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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內美之象적 언어를 뿜어내는 것...
2016년 07월 19일 22시 44분  조회:4186  추천:0  작성자: 죽림

[13강] 대상에 대한 표현.3 

강사/김영천 


3)표현은 쉽고 순수하게 

저도 학창 시절엔 시를 쓰면서 좀 어렵고 난해한 시가 
좋은 것인 줄 알고 이상의 시나 읽고, 그렇게 난해한 
시를 써서 대학신문에 발표도 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 
하니 무척 부끄러운 일입니다. 
시를 읽으면 그 시에서 감동을 받아야 하는데 감동은 
커녕 시가 무슨 뜻인지도 알기 어려워서야 독자들이 
시를 멀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여러분들도 이 강의를 받기 전까진 시는 시인들 
이나 쓰는 어려운 것으로 알았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지금은 아하, 나도 쓰겠다하는 것이구요. 
물론 개인 차가 있습니다만, 제가 책임 지고 여러분 
모두 시를 쓰실 수 있도록 할테니 강의만 빠지지 말고 
들으시구요. 자꾸 복습도 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독자들에게서 시가 멀어지는 것도 이처럼 
현대시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는 좋은 시들은 다 그 즉석에서 감동을 느 
끼게 하는 쉬운 글들이지, 어렵고 난해한 시들이 아닙 
니다. 
조태일님의 글을 잠시 인용합니다. 

" 표현이란, 본질적으로 주관의 객관화이다. 자신의 마음 
안에 있을 때는 생각이나 느낌, 깨달음, 발견 등 모든 것 
이 주관적인 것이지만 이 것이 밖으로 드러날 때는 철저히 
객관화 되는 것이다. 이 객관화를 통해서 주관적인 세계 
는 사적인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고 타인과 공유하게 된다. 

이처럼 표현 그 자체가 자신만이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요 
자신의 것을 타인과 함께 나눠 갖고 공감하도록 하는 것 
이기에 표현이 쉬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시 
는 어떠한 문학 장르보다도 독창적이고 주관적인 세계에 
대한 표현이므로 그것을 온전하게 객관화시키기 위해서는 
독자가 알기 쉬운 표현을 찾아내야 한다." 

이어서 조태일님도 지적한 바가 있지만, 우리 시인들이 
실제로 시를 쓸 때는 쉽게 쓰는 것이 어려운 표현을 그대 
로 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지금 강의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분들은 학자들이어서 
강의가 학문적으로 좀 어렵지요. 저는 이 것을 풀어서 
알기 쉽게 하려니 교안 작성부터 무척 어렵네요. 

여기에서 정진규님의 <몸시24. 고향에 가서.를 한 번 
읽어볼까요. 

바알간 초록시금치 밑둥 
아침 산책 나온 
바알간 오리발 맨발 

채마밭을 지나 

바알간 볼의 소년이 
새운동화를 신고 
邑內 
학교로 간다 

도시락이 따뜻하다 

아직은 
미워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아직은 
마알간 속살로 
기다리고 있는 게 더 많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입니까? 
정말 쉽고 순수한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시이면서도 
너무 많은 감동을 품고 있지요. 

시를 아름답게 보일려고, 너스레를 떨거나 
무슨 기교를 부리거나 하지 않고, 아주 쉽고 투명한 
언어들을 사용하였지요. 

고대 중국의 유명한 시인 백낙천은 일단 시를 쓰면 
자기 집에 부리던 하인들이나, 이웃의 농부들을 불러 
보여주었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이 이해할 때까지 그 시를 고쳤 
다 합니다. 

청록파 시인 중 한 분이신 조지훈님은 그의 글 "소재 
와 표현"이란 글에서 말하기 좋은 표현을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천진한 눈, 억지로 꿰맨 자국이 없는 글 
솜씨, 순수하면서도 거침없는 문장으로 돌아가는 일이 
라 했으며, 개성적인 솜씨로 소재를 다루더라도 그것을 
문장으로 표현할 때는 온건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했다 
합니다. 

