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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탱고소리 들려온다
2009년 09월 18일 17시 01분  조회:2878  추천:51  작성자: 김혁
 

 

. 수필 .

 


어디선가 탱고소리 들려온다

 

 

 

김 혁 


 

 

 

 영화 포스터


 

창작에 쫓겨 오전 내내 키보드를 두드려대다가 머리도 쉬울겸 영화테잎도 살겸 점심도 먹을겸 거리로 나갔다.

 

국제무역청사 앞에 이르러 연길에 하나뿐인 육교(天橋) 올랐다. 그런데 나를 이상케 하는 것은 점심이 가까운 무렵 이였는데

륙교우에 사람하나 없이 홀로 이였다는 것이다.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서야 뒤미처 영문을 달았다. 복판에 가설했던 가드레일을 철수하면서 사람들은 더는 육교를 건너는 번거로움이 없이 길을 자유롭게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육교에 오르고 육교를 지나고 있는 자신이 바보처럼 보였다.

 

 

그리고 홀로 육교위를 걷노라니 하나의 영상이 머리에 그물거리며

떠올랐다.

 

쇄잔한 겨울 해살.

앙상한 철교의 아치.

보도에는 사람들이

묵묵히 오가고 있고.

무뚝뚝한 표정의 남자가 껌을 씹으며(슬픔을 씹으며?) 가고 있다.

세느강 위를 달리는 기차,

교각 아래

중년의 남자가 량손으로 귀를 막은 괴로운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비명은 기차의 기적 소리에 이내 파묻혀 버린다.

허탈하게

허공을 보고 걸어가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랭소적이고 우울한 반면 천진하고 따스한 구석도 있는 남자...

 

요사이

후배들에 의해 갑절 떠올려 져있고 블로그의 조회수를 달구고 있는 영화 <빠리, 마지막 탱고> 장면이다. (성과 륜리의 타락이

특별히 새삼스런 일도 아닌 오늘날에 이렇게까지 야단스럽게 영화를 들먹이면서)하고 생각하다가 자신도 무드에 젖어 들어 마디

적어 보기로 한다. 사실 영화를 내가 후배에게 빌려 주었으니 내가 때아닌 열기의 조작자임이 틀림없다는 자괴(?)

머금으면서...

 

 

 

출생에서 성장에 이르기까지 상처로 얼룩진 과거 때문에 마냥 우울한 중년 남자 .

외도를 하던 안해가 자살하고

폴은 자신이 지낼 세방 집을 구하러 다니던 아파트에서 우연히 숙명의 녀인 잔느를 만난다. 사람은 격렬한 정사를 나눈다. 그리고 사람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 정사만 나누고 인사도 없이 헤어진다.

우연히 다시 만나게 남자와 녀자.

남자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녀자에게 소리친다.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싶지도 않아! 너도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 작업을 하고있는

거야."

둘은 당연한 듯이 정사를 나눈다.

정사를 마치고 나서 이들은 술을 마신다. 탱고 경연대회에 끼여들어 대회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그들은 미친 듯이 파격적인 춤을 추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엉덩이를 보인다.

남자는 녀자와의 진정한 관계를 원한다. 하지만 남자의

슬픔을 리해할 없고 리해하고 싶지도 않은 녀자는 남자의 파행적인 행동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다.

남자는 집요하게도 녀자를 붙잡는다.

남자는 녀자의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너는 도망갔지만 나는 끝까지 너를 쫓아왔어. 너는 이상 도망가지 못할거야. 나는 너를

사랑해"

녀자는 마침내 남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남자는 녀자의 켠에 씹던 껌을 뱉어서 붙여놓고 웅크린

죽어간다.

남자의 죽음을 보면서 녀자는 중얼거린다.

" 사람을 몰라. 사람이 쫓아왔어. 사람은 모르는 사라 사람이 누군지 몰라.. 누군지 몰라…”

 

 

이런 파행적인 영화도 있다는것을 일찍 80년대 중국의 유일한 영화지였던

<대중영화>잡지에서 알았었다. 허나 영화에 대한 소개는 겨우 줄에 고작해 그쳤고 당시의 우수꽝스러운 사회풍조에 의해 자본주의

나라에서만 나올 있는 퇴페적인 영화라고 정평이 되여 있었다. 그후 여러 영화잡지들에서 영화에 관한 무수한 평론들을 읽어왔지만 영화를 진짜 영상으로 것은 2000 겨울, 참으로 늦기도 하고 참으로 빠르기도 하다고 할가? 왜냐면 조선족문단의 노라는 작가들과 자리에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 있었는데 놀라웁게도 거의 모든 작가가 영화를 모르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다른 지역의 팬들은 믿을 있을가?

