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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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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속 충혈된 고래의 눈으로
2008년 08월 02일 08시 34분  조회:2570  추천:77  작성자: 김혁

. 작가수기 .

 
깊은 바다속 충혈된 고래의 눈으로

- 잡문 코너를 열며


김 혁

 

1

잡문은 현대산문중에서 의론과 비평을 위주로한 일종의 문체로서 산문의 하나의 분기(分支)이며 의론의 하나의 변체(变体)이다. 수감록, 단평, 잡설, 만필, 소품, 문예정론 등 문체를 모두어 총칭한다. 흔히 편폭이 짧으면서도 형식이 다양하고 창작자는 각종 수사수법과 곡절적인 전달로 자신의 견해와 정감을 전한다.

중국문학사 상 맨처음 잡문이라는 개념을 내놓고 그를 독립적인 문체로 만든 사람은 남조시기 문예리론가 류협이였다. 그는 《문심조룡(文心雕龙)》에서 전문 한장을 분절하여 잡문이라는 글을 썼다.
더 거슬러 올라가 진나라 산문이 흥기하던 시기 잡문이 나타났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제자백가(诸子百家)들의 문장들이 사실상은 잡문이라는것이다.

그후로 잡문은 대대로 발전해왔는데 당나라 한유(韩愈)의《잡설(杂说)》、 명나라 류기(刘基)의《귤파는 사람의 말》등이 유명하다. 잡문은 그 시원이 일찍하고 애초의 지위도 매우 높았다

 
현대잡문은 5.4운동중에서 다시 나타났는데 《수감록》이라는 이름으로 《신청년》에 발표되였다. 20년대 가관적인 성취를 보인 잡문은 3,40년대에도 계속 문단을 휩쓸었고 그후로 근 반세기동안 침체를 보이다가 80년대부터 다시 흥기하기 시작하였다.

잡문하면 바로 이사람이 떠오른다.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한 로신이다. 로신은 중국의 가장 걸출한 잡문대가이며 잡문을 고도의 성숙한 경지에로 올려놓은 사람이다. 그외 잡문의 달인들로는 림어당, 구추백, 곽말약, 모순, 하연, 파인 등척 등이 있다.

잡문은 로신의 저작 가운데서 의심할 여지없이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의 소설과 시보다도 훨씬 앞선다.
 로신은 자신의 ≪차개정잡문이집․후기≫에서 ≪내가 <신청년>에 수감록을 쓴 이후 이 문집의 마지막 편을 쓰기까지 18년이 지났는데 그중 잡문만 해도 80만자 가량된다≫고 말했다. 이에서 알수 있듯이 그는 매우 많은 잡문을 창작했으며 그 잡문들은 ≪열풍≫≪무덤≫≪화개집≫≪화개집속편≫,≪차개정잡문≫등 단행본에 수록되여 보귀한 유산으로 남았다.
변법유신, 신해헉명. 5.4혁명, 4.12정변 등 중국 근현대사에 있어 가장 치렬했던 격동기속에서 그는 잡문을 통해 리상과 현실, 근대와 반근대, 혁명과 반혁명의 복잡한 근대 중국사회의 모습과 사상조류를 그려내였다. 하기에 어느한 평론가는 《로신은 심해속 충혈된 고래의 눈처럼》어두운 사회상을 부릅뜬 눈으로 응시하였는바 《그의 잡문은 곧바로 비수요, 투창》이라고 격찬했다. 

잡문이라는 쟝르안에서 로신은 인류와 인성의 근본문제들에 대해 자유로이 사색했다. 그리고 첨예, 신랄함, 유머, 풍자등 수법으로 마음껏 자신의 분노, 증오, 경멸, 사랑 따위를 표현했다.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예술을 하나로 녹여낸 이 무형식의 형식은 전인(前人)과는 판이하게 독특한 풍격과 면모를 지니고 로신의 호방표일(豪放飄逸)한 사상과 예술을 남김없이 담아내고 있다.

로신은 조금도 잡문이 기타 문체의 가치보다 낮다고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잡문은 여느 문체와도 같이 불가결의, 대체할 수 없는 성질의것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중국 전통문학에서 산문이 차지하는 중요한 지위를 감안해 본다면 로신의 이 방면에서의 계승과 창신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로신의 현대중국문학에 대한 기여와 위대성은 인정 받을만 한것이다.
로신의 잡문은 중국산문사상 내지 세계 산문사상에서의 진기한 꽃이다.


2

여기 또 한명의 잡문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온 달인이 있다. 바로 조선족문단의 거장 김학철옹이다.
일찍 50년대중기부터 잡문창작을 시작, 김학철잡문의 출현은 우리 조선족문학발전사에 잡문가가 없던 력사에 종지부를 찍은것으로 된다.

