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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전문]
원동우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 아내가 운다 반지하의 네 평 방을 방을 모두 치우고 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 눈금을 만질 때 풀썩 습기 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
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그림 속에 우주복을 입은 아내와 나 잠잘 때는 무중력이 되었으면 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주무시고 이쪽 벽에서는 당신과 나 그리고 천장은 동생들 차지 지난번처럼 연탄가스가 새면 아랫목은 안 되잖아, 아, 아버지,
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 어두워지는 한강을 건넌다 (닻을 올리기엔 주인집 아들의 제대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 중력을 벗어난 새 떼처럼 눈이 날린다 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 중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 덜컹거리는 사람들이 떠다니고 있다
눈발에 흐려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참 장판 밑에 장판 밑에 복권 두 장이 있음을 안다 강을 건너 마악 변두리로 우리가 또 다른 피안으로 들어서는 것임을 눈물 뽀드득 닦아주는 손바닥처럼 쉽게 살아지는 것임을
성냥불을 그으며 아내의 작은 손이 바람을 막으러 온다 손바닥만큼 환한 불빛
▣ 요즈음에는 한국도 포장이사를 하기 때문에 가재도구를 잔뜩 싣고 이사하는 광경은 궁벽한 시골이 아닌 다음에야 보기 어렵습니다.
◦ 셋방살이를 하던 가난한 일가가 주인집 아들의 이른 제대로 말미암아 황급히 방을 비워주게 됩니다. - 눈발이 날리니 초겨울인가요, 서울 변두리에서 더 변두리로 이사를 하는 풍경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 습기 찬 천장 벽지가 떨어지는 반지하의 네 평 방, 그나마 연탄가스가 새던 방을 비워주게 되었으니 일가의 마음이 참담할 수밖에요. - 장판 밑에 두고 온 복권에 연연할 정도로 이들 가족의 경제적 상황은 절박합니다.
◦ 그런데 이 시의 매력은 이런 비극적 상황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진한 감동을 주는 한 장면에 있습니다. - 남편이 담배를 피우려고 성냥불을 키자 바람이 방해를 합니다. - 차창이 조금 열려 있었던 것이지요. - 그때 아내의 작은 손이 다가와 성냥불을 꺼트리려고 하는 바람을 막습니다. - 가족간의 끈끈한 정이 을씨년스런 이사 풍경을 따뜻하게 밝히고, 독자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 아무리 세상살이가 험해도 가족 상호간에 사랑과 정이 변치 않는다면 극복 불가능한 어려움이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 이 시는 마지막 연이 백미입니다.
▣ 그런데 이 시로 등단한 원동우 시인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은행에 입사하여 10년 정도 근무하였고, 퇴사한 뒤에는 벤처기업을 꾸려갔습니다. ◦ 벤처기업이 잘 안 되어 한동안 방황하다가 지금은 어떤 회사에 들어가 잘 다니고 있습니다. - 시 속의 상황 중에 본인이 직접적으로 체험한 부분은 1%나 될까요? 이 작품은 시인의 완벽한 허구와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 퇴근길에 차를 몰고 가면서 무심코 본 광경이 바로 이삿짐을 싣고 달리는 소형 트럭 한 대였던 것입니다. - 사람들이 무심코 보며 지나쳤던 이삿짐 실은 트럭을 원동우는 유심히 보았던 것이고, 곰곰이 생각했던 것이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시로 써보았던 것입니다.
◦ 시는 이렇게도 탄생할 수 있습니다. - 실체험보다 간접체험이 더욱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례를 [이사]라는 신춘문예 당선작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등단작이 아닙니다. - 함민복 시인이 시골에 계신 귀가 어두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화가 좀체 이뤄지지 않습니다. - 이 시는 앞의 시처럼 비장하거나([영산포]) 을씨년스럽지([이사]) 않고 구수한 사투리와 유머 감각을 보여주어 아주 은근하게 감동을 줍니다. -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도 적절히 사용되어 재미를 배가시키지요.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전문]
함민복
여보시오―누구시유― 예, 저예요― 누구시유, 누구시유― 아들, 막내아들― 잘 안 들려유―잘. 저라구요, 민보기― 예, 잘 안 들려유― 몸은 좀 괜찮으세요― 당최 안 들려서― 어머니―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예, 죄송합니다. 안 들려서 털컥.
어머니 저예요― 전화 끊지 마세요―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예, 저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어머니. 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안어들머려니서 털컥.
달포 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네 어머니가 자동응답기처럼 전화를 받았네 전화를 받으시며 쇠귀에 경을 읽어주시네 내 슬픔이 맑게 깨어나네
▣ 달포 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만 끝끝내 대화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아니, 모자가 일종의 동문서답을 했지요. ◦ 시인은 아무튼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었던 것이고, 소처럼 무심한(미련한?) 나에게 귀 어두운 어머니가 경을 읽어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 가슴 찡한 감동은 아닐지라도 이 시를 읽으면 '아, 어머니!' 하고 마음속으로 한번쯤 외쳐보게 됩니다. - 충격도 주지 않고, - 이런 작은 감동도 주지 않는 시는 좋은 시가 되기 어렵습니다. -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4. 시를 찾아서 / 정희성
45. 세상이 달라졌다 / 정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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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 이상
김해경(金海卿)과 화가 구본웅(具本雄) 은 신명학교(新明學校) 동기동창이자 학창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구본웅은 몸이 불편하여 정상적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김해경보다 4살이나 많았지만, 같은 학년 같은 반에 편성되었다. 구본웅은 몸도 불편하고 4살이나 나이가 많아서 같은 반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았지만 해경은 구본웅에게 4년 선배로서의 예우를 갖추고 특별한 관심을 보이자 그 둘은 특별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동광학교 이후 1927년 3월에 보성고보를 졸업한 김해경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진학했다. 구본웅은 김해경의 졸업과 대학입학을 축하하는 선물로 사생상(寫生箱 = 스케치박스)을 선물했다. 어릴적부터 유난히 그림을 좋아했던 해경은 사생상을 선물 받고 날아갈 듯 기뻐했다.
그때 그는 구본웅에게 고마운 나머지 자신의 필명에 사생상의 '상자'를 의미하는 상(箱)자를 넣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해경은 아호와 필명을 함께 쓸 수 있게 호의 첫 자는 흔한 성씨(姓氏)를 따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고 구본웅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김해경)는 사생상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니 나무 목(木)자가 들어간 성씨 중에서 하나를 택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권(權), 박(朴), 송(宋), 양(楊), 양(梁), 유(柳), 이(李), 임(林), 주(朱) 등을 검토하다가, 김해경은 그 중에서 다양성과 함축성을 지닌 것이 이씨와 상자를 합친 '李箱'이라 생각했고 구본웅도 그 절묘한 배합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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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꽃나무 / 이상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결혼식에서 남긴 이상의 친필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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