어떤 극단적인 예로 촌스런 우리 문단을 잣대질하려는 용의는 절대 없고.)

 

영화는 우울하면서도 보는 내내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소외된 현대인의 인간 관계를 변태적이고 충격적인 성행위 묘사를 통해 그려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대표작. 이딸리아에서는 개봉

며칠만에 상영금지가 되였다가 87년에 와서야 해금되었다. 시대가 변해도 국적이 달라도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새로운 발견이 계속되는 그런  영화다.

 

이야기 줄거리만으로 본다면 야한 포르노 영화로 오해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상영이 금지되었다가 영화가 나온 25

만에야 수입 개봉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선 X등급 판정을 받았고, 자유의 국도라 일컫는 미국에서도 극장 개봉 때는 성행위 묘사 장면 군데를

삭제하고 별도의 'R' 등급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언제 공개 개봉될지 누구도 모른다. 지금의 풍토로서는 영원히 개봉되지

못할 ? 그리고 우리는 아울러 해적판에서 이런 명작들을 접해야하는 팬으로서의 행복과 괴로움을 느껴야 것이다.

 

영화는 60년대 , 파리 사람들의 마지막 절망의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론가들은 해설하고 있다. 영화가 우리에게 공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은 아직도 좌적인 이데올로기의 철쇄에 억압된 우리들의 침묵, 그로서 저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파격의 충동과 이룰 없는 무가내의 ... 우리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을 그것을 영화가 말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같이 금방 40대를 맞은 작가도 좋고 아직 섹스도 모르면서 남녀의 허무의 종국을 감동하며

말하는 신세대도 좋고...

 

영화의 성공의 주요요인은 주인공역을 열연한 말론 브란도에게 있다고 나는 단정한다.

말론 브랜드가 연기하는 미국인 남자 폴은 우울과 권태와 절망이 뒤섞인, 종잡을 없는 성격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존재하는 현실의 모든 것들에 대해 조롱하고 모욕도 서슴치 않는다. 면도날로 벽에 피를 뿌리며 자살한 안해와 그의 친구가 아내의 정부였다는 사실이 그를 그렇고 만들고 있다. 절망과

권태와 고통으로 우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폴은 젊은 녀자에게 자신의 가학적인 광기를 분출한다.

녀자가 자기의 이름을 묻자 "세상의 모든 이름들보다는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가 나아"라고 말한다.

폴의 그런 조롱은 탱고를 추는 댄스경연장에서의 행동에서 폭발한다. 심판관 앞에서 엉덩이를 내보임으로서, 자기만족의 세상에 안주하는 속물들을 통렬하게 조롱한 것이다.

 

영화는 말론 브론도의 이러한 일탈, 조롱, 광기의 장면들로 시종 점철되여 있다.

우리 팬들에게는 대부(代父) 이름이 통하는 말론브란도!

그가 떠난지 얼마안되여 그의 영화에 대해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추억이라 해야 할가 아니면 아이러니라 해야 할가?

 

대통령도 아니고 전쟁영웅도 아닌 남자, 사생활도 지극히

복잡한 남자의 죽음에 세계가 아쉬움을 표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위대한 배우를 잃었다'' 애달픈 조문을 발표했고 타임지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배우로 그를 선정했다. 본능적 연기로 거부할 없는 매력을 가진 그는 "배우는 아무나 있는 일이며 돈을 벌기 위해 영화에 출연할 "이라고 자신을 폄하 했지만, 그래서 그의 위대한 연기력은 더욱 빛을 발하고 지독히 노력해도 되는 보통배우들을(속인들을?)  어리둥절하게 속상하게 했다.

