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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서 제목은 왕관
2016년 01월 10일 03시 35분  조회:3599  추천:0  작성자: 죽림

창작 강의 및 감상평(6)

 

 

☞ 제목을 효과적으로 잘 붙이는 데에도 요령이 있습니다.

 

시의 제목을 제대로 붙일 줄 알려면 그 기법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제목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한 편의 시가 성립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고, 또 독자들이 이 시를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제목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이 문제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해 그동안 시 창작에 응용한 사람이 의외로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었습니다. 하여 이 문제에 관한 한 필자가 문단에서 맨 처음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같은 제목을 붙이더라도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제목이 되고, 보다 생산적인 제목이 될 수 있을까? 필자가 그 방법을 개발해서 그동안 작품에 실제로 구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제목 붙이는 법, 세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화장실에 관한 내용으로 시를 써 놓고 제목을 <화장실>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이 방법은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방법입니다. 더욱이 시 뿐만 아니라, 소설, 논문, 일반 문서에까지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 제일 고전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시에 있어서는 이걸 제대로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의 역기능으로 작용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많은 시들이 제목을 <화장실>로 해놓고 화장실에 대한 내용으로 시를 쓰거나, <서울역> 해놓고 서울역에 관하여 온갖 수사와 기교를 동원해 시를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화장실과 서울역에 대한 정보를 이미 많이 갖고 있어서(어쩌면 필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름) 그 시를 쓴 사람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저 그렇고 그런 내용의 화장실과 서울역에 관한 시는 읽으려 하지 않고 쉽게 외면하지 않나 싶습니다. 작자는 정말 열심히 최고로 좋은 시를 썼다고 여기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작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하여, 화장실에 관한 내용으로 시를 쓰고 제목을 <화장실>로 붙여 효과적인 제목이 되려면, 다음의 요건에 해당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즉 그 화장실이 우리가 전에 거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특별한 모습의 화장실이거나, 아니면 그 화장실에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새롭게 의미가 창조된 화장실이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내용이어야 그 시를 읽어줄 이유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시로 성공한 작품들을 한번 예로 몇 들어볼까요? 김춘수의 <꽃>, 김수영의 <풀>.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등을 한번 봅시다. 내가 불러줄 때 내게로 와 핀 꽃을 본적이 있습니까?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본적이 있습니까, 사평역이란 시를 보기 전에 사평역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사평역을 목포역이라고 제목을 붙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때도 이 시의 감동이 사평역만큼 올까요?

 

하여, 화장실에 관한 내용으로 시를 쓰고 제목을 <화장실>로 붙여 효과적인 제목이 되려면 위와 같이 우리가 전에 거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특별한 화장실이거나, 아니면 그 화장실에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새로운 의미가 창조된 화장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때 효과적인 제목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두 번째 방법은 시 내용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센텐스, 키 센텐스를 제목으로 올리되 전체 내용을 아우를 수 있도록 약간 변용해서 붙이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필자가 즐겨 사용했던 방법으로 필자의 시집 정동진역을 읽어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필자가 이 방법을 개발하게 된 배경은 평소 광고 카피와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을 유심히 살피는 데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즉 기사와 광고 카피의 헤드라인이란 시로 여기면 제목에 해당하는데 이걸 잘 뽑느냐 잘 못 뽑느냐에 따라 그 기사 또는 광고의 첫 인상 뿐만 아니라 여운까지 전혀 다르다는 데에 착안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헤드라인이 그 카피, 기사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내용이다라는 것도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이걸 시에 한번 적용해봤더니 제대로 맞아떨어지더군요. 이때 붙이는 제목의 형식은 서술형이 되기 쉽고, 내용은 시 전체를 장악할 수 있도록 약간 변용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세 번째 방법은 시 내용 중 가장 근간이 되는 내용의 속성을 가진 전혀 엉뚱한 것으로 제목을 붙이는 방법입니다. 위의 내용으로 설명을 하자면 화장실 내용으로 시를 쭉 써놓고 제목을 <김영남>으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시의 내용과 제목을 연관 지어 설명하자면 "김영남은 화장실이다" 라는 시를 쓴 거가 되는 거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어떤 글을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서 그럴싸하게 묘사 해놓고 제목을 <아름다운 섬>으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만약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쭉 묘사해 놓고 제목을 <아름다운 여자>로 붙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이 글이 아름다운 여자를 설명하고 묘사한 글이지 어떻게 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제목을 <아름다운 섬>이라고 붙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순간 메타포가 형성되어 시로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제목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시가 되고 안 되고 까지 하게 됩니다. 이 방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시를 하나 소개하고 지면상 한계로 인해 <효과적인 제목 붙이는 요령> 강의를 마칠까 합니다. 소개하는 시는 98년(?) 현대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이고 아주 하찮은 여울을 하나 묘사해 놓고 제목을 엉뚱하게 붙여 성공한 시입니다. 만약 이 시 제목을 < XXX 여울>.로 붙였을 경우 시가 될 수 있는지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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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강순

 

여울에는

 

밀어,꼬치동자개,버들매치,버들치,배가사리,감돌고기,가는돌고기,점몰개,참마자,송사리,갈문망둑,눈동자개,연준모치,버들개,모래주사,새미,누치,흰수마자,납자루,열목어,꺽저기,수수미구리지,금강모치,돌상어,왜매치,꺽지,쌀미구리,점줄종개,돌마자,둑중개,왕종개,버들가지,꾸구리,모샘치,어름치,돌고기,부안종개,자가시리 등이 살았다.

