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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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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계 미국 시인 - 마크 스트랜드
2016년 11월 22일 22시 42분  조회:5094  추천:0  작성자: 죽림
헤켓 만(灣)의 밤들 / 마크 스트랜드(1934-2014)






달, 그리고 구름의 원광이 비추던 곳
부서진 부두의 굽은 등걸은 허공에 떠 있고
바다는 얼룩진 은빛 외투를 입고 있었지
고요한 검은 소나무들,
썰물이면 부두 아래로
썩어가는 생선 냄새를 실어오던 싸늘한 공기,
달빛이
습지와 고사리 덤불 위로
은빛 옷들을 벗어던지던 그런 밤이면
나는 달빛의 청청한 눈빛 아래
옹기종기 모인 작은 오두막에서
물가를 따라 난 작은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지.
그때 나는 진정 알지 못했네.
너무 늦어 돌이킬 수 없게 된 어느 날
아프도록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리라는 것을









삶의 어떤 순간들은 아마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지 모른다. 썩어가는 생선냄새와 달무리가 초현실적으로 어우러져있던 어느 포구에서의 밤들을 기억하는 시인. 그때 그는 아마 모든 청년들처럼 미래를 향한 불안과 열망, 설렘과 자만으로 가득해 있었으리라. 시간은 흘렀고 그는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슬픈 한탄이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이 시간들을 통해 시인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생의 아픔이 아니라 아름다움인 것이다. 뼈아픈 그리움 속에 숨어 빛나는 생의 찬가, 바로 그것이 이 시의 메시지인 것이다.<임혜신 시인>                                                         ===■ 영미시 산책 / 백정국===
 
The New Poetry Handbook / Mark Strand
 
1 If a man understands a poem,
he shall have troubles.
 
2 If a man lives with a poem,
he shall die lonely.
 
3 If a man lives with two poems,
he shall be unfaithful to one.
 
4 If a man conceives of a poem,
he shall have one less child.
 
5 If a man conceives of two poems,
he shall have two children less.
 
6 If a man wears a crown on his head as he writes,
he shall be found out.
 
7 If a man wears no crown on his head as he writes,
he shall deceive no one but himself.
 
8 If a man gets angry at a poem,
he shall be scorned by men.
 
9 If a man continues to be angry at a poem,
he shall be scorned by women.
 
10 If a man publicly denounces poetry,
his shoes will fill with urine.
 
11 If a man gives up poetry for power,
he shall have lots of power.
 
12 If a man brags about his poems,
he shall be loved by fools.
 
13 If a man brags about his poems and loves fools,
he shall write no more.
 
14 If a man craves attention because of his poems,
he shall be like a jackass in moonlight.
 
15 If a man writes a poem and praises the poem of a fellow,
he shall have a beautiful mistress.
 
16 If a man writes a poem and praises the poem of a fellow overly,
he shall drive his mistress away.
 
17 If a man claims the poem of another,
his heart shall double in size.
 
18 If a man lets his poems go naked,
he shall fear death.
 
19 If a man fears death,
he shall be saved by his poems.
 
20 If a man does not fear death,
he may or may not be saved by his poems.
 
21 If a man finishes a poem,
he shall bathe in the blank wake of his passion
and be kissed by white paper.
 
 
신 시작詩作 지침서 / 마크 스트랜드
 
 
1 시 한 편을 이해하면
골칫거리가 생길 것임.
 
2 시 한 편을 데리고 살면
고독하게 죽게 될 것임.
 
3 시 두 편을 데리고 살면
한 쪽에 부정不貞을 저지르게 될 것임.
 
4 시 한 편을 품으면
아이 하나를 덜 낳게 될 것임.
 
5 시 두 편을 품으면
아이 둘을 덜 낳게 될 것임.
 
6 왕관을 쓴 채 시를 쓰면
발각되고 말 것임.
 
7 왕관을 쓰지 않고 시를 쓰면
자기 말고는 속이지 못할 것임.
 
8 어떤 시에 성을 내면
남자들의 조롱을 받게 될 것임.
 
9 어떤 시에 계속 성을 내면
여자들의 조롱을 받게 될 것임.
 
10 대놓고 시를 매도하면
신발에 오줌이 가득 찰 것임.
 
11 권력을 위해 시를 포기하면
많은 권력을 얻게 될 것임.
 
12 자기 시에 대해 떠벌리면
바보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임.
 