 

그는 섹시한 외모와 거부할 없는 매력, 카리스마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두려움을 주기도 했다. 듯한 목소리, 들숨을 삼키는 듯한 목소리로 그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와 분노를 완벽히 드러냈다. 빠리에서 사는 미국 남자. 안해의  장례식을 앞두고 이름도 모르는 프랑스 처녀와 파괴적인 섹스에 탐닉하는 중년남자의 공허함은 말론 브랜도가 아니면 그토록 실감나게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연기는 노력형이 아니라 동물적 본능에서 나온 즉흥적

연기다. 브란도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서 쩍하면 그의 어머니에게 매를 들이댔다고 한다. 말론 브란도의 웅성(雄性)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남성미는 이러한 가정배경에서 나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는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매맞는 어머니에게 멋진 남자로 보이고 보호해주려고 노력하며 어려서부터 자신의 남성미를 극대화했던것이다. 한면 영화에서의 광기와 일탈의 몸짓역시 그런 가정배경이 있었기에 그렇듯 광분함에 가깝게 연기된것일것이다.

 

연기는 부랑아의 이라고 탄식한 말론 브란도에게서 그의 말을 빈다면 "섹스는 초콜렛을 먹거나 아스피린을 삼키는것만큼의 의미밖에 없다 한다. 그의 식탐과 녀탐은 심해서 미친 듯이 먹어댔고 천문수자 만큼 녀성 편력으로 만년에 양육권 분쟁 소송에

시달리기도 했다.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딸은 이복오빠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살해한 것에 충격을 받아 스물다섯 나이에 자살했으며 그의 아들 역시 살인범으로 옥살이를 했다.

 

 

" 미치려고 평생 노력했다" 천재 배우 말론 브랜도. 이제 현란한 인간세상을 떠난 그는 하늘에서도 여전히 특유의 랭소적인 미소를 지을지 모른다. 붉은 와인과 붉은 녀자의 입술을 되뇌여 보면서. 아직도 자기의 30여년전의 작품을 보면서 흥분하는 늙은 , 젊은 팬들을 굽어 보면서...

 

그와 역시 내가 좋아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녀주역 비비안 리와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아직 테잎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웁다.

 

 

감독 베르나르도 베를톨루치는 영화 "마지막 황제" 중국관중들에게 알려진 감독이다.

 

베르톨루치는 "원래 나는 남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의 륜곽이 잡혀갈 무렵 문득 자신이 고독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영화의 성격에 대해 표방했다.

 

 

영화로 세상에 대한 모든 신념을 포기한 감독 베르톨루치는 종말론적 무정부주의자임이 틀림없다.

 

베르톨루치는 허무한 세계를 마치 돼지우리를 련상시키게 만든다.

 

영화에서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물어보면서 돼지처럼 꿀꿀거리기도 한다.

 

기실 영화에서 잔느는 육체는 풍만하나 머리는 녀자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녀자는 젊은 남자가 있지만, 중년 남자의 흡인력(이를테면 오랜 경륜과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데서 오는 신뢰감, 그리고 중년의 통찰력 등등) 발이 묶여버린다.그녀는 중년 남자의 무뚝뚝한 매너, 가변적인 성격에 오히려 맘을 빼앗기고 것이다. 하지만 심히 말해 그녀는 그저 거대한 유방에 기름진 치부를 가진 관능미 적인 갈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가지 가치 사이에서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을 거부하지도 못한다. 그녀는 어찌할 줄을 모르면서 결혼이라는 제도와 육체라는 욕망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녀는 심지어 폴이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요구하는 새로운 의지에 대해서도 판단 못하고 거부한다. 그것의 사람의 응분의 귀소를 위한 추구의 몸부림임을 모른다. 때문에 그녀의 몸부림에는 단지 비릿한 욕망만이 배여 있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폴의 얻기 위해 버려야만 하는 반항적인 몸부림은 차원 높은 몸부림이라

해야겠다.

 

문명과 산업의 발전은 현대인들에게 성적인 억압을 주었고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을 감추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을 표출하지만 체제로부터 혹은 사회적 윤리와 자신이 설정한 가치관에 의해 제재

당하고 그로서 공허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는 현대인들이 감추고 살아가는 본능의 발톱을 상징과 은유로서 보여주는 수작이다. 샐러드를 신고 메니큐어도 바르고 다니는 요즘의 풍조지만 기실 누구도 진정한 욕망의 발톱만은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영화를 번째였던지 다시 보았던 며칠 , 늦은 밤에 친구를 불러내여 술을 마셨는데 주량이 나로서는 이내 취했고 숙취의 원인이 영화가 내내 사로잡은 감정에 의해서 라는 것을 술이 깨여서야 깨달았다. 그만큼 영화를 보면서 인간이란 존재의 외로운 숙명과 본원적 고독이 어느 영화보다 아프게 다가왔다.