*참고로 백낙천에 대한 자료와 시 한 편을 여기 올리니 
필요하신 분은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백거이(白居易:772~846) 
중국 중당기(中唐期)의 시인. 자 낙천(樂天). 호 취음 
선생(醉吟先生)·향산거사(香山居士). 본적 산서성 
[山西省] 태원[太原]. 낙양[洛陽] 부근의 신정[新鄭] 
출생.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태어났으며,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된다. 평범한 
관료의 가문에서 성장하였으며,어린시절 빈곤과 전란에 
시달렸다. 젊어서 벼슬에 나아간 뒤 직언과 간쟁(諫諍)을 
하여 미움을 사 좌천되기도 했으며, 현실비판적인 시를 
많이 썼으나 후기에는 한적과 은일을 주로 읊었으며 
사상적으로 도교와 불교에 심취했었다. 


차라리 술을 마셔라.(不如來飮酒) 


막입홍진거(붉은 먼지 혼탁한 속세에 들어가) 
영인심력로(마음과 정력을 헛되게 말라.) 
상쟁양와각(달팽이 뿔 위에서 서로 싸운들) 
소득일우모(얻은 것은 한가락 소털뿐이리) 
차멸진중화(잠시 노여움의 불길도 끄고) 
휴마소리도(웃음 뒤에 칼도 갈지 말고) 
불여래음주(차라리 와서 함께 술이나 마시며) 
온와취도도(조용히 누워 도연히 취하세) 



여기서 정희성님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한번 
읽지요. 이 시도 유명한 시여서 혹시 전부터 
시에 관심 있었던 분들은 아마 읽어 본 시일 것입 
니다. 


흐르는 것이야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도 여러분들은 시인이 좋은 시가 되게 
하기 위해서 억지로 꾸민 곳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시에서 그대로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는 시인의 진실성이 여러분의 마음과 맞닿은 것입 
니다. 우리는 그런 시를 써야합니다. 
미사여구나 난해한 단어를 피해야 합니다. 
진실성이 없는 글은 혹은 겉으로 멋이 있는 것 같아도 
이내 쉽게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말 것입니다. 

이준관님의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이라는 
시를 하나 더 읽고 강의를 마치지요.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 
새떼들도 밟지 않은 저녁 놀이 아름답구나. 
사과 속에서, 여름의 村落들은, 
마지막 햇볕을 즐기며 천천히 익어간다. 
연한 풀만 가려 뜯어먹던 암소는 새끼를 뱄을까. 
암소가 울자 
온 들녘이 다정다감한 어머니로 그득하다. 
지붕 위에 초승달 뜨고, 
오늘 저녁, 딸 없는 집에서는 
저 초승달을 데려다가 딸로 삼아도 좋으리라. 
게를 잡으로 갔던 아이들은 
버얼겋게 발톱까지 게새끼가 되어 돌아오고, 
목책이 낮아, 
목책 밖으로 자꾸 뛰쳐나가기만 하던 하늘은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져 돌아온다. 
처녀들이 몰래 들어가 숨은 꽃봉오리는 
오늘 저녁, 
푸른 저녁 불빛들에게 시집가도 좋으리라. 

참 좋지요? 
이 시가 어떻게 쓰였는지 들어보시고, 여러분들도 
시골에 가시면 그 풍경을 연상하시며 
시를 한 번씩 써보십시오. 

"지난 6월초 건강하던 빙장 어른이 갑자기 작고하셨다. 
그 빙장어른의 49제가 마침 여름방학과 겹치는 때여서 
아예 식구들을 데리고 시골로 갔다. 
죽음처럼 슬픈 게 어디 또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죽은 자의 몫일 뿐, 죽음과 무관하게 세상은 마냥 밝게 
빛났다. 산 자의 몫인 生은 여전히 아름답고 활기에 
넘쳤다. 
아이들은 외할아버지의 죽음에는 아랑곳없이 들녘으로 
개구리, 여치, 잠자리를 잡으로 뛰어다녔다. 그들의 녹 
색으로 빛나는 生 어디에도 깊이 음각된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죽음이 우리의 生과 무관하기만 한 것일까? 
죽음이 있기에 우리의 生이 더 가치있고 소중하고 아름 
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여름 저녁놀은 정말 아름다웠다. 
산 자에게만 허락되는 이 축복받은 시간들, 살아 있음의 
이 황홀함, 그런 정서적인 울림이 컸기에 여름 저녁은 
실제보다 더 곱고 아름다웠으리라 

