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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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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주55돌특집] 소설 조선족이민사 (3)
2007년 09월 02일 17시 43분  조회:3298  추천:50  작성자: 김혁
 
. 한 부의 소설로 읽는 중국조선족 이민사 . 
 

조모의 傳說 (3)



김 혁
 
 

이듬해 쌍가매는 등돌린 미운 신랑을 꼭 닮은 아들을 낳았다.
그해 겨울은 여느때보다도 추웠다. 어느 별도 성긴 어두운 밤, 훈장네 아들이 느닷없이 마을에 나타났다.
거쿨진 사람 몇을 거느리고 마을로 찾아 왔다. 뒤따른 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리대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머리를 짧게 치깎고 있었고 볼이 홀쭉하게 패여있었으나 혁대를 두르고 발목에 각반을 친 훈장의 아들은 그렇게도 기품이 있어보였다. 성에 불린 도수안경속으로 보다 명징하고 날카로워 진 그의 눈길을 모두들은 느낄수 있었다.
그 타는듯한 눈길이 허공에서 쌍가매의 눈길과 얽혔고 쌍가매는 부지중 머리를 숙여 버렸다.

 

오랜만에 나타난 훈장네 아들의 품에는 돐도 안된 아이가 피륙에 쌓여 안겨 있었다. 그가 낳은 아이라고 했다. 밀림에서 생사를 함께 하던 녀자와 결혼했?아이를 보았는데 일본토벌대의 습격에 녀자가 죽었던것이다.
배가 고팠던 애는 꽃잎같은 입술을 열며 애자지게 울었댔다. 어떤 련민이 쌍가매의 가슴을 모질게 훑고 지났다. 쌍가매는 품에서 자는 자기 애를 내려 놓고 낯선 아이의 입에 젖을 물렸다. 가슴을 파고드는 애의 태열과 황달이 채 가시지않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훈장집 아들을 꼭 닮은 아기를 꼭 껴안으면서 쌍가매는 왠지 구름덩이같이 붙잡을수 없는 이름할수 없는 미열(微熱)을 느꼈다.




* 궐기해 나선 항일련군 전사들

 * 김좌진장군이 일본군 수천명을 전멸한 청산리대첩 유적지

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떠난후로 훈장의 아들은 자주 마을로 찾아왔다. 허나 아이를 보러 온것이 아니였다. 마을의 청년들을 무어 동맹청년단을 만들었다. 삼굽집이 그들의 거점으로 되였다. 원체 라병환자의 집으로 소박맞던 집이니 일본사람들이 기피하기에 안전하다는 것이였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밤이면 살며시 모여들어 훈장집 아들의 연설을 들었고 그에게서 노래를 배웠다.

<<만주의 벌에 불이 붙는다
시뻘건 화염 그속에서
반일하는 대중의 함성이 난다...>>

여직껏 노래라고는 엄마가 부르던 <<월강곡>>밖에 몰랐던 쌍가매는 열심히 <<총동원가>>라는 그 노래를 배웠고 훈장아들의 불꽃튀는 연설을 들었다. 나지막하나 박력있는 그의 소리에는 사람을 옭아매고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방안에는 겨릅대등의 불빛으로 밝은 귤빛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격앙된 노래가 등의 불티처럼 튀여오르고 있었다. 불빛에 익은 얼굴얼굴들이 유약을 바른 질그릇처럼 번들거렸다.
스러진 아궁이에 솔가지를 꺾어넣고 모여온 사람들에게 우물물을 길어 대접에 부어 놓고는 아이를 껴안고 곁에서 훈장아들의 선창을 받아 노래를 부를때면 충격이 달군 인두처럼 쌍가매의 가슴을 지지고 있었다. 신심을 다잡는 노래를 흥얼거리노라면 불꽃 사윈 가슴에 뜨는 별빛을 쌍가매는 은연중 느낄수 있었다.