 

나는 가끔 물살이 빠른 그곳에 발을 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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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 올라온 시를 한번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박현 님의 <마이산, 돌탑을 바라보다> 라는 시를 읽으면 이제까지 강의한 내용중 어디에 걸려 시로 성공할 수 없는지를 금세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름대로 제목에도 멋을 부렸는데 위에서 제가 설명한 내용을 참고하면 제목을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를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죠?

그리고 돌탑도 독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소재 아닙니까? 독자들이 이 시를 읽고 뭔가 얻었다 뭔가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는 느낌을 주려면 돌탑에 관하여 가공으로 만들어서라도 새로운 이야기, 정보를 제공해야죠. 그러지 않으면 시간도 돈이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읽어봤는데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 판단되면 독자는 다시 그 사람 시를 읽지 않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현재 님의 시중에서 필자에게 어필할만한 구절과 감각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군요.

 

박현 님은 필자의 창작 강의1,2,3,4,5를 읽어보고, 또 게시판에 올라온 독자들 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유심히 살핀 다음, 다른 소재로 시를 한번 써서 올려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생각하고 차근차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바라자면 그 동안 써왔던 방식을 잠시 접어두고 제가 창작 강의(1)에서부터 설명한 방식으로 시를 한번 새롭게 써 보시기 바랍니다. 뭔가 달라지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일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유연한 사고를 갖는 자가 빨리 성공할 수 있습니다(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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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서시 / 윤동주

 

 

  

 

 

 

 

 

 

<서시 원문>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원문에는 이 시의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그러나 윤동주 육필원고에는 '서시(序詩)'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고,

운동주의 동생 윤일주가 증언한 바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서시라는 제목으로 부른다.

 

 

 

 

 

 

윤동주 시인 연보

1917년(1세) : 12월 30일에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부친 윤영석, 모친 김용(金龍, 1891~1948)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나다.

                      (본관 : 파평. 아명 : 해환(海煥).

                      윤동주의 호적을 비롯한 각종 공식 기록에 그의 출생이 <1918년>으로 되어 있는 것은 출생신고가 1년 늦었기 때문이다.

1924년(8세) : 12월, 누이 혜원(惠媛, 아명 貴女) 출생.

1925년(9세) : 4월 4일, 명동소학교 입학.

1927년(11세) : 12월, 동생 일주(一柱, 아명 달환) 출생.

1928년(12세) : 서울에서 간행되던 어린이 잡지 『아이생활』을 정기구독 시작. 급우들과 『새명동』이란 등사판 잡지를 만듬.

1931년(15세) : 3월 20일, 명동 소학교 졸업. 명동에서 10리 남쪽에 있는 대랍자의 중국인 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여 1년간 수학.
                       이 해 늦가을 용정으로 이사.

1932년(16세) : 4월, 용정 미션계 교육기관인 은진(恩眞)중학교에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입학. 부친 인쇄소 차렸으나 사업이 부진하다.

1933년(17세) : 4월, 동생 광주(光柱) 태어나다.

1934년(18세) : 12월 24일, 최초의 작품인 시 3편(초한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을 제작 기일 명기하여 보관 시작.

1935년(19세) : 9월 1일,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친 다음 평양숭실중학교로 전학(편입시험 실패로 3학년 편입)

                       10월, 숭실중학교 학생회 간행의 학우지 『숭실활천』 제 15호에 시 「공상」 게재, 최초로 작품 활자화되다.

1936년(20세) : 3월, 숭실중학교에 대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표시로 자퇴. 문익환과 함께 용정으로 돌아오다.

                       (윤동주는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문익환은 5학년에 편입.)

1937년(21세) : 8월, 백석 시집 『사슴』을 배껴 필사본을 만들어 가지다. 이 무렵 광명중학교 농구선수로 활약.
                       상급학교 진학문제를 놓고 부친과 심하게 대립, 결국 조부의 개입으로 본인이 원하는 <연전 문과>로 진학 결정.

1938년(22세) : 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 졸업. 4월 9일, 서울 연전 문과 입학.

                       연전 기숙사 3층 지붕 밑 방에서 송몽규, 강처중과 함께 3인이 한방을 쓰면서 연전생활 시작

1939년(23세) : 기숙사를 나와서 북아현동, 서소문 등지에서 하숙생활. 북아현동에서 살 때, 라사행과 함께 정지용을 방문,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 「아우의 인상화」를 尹東柱 및 윤주(尹柱)란 이름으로 발표. 

                      동시 「산울림」을 『少年』에 윤동주(尹童柱)란 이름으로 발표.


1940년(24세) : 다시 기숙사로 돌아오다. 하동 출신 정병욱(1922~1982)과 깊이 사귀다.

                       1939년 9월 이후 절필하다가 이해 12월에 가서 3편의 시(八福, 慰勞, 病院)을 씀.

1941년(25세) : 5월에 정병욱과 함께 기숙사를 나와 종로구 누상동 소설가 김송 씨 집에서 하숙. 9월, 북아현동으로 하숙집 옮기다.
                       12월 27일, 전시 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전 4년을 졸업하다.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시를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란 제목의 시집을 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음)


1942년(26세) : 연전 졸업 후 한달 반 정도 고향집에 머무르다. 부친이 일본 유학을 권한다.