13 자기 시에 대해 떠벌리고 바보들을 좋아하면
시를 더는 못 쓰게 될 것임.
 
14 자기 시를 갖고 인기를 끌려고 안달하면
달빛 아래 수탕나귀 신세가 될 것임.
 
15 시 한 편을 쓴 후 동료의 시를 칭찬하면
아리따운 연인을 얻게 될 것임.
 
16 시 한 편을 쓴 후 동료의 시를 지나치게 칭찬하면
연인이 도망치고 말 것임.
 
17 남의 시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면
심장이 두 배로 커질 것임.
 
18 자기 시를 나체로 쏘다니게 하면
죽음을 두려워하게 될 것임.
 
19 죽음을 두려워하면
자신의 시로 구원받게 될 것임.
 
20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자신의 시로 구원을 받을 수도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임.
 
21 시 한 편을 탈고하면
열정의 텅 빈 항적航跡에 휩싸여
백지의 입맞춤을 받게 될 것임.
 
 
작품 읽기
 
  시인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자의식이 유별난 듯하다. 그들은 시를 쓰는 순간 자신들이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의식한다. 서양의 서사시들이 대개 시신詩神인 뮤즈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고전적인 예가 될 것이다. 물론 문학사가들은 이 현상을 시의 제의적 기원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려들겠지만, 시를 쓰는 사람의 눈으로 단순하게 보면 이것은 자신이 시를 쓰고 있다는 진행형의 흔적을 시에 노골적으로 남기는 행위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시인들은 시를 쓰는 순간뿐만 아니라 시라는 예술 자체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매우 자의식적이라는 점이다. 허술한 관찰일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시간과 공간을 거스르고 가로질러 만났던 시인들의 상당수는 잊지 않고 시에 관한 시를 썼다. 시를 정의하는 시, 시를 칭송하는 시, 시를 쓰는 사람에 관한 시, 시를 읽는 사람에 관한 시,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한 시 등등, 수도 수지만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시인들은 이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예술 장르와 견주어 보면 이것이 결코 예술의 보편적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쉽다. 과연 우리의 기억 속에 음악에 관한 음악 또는 음악가에 관한 음악이 얼마나 존재하는가? 시각예술은 청각예술보다는 그래도 형편이 좀 나은 편이다. 화가들은 종종 자화상을 그린다. 렘브란트, 르누아르, 반 고흐, 뭉크, 피카소, 샤갈 등 유명하다 싶은 화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화상을 그렸다. 마치 자화상을 그리지 않으면 화가가 아닌 것처럼. 그런데 좀 까다롭게 따져보면 그들이 그린 것은 화가가 아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모델로 한 인간을 것이다. 아무런 사전 정보나 지식 없이 그들의 초상화만 보고 그 그림의 주인공이 화가라는 것을 알아맞힐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림에 관한 그림을 떠올리려 하면 난감함은 더욱 커진다. 물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같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벨라스케스가 예외적으로 특별했던 것으로 그의 경우가 모든 화가에게 적용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혹자는 시인의 시에 대한 독특한 자의식을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언어예술의 특징에서 찾으려 들지 모른다. 사실 시인에 비해 그 빈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시인의 팔촌격인 소설가들 중에는 자의식적인 작품을 쓴 이들이 더러 있다. 소설에 관한 소설인 『소설』을 썼던 제임스 미치너를 비롯하여 소위 메타픽션이라고 알려진 작품을 쓴 일군의 현대작가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은 대개 한때의 유행이라고 판단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시인들의 거의 본능에 가까운 시에 대한 집착과는 적잖은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남은 해법은 무엇일까? 시 자체에서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마크 스트랜드의 시는 이런 시도에 얼마간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신 시작詩作 지침서」는 제목이 무색하게 시를 쓰는 방법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방법이 아니라 태도가 시의 주된 관심사다. 표면상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스물한 가지의 지침들을 꿰뚫는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시란 시인에게 삶 그 자체 그리고 그 삶의 프리즘이 펼쳐내는 다양한 빛깔이라는 것이다. 시는 두통이고, 고독이고, 결혼이고, 출산이고, 자신감이고, 겸손이고, 평화이고, 저항이고, 유혹이고, 중매쟁이고, 배움이고, 구원이고, 실존이고, 보답이다. 스트랜드가 제시하고 있는 지침들을 통해 시의 자기 회귀적 성격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시’라는 낱말을 모두 ‘인생’이란 낱말로 바꾸어 보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시의 흐름을 전혀 해치지 않고 완벽하게 의미를 소통시킨다. 이는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인에게 시는 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다.
  스트랜드가 나열하고 있는 이 지침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을 하나 고르라면 목록의 정확히 중간에 위치한 11번을 꼽고 싶다. “권력을 위해 시를 포기하면 많은 권력을 얻게 될 것임.” 시는 결코 권력의 편, 권력의 수단일 수 없으며, 시가 권력의 편, 권력의 수단일 때, 그것은 더 이상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권력은 어떤 모습으로 포장되든 그 속성상 배타적인 힘의 집중을 추구한다. 권력자는 절대 나누는 법이 없다. 기껏해야 나누는 시늉만 할 뿐이다. 독재자들이 시인을 미워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권력을 위해 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스트랜드의 주문은 시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독자들에게도 똑같은 강도로 적용될 수 있다. 권력의 편에 선 시가 시가 아닌 것처럼 권력의 편에 선 인생은 진정한 인생이 아닌 것이다. 시를 쓰고 읽는다는 것은 움켜짐을 유혹하는 세상에서 내려놓고 나누는 지혜와 용기를 배우는 것이다.
 
