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석의 "고향"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정지용의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냐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해설 -
백석의 시 '고향'에서, 시적 자아는 낯선 타향에서의 힘든 삶에서 병을 얻어 의원을 찾는다. 우연히 의원으로부터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을 받고 , 시적 자아는 자신의 부친과 의원의 부친이 막역한 친구임을 확인한다. 낯선 타향에서 외로운 신세에 놓여 있던 시적 자아는 그 순간 잊고 있던 고향을 떠올린다. 순간 고향은 자신의 출생지이며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유대로 묶인 상징적인 공간으로 확대된다.
한편,
정지용의 시 '고향'에서, 고향은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관념적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곳은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고향과 대비되면서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서 상실되기에 이른다. 이 순간 현실 속의 힘든 삶을 극복하는 계기로서 시적 자아의 현재와 과거를 이어 주던 관념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은, 현실과의 단절을 겪고 기억 속의 공간으로 후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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