                       도일수속을 위해 1월 19일에 연전에 <平沼東柱>라고 창씨한 이름을 계출하다.

                       1월 24일에 쓴 시 「懺悔錄」이 고국에서 마지막 작품이 되다.
                       4월 2일,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 10월 1일,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학과에 전입학.

1943년(27세) : 7월 10일, 송몽규 특고경찰에 의해 경도 하압경찰서에 독립운동혐의로 검거되다.
                       7월 14일, 윤동주, 고희욱도 검거되다. 12월 6일, 송몽규, 윤동주, 고희욱 검찰국에 송국되다.

1944년(28세) : 1월 19일, 고희욱은 기소유예로 석방되다. 2월 22일, 윤동주 · 송몽규 기소되다.
                       3월 31일, 경도지방재판소 제2형사부는 윤동주에게 <징역2년(미결구류일수 120일 산입)>을 선고

                       (확정: 1944년 4월 1일, 출감예정일 1945년 11월 30일).
                       이들은 판결 확정 뒤에 복강형무소로 이송되어 복역 시작. 매달 일어로 쓴 엽서 한 장씩만 허락되다.

1945(29세) :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윤동주, 복강형무소 안에서 외마디 비명을 높이 지르고 운명.
                    2월 18일, 북간도의 고향집에 사망통지 전보 도착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가져오려고 도일, 복강 형무소에 도착

                    하여 먼저 송몽규를 면회.(자신들이 이름 모를 주사를 강제로 맞고 있으며 동주가 그래서 죽었다는 증언을 듣다.)
                    3월 6일, 북간도 용정동산의 중앙교회 묘지에 윤동주 유해 안장.
                    3월 7일, 복강형무소에서 송몽규 눈을 뜬 채 운명. .

1947년 : 2월 13일, 유작 「쉽게 씌어진 詩」가 당시 주간이던 시인 정지용의 소개문을 붙여 『경향신문』 지상에 발표됨.
              2월 16일, 서울 <플라워 회관>에서 첫 추도회 거행.

1948년 : 1월, 유고 31편을 모아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을 붙여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

1955년 : 2월, 서거 10주년 기념으로 유고를 더 보충한 증보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정음사에서 출간.

 
1985년 : 일본의 윤동주 연구가인 조도전대학의 대촌익부(大村益夫) 교수에 의해 북간도 용정에 있는 윤동주의 묘와 비석의 존재가

              한국의 학계와 언론에 소개되다.

1990년 : 광복절에 대한민국 정부는 윤동주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4월 5일에 북간도의 유지들이 명동 장재촌에 있던 송몽규의 묘를 용정 윤동주 묘소 근처로 이장.

1995년 : 광복절에 대한민국 정부는 송몽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애국장은 독립장보다 한 등급 아래 훈장이다.)

1998년 : 8월에는 윤동주의 작품을 모두 수록한 사진판 시집이 민음사 판으로 나왔다.

             현재 윤동주의 시집은 여러 나라에서 여러 판본으로 번역되었고, 그의 전기를 비롯한 연구서적도 수십권에 이르고,

             박사학위 논문을 비롯한 학술논문들은 3백 편을 상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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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별 헤는 밤 / 윤동주

 

          

 

          

 

 

 

 

 

 

<별 헤는 밤 원문>

 

별헤는밤

 

 

 

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색여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來日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靑春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
  니다。

별하나에 追憶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憧憬과
별하나에 詩와
별하나에 어머니、어머니、

어머님、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식 불러봅니다。 小學校때 冊床을
같이 햇든 아이들의 일홈과、佩、鏡、玉
이런 異國少女들의 일홈과 벌서 애기  
어머니 된 게집애들의 일홈과、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일홈과、비둘기、강아지、토
끼、노새、노루、「랑시쓰․쨤」 「라이넬․마
리아․릴케」 이런 詩人의 일홈을 불러봅
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에 게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러워
이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일홈자를 써보고、
흙으로 덥허 버리엿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일홈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一九四一、十一、五.)
그러나 겨을이 지나고 나의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내일홈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게외다。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 
-상징과 이미지의 변주



1. 은유냐 상징이냐 

직유가 발전하면 은유가 되고 은유는 서로 다른 범주에 있는 두 사물을 
동일시하는 기법이라고 말한바 있다. 
직유가 상사성을 토대로 두 사물을 비교한다면 
은유는 비 상사성을 토대로 비유하고, 그런 점에서 
전자에 비해 신비한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시적 호소력이 크다. 
그러나 두 기법 모두 두 사물을 비교하고 비교되는 두 사물이 시에 나타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예컨대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사랑 빈집에 갇혔네 
ㅡㅡ기형도,(빈집) 


