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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인민방송국 “문학살롱과”의 대담
- 장편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의 창작 과정과 에피소드
P D: 남 철
진행: 신금철
방송일: 2011-06-09
방송시간: [목]
신금철:
본 방송국 라지오소설 프로에서는 금년 4월 10일부터 6월 6일까지 58회에 걸쳐 라디오 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를 방송했습니다. 이 소설은 연변문학에 련재되였던 당시 독자들의 크나큰 흥미를 끌었고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5년이 지난 오늘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출판될 예정입니다.
오늘 문학살롱에서는 장편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를 창작하신 저명한 청년작가 김혁 소설가를 모시고 이 소설의 창작을 둘러 싸고 이야기를 나누고저 합니다.
이 작품의 인상적인 점은 우리문단에서 드물게 녀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장편소설이라는 점이다. 작가적인 의도는?
김혁:
우리가 감동하며 읽었던 명저들을 살펴보면 안나 까레니나. 보바리 부인, 나나, 제인 에어, 테스, 헤스터, 스칼렛 등으로 독자들중에 쟁쟁한 이름으로 남은 녀성주인공들의 운명을 다룬 작품들이 수없이 많다.
허나 우리 문단에 아직 한 녀성의 운명을 주선으로 다룬 장편은 거의 없다싶이 되였다. 외유내강의 특유의
그래서 어떤 녀인상(像)을 그리고싶었다. 안나 까레니나 같은, 제인 에어 같은, 빠리 노뜨르담 아래의 애스메랄다 같은, 아니면 더버빌 가의 테스 같은 그렇게 분명 기억될 녀인들을 쓰고싶었다.
어느날인가 무심코 내가 주물 해낸 소설 속 인물들을 머리에 하나 둘 떠올려 보다가 60 여 편이 되는 작품 중에 녀주인공이 겨우 한 두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집계에 스스로 놀란 적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녀성 주역을 내세워 그네들이 치렬하게 통과해온 삶을 직성 풀리게 쓰고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였다.
중국문단을 살펴보면 중량급작가들도 독자들의 취미와 작품의 상업화를 위해 본격문학제재에 통속문학형식을 접목하여 좋은 본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 조선족작가들이 배울바이다. 중국문단의 번역서나 한국의 취미소설이 그렇게 독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여러 잡지들에 다투어 게재 되는데 반해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 문단에는 아직 련정이나 추리, 현념, 무협, 판타지을 비롯한 통속제재가 전무하다고 말할수 있다.
이에 비추어 우리 동포사회의 문제점이 편파적으로 처처에 깔려있어 글의 무게를 구축하지만 대중적 통속소설의 형태로 글을 이어나가면서 글의 중후감을 보장하는외 자칫하면 재미위주에 빠지기 쉬운 결함을 아름다운 언어구사와 신선한 결말이 주는 비극미로 보완하고자했다.
신금철:
이 소설은 운명이 기구하고 순박한 농촌녀성이 가난탈출을 위하여 도시에 진출하고 간난신고를 겪다가 결국에는 밀항배에서 죽어가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평론의 시각에서도 이 작품을 비애소설, 저층서사라고 했는데 작가가 작품의 구조를 이렇게 설치한 까닭은?
김혁:
저층서사(底層敍事)란 변혁기의 중국사회에 이미 표면화된 민생문제에 대한 관조를 나타내면서 빈부차이, 새로운 도시빈민층, 도시에 진출한 농민공 등 밑바닥인 생을 영위하는 계층의 궁핍한 삶과 정신실존을 사실주의방법으로 표현하는 작품들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저층서사소설에서는 아직까지도 도시에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분망한 소외된 계층을 주요 묘술대상으로 삼고 이 부류 사람들의 처지를 우리 시대의 대사로 대할것을 주장하며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내면서 이를 통하여 시대의 일부 삐뚤어진 가치관념을 비판하고 아울러 개체생명의 독립과 존엄을 고양하고있다.
글에서 나는 산업화과정의 부산물로서의 시골녀성들이 고향을 떠나고 산업예비군으로 충당되며 그한 과정에 육체적파멸 정신적 파멸로 이어지는 도식과 현사회를 증언하는 녀인들의 다양한 삶의 양상을 한 인물에 집대성시켜 풀이하려 했다.
