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기형도 - 빈집
2016년 05월 01일 18시 55분  조회:4562  추천:0  작성자: 죽림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1989년>

▲ 일러스트 / 권신아
 
 

기형도(1962~1989) 시인의 마지막 시다. 1989년 봄호 문예지에서 이 시를 읽었는데 일주일 후에 그의 부음을 접했다. 이제 막 개화하려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맞아야 했던 그의 죽음에 이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초라했을 것인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서 이사를 계획하고 쓰여졌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밤은 짧았고, 짧았던 밤 내내 겨울 안개처럼 창 밖을 떠돌기도 하고 촛불 아래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망설이고 망설였으리라. 그 사랑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이 되었으리라. 실은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잠그는 방향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는 소중한 것들을 가둔다는 것이고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일 것이다. 사랑의 열망이 떠나버린 '나'는 '빈집'에 다름 아니고 그 빈집이 관(棺)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삶에 대한 지독한 열망이 사랑이기에, 사랑의 상실은 죽음을 환기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나직이 되뇌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씩 불러낸 후 그것들을 떠나보낼 때, 부름의 언어로 발설되었던 그 실연(失戀)의 언어는 시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실연(實演)되었던가. 죽기 일주일 전쯤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던 그의 사인은 실제로 뇌졸중으로 추정되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오래된 서적')이라 했던 그가, 애써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건만. 

그가 소설가 성석제와 듀엣으로 불렀던 팝송 'Perhaps Love'를 들은 적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맑은 고음이 그의 몫이었다.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로 시작하던 화려하면서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라는 그의 독백도.[정끝별 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723 김혁 / 김룡운 2015-09-17 0 4160
722 詩碑에 是非를 걸다... 2015-09-17 0 4468
721 조선족문학의 개념에 대하여 2015-09-17 0 4733
720 김철 / 장춘식 2015-09-17 0 5038
719 김창영 / 장춘식 2015-09-17 0 4544
718 리옥금 / 장춘식 2015-09-17 0 4949
717 고 송정환 / 장춘식 2015-09-17 0 4635
716 연변지역 시문학 뿌리 및 그 현황 2015-09-17 0 4592
715 한영남 / 장춘식 2015-09-17 0 4206
714 전춘매 / 장춘식 2015-09-17 0 4293
713 ...끝 2015-09-17 0 5704
712 ...이어서 2015-09-17 0 4535
711 ...계속 2015-09-17 0 4736
710 ...이어서 2015-09-17 0 4416
709 ...계속 2015-09-17 0 4825
708 일제 강점기 조선족 시문학 2015-09-17 0 4315
707 리육사의 <<로신추도문>> 2015-09-16 0 5828
706 당신도 디카시 시인 2015-09-12 0 4678
705 <사진> 시모음 2015-09-12 0 4861
704 디카시 모음 2015-09-12 0 4196
703 디카시란? 2015-09-10 0 4716
702 하이퍼시 - 역설의 시 2015-09-10 0 4184
701 하이퍼시 창작기법 2015-09-09 1 4501
700 하이퍼시의 목표 - 고정틀 벗어나기 2015-09-09 0 4576
699 하이퍼시 - 새롭게 디자인한 시 2015-09-09 0 4460
698 하이퍼시란? 2015-09-09 1 4164
697 글쓰기 0도 2015-09-09 0 3803
696 패러디(모방, 표절, 도작...)문학을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문제"면 "문제"로다... 2015-09-07 0 4313
695 ...계속 2015-09-07 0 4074
694 남영전 / 최룡관 2015-09-07 0 4045
693 한춘시평 2015-09-07 0 4006
692 토템시에 한마디 2015-09-07 0 4341
691 토템시 - 민족문화브랜드 2015-09-07 0 5254
690 감자 캐는 즐거운 농부 - 남영전시인 2015-09-07 0 3958
689 ...계속 2015-09-07 0 5722
688 남영전 / 김관웅 2015-09-07 1 4436
687 민족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2015-09-07 0 3930
686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위상(자료) 2015-09-07 0 4955
685 중국 조선족시문학 정초자 - 리욱 2015-09-07 0 4828
684 시의 가치란? 2015-09-06 0 4714
‹처음  이전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