같은 시행에서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는 직유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말하자면 ‘나는 장님처럼’은 직유이고 따라서 이런 형식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시행을 예컨대 ‘나 장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라고 쓴다면 
은유가 되고, 직유의 형식에서 비교조사‘ㅡ처럼’을 생략하면 은유가 된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나는 장님처럼’이라는 말과 
나는 장님’이라는 말은 두 사물을 비교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내용은 매우 다르다 전자가 문을 잠그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만 
후자는 그런 설명보다 ‘나’와‘장님’의 동일시가 강조되고 따라서 이때 
'나’는 ‘장님’이면서 ‘장님’이 아닌 이상한 특성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기형도는 장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이렇게 쓴다면 그는 장님이고 장님이 아니다. 그리고 은유의 형식으로 시를 쓴다면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 아닌 다른 내용이 나오는게 좋다 
한편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의 경우 ‘빈 집’의 이미지는 이 시행만 놓고 보면 무엇을 비유하는지 알 수 없고 따라서 
취의 tenor 와 매재 vehicle 의 관계가 시행에 드러나지 않고 취의가 생략된 형식이 된다. 직유나 은유 에서는 취의와 매재의 관계가 드러나지만 
이런 이미지의 경우에는 취의가 생략되고 매재만 드러난다. 
이런 이미지를 상징 이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상징은 은유가 발전한 형식이고 그 의미는 하나가 아니고 분명치 않고 모호하다. 
간단히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직유] t : v = 1 : 1 (나는 장님처럼) 
[은유] t : v = 1 : 1 (나는 장님) 
[상징] t : v = ? : 1 (빈 집) 


‘빈집’ 은 무엇인가를 의미하지만 이 시행만 놓고 보면 
그 내용,취의 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없다. 그렇치 않은가?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라는 시행만 놓고 보면 
이 ‘빈 집’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분명치 않고 다만 전체 시를 찬찬히 읽을때 
그 의미가 드러난다.이‘빈 집’이 무엇을 상징한다는 것은 
(상징象徵은 영어로 symbol이고 그리스어로 뜻하는 명사 symbolon 에서오고 
이 명사는 짜 맞춘다는 뜻의 동사 symballein 과 관계가 있다. 
좀더 자세한 것은 이승훈, 시작법, 탑 출판사,1988,201면 참고바람), 
그러니까 다른 무엇과 짜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 이미지가 어떤 관념을 지시한다는 것은 이 ‘빈 집’이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빈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가엾은 내 사랑’ 을 의인법으로 읽어 
‘가엾은 내 애인’이 갇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든 애인이든 
‘빈 집’에 갇혔다는 말은 이상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의 경우가 그렇다. 
사랑이 어떻게 빈 집에 갇힐수 있는가? 
요컨대 은유와 비교하면 상징은 비유되는 두 사물 가운데 
취의가 생략되는 형식이고 또한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로 치환하면 


[은유] 이미지 : 관념 = 1 : 1 (장님은 나) 
[상징] 이미지 : 관념 = 1 : 다 (빈 집은 무엇?) 


와 같다.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1 ; 다’ 라고할 때 다는 다라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모자란다는 뜻이고 말하자면 상징의 의미는 아무리 퍼내고 쏟아 붓고 
계속 의미를 부여해도 모자란다는 뜻이고 그러므로 다多는 다이고 다가 아니다. 
그런가하면 또한 다는 다da이다. 이 다는 디자인 dasein,현존재라는 의미의 
디자인의 접두사이고 현재 존재하는 나, 지금 여기있는 나의 의미를 강조한다. 
현 존재는 존재 sein 와 현da이 결합된 존재이고 그러므로 여기da가 중요하다. 
여기는 어디인가? 프로이트는 18개월짜리 손자가 혼자 노는 것을 관찰하며 
그 아이가 오/아를 반복 하는것에 주의한 바 있다. 
엄마가 없는 빈 방에서 아이는 혼자 실패 놀이를 하고 실패가 멀리가면 ‘오’ , 
실패가 돌아오면‘아’ 라고 소리친다, ‘오’는fort(저기),‘아’는 da(여기) 
라고 해석한 것은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쾌락 원칙을 넘어서”). 
나는 나를 멀리 던지고 그 나는 다시 돌아온다. 나를 던질 때 나는 돌아온다. 
무슨 말인가?그러나 나는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나고 돌아온다. 
요컨대 반복이 있을 뿐이고 이 반복, 죽고 싶은 마음이 칼을 찾는다. 
칼은 날이 접혀서 펴지지 않으니 날을 노호하는 초조가 절벽에 끊어지려 한다’(이상,“침몰”). 
나는 지금 시작법 (그것도 알기 쉬운?)에 대해 글을 쓰는지 
1 ; 다’에 나오는 다에 대한 잡념에 시달리는지 잡념을 즐기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다ㅡ 콤플렉스가 아니면 다ㅡ 강박증 인가보다. 
요컨대 현재는 없기 때문에 현 존재의 다da는 그런 無, 
불교식으로는 空 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이 무,공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두는 무엇이고 많다는 것은 무엇이고 다 da는 무엇인가? 
지난밤에는 밤새도록 비가오고 어두운 새벽 빗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갑자기 무섭고 서럽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 작은방, 지금 이글을 쓰는방, 
옛날에 딸애가 공부하던 방으로 와서 전등을 켜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돌아가 
다시 잠이 든 이런 행위는 무엇을 상징 하는가? 

