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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디카시인’이 될 수 있을까. 단골술집 목포집 한 쪽엔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야생초를 키우는 풍경이 있다. 주전자와 식물의 공존 방식이 다가왔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고 내 삶이 감정이입 되어 ‘권주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당신이 디카 시인이다
일간 경제지 머니투데이는 매주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를 연재하고 있다. 시인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이 불러오는 시상을 짧은 시로 표현한다. 시집 ‘도요새 요리’로 유명한 최광임 시인이 멋진 시 해설을 붙인다. 사진이 앞장서고 시가 뒤따르는 형식이 디카시(디지털카메라+詩)다. 이 디카시 코너가 모바일 세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독특한 시선의 사진과 군더더기 없는 짧은 시가 결합했고, 이를 시평으로 풀어내는 최 시인의 디카시 칼럼은 네이버 프런트 페이지에 종종 오른다.
작금의 시는 문자성을 꼿꼿이 강조한 채 소수 문학인 집단의 향유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문자성을 본질로 삼고 이미지와 영상을 한 아름 품을 것인지를 결단해야만 한다. 고답적으로 자유시 산문시 정형시 서정시 서사시 등으로 분류되던 현대시는 새롭게 태어나야만 한다. 시 독자가 떠나버린 황량한 시단엔 시인들 푸념만 가득하다. 8000원 짜리 시집은 팔리지 않고 광화문 교보문고 시집 코너는 쓸쓸하기만 하다. 이 땅에 한글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자칭 타칭 2만 명에 이른다. 시 전문 문예지는 수백 종에 다다른다. 하지만 시를 즐기는 독자군은 눈에 띄지 않는다. 시인은 어느 별에서 사라진 시 독자와 재회할 것인가. 가장 오래된 문학의 원조인 시는 어디에다 둥지를 틀 것인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모바일 네트워크 시대, 인류는 호모 디지쿠스를 지나 호모 모빌리쿠스로 진화했다. 현대인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현대시가 SNS 소통환경에 최적화되어 다시 시의 깃발을 들어 올린 경우가 바로 디카시(dicapoem)다. ‘디카시’라는 용어는 2004년 이상옥 시인이 최초로 사용했고 공론화시켰다. 이 디카시가 사그라지는 현대시를 되살리고 있다. 멀티 언어예술로서 시의 언어 카테고리를 확장시킨 셈이다. 즉 시의 진화이다. 시는 사진과도 만나고 그림 애니메이션 플래시 동영상과도 만나야 한다. 문학 위기의 시대, 시가 스마트 미디어를 만나 문학의 본류를 부활시킬 수 있는 마지막 싹이 된 것이다.
디카시 칼럼의 한 사례. 냉면 사발에 오롯이 들어앉아 잠을 취하는 강아지의 모습이 애처롭다. 이 풍경에서 날선 이미지와 메시지를 포착해 디카시는 태어난다.
삶의 길을 걷던 시인(당신이 시인이다)이 주변 풍경과 사물을 일별하면서 영감을 주는 이미지를 포착한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열어 찰칵 찍는다. 이때 가슴도 열어 심상의 필름에 새겨둔다. 감흥이 채 식기 전에 서너 줄의 시적 언어로 꿰고 엮어 편집해둔다. 독특한 이미지는 시상(詩想)을 열어주고 시 언어는 이미지의 날개를 달고서 하늘을 난다. 이때 시인은 기성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 아니다. 바로 현대인 우리 자신이다. 저마다 휴대폰엔 수백 수천 장의 사진이 보관되어 있다. 이중에서 타인의 시선과 차별화된 사진 하나를 골라 나만의 서너 줄 문장을 보태보라. 깔끔하고 상징화된 시 제목을 한번 붙여보라. 바로 그것이 당신의 디카시다.
당신이 기르는 애완견 사진 한 장은 그 자체만으론 예술적 아우라를 갖지 못하지만 공감과 감수성을 장착한 시 문장을 갖추면 예술적 오브제로 승화된다. 당신의 '일상 역사' 수천 장을 휴대폰에 켜켜이 쌓아 놓고 사장시키지 말라.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열람하다 보면 수많은 사진과 만난다. 포스팅한 사진에 제 나름 감수성이 묻어나는 문장이 덧붙여진다. 사진에 깜찍한 캡션을 다는 일. 바로 디카시의 출발점이다. 이미지가 문자에 또는 문자가 이미지에 종속되지 않고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며 시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디카시는 진지함이나 근엄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가벼운 일상에서 이미지를 채취하므로 산책하는 기분처럼 상쾌하다. 관념적 사유가 아니라 일상을 즐기는 낭만정신을 앞세운다.
디카시가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끈 요인으로는 ‘열린 참여’라는 전제가 자리 잡고 있다. 디카시는 이미지라는 영상에 시의 압축성을 결합한 것이다. 4~5행 안팎에 시적 메시지를 압축한다. 1분이면 읽어내기에 이미지 전달력이 빠르고 강력하다. 고답적인 고담준론의 관념성은 발붙이지 못한다. 대신 일반인의 참여가 환영받는다. 이 지점에서 디카시의 향유층은 바다처럼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다.
향후 디카시는 소셜 네트워크 콘텐츠로 어떻게 자리매김될까. 인간 고유의 보편적 정서를 기반으로 일상을 스케치하는 이미지와 글월이 밀고 당기므로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나아가서 전 세계인의 보편 정서까지 노크할 수 있다. SNS 상 언어번역기능이 세밀히 작동된다면 한국어의 한계을 뛰어넘어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글로벌 문학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새 문학 장르가 열리는 셈이다. 당신이 ‘디카 시인’이다.
[출처] 당신이 디카 시인이다 |작성자 해리슨 김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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