맞쪼았다. 허나 현수만이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무용조의 친구가 그를 당겼다.
   “너 오늘 왜 그래? 기쁜 날인데 한잔 들어야지.”
   “나 술 끊었다. 그저 약수면 돼!”
  그 친구는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현수의 컵에 약수를 듬뿍 부어주었다. 현수는 한모금 찌우다가 짐짓 오만상을 찌프렸다.
   “이 약수가 왜 이래? 분명 가짜저질품이야. 어이, 복무원- “
    애된 얼굴을 가진 처녀접대원이 달려왔다.
   “이 물맛이 그닥잖구만, <삼꽃>표 약수가 있나?”
    말세가 트집스러웠다. 인차 약수병이 바뀌였다.
   “어? 이 물은 더 한심해. 수도물을 그대로 넣어 팔잖아. <장백〉표 바꿔줘!”
 “저 미안합니다. 우리 회관엔 <장백>표가 없습니다.”
    필경 닭알에서 뼈를 찾으려는 뒤틀린 심사를 보아냈지만 량호한 서비스교육을 받은듯 접대원은 여전히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여게 없다면 다른 곳으로 가 사오면 될 것 아냐? 씨팔!”
   현수는 까닭없이 증을 버럭 내였다. 좌중의 눈길이 그한테로 몰부어졌다. 접대원이 수욕을 받은 마음을 안고 물러갔다. 허나 현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식탁우에 풍성히 놓인 음식을 바라고 야료를 부렸다.
   “이 갈비는 뜯어먹다 나머지를 되가져온 것 아냐?”
   “이 돼지똥집볶음은 깨끗이 씻겨진 것 같지 않구만.”
     몇몇은 그만 들었던 수저를 내려놓고말았다. 어줍잖은 일에도 신경을 벌컥벌컥 내는 그 반상적인 거동에 모두들 눈에 버팀목을 하고 그를 지켜보았다. 외삼촌이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
    “우리 조카 왜 이래? 어디 몸이 말짼가보지 자, 한잔 들자. 삼촌이 축하하는 마음에서 한잔 부을 테니.”
    현수가 머리를 저으며 밀막아버렸다. 외삼촌의 존재를 완연 무시한채 먼산을 쳐다보는 표정을 지었다.
   “주역이 되였다고 외삼촌마저 숙보냐? 자 한잔 들어라.”
   “그래 기쁘게 들어야지. 외삼촌이 붓는 술인데.”
    단장이 턱짓으로 마시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드세요. 그럼 못써요.”
 한켠에서 조용히 현수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앉았던 차수경도 따라 권고했다. 현수는 마지못해 일어나며 잔을 받았다. 외삼촌을 싸잡아 노려보며 표나게 비양거리는 어조로 내뱉었다.
   “참 뜻있는 협찬입니다. 외삼촌! <천냥으로 미인의 웃음 한번 산다>더니. 협찬의 보람이 크군요.”
하면서 현수가 술잔의 술을 땅바닥에 주르르 쏟아버렸다. 그 말에 정곡을 찔린 외삼촌의 얼굴이 일순 어둡게 무너졌고 한켠에서 단장이 참다못해 소리질렀다.
   “왜 그러오? 장현수… 기쁜 날 공개장소에서 그게 뭐요? 아무리 제 삼촌이기로서니…”
    기분전환을 하련듯 차수경이 일어서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자 제가 붓지요. 우린 파트너인데요.”
    차수경이 난국으로 어쩔바를 모르고있는 최경리를 자리에 안내하고는 그 술병을 앗아들고 현수에게 한잔 따랐다.
   “취한것 같구만요, 장현수.”
    그러는 그의 눈길이 현수의 표동하는 심기를 읽고있었다.
   “전 아직 한잔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저의 머린 지금처럼 명석해본적 없어요.”
    현수는 물찌똥 같은 웃음을 갈기고나서 천착할듯한 눈길로 차수경을 지켜보았다. 차수경은 그 눈길에서 한기를 느꼈다.
   “그럼 함께 한잔 들자요! 일후에 제가 해석해줄 테니 우선 극의 성공을 위해 축배를 들자요.”
차수경은 폭발물을 다루듯 현수를 조심조심 어르었다. 현수는 그러는 선생의 손에서 잔을 받아들었다. 선생에게도 한잔 따랐다.