■작가 소개
마크 스트랜드(Mark Strand, 1934~) :캐나다 태생의 미국시인. 번역가, 산문작가, 편집자로도 유명하다. 안티옥 칼리지와 예일대학에서 수학했다. 거의 40년 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1990년에 미국의 계관시인이 되었으며, 퓰리처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수상했다. 평범하면서도 정밀한 언어, 노스탤지어가 물씬 풍기는 어조, 초자연적인 이미저리의 사용 등이 그의 시의 주된 특징을 이룬다.
 
///백정국 : 고려대 영어교육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에서 미국문학 석사. Rutgers University - Camden에서 영문학 석사, University of California - Davis에서 셰익스피어 드라마 연구로 박사 학위 받음. 현재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
 
 
 ===마크 스트랜드의 위대한 시인 돌아오다
                                                                     /임혜신

위대한 시인 돌아오다
마크 스트랜드

구름을 뚫고 빛이 세상으로 쏟아져 내릴 때 우리는 알았지,
위대한 시인이 등장하리란 것을. 그래. 그랬어. 그가 도착했어.  
흰 바퀴가 달리고 스테인드글라스로 창을 장식한 리무진에서 내려
그는 침착하고 고요하게 그러나 거침없이 성큼 성큼
홀 안으로 걸어들어 왔지. 사람들은 숨을 죽였어. 그의 날개는
커다랗고 넥타이 넓이나 양복의 스타일등, 차림새는 유행에
뒤져있었어. 그가 말을 하면 상상의 울음으로 하여 허공이 하얗게
변하는 듯 했고 욕망의 벌레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라났고
눈엔 눈물이 고였지. 그 위대한 사람은 정말 멋졌으니까.
"서둘 필요가 없답니다." 낭송을 마치며 그는 말했어.
"세상의 끝은 그저 세상의 끝일뿐이지요. 당신들이 이미 알듯이."  
아, 얼마나 그다운 말이던가, 그렇게 그는 떠났어. 세상은 텅 비고
공기는 차갑게 식어버리고 바람조차도 멈추었지.
말해 줘, 거기 있는 당신들, 도대체 시가 뭐야?
  시를 조금도 품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사람, 혹시 있어?