훈장아들이 보급한 노래소리는 한사람 두사람에 걸쳐 온마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노래는
뒤산 자락의 자두나무숲에도 이슬처럼 내렸고
내가 갈대숲에서도 바람처럼 서걱이였고
아낙들이 빨래하는 우물가에도 잠자리처럼 내려앉았다.
우물곁에 섰는 버드나무의 수천수만의 잎사귀에도 노래의 음조는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쌍가매는 은근히 훈장의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물에서 물을 푸다말고 두레박을 늘어 뜨린채 멍해 있기가 일쑤였고 겨릅대등 밝힌 집에서 사념에 잠겨있기가 일쑤였다. 로인들은 겨릅대등의 등찌가 우로 꾸불면 손님이 오고 아래로 꼬불면 안온다고 미신 했다.
쌍가매는 겨릅대등의 등찌가 우로 꼬불기를 바랬다. 쌍가매는 자신속에 움추려있는 어떤 주체할수 없는 기다림을 스스로 느낄수 있었다.

일본총령사관놈들과 그들이 사촉하여 무어 만든 자위단이 마을로 덮쳐든것은 그해 겨울이 지난 봄께였다.
총칼차고 군화를 절걱이며 누렁옷을 입은 한무리의 군대가 광분하는 맹수처럼 덮쳐들었다. 혼겁한 나머지 참깨처럼 줄어든 마을사람들은 둔탁한 총박죽에 날큼한 창끝에 윽박질려 우물가로 끌려갔다. 우물가에서 사람들은 공포에 밀려 한폭의 벽화같이 고착되여 버렸다. 매운 봄바람이 사람들의 이마를 날카롭게 베며 지나갔다.




* 항일지사들을 체포하고있는 왜놈토벌대


일본 토벌대가 황구처럼 질질 끌고 온 사람 하나를 마을사람들앞에 내 세웠다.
비인간적인 구박으로 그 사람은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매돌속에 들어간 물불린 콩알처럼 으깨여져 있었다. 피투성이 얼굴에 깨여진 안경이 간신히 걸려 있었다.
등뒤로 결박을 지운 그 사람이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섰다.
바람에 피로 적셔진 그의 머리칼이 불불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꼭마치 화염처럼 보였다.
마을사람들을 향해 그사람은 피발린 얼굴을 비틀어 간신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사람을 겨우 헤아려 본 쌍가매가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나갔다. 그는 다름 아닌 훈장의 아들이였다.
집총자세를 하고 저승사자처럼 험상궃은 표정을 한 왜놈들 무리앞에서도 훈장의 아들은 두렴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참하게 몰골이 일그러졌지만 그 미소만은 금속같이 세련된 미소였다.
그 찬란한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타앙!
총성이 울렸다.
공포에 응고된 침묵을 찢어발기는 총소리속에 훈장의 아들은 우물가에 천천히 모로 쓰러져 버렸다.
쌍가매는 터져나오는 공포와 울음을 막으려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두눈을 지질러 감았다.
구(區)의 서기직무를 맡아나서 일제의 주구와 악패지주를 청산하고 무기를 탈취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성세호대하게 벌려나가던 훈장의 아들은
광복을 앞둔 어느 날,
그 어떤 신념을 미소와 함께 머금고 쓰러졌다.
산더기마다 류혈하듯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여나던 봄날이였다.

        

 * 항일련군전사를 참살하고있는 일본토벌대


그날 훈장네 일가족도 일본토벌대와 자위단에 의해 몰살당했다. 놈들은 훈장네 집에 불을 질렀고 일가족의 시체를 우물에 처넣었다.
토벌대가 간후 마을사람들은 시체를 건져내고 우물을 가셨다. 우물가 높은 더기의 락엽을 걷어내고 부엽토 밀어내고 붉은 흙속에 훈장아들의 시체를 묻었다.
훈장네 아들은 우물의 수호자로 되여 우물가에 묻혔다.
그후로 봄만 되면 사람들은 그 무덤가에 진달래가 아름벌게 놓여 있는것을 볼수 있었다.