2.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다시 요약하면 상징은 하나의 낱말, 어구, 이미지가 
복잡한 추상적 관념을 암시하지만 그 의미는 전체 시를 전제로 알수 있다는 것. 
말하자면 그 낱말이 나오는 시행에서는 생략된다는 것. 
따라서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상징은 은유보다 고급이고 
한편 은유보다 난해한 기법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기법이 나오고 
이런 기법, 말하자면 상징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에서 상징을 강조한 것은 19세기 말 상징주의 시인들이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보들레르 이다. 그는‘교감’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자연은 하나의 신전神殿, 거기 살아 있는 기둥은 
이따금 어렴풋한 말소리 내고 
인간이 거기 상징의 숲을 지나면 
숲은 정다운 눈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아득한 
어둡고 그윽한 통합 속에 
긴 메아리 멀리서 어울리듯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상통 한다. 
ㅡ 보들레르,[교감](정기수역) 


‘교감’ correspodence 은 ‘만물 조웅’ 으로도 번역된다. 
자연은 인간이 모르는 가운데 저희들끼리 무엇인가를 주고 받는다는뜻. 
이 시에서 보들레르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연이 주고받는 것들이다. 낭만주의자들의 경우 
자연의 시인의 정서를 환기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치만 여기서는 ‘ 
신의 궁전’으로 노래된다. 신의 궁전 이기 때문에 
자연은 이 세상을 초월하는 이상의 세계, 
혹은 그런 세계로 갈 수 있는 수단이 되고 그런 점에서 자연은 신, 초월자, 절대자의 목소리를 상징하는 ‘상징의 숲’이 된다. 
시인은 이런 숲의 목소리를 듣는자 이고, 그 목소리는 만물 조웅, 곧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주고받는, 상통하는 것을 들을때 알 수 있다. 
만물 조웅은 향기(후각), 빛깔(시각), 소리(청각), 가 서로 통합 하는 것 
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감각의 교감이고, 교감의 세계가 된다. 
물론, 현대시를 쓰는, 혹은 쓰고자하는 분들은 
반드시 이런 상징의 미학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그 
러나 최소한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역사적 문맥에 대한 지식이 요구된다. 
요컨대 상징을 강조하는 시들은 이 시가 암시 하듯이 
관념을 전제로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감각에 의해 사물을 보고 그 감각이 환기하는 혹은 암시하는 여러 관념들을, 
자신도 모르는 그런 관념들을 이미지로 전달해야 한다. 
앞에서 인용한 기형도의 경우 ‘빈 집’은 상징적 이미지 이고 그는 살아가면서 ‘빈 집’ 을보고 혹은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그 체험의 내용을 시로 노래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는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ㅡ 기 형도,[빈 집] 


그가 쓰는 것은 ‘사랑을 잃은 마음’이고 
따라서 ‘빈 집’ 은 이런 마음을 상징 한다. 
상징적 이미지는 시에서 반복되는 수도 있고 이 시처럼 변주되는 수도 있다. 
이 시의 경우 ‘빈 집’ 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나’, 
그리고‘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로 변주된다. 한편 이런 마음, 
그러니까 ‘빈 집’이 상징하는 것들은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안개들’,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로 변주된다. 
이런 변주는 상징적 이미지가 보여주는 난해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적 책략이고 
따라서 상징을 강조하는 시인들은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를 선택하면 
그 이미지를 시에서 여러번 반복하거나 다양하게 변주 시켜야 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한 시인이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혹은 상상력에 의해 
창조한 이미지를 개인적인 상징 이라고 부른다. 
상징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는바 
첫째는 개인적 상징, 둘째는 인습적 상징, 셋째는 원형적 상징이다 (좀더 자세하 것은 이승훈, 시론, 고려원, 1979, ‘상징의 유형’, 206ㅡ211면 참고바람). 
개인적 상징은 사물에 대한 시인의 개인적 감각을 중심으로 그 내면성 혹은 상상의 세계를 강조하고, 이때는 그 의미가 모호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구조에 의해 
혹은 시 전체의 문맥에 의해의미를 암시해야 한다. 인습적 상징과 
원형적 상징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다루기로 한다. 개인적 상징을 중심으로 
특히 그 상징적 이미지를 변주 하면서 
한편의 시를 완성하는 시들을 좀더 살피기로 하자. 


결국 그것은 제 몸 치근대는 바람 때문일 거야 큰 송아지만한 사 
냥개 절뚝절뚝 저녁 어스름 이끌고 날 찾아왔지 큰 채와 사랑채 
이음새 헛간에서 주먹밥을 나누어 먹던 한철을 잊을 수 없네 헛간 고 
요에 상처 아물고 주먹밥의 유순柔順에 길들여졌다 할지라도 어느 날 
훌쩍 사냥개 사라지고 텅 빈 고요만 비에 젖어 슬펐네 
ㅡ 강 현국,[가난한 시절4] 


이 시에서 ‘사냥개’는 ‘가난한 시절’을 상징한다. 
그러나 '사냥개‘ 라는 이미지에는 단순히 먹이를 사냥하는 동물 이라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공포, 사냥이 암시하는 야수성, 짐승이 짐승을 잡는 
아이러니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강현국이 노래하는 가난은 
단순히 배가 고프다는, 굶주린다는 의미가 아니고 또한 이 시에서 그는 
사냥개가 ’절뚝절뚝 어스름 이끌고 나를 찾아 온다‘고 노래함으로써 
그것이 병든 가난, 어스름이 표상하는 무력감을 동반하는 가난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는 현재 ’컹 컹 컹 밀려오는 저녁놀‘을 본다/듣는다. 
그 가난은 밀려오며 무너진다. 말하자면 아직도 그를 지배하는 것은 
옛날의 가난이다. 그는 지금도 저녁놀에서 사냥개 울음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석탄을 적재한 무개화차들이 굴러가는 철길 너머에 저탄장이 있다. 거대한 재의 
무덤, 바람에 석탄 가루들이 일어난다. 그것은 흩어진다. 그것은 바람에 불려간다. 
검은 바람, 펄럭이는 검은 작업복, 탄부들이 움직이고 있다 
ㅡ최 승호[재] 