시인을 만나면 우리는 묻는다, 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왜 시를 쓰는가? 라고. 그 누구는 시를 영혼의 역사라고 대답한다. 그 누구는 시는 아름다운 것에의 찬가라 한다. 그 누구는 시가 전체를 향한 개인의 저항이라 하며 그 누구는 시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누구는 시는 사람을 타락케 한다고 한다. 그 누구는 죽을 때까지 시를 쓰겠다고 하고 그 누구는 시를 버리겠다고 한다. 삶의 양태 만큼이다 다양한 대답 중 마땅한 정답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이 질문은 시가 있는 어디서나 되풀이되어왔다. 왜 시를 쓰는가, 한 잔의 마실 수 있는 물도 되지 못하는 시, 한 장의 따뜻이 덮을 수 있는 담요도 되지 못하는 시, 한 알의 감기약도 못되는 시, 상처를 깨우고 아픔을 되살리는 시를 왜, 무엇을 위하여 쓰는가에 관해 고뇌하지 않을 수 있는 시인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시를 쓰는 누구나 품고 있는 피해갈 수 없는 하나의 함정 같은 것이기도 하다. 시의 가치는 이처럼 언제 어디서나 시인과 시인 아닌 모두에게 시비 거리였으며 늘 존재의 위기에 있어왔다. 그러나 요즘보다 더 심각하게 그 위기가 논해지던 때는 없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물론 급격한 과학문명의 발전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드디어 이 세상의 마지막 세대로 밀어내고 있다. 나날이 진보하는 정보통신기술은 점점 더 개인의 자유공간을 허락하지 않으며 유전공학은 이미 인간의 고뇌를 병으로 간주하고 평범의 범주를 벗어나는 상상력을 과도한 두뇌활동으로 해석한다. 과학이 병이라 부르는 사람 혹은 사회의 이러한 구조적 맹점을 치료하기 위해 과학기술은 촌음을 다툰다. 고뇌 없는 세상, 건강하고 흠 없는 세상을 향해 가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머지않아 기계와 사람은 부작용 없이 몸을 섞을 것이며 인간은 이 세상의 모든 감정들과 정보들을 담은 살처럼 부드러운 미세한 컴퓨터를 머리 속에 넣을 수 있을 거라 한다. 우리는 감정인간에서 두려움 없는 기능인간으로 바뀔 것이라 한다. 그 때가 되면 고통은 선택의 문제가 될지언정 운명은 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그 때가 되면 '지금의 우리의 시'는 없을 것이며 '불치병과도 같은 예술'도 없을 것이라 한다. 예술은 '유희적 경험'으로서만 존재하게 될지 모른다한다.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없을 것이며 나누어 질 수 없는 짐도 없을 것이며 밤을 새우게 하는 연민도 그리움 없을 것이며 채워 질 수 없는 욕망도 없을 것이라 한다. 그것들이 다 지금까지 이 지상에 살아온 우리들의 고통받지 않으려는 본능이 불러낸 우리들의 자신의 산물이라 한다. 때로는 명백했고 또 은근했던 그 탈출과 치유에의 노력의 결과라 한다. 아침마다 햇살과 푸른 초원대?신문이나 뉴스 속의 두려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우리들은 아닌게 아니라 위기의 세대다. 그렇다, 우리는 위기를 낳아 키우고 있는 이들이며, 위기와 더불어 여전히 시를  쓰고 시의 가치에 고뇌하는 바로 그 위기의 어머니가 아닌가.
마크 스트랜드가 1998년 퓰리쳐상을 받은 시집 '눈보라'에서 발췌한 시 '위대한 시인 돌아오다'를 소개하면서 먼저 시의 가치와 위기를 얘기하는 이유는 이 시 전체가 시란 무엇인가? 왜 시를 쓰는가? 에 대한 물음이며 답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시가 무엇이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위대한 시인과 청중이 만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속의 화자는 위대한 시인이 연사로 나오는 모임에 나간다. 그 시인은 마치 선지자처럼 등장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하늘에 구멍이 열리고 강렬하고도 온화한 햇살이 내리비친다. 그런 신화적 징조 뒤에 구식 옷차림을 한 신과 같은 위엄과 고귀함과 평안함을 지닌 위대한 시인이 등장한다. 그는 시를 읽고 시에 대해 말해주러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나타난다. 교회의 창처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검은 리무진에서 내려 거침없이 실내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그, 그 위대한 시인은 마치 사제처럼 단 위에 서서 시를 읽고 시를 이야기한다. 그가 어떤 시를 읽었는지 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는 화자는 말해주지 않는다. 사실 그 내용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시인의 만나기 위해 모여 기다렸던 청중들이 감동했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시인이 그 무엇으로인지 세상을 상상의 울음으로 가득 찬 환각의 장소로 변화시켰으며 사람들의 가슴속에 다시금 뜨거운 욕망이라는 벌레가 자라게 했는지, 왜 울었는지, 어떤 욕망이 생겨났는지도 문제가 아니다. 청중들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는, 바로 그 '감동'이 바로 마크 스트랜드가 정의하는 시이다. 시속의 정보가 무엇이었던 간에 그 시인의 말을 통해 '위대한 시인'이라는 관념적 존재를 사랑하고 경외하게 되는 바로 그 행위가 이 시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시의 가치이다. 우리의 몸 속에 그리움과 열망과 아픔의 거대한 꽃을 피고지게 하는  매혹적인 교감, 더 이상 무슨 구차한 설명이 필요할까.