    “저도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데요?”
   차수경은 현수의 잔에 자기 잔을 가져다대며 현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손떨림의 파장이 현수의 손에까지 전해졌다. 도고하던 선생의 전에 없던 그 질린 모습에 놀라움이 곁들인 기묘한 서글픔이 현수의 전신으로 퍼져내렸다. 현수가 조소의 력점을 마디마디 찍어가며 한마디 뱉어냈다.
    “선생님은… 실로 최고의 배우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갈보입니다!”
   차수경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의 손에서 잔이 미끄러져내렸다. 좌중이 웅성거렸다. 차수경의 눈확으로 눈물이 가득 번져나오고있었다. 단장의 인내가 한계를 넘었다. 식탁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망태기야 망태기! 어데서 저런 망나니를 봤나.”
 그러는 단장을 방임한채 현수는 외삼촌의 곁으로 다가갔다. 불안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외삼촌의 땀방울이 내배인 대머리를 손바닥으로 쓱 문질렀다.
    “외삼촌, 우리 차선생이 너무 예쁘다고 밤마다 무리하지 마세요. 심장병에 좋지 않다고 그럽디다…”
    차수경은 울음이 터져나오는 입을 막으며 얼굴을 싸쥐였고 단장은 경련을 일으킬 듯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질렀다.
    “저런… 저런 망나니! 나가! 이 자리서 나가-”
    현수는 차선생을 한번 힐끗 보고나서 회관의 문을 박차고 나섰다.
말리는 사람도 따라나오는 사람도 없었다.
마가을의 찬바람이 일고있었다. 나무가지 흔들며 전주대까지 찡찡 울리며 바람이 일고있었다. 현수는 전에 없던 한기를 느꼈다. 하늘 같은 슬픔이 울컥 가슴을 채웠다. 어둠에 거뭇이 앙금진쪽으로 현수는 어깨를 싸안고 걸어갔다.
골목길에 들어서서 어느 한 담장에 머리를 맞대로 서버렸다. 넝마처럼 만신창이 된 의식을 정리해보려 현수는 몸부림쳤다. 눈물이 찡- 괴여올랐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덩이가 꾸역꾸역 치밀어오르고있었다. 그는 그 자세대로 구겨박혀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서럽게 서러웁게 울었다.
고황이 든 나뭇잎들이 들먹이고있는 그의 어깨우에 내려앉았다…

 

(11)

 

     드디어 수도로 가서 전국콩클에 참가하게 되였다. 향발을 앞두고 고향사람들앞에 마지막 한차례의 회보공연이 있게 되였다. 새로운 보조를 위한 이 공연을 예술단에서는 몹시 중요시하였다. 배우들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분장하였고 악대, 조명, 도구인원들도 열심히 뛰였다. 허나 현수는 극의 연출을 코앞에 두고 분장도 않은채 휴계실의 접의자에 구겨박혀있었다.
“현수, 장현수!”누군가 그러고있는 그를 불렀다. 현수 느슨히 감고있던 눈시울을 귀찮게 치떴다.
“첼로”였다. 시체옷차림에 머리를 점잖게 빗어넘긴, 일전의 태깔을 훤히 벗고 기름기 흐르는 “첼로”가 그의 눈앞에 서있었다. 품에는 하얀 털을 가진 애완견 한마리가 안겨있었다.
    “수도공연을 간다니 보러 오는 길이다. 헌데 너 당금 막을 열겠는데 여기서 뭘 해? 망석중이 돼가지고.”
    현수는 대답대신 씁스레하니 웃어보였다. “첼로”가 놀란 기색을 지었다.
   “너 그사이 왜 이렇게 반쪽이 됐냐? 술이 과한 모양이로구나.”
    “첼로”는 얼굴이 표나게 수척해져 생기를 잃고 부옇게 침체된 현수의 모양을 보고 괘념의 말을 하였다.
   “그래 장사가 잘돼? 경리님?”
    현수는 대답 대신 야유비슷한 물음을 내들었다. 그 물음에 “첼로”는 흥분을 살렸다.
    “이제 사람사는 멋과 재미가 알린다. 봐라, 이 신사스타일이 어때?”
 “첼로”는 옷자락을 떨치며 흥감스레 물었다.
   “개가 곱구나.”