모든것이 세속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되고 돈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세태의 횡포속에 수동적인 삶을 강요당하면서도 한 개체로 살아남기위해 안간힘을 쓰는 녀성상과 그 과정에서의 눈물겨운 좌절과 몰락에 대해 살펴보려 했다.
사회의 욕망구조와 남성중심의 문화권속에서 사회와 충돌하고 대립하는중에 랑자하게 락인되는 녀성들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저 하며 축복받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그네들이 어떻게 운명에 우롱당하고 내쳐지는가를 전경식으로 펼치고 그 고통스럽고 무원조한 존재를 형상화 하려 했다.
신금철:
박신애가 대표하는 인물군체는? 작가가 박신애를 통해 표현하려는 우리민족 내지 사회상은?
김혁: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는 여느 작품의 구상때보다 나의 창작충동을 특히 강렬하게 불러준 작품이다.
장시기의 기자생활에서 필자에게 가장 크게 안겨온 것은 농촌인구의 도시대거 진출과 그속에 선봉으로 나선 녀인들의 운명이다. 최근년래 땅을 버리고 도시로 진출하는 조선족수는 년년이 급증하는 수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핍박에 의해 월강이민해왔던 우리 중국조선족의 또 한번의 이민열조라 분석한다. 80년대말로부터 지금까지 산해관이남을 넘어선 조선족수는 2,30만이라 한다. 220만으로 헤아리는 중국조선족의 인구수효로 볼 때 이는 그야말로 놀라운 수치이다.
그중 맨 앞장선 사람들이 바로 조선족녀인들이다. 짠지장사,음식장사로 나갔고 내지의 외국합자기업으로 나갔고 한국에 품팔이로 나갔다. 이들중 또 상당수는 유흥업소의 “3배동”아가씨들과 한국인현지처, 매춘녀들로 륜락된다. 북경시만해도 현재 유흥업소의 66프로는 조선족의 소유이며 적발된 조선족매춘녀의 수자만 해도 7천여명이라 한다. 따라서 섭외혼인으로 한국에 시집가는 조선족 녀인수도 90년초에는 해마다 1400명좌우로부터 중기에는 7600여명으로 요사이엔 만여명으로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 얼마전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 나가있는 조선족수는 20만명, 그중에 녀성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대이동은 조선족사회의 경제, 문화 모든면에서 충격을 주고 있고 우리의 조선족사회는 전례없던 진통을 겪고 있다. 그 진통속의 삶을 형상화하는 것은 작가로서는 하나의 미룰수없고 감이 큰 작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박신애라는 이 인물에 접근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할것은 박신애는 현대화건설의 물결속에서 도시에 진출한 수십만 조선족의 일원, 하나의 생명개체라는것이다.
또한 나는 조선족자치주의 수부에서 살며 이곳에 운집해드는 농촌 처녀들의 출현과 그들의 변해가는 삶의 양상을 본의 아니게 지켜볼때가 많았다.
내가 경영하던 자그만 식당에서 복무원으로 일하던 애가 있다. 시골에서 상경한 순박한 뜨내기였다. 경영부진으로 식당도 망가 먹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그 애를 노래방에서 보았다. 요염하게 치장하고 노래방 배동녀로 된 그 애는 나를 보자 난감한 기색이 되여 랑하끝 쪽으로 허겁지겁 도망을 가는 것 이였다.
70먹은 령감과 위장결혼을 하여 한국으로 간 먼 친척 녀자가 있다. 어떻거나 한국 가서 떼돈 벌어오겠다던 그녀가 한국에서 뜻밖의 사고로 비명에 갔다.
우리가 자주 다니는 단골다방에 겨우 신분등록증을 타고 카운터에 나선 여린 녀자애가 있었다. 그 다방이 파가 이주를 맞고 그만 두게 되자 다방마담과 우리와 정들었던 레지애가 난 어쩌면 좋아요? 하고 울먹이는 것 이였다. 이렇게 내가 90년초에 직접 경영하였던 식당과 책방에서 복무원으로 일했던 처녀애, 우리가 단골로 다니는 음식점이나 다방에서 녀급으로 일하는 처녀들, 우리 이웃이나 친지들중에 너나가 엇비슷한 처녀애들의 출국과 일자리 찾기 ... 그네들의 다양하고 불운하기 그지없는 삶들이 곳곳에서 촉발되는 감개를 주었고 따라서 나더러 이 소설을 구상하고 익히게 했으며 강렬한 창작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인물들의 운명이 집대성되여 태여난 것이 바로 신애였다.