이렇게 놀라운 감동을 불러일으킨 위대한 시인은 결국 청중을 떠나간다. 서둘지 말라고, 이 세상의 끝은 이 세상의 끝일뿐이며 다른 많은 세상들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 세상의 끝에 관해 괴로워하지 말라고 타이르며 죽음과 상실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에게 그 것의 다른 의미를 쥐어주고 떠나는 시인. 영원하지 않은 세상의 모든 것처럼 그 위대한 시인도 떠나간다. 순간일 수밖에 없는 시적 감동도 그때 사라진다. 남는 것은 길고 긴 일상의 공허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시인을 만났던 자들은 감동의 전율이 사라진 후, 더욱 깊어진 슬픔을 경험한다. 세상은 텅 비어지고 공기는 차겁게 식고 바람도 움직이지 않는다. 의문과 불안과 고독이 넘치는 현실만 남는다. 위대한 자도 위대한 말도 다 사라졌다. 이 즈음에서 그 누군가는 시와 시인의 무력함을 탓하고 그들을 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의 일시성, 과장, 환각, 어쩌면 중독성을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속의 화자는 깨질 듯이 검은 정적의 긴장을 놓치지 않고 묻는다. 얼어붙은 정적의 고독 속에서 자신에게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묻는다. 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있느냐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시인은 다시 묻는다. 그럼 시를 전혀 품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 달리 말해 시적인 아픔과 고뇌와 열망과 사랑과 후회 없이 살다가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역시 없다. 그러나 답 없는 두 질문이 바로 깊은 감동을 준 위대한 시인과 시와 청중이라는 우리들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재확인시켜준다. 시의 향기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것, 순간적이든 영원하든 실재이던 환각이던 그 모든 것 이전에 시는 이미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그의 시는 말해준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일이 비록 위협받는 행위이더라고 당당한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 위기에 처했건 위기로부터 멀리 있건 시는 우리 삶 속에서 자라나 우리와 함께 살고 고뇌하고 기뻐하고 눈물 흘리는 우리들 삶의 속성이다. 시가 탄생하게 되는 그 가장 깊은 곳의 욕망, 그 곳의 염원 그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특정한 곳에서 특정한 사람들 사이에 특정한 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것을 바로 시의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 시의 '위대한 시인'은 '성공한 세상'의 시인이라기보다 '시' 라는 우주적 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를 살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감동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울게 하고 후회하게 하고 근심하게 하고 열망하게 하고 의문하게 하고 꿈꾸게 하고 즐거워하게 하고 슬퍼하게 하는 그 어떤 우주적 힘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날마다 우리가 겪는 일상적인 일들의 깊은 내면공간이며 잠재력이며 그 공간의 넘치는 에너지이다. 이 활달하고 거침없는 힘이 어느 날 구름을 뚫고 내리는 햇빛을 받으며 이 세상에 나타나 시를 보여주고 세상의 잠재력을 깨워 함께 교류한다. 그리고는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을 넘나드는 이 위대한 시인은 다시 평화롭게 빛이 쏟아지는 어느 곳으로 천사처럼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떠나간다. 우리는 다시 홀로 남는다. 그러나 둘러보니 모든 이들 속에 시의 흔적, 감동의 흔적, 그 마력의 조각들이 묻어있지 않은가,
  시의 보편성을 멋지게 시화한 그의 시를 읽으며 나 또한 이렇게 감동한다. 그가 거침없이 외쳐대는 '위대한 시인'이란 말과 '욕망의 벌레'란 말과 '자유로움'이란 말과 '상상의 울음'이란 말과 '세상의 끝'이라는 말과 '시를 조금도 품지 않고 살다 죽을 수 있느냐?' 는 질문을 따라가 이 시속의 청중들처럼 웅장하고 비극적이며 당당한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시를 읽는 나의 행위를 당위시키는 이 시의 당당함이 든든하다. 존재론적 만족을 준다. 우리들은 우리가 헛되이 연연하고 사랑하고 욕망하고 그러면서 수없이 후회하고 의문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위기의 어머니인 우리세대의 불안은 그래서 더욱 깊어간다. 그런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이런 당당함을 필요로 한다. 사색과 고뇌가 깊을 대로 깊어진 시인, 저 높은 곳에 선 시인, 마크 스트랜드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당신들이 감동하거든 감동하게 내버려두라고. 당신들이 잠시 시의 환각에 빠지거든 빠지게 두라고, 당신들이 고뇌하거든 고뇌하게 두라고, 당신들이 위기를 걱정하게 되거든 걱정하게 두라고, 당신들이 한 잔의 물도 한 장의 담요도 한 알의 감기약도 못되는 시를 쓰고 읽거든 쓰고 읽게 내버려두라고, 위기의 시인을 위기의 시인이게 내버려두라고. 왜냐하면 시도 시의 위기도 아직 우리에게는  병이 아니라 사랑이므로.