훈장네 집은 일가족이 다 죽고 다행이도 밀영에서 낳은 그 돌잡이만이 살아 남았다. 훈장의 아들이 참살당한 우물가에서 쌍가매는 등짝이 터질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포수의 아들이 죽었을때 속울음을 울었던 그는 이번에는 소리내여 울었다. 련줄로 자기곁을 떠나는 인연밭은 이들의 죽음을 두고 내장을 토해낼듯 한 뜨겁고 깊디긴 오열을 느꼈다.


빨갛게 짓무른 눈으로 쌍가매가 그 강보의 애를 맡아 나섰다.

<<어째 이래냐? 니하구 훈장집 아들이 무슨 사지어금이라구 다른 사람도 아니구 니가 나서서 이래냐?>>

아버지가 야단을 떨었고 동네 사람들도 의뭉스런 눈을 치떴지만 쌍가매는 흔연히 그애를 맡아 나섰다. 자기의 삶에 조용히 련루되여 있는 훈장의 아들을, 번개맞고 연기나는 자기의 삶에 힘과 정열을 주었던 훈장의 아들을 쌍가매는 잊을수 없었던것이였다. 아이들은 도담도담 잘도 자랐다. 탐스런 머리칼, 호박(琥珀)색피부, 통통히 살이 오르는 손목, 그 작은 생령들을 지켜보는 쌍가매의 부연 눈빛도 아이들의 눈을 닮은 검은 생기로 빛났다.
그리고 그애들을 위해 한 몸을 던졌다. 비행장이나 신작로를 닦는 근로봉사대속에 끼여 인부들에게 밥을 해주기도 했고 정미소에서 벼겨를 넘겨다 팔며 푼돈을 벌기도 했고 솔뿌리를 뽑아 기름 짜는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산에 가 쑥을 뜯어 쑥떡을 해 먹였고 다 캐여간 감자밭을 뚜져 감자알을 얻어냈으며 눈밭을 헤매며 배추뿌리를 캐였다.
애들이 방안이 비좁다하게 텀벙텀벙 기여다니고 장난감같은 이로 질긴 음식을 씹어댈때 그녀의 깎은 듯 패인 볼에 발가우리한 홍조가 떠올랐고 여직껏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던 아버지도 험상을 풀며 애들을 바라 소리없이 웃었다.

세월지나도 우물은 그 우물이였다.
피는 꽃과 지는 잎의 섭리를 우물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사당패집 아들이 다시 마을로 나타난것은 그후로 썩후의 일이였다.
그때 쌍가매는 물초롱을 이고 물을 긷고 있었다. 장님거지처럼 어정거리며 마을어구에서 사당패집 아들은 쌍가매가 물긷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았다. 이제는 그제날의 청초함이 사라진 쌍가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보폭하나 틀림없이 건강하게 걷고 있었다.

우물가에서 소곤대기 좋아하는 아낙들이 옮긴 풍문에 의하면 사당패집 아들은 사금판에서 정말로 떼돈을 벌고 국자가에서 작부퇴물림과 살림을 차리고 짐벙진 한때도 누렸었지만 그 눈맞고 배맞았던 요상스런 녀자에게 재산을 하루밤새에 몽땅 떼웠다고 했다.