 현수는 대답대신 “첼로”의 품에 안긴 애완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불현듯 개의 목을 꽈악 조였다. 캐갱캐갱- 개가 비명을 질렀다. “첼로”는 덴겁하여 현수의 손을 탁 쳐버렸다.
   “미쳤나? 2만원짜리다. 얘!”
현수는 충혈된 눈길로 “첼로”를 건너다보며 탄력없는 음성을 내뱉었다.
   “잘 지켜봐! 마지막 공연인데…”
    그러고는 분장실로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조명이 들어오고 막이 열렸다.
모두가 현수의 정서에 대해 걱정하고있었는데 무대에 오르자 현수는 완연 딴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매개 춤사위, 매개 표정에 그는 여느때보다도 더 알심을 넣고있었다. 그는 완연 극에 빠져있었다. 관람석에서 련이어 박수가 터져올랐다.
현수의 기량 발휘가 이렇듯 잘되는 것을 차수경은 처음 보았다. 그녀 역시 현수의 섬세한 몸놀림과 격정에 감화되여 극정에 잠겨들고있었다. 아픔과 슬픔과 행복이 공존한 표정과 몸놀림이 현수의 얼굴에서 일었고 춤사위에서 지어지고있었다.
      드디여 종장이 막을 열었다. 차수경이 우려를 가져왔던 마지막 장절을 현수는 그렇듯 훌륭히 마무리해가고있었다.
      현수의 눈확으로 넘쳐나오는 눈물이 분장을 지우며 흘러 내렸고 강한 몸놀림에 휘뿌려지고있었다.
총각이 변심한 처녀에게 마음을 돌릴 것을 권유한다. 허나 처녀는 앵돌아진채로이다. 마음의 아픔으로 총각이 몸부림한다.
조명이 암울해진다. 곁두리 배우들의 춤사위가 재빨라진다.
곡조가 계단의 막바지로 톺아오른다.
악대지휘의 지휘봉이 미친듯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총각이 품속에서 사랑의 징표인 은장도로…
순간 차수경은 “총각”의 품속에서 무대도구 은장도가 아닌 예리한 칼 한자루가 번뜩 나타남을 느꼈다.
놀라운 표정을 마무리하기전에 무대조명에 유난히 날카로운 빛을 번뜩이며 칼은 가차없이 차수경의 배허벅에 푹 박히였다. 극심한 동통에 차수경은 두눈을 치뜨며 입을 딱 벌렸다. 하얀 무용복 앞섶으로 삽시에 흥건한 붉은 피가 번져나왔다.
그 붉은빛이 장현수의 시망막을 찔렀다. 그제야 정상상태로 환원한듯 장현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생님?!) 악연히 놀라며 차수경을 부축하려 하였다. 이때 차수경이 낮으나 저력감있는 소리로 현수의 걸음을 밀막았다.
     “계속… 계속 해봐요.”
     차수경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오금꺾이는 몸을 가까스로 가누며 마지막 맴을 돌고나서 마지막 춤사위를 끝내고나서 꽃잎이 스러지듯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암전으로 무대가 어두워졌다. 막이 서서히 내렸다. 무대우의 변고도 모르고 그 핍진한 연기에 매료되여 관중석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올랐다.
다시 불이 밝혀졌을 때 녀무용수 몇몇이 그제야 참극을 보아내고 깨지는듯한 비명을 질렀다. 극의 성공에 희색이 만면하여 무대옆측으로 달려나오던 단장의 얼굴이 순간에 납빛으로 질렀다. 몸을 굽히고 차수경을 안아 일으키려던 그의손에 피가 흥건히 묻어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이게…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단장이 피묻은 손을 쳐들며 기겁초풍을 했다. 여기저기에 구멍난 배를 혼자 막는 사람처럼 어쩔바를 몰라하며 그저 악청만 질러댔다. 장현수의 곁에 섰던 배우들이 한켠으로 비실비실 몰려섰다.
그런줄 모르고 무대밖에선 여전히 박수소리가 멈출줄 몰랐다. 배우들의 얼굴을 다시 요청하는듯 박자를 맞추어 착착 박수소리가 울렸다. 그 박수소리에 단장이며 배우들은 정신이 들었다.
   “빨리 병원에 호송해야지. 병원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속에 모두들 차수경을 안아들고 무대안측으로 달아내렸다. 그때까지 돌처럼 굳어져있는 장현수를 보던 단장이 또 한번 악청을 질렀다.