시 원문
The Great Poet Returns

When the light poured down through a hole in the clouds,
We knew the great poet was going to show. And he did.
A limousine with all white tires and stained-glass windows
Dropped him off. And then, with a clear and soundless fluency,
He strode into the hall. There was a hush. His wings were big.
The cut of his suit, the width if his tie, were out of date.
When he spoke, the air seemed whitened by imagined cries.
The worm of desire bore into the heart of everyone there.
There were tears in their eyes. The great one was better than ever.
"No need to rush," he said at the close of the reading, " the end
Of the world is only the end of the world as you know it."
How like him, everyone thought. Then he was gone,
And the world was a blank. It was cold and the air was still.
Tell me, you people out there, what is poetry anyway?
       Can anyone die without even a little?

 

신간 '빈방의 빛: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시인이 말하는 호퍼'는 시인 마크 스트랜드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30점에 대해 쓴 글이다. 때론 에세이처럼 때론 미학 비평처럼 써내려간 이 글들은 모두 시인의 글이라는 점에서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호퍼의 그림은 사회상의 기록도, 불행에 대한 은유도 아니다. 또한 미국인의 심리적 기질 같은 어떤 조건들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부정확하기는 마찬가지다. 호퍼의 그림은 현실이 드러내는 모습을 넘어서는 것으로, 어떤 '감각'이 지배하는 가상 공간에 관객을 위치시킨다. 이 책의 주제는 바로 그 공간을 읽어내는 것이다." _ 13~14쪽  

미국의 현대미술 작가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작가를 꼽으라면 많은 이가 주저 없이 호퍼를 꼽는다. 특히 그의 그림 「나이트호크」는 현대 미국인의 일상을 가장 탁월하게 묘사한 그림으로 이해되었고, 그런 이유로 광고나 영화 같은 많은 대중문화 양식이 '호퍼 스타일'을 차용했다. 호퍼 스타일은 팝아트처럼 일상적인 오브제가 뿜어내는 기이한 거리감과 고독감 그리고 독특한 빛 표현에서 비롯되는데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호퍼 스타일의 활용 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인기몰이를 한 인터넷 쇼핑몰의 TV 광고가 대표적이다.  

특별한 소재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일상의 한 장면을 멈춰 세운 듯한 호퍼 스타일에 왜 우리는 빠져드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 "그의 그림은 20세기 초 미국인의 삶의 변화에서 온 만족감과 불안감을 보여준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빈방의 빛'의 작가 스트랜드는 이런 평가에 불만을 표한다. 이런 설명만으로는 왜 그토록 다양한 "관객이 그토록 강렬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스트랜드가 보기에 호퍼는 일상을 그려냄으로써 일상의 이면을 끄집어낸 화가다. 그 이면을 마주해 관객이 느끼는 건 고독이라기보다는 낯섦이다. 호퍼를 '사실주의 화가'라 부른다면 이때 '사실'은 낯선 "가상 공간"에 자리한다. '평이한 일상'이라는 주제가 우리를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지만, 보면 볼수록 낯설어 결국에는 완전히 생경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심란할 정도로 조용하고, 방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끝내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다." _ 113쪽

호퍼의 그림이 지니는 이러한 역설적인 측면, 함께 있으면서도 등을 돌리고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면서도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즉 "떠남과 머무름의 역설"이라는 자못 시적인 매력을 스트랜드는 읽어낸다. 이것이 바로 어느 미술비평가도 찾아내지 못한, 그가 시인이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호퍼 스타일의 숨은 매력이다.