그들 저마다는 시골서 보내온 생감자처럼 풋풋하면서도 아린 이야기를 가지고있다. 그 참담한 동질성의 가슴 저린 이야기들을 요즘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운명의 진공(眞空)속에 살아가는 그네들의 몇 가지 모습이 몽타주되여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피 돌림이 같은 사촌누이같이 애정이 가는 그들의 비극적인 삶이 환영으로 눈앞에 나타나군 했고 내 정감의 상온(常溫)을 뛰여 넘어 시시 때때 형벌처럼 나를 괴롭혔다.
그네들의 드라마 같은 삶을 쓰고싶었다.
그네들의 삶을 아슬아슬한 곡예의 줄타기에로 몰아간 오늘의 세태를 쓰고싶었다.
마을을 비우고 집을 비우고 사랑을 비우고 떠나간 우리의 녀인들이 곳곳에서 보이는 오늘의 현실이다. 그 막중한 현실을 정시하고싶었다.
그리고 박신애의 주변의 인물들을 고찰해보면 광천수차 사기 양인철, 운수회사의 버스 사기 박털보, 김밥집 마담, 장아주머니, 고향친구 경자, 그다음 신애보다 후에 국자가에 들어온 효준, 림호, 그리고 상인 윤성원, 시인 안경준 등을 하나하나 분석해보면 신애와 마찬가지로 운명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다수이고 진정으로 신애를 사랑하는 사람, 도와주려는 사람은 소수임을 쉽게 보아낼수 있다.
이처럼 개혁개방후 중국 조선족의 삶이 길도 여러 갈래로 뻗었으며 삶의 양상도 다양해지였다. 박신애의 삶은 그중 한가지 부류 사람들의 삶의 양상일뿐이다. 박신애를 통해 격변기 조선족 공동체 사회의 여러 양상도 더불어 보여주려 했다. 박신애라는 인물을 통하여 나는 박신애처럼 믿바닥인생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삶이 현장을 림리하게 조명하려 했으며 그들에게 무한한 동정의 마음을 표했다.
개혁개방 30년래 우리 나라의 경제는 고속도로 발전하고 총체상에서 중국사람들의 삶의 질이 크게 세인을 놀래울 정도로 제고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또 일찍 사람들이 에측하지 못했던 많은 사회문제들이 생성된것은 사실이다. 그 하나의 문제가 바로 빈부차이의 확대와 도시와 농촌의 경제생활수준과 문화생할수준 차이의 확대, 새로운 도시빈민층의 생성, 도시에 진출한 농민들의 사회적보장문제의 미해결 등 문제이다.
게다가 중국조선족이라고 불리우는 이 민족공동체는 천성적으로 자체의 문제가 수두룩한데 새로운 력사시기에 들어서면서 그것들이 총발로되는 양상을 보여주고있다. 조선족 농촌인구의 대량 도시진출과 조선족인구의 대량 해외진출에 의하여 연변을 중심으로 하는 집거지구의 조선족의 인구는 급속히 축소되고있으며 그 결과로 이미 조선족 민족사회는 문화적으로 해체되고있으며 급속히 동화되는 조짐을 보이고있으며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믿바닥인생을 영위하는 조선족인구가 다른 어느 민족보다 많아지고있다는 절규도 어렵잖게 들을수 있다.
신금철:
이 작품은 당시 연변문학에 련재할때 독자층에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했는데 그때의 에피소드는?
김혁:
이 소설은 “연변문학”지에 2003년 10월호부터 ~ 2005년 2월호까지 련재되였다. 나의 두번째 장편이다. 지금은 장편을 여러부 냈지만 그때는 상당히 실험단계에 내놓은 장편, 첫 장편을 마쳐 두달만에 연재를 시작한 장편이였다. 소설은 2008년에 독자들의 요청으로 “종합신문”지에 1년간 련재되였다.