<<송충벌거지(벌레) 솔낭구(나무)잎 떠나 못살지비유>>

허기끝의 탐식처럼 사당패집 아들은 우물물을 정신없이 들이마셨다. 자기앞에 섰는 쌍가매와 비온뒤의 제비쑥처럼 자라난 자기를 꼭 닮은 아들과 친형제처럼 곁에 바싹 붙어섰는 훈장네 아들을 면괴에 어린 눈길로 바라 보며 시래기처럼 푸석푸석한 머리를 피나도록 긁적이였다. 쌍가매는 똬리를 만지작이며 허공에 아연하게 떠 있었다. 입에 엿 머금은 사람처럼 우물거리다 아무말도 못했다. 가슴 깊은곳이 막연하게 아프고 습기차 있고 걷잡을수 없는 슬픔에 모대기게 하던 그 사람이 막상 나타나고 보니 욕 한마디도 할수 없었다. 그사이 표나게 수척해진 그가 겨울을 지난 목이 긴 새처럼 허기져 보였고 따라서 그에 대한 대책없는 련민을 느꼈다.
사당패집 아들이 나타나던 날, 마을사람들은 그의 출현보다 더 큰일에 흥분하고 있었다.
간도의 상공으로 비행기가 날아 지났다.
사당패집 아들의 경력담을 들을려고 그의 집에 몰려들었던 마을사람들은 비행기의 동음에 너도 나도 집을 뛰쳐나왔다. 목을 젖히고 비행기를 우러르 었다. 비행기의 꼬리쪽에서 무언가 하얗게 너울너울 날아 내리고 있었다. 하늘의 선녀가 꽃을 뿌리듯 날아 내린것은 삐라였다. 삐라는 우물가에도 날아내렸다. 사람들은 몸을 솟구며 신변에 까지 날아온 그 삐라들을 허겁지겁 받아들었다. 삐라에는 조선글과 중국글이 힘찬 글발로 새겨져 있었다.
그 전문은 이러했다.

<<일본은 무조건 투항을 했다! 이로서 약소민족은 해방되였다!>>

삐라를 집어들고 소리내여 읽던 이가 마른 소리로 웃음을 웃었다.
그 소리를 듣고 그 웃음을 따라 우물가에 개벙하게 모여섰던 사람들이 하나 둘 웃기 시작했다.
질마를 벗은 소처럼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을 탁 터놓고 웃음들을 토해 냈다. 쇳목이 잠길때까지 환희의 웃음을 웃고 또 웃었다.

 

 *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은 조서를 발표하여

전세계에 일본의 무조건 투항을 알렸다

* 1945년 중국 동북지역에서 투항하는 일본군

 

  근 10년세월이 지난뒤에야 나타난 사당패집 아들에게는 이전과 같은 여유와 흥감질이 없었다. 조용히 돈을 내고 사람을 불러 우물의 드레박을 다시 앉혔다. 드레박줄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마을사람들이 삐라장을 받아들고 눈굽젖어 만세를 높이웨치던 그날 사당패집 아들은 자기의 실수를 조목조목 회고했고 인연의 자락을 놓지못해 속을 앓아 왔던 쌍가매는 끝내는 배신했던 그를 용서해 주었다. 쌍가매의 조건이라면 렬사의 후대인 훈장 아들의 자식을 함께 키우자는 것 뿐이였다.
  돌아오자 사당패집아들은 그 기간의 밀린 세대주의 힘을 보상하련듯 두 아들의 혼사를 치러주었다.
  해방의 기쁨을 맞았으나 그 희열을 눅잦힐 사이가 마을사람들에게는 없었다. 중국에서 국공량당지간의 전면 내전이 일었다. 해방받은 동북해방구조선족들은 고향의 승리의 열매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연히 동북을 해방하고 전 중국을 해방하는 투쟁에 궐기해 나섰다. 현성과 마을에서는 전에 없던 참군열조가 일었다. <<군대에 나가는것은 영광스럽다>>는 것은 그때의 기풍이였다. 마을의 청장년들이 분분히 싸움에 탄원해 나섰다.
  잔치를 치른 이튿날로 쌍가매의 아들은 전장에 나갔다. 쌍가매는 아들은 전장에 보내면서도 훈장아들 자식의 참군요구만은 부득부득 우겨가며 밀막아 바렸다. 자기의 친혈육을 내보내더라도 렬사의 후예를 아끼려는 마음에서 였다.
  아들을 전선에 내보낸 뒤로 쌍가매는 밤만 되면 우물가로 나가곤 했다. 우물물을 길어 대접에 부어놓고 대접을 우물가장자리에 놓고는 언젠가 보았던 엄마의 본을 내여 비손질을 했다. 아들이 전투에서 공세우고 돌아 오기를 빌었고 무양히 살아서 돌아오기를 빌었다.
  허나 마을 앞산더기의 진달래가 색색이 연분홍 등롱을 켜들었을때 쌍가매는 아들의 비보를 듣고야 말았다. 아들은 장춘 동정거장을 함락하는 전투에서 류탄을 맞고 쓰러졌던것이다. 물긷다 억장이 무너지는 비보를 접한 쌍가매는 두레박을 우물 속에 떨어뜨리며 그자리에 퍽적지근 주저앉고 말았다. 두레박줄이 다르르 풀어져 내리는 소리가 공명으로 들렸다. 어머니의 마음도 그처럼 깊은 곳으로 추락해 내렸다. 곧 이어 나의 아버지가 유복자로 태여났다.
 