   “야! 게 누가 없냐. 경찰에두 알려라, 경찰에…”
   현수는 조종사가 퇴근해버린 인형극속의 인형마냥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있었다.
단장의 경황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관객들의 갈채가 들리지 않았다. 꼭마치 꿈을
꾸고있는 기분이였다. 초점잃은 그의 눈에 자위가 안개에 싸인듯 뿌옇게 변조되여
보였다.
얼마를 지났는지 그 눈길에 록색의 빛이 비쳐들었다. 흥건한 록색의 덩이들은
점점 가까워오며 그 형체를 드러냈다. 순간 지각한 리성이 행위의 좌표를 찾고있는 그의 뇌리를 노크했다. 여태껏 미동도 않고있던 현수는 후닥닥 몸을 돌렸다. 허둥이다가 장막을 헤치고 관중석쪽을 뛰여내렸다.
  “서랏-“
경관들이 날카로운 고함을 지르며 바싹 붙쫓았다. 광열적으로 박수를 쳐대며
배우들의 재현을 기대하고있던 관객들은 뜻밖의 광경에 일순 멍해지고말았다. 새로운 극을 보는듯한 기분으로 그들의 각축전을 지켜볼뿐이였다.
문어귀에서 자전거관리원 아낙네가 그에게 밀쳐 나딩굴었다. 밖을 벗어난 현수는 무작정 내뛰였다. 그의 발길은 병원쪽으로 향해있었다.
필사의 힘으로 달리고있는 그의 눈앞으로 점멸하는 불빛의 야경 대신 한폭 또 한폭의 대형 스크린(银幕)이 생생한 화면을 담고 펼쳐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귀전에는 은은한 환청이 섞어 울렸다.
하얀 의장차림의 녀인이 승무를 추고있다.
 소년 하나 부끄러이 요자리를 씻고있다.
   하얀 살결에 태짐하나가 클로즈업되여온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다리없는 웬 사내하나가 피스텔화 한폭을 꼭 껴안고있다.
   “전 예술에게 시집갔어요!”
   번대머리 뒤주배의 나그네를 알몸뚱이 녀인 하나가 난딱 끌어안고 교성을 지른다.
   “선생님은 갈보입니다!”
   붉은 빛깔의 조명이 무대를 흥건히 물들인다.
   종소리가 울리며 막이 내린다.
   꿈나락의 저켠처럼 병원의 하얀 건물이 보였다. 병원의 랑하로 뛰여들어가면서 현수는 마주오는 간호원 하나를 껴잡고 미친듯이 악청을 질렀다.
    “구급실이 어데냐 구급실!”
    황야의 무법자같은 현수의 호통질에 간호원은 사시나무 떨듯하며 왼켠을 가리켰다. 그쪽으로 밀차 하나가 나오며 수술실로 달리고있었다.
“아, 선생님- ”
현수는 밀차주위에 몰려선 예술단사람들을 헤아려보고 밀차로 덮쳐갔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다급한 발구름과 함께 경관들의 우악진 손아귀들이 그의 머리칼이며 뒤덜미며 팔뚝이며를 사정없이 사려잡았다.
   “놔요. 이걸 놔요!”
현수는 상처입은 맹수처럼 포효하며 몸부림쳤다.
   “한번만 한번만 선생님을 보게 해주세요. 제발 선생님을 보게 해주세요.”
   허나 그의 반항은 무기력했다. 경관들은 흉범을 제압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그를 사정없이 뒤로 제껴버렸다.
   “제 피를 뽑아드리렵니다… 선생님께 제 피를 … 제 피를 몽땅이라도 뽑아드리렵니다.”
   “이 미친놈아!”
꺽두룩한 체구의 경관들이 억다짐으로 현수를 랑하밖으로 질질 끌어냈다.
   “선생님! 선생님- 전 아직… 선생님에게 <춤추는 무녀> 도 못드렸는데요. 선생님, 아! 선생님- “
   현수 끌려가며 창자를 쥐여짜는듯한 소리를 질러댔다.
“선생님- 선생- 님!!!”
   현수의 궁지에 빠진 소리가 랑하밖으로 점점 멀어져갔다.
   거리에선 큰바람이 일고있었다…


“도라지” 199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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