둑길의 저녁놀, 암소의 느릿한 울음, 조용히 저녁의 열기 
속에 휩싸여 있는 여름의 村落, 낮은 목책들, 지붕 위에 
뜬 초승달, 그리고 개펄에 싸라기별이나 드나들 만한 
게구멍을 파고 사는 게새끼들을 잡아가지고 오는 아이들의 
긴 그림자........이런 밑그림들이 이 시를 구성하고 있다." 

너무 길어서 여기서 줄입니다. 
자기 주위의 사물을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순수한 마 
음으로 받아들여서, 진실하게 표현하면 아름다운 시가 되 
는 것입니다. 
시의 표현은 멋진 기교로 꾸미고 화장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함과 진실함으로 내미지상(內美之象)을 뿜어내는 언어 
들이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조태일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공자가 『시경 』을 평하여 "시 300수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고 한 것은 
시의 표현들이 거짓되거나 꾸밈이 없는 순수성과 진실성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진실성과 순수성은 이만큼 
시에 생명력을 주는 큰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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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남부선 
―백무산(1955∼)

바닷가가 보이는 작은 역에 기차는 서네
이제 막 다다른 봄볕을 부려놓고
동해남부선은 남으로 길게 떠나는데

방금 내 생각을 스친, 지난날의 한 아이가
바로 그 아이가, 거짓말처럼 차에서 내려
내 차창을 지나가고 있네
아이를 둘씩이나 걸리고 한 아이는 업고
양손에는 무거운 짐을 들고

내가 오래전 이곳 바닷가에서 일하던 때
소나기에 갇힌 대합실에서 오도 가도 못할 때
우산을 씌워주고 빌려주던 저 아이
작은 키에 얼굴은 명랑한데
손은 터무니없이 크고 거칠었던 아이
열일곱이랬고 고무공장에 일 다닌댔지
우산을 돌려주려 갔다 빵봉지를 들려주다
잡고 놓지 못했던 손

누가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기차는 떠나는데
봄볕이 저 아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데
누가 제발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열일곱 살 소녀와 스무 살 안팎일 청년, 둘이를 소나기가 만나게 했네. 소녀는 고무공장에 다닌다고 했네. ‘작은 키에 얼굴은 명랑한’ 소녀, ‘손은 터무니없이 크고 거칠어’ 청년은 그 손을 놓지 못했네. 측은해하는 마음과 사랑이 한 쌍의 떡잎처럼 돋아났네. 아, 그러나 청년은 어쩌다 그 마을에 흘러들어 바닷가 일을 하던 나그네, 어쩌다 보니 어느 결에 마을을 떠났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가 탄 기차가 그 마을 작은 역에 잠시 서고, 그러자 잊고 있던 그 소녀가 생각났는데, ‘바로 그 아이가, 거짓말처럼’ 지나가네. ‘아이를 둘씩이나 걸리고 한 아이는 업고/양손에 무거운 짐을 지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서른은 훌쩍 넘겼을 아낙이 화자의 마음에는 여전히 터무니없이 크고 거친 손인 ‘아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왜 좀 뽀얘지지 않은 거니? 왜 세 살 팔자 여든 가는 거니! 화자는 안쓰러움에 애달프고 비통하여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 기차는 떠난다. 그 오래전처럼.

내가 그 여인이라면 화자의 이 측은지심에 화가 날 것 같다. 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인가요? 내 고향마을에서 애를 셋씩이나 낳아 기르고, 양손에 무겁도록 들고 다닐 게 있는데, 이만하면 버젓한 삶이 아닌가요? ‘저토록 소박한 행복!’이라고 경탄해 줄 수는 없는 건가요? 내 생의 첫 타자(他者)였던 당신! 여전히, 그러나 다른 의미로 타자로군요. 부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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