  예이제이없이 그네들이 일구고 다듬어 온 들판의 곡물들이 무르익어 빛나오를 무렵, 드디여 민족자치의 숙원이 이루어져 연변조선민족자치구가 고고성을 울렸다. 마을에서도 성대한 자치구성립경축대회가 열렸다. 우물가에 경축회장이 꾸며 졌다. 우물 곁 버드나무에 매단 스피카에서 노래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것은 사당패집 아들의 목소리였다. 스피카를 통해 튀여나온 노래소리는 그렇듯 구성지게 명랑한 가을공기를 휘젓고 있었다. 포장이 터지도록 울리는 흥겨운 가락에 맞추어 상모를 돌리고 장고를 두다리며 흰옷 입은 사람들은 신들린듯 춤을 추고 또 추었다. 너나의 마음을 담은 노래소리는 강을 타고 산발을 타고 랑랑히 울려 퍼졌다.

<<에헤라 어절씨구 좋구나 좋네
해란강도 노래하고 장백산도 환호하네
에헤라 어절씨구 장고를 울리세
연변조선족 자치구 세웠네>>
 

 
* 1952년 9월 3일
자치구 성립을 선포하는 연변조선족자치구 초대구장 주덕해
 
 
  환락의 도가니로 끓고 있는 성립대회 회장으로 차 하나가 달려와 섰다. 차에서 젊은 간부 하나가 내렸다.
사람틈바구니를 헤치고 달려와 <<어머니!>>하고 쌍가매를 얼싸안았다. 귀티가 나는 깔끔한 젊은이였다. 그도 아비를 심통히 닮아 안경을 걸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치구에서 비서직을 맡아하고 있었다. 그의 안내로 차에서 자치구의 구장어른이 내렸다. 주씨성을 가진 구장은 땀발을 씻어 내리며 곧추 우물가로 다가갔다. 명절옷 단장을 한 쌍가매가 새것으로 줄을 바꾼 드레박을 힘껏 우물에 던져 넣었다. 드레박에 물을 푸어 다시 대접에 받아서 구장에게 받쳐 올렸다. 대접을 단숨에 굽 내고 나서 구장이 걸걸한 소리로 웨치다싶이 말했다.
  <<우물맛이 차암- 좋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구장의 팔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자치의 기쁨에 넘쳐 춤을 추고 또 추었다. 
 


  춤에 신명을 바치는 쌍가매의 춤사위는 정말로 고왔다. 희열에 굽이쳐 돋솟아오르는 눈물을 씻어내리며 쌍가매는 춤의 휘모리에 묻혀들었다.
  축제를 맞는 마을은 숫제 봄을 다시 당겨 온듯 마을사람들이 정성껏 결어 만든 꽃송이에 묻혀있었다.
  용드레틀도 꽃송이와 채색기로 정성껏 단장이 되여 있었다.
  보다 다수워진 가을 해살을 담아 안고 우물물은 빛나 오르고 있었다. 
 

