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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인의 피>>
2016년 01월 13일 02시 28분  조회:3570  추천:0  작성자: 죽림
 
분열된 시인의 초상

사망 40주년 시인 장 콕토의 ‘빛의 잉크’로 쓴 시(詩) 영화세계 조명


글: 홍성남 / 영화평론가 



장 콕토의 영화들 속에서 시인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그 어둠의 세계로부터 귀환하는 존재로 종종 그려진다. 그의 마지막 영화 <오르페의 유언>에서 콕토 자신이 연기한 시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이런 식의 부활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었는지 1963년 10월의 어느 날 콕토는 절친한 친구였던 가수 에디트 피아트에게 자신들의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 대해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우리의 의사들은 아는 게 없어. 우리가 죽고 난 걸 보고 나서야 우릴 되살려내려나봐.” 며칠 뒤 두 사람은 같은 날 몇 시간의 간격을 두고 차례로 이 세상을 떠났다. 물론 초현실적 혹은 몽상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콕토의 영화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에서도 발생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의 영화에서와 달리 죽음은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무심하게 시간만 흘렀을 뿐인 것인데 바로 그렇게 지나가버려 하나의 단위를 만들어버린 40년이란 긴 시간이 이제 우리로 하여금 콕토라는 한 ‘시인’과 그의 (예술)세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빌미가 되어주었다. 


펜으로 붓으로 카메라로 시 표현

콕토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르네상스 맨’으로서의 그의 자질이다. 파블로 피카소, 에릭 사티, 기욤 아폴리네르, 에두아르 드 막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당대의 중요한 예술가들과 교분을 맺었던 콕토는, 그 교분관계가 그려낸 예술적 영역의 넓은 스펙트럼에 절대로 뒤지지 않겠다는 듯 스스로 다양한 예술 장르에 손을 댔던 왕성한 탐식가였다. 그는 우선 신선한 이미지가 살아 숨쉬는 시를 쓴 시인이었고 항상 새로운 충격을 쫓아다닌 아방가르드 연극인이었다. 그에게 동반되는 또 다른 예술적 직함들로는 소설가, 문학비평가, 화가, 배우, 조각가 등도 있었다. 여기서의 주요 관심사인 영화에 대해서도 그가 탁월한 성취를 남긴 예술가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콕토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던진 비평가들은 그가 그 많은 예술 장르에 개입했지만 실상 그 어떤 영역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를 가리켜 20세기 최후의 딜레탕트 정도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영화라는 신대륙 안에서 콕토가 예술가로서의 영예를 누릴 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는 데에는 어느 정도 비평적 의견이 일치한다. 심지어 적지 않은 평자들은 영화야말로 콕토가 가장 큰 관심을 가졌고 그만큼 그의 재능이 잘 발휘된 예술적 영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하튼 콕토가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탁월한 시네아스트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인데 콕토의 그런 면모에 대해서는 영화평론가 존 러셀 테일러의 글에 명쾌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그는 다른 예술 영역, 특히 문학에서 명성을 얻은 뒤에 영화의 영토로 옮겨와서는 영화감독으로서 작가적 지위에 오른 이는 콕토말고는 영화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이렇게 적었다. “그는 다른 매체에 몸을 담았던 이로서 영화를 그와 동등한 무게와 중요성을 가진 매체로 받아들인 최초의 중요한 예술가였으며 영화쪽에서 절정을 맞이한 최초의 예술가였다.” 

아방가르드 영화의 개척자

영화는 콕토의 예술가적 경력에 위대함을 더해주는 데 묵직한 역할을 한 매체이긴 했지만 그는 자기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서야 영화에 입문했다. 그의 첫 번째 영화인 <시인의 피>가 만들어진 것은 1930년으로 콕토의 나이가 이미 불혹을 넘긴 때였던 것이다(그의 첫 장편영화는 이로부터 16년이 더 지난 뒤에야 나온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에 그는 “나는 영화 예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작업을 해가면서 나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그런 아마추어리즘적 접근과 시적인 자기 표현에의 강렬한 갈망이 만나자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한 영화 한편이 만들어졌다. 영화는 마치 꿈의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는 세계 속에다가 한 갈등하는 예술가를 데려간다. 거기서 예술가는 자기가 만들어놓은 작품과 말 그대로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다른 차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는 죽음을 맞기도 한다. 콕토는 영화의 처음과 끝에 붕괴되는 굴뚝의 이미지를 붙여놓음으로써 그 중간에 펼쳐진 이미지의 흐름들이 굴뚝이 무너지는 찰나의 순간에 한 예술가의 내적인 세계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음을 슬쩍 암시한다. 콕토의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선보인 <시인의 피>는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던 루이스 브뉘엘의 <안달루시아의 개>(1929)(와 <황금시대>(1930))와 함께 초현실주의영화의 대표작으로 불리면서(비록 콕토 자신은 그런 식의 명명을 매우 싫어했지만) 193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에 이르는 미국 아방가르드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를테면 마야 데런의 <오후의 올가미>(1943) 같은 이른바 ‘몽환의 영화’(trance film), 즉 몽유병에 걸린 듯한 주인공이 정체성을 찾겠다며 금단의 영역을 비현실적인 걸음으로 배회하는 유의 영화들에는 콕토의 이 아방가르드 데뷔작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몽상·비합리적 세계에 현실감을

콕토는 이 인상적인 첫 영화 <시인의 피>를 선보이고 나서 다시 오랜 세월을 보낸 뒤 다섯편의 장편영화-<미녀와 야수>(1946), <쌍두 독수리>(1947), <무서운 부모들>(1948), <오르페>(1949), <오르페의 유언>(1959)-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추가했다. 무언가 정리의 편의성을 원하는 우리의 요구에 따라 이 수적으로는 빈약한 필모그래피를 한번 분류해보자면 <미녀와 야수>와 그에 이은 두편의 영화가 하나의 하위 범주를, 그리고 나머지 세편의 영화들이 다른 하위 범주를 형성한다고 이야기하면 무방할 듯싶다. 
그렇지만 전자의 경우 그 응집력이 후자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세 영화 모두가 높은 장벽을 마주한 이뤄지기 힘든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 원천과 톤에서는 일치하지 않는 편이다. 예컨대 여기서 가장 환상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영화가 동화를 토대로 한 <미녀와 야수>라면 <무서운 부모들>은 그 반대편에 자리하는 영화인 것이다. 