이 시의 경우‘재’는 석탄 가루를 표상하고 그것이 재라는 점에서 
죽음을 상징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불타고 나면 재가 된다. 
그러나 이재, 죽음은 이 시에서 일어나고 흩어지고 불려간다. 
물론 바람을 매개로 하지만 재의 이미지는 이런 변주에 으해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낳고 개인적 상징의 한 개를 초월한다. 
재라는 이미지가 이렇게 변주 됨 으로써 그 상징적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시에서 ‘재’는 죽음을 상징 하지만 그 죽음은 바람에 의해 일어나고 
흩어지고 불려간다. 결국 재는 바람과 동일시된다. 
바람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바람이 있다. 

쾌락으로 가는 
길목에 털이 있다. 궁창이 열리고 
땅이 혼돈을 멈추었을때,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인간을 
가장 나중에 완성 시킨건, 아무래도 털이다. 당신이 떠나고 
세상에서 가장 싼값으로 
인생을 구겨버리고 싶을 때, 낡은 침대나 
주전자 옆에서, 꼼지락거리는 
털. 
ㅡ 원 구식,[털] 

이 시의 지배적 이미지는 ‘털’ 이지만 그 이미는 분명치 않고, 
따라서 상징이 된다. 무엇을 상징 하는가? 이 ‘털’은 ‘쾌락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점에서 쾌락과 관계되고, 따라서 머리털이나 수염이 아니라 
음모를 의미하고, 시인은‘당신이 떠난’ 방에서 낡은 침대와 주전자 옆에 떨어진 음모를 본다. 이 털은 육체에서 떨어진 것이므로 털로서의 기능이 없고, 
따라서 죽음을 표상 하지만 이 시에서는 꼼지락거린다. 살아있다. 
그리고 이 털은 대지의 풀에 비유된다. 말하자면 풀은 ‘땅의털’ 이다. 
도대체 정사가 끝나고 ‘당신이 떠난 다음’ 낡은 침대에 떨어진 털을 보는 것도 
이상하고 이 털이 살아 꼼지락거린다고 노래하는것도 이상하고 풀을 땅의 털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이렇게 이상한데 있고 
이상한 것이 진리이다. 상식, 기준, 표준이 깨질때 진리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털은 육체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고, 머리털은 신체 정상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정신적 힘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음모는 생식, 성행위를 돕는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 털은 그런 의미를 벗어난다. 
그러나 이 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상징한다. 죽은털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는 모두 상징적 이미지의 변주를 통해 변주와 함께 변주를 먹고 태어난다. 

3.인습적 상징을 이용하라 
이상에서 나는 상징의 세 유형 가운데 이른바 개인적 상징에 대해 말했다. 
다음은 이른바 인습적 상징. 말 그대로 이런 상징은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내적 필연성(개인적 상징)이 아니라 오직 인습, 습관, 사회적 약속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런 상징은 일정한 역사적 사회적 특성을 소유한다. 말하자면 한 시대나 한 사회에서만 공유하는 상징이다. 예컨대 십자가는 기독교 정신을 상징하고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고 태극기는 조국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런 상징은 
보편성을 띠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인들의 진리이고, 비둘기는 
구약의 문맥에서 평화이고, 태극기는 한국인들의(그것도 남한만의) 조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태극기를 보고 조국을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적 역사적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상징은 인습적으로 습관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난해하지 않고, 난해하지 않기 때문에 알기는 쉽지만 
한편 시적 깊이가 사라진다. 오늘 이 시대에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 한다고, 
비둘기를 보면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없고, 그런 생각은 
과거의 인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치 않은가? 내가 사는 아파트 약방 앞 보도 블럭에는 언제나 비둘기들이 모여있다. 놀고있나 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면 
평화롭게 놀고있는 것이 아니라 모이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다. 
너희들이나 우리나 모두 먹고 살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이런 비둘기들은 
평화가 아니라 먹고 살기위한 고통, 싸움, 전쟁을 상징 한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유념할 것은 이런 인습적 상징을 사용하는 경우 그 상징적 의미를 
시의 문맥에 의해 변형 시키고 변주해서 새로운 의미를 보여 주라는 것. 
다음은 비둘기라는 이미지를 인습적 의미로 사용하되 변주시킨 보기이다. 