  쌍가매는 크렁하게 젖은 눈으로 우물물을 들여다보았다.
그 우물을 지켜보며 쌍가매는 이 맑은 하늘을 별똥별처럼 장식하고 사라진 훈장의 아들을 생각했고 포수의 아들을 생각했고 자기의 아들을 생각했다. 그의 눈에 오늘의 우물가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고 그렇게도 비장해 보였고 그렇게도 신성스러워 보였다. 군청색의 이끼가 돋은 돌쯤사이에서 우물은 그 깊숙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내재하고있는 오래된 신산스럽고 고통에 쌓인 삶을 불러 일깨웠고 그 사랑과 증오를 하나하나 되새김하는 그녀는 우물과 자신이 하나로 화함을 느끼고 있었다...
 
  할머니의 전설은 이즈음에 와서 끝나군 했다.
허나 세월의 층적층에는 묻힌 사연들이 많았다. 
 

 * 조선전쟁이 일자 <항미원조 보가위국>이라는 정부의 호소에 맞추어 중국의 젊은이들이 압록강을 뛰어 넘었다.

 
  광복이 나고 땅을 분여받고 복구건설이 시작되고 조선전쟁이 일고 그다음엔 중국에서 전례없던 문화대혁명이 일었다.
  그해 반란파들에 의해 구장과 그 주변의 일군들이 옥에 갇혔고 <<낡은것을 청산한다>>하여 우물의 석비는 깨여지고 우물은 묻어버렸다. 우물을 묻던날 구장의 비서는 우물을 묻는 반란파들을 제지시키려 했다. 그러다 <<완고분자>>로 락인되여 그들에게 머리를 깎이우고 고깔모자를 씌워 길에서 조리돌림을 당했다. 수모를 더는 이겨내지 못하고 렬사의 후예는 우물자리의 버드나무에 목을 매 달았다.
  우물을 묻어 버린뒤 할머니는 밤이면 가만히 우물자리를 찾군했다. 엎드려 우물자리에 귀를 대여 보았다. 그때 할머니는 분명 땅밑에서 굽이치는 물소리를 들을수 있었다고 했다. 물소리는 호곡하는 녀자의 울음소리처럼 음울하게 들렸다고 했다.

 

 * 중국전역을 휩쓸며 10년간 지속된 광란의 의 문화대혁명
많은 조선족들이 이 전대미문의 비극에 휘말려 들었다.
 

  그로부터 10년후, 구위비서와 같은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뒤집어 썼던 모자를 벗고 하나하나 평판을 받았고 온 중국이 오금꺾었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정보(正步)로 가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월강족속의 제4대로 내가 태여 났다.

  정부에서는 우물자리를 다시 복원했다. 구두쇠로 이름 있던 나의 증조할아버지가 우물복원에만은 거액의 돈을 내놓았다. 물론 그렇게 된데는 우물과 끈끈한 사연의 동아줄로 얽동여진 할머니의 지청구에 의해 서였다.

  그 동안 우리의 조부들이 첫괭이를 박았던 사득판은 촌마을에서 부락으로, 부락에서 현으로, 현에서 진으로, 진에서 시로 탈바꿈을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의 할머니의 쌍가매 진 머리는 창포에서 백발로 바뀌 였고 숱많던 머리가 빠져 이제는 쌍가매도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할아버지도 앞세웠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만추에도 잎사귀를 떨어뜨리지 않는 고목처럼 그 누구보다 정정하셨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등맞은 고양이처럼 만곡된 허리로 할머니는 자주 우물자리를 찾군 했다. 복원된 우물을 희한과 련민과 애상 어린 눈길로 쓸어보군 했다. 자신들을 기쁘게 하기도 아프게 하기도 슬프게 하기도 안도하게 하기도 했던 우물을 지켜보며 오래도록 그 자리를 뜰줄을 몰라 했다.