또 하나 조심스레 지적해볼 수 있는 것은,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그만큼 가장 많이 논의되는 영화가 <미녀와 야수>이지만 그보다 더 높이 평가할 만한 영화가 <무서운 부모들>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무서운 부모들>은 애정의 이상한 연쇄를 동력 삼아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갖고 있지만 아들은 연인이 생기면서 예전보다 어머니를 멀리한다. 그런데 이 아들의 연인은 알고 보니 아버지와 불륜의 관계를 맺는 상대였다. 한편 아버지의 곁에는 오랫동안 그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서 가정부로 일하는 여인이 있다. 한정된 실내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이 다섯 인물들 간의 관계와 음모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콕토 자신의 희곡을 스크린에 옮겼으면서도 지나치게 연극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영화적인 트릭을 쓰지 않은 채 내내 극적인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 만약에 콕토가 이런 쪽으로 영화세계의 방향을 잡았다면 그의 영화적 행로는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자연스레 하게 만드는 걸작이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들과 다른 범주에 속하는 영화들, <시인의 피> <오르페> <오르페의 유언>으로 이어지는 ‘오르페 삼부작’ 혹은 ‘시인 삼부작’은 연속성과 공통 부분에서 다른 세 영화 그룹보다는 훨씬 그 강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시인의 피>와 <오르페>는 20년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졌지만 후자는 전자의 확장에 해당하는 영화이고 <오르페>보다 10년이 지난 뒤에 나온 <오르페의 유언>은 전작들과 콕토의 예술적 삶 자체에 대한 고별사와도 같은 영화이다. 전체적으로 콕토적 우주라 할 만한 어떤 세계를 형성하는 이 세편의 영화들에서 콕토가 그리고자 한 것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시인의 초상일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시인이란 <오르페의 유언>에 나오는 대사를 빌리면 “본질적으로는 불구자이면서도 달리기를 꿈꾸는 종류의 인간”이고 또 <장 콕토의 다시 떠난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한 구절에서 인용하자면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하고 “미지의 것들에 대해,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것에 이끌리는” 사람이다. 당연히 이 몽상가이자 탐험가인 시인은 시공간과 생사로 구분된 금단의 경계를 
드나들고자 하는 불법 침입자- <오르페의 유언>에서 콕토에게 부여된 죄상!- 이게 마련이다. 시적인 소재를 찾아서 일부러 시적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바로 이 시인의 정신적·신체적 움직임을 따르기에 콕토의 영화는, 그의 다른 작품들이 비평적 시, 소설의 시, 회화의 시 등등이듯이 영화의 시 혹은 시정(poesie)의 영화가 될 수 있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담아라”

자신의 예술 활동 전체를 시의 이름 아래 통합하려 했던 콕토에게 영화는 시인을 위한 완벽한 매체였다. 그건 그가 영화란 꿈의 세계, 몽상의 세계, 마술의 세계, 비합리의 세계를 스크린에 그려낼 수 있되 그런 세계에다가 현실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는 것, 바로 그 점에서 특별한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란 다름 아닌 조형적인 시를 만들어내는 매체인 것이다. 영화에 대한 이런 식의 고려는 ‘시인 삼부작’에서 고스란히 현실화한다. 예컨대 콕토는 <시인의 피>를 두고 “비현실적인 사건들에 대한 현실적인 기록”라고 불렀는데 이건 영화로 비합리의 세계를 그려내되 구체성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는 자신의 원칙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오르페>에서 저 건너편의 세상이 현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게 묘사되는 것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처럼, 장 뤽 고다르의 표현대로 시네마 베리테와 시네마 라이(cinema-lie)를 포개놓음으로써 콕토는 자신의 영화(세계)를 좀더 몽환적이고 그리고 좀더 관능적인 것으로 구축해냈다.

그 자신이 영화사의 그 어떤 누구와도 다른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보여준 콕토는 영화가 예술이라는 것(지금에 와서는 점점 용도 폐기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명제)을 결코 부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 속에서 (개인적인) 예술로서의 영화, 즉 시네마토그라프는 탐구라기보다는, 실험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도 카메라를 가지고 혼자서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즐겁게 표현해보라는 바로 그 목소리에 후대의 아방가르디스트들과 누벨바그 멤버들이 많은 감화를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콕토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16mm영화를 만들라는 식의 글들로 전달해보려고도 했다
(당시 그가 ‘위대한 16’(le grand seize)이라고 불렀던 16mm영화는 ‘독립적’ 혹은 ‘개인적’이란 단어와 동의어였다). 그 가운데 하나의 글에서 그는 피카소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인용한다. “어느 지점이 지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하는 건 무엇이든 의미를 가지게 마련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지금도 개인적 표현의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콕토는 아직 불멸의 뮤즈 같은 존재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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