비둘기들이 걷고있는 이 고요한 지붕은 
반짝거린다, 소나무 사이, 무덤 사이에서 
여기 공정한 ‘정오’ 가 불로서 구성 한다 
바다를,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를! 
산들의 고요를 오래 관조하는 
오 사색이 받는 보상이여! 
ㅡ발레리,[해변의 묘지](민희식, 이재호 역) 

시의 표제가 ‘해변의 묘지’ 로 되어있기 때문에‘이 고요한 지붕’은 ‘바다’를 비유한다. 그렇다면 ‘비둘기들’은 바다를 걷고 있는 비둘기로 읽을수 있지만 
바다에는 비둘기가 아니라( 물론 조금 미친 비둘기들은 바다에 떠 있을수도 있다. 김기림의{바다와 나비}에는 조금 미친 나비가 바다에 떠있음) 갈매기가 
많고 따라서 이 비둘기들은 바다위에 떠있는 ‘고기잡이 배들의 하얀 돛대’를 
비유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행은 이중 구조로 되어있다. 하나는 지붕/ 비둘기가 
바다/ 하얀 돛대를 비유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고요한 지붕을 비둘기가 걷고있다는 것. 그러므로 이 시행이 주는 시적 효과는 이런 이중 구조가 산출하고 
그것은 고요한 지붕(바다)에 하얀 돛대가 비둘기처럼 평화롭게 떠있다는 
독특한 의미를 낳는다. 물론 여기서 비둘기의 이미지는 평화라는 인습적 의미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 비둘기는 비둘기 이면서 동시에 하얀 돛대이기 때문에 
이중적 의미를 암시한다. 요컨대 비둘기의 평화는 하얀 돛대의 평화가 된다. 
이 시의 전경은 소나무 사이, 무덤 사이에서 바다가 반짝이는 풍경이고 후경은 
하얀 돛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습적 상징은 그 의미를 이렇게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그 보기. 

쫒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려 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었을까요. 
ㅡ 윤 동주.[십자가] 

4. 원형적 상징 

인습적 상징이 시대적 사회적 제약을 받고 그 의미가 사회적 인습에 의존 한다면 
이와는 달리 이런 시대적 사회적 제약을 초월하고 상징(이미지)과 관념의 관계가 보편성을 띠는 것이 있다. 이른바 보편적 상징 혹은 원형적 상징 원형 archetype 은 으뜸가는 이미지, 원초적 이미지라는 뜻으로 시인들, 화가들이 
수많은 이미지들을 생산 하지만 결국은 몇 가지 원형으로 환원 된다는 점에서 
모든 이미지들의 바탕 이라고 부를 수 있다. 융에 의하면 이런 이미지는 
사회와 역사를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무의식이 생산하고 그런 점에서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미지(상징)는 개인 무의식 
그것도 성적 욕망이 생산 하지만 그의 제자인 융에 의하면 집단 무의식이 생산하고 이런 보편적 상징은 옛날부터 현재까지 인류에게 무의식적으로 계승되는 
이미지이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소유하는 인간적 꿈, 소망, 원망을 암시한다. 이런 소망은 지금도 계속된다. 예컨대 이 세계는 물, 불, 바람, 흙의 원형으로 
되어 있다거나 자연은 계절적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인간도 다시 태어난다는 
재생 원형 등이 있고, 재생 원형은 결국 우리 인간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죽고 싶지 않다는 것, 이른바 불사不死,영원에의 꿈을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지상의 삶을 초월해서 하늘, 천상의 세계에 닿고 싶은 소망도 있고, 
이런 소망은 흔히 계단, 산, 나무, 탑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예컨대 이런 꿈은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 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 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ㅡ김 현승,[플라 타너스] 


같은 시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시의 중심적 이미지는 ‘플라 타너스’ 이고 
여기서 이 나무는 단순히 가로수를 의미 하는 게 아니라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는 시행이 암시하듯이 하늘과 닿은 나무, 이른바 초월을 상징하고, 이런 초월은 지상으로부터 벗어나 신의 세계에 닿고싶은 인간의 꿈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시의 후반에는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는 시행이 
나오고, 이런 시행을 전제로 할때 인간의 꿈이 나무의 꿈이고 이꿈은 
신의 세계에 닿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소망을 의미한다. 한편 인간 에게는 탄생, 
창조, 재생에의 꿈이 있고, 이런 꿈은 계절적으로는 봄, 하루의 수준에서는 
새벽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 피기 전에 작은 열매를 맺고 
불임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 
소년들의 성기에는 까닭 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 까지 이민을 떠났다 우리는 
ㅡ 이 성복,[1959년] 


이 시의 경우‘봄’은 오지 않고, 그것도 여름이 되어도 오지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봄은 자연으로서의 봄이면서 동시에 이런 의미를 초월하고 따라서 
관념으로서의 봄이고(‘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이런 봄이 암시하는 것은 새로운 삶, 신생, 창조, 계몽 등이다. 말하자면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과 대비되는 삶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삶, 새로운 삶의 창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노래한다. 



5.상징이냐 알레고리냐 

상징과 알레고리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두 기법모두 이미지를 보여줄뿐 
직접 진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취의가 생략되고 매재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과 알레고리는 다르고, 이 차이가 중요하다. 알레고리allegory 는 흔히 우유㝢兪, 우화偶話, 로 번역되고allegory는 그리스어로 
‘다른것’을 뜻하는 allos 와 ‘말하다’를 뜻하는 agoreuein 이 결합된 말이다. 따라서 알레고리는 어떤말 혹은 이미지가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의미 한다는 
뜻이고, 우화가 암시하듯이 이런 말하기는 상징과 다른 몇가지 특성을 보여준다. 
첫째로 상징이 사물이나 이미지에서 출발해서 관념에 이른다면 알레고리는 
거꾸로 관념에서 출발해서 이미지에 이르는 과정을 밟는다. 
둘째로 상징의 경우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1 : 다 로 나타 난다면 알레고리의 경우엔 1 : 1 로 나타나며 시간적 
계기성을 띠고 그런점에서 연속성을 띤다. 
셋째로 상징의 의미는 모호 하지만 알레고리의 경우엔 분명하고 교훈적이고, 
넷째로 알레고리는 이 교훈적인 것과 관계가 있지만 실화성을 띤다는 것이다 
( 좀더 자세한 것은 이승훈, 시작법, 탑 출판사.1988, 201-206면 참고바람). 
다음은 알레고리에 의한시. 