일면 쓰면서 연재했기에 편집자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신애의 죽음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마지막 회를 접하고 편집자로부터 왜 죽였느냐고 엄숙한 질문이 올라왔다. 문우들은 이 작품을 읽은후 나를 킬러, 살인흉수라 부르기도 했다. 친구가 한번은 퇴근해 오니 안해가 눈이 퉁퉁 부어 있더란다. 영문을 캐 물으니 신애가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장레식에는 안가냐고 물으니 안해가 신애는 근간에 읽고있는 작중인물이라고 대답한데서 파안대소를 했다고 한다.
모 시에서는 노래방 배동녀들이 이 작품을 사기 위해 서점에 찾아와 문의 한 현상까지 일었다고 한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2009년 나는 역시 한 녀인의 치렬한 삶을 다룬 “와늘”이라는 중편을 썼다. 역시 운명의 질곡에서 헤매다가 나중에 밀입국을 택했던 녀인, 하지만 밀입국 하던 배가 난파된 현념으로 마무리 했지만 나는 주역이 죽는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았다. 어쩌면 신애의 눈물겨운 죽음에 대한 보상으로 또 한부의 녀성상을 그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서점에서 10여명의 생면부지의 독자에게서 왜 책으로 출시되지 않느냐, 또 메일로도 질문을 받았고 나의 블로그에도 질문이 여러차 올라왔다.
독자들의 애대에 힘입어 요사이 책자로 출간하려 한다.
신금철:
장편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는 라디오소설로 제작되여 58회에 걸쳐 방송됐다. 활자로 찍힌 평면적인 소설과 립체적인 드라마식 소설의 구별점을 작가자신으로는 어떻게 느껴보는가?
김혁:
사실 문인들중에서 ‘영화광’이로 통하고 있는 나는 이 작품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몬따쥬 수법을 시종 즐겨 썼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모두들 한부의 텔레비 드라마를 보는것 같다고들 했다.
사실 이 소설은 드라마로 각색되여 제작하려고 시도도 했던 작품이다. 한 유명 영화감독의 요청에 이 작품을 드라마로 각색했고 광전총국의 비준을 맡으려 중문으로 번역까지 해두 었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결국 자금문제로 무산되고 말았다.
지금의 영화나 방송문학은 그 발전 전기에 문학과 기타 예술의 힘을 입어 자신의 본체 내함을 크게 풍부히 하였고 오늘 더욱이는 현대 고신 기술의 힘을 입어 질적인 비약을 가져 왔다. 눈앞을 현란하게 하는 촬영기교와 컴퓨터 조합은 영화의 서사적 전개에 커다란 활동공간을 가져다주었고 성우의 매혹적인 목소리와 그에 곁들인 음악과 자연의 소리에 대한 재현은 문학을 보는것이 아니라 듣는 쟝르로 립체적으로 거듭나게 했다.
텔레비나 컴퓨터 디브이디가 없었던 한때 휘황한 전주곡을 울렸던 방송문학은 지금 이전보다 많이 외면되고 있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움의 쟝르로 남아있다.
요즘의 다양해진 문화참조계로 하여 수용자들 즉 독자나 청중들은 참조계들 사이의 애정 분배를 강요당하게 된다. 행복한 고민이다.
이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문학이며 예술은 변신해왔고 발전해왔다. 수용자가 원 하는 수요를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공급하는 것이 작가의 생존방식이라고 믿는다. 모든 생산이 그러하듯이 문학과 예술도 수요자에 대한 서비스가 최종목적으로 간주되는 세월이다. 아무리 자신이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하더라도 수요층이 없고 돈이 되지 않은 글은 작가 스스로 도태될 뿐 지속적인 재 공급이 불가능한 것이다. 인류의 생활양식이 변화하고 수요자들의 수요가 달라지면 공급자들은 여기에 부합해야만 하고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 때문에 참조계의 바다속에서도 방송문학은 그 독일무이한 매력으로 그의 청중은 어디까지나 있으며 그 매력도 영원하리라 믿는다.
드라마의 꿈을 꾸다 무산되였던 작품, 그러한 아쉬움이 있는 작품인데 이번에 방송소설로 각색되여 그런 아쉬움을 조금이나 덜어주었다. 이 기회를 빌어연출과 청아한 목청의 성우들 그리고 전체 제작진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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