 


일찍처부터 로신을 깊이 숭배했던 김학철옹은 19살때 한 친구와 함께 상해의 로신의 자택을 찾아간 일까지 있었다고한다. 그러나 집문앞에까지 갔다가 《저축해가지고 온 용기가 판이 나서 문을 두드릴 엄두》를 못내고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돌아서고말았다. 열혈청년시절부터 그는 로신의 책을 즐겨 탐독하였으며 로신의 정신은 간난한 개혁의 길, 혁명의 길을 걸으려는 그에게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고 열화와같은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김학철옹은 조선족문단에 로신을 소개하고 그의 작품을 번역, 출판하는데 열을 올린 공로자의 한분이다.
《아큐정전》,《공을기》,《고향》,《축복》, 《약》등 로신의 명작이 거의다 그의 손에서 번역되여 나왔다. 도합18편, 로신의 중단편소설이 도합 33편인 점을 감안할 때 김학철옹은 로신소설의 3분의 2정도를 번역한것이다.

 김학철옹 역시 숭배했던 로신을 꼭 닮아《심해속 고래의 눈》을 갖추었다.
그러한 심안(心眼)과 인간과 력사에 대한 확고한 사명감으로 독자들의 령혼에 강한 울림을 남겨주었다. 넓고 깊은 사회의식과 력사의식, 풍부한 사회현실적내용과 심각한 철리, 생동한 형상, 다양한 표현수법으로 김학철옹의 잡문은 그야말로 우리 문단, 나아가 우리 겨례문화권속에서 참으로 독특한 일석(一席)을 차지하고있다.


3


왜? 이제와서? 잡문인가? 질문할수 있다.
피부로 느끼다싶이 요즘의 문학판도는 사뭇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문학장르의 개척을 시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날에날마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문학이 쟝르를 넘어서고 있다. 시도 소설도 평론도 수필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것들이, 어느 장르로 분류해야할지 난감할 새로운 문체들이 문학의 기존을 충격하고 있다.
팩션이니, 엄지소설이니, 칙릿이니, 증권소설이니, 등등등으로 들어도 못본 쟝르의 소재가 다양하고 다양해서 벙벙하다.
여기서-
팩션(Faction)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 력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새로운 문화예술 장르를 일컫어 말한다.
 엄지소설이란 즉 휴대폰 소설(Mobile Novel), 말 그대로 휴대폰의 자판을 리용해 작성한 소설이다. 7년전 일본에서 고고성, 작가가 휴대폰에 올린 글을 사용자들이 이를 다운받아 감상한다.
칙릿(Chick-lit)이란 젊은 녀자를 지칭하는 영문 속어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의 줄임말 릿(lit)의 합성어. 젊은 전문직 녀성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일과 사랑을 무겁지 않게 그려내는 새로운 쟝르를 지칭한다.
기존의 손꼽을수 있는 몇몇 쟝르에 길들여진 맛망울에 생소한 이러한 쟝르들은 대중독자의 욕구를 정확하게 꿰뚫고 기존의 문학적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고 생생하게 현실을 담아내는 신종의 쟝르로 급부상하고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한 이런 충격을 문학인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감지하는 반면 잊혀져가고있는 고유의 훌륭한 쟝르를 보존해야할 의무와 충동도 은연중 느꼈다.
짧지만 정밀, 심각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매서운 문장. 언중유골의 문장이자,
신랄유익한 문장, 고도의 언어공력와 판단분석능력이 요구되는 잡문, 이렇게 훌륭하고 유장한 쟝르를 어이 방치해두고 망각할수 있을손가!

그리고 우리 민족은 지금 새로운 격변기의 갈림길에 서있다. 사회발전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나타난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들은 참신한 분석과 연구를 수요한다.
따라서 사실과 진실을 바라보는 랭정과 온유와 절제의 쟝르가 더 절실하게 수요된다.
이런 쟝르는 다소 떠있고 격정적인 형식인 픽션(虛构)을 보완하는 다큐(紀录)나 논픽션(非虛构)에서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타자를,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정서에 감겨들지 않는, 문학적 감동과 학술적 객관성을 함께 지닌 아취(雅趣)가 바로 이런 쟝르- 잡문에 있는 것 같다. 진실의 깊이와 문학의 감동을 함께 담아낼 이 장르에 생기를 불어넣고 바른뜻을 부여하는 일이 필요하다.

로신은 특별이 《잡문, 쓰기 쉽지 않도다》라는 잡문도 쓴바있다.
그 한구절을 따보면,《그렇다. 높다란 천문대와 비교해본다 해도, 잡문은 어떤때 분명 작디작은 것을 보는 현미경과도 같아 오수도 비추고, 고름도 보며, 어떤때는 림파선균도 연구하고 어떤때는 파리까지도 해부한다. 고매한 학자께서 보시기엔 보잘것없고 더러우며 심지어는 밉살스럽겠지만 로동자 자신에겐 오히려 엄숙한 작업이며 인생과 유관하며 그다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이제 나도 안목 벼루기를 할 요량이다.
나도 이제 깊은 바다속 고래처럼 충혈된 눈을 떠야겠다.
고래눈이 못되면 새우눈이라도 명징하게 떠야겠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선인들의 품격높은 령혼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장기간의 문학수업을, 인간수업을 받을 각오이다.

쉬울손가? 쉽지않도다!


 

 "연변문학" 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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