그는 들어왔다. 
그는 앉았다. 
그는 빨강 머리의 이 열병은 바라보지도 않는다. 
성냥불이 켜지자 
그는 떠났다. 
ㅡ 아폴리네르,[시](오 증자 역) 


‘그’는 시를 의미하고, 따라서 이 시는 시스기에 대한 시이며, 시쓰기 
혹은 시상이 전개되는 과정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노래한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른, 혹은 환각으로 나타난 시가 성냥불을 켜자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다음과 같은 시도 알레고리의 기법에 의존한다. 


태양신이라고 불리우던 루이14세는 
그의 통치 말기에 
종종 구멍 난 의자에 앉곤 했다 
지독히 어둡던 어느 날 밤 
태양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가 앉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ㅡ 프레베르,[일식](오 증자 역) 


루이 14세를 풍자한 시로 일종의 교훈이 있고, 설화성도 있고, 
이미지가 시간적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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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부모 / 김소월

 

 

            

 

 

 

 

 

 

 

 

김소월 부모 원작

부모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김소월 연보 

1902년 9월 7일 평북 구성군 서산면 왕인동 외가에서 父 金性壽와 母 張景淑의 장남 출생(金氏문중의 종손)

               (본명 : 김정식, 필명 : 소월) 

                  ※ 조부가 대지주였고 광산업도 하여 집안이 부유했으며 유교적 가풍이 있었음. 

1904년 (2세)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부친이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킴. 

1907년 (5세) 조부가 독서당을 개설하고 훈장을 초빙하여 한문 공부 시작. 

1909년 (7세) 공주 김씨 문중에서 세운 남산소학교에 입학.

                  서춘 선생의 문학수업을 받고 동네 친구인 오순을 만나 이성에 눈뜸. 

1915년 (13세) 남산소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오산중학에 입학.

                    교장 이승훈, 교사 조만식의 영향으로 민족의식을 키움.

                    스승 안서 김억을 만나 본격적인 문학 수업 시작. 

1916년 (14세) 조부의 뜻에 의해 홍실단과 결혼. 오순과의 이별로 심리적 갈등을 겪음. 

1920년 (18세) 안서의 지도로 창작에 매진하고 『창조』에 '낭인의 봄, 그리워, 춘강' 등을 발표하여 문단 등단. 

1922년 (20세) 배재고보 5학년에 편입 

1923(년 21세) 3월 교지 『배제』에 '길손, 달밤, 점동새' 등을 발표. 
                    배재고보 졸업 후 일본 유학길에 오름. 10월 관동대지진으로 귀국.

                    (조부의 반대로 다시 일본 유학은 가지 못함) 

1924년(22세) 귀향해서 조부의 광산일을 도움.

                   영변 여행을 다녀와서 김동인, 김찬영, 임장화 등과 함께 『영대』동인이 됨. 

1925년 (23세) 시집『진달래꽃』(매문사) 상재. 시론 「시혼」을 『개벽』(5호)에 발표. 

1926년 (24세) 마음속의 연인이던 오순의 죽음으로 충격받음. 시작에서 거의 손을 떼고 방탕한 생활을 함. 
                    7월 평안북도 구성군에 동아일보 구성지국 개설, 지국장 역임.


1927년 (25세) 3월 동아일보 지국 폐쇄. '팔베개 노래' 발표.

                   나도향의 요절로 충격을 받고 자살충동을 느낌. 술로 지새는 날이 많아짐. 고리대금업에 손댐. 

1929년 (27세) '조선 시가협회' 회원 가입

                    이 협회는 이광수, 주요한, 김억 등 10명으로 구성, 저속한 가요의 가사 혁신을 위하여 조직 됨. 


1932년 (30세) 독립운동가 배찬경의 망명자금을 대주고 일경의 감시를 받음. 만주행을 꿈꿨으나 실패함. 

1934년 (32세) 8월 '제이,엠,에쓰', '돈타령" 등 발표.

                    9월 21일 추석 전날밤에 김억에게 절망적임 편지를 씀.

                    12월23일 장에서 아편을 사가지고 와 음독함. 다음날 아침 8시경 시체로 발견됨.

                     평북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 터진고개에 안장됐다가 후에 서산면 평지동 왕릉산으로 이장. 

1935년 김억이 『신동아』 2월호에 「김소월시행장」발표 

1939년 김억 선의 『소월시집』이 박문서관에서 간행됨. 

1956년 완본 『소월시집』이 정음사에서 간행됨. 

1961년 김영삼씨가 『소월정전』을 성문각에서 간행함. 

1968년 3월에 한국일보사 주관으로 서울 남산에 소월시비가 건립됨. 

1970년 숙모 계희영이 『소월선집』과 『내가 기른 소월』을 장문각에서 간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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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못 잊어 / 김소월

 

 

 

    

 

     

 

 

 

 

 

 

 

김소월 못 잊어 원작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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