떠남과 머무름의 역설은 그림의 기하학적 구성과 서사적 장치의 상호작용으로 더욱 강렬해진다. 예를 들어 호퍼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다리꼴 구성은 소실점을 캔버스 밖에 머물게 함으로써 미지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창문의 열린 틈에 칠해진 아주 어두운 색은 알 수 없는 깊이감을 만든다. 이 '알 수 없는 장치'들에 시선이 부딪히는 순간 관객들은 낯익은 풍경이 갑자기 낯선 풍경으로 변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호퍼의 빛 처리는 이러한 효과에 힘을 더한다. 그가 그린 빛은 "이상하게도 공기를 채우고 있는 것 같지" 않고 "벽이나 물건에 달라붙어 있는 듯하다." 이 달라붙는 강도가 상당해서 어느 물체(형태)에 빛이 드리워진 게 아니라 빛이 곧 물체(형태)를 가장하며 양감(量感)을 뿜어내는 듯하다. 모네의 빛이 사방으로 부서지고 흐른다면 호퍼의 빛은 단단하고 정지되어 있다. 빛의 정지는 궁극의 정지다. 호퍼의 그림이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단절된 "가상 세계"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빛의 이러한 성격은 호퍼가 그린 공간의 성격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기억에 의존해 그림을 그렸는데 당연히 기억에 남지 않은 것들은 축소하거나 삭제했다. 텅 빈 공간에 남은 것이라곤 과감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빛뿐이다.  

"1963년에 그려진 호퍼의 마지막 걸작인 이 그림은 우리가 없는 세상의 모습이다. 단순히 우리를 제외한 공간이 아닌, 우리를 비워낸 공간이다. 세피아색 벽에 떨어진 바랜 노란빛은 그 순간성의 마지막 장면을 상연하는 듯하니, 그만의 완벽한 서사도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_ 103쪽  

스트랜드는 평이하고 절제된 언어가 빚어내는 기이한 초현실적 이미지의 시를 쓰는 작가다. 그래서 그의 시는 종종 호퍼의 그림과 비교된다. 오랫동안 스트랜드의 시를 읽어온 옮긴이 박상미는 『빈방의 빛』이 스트랜드라는 시인의 특별한 시각을 담은 책이라는 점을 유념하며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그의 시정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그 모습은 어쩔 수 없이 호퍼를 닮았다고 말이다.

스트랜드는 이 책에서 시인의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그림의 분위기뿐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 그리고 그림의 초월적인 깊이까지도 섬세하게 압축해낸다. 그가 호퍼의 공간을 시간적인 은유로 표현한 다음과 같은 대목은 호퍼의 작품을 이해하는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호퍼의 그림은 짧고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볼 때 그림이 드러내는 연속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호퍼의 그림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사건들로 채워질 장소로서의 빈 공간이 아니다. 즉 실제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닌, 삶의 전과 후의 시간을 그린 빈 공간이다. 그 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그 어두움은 우리가 그림을 보며 생각해낸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요점을 벗어나 있다고 말해준다." _ 114~115쪽

스트랜드의 이와 같은 지적은 지금까지 우리가 호퍼를 감상해온 방식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요점을 벗어나"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스트랜드식으로 호퍼를 읽어봄으로써 호퍼의 그림을 감상하는 다른 차원을 경험할 뿐 아니라 예술을 보는 전반적인 시각까지 변하게 됨을 느끼게 된다.  

"그림을 볼 때 필요한 건 미술사적인 지식과 비평적 관찰뿐만이 아니다. 스트랜드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나’라는 개인의 고유한 시각, 명철한 시정(詩情)으로 예술에 접근하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_ 115쪽  

결국 이 책은 그 끝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독자를 호퍼의 그림 앞에 앉힌다. 이번에는 각자의 ‘스타일’대로 호퍼 스타일과 마주해보라는 요구다. 

마크 스트랜드 지음 |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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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작고한 시인의 작품을 꺼내 보련다. 미국의 계관시인(미국은 의회도서관이 해마다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을 지명한다)이었던 마크 스트랜드(1934~2014)가 1978년에 발표한 ‘나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비가(悲歌)’(Elegy for My Father)라는 아주 긴 시인데, 일부만 여기 옮긴다. 


▲ 길종만 기자
1. 빈 육체 

손은 당신의 손이고, 팔도 당신의 팔인데, 

당신은 거기에 없었다. 

 
당신의 눈이지만, 닫혀서 눈이 떠지지 않았지. 

…(중략)… 

2. 대답들 

당신은 왜 여행을 하셨나요? 

집이 추웠기 때문이지. 

당신은 왜 여행을 하셨나요? 

하루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기까지 내가 언제나 해온 일이었으니까.