 

폴은 안해가 생전에 같은 아파트에 자신의 정부를 두고 있었는지도, 자살하게 되었는지도 전혀 없었다. 하여 그에게는 미칠 듯한 울분과 싸늘한 냉소와 허망한 욕정만이 남았다. 잔느를 만나 관계를 가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것은

너무도 허망하고 끔찍하리만큼 우울했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참담하다. 때문에 영화에서 모든 것은 죽음으로 끝맺는다. 아마도 이보다 과격하고 절망적인 결론으로 끝나는 남자의 부서짐은 어느 영화에서도 달리 없을 것이다.

 

영화는 어쩔 없이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을 떠올리게 한다. <피폐한 현대 서구 문화의 정신적 황폐를 경고한 작품>따위의 골치 아픈 평론가들의 분석은 빌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세대간의 단절, 시대, 공간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허망한 인식의 단절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저마다 외로운 사람들. 이제 어떻게 어디에 기대야 지도 모르는 사람들. 하지만 기대서야 사는 사람들. 사람들은 저마다 그렇게 복잡한 현실을 부여잡고 살고 있을까.

 

영화에서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남자와 여자는 섹스를 즐긴다. 서로 외롭기 때문에 서로 기대이고 싶기 때문에. 그리고 기대인 결과 주인공남자는 여자의 이름도 모른 죽고 만다. 생물적 본능의 즐거움과 쾌락은 좌절한 삶에 처한 평범한 사람의 최대의 도피처가 된다. 하지만 삶의 공허함은 육체적인 욕망으로만 채울 있는 것은 아니다. 중년의 남자와 전혀 모르던 연하 여자와의 동물적인 섹스는 그들의 불행한 결말을 애초부터 가늠 짓는 암시를 주게된다. 

 

이처럼 씁쓸하면서 일탈적인 분위기가 영상 곳곳에 담겨 있었다. 분위기는 주인공이 씹던, 벽에 붙여 놓고 죽어간 껌에서도 더욱 확연히 나타난다.

 

씹고 껌이란 폐기물이다. 서로 형태 다른 욕망을 씹고 있는 세상이 남기고있는 것은 황폐한 정신 페기물 밖에 없다는 은유다. ( 영화에 감동하는 우리의 후배들이 세대가 반죽하고있는 사색을 씹을가? 아니면 요즘의 병든 사회가 뱉어낸 정신적 페기물을 씹을가? 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선택일터지만)

 

녀자와 남자, 혹은 인간들의 모든 관계, 진정한 소통이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가능하다면 어떤 양태로 나타날가?

서로의 마음을 주는 대화로서?

그래도 안되면 서로를 갖게되는 섹스에서?

그래도 안되면 서로를 망가뜨리는

죽음에서?

남녀끼리 만나서 모든 것을 나누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완벽한 공존이라는 것은 기실 없다고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 사이에서마저도 이러한 소통과 단절은 쉽게 알린다.

이처럼 관계에서의 괴리와 소통의 부재, 죽음과 같은 고독과 끔찍한 허망함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란 이토록 허무한 것일까.

그리고 허무함에 대해 뒤미처야 깨닫게 된걸가? 나는?

과연 나는 상대를(혹여 친구 혹여 동료 혹여 동인 혹여 안해

혹여 애인...) 얼마만큼 알고 있는 것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다만 적막한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정말

그러한 것이라면 나는

폴처럼 어느 여자의 총구 앞에 흔연히 마주서고 싶다.

허무의 껌을 잇몸 아프게 씹으며,

씹다만 껌을

어느 골목길, 돌팔이 의사들의 양위치료 광고가 난무하는 벽에 붙여 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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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자 : 문사
날자:2009-09-18 20:06:15
글을 읽는 묘미를 행간마다 느끼게 하는 향수짙은 글이다.그러나 다 읽고나니 서글프다.고독과 허망과 무위로 더 빠져되게 한다.희망이란 없다. 다만 외로움만 남는다.인생은 꼭 머리로만 살아야 하나? 무슨 의미를 그리도 많이 찾아야 한단 말인가? 슬픔조차도 사치다. 폴처럼 자신을 잊으려고 애쓰는 자체의 인생에 젖어버린다? 아니지,뭔가 없는,허황된 꿈이라도 꾸면서 살아야 긴 인생 살아나갈수 있는 것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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