  모두들 나의 증조할머니가 백세까지는 앉을것이라고 했다. 조선족집거구인 현성의 우리말 텔레비에서 <<세기의 로인>>이라는 제명으로 할머니를 취재한 특집프로를 만들기도 했다. 취재시에 옹근 한 세기를 가로질러 새 세기의 문전까지 닿아온 그 건강의 비결을 물었을때 할머니는 그중 하나가 매일 랭수 한 사발씩 마이는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할머니는 매일이고 빠침없이 랭수를 마시군 했다. 나중에 바깥출입도 할수 없었던 할머니는 <<씨원-한 우물물 한번 마셨봤음 좋겠는데...>>하고 감질나게 되뇌이군 하였다. 우리가 드링크에 포장한 약수물을 랭장고에 넣었다 다시 드려도 할머니는 <<그때 그 우물맛에 비하겠냐? >>하고 감개를 머금군 했다.

  할머니는 증손을 보기를 원했다. 허나 증손녀가 태여나기를 며칠 앞두고 할머니는 끝내는 백세의 정수(正數)를 채우지 못하고 운명하고 말았다. 애가 물이 찌고 나시시 배내머리가 자라고 얼굴모양이 잡혔을때 집식구들은 그만 감개에 젖은 환음(歡音)을 질렀다. 아이의 머리 앞부분에 작은 가마가 하나가 소담히 틀고 앉아 있었던것이다.
  <<격세유전이란 말이 있더니 할매를 꼭- 떼닮았네>>
  친척친우들이 희한해 마지 않았다.
 

 
  아이가 돌잡히던 날, 돌잔치를 치르고 나서 우리가족은 우물가를 찾았다. 할머니의 유상을 앞에 모시고 딸애를 안고 우물가에서 가족사진을 남겼다. 흰 수건을 낭자쪽에 겹쳐서 앞이마를 가리우고 하얀 무명실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모시빛저고리를 받쳐입은 모습으로 할머니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유현한 눈길로 할머니는 당신의 마늘타래처럼 주렁주렁한 자식들과 당신이 파시고 마셔오고 지켜오신 우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진을 다 찍고도 나는 오래도록 우물가를 뜨지못했다.
새삼스레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우물은 꼭 마치 우멍눈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원을 찰나 속에 품은 듯한 외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우물물도 가버렸지만 순간 나는 코를 푹쌍 찌르는 물내음을 맡을수 있었다.
세월의 더께를 밀어내고 청렬한 우물물냄새를 맡을수 있었고 가슴속에 넌출거리는 우물의 창명(彰明)한 물결을 볼수 있었다. 그리고 우물물이 룡트림쳐 솟아오르는 소리를 환청으로 들을수 있었다.
  우물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악기의 하현찰(下弦擦)처럼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구색이 잡힌 현성의 력사와 그 력사의 년륜에 새겨진 사람들의 전설을 소리에 담아 우물은 무겁고 웅숭깊은 유장한 소리로 세기의 오페라를 속울림으로 연주하고 있는것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지지리하고 조악한 삶을 밟아온 할머니의 섬약하나 끈질긴 아집과 그 와중에 기어코 전하고자하는 할머니네 세대들의 상상력에 수렴되는 룡의 전설이 주는 언질을 나는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전설에 비하면 돈과 명리에 매이고 빈약한 상상력에 기대인 요즘 삶의 풍속이 얼마나 부박한 것 인가한 것 을 깨칠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설을 받아서 이어나가야겠다는 자긍심과 사명 같은 것에 사로잡혀 들기 시작했다.
 
  딸애의 앞이마에 숙명처럼 틀고 앉은 가마를 자꾸만 매만지면서 나는 오래도록 우물가를 뜨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금 할머니의 전설을 되새김 해보았다... ♡
 

 * 본 작품에 인용한 귀중한 사진자료들은 "중국조선족사화집", "중국동북년감", "중국옛사진모음집", 용정민속박물관, 한국독립기념관 등 곳에서 차용, 출처를 밝히며  졸고를 빛내준 귀중한 사진자료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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