당신은 어떤 옷을 입었나요? 

남색 양복, 하얀 셔츠, 노란색 타이, 그리고 노란색 양말.

당신은 어떤 옷을 입었나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어. 고통의 스카프가 나를 따뜻하게 해줬지.

누구랑 잤나요? 

매일 밤 다른 여자와 잤지. 

누구랑 잤나요? 

나 혼자 잤어. 난 언제나 혼자 잤지. 

왜 내게 거짓말을 했나요? 

난 내가 항상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했어. 

왜 내게 거짓말을 했나요? 

진실도 아무렇지도 않게 속일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난 진실을 사랑해.

왜 떠나려고 해요? 

이제는 어떤 것도 내게 그다지 의미가 없으니까.

왜 떠나려고 해요? 

나도 모르겠어. 왜 가려는지 나도 알지 못했지. 

얼마나 오래 제가 당신을 기다려야 하나요? 

나를 기다리지 마라. 피곤해서 그만 눕고 싶구나.

피곤해서 쉬고 싶은가요? 

그래, 난 지쳤어 그래서 쉬고 싶어. 

…(후략) 

1. THE EMPTY BODY 

The hands were yours, the arms were yours, 

But you were not there. 

The eyes were yours, but they were closed and would not open.

…… 

2. ANSWERS 

Why did you travel? 

Because the house was cold. 

Why did you travel? 

Because it is what I have always done between sunset and sunrise.

What did you wear? 

I wore a blue suit, a white shirt, yellow tie, and yellow socks.

What did you wear? 

I wore nothing. A scarf of pain kept me warm. 

Who did you sleep with? 

I slept with a different woman each night. 

Who did you sleep with? 

I slept alone. I have always slept alone. 

Why did you lie to me? 

I always thought I told the truth. 

Why did you lie to me? 

Because the truth lies like nothing else and I love the truth.

Why are you going? 

Because nothing means much to me anymore. 

Why are you going? 

I don‘t know. I have never known. 

How long shall I wait for you? 

Do not wait for me. I am tired and I want to lie down.

Are you tired and do you want to lie down? 

Yes, I am tired and I want to lie down. 



 
▲ 최영미 시인///===
몸은 당신의 몸인데, 그러나 당신은 거기에 없었다.

입관하며 내가 마지막으로 본 당신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내가 재작년에 아버지를 여의지 않았다면, 이 시에 지금처럼 공감하지 못했으리라. 당신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을 나는 지켜보지 못했다. 그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다면, 나도 내 아버지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대답이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입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 마크 스트랜드의 시를 읽으며 감정이입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도 그의 아버지처럼 평생 돌아다니셨다. ‘집이 추워서’ 여행을 떠났다니. 당신을 비난한 내가 부끄럽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자란 마크 스트랜드는 원래 화가 지망생이었다. 예일대에서 당대의 일류화가 알베르에게서 회화를 배우다 그만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단다. 화가를 꿈꾸었던 시인의 작품답게 이미지가 예사스럽지 않다. 

‘고통의 스카프가 나를 따뜻하게 해줬지.’ 고통을 목에 둘러 늘 따뜻했지. 따뜻한 스카프의 이미지와, 고통이라는 어두운 단어가 결합해 인생의 깊이를 담은 시구가 탄생했다. 개인적인 고통일 수도 있지만, 시인의 아버지는 유대인이었다. 시대적인 고초도 섞였을 게다. 

 
시인이 아버지를 애도하는 자전적인 시인데, 대화체로 돼 있어 박진감이 넘친다. 같은 질문을 두 번 하는데, 처음엔 비교적 쉬운 (직접적인) 대답을, 나중엔 어려운 대답을 배치했다. 두 대답이 연결돼 있고, 서로 대치하는 듯하지만 실은 같은 말이다. 매일 밤 다른 여자와 자는 남자는 사실 ‘혼자’ 자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 시가 이해 안 된다면, 당신은 행운아이며 축복받은 인생을 산 사람이다. 당신을 낳아준 부모님에게 감사하기를…. 

아들과 아버지가 실제 나눈 대화를 옮긴 것 같지는 않다. 이승에서는 주고받지 못한,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던 의문들. 그가 듣고 싶었던 (혹은 듣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대답들로 시를 만들었다. 뒤는 좀 산문적이다. 지루하지 않은 앞부분만 한글로 옮겼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를 위한 대답이 되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출처: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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